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홈 > 名詩 공화국

전체 [ 464 ]

424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댓글:  조회:3284  추천:0  2016-10-19
  Bob Dylan-Blowing in the wind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Before they call him a man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이 바다 위를 날아봐야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balls fly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Before they are forever banned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How many years must a mountain exist     산은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Before it is washed to the sea     씻겨서 바다로 갈까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사람은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진정한 자유를 얻을까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And pretend that he just don't see     모르는척할 수 있을까 ?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얼마나 많이 올려다 보아야  Before he can see the sky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How many ears must one man have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알게 될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Bob Dylan - Knockin' On Heaven's Door   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  I can't use it anymore.  It's gettin' dark, too dark for me to see  I feel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Mama, put my guns in the ground  I can't shoot them anymore.  That long black cloud is comin' down  I feel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엄마, 이 배지를 떼어 주세요. 이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요. 점점 더 어두워져 이젠 앞을 볼 수도 없어요. 저는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엄마, 이 총들을 내게서 치워주세요. 이젠 더 이상 쏠 수가 없어요. 넓게 퍼진 차가운 검은 구름이 드리우고 있어요. 저는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밥 딜런(Bob Dylan, 1941년 5월 24일~)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시인, 화가이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Robert Allen Zimmerman)이다. 그의 작품은 1960년대부터 비공식 작자와 저항음악의 대표로서 사랑을 받았다. 한국의 학생운동에도 영향을 준 "Blowin' in the Wind"그리고 "The Times They Are a-Changin'"과 같은 노래들은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저항적 노랫말로 시민권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항의 표상이 되었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음악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생애 및 활동= 딜런은 10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59년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61년에 중퇴하였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우상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간다. 뉴욕에 도착해 우디 거스리를 만나고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의 클럽들을 전전하며 연주하던 그는 유명 음반 제작가 존 하몬드의 눈에 띄어 콜롬비아 레코드를 통해 데뷔하게 된다.   그 후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1963) 의 성공을 통해 당시 활발했던 사회적 저항 운동의 상징적인 음악가가 되었으며, 특히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등 비트닉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시적인 가사는 대중음악에서의 가사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자신이 의도치도 않았던 저항 가수로서의 굴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언론과 자주 마찰을 일으키게 되며, 당시 비틀즈를 위시로 한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의 일렉트릭 사운드에 자극을 받아 정통 어쿠스틱 포크에서 일렉트릭 사운드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The Newport Folk Festival)에서 록 밴드 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와 키보디스트 알 쿠퍼를 대동하고 일렉트릭 사운드를 선보인 사건은 수많은 대중과 포크 팬들의 야유와 반발을 불러 일으키지만, 딜런은 자신의 음악적 전환을 확고하게 이어갔으며 이를 통해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음악적 영역을 창조하고 발전시켰다. 이 시기의 음반으로는 Bringing It All Back Home(1965), Highway 61 Revisited(1965), Blonde On Blonde(1966)가 있다.   1966년 7월, 오토바이를 타다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딜런은 록 밴드 더 밴드와 함께 잠적하여 주로 루츠록(Roots Rock) 장르의 음악을 만드는데, 이때 만들어진 곡들은 부틀렉 형식으로 떠돌아다니다가 1975년 The Basement Tapes라는 이름으로 음반화된다. 또한 1967년 즈음에는 컨트리로 전향하여 컨트리의 본고장인 내슈빌에서 컨트리록 음반 John Wesley Harding(1967), Nashville Skyline(1969)을 녹음해 발매하며 이후의 컨트리록 유행을 선도한다.    
423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 가사 모음 댓글:  조회:3864  추천:0  2016-10-17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 노래 가사 모음       Blowing in the wind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이 바다 위를 날아봐야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산은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씻겨서 바다로 갈까 사람은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까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모르는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얼마나 많이 올려다보아야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알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One More Cup Of Coffee     당신의 달콤한 숨결 하늘에 빛나는 보석 같은 당신의 두 눈 당신의 부드러운 머리결 베개에 머리를 대고 반듯이 누워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어 어떤 사랑이나 당신의 헌신은 내가 아닌 하늘의 별을 향하고 있지 떠나기 전에 커피 한잔만 더   저 계곡 아래로 무법자인 당신 아버지는 방랑을 일삼는 사람 그가 당신에게 어떻게 선택을 하는지 어떻게 칼을 던지는지 가르쳐 줄거야 그가 지배하는 그의 왕국에 이방인이 들어 올 수 없어 떨리는 그의 목소리 음식 한 그릇을 더 달라고 말할 때 길을 나서기 전에 커피 한잔만 더 저 계곡 아래로 당신의 자매가 그 미래를 봐 당신의 엄마와 너처럼 당신은 읽고 쓰는 걸 배우지 못했어   선반에는 책이 없지 그리고 당신은 만족할 줄 몰라 당신의 목소리는 종달새같아 하지만 너의 마음은 바다와 같아 알 수 없고 어둡지 길을 나서기 전에 커피 한잔만 더 계곡 아래로.         forever young     하느님이 널 축복하고 항상 지켜주리다 네 모든 소망들은 이루어 지리다 항상 다른 이들을 위해 행하고 다른 이들이 너를 위해 행하도록 하리다 별까지 닫는 사다리를 만들어 단마다 딛고 올라가리다 너 영원히 젊게 있으리다, 영원한 젊음, 영원한 젊음 너 영원히 젊게 있으라 올바르게 자라나리다 진실되게 자라나리다 언제나 진실을 알며 네 주의의 빛들을 보리다 언제나 용기를 갖고 당당하게 서서 강해지리다 너 영원히 젊게 있으리다 영원한 젊음, 영원한 젊음 너 영원히 젊게 있으리다.       Mr Tambourine Man     이 봐 미스터 탬버린맨, 나에게 음악을 연주해줘 난 졸립지 않고, 내가 가야할 곳도 없다네 이 봐 미스터 탬버린맨, 나에게 음악을 연주해줘 쟁글쟁글 아침에 나는 너를 따라 갈꺼야. 허나 나는 알지. 저녁의 제국이 모래로 돌아가버렸음을, 내 손에서 사라져 버렸음을. 나를 이곳에서 눈이 멀도록 내버려두었지만 여전히 졸립진 않지. 피로함이라는 것은 늘 나를 놀라게 만들지, 나는 발등에 낙인이 찍혀버렸어. 나는 만날 이가 없다네. 그리고 고대의 빈 거리들은 꿈꾸기에는 이미 죽어버렸지   이 봐 미스터 탬버린맨, 나에게 음악을 연주해줘 난 졸립지 않고, 내가 가야할 곳도 없다네 이 봐 미스터 탬버린맨, 나에게 음악을 연주해줘 징글쟁글 아침에 나는 너를 따라 갈거야. 나를 여행에 데려가줘. 너의 마술처럼 소용돌이치는 배로. 나의 감각들은 발가벗겨졌고, 나의 손은 더 이상 쥔 느낌이 없다네.   나의 발들은 걷기에는 감각이 무뎌져 버렸고, 오로지 부츠 힐만을 기다린다네 정처 없이 방황하기 위하여 나는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있다네, 나는 사라질 준비가 되어있다네 나만의 퍼레이드 속으로 나는 그 안으로 가라앉겠노라.   이 봐 미스터 탬버린맨, 나에게 음악을 연주해줘 난 졸립지 않고, 내가 가야할 곳도 없다네 이 봐 미스터 탬버린맨, 나에게 음악을 연주해줘 징글쟁글 아침에 나는 너를 따라 갈 거야.   네가 태양을 미친 듯 돌리고 흔들면서 웃는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누구도 노리지 않았어, 난 그저 도망치고 있어. 그러나 하늘에게는 벽이 없지. 그리고 네가 음운의 실패(reel)를 지나쳐가는 희미한 흔적을 듣는다면 그 순간 너의 탬버린한테는, 이건 그저 뒤처진 넝마 같은 광대일 뿐이야. 