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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詩心)이란 무엇인가. 이런 딱딱한 질문으로 과연 시심을 꽃 피울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심을 꽃 피우기 위해선 시심이 무엇인가를 깊고 깊게 생각하는 노력이 반드시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질문은 자연스럽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시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시인 정끝별은 시심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나누어 주었다. 시의 뿌리가 어디에 있고, 꽃이나 이파리를 어떻게 피워낼 것인가까지 가늠해보겠다고 말하며 시적 표현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시적인 표현, 시적인 구절, 우리는 어디서부터를 시적인 표현이라고 하는가? 생각해보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소설가와 시인이 있었다. 소설가가 시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문둥이도 꽃이 피면 운다.” 시인이 “오! 자네가 시인이다.” 라고 감탄하며,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느냐고 극찬했다. 소설가의 답. “그게 아니고, ‘문둥이도 꼬집히면 운다.’”
재미있는 이야기 둘.
활자공이 있던 시절, 인쇄소에서는 활자공이 글을 심어 인쇄했다. 그가 ‘담벼락을 구기다’라는 구절을 썼다. 시인은 오자가 났다며 항의했다. 원래 시인의 시 구절은 ‘담배곽을 구기다’였던 것. 시인과 활자공, 누가 시인일까?
재미있는 이야기 셋.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의사가 말했다. “따뜻한 물을 많이 드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아픈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물을 구워줘.”
평범한 문장과 시적인 긴장을 유발하는 문장의 차이. 시는 이곳에서 출발한다. 차이는 아주 미세하지만 시적 긴장은 더 없이 증폭된다. 비문이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발생하는 어떤 ‘낯설게 하기’가 시를 만든다. 시는 일상적이지 않은, 문법적이지 않은, 산문적이지 않은 어떤 지점에서 우리를 반짝 눈 뜨게 하는, 그곳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정끝별 시인. 정끝별 시인은 이와 같은 작은 질문을 던진 후 자신의 시 <통속>을 낭송했다.
서두르다를 서투르다로 읽었다 잘못 읽는 글자들이 점점 많아진다 화두를 화투로, 가늠을 가름으로, 돌입을 몰입으로, 비박을 피박으로 읽어도 문맥이 통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네살배기 딸도 그랬다 번번이 두부와 부두의 사이에서, 시치미와 시금치 사이에서 망설이다 엄마 부두 부쳐준다더니 왜 시금치를 떼는 거야 그래도 통했다
- <통속> 일부
“단어 하나만 바꾸어도, 문장 하나만 다른 축으로,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 시켜도, 세계관이 다른 것들을 교차시키기만 해도 일상적, 상투적, 관념적 의식으로부터 한 바퀴 휙 달아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순간이 시적인 긴장, 혹은 시적인 미학을 일으킬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아요. 시는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한 것과 ‘저기 너머’라고 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것들 두 개가 상통하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어떻게 교집합을 만드는가에 따라서 시적인 상상력과 감각들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잘 알려진 지금, 여기. 그곳에서는 시가 출발하지 않을 것이다. 산문적이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가시적인 지금 이곳에만 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볼 만하다. 지금 여기와 저기 너머를 함께 상상하는 것. 거기서 시가 더욱 힘차게 발화할지 모른다는 정끝별 시인의 말.
‘저기 너머’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시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의 뿌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시인은 이누이트 전설을 들어 이야기의 문을 열었다.
“이누이트에는 외로운 사냥꾼과 물개 여인의 이야기가 있어요. 얼음과 눈만 있는 세계가 이누이트일 텐데요. 그곳에 외로운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수평선, 지평선도 없고 하얗기만 한 곳에서의 외로움과 실종감은 우리와 굉장히 다를 것도 같아요. 우리는 아무리 외로워도 아기자기 하잖아요. 사계절이 있고, 알록달록 하고요. 그 막막한 백색의 어떤 곳에서 사는 외로운 사냥꾼은 너무 외로운 나머지 얼굴에 눈물 계곡이 패일 정도로 외로운 사나이에요.”
