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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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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에이츠 시모음 댓글:  조회:3388  추천:0  2015-07-17
이니스프리 호수 섬  흰새들  죽음  오랜 침묵 후에  버드나무 정원에서  그대 늙었을때  방황하는 인거스의 노래  술노래  하늘의 융단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레다와 백조  쿠울호의 백조  둘째 트로이는 없다  유리 구슬  학생들 사이에서  내 딸을 위한 기도  1916년 부활절  육신과 영혼의 대화  비잔티움  벌벤산 아래  긴다리 소금쟁이  ~~~~~~~~~~~~~~~~~~~~~~~~~~~~~~~~~~~~~~~~~~~~~~~~~~~~~~~~~~  이니스프리 호수 섬  나는 일어나 지금 갈거야, 이니스프리로 갈거야,  조그마한 오두막을 거기에 지을거야, 진흙과 나뭇가지로.  콩을 아홉 이랑 심고, 꿀벌도 한 통 칠거야,  그리고 벌소리 잉잉대는 숲에서 홀로 살거야.  나는 거기서 평화로울 거야, 왜냐면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장막을 뚫고 귀뚜리 우는 곳으로 천천히 오니까.  거기는 한 밤은 항상 빛나고, 정오는 자주빛을 불타고,  저녁은 홍방울새 소리 가득하니까.  나는 일어나 지금 갈거야, 왜냐면 항상 밤낮으로  호수물이 나지막이 찰싹이는 소리가 들리니까.  나는 차도 위나 회색 보도 위에 서 있는 동안에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소리가 들린다.  ~~~~~~~~~~~~~~~~~~~~~~~~~~~~~~~~~~~~~~~~~~~~~~~~~~~~~~~~  흰새들  애인이여, 나는 바다 물거품 위를 나는 흰 새가 되고 싶구려!  사라져 없어지는 유성의 불길엔 싫증이 나고,  하늘까에 나직이 걸린 황혼의 푸른 별의 불길은,  애인이여, 꺼질 줄 모르는 슬픔을 우리의 마음에 일깨워 주었소.  이슬 맺힌 장미와 백합, 저 꿈과 같은 것들에게선 피로가 오오.  아 애인이여, 그것들, 사라지는 유성의 불길은 생각지 맙시다.  그리고 이슬질 무렵 나직이 걸려 머뭇거리는 푸른 별의 불길도,  왜냐하면, 나는 떠도는 물거품 위의 흰 새가 되었으면 하니, 그대와 나는!  나는 수많은 섬들, 그리고 많은 요정의 나라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오.  그곳에선 분명 시간이 우리를 잊을 것이고, 슬픔도 더 이상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며,  곧 장미와 백합, 그리고 불길의 초조함에서 벗어날 것이오.  애인이여, 우리 다만 저 바다의 물거품 위를 떠도는 흰 새나 된다면 오죽 좋겠소.  ~~~~~~~~~~~~~~~~~~~~~~~~~~~~~~~~~~~~~~~~~~~~~~~~~~~~~~  죽음  두려움도 바램도  죽어가는 동물에 임종하지 않지만,  인간은 모든 걸 두려워하고 바라며  최후를 기다린다.  그는 여러 차례 죽었고  여러 차례 다시 일어났다.  큰 인간은 긍지를 가지고  살의(殺意) 품은 자들을 대하고  호흡 정치 따위엔  조소(嘲笑)를 던진다.  그는 죽음을 뼈 속까지 알고 있다 -  인간이 죽음을 창조한 것을.  ~~~~~~~~~~~~~~~~~~~~~~~~~~~~~~~~~~~~~~~~~~~~~~~~~~~  오랜 침묵 후에  오랜 침묵 후에 하는 말 -  다른 연인들 모두 멀어지거나 죽었고  무심한 등불은 갓 아래 숨고  커튼도 무심한 밤을 가렸으니  우리 예술과 노래의 드높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함이 마땅하리.  육체의 노쇠는 지혜, 젊었을 땐  우리 서로 사랑했으나 무지했어라.  ~~~~~~~~~~~~~~~~~~~~~~~~~~~~~~~~~~~~~~~~~~~~~~~~~~~~~~~~~~~  버드나무 정원에서  버드나무 정원에서 그녀와 나 만났었네.  눈처럼 흰 작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나뭇가지에 잎이 자라듯 사랑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난 젊고 어리석어 그녀의 말 들으려 하지 않았네.  강가 들판에서 그녀와 나 서 있었네.  기대인 내 어깨 위에 눈처럼 흰 손을 얹으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젊고 어리석었던 나에겐  지금 눈물만 가득하네.  ~~~~~~~~~~~~~~~~~~~~~~~~~~~~~~~~~~~~~~~~~~~~~~~~~~~~~~~~~  그대 늙었을 때  그대 늙어 백발이 되어 졸음이 자꾸 오고  벽로 가에서 고개를 끄떡끄떡할 때, 이 책을 꺼내어,  천천히 읽으며 그대 눈이 옛날 지녔던  부드러운 눈동자와 그 깊은 그림자를 꿈꾸어라 ;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대의 즐거운 우아의 순간을 사랑했으며,  또 그대의 미를 참사랑 혹은 거짓사랑으로 사랑했던가를,  그러나 오직 한 사람 그대의 편력하는 영혼을 사랑했고,  그대의 변해가는 얼굴의 슬픔을 사랑했었음을;  그리고 달아오르는 쇠살대 곁에 몸을 구부리고서,  좀 슬프게 중얼대어라, 어떻게 사랑이  산 위로 하늘 높이 도망치듯 달아나  그의 얼굴을 무수한 별들 사이에 감추었는가를.  ~~~~~~~~~~~~~~~~~~~~~~~~~~~~~~~~~~~~~~~~~~~~~~~~~~~~~~~~~~~~  방황하는 인거스의 노래  내 머리 속에 불이 붙어  개암나무 숲으로 갔었지.  개암나무 한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딸기 하나를 낚싯줄에 매달았지.  흰 나방들이 날고 (아마 이 구절인 듯)  나방 같은 별들이 깜빡일 때  나는 시냇물에 딸기를 담그고  작은 은빛 송어 한 마리를 낚았지.  나는 그것을 마루 위에 놓아 두고  불을 피우러 갔었지.  그런데 마루 위에서 무엇인가가 바스락거리더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지.  그것은 머리에 사과꽃을 단  어렴풋이 빛나는 소녀가 되어  내 이름을 부르며 달아나  빛나는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  나 비록 골짜기와 언덕을  방황하며 이제 늙어 버렸지만  그녀가 간 곳을 찾아 내어  그녀의 입술에 입맞추고 손을 잡고서  얼룩진 긴 풀밭 속을 걸어 보리라.  그리고 시간이 다할 때까지 따보리라.  저 달의 은빛 사과를  저 해의 금빛 사과를...  ~~~~~~~~~~~~~~~~~~~~~~~~~~~~~~~~~~~~~~~~~~~~~~~~~~~~~  술노래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흘러든다.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뿐.  술잔을 입에 대면서  내 그대를 쳐다보고 한숨짓는다.  ~~~~~~~~~~~~~~~~~~~~~~~~~~~~~~~~~~~~~~~~~~~~~~~~~~~~  하늘의 융단  만일 나에게 하늘의 융단이 있다면  금빛과 은빛으로 짠,  낮과 밤과 어스름의  푸르고 희미하고 어두운 천으로 짠.  그대 발 밑에 깔아드리련만  허나 가난한 나는 꿈밖에 없어  그대 발 밑에 꿈을 깔았습니다.  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잎이 많아도 뿌리는 하나입니다.  내 청춘의 거짓 많던 시절에는  태양 아래서 잎과 꽃을 흔들었건만  이제는 나도 진실 속에 시들어 갑니다.  ~~~~~~~~~~~~~~~~~~~~~~~~~~~~~~~~~~~~~~~~~~~~~~~~~~~~~~~~  레다와 백조  별안간의 강한 휘몰아침. 커다란 날개들이 아직  비틀거리는 소녀 위에서 퍼덕이고, 그녀의 허벅지는  검은 물갈퀴로 애무되고, 목은 그의 부리에 잡혀 있을 때,  그는 그녀의 무력한 가슴을 자기 가슴에 껴안는다.  어떻게 놀라고 모호한 그 손가락들이 밀어내겠는가  그녀의 느슨해지는 허벅지에서 깃털달린 영광을?  어떻게 그 하얀 물풀 속에 눕혀진 육체가  느끼지 않을 수 있으리 낯선 심장의 고동을?  허리의 떨림이 거기에 낳는다  파괴된 담, 불타는 지붕 그리고 탑과  아가멤논의 죽음을.  그렇게 잡혀서,  하늘의 그 야만적인 피에 지배되었을 때,  그녀는 그의 힘과 더불어 그의 지혜도 받았는가  그 무관심한 부리가 그녀를 놓아주기 전에?  ~~~~~~~~~~~~~~~~~~~~~~~~~~~~~~~~~~~~~~~~~~~~~~~~~~~~~~~~~  쿠울호의 백조  나무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에 싸여 있고,  숲 속의 오솔길은 메말랐다,  시월의 황혼 아래 호수물은  잔잔한 하늘을 비춘다,  솔 사이로 넘치는 물 위에는  쉰아홉 마리의 백조가 있다.  열아홉 째 가을이 나에게 왔다  내가 처음 세기 시작한 이래.  나는 내가 잘 끝내기도 전에,  모두 갑자기 올라가  부서진 커다란 고리 모양으로 선회하며  요란한 날개소리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빛나는 생물들을 보아왔고,  이제 내 마음을 쓰리다.  모든 것이 변했다, 내가, 황혼녘에,  이 호숫가에서 처음,  내 머리 위로 그들의 날개짓 소리 들으며  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이후로.  여전히 지치지 않고, 연인끼리,  그들은 사귈만한 찬물에서  노닥거리거나 하늘로 올라간다.  그들의 마음은 늙지 않았다.  정열과 정복심이, 그들이 어딜 가든,  여전히 그들에겐 있다.  지금 그들은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다,  시비롭고, 아름답게.  어떤 물풀 속에 그들은 세울까,  어떤 호숫가나 연못가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까 내가 어느날 잠깨어  그들이 날아가버린 것을 발견할 때?  ~~~~~~~~~~~~~~~~~~~~~~~~~~~~~~~~~~~~~~~~~~~~~~~~~~~~~~~~  둘째 트로이는 없다  왜 내가 그녀를 책망해야 하나 그녀가 내 생애를  고통으로 채운 것을, 또는 그녀가 최근에  무지한 사람들에게 매우 폭력적인 방법을 가르친 것을,  또는 작은 거리들을 큰 거리로 내던진 것을,  만일 그들이 욕망에 상응하는 용기를 가졌다면?  무엇이 그녀를 평화롭게 할 수 있었을까,  고상함이 불처럼 단순케 한 마음과,  이런 시대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종류인,  팽팽히 당겨진 활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를,  만일 그녀가 높고 외롭고 매우 엄격했다면?  아니, 무엇을 그녀가 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오늘날의 그녀였다면?  또 하나의 트로이가 있었단 말인가 그녀가 불태워 버릴 ?  ~~~~~~~~~~~~~~~~~~~~~~~~~~~~~~~~~~~~~~~~~~~~~~~~~~~~~~~~~  유리 구슬  나는 들었다 병적으로 흥분한 여인들이 말하는 것을  자기들은 팔레트와 바이올린 활과,  항상 명랑한 시인들에 넌더리가 난다고,  왜냐면 모든 이들은 알거나 알아야 하기에  만일 근본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비행기와 비행선이 나와서,  빌리 왕처럼 폭탄을 떨어뜨려  도시가 납작하게 두드려 맞을 것이기에.  모두가 자신의 비극을 연출한다,  저기 햄릿이 활보하고, 리어가 있고,  저건 오필리아, 저건 코델리아,  그러나 그들은, 만일 마지막 장면이 되어,  커다란 무대 장막이 내려지려 하더라도,  극 중의 그들의 뚜렷한 역할이 가치가 있다면,  울느라고 대사를 중단하지 않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햄릿과 리어가 명랑하고,  명랑함이 두렵게 하는 모든 것을 변형시킨다는 것을.  모든이들이 목표했고, 발견했고 그리고 잃었다.  무대 소등. 머리 속으로 빛내며 들어오는 천국,  최대한도로 진행된 비극.  비록 햄릿이 천천히 거닐고 리어가 분노해도,  수십만 개의 무대 위에서  모든 무대 장막이 동시에 내려진다 해도,  그것은 한 인치도, 한 온스도 자랄 수 없다.  그들은 왔다, 그들 자신의 발로 걸어서, 배를 타고,  낙타를 타고, 말을 타고, 당나귀를 타고, 노새를 타고,  옛 문명들이 칼로 죽임을 당할 때.  그 후 그들과 그들의 지혜는 파괴되었다.  대리석을 청동처럼 다루었던,  바다 바람이 그 구석을 쓸어갈 때  올라가는 듯이 보이는 휘장을 만들었던,  칼리마커스의 수공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가냘픈 종려나무 줄기 같은 모양의  그의 긴 등갓은 단 하루만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세우는 자들은 명랑하다.  두 중국인이, 그들 뒤엔 또 한 사람이,  유리 구슬에 새겨져 있다,  그들 위로는 장수의 상징인,  다리 긴 새가 날아간다.  세번째 사람은, 분명히 하인인데,  악기를 가지고 간다.  돌의 모든 얼룩이,  우연히 생긴 틈이나 움푹한 곳이,  물줄기나 사태처럼 보인다,  아니면 아직도 눈내리는 높은 비탈처럼 보인다,  비록 분명히 오얏이나 벗나무인 가지가  그 중국인들이 올라가고 있는 곳의 중간 쯤에 있는 작은 집을 기분좋게 하지만,  그리고 나는 즐거이 상상한다, 그들이 거기에 앉아있는 것을,  거기에, 산과 하늘 위에,  그들이 바라보는 모든 비극적인 경치 위에.  한 사람이 구슬픈 곡조를 요청하자,  능숙한 손가락들이 연주하기 시작한다.  많은 주름 속의 그들의 눈, 그들의 눈,  그들의 오랜, 빛나는 눈은, 즐겁다.  ~~~~~~~~~~~~~~~~~~~~~~~~~~~~~~~~~~~~~~~~~~~~~~~~~~~~~~~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질문하며 긴 교실을 걸어간다.  흰 두건을 쓴 친절한 노 수녀가 대답한다.  아이들은 배웁니다 셈하기와 노래하기,  독본과 역사를 공부하기,  재단하기와 재봉하기를, 모든 면에서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잘하기를--아이들의 눈이  순간적으로 놀라서 응시한다  육십세의 미소짓는 공직자를.  II  나는 꿈꾼다 꺼져가는 불 위에 웅크린  레다의 육체를, 그녀가 말한  어떤 어린 시절을 비극으로 변하게 한  거친 책망이나, 사소한 사건의 이야기를--  들었지, 그러자 우리의 두 본성은 섞이는 듯했다  젊은이 특유의 공감 때문에 한 구체로,  아니, 플라톤의 비유를 바꾸어 말하자면,  한 껍질 속의 노른자와 흰자로.  III  그리고 슬픔이나 분노의 그 발작을 생각하며  나는 거기 있는 이 아이 저 아이를 바라보고  궁금해한다 그녀도 그 나이에 저랬을까 하고--  왜냐면 백조의 딸들이라도 모든 물새들의 유산을  조금은 공유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뺨이나 머리에 저 색깔을 지녔었을까 하고,  그러자 내 마음은 미칠 듯했다.  그녀가 내 앞에 서 있다 실물과 같은 아이로.  IV  그녀의 현재의 영상이 마음 속에 떠오른다--  십오세기의 손가락들이 그것을 만들었나  마치 바람을 마시고 고기 대신  한 접시의 그림자를 먹은 듯 뺨이 훌쭉하게?  그리고 나는 결코 레다의 종류는 아니지만  한 때 예쁜 깃털을 가졌었다--그것이면 충분하다,  미소짓는 모든 이에게 미소짓고, 보여주는 게 나으리라  편안한 종류의 늙은 허수아비가 있음을.  V  어떤 젊은 어머니가, 생식의 꿀이 드러내어,  회상이나 그 약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잠자고, 고함치고 고망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형체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자신의 아들을, 만일 그녀가 그 머리 위에  육십이나 그 이상의 겨울을 얹은 그 형체를 보기만 한다면,  그의 출산의 고통이나 그를 세상에 내보낼 때의  불확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할까?  VI  플라톤은 자연이 사물들의 희미한 모형 위에  떠도는 거품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보다 견실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질을 했다  왕 중 왕의 궁둥이 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황금-허벅지의 피타고라스는  바이올린 활대나 줄을 손가락으로 연주했다  별이 노래하고 무심한 시신들이 들은 것을.  새를 쫒아버리는 낡은 막대기 위의 낡은 옷들일 뿐이다.  VII  수녀들가 어머니들은 상들을 숭배한다,  촛불들이 밝히는 것들은  어머니의 환상을 활기차게 하는 것들과 같지 않다,  그러나 대리석이나 청동의 평온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것들도 가슴을 찢는다--오  정열, 경건, 아니면 애정이 알고  천상의 모든 영광을 상징하는 존재들이여--  오 인간의 일을 조롱하는 스스로 태어난 자여.  VIII  노동은 육체가 영혼을 즐겁게 하려고  상처입지 않는 곳에서 꽃피거나 춤춘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의 절망에서 생기지 않고,  흐린 눈의 지혜는 한밤의 기름에서 생기지 않는다.  오 밤나무여, 크게-뿌리박은 꽃피우는 자여,  그대는 잎인가, 꽃인가, 아니면 줄기인가?  오 음악에 맞춰 흔들린 육체여, 오 반짝이는 시선이여,  어떻게 우리는 무용수와 춤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  내 딸을 위한 기도  폭풍우가 한 번 더 불고 있으나 이  요람 덮개와 이불 아래 반 쯤 덮혀  내 아이는 잠잔다. 그레고리의 숲과  헐벗은 동산 하나 외에는 장애물이 없다  거기에 대서양에서 생긴 바람이 머물 수 있다.  건초더미와 지붕을 납작하게 만드는 바람이,  한 시간 동안 나는 걸으며 기도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큰 어둠 때문에.  나느 한 시간을 걸으며 기도했다 이 어린 아이를 위해  그리고 바다바람이 탑 위에서, 다리의 아치 아래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물이 불은 냇물 위의 느름나무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흥분된 환상 속에서  미래의 세월이 도래했다고 상상했고,  바다의 살인적인 순진에서 나온 격노한 북소리에 맞추어 춤추었다.  선택받은 헬렌은 삶이 단조롭고 무료함을 발견했고  후에 한 멍청이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다,  물보라에서 태어난 그 위대한 여왕은,  아버지가 없었기에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안짱다리 대장장이를 남편으로 골랐다.  멋진 여인이 그들의 고기와 함께  미치게 하는 샐러드를 먹는 것은 확실하다  그로 인하여 풍요의 뿔은 망쳐진다.  예절에 있어서는 그녀가 주로 배웠으면 한다,  마음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아름답지 만은 않은 사람들이 수고해 얻는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아름다움 자체를 위해 바보짓을 한  많은 사람들을 매력이 현명하게 했다,  헤매고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생각한 많은 불쌍한 사람들은  즐거운 친절에서 자신의 눈길을 돌릴 수 없다.  그녀의 모든 생각이 홀방울새처럼 되도록  그녀가 꽃피는 숨은 나무가 되기를,  그 소리의 관대함을 나누어 주는 것 이외의  다른 일은 하지 않기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면 추격을 시작하지 않기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면 싸움을 시작하지 않기를.  오 그녀가 한 사랑스런 영속적인 장소에 뿌리박은  어떤 푸른 월계수처럼 살기를.  내 마음은, 내가 사랑했던 마음들 때문에,  내가 인정했던 종류의 아름다움 때문에,  조금밖에 번창하지 않고, 최근엔 메말라버렸다,  그러나 증오로 목 메이는 것이  모든 악운 중에서 최고라는 것을 안다.  마음에 증오가 없다면  바람의 습격과 공격이  홍방울새를 잎사귀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  지적인 증오가 가장 나쁘다,  그러니 그녀로 하여금 의견은 저주받은 것이라고 생각케하라.  풍요의 뿔의 입에서 태어난  가장 사랑스런 여인이,  그녀의 완고한 정신 때문에  그 뿔과 조용한 본성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모든 선을 분노한 바람이 가득한 풀무와  맞바꾸는 것을 나는 보지 않았던가?  모든 증오가 여기에서 쫒겨나고,  영혼이 근본적인 순결을 회복하고  드디어 그것은 스스로 기쁘게 하고,  스스로 달래고, 스스로 위협한다는 것과,  그 자체의 감미로운 뜻이 하늘의 뜻이라는 알게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녀는, 비록 모든 얼굴들이 지푸리고  모든 바람부는 지역이 고함치거나  모든 풀무가 터져도, 여전히 행복하리라.  그녀의 신랑이 그녀에게 집을 가져오기를  그곳에선 모든 것이 익숙해져 있고, 의식적인 그런 집을,  왜냐면 거만과 증오는 대로에서  사고파는 물건들이니.  어떻게 단지 관습과 의식에서만  순진과 아름다움이 태어나는가?  의식은 풍요의 뿔의 이름이고,  관습은 널리 퍼지는 월계수의 이름이다.  ~~~~~~~~~~~~~~~~~~~~~~~~~~~~~~~~~~~~~~~~~~~~~~~~~~~~~~~~~~~~~  1916년 부활절  나는 잿빛 십팔세기의 집들 가운데서  계산대나 책상으로부터  활기찬 얼굴로 다가오는  그들을 낮이 끝날 때 만났다  나는 지나갔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예의바른 별 뜻없는 말을 하거나  잠시 머물러  별 뜻없는 말을 하거나 하곤,  그리고 생각했다  그들과 내가 광대옷을 입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클럽의 난로에 둘러 앉아 있는  친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농담이나 조롱을 끝마치기도 전에,  모든 것이 변했다, 완전히 변했다고,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고.  그 여인의 낮들은 보내졌다  무지한 선의 가운데,  그녀의 밤들은 토론 가운데 보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로와질 때까지.  그녀가 젊고 아름다울 때,  말타고 사냥개를 쫓을 때,  어떤 목소리가 그녀의 목소리보다 감미로왔는가?  이 남자는 학교를 경영했고  우리의 날개달린 말을 탔다,  이 사람은 그의 조력자이자 친구로  한창 본령을 발휘하고 있었다,  결국 명성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그의 본성은 지극히 민감해 보였고,  그의 생각은 지극히 대담하고 감미로워 보였으므로.  이 사람은 내 생각에  술주정뱅이고, 허영심 강한 촌놈이었다.  그는 매우 심한 나쁜 짓을 했다  내 마음에 가까운 누군가에게,  그러나 나는 그를 노래 속에 넣어준다,  그도, 또한, 이 우연한 희극에서  자기 역할을 그만두었다,  그도, 또한, 자기 차례가 되어 변했다,  완전히 변형되었다.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한 가지 목적만 가진 사람들은  매혹되어 돌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 있는 강물을 괴롭히기 위하여.  길에서 오는 말,  말탄 자, 구름에서 휘모는 구름으로  날아가는 새들,  순간순간 그들은 변한다,  냇물에 비친 구름 그림자는  순간순간 변한다,  말발굽이 물가에서 미끄러지고,  말은 그 속에서 텀벙거린다,  다리가 긴 붉은 뇌조들이 잠수하고,  암컷들은 수컷들을 부른다,  순간순간 그들은 살아가고.  그 돌은 이 모든 것 가운데 있다.  너무 오랜 희생은  마음을 돌로 만들 수 있다.  오 언제면 충분할까?  그건 하늘의 몫이다, 우리 몫은  마음대로 뛰놀던 사지에  마침내 잠이 닥쳐왔을 때,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부르듯이,  이름들이나 중얼거리는 것,  그것이 황혼이 아니고 무엇이오?  아니, 아니, 밤이 아니라 죽음이오.  그건 결국 필요없는 죽음이었나?  왜냐면 행해지고 말해진 모든 것에 대해  영국은 신의를 지킬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그들의 꿈을 안다, 충분하다  그들이 꿈꾸었고 죽었다는 것만 알면,  긜고 과도한 사랑이 그들이 죽을 때가지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으면 어떻소?  나는 그것을 시로 쓴다--  맥도너와 맥브라이드  그리고 코놀리와 퍼스는  지금과 장래에  녹색 옷이 입어지는 곳 어디서나,  변했다, 완전히 변했다.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  ~~~~~~~~~~~~~~~~~~~~~~~~~~~~~~~~~~~~~~~~~~~~~~~~~~~~~~~~~~~~~~~  육신과 영혼의 대화  영혼: 나는 굽이도는 옛 계단으로 부른다,  너의 마음을 모두 가파른 오르막에,  부서지고 무너지는 성벽에,  호흡없는 별빛 비친 공기에,  숨은 극을 표시하는 별에 집중하라고.  헤매는 모든 생각을  모든 생각이 다해버린 그 지역에 고정하라고.  누가 어둠과 영혼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육신: 내 무릎 위의 그 신성한 칼은  사토의 옛 칼로 여전히 예전과 같다,  여전히 날리 예리하고, 여전히 거울같고  긴 세월에 의해 얼룩지지 않았다.  그 꽃무니, 비단의 옛 장식은, 어떤  궁정여인의 옷에서 찢어내어져  그 나무칼집을 묶어 싸고 있는데,  해어졌으나 여전히 보호할 수 있고, 빛바랬으나 장식할 수 있다.  영혼: 왜 인간의 상상은  전성기를 한창 지나서  사랑과 전쟁을 상징하는 것들을 기억해야 하는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밤을 생각하라,  다만 상상이 대지를 경멸하고  지성이 그것이 이것 저것으로  또 다른 것으로 헤맴을 경멸하기만 한다면,  죽음과 탄생의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그 밤을.  육신: 몬타시기, 그의 가족의 셋째가, 그것을 만들었다  오백년 적에, 그 주변에는  어떤 자수인지 나는 모르는--진홍빛의--  꽃들이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밤을 상징하는 탑에 대한  낮의 상징으로 놓는다,  그리고 군인의 권리에 의한 것처럼  그 죄를 한 번 더 범할 특권을 요구한다.  영혼: 그 지역의 그러한 충만함은 넘쳐흘러  정신의 웅덩이에 떨어져  사람은 귀멀고 말못하고 눈이 먼다,  왜냐면 지성은 더 이상 구별하지 못하기에  존재와 당위를, 주체와 대상을--  다시 말하여, 하늘로 올라가기에,  단지 죽은 자들만이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걸 생각할 때 내 혀는 돌이 된다.  II  육신: 산 사람은 눈멀어 자신의 배설물을 마신다.  도랑이 불결하면 어때?  내가 그 모든 것을 한 번 더 살면 어때?  자라는 노고를,  소년시절의 치욕을, 어른으로 바뀌는  소년시절의 슬픔을,  자신의 어색함을 직면하게 된  끝나지 않은 사람과 그의 고통을 참아내면 어때?  적들에게 둘러싸인 끝난 사람을 참아내면 어때?--  도대체 어떻게 그가  마침내 저 형상이 자신의 형상이라고 생각하도록  악의에 찬 눈들의 거울이  자신의 눈들 위에 던져준  저 더럽고 일그러진 형상을 피할 수 있는가?  명예가 그를 겨울의 강풍 속에서 발견할 때  도망이 무슨 소용있는가?  나는 이 모든 것을 다시 하는데 만족한다  그리고,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때리는  눈먼 사람의 시궁창의 개구리 알 속으로,  가장 비옥한 시궁창 속으로,  만일 사람이 자신의 영혼의 혈족이 아닌 오만한 여인에게  구애하면 그가 행하거나 겪어야만 하는 그 어리석음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 삶이라 해도,  나는 또 다시 사는데 만족한다.  나는 행동이나 생각에 있어서의 모든 사건을  그 원천까지 추구하는 데, 운명을 헤아리는 데,  내 자신에게 그 운명을 허용하는 데 만족한다,  내가 이렇게 후회를 내버려서  매우 큰 감미로움이 가슴 속으로 흘러들 때  우리는 웃고 노래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의해 축복받았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축복받았다.  ~~~~~~~~~~~~~~~~~~~~~~~~~~~~~~~~~~~~~~~~~~~~~~~~~~~~~~~~~~~~~~~~  비잔티움  낮의 정화되지 않은 상들이 물러난다.  황제의 술취한 병사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밤의 메아리도, 밤-보행자의 노래도  대 성당의 큰 종이 울린 후에는 물러난다.  별빛이나 달빛 비친 둥근 지붕은 경멸한다  인간인 모든 것을,  다만 복잡하기만 한 모든 것을,  인간 혈관의 격노와 오욕을.  내 앞에 상이 떠다닌다, 인간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이라기 보다는 허깨비이고, 허깨비라기 보다는 상인.  왜냐면 미이라의 옷에 감긴 하계의 실꾸리가  구불구불한 길을 풀어 놓을 지도 모르니,  습기도 없고 호흡도 없는 입을  호흡없는 입들이 소환할지도 모르니,  나는 환영한다 그 초인을,  나는 그것을 삶-속의-죽음과 죽음-속의-삶이라 부른다.  기적이, 새나 황금 세공품이,  새나 수공품이라기 보다는 기적이,  별빛 비친 황금 가지에 얹혀서,  하계의 수탉처럼 울 수 있거나,  달빛에 격분하여 큰 소리로 경멸할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금속을 찬양하여  보통의 새나 꽃잎을  그리고 오욕과 피의 모든 복잡한 것들을.  한밤에 황제의 포도 위에는 날아다닌다  나무도 공급하지 않고, 부싯돌도 부치지 않고,  폭풍우도 방해하지 않는 불꽃들이, 불꽃에서 나온 불꽃들이,  거기로 피에서 나온 영혼들이 오고  격노의 모든 복잡한 것들이 떠난다,  춤 속으로  황홀한 고뇌 속으로  소매도 그을릴 수 없는 불꽃의 고통 속으로 죽어간다.  돌고래의 오욕과 피에 걸터앉아 영혼이  줄지어 온다. 용광로들이 홍수를 부순다,  황제의 황금 용광로들이!  무도장 바닥의 대리석들이  복잡한 것의 격렬한 격분을 부순다,  여전히 새로운 상들을 낳는  그 상들을,  그 돌고래에 찢긴, 그 큰 종의 괴롭힘을 받은 바다를.  ~~~~~~~~~~~~~~~~~~~~~~~~~~~~~~~~~~~~~~~~~~~~~~~~~~~~~~~~~~~~~~  벌벤산 아래  아틀라스의 마녀가 알고 있었고,  말했고, 닭들을 울게 했던  마레오틱 호수 주변에서  성자들이 말한 것을 걸고 맹세하라.  안색과 모습이 초인임을 증명하는  그 말탄 자들, 그 여인들을 걸고 맹세하라,  그 창백하고 얼굴 긴 동료  불멸의 그 태도를  그들의 완전한 정열이 성취했음을.  이제 그들은 겨울 새벽을 타고 간다  벌벤 산이 경치를 보여주는 곳에서.  여기 그들이 뜻하는 바의 요점이 있다.  II  여러 번 사람은 살고 죽는다  종족의 그것과 영혼의 그것인,  그의 두 영원 사이에서,  옛 아일랜드는 그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사람이 자기 침대에서 죽든  아니면 장총이 그를 죽게 하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짧은 이별은  사람이 두려워해야 하는 최악이다.  비록 무덤-파는 자들의 노고는 오래고,  그들의 삽이 날카롭고, 그들의 근육이 강하더라도,  그들은 다만 그들이 매장한 사람을  인간의 마음 속으로 다시 되밀어 넣을 뿐이다.  III  "우리 시대에 전쟁을 보내주소서, 오 주여!"라는  미첼의 기도를 들은 당신은  모든 말들이 말해지고,  한 사람이 미쳐서 싸울 때,  무언가가 오랫동안 멀었던 눈에서 떨어지는 것을 안다,  그는 자신의 편파적인 마음을 응시하고,  잠시 편안히 서서,  큰 소리로 웃는다, 그의 마음은 평온하다.  가장 현명한 사람조차도 긴장한다  어떤 종류의 격렬함으로  그가 운명을 완수하거나  자신의 일을 알거나, 짝을 고를 수 있기 전에는.  IV  시인과 조각가는, 일을 한다,  시류를 따르는 화가로 하여금  그의 위대한 선조들이 한 것을 피하도록 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영혼을 신에게로 가져가고,  그로 하여금 요람을 옳게 채우도록 한다.  도량법이 우리 이론을 일으켰다,  힘찬 이집트인이 생각한 형체들을,  보다 점잖은 피디어스가 만든 형체들을,  미켈란제로는 시스틴 성당 지붕에  증거를 남겼다,  거기선 단지 반쯤 잠깬 아담이  지구에 거니는 마담을 혼란케할 수 있다  그녀의 내장이 열받을 때까지,  은밀히 작용하는 마음 앞에 놓인  목적이 있다는 증거이다.  인류의 세속적 완성이다.  십오세기는 신이나 성자의 배경으로  영혼이 편안히 쉬고 있는 정원을  그림으로 그렸다,  거기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꽃과 풀과 구름없는 하늘이,  잠꾸러기들이 깨었으나 여전히 꿈꿀 때,  그리고 단지 침대와 침대틀만 거기 남아 있고,  그것이 사라졌으나  천국이 열렸다고 여전히 선언할 때,  존재하거나 보이는 형체들을 닮았다.  가이어들은 계속 회전한다,  보다 위대한 그 꿈이 사라졌을 때  칼버트와 윌슨, 블레이크와 클로드는,  신의 국민들을 위한 휴식을 준비했다,  팔머의 말로, 그러나 그 후  우리 생각에 혼돈이 일어났다.  V  아일랜드 시인들이여, 당신네의 일을 배우시오,  잔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 노래하시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형체에서 나온 모든 것  지금 자라고 있는 종류의 것을 경멸하시오,  그들의 기억않는 가슴과 머리는  미천한 침대에서 미천하게 난 산물이오.  농부를 노래하시오, 그리고 그 다음엔  어렵게 말타는 시골 신사를,  수도승들의 성스러움을, 그리고 그 후엔  흑맥주 술꾼들의 요란한 웃음을 노래하시오,  일곱 영웅적인 세기 동안에  땅 속에 매장된  명랑한 귀족과 귀부인들을 노래하시오,  당신의 마음을 지난날에 던지시오  우리가 다가오는 시대에도 여전히  불굴의 아일랜드 인이 되도록.  VI  헐벗은 벌벤 산 정상 아래  드럼클리프 묘지에 예이츠가 누워 있다.  조상 한 분은 그곳의 목사였다  오래 전에, 교회가 가까이에 서 있다,  길 옆에 한 오래된 십자가.  대리석도, 전통적인 구절도 없다,  가까운 곳에서 채석된 석회암에  그의 명에 따라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삶에, 죽음에.  말탄 자여, 지나가거라!  ~~~~~~~~~~~~~~~~~~~~~~~~~~~~~~~~~~~~~~~~~~~~~~~~~~~~~~~~~  긴다리 소금쟁이  문명이 멸하지 않도록  큰 전투에 패하지 않도록  개를 조용하게 하고 나귀를  먼 기둥에 매어라.  우리 장군 시저는  지도가 펼쳐진 텐트 속에 있다.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다.  냇물 위에 떠 있는 긴 다리 소금쟁이처럼  그의 마음 정적 속에서 움직인다.  냇물 위에 떠 있는 긴 다리 소금쟁이처럼  그의 마음 정적 속에 움직인다.     드높은 탑들이 불타고  사람들이 그 얼굴을 기억하도록  이 외로운 곳에서 움직여야 한다면  아주 상냥하게 움직여라.  사분의 일 여자에 사분의 삼 아이인 그네  아무도 자길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네의 발은 거리에서 익힌  땜장이의 걸음을 흉내낸다.  냇물 위에 떠 있는 긴 다리 소금쟁이처럼  그네 마음 정적 속에서 움직인다.     사춘기 소녀들이 마음속에  최초의 아담을 발견할 수 있도록  법황청 성당의 문을 닫고  아이들을 들여보내지 마라.  성당 안에서 미켈란젤로는  비게 위에다 몸을 기댄다.  새앙쥐 움직이는 소리 정도로  그의 손은 이리저리 움직인다.  냇물 위에 떠 있는 긴 다리 소금쟁이처럼  그의 마음 정적 속에서 움직인다.  ~~~~~~~~~~~~~~~~~~~~~~~~~~~~~~~~~~~~~~~~~~~~~~~~~~~~~     
303    명시 모음 댓글:  조회:4683  추천:0  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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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현대시 100년과 10대 시인 댓글:  조회:4272  추천:0  2015-07-12
현대시 100년 10대 시인  올해는 육당 최남선이 신시 ' 해에게서 소년에게 '(1908년)를 발표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한국시인협회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국문과 교수 10명이 뽑은 '10대 시인과 대표작'을 (2007년말 기준)발표했다.   10대 시인(괄호 안의 대표작)은 김소월(진달래꽃), 한용운(님의 침묵), 서정주(동천), 정지용(유리창), 백석(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김수영(풀), 김춘수(꽃을 위한 서시), 이상(오감도), 윤동주(또 다른 고향), 박목월(나그네)이다. 이 중 김소월과 한용운, 서정주는 만장일치로 뽑혔다. 선정 작업은 평론가들이 각자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고 생각하는 시인 10명과 시인별 대표작을 추천하고, 이들 후보군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10대 시인과 대표작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생존 작가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301    명시인 - 박팔양 댓글:  조회:4183  추천:0  2015-07-09
   박팔양 시인 : -서사시 를 비롯하여 천여 편의 시와          극 등 문학예술작품을 발표하여 북한 문단사에 일획을 장식한 시인. -1905년 8월 경기도 수원에서 8형제의 막내아들로 태어남. -경성법학전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가짐. -1923년 처음으로 시 작품 ‘물노래’를 발표함. -1925년 8월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의 회원으로 문필활동 본격화 -장시 ‘ 민족의 영예’가 있고, 장편서사시 ‘눈보라 만리’가 있음 -애국열사릉에 안치됨. -비전행장기수 박문재(52년 동안 남한에 수인으로) 씨가 시인의 아들임.       밤차 - 박팔양(필명: 김여수)   추방되는 백성의 고달픈 백(魄)을 실고 밤차는 헐레벌덕어리며 달어난다 도망군이 짐싸가지고 솔밭길을 빠지듯 야반(夜半) 국경의 들길을 달리는 이 괴물이여!   차창밖 하늘은 내 답답한 마음을 닮었느냐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 몹시도 캄캄하고나 유랑(流浪)의 짐 우에 고개 비스듬히 눕히고 생각한다 오오 고향의 아름답든 꿈이 어디로 갔느냐   비닭이*집 비닭이장같이 오붓하든 내 동리 그것은 지금 무엇이 되었는가 차바퀴 소리 해조(諧調)*마치 들리는 중에 희미하게 벌려지는 괴로운 꿈자리여!   북방 고원의 밤바람이 차창을 흔든다 (사람들은 모다 피곤히 잠들었는데) 이 적막한 방문자여! 문 두드리지 마라 의지할 곳 없는 우리의 마음은 지금 울고 있다   그러나 기관차는 야음(夜音)을 뚫고 나가면서 ‘돌진! 돌진! 돌진!’ 소리를 질른다 아아 털끝만치라도 의롭게 할 일 있느냐 아까울 것 없는 이 한 목숨 바칠 데가 있느냐   피로한 백성의 몸 우에 무겁게 나려 덥힌 이 지리한 밤아 언제나 새이랴나 언제나 걷히랴나 아아 언제나 이 괴로움에서 깨워 일으키랴느냐 (ꡔ조선지광ꡕ, 1927.9)   * 비닭이 : 비둘기. * 해조 : 아름다운 가락.     김여수(金麗水)라는 이름으로도 많은 시를 발표한 박팔양은 임화를 중심으로 한 단편 서사시 계열과는 달 리 서정성 짙은 프롤레타리아 시를 주로 창작하였다. 이러한 서정성은 일찌기 ꡔ요람ꡕ을 만들기도 하였던 시적 감수성이기도 한데, 이러한 성격에서 그는 초기 계급 문단에 관여하기도 하고 1930년대 중반 ‘구인회’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 시는 추방당하는 유랑민의 비애를 거친 호흡과 직설적인 어법으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각 연의 영탄적 표현에서 보듯 박팔양의 젊은 시절의 낭만적 어조가 짙게 배어 있다. 이 시에는,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한 ‘추방되는 백성’의 회한과 ‘무겁게 나려 덥힌 지리한’ 국경의 밤의 이미지가 ‘괴물’ 같은 기차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식민지 현실의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주된 시어도 ‘추방’․‘고달픈’․‘헐레벌덕어리며’․‘달어난다’․‘답답한’․‘숨맥힐 듯’․‘가슴 터질 듯’․‘캄캄하고나’․‘괴로운’․‘적막한’․‘피로한’․‘무겁게’․‘나려 덥힌’ 등에서 보듯 피압박의 이미지가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어휘들이 대부분이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추방되는 백성’으로, 그는 ‘백성’이라는 시어에서 보듯 나 혼자만이 아닌 식민지 백성 전체를 대유한다. 그리하여 2연의 1행 ‘내 답답한 마음’은 4연 마지막 행의 ‘의지할 곳 없는 우리의 마음’으로 밤차를 타고 있는 모든 승객―모든 유랑객의 마음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비닭이집’ 같은 오붓한 고향을 등지고 ‘도망꾼’처럼 ‘솔밭길을 빠지듯’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나선 신세이다. 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밤차에 몸을 실어 낯선 북방의 산하를 헤맬 것이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을 따스하게 맞아 줄 ‘아름답든 꿈’은 없으리란 것을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단지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 몹시도 캄캄’할 뿐이다. 모두 피곤히 잠들어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말없이 울고 있을 뿐인데, 차창에는 북국의 거친 바람이 부딪히고, ‘괴물’ 같은 밤차는 이러한 백성들의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돌진’할 뿐이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이러한 추방된 백성으로 괴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인가 의롭게 할 일, ‘아까울 것 없는 이 한 목숨 바칠 데’를 찾는다. 그것만이 이 괴로움에서 백성들을 깨워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추방의 원인이, ‘고향의 아름답든 꿈’이 사라지고 ‘비닭이집’ 같은 평화로운 고향이 지금은 황폐화된 것에서 보듯, 식민지 현실의 질곡에 있는 한, 시적 자아는 그러한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데에 한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서정성 짙은 프롤레타리아 시를 통한 박팔양의 작품 행동인 것이다.    너무도 슬픈 사실-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 박팔양   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비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친구께서도 이미 그 꽃을 보셨으리다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피기도 전에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봄의 선구자 연분홍의 진달래꽃을 보셨으리다.   진달래꽃은 봄의 선구자외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그 엷은 꽃잎은 선구자의 불행한 수난이외다   어찌하야 이 나라에 태어난 이 가난한 시인이 이같이도 그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오라는 봄의 모양을 그 머리속에 그리면서 찬 바람 오고 가는 산허리에서 오히려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 고 ― (ꡔ학생ꡕ, 1930.4)     우리의 시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시의 제재로 선택되는 것 중의 하나가 꽃이며, 그 중 진달래꽃은 우리 주위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이어서 그 동안 많은 시인들에 의해 주로 사랑과 관련된 주제를 취급하는 제재로서 특히 애용되었다. 그 비근한 예로 우리는 김소월의 을 들 수 있거니와, 위의 박팔양의 작품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달래꽃’을 그 제재로 취급하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 이 시의 진달래꽃은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이다. 다른 꽃들처럼 피었다가 지면 열매를 맺는 결실도 없이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일홍’과 같은 화려함이나 ‘국화’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도 없어서 노래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꽃이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어서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이다. 그러나 선구자는 불행하다. 자신의 희생이 가져오는 화려한 결실을 직접 맛보지도 못하며 스러진다. 시적 화자는 따라서 그 동안 희생된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에 진달래꽃을 부여잡고 운다. 시제에서 보듯 시적 화자는 ‘진달래꽃’을 ‘봄의 선구자’로서 인식하지만, 그것은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서는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희생자로서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러나 정작 진달래꽃 자신은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 결국 시인은 ‘진달래꽃’에 의탁하여 그냥 ‘오래오래’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적 삶을 비판하고, 순간에 스러지더라도 뚜렷이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선구자로서의 삶은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박팔양이 선택한 삶의 방향인 것이다.            
300    현대시 간략 정리 모음 댓글:  조회:4198  추천:0  2015-07-05
오픈지식 현대시 간략 정리 모음 경북대 대학원 김균홍 교수 정리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1***고은-[눈길]  눈길=세상의 고뇌와 방황을 덮어주는  관용, 정화의 이미지  ***2***고은-[성묘]  소금장수인 아버지의 묘에 감.  ↑  1.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힘  2.부패하지 않는 정신  ***3***구상-[초토의 시.8]  6.25후 적군묘지 앞에서    ***4***김광균-[성호부근](회화성)  양철로 만든 달 = (차가움, 겨울의 이미지)  추억의 가지가지엔 조각난 빙설이 빛나다  = (의식의 시각화)  ***5***김광균-[오후의 구도]  눈보라에 얼어붙은 계절의 창밖에  ∼추억의… 별빛이 하나  → 적막감,감상적 분위기  ***6***김광균-[추일서정]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 (쓸쓸+황량+고독)  ***7***김광섭-[마음]  나의 마음은 돌 던지는 사람  고요한 물결 고기 낚는 사람  = 明鏡止水 , → 노래 부르는 사람  마음의 평화, 순결 갈망 = 세속적 자극  백조(=시심詩心) 오는 날  물가(내마음) 어지러울가 밤마다 꿈을 덮노라.  ***8***김광섭-[생의 감각]  a.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절망적 투병체험)  ↓  b.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실존적 인식)  ↓  c.기슭에는 채송화(생명의식 부각)  무더기로 피어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생명의 소중함)  ***9***김기림-[바다와 나비](문명비판)  흰 나비(연약한 인간)는  바다(삼월에도 꽃이 피지 않는 죽음의 공간;  문명사회의 불모성)가 무섭지 않다.  아무도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10***김남조-[정념의 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 걸려 왔더니라.  → 막막함 속에서 순수한 삶 희구.  ***11***김소월-[가는 길]  그리움,아쉬움,회한,자책  저 산에도 까마귀(화자의 모습, 객관적상관물)  앞강물 뒷강물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떠나는 님의 모습(긴박감)  ***12***김소월-[길] (식민지 수탈로 인한  유랑민의 비애 대변)  a.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화자의 불안적 심정 표출하는 객관적상관물)  b.말마소 내 집도 정주곽산  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고향 상실하고 유랑하는 신세)  c.여보소, 기러기(선망의 대상),공중(희망의  공간)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d.열십자 복판(운명의 기로)에 내가 섰소.  ***13***김소월-[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다면]  나는 나아가리라 한걸음 또 한걸음.  → 정한의 세계가 아닌, 민족의 현실 반영,  절망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  ***14***김소월-[접동새](설화소재)  진두강가 10남매중 누이가 시집가는데 계모  가 시샘, 태워 죽임→ 누이가 접동새 되어  아우래비("아우오래비"의 활음조) 곁에 와  夜삼경(11∼1시,丙夜,子時)에 슬피 웁니다.  = 좌절과 恨 속에서 방황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모습 → 혈육애,휴머니즘  ***15***김수영-[눈]  눈(서정적 존재 x, 순수한 생명적 존재) 점층,  ↓  반복, 기침(젊은 시인의 일상적인 리듬, 소시민성,속물성) ↓  가래(불순한 것으로 가득찬 상태)  눈의 순수성 통해 우리들의 속물성을  씻어내라는 권유, 눈과 기침의 대비,  고도의 상징, 비판의식, 주지적.  ***16***김수영-[死靈]  a.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욕된 郊外에서  → 자유당 독재하의 비민주적 사회  b.그대는(=폭포)반짝이는 하늘 아래 자유를  말하는데,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  아니냐? → 자유와 정의가 활자로만(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부도덕한 현실에 적극  항거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자신의 비겁하고  소심한 영혼을 自責 반성.  ***17***김수영-[폭포]  a.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 선구자적 행동성,실천의지  b.자유당 독재정권 하에서 양심있는 세력의  올곧은 목소리를 갈구.  c.자연물에 대한 지적인식  d.나타와 안정(現實安住,無事安逸)을 강력히  부정  ***18***김수영-[풀]  a.풀 : 민중, 연약하지만 끈질긴 생명력 지님  b.바람 : 억압하는 세력  c.날이 흐리고 : 비관적인 역사의 흐름.  d.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 돋보임, 수동→ 능동성, 풀의  너그러움과 넉넉함.  ***19***김수영-[현대식 교량]  a.나 : 죄가 많은 다리를 건널 때마다 지나온  역사(6.25, 식민지) 회고.  b.젊은이 : 적을 형제로 만듦,  새로운 역사 개척.  c.橋梁 통해 세대차 포용, 이해, 공감.  ***20***김수영-[푸른 하늘을]  =자유의 공간  a. 4.19 배경, 자신의 좌절감과  再起를 위한 고독한 의지 표현.  b.자유로의 비상은 그저 자유롭지만은 않다  → "피의 냄새" 섞여 있고, 고독해야 한다.  ***21***김영랑-[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a.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민족적 정서 가락(3음보)반복, 음악성,  = 외부세계의 갈등 벗어나 마음의 평화와  안정 추구.  b.돋쳐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은결을/도도네//  → 세련된 감각어 사용,  c.수미쌍관식 구성(앞부분과 뒷부분이  비슷한 내용, 형식, 어구로 되어 있는것.  ***22***김영랑-[毒을 차고]  a.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뜯기우고 할퀴우라 내 맡긴 신세임을  - 나는 독을 차고 가리라,  혼을 건지기 위하여  → 늘 마음의 평화만 추구해 오던 영랑이  현실순응주의에서 벗어나 외로운 혼을  건지기 위해 현실에 맞서 저항할 것 결의.  ***23***김영랑-[두견]≠밤에 우는 접동새  (올빼미과의 소쩍새) ≒뻐꾸기  a. 서럽고 외로운…(지배적 정서)  b. 짙은 봄 獄 속 춘향이 아니 죽었을까  옛날 왕궁 나신어린 임금(단종)  홀로 우시다 너를 따라 가시었느냐  네 恨된 울음 죽음을 호려 불렀으리라  → 시의 화자는 한과 설움과 삶의 고뇌를 밤  지새워 비판하고있다.  c.두견 : 중국 촉나라 망제의 넋이 化한 새.  그 새의 울음소리를 통하여 감정 담아냄  ***24*김영랑-[북]  a.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뿐  헛때리면 만갑이(명창)도 숨을 고쳐 쉴수밖에  → 북과 소리의 조화로 이루어진  예술과 삶의 일체감.  → 一鼓手二名唱  b.動中靜이요, 소란속에 고요있어  인생이 가을처럼 익어가오  → 논어,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26***김춘수-[처용단장]  a. 소외된 유년기≒바다떠나 서라벌에 삶  b. 삼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잠들기 전에 ↓  물새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환청) ↓  c.산다화의 뽀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여성적 이미지) ↓  d.회상적, 과거의 인상을 서술, 그 이상의  상징적 의미 x, 이미지즘 시.  ***27***노천명-[남사당]  a.나(시인자신 x)는 분칠을 하고  다홍치마를 두르고 향단이가 된다.  포장 속에선 내 남성이 십분 굴욕되다  →어릴적 남자애 보기를 원했던 부모에 의해  男裝을 하고 다녔던 수치심에서 비롯  → 남사당 소년의 哀歡  b.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짓는  (일제하 유랑민의 처지),  나는 집시의 피였다(근원적 슬픔)  ***28***노천명-[사슴]  (노천명 자신의 슬픔 담음,감정이입.)  a.먼데 산을 바라본다. 평화로운 삶을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 누릴수 있는  잃었던 전설. 과거의 영토  b.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 슬픔의 근원은?  일제하에서 잘못된 현실인식으로 인한  불명예와 6.25 전란시 부역으로 인한 고초  ***29***박남수-[새]  a.새는(노래인줄 모르면서) 체온을 나눈다.  (사랑인줄 모르면서) 사랑을 나눈다.  ↓  비의도적,순수.  b.포수는 한덩이 납으로 순수를 겨냥하지만  (인간의 잔혹함)  c.매양 쏘는 것은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의 순수, 아름다움  → 문명비판적 ↕  인간의 인위성, 파괴성  ***30**박남수-[아침이미지]  →감각적,즉물적 시  a.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음  → 공감각적 이미지  b. 어둠→ 개벽(시상 전개)  ***31***박남수-[종소리]  a.종소리를 의인화하여  b.오랜 인종 청동의 표면 끝에  청동의 벽  칠흙의 감방  c.역사의 질곡을 박차고 나가는 시인의  자유를 위한 비상과 신념 표현  d.푸름,소리,울음,웃음,악기,뇌성,진폭의새  → 종소리의 객관적 상징물  ***32***박두진-[강 2]  a. 첫 연 = 숲: 혼란한 전쟁의 상황  b. 두,세 번째 연 = 꽃 : 희생을 바탕으로  자라난 겨레의 소망  c. 네, 다섯 번째 연 =  죽은 것, 배암비늘, 피발톱, 독수리,이리떼 :  (위협,갈등,살상,민족 비극의 원흉)  ↓  비둘기떼 : (약자, 희생자, 평화 사랑.)  d. 여섯, 일곱 번째 연 =  피몸짓,피무늿길 : (고난,역경)  ↓너머  바다 : (평화,자유,순결)  e. 강 : 우리 겨레의 내면, 심성 속에 흐르는  생명력과 포용력.  f. 해설 : 강이 바다로 흘러가기까지는  많은 고통과 비극이 있지만, 겨레의 가슴  속에 도도히 흐르는 "강"의 속성을 간직하고  산다면 자유와 이상이 넘치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  ***33***박두진-[도봉]  a.산새도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삶은 오직 갈 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운 뿐  → 일제 말기의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느끼는 적막감, 우수, 그리움,  괴로움의 정서  b.석양→황혼→밤(시간흐름), 원경→ 근경에  따라 시상전개)  ***34***박두진-[묘지송]  (삶이 값졌으므로:전제)무덤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고,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허무x, 슬픔,x 주검에 대한  찬미, 삶에 대한 강렬한 긍정의 역설적 표현  ***35***박두진-[어서 너는 오너라]  a.너:국외로 흩어진 동포(제유법)  b.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이상향,무릉도원  = 일제에 의해 짓밟힌 민족 공동체적 삶의  회복 의미.  c.우리,우리,옛날을,옛날을 뒹굴어 보자.  → 반복법,리듬감  d.옛날 → 아름다운 민족 공동체의 삶.  ***36***박목월-[이별가]  a.가시리→ 황진이→ 김소월  b.뭐라카노 저편 강 기슭에서  → 이승:저승, 삶:죽음의 간격  c.동아 밧줄(인연)은 삭아 내리는데  → 운명적 別離  d. 오냐오냐(나도 곧 갈거다)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운명에 순응하면서  이별의 情恨을 生死 超克의 경지까지  끌어올림.  ***37***박성룡-[교외]  a. 都會 :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진 채  無毛하고 無風한 생활의 장소  ↕  郊外 : 풋물같은 것에라도 젖어야 한다.  b. 바람이여 다시 불어다오  → 굳어진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  숨결,사랑.  c. 멀리 흘러가는 구름 포기  → 평화와 자유.  ***38***박용철-[떠나가는 배]  a.나ˇ두ˇ야 간다.  → 의도적인 띄움으로 망설이는 심정 표현.  b. 젊은 시절을 눈물로써만 보낼 수 없어  사랑하는 이(식민지하의 우리민족)를 두고  떠나야 하는 심정 담음.  c."앞대일 언덕"(목적지)도 없이  그냥 "쫓겨가는 마음"이기에 절망적인 출발.  d.그래서 자기가 발붙이고 살아온 터전을  돌아보지만 "바람"이 헤살지어(훼방놓아)  "구름"에 가리워진 채 어둡기만 하다.  e.수미쌍관식 구성.  ***39***박재삼-[울음이 타는 가을 江]  a. 제삿날 큰집이 있는 고향을 찾아가다가  노을에 젖은 가을 강을 바라보며,  슬픈 사랑의 추억 되새김.  b.가을 강을 보것네, 눈물 나고나  여성적 가락, 판소리,민요조의 방언  종결어미 사용, 예스런 정감 표현.  c. 서러운,눈물,울음 : 슬픔과 恨의 분위기  d.가을강, 눈물, 산골물, 바다,(물)  ↕ 서로 조화  가을햇볕,불빛,해질녘(불의 이미지)  e.울음: 표면적 실체:저녁노을  내면적 실체:자신이 체험했던  가난과,인간 본원의 사랑, 고독,  무상감에서 오는 슬픔과 한.  ***40***박재삼-[자연]  a. 춘향의 독백 빌어,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사랑의 욕구를 "꽃나무가 피고 지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다고 표현.  b.내 마음 꽃나무는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사랑의 감정은 운명적→ 피동형 사용)  ***41***서정주-[冬天]  a.눈썹 = 구체적:그믐달 비유  상징적:고귀한 정신  b.새가 그걸 알고 비껴가네  → 인간은 물론 새까지도 그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알아 차리고 감히 범접 x (畏敬)  ***42***서정주-[무등을 보며]  a. 6.25 이후 궁핍한 생활 속에서  b. 가난이야 襤褸(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c.갈매빛(짙은 초록색)  d.목숨이 가다가 농울쳐(풀이 꺾이어) 휘어드는  → 생활 속에서 피로와 허기를 느낄 때  e.쑥구렁(무덤)에 놓일지라도  → 고난 시련.  f.옥돌 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 가난 극복, 의연한 긍정의 자세  극단적 정신주의, 순응주의적 태도.  ***43***서정주-[밀어]  a.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돈호법, 감격 고조)  b.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이승과 저승의 통로)  c.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리를 보아라.  죽은 소녀들이 새로운 형상으로  부활하는 경이감  d.아득한 하늘가에 빰 비비며 열려있는  (의인)  e. 꽃봉오릴 보아라.  (구지가,무가의 주술적 명령과 연결)  ***44***서정주-[신부]  a.첫날밤 신랑이 오줌 누러 가는데 옷이 걸림  → 신부가 음탕해서 붙잡는 줄 알고 그 길로 나가버림  → 40년후 찾아가보니 신부가 그 모습 그대로 앉아있음  → 만지니 재가됨.  b.서사적 구성,여인의 정절  c.백제 가요 "정읍사"와 관련된 망부석 전설,  박제상의 아내 전설과 유사  d.초록재와 다홍재 : 時空,靈肉의 세계를  뛰어넘는 존재로써의 신부 표상.  e.유교의 열녀사상을 뛰어넘은 신화적,  토속적 정서를 미학적으로 드러냄.  ***45***서정주-[자화상]  a.(갑오동학혁명 배경)애비는 종이었다.  → 떳떳, 솔직, 자신이 역사의 주체라는 자각  b.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바람  → 시련,굴욕적 현실  c.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새로운 인간관계가 열리는 지평)  d.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인간다운 삶의 실현)  e.몇방울의 피가 섞여있어  (자유를 위한 투쟁)  f.병든 수캐(시인자신)마냥 헐떡이며 나는 왔다.  → 과거의 삶에 대한 처절한 인식과  이에 저항하는 의지적 태도 표현.  ***46***서정주-[花巳]  a.화사:원시적 생명력의 상징  b.몸뚱아리,아가리,대가리 등 비속한 용어 사용  → 강렬하고 원색적인 느낌을 주고,  원시적이고, 퇴폐적인 생명력 강조  ↕  부드럽고 우아하고 理性的인 文明에 대립됨.  c.뱀 : 원죄,증오의 대상이자 유혹의 대상  (감정의 이중성)  ***47***서정주-[楸韆詞]  - 춘향의 말⑴  a. 그네 : 춘향과 이도령 만남의 계기,  춘향이 괴로움 .고통 . 번민의 운명을 벗어나  이상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매체, 天上세계를  꿈꾸면서도 끝내 인간이 사는 地上을 떠날 수 없는  운명적 한계  b. 현실세계 : 수양버들 나무 ,꽃더미,  나비새끼, 꾀꼬리  → 봄의 아름다움  c. 서으로 가는 달(무념무상,현실초극)같이는  갈 수 없다 →인간의 운명적 한계 자각  d. 이상세계 : 산호도 섬도 없는 곳.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나 울렁이는  가슴을 안정시킬 수 있는 곳  ***48***서정주 - [춘향유문]  - 춘향의 말 (3)  a. 저승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춘향이  사랑보다 먼 딴나라는 아닐 겁니다  생사와 시공을 초월한 사랑  b. 천길 땅밑을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극락)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더구나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거기 있을거예요  푸르던 나무같이 있으세요  윤회 사상, 자연현상과 관련(≒국화옆에서)  천둥,무서리,소쩍새  ***49***신경림 - [갈대]  a.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 울음 :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인생살이의 설움  (존재론적인 것)  b.이 시 이후, 서정시의 한계 느끼고 10년 절필  ***50***신경림 - [農舞]  a. "막이 내렸다"로 시작 (한탄,원망의 표현예고)  b.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 농민의 恨과 苦惱를 직설적으로 표현  c. 쇠전(우시장)을 거쳐 도수장(도살장)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신명이 난다.  → 自嘲와 恨歎이 神明으로 전환,  농민의 悲哀를 逆說的으로 표현  ***51***신경림 - [목계장터]  a. 하늘은 날더러 바람 / 구름이 되라 하네  → 방랑의 심상 ( 근대화 영향, 장터 퇴색 )  b. 산과 강은 날더러 들꽃 / 잔돌이 되라 하네  → 정착의 심상  c. "산서리 맵차고 물여울 모진" 이 세상에서  "천지처럼 쉬고 싶지만 몸은 끝없이 떠돌  수밖에 없다.  → 방랑과 정착 사이의 갈등과 뿌리뽑힌  민중들의 애환을 토속적 분위기 속에 담아냄.   
299    片雲 조병화 시인 댓글:  조회:3209  추천:0  2015-06-20
조병화(趙炳華, 1921~2003) 시인, 본관 한양(漢陽), 호는 편운(片雲)           조병화(趙炳華, 1921~2003)       현대시인.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양성면(陽城面) 난실리(蘭室里) 출생. 1938년 경성사범(京城師範) 졸업. 1945년 일본 도쿄 고등사범(東京高等師範)에서 물리ㆍ수학 전공. 해방후 경성사범ㆍ제물포고(濟物浦高)ㆍ서울고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중앙대학(中央大學)ㆍ이화여대(梨花女大) 경희대학(慶熙大學) 교수 등을 지냈다.   1949년 첫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20여권의 시집을 출간하여 다산(多産)의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시집명(詩集名)과 발간 연도는 다음과 같다.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49), 《하루만의 위안(慰安)》(50), 《패각(貝殼)의 침실(寢室》(52), 《인간고도(人間孤島)》(54), 《사랑이 가기 전에》(55), 《서울》(57), 《석아화(石阿化)》(58),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59), 《밤의 이야기》(61), 《낮은 목소리로》(62), 《공존(共存)의 이유(理由)》(63), 《쓸개 포도의 비가(悲歌)》(63), 《시간(時間)의 숙소(宿所)를 더듬어서》(64), 《내일(來日) 어느 자리에》(65), 《가을은 남은 거예》(66), 《가숙(假宿)의 램프》(68), 《내고향 먼 곳에》(69), 《오산 인터체인지》(71), 《별의 시장(市場)》(71), 《먼지와 바람 사이》(72).   다작과 다산의 비결은 바로 쉬운 낭만의 언어로 넓은 독자와 대화를 이어 왔다는데 있으며, 현대시가 어렵고 안 팔린다는 상식을 무너뜨린 희소한 시인이기도 하다. 일찌기 시로써 베스트셀러의 톱을 확보하고 있던 김소월(金素月)의 서정시(抒情詩)가 두메산골을 노래했다면, 그는 외로운 도시인(都市人)의 고독을 구가하고 있다. 수학ㆍ물리를 공부해서 수학교수를 하면서도 학생들에겐 시를 열강했다고 하며, 학창시절에는 럭비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그림에도 손을 대어 자신의 시집을 손수 꾸미는 솜씨도 있다. 1968년 자신의 시작(詩作) 생활 20년을 결산하는 《고독한 하이웨이》를 내 놓아 주목을 끌었다.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으로 토오쿄오대회(57), 프랑크푸르트 대회(59), 뉴우요오크 대회(66), 망똥대회(69)와 자유중국 초청 등으로 여러 차례의 국제회의에 참석했고, 각종 단체에 관여 인하대학교 이사(69), 시인협회심의위원(71), 문인협회 부이사장(73)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1959년 「자유문학상(自由文學賞)」을 수상했다.   버리고 싶은 유산처녀시집. 1949년 7월 산호장(珊瑚莊) 출사에서 간행. 《목련화(木蓮花)》 《후조(候鳥)》 《추억(追憶)》 등 초기의 시 27편이 수록되었다. 주로 여기서는 8ㆍ15의 환희와 감격을 구가했다.   「사실 나는 이 무렵에 길을 잃고 있었던 것입니다. 열린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막힌 외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큰 바다였읍니다. 큰 물결이었읍니다. 그것은 큰 탁류이며, 혼류였읍니다.」 작자 자신이 술회한 말과 같이 《버리고 싶은 유산》 시대는 그 기쁨도 한 때 흥분 속에 떠오르던 하얀 물거품, 도도한 두 물결은 혼탁되어 흰 물결, 붉은 물결, 검은 물결, 뭐가 뭔지 모르는 카오스의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철학개론(哲學槪論)일랑 말라 / 면사포(面紗布)를 벗어 버린 목련화란다 / 지난간 남풍(南風)이 서러워 / 익잖은 추억(追憶)같이 되었어라 / 베아트리체보다 곱던 날의 을남(乙男)이는 / 흰 블라우스만 입으면 목련화이었어라 / 황홀(慌惚)한 화관(花冠)에 / 사월(四月)은 오잖은 기다림을 주어 놓고 / 아름다운 것은 지네 지네 / 호올로《목련화》」   오산 인터체인지제18시집. 1971년 2월 문원사(文苑社)에서 간행. 《오산 인터체인지》를 필두로 24편이 수록되었다. 가장 쉬운 언어로 폭넓은 독자에게 손짓했듯이, 여기에서도 고독을 절절히 사랑하면서 인생을 구가했다. 오늘의 생생한 생활현장(生活現場)에서 얻어진 인생의 허망(虛妄)한 고독이 낭만으로 확산(擴散)되었다. 언제나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골똘히 인생을 읊조리는 목소리는 여러 곳에서 메아리지고 있다. 서울 종로의 「금하다방」에서, 고향의 「편운재(片雲齋)」에서, 망똥 펜 대회 때 「코르시카」에서 잠시 쉬어 가고 스쳐가는 곳곳에서, 오늘과 내일을 영원으로 호소하고 있다.   「자, 그럼 /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 넌 남으로 천리 / 난동으로 사십리 /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 삭지 않은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 등은, 「덴마크」의 여인처럼 / 푸른 눈 긴 다리 / 안개 속에 초조히 / 떨어져 서 있고 / 허허 들판 / 작별을 하면 / 말은 무용해진다 / 어느새 이곳 / 자, 그럼 / 넌 남으로 천리 / 난동으로 사십리」 《고향으로 가는 길》   먼지와 바람 사이시집. 1972년 동화출판공사(同和出版公社)에서 간행. 앞서 내 놓은 시집 《별의 시장(市場)》(71) 이후 발표된 《호수》외 40편이 수록되었다. 작가가 국내외 여러 곳을 답사하면서 얻은 체험에서 씌어진 것이 대부분으로, 독자들에게 좀더 친근하게 매혹되는 사연을 갖게 한다. 이를테면 《안성행(安城行) 고속버스》 《무언기행(無言紀行)》 《전원(田園)》 《섬(濟州缺航)》 《송전저수지(松田貯水池)》 《어느 여행자(旅行者)의 독백(獨白)》 《종로(鍾路)》 《모교부근(母校附近)》 《고향에 산다》 등 시제(詩題)들이 말해주듯이 시인의 고향길에서 혹은 먼 여행 속에서 재미있는 시상(詩想)을 풀고 있다. 그의 시는 언제나 까다롭지 않은 매력과 훈훈한 향수(鄕愁)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헤어지는 연습」을 추구하는 주제는 《먼지와 바람사이》에서 더 짙게 풍긴다.   「물이 모여서 이야길 한다 / 물이 모여서 장을 본다 / 물이 모여서 길을 묻는다 / 물이 모여서 떠날 차빌 한다 / 당일로 떠나는 물이 있다 / 며칠을 묵는 물이 있다 / 달폴 두고 빙빙 도는 물이 있다 / 한여름 길을 찾는 물이 있다 / 달이 지나고 / 별이 솟고 / 풀벌레 찌찌 / 밤을 새우는 물이 있다 / 뜬눈으로 주야 도는 물이 있다 / 구름을 안는 물이 있다 / 바람을 따라가는 물이 있다 / 물결에 처지는 물이 있다 / 수초밭에 혼자 있는 물이 있다」( 《호수》)  
298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댓글:  조회:3538  추천:0  2015-06-17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버선이 다 헤져 발뒤꿈치, 발가락이 다보여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을 깍을 수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덕없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것만 같던 어머니,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흐느끼는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좋은시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시인-|작성자 ksg1772  
297    당시 300수 (클릭...) 댓글:  조회:3874  추천:0  2015-05-20
             卷一 五言古詩 ( 001-035) 001.張九齡:感遇四首之一 002.張九齡:感遇四首之二 003.張九齡:感遇四首之三 004.張九齡:感遇四首之四 005.李白:下終南山            過斛斯山人宿置酒 006.李白:月下獨酌 007.李白:春思 008.杜甫:望岳 009.杜甫:贈衛八處士 010.杜甫:佳人 011.杜甫:夢李白二首之一 012.杜甫:夢李白二首之二 013.王維:送別 014.王維:送綦毋潛落第還鄕 015.王維:靑溪 016.王維:渭川田家 017.王維:西施詠 018.孟浩然:秋登蘭山寄張五 019.孟浩然:夏日南亭懷辛大 020.孟浩然:宿業師山房待丁大不至 021.王昌齡:同從弟南齋 玩月憶山陰崔少府 022.邱爲:尋西山隱者不遇 023.綦毋潛:春泛若耶溪 024.常建:宿王昌齡隱居 025.岑參:與高適薛據登慈恩寺浮圖 026.元結:賊退示官吏幷序 027.韋應物:郡齋雨中與諸文士燕集 028.韋應物:初發揚子寄元大校書 029.韋應物:寄全椒山中道士 030.韋應物:長安遇馮著 031.韋應物:夕次盱眙縣 032.韋應物:東郊 033.韋應物:送楊氏女 034.柳宗元:晨詣超師院讀禪經 035.柳宗元:溪居   樂府( 036-45) 036.王昌齡:塞上曲 037.王昌齡:塞下曲 038.李白:關山月 039.李白:子夜四時歌:春歌 040.李白:子夜四時歌:夏歌 041.李白:子夜四時歌:秋歌 042.李白:子夜四時歌:冬歌 043.李白:長干行 044.孟郊:烈女操 045.孟郊:游子吟   卷二 七言古詩( 046-73) 046.陳子昂:登幽州台歌 047.李頎:古意 048.李頎:送陳章甫 049.李頎:琴歌 050.李頎:聽董大彈胡笳聲兼 寄語弄房給事 051.李頎:聽安萬善吹篳篥歌 052.孟浩然:夜歸鹿門山歌 053.李白:廬山謠寄盧侍御虛舟 054.李白:夢游天姥吟留別 055.李白:金陵酒肆留別 056.李白:宣州謝月兆]樓餞別校書叔云 057.岑參:走馬川行奉送封大夫出師西征 058.岑參:輪台歌奉送封大夫出師西征 059.岑參:白雪歌送武判官歸京 060.杜甫:韋諷錄事宅觀曹將軍畫馬圖 061.杜甫:丹靑引贈曹霸將軍 062.杜甫:寄韓諫議 063.杜甫:古柏行 064.杜甫:觀公孫大娘弟子 舞劍器行幷序 065.元結:石魚湖上醉歌幷序 066.韓愈:山石 067.韓愈:八月十五夜贈張功曹 068.韓愈:謁衡岳廟遂宿岳寺 題門樓 069.韓愈:石鼓歌 070.柳宗元:漁翁 071.白居易:長恨歌 072.白居易:琵琶行幷序 073.李商隱:韓碑   樂府 (074-89) 074.高適:燕歌行幷序 075.李頎:古從軍行 076.王維:洛陽女兒行 077.王維:老將行 078.王維:桃源行 079.李白:蜀道難 080.李白:長相思二首之一 081.李白:長相思二首之二 082.李白:行路難三首之一 083.李白:行路難三首之二 084.李白:行路難三首之三 085.李白:將進酒 086.杜甫:兵車行 087.杜甫:麗人行  088.杜甫:哀江頭 089.杜甫:哀王孫   卷三 五言律詩(090-169) 090.唐玄宗:經鄒魯祭孔子而嘆之 091.張九齡:望月懷遠 092.王勃:送杜少府之任蜀州 093.駱賓王:在獄詠蟬幷序 094.杜審言:和晉陵路丞早春游望 095.沈全期:雜詩 096.宋之問:題大庾嶺北驛 097.王灣:次北固山下 098.常建:題破山寺后禪院 099.岑參:寄左省杜拾遺 100.李白:贈孟浩然 101.李白:渡荊門送別 102.李白:送友人 103.李白:聽蜀僧浚彈琴 104.李白:夜泊牛渚懷古 105.杜甫:月夜 106.杜甫:春望 107.杜甫:春宿左省 108.杜甫:至德二載甫自京金光門出 問道歸鳳翔∘乾元 初從左拾遺移華州掾∘與親 109.杜甫:月夜憶舍弟 110.杜甫:天末懷李白 111.杜甫:奉濟驛重送嚴公四韻 112.杜甫:別房太尉墓 113.杜甫:旅夜書懷 114.杜甫:登岳陽樓 115.王維:輞川閑居贈裴秀才迪 116.王維:山居秋暝 117.王維:歸嵩山作 118.王維:終南山 119.王維:酬張少府 120.王維:過香積寺 121.王維:送梓州李使君 122.王維:漢江臨眺 123.王維:終南別業 124.孟浩然:望洞庭湖贈張丞相 125.孟浩然:與諸子登峴山 126.孟浩然:淸明日宴梅道士房 127.孟浩然:歲暮歸南山 128.孟浩然:過故人庄 129.孟浩然:秦中感秋寄遠上人 130.孟浩然:宿桐廬江寄廣陵舊游 131.孟浩然:留別王侍御維 132.孟浩然:早寒江上有懷 133.劉長卿:秋日登吳公 台上寺遠眺 134.劉常卿:送李中丞歸漢陽別業 135.劉長卿:餞別王十一南游 136.劉長卿:尋南溪常山道人隱居 137.劉長卿:新年作 138.錢起:送僧歸日本 139.錢起:谷口書齋寄楊補闕 140.韋應物:淮上喜會梁川故人 141.韋應物:賦得暮雨送李冑 142.韓□):酬程延秋夜卽事見贈 143.劉脊虛:闕題 144.戴叔倫:江鄕故人偶集客舍 145.盧綸:李端公 146.李益:喜見外弟又言別 147.司空曙:雲陽館與韓紳宿別 148.司空曙:喜外弟盧綸見宿 149.司空曙:賊平后送人北歸 150.劉禹錫:蜀先主廟 151.張籍:沒蕃故人 152.白居易:賦得古原草送別 153.杜牧:旅宿 154.許渾:秋日赴闕題潼關驛樓 155.許渾:早秋 156.李商隱:蟬 157.李商隱:風雨 158.李商隱:落花 159.李商隱:涼思 160.李商隱:北靑蘿 161.溫庭筠:送人東游 162.馬戴:灞上秋居 163.馬戴:楚江懷古 164.張喬:書邊事 165.崔涂:巴山道中除夜有懷 166.崔涂:孤雁 167.杜荀鶴:春宮怨 168.韋庄:章台夜思 169.僧皎然:尋陸鴻漸不遇 卷四 七言律詩(170-222) 170.崔顥:黃鶴樓 171.崔顥:行經華陰 172.祖詠:望薊門 173.李頎:送魏萬之京 174.崔曙:九日登望仙台 呈劉明府 176.高適:送李少府貶峽中 王少府貶長沙 177.岑參:奉和中書舍人賈 至早朝大明宮 178.王維:和賈舍人早朝 大明宮之作 179.王維:奉和聖制從蓬萊向 興慶閣道中 留春雨中春望之作應制 180.王維:積雨輞川庄作 181.王維:酬郭給事 182.杜甫:蜀相 183.杜甫:客至 184.杜甫:野望 185.杜甫:聞官軍收河南河北 186.杜甫:登高 187.杜甫:登樓 188.杜甫:宿府 189.杜甫:閣夜 190.杜甫:詠懷古跡五首之一 191.杜甫:詠懷古跡五首之二 192.杜甫:詠懷古跡五首之三 193.杜甫:詠懷古跡五首之四 194.杜甫:詠懷古跡五首之五 195.劉長卿:江州重別薛六 柳八二員外 196.劉長卿:長沙過賈誼宅 197.劉長卿:自夏口至鸚洲 夕望岳陽寄源中丞 198.錢起:贈闕下裴舍人 199.韋應物:寄李儋元錫 200.韓□:同題仙游觀 201.皇甫冉:春思 202.盧綸:晩次鄂州 203.柳宗元:登柳州城樓寄漳汀 封連四州刺史 204.劉禹錫:西塞山懷古 205.元稹:遣悲懷三首之一 206.元稹:遣悲懷三首之二 207.元稹:遣悲懷三首之三 208.白居易:自河南經亂 209.李商隱:錦瑟 210.李商隱:無題 211.李商隱:隋宮 212.李商隱:無題二首之一 213.李商隱:無題二首之二 214.李商隱:籌筆驛 215.李商隱:無題 216.李商隱:春雨 217.李商隱:無題二首之一 218.李商隱:無題二首之二 219.溫庭筠:利洲南渡 220.溫庭筠:蘇武廟 221.薛逢:宮詞 222.秦韜玉:貧女   樂府 (223) 223.沈全期:古意呈補闕喬知之   卷五 五言絶句(224-252) 224.王維:鹿柴 225.王維:竹里館 226.王維:送別 227.王維:相思 228.王維:雜詩 229.裴迪:送崔九 230.祖詠:終南望餘雪 231.孟浩然:宿建德江 232.孟浩然:春曉 233.李白:夜思 234.李白:怨情 235.杜甫:八陣圖 236.王之渙:登鸛雀樓 237.劉長卿:送靈澈 238.劉長卿:彈琴 239.劉長卿:送上人 240.韋應物:秋夜寄邱員外 241.李端:聽箏 242.王建:新嫁娘 243.權德輿:玉臺體 244.柳宗元:江雪 245.元稹:行宮 246.白居易:問劉十九 247.張祜:何滿子 248.李商隱:登樂游原 249.賈島:尋隱者不遇 250.李頻:渡漢江 251.金昌緖:春怨 252.西鄙人:哥舒歌   樂府(253-260) 253.崔顥:長干行二首之一 254.崔顥:長干行二首之二 255.李白:玉階怨 256.盧綸:塞下曲四首之一 257.盧綸:塞下曲四首之二 258.盧綸:塞下曲四首之三 259.盧綸:塞下曲四首之四 260.李益:江南曲   卷六 七言絶句(261-311) 261.賀知章:回鄕偶書 262.張旭:桃花溪 263.王維:九月九日憶山東兄弟 264.王昌齡:芙蓉樓送辛漸 265.王昌齡:閨怨 266.王昌齡:春宮曲 267.王翰:涼州詞 268.李白:送孟浩然之廣陵 269.李白:早發白帝城 270.岑參:逢入京使 271.杜甫:江南逢李龜年 272.韋應物:滁州西澗 273.張繼:楓橋夜泊 274.韓□:寒食 275.劉方平:月夜 276.劉方平:春怨 277.柳中庸:征人怨 278.顧況:宮詞 279.李益:夜上受降城聞笛 280.劉禹錫:烏衣巷 281.劉禹錫:春詞 282.白居易:后宮詞 283.張祜:贈內人 284.張祜:集靈台二首之一 285.張祜:集靈台二首之二 286.張祜:題金陵渡 287.朱慶餘:宮詞 288.朱慶餘:近試上張水部 289.杜牧:將赴吳興登樂游原 290.杜牧:赤壁 291.杜牧:泊秦淮 292.杜牧:寄揚州韓綽判官 293.杜牧:遣懷 294.杜牧:秋夕 295.杜牧:贈別二首之一 296.杜牧:贈別二首之二 297.杜牧:金谷園 298.李商隱:夜雨寄北 299.李商隱:寄令狐郎中 300.李商隱:爲有 301.李商隱:隋宮 302.李商隱:瑤池 303.李商隱:嫦娥 304.李商隱:賈生 305.溫庭筠:瑤瑟怨 306.鄭畋:馬嵬坡 307.韓□:已涼 308.韋庄:金陵圖 309.陳陶:隴西行 310.張泌:寄人 311.無名氏:雜詩   樂府(312-320) 312.王維:渭城曲 313.王維:秋夜曲 314.王昌齡:長信怨 315.王昌齡:出塞 316.王之渙:出塞 317.李白:淸平調三首之一 318.李白:淸平調三首之二 319.李白:淸平調三首之三 320.杜秋娘:金縷衣     [출처] 당시 300수|작성자 옥토끼  
296    우수 동시 및 그 해설 댓글:  조회:6242  추천:0  2015-05-20
    신현득  문구멍  빠꼼빠꼼  문구멍이  높아간다.  아가키가  큰다.    올해로 시력 40년을 맞은 아동문학가 신현득 (1933년생) 시인의 동시입니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가작 입상작이지요. 투고 당시 시인은 국민학교 교사였는데, 투고자 이름을 '상주국민학교 신현득'이라고 써서 심사위원 윤석중 선생이 어쩌면 국민학교 학생이 쓴 시일 수고 있겠다 싶어 차마 당선작으로 뽑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시인은 이듬해 같은 신춘문예에 '산'이라는 동시로 당선하게 됩니다. '아가 키가'자란다는 사실을, 문구멍으로 남을 엿보곤 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그려 보임으로써 생생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군요. 2000년 5월 1일 소설가 박덕규 씀  윤부현  달걀  껄쭉껄쭉한  새 도화지  예쁘게  말아 논  그 안에는  푸른 바다가  하나 가득  출렁이고 있었다.    질솔한 표현법과 선명한 이미지에 관심을 기울여 온 윤부현 (1927-1986)의 동시입니다. 1960년대 한국 동시가 한창 시적 언어 조형을 모색할 즈음에 얻은 산물이지요. 달걀의 껍데기에서 도화지의 '껄쭉껄쭉한' 표면을 유추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달걀 속과 푸른 바다로 이어지는 연상 앞에서는 모두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자, 한 번 달걀을 흔들어 보세요, 바다 물결처럼 출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달걀은 어쩌면 우리 식탁 위에서 푸른 바다처럼 살아 움직이는 자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인은 이렇듯 형상과 관념의 조화를 통해 무의미하게 보이던 하나의 사물에서 전혀 새로운 생명성을 찾아낸답니다.  2000년 5월 2일 아동문학평론가 김용희 씀  이준관  떨어진 단추 하나  해질 무렵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떨어진 단추 하나를 보았지.  그래, 그래, 우리는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려  이렇게 단추 하나 떨어뜨리지.  그래, 그래, 우리는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려  서쪽 하늘에 깜빡,  해를 하나 떨어뜨리지.    일반 시단에서도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고 있는 이준관(1948- )시인의 동시입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 없이 노는 일에 빠져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네요. 그렇게 놀다 보면 옷에서 단추 하나가 떨어진 걸 알기 어렵고, 언제 그렇게 해질 시간이 되었는지 뒤늦게 알고 놀라곤 하지요. '놀다가 떨어져 나간 단추 하나'를 매개로 해서 "서쪽 하늘에 깜빡, 해를 떨어뜨렸다는 역설적 진술을 이끌어내면서 동심의 한 부분을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2000. 5. 3 소설가 박덕규 씀  박두순  새  새 한 마리가  마당에 내려와  노래를 한다.  지구 한 귀퉁이가 귀기울인다.  새떼가  하늘을 날며  이야기를 나눈다.  하늘 한 귀퉁이가 반짝인다.    키와 몸집이 작은 시인 박두순(1950- ) 만큼 작고 하찮은 것들을 눈여겨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신의 모습과 닮은 이름 모를 풀꽃이나 새들을 더없이 좋아하는 시인이지요. 그래서 그는 작은 새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는 커다란 지구의 한 귀퉁이를 느낄 수 있지요. 하늘을 가르는 새떼의 하찮은 날갯짓 사이로 얼핏 비쳐드는 하늘 한 귀퉁이의 반짝거림도 볼 수 있답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우리보다 더 보잘 것 없는 많은 것들이 실은 우리 이상으로 훌륭하게 우주의 섭리를 수행하며 조화롭게 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00.5.4 (목) 아동문학평론가 김용희  윤동주  호주머니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이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한국의 시인일 뿐 아니라, 일본 ·중국에서도 널리 사랑 받는 시인 윤동주(1917-1945)가 스무 살 때 쓴 시입니다. 윤동주를 일컬어 흔히 '별이 시인'이라고 하지요. 맑고 수수한 이상의 세계를 지향하는 그 시심의 바탕에 바로 동시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호주머니에 무엇 하나 넣어 둘 것 없는 '가난'한 일상을 오히려 운치 있게 '풍족'하다고 생각해 보이는 역설이 빛납니다. '주먹 두 개 갑북갑북'할 때의 앙증스러운 질량감이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듯하지요. 윤동주는 서울 생활을 시작하던 무렵(1938)부터 더는 동시를 쓰지 않습니다. 별을 꿈꾸고 노래할 수 없는 현실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얘기지요. 자신에게 동시를 빼앗은 현실을 세상 앞에서 그는 점점 고뇌에 가득한 얼굴이 되어 갔지요. 5/5 (금) 소설가 박덕규  정두리  어머니의 눈물  회초리를 들었지만 차마  못 때리신다.  아픈 매보다 더 무서운  무서운 목소리보다 더 무서운  어머니의 눈물이 손등에  떨어진다.  어머니의 굵은 눈물에 내가  젖는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한 아이가 꾸중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매를 맞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차라리 그 매를 맞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요. 때리는 어머니보다 때리지 못하는 어머니가 더 무섭다는 사실을. "차마 못 '때리고 눈에 내비친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깨달아 버렸거든요. 쉽게 상처 받기 쉬운 아이들의 감정을 감각화하는데 능란한 솜씨를 빛내는 정두리(1947년생) 시인이, 못난 자식 앞에서 겉으로 엄격하되 속으로 울곤 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가슴 뭉클하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5/8 (월) 소설가 박덕규  손동연  소와 염소  소가  아기염소에게 그랬대요.  "쬐끄만 게  건방지게 수염은?  또 그 뿔은 뭐람?"  그러자  아기염소가 뭐랬개요?  "쳇,  아저씬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 덩치에 아직도 '엄마 엄마'게…….    차츰 사라져 가는 토속적 정취를 구수하게 살려내는 데 익숙한 시인 손동연(1955-)의 동시입니다. 기린, 돌고래, 코끼리 등 우리가 좋아하는 동물 이야기 연작 동시 중 한 편입니다. 풀밭에서 나란히 풀을 뜯고 있는 소와 그 곁을 우연히 지나게 된 아기염소가 서로 얼굴을 맞대게 되었군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한가로운 장면에서부터 시인은 재치 있는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냈습니다. 수염을 어른처럼 기른 아기염소, 덩치 큰 어른이면서도 아직도 '음매'하고 우는 소의 말다툼이 너무 정겹지 않아요? 조용히 흐르는 일상의 한 순간에도 무한한 관계 맺음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는 것도 같군요. 5/10 (수) 아동문학평론가 김용희  제해만  봄눈  파릇파릇 새싹 돋는 날  봄눈 내렸다.  몰래몰래 내리려다  밭고랑에 빠졌다.    주로 계절을 제재로 삼아 자연을 노래해 온 제해만 (1944-1997) 시인의 동시입니다. 봄이 오면 겨우내 얼어붙고 메말랐던 대지에 생명의 기운이 움틉니다.겨울의 모든 추위를 이겨내고 드디어 새싹을 틔우는 축복의 봄날, 시새움이라도 하듯 하늘은 눈을 뿌립니다. 꽃샘 눈바람은 분명 새싹에겐 호된 시련이 될 테지요. 그것이 가엽고 애처로워 봄눈이 "몰래몰래 내리려다 밭고랑에" 빠진 것으로 노래했습니다. 이른 봄이라는 계절의 감각을 생생하게 드러내면서, 어린 새 생면의 약동을 기원해 주는 절묘한 표현이지요. 5/11 아동문학평론가 김용희  문삼석  우산 속  우산 속은  엄마 품속 같아요.  빗방울들이  들어오고 싶어  두두두두  야단이지요.    이슬, 아기, 바람 등을 소재로 한 연작과 짧은 동시를 일관되게 추구해 온 문삼석 시인(59)의 동시입니다. 하늘이 잔뜩 찌푸리더니 비가 내리네요. 비오는 날이면 우산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지요. 비를 맞지 않게 해주는 우산 속은 "엄마 품속"같이 안전한 곳이니까요.그러니 누구든 그 속으로 들어오고 실어할 테지요. 저것 봐요. 빗물도 우산 속으로 들어오고 싶어 안달하다가, 그새 "두두두두"하고 야단 난 듯 소리치잖아요. 이 동시는 절제된 언어로 이런 천진한 상상력을 낳게 하는 시적 호과를 주었답니다. 5/12 아동문학평론가 김용희  윤석중  먼 길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 ,  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고  아기는 말똥말똥  잠을 안 자고.    멀리 길을 떠나야 하는 젊은 아빠가 마지막으로 아기가 잠드는 걸 한 번 보고 가려 하는군요.그런데 아기는 아빠가 멀리 가신다는 걸 눈치라도 챈 것일까요? "말똥말똥" 눈을 뜨고 아빠를 쳐다보는 아기의 얼굴이 생생하지요?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는 아빠의 심정(실제)에서 "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는 아기의 심정(상상)으로의 전이가 빛을 발했습니다. 동시계의 거목 윤석중(1911년생) 시인이, 이 시가 뜻밖에도 1940년대 일제에 의해 징용을 가게 된 사람 집안 얘기라고 밝히시는군요. 아픈 사연이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광경이 되지 않았을까요? 5/13 (토) 소설가 박덕규  강소천  사슴 뿔  사슴아, 사슴아!  네 뿔은 언제 싹이 트니?  사슴아, 사슴아!  네 뿔은 언제 꽃이 피니?    동물의 머리에 난 뿔은 위엄을 상징하는 표시이기도, 다급할 때는 싸움을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한가로이 풀을 뜯다 가끔 고개 들어 먼 허공을 바라보는 사슴의 머리에 돋은 뿔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걸요. 그 뿔은 마치 겨울 나무의 앙상한 가지 같아 보이지요. 거기서 곧 싹이 나올 것 같아요. 아니, 어쩌면 그 가지 끝에 꽃이 피어날지도 모르지요. 삶에서 잃어 버린 것을 꿈의 세계에서 찾아내는 환상적인 이야기들로 명성을 날린 동화작가 강소천 (1915-1963)은 한편으로 주변에서 만나는 작은 사물로 이렇게 재미있는 상상의 세계를 빚어내는 시인이기도 했지요. 5/15 소설가 박덕규  신형건  봄날  엄마, 깨진 무릎에 생긴  피 딱지 좀 보세요.  까맣고 단단한 것이 꼭  잘 여문 꽃씨 같아요.  한번 만져 보세요.  그 속에서 뭐가 꿈틀거리는지  자꾸 근질근질해요.  새움이 트려나 봐요.    어린이와 같은 천진한 성정을 지닌 신형건(1965년생) 시인의 동시입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무릎을 다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피가 나면 으레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린 기억도 또렷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처의 '피딱지'를 "잘 여문 꽃씨"로 연상해내고, 상처가 아물 때 느끼는 '근질근질'한 증세를 봄날 "새움이 트는" 징조로 유추해낼 수 있을까요?이 기발한 착상과 예리한 관찰력은 단연 이 동시를 읽는 즐거움이 되지요. 시인은 일상의 경험에서 이렇듯 신선한 이미지를 생성해냈답니다. 5/16 (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김종상  산 위에서 보면  산 위에서 보면  학교가 나뭇가지에 달렸어요.  새장처럼 얽어 놓은 창문에,  참새 같은 아이들이  속속  얼굴을 내밀지요.  장난감 같은 교문으로  재조갈재조갈  떠밀며 날아 나오지요.    학교 생활에서 어떤 시간이 가장 즐거울까요? 점심 시간, 아니 그보다도 종레 시간이 아닐런지요. 학교가 파하자마자 창문으로 얼굴을 쏙 내미는 아이,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만족감과 해방감으로 상기되어 있지요.그런 전경을 산 위에서 보면, 학교는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참새네 집 같을 거예요. "재조잘재조잘"거리며 마냥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몰려 나오는 아이들은 방금 새장에서 놓여난 영낙 없는 참새들이지요. 교직에 몸담아온 김종상(1935-)시인은 생활 경험에서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의 참 모습을 발견해냈답니다.  5/17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김구연  국어 공부  염소가  누나의 국어책을  몽땅 먹어 버렸다.  그리고는 매일  매애애 매애애……  국어책 외운다.    국어책을 외우는 염소를 보았나요? 염소는 왜소한 체구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되새김질을 하는 초식동물이지요. 종이도 잘 먹는답니다. 아, 염소가 그새 '누나의 국어책을 몽땅'먹어 버리고 말았군요.그리고 "매애애 매애애" 울음 소리를 내면서 계속 되새김질을 하고 있네요.아마 국어 공부를 하나 봐요. '국어책에 나오는 동시들을 이렇게 외우는 거야' 하듯이 입을 놀리네요. 동물의 행동 특성을 잘 관찰하면서 색다른 의미를 부여해 놓은 김구연(1942-)시인의 시적 재치가 돋보이지요. 5/18 (목)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박찬중  겨울 밤  누가 왔나?  다시금 숨 죽여 귀기울이면  간간이 바스락거리는  뒷마당 대숲 바람소리  먼 곳 개 짖는 소리.  하늘 가득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별  별  별    겨울 밤이 너무 깊고 고요해 오히려 눈이 말똥해지고 귀가 쫑긋해졌군요. 그 밤에 특별히 누가 찾아올 리있을까요? 그런데도 조금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어떤 설렘 속에서 결국은 들창을 열곤 하지요. 대숲 바람소리, 먼곳 개 짖는 소리……. 그 익숙한 자연들이 어느 순간에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별"들처럼 신비한 동무로 곁에 다가오는 경험이라니! 별,별,별….하는 동안 진짜 우리 머리 위에서 굵은 별들이 떨어져 내리는 듯하는군요.  토속적인 자연의 세계를 감성적으로 드러내온 박찬중(1952-) 시인의 동시입니다.  5/19 (금) 소설가 박덕규  정지용  별똥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 보러,  벼르다 벼르다  이젠 다 자랐소.    자연의 움직임에 대해 궁금증을 품으며 지내던 어린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테지요. 어젯밤 우리의 어린이들도, 맑은 밤하늘에서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 별똥을 보고는 밤새 잠을 뒤척였을지도 모르지요. '저 떨어진 별똥을 주우러 가자.'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어린 날을 참 가슴 벅차게 했지요. 그리고 그런 유의 상상은 대개 현실에서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것들이지요. 모두들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지만, 바로 그런 상상이 또한 그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던지요. 20세기 전반에 유입된 서양의 '현대의 정신'을 동양의 문학 전통에서 조율하면서 한국 정신주의 시의 절정을 이룬 정지용 (1903-?) 시인의 동시랍니다.  5/20(토) 소설가 박덕규  서재환  초승달  얄미운 새앙쥐가  하늘에도 사나 봐요.  낮에는 숨었다가  밤만 되면 야금야금  둥근 달 다 갉아먹고  손톱만큼 남겼어요.    시조에 동심을 담고 전통 문학 양식도 계승하고자 한 '쪽배'라는 동시조 동인이 있답니다.동시조 창작에 열정을 기울인 서재환(1961-) 시인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예로부터 달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지요. 농사를 지어 온 우리 민족은 달에 대한 믿음이 각별했답니다. 아직도 달맞이 풍속이 내려오고 있지요. 앗! 오늘은 초승달이 떴군요. 우리가 잠든 사이, 하늘에 사는 얄미운 새앙쥐가 둥근 달을 밤마다 야금야금 갉아 먹어서 정말 저렇게 작아졌을까요? 시조라는 일정한 형식에 시적 상상력과 동심을 이렇듯 자유롭게 담아내다니 놀라운 일이지요.  5/22 (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박목월  여우비  땡볕 나는데  오는 비  여우비  시집가는 꽃가마에  한 바울 오고  뒤에 가는 당나귀에  두 방울 오고  오는 비  여우비  쨍쨍 개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데 비가 오다니…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순간 금새 그치고 마는 그 비를 '여우비'라 합니다. 비는 날 궂을 때 오는 것이라는 상식에서 생각하면 '여우비'란 이상한 자연 변화이기도 하고, 그냥 자연의 일이기도 하지요. 이런 '땡볕 속의 여우비'란 모순이, '꽃가마 타고 시집가는 이'에게 품어진 어떤 사연에 대해 유달리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오는 비/여우비'하면서 얻어진 운율감에 배여 있는 알 수 없는 슬픈 정조는, 바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서정 시인 박목월(1917-1978)시인이 빚어냈답니다.  5/23(화) 소설가 발덕규  권정생  달팽이  달팽이 마을에  전쟁이 났다.  아기 잃은 어머니가  보퉁이 등에 지고 허둥지둥 간다.  아기 찾아간다.  목이 메어 소리도 안 나오고  기운이 다해 뛰지도 못하고  아기 찾아간다.  달팽이가 지나간 뒤에  눈물 자국이  길게 길게 남았다.    달팽이 나라에도 전쟁이 있겠지요. '허둥지둥' 하지만 실은 얼마나 '느릿느릿'할까요.그러다 아기를 잃고 우는 엄마도 있을 테지요. 아기를 찾다가 기진맥진, '기운이 다해 뛰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네요. 달팽이 나라에도 6·25가 있고, 아기 잃은 이산 가족의 슬픔이 있었을 테지요.이렇게 되니, 이 이야기는 고스란히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저 유명한 장편 동화 '몽실언니'에다 분단의 비극을 담아 보인 권정생(1937-) 작가가 여기 조그만 달팽이에다 한국의 역사를 흘려 놓은 거지요. 하지만 달팽이가 남긴 긴 "눈물자국"은 너무 생생해서 도리어 아름다워 보이는군요. 5/24 (수) 소설가 박덕규  공재동  식은 밥  짝찌와 싸우고  울며불며 돌아와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식은 밥을 먹는다.  그 눈물  아귀아귀  볼우물에 고인다.    언젠가 언짢은 일로 다시는 안 볼 듯이 짝지와 싸운 적이 있지요.힘에 부처 이길 수 없을 땐 분해서 눈물이 나오지요. 울면서 돌아온 집에 자신을 편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더욱 서럽지요. 분이 삭진 않았지만, 힘쓴 탓에 배가 고프답니다. 훌쩍거리며 혼자 먹는 식은 밥이 웬일인지 입아귀에서 넘어가질 않습니다.자꾸만 목에 걸립니다. 짝지와 싸운 일도 따라 목에 걸립니다. 은근히 마음이 아려옵니다. 씹던 밥이 불현 듯 또다른 슬픔이 되어 볼우물에 고입니다. 공재동(1949-) 시인은 이렇듯 아픔을 깨달으며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동시에 담았습니다. 5/25 (목)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권태응  감자 꽃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신라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해서 이름 붙은 탄금대는 충주에 있지요. 이 탄금대에 노래 비 하나가 있는데, 거기에 이 동요가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그곳 충주에서 태어나 농촌 정서를 단순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시어와 운율에 담아 노래해 많은 어린이들에게 풍성한 상상력을 제공했던 권태응(1918-1951)시인을 기리려는 것이지요. 세상의 일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것 투성이지만, 세상의 때를 벗고 처음의 마음 상태로 돌아가서 보면 의외로 그것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요. 금새 확인될 수 있는 사실도 아예 믿지 않게 된 풍조를, 단순한 어휘와 리듬의 규칙적인 대조와 반복을 통해 씻어내면서 환한 웃음을 웃게 하는 한 편의 동시가 아닐 수 없답니다. 5/26 (금) 소설가 박덕규  유경환  꽃사슴  아가의 새 이불은  꽃사슴 이불.  포근한 햇솜의  꽃사슴 이불.  소록소록 잠든 아가  꿈속에서  꽃사슴꽃사슴  타고 놉니다.    꽃사슴은 아가 닮아 귀엽고 순한 짐승이지요. 아기는 예쁜 꽃사슴이 수놓인 이불을 덮고 잠이 듭니다. 햇솜을 다져 넣어 포근한 새 이불은 아가를 깊은 잠 속으로 소록소록 빠뜨립니다. 때때로 아가의 고운 얼굴에 해사한 웃음이 감돕니다.오물오물 입을 다시다가 발름발름 숨소리를 냅니다. 고사리 손을 도르르 말며 생긋 웃습니다. 아, 그렇군요. 꽃사슴을 탄 아가가 뿔을 꼭 잡은 것일 테니까요. 아가는 지금 한창 꿈나라에서 이불에 수놓인 꽃사슴과 즐겁게 노는 중이랍니다. 유경환(1936-) 시인은 현실과 꿈을 조화시켜 아가의 해맑고 고운 세계를 그렸답니다. 5/27 (토)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하청호  잡초 뽑기  풀을 뽑는다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다.  흙 또한  뿌리를 움켜쥐고 있다.  뽑히지 않으려고 푸들거리는 풀  호밋날에 칼빛으로 빛난다.  풀은 작은 씨앗 몇 개를  몰래  구덩이에 던져 놓는다.    풀을 뽑아 본 적이 있나요? 쓸모 없는 잡초지만 쉽게 뽑히질 않지요. 저항할 수 없는 큰 힘에도, 풀은 푸들거리며 흙을 움켜잡고 흙은 숙명처럼 뿌리를 움켜쥐며 마지막 순간까지 소중한 힘을 다할 테니까요. 뽑히는 자의 처지에서 보면 목숨을 건 사투가 아니겠어요? 세상의 모든 생물은 끝까지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답니다. 결국 풀의 처절한 저항은 무의미하지 않았답니다. 자신의 생명을 잇는 '씨앗'을 자신이 뽑혀져 나온 그 구덩이에 몰래 던져 놓았기 때문이지요. 생명 있는 것의 모짊과 존귀함을, 하청호(1943-) 시인은 '잡초 뽑기'를 통해 일러 주었답니다. 5/29 (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이문구  산너머 저쪽  산너머 저쪽엔  별또이 많겠지.  바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토속적인 사투리 어투로 우리 농촌의 삶과 정서를 감칠맛 나게 드러내 온 '관촌수필'의 이문구 (1941-) 작가가 쓴 동시입니다. 가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에서 한 장의 상상화가 그려집니다. 밤마다 별똥이 서너 개씩 떨어진 '산너머 저쪽에는' 정말 별똥이 수북이 쌓여 있을 것입니다. 그 모습 떠올리며 설레는 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산너머 저쪽'에 바다가 있다니, 너무 놀라운 일입니다. 별똥 떨어져 쌓이는 곳이기를 지나 별똥의 무리 은하수가 흘러가 '바다'가 된 그곳, 정말 그곳은 한번의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차 잠 못 이룰 수 없게 하는군요. 5/30(화) 소설가 박덕규  이정석  어린이  바다로 나가려고  몸살하는  바구니에 담아 놓은 꽃게들.    바구니에 꽃게들을 담아 놓으면 어떤 행동을 보일까요? 한꺼번에 밖으로 나가려고 바둥거리는 본능, 그 건강한 생명력을 보이겠지요. 거기에서 넓은 "바다로 나가려고 몸살하는" 순진무구한 꿈이 느껴지지 않나요? 움직이는 꽃게를 손끝으로 톡 건드려 보세요. 가만히 숨죽이고 있다가 눈치 보며 또다시 개구쟁이처럼 살곰살곰 움직이려 들지요. 그런 꽃게들의 천진한 행동을 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지요. 바로, 귀엽고 천진무구한 어린이와 꼭 닮았잖아요. 꽃게의 행동을 어린이에 비겨 표현한 이정석 (1955-)시인의 예리함이 돋보입니다.  5/31 (수)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한석윤  조선의 참새  챠챠  중국 참새는  중국말로 울고  쥬쥬  일본 참새는  일본 말로 울고  짹짹  조선의 참새는  조선의 새라서  남에거나 북에거나  우리말로 운다.  짹짹  하얀 얼 보듬는  조선의 참새    분단된 조국을 가슴 아파 하는 데는 국적이 다른 우리 동포라고 예외일 이 없습니다. 중국 옌볜에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는 조선족 한석윤 (1943-) 시인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 자신의 다국적(多國的)인 역사 체험에서 새 울음 소리에 대한 언어 표현을 시적 소재로 이끌어냈군요. '남과 북이 한마음이다.'하는 흔한 생각을 "챠챠" "쥬쥬" "짹짹" 등의 의성어의 다름과 같음에 견주어 생동감이 생겼습니다. 참새가 우는 평범한 일도 이제 "하얀 얼 보듬는" 소중한 모습으로 보이게 되었지요. 6/1 (목) 소설가 박덕규  박신식  휴전선  앞뒤로  서로 다른  열쇠 구멍이 있는  기이다란 자물통  왜  열리지 않지?  혹시  서로 열쇠를 바꾸어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반 세기 동안 남북으로 오가는 길에 '휴전선'이란 "기이다란 자물통"을 채워 놓고 살아왔습니다. 이젠 정말 그 길을 활짝 터 주고 싶어요. 가슴이 답답해 숨이 막힐 지경이예요. 우리는 왜 그토록 녹슨 자물통 하나를 열지 못하는 걸까요? 남과 북이 열쇠를 바꿔 가진 탓일까요?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고통과 국가의 안녕을 진심으로 근심하는 마음이 바로 훌륭한 열쇠일 테지요. 박신식 (1969-)시인은 남과 북이 서로의 처지를 바꾸어 염려하는 마음으로 '휴전선'이란 자물통을 함께 열어보자는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6/2 (금)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이상현  철마는 달리고 싶다  기차는  오지 않습니다.  가지고 않습니다.  서울에서 함경도 원산으로 가던  기차 소리는  바람에 날아가 풀씨가 되었습니다.  골짜기에 메아리 치다  보라빛 산나물 꽃이 되었습니다.  기찻길은 잃어 버린  병사의 숟가락처럼  풀밭에 녹슬고.    서울과 함경도 원산을 오가는 기차가 있었지요. 오십 년 동안 그 기차는 버려지고, 녹슨 기차길 위로는 잡초가 우거졌습니다. 마지막 기적 소리는 그때 돌아올 곳을 읽고 떠돌다 긴 세월 속에서 바람이 되고 꽃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철마는 퇴색되어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린 듯합니다. 이상현(1940-) 시인은 다만 그것을 지금 눈앞에 있는 듯 그려 놓았을 뿐이지만, 그 그림 속 아득한 곳에서인 듯 들려오는 철마의 외침은 우리 가슴을 오십 년 한(恨)의 빛깔로 물들게 하는군요. 6/3(통) 소설가 박덕규  김원석  너와 내가 없는 강  꽃봉오릴 틔울  한 방울 이슬이  묵은 꺼풀 씻어 내릴  한 자락 빗물이  나, 이슬 아니고  너, 빗물이 아니어  서로 섞여 흐르고  때론  이슬이 빗물같이  빗물이 이슬같이  서로  함께 흐르는 강.    참 좋은 일 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느껴질 때가 있을 테지요. '꽃봉오리를' 틔우게 하는 일, 남의 몸에서 "묵은 꺼풀을 씻어" 내리는 일…, 이런 일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알아둘 일은, 나 아닌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하는 좋은 일에 취해 남이 한 소중한 일을 무시한 적 없었나요? 더욱이 동무 사이, 동포 사이라면, 내 자라부터 하기보다 남의 사연에서 먼저 참 가치를 읽어 주어야 '너와 내가 없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게 아닐까요? 6/5(월) 소설가 박덕규  권영상  비무장 지대  슬픈 일일수록  새들은 빨리 용서할 줄 안다.  우리들보다  더 힘들게 살면서도  언제나 우리들보다  더 먼저 용서하는 새들  지난 일을 잊기 위해  새들은 소총 소리 들리는  숲을 찾아와  거기에다  편안한 집을 짓는다.  지뢰가 흩어진 숲속을  우리들보다 더 먼저 찾아와  탄탄하게 집을 짓고  따스한 알을 낳는다.    한반도의 허리엔 비무장 지대라는 금단의 구역이 있답니다.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지요.아직도 "지뢰가 흩어진"그 숲 속 어디에선가 소총 소리 들려 오지만, 새들이 어느새 그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고 있었습니다. 새들이 "우리들보다 더 먼저" 슬픈 일을 용서했기 때문일까요? 권영상 (1953-) 시인은 그 새들의 '탄탄한 집과 따스한 알'과 같은, 서로의 용서로 엊을 수 있는 남북의 아름다운 화합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헨리 뉴볼트  끝  밤이 오고  올빼미가 나와 있어요  딱정벌레들은 주위에서  윙윙거리지요.  아이들은 안전하게  잠을 자고 있지요.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지요.  (장경렬 옮김)    하루를 열심히 살고 이제 아이들은 곤히 잠들었습니다. 이 이상으로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꿈꾸는 평화란 실은 이렇게, 일한 후 주변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전하게 잠을 자는 것으로 절로 이루어지는 일이지요. 이 평범한 진실을 잊고 끝간 데 없는 욕심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올빼미 울고 딱정벌레 나는' 밤을 못 견뎌하지요. 그러나 욕심 버리고 자연이 내는 소리 속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그 '끝'에서 새로운 내일을 예비할 힘을 얻는답니다. 6/7 (수) 소설가 박덕규  박 일  할아버지 안경  고향 가는 길  보이지 않아서  할아버지는  안경 안에  또  안경을 끼신다.  통일되는 길  보이지 않아서  할아버지는  안경 안에  또  안경을 끼신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행복일 테지요. 떠나온 고향에 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은 그 행복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고향 가는 길'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요.지금쯤 고향 산천은 얼마나 변했을까…, 부모님은 어떻게 사셨을까…, 이런 생각으로 오늘도 '안경 안에 또 안경을 낀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박 일 시인은  거듭 안경을 끼시는 할아버지의 행동을 반복해서 표현하면서 통일의 절실함을 부각시켜 놓았습니다. 6/8 (목) 아동문학 평롲가 김용희  김 현  초여름  가슴이 콩콩 뛰고 있대요.  미술 시간 그림 다 그려 놓고  칭찬 기다리는 아이처럼,  푸르게 파아랗게 칠해 놓고  환하게 눈웃음 지으며  칭찬깨나 기다리고 있대요.  눈치깨나 살피고 있대요.    녹음이 짙어지고 있지만, 불쑥불쑥 닥쳐오는 무더위에 그만 일손을 놓고 싶을 때가 있군요. 올 여름은 과연 무엇을 가져다 줄까요? 난리와 같은 장마? 숨이 가쁜 가뭄? 신나는 휴가? 그러나 그 여름은 무슨 운명이거나 한 듯 제 마음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거나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즐거운 놀이와 흔쾌한 휴식을 제공할 여름은 바로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요. 불행했던 지난 날들의 여름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 앞의 시간들을 우리 스스로 '환한 웃음'으로 가꾸어 가야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일 때 이 초여름은 김 현(1970-) 시인의 시에서처름 '가슴 콩콩 뛰는' 설렘으로 충만해 있게 되지요.  6/9 (금) 소설가 박덕규  유희윤  비오는 날  낡은 구두는  젖은 발이 안쓰럽습니다.  젖은 발은  새는 구두가 안쓰럽습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에 '새는 구두'와 '젖은 발'의 만남은 운명이지요. 오래도록 신고 다닌 구두는 이젠 낡아서 제 구실을 못 하고 있습니다. 남이 지닌 약점은 더 잘 보이는 것일까요? 비오는 날, 구두는 발 젖은 것을 보고 있고, 발은 구두 새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까요.그러나 그들은 자신에게 불편을 주는 상대의 약점을 꼬집어 말하지 않고 오히려 '안쓰럽다'며 위로한답니다. 유희윤(1944-) 시인은 딱한 사정일수록 서로 가엽게 여기며 위로할 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비오는 날 '발과 구두'의 관계로 일러 주고 있습니다.  6/10 (토)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박경용  귤 한 개  귤 한 개가  방을 가득 채운다.  짜릿하고 향깃한  냄새로 물들이고,  양지짝의 화안한  빛으로 물들이고,  사르르 군침 도는  맛으로 물들이고,  귤 한 개가  방보다 크다.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자기 생각을 자랑하는 데 급급한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너무 시끄럽습니다. 우리 집, 내 방도 예외라 할 수 있을까요? 방 주인을 닮아 현란한 꽃들과 거창한 표어들로 치장된 그 방은 실은 생기를 잃고 구석구석 곰팡이가 피어난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그 방에 화기로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웬일일까요? 자신을 내면에서부터 차곡차곡 가꾸어 온 사람이야말로 남들까지도 '향깃한 냄새'로 감싸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박경용(1940-) 시인의 '귤 한 개' 이야기에서 배운답니다. 6/12 (월) 소설가 박덕규  박경종  노마  순이와 싸우고  노마는  장독 뒤에 혼자 앉아 있다.  울 밑에서 꼬꼬가 뛰어와서  "꼬꼬꼬꼬……"노마를 부른다.  노마는 노마는  대답을 않고 손가락으로  글만 쓴다.  라고.    소꼽동무와 다툰 노마는, 우울한 마음으로 장독 뒤에 앉았습니다. '꼬꼬' 와 '바둑이'가 재롱을 피워도 다 싫습니다. 별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고집을 피웠을까? 무심히 땅바닥에 낙서를 합니다. '순이 순이 순이'라고 쓰면서 마음속으로는 '미안미안 미안' 하면 되뇌어 봅니다. 이제 순이가 더 보고 싶어집니다. 박경종(1916-) 시인이, 이성의 친구와 싸우고 나서 화해하고 싶은데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의 이중적인 심리를 소박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6/13 (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서정슬  소녀의 기도  제가 무엇을 잘못 했을까요?  귀뚜라미 다리 하나 뗀 일이 있어요.  그놈은 방안을 운동장인 줄 알았나 봐요.  펄떡펄떡 뛰다가 앉아 있길래  가만히 뒷다리를 잡았더니 떨어졌어요.  그보다 훨씬 더 아주 어릴 때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이 세상에 오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고통을 주셨을까요.  왜 이런 괴로움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릴 수도 있는 법이지요. 여기 그 숙명을 기도로 견뎌내고 있는 한 소녀가 있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괴로움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라고는 개미 죽인 일과 귀뚜라미 다리 뗀 일밖엔 없습니다.그것도 죄일 수 있으니까, 소녀의 기도는 더욱 처절하고 그래서 또 아름답습니다. 티끌만한 잘못까지도 일일이 뉘우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 두세요. 선천성 뇌성마비를 알아 온 서정슬(1946-)시인의 세 연짜리 동시 중 아래 두 연입니다. 6/14 (수) 소설가 박덕규  윤복진  씨 하나 묻고  봉사나무  씨 하나  꽃밭에 묻고,  하루 해도  다 못가  파내 보지요.  아침결에  묻은 걸  파내 보지요.    까만 씨앗 하나 묻어 놓는데, 거기서 파릇한 싹이 돋고 꽃이 핀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요? 그러기에, 꽃밭에 봉사(복숭아)나무 씨앗을 심은 아이는 혹시 싹을 틔우지 못하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이 아이는 자기가 한 일이 어떤 결실을 맺을까 조바심 내다가 때로는 일을 그르치기도 할 것이지만,그런 호기심이나 궁금증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요. 일제 강점기 때 동요 시인으로 활약하다가 분단이후에는 북한에서 살았던 윤복진(1907-?)시인이 지은 동시입니다. 씨 묻은 데를 파 보는 아이처럼, 그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군요. 6/15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엄기원  동무끼리  동무끼리  얼굴을 마주 보아라.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입을 꼭 물고  웃지 않기 내길 하여도,  코가 벌름벌름  귀가 쫑긋종긋  어느새 동무끼리  입이 열린다.    가까이 살면서도 얼굴 마주 보지 않고 사는 동무는 없는지요? 아무리 골 깊은 싸움을 한 사이라도 두 사람이 오래 사귄 동무였다면 딱 한 번만 고개 들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기만 하세요. 절대로 웃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눈을 무섭게 부릅떠도 좋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코가 벌름 귀가 쫑긋' 해지고 어느새 대화를 시작하는 사이가 '동무끼리'이지요. 자, 오랜 세원 외면하다가 비로소 얼굴 마주 본 우리들, 이제 절로 마음 열린 대화를 할 때입니다. 엄기원(1937-) 시인이 동시의 한 부분으로써 그런 대화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6/16 (금) 소설가 박덕규  한인현  귀머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 가셔요?"  "오오냐, 순인 집에 있나 보더라."  "아아뇨,어디 가시냐구요?"  "글쎄 가 보아라, 공부하나 보더라."    나이가 들면 눈도 침침해지고 귀도 멀게 되지요.다른 사람 말이 잘 들리지 않아 갑갑할 테지요. 하지만 할아버지들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다 알아차린답니다. 길에서 "어디 가셔요?"하고 인사하는 아이를 보고 단번에 손녀 친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순인 집에 있나 보더라 하고 자상하게 일러 주잖아요. 한인현 (1920-1969)시인이 엉뚱한 대답을 하는 귀 어둔 할아버지를 통해,우리 삶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보다 그 속에서 전해지는 마음의 움직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군요. 6/17 (토)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이정환  길도 잠잔단다  어어, 엄마!  길이 하나도 안 보여요.  그래, 길도 밤엔  어둠에 안겨 잠잔단다.  해님이  내려올 때까지  곤한 잠을 잔단다.    마냥 흔쾌한 일들만 펼쳐질 것같은 나날이 있기도 하지요. 절망하지 않고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이들에게 달콤한 음식과 신나는 오락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는 더 바빠도 좋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희망 속에서 술을 마시며 가슴 벅차 있을 사람도, 더 많은 땀을 흘려 많은 사람들을 보살펴야 할 사람도, 밀려 드는 어둠이 시키는 대로 몸을 맡기는 법을 잘 알아야겠지요. 이정환(1955-) 시인이 어듬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아이의 사연으로, 곤한 잠으로 이어지지 않는 하루는 아무리 보람찬 것이었더라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군요. 6/19 (월) 소설가 박덕규  김종길  촛불  엄마,  촛불이 말을 해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하시는 듯한  그런  얘기를,  엄마,  촛불이 얘기를 해요.    촛불은 촛물을 떨어뜨리게 하고, 지나가는 바람에 급히 몸을 도사리며 하늘거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옛날에 할머니가 들려주려다 다 못한 그 얘기인지도 몰라요. 바로 우리가 그리워하는 그런 얘기일 테지요. 김종길(1926-)시인이 아이의 천진한 눈으로 사물에 내재된 정과 꿈의 시간을 읽어내면서,우리 현실이 잊고 있는 소중한 세계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6/20 (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임금산  두만강  강 저쪽에도  하얗게  강 이쪽에도  하얗게  빨래들이  춤을 춘다.  마을마을  하아얗게  그리운  깃발.    뻔히 눈앞에 보이는 곳, 그곳에서 손 흔드는 사람들 …. 그러면서 만나지 못하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주 말해 왔지요. 중국 옌볜의 조선족 림금산(1960-) 시인은 그것을 국경의 강 양쪽에서 나부끼는 빨래의 모습으로 간단히 보여 주는군요. 그 하얀 빨래는 우리네 엄마들의 땀이 서린, 그러니까 살 비비며 살아온 우리네 가족사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우리 집 빨래이면서, 오래도록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사연이 얹혀 우리 모두에게 '눈에 선연한 하얀 깃발'이 되었습니다. 이제 과연 그 깃발을 내릴 때가 온 것일까요? 6/21 (수) 소설가 박덕규  노원호  강물  강물이 흐른다.  바람의 손목을 잡고 소곤거린다.  천날 만날 아래로만 흐를 줄 알았지  제 속을 들여다 보지 못한 강물  이제야 알았나 보다.  제 가슴에 내린 하늘이  그렇게 파란 것인 줄을.  여름날 강물은  눈이 더 파래진다.    강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늘 자신의 몸을 낮추어 흘러 가지요. 간간이 바람과 소근대느라 잔잔한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어느 날, 그 강물은 더욱 파랗게 보입니다. 자신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한 층 어른스러워지는 이치를 그때서야 깨달은 것이지요. "제 가슴에 내린 하늘 "까지 보는 강물의 모습이 참 의젓하지 않습니까? 자기를 성찰하면서 얻는 삶의 건강함을 노원호 (1946-)시인은 깊어지는 강의 푸르름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6/22 (목)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바스코 포파  당나귀  때로 당나귀는 물기도 하고  때로 먼지로 목욕도 하지요.  그래서 당나귀를 알아볼 수 있지요.  그렇지 않다면  그저 당나귀의 귀를 볼 뿐이지요.  어느 혹성의 머리 위에 달린,  당나귀 표시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남이 나를 제대로 알아볼 때까지 애써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감추는 것이 미덕일까요,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남에게 비친 모습이 아니라, 자기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 그 자체겠지요. 삶의 중요한 과정이라면 '먼지 자욱한 길을 걷고, 억울해서 마구 우는' 일이 드러나도 좋겠지요. 신기하게 생긴 외양만으로 남을 평가하는 걸 내버려 두었다가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오해의 골 속에 빠져 있지는 않는지요? 티가 묻은 속내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드러내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참다운 관계가 가능하다는 말을 이 동시가 하고 있군요. 6/23 (금) 소설가 박덕규  김일로  별  엄마 찾다 눈이 붓고  아빠 찾다 까무러쳐  높은 하늘 위에 올라  별이 되어 사는 아가  그 얼마나 찾았기에  눈만 남아 반짝일까  초롱초롱 눈만 반짝  오늘 밤도 찾나 보다.    어느 피란길에서 아이는 그만 부모를 잃고 말았습니다. 엄마, 아빠를 부르며 포탄 떨어지는 거리를 찾아 헤매다 지쳐 죽은 그 아이는 하늘 나라의 별이 되었답니다. 얼마나 애타게 찾았기에 아이의 눈만 밤 하늘에 또렷이 남아 초롱초롱 빛나고 있을까요? 밤 하늘을 쳐다보세요. 아이의 슬픈 눈빛은 먹구름 속에서도 밤 하늘을 아름답게 수 놓고 있을 테니까요. 김일로(1911-1904)시인은 어느 전쟁 고아의 영전에 이 동시를 바쳐 그 별의 영혼을 기리고 있습니다. 6/24 (토)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이원수  비누풍선  무지개를 풀어서  오색 구름 풀어서  동그란 풍선을 만들어서요  달 나라로 가라고  꿈 나라로 가라고  고이고이 불어서 날리웁니다.    누구나 비누풍선을 만들어 날려 보았을 테지요. 대롱 끝에 대롱대로 맺혔다가 둥글게 커져서 허공으로 날아가면,설레는 마음이 어느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지요. 하지만 그것은 곧바로 꺼져 사라져서, 안타까움만 안겨 주곤 했습니다. 그래도 비누풍선을 부는 때의 순수한 소망과 고운 꿈의 시간을 잊을 수 있을까요? '고향의 봄'의 이원수(1911-1981) 시인이 비누풍선에 소망을 담아 날리는 아이 모습에서 각박한 현실에서도 더 뚜렷해지는 근원에 대한 향수를 생각나게 해 두었군요. 6/26 (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최계락  편지  썼다간 찢고  찢었다간 다시  쓰고,  무엇부터 적나  눈을  감으면,  사연보다 먼저 뜨는  아,  그리운 모습.    애틋한 그리움이 말문을 막아 버려, 보고 싶다는 말도 시작하지 못할 만큼 그리운 이가 있지요.편지를 썼다가 찢고 또 다시 쓰면서, 이미 물밀 듯 밀려 온 추억 때문에 가슴이 아리게 되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그와 헤어져 살아온 지난 시간은 또 얼마나 안타까웠던가요?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사는 사람들의 애절한 사연을 최계락(1930-1970) 시인이 편지 쓰는 모습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어쩌면 울며 쓴 그 편지가 보낼 수 없는 곳에 사는 그리운 이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6/27 (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이창근  풀꽃  하나님의 귀여운  아들딸들이  별을 손에 쥐고 있다.  반짝반짝!    무심코 발견하는 이름 모를 작은 풀꽃 한 포기에 놀라게 된다는 것은 그래고 우리의 정서가 아직 메마르지 않았다는 뜻이지요.아이의 모습을 보고 절로 웃음을 머금게 되는 이치도 이와 같아요. 아이의 맑은 눈, 아이의 앙증스런 손짓에 깃든 별을 본다는 것은 '맑은 영혼의 미래'를 절로 믿고 있는 까닭입니다. 날로 혼탁해지는 이 세상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도 말할 수 있지요. 이창근(1951-) 시인이 노래하듯, 새롭게 태어나 자라나는 그 무수한 작은 것들의 꿈을 '반짝반짝'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은 여전히 내일을 향해 열려 있답니다. 6/28 (수) 소설가 박덕규  정호승  또 기다리는 편지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가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고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 시집 '서울의 예수' 중  곡:류형선 /노래: 유익종  박지현  슬픈 어느 날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별님이  먼저 알고  눈물이 글썽  슬픔을 잊으려고  애를 썼지만  달님이  먼저 알고  수심이 가득    아무에게도 위로 받지 못하고 혼자서 슬픔을 견뎌내야 하는 때가 있지요. 어떤 오락거리에도 눈길을 둘 수 없는 큰 슬픔이라면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야만 한답니다. 눈에 맺힌 눈물방울 때문에, 창가에 서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과 달도 슬픈 빛으로 채색되지요. 하지만 슬픔과 동화되는 자연의 모습이 아주 순수하게 느껴지는군요. 슬픔도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으로 극복된다는 것을 박지현(1943-) 시인이 상심한 아이으 모습으로 들려 줍니다. 6/30 (금) 아동문학 평론가 김 용희  김달진  칠월의 산길  하얀 양산을 받쳐 든  두셋 새악시가  흰나비떼처럼 날개를 치며  지나간 뒤  뱀 꼬리가 날카로이 빛났다.  바람인 듯 풀잎이 흔들렸다.  산모랑 굽이진 한길 그늘에  칠월의 한낮은  白金 바다보다 아름다웁다.    자연은 우리에게 휴식을 제공하거나 우리를 고요로써 감싸 안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녹음 우거진 숲길을 날카롭게 채색하는 저 뱀 꼬리 빛과 그것에 화답하는 풀잎의 흔들림을 보세요. 우리가 즐겨 찾아가는 바다와는 또 다르게, 여름 산길 또한 사실은 이토록 감각적이며 또한 현란하게 눈부실 수 있지요. 그 사실을, 평생을 근대화의 길로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김달진(1907-1989) 시인에게서 확인하니 더욱 감회롭습니다. 이 여름도 자연은 그 안에 무한한 새로움을 내포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지요. 7/1(토) 소설가 박 덕 규  최춘해  흙  돌아간 해 늦가을  흙은 지쳐서 쓰러졌었다.  한 송이 꽃, 한 포기 풀,  곡식 낟알 하나라도  품 속에서 태어난 건  다 아끼고 싶었다.  모양이야 일그러져도  허물을 묻어 주고 싶었다.  기름기가 다 마를지라도  더 넉넉하게  젖꼭지를 물려 주고 싶었다.  지친 채 누웠어도  가물에 못 견뎌  쭉정이로 돌아온 풀씨가  가슴 아팠다.    자연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입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흙은 우리 생명의 젖줄이며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흙은 우리의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일러 줍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이 트고 열매가 맺을 때까지 흙은 온갖 일을 해야 합니다. 불평을 말하거나 잘난 척 뽑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품 속에 태어난 것은 다 아끼고 다독이고 싶은, 모양이 일그러지거나 못 생겨도 그것을 덮어 주고 싶은 어머니, 쭉정이로 돌아온 풀씨를 보고 가슴이 아픈 어머니, 그래서 흙은 자연의 크신 어머니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슴에 비를 품었다가 목마르지 않게 해주고, 지쳐서 쓰러질지라도 곡식과 과일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는 흙의 고마움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었나요? 이 시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젖꼭지입니다. 흙이 젖꼭지를 물려 주고 싶었다는 것, 그래요. 풀, 나무는 물론이고 사람도 흙의 젖꼭지를 물고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흙의 힘은 그렇게 위대합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지요? 그 말은 이 시를 새겨 보면 어려운 말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또한 이 시는 어머니의 큰 사랑을 함께 노래한 시입니다. 흙과 어머니! 그것은 푸근한 정을 느끼게 하는 영원히 큰 사랑의 이름입니다. 2000.6.16(금) 소년 조선일보 아동문학관 난에 정두리 씀  정현종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누구나 일상을 탈출하고 싶을 때 떠올리는 곳이 섬이지요.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에 잠겨 모든 것을 잊고 머물고 싶은 그곳은, 배를 타고 가 닿을 수 있는 실재 공간이면서, 그러나 가지 못해 마음속에서 상상하곤 하는 상징 공간이기도 합니다. 구둣발에 밟히는 미생물에서조차도 즐겨 신성(神性)을 확인하고 탄복의 노래를 부르는 정현종(1939-)시인은 그곳을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했군요. 스스로 뿜어내고도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인간들의 빛과 향, 그것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유동적이고도 고독한 공간, 그 가까운 섬에 우리는 왜 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7/3(월) 소설가 박덕규  이시영  새벽  이 고요 속에 어디서 붕어 뛰는 소리  붕어의 아가미가 카하고 먹빛을 토하는 소리  넓고 넓은 호숫가에 먼동 트는 소리    고요한 호수에 동이 틀 무렵 먹빛 어둠을 뚫고 붕어가 뛰어 오를 때가 있지요. 동이 트는 것을 먼저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물고기들은 몸을 솟구칩니다. 그때 들리는 경쾌한 소리는 새 세상을 알리는 신호같기도 합니다. 그 소리는 누구라도 들을 수 있지만 붕어의 아가미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지요. 하지만 자연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먼동 트는 소리까지 들리는가 봅니다. 밝은 눈과 귀를 가진 이시영(1949-)시인이 넓고 고요한 호숫가에 아름답게 펼쳐진 자연의 신비로운 움직임과 미세한 소리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7/4 (화) 문학평론가 이숭원  조정권  독락당 (獨樂堂)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 )는  벼랑 꼭대기에 있지만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숴 버린 이.    독락당 대월루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자의 뜻으로는 홀로 즐기며 달을 맞이한다는 의미인데 아마 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지 모르지요. 정신의 맑고 높은 경지를 추구해온 조정권 (1949-) 시인이 벼랑 끝의 한 은거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누각은 벼랑 멀리 보이기는 하지만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곳에 올라 집 한 채를 지은 후 속세와의 인연을 끊어 버리고자 내려오는 길을 부쉈던 것이지요. 시인은 현실의 울타리에서 멀리 벗어난 어떤 초월의 공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실제의 삶 속에서 맑은 자리를 찾기 어려울 때 그런 공간을 꿈꾸는 것이겠지요. 7/5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이성복  남해 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 가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어떤 감탄사로도 형용되지 않는 신비한 풍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수직으로 푸른 바다와 직면해 있으면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바다 빛과 어우러져 오묘한 색채를 빛내곤 하는 남해 금산이 그런 곳이지요. 그 앞에서 이성복(1952-) 시인처럼 간절한 사랑의 설화를 유추해 내는 사람도 있겠지요. 연인을 위해 기꺼이 돌 속에 함께 갇힌 한 사내가 어떤 숙명의 힘에 의해 연인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결국 푸른 바닷물 속으로 잠겨 드는 이야기입니다. 자연은 이처럼 자신을 속 깊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가슴 안에서 더욱 깊은 정취를 뿜어내게 됩니다. 7/6(목) 소설가 박덕규  오선홍  개망초  깎아지른 벼랑  돌 틈을 비집고  저도 위험한  하나의 풍경이 된다.  홀로 피었다  당당하게 사라지는  개망초.    개망초는 우리 나라 산야 어디든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여름에 작은 꽃이 피었다가 가을이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지요. 깎아지른 벼랑에 돌 틈을 비집고 피어난 개망초가 오선홍(1964-) 시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평한 들판이 아니라 날카로운 벼랑에 피어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군요. 시인은 벼랑에 피어난 개망초가 스스로 하나의 위험한 풍경이 된다고 말합니다. 다른 존재의 접근을 거부하고 저 혼자 피었다 사라지는 당당함이 부러웠던 것이지요. 그런 당당함을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7/7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종삼  새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 지저귀고 있다.  이 세상에선 들을 수 없는  고운 소리가  천체에 반짝이곤 한다.  아는 인왕산 한 기슭  납작집에 사는 산 사람이다.    일생을 떠돌이의 마음으로 살다 간 김종삼 (1921-1984) 시인의 시입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왠지 마음이 찡하게 아려 오는데 이 시는 신비로운 새 소리를 들려 주고 있어 세상의 슬픔에서 잠시 비켜 나 있는 것 같네요. 하늘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새소리는 시인의 마음에 행복의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행복에고 슬픔의 기운이 스며 있군요. 시인은 또 "언제 올지 모르는"을 두 번 반복했고 "이세상에선 들을 수 없는" 고운 소리가 들려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새소리가 안겨준 행복은 환상이고 세상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곳이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아려 옵니다. 7/8 (토) 문학평론가 이숭원  조태일  소가죽 북  운동장에서  학생들,  북을 치고 있다.  둥,둥,둥,둥,둥둥둥둥둥  울타리 너머  들판  누렁소들,  되새김질 멈추고  맨살로 울고 있다.  우움머어, 우움머어,  둥,둥,둥,둥,둥둥둥둥둥    아무 움직임도 없어 보이는 여름 한낮이군요. 너른 학교 운동장이 있고, 그 울타리 너머로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치는 북소리가 동심원을 그리며 멀리 퍼져 나갑니다. 북소리의 파장을 느낀 들판의 누렁 소들이 아연 되새김을 멈추고 '맨살로'울기 시작합니다. 북소리와 소 울음의 화음이 이토록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국토'에 쌓인 혼을 노래하다가 '국토'의 혼이 된 조태일(1942-1999)시인이 소의 희생을 암시하는 듯한 '소가죽 북'을 매개로,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울음을 절묘하게 뒤섞은 까닭이겠지요. 7/10 (월) 소설가 박덕규  박형준  공간 이동  보도 블록을 밀고 나오는 뿌리  뿌리는 하늘로 솟구친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로 흘러가는 세상은 지치지 않는다.  모래시계의 허리가 가늘어진다.    흙 먼지를 줄이기 위해, 도시 경관을 세련되게 하기 위해 땅 위에 깔아 놓은 보도 블록, 그 아래에서도 생명체는 자라고 있습니다. 보도 블록을 밀어낼 듯이 뿌리를 그 위로 내밀어 하늘로 솟구치는 풀들이 그 예이지요. 그러나 절망과 폐허의 시간을 오래 견뎌 온 박 형준(1966-) 시인은 놀라운 생명력을 쉽사리 노래하지 않습니다. 한결 둔중한 음색으로, 그런 생명력이 가능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지치지 않는 힘은, 모래시계의 가는 허리를 지나가는 모래처럼 무거운 벽을 뚫고 가벼움을 향해 가려는 존재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7/11 (화) 소설가 박덕규  최문자  고백  향나무처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제 몸을 찍어 넘기는 도낏날에  향을 흠뻑 묻혀 주는 향나무처럼  그렇게 막무가내로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가 주는 상처를 알고도 그것을 감내하는 사랑의 노래를 즐겨 부르곤 하지요. 