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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사자 도망간다 사자 잡아라□장경린, 문학과지성시인선 135, 문학과지성사, 1993 할말을 숨기고 냉정하게 현상을 포착하여 제시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코닥1> 같은 시를 보면 상상력의 순도 또한 높고 화려하다. 그런데 이자가 문제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을 이자로 대체했는데, 그것이 한 언어로 교체됨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오는 상상력을 많이 삭감시킨 경우이다. 어떤 일관된 원리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을 것 같은데, 그것을 특정한 말로 대체한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 말이 시 안에서 풀리는 수가 있고 풀리지 않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잘 풀리면 좋지만, 제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억지 같은 인상을 주거나 상상력을 차단하는 역효과를 낸다. 차라리 숫자로 대체한 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전골과 찌개 연작은 역작이기는 하지만 애써 냉정하게 유지했던 것을 함부로 드러낸 꼴이 되었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여서 그랬을 것 같은데, 어쩐지 그런 식으로 뒤섞어놓는 것은 통쾌할지는 몰라도 깊이 파고드는 효과는 적다. 한번 냉정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좋은 세계를 가꿀 수 있는 능력이자 비결이다.★★☆☆☆[4337. 8. 8.]
752□신성한 숲□조정권, 문학과지성시인선 145, 문학과지성사, 1994 말로 전하기 어려운 커다란 주제에 오래 집착을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말하는 방법을 잃어버린다. 그럴 때는 이렇게 떠들어도 마뜩찮고, 저렇게 지껄여도 못마땅하다. 정확하지 않아도 말은 나와서 표현은 그럴 듯한데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빠져있다. 그리고 그것이 시의 형식을 빌면 틀림없이 상상의 단계를 한두 차례 뛰어넘어서 상징 비슷한 분위기를 내면서 의미가 뒤엉킨다. 당연히 시가 어려워진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발상은 규모가 큰데, 정작 본질을 찌르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이미지들이 자꾸 떠돈다. 특히나 독일 시편들은 출발할 때부터 너무 큰 부담을 갖고 쓴 시들이다. 그래서 알고 있는 지식을 소화하려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도 잘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뾰족한 상징의 수법을 명징하게 보여준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럴 때는 억지로 말을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말이 저절로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자는 어쨌거나 불필요한 것이다.★★☆☆☆[4337. 8. 8.]
753□개밥풀□이동순, 창비시선 24, 창작과비평사, 1980 <마왕의 잠>은 다시 보아도 걸작이다.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는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는 것인데, 너무 낮게 날아서 자세히 봤지만 멀리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미지에 대한 묘사력이 아주 뛰어난데도 세세한 부분에 너무 집착해서 보여줌으로써 전체의 주제를 전하는 데 상당한 장애를 받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런 태도가 사물에 대한 해석을 무리한 단계까지 끌고 나가게 한다는 점이다. 사물과 사건에는 그것이 갖는 고유한 이미지와 메시지의 영역이 있다. 그 영역 바깥까지 벗어나면 그럴 듯할지는 몰라도, 읽는 사람은 거의 본능에 가깝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고개가 외로 틀어지는 순간 감동은 사라진다. 이런 것은 대상에 대해 너무 무리한 해석을 가해서 생기는 일이다. 좀 더 멀찌감치 멀어져서 멀리서 볼 필요가 있다. 한자는 불필요한 도구이다.★★☆☆☆[4337. 8. 9.]
754□봄의 소리□김창범, 창비시선 31, 창작과비평사, 1981 남들과는 다른 묘한 기품이 시에 흐른다. 쉽게 말하려 하지 않고 아껴서 세세하게 말하려고 하는 태도도 돋보인다. 그런데 주제가 뚜렷한 시들은 너무 조급하고, 주제가 흐릿한 시들은 너무 물렁하다. 대체로 두 계열로 나뉘는데, 시대의 탓인지 너무 에둘러 말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주제가 분명한데도 답답한 맛이 남아있다. 직접 뼈를 드러내야 할 것들도 살로 덮어버린 까닭이다. 한자는 한계이다.★★☆☆☆[4337. 8. 10.]
755□이 가슴 북이 되어□이운룡, 창비시선 35, 창작과비평사, 1982 사상성이 시를 밀고 가는 형국이다. 세계에 대한 분명한 태도와 관점이 좋다. 확고히 선 사상을 드러내기 위하여 시의 형식을 희생시키는 면이 아주 많다. 우선 불필요한 반복이 이루어지고, 그 때문에 시가 너무 길어졌다. 중언부언 말을 하면 독자는 중간에서 읽기를 마친다. 더 읽어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복들이 시의 형식을 이완시킨다. 특히 앞부분의 시들이 그렇다. 좋은 사상이라고 해서 함부로 드러내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한자는 이래저래 장애물이다.★☆☆☆☆[4337. 8. 10.]
