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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더 먼 곳 그의 집으로 나는 가리 세월의 가룻발도 내릴 만큼은 내려 투명한 적설이 되었으리 그는 의자에 앉아 있고 어린 아이가 하듯이 내 몸을 그의 무릎 위에 얹으리 한 생의 무게를 젯상에 올리는 적멸한 예식에 온 세상 잠잠하리 그 사이 흐르는 눈물은 눈물의 끝까지 흘리리라 이윽고 작별하여 나의 지정석으로 되돌아올 때 가장 따뜻한 음악 하나가 동행하여 오고 이후 언제나 언제나 울리리라
누구라도 그를 부르려면 속삭임으론 안 된다 자장가처럼 노래해도 안 된다 사자처럼 포효하며 평화여, 아니 더 크게 평화여, 천둥 울려야 한다 그 인격과 품위 그 아름다움 그가 만인의 연인인 점에서도 새 천년 이쪽저쪽의 최고인물인 평화여 평화여 부디 오십시오, 라고 사춘기의 순정으로 피멍 무릅쓰고 혼신으로 연호하며 그 이름 불러야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순백의 새를 보내 주었다 첫 날의 새는 편지처럼 정감 어려 노래했고 다음 날의 새는 날개에 묻혀 온 햇빛가루로 주변을 반짝이게 하더니 세 번째 새는 섧게 울어 하늘 그리워함을 일깨웠다 광활한 하늘 벌판으로 돌아가거라 돌아가거라고 새들을 날려 보내니 저들 중천에서 선회하다 사라지고 가슴 안 추억의 새들까지 희고 빛부시게 푸드득이노니 세월 너머 오래오래 이러하리니
그는 「사랑」을 몰랐다 좋은 사라미라 싶은 이나 예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칭찬 비슿이 말하거나 미소 비슿이 웃어주면 타는 듯 몸이 더워오는 황홀감이 「사랑」인 줄 알았다 사랑을 위해 목숨도 버린다는 말이 흐릿하게 잡히는 기억 속에서 거룩한 숯불로 피어올라 이 종교에 입교까지 했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세월이 흐르는 강가에 꽃이 피며 꽃이 간혹 웃어 주었다 어찌 어찌하여 그가 결혼하게 되었는데 식장에서 주례가 그에게 물었다 이 여자를 사랑하는가. 한평생 사랑하겠는가. 그는 몹시 어지러웠다 어떤 아슴한 메아리가 전류처럼 위험하게 황야를 선회하고 있었다
내 마음을 열 열쇠꾸러미를 너에게 주마 어느 방 어느 서랍이나 금고도 원하거든 열거라 그러하고 무엇이나 가져도 된다 가진 후 빈 그릇에 허공부스러기쯤 담아 두려거든 그렇게 하여라 이 세상에선 누군가 주는 이 있고 누군가 받는 이도 있다 받아선 내버리거나 서서히 시들게 놔두기도 한다 이런 이 허망이라 한다 허망은 삶의 예삿일이며 이를테면 사람의 식량이다 나는 너를 허망의 짝으로 선택했다 너를 사랑한다
말하지 않고 보낸 은밀한 진실 하나가 남아 있다 그의 죽음 그 외엔 용서 못할 어떤 잘못도 있을 수 없으리란 그 말 한마디를 나는 가슴 깊이에 묻었다 그 시절 나는 낡은 풍금의 모든 음계를 시도 때도 없이 울려 어지러이 소리내는 위태롭고 다급한 처지였고 사실은 그에게 마음 끌려 평형 가늠할 수 없었음을 옹색한 궁리로 그를 버려 그를 잊으려고 한 계절도 못다 채운 그를 떠나 보내었다 오늘 진종일 비가 내리고 어둠이 빗물 위에 엎드리니 그 사람을 등에 업은 듯하고 그 사람이 오히려 태산같은 어둠을 업은 듯도 하여 그가 두고 간 관용과 우수의 무게를 새삼 쓸쓸히 깨닫는다
겨울바다에 가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싶던 새들도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혼령(魂靈)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어수룩하고 때로는 밑져 손해만 보는 성 싶은 이대로 우리는 한 평생 바보처럼 살아버리고 말자. 우리들 그 첫날에 만남에 바치는 고마움을 잊은 적 없이 살자. 철따라 별들이 그 자리를 옮겨 앉아도 매양 우리는 한 자리에 살자. 가을이면 낙엽을 쓸고 겨울이면 불을 지피는 자리에 앉아 눈짓을 보내며 웃고 살자. 다른 사람의 행복같은 것, 자존심같은 것 조금도 멍들이지 말고, 우리 둘이만 못난이처럼 살자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귀절 쓰면 한귀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사랑한 일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 이대로 판결해다오 그 사랑 떠났으니 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하였음이라고 준열히 판결해다오 겨우내 돌 위에서 울음 울 것 세번째 이와 같이 판결해다오 눈물 먹고 잿빛 이끼 청정히 자라거든 내 피도 젊어져 새 봄에 다시 참회하리라.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 수 없을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목마른 긴 밤과 미명의 새벽길을 지나며 싹이 트는 씨앗에게 인사합니다. 사랑이 눈물 흐르게 하듯이 생명들도 그러하기에 일일이 인사합니다. 주님, 아직도 제게 주실 허락이 남았다면 주님께 한 여자가 해드렸듯이 눈물과 향유와 미끈거리는 검은 모발로써 저도 한 사람의 발을 말없이 오래오래 닦아주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엔 이 한 가지 소원으로 기도드립니다.
