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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불레이크, /// 칼 크롤로브 시해설
2015년 12월 10일 18시 55분  조회:6359  추천:0  작성자: 죽림
옛 시인의 목소리

   영국 랑만주의 시인 -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기사 이미지
기쁨에 찬 젊은이여, 이리로 오라,

그리하여 열리는 아침을,

새로 태어난 진리의 이미지를 보라.

의심은 달아났고, 이성의 구름도

어두운 논쟁도 간계한 속임수도 달아났다.

어리석음이란 일종의 끊임없는 미로,

얽힌 뿌리들이 진리의 길을 어지럽힌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거기에 빠졌던가!

DA 300

그들은 밤새 죽은 자들의 뼈 위에 걸려 넘어지고,

근심밖에 모른다고 느끼면서,

자신들이 인도를 받아야만 할 때, 다른 사람들을 이끌려고 한다.


영국 낭만주의 1세대 시인인 블레이크는 이 시에서 아마도 프랑스 대혁명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혁명은 아침으로 빛나지만, 늘 저녁을 맞이했다. 다만 다른 아침을 예비한다는 점에서 혁명은 “진리의 이미지”다. “논쟁”과 “속임수”와 “어리석음”의 “미로”를 뚫고 역사의 기차는 아주 천천히 달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푸르른것은 오직 저 생명의 나무이다.”(괴테)




 

  윌리엄 블레이크 (1757 - 1827)

 

 

 

영국의 낭만주의 문학 시대를 연 시인.

14세부터 판화를 배웠고 문학서적을 탐독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순수의 노래 , 경험의 노래는 어린이의 관점에서 쓴

문명 비판적 시들로서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그는 창문 밖으로 천사를 보았다는 환상가였고

신비가였다.

 

종교적 명상이 담긴 천국과 지옥의 결혼, 밀튼,

예루살렘 등의 예언서들을 냈다.

 

 

그는 이성의 억압적 세력에 대항하는 사랑과

상상력의 싸움을 노래하였다.

 

작품집에 대부분 삽화를 그려 넣었는데 그 기법이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소재였다.

 

 

그는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야 인정받기 시작했고

오늘에는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 <<순수의 전조>>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하며,


 

주인집 문 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쫓기는 토끼의 울음 소리는 
우리의 머리를 찢는다.

종달새가 날개에 상처를 입으면
아기 천사는 노래를 멈추고....

 

 

 

모든 늑대와 사자의 울부짖음은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부터 건져 올린다.


 

여기저기를 헤매는 들사슴은
근심으로부터 인간의 영혼을 해방시켜준다.

 

 

 

학대받은 양은 전쟁을 낳지만,
그러나 그는 백정의 칼을 용서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인간은 기쁨과 비탄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가 이것을 올바르게 알 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기쁨과 비탄은 훌륭하게 직조되어


 

신성한 영혼에겐 안성맞춤의 옷,
모든 슬픔과 기쁨 밑으로는 
비단으로 엮어진 기쁨이 흐른다.
 

 

 

아기는 강보 이상의 것,
이 모든 인간의 땅을 두루 통해서


 

도구는 만들어지고, 우리의 손은 태어나는 것임을
모든 농부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보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대가 무엇을 하건, 그것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해와 달이 의심을 한다면
그들은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열정 속에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열정이 그대 속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국가의 면허를 받은 매음부와 도박꾼은
바로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거리 저 거리에서 들려오는 창부의 흐느낌은
늙은 영국의 수의를 짤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 (1757∼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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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급류

                 /칼 크롤로브

시퍼런 급류,
이윽고 녹색빛이 눈을
뜬다. 하늘
거기 이른 봄맞이
노래하는 새들이 날고 있다.

음악적인 몸짓을 하는 빛이
한낮의 종달새 무리 속에서
떠돌고 있다.

어둠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긴긴 밤의 등불들이
꺼져버렸다.

수양버들이
색깔의 비 속에서
그 슬픈, 노란 머리칼을 내리고 있다.





말言語들

문 뒤에서 술렁대다가
꾸며진 말들의 소박성,
창문에서 벽에서
은근한 빛으로 석회칠해진다.

모음들의 현실,
둘 혹은 세 음절로 된.
하늘의 수수께끼로부터 잘려지고
돌의 현관에서 잘려진.

피부 속의 번개로서
그 속에 바람이 부는 수염으로서
속삭이는 소리를 통해 나타나는
낯선 얼굴의 解讀.

허지만 이름들은
귀 속에서 다만 윙윙거림으로만 남는다.
마치 매미나 벌꿀처럼.
그러다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간다.

모음들-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보잘것없는 벌레들,
재가 되어 떨어져
모과의 향기 되어 남는다.





세 개의 오렌지, 두 개의 레몬

세 개의 오렌지, 두 개의 레몬 : -
더 이상 숨은 평균율이 아니며,
대기에 사는 공식이다.
익은 과일들의 代數學이다!

빛은 호리병벌 속 색깔의 노란
대낮 속에 소리없이 모든 생물 둘레에 몰려 떠돈다.
메마른 꽃들은 똑같은 순간
메마른 바람 속에 쉬고 있다.

세 개의 오렌지, 두 개의 레몬
정적은 날개를 달고 온다.
느릅나무 冠을 통해 녹음이 정적을 흔든다.
행복한 배, 마도로스의 상쾌함.

그리고 하늘은 이제
가슴을 보고 눈감지 않는
눈 : 정확한
경이, 나뭇잎새 사이로 흔들린다.

세 개의 오렌지, 두 개의 레몬 : -
수학적인 황홀경,
가벼운 곳에서 쓰여진 한낮의 문서!
혀는 혀로서 침묵한다. 게다가
낡은 의미는 귀머거리처럼 꾸꾸 운다.





저녁의 상념

어둠 속에서 얼굴들 빛난다.
덩굴숲 뒤에 있는 등불.
복숭아의 뺨들이 밤의 그림자 속에서
행복하게 젖어든다.

펄펄 끓어오르던 한낮의 열기 식고
그 영상은 망막 위에서 쉰다.
다만 웅얼거리는 소리뿐, 그 영상은
곧 어두워질 푸른 자두나무에 매달려 있다.

창문을 통해 먼데서 오는 소리
비스듬히 들리고 바람결에 속삭인다.
대기의 고랑 틈에서 물고기처럼
저녁상념이 헤엄을 친다.


-『현대대표시인선집』(중앙일보사, 1982)에서




칼 크롤로브『나를 위한 풍경』(청하, 1988)



나무밑의 식사

얼룩진 그림자 아래 앉아,
우유처럼 미지근한 공기가 불어온다.
요술처럼 원이 그려지고
더위는 물러갔다.

뱀처럼 쉭쉭 소리내는 낫에
부딪쳐 깜짝 놀라 튀는 돌
강렬한 녹색을 불붙듯 내뿜는 풀밭,
벗은 다리 위에 엉겅퀴의 가시

타오르는 카밀레꽃 사이로
맨발로 우리는 선회하며
라벤더와 제비꽃의
서늘한 그늘로 피했다.

풍뎅이 날개 속에 고요가 윙윙 소리내고
검은 단풍나무 울타리 쳐진 고요
풀먼지에 아픈 눈은
강렬한 햇빛 속에 떨린다

그리고 우리는 빵과 치즈를 자른다
흰 포도주가 턱밑으로 흐른다
우리는 용해된 자두술을
살 속 깊이 알게 된다

바구니 위로 손들이 오가고
단단한 입은 만족되었다
나른한 팔다리는
흔들리는 나뭇잎 속을 흘러간다








독이 섞인 바람,
해초나 썩어가는 상어의 독가스와 함께
배들은 소리없이 나아간다
바람이 달을 향해 지나가고
가끔 물고기들에게
침 같은 비를 뿌린다
꺼져가는 불빛 속에
웃음소리처럼 밤이 내리고
어둑 짙어지는 비,
뱃짐에서 나는 감초 향기,
땀흘리는 선판 위로 흔들리는
괴로운 감초의 운무,

개들이 짖는다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발자국은 공포를 띄어
개들을 바보처럼 우롱한다
들보와 밧줄 사이로
구부러진 돛,

배 뒤로부터 저 위에서
한숨이 들려온다
허무로 짜여진 비탄
그리고 무거운 얼굴들,
배의 깃대는 이미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간다






럼 술병 옆의 자화상

이 몇 해 동안 허위에 찬 모습
술벼엥 비치는 찌그러진 얼굴,
잿빛 머리칼과 검은 이,
깊고 놀라운 술에 파묻혀
달을 그리며
밤에 기댄 모습!

아, 이것이 바로 나다 나의 목구멍을 태우는
향기로운 불을 나는 삼킨다
눈주위는 수상한 푸른 멍이 들고,
턱은 벌써 새로 자란 수염으로
그늘졌다 수염에는 먼지며
누런 설탕이 묻어 있다

나는 숨을 들이쉬며 쉬지 않고
달콤한 럼을 입안에서 씹는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내 눈썹과 함께 자랐다
그리고 털로 덮인 악마의 발톱-허무가
나의 목을 휘게 하고
등을 구부러지게 만든다

허위에 찬 모습! 검은 술병이
행복의 배처럼 내 머리 위로 흘러간다
내 손 밖으로 자라나
내가 사로잡혀 있는 내 꿈의 그물을 빠져나가
낯선 열대의 하늘을 헤매이다가
흑인의 입술, 자마이가,
나의 머리 그리고 피안에 가까운
어지러운 소용돌이 속에 사라진다






적막한 해변

        유심히 살펴보면 결국
        도처에 난파선이 널려 있다
        -페트로니우스

돛단배와, 수염으로 덮인
황금 같은 웃음소리들은
입에서 새어나오는
가쁜 숨처럼,

석회를 먼지로 부서뜨리는
담벼락의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녹지 않는 검은 꿀처럼
비애는 남아 있고,

새똥처럼 젖어,
향기롭게 빛 속에 걸리고
뜨거운 벽돌 기둥 위에
가벼운 죽음으로 착색된다

카드놀이하는 선원들은
그들의 육체 속에 홀로 있고
담배연기가 그들의 풀어진
눈까풀 사이로 그들 속으로 스며든다

그들이 밤의 푸른 장막을 향해
던졌던 그들의 칼날은
솟구치는 영원의 날카로운
바람 속에서 무뎌졌다






강가의 야상곡

내 목소리의 재를
강물에 뿌리고
검은 그을음자국처럼
나는 그것을 따라 헤엄쳐간다

달의 커다란 입 속에
쉬익 소리내며 지나가는
크고 더러운
검은 비늘의 물고기들 아래의 그늘

정령의 소리에 휘날리고
역리로 휩싸인
침묵의 넓은 천이
내 위에 덮였다

밤의 폐허 속에
숨어 있다가
내 핏속에 불을 찌르는
모기소리

내가 달아나 버린
내 몸의 검은 색이
천갈좌가 되어
내게 별빛을 던진다

물 속에 떨며
서 있는 오렌지,
빛살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달 아래 흔들리고 있다

고요와 회색 바람으로
만들어진 달콤한 과일,
내 눈동자 안으로
빛이 되어 스며든다

부드러운 해초의 정원에서
쉬고 있던
녹색 수염의 밀물이
어느새 올라왔다

그리고 어둠에 익숙해진
내 눈은
부르는 소리로 가득찬
밤 속으로 기운다






물이 있는 풍경

물 속에 잠기는
뜨거운 담의 붉은 빛은
공기를 그의 불길로,
부드러운 빛으로 칠했다

포플라 그늘 아래서
검은 물고기인 나는 움츠리며
미나리 같은
입맞춤의 맛을 들이마신다

칠현금 같은 뿔이 달린
미노토루스, 더위의 황소는
머리를 앞으로 늘어뜨리고
푸른 도랑에서 목욕한다

그가 성이 나 머리를
석회암의 가벼운 살 속에 파묻듯이
나는 나의 주위를 부르겁게 감싸는
서늘함에 팔을 휘감는다

갈대숲 뒤에 빛나는
물의 라빈린트 바깥,
아리아드네의 실을
눈먼 테세우스가 붙드는 것이 보인다

소금에 젖은 그의 하얀 양털 같은 머리칼이
바삭바삭 소리내고,
물결이 바위에 부딪쳐 소리친다
그것은 오보에의 탄식과도 같았다

나의 머리 위에 살아 있는 은화,
빛나는 무성한 나뭇잎
나귀가 끄는 짐수레가
푸른 들판에 짧은 틈새를 만든다

마르지 않은 라커처럼 빛나는
새털구름의 반사,
그리고 나는 낮은 소리로 우는
바람의 낭적과 이야기를 나눈다






낯선 병사들이 있는 밤풍경

나란히 누워 밤에 잠들어 있는 그대들, 엉덩이를
박하 속에 눌러 누이고 짓이겨진 살비아의 향기 속에,
시간의 잎사귀 아래, 괴물 같은 공기의 흐름 속에,
담 밖에서 춤추는-황혼이 흘러가고
보이지 않게 호두껍질 속에 숨어 있는
어둠의 요정이 예리한 정적 속으로 몰입하고,
내 가슴의 풀잎에 고통이, 고뇌가 입을 다물고
그리고 하늘은 베틀을 짜 검은 색의 천을 휘감을 때

나뭇잎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잿물에 타버린
병사들, 낯선, 납작한
기관총의 총구

冥府에서 잠자는 그대들, 목덜미엔 고요한 별
모래바람 속에 불타는 대기의 불,
그림자와 재로 된 길 위에, 달빛 아래 촘촘히,
그대들은 모여 있다 머리카락은 풀잎과 엉키고, 부드럽고 눈먼,
심연으로 흠뻑 젖고, 흑인처럼 부어오른 입술, 팔에는
낟알 같고, 사람을 취하게 하는 향기 같은 천상의 진리,
페르세포네의 사랑으로 따뜻하고
달콤한 꿈의 포옹에 묶여, 교살된 머리를 늘어뜨리고!

