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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폐차장 근처□박남희, 경계시선 11, 문학과경계사, 2002 시에서 논리를 즐기는 시인이다. 논리는 일종의 관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념의 전후 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시는 길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념을 풀기 위한 이미지들이 난폭하게 동원된다. 그래서 시가 단단하고 야무지지만, 포근하게 와 닿지 않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다. 큰 주제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리하지만, 무리한 이미지 동원으로 인하여 세세한 부분이 계속 전체 주제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둘이 절묘하게 부합하면 다행이지만, 웬만큼 높은 수련에 이르지 않고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관념의 덩어리를 잘게 나눌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작아진 그 만큼 그것을 실어줄 이미지 역시 작은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주제와 이미지는 어렵지 않게 맞아떨어진다. 이미지가 작다고 해서 큰 주제를 전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시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음이 크다고 해서 시까지 커지는 것은 아니니, 시에서 논리가 갖는 한계를 오래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 시에 논리가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것 때문에 이미지가 다치면 논리 역시 온전하기 어렵다. 시의 호흡이 굵직굵직하고 잘 썼으되 거칠다는 느낌이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4337. 6. 21.]
682□곡비□이명주, 경계시선 12, 문학과경계사, 2002 시가 장식을 버리면 순금처럼 정신이 빛난다. 빛나는 그 정시는 별다른 장식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비유체계도 단순해지며, 단순함이 바로 시의 가장 빛나는 무기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이 단련되어야 하고, 그것은 더 이상 단련하기 힘들 만큼 내부로 응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짧음이 갖는 긴장의 강도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게 안 되면 시가 맥이 풀린다. 이 시집은 그런 방법과 발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 만큼 단련되지 못한 것들의 단점이 크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짧게 써야 할 것은 짧게 써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좀 더 살을 붙여서 섬세한 감수성을 담아낼 일이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러너 긴장이 풀어진다.★☆☆☆☆[4337. 6. 21.]
683□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전길자, 경계시선 16, 문학과경계사, 2002 주변의 사물을 꼼꼼하게 관찰하여 그것을 시로 옮기는 태도는 성실성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시는 내 안의 의미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좀 깊이 생각해야 할 듯하다. 만약에 의식이 바깥으로 향하지 않고, 내 안의 어떤 것만을 말하려고 하면 시는 진부해진다. 그것은 말하고자 하는 의지만이 작동할 뿐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정신은 정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고정된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보는 한 방편으로 이미지를 향해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4337. 6. 21.]
684□개망초가 쥐꼬리망초에게□최영철, 경계시선 2, 문학과경계사, 2001 사물에 함의된 비의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확립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데, 발견은 그렇다 쳐도 그 발견을 통해 어떤 세상을 노래할 것인가 하는 것이 다소 불투명하기 때문에 애써 얻은 이미지가 장난으로 흐를 수도 있고, 그냥 발견에 대한 예찬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런 발견들이 담아내야 하는 어떤 세계를 확립하는 일에 집중해야 함을 뜻한다. 시집의 초점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흩어진 것도 단점으로 작용한다.★★☆☆☆[4337. 6. 21.]
685□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복효근, 경계시선 8, 문학과경계사, 2002 서정시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사물을 보는 눈이 이미 아주 독특하게 갖추어졌다. 자신만의 시각을 갖춘다는 것은 시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좋은 덕목이다. 사물이 갖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 하는 것은 순수하게 시인의 의식을 반영하는 일이어서 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겠다. 설명 쪽으로 흘러가는 것만 경계한다면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한 태도이다. 시를 쓸 때 이미지를 마주쳐서 거기에다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 있고, 그 반대로 이미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갖추고 있다가 거기에 맞는 이미지를 찾는 방법이 있다. 좀 더 큰 시를 쓰기 위해서는 앞의 방법에는 많은 한계가 갖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찾아오기를 기다려서 쓰는 방법은 게으른 방법이다.★★★☆☆[4337. 6. 21.]
