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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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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82
2015년 02월 11일 16시 42분  조회:2122  추천:0  작성자: 죽림

 

811□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장경린, 민음의 시 21, 민음사, 1989

  시가 시대의 요약집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시집도 없을 것 같다. 물론 그 요약은 시대 자체의 풍경이 아니라, 그 시대 속에 낑겨있는 한 사람의 내면 풍경이다. 한 사람은 단순히 한 사람일 뿐이지만, 그 한 사람 속에는 시대의 상처가 남아있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있는 시대의 상처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끄집어내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시대 모두의 문제가 남아있는 상처가 있고, 단순히 나만의 상처가 동시에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에서 필요한 것은 시대의 울림이 있는 상처이다. 그것을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시대의 요약집이라는 시의 성격이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는 자신의 내면풍경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상처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울림이 들어있는 풍경을 잘 요약했다. <난중일기> 같은 발상은 아주 적절한 것이다. 아마도 1980년대를 산 지식인의 내면풍경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낸 작품은 보기 힘들 것 같다. 뒤쪽에 장난스러운 몇 편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나름대로 한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한자는 지식인의 전유물일까?★★★☆☆[4337. 8. 29.]

 

812□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이문재, 민음의 시 15, 민음사, 1988

  할말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변죽을 때리며 빙빙 돌려서 어떤 효과를 얻으려는 의도가 아주 잘 드러나는 시집이다. 그 의도라는 것은 아마도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세계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의미의 가장자리를 일부러 이렇게 빙빙 돌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의미는 역사의 몫일 것 같다. 주제가 분명해지는 것은 역사를 매개로 한 의지의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집의 방향은 그쪽과 거의 정반대를 향하고 있을 것인데, 문제는 어느 쪽이 그 쪽과 정반대의 방향인가 하는 것이다. 의미의 가장자리로 떠돈다고 해서 의미의 세계에 대한 반발이 성취될 리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큰 숙제로 남은 시집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시가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한 글자든 두 글자든 한자는 혹이다.★★☆☆☆[4337. 8. 29.]

 

813□푸른 비상구□이희중, 민음의 시 62, 민음사, 1994

  정서가 설익은 20대 후반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분명치 않은 감정과 주제에 이미지들이 집중되고 있고, 태반이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있어서 시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원된 이미지들이 전하고자 하는 굵은 주제가 없어서 더욱 그렇다. 시의 경향은 어떤 주제를 전하기 위해 이미지를 동원하는 수법인데, 전할 그 무엇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미지들이 서로 긴밀한 협조를 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이 점을 극복하려면 주제부터 새롭게 벼려야 하며, 그런 뒤에 이미지를 동원시키는 원칙을 다져야 할 것 같다. 한자는 다질 필요 없는 것이다.★☆☆☆☆[4337. 8. 29.]

 

814□강□구광본, 민음의 시 10, 민음사, 1987

  작품이 너무 소품이다. 소품이라는 것은 작품의 행수가 짧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다루는 주제도, 시의 호흡도 그렇다는 것을 말한다. 너무 주제가 빈약하다. 그리고 설익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기린>이라는 작품 정도인데, 이 작품의 발상도 어디선가 빌려온 것이기 쉽다. 그런 발상은 예술 일반에서는 그리 드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소 모호한 듯한 인상을 갖춘 시들이 그 시대의 어떤 문제점까지 아울러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드나,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지들이 너무 단순하다. 뒤쪽의 단시들은 발상에 머물러있는 것들이다. 시가 좋아지려면 주제가 더 분명해져야 하고, 거기에 걸맞은 이미지를 좀더 확실한 것으로 뽑아야 한다.★☆☆☆☆[4337. 8. 29.]

 

815□가끔 중세를 꿈꾼다□전대호, 민음의 시 74, 민음사, 1994

  관념성이 너무 강하다. 한 편 한 편에서 보는 시의 주제는 분명한 것 같은데, 시집 전체의 방향이 분명하지를 못하다. 젊은 날의 고뇌와 생각의 실험에 해당할 그런 시도들에 머물고 있다. 시인은 개인의 체험을 쓸 수밖에 없지만, 그 특수성이 보편성을 담지하지 못하면 시는 힘이 없다. 혼자 넋두리로 그치기가 쉽다. 그런 위험에 너무 노출돼있다. 따라서 한 편의 주제들이 모여서 이루는 전체의 모양새에 크게 신경을 써야 할 단계이다. 시집을 너무 서둘러 냈다는 얘기가 된다.★☆☆☆☆[4337. 8. 29.]