자기를 희생하면서 사랑하는 이를 포근하게 감싸 주는 사랑의 이야기가 실로 가슴을 절절하게 할 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사랑이고, 곧 참다운 사랑의 시일 수 있을까요? 최문자(1943-) 시인이 향나무와 그것을 찍어 넘기는 도낏날의 관계로 그 '막무가내'식 사랑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에 얹어진 희생, 순응, 포용 등의 가치가 오히려 진정한 사랑을 위반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면서도, 그 사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시적 아이러니가 빛나고 있어 더욱 흥미로운 시가 되었습니다.  7/129(수) 소설가 박덕규  김영석  이슬 속에는  한 방울 이슬 속에는  어디론가 끝없이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콩 꽃 같은 흰 옷고름이  안스럽게 얼비치고  가슴에 묻은 날카로운 칼날도  눈물에 삭고 휘어  이따금 찌르레기 소리에 반짝인다.    한 방울 이슬에서 자연의 신비를 엿보는 사람도 있는데 김영석(1945-) 시인은 이 땅에서 한스럽게 살아간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네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콩은 여름에 나비 모양의 꽃을 피우지요. 한 맺힌 사람들의 흰 옷고름을 콩 꽃에 비유한 것이 절묘합니다. 워낙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라 가슴에는 분노의 칼도 있었을 텐데 그것도 눈물에 무디어져 결국은 찌르레기 소리게 녹아 들고 있네요. 원한의 심정이 맑은 이슬이 되고 반짝이는 새소리로 바뀌는 놀라운 마술을 여기서 봅니다.  7/13(목) 문학평론가 이숭원  이성선  황홀  오늘 아침 산이  물방울  음악이다  세상이 꽃으로 피어난다  이제  더 갈 데가 없다    산이 물방울로 보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환히 비치는 물방울처럼 산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인다면 그 아름다움은 기가 막히겠지요.비 온 다음 날 아침 산의 모습이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음률의 조화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신비로운 음악과도 같지요.이렇게 꽃으로 피어나는 세상을 두고 달리 갈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완벽한 신의 솜씨 앞에 그저 숨 죽일 수밖에요.번잡한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연의 묘미를, 설악산 기슭에서 살고 있는 이성선(1941-) 시인이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7/14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최승호  물렁물렁한 책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은 물렁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반죽 덩어리. 그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또 시상(詩想)에 잠긴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전, 어떤 학자에 의해 한 권의 책이 저술되기 전, 그들의 머리 속에서 유동하고 있는 생각들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시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것을 아직 "반죽"중인 "물렁물렁한 책"이라 명명했군요. 존재하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에 "물렁한" 질감이 부여되면서 그것이 우리 삶 속에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존재 아닌 것들도 존재하는 것이라는, 무정형의 혼돈이 더욱 완벽한 질서라는 그런 사유를, 최승호(1954-)시인은 한 시인이 시상을 떠올리는 일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7/15 (토) 소설가 박덕규  이재무  신발  신발의 문수 바꾸지 않아도 되던 날부터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친구여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꿈이여    요즘에는 신발 크기를 밀리미터로 표시하지만 옛날에는 문이라는 단위로 표시했지요. 어릴 때는 발도 빨리 커져서 10문짜리 신을 신다가 얼마 안 되어 문수가 큰 새 신을 사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이 되니까 신발 문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더군요. 그때 이후 많은 친구가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어릴 때는 꿈도 많았는데 그 많던 꿈도 내 곁을 떠나갔어요. 다정했던 친구들, 가슴 속의 꿈들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요? 이재무(1958-)시인의 시를 읽으니 잊혀졌던 기억들이 연기처럼 아련히 떠오릅니다. 7/17(월) 문학평론가 이숭원  송찬호  동백이 활짝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 물고  땅으로 뛰어 내리기 전에    꽃이 활짝 핀 모습을 사자가 네 발과 붉은 갈기를 펼치며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것에 비유했군요. 그 때문에 꽃의 붉은 빛이며, 만개(滿開)하는 모습이 선연하게 느껴집니다. 자연의 변화 중에서도 그 절정의 환희는 참으로 일순간의 일이지요. 예술가들은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서둘러 상상력을 집중합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는 지금의 시간 모두가 절정의 한 지점이 아닐까요? 쉽게 지나치는 소중한 우리의 시간에 대해 각성하게 하려는 뜻에서 송찬호(1959-)시인이 돌올한 이미지로 동백꽃의 개화 장면을 그려 놓은 것일 테지요. 7/18 (화) 소설가 박덕규  정일근  유리창 청소  참 맑아라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 놓은  유리창 한 장  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 섬  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  가을 바다 한 장  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 놓은  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    정일근(1958-) 시인이 중학교 교사 시절 쓴 시입니다. '열이'라는 학생은 지적으로는 조금 늦되 보이지만 누구보다 착하고 맑은 심성을 가졌네요. 꼬부리지 않고 정성껏 유리창을 닦아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을 한 폭 그림처럼 떠오르게 했습니다. '다정한 형제섬'이란 표현이 마음을 순하게 하지요? 유리창에 비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선생님과 열이가 다정한 형제처럼 손잡고 웃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착하고 맑은 사람들이 모여 사랑으로 가르침을 주고 받는 교실이 그립습니다. 7/19(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이선영  알락도요새  연못 위에 떠다니는  나뭇잎을 발바닥 삼아  연못을 콩콩 튀어 다니며  제 존재의 그토록 가벼움을 맘껏 즐기는  내 존재의 무게를 타고 앉아 콩 콩 콩  발장구 치는    봄 가을로 한 차례씩 우리 나라의 물가에 머물다 지나가는 나그네새인 알락도요새가 연못의 풀숲에서 놀고 있는 장면입니다."나뭇잎을 발바닥 삼아 연못을 콩콩 튀어" 다니는 모습이 참 경쾌하군요. 지상에 와서 놀면서도 마치 이 지상에 묶인 존재가 아니라는 듯한 그 몸놀림에 비하면, 한 시도 지상을 떠날 수 없는 인간은 얼마나 무거운 존재인가요. 이선영(1964-)시인이 알락도요새의 한가로운 한때를 "콩콩"튀는 탄력적인 감각으로 드러내면서 그 속에다 제 무게를 견디느라 힘겨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7/20(목) 소설가 박덕규  심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메고  살금살금 잠자리 쫓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돌아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변변한 잠자리채마저 없던 시절 아이들은 싸리빗자루를 들고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지요. 정신 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여를 한낮이 다 가고 따가운 햇살에 얼굴이 사과처럼 익어 돌아왔습니다. 배에서 꼬로록 소리가 났지만 새참도 모자라던 시골에 먹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가난과 궁핍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심호택(1947-) 시인은 가장 행복했던 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 속에 피어오르던 동심의 천진함과 인간다운 정겨움이 못내 그리운 탓이겠지요. 그 아름다운 시절이 지금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요?  7/21(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문인수  비밀  급행 지나는, 손살같이 내닫는 숨가쁜 도중  추풍령 아래  푸른 행간에  하품하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가니역    우리는 휴가 철의 급행 열차처럼 자신의 목적지에 빨리 가 닿아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몰두하는 삶이 가장 값지다고 믿지요. 하지만 그 삶의 터전이 되고 배경이 된 자잘한 존재들과 그것들과 맺은 이런 저런 인연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열차 창 밖으로 하품하듯 스치는 간이역 같은 풍경이 속살 깊은 내면에 쌓인 때라야 새로 만나는 세상은 더욱 의미가 깊어집니다. 당신에게도 그처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비밀이 진정 있지 않겠느냐고, 문인수(1945-) 시인이 묻고 있습니다. 7/22 (토) 소설가 박덕규  나태주  기쁨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른다.    난초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온도가 적절해도 잎이 마른다고 해요. 그러니까 난초의 잎은 우리들이 모르는 어떤 밀접한 관계를 허공과 맺고 있는 셈이지요. 자연의 은밀한 아름다움을 노래해 온 나태주(1945-)시인의 눈은 평범한 난초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이처럼, 휘어진 이파리가 허공에 몸을 기대고 허공은 그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 장면을 보았어요. 난초 잎에서 잔잔한 기쁨의 강물을 발견한 시인의 안목이 놀랍습니다. 7/24(월)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춘수  부두에서  바다에 굽힌 사나이들.  하루의 노동을 끝낸  저 사나이들의 억센 팔에 안긴  깨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은  온전한 바다,  물개들과 상어떼가 놓친  그 바다.    바다에서 일하고 귀가하는 부두 사나이들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요. 김춘수(1922-) 시인은 그것을 '사나이들의 억센 팔에 안긴 바다'로 표현했습니다. 사나이들이 일하던 실제의 바다에서, 사나이들이 가져옴으로써 느낌만으로 존재하게 된 바다로 변화한 기묘한 상태가 펼쳐졌습니다. 바다는 원래 깨지고 부서지고 물개들과 상어떼가 어울리는 곳인데, 그것에서 떠나온 바다가 이제 그런 통념적인 의미를 벗어서 더욱 '온전한' 상태의 바다로 변했습니다. 생생한 자연, '날것' 상태의 존재란 이렇듯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고정 관념을 깰 때라야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7/25(화) 소설가 박덕규  장석남  뻐꾸기 소리  깜빡  낮잠 깨어나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봉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이  사랑도 꼭 그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    어느 날 낮잠을 자다 깨어나서 흰 창호지에 붉은 봉숭아 꽃 빛이 비친 것을 보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잠결에 보이는 연분홍 빛이 얼마나 신비롭겠습니까? 사물의 그늘에 눈길을 돌려 온 장석남(1965-) 시인이 그 은은한 빛깔로 사랑의 색조를 표현했습니다.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사랑, 의도적으로 꾸며내는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하지요. 그런데 시의 제목은 뜻밖에 '뻐꾸기 소리'예요. 멀리서 뻐꾸기 소리 들려 오듯이, 봉숭아 꽃잎 은은히 우러나듯이, 그렇게 아련하게 다가오는 사랑을 기다린다는 뜻이겠지요.  7/26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백 석  비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았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농촌이나 산골 서민들의 삶을 북방 지역의 토속적인 어휘에 실어 이야기하듯 노래한 백석(1912-?) 시인의 초기 시입니다. 자연의 정황을 특정한 감정 부여 없이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실재감을 물씬 느끼게 하는 시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지요. 어느덧 몰려 와 있는 비의 계절을, 아카시아 꽃들이 만발한 숲길에서 곧 쏟아질 것만 같은 '비' 냄새로 예감하는 때의 표현이 볼 만하군요. '두레방석' (여러 사람이 둘러 앉을 수 있는 방석) '물쿤'(냄새가 확 풍기는 모양을 뜻하는 '물큰'의 사투리),'개비린내'(바닷물이 드나드는 때의 비린내) 등 사라진 말들의 쓰임이 이 시에 싱싱한 기운을 돌게 합니다. 7/27 (수) 소설가 박덕규  김광규  종  동록이 슬은 구리의 침묵 깨뜨려  몇백 년 간직해 온 함성과 신음 되살려 주고  그윽한 울림 사라지면서  더욱 큰 고요를 남기는 듯    새벽의 산사에서 범종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몇 백 년의 세월을 거쳐 파랗게 녹이 슨 종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그 표면을 때리면 놀라운 소리가 울려납니다. 평범한 대상에서 생의 비밀을 탐색해 온 김광규(1941-) 시인은 그 소리에 많은 사람의 함성과 고통의 신음이 담겨 있다고 보았어요. 하지만 함성과 신음의 울림도 잠시뿐 소리가 그치면 더욱 큰 고요가 남습니다. 그렇다면 종의 본질은 함성일까요 고요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침묵과 함성이, 신음과 고요가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은 아닐까요?  7/28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도광의  샐비어  더운 이름으로 당신을 불러 봅니다.  햇볕도 편애하듯  가는 숨결로 타고 있습니다.  하늘 속 빗방울로  가슴을 씻고  피 흘리며 타고 있습니다.  아빌라,  모든 것을 사죄해 주십시오.  살아 있는 남자에게  남은 할 일은  저무는 한역(寒驛)에서  눈을 감는 일입니다.    붉은 빛으로 짙게, 꽃밭 가장 자리를 수 놓은 샐비어를 아시는지요? 그 꽃을 따서 단 맛을 빨아 먹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요. 도광의(1940-) 시인은 뜨거운 햇볕을 받고 더욱 붉어지는 샐비어의 모습에서, 피 흘리듯 정염(情炎)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을 봅니다. 어떤 운명이 마음을 이끄는 대로 생을 맡기고 스스로를 소진하는 낭만주의자의 모습이군요. 그런 사람이 없다면 시가 있을까요? 그렇게 삶을 내던지고 고개 숙인 그에게 신이 어떤 죄값을 치르게 할런지 궁금합니다. 7/29 (토) 소설가 박덕규  이홍섭  불타는 섬  외로움이 힘이 되어  힘 없는 응시가 어느덧 사랑이 되어  저렇게  활활 타오르는 섬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은 오갈 데 없이 고립되어 있는 인간 모습과 흡사하지요. 섬처럼 외로운 존재가 어느날 누군가를 응시하고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외로움이 클수록 그리움과 사랑은 더욱 강하게 불타오르지요. 그러나 아무리 상대를 바라보며 사랑으로 몸부림쳐도 고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끝내 '불타는 섬'으로 머물 뿐이지요. 이홍섭 (1965-) 시인은 인간 존재를 섬에 비유하여 외로움의 자각이 사랑의 열망으로 바뀌고 그것이 고독의 가혹한 심연으로 깊어지는 과정을 표현했습니다.  7/31(월)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형영  압록강  -김주영 형에게  무너진 국내성을 돌아  압록강 선착장에서  밤 늦도록 바라보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  죄가 되던 강물이여  하늘에 등을 단  달빛 때문에  달빛 때문에  매 갈 길을 막고서  밤에도 흐르는 강물이여    고구려의 옛 영광 국내성을 돌아 압록강 선착장에 닿는 관광 코스가 있지요. 압록강변 조상들의 생애를 다룬 소설 '야정(野丁)'(김주영 작)을 읽으며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 김형영(1944-)시인이 이 강 앞에서 처연하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 강을 생활 터전으로 삼았던 그 조상의 후손들은 지금 어떤가요? 역사는 단절되고 민족은 헤어졌습니다. 그걸 생각할수록 우리는 옴쭉 달싹할 수 없는 죄인이 되고 맙니다. 민족의 현실을 자기 안에서 인식함으로써 죄값을 치르고 있는 시인의 내면이, 달빛 아래 강물 흐르는 자연의 오랜 운행과 어우러져 장엄한 음악 소리를 내고 있는 듯합니다. 8/1 (화) 소설가 박덕규  강현국  고요의 남쪽  떡갈나무 그늘을 빠져 나온 길은  황토 산비탈로 자지러진다  차돌처럼 희고 단단한 고요  오직 고요의 남쪽만 방석만큼 비어 있다  길은 또 한 번 산비탈로 자지러진다  온 몸에 고추장을 뒤집어 쓴 어떤 애잔함이, 출렁  섬진강 옆구리를 스치는 듯도 하였다    이 시에는 몇 가지 이채로운 표현이 나옵니다. 길이 산비탈로 자지러진다든가, 고추장을 뒤집어쓴 애잔함이라든가, 고요의 남쪽에 방석만큼 비어 있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시인이 보여 주는 것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입니다. 떡갈나무 그늘을 거쳐 황토 산비탈로 사라지는 길이 있고, 길 위에는 고요가 감돌고, 길 저편에 흐르는 섬진강 줄기에는 처연한 애잔함이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강현국 (1949-) 시인은 평범한 풍경에서 고요 속으로 파고 드는 애잔함을, 민족의 내면에 흐르는 정한의 물살을 본 것이지요.  8/2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강은교  너무 큰 구름 떼 속으로  - 벽 속의 편지  너무 큰 구름 떼 속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가네  땀에 젖은 지붕이  헐떡이며  새를 쳐다보네  그대는 새인가  너무 큰 구름 떼 속으로  날아들어가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가 눈앞에서 흘러 들어가던 때, 그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다투어 뛰어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태도가 옳았을까요? 짙은 허무 속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발견한 강은교 (1945-) 시인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망설임 없이 그 큰 흐름으로 뛰어든 사람만이 그 답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큰 흐름 속에서 자신을 본 사람만이 그 답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큰 흐름 속에서 자신을 본 사람만이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겠지요. '큰 흐름 속에서 '나를 찾아라'하는 교훈도 되새겨 보세요. 자, 우리 앞의 물줄기를 보고 있는지요? 99.8.3(목) 소설가 박덕규  오규원  칸나  칸나가 처음 꽃이 핀 날은  신문이 오지 않았다  대신 한 마리 잠자리가 날아와  꽃 위를 맴돌았다  칸나가 꽃대를 더 위로  뽑아 올리고 다시  다시 꽃이 핀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음날 오후 소나기가  한 동안 퍼부었다    이 시를 읽고 무슨 이런 싱거운 이야기를 했나 의아해 하는 분이 있겠지요. 시는 꼭 의미 심장한 무언가를 담아 내야 하나요? 진실은 오히려 평범한 자리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요.어느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말을 했고, 평상심이 곧 진리라는 말도 있습니다. 칸나 꽃이 필 때 무슨 신비로운 이변이 일어날까요? 잠자리가 날고 우연히 소나기가 퍼붓는 등,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반복될 따름입니다.오규원(1941-) 시인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현상의 국면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의 실상이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8/4 (금) 문학평론다 이숭원  박해석  익사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었길래  몽뚱이 하나로 온 강물을 적시게 하였느냐  얼마나 깊은 괴로움이 있었길래  온 강물이 합심하여 몸뚱이 하나  눈부신 햇살 아래 뉘어 놨느냐    소중한 꿈을 키워 나가야 할 사람이 뜻하지 않은 운명 앞에 목숨을 내놓고 만 것을 볼 때가 있지요. 박해석(1950-) 시인이, 생을 연장하려는 사람의 몸부림과,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멈추게 해야 하는 강물의 거친 물살이 맞부딪쳐 빚어낸 그 비극의 현장을 포착했습니다. 비록 끊어져 버린 생명이지만, 그 사람이 온몸으로 '슬픔과 괴로움'을 견뎌낸 세월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는지요. 살아 남은 사람들의 남아 있는 시간 또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슬픈 감정을 겉으로 억제해 보이는 시적 방법으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8/5 (토) 소설가 박덕규  이호우  휴화산  일찍이 천 길 불길을  터뜨려도 보았도다  끓는 가슴을 달래어  자듯이 이 날을 견딤은  언젠가 있을 그날을 믿어  함부로치 못함일레.    사소한 불만을 무절제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잠자듯 침묵을 지키다가 세상이 놀랄 만한 분노의 육성을 터뜨릴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귀를 기울이지요. 분노의 표출, 열정의 폭발에도 적절한 시점이 필요한 법이지요.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언젠가 있을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시련을 참고 견디는 견인(堅忍)의 정신력이 요구됩니다.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이호우(1912-1970) 시인이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정신의 높이를 휴화산에 비유하여 나타냈습니다.  8/5(월)문학평론가 이숭원  윤제림  개미집  베짱이처럼 그늘에서  잠만 잔 게 아니냐구요?  기타 치며 노래나 부른 게  아니냐구요?  개미처럼 일했다며, 왜  집 한 칸 없느냐구요?    '무얼 하고 살았기에 여태 자기 집도 없이 사느냐?'는 식의 물음에 곤혹스러움을 겪는 사람들이 참 많더군요. 집 장만을 못 한 사람에겐 언제나 그 게으름이나 무능을 공박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우화 속의 부지런한 주인공 개미도 어느새 궁지에 몰려 버렸군요. 그런데, "아니냐구요?"하는 개미의 거듭되는 반문이 의외로 당당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많은 돈과 큰 집과 멋진 차가 있는 삶보다 하찮은 '개미집'의 소박한 성취가 더 값지다는 사실을 윤제림 (1959-) 시인이 풍자적인 어법으로 재치있게 깨우치고 있는 중이지요. 8/11(토) 소설가 박덕규  황동규  더욱 더 조그만 사랑 노래  연못 한 모퉁이  나무에서 막 벗어난 꽃잎 하나  어마나 빨리 달려 가는지  달려가다 달려가다 금시 떨어지는지  꽃잎을 물위에 놓아 주는  이 손.    이 시에 제시된 상황을 머리에 그려 봅시다. 나무에 매달려 있던 꽃잎이 바람에 나부껴 연못 저 편으로 달아나는 장면을, 천방지축 달려가는 꽃잎을 잡아 물위에 곱게 놓아 주는 손을, 그러면 연못의 물결에 실려 곱게 일렁이는 꽃잎의 흔들림이 연상되기도 하지요. 지적인 방법으로 대상을 재구성해 온 황동규 (1938-) 시인이 '달려가는 꽃잎'과 '놓아 주는 손'의 대비적 관계를 독특하게 설정했습니다. 자유분방한 몸 놀림은 급격한 추락으로 끝날 위험이 있지요. 그것을 염려하여 존재가 머물 수 있는 안정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사랑의 한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8/9 (수) 문학 평론가 이숭원  오세영  미명 (未明)  소낙비가 난초 잎을 두드린다.  심금을 울리며  닫혀 있는 사물의 문을 연다.  소낙비가 번개를 몰고  잠든 흙을 깨우고 있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비에 적시며  가냘픈 줄기로 미명을 열고 있다.    신 새벽 동트기 전 소나기 한 줄기가 지나갑니다. 연약한 난초 잎에 빗방울이 떨어지자 잠자듯 고요했던 난초 잎도 마음의 문을 열고 신생의 기지개를 켜는 듯합니다. 번개까지 번쩍여 잠든 흙을 깨우고 있군요.  소나기에 몸을 적신 난초 줄기는 가냘퍼 보이지만 그 연약한 줄기를 끄덕이며 미명의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육신이지만 모든 생명 가진 존재는 미명(未明)을 여명(黎明)으로 바꾸는 노력을 멈추지 않지요. 존재의 비밀을 탐색해 온 오세영 (1942-) 시인이 미명을 여는 생명의 움직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8/10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정인섭  꿈  꿈이 감은 눈으로 고통을 본다  내 상처에서 날마다 물을 긷는 당신이  아침엔 물 한 동이로 달을 씻고  저녁엔 물 반 동이를 나무에 쏟는다.    누구에게나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가 있게 마련이지요. 가람들은 간절한 기도로 그것을 씻으려고도 하고, 또 그럴수록 더한 정신적 고토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자신의 내면에 깊이 침잠한 어느 순간 그 고통에서부터 새로운 깨침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수도 중인 정인섭 (1955-) 시인의 상처에서 '날마다 물을 긷는 당신'이 곧 그 깨우침의 상징인 셈이지요. 자기 고통의 피에서 끝없이 물을 길어내 이 세상을 위해 뿌려 주는 일이 '당신'만의 몫이 아닐 테지요. 그 일은, 그 일로써 스스로의 고통을 씻어야 할 우리들 각자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8/11(금) 소설가 박덕규  이경림  사람 지나간 발자국  아름다워라 나 문득 눈길 머물러  그것의 고요한 소리 보네  누군가 슬쩍 밟고 갔을  저 허리 잘록한 소리  한참 살다 떠난 부뚜막 같은  다 저문 저녁 같은    사람 없는 곳에 가서 머물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살다간 사람의 흔적을 보았군요. 그때의 기이한 놀라움을 이경림 (1947-) 시인이 희미한 연기 속에서 조금씩 형체를 나타내는 산골 풍경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죽은 자연처럼 있던 집이 부뚜막의 온기나 굴뚝 연기로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하는 미세한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 오는군요. 조금 더 귀기울이면, 모양과 소리로 빚은 "허리 잘록한"절묘한 소리도 들려올 테지요. 사람이 사람 지나가는 발자국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다니, 이것만으로도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뜻 아닐까요? 8/12 (토) 소설가 박덕규  정진규  물소리Ⅰ  너의 나라를 네 몸의 나라를 네 영혼의 나라를  속속들이 핥고 있다 지금 너를 부르는 너의 목  소리가, 그렇다 너의 생음(生音)이 비로소 깊고  아름답다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너의 옴 몸은  언제나 물기에 젖어 있다 이 여름 땡볕 속을  혼자 걸어도 언제나 물소리를 듣고 있다 너를  듣고 있다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던 그 그리움만으로 상대방의 모습이 오롯이 떠오르지요. 상대의 몸과 영혼 깊은 곳까지 직접 어루만지는 것 같은 밀착된 감각을 얻을 수가 있어요. 내가 너를 부르는 소리가 물소리가 되고 거기 응답하는 네 몸도 물소리를 낸다면 너와 나 둘 사이에 그리움의 수로를 타고 시원하게 물이 흐르는 장면도 상상할 수 있지요. 찌는 듯한 여름 땡볕 속에 이런 물소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싱그러워지네요. 정진규 (1939-) 시인이 들려 준 싱싱한 사랑의 물소리를 당신도 한번 울려보지 않으시렵니까. 8/14 (월) 문학평론가 이숭원  문정희  무궁화  꽃을 보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중중모리 삼삼한 가락 흔들고 있다.  말 못할 몸짓  흰 꽃으로 피워 놓고  날 보고도 말도 걸지 못한다  이국 땅 골목길에 무궁화가 피었다.    문정희 (1947-)시인이 미국에 체류하던 시절 어느 골목에서 우연히 무궁화꽃 핀 것을 보았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득한 타향에서 눈에 익은 그 꽃을 보았을 때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헤어졌던 혈육을 만난 듯, 정든 이웃을 만난 듯 가슴이 뭉클했겠지요. 그 무궁화도 가슴이 막힌 듯 나를 보고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합니다. 흰 꽃을 피우고 중중모리 가락으로 흔들릴 뿐 아무 말이 없는 무궁화에서 시인은 가슴속에 피어나는 모닥불을 확인했습니다. 이 모닥불의 온기가 우리 모두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8/15 (화)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수복  망개 덩굴 옆에서  망개 덩굴에 그대 귀걸이가 걸렸다  손에 닿을 때까지  온몸을 밀어 넣어도  아득한 햇살만 손등에 찔려 온다  그대의 마음에  그대의 사랑에  그대의 조국에까지  들어박혀 있는 망개 덩굴 속으로  손이 닿을 때까지  온몸을 밀어넣는다    빤히 눈 앞에 두고도 손이 닿지 않아 잡지 못하는 물건이 있어 애태운 적 있지요. 이 시에는 어떤 산행 중에 망개덩굴에 걸려 버린 귀고리를 건져 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손등을 찌르는 햇살'로 그려져 있습니다.귀고리의 주인이 '그대'이니까, 그것에 손닿게 하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할 테지요. 김수복(1953-)시인은 이러한 안타까움의 체험을 이룰 듯 이루지 못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데 못 만나는 우리 모두의 염원으로 확대해 나갔습니다. 거친 망개덩굴 속으로 온몸을 밀어넣는 모습이 뜨겁게 느껴지는 시입니다. 8/16 (수) 소설가 박 덕 규  고재종  출렁거림에 대하여  너를 만나고 온 날은, 어쩌랴 마음에  반짝이는 물 비늘 같은 것 가득 출렁거려서  바람 불어오는 강둑에 오래오래 서 있느니  잔 바람 한 자락에도 한없니 물살치는 잎새처럼  네 숨결 한 올에 내 가슴 별처럼 희게 부서지던  그 못다한 시간들이 마냥 추렁거려서  내가 시방도 강변의 조약돌로 일렁이건 말건  내가 시방도 강둑에 패랭이꽃 총총 피우건 말건    어떤 뜻깊은 만남은, 오래도록 마음을 들뜨게 만들지요.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에 휩싸여 있을 동안은 모든 걸 다 받아들일 수 있지요. "너를 만나고 온 날"의 그런 기쁨을 노래한 고재종(1957-)시인의 시를 따라 읽으니, "반짝이는 물비늘 같은 것"이 가득 출렁거리던 그때의 마음이 되는군요. '네 가슴 한 올에 별처럼 희게 부서지던 내 가슴" 과 같은 감상적인 표현이, 강변의 조약돌이며 총총 핀 패랭이꽃이 만드는 토속적인 분위기에 녹아들면서 더 생생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를 만나 이렇게 "출렁거리는" 것일까요? 8/17 (목) 소설가 박덕규  이수익  초당 한 채  마음에  초당 한 채 짓자.  혼자만, 혼자서만 있고 싶은 시간  은밀히 드나들게  마음의 변두리 어느 한적한 터에  불빛도 없고, 기척도 없는.    지금은 시골에서도 초당을 보기 힘듭니다. 언제나 짚으로 지붕을 얹은 조그마한 별채가 초당이지요. 절제된 언어고 정갈한 공간을 추구해 온 이수익 (1942-) 시인이 마음에 초당을 짓자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주위를 비추는 불빛도 없고 사람 드나드는 기척도 없는 한적한 초당에 오두마니 앉아 있는다면 평소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지도 모르지요. 초당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번잡한 도시에서 저마다 마음에 초당 한 채 마련한다면 우리의 내면은 더욱 그윽해지겠지요. 8/18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복효근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그럴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 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    '궁그는'은 '구르는'의 전라 방언입니다. 넓은 토란잎에 빗방울이 떨어져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동그랗게 구르는 모양을 연상해 보세요.복효근 (1962-)시인은 그 장면을 동화적 시각으로 재구성했어요. 어린애처럼 둥글둥글 구르다가 잠든 토란잎 배꼽 위에서 함께 잠자는 물방울을 상상해 보았지요. 그렇게 토란잎과 어울리다가 사라질 때가 되면 토란잎이 털어내기 전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그 산뜻한 처신이 바로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과 흡사하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묻고 있습니다. 8/19 (토) 문학평론가 이숭원  정끝별  밀물  가가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하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욕되게 느껴지는 때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가가스로' 살아남아, 무수한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지나온 그 세월을 되돌아보는 일이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정끝별 (1964-)시인이 '밀물이 미끄러지듯 항구에 닿은 두 척의 배'의 사연으로, 헌한 길 함께 걸어온 두 사람의 인간사를 들려 줍이다. 그들의 '바다가 잠잠'하기만 했을 리 없지요. 다 드러난 깊은 상처를 서로 쓰다듬으며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었다.'며 다독거리는 두 사람의 표정이, 여느 연인끼리의 눈길보다 은밀하고 그윽하게 느껴지는 까닭을 아기겠지요? 8/21(월) 소설가 박덕규  송종규  섬  세울아 하고 부르면 부시시 일어날 것만 같은  바위며 이끼들  세월아 하고 부르면 풀썩  바스라져 버릴 것 같은  내 살 속의 뼈와 조개의 무덤들  달빛 혹은 차디찬 바람이 여백을 꼭 채운다.  기꺼이, 아주 기꺼이, 돌멩이 굴리는 파도 소리 있다  누군가 돌아선다  바다는 너무 멀다.    섬이 인간의 외로움을 표상한다는 것은 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이 섬의 정경은 조금 특이하네요. 바위며 이끼 조개 껍질 등은 세월의 풍화를 많이 입은 듯퇴락한 모습이고, 빈 여백은 달빛과 찬 바람이 메우고 있어요. 파도도 가볍게 철써이는 것이 아니라 돌멩이 굴리는 소리를 냅니다. 이 활량한 공간에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바다조차 멀리 떨어져 있군요. 송종규(1952-) 시인이 그려낸 황량하고 쓸쓸한 내면 풍경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8/22(화) 문학평론가 이숭원  고두현  횡단보도  너 두고  돌아가는 저녁  마음이 백짓장 같다.  신호등 기다리다  길 위에  그냥 흰 종이 띠로  드러눕는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헤어져 돌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 있군요.피할 수 없는 이별을 온몸으로 겪어 내느라 넋이 빠진 표정을 짓게 되었습니다.님을 잃고 우는 슬픈 사랑의 노래들이 많지만, 고두헌 (1963-) 시인은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이별을 경험하는 내용을 펼쳐 보이네요. '백짓장 같은마음'에서 '횡단보도'의 흰 띠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전이가 그 이별의 슬픔을 더욱 구체적인 일로 느끼게 해 줍니다. 함께 있어야 할 소중한 사람 곁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겪어야 하는 것인지요? 8/23 (수) 소설가 박덕규  허형만  시  사람의 힘을 믿어야 한다.  스스로를 태우고도  남는 게 있다면 그것마저 버려야  비로소 우리 가슴에 뜬  생명의 별 하나  따뜻한 숨결을 내뿜느니.    선사가 오랜 고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시인들은 결코 길지 않은 한 편의 시를 위해 자신의 정신과 감각을 모질게 채찍질하곤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잡념을 씻으며 자아를 온전히 태울 따 이윽고 가슴에 뜨는 '별'이 곧 시인에게는 참된 '시'라 할 수 있지요. 과연 그런 시를 얻기 위해 얼마나 태웠는가 하고 허형만(1945-) 시인이 스스로에게 묻고 있군요. 그 물음은 우리에게는 이렇게도 들리는군요. '사랑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확신도 없이 어찌 그런 시를 만나려고 하는가?' 시는 언제나 사랑의 증거가 될 테지요.  8/24 (목) 소설까 박덕규  김종철  호박꽃에 대하여  호박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 하면 노란색이 보입니다  빨간색 흰색 어쩌면 하늘 색 호박꽃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호박답지 않아 생각을 멈춥니다  치장을 해도 잘 보이지 않는 덤덤한 마누라처럼  우리 뒤에 누워 있습니다  그래도 꿀벌은 어김 없이 찾아 옵니다    호박꽃 하면 먼저 못 생긴 꽃을 떠올리지요. 커다랗게 늘어진 모양과 너무 눈에 익은 노란 빛깔 때문일까요? 하지만 호박꽃은 역시 노란색이 어울리지요. 화려한 빛깔만 가득하다면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질 거예요. 덤덤하고 수수한 호박꽃도 있어야 마음 편해지지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핀 호박꽃이지만 꿀벌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꽃이 떨어지면 커다란 호박도 믿음직스럽게 익어 갑니다. 이렇게 평범하면서도 분명한 자연의 이치를 김종철(1947-) 시인이 호박꽃을 통해 나타냈습니다. 8/25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이산하  부화  알 속에서는  새끼가  껍질을 쪼고  알 밖에서는  껍질을 쫀다  생명은  그렇게  안팎으로 쪼아야  죽음도  외롭지 않다    안팎의 두 존재의 힘이 함께 알 껍질에 작용될 때라야 '새'는 온전한 생명체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모든 생명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삶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말인 듯하다가, 갑자기 "죽음도 외롭지 않다"로 이은 비약이 놀랍습니다. 안팎의 '쫌'이 이룬 생명의 그늘에서 발견한 죽음을 외면하지 않았지요. 이산하 (1960-) 시인은, 생명에 이르지 못하는 그런 존재를 말해서 안팎의 두 힘의 호응처럼 생명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움직임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는 셈입니다. 8/26 (토) 소설가 박덕규  감태준  아름다운 나라  거기가 어디지?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거기,  우리 손 잡고 찾아 갔다 번번이  길을 잃고 돌아온 거기,  눈 감으면 불쑥  한 발자국 앞에 다가서는 거기    사람들은 언젠가는 행복한 세상을 만나리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희망의 세계는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미지의 아름다운 나라를 찾아 헤매다가 길을 잃고 돌아왔지요. 차라리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선다면 현재의 상황에 만족할 텐데. 묘하게도 사람들은 희망과 꿈을 버리지 못합니다. 눈을 감으면 그 아름다운 나라가 바로 코 앞에 있는 것 같거든요.감태준 (1947-) 시인이 그런 인간 내면의 움직임을 간명한 시어로 나타냈습니다. 8/28(월) 평론가 이숭원  황인숙  원무(圓舞)  간다. 누군가를  낯선 것들을  익숙한 것들을  만나러  간다.  익숙한 것들을  낯선 것들을  떠나  간다. 낯선 것들을  익숙한 것들을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고들, 체념하듯 자조하듯 말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인생이 그런 것이 사실이라면, 돌고 도는 인생의 바퀴를 스스로 힘차게 돌려나가는 것은 어떨지요? 지독한 슬픔조차도 경쾌한 운율로 노래해서 '비극과 환희'가 어우러지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황인숙(1958-)시인이 기꺼이 인생의 '원무'를 안무합니다. 떠남과 만남, 낯선 것과 익숙한 것, 서로 상반되는 그런 것들이 거듭 맞물리는 인간사를 표현 형식의 단순 반복을 통해 한 판 '시의 춤'으로 꾸몄습니다.자, 우리 인생의 춤은 어떻게 추어야 할까요?  8/29(화) 소설가 박덕규  김명인  등꽃  내 등꽃 필 때 비로소 그대 만나  벙그는 꽃봉오리 속에 누워 설핏 풋잠 들었다  지는 꽃비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면  어깨에서 가슴께로  선명하게 무늬진 꽃자국 무심코 본다  달디 달았던 보랏빛 침잠, 짧았던 사랑  업을 얻고 업을 배고 업을 낳아서  내 한 겹 날개마저 분분한 낙화져 내리변  환하게 아픈 땡볕 여름 알몸으로 건너 가느니    아무리 짧은 인연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깊은 자취를 남깁니다. 설핏 풋잠 든 사이에 맺어진 살라이라 하더라도 그 잠깐의 인연은 '어깨에서 가슴께로 선명하게 무늬진' 자국을 남기지요. 짧은 사랑 뒤에도 오랜 고통이 이어집니다. 알몸으로 땡볕 여름을 건너는 고통이. 그러나 사랑이 남긴 쓰라림은 황홀한 것일까요? 김명인 (1946-)싱인은 '환하게 아픈' 이라는 묘한 표현을 통해 고통도 기쁨일 수 있음을 암시하였습니다. 어쩌면 인간 모두가 그런 모순 속에 살아가는 것인지 모르지요. 8/30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허수경  기차는 간다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네 몸 속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북적거러던 역에서 기차는 떠나가고, 혼자 돌아오고 있는 여인이 있습니다. 이별은 냉혹한 현실이라 사랑의 흔적을 어서 지워야 합니다. 허수경 (1964-)시인이 일찍이, 부의 축적이 생의 지표가 되던 1970,80년대 , 산업도시의 그늘에서 흔하던 사랑을 '체험화' 했지요. 가난할수록 깊어진, 그래서 만나지 못해도 그 그리움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닮게 된 사랑은 '내 몸'과 '너의 몸'의 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이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기에 모든 이의 것이었지요. 그 묵묵하던 사랑의 모습을, 오늘 떠나가는 사람을 보며 다시 그려 보세요. 8/31 (목) 소설가 박덕규  정완영  난보다 푸른 돌  옛날엔 칼보다 더 푸른  난(蘭)을 내가 심었더니  이제는 깨어도 잠 깊은  너 돌이나 만져 본다.  천지간 어여쁜 물소리  새소리를 만져 본다.    젊은 날에는 꺾이지 않는 개걸한 정신을 추구하다가도 나이 들면 많은 것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지요. '칼보다 더 푸른 난' 이란 말에는 매섭고 단호한 정신의 서슬이 버쩍이는 듯합니다. 그러나 돌을 어루만지는 경지는 어떠한가요? 돌은 난처럼 날카롭지 않고 잠자는 듯 고요히 자리를 지킬 뿐이지요. 정완영(1919-) 시인은 돌의 침묵을 통하여 어여쁜 물소리와 새소리를 '만져 본다'고 했습니다. 소리도 유형화시켜 만져 보는 차원이라면 세상의 날카로운 것들도 그 속에 부드럽게 녹아들고 말겠지요.  9/1(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송수권  우니야, 우니야  고추잠자리 날개가 서느러운 날  누렁 개꼬리 같은 조 이삭이 한 밭  조 이삭 위로 솟아난 수수 모감 몇 대  참새떼 소리 한 밭  저런저런……  수수 모감이 다 휘어지네!  우니는 어디 간 거라니  조밭에 새는 날리지 않고.    며칠 전 근교에 나가 정말 '누렁이 개꼬리'같은 조 이삭을 봤습니다. 조보다 훤칠한 수수 이삭도 여물고 있더군요. 꼬리에 꼬리를 물듯, 9월에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물들을 불러내는 송수권 (1940-) 시인의 노래에는 이음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조 밭의 참새떼를 '소리 한 밭'으로 시각화해 놓은 것도 즐겁지 않습니까? '우니'는 뭘까요? 예닐곱 살의 여자 아이가 연상되는데요. 그 아인 곧잘 울곤 했을 것 같습니다. "저런저런……"하는 혼잣말 같은 말투에 배인 안타까움과 가벼운 투정도 정답지 않습니까? 9/2(토) 시인 정끝별  김일로  별  엄마 찾다 눈이 붓고  아빠 찾다 까무러쳐  높은 하늘 위에 올라  별이 되어 사는 아가  그 얼마나 찾았기에  눈만 남아 반짝일까  초롱초롱 눈만 반짝  오늘 밤도 찾나 보다.    어느 피란길에서 아이는 그만 부모를 잃고 말았습니다. 엄마, 아빠를 부르며 포탄 떨어지는 거리를 찾아 헤매다 지쳐 죽은 그 아이는 하늘 나라의 별이 되었답니다. 얼마나 애타게 찾았기에 아이의 눈만 밤 하늘에 또렷이 남아 초롱초롱 빛나고 있을까요? 밤 하늘을 쳐다보세요. 아이의 슬픈 눈빛은 먹구름 속에서도 밤 하늘을 아름답게 수 놓고 있을 테니까요. 김일로(1911-1904)시인은 어느 전쟁 고아의 영전에 이 동시를 바쳐 그 별의 영혼을 기리고 있습니다. 6/24 (토)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이원수  비누풍선  무지개를 풀어서  오색 구름 풀어서  동그란 풍선을 만들어서요  달 나라로 가라고  꿈 나라로 가라고  고이고이 불어서 날리웁니다.    누구나 비누풍선을 만들어 날려 보았을 테지요. 대롱 끝에 대롱대로 맺혔다가 둥글게 커져서 허공으로 날아가면,설레는 마음이 어느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지요. 하지만 그것은 곧바로 꺼져 사라져서, 안타까움만 안겨 주곤 했습니다. 그래도 비누풍선을 부는 때의 순수한 소망과 고운 꿈의 시간을 잊을 수 있을까요? '고향의 봄'의 이원수(1911-1981) 시인이 비누풍선에 소망을 담아 날리는 아이 모습에서 각박한 현실에서도 더 뚜렷해지는 근원에 대한 향수를 생각나게 해 두었군요. 6/26 (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최계락  편지  썼다간 찢고  찢었다간 다시  쓰고,  무엇부터 적나  눈을  감으면,  사연보다 먼저 뜨는  아,  그리운 모습.    애틋한 그리움이 말문을 막아 버려, 보고 싶다는 말도 시작하지 못할 만큼 그리운 이가 있지요.편지를 썼다가 찢고 또 다시 쓰면서, 이미 물밀 듯 밀려 온 추억 때문에 가슴이 아리게 되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그와 헤어져 살아온 지난 시간은 또 얼마나 안타까웠던가요?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사는 사람들의 애절한 사연을 최계락(1930-1970) 시인이 편지 쓰는 모습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어쩌면 울며 쓴 그 편지가 보낼 수 없는 곳에 사는 그리운 이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6/27 (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이창근  풀꽃  하나님의 귀여운  아들딸들이  별을 손에 쥐고 있다.  반짝반짝!    무심코 발견하는 이름 모를 작은 풀꽃 한 포기에 놀라게 된다는 것은 그래고 우리의 정서가 아직 메마르지 않았다는 뜻이지요.아이의 모습을 보고 절로 웃음을 머금게 되는 이치도 이와 같아요. 아이의 맑은 눈, 아이의 앙증스런 손짓에 깃든 별을 본다는 것은 '맑은 영혼의 미래'를 절로 믿고 있는 까닭입니다. 날로 혼탁해지는 이 세상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도 말할 수 있지요. 이창근(1951-) 시인이 노래하듯, 새롭게 태어나 자라나는 그 무수한 작은 것들의 꿈을 '반짝반짝'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은 여전히 내일을 향해 열려 있답니다. 6/28 (수) 소설가 박덕규  정호승  또 기다리는 편지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가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고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 시집 '서울의 예수' 중  곡:류형선 /노래: 유익종  박지현  슬픈 어느 날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별님이  먼저 알고  눈물이 글썽  슬픔을 잊으려고  애를 썼지만  달님이  먼저 알고  수심이 가득    아무에게도 위로 받지 못하고 혼자서 슬픔을 견뎌내야 하는 때가 있지요. 어떤 오락거리에도 눈길을 둘 수 없는 큰 슬픔이라면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야만 한답니다. 눈에 맺힌 눈물방울 때문에, 창가에 서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과 달도 슬픈 빛으로 채색되지요. 하지만 슬픔과 동화되는 자연의 모습이 아주 순수하게 느껴지는군요. 슬픔도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으로 극복된다는 것을 박지현(1943-) 시인이 상심한 아이으 모습으로 들려 줍니다. 6/30 (금) 아동문학 평론가 김 용희  김달진  칠월의 산길  하얀 양산을 받쳐 든  두셋 새악시가  흰나비떼처럼 날개를 치며  지나간 뒤  뱀 꼬리가 날카로이 빛났다.  바람인 듯 풀잎이 흔들렸다.  산모랑 굽이진 한길 그늘에  칠월의 한낮은  白金 바다보다 아름다웁다.    자연은 우리에게 휴식을 제공하거나 우리를 고요로써 감싸 안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녹음 우거진 숲길을 날카롭게 채색하는 저 뱀 꼬리 빛과 그것에 화답하는 풀잎의 흔들림을 보세요. 우리가 즐겨 찾아가는 바다와는 또 다르게, 여름 산길 또한 사실은 이토록 감각적이며 또한 현란하게 눈부실 수 있지요. 그 사실을, 평생을 근대화의 길로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김달진(1907-1989) 시인에게서 확인하니 더욱 감회롭습니다. 이 여름도 자연은 그 안에 무한한 새로움을 내포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지요. 7/1(토) 소설가 박 덕 규  최춘해  흙  돌아간 해 늦가을  흙은 지쳐서 쓰러졌었다.  한 송이 꽃, 한 포기 풀,  곡식 낟알 하나라도  품 속에서 태어난 건  다 아끼고 싶었다.  모양이야 일그러져도  허물을 묻어 주고 싶었다.  기름기가 다 마를지라도  더 넉넉하게  젖꼭지를 물려 주고 싶었다.  지친 채 누웠어도  가물에 못 견뎌  쭉정이로 돌아온 풀씨가  가슴 아팠다.    자연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입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흙은 우리 생명의 젖줄이며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흙은 우리의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일러 줍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이 트고 열매가 맺을 때까지 흙은 온갖 일을 해야 합니다. 불평을 말하거나 잘난 척 뽑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품 속에 태어난 것은 다 아끼고 다독이고 싶은, 모양이 일그러지거나 못 생겨도 그것을 덮어 주고 싶은 어머니, 쭉정이로 돌아온 풀씨를 보고 가슴이 아픈 어머니, 그래서 흙은 자연의 크신 어머니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슴에 비를 품었다가 목마르지 않게 해주고, 지쳐서 쓰러질지라도 곡식과 과일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는 흙의 고마움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었나요? 이 시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젖꼭지입니다. 흙이 젖꼭지를 물려 주고 싶었다는 것, 그래요. 풀, 나무는 물론이고 사람도 흙의 젖꼭지를 물고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흙의 힘은 그렇게 위대합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지요? 그 말은 이 시를 새겨 보면 어려운 말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또한 이 시는 어머니의 큰 사랑을 함께 노래한 시입니다. 흙과 어머니! 그것은 푸근한 정을 느끼게 하는 영원히 큰 사랑의 이름입니다. 2000.6.16(금) 소년 조선일보 아동문학관 난에 정두리 씀  정현종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누구나 일상을 탈출하고 싶을 때 떠올리는 곳이 섬이지요.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에 잠겨 모든 것을 잊고 머물고 싶은 그곳은, 배를 타고 가 닿을 수 있는 실재 공간이면서, 그러나 가지 못해 마음속에서 상상하곤 하는 상징 공간이기도 합니다. 구둣발에 밟히는 미생물에서조차도 즐겨 신성(神性)을 확인하고 탄복의 노래를 부르는 정현종(1939-)시인은 그곳을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했군요. 스스로 뿜어내고도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인간들의 빛과 향, 그것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유동적이고도 고독한 공간, 그 가까운 섬에 우리는 왜 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7/3(월) 소설가 박덕규  이시영  새벽  이 고요 속에 어디서 붕어 뛰는 소리  붕어의 아가미가 카하고 먹빛을 토하는 소리  넓고 넓은 호숫가에 먼동 트는 소리    고요한 호수에 동이 틀 무렵 먹빛 어둠을 뚫고 붕어가 뛰어 오를 때가 있지요. 동이 트는 것을 먼저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물고기들은 몸을 솟구칩니다. 그때 들리는 경쾌한 소리는 새 세상을 알리는 신호같기도 합니다. 그 소리는 누구라도 들을 수 있지만 붕어의 아가미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지요. 하지만 자연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먼동 트는 소리까지 들리는가 봅니다. 밝은 눈과 귀를 가진 이시영(1949-)시인이 넓고 고요한 호숫가에 아름답게 펼쳐진 자연의 신비로운 움직임과 미세한 소리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7/4 (화) 문학평론가 이숭원  조정권  독락당 (獨樂堂)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 )는  벼랑 꼭대기에 있지만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숴 버린 이.    독락당 대월루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자의 뜻으로는 홀로 즐기며 달을 맞이한다는 의미인데 아마 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지 모르지요. 정신의 맑고 높은 경지를 추구해온 조정권 (1949-) 시인이 벼랑 끝의 한 은거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누각은 벼랑 멀리 보이기는 하지만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곳에 올라 집 한 채를 지은 후 속세와의 인연을 끊어 버리고자 내려오는 길을 부쉈던 것이지요. 시인은 현실의 울타리에서 멀리 벗어난 어떤 초월의 공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실제의 삶 속에서 맑은 자리를 찾기 어려울 때 그런 공간을 꿈꾸는 것이겠지요. 7/5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이성복  남해 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 가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어떤 감탄사로도 형용되지 않는 신비한 풍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수직으로 푸른 바다와 직면해 있으면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바다 빛과 어우러져 오묘한 색채를 빛내곤 하는 남해 금산이 그런 곳이지요. 그 앞에서 이성복(1952-) 시인처럼 간절한 사랑의 설화를 유추해 내는 사람도 있겠지요. 연인을 위해 기꺼이 돌 속에 함께 갇힌 한 사내가 어떤 숙명의 힘에 의해 연인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결국 푸른 바닷물 속으로 잠겨 드는 이야기입니다. 자연은 이처럼 자신을 속 깊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가슴 안에서 더욱 깊은 정취를 뿜어내게 됩니다. 7/6(목) 소설가 박덕규  오선홍  개망초  깎아지른 벼랑  돌 틈을 비집고  저도 위험한  하나의 풍경이 된다.  홀로 피었다  당당하게 사라지는  개망초.    개망초는 우리 나라 산야 어디든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여름에 작은 꽃이 피었다가 가을이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지요. 깎아지른 벼랑에 돌 틈을 비집고 피어난 개망초가 오선홍(1964-) 시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평한 들판이 아니라 날카로운 벼랑에 피어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군요. 시인은 벼랑에 피어난 개망초가 스스로 하나의 위험한 풍경이 된다고 말합니다. 다른 존재의 접근을 거부하고 저 혼자 피었다 사라지는 당당함이 부러웠던 것이지요. 그런 당당함을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7/7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종삼  새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 지저귀고 있다.  이 세상에선 들을 수 없는  고운 소리가  천체에 반짝이곤 한다.  아는 인왕산 한 기슭  납작집에 사는 산 사람이다.    일생을 떠돌이의 마음으로 살다 간 김종삼 (1921-1984) 시인의 시입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왠지 마음이 찡하게 아려 오는데 이 시는 신비로운 새 소리를 들려 주고 있어 세상의 슬픔에서 잠시 비켜 나 있는 것 같네요. 하늘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새소리는 시인의 마음에 행복의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행복에고 슬픔의 기운이 스며 있군요. 시인은 또 "언제 올지 모르는"을 두 번 반복했고 "이세상에선 들을 수 없는" 고운 소리가 들려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새소리가 안겨준 행복은 환상이고 세상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곳이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아려 옵니다. 7/8 (토) 문학평론가 이숭원  조태일  소가죽 북  운동장에서  학생들,  북을 치고 있다.  둥,둥,둥,둥,둥둥둥둥둥  울타리 너머  들판  누렁소들,  되새김질 멈추고  맨살로 울고 있다.  우움머어, 우움머어,  둥,둥,둥,둥,둥둥둥둥둥    아무 움직임도 없어 보이는 여름 한낮이군요. 너른 학교 운동장이 있고, 그 울타리 너머로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치는 북소리가 동심원을 그리며 멀리 퍼져 나갑니다. 북소리의 파장을 느낀 들판의 누렁 소들이 아연 되새김을 멈추고 '맨살로'울기 시작합니다. 북소리와 소 울음의 화음이 이토록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국토'에 쌓인 혼을 노래하다가 '국토'의 혼이 된 조태일(1942-1999)시인이 소의 희생을 암시하는 듯한 '소가죽 북'을 매개로,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울음을 절묘하게 뒤섞은 까닭이겠지요. 7/10 (월) 소설가 박덕규  박형준  공간 이동  보도 블록을 밀고 나오는 뿌리  뿌리는 하늘로 솟구친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로 흘러가는 세상은 지치지 않는다.  모래시계의 허리가 가늘어진다.    흙 먼지를 줄이기 위해, 도시 경관을 세련되게 하기 위해 땅 위에 깔아 놓은 보도 블록, 그 아래에서도 생명체는 자라고 있습니다. 보도 블록을 밀어낼 듯이 뿌리를 그 위로 내밀어 하늘로 솟구치는 풀들이 그 예이지요. 그러나 절망과 폐허의 시간을 오래 견뎌 온 박 형준(1966-) 시인은 놀라운 생명력을 쉽사리 노래하지 않습니다. 한결 둔중한 음색으로, 그런 생명력이 가능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지치지 않는 힘은, 모래시계의 가는 허리를 지나가는 모래처럼 무거운 벽을 뚫고 가벼움을 향해 가려는 존재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7/11 (화) 소설가 박덕규  최문자  고백  향나무처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제 몸을 찍어 넘기는 도낏날에  향을 흠뻑 묻혀 주는 향나무처럼  그렇게 막무가내로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가 주는 상처를 알고도 그것을 감내하는 사랑의 노래를 즐겨 부르곤 하지요. 자기를 희생하면서 사랑하는 이를 포근하게 감싸 주는 사랑의 이야기가 실로 가슴을 절절하게 할 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사랑이고, 곧 참다운 사랑의 시일 수 있을까요? 최문자(1943-) 시인이 향나무와 그것을 찍어 넘기는 도낏날의 관계로 그 '막무가내'식 사랑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에 얹어진 희생, 순응, 포용 등의 가치가 오히려 진정한 사랑을 위반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면서도, 그 사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시적 아이러니가 빛나고 있어 더욱 흥미로운 시가 되었습니다.  7/129(수) 소설가 박덕규  김영석  이슬 속에는  한 방울 이슬 속에는  어디론가 끝없이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콩 꽃 같은 흰 옷고름이  안스럽게 얼비치고  가슴에 묻은 날카로운 칼날도  눈물에 삭고 휘어  이따금 찌르레기 소리에 반짝인다.    한 방울 이슬에서 자연의 신비를 엿보는 사람도 있는데 김영석(1945-) 시인은 이 땅에서 한스럽게 살아간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네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콩은 여름에 나비 모양의 꽃을 피우지요. 한 맺힌 사람들의 흰 옷고름을 콩 꽃에 비유한 것이 절묘합니다. 워낙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라 가슴에는 분노의 칼도 있었을 텐데 그것도 눈물에 무디어져 결국은 찌르레기 소리게 녹아 들고 있네요. 원한의 심정이 맑은 이슬이 되고 반짝이는 새소리로 바뀌는 놀라운 마술을 여기서 봅니다.  7/13(목) 문학평론가 이숭원  이성선  황홀  오늘 아침 산이  물방울  음악이다  세상이 꽃으로 피어난다  이제  더 갈 데가 없다    산이 물방울로 보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환히 비치는 물방울처럼 산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인다면 그 아름다움은 기가 막히겠지요.비 온 다음 날 아침 산의 모습이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음률의 조화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신비로운 음악과도 같지요.이렇게 꽃으로 피어나는 세상을 두고 달리 갈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완벽한 신의 솜씨 앞에 그저 숨 죽일 수밖에요.번잡한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연의 묘미를, 설악산 기슭에서 살고 있는 이성선(1941-) 시인이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7/14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최승호  물렁물렁한 책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은 물렁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반죽 덩어리. 그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또 시상(詩想)에 잠긴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전, 어떤 학자에 의해 한 권의 책이 저술되기 전, 그들의 머리 속에서 유동하고 있는 생각들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시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것을 아직 "반죽"중인 "물렁물렁한 책"이라 명명했군요. 존재하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에 "물렁한" 질감이 부여되면서 그것이 우리 삶 속에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존재 아닌 것들도 존재하는 것이라는, 무정형의 혼돈이 더욱 완벽한 질서라는 그런 사유를, 최승호(1954-)시인은 한 시인이 시상을 떠올리는 일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7/15 (토) 소설가 박덕규  이재무  신발  신발의 문수 바꾸지 않아도 되던 날부터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친구여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꿈이여    요즘에는 신발 크기를 밀리미터로 표시하지만 옛날에는 문이라는 단위로 표시했지요. 어릴 때는 발도 빨리 커져서 10문짜리 신을 신다가 얼마 안 되어 문수가 큰 새 신을 사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이 되니까 신발 문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더군요. 그때 이후 많은 친구가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어릴 때는 꿈도 많았는데 그 많던 꿈도 내 곁을 떠나갔어요. 다정했던 친구들, 가슴 속의 꿈들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요? 이재무(1958-)시인의 시를 읽으니 잊혀졌던 기억들이 연기처럼 아련히 떠오릅니다. 7/17(월) 문학평론가 이숭원  송찬호  동백이 활짝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 물고  땅으로 뛰어 내리기 전에    꽃이 활짝 핀 모습을 사자가 네 발과 붉은 갈기를 펼치며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것에 비유했군요. 그 때문에 꽃의 붉은 빛이며, 만개(滿開)하는 모습이 선연하게 느껴집니다. 자연의 변화 중에서도 그 절정의 환희는 참으로 일순간의 일이지요. 예술가들은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서둘러 상상력을 집중합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는 지금의 시간 모두가 절정의 한 지점이 아닐까요? 쉽게 지나치는 소중한 우리의 시간에 대해 각성하게 하려는 뜻에서 송찬호(1959-)시인이 돌올한 이미지로 동백꽃의 개화 장면을 그려 놓은 것일 테지요. 7/18 (화) 소설가 박덕규  정일근  유리창 청소  참 맑아라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 놓은  유리창 한 장  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 섬  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  가을 바다 한 장  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 놓은  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    정일근(1958-) 시인이 중학교 교사 시절 쓴 시입니다. '열이'라는 학생은 지적으로는 조금 늦되 보이지만 누구보다 착하고 맑은 심성을 가졌네요. 꼬부리지 않고 정성껏 유리창을 닦아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을 한 폭 그림처럼 떠오르게 했습니다. '다정한 형제섬'이란 표현이 마음을 순하게 하지요? 유리창에 비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선생님과 열이가 다정한 형제처럼 손잡고 웃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착하고 맑은 사람들이 모여 사랑으로 가르침을 주고 받는 교실이 그립습니다. 7/19(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이선영  알락도요새  연못 위에 떠다니는  나뭇잎을 발바닥 삼아  연못을 콩콩 튀어 다니며  제 존재의 그토록 가벼움을 맘껏 즐기는  내 존재의 무게를 타고 앉아 콩 콩 콩  발장구 치는    봄 가을로 한 차례씩 우리 나라의 물가에 머물다 지나가는 나그네새인 알락도요새가 연못의 풀숲에서 놀고 있는 장면입니다."나뭇잎을 발바닥 삼아 연못을 콩콩 튀어" 다니는 모습이 참 경쾌하군요. 지상에 와서 놀면서도 마치 이 지상에 묶인 존재가 아니라는 듯한 그 몸놀림에 비하면, 한 시도 지상을 떠날 수 없는 인간은 얼마나 무거운 존재인가요. 이선영(1964-)시인이 알락도요새의 한가로운 한때를 "콩콩"튀는 탄력적인 감각으로 드러내면서 그 속에다 제 무게를 견디느라 힘겨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7/20(목) 소설가 박덕규  심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메고  살금살금 잠자리 쫓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돌아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변변한 잠자리채마저 없던 시절 아이들은 싸리빗자루를 들고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지요. 정신 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여를 한낮이 다 가고 따가운 햇살에 얼굴이 사과처럼 익어 돌아왔습니다. 배에서 꼬로록 소리가 났지만 새참도 모자라던 시골에 먹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가난과 궁핍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심호택(1947-) 시인은 가장 행복했던 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 속에 피어오르던 동심의 천진함과 인간다운 정겨움이 못내 그리운 탓이겠지요. 그 아름다운 시절이 지금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요?  7/21(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문인수  비밀  급행 지나는, 손살같이 내닫는 숨가쁜 도중  추풍령 아래  푸른 행간에  하품하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가니역    우리는 휴가 철의 급행 열차처럼 자신의 목적지에 빨리 가 닿아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몰두하는 삶이 가장 값지다고 믿지요. 하지만 그 삶의 터전이 되고 배경이 된 자잘한 존재들과 그것들과 맺은 이런 저런 인연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열차 창 밖으로 하품하듯 스치는 간이역 같은 풍경이 속살 깊은 내면에 쌓인 때라야 새로 만나는 세상은 더욱 의미가 깊어집니다. 당신에게도 그처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비밀이 진정 있지 않겠느냐고, 문인수(1945-) 시인이 묻고 있습니다. 7/22 (토) 소설가 박덕규  나태주  기쁨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른다.    난초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온도가 적절해도 잎이 마른다고 해요. 그러니까 난초의 잎은 우리들이 모르는 어떤 밀접한 관계를 허공과 맺고 있는 셈이지요. 자연의 은밀한 아름다움을 노래해 온 나태주(1945-)시인의 눈은 평범한 난초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이처럼, 휘어진 이파리가 허공에 몸을 기대고 허공은 그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 장면을 보았어요. 난초 잎에서 잔잔한 기쁨의 강물을 발견한 시인의 안목이 놀랍습니다. 7/24(월)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춘수  부두에서  바다에 굽힌 사나이들.  하루의 노동을 끝낸  저 사나이들의 억센 팔에 안긴  깨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은  온전한 바다,  물개들과 상어떼가 놓친  그 바다.    바다에서 일하고 귀가하는 부두 사나이들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요. 김춘수(1922-) 시인은 그것을 '사나이들의 억센 팔에 안긴 바다'로 표현했습니다. 사나이들이 일하던 실제의 바다에서, 사나이들이 가져옴으로써 느낌만으로 존재하게 된 바다로 변화한 기묘한 상태가 펼쳐졌습니다. 바다는 원래 깨지고 부서지고 물개들과 상어떼가 어울리는 곳인데, 그것에서 떠나온 바다가 이제 그런 통념적인 의미를 벗어서 더욱 '온전한' 상태의 바다로 변했습니다. 생생한 자연, '날것' 상태의 존재란 이렇듯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고정 관념을 깰 때라야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7/25(화) 소설가 박덕규  장석남  뻐꾸기 소리  깜빡  낮잠 깨어나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봉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이  사랑도 꼭 그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    어느 날 낮잠을 자다 깨어나서 흰 창호지에 붉은 봉숭아 꽃 빛이 비친 것을 보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잠결에 보이는 연분홍 빛이 얼마나 신비롭겠습니까? 사물의 그늘에 눈길을 돌려 온 장석남(1965-) 시인이 그 은은한 빛깔로 사랑의 색조를 표현했습니다.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사랑, 의도적으로 꾸며내는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하지요. 그런데 시의 제목은 뜻밖에 '뻐꾸기 소리'예요. 멀리서 뻐꾸기 소리 들려 오듯이, 봉숭아 꽃잎 은은히 우러나듯이, 그렇게 아련하게 다가오는 사랑을 기다린다는 뜻이겠지요.  7/26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백 석  비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았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농촌이나 산골 서민들의 삶을 북방 지역의 토속적인 어휘에 실어 이야기하듯 노래한 백석(1912-?) 시인의 초기 시입니다. 자연의 정황을 특정한 감정 부여 없이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실재감을 물씬 느끼게 하는 시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지요. 어느덧 몰려 와 있는 비의 계절을, 아카시아 꽃들이 만발한 숲길에서 곧 쏟아질 것만 같은 '비' 냄새로 예감하는 때의 표현이 볼 만하군요. '두레방석' (여러 사람이 둘러 앉을 수 있는 방석) '물쿤'(냄새가 확 풍기는 모양을 뜻하는 '물큰'의 사투리),'개비린내'(바닷물이 드나드는 때의 비린내) 등 사라진 말들의 쓰임이 이 시에 싱싱한 기운을 돌게 합니다. 7/27 (수) 소설가 박덕규  김광규  종  동록이 슬은 구리의 침묵 깨뜨려  몇백 년 간직해 온 함성과 신음 되살려 주고  그윽한 울림 사라지면서  더욱 큰 고요를 남기는 듯    새벽의 산사에서 범종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몇 백 년의 세월을 거쳐 파랗게 녹이 슨 종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그 표면을 때리면 놀라운 소리가 울려납니다. 평범한 대상에서 생의 비밀을 탐색해 온 김광규(1941-) 시인은 그 소리에 많은 사람의 함성과 고통의 신음이 담겨 있다고 보았어요. 하지만 함성과 신음의 울림도 잠시뿐 소리가 그치면 더욱 큰 고요가 남습니다. 그렇다면 종의 본질은 함성일까요 고요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침묵과 함성이, 신음과 고요가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은 아닐까요?  7/28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도광의  샐비어  더운 이름으로 당신을 불러 봅니다.  햇볕도 편애하듯  가는 숨결로 타고 있습니다.  하늘 속 빗방울로  가슴을 씻고  피 흘리며 타고 있습니다.  아빌라,  모든 것을 사죄해 주십시오.  살아 있는 남자에게  남은 할 일은  저무는 한역(寒驛)에서  눈을 감는 일입니다.    붉은 빛으로 짙게, 꽃밭 가장 자리를 수 놓은 샐비어를 아시는지요? 그 꽃을 따서 단 맛을 빨아 먹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요. 도광의(1940-) 시인은 뜨거운 햇볕을 받고 더욱 붉어지는 샐비어의 모습에서, 피 흘리듯 정염(情炎)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을 봅니다. 어떤 운명이 마음을 이끄는 대로 생을 맡기고 스스로를 소진하는 낭만주의자의 모습이군요. 그런 사람이 없다면 시가 있을까요? 그렇게 삶을 내던지고 고개 숙인 그에게 신이 어떤 죄값을 치르게 할런지 궁금합니다. 7/29 (토) 소설가 박덕규  이홍섭  불타는 섬  외로움이 힘이 되어  힘 없는 응시가 어느덧 사랑이 되어  저렇게  활활 타오르는 섬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은 오갈 데 없이 고립되어 있는 인간 모습과 흡사하지요. 섬처럼 외로운 존재가 어느날 누군가를 응시하고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외로움이 클수록 그리움과 사랑은 더욱 강하게 불타오르지요. 그러나 아무리 상대를 바라보며 사랑으로 몸부림쳐도 고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끝내 '불타는 섬'으로 머물 뿐이지요. 이홍섭 (1965-) 시인은 인간 존재를 섬에 비유하여 외로움의 자각이 사랑의 열망으로 바뀌고 그것이 고독의 가혹한 심연으로 깊어지는 과정을 표현했습니다.  7/31(월)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형영  압록강  -김주영 형에게  무너진 국내성을 돌아  압록강 선착장에서  밤 늦도록 바라보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  죄가 되던 강물이여  하늘에 등을 단  달빛 때문에  달빛 때문에  매 갈 길을 막고서  밤에도 흐르는 강물이여    고구려의 옛 영광 국내성을 돌아 압록강 선착장에 닿는 관광 코스가 있지요. 압록강변 조상들의 생애를 다룬 소설 '야정(野丁)'(김주영 작)을 읽으며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 김형영(1944-)시인이 이 강 앞에서 처연하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 강을 생활 터전으로 삼았던 그 조상의 후손들은 지금 어떤가요? 역사는 단절되고 민족은 헤어졌습니다. 그걸 생각할수록 우리는 옴쭉 달싹할 수 없는 죄인이 되고 맙니다. 민족의 현실을 자기 안에서 인식함으로써 죄값을 치르고 있는 시인의 내면이, 달빛 아래 강물 흐르는 자연의 오랜 운행과 어우러져 장엄한 음악 소리를 내고 있는 듯합니다. 8/1 (화) 소설가 박덕규  강현국  고요의 남쪽  떡갈나무 그늘을 빠져 나온 길은  황토 산비탈로 자지러진다  차돌처럼 희고 단단한 고요  오직 고요의 남쪽만 방석만큼 비어 있다  길은 또 한 번 산비탈로 자지러진다  온 몸에 고추장을 뒤집어 쓴 어떤 애잔함이, 출렁  섬진강 옆구리를 스치는 듯도 하였다    이 시에는 몇 가지 이채로운 표현이 나옵니다. 길이 산비탈로 자지러진다든가, 고추장을 뒤집어쓴 애잔함이라든가, 고요의 남쪽에 방석만큼 비어 있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시인이 보여 주는 것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입니다. 떡갈나무 그늘을 거쳐 황토 산비탈로 사라지는 길이 있고, 길 위에는 고요가 감돌고, 길 저편에 흐르는 섬진강 줄기에는 처연한 애잔함이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강현국 (1949-) 시인은 평범한 풍경에서 고요 속으로 파고 드는 애잔함을, 민족의 내면에 흐르는 정한의 물살을 본 것이지요.  8/2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강은교  너무 큰 구름 떼 속으로  - 벽 속의 편지  너무 큰 구름 떼 속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가네  땀에 젖은 지붕이  헐떡이며  새를 쳐다보네  그대는 새인가  너무 큰 구름 떼 속으로  날아들어가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가 눈앞에서 흘러 들어가던 때, 그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다투어 뛰어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태도가 옳았을까요? 짙은 허무 속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발견한 강은교 (1945-) 시인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망설임 없이 그 큰 흐름으로 뛰어든 사람만이 그 답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큰 흐름 속에서 자신을 본 사람만이 그 답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큰 흐름 속에서 자신을 본 사람만이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겠지요. '큰 흐름 속에서 '나를 찾아라'하는 교훈도 되새겨 보세요. 자, 우리 앞의 물줄기를 보고 있는지요? 99.8.3(목) 소설가 박덕규  오규원  칸나  칸나가 처음 꽃이 핀 날은  신문이 오지 않았다  대신 한 마리 잠자리가 날아와  꽃 위를 맴돌았다  칸나가 꽃대를 더 위로  뽑아 올리고 다시  다시 꽃이 핀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음날 오후 소나기가  한 동안 퍼부었다    이 시를 읽고 무슨 이런 싱거운 이야기를 했나 의아해 하는 분이 있겠지요. 시는 꼭 의미 심장한 무언가를 담아 내야 하나요? 진실은 오히려 평범한 자리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요.어느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말을 했고, 평상심이 곧 진리라는 말도 있습니다. 칸나 꽃이 필 때 무슨 신비로운 이변이 일어날까요? 잠자리가 날고 우연히 소나기가 퍼붓는 등,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반복될 따름입니다.오규원(1941-) 시인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현상의 국면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의 실상이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8/4 (금) 문학평론다 이숭원  박해석  익사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었길래  몽뚱이 하나로 온 강물을 적시게 하였느냐  얼마나 깊은 괴로움이 있었길래  온 강물이 합심하여 몸뚱이 하나  눈부신 햇살 아래 뉘어 놨느냐    소중한 꿈을 키워 나가야 할 사람이 뜻하지 않은 운명 앞에 목숨을 내놓고 만 것을 볼 때가 있지요. 박해석(1950-) 시인이, 생을 연장하려는 사람의 몸부림과,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멈추게 해야 하는 강물의 거친 물살이 맞부딪쳐 빚어낸 그 비극의 현장을 포착했습니다. 비록 끊어져 버린 생명이지만, 그 사람이 온몸으로 '슬픔과 괴로움'을 견뎌낸 세월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는지요. 살아 남은 사람들의 남아 있는 시간 또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슬픈 감정을 겉으로 억제해 보이는 시적 방법으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8/5 (토) 소설가 박덕규  이호우  휴화산  일찍이 천 길 불길을  터뜨려도 보았도다  끓는 가슴을 달래어  자듯이 이 날을 견딤은  언젠가 있을 그날을 믿어  함부로치 못함일레.    사소한 불만을 무절제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잠자듯 침묵을 지키다가 세상이 놀랄 만한 분노의 육성을 터뜨릴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귀를 기울이지요. 분노의 표출, 열정의 폭발에도 적절한 시점이 필요한 법이지요.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언젠가 있을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시련을 참고 견디는 견인(堅忍)의 정신력이 요구됩니다.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이호우(1912-1970) 시인이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정신의 높이를 휴화산에 비유하여 나타냈습니다.  8/5(월)문학평론가 이숭원  윤제림  개미집  베짱이처럼 그늘에서  잠만 잔 게 아니냐구요?  기타 치며 노래나 부른 게  아니냐구요?  개미처럼 일했다며, 왜  집 한 칸 없느냐구요?    '무얼 하고 살았기에 여태 자기 집도 없이 사느냐?'는 식의 물음에 곤혹스러움을 겪는 사람들이 참 많더군요. 집 장만을 못 한 사람에겐 언제나 그 게으름이나 무능을 공박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우화 속의 부지런한 주인공 개미도 어느새 궁지에 몰려 버렸군요. 그런데, "아니냐구요?"하는 개미의 거듭되는 반문이 의외로 당당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많은 돈과 큰 집과 멋진 차가 있는 삶보다 하찮은 '개미집'의 소박한 성취가 더 값지다는 사실을 윤제림 (1959-) 시인이 풍자적인 어법으로 재치있게 깨우치고 있는 중이지요. 8/11(토) 소설가 박덕규  황동규  더욱 더 조그만 사랑 노래  연못 한 모퉁이  나무에서 막 벗어난 꽃잎 하나  어마나 빨리 달려 가는지  달려가다 달려가다 금시 떨어지는지  꽃잎을 물위에 놓아 주는  이 손.    이 시에 제시된 상황을 머리에 그려 봅시다. 나무에 매달려 있던 꽃잎이 바람에 나부껴 연못 저 편으로 달아나는 장면을, 천방지축 달려가는 꽃잎을 잡아 물위에 곱게 놓아 주는 손을, 그러면 연못의 물결에 실려 곱게 일렁이는 꽃잎의 흔들림이 연상되기도 하지요. 지적인 방법으로 대상을 재구성해 온 황동규 (1938-) 시인이 '달려가는 꽃잎'과 '놓아 주는 손'의 대비적 관계를 독특하게 설정했습니다. 자유분방한 몸 놀림은 급격한 추락으로 끝날 위험이 있지요. 그것을 염려하여 존재가 머물 수 있는 안정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사랑의 한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8/9 (수) 문학 평론가 이숭원  오세영  미명 (未明)  소낙비가 난초 잎을 두드린다.  심금을 울리며  닫혀 있는 사물의 문을 연다.  소낙비가 번개를 몰고  잠든 흙을 깨우고 있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비에 적시며  가냘픈 줄기로 미명을 열고 있다.    신 새벽 동트기 전 소나기 한 줄기가 지나갑니다. 연약한 난초 잎에 빗방울이 떨어지자 잠자듯 고요했던 난초 잎도 마음의 문을 열고 신생의 기지개를 켜는 듯합니다. 번개까지 번쩍여 잠든 흙을 깨우고 있군요.  소나기에 몸을 적신 난초 줄기는 가냘퍼 보이지만 그 연약한 줄기를 끄덕이며 미명의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육신이지만 모든 생명 가진 존재는 미명(未明)을 여명(黎明)으로 바꾸는 노력을 멈추지 않지요. 존재의 비밀을 탐색해 온 오세영 (1942-) 시인이 미명을 여는 생명의 움직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8/10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정인섭  꿈  꿈이 감은 눈으로 고통을 본다  내 상처에서 날마다 물을 긷는 당신이  아침엔 물 한 동이로 달을 씻고  저녁엔 물 반 동이를 나무에 쏟는다.    누구에게나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가 있게 마련이지요. 가람들은 간절한 기도로 그것을 씻으려고도 하고, 또 그럴수록 더한 정신적 고토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자신의 내면에 깊이 침잠한 어느 순간 그 고통에서부터 새로운 깨침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수도 중인 정인섭 (1955-) 시인의 상처에서 '날마다 물을 긷는 당신'이 곧 그 깨우침의 상징인 셈이지요. 자기 고통의 피에서 끝없이 물을 길어내 이 세상을 위해 뿌려 주는 일이 '당신'만의 몫이 아닐 테지요. 그 일은, 그 일로써 스스로의 고통을 씻어야 할 우리들 각자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8/11(금) 소설가 박덕규  이경림  사람 지나간 발자국  아름다워라 나 문득 눈길 머물러  그것의 고요한 소리 보네  누군가 슬쩍 밟고 갔을  저 허리 잘록한 소리  한참 살다 떠난 부뚜막 같은  다 저문 저녁 같은    사람 없는 곳에 가서 머물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살다간 사람의 흔적을 보았군요. 그때의 기이한 놀라움을 이경림 (1947-) 시인이 희미한 연기 속에서 조금씩 형체를 나타내는 산골 풍경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죽은 자연처럼 있던 집이 부뚜막의 온기나 굴뚝 연기로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하는 미세한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 오는군요. 조금 더 귀기울이면, 모양과 소리로 빚은 "허리 잘록한"절묘한 소리도 들려올 테지요. 사람이 사람 지나가는 발자국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다니, 이것만으로도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뜻 아닐까요? 8/12 (토) 소설가 박덕규  정진규  물소리Ⅰ  너의 나라를 네 몸의 나라를 네 영혼의 나라를  속속들이 핥고 있다 지금 너를 부르는 너의 목  소리가, 그렇다 너의 생음(生音)이 비로소 깊고  아름답다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너의 옴 몸은  언제나 물기에 젖어 있다 이 여름 땡볕 속을  혼자 걸어도 언제나 물소리를 듣고 있다 너를  듣고 있다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던 그 그리움만으로 상대방의 모습이 오롯이 떠오르지요. 상대의 몸과 영혼 깊은 곳까지 직접 어루만지는 것 같은 밀착된 감각을 얻을 수가 있어요. 내가 너를 부르는 소리가 물소리가 되고 거기 응답하는 네 몸도 물소리를 낸다면 너와 나 둘 사이에 그리움의 수로를 타고 시원하게 물이 흐르는 장면도 상상할 수 있지요. 찌는 듯한 여름 땡볕 속에 이런 물소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싱그러워지네요. 정진규 (1939-) 시인이 들려 준 싱싱한 사랑의 물소리를 당신도 한번 울려보지 않으시렵니까. 8/14 (월) 문학평론가 이숭원  문정희  무궁화  꽃을 보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중중모리 삼삼한 가락 흔들고 있다.  말 못할 몸짓  흰 꽃으로 피워 놓고  날 보고도 말도 걸지 못한다  이국 땅 골목길에 무궁화가 피었다.    문정희 (1947-)시인이 미국에 체류하던 시절 어느 골목에서 우연히 무궁화꽃 핀 것을 보았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득한 타향에서 눈에 익은 그 꽃을 보았을 때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헤어졌던 혈육을 만난 듯, 정든 이웃을 만난 듯 가슴이 뭉클했겠지요. 그 무궁화도 가슴이 막힌 듯 나를 보고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합니다. 흰 꽃을 피우고 중중모리 가락으로 흔들릴 뿐 아무 말이 없는 무궁화에서 시인은 가슴속에 피어나는 모닥불을 확인했습니다. 이 모닥불의 온기가 우리 모두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8/15 (화)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수복  망개 덩굴 옆에서  망개 덩굴에 그대 귀걸이가 걸렸다  손에 닿을 때까지  온몸을 밀어 넣어도  아득한 햇살만 손등에 찔려 온다  그대의 마음에  그대의 사랑에  그대의 조국에까지  들어박혀 있는 망개 덩굴 속으로  손이 닿을 때까지  온몸을 밀어넣는다    빤히 눈 앞에 두고도 손이 닿지 않아 잡지 못하는 물건이 있어 애태운 적 있지요. 이 시에는 어떤 산행 중에 망개덩굴에 걸려 버린 귀고리를 건져 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손등을 찌르는 햇살'로 그려져 있습니다.귀고리의 주인이 '그대'이니까, 그것에 손닿게 하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할 테지요. 김수복(1953-)시인은 이러한 안타까움의 체험을 이룰 듯 이루지 못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데 못 만나는 우리 모두의 염원으로 확대해 나갔습니다. 거친 망개덩굴 속으로 온몸을 밀어넣는 모습이 뜨겁게 느껴지는 시입니다. 8/16 (수) 소설가 박 덕 규  고재종  출렁거림에 대하여  너를 만나고 온 날은, 어쩌랴 마음에  반짝이는 물 비늘 같은 것 가득 출렁거려서  바람 불어오는 강둑에 오래오래 서 있느니  잔 바람 한 자락에도 한없니 물살치는 잎새처럼  네 숨결 한 올에 내 가슴 별처럼 희게 부서지던  그 못다한 시간들이 마냥 추렁거려서  내가 시방도 강변의 조약돌로 일렁이건 말건  내가 시방도 강둑에 패랭이꽃 총총 피우건 말건    어떤 뜻깊은 만남은, 오래도록 마음을 들뜨게 만들지요.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에 휩싸여 있을 동안은 모든 걸 다 받아들일 수 있지요. "너를 만나고 온 날"의 그런 기쁨을 노래한 고재종(1957-)시인의 시를 따라 읽으니, "반짝이는 물비늘 같은 것"이 가득 출렁거리던 그때의 마음이 되는군요. '네 가슴 한 올에 별처럼 희게 부서지던 내 가슴" 과 같은 감상적인 표현이, 강변의 조약돌이며 총총 핀 패랭이꽃이 만드는 토속적인 분위기에 녹아들면서 더 생생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를 만나 이렇게 "출렁거리는" 것일까요? 8/17 (목) 소설가 박덕규  이수익  초당 한 채  마음에  초당 한 채 짓자.  혼자만, 혼자서만 있고 싶은 시간  은밀히 드나들게  마음의 변두리 어느 한적한 터에  불빛도 없고, 기척도 없는.    지금은 시골에서도 초당을 보기 힘듭니다. 언제나 짚으로 지붕을 얹은 조그마한 별채가 초당이지요. 절제된 언어고 정갈한 공간을 추구해 온 이수익 (1942-) 시인이 마음에 초당을 짓자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주위를 비추는 불빛도 없고 사람 드나드는 기척도 없는 한적한 초당에 오두마니 앉아 있는다면 평소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지도 모르지요. 초당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번잡한 도시에서 저마다 마음에 초당 한 채 마련한다면 우리의 내면은 더욱 그윽해지겠지요. 8/18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복효근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그럴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 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    '궁그는'은 '구르는'의 전라 방언입니다. 넓은 토란잎에 빗방울이 떨어져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동그랗게 구르는 모양을 연상해 보세요.복효근 (1962-)시인은 그 장면을 동화적 시각으로 재구성했어요. 어린애처럼 둥글둥글 구르다가 잠든 토란잎 배꼽 위에서 함께 잠자는 물방울을 상상해 보았지요. 그렇게 토란잎과 어울리다가 사라질 때가 되면 토란잎이 털어내기 전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그 산뜻한 처신이 바로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과 흡사하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묻고 있습니다. 8/19 (토) 문학평론가 이숭원  정끝별  밀물  가가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하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욕되게 느껴지는 때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가가스로' 살아남아, 무수한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지나온 그 세월을 되돌아보는 일이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정끝별 (1964-)시인이 '밀물이 미끄러지듯 항구에 닿은 두 척의 배'의 사연으로, 헌한 길 함께 걸어온 두 사람의 인간사를 들려 줍이다. 그들의 '바다가 잠잠'하기만 했을 리 없지요. 다 드러난 깊은 상처를 서로 쓰다듬으며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었다.'며 다독거리는 두 사람의 표정이, 여느 연인끼리의 눈길보다 은밀하고 그윽하게 느껴지는 까닭을 아기겠지요? 8/21(월) 소설가 박덕규  송종규  섬  세울아 하고 부르면 부시시 일어날 것만 같은  바위며 이끼들  세월아 하고 부르면 풀썩  바스라져 버릴 것 같은  내 살 속의 뼈와 조개의 무덤들  달빛 혹은 차디찬 바람이 여백을 꼭 채운다.  기꺼이, 아주 기꺼이, 돌멩이 굴리는 파도 소리 있다  누군가 돌아선다  바다는 너무 멀다.    섬이 인간의 외로움을 표상한다는 것은 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이 섬의 정경은 조금 특이하네요. 바위며 이끼 조개 껍질 등은 세월의 풍화를 많이 입은 듯퇴락한 모습이고, 빈 여백은 달빛과 찬 바람이 메우고 있어요. 파도도 가볍게 철써이는 것이 아니라 돌멩이 굴리는 소리를 냅니다. 이 활량한 공간에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바다조차 멀리 떨어져 있군요. 송종규(1952-) 시인이 그려낸 황량하고 쓸쓸한 내면 풍경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8/22(화) 문학평론가 이숭원  고두현  횡단보도  너 두고  돌아가는 저녁  마음이 백짓장 같다.  신호등 기다리다  길 위에  그냥 흰 종이 띠로  드러눕는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헤어져 돌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 있군요.피할 수 없는 이별을 온몸으로 겪어 내느라 넋이 빠진 표정을 짓게 되었습니다.님을 잃고 우는 슬픈 사랑의 노래들이 많지만, 고두헌 (1963-) 시인은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이별을 경험하는 내용을 펼쳐 보이네요. '백짓장 같은마음'에서 '횡단보도'의 흰 띠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전이가 그 이별의 슬픔을 더욱 구체적인 일로 느끼게 해 줍니다. 함께 있어야 할 소중한 사람 곁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겪어야 하는 것인지요? 8/23 (수) 소설가 박덕규  허형만  시  사람의 힘을 믿어야 한다.  스스로를 태우고도  남는 게 있다면 그것마저 버려야  비로소 우리 가슴에 뜬  생명의 별 하나  따뜻한 숨결을 내뿜느니.    선사가 오랜 고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시인들은 결코 길지 않은 한 편의 시를 위해 자신의 정신과 감각을 모질게 채찍질하곤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잡념을 씻으며 자아를 온전히 태울 따 이윽고 가슴에 뜨는 '별'이 곧 시인에게는 참된 '시'라 할 수 있지요. 과연 그런 시를 얻기 위해 얼마나 태웠는가 하고 허형만(1945-) 시인이 스스로에게 묻고 있군요. 그 물음은 우리에게는 이렇게도 들리는군요. '사랑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확신도 없이 어찌 그런 시를 만나려고 하는가?' 시는 언제나 사랑의 증거가 될 테지요.  8/24 (목) 소설까 박덕규  김종철  호박꽃에 대하여  호박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 하면 노란색이 보입니다  빨간색 흰색 어쩌면 하늘 색 호박꽃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호박답지 않아 생각을 멈춥니다  치장을 해도 잘 보이지 않는 덤덤한 마누라처럼  우리 뒤에 누워 있습니다  그래도 꿀벌은 어김 없이 찾아 옵니다    호박꽃 하면 먼저 못 생긴 꽃을 떠올리지요. 커다랗게 늘어진 모양과 너무 눈에 익은 노란 빛깔 때문일까요? 하지만 호박꽃은 역시 노란색이 어울리지요. 화려한 빛깔만 가득하다면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질 거예요. 덤덤하고 수수한 호박꽃도 있어야 마음 편해지지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핀 호박꽃이지만 꿀벌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꽃이 떨어지면 커다란 호박도 믿음직스럽게 익어 갑니다. 이렇게 평범하면서도 분명한 자연의 이치를 김종철(1947-) 시인이 호박꽃을 통해 나타냈습니다. 8/25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이산하  부화  알 속에서는  새끼가  껍질을 쪼고  알 밖에서는  껍질을 쫀다  생명은  그렇게  안팎으로 쪼아야  죽음도  외롭지 않다    안팎의 두 존재의 힘이 함께 알 껍질에 작용될 때라야 '새'는 온전한 생명체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모든 생명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삶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말인 듯하다가, 갑자기 "죽음도 외롭지 않다"로 이은 비약이 놀랍습니다. 안팎의 '쫌'이 이룬 생명의 그늘에서 발견한 죽음을 외면하지 않았지요. 이산하 (1960-) 시인은, 생명에 이르지 못하는 그런 존재를 말해서 안팎의 두 힘의 호응처럼 생명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움직임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는 셈입니다. 8/26 (토) 소설가 박덕규  감태준  아름다운 나라  거기가 어디지?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거기,  우리 손 잡고 찾아 갔다 번번이  길을 잃고 돌아온 거기,  눈 감으면 불쑥  한 발자국 앞에 다가서는 거기    사람들은 언젠가는 행복한 세상을 만나리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희망의 세계는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미지의 아름다운 나라를 찾아 헤매다가 길을 잃고 돌아왔지요. 차라리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선다면 현재의 상황에 만족할 텐데. 묘하게도 사람들은 희망과 꿈을 버리지 못합니다. 눈을 감으면 그 아름다운 나라가 바로 코 앞에 있는 것 같거든요.감태준 (1947-) 시인이 그런 인간 내면의 움직임을 간명한 시어로 나타냈습니다. 8/28(월) 평론가 이숭원  황인숙  원무(圓舞)  간다. 누군가를  낯선 것들을  익숙한 것들을  만나러  간다.  익숙한 것들을  낯선 것들을  떠나  간다. 낯선 것들을  익숙한 것들을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고들, 체념하듯 자조하듯 말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인생이 그런 것이 사실이라면, 돌고 도는 인생의 바퀴를 스스로 힘차게 돌려나가는 것은 어떨지요? 지독한 슬픔조차도 경쾌한 운율로 노래해서 '비극과 환희'가 어우러지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황인숙(1958-)시인이 기꺼이 인생의 '원무'를 안무합니다. 떠남과 만남, 낯선 것과 익숙한 것, 서로 상반되는 그런 것들이 거듭 맞물리는 인간사를 표현 형식의 단순 반복을 통해 한 판 '시의 춤'으로 꾸몄습니다.자, 우리 인생의 춤은 어떻게 추어야 할까요?  8/29(화) 소설가 박덕규  김명인  등꽃  내 등꽃 필 때 비로소 그대 만나  벙그는 꽃봉오리 속에 누워 설핏 풋잠 들었다  지는 꽃비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면  어깨에서 가슴께로  선명하게 무늬진 꽃자국 무심코 본다  달디 달았던 보랏빛 침잠, 짧았던 사랑  업을 얻고 업을 배고 업을 낳아서  내 한 겹 날개마저 분분한 낙화져 내리변  환하게 아픈 땡볕 여름 알몸으로 건너 가느니    아무리 짧은 인연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깊은 자취를 남깁니다. 설핏 풋잠 든 사이에 맺어진 살라이라 하더라도 그 잠깐의 인연은 '어깨에서 가슴께로 선명하게 무늬진' 자국을 남기지요. 짧은 사랑 뒤에도 오랜 고통이 이어집니다. 알몸으로 땡볕 여름을 건너는 고통이. 그러나 사랑이 남긴 쓰라림은 황홀한 것일까요? 김명인 (1946-)싱인은 '환하게 아픈' 이라는 묘한 표현을 통해 고통도 기쁨일 수 있음을 암시하였습니다. 어쩌면 인간 모두가 그런 모순 속에 살아가는 것인지 모르지요. 8/30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허수경  기차는 간다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네 몸 속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북적거러던 역에서 기차는 떠나가고, 혼자 돌아오고 있는 여인이 있습니다. 이별은 냉혹한 현실이라 사랑의 흔적을 어서 지워야 합니다. 허수경 (1964-)시인이 일찍이, 부의 축적이 생의 지표가 되던 1970,80년대 , 산업도시의 그늘에서 흔하던 사랑을 '체험화' 했지요. 가난할수록 깊어진, 그래서 만나지 못해도 그 그리움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닮게 된 사랑은 '내 몸'과 '너의 몸'의 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이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기에 모든 이의 것이었지요. 그 묵묵하던 사랑의 모습을, 오늘 떠나가는 사람을 보며 다시 그려 보세요. 8/31 (목) 소설가 박덕규  정완영  난보다 푸른 돌  옛날엔 칼보다 더 푸른  난(蘭)을 내가 심었더니  이제는 깨어도 잠 깊은  너 돌이나 만져 본다.  천지간 어여쁜 물소리  새소리를 만져 본다.    젊은 날에는 꺾이지 않는 개걸한 정신을 추구하다가도 나이 들면 많은 것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지요. '칼보다 더 푸른 난' 이란 말에는 매섭고 단호한 정신의 서슬이 버쩍이는 듯합니다. 그러나 돌을 어루만지는 경지는 어떠한가요? 돌은 난처럼 날카롭지 않고 잠자는 듯 고요히 자리를 지킬 뿐이지요. 정완영(1919-) 시인은 돌의 침묵을 통하여 어여쁜 물소리와 새소리를 '만져 본다'고 했습니다. 소리도 유형화시켜 만져 보는 차원이라면 세상의 날카로운 것들도 그 속에 부드럽게 녹아들고 말겠지요.  9/1(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송수권  우니야, 우니야  고추잠자리 날개가 서느러운 날  누렁 개꼬리 같은 조 이삭이 한 밭  조 이삭 위로 솟아난 수수 모감 몇 대  참새떼 소리 한 밭  저런저런……  수수 모감이 다 휘어지네!  우니는 어디 간 거라니  조밭에 새는 날리지 않고.    며칠 전 근교에 나가 정말 '누렁이 개꼬리'같은 조 이삭을 봤습니다. 조보다 훤칠한 수수 이삭도 여물고 있더군요. 꼬리에 꼬리를 물듯, 9월에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물들을 불러내는 송수권 (1940-) 시인의 노래에는 이음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조 밭의 참새떼를 '소리 한 밭'으로 시각화해 놓은 것도 즐겁지 않습니까? '우니'는 뭘까요? 예닐곱 살의 여자 아이가 연상되는데요. 그 아인 곧잘 울곤 했을 것 같습니다. "저런저런……"하는 혼잣말 같은 말투에 배인 안타까움과 가벼운 투정도 정답지 않습니까? 9/2(토) 시인 정끝별  정운모  나무  나무는  청진기  새들이  귀에  꽂고  기관지가  나쁜  지구의 숨결을 듣는다.    자 우리에게 풍요로움과 아름다움만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요즈음처럼 지구 도처에서 일어나는 홍수나 산불을 볼 때면 우려하던 자연의 대재앙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개발 논리로 훼손된 자연이 결국 인간에게 되갚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운모 (1945-1999) 시인은 이처럼 공해로 병든 지구의 증세를 '나무 청진기'로 진단해 본답니다. 푸른 나무에 앉아 자유롭게 지저귀는 새들의 청량한 노랫소리로 지구의 숨결을 느끼고, 자연의 순수성을 감득할 수 있을 테니까요.  9/4 (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김수영  눈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김수영의 달에 부쳐 김수영 (1921-1968) 의 시 '눈'. 1966년작이다. 9/5 (화) 시인 이광호  노향림  위로  내릴 손님이 없어 폐쇄된  시골 간이역에서  낭자하게 피흘리는 선홍빛 샐비어꽃  문득 철길을 따라 걷는 가을이  맨손으로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지며  선연한 피들을  닦아주고 차마 돌아서지 못한다.    계절이 변하는데 미처 다하지 못한 일 때문에 애태우는 사람이 있지요. 뒤늦게 피흘리듯 선홍빛을 마구 내뿜고 있는 샐비어꽃이 바로 그런 모습을 하고 있군요. 여름 동안 그의 '간이역'에 발길이 끊겨 내팽개쳐진 처지가 된 것에 한을 품은 것일까요? 사실은 그 자체로 계절과 꽃의 조화로움을 보여 주는 일, 그래서 '낭자한 핏빛'이 더욱 선연한 것이지요.어떻든 노향림 (1942-) 시인은 사람의 눈길에서 아주 멀어지게 된 한 존재를 어루만집니다. 눈부신 변화의 그늘에서 버림 받는 사람을 위로하는 마음, 당신은 지니고 있나요? 9/6 (수) 소설가 박덕규  문태준  백로(白露)  뒤늦게 애가 들어선 사십대 여자처럼  늙은 네 발톱 같은 껍질을 가르고  붉은 석류가 터져 나오고 있었는데,  바람도 으스름달도 모르게,  먼데서 온 마수걸이 손님처럼  이슬 하나까지 얹혀,  그래도 살아남은 꽃시절이 있었다    뒤늦게 애가 들어선 사십대 여자는 오랜 불임의 시간을 견뎠을 것입니다. 먼데서 온 마수걸이 손님도 동이 트자마자 오래 걸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을 두드렸을지도 모릅니다. 문태준(1970-) 시인은 석류가 터지는 순간을 이 두 정황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석류 껍질이 늙은 네 발톱 같고, 석류 알에 맺힌 이슬이 마수걸이 손님에게 주는 덤 같다나요!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는, 백로를 머금고 있는,그 빨간 석류알이야말로 한때 꽃이었던 기억을 간직한 '살아남은 꽃시절' 아니겠습니까. 오늘이 바로 백로라지요. 9/7 (목) 시인 정끝별  한명순  약수터 가는 길  약수터 가는 길,  푸른 숲속 길,  매미 소리를 이고 갑니다.  매미 소리를 안고 갑니다.  매미 소리를 밟고 갑니다.  매미 소리를 끌고 갑니다.  푸른 숲속 길,  약수터 가는 길.    매미 소리가 유난히 풍요로웠지요. 말벌, 찌르레기, 박새 같은 매미 천적이 줄어든 생태계의 이변이 도심 한복판에서도 우렁찬 매미 울음 소리를 만끽할 수 있게 한 셈입니다. 한명순 (1952-)시인이 가도가도 잦아들지 않는 매미 울음을 약수터 가는 숲길에서 만납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매미 소리를 안고 가는 느낌이지요. 곧 악을 쓰며 쏟아내는 듯한 그 소리를 못 이겨, 내려놓고 밟고 가다가 이제 지쳐 끌고 가야 합니다. 짙은 무더위를 견딘 알곡이 더욱 알차지듯, 지금껏 매미의 시간을 지나는 우리에게 가을은 얼마나 풍요로운 모습으로 다가올는지요. 9/8 (금)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유재영  적막  오래 된 그늘이 지켜보고 있었다  나뭇잎 하나가 툭! 떨어졌다  참 조용한 하늘의 무게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놀랍지요?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돌고 조금 있으면 나뭇잎도 하나 둘 떨어지겠지요. 평범한 사물 뒤에서 서정의 기미를 탐색해 온 유재영(1948-) 시인이 이번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모습에서 하늘의 무게를 헤아려 냅니다. 시간이 무르익어 나뭇잎이 떨어질 때가 되면 그 밑의 그늘도 스스로 깊어져 나뭇잎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적막을 뚩는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나뭇잎에 하늘의 무게가 실리고 그것을 오래된 그늘이 너그럽게 받아 주지요.이 조용한 하늘의 무게를 우리들도 한 번 느낄 수 있을까요? 9/9 (토)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동환  면화밭  나는 좋더라 면화밭은  꽃이 피어 열매 맺고  열매 피어 꽃되네.  늙어도 청청한 소나무,  끊어도 되돌아붙은 한강물.  얘, 셋째야. 말 좀 해라.    결실의 계절은 어쩌면 이렇듯 불안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찾아오는 것일까요. 그러나 정말 들에 출렁이고 있는 곡식들을 보고서야 어찌 시름을 잊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북청 물장수'의 김동환(1901-?) 시인이 어느 해 가을 면화(목화) 밭을 춤을 추듯 걷고 있었군요. 꽃이 피고 진 속에서 열매가 벌어져 더욱 환한 꽃으로 피어난 목화를. "늙어도 청청한 소나무"의 역사성에 연계시켜 뜻깊은 감흥을 자아냈습니다. 그런 감흥을 빌려 우리 곁의 '말없이' 무표정한 혈육을 위로할 수는 없겠는지요? 9/14(목) 소설가 박덕규  이가림  순간의 거울  대지의 눈이  하늘의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눈 가장자리에  배 한 척이  가느다란 파문을 내이며 미끄러져 갔다  몇 마리 놀란 구름 조각들이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흔들며  잽싸게 흩어진다    대지 위에 하늘이 펼쳐진 장면을 그려 보세요. 대지의 눈이 그 하늘에 달린 커다란 거울을 들여다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우리의 삶은 대지의 가장자리를 스쳐 항해하는 배에 비유될 수 있겠지요. 누군가가 띄운 삶의 배 한 척이 가느다란 파문을 내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때 하늘에 떠 있던 조각구름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가림 (1943-) 시인은 배의 움직임에 놀라 흩어지는 물고기를 상상했습니다. 덧없이 사라질 자취이지만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삶의 항로에 하늘의 구름도 그냥 있지는 않았겠지요.  9/15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전동균  어두워지기 전에  얼마나 많이 뒤틀리고  뒤틀려서 깊어져야  사람의 몸 속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오는가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하늘에서 땅으로  귀환하는 새들처럼,  그 새들을 받아들이며  한없이 넓어지는 땅처럼!    문만 나서면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뒤틀립니다. 그럴 때마다 이 시를 생각합니다. 전동균 (1962-) 시인은 그 뒤틀림 속에서 '깊이'를 일구어냅니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얻은 단단한 마디와 옹이를 자신의 안 쪽에서 부드럽게, 말갛게 풀어놓곤 합니다. 그때 그의 몸 속에서는 물소리가 납니다. 땅에서 하늘로 비상하는 새들이 아닌, 하늘에서 땅으로 귀환하는 새들이라야 그 뒤틀림과 깊어짐과 맑아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그 새들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땅이라면야, 어쩌면 '다시'라는 말에 그 비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9/16 (토) 시인 정끝별  황순원  나의 꿈  꿈, 어젯밤 나의 꿈  이상한 꿈을 꾸었노라  세계를 짓밟아 문지른 후  생명의 꽃을 가득히 심고  그 속에서 마음껏 노래를 불렀노라.  언제고 잊지 못할 이 꿈은  깨져 흩어진 이 내 머릿속에도  굳게 못 박혔도다  다른 모든 것은 세파에 스치어 사라져도  나의 이 동경의 꿈만은 길이 존재하나니.    소설가 황순원(1915-2000) 선생의 운구 행렬이 떠나갑니다. 한국 현대 소설사 1세기가 비로소 저문 듯도 싶고, 문화의 정신이 세속을 뚫고 우뚝 솟아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의 실체를 이제는 더는 볼 수 없게 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시는 1931년, 선생의 나이 16세 때의 등단 작품이지요. 이 어처구니 없는 세상에 모든 것을 앗기고도 초지일관 "생명의 꽃'을 피워 올리려는 모습이 바로 문학의 본 얼굴일 테지요. 편리와 쾌락을 얻기 위해 일상을 바치는 중에도 우리는 참다운 삶을 향한 '나의 꿈'만은 꼭 보듬고 있어야 합니다.  9/18 (월) 소설가 박덕규  김원각  남해 보리암에서  소원 따위는 없고  빈 하늘에 부끄럽다  이세상 누구에게도  그리움 되지 못한 몸  여기 와 무슨 기도냐  별 아래 그냥 취해 잤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에 가 보셨는지요? 앞에는 쪽빛 남해 바다가 비단폭처럼 넘실대고 뒤에는 검푸른 석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곳, 밤이면 청정한 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지요. 아름다운 풍광 때문인지 그곳은 유명한 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원각(1941-)시인은 그곳에서 소원을 빌지 못하고 부끄러움만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지요. 그러나 기도를 제쳐놓고 별빛에 취해 잔 자연과의 어울림이 오히려 세속의 잡티를 털어낸 비단결 마음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9/19 (화) 문학평론가 이숭원  최하림  세상에서 멀리 가려던  세상에서 멀리 가려던 한산 (寒山)같은 시인도  길 위에서 비 오면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본다 지난 시간들이 축축이  젖은 채로 길바닥에 깔려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고, 내려서는 고이고 스며드는 게 비의 순리죠. 세상 질서를 거부했던 시인 한산조차도 이런 순리는 거스러지 못했다고 최하림 (1939-)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문득 길바닥에 축축이 들러 붙어 있는 가랑잎들이 떠오릅니다. 길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비든, 가랑잎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땅의 깊이에 좀더 가까워진 것 들일 것입니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절대의 침묵이 읽혀지지 않습니까?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오던 길의 바닥을 한 번쯤 내려다 봐야 할 때입니다.  9/20 (수) 시인 정끝별  장철문  장(場) 풍경  이거 철원에다 디레가소  파장 무렵 비릿한 생선 냄새 속에  아들의 얼굴이 선해서  덜컥 가슴이 젖는다    해는 저물어 어스름이 깔리는 어느 장터에 남은 물건을 떨이로 팔려는 여인이 있습니다. 종일 좌판을 벌였으나 들어온 돈은 얼마 되지 않고, 집에 두고 온 어린 아들을 생각하니 한 시라도 빨리 장을 떠나고 싶었겠지요. 천 원에 다 들여가라고 아무리 손짓해도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어머니의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겠지요. 장철문 시인은 그런 어머니의 애잔한 마음을 간략한 형식으로 나타냈습니다. 특히 첫 행에 제시된 투박한 사투리는 아들에게로 향하는 모성애의 절박함을 절묘하게 감싸안고 있습니다. 9/20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함민복  독(毒)은 아름답다  은행나무 열매에서 구린내가 난다  주의해 주세요 구린내가 향기롭다  밤톨이 여물면서 밤송이가 따가와진다  날카롭게 찌르는 가시가 너그럽다  복어알을 먹으면 죽는다  복어의 독이 복어의 사랑이다  자식을 낳고 술을 끊은 친구가 있다  친구의 독한 마음이 아름답다    밤을 따다가 밤송이에 찔린 아이들은 어김없이 투덜댈 테지요. 복어를 먹고 죽은 사람 소식에 어른들은 얼른 몸부터 사리지요. 그것이 이 세상을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복어알의 독은 알을 지키려는 복어의 '지독한' 본성이요, 은행나무도 밤송이도 제 씨앗을 지키려고 인간이 싫어하든 말든 '독'을 뿜는 것이지요. 한민복(1962-)시인이 '그 독이 모두 사랑이다'고 말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자식을 낳자 잘 키워 보겠다고 금주하게 된 친구를 술판으로 끌어들이는 일 또한 얼마나 모자라는 인간의 일인지요. 9/22 (금) 소설까 박덕규  강현호  나뭇잎 하나  - 아이, 곱기도 해라.  바람이 손을 뻗쳐  나뭇잎을 또옥 땁니다.  - 아휴, 어지러워.  나뭇잎은 눈을 감고  바람의 팔뚝에 꼬옥  매달립니다.    바람이 점점 선선해지고 나뭇잎들은 저마다의 단풍으로 가을을 단장하기 시작합니다. 나뭇잎이 곱게 몸단장을 하는 일은 저를 키워 준 나무와 작별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지요.성급한 바람일수록 그 고운 나뭇잎을 그냥 두고만 보지 않습니다. 강현호 (1943-) 시인이 가을에 낙엽 지는 일을 바람과 나뭇잎의 가슴 설레는 만남의 순간으로 묘사해 색다른 동시 한 편을 빚었습니다. 제 몸에서 나뭇잎을 떨구는 나무의 고통도실은 이렇듯 또다른 시간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닐는지요. 눈을 감고 바람의 팔뚝에 몸을 맡기는 나뭇잎의 표정이 재미있군요.  권대웅  게  바다는 언제나 정면인 것이어서  이름 모를 해안하고도 작은 갯벌  비껴서 가는 것들의 슬픔을 나는 알고 있지  언제나 바다는 정면으로 오는 것이어서  작은 갯벌하고도  힘 없는 모래 그늘.    '정공법'이라는 말, 참 좋지요? 삶의 기로에서 뭔가 선택해야 할 때 저는 이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정면으로 독대(獨對)했을 때라야 올곧게 돌파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뒤돌아보면 그 선택이 옆으로 비껴서 있었다는 사실이죠. 권대웅(1942-) 시인은 그와 같은 비애를 '게'를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이름도 없고 작고 힘없는 갯벌이나 모래 그늘에서 재재거리는 게를 통해서요. 바다가 덮칠 때까지 옆으로 옆으로 전전긍긍하는 게의 모습이 곧 우리의 거울은 아닐런지요?  9/25 (월) 시인 정끝별  이혜영  못  아직 나는  한 번도 받아 든 적 없는  아버지 작업복을  때로는 엄마의 젖은 앞치마를  날마다  소중하게 받들고 있다.  벽 한쪽 구석을  차지한 너는,    우리에게 부모님은 너무 가까이 있어 그 고마움을 잊고 지내기 일쑤이다가 어쩌다 떠올리고는 스스로 무안해하곤 합나다. 이혜영(1957-)시인은 '벽 한쪽 구석을 차지한' 하찮은 옷걸이 못을 보고는 그런 무안함에 고개 숙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못이 날마다. 일터에서 돌아온 고단한 '아버지의 땀절인 작업복' 과 자질구레한 물일로 때가 묻은 '어머니의 젖은 앞치마'를 받들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지요. 부모님의 노동으로 먹고 살면서도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읽어 드리고 싶은 동시입니다. 9/26 (화) 아동문학평론가 김용희  정해종  동사무소에서  출근 지옥철 같은 철제 캐비닛  그 속 어딘가에 숨막히게  아버지가 계시고 내가 있다  이마에 수입인지를 붙이고  철인에 눌린 나의 일상이  막 떠밀리고 있는데  어, 아버지께선 또 어디로 밀려가셨나    뭔가를 수습하거나 도모할 때 동사무소를 찾습니다. 정해종 (1964-) 시인 역시 삶의 어떤 국면들을 '신고'하거나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그곳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한결 같은 철제 캐비닛들이 있습니다. 캐비닛 속에는 나를 비롯해 나와 피와 살과 밥을 섞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 빽빽이 담겨 있습니다. 딱딱한 흑표지에 덮여 철끈에 묶이고 소인이나 직인이 찍힌 채로 말이죠. 그 철제 캐비닛을, 똑같은 일상으로 우리를 운반해대는 숨막히는 전철에 비유하고 있는 뼈아픈 시입니다. 그래도 그 안에 있을 때가 삶인 거지요. 9/27 (수) 시인 정끝별  김명수  바다의 눈  바다는 육지의 먼 산을 보지 않네  바다는 산 위의 흰 구름을 보지 않네  바다는 바다는, 바닷가 마을  10여 호 남짓한 포구 마을에  어린아이 등에 업은 젊은 아낙이  가을 햇살 아래 그물 기우고  그 마을 언덕바지 새 무덤 하나  들국화 피어 있는 그 무덤 보네    이 시에 나타난 시의 풍경을 그려 보세요. 육지 저편에는 산이 있고 하늘엔 흰 구름이 떠가지요. 자그마한 바닷가 마을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거기에도 삶과 죽음의 엇갈림이 있고 애절한 사연들이 있네요.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그물을 깁는 젊은 아낙은 얼마 전 남편과 사별한 듯하고, 마을 언덕의 새 무덤은 그녀 남편의 무덤 같군요. 김명수(1945-) 시인은 바다가 바로 그 무덤을 바라본다고 생각했습니다. 생의 시련에 부대끼며 막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감싸안으려는 온화한 마음을 바다에서 엿본 것이지요. 9/28 (목)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진경  눈물  하루 아침 추위에  은행나무가 후드득 잎을 떨어뜨린다  비상에 대한 미련을  한꺼번에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황망히 흘리는  황금빛 눈물    사람은 버릴 때 버리지 못하고 떠나야 할 때 제대로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자연 만물의 변화를 보십시오. 꽃이 질 때가 되면 저절로 지고 나뭇잎이 떨어질 때가 되면 또 그렇게 떨어집니다. 파란 하늘에 노란 은행잎이 너울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지요. 하지만 어느날 찬 바람이 한 번 스쳐 지나가면 은행잎은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져 어디론가 흩어지지요. 김진경(1953-) 시인은 그 장면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려는 몸짓으로 보았습니다. 모든 미련을 버리고 총총히 떠나는 마당에 황금빛 눈물 흘리는것도 어울리는 일이겠지요. 9/28 (금) 문학평론가 이숭원  김기택  신생아 2  아기를 안았던 팔에서  아직도 아기 냄새가 난다  아가미들이 숨쉬던 바닷물 냄새  두 손 가득 양수 냄새가 난다  하루 종일 그 비린내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머리를 씻는다  내 머리는 자궁이 된다  아기가 들어와 종일 헤엄치며 논다    신시인 (1957-) 김기택은 사무원이지요. 여섯 살배기 딸의 아빠이기도 하구요. 시인은 갓태어난 아기 냄새에서 '어미' 못지 않은 '아비'의 부성을 한껏 과시합니다. 불균형, 야들야들함, 허우적거림, 말랑말랑함, 옹알거림, 꾸물거림, 버둥거림…이 '어린 것들'의 홀림 중에서 가장 강력한 건 아마 비린내와 단내가 뒤섞인 아이의 냄새일 겁니다. 바닷물 냄새, 양수 냄새, 비린내, 이 냄새로써 시인은 아이와 이어지고 있고 시인의 삶은 정화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아바라면 머리 속에 아이를, 아니 아이가 헤엄치며 놀 수 있는 자궁을 넣고 다닐 것입니다. 9/30 (토) 시인 정끝별  허영자  감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 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이것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하고 어금니를 물고 지켜온 것조차 다 순순히 내어놓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너무 투명한 가을 햇살 앞이면 옹고집쟁이라도 흰 수염 같은 백기를 흔들 듯 선선한 웃음을 흘릴 밖에요. 허영자(1938-) 시인도 젊은 날의 '떫고 비리던' 욕망을 접어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게 되는 마음의 움직임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늙어가는 사람의 자포자기일 수는 없을 테지요. 그렇듯 자기 자리를 내주고 보면 어느새 스스로가 작은 결실, 탐스러운 열매로 붉어져 있을 테니까요.  10/2 (월) 소설까 박덕규  오순택  참새  참새 서너 마리  부리에 음표를 달고  전깃줄에 앉아 있다.  다섯 줄 전깃줄이  오선지인 줄 아는가 봐.    고개 숙인 벼들이 황금물결을 일구어 냅니다. 추수할 때까지 허수아비는 그 물결을 잘 지켜 내야 하는데 참새들 때문에 걱정이네요. 참새에게는 먹을 양식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셈이지요. 농부들이 풍년가를 부르듯 참새들이 뛰고 날며 조잘대는 소리도 풍년가일 테지요. 이런 가을날, 전깃줄 위를 통통 튀어다니며 노래하는 참새들의 모습 또한 오선지 위에서 춤을 추는 음표처럼 경쾌합니다. 오순택(1942-)시인이 자연의 꾸밈 없는 표정에 어리는 충만한 기쁨을 '부리에 음표를 단 참새'모양으로 그려 놓았군요.  10/3 (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유승도  가을 낮  맑디 맑아 슬픈 하늘, 타는 들판이다.  아주 익은 콩들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다  꿩들은 좋아라 좋아라  콩 심던 봄날의 할머니는 어디로 갔나  볕기 가득한 콩밭에 콩 튀는 소리  산비탈이 부산하다 인적은 없이  서리도 내릴 날이 오늘 내일이라    10월에 접어들면서 서울 하늘도 제법 푸르고 높아졌지요? 강원도 산간 지역에 가면 정말 슬프도록 맑은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어요. 양지바른 산비탈엔 콩밭이 흔한데, 햇살이 뜨거운 한낮엔 알차게 여문 콩이 꼬투리를 뚫고 터져 나옵니다. 탁탁 튀는 소리에 놀라 도망쳤던 꿩이 콩알을 주워 먹으려고 짝을 지어 날아들지요.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는 유승도 (1960-) 시인이 인적 없는 가을 낮의 정경을 담백하게 그려냈습니다. 생활과 시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 고요하면서도 충만한 자연의 움직임을 보게 됩니다.  10/4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이상희  그리고 삶  입술을 깨물어도  참을 수 없이 튀어나오는  재채기 삼창  에잇!  집어쳐!  kitsch!    환절기에, 의약 분업에, 감기 바이러스들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재채기 소리 들립니다. 우리는 재채기 소리를 "엣취"라고 듣습니다. 그러나 미국인은 "아츄", 일본인은 "학숑"이라고 듣기도 한답니다. 이상희(1960-) 시인은 "에잇, 집어쳐, 키치(속물성)"라고 듣고 있군요. 재채기 소리에서 이끌어내는 의미가 즐겁지 않습니까. 그 소리와 의미가, 제목과 함께 어우러질 때 속된 삶에 대한 재치 있는 풍자가 되는군요. 재채기는 주로 삼창입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영어를 배울 적 아버지의 재채기 삼창을 "디스! 이스! 어팬!"이라고 듣곤 했답니다. 10/5 (목) 시인 정끝별  개리 스나이드(김구슬 옮김)  시는 어떻게 나에게로 오는가  한밤 중 시는 풍화된 돌들 너머로  비틀거리며 다가와  두려워하는 듯 내 모닥불 주변  언저리에서 기웃거린다  나는 시를 만나러 간다  그 불빛의 가장자리로    물질의 풍요가 바탕에 있지 않은 정신의 누림과 즐김을 일종의 사치라고 생각하지요.어쩌면 이렇듯 욕망이 들끓는 세상에서 시를 쓰고 읽는 일이란 참 겉멋 든 일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우리가 삶 속에서 풍화되고 있을 때 우리들 '언저리'에 와서 '기웃거러는' , 희미하지만 확연한 생기, 그 시를 감지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딱한 인생인지요. 진정 시는 그렇게 얻어집니다. 만물에 깃든 신성을 시로 쓰고 낭송하는 미국 시인 스나이더 (gary snyder, 1930-) 가 그 신성에 대한 믿음이 충만한 동양의 한국에 와서 시를 낭송했습니다. 10/6 (금) 소설가 박덕규  김영재  너라는 단풍  이제 너의 불붙은 눈 피할 수 없다  감춰야 할 가슴 묻어 둘 시간이 지나갔다  그 누가 막는다 해도 저문 산이 길을 트고 있다    사랑을 하고 그 사랑 때문에 우는 사연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흔히들 좋아하는 시나 노래가 또한 그런 사연 일색이지요. 그런데 여기, 맹렬한 사랑의 불을 켜고 달려드는 '너' 때문에 당황하고 있는 사람이 있군요. 무엇을 감추고 미리 가다듬어야 하는지 따질 겨를도 없이 이제 그사랑에 맞불을 놓아야 할 지경인데요. 알고 보니, 하루가 다르게 완연해지는 가을빛을 노래하고 있는 김영재(1948-) 시인의 시조입니다. 곧 처절할 정도로 붉은 단풍이 온 산야를 태울 테지요. 당신이 유약한 사람이라면, 막을 수 없이 길터오는 저 단풍의 사랑을 어떻게 맞을런지요? 1-/7 (토) 소설가 박덕규  전병호  과일 장수  햇살의 무게를 잽니다.  대바구니에 소복이 쌓이는  시골 햇살.  앉은뱅이 저울의 긴 바늘이  숫자를 더듬어 가리킵니다.  대바구니에 사과를 담던  과일 장수는  햇살의 무게를 생각하고는  사과 몇 개를 더 올려 줍니다.    앉은뱅이 저울로 물건의 무게를 재는 시골 장터 풍경이 한 편의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대바구니에 과일을 담아 저울의 긴 바늘로 무게를 잘 달고는 꼭 덤을 얹어 주는 모습이 아직 낯설지는 않지요? 전병호 (1953-) 시인은 그 덤이 '대바구니에 소복이 쌓여 있던 햇살의 무게'를 계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군요. 백화점 매장이나 홈쇼핑 시스템을 통하면 어쩌면 싼 값으로 훨씬 더 많은 양을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 누가 그런 햇살의 무게를 셈할 수 있겠어요? 새삼 그 옛날 과일 장수의 인정이 그리워지는군요. 10/10 (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이생진  낚시꾼과 시인  그들은 만재도에 와서 재미를 못 봤다고 했다  낚싯대와 얼음통을 짊어지고 배를 타기 직전까지도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날보고 재미봤느냐고 묻기에  나는 낚시꾼이 아니고 시인이라고 했더니  시는 어디서 잘 잡히느냐고 물었다  등대 쪽이라고 했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그리로 갔다    낚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이 시를 읽으면 좀 서운해 하시겠네요.만재도는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남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입니다. 인적 드문 외딴 섬이라 온갖 물고기들이 몰려 들어 낚시터로 유명하지요. 바다와 섬을 주제로 시를 써 온 이생진(1929-) 시인이 그곳에 들렸군요. 그러나 고기 잡이에 정신이 팔린 낚시꾼들은 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등대 끝에서 생의 예지를 건져올리는 그 외로운 황홀함을 그들도 한 번쯤 느낄 수 있을까요. 10/11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나희덕  서시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서시'는 말 그대로 여는 시입니다. 영원한 시작(始作, 詩作)으로서의 의미가 새김된 시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시도 다분히 계시적인 느낌을 줍니다. 따뜻하고 단정한 나희덕 (1966-) 시인은 단 한 사람의 가슴이라도 따뜻하게 지펴 줄 수 있는 마음의 군불, 아니 시의 군불을 지피고 있군요. 느슨하지 않게 자신의 영혼을 비워가는 일, 물이 새는 배의 밑바닥에서 물을 퍼내듯이 끊임없이 나를 베푸는 일, 이런 일이 아마 자신과 타인의 가슴을 지피는 일이겠지요. 따뜻한 것들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사람과 가까운 쪽이 가장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10/12 (목) 시인 정끝별  김소운  이슬  밤새 어두워서 울었습니다  밤새 무서워서 울었습니다  달빛 너무 맑아 울었습니다  별빛 너무 고와 울었습니다  해님이 보고 싶어 울었습니다  풀벌레와 함께 울었습니다  풀잎의 마알간 눈물입니다.    어떤 생명이건 상당한 고통을 겪으며 태어나는 법이지요. 이 세상 모든 것이 저마다 고귀한 가치를 지니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 몰라요. 김소운(1954-) 시인은 풀잎에 맺힌 이슬을 보면서 그것을 위해 밤새 애태운 고통에 대해 느끼고 있습니다. 밤은 무섭고 길었습니다. 때로는 달과 별이 너무 맑고 고와서 울기도 했습니다. 그 눈물들이 조금씩 모여 이른 아침 영롱한 이슬로 맺혔다는 것이지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순결한 열정을 간직해야만 참된 생명이 빚어지고 그 생명이 더욱 맑은 영혼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동시입니다. 