나뭇잎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잿물에 타버린
병사들, 회색의, 납작한
기관총의 총구

이제 소리없이 깨어난 그대들, 수염에는 나비들,
천천히 바람 속에서 노래하며, 늑골 위로 벗어부친 셔츠,
행복한 얼굴 위로,
모든 천공의 별과 시간의 지도처럼
깊어가는 침묵이 덮는다

북소리와 나팔소리에 그대들이 힘겹게 숨쉬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어느 총탄도 뚫을 수 없는 공유하는 대기 속에,
입안에 남아 있는 남자들의 밀가루의 씨앗인,
동쪽으로 흘러가는 푸른 화약가루의 낟알들을 씹으며,

나뭇잎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잿물에 타버린
병사들, 머나먼, 납작한
기관총의 총구





남자들

우리들의 행동이란 결국
신랄한 공포로 온통 뒤섞인 꿈이
아니고 무엇인가
-안드레아스 스리피우스

그렇게 그들은 간다 목에 걸린 호탕한 웃음,
가지런한 치열과 잘 닦여진 잇몸을 보이며
튀어오르는 근육과, 엉덩이를 흔들며,
그들은 쉽게 침묵하고,
음흉하게 혈관을 타고 올라오는 탐욕스러운 입술을 한,
죽음의 바람 속에 소리없이 날아다니는 늙은 하이에나,
한 밤의 가죽을 뒤비어쓴 짐승을 잊어 버리고

석탄처럼 검은 험악한 눈 또는
삼월 하늘처럼 푸른 선량한 눈,
숨김없는 눈길로 그들은 씩씩하게 걸어간다
한낮의 햇빛의 긴 행렬 앞에, 행운의 태양 아래,
아무렇게나 어깨에 메고, 고요한 걸음걸이를 가볍게 하는
신식기관총이 이 시대의 빛속에 금속성의 잿빛으로 빛난다

형상없는 세계, 텅빈 막사 뒤에서의 잡담,
쟁취된 은신처에서 밤으로의 의식 없는 호흡 :
밤은 그들을 위해 가로등의 불꽃 타는 소리 t고에 다가오고
밤은 식사처럼 맛이 좋았다 구운 닭고기 포도주 쓰레기,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 식탁에서 일어난다
희망은 비수처럼 벌써 살 속 깊이 꽂혔으므로

사냥꾼과 양치는 사람들의 서정적인 풍경 뒤에
무기의 수풀이 숨어 있다 프롬의 섬광, 짖어진 콘돔, 방어하지 못하는 세계 위에서,
燐 속에서 폭발하는 불의 신의 위력
그러나 그 힘은 맑은 물처럼
끊임없는 찬양에 대한 약속을 하고 있다 거짓 철자들로 된 더듬거리는 찬양

가냘픈, 가벼운 새들이 심연을 벗어난다
그리고 죽음이 쓰디쓴 술잔이라는 것을 아무도 그들에게 증명하지 않는다
저편으로부터의 기울어진 빛 속에 어깨의 뼈마디를 짓누르는
삶과 삶 사이에 허무의 쟁기의 보습
그림자처럼 낄낄 웃는 귀신들의 기쁨에 둘러싸여
안정장치 풀린 권총처럼 그들은 신랄하게 확신에 차 있다
그렇게 그들은 간다 죽음의 배가 천천히 명부로 저어갈 때,
갈색 머리, 금발 머리카락을 귀뒤의 허공에 날리며
순찰꾼의 외침 뒤에 남는 허공처럼 그들 뒤에 있는 캄캄한 허공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남자들, 웃음의 한가운데에서
비극의 가면으로 찢어지는 얼굴들






1950년 송시

슬픈 표제어는 이제는 충분하다 : 편안한 비유는
누런 빛으로 부서지는 가을 낙엽처럼 아무 의미없는 헛된 말
냉혹한 낱말은 마른 풀에 불을 당기는 것처럼
유령 같은 유행으로 입안에서 써서 닳고 닳아
결국 토비아스의 물고기보다도 놀랍지 않고,
또다시 송시라는 정신이 된다
그러나 존재의 태만한 폭력 앞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교활하고 잡다하게
휴식하는 이외에 :
가벼운 신을 신고
우화의 인물 속으로 도망가거나
산 위에서 불어오는 휘감기는
바람의 입맞춤에 혼미한 채
재로 덮인 강 위에
천천히 표류하거나

열매으 공식 : 누가 그것을 그렇게 부르는가? 밤의 은빛 쟁반에 담아
날들의 소리나는 식탁 위에 펼쳐 놓은!
느낄 수 있고, 가깝고, 붙잡을 수 있는 나는 그 사이에
헛되이 사라지는 것들을 낱말들로 붙잡으려고 한다
섬세하게 고안해낸 숨쉬는 음절들과
떠오르는 반달 속의 미역감은 칠요성의 고리처럼 한 묶음의 생각들로 된 수학으로
그러나 요술의
이 이름들로는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한다
구구대는 비둘기
-무의식처럼 들리는-
달콤한 소음들은
사라진다 나는 그것들이
낱말들로 된, 표식으로 된,
어떤 의미인 것처럼 꾸며대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또다시 심연? -아니 심연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의 유혹
그리고 풀베는 사람들의 한낮에
또는 갈대로 뒤덮인 밤에 그 앞에 걸려들고마는 다정한 덫,
노래하듯 휘감기는 시적인 함정,
확실하고 명쾌하게 내버려둘 수 있는,
정신 가운데에서 정신을 끌어낼 수 있는,
그리고 저주가 숨어드는 역사의 구름 속을
휘몰아쳐 지나가는, 환상의 기사,
시간을 인식할 수 있는 의식, 능력
나는 낱말의 윙윙 소리나는 사슬, 공허하게 울리는 쇠창살을
존재의 바닥 위에 남긴다
        그것은 빛나고 쓰디쓰다






한국 悲歌

강가의 푸른 석회의 집들이여!
침몰하는 아름다운 배처럼
그대들이 허공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나는 몬다
무릎까지 잠기는 침묵 속에 방금 그대들이 있었다
가시물고기의 솟구침에서 내가 다시 한 번 흙을 추측한다면 
한낮의 땀냄새처럼, 팔월의 자갈돌과 나무들의 혼란으로 뒤덮인 접근은 약처럼 효험이 있었다

가상의 고향 : 나이팅게일과
바람 속의 귀뚜라미의 노란 날개로 주의깊게 만들어진
그리고 엄지손가락처럼 흰 하늘과
밤의 직물 속에 암의 맥관을 지닌 :
죽은 자들이 살찌는 한국의 비 속에
손풍금의 반복되는 울림, 오딧세우스 같은 그림자

한때 모두의 얼굴의 얼굴 위로 한 직선이 지나갔다
이제 그것은 우리의 꿈 없는 잠 속으로
석탄색으로 구부러져 들어간다
이 세상의 잠 속으로, 한국의 비 속으로,
사격의 암흑이 심장의 윤곽에
실체의 강렬한 냄새에, 더욱 깊이 처박힐 때,
눈동자, 약품을 잃어버릴 때의
숨김없는 공포의 눈길
진흙 속에, 풀밭 위에,
소녀들과 나귀들 사이에 누워 있는 이들, 죽은 병사들을 위하여
더 낮은 목소리로,
불타는 나뭇잎이 불 속에서 탄식하는 것처럼 아주 작게 나는 탄식한다
불 타고 있는 이 거대한 도화선, 이 緯度를 위하여,
야간보초들의 재가 된 이름없는 열매를 손에 들고
침묵 속으로 내민다 그 침묵으로부터 나는 달아난다

한때 그대들을 유혹했던 여자들은 편안히 주저앉고
그대들은 다시 한 번 눈썹을 찡긋 움직인다
가상의 고향! 그대들의 죔쇠는
더위에 또는 한국의 비에 알맞은
청동녹색의 열대를 고리로 채우고
그 비는 그대들을 돌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흙만이 그대들의 이름을 아직 간직할 것이다

혹은 우리들,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한 움큼의 일들, 밤의 논쟁을 지닌 채,
우리가 비겁하게 잠들려고 누울 때
그대들을 뒤좇던 독초의 맛을 지닌
그대들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우리는 본다
우리의 꿈 없는 잠에 의해 끝없이 작아지는,
우리의 꿈 없는 잠 속에 화석이 되는, 그대들 삶의 쓰디쓴 맛





평화를 위한 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행복, 가느다란
성냥은 벌써
너의 두 눈 속에서 꺼져간다 포옹은
더욱 짧아지고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우리들의 호흡-이중의 밤의 소리-은
바닥에 흘린 술의 얼룩처럼 벌써 지워진다 너의 뺨 위에 오랫동안
새벽의 색바랜 그림자가 번민하는
운하 위에 걸린 적막한 달처럼
영원한 이별이 어려 있다

거듭 반복되는 이 어깨의 움츠림, 이 기다림 그리고
잠든 사람들 위로 일어나, 눈물을 씻는 바람에 귀 기울임,
애무의 바람 그리고 너, 결별의 바람,
결별이 침묵을 파묻기 전에 그 속에
옷처럼 주름 잡히는 목소리들,
종말없는 이별, 다시 한 번 신호등, 그리고 암흑,
흔들리는 촛불 아래 무기의 둔탁한 번득임

칼을 들고 하는 대화, 외마디 소리와 죽음의 냄새로 가득찬
막다른 길 위에서 백병전 장면이 서툴게 연출된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다르게 마련된다
불타는 여름 모기떼 속에,
이집트의 메뚜기떼, 좁은 선실에서 질식하거나,
제트기 폭음 아래 산화하거나

전쟁은 계속된다 나는 아직 한 순가,
너의 눈을, 피안에서 파괴되기 전에 망막 위에 가지고 있다
무상의 무게 앞에 그리고 준비하지 않은 죽음의
갑작스러운 뭐게 아래, 알 수 없는 하늘의
유령 같은 공포 아래, 죽음에서 소생시킴 앞에
이제는 아무 쓸모 없는 진정의 가벼운 그림들

천사의 그림자가 낯선 사람처럼 날아오르고
다시 가라앉았다 곧 허물어지는 환영
전쟁은 계속된다 -전쟁을 나는 느낀다
붉은 풀잎의 향기와 여자의 머리카락이 나부끼던
행복한 시절의 꿈, 그 꿈의 고요 속에서
숨쉴 때마다 움직이는 셔츠 아래 가슴의 마른 털처럼