시는 그런 ‘외로운’ 지점에 있는 것 같다고 시인은 말했다. 오롯이 외로움에 집중하고 그것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의 심층적 깊이가 얼마나 높고 깊어질까, 그 실존의 깊이와 높이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얼마나 그윽할까, 그런 생각을 시인은 한다. 현대인들은 외로워할 틈이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는 스마트폰, 그 안에 사람들이 들썩이고 있다. 사람뿐인가. 이야기들, 소식들, 다 소화시킬 틈도 없이 발화되는 어떤 것들이 그득하다. 외로움에 집중하는 곳에 시가 있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그것은 곧 외로울 수 없는 세상에 시의 토양이 얼마나 척박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중요한 지적이기도 하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외로운 사냥꾼은 어두운 밤, 여자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는 그 장면을 넋을 놓고 본다. 목욕을 마친 여인들이 물개 가죽을 하나씩 걸쳐 입고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본 외로운 남자가 물개 가죽을 하나 훔친다. 가죽의 주인, 물개 여인 한 명이 자리에 남았다. 외로운 남자는 물개 여인에게 자신과 7년만 살아달라고 말한다. 여인은 하는 수 없다. 둘은 7년을 약속하고 함께 살다 아이를 낳게 되었다. 물개 여인과 외로운 사냥꾼 사이에 태어난 아들의 이름은 ‘오룩(ooruk)’. 이 이름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시에서는 ‘음성상징’이라고 해요. 단어나 글자에는 발음했을 때 느낌이 있다는 거예요. ‘끝별’은 굉장히 딱딱하고 날카로운, 외국인은 절대 발음하지 못하는 이름이에요.(웃음) 글자가 가지는 이미지, 느낌이 있는데 ‘오룩’이라고 하는 느낌을 제가 굉장히 좋아해요. 두 번째 평론집에 『오룩의 노래』라고 끌어다 쓰기도 했었죠.”
이름을 붙여주는 것, 명명하는 것이 곧 시가 아닐까. 김춘수가 노래했듯 말이다.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되고, 시가 된다. 시는 부름, 명명이다.
“‘오룩’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 그 이름이 가지는 느낌들이 시의 뿌리, 자궁 같은 단어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그것이 시라는 설명이었다. 언어, 부름, 명명에서 시는 시작한다. 애틋하고 의미 있는 존재를 늘 명명하고 부르며 소환한다. 우리가 하는 그 명명이 시다.
그렇게 물개 여인과 외로운 나무꾼은 오룩을 낳고 약속한 7년을 살았다. 8년째가 되자 물개 여인은 피부가 벗겨지고 갈라지며 고통스러워했다. 지상에 허락된 시간이 끝나자 죽어가는 물개 여인. 그러나 외로운 나무꾼은 가죽을 내놓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오룩, 오룩’하는 소리가 나요. 어린 오룩이 자신을 부르는 쪽으로 달려가죠. 가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집니다. 뭘까요? 물개 가죽이었어요. 오룩은 그 가죽이 엄마의 것인 걸 알아채요. 냄새 때문이었어요. 그 냄새를 맡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영혼이 갑작스런 여름 바람처럼 그를 뚫고 지나갔다.’”
살면서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어떤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가슴이 빠개지는 어떤 경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그런 순간이 또한 시적인 순간이고 시인은 말했다.
“그 순간을 저는 ‘와락’이라는 시어로 표현해봤어요. 『와락』이라는 시집을 냈을 때 ‘hug’만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와락’은 ‘hug’만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밀려왔다 빠져 나가는 모든 형태를 설명하는 부사로 설명되는 거거든요. 오룩의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엄마의 냄새가 나는 그 순간이 ‘와락’의 순간이고, 시라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와락’의 순간들에서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와락’의 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행복한 사람, 부자인 사람이라고 정끝별 시인은 말했다. 그것이 슬픔이든, 고통이든 그런 순간이 많은 것이 부자일 터다. 연애를 많이 한 사람이 더 부자인 것처럼 말이다. 기억할 것이 많고, 자신을 통과한 것이 더 많은 사람일수록 부자라고 생각한다는 정끝별 시인은 시 쓰는 사람들이 겁이 없는 이유도 이런 데서 출발하는 것 같다고 이어 설명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특히 20대에는 죽음조차도 두렵지가 않았어요. 감당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뭔가 뚫고 지나가는 느낌을 시로 쓸 거야, 그 느낌을 기억해 둘 거야, 그걸 언어화할 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친구 중에 파란만장하고 이런저런 아픔이 많은 친구가 있어요. 제가 그 친구를 위로할 때 하는 말이, ‘하느님이 시인으로서의 너를 사랑하셔서 너의 언어를 더 높고 깊게 만들려고 너에게 이런 시련을 주나보다.’였어요.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언어가 훨씬 더 깊고, 낯선 경지, 지형도나 환경을 우리에게 선사해주는 것 같아요.”
