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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단어로 가장 깊고 오묘한 세계를 그려낸게 좋은 시”라며 요즘 난해시에 중독된 젊은 시인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도광의 시인. |
도광의 시인(71).
광기와 열정의 접점에 서 있다. 196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가작으로 당선됐으며, 74~78년 김춘수·신동집·박양균 시인으로부터 ‘갑골길’이 3회 추천되면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지금까지 딱 2권의 시집만 냈다.
괴팍한 성정의 그로부터 대구 시단의 발전을 위한 독설을 듣고 싶어서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찾았다. 서재가 없다. 그냥 안방 침대가 그의 책상이다. 창턱에 몸을 기대듯 침대에 앞가슴을 갖다대고 만년필을 굴린다. 좋은 시를 낚기 위한 배수진같다. 시상(詩想) 자국이 흐르는 500자 원고지 수백장이 침대 한 귀퉁이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보내온 각종 문예지와 시집이 돌담처럼 침대를 감싸고 있다.
경남 마산고를 거쳐 71~96년 대구 대건고, 99년 효성여고에서 교직을 은퇴했다. 시인 서정윤, 이정하, 안도현, 소설가 박덕규, 문학평론가 하응백,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 시인 겸 소설가인 김완준 등이 모두 그의 제자다. 제자 덕을 봤다면 지금쯤 중앙 문단에서 큰 기침도 할 수 있었겠지만…. 가끔 속상하다. 서울 굵직한 문예지는 물론, 자신이 등단한 현대문학도 그를 외면한다. ‘지방 시인’이라서 그런가 싶어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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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의 시인의 퇴고 흔적 |
▨ 도광의 시인 일문일답
-황병승 시인 등 요즘 리딩그룹의 젊은 시인들의 시는 참 어렵다. 자기는 물론 독자도, 평론가조차 무슨 말인지 모른다.
“김소월의 ‘진달래꽃’부터 박목월과 서정주를 거쳐 김춘수까지 지난 세월 우리 시는 많은 변모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런데 요즘 너무 난해하다 못해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되고마는 시가 많다. 시가 의미있는 것이 되려면 난해할지언정 어불성설이 되어서는 안된다.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보자. 흰 돛단배들이 떠 있는 지중해를 비둘기들이 거닐고 있는 기와 지붕에 비유한 첫 행의 이미지는 얼마나 눈부실 만큼 정치한가. ‘저 오수(午睡)에 빛나는 수많은 기왓장들, 돛단배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는 조용한 지붕 밑을…’이와 같이 시가 난해해도 그 의미가 시의 보편성의 어느 언저리라도 닿아 있어야만 시의 보편성의 테두리를 넓혀준다. 시는 보편성이 희박하고 지나치게 특수성에만 치우치면 난해해지고 논리의 비약을 일으키기 쉽다. 시가 시다워야 하는데 시는 없고 언어의 특유한 옷자락만 현란하게 펄럭이고 있다. 순진한 아포리즘(Aphorism)이 화장을 하고 그럴듯한 시로 진열되고 있는 이 시대에 시다운 모습을 갖고 있는 시가 차츰 드물어져 가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대구는 ‘대한민국 시 1번지’다. 이상화, 이장희, 김춘수, 신동집, 박목월, 유치환, 구상 등 한국 근대시의 출발은 물론, 70~80년대 한국 현대시의 골격을 이룬 유명 시인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구에서 나왔다. 국내 시집 출판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홀로서기’의 서정윤 시인도 대구가 고향이며, 이성복~이하석~문인수는 현재 한국 시의 블랙홀 구실을 한다. 이밖에 젊은 나이에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장정일, 안도현도 대구를 모태로 시정신을 엮었다. 그런데도 대구의 시인은 대구발 시적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하고 자꾸 서울의 아우라를 역이용하려는 것 같다. 서울 문단에 결재를 받아야 자기 문학이 완성되는 것처럼 부단히 서울을 오가는 지역 문인들이 자기만 유명해지고 후배들은 방치하고 있다. 대구시문학 발전에 걸림돌인 것 같다.
“한국 최고의 문예지로 불리는 ‘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은 결코 지방 작가를 기억하지 않는다. 자기들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연대, 폐쇄적으로 운영을 한다. 특별한 몇몇을 빼고 일반 지방시인들은 죽어도 명함을 못 내민다. 세상 일이 원래 그런 것이지만 그럴수록 지방의 좋은 시인들은 간접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걱정하지 말자. 그 소외감이 이를 더 악 물게 만들고 오히려 좋은 시를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유명 문예지도 필요없다. 종국에는 좋은 시를 쓰는 사람만이 빛을 보게 된다. 시만 좋으면 중앙과 지방의 문턱이 없다.”
-시인이 너무 많다. 덤핑시인이 양산되는 것 같다.
“요즘 주변에 이런저런 문학잡지가 우후죽순 돋아나고 있다. 그 잡지를 통해 문학하는 건 좋지만 몇 가지가 염려스럽다. 한꺼번에 책을 많이 사주면 기부입학하듯 등단시켜준다. 나도 솔직히 얼마전까지 그런 흐름에 휩쓸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젠 거리를 둔다. 심사평 등을 부탁해도 제대로 된 시가 아니면 거절한다. 등단이 목적인 사람들은 문협에 가입하고 나면 단번에 문인행세부터 하려고 거드름을 피운다. 특히 살만한 중년 여성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멋진 모자를 쓰고, 좋은 차를 타고 폼을 잡는다. 사람이니 그럴 수 있는 거지만 알만한 시인들이 이를 따끔하게 지적하지 못하고 동조하며 오히려 그들에게 휘둘린다.”
-문학상이 너무 많고 권위도 추락했다. 목숨걸고 시를 쓰는 전업시인에게 문학적인 배려가 없는 것 같다.
“나이 많은 원로끼리 돌아가면서 문학상을 나눠먹어선 안된다. 상금도 제대로 안 주고 무늬만 문학상인 게 많은데 그건 주는 기관의 권위를 시인의 권위보다 더 앞세우려는 얄팍한 처사다. 그런 상은 수상자가 과감하게 거부해야 된다. 상도 상다워야 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상금도 줘야 한다. 기립박수를 쳐주고 싶은 좋은 시인에게 돌아가야만 상이 권위를 갖게 된다.”
-시정신을 정의하자면.
“시문학은 노력한 만큼 보상이 안 온다. 교사는 평생하면 연금도 나오고 나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갖게 해준다. 나도 교사로 정년을 맞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시는 교직보다 몇 배나 더 공을 들이고 피땀을 흘려도 현실적 보답은 없다. 그게 없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시인을 대우해주며, 죽으면 시비도 세워주는 것 아닌가. 시창작은 무상의 사회기여이며. 그게 시의 진정한 가치인지도 모른다.”
이춘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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