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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 기부는 쉽지 않다... 오로지 기부는 행동이다...
2018년 10월 26일 00시 08분  조회:3321  추천:0  작성자: 죽림

손수레 몰아
400억 쾌척 노부부,
30년 넘은 셔츠차림(종합)

윤다정 기자  2018.10.25. 
 
 
 
실향민 남편·식모살이 아내, 안쓰고 불려서 고대 기부
개인 기부 역대 최고.."인재 발굴해 나라에 기여하길"
김영석씨(91)와 양영애씨(83·여) 내외가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에서 열린 기부식에서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 400억원을 기부한 뒤 김재호 학교법인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염재호 총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10.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기부도 내 형편에 맞게 할 수 있다면 기쁜 일이에요. 좋은 인재를 발굴해서 나라에 기여할 수 있게 하면 그게 좋은 일이지요."

희게 센 머리를 곱게 빗어넘기고 지팡이를 짚은 양영애씨(83·여)의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양씨가 차려입은 붉은 체크무늬 셔츠는 30년 넘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해진 데 없이 단정하고 깨끗했다.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을 찾은 양씨와 김영석씨(91) 부부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에 기부한 부동산은 시가 200억원 규모 서울 청량리 소재 토지 5필지와 건물 4동. 현재 시가로 따지면 2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양씨 부부는 이후 시가 200억원 상당의 토지 6필지와 건물 4동을 추가로 기부할 예정이다.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 400억원을 "인재 발굴에 써 달라"며 고려대학교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기부 금액은 지난 2007년 익명을 요구한 60대 여성이 시가 4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한 이후 고려대학교 기부금 가운데 역대 최고 액수다.

◇"'청량리~서대문' 전차 비용도 아까웠죠"

양씨는 경북 상주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형제자매 중 가장 머리가 좋았지만 초등학교 문턱도 제대로 밟아 보지 못했다. 대신 "쟤는 공부 안 해도 얘들(형제들)보다 잘 살 것"이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돕는 등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양씨는 23살에 김씨와 중매를 통해 만나 결혼했다. 김씨는 강원 평강군 남면에서 태어나 15살에 부모를 여의고 17살에 월남한 실향민이다. "돈을 벌어 오겠다"며 고향에 2명의 형제를 두고 떠나 왔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양씨는 식모살이, 식당 일 등 궂은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다 1960년대 초 종로5가에서 김씨와 함께 손수레로 과일을 떼어다 팔기 시작했다. 매일 자정쯤 종로 5가 시장통에 도착해 납품 트럭으로부터 과일을 샀다. 좋은 과일을 고르기 위해 같은 트럭에서 과일을 사들이는 다른 상인들보다 4시간은 일찍 움직였다.

청량리부터 서대문까지 다니는 전차 요금을 아끼기 위해 1시간 거리를 매일 걷기도 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파출소 순경에게 붙잡히는 일도 다반사였다. 또 과일 장사가 끝나면 늦은 밤까지 식당 일을 하는 대신 밥을 얻어먹고, 번 돈은 모두 은행에 저금하고, 옷이나 신발도 얻어쓰는 등 검소하게 생활했다.

양씨는 "산꼭대기에서 월세 생활을 15년 했다 그런데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허세를 떨면 안 되지 않나"라며 "이것도 30년 된 옷"이라고 자신이 입은 셔츠를 가리켜 보였다.

이같은 성실한 노력이 빛을 발해, 이들이 파는 과일의 질이 좋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했다. 몇 년 후에는 시장 상인들의 도움을 얻어 가게도 낼 수 있었다. 개점 후 3~4시간만 지나면 과일이 전부 팔려 나갈 정도로 장사도 잘 됐다.

이렇게 모은 돈을 종잣돈으로 대출을 얻은 부부는 1976년 처음으로 청량리에 상가 건물을 매입했고, 과일장사를 계속해 빚을 갚아 나가며 주변 건물들을 하나 둘씩 사들였다. 그러면서도 입주 업체들이 오랫동안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임대료는 가급적 올리지 않고 저렴하게 유지했다.

김영석씨(91)와 양영애씨(83·여) 내외가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에서 열린 기부식에서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 400억원을 기부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10.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인재 발굴해 나라 이끌 수 있기를" 노부부의 당부

알뜰하고 소중하게 모은 전 재산을 통 크게 기부하게 된 배경에 대해 부부는 "오래전 두 아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 자리를 잡고 살고 있기 때문에 재산을 물려주기보다는 좋은 곳에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부처를 고민하던 양씨는 가깝게 지내던 부동산 주인의 "어머니, 우리 동네가 잘 살아야지. 고려대 가서 (기부)하세요"라는 권유로 고려대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양씨는 "기부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 기부가 좋은 것인지 몰랐다. 무식해서 남들이 기부하면 그런가보다 했다"며 "열심히 벌어서 형편이 되면 내가 쓰고 남은 돈은 절대로 자식에게 주면 안 된다. 막 쓰고 인생을 망친다"고 강조했다.

"국민학교를 졸업 안 했어도, 썩은 과일장사라도 사람이 머리를 써야 한다"며 배움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한 양씨는 "우리 나라의 인재를 많이 발굴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인촌챔버에서 열린 기부식에는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김재호 이사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유병현 고려대 대외협력처장 등이 참석해 양씨 부부에게 기부증서와 감사패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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