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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련속기행(6)
의흥—처음 보는 중국 도자기의 서울
남경행 렬차는 우릴 싣고 상해밖 첫 정차지인 중국 100개 경제강현중 제1강현으로 이름난 강소 곤산을 지나고 소주, 무석, 상주, 단양 등 역을 거치면서 남경으로 달리더니 이번에는 남경역에서 택시가 우릴 싣고 귀로인양 남경공항을 거치고 률수시를 거치면서 태호 서쪽기슭의 의흥으로 달린다. 률수는 통일신라말기 최치원이 당나라 활동시절 20살 때 률슈현위로 임명되여 4년간이나 지방관리로 살던 고장이지만 길이 달라 택시에서 내릴 수가 없어 유감이다.
우리가 탄 택시는 한시간 푼히 지나 우리 일행을 중국 도자기의 서울로 불리우는 강소 의흥시 정촉진(宜興市丁蜀鎭) 거리에 들어서게 하였다. 하나의 진이라지만 현성을 방불케 하는 거리는 거리마다 크고작은 “중국 도자기서울, 도자기성”(中國陶都陶瓷城) 광고판으로 넘치였고 거리의 가게들은 거개가 도자기가게들이였다. 뒤늦게야 나와 방씨는 강소성 무석시에 속하는 의흥이 중국의 저명한 도자기의 수도로서 도자기 제조사가 이미 5000여년의 력사에 이름을 알고 연신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최씨와 한국 분이 만난 당지의 한 사장은 의흥사람들은 대대손손 도자기를 구으며 살아 왔다고 하니 더욱 그러했다.
우리는 당지 중국인 사장의 자가용에 앉아 그의 회사 산하 도자기창고를 선참 찾았다. 중국인 사장은 우리 최씨와 벌써 8년이나 거래한 분이고, 도자기창고의 도자기화분을 보고서야 우린 최성호수석인이 빠져버린 도자기화분이란 무엇인가를 조금 알것 같았다. 남경공항에서부터 동행한 한국인 오사장은 도자기화분을 보며 선택하느라 바쁘다. 가담가담 오사장과 얘기를 해보니 최씨와 인연을 맺고 거래한지도 어언 3~4년이란다.
강소성 의흥시 정촉진의 최씨사무실을 거친후 우리는 최씨와 거래하는 한 회사의 저녁초대를 받았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의흥 도자기중 가장 유명한 것이 자사도자기로서 관련 돌을 캐고 부시고 반죽하여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 돌은 거덜이 나서 지하갱을 뚫고 석탄처럼 캐낸다고 하는데 그 생산절차가 쉽지 않았다. 한국 오사장은 자사(瓷砂)도자기는 세계에서 강소 의흥에서만이 생산되여 의흥과 인연을 맺게 되였다고 토로한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여서 금요일에 떠나 온 우리는 귀로에 올라야 했다. 최성호수석인은 더는 만류하지 못하더니 11월 29일 오전 의흥출발을 앞두고 정촉진의 전문도자기성으로 우릴 안내한다. 눈앞의 도자기성 현실에 우린 또한번 놀랐다. 2~3층으로 일매지게 층층히 앉은 도자기성이 어찌나 큰지 절강 이우의 아름찬 소상품성, 절강 제기의 방대한 진주성을 상기했다. 여기 강남사람들의 앞서가는 경제의식에는 정녕 탄복이 가지 않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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