 

816□어떤 길에 관한 기억□장석주, 청하시선 55, 도서출판 청하, 1989

  시집의 제목은 시집의 절반을 차지한 연작시의 제목과 같다. 이 정도면 허무주의를 드러낸 작품으로는 손색이 없다고나 할까? 아니면 이런 시집도 한 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무라는 것이 원래 모양이 없는 것이어서 어떤 것을 갖다 붙여도 되는 것이어서 시로 다루기는 아주 편하고 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잘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답이 많은 것은 정답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중에도 허무를 나타낼 만한 상황과 신념을 이만큼 뽑아내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어떤 전범이 되기에는 시의 세계가 너무 좁다. 한 50편까지 연작을 끌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4337. 8. 29.]

 

817□민둥산의 하룻밤□류환, 청하시선 66, 도서출판 청하, 1990

  시에서 묘사는 상관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상관물을 묘사의 대상으로 정하는 것은, 자신의 관찰이 정하는데, 그 정하는 기준과 원리에 따라 시의 내용과 품격이 결정돼버린다. 따라서 자신에게 절실한 그 무엇이 상관물로 적절한 것인가 하는 것을 회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시대의 문제는 더더욱 그러하고, 그 시대 속에 속한 개인의 내면풍경이 시대를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찰과 선택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석연치 않은 상태에서 묘사가 이루어지면 시가 굉장히 지루해진다. 그리고 이미지에 이끌려서 나중에는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지경에 가 닿기 일쑤이다. 선택과 관찰이 많이 풀어진 경우에 해당한다. 그것은 의외로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한자는 불필요한 것이다.★☆☆☆☆[4337. 8. 29.]

 

818□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오탁번, 청하시선 13, 도서출판 청하, 1985

  세상을 보는 태도가 시의 깊이를 결정해버린 아주 묘한 시집이다.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능력이나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발상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런데 시집 전체에 묘한 시각이 스며들어서 시의 인식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계속 방해하고 있다. 풍자도 닮았고, 야유도 닮았다. 냉소라는 것이 가장 가까울 듯한 태도이다. 이런 태도는 더 이상 뭣을 해봤자 세상이라는 게 다 그렇고 그렇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들어갈 듯하다가 거기서 머물고 만족하는 일이 되풀이된다. 특히 이 점은 1부의 시에서 두드러진다. 들어가 보지 못한 자도 들어가 보지 못한 그곳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시이다. 시는 말이 아니고 상징이나 비유를 통해서 일상 언어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곳을 건드려주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태도가 그런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면 그 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 독자들이 웃을지는 몰라도 감동하지는 않는다. 한자는 버려야 할 유산이다.★★☆☆☆[4337. 8. 29.]

 

819□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양애경, 청하시선 47, 도서출판 청하, 1988

  두 가지 방법이 한 시집 안에서 충돌한다. 이미지를 따라가면서 할말을 그 뒤로 숨기는 방법이 있고, 이것저것 다 버리고 직접 말로 써버리는 방법이 있다. 이 두 방법은 내용상 충돌할 것은 없지만, 상상력의 체계나 발상의 방법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한 공간에 배치할 경우 미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방법의 미숙이 내용의 미숙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로서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자 역시 미숙의 일종일 수 있다.★★☆☆☆[4337. 8. 29.]

 

820□서울에서 보낸 3주일□장정일, 청하시선 53, 도서출판 청하, 1988

  주제가 거의 성에 집중돼있다. 성을 통해서 이 사회의 모순을 들추겠다는 발상이다. 그 전의 다른 시집에 견주면 가지런함이 많이 사라지고 산만해졌다. 아마도 보여주기보다는 말하려는 의지가 충만해진 탓일 것이다. 자신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폭탄으로 하여 세계를 건드리고자 하는 시들은 전위의 모습을 띤다. 장정일의 시가 시의 문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당연해야 할 일이다. 시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 시의 가장 먼 가장자리까지 나간 경우이다.★★☆☆☆[4337.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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