10/13(목)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이세룡  페드라  사람은 언제나 절벽 끝에서 완성되지만,  모든 정열에는 눈이 없어서  사람 뒤의 바다를 보지 못하고,  출렁이는 푸른 숨결 속에  제 육신을 눕힌다.    이 시는 영화 페드라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페드라(새 어머니)와 알렉시스(전처 아들)의 금지된 사랑은 벼랑으로 치닫습니다. 절망의 끝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두 연인의 비극은 알렉시스가 스포츠카를 타고 페드라를 부르며 절벽을 질주함으로써 끝이 나죠. 바하의 '토카타와푸가' 선율이 물보라처럼 격정적으로 치솟을 때 페부를 찢는 알렉시스의 절규…. "페드라 …!" 이세룡 시인은 그들의 눈먼 사랑을 보편화시키고 있습니다. 눈이 멀어야 사랑이 시작되지요. 사랑 뒤의 바다를 보지 못해야 사랑하지요. 절벽 끝에서 완성되어야 진짜 사랑인 겁니다. 10/14 (토) 시인 정끝별  손광세  가을 하늘  옹달샘에 가라앉은  가을 하늘.  쪽박으로  퍼마시면,  쭉  입속으로  들어오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어쩌면 저토록 맑고 파랄까 싶은 가을 하늘입니다. 바라볼 때마다 가슴속이 환하게 밝아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어느새 그 하늘을 잊고 답답한 일상에 갇히고 말지요. 어느 날 손광세 (1945-) 시인은 그 하늘이 옹달샘에 비쳐 샘물 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된 것을 보았군요. 쪽박으로 물을 퍼마시면서 마음까지 파랗게 물드는 느낌이 들 테지요. 샘물을 매개로 해서 하늘이 몸 속으로 "쭉" 들어오는 상상의 기쁨을 맛보게하는 동시입니다. 10/16 (월) 아동문학평론가 김용희  유안진  전율  누구한테 왜 당했을까  짓뭉개진 하반신을 끌고  뜨건 아스팔트길을 건너는 지렁이 한 마리  죽기보다 힘든 살아내는 고통이여  너로 하여  모든 삶은 얼마나 위대한가 엄숙한가.    구차하게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럴 듯한 말이기도 하고, 또 실제로 어떤 화려한 생존보다도 빛나는 죽음이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죽음을 선택할 의지도 가질 수 없는 극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는지요? 유안진 (1941-) 시인은 하반신을 잃고 길을 가는 지렁이를 통해 죽기보다 힘든, 사는 자의 고통을 말합니다. 인간의 삶은 원래 그런 고통과 더불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그 고통에 시달리고 견디고 하는 과정이 인간의 참으로 위대한 삶 아닐까요? 오,저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에게 희망을! 10/17 (화) 소설가 박덕규  최영철  인연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자장면 집 한켠에서 짬뽕을 먹는 남녀  해물 거더기가 나오자 서로 건져 주며  웃는다 옆에서 앵앵거리는 아이의 입에도  한 젓가락 넣어 주었다.  면을 훔쳐 올리는 솜씨가 닮았다.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어디를 가시나요? 이 시의 부부는 어린이까지 안고 가까운 자장면 집을 찾았습니다. 특별한 날이라 자장면보다 조금 비싼 짬뽕을 시켰어요. 생각 같아서는 탕수육이라도 시키고 싶었겠지만 형편이 그럴 수 없었겠지요. 국수발 사이에 해물 건더기가 보이면 상대에게 주려고 젓가락을 바삐 움직입니다. 병아리 같은 아이의 입에도 넣어주고요.세계 평화가 따로 있습니까? 이 부부의마음이 바로 평화의 근원이지요. 최영철(1956-) 시인은 이 아름다운 장면을 그저 좋은 인연이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군요. 10/18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유 하  오징어  눈 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눈앞에 보이는 저 찬란한 빛이 죽음이라고 유하 (1963-) 시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밤바다에 집어등을 환하게 켜고 있으면 떼지어 다니는 오징어들이 그 불빛을 향해 몰려든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오징어들에게 집어등 불빛은 곧 '죽음'이겠지요. 시인이 비장한 어조로 경계하는 저 빛은 '압구정동'의 네온사인을 연상케 합니다.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이 뿜어대는 '찬란한 빛' 말이지요.그 빛을 향해 오징어 떼처럼 몰려드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시인의 메시지가 의미 심장하지 않습니까. 10/19 (목) 시인 정끝별  박태일  인각사  인각사 아침 법문은  뻐꾸기 뻐꾹 제 전생 얘기  소복 단장 나비는 기왓골만 남실거리고  비실러 떠나나  물밥같이 말간 저 구름  고려 적 일연 스님  잔기침 소리.    기린이 놀다가 뿔이 암벽에 걸려 떨어진 곳이라는, 경북 군위 인각(麟角) 마을의 인각사는 고려 때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완성하고 입적한 절입니다. 한때는 그 곳에 댐 건설 계획이 있어 수몰될 뻔도 했지만,그대로 남아 옛 정취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습니다. 유적지에 서린 시간의 결을 즐겨 더듬는 박태일 (1955-) 시인이 이곳을 놓칠 리 없지요. 뻐꾸기 울음과 소복 단장 나비의 날갯짓 사이로 말간 구름이 와서 머물다 가는 고즈넉한 절 마당을 오롯이 떠오르게 합니다. 정말 잔기침으로 아침을 맞는 일연 스님의 모습도 저기 보입니다. 10/20 (금) 소설가 박덕규  안정옥  하찮은 꽃  늦은 밤 횡단보도를 마주하는 좌판에 지친 장미들  안개꽃에 깔려 있다 취객들만 지나치는 길  말라가는 꽃을 주인은 자주자주 깨우려고  찬물을 듬뿍 뿌린다 놀란 장미들  구겨진 머리 바로 펴려고 화들짝 좌판이 들컹거린다    꺾인 꽃에도 생명이 있을까요? 밤 거리에 꽃을 파는 행상들이 더러 있지요. 어제도 내 자신 취객이 되어 밤 늦게 집에 돌아오다가 장미꽃 파는 좌판 옆을 지나쳤습니다. 몸통을 잃은 꽃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는데 원색의 현란한 색상이 오히려 처량해 보였습니다. 잠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지만 얼마 안가 시들어 버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러나 안정옥 (1949-) 시인은 길거리의 하찮은 꽃이 화들짝 놀라 머리를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인의 상상력은 꺾인 꽃에서도 좌판이 덜컹거릴 정도의 힘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10/21 (토) 문학평론가 이숭원  진복희  외등  어둠을 밝혀 앉은  어머니 하얀 이마  종종걸음치는 나를  맨 먼저 알아채고  서둘러 담장 밖으로  긴 목을 빼고 섰다.    늘 다니던 길이라도 늦은 밤 홀로 귀가하는 어두운 골목길은 여전히 불안하가만 하지요. 더군다나 선득한 밤바람이 길바닥을 쓸며 지나가기라도 하면 꼭 누군가 뒤따라오는 느낌에 시달리며 절로 종종걸음 치게 되지요. 그럴 때, 집 담장 너머로 긴 목을 빼고 선 외등은 얼마나 반가운가요.날 마중 나온 '어머니의 마음'이 그런 외등의 표정일 테지요. 진복희 (1942-) 시인이 동시조 형식에다, 공포스러운 밤길 체험을 통해 '내 집'의 안락함을 알아차리는 어린 마음을 담았습니다. 10/23 (월) 아동문학평론가 김용희  한광구  꿈꾸는 물  비 오시는 소기 들린다.  꿈이 마르는 나이라서 잠귀도 엷어진다.  아, 푸욱 잠들고 싶다.  한 사나흘 푸욱 젖어 살고 싶다.    꿈꾼다는 것, 그것은 한가롭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고, 자기 안의 내면 의식을 일깨운다는 것이고, 마음의 고향을 떠올린다는 것이고,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기다린다는 것일 것입니다. 꿈이 메말라가는 나이를 불안해 하는 한광구 (1944-) 시인은 촉촉이 내리는 비를 핑계 삼아 젖고 싶어합니다. 한 사나흘 푸욱 꿈에 젖어 보고 싶다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 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파스칼의 문장이라죠. 한 사나흘 정말, 푸욱 쉬고 싶지 않습니까? 10/24 (화) 시인 정끝별  이상범  섬  세상 끝이 떠오를 때 먼 데 섬을 생각했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거친 날에도  초록섬 다박 솔의 꿈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절망의 물결 저쪽 아스라이 뜨는 참별  돌아보면 거기 섬은 숨가쁘게 다가왔고  목놓아 울 수 없는 섬은 섬인 줄도 몰랐다.    이 시의 섬은 인간의 외로움과 꿈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군요. 세상 다 끝난 듯한 절망의 끝판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지요. 온갖 시련에 시달리면서도 언젠가는 아늑하고 보람찬 삶을 이루리라는 꿈을 지니고 삽니다. 그 꿈을 여기서는 '초록섬 다박솔'로 표현했습니다. 어둠 속에 희망의 별을 찾아 숨가쁘게 움직이다 지쳐 쓰러져도 그를 달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스스로 외로운 섬이라는 것도 모르는 체 꿈을 찾아 헤매는 인간 존재의 안타까움을 이상범 (1935-) 시인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10/25 (수) 문학평론가 이숭원  박이도  집중  먼 곳의 어떤 소리에  길게 귀를 뽑는 나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저쪽 인기척에  숨을 죽이고 떨리는 내 안의 모습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내 시간을 찾아 허둥대는  이 순간 나의 집중은  허망한 메아리의 사라짐인가    나이가 들면 세상 일에 초연해져야 할 텐데 오히려 집착이 더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 꿈꿀 일이 남아 있을 것 같은 미련,뭔가 남은 행운이 찾아 올 것 같은 기대감, 이런 것들 속에서 나의 시간은 마구 흐르고 그럴수록 초조감은 더해지는군요. 한데, 그 '집중'이 과연 허망한 것이기만 한 것일까요? 형이상학적 관념의 세계를 구도하듯 다양한 어조로 형상화해 온 박이도 (1938-) 시인도 풀기 어려운 주제인가 봅니다. 그렇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실은 그것이야말로 나의 시간을 참으로 의미있는 집중으로 채우고 있다는 뜻 아닐까요? 10/27 (금) 소설가 박덕규  박세현  가을 저녁  똑 똑 똑  밤이 왔다  현관 앞에서 서성이는 잠의 등 떠밀고  어둠 엷게 탄 커피를 마신다  나뭇잎 지는 소리 사이로  가을 저녁을 마감하는 바람이 분다  마음 식는 소리  꿈도 저만큼 물러서거라    비가 뿌리더니 스산한 바람이 부네요. 부쩍 짧아진 가을 해 때문에 저녁은 유달리 빨리 어두워지는 듯합니다. 박세현 (1953-) 시인은 밤이 우리들을 노크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가을 밤은 불면의 시간 속에 무언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요. 커피까지 마신 시인은 이제 사색의 밤을 보낼 준비를 다 갖추었습니다. '마음 식는 소리'란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자기를 돌아볼 상태에 이른 것을 뜻하겠지요? 꿈도 저만큼 밀쳐 놓고 밤새 명상의 심연에 젖어들던, 그 외로운 축복의 시간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10/28 (토) 문학평론가 이숭원  신현배  고추 말리는 날  우리 집 앞마당이  빨간 고추로 덮였다.  눈이 따끔 코가 간질  연방 터지는 재채기.  바람도 견디다 못해  주춤주춤 물러난다.    가을 볕 따가운 날,  앞마당에 고추를 널어 말리는 풍경이 참 낮익지요? 그 곁에서 놀다가 코가 간질거려 재채기를 하던 어린 시절도 있었지요. 익은 곤추가 캅사이신이라는 매운 기운을 내는 소금 성분을 뿜어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눈물이 찔끔 나도 흥겨웠을 텐데요. 그래도 바람 없는 맑은 날에 고추를 말리기 때문에 그 매운 기운이 우리를 더는 괴롭히지 못하지요. 신현배 (1960-) 시인은 빨간 고추의 매운 맛의 위력이 바람도 물러나게 했다고 표현했군요. 고추 널린 시골 집 풍경으로 자연의 이치를 알려 주는 동시조인 셈이지요. 10/30 (월) 아동문학 평론가 김용희  박주택  인간 3  인간, 깊은 문장에서 나오는 동트는  새벽마다  광활한 대지.  황홀함의  그 숲에 떨 때  영혼의 곳곳마다에 울리는  맹렬한 타종(打鐘)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모두 값진 것이겠지만, 인간만큼 그 가능성이 활짝 열린 생명이 또 있을까? 이러한 믿음이 자신만을 중심에 두고 만물을 생각하는 인간의 자만일 수만은 없을 테지요. 불덩어리 같은 몸으로 새벽을 여는 황홀한 태양이며, 그로부터 온몸을 열어 기운을 뿜는 저 광활한 대지는 깊은 의식, '깊은 문장' 으로 시간을 맞는 인간의 내면을 닮았지요. 바로 그렇게 깨어 있는 인간에게서는 '영혼'이 울리는 사색의 종소리, 숲의 다양한 그 떨림 같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답니다. 박주택 (1959-) 시인이 빛은 '영혼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세요. 어쩌면, 인간의 가능성을 다시금 믿게 될지도 몰라요. 10/31(화) 소설가 박덕규  김달진 2  모래밥  마음이 더러우면  모래를 삶아 밥을 만들라.  모래밥을 먹고  그마음 씻어 버리라.    시인 김달진(1907-1989)  잘못된 세상살이를 향해 촌철살인(寸鐵殺人)처럼 일갈하는 일은 문자깨나 쓴다는 사람의 버릇입니다. 그 중에서 어떤 말들은 유식함만 빛나 보일 뿐인데, 어떤 말은 별로 어렵게 쓴 문자가 아닌데도 묘하게 폐부를 찌르는 울림을 주곤 합니다. 닭들은 튼튼한 소화 기능을 얻기 위해 모래를 먹는다지만, 인간이 모래밥을 먹어야 한다니요! 끝가는 데 모를 우리의 탐욕을 우리 몸 속에 쌓인 더러운 노폐물로 증명할 수 있을 터인즉, 그래서 시인은 마음의 더러움을 몸속을 청결하게 해서 씻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지요. 모래 알갱이가 위벽을 스칠 때의 따가움을 상상하면서, 제 마음을 씻는 뼈저린 각성의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박덕규 소설가  이성선2  벌레  꽃에는 고요한 부분이 있다  그 곳에 벌레가 앉아 있다    시인 이성선 (1941-2001)  일평생 남들에게 조용하게 노래만 들려 주다가 존재도 없이 사라져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요?  인간의 땅에서 한 점 티끌처럼 자기 몸을 작게 하고 자연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어가 마침내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흔적 남기지 않고 흩어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여정을 이 한 편의 시로 더듬어 볼 수도 있을 테지요. 한 마리의 작은 벌레가 꽃의 고요한 부분을 알고 그곳에 와 머무르기까지, 얼마나 큰 위험과 유혹을 이겨야 했을 것이며, 그 몸은 얼마나 예민해져야 했을까요.  실은 꽃이 아주 조금만, 이 갸륵한 벌레를 위해 몸을 비워주지 않았을까요? 예민한 촉수로 우주의 운행을 더듬던 사람, 이성선 시인이 얼마 전 그렇게 인간의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그 많은 시편들이 대신 조용히 그의 흔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박덕규 소설까  이성부  지리산  가까이 갈수록 자꾸 내빼 버리는 산이어서  아예 서울 변두리 내 방과  내 마음속 깊은 고향에  지리산을 옮겨다 모셔 놓았다  날마다 오르내리고 밤마다 취해서  꿈속에서도 눈구덩이에 묻혀 허위적거림이여  시인 이성부 (1042- )  이성부 시인이 백두 대간을 으르내린 지가 20년이 넘었을 겁니다. 거의 날마다 산을 올라도 저 멀리 달아나 버리기에 아예 자신의 방과 마음속에까지 산을 옮겨다 놓았군요. 그러나 두 발로 디뎌 오르고 그 안에서 잠자고 뒹굴어도 마음을 열어 주지 않던 산이 엉뚱한 곳에 옮겨 온다고 해서 참 모습을 드러낼 턱이 없지요. 밤이건 낮이건 산만 꿈꾸지만 눈구덩이를 헤매다 허방을 디디는 듯 길을 잃게 마련이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저 의연하고 정정한 산의 몸 가까이 들어가 그 살갗과 체온을 감촉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 2001.7/4(수)  이숭원·문학평론가  송재학  소나무  한 발만 더 디디면 벼랑인데 바로 거기서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가 있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는  늘 바르르 떨고 있는데, 에멜무지 금방 새로 변해  날아가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아슬함으로 잔뜩  발돋움한 채 바르르 떨고 있는데, 아직도 훌쩍  날아가지 않고 서 있는 저 나무가 기다릴 것은 무어냐  시인 송재학 (1955-)  여기 벼랑 끝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있습니다. 뿌리 내릴 곳이 또 있었을 텐데 하필 이곳에 뿌리를 드리운 데에는 그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요. 사물을 깊이 데려다보는 송재학 시인의 눈에는 바르르 떠는 솔가지의 몸짓까지 포착됩니다. 저렇게 바르르 떨다가 새로 변해 훌쩍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이어집니다. '에멜무지'란 말은 그냥 한 번 해 본다는 뜻의 고유어인데, 새처럼 날아가려는 몸짓은 하고 있지만 벼랑에 그냥 머물러 있는 뜻은 무엇일까요? 무언가를 기다리느라고 그렇게 서 있다고 신인은 보았습니다. 그 벼랑에서 기다린 세월이 백년일까요? 천년일까요? 2001. 7/5 문학평론가 이숭원  조 운  상치쌈  쥘 상치 두 손 받쳐  한 입에 우겨 넣다  희뜩  눈이 팔려 우긴 채 내다보니  흩는 꽃 쫓이던 나비  울너머로 가더라  시조시인 조 운 (1902-?)  이맘때쯤이면 텃밭에서 솎아 따온 상추 잎에 찬밥 한 숟갈, 참기름과 마늘을 담뿍 넣은 쌈장, 툭 분지른 고추 한 대목을 얹어 쌈싸 먹곤 했더랬습니다. 두 손으로 받쳐 든 쌈을 먹으려면 입을 크게 벌려야 하고, 입을 크게 벌리니 눈도 크게 벌어지겠죠. 크게 벌어진 눈의 동자들이 울 너머로 몰려 있군요. 그 형상을 '희뜩'이라는 부사가 거느리고 있네요. 쌈은 울이 쳐다보이는 마루나 평상에서 먹어야 제격인데요, 이때 훨훨 나는 나비는 더할 나위 없는 양념일 겁니다. 격식을 갖춰야 할 사람과는 차마 먹지 못할 게 이런 쌈이지요. 그런데 두 손을 부지런히 싸움하듯 싸서 먹으라고 쌈인가요? 2001. 7/6(금) 정끝별·시인  김승희  사랑2  멕시코인들은 말하지  우리에게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고  미국은 너무나 가까이 있다  세상의 여자들은 말하네  우리에게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고  남자는 너무나 가까이 있다.  시인 기승희 (1952-)  사랑은 항상 때 아니거나 때 늦기 십상이고, 사랑은 대체로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기 마련이죠. 그렇지 않은들 어디 사랑이겠습니까? 게다가 이 사랑은 서구 중심적인, 남성 중심적인 명분들로 똘똘 뭉쳐 있기도 합니다. 김승희 시인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국면들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멕시코와 미국, 여자와 남자, 그 약한 자와 강한 자 사이에 사랑은 불가(不可)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어' 그림의 떡이고, 사랑의 수탈자들은 '너무 가까이 있어'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뺏고 빼앗기는 사랑도 사랑일까요? 당신의 사랑은 무사한가요? 2001.7.7(토) 정 끝별·시인  이수익2  나에겐 병(病)이 있었노라  강물은 깊을수록 고요하고  그리움은 짙을수록 말을 않는 것  다만 눈으로 말하고  돌아서면 홀로 입술 부르트는  연모(戀慕)의 질긴 뿌리 속물처럼 쓰디쓴  사랑의 이 지병(持病)을,  아는가…… 그대 머언 사람아  시인 이수익(1942-)  세상 살이가 너무 각박해진 만큼, 침묵 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사랑의 아름다움은 언제라도 강조해 두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그런 말들은 자칫 공허한 사탕 발림식 사랑의 잠언이 되기 쉽습니다. 이 시는 우선, 말하지 못하고 가슴 앓은 자의 "입술 부르트는" 아픔이라는 구체적 감각이 생생합니다. "연모의 질긴 뿌리 쑥물처럼 쓰디쓴 사랑"할 때의 절묘한 대구(對句)가 또한, 격정의 시간까지도 끝내 홀로 견뎌내는 고독한 표정을 운율감 있게 살려냅니다. 그리고는, 어느새 강물의 깊어짐과 그리움의 짙어짐을 견주는 노련한 사랑의 시를 완성했군요.  2001.7.9(월) 박덕규·소설까  고진하  구룡사 은행나무  올망졸망한 흥부네 새끼들처럼  무수한 잔 가지들을 하늘 가득 거느리고 있었다  그 잔가지들을 다 품을 수 없어 나는  한아름도 넘는 나무 밑동을 힘껏 끌어 안았다  그렇게, 사람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어린 은행 잎에 듣는 빗장울이 속삭여 주었다  시인 고진하(1953-)  치악산 구룡사의 은행나무는 수령 200년이 넘은 것으로, 천년 기념물인 용문사의 은행나무에 비하면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균형 잡힌 위용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풍만한 밑동에 발을 디디고 하늘로 솟아오른 잔가지들은 그야말로 어느 부잣집 잔치판에 올마졸망 모여든 천진한 아이들 같지요. 그 귀여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고진하 시인은 생명의 기둥인 나무 밑동을 힘껏 끌어 안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은행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이 깊은 사랑을 알아차리고 시인의 등과 얼굴까지 적셨음은 물론이지요. 7/10(화) 이숭원·문학평론가  유용주  시멘트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자신이 가루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  부서져 본 사람만이 그것을 안다  시인 유용주 (1960-)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하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먼지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들을 공격하는 데는 당해 낼 자가 없지요. 시인은 시멘트를 통해 그 오래된 진리를 새삼 구체화시키고 있습니다. 철저히 부서진 시멘트 가루는 가장 순한 물과 더불어, 인간과 가까운 쪽에서부터 서서히 고요히 단단해지기 시작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인간을 가장 강하게 만들기도 하죠. 인생이란 스스로 가루가 되도록 부서졌을 때 그때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2001.7.11(수) 정끝별·시인  이은봉  해님  이번 장마로  이삭거름 준 것, 제초제 뿌린 것  다 헛걱 되겠다  제기랄, 모두 허실되겄다  하지만 일출봉 산마루 위로  금세 해님 얼굴 내민다  봐라, 여편네야 해님이다  늴리리야 춤춰야겄다  엎드려 절해야겄다.  시인 이은봉(1953-)  하늘은 무심하게도, 부지런히 땀 흘린 사람에게 더욱 가혹한 형벌을 내릴 때가 많지요. 이 즈음의 장마 때면, 제초제나 농약도 없이 농사를 지은 농부들까지도 엄청난 피해를 보지요. 그런데도 가을이 오면 우리네 밥상이 제법 풍성했던 까닭은 왜일까요?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도,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타오르는 해님을 바라보며 '닐리리야' 춤을 추던 그 체념, 그 해탈, 하늘과의 조화를 주저했다면, 오늘날 인류는 살아 남을 수나 있었을까요? 죽음과도 같은 재앙의 시간을 견딘다는 것이, 이미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겄다'는 사투리로 어깨 들썩이는 농부의 단순성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2001.7.12(목) 박덕규·소설까  정진규2  다시 쓰는 연서(戀書)  사랑이여, 그렇지 않았던가 일순 허공을 충만으로  채우는, 경계를 지우는 임계속도(臨界速度)를  우리는 만들지 않았던가 허공의 속살 속으로  우리는 날아오르지 않았던가 무엇이 그 힘이었던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는  시인 정진규(1939-)  임계속도란 물체의 속성을 유지해 주는 제한된 속도를 말합니다. 물체의 움직임이 임계속도를 벗어나면 물체의 상태에 변형이 일어나게 됩니다. 정진규 시인은 사랑이 사물의 경계를 지우는 임계속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사랑을 하면 가진 것이 없어도 마음은 왠지 들뜨고 풍성해지지요. 평소에는 건너뛸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경계를 넘어 허공의 극점을 향해 우리를 돌진하게 하는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게도 하지요. 그것이 어설픈 만용이 아니라 대단한 정신의 저력임을, 허공으로 날아올랐던 사람들은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2001.7.13(금) 이숭원·문학평론가  조오현  내가 나를 바라보니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을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가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 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시인 조오현 (1932-)  시인은 백담사에 살고 계시는 큰스님이십니다. 몇 해 전 친구로부터 "내 육칠십 평생이 벌레처럼 오그렸다 폈다 한 생이었다"라는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을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늘한 슬픔을 느꼈더랬는데, 그 말씀이 이시에 담겨 있군요. 일기입공(一技入功)이라는 말이 있지요. 자기나름의 올바른 방편을 찾아 평생을 두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경지에 이른다는속뜻을 담도 있습니다. 스님은 스님의 방편을 가지고 평생을 "오그렸다 폈다"만 반복하셨다니 그 공력이 대단할 것입니다. 우주를 손 바닥 안에 축소해 놓은 듯한 큰 시선이 장쾌하지 않습니까? 2001. 7.14(토) 정끝별·시인  조정권2  사자 잡이  무더위 속을 한 사나흘 몸 몰고 나가  충무 앞바다에서 사로잡았지  등줄 시퍼렇게 일어선 사자 네 마리를  파도 속에서 끌어올린  퍼어런 천둥 갈퀴  더위 한 조각 안 묻은 얼음 등 허리  오! 산 채로 껴안고 뒹굴며  남해 먼 바다까지 몰고 다니다가  사자 세 마리를 안고  몸 저어 왔지  시인 조정권(1949)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무더위를 탈출해 바다로 달려가곤 하겠지요. 푸른 바닷속에서 요동치는 파도와 어울려 몸 시리도록 노는 일이란 상상만으로도 즐겁지요. 하지만 그런 시간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 화가는 바다와의 몸부림을 한 폭의 그림으로 찍어 시간을 연장하지요. 시인은 그림에다 더욱 생생한 이름을 부여하곤 한답니다. 넘실대는 파도의 모양을 사자들의 퍼런 갈퀴로 명명한 시인은, 어느새 그 사자을 껴안고 뒹굴어 사로잡아 버렸네요. 시인이 바다에서 몰고 온 이 야생의 싱싱한 사자들을 가슴에 품어 보세요. 7/16(월) 박덕규·소설까  고두현2  빗살무늬 추억  청동 바람이  종을 때리고 지나간다.  화들짝 놀란 새가  가슴을 친다.  좌로 한 뼘쯤  기우는 하늘  별똥별이  내 몸 속으로  빗금을 치며 지나간다.  시인 고두현(1963-)  종이 울리는 것을 청동 바람이 종을 때리고 지나간다고 하고, 종소리에 파문이 이는 것을 놀란 새가 가슴을 친다고 표현했어요. 종소리의 울림이 얼마나 신비로웠던지 하늘이 옆으로 비스듬히 기우는 느낌까지 받았지요. 그 순간 하늘 저편으로 별똥별 하나 스치고 지나가듯 내 몸 속으로 추억의 음파가 빗금을 긋고 지나갑니다. 그렇게 내 몸에 빗금을 남긴 추억은 정말 무엇일까요? 청동 종소리일까요, 아니면 차마 말할 수 없는 사랑일까요? 시인이 깊이 새겨진추억을 소리의 공간적 형상을 빌려 절묘하게 표현했습니다. 7/17(화) 이숭원·문학평론가  천양희  왜가리  왜?  왜?  왜?  악다구니 쓰며  왜가리? 왜가리?  악다구이 써도  너의 날개를 누가 기억하리  왜가리!  시인 천양희(1942-)  왜가리의 목은 가늘고, 길고, 구부러져 있습니다. 마치 '왜?'라는 물음표처럼요. 전 백로와 두루미와 해오라기들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학의 일종이겠거니 합니다. 삼천리 화려 강산과 함께 등장했던, 을숙도에서 장엄하게 날아오르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흰 새떼들이겠거니 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왜가리는 날고 싶지, 뜨고 싶지 않나 봅니다. 울음 소리들도 왜가리? 왜가리? 하는 악다구니처럼 들릴 것만 같습니다. 그런 왜가리에게 날개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왜가리? 왜가리? 악다구니 쓰며 땅에 들러 붙어 있는 이 왜가리는 우리들의 분신이겠죠? 언어 유희가 맛갈진 시입니다. 2001.7.18(수) 정끝별·시인  이갑수  사과  놀라워라  오! 오! 놀라워라  좁은 문을 통과해내는  나무의 외출이여  자연의 배꼽이여  태양 아래 빨간 단추여  얼굴 앞의 둥근 열쇠여  깨물면 수혈하듯  솟아나는 하얀 피!  시인 이갑수(1959-)  '사과 한 알을 두고 지나치게 감탄하고 있구나' 하고 볼멘 소리를 할 사람도 있겠군요. 어쨌거나, 한 알의 사과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발갛게 잘 익은 사과가 탐스러워 절로 손을 뻗거나, 결국 한 입 덥석 깨무는 그런 때의 느낌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정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작은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일마저 의심 받게 된 현실을 먼저 자각한 시인은 '생태시'니 '초록 생명의 문학'이니 하는 말이 유행하기도 전에 '태양 아래 빨간 단추'라는 상큼한 비유를 찾아냈습니다. '수혈하듯 솟아나는 하얀 피'라고 할 때의 도발적인 감각은 용맹스럽기까지 합니다. 2001. 7. 19(목) 박덕규·소설까  임영조  아지랑이  가파른 보릿고개 넘어  부황든 얼굴로 어질어질  동구밖 한길까지 따라와  눈물 그렁그렁 배웅하시던  어머니! 어머니!  - 어여 가, 내 걱정 말구  - 가서 몸 성히 공부 잘 허구  아직도 가물가물 손 흔드신다.  시인 임영조(1945-)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보릿고개란 말도 없어졌지만, 먹을 것이라고는 시든 푸성귀조차 없어 맹물로 굶주린 배를 채우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험한 시절일수록 어머니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눈물겹게 피어오르지요.영양실조로 누렇게 뜬 어머니가 서울로 공부하러 가는 아들을 동구 밖까지 배웅하고 있습니다. 객지로 떠나는 아들 손에 쥐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겠지요. 가물가물 아득히 사라질 때까지 그저 여윈 손을 흔드실 수밖에. 세상을 떠나신 다음에도 어머니의 그 모습은 지워지지 않지요. 2001.7.20(금) 이숭원·문학평론가  박상순  돌이 울고 있었다  돌이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돌을 먹었다.  돌을 먹은 나는  펭귄이 되었다  배가 너무 무거워  바닥에 스러졌다  …  뱃속에서 돌이 울고 있었다.  시인 박상순(1961-)  돌이 울고 있었다니요! 그 돌을 먹고 펭귄이 되었다니요! 펭귄 뱃속에서 돌이 울고 있다니요! 아닌 게 아니라 돌을 보면 돌덩이가 뒤뚱거리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무겁게 뒤뚱거리는 펭귄의 걸음걸이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게 위태롭습니다. 돌과 펭귄을 연결시킨 상상력이 즐겁지 않습니까? 한데 곰곰히 생각하니 슬픔이 돌처럼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시입니다. 울고 있는 돌은 일상 속에서 끝없이 좌절하고 상처 받았던 실패의 더미들이겠죠. 뱃속에서 울고 있는 돌들이 우리의 봉분을 이룰 것만 같습니다. 소리없이 누군가가 온 종일 울고 있는데, 내 속에서 뒤뚱뒤뚱 울고 있는데 …. 2001.7.21(토) 정끝별·시인  조윤희  만다라  숲속 오솔길 따라  개미떼가 지나간다  까투리를 박차고 나온  알몸의 도토리가  덱데구르 구른다  빙글빙글 지구본이 돈다  어기영차  개미가 도토리를 끌고 간다  시인 조윤희 (1958-)  모든 덕을 원만하게 갖춘 경지나 그것을 나타낸 그림을 일컬어 '만다라'라고 하지요. 누구나 희망하지만, 어느 누가 그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자신할 수 있으리오. 대체로 인간들이란 무엇 하나 만족하지 못해, 허구한 날 탐욕의 눈빛을 밝히고 불야성을 만들고 말지요. 시인은 인간들에게 숲 그늘 속에서 일어나는 조그만 움직임으로 그 화해로운 세계가 아주 가까운 데 있음을 알려 줍니다. 도토리와 개미의 만남 사이에 돌아가는 지구를 놓은 기발한 사유가 '덱데구르' '빙글빙글' '어기영차' 의 말놀음과 어울려 '만다라'의 한 경지가 되었습니다.  2001.7.23(월) 박덕규·소설까  이가림2  시간의 모래 5  로트렉의 고향 알비를 지나  담홍(淡紅)의 도시 툴루즈로 가는 길  편도나무 울타리가 있는 시골 역 벤치에  긴 팔 넝클 장미인 양  휘어감은 연인들의 십오분 간의 입맞춤  시인 이가림 (1943-)  이국 여행은 흥분과 자극을 불러 일으킵니다.알비의 미술관에서 19세기 말 인상파 화가로 트렉의 그림도 보고 이름 자체가 매력적인 담홍빛 도시 툴루즈로 가는 여행 길에 벤치에서 입맞춤을 나누는 연인을 보았군요.저도 몇 년 전 프랑스 바닷가를 여행할 때,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에 감흥을 이기지 못하여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연인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두 팔로 포옹한 연인의 모습을 넝쿨 장미에 비유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그런데 그 입맞춤의 시간이 십오분 간이라니, 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이 시간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2001.7.25(수) 이숭원·문학평론가  안도현  사랑  여름이 뜨러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람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곁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시인 안도현(1961-)  찌는 듯한 여름 '맴, 맴, 매앰' 목이 터져라 우는 매미 울음은, 마치 태양에 달궈진 철판이 뜨거워 윙윙 우는 소리만 같습니다. 한 놈이 울기 시작하면 신호라도 되듯 일제히 울어 젖히죠.한여름을 그렇게 울다가 단풍이 들 때쯤 그 생애를 마감하죠. 이 짧은 생을 위해 매미는 10년이 넘는 긴 시간을 어둡고 습진 땅 속에서 기다린다죠. 그러니 삶에 겨워 그렇게 우는 거겠죠.그 뜨거운 사랑을 내 보이려고 한사코 옆에 붙어 그렇게 우는 거겠죠.시인은 매미의 그 짧고 뜨거운 사랑 때문에 여름이 뜨겁다고 능청이네요. 매미 소리가 없는 여름은 수박 냄새 없는 여름만큼이나 싱겁겠죠. 2001.7.26(목) 정끝별·시인  이하석  소금쟁이 독서  바람에 소금쟁이가 읽는 수면이 자꾸 접혀서  스금쟁이들 뭘 읽는지도 모르는 채 허둥대네  그 난독이 게워낸 파도가 물가에 밀려 와  끊임없이 소곤대어  내 맨발만 간지럽네  시인 이하석 (1948-)  소금쟁이는 몸통 길이 1.5cm 정도되는 곤충으로, 가늘고 긴 다리로 물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신기해 보이지요. 바람이 불고 수면이 흔들려도 물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발 끝에 털이 있기 따문이지요. 파도에 밀리며 이리저리 출렁이는 소금쟁이를, 읽고 있는 책이 접혀 허둥대는 모습으로 묘사했군요. 그리고는 이번에는 소금쟁이의 '허둥대는 독서'가 파도를 게워냈다고 했어요. 그걸 바라보는 시인도 어느새 소금쟁이처럼 물 위에 붙어 서서 맨발로 그 파도를 느낍니다. 어쩌면 제가 시를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누가 소금쟁이의 '난독'이라고 하겠군요. 2001.7.27(금) 박덕규·소설까  신대철  無人島  수평선이 축 늘어지게 몰려 앉은 바닷새가  떼를 풀어 흐린 하늘로 날아오른다. 발 헛디딘  새는 발을 잃고, 다시 허공에 떠도는 바닷새,  영원히 앉을 자리를 만들어 허공에 수평선을  이루는 바닷새.  인간을 만나고 온 바다,  물거품 버릴 데를 찾아 무인도로 가고 있다.  시인 신대철(1945-)  추종을 불허하는 이미지와 비약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수평선이 축 늘어지게 몰려앉은 바닷새라니요! 전깃줄에 찹새들이 앉아 있듯, 허공에 수평선을 이루며 바닷새가 앉을 자리를 만들다니요! 떼로 몰려 다니며 발을 헛딛고 허공을 떠도는 바닷새의 모습은 어딘지 인간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끝없이 인간의 흔적을 거부하지만 허공을 떠도는 바닷새, 아니인간에게는 수평선 한 자락을 내 주며 영원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바다, 그리고는 인간의 흔적인 물거품을 버리기 위해 무인도를 찾는 바다, 그런 도저한 바다라면 올 여름 한 번 먼 발치로방문해 보고 싶습니다. 2001.7.28(토) 정끝별·시인  서정춘  수평선  하늘 밑 바다 위에  빨랫줄이 보인다  빨랫줄 위에는  다른 하늘이 없고  빨랫줄에  빨래는 파도뿐이다  시인 서정춘(1941-)  수평선을 시로 표현한 사람은 아주 많을 텐데 그것을 빨랫줄에 비유한 사람은 서정춘 시인뿐입니다. 왜 하필 빨랫줄이냐고요? 공중을 가로지른 빨랫줄 위에 푸른 하늘이 펼처져 있고 그 아래엔 크고 작은 빨래가 바람에 너울대는 장면을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하늘과 바다를 갈라 놓은 수평선에서 파도가 빨래처럼 펄럭이는 한 줄 빨랫줄을 떠올렸던 것이지요. 2001.7.30(월) 이숭원·문학평론가  이생진2  無名島  -그리운 바다 城山浦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시인 이생진(1929-)  제주도에서부터 매물도·청산도·마라도·나로도·석모도 그리고 숱한 무명도에 이르기까지, 흥부가 제 새끼들을 보듬어 안 듯, 삼면으로 올망졸망 섬들을 거느리고 있는 곳, 이맘때쯤이면 그 섬과 바다를 보려고 저리 뭍 끝으로, 뭍 끝으로 떠나가지요. 정말 이름 없는 그 어떤 섬에서 한 달만, 딱 한 달만 살다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가함과 무료함을 견딜 수 없을 때까지, 그리운 것들이 없어졌다 다시 생길 때까지만요. 시인은 다른 시에서 또 이렇게 귀띔해 주네요. "돈을 모았다/ 바다를 보러 간다/ 상인들이 보면/ 흉볼 것 같아서/ 숨어서 간다" 요란스럽지 않되 살뜰한 휴가가 되시기를…. 2001.7.31(화) 이숭원·문학평론가  김종해  새는 자기 길을 안다  하늘에 길이 있다는 것을  새들이 먼저 안다  하늘에 길을 내며 날던 새는  길을 또한 지운다  새들이 하늘 높이 길을 내지 않는 것은  그 위에 별들이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 김종해(1941-)  하늘에 새 날아가는 것을 본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공해로 찌든 하늘에 무슨 새가 날겠습니까? 바다에는 뱃길이 있고 공중에는 항로가 있는데, 새도 하늘을 나는 길이 있을까요?  시인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다만 새는 자신이 나는 길을 스스로 지우기 때문에 사람에게 그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뿐 아니라 새는 별들이 가는 길까지 미리 알고 별 아래 자신의 길을 마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사람은 얼마나 한심한 존재입니까? 2001.8.1(수) 이숭원·문학평론가  이재무2  밥알  갓 지어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시인 이재무(1958-)  한 그릇에 '밥'과 '사랑'을 맛깔스럽게 퍼담아 놓고 있네요. 사랑(밥) 앞에 평등, 사랑(밥) 앞에 영원, 사랑(밥) 앞에 평화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반성하면서 읽으라는 주문일 겁니다. 밥이 아니더라도 갓 지어낸 모든 것들은 말랑말랑한 사랑, 연하디 연한 평등 그 자체였을 겁니다. 갈수록 질겨지고 독해지니, 갈수록 흩어져 제것 챙기고 하다보니, 말랑말랑하고 연한 그 첫 끈기를 잃는 거겠죠? 2001.8.2(목) 정끝별·시인  지영  우물  손 닿지 않는  깊은 우체통에  소리내어 읽고 싶은  사람들 마음이 있다  한밤의 편지와  첫새벽의 편지가 있다  비 오는 날의 편지  눈 오는 날의  편지가 있다.  시인 지영(1957-)  가까이 있고 또 궁금한 것인데도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 있지요. 우물 속도 그런 것 중의 하나였지요. 이 시는 그 우물의 이미지를, 속을 감추고 있는 우체통으로, '소리 내어 읽고 싶은 편지'로 변주해 가고 있습니다. 은밀해서 알고 싶고, 그러다 간절해지는 것이 누군가를 향해 열린 사람의 마음 아닐까요? 밤을 하얗게 밝히고도 몇 줄도 쓰지 못한 그 마음 말이지요. 이즈음 휴대전화로, 이메일로 즉각적으로 주고 받는 사연들은 과연 어떤 설렘을 갖게 되던가요? 2001. 8.3 (금) 박덕규·소설까  장석남2  길  바위 위에 팥배나무의 하얀 꽃들이  앉아 있습니다  바위 속이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팥배나무와  바위  사이  꽃잎들을 내려온  길들을  다  걸어보고 싶습니다  시인 장석남 (1965-)  팥배나무는 잎과 열매가 아름다운 낙엽 교목입니다. 점점이 떨어진 하얀 꽃잎도 물론 아름답지요.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하약 꽃잎이 앉아 있는 바위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길입니다. 정말로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것은 나무 줄기에서 바위까지 스쳐 지나온 꽃잎의 길들 (길들이라니, 그 허공에 얼마나 많은 작은 길들이 숨쉬고 있겠습니까?)을 모두 가 걸어보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입니다.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우리의 눈으로도 꽃잎의 길을 엿볼 수 있을까요? 2001.8.4 (토) 이숭원·문학평론가  김영무  채마밭  총각 냄새 물씬 풍기는 무밭 곁에  웃음 소리 소란스런 배추밭  아낙들 머리에 쓴 흰 수건처럼 환한  달빛 웃음 밤새워 참느라고  배추고갱이 노랗게 속이 밸 때  무들은 흙 속에서  수음하며 몸집을 불린다  신병 훈련소 같은 무밭  신참 이등병 일개 소대 출소 준비 끝  시인 김영무 (1944-)  한여름 밤의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군요. 시인은 무밭에서 총각냄새를 맡고, 배추밭에서 아낙들 웃음 소리를 듣고 있네요. 출소 준비를 끝바쳤으니 이제 툭 불거진 푸른 심줄 같은 무 밑둥을 내로라 하듯 드러내 놓겠지요? 무밭과 배추밭이 왜 이웃해 있는지, 무 몸집이 왜 그렇게 붙어 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추밭 곁에 상추밭이, 오이나 가지밭 곁에 깻잎 밭이 이웃해 있는 거, 그게 다 궁합이었군요! 8.6(월) 정끝별·시인  박승미  모과 9  불켜놓고 잠이 드신  어머니의 얼굴  어머니  제가 왔어요  젖가슴 속으로 손  쓱 들어밀면  부시시 눈뜨시며  "꿈이 생시 같아,야"  시인 박승미(1944-)  관상용으로나 방향제 삼아 방안에 둔 모과의 부담 없는 모양새와, 일과를 마치고 빈 방에서 식구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든 어머니의 얼굴을 겹쳐 놓았네요. '생시'를 '꿈'으로 느끼는 어머니의 '비몽사몽' 속에 복잡하고 말썽 많은 일상의 피곤함을 일시에 씻겨 내려가게 하는 해학이 있군요. 투박한 속에 깊은 속정이 있다는 식의 해묵은 이야기지만, 그 해묵음이 때로 얼마나 우리를 편하게 하는지요. 우리에게는, 어쩌면 편안한 집에서 손쉽게 휴식을 취하는 일도 낯선 일이 된 건 아닌가요? 2001.8.7(화) 박덕규·소설까  김종삼2  앤니로리  노랑나비야  메리야  한결같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한결같이 마음이 고운 이들이  산다는 곳을  노랑나비야  메리야  너는 아느냐.  시인 김종삼(1921-1984)  스코트랜드 민요 '애니로리'를 들어보셨겠죠?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하는 아름다운 곡이지요. 그 곡과 이 시의 관련성을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세상의 속된 언어로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그 곳의 순수한 아름다움만 떠올리면 됩니다. 음악이 펼쳐내는 아름답고 고운 세계를 이 세상에서도 찾을 수 있을까요? 시인은 엉뚱하게도 노랑나비와 메리에게 그 곳을 아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진흙 구덩이를 뒹구는 우리 인간에게는 아무 것도 물을 것이 없었겠지요. 2001.8.8(수) 이숭원·문학평론가  박 찬  수몰지구  이른 아침,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린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금 저 물 속을  누구,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지  끌끌 소 몰아 모퉁이 돌아나오는 소리 들린다  시인 박 찬 (1948-)  사람들이 공들여 구축한 인공호수의 경관도 제법 흥취를 불러일으키지요.수해 대비, 수력 발전 등 여러 목적에 따라 생겨나지만, 주위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지면 휴양지도 되고 유람지도 될 수 있지요. 한데,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인 적이 있는지요? 이른 아침 인공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서 그 소리를 들은 시인이 있군요. 아직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닭은 울고, 농부는 끌끌 소를 몰아 모퉁이를 돌아나온다는군요.  8/9(목) 박덕규·소설까  고재종2  전각 (篆刻)2  푸르른 한때  애인의 이름을 나무 둥치에 새기며  소리 죽여 운 적이 있다.  수천 수만 나뭇잎이 일렁거렸다.  시인 고재종(1957-)  젊은 날의 사랑은 열정도 뜨겁지만 끝나고 난 뒤의 회한도 크고 깊습니다. 여기 애인의 이름을 나무에 새기며 소리 죽여 우는 젊은이가 있군요. 말 못할 사연이 얼마나 참담했기에 애인의 이름도 부르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을까요? 나무 둥치에 이름을 새긴다고 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가슴 속에, 마음 깊은 곳에 한 자 한 자 새겨 넣었겠지요. 그 아픈 사연에 수천 수만 나뭇잎도 덩달아 일렁거렸던 것이겠지요. 2001.8.10(금) 이숭원·문학평론가  이선영2  수저와 어머니  어머니가 식탁에서 수저를 떨어뜨리면  어머니가 그것을 주워 드신다  내가 식탁에서 수저를 떨어뜨리면  어머니가 다시 그것을 주워 드신다  내가 부주의하게 떨어뜨린 수저의 개수만큼  허리를 굽히신 어머니  시인 이선영 (1964-)  움푹 파인 수저를 보면, 밥과 밥벌이와, 밥벌이의 공고함이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담아야 하고 왕복을 되풀이해야 하는…. 어머니가 떨어뜨린 수저는 어머니가, 우리가 떨어뜨린 수저도 어머니가 주우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바닥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이고, 그래서 어머니는 힘이 세고 위대한 존재인 겁니다. 온 식구들의 수저를 주우시느라 등 굽은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2001. 8.11(토) 정끝별·시인  이사라  자서전을 읽는다  마음 스치고 간 칼날들이 그믐달로 뜬다  일생 땅에 집을 짓지 못하는 칼새의 짧은 다리, 긴 날개  허공에 알을 낳고 허공을 박차고 허공에서 낫을 갈고  허공만이 그의 허파였던  시인 이사라 (1954-)  바위 절벽에 가파르게 집을 짓고 사는 칼새를 본 적이 있습니다. 누르스름한 그믐에서 그믐으로, 허공에 집을 짓고, 허공에서 밥을 먹고, 허공에서 짝짓기를 하며 보내는 허공의 노숙자들. 허공 그 자체인 새들. 그러니 칼새의 다리는 짧고 날개는 긴 것이겠죠? 그런데 허공에 달라 붙어 있으려면 그들의 발톱은 얼마나 튼튼해야 할까요? 그 '허공의 낫'만이 허공과 허공을단단하게 묶어 주는 힘일 겁니다. 2001.8.13(월) 정끝별·시인  장옥관  염산(鹽山)에서  왕소금에 썩썩 썰은 돼지고기 몇 점  소금포 나르다 새참 먹는 일꾼들 틈에 끼여  공으로 얻어먹는 탁주 한 사발  오리들이 뒤뚱대며 길을 건너고 있다  어질머리 붉은 해가 섯등 갇힌 바다에 빠져든다  길 옆 논에는 불을 뿜는 싯푸른 볏잎들  바다는 멀어도 고기떼 지나는 소리 잘 들린다  시인 장옥관 (1954-)  염전에서 소금포대를 쌓던 일꾼들이 잠시 일손을 놓았군요. 탁주 한 사발에 투박하게 썬 돼지고기를 왕소금에 찍어 먹는 그들의 모습에서 땀 흘린 사람의 진정한 휴식을 엿보게 됩니다. 그 배경에서, 바다에 빠지는 해와, 논의 벼들이 각기 자신의 색깔을 뿜어 절묘한 황혼의 풍경을 연출합니다. 시인도 어느 새 그 풍경 속에 녹아 들었군요. 사람과 바다, 빛과 소리가 어우러진 이 염전의 한때를 그림인 양 벽에 걸어 놓고 싶네요. 01.8.14(화) 박덕규·소설까  정호승2  그리운 목소리  나무를 껴안고 가만히  귀대어 보면  나무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행주치마 입은 채로 어느 날  어스름이 짙게 깔린 골목까지 나와  호승아 밥 머으러 오너라 하고 소리치던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인 정호승(1950-)  중년 나이에 접어드니 아무개야 하고 그냥 이름 부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 이름을 가장 정답게 불렀던 분은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입니다. 철없이 놀던 시절 어스름이 깔리면 밥 차리던 손을 행주치마에 씻으며 골목 어귀에까지 나와 저를 부르셨지요. 그날이 어제 같은데 벌써 사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리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호승 시인은 행복합니다. 나무와 사귀지 못한 나는 어디에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8.15(수) 이숭원·문학평론가  김춘수2  국밥집에서  이 더운 날에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것을  부글부글 끓는 맵싸한 국물과 함께  꿀꺽 삼킨다. 혹은 개 패듯  두들겨 팬다.  비명을 한 번 질러 보라고  질러 보라고  오늘이 복날이니까.  시인 김춘수(1922-)  복날을 노린 개 도둑들이 한창이라죠? 복날에는 술과 음식을 마련해 산간 계곡으로 들어가 탁족(濯足)을 하거나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 찜질을 해야 제격이겠지만, 그럴 수 없으시면 멍멍탕이라도 드시면서 (아뿔사!) 가슴속 부글부글 끓는 것들. 냅다 소리라도 질러 보든가 복날 개 패듯 두들겨 패 보시든가요. 아쉬운 대로 삼계탕이나 드시면서 꿀꺽 삼켜 버리시든가요. 2001, 8.16 (화) 정끝별·시인  정현종2  밤 시골 버스  멀리 보인다  밤 시골버스  버스 안이 환하다.  어렴풋이 승객들 보인다  멀리 환하게 지나가는  시골 밤 버스.  그를 몽땅 하늘에 올려 놓고 싶다  제일 밝은 태양처럼.  시인 정현종 (1939-)  시골의 밤, 사방이 모두 깜깜할 때, 그 속을 지나가는 버스를 어쩌다 보게 되면, 그게 버스 같지가 않고 무슨 광명을 전하러 가는 빛의 화물 같아 보이지요. 낮에 보면 필시 곧 폐차될 중고 버스일 테지만, 그게 그렇게 환할 수 있다니요! 굳이 내 보일 것 없는 제 몸속까지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는 시골 버스의 촌스러운 답답함에 시인은 그만 탄복을 하고 말았네요. 저 시골 버스야말로 우주요 신성이다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2001.8.17(금) 박덕규·소설까  송수권2  밀잠자리  어찌나 이쁘든지요  이른 아침 논둑길을 걷다가 볏잎 뒤에 붙은  푸시시 막 잠깨는 밀잠자리 한 마리  어느 날 내 영혼도 저렇게 가벼울 수만 있다면  젖은 이슬 털어 말릴 수만 있다면  어찌나 이쁘든지요  그 견인의 시간 다 지나고 신생의 아침  투명한 햇살에 날아오르는 아른아른한 빈 날개  저 알 수 없는 하늘 뒤로 사라지는…….  시인 송수권 (1940-)  요즘 시골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밀잠자리는 날개가 투명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른 아침 볏잎 뒤에 붙었다가 이슬을 털고 가볍게 날아오르는 밀잠자리의 모습을, 시인은 세상의 잡다한 티끌을 떨쳐 버린 순결의표상으로 보았습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비지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도 견인의 시간을 다 지나면 그렇게 홀가분한 신생의 아침을 맞게 될까요? 투명한 날개가 가뭇없이 사라진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8.18(토) 이숭원·문학평론가  정화진  두 장의 유리판 사이에  물기가 있을 때처럼  얇은 액체 층을 사이에 두고  단단히 붙어 있어  물안개 같은 그 무엇이  어릿하게  두 장의 유리판 사이에 물기가 있을 때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일 듯 말 듯  그렇게 젖어  시인 정화진(1959-)  사람들은 서로 이런저런 관계를 맺으며 삽니다. 연인이나 친구 사이, 원수지간…. 이렇게 분명한 경우도 많지요. 이외로 아무런 사이가 아닌 듯한데도 알 듯 말 듯 서로를 향해 자꾸 눈길을 주는 사이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 비중이 더 클지도 모를 그런 사람 사이를 시인은, 물기로 맞붙은 유리판 두 장 사이의 '물안개' 무늬에서 읽어 냈군요. 그 '아릿함' 속에 인간의 비밀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요? 2001. 8.20(월) 박덕규·소설가  이시영2  기억  인사동 처마 끝에 낙숫물 듣는 소리  방금 비둘기가 앉았다 날아간 자리가 파르르 젖는다.  시인 이시영 (1949-)  한 바탕의 비가 사물을 적신 직후, 그 지묘(至妙)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네요. 처마 끝 낙숫물소리에 비둘기가 앉았다 날아가 버린 그 자리가 젖습니다. 젖음이란 부재하는 것에 대한 기억이고 추억이고 흔적이겠죠. 그 기억의 미세한 무늬와 결을 '파르르'하는 부사가 감칠맛 나게 전해 주고 있네요. 순간적인 생의 흔적 혹은 그 움직임을 묘파해 내는 미세한 시안(詩眼)입니다. 2001.8.21(화) 정끝별·시인 서림  여름 아침  7.5평 아파트 작은 베란다에  어린 햇살이 내려와 아장아장 논다  알로에에 올라앉은 참새, 부르르  덜 빠져 나간 잠기운 털어내고 햇살 받아 챙긴다  허리뼈에서 올라오는 신음 혼자 삼키며  어머니, 저승옷 꺼내와 다듬는다  참새가 허옇게 센 정신으로 들어와  이따금 둥우리를 친다  햇살 먹는 어머니, 새우등을 하고  여름 아침 하늘 톡, 톡, 날아다닌다  시인 서림 (1956-)  작은 아파트 베란다에 아침 햇살이 천진하게 비치고 거기 또 작은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놉니다. 모두 다 정겹고 싱싱한데 머리가 허옇게 센 어머니는 허리의 통증을 참으며 등을 굽힌 채 수의를 다듬고 있군요. 이 노쇠한 어머니가 참새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며 여름의 싱싱한 햇살을 듬뿍 받아들이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상상만으로도 어머니의 휘어진 등이 쭉 펴질 것 같네요. 2001.8.22(수) 이숭원·문학평론가  안찬수  욕심  은행나무 밑에 서 있으면  은행나무가 되고 싶고  소나무와 함께 서 있으면  소나무가 되고 싶고  감나무에 기대어 서 있으면  감나무가 되고 싶고  시인 안찬수 (1964-)  기대어 서 있고 싶은 것이 어디 은행나무, 소나무, 감나무뿐이겠습니까? 그나마 '되고 싶기'만 해서 다행입니다. 되고 싶은 것들이 죄다 '나무들'이라서 다행입니다. 나무는 말이 없습니다. 나무는 변덕스레 오가지 않습니다. 나무는 아낌 없이 모든 것들을 다 내주고 다 받아들입니다.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하니, 이 시의 제목은 욕심(慾心)이 아니라 '무심(無心)이어야겠습니다. 2001.8.23(목) 정끝별·시인  박정남  이 속옷은  이 속옷은  손으로 부벼 빨아  햇볕에, 비바람에 펄럭이는 채로  성질도 카랑카랑하게 날이 서도록  잘 말린 옷이다.  하이타이 한 수푼과 함께  세탁기에 넣어 탈수해서  뒷 베란다에 먼지 낀 새시문도 열지 않고  텁텁한 공기 속에서  시름시름 말린  옷과는 다르다.  시인 박정남 (1951-)  손빨래가 세탁기보다 좋다니 기계화를 거부하고 자연성을 예찬하는 '빤한 시로구나, 하다가 아연하게 되었습니다. '텁텁한 공기나 시름시름 말린 옷에 비해 '성질도 카랑키랑하게 날이 선'이라니 얼마나 선연한지요. 그 '카랑키랑함, 속에 생태계의 질서를 깨는 문명사회의 급진적인 변화에 앙칼지게 대응하는 여성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말하면 너무 '빤한 이해'가 될까요? 2001.8.24. 2001.8.24(금) 박덕규·소설까  박용래  풀꽃  홀린 듯 홀린 듯 사람들은  산으로 물구경 가고  다리 밑은 지금 위험 수위  탁류에 휘말려 휘말려 뿌리 뽑힐라  교각(橋脚)의 풀꽃은 이제 필사적이다  사면(四面)에 물보라치는 아우성  사람들은 어슬렁어슬렁 물구경 가고  시인 박용래(1925-1980)  장마로 물이 불어나자, 교각 틈을 비집고 돋아난 풀꽃이 탁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작은 풀꽃에게까지 생의 의지를 불어넣은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습니다. 위험에 직면한 연약한 생명과 그것을 방관하는 사람들을 대비시켜 삶의 비장함까지 드러내려 했어요. 이처럼 짧은 형식 속에 생의 진실을 압축해 놓을 때 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준답니다. 2001년 8월 27일 (월) 이숭원·문학평론가  장석주  빵  누군가 이육체의 삶,  더 이상 뜯어 먹을 것이 없을 때까지  아귀아귀 뜯어먹고 있다!  이스트로 한 없이 부풀어오른 내 몸을  뜯어먹고 있다!  시인 장석주 (1995-)  거나해지면, 엄마는 내가 "내가 니들 집이다! 내가 니들 밥이다!"하셨고, 아버지도 "거지도 밥 세 끼는 먹는다! 어떻게 먹느냐다!"하셨습니다. 선배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밥 먹고 합시다!"했습니다. 언제나 밥과 빵이 문제인 겁니다. 먹고 사는 일은 곧 누군가를 혹은 스스로를 뜯어먹는 일인 겁니다. 그러니 밥과 빵이 비애라는 거지요. 8/27(월) 정끝별·시인  오탁번  응가  어린 아기 똥누듯  냄새 풍기면서도 예쁜 것이 시다  젖몸살 앓는 엄마의 아픔처럼  눈물과 미소가 얽힌 것이 시다  홍등가에서 사랑을 파는 여자들의  곪았지만 자꾸 파들어가고 싶은 어둠이  그 냄새나는 절망이 예술이다  시인 오탁번 (1943-)  시가 무엇이고, 예술이란 어떤 것인가 하고 묻는 이에게 이 시를 읽어 드리고 싶군요. 정녕 아름다운 것에는, 똥도 묻고, 진한 아픔의 체험도 스며들게 되어 있지요. 아니, 시는 그렇게 예쁘고 기쁜 쪽을 향해서만 열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 값진 시는, '곪았지만' 다시 어두운 쪽을 파들어가는 치명적인 절망까지도 품에 안지요. 밝은 데서 빛을 구하는 단순 논리로는 시의 진정한 경지에 닿지 못한 채, 시의 겉모양만 보고 탄복하곤 하지요.  2001.8.28(화) 박덕규·소설까  조창환  사람의 동네  새벽 창 밖의 어둠 속으로  가로등 불빛이 포도알처럼 흩어져 있다  초저녁보다 훨씬 정숙해지고  무거워진 어둠을 뚫고  불빛은 두텁고 축축해져 있다  배경이 짙어질수록  스스로의 무게로 고개 숙이는  가로등 불빛을 품고 있는  사람의 동네가 가을 과수원 같다    사람의 동네라고 하면 먼저 각박한 삶의 현장이 떠오르곤 하지요. 그러나 시인은 새벽 어둠 속에 빛나는 가로등을 포도알로 보고, 그렇게 불빛이 흩어져 있는 사람의 동네를 열매가 익어가는 가을 과수원으로 상상하였습니다. 하루의 시작인 새벽을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비유한 것이 이채롭지요? 여기에는 새로 얻은 생명의 자리에서 사람의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이 담겨 있습니다. 2001.8.29(수) 이숭원·문학평론가  오정국  별똥별  하늘에  먼지의 폭발이 일어난다 유성,  일생 동안 돌고 돌던  하늘의 길을 버리고  비로소 불탄다 피 흘리듯 타오르는  반역의 불꽃은 아름다워라 눈이 멀도록  각막이 타 버리도록  시인 오정국(1955-)  태양계를 임의로 떠돌던 바윗덩어리가 대기권에 들어오다가 대기권에 마찰하면 폭발하듯 무서운 빛이 발생합니다. 밤 하늘에 아연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그 발광체를 일컬어 우리는 별똥별이라 하지요. 그는 무슨 이유로 일생 동안 돌던 '하늘의 길을 버렸을까요? 아니 그가 자신의 궤도에 안주하고 있었던들 우리는 그 신비로운 우주의 장난을 볼 수 있었을까요?생을 내던진 반역에서 '절대의 미학'을 찾는 때 아닌 탐미주의가 새삼 돋보이는 시절입니다.  2001. 8.31(금) 박덕규·소설까  정두리2  바람의 울음  아기 소나무를 보며  바람이 매를 듭니다  쑤 - 욱  가슴을 펴!  매를 맞으며 우는 것은  소나무가 아닙니다  회초리 내전지고  긁힌 자국 만져주며  오래도록  바람은 울고 있습니다.    찬 바람이 불어와 어린 나무를 흔듭니다. 아기 소나무가 잘 크려면, 그 바람을 견뎌내야 합니다. 바람이 그걸 알고 더욱 거세집니다. 소나무가 참지 못하고 우는 듯하지만, 울고 있는 건 실은 바람이 아닐까요. 정두리(1947-) 시인은, 겨울날 모질게 나무들을 흔들며 우는 소리를 내는 바람을, 아이가 잘 되라고 혹독한 매질로 꾸짖고는 가슴아파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001.12.1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신형건2  …… 없는  창문이 없는 집, 답답하지?  가로수가 없는 길, 허전하지?  바람이 불지 않는 언덕, 가고 싶지 않아.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심심하지?  열쇠를 잃은 자물쇠, 영영 잠만 잘테지  불이 나간 저녁. 깜깜하지?  별이 없는 밤, 말도 안돼!  그럼, 이건 어떻겠니?  내가 없는 세상.    사람들은 집이 답답하면 창문을 만들고, 풍경이 허전하면 가로수 길을 내지요.사라진 양말 한 짝을 찾다가 지각하는 때도 있지요.별 없는 밤 하늘은 우리의 관심 밖이랍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의 느낌이 없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 있더군요. 한편으로는 '나 없는 세상'에 대한 속 깊은 생각도 한 번쯤 해 보라고 신형건(1965-)시인이 권하는 듯하군요.  2001.12.3(월)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공재동2  이슬  잘 가라는  풀잎의  인사처럼  더러는  글썽이는  눈물처럼  밥새  풀잎에서  속삭이다 돌아간  별들의 작별처럼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을 보면 절로 마음이 맑아지지요. 바쁜 사람들은 이슬의 인사를 받으며 길을 떠나지만, 동심을 간직한 사람들은 밤새 이슬에 서린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인사처럼… 하고 반복되는 말놀이로 이슬방울들의 싱싱하고도 아련한 이미지를 공재동(1949-) 시인이 살려 놓았습니다.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신현득2  첫눈  첫눈은 첫눈이라 연습 삼아 쬐끔 온다.  낙엽도 다 지기 전 연습 삼아 쬐끔 온다.  머잖아 함박눈이다 알리면서 쬐끔 온다.  벌레알 잠들어라 씨앗도 잠들어라.  춥기 전 겨울 옷도 김장도 준비해야지.  그 소식 알리려 첫눈은 서너 송이.    첫눈은 오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살짝 왔다가 가곤 하지요. 함박눈을 고대한 사람들에게 서너 송이 오는 첫눈은 참 서운하지요. 하지만 겨울 나기에 아무런 준비가 없는 이들에게는 고마운 일이지요. 아쉽게도 쬐끔만 내리는 첫눈이, 벌레알과 씨앗과 사람에게도 미리 추운 겨울을 대비하라고 알려 주는 자연의 전령이라고 신현득(1933-) 시인이 재치있게 일러 주는군요. 2001.12.5(수)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권영세  겨울 과수원  겨울,  과수원에 나가 보아요.  잎 진 탱자나무 울타리 지나는  아기 바람  나무 가시에 가슴 찔려  울과 있어요.    겨울 과수원에 가 본 적이 있나요? 여름내 그 푸르던 생명과 탐스럽던 가을의 영화를 다 거둬들이고 사람의 발길조차 끊긴 그곳은 어느새 바람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아기 바람이 그만 탱자나무 가시에 찔려 울고 있군요. 그 울음이 그냘 애틋하지만은 않지요. 시인은 겨울 속 자연의 대화를 그 울음을 통해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12.7(금)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손광세2  담쟁이 덩굴  눈발이 날리는  교실 창밖  바위벽을  감싸고 있는  파란  실핏줄.  팔딱,팔딱  맥박이  뛰고 있었구나!  바위벽이  살아 있었구나!    겨울에도 땅 깊은 곳에서는 생명의 움직임이 있지요. 하지만 어깨를 움츠리고 겨울을 나고 있는 우리는 그 힘을 느낄 수 없어요. 그던 어느 눈발 날리던 날,창밖 바위벽에서 어떤 기운을 보았네요. 차갑고 딱딱한 벽에 몸을 기대고 어떻게 그런 생명이 뻗어나갈 수 있을까요? 손광세(1945-) 시인은 담쟁이 덩굴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읽어 낸 것이지요.  2001.12.8(토)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이준관2  별 하나  별을 보았다.  깊은 밤  혼자  바라보는 별 하나.  저 별은  하늘 아이들이 사는 집의  쬐그만 초인종.  문득  가만히  누르고 싶었다.    청정한 밤 하늘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반짝이는 별 하나를 보았습니다. 문득 별들의 세상에 살고 있을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그 별이 그 아이들 집의 문을 열게 하는 초인종처럼 느껴지는군요. 그렇잖아도 한 번 눌러 보고 싶었으니까요. 이준관(1948-)시인은 밤 하늘 별 하나에 , 미지의 하늘 아이들과 다정한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동심어린 상상력을 담았습니다.  2001.12.10(월)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이상교  망망망  작은 두 귀가  망망망  작은 발 네 개가  망망망  작은 엉덩이가  망망망  작은 꼬랑지가  망망망  우리 강아지가  맨 처음 짖은 날.    낯선 이가 찾아오면 맨 처음 짖으며 경계하는 일이 개의 몫이지요. 그런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짖어도 위협적이긴커녕 귀엽게만 들립니다. 태어나 처음 짖는 강아지의 외침이 우리 집 아기의 옹아리 같기도 하고, 이웃집 아이가 부르는 동요 같기도 하지요.이상교(1949-) 시인이 '망망망'하는 소리에다 어린 강아지의 앙증맞은 움직임을 모두 담았으니, 소리와 모양의 절묘한 어울림이라 할 만하다. 2001년 12.11(화)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손동연2  기린  기린은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될 거야  목  이  길  어  서  뱃속까지 가는데도  하루가 다 걸릴 테니까    한 아이다 기린의 기다란 목을 보고 막 떠올린 생각일 테지요. 손동연(1955-)시인은 기린 앞에 선 그 아이의 마음을 읽어 낸 것이지요. 그뿐 아니라 아이가 고개를 젖히고 기린을 쳐다보는 눈길과 표정까지 읽고는 '목/이/길/어/서'하고 시행을 나누어 기린 목처럼 길게 늘려 놓았지요. 그런데 기린이 입으로 먹은 밥은 정말 얼마 후에 뱃속에 가 닿는 것이지요?  2001.12.13(목)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선용  섬은  파란 들판에  홀로 핀  한 송이 꽃  꽃  꽃  파도 소리  그리운  작은 귀  귀  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은, 파란 들판에 핀 한 송이 꽃이라 할 만하지요. 하지만 섬은 아름다움을 갖는 대신 스스로 외로운 단독자로 남아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섬은 늘 파도에 실려 오는 물 소식이 그리워 파도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는지 모르지요. 섬이 갖는 아름다움과 고독을, 선용(1942-)시인은 꽃과 귀로 의미 있게 표현해 냈지요.  12.12(수)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전양웅  새벽  밤 새워 가난을 깁는  어머니 손 끝에서  빛이 풀린다.  바느질 솔기마다 피어오르는  기다림의 빛 속에  해맑은 아가의 얼굴이 뚜렷해진다.    새록새록 잠이 든 아가 옆에서 어머니가 밤 새워 바느질을 하고 있었군요. 그 어머니의 노동이 잠을 아주 편하게 해 주었지요. 잠이 깊을수록 더욱 해맑아진 아가의 얼굴은 지친 어머니의 손 끝에서 빛이 풀리게 하는 힘이 됩니다. 전양웅 (1940-) 시인은 바느질 솔기에 스민 새벽 빛에 어머니의 사랑과 아가의 희망을 함께 모았습니다. 12.14(금)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김구연2  성에  발이 시려운데  하얀 이를 드러내  네가 웃고 있구나.  유리창에  어룽지는  마음의 그림자.    누군가 창밖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보니 그게 아니라 유리창에 성에가 낀 것이었지요. 모른 척 다시 공부를 하다 보면 또 누군가의 표정이 느껴지는 걸 어쩐답니까. 저 추운 밖에서 하얗게 웃고만 서 있는 그사람의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성에의 모양새를 연민어린 마음의 만남으로 읽은 김구연(1942-) 시인의 솜씨가 볼 만하군요.  2001.12.15(토)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송년식  눈과 눈  창 밖을 보던 엄마가  "야, 눈:이다." 하자  아이는 "눈?"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엄마가 다시  "응, 눈:!" 하자 아이는  콕  손가락으로  제 눈을 누릅니다.    똑같은 말에도 길 게 발음하는 말과 그것보다 짧게 발음하는 말이 있지요. 아이가 이 말의 작은 차이를 하나씩 알아 간다는 것은, 실은 세상 만물의 이치에 대해 조금씩 눈떠 간다는 뜻이기도 할 테지요. 송년식(1956-) 시인의 동시 속에서 자기 눈을 누른 이 아이도 얼마 사이에 부쩍 성장할 것 같군요. 2001년 12월 17일(월)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허동인  보름달이 나 보고  환하고 밝게 살려거든  둥근 마음 가지라 합니다.  둥근 마음 가지려거든  환하고 밝게 살아라 합니다.    보름달은 언제 보아도 아무런 근심 없이 그저 환하게 웃고 있는 듯 평화롭지요. 세상의 어두운 그늘을 찾아 고루 비추는 그윽한 달빛 아래 평등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요? 그 둥근 보름달 모양처럼, 똑같ㅇ은 시어들이 자리를 바꾸어 되풀이되면서 커다란 원의 형태가 된 동시입니다. 우리에겐 보름달의 교훈을 전하는 허동인(1941-) 시인의 마음 또한 둥근 보름달처럼 환하고 밝을 테지요. 2001. 12.18(수)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윤동제  아파트 아이들  아파트 아이들에게는  하이얀 박꽃도  노래 가사 속에서  하마다 피었다 지고  아파트 아이들에게는  둥근 박도  흥부전 속에서  해마다 여물고.    서투른 아이 말투로 동심의 세계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데 익숙한 윤동제(1957-)시인의 동시입니다. 책을 통해서 자연을 접하는 도시 아이들의 모습이 그저 갑갑하게만 느껴지는 건 아니군요. 또박또박 낭랑하게 책을 읽다 보면 그 마음속에 절로 펼쳐지는 그림이 있지요. 시골집 초가 지붕을 뒤덮은 박 덩굴에서 '하이얀' 꽃들이 피다가 어느새 허연 둥근 박이 여무는 풍경 말이지요. 2001.12.19(수)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심혜옥  시험 시간  막대그래프의 기둥이 긴 회초리로  보입니다. 수십 개의 모눈이 부릅뜨고  노려보고, 알 수 없는 악보는 깔깔깔깔  비웃기만 합니다. 왜 놀기만 했을까?  아예 두 눈을 꾹 감으면,  짝꿍의 연필 소리만 우레처럼 들립니다.    놀기에 바빠 시험 공부를 못한 아이가 시험을 치르고 있군요. 아무리 봐도 깜깜한 시험지에서 갑자기 막대그래프가 막대로 보이고, 악보의 음표는 비웃는 거처럼 느껴지네요. 짝꿍이 문제 푸는 연필 소리는 왜 그리 크게 들리는지요. 심혜옥(1952-) 시인이 공부 안 한 아이가 시험 시간에 겪는 고통스런 심정을 실감나게 표현해 냈지요.  2001.12.20(금)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유경환2  은 모래  바닷가에  마알간 은모래는  물새들이 뱉어 논 종알거림들.  그 속엔  물새들의 반짝이는 은니도  섞여 있을까.    늘 보는 풍경인데도 언제나 놀라움을 안겨 주는 것이 있지요. 이를테면 바닷가로 펼쳐진 눈부시게 하얀 모래사장이 그런 것이지요. 이렇게 마알간 눈빛이 누구의 작품일까, 하고 그 은모래를 주워 만지작거리다 보면, 밤새 와서 놀던 물새들의 종알거림이 들리지요. 그 중에서도 유난히 반짝이는 모래알을 유경환 (1936-)시인이 "물새들의 은니"라 명명합니다.  2001.12.21(금)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어효선  까치집  까치까치 까치집  지붕 없는 까치집  비가 오면 어쩌나  눈이 오면 어쩌나    까치는 높은 나무 위에 잔 가지를 물어다 얼기설기 엮어 둥지를 만들지요. 나뭇잎이 무성할 땐 잘 보이지 않다가 잎진 겨울이면 나뭇가지 사이에 달랑 남아 있는 게 보이지요. 그 지붕 없는 까치집을 보고 있으면 문득 비나 눈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일지요.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 까치라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어효선 (1925-) 시인이 무심히 지나치던 까치집 아래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군요. 2001.12.22(토)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정용원  금관  찬란한 빛살  눈이 어리어 바라보기 힘들구나.  임금님은 저걸 머리에 얹고  얼마나 무거웠을까?  내 운동모자보다  더 편했을까?  영락과 곡옥이  바르르 떨고 있구나.  뭣 때문에 떨고 있을까?    한 아이가 박물관 견학을 갔다가 화려한 금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군요. 저게 정말 금으로 만든 거라면 참 무거울 텐데 참 임금님들은 어떻게 저걸 쓰고 지내셨을까요. 금관에 매달려 바르르 떠는 영락(금관)과 곡옥(옥)이 무슨 말인가 전해 주는 듯하군요. 정용원(1944-) 시인이 역사와 대화하는 동심의 한 순간을 담았습니다. 12.24(월)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권오삼  연과 바람  하늘을 날던 연 하나  나뭇가지가 꼬옥 붙잡고  놓아주질 않습니다  멀리멀리 보내주고 싶은  바람만 애가 타는지  쏴아?  쏴아?  쉬지 않고 나뭇가지를  흔들어 댑니다.    바람 좋은 날 하늘을 날던 연이 그만 나뭇가지에 걸리고 말았네요. 연은 발버둥치지만, 나뭇가지의 심술이 대단합니다. 바람이 더 애가 타서 쉬지 않고 나뭇가지를 흔들어 봅니다. 권오삼(1943-)시인이 연 날리는 겨울날의 하늘을 시 한 편에 담았습니다.  2001.12.25(화)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문삼석2  도토리 모자  도토리 모자는  벗기면  안 돼.  까까머리  까까머리  놀릴 테니까.    떡갈나무과를 비롯해서 참나무과 나무의 열매를 이름하여 도토리라 하지요. 요즘은 숲이 멀리 있으니 도토리도 구경하기 힘들고 따라서 도토리를 잘 먹는 다람쥐도 자주 볼 수 없게 되었지요. 우둘두툴한 쪽과 매끄러운 쪽, 양쪽을 지닌 도토리 모양새로 문삼석(1942-) 시인이 동시 한 편을 빚었습니다. 까까머리, 까까머리, 하는 아이들의 놀림 말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2001.12.26(수)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박경용2  눈 오는 날  아, 아 아 소리치고 싶다.  날뛰며 까불고 싶다.  나에게 꼬리가 있다면  강아지 꼬리보다 더 바쁠 것이다.  더 설레일 것이다.  더 나부낄 것이다.  꼬리가 있대도  마침내는 붙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생일 같은 날.    눈발 날리면, 그 가벼운 눈발처럼 마음이 들뜨게 되지요. 마구 소리치며 달리고 싶어진답니다. 그저 날뛰며 까불고 싶어지는 눈 오는 날의 마음 설렘을, 박경용 (1940-)시인은 반갑다 꼬리치는 강아지 꼬리로 생동감 있게 표현해 냈지요. 12.27(목)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이옥용  탑  산꼭대기  조그만 탑  고개가  갸우뚱  쓰러질까  말까  생  각  중    유명한 산사의 여러 유적들을 둘러보고 나면, 여기저기 이름 모를 조그만 탑들이 눈에 띄지요. 그것들도 모두 누군가의 정성이 빚은 것일 테지만,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게 되지요. 그래도 이옥용(1957-)시인은 아이들 마음이 되어 그 허술하게 세워진 탑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갸우뚱해 보는군요. 쓰러질 듯 말 듯한 탑 모양새를 절로 흉내내는 움직임이지요. 2001.12.28(금)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이정석2  코끼리 등을 타고  코끼리 등을 타고  열대 숲속을 걸었다.  소걸음보다 더 느린  코끼리 걸음  서서히 시간이 느려졌다  나도 느릿느릿해졌다.  그때서야  내가 지나온 길을 보았다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알았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정석(1955-) 시인의 코끼리 등을 타고 잠시 사색해 보세요. 나를 돌아볼 겨를 없이, 남을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만 살고 있었던 내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제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2001.12.29(토)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박두순2  발자국  바닷가 보래밭에서  외줄기 발자국을 본다.  문득 무언가 하나  남기고 싶어진다.  바람이 지나고  물결이 스쳐  모든 흔적이 사라져도  자그만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자신이 살다 간 모습을 소박하게 그러나 조금은 또렷하게 남기고 싶어하는 마음을 욕심이라 할 수만은 없겠지요. 박두순(1950-) 시인이 바닷가 모래밭에 남은 외줄기 발자국을 보고 그럿을 알아차렸군요. 자, 이제 우리가 남길 발자국은 어떤 것일까요? 가만히, 자신을 닮은 흔적을 그려 보세요. 2001.12.31(월)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윤동주2  겨울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라미  달랑달랑  얼어요.    처마 밑에 다래다래 매달아 말린 시래기로 끓인 국을 먹어 보셨나요? 윤동주(1917-1945) 시인이 가난한 시절의 겨울 풍경을 그려 놓았습니다. 말이 지나간 자리에 동그랗게 얼어 붙은 말똥의 모습은 정겹기까지 하군요. 이 겨울을, 동심의 감각을 되찾아 이겨 나갑시다.  2002.1.4(금)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정채봉  고드름  개울가  바위 틈에 돋은 고드름을 따서  입을 헹군다  내 얼굴에  눈 코 입 귀가 생긴다    아마도 가장 깨끗한 물의 기운이 모여 고드름이 되었을 테지요. 그러기에 우리는 입이 시릴 줄 알면서도 그것을 따서 입에 넣고 하는 게지요. 고드름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을 정채봉 (1946-2001) 작가가 '눈 코 입 귀'가 새로 생기는 것으로 표현했군요. 요즘의 우리에게도 답답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깨어나게 할 이런 고드름이 필요합니다.  2002.1.5(토)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전병호  모과  봉지에 담아도  모과 향기는 새어나온다.  모과를 꺼내도  모과 향기는  봉지 속에 남는다.    적당히 꾸미거나 다른 사람 흉내를 낼 수도 있을 텐데 전혀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요.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자기 빛깔을 못 감추는 이런 사람을 단순하고 투박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겁니다. 더구나 남에게 본연의 향기를 어김없이 뿜어 주는 사람 앞에서는 마땅히 그 '독함, 단순함'을 벗삼는 편이 낫겠지요. 전병호(1953-)시인이 모과 향내의 그윽함을 기꺼이 즐기고 있습니다. 2002. 1.7(월)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김형경  정화수  첫 새벽  소반 위  샘터에서 길어 온  작은 하늘 하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초롱  초롱  별로 돋는  어머니 바람.    우리 곁에는 늘 생각할수록 눈물겨운 사람이 있지요. 이른 새벽 샘터에서 길어 온 작은 하늘에 오로지 가족들의 안위를 비시는 어머니가 바로 그분이지요. 김형경(1950-)시인은 어머니의 정성이 그 작은 하늘에 초롱초롱한 별로 돋는다고 노래했군요. 어머니의 바람의 말씀이 잔잔히 들려옵니다. 2002.1.8(화)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이연승  해를 파는 가게  거울 가게에는 거울 수만큼  하늘이 있습니다.  날마다  하늘을 파랗게 닦아 놓고  해를 팝니다.  손님들은 하늘 속에 비친  얼굴을 보고  해가 담긴 거울을  사 가지고 갑니다.    사람들은 거울 보기를 좋아하지요. 실제 자기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비치길 기대하면서요. 이연승(1938-1991) 시인의 '해를 파는 가게'의 거울에는 파란 하늘이 담겨 있군요. 하늘에 얼굴을 비춰 보고 해를 사 가는 손님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을 테지요.  2002.1.9(수)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제해만2  갈대  바람이 몰래 지나가려 해도  강대는 알아채고  휘파람을 휙휙 분다.  바람이 훌쩍 지나가고 나면  갈대는 서러움에  온몸으로 울음 운다.    겨울 바람이 지날 때면 허리를 휘며 드러누웠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갈대들을 본 적이 있지요? 그럴 때마다 갈대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제해만 (1944-1998) 시인이 만남의 반가움과 이별의 서러움을 차례로 읽어냈습니다. 우리는 진정 누구를 그토록 갈망하고 아쉬워할 수 있을까요? 2002.1.10 (목)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오순택2  저녁 눈  사락사락  누가  연필을 깎고 있다.  하얀 종이 위에  시를 쓰려나 보다.    고요한 들녘에 저녁 눈이 어둠과 함께 내립니다.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가 꼭 연필 깎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어느새 저녁 들녘은 하얀 종이를 펼쳐 놓은 듯 새하얀 눈으로 덮입니다. 오순택 (1942-) 시인이 눈 내리는 저녁 풍경을 보면서 연필을 깎아 시를 쓰려는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눈 위에 시를 쓰고 싶은 마음보다 순수해질 때가 없겠지요.  2002.1.11(금)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이무일  참새네 칠판  우리 집 담벽에  ㄱ, ㄴ, ㄷ, ㄹ,  일학년 꼬마들이  그려 놓은 글자들.  모이 찾아 담벽으로  날아온 참새들이  짹, 짹 짹 짹……  읽어봅니다.    이제 겨우 철자를 익힌 일학년 꼬마들이 담벽에 낙서를 해 놓았군요. 겨울 들녘에 먹이가 궁해지면서 모이 찾아 민가로 날아든 참새들이 마침 우리 집 담벽에 모였습니다. 이무일 (1940-1992) 시인은 참새들이 모이 찾는 소리를 꼬마들이 써 놓은 글자 읽는 소리로 재미나게 표현해내었지요. 참새들의 겨울나기 걱정이 우리 귀에는 한가롭게 들린답니다.  2002. 1. 14(월)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김영일  할머니 얘기  할머니 얘기는  긴긴 실꾸리.  풀어도 풀어도  다 못 푸는 실꾸리.    할머니의 팔을 베고 누워 옛날 얘기 듣던 때가 그립습니다. 구수하게 이어지는 할머니 얘기를 듣다듣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던 그때가 참 행복했다는 생각도 들지요. 그 긴긴 할머니의 얘기를, 김영일 (1914-1984) 시인은 풀어도 풀어도 다 못 푸는 실꾸리로 넌지시 견주었군요. 아마 긴 겨울 밤도 할머니 얘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거예요.  2002.1.15(화)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오은영  흉내  뒤뚱뒤뚱 걷는  아기를 보면  오리가 웃겠다  제 흉내 낸다고  뒤뚱뒤뚱 걷는  오리를 보면  아가가 토라지겠다  제 흉내 낸다고    남들이 제 흉내를 내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우연찮게도 모습이 같아 보일 때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뒤뚱뒤뚱 걷는 아가의 걸음마가 오리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는 것을, 오은영(1959-)시인이 아주 귀엽게 표현해냈군요. 그런데 아기 걸음걸이를 오리가 흉내 냈다니 아가가 토라질 만도 하겠군요. 2002.1.16(수)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이경애  눈꽃  소나무에 피어도 눈꽃  싸리 가지에 피어도 눈꽃  억새 줄기에 피어도 눈꽃  색깔도 하나  이름도 하나.  백두산에도  한라산에도  똑같이 피는 겨울 꽃  눈꽃.    세상의 나무들은 제각기 자기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이 내린 날은 그 모든 나무들이 일제히 색깔도 이름도 같은 꽃을 피우지요. 백두에서 한라까지 똑같이 피는 눈꽃을 보면서 이경애 (1950-) 시인이 갈등 없는 은혜로운 세상을 떠올려냈습니다.  2002.1.17(목)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최춘해2  연오랑과 세오녀  눈이 모자라게 펼쳐진 푸른 바다  수평선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꿈이 큰 연오랑과 세오녀는  바위 타고 꿈을 이뤘다.  우리 나라 가장 동쪽 제일 먼저 해 돋는 곳  동해를 향하여 두 손을 모으면  연오랑과 세오녀가 아니더라도  소원이 이뤄지겠다.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 앞에 섰습니다. 그 바다 앞에서 마음껏 꿈을 펼쳐봅니다. 가장 먼저 보는 아침 해를 향해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최춘해(1932-) 시인이, 꿈이 커서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 임금님 부부가 된 세오녀 설화에 견주어, 바다에서 아침을 맞는 신선한 느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002.1.19(금)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조명제  동백꽃  갯바람에  날린  불티  한 점.  바닷가 벼랑에  온통  버얼겋게  불을 지펴 놓았다.    바닷가 바람에 점 하나가 찍힐 때만 하더라도 누가 눈여겨 보았을까요. 그저 갯바람에 붉은 잡티가 날아가 붙은 거라고 여겼을 테지요. 그런데 어느 날 거기서 불이 확 번져 버렸군요. 아무도 끄지 않을 동백꽃이라는 불이지요. 그 앞에서 그저 모두들 조명제 (1954-)시인처럼 탄성만 지르고 있군요.  2002.1.21(월)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이상현2  햇살  눈밭에서 아이들이  햇살을 당긴다.  언 손을 모아  소리를 모아  모두 모두 매달려  발을 구르면  겨울 해가 풍선처럼  끌려 온단다.    아이들이 추위를 잊고 눈밭 속을 씩씩하게 뛰어다닙니다. 언 손을 호호 불며 큰 소리를 외치면서 놀다 보면 어느덧 온몸에 훈기가 돌지요. 이상현 (1940-) 시인은 눈밭에서 피어오르는 아이들의 훈기가 겨울 햇살을 당기는 일이라고 했군요. 건강한 아이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2002. 1. 22(화)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박남수  팽이  팽이는  누울 수도 없습니다.  팽이는  앉을 수도 없습니다.  팽이는 팽이는  날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엄마를 닮았을까요.  팽이는?    물이 쩡쩡 언 겨울 강가에 나아가 팽이를 돌려 본 적이 있나요? 비틀비틀 쓰러지려는 팽이를 팽이채로 후려쳐 되살려내는 재미가 그만이지요. 누울 수도 앉을 수도 더구나 날 수도 없는 팽이를 보고, 박남수 (1918-1994) 시인은 잠시도 쉴 틈 없이 서서 일하는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엄마는 무얼 하고 계시나요? 2002.1.24(목)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하청호2  눈길이 머문 자리에  꽃의 눈길이 머문 자리에 네가 있고  나비의 눈길이 머문 자리에 네가 있고  별빛, 달빛 머문 자리에도 네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러나 친구야, 정말 네가 좋은 건  내 눈길이 머문 자리에  네 해맑은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눈빛 속에 네 눈빛이 잠겼으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친한 친구를 멀리 떠나 보내고 나니 가슴이 텅빈 것처럼 허전합니다. 이제는 잊었겠지 싶은데도 어느새 그 친구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곤 한답니다. 하청호 (1943-) 시인이 정든 이와의 이별 뒤에 온 애절한 그리움을 '눈길'과 '눈빛'의 시어 변주로 노래합니다. 그래도 이런 그리움은 퍽 아름답지 않습니까?  2002.1.25(금)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설용수  좋아서 하는 말  이슬 먹은 장미 보며  ?조화 같구나.  바구니에 꽂힌 조화 보고  ?진짜 꽃 같다.  안개 퍼지는 산을 보며  ?동양화 같구나.  화선지에 그려진 풍경을 보고  ?진짜 마을 같다.    진짜 꽃을 보고 "조화 같구나" 하는데도 기분이 좋고, 조화를 보고 "진짜 꽃 같구나" 하는데도 또한 기분이 좋을 때가 있지요. 겉으로 표현된 말은 거짓인데도, 그것이 '좋아서 하는 말'일 때는 기쁨의 찬사가 되는 것이지요. 설용수(1952-) 시인이 그 말의 묘미를 꾸밈 없는 표현에 담았군요. 마음으로 하는 덕담이 인년 내내 펼쳐졌으면 좋겠네요. 2002.1.28(월)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윤이현  눈 내린 아침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동구 밖으로 멀어져 간  발자국 두 줄  바스락바스락  소리는 따라갔어도  두 줄 발자국은  의 좋게 남아 있네    밤새 쌓인 눈 위에 새겨진 두 줄 발자국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참 부지런한 그 사람은 이른 새벽 혼자서 바스락바스락 눈 밟는 소리와 친구하며 걸어 갔을 테지요. 윤이현(1941-) 시인이 발자국 모양에서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봤습니다. 하얀 눈 위의 발자국 두 줄이 정겹기만 합니다.  2002.1.29(화)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김소운2  싸락눈  하느님께서  진지를 잡수시다가  손이 시린지  덜  덜  덜  덜  자꾸만 밥알을 흘리십니다.    빗방울이 내리다가 갑자기 찬 공기에 얼어 눈이 된 것이 싸락눈입니다. 함박눈을 고대한 사람에게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기도 하지요. 땅에서 통통 뛰듯 떨어지는 걸 밥알인 줄 알고 모여드는 비둘기의 실망도 만만찮겠지요. 김소운 (1954-) 시인이 싸락눈을 보며 추운 날 하느님의 허술한 식사 시간을 그려 보았네요.  2002. 1.31(목)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권영상2  들풀  방금  손수레가  지나간 자리.  바퀴에 밟힌 들풀이  파득파득  구겨진 잎을 편다.    길바닥에 돋아난 들풀의 운명은 참 기구하지요. 그 많은 삶의 터전을 놔 두고 어쩌다 이런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는지요. 손수레가 무심히 들풀을 밟고 지나갑니다. 그때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구겨진 잎을 펴며 파득파득 몸을 일으키는 들풀의 모습에서 권영상(1955-) 시인은 생명의 모짊을 읽어 냅니다.    2002.2.1(금)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출처] 우수 동시와 해설|작성자 옥토끼
295    다시 음미해보는 현대시(클릭...) 댓글:  조회:5548  추천:0  2015-05-20
  - 가-   산상의 노래(조지훈)       산에 대하여(신경림) 가구의 힘(박형준)   산에 언덕에(신동엽) 가난한 사랑 노래(신경림)   산이 날 에워싸고(박목월) 가는길(김소월)   산유화(김소월) 가는 길(김광섭)   산 1번지(신경림) 가을비(도종환)   살구꽃 핀 마을(이호우) 가을에(김명인)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오규원) 가을에(정한모)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박인환) 가을의 기도(김현승)   살아 있는 날은(이해인) 가재미(문태준)   삼남에 내리는 눈(황동규) 가정(박목월)   상리과원(서정주) 가정(이상)   상하(박목월) 가즈랑집(백석)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간(윤동주)   상행(김광규)   간격(안도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김춘수) 갈대(신경림)   새(박남수) 감초(김명수)   새(김지하) 강2(박두진)   새(천상병) 강강술래(이동주)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강강술래(김준태)   새벽1(정한모) 강우(김춘수)   새벽편지(곽재구) 개봉동과 장미(오규원)   샘물이 혼자서(주요한) 개화(이호우)   생명(김남조) 거문고(김영랑)   생명의 서(유치환) 거산호Ⅱ(김관식)       거울(이상)   생의 감각(김광섭) 거울(박남수)   서시(윤동주) 거짓 이별(한용운)   서울길(김지하) 검은 강(박인환)   서울꿩(김광규) 겨울 강에서(정호승)   서해(이성복)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황지우)   서해상의 낙조(이태극) 겨울 노래(오세영)   석류(안도현) 겨울 들녘에 서서(오세영)   석문(조지훈) 겨울 바다(김남조)   석상의 노래(김관식) 겨울 숲에서(안도현)   석양(백석) 겨울일기(문정희)   선운사에서(최영미) 견우의 노래(서정주)   선제리 아낙네들(고은) 결빙의 아버지(이수익)   선한 나무(유치환) 고개(이시영)   설날 아침에(김종길) 고고(김종길)   설야(김광균) 고목(김남주)   설일(김남조) 고재국(최두석)   섬(정현종) 고층 빌딩 유리창닦이의 편지(김혜순)       고풍의상(조지훈)   섬진강1(김용택) 고향(백 석)     성묘(고은) 고향(정지용)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고향길(신경림)   성에꽃(최두석) 고향 앞에서(오장환)   성탄제(김종길) 과목(박성룡)   성탄제(오장환) 광야(이육사)   성호부근(김광균)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이문재)   세상의 나무들(정현종) 교목(이육사)   소금 바다로 가다(김명인) 교외Ⅲ(박성룡)   소나무에 대한 예배(황지우) 구두(송찬호)   소년에게(이육사) 구두 한 켤레의 시(곽재구)   손(최두석) 국수(백석)   손무덤(박노해) 국토서시(조태일)   송신(신동집) 국화 옆에서(서정주)   쇠를 치면서(정희성) 국경의 밤(김동환)   수라(백석) 귀가(최두석)   수색으로 가며(고형렬) 귀고(유치환)   수정가(박재삼) 귀뚜라미(나희덕)   수정가(박재삼) 귀뚜라미(황동규)   숲(강은교) 귀천(천상병)   숲(김진경) 귀촉도(서정주)   수철리(김광균) 그 나무(김명인)       그 날(이성복)   쉽게 쓰여진 시(윤동주) 그 날이 오면(심훈)   슬픈 구도(신석정) 그릇1(오세영)   슬픔으로 가는 길(정호승) 그리움(이용악)   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문정희)   승무(조지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신석정)   시1(김춘수) 그 방을 생각하며(김수영)   시법(정진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나희덕)   식목제(기형도) 그 샘(함민복)     신기료 할아버지(김창완) 그 여름의 끝(이성복)   신록(이영도) 그의 반(정지용)   신부(서정주) 금강(신동엽)   십자가(윤동주) 기항지 1(황동규)   싸늘한 이마(박용철) 길(김소월)   쌍봉낙타(김승희) 길(김기림)    - 아 - 길(윤동주)   아마존의 수족관(최승호) 길(정희성)   아버지의 마음(김현승) 깃발(유치환)   아우의 인상화(윤동주)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신석정) 꽃(김춘수)   아침 이미지(박남수) 꽃(박두진)   안개(기형도) 꽃(이육사)   알 수 없어요(한용운) 꽃덤불(신석정)   압해도(노향림) 꽃밭의 독백(서정주)   양심의 금속성(김현승) 꽃을 위한 서시(김춘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꽃잎 절구(신석초)   어떤 귀로(박재삼) 꽃처럼 웃을 날 있겠지요(김용택)   어떤 출토(나희덕) 꽃 피는 시절(이성복)   어린 게의 죽음(김광규) 꿈 이야기(조지훈)   어머니(정한모)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김영랑)   어머니1(이성복) - 나 -   어머니 곁에서(조태일)    나그네(박목월)   어머니의 그륵(정일근)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황동규)   어머니의 물감상자(강우식)    나는 별아저씨(정현종)   어머니의 총기(고진하) 나는 왕이로소이다(홍사용)   어서 너는 오너라(박두진) 나룻배와 행인(한용운)   얼은 강을 건너며(정희성) 나목(신경림)   엄마 걱정(기형도) 나무(박목월)   여승(백석) 나무를 위하여(신경림)   여승(송수권) 나뭇잎 하나(김광규)   여우난 곬족(백석) 나비와 광장(김규동)   연륜(김기림) 나비의 여행(정한모)   연시(박용래) 나의 집(김소월)       나의 침실로(이상화)   연탄 한 장(안도현) 나의 칼 나의 피(김남주)   오감도-제1호(이상) 낙엽(복효근)   오랑캐꽃(이용악) 낙엽끼리 모여 산다(조병화)   오렌지(신동집) 낙타(김진경)   오월(김영랑) 낙화(조지훈)   오적(김지하) 낙화(이형기)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도종환) 난초(이병기)   와사등(김광균)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김종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 낡은 집(이용악)   외인촌(김광균) 남사당(노천명)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이용악)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백석)   우리가 눈발이라면(안도현)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상용)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납작납작-박수근 화법을 위하여(김혜순)   우리나라 꽃들에겐(김명수) 내 마음을 아실 이(김영랑)   우리나라 풀이름 외기(송수권)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최승호)   우리 동네(홍윤숙) 너는 피를 토하는 슬픈 동무였다(이용악)   우리 동네 구자명 씨(고정희) 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우물(정호승) 너를 사랑한다(강은교)   운동(이상) 너에게(신동엽)   울릉도(유치환) 너에게 묻는다.(안도현)   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재삼) 노동의 새벽(박노해)   원시(오세영) 노래와 이야기(최두석)   월명(박제천) 노정기(이육사)   월훈(박용래) 녹을 닦으며-공초14(허형만)   위독(이승훈) 논개(변영로)   유리창(정지용)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에(한용운)   윤사월(박목월) 농무(신경림)   율포의 기억(문정희)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신동엽)   은수저(김광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김종삼)   은행나무(곽재구) 누룩(이성부)   의자 · 7(조병화)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김영랑)   이 가문 날에 비구름(김지하) 눈(김수영)   이름(이시영) 눈길(고은)   이별가(박목월) 눈물(김현승)   이별노래(정호승) 눈 오는 밤에(김용호)   이별은 미의 창조(한용운) 눈 오는 지도(윤동주)   이 사진 앞에서(이승하) 눈이 내리느니(김동환)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오규원) 느릅나무에게(김광규)   20년 후의 가을(곽재구) 능금(김춘수)   이중섭4(김춘수) 님의 침묵(한용운)      이중섭의 소(이대흠) - 다 -   일월(유치환) 다리 우에서(이용악)   임께서 부르시면(신석정) 다부원에서(조지훈)   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다시 밝은 날에(서정주)   입추(김현구) 달밤(이호우)     달.포도.잎사귀(장만영)     담쟁이(도종환)     답십리(민영)   - 자 - 당나귀 길들이기(오종환)   자동문 앞에서(유하) 당신을 보았습니다(한용운)   자모사(정인보) 대기 왕고모(고은)   자수(허영자) 대설주의보(최승호)   자야곡(이육사) 대숲 아래서(나태주)   자연(박재삼) 대장간의 유혹(김광규)   자화상(서정주) 대추나무(김광규)   자화상(윤동주)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대숲바람 소리(나태주)   작은 부엌 노래(문정희) 뎃생(김광균)   작은 짐승(신석정) 도다리를 먹으며(김광규)   장롱이야기(박형준) 도봉(박두진)   장수산(정지용) 독을 차고(김영랑)   장자를 빌려(신경림)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김영랑)   장작패기(이수익) 돌의 노래(박두진)   재로 지어진 옷(나희덕) 돌팔매(신석초)   저녁길(김광규) 동승(하종오)   저녁 눈(박용래) 동천(서정주)   저녁에(김광섭) 동해 바다-후포에서(신경림)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들국(김용택)   적막강산(백석) 들길에 서서(신석정)   절정(이육사) 들판의 빈 집이로다(정진규)   접동새(김소월) 등산(오세영)   정념의 기(김남조) 딸그마니네(고은)   정동골목(장만영) 땅끝(나희덕)   정천한해(한용운) 때밀이수건(최승호)   조국(정완영) 떠나가는 배(박용철)   조그만 사랑 노래(황동규)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정현종)   종(설정식)   또 기다리는 편지(정호승)   종로 5가(신동엽) 또 다른 고향(윤동주)   종소리(박남수)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유치환)   주막에서(김용호)       죽도 할머니의 오징어(유하) - 라~마 -   쥐(김광림)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장정일)   즐거운 일기(최승자) 마른 풀잎(유경환)   즐거운 편지(황동규) 마음(김광섭)   지리산 뻐꾹새(송수권) 만술아비의 축문(박목월)   지비2(이상) 말(정지용)   직녀에게(문병란) 머슴 대길이(고은)   진달래꽃(김소월) 먼 후일(김소월)   진달래 산천(신동엽) 멀리 있는 무덤(김영태)   질경이(하종오) 멸치(김기택)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집오리는 새다(정일근) 모순의 흙(오세영)   - 차 - 목계장터(신경림)   찬밥(문정희) 목구(백 석)   참깨를 털면서(김준태) 목마와 숙녀(박인환)   참회록(윤동주) 목숨(김남조)   처서기(박성룡) 목숨(신동집)   처음 안 일(박두순) 못 위의 잠(나희덕)   철원평야(최두석) 묘지송(박두진)   청노루(박목월) 무등(황지우)   청산도(박두진) 무등을 보며(서정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양성우) 무심(김소월)   청포도(이육사) 무화과(김지하)   초록 기쁨(정현종) 문의 마을에 가서(고은)   초토의 시8(구상) 물구나무서기(정희성)   초혼(김소월) 물 끓이기(정양)   추억(김기림) 물통(김종삼)   추억에서(박재삼) 민간인(김종삼)   추운 산(신대철) 민들레꽃(조지훈)   추일서정(김광균)       추천사(서정주) 바   춘설(정지용) 바다1(정지용)   춘향유문(서정주) 바다에서(김종길)   출가하는 새(황지우) 바다와 나비(김기림)   치자꽃 설화(박규리) 바다의 층계(조향)   침향(서정주)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보습...(김소월)       바라춤(신석초)   카 ~ 파 바람부는 날(박성룡)   커피 한 잔(오규원) 바람에게(유치환)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바람의 집-겨울판화1(기형도)   파도(김현승) 바위(유치환)   파 냄새 속에서(마종하) 바퀴벌레는 진화 중(김기택)   파도타기(정호승) 발열(정지용)   파랑새(한하운) 발효(최승호)   파밭가에서(김수영) 밤(이성부)   파장(신경림) 밤바다에서(박재삼)   파초(김동명) 밤비1(이성교)   팔원-서행시초·3(백석) 밥 먹는 법(정호승)   팽나무 쓰러, 지셨다(이재무) 방랑의 마음(오상순)   포스터 속의 비둘기(신동집) 배추의 마음(나희덕)   폭포(김수영) 백자부(김상옥)   폭포(이형기) 버팀목에 대하여(복효근)   푸른 옷(김지하) 벼(이성부)   푸른 하늘을(김수영)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하종오)   풀(김수영) 별국(공광규)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이용악) 별리(조지훈)   풀잎 단장(조지훈) 별 헤는 밤(윤동주)   풍장1(황동규) 병에게(조지훈)   프란츠 카프카(오규원) 병원(윤동주)   플라타나스(김현승) 보리피리(한하운)   피보다 붉은 오후(조창환) 봄(이성부)   피아노(전봉건) 봄비(이수복)       봄비(변영로)   하 봄은(신동엽)   하관(박목월) 봄은 간다(김억)   하루살이(김수영) 봄은 고양이로다(이장희)   하류(이건청) 봄을 맞는 폐허에서(김해강)   하숙(장정일) 봉황수(조지훈)   한(박재삼) 부르도자 부르조아(최승호)   한계령을 위한 연가(문정희) 부치지 않은 편지(정호승)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정희성) 북(김영랑)   한역(권환) 북어(최승호)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박남수) 북청 물장수(김동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김남주) 북 치는 소년(김종삼)   항해일지1-무인도를 위하여(김종해) 분수(김춘수)   향수(정지용) 분수(김기택)   향아(신동엽) 불놀이(주요한)   향현(박두진) 비(정지용)   해(박두진) 비에 대하여(신경림)   해마다 봄이 되면(조병화) 비화하는 불새(황지우)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유치환) 빈집(기형도)   해바라기의 비명(함형수) 빈집(박형준)   해에게서 소년에게(최남선) 빠삐용-영화사회학(유하)   해일(서정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허준(백석) 뿌리에게(나희덕)   홀린 사람(기형도) 사   화사(서정주) 사는 일(나태주)   화살(고은) 사라지는 동물들(황동규)   휴전선(박봉우)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정현종)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사령(김수영)   흙 한 줌과 이슬 한 방울(김현승) 사리(유안진)   흥부 부부상(박재삼) 사물의 꿈1-나무의 꿈(정현종)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김광규) 사슴(노천명)   흰 바람벽이 있어(백석) 사월(김현승)       사평역에서(곽재구)       사향(김상옥)       삭주구성(김소월)       산(김광림)       산(김광섭)       산도화(박목월)       산문에 기대어(송수권)                   한국 현대시 작가별 목록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ㅎ                                                       [가]    올해 댜른 다리 (김 구)        우후요(雨後謠) (윤선도)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김상헌)    이런들 엇더하며 (이방원)    가마귀 눈비 마자(박팽년)    이 몸이 주거 가셔 (성삼문)    가마귀 싸호는 골에(정몽주 어머니)    이 몸이 주거 주거 (정몽주)    가마귀 검다 하고(이 직)    이시렴 브디 갈따 (성종)    간밤의 부던 바람에 (유응부)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이조년)    간 밤의 우던 여흘 (원호)     이화우(梨花雨) 흣뿌릴 제 (계랑)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맹사성)    입암(立巖) (박인로)    검으면 희다 하고 (김수장)  [자]    견회요(윤선도)    자경가(박인로)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이이)    잔들고 혼자 안자 (윤선도)    곳이 진다 하고 (송 순)    장검(長劒)을 빠혀 들고 (남이)    공산(空山)에 우는 접동 (박효관)    장백산에 기를 꽂고 (김종서)    공산(空山)이 적막한데 (정충신)    장부로 삼겨 나셔 (김유기)    구레 벗은 천리마를 (김성기)    재너머 성권롱 집에 (정철)    구룸이 무심(無心)탄 말이 (이존오)    전가팔곡(이휘일)    국화(菊花)야 너는 어이 (이정보)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조 헌)    금생여수(金生麗水)ㅣ라 한들(박팽년)    지아비 밧갈나 간 데 (주세붕)    길 우희 두 돌부처(정철)    짚방석 내지 마라 (한 호)    꿈에 다니는 길이(이명한)        꿈에 뵈는 님이 (명옥)  [차]  [나]    천만 리 머나먼 길에 (왕방연)    나모도 병이 드니(정 철)    철령(鐵嶺) 노픈 봉(峰)에 (이항복)    내 마음 버혀내여(정 철)    청강에 비 듯는 소리 (봉림대군)    내 살이 담박한 중에(김수장)    청량산 육륙봉을 (이황)    내 언제 무신하여(황진이)    청산도 절로 절로 (김인후)    내해 죠타 하고 (변계량)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황진이)    냇가의 해오랍아(신흠)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ㅣ야 (황진이)    노래 삼긴 사람(신흠)    청석령(靑石嶺) 디나거냐 (봉림대군)    녹양(綠楊)이 천만사(千萬絲)ㅣ들(이원익)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임 제)    녹이상제(綠이霜蹄) 살지게 먹여(최 영)    초암(草庵)이 적료한데 (김수장)    녹초청강상(綠草晴江上)에(서익)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월산대군)    농가(위백규)    춘산(春山)에 눈 녹인 바람 (우 탁)    농암(聾巖)에 올아 보니(이현보)    춘산(春山)의 불이 나니 (김덕령)    높으나 높은 나무에(이양원)        눈 마자 휘어진 대를(원천석)        님 글인 상사몽(相思夢)이(박효관)  [타]  [다]    탄로가 (신계영)    단가 육장 (이신의)    태산(泰山)이 놉다 하되 (양사언)    대초볼 불근 골에 (황 희)  [파]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이 황)    풍상(風霜)이 섯거친 날에(송순)    동기로 세 몸 되어 (박인로)    풍설(風雪) 석거친 날에 (이정환)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풍진(風塵)에 얽매이여 (김천택)    동창(東窓)이 발갓느냐 (남구만)    풍파(風波)에 놀란 사공(沙工) (장 만)    두류산 양단수를 (조 식)        땀은 듣는대로 듣고(위백규)      [마]  [하]    마음아 너는 어이 (서경덕)    하우요(윤선도)        하하 허허 한들(권섭)    마음이 어린 후(後)ㅣ니(서경덕)    한거십팔곡(권호문)    만흥 (윤선도)    한 손에 막대 잡고 (우 탁)    말 업슨 청산(靑山)이요(성혼)    한산섬 달 발근 밤의 (이순신)    묏버들 갈해 것거 (홍랑)    한식(寒食) 비 갠 후(後)에 (김수장)  [바]        바람이 눈을 모라 (안민영)    홍진(紅塵)을 다 떨치고 (김성기)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박인로)    훈민가(訓民歌) (정철)    방(房) 안에 혓는 촉(燭) 불 (이 개)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원천석)    백설(白雪)이 자자진 골에 (이 색)        벼슬을 저마다 하면 (김창업)        북창(北窓)이 맑다커늘 (임 제)        빈천을 팔랴 하고(조찬한)    [사]  [ 사설시조 ]    사랑이 거즛말이 (김상용)    갓나희들이 여러 층이오레    삭풍(朔風)은 나모 긋테 불고 (김종서)    개를 여남은이나    산은 옛 산이로되(황진이)    개야미 불개야미    산촌(山村)에 밤이 드니 (천 금)    굼벙이 매암이 되야    삼동(三冬)에 뵈옷 닙고 (조식)    귀또리 저 귀또리    삿갓세 도롱이 닙고 (김굉필)    나모도 바회돌도 업슨 뫼헤    샛별 지자 종다리 떳다(이재)    논밭 갈아 기음 매고    서검(書劒)을 못 일우고 (김천택)    님 그려 겨오 든 잠에    선인교(仙人橋) 나린 물이 (정도전)    님으란 회양금성(이정보)    솔이 솔이라 하니 (송이)    님이 오마 하거늘    수양산 바라보며 (성삼문)    대천 바다 한가운데    십년을 경영(經營)하여 (송 순)    댁들에 동난지이 사오        두터비 파리를 물고         떳떳 상 평할 평~        말(馬)이 놀나거늘        믈 아래 그림자 지니   [아]    바람도 쉬어 넘난 고개    아해 제 늘그니 보고 (신계영)    발가버슨 아해ㅣ들리    어리고 셩근 매화(梅花) (안민영)    서방님 병 들여 두고(김수장)    어부가(漁夫歌) (이현보)    설월(雪月)이 만창(滿窓)한데        싀어마님 며느라기 ~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윤선도)    어이 못 오던가    어이 얼어 잘이 (한 우)    어흠 아 긔 뉘옵신고    어져 내 일이야 (황진이)    창 내고쟈 창을 내고쟈    엊그제 버힌 솔이 (김인후)    창(窓) 밧기 어룬어룬하거늘    오동에 듯는 빗발 (김상용)        오륜가 (주세붕)    천세(千世)를 누리소셔    오백년(五百年) 도읍지를 (길 재)    청천에 떠서 울고 가는 외기러기        한숨아 세한숨아    오우가(윤선도)    한 잔 먹세 그려 (정철)            [고대가요]   [악장] 구지가 / 구간 등 용비어천가 / 정인지 외 2인 공무도하가 / 백수광부의 아내 신도가 / 정도전 황조가 / 고구려 유리왕 감군은 / 미상 해가(사) / 미상 월인천강지곡 정읍사 / 행상인의 아내       [향가]   [민요 및 무가] 서동요(薯童謠) / 서동 강강술래 혜성가(彗星歌) / 융천사 논매기 노래 풍 요(風謠)  / 사녀들(양지스님) 밀양 아리랑 원왕생가(原往生歌) / 광덕 바리데기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 득오 베틀 노래 헌화가(獻花歌)  / 어느 노인 성조푸리 원가(怨歌) / 신충 시집살이 노래 도솔가(도率歌) / 월명사 아리랑 타령 제망매가(祭亡妹歌)  / 월명사 이어도 타령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 충담사 잠노래 안민가(安民歌) / 충담사 정선 아리랑_1 도천수관음가(燾千手觀音歌) / 희명 정선 아리랑_2 우적가(遇賊歌) / 영재 진주난봉가 처용가(處容歌) / 처용     [속요]   [한시] 동동(動動) 강촌(江村) / 두보 가시리 고시(古詩)8 / 정약용 사모곡(思母曲) 곡자(哭子) / 허난설헌 쌍화점(雙花店) 구우(久雨) / 정약용 서경별곡(西京別曲) 단종어제자규루시 / 단종 청산별곡(靑山別曲) 도중(途中) / 김시습 상저가(相杵歌) 독서유감 / 서경덕 이상곡(履霜曲) 등악양루(登岳陽樓) / 두보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만보(晩步) / 이황 정석가(鄭石歌) 몽혼(夢魂) / 숙원이씨 유구곡(維鳩曲) 무어별(無語別) / 임제 정과정곡(鄭瓜亭曲) / 정서 무제(無題) / 김병연     보리타작(타맥행) / 정약용   [가사] 보천탄에서 / 김종직 고공가 / 허전 봄비 / 허난설헌 고공답주인가 / 이원익 부벽루 / 이색 관동별곡 / 정철 불일암 인운스님에게 / 이달 관등가 / 미상 빈교행 / 두보 규원가 / 허난설헌 빈녀음 / 허난설헌 농가월령가 / 정학유 사리화 / 이제현 누항사 / 박인로 사청사우 / 김시습 덴동어미화전가 / 미상     만분가 / 조위 사친 / 허난설헌 만언사 / 안조원(환)     면앙정가 / 송순 산거(山居) / 이인로 명월음 / 최현 산민(山民) / 김창협 봉선화가 / 미상 산중문답(山中問答) / 이백 북찬가 / 이광명 삿갓을 읊다(詠笠) / 김병연 사미인곡 / 정철 송인  / 정지상 상사별곡 / 미상 습수요 / 이달 상춘곡 / 정극인 안악성을 지나며 / 김병연 선상탄 / 박인로 야청도의성 / 양태사 성산별곡 / 정철 여수장우중문시 / 을지문덕 속미인곡 / 정철 영반월(詠半月) / 황진이 연행가 / 홍순학 영산가고(詠山家苦) / 김시습 용부가 / 미상 오관산 / 문충(이제현 한역) 우부가 / 미상 용산마을 아전 / 정약용 월령상사가 / 미상 유객(有客) / 김시습 유산가 / 미상 읍향자모 / 신사임당 일동장유가 / 김인겸 잠령민정(蠶嶺閔亭) / 임제 춘면곡 / 미상 전가(田家) / 강희맹 탄궁가 / 정훈 절명시  / 황현 형장가 / 미상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 최치원   창의시 / 최익현    촉규화(蜀葵花) / 최치원 동심가 / 이중원 추야우중 / 최치원 애국하는 노래 / 이필균 춘망 / 두보   탐진촌요 / 정약용       [출처] 한국 현대시 모음 및 해설 (외 고시조 고전시가)|작성자 옥토끼
294    다시 읊어보는 유명한 시모음(클릭해 보기) 댓글:  조회:3999  추천:0  2015-05-20
유명한 시인의 시모음               강우식  어머니의 물감상자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고  은  눈길  머슴 대길이  문의 마을에 가서  자작나무숲으로 가서  화살   곽재구  계단  사평역에서  새벽 편지   기형도  가을무덤  엄마걱정  안개  식목제   김광규  상행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균  노신  설야  시인  와사등  추일서정   김광섭  변두리  성북동 비둘기  저녁에  해바라기   김기림  바다와 나비  연륜   김남조  생명  설일  정념의 기   김남주  시인은 모름지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동환  국경의 밤  산넘어 남촌에는  북청 물장수   김명수  하급반교과서 김명인  겨울의 빛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수영  눈  사령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  폭포  풀   김억     봄은 간다   김영태  멀리 있는 무덤   김종길  성탄제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민간인   김준태  참깨를 털며   김지하  둥굴기 때문에  무화과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초파일 밤  타는 목마름으로  푸른 옷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분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현승  가을의 기도  눈물  아버지의 마음  흙 한 줌 이슬 한 방울   김혜순  납작납작 - 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노천명  자화상  사슴   도종환  가을비  담쟁이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접시꽃 당신  흔들리면서 피는 꽃   문병란  직녀에게   박남수  아침 이미지   박두진  도봉  묘지송  어서 너는 오너라   박목월  나그네  나무  난   박봉우  휴전선  나비와 철조망   박양균  꽃   박용철  떠나가는 배   박재삼  수정가  울음이 타는 가을강  추억에서  흥부 부부상   박형준  장롱 이야기   백  석   고향  나와 나타샤화 흰 당나귀  수라  여승  팔원  흰 바람 벽이 있어             백석의 시어사전   복효근  춘향의 노래   서정주  견우의 노래  무등을 보며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추천사  춘향 유문   송수권  산문에 기대어   송찬호  구두   신경림  가난한 사랑의 노래  갈대  나목  나의 신발이  농무  목계 장터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너에게  봄은  산에 언덕에   신동집  오렌지   신석정  꽃덤불  슬픈 구도  어느 지류에 서서  임께서 부르시면   심훈     그 날이 오면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고추밭  너에게 묻는다  모닥불  연탄 한 장  우리가 눈발이라면   양성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오규원  개봉동과 장미  프란츠 카프카   오세영  그릇1   오장환  고향 앞에서  여수   유치환  깃발   바위  일월   유하     생(生)   윤동주  간  길  또 다른 고향  서시  쉽게 씌어진 시  십자가  아우의 인상화 참회록   이병기  매화2   박연 폭포   이상     거울  운동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성부  벼   이승하  이 사진 앞에서   이시영  마음의 고향6 - 초설 -   이용악  그리움   낡은 집  다리 위에서  오랑캐꽃  전라도 가시내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육사  교목   꽃  노정기  절정  청포도   이한직  낙타   이해인  살아 있는 날은   이형기  낙화  폭포   이호우  개화   임  화  우리 오빠와 화로  자고 새면   전봉건  피아노   정  양  참숯   정지용  삽사리  인동차  장수산1  향수   정한모  가을에  몰입   정호승  겨울 강에서  또 기다리는 편지  수선화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폭풍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조지훈  마음의 태양  병에게  봉황수  승무   조태일  가거도   주요한  불놀이   천상병  귀천  나의 가난은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최두석  노래와 이야기  성에꽃   최승호  북어   한용운  나의 노래  님의 침묵  당신을 보았습니다  찬송  타고르의 시'Gardenisto'를 읽고   한하운  자화상  전라도 길  파랑새   함민복  긍정적인 밥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      
293    현대시 100년, 애송시 100편 댓글:  조회:6878  추천:0  2015-05-18
