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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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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허영자 - 자수
2015년 12월 20일 21시 21분  조회:4237  추천:0  작성자: 죽림

자수(刺繡)- 허영자1)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靑紅)실

따라서 가면

가슴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世事煩惱)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 내올 듯

 

머언

극락정토(極樂淨土) 가는 길도

보일 상 싶다*.

(시집<가슴엔 듯 눈엔 듯>, 1966)

* 상 싶다 : 성싶다.

 

■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여성적인 섬세함과 강렬한 생명력이 결합된 시풍이 특징인 허영자의 대표작으로, ‘수놓기’라는 일상적인 일을 통해 고뇌와 슬픔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체험을 노래한 시이다. 여성적인 소재와 언어와 감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성격 : 서정적, 여성적, 성찰적

  ▶ 시상 전개 : 점층적 전개

  ▶ 구성 : ①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수를 놓음.(제1연)

            ② 번민은 가라앉고 아름다운 심성의 경지에 다다르게 됨.(제2-3연)

            ③ 사랑의 슬픔도 참아 내고 번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듯함.(제4-6연)

  ▶ 제재 : 자수(刺繡)

  ▶ 주제 : 수놓기를 통한 번뇌의 극복

 

■ 연구 문제

1. 이 시의 화자의 고뇌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찾아 쓰라.

☞ 사랑의 슬픔

 

2. ㉠이 뜻하는 바를 25자 내외로 쓰라.

☞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여러 가지의 갈등과 괴로움

 

3. 마지막 연에 담긴 의미를 완결된 한 문장으로 쓰라.

☞ 수놓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맑고 정돈된 마음의 상태가 극락 정토로 표현되는 영원한 평화에도 가까워질 수 있을 듯하다.

 

4. ㉡과 비교적 그 의미가 통할 수 있는 시구를 찾아 쓰라.

☞ ‘처음 보는 수풀 / 정갈한 자갈돌의 / 강변’

 

5. 고뇌를 견디는 방법, 극기의 방법을 상징하는 말을 이 시를 참고하여 한 어절로 쓰라.

☞ 수놓기

 

6. 행위의 진행에 따른 심리적 추이를 살펴보자.

 번민(가슴 속의 아우성) → 평화(강변) → 초월(극락 정토 가는 길)

    2연에서 '가슴 속 아우성'이 가라앉는 과정은 동적인 분위기가 점차 정적인 분위기로 변해 가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 텍스트 상호성

1. 내면의 번뇌와 갈등을 노래한 시를 찾아 번뇌와 갈등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 마음 속의 번뇌와 그를 정화하는 화자의 의지를 노래하는 작품 중, 시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조지훈의 '승무'가 있다. 세속의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한 여승이 깊은 밤, 홀로 승무를 추며 내면의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에서 승무라는 춤은 '자수'의 수놓기와 비슷하게 고뇌와 갈등을 가라앉히는 방편이 된다. 또, 고은은 '눈길'이라는 시에서 지난 시절의 방황과 갈등을 가라앉히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상태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이 시에서는 고요하고 정화된 정신적인 경지를 통념상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마련인 어둠에 비유함으로써 번민을 가라앉힌 마음 속의 평화로운 정경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문맥이 순탄하고, 분명한 3개의 문자이 여섯 연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세 개의 의미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 단락(제1연)을 보면 화자가 수(繡)를 놓는 것이 어떤 실용적 목적 때문이 아니라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임을 알게 된다.

수(繡)를 놓으며 색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자신이 꾸며 놓은 ‘수풀’이나 ‘강변’에 이른다. 그 ‘수풀’이나 ‘강변’은 마음의 평정을 구할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일 터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수(繡)틀 속에 스스로가 마련한 내면적 상상의 세계이다.

