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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낯선 금요일□문정영, 시선시인선 14, 시선사, 2004 표현에 너무 집착한 시집이다. 그래서 쉽게 쓸 수 있는 것들도 어려운 표현 뒤로 숨어버렸다. 그래서 마치 문자 해독하듯이 독자들을 훈련시킨다.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표현은 독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애써 만든 표현이 오히려 의미 전달에 거북살스럽게 작용한다면 그건 분명 칭찬 받을 수 없는 일이다. 한 행을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표현을 심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나, 그것을 넘어서야만 정말 좋은 시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상상력의 어깨가 너무 긴장했다. 긴장하면 금간다. 한자도 금이다.★★☆☆☆[4337. 11. 28.]
922□열하를 향하여□이기철, 민음의 시 69, 민음사, 1995 좋은 표현과 깨달음의 말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너무 뒤로 물러선 탓인가? 이미지들이 대상에 바짝 다가가서 붙어있지를 못하고 붕 떠있다. 이것은 표현은 눈에 잡힐 듯이 그려지는데 그것으로 나타내야 할 주제가 분명치 못하거나 자신의 내면에 너무 깊이 들어있는 관념이라서 그런 것이다. 특히 인생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결국 시가 너무 큰 것을 말하려다가 작은 것들의 뿌리가 뽑히는 바람에 모호해진 경우이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말하는 것이 시의 좋은 방법인데, 여기서는 그 반대로 작용한 경우가 많다.★★☆☆☆[4337. 11. 30.]
923□본색□정진규, 시작시인선 43, 천년의시작, 2004 시에서 산문을 택한다는 것은, 시가 지닌 모든 장점을 버리겠다는 뜻이다. 행가름에서 오는 시의 장점을 버린다면 시는 특별한 부분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 존재의 방식이란 대체로 논리와 구조이다. 논리를 강화시키거나 구조의 특별한 장치를 통해서 산문이 주는 둔탁한 행보 속에 시의 긴장을 살리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방법이 너무 깊이 들어가면 긴장만 남고 시는 사라진다. 당연히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 시집의 경우는 현실을 등지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서 더욱 어려워졌다. 그것이 욕망을 제거하는 맑은 경지를 추구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이미 깨달아버린 자의 세상 구경이라면 독자의 폭을 아주 좁히는 일이 된다. 읽을 사람 이외에는 읽지 않는 그런 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시는 연꽃이 아니라 연이 된다. 어디까지 날아갈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한자는 불필요한 미궁이다.★★☆☆☆[4337. 12. 1.]
924□지평선에 서서□김준태, 문학과지성시인선 234, 문학과지성사, 1999 이데올로기가 문득 증발한 곳에서 변한 세태를 바라보는 눈은 날카롭고 안타깝지만,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해 망연자실하고 있는 상태의 시집이다. 시가 짧아졌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단련된 정신의 경구화라고 할 수 있지만, 안 좋게 말하면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경구들이 너무 경직됐다. 그리고 산문투의 문장은 그 전부터 문제였던 것이지만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시와 산문을 구별하는 지점에 대한 인식이 깊어져야 할 것 같다. 한자는 아직도 청산이 안 되었는지 그게 이상하다.★★☆☆☆[4337. 12. 2.]
925□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핀다□김정원, 내일을 여는 시 36, 내일을 여는 책, 2002 건강한 정신이 적절한 표현을 만나서 아주 좋은 세계를 이루었다. 우선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며 발견한 새로움에 일상의 진실을 담으려는 태도가 시인의 성실성을 능히 짐작케 한다. 요즘 들어서 보기 드문 일이다. 그래서 낡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낡음을 논할 것은 못된다. 다만 표현에 비해 주제가 너무 가벼운 것들이 꽤 많이 있고, 또 너무나 자명한 것들을 다시 반복함으로써 애써 얻은 표현들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상상력이 경직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제가 무겁더라도 좀 더 멀리 떨어져서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시에 대해서 좀더 치열한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좋은 시 쓰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4337. 12. 2.]
926□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송찬호, 민음의 시 22, 민음사, 1989 927□10년 동안의 빈 의자□송찬호, 문학과지성시인선 148, 문학과지성사, 1994 928□붉은 눈, 동백□송찬호, 문학과지성시인선 239, 문학과지성사, 2000 송찬호의 시는 다른 사람들의 시와 현저히 다르다. 그 현저함은 상상력의 독특함이 만드는 것이다. 시의 내용은 크게 두드러질 것이 없다. 그러나 같은 소재라도 송찬호의 손을 통과하면 묘한 상상력의 빛깔을 입고 나타난다. 송찬호 식의 상상력이라고 할 밖에 없는 묘한 파장이 생긴다. 시에서 상상력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송찬호가 처음일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송찬호의 시는 지지부진한 한국 시의 앞날을 여는 한 척도가 될 것이다. 동원된 언어가 기존의 언어 감각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차원에서 재구성된다. 그 재구성의 방법이 상상력의 결을 드러내는 방법이 되고, 시 안에서 언어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쉽게 상징의 차원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래서 아주 낯설게 보인다. 그렇지만 그 낯선 언어의 질서 속에는 새로운 언어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꿈틀거린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까지 시인의 언어는 가 닿는다. 그래서 앞날이 아주 궁금해지는 시이다. 한자가 꼭 필요한가 하는 것은 깊이 새겨볼 일이다.★★★★☆[4337. 12. 2.]
929□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정영상, 실천문학의 시집 65, 실천문학사, 1989 930□슬픈 눈□정영상, 제3문학시선 8, 제3문학사, 1990 931□물인 듯 불인 듯 바람인 듯□정영상 유고시집, 실천문학의 시집 97, 실천문학사, 1994 시에 그 사람의 양심이라든가 영혼이라든가 하는 것이 나타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대개 시인은 화자의 탈을 쓰고서 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이 화자와 시인 자신의 간격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시는 그의 사생활과 아주 가깝게 밀착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이렇게 생활과 시가 밀착되면 그림이 정밀하기는 한데, 어딘가 시원하게 트이지 못하여 답답하다는 것이 특징이 된다. 자신의 양심이 허락지 않는 상상력을 용서하지 못하는 태도가 그렇게 만든다. 따라서 이 경우에 시의 척도는 상상력이 아니라 생각의 순일함과 양심의 곧음이다. 이 시인의 경우가 그렇다. 상상력으로 뜨지도 못하고, 영혼의 가없는 깊이로도 닿지 못하는 곳에서 아픔이 묻어나는 현실 속에 시인의 감성이 촉수를 뻗고 있다.[4337.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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