나는 그 마음의 값을 치루지 않을거야, 이건 그저 그림자일 뿐이야. 너는 그가 쫓는 것을 지켜보고 있지.   이 봐 미스터 탬버린맨, 나에게 음악을 연주해줘 난 졸립지 않고, 내가 가야할 곳도 없다네 이 봐 미스터 탬버린맨, 나에게 음악을 연주해줘 징글쟁글 아침에 나는 너를 따라 갈 거야.   내 마음 속 연기로 만든 링으로, 나를 사라지게 해줘. 안개로 찬 시간의 파멸 아래로, 지나간 얼어붙은 나뭇잎들 귀신들린, 두려움에 떠는 나무들, 바람 부는 해변 가를 향해 미친 슬픔을 향한 뒤틀린 접근으로부터 멀리 그래, 다이아몬드 스카이 밑에서 춤추기 위해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서커스 모래의 바다 위로 어른거리는, 넘실대는 자유의 손을 잡고 모든 기억들과 파도 아래로 깊게 몰아치는 운명들과 함께 (춤을 추기 위해)   이 봐 미스터 탬버린맨, 나에게 음악을 연주해줘 난 졸립지 않고, 내가 가야할 곳도 없다네 이 봐 미스터 탬버린맨, 나에게 음악을 연주해줘 징글쟁글 아침에 나는 너를 따라 갈 거야.               Don't Think Twice, It's Alright     자. 앉아서 왜 그럴까 고민해봤자 소용없어요 어차피 중요한 일도 아니니까요 앉아서 걱정해 봐도 부질없는 일이에요 이제 곧 수탉이 울고 동이 틀 것을 모르시나요 창 밖을 내다봐요, 나는 이미 사라져버렸을 테니 그대는 내가 계속 떠돌고 있는 이유랍니다 자꾸 생각하지 말아요. 다 괜찮아질 테니까   그대 방에 불을 켜봤자 소용없어요 그 불빛을 나는 보지 못할 테니 그대여, 불을 켜봤자 소용이 없답니다 나는 길의 어두운 쪽을 걷고 있으니까요 내 마음을 바꾸어 머무르게 할 그 무언가를 그대가 말해주길 여전히 바라면서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그다지 많은 얘길 나누지 못했죠 그냥 잊어버려요, 모두 끝난 일이니까   내 이름을 외쳐 불러도 헛일이랍니다, 내 사랑 그대는 결코 그렇게 한 적이 없었지요 내 이름을 불러봐도 소용없어요 나는 더 이상 당신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답니다 나는 생각에 잠겨 떠돌고 있어요, 길을 따라 걸으면서 한때 한 여인을 사랑했었지요-나를 어린애라고 부르던 여자를 그녀에게 내 마음을 주었지요, 그러나 그녀는 내 영혼을 원했답니다 자꾸 생각하지 말아요, 다 괜찮아질 테니   그럼 잘 있어요, 내 귀여운 사람 어디로 가는지는 말할 수 없답니다 ‘안녕’이라는 말은 너무 절실한 말 나는 단지 말하겠어요, ‘잘 있어요’라고 그대가 내게 냉정했다고는 하지 않겠어요 물론 더 잘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뭐 다 그런 거죠. 그대는 내 소중한 시간을 흘려 보내 버렸을 뿐 하지만 더는 생각하지 말아요, 다 끝났으니까.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엄마, 이 배지를 떼어주세요. 난 더 이상 이 걸 사용할 수 없어요. 점점 너무 어두워져서 볼 수가 없어요.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엄마, 내 총들을 땅에 내려주세요 난 더 이상 그 총들을 쓸 수 없어요. 길고 어두운 구름이 다가오고 있어요.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이----.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Once upon a time you dressed so fine 옛날 옛적에, 너는 아주 예쁘게 차려입고 You threw the bums a dime in your prime, didn't you? 전성기를 즐기며 거지에게 동전을 던져주었지, 안 그래? People'd call, say, "Beware doll, you're bound to fall" 사람들은 널 부르곤 말했지 "조심해라 얘야, 그러다 곧 추락한다" You thought they were all kiddin' you 모두 네게 농담을 하는 줄 알았겠지 You used to laugh about 넌 주변에서 노는 Everybody that was hangin' out 모두를 가지고 비웃곤 했어 Now, you don't talk so loud, now, you don't seem so proud 이제, 넌 큰소리로 얘기를 하지 않지, 이제 넌,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About havin' to be scrounging around for your next meal 여기저기서 도둑질하는 것이 그리 자랑스럽지 않나보지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어떤 기분이야, 어떤 기분이야? To be without a home 집이 없는 것 With no direction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집 쪽 방향이, 마치 하나도 알려지지 않은 장소와 같은 것 Just like a rolling stone? 마치 구르는 돌처럼 You've gone to the finest school all right, Miss. Lonely 넌 가장 좋은 학교에 갔었지, 외로운 그대 But you know you only used to get juiced in it 하지만 항상 그 안에서 당하기만 했어 Nobody's ever taught you how to live out on the street 그 누구도 거리에서 사는 법을 가르치질 않았고 And you find out now you're gonna have to get used to it 결국 니 스스로 적응해야한다는 것을 발견하지 You said you'd never compromise 넌 절대 정체불명의 노숙자와는 With the mystery tramp, but now you realize 타협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제 넌 알지 He's not sellin' any alibis, as you stare into the vacuum of his eyes 그는 어떤 알리바이도 팔고 있지 않다는 걸, 그의 눈 속 진공을 바라보며 And say, " Would you like to make a deal?" 넌 말해, "혹시 거래하지 않으실래요?"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어떤 기분이야, 어떤 기분이야? To be without a home 집이 없는 것 With no direction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집 쪽 방향이, 마치 하나도 알려지지 않은 장소와 같은 것 Just like a rolling stone? 마치 구르는 돌처럼 You never turned around to see the frowns 넌 묘기 부리는 사람과 광대들이 On the jugglers and the clowns 너에게 묘기를 부리러 왔을 때 When they all came down to do tricks for you 돌아서서 그들의 찡그림을 보지 않았지 You never understood that it ain't no good 넌 그들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 You shouldn't let other people get your kicks for you 다른 사람에게 대신 니 신발을 얻어오게 하면 안되지 Used to ride the chrome horse with your diplomat 넌 졸업장을 들고 네 크롬 도금한 차를 타곤 했지 Who carried on his shoulder a Siamese cat 마치 샴 고양이처럼 어깨를 으쓱한 채로 Ain't it hard when you discover that he really wasn't where it's at 그는 사실 그곳에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아 After he's taken everything he could steal 훔칠 수 있는 모든걸 가져간 그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어떤 기분이야, 어떤 기분이야? To be without a home 집이 없는 것 With no direction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집 쪽 방향이, 마치 하나도 알려지지 않은 장소와 같은 것 Just like a rolling stone? 마치 구르는 돌처럼 Princess on the steeple and all pretty people 첨탑의 공주와 모든 예쁜 사람들 They're all drinkin', thinkin' that they got it made 그들은 모두 술을 마셔, 성공을 했다고 생각하면서 Exchanging all precious gifts and things 귀중한 선물들과 물건들을 교환하지 But you'd better take your diamond ring, down and pawn it, babe 하지만 너 어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서, 전당포에 맡기는게 좋을걸 You used to be so amused 넌 항상 망토를 두른 나폴레옹과 At Napoleon in rags and the language that he used 그가 사용하는 언어에 경이를 표하곤 했지 Go to him now, he calls you, you can't refuse 지금 그에게로 가, 그가 널 부른다, 거부할 수 없지 When you ain't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 사실 지금 잃을 것, 잃을 것 하나도 없는 상태잖아 You're invisible, you got no secrets to conceal 넌 투명인간, 숨길 비밀 따위는 없지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어떤 기분이야, 어떤 기분이야? To be without a home 집이 없는 것 With no direction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집 쪽 방향이, 마치 하나도 알려지지 않은 장소와 같은 것 Just like a rolling stone? 마치 구르는 돌처럼   [가사 출처 - 흑인음악 매거진 '힙합엘이' ] =======================================================   시가 있는 노래, 노래가 있는 시 ③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의<Blowin' in the Wind>       Bob Dylan (1941년 5월 24일~      )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훌륭한 미국 음악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낸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은 딜런의 노래를 "귀를 위한 시"라고 표현하며, "2천5백 년 전에 써진 호메로스와 사포의 시를 지금까지 읽고 우리가 그것을 즐긴다면 밥 딜런 또한 읽을 수 있고 읽지 않으면 안된다."고 수상 배경을 밝혔다.     케네디 대통령과 킹 목사가 암살당하고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고… 민권운동과 전쟁 속에 혼란스럽던 1960년대 미국. 하모니카와 통기타를 들고 홀연히 나타난 밥 딜런,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세상을 조롱하듯 웅얼거리는 창법.  어지러운 세상을 향해 평화와 자유를 외치던 음유시인이자 가수 밥 딜런.     세월은 흘러 70대 중반을 넘어선 노가수 밥 딜런. 