그런데 화자가 무엇 때문에 ‘가슴 속 아우성’을 느끼며 마음이 어지러워진 것일까가 궁금해진다. 그 해답은 제5연에서 구할 수 있다. ‘사랑의 슬픔’으로 해서 화자는 괴로워하고 있으며 그것을 달래기 위해 수(繡)를 놓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임을 살아서 다시는 만날 수 없기에, 화자는 ‘극락 정토 가는 길’을 수(繡)틀 속에 그려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화자는 수(繡)를 놓는 행위를 통해 사랑의 슬픔을 극복하고 절대적인 구원을 얻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이해와 감상 2

  이 시는 사랑과 절제의 시인으로 불리는 허영자의 대표작으로 ‘수놓기’라는 일상적 일을 통해 ‘세사 번뇌’와 ‘사랑의 슬픔’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체험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이자 핵심 소재인 ‘자수’는 시인에게 있어 실제적인 수놓기라기보다는 고뇌를 견디는 방법이요, 극기(克己)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모두 6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의미상 3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 단락은 1연으로 화자가 수를 놓는 일이 어떤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 마음 속의 고뇌나 슬픔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둘째 단락은 2~3연으로 오랜 번민을 가라앉히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심경에 다다르는 수놓기의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여러 가지 색실을 따라가며 화자가 수를 놓다 보면, 어느덧 ‘처음 보는 수풀’이나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그러므로 그 곳은 현실 세계가 아니라, 내면적 상상의 세계로 화자가 수를 놓으면서 되찾게 된 마음의 평화를 의미한다. 셋째 단락은 4~6연으로 수를 놓고 있으면 사랑의 슬픔도 이겨내고 번뇌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소망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1연의 ‘어지러운’과 2연의 ‘아우성’으로 암시되었던 고뇌의 내용이 셋째 단락에 와서 보다 분명해진다. 그것은 바로 화자를 오래도록 괴롭혀 왔던 사랑의 고뇌요 슬픔이다. 아마도 화자는 수를 놓는 행위를 통해 아픔을 극복하고 ‘극락 정토’라는 절대적 구원까지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허영자 시는 일반적으로 간결과 반복의 표현 특징을 갖는다. 간결함은 곧 함축성을 뜻하는 것으로 허영자의 경우, 행의 길이가 짧을 뿐더러 작품 전체의 길이까지도 짧다. 이 작품도 일체의 군말을 배제한 표현의 절제를 통해 고도의 압축미를 보여 준다. 또한, 전통적 서정을 주조로 하여 사랑과 기다림, 한과 고독의 본질적인 인간 내면을 구가하는 우리 여성 시단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이와 같은 언어 절제의 압축미를 통하여 시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 이해와 감상 3

 수놓기라는 일상적 일을 통해 고뇌, 슬픔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체험을 노래한 시. 여성적인 소재와 언어, 감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으로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수놓기라는, 매우 익숙한 생활 체험을 제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수를 놓으려면 시선과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해야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고자 한 것은 이러한 집중을 통해 심적 갈등을 가다듬고 맑은 심성을 획득하는 체험이다. 작품 전체를 의미상의 단락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첫 부분(제1연) :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수를 놓음. 여기서 수놓는 행위가 무엇인가를 만드는 실용적 목적보다 마음 속의 번민이나 고통을 다스리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부분(제2, 3연) : 수를 놓는 동안에 번민은 가라앉고 아름다운 심성의 경지에 다다르게 됨. 셋째 연의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 강변'은 마음의 평온을 되찾으면서 만나게 되는 내면의 상상적 세계이다.

 셋째 부분(제4~6연) : 수를 놓고 있으면 사랑의 슬픔까지도 참아 내고 번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듯 싶기도 하다는 내용. 둘째 부분에서 어렴풋이 암시되었던 괴로움의 내용이 여기에 와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오랜 동안 계속되어 온 사랑의 고뇌요 슬픔이다. 이 고뇌의 이유는 사랑의 길이 막혀 있거나 아픔을 극복하고 절대적인 구원까지도 얻을 수 있을 듯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작품의 구성은 이처럼 사상을 점층적으로 뚜렷하게 제시하여, 맨 마지막 부분(특히 5연)에 와서 핵심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다. 제목이자 핵심 소재인 자수(刺繡)는 바로 이와 같은 고뇌를 견디는 방법이요 극기(克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해설: 김흥규]

 

 

 


1) 허영자(許英子)

1938년 경상남도 함양 출생

1961년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2년<현대문학>에 <도정연가(道程戀歌>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3년 우리 시문학사상 최초의 여성동인회 <청미회> 조직

1986년 제20회 월탄 문학상 수상

1992년 제2회 편운 문학상 수상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

시집 :<가슴엔 듯 눈엔 듯>(1966),<친전(親展)>(1972),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1977),<빈 들판을 걸어가면>(1984), <조용한 슬픔>(1990) 등

 

  피리

  허영자

 

어머니의 뼈는

피리가 되었다

 

속이 빈 피리

어머니의 뼈는

 

천파千波 만파萬波

헤쳐온 삶

 

구십 년 세월을

노래로 푼다.

