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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671□세상의 빈 집□이동재, 경계시선 21, 문학과경계사, 2003 한 곳에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발랄한 정신이 돋보인다. 그런데 그런 발랄함은 근원에 대한 고민을 놓는 순간 말장난이 되는 수가 많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머물러 있는 시들이 적지 않다. 한 번 잡은 이미지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시로 만들어내는 것은 정신의 맷집이다. 그런 뚝심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것은 이미 재주를 넘어서서 무언가 시에서 할 말을 찾는 자의 태도이다. 따라서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이 점이 이 시인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다만 시가 장광설로 흘러가지 않도록 마음의 고삐를 죄고 거기에다가 세상을 더 넓게 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이 기백을 제 방향으로 이끄는 방책이 될 것이다.★★☆☆☆[4337. 6. 18.]
672□쟈끄린느 뒤프레와 함께□박몽구, 경계시선 27, 문학과경계사, 2004 할 말의 내용과 견줄 때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었다. 그러다 보니 꼭 수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건이 있고, 그 사건에 대한 느낌이 있으며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는 조리정연한 수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시의 문장을 기대하고 읽는 사람으로선 끝까지 다 읽어주기 곤란한 것들이 태반이다. 시의 문장이 수필의 문장과 다른 것은 그 긴장 때문이다. 대상을 직접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우회해서 독자가 그 우회함의 진의를 알아차리게 해서 감동의 절정과 그 절정의 말을 한 순간에 깨닫게 하는 것이 시의 언어이자 배치이다. 이렇게 수필 쓰듯이 길게 해서 쓰면 한 순간에 감동이 몰려올 까닭이 없다. 이런 식이라면 굳이 시라는 양식을 빌릴 것도 없다. 수필을 쓰면 된다. 무언가 시라는 양식에 대해서 심각하게 재고해 보아야 할 시집이다.★☆☆☆☆[4337. 6. 18.]
673□석류꽃엔 눈물샘이 있다□박백남, 경계시선 5, 문학과경계사, 2001 생각의 독특함만으로 시를 쓴다면 철학자들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은 그런 생각을 드러내는 ‘방법’이 주는 관성 때문이다. 그 방법을 벗어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벗어난 그것이 새로운 관성을 유도할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이 시집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삶의 깨달음이 아주 독특하고 신선한 면이 많다. 그러나 그런 독특한 시각이 시라는 형식으로 들어갈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주 많은 시들이 수필에서 보는 산문의 그 투를 많이 끌어안고 있어서 시가 지닌 그 묘한 긴장을 건네주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이 참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그런 부분을 시인의 특징이라고 인정해주면 그만이겠지만, 그 특징이 시 형식의 관성을 허무는 쪽이라면 시의 개념을 바꾸는 수밖에 없고, 예나 지금이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는 산문 말고 시의 갈 길이 따로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부를 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는 이왕이면 생각을 드러내는 발상의 신선함도 고려했다면 더 좋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소한 것 같지만, 발상 자체가 시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4337. 6. 19.]
674□해변주점□이상인, 경계시선 6, 문학과경계사, 2001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읽는 사람의 감정까지 차분하게 해주는 시집이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나름대로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고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무리 없이 설득하는 재주가 있다. 다만, 아직도 비유라든가 해석 면에서 다소 억지스런 부분이 남아있고, 불필요하게 설명을 하려는 부분이 눈에 띄어서 아쉽다. 그리고 시집 전체로 묶었을 때 그 세계가 어떤 곳을 지향하는가 하는 것이 조금 엷다는 점 역시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시들이 많은 분위기에서 이 정도로 차분한 시각과 목소리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이 시집이 지닌 아주 훌륭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4337. 6. 19.]
675□지독한 갈등□최종수, 경계시선 17, 문학과경계사, 2002 단단하게 벼려놓은 칼 같다. 칼의 쓰임은 베는 것인데, 거기에 장식이 많으면 오히려 불편할 뿐이다. 모든 장식을 떼어버리고 빛나는 검광만을 드러낼 줄 아는 것도 대단한 실력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의 장식을 의식하지 않은 깔끔한 결론이 일관하고 있다. 이른바 운동권 시가 전멸한 가운데 독특한 빛을 발하는 시집이다.★★☆☆☆[4337. 6. 19.]