(1) 사랑은 말 하지 않는 말 아침에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대문 중문 다 지나는 맨 뒷방 병풍 너메 숨어사네 옛 동양의 조각달과 금빛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 생각만이 깊고 말 하지 않는 말 사랑 하나 (2) 사랑을 말한 탓에 천지간 불붙어 버리고 그 벌이 시키는대로 세상 양끝이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삼아 만났더니 아아 천만번 쏟아 붓고도 진홍인 노을 사랑은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여인을 만나지 못해 당신도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까 검은 벽의 검은 꽃 그림자 같은 어두운 향로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겨울 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얼굴을 가리고 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 불신과 가난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어딘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 허무와 이별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때로 골똘히 죽음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당신도 고독이 아쉬운 채 돌아갑니까 인간이라는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이름에 울면서 눈감고 입술을 대는 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는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려 줍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많이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가 됩시다.
저무는 날에 -김남조- 날이 저물어 가듯 나의 사랑도 저물어 간다 사람의 영혼은 첫날부터 혼자이던 것 사랑도 혼자인 것 제 몸을 태워야만이 환한 촛불 같은 것 꿈꾸며 오래오래 불타려 해도 줄어드는 밀랍 이윽고 불빛이 지워지고 재도 하나 안 남기는 촛불같은 것 날이 저물어 가듯 삶과 사랑도 저무느니 주야사철 보고지던 그 마음도 세월 따라 늠실늠실 흘러가고 사람의 사랑 끝날엔 혼자인 것 영혼도 혼자인 것 혼자서 크신 분이 품안에 눈 감는 것
1 사랑은 말 하지 않는 말 아침에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대문 중문 다 지나는 맨 뒷방 병풍 너메 숨어 사네 옛 동양의 조각달과 금빛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 생각만이 깊고 말 하지 않는 말 사랑 하나 2 사랑을 말한 탓에 천지간 불붙어 버리고 그 벌이 시키는대로 세상 양 끝이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 삼아 만났더니 아아 천만번 쏟아 붓고도 진홍인 노을 사랑은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
서로가 찾았더니 우리 예 와서 만나는구나 별떨기 꽃떨기의 큰 아기들아 만남을 점지하시는 분이 광명한 등불을 비추니 니네의 어여쁨 눈도 부셔라 젊은 날 유혈의 진실들엔 가슴 쓰려라 서로가 찾았더니 만나 즉시 알아 보겠구나 먼저 세상서부터 아마도 훗세상까지 핏줄 줄곧 당기는 우리 지나온 나의 세월 목이 타던 땡볕보다 더욱 더한 시금 용광로에 구워져 보검 되는 니네의 의용, 장하고 아름답게 용솟음치거라 사랑하거라 아..아,, 젊은 이들아
너로 말하건 또한 나로 말하더라도 빈 손 빈 가슴으로 왔다 가는 사람이지. 기린 모양의 긴 모가지에 멋있게 빛을 걸고 서 있는 친구 가로등의 불빛으로 눈이 어리었을까. 엇갈리어 지나가다 얼굴 반쯤 그만 봐버린 사람아. 요샌 참 너무 많이 네 생각이 난다. 사락사락 사락눈이 한줌 뿌리면 솜털같은 실비가 비단결 물보라로 적시는 첫 봄인데 너도 빗물같은 정을 양손으로 받아 주렴. 너는 뿌린 후에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 사랑으로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 아무것도. 무정(無情)으로 주는 정의 자욱마다엔 무슨 꽃이 피는가 이름없는 꽃이여.