 

-{시로 여는 세상} 2004년 봄호

 

 

 

   * ‘어머니’라는 단어는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아려온다. 화자는 ‘어머니의 뼈=속이 빈 피리’의 등식을 통하여 ‘골다공증’ 증세로 고생하고 있는 어머니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어머니의 뼈는 “천파千波 만파萬波 / 헤쳐온 삶”의 고달픈 여정이지만 화자는 그것을 ‘피리’로 대치함으로써 “구십 년 세월”의 한 많은 삶을 “노래로” 풀어내어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그래서 그 노래소리는 ‘천파 만파 헤쳐온 삶’만큼이나 애틋하게 들린다. 아, 어머니―.

 

 

 


경남 함양에서 출생했으며 숙명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성신여대 인문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1962년 박목월시인 현대문학 추천, 주요 작품으로 〈가을 어느 날〉,〈꽃〉,〈자수〉 등이 있으며 주요 시집으로 《가슴엔 듯 눈엔 듯》,《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그 어둠과 빛의 사랑》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면》 등이 있다.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목월문학상, 녹조근정훈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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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과 불꽃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 속에 
얼음과 눈보라를 지니고 있다 

못다 이룬 한의 서러움이 
응어리져 얼어붙고 
마침내 마서져 푸슬푸슬 흩내리는 
얼음과 눈보라의 겨울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은 누구나 
타오르는 불꽃을 꿈꾼다 

목숨의 심지에 기름이 끓는 
황홀한 도취와 투신 
기나긴 불운의 밤을 밝힐 
정답고 눈물겨운 주홍빛 불꽃을 꿈꾼다. 

刺繡(자수)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실 따라서 가면
가슴 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 낼 듯

머언
극락정토 가는 길도
보일 상 싶다


꽃 피는 날 

누구냐 누구냐
또 우리 맘속 설렁줄을
흔드는 이는

석달열흘 모진 추위
둘치같이 앉은 魂을
불러내는 손님은

팔난봉이 바람둥이
사낼지라도
門 닫을 수 없는
꽃의 맘이다.

나목에게 

캄캄한 밤은
무섭지만

추운 겨울은
더 무섭지만

나무야 떨고 섰는
발가벗은 나무야

시련 끝에
기쁨이 오듯이

어둠이 가면
아침이 오고

겨울 끝자락에
봄이 기다린단다

이 단순한 순환이
가르치는 지혜로

눈물을 닦아라
떨고 섰는 나무야.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이면
처녀시절 생각이 난다
비 맞고 서 있는 나무처럼
마음 젖어 서러이 흐느끼던 그때

비 오는 날이면
처녀시절 생각이 난다
아득히 비 내리는 신비한 바깥
머언 머언 내일을 내다보던 그때

비 오는 날이면
처녀시절 생각이 난다
박쥐우산 하나를 바람막이로
용감하게 세상을 밀고 가던 그때.

빈 들판을 걸어가면 

저 빈 들판을
걸어가면
오래오래 마음으로 사모하던
어여쁜 사람을 만날 상 싶다

꾸밈없는
진실과 순수
자유와 정의와 참 용기가
죽순처럼 돋아나는
의초로운 마을에 이를 상 싶다

저 빈 들판을
걸어가면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
아득히 신비로운
神의 땅에까지 다다를 상 싶다.


여름 소묘 

견디는 것은
혼자만이 아니리

불벼락 뙤약볕 속에
눈도 깜짝 않는
고요가 깃들거니

외로운 것은
혼자만이 아니리

저토록 황홀하고 당당한 유록도
밤 되면 고개 숙여
어둔 물이 들거니.


임 

그윽히
굽어보는 눈길

맑은 날은
맑은 속에

비오며는
비 속에

이슬에
꽃에
샛별에...

임아


온 삼라만상에

나는
대를 본다.