  [애송시 100편 - 제1편]  해- 박두진          [현대시 100편-2편]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 일러스트=권신아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꺾임이 없는 ‘둥근 곡선’의 자세가 풀의 미덕이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이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이변을 꿈꾸지 않는다. 제 몸이 무너지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세운다. 풀은 솔직한 육필이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새날이 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곤란은 어제의 곤란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만 명의 적이 와도 무서움이 없으며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자존(自尊)과 자립(自立)의 에너지가 우리의 자성(自性)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일어서고 있다는 믿음, 넓고 큰 세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믿음, 우리는 이 다짐으로 새날을 살아야 한다. 눈사태를 뚫고 산정(山頂)을 찾아가는 산악인처럼.   타계한 해에 발표된 ‘풀’은 김수영(1921~1968)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이기도 하다. 올해로 40주기를 맞은 김수영은 전위적 모더니즘으로, 4·19 혁명 이후에는 참여시(詩)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시는 사람들 가슴 속에 눕고 울고 일어서며 푸르게 살아 있다.     [애송시 100편 - 제3편]  남해 금산 -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일러스트=잠산   돌 속에 묻힌 한 여자의 사랑을 따라 한 남자가 돌 속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돌의 연인이고 돌의 사랑에 빠졌음에 틀림없다. 그 돌 속에는 불이 있고, 목마름이 있고, 소금이 있고, 무심(無心)이 있고, 산 같은 숙명이 있었을 터. 팔다리가 하나로 엉킨 그 돌의 형상을 ‘사랑의 끔찍한 포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데 왜, 한 여자는 울면서 돌에서 떠났을까? 어쩌자고 해와 달은 그 여자를 끌어주었을까?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한 남자를 남긴 채. 돌 속에 홀로 남은 그 남자는 푸른 바닷물 속에 잠기면서 부풀어간다. 물의 깊이로 헤아릴 길 없는 사랑의 부재를 채우며. 그러니 그 돌은 불타는 상상을 불러일으킬밖에. 그러니 그 돌은 매혹일 수밖에.   남해 금산, 돌의 사랑은 영원이다. 시간은 대과거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넘나들고, 공간은 물과 돌의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안(시작)도 없고 밖(끝)도 없는 그곳에서 시인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심연으로 잠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의 금산(錦山)에 가보면 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相思巖)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의 고통 속에서도 요지부동으로 서로를 마주한 채 뿌리를 박고 있는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 안다.   모든 사랑은 위험하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어긋난 사랑의 피난처이자 보루가 문득 돌이 되어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을, 어쩌면 한 번은 있을 법한 사랑의 깊은 슬픔이 저토록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남해 금산’에서 배웠다. 모든 문을 다 걸어 잠근, 남해 금산 돌의 풍경 속. 80년대 사랑법이었다.   80년대 시단에 파란을 일으킨 이성복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는, 기존의 시 문법을 파괴하는 낯선 비유와 의식의 초현실적 해체를 통해 시대적 상처를 새롭게 조명했다. ‘남해 금산’은 그러한 실험적 언어가 보다 정제된 서정의 언어로 변화하는 기점에 놓인 시다.      [애송시 100편 - 제4편]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일러스트=잠산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반 세기 동안이나 그는 우리말을 정갈하게 빚었고 우리말의 숨결을 세세하게 보살펴 고아(高雅)하게 했다. 놀랍게도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이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그의 데뷔작이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과 ‘편지’ 등에서 낭송되어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 제목도 ‘즐거운 편지’였다고 한다. 이제 이 시는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다. 만남과 이별의 회전 속도가 이처럼 빠른 시대에 이 시는 왜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왜 여전히 막막하게 하는가. 헤어져 돌아가던 옛사랑의 뒷모습을 보게 하는가.   하늘이 먹먹하게 어두워지고 주먹눈이 막 내리는 날이면 어디 먼 산골이나 바닷가 민박집에라도 가고 싶어진다. 작은 넝쿨에 말라붙는 붉은 열매 같은 눈빛을 하고서 눈이 내리는 그 시간을 살고 싶어진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설원과 설원 위를 유행(遊行)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멀리 두고 온 사람을 ‘가까스로’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시간에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을 떠올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잊혀진 듯 살 것이다. 폭설에 갇힌 순한 산짐승처럼 우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이별의 말은 나의 가슴에서 깨끗하게 씻어낼 것이다. 겨울 하늘에 뜬 달이 천강(千江)을 비추어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나의 사랑을 다시 받아 안는 날이 와도 내가 아직 저 산골짜기 깊은 산막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하는 그런 아주 짧은 후일에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애송시 100편 - 제5편]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일러스트=권신아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애송시 100편 - 제6편] 서정주 '冬天(동천)'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     지난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일러스트=잠산 겨울 밤하늘을 올려 본다. 얼음에 맨살이 달라붙듯 차갑고 이빨은 시리다. 문득 궁금해진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은 왜 한천(寒天)에 사랑의 일과 사랑의 언약과 사랑의 얼굴을 심어 두었을까. 손바닥으로 쓸어보아도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그곳에 왜 하필 사랑을 심어 두었을까. 매서운 새조차 '비끼어 가'는 사랑의 결기를 심어 두었을까.   생심(生心)에 대해 문득 생각해본다. 처음으로 마음이 생겨나는 순간을 생각해본다. 무구한 처음을, 손이 타지 않아서 때가 묻지 않은 처음을. 부패와 작파가 없는 처음을. 신성한 처음을. 미당이 한천을 염두에 둔 것은 처음의 사랑과 처음의 연민과 처음의 대비와 처음의 그 생심이 지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어 놨'다고 한 까닭도 생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는다는 것은 생육(生育)한다는 것 아닌가. 여리디 여린 것, 겨우 자리 잡은 것, 막 숨결을 얻은 것, 젖니 같은 것 이런 것이 말하자면 처음이요, 생양해야 할 것들 아닌가. 미당은 초승달이 점점 충만한 빛으로 나아가듯 처음의 사랑 또한 지속되고 원만해지기를 기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당의 시에는 생명 없는 것을 생장시키는 독특한 영기(靈氣)가 서려 있다. 그는 시 '첫사랑의 詩'에서 '초등학교 3학년때 /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 너무나 좋아해서요. /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 그러면서 산에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 국화밭에 놓아 두곤 /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돌을 주워 와서 물을 주어 길렀듯이 이 시에서도 미당은 '고은 눈썹'을 생장시키는 재기를 보여준다.   미당의 시에는 유계(幽界)가 있다. 그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며 황홀을 노래했지만 그는 우주의 생명을 수류(水流)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흘러가되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운행에서 그는 목숨 받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노래했다. 목숨 없는 것에는 목숨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당의 시의 최심(最深)은 삶 너머의 이승 이전의 유계를 돌보는 시심에 있다. 이 광대한 요량으로 그는 현대시사에수많은 활구(活句)를 낳았다.      [애송시 100편 - 제7편]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일러스트=권신아  조그만 간이역에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푹푹 내려 쌓이는 눈 때문에 막차는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합실에서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부려둔 보따리나 꾸러미에 기대 누군가는 졸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웅크린 채 쿨럭이기도 한다. 털모자에 잠바를 입은 사내는 간간이 난로에 톱밥을 던져 넣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난로 위 주전자는 그렁그렁 끓는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고,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시대적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되는 곽재구 시인의 데뷔작 '사평역에서'(1981)를 읽을 때마다 나는 울컥한다. 아름다우면서 서럽고, 힘들지만 따뜻했던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을 소중한 흑백사진처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지난 시절의 희망과 절망이 눈보라로 흩날리고 있다, 모래처럼 톱밥처럼. 그 울컥함이 소설(임철우 '사평역에서'), 드라마(TV문학관 '사평역', '길 위의 날들'), 노래(김현성 '사평역에서')로 장르를 달리하며 독자들의 공감을 얻게 했으리라.   이십대에 쓴 시답게 감각과 묘사가 풋풋하다. 깜깜한 유리창에 쌓였다 녹는 눈송이들은 흰 보라 수수꽃(라일락꽃)빛이다. 사람들이 그믐처럼 졸고 있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확 타올랐다 사그라지는 난로 속 불빛은 톱밥을 던져 넣는 청색의 손바닥과 대조를 이룬다. 간헐적으로 내뱉는 기침 소리는 '눈꽃의 화음'을 강조하고, 뿌옇게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담배 연기는 회억(回憶)처럼 떠올랐다 가라앉곤 한다.   한줌의 톱밥을 던지는 '나'는 무슨 사연을 간직한 걸까? 기다리는 막차는 올까? 모든 역들은 어디론가 흘러가기 위한 지나감이고 경계이다. 하여 모든 역들이 고향을 꿈꾸는 것이리라. 사평은 나주 근처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그 사평에 사평역이 없다니, 그토록 울컥하게 했던 사평역이 어디에도 없다니, 그래서 더욱 우리를 울컥하게 하는 것이겠지만.      [애송시 100편 - 제8편] 묵화 (墨畵) - 김 종 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일러스터=잠산 김종삼(1921~1984) 시인의 시는 짧다. 짧고 군살이 없다. 그의 시는 여백을 충분히 사용해 언어가 잔상을 갖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다. 언어를 우겨넣거나 막무가내로 끌고 다닌 흔적이 없다. 사물과 세계를 대면하되 사물과 세계의 목소리를 나직하게 들려준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물안개가 막 걷히는 새벽 못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작은 여울에 누군가가 정성스레 놓아 둔 몇 개의 징검돌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묵화(墨畵)'의 목소리도 자분자분하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막 돌아와 쌀 씻은 쌀뜨물을 먹고 있는 소를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소의 목덜미에 가 있다. 하루 종일 써레나 쟁기를 끌었을, 멍에가 얹혀 있었을 그 목덜미를 보여준다. 목덜미에는 굳은살이 박였을 것이다. 그리곤 소의 목덜미와 할머니의 손을 교차시킨다. 할머니도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소와 함께 날이 저무는 저녁을 맞고 있다. 할머니는 겹주름처럼 고랑이 나 있는 밭에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고 돌을 캐내고 종일 호미질을 했을 것이다. 시인의 시선은 소와 할머니의 부은 발잔등으로 옮아간다. 부은 발잔등을 보여줄 뿐이지만, 우리는 소와 할머니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눈여겨본 대목은 소와 할머니의 관계일 것이다. 소는 할머니를, 할머니는 소를 마주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쓰러운 대화와 유대가 오가고 있다. 낮의 소란과 밤의 정적이 합수(合水)하는 성스러운 시간에 마치 삶이란 본래 비곤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는 듯 소와 할머니는 잠시 멈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하여 이 둘의 '서로 돌봄'은 훈훈하면서도 슬프다. (우리는 얼마나 이 '쓸쓸한 돌봄'을 자주 잊고 사는가)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얼굴 가득 흐뭇하게 피어나던 웃음이 천천히 묽어지는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본래 삶이란 웃음과 슬픔으로 꿰맨 두 겹의 옷감이라는 듯.   김종삼 시인은 등산모를 곧잘 썼고 파이프 담배를 자주 물었고 술을 좋아했고 고전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에게 삶은 '방대한 / 공해 속을 걷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는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라며 인간의 원죄를, 불구의 영혼을 아프게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과 세상을 좋아하고 동경했다. 그의 시는 말이 적었지만 정직했다. 언어의 낭비가 많고 외화(外華)에 골몰하는 시대를 살수록 언어를 지극히 아껴 쓴, 먹그림같이 실박하게 살다 간 김종삼 시인이 그립다.     [애송시 100편- 제9편]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 일러스트=권신아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작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의 여름, 한 남학생이 보낸 대학학보의 주소 띠지 속에서 처음 읽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이 시를 옮겨 나르곤 했던가. 이 시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에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시집 '사랑의 감옥'(1991)에 3편의 연작시 중 1편으로 다시 실렸다.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라는 부제가 첨가되었고, 2연의 끝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와 3연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바뀌었다. 부제를 첨가하여 '여자'는 '언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뒤로 배치하여 여자나 언어 모두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스름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물푸레, 이 시 덕분에 물푸레나무와 그 잎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비해 여릿하고 포릇하고 정말 '쬐그만' 둥근 잎이었다. 천생 '여자'를 닮은, 이를테면 눈물 하면 떠오르는 글썽임이라든가, 슬픔 하면 떠오르는 비릿함이라든가. 병신 하면 떠오르는 어리숙함이라든가, 시집 하면 떠오르는 아련함이라든가….   그런 '여자'를 반복해 나열하면 할수록, 묘사하면 할수록 '여자'의 실체는 사라지고 '여자'는 신비의 옷을 입는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물푸레나무에 달린 '쬐그만' 잎처럼 하고많은 여자와 '여자'라는 보통명사를 이토록 입에 척척 달라붙도록, 혀에 휘휘 휘감기도록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니!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애송시100편-제10편]사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애송시 100편-제11편] 대설주의보 - 최 승 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 일러스트=권신아   눈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이 있는가 하면, 쌀랑쌀랑 푹푹 날리는 백석의 눈이 있다. 기침을 하자며 촉구하는 김수영의 살아있는 눈도 있고, 희다고만 할 수 없는 김춘수의 검은 눈도 있다. 괜, 찮, 타, 괜, 찮, 타, 내리는 서정주의 눈도 있고, 갑작스런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도 있다.   그리고 여기 '백색계엄령'처럼 내리는 최승호(54) 시인의 눈이 있다. 1980년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념의 시대였고 폭압의 시대였다. 그는 '상황 판단'이라는 시에서 '굵직한/ 의무의/ 간섭의/ 통제의/ 밧줄에 끌려다니는 무거운 발걸음./ 기차가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터널 속처럼 불안한 시대'라고 일컬었다. 그의 시는 선명하고 섬뜩하게 '그려진다'. '관(觀)'과 '찰(察)'을 시 정신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현실을 '보면서 드러내고', 자본주의와 도시문명을 '살피면서 사유한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골짜기에 눈은, 굵게 힘차게 그치지 않을 듯 다투어 몰려온다. 눈보라의 군단이다. 도시와 거리에는 투석이 날리고 총성이 울렸으리라. 눈은 비명과 함성을 빨아들이고 침묵을 선포했으리라. 백색의 계엄령이다. 쉴 새 없이 내림으로써 은폐하는 백색의 폭력, 어떠한 색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공포! 그 '백색의 감옥'에는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꺼칠한 굴뚝새'가 있고, 굴뚝새를 덮쳐버릴 듯 '눈보라 군단'이 몰려오고, 그 군단 뒤로는 '부리부리한 솔개'가 도사리고 있다. 분쟁과 투쟁, 공권력 투입, 계엄령으로 점철됐던 시대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골짜기에 굵은 눈발이 휘몰아칠 때 그 눈발을 향해 날아가는 굴뚝새가 있었던가. 덤벼드는 눈발에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췄던가. 꺼칠한 굴뚝새의 영혼아, 살아있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네 노랫소리를 들려다오! 다시 날 수 있다면 짧지만 따뜻한 네 날개를 펼쳐 보여다오!      [애송시 100편-제12편] 저녁눈 - 박 용 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일러스트=잠산    박용래(1925~1980)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기워 시를 써냈다. 그의 시는 가난한 것과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세필(細筆)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돌보았다.   '저녁눈'을 읽으면 허름한 말집(추녀를 사방으로 삥 두른 집)에 앉아 '탁배기'를 한 잔 하고 있는 박용래 시인이 보이는 듯하다. 말집에는 마차꾼과 지게꾼이 흥성흥성하고,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온 나귀와 노새가 급한 숨을 내쉬느라 투루루 투레질을 하고, 누군가는 구유에 내놓을 여물을 써느라 작두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는 떨어지고 추운 밤은 오는데 눈발은 삭풍에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호롱불 불빛을 받으며 떠도는 눈발을, 조랑말의 정처 없는 걸음처럼 난분분한 눈발을, 여물 써는 소리처럼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에서 '붐비다'라고 써서 목탄화처럼 평면적인 풍경에 동선(動線)을 끌어넣는가 하면, 한 곳 한 곳 짚어가던 시선을 들어 올려 퀭한 빈터로 옮김으로써 시의 공간을 일순에 넓게 확장하는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물러나 앉아 늦은 저녁 눈발 내리는 그 풍경을 하나의 '공터'로 읽었을 것이다. 마차꾼과 지게꾼의 떠도는 삶과 내일이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네들의 노심초사와 나귀와 노새의 공복(空腹)을 읽었을 것이다.   박용래 시인은 술판에서 엉엉 잘 울던 마음 여린 시인이었다. 천진하게 잘 울어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용래 시인과 절친했던 소설가 이문구는 '박용래 약전(略傳)'이라는 글에서 박용래 시인의 잦은 눈물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박용래 시인이 생전에 살았던 대전시 오류동 17번지의 15호를 찾아가면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라고 노래했던 선한 그가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다시 살고 있을까     [애송시 100편- 제13편] 빈집 - 기 형 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일러스트=권신아 기형도(1962~1989) 시인의 마지막 시다. 1989년 봄호 문예지에서 이 시를 읽었는데 일주일 후에 그의 부음을 접했다. 이제 막 개화하려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맞아야 했던 그의 죽음에 이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초라했을 것인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서 이사를 계획하고 쓰여졌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밤은 짧았고, 짧았던 밤 내내 겨울 안개처럼 창 밖을 떠돌기도 하고 촛불 아래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망설이고 망설였으리라. 그 사랑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이 되었으리라. 실은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잠그는 방향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는 소중한 것들을 가둔다는 것이고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일 것이다. 사랑의 열망이 떠나버린 '나'는 '빈집'에 다름 아니고 그 빈집이 관(棺)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삶에 대한 지독한 열망이 사랑이기에, 사랑의 상실은 죽음을 환기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나직이 되뇌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씩 불러낸 후 그것들을 떠나보낼 때, 부름의 언어로 발설되었던 그 실연(失戀)의 언어는 시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실연(實演)되었던가. 죽기 일주일 전쯤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던 그의 사인은 실제로 뇌졸중으로 추정되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오래된 서적')이라 했던 그가, 애써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건만.   그가 소설가 성석제와 듀엣으로 불렀던 팝송 'Perhaps Love'를 들은 적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맑은 고음이 그의 몫이었다.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로 시작하던 화려하면서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라는 그의 독백도.          [애송시 100편-제14편]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 정 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 일러스트=잠산 이 겨울에 사랑이 찾아온 연인들에게 이 시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우선 어렵지가 않다. 쉽고, 리듬이 있어 흐르는 물처럼 출렁출렁한다.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눈이 쌓여 무게가 생기듯이 어느 순간 이 시는 우리들의 가슴께를 누르며 묵직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경험에도 '뜻밖의 폭설'은 내린다. 폭설이 내려 우리는 압도되어 이 시 안에 고립된다.   큰 고개를 넘으면서 느닷없는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좀 도발적이다. 우리는 그 불편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못 잊을 사람하고' 폭설에 갇히고 싶다고 말한다. 폭설에 갇히는 것이 고립의 공포로 엄습해오더라도. 사실 사랑만이 실용적인 것을 모른다. 사랑은 당장의 불편을 모른다.   모든 사랑은 고립의 추억을 갖고 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연애편지가 있거든 꺼내서 다시 읽어보라. 연애편지는 고립의 기억, 고립의 문장 아닌가. 둘만의 황홀한 고립. 그러니 사랑에게 고립은 고립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한 기꺼이 고립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후일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더라도. 그것이 모든 길을 끊어 놓더라도. 사랑은 은밀하고, 은밀해서 환하다.   문정희(61) 시인은 여고 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었다. 백일장 당선시들을 모아서 여고 3학년 때 첫 시집을 냈다. 타고난 재기를 미쁘게 본 미당 서정주 시인이 시집의 서문을 썼고, '꽃숨'이라는 시집 제목도 달아주었다. 그녀는 여성의 지위와 몸을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가두려는 것들을 거부하면서 한국시사에서 '여성'을 당당하게 발언해왔다. 그러면서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사랑의 가치를 활달하고 솔직하게 표현해왔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라는 그녀의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활동이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있어보라. 사랑은 소멸하고 말 것이다."        [애송시 100편-제15편] 목마와 숙녀 -  박 인 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일러스트=권신아 시냇물 같은 목소리로 낭송했던 가수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를 옮겨 적던 소녀는 이제 중년의 '여류' 시인이 되었다. '등대로(To the lighthouse)'를 쓴 버지니아 울프는 세계대전 한가운데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템스강에 뛰어들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 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하며'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목마와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페시미즘의 미래'라는 시어가 대변하듯 6·25전쟁 이후의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를 드러내고 있다.   수려한 외모로 명동 백작, 댄디 보이라 불렸던 박인환(1926~1956) 시인은 모더니즘과 조니 워커와 럭키 스트라이크를 좋아했다. 그는 이 시를 발표하고 5개월 후 세상을 떴다. 시인 이상을 추모하며 연일 계속했던 과음이 원인이었다. 이 시도 어쩐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일필휘지로 쓴 듯하다. 목마를 타던 어린 소녀가 숙녀가 되고, 목마는 숙녀를 버리고 방울 소리만 남긴 채 사라져버리고, 소녀는 그 방울 소리를 추억하는 늙은 여류 작가가 되고…. 냉혹하게 '가고 오는' 세월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로 요약되는 서사다.   우리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생명수를 달라며 요절했던 박인환의 생애와, 시냇물처럼 흘러가버린 박인희의 목소리와, 이미 죽은 그를 향해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고 쓸 수밖에 없었던 김수영의 애증을 이야기해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인 것을, 우리의 시가 조금은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목마든 문학이든 인생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모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애송시 100편-제16편]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일러스트=잠산 물은 선하다. 물은 그 자체로 흐르는 모습이다. 흐르는 에너지이다. 물은 작은 샘에서 솟고, 뿌리에게 스미고, 하나의 의지로 뭉쳐 흐르고, 환희로 넘치고, 작별하듯 하늘로 증발하고, 우수가 되어 떨어져 내리고, 다시 신생의 생명으로 돌아와 이 세계를 흐른다.   우리가 태어나고 사귀고 웃고 슬프고 울고 아득히 사라질 때에도 물은 우리보다 먼저 이 세계에 왔으며 우리보다 먼저 사라졌으며 우리보다 먼저 다시 태어났으니, 유한한 우리에게 물은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고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물은 불과 흙과 공기와 더불어 이 세계가 온존하는 한 온존할 것이다. 해서 물은 모든 탄생과 소멸을 완성하며, 그 자체로 소생하고 순환하는 생명이다.   이 시를 읽을 때면 '선한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불이 어떤 부정과 대립이라면 물은 그마저도 끌어안는 어떤 관용. 물은 사랑. 자주 침묵하지만 한 번도 사랑을 잊은 적이 없는 마음 큰 이. 우리도 서로에게 물이 되어 서로의 목숨 속을 흐를 수 없을까.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을까. 물과 같고 대지와도 같은 침묵의 큰 사랑일 수 없을까.   강은교(62) 시인이 '사랑法'이라는 시에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중략)//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라고 노래했듯이.   강은교 시인은 1968년에 등단해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았다. 초기에 발표한 시들이 강한 허무 의식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녀를 '허무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녀의 시는 민중적인 서정에도 가 닿고, 사소하고 하찮은 생명들을 끌어안기도 하는 등 아주 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느 해엔가 그녀가 시의 낭송과 울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 질병과 상처를 치료하는 '시 치료' 공연을 하는 것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때에도 지금에도 강은교 시인은 이 세계의 순례자로서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생명수를 구해오는 바리데기의 현신이다.      [애송시 100편-제17편]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일러스트=권신아정호승(58)시인만큼 노래가 된 시편들을 많이 가진 시인도 드물다. 안치환이 부른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비롯해 28편 이상이다. 그의 시편들이 민중 혹은 대중의 감성을 일깨우는 따뜻한 서정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슬픔'으로 세상을 '포옹'하는 그의 시편들을 읽노라면 좋은 서정시 한 편이 우리를 얼마나 맑게 정화시키고 깊게 위로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그는 별의 시인이다. 그것도 새벽 별의 시인이다. 별이란 단어를 그보다 더 많이 쓴 시인이 또 있을까. 그가 바라보는 별에는 피가 묻어 있기도 하고 새들이 날기도 한다. 그의 별은 강물 위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그 또한 별에 죽음의 편지를 쓰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별들도 어둠 없이는 바라볼 수 없으며, 밤을 통과하지 않고는 새벽 별을 맞이할 수 없다.   이 시는 '하늘에는 눈이 있다'라는 단언으로 시작한다. 눈은 '보리밭길'을 덮는 눈(雪)이기도 하고 '진리의 때'를 지키는 눈(眼)이기도 할 것이다. 눈 내린 보리밭길에 밤이 왔으니 '캄캄한 겨울'이겠다. 겨울의 캄캄하고 배고픈 밤은 길기도 길겠다. '가난의 하늘'이니 더욱 그러하겠다. 진리의 때가 늦고 용서가 거짓이 될 때, 북풍이 새벽거리에 몰아치고 새벽이 다시 밤으로 이어질 때 그 하늘은 '죽음의 하늘'이겠다. 그런데 그런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얼마나 따뜻할 것인가.   우리 생의 팔할은 두려움과 가난과 거짓으로 점철된 어둠의 시간이다. 눈물과 탄식과 비명이 떨어진 자리에 피어나는 꽃, 그것이 바로 별이 아닐까.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한('슬픔을 위하여')' 법이다.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별'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밝다.   눈 내리는 보리밭길에 흰 첫 별이 뜰 때부터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에 푸른 마지막 별이 질 때까지 총총한 저 별들에 길을 물으며 캄캄한 겨울을 통과하리라. 그 별들의 반짝임과 온기야말로 우리를 신(神)에 혹은 시(詩)에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리라.        [애송시 100편-제18편]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일러스트 = 잠산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은 식민지 시대를 살다 간 혁명가요, 시인이요, 수행자였다. '님의 침묵'은 1926년에 펴낸 그의 유일한 시집 '님의 침묵'의 표제시이자 서시이다. 이 시는 님과의 이별과 이별의 슬픔을 재회(再會)로 역동적으로 바꿔놓는다. 이런 극적 구성은 불교 특유의 유심적 상상력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돌이키는 것으로써 만해는 있음과 없음, 좋음과 그렇지 못한 것,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만남과 이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아마도 만해의 시를 올연히 뛰어나게 하는 힘은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려는 마음의 편당(偏黨)과 굴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 그의 수행자적 기풍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역설의 화법이 생겨났을 것이다.   만해는 시집의 맨 앞에 놓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라고 썼다. 만해는 님을 절대적인 추앙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고, 님과 나의 관계를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해석했다. 만해는 내 안에서 님을 발견하고 완성하고자 한 실천가였다.   조선의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인데 어떻게 불 땐 방에서 편히 살겠느냐며 만해는 냉골의 거처에서 꼿꼿하게 앉아 지냈다. 해서 '저울추'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돌집(조선총독부)이 마주 보이는 쪽으로 당신의 집을 지을 수 없다며 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만해는 깨달음을 얻은 후 오도송에서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그네의 수심에 잠겼던가. 한마디 소리쳐 우주를 설파하니 눈 속의 복숭아꽃 붉게 붉게 나부낀다"라고 읊었다. '눈 속에 핀 복숭아 꽃송이'가 바로 만해의 시요, 만해의 정신이었다 할 것이다.      [애송시 100편-제19편]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일러스트=권신아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새벽 교회당 구석에서, 간절히 내뻗은 자신의 두 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군 채였다. 소리 없이 일렁이는 가파른 등에서 겨울 바다 냄새가 났다. 지난밤 내내 뚝 끊긴 생의 절벽 앞에 서 있다 온 사람의 등이었다. 인간은 기도할 줄 아는 사람과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구분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새를 품고 산다, 미지라는 한 마리 새를.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 혹은 희망을 우리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리라. 그 새를 잊지 않고 간직한 사람은 미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이다. 그러나 미래의 새를 잃어버린 사람은 '겨울 바다' 앞에 서기도 한다. 그곳은 절망의 끝 혹은 허무의 끝일 것이다.   보고 싶던 미지의 새들은 죽어 있고 매운 바닷바람에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린, 허무라는 마음의 불(心火)로 불붙은 겨울 바다. 그 죽음의 공간에서 시인은 시간의 힘을 깨닫는다.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말도,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를 맑게 깨우치고 우리를 키우는 건 세상을 항해 '끄덕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기도는 시간을 견뎌내는 데서 비롯된다.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해달라는 심혼(心魂)의 기도는, 저 차디찬 바다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인고의 물기둥'을 세우는 일이었으리라. '허무의 불'을 '인고의 물'로 버텨내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힘이고 기도의 힘이다.   김남조(80) 시인은 기도하는 시인이다. 팔순을 맞이하여 어언 60여 년의 시력(詩歷)으로 간구해온 그의 시편들은 사랑과 생명과 구원으로 충만한 기도들이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설일(雪日)')를 낭독하는, 떨리는 듯한 그러나 결기 있는. 시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애송시 100편-제20편] 삽 -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 일러스트=잠산 시인은 언어의 맨살을 만진다. 말과의 상면과 말의 '한 줄금 소나기'를 만나는 순간의 경이를 시인은 표현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세상에 대한 경이가 사라지는 일은 슬픈 일이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혀를 대보고 생각을 만드는 이 날것의 감각에서 소위 맛이 사라지면 살맛이 가실 것이니 이 세상은 얼마나 캄캄한 절망이겠는가. 이 세상을 다시 맞는 아침에는 당신도 "아, 세상이 맛있다!"라고 말해 보라. 애초에 생(生)에는 무력감이 없으므로.   시 '삽'에는 경이가 있다. 나도 '삽'을 발음해 본다. 입술이 모시조개처럼 예쁘게 모인다. 손으로 목화를 따들이는 느낌이 있다. 시인은 이 발성의 쾌감에 희열한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들어간다.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에 작달막한 삽 한 자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여준다. 언젠가 제대로 한 번 써볼 생각으로 연일 '마른 볏짚으로' 문질러 놓아 녹슬지도 않았다. (나도 나의 아버지가 들일을 마친 해질 무렵에 마른 볏짚으로 삽날을 문지르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 저녁 풍경의 숙연함이여!)   시인은 무슨 일에 이 삽을 사용하려 하는 것일까. 당신의 사랑을 얻을 때에 한 번 뜨고, 종국에 닥칠 나의 죽음을 내 스스로 거두어들일 때 한 번 뜨겠다고 한다. 생의 한 경이를 포착한 이 시가 참 좋은 이유는 시 전반부의 발성의 쾌감이 후반부의 비장함으로 진행되는 데에 있다. 비장하지만 마구 심각하지는 않다.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경이다. 경이가 없다면 기다림도 없을 것이므로. (연애에 경이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의 애인들이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당장 모두 떠나가 버리는 것처럼)   시 전문지 월간 '현대시학'의 주간을 맡고 있는 정진규(69) 시인은 산문시의 성공적인 전형을 제시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산문시는 영혼을 한순간에 탁, 부려 놓는다. 그리하여 산문시 아닌 시들보다 오히려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시 쓰는 일을 비유하길 세상을 배알하는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는 올해로 칠순을 맞았다. 그의 시는 종심(從心)이되 어긋남이 없으니 무량무변하다.     [애송시 100편-제21편]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일 것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고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밖에.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시 '행복')라 일컬었던, 왼쪽 얼굴로는 늘 울고 있던 시인, 천상병!(1930~1993) '귀천'은 1970년 발표 당시에는 '주일(主日)'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의 시는 생(生)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는다. '단순성으로 하여 더 성숙한 시'라 했던가.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무욕이니 초월이니 달관이니 관조니 하는 말로 설명하지 말자. 이슬이랑 노을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으나 '동백림 사건'(1967)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은 음주벽과 영양실조로 나타났으며 급기야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더 살다 갔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이라고 노래했던 그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 갔으니, 자유롭고 가벼운 새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애송시 100편-제22편] 푸른 곰팡이-산책시1 -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일러스트=잠산 이문재(49) 시인의 시들은 치열하고 내부가 끓고 있다. 그의 시들은 결사(結社)를 한다. 주로 도시와 문명의 급소를 공격해 단숨에 제압한다. 시 '푸른 곰팡이'가 실려 있는 두 번째 시집 '산책시편'(1993)은 시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도시적 공간의 무서운(파시스트적인) 속도에 대항해 '게으르고 어슬렁거리고 해찰하는' 8편의 산책시(散策詩) 연작을 발표한다. 그는 '아파트단지가/ 웨하스처럼, 아니 컴퓨터칩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는 곳을 느릿느릿 걷는다. 그는 '도시는 단 한 사람의 산책자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느림보는/ 가장 큰 죄인으로 몰립니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혼자 있으려 하다간/ 도시에서 당하고 말지요/ 이 도시는 산책의 거대한 묘지입니다'('마지막 느림보-산책시 3')라고 썼다.   시 '푸른 곰팡이'에서도 느림을 예찬한다. 사랑도 산책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이 산책 같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랑은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이지만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을 살면서 사랑은 무르익고 완성된다는 뜻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라. 아무리 격렬한 사랑에 휩싸인 사람일지라도 백지를 앞에 두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그러나 머뭇거림이 편지의 미덕. 지우고, 생각을 구겨버리고, 파지(破紙)를 내는 시간에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나흘을 또 기다려 보라. 나의 편지가 사랑하는 이의 안뜰과 마루와 품에 전달되기까지의 그 시간을 마른 목으로 가슴 설레며 살아보라. 푸른 강이 흘러가는 그 기다림의 거리를 살아보라. 그러는 동안 사랑은 푸른 강의 수심처럼 깊어질 것이다.   요즘 이문재 시인은 따뜻한 체온의 '손'을 주목하고 있다. 나와 당신 사이에 '내미는 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년에 발표한 시 '손은 손을 찾는다'에서 '손이 하는 일은/ 결국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오른손이 왼손을 찾아/ 가슴 앞에서 가지런해지는 까닭은/ 빈손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미안함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의 시는 도시와 문명에 단호하게 맞서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괸, 그리워하고 연민하는 사랑의 마음이 산다.      [애송시 100편-제23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여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내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일러스트=권신아 평북 정주하면 소월이 있고 백석(白石·1912~1995)이 있다. 1988년의 월북시인 해금 조치 이후 '백석 붐'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백석 시인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시에서 드물었던 북방 정서와 언어의 한 정점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소장하고 있다가 1948년에 발표했다. 해방 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제목의 뜻에 주목해볼 때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낸 고백시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소리 내어 읽노라면 그가 나직이 말을 건네는 듯 '가슴이 꽉 메여 오'고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곤 한다.   '나'라는 맨 얼굴의 시어나 '-이며' '-해서' '-인데'와 같은 나열 혹은 연결어미나 '것이었다'라는 종결어미 등의 반복이 내뿜고 있는 독특한 산문적 리듬이야말로 이 시의 백미다.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한다는 직유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직설이며,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역설 등 사무치지 않는 구절이 없다.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기까지의 의연한 회복 과정이 유장한 리듬과 어우러져 한 편의 인생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1942년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즈오는 기자와 교사생활을 작파하고 만주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히 살고 있던 그를 찾아간다. 그는 가즈오에게 '나 취했노라'라는 시를 헌정했다. 20년 후 가즈오는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파')라는 시를 그에게 헌정했다. 파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을 그를 생각한다. 쌀랑쌀랑 소리를 내며 싸락눈을 맞는다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뻐근한 갈매나무를 생각한다.      [애송시 100편-제24편]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일러스트 잠산     하마터면 이 시는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유성처럼 사라질 뻔했다. 송수권(68) 시인이 서대문 화성여관 숙소에서 이 작품을 백지에 써서 응모를 했는데, 잡지사 기자가 "원고지를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의 원고"라며 휴지통에 버렸다. 당시 편집 주간이었던 이어령씨가 휴지통에 있던 것을 발견해 1975년 '문학사상' 지면에 시인의 데뷔작으로 발표했다. 이 일화로 '휴지통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입소문'을 타 문단에서 화제가 되었고, 발표 이후에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누이'를 애타게 호명하고 있지만, 이 시는 남동생의 죽음에 바치는 비가(悲歌)였다.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비어 있는 맞은편을 망연히 바라보았을 그 시방(十方)의 비통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시인은 무엇보다 죽은 동생의 환생에 대한 강한 희원을 드러낸다.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등의 역동적인 문장은 적극적인 환생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산문(山門)은 속계(俗界)와 승계(僧界)의 경계이고, 이승과 명부(冥府)가 갈라지는 경계인 바, 산문에 기대어 생사의 유전(流轉)을 목도하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생사의 감옥에 갇혀 살아도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생을 살아 이처럼 마음을 절절하게 울리는 노래를 낳았다.   송수권 시인은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어오면서 황토와 대(竹)와 뻘의 정신에 천착해 왔다. 그는 '곡즉전(曲卽全·구부러짐으로써 온전할 수 있다)'을 으뜸으로 받든다.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추억이 있고, 들숨이 있지요. 시간이 있고, 희망이 있고, 공간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시는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애지고 막막'하게 하지만 남도 특유의 가락과 토속어의 사용으로 슬픔과 한을 훌쩍 넘어서는 진경을 보여준다.      [애송시 100편-제25편]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 일러스트=잠산   여름 여치가 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가을 정미소를 지난다. 차가운 (겨울) 구름이 떠있다. 그렇게 자전거는 골목 모퉁이를 돈다. (아가였던) 할머니가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있다. '잘 익은 사과'는 이런 일상적인 풍경을 다채로운 감각의 성찬으로 펼쳐놓고 있다.   백 마리의 여치 울음 소리는 자전거의 바퀴 도는 소리, 정미소에서 나락 빻는 소리와 겹쳐진다. 처녀 엄마가 낳은 입양 가는 아가의 뺨은 구름의 차가움으로 전이되고, 그 구름은 천년 동안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로 확장된다. 고향 마을은 금세 큰 사과로 축소되고, 마을을 달리는 자전거 바퀴는 사과를 깎는 칼날 소리를 낸다. 차르르차르르(사각사각)!   자전거 바퀴가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그때마다 고향 마을만큼이나 큰 사과가 깎인다는 발상과 그 큰 사과를 노망든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파내 잇몸으로 오물오물 잡수신다는 발상은 사뭇 상징적이면서 동화적이다. 노망든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야금야금 파먹는 사과는 시간의 신(神)이 돌리는 물레의 실타래에 비견할 만하다. 기발하면서도 유쾌하다. 아가, 처녀 엄마, 할머니로 숨가쁘게 이동하는 시간을 '천년 동안 아가인 그 사람'으로 정지시켜 놓는 것도 흥미롭다.   차르르차르르 돌던 한 세월이 발갛게 잘 익었겠다. 누군가 고향 마을에서 그 한 세월을 잘 놀다 갔겠다. 껍질이 홀라당 깎인 노르스름한 사과 속살 같았겠다. 군침 가득 돌았겠다. 그렇다면, 이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는 '밤낮을 만드시고 이 지구를 세세년년토록 운항하시는' '숫자 나라의 시간 윤전기 노동자인 우리들 앞에서/ 감독을 게을리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신', '세상의 모든 달력 공장 공장장님'을 낳은 바로 그 처녀 엄마 아니었을까.   김혜순(52) 시인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다. 그는 겹침의 시학을 즐겨 구사한다.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는가 하면 수축시키고, 감각과 시점을 겹쳐놓는가 하면 뚝 떨어뜨려 놓는다. 여성의 환상적 내면을 몸의 감각과 경험으로 그려냄으로써 일견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떠올리게 한다. 그를 최근 유행하는 '환상시'의 대모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애송시 100편-제26편] 산정 묘지 -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중략)   어둠은 존재의 처소(處所)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 일러스트=잠산 시집 '산정묘지'를 펼쳐 자서(自序)를 대신하고 있는 시 '독락당'을 읽는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아주 짧지만 고절이 있다. 찬 서릿발 속에 핀 국화 같고, 차돌처럼 향기를 돌돌 말았다 피는 매화 같다. 시집에 수록된 서른 편의 산정묘지 연작시들을 꿰는 시가 바로 '독락당'이라는 시이다.   산정묘지 연작시들은 협소한 한국시의 정신적인 영역을 광대하게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불어로 번역된 산정묘지 시편들의 성과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시인이 동양적인 정신주의의 극점을 보여주는 이 시편들을 쓰게 된 것은 한학자이면서 불교학자였던 김달진 시인과의 만남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시인은 세속적인 욕망을 덜어내고 영혼의 품위와 위엄을 지향하는 '고사(高士)의 시'를 선보인다.   '산정묘지 1'은 설산의 꼭대기에 정신의 처소를 마련해 두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눈이 다 녹아버린" 질척질척하고 비루한 세계가 아니라 얼음이 꽝꽝 언 침묵의 세계에 살겠다는 결의를 드러낸다. '정신적인 공해'의 공간을 떠나 무서운 고요가 사는 산정에 오르겠다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내야 할 정신적인 기품을 잃지 않겠다는 속뜻을 내보인다.   조정권(59) 시인은 언어감각이 예민할 뿐만 아니라 고건축과 고전음악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평소에 그를 만나면 그는 "자기를 잘 견뎌내는 일 하나만 잘해도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성자가 될 수는 없지만,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시끄럽고 험악한 곳을 버리고 고독하게 물러나 앉아 스스로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자.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인 몸을 끌고 저 산정에 오르는 성스러운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애송시 100편-제27편]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러스트=권신아 시집 한 권으로 '현대시 100년'에 길이 남은 시인들이 많다. 김소월과 한용운과 김영랑이 그렇다. 특히 유고시집 한 권으로 길이 남은 시인들도 있으니, 이상과 윤동주와 기형도 그리고 여기 이육사(1904~1944) 시인이 그렇다.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이 따라 다닌다. 지사(志士), 독립투사, 혁명가, 아나키스트, 테러리스트, 의열단 단원 등. 1928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수감되었을 때 수인번호가 264(혹은 64), 이를 '대륙의 역사'라는 뜻의 한자 '육사(陸史)'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가 어떤 항일운동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단지 17회 정도 감옥을 들락거리며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 만주·북경 등지를 부단히 왕래했다는 것, 북경 감옥에서 40세의 나이로 옥사했다는 것 정도.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것인지 안 들렸다는 것인지, 초인이 있을 거라는 것인지 초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지, 이 광야에 목놓아 부르는 사람이 초인인지 나인지, 초인을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노래를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왜 천고(千古)의 뒤에야 오는 것인지 해석 이 애매한 부분이 많은데도 이 시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이 처음 열렸던 날부터 다시 천고 후까지, 휘달리던 산맥들도 범하지 못했으며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어준 이곳! 이 신성불가침의 시공간 속에서 흰 눈과 흰 말(馬), 매화 향기와 초인의 이미지는 돌올하다. 특히 까마득한 날부터 천고 뒤로 이어지는 대서사적 시제와 감탄하고 묻고 명령하는 극적인 어조 속에서 '광야'의 고결한 미감과 강렬한 정서는 한결 고무된다. 웅대하다는 말, 장엄하다는 말이 이만큼 어울리는 시도 드물 것이다.   감옥에서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시 '꽃'에서도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라고 노래했다. 오천 년의 역사가 시작된 이 광야에서, 지금-여기의 눈보라 치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찬란한 꽃을 피울 미래의 그날을 떠올려본다. 시인이 기꺼이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렸던 이유일 것이다. 기름을 바른 단정한 머리에 늘 조용조용 말하고 행동했다는, 올곧은 시인이 올곧은 삶 속에서 일구어낸 참 올곧은 시다.      [애송시 100편-제28편]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 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한 세계 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작은 새가 되어   나뭇가지 위에 내려 앉아   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후략)             ▲ 일러스트=잠산  겨울 서정시의 대표격인 이 시는 평론가 이숭원씨의 표현대로 '찬란한 시간의 금비늘'이 반짝반짝한다.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는 섬세한 감각이나,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같은 투명한 언어감각을 보라. 시인은 다른 행인들처럼 나뭇가지에 내린 눈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묘미는 자연 현상인 눈의 적설을 생명의 큰 순환으로 읽어낸 데 있다. 눈이 쌓인 원시림이 석탄이 되고, 탄부의 손에 의해 채탄이 되고, 이층방 스토브의 꽃불이 되고, 하늘로 올라가는 기운이 되고, 다시 숲으로 내려앉는 눈이 되는 그 시간의 돌고 돎-둥근 궤적을 시인은 읽어내고 있다. 이 '돌아옴'의 발견이 이 시를 빼어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신비롭고, 얼마나 기특하고, 얼마나 황홀하겠는가.   오탁번(65) 시인은 1966년에 동화 당선, 1967년에 시 당선, 1969년에 소설 당선이라는 신춘문예 3관왕의 화려한 등단 이력을 갖고 있다(김은자 시인을 아내로 둔 시인 커플로도 유명한데, 김은자 시인도 신춘문예 2관왕 출신이다). 이 시는 그의 시 데뷔작이다.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다니지 못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졸업장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는 일화를 나는 언젠가 들었다. 대학에서 시 창작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가끔은 밤새 쓴 시를 칠판에 적어놓고 학생들로부터 터놓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나도 시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기말시험에 '학교에 자목련나무가 몇 그루인가'를 묻는 문제가 있었을 정도였다.   요즘 오탁번 시인은 고향으로 내려가 살고 있다.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으로 천둥산과 박달재 사이에 있는 조그만 마을. 폐교된 모교를 사들여 '원서헌'이라는 문학관을 차렸다. 그곳서 그는 시골 아이들에게 시를 읽히는 훈장님이다. 그곳서 그는 우리가 잊어버린 토박이 우리말을 되살려내는 시를 쓰고 있다. "산 속에 큰 항아리를 하나 묻고 그 속에 들어앉아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아기를 낳는 산모의 지독한 아픔과 숨찬 기쁨이 바로 시"라고 말하는 순은의 시인이다.      [애송시 100편-제29편]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일러스트 권신아 김종길(81) 시인의 '성탄제'를 읽는 일은 내게 유년의 흑백 사진을 보는 일처럼 애틋하고 살가운 일이다. 겨울밤, 열에 시달리며 칭얼대던 어린 내게 아버지의 코트 자락은 서늘했다. 겉옷을 벗으신 아버지는 물에 만 밥 한 숟갈 위에 찢은 김치를 씻어 올려놓으시고는 아, 아, 하셨다. 하얀 가루약도 그렇게 먹이셨다. 어머니가 방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펴는 사이 오래오래 나를 업고 계셨다.   산수유 열매는 고열에 약효가 있다. 열에 시달리는 어린것을 위해 산수유 열매를 찾아 눈 덮인 산을 헤매셨을 아버지의 발걸음은 얼마나 초조했을까. 할머니가 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하고 있으니 아버지 속은 얼마나 더 애련했을까. 흰 눈을 헤치고 따오신 산수유 열매는 혹한을 견디느라 또 얼마나 안으로 말려 있었을까. 눈 속의 붉은 산수유 열매는, 바알간 숯불과 혈액과 더불어 성탄일의 빨간 포인세티아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가 찾아 헤매셨던, 탄생과 축복과 생명과 거룩을 염원하는 빛깔이다. 생을 치유할 수 있는 약(藥)의 이미지다.   김종길 시인은 명망있는 유학자 집안의 후예다. 한학과 한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가 선택한 것은 영문학이었다. 우리나라에 영미시와 시론, 특히 이미지즘을 소개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유가적 전통과 이미지즘이 어우러진 그의 시는 명징한 이미지, 절제된 표현, 선명한 주제 의식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이를 일컬어 '점잖음의 미학'이라 했던가.   차가운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 어린것의 열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특히 산수유, 서느런, 성탄제, 숯불, 설어운 설흔 살의 'ㅅ' 음이 서늘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 서늘한 청량제 속 따스한 혈맥이 우리네 가족애일 것이다. 그 따스함은,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그의 시 '설날 아침에'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마음으로 설날 아침을 맞이하자. 매운 추위 속에서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맞이하자. 그 한가운데 가족이 있음을 기억하자     [애송시 100편-제30편]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 일러스트 잠산  이별이 이별의 사건으로만 완성된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마음이라는 게 없었을 것이다. 이별 뒤에 오는 축축한 망각의 시간이 훨씬 고통스럽다. 서서히 잊어가며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이별 이전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을 아울러 우리는 이별이라는 사건의 전모(全貌)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잊는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생명 없는 사물처럼 안색 없이 돌아서기만 하면 될 것이다. 생명 없는 사물의 안색으로 헤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을 겪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큰 사랑은 사랑이 소멸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 꽃 이후의 꽃다발 혹은 열매 이후의 열매처럼 쇠잔하게 말라가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어떤 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는가.   무안의 회산 백련지를 찾아가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연꽃이 만개한 그 시간을 찾아가겠지만. 시인은 연못이 폐선처럼 가라앉는 시간에 거기를 찾아간 모양이다. 흰 연꽃도, 푸른 손바닥 같은 연잎도, 따뜻한 한 공기의 밥 같은 연밥도 없는 시간. 시인은 뒤늦게 그 연못을 찾아간 모양이다. 마치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겪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 사람처럼. 그 연못에서 시인은 연밥과 연잎과 연꽃의 시간을 다시 살려낸다. 우리의 습관인 순차적인 짐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의 말대로 나희덕(43) 시인은 '울음의 감별사'이다. 그녀는 한 산문에서 마른 석류를 들여다본 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붉은 석류가 마르면서 바람 빠진 공처럼 물렁물렁해지고 거기서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삶이란 완벽한 진공포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했다"라고 적었다. 세상의 통증 하나하나와 만날 때 투덜대고, 서운해하며 토라지고,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그녀의 시편들은 시원시원하게 정직해서 비옥하다. 그녀는 복숭아나무 같은 시인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을 펼쳐놓는 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가 그토록 눈이 부신 나무임을 처음 알게 해준, 복숭아나무와 친족인 시인.      [애송시 100편-제31편]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일러스트 권신아  '그대'는 어떻게 '당신'이 되는가. 허수경(44) 시인은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 와 저를 부빌 때"라고 한다. '사내'가 아름다울 때, 그 아름다움에 기댈 수 있을 때 '당신'이 되기도 한다. 부빈다는 것, 기댄다는 것, 그것은 다정(多情)이고 병(病)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병자처럼 당신을 묻은 마음의 무덤에 벌초하러 간다. 사실은 슬픔으로 이어진 '살아옴의 상처'와,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한 병의 맨 술을 마시는 중이리라. 백수광부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훌쩍 건너가 버린 당신! 당신이 먼저 당도해버린 그곳은 나 또한 혼자서 가야 할 먼 집이다. 그러니 남겨진 나는 참혹할밖에.   참혹은 '당신'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총체적 참혹이다. 사랑을 떠나 보낸 실연의 참혹, 아버지를 여읜 망부의 참혹, 신념을 잃은 한 시대의 참혹.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고 무를 수도 없는, 죄다 마음에 묻어야 하는 당신들이다. 그런 당신을 웃으면서 울면서 혹은 취해서 부르는 이 시의 언어는 언어 이전이거나 언어 이후다. 단속적인 말줄임표와 쉼표,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킥킥'이라는 의성어에는, 참혹인 줄 알면서도 참혹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자의 내면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나와 당신, 사랑의 마음과 마음의 무덤, 환후와 치병이 '각각 따로'이기에, 당신과 함께했던 세월과 사랑과 상처와 그 상처의 몸이 모두 적요이고 울음이다. 그런 울음을 짊어지고 가는 시인, 세간의 혼몽을 잘 먹고 잘 노래하는 시인이야말로 자신의 불우함을 다해 노래하는 시인의 지복(至福)일 터, 이 시는 그 지복의 한 자락을 걸쳐 입고 있다.   허수경 시인은 울음 같은, 비명 같은, 취생몽사 같은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직후 독일로 휘리릭 날아가버렸다. 1990년대 초반이었고, 시인의 생부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다. 동안(童顔)에, 대책 없는 맨몸이었다. 고고학을 공부한다 했다. 잘살고 있다고 했다. 독일로 날아간 지 벌써 16년째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은 언제 불러도 참 좋다, 그리고 참 참혹하다, 킥킥 당신….      [애송시 100편-제32편] 소 -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 일러스트 잠산   쟁기와 써레와 달구지를 끌던 소, 두꺼운 혀로 억센 풀을 감아 뜯던 소, 송아지를 낳아 대학 공부를 시켜주던 소, 추운 날 아버지가 덕석을 입혀주던 소, 등을 긁어주면 한없이 유순해지던 소, 코뚜레가 꿰어 있는 소, 우시장에 팔려가는 아침에는 주먹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소….   소에게 들일이 점점 없어지면서 소의 쓸모는 이제 비육에만 있다지만 소만큼 오랫동안 농가를 살려온 짐승도 드물다. 일하러 갈 땐 강한 무릎으로 불끈 일어서던 소. 뿔이 솟아 있으나 뿔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는 소. 소의 느린 걸음걸이와 큰 눈과 우직함을 생각해본다.   김기택(51) 시인은 소에 관한 시를 네 편 썼다. 꾀는 파리를 쫓아내지도 못하는 무력한 소, 무게를 늘리기 위해 강제로 물을 먹인 소, 도살되는 순간 바람이 빠져 나가서 빈 쇠가죽 부대가 되어버린 소에 대해 썼다. 시집 '소'의 표제작인 이 시는 소에 관한 그의 네 번째 시이다. 전작들이 소의 비극적인 몸에 관한 시라면 이 시는 소라는 종(種)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인의 슬픈 시선이 있다. 한마디의 말도 사용할 줄 모르고 다만 울음이 유일한 언어인 소. 오직 끔벅거리고만 있는 소의 눈. 우리가 최초에는 가졌을 혹은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내내 바라보았을 그 '순하고 동그란 감옥'인 눈. 당신에게 내뱉으면 눈물이 될 것 같아 속에 가두어 두고 수천만 년 동안 머뭇거린 나의 말….   김기택 시인의 시는 무섭도록 정밀한 관찰과 투시를 자랑한다. 그는 대상을 냉정하고도 빠끔히 묘사한다. 그는 하등동물의 도태된 본능을 그려내거나 사람의 망가진, 불구의 육체를 고집스럽게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생명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생명의 '원시림'을 복원시켜 놓는다.   시 '신생아 2'에서 '아기를 안았던 팔에서/ 아직도 아기 냄새가 난다/ 아가미들이 숨쉬던 바닷물 냄새/ 두 손 가득 양수 냄새가 난다// 하루종일 그 비린내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머리를 씻는다/ 내 머리는 자궁이 된다/ 아기가 들어와 종일 헤엄치며 논다'라고 그는 노래했다. 이런 시를 한껏 들이쉬면 어지럽고 시끄럽던 머리가 맑아진다. 선홍빛 아가미가 어느새 새로 생겨난다.         [애송시 100편-제33편] 저녁의 염전 - 김경주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 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 일러스트 권신아   바닷물을 끌어다가 삼일 정도 가둬두면 바닥에 소금 알갱이가 뭉치기 시작한다. 가만히 고인 바닷물이 제 안의 소금을 응결시키고 있는 저녁의 염전을 볼 때면 마음이 쓸쓸해지곤 한다. 스러지는 햇빛, 슬어가는 어둠, 남루한 생의 얼룩, 비늘 같은 욕망의 흔적, 서늘한 죽음의 그늘… 흩어져 있던 그리 어두컴컴한 것들이 가라앉곤 했던가.   흰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상갓집 밤불처럼 노을이 내리는 염전. 그곳에서 시인은 소금의 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와 같은 그 '희디흰 물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소금의 빛, 그 '몇 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을 본다. 소금의 근원인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은 모든 생명의 시원이자 종말이다. 그러니까 존재의 끝과 시작을 듣고 보는 셈이다. 우리의 내장이 이리 어둡고 이리 쓴 이유일 것이다. 물의 내장이 그러하고, 생의 내장이 그러한 것처럼.   노을 속으로 바닷물이 건너는 염전에 서면, 죽음과 소멸을 견뎌내는 법을 배우는 것만 같다. 실리고, 스미고, 비치고, 번지고, 가라앉고, 퍼지는 술어의 움직임 속에서 하얗게 증발하는 허공 속 흰 눈같이. 아니 깊은 바다 속 소리의 영혼같이, 아니 아니 온갖 사랑이 밀려왔다 밀려간 사람 속 쓰디쓴 내장같이. "나 없는 변방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지금 내 영혼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부재중')라는 그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김경주(32) 시인은 젊다. 2003년에 등단하여 2007년에 첫 시집을 냈으니 시력 또한 젊다. 한 시인은 "이 무시무시한 시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스무 살 이후, 이 대학 저 대학에서 이 공부 저 공부 하며 밥벌이를 위해 대필작가, 학원강사, 광고일, '야설' 작가까지 했다는 기이한 이력이 인상적이었던가. 수려한 외모에 여행, 사진, 에세이, 영화, 연극을 넘나드는 전방위적 재능이 또 신인류(!)적이었던가.      [애송시 100편-제34편] 어떤 적막 -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 일러스트 장산   들꽃을 따서 엮은 둥근 꽃팔찌. 그 반짝이는 꽃팔찌를 말없이 만들었을 당신의 낮과 당신의 손. 가는 손목에 차고 다니다 탁자에 벗어놓은 당신의 꽃팔찌. 들꽃 같은 시간의 꽃팔찌. 쓸쓸함과 적막이라는 삶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꽃팔찌.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쓸쓸함과 적막함. 당신은 없고 이제 나의 팔목에 차 본 둥근 꽃팔찌. 오, 들꽃처럼, 들꽃으로 엮은 꽃팔찌처럼 온기와 생기(生氣)의 일가를 이루려 했던 당신의 마음.   이 시처럼 정현종(69) 시인은 작품을 통해 삶의 생기를 발견해내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전후의 한국 시단에 팽배해 있던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경향을 내내 보여주었다. 그는 사물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고, 만물과의 우주적인 교감을 노래했다. 그는 탄력 있는 생각의 샘을 소유한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은유적이고 율동적인데, "가벼움, 경묘(輕妙)함이 나의 시론의 하나"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가볍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 자유로운 정신은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축복일 터. 해서 정현종 시인은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시인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단 두 줄로 짧게 쓴 시 '섬'은 많은 독자들이 여전히 사랑하는 시이며, 그가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네루다와 로르카, 옥타비오 파스 등 외국 시인들의 시집과 시론서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어둠 속에서도 샛별처럼 빛나야 하는 것. 우리의 영혼은 바닥에 떨어져도 다시 튀어오르는 공처럼 생동해야 하는 것. 시인은 한 대담에서 "이 세상이 내 앞에 처음으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라. 그렇게 살라"고 당부한다. 오늘은 그의 시 '꽃시간'을 함께 읽어보자. 당신에게도 오늘이 꽃시간이기를, 안팎이 둥근 꽃팔찌의 시간이기를. "시간의 물결을 보아라./ 아침이다./ 내일 아침이다./ 오늘밤에/ 내일 아침을 마중 나가는/ 나의 물결은/ 푸르기도 하여, 오/ 그 파동으로/ 모든 날빛을 물들이니/ 마음이여/ 동트는 그곳이여."      [애송시 100편-제35편] 그릇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일러스트 권신아   시력 44년을 맞는 오세영(65) 시인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 박사이자 교수로 시작과 평론과 시학을 병행해 왔다. 지금까지 17권의 시집으로 출간된 그의 시들은 물질과 정신, 문명과 자연, 철학적 지성과 감성적 정서가 상응하는 '잘 빚어진' 서정시를 견지하고 있다. 이를 '전통의 토대 위에 형성된 철학화된 서정시' 혹은 '모순의 시학'이라 했던가.   일찍이 노자는 말했다. 도는 빈 그릇과 같다고. 얼마든지 퍼내서 사용할 수 있고, 언제나 넘치는 일이 없고, 깊고 멀어서 천지 만물의 근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릇은 하나인데 그 하나로 인해 안과 밖이 나뉘고, 그릇에게는 밖인데 그 밖이 안을 품고 있고, 비어 있음으로 다른 것을 채운다. 그릇에 대한 시인의 통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시인은 '절제와 균형'을 긴장된 힘으로 유지하고 있던 그릇의 '깨짐'에 주목한다.   깨진다는 것은 긴장하고 날카로워진다는 것이다. 모와 날을 세운다는 것이다. 겨냥하고 노린다는 것이다. 때로 상처를 내고 피를 부르기도 한다. 그릇은 비어 있음으로 충만한 둥금의 세계지만, 언제나 깨질 위기에 처해 있고 깨졌을 때 이면을 드러낸다.   그러한 파괴는 이전을 벗음으로써 이후를 여는 파탈(擺脫)이 된다. 스스로뿐 아니라 타자의 파탈을 이끌기도 한다. 스스로뿐 아니라 타자를 상처냄으로써 상처 깊숙한 곳에서 혼(魂)의 성숙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므로 깨진 그릇이야말로 끝이면서 시작이다. 시작의 '눈뜸'은 바로 끝의 '깨짐'과 한 몸을 이룬다. 때문에 시인에게 '깨진다는 것'은 갇히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공간을 뛰쳐나온 존재의 환희다. 빈 공간이며 허공이고 무(無)다. "깨지는 그릇./ 자리에서 밀린 그릇은/ 차라리 깨진다./ 깨짐으로써 본분을 지키는/ 살아 있는 흙,/ 살아 있다는 것은/ 스스로 깨진다는 것이다"('살아 있는 흙 -그릇14').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그릇', 깨져서 새롭게 완성되는 '깨진 그릇'이야말로 오세영 시인의 가장 개성적인 개인 상징이라 할 만하다.      [애송시 100편-제36편]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 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누이동생               ▲ 일러스트 잠산   임화(1908~1953)는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문학운동을 표방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핵심 멤버로 카프의 서기장을 지낸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임화는 모던 보이였다. 영화 '유랑'과 '혼가'에서 주연을 맞기도 해 '조선의 발렌티노'로 불리었다. 그는 계급주의 문학의 선봉에 서서 카프를 이끌었지만, 막상 1935년에는 카프 해산계를 직접 내야 했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 종로 한청빌딩에 조선문학건설본부라는 간판을 내걸어 좌익 계열 문인들을 규합했다. 그 후 박헌영을 따라 월북했으나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 시는 사건적이고 소설적인 데서 시의 소재를 찾았고, 소박하고 '된 그대로의 말'을 사용했고, 노동자들의 낭독에 편한 리듬을 씀으로써 카프문학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단편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사(製絲) 공장 여직공이었다가 이제는 백 장의 봉투를 붙이면 일전을 버는 일을 하는 화자가 오빠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글 형식이다.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봐서 오빠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로에 '오빠' 혹은 '혁명가의 정신'을 빗대어서, 역경―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지는―이 지금 닥쳐왔지만 굴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뜻을 밝혀 놓았다.   임화는 올해로 김기림, 김유정, 최재서, 백철과 함께 탄생 100돌을 맞았다. 임화는 1936년에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라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20'에서 '임화'라는 시를 통해 '아직껏 한국문학사에는 버려둔 무덤이 있다/ 마른 쑥대머리 무덤/ 그 무덤 벙어리 풀려 열리는 날/ 그 무덤 속 해골/ 뚜벅 걸어나오는 날/ 임화는 오리라// 아름다운 얼굴 다시 오리라 부신 햇살 뿜어 오리라'라고 써 왕양(汪洋)한 기상의 소유자였던 그를 추모했다.      [애송시 100편-제37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주(註) : 문의(文義)-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 일러스트 권신아  중학생 때 길에서 주운 한하운 시집을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시인.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인. 출가와 환속, 숱한 기행, 폐결핵, 자살시도,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한 반독재 민주화운동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시인. 시, 소설, 평론, 평전, 번역, 수필 등 150여 권에 이르는 신화적 글쓰기로 유명한 시인. '젊은 시인이여 술을 마셔라'라고 일갈하는 말술의 시인. 격정적인 시낭송이 일품인 시인. 낭만적인 허무의식에서, 역사와 민중에 대한 첨예한 현실인식으로, 그리고 선적(禪的) 초월의식으로 시적 변모를 거듭해온 시인. 올해로 등단 반세기를 맞이하는 시인. 여러 의미로 고은(75) 시인은 '큰' 시인임에 분명하다.   이 시는 신동문 시인의 모친상을 조문하러 문의에 갔다가 쓴 시라고 알려져 있다. '문(文)'과 '의(義)'의 마을, 문사(文士) 혹은 지사(志士)들이 꿈꾸었을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명이다(실제의 문의마을은 80년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으며 그 일부가 문의문화재단지에 복원되었다). 문의마을에 눈은 만났다가 갈라지기를 거듭하는 삶과 죽음, 산과 들, 마을과 길의 경계를 덮으며 내린다. 경계를 덮으며 내리는 눈은 온 세상을 낮게 그리고 가깝게 만들고, 적막하게 그리고 서로를 껴안아주고 받아줄 듯 내린다. 시인에게 그 눈은 죽음처럼 내리는 것이다. 우리 삶 속의 죽음처럼.   그의 다른 시 "싸락눈이 내려서/ 돌아다보면 여기저기 저승"('작은 노래'),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눈길')라는 시에서도 눈은 '대지(大地)의 고백(告白)'이나 '위대한 적막(寂寞)'처럼 내린다. 한 평자는 그러한 눈을 '아름다운 허무'라고도 했다. 그러나 눈은 금세 내리고 금세 녹아버리듯, 우리가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깨닫기란 높고 먼 일이다. 상여(喪輿)의 길처럼, 마을에서 산에 이르는 길은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겨울 문의에 가서 시인이 본 것은 그 길이 '가까스로 만난'다는 것이고,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덮으며, 가깝게 낮게 내리는 눈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으리라.      [애송시 100편-제38편]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일러스트=잠산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생(生)과 견주어 보아도// 시(詩)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詩')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의 돈을 쥔다. 끙끙대고 밤을 새우며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46)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시(詩)'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애송시 100편-제38편]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 일러스트=권신아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먹었느냐고 묻지 말라/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라"(시 '나를 만나거든')던 시인 이용악(1914~1971)! 그는 한반도의 최북단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을 건너 할아버지는 소금을 밀수입했고 친척들은 그 강을 건너 아라사(러시아) 연해주 등지로 이민을 갔다. 그 두만강을 건너 밀무역 행상 중 아버지는 객사하였으며, 홀로 된 어머니는 국숫집을 하며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시인 또한 서울에서 동경에서 품팔이 노동을 하며 고학했다. 이야기성과 체험의 구체성이 두드러진 그의 시들을 읽는 일은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개인사, 가족사, 그리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북간도 어느 술막에서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가시내가 만났다. 사내는 언 발로 눈보라를 뚫고 두만강을 건너왔으며 날이 밝으면 다시 흔적도 없이 떠나야 한다. 가시내는 석 달 전에 북으로 달리는 '불술기(기차)' 속에서 치마를 뒤집어쓴 채 이틀을 울며 두만강을 건너 이곳으로 팔려왔다. 그런 두 남녀가 국경 너머에서 만나 겨울밤 내 지나온 내력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주고받고 있다.   그 밤 내 사내가 '가시내야'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것도 함경도 사내가 '전라도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 전라도 가시내는 한없이 차고 한없이 차진 느낌이다. 고향을 떠나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고 울었던 가시내, 지금은 남실남실 술을 치는 가시내. 때로 싸늘한 웃음을 보조개를 소리 없이 새기는 가시내, 까무스레한 얼굴에 눈이 바다처럼 푸른 가시내, 간간이 전라도 사투리가 섞이는 가시내…. 이 함경도 사내처럼 나는, 그 전라도 가시내를 만난 것만 같다. 전라도 개펄의 바지락 조개 같고 세발낙지 같고 때로 꿈꿈한 홍어 같기도 했으리라.   그 밤 내내 함경도 사내가 피워 올리는 북쪽 눈포래 냄새와, 전라도 가시내가 피워 올리는 남쪽 바다 냄새에 북간도 술막이 흥성했겠다. 그 술막의 술독 바닥났겠다. 눈에 선한, '흉참한' 시대를 살았던 그 전라도 가시내. "너의 노래가 어부의 자장가처럼 애조롭다/너는 어느 흉작촌(凶作村)이 보낸 어린 희생자냐"(제비 같은 소녀야-강 건너 주막에서)!      [애송시 100편-제40편] 박꽃 -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 일러스트 잠산   꽃의 개화를 본 적이 있으신지. 그 잎잎의 열어젖힘을 본 적이 있으신지.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일을 씨앗이 움트는 일이라고 했다지만, 꽃의 '열린 앉음새'라 불러도 좋을 꽃의 개화는 사람을 압도한다. 대개 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핀다.   천천히 진행되는 개화 파노라마를 관심있게 시종 지켜볼 만큼 여유롭고 섬세한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도 많지 않겠지만.   이 시에서 사람을 '벌떼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한 부분은 압권이다. 정신없이 분주하고 시끌시끌 작당(作黨)하여 몰려다니며 입으로 바늘 같은 독설을 내뱉는 세간의 사람들을 잉잉거리는 벌떼 무리에 비유했다. 인간의 시간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소란이 뚝 그쳤을 때 자연의 시간은 도래한다. 그리고 오, 하얀 박꽃은 피어난다. 물소리는 물소리로 들린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들린다.   자연의 시간에는 살기(殺氣)가 없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세계를 맑게 회복시킨다. 씻어낸다. 시 '무인도'에서 "인간을 만나고 온 바다,/ 물거품 버릴 데를 찾아 무인도(無人島)로 가고 있다"라고 했을 때의 무인도처럼. 하산(下山)한 당신도 '죄(罪) 짓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자연의 시간에 살고 싶지 않으신지.   이 시는 '산(山)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신대철(63) 시인의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에 실려 있다. 신대철 시인은 1977년 첫 시집을 출간하고 23년간 절필을 했다. 2000년 시작 활동을 재개한 후 근년에는 알래스카, 시베리아 평원, 바이칼호, 몽골, 두만강 등 원시적이고 광활한 자연에 대한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곳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의 이산의 역사와 고통을 부각시키면서. 신대철 시인은 북파 공작원 부대의 학군장교로 군복무를 했고, 그 당시의 기억을 토대로 전쟁과 남북 분단의 아픈 현대사를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충청도 청양의 깊은 산에서 화전민으로 살았던 그만의 체험은 붉은 혈액이 되어 신대철 시의 몸을 움직인다. 그의 시는 큰 산이요 큰 숲이다. 더 깊숙이 평화롭고, 깨금이 떨어지고, 아그배가 떨어지는 그런 곳. 당신도 가서 살고 싶지 않으신지.       [애송시 100편-제41편]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 박상순       첫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의 내가   열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번째는 나   열번째는 전화기             ▲ 일러스트=권신아   말문이 트인 아이는 어느 날 선언한다. "엄마, 오늘부터 엄마는 아지, 아빠는 끼리, 언니는 콩콩이, 나는 밍밍이야, 이제 그렇게 불러야 돼, 꼭." 또 어느 날은 이렇게 선언한다. "오늘부터 식탁은 구름, 의자는 나무, 밥은 흙, 반찬은 소라라고 해야 돼, 알았지?" 난감, 황당 그 자체일 때가 많은 박상순(46) 시인의 시는 이런 네 살배기 놀이의 사유로 들여다보았을 때 쉽게 이해되곤 한다. 그러니 주의하시라! 그의 시를 향해,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묻는 순간 당신은 헛방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니.   'A는 B'라는 반복으로 이루어진 시다. A와 B의 관계는 무연하고 또 우연하다. 인과관계가 없는 '관계 맺기' 혹은 '이름 바꾸기' 놀이다. 그러니 왜 첫 번째가 나이고 6이 나무이고 7이 돌고래인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독자들도 A에 혹은 B에 마음껏 다른 단어를 넣어 읽어도 무방하다. 또한, 이 시는 앞에는 숫자가, 뒤에는 낱말이 새겨진 아이들의 카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6이라 쓰인 카드의 뒷면에는 나무라고 씌어 있고, 7이라 쓰인 카드의 뒷면에는 돌고래라고 씌어 있다. 십진법에 따르면 세상 혹은 세상의 모든 숫자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환원된다. 현실과 언어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숫자와 낱말의 관계도 무연하고 우연한 약속에 불과하다면, 세상의 모든 관계도 그러하다는 것일까?   이 시의 핵심은, '내'가 이 순서와 관계를 (외우듯) 반복하는 그 리듬에 있다. '자, 아무 생각 말고 따라 해 봐'라는 식의 폭력적인 우리의 교육 현실 혹은 성장 과정을 암시하는 것일까?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내지는 언어(혹은 제도)의 감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일까? 아니면 유년의 로망이 담긴 단어의 나열이라는 점에서 상실한 본향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아무것이면서 아무것이 아니기도 할 것이다. 언뜻 보면 천진난만한데 읽다 보면 슬쩍 공포스러워지는 까닭들이다.   박상순 시인은 회화를 전공한 미술학도다. 유능한 북(표지)디자이너이자 편집자이며 출판인이기도 하다. '무서운 아이들'의 유희적 상상력, 신경증적 반복, 파격적 시 형식, 의미의 비약적 해체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시에 대해 다 알려고 하지 말자. 다 알려고 하면 박상순 시는 없다. 박상순보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 누구도 박상순처럼 시를 쓰지는 못한다. 그게 중요하다.      [애송시 100편-제42편]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일러스트=잠산 황지우(56) 시인의 시 '손을 씻는다'를 함께 읽는다.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라고 쓴 시. 한 점 오점 없이 살 수는 없다. 저질러가면서 우리는 산다. 좌충우돌하면서 난동을 부리면서.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시대가 진화해가는 것은 우리가 내부적으로 가진 자기 반성과 좀 더 나아지려는 희망의 추구 같은 것 때문이다.   이 시는 솔직하다. 나무는 꼭 나무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헐벗고 무방비이고, 때로는 벌 받고, 긴가민가 하는 사람으로 읽어도 좋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라고 중얼중얼할 줄은 아는 사람이다. 아주 숙맥이거나 속물적이지는 않아서 현재의 환멸을 볼 줄은 아는, 앙가슴이 뛰는 그런 사람. 바깥 세상이 영하인지 영상인지 구별할 줄 알아 드디어 버틸 줄도 거부할 줄도 알게 된 사람. 마침내 싹도 잎도 틔우면서 불쑥 기립하여 봄의 나무가 된 사람. 자력의 운동성을 가진, 스스로를 혁명하는 사람. 자기 몸을 쳐서 바다를 건너가는 새 같은 사람. 의지의 사람… 우리는 이런 봄나무를 기다리는 것 아닌가.   황지우 시인은 1980년대를 날카로운 풍자로 노래했다. 그는 1980년대의 독재와 살해와 검열에 맞선 '시의 시국사범'이었다. 한 대담에서 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시대가 우리를 건드렸다"고 표현했는데, 그의 시는 권력의 중증(重症)을 처절하게 해체하려한 양심이었다. 설령 그가 시 '뼈아픈 후회'에서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라고 써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있지만, 이 혹독한 자기 검열의 고백이 황지우 시의 미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시대와의 불화와 선적(禪的)인 기개를 넘나드는 그의 시는 한국시사에서 푸릇푸릇한 '방풍(防風)의 대밭'이다.      [애송시 100편-제43편] 쉬 -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2006〉)       ▲ 일러스트=권신아   해방둥이 문인수(62) 시인은 마흔이 넘어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하지만 시적 성취는 어느 시인보다 높아 환갑 지나 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시는 정진규 시인의 부친상에 문상을 갔다가 선친에 대한 회고담을 듣고 쓰인 시인데, 바야흐로 문인수 시인의 대표시가 되었다. 문상을 다녀와 순식간에 쓰였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막힘이 없이 활달하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고 있다. 정신은 아직 초롱한 아버지가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떠나버린 스스로의 몸에 난감해 하실까봐 아들이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겄다아"며 농 반 어리광 반을 부리고 있다. 상상만으로도 그 모습은 흐뭇하고 뭉클하다. 이 '쉬'는 단음절인데 그 뜻은 다의적이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일차적으로는 오줌을 누시라는 말이겠고, 그것도 쉬이(쉽게) 누시라는 말이겠고, 아버지가 힘겹게 오줌을 누시는 중이니 우주로 하여금 조용히 하라는 말이겠다. 아버지를 향해, 우주를 향해 그리고 신을 향해 내는 울력의 소리이자 당부의 소리이고 주술의 소리일 것이다.   오줌발을 '길고 긴 뜨신 끈'으로 비유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계산해 보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이 평생 눈 오줌발을 잇고 잇는다면 지구 한 바퀴쯤은 돌 수 있지 않을까. 그 길고 뜨신 오줌발이야말로 한 생명의 끈이고 한 욕망의 끈이다. 그 '길고 긴 뜨신 끈'을 늙은 아들은 안타깝게 땅에 붙들어 매려 하고 더 늙으신 아버지는 이제 힘겨워 땅으로부터마저 풀려 한다. 아들은 온몸에 사무쳐 '몸 갚아드리듯' 아버지를 안고, 안긴 아버지는 온몸을 더 작게 더 가볍게 움츠리려 애쓴다. 안기고 안은 늙은 두 부자의 대조적인 내면이 시를 더욱 깊게 한다.   마지막 행의 '쉬!'는 첫 행의 '상가(喪家)'를 환기시킨다. 이제 아들의 쉬- 소리도, 툭 툭 끊기던 아버지의 오줌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길고 긴 뜨신 오줌발'도 쉬!, 이렇게 조용히 끊기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 '시가 뭘까' 라는 고민을 할 때 이런 시는 쉬운 답을 주기도 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한순간에 집약시키는 것, 그 순간에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통찰이 녹아 있는 것이라는. 이 시가 그러하지 않는가.        [애송시 100편-제44편]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었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는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서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 일러스트=잠산 흔하게도 인생은 여행에 비유된다. 우리는 흘러가면서 만난다. 사람과 붐비는 시장과 웃음과 꽃밭과 폭풍의 바다와 벼랑과 사막을 만난다. 그러므로 삶에는 여독이 있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내 여행의 종착지를 생각한다.   이 시는 우리의 마음을 적적한 곳으로 데려간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로 가서 살자고 한다. 종일을 살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개옻 그늘과 늦가을만이 살고 있는 곳. 세상의 쓸쓸함을 다 살아본 듯 벌써 무욕을 알고, 골짜기보다 더 깊은 눈으로 속리(俗離)한 우리를 맞아줄 여인이 살고 있는 곳. 그러나 그런 곳이 있을까. 잇속이나 명리나 부귀 같은 것은 손을 털 듯 탁, 탁 털어버린 곳. 더 움켜쥐려는 근욕(根欲)이 사라져 알몸의 자아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곳. 퇴폐도 맑게 씻기어서 별처럼 빛나는 곳. 삶을 탕진한 사람도 다 받아줄 것 같은 마지막 성지(聖地). 그곳서 우리의 여행이 끝난다면 후회는 없으리니.   많은 독자들은 김명인(62) 시인의 첫 시집 '동두천(東豆川)'을 기억할 것이다. 기지촌에서 혼혈아에게 국어를 가르치던 시기의 경험을 쓴 동두천 연작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니.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지금도 기억할까 그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동두천 4')라고 써 수많은 독자를 여지없이 울먹이게 한 시!     김명인 시인은 동두천 연작 발표 후에도 지금까지 '욕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막막한 표랑을 강한 연민으로 감싸 안아온 시인이다. 그는 한국의 서정시가 실험과 해체와 생각의 과잉과 포즈의 유행을 탈 때에도 흔들림 없이 서정시를 지켜내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역할을 맡아 왔다. 그의시에 대해 이승훈 시인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한마디로 김명인의 시는 마음이 놓인다"라고. 동감이다      [애송시 100편 - 45] 향수-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일러스트 권신아   시간은 가고 기억은 쌓인다.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우리는 추억이라 하던가. 향수(鄕愁)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상처나 슬픔조차도 지나간 것이기에 아름답고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는 고향. 마음의 고향은 늘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에 자리하고, 향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게 한다.   이동원과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더 유명해진 정지용(1902~1950)의 '향수'는 이십대 초반의 시인이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 고향인 충북 옥천을 다니러가며 쓴 시다. 이제 곧 떠나야 할 고향이기에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검정 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정종을 좋아했던 그는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나면 낭랑한 목소리로 이 '향수'와 함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고향'을 즐겨 낭송했다 한다. 신석정 시인은 "지용같이 시를 잘 읊는 사람은 보지 못했노라" 회고한 바 있다.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라고 믿었던 그는 우리 현대시사에서 언어와 감각의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시 또한 소리내어 읽노라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는 ㅂㅂㅂ 말을 달리는 듯하고,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함추름 휘적시던 곳'은 ㅎㅎㅎ 흩어져 있는 듯하다. 실개천을 '옛이야기 지줄대는' 소리로, 황소를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으로, 아버지를 '엷은 졸음'으로 감각하는 솜씨 또한 일품이다. '해설피'가 해가 설핏할 무렵인지 느리고 어설프게(혹은 슬프게)인지, '석근' 별이 성근(성긴) 별인지 섞인 별인지 애매하지만 그 질감만은 새록하다.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아버지와 검은 귀밑머리를 날리는 누이와 사철 발벗은 아내가 집안에 있고 집밖으로는 넓은 벌과 실개천이, 파란 하늘과 풀섶 이슬이, 석근 별과 서리 까마귀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이미 마음의 고향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를 후렴처럼 노래하며 '그곳'을 그리듯 보여주는 단순한 시 형식은 음악적 울림은 물론 애틋한 향수의 정감을 쉽고 실감나게 전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흙에서 자란 마음'을 서늘옵고 빛나게 '이마받이'해보는 아침이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춘설(春雪)')롭지 아니한가.      [애송시 100편 - 제46편] 어디로? - 최하림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 일러스트=잠산 최하림(69)은 한글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62년 평론가 김현·김치수, 소설가 김승옥과 한글 세대 최초의 동인지 '산문시대'를 함께 냈다. 최하림 시인의 시는 점점 그윽하다. 그는 내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조금 걸어나가면 강이 바라보이는 양수리 그의 집에   갔을 때에도 그는 어둠이 내리는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그의 말은 "참 좋지요"가 전부였다. 그에게는 오연(傲然)함이 없다.     최하림 시인은 빛과 어둠, 정지와 운동 사이의 미묘한 오고 감을 살피는 데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이 시를 읽어도 그렇다. 황혼이 내리는 무렵에 나무들이 있고 바람이 있고 오두막이 있고 사내가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흐르는 물이 있다. 이 존재들의 뒤에는 커튼처럼 황혼이 있다. 황혼은 아래로 하강하고, 바람은 직립한 나무들에게 수평으로 이동하고, 오두막과 사내는 수직으로 서 있거나 수직으로 움직이고, 물은 옆으로 흐른다. 존재들은 내려오고 올라가고 옆으로 이동한다. 움직이는가 했더니 곧 멈추어 선다. 동작을 보여주지만 격하지 않다. 시인은 돌보듯이 존재들 하나하나에 시선을 건넨다. 하나만을 전유하려는 못된 버릇도 없다. 해서 존재들은 하나하나가 언뜻언뜻하고 얼핏얼핏하다. 어느 것 하나가 도드라질 양이면 그 윤곽을 살짝 지워놓는다. 마음은 곧잘 뛰쳐나가길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그렇지가 않으니 갸륵하다. 마음은 이렇게 우묵하고 참할 때가 있다.   자작나무 껍질을 머리에 쓰고 너덜너덜하게 옷을 입고 다녔다는, 숨어 살았다는 한산(寒山)은 "우스워라, 나의 길이여/ 거마(車馬)의 자국조차 없네/ 돌고 도는 시내의 굽이를 알 수 없고/ 첩첩의 산은 그 겹을 모르겠네/(…)/ 내 여기에 이르러 길 잃고 헤매느니/ 그림자를 돌아보며 '어디로?' 물어보네"라고 썼는데, 이 시에서는 나아갈 길의 향방조차 묻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고 잘 묻는다. 그러나 "어디로?" 라고 보채며 질문하지 말자. 다만 거기에 여기에 있을 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을 뿐.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고 있어야"('십일월이 지나는 산굽이에서')할 뿐. 그럴 때 손결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간 듯 삶에는 빛이 인다. 그 빛에 무엇을 더 보태겠는가.      [애송시 100편-47]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일러스트 잠산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己未) 독립선언문에는 시 못지않은 리듬과 비장한 여운이 있다. 고교 시절, 이 선언문과 함께 짝패처럼 좔좔좔 암송해야 했던 시가 이상화(1901~1943)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1919년 서울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3월 8일 장날을 기해 대구에서 학생만세운동을 모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는 상화(相和)라는 이름을 상화(尙火)나 상화(想華)로 쓰곤 했는데, 정녕 그의 시와 삶이 '항상 불' 같았으며 '만주를 오가며 늘 독립운동을 생각'하곤 했다. 그러니 3월이 되면 이 시가 떠오를 수밖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신령'이고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은'에 담긴 이 봄의 혼곤 속을 '다리를 절며 걷'고 있다.   이 시의 매력은 굳세고 비장한 의지와 어우러진 섬세한 감각에 있다. 가르마 같은 논길,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 삼단 같은 머리를 감은 보리밭, 살진 젖가슴 같은 흙 등 빼앗긴 들을 온통 사랑스런 여성의 몸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 들(판)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관능적인 연애시의 옷을 입은 지극한 애국애족의 저항시다.      [애송시 100편 - 제48편]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일러스트=잠산 너무나 아름다운 이 시를 통째로 암송할 수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말씨와 어렵지 않은 입말로 쓴 시. 무엇보다 이 시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천상의 별과 지상의 잎새에 걸쳐 있는 넓은 공간의식도 놀랍다. 삶은 잡목림 같은 것. 해서 번뇌와 의혹과 부정의 바람은 그치지 않고 불어와 잎새와 같은 우리를 교란시키는 것. 부끄러움은 하루 걸러 오는 것. 그러나 어둠을 배경으로 별은 빛나고, 바람과 같은 시련을 만날 때 큰 사랑은 움트는 것. 다만 우리는 나의 부끄러움으로, 나의 양심으로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고고함과 지순함과 강직함으로 사랑하자.   윤동주(1917~1945) 시인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어둠과 황폐를 의식의 순결함으로 초월하려고 했다. 그는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또 다른 고향')고 써 스스로를 반성했고,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고 쓰며 자신을 끊임없이 돌이켜 봤다.   종교적인 순교의 의지로도 읽히고 독립에의 의지로도 읽히는 등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갖고 있는 이 시를 쓴 것은 1941년 11월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는 1941년 자선 시집을 내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시국을 염려해서 시집 출간 연기를 권함에 따라 뜻을 미루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43년 7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출감을 기다렸지만 불운하게도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디찬 바닥에서 옥사했다.   윤동주 시인은 생전에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못했다. 다만 이 시가 포함된 원고뭉치가 국문학자 정병욱의 어머니에 의해 장롱 속에 몰래 보관되다가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정지용 시인은 유고시집의 서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써서 청년 윤동주의 죽음을 애도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헤는 밤')고 노래한 영원한 청년 윤동주. 생전에 그는 자기 성찰로 뒤척이는 한 잎의 잎새였으나, 이제 보석처럼 빛나는 천상의 별이 됐다.       [애송시 100편 - 제 49편]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일러스트=권선아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마음이 울렁거리는 일이다. 바람 불면 그곳이 어디든 따라 나서고 싶고, 바람 들면 온몸이 저절로 살랑살랑 나부끼게 되고, 바람나면 불타는 두 눈에 세상 보이는 것 아마 없으리.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사무치는 일이다.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부재와 상실,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시리고 뼛속까지 시리리. 그리고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다. 물처럼 세월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으리.   삶이, 사랑이, 시(詩)의 말이 바람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바람(願)이라서, 바람(風) 같아서 간절한 것들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간절하게 그리운 부재가 떠오르고, 간절하게 따뜻한 배려가 떠오른다. 몸을 떠나 영혼으로 떠돌며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던 영화 '사랑과 영혼', 그 애틋한 바람의 영혼도 떠오른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사랑의 괴로움, 사랑의 피로까지를 함께하는 바람의 마음. 그렇게 따뜻한 바람이라면 '가끔'이 아니라 매일매일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고 싶다. "목숨을 걸면 무엇이고/ 무섭고 아름답겠지./ 나도 목숨 건 사랑의/ 연한 피부를 쓰다듬고 싶다"('성년의 비밀')   이 시는 조용필이 부른 '바람이 전하는 말'의 노랫말과 흡사하다. 물론 이 시가 5년쯤 먼저다. 의사이기도 한 마종기(69) 시인은 고희를 앞두고도 여전히 젊고 댄디(dandy)하다. 어떤 선입관과 고정관념과 권위로부터 자유롭다. 동화작가 마해송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여성 무용가 박외선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성장해 의과대학 재학 시절 시인으로 등단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40여 년간 방사선과 전문의로 지내며 시를 써왔다.   그는 올해로 시력 49년을 맞는다. 투명하면서 울림이 깊은 그의 시에 유난히 위로받고 행복해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오롯한 그리움과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말했다. 그의 시는 '맹물' 같다고. 어느 날 마시면 상쾌하고 시원하고, 어느 날은 목이 메고 어느 날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나는 이제 고국에서는/ 바람으로만 남겠네"('산수유')라는 그의 최근 시의 구절이 떠오른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라는 이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과 함께. 그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시민임이 분명하다, 저 바람처럼.       [애송시 100편 - 제 50편]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일러스트=잠산 봄! 살찐 볼을 만지는 것 같다. 입안에 쑥 냄새가 돈다. 노란 산수유 그늘도 펼쳐진다. 연못가 버들개지도 눈을 뜬다. 볕은 보송보송하다. 옷은 가볍고 걸음은 경쾌하다. 찬 없이 따뜻한 밥과 냉잇국 한 그릇을 받고 싶다. 차닥차닥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리던 옛날의 빨래터도 다시 가보고 싶다.   봄! 자연에게만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도 그것은 돌아온다. 인심에도 계절이 있다. 정치가 싸움판을 걷어내거나, 경제가 잘 돌아 보통사람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훈풍 부는 봄이 왔다고 한다. 넉넉하고 화창하면 모두 봄이다. 그러므로 봄은 우리의 일상에서 제일로 선호하는 비유의 언어이다. 봄에는 게정게정 불평하는 소리가 싹 사라진다.   이 시의 맛은 봄을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으로 빗댄 데 있다. 그러나 이 시에 등장하는 봄의 비유로서의 사람은 순박하고 좀 어수룩하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저기서 기웃거리는 것을 좀 보라. 무리에 끼어서 한눈도 팔고 궂은 데서 뒹굴기도 한다.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줄을 모르고 한량처럼 '나자빠져' 있기도 한다. 느려터졌지만 한판 싸움질도 하는 것을 보니 강퍅하니 나름으로는 고집도 센 듯하다. 대처를 떠도느라 산전수전 다 겪었다.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아, 그러나 사람 냄새가 나는 그는 '마침내' 돌아온다. 민주주의의 도래처럼. 격전지에서 생환한 용사처럼. 봄의 백성이 되어 꿈에도 못 잊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품으로.   이성부(66) 시인은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를 지닌 민중시인이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울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라고 쓴 시 '벼'는 민중서정시의 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광주 출신의 그는 '80년 광주'를 겪은 후 죄의식으로 방황을 하다 산(山)에서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다. 그는 산행을 통해 "처음에 울적하게 막혔던 것이 나중에는 쾌함을 얻는다"라는 퇴계의 글귀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년까지는 지리산과 백두대간을 종주한 경험으로 '내가 걷는 백두대간' 연작시를 발표했다.   그가 돌아오고 있다. 오늘은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봄을 마중 나가자. 들길과 거리와 사람 사는 동네에, 그리하여 이 세상에 봄볕 그득할 때까지.      [애송시 100편 - 제 51편]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일러스트 권신아   출간되자마자 금서(禁書)가 된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구하기 위해 책방을 뒤지고 다녔던 것도, 최루 속에서 금지곡(禁止曲)이었던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던 것도, 시보다 운동을 택했던 선배가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주점에서 결혼식을 했던 것도, 지금도 김광석이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으면 뭉클해지는 것도 다 이 시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맞고 때리는, 울고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의 중첩을 통해 지난 70년대의 공포와 고통을 날카롭게 드러낸 시다. 누군가는 그렇게 피를 흘리며 뒷골목으로 쫓겼고 누군가는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자정부터 신 새벽 사이, 뒷골목과 뒷골목 사이,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열망했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이 시가 뜨거운 것은 잊혀져 가는 '민주주의'를 노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했기에 더욱 뜨겁다. 오래 가지지 못한 아니 너무도 오래 잃어버린 그 모든 목마름의 이름을 '타는 목마름'으로 남 몰래 쓰고 있는 한, 이 시는 여전히 뜨겁게 살아오는 것이다. 우리에게 되살아오는 것이다.   그의 본명은 '영일'(英一, 한 꽃송이)이다. 거리 입간판에 조그맣게 써있던 '지하'라는 글자를 보고 지었다는 필명 '지하'(地下가 芝河로 바뀌었다). 시위, 필화사건, 긴급조치 및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선동죄 등으로 체포, 투옥, 사형 및 무기징역 선고, 석방을 거듭하면서 김지하(67) 시인은 70년대 내내 박정희 정권과 맞섰다. 감옥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듣는 순간, 무상함에 휩싸여 "잘 가시오. 나도 뒤따라가리다"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투사' 김지하는 '생명사상가' 김지하로 변신한다. 감옥 창틀에 싹을 틔운 민들레를 보고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에 눈을 떴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시(詩)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속 3')임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시인, 그리고 이제 자신의 시와 삶이 우주 저편으로까지 이어지는 '흰 그늘의 길'에 서기를 꿈꾸는 시인, 그가 있어 우리 시는 또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애송시 100편 - 제 52편]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 일러스트=잠산 '입아아입(入我我入)'이라고 했다. 저것이 나한테 들어 있고, 내가 저것 속에 들어 있다고 했다. 이 세계는 서로가 연결되어 주고받는 중중무진(重重無盡) 연기의 세계이다. '법화경'을 보면 입아아입을 몸소 실천한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라는 이가 있다.   그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공경합니다. 나는 당신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고 말하면서 살았다. 막대기나 돌멩이로 때릴 때도 피해 도망가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후일에 많은 사람은 상불경보살의 큰 사랑을 알고 그를 예배 공경했다지만.   김선우(38) 시인은 90년대 여성시의 흐름을 이어오면서 여성의 '육체성'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시를 읽으면 상불경보살이라는 이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시는 너와 나의 차별이 없는 큰 화해와 사랑의 세계를 발언한다. 해서 그녀의 시에는 "너의 영혼인 내 몸"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나 아닌 것들이 나를 빚어/ 그대 아닌 것들로 빚어진 그대를 사랑하오니"와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젊은 여성 시인인 그녀가 우주 생명에 대한 무차별적 사랑을 가붓한 어조로 고백하는 이유는 이 물질세계를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자못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그녀의 시는 딱한 생명을 뱃속에 품고 강보에 받아내고 젖을 먹여 길러내는 모성을 보여준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의 몸을 과감하게 등장시켜 관능적이기도 하지만, "아프지 마, 목숨이 이미 아픈 거니까/ 아파도 환한 벼랑이 목숨이니까"라고 말할 때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시는 사바세계의 가엾은 목숨을 살려내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의 마음을 지녀 몸을 섞고 탐하는 쾌락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   개화(開花)를 모티프로 삼고 있는 이 시는 그 뜻이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러나 꽃피는 꽃의 몸과 내 몸을 교차시키면서 이 시는 의미의 확장을 얻는다. 꽃과 꽃벌의 혼례가 꽃과 나와의 혼례로 얽혀 읽히면서 이 시는 심상치 않은 의미를 낳는다. 그것은 성애적인 열락을 넘어선다. 그러나 "사랑이여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을 위해 울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밥알을/ 서로의 입에 떠 넣어주"며 살아야 하는가      [애송시 100편 - 제 52편] 바다와 나비 - 김기령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청산(靑山)이라면 몰라도 바다는 나비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거대한 바다에 비해 흰나비는 얼마나 작고 어리고 가냘픈가. 이 무구한 흰나비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알 수 없는 수심과 거센 물결에 대해 들은 적도 없다. 흰나비에게 푸르게 펼쳐진 것은 청(靑)무우밭이고 그렇게 푸른 것은 꽃을 피워야 마땅하다. 흰나비가 삼월의 바다에서 청무우꽃을 꿈꾸는 까닭이다. 그러나 짜디짠 바다에 흰나비의 날개만 절 뿐, 삼월이어도, 바다가 푸르긴 해도, 바다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만 비친다. 삼월의 바다, 어린 나비, 초생달은 모두 이른 것들이다. 시작인 것들이다.   허공을 나는 것들은 날개가 중요하고 땅을 걷는 것들은 허리가 중요하다. 헌데 '나비의 허리'라니! 공주의 아름다움은 춤에 있고 나비의 아름다움은 비상(飛翔)에 있다. '공주처럼 지쳐서' 바다에서 돌아온 나비. 바다로의 비상에 실패하고 뭍으로 귀환한 '나비의 허리'는 상징적 의미가 깊다. 이제 흰나비는 청무우 꽃그늘을 노니는 그런 나비가 아니다. 짜디짠, 바다의 깊이와 파도의 흔들림을 맛본, 허리가 실한 나비다.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고 흙이 묻"('주피터 추방')기 마련이다. 새롭고 먼 곳을 향해 비상하다 날개가 절어본 적이 있기에, 흰나비는 이제 흙이 묻더라도 땅을 밟는 사랑을 알았으리라.   이 시의 꽃은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이다. 하얗고 가늘고 기다란 나비의 몸과 초생달이 그려지고, 새파란 바닷물에 새파랗게 전 흰나비의 허리가 그려지고, 지쳐 돌아오는 흰나비 허리를 비추는 저물녘 초생달이 그려지기도 한다. '시린' 풍경들이다. 어쨌든 '바다'가 냉혹한 현실이라면 '나비'는 순진한 꿈의 표상이다. 꿈은 언제나 현실의 냉혹함을 모른 채 도전한다. 근대 혹은 서구문명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역사 혹은 시대의 흐름 앞에 무력했던 시인의 모습도.   김기림(1908~?) 시인의 탄생은 현대시 탄생과 그 햇수를 같이 한다(얼마 전 출생연도가 1907년으로 기록된 학적부가 발굴되어 탄생 101주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30년대 이상(李箱)과 더불어 한국 문단의 모더니즘을 주도하면서 서구문명 지향하는 '새로운 생활'을 동경했다. 그는 기자, 문학비평가(이론가), 번역가, 대학 교수를 겸한 모더니즘 선봉에 선 시인이었으나 분단과 전쟁은 그를 납북 이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비운의 모더니스트'로 만들어버렸다.      [애송시 100편 - 제 54편] 나그네 - 박목월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박목월(1916~1978)이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펴낸 3인 시집 '청록집'(1946)에 실려 있다. 임시 정가 30원의 '청록집'을 발간한 이후 세 명의 걸출한 시인들은 '청록파'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 서정시의 큰 산맥을 이룬 이 3인은 모두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경주에 살고 있던 박목월을 조지훈이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이 시는 박목월과 조지훈의 각별한 관계에서 태어났다.   '목월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조지훈의 시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화답으로 이 시를 썼기 때문이다. '완화삼'의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의 한 부분인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를 부제로 삼았다. '완화삼'의 시어인 나그네와 구름과 달과 강마을과 저녁 노을을 그대로 받아서 썼다. 다만 '완화삼'이 나그네의 구슬픈 우수(憂愁)를 더 드러내면서 가야 할 앞길의 정서적 거리를 '물길은 칠백리(七百里)'로 표현했다면, '나그네'에서는 물처럼 바람처럼 걸림 없이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의 길을 표표히 가는 나그네의 심사를 부각시켰다.   이 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접한 최초의 시였다. 외할머니가 벽에 붙여져 있던 이 시를 '가갸거겨'를 배우던 방식으로 흥얼흥얼하는 것을 곁에서 들었다. 그처럼 이 시는 우리말의 가락이 아주 잘 살아 있다.   조지훈은 박목월의 시에 대해 "압운(押韻)이 없는 현대시에도 이렇게 절실한 심운(心韻)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시를 읽으면 역시 그 평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시를 쓸 때에는 꼭 연필을 깎아 썼다는 박목월. 아이들에게 공책을 사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한지를 묶어 공책을 만들어줄 정도로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던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山)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산이 날 에워싸고')고 노래한 박목월. 시를 알게 되면서부터 본명 박영종(朴泳鐘) 대신 '木月'이라는 큰 자연의 이름을 스스로 붙였던 그. 식민지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박두진의 말대로 청록파에게 자연은 "온갖 제약을 타개하기 위한 시의 유일한 혈로(血路)"였는지 모른다. 그 한가운데에 '애달픈 꿈꾸는 사람' 박목월이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55편] 봄바다 - 김사인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 일러스트=권신아 구장집 마누라는 방뎅이도 크고 젖통도 크고 잠도 푸지게 잘 자니 미끈덩 아들 쑥쑥 낳겠다. 역시나 셋째가 제일 미끈덩하겠다. 미끈덩 인물 재산이겠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라도 되는 양 바람깨나 피우겠다. 도망치듯 상경해 이양저양 살피다 부잣집 과부 만나 한몫 챙기기도 하겠다. 살집 좋은 과부 곁에서 시름시름 늙어가며 이모저모 기웃대다 '인생 탕진하'겠다. 저리 생생(生生)한 구장집 마누라 몸을 거쳐 미끈덩 셋째 아들로 환생하는 것, 사내들의 로망이겠다. 이 시의 묘미는 현실 속 구장집 마누라가 아니라, 상상 속 셋째 아들의 부잣집 과부로 튀는 오지랖의 '쓰리 쿠션'에 있겠다.   이 시를 읽노라면 김 시인의 '심성'을 엿볼 수 있는 이시영 시인의 재미난 산문시 하나가 떠오른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술자리에 김사인 시인이 폭우 속 흰 고무신을 신고 와 합류했다는 것. 새벽 즈음에 이 시인의 처가 천둥치듯 "복희년 나오라고 그래!" 소리치며 들이닥쳤다는 것. 바로 그때 "나와 송 사이에서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인이가 갑자기 일어나 문밖으로 내빼는데 흰고무신 신은 발이 비호처럼 빨랐다. 그리고 빗속을 번개처럼 가르며 사라졌다. 복희씨가 졸린 눈을 뜨기도 전에, 송과 나의 처가 시퍼렇게 걷어붙인 팔을 풀기도 전에 일어난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김사인의 흰고무신')는 것.   김사인(52) 시인은 사람 좋은 충청도 양반이다. 떠듬떠듬 어눌하게, 천천히 길게, 그러나 뜨겁게 시를 쓰는 시인이다. 첫 시집을 내고 19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으니, 시 한 편을 길게는 30년을 쓰고 썼다니 '곡진'하다는 말, '지극'하다는 말은 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 그가 1980년대의 혁혁한 문화운동가이자 날카로운 논객이었다는 건, '노동해방문학'사건에 관여해 수배되기도 했다는 건 다 아는 전력(!)이다. "시는 크고 요란한 것이 아니라 작고 나지막한 섬김"이라고 말하는 그는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시를 높이고 세상과 사물을 높이는 드문 미덕을 가진 시인임에 틀림없다.   봄은 남쪽으로부터 오고, 남쪽 끝 바다로부터 온다.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같이 방방한 저 들판에, 구장집 마누라 젖통 같이 봉긋한 저 능선에, 구장집 마누라 코골이 같이 달디단 봄바람으로 온다. 바다 내음 향긋한 천지가 무릇 봄바다다. 물 맑은 봄바다에 두둥실 떠가는 저 배를 타고 미끈덩 풋것들로 환생하고 싶다. 어쨌든 봄이고 하여튼 봄밤이고 바야흐로 봄바다다.      [애송시 100편 - 제 56편]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일러스트=잠산 시름 많은 사람들과 "어두운 땅 한 평 가꾸다 갈래요/ 우리나라 하늘 한 평 비추다 갈래요"라고 노래했던 시인 고정희(1948~1991).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녀가 상한 영혼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흙에 심은 뿌리 죽는 법 보았나요"라고 묻는 것 같다.   평론가 김주연이 분석한 대로 이 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신다"는 성경의 말씀과 겹쳐 읽힌다. '하늘 아래'라는 표현도 예수의 언약과 임재(臨在)를 둥글게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넋으로 기댈 곳 없이 큰 고통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힘껏힘껏 껴안고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이 시는 보여준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다분히 기독교적인 신앙에 기초한 시편들을 써낸 고정희 시인은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칼을 들이댔다. "하느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라고 질문했고, 동시에 "하느님을 등에 업은 행복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도착 신앙인가"라며 고민했다. 그녀가 비판하고 날카롭게 투시한 대상은 눈앞의 현실 그 자체였으며, 돌봄이 있는 따뜻한 공동체는 그녀가 꿈꾸는 세계였다.   고정희 시인은 한 생애를 정열적으로 살다 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지냈고, 여성주의 문화집단인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제도적 억압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힘, 그것이 자유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항상 자유 의지에 속해 있는 하나의 에너지"라고 자평했는데, 조금의 호락호락함도 없이 평소 신념을 시 창작과 생활에서 실천했다. 한 시대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묵상했으므로 그녀의 시는 미지근하거나 융융한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는 80년대의 격문이면서 '우릉우릉 폭발하는 화산(火山)'이었다.   1991년 6월 지리산 뱀사골을 오르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생전에 쓴 시 '지리산의 봄 1-뱀사골에서 쓴 편지'가 자꾸 떠오른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뢰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라고 쓴 시. 그녀의 시를 읽고 있는 오늘 새벽은 내 가슴이 아프다.      [애송시 100편 - 제 57편]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 일러스트=권신아   동치미 무를 먹으며 아삭아삭 달을 베어먹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팥죽에 뜬 새알을 떠먹으며 어두운 밤하늘을 들락날락하는 달을 떠먹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달걀과 밀가루가 들어간 둥근 지짐이와 부침들을 먹을 때마다 달(빛)을 지져먹고 달(빛)을 부쳐 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알들은 달을, 하얗고 부드러운 가루들은 달빛을 닮았다. 그리고 흰 고봉밥이, 노란 달걀 프라이가, 토실한 감자가, 탐스럽고 둥근 빵이 죄다 달을 닮아 있지 않은가. 그뿐 아니다. 밥상에 뜬 온갖 달들을 만들어내는 엄마와 아내와 누이와 딸이 모두 달의 여인들이니, 우리는 밥상에 뜬 달을 먹고 자라는, 그 달을 만드는 이 달에 의해 키워지는, 달의 후예들이다. 그러니 밥이 달이고, 밥의 집이 달의 집이다.   '조각조각' 달집 아래를 걸을 때, '모락모락' 밥집 곁을 지나칠 때 그 집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부푸는 추억이자 꺼지지 않은 희망임을 깨닫는다. 저녁 밥상 앞에 둥그렇게 앉아 '한 그릇씩의 달'을 비우며 서로를 마주볼 때 '꼭꼭 뭉친 주먹밥'처럼 비로소 한 식구(食口)임을 확인한다. 그런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물을 구부려 물방울 보석을 만들고(…) 이 세계를 둥글게 완성시켜 놓"('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는다. 달은 어머니처럼 둥글고, 이 둥근 것들을 우리는 끊을 수 없다. 밤의 어둠을 굴리는 달(빛)이 이울며 차며 '달의 원형'을 회복하듯, 우리도 그렇게 추억과 희망을 완성할 것이다. 그것들로 배가 둥그렇게 부르리라. 또 다른 달을 낳기도 하리라. 그것이 달의 역사(歷史)이고 달의 미래일 것이다.       80년대가 끝나갈 무렵에 출간된 송찬호(49)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가 불러일으켰던 반향은 컸다. 그는 마치 연금술사와도 같이, 시대와 가족과 인간과 사물과 언어를 비극적이면서 비의적(秘儀的)으로 결합시키곤 한다. "나는 시를 무겁게 시작한다. 그리고 오래 매만진다"는 시작 태도는 시의 이미지를 돌올하게 하고 형이상학적인 깊이를 거느리게 한다. 소를 치던 어린 시절 '아이 지게'를 갖는 게 꿈이었다는, 고춧가루 몇 되를 들고 가출해 소설을 쓰기도 했다는, 군대와 대학 생활을 제외하고는 고향 보은을 떠나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그는 자신에게는 '시 쓰는 일'이 전부일 뿐이라고 일갈하는 몇 안 되는 시인이다. 이런 시인이라야 모름지기 전업시인일 것이다.      [애송시 100편 제 -58편]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일러스트=잠산 번짐이라니. 바뀜이 아니라 번짐이라니. 목련꽃이 피는 일을,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일을, 계절의 순환을, 너와 나 사이 사랑과 이별의 사건을,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그 둥?을, 시간과 공간의 옮김을 번짐이라고 부르다니. 먹물이 화선지에서 고요하게 번지듯이. 그리하여 번짐은 환함이라니. 씨나 날로 결어서 천을 짜듯이 조촘조촘 가는 것이라니.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나아가는 것이라니. 번짐이라고 부르면 나와 당신은 얼마나 가까운가. 이 생(生)을 받아 가꾸는 일이 얼마나 거룩한가.   장석남(43) 시인의 시는 강한 전염력을 갖고 있다. 그의 시는 '번지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나아간다. 밀어내고 부드럽게 떠나고 밀려들어오는, 그 '어쩌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우리들 '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들'을 아주 잘 들여다보고 귀담아듣는 출중한 감각을 자랑한다. "찌르라기떼가 왔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 검은 새떼들"('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라고 쓴다거나, "어미소가 송아지 등을 핥아준다/ 막 이삭 피는 보리밭을 핥는 바람/ 아, 저 혓자국!"('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이라고 쓸 때의 놀라운 감각이라니!   장석남 시인의 마음에는 '옹근 고요'가 살고 있는 것 같다. 옹근 고요 위에서 그의 시는 태어난다. 고독과 외면과 섭섭함과 흔들림과 설움과 간신히 잦아드는 것과 사소함과 곰곰 궁금함과 은밀함과 찬란함과 되비쳐옴과…… 그 모든 감정의 섬세한 자세를 그의 시는 그려낸다. '겨우'라고 수식될 세상 살림들의 속삭임과 혈육인 듯 함께 살면서 '물항아리에 물 차 오르면 거기에 어룽대는 물의 빛'과도 같은, 사람의 가슴에 도는 생(生)의 윤기를 발견해낸다. (삶에 윤기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시에도 자원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갈증/ 그건 아무도 모르게 영혼을 찢어놓는,/ 남은 모르는 갈증/ 갈증"('시법(詩法)')이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 시대에 아주 드문 서정시인이다.   첫 시집을 내고 "나는 춤꾼이거나 가수이거나 아니면 유능한 세션맨이 되었어야 옳았다"고 고백하는, 해서 한때는 전기기타를 배우러 사설강습소를 다녔다는, 해서 한때는 배우로도 활동한, 거문고를 안고 사치를 부리기도 한다는 시인. 장석남 시인을 만날 때마다 나는 확신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시인은 울림통 하나쯤은 지닌 근사한 악기여야 한다는 것을.      [애송시 100편 - 제 59편]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 일러스트=권신아 그늘! 나비 그늘, 꽃 그늘, 나무 그늘, 처마 그늘, 담 그늘, 당신 그늘, 심지어 위태롭게 서 있는 전봇대나 바지랑대에도 그늘은 있다. 그늘은 눈부시지 않고 어둡지 않다. 뜨거운 햇살은 가려주고 비바람은 대신 먼저 맞아준다. 여운, 깊이, 여유, 멋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림자와 다르다. 그래서일까. 그늘 아래 서면, 잠시, 시간도 잊고 이름도 잊고 일도 잊고 갈 곳도 잊는다. 그늘 아래 스스로를 부리듯 노동과 불안과 걱정을 부려두고, 잊거나 잃은 것을 떠올리며 눈물짓기도 한다.   시간과 계절은 너무 빨리 달아나고, 우리는 너무 빨리 늙고, 늘 배고픔과 실직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출근과 스트레스와 피로와 시름과 술과 담배에 지쳐 있는데… 맨땅에 뿌리를 내린 채 사시사철 변함 없는 사철나무의 그늘이니 참 깊고 넓겠다. 시인 장정일(46)이 꿈꾸던 '사철나무 그늘', 누구나 그런 그늘 하나쯤은 꿈꾸기 마련이다. '가장 장정일답지 않는 시'임에도 가장 많이 애송되고, 시인 스스로도 첫 시집을 여는 시로 삼았던 까닭일 것이다.   이 시는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이 반복되는 보니엠(Boney M)의 노래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를 들으며 읽어야 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편, 137편)라는 성경 구절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탑과 공중정원이 있었다는 번영의 땅 바빌론은, '시온(Zion·예수살렘의 도시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을 생각하며 견뎌야 했던 이방의 땅, 고난의 땅, 타락의 땅이다. 원조 '디아스포라'의 고난과 희망이 담긴 디스코 풍의 이 노래는, 80년대 내내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던 공장노동자들의 휴식시간을 장악하기도 했던가.   불온하다는 말, 문제적이라는 말이 장정일처럼 잘 어울리는 시인이 또 있을까. 중졸의 학력과 방황의 청소년기,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했다는 독학,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 수상, 극작가, 소설가, 외설 시비, 무시무시한 독서량, TV 교양프로 진행, 교수…. 그는 정복자처럼 자신의 삶을 찬탈했으며 게릴라처럼 80년대 시단을 점령했다. 그리고 어느날 '시 쓰는 법을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그가 이른바 '쉬인' 장정일이다. '동사무소 하급 공무원'을 꿈꾸며 들었을 '바빌론의 강가'를 다시 들으며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는 마음'을 헤아려보는 아침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0편]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1933~1997)은 생전에 '슬픔의 연금술사'로 불린 시인이다. 시 '눈물 속의 눈물'에서 "꽃잎 속에 새 꽃잎/ 겹쳐 피듯이// 눈물 속에 새로 또/ 눈물 나던 것이네"라고 노래했듯이 그의 시들은 눈시울이 촉초근하게 젖어 있다.   박재삼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시는 노을이 붉게 번지는, 굽이쳐 흐르는 강을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며 썼을 것이다. '눈물'과 '울음'과 '강'과 '산골 물'과 '바다'로 연결되는 물의 이미지는 누선(淚腺)을 자극하고, '햇볕'과 '불빛'으로 연결되는 불의 이미지는 삶의 소진과 소멸을 두드러지게 하는 바, 이 시는 사랑의 비극과 고독과 생(生)의 무상(無常)을 동뜨게 드러낸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자연(自然)')라는 표현과 쏙 빼닮았다. '눈물나고나'와 '보것네' 등의 종결어미에서는 그의 다른 시편에서도 예사인 전통적인 가락의 활용을 보여준다. 이 시가 처음 월간지에 발표된 후 박두진 시인은 "노도(怒濤)처럼 세찬 현대의 휩쓸림 속에서 배추 꽃목처럼 목이 가늘고 애잔한, 실개천처럼 맑고도 잔잔한 서정"이라고 평해 신예 박재삼을 주목했다.   박재삼 시의 가옥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한'과 '가락'의 능수능란한 구사는 그가 자라난 생활환경과 관련이 있다.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생선 장사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집이 가난해서 낮에는 중학교 급사로 일하면서 야간반에서 수학을 했다. 집 형편이 옹색해 책을 살 수 없어 '가람시조집'을 빌려다 공책에 베껴 쓰고 늘 외웠고, 중학 시절 김상옥 시인의 작문 지도를 받으면서 전통시의 낭창낭창한 가락에 눈떴다.   병을 얻어 직장을 그만둔 후로는 시를 쓰고 신문에 바둑 관전평을 써서 생계를 꾸렸다. '요석자(樂石子)'라는 이름으로 바둑 관전평을 썼는데 바둑계에서는 그를 '박국수(朴國手)'라고 불렀다. 병을 앓고 난 후, 가난한 시인은 새봄을 맞는 소회를 썼다. "눈여겨 볼 것이로다, 촉트는 풀잎,/ 가려운 흙살이 터지면서/ 약간은 아픈 기(氣)도 있으면서/ 아, 그러면서 기쁘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이/ 형(兄)뻘로 보이는 넉넉함이로다."('병후(病後)에') 그러니 우리네 삶이 '햇볕 반(半) 그늘 반(半)'이라 하더라도 오늘 당신은 글썽임보다 반짝이는 쪽을, 촉트는 생동(生動)을 보아라.      [애송시 100편 - 제 61편]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 일러스트=권신아 '박노해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음반'(2004)을 들으며 시집 '노동의 새벽'(1984)을 읽는다. 장사익, 윤도현 밴드, NEXT 등이 '노동의 새벽' 시편들에 곡을 붙여 노래한 앨범이다. '노동의 새벽'은 어두운 새벽빛의 표지다. "노동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라는 시인의 헌사로 시작하고 있다. '노동해방'을 줄여 필명으로 삼은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50)의 시에, 독설로 민중문학론을 설파했던 고(故) 채광석의 기획 및 해설과, 민중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고(故) 오윤의 판화가 어우러져 사회과학 출판사 풀빛에서 출간된 시집이다. '노동'과 '해방'과 '문학'의 접점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었던 이 시집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 상징이다. 금서(禁書)로 노동문학의 전범이 되었고, 판매량이 100만부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책 중 한 권이 되었다.   이 시는 '시대의 새벽을 부른' 박노해의 명실상부한 대표시다. 조출(조기출근)-야근(야간잔업)의 노동현실에서 야근현장은 졸음과 사투를 해야 하는 전쟁터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시다의 꿈')으로, 조는 순간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손 무덤')야 하는 무참한 사고 없이 무사히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이면 속이 빈 '쓰린 가슴'에 '차거운 소주'를 부을 수밖에. '어쩔 수 없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붓고, '기어코'의 깡다구와 오기의 힘으로 붓는다. 고통과 절망을 위무하기 위해 붓고, 연대와 희망을 고무하기 위해 붓는다. 차가운 소주가 뜨거운 소주로 변하는 '노동자의 햇새벽'에, 식히기 위해 붓고 태우기 위해 붓는다.   그는 열다섯에 상경해 야간 상고를 졸업하고 섬유·화학·건설·금속·운수 노동을 하며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에 투신했다.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반국가단체 수괴'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나는 노동자이자 시인이며 혁명가입니다"라는 최후진술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지금은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지역을 돌며 생명과 평화와 나눔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감 중에 썼다는 시 '그 해 겨울나무'가 떠오른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로 시작해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로 끝을 맺는다.      [애송시 100편 - 제 62편]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1957년에 펴낸 김현승(1913~1975)의 첫 시집 '김현승시초'에 실려 있다. 