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인도 북부 펀자브주 주민들의 눈앞에 진귀한 구경거리가 등장했다. 펀자브에서 무려 160㎞나 떨어진 히말라야산맥이 맨눈으로 관측된 것이다.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산맥이 병풍처럼 앞에 버티고 서서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는 절경은 지역 주민들의 시선을 단박에 빼앗았다. 160㎞는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시청에서 강원도 소재 속리산국립공원 간 거리와 비슷하다. 대단히 멀다는 얘기다. 국토 전체에 산이 많은 한국에선 날씨가 좋아도 지형지물로 인한 장애물로 인해 원거리 관측이 힘들고, 이 때문에 펀자브 상황을 한국에 대입하긴 어렵지만 당시 그곳의 대기가 얼마나 깨끗했는지는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봉쇄령에
공장 가동 축소로 배출 줄어들며
인도 등 지구촌 ‘맑은 하늘’ 복구
흥미로운 점은 이런 절경을 펀자브 주민들도 무려 30여년 만에 목격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개발도상국이 그렇듯 지독한 스모그가 이 지역 전체를 짓누르며 히말라야산맥의 모습도 대기 오염물질 속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코로나19 확산이 이런 상황을 바꿨다. 올해 3월25일 인도 정부는 국가 봉쇄령을 내려 사실상 경제활동을 중단시켰는데 이때부터 공장 가동과 차량 운행이 뚝 끊기면서 매연 배출이 줄었고, 더러워진 하늘도 빠르게 복구된 것이다. ‘돌아온 맑은 하늘’은 인도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중국 등 동아시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위성사진을 통해 대기오염 물질의 감소가 목격되고 있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올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년보다 최고 8%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배출량 규모로는 26억t이다. 전 세계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년보다 4억5000만t 줄었다. 금융위기 때보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이 가져온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가 약 6배에 이른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위기가 일시적으로나마 지구를 식히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와 달리 현실은 낙관적 상황을 불허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난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해양대기청(NOAA)이 올해 4월 측정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전 세계 기준으로 416.21PPM이었다. 1958년 미국 하와이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측정이 시작된 이래 최고치였다. 농도가 오르는 건 새삼스럽지 않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었을 뿐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계속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지구 식히기’ 기대와 달리
지난달 이산화탄소 농도 역대 최고
광합성 위축된 계절 탓도 있지만
악화일로의 주범은 화석연료
UNEP는 일단 계절적인 요인을 이산화탄소 증가의 원인으로 꼽았다. 북반구는 남반구보다 대륙이 넓게 분포한다. 이 때문에 계절에 따라 반응하는 북반구 나무들의 생육 상황이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농도에 영향을 끼친다. 나무들에 잎이 없어 광합성을 제대로 못하는 겨울의 끝자락, 즉 5월에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최고치를 찍는다. 그러다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들어 활발한 광합성이 일어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작용을 통해 10월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5월보다 7.5PPM 정도 낮아진다. 올해 4월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신기록도 여름이 깊어질수록 하향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나무들이 아무리 열심히 광합성을 한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전년보다 낮추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수십년간 늘기만 한 이산화탄소 농도 추이가 이를 증명한다.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나무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많이 내뿜고 있어서다. 그것도 최근 증가량이 크게 치솟고 있다.
이번 UNEP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같은 기간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88PPM 늘었다. 2010~2019년 연평균 증가량이 2.4PPM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시간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속도가 붙고 있다. 1960년대에는 1년에 약 0.9PPM씩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점을 보면 여러 노력에도 온난화는 나아지긴커녕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이런 현상의 이유는 지구의 전기 생산구조가 근본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봉쇄로 인해 자동차와 항공 교통이 크게 줄었지만 전기 공급량에는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의 38%는 석탄, 23%는 가스, 3%는 석유가 만들어낸다. 전기 생산용 연료의 3분의 2가 화석연료라는 얘기다. UNEP 기후변화 담당 전문가인 니클라스 하겔버그 연구원은 “세계 에너지 생산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UNEP는 1850년대 이후 금세기 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는 1.5도 이하로 묶기 위해선 2040년, 늦어도 205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화석연료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경제활동 중단 같은 ‘충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붙고 있다.
/이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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