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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노래에 병행하는 노래란 뜻의 그리스어 파로데이아에서 유래한 패러디는 단순히 다른 작품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폭로하는 것이니, 대상이 되는 작품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퓌비 드 샤반(Pierre-Cecile Puvis de Chavannes, 1824~1898)은 프랑스 출신 화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물랭 루주의 화가 로트레크(Lautrec, 1864~1901)보다 40년이나 앞서 태어났고, 화가인 고갱(Gauguin), 쇠라(Seurat)뿐 아니라 《악의 꽃》으로 유명한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 등으로부터도 존경을 받던 인물이다. 샤반은 그 무렵의 흐름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지만, 엄청난 규모의 벽화들로 이름을 얻고 있던 화가였다. 지금은 우리에게 기억되는 이름이 아니지만 그 무렵 프랑스의 주요 기관 건물 벽화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였다.
그 반면에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 로트레크는 타고난 장애인이었다. 사촌간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그의 장애 원인은 오랜 세월 지속된 근친결혼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천재적 예술혼과 장애를 함께 전해 주는 근친혼이라면 썩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여하튼 그는 불구의 다리와 함께 아주 작은 키를 평생(서른일곱 살밖에 살지 못했으니 그렇게 긴 세월은 아니지만) 안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은 매우 뛰어나 어린 나이부터 데생에 소질을 보였고, 스무 살 무렵에는 이미 화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천재인데다가 고통스러운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기존의 세계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아래의 그림은 로트레크가 펼쳐 나갈 예술 세계의 지향점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는데, 바로 패러디화다.
패러디(parody)란 무엇일까? 다른 노래에 병행하는 노래란 뜻의 그리스어 파로데이아(parodeia)에서 유래한 패러디는 단순히 다른 작품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안고 있는 문제점(그것이 기법상의 것이든 철학적인 것이든)을 폭로하는 것이니, 대상이 되는 작품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그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적당히 모방하거나 왜곡시켜 ‘패러디했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얼마나 추잡한 짓인지 알 수 있다.
샤반의〈신성한 숲〉
로트레크의 〈퓌비 드 샤반의 ‘신성한 숲’에 대한 패러디〉
어쨌든 그 무렵 프랑스의 주요 화가로 활동 중이던 샤반은 환갑을 맞이한 1884년 살롱전에 앞의 작품 〈신성한 숲〉을 출품하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의 절름발이 천재이자 갓 스무 살이 된 로트레크는 이러한 현상이 영 못마땅했다. 그는 즉시 아픈 발을 이끌고 아틀리에로 들어가 이틀 만에 〈퓌비 드 샤반의 ‘신성한 숲’에 대한 패러디(Parodie du ‘Bois sacré’de Puvis de Chavannes)〉란 직설적 제목의 그림 한 편을 완성하였으니 바로 위의 그림이다.
원래 샤반의 그림이 신성한 숲을 노니는 여신들로 채워져 있는 반면 로트레크의 숲에는 여신들과 더불어 현대의 온갖 사람들이 노닐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압권은 자그마한 키에 불편해 보이는 다리로 뒤돌아서 있는 인물이니 누구이겠는가? 이렇게 해서 인간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썩 뒤떨어지지 않은 샤반은 스무 살 애송이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샤반의 이름이 후세까지 전해진다면 그의 덕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썩 기분 나쁜 일만은 아닐 터.
패러디는 대상이 되는 작품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패러디를 한 작품은 패러디 대상이 된 작품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의도적 모방
요즘 텔레비전 시사 교양 프로그램은 유행어 일색이다. 유행어는 주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나 사회자에 의해 생산된다. 예를 들어 이영돈 PD의<먹거리, X파일>에서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라는 유행어가 있다. 이를 신동엽이
패러디(parody)란 기존 원본에서 따와서 재생산해 사용하는 콘셉트다. ‘잘 알려진’ 원작을 비틀어 풍자적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문학의 한 표현형식이다. 이는 ‘대응 노래(counter-song)’, ‘파생적인 노래’라는 뜻의 고대 희랍어 ‘parodia’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접두어‘para’에는 ‘대응하는(counter)’, ‘반(反)하는(against)’, ‘이외에(besides)’의 뜻이 있다.
