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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인 - 박팔양
2015년 04월 04일 23시 15분  조회:3929  추천:0  작성자: 죽림

너무도 슬픈 사실

-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 박팔양

 

 

 

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비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친구께서도 이미 그 꽃을 보셨으리다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피기도 전에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봄의 선구자 연분홍의 진달래꽃을 보셨으리다.

 

진달래꽃은 봄의 선구자외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그 엷은 꽃잎은

선구자의 불행한 수난이외다

 

어찌하야 이 나라에 태어난 이 가난한 시인이

이같이도 그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오라는 봄의 모양을 그 머리속에 그리면서

찬 바람 오고 가는 산허리에서 오히려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 고 ―

(‘학생’, 1930.4)

 

 

 

■ 이해와 감상

 

우리의 시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시의 제재로 선택되는 것 중의 하나가 꽃이며, 그 중 진달래꽃은 우리 주위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이어서 그 동안 많은 시인들에 의해 주로 사랑과 관련된 주제를 취급하는 제재로서 특히 애용되었다. 그 비근한 예로 우리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들 수 있거니와, 위의 박팔양의 작품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달래꽃’을 그 제재로 취급하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

이 시의 진달래꽃은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이다. 다른 꽃들처럼 피었다가 지면 열매를 맺는 결실도 없이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일홍’과 같은 화려함이나 ‘국화’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도 없어서 노래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꽃이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어서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이다.

그러나 선구자는 불행하다. 자신의 희생이 가져오는 화려한 결실을 직접 맛보지도 못하며 스러진다. 시적 화자는 따라서 그 동안 희생된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에 진달래꽃을 부여잡고 운다. 시제에서 보듯 시적 화자는 ‘진달래꽃’을 ‘봄의 선구자’로서 인식하지만, 그것은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서는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희생자로서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러나 정작 진달래꽃 자신은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

결국 시인은 ‘진달래꽃’에 의탁하여 그냥 ‘오래오래’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적 삶을 비판하고, 순간에 스러지더라도 뚜렷이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선구자로서의 삶은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박팔양이 선택한 삶의 방향인 것이다.

 

 

 

■ 박팔양 시인(1905~?)

 

1905년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했다. 배재고보 졸업 후 경성법학전문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신(神)의 주(酒)>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1926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여, 초창기 계급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예술주의적 동호인 그룹 구인회에 가담하는 등 다양한 문학적 편력을 전개했다. 주요작품으로는<저자에 가는 날><데모><승리의 봄>, 시집<여수시초><박팔양시집>, 소설<오후 여섯 시>등이 있다.

정지용 시인등과 활동하며 우리나라 시문학을 이끌었던 시인이다. 사회현실에 관심을 보인 경향시와 감상적인 서정시를 썼다. 호는 여수(麗水 : 如水). 이다.

1916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다니면서 김기진·나도향·박영희 등과 사귀었고, 1920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진학해서는 김화산·박제찬·정지용 등과 사귀면서 동인지〈요람〉을 펴냈다. 1924년〈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근무했고, 1926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했다. 1928년 〈중외일보〉·〈조선중앙일보〉 사회부장을 지냈으며, 1934년 '구인회'에 참여했으나 많은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이어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 사회부장 및 학예부장을 지내고 그곳에서 8·15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후 신의주에 정착하여 1946년 10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했고 평안북도 당위원회 기관지 〈바른말〉신문사 편집국장,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을 지냈다. 1946~49년 당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정로 正路〉의 편집국장 및 그 후신인 〈노동신문〉의 편집국장·부주필 등을 지냈다. 1949년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신문학과(新文學科) 강좌장, 1950년 6·25전쟁 초 종군작가로 활약한 공으로 국기훈장 3급을 받았으며, 1951년 대학으로 복귀했다. 1956년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을 지냈다. 195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58년 조소친선협회 중앙위원을 역임했으며 한때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있었다. 1966년 한동안 사상 검토 대상으로 곤욕을 치러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송가 서사시 〈눈보라 만리〉(1961) 등의 창작 기여를 인정받아 복권되었다.

19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신(神)의 주(酒)〉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뒤, 해방 때까지 발표한 시들을 그 성격에 따라 3가지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민족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쓴 경향시로서, 〈여명 이전〉(개벽, 1925. 7)·〈밤차〉(조선지광, 1927. 9)가 대표적이다. 둘째, 자유로운 정신과 새로운 수법을 바탕으로 쓴 모더니즘 계열의 시로서, 1928년 〈조선지광〉 8월호에 발표한 〈도시정취〉·〈태양을 등진 거리에서〉 등이 이에 속한다. 셋째, 자연과 인생을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읊은 시로서,〈승리의 봄〉(문학, 1939. 1)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감상적인 시에 대해서 임화·신고송·권환 등은 '소부르주아적이며 회고적 낭만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밖에 노동자의 참담한 생활을 그린 콩트 〈오후 여섯시〉(조선지광, 1928. 9) 등이 있으며, 평론에도 관심을 가져 한국 시문학사를 주체적·근대적으로 바라본 〈조선신시운동개관〉(조선일보, 1928. 2. 28~3. 1)을 발표했다. 서정시 〈노래는 강산에 울려 퍼지네〉(1956)·〈밀림의 5·1절〉(1959), 장편서사시 〈눈보라 만리〉(1961)·〈인민을 노래한다〉(1962) 등을 썼으며, 시집으로 〈여수시초〉(1940)·〈박팔양시선집〉(1949)·〈박팔양선집〉(195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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