대중음악가로는 최초로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밥 딜런은 가수이자 작곡가, 시인, 화가로 1962년 앨범 '밥 딜런'으로 데뷔한 이후로 정치와 사회,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 깊이 있는 시적인 가사로 '음유시인'으로 불리며    60~70년대 저항음악의 상징으로써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1994년 이후 6권의 드로잉 관련 책을 펴냈으며, 그래미 어워드를 비롯, "팝 음악과 미국 문화에 깊은 영향”을 인정 받으며 퓰리처상을 받기도했다.  2010년 3월 31일, 올림픽공원 채조경기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진 바 있다.           Blowing in the wind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봐야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요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 봐야 백사장에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요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요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요 그건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답니다 How many years can a mountain exist Before it is washed to the sea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And pretend that he just doesn't see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높은 산이 씻겨 내려 바다로 흘러갈까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고개를 돌려 모르는 척할 수 있을까요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요 그건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답니다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Before he can see the sky How many years must one man have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얼마나 많이 올려다보아야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요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야  다른 사람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달을까요   1962년 처음 발표한 대표곡 "Blowin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대중들에게 반복적으로 끓임없이 전쟁과 평화, 자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얼마나 많이 올려다보아야 하늘을 볼 수 있을까요?"라고. 파격적인 노랫말들은 당대 많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당시 베트남전 반대시위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끈 흑인인권운동의 대표곡이 되었으며, 7~80년대 우리나라 학생운동과 한국의 포크가수 한대수,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등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는 1970년대 우리나라 청춘 문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The Times They Are a-Changin         Come gather 'round people wherever you roam 사람들아 모여라, 어디를 다니든지간에. And admit that the waters around you have grown 그리고 변화의 물결이 다가옴을 보여주자. And accept it that soon you'll be drenched to the bone. 그 물결이 뼛속 시리게 젖어들 것임을 받아들이자. If your time to you is worth savin' 그대의 세월이 당신 자신에게 소중하다면  Then you better start swimmin' or you'll sink like a stone 흐름에 발 맞추자. 아니면 돌처럼 가라앉을지니.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Come writers and critics who prophesize with your pen 펜으로 예언을 말하는 작가와 논자들이여 오라 And keep your eyes wide, the chance won't come again 눈을 크게 뜨라, 변화의 순간은 다시 다가오지 않으니. And don't speak too soon for the wheel's still in spin 수레바퀴는 아직 돌고있으니 섣불리 논하지 말고,  And there's no tellin' who that it's namin'. 갓 싹튼 변화를 섣불리 규정하지 말지어다.  For the loser now will be later to win 지금의 패자들은 훗날 승자가 되리니.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Come senators, congressmen, please heed the call 국회의원들, 정치인들아, 사람들의 부름을 경청하라. Don't stand in the doorway, don't block up the hall 문 앞을 가로막지 말고 회관을 봉쇄하지 말라.  For he that gets hurt will be he who has stalled 상처입는 것은 문을 걸어잠그는 이들이 되리라.  There's a battle outside and it is ragin'. 바깥세상의 싸움은 점점 가열되고 있으매, It'll soon shake your windows and rattle your walls 머지않아 그대들의 창문을 흔들고 벽을 두들기리니.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Come mothers and fathers throughout the land 온누리의 어머니 아버지들도 함께하자. And don't criticize what you can't understand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비난하지 말길.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are beyond your command 당신의 아들딸들은 당신의 통제를 넘어서있으니. Your old road is rapidly agin'. 그대들의 구 노선은 빠르게 낡아간다. Please get out of the new one if you can't lend your hand 거들어주지 않을 거라면 가로막지는 말아주기를.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The line it is drawn, the curse it is cast 한계선이 그어지고, 저주가 퍼부어지고 있다. The slow one now, will later be fast 지금은 더딘 변화는 훗날 가속하리라. As the present now will later be past 지금의 현재는 훗날 과거가 되리라, The order is rapidly fadin'. 세상의 이치는 빠르게 변해가니. And the first one now will later be last 지금 정상에 선 자들은 훗날 말단이 되리라.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1984년 1월 24일.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당시 세계를 깜짝놀라게 했던 컴퓨터 "매킨토시" 제품발표회 현장에서 낭독했던 곡으로, 컴퓨터계의 거함 IBM을 향해 도전장을 던진 스타브 잡스가 영감을 받은 곡이라고 전해진다.  역시 1960년대 인권운동의 대표곡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Knockin' on Heaven's Door                               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 I can't use it anymore. It's gettin' dark, too dark for me to see I feel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엄마 이 계급장을 떼주세요 난 더이상 사용할수 없어요. 점점 너무 어두워져서 볼수가 없어요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아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어요    Mama, put my guns in the ground I can't shoot them anymore. That long black cloud is comin' down I feel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엄마, 내 총을 땅에 묻어주세요 난 더이상 그 총들로 쏠수가 없어요 저 길고 어두운 구름이 오고 있어요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아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어요       밥 딜런이 작사․작곡하고 노래한 이 노래는 1973년 영화 《관계의 종말(Pat Garrett and Billy the Kid)》의 OST로 만들어진 곡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마음을 담고있다. 밥 딜런의 자서전을 쓴 클린턴 헤일린은 이 노래를 두고 “대단히 훌륭한 단순함”이라고 평했다 하던데, 밥 딜런의 수많은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어쩌면 저렇게 단순하고 반복적인 음률에 무겁고 섬뜩한 가사를 올릴 수 있었을까. 그러고도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었을까.  아마도 시인의 가슴으로 쓴 노랫말 때문이 아닐까.     "밥 딜런, 당신은 대체 뭣하는 분이슈?"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선정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선정은 문학영토의 확장이면서 침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일까. 본시 문학과 노래와 춤은 하나의 몸이였던 것을...  나는 밥 딜런이 전격적인 수상 거부 선언으로 세상을 또 한번 깜짝 놀라켜주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명예와 돈을 좇아 사는 세상에 그 만이라도 영원한 반항아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수상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있는 가운데 정작 주인공인 밥 딜런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데, 오래 전에 밥 딜런은 한 방송국과 이런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스스로 가수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시인이라고 생각하나요?" "전 그냥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인데요..."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겠지.      