시집의 장정을 서정주 시인이 맡았다고 되어 있고, 가격은 육백환이라 적혀 있다. 시인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를 주선하여 준 서정주 시백의 우의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자서에 썼다. 서정주 시인은 김현승 시인에 대해 "사람 사이의 정(情)에 철저했던 그는 정의감을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고수하는 데서도 철저했던 것인데, 이것은 그의 고독(孤獨)의 원인일 것이다"라고 평가해 친근한 사이임을 자랑했다.   어린 자식을 잃은 참혹한 슬픔을 노래한 시들은 많다. 김광균의 시 '은수저'가 그렇고, 정지용의 시 '유리창'이 그렇다. 김광균은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가 앉던 밥상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라고 썼고, 정지용은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고 썼다.   아들을 잃고 난 후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시 '눈물'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그 슬픔을 넘어선다. '들이라 하올제'의 대상이나 '당신'은 그가 신앙한 절대자였다. 그는 눈물이야말로 한 점 생명의 씨앗과도 같고, 더러움이 없으며, 인간의 마음이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순금처럼 지니고 살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웃음'보다는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눈물'을 귀하게 보았다. 눈물의 참회 이후 인간이 지니게 될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옹호했다. 이 시가 기독교적 신앙시의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가 정작 염원한 것은 더 심오한 가치였다. 그는 스스로 밝히길 "나는 또한 신앙에 순응하기만 하는 시인은 아니다"라며 "떳떳하고 참되고 올바른 인간정신을 나의 시에 스며들게 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느낀다"고 했다.   눈물이 너무 흔해서 아무래도 천국엘 못 갈 것 같다고 한 김현승 시인의 자화상은 어떠했을까. "내 목이 가늘어 회의에 기울기 좋고", "연애엔 아주 실망(失望)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싸특하진 않으나,/ 신앙과 이웃들에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자화상')라고 써 본인의 내·외형적인 기질의 근사치를 내놓았다.   현대시 100년의 역사에서 김현승 시인처럼 고독과 슬픔을 지독하게 노래한 시인도 드물다. '싸늘한 증류수의 시대'를 살다간 그에게 고독과 슬픔과 뜨거운 눈물은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이었다. "슬픔은 나를/ 목욕시켜준다,/ 나를 다시 한 번 깨끗게 하여준다"며 "슬픔 안에 있으면/ 나는 바르다!"고 썼을 정도로. 숭전대학교(현 숭실대학교) 채플 시간에 기도 중 쓰러진 뒤 병석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눈물의 옹호자였던 시인은 영혼의 옷마저 벗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애송시 100편 - 제 63편]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의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노닌다.   황금(黃金)의 햇발이 부서지며   꿈결의 꽃밭을 이룬다.   나도 이 속에선   밥 먹는 짐승이 아니다.       ▲ 일러스트=권신아 구상(1919~2004) 시인은 강과 물을 유난히 사랑했던 시인이다. 당호를 관수재(觀水齋)라 하고 서재에 '관수세심(觀水洗心)'이라는 편액을 걸어놓고는, 그 글귀대로 여의도 윤중제방에 나아가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어내곤 했다. 수(水)와 심(心)은 통하는 글자이기에 관수(觀水)와 세심(洗心)은 '마음을 바라보는' 일인 바, "마치 매일예배를 보듯/ 나는 오늘도 강에 나와 있"('겨울강 산조(散調)')곤 했던 것이리라.   무릇 물은 맑다. 흐르면서 넓어지고, 끊이지 않고, 거슬러 오르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그 밑바닥으로 흘러들고, 다른 무엇에 스며들었을 때에는 이미 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물이었다./ 맑은 물이었다./ 맑은 물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면서 항상 제자리에 있었다./ 제자리에 있으면서/ 순간마다 새로웠다.// 새로우면서 과거와/ 이어져 있었다."('그리스도 폴의 강 11'). 강에서 사람을 업어 건네는 수행을 통해 예수 발현(發顯)을 체험했던 성자 '그리스도 폴'의 강처럼, 시인에게 강은 건너가야 하는 삶의 터였으며 구도의 방편이자 사랑의 궁극이었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기에, 오늘이 바로 영원이고 오늘 하루가 신비의 샘이다. 오늘 시방 그 영원을 살고 있기에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고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하는('오늘') 것이리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꽃자리')인 것이리라. 그러니 내가 앉아 있는 지금-여기의 꽃자리가 '반갑고 고맙고 기쁠' 수밖에. 그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파랑(波浪) 많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시편들은 고요한 강물처럼 조용하고 편안하다. 진솔하고 정갈하다. 그의 삶도 시와 다르지 않았다.   이 시는 아침 강의 신비와 신성을 노래하고 있다. 자욱한 아침 안개는 물과 하늘, 여기와 저기,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지운 채 세계를 하나의 '허공'으로 만들고 있다. 그 허공 속을 저어 가는 나룻배는 이미 비승비속(非僧非俗)이다. 구불구불 휜 흰 백양목 가지에 앉은 검은 까치 한 마리, 여인네 속살 같은 물밑의 모래, 생래의 즐거움으로 노니는 잔 고기떼, 동터오는 황금의 햇발은 인간이 침범하지 않는 태고(太古)적 아침 강의 이미지들이다. 이런 강을 마음에 품고 하루의 아침을 시작한다면, 매일 매일의 밥벌이 터에서도 '밥 먹는 짐승'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 같다.       [애송시 100편 - 제 64편] 섬진강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일러스트=잠산 김용택(60) 시인은 섬진강의 시인이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전북 임실군 덕치면 덕치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는 하루도 섬진강을 보지 않는 날이 없이 섬진강과 함께 살아왔다.   그를 80년대 대표적 농촌시인으로 우뚝 서게 한 섬진강 연작시는 섬진강변의 새와 풀꽃과 흙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가득 담고 있다. 그에게 섬진강이라는 공간은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을/ 강물에 가져다 버리"('섬진강 2')는 누이가 살던 곳이요, "강 건너 산밭에 하루 내내 스무 번도 더 거름을 져 나르"면서 "해 저문 강 길을 홀로 어둑어둑 돌아오시는 어머니"('섬진강 9')가 살아온 곳이요, "누구는 이라자라 쟁기질 잘하고/ 소 잘 다루고/ 누구는 선일 잘하고/ 모 잘 심고 써레질 잘하고"('섬진강 13') 그리하여 다 사람 구실을 하고 인심에 변동이 없는 곳이다.   이 시는 섬진강 연작시의 말머리 시이다. 생명들의 이마에 꽃등을 달아주는 생명의 젖줄 섬진강을 노래했다. 지도에도 없지만 그네들만은 서로 아끼고 챙겨가며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사는 곳, 일어서서 껄껄 웃는 지리산과 훤한 이마 끄덕이는 무등산을 부모처럼 이웃처럼 모시고 사는 곳, 그런 큰 산들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까닭에 지금껏 마른 적 없는 도도한 흐름이 있는 곳, 크고 굳세고 건강한 살림 공동체…….   섬진강 연작시에는 시골 사람들의 투박한 입담이 들꽃처럼 곳곳에 피어 있다. '너무 그리 말더라고' 등의 전라도 방언과 '저런 오사럴 놈들' 같은 상말을 구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툭 터놓고 말하는 그의 시는 맑고 정직하다. "나는 내 이웃들의 농사에/ 내 손이 희어서 부끄러웠고/ 뙤약볕 아래 그을린 농사군들의/ 억울한 일생이/ 보리꺼시락처럼 목에 걸려/ 때로 못밥이 넘어가지 않아/ 못 드는 술잔을 들곤 했다"('길에서')는 고해성사와도 같은 자기고백을 보라. 그럼으로써 "우리 어매 날 낳아/ 가난한 일 속에 날 기른/ 헐벗은 젖가슴 같은 산천"('섬진강 27')을 다 노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직도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의 편에 섰다. 살 아프고 맘 아픈 그들의 편에 서서 환장할 것 같은,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한 농촌의 현실을 다 발언했다.   그의 시에서는 포슬포슬한 흙냄새가 난다. 그의 시를 통해 은어 떼가 헤엄치는 푸른 강과 넓디넓은 평야를 본다. 가슴이 넓어지고 따뜻하다.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일러스트=권신아 유치환(1908~1967) 시인의 작품 가운데 애송시 후보를 꼽으라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는 시 '행복'을 떠올릴 독자도 있겠다.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라는 구절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는 편지의 고수(高手)였다. 일본 유학시절, 주일학교에서 만난 소녀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후일 그 소녀와의 결혼식 때 들러리를 섰던 화동(花童)이 먼 훗날 '꽃'의 시인으로 유명해진 김춘수였다. 시조 시인 이영도에게 보냈던 편지들은 책으로 묶이기도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나,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냐"('그리움')와 같은 절절한 연시들은 바로 사랑의 편지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러나 이런 '사랑의 시인'과는 사뭇 다른, '의지의 시인' '허무의 시인'의 면모가 유치환의 진면목에 더 가깝다. 형이상학적인 역설을 근간으로 하는 '생명의 서'는 유치환 시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 생명이 부대끼는 병든 상태에서 무생명의 공간, 바로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다. 사멸·영겁·허적 등의 관념적 시어가 사막의 무생명성을 강조한다. 또한 열사의 끝 그 '영겁의 허적' 속에 '호올로' 맞는 고독이 열렬하다는 것, 생명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회한 없는 백골'이 될 때까지 배우겠다는 것에서도 생명에의 역설은 두드러진다. 모든 생명의 본연은 무(無)다. 생명의 시작은 죽음의 끝과 이어져 있다. 그러기에 사멸의 땅 사막에서 근원적 생명을 배우려는 것이리라.   대낮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영겁의 시간이 층층이 새겨진 사막의 적막, 그 열렬한 고독 한가운데서 영원한 생명에의 충동이 샘솟는 단독자(單獨者)가 있다. 물 한 줄기 찾을 수 없는 사멸의 사막 끝을 생명에의 의지를 등에 지고 낙타처럼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러기에 생명의 '서(書)'에는 생명이 충만한 삶의 서(序)와 서(誓)뿐만 아니라 경전의 의미까지도 담고 있다. 그의 시는 형이상학적 전통이 희박한 우리 현대시사에서, 드물게도 인간의 의지 혹은 정신적 높이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를 '생명파 시인'이라 부르는 까닭이고 '사막' 하면 그의 시가 떠오르는 까닭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어른의 말씀을 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될 때가 많다. 주름살 사이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짧고 두서없이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말이지만 마늘처럼 매운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씀으로부터 태어났다. 허리가 아픈 어머니는 앉아 쉴 곳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어디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허리를 펴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가 심상찮은 것은 의자를 내놓을 데를 태연무심하게 열거하는 어머니의 품 큰 생각에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꽃과 열매와 참외밭과 호박과 망자(亡者)에게도 의자를 내주어야 한다는 그 우주적인 마음 씀씀이에 있다. 공생과 배려에 기초한 이런 모성적 마음씨는 식구를 다 거둬가며 밥을 먹여온 삶의 연륜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면 누가 인생을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것이라고 먹줄을 대듯 명쾌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정록(44) 시인의 시에는 모자(母子)가 자주 등장한다. 시 '꽃벼슬'에서는 한식날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모자가 찾아간다. 아들은 무덤에 난 쥐구멍에다 꽃다발을 꽂아드린다. "꽃밥 한 그릇 바치는 것이다". 어머니는 쥐구멍에 술잔을 따르며 "새끼들이 술 갖고 올 줄 알고/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있구나"라고 익살맞게 말씀하신다. 아들이 "무덤 안에서 뭔 소리 들려요"라고 너스레를 떨자 어머니는 농(弄)으로 "그랴 니 불알 많이 컸다고 그런다"라시며 "아예 술병을 쥐구멍에 박아놓는다". (모자 사이에 오가는 이 능청능청한 대화여.)   이정록 시인의 시는 이처럼 곰살가운 살내가 수북하니 풍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옷 벗고 대중목욕탕에 함께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사랑은 울컥이란 짐승의 둥우리"라고 말하는 그는 안간힘을 쓰며 사는, 몸살 앓는 사람들의 머리맡으로 가 슬그머니 앉는다. 식은땀을 흘리는 자식의 머리맡에서 차가운 물수건을 들고 꼬박 밤을 새던 어머니처럼.   그는 시와 삶의 거리를 18.44미터라고 말한다. (18.44미터는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이다.) 18.44미터가 곧 "너와 나,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의 거리"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의 시는 삶을 정면으로 팽팽하게 응시한다. 삶에 근거해 삶의 현장에서 그의 시는 발발한다.   "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 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들여서 술집을 내는 것"('좋은 술집')이라고 말하는 시인.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공짜 술도 나눠주고 봉지쌀도 나눠주고 싶다는 시인. 그는 소년교도소에 가서 한문을 가르치기도 하는 천안 중앙고등학교 교사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7편] 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황인숙 시인은 좀체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는 방식도, 취향도, 생각도, 표정도, 말투도,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도. 황 시인의 절친한 후배 장석남 시인은 사석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 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제 30년이 지나가는데도 정말 안 변하는 사람이 황인숙 선배라고, 그쯤이면 도(道)의 경지라고. 새들은 변하지 않는다, 늙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새'과다.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새처럼, 그는 명실상부한 '프리랜서'로 30여 년을 자유롭게 살고 있다. 글을 쓰며(맛깔스런 그의 산문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세든 집에서 혼자 산다. 책과 음악과 식도락과 고양이(들)와 그의 단짝 벗들과 더불어 산다. "마감 닥친 쪽글을 쓰느라 낑낑거리며/ 잡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부르짖는/ 가난하고 게으른 시인이/ 그 동네에도 살고 있을 것이다"('파두―비바, 알파마!')   타인에게 칼을 건넬 때는 반드시 칼등을 잡고 칼날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건네는 것이 예의다. 이사 갈 때 칼을 버리고 가면 그 집과의 인연을 끊고 가는 것이고, 부엌에 칼을 아무렇게나 놓으면 가족이 다치거나 돈이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칼(날)이 날카롭기 때문에 이런 금기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다'는 금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칼로 사과를 먹다가 언니에게 이 금기의 말을 들은 적이 있건만, 지금도 여전히 시인은 사과껍질을 깎던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칼로 사과를 먹으며 누군가에게 칼로 사과를 먹였던 일을 떠올린다.   이 시의 맛을 깊게 하는 건 마지막 연이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오래 되짚어 보게 하는 구절이다. 젊지 않은데도, 여전히 가슴 아플, 많은 일이 줄지 않는 걸 보면 칼로 사과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칼로 주는 사과를 너무 많이 받아 먹었나 보다. 칼로 먹고 칼로 먹였던 게 비단 사과뿐이었겠나 싶다. 뭔가를 준다는 게 이렇게 위태로울 때가 있다. 그것이 자기에게든 타인에게든, 그것이 사랑이든 배려든. 젊음이 아름다운 건, 가슴 아플, 많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은 그러기에 두려운 대상이다. 황인숙 시인은 여전히 젊고 경쾌하다. 계속 칼로 사과를 콕콕 찍어먹을 수 있을 만큼! 부리로 사과를 콕콕 쪼아먹는 새처럼, 아니 그의 시처럼.     [애송시 100편 - 제 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일러스트=잠산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으니, 나는 풀이 더 많고 사람이 다닌 발자취가 적은 외로운 길을 선택해서 걸어갔노라고 쓴 시. 그리고 그런 선택으로 인하여 나에게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쓴 시.   이 아침에도 우리의 목전(目前)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낯익고 평탄한 길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길이 있다. 소의 잔등처럼 유순하고 완만하고 반듯해진 길이 있고, 나아갈 틈이 없는 가시넝쿨을 헤치듯 누군가 처음으로 개시(開示)해야 하는 길도 있다. 그러나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인 우리는 각지고 불규칙한 길보단 대열의 후미에서 앞의 궤적을 뒤따라가고 싶어진다. 은근슬쩍 길들여졌으므로, 이 순응을 등지고 뒤집는 일은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어렵다.   이 시는 우리 마음에 악착스레 붙어사는 순응주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보통 사람들의 비겁과 안일에 대해 울화통을 터뜨린다. 앞선 행로에 기생하여 '꼬리를 물고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야멸치게 묻는다. 좌충우돌이면 어떠냐고, 뒤죽박죽이면 어떠냐고 묻는다. 풍파(風波), 그것이 우리들 삶의 표정이며,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므로 안주(安住)하려 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그러나, 이 야유는 좀 불편하다. "병 대신 병적인 것, 아픔 대신 아픔적인 것, 애인 대신 애인적인 것에서 우리는 위안받는다"('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그래서 만만히 볼 수 없는 이런 맹랑한 발언은 우리들의 속을 긁어 놓는다.   이 시가 실려 있는 김중식(41) 시인의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의 시편들은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과 사고를 전복하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우회(迂廻)가 없다. 그는 스스로 자초하는 존재들의 억센 자유의지를 격려한다. 시집 뒤표지 글은 이렇게 썼다. "자기 삶을 방목(放牧)시킨 그를 나는 존경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목된 삶은 야생마처럼 갈기를 세우고 주인의 울타리를 넘어서려 한다. 그 고투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연보를 읽을 때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사는 일이 지치고 가야 할 길이 막막할 때 스스로를 이렇게 불러보자. "주인공아!" 생념(生念)이라 했으니 엄두를 내보자. 박약한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자. 당신은 당신의 삶의 후견인(後見人).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을 당신이 앞서가고 앞서간 당신을 당신이 뒤따라가는 것. 야단법석인 이 삶을 살아 가야 할 주인공아     [애송시 100편 - 제 69편] 농무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 일러스트=권신아 '우리'라는 말은 참 오묘하다. '우리'라는 말에는 내가 들어있고 네가 들어있다. '지금-여기'라는 울 안에는 '너' 하나를 비롯해 무한한 '너'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그 '안'에는 널따란 품 같은 수평적 친밀함은 있지만 수직적 높낮이는 없고, '한솥밥'이라는 공모와 공유와 공감의 연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뜨끈뜨끈한 끈기가 우리의 어깨를 감싸곤 한다. 신경림(72) 시인은 '우리'라는 시어를 우리의 시와 현실 속에 말뚝처럼 세워놓았다.   긴급조치가 발령되기 시작했던 197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시집 ≪농무≫는 '우리' 현실의 사실주의적 묘사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시적 발견이었다. 이를테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이라며 민중의 삶과 민중들의 연대감을 살갑게 담아내곤 했다. 혹은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이라며 농민들의 애환과 정서를 일체의 수식 없이 단숨에 끌어올리곤 했다. 그리하여 이 시집은 '하나의 민중적 경사'로, 70년대 '민중시의 물꼬를 튼' 시집으로 평가되었다.   농무는 두렛일을 하며 두레패들과 함께 놀아야 하는 농악과 춤이다. 그러니 본래의 무대는 논두렁이나 밭두렁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시에서 농무는 운동장의 가설무대에서 분을 바르고 구경꾼들을 위한 볼거리로 전락해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비어가고 쇠락해가는 농촌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술과 노름과 빚과 주정과 싸움과 울음만 늘어나는 농촌의 현실이 답답하고 고달프고 원통해서 농사꾼인 '우리'는 소주를 마신다. 술잔이 돌고 술기운 취해서 걸립패의 후예인 '우리'는 보름달 아래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에 나선다.   소시장을 거쳐 도살장을 돌며, 임꺽정과 그의 배신자 서림이처럼 한패가 되어 놀아보지만, 쪼무래기 처녀애들이나 꼬일 뿐이다. 돌고 돌면서 점점 더해가는 '우리'의 신명에는 술기운과 분노와 원통이 묻어나고, 놀고 놀면서 점점 가벼워진 '우리'의 고갯짓에는 아직 흥과 신바람이 남아있다.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필부(匹夫匹婦)인 '우리'의 고단한 삶을 신명 난 가락에 실어, 치고 빠지는 슬픔과 해학의 정조가 일품이다.     [애송시 100편 - 제 70편] 방심(放心) -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마음을 놓다'라는 말, 참 오랜만이다. 마음을 풀어 놓아 버린 일 얼마나 오래되었나. 마음 졸이며 염려하고 살아왔을 뿐. 시인은 대청마루에 큰 대(大)자로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최대한 마음과 몸을 느슨하게 하고서. 바다처럼 편편하고 넓게 퍼져서. 그런데, 스윽, 칼날이 지나가듯 제비가 공중을 한 층 횡으로 서늘하게 자르면서 지나간 모양이다. 손가락을 퉁기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기습처럼.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 민첩한 한 줄기 바람으로.   집과 나의 중심부를 뚫고 지나갔으니 급소(명자리)를 맞은 듯 어이없고 어리둥절해서 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은 얼마나 시원한 것인가. 체증(滯症)이 가신 듯했을 것이다. 마음을 꼭 붙들어 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마음을 사방으로 허술하게 경계 없이 풀어놓는 것으로서 우리는 마음의 열림을 얻기도 한다. 그것이 무방비의 미덕이다. 좀 게으르게 혹은 별 준비 없이 멍청하게 있다가 한번쯤 당해보기도 해보라. 그런 당함에는 오히려 소득이 있다. 마음의 앞뒤 문을 다 열어놓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을 볼 수 있었겠는가. 마음을 조급하게 각박하게 쓰느니 차라리 이처럼 마음에 장애를 아예 만들지 않음이 오히려 '심심(深心)'이요, '정(定)'에 가깝다.   손택수(38) 시인은 긍정심이 아주 많은 시인이다. 다른 존재들의 '빛나는 통증'을 그의 시는 받아 안는다. 그의 시는 그가 어렸을 때 그곳서 자랐다는 전남 담양 강쟁리 마을을 배경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곳 마을 사람들의 천문(天文)적인 상상력은 그의 시에 들어와 크게 빛을 발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서정을 만들어낸다. "별이 달을 뽀짝 따라가는 걸 보면은 내일 눈이 올랑갑다"('가새각시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와 매달 스무 여드렛날은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달과 토성의 파종법')이자 "땅심이 제일 좋은 날"이라며 밭에 씨를 뿌리러 가던 할머니의 상통천문(上通天文)이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콧구멍에는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혼쥐로 살고 있다는 믿음, 임신한 몸으로 시큼하고 골코롬한 홍어를 먹으면 태어날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진다는 믿음 등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한 마을에서 자연 발효된 이런 금기사항은 우리 시에서 어느덧 희귀해진 것이어서 각별하고 값지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안마시술소에서 구두닦이를 할 때 안마시술소 맹인들에게 시를 읽어주면서 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시영 시인은 그를 "송곳니로 삶을 꽉 물고 놓지 않는, '고향의 기억'을 잊지 않는 오랜만의 생동하는 민중서사적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역린(逆鱗)'을 생각한다. "물고기 비늘 중엔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씩은 꼭 있다고"('거꾸로 박힌 비늘 하나') 하는데, "유영의 반대쪽을 향하여 날을 세우는 비늘"인 역린을 생각한다. 그의 시에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생(生)을 펄떡이게 하는, '뽈끈 들어올려주는' 힘이 있다. 시에 있어서 가장 든든한 원군(援軍)은 역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     [애송시 100편 - 제 71편]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일러스트=권신아 소월(1902~1934)을 생각하면 노랫가락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의 시가 노래처럼 가락을 타고, 실제로 그가 노랫가락을 즐겨 듣고 그 노랫가락을 시로 썼고, 무엇보다 그의 시가 많은 노래로 불렸기 때문일 것이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엄마야 누나야〉)에서 시작해 정미조의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개여울〉), 홍민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부모〉), 장은숙의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못잊어〉), 건아들의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활주로의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마야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진달래꽃〉)에 이르기까지. 가히 '국민시인'이라 칭할 만하다.   그런 소월을 생각하면 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가 〈진달래꽃〉이다. 소월은 외가인 평북 구성에서 태어나 그 가까운 정주에서 자랐으며 그 가까운 곽산에서 31세의 나이에 아편 과다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정주 가까운 영변에는 약산이 있고, 약산은 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 그가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약산의 진달래꽃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꽃'으로 보통명사화시키고 있다.   '가실 때에는'이라는 미래가정형에 주목해볼 때, 이 시는 사랑의 절정에서 이별을 염려하는 시로 읽힌다. 사랑이 깊을 때 사랑의 끝인 이별을 생각해보는 건 인지상정의 일. 백이면 백, 헤어질 때 '말없이 고이' 보내주겠다고 한다. 죽어도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고 한다. 아무튼 그땐 그렇다! 그 사랑을 아름답게 기억해달라는 소망이야말로 이별의 로망인 바, 떠나는 길에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뿌리려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아름'은 두 팔로 안았던 사랑의 충만함을 환기시켜 주는 감각적 시어다.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나는 건 아무래도 여자에게 더 어울린다. '말없이 보내드리우리다'나 '죽어도 아니 눈물을 보이겠다'는 결기야말로 남자다운 이별의 태도일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실 그때, 눈물을 참기란 죽는 일만큼이나 힘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고, 당신이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날 수 있도록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 이 시의 전모다. 얼마나 애틋한 사랑시인가. 이 사랑시는 영혼을 다해 죽음 너머를 향해 부르는 절절한 이별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초혼·招魂〉)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리라. 이렇게 노래하는 시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애송시 100편 - 제 72편]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 천양희         ▲ 일러스트 잠삼 마음을 네모진 돌과 같이 하라는 말씀이 있다. 비가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네모진 돌. 그러나 우리네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마음은 사나운 코끼리에 비유되고 번갯불에 비유되고 원숭이에 비유되니 그 분주함과 변화무쌍을 제어하기 어렵다. 시시각각 생기면 사라지니 붙잡으려야 붙잡을 수 없다. 마음에는 '차츰'과 '조용히'와 '차근차근'이 살지 않는다. 마음은 근심의 주머니여서 고통에 결박되므로 큰 병(病)의 뒤끝처럼 완쾌가 드물다.   이 시는 쉬지 않는 마음을 수수밭의 일렁임에 빗대었다.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이 시는 강원도 어느 마을에서 만난 수수밭이 시 창작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떠난 여행길에서 살아 돌아온 마음으로 쓴 시"라고 고백했다. 바람결에 서럽게 서걱대는 수수밭에 앉아 통곡을 했다고도 한다. 그런 일이 있은 지 8년 만에 이 절창의 시는 태어났다고 했다. 시인은 암처럼 깊어진 삶의 그림자를 끌고 보리밭과 수수밭과 계곡 초입에 있었을 절을 지나 산을 올랐을 것이다. 속 빈 고사목을 두들겨 쪼는 까막딱따구리도 도중에 만나면서. 절벽에 홀로 섰을 때 산 아래 저쪽에서 아직도 쪼그리고 앉아 수수밭처럼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멀찍이서 보았을 것이다. 비로소 고통마저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통과 안온과 증오와 자애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화엄의 생명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저속하고 용렬한 세상과의 불화가 사라졌을 것이다.   천양희(66) 시인은 1965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올해로 시력 43년이 되는 그녀는 "고통에 함몰된 나를 시가 구원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럴까. 김승희 시인은 그녀의 시를 "고독 위에 새긴 존재의 찬란한 금속세공과도 같다"고 평했다. 아직도 원고지에 시를 쓰고, 시를 쓰기 전에는 꼭 손부터 깨끗이 씻는다는 시인.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벌새가 사는 법〉) 그녀는 혹독하게 그녀의 '몸을 쳐서' 시를 쓴다. 고통의 몸을 쳐서 쓴 시들이기에 그녀의 시편들은 존재들의 뒤편을 읽어낸다. 문득 생(生)의 뒤란으로 돌아가 만나게 되는 쓸쓸함과 욕됨과 근심의 얼굴을. 시 〈뒤편〉에서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라고 썼듯이.   시집 《너무 많은 입》에 실린 '시인의 말'은 그녀의 골똘한 시작(詩作)을 짐작하게 한다. "시 생각만 했다 시 생각만 하다가 세상에 시달릴 힘이 생겼다 생긴 힘이 있어 시 생각만 했다 그토록 믿어왔던 시 오늘은 그만 내 일생이 되었다, 살아봐야겠다."     [애송시 100편 - 제 73편] 반성 704 -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   낑낑낑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   네 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 김 영 승           ▲ 일러스트 권신아 김영승(49)은 반성의 시인이다. 그는 술이나 잠에서 반쯤 깬 반성(半醒)의 시인이고 기존의 서정시로부터 반 옥타브쯤 들떠 읊조리는 반성(半聲)의 시인이다. 가난과 무능으로 일그러진 욕망의 고백을 일삼는 반성(反性)의 시인이고, 구도자적 치열함으로 당대와 스스로를 부정하는 형이상학적 반성(半聖)의 시인이다. 그는 이 모든 반성의 삶을 돌이켜 살피며 반성(反省)한다. 반성하는 기록자, 반성하는 반항인, 반성하는 백수(白手), 반성하는 주정꾼, 반성하는 폐인, 반성하는 시인이 바로 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반성시는 취언(醉言)이고 포르노이고 일기이고 철학이고 종교이기도 하다.   '밍키'는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강아지 이름이다. "놀랍고 분(憤)해 죽겠다는 듯 밍키가 짖는다/ '저젓……영키야!'/ 하며 어머니가 소리치고 나서 웃는다// 영승이를 부르시려 한 건지/ 밍키를 부르시려 한 건지// 하긴 나를 밍승이라고 부르면 또 어떠랴"(〈반성 764〉), "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 서럽다// 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 밍키를 보면/ 서럽다"(〈반성 673〉)에서처럼, 그는 스스로를 반성할 때 슬쩍 자신을 밍키에게 얹어놓곤 한다.   이 시에서도 병들고 구차한 밍키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며, 스스로가 밍키의 남편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밍키도 아닌, 밍키의 남편 같다는 데서 날카롭고 쓸쓸한 유머는 더해진다. 밍키에 대한 사랑은, 설움과 누추함 속에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동병상련일 것이다. 실은 아내도 없이 상처투성이로 뒹구는 백수의 외로움과 고독과 소외를 얘기하려는 것이리라. 그가 동병상련하는 것은 구차한 강아지, 밍키만이 아니다. 발로 눌러 끄는 선풍기(〈반성 743〉)나 똥통에 빠진 슬리퍼 한 짝(〈반성 827〉)이나 만신창이가 된 풍뎅이(〈반성 608〉)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갖다 버려도/ 주워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아름다운 폐인〉)라는 그의 자조와 위악과 오만은, 이렇게 '바닥'을 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는 자신의 시를 "훔쳐보기만을 하는 변태성욕자처럼/ 자기자신과 세계에 대한 불연속적 보고서의 작성자로 전락한/ 사실무근한// 인간과 인간사와/ 그리고 '나'라고 하는 개체의 일들을/ 왜곡되게 기록한 것//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서정시"(〈반성·서(序)〉)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렇게 반성의 끝을 향해 치달았던 그의 시는 개인과 젊음이 차압당한 폭력적이었던 80년대에 대한 저항이자, 그 회복을 위한 자존과 실존의 고해성사일 것이다. 우리 시사에서 드물게도 외설시비를 불러일으켰던 《반성》은 '아름다운 폐인'의 경지에서 '시인됨' 혹은 '시됨'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한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74편] 절벽 - 이 상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 일러스트=잠산 아마도 시인은 꽃이 핀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꽃잎이 둥글게 열리는 것과 꽃의 둘레를 달무리처럼 둥글게 감싸는 향기를 맡고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둥근 공간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눕힌다. 죽은 사람의 몸이 놓이게 되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이 묘혈인데, 그처럼 오목하게 파인 곳에 자신의 몸을 눕힌다. 이 시는 시인의 다른 시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읽히는 편이지만 문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밝게 만개한 꽃과 비산하는 꽃 향기의 반대편에 차디찬 주검과 서늘한 묘혈을 배치하고 있다. 열린 공중과 유폐된 땅 속, 두 공간은 서로 차단되어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은 이 이격된 거리를 가파르고 낙차가 큰 절벽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에도 병이 든 육체를 바라보는 시인의 황폐한 자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보여준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기이한 발상과 국어 문법을 파기한 그의 작품들은 당시에도 지금에도 파격 그 자체이다. 절망적인 근대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자아의 분열과 의식과잉을 그는 익히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해서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오감도〉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독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쳐 연재 15회 만에 전격적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독자들은 이상의 시에 대해 "개수작", "미친 놈의 잠꼬대" 등의 화포와도 같은 말들을 동원해 비난을 퍼부었다).   시인 이상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온도차가 뚜렷했다. 희대의 문제아였고, 모던 보이였고, 모더니스트였고, 천재작가였으며, "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고은)이었고, "모국어의 훼손에나 기여한 시인"(유종호)이었으며, 그는 "잉크로 글을 쓰지 않고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썼다"(김기림).   그러나 이상은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미술에 솜씨가 있어 하융(河戎)이라는 이름으로 박태원의 신문연재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그의 시는 숫자와 도형의 사용, 공간 분할 등을 보여주는 바, 이것은 그가 한때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일한 전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애송시 100편 - 제 75편]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일러스트 권신아 김광섭(1905~1977) 시인의 호는 이산(怡山), '기쁜 산'이다. 그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창씨개명을 반대한 애국교육자, 광복 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한 우익 문단의 건설자,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언론사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으로 현대사 100년을 정말 '산'처럼 살았다. 실제로도 그는 늘 산을 향해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산〉), "목마른 아스팔트를 옆으로 빠져서/ 나는 계절이 풀리는 산으로 간다"(〈산바람처럼〉).   '남포 깐다' '남포 튼다'는 말이 있었다. 남포란 다이너마이트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개발 저 개발로 너도나도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60~70년대 내내 대한민국 전역에 이 산 저 산을 깨는 남포 소리 울려 퍼졌었다. 산을 깎아 돌을 채취하고 도로를 만들고 빌딩을 올리곤 했다. 뻥 뻥 남포를 까면 산에 살던 뭇 짐승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강에 살던 뭇 물고기들은 기절을 하기도 했다. 뻥 뻥 남포 까는 소리에 밤 보따리를 싸들고 서울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산동네, 달동네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이 시의 창작 배경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돌 깨는 소리가 채석장에서 울리면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 그러나 저것들이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인가. 돌 깨는 산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집들은 모두 시멘트로 지어서 마음 놓고 내릴 장소도 없는 저것들이란 데 생각이 머물렀어요."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하던 중 성북동 집 마당에 앉아 하늘을 돌아나가는 비둘기떼를 보고 착상했다고 한다.   성북동 산과 산동네가 개발되면서 산비둘기는 둥지를 빼앗겼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이 산을 깨는 것과 비둘기들 가슴에 금이 가는 것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제 산비둘기들은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그렇게 쫓긴 산비둘기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고가 밑으로, 옥상으로, 창턱으로 흰 똥을 찍찍 내갈기며 뒤뚱뒤뚱 걸어다니고 있다. 산동네, 달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내쫓기곤 했다. 재개발과 산업화와 도시화와 문명화의 이면이었다. 유심초가 부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노래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저녁에〉)라는 시를 읊조려 보는 아침이다.     [애송시 100편 - 제 76편] 조국(祖國) - 정 완 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구비 구비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鶴)처럼만 여위느냐. 1962년>         ▲ 일러스트 = 잠산7   정완영(89) 시인은 평생 한국의 정형시인 시조만을 위해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는 정완영 시인을 통해 "이 당대, 시조 분야의 숭고한 순교자적 상(像)"(박경용)을 만난다. 시조를 말할 때 가람 이병기와 노산(鷺山) 이은상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초정(草汀) 김상옥, 이호우를 말하고, 그 뒤에 백수(白水) 정완영을 세워 말한다. "백랑도천(白浪滔天) 같은 분노도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의 석간수 같은 설움도 시조 3장에 다 담으셨다."(조오현)   박재삼 시인은 정완영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숭앙해서 "조용하게 잘 참는 것이 있다"면서 "야단스럽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성품이 그를 시조의 거목이게 했다"고 썼다.   이 시조는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정완영 시인의 초기 작품이다. 조국의 슬픈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시 〈만경평야에 와서>에서 "애흡다 열루(熱淚)의 땅 내 조국은 날 울리고"라고 썼을 때처럼. 조국을 한 채의 전통악기 가얏고(가야금)에 빗대면서 조국에 대한 큰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옛 시조의 행 배열을 살리면서 시종 장중한 어조로 감칠맛 나는 고유어를 사용했다. 청각에 시각을 한데 버무리는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압권이다. 가얏고의 서러운 가락이 귀에 들리는 듯하고,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청사(靑史)를 보는 듯하고, 한 마리 학의 고고한 성품을 가슴으로 마주하는 것 같다.   정완영 시인의 시조는 천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수사와 우주적인 상상력을 자랑한다.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초봄〉)같은 시조를 보라. 무릎을 치며 저절로 감탄할밖에.   이뿐만 아니라 정완영 시인은 정겨운 동시조도 많이 써왔다. 〈분이네 살구나무〉는 대표적이다.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시조는 말로만 쓰는 시가 아니라 말과 말의 행간(行間)에 침묵을 더 많이 심어두는 시"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도 매일 간곡하게 시조를 창작한다. 원로 시조시인의 이 창창(滄滄)한 뜻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애송시 100편 - 제 77편] 국토서시(國土序詩) - 조 태 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 일러스트 권신아  육척 거구, 고집불통, 임전무퇴, 대의명분의 시인. '쑥대머리'를 부르며 '소주에 밥말아 먹던'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시인. 국토와 식칼의 시인. 반골에 강골의 광주 시인. 의리와 정(情)의 시인. 조태일(1941~1999) 시인에게 붙여진 수식들이다. 그는 〈국토〉 연작시와 〈식칼론〉 연작시로 1970년대 우리시의 저항성에 일획을 더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에 대해 '몸도 크지만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스스로도 "이 조가야, 그 거창한 체구엔/ 노동을 하는 게 썩 어울리는데/ 시를 쓴다니 허허허 우습다, 조가야"(〈석탄·국토 15〉)라고 노래했다.   감옥에 갇힌 후배의 가솔들을 찾아 쌀과 연탄을 사주고, 언제나 제자들 밥부터 챙기는 격의 없는 스승이었다 한다. 술에 취한 야밤에 장독대에 올라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독재자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삿대질 삼창을 일삼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니의 통장에 다섯 해나 더 용돈을 송금했다고 한다. 그의 대학 은사였던 조병화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먼저 간 제자를 추모하며 "조태일은 시인이다 착하고 정직하고 곧고 의리의 시인이다 어린이도 느끼는 시인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념적 지향성은 서로 달랐으되, 스승은 젓갈 행상을 하던 홀어머니 밑에서 공부하는 제자의 형편을 알고 장학금을 받게 해주었고 제자는 두고두고 스승에게 극진했다는 미담도 잘 알려져 있다.   나라 국(國), 흙 토(土)! 국토는 우리 땅이다. 조태일 시인이 노래하듯, 우리의 하늘 밑이고 삶이고, 우리의 가락이고, 우리의 혼이고 숨결이다. 그뿐 아니다. 피와 살과 뼈에 이르는 우리의 온몸 그 자체이다. 그게 있어야 나라도 있고 국가도 있고 민족도 있다. 이 마땅하고 당연한 우리의 땅을 잃어버렸을 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김소월),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음으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한용운)라고 노래했다. 70년대 조태일에게 국토는 특히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혼'으로 상징되는 소외된 민중의 다른 이름이다. 이 땅의 주인인 그들을 위해 '일렁이는 피', '다 닳아진 살결', '허연 뼈'까지 보태리라는 시인의 뜨거운 의지가 돌올하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고 국토에 대한 숙명적 사랑을 노래했던 시인은, 간암으로 99년 9월 7일, 58세의 나이로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그곳/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풀씨〉)혔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국토이고, 오매불망 국토를 노래했던 시인의 유택이 되었다. 그는 28세에 "내가 죽는 날은 99년 9월 9일 이전"(〈간추린 일기〉)이라고 썼다. 미래를 예언한 그의 시참(詩讖)이 서늘하다.      [현대시 100년…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78) 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 일러스트 잠산 1980년대 대표적인 여성시인의 한 사람인 최승자(56) 시인. 그녀의 시는 송곳의 언어로 위선적인 세계와 정면으로 맞선 하나의 살의(殺意)였다. 가장 최승자답다는 이 충격적인 일갈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개 같은 가을이〉)   "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뼈를 잘못 삼켰다."(〈시인〉)라며 시인의 기본 성깔을 운운한 그녀는 삶의 고통과 세계의 위선을 거리낌 없이 폭로했다. 오직 자기 모욕과 자기 부정과 자기 훼손의 방식을 통해서.   이 시에도 폐광과 같은 유폐와 자기 방기가 있다. 시인은 '곰팡이'와 '오줌 자국'과 '죽은 시체'에 자기 존재의 흔적을 견준다. '나'라는 존재는 세상의 귓가를 정처 없이 떠돌다 사라지고 마는 '영원한 루머'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감히 말하며 아예 내 존재의 근거를 박탈해 버리려는 이런 듣기 거북한 발언은 그녀의 다른 시편에서도 흔하게 있다. 그녀에게 "이 조건 반사적 자동 반복적/ 삶의 쓰레기들.// 목숨은 처음부터 오물이었다."(〈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2〉)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주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이런 발언에는 위선의 세계에 대한 강한 혐오와 저주가 깐질기게 숨어 있다. 그녀는 이 세계가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깊이 병들어 있다고 보았다. 세계가 비명으로 가득 차 있고, 탐욕의 넝마이며, 치명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데 누군들 그곳서 생존을 구걸하겠는가. 그러므로 내 존재를 루머도 없게 치워달라고 할밖에.   그러므로 이 시에서 그녀가 독하고 날카로운 비유를 동원해 본인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고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은 일종의 위악의 방식이다. 이 부패한 지상에서 더 이상 썩지 않으려고 '부정하는 법'을 그녀는 선택한 것이다.   세월은 길고 긴 함정일 뿐이며 오직 슬퍼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서슴없이 말하던 시인. '허무의 사제' 최승자 시인은 세상을 혹독하게 앓고 시를 혹독하게 앓았다. 시로써는 "밥벌이를 할 수도 없고 이웃을 도울 수도 없고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고독의 창 앞에 쏟아부을/ 충분한 피"(〈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13〉)로 시를 써냈다.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된다./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예요."(〈자화상〉) 라고 읊었다. 그녀는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자살 연구》, 《침묵의 세계》 등 주옥 같은 역서를 낸 능력 있는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금 병환 중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세상에 내놓은 신작시를 찾아 읽기가 쉽지 않다. 끔찍하게 독한 그녀의 시가 그립다. 그녀가 밤새 짜낸 '치욕의 망토'로 '귀멀고 눈멀은' 우리들은 따스함을 얻겠지. 그녀가 시 〈삼십세〉에서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라고 쓴 것을 읽고 기이한 쾌감을 느꼈었던 것처럼.     [애송시 100편 - 제 79편] 투명한 속 - 이하석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 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려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어 더욱 투명해지고 더 많은 것들 제 속에 품어 비출 때,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확실히 비쳐 온다.   껌종이와 신문지와 비닐의 골짜기, 연탄재 헤치고 봄은 솟아 더욱 확실하게 피어나 제비꽃은 유리 속이든 하늘 속이든 바위 속이든 비쳐 들어간다. 비로소 쇠 조각들까지 스스로의 속을 더욱 깊숙이 흙 속으로 열며.    ▲ 일러스트 권신아   투명한 것은 비친다. 통과하며 통과시킨다. 더 많은 것들을 제 속에 '품어 비춘다'. 투명한 속은 제 속을 훤히 드러내며 더 많은 것들을 제 몸에 비추어낸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은 투명한 속을 깊숙이 열며 '비쳐 들어간다'. 시간의 흔적과 문명의 찌꺼기를 받아들이고 뱉어내는 유리 부스러기의 투명한 속은 보호구역이다. 그 투명한 속은 끝이 없다. 투명한 유리 속 제비꽃처럼, 그 찬란하고 선명하고 쓸쓸하고 고요한 남빛 그림자처럼.   이하석(60) 시인의 〈투명한 속〉을 읽다보면 영화 《밀양(密陽)》의 '햇살이 시궁창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마당 한구석의 흙탕물을 비추는 그 비밀스런 햇볕 혹은 숨어있는 햇살에 카메라 시선은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하석 시인의 시선이 그렇다. 그는 도시문명 속에서 구석지고 버려지고 망가지고 폐허화된 '것들'의 뒷풍경을, 클로즈업된 카메라 시선으로 보여준다. 인간을 편리하고 안락하게 해주는 현대문명의 뒷면에는 산업쓰레기와 비인간적 삶이 있다. 그는 1970년대 후반 그가 살고 있던 대구 주변에 널린 산업쓰레기 현장을 흑백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바탕으로 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사진처럼 감정 개입은 배제한 채. 쓰레기 가득한 이러한 낯선 시선은 '냉혹한 사실주의' '극사실주의'로 평가되었으며 1980년대 우리 시단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쇳조각, 폐타이어, 유리병, 깡통, 껌종이, 신문지, 비닐 등 산업화의 노폐물들은 흙과 풀뿌리에 뒤엉켜 덮여 있다. "폐차장 뒷길, 석양은 내던져진 유리 조각/ 속에서 부서지고, 풀들은 유리를 통해 살기를 느낀다./ 밤이 오고 공기 중에 떠도는 물방울들/ 차가운 쇠 표면에 엉겨 반짝인다,/ 어둠 속으로 투명한 속을 열어 놓으며"(〈뒷쪽 풍경 1〉)에서처럼, 그것들은 쉽사리 흙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풀과 더불어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 오랜 시간 후 흙과 풀뿌리에 깃들어 투명해지고 흙과 풀을 제 속에 품어 비칠 때, 그것들의 투명한 속은 흙과 풀을 통과하며 통과시킨다. 먼지와 녹물과 날카로움과 독성을 잠재우며 또 다른 이슬의 반짝임 쪽으로 뻗어나간다.   이 시도 버려진 유리병(조각)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있다. 유리의 반짝임과 투명함 쪽으로 흙과 풀들은 뻗어나간다.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로 상징되는 '제비꽃'은 버려진 유리 부스러기의 '투명한 속'을 비쳐 오고 비쳐 들어간다. 봄의 기운 혹은 생명의 싹 혹은 자연의 힘이다. 우리는 날마다 보고 있지 않은가. 유리 부스러기 속, 제비꽃 같은 남빛 그림자를! 시멘트 콘크리트 틈으로 돋아나는 노란 민들레꽃이나, 타일 콜타르 틈으로 삐쳐 나온 연한 세 잎 네 잎 클로버의 경이 그 자체를!     [애송시 100편 - 제 80편] 갈대 등본 - 신 용 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모의(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 일러스트 잠산  젊은 시인 신용목(34)은 "바람 교도(敎徒)"(시인 박형준의 말)다. 그의 시 곳곳에는 바람이 불어오고 멈추고 쌓이고 흐른다. 독특한 것은 그가 포착하는 바람의 속성인데, 그의 생각에 바람은 쌓이는 것이면서 강하게 '무는 힘'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바람이 비의 칼집을 잡고 서는 날"(〈바람 농군〉)에서처럼 바람을 정지시켜 묶어두거나, "느닷없이 솟구쳐 오르는 검은 봉지를/ 꽉 물고 놓지 않는/ 바람의 위턱과 아래턱"(〈새들의 페루〉), 혹은 "나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라고 써서 바람의 '무는 힘'을 강조한다. 아무튼 '바람 교도'답게 그의 시집을 펼치면 바람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문장이 모 기업의 에어컨 광고 문구로 사용되어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진 이 시에도 바람이 등장한다. 시인은 폐(廢)염전을 걸어가고 있다. 저녁 무렵이었을 테고, 갈대가 있는 곳에서 멈춰 섰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갈대는 갈대숲에 깃든 새들을 "통증처럼 뱉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늦가을이었으므로 갈꽃이 진 갈대는 '촉'처럼 '화살'처럼 서 있고 시인은 그 갈대들을 보면서 세월의 한 참극과 풍파를 기억해 냈을 것이다. 아마도 가족사에 해당될 사건들을. (그래서 제목이 〈갈대 등본〉 아닌가. 우리가 동사무소에 가서 한 장씩 떼는 '주민등록등본'처럼.) 가족사 가운데서도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의 일을 시인은 떠올렸을 것이다. 갈대처럼 누추를 입고, 뼛속까지 바람의 지층이 나 있고,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이제는 꺾인 아버지를 보았을 것이다. 지금 시인이 서 있는 공간, 즉 폐염전과 빈 둑과 꺾인 갈대와 바람이 부는 이 공간이 마치 아버지라는 존재의 영역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표현에는 개인적인 참회를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결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나비 눈》의 대본을 쓰기도 한 신용목 시인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허기'를 돌본다. 이주노동자, 구두수선공, 시장통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의 시는 따뜻하고 서글서글하다. '등이 굽은 가축'인 우리를 돌보는 아파트 경비원 정씨는 "어제는/ 물통을 청소하고 오늘은/ 배설구를 씻는다 가축은/ 정갈해야 하므로 내일은/ 쥐똥나무를 전지하고 모레는/ 짜기철망을 손질한다 가축은/ 안전해야 하므로/ 정해진 시간마다/ 상한 데는 없는지 손전등을 들고/ 고삐를 훑으러 간다"(〈경비원 정씨〉)   신용목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젊은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과 같은 시는 그런 평가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들, 뾰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죄(罪)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죄(罪)가 나를 씻어주겠다"(〈별〉)     [애송시 100편 - 제 81편]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 일러스트=권신아   사월이면 보리가 패기 시작한다. 초록이 지천으로 팬 보리밭을 지날 적이면 보리피리가 불고 싶어진다. 보리의 싹이 나오기 전의 보릿대를 꺾어 불면 피-ㄹ- 소리가 났다. 보릿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손톱으로 작은 구멍을 내 요령껏 불면 피-ㄹ 닐니리 소리가 나기도 했다. 청보리밭의 소리이자 고향의 소리 피-ㄹ 닐니리. 피-ㄹ 닐니리는 향수의 소리다.   〈보리피리〉의 시인 한하운(1920~1975).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문둥이'였다. 본명은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936년 17세의 나이에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중국 베이징대학 농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도청에 근무하며 양양한 미래를 시작하던 25세에 다시 악화되어 직장도 그만 두고 숨어들었다. 이때 이름도 하운(何雲, 어찌 내 인생이 떠도는 구름이 되었느냐)으로 바꾸었다. 1946년 함흥학생사건에 연루되어 반동분자로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월남했다. 구걸을 하며 연명하다 명동거리에서 시를 파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1949년 《신천지》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에〉) 외 12편이 실리면서, '불우의 시인' '천작(天作)의 죄수' '정처 없는 유리(遊離)의 가두(街頭)에서 방황하고 섰는 걸인'으로 소개되었다.   〈보리피리〉를 읽다보면 말 그대로 '천형(天刑)'을 짊어지고 살았던 그의 삶과 세월이 떠오른다. 보리피리를 불며 가는 '꽃 청산', '인환(인간의 세계)의 거리', '방랑의 기산하(많은 산과 들)'는, 그의 고향 함경도 함주에서부터 남쪽 끝 섬 소록도까지 이르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사월의 고향 들판에서 불었던 보리피리를 불며 그는 내내 그 멀고 먼 거리를 떠도는 구름처럼 흘러온 것이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러 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파랑새〉)라고 노래하며.   시는 행간을, 행간의 여백을 읽는 일이다. 이 시는 신문사에 갔다가 즉석에서 써준 즉흥시다. 한 편의 시에, 가곡이나 가요로 가장 많은 곡이 붙여진 시이기도 하다. 그의 삶이 그토록 불우하고 파란만장하지 않았더라면, '인환'이나 '기산하' 같은 한자어를 제외한다면 동시라 해도 무방할 이 단순한 시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기운생동 창끝처럼 패는 새파란 보리가, 지는 꽃처럼 문드러지는 붉은 살끝을 거느리고 있기에, 피-ㄹ 닐니리 봄의 보리피리 소리가 한층 깊고 서럽다.     [애송시 100편 - 제 82편]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일러스트=잠산   함형수(1914~1946) 시인은 생전에 불과 17편의 시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해서 노동자 숙박소 등을 전전했지만 하모니카와 시 노트만은 꼭 갖고 다녔다. 한 여배우와 동거했지만 사랑에 실패하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다 북에서 숨졌다. 그는 평생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못했지만, 만큼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인부락》은 서정주·김달진·김동리·오장환·김광균·함형수 등이 참여한 시 동인지였다. (《시인부락》 동인들은 '생명파'로 불렸다.) 함형수 시인은 이 시를 1936년 《시인부락》 창간호에 발표했다. 우선 이 시를 읽으면 후기 인상파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나 《해바라기》 같은 그림이 떠오른다. '압생트'라는 싸구려 술을 많이 마셔서 물체가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에 시달렸다는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술을 마시는 이유를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정신착란증으로 권총 자살한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도 함형수 시인의 불우한 죽음과 겹쳐 읽혀진다. 함형수 시인이 '청년화가 L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를 창작하면서 빈센트 반 고흐의 열정적인 삶과 죽음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헤아릴 수 없지만, 적어도 둘 사이에 적잖은 영향관계가 있다고 분석하는 의견은 많다.   시인은 자신의 무덤 앞에는 묘비를 세우지 말라고 말한다. '차거운' 주검 앞에 세운 '차거운' 비석은 죽음을 완성하고, 죽음을 죽음으로 붙박는 것. 마치 널이 죽은 사람의 몸을 사방으로 서늘하게 가두듯이. 대신 노랗게 출렁이는, 태양처럼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고 말한다. 다함이 없는, 대해(大海)와 같은 보리밭의 생명력과 공중으로 높이 날아오르는 노고지리(종다리)의 꿈과 자유를 달라고 말한다. 노란 빛깔과 푸른 빛깔의 색채대비가 인상적인 이 시는 식민지시대의 고한(苦恨)을 넘어서면서, 몸과 사랑과 꿈의 죽음을 완강하게 거부하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시종 넘쳐난다.   "눈앞에 보이는 삶의 미미(微微)한 즐거움은 선화륜(旋火輪)과 같다"고 했다. 선화륜은 횃불 같은 것을 손에 들고 빙빙 돌릴 때 생기는 불의 둥근 원(圓)을 말한다. 그만큼 삶의 즐거움은 허망하게도 머무르지 않고 흩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지속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미산(須彌山) 같고 큰 바다 같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해바라기가 자라고 보리밭이 출렁이고 종다리가 날아오르게 하자. 보리밭의 너비와 종다리의 높이를 사랑하자. 함형수 시인의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불멸의 선물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83편] 솟구쳐 오르기 2 - 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 일러스트=권신아 김승희(56)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시는 상처의 꽃'이라는 말이 입에 돈다. 상처에서 피처럼 피어나는 꽃, 그것이 시라는 생각에 미친다. 우리는 가족·사랑·출산·질병·밥벌이·이념·사회를 떠나 살 수 없기에, 우리들 상처는 우리들 보금자리에서 생긴다. 매일매일이 상처투성이다. 상처로부터 솟구쳐 오르게 하는 '용수철'이 없다면 우리는 상처로 짓뭉그러져 있을 것이다. 우리 몸에 내장된 '상처의 용수철'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삶은 상처의 화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튕겨 오르는 힘, 솟구쳐 오르는 힘이 있기에 우리는 매일 새롭게 아침을 맞는다.   〈솟구쳐 오르기〉 연작시들을 통해 시인은 "활활 타오르는 상처의 꽃에서 훨훨 날아가는 새의 날개의 푸드득 솟구쳐 오름"(시집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의 자서)을 찾아 어둡고 지리멸렬한 일상의 삶 위로 튀어 오른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창을 장대로 삼아 장대 높이뛰기를 하듯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고(〈솟구쳐 오르기1〉), 상처의 힘을 깨닫기 위해 긴 머리에 성냥불을 당기고 싶어하고(〈솟구쳐 오르기3〉), 상처의 혼(魂), 아니 혼 속에 간직한 상처의 오케스트라에서 터져 나오는 황금 별들의 찬란한 음악을 듣기(〈솟구쳐 오르기10〉)도 한다. 상처를 비상의 날개로 삼아 날아 오르고자 한다. 그는 '시인은 천형을 앓는 무당'과 같은 존재라고 쓴 적이 있다. 무당이 고통의 칼날 위에서 춤추는 자라면, 상처의 작두를 타고 상처의 작두 위에서 공중부양을 하는 이가 시인일 것이다. 그 역시 고정희, 최승자, 김혜순과 더불어 1970년대 여성시의 새로운 솟구침을 주도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시 쓰기 외에도 에세이, 평론, 장·단편 소설, 동화, 논문, 번역 등 분출하는 글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시에서도 상처에 내재한 자기갱생 및 자기정화의 힘을 노래하고 있다. 봄은 겨울에서 솟구쳐 오른다. 파란 싹, 파아란 보리, 개구리, 빨간 넝쿨장미, 민들레, 나뭇가지의 새 눈의 몸을 빌려 솟아오른다. 땅속이나 바위 밑에서부터, 담벼락을 타고 시멘트를 뚫고, 텅 빈 허공을 일으키며 기어오른다. 떨어져야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내내 얼어 있던 것들이, 넘어져야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내내 고통스러웠던 것들이, 당겨져야 다시 줄어드는 고무줄처럼 내내 아팠던 것들이, 오늘도 '상처의 용수철'을 타고 튕겨 오른다. 내일도 스카이콩콩을 타고 날아오른다. 아아 오오 우우~ 기지개를 켜며 솟구쳐 오르는 탄성(彈性)의 탄성(歎聲) 소리 가득한 아침이다.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닥이여 바닥에서/ 무거운 사슬들이/ 짤랑짤랑 가벼운 빛의 음악이 되는 그날까지"(〈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애송시 100편 - 제 84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4·19세대의 좌절과 절망을 노래한 4·19세대의 만가(輓歌)이다. 김광규(67) 시인은 한글로 교육을 받은 첫 세대로 4·19가 일어난 1960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이 시를 4·19혁명 18년 뒤에 썼다. 중남미 보컬그룹이 불러 1960년대 초반 크게 유행했던 노래와 동명의 제목이다.   터놓고 말하는 이 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변해버린 세상과 변해버린 사람들의 살풍경, 온데간데없는 열망과 초심(初心), 터럭만큼의 부끄러움조차 없게 된 양심, 판치는 속물주의와 물질주의. 이것을 시인은 부지불식간에 빠져들게 된 깊숙한 '늪'이라고 부른다. 크게 호통을 치지 않는데도 이 시를 읽고 나면 뭉근하게 가슴이 저민다. 왜 그런가.   우리는 점점 어깨가 움츠러들고 왜소화되어 간다. "작아진다/ 자꾸만 작아진다/(…)/ 모두가 장사를 해 돈 벌 생각을 하며 작아지고/ 들리지 않는 명령에 귀 기울이며 작아지고/ 제복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작아지고/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작아지고/ 수많은 모임을 갖고 박수를 치며 작아지고/ 권력의 점심을 얻어먹고 이를 쑤시며 작아지고/ 배가 나와 열심히 골프를 치며 작아지고/ 칵테일 파티에 가서 양주를 마시며 작아지고/ 이제는 너무 커진 아내를 안으며 작아진다"(〈작은 사내들〉) 시인은 어느덧 소시민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입장 없음과 순순히 따름이 정녕 우리들이 고대한 초상이었느냐며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면구스럽다.   독문학자이기도 한 김광규 시인은 일상시(日常詩)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시인이다. "김광규의 시는 그 생각에 비뚤어짐이 없으며 그 어조에 격렬한 부르짖음이 없으며 그 은유에 현란한 모호성이 없고 그 관심이 소박한 일상을 넘어서지 아니한다."(문학평론가 이남호)   김광규 시인 스스로도 자신의 시는 오페라에 있어서의 레치타티보(서창)쯤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아리아처럼 목청을 높여 외치지는 않는다. 다만 낮게 중얼중얼거릴 뿐. 하지만 이 중얼거림은 살기 바쁜,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배불리 먹는 일에 열중인 우리들을 거북하게 만든다. 마치 맨발로 사금파리를 밟은 듯하게. 일례로, 그는 우리를 '4월의 가로수'에 섬뜩하게 빗댄다. 우리의 모습이 "팔다리까지 잘려/ 봄바람 불어도 움직일 수 없고/ 토르소처럼 몸통만 남아"(〈4월의 가로수〉) 있는 수양버들이라니! 그러나 둘러댈 말이 없다.   4·19혁명 기념일이 다가오면 이 시를 다시 읽게 된다. 까슬까슬하게 카랑카랑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애송시 100편 - 제 85편]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일러스트=권신아   천지에 꽃 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 넘쳐난다. 껍질만 살짝 문질러도 생강 냄새가 확 풍기는, 산수유꽃 닮은 생강나무꽃, 사람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 달맞이꽃, 애기똥풀꽃, 쑥부쟁이꽃 본 적 있다. 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흰 동백꽃,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꿩의바람꽃, 아침이면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있다. 해가 나면 자줏빛 꽃잎을 활짝 연다는 바람난 처녀꽃, 엘레지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며느리배꼽꽃은 아직 못 보았다. 저 꽃들의 고요!   "어진 이는 만월(滿月)을 경계하고/ 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나니/ 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한용운 〈모순〉)라고 했거늘,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속의 분별과 속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리라. 올해로 40주기를 맞는 조지훈(1920~1968) 시인은 섭리로서의 소멸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보여준 시인이다. '지조(志操)'를 지킨 논객이자, '주정(酒酊)'의 교양과 '주격(酒格)'의 품계를 변별했던 풍류를 아는 학자였으며, 무엇보다 낙화를 찬미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이 시는 화두처럼 시작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꽃은 바람에 지지 않는다. 피면 지고, 차면 이울기 마련이라서, 꽃은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지는 것이다. 저 꽃을 지게 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밤을 아침으로 바꾸는 시간인 것이다. 시인은 촛불이 켜진 방안에서, 주렴 밖으로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아니 꽃이 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리라. 돋았던 별이 하나 둘 스러지는 새벽, 먼 산의 소쩍새가 울고, 뜰에는 꽃이 지고 있다. 달빛이 고즈넉했던지 꽃 지는 그림자가 미닫이에 비친다. 방 안의 촛불을 꺼야, 지는 꽃이 빛을 발한다. 인간의 촛불을 꺼야, 어둠 속에서 목숨이 지는 자연의 꽃이 내는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다.   그는 범종소리를, 과실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소리에 비유한 적이 있다. "허공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종소리는 터져서 빛이 되고 향기가 되고/ 다시 엉기고 맴돌아/ 귓가에 가슴 속에 메아리 치며 종소리는/ 웅 웅 웅 웅……/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날아오른다 아득한 것"(〈범종(梵鐘)〉)이라고. 그 새벽에도 꽃이 지는 소리 웅 웅 웅 웅…… 아득했으리라. 흰 창호지문을 물들이는, '우련(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붉은, 낙화의 그림자! 지는 꽃의 그림자를 나는 이 시에서 처음 배웠다. 꽃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꽃이 다시 보인다는 것도. 밤새 진 꽃들 한 치는 쌓이리라. 꽃은, 진 후에 더욱 꽃이기에, 지는 꽃의 슬픔을 이리 높고 깊게 맞을 일이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 과묵한 슬픔 앞에 목이 멘다.      [애송시 100편 - 제 86편] 서시 - 이시영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 일러스트 잠산   이시영(59) 시인을 떠올리면 그가 늘 쓰고 다녔던 검고 둥글고 큰 뿔테 안경과 그 너머의 빛나는 안광(眼光)이 생각난다. 깡마른 체구와 또각또각 한마디씩 끊어가며 내놓는 정직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1974년 문인들의 민주화운동 조직이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결성에 참여한 이후 엄혹의 시대와 맞서는 문인의 길을 걸었다.   이로 인해 연행되고 구금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989년 《창작과비평》 주간으로 있을 때 황석영의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잡지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유신 철폐를 위해, 구속 문인과 양심수 석방을 위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동자의 살 권리를 위해 국가 폭력에 맞서고 분연히 일어나 싸웠다. 그런 체험과 시대에 대한 울분을 선혈(鮮血)의 언어로 기동력 있게 쓴 것이 그의 민중시였다.   첫시집 《만월》에 수록되어 있는 이 시에도 그의 발자취와 육성이 살아있다. 이 시는 어둠의 시대를 살다 실종되고 도피중인 동지가 돌아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압수되고, 두들겨 맞고, 체포당한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등과 평화가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열망하고 있다. 댓잎이 살랑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숨막히는 고요가 기다림의 절절함이라면, 천지를 쿵쿵 울리는 역동적인 발자국 소리는 돌아옴의 당위에 해당한다. 저 폭압의 시대에는 자식의 생사도 모르는 채 하염없이 뜬눈으로 눈물로 밤을 지새운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시영 시인은 민중시를, 이야기시를, 우리말을 세공(細工)한 단시(短詩)를 선보여 왔다. 근년에는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스크럼을 짜고 함께 통과해온 인물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시를 써내고 있다.   광주일고 1학년 생활기록부에 장래 희망을 법관으로 적어 놓은 해방전사 김남주, 휘파람 잘 부는 송영, 마포추탕집에서 쭈글쭈글한 냄비에 된장을 듬뿍 넣고 끓여 함께 먹던 조태일, 문단 제일의 재담가 황석영, 상갓집에 가면 제일 나중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인심 좋은 이문구, 섬진강서 갓 올라와 창작과비평사 문을 벌컥 열고 사과궤짝을 쿵 하고 바닥에 내려놓던 김용택 등등.   그는 지나간 옛일들을, 고통의 역사를 애틋하게 따듯하게 불러낸다. 특히 송기원과의 두터운 교분을 자랑하는 시편들은 왁자하고 눈물겹다. (이시영 시인은 송기원, 이진행과 함께 '서라벌예대 문창과 68학번 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시영 시인은 "마치 이 세상에 잘못 놀러 나온 사람처럼 부재(不在)로서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며 살아온 사람"(〈시인〉)이 바로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미풍'이 되어 서러운 사람에게로 불어간다. 가슴이 뭉클하다.     [애송시 100편 - 제 87편] 껍데기는 가라 - 신 동 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일러스트 권신아   기운생동, 만화방창의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던 이는 엘리어트였다. 우리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부여의 시인, 금강의 시인, 신동엽(1930~1969)은 이렇게 노래했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겨울 땅을 갈아엎어 줘야 싹들이 더 잘 일어서는 이 4월에.   4월 19일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 〈껍데기는 가라〉는 벼락같은, 천둥같은 시다. 이 시에 무엇을 더 덧붙일 수 있으랴. 덧붙이는 순간 사족이고 군말일 뿐이다. 그만큼 시 자체   로 명명(明明)하고 백백(白白)하다. 1967년에 발표된 이 시는 4·19 혁명의 실패, 5·16 군사 쿠데타, 6·3 사태, 베트남 전쟁 파병, 분단의 고착, 외세의 개입 등 1960년대의 구체적 시대상황을 시의 배면에 깔고 있다. 그러니 시인에게 삼천리 한반도의 사월은 껍데기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라고 반복적으로 촉구하고 있지만 사실 이 시의 핵심은 '껍데기'보다는 '중립의 초례청'에 있다. 이 '중립(中立)'에는 남과 북,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넘어서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백두에서부터 한라까지, 동학년(1894년) 곰나루에서부터 4·19(1960년) 광화문까지, 백제의 후손 아사달과 아사녀의 못다 이룬 사랑에서부터 신라의 석가탑(無影塔)과 영지(影池)까지를 아우르는 이 중립의 스케일은 얼마나 장쾌한지.   이 웅대한 중립의 시 공간을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라는 문장 하나로 관(貫)하고 통(通)해낸다. 이 중립이야말로 진정한 알맹이이자 흙가슴이며, '부끄럼을 빛내며' 두 몸이 맞절하여 새로운 생명이 잉태할 수 있는 화해의 장(場)이라고 말하고 있다. 60년대 참여문학를 대표하는 이 시는 이후 민중·민족 문학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고 짐짓 물을 때, 시인이 보고자 했던 '하늘'은,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봄은〉)는 사월의 하늘이었을 것이다. 그런 하늘은 보지 못하는 한, 시인은 여전히 4월에는 껍데기는 가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은 것이고,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애송시 100편 - 제 88편]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일러스트=잠산   꽃이 지고 있다. 손에 꼭 쥐었던 것을 놓아버리고 있다. 어떤 꽃의 낙화에는 만행을 떠나는 수행자의 뒷모습이 있다. 미련 없이 돌아서기 때문에 낙화에는 구차함도 요사스러움도 없다.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이별은 등 뒤를 허전하게 만들고, 며칠 눈물을 돌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제때에 떠나감은 말끔하고 쾌적하다.   새잎이 돋고, 줄기가 힘차게 뻗고, 꽃이 벙글고, 벌이 꽃의 외곽을 맴돌고, 비로소 어느 아침에는 꽃이 '하롱하롱' 지고, 꽃의 시간을 구구절절 기억하며 열매가 맺히고,…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 큰 운행을 벗어나기 어렵다.   부귀는 빈천(貧賤)으로 바뀌고, 만남은 이별로 바뀌고, 건강은 늙고 죽음을 초래한다. 시시각각 바뀐다. 그래서 이런 것에는 견실성이 없다. 견실성이 없으므로 집착할 것이 못 된다. 불교에서는 "온갖 사물은 다 없어질 것이어서 공중의 번개 같고, 굽지 않은 질그릇, 빌린 물건, 썩은 풀로 엮은 울타리, 모래로 된 기슭과 같다"고 했다. 이형기(1933~2005) 시인의 초기 시에 속하는 이 시는 집착 없음과 아름다운 물러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형기 시인은 1950년 시 〈비오는 날〉을 잡지 《문예》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때 그의 나이 17세. 최연소 등단기록이었다. "시(詩)란 본질적으로 구축해 놓은 가치를 허무화시키는 작업이야. 시에 절대적 가치란 없어. 자꾸 다른 곳으로 가는 팔자를 타고난 놈들이 시인이야. 그 무엇이건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자유 말이야." 그는 시 창작뿐만 아니라 소설, 평론, 시론, 수필 등에 이르기까지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펼쳤다. 초기에는 자연 서정을 선보였으나 현대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악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시 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한국시사에서 사라짐에 대한 존재론적 미학을 선보였다. "빈 들판이다/ 들판 가운데 길이 나 있다/ 가물가물 한 가닥/ 누군가 혼자 가고 있다/ 아 소실점!/ 어느새 길도 그도 없다/ 없는 그 저쪽은 낭떠러지/ 신의 함정/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도 모르는/ 길이 나 있다 빈 들판에/ 그래도 또 누군가 가고 있다/ 역시 혼자다."(〈길〉)   "고독과 고통은 시인의 양식"이라고 말했던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랜 투병생활을 했다. 그러나 고통스런 병석에 있으면서도 그는 아내의 대필로 시를 계속 창작했다. 그는 슬픔에 휩싸인 사람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아포리즘을 남겼다.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때는 슬퍼해 봐도 물론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슬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슬픔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슬픔은 가장 순수하고 따라서 값지다."     [애송시 100편 - 제 89편] 철길 -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쇳덩어리가 이만큼 견뎌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철길의 들끓어오름을 적셔주었다.   무너져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온 것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희망이,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답답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리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남해안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한강교를 건너면서   인천 방면으로, 그리고 수원 방면으로 떠난다.   아직 플랫포옴에 머문 내 발길 앞에서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하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은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욱이 된다.       ▲ 일러스트=권신아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고 나직이 되뇌면 생각의 꼬리가 철길처럼 길게 이어지곤 한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는 순간 수수께끼라도 떠안은 듯 뒷말을 잇도록 한다. 김정환(54) 시인은 '철길이 철길인 것은'을 되뇌며 (철)길과 만남과 희망을 엮어 이렇게 노래한다. 만날 수 없음이 이리도 끈질기기 때문이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고 되뇌면 신촌역, 성북역, 용산역, 서울역을 오가던 아련한 철길들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철로도 아니고, 철도도 아니고, 바로 '철길이 철길인 것은' 그 길이 인간 안쪽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철길은 두 개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길과 또 하나의 길, 한 사람의 길과 또 한 사람의 길! 그 두 길은 서로 마주칠 수 없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서로 버팅김으로써 지나감의 속도와 무게를 견뎌내는 길이다. 지금 당장은 만날 수 없는 길이지만, 언제나 함께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시간의 누적인 역사(歷史)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1899년 제물포에서 노량진을 오가는 경인선이 첫 경적을 울린 이후 철길은 격동의 근대사를 달려왔다. 수탈하고 징병하고 피란하고 산업하러 가는 길에 철길이 있었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나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돌아간다. 상경하고 귀경하고 입영하고 귀대하고 여행하는 곳에 늘 철길이 있었다. 그러니 '철길이 철길인 것은' 그 길에 자갈돌처럼 깔려 있는 기다림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너무 길고 외로워서, 철길이 두 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철길이 철길인 것은' 끝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철길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그는 "이 살아있음이 언젠가는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고/ 또 사랑하는 것이"(〈육교〉)고, "음침한 시대가, 끝났다는 듯이/ 기름 묻은 이슬이 검게, 선로 위에서 반짝인다/ 아직 젖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검붉은 눈동자〉)라며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고통도 절망도 이별도 끝이 있기 때문에 견딜 만한 것이고,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고, 결국 희망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한" 것이다. 당신이든 미래든 휴전선 너머든 완행이든 급행이든, 바로 그곳까지 달려가는 것이 철길인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0편]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버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을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간다.       ▲ 일러스트 잠산   김광균(1914~1993) 시인은 1930년대 후반 회화적 이미지즘의 새로운 문법을 선보였다. 그는 시에 '회화(繪?)'라는 웃옷을 입혔다. 모더니즘 시론가 김기림은 "소리조차를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가진 시인"이라고 평했다.   김광균의 시는 독자들의 눈앞에 한 장 한 장의 데생을 그려 보이는 작법을 구사했다. 이런 데에는 김광균이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많은 화가와 직간접적으로 교우한 영향이 컸다. 김광균은 고흐의 그림을 처음 접한 충격을 이렇게 고백했다.   "고흐의 '수차(水車)가 있는 가교(假橋)'를 처음 보고 두 눈알이 빠지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낀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 느낀 유럽 회화에 대한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계미술전집을 구하며, 거기 침몰하는 듯하여 나는 급속히 회화의 바다에 표류하기 시작했다. 시집보다 화집이 책상 위에 쌓이기 시작했고, 내 정신세계의 새로운 영양(營養)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 같다."   그는 섬세한 감각의 촉수로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 우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뎃상〉)로 표현했고, 흰 눈이 내리는 모습은 "먼―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설야〉)로 표현했고, 성교당(聖敎堂)의 종소리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외인촌〉)로 빛나게 노래했다.   마치 먼지 낀 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시에서도 그는 공허하고 고독하고 스산한 마음을 '모양으로 번역'해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은 낙엽을 보면서 망명정부에서 발행하는 무가치한 지폐를 떠올리고, 폐허가 된 도룬(토룬) 시(市)의 공백(空白)한 하늘을 떠올린다. 구불구불한 길은 '구겨진 넥타이'로, 잎이 다 떨어진 포플러 나목(裸木)은 초라한 '근골'로, 불투명하고 얇은 구름은 '세로팡지(셀로판지)'로 표현함으로써 아주 구체적으로 대상을 조형한다.   낙엽을 망명정부의 무용한 지폐에 비유하거나, 공장의 지붕을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빨에 비유하는 대목에서는 도시적 문명에 대한 시인의 비판 의식도 엿볼 수 있다. 이 시에 나타나는 황량한 심사는 모색(暮色) 그득한 그의 다른 시편들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상실감과 창백한 감상(感傷)은 가족들의 죽음, 실향 등의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되었다. 해서 혹자는 김광균을 '엘레지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26년 12세의 나이로 '중외일보'에 처음 시를 발표하면서 천부적인 시안(詩眼)을 자랑했던 김광균 시인은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한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납북된 동생의 사업을 인수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렇지만, 그는 안개 자욱하던 한국 시단에 장명등(長明燈) 하나를 켜 놓았다. 아직도 그곳서 가늘고 고단한 불빛이 새어나오며 밤을 밝히고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91편]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 일러스트 권신아   "저질러라, 닥치면 겪는다, 긍게 긍갑다"를 인생의 3계명으로 삼고 사는 여성 시인이 있다. 실제로도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에서 살았으며, "치사량과 열정과 눈물 한 방울만큼의 광기와 고독/ 개미의 페로몬 같은 상상력"(〈짜가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재료로 '시 같은 거짓말'을 제조하고 '거짓말 같은 시'를 타전하여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씩씩하고 싹싹한 안현미(36) 시인의 얘기다.   2006년에 엮어낸 그의 첫시집 《곰곰》은 이렇게 소개되었다. "활짝 핀 착란의 찰나에서 건져 올린 생짜의 시, 시라니!"라고.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막장에서 석탄을 캐내던 내 아버지"(〈고장난 심장〉)와 "까치밥처럼 눈물겨운 엄마"(〈우리 엄마 통장 속에는 까치가 산다〉)의 틈바구니에서 '생짜'로 캐낸, 캄캄한 그러나 반짝이는, 검은 조개탄을 들여다보는 일만 같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의 비망록'은 있는 것이어서, 그 비망록이 어둡고 고통스러울수록 그 젊음은 젊었음이 틀림없다. 이 시는 시인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여상, 산동네, 등록금, 비키니 옷장, 순대국밥, 번개탄, 연탄가스 중독, 헌책방 따위로 그려지는 90년대면서도 '여전히 70년대적인' 풍경이다.   거기에는 짐작되는 아픔이 있고 헤아려지는 가난과 고독이 있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할 때, '~이었지만'을 경계로 앞 문장은 뒤 문장에 의해 뒤집힌다. 경계는 해체된다.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라고 말할 때,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라고 말할 때도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무참히 무너진다. 이렇게 앞과 뒤는 가파르게 반전하지만 사실은 동어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리듬감은 여기서 살아난다.   시인에게 '거짓말'은 '시'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진실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이러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타전하다'라는 말은 "목마른 시인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팔리지 않는 위독한 모국어로 시(詩)를 쓰고 있었다"(〈그해 여름〉)의 다른 표현이며, 그의 시에서는 거짓말을 제조하다, 환을 연주하다(보다), 몽유병에 꽂히다, 착란에 휩싸이다 등으로 변주된다.   그런데, 나를 울게 하고 결국은 가족이 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란 무엇에 대한 은유일까? 야행성의 창녀들일까, 치한 혹은 사내들일까, 불안이나 공포일까, 죽음일까…… 어쨌든 "그녀의 더듬이는 쓴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운다"(〈거짓말을 제조하다〉). 그것은 진행형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2편]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 일러스트=잠산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중략)/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5·18광주항쟁을 최초로 형상화한 이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썼던 시인이 바로 김준태(60) 시인이다.   이 시는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 1면에 일부 게재되었고, 전 세계 외신을 타고 나라 밖으로도 알려졌다. 이 시 발표 후 전남매일은 강제 폐간되었고, 김준태 시인은 재직하던 전남고교에서 해직되었다. 이 일례는 그의 문학적 이력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진보적 문인인 김준태 시인은 시를 통해 대동세상(大同世上)에의 열망을 노래해왔다.   남도의 입심을 잘 살려가며 시를 써내는 김준태 시인. 그의 시 세계의 원적(原籍)은 농민시이다. 첫 시집 《참깨를 털면서》에서도 그랬고, 그 이후 발표한 〈밭시〉 연작에서도 그랬다. "칼과/ 흙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흙을/ 찌른 칼은/ 어느새/ 흙에 붙들려/ 녹슬어버렸다"(〈칼과 흙-밭시(詩) 52〉). 그는 흙의 건강한 생명력을 강하게 신뢰하는 시인이다.   시 〈참깨를 털면서〉는 김준태 시인의 데뷔작이다. 밭에서 할머니와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가 참깨를 털고 있다. 할머니는 깻단을 슬슬 막대기질 하지만, '나'는 산그늘이 내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조바심을 낸다. 명령하듯 깻단을 한번 내리치면 복종하듯 솨아솨아 쏟아지는 깨알들이 기막히게 신기하고 신이 난다. 그예 모가지까지 털다가 꾸중을 듣는다. 목숨 가진 것에 대한 조금의 외경도 포용도 없이 무턱대고 털어대는 쾌감에 정신없으니 왜 혼나지 않겠는가. 이 시를 읽으면서, 인간의 본직을 잘 잊고 사는 나도 할머니 곁에서 참깨를 털며 한 차례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 참깨농사뿐만 아니라 사람농사까지 원융(圓融)하게 지어온 그 할머니로부터 꺼끌꺼끌한 사투리로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   준엄한 역사의식으로 당대에 대응해 우직하게 노래하는 김준태 시인의 또 다른 관심사는 통일문학이다. 말을 구부리거나 곧은 문장을 비틀어서 만든 시가 아니라 '심장을 싸늘하게 감싸는' 시를 찾는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안테나의 촉수가 쉴 새 없이 작동되어야 하고 상황이 타전이 되어 오면 재빠르게 이웃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혹은 예언의 나팔을 불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름하여 시인이 아니던가." 현실로부터 비켜서지 않는 그의 열정은 폭포수 같다 할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3편] 감나무 -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 일러스트 권신아   소설가 현기영의 발문을 빌려 말하자면, 좀 '지랄 같은 성깔'과 '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개구쟁이의 웃음'과, 그리고 '시적 허기증'이라 할 만한 왕성한 창작 욕구가 가장 그답다고 한다. 그가 바로 이재무(50)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고향과 유년에의 기억, 도시와 문명의 피로 등 자신의 삶 체험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퇴고할 필요가 별로 없는 완전한 모습의 시가 초고부터 씌어진 경우 좋은 시가 많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감나무〉야말로 단숨에 쓰여진 시임에 틀림없다.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담고 산다. 흰 보석 같은 감꽃과 달착지근했던 그 꽃맛, 새파란 감잎과 툭 툭 떨어지던 풋감들이 만들어내는 그 그늘, 꽃보다 더 고왔던 붉은 감잎과 그 거름, 감과 곶감과 까치밥의 그 달콤한 맛…. 그것들이 있는 풍경이란 하나같이 정답고 포근하다. 이 고향 같은 '감'은 도무지 어디서 비롯된 이름일까.   15년 동안을, 주인이 도망치듯 떠난 빈집에서 꽃을 내고 잎을 내고 감을 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은 애틋하다. 성큼 들어설 주인을 마중이라도 하려는 듯 사립 쪽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다. 연초록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순이 잎이 되고 그 잎이 질 때, 한 기다림을 다 살았을 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나 귀기울이는 것이리라. 날렵하게 포착해낸 이 짧은 시의 여백에는 농촌의 붕괴와 이농 현상이 있고, 한 가족의 곡절 많은 삶이 있고, 녹록치 않았을 도시살이가 있고, 무작정의 세월이 있고 계절이 있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고, 인정이 있고 섭리가 있다.   이런 감나무는 또 어떤가. "저물 무렵 밭둔덕에 외로이 서 있는/ 늙은 감나무와 나란히 서서/ 인생의 황혼을 억세게 갈무리하시는/ 아부지의 등허리엔/ 살아온 날의 높고 낮은 등고선이/ 가파르게 펼쳐져 있다"(〈아부지〉).   이 감나무는 주인과 함께 늙어가며, 뻗어가는 가지들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초겨울 인적 드문 숲속/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위태위태한 빨간 슬픔의 홍시/ 하나의 마음으로 기다린다"(〈기다림〉). 이 감나무는 기다림을 완성시켜줄 '큰 입 가진 임자'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고향이란 이런 감나무처럼 애틋하게 기다려주는 곳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감나무로 통하는 것이다.   새순이 돋았으니 감꽃마저 지고 나면, 감이 열리고 감잎이 물들 것이다. 그리고 까치밥 하나 오래 맺혀 있으리라. 고향 빈집에 남겨두고 온 저 감나무는 그렇게 삼십년을 알콩달콩 한 식구처럼 살았으니, 십오년에 또 십오년은 더, 피붙이처럼 그리워할 것이다. 속을 바짝바짝 태우며 그리 오래 기다렸던 감나무니 그 감은 또 오죽 달 것인가.     [애송시 100편 - 제 94편]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 끝 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 일러스트 잠산   정끝별(44) 시인의 시는 경쾌하다. 언어에 용수철 같은 탄력이 있고 집중력 있게 나아간다. 그녀의 시는 '불붙는 것'을 읽어내는 솜씨가 있다. 시적 대상이 갖고 있는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읽어내는 놀라운 수품(手品). 하나 속에 들어있는 상반된 성격의 팽팽한 대립을 말할 때 그녀의 시는 유니크(unique)하다. 그녀의 시는 모임과 빠져나감, 격렬함과 멸렬함, 달아남과 풀어줌 등 이 세상의 모든 시적 대상이 아마도 갖고 있을 상반된 두 성격, 한데 엉킨 두 성격을 표현한다. 해서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열망을 추슬러서 세상 안으로 돌아와 자리잡을 때 정끝별의 시에는 물기가 번지고 리듬이 인다"(소설가 김훈의 말).   이 시에서도 시인은 허공에 혹은 담장에 맞닥뜨린 가지의 엉킨 두 마음을 읽어낸다. 사람에게도 그렇듯이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감행의 신명이 공존할 것이다. 다만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는 혼연일체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것을 범박하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랑의 배후로써 우리는 금단과 망설임과 삶의 궁기(窮氣)를 넘어선다. 사랑 아니라면 어떻게 한낱 가지에 불과한 우리가 이 세상의 허공을, 허공의 단단한 담을, 허공의 낙차 큰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정끝별 시인은 시 에서 우리의 삶은 "조율되지 않은 건반 몇 개로 지탱하고"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낡아가는 악기는 쉬지 않고 음악소리를 낸다. 나 딸 나 애인 나 아내 나 주부 나 며느리 나 학생 나 선생 응 나는 엄마 그리고 그리고 대대손손 아프디아픈 욕망의 음계, 전 생을 손가락에 실어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 이 시에서처럼 그녀의 시는 삶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그것을 딛고 나아간다. 길의 상처를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타이어의 둥근 힘처럼. 조율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가 없다면 우리 삶의 악보는 진혼곡 그 자체일 터. 그녀의 시가 각별한 것은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의 음계를 연주하는, 이 특별한 식미(食味)에 있다.   바람을 표절하고, 싱싱한 아침 냄새를 표절하고,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하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되고 싶다는 정끝별 시인. 그녀의 시는 봄나물처럼 생기발랄하다. 부럽게 상큼한 맛으로 그녀의 시는 우리의 입맛까지 살려준다.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며 지친 이의 마음에 숟가락을 쥐여주는 이 시는 얼마나 푸근푸근한가.   "달아도 시원찮을 이 나이에 벌써/ 밥이 쓰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쓰고 글을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을 쓰고 관을 쓰고 쓰고 싶어 별루무 짓을 다 쓰고 쓰다/ 쓰는 것에 지쳐 밥이 먼저 쓰다/(중략)/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고/ 떼꿍한 눈이 머리를 쓰다듬는 저녁"().      [애송시 100편 - 제 95편] 인파이터 - 코끼리군의 엽서 - 이장욱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가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넌 내가 바라보던 바다를 상상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에는 날 잊어줘.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   떨어진 사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기 서해 쪽으로 천천히, 새 한 마리 날아가데.   모호한 빛 속에서 느낌 없이 흔들릴 때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 일러스트=권신아   이장욱(40) 시인의 시는 몽롱하다 아니 명쾌하다. 난해하다 아니 낯설다. 좀 다르게 말해보자. 그는 낮을 사는 시인이다 아니 밤을 사는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다 아니 소설가다. 노문학자다 아니 (픽션)에세이스트다 아니 비평가다. 현대시 모더니티의 한 극점에 서 있는 '우울한 모던보이'다, 아니 서정시의 안부(內部)를 공략하는 '진정한 인파이터'다. 짐작하겠지만, 그는 그 모두이면서 단지 문학 그 자체이다. 이 시의 묘미도 이런 어울림에 있다. 대화와 독백, 여기저기서 끌어온 문장들의 인용과 변용, 절망을 농담으로 받아치는 경쾌함, 뜬금 없고 돌연한 조증(躁症)과 울증(鬱症)의 변주, 비극적이면서 냉소적인 다변(多辯)으로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잽이 장기인 시이다.   파이터!라는 말은 자극적이다. 인파이터! 라고 듣는 순간 단전에서부터 전의(戰意)가 꿈틀거린다면 당신은 사각의 링 위에서 난투극을 벌여본 적이 있거나 벌이고 있는 자다. 외곽을 돌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아웃파이터이거나 상대에게 바짝 달라붙어 저돌적인 공격을 퍼붓는 인파이터일 것이다. 1982년 겨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인파이터 맨시니의 강펀치를 맞고 맞고 또 맞으면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던 복서 김득구, 그 경기에서 김득구는 분명 맨시니보다 더 인파이터였다. 그러나 김득구는 오는 펀치를 피해 되받아치는 카운터 펀치, 그 한 방의 나이스 펀치를 날리지 못했다.   "코끼리를 천천히 허물어지는 코끼리를/ 그대는 본 적이 있으십니까. (…) 그의 거대한 육체가/ 황폐하지 말라 황폐하지 말라 중얼거리듯/ 무심하지만 지극히 섬세한 자세로 무너져가는/ 그 아늑한 풍경을"(〈코끼리〉). 김득구는 그렇게 무너졌다. 가출해 구두닦이를 전전하다 헝그리 복서로 막 인생이 피려고 할 그때, 14회전까지 계속 얻어맞았지만, 그때까지 버텨온 김득구의 드림, 김득구의 땀과 눈물, 김득구의 피로, 김득구의 공포…김득구는 살아 생전 술을 마시면 노래했다. "권투란 무엇인가, 맞는 걸까, 때리는 걸까".   이 사각의 링에서 그 누군들 단 한 방의 펀치도 맞지 않으면서 단 한 방의 카운터 펀치를 노리는 아웃파이터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야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일 뿐, 이름하여 '인파이터 코끼리군'. 우리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저 모호한 구름에 너무 바짝 붙어 싸우고 있는 게 틀림없어! 우리 삶이란 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싸움임에 틀림없어!       [애송시 100편 - 제 96편] 비망록 -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 일러스트=잠산 누구든 삶의 중요한 골자를 적는 하나의 비망록을 갖고 있다. 생(生)의 사건은 낙차가 있고, 중립(中立)이 없으므로, 그 자체로 강렬하지 않은 생(生)의 시간은 없다. 어떤 과거는 해약하고 싶어진다. 어떤 과거는 지금에라도 더 꽃피우고 싶어진다. 어느 때는 폭풍이 지나가는 바닷가처럼 스산하고 절벽처럼 위태위태해 시큰한 냉기가 돌기도 한다. 어느 때는 사랑이 붉은 가슴에게로 오지만 눈물의 손바닥이 얼굴을 덮는 밤도 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모두 속기할 수는 없다.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는 미망(迷妄) 속에 살면서 잊을 수 없는 미망(未忘)만을 기록할 뿐.   김경미(49) 시인의 데뷔작인 이 시에는 스물네 살에서 스물다섯 살로 넘어가는 나이의, 섬세한 감성을 소유한 여성이 등장한다. 신(神)은 그녀의 절망을 구원하지 않았고, 그녀가 만나는 이들은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으며, '산두목 같은 사내'는 끝내 그녀의 사랑이 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 그러나 젊은 열정이 어딘들 못 나서랴.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그예 젊은 열정은 생의(生意)를 내는 것. 마치 견고한   배는 풍랑에도 해를 입지 않듯이.   미래에 대한 이 적극적인 의욕은 시 〈겨울 강가에서〉에도 드러난다. "딸아 기다림은 이제 행복이 아니니/ 오지 않는 것은/ 가서 가져 와야 하고/ 빼앗긴 것들이 제 발로 돌아오는 법이란 없으니/ 네가 몸소 가지러 갈 때/ 이 세상에/ 닿지 않는 곳이란 없으리". 그러나, 이 굽히지 않는 마음이 20대의 젊음에게만 있을쏜가. 우리는 또 내일을 만나고, 내일은 공백(空白)의 페이지이고, 내일은 새롭게 써야 할 비망록인 것을.   고형렬 시인의 표현대로, 김경미 시인은 "맵차고도 직정적인 여성시인"이다. 그녀는 자기 혐오와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과 전면전을 치르는 시인이다. 해서 그녀의 시는 이 세상의 패악함과 간활함에 맞선다. 시 〈나의 서역〉의 도발적인 허무는 또 어떤가. "서로 편지나 보내자 삶이여/ 실물은 전부 헛된 것/ 만나지 않는 동안만 우리는 비단 감촉처럼 사랑한다 사랑한다 죽도록/ 만날수록 동백꽃처럼 쉽게 져버리는 길들/ 실물은 없다 아무곳에도/ 가끔 편지나 보내어라". 이렇게 솔직하게 속내를 꺼내 보이는 시를 읽고 나면 우리는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다시 만나 동백꽃처럼 모가지를 꺾으며 서로를 외면하게 될지라도. 다시 만나 과거의 비망록을 다시 열람하려는 용기, 그것이 우리의 가슴에 아직 남아있는 그리움 아니겠는가.     [애송시 - 제 97편]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일러스트=권신아 문태준(38) 시인의 시에서는 뜨듯한 여물 냄새가 난다. 느림보 소가 뱃속에 든 구수한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투실한 입모양이 떠오른다. 잘 먹었노라고 낮고 길고 느리게 음매- 울 것도 같다. 21세기 벽두의 우리 시단에서 그의 시는 '오래된 미래'다. 찬란한 '극빈(極貧)'과 '수런거리는 뒤란'을 간직한 청정보호구역이다. '시인·평론가가 선정한 2003년 최고의 시'로 뽑히기도 했던 이 시는 겹겹의 배경을 거느리고 있다. 수묵의 농담(濃淡)처럼 그 그림자가 자연스럽다. 죽기 직전의 개조개가 삐죽 내밀고 있는 맨살에서, 죽은 부처의 맨발을 떠올리는 상상력의 음역은 웅숭깊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들 아버지의 맨발, 그 부르튼 한평생을 얘기하고 있다. 시를 포착하는 시적 예지와 시안(詩眼)의 번뜩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에 제일 나중에 나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하중을 견뎌내고서는, 세상으로부터 제일 나중에 거두어들이는 것이 맨발이다. 맨발로 살다 맨발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은 평속(平俗)한 세파를 화엄적으로 견뎌내는 존재들이다. 길 위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길 없는 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다 길 위에서 열반에 든 부처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섭을 위해 관 밖으로 내밀어 보여준 두 발에는 천 개의 바퀴살을 하나로 연결시킨 바퀴테와 바퀴통의 형상이 새겨있었다고 한다. 부처는 무량겁 지혜의 형상을,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이 하나라는 것을 제자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이 맨발의 움직임은 적막하다. 어물전의 개조개가 무방비로 내놓았다가,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맨발을 거두어들이는 그 느린 속도에는 죽음이 묻어 있다. 무언가를 잃고 자신의 초라한 움막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맨발'의, 적나라한, 온 궁리를 다한 뒤끝의 거둠이다. 탁발승의 벌거벗은 적멸이요, 개조개 속에 담긴 부처다. '조문'하듯 만져주는 시인의 손길 또한 애잔하다. 개조개가 슬쩍 내보인 맨발에서 천길 바다 밑을 걷고 또 걸었던 성스러운 걸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 범속(凡俗)한 빈궁 속에서 세계의 아득한 끝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차디찬 맨발을 만져본 사람에게 이 시의 적막함은 유난하다.   인연이든 시간이든 기적이든 순력(巡歷)을 다했기에 '바깥'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부르튼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기에, '아-' 하고 우는 것들을 채워주었기에, 느리고 느리게 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바깥〉)!     [애송시 100편 - 제 98편] 오산 인터체인지 - 조병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燈)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초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 일러스트=잠산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건/ 사람뿐이다.// 시간에 집을 지으라/ 생각에 집을 지으라//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것은/ '오고 가는 것'들이다."(〈의자 6〉)   조병화(1921~2003) 시인의 시 〈의자 6〉을 읽고서 나는 망연히 물처럼 앉아 있다. 나의 바깥은 바람 가듯 물결 지듯 지나가는 것이 있다. 순간순간이 작별이다. 여관이 여관에 들었다 나가는 하룻밤 손님과 작별하듯이. 허공이 허공에 일었다 잦아드는 먼지와 작별하듯이.   그리고 〈오산 인터체인지〉를 다시 읽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보인다. 사랑이 갈라서는 것이 보인다. 맞잡았다 놓는 당신과 나의 손을 안개가 물컹물컹 잡아 쥔다. 안개를 두른 당신과 나의 행로에 대해 알 방도가 없다. 나는 동쪽으로 사십 리를 가지만, 당신은 남쪽으로 천 리를 가야 한다. 내가 가야 할 거리보다 당신이 가야 할 거리가 까마득하게 더 멀다. 당신이 나를 떠나 보내는 거리보다 내가 당신을 떠나 보내는 거리가 훨씬 멀다. "자, 그럼"이라는 대목은 또 어떤가. 가슴이 아프다. "자, 그럼"이라는 표현에는 뒤편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단호한 듯 순응하는 듯 "자, 그럼"이라고 말하지만, 그 음색에는 애써 숨긴 슬픔의 기색이 역력하다.   이 시에서처럼 조병화 시인은 단독자인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밀통하고 내통했다. 꾸밈이 없는 어투로 그는 생애 내내 우리네 도시인들의 슬픔을 노래했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비밀을 아느냐// 나는 아직 어려서// 슬픔이 나의 빛/ 나의 구원/ 나의 능력"(〈너는 나의 빛〉). 그는 '편운(片雲)'이라는 호를 썼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의 발간을 계기로 등단한 후 유고시집을 포함해 총 53권의 창작시집과 시론집, 수필집 등 무려 160여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럭비와 그림을 좋아했다. 럭비선수로 일본 원정까지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에도 상당한 솜씨가 있었다. 여백을 넉넉하게 살린 그림을 즐겨 그려 여러 권의 화집을 냈고 여러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시를 쉽게, 빨리 쓰되 한 차례 쓰고 난 뒤에는 그냥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애써 쓴 시를 짐짓 모르는 척 내버려두는 시간은 참으로 적막하였을 것이다.) 내버려 둔 시가 며칠 후에 다시 눈에 밟히면 고쳐 썼고, 눈에 어른거리지 않으면 매몰스레 아예 버렸다고 한다.   박재삼 시인은 "조병화 시인의 시에서는 어디서든 난해한 데라곤 없다. 그저 술술 읽히는 마력(魔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시 〈어머니〉도 난해한 데라곤 없다. "어머님은 속삭이는 우주/ 속삭이는 사랑/ 속삭이는 말씀/ 속삭이는 샘"이라고 그는 썼다.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담담함은 더 감당을 못하겠다. 나직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사람의 내상이 더 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 그럼"이라고 말하며 작별을 고하는 사람, 그이에게는 "말도 무용해진다".     [애송시 100편 - 제 99편]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 희 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일이 끝나 저물어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일러스트 권신아 정희성(63) 시인은 해방둥이다. 올해로 38년의 시력에 4권의 시집이 전부인 과작(寡作)의 시인이다.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시(詩)를 찾아서〉), 그의 시를 읽노라면 언(言)과 사(寺)가 서로를 세우고 있는 시(詩)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의 시는 나직하게 절제되어 있으며 민중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쉽게 읽히되 진정하고, 단정하되 뜨겁다. "그는 자신의 시처럼 단정하고 단아하지만 단아한 외형 속에는 강철이 들어 있다"고 했던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시와 시인과 시인의 삶이 버성기지 않은, 참 보기 좋은 경우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눈덮여 얼어붙은 허허 강벌/ 새벽종 울리면 어둠 걷히고/ 난지도 취로사업장 강바닥엔 까마귀떼처럼/ 삽을 든 사람들 뒤덮인다"(〈언 땅을 파며〉)나, "퍼내도 바닥이 흰 서러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놈이/ 팔다리만 성해서 무얼 하나/ 공사판엔 며칠째 일도 없는데/ 삽을 들고 북한산을 퍼낼까/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북한산 바닥까지 눈을 퍼낸다"(〈눈을 퍼내며〉) 등의 시와 함께 읽을 때,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라는 핵심 구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삽'이라는 한 글자에는 많은 의미와 뉘앙스가 담겨 있다. 파다, 덮다, 뜨다, 퍼담다, 퍼내다 등의 술어를 수반하는 삽질은 자신의 몸을 구부리고 낮춰야 하는 일이다. 한 삽에 한 삽을 더해야 하는 묵묵하고 막막한 일이다. 흙 한 삽, 모래 한 삽, 석탄 한 삽, 시멘트 한 삽이 모여야 밥이 되고 집이 되고 길이 되고 마을이 되고 무덤이 된다. 삽질의 정수(精髓)란 그 우직함과 그 정직함에 있다. 그 정직함을 배반할 때 삽은 무기가 되기도 한다. 농민이든 노동자든, 노동의 본질이 삽질에 있는 것이다.   공자는 냇물을 보며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 아니듯, 저무는 것이 어디 하루뿐이겠는가. 인생도, 세월도 다 그렇게 흐르고 저문다. 흐르다 고이면 썩기도 하고 그 썩은 곳에 말간 달이 뜨기도 한다. 두 번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우리가 저와 같아서'는 그러한 자연의 섭리를 불운한 삶 그 안쪽으로 순하게 끌어안는 모습이다.   '저와 같아서'라는 말에는 수다나 울분이 없다. 하루가 저물듯, 고단한 노동이 저물어 연장을 씻듯, 노동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어낼 뿐이다. 저물어 가는 삶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었으리라. 흐르는 것들은, 저물 수 있는 것들은 그러한 정화와 치유의 힘을 간직하고 있다. 해서 이 시를 읽고 나면 어느덧 '우리도 저와 같은' 마음이 되고 싶은 것이다.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으니!     [애송시 100편 - 제 100편]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일러스트=잠산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 1915년 결혼했으나 일찍 상처(喪妻)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쓸쓸한 뫼 앞에 후젓이 앉으면/ 마음은 갈앉은 양금줄같이/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 넋이는 향맑은 구슬 손같이/ 산골로 가노라 산골로 가노라/ 무덤이 그리워 산골로 가노라"(〈쓸쓸한 뫼 앞에〉)라고 노래했다. 고향인 강진에서 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일본 유학 때에는 무정부주의자 박열과 가깝게 지냈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다. 1950년 9·28 수복 때 유탄에 맞아 애석하게도 운명했다.   영랑은 '내 마음'을 많이 노래했다. 초기 시에서는 '내 마음'을 빛나고 황홀한 자연에 빗대어, 주로 3, 4음보 4행시에 담아 은은하고 섬세하게 노래했다.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자연에 순결한 마음을 실어 노래했다. 이것은 불순하고 추악한 식민지 현실을 대립적으로 드러내려는 속내가 있었다.   이 시를 김영랑은 나이 서른 살을 갓 넘긴 무렵에 썼다.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나의 꿈과 그 시간의 보람, 모란이 지고 난 후의 설움과 불모성을 함께 노래했다. 이 시는 찬란한 광채의 '절정에 달한' 시간을 포착하듯 짧게 처리하면서 음울과 부재의 시간을 길고도 지속적으로 할애하는 데 시적 묘미가 있어 보인다. 시인은 낙화 후의 사건을 아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떨어져 누운 꽃잎'의 시듦뿐만 아니라, 시듦 이후의 건조와 아주 사라짐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한 데에는 모란이 피는 희귀한 일의 극명(克明)한 황홀을 강조하기 위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감미로운 언어의 울림을 살려내는 난숙함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고, '눈물 속 빛나는 보람과 웃음 속 어둔 슬픔'을 특별하게 읽어낼 줄 알았던 영랑의 유다른 안목과 영리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시가 사람이라면 그이는 무엇을 간곡하게 바라며 뛰는 가슴인가. 많은 시들이 울분과 슬픔의 감정을 표표하게 표현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이 더 찬란한 쪽으로 몰아쳐 가기를 바라는 열망에 기초해 있다. 한편 한편의 시는 그런 마음의 예감과 기미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아무리 작은 것을 노래해도 이미 뜨겁고 거대하다.   애송시 100편의 연재를 오늘로써 마친다. 가쁘게 오면서 우리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꼈다. 열독에 감사드린다. 이제 당신의 마음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살아라. '허리통이 부드럽게' 드러난 보리의 오월을 보아라. 신록의 눈동자로 살아라. 당일(當日)에도 명일(明日)에도 우리네 마음은 '향 맑은 옥돌'이요, 은물결이오니.     [출처] 현대시 100년|작성자 옥토끼
292    109명 현역 시인들이 뽑은 "최고의 시구" 댓글:  조회:3969  추천:0  2015-05-18