그리고 나는 이 밤을 전쟁과 함께 보낸다
밤은 비수를 들고 일하고 내 핏속에 마녀를,
향락과 속죄를 쑤셔 넣는다 나는 떠도는 자들에게 손짓한다
벌써 영운으로 감싸인 눈이 패인, 느린 유령들에게
내게 덤벼 들라고 나는 그들에게 신호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망설인다 그들은 물러선다

그들은 내게 시간을 준다 나는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은 작은 속삭임이 되리라 어둠을 벗어나 겨우 새너아가는
바스락거림과도 같은 한 마디, 상어의 아가리에서 희미하게 흔들리는
희망, 평화, 방어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풀잎,
환한 얼굴들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기쁨,
삶에 두텁게 짜여지는 아름다움의 직물,






낱말들

문 뒤에서, 창 밖으로, 그리고
벽을 향하여 말하여지는
지어낸 말들의 소박함은
오랜 빛으로 석회로 된다

하늘의 수수께끼에서 잘라낸
돌 속의 혈관에서 잘려 나온
둘 또는 세 음절로 된
낱말들의 사실성 :

살갗 밑에 번개를 지닌
수염 속에 바람을 감춘
낯선 얼굴들을
속삭이는 한 음으로 해독한다

그러나 이름들은 다만
매미나 꿀벌의 윙윙거림으로만
귀 속에 남아 있다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간다

모음들- 공기 중의 보이지 않는
보잘것없는 벌레들,
재가 되어 떨어져
모과의 향기로 남는다





연가

1.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녹색의 굵은 호두를 검은색으로 불들이는 밤에
껍질을 벗긴 듯 말간 풍경 속에
물고기와 나뭇잎의 향기나는 풍경 속에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푸른 우유 속의 두 개의 머루 같은
너의 눈이 성냥불빛 속에 비찬다
느릅나무 그림자 속의 둥근 달은
부르럽게 비추이지 않는다
달은 낡고, 닳았고, 바람에 부숴져
모래시계처럼 우울하게 흘러내린다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침묵의 철자들을 나열해 본다
바람 없는 추위 속에 매운 상치냄새를,
너의 입을, 그리고 아이스크림 한 조각처럼 녹아드는
새벽 여명 속에 사실적으로 되어가는 밤을 철자로 읽어 본다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2. 너는 가버리고....

그리고 나는 방의 벽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벽 위에 너의 소년기의 얼굴을 그려 놓았기에,
-엘제 라스카 쉴러

너는 갔다 너는 언제나 가버릴 것이다
날이 잿빛 비둘기들을 가슴에 안고 새벽 여명이 그 넓은 천을 우리 위에 펼칠 때

머리칼을 물들인 밤이 온다 밤은 복숭아씨의 냄새가 난다
달이 박하 향내나는 밭 그루터기에 서 있다
뱀장어가 자라고 있는 강 위에 이슬이 떨어진다

너는 갔다 엔찌안의 피리들의 푸른색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뒤에 남은 것은 방과 모직치마 위의 코르드자켓의 푸른색,
호기심 어린 모기 같았던, 지금은 없는 눈길,

불안과 청동의 목으로 벽지를 바른 벽들
너는 갔다 그리고 나는 이 방의 벽들을 사랑한다
너의 어린아이 적의 얼굴로 칠해 놓은....

3
왼쪽으로 누워도 오른쪽으로 누워도 마찬가지다
멜론을 토막토막 자르거나 컵 속의 물을 빛나게 하거나,
그 뒤에 흔들리는 공기처럼 하찮은 촛불의 아아함
네가 없는 밤에

오후에 창문 앞에 공작이,
그늘진 꽃다발처럼 내려 앉았다
여섯 시의 햇빛 속에
빛나는 머루 한 접시를 놓고
너는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둠을 견딘다
단단한 검은 먹으로 그려진
입안의 눈물의 맛과
꽃속의 매서운 바람을 지닌
네가 만들지 않은, 이 밤을

어둠으로 갈라진 기와 뒤에
매미는 조용해지고 나는
식탁 앞에서 고독의 향내를 맛보아야만 한다
침묵과 침묵 사이
네가 없는 밤에

왼쪽으로 눕든 오른쪽으로 눕든 마찬가지다
적막의 포옹 속에 팔목시계가 가볍게 시간을 재고
담배의 물부리가 재로 변하고....
방금 전까지 내가 살고 있던 피안을 손가락으로 스쳐 본다
붉은 목도리도 갈색 구도도 없는
네가 없는 밤에

별빛 아래서 나는 너의 숨소리를 듣는다

4
너를 위해 나는 낮과 밤을 벽지 위에 모았다
옛날 그림들에 있는 것 같은 거리가 있는 풍경,
그 풍경 안에는 두 개의 오리나무 사이로 하늘이 졸졸 흐르고
붉은 열매의 향기가 난다
도시의 거리에서 나는 고요를 들었다
너를 위해 생각해낸 그 고요 속에
수풀 속에서 풀잎이 사각사각 소리내고 옥수수알이 터지고
시간의 돌이 오래된 샘물 속에 가라앉는다

나는 너를 위해 시간을 추방했다
쐐기풀 더미를 팔에 안은 마녀,
포플라 나무 뒤의 음흉한 얼굴,
시간은 전설의 오페라처럼
담 위의 비행기 그림자처럼 사라져갔다

너를 위해 나는 현재를 만들어냈다
순간의 심연 위로 어른거리는 정확한 알콜처럼
공기 속에미역 감는 살갗의 현재
도토리색의 목덜미의 현재,
육체의 단순한 선들의 현재

그리고 낮과 밤이 벽지 위에서 숨쉰다....





J. S를 위한 시

자정이 지난 첫시간에 12월의 기차역,
추위 속에 드러나는 너의 모습
엷은 색 외투, 머리 위에 덮인 수건
작별로 빛나는 얼굴

작별의 순간 나는 너를 다시 한번 만들어낸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
부드러움과 행복에 대한 갈망으로 어둡고
사랑으로 고요한 목소리

나는 너를 다시 한번 만들어 본다
이제,
외투 깃을 올리고 장거리 열차의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드는,
다른 남자인 나와 함께 가기 위하여

너는 뒤에 남는다 몰아치는 잿빛 바람에 밀리며
포옹과 입맞춤과 너의 살갗의 냄새와 함께 뒤에 남는다
눈오는 밤에 검은색과 흰색의 체이스판이
너의 얼굴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네게 있는 그 어느 것도 내게 마련된 것이 아님을






마지막 밤

밤은 검고 희리라...
-제드라 드 네르발

기다리지 마라! 밤은 검고 희리니,
눈썹을 그리려고 불에 그을린 코르크보다 더 검고,
열대의 천사들이 그 주위를 날던
일 드 프랑스에서 죽은 비르지니의
죽음보다 더 희리라

가로등 아래 비틀거리는
발자국으로 가득찬,
현관에 검은 입술로 가득찬,
부드럽게 공기에 의해 반복되는 입술 위에서 녹는 눈의 입술로 가득찬,
맞지 않는, 헛된 말로 가득찬,
검고 흰 밤

기다리지 마라 밤은 어릴 때 깨물던 분필 같고,
밤은 양초심지처럼 첫 번재 소각임에 흔들린다
검고 흰,
그리고 그 뒤의 너의 얼굴, 유리창에 기대어 눌린,
눈물의 작은 비,
자기를 떠나가는 남자아게
가슴을 보여주는 여자의 모습처럼

기다리지 마라! 바람 속에 늘어뜨린 머리칼과,
절망의 살균된 흰색과,
절대고요의 역청색으로 밤은 완전하리니
검고 흰...
그리고 별들이 총총히 비추어 주는 덤불처럼,
생각도 없는, 기억도 없는, 가벼운 한묶음인 나는 그 밤 속에 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마지막 밤!





기하학의 장소

기하학의 장소 :
한 그루씩 서 있는 포플라, 플라타너스,
그리고 그 뒤의 공기,
경쾌한 카누를 타고

쏴아 소리나는 고요 속을 지나갈 수도 있을
거품으로 된 하늘 속에
고독한 自足,
밝고 순수한 선들

모든 것은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공식 같다
강물의 만곡, 나뭇잎 속에
도망가는 새들의 윤곽,
몽롱한 더위의 흔적,

입안 가득한 바람과
항구의 돛단배처럼 부드럽게
흔들리는 육체의 그림자를 꿰뚫는
푸른 번개에 대한 느낌





병사의 시

장군들은 승리하고 병사들은 전사한다
-일본의 격언


1
그대들은 물론 다만
연기와 물뿐이다, 사람들이
그대들은 너무 오랫동안
그 낡은 죽ㅇ므을 취급핟록 한다면

그리고 어제, 오늘, 내일,
죽음은 그대들을 너무 좋아했다
어깨 위의 경금속,
눈은 언제나 벌써

바로 다음 사람에게 조준되어 있고
합설물질로 된 팔과 목
의치
그리고 그대들과 꼭같은

그대들이 막사 밖으로
검은 천을 흔들 때
연기와 물처럼 기묘하게
달아나는 존재

2
이럴 수도 있다 : 권총이나
무기들을 분해할 수 있다
전쟁와 곂와 또는
가슴 위의 증명사진처럼

그대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천천히 그대들 앞에서
먼지가 되어 떨어지는 중립적 공기의
동작을 연습했다

방어라는 오래 전부터의 상상!
칼과 장미는 그대들의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가
그대들보다 오래 살아 남을 것이다






정치적 1

안전 : 종이 위에
엄지손가락 지문, 그것은 맞는 말이고
모든 경찰서에서도
도움이 되리라!

벽을 쌓아 이랑을 고르면
밭은 불모지가 된다

신들의 무릎은
중요하지 않다
우연의 물리적 구조
정당의 강령은 그에 비해
이런 결백과
언제나 무관하다

누가 온통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우아한 속박,
씨르체의 머리카락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가?

꿈을 읽기보다
신분증명서 읽기가 더 쉬운 일

정치적 : 한때 소홀하게
다른 땅과 분리된
땅 밖으로 손 하나가 자라나온다






정치적 2

담요를 접고
램프를 꺼라
어둠의 거짓 감각마비는
잠과 같이
책임이 없다

담요를 접고
램프를 꺼라
밤은 호박처럼
모기를 숨기고 있다 너의 기억!
너의 양심!

담요를 접고
램프를 꺼라
국가는 철면피한 손님
모든 방어의 손짓에도
불구하고
그는 찾아온다

담요를 접고
램프를 꺼라
기록없는 시대는
여전히 시작되지도 않았다

담요를 접고
램프를 꺼라
벌써 발자국 소리가
너의 문에 다가온다 너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까?

담요를 접고
램프를 꺼라
너의 시간은
아무튼 올테니






幻影

그녀의 얼굴은
강물의 은화처럼 가볍다
그것은 매우 멀리 있다
입술은 굳게 다물고
거리 위에 누워 있는
허공에 그녀의 얼굴을 보려면
그는 의자 위에 올라가야 한다

순간의 빛나는 천에
그는 사다리를 기대어 놓는다
그녀의 얼굴을 위하여 그는
검은 튤립을 한 송이 꺾었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어둡게 하는
검은 새에게로 올라갈 때,
꽃잎은 그의 손에서 떨어진다
떨어지면서 그는
얼굴 없는,
소리 없는 유령,
그가 죽은 후의 시간을 본다







인식

그는 한 쪽으로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십오 분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향한
모든 눈초리를 즐긴다
그것은 얼마동안 잘 되어간다
그러나 그는 그 눈들이
자신을 꿰뚫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챘다
모르타르 밖으로 나오는 시선들,
줄기가 긴 꽃잎 밖으로 나오는 시선들,
그리고 말없는 시간의
반쯤 감은 속눈썹 뒤의 시선들,
그는 그 시선들로부터
더 이상 자신을 숨길 수 없음을 안다
그가 갑자기 허공의
검은 자리들,
부드러운 변화를 인식할 때까지

그때 그는 눈 멀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아침은 신을 믿는다
푸른 물고기가 아침의 눈앞에서 흔들리고,
팔과 관절들의 그림자는
힘차다
노래 부르기 시작하는 비둘기를
고요가 덮친다
여자들은 밤 동안 혼자 누워 있던
침대를 정돈한다
어둠 속에서 타오르던 성냥개비는
버려진다
공기의 목이 빛난다
한순간 동안
모두 손을 그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 있고 싶어한다
거리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신체에 나이가 들었음을 이야기한다






창문에서 한순간

누군가 창문 밖으로
빛을 쏟아낸다
공기의 장미꽃들이
피어나고
거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눈을 위로 올린다
비둘기들이 그 빛의
모이를 주워먹는다
이 빛으로
소녀들은 아름다워지고
남자들은 다정해진다
그러나 그것을 그들에게 말하기도 전에
창문은 누군가에 의해
도로 닫혔다





목소리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갔다
저녁이 물처럼 솟아올라
그의 두 눈에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갔다
밤은 방울새의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는 밤을 그의 손바닥 위에 가늠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갔다
그녀가 죽은 깃털 아래 묻혀 있다는 것을
마침내 그가 알았을 때
그의 손가락들은 다시 한 번 그녀와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지저귀는 새소리의
메아리를 들려 주었다
검은 숲 위로 얼굴처럼 사라지는
그 오랜 추억을 위하여






천 년

너의 얼굴 옆에서
나의 얼굴은
천 살이 된다
너의 두 눈을 위하여 내가 샀던
달리아는 천 년 전의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자신의 입술을 다물고
다른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려면

너의 목덜미에 관해서라면
정감은 그렇게도 오래된 것이다
너의 목이 미역감는
푸른 물기 어린 대기

밤에
우리의 손은 나란히 누워
천 년 동안 잠잔다
누군가,
한 때 너의 이름이었던, 너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그기고 그것이 나와 함께 늙어가려 하기 전에.....







