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의 문학지도 다시 그려야
최삼룡 (평론가, 전 연변사회과학원문학예술연구소 소장)
1.
지금까지 중국조선족문학사가 3권 나온 줄 알고 있다. 그것들로는 조성일, 권철 주필, 조성일, 권철, 최삼룡, 김동훈 집필 《중국조선족문학사》(연변인민출판사, 1990년), 오상순 주필, 오상순, 김동훈, 최삼룡, 장춘식 집필《 중국조선족문학사》(민족출판사, 2005년), 권철, 김동훈 주필, 권철, 김동훈, 최삼룡, 김만석, 박충록, 리광일 집필《문학사》(민족출판사, 2006년)이다.
필자는 이 3권 문학사의 한 집필인으로서 줄곧 조선족문학사 집필에 관심의 눈길을 떼지 않고 있다.
최근에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양의(楊義)연구원의 중국의 문학지도를 다시 그릴 데 대한《重繪中國文學地圖》등 논저들을 공부하면서 중국조선족의 문학지도에 대하여 심사숙고하게 되었다.
2.
지금까지 중국조선족문학사의 집필을 회고해보면 확실히 문학발전의 시공간에 대한 관조에서 시간의 흐름에 대하여서는 충분한 중시를 돌렸지만 공간문제에 대하여서는 상대적으로 홀시하였다.
예를 들면 이민초기, 항일투쟁시기, 사회주의건설시기 등 역사단계에 문학의 사상성, 류파 등을 연구하였지만 한 역사적 단계에서 지리적 차이에 따르는 문학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서는 충분한 주의를 돌리지 못하였다.
항일전쟁시기의 항일혁명가요도 확실히 동북의 항일군민들이 창조한 항일가요와 화북조선의용군의 항일가요는 서로 다른 특색을 보이고 있으며 위만주국시기 조선족들의 문학작품도 룡정을 중심으로 한 동만의 문학과 신경(지금의 장춘)을 중심으로 한 남만과 북만의 문학은 서로 다른 특색을 보이고 있지만 일정한 중시를 돌리지 못하였다.
1949년부터 1977년까지 즉 문화대혁명시기까지 포괄한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시기는 비록 의식형태와 제도의 고도의 통제 밑에서 발전한 문학으로서 공간상에서 문학발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데다가 중국조선족문화상황의 특수성으로 연길을 중심으로 한 집거구(集居區)의 문학 외에 기타 장춘, 심양, 할빈 등 잡거구(雜居區)의 문학발전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결속된 1976년으로부터 지금까지 중국조선족발전은 새로운 양상을 보이면서 발전하고 있다.
중국조선족문화의 중심으로 작용을 하던 연변밖에 장춘과 길림을 중심으로 한 길림성조선족문학과 하얼빈과 목단강을 중심으로 한 흑룡강성조선족문학과 심양을 중심으로 한 료녕성조선족문학이 예견하지 못했던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북경 등 대도시와 청도 등 연해지구의 조선족문학이 발전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한국, 일본, 미국 등 나라에 진출한 중국조선족들의 문학도 생성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날 사회주의 혁명과 건 설중에서 연변은 확실하게 중국조선족문학의 중심으로 부상 되였지만 새로운 역사시기의 새로운 상황에서 그 중심이 해체되기 시작하였으며 연변 밖의 조선족들이 거주하는 여러 지구에 이미 작자대오가 있고 문학잡지가 있고 독자군이 이루어지고 있는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개혁개방 후 중국조선족의 지리적 문학공간은 크게 확장되었는 바 오늘 중국조선족의 문학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과업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중국조선족문학을 관심하는 모든 사람들은 마땅한 주의를 돌려야 하며 문학사를 연구하는 석학들이 충분한 중시를 돌려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3.
중국조선족문학지도를 다시 그려야 하게 되기까지의 중국조선족문학의 변화는 문학현상의 표면현상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조선족문학의 지리적 공간이 부단히 확대되는 문제이며 중국조선족문학발전의 에네지원이 변화되는 문제이며 중국조선족문화정신의 심도와 광도가 변화되는 문제이며 중국조선족문학의 방법이 다양화 되는 문제이다.
이제 누가 중국조선족문학을 연구하면서 연길의 연변인민출판사에에 출판하는 도서,《연변일보》,《연변문학》에만 의거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하얼빈, 장춘, 길림, 심양 그리고 북경 등 대도시와 청도 등 연해지구의 조선족문학에 눈길을 돌려야 하며 더 나아가서 서울, 뉴욕, 도꾜 등 세계의 여러 나라 조선족문학에 눈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제 누가 중국조선족문학을 연구하면서 20세기 상반엽 반일투쟁에서 생성, 발양된 혁명정신과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중에서 형성된 민족의 생명저력만 고찰해서는 안 된다. 현대화 과정에서 중국조선족들의 농경문화가 어떻게 해체되고 어떻게 농민으로부터 도시시민으로 현대인으로 전변되는가에 대하여 연구하여야 하며 지구촌인으로 전변되는가에 대하여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누가 중국조선족문학을 연구하면서 반만년의 역사에서 형성되고 계승되어온 민족의 전통문화와 경전리론에 기초한 사실주의창작방법에만 의거하여서는 안 된다. 중화의 주체인 한족(漢族)의 문화를 참답게 공부하여야 하며 유럽과 미국 등 국가의 현대과학기술과 사회과학이론과 인문이론을 공부하여야 하며 또 사실주의 외에 모더니즘과 포스터모더니즘에 속하는 여러 가지 유파와 사조와 방법을 공부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중국조선족문학의 문학지도를 다시 그릴 준비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4.