가을비 내리는 날 


하늘이 이다지
서럽게 우는 날엔
들녘도 언덕도 울음 동무하여
어깨 추스리며 흐느끼고 있겠지

성근 잎새 벌레 먹어
차거이 젖는 옆에
익은 열매 두엇 그냥 남아서
작별의 인사말 늦추고 있겠지

지난 봄 지난여름
떠나버린 그이도
혼절하여 쓰러지는 꽃잎의 아픔
소스라쳐 헤아리며 헤아리겠지
========================================

 

장소 : 혜화동 석정 

일시 : 2009년 5월 20일 수 오후 6시

대담:  지연희 문파문학 발행인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진행/ 사진  :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허영자 시인은 얼마 전 모시고 있던 어머니를 잃었다. 지난 여름인가, 원고청탁을 위해 전화를 드렸는데 ‘90 넘은 어머니를 칠십이 돼가는 이 노인이 보살피느라 원고쓰기 힘들다’고 하셨다. 그때 ‘노인‘이라는 시인의 말이 참 생소하게 들렸다. 선생은 언제나 내 머릿속에 가녀리고 단아한 시인의 모습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모습은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고운 자태 그대로였다.

“ 어려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연희 발행인이 진심어린 인사를 드린다.

“ 잡지 하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끌어나간다는 게 얼마나 대단합니까?”   

저작권협회회장을  얼마 전 퇴임한  허영자 시인의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말씀은 여전하다.   “ 건강할 때 체크하세요.”

허영자 선생님은 일년 전에  시작한 목 디스크가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심해져 통증 클리닉을 다니신다고 한다. 2년 전의 대담 인터뷰를 말씀드리며 가능하면 다른 시각으로 선생을 비추어보겠다고 했다. 박목월 선생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했던 선생이 46년만에 다시 목월문학상을 수상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2008년도 12월 제 1회 목월 문학상을 받으신 일을 뒤늦게 축하드렸다. 수상작품 ‘은의 무게만큼’은 어머니에 대한 시이다. 당시 어머니는 병중이어서 모르셨다고 답한다.  

선생님의 대부분 시들은 심사평에서처럼 압축되고 간결한 시풍이 목월의 시세계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선생의 시 <휘발유> 에 그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휘발유같은/ 여자이고싶다 / 무게를 느끼지 않게 / 가벼운 영혼 / 뜨겁고도 위험한 / 가연성의 가슴 / 한 올 찌꺼기 남지 않는 / 순연한 휘발 / 정녕 그런 액체같은

 

 

 

 허영자 시인 (흑백수정 )

 

 

저는 자꾸 산문시가 나오는데 어떡하지요. 지연희 발행인이 묻는다. 10년 넘게 시작법을 가르치면서도 시 앞에서 그 또한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번번이 느낀다.

소재에 따라 길게도 쓰지 않겠어요? 물론 목적시들, 행사를 위한 시나 칭송하는 시의 경우는 길게 쓴다고 한다. 형식에 지나치게 구애 받지 말라는 의미이다.

선생을 보면 문학이 사랑 받았던 시대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김남조 시인의 제자인 김후란, 신달자, 허영자 모두 문단의 별이 되었다. 부러운 마음도 있어 당시 여성문학인들은 지금의 연예인처럼 인기스타급이었기에 영부인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에도 가지 않았느냐고 운을 떼었다.

인기라기보다 희소성이라고 한다. 1960년대 들어 여성작가들이 늘어났는데 그 때 서정주 시인이 추천한 동국대 학생 박정희, 이화여대 김혜숙, 서울대 국문과 김후란 모두 학생이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사상계는 강계순 시인 , 구혜영 소설가를 배출하였다. 작품을 써도 실을 곳이 없던 때 신문 1면에 시를 한편씩 실어 주었고 여성들로도 동인활동이 충분할 만큼 인적구성이 이루어졌다.   

당시 결성된 <청미> 동인은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냐고 지연희 발행인이 묻는다.