한국을 대표하는 109명의 현역 시인들이 뽑은 ‘최고의 시구’     강은교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苦惱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時間을 위해서       ―― 김수영, 「꽃잎 2」에서 김수영, 이상한 모더니스트. 그에게 나는 참 많이 빚지고 있다. 그에게서 리듬이 왔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새벽 어떤 때, 리듬은 모든 것이니까, 형식이면서 내용이니까. 그의 시는 매끄럽지 못하나,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터억 걸리는’ 그런 리듬의 구절들이 있고, 그런 리듬들은 가끔 나를 시로 이끌곤 한다. 그 중의 하나.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꽃잎 (2)」 중에서) ‘구체 추상’의 실마리, ‘리얼 모더니즘’의 실마리, 결국 ‘상황 서정’의 실마리…… 그가 던져준 셈이다.   강   정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 김수영, 「헬리콥터」에서 자유는 대개 비상과 통한다. 그러나 자유를 꿈꾸는 마음은 늘 비상에 대한 불가능성을 인지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영원불멸하는 모순이 아니라면 나는 자유에 대해 아무 할 말도 없다. 시적 자유와 삶의 자유를 등가로 봤던 김수영에게 자유란 늘 새롭게 돌이켜야 하는 양심의 나침반이자 그 처참한 결론이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시는 언제나 미완의 결론으로 남는다. 시인에게 정작 두려운 건 자유의 결핍이 아니라 자유의 완성이었다. 자유는 관념인 동시에 행동인 모종의 음험한 도덕률이다. 자유는 구속을 전제로 했을 때만 날아오를 수 있는 불구의 정신이다. 그 불구를 불구 자체로 인식했을 때 정신은 불굴의 것이 된다. 자유는 이렇듯 정신이 노정하는 궁극의 말장난과도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가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시인들은 ‘우매’하고 ‘어린’ 종족일 수밖에 없다. 자유라는 관념은 인간을 전혀 해방하지 않는다. 해방 다음의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 다음의 꿈이 정치적 자족과 기만뿐이듯, 시인에게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 일이라면 자유는 유보되어야 한다.   고두현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 서정주, 「자화상」에서 어디 ‘스물세 해 동안’뿐이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던 청춘 시절부터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캄캄한 절망조차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듯이……   고   영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에서 은행원을 꿈꾸던 학생이 있었다. 어려운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자 마음먹고 스스로 상고에 입학해 책만 파던 학생이었다. 학교 밖은 시끄러웠다. 시국이 그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학생에게 운명이 바뀔 만한 일대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형이 유인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얼떨결에 받아든 유인물에는 군부독재니, 민주화니 하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그 유인물 내용 중에 학생의 마음을 벼락처럼 휘어잡은 글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였다. 아무튼 그 다음날 스스로 문예반을 찾아갔던 학생은 이후부터 교과서 대신 시집과 『노동법 해설』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은행 근처에는 평생 가보지 못했다.    고영민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에서 그 방을 생각한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스무 살 문청시절, 우리는 문학을 한답시고 그 컴컴한 방에 모였다. 놀란 눈으로 미제침략사를 읽고 어느 날은 하얗게 최루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가두에 나갔다가 돌아와 그 방의 차가운 바닥에 눕곤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며칠을 낯선 방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당시 우리의 교과서는 '형상과 전형'이라는 루카치의 문예미학서였다. 그리고 시를 사랑하던 한 친구 녀석은 새벽, 그 방을 걸어 나와 취한 채 술을 사러 나갔다가 차에 공중으로 들려져 영영 그 방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의 우리들은 지금 아무도 없다. 모두 그 방안에서 전사했다.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꿔버렸던 우리가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다.   고운기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1978년 가을이었다. 군부독재의 단말마斷末魔가 가까이 들리던 무렵,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국어 시간이면, 작은 키에 단아한 모습, 눈빛이 맑은 선생님 한 분을 나는 기다렸다. 정희성. 그러나 그가 좀체 시국을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 3학년의 한 선배가 어느 문학지에 실린 시를 보여주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였다. 처음 넉 줄을 읽었을 때 ‘물’과 ‘삽’과 ‘슬픔’이라는 세 단어가 주는 울림에 떨었던 기억이, 30년도 넘은 오늘까지 선연하다. 그보다 먼저 정희성은 “흐를 수 없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저문 강 언덕에 떠도는 혼이여”(「유전流轉」)라고 노래한 적이 있었다. 몇 년의 정치적 신난辛難을 겪으며, 정희성에게저문 강 흐르는 물은 어느새 자기화自己化되어 있었다.     고진하 물 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묵화」 전문 시인 김종삼의 「묵화墨畵」 전문이다. 언제 읽었는지 정확치 않지만, 이 시가 내게 벼락치듯 다가왔던 것 같지는 않다. 시를 읽고 나서 그냥 멍했던 것 같다. 하여간 이 시 때문에 나는 김종삼의 ‘시인학교’를 자주 드나들었다. 사물과 우주와의 교감을 이토록 짧은 시구로 표현하기가 어디 쉽던가. 진정한 교감은 신생의 통로이며, 자아 발견의 불꽃이다. 평화로운 풍경의 한 컷이지만, 삶의 비애와 슬픔과 적막이 부은 발잔등의 아픔처럼 스며 있다. 그 스밈은 치밀하여 시의 화자와 대상 사이에 ‘사이’가 없다. 그 사이 없음의 깊이와 넓이를 획득하는 일이 시의 지향이라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얼마나 먼가.     권현형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김수영, 「거미」에서 “너무 시퍼래서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는 저 스무살!”(김영태) 무렵에 만난 김수영의 문장은 강렬했다. 달디달았다. 빛과 어둠을 등에 짊어지고 다녔던 시절, 시지프스처럼 세계의 무게를 등짐지고 다녔던 시절, 갓 성인식을 치룬 내게 밖은 어쩐지 의뭉스러웠다. 의심스러웠다. 김수영의 설움이 나의 설움인 듯했다. 시퍼렇게 순결한 염결성을 무기로 지니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팔십년대 중후반. 왜 노랫말이 슬프냐고, 왜 행복하지 않느냐고 개인의 자의식을 검열받던 시기였다. 그때, 건전가요가 눈발 날리는 겨울 거리의 레코드 가게에서 불안하게 흘러나왔다. 하나, 어두울수록 환하고 싱그러운 문청 시절에 받아들인 설움은 외연일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흘러 풍경이었던 설움은 육체성을 내면성을 띠기 시작한다. 시의 원천으로, 소금을 뿌린 듯 아린 자의식으로 내부에 굵은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길상호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    ―― 이상, 「거울」에서 악수를 모르는 세상에 서 있었다. 그 세상은 다름 아니라 내가 만든 세상이었다. 볼 수는 있지만 손끝 하나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언제나 나와 표정을 맞추면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걷고 있었다. 그 중 내가 실체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의심하기 시작했다. 넌 왠지 허깨비 같아, 넌 너무 가득 차 보이니 실체가 아닐 거야,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을 의심해가다 보니 결국 손가락은 스스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것도 파악해내지 못하는 너도 아닐 거야. 이제는 만나는 얼굴마다 주먹질이 시작됐다. 거울 속에 갇힌 얼굴은 깨져버릴 테니까. 그렇게 깨가다 보면 결국 남는 하나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주먹의 핏물 든 상처마다 박혀든 거울조각이, 조각마다 깨져 있는 얼굴이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도 실체야! 나도 실체야! 머리는 그들의 괴성으로 날마다 시끄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머리 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꼭 그 손을 잡으려 했던 것일까? 가만히 손을 거둔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마음이 참 편하다. 거울을 뒤로하고 걷는다. 가끔 돌아볼 때에도 거울 속 너는 뒷모습을 보이지 않아 좋다. 그때서야 와장창 냉담하던 거울이 깨진다.    김광규 그립다 / 말을 할까 /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 그래도 / 다시 더 한 번 //    ―― 김소월, 「가는 길」에서 1950년 정음사에서 나온 『작고시인선』(서정주 엮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한국 시선집이다. 책이 귀하던 50년대 초반기에 일금 오백 환을 주고 샀다. 김소월, 윤동주, 한용운 등 한국 신시의 선구자 열 분의 대표작품들이 실려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특별히 사사한 시인이 없으므로, 이 얄팍한 책이 문학수업의 첫 번째 스승이었다. 여기에 수록된 김소월의 시 「가는 길」은  사춘기 청소년의 민감한 정서에 호소하는 바 크고, 3음보 율격도 친근한 매력을 풍겨 저절로 암송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내 문학교양의 기반으로 자리잡았다고 할까. 애틋한 그리움을 이처럼 짧은 3행 시연에 담은 예를 달리 본 적이 없다. 전통적 서정시의 전범은 오늘날 흔히 잊혀지거나 무시되기 일쑤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시구를 쓰지 못한 부끄러움을 나는 항상 느끼고 있다.    김광림 온길 눈이 덮여 갈길 눈이 막아 이대로 앉은 채 돌 되고 싶어라    ―― 박경수, 「눈」  해방 직후 향토(원산) 시인들이 펴낸 『응향』 시집 속에 수록된 것. 이 작자는 시인이기 전에 사학자였다. 당시의 암담한 현실과 사회상을 이렇게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집을 가장 악랄하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나선 평자는 백인준이었다. 근자에 알았지만 그는 일제 말기 윤동주 시인과 친구였다고? 60년이 넘도록 청소년기에 읽은 이 시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뿐더러 ‘돌’에 관한 ‘바위’시까지 쓰게 만들었다.  “너에게 걸터앉으면/탐나는 것 부러운 게 없어져/벼슬자리 꽃자리 내갈겨 둔 채/듬뿍 술 한 잔 들이켜고/너마냥 잠들고 싶어져” 세상사 돌아가는 꼴이 돌 되고 싶은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간혹 돌마냥 잠들고 싶은 심정임을 어쩌랴.    김규동 3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에서 경성고보 시절 영어시간에 기림 선생이 누차 당부하던 말이 생각난다. 담배 피우지 말아라. 책을 선택해서 읽어라. 새로운 문명에 접하는 생활태도를 중히 여겨라. 지금은 수학 영어 물리 화학 지리 기하, 이것을 공부 잘하고 글쓰는 일 같은 것은 기초학문을 마친 다음에 해도 충분하다. 대성하는 길이 그것이다. 이런 교훈만 하고 우리들이 만든 ‘동인지’ 따위는 봐주려 하지 않는 선생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빨리 시인이 되고 싶은데, 하지만 시인 스승은 그것을 절대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위 시구는 센티멘털·로맨티시즘의 시 풍토에서 지성을 건져올린 시작품의 한 보기다. 이미지 예술로서의 시가 여기에 암시되어 있다. 즉물적 객관적 회화적 구성적인 요소가 그것들이다. 이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이 시가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에 씌어진 작품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규성 이슬은 하늘에서 내려온 맨발 풀잎은 영혼의 깃털    ―― 정진규, 「화和」에서 내 침실 겸 서재에는 한 편의 시가 수채화처럼 걸려 있다. 예의 ‘활달한 유연柔然’이 특징인 경산체絅山體가 빚어놓은 우주시 속의 액자시이다. 그 도입부가 위 구절인데 혼의 상징적 거처인 하늘을 육감적으로, 몸의 텃밭인 대지를 정령적精靈的으로 탈바꿈한 전경화가 행여 낯설지 않다. 화급하게 “맨발”로 달려온 “이슬”을 “깃털”처럼 부드러운 설렘으로 맞는 “풀”의 조응은 원초적이면서도 그지없이 순결한 상생의 축제로, 그 정경유착情景癒着의 절경絶景이 볼수록 황홀하고 환하다.  산문시조차도 여느 정형시보다 더 맛깔스런 리듬을 자랑하는 정진규 시인의 시는 한 마디 오해도 허락지 않을 듯 수고롭지 않게 읽히면서도, 구구절절이 감미롭고 유장한 울림으로 청자聽者의 몸 속 깊숙이 녹아 흐르는 게 압권인데 위의 천지공사天地工事는 그 중에서도 백미이다. 각별한 인연일수록 ‘객관적 시 읽기’가 예의이겠지만 그런 상식과 기우쯤 무색하게 압도하는 두 행의 벅찬 은유가 내 일상의 삭막한 직유와 동거한 지도 꽤 날수가 찬 셈이다.    김남조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 서정주, 「시론詩論」에서 “바다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시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명시, 명구절은 허다하련만 그 중에서 위의 6행시 한 편을 가려 뽑았다. 앞의 3행은 전치사인 셈이고 뒷부분 3행에 있어서도 끝줄이 나의 일상에 거의 유착되어 온다. 시인이 한 편의 새 작품을 마무리짓고 나면 흔히 존재의 공동空洞현상에 빠져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 까닭은 일상의 수심이 얕았거나 비축해 둔 곡물창고가 가난했기 때문인 듯하다. . 나는 내 시정신의 빈혈현상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자주 있어오는 이 증상을 우려하고 겁먹어왔다. 한 편의 시를 얻었을 때 더 좋은 다음 시가 물속 바위에 그대로 남아 있는 그런 풍요로움이야말로 내 평생의 황홀하고 과분한 희구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시인에게 있어서도 시의 샘물이 다시금 그 전량으로 남아 부풀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바랄 것이랴.   김병호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 송기원, 「시」에서 시와 삶이 하나였던 시절, 오히려 생활이 시를 빛내 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재수 끝에 들어온 대학교에서 난생 처음 입어본 과티. 그 가슴팍에 찍혀, 시보다 먼저 옷으로 입었던 시구.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스무 살의 우리들은 시를 입고 명동과 남대문시장, 평택역을 뛰어다녔다. 가슴팍에 찍힌 화인처럼, 남몰래 어루만지거나 조용히 읊조리기만 하여도 척추가 꼿꼿해지곤 했다. 양심만으로 양심을 지킬 수 없었고, 용기만으로 승리할 수 없었던 시절의 마지막 세대였다. 심판의 날 소돔을 탈출할 때, 유황 불벼락 속에 죽어가는 이웃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뒤돌아본 채 죽어, 빛나는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시인의 삶이란 그러해야 한다고 아직 믿는다. 그리고 여전히 한 편의 시가 천만인의 가슴을 격동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김상미 나도 감히 상상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 김수영, 「거대한 뿌리」에서 여고 시절, 나는 차비를 아껴 민음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을 한 권씩 사 모으는 게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그때 산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를 읽었을 때, 나는 시라는 운명이 기지개를 켜며 힘차게 내게로 달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알았다. 내 길은 문학에 있으며, 언젠가는 누구의 의지도 아닌 내 의지로 그 길을 가게 되리라는 걸. 그 이후부턴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나는 내 안에서 자라나는 ‘문학’으로 인해 쉽게 기가 꺾이지 않았다. 남들이 볼 땐, 허허벌판 한복판에 혼자 꽃피우며 서 있는 이상의 「꽃나무」처럼 이상해 보였겠지만. 그 모든 세상일은 ‘나도 감히 상상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능히 견딜 만했으며, 스스로 힘이 되어 나를 지켜주었다.    김선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중학교 1학년 시절, 시골집 형의 골방에는 달랑 책이 한 권 있었는데, 내 고향 강진 출신인 김영랑의 시집이었다. 달리 읽을 책이 없었거니와 당시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던 나는 수십 번이나 그 시집을 읽어서 송두리째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시라는 걸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김영랑 시인과 그의 시집은 맨 처음 나를 시의 길로 인도한 운명적인 스승이요 텍스트가 된 셈이다. 특히 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나오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는 역설의 시구는 지금도 나를 경탄과 전율에 떨게 한다. 슬픔의 빛깔이 어쩌면 이토록 찬란할 수 있단 말인가. 애이불비의 촉기를 머금고 있는 이 시구로 인해 영랑의 시가 저급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았듯이, 나의 시도 어두운 과거사를 잘 다스려 승화된 시세계를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구는 아직도 내겐 불상의 광배光背처럼 환하게 남아 있다.   김   언 이 무언의 말/하늘의 빛이요 물의 빛이요 우연의 빛이요 우연의 말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이 만능의 말 겨울의 말이자 봄의 말/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 김수영, 「말」에서 여름밤이었나 겨울밤이었나. 흥건히 술에 취해 소설 쓰는 형의 집에 가서 보았던 말. 한동안 얼이 빠져서 보았던 말. 나무액자에 고이 걸려 있던 누구의 것도 아닌 그 말. 김수영의 말. 말에 대한 말. 말이 아닌 모든 것에 빚진 말. 빛이면서 우연이고 우연이면서 죽음을 꿰뚫는 말. 만능의 말이면서도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 시인의 말이면서 범인의 말. 평범한 말이면서 죄를 짓는 말. 모두를 겨냥하면서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 말. 저 혼자서 맴돌고 저 혼자서 죽음을 목격하는 말.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나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버려도 탄생하는 말. 아무도 목격하지 않는 밤의 말. 이 무언의 말이자 유언의 말. 시체의 말이자 정확히 생명의 말. 감각의 말이자 침묵의 말.   김언희 벗겨내주소서아버지 나를아버지 콘돔처럼아버지 아버지의좆대가리에서아버지!”    ―― 김언희, 「벗겨내주소서」에서 한국현대시사 100년이거나 말거나, 가장 빛나는 표현이거나 말거나, 최근에 나로 하여금 ‘절정의 순간을 체험케’ 한 것은 위의 구절이었다. 십수 년 전의 글을 뜻밖에, 그것도 토막으로 지면에서 대면한 순간, 내장 속으로부터 차디찬 전율이 번져나왔다. 감동이 아니라 전율이, 살갗을 기는 지네 같은 전율이. 쓸 때는 무엇을 왜 쓰는지 모르고 썼던, 써 놓고서도 여직 깨닫지 못했던, 이 구절은 이상의 “義足을담은軍用長靴가내꿈의白紙를더럽혀놓았다”의 대구對句였으며, 김수영의 “한 가지를 안 속이려고 모든 것을 속였다.”의 대구였다. 나의 대구였으며, 나의 대꾸였던 것이다. 나의 온 몸과 마음, 온 생활을 건!   김왕노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 기형도, 「밤눈」에서 시인의 눈이 미모사보다 더 예민하고 말미잘보다 더 감각적인 촉수를 가졌음을 그리하여 내가 그보다 더한 감각체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고 내통해야 함을 일러 준다. 시인은 누구나 쉽게 간과해가는 하찮은 것에서부터 미세한 것을 영혼의 세포 하나하나로 읽어간다. 뒷전에 있거나 잊혀지거나 소외된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한다. 그러므로 시인의 위대함은 완성된다. 나는 언제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을 읽어내고 노래할 수 있나. 시인이 예민한 감각의 영혼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를 쉽게 입고 존재가 불안하다. 하지만 예민한 감각을 가졌기에 세상의 모든 어둠을 감지하며 어둠에 대해 고발해 온다. 그러므로 시인은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이 입증된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에서……   김이듬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오    ―― 이상, 「거울」에서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중얼거리며 버티던 때였다. 나는 왼손잡이, 안경잡이에다 소위 말하는 결손가정의 병약한 소녀였다. ‘거울 속의 나는 정상/왼손잡이 아냐, 풀 같은 머리칼/거울 속에서 나는 두 개의 눈동자’. 나름 신경 쓴 몇 문장 때문에 국어선생은 화를 내셨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베끼고 난리야!’ 출석부로 머리를 탕탕 치셨다. 증거물로 내민 이상의 시집이야말로 난생 처음 보았다고 아무리 해명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나는 이름도 시도 이상한 이상이 나보다 빨리 태어나서 내가 할 말을 선수친 것에 분개했지만,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처음으로 당혹케 안절부절 못하게 한 시였으니까.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최고’는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오라! 네 천둥벼락을 내 심장에 꽂아서 제발 나를 잠잠하게 해줘.)      김정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서시」에서 단발머리 시절의 어느 여름밤, 툇마루에 누워 본 하늘의 별빛이 청명하게 가슴속을 파고든다. 바람에 스치는 별, 나의 별, 나의 존재, 불현듯,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별빛 쏟아지듯 내 몸을 덮친다. 모공마다 솜털 일제히 일어선다. ‘흔들리는 바람은 씨앗을 퍼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이후,「서시」의 날카로운 반성의 언어는 불안한 성취마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낱낱의 길목에서 함께 서성이던 그 불안은 어느 극점에서 시를 엿보게 하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만화경을 흔들어 섞어 놓은 듯 미로를 헤매는 나의 시 쓰기. 지금도 나는 처음 감격 그대로 「서시」를 통해 끊임없이 채널링하고 있다.   김종길 이 말은 누가 난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 정지용, 「말 1」에서 지용의 「말 1」은 동시풍의 작품인데 앞에서 인용한 두 행으로 끝난다. 나는 이 두 행을 지용시 가운데서 최고의 순간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한국 현대시를 통틀어서도 시적으로는 최고의 시구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경우 그 이유를 이야기하기란 지난하다. 엘리엇이 젊었을 때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좋은 시를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올 여름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비엔나미술사박물관 소장 합스부르크 왕가 수집 작품들을 둘러보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책을 읽는 자기의 아들을 그린 렘브란트의 그림이었을 때도 그러했다. 그 화폭에 신운神韻이 감돌듯이 지용의 그 두 행에도 신운이 감돈다고나 할까.    김종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서시」에서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에 만난 시입니다. 스무여덟 살에 옥사한 그는, 시인으로서 시를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다만 유고 시집이 나오고 난 후 우리는 그를 시인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는 그래서 더욱 정갈하고 곡진하게 내 마음 속에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단 한 줄의 표현에 괴로워했던 철없던 시절, 나도 윤동주의 잎새처럼 괴로워했습니다 ‘한 점 부끄럼’ 없었던 까까머리의 문청 시절이 바로 나의 서시입니다.     김종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에서 캄캄하고 외로웠던 문청 시절, 부산은 어두웠다. 나는 혼자서 그 어두운 유적지에 남아 있었다. 내 호주머니 속엔 언제나 청산가리, 죽음도 무섭지 않았다. 그때 내게 투사되었던 한 줄기 불빛, 시詩였다. 칼릴 지브란은 속삭였다.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아 주지 않으리라.” 그의 음성은 나를 시에 눈뜨게 했다. 칼릴 지브란과 함께 김춘수의 시 「꽃」이 왔다. 「꽃」은 나를 적대적이었던 세상 속으로 부드럽게 연착륙시켰다. ‘세상 사는 법’과 ‘사랑하는 법’까지. 나는 당당하게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까지 부르게 되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그 이름을 불러보고 각인시켜 보라. 어쨌든 “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중식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 김수영, 「거대한 뿌리」에서 한갓 변명에 불과하겠지만, 1980년대 중반, 나의 습작시절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브레히트)였다. 짐승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믿고 있었다. 혼의 절창絶唱들인 소월과 미당은 너무 아름다웠으므로 욕이 나왔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아도르노)는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나의 두개골을 반쪽으로 쪼갠 섬광 같은 시구가 어찌 한둘이겠는가. “날카로운 첫 키스”는 지금까지도 내 삶의 화두다. 그 가운데 “미국놈 좆대강”을 들이민 이유는 내 시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외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지는 글, 남들이 지금껏 하지 못한 말이 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나의 시는 모두 그 구절의 표절이자 변주이다.   김   참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 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 이상, 「오감도 시제15호烏瞰圖 詩第十五號」에서 고등학교 때 아주 두꺼운 시선집에서 이상의 시를 처음 읽었다. 그의 시는 시선집에 수록된 다른 시인들의 시와는 달리 무척이나 강렬했다. 지금까지 읽어본 수많은 국내외의 시 가운데 인상적인 작품들은 적지 않지만, 거울을 소재로 이상이 쓴 시만큼 독특한 느낌을 주는 시는 그리 많지 않다.  거울을 소재로 쓴 시도 그렇지만 나는 이상의 다른 시들도 대부분 꿈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잘 몰랐던 습작시절, 나는 간밤에 꾼 꿈을 노트에 옮겨두곤 했다. 그때 내가 옮겨둔 내 꿈들은 내 시의 일부가 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한갓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꾼 꿈은 내 삶의 절반이다. 내가 꾼 꿈과 내가 쓴 시는 내 삶을 거꾸로 비추는 거울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꿈꾸는 사람이니, 그가 꾼 꿈들은 시가 아닌가?   김행숙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김소월, 「초혼」에서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소월의 이 구절이 아직까지도 내게 그 진동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 그것은 이름이랄 수도 없는 울림이자 파동 자체로 변용되어 내게 무한한 가능성의 지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시쓰기는 사라지는 중이면서 동시에 구성되는 과정인 그러한 상태를 체현하는 특이한 신체가 되는 일이다. 이제 내게 소월의 「초혼」은 절대적인 이별 앞에서 슬픔과 격정의 최대치를 실연하는 연인의 노래가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 그 너무 넓은 공간 속에서 비껴가는 것, 희박해지는 것, 조밀해지는 것, 그러한 이질적인 흐름과 리듬을 부르는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하늘과 땅 사이, 그 과도한 넓이를 몸으로 품은 이상한 내부에서 그 내부를 찢으면서 폭발하는 기쁨을 나는 부르고 싶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나태주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 중학교 3학년 때. 열다섯 살 때. 적산가옥으로 남겨진 썰렁한 다다미방 하숙집에서 겨울을 나며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하던 때. 함께 하숙하고 있던 동급생으로부터 얼핏 전해들은 한 편의 시, 그리고 그 첫 구절은 나의 어린 영혼을 흔들어주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가슴속이 쩌르르했다. 어쩌면 이리도 내 마음 그대로일까. 시란 이렇게 다른 사람 마음을 대신해서 표현해주고 또 그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주는 것인가 보구나. 막연히, 참으로 막연히 나는 이 한 편의 시를 앞에 두고 시인이 되어보고 싶었다. 만약 내가 중학교 시절 이 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모르면 몰라도 나는 시인이 되지 않았어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바꾸어 버린 한 편의 시, 그리고 한 구절. 그 사무치는 풋내기 소년의 감동 앞에 다시 한번 선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희덕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에서 김수영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월리스 스티븐즈의 시 「혼돈의 감정가」에 나오는 두 개의 명제를 떠올리게 된다. “A.폭력적 질서는 무질서이다”와 “B.위대한 무질서는 질서이다”라는 명제가 그것이다. 김수영에게 있어서도 폭력적 질서란 낡고 고정된 질서를 의미하고, 위대한 무질서란 무한대의 운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수영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예민한 혼돈의 감별사이자 창조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진정한 혼돈의 진원지를 ‘욕망’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는 욕망의 검은 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이 구절은 거대한 뿌리, 또는 고요한 사랑의 발견에 도달하는 김수영의 시적 도정을 압축하고  있는 셈이다. 욕망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사랑을 발견할 수 없다는 그의 전언은 혼란도가 낮은, 그리하여 폭력적 질서에 갇혀 있는 나의 시들을 화들짝 깨우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노향림 내가 많은 돈이 되어서 선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맘놓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리니     ―― 김종삼, 「미사에 참석한 이중섭 씨」에서 김종삼 시인은 한 시대를 불행하게 살다 간 시인이었다. 가난과 알코올 중독으로 시달리다 끝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시를 발표할 무렵도 시인은 늘 소주병을 뒷주머니에 넣고 조선일보 뒷골목 지금은 없어진 아리스 다방에 나타나곤 했다. 차를 시키진 않고 컵을 달래서 소주를 마시곤 했다. 시는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하게 읽혀도 과음에서 오는 자신의 육신의 망가짐을 미처 알지 못했을까. 그토록 버티기 어려운 환경에서 이처럼 놀라운 시를 쓰다니, 나는 이 시를 읽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병들고 가진 것 없는 자의 시혜를 말하기 위해 불행하게 살다간 이중섭의 혼을 빌어 시인은 말하고 있었다. 선택하지 않아도 불행은 예고되듯이 시인은 끝내 술로 세상을 떠났다. 육신의 스러짐을 알고도 오히려 시로써 우리에게 시혜를 베풀고자 했을까.   마경덕 집은 벽 속의 곳간에서 제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간다 집은 저 벽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     ―― 손순미, 「담벼락 속에 집이 있다」에서 집은 담쟁이덩굴 속에 갇혀 있다. 고집이 센 덩굴은 스스로 손을 풀지 않는다. 덩굴은 담벼락을 옥죄며 더 깊이 뿌리를 묻는다. 나는 그때 그 담쟁이 속에 갇혀 있었다. 담쟁이는 날로 그늘을 넓히고 오래된 몸은 자주 삐걱거렸다. 낙심이란 마음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바닥을 친 마음은 좀처럼 일어설 수 없었다. 나를 포기하고 나니 어느 날 그늘이 되어 있었다. 하릴없이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 가는 그때 이 시구詩句가 내게 왔다. 벽을 부수고 나오라고 했다. 덩굴을 걷어내는 일은 벽을 부수는 일, 생각을 깨뜨리지 않고는 나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나를 붙잡고 늘어지던 덩굴손의 마디가 툭툭 끊어지고 벽 속에서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 나는 오랫동안 나에게 갇혀 있었다.    마종하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    ―― 이육사, 「절정」에서 뼈를 추리자니 한 뼈로 순수한(!) 저항 시인 이육사를 떠올렸는데, 예수보다 짧게 주기의 「절정」을 밝힌 그와 더불어, 썩지 않은 육질로도 발라 일컫자면 유약한 김영랑의 “찬란한 슬픔”이 김현승의 견고한 “절대고독”으로, 박노해의 유연한 “강철의 풀잎”으로 맥을 잇는 것이다. 자리끼가 얼어붙는 오막살이에서 “강철로 된 무지개”는 섬광처럼 번개치는 작렬로 미친 듯이 나를 솟구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1 때 나는 투쟁의 앞장에서 모든 부정한 봄(3·15)을 「절정」의 꽃(4·19) “무지개”로 터뜨렸던 것이다. 절대로 자랑일 수 없는 기름 뺀 당위로써.그 시대의 친일파나 다름없는 낭만적 낭인들에게 “시인이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 이른 유치환의 촌철살인도 자못 서릿발 같은 결기가 서린 “소리 없는 아우성”의 「깃발」로서, 그들의 핏맥은 오늘도 단단히 눈부신 다리로 질러 우리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    맹문재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 박노해, 「하늘」에서 나는 아직도 ‘밥줄’이라는 말에 가슴이 아리다. 밥줄 때문에 자존심을 버리고 얼마나 세상 앞에서 허리를 굽실거렸던가. 내가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에 들어 있는 시들에 감동한 것도,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해진 신발 같은 인상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바닥에 드러누워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옹호하는 것도, 밥을 남기지 않고 악착같이 먹는 것도 밥줄 때문이다. 내가 문학의 지향점으로 삼는 근거이기도 하다. 밥줄을 쥐려고 몸부림쳤던 순간들,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밥줄의 운명에 당당히 맞서자. 밥줄을 쥐지 못한 사람들을 품자.    문인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새떼는 계절풍, 바람에게서 몸을 배웠다. 새떼는 일체다. 새떼 속의 새는 그 한 마리 한 마리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공중에 거구를 두는 일군의 세포, 세포다. 그것이 아니라면 군무는 없다. 산 너머 바다 건너 확신의 땅, 거기로 가는 길도 없다. 새떼는 바람을 입는다.어깨에 힘 빼고, 혀 꼬부리지도 않고 그저 한 마디 툭, 던진 이 말이 자주 날 들어올리곤 했다. 나는 늘 맥없이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으면서도 욕망은 왈칵, 저 새떼의 일원이었다. 그야말로 서러운, 저 ‘새떼에게로의 망명’이었다. 그렇게 곧 그 바닥을 뜨고 싶었다. 이 시를 낳게 한 80년대 상황에 관해선 나는 할 말 없다. 다만, 시인이 발견한 이 한 마디 말, 그 힘이 굉장해서 놀라웠다. 늦깎이, 내가 절망하고 분발한 첫 구절이다.    문정희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 서정주,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에서 불행히도 나에게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는 없다. 나는 너무 어린 시절부터 시 애호가가 아니라 시 창조자가 되어버렸다. 눈부신 시구를 보면 감동과 전율보다는 질투에 온 입술이 파래지기 일쑤였다.  10대 때는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라는 발레리의 시구와 함께 미당의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는 시구를 좋아했다. 그러나 후에 보니 미당에게는 황홀한 시구가 너무 많았다. “문열어라 꽃아”(「꽃밭의 독백」)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문둥이」) 등……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내가 나를 전율시킬 한 줄의 시구를……    문태준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 이성복, 「아주 흐린 날의 기억」에서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이 출간된 1990년 5월에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내 기억으론 이 시집을 몇 차례 산 것 같다. 나눠준 것도 있고 분실한 것도 있는데, 내가 지금 소중하게 갖고 있는 시집은 휴가를 나왔다 화천에 있는 군부대로 복귀하면서 산 것이다. 동보서적에서 구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이 시집을 사서 군복 속에 감춰 넣고 부대 위병소를 통과했던 것 같다. 위병소에서 물품 검사를 했었고 또 시집 같은 것을 부대로 갖고 들어가기가 그때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시집을 또 군복 속에 감춰 넣어 주로 부대의 재래식 화장실에서 즐겨 읽었다. 검열을 피하느라 이 시집을 땅속에 몇 날을 묻어두기도 했다. 여름장마가 지나가던 때여서 나중에 땅을 열고 꺼내보니 흙물이 들었다. (사실 이 시집은 검열을 피해야 할 책은 아니었는데 나는 어쨌든 노루처럼 겁이 있었다.)  실탄사격을 하고 와서도 읽고, 행군을 마치고 와서도 읽었다. 강한 군대에 살면서 나는 여린 속잎 같은 이 시집을 꺼내 읽었다. 시 「아주 흐린 날의 기억」은 짧다. “새들은 무리지어 지나가면서 이곳을 무덤으로 덮는다//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이 시구를 읽으면서 나는 널 안에 매장된 나를 보았다. 막연하게 슬픔에 기대게 되었다. 군대 가서 나는 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곳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시집을 읽다가 이 일구를 만났다.    박남철 “아, 참, 그리고 선생님, 벌써 한 두어 달 됐네요? 저, 요즘 회사 못 나가고 있습니다.” “왜에?” “저, 위암 수술했습니다.” “요일아…… 너 지금 ‘위염’이라고 그랬니, ‘위암’이라고 그랬니?” “선생님, 저 ‘위암’ 수술했습니다.” “……”   ―― 2007년 8월 31일 저녁; 정병근 시인의 근황 때문에 해본 전화에서                                           흘러나온 김요일 시인의 육성시 갑자기, 눈물이 비오듯이 흘러내려서, 더 이상 말을 잇지도 못했었다. 어머님 타계 소식을 두어 달이나 지난 뒤에 법원에서 날아온 우편물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때도 눈물은 나오지도 않았었건만…… 지난 6월에 있었던 ‘시작문학상’ 뒤풀이에, 뒤늦게 참석해서는, 갑자기 뒤에서 나를 껴안고 볼을 부벼대면서, 처음으로, “사랑의 스킨십”을 다 표현해주었던 녀석이…… 고은경 시인은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지 두어 달만에 위를 들어내서 나를 절망케 해주더니, 너는 이제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니, 또 나를 절망케 해주는구나……     박제천 오오 견디련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 정지용, 「장수산」에서 한때 유엔 고지 밑에서 군생활을 하였다. 산으로 둘러싸여서 하늘이 손바닥만큼 보이는 분지였다. 어느 날 밤 동초를 서다가 정지용의 「장수산」이 떠올랐다. 그리고 누군가 내가 말해주듯 “오오 견디련다/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가 들려왔다. 그때나 이제나 시를 외지 못하는데 그냥 탄식처럼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아마도 중학생 무렵에 읽었던 시, 그때는 그냥 그저 덤덤한 구절이 내 가슴 어디에 잠복되었다가 나타난 것이다. 이 시를 쓸 무렵의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했다 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40년 뒤, 또 이 구절이 떠오른다. 스무 살 무렵에는 비감하였다면, 늙마의 이제는 정신이 백골처럼 무심하여선가, 그냥 그저 무심한 내 자신에게 일러주는 말이 되었다.   박주택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백석의 시는 아련한 그리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고향 같기도 하고 꿈 속 같기도 하고 태반 같기도 한 백석 시를 읽고 있노라면 아득한 시간의 수염을 만지며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는 아내도 없고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부모며 동생들과도 떨어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을 헤매이다 가슴이 메여오고 눈에 뜨거운 것이 괴여 오는 것을 적막하면서도 낮게 노래한다. 크고 높은 것을 생각하며 눈을 맞는 정한 갈매나무는 그러나 나의 가슴에 자라며 쌀랑쌀랑 생애의 문창을 친다.    박형준 선량한 아버지와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거기서 너는 살았다    ―― 이성복, 「모래내·1978년」에서 내가 이성복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1982) 겨울이었다. 어느 날 인천 대한서림에서 계간 《세계의 문학》을 한 권 샀다. 페이지를 넘기다 김수영이 자기의 자화상 밑에 “시는 나의 닻(錨)이다’라고 써놓은 문장을 보고 석쇠에 올려진 생선구이처럼 온몸이 막대기로 관통당한 느낌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김수영의 자화상과 그의 단 한 문장에 이끌려 제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인 이성복의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김수영 때문에 이성복의 시에 빠졌고, 이성복이 김수영의 이름으로 상을 받은 덕분에 김수영의 시를 탐독했다. 한동안 《세계의 문학》에 실린 이성복의 대여섯 편의 시를 뜯어내 호치키스로 찍어 수업시간에도 읽고 집에 와서도 읽었다. 그리고 나는 위의 시구절을 통해 내 가족 이야기를 시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박후기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 박남수, 「새」에서 일곱 살, 글을 깨치면서 가장 먼저 읽은 시가 박남수의 「새」라는 작품이다. 문학청년이었던 큰형님이 솜씨 좋게 그림까지 곁들여 마루에 떡하니 걸어놓았으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냥 외워져 버린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시원찮은 발음으로 종알종알!  다시, 「새」를 생각한다. 한 덩이 납의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늘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 역할에 익숙해져 있는 나를 들여다보면, 참 우습다. 사랑이 떠나갔다. 납의 마음을 버리는 순간, 나는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로 남겨진다.    반칠환 비비새가 혼자서/앉아 있었다.  //(중략) 한참을 걸어가다/되돌아봐도  그 때까지 혼자서/앉아 있었다.    ―― 박두진,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 품에서 떨어진 꿩에병아리 같던 때였다. 귀 기울이면 달맞이꽃 씨앗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던 적막한 산골이었다. 해종일 외딴집 홀로 지키다 집안에 뒹굴던 형아들 초등학교 국어책을 읽던 일곱 살 무렵이었다. “마을에서도/숲에서도/멀리 떨어진/논벌로 지나간/전봇줄 위에 //혼자서 동그마니” 앉아 있던 ‘비비새’가 내 가슴으로 날아왔다. 젖은 손으로 피복이 벗겨진 전깃줄을 만진 듯하였다. 어린 속으로도 그렁그렁하여 중얼거렸다. ‘비비새도 혼자서 앉아 있구나.’ 머리 굵으며 나는 생각했다. ‘비비새가 혼자 있는 걸 아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시인이 되었다.    서규정 너는 살고 나는 죽고  이것으로 이번 생에서 우리는 비겼다    ―― 최영철, 「아버지와 아들」에서 초등학교 무렵 우연히 읽은 《아리랑》이란 대중잡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시구는 어린 심중에 말뜻은 몰라도 그 한 줄은 스물여덟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까지 주문처럼 따라다녔다. 현실은 늘 불안하고 불만스럽고 불순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인들의 공적지평이란 생활의 역경과 고통을 주변부에 두었을 땐 중창단의 합창처럼 한번 부르고 잊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각인인 것이다. “너는 살고/나는 죽고//이것으로 이번 생에서 우리는 비겼다” 윌슨병 앓는 오십대 아버지가 윌슨병 앓는 아들의 부탁을 받고 아들을 목졸라 죽였다는 처연한 단언이다. 위 시구가 아찔하고 아리고 섬뜩한 것은, 당뇨와 고혈압 거기다 신경계 질병을 앓는 팔십이 훌쩍 넘은 어미를 두고, 역시 수발을 들어줄 사람 하나 없이 당뇨와 고혈압을 안고 있는 내가 잘못되어 먼저 떠난다면…… 가족을 베고 황산벌로 나서는 계백처럼 나는 틀림없이 분기탱천하겠지만, 하여 빛나는 시구는 아포리즘적인 사유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결국 삶은 견성이고 발견인 것이다.    성찬경 백금처럼 빛나는 노년을 살자.    ―― 구상, 「노경老境」에서 한국 현대시에 명시 명구도 많지만 문자 그대로 나를 벼락치듯 전율시키는 시구는 바로 이 구절이다. 이 시구를 처음 보았을 때도 그러하였지만 내가 노년이 된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러하다.백금은 무게가 나가는 귀금속 중의 귀금속이다. 황금보다 더 귀하다. 그러나 그 빛은 황금처럼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흰색이다. 노년의 은유로 이보다 더 들어맞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리 높이 읊으며 아로새기는 것이다. 그렇다. 백금처럼 빛나는 노년을 살자!   손세실리아 여자는 함께 있으면 계집이 되고 헤어지면 어머니가 된다    ―― 정진규, 「이별」에서 나는 아직 이보다 슬픈 시구를 본 적이 없다. 한때, 누군가의 ‘계집’이었으나 이제는 헤어져 ‘어머니’로 돌아간 ‘계집’의 비애가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시인의 별사別辭는 매정하기도 뭉클하기도 하다. ‘어머니’이기보다는 ‘계집’으로 남고 싶은 여자의 마지막 염원마저 꺾어버리는 단호한 이별통보인 까닭이다. 함께 있을 때 계집일지라도, 헤어지면 그 즉시 어머니가 되는 게 여자의 몸이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싶은 건지도 모를 일이겠다.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서로 다르다. 여하튼, 살아오면서 지금껏 ‘계집’일 뻔했던 시절 나라고 왜 없었겠는가. 이 한 줄 시구로 말미암아 ‘계집’과 ‘어머니’ 중 후자를 택했을 뿐.    손현숙 그 누구도, 하느님도 따로 한 봉지 챙겨 온전히 갖지 못한 하루가 갔다    ―― 문인수, 「최첨단」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일 뿐이다. 어제의 당신이 오늘의 당신이 아니듯이,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원이라는 말. 변치 않겠다는 맹세. 이런 것들에 모든 것을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나간다. 시간은 누구의 울 안에도 갇히는 법이 없다. 달이 해를 따라가듯 언제나 시작 안에는 끝이 존재하는 거다.  봐라! 시인은 하느님도 하루는 온전히 챙겨 갖지 못한다고 일갈한다. 그러나 그 하루는 목숨이 끝나지 않는 한은 또다시 싹트는 미물, 송곳 끝 같은 느낌으로 가고, 또 온다. 가난도, 부귀도, 사랑도. 오랜 백수白手가 빚어낸 시간의 철학! 해일이다. 지진이다. 쓰나미다.       송승환 싱그러운 거목巨木들 언덕은 언제나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나 한번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었다   ―― 김종삼, 「풍경」에서 등단 전에 나에게 주어진 화두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이면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복합적 의미를 은연중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 화두가 제기된 것은 해안의 저녁 노을 때문이다. 노을은 왜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안겨주는가, 라는 의문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진술과 묘사의 구분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노을의 아름다움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다시 읽은 김종삼의 시는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내가 써야 할 시의 스타일과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송재학 새벽에 쫓아나가 빈 거리를 다 찾아도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 닫혀 있어라.   ―― 고은, 「작은 노래」에서 스무 살 미만의 고 3짜리가 이 구절을 섬광으로 문득 만났다. 만상은 물질이다. 개념과 추상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만지고 구부리고 맛볼 수 있는 구체적인 물질이 된 것은 그 이후. 아마 처음 내 머리의 골통 물질에 들어왔던 희미한 자각은 범신론이거나 정령주의 주변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라고 생각한 것은 고은의 시선집 『부활』을 몇 번 거친 후였다. 범신론이나 정령주의는 신비적 세계관, 대상을 만지고 씹어먹고 뱃속에 오래 삼켰다가 다시 똥을 누려면 시적 대상은 지척지간 친밀한 물질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뻔뻔한 물질들! 비의 속에 자신을 자꾸 숨기는 시/물질은 철면피하기도 하다.    신달자 어느날에사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이 비치리오    ―― 박목월, 「임」에서 천둥의 빗금이 내 가슴을 쫙 후비듯 금을 긋는 싯구는 결코 한 시인이나 한 구절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젊은날에 속절없이 시가 부풀어 올라 하루살이도 푹푹 빠지기만 했던 앳되고 물렀던 내 가슴에 쾅하고 천둥이 내려치던 시들 때문에 나는 각혈을 하지 않고서도 젊은날을 잘 보냈는지 모른다. 그 많은 시구 중에 만난 박목월의 시 「임」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혼절할 뻔하였다.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그것은 내가 무슨 백일기도 끝에도 닿지 못할 것 같은 선명한 이미지요, 손쉽게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무거운 의미의 밀착이었다. 언제 나는 저기에 닿을 수 있나! 그 충격은 지금도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   신대철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어서 너는 오너라」에서 어떤 기운이 갑자기 핏속을 흔들 때 나는 문득 시성을 느낀다. 그 시성은 물론 기발한 시구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억누를 길 없는 죄악에 몸부림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에게서도 온다. 이젠 차가운 대기처럼 온몸을 스쳐가는 시 전체에 집중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끝없는 갈망과 끝없는 결핍이 하나로 뭉쳐져 나는 잠시 정신의 균형을 되찾는다. 사는 게 무엇인지, 신념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나는 데마(디모데후서 4:10 참고)처럼 세상으로 나가 보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래 방황했다. 방황하는 곳이 그 어디든 밤마다 허공에서 푸른 목소리가 울려왔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길모퉁이에서 불안스레 듣던, 저 맑고 뜨겁고 목 타는 울림, “어서 너는 오너라”.    심재휘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에서 윤동주 시의 이 구절은 나에게 벼락처럼 왔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시는 평범했고 안이했다.그리고 나는 시인이 되었다. 시를 쓰는 일은 시를 읽는 일과 같거나 달랐다. 가장 고통스럽게 정직할 때 최고의 절창이 나온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는 세상에서 진짜 부끄러워할 수 있는 사소한 능력은 시 쓰기의 전부가 되었다.    “최후의 나”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언젠가부터 이 너무나 평범한 구절이 나에게 벼락이 되었고, 시를 쓸 때마다 갈수록 더 강한 벼락을 치고 한다. 잘 보면 ‘부끄러운’이라는 말에 피가 비친다.     안도현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푹푹 눈이 내린다는, 이 말도 안 되는 구절 때문에 나는 백석을 좋아한다. 분명히 문장구조의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충돌이거나 모순이다. 연애의 달인답다. 여기에 넘어가지 않을 여자는 없을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우주에 눈이 내린다니! 그리하여 나는 가난하고, 너는 아름답다는 단순한 형용조차 찬란해진다.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30년대에 이미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연인에게 산골로 가서 살자고 하면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사내는 백석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듯하다.    오탁번 눈보라는 꿀벌 떼처럼  닝닝거리고 설레는데,  어느 마을에서는 홍역紅疫이 척촉??처럼 난만爛漫하다    ―― 정지용, 「홍역」에서 정지용이야말로 한국 현대시사의 본문本文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시답잖게 읽는 시러배들이야 알 수 없겠지만, 우리 말의 영혼에 가슴 저려본 이는 아무도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내가 현대시를 전공하면서 딱 맞닥뜨린 시인이 정지용인데 그것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형벌과도 같았다. 와 으로 벼락치듯 섬광을 일으키는 언어의 막강한 힘은 쓰나미와도 같고 화산과도 같고, 내 운명의 바늘을 홱 돌려놓고는 무명無明 저편에 숨어서 ‘용용 죽겠지’ 나를 울리는 시의 여신의 잉걸불보다 뜨거운 젖꼭지와도 같다.    유안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김소월, 「초혼」에서 시인 아닌 아무것도 안되겠다고 스스로 맹세했던 중학생 적에는, 하교길 오뉴월 땡볕을 이고 걸으면서도 구르몽의 시구였던가 “시몽, 너는 좋아하니 낙엽 밟는 소리를” 이 구절이 알사탕처럼 입안에 굴러다니곤 했는데, 대전시를 가로지르는 목척교를 건널 때는 영락없이 입 속에서 굴러다니는 구절은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흐르네”였다고 기억되는데― 그 맹목과 무지와 순백의 백지 같은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해서 소월의 「초혼招魂」과 마주치게 되었던가? 분명하게 기억되진 않지만, 소월의 「산유화」에서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를 두고 계절의 순서가 바뀐 까닭을 질문했다가 문예반 선생님께 망신을 당하고, 「산」이라는 시에서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에서 “산새도”의 “도”와, 왜 하필 “오리나무”였을까를 혼자 곰곰 생각하던 때와 거의 같은 때였을라?! 소월에 미쳤던 여중학생은 「초혼」을 만나자마자 까무라칠 것만 같았지. 부르다가 죽어도 좋을 이름 하나를 갖고 싶었고, 나에게도 내 이름을 부르다 죽을 누군가가 있었으면 소원했지.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붉은 피가 솟구치는 이 뜨거운 한 구절로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로 혼자서 약속하고 굳게굳게 맹세했는데― 성적이 올라가자 스스로 그 맹세를 깨뜨려버렸지만.    유영금 그러나 그보다는 차라리 빨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 최승자, 「오 모든 것이 끝났으면」에서  내가 나를!!, 찔러 죽이거나 목을 매달아 죽이거나 청산가리를 먹여 죽이거나 가스를 마시게 해 죽이거나 총으로 두개골을 쏴 죽이거나 달리는 열차 바퀴에 던져 죽이거나 고층건물 위에서 떨어뜨려 죽이거나 손목의 동맥을 잘라 죽이거나 신나를 뿌려 태워 죽이거나… 그 중 빠르게 죽여 버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선택 때문에 분열에 시달리던 오래 전의 내게 최승자의 시 “그러나 그보다는 차라리/빨리 나를 죽여주십시오”는 내가 죽음에 성공한 것처럼 황홀했다. 실패에 짓밟혀 구차스러운 숨을 끌고 가고 있지만 벼락같이 섬뜩한 이 시구는, 눈을 떠야만 하는 매일 아침의 나를 희망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다. 누군가 나를 죽여 버리는 것이 더 빠르다.            유홍준 무수한 정적은 와글와글거린다    ―― 문인수, 「무수한 정적은 와글와글거린다」에서 “슬픔은 물로 된 불인 것 같다”고 할 무렵의 문인수는 한동안 내 텍스트였다. 글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문인수의 『뿔』이라고 하는 시집을 나는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내 안목이 그랬다. 그러니까 아직 늦깎이 시인 문인수가 뜨기(?) 전의 일이었다.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문인수는 나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것, 묘한 정서적 일체감이었다. 하여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좌우지간 쓸데없는 말 필요 없고, 언제 시인과 매운 고추 다대기 왕창 푼 순대국밥이나 한 그릇 했으면 좋겠다. 무수한 정적은 와글와글거리는 것처럼, 슬픔은 물로 된 불인 것처럼, 겸상을 해 보았는데 문인수와 나에게 짜고 독하고 매운 것은 속이 다 시원한 것이다. 역설이다. 하여간……    이가림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 정지용, 「고향」에서 지금으로부터 45~6년 전, 그러니까 내가 전주고교에 다니던 시절, 국어를 가르치시던 신석정 선생으로부터 처음으로 정지용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당시 월북시인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탓에, 정○○으로 부르며 금기시했음에도, 석정 선생께서는 수업시간 중에 「유리창」,「고향」,「바다」 같은 작품을 받아쓰게 했다. 특히 「고향」에 나오는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이란 구절은 그때 이래 “바람 먹고 구름똥 싸는” 방랑아의 꿈을 늘 내 가슴에 심어주는 벅찬 출발의 신호가 되었다. 내가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답시고 파리를 어슬렁거린 것도, 최소한 5년 주기로 이국땅을 떠돌아다니게 되는 것도 다 이런 낭만적 역마살의 노래를 좋아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번 고향을 떠난 자는 항상 이곳이 아닌 저 먼 미지의 나라에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인가 보다.    이건청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제목이 되어 있기도 하고 곡진하기 이를 데 없는 절창,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시를 읽다가 보면 공들여 힘들게 쓴 흔적이 나타나 있는 시가 있기도 하고, 시인의 내면에서 충분히 무르익어 저절로 흘러나온 듯하면서도 치밀한 구조를 이룬 시를 만날 수도 있다. 나는 물론, 뒤의 경우의 시를 훨씬 윗질로 보는 사람이다.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자신의 심적 정황을 ‘저물녘 노을 속으로 흘러가는 강물’로 치환하면서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으로 슬픔의 깊이를 인식해내고 있으며,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랑 끝 울음”을 거쳐 “미칠 일 하나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 정서의 고양 과정을 치밀하게 끌어 담고 있다. 이렇게, 격정의 정서를 모두 포용하고 있으면서도 ‘소리 죽은 가을 강’이 되어 흘러간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그런 심회의 절정에서 만나게 되는 진한 감동의 언어이다.   이근배 나는 지낸 밤 꿈속의 네 눈썹이 무거워 그걸로 여기 한 채의 절간을 지어 두고 가려 하느니    ―― 서정주, 「기인 여행가」에서 영혼의 작은 숨결도 그려낼 수 있는 내 어머니의 나랏말씀은 어떻게 짚어 내야 시가 되는가? 이 물음 앞에서 나는 서정주 선생을 먼저 머리에 떠올린다. 해묵은 것이려니 하고 오래 덮어두었다가도 여기저기 자주 들춰지는 미당 시에 눈이 가면 내 머릿속은 회오리바람이 분다. 첩첩한 미당 시의 산맥 어디를 기웃거려도 마치 신들린 듯이 쏟아내는 낱말 하나 시구 하나에 내가 가진 말들은 삽시간에 꼬리를 감춘다.  미당이 시 속에 감추고 있는 ‘눈썹’은 우리 시문학사의 화두가 되고 있다. 「수대동시」(1941) 「동천」(1966) 「추석」(1966) 등에 나오는 ‘눈썹’의 절정은 아무래도 이 「기인 여행가」에서 보게 된다. 미당에게 있어 ‘눈썹’은 우주만큼이나 크고 영원한 사랑의 표상이다. 꿈 속에서 만난 ‘눈썹’으로 절간을 세웠으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사랑의 공양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지금 그 절간의 풍경소리가 자꾸 귀속에서 울리는 것을 듣고 있다.    이대흠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날」에서 “내가 없었을 때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오래도록 세상은 젓갈처럼 깊어가고 나는 아무런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고, 한 나라를 이루지도 못했다. 지네인 듯 발이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고, 처음보다 부피만 더 커진 몸뚱이로 나는 외길에 서 있”었다. (졸시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에서 인용) 짐승들은 제 입으로 짐승이라 하지 않았고, 피 묻은 입을 다른 피로 닦았다. 미친 자들이 지배하였으므로 미치지 않는 자가 미친 것처럼 보였던 1980년대. 극약을 가지고 다녔지만, 순교할 기회조차 없었다. 미친개가 미친개를 물어 모두 미쳐갔던,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이동순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백석, 「모닥불」에서 1980년대 초반, 그 엄혹하던 시절에 나는 이름이 낯선 한 시인의 작품에 푹 빠져 있었다. 백석白石, 우리 문학사에서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특이한 존재였다. 하지만 뒤에 알고 보니 이미 1930년대의 찬란한 별이었다. 분단의 폭풍 속에서 가랑잎처럼 흩어진 그분의 작품을 하나 둘 모으고 정리하던 중 시 「모닥불」과 만나게 되었는데, 내 가슴 속은 그야말로 번개가 치는 듯 수백만 볼트에 감전이 된 듯 무서운 전율이 왔다. 모닥불 속에서 우리 민족사의 상처와 불구성을 읽어내다니…… 나는 미친 듯이 백석의 작품을 모았고, 마침내 분단 이후 최초로 한 권의 전집을 발간하였다. 이제 그분의 문학은 우리 문학사에서 당당한 위상으로 복원되었다. 백석과의 만남은 나의 감격이었고, 나의 행운이었으며, 이젠 나의 자부심으로 살아 있다.    이병률 나는 이렇게 한가하고 게으르고 그러면서 목숨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하는 것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그 오래고 깊은 마음들이 참으로 좋고 우러러진다    ―― 백석, 「조당?塘에서」에서 이상하다. 아직도 따뜻한 것에 연연해함은, 밋밋하게 편편하게 살아도 살아지는 세상에 자꾸 목 뒤에 뭔가가 켕긴 것이 있는 사람처럼 따뜻한 것을 찾아 자꾸 뒤돌아보게 됨은 부끄럽기조차 하다. 그래도 이 한 줄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다 보면 나아진다. 목욕이라도 한 기분이 된다. 삶을, 인생을 저리 순연하게 ‘우러러’볼 수 있다니 백석은 참 인간으로서도 잘 살았다 싶다. 이 땅의 전부를 담고 있으며 한 생의 궁극을 집어낸 이 한없이 느리고 미쁘며 태연하고도 갸륵한 한 줄이여. 나는 이 한 줄이 참으로 애틋하고 뜨겁다.     이선영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렸다.   ―― 김수영, 「거미」에서 ‘바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기에, 또한 얼마나 절절하기에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그러다 ‘까맣게 몸이 타 버’린 김수영의 ‘거미’는 이후 내 뇌리에 각인된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였다. 본시 거미에 대해 생명으로서의 한치의 외경심이나 일말의 연민조차 가져본 적이 없던 나에게 김수영의 ‘거미’는 그대로 섬광 같은 시인의 실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시인의 길을 가려던 나의 실존에 대한 섬뜩한 예감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성부 먼 길에 올 제  호을로 되어 외로울 제  푸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 김현승, 「푸라타나스」에서 열여섯 살의 여드름 투성이였던 소년에게 이 시구는 충격이라기보다 큰 그리움의 하나로 다가왔다. 그때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먼 길’과 ‘외로움’의 실체가 눈에 선하게 잡혀지는 것 같았다. 집을 떠나 어디론가로 가고 싶다는 여행에의 욕망, 그 여로에서 터득하게 될 고독의 본질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는데, 세계와 삶에 대한 어떤 각성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정지된 나무가 하나의 영혼으로, 그리고 한 고독한 인간을 고독하지 않게 위무하는 손길로 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수명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소    ―― 이상, 「꽃나무」에서 이것을 읽었을 때, 시가 무엇인지 알았던 것 같다. 욕망과 함께 욕망의 불가능함을 말이다. 시는 이 불가능으로 시작된다.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는 또 다른 자아일까, 타자일까. 이상은 양자가 하나가 되는 어느 지점이 시의 뇌관임을 보여준다. 시인들은 안에, 혹은 밖에 꽃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겠지만.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 거리감을 직관하는 것이 시이다. 그것을 채우는 것이 시이고, 또 내버려두는 것이 시이다. 나는 시의 이러한 운명을 사랑한다. 시는 “갈 수 없”음으로 도달하기 때문이다. 관통하기 때문이다.    이수익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 서정주, 「화사花蛇」에서 서정주 초기 시편의 휘황한 원초적 생명력은 나의 10대 문학소년 시절을 뜨거운 피로 세례하였다. 그 중에서도 원죄의 달콤한 유혹과 관능을 징그러운 배암으로 육화시킨 「화사花蛇」는 언제나 그 절정에서 나를 숨가쁘게 조여 왔다. 내 몸 안의 피의 유전자와 상통하는 ‘어떤 무엇’이 있었음이 틀림없었으리라. 특히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라는 구절에 이르면 나는 늘 숨막히는 희열을 전신으로 감싸 안곤 했다. 그런 내면적 뜨거움이 이후 나의 시에서 피, 절정, 죽음, 황홀, 비애 등의 언어로 채색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승하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서정주, 「자화상」에서 미당은 23세 되던 해 가을에 「자화상」을 썼다. 나는 바로 그 나이에 미당 선생의 제자가 되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스승은 호되게 꾸중을 하셨다. “이건 시가 아닐세!”라고. “이런 시는 앞으로 쓰지 말게!”라고. 스승의 시 수십 편을 이마 위에 얹고 있던 나는 스승의 몰인정에 학교 앞 주점 왕개미집에서 오랜 날을 살았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전시 체제로 바뀌어 가던 1937년, 스승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간질병 환자인 양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나 역시도 1982, 83년 그 언저리에서 분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치를 떨고 있었다. 시대가 참으로 어두웠기에, 스승의 말마따나,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을 남몰래 꿈꾸며 시를 쓰고 있었다. 스승은 말더듬이 환자였던 나의 자화상인 「화가 뭉크와 함께」를 등단작으로 뽑아주셨다. 스승의 파안대소가 미치도록 듣고 싶은 2007년 9월의 어느 아침이다.    이승훈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    ―― 이상, 「아침」에서 고교 시절 처음 이상의 시를 읽고 충격을 받는다. 세상에 이런 시가 있다는 것도 충격이고 이런 시인이 있다는 것도 충격이고 이런 시인과 만난 것도 충격이다. 그가 노래하는 병든 내면은 당시의 나의 내면이고 그 후 나는 이상의 정신적 가족이 된다. 그는 폐결핵으로 시달리는 밤을 노래하고 이런 밤은 당시의 어둡던 가정, 나약한 감성, 우울한 사춘기의 은유가 된다.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결국 고독한 체념과 말라버린 사유와 초췌한 감성이 있을 뿐이다. 사는 건 병드는 것. 그렇게 고교 시절을 보냈다. ‘밤은 참 많기도 하더라.’ 이런 밤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   원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 오규원, 「버스정거장에서」에서 1987년 3월 서울예대 문창과에 들어갔고, 1987년 10월 명동의 서점에서 오규원 선생님의 새 시집을 샀다. 「버스정거장에서」의 첫 구절인, 이 시구를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습작을 하던 1991년, 밥그릇을 소재로 시를 쓰게 되었다. 이런 것도 시가 되나요, 하고 여쭈었다. 이 세상에 시 아닌 것은 없다. 네가 쓰는 모든 것이 시다, 오규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순간 즉각적으로 이 시구가 다시 떠올랐고, 이 시구를 처음 보았을 때 무너져 내렸던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짐짓 태연해 보이는 이 진술은 내가 시에 대해, 삶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한 번에 무너뜨렸던 것이다(내가 안다고 믿고 있던 것들은 내가 가장 모르는 것들이었다). 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시다, 언어도 삶도 벼랑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나는 언어가, 삶이 균형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이 시구를 붙잡고 날아오르며 벼랑을 만든다.    이유경 내 너를 찾아 왔다.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 서정주, 「부활」에서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은 아니지만, 최초로 나를 감동시킨 시 한 구절은 서정주의 「부활」의 도입부였다. 이 시를 처음 대한 것은 고교에 입학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한답시고 서정주 조지훈 박목월 공저의 『시창작법』(1954)이란 책을 사 읽으면서였다. 미당의 란 글에 시 전문이 실려 있었다.  열여섯 일곱의 사춘기를 갓 지난 나의 감성에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는 황홀한 사랑의 풍경을 전개해 주던 것이었다. 슬프고 쉬운 시였기에 감동이 더했던 모양이다.  훗날 성인이 되어서도 한동안 나는 술에 취하면 노래 대신 이 시 전문을 소리쳐 외곤 했다.   이윤학 아침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씩씩하고 활기차게 ‘필승’ 또 ‘필승’/경례를 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그렇게 인사를 하십니까// 네, 저기 있는 까치를 보고 인사합니다/필승!    ―― 정용주, 「필승」 전문 3,4년 전 이 시를 처음 읽게 되었다. 한 남자가 아침마다 창문을 열어놓고 까치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부동자세로 까치가 날아올 나무를 아니면 지붕을 또는 전봇대를 힘주어 바라보았다. 왜 반드시 이겨야 하나, 왜 반드시 이겨야 하나, 왜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 되나? 씩씩하고 활기차게 ‘필승’ 또 ‘필승’을 외치지 않으면 안 되나? 왜 하필 까치에게, ‘필승’ 또 ‘필승’ 경례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되었나?  처음에는 화자 자신에게 퍼붓는 ‘냉소冷笑’로 읽히더니, 종내는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자기 암시暗示로 옮겨갔다. 까치를 보면 이 시가 생각나더니, 나무나 지붕이나 전봇대만 봐도 ‘필승必勝’이 들려왔다.  “……오직 하나, 나는 나 자신에게 승리했을 뿐이다.” 김산 평전에서 읽은 구절과 함께.     이윤훈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이 시는 젊다.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신선한 감각이 살아나  시의 자장을 잃지 않고 있다. 이 시 속에서는 야사 하이페츠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아련하다. 극도로 절제된 감정과 섬세한 감각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시의 공간이 있다. 그 속에 고양이로 현현된 생생한 봄을 만난다.나른한 아침 봄볕 속 이 시를 진언처럼 읊조리면 이 시와 내 시의 한 접점에서 모를 새 한 마리 고양이로 변한 나를 발견한다   이재무 죽은 고기처럼 혈색 없는 나를 보고 얼마 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 김수영, 「강가에서」에서 지금 읽어보면 지극히 평범한 진술이다. 하지만 30년 전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물 묻은 손으로 전선을 만진 듯 전율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은 이 시가 김수영의 다른 시편들에서도 보이고 있듯이(일테면 「거대한 뿌리」 「성」 같은 시편들) 시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크게 위반했기 때문이다. 시라면 응당 고상하고 아름답고 선하고 우아해야 한다는 고루한 생각에 갇혀 있던 내게 그의 시편들 속의, 정도를 넘어선 과감한 시적 표현들(비속어, 욕설 등 일상 언어의 과감한 창조적 차용)은 당혹감을 넘어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전복과 위반의 진술들은 막힌 것이 확 터지는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제도와 이념의 금기를 훌쩍 뛰어넘으려는 시인의 고투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세계의 발견과 개진에 뒤따른 기법과 표현에서의 그의 이러한 과격한 도전과 실험이 있었기에 우리 현대시는 그만큼 영토를 실질적으로 확장해 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정록 나무를 베면 뿌리는 얼마나 캄캄할까     ―― 이상국, 「어둠」 전문 가장 최근에 친 벼락이다.  봄이 되면, 나무는 깜깜한 어둠을 딛고 새싹을 밀어 올릴 것이다. 맨 처음, 씨앗 속의 어둠을 송두리째 끌어올려 초록지붕을 지었듯이, 다시 초록의 일주문 하나 세울 것이다. 발밑 어둠의 실뿌리를 더 깊게 박을 것이다. 잘려나간 그루터기의 겹눈, 칠흑 중의 칠흑은 발밑 어둠이다. 발바닥에 눈을 달고 세상을 읽자. 똥독에 빠진 쥐의 눈이 가장 반짝인다. 연필심은 종이보다 깜깜하다. 어둠의 핵에서 글이 나온다. 아버지가 누워 있는 방이 가장 어둡다. 새벽 일찍 쌀을 안치던 어두운 솥단지, 깜깜하기에 쌀보리는 더욱 희게 눈뜬다.    이진명 몸은 왜 있을까    ―― 김정환, 미상 김정환 시인의 시 구절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장을 뒤졌으나 80년대에 읽으며 줄쳐 놨던 옛 시집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사람한테 문의하였지만 이 시구가 있는 시집과 시의 제목을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채로 이 시구를 만났을 때의 나를 불러보련다. 데뷔 이후 1992년 첫시집을 얼굴도 본 적 없는 김정환 시인께 부쳤다. “몸은 왜 있을까” 오직 이 한 구절을 허락도 없이 품고 있었던 오랜 빚을 갚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아아, 탄식의 수긍을 몸을 궁글리며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몸은 왜 있을까”. 모든 오욕칠정과 생로병사와 살아 있다고 들고나는 이 물질적 숨의 현재, 이런 모욕이, 이런 치욕이 어디 다시 있을 수 있을까.  그때 내 나이 삼십 중반. 무슨 제1의 대문짝이라도 되는 양 모가지 위에 얼굴을 올리고, 걸음 같지도 않는 걸음을 끌며 길거리를 헤매고 직장으로 십수 년을 흘러다녔다. 왜 이토록 피로하게 밥을 벌어야 하는지 돈을 벌어야 하는지를 도무지 알아낼 재간이 없는 채. 그런데 답이 온 것이다. 몸은 왜 있을까, 질문이며 답인 이 시구를 받아올리자, 온 세월의 체증이 슬픔도 없이 녹아내리며 화장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두 손 받쳐 지심으로 풀어 내리는 나를 보았다. 이 지난한 밥벌이의 되풀이가 똥 닦을 두루마리 화장지(세상 어디에 똥 닦을 휴지 하나를 거저 주는 데 있으랴) 한 뭉치를 사기 위해서라고 겨우 깨닫게 되자 화장실에서 돌아와 책상에 앉아 그날 오후의 나머지 일을 고요하게 마칠 수 있었다.  이   탄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에서 정지용의 시 「유리창」의 끝연 10째줄이다. 이 시의 “산ㅅ새처럼 날러 갔구나”처럼 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사라진 정황을 볼 수 있다.이 시는 정지용이 죽은 아이를 보고 지었다고 한다. 9째줄의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만 보더라도 불길한 상징이 잘 되어 있다. 정지용은 시를 지을 때 아무리 슬퍼도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한다.슬퍼도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일까. “날러 갔구나!” 이 한 구절이 내 마음 속에 오랫동안 맺히게 된 것은 내가 1960년대에 《새소년》 잡지를 만들 때부터였다. 잡지 《새소년》이 잘 나갈 때 마음 속에서 부정을 타서 《새소년》이 안 팔리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은 우려와 함께 “날러 갔구나!”와 같은 암시는 항상 내 마음을 불안케 했다. 새시대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암시해준 시구였다.   이태수 저 금박金箔 바람,  저린, 낯선, 눈부신…    ―― 황동규, 「사라지는 마을」에서 우울하게 헤매면서 시에 이끌려 다니던 문학청년 시절, 유치환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그리움」)라는 ‘절규’에 빠져들곤 했다. 현실과 꿈의 동떨어짐, 방황과 갈등 때문이었다. 그 뒤 박목월의 빼어난 언어감각과 조지훈의 의젓한 지사적 풍모에 매료되고, 김춘수와 황동규를 가까이 느끼게 됐다. 스승인 김춘수의 ‘꽃’을 노래한 시편들, 서정의 옷을 입은 그 인식론(또는 존재론)의 세계는 매력적이었다.  이어 황동규의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시편들은 부러움과 극복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황동규는 여전히 저만큼 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감들이 황금빛 불을 켜고 있으며 그 금박 바람이 “저린, 낯선, 눈부신…”으로 읽는 그 황홀하고 서늘한 정신의 불빛이 전율을 안겨주고 있는 것 같다.    이하석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 한용운, 「알 수 없어요」에서 이 시구는 ‘한심하게 어둡고 쓸쓸했던’ 고등학생 시절에 ‘문득 내게 왔다’. 참 많이도 이 시구를 중얼중얼대며 다녔다. “시의 언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는 예이츠의 말마따나 이 구절은 한용운이 살았던 삶의 한복판에서 필연적인 목소리로 나타났다고 믿으면서. “그래, 재는 불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지. 그건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것. 마치 이별이 끝이 아니라 만남의 시작인 것처럼 말이다”라고 믿으면서. 이 놀라운 전환, 끊임없는 부정으로 인해 열리는 큰 긍정의 꿈의 실현의지야말로 ‘한심하게 어둡고 쓸쓸했던’ 나를 밀어올리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장석남 산山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김소월, 「산유화」에서 미인이 좋은 건 그저 좋은 것이지 까닭이 있지 않다. 늘 명확한 그 사실 앞에 엉뚱한 까닭들을 늘어놓는다. 좋은 시가 왜 좋으냐고 하면 어떠한 답이 나와도 그 시가 가지고 있는 함량에 미달인 채로 구차하다.  뼈가 굳기 전부터 이 시가 좋았다면 거짓일 공산이 크다. 확실히 이 시는 천재의 산물보다는 달관의 산물이다. 이십대 후반쯤일까 이 시가 막 쳐들어왔다. 좋은 시는 막 달려 들어오는 것이다. 저 꽃은 하나의 절간이기도 하고 백골이기도 하다. 때로는 남모르는 연애이기도 하고 도피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다. 흔히 도피를 현실 망각의 행태로 간주해 버리고 마는 경우가 있다. 예술이 현실 도피라는 걸 모르는 탓이다. 도피가 아니라 초월이라고 하면 책망에서 면할까? ‘저만치’ 피어 있으니 목마름이요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다. 늘, 궁극적으로는 저만치 혼자서 피다 지고 싶었다. 다시 구차하다!    장석원 날아간 제비와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反逆의 정신//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시를 반역한 죄로/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 김수영, 「구름의 파수병」에서 여름의 산정에 삐쩍 마른 해골이 있다. 겨울 설산이 보낸 엄혹한 마른 바람이 보인다. 뽀개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온다.시가 두려워질 때마다 김수영을 읽는다. 비애의 정점에 다다른 시인을 본다. 그의 얼굴은 구름에 먹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곧 산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그는 다시 시를 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반역할 것이다.‘가장 높은 정신’(조정권)의 거처, 산정에 서 있는 반역자, 시인. 그의 정신과 구름의 방향.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디로든 가야 한다.청빈과 쓸쓸함이 노래가 되는 순간. 이 염결성이 시인을 지키는 도덕이라는 것을 안다. 사랑의 끝이 보인다. 고요하다.   장석주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悲哀를 알고 있느냐     ―― 김수영, 「비」에서 이 시구가 마음에 화살처럼 꽂혔다. 시인은 제 아내에게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놀라워라, “움직이는 비애”라니! 비와 비애의 음가音價가 겹쳐지며 한 순간에 눈이 번쩍 뜨인다. 비의 운동역학에 “비애”를 슬쩍 얹는 솜씨라니 ! 비애에 비의 운동성이 합쳐짐으로써 돌연 비애의 동학動學이 발생한다. 김수영은 아무런 운동성을 갖지 않은 정적인 것에 비의 운동성, 비의 속도를 부여한다. 대상적으로 존재하던 “비”라는 사물은 돌연 경계를 넘어 “움직이는 비애”라는 현존을 품는다.  시인은 음과 양이 하나로 포개지듯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하나로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인식하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가 지워질 때 움직이는 “비”는 움직이지 않는 “비애”를 품고 떨어지는 그 무엇으로, “비”라는 보편다수의 존재자에서 “움직이는 비애”라는 일자, 혹은 초월자로, 그리고 세계의 중심이 사물에서 사건으로 옮겨 간다.    장인수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 한용운, 「알 수 없어요」에서 시라는 놈이 나에게 기습한 경로는 아주 평범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국어 선생님은 교과서에 시가 나오면 무조건 외우라고 하셨다. 지금도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수십 편의 시를 달달 암송하고 있는 것은 그 분 덕분이다. 달달 외우기 위해서는 밥 먹다가도, 똥 싸다가도,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하면서도 혀에 가시가 돋도록 연습해야 한다.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라는 시를 암송하면서 “수직垂直의 파문波紋”,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라는 글귀가 서서히, 자꾸 미꾸라지처럼 꿈틀거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게 시는 내게 엄습했다. 처음 읽을 때에는 싱겁거나 무덤덤했던 글귀였는데 어느 날 하루 종일 입술에 붙어서 팔딱이더니 전압이 세지면서 번개가 치고 온몸의 혈류가 범람하는 전율을 받게 된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수천만 개가 새우 떼처럼 튀었다. 그 이후 장석주의 시편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전윤호 고한읍 어딘가에 고래가 산다는 걸, 나는 몰랐다.    ―― 이건청, 「폐광촌을 지나며」에서 이 나라에서 석탄이 가장 많이 나던 동네에서 자라며 광부의 아이들과 학교를 다니고 검은 산과 검은 강을 보며 자란 나였지만 나도 몰랐다. 고래를 잡으려면 동해바다로 가야 하는 줄 알면서 살았다. 내 친구가 고한초등학교에서 선생을 하고 가끔 도박에 미친 놈들이 손을 끌고 올라가 카지노를 찾을 때도 나는 몰랐다. 그곳에 고래가 있는지, 그곳에 있는 고래를 누군가 보고 있는지. 가끔은 내가 뭔가를 놓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시를 읽으면 그렇다. 시인은 내 척추를 지나 심장으로 파고든다. 이젠 나도 고래를 잡으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정끝별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에서 내 스무 살의 ‘그 어떤 포스와 비전’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 스무 살 무렵, 학관의 전용(!) 화장실 벽에는 “님은 갔습니다. 지가 갔습니다. 그놈은 붙잡아도 갈 놈이었습니다”가 새겨져 있었다. 읽고 또 읽었으리라. 역시 그 무렵, 일요일의 나는 교회를 들락거렸고, 일요일을 뺀 허구헌날의 오전은 시와 사회과학을 한답시고 써클룸을 들락거렸고, 나머지 허구헌날의 오후는 술집을 들락거렸다. 시에 울고 사람에 울고 신에 울고 최루탄에 울고 술에 울었다. 초월과 역사와 현실 사이를 들락거리며 징징징 울던 그 무렵,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라는 구절은 얼마나 비장한 ‘포스’를 내뿜었던가. 얼마나 확고한 ‘비전’이었던가. 당신만 당신이 아니라 기리운 것이 다 당신이라는데……    정병근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 김수영, 「눈」에서 기침을 하자고?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나는 시인이 폐병쟁이인 줄 알았다. 마른 얼굴에 유난히 퀭한 눈을 가진 시인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기침을 하고 싶었다. ‘기침’은 살아 있고자 하는 자유의 분명한 언표임을, ‘눈雪’과 ‘눈目’이 다르지 않음을 지나오면서 더 절절히 공감하게 되었지만. 나는 기침을 자주 했다. 새벽녘 기침소리로 할아버지는 그 높은 존재를 알렸고, 아버지는 헛기침 끝에 우리를 나무랐다. 할 말이 없을 땐 자꾸 기침이 나왔다. 침묵이 나를 가로막을수록 기침은 더 날카롭게, 더 깊이 내장되었다.  기침은, 타성과 혼곤의 등짝을 후려치는 나 스스로의 죽비이면서 부조리와 억압에 항거하는 ‘한소리’일 것이다. 보라는 듯이. 들으라는 듯이. 하여, 기침은 지금도 저 희고雪, 퀭한目 ‘눈’과 함께 여태껏 내 폐부 속에 칼날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정일근 캄캄한 교실에서 끝까지 남아 바라보던 별 하나    ―― 김명인, 「동두천 2」에서 시인이 되고 국어선생이 되어 김명인 시인의 처녀시집 『동두천』을 다시 읽었다. 그 시절 나는 주당 45시간의 수업을 하는 교육노동자였고, 교실에서 교실을 떠도는 유목민이었다. 야학선생을 오래 한 나는 야학과 다른 분위기인 제도교육의 폭력에 가까운, 불합리한 제도에 적응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 필사를 하며 공부를 한 시집 『동두천』을 다시 읽으며 “캄캄한 교실에서 끝까지 남아 바라보던 별 하나”란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그때까지 나는 미래의 ‘별’인 학생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주장자처럼 나를 쳤다. 단지 분노에 차, 별을 보지 못한 나에게 별을 보게 만든 그 한 구절 덕분에 나는 「바다가 보이는 교실」 연작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후 그 연작시가 내 처녀 시집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정재학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 폐벽에 끌음이 앉는다.    ―― 이상, 「아침」에서 폐병을 앓았던 시인의 재미있는 구절이다. 결국 폐결핵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잃었지만 이상에게 폐병으로 인한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시는 찾을 수가 없다. 과거로부터, 앞으로도 시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있겠지만 이상은 ‘시는 결국 이미지이며 유희’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듯하다. 그것이 1930년대 시인들 중 그가 고립적인, 독자적인 위치를 갖는 이유일 것이다. 삶 혹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진정성의 척도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답답하고 재미없는 일이다. 시인은 스스로 환자이자 의사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안목을 가진 시인이라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이상은 보여주었다. ‘시에서의 진정성’과 ‘시에 대한 진정성’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이 둘의 사이가 그리 먼 것은 아닐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에 나오는 어느 대사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잘 요약해 주는 것 같아 말미로 대신한다.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아. 그래서 더욱 잊혀지지가 않아.”    정진규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 「동천冬天」 전문 1연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전문을 다 옮길 도리밖에 없다. 이미 분석이 완벽하게 끝나 있는 시랄 수 있겠으나, 오히려 오독誤讀이 내게는 정독正讀이 된 경우가 많다. 그만큼 벼락으로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이 시도 내게는 그런 범주에 속하는 시가 아닌가 한다. 이 시의 벼락의 정체는 마지막 쉼표(,)다. 이토록 호흡(리듬)과 의미와 리듬에 모두 걸려 영향하고 있는 부호를 나는 여기서 처음 만났다. 마침표로 마감하면 이 시는 형식상의 리듬이 단절되고 산문적인 설명이 되어버린다. 꿈으로 맑게 씻는 이미지의 행위도 불가능해진다. 눈썹의 의미도 사실로 끝나고야 만다. 일거에 하나의 사물(반달)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개벽開闢이 벼락으로 왔다.    조말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윤동주, 「길」에서 열일곱 살 때는 ‘13인十三人의 아해兒孩가 도로道路로 질주疾走하’(이상)느라 막다른 골목이 좋았고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도 좋았다. 재미없는 교과서 속에서 이상은 이상해서 좋았다. 그는 열둘이라는 딱 맞춤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에게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했다. 많은 제십삼 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항상 줄을 잘 서는 학생에게 도주하기 좋은 막다른 골목은 쾌감이기에 충분했다. 윤동주는 너무 반성적이어서 거리를 두었다. 좀 쓸쓸해 보이기는 하였으나 그는 너무 정직했다. 그래서 얼마 전 드라마 자막에 떠오른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는 신선했다. 그것은 반성적이었으나 막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한창 길에 심취해 있을 때였다. 아침에도 걸었고 저녁에도 걸었다. 그것은 막다른 길이었으나 아스라이 멀어서 내가 걸어가고 걸어오는 길이 한없이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조정권 지난 여름은 줄곧 난행亂行만 당하고 겨우 한 줄의 시를 써서 수습하고…‥ 빈자貧者로다. 빈자로다. 나 이 땅의 일등 가는 빈자로다.”     ―― 정진규, 「곳곳에 가을이 당도하였으매」에서 젊은 시절 내가 외우고 다닌 구절이다. 이 시의 빈취貧臭를 좋아했다. 그와 나는 한동네에서 살았다. 거나해지면 그 앞에서 나는 이 시를 낭송했다. 아름다웠던 시절이다. 한국 가톨릭의 빈승貧僧 구상도 그의 시엔 쇠락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에 매달려 있음의 세상! 우리가 추구했던 순수시의 빈취성貧臭性에는 상처받을 수 없는 순결과 도도한 처녀성이 자만심으로 살아 있었다.  누가 일등 가는 빈자라 자부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빈자로 남는다. 시인은 상처받을 뿐 훼손되지 않는다.  조창환 누군가 목에 칼을 맞고 쓰러져 있다 흥건하게 흘러 번진 피 그 자리에 바다만큼 침묵이 고여 있다    ―― 이형기, 「황혼」에서 어느 위대한 영웅의 비장한 죽음과 그 자리에 흥건하게 흘러넘친 피를 연상시키는 황혼의 짙붉은 색감은 극한에 다다른 순수의 모습이다. 피와 죽음의 장면에 배음背音처럼 깔리는 절대침묵을 느끼는 순간, 나는 저 무서운 소멸과 황량한 무화無化에 대한 두려움 섞인 전율에 사로잡혔다. 일체의 잡음이 제거된 순수 그 자체인 죽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는 공포보다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시인의 내면에 깃든 극한적 순수지향의 의지가 빚어낸 이 장면의 미학적 전율은 내 심리의 저층에 잠들었던 원색적 비장감을 깨워 일으켰다. 이형기 시 「황혼」이 보여준 환상과 꿈의 실재화實在化에 대한 치열한 탐닉은 한때 이미지의 감각적 형상화를 추구하는 내 시의 지향점이 되기도 하였다.    조현석 귓속에/복숭아꽃 피고/노래가/마을이 되는/나라로/  갈 수 있을까/어지러움이/맑은 물/흐르고/  흐르는 물 따라/불구의 팔다리가/흐르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죽은 사람도 일어나/  따뜻한 마음 한 잔/권하는 나라로/  아, 갈 수 있을까/언제는/몸도/마음도/안 아픈/나라로    ―― 이성복, 「정든 유곽에서」에서 엄마는 늘 아팠다. 시도 때도 없이 무릎 관절이 쑤셨고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했고 당뇨에 고혈압도 있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도를 낸 아버지가 근 1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그 기간 중 엄마는 몇 개월 동안 병석에 있었다. 예전에 앓았던 결핵성뇌막염이 다시 도졌다는 말을 이모에게서 들었다. 그때 나는 숱한 밤을 앉은뱅이책상에서 울다가 지쳐서 엎드려 잠들었다. 커다란 이불짐과 옷보따리를 지고 메고 판자촌이 즐비한 청계천 옆 왕십리로 이사를 했다. 그 시절 아버지 없는 집에 앓아누운 엄마를 보며 “갈 수 있을까. 언제는 몸도 마음도 안 아픈 나라로”를 생각하며 병이 낫기를 기원했다. 지금은 15년 전 돌아가신 엄마가 “일어나 따뜻한 마음 한 잔 권하는 나라”를 떠올린다. 딱히 마음 한 잔이 아니더라도 찬 술 한 잔이라도 권하기를.   천양희 움직이는 비애悲哀를 알고 있느냐    ―― 김수영, 「비」에서 “시를 쓰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시를 쓰라(릴케)”는 말 앞에서 오래 마음이 들리던 시절, 움직이는 비애란 말은 “내 속엔 언제나 비명이 살고 있다(실비아 플라스)”라는 구절과 함께 내 정신을 내리치는 죽비였다.움직이는 비애가 내면을 훑고 지나갈 때 나는 시詩라는 위독한 병을 철저히 앓을 수 있었다. 정신의 지문指紋 같은 이 한 구절은 내가 초극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며 시작詩作에 가해야 할 박차이다. 오늘도 시가 내게 묻는다.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고.    최영철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시를 쓸 종이가 없어 날 지난 신문지 한 귀퉁이에 몇 줄을 끄적거려 그것을 천금인양 가슴 한편에 감추던 시절이 있었다. 시를 쓸 필기구가 없어 부러진 연필을 황급히 깎아 침 묻혀가며 눌러 쓰던 시절이 있었다. 멀쩡한 팔다리를 떼내어 버릴 수는 있어도 그렇게 얻은 시 몇 줄은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호주머니에는 잘 해야 천 원 지폐 한 장이 고작이었다. 그것으로 낱담배를 사고 가락국수로 허기를 넘기고, 잔술 두어 잔이라도 마신 날은 찬바람이 씽씽 들어오는 어깨를 구부리고 두어 시간 집까지 걸어야 했다. 그리고 새롭게 뜬 아침 햇살 아래 지난밤의 모든 기대와 몽상을 찢고 불태워야 했다. 가난하고 외로웠으나 높고 뜨거울 수 있었던 동력은 얄궂게도 그렇게 진저리를 쳤던 가난과 외로움이었다. 그다지 가난하고 외롭지 않게 된 지금, 나는 그래서 그다지 높고 뜨겁지도 않게 되었다.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그것이 두렵고 절망스럽다.    최종천 그러나 누구하나 정작 보면서도 보지 못할 아득한 헤루크레스 성좌 부근 광막한 시공 속에 이미 환원한 나를    ―― 유치환, 「모년某年 모월 모일」에서 시를 읽다 보면 놀라우리만큼 닮은 구절을 만나게 된다. 청마 선생의 위 구절은 T.S. 엘리어트의 「게론쫀」의 끝에 나오는 다음 구절과 많이 닮았다. “바스러진 원자로서, 떨리우는 곰좌의 궤도 저편에 회오리치는 벨라슈 프레스카 캐멀부인은” 한창 시를 공부하던 시절 내가 좋아하는 시를 모아 놓고 보니, 박목월의 「하관」, 유치환의 「모년 모월 모일」, 정지용의 「유리창」 등으로 모두 죽음을 다루고 있는 시였다. 청마 선생의 이 작품은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물게 드높고 명료한 정신의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닮은 상상력과 감수성을 만날 때는 경이와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 전율은 청년으로서 느끼는 좌절과 고독을 달래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엘리어트의 시를 좋아해서 어느날 교보로 시집을 사러 갔다가 주머니에 돈이 없는 것을 알고도 훔쳐 가지고 나오다가 교보 직원에게 들킨 적이 있다. 내 호주머니 속에 든 것을 모두 꺼내놓으라고 하여 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책을 주면서 다음에 오면 갚으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다음에 가서 책값을 갚으려고 하니 없었던 일이 되어 있었다. 탐구당 문고판 엘리어트 시집 당시 값은 2천 원이었다. 1978년의 일이었다.   최창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내 삶의 길을 크게 벗어났거나, 너무 멀리 나왔다는 생각이 들 때에 백석의 시는 엄하고도 얼마나 정감 어렸던지, 나는 그대로 꼭 따라 했던 것이다. 아궁이에서 불씨를 화로에 담아, 꼭같이 무릎을 꿇고… 시를 쓰거나보다, 시를 빚거나보다, 시를 산다는 일이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줄곧 내 우매한 정신의 불씨를 살려주는 싯구는 참으로 많으나,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고 저 백석이 다가 낀 화로의 불씨로 보태보는 것이다.    최치언 너는 해바라기처럼 웃지 않아도 좋다 배고프지 나의 사람아 엎디어라 어서 무릎에 엎디어라    ―― 이용악, 「장마 개인 날」에서 모든 것이 다 엉망진창인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자꾸 꿈속에 찾아와 밥을 해주시며 ‘배고프지 않니, 배고프지 않니’ 그랬다. 그런 날이면 북쪽으로 머리를 둔 옥탑방에 누워 천장에 드리워진 두꺼운 구름장들을 보았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울면 지는 거니까. 그러나 울었다.“배고프지 나의 사람아/엎디어라 어서 무릎에 엎디어라” 되뇌이며 울었다.    한명희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 김광균, 「설야」에서 김광균의 「설야」와 신경림의 「갈대」를 놓고 망설인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와 “산다는 것은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본다. 난독의 시절이자 남독의 시절이었고 사춘기로 접어들까 말까 한 시기였다. 눈 내리는 소리가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들리다니! 이 구절은 야한 비디오 화면처럼 저절로 자꾸만 떠올랐고 나는 몰래 혼자 설레어하며 부끄러워했고 그러면서 몰래 이 구절을 계속 읊조렸다. 「갈대」를 읽고는 산다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인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나는 내 삶에 대한 비극적인 예감으로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한편 그 괴로움을 즐겼다. 오랜 망설임 끝에 나는 괴로웠던 기억보다는 설레고 부끄러웠던 기억에 한 표를 던지기로 한다. 세상에, 눈 내리는 소리가 옷 벗는 소리로 들리다니!      한미영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전문 스무 살이었다. 새내기 문학도였던 내게 정현종의 「섬」은 알 수 없는 힘으로 오롯이 내 가슴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알베르 까뮈에 심취해 있었고 까뮈가 스무 살에 읽었다던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섬』을 읽은 것도 스무 살, 그 무렵이었다. 가슴에 섬을 품고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연애는 수없이 내 안에 떠 있던 섬으로 인해 좌초했다. 떠나간 사랑을 탓하느라 청춘을 소비했다.돌이켜보면 연애가 실패한 건 내 책임이었다. 섬은 내게 사랑의 은유와도 같았다. 왜냐하면 나의 연애는 끝없이 미끄러지는 운명을 반복하는 어떤 실현 불가능한 욕망의 치환이었으므로. 나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아직도……    함성호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별 헤는 밤」에서   따는, 나는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생명의 존귀함이 아니라 나라는 우주에 갇혀 있었다는 말이다. 그때 문득 이 한귀절로 나는 나라는 닫힌 우주에서 나라는 열린 우주로 귀환했다. 귀환이라는 것은 본래 그랬다는 말이다. 불가에서는 이 본래의 모습을 깨닫는 것을 ‘견성’이라고 한다. 견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못생긴 얼굴이었다. 폭력 앞에서 비겁하며, 이익 앞에서 이기적이고, 공동의 선 앞에서 게을렀다. 이것이 나의 본래의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이후 내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단지 이 본래의, 못생긴 내 얼굴을 보고 난 후 나는 비로소 내 시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공자는 시경 삼백 수의 뜻을 한 마디로 말했다.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이 말을 나는 시는 솔직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이 부끄러움을 통하지 않고 시는 없다.    허만하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 정지용, 「백록담」에서   망설임 끝에 시인 정지용의 「백록담」의 이 구절과 「향수」의“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울음 우는 곳…” 중에서 「백록담」 쪽 구절을 고른다. 의예과 학생시절 다방에서 문리대 친구가 읽던 시집을 어깨 너머 훔쳐 읽었을 때 만난 추억의 구절이다. “꽃도/귀향 사는 곳”(「구성동九城洞」)도 좋지만, 이 구절은 「백록담」 구절에 비해서 색채감이 덜하고 앞연에 기대어 비로소 그 빛남이 더해지는 듯해서, 홀로서기로도 반짝반짝하는 인용문을 든다. 도체비꽃이 어떤 꽃인지 모르지만, 어릴 때 아버지의 고향 뒷산에서 처음 보았던 도라지꽃의 신선한 푸름보다도 더 새파란 꽃인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릴케가 그의 「두이노의 비가」에서 말한 용담꽃도 이렇게 새파랄 수 없는, 나에게는 환상의 꽃이다. 도체비꽃이란 말이 그 앞 구절 “귀신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롱이”와 내통하는 것도 얄밉다.  “아름다움이란 무서움의 시작이다.”    허   연 교실내에 쌓인 두터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 김종삼, 「시인학교」에서   한 손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통닭 10마리를, 다른 한 손에는 김종삼의 시집을 들고 터미널에 서 있었다. 살기 싫은 휴가병이었다, 나는. 첫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던 날 김종삼 시집 『북치는 소년』을 샀다. 덜컹대는 직행버스 안에서 시집을 읽었고, 다시 살고 싶었다. 그날 난 아주 나른한 계시를 받았다. 통닭 냄새를 맡으며 제외된 자들이 주는 눈부심을 알았다. 절창絶唱은 제외된 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시를 씀으로써 세상에서 제외되고 싶었다.    허영자 서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 서정주, 「추천사?韆詞」에서 열일곱 살 때 처음 읽은 미당의 이 시구는 지금 읽어도 나의 고개를 떨구게 만든다. 아니 절벽에서 툭 떨어지듯이 나의 고개를 절망적으로 꺾어지게 한다고 함이 더 옳을 것이다. 그만큼 이 구절은 비극적인 메시지를 나에게 전하는 시구이다. 인간의 한계― 유한한 목숨과 의욕에 못 따르는 능력의 한계, 찬란한 꿈에 비한 현실의 초라함 등을 이 한 구절은 절실히 감지케 하기 때문이다. 이 시구에서 역으로 읽어낼 수 있는 간절함 때문에 나는 수십 번, 수백 번 이 구절을 읊조려 왔으며, 아마 앞으로도 여러 번 같은 일을 되풀이하리라 생각한다.    허형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 한용운, 「알 수 없어요」에서   60년대 중반, 법대로 가기를 권하신 아버지의 명령을 배반(?)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국문과를 택하여 상경한 서울은 참으로 우울의 극치였다. 날마다 흑석동 연못시장 안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지지고 볶은 문학론만 해도 하룻밤이면 족히 서너 말은 될 성싶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정치사상사, 중소기업론, 동양철학 등 전공과 관련 없는 과목을 공부하면서도 청계천 헌책방을 뒤지며 시집은 닥치는 대로 사서 읽어 제쳤던 시절, 밤새 미당의 “꽃처럼 붉은 울음”을 울고 있던 어느 날 밤, 만해가 내게 와 나의 정수박이에 기름 한 바가지를 붓고 떠났다. 알 수 없는 시에 대한 희열을 맛본 순간이었다. 아마, 네루다의 시처럼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신념은 그 뒤의 일이지 싶다.    홍신선 귀신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 정지용, 「백록담」에서 막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였다. 그때까지도 문청 기분을 완전히 청산 못한 나는 천둥벌거숭이로 살았다. 대학 시절의 글 친구인 박제천이나 한국시 동인인 오규원 등등 숱한 사내들과 어울려 술과 시 이야기로 시간을 죽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절제한 술과 젊음, 그리고 독서로 지새운 시절이었다. 학생들에게 어쩌다 그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지금도 거침없이 ‘화류계 뜬 시절’이라고 말한다. 화류계라니?  말 그대로 술과 책에 빠져 살던 황음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절 한편으로는 청계천 8가를 곧잘 혼자 헤매었다. 끼니도 거른 채 고서점, 헌 책방이 늘비한 그곳을 헤매며 책 구경 내지 낡은 책들을 열심히 사 모았다. 그렇다. 헌책더미에서 마침 해방 직후 을유문화사에서 낸 『지용시선』를 찾았던 날의 그 득의양양함이라니. 지금도 그날의 째지던 기분은 마냥 생생할 밖에…… 집에 돌아와 풍문으로만 듣던 지용의 시를 나는 감격에 겨워 읽었다. 그때만 해도 정지용은 풍문 속의, 이름 석 자조차도 복자로 표기해야 했던 때가 아니던가. 작품 「백록담」을 읽어가다 4번에서 만난 이 한 구절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쓸쓸함’이, ‘홀로됨’이 말 그대로 ‘파랗게 질려야 하는’ 공포 자체라니. 그러나 정신의 도저한 경지는 이 공포를 극복한 자만의 것임을 나는 이즈음 체감으로 새삼 깨닫는다. 어즈버, 나도 이미 별수없이 늘그막에 들어선 것이다.    황병승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기형도,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 축축한 손길이 다가와 나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짓누르는 밤의 숲처럼. 처음 이 시를 읽어내려가던 스물일곱, 겨울, 나의 12월. 춥고 큰 방에서 혼자 울고 있는 서기와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내의 고통스러운 침묵이 나의 입을 틀어막았고, 그것은 등 뒤의 짐승처럼 나를 두렵게 했었다. 그리고 다시 펼쳐든 페이지, ‘거의 고통스러웠다’고 말하던 그때의 사내는 여전히 축축한 손을 내밀어 스물일곱, 겨울, 12월 쪽으로 나를 질 질 질 끌고 간다.    황인숙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죽어서도/영혼이/없으리    ―― 김종삼, 「라산스카」에서   그냥 하염없이 좋다. 김종삼 선생의 모든 시를 좋아하지만 내 머리와 혀에 그 맛이 가장 짙게 감도는 시는 이 「라산스카」다. 끝없이 울려 퍼지는 조종소리처럼 사무쳐서 온몸이 저리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얘기했는데, 「라산스카」는 아름답도록 슬픈 시다. [출처] 한국을 대표하는 109명의 현역 시인들이 뽑은 ‘최고의 시구’ |작성자 옥토끼  
291    유명한 한시 모음 댓글:  조회:9876  추천:3  2015-05-18
  한시 모음(클릭해보기...) (도연명) 귀거래사 전원에 돌아와서 1  전원에 돌아와서 2  전원에 돌아와서 4  전원에 돌아와서 5  전원에 돌아와서 6  선행을 쌓아도 ;음주2  큰 도가 사라진 후 ; 음주3  초막을 짓고 살아도 ;음주5  사람마다 다른데 ; 음주6  국화를 잔에 띄워 ;음주7  이른 아침 온 손님 ;음주9  촛불 켜고 마시라 ;음주13  옛 친구 나를 반겨 ;음주14 40을 바라보니 ;음주16  복희 신농씨 떠나 ;음주20  세월 기다리지 않아 ;잡시1 하얀 해가 지고 ;잡시2  내가 젊었을 때는 ;잡시5  어른들이 말하면 ;잡시6  세월은 쉬지 않고 ;잡시7  벼슬살이 안 바래고;잡시8 몸이 그림자에게  그림자가 몸에게  정신이 몸과 그림자에게 죽어서 ;만가시1  죽어서 지내는 밤 ; 만가2 땅에 묻히다 : 만가시3  스스로 쓴 제문  산해경을 읽으며  걸식  을유년 구월 구일  곽주부에게  올벼를 베며  자식들을 나무람  사계절 (두보) 이백을 꿈에 보고  다시 벗을 만나  그대가 오니  강마을  나그네의 밤  고달픈 밤  술에 취하여  달밤  나그네 밤의 감회  가족 없는 이별  신혼의 이별  늙어서의 이별  석호촌의 관리  높은 곳에 올라  봄날 멀리 바라보며  나른한 햇살에 ;절구1  강물이 푸르니 ;절구2  봄 밤에 내린 단비  가을 바람 지붕 날아가 산속의 미인  화경에게  번민풀이  다시 말에서 내려  가난할 때의 사귐  꽃잎 한 장 날려 ;곡강1  봄 옷 잡혀 놓고 :곡강2  봄에 돌아와서  은거하는 장씨를 찾아  최씨 별장에서  달밤의 아우 생각  악양루에 올라  아우를 생각하며 ;억제2  나그네 나그네;1 가래야 가래야:2 아우들 아우들;3 누이동생 누이동생4  (두보) 죽어서라도 고향에5  어서 봄이라도 왔으면6 이름없이 몸만 늙어 7 밤  가을비 탄식 가을의 정취 ;추흥1 가을의 정취 :추흥3  꽃 피는 강둑에 홀로   (이백) 장진주  벗들과 모여서  산중대작  이별의 잔을 나누며 까마귀 우는 밤에  연밥 따는 처녀  월하독작 1  월하독작 2  홀로 가는 길  봄날 술에 깨어  왜 산에 사느냐고  고향생각  친구를 보내며  추포가  장간행  대주문월  자야오가  소대에서 바라보며  여행중 난릉에서  봄밤 낙양성 피리소리  장안을 떠나며  가을밤  술은 오지 않고  종남산을 내려와  이른 봄 한양의 왕씨에게 여름 산 속 (왕유) 전원의 즐거움5  전원의 즐거움6  송 별  인 정  향적사를 찾아서  강남으로 친구를 보내며 대숲에서  종남산 별장  안서로 원이를 보내며  명절이 되면  봄의 계수나무  높은 대에 올라  사슴울타리  봄의 우수  그대 고향에 다녀왔으니 송 별  산속에서  난가여울  남전산석문정사  위수가의 농가  개인 들을 바라보며  농가  태행산 바라보며  장마철 망천별장에서  장소부에게  망천에서의 한가한 삶  산골집의 저녁  목란 울타리  목련이 심겨진 제방  새우는 산골  봄 새벽 (맹호연) 그대는 가고 (맹호연) (백거이) 노닐며 노래하다  백년을 산들  술이나 마시며  한가로이 노닐다 감 흥  송재에서  쓰임 없이 살리라  산 속의 선비 1  산 속의 선비 2  비파행  모자의 이별  시골의 밤  언덕 푸른데 그대 보내 가을 밤에 홀로  태행로-험난한 인생길 술을 대하고  아내에게  문밖에 안나가고  슬픈 선비 신세  사직하지 않는 자들  빈방에 홀로  혼잣말  밤비  지는 꽃잎을 보며  지창  오래된 무덤  장정역에서  여자의 괴로움  장한가  눈 내릴 것 같은 저녁 밤에 우는 까마귀  눈 내린 밤  대림사 복숭아꽃 꽃 아래 취하여 (이상은) 낙유원에 올라 (이상은) 사랑이 싹틀 때 (이상은) 초는 재 되어야 (이상은) 가고 가신 님아 (무명씨) 백발 노인을 대신하여 (유희이) 산골짝에 살며 (유종원) 눈 내리는 강 (유종원) 도인을 찾아서 (가도) 늙은 어부 (유자후) 정원의 해바라기는 (심휴문) 권학문 (진종황제) 청량한 밤의 노래 (소강절) 비단 짜는 아낙네 (맹교) 길 떠나는 아들의 노래 (맹교) 원망의 노래 (반첩호) 고향에 돌아가면 (사현휘) 백년을 못 살면서 (무명씨) 전쟁에 나갔다가 (무명씨) 기원곡 (장적) 산중에서 제자들에게 (왕양명) 창 밖의 오동나무 (이서우) 분수령에서 (온정균) 봄 날 생각함 (가지) 일찍 핀 매화 (장위) 제패지 (왕창령) 봄 강의 꽃 핀 달밤 (장약허) 모란을 바라보며 (유우석) 가을 바람 (유우석) 봄을 찾아서 (대익) 버드나무 (하지장) 고향에 돌아와서 (하지장) 화분의 난초 (정섭) 빈 산에 내리는 봄비 (대희) 세상만사 (진사도) 기와쟁이 (매요신) 새로 생긴 모래톱 (육구몽) 푸른 산만 좋아함은 (호헌) 백로 (두목) 청명 (두목) 산행 (두목) 파초 (전후) 산속에 머물며 (장욱) 남쪽 마을 (이하) 여행과 시 (양만리) 흐르는 물 (나업) 강 위의 어부 (범중엄) 낚시질하는 아이 (호영능) 스승을 전송하며 (소식) 강촌에서 (사공서) 여름날 (소순흠) 여름 날의 산 속 정자 (고병) 모내기 (범성대) 가엾은 농부 (이신) 벼논 (위장) 소나기 (화악) 비 지나는 산마을 (왕건) 여름 나기 (원매) 매화 둑 달빛에 (옹조) 황학루 (최호) 겨울 밤 (황경인) 눈 오는 밤에 (유장경) 그대 집을 지나며 (유장경) 옛 친구를 생각하며 (사조) 도읍을 바라보며 (사조) 한 해를 보내며 (고적) 봄 날의 바램 (설도) 양주사 (왕한) 봄 강의 꽃 핀 달밤 (왕석) 산 속에서 (왕발) 등왕각 (왕발) 중양절에 촉땅에서 (왕발) 산장의 밤 비 (고조기) 동쪽 울타리의 배꽃 (소동파) 그대를 찾아서 (고청구) 다락에서 (황정견) 님을 보내고 (정지상) 님을 보내며 (정지상) 개성사 팔척방 (정지상) 가을비 내리는 밤에 (최치원) 황조가 (유리왕) 보리타작 (정약용) 장마 (장약용) 새벽에 앉아서 (정약용) 화전민 (김창협) 낙 조 (박문수) 내 신세를 누가 알랴 (김병연) 나의 삿갓은 (김병연) 나를 돌아보며 (김병연) 나의 한평생 (김병연) 외로운 주막에 (김병연) 앉으니 선승 같아 (김병연) 죽 한 그릇 (김병연) 아내를 애도하며 (김병연) 늙은 소 (김병연) 눈 쌓인 벌판을 걸어갈 때(서산대사) 벗에게 (임억령) 아가씨의 슬픔 (임 제) 길을 가다가 (권 필) 농가의 봄 (이용휴) 농가의 아낙 (이 달) 제충요 (이달) 불일암 인운스님에게 (이달) 이별을 하자니 (정 포) 우물 속의 달 (이규보) 배꽃 (이규보) 시에 대하여 (이규보) 여름날 1 (이규보) 여름날 2 (이규보) 헤엄치는 물고기 (이규보) 달을 바라보며 (송익필) 김거사의 집을 찾아 (정도전) 사월 초일일 (정도전) 백로 (이양연) 잠에 깨어 (최유청) 소쩍새 (유몽인) 세상 사람들아 깨달아라 (나옹) 산골 (이인로) 눈 (이인로) 산행 (김시진) 홀로 앉아 (서거정) 가을날 (서거정) 죽은 아내의 꿈 (심언광) 꿈 (황진이) 사리화 (이제현) 산중에 눈 내리는 밤 (이제현) 어머니와 헤어지며 (신사임당) 가난한 처녀의 탄식 (허난설헌) 먼저 간 자식들에게 (허난설헌) 동자승을 보내며 (김지장) 제송도감로사차혜원문 (김부식) 관란사루 (김부식) 옛동산에 올라 (최유청) 소금 굽는 집 (안축) 늙었으면 물러나야지 (길재) 한가로이 살며 (길재) 산 속에서 (이이) 산 속에 사는 맛 (유방선) 추석날 밤 (이행) 눈 오는 밤에 홀로 (김수항) 산골짝을 지나며 (강진) 중상금강대 (정관일선) 행로난 (정관일선) 저녁에 (김정) 가을 매미 소리 (강정일당) 패랭이 꽃 (정습명)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신숙) 산사의 밤 (정철) 농가 (박지원)  
290    다시 펼쳐보는 세계 시모음 댓글:  조회:3710  추천:0  2015-05-18
      세계시인의 시모음   클리하세ㅠㅠ...@@   가을 (아폴리네르) 가을 (흄) 가을날 (릴케) 가을의 노래 (베를렌)   가을의 노래 (보들레르)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감미롭고 조용한 사념 속에 (셰익스피어) 강설 (유종원) 거룩한 이여 (휠더들린) 검은 여인 (생고르) 경례 : 슈미트라난단 판트(타고르) 고향 (아이헨도르프) 고향 (휠더를린) 관저(시경) 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랭보) 교감 - 상응 (보들레르) 굴뚝소제부 (브레이크) 귀거래사 (도연명) 귀안 (두보) 그리움 (실러) 기탄잘리 (타고르) 나그네여 보라 (오든) 나는 당나귀가 좋아 (잠) 나무들 (킬머) 나이팅게일 (키츠) 낙엽 (구르몽) 낙엽송 (기타하라 하큐슈) 난 후 곤산에 이르러 (완채)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베를렌) 내게는 그 분이 (사포) 내 사랑 (로버트 번즈) 너는 울고 있었다 (바이런)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디킨스) 노래 (로제티) 노래의 날개 위에 (하이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던) 눈 (구르몽) 눈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 (프로스트)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니벨롱겐의 노래 달 (왕유)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브라우닝) 당신을 위해 ( 가키노모토 히토마로) 동방의 등불 (타고르) 띠 (발레리) 루바이야트 (오마르 카얌) 로즈 에일머 (랜도) 로렐라이 (하이네) 마리아의 노래 (노발리스) 망여산 폭포 (이백) 먼옛날 (로버트 버즈) 모랫벌을 건너며 (테니슨) 무지개 (워즈워스) 미뇽 (괴테)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 바다의 고요 (괴테) 바다의 산들 바람 (말라르메) 바닷가에서 (타고르) 바닷가에서 (고티에) 발견 (괴테) 밤의 꽃 (아이헨도르프) 밤의 찬가 (노발리스) 배 (지센) 백조 (말라르메) 벗을 보내며 (이백) 뻐꾸기에 부쳐 (워즈워스) 병거행 (두보) 병든 장미 (브레이크) 복숭아나무 봄 (도를레앙) 봄 (홉킨스) 부두 위 (흄) 붉디 붉은 장미 (번즈) 비잔티움의 향해 (예이츠 3년 후 (베를렌) 사랑의 비밀 (블레이크) 사랑의 철학 (셸리) 사자와 늑대와 여우 (라 퐁테느) 산비둘기 (콕토) 산중문답 (이백)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슈킨) 삼월 (워즈워스) 상응 - 교감 (보들레르) 새벽 (랭보) 새벽으로 만든 집 (모마데이) 서풍의 노래 (셸리) 석류들 (발레리) 석호리 (두보) 소네트76 (세익스피어) 송원이사안서 (왕유) 수선화 (워즈워스) 숲에 가리라 (하이네) 시 (네루다) 시법 (매클리시) 시에 불리한 시대 (브레히트) 신곡 (단테) 신비의 합창 (괴테) 실락원 (밀턴)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하며 (브리지즈) 아프리카 (디오프)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야간통행금지 (엘뤼아르) 에너벨리 (에드거A .포) 야청도의성 (양태사) 어느 인생의 사랑 (브라우닝) 어리지만 자연스러운 것(코울리지) 어린이의 기쁨 (블레이크) 어부 (굴원) 엘레느에게 보내는 소네트 (롱사르) 여인에게 보내는 목동의 노래(말로) 예언자 (푸슈킨) 예언자 (칼리 지브란) 오디세이 (호메로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오월의 노래 (괴테) 오후의 때 (베르하렌) 올랭피오의 슬픔 (위고) 옷에게 바치는 송가 (네루다) 우리들이 헤어진 때 (바이런) 운명에 버림받고 세상의 사랑못받어도 (셰익스피어) 울려라 힘찬 종이여 (테니슨) 원정 (타고르)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이 꺼질 때 (셸리) 이니스프리호수의 섬 (에이츠) 이 밤에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네루다) 이별 (아흐마또바) 인간과 바다 (보들레르) 인정 (왕유) 일리아스 (호메로스) 잃어버린 술 (발레리) 자유 (엘뤼아르) 잠의 천사 (발레리) 적벽부 (소식) 종이배 (타고르) 지평선을 향하여 (아마두 샤물루) 지하철정거장에서 (파운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키츠) 출정가 (몽고민요) 켄터베리 이야기 (초서) 파도 속의 독백 (네루다) 풀벌레 평화 (홉킨스) 풍차 (베르하렌) 프로테우스 (괴테) 피아노 (로렌스) 하늘은 지붕 너머로 (베를렌) 하늘의 옷감 (예이츠) 헤어짐 (랜도) 헬렌에게 (바이런) 호수 (라마르틴) 호수 위에서 (괴테) 황무지 (엘리엇) 흐르는 내 눈물은 (하이네) 흰달 (베를렌) 흰 새들 (예이츠) .Rainer Maria Rilke  릴케      사랑의 노래 /    가을 /   바닷가 마지막집/   석상의 노래/   내눈을 감겨주십시요/   사랑속에서/   작별 /   엄숙한 시간/   소년/   자장가/  삶의 호수/  사랑의 여인/  사랑에 빠진 여인/   방랑자/  마리아여/ 거기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고독/   Heinrich Heine (1797-1856) 독일 하이네             저기 저 백합 꽃잎 속에 /         아아 내가 /         그대는 꽃인양 /         흐르는 내눈물은 /        선언 /     헤르만 헷세의 시 작품 들길 지나서 / 편지 / 가을날 / 행복 / 안개속 / 무상 / 봄 / 나그대를 사랑하기에 / 생의 계단 / 흰구름 / 아우에게 /     Goethe의 시 (1749-1832) 독일출생 괴데 이별 / 어느 소녀가 부른 /  강변에서 / 발견 / 첫 사랑 /    로제티   Christina Rosseti (1810-1894) 아일랜드, 여류시인 애정시인 독신자.노벨상 수상    기억해주셔요 / 나죽은뒤 / 생일 / 메아리    아이히의 시- 독일    비오기 조금전 / 산딸기숲 /         Karl Busse  붓세      저 산 너머 /  고요한 낙원 / Rabindranath Tagore (1861-1941) 타고르 인도 20세기 인도최고의 시인 노벨문학상    당신곁에 / 바닷가에 / 기도 / 당신이 나를 영원하게 하셨으니   Remi de Gourmont(1838-1915)의 구르몽시- 프랑스 시인      낙옆 / 눈 /         william wordsworth(1770-1850)의  워드워즈시     무지개 / 인적 멀리 그녀는 살았다 / 수선화  /       Robert (Lee) Frost의 시 (1874-1963) 프로스트 미국의 시인      가지 않은길 / 눈오는 저녁 숲가에서 / 창가의 나무 /      그밖의 외국시   1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브라우닝   2 평생의 사랑 브라우닝     3 인생 찬가 롱펠로우   4 꽃처럼 저 버린 사람 바이런     5 새빨간 장미 버언즈   6 연보라빛 클로버의 들을 다우텐 다이     7 이별 포르   8 피아노  로렌스     9 내나이 스믈 한 살 적에 하우스만   10 화살과 노래 롱펠로우     11  선물 아폴리네르   12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쉬나크     13 당신은 내 인생 속으로 ....     예반   14 누구나 알고 있는 슬픔 에리히카스너      15 이사(移居)  도잠(중국)   16 송 별  왕유(중국)     17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킴벌리커버거   [출처] 세계시인의 시모음|작성자 옥토끼  
289    다시 읽고싶은 세계 시모음 댓글:  조회:5466  추천:0  2015-05-18
  세계 시모음    아름다운 세계시인의 시모음  클릭해서 보시고 활용하세요.   시를 감상하다 보면 너무 아름다운 시에 빠져들거예요   정말 아름다운 세계시모음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브라우닝) 평생의 사랑 (브라우닝) 인생 찬가 (롱펠로우) 꽃처럼 저 버린 사람 (바이런) 새빨간 장미 (버언즈) 연보라빛 클로버의 들을 (다우텐 다이) 이별 (포르) 피아노 (로렌스) 내나이 스믈 한 살 적에 (하우스만) 화살과 노래 (롱펠로우) 선물 (아폴리네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쉬나크) 당신은 내 인생 속으로 .... (예반) 누구나 알고 있는 슬픔 (에리히카스너) 이사(移居) (도잠(중국)) 송 별 (왕유(중국))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킴벌리커버거) 사랑의 노래(릴케) .Rainer Maria Rilke 릴케 가을(릴케) 바닷가 마지막집(릴케) 석상의 노래(릴케) 내눈을 감겨주십시요(릴케) 사랑속에서(릴케) 작별(릴케) 엄숙한 시간(릴케) 소년(릴케) 자장가(릴케) 삶의 호수(릴케) 사랑의 여인(릴케) 사랑에 빠진 여인(릴케) 방랑자(릴케) 마리아여(릴케) 거기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릴케) 고독(릴케) 저기 저 백합 꽃잎 속에(하이네) 아아 내가 (하이네) 그대는 꽃인양(하이네) 흐르는 내눈물은(하이네) 선언(하이네) 낙옆(구르몽) 눈(구르몽) 가을(아폴리네르) 가을 (흄) 가을날 (릴케) 가을의 노래 (베를렌) 가을의 노래 (보들레르)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감미롭고 조용한 사념속에(셰익스피어) 강설 (유종원) 거   룩한 이여 (휠더들린) 검은 여인 (생고르) 경례:슈미트라난단 판트(타고르) 고향 (아이헨도르프) 고향 (휠더를린) 관저(시경) 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랭보) 교감 - 상응 (보들레르) 굴뚝소제부 (브레이크) 귀거래사 (도연명) 귀안 (두보) 그리움 (실러) 기탄잘리 (타고르) 나그네여 보라 (오든) 나는 당나귀가 좋아 (잠) 나무들 (킬머) 나이팅게일 (키츠) 낙엽 (구르몽) 너는 울고 있었다 (바이런) 낙엽송 (기타하라 하큐슈) 난 후 곤산에 이르러 (완채)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베를렌) 내게는 그 분이 (사포) 내 사랑 (로버트 번즈)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디킨스) 노래 (로제티) 노래의 날개 위에 (하이네) 눈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 (프로스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던) 눈 (구르몽)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니벨롱겐의 노래 달 (왕유)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브라우닝) 당신을 위해 ( 가키노모토 히토마로) 동방의 등불 (타고르) 띠 (발레리) 루바이야트 (오마르 카얌) 로즈 에일머 (랜도) 로렐라이 (하이네) 마리아의 노래 (노발리스) 망여산 폭포 (이백) 먼옛날 (로버트 버즈) 모랫벌을 건너며 (테니슨) 무지개 (워즈워스) 미뇽 (괴테)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 바다의 고요 (괴테) 바다의 산들 바람 (말라르메) 바닷가에서 (타고르) 바닷가에서 (고티에) 발견 (괴테) 밤의 꽃 (아이헨도르프) 밤의 찬가 (노발리스) 배 (지센) 백조 (말라르메) 벗을 보내며 (이백) 뻐꾸기에 부쳐 (워즈워스) 병거행 (두보) 병든 장미 (브레이크) 복숭아나무 봄 (도를레앙) 봄 (홉킨스) 부두 위 (흄) 붉디 붉은 장미 (번즈) 비잔티움의 향해 (예이츠 3년 후 (베를렌) 사랑의 비밀 (블레이크) 사랑의 철학 (셸리) 사자와 늑대와 여우 (라 퐁테느) 산비둘기 (콕토) 산중문답 (이백)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슈킨) 삼월 (워즈워스) 상응 - 교감 (보들레르) 새벽 (랭보) 새벽으로 만든 집 (모마데이) 서풍의 노래 (셸리) 석류들 (발레리) 석호리 (두보) 소네트76 (세익스피어) 송원이사안서 (왕유) 수선화 (워즈워스) 숲에 가리라 (하이네) 시 (네루다) 시법 (매클리시) 시에 불리한 시대 (브레히트) 신곡 (단테) 신비의 합창(괴테) 실락원 (밀턴)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하며 (브리지즈) 아프리카 (디오프)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야간통행금지 (엘뤼아르) 에너벨리 (에드거A .포) 야청도의성 (양태사) 어느 인생의 사랑 (브라우닝) 어리지만 자연스러운 것(코울리지) 어린이의 기쁨 (블레이크) 어부 (굴원) 엘레느에게 보내는 소네트 (롱사르) 여인에게 보내는 목동의 노래(말로) 예언자 (푸슈킨) 예언자 (칼리 지브란) 오디세이 (호메로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오월의 노래 (괴테) 오후의 때 (베르하렌) 올랭피오의 슬픔 (위고) 옷에게 바치는 송가 (네루다) 우리들이 헤어진 때 (바이런) 운명에 버림받고 세상의 사랑못받어도 (셰익스피어) 울려라 힘찬 종이여 (테니슨) 원정 (타고르)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이 꺼질 때 (셸리) 이니스프리호수의 섬 (에이츠) 이 밤에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네루다) 이별 (아흐마또바) 인간과 바다 (보들레르) 인정 (왕유) 일리아스 (호메로스) 잃어버린 술 (발레리) 자유 (엘뤼아르) 잠의 천사 (발레리) 적벽부 (소식) 종이배 (타고르) 지평선을 향하여 (아마두 샤물루) 지하철정거장에서 (파운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키츠) 출정가 (몽고민요) 켄터베리 이야기 (초서) 파도 속의 독백 (네루다) 풀벌레 평화 (홉킨스) 풍차 (베르하렌) 프로테우스 (괴테) 피아노 (로렌스) 하늘은 지붕 너머로 (베를렌) 하늘의 옷감 (예이츠) 헤어짐 (랜도) 헬렌에게 (바이런) 호수 (라마르틴) 호수 위에서 (괴테) 황무지 (엘리엇) 흐르는 내 눈물은 (하이네) 흰달 (베를렌) 흰 새들 (예이츠) 들길 지나서(헤르만 헷세) 편지(헤르만 헷세) 가을날(헤르만 헷세) 행복 안개속(헤르만 헷세) 무상 (헤르만 헷세) 봄(헤르만 헷세) 나그대를 사랑하기에 (헤르만 헷세) 생의 계단(헤르만 헷세) 흰구름(헤르만 헷세) 아우에게(헤르만 헷세) 이별 (괴테) 어느 소녀가 부른 (괴테) 강변에서 (괴테) 발견 (괴테) 첫 사랑 (괴테) 기억해주셔요(로제티) 나죽은뒤 (로제티) 생일(로제티) 메아리(로제티) 비오기 조금전(아이히) 산딸기숲(아이히) 저 산 너머 (붓세) 고요한 낙원 (붓세) 당신곁에 (타고르) 바닷가에 (타고르) 기도 (타고르) 당신이 나를 영원하게 하셨으니 (타고르) 무지개(워드워즈) 인적 멀리 그녀는 살았다(워드워즈) 수선화(워드워즈) 가지 않은길(프로스트) 눈오는 저녁 숲가에서(프로스트) 창가의 나무(프로스트)          
288    詩仙, 詩聖, 詩佛과 함께... 댓글:  조회:3278  추천:0  2015-05-18
시선 이백, 이성 두보, 시불 왕유     한시(漢詩)를 말할 때 당연히 당시(唐詩)가 우선 거론된다. 당나라 때는 중국 서정시의 최 전성기이고, 그 시는 중국문학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학에도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唐詩)는 일반적으로 초당(初唐-7세기경), 성당(盛唐-8세기 전반), 중당(中唐-8세기 후반∼9세기 전반), 만당(晩唐-9세기 후반∼10세기 초기)의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초당(初唐)의 대표적 시인으로는 사걸(四傑)로 불린 왕발(王勃)·양형(楊炯)·노조린(盧照린)·낙빈왕(駱賓王)을 들 수 있는데, 이 시기의 시는 외형의 미를 다루는 남조시풍(南朝詩風)의 계승면이 강하고, 시의 운율을 다듬어 근체시(近體詩-絶句, 律詩)의 시형을 완성시키고 있다.    성당(盛唐)은 시문학이 융성한 현종황제의 치세에 해당되며, 당조(唐朝)의 국력이 최고에 달한 시기였는데, 이 시기는 대시인이 속출한 문학의 최 전성기이다. 대표적 시인으로서는 이 시기 전반에 활약한 이백(李白)과 후반에 활약한 두보(杜甫)가 있고, 그밖에도 맹호연(孟浩然)·왕유(王維)·고적(高適)·잠삼(岑參)·왕창령(王昌齡)·왕지환(王之渙) 등의 이름난 시인이 있다.    중당(中唐)의 시인으로는 한유(韓愈)와 백거이(白居易)를 들 수 있다. 한유는 기험(奇險)·호방(豪放)하다는 장대한 미(美)를 사랑하였고, 백거이는 평이하고 찬찬한 표현으로 ,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라는 사회시(社會詩)를 창시(創始)하여 당대를 통해 최다수의 독자를 얻었다.       만당(晩唐) 시기의 시는 일반적으로 감상적·퇴폐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는 이상은(李商隱)·두목(杜牧)·온정균(溫庭筠)을 들 수 있다. 당나라의 모든 시인들의 전 작품을 수록한 것은 청(淸)나라의 강희제(康熙帝) 칙편(勅編)의 (900권)인데, 거기에는 대강 2,200명의 시 4만 8,000여 수가 실려 있다.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744년 당나라의 낙양에서 이루어진 범상치 않은 만남, '창공에서 태양과 달이 만난 듯 중국 역사상 가장 신성하고 기념할 만한 만남' 의 주인공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44세의 나이로 문학적 재능이 만개한 상태의 분방하고 정열적인 시인인 이백과, 33세의 나이로 진지하고 다정다감한 무명의 문학청년인 두보가 낙양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면 걸출한 문학적 재능을 지녔다는 것 외에, 때를 못 만나 제대로 된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이곳저곳 떠돌며 기식자 생활을 하는 처지였다는 것 정도다. 출신성분, 인간성, 필치, 인생관 등, 그 밖의 다른 모든 면에서 그들은 달랐다.   성(性)마저 불확실한 변방의 이민족 집안 출신 이백과 '하늘과의 거리가 1척5촌' 이라는 명문가 출신 두보. 입신출세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았던 이백과 당 왕조의 번영과 평안을 진심으로 바랬던 두보. 아내 넷을 두고도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았던 이백과 첩을 둔 적이 없는 애처가 두보. 이러한 이백과 두보의 삶의 이야기가 문학적 성취를 대비시킨 책이 다카시마 도시오의 「이백, 두보를 만나다」이다.   낙양에서의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1년여 간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했고, 그 다음에는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이었지만 만취해 한 이불을 덮고 잘 만큼 진한 우정을 나눴던 그들은 시를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을 표출했다. 저자 다카시마는 11살 연상의 비범한 친구 이백에게 두보가 특유의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친근감을 표현하면서도 은근히 야유했다고 본다. "술 잔뜩 먹고 되는대로 마음껏 뽐내는 모습은 대체 누구에게 보여주는 건가요." 이백 또한 주선(酒仙)이라는 별칭에 합당한 시로 두보에 대한 정을 표현했다. "노나라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고, 제나라 노래를 불러도 감정에 북받쳐 올 뿐, 그대 생각은 문수(汶水)의 흐름과 같이, 도도히 남쪽으로 흐르고 흘러 그치지 않네."   여기서 잠깐, 시문학적으로 이백과 두보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날까? 이에 대해 다카시마는 남송 시대 엄우(嚴羽)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동의한다. "두보는 이백처럼 표일(飄逸 : 마음 내키는 대로하여 세속에 얽매이지 않음)한 정취가 있는 시를 지을 수 없고, 이백은 두보처럼 침울한 시를 지을 수 없다." 이백이 속박되지 않은 정열과 에너지를 분출시킨다면, 두보는 대지에 깊이 뿌리를 둔 든든한 건조물 같은 의지와 구성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일종의 구전 가요도 '들국화' 가 불러 유명해 진 '사노라면' 의 가사를 원용해 말한다면,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고 호방하게 외치는 이백에 비해, 두보는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데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이지 않았을까..   굳이 분류해 말하면 이백이 자연과 놀이의 세계에 두보가 인위와 역사의 세계에 가깝다 하겠지만, 이백 안에 두보가 있고 두보 안에 이백이 있었다고 하는 편이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비(非)동질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이 한 사람이나 하나의 예술 경향 안에 동거하는 것, 음이 양의 싹을 품고 양이 음의 싹을 품어 음과 양이 끊임없이 갈마드는 것. 중국 예술 정신의 특성은 그러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면 이백과 두보는 그 특성의 구체적인 사례라 하겠다.   중국 당(唐)나라 시인.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농서군 성기현출신. 시선(詩仙)으로 불리운다. 25세 때 촉(蜀)나라를 떠나 양쯔강을 따라 나와 평생 유랑생활을 했다. 이백은 어려서부터 시문(詩文)에 천재성을 발휘하는 한편 검술을 좋아했다. 젊었을 때 도교(道敎)에 심취하여 선계(仙界)에 대한 동경심을 가졌으며 산 속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환상성(幻想性)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며, 산은 그의 시세계의 주요 무대의 하나였다.   중국 당(唐)나라 시인. 호는 소룽. 소룽이라고 불리는 것은, 장안(長安)남쪽 근교의 소룽이 선조의 출신지인 데서 유래한다. 허난성 궁현을 본거지로 하는 소호족(小豪族)출신. 중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뜻에서 시성(詩聖), 이백(李白)과 아울러 일컬을 때는 이두(李杜), 당나라 말기의 두목(杜牧)에 견줄 때는 노두(老杜) 대두(大杜)라 불린다. 먼 조상에 진(晉)나라 초기의 위인 두예(杜預)가 있고 당(唐)의 초기 시인 두심언(杜審言)은 조부이다.           왕유(王維. 701∼761) : 중국 문학상 당대(唐代)를 대표하는 대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청(淸), 왕사신은 왕유를 "시불(詩佛)"이라 일컬어 "시선(詩仙)" 이백과 "시성(詩聖)" 두보와 함께 존립시킨 것으로 보아 왕유가 중국 문학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으며, 수묵의 산수화를 잘 그려 남종 문인화(南宗文人畵)의 시조(始祖)로 불린다.    죽리관(竹里館)     獨坐幽篁裏 (독좌유황리),  그윽한 죽림(竹林) 속에 홀로 앉아  彈琴復長嘯 (탄금부장소),  거문고 뜯고 다시 휘파람 분다.  深林人不知 (심림인부지),  깊은 숲 아무도 모르는 곳에  明月來相照 (명월래상조),  이윽고 달이 빛을 안고 찾아온다.    九月九日憶山東兄弟 (구월구일 중양절 날 산동에 있는 형제를 생각함 : 旅愁를 읊은 詩)    獨在異鄕爲異客 (독재이향위이객)  홀로 타향에 나그네 되어  每逢佳節倍思親 (매봉가절배사친)  명절을 맞을 적마다 친족생각이 간절하구나  遙知兄弟登高處 (요지형제등고처)  멀리서 형제들이 산에 올라가  遍揷茱萸少一人 (편삽수유소일인)  모두들 머리에 산수유를 꽂을 때 한사람 모자람을 알겠지.     [註] 중국에서는 음력 9월9일에 산수유를 머리에 꽂고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는데, 고향에서 형제들이 산수유 꽂고 산에 오르는 명절날 왕유 자신만 빠져있음을 느낄 것이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그리움을 표현한 유명한 작품임.    