개혁개방 30년래 확실히 중국조선족문학은 거대한 변화를 치르며 발전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우리의 옹군 생활의 변화에 따르는 아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변화이다. 개혁개방 후 30년래 중국에서 정치카리스마의 해체와 의식형태신화의 소실, 당과 국가의 제반 제도와 방침정책의 조절과 여러 가지 좌적인 정책과 방침정책의 폐지는 우리나라 국민의 정치, 경제, 문화 제반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여기서 인구의 대이동에 대하여서만 간단히 보기로 하자.
개혁개방 전에는 국가제도와 방침에 따라서 농민의 도시진출은 거의 불가능했으며 국민의 외국나들이는 전혀 불가능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후 농촌의 호적제도는 아직까지도 철저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인구유동에 대한 관리가 느슨해지면서 이러한 상황이 많이 개변되기 시작하였다.
농촌개혁의 성공과 아울러 농민들의 생활수준이 엄청 제고되고 이에 따라 농촌의 과잉노력이 도시에 진출이 가능하게 되였으며 개혁개방정책에 힘을 입어 국민의 외국나들이가 쉽게 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통계수자가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개혁개방이래 하얼빈으로부터 대련까지 동북의 철도연선의 크고 작은 도시에 진출한 조선족농민이 40만이라고 하며 이밖에 북경 등 대도시에 진출한 조선족이 20만이 넘는다고 하며 산동반도에 진출한 조선족이 20만이 넘고 또 상해, 항주 등 연해 지구에 진출한 조선족이 10만이 넘는다고 한다. 이밖에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이 20만, 러시아, 일본, 미국, 가나다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에 진출한 조선족이 수만 명이 된다고 한다.
이 통계는 말 그대로 불완전한 통계이지만 하나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200만을 헤아리는 중국조선족인구의 약 절반이 이미 농촌을 떠나고 고향을 떠났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인구의 대이동은 중국조선족의 문학지도를 다시 그리게 된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된다. 농민이 도시에 들어갔을 때 도시의 생활방식에 적응해야 할 것이고 소도시의 시민이 대도시에 들어갔을 때 대도시의 현대화수준을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이고 중국사람이 다른 나라로 갔을 때 제도와 의식형태와 문화의 차이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만, 십만, 백만을 헤아리는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정신실존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생겼으니 어찌 그것이 문학작품에 표현되지 않겠는가.
중국조선족의 문학지도를 다시 그리게 된 원인을 인구의 대이동에서만 찾으면 불충분한바 문학발전의 에네지원의 주인소인 작가대오의 변화와 창조주체의 관념의 변화를 담론하여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1945년 8.15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중국의 조선족인구는 대이동을 하였는데 거의 절반이 혹은 북으로 혹은 남으로 모국을 찾아갔고 따라서 여기서 작품활동을 하던 많은 문인들이 모국으로 돌아갔다.
이리하여 중국조선족의 문학대오는 혁명부대에서 전업한 혁명문인들과 해방 전부터 작품활동을 해온 진보적문인 그리고 새롭게 붓을 든 문인들로 새롭게 조직되었다. 예를 들면 김학철, 정길운, 김창걸, 리욱, 채택룡, 최정연, 황봉룡, 임효원 등 문인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오는 당의 전략부서에 의하여 건국전후에 전국 각지, 여러 부문으로부터 모두 연길의 문화기관이나 단체에 집중되었으며 그 결과로 중국조선족의 문화중심은 연길이라는 이미지가 부상되었던 것이다.
개혁개방전이 시작된 초기로부터 연변이 중국조선족문화의 중심이던 국면은 타개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러한 조짐은 이미 문화대혁명 전에도 다소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된 것은 건국 후 새 중국의 품에서 새로운 문인대오가 생성되고 성장되기 시작한 것과 직접 연계된다.
상대적으로 조선족인구가 비교적 많은 흑룡강성의 《흑룡강신문》과《송화강》잡지는 이미 문화대혁명 전에 발간되었다. 만약 신중국에서 배양한 대학생들을 비롯한 신문인들의 성장이 없었다면 이 신문과 잡지의 출간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경에 이르러 중국조선족의 문인대오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는데 이때에 와서는 신중국에서 배양된 문인들이 이미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주력으로 성장되었으며 그런 인재들이 연길에만 집중되여 있던 국면이 완전히 타개되였다.