686□재즈가 흐르는 창 너머 비행기 한 대가□강수정, 경계시선 10, 문학과경계사, 2002 아주 독특한 시인이다. 상상력도 독특하고, 그 상상력을 펼치는 시어의 짜임새도 독특하며, 갖춘 세계도 독특하다. 그러니까 남들과 구별되는 시인만의 전매특허는 확보된 셈이고, 그것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갚진 덕목이다. 그런데 이미지가 전개되는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덜컹거리는 것은, 시인 자신의 어눌함이라는 중요한 특색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이미지들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시집이다. 대체로 자신의 체험을 다양한 방과 층을 갖춘 구조로 전달하려는 노력과 그 상상력은 참으로 경탄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재빠르게 건너가야 할 곳에서 머뭇거리고, 빨리 달려야 할 곳에서 덜컹거리는 것을 자신의 특색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이런 사소한 부분만 보완한다면 아주 독특한 시세계를 꾸며갈 능력 있는 시인이다.★★☆☆☆[4337. 6. 21.]
687□퍽 환한 하늘□이진영, 경계시선 3, 문학과경계사, 2001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애써 잡은 비유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의미를 부여하려는 재주는 부족함이 없지만, 이 시인이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러한 비유체계를 잡아내는 마음의 집중도와 열정이다.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시의 표면으로 떠오르면 시가 좀 서툴더라도 그 뜨거운 감정에 감동을 하는 법이다. 그러나 비유가 그럴 듯해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시의 분위기가 너무 냉랭하면 감동이 오지 않는 법이다. 마음이 시를 밀고 가는 것이지, 마음이 비유를 뒤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맥이 풀린 시가 된다. 무엇을 노래하고 어떤 열정으로 삶을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한 번 점검해야 할 시집이다.★★☆☆☆[4337. 6. 22.]
688□붉은 악보□김경, 경계시선 19, 문학과경계사, 2002 시는 개인의 체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만, 너무 깊이 자신 속으로 들어가 있으면 감정이 때로 모호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이란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삶을 이룬 사건들이 그 개인의 감정을 형성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시에서 끌어내야 할 것은 결국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만 더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짧은 시는 자신의 반짝이는 상상력을 드러내는 데 아주 위력을 발휘하지만 거기에 너무 재미를 느끼면 그것이 불성실하다는 느낌을 주기가 쉽다. 대개 발견으로 그치고 말 경우이다. 자신의 전 생애를 걸 만한 대단한 것이 아니면 해도 되는 설명을 함부로 생략해서는 안 된다. 한자는 큰 장애이다.★★☆☆☆[4337. 6. 22.]
689□파천무□송수권, 경계시선 1, 문학과경계사, 2001 물풀들이 뿌린 내린 바닥이 아주 견고하다. 거기서 올라오는 상상의 줄기도 다양하고 나름대로 확보된 세계가 밑바닥을 커다랗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런 크고 넓은 바닥에는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말들이 이따금 섞여 있어 그것이 흠이다. 못 마땅한 것들이 때로 문학에 좋은 거름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구별할 줄 아는 것 역시 대가의 조건이기도 하다.★★★☆☆[4337. 6. 22.]
690□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이선관, 실천문학의 시집 127, 실천문학사, 2000 할 말이 절실할 때는 표현을 생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어설픈 표현으로 우회시키는 것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직접 말하기를 선택했다면 그때의 말은 체험의 절실성에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 그리고 그 절실함에서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는 안 쓰느니만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시집에서는 할 말이 우선하는 시집이다. 그런 만큼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시의 전면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것을 우회시키는 방법인 비유가 곳곳에서 끼어서 오히려 불편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직접 말을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또 마주친 대상과 싸울 때 대상이 너무 크면 그 싸움의 방식은 풍자가 되기 일쑤이다. 그러나 풍자는 복잡한 양식이다. 따라서 전략이 필요하다. 이 시집의 주 내용들은 비판은 비판이지만 풍자 쪽으로 조금 기울어있어서 약간 애매모호한 태도를 갖고 있다.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다. 칼을 뽑으려면 섬뜩한 것을 뽑아야 한다. 풍자의 태도는 기왕에 뽑은 날까지도 무디게 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4337.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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