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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말약 / 녀신
2015년 04월 02일 22시 07분  조회:3910  추천:1  작성자: 죽림

 

 

郭沫若의 ≪女神≫ 小考

 

金希珍 (仁荷大 講師)

 

Ⅰ. 緖論

Ⅱ. ≪女神≫의 형성과정

Ⅲ. ≪女神≫에 나타난 주제의식

1. 祖國愛와 民衆愛

2. 反封建 意識

3. 愛情과 煩悶

4. 汎神의 세계

Ⅳ. 結論

 

Ⅰ. 緖論

 

근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1920년대는 봉건 전제 국가였던 중국이 정치․사회․문화적 진통을 겪으며 근대화를 향해 달려가던 시기였다. 중국 내에서는 反帝國․反封建․軍閥打倒를 부르짖으며 五四運動이 전개되었으며, 외부적으로는 十月革命과 소련 무산계급정부의 수립이 라는 국제적 충격이 全世界로 파급되던 시기였다. 이와 같은 격동의 國內外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조명하고 자신의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였던 대표적인 시인 중 하나가 郭沫若(1892-1978)이다. ≪女神≫은 郭沫若의 첫 번째 시집으로 그의 文名을 최초로 문단에 드러낸 대표적인 詩集이다. 중국 현대문학사에 있어서 郭沫若의 ≪女神≫은 1920년에 등장한 최초의 現代詩集인 胡適의 ≪嘗試集≫ 보다 한 해 늦게 문단에 출현하였지만, 내용과 형식면에 있어서 중국 현대시의 기초를 공고히 하였다는 점에서 그 위치는 더욱 선명하다고 할 수 있다. 聞一多는 ≪女神≫의 출현에 대해 “新詩로 말하자면 郭沫若의 詩야말로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五四時期의 新詩 중 郭沫若의 ≪女神≫이야말로 新詩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 정신은 “완전한 時代精神이다.”라고 하였는데, 호적의 ≪嘗試集≫이 전통 격률시의 형식적 속박에서 벗어나 白話로 시를 창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의식이나 내용 면에서 그다지 대단치 못했던 반면 郭沫若의 ≪女神≫은 대담하게 형식의 속박을 벗어나 새로운 시적 제재와 주제를 통해 당시 중국 사회를 조명하고 사회 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초기 현대시로서 신시의 경지를 개척하였다는 점에서 ≪嘗試集≫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女神≫에 대한 고찰은 중국 현대시를 정확히 이해하고 나아가 중국 현대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기초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女神≫은 1921년 8월에 출판되었으며, 1918년 ~ 1921년 사이에 창작된 시 54수와 劇詩 3편을 수록하고 있다. ≪女神≫이 창작된 시기는 바로 五四運動 시기로서, 시집 전체를 통해 五四運動의 자유와 반항 정신이 관통하고 있다. 특히 “불(火)”의 정신이라고 표현되는 ≪女神≫의 기본정신은 五四時期 당시 청년 지식인들의 반봉건 사상과 새로운 중국을 향한 理想을 대변하는 것으로, 舊中國을 태워버리고 新中國을 꿈꾸는 강렬한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듯 ≪女神≫은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현대시로서의 독자적인 위치를 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五四運動의 개혁 정신과 낙관적 희망을 담아내며 의식면에서까지 현대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00년 5월 北京에서 五四運動 81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5․4와 中國知識份子學術硏究討論會>에서 미국 위스콘신대학 동아시아 語言文學系 및 歷史系의 周策縱 교수는 近來 대륙에서 전개되었던 학생운동을 五四運動과 상통하고 있다고 규정하며, 양자 모두 애국운동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현재의 학생운동이 보다 민주를 강조했을 따름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홍콩 중문대학 중국문화연구소 소장 陳方正은 대륙이 자본주의로 나아가거나, 혹은 계속 사회주의 길을 간다 하더라도 모두 반드시 끊임없이 어떤 위기 및 정치 개혁의 요구를 맞이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중국은 현재 위기에 처해있고 80년 전 五四運動은 外患에서 기인한 것인 반면 현재 학생들은 대륙의 진보를 위해 또한 합리적 생활을 위해 가두 시위와 수업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현대화 과정에 있는 중국의 상황에서 다시 제기되는 五四精神으로, 이를 통해 현재 중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혁의 요구와 학생 운동의 성격을 이해하고 역사적 진보를 이루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五四精神은 과거에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대정신이며, 영원한 청년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五四시기를 배경으로 창작되었고 五四運動의 정신을 명확히 표명하고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는 郭沫若의 ≪女神≫에 대한 고찰은 중국 현대문학의 이해를 위한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개혁 개방으로 현대화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Ⅱ. ≪女神≫의 형성과정

 

≪女神≫은 1918년부터 1921년까지 郭沫若이 창작하거나 문예지에 기고했던 작품을 수록한 시집으로, 1921년 8월 5일 上海 泰東圖書局에서 출판되었으며, 19세기 독일 낭만파 작가였던 스트롬(Storm)의 작품 에서 “女神”이라는 이름을 인용하였다.

문단에 등장하기까지 ≪女神≫의 형성과정은 1919년 五四運動을 분기점으로, 五四 이전을 1단계, 五四 고조기를 2단계, 五四 이후를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五四運動 시기를 중심으로 분기한 것은 五四시기을 전후하여 郭沫若의 의식은 물론 작품 창작에 있어서 각기 다른 특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1. 제1단계(五四運動 以前 時期)

 

1918년 초 여름, 詩作生活을 시작하여 1919년 五四 이전까지 郭沫若은 10여 편의 시를 창작하였다. 이 기간을 郭沫若 자신은 “시의 覺醒期”라고 명명하였는데, 주로 하이네와 타고르의 영향으로 애정과 자연을 제재로 한 작품을 창작하였다.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다소 뒤떨어지지만 본격적인 창작을 위한 준비기간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의 최초의 작품인 <死的誘惑>을 비롯하여 <新月與白雲> <春愁> <鷺鶿> 등이 이 기간에 완성되었다. 이 시편들은 청신하면서도 담백하고 때로는 悲歌的 애조를 띄고 있으며, 대부분 애정의 기쁨과 환희를 노래하는 한편 조국에 대한 念慮와 鄕愁를 담고 있다. 郭沫若 자신은 이 기간의 창작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러한 詩篇들은 가장 이른 시기의 시로서, 舊式의 격식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하였다. ........당시 지은 <新月與白雲> <春愁> <鷺鶿> 등은 확실히 타고르와 하이네의 영향 아래에 있다.

