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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휘 시비 모교에 재건
저명한 시인 김성휘시비재건제막식이 11월 22일, 시인의 모교 룡정고중에서 있었다.
사실주의 시문학의 한봉우리를 이루고 간 조선족문학의 대표적인 시인 김성휘를 기리기 위해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는 동인들의 모금으로 1994년 7월 22일, 시인의 모교인 룡정고중 정원에 김성휘시비를 세웠었다.
2003년, 룡정고중은 교내확장공사때문에 시비를 잠시 철거, 이번에 재건에 나섰다. 재건된 시비는 대리석으로 된 받침돌을 새로 축조하고 그우에 김성휘시인의 시 “시내물”을 음각한 전 시비를 복원했으며 시비 주위에 계단식란간을 둘렀다.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와 룡정고급중학교 주최로 된 시비재건제막식에는 연변작가협회 허룡석주석, 원로시인 설인을 비롯한 문인들과 시인의 유가족, 룡정고중 사생대표 100여명이 참가했다.
제막식에서 연변작가협회 허룡석주석은 “김성휘시인은 중국조선족문단의 대표시인의 한사람으로 중국조선족문단의 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했다”고 그의 공적을 치하했고 룡정고중 방송산부교장은 “김성휘시비 재건은 연변문단은 물론 유서깊은 룡정의 문화재 건설에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시비재건의 의취를 밝혔다.
김성휘시인은 1933년 룡정시 백금향 동명촌에서 출생,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 연변작가협회 상무부주석 등 력임했으며 중국작가협회 회원, 1급작가로 활약했다.
“나리꽃 피였네”, “들국화”, “금잔디”, “장백산아 이야기하라”, “고향생각”, “흰옷 입은 사람아” 등 시집과 장편서사시 “사랑이여 너는 무엇이길래”, “장백산아 이야기하라” 등을 펴냈다. 제1, 2, 3회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상을 수상, 20세기 중국소수민족100명작가평전에 그 이름이 수록되였다.
조선족의 서정시, 서정서사시, 장편서사시 창작과 젊은 시인 양성에서 큰 기여를 한 시인은 1990년 3월 25일 병으로 타계했다.
"종합신문" 08/11/30
김혁
편집/기자: [ 김창희 ] [ 길림신문 ] [ 2008-1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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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선족 저명한 시인 김성휘시비재건제막식이 11월 22일,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와 룡정고급중학교 주최로 설인 원로시인을 비롯한 30여명 문인과 김성휘시인 유가족, 룡정고중 사생대표 등 6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룡정고중에서 있었다.
룡정고중은 2003년, 운동장확장공사때문에 김성휘시비를 잠시 철거했다가 이번에 재건하면서 대리석으로 된 받침돌을 새로 축조하고 그우에 김성휘시인의 시 《시내물》을 음각한 전 시비를 복원, 그리고 주위에 계단식란간을 만들어놓았다.
연변작가협회 허룡석주석은 중국조선족문단의 대표시인의 한사람인 김성휘시인은 중국조선족문단의 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했다면서 부단히 정품창작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 한 김성휘시인의 정신을 배워 우리 문단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룡정고중 방송산부교장은《김성휘시비재건제막식은 연변문단은 물론 유서깊은 룡정고중의 문화재를 건설하는데에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제2기 졸업생인 김성휘시인은 생전에 모교의 발전에 지대한 관심을 돌렸다. 또한 룡정고중선배장학회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는바 그것이 밑거름이 되여 장학회는 이미 620여명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발급하였고 교원들에게도 공로금을 발급하고있다. 룡정고중은 김성휘시인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라고 했다.
조선족문학을 위해 혼신을 바친 김성휘시인을 기리기 위해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는 소속 위원들을 중심으로 시비건립위원회를 조직하고 조선족문학계 100여명 동인들이 모금하는 형식으로 1994년 7월 22일, 시인의 모교인 룡정고중 정원에 김성휘시비를 세웠다.
김성휘시인은 1933년 룡정시 백금향 동명촌에서 출생, 1956년부터 1984년까지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 1985년부터 1990년 3월까지 연변작가협회 상무부주석 등 력임했으며 중국작가협회 회원, 1급작가로 활약했다.
《나리꽃 피였네》, 《들국화》, 《금잔디》, 《장백산아 이야기하라》, 《고향생각》, 《흰옷 입은 사람아》, 《사랑이여 너는 무엇이길래》, 《결백한 사랑》(한어문), 《장백산아 이야기하라》(한어문) 등 시집을 출판했고 제1, 2, 3회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상을 수상했다. 1990년 3월 25일 김성휘시인은 병으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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