676□소리 깊은 집□최춘희, 경계시선 25, 문학과경계사, 2003 묘사를 통하여 보여주기 수법을 전개하는 시들은 감정을 직접 전하는 말들의 시와 성격이 달라서 때로 이 둘이 섞이면 효과가 반감되는 수가 있다. 이 시집은 보여주기가 주를 이르면서 거기에 말하기를 곁들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두 가지 방법이 서로를 견제하는 수가 생겨서 어느 곳에서는 생각으로 와 닿고 어느 곳에서는 느낌으로 와 닿는다. 이 두 가지가 한 시집 안에서 서로 뒤엉키면 읽는 사람은 다소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시집은 아주 분명한 감정을 갖고 있지만, 이런 부분 때문에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남는다. 그리고 너무 자세하게 파고들어서 오히려 감정을 전달하는 데 효과가 반감되는 경우도 곳곳에 있다. 이런 사소한 부분만 보충한다면 좋은 시를 쓸 시인이다. 한자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4337. 6. 19.]
677□푸르른 소멸□박제영, 경계시선 26, 문학과경계사, 2003 욕망을 해체하기 위하여 다양한 실험을 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고, 그것이 나름대로 묘한 성공을 이루고 있다. 묘한 성공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본 세계를 분해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형식의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경우에 간과하기 쉬운 것은 인식의 깊이이다.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하려 드는 통에 그 인식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하던 것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잦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특별히 신선할 것도 없는 표현에 빠져들게 된다. 말하지만 하고자 하는 말에 치여서 표현을 소홀하게 되고, 그것을 형식의 파괴 내지는 실험으로 대치하려는 뜻하지 않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이 시집의 시들도 많은 부분 그런 우려에 다가가 있다. 따라서 욕망을 바라보는 인식의 깊이와 그것을 담아낼 변화된 어떤 형식을 좀 더 천착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방법이 될 것이다. 한자는 여전히 장애이다.★★☆☆☆[4337. 6. 19.]
678□수렵도□이진영, 경계시선 13, 문학과경계사, 2002 적절한 이미지를 끌어들이며 시를 힘차게 전개시키는 방법을 잘 터득한 시인이다. 잔 돌부리에 걸리지 않고 거침없이 달리는 기백이 좋다. 그런데 너무 장황하다. 할 말보다 더 많은 이미지나 언어를 동원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전하고자 하는 말에 아주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자꾸 장황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시집이 지향하는 주제가 분명한 방향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장황한 느낌을 부추기는 점이다. 칠갑산 풍이면 칠갑산 풍으로, 수렵도 풍이면 수렵도 풍으로 초점을 몰아갈 필요가 있다. 이것저것 시집에 다 담아두면 낱낱의 시를 잘 써도 산만함으로 비치기 마련이다.★★☆☆☆[4337. 6. 19.]
679□세상 뜨는 일이 저렇게 기쁠 수 있구나□서애숙, 경계시선 15, 문학과경계사, 2002 눈에 잡힌 이미지를 선명하게 제시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시인이다. 다만 이미지를 선택할 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잘 판단해야 할 것과, 어느 선까지 이미지를 제시해야만 독자가 마음속에 제대로 된 이미지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시인이 넘어야 할 가장 어려운 고비이기도 하다. 지금 단계에서는 짧은 시를 쓸 때가 아니다. 짧은 시는 묘한 경륜이 실려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선명하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제시만 하고 마는 짧은 시보다는 짧게 요약한 그 이미지가 상징하는 바를 더 정밀하게 파고들 필요가 있다.★★☆☆☆[4337. 6. 21.]
680□서른 살의 박봉 씨□성선경, 경계시선 14, 문학과경계사, 2002 생활 주변의 사건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다만, 시인이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사소한 삶의 풍경을 묘사하면서도 정신은 그 뒤에 서린 어떤 희망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여주기만으로도 훌륭한 전망이 될 수 있지만, 이미 많아 봐온 대상 안에서 특별히 다른 전망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도 새로워야 하거니와 그렇게 묘사한 대상이 어떤 식으로 재구성되어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까지도 깊이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자는 굳이 재구성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4337.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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