패러디는 단순한 모방 차원이 아니고, 패러디의 대상이 된 작품과 패러디를 한 작품이 모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표절(剽竊)과 구분된다. 오늘날 영화, 연극, 드라마 등의 내용이나 이야기의 전반적 흐름, 등장인물의 말투 등을 모방해 표현하거나, 전 시대나 현재 시대의 권력적 허위의식이나 현실의 억압 요소 등을 조롱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도 하다.
원본 분석이 먼저
패러디를 제대로 하려면, 작가와 독자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한다. 작가가 대상 작품의 주제와 기법, 배경 등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패러디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하기 때문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KBS 1TV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의 제왕’은 출생의 비밀을 기본으로 하며 얽힌 가족 관계와 욕설 등이 난무하는 드라마를 풍자하고 눈에 띄는 간접광고물 노출도 부각시켰다. 이는 요즘 시청률만을 목적으로 하며 막장으로 달리는 드라마들을 풍자한 것이다. 또한 ‘뿜엔터테인먼트’에서는 개그우먼 김지민이 드라마의 장면 하나하나에 꼬투리를 잡는 까다로운 배우로 나오고, 개그우먼 신보라는 스태프를 3명씩 데리고 다니며 마치 왕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가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허세로 가득한 일부 연예인들을 풍자하는 것이다.
패러디는 사회문화적 상황과 연결하여 표현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권위적인 것에 대한 냉소와 도전적 시각이 기본 창조 본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패러디는 원본을 비판으로 재구성한 결과이며 모든 위장된 진실의 허구를 깨뜨리고자 하는 의식에 의해 생산된 담론(談論)적 콘셉트라고 할 수 있겠다.
패러디 하면, 아마도 광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법일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원작에 대한 친숙성으로, 모방을 통해 광고에 전이(轉移)시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작에서 느끼는 프리미엄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기존의 이미지에 전혀 새로운 기호와 상징을 첨가하여 반전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을 패러디한 광고로 다이아몬드 원석 업체인 드비어스(De Beers)의 광고가 있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모델의 머리모양이며 머리를 기울인 것이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비너스의 탄생>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르네상스 미술의 대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나오는 모습을 패러디한 것이다. 원작과 비교해 봤을 때, 원작에서 느껴지는 우아함과 당당함은 없지만 광고 효과는 크다고 할 수 있다.
“패러디의 강점은 원본을 떠난 또 다른 이미지를 통해 더욱 쉬운 경로인 우리 삶과 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보여 준다는 점이다. 원작의 친근한 이미지를 이용하여 좀 더 전달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패러디는 단순히 다른 작품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폭로하는 것이므로, 대상이 되는 작품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중매체와 일상생활을 통해, 다른 예술 작품 속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패러디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친숙함으로 또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패러디는 미래에도 새로운 의미를 재창조한 형태로 우리와 계속 커뮤니케이션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디지털 복제를 통해 원본의 형식을 차용해 뒤틀어 비꼬기는 아주 쉽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디지털 콘텐츠를 쉽게 선택하고 다르게 배열해 특정 대상을 조롱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 생산적인 패러디는 일상의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통찰을 일깨운다. 그러나 재미를 추구하는 극단적인 패러디인 엽기는 비판성을 상실한다.
