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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허동식《잡담》
잡담 <계란으로 돌 깨기> 그리고 <물방울이 돌에 구멍 내기>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비리가 폭등하고 있는 사회임음은 의심할바가 없다.사회의 어느 구석을 물론하고 리상적인 윤리도덕리상과 사회공리와는 현실은 거리를 두고 있다. 그 거리가 축소되고 있는 추세인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인지는 내가 판단할바가 아니지만 우리가 가꾸어야 할 사회의 비리와 불공정성에 대하여 태도표명을 할라치면 가끔은 < 사회란 원래 그런거여, 너무 고지식하지말고 너무 잘난체하지말고 밥이나 얻어먹고 잠이나 자면서 절때 계란으로 돌 깨는 짓을 하지말라>는 충고를 받게 된다. 충고를 하게 된다.
나를 생각해서 또는 남을 생각해서 하는 충고이기는 하겠지만 마음 어딘가는 구역질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다.
아주 오래동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무력한 계란의 존재로서 엄연한 사실존재인 돌을 깨려는 욕구마저 잃어버리고 있다. 계란으로 돌을 깨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러한 용기와 내재적인 원동력이 없이는 앞으로 몇백년이 흐른다 하더라도 개인과 기정사회의 타협만 영원히 지속될것이고 사회공리의 륭기는 전혀 구경하지 못할것으로 짐작된다.
80년대 중엽으로부터 말엽까지만 하여도 중국의 지식청년들은 유치하기는 하지만 사회정치리상을 어느 정도 품고 있었다. 헌데 89년 정치사건에 학생들이 말려든 일을 계기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대부분 학생들과 지식청년들은 완전한 속세주의풍기에만 빠져있다.중국인 고유의 天問적인 기질과 행위를 버리고만 있다.
나도 89년에는 대학교 3학년이였는데 적어도 어느 정도의 사회관심성을 지녔었지만 또 중국지식인들의 사회관심성이 아닌 정치관심성에(너도 나도 관직 하나를 얻으려는) 현상에 많은 실망을 느끼고나서 거의 20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연한 타락상만 보이고 있다. 그래서 <계란으로 돌을 치지 말라>는 충언을 외우는 부류에 속하고있다.
헌데 가증스러운것은 아버지 엄마로 되였으니 자식의 공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이고 (공부가 출세의 길이라 생각하므로) 또 그럴 때면 <물방울도 돌에 구멍을 낸다> < 돌도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 > 등등의 고귀한 말씀을 팔아먹고 있으니 내 생과 우리의 생은 슬픈 생이 ,위선자의 생이 아닐수가 없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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