 

郭沫若 스스로도 밝혔듯이 이 시기에 그는 바람, 달, 바다, 하늘 등 자연 景物을 통해 五四 이전 시기의 침울하고 답답했던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으며, 일본 여인 安娜와의 사랑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내용이나 형식 측면에서 볼 때 이 시기의 시편들은 舊式의 격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과도기적 형태이며, 문학적으로도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은 아니다.

 

2. 제2단계(五四運動 高潮期)

 

郭沫若은 1919년 하반기에서 1920년 상반기 사이에 이른바 “詩作 爆發期”를 맞이하여 ≪女神≫의 주옥같은 시편들을 대량으로 창작하였다. 이 기간이 바로 제2단계로서 五四運動의 고조와 더불어 도래하였으며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이전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성취를 이룬 창작의 황금시기라 하겠다.

이 기간의 시편들은 제1단계에 비해 내용이 풍부해진 것은 물론 한결 성숙해졌으며 이전의 感傷性에서 벗어나 五四 시기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힘차고 약동하는 시풍으로 전환하였다. 제재면에서도 정치적 소재, 자연 경물, 현실 생활, 물질 문명, 신화나 전설, 조국, 애정, 범신주의 등 노래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아울러 그는 자유와 이상을 노래하였으며 적극적으로 반봉건 의식과 반항 정신, 개성 해방 등을 표출하였다.

이처럼 詩風이 격정적이고 거칠은 함성으로 변모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이에 따른 시인의 내면적 변화를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들 수 있겠다. 시대적 배경이란 바로 1919년 발생한 五四運動으로, 五四의 반제국, 반봉건, 반군벌의 요구는 郭沫若의 의식을 각성시켰으며, 중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청년 郭沫若의 내면을 애국 열정으로 끓어오르게 하였다. 이러한 내면적 각성은 그의 내부에 팽배해 있던 시적 열정을 동요시켰으며, 五四運動의 고조와 더불어 폭발한 왕성한 創作熱로 인해 그는 수많은 시편들을 창작하게 되었다. 이외에 지적할수 있는 원인은 上海 『時事新報』의 副刊인 ≪學燈≫의 영향을 들 수 있겠다.

 

처음으로 나의 작품이 활자로 인쇄된 것을 보자, 정말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래서 나의 자신감 역시 점점 증대되었다. 나는 이미 완성한 시와 새로 쓴 시를 모두 계속하여 투고하였으며 투고한 것은 대부분 게재되었다. 이는 말할 필요 없이 나의 詩作 욕구를 증가시켰다.

 

이처럼 ≪學燈≫과의 만남은 郭沫若의 詩作 욕구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실제로 ≪女神≫의 작품들은 몇몇 작품만을 제외하고 대부분 ≪學燈≫을 통해 시단에 소개되었으며 시인으로서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더욱이 ≪學燈≫의 편집인이었던 宗白華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詩篇들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學燈≫의 紙面에 그의 시가 실리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투고만 하면 발표되었다. 당시에 대해 郭沫若은 “나는 시를 짓는 공장 같았다. 시는 販路를 확보하고 있었고, 시의 生産은 갈수록 왕성해지기 시작하였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또한 ≪學燈≫에 투고를 시작할 무렵 접하게 된 휘트먼의 ≪草葉集≫은 郭沫若에게 시적 열정을 분출할 수 있는 자극을 주었다. ≪草葉集≫의 특징인 형식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써 내려간 힘차고 생동감 넘치는 詩風은 五四시기의 시대 정신을 표출하기에 적합하였고 자신의 격정을 표현하기에 좋은 본보기가 된 것이다. 휘트먼의 시에 매료된 郭沫若은 거침없는 호방한 휘트먼 시풍을 빌어 자신의 詩作慾을 분출시켰다.

이와 같은 內外的인 원인으로 詩作의 爆發期를 맞이한 郭沫若은 “그러한 발작은 수시로 나를 엄습하였으며 일단 엄습하면 점치는 사람처럼 시를 써내려 갔다.”와 같이 狂的으로 詩作에 몰두하였으며 예술성과 시대성을 성공적으로 표현한 시편들을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제3단계(五四運動 後期)

 

제3단계는 1920년 상반기부터 1920년 하반기까지의 기간이다. 앞서 폭발한 격정적인 詩作 慾求와 情熱이 상실된 詩作의 消失期라고 할 수 있다. 郭沫若이 ≪學燈≫을 중심으로 창작활동을 전개하였음은 앞서 언급하였으나, 詩作의 消失 역시 ≪學燈≫과 더불어 찾아왔다. ≪學燈≫의 편집자였던 宗白華의 후임으로 부임한 李石岑과의 갈등은 郭沫若의 詩作 意慾을 꺾었으며, 발표 지면까지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한번은 그(李石岑-필자 주)는 나의 시를 다른 시인의 시 뒤에 발표하였는데, 그 시인의 시는 내가 ≪學燈≫에 발표한 적인 있는 <嗚咽>이라는 시를 베낀 것으로, 단지 앞부분을 고쳐서 몇 글자 바꾼 것일 뿐이다. 이러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세세한 일들은 당시 내게 냉수를 퍼부은 듯 하였다. 이후로 나는 다시는 ≪學燈≫을 위해 시를 쓰지 않았으며, 더욱이 성난 파도처럼 일어났던 시작 욕망도 굳어져 버렸다.