초조

자신의 참을성을 충분히 오랫동안
시험해 보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상상력의 도움으로
자기의 인생에 몇 가지 변화를 계획하고자 했다
그는 길가에 숨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모습을
매우 도움이 되는 허공에다 그려보났다

이런 방법으로 해서 그는
한 소녀의 목덜미를,
그리고 대략 나이가 비슷한 한 여자의 생각지도 못했던 웃음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 소유물들로 그는
아직 좀더 견딜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변화에 대한 충동이 일어나
다른 생각들을 품게 되었다

요새 그는 애인을 하나
만들어냈는데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그의 시간 사이로 흘러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슬퍼한다
그의 초조함이
다시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엿보고 싶어하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프리츠 우징거에게

너무 오랜 동안,
나의 오른손은
의무를 다해 왔다
며칠 전 나는 내 오른손을
머리를 뒤로 묶은 모르는 여자의
채소와 물고기를 담는 시장바구니에 넣어 주었다
나의 왼손은
내가 잠잘 때 내 얼굴 위에서
너무 오랜 동안 쉬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풍선에 묶여
이제는 풍선 속의 바람이 나의 왼손을 잡고 있다
그리고 또 많은 다른 것들도
저녁에 옷을 벗듯이
나는 벗어버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주어버리고 났을 때
남는 그것을 위한
공기의 아늑함







전위선 끝에서

그를 찾으러
나는 이성을 보냈다
그가 전위선 끝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팅게일들을
그가 있는 곳으로 날려보냈다
그리고 그를 예감할 수 있는 쪽의
창문을 열어 놓았다

뒤쫓는 불빛과 함께
찾아나선
둥근 물 속에
나는 그의 이름을 적었다

나는 그의 길 앞에
여자의 조각들을 세워 놓고
그를 유혹한다
이따금 밤에 나는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목소리를 반복하게 한다

그러나 그는
전위선 끝에 서 있는다
그의 고집 센 뮤즈는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그의 눈 위에 흘러내리게 했다

나는 그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그녀가 그에게 내리는
즉결재판만을 생각하므로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벽의 신화

여덟 살짜리 아이에 의해
또는 검은 시간의 손에 의해 그려진 벽의 신화

우리는 지나쳐 가며
우리들의 생각에게 인사한다
우리의 여자들이
구운 벽돌 속에 나타난다

벽 위의 우리들의 꿈은
우리보다 더 오래되었다
석회의 죽어가는 흰 빛은
표면에 우리의 꿈을 띄고 있다

우리는 지나간다
그리고 대개는 눈을 돌린다
등 뒤에서
벽에는 벌써 달과 개들에 의해
문신이 그려지고 있는데





시간은 변한다

읻제는 정든 기념비에
푸른색을 칠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금발머리를 쓰다듬던 손길도
밀짚모자도 잊혀졌다
지쳐 우는 새들을
어깨 위에 앉히고
공원을 거닐던 아이들은
이제 다 자라났다

시간은 변했다
시간은 이제 어린 손으로
어루만질 수 없다
가로등은 새 전구로 바뀌고
테니스 공은 허공에서
되돌아오지 않았다
노란 수영복은
나비처럼 죽어가고
그 모든 편지봉투들은
부드러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다만 이제 거리는
주머니 속에 차표를 지닌 이방인들로
가득 차 있다






산책

플라타너스 사이에
가구들을 밀어놓았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 하나가 벌써
한 풍경을 이룬다
길가에는
석고의 흉상들이
오전의 퇴락을 지켜보고 있다
그래도 산책은
한동안 계속된다
모자들과, 커튼 뒤에서
엿보는 눈동자들
곧 피아니스트는 침묵할 것이다
그의 음악은
아스팔트 위에
푸른 동작으로 나타나는
한낮의 더위를 이기지 못한다





빛의 천사의 풍경

빛의 천사의 풍경 속에
나무마다 달이 자란다
사람들은 서로의 입에
손을 대고
칼에 찔려 죽은
어린 양의 눈을 감긴다
피흘림 없는 사랑은
푸른 날씨 속에
육체를 일광욕 시킨다
흑인소녀들은 그들의 검은색을
구름에게 선물한다
물고기들은 그들의 영혼을
강물에게 준다
강물은 
빛나는 육체를 찾아
땅으로 올라간다







비오기 전

아스팔트 위에 분필로 그어놓은 선들이
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낮은 아직도
빛나는 어깨를 드러내고 있다
시간은 초록빛으로
이교도처럼 흘러간다

티불루스의 풀피치아가
몇 분 동안
단풍나무 길에 나타나고
여름날의 시간이
매미처럼
뜨거운 돌 위에 앉아 있다

팔 하나가 허공에 나타난다
그러자 공기는 구름으로 색이 변한다
첫 번째 물방울의 소리가
사방에서
나뭇잎의 기억들을 질식시킨다







오늘은

오늘 나는 너를 조용히
잠자러 가게 할 수 있다
나는 몇몇 남자들과
잠시 길거리에서
달을 바라보리라
우리의 눈 앞에서 달은
천천히 변하리라,
회오리바람이 다가오고 있으니

멀리서
첫 번째 죽은 자들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개들의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면!
개들의 짖은 소리는 벌써 목 쉰 금속성을 띄고,
그것은 우리의 목소리에도 있을 것이다
내일, 
불에 탄 얼굴들이
창문 밖에 내걸리고
물의 푸른 음절이
붉은 알파벳으로 부서져 떨어질 때





바다에서

선풍기는
절대로 끄면 안 되었다
무더운 시간 동안
배의 고양이는
빈 탄산수 물병 사이에서 잠잔다

모든 해안은
연기 속에 사라져 버렸다
하늘의 푸른 막이
늘어난다 그것은
잠옷을 입은 사람들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전에 찢어질 것이다

약쑥을 바른 불에 탄 상처는
오늘도 낫지 않았다
우리보다 먼저 배를 떠난 사람들이
세워놓은 선장,
어젯밤에도 그의 얼굴이
나침반에 반사되었다
아무도 통지해 주지 않는 다가오는 태풍에
나침반의 바늘은 이미 무뎌졌다







황혼

황혼은 여성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일찍이 그것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친다
황혼이 어깨를 드러내고 나타날 때
다른 이들은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킨다
물고기들이 황혼을 향해
강 밖으로 뛰어오른고
함정에 빠진 새들은
황혼이 다가올 때 다시 한 번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첫 번째 불빛이
황혼의 가슴 사이로 비추인다
황혼의 입은 오후의 바람을
잠재우지만
상점의 여점원들은
황혼의 눈 앞에서 길을 잃는다

검은 나뭇잎으로 뒤덮인 곳에서
둘은 밤을 기다린다






정오의 싸움

하늘에서 두 가시가
싸우고 있다
그들의 휘어진 칼이
푸르름 속에 엇갈린다
그 아래 풍경은
포플라 나무와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황금빛 수풀 속에서 내다보는
눈동자들
하나가 쓰러지기를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싸움은 계속된다
한 시의 빛이 두 시의 빛에 의해
꽃피는 숲속으로 밀려날 때까지
뜻밖에도
병사들과 말들은
햇빛 앞에 엎드린 그늘로 사라진다
정오는 지나갔다






꽃의 승리

그때 아이들에게
그들의 장난감이
싫증났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들은 야생 수선화 다발을 잡아뽑았다
고양이들이
낯선 식물을 쫓아간다
순간들은 서로 구별된다
붉은 제라늄과 흰 제라늄이 구별되듯이
삶은 자기 확신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개의 앞발의
상냥함과 같았다
브라우스 밑으로 기어가는
나뭇잎 속에 꽃은 이겼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꽃다발을
또는 고목의
그림자를 선물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긴 속눈썹 뒤로 사라져 갔다
꽃을 바라보는 것은
가슴과 허리를
소용없게 만들었다





죽은 계절

너무도 고요하기 때문에
조상의 사진이
벽에서 떨어질 것 같았다
쪼개진 배 몇 개와
보룔레 술병이
정물 속에 합류했다

잉어와 죽어가는 파리의
시간이었다

오후는 무거운 눈까풀 아래에서
깜박였다
그러나 어제 여기에서 선원들의
명령을 주고받던
아이들의 돛단배가 떠 있는 연못가에서
심장의 소리를
한동안 들을 수 있었다

엊그제는 어쨌든
모든 것이 달랐었다
죽은 계절은
아직 엷은 풀잎의 냄새 속에
살아 있었다

이제는 바닥에
깨어진 그림들이
누군가 벽 밖으로 걸어나와
그 그림들을 웃으며 주워 올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잠을 깨어나며

장미, 라는 말을 처음 하는가?
이전에는 나는
맞지 않는 이름을 불렀었다
내 손가락을 에워싸고 있는
시간은
무게가 없다
만일 내가 그것을 느낀다면
이미 늦은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 날은
눈을 치켜뜨고 있다
밤은 눈까풀 뒤로
물러난다








내가 잠자는 동안
한 아이가 손에 들고 있는
장난감이 녹슬고
호흡과 호흡 사이에서
사랑이 색깔을 바꾼다
문설주의 칼은
지나가는 사람에 의해
내 가슴 속에 꽂히기를
헛되이 기다린다
살인자들도 지금
모자 아래에서 꿈꾸고 있다
고요한 시간 잠자는 시간
눈에 띄지 않으려는 자들의
맥박소리가 들린다
말하여지지 않은 말들의 지혜가
늘어난다
이제 꽃들이 조심스럽게 피어난다
놀라 바라보는
눈들이 없으므로






숨어 기다리는 금붕어

자신이 관찰되고 있다고 생각한
금붕어는 다른 어항을 찾았다
거기에서 금붕어는
어제 죽은 정원사의
푸른 그늘을 좀더 잘 엿볼 수 있었다
죽은 자는 서서히,
생전에 그가 바라보던
나무들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붕어는
정원사의 손의 무덤 밖으로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들을
부드러운 입술로
잡아당길 수 있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안의 바람

웃음소리와 문 닫히는 소리 속에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온다
몸을 구부리지도 않고
그는 램프를 쓰러뜨린다
그리고 적의에 찬 형제들의
눈 속을 들여다본다
성냥불빛 속에서 그는
저녁인사도 하지 않는다
그는 조상들의 머리를 부서 버린다 그들의 흉상은
제비꽃다발과 함께
쓰레기 속에 던져진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그는 누군가의 어깨를 타고
벽을 따라 돌아다닌다
어둠 속에서 그를 붙드는 사람은
다음 날 아침 깨어나면
낯선 바람의 장미가 머리에 꽂혀 있을 것이다






역사

남자들이 광장으로 깃발을 들고 갔다
그때 수풀 속에서 반수신들이 뛰어나와
깃발을 밟아버렸다
그러면 역사는 시작될 수 있었다
우울한 국가들이
거리 모퉁이에 부서져 떨어졌다
연설가들은
불독을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젊은 여자들은
용감한 자들을 위해 단장을 했다
그 신화 속의 바눗신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는데도
끊임없이 허공에서
목소리들이 다투었다

결국 남는 것은
목 위에 놓이는 손





배척지

이제 방금도
젖은 판자지붕으로부터
물이 흘러내렸다
말탄 목동의 무리들이
빗속에
모자를 꼭 잡고
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들 뒤에
구름먼지조차 일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아직도
병든 짐승의 냄새가 난다
총소리의 메아리가
마굿간 벽에
환상처럼 잠든다
그러나 죽음 속에서는
어느 목소리도 변하지 않는다
마지막 수탉은 
오래 전에 도살되었다
그의 머리 없는 그림자가
아직도 가끔 비틀거리며
맴을 돈다






호숫가에서

1
차가운 얼굴의 돌들을
낚아올리러 호수로 갈까
그리고 도망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향해 그 돌들을 던질까
호숫가는 가슴 속의 낚시바늘을
기억하기에 또는 죽은 송어들을 위해
꽃을 뿌리기에
좋지 않은가?