35년 활동하고 35주년 때 해체식을 갖고 지금은 교류만 하고 있다. 돌아보니<청미>는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상 최초의 동인회이며 동인지라고 해야 옳다. 남성들이 문학사를 쓰다보니  큰 가지를 잘라냈다고 본다. 그 이전 세대들의 청록파나 문학사에서 다루어주지만  여성동인지는 그렇게 평가받지 못한 점이 늘 아쉽다. 지금 재조명 사업으로 ‘문학의집.서울’에서나 한국여성문학인회에서 작고 여성문인을 다루는 일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청미동인은 처음 김후란. 김혜숙. 김숙자. 추영수. 허영자. 김선영 시인이 우정으로 만나다가 시집을 같이 내면서 활동했다. 그런데 나중에 박영숙 .김숙자 두 분 선생이 미국을 가고 뒤를 이어 입회하신 분이 김여정. 임성숙.이경희 선생이었다. 주 활동은 시화전, 독자와의 대화, 시판화전이었고 신세계 백화점에서 시판화전을 할 때 그림을 맡은 화가들이 천경자. 박노수, 박수근, 김기창, 서세욱. 박래현으로 판매도 이루어졌다. 시화는 시와 그림에 걸맞게 해야 한다.  당시 기억이 남는 에피소드는 김숙자 시인의 ‘나목 ’시에 박수근 그림을 받았는데 후에 박완서 소설가가  ‘나목’을 발표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요즈음 다시 동인지 시대가 돌아온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다. 이제 꼭 신춘문예나 특정 잡지를 고집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시대이다. 잡지가 문제가 아니라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문열,  김주영 모두 월간문학 출신이고 박완서 소설가도 늦게 나와 얼마나 왕성하게 활동했는가.

시 앞에서는 주눅이드는 나는 ‘어떤 시를 읽어야 좋을까요’ 그런 뻔한 질문을 하고만다.     

시인이라고 시만 읽는 것은 아니다. 고전시가 ,예를 들면 ‘정철시가 ’ 등도 많이 읽어야 한다. 물론 나는 학생 때   헤세의 시, 라이너마리아 릴케, 영버틀러. 영미시인 등 을 주로 읽었지만 소설도 즐겨 읽었다. 도스또예프스키, 마르셀 푸르스트, 아우렐리우수의 ‘명상록’ 나도향의 ‘그믐달’ 김진섭의 ‘청춘’ 이런 작품도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소양을 길러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시를 향한 애정은 다른 나라에 비해 각별한 이유를 다시 묻는다.   

요즈음은 산문시대라 하지만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시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심성이 시를 사랑하게 되어있다. 최초의 문자로 남아있는 ‘공무도하가’ 는 문화유산 최초의 시다. 우리나라 국민의 시적 정서를 알 수 있는 예가 MBC 기획으로 국민 대상  시조를 모은 적이 있었는데 그 엄청난 양의 시조에 무척 놀랐다. 그 때 시조가 우리 국민의 노래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별히 지도받지 않아도 국민 정서에 녹아있는 게 시정신이다.     

 

지연희 발행인은 ‘ 시를 쓰는데 있어 언어문제와 짧은 언어호흡과 긴 호흡에 대해 궁금한 점’을 확인한다.   

 문학의 장르를 구분 할 때 시, 소설, 희곡 등이 일단 길이와 형식에 의존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내용과 형식은 필연적 관계지만 .형식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시만 보더라도 과거는 운문 시대였지만 지금 향가를 쓰는 사람은 없다.  정형시에서 자유시가 되고 산문시가 나오고 있다. 재미난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시의 형태는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 어렵다. 행만 바꾸었다고 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언어는 같지만 언어를 어떻게 쓰느냐 축약과 행간의 비유가 있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런 경계허물기지만 시는 그래서 더욱 어려워졌고. 다양하게 물고 물리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라디오만 있다가 TV 분야가 나오고 다시 공중파, 케이블 등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새로운 형태가 나오고 하는 세상이다. 백남준이 왜 유명해졌는가. 미술과 접목시킨 비디오 아트를 아주 일찍 창조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정서에 따라 사람들의 정서가 시에 반영되는 것을 본다. 외형적으로 산문시라 하더라도 전달력과 사회비판 등이 있어야 한다.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 은 좋은 시이다.   

어쨌든 시인은 에스프리(시정신)가 있어야 한다.

소설 ‘어머니’를 쓴 고리끼의 시에 당시 귀족과 천민의 빈부차이에 대해 시를 썼는데

부잣집에서 일하는 여자의  아들이 똑똑하니까 마나님이 칭찬을 하곤 했는데  죽었어요.

마나님이 조문을 가서 보니 그 여인은 엉엉 울면서 국을 떠 먹고 또 울다가 국을 떠 먹고 있는 모습에  얄미운 마음이 든 마나님은 ‘ 국이 입으로 들어가냐? 도대체 주검을 앞에 두고 ..’ 야단을 치자 여자는 ‘마나님 나는 아들이 죽어서 땅이 꺼지는 슬픔을 느끼지만 이 국에는 소금이 들어 있습니다.’이렇게 작품은 당시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  전매품목에 소금이 들어  있어  그 값이 얼마나 비쌌는가. 착취 당하는 천민을 

 문태준 시‘ 가재미’ ‘수평’ 은 시 형상성이 얼마나 명료합니까. 피천득의 수필은 시처럼 응축이 되어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시를 쓰겠다’고  목월문학상 시상식소감에서 말씀하셨는데  문학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본다.   