바다여 나의 좋으신 분을 수평선 너머 네가 업어 뫼신 후 날마다 천도(天桃) 한 알을 상에 올리네 즈믄 날 만경창파 머리 풀어 바치는 나의 제사 어느 듯 서리 묻은 내 귀밑머리 어쩔라나 어쩔라나 오늘은 영혼 안의 그 바다에도 하늘복숭아 가지만 휘어지고
삼천 년 된 거목들의 숲은 겨우내 끝이 안 보이는 설원雪原 나무들은 그 눈 벌에 서 있습니다 어느 겨울 그 중의 한 나무가 눈사태에 떠밀려 쓰러질 때 하느님이 품 속에 안으셨습니다 나직이 이르시되 아기야 쉬어라 쉬어라 …… 하느님께선 이 나무가 작은 씨앗이던 때를 기억하시며 거대한 뿌리에서 퍼져나간 젊은 분신들도 알으십니다. 쉬어라 쉬어라고 하느님의 사랑은 이날 자애로운 안도安堵이셨습니다 가령에 삼천 년을 노래해온 새가 있다면 쉬어라 쉬어라고 하실 겝니다 이 나무 기나긴 삼천 년을 장하게 맥박쳐 왔으니까요 레드우드 품종의 그 이름 와워나로 불리우는 이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수면이요 안식이며 이후 삼천 년 동안 그는 잠자는 성자일 겝니다 장엄한 숲에서 이 겨울도 끝이 안 보이는 아득한 설원에서
간밤에 잠자지 못한 이와 아주 조금 잠을 잔 이들이 새소리보다 먼저 부스럭거리며 새벽전등을 켠다 이 거대한 도시 곳곳에 불면의 도랑은 비릿하게 더 깊은 골로 패이고 이제 집집마다 눈물겨운 광명이 비추일 것이나 미소짓는 자, 많지 못하리라 여명黎明에 피어나는 태극기들, 독립 반세기라 한 달 간 태극기를 내걸지자는 약속에 백오십 만 실직 가정도 이리 했으려니와 희망과의 악수인 건 아니다 참으로 누구의 생명이 이 많은 이를 살게 할 것이며 누구의 영혼이 이들을 의연毅然하게 할 것이며 그 누가 십자가에 못박히겠는가 심각한 시절이여 잠을 설친 이들이 새벽전등을 켠다
보고 싶은 너 가을 햇볕에 이 마음 익어서 음악이 되네 말은 없이 그리움 영글어서 가지도 휘이는 열매,참다 못해 가슴 찢고 나오는 비둘기떼들, 들꽃이 되고 바람 속에 몸을 푸는 갈숲도 되네 가을 햇볕에 눈물도 말려야지 가을 햇볕에 더욱 나는 사랑하고 있건만 말은 없이 기다림만 쌓여서 낙엽이 되네 아아 저녁 해를 안고 누운 긴 강물이나 되고지고 보고 싶은 너 이 마음이 저물어 밤하늘 되네
겨울은 성숙한 계절 봄에 사랑이라 싶은 한 마음을 만나 望月의 바람 부풀더니 가을엔 그 심사 깊어만 져 모진 기갈에 시달렸지 눈 시린 소금밭의 짠맛보다도 더 매운 겨울 모랫바람 수수천만 조각의 삭풍이 가슴 맞대인 이 쩡한 돌거울에 눈꽃 송이송이 흩날리고 눈부시며 눈부시며 드대 보이옵느니 피가 설었을 젠 못 얻은 사랑 삼동 바닥 없는 추위에 無償의 축원 익혀 오늘 임맞이하네.