80년대에 연변지구외 장춘의 《북두성》잡지 (이미 폐간) 《길림신문》(창간초기에는 연길에서) 《장백산》잡지(창간초기는 통화에서》 길림의《도라지》잡지, 목단강의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이미 할빈으로 이주)와 《은하수》잡지(이미 폐간), 심양의 《료녕조선문보》와《새마을》잡지(이미 폐간), 신문, 잡지와 출판사가 창출되여 조선족의 문학발전에 공헌을 기여하게 된 것도 바로 새로 배양한 인재들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고 또 이런 문화기관의 창설은 연변이 조선족문화의 중심으로 작용하던 역사를 점차 종말 짓게 하였다.
한마디로 중국조선족의 문학지도를 다시 그리게 된 것은 문학대오의 성장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5.
중국조선족문학의 지리적공간의 확장은 결코 문학의 표면현상의 변화가 아니다.
도시는 농촌과 다른 자연경관과 인문환경이 있으며 소도시는 대도시와 현대화수준이 다르며 집거구는 잡거구와 언어환경이 같지 않다. 외국은 중국과 통치제도와 주류의식형태가 틀린다. 이런 구별은 필연적으로 문학작품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연변에 거주하는 작가들에 의하여 나온 작품과 연변외의 도시나 연해지구의 작가들에 의하여 나온 작품들이 차이가 보인다. 중국의 56개 민족 중 주체민족인 한족의 문학작품을 많이 수용하는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과 한족의 문학작품을 많이 수용하지 않는 작가들에 의하여 창작된 작품들의 차이가 보인다. 한국에 자주 나들며 한국문학을 많이 공부하는 작가에 의하여 씌어진 작품과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작가에 의하여 씌여진 작품의 차이가 보인다.
요즘에는 미국의 뉴욕에 가서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열띤 작품활동을 벌리는 류순호의 작품과 한국, 일본에 오래 체류한 김재국의 작품, 일본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작품활동을 벌리는 김문학의 작품,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의 생활체험이 두터운 장혜영의 작품이 제 나름의 특색으로 독자들 속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연해지구의 문학은 집거지구보다 상대적으로 중국의 주체민족인 한족문학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면서 아울러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인, 문화인들과의 조화 속에서 생성하고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띄운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조선족문학의 지도를 다시 그리게 되는 것은 구경에 가서는 창조주체의 문학의식과 생활체험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잘 모르겠다.
6.
졸고를 마치면서 이런 생각을 하여본다.
만약 누가 1945년 8월에 중국조선족의 문학지도를 그렸다면 중국의 동북지도를 놓고 신경(지금의 장춘)과 연수와 통화와 녕안과 교하와 룡정과 연길과 조양천과 도문과 안도만 찾아놓으면 되었을 것이다. 신경에는 《만선일보》가 있었고 최남선, 박팔양, 황건이 있었고 연수에는 류치환, 통화에는 김영팔, 교하에는 박영준, 룡정에는 윤동주, 강경애, 안수길, 김창걸, 연길에는 리욱, 조양천에는 김조규, 도문에는 현경준, 함형수, 안도에는 천청송 등이 있었다.
만약 누가 1976년 10월초에 중국조선족의 문학지도를 그렸다면 세계지도도 필요없고 중국지도도 필요업고 연변지도만 놓고 연길만 찾으면 되었을 것이다. 김학철, 정길운, 리근전, 김창걸, 리욱, 최정연, 황봉룡, 채택룡, 김례삼 , 김철, 임효원 등이 모두 연길에서 살았다.
만약 누가 2013년 4월에 중국조선족지도를 그린다면 연변지도만 가지고 안 되며 동북지도만 가지고 안 되며 중국지도만 가지고도 안된다. 세계지도가 있어야 한다.
연길, 룡정, 훈춘, 길림, 장춘, 할빈, 목단강, 심양, 대련, 북경, 천진, 청도, 항주, 상해, 소주, 란주 등 국내 도시들 외에 서울, 평양, 도쿄, 뉴욕, 모스크바, 베를린 등 세계적인 도시들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도시들에 누구의 이름을 써넣겠는가?
이 문제의 해답은 필자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다. 중국조선족문학지도를 다시 그리는 과정에 우리 문학을 관심하는 모든 석학이 힘을 합쳐 풀이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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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룡
중국 연변출생, 문학평론가, 원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1천여 편의 문학평론, 수필, 칼럼, 에세이 발표, 1999년 4월 정년퇴직한 뒤에도 ‘중국조선족문학사’ 편찬, ‘중국조선족문화사대계’ 중 문학사(산문과 시) 집필에 참여, ‘해방전 친일문학자료집’ 편찬, 출간 2008년 ‘해방전 재만조선족친일문학선집’ 편찬, 출간, 2009년 한국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상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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