 타고난 재능은 있어도 천재성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기에  인간은 유한한 존재임을 알고 하나를 경험하면 열 개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 재능 위에 노력이다. 결국 글로 사람을 느낄 수 있고 글은 인간의 반영이다. 자기를 투시하면서 잘 닦으면 글도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은 교양을 쌓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전문가로서 , 문필가로서 전문의식, 프로의식을 가져야한다. 자기 업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경주시키고 전인적 몰두와 전심전력의 쏟아 부음이 필요한 게 작가의 길이다. 치열한 창작정신이 있어야 한다. 문학애호가로 남아도 좋겠지만 창작으로 끝장을 내야한다는 정신도 필요하다.

창작의 고통을 필생의 업으로 받아들이고 작가의 길을 안 버리고 끝까지 쓰는 사람을 전문작가라고 하겠다. 물론 김광균시인은 30대까지 이미지즘(모더니즘을 시각적으로 쓴 ) 시를 써 이름을 날렸지만 문필업을 접고 다른 사업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까운 시인이다.    

 시에 대한 이야기라면 밤이라도 세울 것 같은 두 선생 사이에서 슬쩍 화제를 돌린다.

나태주 시인이 쓴 <허영자 시인> 보셨나요. 지연희님이 낭송을 한다.  

무릇 훤칠한 여자란/ 그가 가진 가슴 속의  살향기와 따스함과 지혜로써 / 살맞은 산짐승인양  무잡한 사내들을 길들이나니,/ 천천히 천천히 길들이나니/ 호령보다는 낮은 속삭임으로 /교태보다는 맑은 눈빛으로 /세상의 모든 사내들을 홀리나니/ 홀리나니...

시인이시여 / 신라의 한낮 찬란한 함바꽃이었던 / 선덕여왕의 후신인 허영자 시인이시여

내 당신 앞에 지귀되어 무릎 꿇으리까! / 당신의 황금팔찌를 탐하리까! / 오로지 영롱하고 맑은 시로써 당신은 / 세상의 모든 사내들의 연인이 됩소서/ 술취해 계집질하고 나오는 / 부끄러운 사내들의 이마 위에도 / 새벽별 뜹소서

 

선생은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아쉽지만 무남독녀로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하여 살얼음 강을 조심스럽게 건너듯 관리 하시는  선생을 보내드려야 했다. 여기 저기 카페와 상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 동숭동, 학림다방이 건너다보이는  거리에서 수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허영자(許英子 1938년 8월 31일 - )는 시인. 경남 함양에서 출생했으며 숙명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2년 《현대문학》에 박목월 추천〈도정연가〉 〈사모곡〉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은의 무게만큼』 소장본 『허영자 시집 얼음과 불꽃』외 다수 

 2004년 제20대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수상 2003년 제9회 숙명문학상. 2008년 제1회 목월 문학상 . 한국저작권 협회 회장 역임. 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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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영자 시인 -'부끄러움' 자작시를 낭송하다...

 

 

                          허영자 시인-선생님께 삼척문우들이 애정을 드림니다.

 

허영자 시인 - 삼척에서 조찬시간

 

 

허영자 시인 

 

 

  

 

 

 허영자 시인 이미지18 - 김진광 시인,김일두 시인,정연휘 시인에게 격려싸인

 

 

  허영자 시인 이미지19-문협방명록에 친필과 싸인

 

 허영자 시인 이미지20- 선생님 싸인에 참석시인 모두 친필싸인으로 한마음을 담았다.

 

 

 허영자 시인 

 

허영자(許英子 선생님/1938년 8월 31일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전직 대학교수다..

경남 함양에서 출생했으며, 경기여고와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에서 <노천명 연구>로 문학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하였다. 성신여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1962년 《현대문학》에 〈도정연가〉,〈사모곡〉 등이 박목월 추천으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가을 어느 날〉,〈꽃〉,〈자수〉 등이 있으며 주요 시집으로 《가슴엔 듯 눈엔 듯》,《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그 어둠과 빛의 사랑》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면》 등이 있다. 2004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2000년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허영자 시인의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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