언덕에서 깜박이는
익사한 사람들의 눈을 찾으러 가자
그리고 푸른 물을 조금
이제 곧 물가에서 잠이 들
저녁에게 들고 가자

2
여기에서는 목마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니?
난파된 배의
그림자 아래 누우면
혀는 다정한 광물질의
맛으로 젖어 있다
미풍이 살그머니 일어나
속삭일 입도 없는
고요의 흉상을
두 손으로 들고 온다
너희들을 닮은 모습이
머리도 없는 밀물에
떠내려갈 때까지
그렇게 오래도록 너희들은 쉬고 있다

3
우리들의 가슴 쉬에
그려 놓았던
닻을 씻어 버렸다
파도의 가슴이
목 위에까지 올라오는 적은 없으므로
우리는 웃었다
우리는 이제는 메기들의 선장이 아니다
단물이 한참 동안
발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밤이
검은 새의 몸을 한
세이레네스처럼 왔다





로빈슨

1
몇 번이고 또 다시
나는 한 척의 배를 향하여 손을 뻗는다
맨손으로 배의 돛을
잡으려고 해 본다
처음에 나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배들을 모두 잡았었다
그렇게 나는 송어도 잡는다
그러나 계절풍은 나의 손가락을
눈여겨 보았다가 그것들을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달아나게 했다
혹은 노와 나침반을 
부러뜨렸다 배들이란
부드럽게 다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이름으로 불러 주었다
그러면 그것들은 언제나
마치 나의 이름처럼 울렸다

이제 나는 다만 복종할 줄 모르는
몇 마디 낱말들과
어울려 살고 있을 뿐이다

2
나는 셈하기를 단념했다
차라리 손가락을
짠 바닷물 속에 하나씩
담그어 볼 뿐

벌레들이나 담배 잎사귀들은
지난 날 내가 허비했던
시간을 알지 못한다
나의 마지막 이웃이던
그 피리 불던 사람은
(언젠가 민요를
익살맞게 불러보기도 했지만)
바다에서 죽었다

내가 그 아래로 발을 뻗고 앉아 있는
책상 위로 가끔
한 줌의 햇빛이 비추인다
나는 이제
그 무엇에 대한 그리움도
가질 필요가 없다

3
어느 한 곳에서
의자 위에 아주 오랫동안 앉아
몸 속에 비가 오는지
또는 간 속에
아직 전갈이 움직이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는 이 습관

번개불을 세어보고
남아 있는 성냥개비도
모두 세어 놓았다

지칠 때까지
그리고 마지막 돛대 위의 깃발을
바다 속에 가라앉힐 때까지






일요일

피도 그을음도 없는 시간

일요일은 언제나
마른 꽃의 무덤으로부터 온다
일요일은 손 위에
자신의 과거를 들고
산책자들에게
브라보 라고 외친다

집안에는
목이 잘린 꽃들이
남아 있었다

사악한 눈길을 가진 시간!
파리와 함께 밀크 커피 속으로
빠지는 눈길

노란색의 커다란 문이 갑자기 열린다
천천히 배가 내리기 시작한다
죽어 잠들어 누워 있는 모두 위에





지나가는 여인에게

여자들의 거리로
초원은 너에게
라벤다를 들고 온다
강물은 거울을
바람에 기대어 세워 놓는다

그러나 너는
눈까풀을 꼭 감고 있다
그리고 실망한 지도는
네가 잊어버린
하늘 아래에
물고기와 포플라 나무를 펼친다

한 비행사가
네게 손을 흔든다
그의 무덤 밖으로
낡은 병의
밑바닥으로부터







포르투갈에서

수도사의 광야

수도사들의 죽음은
나무껍질을 뚫고 들어갔다

바람은
바다의 복수
잘 꾸며진 공기가 되어
바람은
잠자는 미모사나무 위에 앉는다

우울은
기나긴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 눈 위에
노래의
눈물이 솟는다






한 사랑의 시작

우선
아트로핀에 의해
커진 것 같은 눈동자

누가 푸른 샘물에 빠지는가?
누가 하늘을 덮는가?
누가 다른 손을 씻지 않는
손에 대해 말하는가?

그 다음
이와 혀의 근접
진실을 말하기는 쉽다
그 사이에 뻐꾹 하고
우는 새는 없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가오는 것들
누가 꿈을 펼치는가?
누가 작은 글씨로
밤은 검은 어깨를 가졌다 라고 쓰는가?

이렇게 깊이 잠들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차츰 사람들은 다시 배운다
샘물이 마른다는 것을






추위

얼어붙은 물고기 같은 추위
얼어붙은 바람 속에
얼어붙은 눈물

우군가의 어깨 위에
유리 한 조각
한 조각의 샘물 또는
실개천의 굽이

허공을 나르는 숯
소리없는 까마귀
유리 세공인들의 외침만이
거리에
남는다






하얀

하얀. 찢어진 식탁보.
누군가 그것을 흔든다 동풍의
하얀 손
누군가 말한다, 눈이 온다고
차츰
찢어진 공기가
추위에 눈을 뜨게 한다
눈은 묘사하기에 아름답다
시간은
하얀 편지 만큼 길어지고
녹을 때까지
서리와 사과 냄새가 난다





도메니코 스카를라티를 위한 비문

허공의 모자는
자기의 이름을 찾는
새,
또는 피아노 없이
지상에 남겨진
모든 이들에 대한 가벼운 목례

모자-
손가락이 슬퍼
움직이기를 잊었을 때
소나타를 거두어 들이던
하늘에 대한 기별

모자- 그것은
밝은 깃털 밖으로 잠시 지저귄다
그리고 너의 빛 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무엇인가 끝나고

무릎 위에
동화책을 하나 올려 놓아

물 속을 가르고
달려가는 것 말고 무엇이 있지?
무덤에서 무덤으로 가는
짧은 여로

지난날은
마치 풍경 같아
그 속에 곧 사라져가는
여인들

이제는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
그림책을 뒤적일 때
종말은 다가온다






유년시절

병 속의 촛불
유년시절

어둠의 심장이
목탄처럼 타고 있다

강목에서는
밤이 새도록
배들이 서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꿈 하나가
천장에서
뱃머리장식처럼 나타났다

나뭇잎, 녹색의 엷은 베일
나는 배저강 위를 날아 헤매이다
뛰어오르는 회색 넙치에게
호소하던 갈매기였다





겨울에

1
신뢰할 수 있는 어둠

이제는 한 손이
다른 손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추위의 눈 앞에서
불을 피운다
어제에 대한 기억은
내일의 이야기
단어들이 입안에서 얼어붙는다
언어는
입술 앞에서
연기처럼 죽는다

빛의 위기는 계속되고
서리는 노래하는 기계
그 음율은 멀리
들판까지 들린다

유리창 앞의 꽃에게 말해라
밖은 겨울이다
얼어붙은 강이 있는
풍경의 느낌은
관용이라고 할까

참된 삶은
흰색이고자 한다
다채로운 색깔의 어린이 놀이는
끝났다

걸어가는 동안 모든 것을 기억해 둬라
가는 길과 오는 길 사이에
눈이 내릴 것이니





거리에서

1
물구나무서기 내기를 하는 다리들이
허공에 기둥처럼 서 있다
손수건과 손으로 휘젓는 빛 속에
힘 있는 말들의 장소

시간계획 없는 사람들은
바람 속에 손가락을 내밀고
비 속에
그들의 영상을
다시 보게 되기를 기다린다

농사는
낡은 鋪道 사이의 풀처럼 죽어갔다

2
집안에서 펼쳐진
그림책 속안까지 회색,

사람들은 배를 타고
당황하여 말한다
아직도 비가 오네,

또는 나는
너무 큰 모자를 썼지

습관적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사람들 틈에서
높은 바다에서
질식하여 죽을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3
폭포의 소음

아무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발끝으로
먼지구름 속을 걸어간다
그렇게 해서
발걸음을 셀 필요도 없이
나는 멀리 간다

주먹을 쥐고 위협하는 이들은
새로 붙인 포스터의 냄새처럼
뒤에 남는다
종이 파는 사람은
벽의 찌푸린 얼굴이
바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4
철자법에 맞지 않는 대로
한 지역을 말 타고,
자전거 타고 지나기

아침이
너무도 아름답기에
한 배우는
혼자 대사를 읊는다

창 밖으로
목소리와 동전들이 떨어진다

공기여, 아스팔트 위의
작은 누이여,
소음이 없는
저 높은 곳에 대한
그 많은 기억을 가지고
이리로 오라






나를 위한 풍경

1
그 속에
광물질과 형용사를
모을 것

나무 그림자들은
여러 가지로 묘사할 수 있다

한낮은 그 속에서
기하학적인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를 먹는다

나의 풍경은
바람처럼 배고프게 한다

팔이 긴 사람은
하늘을 만질 수 있으리라

지친 새들은
허공에서 잠을 잔다
습관적으로
색색가지 과일을
손에 들고 있다

기나긴 황혼의 전설

밤은 불탄다 :
쌓아 놓은 목탄

2
연기구름의
믿을 수 있는 아름다움

확신은
지평선에 메아리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버들가지의
사분의 일 박자의 멜로디 :
일어나는 소음들은
나방이의 날갯짓처럼 사라진다

어제 유클리드가 정돈해 놓은
검은 올리브의 들판

나는 그 들판이
내 눈 앞에서
마른 빛 속에 어른거리게 한다

3
소금기어린 바닷가에
비치는 작은 배

젖은 장미으 냄새가 난다 :
죽음의 통고

푸른 들판을 가로질러 가기 :
들판의 침묵은
옮겨 놓을 수 없다
내 눈까풀 위의 풀잎 가루

나뭇잎이 떨어지는 낮의
부서질 것 같은 얼굴
조심스럽게
그 위로 몸을 굽힌다

스스로 죽어가는 장미꽃들은
지나간 날의 詩들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






시간

시간, 그것은
주머니를
피로 적시는 것

열린 몸뚱이로부터
목숨이 흘러나온다

날들, 그리고
그 날들이 벌이는
사라져가는 사람들과의
고요한 거래

한 달은 그 다은 달에게
다가오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모래 위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준다

아무리 좋은 날씨도
암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정돈된 종이들을
해마다 불태운다






늙어감

1
손톱으로
햇수를 
긁어낸다

선잠,
짧은 문장들로 된 꿈

환상을 덮어주던
포도주 상점에 대한 기억과 함께
검은 샹베르탱
(그의 영상이
병 속에 가라앉는다)

한 방안에서
죽어가는 알파벳과 함께 살아가기

내게서 언어를 빼앗아가는
낯선 입

그 낯선 입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참을성 있게 듣는다

2
채색된 감정처럼
변해가는 육체

지친 목소리가
허공에 실려
지나가 버린다
흩어지는 명확성

이전에 있었던 것에 대한
혼동된 견해

분명히 살았던 죽음에 대한
예는 많이 있다

언어의 덮이 놓여져 있다

나는 신중하게
그 근처에서
움직인다

3
먼지 쌓인 여행 사진들
어제 우리는
숨죽이고
그곳들을 편답했다

땀흘린 사랑의
엷은 흔적

사람들은 나의 집 안으로
격언들을 가지고 온다
그것들은 조용히
나의 보호 아래 살게 된다

쏟아지는 빛 속에
한 풍경의 전망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내 이마 앞에
불꺼진 촛불의 밤

