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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속에 너도 있고 나도 있고
ㅡ평양 모란봉교예단의 공연을 보며
11월 초의 어느날 일가족 셋이 시내쇼핑으로 늘 타는 35선버스가 아닌 27선 버스에 올라 루중루와 소흥시 체육중심 사이길을 달리는데 나의 시선에는 체육중심에 걸린 “조선 평양 모란봉교예단 11월 13일 공연”이란 대형 프랑카드가 우연히 안겨들었다. 너무도 흥분한 내가 이 소식을 절강월수대 연변적 우리 선생들께 알리였더니 일대 경사가 났다. 나는 큰일이라도 해낸 개구쟁이런듯 달콤한 기분속에 빠져들었다.
그럴수 밖에, 타향 6000리 강남땅에 오니 우리 겨레사회와 어울릴 기회가 적은데다 문화생활이 메말라 일상생활이 단조롭기가 이를데 없다. 이런 때 조선 평양 모란봉교예단이 강남땅 소흥에 와서 공연을 펼친다니 너나없이 호응해 나선다. 그 심정을 머나먼 고향땅에서 사랑하는 어머니가 오시는양 기다려지는 마음이라고 할까.
드디여 11월 13일이 돌아 왔지만 나는 이미의 약속으로 항주의 현장님과 더불어 님의 자가용으로 녕파 봉화 계구의 장개석고향집에 다녀와야 했다. 교예단공연이 저녁 7시 15분이여서 낮시간이면 넉넉히 다녀올것 같았다. 봉화 계구의 장개석고향집은 이번이 세번째, 이번 답사길은 장개석고향의 설두산에 올라 새로 복원된 옛 설두사에 깃든, 고려 명승 의천 대각국사와 의통대사의 발자취를 추적하는것.
과연 답사일정을 마치고 월수대로 돌아오니 저녁 6시, 부랴부랴 저녁식사랍시구 에때우고 현장님의 자가용으로 소흥시 체육중심 갈림길에 이르니 시간은 저녁 6시반. 현장님과 헤어져 갈길을 재촉하는데 안해가 젊은 시절 조선의 “꽃파는 처녀”를 보러 가던 기분이라고 던져온다.
그래 맞지. 지난 70년대 초반의 그 나날, “꽃파는 처녀”를 보려고 우린 왕복 100리길에 올라 보았는데 30여년이 지난 오늘 또 기다림에 지치다가 만사불구하고 절강월수대 조선족 선생 일행이, 나의 일가족 일행이 울렁이는 마음안고 조선교예단의 공연장소를 찾아 가고있지 않은가. 공연장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선률타고 흐르는 조선의 노래가 또 가슴을 친다. 꼭 마치 조선이라는 고국땅에 들어선 기분, 내 고향 연변 겨레사회에 휩쓸리는 기분이다. 먼 타향에서 한 겨레를 만나면 그렇게도 반갑고, 어울리고, 마음을 터놓고 싶은 심정이여서 더욱 그러한가부다.
조선 평양 모란봉교예단은 저녁 7시가 지난 7시반에 공연의 막을 열었다. 교예절목의 이름들은 속속들이 몰라도 그네와 철봉 등으로 이어지는 공중비행, 녀자4인공중조형, 다채로운 줄뛰기, 남녀 2인 공중조형, 널뛰기 등 다양한 절목은 공연마다 관람객들을 사로잡는다. 우리 모두가 열광속에 빠지여 제 정신이 아니다. 와야 웃다가 소리지르다가도 공중비행같은 아짜아짜한 장면에서는 그네들이 당금 떨어지기라도 하듯 초긴장 상태, 그속에 조선의 교예가 세계정상의 수준급임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다. 이들 모란봉교예단은 1962년에 세워져 어언 근 반세기의 휘황한 력사를 자랑한다니 ~ 근 반세기 이래 이 교예단은 조선 특유의 2000여년의 유구한 교예전통을 계승, 발전하면서 현시대에는 새시대의 특점에 어울리게 세계급 수준의 조선민족교예로 발전하여 왔고 고공기교를 자랑하는 공중 4회전, 6회전 등 세계급 기교 우수작품 100여개를 자랑하고 있다지 않는가.
조선의 한다는 인민예술가와 공훈예술가, 인민배우와 공훈배우, 청춘의 남녀배우들로 무어진 평양 모란봉교예단, 이들의 공연은 성황리에 계속 이어진다. 류은종교수님은 그젯날 평양에서의 박사공부 시절에 조선의 교예를 많이 보아왔지만 머나먼 타향 소흥에서 조선 교예단의 공연을 다시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면서 그 기분, 그 정서속에 푸욱 잠겨든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걸가, 한 핏줄을 속이지 못하지, 한 겨레의 마음은 하나로만 흘러간다. 그속에 너도 있고 나도 있고, 강남땅 소흥서 보는 조선의 교예가 우리 모두를 사로 잡는다.
2009년 11월 14일, 강남땅 두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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