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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신용목, 문학과지성시인선 290, 문학과지성사, 2004 이만 하면 사물을 보는 눈도 아주 신선하고 거기에다가 할 말을 싣는 재주도 좋다. 좋은 시인이 될 요건을 거의 다 갖추었다. 특히 남들의 보지 않은 세계를 보려는 노력은 칭찬 받을 만하다. 그런데 유미주의의 혐의가 너무 짙다. 멋을 부리려다 보니 그 멋이 주제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까지도 망각하는 상태까지 다가간다. 이 안 어울림은 아주 미미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시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만 경계한다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좋은 시인에 되는 데 한자는 걸림돌이 된다.★★★☆☆[4337. 10. 8.]
843□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박주택, 문학과지성시인선 287, 문학과지성사, 2004 시어가 현실의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분명하지 않은 채로 공중에 떠있다. 그래서 몽롱하다. 시의 이미지는 모자이크와 같아서 낱낱의 시어들은 현실 속의 어떤 점과 분명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 점들이 모여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그때 떠오른 이미지는 높이 올라갈수록 선명해진다. 그런데 낱낱의 점들이 그럴 듯해도 그것이 연결점을 갖지 않으면 나중에 전체의 이미지가 흐릿해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지 않으면 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그런 상태 위에서 이미지만 둥둥 떠돈다. 그런 지점에 와있다. 따라서 묘사되는 대상을 통하여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먼저 정리하고 이미지들의 연결고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자는 점검할 필요가 없는 쓰레기이다.★★☆☆☆[4337. 10. 8.]
844□한 잔의 붉은 거울□김혜순, 문학과지성시인선 288, 문학과지성사, 2004 자신의 체험을 다른 상황으로 바꿔 설정하여 풀어내는 아주 독특한 상상력을 갖고 있는 시인이다. 그런데 장황하고 수다스럽다. 이 수다스러움이 어떤 전략에서 나오는 듯한데, 그 전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깊은 곳으로 숨으려 하고 숨기려 드는 모순을 시는 갖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수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려워 보인다. 인내를 갖고 그 어려움을 통과할 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마련하는 것이 전략을 실패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종종 범하는 오류는 다들 아는 것을 어렵게 설명하면서도 다들 아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보여줄 것이 더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 오류를 위한 그 무엇이 필요한 시집이다. 한자는 오류 예방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4337. 10. 9.]
845□백년 자작나무 숲에 살자□최창균, 창비시선 236, 창비, 2004 나무에 관한 관찰이 압권인 시집이다. 시인이 시골에 살아서 그런가 자연에 대한 관찰력이 남들이 가보지 못한 경지까지 다다랐다. 다른 시인들과 구별되는 이 시인만의 장점이다. 게다가 관찰력을 잘 받아낼 수 있는 언어의 세계까지도 갖추었다. 그런데 소에 관한 시들은 그것이 이야기를 갖고 있어서 그런가 다른 시들과는 다르게 너무 무겁고 둔탁하다. 시집의 색깔을 드러내려고 일부러 그런 듯도 한데, 시집 전체를 무겁게 하고 있다. 그리고 시집 제목이 별로 좋지 않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서 제목을 붙여야 했다.★★★☆☆[4337. 10. 12.]
846□이 짧은 시간 동안□정호승, 창비시선 235, 창비, 2004 시가 많이 달라졌다. <서울의 예수>에서는 이미지와 함께 풍부한 느낌이 전해졌는데, 이 시집에서는 정서가 거의 다 사라지고 인식이 시의 전면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묘사와 제시의 사이로 깨달음을 일깨우는 화두 식의 어법이 많다. 세상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는 얘긴데,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시가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던가, 아니면 감성이 메말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의미가 강조됨으로써 사라진 그 감성의 세계가 못내 아쉽다. 일상의 사건에서 어떤 할말을 끄집어내는 것은 게을러 보인다. 그리고 그런 시작 방법의 문제는 주제가 흩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시의 말투가 가지런해도 이 점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이 정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시인의 능력 때문이리라.★★★☆☆[4337. 10. 12.]
847□벽화□김영산, 창비시선 234, 창비, 2004 곳곳에서 백석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묘사로 일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법인데, 그런 수법의 단점은 무언가 할말을 하다가 만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 시집도 이 문제점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벽화 연작은 빼어난 묘사에도 이런 허허로움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시대가 하 수상하다보니 이렇게 선별에 의한 세계관의 제시가 답답한 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제시의 수법이라도 무언가 분명한 변별점을 찾아서 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 특별한 깨달음도 없으면서 제시만 해놓는 것은 별로 성실해 보이지 않는다. 그건 대가들이 겨우겨우 성공할 때 빛을 보는 것이다.★★☆☆☆[4337. 10. 12.]
848□이 환장할 봄날에□박규리, 창비시선 232, 창비, 2004 부질없는 말의 시체로 산을 쌓았다. 쯧쯧! 위치는 절집인데 마음은 속세이다. 속세의 감정을 속세의 화법인 시로 설명을 했으니, 절도 집도 떠나지 못한 자의 영혼이 어디에 깃들까? 사방의 문을 모두 닫아놓았으니, 이제 어떻게 이곳을 나가서 또 어디로 갈까?★★★☆☆[4337. 10. 12.]
849□섬들이 놀다□장대송, 창비시선 231, 창비, 2003 화룡점정이란, 용 그림에 마지막 터치로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는 얘긴데, 그 한 획 눈동자를 그려 넣지 못해서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 시집이다. 눈동자가 무엇일까? 아마도 주제가 아닐까? 아무리 숙고해보아도 내용이 허하다.★★☆☆☆[4337. 10. 12.]
850□은빛 호각□이시영, 창비시선 230, 창비, 2003 요즘 시들을 보면 과거를 회상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시가 늙었다는 얘기다. 할 말이 없을 때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역시 과거로 돌아간다. 그래서 시의 과거는 아주 게을러 보인다.★☆☆☆☆[4337.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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