1 눈길에 안고 온 꽃 눈을 털고 내밀어 주는 꽃 반은 얼음이면서 이거 뜨거워라 생명이여 언 살 갈피갈피 불씨 감추고 아프고 아리게 꽃빛 눈부시느니 2 겨우 안심이다 네 앞에 울게 됨으로 나 다시 사람이 되었어 줄기 잘리고 잎은 얼어 서걱이면서 얼굴 가득 웃고 있는 겨울꽃 앞에 오랫 동안 잊었던 눈물 샘솟아 이제 나 또다시 사람 되었어
바람은 찢겨진 피리의 소리 하설은 파적(破笛)의 피울음이 아니고야 바람은 분명 찢겨진 피리 나도 바람처럼 울던 날을 가졌더랍니다. 달밤에 벗은 맨몸과도 같은 염치 없고도 어쩔 수 없는 이 회상 견뎌 낸 슬픔도 지나고 못 견딘 슬픔도 지나고 모두 물처럼 이젠 흘러 갔는데 잊어 버리노라 죽을 뻔하고 잊히움에서 못내 쓰라린 가슴 왜 아직 이런 것이 남았답니까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신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보이지 않는 깊고 높은 것 그 확신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사람을 위하여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위하여 고독한 의지와 사랑 준령의 등반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생명 있는 모든 것을 품속에 안아주는 자연을 위하여 죽은 후에도 영원히 안고 있는 대지를 위하여 땅의 남편인 하늘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태어날 아기들과 미래의 동식물을 위하여 이름없는 거 잊혀진 거 미지의 것을 위하여 가급적 다수를 위하여 그러고 보니 모든 걸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 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업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
열. 셀때까지 고백하라고 아홉. 나 한번도 고백해 본적 없어 여덟. 왜 이렇게 빨리세? 일곱. ..... 여섯. 왜때려? 다섯. 알았어. 있잖아 넷. 네가 먼저 해봐 셋. 넌 고백 많이 해봤잖아 둘. 알았어 하나반. 화내지마 ..있잖아 하나. 사랑해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날마다 슬퍼함으로 슬픔에 배부를 것이요 다른 굶주림은 모두 잊으리라 사랑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도 끝을 알 것이요 끝에선 하나가 먼저 떠나리로다 이날에 하늘을 보리니 수식어는 모두 죽고 다만 하늘이리라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 더 깊은 밤에 어쩌면 희뿌연 새벽녘에라도 아버지가 오실 줄 믿고 기다리는가 그의 아이들 모두 깨어 있고 바깥은 습습한 밤비. 외등 하나 온밤을 골목길 비추느니 절통할 일이로고 심장 둘레의 곱디고운 혈관을 절개하고 그 여섯 시간 만에 오늘 같은 밤비 속을 낯설은 순례지 홀로 길떠난 사람 세상살이 이리도 깊고 광막한 타향인 곳인가 남의 자의 땅에도 익숙지 못한 실어증의 안개만 자욱하고 지평이 하늘에 닿은 가슴 안의 사막 그러나 해가 뜨면 동서남북을 새로이 배우련다 우물을 파서 새맑은 물거울에 모든 빛나는 것을 돌려오고 그 빛부신 중심에서 그를 항상 보리라