422    음유가수와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댓글:  조회:2101  추천:0  2016-10-16
김광석         김광석(1964.1.22~1996,1.6) 포크 송 가수 (1984~1996년)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 김광석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또 있건만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남자처럼 머리 깍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가방없이 학교가는 아이 비오는날 신문파는 애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태공에게 잡혀온 참새만이 긴 숨을 내쉰다 한여름에 털장갑 장수 한겨울에 수영복 장수 번개소리에 기절하는 남자 천둥소리에 하품하는 여자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있건만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만이 긴 혀를 내두른다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만이 긴 혀를 내 두른다 * (애드벌룬 = 대형풍선)   
421    엘리엇 ㅡ 황무지 댓글:  조회:2548  추천:0  2016-10-16
  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I.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니고,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태공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일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하지만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 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유명한 천리안 소소스크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영특한 카드 한 벌을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네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에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 보이는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현실감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망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보면서 언덕을 넘어 킹 윌리엄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노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슨! 자네 밀라에 해전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아닌 서리가 묘상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II. 체스 놀이A Game of Chess     그네가 앉아 있는 의자는 눈부신 옥좌처럼 대리석 위에서 빛나고, 거울이 열매 연 포도 넝쿨 아로새긴 받침대 사이에 걸려 있다. 넝쿨 뒤에서 금빛 큐피드가 몰래 내다보았다. (큐피드 또 하나는 날개로 눈을 가리고) 거울은 가지 일곱 촛대에서 타는 불길을 두 배로 해서 테이블 위로 쏟았고, 비단갑들로부터 잔뜩 쏟아 놓은 그네의 보석들이 그 빛을 받았다. 마개 뽑힌 상아병 색 유리병에는 이상한 합성 향료들이 연고 분 혹은 액체로 숨어서 감각을 괴롭히고 익사시켰다 향내는 창에서 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자극받아 위로 올라가 길게 늘어진 촛불들을 살찌게 하고 연기를 우물반자 속으로 불어 넣어 격자무늬를 설레이게 했다. 동박 뿌린 커다란 바다나무는 색 대리석에 둘러싸여 초록빛 주황색으로 타고 그 슬픈 불빛 속에서 조각된 돌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 고풍의 벽난로 위에는 마치 숲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처럼 저 무지한 왕에게 그처럼 무참히 능욕당한 필로멜라의 변신 그림이 걸려 있다 나이팅케일은 맑은 목청으로 온 황야를 채우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한다. 그 울음은 더러운 귀에 소리로 들린뿐, 그 밖에도 시간의 시든 꽁초들이 벽에 그려져 있고, 노려보는 초상들은 몸을 기울여 자기들이 에워싼 방을 숙연케 했다. 층계에 신발 끄는 소리, 난로 빛을 받아, 빗질한 그네의 머리는 불의 점들처럼 흩어져 달아올라 말이 되려다간 무서울 만치 조용해지곤 했다.     '오늘밤 제 신경이 이상해요, 정말 그래요, 가지 말아요. 얘기를 들려주세요, 왜 안 하죠? 하세요. 뭘 생각하세요? 무슨 생각? 무슨? 당신이 뭘 생각하는지 통 알 수 없어요, 생각해 봐요.' 나는 죽은 자들이 자기 뼈를 잃은 쥐들의 골목에 우리가 있다고 생각해.     '저게 무슨 소리죠?' 문 밑을 지나는 바람 소리. '지금 저건 무슨 소리죠? 바람이 무얼하고 있죠?' 아무것도 하지 않아 아무것도.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죠? 아무것도 보지 못하죠. 아무것도 기억 못 하죠?' 나는 기억하지 그의 눈이 진주로 변한 것을 '당신 살았어요, 죽었어요? 머리속에 아무것도 없나요?' 그러나 오오오오 셰익스피어식 래그 재즈 그것 참 우아하고 그것 참 지적이야 '저는 지금 무얼 해야 할까요? 무얼 해야 할까요?' '지금 그대로 거리로 뛰어나가 머리칼을 풀어 헤친 채 거리를 헤매겠어요. 내일은 무얼 해야 할까요? 도대체 무얼 해야 할까요?' 열 시에 온수 만일 비가 오면, 네 시에 세단차. 그리곤 체스나 한판 두지, 경계하는 눈을 하고 문에 노크나 기다리며.     릴의 남편이 제대했을 때 내가 말했지- 노골적으로 말했단 말이야. 이제 앨버트가 돌아오니 몸치장 좀 해. 이 해 박으라고 준 돈 어떻게 했느냐고 물을 거야. 돈 줄 때 내가 있었는걸. 죄 뽑고 참한 걸로 해 넣으라고, 릴, 하고 앨버트가 분명히 말했는걸, 차마 볼 수 없다고. 나도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했지, 가엾은 앨버트를 생각해 봐. 4년 동안 군대에 있었으니 재미보고 싶을 거야. 네가 재미를 주지 않으면 다른 여자들이 주겠지. 오오 그런 여자들이 있을까, 릴이 말했어. 그럴걸, 하고 대답해 줬지. 그렇다면 고맙다고 노려볼 여자를 알게 되겠군, 하고 말하겠지. 그게 싫다면 좋을 대로 해봐, 하고 말했지. 네가 못하면 다른 년들이 할 거야. 혹시 앨버트가 널 버리더라도 내가 귀띔 안 한 탓은 아냐. 그처럼 늙다리로 보이는 게 부끄럽지도 않니? 하고 말했지. (걔는 아직 서른 한 살인걸.) 할 수 없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릴이 말했어. 얘를 떼기 위해 먹은 환약 때문인걸. (걔는 벌써 얘가 다섯, 마지막 조지를 낳을 땐 죽다 살았지.) 약제사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그 뒤론 전과 같지 않아. 넌 정말 바보야, 하고 쏘아줬지. 그래 앨버트가 널 가만두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얘를 원치 않는다면 결혼은 왜 했어? 그런데 앨버트가 돌아온 일요일 따뜻한 햄 요리를 하곤 나를 불러 맛보게 했지. 빌 안녕. 루 또 보자. 메이 안녕. 안녕. 탁탁. 안녕. 안녕. 안녕, 부인님들, 안녕, 아름다운 부인님들, 안녕 안녕.         III. 불의 설교The Fire Sermon     강의 천막은 찢어졌다, 마지막 잎새의 손가락들이 젖은 둑을 움켜쥐며 가라앉는다. 바람은 소리없이 갈색 땅을 가로지른다. 님프들이 떠나갔다. 고이 흐르라, 템스 강이여, 내 노래 끝낼 때까지. 강물 위엔 빈 명도, 샌드위치 쌌던 종이도 명주 손수건도, 마분지 상자도 담배꽁초도 그 밖의 다른 여름밤의 증거품도 아무것도 없다. 님프들은 떠나갔다. 그리고 그네들의 친구들, 빈둥거리는 중역 자제들도 떠나갔다. 주소를 남기지 않고. 레먼 호수가에 앉아 나는 울었노라 고이 흐르라, 템스 강이여, 내 노래 끝낼 때까지. 고이 흐르라, 템스 강이여, 내 크게도 길게도 말하지 않으리니. 허나 등위의 일진 냉풍 속에서 나는 듣는다. 뼈들이 덜컹대는 소리와 입이 찢어지도록 낄낄거리는 소리를.     어느 겨울 저녁 가스 공장 뒤를 돌아 음산한 운하에서 낚시질을 하며 형왕의 난파와 그에 앞서 죽은 부왕의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쥐 한 마리가 흙투성이 배를 끌면서 강둑 풀밭을 슬며시 기어갔다. 흰 시체들이 발가벗고 낮고 습기찬 땅속에 뼈들은 조그맣고 낮고 메마른 다락에 버려져서 해마다 쥐의 발에만 채어 덜그덕거렸다. 허나 등위에서 나는 때로 듣는다. 클랙슨 소리와 엔진 소리를, 그 소리는 스의니를 샘물 속에 있는 포터 부인에게 데려가리라. 오 달빛이 포터 부인과 그네의 딸 위로 쏟아진다. 그들은 소다수에 발을 씻는다.     투윗 투윗 투윗 적 적 적 적 적 적 참 난폭하게 욕보았네. 테류     현실감이 없는 도시 려울 낮의 갈색 안개 속에서 스미르나 상인 유게니데스 씨 수염도 깎지 않고 포켓엔 보험료 운임 포함 가격의 건포도 일람 증서를 가득 넣고 속된 불어로 나에게 캐논 스트리트 호텔에서 점심을 하고 주말을 메트로폴 호텔에서 보내자고 청했다. 보라빛 시간, 눈과 등이 책상에서 일어나고 인간의 내연 기관이 택시처럼 털털대며 기다릴 때, 비록 눈이 멀고 남녀 양성 사이에서 털털대는 시든 여자 젖을 지닌 늙은 남자인 나 티레지어스는 볼 수 있노라. 보랏빛 시간, 귀로를 재촉하고 뱃사람을 바다로부터 집에 데려오는 시간 차 시간에 돌아온 타이피스트가 조반 설거지를 하고 스토브를 켜고 깡통 음식을 늘어놓는 것을, 창 밖으로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마르고 있는 그네의 컴비네이션 속옷이 위태롭게 널려 있다. (밤엔 그네의 침대가 되는) 긴 의자 위엔 양말짝들, 슬리퍼, 하의, 코르셋이 쌓여 있다. 시든 젖이 달린 늙은 남자 나 티레지어스는 이 장면을 보고 나머지는 예언했다- 나 또한 놀러 올 손님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 여드름투성이의 청년이 도착한다. 국소 가옥 중개소 사원, 당돌한 눈초리, 하류 출신이지만 브랫포드 백만 장자의 머리에 놓인 실크 모자처럼 뻔뻔스러움을 지닌 젊은이. 식사가 끝나고 여자는 지루하고 노곤해 하니 호기라고 짐작하고 그는 그네를 애무하려 든다. 원치 않지만 내 버려둔다. 얼굴 붉히며 결심한 그는 단숨에 달려든다. 더듬는 두 손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는다. 잘난 체하는 그는 반응을 필요로 하지 않아 그네의 무관심을 환영으로 여긴다. (나 티레지어스는 바로 이 긴의자 혹은 침대 위에서 행해진 모든 것을 이미 겪었노라. 나는 테베 시의 성벽 밑에 앉기도 했고 가장 비천한 죽은 자들 사이를 걷기도 했느니라.) 그는 생색내는 마지막 키스를 해주고 더듬으며 층계를 내려간다. 