756□아도□송수권, 창비시선 52, 창작과비평사, 1985 남도의 정서가 잘 살아있는 시집이다. 무엇보다도 할 말이 뚜렷하게 들어있는 것이 이 시집의 장점이다. 많은 시집들이 할 말은 뚜렷한데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답답한 경우가 많은데 이 시집은 할 말도 뚜렷하고 그것이 시에 잘 실렸다. 그것은 시인이 말을 해야 할 곳에서 할 말을 과감하게 할 줄 하는 방법을 안다는 뜻이다. 다만 할 말이 너무 강하다 보니 자꾸 사건이 등장하고 시가 길어진다. 말을 자꾸 만들자니 그렇게 된 것이다. 호남의 가락도 잘 살아있지만, 그 위로 툭 불거진 말들이 시를 거칠게 한다. 한자도 거친 부분의 하나이다.★★☆☆☆[4337. 8. 10.]
757□끝끝내 너는□나종영, 창비시선 53, 창작과비평사, 1985 바둑에 우주류가 있고, 거문고에 신쾌동류가 있듯이, 시에도 민중류라는 것이 있어 100권을 읽어도 같은 어조, 같은 세계, 같은 구조, 같은 상상을 보여주는 시들이 있다. 말하자면 그 민중류의 전형인 시집이다. 민중류에서는 개인이 소멸한다. 이웃의 아픔이 내 아픔이고, 정신대로 끌려간 여자는 내 이모이고 공장에 다니는 여자는 내 누이다. 화자가 시공을 초월하여 내 안에 있는 것인데, 그런 발상은 근대시 이전의 민요에서 흔히 보이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살아있는 현대판 민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인식이 독창성을 보이기는 거의 힘들다. 같은 말에 분노를 실으면 그것으로 박수를 받는다. 개인이 공공의 목적 뒤로 숨어버린 시이다. 하지만 그 시를 읽는 자는 늘 개인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실이 시 전체를 관념 덩어리로 만든다. 그곳에 머물러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단점이다. 그러나 한자는 어쩔 수 있는 대상이다.★☆☆☆☆[4337. 8. 11.]
758□겨울의 꿈□조재훈, 창비시선 42, 창작과비평사, 1984 시에 아주 독특한 맛이 있다. 우선 허영끼가 거의 없다. 그리고 사물을 보는 눈과 그것을 노래하는 어조가 아주 차분하면서도 과장되지 않아서 여리디 여린 감성까지도 자라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 한 편 한 편에 공을 들이는 태도가 시 전편에 살아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시집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시에서 추구하는 주제가 아직 뚜렷이 이것이다 라는 정도까지 나아가지를 못해서 특별한 하자가 없는데도 시들이 좀 흐리멍덩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시집 후반부의 부여 관련 시들은 일관된 흐름과 어조를 담고 있어서 한 방향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과 주제의 확보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그것이 확보되지 않으면 애써 이룬 시에 화룡점정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런데 그것은 대부분 사상의 몫이어서 쉽게 해결될 것도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4337. 8. 11.]
759□가거도□조태일, 창비시선 37, 창작과비평사, 1983 험한 시대에는 늘 필화라는 것이 있어서 글쓰는 사람들 자신이 그것을 피하여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시에서는 돌려말하기를 택하는데, 이 시집 속의 시들도 그런 시대 상황 때문일까? 본질을 찌르지 못하고 가장자리로만 돌고 있다. 그리고 끝내 에도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모색에서 그쳤다. <봄 소문> 같은 작품에서는 그 방법의 일단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다른 작품에서는 너무 돌고 있어서 방법상의 자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뒤쪽의, 신문에 실린 시들이 굵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라고 봐야 할 것 같다.★★☆☆☆[4337. 8. 11.]
760□하급반 교과서□김명수, 창비시선 39, 창작과비평사, 1983 방법론은 확실한데, 너무 원칙 지키기에 급급하여 좀 답답해 보이는 시집이다. 사물에서 어떤 조짐을 읽어서 그것을 바탕으로 노래하는 것은 서정시의 오랜 전통이다. 그리고 그런 발상의 계기가 되는 것이 없으면 노래하기 힘든 것이 서정시이기도 하다. 그런 원칙에 입각하여 마주치는 사물의 성격을 크게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적당히 잘 집어넣고 있다. 바로 그 성실한 친절 때문에 시가 길어지고, 이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의 격렬한 감정이 시의 장치에 붙잡혀서 화끈하게 분출하지 못하고 있다. 추구하는 세계가 변혁을 노래하는 것이면 시에는 격정이 들끓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시의 상상력으로 걸러내기 위해 어떤 장치를 스스로 마련하는 것은 좋지만, 그 장치가 너무 전통에 기대어 있어 새로운 그 격정을 담아내기 어려운 것이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것을 그대로 지킬 경우 성실해 보일지언정 새로운 세계를 담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청산하지 못한 한자 역시 그렇다.★★☆☆☆[4337. 8.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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