다시 이야기다. 어린 오룩은 그 가죽을 엄마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죽을 주면 엄마가 떠날 것을 예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가죽을 준다. 물개 여인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자식이라는 존재 역시 자신의 살이다. 가죽을 찾았으나 살과 같은 자식을 두고 가는 어미의 심정이란 무척 어려울 것이 당연할 터. 그때 물개 여인이 이렇게 말한다.
“나(물개 여인)나 오룩이나 시간 그 자체보다도 더 오래된 그 무엇인가가 자기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무엇인가’는 무엇일까. 시는 그곳을 자꾸 엿본다. 시인은 그곳을 엿보려고 하는 자다. 낌새를 엿듣고, 기미를 보는 자가 바로 시인이다. ‘그곳’은 달리 말하면 ‘심연’으로 말할 수 있을 텐데 나, 내 살을 뚫고 나온 자식, 시간 그 자체보다도 훨씬 오래된 어떤 곳에 시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곳을 가늠해보는 사람이 시인이리라.
물개 가죽을 입은 엄마와 오룩은 결국 헤어진다. 엄마가 떠나며 오룩에게 말한다.
“네(오룩)가 노래 부를 수 있도록 바람이 네 허파 속으로 스며들 거야. 우리가 함께 했던 일상적인 도구들을 만지는 순간에 너는 노래하게 될 거야.”라고 얘기하며 오룩에게 숨을 불어 넣는다.
“온통 얼음뿐인 그 막막한 곳에서 유일하게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은 물속일 것 같아요. 인간이 갈 수 없는 나라가 물속이겠죠. 엄마가 숨을 불어넣자 오룩은 엄마 덕분에 물속을 구경합니다. 물개 여인으로부터 숨을 받고 그로 인해 노래를 부르는 자가 바로 ‘오룩’이에요. 오룩은 커서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가수가 돼요. 그가 바로 최초의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시인 아닐까요? 저는 이 전설이 시인이 탄생하는 순간을 말한다고 해석했어요.”
물개 여인과 외로운 사냥꾼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정끝별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다섯 지점에서 살펴보았다. 외로운 자리(눈물 계곡이 얼굴에 패일 정도로 외로운 사냥꾼), 명명과 소환(‘오룩’이라고 하는 이름 붙이기), 가슴을 관통하는 지점(어머니의 냄새가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순간), 심연과 무의식(물개 여인이나 오룩, 시간 그 자체보다 오래된 무엇), 최초의 노래(바람이 허파에 스며들 듯 노래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로 시의 탄생을 짚어본 시인은 시적 영감(inspiration)에 대한 이야기로 자리를 이었다. 숨결, 숨쉬다라는 말의 어원과 연결되는 단어가 바로 inspiration이다. ‘in’은 ‘들어가다, 스며들다’를 뜻하고, ‘spire’는 ‘숨’을 뜻한다. 영감이란 곧 숨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영감’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물개 여인이 오룩에게 숨을 불어넣어줬던 그곳에서 연결되는 것 같아요. 모든 예술적인 것이 영감(inspiration)으로부터 오긴 하지만 시는 사실 ‘숨결’이라는 것이죠. 영감이 온다고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숨을 불어 넣어준다’는 것의 또 다른 은유들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시적 영감, 시의 근원, 시심이란 어디서부터 오는가.
“시적 영감은 어떤 경계, 저기 너머를 꿈꾸는 지점에서 외롭고, 절박하고, 뚫고 지나가는 것, 시간보다 오래된 그 무엇입니다. 이걸 통틀어 저 너머라고 한다면 시심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저 너머를 가늠하는 그런 상태, 자세, 기미, 태도들이겠죠. 또한 시심은 어떻게 발현이 되는가하면 시어는 모국어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을 ‘은는이가’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이 부분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단어예요. 우리는 감으로 다 쓰잖아요?”