아침 샘터에 간다
잠의 두 팔에 혼곤히 안겨 있는
단 샘에
공중의 이슬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이날의
첫 두레박으로
순수의 우물, 한 꺼풀의 물빛 보옥들을
길어올린다
샘터를 떠나
그분께 간다
그분 머리맡께에 정갈한 물을 둔다
단지,
아침 광경에 눈뜨실 쯤엔
나는 언제나 없다
은총이여
생금(生金)보다 귀한
아침 햇살에
그분의 온몸이 성하고 빛나심을
날이 날마다
고맙게 지켜본다
너를 재우고 돌아서던 손시린 돌무덤에
이제 나도 영원히 쉬려고 찾아온거다
별이란 그저
잠잠히 순명하는 광망(光芒)이더구나
새삼 무에랴 우리를 일깨워
섧게 만드리
인식할 것으로 믿자
너를 불러 네 옆에 이처럼
나 돌아왔음은
진실로 하늘이 짚어준 길이었거니
무서리 내 가슴에 잠기고
흰 눈깨비 성성히 덮혀오는
경루 한밤에도
오직 네 생각 그 하나에
나는 살았더니라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이 기쁨 처음엔
작은 꽃씨더니
밤낮으로 자라 큰 기쁨 되고
위태한 꽃나무로 섰네
아, 이젠 불이어라
가책의 바람으로도
끌 수 없거니
새벽잠 깨면
벌써 출렁이는 마음
한 쌍의 은행같이
연한 슬픔과
또 하난 기쁨이래요
말하지 말아야지
나 이번엔
죽도록 말하지 말아야지
불시에 하늘이 쏟아지던
옛날의 그 한마디
이 마음의 이름
이젠
말을 버릴까 싶네
몇백 년 늙어버린
말과 울음에게
가서 쉬어라
가서 쉬어라고
거대한 하늘 물뿌리개
봄비 적시는 이날에
작별하고 싶네
겨우내 노래하던 새
묘지에서도 노래하던 새
몇백 년 그럴 양으로
성대가 더욱 트인
새여 노래여
날아가거라
날아가거라고
손짓해 보내고 싶네
소리내는 모든 건
내 하늘에서
석양으로 저물어가고
청정한 고요 하나
남은 삶의
실한 고임돌이었으면 싶네
보아라
나무들은 이별의 준비로
더욱 사랑하고만 있어
한 나무 안에서
잎들과 가지들이
혼인하고 있어
언제나 생각에 잠긴 걸 보고
이들이 사랑하는 줄
나는 알았지
오늘은
비를 맞으며
한주름 큰 눈물에
온몸 차례로
씻기우네
아아 아름다워라
잎이 가지를 사랑하고
가지가 잎을 사랑하는 거
둘이 함께
뿌리를 사랑하는 거
밤이면 밤마다
금줄 뻗치는 별빛을
지하로 지하로 부어내림을 보고
이 사실을 알았지
보아라
지순무구
나무들의 사랑을 보아라
머잖아 잎은 떨어지고
가지는 남게 될 일을
이들은 알고 있어
알고 있는 깊이만큼
사랑하고 있어
들어오너라
겨울,
나는 문고리를 벗겨둔다
삼복에도
손발 몹시 시렵던
올해 유별난 추위
그 여름과 가을 다녀가고
너의 차례에
어김없이 달려온
겨울, 들어오너라
북극 빙산에서
살림하던 몸으로
한둘레 둘둘 말은
얼음 멧방석쯤은 가져왔겠지
어서 피려무나
겨울,
울지도 못하는
얼어붙은 상처
얼얼한 비수자국,
아무렴 투명하고 청결한
수정 칼날이고 말고
거짓말을 안 하는
진솔한 네 냉가슴이고 말고
아아 그러면서
소생하는 새봄을
콩나물 시루처럼 물 주며 있고 말고
하여간에
들어오기부터 해라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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