 

이처럼 새로운 ≪學燈≫의 편집자의 부당한 처사와 표절 사건은 郭沫若의 詩興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발표 지면까지 사라지게 하였다. 비록 이러한 주변의 냉대와 부조화는 郭沫若의 시에 대한 열정을 식히기는 하였지만 완전히 소멸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의 內面에는 여전히 현실에 반항하고 자유와 이상을 추구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詩的 慾求 역시 동요하고 있었다. 그의 의식 속에서 시적인 열정과 현실과의 부조화는 때로 부딪히고 때로 결합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작품 가운데 정열적으로 高潮되다가도 우울하고 또한 悲壯하다가도 哀想的 정조를 띈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따라서 제3단계의 시풍은 1단계와 같이 청신하거나 담백하지도 않고 2단계처럼 정열적이지도 않은 중간 단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기간에 郭沫若은 괴테의 영향으로 劇詩를 창작하기 시작하였는데, <女神三部曲>이라고 칭하는 <女神之再生> <湘累> <棠棣之花>를 창작하였다. 그밖에 3단계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1914년 1월 일본에 도착하여 유학생활을 하였던 郭沫若이 1921년 4월 3일 귀국하면서, 조국의 현실에 다시 한번 눈뜨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당시 중국의 암담한 현실과 직면하면서 조국에 대한 희망과 찬양 대신에 민중의 비참한 삶과 반식민지 상황에 빠진 중국의 현실상에 대해 분노와 슬픔을 나타내는 한편 깨어진 理想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표출하였다. 문학을 통해 중국을 개혁하고 잠자는 중국을 깨우겠다는 신념을 지녔던 郭沫若은 귀국 후 자신이 몸소 보고 체험했던 중국의 현실은 그에게 문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겨 주었으며, 다시금 그를 고민에 빠지게 하였다.

 

Ⅲ. ≪女神≫에 나타난 주제의식

 

1. 祖國愛와 民衆愛

 

(1) 조국애와 정치적 신념

 

이른바 예술이란 개인적인 신념이나 의식, 독창적인 미감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이 바로 시대적 감각이며 신념이 될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니게 되며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女神≫의 많은 시편들은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시대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며 형성되었다. 시 속에 나타난 조국과 미래를 향한 理想과 信念은 시인 개인의 것인 동시에 당시 조국 중국 전체에 팽배해 있었던 사회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인의 조국애를 바탕으로 조국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희망과 정치적 신념으로 형상화 되었다. 먼저 郭沫若 자신의 열렬한 애국심을 보여주는 시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아,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

나 그대의 애정을 버리지 않으리,

그대도 내 그리움을 버리지 말기를.

내 진정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이렇게 불타고 있다오!

 

아,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

그대는 나의 전생을 알고 있는지?

그대 나 검은 노예의 억셈을 뭐라 하지 마시오?

이 검은 노예의 가슴엔,

불같은 심장 뿐 이라오.

 

아,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

내 전생을 생각해 보니

본시 쓸모 있는 기둥이었다오,

오래 땅 속에 묻혀있어,

오늘 아침에야 햇빛을 다시 보게 되었소.

아,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

나 햇빛을 본 후,

언제나 고향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이렇게 불타고 있다오. <爐中煤>

 

당시 일본에 유학하고 있었던 郭沫若은 조국을 사랑하는 여인에 비유하고 조국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난로 속에서 불타고 있는 석탄으로 묘사하며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염려를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그는 五四運動 이후의 중국에 대해 “내 마음 속에서 아주 아름답고 진취적인 아가씨와 같았으며 정말 애인과도 같았다.” 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는 <爐中煤>의 아가씨의 형상과 상통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조국을 향한 끊임없는 애정과 더불어 사랑하는 여인인 중국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읽을 수 있다.

<棠棣之花>의 聶嫈 남매의 형상을 통해 표출된 시인의 각오는 더욱 비장하다.

구차한 생을 지속하기 보다,

장렬한 죽음을 택하리.

내 목숨 다하여,

저 백성을 구할 수 있기를!

 

가거라, 아우여!

네 붉은 피가,

자유의 꽃으로 피어나,

中華에 두루 만발하기를 원하노라!

가거라, 아우여! <棠棣之花>

 

<棠棣之花>는 戰國時代에 聶政이 포악한 韓나라의 재상 俠累를 중인 故事를 바탕으로 완성시킨 5막극의 劇詩이다. ≪女神≫에는 제1막인 聶嫈과 聶政 남매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이별하는 장면만을 수록하였다. 시 속의 聶嫈의 절규는 조국의 자유와 신생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낌없이 바치겠다는 시인의 애국심이다.

이러한 애국 열정은 그로 하여금 조국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게 하였으며, 미래를 향한 무한한 희망과 굳은 신념을 지니게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女神≫의 조국애는 미래지향적 자세를 지니고 있으며, 미래의 형상으로서 밝은 조국 새로운 중국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고 하겠다. 희망에 찬 조국을 향해 그는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

 

평화의 고향이여!

내 부모의 땅이여!

언덕 위 저토록 푸르름!

流水는 이토록 누렇구나!

 

나 뱃전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니,

수면처럼 평평한 대지,

푸른 버드나무를 빼곤,

거칠 것이 없구나.

 

작은 배 물결에 일렁이고,

사람들은 꿈을 꾸는 듯.

평화의 고향이여!

내 부모의 땅이여! <黃浦江口>

 

1919년 폭발한 五四運動은 중국을 오천년 간의 긴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 새로운 희망과 이상을 심어 주었다. ≪女神≫에 표출된 미래에 대한 강한 신념은 五四運動 당시 지식인을 비롯한 사회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사회의식으로, 그들은 五四運動을 통해 민주와 평등의 새로운 중국을 바라보았으며,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중국을 갈망하였다. 이는 당시 全中國人의 보편적인 신념으로서 시인은 이러한 사회의식을 ≪女神≫의 애국시로 탄생시킨 것이다.

 

나는 무산계급자이다:

나는 발가벗은 내 몸 이외에,

사유재산이라곤 없기에.

≪女神≫이 내가 만든 것이라서

내 것이라고 말할지라도

그러나, 난 공산주의자가 되고자

그녀를 공개하겠다.

 

≪女神≫이여!

너는 가라, 나와 진동수가 같은 이를 찾아서:

너는 가라, 나와 발화점이 같은 이를 찾아서.

너는 가라, 사랑하는 청년 자매들 가슴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심금을 울리고,

그들 지혜의 빛에 불을 당겨라! <序詩>

 

여기서 郭沫若은 무산계급자와 공산주의자가 되겠다고 직설적으로 외치고 있다. 이런 외침은 十月革命의 성공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그의 의식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당시의 중국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사회주의 국가라는 새로운 체제를 꿈꾸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신적 변화는 ≪女神≫에서 정치적 신념을 표출한 시로 등장하였는데, 주로 혁명가나 러시아 혁명, 노동자에 대한 찬양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아! 내가 경외하는 러시아!