287    이상 시모음 댓글:  조회:3967  추천:0  2015-05-17
    이상 시 모음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오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오 내말을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으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오 나는지금거울을안가져오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오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꽃나무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 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 내었소.     가정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 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거리 - 여인이 出奔한경우 백지위에한줄기철로가깔려있다. 이것은식어들어가는마음의圖解다. 나는매일虛爲를담은전보를발신한다. 명조도착이라고. 또 나는 나의일용품을매일소포로발송하였다. 나의생활은이런재해지를 닮은거리를점점낯익어갔다.     아침 캄캄한공기를마시면폐에해롭다. 폐벽에끌음이앉는다. 빔새 도록나는몸살을앓는다. 밤은참많기도하더라. 실어내가기도하 고실어들여오기도하고하다가잊어버리고새벽이된다 .폐에도아 침이켜진다. 밤사이에무엇이없어졌나살펴본다. 습관이도로와 있다. 다만내치사한책이여러장찢겼다. 초췌한결론위에아침햇 살이자세히적힌다. 영원히그코없는밤은오지않을듯이     수염 (수수그밖에수염일수있는것들모두를이름) 1 눈이존재하여있지아니하면아니될처소는삼림인웃음이존재하 여있었다 2 홍당무 3 아메리카의유령은수족관이지만대단히유려하다 그것은음울하기도한것이다 4 계류에서― 건조한식물성이다 가을 5 일소대의군인이동서의방향으로전진하였다고하는것은 무의미한일이아니면아니된다 운동장이파열하고균열한따름이니까 6 심심원 7 조(粟)를그득넣은밀가루포대 간단한수유의월야이었다 8 언제나도둑질할것만을계획하고있었다 그렇지는아니하였다고한다면적어도구걸이기는하였다 9 소한것은밀한것의상대이며또한 평범한것은비범한것의상대이었다 나의신경은창녀보다도더욱정숙한처녀를원하고있었다 10 말(馬)― 땀(汗)― 여, 사무로써산보라하여도무방하도다 여, 하늘의푸르름에지쳤노라이같이폐쇄주의로다       이런 시 역사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끄집어내어놓 고보니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위험하기짝이없는 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돌이깨끗이씻꼈을터인데 그이틀날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 참이런처량한생각에서아래와같은작문 을지었다.「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 을수없소이다.내차례에 못을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 는꾸준히생각하리라.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 는 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1933. 6. 1 천평위에서 삼삽년동안이나 살아온사람 (어떤과학자) 삼십 만개나넘는 별을 다헤어놓고만 사람(역시)인간칠십 아니이 십사년동안이나 뻔뻔히 살아온 사람(나) 나는 그날 나의자서전에 자필의부고를 삽입하였다이후나 의육신은 그런고향에는있지않았다 나는 자신나의시가 차압당 하는 꼴을 목도하기는 차마 어려웠기 때문에.     화로 방거죽에극한이와닿았다. 극한이방속을넘본다. 방안은견딘 다. 나는독서의뜻과함께힘이든다. 화로를꽉쥐고집의집중을잡 아땡기면유리창이움푹해지면서극한이흑처럼방을누른다. 참다 못하여화로는식고차갑기때문에나는적당스러운방안에서쩔쩔맨 다. 어느바다에호수가미나보다. 잘다져진방바닥에서어머니가 생기고어머니는내아픈데에서화로를떼어가지고부엌으로나가신 다. 나는겨우폭동을기억하는데내게서는억지로가지가돋는다. 두팔을벌리고유리창을가로막으면빨래방맹이가내등의더러운의 상을뚜들긴다. 극한을걸커미는어머니―기적이다. 기침약처럼 따끈따끈한화로를한아름담아가지고내체온위에올라서면독서는 겁이나서곤두박질을친다.     이상한 가역반응 임의의반경의원(과거분사의시세) 원내의일점과원외의일점을결부한직선 두종류의존재의시간적영향성 (우리들은이것에관하여무관심하다) 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   현미경 그밑에있어서는인공도자연과다름없이현상되었다. 같은날의오후 물론태양이존재하여있지아니하면아니될처소에존재하여있었을뿐만 아니라그렇게하지아니하면아니될보조를미화하는일까지도 하지아니하고있었다. 발달하지도아니하고발전하지도아니하고 이것은분노이다. 철책밖의백대리석건축물이웅장하게서있던 진진5의각바아의나열에서 육체에대한처분을센티멘탈리즘하였다. 목적이있지아니하였더니만큼냉정하였다. 태양이땀에젖은잔등을내려쬐었을때 그림자는잔등전방에있었다. 사람은말하였다. 「저변비증환자는부자집으로식염을얻으려들어가고자희망하 고있는것이다」라고 ............     절 벽(絶壁)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香氣가만개滿開한다. 나는거기묘혈을 판다. 묘혈도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속에 나는들어앉는다. 나는 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 않는다. 향기가만개만개한다. 나는잊어 버리고재차거기묘혈墓穴을판다 묘혈은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묘혈로 나는꽃을깜빡잊어 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 않는꽃이 -보이지도않는꽃이.     위치(位置) 중요한위치에서한성격의심술이비극을연역(演繹)하고있을즈음범위에는타인이없었던가. 한주(株)-분(盆)에심은외국어의관목(灌木)이막돌아서서나가 버리려는동기요화물(貨物)의방법이와 있는의자(倚子)가주저앉아서귀먹은체할 때마침s내가구두(口讀)처럼고사이에낑기어들어섰으니 나는내책임의맵시를어떻게해보여야하나. 애화(哀話)가주석(註釋)됨을따라나는슬퍼할준비라도 하노라면나는못견뎌모자를쓰고밖으로나가 버렸는데웹사람하나가여기남아내분신(分身)제출할것을잊어 버리고있다.     최후 사과한알이 떨어졌다. 지구地球는 부서질그런정도로 아팠다. 최후最後이미여하如河한정신情神도 발아發芽하지아니한다.     오감도(烏瞰圖) - 時弟一號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같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 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3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4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5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6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7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8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9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10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1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1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13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십삼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람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 時弟二號 나의 아버지가 나의 곁에서 조을 적에 나는 나의 아버지가 되고 도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고,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대로 나의 아버지인데 어쩌자고 나는 자꾸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니 나는 왜 나의 아버지를 껑충뛰어 넘어야하는지 나는 왜 드디어 나와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노릇을 한꺼번에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냐 - 時弟三號 싸움하는 사람은 즉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고 또 싸움하는 사람은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었기도 하니까 싸움하는 사람이 싸움하는 구경을 하고 싶거든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 싸움하는것을 구경하든지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싸움하는 구경을 하든지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 싸움이나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싸움하지 아니하는 것을 구경하든지 하였으면 그만이다. - 時弟四號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 진단 0:1   26.10.1931   以上 책임의사 이상 - 時弟五號 전후좌우를제(除)하는유일의흔적(痕跡)에있어서 익은불서목불대도(翼殷不逝目不大覩) 반왜소형의신의안전(眼前) 에아전낙상(我前落傷)한고사(故事)를유(有)함 장부(臟腑)라는것은침수된축사(畜舍)와구별될수있을란가 - 時弟六號 앵무  ※  2필              2필         ※  앵무는포유류에속하느니라. 내가2필을아는것은내가2필을알지못하는것이니라. 물론나는희망할것이니라. 앵무       2필 "이소저는신사이상의부인이냐""그렇다" 나는거기서앵무가노한것을보았느니라.나는부끄러워서얼굴이붉어졌었겠느니라. 앵무     2필            2필 물론나는추방당하였느니라.추방당할것까지도없이자퇴하였느니라.나의체구는중추를상실하고또상당히창랑하여그랬든지나는미미하게체읍하였느니라. "저기가저기지""나""나의-아-너와나" "나" sCANDAL이라는것은무엇이냐."너""너구나" "너지""너다""아니다너로구나"나는함뿍젖어서그래서수류처럼도망하였느니라.물론그것은아아는사람혹은보는사람은없었지만그러나과연그럴는지그것조차그럴는지. - 時弟七號 구원적거(久遠謫居)의지(地)의일지(一枝)·일지에피는현화(顯花)·특이한4월의화초·30륜(輪)·30륜에전후되는양측의명경(明鏡)·맹아(萌芽)와같이희희(戱戱)하는지평(地平)을향하여금시금시낙백(落魄)하는만월·청한의기(氣)가운데만신창이의만월이의형당하여혼륜(渾淪)하는·적거(謫居)의지를관류하는일봉가신(一封家信)·나는근근히차대(遮戴)하였더라·몽몽한월아(月芽)·정일을개엄하는대기권의요원·거대한곤비(困憊)가운데의일년4월의공동(空洞)·반산전도(槃散顚倒)하는성좌와성좌의천열(千裂)된사호동(死胡同)을포도하는거대한풍설·강매·혈홍으로염색된암광채임리한망해·나는탑배하는독사와같이지하에식수되어다시는기동할수없었더라·천량이올때까지 - 時弟八號 제1부시험  수술대             1                수은도말평면경  1                기압                2배의평균기압                온도                개무 위선마취된정면으로부터입체와입체를위한입체가구비된전부를평면경에영상시킴.평면경에수은을현재와반대측면에도말이전함.(광선침입방지에주의하여)서서히마치를해독함.일축철필과일장백지를지급함.(시험담임인은피시험인과포옹함을절대기피할것)순차수술실로부터시험인을해방함.익일.평면경의종축을통과하여평면경을2편에절단함.수은도말2회. ETC 아직그만족한결과를수득치못하였음. 제2부시험 직립한평면경  1                조수             수명 야외의진공을선택함.위선마취된상지의첨단을경면에부착시킴.평면경의수은을박락함.평면경을후퇴시킴.(이때영상된상지는반드시초자를무사통과하겠다는것으로가설함)상지의종단까지.다음수은도말.(재래면에)이순간공전과자전으로부터그진공을강차시킴.완전히2개의상지를접수하기까지.익일.초자를전진시킴.연하여수은주를재래면에도말함.(상지의처분)(혹은멸형)기타.수은도말면의변경과전진후퇴의중복등. ETC 이하불상. 진단 0:1 26.10.1931 책임의사 이상 - 時弟九號 매일같이 열풍이 불더니 드디어 내 허리에 큼직한 손이 와 닿는다. 황홀한 지문 골짜기로 내 땀내가 스며드자마자 쏘아라. 쏘으리로다. 나는 내 소화기관에 묵직한 총신을 느끼고 내 다물은 입에 매끈매끈한 총구를 느낀다. 그러더니 나는 총 쏘으드키 눈을 감으며 한방 총탄 대신에 나는 참 나의 입으로 무엇을 내어배앝었더냐. - 時弟十號 찢어진 벽지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그것은 유계(幽界)에 낙역되는 비밀한 통화구다. 어느 날 거울 가운데의 수염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날개 축 처어진 나비는 입김에 어리는 가난한 이슬을 먹는다. 통화구를 손바닥으로 꼭 막으면서 내가 죽으면 앉았다 일어서드키 나비도 날라가리라. 이런 말이 결코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게한다. - 時弟十一號 그 사기컵은 내 해골과 흡사하다. 내가 그 컵을 손으로 꼭 쥐었을 때 내 팔에서는 난데없는 팔 하나가 접목처럼 돋히더니 그 팔에 달린 손은 그 사기컵을 번적 들어 마룻바닥에 메어부딪는다. 내 팔은 그 사기컵을 사수하고 있으니 산산이 깨어진 것은 그럼 그 사기컵과 흠사한 내 해골이다. 가지났던 팔은 배암과 같이 내 팔로 기어들기 전에 내 팔이 혹 움직였던들 홍수를 막은 백지는 찢어졌으리라. 그러나 내 팔은 여전히 그 사기컵을 사수한다. - 時弟十二號 때묻은 빨래 조각이 한 뭉덩이 공중으로 날라 떨어진다. 그것은 흰 비둘기의 떼다. 이 손바닥만한 한 조각 하늘 저편에 전쟁이 끈나고 평화가 왔다는 선전이다. 한 무더기 비둘기의 떼가 깃에 묻은 때를 씻는다. 이 손바닥만한 하늘 이편에 방망이로 흰 비둘기의 떼를 때려 죽이는 불결한 전쟁이 시작된다. 공기에 숯검정이가 지저분하게 묻으면 흰 비둘기의 떼는 도 한번 손바닥만한 하늘 저편으로 날아간다. - 時弟十三號 내 팔이 면도칼을 든 채로 끊어져 떨어졌다. 자세히 보면 무엇에 몹시 위협당하는것처럼 새파랗다. 이렇게 하여 읽어 버린 내 두 개 팔을 나는 촉(燭)대 세움으로 내 방안에 장식하여 놓았다. 팔은 죽어서도 오히려 나에게 겁을 내이는 것만 같다. 나는 이런 얇다란 예의를 화초분보다도 사랑스레 여긴다. - 時弟十四號 고성 앞 풀밭이 있고 풀밭 위에 나는 내 모자를 벗어 놓았다. 성 위에서 나는 내 기억에 꽤 무거운 돌을 매어달아서는 내 힘과 거리껏 팔매질쳤다. 포물선을 역행하는 역사의 슬픈 울음소리. 문득 성 밑 내 모자 곁에 한 사람의 걸인이 장승과 같이 서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걸인은 성 밑에서 오히려 내 위에 있다. 혹은 종합된 역사의 망령인가. 공중을 향하여 놓인 내 모자의 깊이는 절박한 하늘을 부른다. 별안간 걸인은 표표한 풍채를 허리 굽혀 한 개의 돌을 내 모자 속에 치뜨려 넣는다. 나는 벌써 기절하였다. 심장이 두개골 속으로 옮겨가는 지도가 보인다. 싸늘한 손이 내 이마에 닿는다. 내 이마에는 싸늘한 속자국이 낙인되어 언제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 時弟十五號 1. 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역시 외출중이다. 나는 지금 거울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어디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를 하는 중일까. 2. 죄를 품고 식은 침상에서 잤다. 확실한 내 꿈에 나는 결석하였고 의족을 담은 군용 장화가 내 꿈의 백지를 더렵혀 놓았다. 3. 나는 거울 있는 실내로 몰래 들어간다. 나를 거울에서 해방하려고.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침울한 얼굴로 동시에 꼭 들어온다. 거울 속의 나는 내게 미안한 뜻을 전한다. 내가 그 때문에 영이되어 떨고 있다. 4. 내가 결석한 나의 꿈. 내 위조가 등장하지 않는 내거울. 무능이라도 좋은 나의 고독의 갈망자다. 나는 드디어 거울 속의 나에게 자살을 권유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그에게 시야도 없는 등창을 가리키었다. 그 들창은 자살만을 위한 들창이다. 그러나 내가 자살하지 아니하면 그가 자살할 수 없음을 그는 네게 가리친다. 거울 속의 나는 불사조에 가깝다. 5. 내 왼편 가슴 심장의 위치를 방탄 금속으로 엄폐하고 나는 거울 속의 내 왼편 가슴을 겨누어 권총을 발사하였다. 탄환은 그의 왼편 가슴을 관통하였으나 그의 심장은 바른편에 있다. 6. 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내가 지각한 내 꿈에서 나는 극형을 받았다. 내 꿈을 지배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 악수할 수보차 없는 두 사람을 봉쇄한 거대한 죄가 있다.       한個의 밤     여울에서는滔滔한소리를치며 沸流江이흐르고있다. 그水面에아른아른한紫色層이어린다.     十二峰봉우리로遮斷되어 내가서성거리는훨씬後方까지도이미黃昏이깃들어있다 으스름한大氣를누벼가듯이 地下로地下로숨어버리는河流는거무튀튀한게퍽은싸늘하구나.     十二峰사이로는 빨갛게물든노을이바라보이고     鐘이울린다.     不幸이여 지금江邊에黃昏의그늘 땅을길게뒤덥고도 오히려남을손不幸이여 소리날세라新房에窓帳을치듯 눈을감는者나는 보잘것없이落魄한사람.     이젠아주어두워들어왔구나 十二峰사이사이로 하마별이하나둘모여들기始作아닐까 나는그것을보려고하지않았을뿐 차라리 草原의어느一點을凝視한다.     門을닫은것처럼캄캄한色을띠운채 이제沸流江은무겁게도사려앉는것같고 내肉身도千斤 주체할道理가없다.           명경(明鏡)     여기 한페-지 거울이 있으니 잊은 계절에서는 얹은머리가 폭포처럼 내리우고     울어도 젖지 않고 맞대고 웃어도 휘지 않고 장미처럼 착착접힌 귀 들여다보아도 들여다보아도 조용한 세상이 맑기만 하고 코로는 피로한 향기가 오지 않는다.     만적만적 하는 대로 수심이 평행하는 부러 그러는 것 같은 거절 우편으로 옮겨앉은 심장일망정 고동이 없으란 법 없으니     설마 그런? 어디 觸診...... 하고 손이 갈 때 지문이 지문을 가로막으며 선뜩하는 차단뿐이다.     오월이면 하루 한번이고 열 번이고 외출하고 싶어하더니 나갔든길에 안돌아오는 수도 있는 법     거울이 책장 같으면 한 장 넘겨서 맞섰든 계절을 만나련만 여기 있는 한페-지 거울은 페-지의 그냥 표지-           悔恨의 章     가장 무력한 사내가 되기 위해 나는 얼금뱅이였다 세상에 한 여성조차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나의 懶怠는 安心이다.     양팔을 자르고 나의 職務를 회피한다 이제는 나에게 일을 하라는 자는 없다 내가 무서워하는 지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세상에 대한 사표 쓰기란 더욱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문자들을 가둬 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나는 이젠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다 封墳보다도 나의 의무는 적다 나에겐 그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고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무 때문도 보지는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에게도 또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선(線)에 관한 각서(覺書) 2     1+3 3+1 3+1 1+3 1+3 3+1 1+3 1+3 3+1 3+1 3+1 1+3     線上의一點 A 線上의一點 B 線上의一點 C     A+B+C=A A+B+C=B A+B=C=C     二線의交點 A 三線의交點 B 數線의交點 C     3+1 1+3 1+3 3+1 3+1 1+3 3+1 3+1 1+3 1+3 1+3 3+1     (태양광선은, ?렌즈때문에수검광선이되어일점에있어서혁혁히빛나고혁혁히불탔다. 태초의요행은무엇보다도대기의층과층이이루는층으로하여금?렌즈되게하지아니하였던것에있다는것을생각하니낙이된다. 기하학은?렌즈와같은불장난은아닐는지, 유우크리트는사망해버린오늘유우크리트의촛점은도달에있어서인문의뇌수를마른풀같이소각하는수검작용을나열하는것에의하여최대의수거작용을재촉하는위험을재촉한다. 사람은절망하라. 사람은탄생하라. 사람은절망하라)           선(線)에 관한 각서(覺書) 5     사람은광선보다도빠르게달아나면사람은광선을보는가, 사람은광선을본다, 연령의진공에있어서두번결혼한다. 세번결혼하는가, 사람은광선보다도빠르게달아나라.     미래로달아나서과거를본다, 과거로달아나서미래를보는가, 미래로달아나는것은과거로달아나는것과동일한것도아니고미래로달아나는것이과거로달아나는것이다. 확대하는우주를염려한는자여, 과거에살라, 광선보다도빠르게미래로달아나라.     사람은다시한번나를맞이한다. 사람은보다젊은나에게적어도상봉한다. 사람은세번나를맞이한다. 사람은젊은나에게적어도상봉한다. 사람은適宜하게기다리다, 그리고파우스트를즐기거라, 메피스토는나에게있는것도아니고나이다.     속도를조절하는날사람은나를모은다. 무수한나는말(譚)하지아니한다. 무수한과거를경청하는현재를과거로하는것은不遠間이다. 자꾸만반복되는과거, 무수한과거를경청하는무수한과거, 현재는오직과거만을인쇄하고과거는현재와一致하는것은그것들의複數의경우에있어서도구별될수없는것이다.   聯想은處女로하라. 과거를현재로알라. 사람은옛것을새것으로아는도다, 건망이여, 영원한망각은망각을모두구한다.     도래할나는그때문에무의식중에사람에일치하고사람보다도빠르게나는달아난다. 새로운미래는새롭게있다. 사람은빠르게달아난다. 사람은광선을드디어선행하고미래에있어서과거를待期한다. 우선사람은하나의나를맞이하라. 사람은全等形에있어서나를죽이라.     사람은全等形의체조의기술을습득하라, 不然이라면사람은과거의나의파편을如何히할것인가.     사고의파편을반추하라. 不然이라면새로운것은불완전이다, 연상을죽이라, 하나를아는자는셋을아는것을하나를아는것의다음으로하는것을그만두어라, 하나를아는것은다음의하나의것을아는것을하는것을있게하라. 사람은한꺼번에한번을달아나라, 최대한달아나라, 사람은두번분만되기전에xx되기전에조상의조상의성운의성운의성운의태초를미래에있어서보는두려움으로하여사람은빠르게달아나는것을유보한다. 사람은달아난다. 빠르게달아나서영원에살고과거를애무하고과거로부터다시과거에산다. 童心이여, 충족될수야없는영원의동심이여.           애야(哀夜) -나는 한 매춘부를 생각한다     애절하다. 말은 목구멍에 막히고 까맣게 끄을은 홍분이 헐떡헐떡 목이 쉬어서 뒹군다. 개똥처럼. 달이 나타나기 전에 나는 그 도랑 안에 있는 엉성한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눈병이 난 모양이다. 전등불 밑에 菊科植物이 때가 끼어 있었다. 包主마누라는 기름으로 빈들거리는 床 위에 턱을 괴고 굵다란 男性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 뒤를 밟은 놈이 없을까, 하고 나는 包主마누라에게 물어 보았다.     방바닥 위에 한 마리의 고양이의 시체가 버려져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발을 멈추었다. 그것은 역시 고양이였다. 눈이 오듯이 영혼이 조용하게 내려앉고, 고양이는 내 얼굴을 보자 미소를 짓고 있는 듯이 보였는데 그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무서운 ??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내 어린애 똥 같은 우엉과 문어요리와 두 병의 술이 차려져 왔다.     괄약근--이를테면 항문 따위--여자의 입은 괄약근인 모양이다. 자꾸 더 입을 오므리고 있다. 그것을 자기의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코는 어지간히 못생겼다. 바른쪽과 왼쪽 뺨의 살집이 엄청나게 짝짝이다. 금방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얼굴이어서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해 있었더니, 여자는 입술을 조용히 나의 관자놀이 쪽으로 갖고 가서 가볍게 누르면서 마치 입을 맞출 때와 같은 몸짓을 해보였다.     기름냄새가 코에 푸욱 맡혀 왔다. 때마침 천장 가까이 매달려 있는 전등에서 노란 국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나는 극한 속에서처럼 부르르 떨고 있었다. 말도 안 나온다. 바리캉으로 이 머리를 박박 깎아 버리고 말까. 오후 비는 멈추었다.     다만 세상의 여자들이 왜 모두 賣淫婦가 되지 않는지 그것만이 이상스러워 못 견디겠다. 나는 그녀들에게 얼마간의 지폐를 교부할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손이 새파랗다. 조그맣게 되어 가지고 새로운 주름살까지도 보이고 있다. 여자는 나의 손을 잡았다. 고급장갑을 줍는 것처럼-- 그리고 나한테 속삭였다. 그것은 너무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서 나에겐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벌써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일이었고 하나만 있는 일일 것이다. 내 마음 속의 불량기는 벌써 無料로 자리에 앉아 있다. 전신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나의 목구멍 속에서 헐떡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여자의 체중을 盜取했다. 그것은 달마인형처럼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나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었다. 白紙는 까많게 끄슬려 있었다. 그 위를 땅의 행렬이 천근 같은 발을 끌고 지나갔다.     분주한 발걸음소리가 나고 창들의 장막은 내려졌다. 자색 광선이 요염하게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온통 황색이었다. 손가락은 가야 할 곳으로 갔다. 눈을 감은 병사는 개흙진 沼澤地로 발을 들여 놓았다. 뒤에서 뒤에서 자꾸 밀려드는 陶醉와 같은 실책. 피의 빛을 오색으로 화려하게 하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는 어린애와 같은 失足-- 진행해 감으로써 그것은 완전히 정지되어 있었다. 술은 대체 누구를 위해서 차려온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기는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이 명백하지만. 여자는 흡사 치워 버리기나 하는 것처럼 술을 다 마셔 버렸다. 홍수와 같은 동작이다. 그리고 간간이 그 페스트 같은 우엉을 괄약근 사이에다 집어넣었다. 이 여자는 이 형편없는 비위생 때문에 금방 병에 걸려 벌떡 소처럼 쓰러지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여자는 화려한 얼굴을 하고 있다.     배가 고픈 모양이다. 나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는 없다. 나는 그런 혜안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면 역시 얼마나 石碑 같은 체중이겠는가.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이만 술로 여자는 취할 것 같지 않다. 또한 여자는 자주 내가 한시바삐 취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여자의 면전에서 浮沈하고 있었던 표적이 실종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는데. 마음을 튼튼히 갖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호주머니 속의 은화를 세었다. 재빠르게-- 그리고 채촉했다. 선금주문인 것이다. 여자의 얼굴은 한결 더 훤하다. 脂粉은 고귀한 직물처럼 찬란한 光芒조차 발했다. 향기 풍부하게--     하나 이 은화로 교부될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있다. 이만저만한 바보가 아니다. 그러자 갑자기 여자의 두 볼은 둔부에 있는 그것처럼 깊은 한 줄씩의 주름살을 보였다. 기괴한 일이다. 여자는 도대체 이렇게 하고 웃으려고 하는 것이다. 골을 내려고 하는 것인가 위협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결국 울려고 하는 것인가. 나에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위협이다. 여자는 일어났다. 그리고 흘깃 내 쪽을 보았다. 어떻게 하려는가 했더니 선 채로 내 위로 버럭 덮쳐 왔다. 이것은 틀림없이 나를 압사하려고 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손을 허공에 내저으면서 바보 같은 비명을 울렸다. 말(馬)의 체취가 나를 독살시킬 것만 같다. 놀랐던 모양이다. 여자는 비켜났다. 그리고 지금의 것은 구애의 혹은 애정에 보답하는 표정이라는 것을 나에게 말했다. 나는 몸에 오한을 느끼면서도 억지로 부드럽게 웃는 낯을 해 보였다. 여자는 알겠다는 것의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아-- 얼마나 무섭고 純重한 사랑의 제스처일까. 곧 여자는 나가 버렸다. 찰싹찰싹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장지문 너머에서 고양이의 신음소리가 심각하다. 아무래도 한 마리인 것 같다. 실없는 놈들이다.     말-- 말이다. 쌍말이다. 땀에 젖은 瘡痍투성이의 쌍말임에 틀림없다. 구멍은 없는가. 유령처럼 그 속에서 도망쳐 나가고 싶다. 하지만 여기가 정작 참아야 할 내가. 될 수 있는 대로 흥분해 보자. 밟혀 죽을 게 아닌가. 튼튼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뼈가 있다. 뼈는 여자를 매혹할 것이다. 消毒箸를 집어서 새까만 우엉을 하나 집어 본다. 역청에 담갔던 것처럼 끈적끈적하고 달아 보인다. 입은 그것을 기다린다. 무섭게 짜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다. 여자가 들어온다. 나는 그것을 맞이할 수가 없다. 나의 얼굴 전체가 짜기 때문이다. 여자는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나는 답변하기가 거북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이 없느냐고 말했다. 여자는 사람을 흔들어 깨듯이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있다. 나는 한 모금 마셨다. 고추장이 먹고 싶다.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 그러자 여자의 백치 비슷한 표정마저도 꿈같이 그리웁게 보인다. 여자는 환상 속에서 고향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말한테서는 垈土와 거름냄새가 났다.         황(?)     1.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멈춰 있다. ...... 모이를 주자...... 나는 단장을 부러뜨렸다. 아문젠옹의 식사처럼 메말라 있어라 x 아하 ...... 당신은 Mademoiselle Nashi 를 아시나요. 난 그 여자 때문에 유폐돼 있답니다...... 나는 숨을 죽였다. ...... 아니야 영 틀린 것 같네...... 개는 舊式스러운 권총을 입에 물고 있다 그것을 내 앞에 내민다...... 제발 부탁이니 그 여잘 죽여다오 제발 부탁이니...... 하고 쓰러져 운다.     어스름속을 헤치고 공복을 나르는 나의 隱袋는 무겁다...... 나는 어떡하면 좋을까...... 내일과 내일과 다시 내일을 위해 난 깊은 침상에 빠졌다. 발견의 기쁨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빨리 발견의 두려움으로 하여 슬픔으로 바뀌었는가에 대하여 나는 숙고하기 위해 나는 나의 꿈마저도 나의 龕室로부터 추방했다. 우울이 계속되었다 겨울이 가고 이윽고 다람쥐 같은 봄이 와서 나를 피해갔다 나는 권총처럼 꺼멓게 여윈 몸뚱이를 깊은 衾枕속에서 일으키기란 불가능했다. 꿈은 여봐라고 나를 혹사했다. 탄알은 지옥의 마른 풀처럼 시들었다. --건강체 인 채--     2. 나는 개 앞에서 팔뚝을 걷어붙여 보았다. 맥박의 몽테 크리스토처럼 뼈를 파헤치고 있었다...... 나의 墓堀 4월이 절망에게 MICROBE와 같은 희망을 플러스한데 대해, 개는 슬프게 이야기했다. 꽃이 매춘부의 거리를 이루고 있다. ...... 안심을 하고...... 나는 피스톨을 꺼내보였다. 개는 백발노인처럼 웃었다...... 수염을 단 채 떨어져 나간 턱.     개는 솜(綿)을 토했다. 벌(蜂)의 충실은 진달래를 흩뿌려 놓았다. 내 일과의 중복과 함께 개는 나에게 따랐다. 들과 같은 비가 내려도 나는 개와 만나고 싶었다...... 개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개와 나는 어느새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 죽음을 각오하느냐, 이 삶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느니라...... 이런 값 떨어지는 말까지 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개의 눈은 마르는 법이 없다. 턱은 나날이 길어져 가기만 했다.     3. 가엾은 개는 저 미웁기 짝없는 문패 표면밖에 보지 못한다. 개는 언제나 그 문패 이면만을 바라보고는 분노와 염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했다. ...... 나는 내가 싫다...... 나는 가슴 속이 막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는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 어디?...... 개는 고향 얘기를 하듯 말했다. 개의 얼굴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 동양 사람도 왔었지. 나는 동양 사람을 좋아했다. 나는 동양 사람을 연구했다. 나는 동양 사람의 시체로부터 마침내 동양문자의 奧義를 발굴한 것이다...... ...... 자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말하자면 내가 동양 사람이라는 단순한 이유이지?...... ...... 얘기는 좀 다르다. 자네, 그 문패에 씌어져 있는 글씨를 가르쳐 주지 않겠나? ...... 지워져서 잘 모르지만, 아마 자네의 생년월일이라도 씌어져 있었겠지. ...... 아니 그것뿐인가?...... ...... 글쎄, 또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자네 고향 지명 같기도 하던데, 잘은 모르겠어......     내가 피우고 있는 담배 연기가, 바람과 양치류 때문에 수목과 같이 사라지면서도 좀체로 사라지지 않는다. ...... 아아, 죽음의 숲이 그립다...... 개는 안팎을 번갈아가며 뒤채어 보이고 있다. 오렌지빛 구름에 노스텔지어를 호소하고 있다.           무제(無題)     故王의 땀...... 모시수건으로 닦았다...... 술잔을 넘친 물이 콘크리트 수채를 흐르고 있는 게 말할 수 없이 정다워 난 아침마다 그 철조망 밖을 걸었다. 야릇한 헛기침 소리가 아침 이슬을 굴리었다 그리고 순백 유니폼의 소프라노 내 산책은 어쩐 일인지 끊기기 일쑤였다 열 발짝 또는 네 발작 나중엔 한 발짝의 반 발짝...... 눈을 떴을 땐 전등이 마지막 쓰게[被物]를 벗어 버리고 있는 참이었다. 땀이 꽃 속에 꽃을 피우고 있었다. 폐문시각이 지나자 열풍이 피부를 빼앗았다.     기러기의 분열과 함께 떠나는 낙엽의 귀향 散兵...... 몽상하기란 유쾌한 일이다...... 祭天의 발자국 소리를 작곡하며 혼자 신이 나서 기뻐하였다 차가운 것이 뺨 한 가운데를 깎았다. 그리고 그 철조망엘 몇 바퀴나 가서 低徊하였다. 야릇한 헛기침소리는 또다시 부뚜막에 생나무를 지피고 있다 눈과 귀가 토끼와 거북처럼 그 철조망을 넘어 풀숲을 헤쳐 갔다. 第一의 玄?. 녹슬은 金環. 가을을 잊어버린 양치류의 눈물. 薰?來往 아침해는 어스름에 橙汁을 띄운다. 나는 第二의 玄?에게 차가운 발바닥을 비비었다. 金環은 千秋의 恨을 들길에다 물들였다. 階□의 刻字는 안질을 앓고 있다-- 백발노인과도 같이...... 나란히 앉아 있다. 야릇한 헛기침소리는 眼前에 있다 과연 야릇한 헛기침소리는 眼前에 있었다 한 마리의 개가 쇠창살 안에 갇혀 있다 양치류는 선사시대의 만국기처럼 무쇠우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한가로운 아방궁 뒤뜰이다. 문패-- 나는 이 문패를 간신히 발견했다고나 할까--에 年號 같은 것이 씌어져 있다. 새한테 쪼아먹힌 문자 말고도 나는 아라비아 숫자 몇 개를 읽어낼 수 있었다.           斷章(단장)     실내의 조명이 시계 소리에 망가지는 소리 두 時 친구가 뜰에 들어서려 한다 내가 말린다 十六日 밤 달빛이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바람 부는 밤을 친구는 뜰 한복판에서 익사하면서 나를 위협한다. 탕 하고 내가 쏘는 一發 친구는 粉碎했다. 유리처럼(반짝이면서) 피가 圓面(뜰의)을 거멓게 물들였다. 그리고 방 안에 범람한다. 친구는 속삭인다. --자네 정말 몸조심해야 하네-- 나는 달을 그을리는 구름의 조각조각을 본다 그리고 그 저 편으로 탈환돼 간 나의 호흡을 느꼈다. ○ 죽음은 알몸뚱이 엽서처럼 나에게 배달된다 나는 그 제한된 답신밖엔 쓰지 못한다. ○ 양말과 양말로 감싼 발-- 여자의--은 비밀이다 나는 그 속에 말이 있는지 아닌지조차 의심한다. ○ 헌 레코오드 같은 기억 슬픔조차 또렷하지 않다.           각혈의 아침     사과는 깨끗하고 또 춥고 해서 사과를 먹으면 시려워진다. 어째서 그렇게 냉랭한지 책상 위에서 하루 종일 색깔을 변치 아니한다 차차로-- 둘이 다 시들어 간다.     먼 사람이 그대로 커다랗다 아니 가까운 사람이 그대로 자그마하다 아니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그 어느 누구와도 알지 못하니 말이다 어니 그들의 어느 하나도 나를 알지 못하니 말이다 아니 그 어느 쪽도 아니다(레일을 타면 전차는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담배 연기의 한 무더기 그 실내에서 나는 긋지 아니한 성냥을 몇 개비고 부러뜨렸다. 그 실내의 연기의 한 무더기 점화되어 나만 남기고 잘도 타나보다 잉크는 축축하다 연필로 아무렇게나 시커먼 면을 그리면 鉛粉은 종이 위에 흩어진다.     리코오드 고랑을 사람이 달린다 거꾸로 달리는 불행한 사람은 나 같기도 하다 멀어지는 음향소리를 바쁘게 듣고 있나보다 발을 덮는 여자 구두가 가래를 밟는다 땅에서 빈곤이 묻어온다 받아 써서 통념해야 할 암호 쓸쓸한 초롱불과 우체국 사람들이 수명을 거느리고 멀어져 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나의 뱃속에 통신이 잠겨 있다. 새장 속에서 지저귀는 새 나는 콧속 털을 잡아뽑는다 밥 소란한 정적 속에서 미래에 실린 기억이 종이처럼 뒤엎어진다 벌써 나는 내 몸을 볼 수 없다 푸른 하늘이 새장 속에 있는 것 같이 멀리서 가위가 손가락을 연신 연방 잘라 간다 검고 가느다란 무게가 내 눈구멍에 넘쳐 왔는데 나는 그림자와 서로 껴안는 나의 몸뚱이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알맹이까지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는둥 피가 물들기 때문에 여윈다는 말을 듣곤 먹지 않았던 일이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종자는 이제 심어도 나지 않는고 단정케 하는 사과 겉껍질의 빨간 색 그것이다. 공기마저 얼어서 나를 못 통하게 한다 뜰을 鑄型처럼 한 장 한 장 떠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호흡에 탄환을 쏘아넣는 놈이 있다 병석에 나는 조심조심 조용히 누워 있노라니까 뜰에 바람이 불어서 무엇인가 떼굴떼굴 굴려지고 있는 그런 낌새가 보였다 별이 흔들린다 나의 기억의 순서가 흔들리듯 어릴 적 사진에서 스스로 병을 진단한다     가브리엘 天使菌(내가 가장 불세출의 그리스도라 치고) 이 살균제는 마침내 폐결핵의 혈흔이었다(고?)     폐속 페인트 칠한 십자가가 날이면 날마다 발돋움을 한다 폐속엔 요리사 천사가 있어서 때때로 소변을 본단 말이다 나에 대해 달력의 숫자는 차츰차츰 줄어든다     네온사인은 색소폰 같이 야위었다 그리고 나의 청맥은 휘파람 같이 야위었다     하얀 천사가 나의 폐에 가벼이 노크한다. 황혼 같은 폐속에서는 고요히 물이 끓고 있다 고무전선을 끌어다가 성베드로가 도청을 한다 그리곤 세 번이나 천사를 보고 나는 모른다고 한다 그때 닭이 홰를 친다-- 어엇 끊는 물을 엎지르면 야단 야단--     봄이 와서 따스한 건 지구의 아궁이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모두가 끓어오른다 아지랑이처럼 나만이 사금파리 모양 남는다 나무들조차 끓어서 푸른 거품을 자꾸 뿜어내고 있는데도           황(?)의 記 -?은 나의 목장을 수호하는 개의 이름이다. (1931년 11월 3일 命名)     記 一     밤이 으슥하여 ?이 짖는 소리에 나는 숙면에서 깨어나 옥외 골목까지 황을 마중 나갔다. 주먹을 쥔 채 떨어진 한 개의 팔을 물고 온 것이다. 보아하니 황은 일찍이 보지 못했을 만큼 몹시 창백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주치의 R의학박사의 오른팔이었다. 그리고 그 주먹 속에선 한 개의 훈장이 나왔다. --犧牲動物供養碑 除幕式紀念-- 그런 메달이었음을 안 나의 기억은 새삼스러운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개의 腦髓 사이에 생기는 연락신경을 그는 癌이라고 완고히 주장했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그의 창으로 뛰어난 메스의 기교로써 그 信經腱을 잘랐다. 그의 그 같은 이원론적 생명관에는 실로 철저한 데가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가 얼마나 그 紀念章을 그의 가슴에 장식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는가는 그의 장례식 중에 분실된 그의 오른팔--현재 황이 입에 물고 온--을 보면 대충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래 그가 공양비 건립기성회의 회장이었다는 사실은 무릇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균형한 건축물들로 하여 뒤얽힌 병원 구내의 어느 한 귀퉁이에 세워진 그 공양비의 쓸쓸한 모습을 나는 언제던가 공교롭게 지나는 길에 본 것을 기억한다. 거기에 나의 목장으로부터 호송돼 가지곤 解剖舞의 이슬로 사라진 숱한 개들의 한 많은 혼백이 뿜게 하는 살기를 나는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더더구나 그의 수술실을 찾아가 예의 황의 절단을 그에게 의뢰했던 것인데-- 나는 황을 꾸짖었다. 주인의 苦悶相을 생각하는 한 마리 축생의 인정보다도 차라리 이 경우 나는 사회 일반의 예절을 중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를 잃은 후에 나에게 올 자유-- 바로 현재 나를 염색하는 한 가닥의 눈물-- 나는 흥분을 가까스로 진압하였다. 나는 때를 놓칠세라 그 팔 그대로를 공양비 부근에 묻었다. 죽은 그가 죽은 동물에게 한 본의 아닌 계약을 반환한다는 형식으로......     記 二     봄은 5월 화원시장을 나는 황을 동반하여 걷고 있었다. 玩賞花草 종자를 사기 위하여...... 황의 날카로운 후각은 파종후의 성적을 소상히 예언했다. 진열된 온갖 종자는 不發芽의 불량품이었다. 하나 황의 후각에 합격된 것이 꼭 하나 있었다. 그것은 대리석 모조인 종자 모형이었다. 나는 황의 후각을 믿고 이를 마당귀에 묻었다. 물론 또 하나의 불량품도 함께 시험적 태도로-- 얼마 후 나는 逆倒病에 걸렸다. 나는 날마다 인쇄소의 활자 두는 곳에 나의 病軀를 이끌었다.     지식과 함께 나의 病집은 깊어질 뿐이었다. 하루 아침 나는 식사 정각에 그만 잘못 假睡에 빠져 들어갔다. 틈을 놓치려 들지 않는 황은 그 금속의 꽃을 물어선 나의 半開의 입에 떨어뜨렸다. 시간의 습관이 식사처럼 나에게 眼藥을 무난히 넣게 했다. 病집이 지식과 중화했다-- 세상에 교묘하기 짝이 없는 치료법-- 그 후 지식은 급기야 좌우를 겸비하게끔 되었다.     記 三     腹話術이란 결국 언어의 저장창고의 경영일 것이다.     한 마리의 축생은 인간 이외의 모든 뇌수일 것이다. 나는 뇌수가 擔任 지배하는 사건의 대부분을 나는 황의 위치에 저장했다-- 냉각되고 가열되도록-- 나의 규칙을-- 그러므로-- 리트머스지에 썼다. 배-- 그 속-- 의 結晶을 가감할 수 있도록 소량의 리트머스액을 나는 나의 식사에 곁들일 것을 잊지 않았다. 나의 배의 발언은 마침내 삼각형의 어느 정점을 정직하게 출발했다.     記 四     황의 나체는 나의 나체를 꼬옥 닮았다. 혹은 이 일은 이 일의 반대일지도 모른다. 나의 목욕시간은 황의 근무시간 속에 있다. 나는 穿衣인 채 욕실에 들어서 가까스로 욕조로 들어간다. --벗은 옷을 한 손에 안은 채-- 언제나 나는 나의 조상--육친을 위조하고픈 못된 충동에 끌렸다. 치욕의 계보를 짊어진 채 내가 해체대의 이슬로 사라진 날은 그 어느 날에 올 것인가?     피부는 한 장밖에 남아있지 않다. 거기에 나는 파란 잉크로 함부로 筋을 그렸다. 이 초라한 포장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해골에 대하여...... 묘지에 대하여 영원한 景致에 대하여     달덩이 같은 얼굴에 여자는 눈을 가지고 있다. 여자의 얼굴엔 입맞춤할 데가 없다. 여자는 자기 손을 먹을 수도 있었다.     나의 식욕은 일차방정식 같이 간단하였다. 나는 곧잘 色彩를 삼키곤 한다. 투명한 광선 앞에서 나의 미각은 거리낌없이 表情한다. 나의 공복은 음악에 공명한다-- 예컨대 나이프를 떨군다--     여자는 빈 접시 한 장을 내 앞에 내놓는다--(접시가 나오기 전에 나의 미각은 이미 요리를 다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여자의 구토는 여자의 술을 뱉어낸다. 그리고 나에게 대한 체면마저 함께 뱉어내고 만다.(오오 나는 웃어야 하는가 울어야 하는가) 요리인의 단추는 오리온좌의 略圖다. 여자의 육감적인 부분은 죄다 빛나고 있다. 달처럼 반지처럼 그래 나는 나의 신분에 알맞게 나의 표정을 절약하고 겸손해 한다. 帽子-- 나의 모자 나의 疾床을 감시하고 있는 모자 나의 사상의 레테르 나의 사상의 흔적 너는 알 수 있을까? 나는 죽는 것일까 나는 이대로 죽어야 하는 것일까 나의 사상은 네가 내 머리 위에 있지 아니하듯 내 머리에서 사라지고 없다.   모자 나의 사상을 엄호해 주려무나! 나의 데드마스크엔 모자는 필요 없게 될 터이니까! 그림 달력의 장미가 봄을 준비하고 있다. 붉은 밤 보랏빛 바탕 별들은 흩날리고 하늘은 나의 쓰러져 객사할 광장 보이지 않는 별들의 嘲笑 다만 남아 있는 오리온좌의 뒹구는 못[釘] 같은 星員 나는 두려움 때문에 나의 얼굴을 변장하고 싶은 오직 그 생각에 나의 꺼칠한 턱수염을 손바닥으로 감추어 본다.     정수리 언저리에서 개가 짖었다. 불성실한 지구를 두드리는 소리 나는 되도록 나의 五官을 취소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을 포기한 나는 기꺼이-- 나는 종족의 번식을 위해 이 나머지 세포를 써버리고 싶다. 바람 사나운 밤마다 나는 차차로 한 묶음의 턱수염 같이 되어 버린다. 한 줄기 길이 산을 뚫고 있다. 나는 불 꺼진 탄환처럼 그 길을 탄다. 봄이 나를 뱉어낸다. 나는 차가운 압력을 느낀다. 듣자 하니-- 아이들은 나무 밑에 모여서 겨울을 말해 버린다. 화살처럼 빠른 것을 이 길에 태우고 나도 나의 불행을 말해 버릴까 한다. 한 줄기 길에 못이 서너 개-- 땅을 파면 나긋나긋한 풀의 준비-- 봄은 갈갈이 찢기고 만다.             날개 - 단편소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만을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로니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파라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 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상채기도 머지 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우즈'. (그 '포우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 '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함이 되오? 굿바이.   - 이하 생략 -    
286    명시인 - 파울 첼란 댓글:  조회:4644  추천:0  2015-05-01
시간의 눈 -파울 첼란(1920~70)  이건 시간의 눈 일곱 빛일까 눈썹 아래서 곁눈질을 한다 그 눈꺼풀은 불로 씻기고 그 눈물은 김이다.  눈먼 별이 날아와 닿아 뜨거운 속눈썹에서 녹으니 세상이 따뜻해지리 죽은 이들이 봉오리 틔우고 꽃 피우리.  시간은 지속하는 것의 분할이다. 삶이 지속하는 ‘지금’을 무한으로 쪼갠다면, 해에서 달로, 달에서 주로, 주에서 날로, 날에서 시간으로, 시간에서 분으로, 분에서 초로, 초에서 밀리초로, 밀리초에서 나노초로, 나노초에서 펨토초로 미세한 분할이 가능하다. 인생 짧다고 한탄하지 마라! 펨토초의 차원에서 삶은 거의 무한이고 영겁이다. 어떤 사람에겐 그 무한과 영겁을 감당할 내구성이 부족하다. 파울 첼란은 가족을 나치의 가스 처형실에서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죽은 이들이 봉우리 틔우고 꽃 피우기를 바랐다. 첼란은 이 불가능한 꿈을 안고 흐르는 삶을 견디지 못하고 나이 쉰에 세느강에 투신자살한다. 파울 첼란       파울 첼란 파울 첼란(Paul Celan, 1920년~1970년)은 루마니아 출생의 독일어 시인이다.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전쟁으로 중단하고 소련군 점령 후에는 빈으로 피신하여, 그 곳에서 최초의 시집을 발표하였다(1947). 1948년에 프랑스 시민권을 얻어 파리에서 살면서 프랑스어·러시아어(語) 어학교사 겸 번역가로 일하면서 시인으로 활약하였다. 그의 시는 시선(視線)이 포착(捕捉)한 사물을 금욕적이라 할 만큼 응축된 시어에 정착케 하는 투명함과 순수함을 갖는 것으로 독일 현대시 가운데 이채를 발하는 존재이다. 주저(主著)로는 시집 (1952), (1955), (1959) 등이 있다. 세계의 명시/ 파울 첼란 죽음의 푸가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아침에 또 점심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공중에선 비좁지 않게 눕는다 그가 외친다 더욱 깊이 땅나라로 파 들어가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연주하라 그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는다 그가 총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파랗다 더 깊이 삽을 박아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계속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낮에 또 아침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가 외친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가 외친다 더 어둡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오른다 그러면 너희는 구름 속에 무덤을 가진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점심에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저녁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의 눈은 파랗다 그는 너를 맞힌다 납 총알로 그는 너를 맞힌다 정확하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타락 마르가레테 그는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사냥개들을 몰아댄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 하나를 선사한다 그는 뱀들을 가지고 논다 또 꿈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마르가레테는 전형적인 독일 여인 이름이고, 줄라미트는 전형적인 유대 여인 이름이다. 출전 : ,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11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를 읽고 그린 헝가리 화가 라슬로 라크너(László Lakner, 1936-1974)의 . 시를 말하다 문태준 l 시인 파울 첼란의 시를 읽는 일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그의 시에는 비의(悲意)가 꽉 차 있다. 한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제(우리)가 어디 있으며 저(우리)를 끌고 가는 힘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저(우리) 자신을 위한 현실을 기획하기 위해” 창작된 그의 작품들은 아우슈비츠라는 비극적 사건을 출발의 지점으로 삼고 있다. 그의 유대인 부모는 나치 수용소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다 죽었고, 그 또한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을 뻔한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이런 우울한 개인사로 인해 그의 시는 많은 경우 시간을 뚫고, 무언가를 마주해, “말을 건넬 수 있는 현실 하나를 향해”, 자기 자신의 “현존하는 경사각(傾斜角)” 아래서, 타자에게로 나아갔다. 인간 이성의 폭력성과 야만성에 맞서서. 파울 첼란의 시에서 아우슈비츠라는 역사적 비극의 화인(火印)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남녘 만(灣)의 물은 아직 알고 있을까요,/ 어머니, 당신에게 상처를 남긴 파도를?”(‘무덤')에서 “남녘 만”은 유대인들이 송치되었던 지역인 드네프르 강 연안을 연상하게 하고, “그들은 파고 또 팠다, 그렇게 하여/ 그들의 낮이 가버렸고, 밤 또한 갔다. 그들은 신을 찬양하지 않았다,/ 그들이 듣기로 이 모든 것을 뜻했다는 이/ 그들이 듣기로 이 모든 것을 알았다는 이.”(‘그들 속에 흙이 있었다’)라는 시구나 “천막 앞에 백 명의 병사가 집합하고, 우리는 마시며 너를 무덤으로 나른다./ 이제 세상의 석판 위에서 꿈의 단단한 은화가 쨍그렁 울린다.”(‘마리아네')라고 쓴 대목에서 우리는 강제노역에 동원된 유대인들의 참상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가 주로 동원하는 시어들을 살펴보아도 그의 내상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창살, 꺾인 무릎, 어둠, 뒤엉킴, 박해, 파괴, 울부짖음, 광란, 유골 항아리, 포획, 교살, 꺼진 눈, 수의, 가묘(假墓), 휘몰아치는 바람 등의 시어들은 그에게 상흔의 언어들이었던 것이다. 파울 첼란 시에서 ‘돌'과 ‘돌들'은 이러한 위협에 노출되고야 마는 개별적 존재 혹은 집단을 뜻하는 것으로 각별하게 읽힌다. 그의 시에서 ‘돌’은 ‘돌들’이라는 무더기를 이루면서 서로를 연대하여 보호하지만, 어느 순간 외부적 요인인 강압적 물리력에 의해 와해되고 사멸할 위기에 빠지고 만다. “오, 이 돌 언덕, 사랑아,/ 우리가 쉼 없이 구르는 곳,/ 돌인 우리가,/ 얕은 물줄기에서 물줄기로,/ 한 번 구를 때마다 더 둥글게,/ 더 비슷하게, 더 낯설게.”(‘돌 언덕’)라고 썼던 시인은 “어느 돌을 네가 들든―/ 너는 드러내 버린다,/ 돌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벌거벗긴/ 그들은 이제 짜임을 새롭게 한다,”라고 동시에 쓰고 있는 것이다. 시 ‘죽음의 푸가’는 원래 제목이 ‘죽음의 탱고’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7년 한 잡지에 발표되었다가 1952년 펴낸 시집 에 수록되었다. 이 시를 통해서도 우리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벌어졌을 법한 비참상을 그려 볼 수 있다. 이 시에는 지극히 수세에 몰려 있는 ‘우리’와 점점 지시와 요구가 난폭해지는 ‘한 남자’가 대치 관계 아래 등장한다. ‘우리’가 하는 행위는 검은 우유를 마시는 것, 무덤을 파는 것뿐이다. 순종을 버리고 맞서서 반항할 위치에 있지 않다. ‘검은 우유’는 죽음의 은유로 읽힌다. ‘무덤’은 학살당한, 무력하기만 했던 이들의 시체가 묻힐 매장지로 읽힌다. 이에 반해 ‘한 남자’는 몹시 거칠고 사나운 권력자의 함의로 읽힌다. 적의에 차 명령하는 그는 뱀을 갖고 있고, 사냥개를 불러내고, 마침내 살해하고, 주검을 묻게 한다. ‘마르가르테’는 독일 여인을, ‘줄라미트’는 유대 여인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이 둘의 관계는 ‘한 남자’와 ‘우리’의 관계 그것과 대위적으로 진행되고 이해된다. 이 시를 통해 우리가 듣게 되는 것은 그 어떤 ‘호곡(號哭)’이다. ‘마신다’, ‘판다’ 등 동작어의 규칙적인 반복은 잔인함과 처참함의 절정으로 몰아가면서 독자들을 더 강도 높게 전율케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라슬로 라크너, . 이반 골(Iwan Goll)과의 표절 시비에 휩싸여 생의 의욕과 활력을 소모한 파울 첼란은 유대 신학과 신비주의를 접하고 또 이스라엘 방문을 계기로 힘을 얻는 듯했으나 입원 생활은 반복되었고 결국 1970년 센 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시는 죽음의 대성황을 보여 주었고 한 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역사적 고통의 최대치를 보여 주었지만, 한 평자의 지적처럼 타자의 고통을 향해 열린 ‘대화의 문학’이기도 했다. 다음의 시에서 우리는 그가 갈망한, 그러나 꺾인 한 줄의 희망과 유토피아를 읽을 수 있다. “그대 나를 안심하고/ 눈(雪)으로 대접해도 좋다./ 내가 어깨에 어깨 걸고/ 뽕나무와 여름을 지날 때마다/ 그 갓 돋은/ 잎이 소리 질렀거든.”(‘그대 나를')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 1920년 루마니아 북부 부코비나의 체르노비츠에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물한 살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체르노비츠가 유대인 거주 지역(게토)으로 확정됐으며 독일군이 도시를 점령한 후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갈 때 첼란의 가족도 포함됐다. 강제노역을 하던 중 부모가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첼란 역시 가스실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이후 끔찍한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이어 갔다. 종전 후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번역과 출판 일을 하다가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가 첫 시집 를 발표했다. 1948년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여 센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기까지 꾸준히 시작(詩作) 활동을 해 모두 7권의 독일어 시집을 남겼다. 1958년 브레멘 문학상을, 1960년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했다.   라라와복래가 좋아하는 첼란의 시 몇 편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 캔버스에 유채와 짚, 1981. 키퍼는 과거사와 논쟁하며 현대사에서 터부시되는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뤄 왔다. 나치 통치와 연관된 주제들이 특히 그의 작품세계에 잘 나타난다. 작품 ()는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에서 영감을 받았다. 첼란의 시는 침묵을 통해 극도의 경악을 말하고자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어떠한 서정시도 쓰일 수 없다는 (나의) 말은 잘못이었다. — 테오도어 아도르노 꽃 돌, 내가 쫓아간 공중의 돌, 돌처럼 눈먼 너의 눈. 우리는 손이었다. 우리는 어둠을 공허하게 창조하였다, 우리는 여름을 건너 찾아온 말을 발견하였다. 꽃. 꽃― 눈먼 자의 말. 너의 눈과 나의 눈, 이들은 물을 걱정한다. 성장. 마음의 벽마다 낙엽진다. 이처럼 또 한 마디 말, 그리고 망치는 야외에서 흔들거린다. 이슬 이슬, 그리고 나는 너와 더불어 누워 있었다. 쓰레기 더미 속의 너. 축축한 달이 우리에게 응답을 던져주었다. 우리는 서로 부서져 나갔다 우리는 다시금 하나로 부셔졌다. 주님은 빵을 자르고, 빵은 주님을 잘랐다. 찬미가 누구도 다시 흙과 진흙으로 우리를 빚지 않으리라. 누구도 우리의 먼지에 관해 말하지 않으리라. 누구도. 누구도 아닌 자여, 당신은 찬양받을지어다. 당신을 위해 우리는 피어나려 하나이다. 당신을 향해. 우리는 무(無)였고, 무(無)이며, 무(無)로 남을 것입니다. 꽃을 피우며, 무(無)의 장미, 누구의 것도 아닌 장미. 영혼의 해맑은 줄기, 하늘의 황량한 꽃실, 빨간 화관(花冠)을 지닌. 우리가 노래 부른 자색(紫色) 단어 위에서, 오 가시 위에서 나뭇잎 하나 나무 없는 나뭇잎 하나,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위해. 그렇게도 많은 말해진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대화가 거의 범죄처럼 되어버린 곳에서, 이 무슨 시간들인가?  
285    송강 정철 <속미인곡> 댓글:  조회:4254  추천:0  2015-04-26
전용뷰어 보기         속 미  인 곡 / 續 美 人 曲   시대:  조선(朝鮮)                 유형 : 작품(作品) 성격 : 가사(歌詞)                작가 : 정철(鄭澈) 창작·발표연도 : 1585∼1589 선조(宣祖)         [1] 작품해설 조선 선조 때 정철(鄭澈)이 지은 가사. 4음보 1행으로 따져 48행이며, 기본 율조는 3·4조가 우세하다. 작품 연대는 정철의 나이 50세(1585)에서 54세(1589) 사이로 추측되고 있다. 군왕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은유적(隱喩的)으로 노래하였다.     이 작품은 『송강가사 松江歌辭』라는 판본에 수록되어 있다. 『송강가사』에는 이외에도 『관동별곡 關東別曲』·『사미인곡 思美人曲』·『성산별곡 星山別曲』 등의 가사와 아울러 그의 시조작품 여러 편이 함께 실려 있다.     『송강가사』는 성주본(星州本)·이선본(李選本)·관서본(關西本) 등의 이본(異本)이 현전하고 있다. 그 밖에 관북본(關北本)·의성본(義城本)·황주본(黃州本) 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전하는 세 이본간의 표기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가사의 내용 전개는 대화체로 되어 가사문학 구성에 있어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2] 작품구성 서두는 먼저 갑녀(甲女)로 표시할 수 있는 시중의 한 화자가 을녀(乙女)로 표시할 수 있는 여인에게 “뎨 가 뎌 각시 본 듯도 뎌이고”라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어서 천상 백옥경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해가 다 저물어가는 날에 누구를 보러 가느냐고 묻는 데에서 두 여인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에 을녀는 “아, 너로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보게. 임이 예쁘지도 않은 나를 사랑하여 그만 내가 너무 버릇없이 굴다가 임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으니 그것은 조물의 탓일 것일세.”라고 하면서 자탄(自歎)한다 .   을녀의 말을 듣고서 갑녀는 “그게 아니라 임에게 맺힌 일이 있다.”라고 하여 을녀의 생각을 고쳐 준다.   그러나 을녀는 “나도 임을 뫼셔 보아 임의 사정을 잘 아나 지금 임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며, 독수공방하는 내 신세도 처량하며 차라리 낙월(落月)이나 되어 임의 창밖에 비추어 보고 싶다.”고 토로한다. 이에 대하여 갑녀는 “달빛도 좋지마는 궂은 비나 되라.”고 권하는 것으로 가사의 끝을 맺고 있다.   이러한 대화의 분석은 연구자에 따라 다소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김사엽(金思燁)이 갑녀의 사설, 을녀의 사설, 갑녀의 사설로 삼분하여 『속미인곡』의 구조를 설명하려 한 것이 그러한 예의 하나이다.     이러한 대화체의 가사에 있어 갑녀와 을녀는 각기 작자의 분신이면서 작자가 의도하는 바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등장시킨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갑녀는 을녀의 하소연을 유도하며 더욱 극적이고 효과적으로 가사를 종결짓게 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속미인곡』은 제목에 ‘속(續)’자가 있어 같은 작자가 지은『사미인곡』의 속편(續編)처럼 생각되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른 측면에서 임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읊었으며, 그 표현이나 지은이의 자세(姿勢)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사미인곡』은 평서체인 데 비하여 『속미인곡』은 대화체이다. 그 길이도 전자가 126구인 데 비하여 후자는 96구의 단형이다.     『사미인곡』이 임에게 정성을 바치는 것이 주라면 『속미인곡』은 자기의 생활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주이다. 전자가 사치스럽고 과장된 표현이 심한 데 비하여 후자는 소박하고 진실하게 자기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속미인곡』은『사미인곡』을 지을 때보다도 작자의 생각이 한결 더 원숙하였을 때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 西浦漫筆』에서 정철의 『관동별곡』과 전후 미인곡은 우리나라의 ‘이소(離騷)’라 할 만하며, 그 중에도 『속미인곡』이 더 고상하다고 하였다.     『관동별곡』이나『사미인곡』이 한자를 빌려 꾸몄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한자를 빌려 꾸민 것 이외에 『속미인곡』의 표현이 그만큼 진솔하고도 간절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속미인곡』은 이렇게 역대에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입었을 뿐 아니라 한역(漢譯)도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김상숙(金相肅)과 그의 6세손인 정도(鄭棹)가 번역한 것이 있다. 정철의 가사문학사에서 절정을 장식하는 회심작(會心作)인『속미인곡』은 이러한 한역을 통하여 단 하나 감상의 대상을 넓히게 되었다.     『속미인곡』은『사미인곡』과 더불어 뒷날 연군(戀君)의 정서를 읊은 여러 가사의 시원(始原)이 되어 그 본보기로 활용되었다. 또한 이에 대한 연구도 많아 한국 가사문학연구에 있어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3]『속미인곡』원문과 해설    뎨 가난 뎌 각시 본 듯도 한뎌이고.           저기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하구나   텬상 백옥경을 엇디하야 니별 하고,           하늘나라의 백옥경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해 다 뎌 져믄 날의 눌을 보라 가시난고.           해 다 져서 저문 날에 누구를 보러 가시는고     : 甲女의 물음 – 백옥경을 떠난 이유    어와 네여이고 이내 사셜 드러 보오.        오오 너로구나 이내 사정 들어 보오.   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한가마난       내 얼굴이 이 행동이 임께서 사랑함직한가마는   엇딘디 날 보시고 네로다 녀기실 세      어쩐지 나를 보시고 너로구나 하고 특별히 여기시기에   나도 님을 미더 군 뜨디 전혀 업서      나도 임을 믿어 다른 뜻이 전혀 없어   이래야 교태야 어즈러이 구돗떤디      아양이야 애교야 어지럽게 굴었던지   반기시난 눈비치 녜와 엇디 다르신고.       반기시는 얼굴 빛이 옛과 어찌 다르신고   누어 생각하고 니러 안자 혜여하니      누워 생각하고 일어나 앉아 헤아리니   내 몸의 지은 죄 뫼가티 싸혀시니       내 몸이 지은 죄 산 같이 쌓였으니   하날히라 원망하며 사람이라 허믈하랴       하늘이라고 원망하고 사람이고 탓하랴   설워 플텨 혜니 조물의 타시로다.       서러워 풀어 헤아리니 조물주의 탓이로다.     : 乙女의 대답 – 창조물의 탓    글란 생각 마오.       그런 생각 마오.     : 甲女의 위로의 말    매친 일이 이셔이다.       맺힌 일이 있습니다.   님을 뫼셔 이셔 님의 일을 내 알거니       임을 모시어서 임의 일을 내가 아는데   믈 가탄 얼굴이 편하실 적 몃 날일고.       물 같은 얼굴이 편하실 때가 몇 날일꼬   츈한고열은 엇디하야 디내시며       이른 봄의 추위와 여름철의 무더위는 어떻게 지내시며   츄일동텬은 뉘라셔 뫼셧난고.      가을과 겨울은 누가 모시는가   쥭조반 조셕 뫼 녜와 갓티 셰시난가.       자릿조반과 아침 저녁 진지는 누구와 같이 잡수시는가   기나긴 밤의 잠은 엇디 자시난고.       기나긴 밤에 잠은 어찌 주무시는가     : 乙女의 임의 생활에 대한 염려와 충정    님다히 쇼식을 아므려나 아쟈하니        임 계신 곳의 소식을 어떻게라도 알려고하니   오날도 거의로다 내일이나 사람 올가.        오늘도 다 지났다. 내일이나 사람이 올까   내 마음 둘 데 업다. 어드러로 가쟛 말고.        내 마음 둘 곳 없다. 어디로 가잔 말인가   잡거니 밀거니 놉픈 뫼헤 올라가니        잡기도하고 밀기도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니   구름은카니와 안개난 므사 일고.        구름은 물론이거니와 안개는 무슨 일인가   산쳔이 어둡거니 일월을 엇디 보며        산천이 어두운데 해와 달을 어찌 보며   지쳑을 모라거든 쳔 리를 바라보랴.        바로 앞을 모르는데 천리를 바라볼 수 있을까   찰하리 믈가의 가 배길히나 보쟈 하니        차라리 물가에 가서 뱃길이나 보려고 하니   바람이야 믈결이야 어둥졍 된뎌이고.        바람과 물결 때문에 어수선하게 되었구나   샤공은 어데 가고 븬 배만 걸렷나니.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걸려있는가   강텬의 혼쟈 셔셔 디난 해를 구버보니        강가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굽어보니   님다히 쇼식이 더옥 아득한뎌이고.        님 계신 곳 소식이 더욱 아득하기만구나     : 乙女의 임의 소식을 알고자 하는 마음    모쳠 찬 자리의 밤듕만 도라오니       초가집 찬 자리에 한밤중이 돌아오니   반벽 쳥등은 눌 위하야 발갓난고.       벽에 걸린 푸른 등은 누구를 위하여 밝았는가   오르며 나리며 헤뜨며 바니니       오르내리며 헤매며 방황하니   져근덧 녁진하야 픗잠을 잠간 드니       잠깐 사이에 힘을 다하여 풋잠을 잠깐 드니   졍셩이 지극하야 꿈의 님을 보니       정성이 지극하여 꿈에서 임을 보니   옥 가튼 얼굴이 반이나마 늘거셰라.       옥 같은 얼굴이 반이나 늙었구나   마음의 머근 말삼 슬카장 삶쟈 하니          마음 먹은 말씀 실컷 사뢰려하니   눈믈이 바라 나니 말인들 어이하며       눈물이 바로 나니 말인들 어찌하며   졍을 못다하야 목이조차 몌여하니       정을 나누지 못하여 목조차 메니   오뎐된 계셩의 잠은 엇디 깨돗던고.       방정맞은 닭소리에 잠은 어찌 깨었단말인가     : 乙女의 독수공방의 심정과 꿈에 본 임     어와, 허사로다 이 님이 어데 간고.      아아, 헛된 일이로다 이 임이 어디 갔는가   결의 니러 안자 창을 열고 바라보니      잠결에 일어나 앉아 창을 열고 바라보니   어엿븐 그림재 날 조찰 뿐이로다.      불쌍한 그림자만 나를 쫒을 뿐이로다   찰하리 싀여디여 낙월이나 되야이셔      차라리 죽어서 떨어지는 달이나 되서   님 겨신 창 안헤 번드시 비최리라.      임 계신 창 안에 환하게 비치리라     : 을녀의 죽어서라도 이루려는 임에 대한 간절한 사모의 정    각시님 달이야카니와 구잔 비나 되쇼셔.       각시님, 달은 커녕 궂은 비나 되오소서     : 갑녀의 위로의 말                                                        - 續美人曲. 終了 -        
284    송강 정철 <사미인곡> 댓글:  조회:3672  추천:0  2015-04-26
      사미인곡(思美人曲)   이 몸 사기실제 임을 쫓아 삼기시니 한생 연분이면 하늘 모를 일이련가  나하나 젋어있고 임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이 살아 견줄데 노여 없다, 평생에 원하오되 한데 내자 하였더니 늙게야 무슨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엊 그제 임을 뫼셔 광한전에올랐더니 그뎐에 어찌하여 하계에 내려오니 올적에 빗는머리 얽힌 언정 삼년일세 연지분 있네만은 늘위하여 고이할꼬 마음에 맺힌시름 첩첩히 쌓여있어 짓느니 한숨이요 지느니 눈물이라 인생은 유한한데 시름도 그지없다,   무심한 세월은 물흐르 듯 하는고야 염량이 때를 알아 가는듯 고쳐오니 듣거니 보거니 느낄 일도 하도할사   동풍이 건듯불어 적설을 헤쳐내니 창밖에 심은매화 두세가지 피었세라 가뜩 냉담 한데 임향은 무슨일꼬 황혼에 달이 쫒아 벼말에 비치니 느끼듯 반기는듯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 걲어 내어 임계신데 보내고자 임이 나보고 어떻다 여기 실꼬   꽃지고 새잎나니 녹음 깔리는데 나위 적림하고 수막이 비어 있다, 부용을 걸어놓고 공작을 둘러두니 가득시름한데 날은 어찌 가돗던고 원앙금베어놓고 오색선풀쳐내어 금자에겨누어서 임의 옷지어내니 수품은 커니와 제도도 갖을시고 산호수 지게위에 백옥함에담아두고 임에게보내오리 임계신데바라보니 산인가 구름인가 머흠도 머흘시고 천리 만리 길을 뮈라서 찾아갈꼬 이거든 열어두고 날인가반기실까   하루밤 서릿김에 기러기 울어엘제 위룽에 혼자올라 수정렴걷는 말이 동산에 달이나고 북극에 별이뵈니 임이신가반기닌 눈눌이 절로난다 청광을 치어내어 봉황루에 붙이고자 누위에 걸어두고 팔황에 다비치어 삼산곡궁 점낮같이 댕그소서   건곤이 폐색하여 백설이한빛인제 사람은 커니와 날새도 그쳐있다, 소상남반도 추움이 이렇거든 옥루고쳐야 더욱 일러 무삼하리 양춘을 부쳐내어 님계신데 쏘이고자 모첨비친 해를 옥루에 올리고자 홍상을 이믜차고 취수를 반만걸어 일모수죽의 헴가림도 하도할사 짧은 해수이지어 긴밤을 고추앉아 청둥검은 곁에 전공후 놓아두고 꿈에난 임을 보려 턱받고 비꼈으니 암금도 차도할사 이밤은 언제샐꼬   하루도 열두 때 한달도 서른날 적은 덪생각말아 이시름 잊자하니 마음에 뱆혀있어 골수에깨쳤으니 편작이 열이오나 이병을 어찌하리 어와 내병이야 이님의 탓이로다 차라리 싀어지어 범나비 되오리다 꽃나무가지마다 간데 족족앉니다가 향묻은 나래로 임의 곳에 옮으리라 임이야 날인줄 모르셔도 내 임쫓으려 하노라,   송강/ 정철이 50세에 1588년에 쓴 가사이다 서조18년에 동인이 서인을 몰아내자 서인의 영수였던 송강은 고향에 내려가 지내게 되었는데 이에 쓰인 작품이다, 임금선조에 대한 간절한 충성심을 한 여인이 지아비를 사모하는 마음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한 글이다, 사미인곡은 순수한 우리말이나 아름다움을 마음껏 살려 가사문학의 최고봉의 하나로서 평가를 받고 있다, 2음보1구126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3.4조의 음수 율 을 기저로 하고 있다,  
283    송강 정철 <관동별곡> 댓글:  조회:3303  추천:0  2015-04-26
​ 서 사   江강湖호애 病병이 깁퍼 竹듁林님의 누엇더니, ⇒자연을 사랑하는 병이 깊어, 죽림(담양 창평)에서 지내는데 .자연을 사랑하는 병: 연하고질(煙霞痼疾), 천석고황(泉石膏肓) 關관 東동 八팔百백里니에 方방面면을 맛디시니, ⇒(임금님께서)관동 팔백리(강원도) 관찰사 직을 맡겨 주시니 어와 聖셩恩은이야 가디록 罔망極극하다. ⇒아아, 임금님의 은혜가 갈수록 끝이 없구나. 延연秋츄門문 드리다라 慶경會회南남門문 바라보며, ⇒경복궁의 서쪽문인 연추문에 도착해, 경회루 남쪽문 바라보며 下하直직고 믈너나니 玉옥節졀이 알패 셧다. ⇒하직 인사드리고 물러나오니, 관찰사 증패인 옥절이 앞에 있구나. .관찰사에 임명되어 하직인사하고 나오는 장면까지가  생략과 비약적 표현을 통해 빠르게 진행되어 속도감과 경쾌감을 준다. 平평丘구驛역 말을 가라 黑흑水슈로 도라드니, ⇒경기도 양주지역인 평구역에서 말을 갈아타고, 경기도 여주지역 흑수로 돌아드니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강원도 원주지역에 있는 섬강은 어디인가? 치악산(원주)이 여기로구나. .은거지 전남 창평에서​ 관찰사의 임무를 받고 부임지 원주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죽림-연추문-평구역-흑수-섬강, 치악)이 ​나타나 있다. . 표현기법상으로 문답법이다. .원주: 조선시대 강원 감영의 소재지이다.​ 昭쇼陽양江강 나린 믈이 어드러로 든단 말고. ⇒소양강에서 흘러내린 물이 어디로 흘러들어간단 말인가 (임금이 계신 한양으로 흘러들겠지)?// .소양강물➩한강(한양에 소재)➩한양에는 임금이 계심: 연군지정(戀君之情)이 보임 孤고臣신 去거國국에 白백髮발도 하도 할샤. ⇒(임금이 곁에 없으니)외로운 신하 화자가 임금이 계시는 한양을 떠날 때 (나라 걱정에) 백발이 많기도 많구나.//우국지정(憂國之情)이 보임 東동州쥐 밤 계오 새와 北븍寬관亭뎡의 올나하니, ⇒철원 동주에서 밤을 겨우 새우고 북관정에 올라가니   .사자성어로 ​전전반측(輾轉反側)이다. 三삼角각山산 第뎨一일峯봉이 하마면 뵈리로다. ⇒북한산이 제일 높은 봉우리가 웬만하면 보일 것 같구나. .북한산은 한양에 소재ㅡ한양에는 임금이 계심: 연군지정(戀君之情)이 보임 弓궁王왕 大대闕궐 터희 烏오鵲쟉이 지지괴니, ⇒궁예왕의 옛 대궐 터에서 까마귀와 까치가 지저귀니 .이는 나라의 멸망을 이야기 함: 맥수지탄(麥秀之嘆)과 인생무상   千쳔古고 興흥亡망을 아난다, 몰아난다. ⇒한 나라의 흥하고 망한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가탈시고. ⇒강원도 북부 회양 이라는 이름이 마침 같구나. 汲급長댱孺유 風풍彩채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선정을 한 중국 한나라의 회양 태수 인)급장유의 풍채(선정)를 다시 볼 것이 아닌가!// .선정을 다짐하고 있음 ​ ​ ​     ​
282    시대의 천재시인 - 기형도 댓글:  조회:2980  추천:0  2015-04-25
  시대의 천재 기형도 평론                                                                                 奇亨度 (1960-1989)       나는 이제 다르게 살고 싶다.  그럴 경우 모든 굳은 체념들이 살아날 것이다.    - 기형도      예술가에게 뛰어넘기 힘든 신화(神話) 혹은 콤플렉스라면 아마 이런 종류의 것들이리라. "바람처럼 빨리 살고, 아직 젊을 때 죽어서, 아름다운 시체를 남긴다." 자신의 죽음으로 불멸의 금자탑을 완성하고 싶다는 유혹은 예술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품어봄직한 희망이다.  그러나 세상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시대는 모든 시인이 릴케처럼 장미 가시에 찔려 백혈병으로 숨지도록 하지도 않을 뿐더러 혁명의 시기에 소총을 들고 전장을 누비다 장렬하게 전사할 기회를 주지도 않는다.  많은 시인들이 자신의 침상에 누운 채 병들어 잔뜩 주름진 얼굴에 경우에 따라서는 추한 오명(汚名)을 남긴다. 우리나라에서 시(poem)는 낭만주의(romanticism)의 영향과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적 전통 속에 풍류의 한 가지 혹은 젊음의 광기를 담은 그 무엇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시인이란 존재는 소멸하지 않는 청춘의 상징 혹은 시대와 불화하는 그 무엇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가 죽은 시인에 열광하는 까닭이 혹시 그가 더 이상 우리를 배신할 가망이 없기 때문이라는 안도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기형도, 198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가장 빛나는 크리스마스 전구 1980년대도 저물어가던 어느 해 세밑 몇몇 친구들은 공장으로,  대학으로 떠나고 홀로 된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그 무엇으로도 삭이지 못했다.  그때 기형도의 시집 이란 시집이 우연하게 손에 들어왔다.  아픈 마음을 다스리는 약으로 시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1960년 2월 16일 생의 시인, 기형도.  생년의 끝이 영(0)년으로 끝나는 사람들에게 숙명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번외자(番外子)의 설움 같은 것이다.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가도가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기형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기형도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친구 한 명이 있다. 그 녀석은 뒤에서 두 번째였지만 그의 모친에게 그는 항상 막내보다 더한 막내였다. 기형도의 경우도 이와 같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에게 선천적으로  여릴 수밖에 없는 가정적 환경은 이미 갖추어져 있었던 셈이라고 추측된다.  중학교 때부터 시에 관심이 있었던(1975년 그의 바로 손 위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부터 그는 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1979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서  잠시 방위로 군복무를 한 뒤 1985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절 윤동주 문학상 등 교내 주최 문학상을 받았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가 당선되면서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중앙일보에 근무하는 동안 여러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9년 시집을 준비하던 중 뇌졸중으로 죽었다. 이상이 그의 짧막한 생애에 대한 정리이다.  1960년에 태어나서 1989년 3월 7일에 죽었으니 그가 세상에 나서 공기를 호흡한 시간은 다 합쳐 봐야 만 29년에서 엿새가 빠지는 기간이었다.  요절(夭折)이란 말 이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죽음이었다. 서울의 우울, 시대의 우울 기형도가 1980년대를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우리들은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다. 그는 우리 시대의 주변에서 너무 가까이 태어났다가 죽은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많은 이야기들은 아직 풍문이다.  그가 문학적으로 정리되기까지는 좀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친구이자 동료 시인이었던 원재길의 회상을 보면 기형도가  1980년대라는 엄혹한 터널을 지나면서도 그 시대의 아픔에 대해 크게 공감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1980년 '서울의 봄' 시기에 그는 철야 농성과 교내 시위에 가담했다가 형사가 찾아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듬해 방위병으로 입대했다.) 생전의 그는 성실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어서 실수로라도 누구를 괴롭히는 일이 드물었으며, 늦도록 술을 마셔도 평정을 잃지 않았다. 얼굴이 심하게 붓는 걸 꺼려서 술을 많이 들진 않았지만 술자리에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  특히 문학이 화제라면 매우 즐거워했다.  휴일엔 밖에 나다니는 일이 없었는데, 아마도 어머니의 일을 도왔던 걸로 여겨진다. 집에서 기르던 새끼 돼지들한테 예방 주사를 놓았다면서,  주사기 바늘이 뼈에 닿는 순간 손목으로 전해지던 느낌을 들려주며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집안일 돌볼 거 다 돌보고, 친구들과 놀 거 다 놀면서도 학교땐 과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다. 시간과 생활을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얘기가 되겠다. 사실 그가 복학한 1981년은 전두환 정권의 차가운 칼바람에 모두가 숨죽이지 않을 수 없던 시기였다. 그러나 1985년부터의 대학 생활이란 것이 경험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집회가 있는 날 강의실에 앉아 있거나 도서관만 지키고 있기에는 다소 민망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역시 시대의 우울에 공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집회마다 나가면서도 시험 성적 좋은 것이 기이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의 전 학년 성적표를 보면, 체육과 교련에서 B학점을 몇 번 받은 걸 빼곤 모조리 A다. 시험 기간을 앞뒤로 해선 도무지 얼굴을 대하기 힘들었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은, 절반은 부러워하면서 또 나머지 절반은 '비겁한 놈, 혼자만 공부 잘하다니' 하고 이상한 소리로 그를 나무랐다.  비단 공부뿐만이 아니었다. 스케치 솜씨가 대단했으며, 당장 가수로 나가도 밥 먹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노래를 잘했다. 직접 작곡한 노래를 선보일 때도 있었다. 레퍼토리가 차고 넘쳐서, 어느 해 여름에 대천 바닷가에 놀러갔을 땐 민박집 평상에서 혼자 서너 시간 쉬지 않고 노래했다.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참여한 까닭에, 그렇지 못하고 그 주변을 배회한 사람은 배회한 까닭에, 그들을 무시한 사람들은 무시한 까닭에, 억압하려 들었던 사람들 역시 어김없이 억압하려 한 까닭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런데 기형도가 죽었다는 소식에는 모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실 기형도의 등장과 퇴장은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가 처음 문단 데뷔를 하고, 첫시집을 내고 그리고 종로3가 (사실 종로 3가는 기형도 이전에도 많은 시인들이 거쳐갔던 곳이기도 하다. 김수영과 신동엽도 이곳의 구석진 술집에서 자주 술을 마셨다고 한다. 어딘지는 나도 모른다.) 의 허름한 극장에서 죽었을 때,   우리들은 몇 가지 풍문을 들었다. 하나는 그 극장이 동성애자들이 자주 들락거리던 곳이란 것과 그가 어째서 심야의 그 극장에서 고개를 뒤로 꺽고 숨져야 했는가?하는 사실이 기묘한 씨줄날줄이 되어 풍문을 증폭시켰고, 그의 연애에 얽힌 이야기들이 또한 그의 전설에 먼지를 더했다. 소설가 강**씨와의 연애설 같은 것들이 그러한 것이었다. 어쨌든 기형도의 시는 80년대의 많은 상처입은 청춘들에게 알수없는 위안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풋풋한 자기 성찰들로 가득했고, 따뜻했고, 외로와서 상처입었고, 그리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모성 본능을 자극했다.   기형도는 대학 시절 따르던 형의 자살을 두고서 그의 죽음을  형의 죽음이 나의 생활에 단순히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간직되어질 수 있는,  혹은 예술적 체험 세계의 확장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라고 쓸 만큼 섬세하고 타산적이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의 친우이자 문학적 동료였던 원재길은 기형도가 스스로의 스승을 보들레르(Baudelaire)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를 "서울의 우울"을 노래한 한국의 보들레르라고 상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나는 이것이 꼭 어울리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형도는 시적으로는 분명히 보들레르의 자식이라는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기는 하나 일반 독자들에게 그는 한국의 보들레르라기 보다는 '1980년대의 윤동주'였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한 학대의 현장을 보여준다고는 하더라도 그의 시는 보들레르와 같이 가학적인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자학적인 이미지들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우울을 노래했지만 기형도는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고,  그것이 단순히 서울의 우울을 노래한 것도 아니요, 보들레르의 그것과는 다른 내면의 우울이었다. 기형도의 우울은 시대의 우울이자, 상처받은 양심과 청춘의 우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형도의 시는 오히려 윤동주의 시와 닮아 있다. 오히려 기형도에게는 그런 점에서 '80년대의 윤동주'로 비견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술자리에서는 분위기를 맞춰줄 줄 알고, 노래도  잘했고, 공부도 잘했고, 작곡까지 할 정도의 이 재기 넘치는 젊은 시인은 '보들레르의 자식'이었지만 그보다 대학에서조차 교련을 배워야 했던 '시대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시대의 우울을 몸소 견뎌야 했던 시인이다.  백혈병 초기 증세를 앓았고, 한 쪽 귀는 거의 청력을 잃을 지경이었고, 고혈압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는 기자였다. 그의 온몸은 시대의 우울을 감지하는 촉수였고, 레이더였고, 그런 우울은 그의 정신과 육신을 상하게 했다.  자화상(自畵像)                윤동주 산모통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 9월)   포도밭 묘지에 걸린 기이한 시체. 기형도 그리고 보들레르 그의 시 을 읽으면 어쩐지 윤동주의 자화상이란 시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집 앞'에서 한참 동안을 서성이던 내 젊은 날의 사랑이 떠오른다.  기형도의 데뷔 작품인 를 보자. 마치 김승옥의 의 영향이라도 받은 것처럼 이 시의 첫 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1982년 9월 25일 밤 1시. 기형도는 의문에 빠진다. "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자답하기를 "그것은 우문(愚問)이다.  구원할 수 '있다' 혹은 '없다'의 구분은 이미 시에 기능이나 효용의 틀을 뒤집어 씌운다. 따라서 어떠한 예술 장르가 최초에 성립되었을 때 본연적으로 갖는 기능이란 두말할 필요 없이  '있다'에 귀착한다."라고 한다. 앞서 기형도를 "서울의 우울을 노래한 보들레르"로 표현한 원재길의 표현을 맞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 점은 그대로 두고서라도 기형도가 보들레르를 자신의 시적 스승으로 생각했다는 점은 의미를 둘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시가 보들레르와 비교할 만한 성질의 시가 아니라는 뜻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어떤 인물인가?  - 혁명붕괴의 해인 1848년 이후의 유럽 예술에서 우리는 환멸과 같은 어떤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시민계급의 빛나는 예술적 시기는 끝났다.  예술가와 예술은 인간의 총체적인 소외, 모든 인간적 관계의 외화(外化) 및  물화(物化), 분업, 분해, 엄격한 전문화, 사회적인 연결의 불투명화,  개인의 증대되는 소외와 반항 등의 모순들과 더불어 완전히 발전된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세계로 진입하였다. 진지한 휴머니스트 예술가는 그러한 세계를 더 이상 긍정할 수 없었다.  그는 시민 계급의 승리가 휴머니즘의 개선을 의미한다고 더 이상 분명하게 믿을 수 없었다. - 예술을 위한 예술 (기본적으로 리얼리스틱하고 위대한 시인이었던 보들레르가 취했던 태도) 역시 통속적인 공리주의, 부르주아지의 무미건조한 일상업무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세계에서 상품을 생산할 수 없다는 예술가의 결의에서 생겨났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보들레르에 대한 독창적인 해설 속에서 그를  '부르주아지가 예술가로부터 그의 위임장을 철회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  - 이러한 인식은 무한한 중요성을 가졌다 - 한 최초의 인물' 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보들레르의 '예술을 위한 예술'은 부르주아라는 눈에 보이는 자본주의  세상을 향해 자신의 시(詩)를 토해낸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익명의 시장(가령, 그것은 대중mass일 수도 있고, 역사적 평가일 수도 있다.)을 겨냥한 것이었다. (1848년은 프랑스 2월 혁명이 일어난 해이며 보들레르는  의붓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을 2년만에 탕진해버리고 혁명에 가담했었다.)  기형도가 그런 보들레르를 자신의 시적인 스승으로 생각했으며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학평론가 김현이 문학월평을 통해 기형도의 시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라는 칭호를 붙여준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로 돌아가서 '읍'으로 상징되는 기형도가 머무르는 시적인 공간은 아이들이 느릿느릿 새어나오고, 여직공은 겁탈당하고, 취객이 얼어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공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닌 것이다. 안개의 고장을 욕하며 떠난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그들의 기억조차 희미해진다.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그에게 '1980년의 봄'은 어떤 의미였을까? 박정희 유신 체제의 붕괴를 목격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입학한 대학 신입생으로서 경험한 1980년의 봄,  민주화 운동의 봄이자 미처 꽃 피워 보지 못한 민주주의 혁명의 좌절을 경험한 그에게서 1848년 프랑스 대혁명의 좌절을 경험한 보들레르의 영토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시(詩)의 길을 열고, 생(生)의 문(門)을 닫다 요절한 시인들에게 안도하는 이유는 그가 나이가 들며 보수화 되거나  오명을 남기게 될까 두려운 까닭에서이기는 하나 요절한 시인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유는 시인의 성숙해 가는 변모의 과정을 지켜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형도는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시를 탐구했고, 시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모색했던 것 같다. 그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도피의 기록으로 남겨놓은 조카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역사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기록이던가. 기형도가 광주 5.18 묘역을 찾고서 남긴 글에는 "그러나 아니다. 나는 광주에서 그 이상한 청년을 만난 것이다.  어쩌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역사를 만나고, 그 역사의 허망함에 눈뜨고,  지상을 떠난 청년들이 묘역에서 잠들어 있다. 나는 무엇인가.  가증스러운 냉담자인가, 나에게 있어 국토란 무엇인가. 내가 탐닉해온 것은 육체없는 유령의 자유로움이었다.  지금 이곳의 나는 무엇인가. 너 형이상학자, 흙 위에 떠서 걸어다니는 성자여.  어두워진다. 나의 희망은 좀더 넓은 땅을 갖고 싶다. 이 게으른 손들" 이라고 적고 있다. 유럽의 지식인들에겐 허용되지만 한국의 지식인들에겐 용납될 수 없는 것이 망명이었다면, 보들레르에겐 용납되었으나 기형도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것, 그것은 타락이었다. 그가 내딛는 땅 어디에서도 그는 '육체없는 유령의 자유스러움'을 만끽할 수 없었다. 도처에서 그는 안개에 둘러싸인 소읍을 발견했고,  그곳에 풍겨 나오는 피냄새와 폐수 냄새, 오염된 사람들의 썩어가는 냄새가 그의 후각을 마비시켰다.   유중하(연세대 중문과 교수)는 "이러한 반성은 기형도로서는 미증유의 것이었다" 고 말하지만 아니 그렇지 않았다.  기형도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반성하게 했고, 그는 마치 고독한 수도승처럼 시를 통해 낯선 기쁨과 전율에 젖고자 했다. 다만 그가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으려 한 것은 권태와 무기력이었다. 광주를 방문하기 전의 그는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 했다'고 말했던 조로(早老)의 젊은 시인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나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상들을 향해 기차는 전속력으로 달린다.  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다시 너절하게 떠오르리라. 그렇다면  너 지친 탐미주의자여, 희망이 보이던가. 귀로에서 희망을 품고 걷는자 있 었던가? 그것은 관념이다. 따라서 미묘한 흐름이다. 변화다.  스스로 변화하기. 얼마나 통속적인 의지인가. 그러나 통속에서 출발하지 않는  자기 구원이란 없다. 나는 신(神)이 아니다. 차창 밖 국도에서 붉은 꼬리등을 켠 화물 트럭들이 달린다. 멀리 보이는 작은 불빛 하나하나마다 일생(一生)의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다.  흘러가버린 나날들에게 전하리라.  내 뿌리없는 믿음들이 지금 어느 곳에서 떠다니고 있는 가" 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이제 그의 생의 주도권은 다시 그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가식과 허위를 버리고' 다시 태어나길 소망했던 시인 기형도의 희망은  동성애자들이 상대를 물색하는 장소로 사용한다는 서울의 한 허름한 극장에서  멈춘다. 기형도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짧은 여행의 기록」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서울에서 나는 멎는다."  기형도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것은 시작 메모로 채워진 푸른 노트,  이국에서 온 몇 통의 편지, 꼼꼼히 줄쳐 읽던 몇 권의 책과 소화제 알약이 든  가방이었다. 기형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인은 뇌졸중이었고,  보들레르는 뇌경색이었다. 세상의 아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수인  병약한 시인들에게 '시대의 우울'은 감내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가버린 친구 형도를 회상하면서...                                                     ㅡ하늘수.                                     孤獨의 깊이                                   - 기 형도 한차례 장마가 지났다.  푹푹 파인 가슴을 내리쓸며 구름 자욱한 江을 걷는다.  바람은 내 외로움만큼의 重量으로 肺腑 깊숙한  끝을 부딪는다  傷處가 푸르게 부었을 때 바라보는  江은 더욱 깊어지는 法  그 깊은 江을 따라 내 食事를 가만히 띄운다.  그 아픔은 잠길 듯 잠길 듯 한 장 파도로 흘러가고.....  아아, 雲霧 가득한 가슴이여  내 苦痛의 비는 어느 날 그칠 것인가. 기형도 시인의 약력 1960. 2월 16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중 막내로 출생. 1965. 부친이 서해안 간척사업에 실패, 유랑하다가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에 정착 '85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인 "안개"는 이 마을이 배경이 된다. 1967. 시흥국민학교에 입학. 1969. 부친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석에 눕다. 가계가 힘들어짐. 1975. 당시 고등하교 2학년이던 셋째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  이 사건이 깊은 상흔을 남기다. 1979. 신림중학교을 거쳐 중앙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  연세대학교 정법대 정법계열 입학,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수업 시작. 1980. 대학문학상인 박영준 문학상(소설부문)에 당선없는 가작으로 입선 ('영하의 바람'). 1981. 방위병으로 입대, 복무중 안양의 문학동인인 '수리'에 참여.  동인지에 '사강리'등 발표, 시작에 몰두. 1982. 6월 전역후 다수의 작품을 쓰며, 대학문학상인  윤동주문학상(시부문)에 당선('식목제'). 1984. 10월 중앙일보사에 입사. 1985.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안개')되어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 2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신문사 수습을 거쳐 정치부에 배속. 1986. 정치부에서 문화부로 옮김.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 주목을 받음. 1988.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김. 여행 등을 하며 많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 1989. 가을에 시집출간을 위해 준비하다 3월 7일 새벽,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 사인은 뇌졸중 만 29세, 독신.  시작메모로 채워진 푸른 노트, 이국에서 온 몇통의 편지,  꼼꼼히 줄쳐 읽던 몇 권의 책과 소화제 알약이 든 가방을 가지고 있었음.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수원교구 묘지에 묻힘. 5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이 발간됨. 1989년 5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90년 3월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출판사) 1994년 2월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솔출판사) 1999년 3월 전집 '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                                                           
281    문단 마지막 순수奇人시인 - 千祥炳 댓글:  조회:3306  추천:0  2015-04-25
  막걸리와 "괜찮다"의 시인 천상병                                    전 태 익 (문단잡기/예술인들의 괴벽과 기행) 中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여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그 일이 화근이 되어 극도로 피폐해진 시인, 천상병 ! 그가 길가에 쓰러진 행려병자로 취급되어 정신병원에 누워있을 때 동도 시인들이 유고시집을 낸바 있다.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던 그의 기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술에 취해 친구의 신혼 단칸방에서 오줌을 싼 일, 여류 소설가의 집에 기거하면서 한밤중에 부부가 자는 방에 몰래 들어가 양주병으로 잘못 알고 향수를 마신 일, 동가식 서가숙하며 만나는 친구마다 "백원만, 이백원만"하며 막걸리 값을 구걸하던 일,,,,    이 땅의 마지막 순수 시인이었던 그는 "소능조", "귀천", "새"등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아버지 어머니는/고향 산소에 있고/외톨배기 나는/서울에 있고/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여비가 없으니/가지 못한다/저승 가는데도/여비가 든다면/나는 영영/가지도 못하나?)   그런데 그는 몇해 전에 여비 한 푼 없이 잘만 갔다. "귀천"이란 시에서 밝혔듯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아름다운 새로 환생하여"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시에서 읊었듯이 생전의 약속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새 한 마리 새"가 되어 이 가지에서 저가지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아니 가는 곳이 없다.   그는 저승에서도,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까닭은 아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 세속적 가치는 하찮게 여기고 장주壯周처럼 초월적 세계에서 유유자적했던 시인, 언제나 순수하고 천진난만했던 일곱살짜리 천상병 !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를 연발하며 입을 씰룩거렸던 그 모습 ! 그는 일찍이 용庸을 터득하여 이 것을 따랐을 뿐, 그런 까닭조차 의식하려 하지 않았다.    인사동 골목, 목순옥 여사가 경영하는 "귀천"이라는 찻집은 지금도 손님이 많은지 궁금하다.                                                                                                                                                 천상병[千祥炳]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4년 중퇴. 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추천받았고, 1952년 《문예(文藝)》에 《강물》 《갈매기》 등을 추천받은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가난 ·무직 ·방탕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막에서》 《귀천(歸天)》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 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소풍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 다웠더라고 말하리라      
280    천상병 / 귀천 댓글:  조회:2979  추천:0  2015-04-25
    ▲ 시인의 사진      ▲ 시인의 생전 모습        천상병 시 모음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나의 가난은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갈매기 천상병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이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강 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한가지 소원(所願) 천상병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들어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 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컷 살았나 싶다. 별다를 불만은 없지만, 똥걸래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나는 행복합니다 천상병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 늙은이 오십세 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오. 그래서 행복. 텔레비젼의 희극을 보면 되려 화가 나니 무슨 지랄병(炳)이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난 어린애가 좋다 천상병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보고 요놈! 요놈한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좋다. 잘 커서 큰일 해다오!         봄을 위하여 천상병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회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론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푸른 것만이 아니다 천상병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은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실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는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약속 천상병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을 가도 가도 황토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어두운 밤에 천상병 수만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하늘에, 하나, 둘, 셋, 별이 흐른다. 할아버지도 아이도 다 지나갔으나 한 청년이 있어, 시를 쓰다가 잠든 밤에......      
279    미국 녀성 시인 - 에드나 슨트 빈센트 밀레이 댓글:  조회:3762  추천:0  2015-04-25
활짝 편 손으로 사랑을                             / 에드나 빈센트 밀레이  활짝 편 손에 담긴 사랑, 그것밖에 없습니다 보석장식도 없고, 상처 날까 조심스레 숨기지도 않고, 누군가 모자 가득히 앵초풀꽃 담아 당신에게 불쑥 내밀듯이, 아니면 치마 가득 사과를 담아 주듯이, 나는 당신에게 그런 사랑을 드립니다 아이들처럼 외치면서 “내가 무얼 갖고 있나 좀 보세요! ―이게 다 당신 거예요!”   [출처]활짝 편 손으로 사랑을 - 에드나 빈센트 밀레이 - 한재영교수의 명시의 세계입니다|작성자 영원속으로     베토벤 교향곡을 들으며(外1수)   에드나 슨트 빈센트 밀레이[미국]       에드나 슨트 빈센트 밀레이 Edna St. Vincent Millay (1892-1950)   미국의 녀성 시인이자 극작가. 메인 주의 로클랜드에서 태어나 바사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첫 시집 을 펴내었다. 이 시집의 완숙한 기교와 신선감,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녀는 소넷(sonnet) 형식의 시에서 특히 빛이 나는 순수한 서정시인이었지만, 정치,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녀배우로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 퓰리처상을 받은 , 등의 시집과 희곡 작품 등이 알려져 있다. 그녀는 대담할 정도로 솔직한 관능적 표현과 자기 시대의 정신에 걸맞는 새로운 자유와 모랄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달콤한 소리, 오, 아름다운 음악이여, 그치지 말아다오! 나를 세상에 되돌려 보내지 말아다오. 너와 함께만이 뛰어남과 평화로움이 있고 인간이 그럴 듯해 보이고 그의 목표가 뚜렷해지누나. 다정하고 영리한 네 선율에 매혹당해, 원한에 찬 자, 인색한 자, 무례한 자들이 사지를 벌린 채 공허하고 파리한 얼굴로 동화 속의 부엌데기들처럼 잠을 잔다. 이 순간은 세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것. 고문당한 나뭇가지에 피어난 고즈넉한 꽃. 거절하지 말아다오, 달콤한 소리여, 나를 살게 해다오. 파멸의 운명이 내 성루를 찾아내 부숴버릴 때까지는 이우는 태양 아래 주문에 걸려 있는 도시를. 음악은 나의 성벽, 나의 유일한 성벽.   유년은 아무도 죽지 않는 왕국이다   유년이란 것은 태어나서부터 어느 나이까지가 아니고, 어느 나이엔가 아이는 다 자라 어릴 적 것들을 치워 버린다. 유년은 아무도 죽지 않는 왕국이다.   말하자면, 중요한 사람은 아무도 죽지 않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먼 친척들은 물론 죽는다. 혹은 한 시간쯤 본 적이 있는 친척들도. 그리고 그들은 분홍색과 초록색 줄무늬의 봉지에 든 캔디 하나 혹은 재크나이프 한 개를 주고 가버렸고 그러므로 결코 정말로 살았던빈센트 밀레이 빈틈없이 약삭빠른 윤나는 갈색의 벼룩들이 느릿느릿 살아 있는 세계 속으로 떨어져 나온다. 너는 구두 상자를 가져 오지만, 그러나 고양이는 이젠 웅크리려 하지 않기에 그 상자는 너무 작다. 그래서 너는 좀더 큰 상자를 찾아, 고양이를 마당에 묻고, 운다. 하지만 네가 그로부터 한 달, 두 달 후에, 그로부터 일 년, 이 년 후에, 한밤중에 깨어나 손가락 마디를 입에 물고 울면서, 아 하나님! 아 하나님! 하고 말하는 일은 없다. 유년은 중요한 사람은 아무도 죽지 않는,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은 죽지 않는 왕국이다.   그리고 만일 네가, 혹은 라고 말했다면, 내일 혹은 모레라도, 네가 재미있게 노느라 바쁘다 하더라도, 라고 말할 시간은 충분히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앉는 것이다. 그들은 듣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며, 차를 마시지도 않는다. 생전에는 차가 낙이라고 말했었으면서도.   지하실로 달려 내려가 마지막 남은 나무 딸기 병을 갖고 올라 오라. 그래도 그들은 끌려 들지 않는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이 정확히 그때에 주교에게 혹은 감독관에게 혹은 마슨 부인에게 뭐라 말했었는지 물어 보라.   그래도 그들은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소리치고, 얼굴을 붉히며 일어나 그들의 뻣뻣한 어깨를 잡고 의자에서 끌어내 그들을 흔들어 대면서 악을 써 보라. 그들은 놀라지 않는다. 당황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로 자기들의 의자에 미끄러지듯 앉는다.   너의 차는 이젠 차갑게 식었다. 너는 그것을 선 채로 마시고 그리고 집에서 나간다.                     [출처]활짝 편 손으로 사랑을 - 에드나 빈센트 밀레이 - 한재영교수의 명시의 세계입니다|작성자 영원속으로  
278    정끝별 시 한수 댓글:  조회:3367  추천:0  2015-04-25
으름이 풍년 - 정끝별(1964~ ) 쩍 벌어진 으름 씨는 새가 먹고 굴러 떨어진 헛이름은 개가 먹고 갓 벌어진 주름은 내가 먹고 군침 흘리던 해어름 먹구름은 나와 개와 새를 으르며 붉으락 붉으락 으름장을 펼쳐놓고 아뿔싸 입에 쩍쩍 들러붙은 가을 게으름이라니! 음 물큰한 처음 졸음처럼 들척지근한 죽음 음음 잘 익은 울음 오랜 으름 다 먹었다 소리 내어 읽어봐야 제 맛이 난다. 으름·헛이름·주름은 ‘름’자 항렬이다. 해어름·먹구름·게으름도 ‘름’으로 끝을 맞춘 방계 혈통이다. 다음에 오는 처음·죽음·울음은 ‘음’자 항렬이다. ‘름’과 ‘음’은 소리값이 유사한 고종 사촌지간이다. 으름, 으르는 것, 으름장은 이종사촌쯤 되겠다. 누군가는 으름을 먹고 게으름을 부리며 주름을 늘리며 산다. 그 사이 물큰한 ‘처음’들과 잘 익은 ‘울음’들이 끼어든다. ‘처음’과 ‘울음’으로 연륜을 쌓으며 살다 마지막으로 맞는 게 ‘죽음’이다. ------------------------------------------------- 오픈지식 현대 문학의 이해 1)시 1. 시의 뜻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운율 있는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글 2. 시의 3대 요소 ⑴  음악적 요소 : 시에 깃들어 있는 소리에 의해 나타나는 요소. 운율을 말한다. ⑵ 회화적 요소 : 시에 나타나는 형상에 의해 나타나는  요소. 심상을 말한다. ⑶ 의미적 요소 : 시에 담겨져 있는 뜻에 의해 나타나는 요소. 정서와 사상을 말한다. 3. 시의 형식적 요소 ⑴  시어 : 시에 쓰인 말. 운율, 심상, 함축적 의미를 지닌다. ⑵ 시행 : 시의 한 줄 한 줄 ⑶ 연 : 시에서 한 줄 띄어 쓴 한  덩어리 - : :시어  : :시행  : :연  : :시 ⑷  운율 : 시어들의 소리가 만들어 내는 가락  : : : : : 4. 시의 내용적  요소 ⑴ 주제 : 시에 담긴 지은이의 느낌이나 중심되는 생각. 주로 암시적으로 표현된다. ⑵ 소재 : 주제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한  글감 ⑶ 심상(image) : 사람의 여러 감각을 자극하여 마음 속에 감각했던 것을 다시 기억하여 재생시키는 것 5. 시의 운율 시에  있어서 음악성을 나타나 해 주는 것으로 자음과 모음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韻과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律格으로  나뉜다. ⑴ 운율의 갈래 ① 외형률 : 시어의 일정한 규칙에 따라 생기는 운율로 시의 겉모습에 드러난다. 정형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음수율 : 시어의 글자수나 행의 수가 일정한 규칙을 가지는 데에서 오는 운율 - 음위율 : 시의 일정한 위치에 일정한  음을 규칙적으로 배치하여 만드는 운율.  :일정한 음이 시행의 앞부분에 있는 것을 두운, 가운데 있는 것을 요운, 끝 부분에 있는 것을  각운이라고 한다. - 음성률 : 음의 길고 짧음이나, 높고 낮음, 또는 강하고 약함 등을 규칙적으로 배치하여 만드는  운율 - :음보(音步) : 우리 나라의 전통시에서 발음 시간의 길이가 같은 말의 단위가 반복됨으로써 생기는 음의 질서. 보통 띄어  읽는 단위가 되는데 일반적으로 평시조는 4음보격, 민요시는 3음보격으로 되어 있다. (즉, 3.4조니, 4.4조니 할 때의 시는 3 4음절이  하나의 음보를 이루고, 이것들이 3번 내지 4번 반복되어 하나의 큰 休止를 가져 온다는 뜻이다) ② 내재율 : 일정한 규칙이 없이 각각의  시에 따라 자유롭게 생기는 운율로 시의 내면에 흐르므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자유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⑵ 운율을 이루는  요소 ① 동음 반복 : 특정한 음운을 반복하여 사용 ② 음수 반복 : 일정한 음절 수를 반복하여 사용 ③ 의성어, 의태어 사용  : 감각적 반응을 일으킨다. ④ 통사적 구조 : 같거나 비슷한 문장의 짜임을 반복하여 사용 6. 심상의  갈래 ⑴ 시각적 심상 : 색깔, 모양, 명암, 동작 등의 눈을 통한 감각 : 알락달락 알록진 산새알 ⑵  청각적 심상 : 귀를 통한 소리의 감각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⑶ 후각적 심상 : 코를 통한 냄새의  감각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⑷ 미각적 심상 : 혀를 통한 맛의 감각 : 모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도 구수하고  ⑸ 촉각적 심상 : 살갗을 통한 감촉의 감각 : 아름다운 영원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⑹ 공감각적 심상 : 동시에 두 감각을 느끼는 것 : 분수처럼 쏟아지는 푸른 종소리 7. 심상의 시적 기능   : : : ⑴ 구체성 : 단순한 서술에 비해 대상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 ⑵  함축성 : 시어의 의미와 느낌을 한층 함축성 있게 나타낼 수 있다. ⑶ 직접성 : 감각을 직접적으로 뚜렷이 전달할 수 있다.   : : : : : : : 8. 시의 갈래 ⑴  형식상 갈래 ① 정형시 : 형식이 일정하게 굳어진 시 - 음수적 정형시 : 글자의 수가 일정한 시. 7·5조, 4·4조, 오언시  등 - 시행적 정형시 : 시행의 수가 일정한 시. 향가, 소네트(sonnet) 등 ② 자유시 :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지은 시 ③ 산문시 : 행의 구분이 없이 산문처럼 쓰여진 시. 운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산문과 구분된다. ⑵ 내용상  갈래 ① 서정시 : 개인적인 정서를 읊은 시 - : :서경시 : 자연 풍경을 주로 읊은 시로 서정시에  속한다. ② 서사시 : 신화나 역사, 영웅들의 이야기를 길게 읊은 시 ③ 극시 : 사건의 전개를 대화 형식으로 쓴 시. 운문으로 된  희곡 ⑶ 성격상 갈래  ① 순수시 : 개인의 순수한 서정을 중시한 시 ② 사회시(참여시) : 사회의 현실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시 9. 서정적  자아 지은이와는 별도로 시 속에서 말을 하는 사람으로 1인칭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에서는 어떤 남자  어린이가 서정적 자아가 될 것이고, 이육사의 [광야]에서는 지사적이고 예언자적인 남성이 서정적 자아가 될 것이며, 우리 민요 [아리랑]의 서정적  자아는 임과 이별하는 애달픈 여인이 될 것이다. 10. 어조  어조를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라고 한다면 그 목소리는 강하거나 약하거나,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거나 하는 어떤 가락을 지닌다. 이  때의 시의 서정적 목소리를 어조(Tone)라고 한다. 따라서 어조는 시인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시가 어떤 어조를 갖는냐에 따라  독자는 남성적 여성적, 또는 강건 온화 우아 비장 등의 다양한 목소리를 체험하게 된다. 11. 시의 상징  ⑴ 관습적 상징 : 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쓰여져서 널리 인정되는 상징 : 비둘기 → 평화, 십자가 →  기독교, 월계관 → 승리 등 ⑵ 창조적 상징 : 개인에 의해 만들어져서 문학적 효과를 발휘하는 상징.  :작품이나 작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12. 시적 허용  시에서 구사되는 어휘는 함축적이고 암시적일 뿐만 아니라, 문법적 측면에서 허용되지 않는 표현도 자유로이  사용된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그리움과 아쉬움에 ) 13. 시어의 모호성(다의성)  한 개의 시어, 또는 문장 구조 속에 두 개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으로 시어가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고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므로 오히려 시의 의미와 가치를 풍부하게 한다.  