4
잊혀진 불길

오랫동안 나는
몇 개의 단어를 쫓는다

단어들의 눈[雪]을
나는 입안에 모은다

단어들 속의 겨울이
커진다
하얀, 이를 수 없는
숫자를 가진
한 삶의 수학적 면

나중의 것과의
등식
고독한 이름자

혀 밑에
차갑게 남아 있다

5
눈 뒤의
램프는
다 타올라 꺼져 버리고

이것, 저것을 위해
경험은 충분하다

땅밑을 흐르는 물의
졸졸거림
귀 안에서 점점 희미해진다

낡은 회중시계에서
읽을 수 있는
지상의 시간

헤매이는 영혼은
손바닥 위에
멈춘다






눈으로 덮인

여전히 더 깊이

우리의 하얀 발자국은
잠든다

천천히 휘장이
녀려쳐진다
맥박은 손목에서
소리없이 뛴다

추위는 입앞에 서 있다

돌아보지 마라
아무도 우리 눈眼 위에
눈雪을
찾아내서는 안된다






확신하기 위하여

나는
내가 지금 있다는 것을
확신해보려고 한다
똑같은 순간에
내가 있다, 수염 없고,
입술 뒤에 창백한 잇몸과
바라보는 동안 사라지는
살갗과 머리카락이 아닌
다른 것을
너무 많이 볼까 두려워
반쯤 뜬 눈,
나는 여기 있다 나의
오른손은 호주머니 속에
넣지 못한다
나는 나의 오른손을 종이 위로 가져간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쓰기 위하여






충분히

모든 것이 충분히 묘사되었다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남은 것은
너무 많이 써서 닳아버린 풍경,
공감, 감동,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값비싼 조언
모든 것이 충분히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종이로 잘라
벽에 붙여놓는
건전한 그림은
생기지 않는다
결점들은
특별한 장점으로 여겨진다
환상의 금이
길거리에 놓여 있다
사랑은 움켜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있고
배경 없는 주위
모든 것을 제 때에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경계선이 표시된
지대를 사람들은
신중하게 올라간다







언제나 용감한

언제나 용감한
그 사나이는 확신에 찬 태도로
유명했는데
차츰 그는 그와 반대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어두워지는 것이라든가,
무도회장에서 발이 부러지는 것 따위의
불행한 일들을 허용했다
숲속에서 그는
진지한 시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정원에서 그는
꽃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는 물질적인 것이 쌓이는 것을
경멸하고
격언대로 살았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턱을 굈다
마치 <어딘가 불타고 있지 않은가?>
하고 물으려는 듯이
다감한 확신은
그에게서 사라졌다






그림자

1
가장 푸른 곳으로
소풍나갔던
지난 어느 날 아침의
행복감은 그렇게도 아름답고 헛되다
바깥 세상의 폐허는
천천히 무너지며
한쪽 구석에서 휘적이던
장난감들을 땅 속에 파묻는다
기나긴 그림자가
나의 두 손 위에 떨어진다

2
일찍이 사람들은
가장 좋은 옷을 입었다
영원의 얼굴은
선명하게 드러났고
지체없는 일,
소시민의 집에
열려진 창문으로
위안과 환상처럼
바람이 방을 스쳐 지나갔다
다가온 그것을 위하여
사람들은 급히
표현을 찾았다
그림자의 영역은
제한되어 있었다

3
이상한 사람처럼
낮의 햇빛에서
유리된 곳에 서 있기
그리고 정해진 기간을
괴로워하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의무를지지 않기
육체란...
이제 진지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자신의 이야기로 바라볼 것
공포도 회귀도 없이
진실을 지닌 평화 속에
가고 오는 것은
집안에서만
마침내 입을 열고
눕게 될






시간의 흐름

1
흑판 위의 분필로
끄적거려 놓은 이름들
시간의 흐름의 통고
눈은 늙고
고요한 산화물, 가을을 바라본다
통풍 앓는 손가락으로
안개 속을 움켜쥔다
남겨진 물건들이
빗속에 썩는다 종이들, 옷들,
음식물의 표면은
곰팡이 슬고
참을성 있게 허락한다
느려진 호흡으로
시간이
빛 속에서 지니고 있던
특성을 이제는
알아볼 수 없게 된 그 어둠 속에서

2
잠자면서 이상한 언어를 말한다
죽음이 귀기울인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벌레들 소리
한동한 허튼 소리로 살며
갖가지 옷을 입은
자신을 관찰한다
매일매일의
일어나고 잠드는 재주
잡다한 소유물 더미가
이리저리 널려 있다
사람들은
지나가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문을 열고, 여자들로 가득 찬
한 방을 지나간다
사람들은 언제나 똑같은 질문에
여러 가지 목소리로
대답한다

3
가구 사이를 산책하기
점점 나를 좁게 에워싸는 공간 속에서
나는 움직인다
더위 속에 視界는
사행선이 된다
과거처럼
떠오르는 호나상
지나가는 자동차가
내 옆에 먼지를 일으키는 동안
나는 내게 남겨진 것을
손으로 가리킨다
천천히 문장 속에 담긴
감정들이 사라져 간다
방의 벽이
껍질처럼 벗겨진다
나는 사물들이
그들의 이름을 그대로 갖고 있게 한다

4
마지막 문장의 여운
보답 없는 사랑
공기로 휩싸인 육체
모든 것은 사라진다
한 남자 옆에
한 여자의 움직임, 또는
겨울에도 푸른 나무들
사람들은 말없이 자기의 일을 한다
그림들은
설명으로 풀린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더욱 추워진다
나는 계절을 묘사하기를
단념한다






자장가

이제 잠들어라 아니면
적어도 잠드는 척이라도 해라
우리들의 세상으 방은
너의 손목처럼 차갑고,
또는 무어라 달리 표현하든, 허리 아래로
겨울처럼 다가오는
추위 속에 맞닿은 살갗처럼 차갑고
이제 잠들어라 내가 너를
춥게 해 줄 테니
그것이 달리 사랑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너의 손가락은
너의 겨드랑이 털 속에, 또는
이 차가운 노래 속
그 어디에 있든지





배가 있어야 할 곳

배는 물에 있거나
또는 가지런히 뻗어 있는 나무들 사이로
좌초하지 않고 떠오르는
판화로 벽에 걸리거나
물론 그것은 또한
해전에 대한 이야기가 씌어 있는
책에도 있을 수 있다
방안에서 낡은 전축에 귀 기울이며
종이봉지에서 과일을 꺼내 먹으며
키가 삐걱거리며 부러지는 것을 읽는다
간접적인 체험을 자기의 것으로 가다듬으며
어떻게 물 위에서도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목격할 수 있음을 기뻐하며
다른 사람들의 활동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며
나뭇잎 사이를 흘러가는 벽 위의 이 배처럼
모든 것이 행복한 날들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감한다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우선 모든 것이 예전대로 있다
기억의 구조학
유년기는 맥아커피의 냄새가 났다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현실로부터 달아난다
그 시절 나의 산수공책은
제비 그림으로 가득 찼었다
사람들은 시계 속에
죽음이 앉아 있다고 말한다
나는 눈을 씻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본 것을
기억해 두려고 했다





행복

갑자기 나는 혼자 말을 한다
어둠 속에서, 정말 아주 잘,
마치 방 안에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문이 열리고 네가 나타난다
그것을 믿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그것은 되풀이죄지 않는다
모든 것이 진정이라는 느낌을 가지며 천천히
나는 너를 실제로 본다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거의 확신한다, 밤이 그렇게 시작된다고
어떤 이야기처럼 조용한 광경
지금 나의 감관은 어느 것도 증명할 수 없다
갑자기 나의 인생이
짧은 출현으로서의 이 행복을 지닌
새로운 사건으로 느껴진다
전혀 별다를 것도 없으나 그래도 내 마음에 드는 그 무엇인 이 짧은 출현
정말로 나와 단둘이서만
여러 가지에 대한 착각 속에, 작별하며,
내 옆에 누워, 밤새도록,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천국과 지옥

분필로 너는 땅 위에
이 쪽에는 천국 그리고 저 쪽에는
지옥이라고 써 놓았다
천국과 지옥 : 나는 너를
이쪽에서 또는 저쪽에서 사랑할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 길에서 하던
그 옛날의 놀이를 너는 다시
이 사이에서 혀끝으로 한다
천국과 지옥은 둘다 매우 중요하다

나는 그 어린애 같은 깡충거림을 바라본다
천국과 지옥은 멀다
네가 벌써 달아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나는 안다
네가 내 손 밑에서 빠져 달아나는 것을 나는 느낀다.


실재의 비실재화 

///칼 크롤로브 시해 해설


칼 크롤로브에게 세계는 자연이다. 그 자연은 감각적 풍요와 마술적 초월성이라는 표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정한 자연과 불가해한 자연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하나는 다른 하나에 의해 예기치 않게 습격을 당하기도 하고 서로 상호관계를 가지기도 하며 때로는 이미 하나로 섞여 있어 구별할 수 없는 일체이기도 하다. 
먼저, 가시적 자연은 파악되었다기보다 사진으로 찍듯 모사模寫되고 있다. 그는 자연을 언어로 인화印畵한다. 

마르지 않는 라커처럼 빛나는 
새털구름의 반사, 
그리고 나는 낮은 소리로 우는 
바람의 낭적과 이야기를 나눈다. 

-「물이 있는 풍경」 

그의 시의 울림은 피리소리 같은 바람소리, 새의 지저귐 같은 시냇물 소리, 그리고 그 질감은 <아직 마르지 않은 수채화의 흰 물감 같은 구름>과도 같다. 

타오르는 카밀레꽃 사이로 
[······] 
라벤더와 제비꽃의 
[······] 
단풍나무로 울타리쳐진 고요. 
[······] 
흔들리는 나뭇잎 속을 흘러간다. 

-「나무 밑의 식사」 

그의 세계는 기지나 반어 없는, 음악으로 가득 찬 공간이며 그의 시간은 계절이며 나날의, 또는 인간에 대한 걱정은 유보되고 있다. 거기에는 대비나 긴장이 없고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결정이나 책임이 없는, 다만 울림과 메아리만이 있고 사물의 근원이 저절로 드러나며 언어의 표현이 밀도와 자유를 동시에 갖는, 무게 없이 흔들리는 <돛단배의 웃음소리> 절대음악의 공간이다. 자연이 그렇게도 많은 풀잎과 잎사귀, 물고기, 빛, 공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의 모티브는 끊임없이 변주와 반복이 가능하다. 매번의 시는 아직 다 쓰지 않은 재료가 남아 있고 미완이며 계속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시적 모티브의 실현은 쉽게 사라져버리며 관념Idee으로 결정結晶되지 않는다. 후기로 갈수록 이 특징은 더욱 분명해지지만 크롤로브의 시는 확정된 결말이 아니며 잠정적이며 흰 여백을 가지고 있으며 투명하다. 
한 편의 시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단자Monade처럼 완전히 폐쇄된, 따로 떼어낸 조형물이어야 한다는 벤Gottfried Benn의 이론에 대립하여 크롤로브가 기공氣孔이 있는 시, 숨을 쉬고, 잉태하며 계속 다시 낳는, 절節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고 시간이 드나드는 시를 표명했을 때 그의 이 요청은 자신의 시의 특징을 더없이 잘 말해 준다. 그의 시는 실제로 날개가 달린, 바람을 실은 유기체처럼 가볍고 새처럼 날고 때로는 호흡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벼움, 투명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 라는 질문에 크롤로브는 무엇을 위하여 쓰는가? 로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독자를 위해서, 인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른바 살아 있지 않은 대상들, 풍경이나 하루 중의 어떤 시각, 도시들, 정원들, 거리 모퉁이, 동물들, 공기, 어떤 사물 위에 비추이는 빛, 추위, 버려진 벽, 돌, 그 돌 속의 구멍, 비애, 육체적 고통 사이의 화해, 들리지 않는 숨소리, 강아지와 고양이의 편안한 잠, 관습적인 방법으로 대답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위해.>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시를 세상의 모든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에게 헌정하고 있다. 그는 바람, 빛, 물, 공기, 나뭇잎, 새의 깃털 등을 분명하게 실재하는 것으로 파악해 보고자 시를 쓰는 것이다. 일견 목가적이며 쾌적한 휴식이었던 그의 풍경은 나와 자연 사이의 허무적 관계를 보여 주는 은유인 것이 드러난다. 흐르는 물처럼 순수하고 낭랑한 은유로 이해되었던 「적막한 해변」을 살펴보자. 본문에서는 역자가 번역의 한 방법으로 독일어 원문의 문법적 구조를 다소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낱말의 모음과 자음의 구조나 운율이 헝클어져 버렸지만 크롤로브의 원문은 아름답게 짜여져 있어 마치 노래가사와도 같이 울린다. 그러나 견고하게 틀에 짜여져 리듬,운율, 격格까지 맞춰진 이 시는 거듭 읽음에 따라 서술이 수상하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노래처럼 박자가 맞던 문장들은 단순하고 우아하지 못하고 낮고 고요하다. 