불 꺼진 층계를......     그네는 돌아서서 잠시 거울을 들여다본다. 애인이 떠난 것조차 거의 의식지 않는다. 머리 속에는 어렴풋한 생각이 지나간다. 사랑스런 여자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혼자서 방을 거닐 때는 무심한 손으로 머리칼을 쓰다듬고 축음기에 판을 하나 건다. 스트랜드 가를 따라 퀸 빅토리아 가로 따라왔다. 오 도시여, 나는 때로 듣는다. 로어 템스 가의 술집 옆에서 달콤한 만돌린의 흐느끼는 소리와 생선 다루는 노동자들이 쉬며 안에서 떠들어대며 지껄이는 소리를, 그곳에는 마그누스 마아터 성당의 벽이 이오니아풍의 흰빛 금빛 형언할 수 없는 화려함을 지니고 있다.   강은 땀 흘린다 기름과 타르로 거룻배들은 썰물을 타고 흘러간다. 붉은 돛들이 활짝 육중한 돛대 위에서 바람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거룻배들은 떠 있는 통나무들을 헤치고 개 섬을 지나 그리니지 하구로 내려간다. 웨이얼랄라 레이어 월랄라 레이얼랄라     엘리자베스 여왕과 레스터 백작 역풍에 젓는 노 고물은 붉은 빛 금빛 물들인 조개껍질 힘차게 치는 물결은 양편 기슭을 잔무늬로 꾸미고 남서풍은 하류로 가지고 갔다. 진주 같은 종소리를, 하얀 탑들을, 웨이얼랄라 레이어 월랄라 레이얼랄라     [전차와 먼지 뒤집어쓴 나무들 하이베리가 저를 낳고 리치몬드와 큐가 저를 망쳤어요, 리치몬드에서 저는 좁은 카누 바닥에 누워 두 무릎을 치켜 올렸어요.] [저의 발은 무어게이트에, 마음은 발 밑에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그는 울었습니다. 그는 을 약속했으나 저는 아무말도 안했습니다. 무엇을 원망해야 할까요?] [마아게이트 모래밭. 저는 하찮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 다녔어요, 더러운 두 손의 찢겨진 손톱. 제 집안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 아무 기대도 없는]     랄라     카르타고로 그때 나는 왔다. 불이 탄다 탄다 탄다 탄다. 오 주여 당신이 저를 건지시나이다. 오 주여 당신이 건지시나이다.     탄다.         IV. 수사Death by Water     페니카아 사람 플레버스는 죽은 지 2주일 갈매기 울음 소리도 깊은 바다 물결도 이익도 손실도 잊었다. 바다 밑의 조류가 소근대며 그의 뼈를 추렸다. 솟구쳤다 가라앉을 때 그는 노년과 청년의 고비들을 다시 겪었다. 소용돌이로 들어가면서. 이교도이건 유태인이건 오 그대 키를 잡고 바람 부는 쪽을 내다보는 자여 플레버스를 생각하라, 한때 그대만큼 미남이었고 키가 컸던 그를.         V. 천둥이 한 말What the Thunder Said     땀 젖은 얼굴들을 붉게 비춘 횃불이 있은 이래 동산에 서리처럼 하얀 침묵이 있은 이래 돌 많은 곳의 고뇌가 있은 이래 아우성 소리와 울음 소리 옥과 궁궐 먼산을 넘어오는 봄 천둥의 울림 살아 있던 그는 지금 죽었고 살아 있던 우리는 지금 죽어 간다. 약간씩 견디어 내면서.....     여기는 물이 없고 다만 바위뿐 바위 있고 물은 없고 모랫길뿐 길은 구불구불 산들 사이로 오르고 산들은 물이 없는 바위산 물이 있다면 발을 멈추고 목을 축일 것을 바위 큼에서는 멈출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땀은 마르고 발은 모래 속에 파묻힌다. 바위틈에 물만 있다면 침도 못 뱉는 썩은 이빨의 죽은 산 아가리 여기서는 설 수도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다 산 속엔 정적마저 없다 비를 품지 않은 메마른 불모의 천둥이 있을 뿐 산 속엔 고독마저 없다 금간 흙벽집들 문에서 시뻘겋게 성난 얼굴들이 비웃으며 우르렁댈 뿐. 만일 물이 있고 바위가 없다면 만일 바위가 있고 물도 있다면 물 샘물 바위 사이에 물웅덩이 다만 물소리라도 있다면 매미 소리도 아니고 마른 풀잎 소리도 아닌 바위 위로 흐르는 물소리가 있다면 티티새가 소나무 숲에서 노래하는 곳 뚝뚝 똑똑 뚝뚝 또로록 또로록 하지만 물이 없다.     항상 당신 옆에서 걷고 있는 제삼자는 누구요? 세어 보면 당신과 나 둘뿐인데 내가 이 하얀 길을 내다보면 당신 옆엔 언제나 또 한 사람이 갈색 망토를 휘감고 소리 없이 걷고 있어, 두건을 쓰고 있어 남자인지 여잔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요?     공중 높이 들리는 저 소리는 무엇인가 어머니의 비탄 같은 흐느낌 소리 평평한 지평선에 마냥 둘러싸인 갈라진 땅 위를 비틀거리며 끝없는 벌판 위로 떼지어 오는 저 두건 쓴 무리는 누구인가 저 산 너머 보랏빛 하늘 속에 깨어지고 다시 세워졌다가 또 터지는 저 도시는 무엇인가 무너지는 탑들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비엔나 런던 현실감이 없는     한 여인이 자기의 길고 검은 머리칼을 팽팽히 당겨 그 현 위에 가냘픈 곡조를 타고, 어린애 얼굴들은 한 박쥐들이 보랏빛 황혼 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개치며 머리를 거꾸로 하고 시커먼 벽을 기어 내려갔다 공중엔 탑들이 거꾸로 서 있고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종을 울린다, 시간을 알렸던 종소리 그리고 빈 물통과 마른 우물에서 노래하는 목소리들.     산속의 이 황폐한 골짜기 희미한 달빛 속에서 풀들이 노래하고 있다 무너진 무덤들 너머 성당 주위에서, 단지 빈 성당이 있을 뿐, 단지 바람의 집이 있을 뿐. 성당엔 창이 없고 문은 삐걱거린다. 마른 뼈들이 사람을 해칠 수는 없지. 단지 지붕마루에 수탉 한 마리가 올라 꼬꾜 꼬꾜 꼬꾜 번쩍하는 번개 속에서. 그러자 비를 몰아오는 일진의 습풍     갠지스 강은 바닥이 나고 맥없는 잎들은 비를 기다렸다. 먹구름은 멀리 히말라야 산봉 너머 모였다. 밀림은 말없이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천둥이 말했다 다 다타(주라) : 우리는 무엇을 주었던가? 친구여, 내 가슴을 흔드는 피 한 시대의 사려분별로도 취소할 수 없는 한 순간에의 굴복, 그 엄청난 대담,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다. 그것은 죽은 자의 약전에서도 자비스런 거미가 덮은 죽은 자의 추억에서도 혹은 텅 빈 방에서 바싹 마른 변호사가 개봉하는 유언장 속에도 찾을 수 없다. 다 다야드밤(공감하라) : 나는 언젠가 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단 한 번 돌아가는 소리 각자 자기 감방에서 우리는 그 열쇠를 생각한다. 열쇠를 생각하며 각자 감옥을 확인한다. 다만 해질녘에는 영묘한 속삭임이 들려와 잠시 몰락한 코리올레이누스를 생각나게 한다. 다 담야타(자제하라) : 보트는 응했다, 경쾌히. 옻과 노에 익숙한 사람의 손에.     바다는 평온했다. 그대의 마음도 경쾌히 응했으리라 부름을 받았을 때, 통제하는 손에 순종하여 침로를 바꾸며.     나는 기슭에 앉아 낚시질했다. 등위엔 메마른 들판.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바로잡아 볼까?     런던교가 무너진다 무너진다.     -오 제비여 제비여 이 단편들로 나는 내 폐허를 지탱해 왔다. 분부대로 합죠. 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 다타. 다야드밤. 담야타.     샨티 샨티 샨티.       - 출처 : 조선일보 블로그..       황무지(荒蕪地)   엘리엇   쿠메의 한 무녀(巫女)가 독 안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그 때 아이들이 "무녀, 당신은 무엇이 소원이오?" 라고 묻자, 그녀는 "난 죽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 한층 훌륭한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1부. 죽은 자의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 (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슈타른 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 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톤 태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설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 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 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나오는가? 사람들이여, 너는 말하기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곳엔 해가 쪼여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른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주리라 한 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恐怖)를 보여주리라       "일년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야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야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 하지만 히야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게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보여 산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숙을 들여다 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유명한 천리안 소소트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영특한 카드를 한 벌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이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예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 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보이는 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삶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현실감이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마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 보면서 언덕을 너머 킹 윌리엄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로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츤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 아닌 서리가 묘상(苗床)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페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장시, 모더니즘 시 성격 : 주지적, 상징적, 문명 비판적, 신화적 율격 : 내재율 어조 : 대화체 심상 : 시각적 심상 특징      단편들이 동시에 倂置(병치)됨      일종의 독백 형식을 갖춘 시      상징적, 비유적, 신화적 표현 사용 제재 : 고대의 성배(聖杯) 전설 주제 : 정신적 불모(不毛)의 세계 속에서 구원(救援)의 갈망. 