시인은 자신의 시 <은는이가>를 낭송했다. 조사를 가지고 쓴 시, 시가 모국어의 가락과 숨결, 호흡을 가지고 쓴 시였다.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 말을 걸고
나는 사랑‘은’ 하면서 바람을 가둔다
안 보면서 보는 당신은 ‘이(가)’로 세상과 놀고
보면서 안 보는 나는 ‘은(는)’으로 세상을 잰다
당신의 혀끝은 멀리 달아나려는 원심력이고
내 혀끝은 가까이 닿으려는 구심력이다
그러니 입술이여, 두 혀를 섞어다오
비문(非文)의 사랑을 완성해다오
-<은는이가> 일부
시라는 것이 우리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이야기한 시였다.
“최근에 절박해진 생각인데요. 파스칼이 말했듯 현대인이 외로워할 줄 모르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한다면, 저는 광포한 이 시대의 어떤 면들이 ‘안 보이는 것들을 없다고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지 않고,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척도화된 것들만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사실 중요한 것은 다 안 보이는 것들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시화되지 않는 것들 말이에요. 그것이 ‘오룩’의 노래에서 얘기했던 ‘저기 너머’의 지점들이 아닐까요. 누군가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고, 누군가는 안 보이는 이데올로기나 신념을 위해서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붇기도 하고, 안 보이는 신을 향해서 평생의 삶과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우리가 가장 불행한 게 뭘까요? 마음을 얻지 못해서 오는 불행이 가장 많을 거예요. 그것 역시 안 보이는 것들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마종진 시인은 이렇게 얘기했어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거기가‘시의 나라’라고요. 우리가 안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있을 때 힘이 세져요. 보이는 것을 믿으면 그것만 없어져도 무너지겠지요. 안 보이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자기가 부수지 않는 한 누구도 부술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안 보이는 것’으로 상징되는 것들은 무엇일까? 행복, 신념, 믿음, 사랑, 등과 같은 것들이 간절함과 연결되지 않을까. 간절한 건 안 보일수록 더 간절해지게 마련이다. 시인은 그 안 보이는 것을 가늠하고, 그곳을 엿보려고 하는 믿음이나 신념이 있는 사람들이다. 안 보이는 간절함에서부터 시적인 표현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시는 또한 관계라고 시인은 말했다. 재배치와 치환, 관계의 법칙만 알아도 시적인 표현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담벼락’과 ‘담배곽’을 치환한 것만으로 시적 표현이 터져 나온 것처럼 말이다. ‘꼬집히다’와 ‘꽃이 피다’에서 발생한 재배치로 시적 표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익숙하게 생각하는 모든 관계를 재배치할 때 시적인 상상력이 새롭게 출발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물음이 생긴다.
“갑작스럽게 ‘왜?’라 고 관계를 재배치하는 것, 왜 이것과 저것이 같이 있어야 하지? 하고 묻는 거죠. 갖고 놀아보는 거예요. 거기서 아주 낯선 어떤 것들이 발생된다는 거예요. 시를 쓸 때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통속과 상투예요. 익숙한 것끼리 함께 있는 것이 통속이잖아요. 유행이고 흐름이죠. 예상하는 바대로 가는 거예요. 통속과 상투가 호소하는 지점은 익숙한 곳이에요. 그것을 시적이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쓴 시는 삼류 시가 되는 거예요. 팬시, 꽃무늬 시가 되는 거잖아요. 새로운, 낯선 것에 대한 발견이 없이는 시적인 발견도 없어져요. 익숙한, 통속적인 것을 어그러뜨리는 게 관계 재배치예요.”
관계를 끊어버리고, 다시 읽고 치환해내는 것, 그것은 조사, 단어, 문장, 행과 행, 연과 연, 사유, 패러다임, 축과 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놀라운 시적 상상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끝별 시인이 말하는 시심이란. 그는 여전히 시인이라고 하는 존재들은 밤에 잠 못자고, 뭔가가 오는 것을 자꾸 엿보고 귀 기울이는 자들, 저기 너머에 어떤 기미와 징조를 자꾸 들으려고 하는 자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여기의 절박함과 저기 너머의 깊이에 시의 깊이가 있다는 시인.
“제가 ‘저에게 시란 기도이자 혁명이다’라고 얘기했던 것은 시가 저에게는 하나의 종교 같은 것이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도전할 수 없는 것을 꿈꾸는 ‘혁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시의 힘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가 쓰는 언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그 간단한 질문을 생각해 보시면, 여기 보이는 이것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얘기할 수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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