돛단배와 
수염에 걸린 황금 같은 
웃음소리는 사라졌다. 

돛단배와 웃음소리는 사라졌다라는 첫 문장은 제목 「적막한 해변」에 부합된다. 그러나 <웃음소리>는 곧 주문장의 나란히 걸린 두 개의 주어 중 하나에만 걸리는 관계문으로 단절되는데 <수염에 걸린 황금 같은 웃음소리들>이란 비유는 낯설다. <수염 속의 금>이란 비유는 웃음소리라는 청각적인 것을 시각적으로 설명했다. 독자는 두 가지를 어떻게 비유해야 할까 망설이게 된다. 그 다음의 <가쁜 숨>이란 배와 웃음소리가 방금 사라진 것처럼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는 느낌을 연상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숨>은 다시 <담 위의 그림자>라는 말과 문법적으로 병렬되는데 숨이나 그림자는 바로 곧 사라지는, 나아가 허무한 것에 대한 오래된 은유가 아닌가. 세 번째 관계문은 <석회를 먼지로 부서뜨리는 그림자>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맞지 않으나 가쁜 숨, 그림자, 석회는 먼지로 된다는 세 가지 요소는 덧없음, 버려짐, 고독, 비애의 상관개념을 찾는 시인의 의도를 담고 있는 상징이다. 그때 <비애가 녹지 않고 남아 있다>고 시인은 토로한다. 그 비애는 검은 꿀 같고, 새똥 같고, 죽음 같다. 뜨거운 벽돌 위에 들러붙는 비애는 아마도 시인이 고통으로 불타는 뺨 위에(「뺨위에 붉은 연지를 바르는 여자처럼」) 죽을 지경으로 비애를 덧칠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나 죽음은 왜 <가벼운>가? 그것은 꿈 또는 환각상태의 죽음을 뜻하는 것일까? 그때 카드놀이 하는 선원들이 나타난다. 적막한 해변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기억이다. 선원들의 실존 방식은 <살 속에 홀로 있다.> 이것은 문득 성서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자기 자신에 육화Inkarnation된 존재, 그러나 그것은 성서와 무관하다. 유한한 시간 속에 있는, 살 속에 처박힌 존재에 대한 섬광 같은 통찰이다. 그들의 <풀어진 눈까풀 사이로 담배연기가 스며든다.> 현실은 시인 속으로 스며들어가 표상과 상념은 허물어지고 실재의 상실은 끈적끈적한 비애를 남긴다. 이제 마지막 절은 비가Elegie처럼 된다. 

그들이 밤의 푸른 장막을 향해 
던졌던 그들의 칼은 
솟구치는 영원의 날카로운 
바람 속에서 무뎌졌다. 

시인은 자신의 상상세계 속에 있다. 어느 선원도 칼을 <푸른 밤의 장막>에 던지지 않는다. 그가 보는 것은 상징이다. 칼은 밤과 영원을 부르는 상상의 칼이다. 그리고 영원이란 종교적 의미를 지니지 않고 다만 이름할 수 없는 비시간의 팽팽한 저항, 주위에 빈틈없이 들씌워진 밤을 뜻한다. 여기에서 보여지는 영원 앞에 유한한 인간의 증언의 몸짓은 유약하고 사소하며 그 인간은 무지하고 조야하다(「칼을 던지는 선원」). 크롤로브의 문체는 같은 시대의 형이상학적 시인들에 비해 지적이지 않고 철학적이지 않으며 학문적 주제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시는 감각의 확실성과 대담한 상상력으로 더욱 인상적이다. 
적막한 해변의 풍경 뒤에는 파악할 수 없는 초월성Dämonie, 그리고 자신을 감추고 있는 시인의 비애가 있다. 다시 이 시의 구조를 살펴보면 음절들은 분리되어 있고 문장은 시작부터 굳어 있으며, 관계문으로 흩어져 산란한 문장구조는 긴장과 불화의 장을 구성하기 위한 것이었음으로 밝혀진다. 
여기에 이제는 시대 체험이 합쳐져 전원시인에게는 기대하지 않았던 은유적 굴절이 시작되는 것을 따라가 보자. 

내 가슴의 풀잎에 고통이, 
고뇌가 입을 다물고 
하늘은 검은 색의 천을 휘감을 때, 

-「낯선 병사들의 밤풍경」 

재로 덮인 강 
[······] 갈대로 뒤덮인 밤에 
숨어 있는 다정한 함정 

-「1950년 송시」 

시인이 서 있는 땅이 시대의 사건으로 흔들려 자연은 더 이상 영혼의 안전한 피난처가 못 되고 여름의 아름다운 대지는 과격한 절망으로 변한다. 이때에 그의 시에는 낮의 풍경은 없고 밤의 풍경만이 있다. 
황혼이 흘러가고··· 어둠의 요정이··· 하늘은 검은 색의··· 고요한 별(「낯선 병사들이 있는 밤풍경」), 한밤의 가죽을 쓴 짐승··· 밤으로의 의식 없는 호흡··· 순찰꾼의 외침 뒤에 캄캄한 허공(「남자들」), 밤의 은빛 쟁반··· 갈대로 뒤덮인 밤(「1950년 송시」), 밤의 직물··· 사격의 암흑··· 야간보초의··· 밤의 논쟁··· 꿈 없는 잠(「한국 비가」), 암흑··· 나는 이 밤을··· 밤은 비수를 들고(「평화를 위한 시」) 
땅은 목가적 겸양의 제한된 구역이 아니라 우주를 떠도는 별이며 인류의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무대이며, <저주가 숨어드는 역사의 구름 속을 휘몰아쳐 지나가는 환상의 기사>인 시간은 영원한 회귀의 무시간성이다. 
낯선 대지 위의 모든 존재의 의문점은 비존재의 깊은 인식을 낳고 익명의 위험 앞에 자아는 비육체화Entlebung되어 <내 몸의 검은 색으로부터 도망친다(「강가의 야상곡」).> 
안전한 유클리드적 공간(어제 유클리드가 정돈해 놓은 검은 올리브의 들판-「나를 위한 풍경」)에서 벗어난 존재 체험은 새로운 시형식과 문체를 필요로 한다. 짧은 문장과 변화화음적인 운율을 버리고 기다란 문장과 힘을 가진 비가로 변하며 속도감을 갖기도 한다. 문체는 추상성을 띄어 전원시인이 아닌 의식서정 시인에게서 나타남직한 표현 공식이 빈번히 나타난다. 의식, 존재, 실존, 시간, 역사, 허무 등의 단어들이 그것이다. 
한국전쟁이라는 대상이 그의 흥미를 끈 것은 시민사회의 잠과 <죽은 자가 살찌는 한국의 비雨 사이의 동시성에 있다. 이 비가는 북위 38도에 대한 비탄이며 시인의 몫은 인류의 비극 앞에 <야간보초>를 서는 일이다. 그의 목소리는 <불 속에서 타고 있는 나뭇잎의 탄식처럼 아주 작지만> 인간의 역사적 실존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 근거를 찾으려 한다. 
오든 W. H. Auden의 「스페인 1937」을 떠올리게 하는 「1950년 송가」에서 크롤로브는 다시 정신적 상황이 낳은 존재의 비존재화라는 주제와 언어의 가능성을 탐색해 본다. 크롤로브의 존재 체험이란 종교와 무관하다. 그에게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초지상적인 어떤 실재 안에서의 안전감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연이라는 개념을 절대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분명히 존재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는데 그의 삶은 <우연의 임시로 지은 건물>이다. 이것은 <가상의 고향>이라는 공식과도 일치한다. 유령 같은 실재의 파괴로 시간의 비밀, 인간의 비밀이 밝혀지고 우연이 법칙이 되면 절대적 허무와 절대적 현존만이 남게 된다. 이제 그는 어디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까? 「1950년 송시」에서 크롤로브는 명상의 고뇌에 찬 미로를 지나 마지막 의심의 여지 없는 주어진 사실로까지 밀고나가고자 한다. 그의 의식은 모든 실재의 시종여일한 허무화와 자신의 실재성을 위한 실재에의 옹호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며 헛되어 사라지는 것들을 낱말들로 붙잡으려고 한다.> 실존을 언어로 확인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낱말을 존재의 바닥 위에 남겨 놓는다.> 그리고 <존재의 바닥은 빛나며 쓰디쓰다.> 
이 빛과 맛의 가치는 최종적 본질의 최후의 특징이다. 이 본질적인 감관인상Sinneseindruck 빛나다와 쓰다라는 허무의 근거 없음 위에 비치는, 입김처럼 얇은 막과 같아 그의 허무 체험의 바로 이러한 본질이 그에게서, 다른 비가의 시인들에것 보이는 열정이나 정신적 확신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시대 체험이 깊은 애가적 우울과 전면적인 허무주의에 빠지게 했을 때에도 크롤로브는 종교, 철학 혹은 예언적인 열정이나 감동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크롤로브는 근본적으로 대지의 가설에 묶여 있다. 이 글의 처음에서 언급했듯이 크롤로브의 자연은 경험 내에 있으며 초월적이다. 그는 자연 경험을 초월하려 하나 그가 가는 곳은 초자연적인 진리안이 아니라 그것은 다시 자연이라고 불리우는 진리이다. 비가의 주제를 다룰 때에도 그는 풍경 묘사의 전원시적 표본을 버리지 않으며 여전히 섬세하고 우아한 언어 구조를 잃지 않는데 그 버리지 못하는 망설임에서도 그의 주제에 대한 미결정을 엿볼 수 있다. 
크롤로브가 운율과 잘 세어진 연을 버리고 묶임 없이 비가적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을 때에도 전원시의 표본을 버리지 않는 것을 특히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연가들이다. 
인간의 같이 있음에서 흔들리는 현실감각을 떠받쳐 줄 새로운 이유를 만일 찾았다 해도 그는 사랑의 드라마를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운명적 긴장이 열기를 잃고 우울로 휘감겨 있을 뿐임을 독백한다. 이 연가들에는 처음부터 상대방이 부재한다. 상호관계의 대화Dialogue가 없다. 그저 있는 것 같은 뿐이다. 사랑의 긴장은 보편 세계에 대한 크롤로브의 정서 표현의 한 동기일 뿐이다. 

너는 갔다. 엔찌안의 피리들의 푸른 색은 검은 색으로 변했다. 

-「연가 2」 

이 사랑의 시는 부분적으로 자연시의 변주로 보이기도 하다. 

물들인 머리카락과 복숭아씨의 냄새를 가진 밤이 온다. 
박하 향내나는 밭 그루터기에 달이 서 있다. 
뱀장어가 자라고 있는 강 위에 이슬이 떨어진다. 

-「연가 2」 

여자 주인공은 전혀 타당성을 갖지 못하고 그녀의 모습은 구조나 조직이 해체되어 정물처럼 놓여 있는 옷조락이나 신체의 부분으로 재구성될 뿐이며 사랑하는 여자의 부재는 몇 개의 점을 이어놓은 별자리 표시처럼 된다. 

뒤에 남은 것은 방과 모직치마 위에 코르드쟈켓의 푸른 색, 
호기심 어린 모기 같았던, 지금은 없는 눈길. 