내가 경외하는 개척자여! <晨安>

 

시인의 가슴에 각인된 十月革命의 영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시구이다. 이러한 외침은 자신의 조국 중국에도 十月革命과 같은 혁명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의 의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郭沫若은 확실히 혁명을 통해 新生한 러시아를 중국이 동경해야 할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신념에서, 그는 사회주의를 지향함에 노동자를 향한 찬미와 찬양을 보내고 있는데, 이는 민중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의 차원도 아니고 어떤 계급 의식이나 이론에 근거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구, 나의 어머니!

저는 당신의 효자인, 밭가는 농부를 흠모합니다.

그들은 전인류를 돌보는 사람이며,

당신은 언제나 그들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지구, 나의 어머니!

저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탄광의 노동자를 흠모합니다.

그들은 전인류의 프로메테우스이며,

당신은 언제나 그들을 품어주십니다. <地球, 我的母親>

 

시인은 農夫를 지구의 “효자”, 인류의 “보모”로 그리고 鑛夫를 지구의 “사랑스러운 아들”, 인류의 “프로메테우스”로 부르며, 찬미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줌으로써 인류를 암흑에서 해방시킨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神이다. 따라서 프로메네우스는 인류를 어둠에서 해방시킨 해방자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구원의 존재라 하겠다. 바로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찾아준 해방자를 상징한다.

郭沫若은 러시아 혁명을 통해 인식하기 시작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의 하나로 농부나 광부 등 노동자 계층에 대한 찬미를 표시하며, 이들을 인류의 해방자요 구원의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상당히 모호한 것으로 이념적 각성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 救國救民의 해결책으로 그의 의식에 자리잡기 시작한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十月革命이나 노동 계층에 관심을 표명하였고,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十月革命-필자 주) 당시의 청년들을 불러 일으켰으며, 나 역시 그 중의 하나로 新社會에 대해서 진보적인 이해를 할 필요를 발생하게 되었다.

나는 마르크스, 레닌이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고 여겼으나,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오히려 막연하였다.

 

郭沫若 자신이 고백하였듯이, 이념적 차원이나 계급적 각성을 통한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이었다기 보다는 반봉건 반제국주의 차원이자 애국적 차원에서 이를 수용하였으며, 그것은 상당히 막연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郭沫若의 ≪女神≫에 나타난 정치적 신념으로서의 사회주의나 혁명, 노동자에 대한 찬사는 애국적 정조에서 출발한 것이며, 사상적 각성이 전제되지 않은 救國救民의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郭沫若은 비록 사회주의의 개념에 대해서조차 명확히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조국의 出路로 사회주의를 동경하였으며, 정치적 신념을 표출한 시로 탄생시킨 것이다.

 

(2) 민중애

 

郭沫若은 ≪女神≫에서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피지배 계층인 민중을 향하여 동정과 연민을 표시하면서, 이들의 피지배적인 삶을 통해 중국의 비참한 현실을 폭로하였으며, 帝國主義와 封建專制라는 이중적 지배 하에서 신음하고 있던 당시 중국의 상황을 고발하였다.

 

늙은 농부

내 심장의 피는 모두 말라붙었다,

보리밭사이로 어떤 이가 싸우라고 외친다.

황하의 물은 언제쯤 맑아질까?

인간의 생명은 언제 끝날지?

 

목동

아, 나는 투견 두 마리를 기를 순 없다;

늘상 만두 먹는 것을 다투니;

만두가 없어지면 양고기를 먹으려 할테니,

나는 양을 몰고서 도망갈 수 밖에. <女神之再生>

 

농부와 목동의 입을 빌어 당시 중국 민중이 겪는 고통을 고발하였다. 국민들의 삶에는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세력 확장만을 위해 전쟁을 벌이는 군벌들의 횡포와 이에 따른 일반 국민들의 궁핍한 생활과 고통을 고발하였다.

日本으로 유학을 떠났던 郭沫若은 1921년 4월 上海로 귀국하였다. 그러나 그가 유학 생활을 하며 五四運動을 통해 동경하고 꿈꾸었던 조국은 실망과 좌절에 빠진 암울한 곳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평화의 고향이여! 내 부모의 땅이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귀국 후 접한 중국의 현실은 다시 한번 그를 절망에 빠지게 하였지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나 꿈에서 놀라 깨었네!

환멸의 비애여!

 

한가로이 떠다니는 시체,

썪은 고기 덩어리,

 

긴 남자의 옷자락,

짧은 여인의 옷소매,

 

보이는 건 전부 해골,

온 거리 가득 관 뿐,

난폭하게 뛰어들어,

제멋대로 다닌다.

 

내 눈에 눈물 흐르고,

내 마음은 구토한다.

 

나 꿈에서 놀라 깨었네!

환멸의 비애여! <上海印象>

 

중국의 참담한 현실로부터 충격을 받은 시인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귀국 이전에 郭沫若은 五四運動 이후의 중국을 “아,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로 노래하였지만, 귀국 후 중국이 그에게 안겨 준 것은 비참한 현실 뿐 이었다. 제국 열강들의 반식민적 상태에 놓인 당시의 중국에서 이상과 희망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죽은 시체와 같은 중국인들의 모습으로부터 커다란 실망과 분노를 느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호미자루를 멈추고,

고개 들어 나를 본다.

아 그의 온화한 눈빛,

그의 건강한 구리빛 얼굴,

그의 반백의 수염,

그의 근육 솟은 황금빛 팔.

나 그의 앞에 무릎꿇고

“ 내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발등 누런 진흙을 씻어주련다. <西湖紀游-雷峰塔下>

 

시인은 땅을 갈고 있는 늙은 노인의 모습을 통해 노동하는 민중의 형상을 재인식하고 있다. 노동으로써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이야말로 오랜 봉건주의의 지배와 제국주의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지탱해온 생명이다. 郭沫若은 이러한 민중을 계급 의식의 차원이 아닌 민족 차원에서 재인식하며 이들에게 관심과 찬사를 보냈다.