현대 문명의 비인간성 비판.   엘리엇 미국 태생 영국의 시인·극작가·문학비평가. 〈황무지 The Waste Land〉(1922) 같은 시와 〈대성당의 살인 Murder in the Cathedral〉(1935)·〈칵테일 파티 The Cocktail Party〉(1950) 등의 희곡을 통해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다. 성공적인 뮤지컬 〈캣츠 Cats〉는 〈늙은 주머니쥐의 고양이에 관한 책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1939)을 기초로 한 극으로, 1981년 영국에서 막을 올렸고 1982년 뉴욕에서 상연되었다.   시인·극작가·문학평론가·편집인으로서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20세기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시어·문체·운율 등의 실험으로 영시(英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일련의 평론들을 통해 과거의 정통적 견해들을 타파하고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다. 또한 사회적·문화적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으며, 페이버앤드페이버출판사의 이사로서 젊은 시인들을 관대하면서도 분별력 있게 도와주던 후원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발표된 〈4개의 4중주 Four Quartets〉로 당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가로 인정받아 1948년 메리트 훈장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작가가 이 작품을 발표한 의도는 전후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조망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작가는 고대의 성배 전설(聖杯傳說)과 웨스턴 여사, 프레이저가 연구한 생명의 원리와 그 부활에 관한 원형 신화(原型神話)를 참조하였다. 엘리엇은 이 원형 신화에서 빌려온 상징을 20세기의 인류 문명의 황폐상과 같은 차원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인은 자신의 개인적고뇌를 보편적 의미로 확산하여 시를 비개인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첫 행의 암시적 시구에 제시되듯이, 삶이 곧 죽음이 되는 역설적 상황을 통해 작가는 구원의 미래를 예견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의 시체에서 어떤 문명의 싹이 트고 꽃을 피울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과거의 전통을 지켜 보고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 속에 스며들어 있는 그 전통적 정신의 유산을 발견해 내려는 관찰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대문명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황무지'는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不在), 생산이 없는 성(性), 그리고 재생(再生)이 거부된 죽음에 대해 쓴 시이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전후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하고 있다.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되고 있다. 진정한 재생을 가져오지 않고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4월은 재생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재생을 요구함으로써 또한 잔인하다.   전체의 내용을 통해 보면 결국 이 시는 '성배 전설'이라는 원형 상징을 이용해 20세기 인류 문명의 황폐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접목으로 구원의 미래를 예견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황무지(荒蕪地)의 의미 황무지는 제 1차 세계대전(1914-1918) 직후의 세계와 작자 자신의 황폐한 사생활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황무지란 전쟁의 황폐와 유혈의 황무지라기보다는 서구인의 정신적 불모 상태, 즉 어떤 소생의 믿음도 인간의 일상생활에 중요함과 가치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성(性)이 2세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갓 쾌락을 위한 것이 되었고,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는 비극적 상태를 나타낸다.   성배(聖杯) 전설 늙고 병든 왕이 통치하는 나라에 재앙이 일어난다. 왕은 재앙을 물리칠 지혜롭고 힘센 젊은이를 찾고 있다. 성배 전설은 성배(聖杯)를 얻은 자가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설이다. 마침내 성배를 가지고 한 젊은이가 나타나 재앙(전염병 혹은 외부의 침입)을 물리치고는,  공주와 결혼하여 새나라를 만든다. 엘리엇은 현대 사회의 재앙을 '황무지'에 비유한 다음,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듯 새로운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T. S. 엘리어트는 ‘문학의 독재자’란 칭호를 얻을 만큼 20세기 전 반의 영미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노쇠기에 접어든 낭만주의 전통을 대신해 까다롭고 복잡한 지적인 시로 영미 시단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했다. 비평에서도 지적 세련미를 앞세워 과거 영문학 내지 유럽문학 전반을 조직적으로 검토하면서 새로운 문학 전통을 건져냈다. 그의 작품이나 평론엔 시대정신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하버드와 소르본,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엘리어트가 런던에 정착한 뒤 최초로 발표한 시는 〈프루프록의 연가〉다. 그의 초기 시는 삶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상실한 현대인의 의식과 너저분한 도시 풍경이 의식에 미치는 우울함을 반어적 표현으로 담아냈다. 〈황무지〉는 이런 현대생활의 고독과 황폐함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국 문학평론가인 스티븐 스펜더는 〈황무지〉의 호소력을 “우리 모두가 폐부 속 깊이 느낀 사실적 심리를 적확하게 그려냈기 때문” 이라고 분석한 뒤 ‘스타킹과 슬리퍼와 속옷과 콜셋이 널린 너저분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타이피스트와 여드름쟁이 점원의 정사’를 사실성의 백미로 꼽는다. 하지만 〈황무지〉는 여성 점술가에서 소다수에 발을 씻는 거리의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여러 단면을 담아낸 ‘현대성의 엔솔로지’라 할 수 있다. 〈황무지〉가 물꼬를 튼 덕분에 이때부터 도시의 경험이 시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의 출발이다.   물론 〈황무지〉가 현대생활의 묘사만 담고 있는 게 아니다. 서구문 명에 대한 진단서이기도 하다. 스펜더의 지적대로 〈황무지〉는 현대 도시의 병적 징후를 통해 프로스트의 〈소돔과 고모라〉와 헤르만 브록흐의 〈몽유병자〉, 슈펭글러의 〈서구문명의 몰락〉처럼 문명의 종말과 악의 창궐을 냉철히 조명하고 있다.   〈황무지〉는 현대성에 대치되는 비판적 관점을 제공할 의도로 인유법을 쓰고 있다. 434행으로 이뤄진 이 시엔 35명의 작가에게서 차용 내지 개작한 내용이 담겼다.   ‘아름다운 여인이 실수를 하고/홀로 방안을 서성일 때면,/기계적인 손으로 머리를 빗으며/축음기에 레코드판을 걸어놓는다.’ 피곤에 찌든 한 타이피스트가 정사를 끝낸 뒤의 모습을 그려낸 이 구절의 첫 행은 골드 스미드의 시극에 나온다. 빌려온 시행은 과거와 현재의 비 교를 자극해 현재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인유법은 과거를 높이고 현재를 낮추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골드 스미드의 시구 역시 과거에 대한 비판으로도 작용한다. 이제 너저분한 정사의 묘사는 더 이상 문학적인 회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인용된 〈베르길리우스〉 등 고전은 물론 기독교나 불교의 유산도 마찬가지다. 결국 현대의 혼란을 매개로 삼아 서구 전통의 쇠퇴와 서구정신의 무력함을 극명히 드러내려는 게 〈황무지〉의 본체인 셈이 다. 〈황무지〉가 현대문명의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못한 채 ‘무너짐에서 이러한 조각들을 건졌노 라’란 유희와 절망이 섞인 인용구의 혼란으로 끝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실 〈황무지〉는 사사로운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지 않은 극히 객관적인 시이면서도 시인의 깊은 감정을 기초로 하고 있다. 엘리어트는 단테의 시가 개인적인 고뇌에서 우러나왔으면서도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한 적이 있는데 〈황무지〉가 그에 가까운 시다. 하지 만 엘리어트는 현대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심판이 아니라 심판 이전의 정신적 혼미와 고뇌에 대한 기록인 〈황무지〉를 분계점으로 하여 보다 확실한 믿음의 세계로 나아간다.   〈황무지〉는 최초로 데크레아숑-창조된 것과 아직 창조되지 않은 것이 어루러진 세계-의 현실을 증언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때문에 어떤 믿음의 계시도 아니며 허무적인 파괴도 아니다. 다만 믿음과 허무 가 혼재한 불확실한 지대에서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보려는 현대인의 현실과 형이상학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어트는 현대의 마음을 읽어낸 몇 안 되는 문학가 중 한 명이고, 〈황무지〉 는 그 마음에 관한 증언이다.  