277    김삿갓 풍자, 해학시 모음 댓글:  조회:13454  추천:1  2015-04-20
김삿갓의 시 (풍자와 해학...일화(逸話)편)  환갑 잔치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아마도 하늘 위에서 내려온 신선일 테지.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 잔치에 바쳤네.  還甲宴 환갑연  彼坐老人不似人 疑是天上降眞仙 피좌노인불사인 의시천상강진선  其中七子皆爲盜 偸得碧桃獻壽筵 기중칠자개위도 투득벽도헌수연  *환갑 잔치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들 좋아하였다.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들 좋아하였다.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는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로 이것을 먹으면 장수하였다.  원생원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元生員 원생원  日出猿生原 猫過鼠盡死 일출원생원 묘과서진사  黃昏蚊첨至 夜出蚤席射 황혼문첨지 야출조석사  *김삿갓이 북도지방의 어느 집에 갔다가 그곳에 모여 있던 마을 유지들을 놀리며 지은 시이다.  구절마다 끝의 세 글자는 원 생원(元生員), 서 진사(徐進士), 문 첨지(文僉知), 조 석사(趙碩士)의 음을 빌려 쓴 것이다.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 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難避花 난피화  靑春抱妓千金開 白日當樽萬事空 청춘포기천금개 백일당준만사공  鴻飛遠天易隨水 蝶過靑山難避花 홍비원천이수수 접과청산난피화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기생과 함께 짓다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妓生合作 기생합작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젖 빠는 노래  시아비는 그 위를 빨고  며느리는 그 아래를 빠네.  위와 아래가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시아비는 그 둘을 빨고  며느리는 그 하나를 빠네.  하나와 둘이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시아비는 그 단 곳을 빨고  며느리는 그 신 곳을 빠네.  달고 신 것이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嚥乳章三章 연유장삼장  父嚥其上 婦嚥其下 부연기상 부연기하  上下不同 其味卽同 상하부동 기미즉동  父嚥其二 婦嚥其一 부연기이 부연기일  一二不同 其味卽同 일이부동 기미즉동  父嚥其甘 婦嚥其酸 부연기감 부연기산  甘酸不同 其味卽同 감산부동 기미즉동  *어느 선비의 집에 갔는데 그가 "우리집 며느리가 유종(乳腫)으로 젖을 앓기 때문에 젖을 좀 빨아 주어야 하겠소"라고 했다.  김삿갓이 망할 놈의 양반이 예의도 잘 지킨다고 분개하면서 이 시를 지었다.  옥구 김 진사  옥구 김 진사가  내게 돈 두 푼을 주었네.  한번 죽어 없어지면 이런 꼴 없으련만  육신이 살아 있어 평생에 한이 되네.  沃溝金進士 옥구김진사  沃溝金進士 與我二分錢 옥구김진사 여아이분전  一死都無事 平生恨有身 일사도무사 평생한유신  *김삿갓이 옥구 김 진사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자 돈 두 푼을 주며 내쫓았다.  김삿갓이 이 시를 지어 대문에 붙이니 김 진사가 이 시를 보고 자기 집에다 재우고 친교를 맺었다.  창  십(十)자가 서로 이어지고 구(口)자가 빗겼는데  사이사이 험난한 길이 있어 파촉(巴蜀)가는 골짜기 같네.  이웃집 늙은이는 순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지만  어린 아이는 열기 어렵다고 손가락으로 긁어대네.  窓 창  十字相連口字橫 間間棧道峽如巴 십자상연구자횡 간간잔도협여파  隣翁順熟低首入 稚子難開擧手爬 인옹순숙저수입 치자난개거수파  *눈 오는 날 김삿갓이 친구의 집을 찾아가자 친구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고  창(窓)이라는 제목을 내며 파촉 파(巴)와 긁을 파(爬)를 운으로 불렀다.  양반  네가 양반이면 나도 양반이다.  양반이 양반을 몰라보니 양반은 무슨 놈의 양반.  조선에서 세 가지 성만이 그중 양반인데  김해 김씨가 한 나라에서도 으뜸 양반이지.  천 리를 찾아왔으니 이 달 손님 양반이고  팔자가 좋으니 금시 부자 양반이지만  부자 양반을 보니 진짜 양반을 싫어해  손님 양반이 주인 양반을 알 만하구나.  兩班論 양반론  彼兩班此兩班 班不知班何班 피양반차양반 반부지반하반  朝鮮三姓其中班 駕洛一邦在上班 조선삼성기중반 가락일방재상반  來千里此月客班 好八字今時富班 내천리차월객반 호팔자금시부반  觀其爾班厭眞班 客班可知主人班 관기이반염진반 객반가지주인반  *김삿갓이 어느 양반 집에 갔더니 양반입네 거드럼을 피우며 족보를 따져 물었다.  집안 내력을 밝힐 수 없는 삿갓으로서는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주인 양반이 대접을 받으려면 행실이 양반다워야 하는데  먼 길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니 그 따위가 무슨 양반이냐고 놀리고 있다.  서당 욕설시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  辱說某書堂 욕설모서당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추운 겨울날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하며 내쫓는다.  인정없는 훈장을 욕하는 시. 소리나는대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김삿갓 해학시 모음       詠笠 (영립)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부부아립등허주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漁翁本色伴沙鷗 목수경장수야독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취래탈괘간화수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속자의관개외식 만천풍우독무수    내삿갓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 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 생활.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해서 '병연'은 그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 시인은 '병연'이란 이름을 스스로 숨기고 잊어 버렸다.  그리고 삿갓을 쓴 이름없는 시인이 되었다.... 그가 읊은 자신의 '삿갓'시는 표연자적하는 자연과 풍류 속의 자기 운명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自嘆 (자탄)  嗟乎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차호천지간남아 지아평생자유수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평수삼천리랑적 금서사십년허사  靑雲難力致非願 白髮惟公道不悲 청운난력치비원 백발유공도불비  驚罷還鄕夢起坐 三更越鳥聲南枝 경파환향몽기좌 삼경월조성남지   스스로 탄식하다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월조(越鳥)는 남쪽 지방의 새인데 다른 지방에 가서도 고향을 그리며 남쪽 가지에 앉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竹詩 (죽시)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대나무 시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시장에서 사고 팔기는 세월대로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한자의 훈(訓)을 빌어 절묘한 표현을 하였다.  此 이 차, 竹 대나무 죽 : 이대로  彼 저 피, 竹 : 저대로  化 화할 화(되다), 去 갈 거, 竹 : 되어 가는 대로  風 바람 풍, 打 칠 타, 竹 : 바람치는 대로  浪 물결 랑, 打 竹 : 물결치는 대로 二十樹下 (이십수하)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스무나무 아래  스무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 마흔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라.  二十樹 : 스무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이름  三十客 : 三十은 '서른'이니 '서러운'의 뜻.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 : 四十은 '마흔'이니 '망할'의 뜻. 망할 놈의 집.  五十食 : 五十은 '쉰'이니 '쉰(상한)'의 뜻. 쉰 밥.  七十事 : 七十은 '일흔'이니 '이런'의 뜻. 이런 일.  三十食 : 三十은 '서른'이니 '선(未熟)'의 뜻. 설익은 밥.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수자 새김을 이용하여 표현한 시이다.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 밥을 먹으리라.   無題 (무제)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排徊 사각송반죽일기 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주인막도무안색 오애청산도수래   죽 한 그릇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의 저녁 끼니는 멀건 죽.  죽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주지만 글 모르는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風俗薄 (풍속박)  斜陽鼓立兩柴扉 三被主人手却揮 사양고립양시비 삼피주인수각휘  杜宇亦知風俗薄 隔林啼送不如歸 두우역지풍속박 격림제송불여귀   야박한 풍속  석양에 사립문 두드리며 멋쩍게 서있는데  집 주인이 세 번씩이나 손 내저어 물리치네.  저 두견새도 야박한 풍속을 알았는지  돌아가는 게 낫다고 숲속에서 울며 배웅하네.   難貧 (난빈)  地上有仙仙見富 人間無罪罪有貧 지상유선선견부 인간무죄죄유빈  莫道貧富別有種 貧者還富富還貧 막도빈부별유종 빈자환부부환빈   가난이 죄  지상에 신선이 있으니 부자가 신선일세.  인간에겐 죄가 없으니 가난이 죄일세.  가난뱅이와 부자가 따로 있다고 말하지 말게나.  가난뱅이도 부자되고 부자도 가난해진다오.   姜座首逐客詩 (강좌수축객시)  祠堂洞裡問祠堂 輔國大匡姓氏姜 사당동리문사당 보국대광성씨강  先祖遺風依北佛 子孫愚流學西羌 선조유풍의북불 자손우류학서강  主窺첨下低冠角 客立門前嘆夕陽 주규첨하저관각 객립문전탄석양  座首別監分外事 騎兵步卒可當當 좌수별감분외사 기병보졸가당당   강좌수가 나그네를 쫓다  사당동 안에서 사당을 물으니 보국대광 강씨 집안이라네.  선조의 유풍은 북쪽 부처에게 귀의했건만  자손들은 어리석어 서쪽 오랑캐 글을 배우네.  주인은 처마 아래서 갓을 숙이며 엿보고  나그네는 문 앞에 서서 지는 해를 보며 탄식하네.  좌수 별감이 네게는 분에 넘치는 일이니 기병 보졸 따위나 마땅하리라.  김삿갓을 내쫓은 주인은 나그네가 갔나 안 갔나 확인하려고 갓을 숙이고 엿보는데 김삿갓은 문 앞에 서서 인심 고약한 주인을 풍자하고 있다.   開城人逐客詩 개성인축객시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逢雨宿村家 (봉우숙촌가) 曲木爲椽첨着塵 其間如斗僅容身 곡목위연첨착진 기간여두근용신  平生不欲長腰屈 此夜難謀一脚伸 평생불욕장요굴 차야난모일각신  鼠穴煙通渾似漆 봉窓茅隔亦無晨 서혈연통혼사칠 봉창모격역무신  雖然免得衣冠濕 臨別慇懃謝主人 수연면득의관습 임별은근사주인   비를 만나 시골집에서 자다  굽은 나무로 서까래 만들고 처마에 먼지가 쌓였지만  그 가운데가 말만해서 겨우 몸을 들였네.  평생 동안 긴 허리를 굽히려 안했지만  이 밤에는 다리 하나도 펴기가 어렵구나.  쥐구멍으로 연기가 들어와 옻칠한 듯 검어진 데다  봉창은 또 얼마나 어두운지 날 밝는 것도 몰랐네.  그래도 하룻밤 옷 적시기는 면했으니  떠나면서 은근히 주인에게 고마워 했네.  어느 시골집에서 비를 피하며 지은 것으로 궁벽한 촌가의 정경과 선비로서의 기개가 엿보이는 시이다.  누추하지만 나그네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주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면서 세속에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艱飮野店 (간음야점)  千里行裝付一柯 餘錢七葉尙云多 천리행장부일가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낭중계이심심재 야점사양견주하   주막에서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 길, 어쩌다 생긴 옆전 일곱닢이 전부지만 저녁놀이 붉게 타는 어스름에  술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는 나그네의 모습.     失題 (실제)  許多韻字何呼覓 彼覓有難況此覓 허다운자하호멱 피멱유난황차멱  一夜宿寢懸於覓 山村訓長但知覓 일야숙침현어멱 산촌훈장단지멱  제목을 잃어 버린 시  수많은 운자 가운데 하필이면 '멱'자를 부르나.  그 '멱'자도 어려웠는데 또 '멱'자를 부르다니.  하룻밤 잠자리가 '멱'자에 달려 있는데  산골 훈장은 오직 '멱'자만 아네.  김삿갓이 어느 산골 서당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하니 훈장이 시를 지으면 재워 주겠다고 하면서  시를 짓기 어려운 '멱'(覓)자 운을 네 번이나 불렀다. 이에 훈장을 풍자하며 재치있게 네 구절 다 읊었다.    宿農家 (숙농가)  終日緣溪不見人 幸尋斗屋半江濱 종일연계불견인 행심두옥반강빈  門塗女와元年紙 房掃天皇甲子塵 문도여와원년지 방소천황갑자진  光黑器皿虞陶出 色紅麥飯漢倉陳 광흑기명우도출 색홍맥반한창진  平明謝主登前途 若思經宵口味幸 평명사주등전도 약사경소구미행  농가에서 자다  골짜기 따라 종일 가도 사람을 못 보다가  다행히도 오두막집을 강가에서 찾았네.  문을 바른 종이는 여와 시절 그대로고  방을 쓸었더니 천황씨 갑자년 먼지일세.  거무튀튀한 그릇들은 순임금이 구워냈고  불그레한 보리밥은 한나라 창고에서 묵은 것일세.  날이 밝아 주인에게 사례하고 길을 나섰지만  지난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구나.  여와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천지를 만들었다는 인물, 천황씨는 전설에 나오는 고대 중국 임금.   過安樂見오 (과안락견오 ) 安樂城中欲暮天 關西孺子聳詩肩 안락성중욕모천 관서유자용시견  村風厭客遲炊飯 店俗慣人但索錢 촌풍염객지취반 점속관인단색전  虛腹曳雷頻有響 破窓透冷更無穿 허복예뢰빈유향 파창투냉갱무천  朝來一吸江山氣 試向人間벽穀仙 조래일흡강산기 시향인간벽곡선  안락성을 지나다가 배척받고  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관서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  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빈 배에선 자주 천둥 소리가 들리는데  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로 냉기만 스며드네.  아침이 되어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번 마셨으니  인간 세상에서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벽곡은 신선이 되기 위해 곡식을 먹지 않고 수련하는 방법.  안락성에서 안락하지 않게 밤을 지냈음을 풍자했다.     自詠 (자영)  寒松孤店裡 高臥別區人 한송고점리 고와별구인  近峽雲同樂 臨溪鳥與隣 근협운동락 임계조여린  치銖寧荒志 詩酒自娛身 치수영황지 시주자오신  得月卽帶憶 悠悠甘夢頻 득월즉대억 유유감몽빈  스스로 읊다  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한가롭게 누웠으니 별세상 사람일세.  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옛생각도 하며  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세속에 물들지 않고 시와 술로 근심을 잊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풍류객의 모습을 그렸다.   思鄕 (사향)  西行己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 서행기과십삼주 차지유연석거유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우운가향인오야 산하역려세천추  莫將悲慨談靑史 須向英豪問白頭 막장비개담청사 수향영호문백두  玉館孤燈應送歲 夢中能作故園遊 옥관고등응송세 몽중능작고원유  고향 생각  서쪽으로 이미 열세 고을을 지나왔건만  이곳에서는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네.  아득한 고향을 한밤중에 생각하니  천지 산하가 천추의 나그네길일세.  지난 역사를 이야기하며 비분강개하지 마세.  영웅 호걸들도 다 백발이 되었네.  여관의 외로운 등불 아래서 또 한 해를 보내며  꿈 속에서나 고향 동산에 노닐어 보네.  오야(五夜)는 오경(五更)으로 오전 3시부터 5시 까지이다.     卽吟 (즉음)  坐似枯禪反愧髥 風流今夜不多兼 좌사고선반괴염 풍류금야부다겸  燈魂寂寞家千里 月事肅條客一첨 등혼적막가천리 월사숙조객일첨  紙貴淸詩歸板粉 肴貧濁酒用盤鹽 지귀청시귀판분 효빈탁주용반염  瓊거亦是黃金販 莫作於陵意太廉 경거역시황금판 막작어릉의태염  즉흥적으로 읊다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 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自顧偶吟 (자고우음)  笑仰蒼穹坐可超 回思世路更초초 소앙창궁좌가초 회사세로경초초  居貧每受家人謫 亂飮多逢市女嘲 거빈매수가인적 난음다봉시녀조  萬事付看花散日 一生占得月明宵 만사부간화산일 일생점득월명소  也應身業斯而已 漸覺靑雲分外遙 야응신업사이이 점각청운분외요  나를 돌아보며 우연히 짓다  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청운이 분수밖에 있음을 차츰 깨닫겠네  세속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자신의 생활을 감회에 젖어 읊은 시이다.     是是非非詩 시시비비시  年年年去無窮去 日日日來不盡來 년년년거무궁거 일일일래부진래  年去月來來又去 天時人事此中催 년거월래래우거 천시인사차중최  시시비비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蘭皐平生詩 (난고평생시)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독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우인불가원천난 세모비회여촌장  初年自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초년자위득락지 한북지오생장향  簪纓先世富貴人 花柳長安名勝庄 잠영선세부귀인 화류장안명승장  隣人也賀弄璋慶 早晩前期冠蓋場 인인야하농장경 조만전기관개장  髮毛稍長命漸奇 灰劫殘門飜海桑 발모초장명점기 회겁잔문번해상  依無親戚世情薄 哭盡爺孃家事荒 의무친척세정박 곡진야양가사황  終南曉鍾一納履 風土東邦心細量 종남효종일납리 풍토동방심세양  心猶異域首丘狐 勢亦窮途觸藩羊 심유이역수구호 세역궁도촉번양  南州從古過客多 轉蓬浮萍經幾霜 남주종고과객다 전봉부평경기상  搖頭行勢豈本習 口圖生惟所長 요두행세기본습 구도생유소장  光陰漸向此中失 三角靑山何渺茫 광음점향차중실 삼각청산하묘망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강산걸호관천문 풍월행장공일낭  千金之子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천금지자만석군 후박가풍균시상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빈髮蒼 신궁매우속안백 세거편상빈발창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귀혜역난저역난 기일방황중로방  난고평생시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다니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어  섣달 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넘쳤지.  초년엔 즐거운 세상 만났다 생각하고  한양이 내 생장한 고향인 줄 알았지.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지.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조만간 출세하기를 기대했었지.  머리가 차츰 자라며 팔자가 기박해져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되더니,  의지할 친척도 없이 세상 인심 박해지고  부모 상까지 마치자 집안이 쓸쓸해졌네.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끈을 맨 뒤에  동방 풍토를 돌아다니며 시름으로 가득 찼네.  마음은 아직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 같건만  울타리에 뿔 박은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남녘 지방은 옛부터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이나 되었던가.  머리 굽실거리는 행세가 어찌 내 본래 버릇이랴만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 가득 늘었네.  이 가운데 세월을 차츰 잊어 버려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해라.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천만이나 되었건만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일세.  천금 자제와 만석군 부자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신세가 궁박해져 늘 백안시 당하고  세월이 갈수록 머리 희어져 가슴 아프네.  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둘래도 어려워  중도에 서서 며칠 동안 방황하네.  난고는 김삿갓의 호이다.     多睡婦 (다수부)  西隣愚婦睡方濃 不識蠶工況也農 서린우부수방농 부식잠공황야농  機閑尺布三朝織 杵倦升粮半日春 기한척포삼조직 저권승량반일춘  弟衣秋盡獨稱搗 姑襪冬過每語縫 제의추진독칭도 고말동과매어봉  蓬髮垢面形如鬼 偕老家中却恨逢 봉발구면형여귀 해로가중각한봉  잠 많은 아낙네  이웃집 어리석은 아낙네는 낮잠만 즐기네.  누에치기도 모르니 농사짓기를 어찌 알랴.  베틀은 늘 한가해 베 한 자에 사흘 걸리고  절구질도 게을러 반나절에 피 한 되 찧네.  시아우 옷은 가을이 다 가도록 말로만 다듬질하고  시어미 버선 깁는다고 말로만 바느질하며 겨울 넘기네.  헝클어진 머리에 때 낀 얼굴이 꼭 귀신 같아  같이 사는 식구들이 잘못 만났다 한탄하네.   懶婦 (나부)  無病無憂洗浴稀 十年猶着嫁時衣 무병무우세욕희 십년유착가시의  乳連褓兒謀午睡 手拾裙蝨愛첨暉 유연보아모오수 수습군슬애첨휘  動身便碎廚中器 搔首愁看壁上機 동신변쇄주중기 소수수간벽상기  忽聞隣家神賽慰 柴門半掩走如飛 홀문인가신새위 시문반엄주여비  게으른 아낙네  병 없고 걱정 없는데 목욕도 자주 안해  십 년을 그대로 시집 올 때 옷을 입네.  강보의 아기가 젖 물린 채로 낮잠이 들자  이 잡으려 치마 걷어 들고 햇볕 드는 처마로 나왔네.  부엌에서 움직였다하면 그릇을 깨고  베틀 바라보면 시름겹게 머리만 긁어대네.  그러다가 이웃집에서 굿한다는 소문만 들으면  사립문 반쯤 닫고 나는 듯 달려가네.   喪配自輓 (상배자만)  遇何晩也別何催 未卜其欣只卜哀 우하만야별하최 미복기흔지복애  祭酒惟餘醮日釀 襲衣仍用嫁時裁 제주유여초일양 습의잉용가시재  窓前舊種少桃發 簾外新巢雙燕來 창전구종소도발 염외신소쌍연래  賢否卽從妻母問 其言吾女德兼才 현부즉종처모문 기언오녀덕병재  아내를 장사지내고  만나기는 왜 그리 늦은데다 헤어지기는 왜 그리 빠른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슬픔부터 맛보았네.  제삿술은 아직도 초례 때 빚은 것이 남았고  염습옷은 시집 올 때 지은 옷 그대로 썼네.  창 앞에 심은 복숭아 나무엔 꽃이 피었고  주렴 밖 새 둥지엔 제비 한 쌍이 날아 왔는데  그대 심성도 알지 못해 장모님께 물으니  내 딸은 재덕을 겸비했다고 말씀하시네.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내의 상을 당한 남편을 대신하여 지은 시이다.  아내가 떠난 집에 제비가 찾아오고 복숭아 꽃이 피니, 아내를 그리는 정이 더욱 간절해짐을 표현했다.   贈妓 (증기)  却把難同調 還爲一席親 각파난동조 환위일석친  酒仙交市隱 女俠是文人 주선교시은 여협시문인  太半衿期合 成三意態新 태반금기합 성삼의태신  相携東郭月 醉倒落梅春 상휴동곽월 취도락매춘  기생에게 지어 주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울리기 어렵더니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주선(酒仙)이 시은(市隱)과 사귀는데  이 여협객은 문장가일세.  정을 통하려는 뜻이 거의 합해지자  달그림자까지 합해서 세 모습이 새로워라.  서로 손 잡고 달빛 따라 동쪽 성곽을 거닐다가  매화꽃 떨어지듯 취해서 쓰러지네.  주선(酒仙)은 술을 즐기는 김삿갓 자신.  시은(市隱)은 도회지에 살면서도 은자같이 지내는 사람.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이라고 하여  달, 자신, 자신의 그림자가 모여 셋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시객(詩客)이 아름다운 기녀와 대작을 하며 시로 화답하고 봄 밤의 취흥을 즐기는 풍류시이다.     老吟 (노음)  五福誰云一曰壽 堯言多辱知如神 오복수운일왈수 요언다욕지여신  舊交皆是歸山客 新少無端隔世人 구교개시귀산객 신소무단격세인  筋力衰耗聲似痛 胃腸虛乏味思珍 근력쇠모성사통 위장허핍미사진  內情不識看兒苦 謂我浪遊抱送頻 내정부식간아고 위아랑유포송빈  늙은이가 읊다  오복 가운데 수(壽)가 으뜸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오래 사는 것도 욕이라고 한 요임금 말이 귀신 같네.  옛친구들은 모두 다 황천으로 가고  젊은이들은 낯설어 세상과 멀어졌네.  근력이 다 떨어져 앓는 소리만 나오고  위장이 허해져 맛있는 것만 생각나네.  애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 줄도 모르고  내가 그냥 논다고 아이를 자주 맡기네.  요임금이 말하기를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귀하면 일이 많으며 장수하면 욕된 일이 많아 진다고 했다.  오복(五福)의 첫째는 장수(長壽)라 하나 늙으면 버림 받고 외로워지니 요임금이 이를 알고 長壽는 多辱이라 했다.     老人自嘲 (노인자조)  八十年加又四年 非人非鬼亦非仙 팔십년가우사년 비인비귀역비선  脚無筋力行常蹶 眼乏精神坐輒眠 각무근력행상궐 안핍정신좌첩면  思慮語言皆妄녕 猶將一縷線線氣 사려어언개망녕 유장일루선선기  悲哀歡樂總茫然 時閱黃庭內景篇 비애환락총망연 시열황정내경편  노인이 스스로 놀리다  여든 나이에다 또 네 살을 더해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데 신선은 더욱 아닐세.  다리에 근력이 없어 걸핏하면 넘어지고  눈에도 정기가 없어 앉았다 하면 조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모두가 망령인데  한 줄기 숨소리가 목숨을 이어가네.  희로애락 모든 감정이 아득키만 한데  이따금 황정경 내경편을 읽어보네.  김삿갓이 노인의 청을 받아 지은 것으로, 기력이 쇠해서 근근히 살아가면서도  도가(道家)의 경전을 읽으며 허무에 심취한 것을 읊었다.   嘲幼冠者 (조유관자)  畏鳶身勢隱冠蓋 何人咳嗽吐棗仁 외연신세은관개 하인해수토조인  若似每人皆如此 一腹可生五六人 약사매인개여차 일복가생오륙인  갓 쓴 어린아이를 놀리다  솔개 보고도 무서워할 놈이 갓 아래 숨었는데  누군가 기침하다가 토해낸 대추씨 같구나.  사람마다 모두들 이렇게 작다면  한 배에서 대여섯 명은 나올 수 있을 테지.  어린 꼬마 신랑이 갓을 쓰고 다님을 조롱했다.  솔개를 무서워할 나이에 몸을 가릴 만큼 큰 갓을 쓰고 몸집은 대추씨처럼 작은데 벌써 새신랑이 되었음을 표현했다.     嘲年長冠者 (조연장관자)  方冠長竹兩班兒 新買鄒書大讀之 방관장죽양반아 신매추서대독지  白晝후孫初出袋 黃昏蛙子亂鳴池 백주후손초출대 황혼와자난명지  갓 쓴 어른을 놀리다  갓 쓰고 담뱃대 문 양반 아이가  새로 사온 맹자 책을 크게 읽는데  대낮에 원숭이 새끼가 이제 막 태어난 듯하고  황혼녘에 개구리가 못에서 어지럽게 우는 듯하네.   訓戒訓長 (훈계훈장)  化外頑氓怪習餘 文章大塊不平噓 화외완맹괴습여 문장대괴불평허  여盃測海難爲水 牛耳誦經豈悟書 여배측해난위수 우이송경기오서  含黍山間奸鼠爾 凌雲筆下躍龍余 함서산간간서이 능운필하약용여  罪當笞死姑舍己 敢向尊前語詰거 죄당태사고사기 감향존전어힐거  훈장을 훈계하다  두메산골 완고한 백성이 괴팍한 버릇 있어  문장대가들에게 온갖 불평을 떠벌리네.  종지 그릇으로 바닷물을 담으면 물이라 할 수 없으니  소 귀에 경 읽기인데 어찌 글을 깨달으랴.  너는 산골 쥐새끼라서 기장이나 먹지만  나는 날아 오르는 용이라서 붓끝으로 구름을 일으키네.  네 잘못이 매 맞아 죽을 죄이지만 잠시 용서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이 말장난 말라.  김삿갓이 강원도 어느 서당을 찾아가니 마침 훈장은 학동들에게 고대의 문장을 강의하고 있는데 주제넘게도 그 문장을 천시하는 말을 하고 김삿갓을 보자 멸시를 하는것이었다. 이에 훈장의 허세를 꼬집는 시를지었다.     訓長 (훈장)  世上誰云訓長好 無烟心火自然生 세상수운훈장호 무연심화자연생  曰天曰地靑春去 云賦云詩白髮成 왈천왈지청춘거 운부운시백발성  雖誠難聞稱道賢 暫離易得是非聲 수성난문칭도현 잠리이득시비성  掌中寶玉千金子 請囑撻刑是眞情 장중보옥천금자 청촉달형시진정  훈장  세상에서 누가 훈장이 좋다고 했나.  연기없는 심화가 저절로 나네.  하늘 천 따 지 하다가 청춘이 지나가고  시와 문장을 논하다가 백발이 되었네.  지성껏 가르쳐도 칭찬 듣기 어려운데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시비를 듣기 쉽네.  장중보옥 천금 같은 자식을 맡겨 놓고  매질해서 가르쳐 달라는 게 부모의 참마음일세.  김삿갓은 방랑 도중 훈장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훈장에 대한 그의 감정은 호의적이지 못해서  얄팍한 지식으로 식자(識者)인 체하는 훈장을 조롱하는 시가 여럿있다.     嘲山村學長 (조산촌학장)  山村學長太多威 高着塵冠揷唾排 산촌학장태다위 고착진관삽타배  大讀天皇高弟子 尊稱風憲好明주 대독천황고제자 존칭풍헌호명주  每逢兀字憑衰眼 輒到巡杯籍白鬚 매봉올자빙쇠안 첩도순배적백수  一飯횡堂生色語 今年過客盡楊州 일반횡당생색어 금년과객진양주  산골 훈장을 놀리다  산골 훈장이 너무나 위엄이 많아  낡은 갓 높이 쓰고 가래침을 내뱉네.  천황을 읽는 놈이 가장 높은 제자고  풍헌이라고 불러 주는 그런 친구도 있네.  모르는 글자 만나면 눈 어둡다 핑계대고  술잔 돌릴 땐 백발 빙자하며 잔 먼저 받네.  밥 한 그릇 내주고 빈 집에서 생색내는 말이  올해 나그네는 모두가 서울 사람이라 하네.  풍헌(風憲)은 조선 시대 향직(鄕職)의 하나.     可憐妓詩 (가련기시)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기생 가련에게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離別 (이별)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이별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贈某女 (증모녀)  客枕條蕭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침조소몽불인 만천상월조오린  綠竹靑松千古節 紅桃白李片時春 녹죽청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昭君玉骨湖地土 貴비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비화용마외진  人性本非無情物 莫惜今宵解汝거 인성본비무정물 막석금소해여거  어느 여인에게 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붉은 복사꽃 흰 오얏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케 땅에 묻히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의 티끌이 되었네.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궁녀. 흉노 땅에서 죽음.  마외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때 양귀비가 피난 갔다가 죽은 곳.  김삿갓이 전라도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커다란 기와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나오지 않고 계집종이 나와서 저녁상을 내다 주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에 안방 문을 열어보니 소복을 입은 미인이 있었는데 독수공방하는 어린 과부였다.  밤이 깊은 뒤에 김삿갓이 안방에 들어가자 과부가 놀라 단도를 겨누었다.  김삿갓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가는 길인데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하자 여인이 운을 부르며 시를 짓게 하였다. 街上初見 (가상초견)  芭經一帙誦分明 客駐程참忽有情 파경일질송분명 객주정참홀유정  虛閣夜深人不識 半輪殘月已三更 -金笠詩 허각야심인불식 반륜잔월이삼경  難掩長程十目明 有情無語似無情 난엄장정십목명 유정무어사무정  踰墻穿壁非難事 曾與農夫誓不更 -女人詩 유장천벽비난사 증여농부서불경   길가에서 처음 보고  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테니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거요. -김삿갓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여인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여인들이 논을 메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미인이 시경을 줄줄 외우고 있어서 김삿갓이 앞구절을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뒷구절을 지어 남편과 다짐한 불경이부(不更二夫)의 맹세를 저 버릴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詠影 (영영)  進退隨농莫汝恭 汝농酷似實非농 진퇴수농막여공 여농혹사실비농  月斜岸面篤魁狀 日午庭中笑矮容 월사안면독괴상 일오정중소왜용  枕上若尋無覓得 燈前回顧忽相逢 침상약심무멱득 등전회고홀상봉  心雖可愛終無信 不映光明去絶踪 심수가애종무신 불영광명거절종  그림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날 따르는데도 고마워 않으니  네가 나와 비슷하지만 참 나는 아니구나.  달빛 기울어 언덕에 누우면 도깨비 모습이 되고  밝은 대낯 뜨락에 비치면 난쟁이처럼 우습구나.  침상에 누워 찾으면 만나지 못하다가  등불 앞에서 돌아보면 갑자기 마주치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종내 말이 없다가  빛이 비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네.  아직 그의 파격적인 희롱의 시편들을 예감하기에는 이르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잉태하고 있는 시의 파괴적인 상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의 내용에서 어떤 우수나 비애도 내비치지않은 냉철한 서술이 있는데 바로 이 서술에서 그의 장난스러운 상상력을 얼핏 내보이고 있다. 嘲地官 (조지관)  風水先生本是虛 指南指北舌飜空 풍수선생본시허 지남지북설번공  靑山若有公侯地 何不當年葬爾翁 청산약유공후지 하불당년장이옹  지관을 놀리다  풍수 선생은 본래 허망된 말만 하는 사람이라  남이다 북이다 가리키며 부질없이 혀를 놀리네.  청산 속에 만약 명당 자리가 있다면  어찌 네 아비를 파묻지 않았나. 嘲地師 (조지사)  可笑龍山林處士 暮年何學李淳風 가소용산임처사 모년하학이순풍  雙眸能貫千峰脈 兩足徒行萬壑空 쌍모능관천봉맥 양족도행만학공  顯顯天文猶未達 漠漠地理豈能通 현현천문유미달 막막지리기능통  不如歸飮重陽酒 醉抱瘦妻明月中 불여귀음중양주 취포수처명월중  지사를 조롱함  가소롭구나 용산에 사는 임처사여  늘그막에 어찌하여 이순풍을 배웠나.  두 눈으로 산줄기를 꿰뚫어 본다면서  두 다리로 헛되이 골짜기를 헤매네.  환하게 드러난 천문도 오히려 모르면서  보이지 않는 땅 속 일을 어찌 통달했으랴.  차라리 집에 돌아가 중양절 술이나 마시고  달빛 속에서 취하여 여윈 아내나 안아 주시게.  이순풍(李淳風)은 당나라 사람으로 역산(曆算)에 밝았고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었다.  천체의 형상도 모르면서 땅의 이치를 안답시고 명당이라는 곳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누비고 다녔으나  모두 헛수고를 한 것이니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조롱을 했다.   溺缸 (요항)  賴渠深夜不煩扉 令作團隣臥處圍 뢰거심야부번비 영작단린와처위  醉客持來端膽膝 態娥挾坐惜衣收 취객지래단담슬 태아협좌석의수  堅剛做體銅山局 灑落傳聲練瀑飛 견강주체동산국 쇄락전성연폭비  最是功多風雨曉 偸閑養性使人肥 최시공다풍우효 투한양성사인비  요강  네가 있어 깊은 밤에도 사립문 번거롭게 여닫지 않아  사람과 이웃하여 잠자리 벗이 되었구나.  술 취한 사내는 너를 가져다 무릎 꿇고  아름다운 여인네는 널 끼고 앉아 살며시 옷자락을 걷네.  단단한 그 모습은 구리산 형국이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는 비단폭포를 연상케 하네.  비바람 치는 새벽에 가장 공이 많으니  한가한 성품 기르며 사람을 살찌게 하네.  오줌이 거름이 되고 또 비바람 치는 새벽에도 문밖에 나가지않고 편안히 일을 보게하므로 사람을 살찌게 한다.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생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택하여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博 (박)  酒老詩豪意氣同 戰場方設一堂中 주로시호의기동 전장방설일당중  飛包越處軍威壯 猛象준前陳勢雄 비포월처군위장 맹상준전진세웅  直走輕車先犯卒 橫行駿馬每窺宮 직주경차선범졸 횡행준마매규궁  殘兵散盡連呼將 二士難存一局空 잔병산진연호장 이사난존일국공   장기  술친구나 글친구들이 뜻이 맞으면  마루에 마주 앉아서 한바탕 싸움판을 벌이네.  포가 날아오면 군세가 장해지고  사나운 상이 웅크리고 앉으면 진세가 굳어지네.  치달리는 차가 졸을 먼저 따먹자  옆으로 달리는 날쌘 말이 궁을 엿보네.  병졸들이 거의 다 없어지고 잇달아 장군을 부르자  두 사가 견디다 못해 장기판을 쓸어 버리네.  주객(酒客)과 시우(詩友)가 대청 마루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을 읊었다.  포(包), 상(象), 차(車), 마(馬)의 활약이 잘 묘사되어 있다.   棋 (기)  縱橫黑白陳如圍 勝敗專由取舍機 종횡흑백진여위 승패전유취사기  四皓閑秤忘世坐 三淸仙局爛柯歸 사호한칭망세좌 삼청선국난가귀  詭謨偶獲擡頭點 誤着還收擧手揮 궤모우획대두점 오착환수거수휘  半日輪영更挑戰 丁丁然響到斜輝 반일윤영갱도전 정정연향도사휘  바둑  흑백이 종횡으로 에워싼 것처럼 진을 치니  승패는 오로지 때를 잡고 못 잡음에 달렸네.  사호가 은거하여 바둑으로 시국을 잊었고  삼청 신선들 대국에 도끼자루 다 썩더라.  뜻밖의 속임수로 세력 뻗을 점도 얻고  잘못 두고 물러 달라 손 휘두르기도 하는구나.  한나절 승부를 걸고 다시금 도전하니  바둑알 치는 소리에 석양이 빛나네.  사호(四皓)는 진시황 때 난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은 네 은사(隱士).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녹里先生). 삼청(三淸)은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으로 신선들이 산다는 궁의 이름이다. 眼鏡 (안경)  江湖白首老如鷗 鶴膝烏精價易牛 강호백수노여구 학슬오정가역우  環若張飛준蜀虎 瞳成項羽沐荊후 환약장비준촉호 동성항우목형후  삽疑濯濯穿籬鹿 快讀關關在渚鳩 삽의탁탁천리록 쾌독관관재저구  少年多事懸風眼 春陌堂堂倒紫류 소년다사현풍안 춘맥당당도자류  안경  강호에 사람이 늙어 갈매기처럼 희어졌는데  검은 알에 흰 테 안경을 쓰니 소 한 마리 값일세.  고리눈은 장비와 같아 촉나라 범이 웅크려 앉았고  겹눈동자는 항우와 같아 목욕한 초나라 원숭이일세.  얼핏 보면 알이 번쩍여 울타리를 빠져 나가는 사슴 같은데  노인이 시경 관저편을 신나게 읽고 있네.  소년은 일도 없이 멋으로 안경 걸치고  봄 언덕으로 당나귀 거꾸로 타고 당당히 다니네.  각 행의 끝나는 글자들이 모두 동물 이름이다.  갈매기 구(鷗), 소 우(牛), 범 호(虎), 원숭이 후(후), 사슴 록(鹿), 비둘기 구(鳩), 눈 안(眼), 당나귀 류(류) 접을 수 있는 안경 다리가 두루미 무릎을 닮았다고 해서 학슬(鶴膝)이라 불렀다.  오정(烏精)은 거무스럼한 안경알을 가리킨다. 磨石 (마석)  誰能山骨作圓圓 天以順還地自安 수능산골작원원 천이순환지자안  隱隱雷聲隨手去 四方飛雪落殘殘 은은뇌성수수거 사방비설낙잔잔  맷돌  누가 산 속의 바윗돌을 둥글게 만들었나.  하늘만 돌고 땅은 그대로 있네.  은은한 천둥소리가 손 가는 대로 나더니  사방으로 눈싸라기 날리다 잔잔히 떨어지네.  돌로 만든 무생물체도 그가 노래하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태어났다.   錢 (전)  周遊天下皆歡迎 興國興家勢不輕 주유천하개환영 흥국흥가세불경  去復還來來復去 生能死捨死能生 거복환래래복거 생능사사사능생  돈  천하를 두루 돌아 다니며 어디서나 환영받으니  나라와 집안을 흥성케 하여 그 세력이 가볍지 않네.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는 또 가니  살리고 죽이는 것도 마음대로 하네.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산 사람도 죽게 만드는 것이 돈이니 당시에도 그 위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落花吟 (낙화음)  曉起飜驚滿山紅 開落都歸細雨中 효기번경만산홍 개락도귀세우중  無端作意移粘石 不忍辭枝倒上風 무단작의이점석 불인사지도상풍  鵑月靑山啼忽罷 燕泥香逕蹴全空 견월청산제홀파 연니향경축전공  繁華一度春如夢 坐嘆城南頭白翁 번화일도춘여몽 좌탄성남두백옹  떨어진 꽃  새벽에 일어나 온 산이 붉은 걸 보고 놀랐네.  가랑비 속에 피었다 가랑비 속에 지네.  끝없이 살고 싶어 바위 위에도 달라붙고  가지를 차마 떠나지 못해 바람 타고 오르기도 하네.  두견새는 푸른 산에서 슬피 울다가 그치고  제비는 진흙에 붙은 꽃잎을 차다가 그저 올라가네.  번화한 봄날이 한차례 꿈같이 지나가자  머리 흰 성남의 늙은이가 앉아서 탄식하네.  초목과 꽃이 풍성한 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여 읊은 작품이다.   雪中寒梅 (설중한매)  雪中寒梅酒傷妓 風前槁柳誦經僧 설중한매주상기 풍전고류송경승  栗花落花尨尾短 榴花初生鼠耳凸 율화낙화방미단 유화초생서이철  눈 속의 차가운 매화  눈 속에 핀 차가운 매화는 술에 취한 기생 같고  바람 앞에 마른 버들은 불경을 외는 중 같구나.  떨어지는 밤꽃은 삽살개의 짧은 꼬리 같고  갓 피어나는 석류꽃은 뾰족한 쥐의 귀 같구나. 雪日 (설일)  雪日常多晴日或 前山旣白後山亦 설일상다청일혹 전산기백후산역  推窓四面琉璃壁 分咐寺童故掃莫 추창사면유리벽 분부사동고소막  눈 오는 날 늘 눈이 내리더니 어쩌다 개어  앞산이 희어지고 뒷산도 희구나.  창문을 밀쳐 보니 사면이 유리벽이라  아이에게 시켜서 쓸지 말라고 하네.  김삿갓이 어느 절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청하자 중이 거절했다.  김삿갓이 절을 나가려 하자 혹시 김삿갓이 아닌가 생각하고 시를 짓게 했다.  혹(或), 역(亦), 벽(壁), 막(莫) 같은 어려운 운을 불러 괴롭혔지만 이 시를 짓고 잠을 자게 되었다. 雪 (설)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천황붕호인황붕 만수청산개피복  明日若使陽來弔 家家첨前淚滴滴 명일약사양내조 가가첨전누적적  눈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蚤 (조)  貌似棗仁勇絶倫 半風爲友蝎爲隣 모사조인용절륜 반풍위우갈위린  朝從席隙藏身密 暮向衾中犯脚親 조종석극장신밀 모향금중범각친  尖嘴嚼時心動索 赤身躍處夢驚頻 첨취작시심동색 적신약처몽경빈  平明點檢肌膚上 剩得桃花萬片春 평명점검기부상 잉득도화만편춘  벼룩  모습은 대추씨 같지만 용기가 뛰어나  이와는 친구 삼고 전갈과는 이웃일세.  아침에는 자리 틈에 몸을 숨겨 찾을 수 없고  저녁에는 이불 속에 다리 물려고 가까이 오네.  뾰족한 주둥이에 물릴 때마다 찾아볼 마음이 생기고  알몸으로 튈 때마다 단꿈이 자주 깨네.  밝은 아침에 일어나 살갗을 살펴보면  복사꽃 만발한 봄날 경치를 보는 것 같네.  벼룩의 모양과 습성을 묘사하고 벼룩에 물린 사람의 피부를 복숭아꽃이 만발한 봄 경치에 비유하였다.   猫 (묘)  乘夜橫行路北南 中於狐狸傑爲三 승야횡행로북남 중어호리걸위삼  毛分黑白渾成繡 目狹靑黃半染藍 모분흑백혼성수 자협청황반염람  貴客床前偸美饌 老人懷裡傍溫衫 귀객상전투미찬 노인회리방온삼  那邊雀鼠能驕慢 出獵雄聲若大膽 나변작서능교만 출렵웅성약대담  고양이  밤에는 남북 길을 제멋대로 다니며  여우와 삵괭이 사이에 끼어 삼걸이 되었네.  털은 흑백이 뒤섞여 수를 놓고  눈은 청황색에다 남색까지 물들었네.  귀한 손님 밥상에선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고  늙은이 품 속에서 따뜻한 옷에 덮여 자니  쥐가 어디에 있나 찾아나설 땐 교만 떨다가  야옹소리 크게 지를 땐 간담이 크기도 해라.  예민한 관찰과 기발한 착상으로 고양이의 생김새와 습성을 표현하였다.   老牛 (노우)  瘦骨稜稜滿禿毛 傍隨老馬兩分槽 수골릉릉만독모 방수노마양분조  役車荒野前功遠 牧竪靑山舊夢高 역거황야전공원 목수청산구몽고  健우常疎閑臥圃 苦鞭長閱倦登皐 건우상소한와포 고편장열권등고  可憐明月深深夜 回憶平生만積勞 가련명월심심야 회억평생만적노  늙은 소  파리한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늙은 말 따라서 마굿간을 같이 쓰네.  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공은 멀어지고  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 같아라.  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괴로웠었지.  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세월의 무상함은 인간에게서만 느낄수 있는것은 아니다.  늙은 소를 보고서도 세월이 앗아간 전날의 혈기 넘쳤던 때를 생각할 수 있다.   松餠 (송병)  手裡廻廻成鳥卵 指頭個個合蚌脣 수리회회성조란 지두개개합방순  金盤削立峰千疊 玉箸懸燈月半輪 금반삭립봉천첩 옥저현등월반륜  송편  손에 넣고 뱅뱅 돌리면 새알이 만들어지고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파서 조개 같은 입술을 맞추네.  금쟁반에 천봉우리를 첩첩이 쌓아 올리고  등불을 매달고 옥젖가락으로 반달 같은 송편을 집어 먹네.  새알을 만들고 조개 같은 입술을 맞추고 반달 같은 송편을 먹는 묘사에서 시인의 관찰력과 재치를 볼 수 있다. 白鷗時 (백구시)  沙白鷗白兩白白 不辨白沙與白鷗 사백구백양백백 불변백사여백구  漁歌一聲忽飛去 然後沙沙復鷗鷗 어가일성홀비거 연후사사부구구  갈매기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니  모래와 갈매기를 분간할 수 없구나.  어부가(漁夫歌) 한 곡조에 홀연히 날아 오르니  그제야 모래는 모래, 갈매기는 갈매기로 구별되누나.   入金剛 (입금강)  緣靑碧路入雲中 樓使能詩客住공 연청벽로입운중 누사능시객주공  龍造化含飛雪瀑 劒精神削揷天峰 용조화함비설폭 검정신삭삽천봉  仙禽白幾千年鶴 澗樹靑三百丈松 선금백기수년학 간수청삼백장송  僧不知吾春睡腦 忽無心打日邊鐘 승부지오춘수뇌 홀무심타일변종  금강산에 들어가다  푸른 길 따라서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누각이 시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  눈발 흩날리며 걸린 폭포는 용의 조화가 분명하고  하늘 찌르며 솟은 봉우리는 칼로 신통하게 깎았네.  속세 떠난 흰 학은 몇천 년이나 살았는지  시냇가 푸른 소나무도 삼백 길이나 되어 보이네.  스님은 내가 봄잠 즐기는 것도 알지 못하고  무심하게 낮종을 치고 있구나.  봄날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주위에 펼쳐진 경치의 아름다움을 읊었다. 答僧金剛山詩 (답승금강산시)  百尺丹岩桂樹下 柴門久不向人開 백척단암계수하 시문구불향인개  今朝忽遇詩仙過 喚鶴看庵乞句來 -僧 금조홀우시선과 환학간암걸구래 -승  矗矗尖尖怪怪奇 人仙神佛共堪凝 촉촉첨첨괴괴기 인선신불공감응  平生詩爲金剛惜 詩到金剛不敢詩 -笠 평생시위금강석 시도금강불감시 -립  스님에게 금강산 시를 답하다  백 척 붉은 바위 계수나무 아래 암자가 있어  사립문을 오랫동안 사람에게 열지 않았, ?  오늘 아침 우연히 시선께서 지나는 것을 보고  학 불러 암자를 보이게 하고 시 한 수를 청하오. - 스님  우뚝우뚝 뾰족뾰족 기기괴괴한 가운데  인선(人仙)과 신불(神佛)이 함께 엉겼소.  평생 금강산 위해 시를 아껴 왔지만  금강산에 이르고 보니 감히 시를 지을 수가 없소. -삿갓  한 승려의 청으로 금강산을 읊으려 하나 너무나 장엄하고 기이한 산세에 압도되어 시를 짓지 못하겠다는 내용이다. 妙香山詩 (묘향산시)  平生所欲者何求 每擬妙香山一遊 평생소욕자하구 매의묘향산일유  山疊疊千峰萬인 路層層十步九休 산첩첩천봉만인 노층층십보구휴  묘향산  평생 소원이 무엇이었던가. 묘향산에 한번 노니는 것이었지.  산 첩첩 천 봉 만 길에 길 층층 열 걸음에 아홉 번은 쉬네.  평소에 한번 와 보고 싶었던 묘향산의 겹겹이 둘러싸인 산세와 산봉우리의 빼어남을 노래하였다. 九月山峰 (구월산봉)  昨年九月過九月 今年九月過九月 작년구월과구월 금년구월과구월  年年九月過九月 九月山光長九月 연연구월과구월 구월산광장구월  구월산  지난해 구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올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네.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지나니 구월산 풍경은 늘 구월일세.   金剛山 (금강산)  松松栢栢岩岩廻 水水山山處處奇 송송백백암암회 수수산산처처기  금강산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도니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기묘하구나.  운의 반복으로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높혔다.   賞景 (상경)  一步二步三步立 山靑石白間間花 일보이보삼보립 산청석백간간화  若使畵工模此景 其於林下鳥聲何 약사화공모차경 기어림하조성하  경치를 즐기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가 서니  산 푸르고 바윗돌 흰데 틈틈히 꽃이 피었네.  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숲 속의 새소리는 어떻게 하려나.  그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었다.  방랑의 동반자요 거처가 되었으니 발길 닿은 산천경개는 모두 그의 노래가 되었다.  화가가 아름다운 봄의 경치는 그릴 수 있겠지만 숲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 소리는 어떻게 그려낼수 있겠는가.   嶺南述懷 (영남술회)  超超獨倚望鄕臺 强壓覇愁快眼開 초초독의망향대 강압기수쾌안개  與月經營觀海去 乘花消息入山來 여월경영관해거 승화소식입산래  長遊宇宙餘雙履 盡數英雄又一杯 장유우주여쌍극 진수영웅우일배  南國風光非我土 不如歸對漢濱梅 남국풍광비아토 불여귀대한빈매  영남 술회  높다란 망향대에 나 홀로 기대 서서  나그네 시름을 억누르고 사방을 둘러 보았네.  달을 따라 드나드는 바다도 둘러보고  꽃소식 알고 싶어 산 속으로 들어왔네.  오랫동안 세상 떠돌다 보니 나막신 한 짝만 남았는데  영웅들을 헤아리며 술 한 잔을 다시 드네.  남국의 자연이 아름다워도 내 고장 아니니  한강으로 돌아가 매화꽃이나 보는 게 낫겠네.  아무리 남쪽 지방의 경치가 좋다한들 집으로 돌아가 물가에 핀 매화 보는 것만 못하니  망향대에 올라 고향을 떠난 자신의 기구한 팔자를 읊고 있다.   淮陽過次 (회양과차)  山中處子大如孃 緩著粉紅短布裳 산중처자대여양 완저분홍단포상  赤脚낭창羞過客 松籬深院弄花香 적각낭창수과객 송리심원농화향  회양을 지나다가  산 속 처녀가 어머니만큼 커졌는데  짧은 분홍 베치마를 느슨하게 입었네.  나그네에게 붉은 다리를 보이기 부끄러워  소나무 울타리 깊은 곳으로 달려가 꽃잎만 매만지네.  '낭'은 足(족)부에 良, '창'은 足(족)부에 倉.  김삿갓이 물을 얻어먹기 위해 어느 집 사립문을 들어 가다가 울타리 밑에 핀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산골 처녀를 발견했다.  처녀는 나그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감상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다리를 감추려는 듯 울타리 뒤에 숨었다.   過寶林寺 (과보림사)  窮達在天豈易求 從吾所好任悠悠 궁달재천개이구 종오소호임유유  家鄕北望雲千里 身勢南遊海一구 가향북망운천리 신세남유해일구  掃去愁城盃作추 釣來詩句月爲鉤 소거수성배작추 조래시구월위구  寶林看盡龍泉又 物外閑跡共比丘 보림간진용천우 물외한적공비구  보림사를 지나며  빈궁과 영달은 하늘에 달렸으니 어찌 쉽게 구하랴.  내가 좋아하는 대로 유유히 지내리라.  북쪽 고향 바라보니 구름 천 리 아득한데  남쪽에 떠도는 내 신세는 바다의 물거품일세.  술잔을 빗자루 삼아 시름을 쓸어 버리고  달을 낚시 삼아 시를 낚아 올리네.  보림사를 다 보고나서 용천사에 찾아오니  속세 떠나 한가한 발길이 비구승과 한가지일세.  보림사는 전남 장흥 가지산에 있는절, 용천사는 전남 함평 무악산에 있는 절이다. 寒食日登北樓吟 (한식일등북루음)  十里平沙岸上莎 素衣靑女哭如歌 십리평사안상사 소의청녀곡여가  可憐今日墳前酒 釀得阿郞手種禾 가련금일분전주 양득아랑수종화  한식날 북루에 올라 읊다  십 리 모래 언덕에 사초꽃이 피었는데  소복 입은 젊은 여인이 노래처럼 곡하네.  가련해라 지금 무덤 앞에 부은 술은  남편이 심었던 벼로 빚었을 테지.  김삿갓이 원산에 이르러 명사십리(明沙十里)를 지나다가 정자에 올라 쉬고 있는데 근처에서 어린 과부가 남편 무덤 앞에 술잔을 올리며 내는 곡소리가 슬픈 노래처럼 들려 왔다.   泛舟醉吟 (범주취음)  江非赤壁泛舟客 地近新豊沽酒人 강비적벽범주객 지근신풍고주인  今世英雄錢項羽 當時辯士酒蘇秦 금세영웅전항우 당시변사주소진  배를 띄우고 취해서 읊다  강은 적벽강이 아니지만 배를 띄웠지.  땅은 신풍에 가까워 술을 살 수 있네.  지금 세상에 영웅이 따로 있으랴, 돈이 바로 항우이고  변사가 따로 있으랴, 술이 바로 소진이지.  신풍(新豊)은 한대(漢代)의 현(縣) 이름으로 신풍미주(新豊美酒)라 하여 좋은 술이 나왔다고 함.  항우(項羽)는 초(楚)나라를 세워 한나라 유방과 함께 진나라를 멸망시킨 영웅.  소진(蘇秦)은 중국 전국시대에 말 잘하던 유세객(遊設客)이다.  지금 김삿갓이 놀고 있는 강은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를 읊었던 그 적벽강은 아니지만 땅은 맛있는 술이 나왔던 신풍과 닮았다.  오늘날의 세상은 돈만 있으면 항우 같은 힘을 낼 수도 있고 술에 취하면 말 잘하는 소진도 될 수 있다.   吉州明川 (길주명천)  吉州吉州不吉州 許可許可不許可 길주길주불길주 허가허가불허가  明川明川人不明 漁佃漁佃食無漁 명천명천인불명 어전어전식무어  길주 명천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하지 않은 고장.  허가 허가 하지만 허가하는 것은 없네.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어전 어전 하지만 밥상에는 고기 없네.  어전은 함경도 명천군 기남면 어전리이다.  길주는 나그네를 재워주지 않는 풍속이 있어 허가가 많이 살지만 잠자도록 허가해 주지 않고, 어전(漁佃)은 물고기 잡고 짐승을 사냥한다는 뜻인데 이 동네 밥상에는 고기가 오르지 않음을 풍자한 시이다.   看山 (간산)  倦馬看山好 執鞭故不加 권마간산호 집편고불가  岩間재一路 煙處或三家 암간재일로 연처혹삼가  花色春來矣 溪聲雨過耶 화색춘래의 계성우과야  渾忘吾歸去 奴曰夕陽斜 혼망오귀거 노왈석양사  산을 구경하다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아서  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네.  바위 사이로 겨우 길 하나 있고  연기 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시냇물 소리 크게 들리니 비가 왔나 보네.  멍하니 서서 돌아갈 생각도 잊었는데  해가 진다고 하인이 말하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 했으니 산을 구경하기에는 빨리 달리는 말보다 게으른 말이 좋다는 것이다.   還甲宴 (환갑연)  彼坐老人不似人 疑是天上降眞仙 피좌노인불사인 의시천상강진선  其中七子皆爲盜 偸得碧桃獻壽筵 기중칠자개위도 투득벽도헌수연  환갑 잔치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아마도 하늘 위에서 내려온 신선일 테지.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 잔치에 바쳤네.  환갑 잔치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들 좋아하였다.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들 좋아하였다.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는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로 이것을 먹으면 장수하였다.   元生員 (원생원)  日出猿生原 猫過鼠盡死 일출원생원 묘과서진사  黃昏蚊첨至 夜出蚤席射 황혼문첨지 야출조석사  원생원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김삿갓이 북도지방의 어느 집에 갔다가 그곳에 모여 있던 마을 유지들을 놀리며 지은 시이다.  구절마다 끝의 세 글자는 원 생원(元生員), 서 진사(徐進士), 문 첨지(文僉知), 조 석사(趙碩士)의 음을 빌려 쓴 것이다.   難避花 난피화  靑春抱妓千金開 白日當樽萬事空 청춘포기천금개 백일당준만사공  鴻飛遠天易隨水 蝶過靑山難避花 홍비원천이수수 접과청산난피화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 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뒤 이 시를 지어주었다. 妓生合作 (기생합작)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기생과 함께 짓다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沃溝金進士 (옥구김진사)  沃溝金進士 與我二分錢 옥구김진사 여아이분전  一死都無事 平生恨有身 일사도무사 평생한유신  옥구 김 진사  옥구 김 진사가  내게 돈 두 푼을 주었네.  한번 죽어 없어지면 이런 꼴 없으련만  육신이 살아 있어 평생에 한이 되네.  김삿갓이 옥구 김 진사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자 돈 두 푼을 주며 내쫓았다.  김삿갓이 이 시를 지어 대문에 붙이니 김 진사가 이 시를 보고 자기 집에다 재우고 친교를 맺었다.   窓 (창)  十字相連口字橫 間間棧道峽如巴 십자상연구자횡 간간잔도협여파  隣翁順熟低首入 稚子難開擧手爬 인옹순숙저수입 치자난개거수파  창  십(十)자가 서로 이어지고 구(口)자가 빗겼는데  사이사이 험난한 길이 있어 파촉(巴蜀)가는 골짜기 같네.  이웃집 늙은이는 순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지만  어린 아이는 열기 어렵다고 손가락으로 긁어대네.  눈 오는 날 김삿갓이 친구의 집을 찾아가자 친구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고 창(窓)이라는 제목을 내며 파촉 파(巴)와 긁을 파(爬)를 운으로 불렀다.   兩班論 (양반론)  彼兩班此兩班 班不知班何班 피양반차양반 반부지반하반  朝鮮三姓其中班 駕洛一邦在上班 조선삼성기중반 가락일방재상반  來千里此月客班 好八字今時富班 내천리차월객반 호팔자금시부반  觀其爾班厭眞班 客班可知主人班 관기이반염진반 객반가지주인반  양반  네가 양반이면 나도 양반이다.  양반이 양반을 몰라보니 양반은 무슨 놈의 양반.  조선에서 세 가지 성만이 그중 양반인데  김해 김씨가 한 나라에서도 으뜸 양반이지.  천 리를 찾아왔으니 이 달 손님 양반이고  팔자가 좋으니 금시 부자 양반이지만  부자 양반을 보니 진짜 양반을 싫어해  손님 양반이 주인 양반을 알 만하구나.  김삿갓이 어느 양반 집에 갔더니 양반입네 거드럼을 피우며 족보를 따져 물었다.  집안 내력을 밝힐수없는 삿갓으로서는 기분이 상할수 밖에. 주인 양반이 대접을 받으려면 행실이 양반다워야 하는데  먼 길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니 그 따위가 무슨 양반이냐고 놀리고 있다.   暗夜訪紅蓮 (암야방홍련)  探香狂蝶半夜行 百花深處摠無情 탐향광접반야행 백화심처총무정  欲採紅蓮南浦去 洞庭秋波小舟驚 욕채홍련남포거 동정추파소주경  어두운 밤에 홍련을 찾아가다  향기 찾는 미친 나비가 한밤중에 나섰지만  온갖 꽃은 밤이 깊어 모두들 무정하네.  홍련을 찾으려고 남포로 내려가다가  동정호 가을 물결에 작은 배가 놀라네.  동정(洞庭)은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의 배경이 된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洞庭湖)를 말한다.  홍련을 만나려고 여러 여인들이 자는 기생방을 한밤중에 찾아갔는데 어둠 속에서 얼결에 추파라는 기생을 밟고는 깜짝 놀랐다. 諺文風月 (언문풍월)  靑松듬성담성立이요 청송듬성담성립이요  人間여기저기有라. 인간여기저기유라.  所謂엇뚝삣뚝客이 소위엇뚝삣뚝객이  平生쓰나다나酒라. 평생쓰나다나주라.  언문풍월  푸른 소나무가 듬성듬성 섰고  인간은 여기저기 있네.  엇득빗득 다니는 나그네가  평생 쓰나 다나 술만 마시네.  서당에서 있을 유(有)자와 술 주(酒)자를 운으로 부르자 언문과 한자를 조합하여 지었다.   開春詩會作 (개춘시회작)  데각데각 登高山하니 데각데각 등고산하니  시근뻘뜩 息氣散이라. 시근뻘뜩 식기산이라.  醉眼朦朧 굶어觀하니 취안몽롱 굶어관하니  욹읏붉읏 花爛漫이라. 욹읏붉읏 화난만이라.  봄을 시작하는 시회  데걱데걱 높은 산에 오르니  씨근벌떡 숨결이 흩어지네.  몽롱하게 취한 눈으로 굶주리며 보니  울긋불긋 꽃이 만발했네.  산에서 시회가 열린 것을 보고 올라갔는데  시를 지어야 술을 준다고 하자 이 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언문풍월도 시냐고 따지니 다시 한수를 읊었다.  諺文眞書석거作하니 언문진서섞어작하니  是耶非耶皆吾子라. 시야비야개오자라.  언문과 진서를 섞어 지었으니  이게 풍월이냐 아니냐하는 놈들은 모두 내자식이다.   犢價訴題 (독가소제)  四兩七錢之犢을 放於靑山綠水하야 사양칠전지독을 방어청산녹수하야  養於靑山綠水러니 隣家飽太之牛가 양어청산녹수러니 인가포태지우가  用其角於此犢하니 如之何卽可乎리요. 용기각어차독하니 여지하즉가호리요.  송아지 값 고소장  넉 냥 일곱 푼짜리 송아지를 푸른 산 푸른 물에 놓아서  푸른 산 푸른 물로 길렀는데, 콩에 배부른 이웃집 소가  이 송아지를 뿔로 받았으니 어찌하면 좋으리까.  가난한 과부네 송아지가 부잣집 황소의 뿔에 받혀 죽자 이 이야기를 들은 김삿갓이 이 시를 써서 관가에 바쳐 송아지 값을 받아 주었다. 辱說某書堂 (욕설모서당)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서당 욕설시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  추운 겨울날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하며 내쫓는다.  인정없는 훈장을 욕하는 시. 소리나는대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破格詩 (파격시)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천장거무집 화로접불래  菊樹寒沙發 枝影半從池 국수한사발 지영반종지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정빈사과 대취복송하  月利山影改 通市求利來 월이산영개 통시구이래  파격시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은 시들어 나비가 오지 않네.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달이 기우니 산 그림자 바뀌고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 오네.  이 시는 모든 글자를 우리말 음으로 읽어야 한다.  천장에 거미(무)집, 화로에 겻(접)불 내  국수 한 사발, 지렁(간장) 반 종지  강정 빈 사과, 대추 복숭아  월리(워리) 사냥개, 통시(변소) 구린내 辱孔氏家 욕공씨가  臨門老尨吠孔孔 知是主人姓曰孔 임문노방폐공공 지시주인성왈공  黃昏逐客緣何事 恐失夫人脚下孔 황혼축객연하사 공실부인각하공  공씨네 집에서  문 앞에서 늙은 삽살개가 콩콩 짖으니  주인의 성이 공가인 줄 알겠네.  황혼에 나그네를 쫓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마도 부인의 아랫구멍을 잃을까 두려운거지.  구멍 공(孔)자를 공공(개 짖는 소리), 공가(성), 구멍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썼다. 虛言詩 허언시  靑山影裡鹿抱卵 白雲江邊蟹打尾 청산영리녹포란 백운강변해타미  夕陽歸僧계三尺 樓上織女낭一斗 석양귀승계삼척 누상직녀낭일두  허언시  푸른 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게가 꼬리를 치는구나.  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불알이 한 말이네.  사슴이 알을 품고 게가 꼬리를 치며, 중이 상투를 틀고 계집에게 불알이 있을 수 있으랴.  허망하고 거짓된 인간의 모습을 헛된 말 장난으로 그림으로써 당시 사회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胡地花草 (호지화초)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호지무화초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의 화초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다지만 오랑캐 땅이라고 화초가 없으랴.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더라도 어찌 땅에 화초가 없으랴.  호(胡)자에 '오랑캐'라는 명사와 '어찌'라는 부사의 뜻이 있다.   落民淚 (낙민루)  宣化堂上宣火黨 樂民樓下落民淚 선화당상선화당 낙민루하낙민루  咸鏡道民咸驚逃 趙岐泳家兆豈永 함경도민함경도 조기영가조기영  낙민루  선정을 펴야 할 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펴니  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함경도 백성들이 다 놀라 달아나니  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랴.  관찰사가 집무 보는 관아를 선화당이라고 하였다.  구절마다 동음 이의어를 써서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했다.  宣化堂(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화적 같은 도둑떼)  樂民樓(백성들이 즐거운집)落民淚(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咸鏡道(함경도) 咸驚逃(모두 놀라 달아나다)  趙岐泳(조기영) 兆豈永(어찌 오래 가겠는가  
276    방랑 시인 - 김삿갓 풍자시 댓글:  조회:3197  추천:0  2015-04-20
                                                                                                                                                                                                                                                                 
275    명시인 - 베르톨트 브레히트 댓글:  조회:3740  추천:0  2015-04-20
  세계의 명시/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의 해협 ** 히틀러를 지칭       시를 말하다 정끝별 l 시인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나의 어머니’)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몇 해 전 가을 잎들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땅에 아버지를 묻어 드리고 올 적에 나는 브레히트의 이 시를 생각했다. 180센티미터를 밑돌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 47킬로그램이셨다. 브레히트의 시에는 이처럼, 절박한 현실 속에서 다시 부르게 하는 힘이 있다.   1933년 2월 28일 브레히트는 가족과 함께 독일을 떠난다. 히틀러가 그를 정치사상범으로 몰아 체포 대상자 명단에 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1933년 망명), 핀란드, 파리, 모스크바, 미국(1941년 망명), 스위스, 동독으로 이어지는 15년간의 망명 생활이 시작되었다. 브레히트 자신의 표현대로 “구두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꿔 가며”, ▶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전전하는 동안 그의 문학은 강철처럼 단련되곤 했다. 나치즘이 초래한 학살과 전쟁의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브레히트의 생존력은 놀라웠다. 할리우드에 팔아먹을 영화 대본을 쓰기도 했고 스탈린을 찬양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탈출하듯 뉴욕을 떠날 때 그는 묘비명 같은 시 한 편을 남겼다. “호랑이를 피해 달아나니/ 빈대들에게 뜯기게 되었네./ 평범한 것들이/ 나를 먹어 치우고 말았네.” 미국에 망명할 즈음에 쓴 ‘사상자 명부’라는 시에서 브레히트는 죽은 동료들의 이름을 애도하듯 부르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병사한 마르가레트 슈테핀(Margarete Steffin),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베를린 시대의 영화감독 카를 코흐(Karl Koch)…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자신이 미워졌다.”라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탄생하게 된 지점이다. ‘살아남은’ 자신의 삶을 항변하려는 듯, 브레히트는 ‘폭력에 대한 조치’는 폭력보다 오래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다. 폭력 앞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되므로 폭력에 정면으로 대항하다가 희생당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폭력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이 폭력을 이기는 길이라고 그는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는 시이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는 1939년 초에 쓴 시이다. 이 시를 쓸 무렵 브레히트는 덴마크에 망명 중이었다. 벤야민의 회상에 따르면 브레히트는 농가의 마구간을 회칠하여 작업실로 썼는데 그 작업실의 떡갈나무 기둥에 “진실은 구체적이다.”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고 한다. 그의 다른 시들처럼, 이 시 역시 구체적이고 단순하고 분명하다. 브레히트는 학살과 전쟁의 주범이자 젊은 시절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를 ‘칠쟁이’, ‘엉터리 화가’라 희화화시킨다. ‘칠장이 히틀러의 노래’라는 시에서는 “칠장이 히틀러는/ 색깔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배운 바 없어/ 그에게 정작 일할 기회가 주어지자/ 모든 것을 잘못 칠해서 더럽혔다네./ 독일 전체를 온통 잘못 칠해서 더럽혔다네.”라고 쓰기도 했다. “아름다운 사과나무의 감동”보다는 이 ‘엉터리 화가’에 대한 분노가 브레히트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힘이었다. 사랑받고 있는 행복한 자,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돛단배, 따뜻한 처녀들의 젖가슴을 노래하는 아름답고 충만한 서정시 대신,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 40대인 소작인의 처의 구부러진 허리로 상징되는 현실의 결핍과 폭력에 대해서 쓰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부러 ‘운을 맞추’지 않은 거칠고, 구체적인 시에 대한 지향을 시사하는 시이다. 토질이 나쁜 땅에서는 나무가 굽어 자라듯, 나치즘의 광기가 휩쓸고 있는 그의 시대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임을 천명하는 시이다. 브레히트에게 시를 쓰는 일이란 “인간적인 행위로서, 모든 모순성과 가변성을 지니며 역사를 규정하면서 또한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사회적 실천”에 다름 아니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는 아도르노의 선언 또한 이 시로부터 비롯되었다. 야만적인 자본의 논리가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우리 시대 역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이다. 1퍼센트의 부자는 돈을 쓰는 재미에 빠져 서정시 따위에 무관심하고, 99퍼센트의 빈자들은 밥에 매달려 서정시를 외면하고 있다. 월가를 점령한 젊은이들은 이렇게 외쳤다. “Who's street?” “Ours street!” “We are ninety-nine percent!" 이런 외침이 거세지는 시대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임이 분명하다. 서정보다 자본이, 꽃보다 밥이, 노래보다는 목숨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2011년 가을, TV에서 월가의 시위 장면을 보면서도 나는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렸다. “암울한 시대에/ 그때도 역시 노래하게 될 것인가?/ 그때도 역시 노래하게 될 것이다./ 암울한 시대에 대해”(‘모토’)!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2.10-1956.8.14) / 1898년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뮌헨 대학 의학부 재학 중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위생병으로 소집되어 육군병원에서 근무하였다. 1928년 연극 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나중에는 전쟁 체험을 통해서 차츰 혁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덴마크, 미국 등에서 망명 생활을 했으며, 독일이 분단된 뒤 동독을 선택했다. 1949년 배우이자 아내인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극단 베를리너 앙상블을 창단하고 서사극을 발전시켰다. 1956년 지병인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1922년 로 클라이스트(Kleist) 상을 받았으며, 1954년 레닌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 , , , , , , , 등이 있다. 글 정끝별 / 1988년 에 시가, 1994년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 , , , 시론ㆍ평론집 , , , 등이 있다.     브레히트 딸 獨여배우 히오프 사망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브레히트 생가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 위치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생가. 브레히트는 반전과 비사회적인 가치를 담은 작품을 서술했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아우크스부르크는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일족이 세운 도시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베를린 AP=연합뉴스) '연극의 거장'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딸이자 독일 연극 배우인 한네 히오프가 2009년도 별세, 향년 86세.    베를린에 있는 브레히트 후손들의 사무소는 히오프가 독일 뮌헨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히오프는 1923년 3월 12일 독일 남부에서 브레히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오페라 가수 마리안네 초프의 딸로 태어났다.    히오프는 초프로부터 무용 및 연기 교육을 받았으며 후에 서독, 동독,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극장에서 공연을 펼쳤다.    그녀는 브레히트의 작품 '카라 부인의 총'과 '도살장의 성(聖) 요한나'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히오프는 1976년 연극계를 은퇴한 뒤 반전운동과 브레히트 유작 관리에 힘썼다.    브레히트는 서사극과 '낯설게 하기' 기법 등을 확립해 현대 서구 연극이론과 연극사의 한 획을 그은 극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274    명시인 - 잭 런던 댓글:  조회:3661  추천:0  2015-04-19
   먼지가 되느니 차라리 재가 되리라   먼지가 되느니 차라리 재가 되리라. 내 생명의 불꽃이 푸석푸석하게 메말라 꺼지게 하느니 찬란한 빛으로 타오르게 하리라. 죽은 듯이 영구히 사는 행성이 되느니 내 모든 원자가 밝게 타오르는 화려한 유성이 되리라. 인간의 진정한 소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다. 나는 단지 연명하기 위해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으리라.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리라.       -잭 런던의 시- 우리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매슬로우는 ‘우리가 가진 능력은 쓰여지기 위해 아우성 치고 있다.’ 고.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내 인생, 매일 매일 아우성치기.   [출처] 먼지가 되느니, 차라리 재가 되리라 - 잭 런던의 시|작성자 호호몰  
273    칠레 민중시인 - 파블로 네루다 댓글:  조회:3805  추천:0  2015-04-19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년 7월 12일 ~ 1973년 9월 23일)은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이다.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강압에서 벗어나고자 사용한 필명이 나중에는 법적인 실명이 되었다.   목차     1 생애 2 문학세계 3 사회주의 운동 4 문학적인 평가     생애 7, 8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3세 때에는 신문에 작품을 발표했다. 14세 때 체코의 시인 J. 네루다의 시를 탐독하고, 1920년부터는 '파블로 네루다'를 필명으로 쓰기 시작했다. 소년 시절부터 눈부신 문학적 재능을 발휘한 그는 1921년에 〈축제의 노래〉 등을 발표하여 시단의 인정을 받았으며, 1923년에는 시집 《변천해가는 것》을 출판하여 시단에서의 위치를 다졌다. 초기 시의 대표작으로서 가장 많은 독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시단에서도 인정받은 작품은 1924년에 출판된 《20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이다. 이 시집에는 고통과 오뇌, 고독과 절망이라는, 네루다 시의 전형적인 테마가 가득히 담겨 있다. 1933년에는 시집 《지상(地上)의 거주지》를 내어 명성을 떨쳤다. 1934년부터 1939년까지 에스파냐에 주재하고 있을 때, 인민전선정부가 탄생하고, 이어서 내란과 프랑코 독재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인간적 연대(連帶)를 역설하는 정치 시인으로 변모하여 정력적으로 반(反)파시즘의 시를 썼다. 귀국한 후 1945년에는 상원 의원이 되고,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공산당이 비합법 단체로 인정되자 지하로 잠입하고, 이어서 망명을 하고 고난의 나날을 보냈다. 1950년에는 멕시코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노래한 웅장한 서사시집 《위대한 노래》를 발표했다. 여기에 수록된 장시 〈나무꾼이여, 눈을 떠라〉로 1950년 스탈린 국제평화상을 받았다. 52년에는 귀국하여 시 창작에 몰두했다. 70년에 아옌데 인민연합 정권이 수립된 후 주(駐) 프랑스 대사가 되었고, 1971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3년 9월의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자, 병상에서 격렬하게 항의하는 시를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저서에는 이 밖에 시집 《기본적인 오드》, 《세계의 종말》, 《불타는 칼》 등이 있다.[1] 문학세계 파블로 네루다는 20세기 가장 대표적인 시인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그의 시는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그의 문체는 매우 다양한데, 성적인 표현이 많은 사랑 시들 (흰 언덕 같은)과 초현실적인 시들, 역사적인 서사시와 정치적인 선언문들이 포함된다.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고 했다. 1971년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후에 그의 정치적인 행태 때문에 논란거리가 되었다. 1945년7월 15일, 브라질 상 파울루의 파깸부 운동장에서 그는 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혁명가인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를 기념하는 낭송회를 가졌다. 노벨상 기념 강연후 칠레에서는, 살바도르 아옌데의 초대로 에스타디오 나시오날(Estadio Nacional:국립 경기장)에서 7만 명 앞에서 낭송회를 가졌다.   사회주의 운동 네루다는 생에 많은 외교관 자리를 역임했으며, 칠레 공산당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보수적인 칠레의 대통령 곤살레스 비델라가 사회주의를 박해했을 때, 네루다의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친구들은 몇 달동안 칠레의 항구 발파라이소의 한 집 지하에 그를 숨겼다. 그 후 네루다는 산을 넘어 탈출하여 아르헨티나에 들어갔다. 반공주의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 당시, 암으로 입원한 네루다는 심장마비로 죽었다. 피노체트는 좌파시인 네루다의 장례식을 공개거행할 것을 반대했으나, 수천명의 칠레사람들은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의 통행금지를 어기고 공개적으로 애도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이 네루다의 장례는 칠레 군사독재정권 최초의 항거였다.네루다라는 필명은 체코의 작가이며 시인인 얀 네루다에서 얻어졌으며, 나중에는 그의 법적인 이름이 되었다. 네루다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칠레의 민중 예술인으로는 빅토르 하라(1932년-1973년)가 있다.하라는 피노체트의 군사독재정권의 국가폭력으로 살해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네루다는 아내에게 “그자들이 사람을 죽이고 있어. 산산조각이 난 시신들을 건네주고 있다고. 노래하던 빅토르 하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 몰랐어? 그자들이 하라의 몸도 갈기갈기 찢어놓았어. 기타를 치던 두 손을 다 뭉개놓았대.” 라고 말하며 분개하였다.[2] 문학적인 평가 파블로 네루다 시인의 시들을 《네루다 시선》(민음사)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출간한 정현종 시인은 “네루다의 시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생동이다”라고 말했다.[3] 스페인어학자인 민용태 시인은 네루다 시의 생동감을 한 단어로 ‘열대성’ 또는 ‘다혈성’이라고 표현했다.[2]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Ⅰ                                                                    〈 시 詩 〉                                                                 -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개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연약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Ⅱ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전 어느 가을날, 덕수궁 돌담길에 노란 은행잎이 가ㄹ 비에 떨어지던 날이었다.  울적한 심사 달래려 돌담길을 따라 시청을 지나, 나도 모르게 발길은 청계천 헌책방 골목에 가 있었다. 가을비는 계속 내리고, 비를 맞으며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책방을 배회했다.      이름도 모르는 헌책방에 들어가 책을 훑어 보다보니, 약  30여페이지의 얇은 〈스므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Twenty Love Poems and a Song of Despair)〉란 네루다의 시집을 만났다. 시집 첫 장을 열어 시를 읽어 보았다. 충격이었다.  시란 아름답고 난해한 언어로 시인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유희쯤으로 생각했는데, 이 시집을 읽어 보니 그러하지 않았다. 이 시집은 네루다가 막 청년기에 접어드는 스므 살에 자신의 사랑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들을 모은 시집이다.      그는 활화산活火山 같은 사나이다. 그의 시에는 모든 것을 불 태우고도 남을 용암溶暗이 붉게 철철 넘치고 있다. 무엇인가 암시적인 기법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 토해 내고 있다.                                    여자의 몸, 하얀 구릉, 눈 부신 허벅지                           몸을 내맡기는 그대의 자태는 세상을 닮았구나                           내 우악스런 농부의 몸뚱이가 그대를 파헤쳐                           땅속 깊은 곳에서 아이 하나 튀어나오게 한다.          네루다의 이 관능적  여인은 앞으로 그의 3천  5백쪽에 달할 장대한 시 세계의 상징이다.   시인은 사랑의 실패로 절망하지만, 그가 노래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다.  그의 절망은 대지로 이어지고 그의 대지는 시詩라는 생명을 잉태한다. 네루다의〈스므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서의 사랑은 이후 민중의 역사와 삶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 '일포스티노'란 영화의 선전표지>        몇년전 극장에서〈일포스티노〉란 이태리영화를 보았다. 이 작품은〈네루다의 우편배달부〉란 책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는 나폴리섬 근처에 있는 어촌 마을에 노벨상을 받은 칠레의 좌파 시인이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오면서 시작된다.      이 섬의 작은 우체국에는 전 세계에서 네루다에게 날아 오는 많은 편지가 쌓이게 되고 고민 끝에 그 곳의 우체국장은 어부 아들인 마리오 로뽈로를 고용한다. 처음에 마리오는 천재적인 로맨틱 시인 네루다와 가까이 지내면서 섬마을 여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그러나 네루다 사이에서 우정과 신뢰가 싹트고,마리오는 네루다의 영향으로 아름답고 무한한 시와 은유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또한 마리오는 아름답지만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베아트리체 루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놀라운 것은 마리오가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기 위하여 네루다의 도움을 찾던 중 내면의 영혼이 눈뜨게 되고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순박한 집배원이 유명한 시인에게 편지를 배달해 주면서,  자신의 순수한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세계적 명성의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1952년 본국 칠레에서 추방당한 후, 이태리 정부가 나폴리 가까이의 작고 아름다운 섬에 그의 거처를 마련해 준 실화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일 포스티노'는 이태리어로 '집배원'이라는 뜻이며, 주연을 한 마씨모 뜨로이지는 영화의 내용처럼, 영화 촬영이 끝난 직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Ⅲ        파블로 네루다, 시인이며 정치활동가이며  살아 생전 한 전설이 되었고그리고 죽어서도 영웅으로 환생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백년동안의 고독」이란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르시아 마르께스(Garcia Marquez)도 그를‘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극찬하고 있으며, 그의  시는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마르께스와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라고 알려진 시인의 실제 이름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바소알토(Neftali Ricardo Basoalto)로 1904년에 출생했다.  그는 그의 작품에「파블로 네루다」라고 서명하고 있지만, 철도 노동자인 그의 아버지는 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들을 못마땅해 했다.      네루다는 남부 칠레에서 큰 후, 1921년에는 그 자신 불어 강사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학에 등록하기 위해 산티아고로 갔지만,곧 시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을 떠났다.1923년 그는 처녀시집〈황혼의 노래(Crepuscularil)〉을 출간하고, 다음 해에는 아주 로맨틱 (romantic)하고 에로틱(erotic)한 시편들로 모아진〈스므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도 발간했다. 이 시집은 네루다의 시집 중 가장 사랑을 받은 책으로,그의 생전에 스페인어로만 백 오십만부 이상이 팔렸다.      1927년에서 1935년 기간 중  네루다는 버마, 실론, 자바, 싱가포르, 아르헨티나 그리고 스페인에서 각각 칠레 외교관으로 근무했다.1930년 그는 첫 결혼을 하였는데, 그 결혼은 불행으로 끝났다. 몇년후 그는 1955년까지 같이 살게 되는 델리아 델 카릴과 결혼하기 위해 그의 첫부인과 헤어졌다. 1920년대 1930년대에 그는〈대지에 살다 (Residencia en la tierra)〉란 두권의 시집을 냈는데,이 시들은 스페인에서 가장 뛰어난 초현실주의 시로 꼽히고 있다.        파시스트인 프랑코의 스페인 침공으로 야기된 스페인 내전에서 그는  문 명과 전쟁의 야만성을 목격 하였고, 이를 계기로 그는 정치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7년에는〈대지에 살다〉의 제3시집이, 그리고 1950년에는〈모든 이를 위한 노래(Canto General)〉란 시집을 출간했는데 이들 책속에 현실 참여적인 정치시가 포함되었다.〈대지에 살다〉란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학구적(Academics)이거나 예술지상주의적인 독자를 위한 시가 아니라, 노동자나 정치적으로 억압 받은 자들을 위한 시였다.                                                                                                                  〈네루다와 델리아 델 카릴〉        또한 네루다는 그 자신 라틴 아메리카 시인이라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모든 이를 위한 노래〉란 시집은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을 찬미하고 있으며, 이 시집에는 아마도 네루다의 가장 유명한 시로 평가되는 〈마추 피추의 정상(The Heights of Ma cchu Picchu)〉가 수록되어 있다.      시집〈모든 이를 위한 노래〉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들은, 1940년대 후반기 네루다가 반정부적인 발언으로 체포 위기에 빠지자 이를 피하기 위해 도망지에서 쓰여졌다. 그는 1949년 조국인 칠레를 탈출한 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1952년이 되어서 다시 조국으로 돌아 왔다. 3년후 그는 마틸다 우르티아와 결혼하여, 그녀와 함께 남은 여생을 산티아고와 칠레의 해안에 있는 네그라섬에서 보냈다. 그 섬은 그에게 그의 자전적인 시집인〈네그라섬의 추억〉등 후반기의 시에  주요한 모티브가 된 영감을 주었다.                                       네루다는  1950년에 국제 평화상, 1953년에 스탈린 평화상, 1965년에 옥스포드 대학으로부터 문예박사학위를  그리고 1971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69년에 그는 칠레 공산당 당수로 추대되었지만, 그의 친구인 살바도로 알랜데에게 양보했다. 4년 후 알랜데가 암살을 당했을 때,네루다도 암투병 중이었으며 며칠후 그도 죽었다. 그는 생전에 시,에세이,산문 등 34권의 책을 남겼으며, 또한 그의 70세 생일에 출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8권 분량의 시편들과 회고록을 남겨 두고 죽었다.      네루다는 한 종류의 시인 스타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그는 어떠한 한 시적 형태를 완성하고 나서는 다시 다른 형태로 변화 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의 영역은 아주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에서부터  아주 격정적인 정치적인 수사修辭 까지 광범위 했다.아마도 네루다 같이 아주 높은 수준의 많은 우수한 시적성취를 이룬 시인을 만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네루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세계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본질적으로 네루다의 시는,  인간이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끊임없는 변화를 대변한다. 젊은 시절에는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작품인 〈황혼의 노래〉와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를 썼으며 뒤이어 좀더 영적인 작품〈조물주의 시도〉〈고무줄새총에 미친 사람〉을 쓰게 되 었다.  외부세계와 이러한 세계가 주는 창조적 자극에서 내적 자아의 영역으로 침잠하게 되면서  독보적이고 신비로운 작품 〈대지에 살다〉가 탄생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시형식에서 벗어나, 매우 개성적인 시적 기법을 창조해냈다. 그가 스페인 내전 기간에 쓴 시들은 더 사실성이 강하고,  외부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더 많이 깨닫게 되었음을 나타내준다. 이러한 현실지향적이며 고발조의 시에 이어 장엄한 서사시〈모든 이를 위한 노래〉가 나왔다. 그러나 이 웅장한 문체는 사라지고 좀더 단순한 주제를 다룬 사회비평시가 등장하게 된다.                                      그의 주제와 기교의 다양함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했다. 〈100편의 사랑 노래(Cien sonetos de amor)〉에서는 사랑이,  〈이슬라 네그라의 회고록 (Memorial de Isla Negra)〉은 향수 어린 자서전이다. 네루다는 "나는 장대한 연작시를 계속해서 써나갈 계획이다. 왜냐하면 이 시는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의 말로써만 끝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으며,  실제로 그 마지막 순간은 1973년 9월에 왔다.                                                                            Ⅳ                                                  〈난 오늘 밤 가장 슬픈 시를 쓸수 있네〉                                                                                    -‘스므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중에서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예를 들어, "별로 수 놓아진 밤,                                   떨고 있네, 푸른, 별들이, 저 멀리서"                                   밤바람은 하늘을 돌며 노래하네.                                   난 오늘 밤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난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가끔씩은 날 사랑했네.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를 품에 가득 안았네.                                   끝없는 하늘 아래 오랫동안 키스했네.                                   그녀는 날 사랑했고, 나 또한 때때로 그녀를 사랑했네.                                   날 바라보는 그 커다란 두 눈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난 오늘 밤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그녀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잃어 버렸다고 느끼면서.                                   커다란 밤을 듣거니, 그녀 없어 더욱 큰 밤,                                   풀잎에 이슬 내리듯, 영혼에 시가 내리네.                                   내 사랑이 그녀를 잡아 두지 못한 게, 뭐 그리 중요하랴.                                   밤은 별로 빛나고, 그녀는 내 곁에 없네.                                   이게 다야. 멀리서 누군가 노래하네, 멀리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은 게 못마땅해 하고 있네.                                   내 시선은 다가 갈 그녀를 애타게 찾아,                                   내 가슴도 그녀를 찾지만, 이미 곁에 없네.                                   우리가 함께 있던 밤,                                   그러나 그때의 우리들은, 이제 예전 같지가 않아.                                   이젠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그건 그래,                                    하지만 얼마나 사랑했던가.                                   내 목소린 그녀의 귀에 가서 닿을 바람을 찾고 있어.                                   이젠 다른 사람 것이겠지, 이전엔 내 것이었던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고운 살결, 끝없이 깊은 눈망울.                                   이젠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그건 그래,                                    하지만 어쩌면 사랑하는지도 몰라.                                   사랑은 이다지도 짧고, 그러나 망각은 그 처럼 긴가.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를 내 품에 안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내 영혼이 못마땅해 하고 있네.                                   이것이 그녀가 내게 주는 마지막 고통일지라도,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 바치는 마지막 시가 될지라도.  
272    <<껍데기>>시인 - 신동엽 댓글:  조회:2894  추천:0  2015-04-19
  *껍데기는 가라 시 분석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연에서의 '4월'은 4.19 혁명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2연에서의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은 동학 혁명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3연에서는 '아사달 아사녀가 부끄럼 빛내'는 순수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4연의 내용은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과 정의와 자유, 민주에의 열망을 확인하고 이것을 억압하는 모든 비본질적 요소(독재, 폭력, 외세 등)가 사라지기를 희망하며 쓴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동엽의 또 다른 시인 '봄은' 이라는 시에서 '쇠붙이'가 등장하고 있는데 '봄은' 이라는 시를 분석해보면,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봄'은 통일과 화해의 시대를 상징하며 '남해와 북녘' 이라든지 '바다와 대륙 밖'은 외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봄의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든지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라는 부분은 결국 평화와 통일의 시대는 외세에 의해서가 아닌 자주적인 우리힘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시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결국 '쇠붙이'는 분단의 원인이 된 갈등과 대립을, 좀 더 단순하게 보면 철조망, 칼, 총 등과 같은 것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에서 1960년대 한국이 지니고 있던 주요모순인 남북분단의 현실 극복은 물론 1960년대 자본주의 사회 자체의 기본모순과 독재와 외세의 억압 등을 '껍데기'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러한 모순들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4.19 혁명의 정신과 동학 혁명의 정신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71    자본주의 그는,--- 댓글:  조회:3070  추천:0  2015-04-19
  자본주의 1.0 :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 자본주의 2.0 : 1930년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수정자본주의”. 자본주의 3.0 : 1970년대 말, 시장의 자율을 강조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4.0 : 성공한 사람이 더 큰 성공으로 나아가도록 장려하되, 낙오한 사람들을 북돋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책임을 강조하는 “따뜻한 자본주의”. 자본주의   인본주의  돈나고 사람났나  사람나고 돈났지 ... 개인주의 사회주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 민주주의 전제국주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다 ... 원래 라는 말은 資재물을 本근본으로 삼는 생각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란 모든 것의 근본이 인것이지요?   오늘 무엇을 먹을까? 이 필요하네 오늘 무엇을 입을까? 이 필요하네 어떤 집에서 잘까?이 필요하네 가끔씩 의 반대말이 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의 반대말은 입니다.   개인주의란 개인이 모든 것을 척도가 되는 것이며 사회주의란 사회가 개인보다 우선하여 모든 것을 결정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 더 말씀드리면 의 반대말은 입니다. 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이고 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이지요.   그러니 는 기본으로 두고 냐 를 기본으로 두고 냐 입니다.   무엇이 중심이어야 할까요? 바로 人사람이 本근본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입니다. 의식주에도 사람이 중심이 되면 사람에게 좋은 옷을 만들고 사입고 사람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고 사입고 사람에게 좋은 집을 만들고 사입죠   그래서 옷도 친환경적 소재를 이용하여 편하고 몸에 거스르지 않아야 하며,   음식은 첨가물이나 이런것이 비교적 덜한 친환경적인 음식을 만들며   집도 가족 구성원들이 웃음꽃이 피어날 공간이어야 하니까 한 채면 충분합니다. 가족이 적으면 작은집에 가족이 많으면 큰집에 살면되구요..   아이들이 이 기본이 되는 교육을 받을거구요 경제는 이 기본이 되는 경제구조가 될것이구요 정치도 이 기본이되겠지요.   그러니 는 기본으로 두고 냐 를 기본으로 두고 냐 입니다.   민주주의-사회주의-인본주의 민주주의-개인주의-자본주의 이런식으로 조합하여 선택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의 는 투표로 결정한 것도 아니며 우리가 태어나 보니 어느날부터 자본주의였지요.   정치권이 얼마든지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 의 폐해를 줄여서 의 나라들처럼 적인 정책을 많이 마련할 수도 잇는 것입니다.    @@ 요구르트냐 사회주의냐...     요즘도 여전히 통찰이 담긴 칼럼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김규항이 쓴 '요구르트'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의 핵심이 담긴 대목을 같이 읽어보자. "불가리아의 장수 마을(요구르트 먹고 장수한다는 광고에 나온 그 마을)엔 더 이상 장수 노인들이 없다. 마을 묘지엔 1990년 즈음 세 해 동안 죽음 사람들의 묘로 그득하다. 마을 사람들의 얘기는 이렇다. '사회주의 시절엔 안락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진 않았다. 소박하나마 집과 자동차도 나왔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노인들은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다.'"   어떤 나라가 행복한 세상이 될까요  ......   돈이 최고인 나라 가 행복한건가요 ??     자본주의, 그는 누구인가...                                              김용택   껍데기는 가라- 신 동 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요? 자본주의 사회란 공정한 사회일까요? 자본주의란 ‘생산 수단을 가진 자본가 및 기업가 계급이 그 이익 추구를 위해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입니다.   ‘재산의 사적 소유’가 보장된 사회. 이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이나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입니다. 공정한 경쟁이라고요? 부모의 후광, 재산과 교육 그리고 부모로부터 얻은 여러 가지... 그것을 가진 사람과 전혀 아무것도 갖지 못한 맨손인 사람과 벌이는 경쟁이 공정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자본주의에서 경쟁이란 급수제한이 없는 권투선수들이 링 위에서 붙는 경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과 어린아이가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연상하는 자본주의 사회란 체제의 모순으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악한 자본은 산업자본주의에서 만족하지 않고 금융자본주의로, 또 신자유주의라는 형태로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시합 전에 승부가 결정난 경기... 그래서 그런 경기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았지요. 특히 마르크스와 같은 사람은 사유가 아닌 공유를 주장했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런 사회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았답니다. 쏘련이나 중공이 망한 이유나 북한이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이유도 인감의 욕망과 자본이 허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유니 공산이란 말 자체가 불순한... 아니 말도 꺼내지 못하게 국가보안법이니 뭐니 하면서 막고 있는 게지요.   민초들이 깨어난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런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물과 공기, 토지나 사회간접은 개인의 소유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소유권을 갖도록 하는 사회민주주의 즉 사민주의라는 체제를 도입,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는 자본주의가 잘 발달한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유럽사회는 교육이나 의료를 민영화 하지 않고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게지요.   공유와 사유...! 자연은 인간에게 누구나 공평하게 살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요? 부모의 재산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까지도 대물림되는 회복불가능한 양극화로 치닫고 있습니다.   2013년 수출액 5,596억불로 무역수지 흑자 441억불, 국민소득 2만 6,205달러로 세계 10위위 경제대국이라는 나라에서 노숙자가 넘쳐나고, 가계부채 1000조라는 이해 못할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결과에서 핀란드와 함께 1, 2위를 다투는 나라에서 ‘주관적 건강’과 ‘학교생활 만족도’, ‘삶의 만족도’, ‘소속감’, ‘주변상황 적응’, ‘외로움’ 등 6가지 영역에서는3년 연속 꼴찌를 못면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자신의 실제 학년보다 4개 학년 정도 앞서 공부하면 대학에 합격하고 3개 학년만 앞서 공부하면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떨어진다’는 4당 3락이라는 말이 학부모들에게 유행어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양극화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요, 가난은 개인의 능력부족이 만든 결과가 아니라 체제가 만든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국가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겠지요. 그러나 정부는 사회복지라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것은 굶주리는 사람에게 죽지 않을 만큼 자선을 베푸는 시혜차원의 선별적 복지를 시행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없는 사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의사나 판검사가 될 수 없는 사회. 이런 사회는 폐쇄적인 계급사회입니다.   이제 우리도 양반사회나 골품제 사회 같은 폐쇄적인 계급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지혜택의 기준이나 대상을 차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복지사회로 가야합니다. 꿈이 없는 젊은이가 사는 세상은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는 삭막한 세상입니다. 민초들이 깨어나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 한 약자들의 고통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270    명시인 -한용운 댓글:  조회:2847  추천:0  2015-04-19
한용운 시 모음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 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 (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 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 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 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잎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 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 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주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나의 꿈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뚤귀뚤」 울겠습니다       복 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 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행 복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합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발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고통도 나에게는 행복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일생에 견딜 수 없는 불행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자 하여 나를 미워한다면, 나의 행복은 더 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원한의 두만강이 깊을수록 나의 당신을 사랑하는 행복의 백두산이 높아지는 까닭입니다.       사랑의 존재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이름지을 만한 말이나 글이 어디있습니까. 미소에 눌려서 괴로운 듯한 장미빛 입술인들 그것을 스칠 수가 있습니까. 눈물의 뒤에 숨어서 슬픔의 흑암면(黑闇面)을 반사하는 가을 물결의 눈인들 그것을 비칠 수가 있습니까. 그림자 없는 구름을 거쳐서, 메아리 없는 절벽을 거쳐서, 마음이 갈 수 없는 바다를 거쳐서 존재? 존재입니다. 그 나라는 국경이 없습니다. 수명은 시간이 아닙니다. 사랑의 존재는 님의 눈과 님의 마음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의 비밀은 다만 님의 수건에 수놓는 바늘과, 님의 심으신 꽃나무와, 님의 잠과 시인의 상상과 그들만이 압니다.       고적한 밤    하늘에는 달이 없고 땅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소리가 없고 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주는 주검인가요. 인생은 참인가요. 한 가닥은 눈썹에 걸치고, 한 가닥은 작은 별에 걸쳤던 님 생각의 금실은 살살살 걷힙니다. 한 손에는 황금의 칼은 들고 한 손으로 천국의 꽃을 꺽던 환상의 여왕도 그림자를 감추었습니다. 아아, 님 생각의 금실과 환상의 여왕이 두손을 마주잡고, 눈물 속에서 정사(情死)한 줄이야 누가 알아요. 우주는 주검인가요. 인생은 눈물인가요. 인생이 눈물이라면 죽음은 사랑인가요.       해당화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 려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269    러시아 詩의 태양 - 푸쉬킨 댓글:  조회:3961  추천:0  2015-04-12
러시아 시인 푸쉬킨의 삶과 시     푸쉬킨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엔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픔 법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알락센드르 푸쉬킨은 "러시아 시(詩)의 태양"이라고 일컬어진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문학가 중 한 사람입니다. 푸쉬킨은 시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한줄의 시 귀절이 바로 그 유명한 삶의 詩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라는 귀절 입니다. ------------------------------------------------------------------------------ ♧ 위시의 창작 배경은 시인 푸쉬킨이 모스크바 광장에서     소경 걸인을 만나게 된 연유에서 출발 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 러시아의 그 유명한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은  모스크바 광장에서 추운날씨에 누더기를 걸치고 구걸하는 한 소경걸인을 보게 됩니다.  광장에는 걸인들이 많았기에 그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푸쉬킨은 소경걸인을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나도 역시 가난한 처지인지라 줄 돈은 없고  돈대신 글씨 몇 자를 써서 주겠으니 그걸 몸에 붙이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얼마 후에 푸쉬킨은 친구들과 모스크바 광장에 갔는데 그 걸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푸쉬킨의 바지를 붙잡고는 ~~ “ 감사합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 전  글씨를 써주신 분이시지요 ! 신께서 도우셔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써주신 종이를 몸에 붙였더니 그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돈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였다.   푸쉬킨에게 그 소경걸인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날 써준 내용이 도대체 어떤 글 이신지요 ? "     “푸쉬킨은 말했습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 라 썼습니다.”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생각하였을 것 입니다. 지금은 비록 춥고 고단한 날을 보내고 있지만  봄을 기다리는 이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 입니다.  --------------------------------------------------------------- 위시는 일반적인 시어로 삶에 대한 진솔한 표현을 나타낸 작품으로 푸쉬킨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詩 입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과 꿈과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은 푸쉬킨 위대함을 말해준다. 시인은 현실의 삶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보따리와 지팡이가 나아요.   아니, 고생스럽고 배고픈 게 차라리 더 나아요.   그것은 내가 나의 이성을 존중해서도 아니고   이성과 헤어지는 것이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나 자유로이 둔다면   그 얼마나 활개치며   어두운 숲으로 달려가리!   열병에 걸린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그 얼마나 자유로이 멋진 꿈에 도취되어   나를 잊으리.   그리고 나의 파도소리에 귀기울이고   행복에 가득 차서   빈 하늘을 바라보리니   나 그 얼마나 힘차고 자유로우리   들판을 파헤치고   숲을 휘어뜨리는 회오리처럼   그런데 불행히도  미친다는 것은   페스트보다 더 두려운 일,   곧 갇히고   사슬에 묶이리니,   사람들은 창살 사이로 짐승을 찌르듯   찌르러 올 것이고,   그리고 밤에는 들을 것이다.   꾀꼬리의 울리는 낭랑한 목소리도 아니고   빽빽한 참나무숲의 웅성거림도 아니고   울리는 것은   친구들의 외침소리, 밤의 파수꾼의 욕설,   사슬이 쩔렁이고 삐걱이는 소리뿐. ----------------------------------------------------------------------------    내 그대를 사랑했노라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내 영혼에서 완전히 꺼지지 않나니   그러나 나의 사랑은 더 이상 그대를 괴롭히지도 방해하지도 않나니   내 그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니   내 다만 그대를 사랑했노라   이야기도 희망도 없이   때로 나의 소심함과 때로 나의 질투가 나를 괴롭혔지만   내 다만 그대를 사랑했노라, 그토록 진심으로 그토록 조심스레   신의 섭리에 따라 다른 이들이 그대를 사랑한 것만큼   위 시는 곤차로바와 결혼하기 전에 푸쉬킨이 사랑했던 여인 안나 올레니나에 대한   사랑했던 심정을 표현한 시 입니다.  사랑에 대한 애절한 심사가 문학의 열정에서도 빛을 발 합니다.    ---------------------------------------------------------------------------- 푸쉬킨의 일생   알렉산드르 푸쉬킨(Alexandr Pushkin)의 가족사를 보면 어머니의 증조할아버지는  Abram Petrovich Gannibal9(흑인)으로 아프리카 족장의 아들로 러시아인에게 노예로 팔려와 표트르 대제에게 바쳐진 후 신임을 얻게되어 귀족계급까지 오르게 되었다 합니다. 푸쉬킨은 열렬한 구애끝에 나탈랴 푸쉬키나(결혼전 성은 Goncharova)라는 경국지색의 아리따운 13세 연하의 미모의 아내를 얻었습니다.  네자녀를 두었던 곤차로바는 러시아(당시 황제시대)사교계에서 네덜란드 외교관이었던 단테스 데 헥케른D남작 과 염문을 뿌리게 됩니다. 단테스와 나탈랴가 내연의 관계라는 소문은 러시아 사교계에 소문이 나게 되고  드디어 불쾌한 소문을 접한 푸쉬킨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됩니다. 푸쉬킨의 아내는 미인이었지만,  젊고 잘생긴 남자들에게 환심을 사는 행실로 소문이 파다한 아내였다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 황제 짜르에게까지 그런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결국 1837년 1월 27일 상뜨 뻬쩨르부르크에서 두 사람의 운명적인 결투가 있었습니다. 이 결투에서 푸쉬킨은 단테스가  쏜 총알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나이 38세에 일생을 하직하게 됩니다. (단테스는 나탈랴 여동생의 남편으로 푸쉬킨에게는 처제의 남편이었습니다. 푸쉬킨의 정적들이 자유분방한 푸쉬킨을  제거하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러시아의 횃불 같은 시인 푸쉬킨은 아내의 행실에 노여워하는 바람에 슬픔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의 시처럼 노여워 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면 아마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전세계의 문학 독자들은 주옥같은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푸쉬킨은 아내를 탐하는 사람들로 부터 자신의 명예와 가족을 지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 ... ...     그 날도 페테르부르크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지만, 오후 4시가 넘어 교외 공터의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주변은 나무가 둘러싸고 있고 두껍게 눈이 쌓인 러시아의 전형적인 겨울 풍경이다. 총을 든 두 남자의 눈가에 분노와 긴장이 갈마들어 감돈다. 정적을 깨뜨리며 발사된 총탄. 한 남자가 배를 움켜쥐며 눈밭에 쓰러진다. 눈밭을 적시는 낭자한 선혈. 온 얼굴이 눈 범벅이 된 채 겨우 일어난 남자가 소리친다.   “브라보!”     남자는 페테르부르크 모이카 12번지에 있는 집으로 급히 옮겨진다. 때는 1837년 2월 8일 오후 4시 30분경. 남자는 이후 이틀 동안 심하게 앓았다.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남자. 아내는 남편의 비명에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남자는 아내가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방에 들어왔다.     “얼음을 달라!”    아내가 갖다 준 얼음을 이마에 올려 굴리다가 얼음을 먹는 남자. 그가 입을 연다.    “잘 있어! 친구들!”      곁을 지키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느닷없이 친구라니. 그가 부른 친구란 서재에 있는 책들이었다. 남자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꿈에서 책 더미 위로 올라갔어요. 책 더미가 너무 높아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지요.”   2월 9일과 10일에 걸쳐 모이카 12번지 주변에 2만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크게 놀라 명령을 내렸다. ‘장례식 장소를 비밀리에 변경할 것, 일반인의 장례식 참석 엄금, 가족과 친구들만 참석 가능, 군대는 비상 대기할 것, 황실 주치의를 보낼 것, 불법 결투를 벌였지만 사면할 것, 신문의 과격한 추모 기사는 엄금.’     결국 남자는 2월 10일 숨을 거두었다. 러시아 구력(舊曆) 1월 29일. 신력으로 2월 10일 오후 2시 45분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슈킨이 38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법으로 금지돼 있던 결투를 벌인 푸슈킨의 상대는 조르주 단테스. 러시아로 망명한 프랑스군 장교로 네덜란드 공사 헤케른의 양자였다. 푸슈킨이 단테스의 양아버지 헤케른에게 모욕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 단테스는 푸슈킨에게 결투를 신청한 터였다.     그들이 결투한 곳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서 있다. 결투를 위해 두 사람이 각각 자리 잡았던 곳이다. 푸슈킨의 소설 에서 렌스키는 오네긴과의 결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렌스키의 운명이 곧 푸슈킨의 운명이 되고 말았으니, 소설이 하나의 예언이었던가. 꽃다운 16살 소녀 곤차로바를 처음 만나 ‘아!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여인이야!’라며 정열을 불태웠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건만, 매혹적인 자태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1831년에 결혼해 네 명의 자녀들을 남겨두고 푸슈킨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곤차로바는 1844년 재혼).  
268    명시인 - 프로스트 댓글:  조회:2945  추천:0  2015-04-10
세계의 명시/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시를 말하다 정끝별 l 시인 “샘을 치러 나가 볼까 합니다;/ 그저 물 위의 나뭇잎이나 건져내려구요/ (물이 맑아지는 걸 지켜볼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 엄마소 옆에 있는 어린/ 송아지를 데리러 가려구 해요. 너무 어려서/ 엄마소가 핥으면 비틀거리지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목장’). 이런 청혼의 시를 받고 결혼하려 했으나 정작 그럴 듯한 청혼도 없이 결혼하고 말았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雪白)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 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자작나무’)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케 하는 이 아름다운 시에 버금가는 시를 써 보려 했으나 이 구절들을 몽타주한 시 한 편을 썼을 뿐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1910 한때는 ‘프로스트’와 ‘프루스트’를 헛갈려 했던 적도 있으나, 다른 한때는 프로스트의 시들이 내 시의 교본이었던 적도 있다. 누군가 말했듯 “프로스트는 프로스트(frost, 서리)”다. 그의 시가 은유의 교본이었듯 이 말 또한 은유다. ‘자연’과 ‘사실’과 ‘순간’에 집중했던 프로스트의 시는 담백하면서도 그윽한 깊이가 있으며, 서늘한 계시처럼 우리의 정신을 청량하게 한다. 그러니까 아침의 서리인 듯, 햇살을 반사하면서 녹아드는 흰빛의 그 무엇인 듯, 어렴풋한 순간 속의 깊은 속삭임인 듯, 작고 평범한 사실 속에 숨어 있는 충만한 기쁨을 선사하곤 한다. 그가 좋아했던 ‘낫’과 ‘펜’으로 그는, “생각을 일구는 행위”이자 “행위가 된 언어”로서의 시의 씨앗들을 일구었던 것이다. 프로스트는 내게 가장 미국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프로스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되어 “우리가 이 땅의 우리이기 전 이 땅은 우리의 땅”으로 시작하는 축시를 낭독했다. 그리고 2년 후, 암살되기 열 달 전의 케네디는 프로스트의 죽음에 부쳐 “‘오늘, 로버트 프로스트를 추모하는 이날은”으로 시작하는 추모사를 전했다. 그는 또한 미국적인 삶과 정서와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었다. 젊은 시절의 실의와 방황을 거쳐 구두점 주인, 주간지 기자, 농장 경영 등을 섭렵했던 삶의 편력, 노동과 전원과 종교를 터전으로 삼아 대자연의 긍정을 지향했던 성찰과 예지, 일상생활에서 발견한 은유의 언어 등이 모두 그가 대중성을 체화하고 ‘대중 시인(public poet)’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가지 않은 길’은 프로스트가 실의에 빠져 있던 20대 중반에 쓴 시이다. 변변한 직업도 없었고 문단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였고, 이 대학 저 대학에서 공부는 했으나 학위를 받지는 못한 채 기관지 계통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집 앞에는 숲으로 이어지는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그 길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이 시를 썼다고 전한다. 원제인 ‘The road not taken’은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 가보지 않은 길, 걸어보지 못한 길 등으로 번역되는데, 나는 선택적 의지가 강조된 ‘가지 않은 길’로 번역된 것을 좋아한다. 세상 모든 길은 두 갈래 길로 나뉜다. 간 길과 가지 않은 길, 알려진 길과 알려지지 않은 길, 길 있는 길과 길 없는 길! 삶이라는 이름 아래,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한 길만을 걸어야 한다. 그 누구도 두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평등한, 인간의 조건이다. 한 길에 한번 들어서는 순간, 결코 되돌아올 수도 없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뉴햄프셔 데리에 있는 로버트 프로스트 농장. 프로스트는 이곳에서 많은 명시들을 썼다. 아침, 가을 단풍이 노랗게 혹은 붉게 든 숲 속으로 난 두 갈래 길은 유혹적이다. 두 길이 모두 못지않게 아름답고, 쌓인 낙엽 위에 그 어떤 발자국도 없다면 더욱! 자,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시인은,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그러니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사람들이 적게 갔었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인 동시에, 그 길을 택함으로써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그 선택이 아름다운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나, 선택보다 우연 혹은 운명이 앞선 것이었다면?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것은 것이 아니라, 실은, 예정된 우연이나 운명의 길을 간 것이었다면?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 매일이라는 그리고 가야 할 길이라는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가야만 한다. 인생의 강자는 간 길에 대해 말이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더더욱! “문에 다다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문에 다다르게 되”(‘반드시 집에 가야지’)는 것처럼, 한 길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한 길을 걷게 되었을 뿐… 단지, “어느 가지에는/ 따지 않은 사과가 두세 개는 있을 것이”고, “아직도 나의 두 갈래 긴 사닥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천국을 향하여 뻗어 있”(‘사과를 따고 나서’)을 것이다.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3.26-1963.1.29) 187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아버지가 변사하여 뉴잉글랜드로 이주, 오랫동안 버몬트의 농장에서 청경우독(晴耕雨讀)의 생활을 계속하였다. 이때의 농장 생활 경험을 살려 소박한 농민과 자연을 노래해 현대 미국 시인 중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으로 꼽힌다. 그 후 교사, 신문기자로 전전하다가 1912년 영국에 건너갔는데, 그것이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 에드워드 토머스, 루퍼트 브룩 등의 영국 시인과 친교를 맺었으며, 그들의 추천으로 첫 시집 가 출간되었고, 이어 이 출간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915년에 귀국하여 미국에서도 신진 시인으로 환영받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 자작시를 낭송하는 등 미국의 계관시인적(桂冠詩人的) 존재였으며, 퓰리처상을 4회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위 두 시집 외에 , , , 등이 있다. 글 정끝별 1988년 에 시가, 1994년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 , , , 시론과 평론집에 , , , 등이 있다.  
267    푸쉬킨 / 타골 / 뚜르게네프(클릭해 보세ㅛ) 댓글:  조회:2907  추천:0  2015-04-09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Save Me From Madness, God                 시베리아 깊은 광맥속에       Message to Siberia                작은 새                             A Little Bird 타골         바닷가에                           On The Seashore                기도                                       -                 유적(遺謫)의 땅                 The Land Of The Exile                나 혼자 만나러 가는 밤       When I Go Alone at Night to My Love..                 동방의 등불                             -                 삶 - 패자의 노래                       -                             -                          On the Nature of Love                            -                          The Kiss                            -                          When and Why                내가 부를 노래-기탄잘리13       -  뚜르게네프  노인     내일,내일만은!     스핑크스                  거지     개                       둥지도 없이
266    독일 시모음(클릭해 보기) 댓글:  조회:4135  추천:0  2015-04-09
        괴테    첫사랑                               Verlust              들장미                               The HeathRose(英譯)              툴레의 임금님                     The King Of Thule(英譯)                            목자탄식의 노래                 The Shepherd's Lament(英譯)               오월의 노래                       May Song(英譯)              눈물젖은 빵을                     WHO Never Ate With Tears                         먹어본 적이 없는 자                   His Bread(英譯)               마왕                                 The Erl-King(英譯)              미뇽에게                           To Mignon(英譯)              나그네의 밤노래                 The Wanderer's Night-Song(英譯)                    신비의 합창                       Chorus Mystics(英譯)     쉴러    환희의 송가                       Ode To Joy(英譯, 獨語)              장갑                                   Der Handschuh                타향에서 온 소녀                 Das Madchen Aus Der Fremde              이상과 생명                         Ideals(英譯)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순례자 하이네    로렐라이                           Lorelei(英譯)              너는 한 떨기 꽃과 같이         Eine Blume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Wer Zum Ersten Male Liebt              내 소중한 친구여                 Teurer Freund                  원망하지 않으리                   Ich Grolle Nicht                            맹세보다는 키스를               O Schwore Nicht Und Kusse Nur              노래의 날개 위에                 Auf Flugeln Des Gesanges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Erklaerung    릴케    가을날                               Herbsttag              가을에                                 Herbst              두이노의 비가 1                     Duineser Elegien 1(英譯)              오 주여 누구에게나              당신은 미래이십니다             Du Bist Die Zukunft              고독                                     Einsamkeit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지키는 사람처럼              이웃    헤세    방랑                                     Wanderung              들을 건너서                           Felder              귀향                                     Heimkehr              가을                                     Herbst                흰구름                                 Wolken              낙엽                                     Blatt              방황                                     Auf Wanderung(英譯)              그대 없이는                           Without You(英譯)  
265    프랑스 시모음(클릭해 보기) 댓글:  조회:3802  추천:0  2015-04-09
         프랑스시 1              라마르틴                 보들레르                 랭보                                  위고                       베를렌                     구르몽    프랑스시 2              잠                           아뽈리네르             엘뤼아르                                  발레리                   꼭토                         프레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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