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카테고리 : 지구소년
강남련속기행(4)
홍순범문인도 취재대상
11월 28일 오전 취재에는 홍순범문인도 끼이였다. 홍씨와의 인연은 올해 6월 13일, 절강월수외국어대에서 “연변작가협회 절강창작위원회”설립대회를 하면서부터라고 할수 있다.
올해 3월 초 항주에서의 조룡기, 현충혁, 나 3인의 문인만남에서 연변작가협회 남방창작위원회를 내올데 대한 얘기가 처음 나왔는데 조룡기문인은 상해에 시를 잘쓰는 홍순범친구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만난것이 6월 13일 만남이고 서로간 수차 전화와 메일을 주고받았다. 하면서도 다시 만남의 기회는 쉽지가 않아서 이번 상해행에야 그 소원을 이룰수가 있었다.
홍순범문인은 1970년도 생이고, 흑룡강 가목사 출신으로서 고향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대학공부는 연변대 조문학부 통신공부로 접어들었다. 때는 개혁개방의 물결이 세차게 일면서 젊은이들 너도나도 연해지구로 달리던 시기라 홍씨도 1997년 5월에 종내는 청도행에 올랐고, 여러 한국회사들을 두루 거치다가 청도의 한 데이콤회사에 들어서게 되였다.
홍순범문인이 데이콤회사에서 성실하게 뛰였더니 한국사장은 3년후 그를 상해지사에 파견하였다. 그 시기가 2000년 5월, 상해에 처음 들어설 때 홍순범문인한테는 인민페라야 1000원밖에 없었는데 홀로 부지런히 뛰며 최선을 다했더니 영업액이 쭈욱쭉 올라가며 2004년에는 한해 영업액이 300만을 돌파한다. 믿음이 믿음을 낳으니 청도의 한국사장은 상해의 홍씨한테 운전기사에 아줌마, 사무실까지 마련해 주고 맡기여 버린다. 후에는 인터넷폰이 시장을 휩쓸면서 상해지사가 문을 닫아야 했다.
홍순범문인은 이에 맥을 버리지 않고 자기로 회사를 운영하며 로밍액스에 나섰다. 영업도 잘되고 상해에서 결혼도 하니 지금 홍씨는 8살에 나는 아들애와 8개월 딸애까지 네식구가 아기자기하게 살아간다. 상해 10년 생활에 자기집에 자가용까지 마련하니 사는데는 그닥 어려움이 없다고한다.
생활의 안정기에 들어서니 홍씨는 기업인으로부터 문인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런 그가 시와 수필을 쓰며 문인으로 활동하던 때가 1990년부터인데 2008년부터 다시 활발한 창작기에 들어서니 지금껏 홍씨가 우리 글 신문과 잡지들에 발표한 시가 200여수, 수필이 50여편에 이른단다. 30대 후반에 들어선 홍순범문인은 어언 우리 문단의 유망한 30대 작가로 자리를 굳히고있었다.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