420    사랑시 외국편 모음 댓글:  조회:2215  추천:0  2016-10-16
            가을날    주여 가을입니다 여름은 참 위대하였습니다 해시계 위에 그림자 누이시고 들에는 바람 시원히 불게 하소서    열매를 맺게 하소서 다수운 햇볕을 더하시어 익어서 단 맛이 가득하게 하소서    집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외로운 사람은 그저 외로울 것입니다 잠 못 이루며 글을 읽고 긴 편지를 쓰고 나뭇잎 뒹구는 길을 헤맬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엄숙한 시간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울고 있습니다    지금 어디선가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웃고 있습니다    지금 어디선가 걷고 있는 그 사람은 나에게 오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지금 죽어 가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9월    우수의 정원 싸늘한 비 내리고 여름은 부르르 떨며 이별을 맞는다   떨어지는 아카시아 누우런 나뭇잎 여름의 희미한 미소   장미꽃 옆 이윽고 여름은 조용히 지친 눈을 감는다   (헤르만 헷세)     이니스프리섬   일어나 가리라 이니스프리섬으로 흙과 나무로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 심고 꿀통을 놓고 벌들이 윙윙대는 숲에서 살리라   거기서 누리리니 평안은 고요히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오리라   밤에는 아슴하나 낮에는 눈부시네 저녁에는 방울새 날아오리   일어나 가리라 호숫가 물소리 하루 내내 들리는 곳 어디서든 가슴으로 그 소리 들으리라   (W.B.예이츠)     무지개   바라보면 가슴이 설레네   어려서 그랬고 이제도 그러고 늙어서도 그러 하리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비노니 언제든 이처럼 살으려네   (W.워즈워드)     산에서 사네   어찌하여 산에서 사는 고 빙긋이 그저 웃기만 하네 복사꽃 아련히 물에 흐르니 세상이 더는 좋을 수 없네   (이백)     잠 못 이루네   머리맡 화안한 달빛 서리 내린 줄 알았네 고개 들어 달을 보고 숙여서 고향을 그리네 (이백)   봄날   봄 햇살에 강산이 아름답고 바람 불어 꽃내음 상긋하네 제비 흙 물어 바쁘게 집짓고 따뜻한 모래밭 원앙이 졸아   (두보)     고향 그리워   강 푸르니 새가 더욱 희고 산 푸르니 꽃 타는 듯 붉네 올해도 오고 가는 봄 보니 언제라야 고향에 가 볼거나   (두보)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르네 마음 속 깊이 새기리 기쁨은 으레 괴로움 뒤에 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여기 있네   손에 손 잡고 얼굴을 마주 하자 다리 아래 강물이 저렇듯 유유히 흐르는데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여기 있네   사랑은 강물처럼 흐르네 우리들의 사랑도 흐르네 인생은 왜 이리 힘들고 희망은 어찌 이토록 뜨거운가   햇빛 흐르고 달빛도 흐르고 세월 마냥 지나가고 우리들 사랑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여기 있네   (기욤 아폴리네르)     기탄잘리(1)   저로 영원케 하시고는 마냥 기뻐하십니다 볼 품 없는 그릇 말끔히 비우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늘 채워주십니다 여린 갈 피리 부셔서 이 언덕 골짜기 영원의 새 노래로 가득하게 하십니다 귀하신 손길에 작은 가슴이 벅차 환희로 소리를 지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저의 작은 손에만 쥐어 주시네요 세월은 끊임이 없고 늘 채우시나 아직도 제게는 채우실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R.타골)     기탄잘리(5)   조금이라도 더 곁에 있고 싶습니다 할 일은 모두 뒤로 미루렵니다 못 뵈오면 저의 가슴 평안이 없고 끝없는 고통의 바다입니다 이제 여름이 속삭이며 창가에 찾아오고 꽃 흐드러진 정원에는 벌들이 부지런히 시를 읊고 있습니다 뵈오며 지금은 조용히 생명의 노래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R.타골)     청춘   나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장밋빛 뺨 바알간 입술 유연한 몸이 아니고 강인한 의지 끝 모르는 상상력 타 오르는 열정 인생의 깊은 샘에서 늘 새롭게 솟아 나 불안과 나태를 물리치는 용기와 도전입니다   스무 살보다는 예순의 나이가 오히려 더 청춘 일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 해서 다 늙는 것은 아닙니다 꿈을 잃어버릴 때에 비로소 늙고 맙니다   세월이 가면 피부에 주름이 생기지만 열정이 식으면 영혼이 시들고 근심 불안 좌절은 영혼을 황폐케 합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모두 미래를 꿈꾸고 마침내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아름다움과 희망을 품고 용기와 힘을 내면 언제나 청춘입니다   포기하여 부정과 냉소의 얼음에 묻히면 스무 살이라도 늙은 사람입니다 소망으로 긍정의 파도를 타기만 하면 여든이어도 청춘입니다   (사무엘 울만)     울려라 종소리여       울려라 종소리여 거친 하늘에 떠도는 구름과 얼어버린 빛을 향해 이 밤 묵은 해가 가네 종소리여 힘차게 울려 퍼져라 가는 해는 가게 하라     옛것을 울려 보내고 새것을 울려 들여라 기쁜 종소리여 눈길을 지나서 울려 퍼져라 새해가 오고 묵은 해는 가게 하라 거짓을 울려 보내고 진실은 울려 들여라     마음을 갉아 먹는 슬픔을 울려 보내라 떠나 버린 사람들을 위한 슬픔을 빈부의 모든 갈등을 울려 보내고 모든 이를 위한 치유를 울려 들여라     우리를 죽이는 것들을 모두 울려 보내라 파쟁의 모든 것들도 고귀한 삶의 모습을 울려 들여라 좋은 예절과 순수를 아는 이들을     가난 걱정 죄악을 울려 보내라 이 시대 불신에 찬 냉정함도 슬픈 노래 울려 울려 보내고 충만한 새 노래를 울려 들여라     거짓부리 오만도 울려 보내라 모든 중상과 증오도 진리와 정의의 사랑을 울려 들이고 선에 대한 사랑도 울려 들여라     고약한 질병 모두를 울려 보내고 황금만 쫓는 욕망도 울려 보내라 끊임 없는 전쟁도 울려 보내고 영원한 평화를 울려 들여라     용기 자유의 혼을 지닌 이들을 울려 들여라 또 넓은 가슴 따뜻한 손을 가진 이들을 이 땅의 모든 어두움을 울려 보내고 오셔야 할 그리스도를 울려 들여라     (알프렛 테니슨)     인생찬가   슬픈 목소리로 말하지 마라 인생은 그저 헛된 꿈이라고 잠든 영혼은 죽은 것 겉만 보아서는 아니 되느니라   인생은 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인생의 끝일 수는 없다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이는 영혼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우리가 가야 할 목표는 길은 기쁨도 슬픔도 아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도록 행동하는 것 그것이 목표고 길이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빠르다 우리의 심장은 튼튼하나 이 순간에도 어두운 북소리 장송곡을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인생의 넓고 거친 싸움터 길에 드러누울지언정 쫓기는 짐승은 되지 말자 싸움에 나서는 용사가 되자   달콤해도 내일은 믿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 버려라 행동하라 살아서 지금 행동하라 안에는 용기 위에는 하나님 계시다   위인들의 삶에서 깨우치고 우리 또한 열심히 살아서 빠른 세월의 모래 위에 우리도 발자국을 남기리라   발자국 뒤에 오는 이들이 보고 인생의 거친 바다를 건너다가 길 잃고 외로울 때에 다시금 용기를 얻게 하리라   우리 모두 일어나 나아가자 어떤 운명에도 굴하지 않을 용기를 갖고 끊임없이 이루고 도전하고 행동하고 기다리자   (H.W. 롱펠로우)      
419    현역 미국시인 부분적 시작품 접하다... 댓글:  조회:1822  추천:0  2016-10-16