중국 근대사에서 민중은 역사의 담당 주체임에도 역사의 전개에 있어서 철저히 배제되고 역사적 격변 속에서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女神≫에 등장한 민중의 모습은 대부분 전쟁과 군벌의 횡포에 억압받고 고통 받는 형상들이다. 민중을 재인식하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전에 비해 진보된 일면을 나타내고 있으나, 다소 피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점 또한 그 한계로 드러난다. 이는 시인이 일본에 유학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런 창작 환경 때문에 자연히 현실에서 제재를 취하기보다는 주로 역사적인 고사를 빌어 형상화하려 했기 때문에 조성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제국주의와 봉건 군벌에게 지배당하는 민중의 고통을 노래한 ≪女神≫의 민중애를 표출한 시편들은 郭沫若의 민중에 대한 민족적 자각과 애국심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소 현실 인식을 결핍한 것으로 동정과 연민 그리고 관심의 수준을 탈피하지 못하였다.

 

2. 反封建 意識

 

(1) 개혁의 의지

 

≪女神≫의 형성에 있어서 五四運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이미 앞서 언급하였다. 郭沫若은 ≪女神≫의 많은 시편 가운데 五四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반봉건의식을 나타내며, 新中國의 創造를 도처에서 외쳤다. 새로운 조국의 탄생을 열망하는 시인에게 개혁과 창조는 중국을 理想社會로 이끄는 원동력이며 지름길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그는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에 반항하며 舊中國의 타파를 주장하였고, 新中國의 창조와 新社會의 건설을 외쳤다. 이러한 태도는 확실히 반봉건적인 것으로 五四運動의 영향으로 더욱 견고해졌으며, 五四의 時代精神과 밀접하게 결합하였다.

 

태양의 찬란한 위세는

전 우주를 녹이려 한다!

형제들이여! 자, 어서!

빨리 와 파도를 탈지어다!!

우리의 혈기가 용솟음 칠 때,

우리의 정열이 타오르고 있을 때,

빨리 썩은 낡은 몸뚱이를

모두 씻어 버리기를!

새로운 사회의 재창조는

전부 우리에게 달려 있다네! <沿海>

 

자신의 형제와 동포인 中國 國民을 향해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의 정열 아래에서 진부한 모든 낡은 것을 깨끗이 씻어버리라고 외치고 있다. 개혁과 개조에 대해 자각할 것과 동참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무수한 흰 구름 공중에서 일어나면,

아아! 장엄한 북빙양의 해맑음이여

끝없는 태평양은 있는 힘을 다해 지구를 쓰러뜨리려 한다.

아아! 눈앞에 용솟음쳐 오르는 거대한 파도!

아아! 중단 없는 파괴, 중단 없는 창조, 중단 없는 노력!

아아! 힘! 힘!

힘의 모습, 힘의 춤, 힘의 음악, 힘의 노래, 힘의 선율!

<立在地球邊上放號>

郭沫若은 지구의 끝에 서서 지구를 내려다 본다는 상상을 통해, 눈 앞에 전개되는 역동적인 흰구름, 북빙양, 태평양의 형상을 통해 개혁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표출하였다. 특히 “힘(力)”의 이미지와 형상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힘은 상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쓰러뜨릴 수 있는 위대한 힘이고 파괴적이면서도 창조적인 힘이다. 五四運動의 영향으로 郭沫若은 新社會에 대한 희망과 이상을 표시하는 한편 舊社會에 대한 파괴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제국 열강과 봉전 체제의 지배에 신음하고 있던 당시 舊中國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표출이며, 이 舊中國이 파괴되기를 바라면서도 새로운 중국의 탄생을 강렬히 열망하는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이를 수행할 강력한 힘의 존재를 갈망하면서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郭沫若은 改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창조의 선구는 파괴이다. ........엣 것이 파괴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은 탄생될 수 없다. 무너진 초가집 위에 다시 마천루를 건설할 수 없다.

 

우리의 사업은 지금 혼돈 중에 있기에, 먼저 파괴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정신은 반항의 불꽃이 되어 불타올라야 한다.

 

創造에 앞서 철저한 파괴를 부르짖고 있다. 舊中國에 대한 철저한 파괴가 선행되지 않는 한 新中國과 新社會의 탄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혁의 의지는 파괴와 개혁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새로운 중국의 탄생을 열망하는 시인의 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그 성격은 확실히 反封建的인 것으로 五四의 시대 정신과 일치하고 있다.

 

(2) 개성의 해방

 

五四시기의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은 인성과 개성의 해방을 주장하였으며, 문인들은 인성의 자유로운 표현을 문학의 이념으로 삼았다. 魯迅은 “최초의 문학 혁명의 요구는 인성의 해방이다.”라고 했으며, 郭沫若은 “문학이란 적나라한 인성의 표현이며, 우리 인성의 신비롭고 찬란한 정수가 통해내는 광채이다.” “초기에 나는 개성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이는 애국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시대의 요구와 일치했으니, 바로 반봉건의 요구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五四시기에 郭沫若을 비롯해 많은 문인들은 반봉건의 일환으로 개성의 해방을 주장하였으며 개성의 자유로운 표현을 자신들의 작품 속에 실천하려 하였다. 이러한 개성 해방 정신은 五四運動과 이에 따른 人性에 대한 각성 그리고 민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五四시기의 반제국 반봉건사상과 긴밀하게 결합하고 있었다. ≪女神≫의 많은 시편에서 이러한 개성해방의 요구는 “自我”에 대한 표현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나는 한 마리 天狗이다!

나는 달을 삼켰다.

나는 해를 삼켰다

나는 모든 별들을 삼켰다

나는 온 우주를 삼켰다

내가 바로 나다;

나는 달빛이고,

나는 햇빛이며,

나는 모든 달빛이며,

나는 X 광선이며,

나는 온 우주의 에너지의 총량이다!

 

나는 나는 듯 달리고,

나는 미친 듯 울부짖고,

나는 활활 타오른다.

나는 열화와 같이 활활 타오른다.

나는 바다와 같이 미친 듯 울부짖는다!

나는 전기처럼 나는 듯 달린다!

 

나는 난다,

나는 난다,

나는 난다,

나는 나의 피부를 벗기고,

나는 나의 살을 먹고,

나는 나의 피를 빨고,

나는 내 심장과 간을 씹고,

나는 내 신경 위로 난다,

나는 내 등골 위로 난다,

나는 내 두뇌 위로 난다.

 

내가 바로 나다!