1. 디지털 시대의 패러디
디지털 복제와 패러디 사이에는 분명히 친화력이 있다. 디지털 복제는 원본을 쉽게 조작하고 뒤틀고 바꿀 수 있도록 만든다. 그래서 네트 자체가 현실을 패러디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디지털 복제의 세계에서 원본의 형식을 차용해 뒤틀어 비꼬기는 아주 손쉬운 일이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는 패러디가 넘쳐난다.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딴지일보'가 주장하듯이 '히딱 디비기(다르기 보기)'와 '까발리기(까발려주마)'는 패러디의 중요한 요소이자 효과다. '히딱 디비지' 못하거나 '까발리지' 못하면 패러디는 실패한다. 닥치는 대로 까발리고 히딱 디비려면 무엇보다도 소재가 좋아야 하고 대상이 만만해야 한다. 소재가 은밀할수록, 대상이 공적일수록 패러디의 효과는 커진다. 은밀한 소재가 가차 없이 까발려질 때 사람들은 혼자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배설의 시원함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공적인 대상이 히딱 디비질 때 배설보다 더 시원한 통쾌감을 맛볼 수 있다. 소재가 은밀하면 은밀할수록, 대상으로 삼은 권력이 세면 셀수록 패러디의 영향력과 효과도 그만큼 폭발적이 된다.
가려진 실체를 보려면 가면을 '히딱 디비'거나 '까서 밝혀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까발리기'와 '디비기'의 도구가 바로 패러디다. 그런데 까발리는 작업의 효과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패러디의 비판 작업은 지속적인 반성과 교육을 통해 생산 작업으로 이어져야 생명력이 있다. 패러디는 불임의 문화를 욕하고 한심한 작태를 비웃고 조롱할 수 있지만 생산의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똑같이 불임이라는 한계에 이르게 된다.패러디가 웃음거리의 제공 차원을 쉽게 넘어서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판적인 패러디는 은밀한 소재와 공적인 대상의 꽁무니를 좇지 아니한다. 생산적인 패러디는 일상의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통찰을 일깨운다.일상의 핵심을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거두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깨임과 열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패러디의 역할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jamin)이 말한 '범속한 트임(profane Erleuchtung)'은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평범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패러디의 진정한 의미는 당대에 대한 비판을 통해 시대의 현실과 자기의 처지를 새롭게 각성하는 데 있다. 그래서 자기 처지에 대한 각성과 맞닿아 있지 않는 패러디는 말장난이나 정신의 발작에 지나지 않는다. 지배층을 조롱하고 권력 집단을 '히딱 디빌'지라도 스스로에게 각성의 실마리를 제시해 주지 못하는 패러디는 죽은 패러디다. 패러디가 엄숙주의를 고수할 필요는 없지만 시종일관 가벼움만을 추구하는 자세 또한 패러디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패러디는 대상에 대한 조롱인 동시에 스스로 아파지는 그런 뼈아픈 통찰을 담고 있어야 한다. 조롱과 야유를 통해 얻은 순간적 쾌감이 새로운 사회 구성의 창조적 힘으로 되살아나지 못하면 패러디는 또 하나의 허위의식으로 전락하게 된다. 패러디를 위한 패러디는 엽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2. 네트와 엽기
패러디가 극단화되면 엽기로 이어진다. 엽기 또한 패러디처럼 네트 문화가 변형과 따붙이기를 촉진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네트에서 유행하는 엽기물 중에는 '발상의 전환'이나 '발랄한 일탈'을 통해 '주류를 전복'하면서 '왜곡된 상식을 회복'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도 있다. 여기까지는 비판적 패러디의 연장으로서 각종 엽기 현상이 갖는 긍정적인 차원이다. 그러나 패러디는 마약처럼 중독이 강하다. 마약에 중독되면 점차 약발이 더 센 것을 찾듯이 패러디에 길들면 더 강한 패러디를 찾아 나서게 된다. 엽기는 패러디를 형식적으로 더욱 극단화한 형태다. 엽기는 비판성을 상실한 패러디가 재미를 좇아 극단화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소재의 선택이 넓고 감각적인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우리보다 더 열려 있는 일본 문화의 유입도 이러한 엽기 사조에 일조했다. 제도권 매체는 자기검열과 사회적 반작용에 민감하다. 그래서 소재 선정에 조심스럽고 사회적 평균인의 가치관을 거스르는 것들을 쉽게 다루지 못하는 데 반해 인터넷은 소재에서 누리는 자유와 관용도의 폭이 훨씬 넓다. 그리고 상호작용의 열린 매체이기 때문에 변형과 첨가와 왜곡이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혼탁한 사회 정치적인 상황과 문화 개방, 그리고 인터넷의 매체 특성들이 어울리면서 엽기 문화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엽기 문화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따라서 정상적인 꿈과 희망을 키우기 힘든 사회에 대한 혐오감의 뒤틀린 표현이자 이에 대한 극단적 조롱이기도 하다.
