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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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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인 - 페테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2015년 04월 04일 23시 03분  조회:4520  추천:0  작성자: 죽림
뉴욕에서 달아나다: 문명을 향한 두 개의 왈츠 - 작은 빈 왈츠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빈에는 열 명의 소녀와
하나의 어깨가 있다. 그 어깨 위에서
박제된 비둘기 숲과 죽음이 흐느끼지.
성에 낀 박물관에는
아침 잔영이 남아 있지.
천 개의 창이 있는 살롱이 있지.
 
아이, 아이, 아이, 아이!
쉬잇, 이 왈츠를 받아 줘.
 
이 왈츠, 이 왈츠, 이 왈츠,
바다에 꼬리를 적시는
코냑과 죽음과 “좋아요!”의 왈츠.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우중충한 복도 언저리,
안락의자와 죽은 책까지;
여기는 백합의 어두운 다락방,
달이 있는 우리의 침대에서
거북이가 꿈꾸는 춤 속에서, 사랑해.
 
아이, 아이, 아이, 아이!
부서진 허리의 이 왈츠를 받아 줘.
 
빈에는 너의 입과 메아리들이
노는 네 개의 거울이 있지.
소년들을 푸른색으로 그리는
피아노를 위한 하나의 죽음이 있지.
지붕 위로는 거지들이 있지.
통곡의 신선한 화관들이 있지.
 
아이, 아이, 아이, 아이!
내 품 속에서 죽어가는 이 왈츠를 받아 줘.
 
왜냐하면 널 사랑하니까, 널 사랑하니까, 내 사랑아,
아이들이 노는 다락방에서.
아이들은 따스한 오후의 소란한 소리들을 듣고
헝가리의 오래된 빛들을 꿈꾸고,
네 이마의 어두운 고요를 느끼고
눈빛 백합들과 양떼들을 본단다.
 
아이, 아이, 아이, 아이!
“영원히 널 사랑해”하는 이 왈츠를 받아 줘.
 
빈에서 나는 너와 춤을 추리라,
강의 머리를 그린
가면을 쓰고.
히아신스 꽃이 가득한 나의 강변들 좀 봐!
내 입을 너의 두 다리 사이에 두고,
내 영혼을 사진들과 수선화들 사이에 두리라.
그리고 네 발등의 어두운 물결에는
내 사랑아, 나의 사랑아, 바이올린과
무덤, 왈츠의 테이프를 선사하리라.
                   (번역: 민용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1898년 스페인 그라나다 근처 마을 푸엔테 바케로스에서 출생.
                                     시집 『시 모음』『노래집』『집시 이야기 민요집』『이그나시오 산체스 메히아스의 죽음』 등.
                                     희곡 「피의 결혼」「예르마」「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등.
                                     1936년 8월 19일 생을 마감함 (스페인 내전 초기, 공화주의자였던 로르카는 파시스트 반란군에 체포돼 사흘 뒤
                                     총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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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문학광장 -황인숙의 시배달
   
 로르카 시를 제대로 만난 건 민용태 선생님이 번역해서 《현대시학》에 게재한 ‘로르카 특집’(아마도)에서였다.
  “파랗게 사랑해 파랗게./파란 바람, 파란 잎가지./ 바다에는 배/산에는 말./ 허리에 어둠을 두르고/ 베란다에서 꿈꾸는 여인,”(「악몽의 로맨스」 부분)
  시들을 홀린 듯 읽으며 비수로 가슴께를 슥 베이는 듯했는데 그 시린 통증의 절반 남짓은 질투심이 유발한 것이었다. 내가 지적 근기 없는 인간이 아니었더라면 스토커처럼 그의 시들을 캐고 다녔으련만. 더 이상 알지도 못하면서 “로르카 최고!” “내 로르카!”만 남발하고 다녔나보다. 그로부터 일 년쯤 뒤,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쯤 전, 그라나다에 들른 친구로부터 달랑 한 문장 적힌 엽서를 받았다. “로르카가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곳, 나는 전율한다!”
  그즈음 한 술집에서 레너드 코헨 노래를 들었다. 그 애절한 노래에 달콤하게 휘감겨 발끝을 까딱거릴 때 소설가 이인성 선배가 “저 가사 로르카 시야.”라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일러줬다. 아!?
  앨범을 구해 몇 날 며칠 그 노래만 듣다가 열 개의 카세트테이프를 그 노래로 채우고 열 장의 종이에 가사를 옮겨 적었다. 열 명의 친구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서.
  어휘 하나하나가 어둡고 향기롭다. 로르카 시가 대개 그렇듯 죽음이 있고, 숨 막힐 듯한  꽃향기가 있고, “아이, 아이, 아이, 아이!” 통곡소리가 있고.
- 문학집배원 황인숙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오후 다섯시
 
 
 오후 다섯시.
정확히 오후 다섯시였다.
한 소년이 하얀 시트를 가져왔다
 오후 다섯시에.
석회 바구니가 준비되었다
 오후 다섯시에.
나머니지는 죽음, 죽음뿐이었다.
오후 다섯시.
 
바람은 면화(棉花)를 앗아갔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산화물은 수정과 니켈을 소산시켰다
 오후 다섯시에.
비둘기와 표범이 싸운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황폐한 뿔과 싸운 넓적다리
 오후 다섯시에.
저음의 현(絃)이 울렸다
 오후 다섯시에.
비소(砒素)의 종(鍾)과 연기
 오후 다섯시에.
모퉁이마다 침묵의 무리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투우만이 기가 나서!
오후 다섯시에.
고체 무수탄소(無水炭素)의 땀이 나고 있었을 때
 오후 다섯시,
투우장이 옥소(沃素)로 뒤덮여 있었을 때
 오후 다섯시.
죽음이 상처에 알을 낳았다
 오후 다섯시에.
오후 다섯시.
정확히 오후 다섯시 정각에.
 
바퀴 위의 관이 그의 침상이다.
오후 다섯시.
딱딱이와 플루트 소리가 그의 귀에서 울린다
 오후 다섯시에.
바야흐로 투우는 그의 이마를 관통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에.
방은 고통으로 찬란했다
 오후 다섯시에.
멀리서 이제 괴저(壞疽)가 오고 있다
 오후 다섯시에.
초록 살에 백합의 돌출
 오후 다섯시에.
상처는 태양처럼 불타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에.
그리고 군중은 창문들을 부수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에.
오후 다섯시.
아, 그 운명의 오후 다섯시!
모든 시계가 오후 다섯시였다!
오후의 그늘이 진 다섯시였다!
 
 
 
 (주* ㅡ자문한다.  
         당신의 운명의 시각은 언제인가?  
         당신은 지금 인생의 몇 시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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