내 안의 나는 폭발하련다. <天狗>

<天狗> 29句 모두 “我”字로 시작하면서, 天狗의 형상을 빌어 시인 자신의 격분과 정열을 표출하고 있다. 詩에서 天狗는 해, 달, 별, 우주를 삼켜 버린 초우주적인 존재로, 이를 통해 등장한 “나” 역시 달빛이고 햇빛이고 별빛이며 X광선이며 에너지의 총량이 된다. 그러기에 “나”는 번개와 같이 빠르고, 바다처럼 울부짖고, 불처럼 타오르며 심지어 살갗과 피, 심장과 간을 씹다가 마침내 폭발하고 만다. 시속에 묘사된 “나”는 거대하고 정열적인 자신감에 충만한 형상이며, 五四시대가 요구하는 “나”의 모습이다. 이처럼 “나”를 극대화시키는 태도는 自我의 표현을 강조하는 郭沫若의 시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의 주요성분은 ‘자아표현’이다. 한 작가의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지 못할리 없다. 하이네의 시는 그의 일생의 진실된 기록이며 그의 눈물의 결정체이다.

 

詩作에 있어서 自我表現을 강조하는 郭沫若의 詩論은 個性을 구속하는 封建思想에 반대하는 대응책으로 제시되었으며, 인위적인 형식과 격율로 자유로운 詩情을 구속하는 전통 문학의 속박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우상숭배자이다!

나는 태양, 산, 바다를 숭배한다.

나는 물, 블, 화산, 장엄한 강을 숭배한다;

나는 태어남, 죽음, 광명, 흑암을 숭배한다;

나는 수에즈, 파나마, 만리장서, 피라미드를 숭배한다.

나는 창조 정신, 힘을 숭배하고,

피와 심장을 숭배한다;

나는 폭탄, 비애. 파괴를 숭배한다;

나는 우상파괴를 숭배하고, 나를 숭배한다!

난 또한 우상파괴자이다. <我是個偶像崇拜者>

 

시속의 “我”는 먼저 우상숭배자라고 선포하면서 자연계의 모든 위대한 자연물을 숭배하고 있다. 또한 이 “我”는 인류 역사의 모든 문화 유산들을 숭배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자신은 우상파괴자라고 힘차게 외침으로써 이전에 자신이 숭배하였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我”의 형상은 전통적이고 봉건적 기존의 구속과 속박을 거부하는 반봉건적 모습이며 파괴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당시 郭沫若은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썼으며 모든 것을 전복하려 했고 태우려 했으며 심지어 나 자신까지 불태우려 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女神≫의 自我의 형상은 이처럼 철저하게 舊式의 모든 속박과 전통의 구속을 벗어버리고 파괴하려는 개혁자의 모습이다.

 

3. 愛情과 煩悶

 

≪女神≫에서 애정과 번민을 노래한 詩篇은 주로 1919년 봄에서 가을에 이르는 기간에 창작되었다. 그러나 그 배경을 고찰해 보면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郭沫若이 일본 유학을 시작할 시기(1914-1921)는 바로 제1차 세계 대전기간으로(1914-1918), 세계대전에 편승한 일본의 제국주의는 중국에 대해 정치, 경제, 군사적 압력을 가하며 침략을 가속화시키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富國强兵과 救國救民의 理想을 품고 일본 유학을 시작하였던 郭沫若은 일본 여인 安娜와 사랑에 빠지면서, 반일감정으로 팽배하였던 재일 중국 유학생들로부터 “매국노”라는 멸시를 받으며 소외 당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녀와의 사랑은 그에게 정신적 위로와 기쁨을 주기도 하였다. ≪女神≫에는 그녀와의 사랑을 노래한 詩篇이 적지 않은데, 기존의 연구자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비록 애정을 노래한 시편들이 문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기존의 연구가 주로 행해진 중국 측의 연구 시각이 이데올르기나 정치적 시각에 편향되어 연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연히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추측된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선행 연구의 자세에서 탈피하여 인간적 면모와 순수한 감정을 담고 있는 이들 시편을 연구의 범위에 포함시켜 논의하기로 하겠다.

아!

진정한 해탈을 얻으려면,

역시 죽음 뿐!

 

죽음!

나 언제 너를 만날는지?

그대 나의 연인이라면,

나 그대의 젊은 연인이니.

내 마음은 그대를 그리며,

내 마음은 그대를 두려워 하네.

내 사랑하는 죽음!

나 진정 언제 그대를 만날 수 있는지? <死>

<死>는 1920년 1월13일 ≪學燈≫에 발표되었다. 죽음을 노골적으로 찬미하며 죽음으로의 해탈을 노래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의 의식이 극도의 비관과 절망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음을 연인으로 형용하면서 그립고도 두려운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염세적 분위기가 농후하다.

실제로 郭沫若은 당시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웠음을 고백한 적이 있는데, “때로는 중이 되려 하였다. 매일 단지 莊子와 王陽明과 ≪新舊約全書≫를 규칙적으로 읽었고, 하루 종일 靜坐에 몰두하였다.”라고 할 만큼 한계상황에 이르렀었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였고 이를 통해 현실적 고뇌와 고통을 탈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郭沫若은 일본에 유학하면서 처음에는 九洲大學 醫科에 입학하여 의학도의 길을 걸었으나, 도중에 文學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 이유는 17세 때 앓은 장티푸스의 후유증으로 인해 한쪽 귀의 청각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신체적 결함은 醫學으로 조국에 기여하겠다는 그의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으며, 다시 한번 그를 절망과 비관에 빠지게 하였다.

 

Hygeia 여!

그대 왜 나를 버렸나요?

만일 그대의 장밋빛 얼굴이

다시 내게 입맞춤 한다면,

나 이제 죽어도 영혼이 평안하리라.

Hygeia 여!

그대 왜 나를 버렸나요? <司健康的女神>

고대 희랍신화에서 건강을 다스리는 神인 “Hygeia”을 향해 청각 상실이라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한탄하며 상심해 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그의 정신적 압박과 고통이 극심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郭沫若은 ≪女神≫의 대표적인 애정시로 <新月與白雲> <別離>를 들었는데, 본 고에서는 <新月與白雲>을 고찰하기로 하겠다.

 

달이여! 넌 도금한 낫 같구나.

넌 바닷가의 소나무를 베었고,

아, 나 역시 너에게 베어졌다!

 

흰 구름아! 넌 갈증을 푸는 얼음인지?