-「연가 2」 

크롤로브는 이 연가들에서 특히 아름답고 놀라운 환상적인 비유를 발견했다. 말하자면 은유적 간접성에서 비회화적인 표현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무한한 상상력으로 즉물적 상관개념들을 대비해 놓는 것이다. 그는 환영의 그림들을 예리한 사실적 초점으로 묘사한다. 

오후에 창문 앞에 공작이, 
그늘진 꽃다발처럼 내려앉았다. 
여섯 시의 햇빛 속에 
빛나는 머루 한 접시를 놓고 
너는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연가 3」 

또한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이 언어의 연금술에 의해 새로운, 틈없는 하나의 이미지로 집약된다. 

벽들은 불안과 한 목의 청동으로 벽지를 발랐다. 

-「연가 2」 

크롤로브이 이 새로운 언어실험은 어디에서 왔을까? 

독이 섞인 바람 
[······] 배들은 소리없이 나아간다. 

-「배」 

위의 시에서 이미 랭보Arthur Rimbaud의 「술 취한 배」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그 자신 프랑스와 스페인의 시인들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한 크롤로부의 시는 그들,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의 방법과 원리를 매우 특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언어적 성과는 비유의 매개체(···처럼)를 통하지 않고 은유를 직접적이고 마술적인 사실로 전환시킨 데 있다. 그들과 유사하게 크롤로브는 공기 같은 장미가 아니라 <공기의 장미><공기의 물><하늘의 물><빛의 송어> 또는 나무가 타듯 <타닥타닥 소리내는 가로등>이라고 말하며 시간이 <이교도적이며 초록빛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이 연결되고 현상과 개념이 무심하게 서로 흘러들어가 우리의 경험세계의 일반적 구별을 파괴하여 현실의 부분 속에서 비현실이 나타난다. 완전히 범주가 다른 두 대상물의 대비는 두 대상 간의 현존하는 비슷한 점의 발견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유사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사물과 표상의 경계는 크롤로브의 은유 속에서 사라진다. 표상 자체가 사물이며 상징은 장식이나 수식어가 아니라 환상 속에서의 주어이며 상징 같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며 실재한다. 
언어 유희의 의미유추적 힘에 대한 크롤로브의 무한한 신뢰는 결코 은유에 주저하는 법 없이 이상한 것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 우리의 순진한 의식의 구별이 통용되지 않는 연상을 계속해 간다. 구체적이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인 정감들이 서로 섞이기도 하고 비사실적이며 괴이한 사건, 사물이나 동물, 인간의 서로 연결지을 수 없는 관계들을 연관시킨다. 

누군가 창문 밖으로 
빛을 쏟아낸다. 
공기의 장미꽃들이 
피어난다. 

-「창문에서의 한 순간」 

이런 기이한 사건들은 후에 기이한 정물들에서 더욱 고조되는데 <쪼개진 배 몇 개와 보굘레 술병이 정물 속에서 합류한다.> 
이제 이 정물, 고요는 여러 단계를 거쳐 지나온 크롤로브 시의 기본 주제가 된다. 고요 속에서 시인은 사물을 투시할 수 있고 비관습적 단어를 유도해 낸다. 즉 사물 자체를 비관습적으로 만들어 모든 묶임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이때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사물에 개입하지 않는 시각과 대상과의 사이의 신중한 거리이다. 왜냐하면 <나무 그림자들은 여러 가지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롤로브는 이 거리감이 사실 그 자체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거리를 통해 순수 형태의 구조적 파악이 가능하고 시적 변화를 준비할 수 있다. 열매를 열매라 부르지 않고 <열매의 공식>이라 부르는 것은 대상을 다만 대상의 가능성에 놓아두기 위함이다. 사물 안으로 끼어들지 않는 냉담한 거리는 사물에서 무게를 거두어 대상은 대상 없음이 되며 수학적 본질과도 같은 질서와 추상적 순수만이 남는다. 
가느다란 윤곽만이 남은 크롤로브의 시적 장면은 이제 풍경 그림이 아니다. 

사람들은 말없이 자기의 일을 한다. 
그림들은 
설명으로 풀린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더욱 추워진다. 
나는 계절을 묘사하기를 
단념한다. 

-「시간의 흐름」 

자연 찬미자였던 클로로브는 <아무리 좋은 날씨도 암癌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하깅 이른다. 그와 함께 넘치고 풍요로운 운문이 아닌 가늘고 정확히 절단된 시형식을 갖게 되고 운율의 달콤한 성향도 사라지고 문체도 짧아지고 축소되며 표현도 간결해진다. 
그는 마치 유리창 뒤에서 바라보듯 참가하지 않고 어떤 기억으로 억눌리지도 않으며 의지로 인해 초조하지도 않으며 그의 서정성은 파토스pathos나 쌍티망sentiment이 되기 전에 반영refleion이나 반어Ironie로 남는다. 
이것은 마치 회화에서 조소로 옮겨간 것 같다. 그의 시에는 색채가 아니라 밝기(명암)만이 남은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초현실주의자들과 헤어진다. 초현실주의의 시에서처럼 언어가 암호로서 이미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엷고 섬세한 언어는 독자 자신 속에서 동음으로 울릴 때에 비로소 명백해진다. 
크롤로브는 될 수 있는 대로 간결하게 시를 쓰려 한다. <확실한 문장은 짧다>. 부문장에 오래 정체해 있지도 않으며 문장 사이를 어떤 접속사로 연결하지도 않고 암시만 준다. 

장미, 라는 말을 처음 하는가? 
이전에는 나는 
맞지 않는 이름을 불렀었다. 
내 손가락을 에워싸고 있는 
시간은 
무게가 없다. 
만일 내가 그것을 느낀다면 
이미 늦은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 날은 
눈을 치켜뜨고 있다. 
밤은 눈꺼풀 뒤로 
물러난다. 

-「잠을 깨어나며」 

이 시에는 다만 고요한 동작의 일관성 없는 표상을 건네 주는 문장의 단편, 연결 없는 배열만 있는데 그러나 그들을 하나로 만드는 시작, 전개, 그리고 끝이 있는 언어 진행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간결의 마지막 형태를 찾는 크롤로브의 문장은 끝내 동사 없이 축소되어, 그러나 완전한 문장을 능가하는 의미 함축을 가진 명사적 구조로 된다. 

병 속의 촛불 : 
유년시절 

-「유년시절」 

크롤로브는 유년기를 병 속의 촛불이다, 또는 같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존재의 상대성에서 볼 때 언어의 사실성은 잠정적 개념이며 사물의 적절한 은유를 발견하는 것은 관습적인 연습이므로 그에게 언어는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다. 사물이나 사실은 언어에 의해 의미 실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힘에 의해 사물과 사실은 새로 창조되는 것이다. <한 편의 시는 잔여물 없이 완전하게 끝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나 소재를 다음의 시에게 건네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 시의 마지막 은유는 다음의 시의 첫 번째 은유의 동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크롤로브는 말하고 있다. 그의 시는 인간과 사물에 대한 작은 부름이다. 

돌아보지 마라. 
아무도 우리 눈 위에 
눈을 
찾아내서는 안 된다. 

-「눈으로 덮인」 

그리고 나면 남는 것은 고요다. 이 고요 속에서 우리는 대상과의 거리, 방념 그리고 명백에 이른다. 
크롤로브가 시에서 일체의 인공성을 거두어 사물은 <그들의 이름을 그대로 갖고> 있을 때 이 유령 같은 유희에 인간은 어디에 있나?

어느 한 곳에서 
의자 위에 아주 오랫동안 앉아 
몸 속에 비가 오는지 
또는 간 속에 
아직 전갈이 움직이고 있는지 
귀를 움직이는 이 습관. 

번개불을 세어보고 
남아 있는 성냥개비도 
모두 세어 놓았다. 

지칠 때까지. 
그리고 마지막 돛대 위의 깃발을 
바다 속에 가라앉힐 때까지. 

-「로빈슨 3」 

이제 그의 시에는 화자話者 Ich가 없다. 분사나 부정사 속에 주어가 숨어 있거나 또는 있다고 해도 일반명사 사람man, 누군가jemand이거나 정관사, 부정관사, 지시대명사 등으로 대표된다. 화자는 누구나일 수 있고 나와 누구는 공동의 익명 속에, 공동의 단편성 속에서 구별을 잃었다. 그리하여 그의 체험은 체험표본이 된다. 
이 익명의 인간의 체험표본은 고독이다. 그는 더 이상 간결하고 더 이상 명백하게 표현할 수 없이 완벽한 무위의 자세에 놓여 있다. 

내가 발을 뻗고 앉아 있는 
책상 위로 가끔 
한 줌의 햇빛이 비추인다. 
[······] 
성냥개비도 모두 세어 놓았다. 

-「로빈슨 2, 3」 

데포우Defoe의 로빈슨은 구조되어 다시 시민적 규범으로 돌아가지만 크롤로브의 로빈슨의 운명은 무엇일까? 
<숨어 기다리는 금붕어>는 <어제 죽은 정원사>가 그를 그 속에 남겨 놓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정원사가 변한 식물에서 정원사를 찾으려 함에 죽은 자와의 반어적이며 결실 없는 관계만이 가능할 뿐이다. 존재의 배경으로서의 밤은 항상 거기에 있는데 이 밤은 날의 시작에도 천천히 <눈까풀 뒤로 사라지고> 있다. 죽음은 아무도 극복하지 못한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잠시 더 남아 있는 동안 그저 <잠시 기다려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로써 사라지는 삶의 시간이라는 테마는 더욱 강해진다. 모든 순간은 상실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크롤로브는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넣지 못한다.> 그의 오른손은 쓰기 위하여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 있다. 
나는 나의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넣지 못한다. 
나는 나의 오른손을 종이 위로 가져간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쓰기 위하여. 



- 김현성 ( 칼 크롤로브 詩集『나를 위한 풍경』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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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현대시>>시리즈를 일단락 마치며 - <<절실한 한마디>>를 추천한다... 2015-12-27 0 4113
790 윌리엄 불레이크, /// 칼 크롤로브 시해설 2015-12-10 0 6359
789 詩를 <<쉽게>> 짖자... /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자기 점검 2015-12-10 0 4037
788 로신과 한국 2015-12-05 0 4852
787 천재시인 - 李白의 음주시 연구 /// 술과 시인 2015-12-05 0 5272
786 남영전의 토템시 연구 2015-12-05 0 5127
785 민족시인 심련수 유작시의 정리와 출판을 두고 / 그의 대표작 시 해설 2015-12-05 0 4676
784 중국 조선족 문학의 흐름과 전개과정 2015-12-05 0 4105
783 중국 조선족 한글문학의 현황과 과제 2015-12-05 0 4687
782 중국 조선족의 文學地圖 다시 그려야 2015-12-05 0 4212
781 중국 력사상 가장 영향력이 컸던 詩 10首 / 초현실주의 대하여 2015-12-04 0 4021
780 한국 문단의 <<4대 비극>> /// <락서> 시모음 2015-12-03 1 4561
779 중국 조선족 시단의 奇花異石 - 한춘詩論 2015-11-21 0 4693
778 詩碑의 喜悲쌍곡선 2015-11-13 0 4564
777 詩人共和國, 碑共和國 2015-11-13 0 4376
776 詩碑가 是非로 되지 않기까지의 詩碑로 되기... / 詩를 고발하다... 2015-11-13 0 4704
775 詩碑 是非 ㅡ 세상보기 2015-11-13 1 4457
774 是非의 나라, 詩碑의 나라 2015-11-13 0 5043
773 詩碑의 是非 2015-11-13 0 4264
772 시를 지을 때 비법은? / 시와 련애하는 법 2015-11-11 0 4761
771 선생은 詩 읊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2015-11-11 0 4925
770 고로, 난 시인이 아니다! 2015-11-09 0 5287
769 하늘 저 켠을 공연스레 볼 뻔하였다... 시는 시적인것. 2015-11-06 0 4264
768 사랑 詩 10수 / 가슴으로 하는 詩 2015-11-06 0 4448
767 "온몸시론" 2015-11-06 0 4132
766 시는 언어를 통한 언어 파괴의 자화상이다...?! 2015-11-06 0 4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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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 이미지즘과 한국詩 2015-11-06 0 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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