엽기물은 구토물이나 배설물 등 일상에서 더럽고 불결하다고 못 본 체하는 현상을 의도적으로 끄집어내거나 금기로 되어 있는 성행위나 살인 등 극단적인 행위를 주요 소재로 활용한다. 사회적 통념과 금기의 벽을 과감하게 뛰어넘는다는 시도 자체는 어떤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사회의식을 속에 담은 엽기는 비판적 패러디와 마찬가지로 고정관념과 편견을 무너뜨리고, 낡은 머리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극대화하면 부정의 힘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그러나 패러디의 힘이 절반은 주체의 비판정신에서, 나머지 반은 대상 자체에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엽기 또한 소재주의의 위험을 안고 있다. 기이함과 괴상한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엽기 매너리즘으로 연결될 경우 그것은 비판정신과 정반대인 허무주의의 틀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더구나 그것이 상업화의 추세와 연결된다면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질 것이다.
3. 패러디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보도 사진과 자신의 시의 결합물을 결합해 ‘낯설게 하기 효과’를 보여 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진실은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기계 복제 시대의 대표 산물인 사진의 현실 은폐 기능을 다음과 같이 잡아냈다. "르포 사진이 눈부시게 발전했는데도, 이 사진술은 진실을 밝히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다시 말해 사진은 부르주아의 수중에서 진실에 역행하는 무서운 무기가 되고 있다. 매일 인쇄기가 뱉어내는 엄청난 양의 사진 자료들은 진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실의 은폐에만 기여해 왔다. 사진기 역시 타이프라이터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브레히트는 『전쟁교본(Kriegfibel)』에서 사진과 시를 결합해 현실의 진실을 보여 주었다. 브레히트는 보도 사진과 자신의 시의 결합물을 '포토에피그람(fotoepigramm)'이라 불렀다. 그는 이를 통해 '에피그람'과 '사진'을 형식적으로 절묘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브레히트는 사진이 갖는 자명성을 부수고, 그 속에 숨은 구체적인 진실을 다시 끄집어내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브레히트는 시와 사진을 결합해 사진의 외형적 자명성을 의심토록 유도했다. 패러디의 '히딱 디집기'는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효과(Verfremdungseffekt)'와 이런 점에서 닮아 있다. 브레히트는 외형적 가짜 현실의 배후에 숨어 있는 진짜 현실로 인도하는 방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브레히트의 '포토에피그람'은 '기계 복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작가가 당대의 새로운 매체를 문학에 수용해 진실 전달에 합당한 생산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던 선진적인 시도였다. 브레히트는 각 시대에는 그에 맞는 예술 표현 형식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브레히트의 정신은 네트의 패러디를 비롯한 다양한 대안 문화 실험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가 말하는 '범속한 트임'은 대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데서 얻어진다. 이성에 기반하지 않는 패러디는 감성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데 만족하는 수준에 그친다. 욕하고 비하하는 대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패러디의 프리미엄은 크다. 패러디가 거둔 성공의 반은 패러디가 된 대상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패러디를 구사하는 자신의 힘이 약해도 대상의 강퍅함이 이미 웃음의 소지를 지니고 있다. 이런 점을 망각하고 패러디로 성취한 힘이 자신의 내공에 따른 것이라고 자만하면 얄팍한 상업적 패러디의 천박함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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