어떻게 해야 너를 삼켜,

불처럼 타는 이 가슴을 식힐 수 있는지? <新月與白雲>

 

시속의 “新月”이란 음력 초3-4일경에 뜨는 초승달로, 시인은 도금한 낫에 비유하였다. 바닷가 소나무 가지에 걸린 초승달과 달빛에 취한 자신의 형상을 낫이 소나무를 베었고 자신도 베어 버렸다고 형용하였다. 일반적으로 태양이 남성을 상징한다면 달은 여성을 상징한다. 달빛에 흠뻑 취한 시인의 모습은 바로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을 상징하며, 구름을 얼음으로 연상하며 타는 듯 한 자신의 가슴을 식히려는 것은 역시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女神≫의 애정과 번민을 노래한 시편들은 대부분 郭沫若의 초기시로 유학기간에 창작한 작품들이다. 그가 일본에 유학했던 때는 중국이 국내외적으로 더욱 어려움에 빠져있던 시기로 조국의 미래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던 郭沫若에게 정신적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더욱이 일본 여인과의 사랑은 그를 矛盾에 빠지게 하였고 동시에 기쁨을 안겨 주었다. 또한 청각 상실이라는 신체적 제약은 그가 선택한 의학도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로 등장하였고, 그를 극심한 상실과 비관에 빠지게 하였다. 이러한 내면적 혼란과 고통은 ≪女神≫ 속에서 애정의 환희를 노래하는 동시에 번민과 방황을 드러내는 詩篇으로 탄생하였고, 이를 계기로 郭沫若은 마침내 시인으로 문단에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女神≫의 애정과 번민을 노래한 시편은 다소 문학적 성숙도가 떨어지기는 하나, ≪女神≫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4. 汎神의 세계

 

汎神論이란 자연의 모든 것을 神으로 인식하면서 신과 자연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는 철학적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범신론은 종교가 품고 있는 신비적 경향을 이론화하려고 할 때 그 형태가 나타나는데, 첫째 자연이나 세계를 보편적인 神으로 여기는 그리이스 사상, 불교와 같은 형태, 둘째 모든 것에 통하는 것이 神이라고 여기면서 자아와 신의 일치를 주장하는 베에다(Veda)나 브라흐만(Brāhman)의 종교와 같은 형태가 있다.

郭沫若의 ≪女神≫에 나타난 범신의 세계는 앞서 말한 두 가지 형태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하나의 철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기 곤란한 복합적 성격을 나타낸다. 그는 범신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모든 자연은 단지 神의 표현이며, 나 역시 단지 신의 표현일 뿐이다.

위의 해석은 신이 바로 자연이고 자연이 즉 신이라는 입장으로, 郭沫若은 자연을 신이 창조한 피조물로 인식하지 않고 신이 內在해 있는 신의 부분적인 樣態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범신론에 대한 입장은 ≪女神≫에서 자연에 대한 열렬한 숭배와 찬양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자연과 자아의 합일을 통한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고 있다.

 

매화! 매화!

나 너를 찬미한다! 나 너를 찬미한다!

넌 네 자아에서

맑고 은은한 향기 토해내고,

어여쁜 꽃을 피우는구나.

꽃이여! 사랑이여!

우주의 정수여!

생명의 샘물이여!

만일 봄이 없다면,

삶에 사랑이 없다면,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

매화여! 매화여!

나 너를 찬미한다!

난 나 자신을 찬미한다!

난 내 자신을 드러내는 온 우주의 본체를 찬미한다!

본체를 찬미한다!

아직도 무슨 네가 있고?

아직도 무슨 내가 있고?

아직도 무슨 古人이 있고?

아직도 무슨 낯선 땅의 명소가 있겠는가?

모든 우상은 내 앞에서 사라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나 목청껏 파괴를 노래하리! <梅花樹下醉歌>

1920년 3월 22일 일본의 太宰府를 유람하며 지은 것으로, 범신적 색채가 농후한 작품이다. 여기서 매화는 우주의 精髓, 생명의 泉水, 전우주의 本體로서, 찬미의 대상이다. 이는 神 〓 宇宙의 本體, 自然 〓 神이라는 범신적 태도를 명확히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시인은 매화에 대한 찬미를 통해 자연과 결합함으로써 신과의 일치에 도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신과 합일되었을 때, 무슨 네가 있고 내가 있으며 古人이 있겠으며 우상이 있겠는가! 모든 만물은 신의 표현에 불과할 뿐 우상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시인은 우상의 소멸을 열렬히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범신론의 관점은 당시의 반봉건사상과도 부합하는 것으로, 그는 이러한 범신론적 입장에서 구시대적인 우상숭배를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봉건적인 인습, 제도, 전통까지도 부정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郭沫若은 범신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 하였다.

 

자아가 즉 신이고, 모든 자연은 전부 자아의 표현이다.

 

자아와 도의 본체는 하나이다.

이는 고대 인도 철학 중 베에다 혹은 우파니샤드 사상의 “我卽梵, 梵卽我”와 동일한 관점으로, 자아를 우주의 본체 바로 神으로 인식하는 철학적 태도이다. 이러한 인식은 ≪女神≫ 속에 자아에 대한 찬양으로 표현되었으며, 자아를 무한히 확대시킴으로써 거대한 형상과 역동적인 자아로 형상화 시켰다.

 

屈原

 

나는 조물주의 정신을 본받아, 자유롭게 창조하고,

자유롭게 내 자신을 표현한다.

나는 장엄한 산악과 웅대한 바다를 창조하고,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고,

바람과 구름과 천둥과 비 속을 질주한다.

내가 그것을 모으면 나 하나에 그치지만

푸어 놓으면 온 우주에 흘러 넘친다. <湘累>

 

<湘累> 중 屈原의 형상을 통해 표출된 “我”는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포용하는 나로서, “我卽本體” “我卽神”의 관점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 이처럼 神의 경지로 上昇, 擴大된 自我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고 무한한 능력을 지닌 형상이다.

 

나는 한 마리 天狗이다!

나는 달을 삼켰다.

나는 해를 삼켰다

나는 모든 별들을 삼켰다

나는 온 우주를 삼켰다

내가 바로 나다; <天狗>

<天狗>에 등장한 我는 해와 달, 별 등을 삼키고 우주마저 삼켜버리고 우주의 본체, 우주의 중심이 된 형상이다. 그러므로 이 我는 나를 포함하고 너를 포함하고 그를 포함하며 모든 만물을 포함한다. 우주의 만물은 모두 자아의 표현이며 우주 자체가 바로 我이다.

이와 같이 범신론은 자아를 무한히 확대하고 자아의 역량을 무한히 확장시킴으로써 위대한 자아와 우주의 본체인 자아로 변모시킨다. 이는 강렬한 자아 표현으로서, 五四의 시대 정신의 개성 해방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다.

 

Ⅳ. 結論

 

≪女神≫은 郭沫若의 첫 번째 시집으로, 그의 일본 유학기간에 창작되어 1921년 간행되었다. 본 고는 ≪女神≫을 고찰함에 종적인 연관성과 횡적인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그 형성과정과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먼저 ≪女神≫은 郭沫若의 창작의식과 외적인 영향인 五四運動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며 형성되었으며, 詩作 覺醒期와 詩作 爆發期, 詩作 消失期의 3단계 과정을 경유하여 탄생되었다. 타고르와 하이네의 영향을 받아 시에 대한 각성을 보이며 作詩하기 시작한 제1단계, 五四運動과 시대적 조류에 힘입어 휘트먼과 ≪學燈≫의 편집인 宗白華의 도움을 받으며 왕성한 詩作 意慾을 폭발시킨 제2단계, 외적인 영향으로 시작 의욕을 다소 상실하였지만 여전히 詩作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은 채 劇詩를 창작한 제3단계와 같은 세종류의 단계를 통해 완성되었다. 이 각 단계의 작품들은 각각 다른 格調와 詩風으로 ≪女神≫의 예술성과 문학성을 구성하고 있으며, 시인 郭沫若의 의식적 변화는 물론 시대 정신까지 반영하고 있었다.

주제의식에 있어서, ≪女神≫은 五四運動과 十月革命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암울한 현실의 억압과 질고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애국심을 바탕으로 찬란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으며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그는 비록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조차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였으나, 중국의 出路로 막연하게 나마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을 표출하고 있었다. 아울러 민중애를 드러낸 시편은 郭沫若의 민중에 대한 재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역시 그의 뜨거운 애국심에서 탄생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 인식을 결여된 것이기에 민중에 대한 관심과 연민의 수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1920년대 郭沫若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은 五四運動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새로운 중국에 대한 이상을 품게 되었고, 반제국 반봉건을 주장하며 구중국의 파괴와 신중국의 창조, 개성의 해방 등을 강조하였다. ≪女神≫에 표출된 개혁의 의지와 개성의 해방은 바로 이러한 五四運動의 시대 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개혁의 의지는 파괴와 개혁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으며, 새로운 중국의 탄생을 열망하는 시인의 열망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인성의 각성과 민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사회적 배경 아래 제기된 개성 해방의 요구는 시속에 자아의 무한한 확대와 자유로운 표현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女神≫ 중 애정과 번민을 표출한 시편들은 그의 시작 초기에 창작 된 것으로, 일본이라는 異國에서 현실과 이상의 갈등으로 고민, 방황해야 했던 그의 내면을 담고 있었으며, 격변의 시대를 보내야 했던 지식인의 고뇌와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女神≫에 나타난 범신의 세계는 먼저 자연찬미와 자연숭배를 통해 자연과의 결합을 통한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고 있었으며, 자아의 확대를 통한 개성의 자유로운 표현과 발전을 통해 자아가 바로 신이라는 관점을 나타내고 있었다. 더욱이 위대한 자아로 확장된 형상은 五四運動의 개성 해방 정신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범신론은 郭沫若의 초기 사상과 문학을 대표하는 특징으로, 그의 시 세계에 독특한 제재가 되었음은 물론 예술적 특색으로 형성되었고, 반봉건 사상과도 긴밀히 결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郭沫若은 문학생애를 회고하며 ≪女神≫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女神≫이후로 이미 시인이 아니었다. ....기교로 말하자면 ≪女神≫ 이후의 작품이 더 나을지 모르나, ≪女神≫시대의 그렇듯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내부에서 분출되는 감정은 없었다.

 

위의 회고에 비추어 볼 때, “내부에서 분출되는 감정”이란 바로 郭沫若 자신의 내면에 충만한 詩作에 대한 열정으로서, 그는 이러한 자신의 시작 욕구를 중국 사회 전반에 팽배하였던 반제국 반봉건 사상과 결합하여 ≪女神≫의 시편들로 탄생시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女神≫은 중국 신문학에 있어서 내용과 예술적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 평가받기에 충분하며 더불어 郭沫若의 문학생애에 있어서 비교적 순수문학적 자세를 견지했던 초기 문학의 낭만적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 參考文獻 ■

 

秋吉久紀夫, <郭沫若詩集≪女神≫の成立過程>, ≪目加田誠博士還曆紀念中國學論叢≫ (目加田誠博士還曆紀念論文集刊行會 編, 東京; 大安出版社 1964년)

谷輔林, ≪郭沫若前期思想及創作≫, (山東人民出版社 1983년)

陳明華 編著, ≪郭沫若≫ (黑龍江人民出版社 1982년)

秦川 編輯, ≪郭沫若專集≫ (四川人民出版社 1984년)

高國平 編, ≪郭沫若論創作≫(上海文藝出版社 1983년)

郭沫若, ≪創造十年≫ (匯文閣書店 1972년)

趙家壁 主編, ≪中國新文學大系≫ 第2卷 (上海良友圖書印刷公司 1936년)

郭沫若著作編輯出版委員會編, ≪郭沫若全集≫ 歷史篇, (人民文學出版社 1982년)

≪沫若文集≫13卷 (人民文學出版社 1959년)

丁易 著, ≪中國現代文學史略≫ (文化資料供應社 1978년)

≪文學評論叢刊≫ 17집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83년)

≪郭沫若硏究論集≫ (四川人民出版社 1980년)

김익달 편, ≪철학대사전≫ (학원사 1963년)

郭沫若, <我的作詩的經過>

郭沫若, <答靑年問>

郭沫若, <郭沫若選集 自序>

郭沫若, <我們的文化>,

郭沫若, <我們的文學新運動>

郭沫若, <泰戈爾來華之我見>, ≪創造週報≫ 23호(1923년 19월 31일)

郭沫若, <少年維特之煩惱>

郭沫若, <惠施的性格與思想>

郭沫若, <序我的時>

吳歡章, <關于≪女神≫的浪漫主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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