------------- 現役 美國詩人 詩作品----------------------------  리차드 윌버(Richard Wilbur): (The Beautiful                                                                             Changes)  X.J. 케네디(X.J Kennedy): (Little Elegy)  존 애쉬베리(John Ashbery): (Last Month)  애드린 리치(Adrienne Rich): (The Roofwalker)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 (Those being                                                                        Eaten by America)  --------------------------- 李豊鎬(이풍호 시인 Paul Lee) 번역 --------------------  아름다운 변화 / 리차드 윌버 *  가을 초원을 메우는 사람이 사방에서  물 위에 백합화처럼 놓여진  앤공주의 레이스를 찾는다. 그것은  보행자로부터 그렇게 미끄러져 떨어지고, 그것은  마른 잔디밭이 호수로 변하고, 아주 가냘픈 당신의 그늘같이  계곡은 전설적인 푸른 자주개자리나무의 내 마음으로 변한다.  카멜레온이 그의 피부를 숲에 맞춤으로  숲이 변화되는 것 같은 아름다운 변화  녹색 잎 위에 붙어 자라면서  잎인 것처럼 보이며  어떤 녹색으로 알려진 것 보다 더  진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마귀.  장미꽃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습관대로  당신의 손은 언제나 장미꽃을 들고 있다. 그런 방식의  아름다운 변화  항상 사물들과 사물들 자신의 재발견을 위해  절단하기를 원하면서 다시 경이로움으로 감동시켜주는  모든 것을 일순간 잃어버리고 싶어 하면서.  * Richard Wilbur(1921- ): 뉴욕시에서 출생. 웨슬리앤대학교 교수 역  임. 1956년 시집 로 퓰리쳐 賞과 The Natonal  Book Award 수상. 시집 (1947)  (1950)  Prophet and Other Poems> 등이 있음.  작은 悲歌 / X.J. 케네디 *  깡충깡충 줄넘기를 한 아이를 위하여  자신의 숨을 떠나  빙빙 회전하는 것도 떠나서 엘리자벳이  쾌활한 발끝이 막 밤이 되려고 윙윙 도는 소리를  완전히 치우지도 못하고 여기 잠자고 있다  지구가 우리를 순환 일주하면서  가장 가벼운 둘레, 지금 엘리자벳과 그녀를 위하여  죽음으로 여행하는 피난처를  포착할 때까지 우리를 스쳐간다  * X.J. Kennedy(1929- ): 뉴저지주 도버에서 출생. 파리에서 GI Bill of  Rights를 연구한 후 Paris Review의 시부문 편집자 역임. 1961년 시집  로 Lamont Award 수상. Tufts대학 교수.  지난 달 / 쟌 애쉬베리 *  援助에 대한 변화 없음- 다만  회색 헝겊 조각, 햇볕이 쏟아진 이 자리에.  家屋은 더욱 무겁게 보이고  지금 그들은 멀리 가버렸다.  사실 그것은 기록을 깨는 짧은 시간에 비워졌다.  평평한 널빤지로 끝났을 때  성냥은 천천히 밤으로 멀어져 갔다.  미래의 아카데미는  문을 열고  헛된 햇볕이 큰 저택 안으로 흘러들어가기를 원했다  의자들은 책, 서류들과 함께 높이 쌓여 있었다.  침착한 사람은 이번 달의 겁이 많은 사람  권력을 바꿔버린 영원한 가치, 재산을 확인한다.  그리고 당신은 새 車,  탁구 세트와 車庫를 가질 수 있었지만, 그 도둑이  모든 것을 기적처럼 훔쳐가버렸다.  그 책 속에는 배신의 사진 한장만이 있었고  정원에는 통곡과 빛의 명암이 남아 있었다.  * John Ashbery(1927- ):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출생. 하바드와 컬럼비아  대학교 졸업. 그의 첫시집 (1956)으로 The Yale Series of  Younger Poets Prize 수상. 시집  Mountains>(1966) 등이 있음.  지붕 이는 사람 / 애드린 리치 * Page 1  반 정도 짓다 만 집들 너머로  밤이 오고 있다. 목수들이  지붕 위에 서있다. 망치질을 마친 후의  고요한 시간  도르래는 느슨하게 멈추어 있다.  경사진 지붕 바닥 위의  거인들, 지붕 이는 사람들  그들의 머리 위에서 막 부숴지려고 하는  어둠의 물결, 사람들의 모습들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지나가고  불타는 바닥 위에 그림자를 던지는  하늘은 찢겨진 돛이다.  지붕 위에 있는 그들이 나는 좋다.  노출되어 실물보다 더 큰 몸으로  내 목을 꺾어버리기 때문에.  무한정의 힘을 들여  내가 그 아래서 살 수 없는 지붕을  얹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일까?  -그 모든 설계도  공백을 메우고  자로 재고, 계산하는 일들도?  내가 택하지도 않았던 인생이  나를 택했다. 내 연장들 마저  내가 해야 할일에  맞지 않는 것이다.  나는 가리개 하나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지붕과 지붕을 건너 피해다니는  벌거숭이  남들과 다른 그림자를 비추며  등불 아래  크림색 벽지에 기대고 앉아서  -냉담하지 않고-  지붕과 지붕을 건너 피해다니는  어느 벌거숭이를 알고 있다.  * Adrienne Rich(1929- ):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출생. 1951년 그녀의  Page 2  첫시집 으로 The Yale Series of Younger Poets  Prize 수상. 시집 Daughter-in-Law> 등이 있음.  아메리카에게 먹히는 자들 / 로버트 블라이 *  아메리카에게 먹히는 자들의 통곡  나중에 먹기 위해 저장된 창백하고 연약한 또 다른 자들  그리고 제퍼슨  새로운 귀리(燕麥)에서 희망을 보았던 사람  황폐한 가옥들은 쉬지 않고  그들의 발가락 사이에서 긴 털을 기른다  밤에 발(足)은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 길고 하얀 길 아래로 달려 내려간다  堤防들은 그들 자신이 전환하여 사막에 홀로 가서 서있고자 한다  지구를 향해 거꾸로 뛰어드는 목사들  핏기 없이  새로운 문학에 죄진 것처럼 번지는 정욕  여기의 詩들이 아주 슬픈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들판에 넘치는 죽어 길게 늘어진 사람  가라앉는 덩어리  육칠歲에 시드는 아이들 얼굴 위의 빛  세상은 머지않아 구원받은 자들의 작은 식민지로 붕괴될 것이다.  * Robert Bly(1925- ): 미네소타주 메이디슨에서 출생. 하바드 대학교  졸업. 시집  (1966) 등이 있고, 과  on Recent American History> 등을 엮음. 구겐하임 펠로쉽과 The National  Institute of Arts and Letters을 받음.  ==== 編輯餘滴 ====== ( 1992년 2월호 ====  * 미국의 현대시는 대체로 크게 세 유파로 분류할 수 있다. (1) 대학의  문창과에서 창작을 배운 정통파 시인들, (2) 새 형식주의(New  Formalist) 시인들, (3) 언어시파(Language Poetry 派)가 그것이다.  대학의 문창과에서 배운 정통파 시인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뉴  포멀리스트들은 형식적 실험에 열중하고 있고, 언어시파들은 이론이  우세하다. 미국 거주 교포시인인 이풍호씨가 번역한 은 뉴포멀리스트의 부류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  다. 이풍호 시인의 번역과 소개를 감사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우수한  현역 미국 시인들의 작품 번역을 보내 주기 바란다. //////////////////////////////////////////////////////////////////////////// //////////////////////////////////////////////////////////////////////////// 초현실주의에 대하여--- -초현실주의인 쉬르리얼리즘(surrealism)는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19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문학, 예술 운동입니다.  -1917년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그의 부조리극 을 '초현실주의'극이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1924년 이 운동을 주도한 앙드레 브르통이 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명칭이 보편화되었다. 브르통은 에서 초현실주의를 "예상치 못한 수많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순수한 심리적 자동작용의 무의식적 탐험"으로 정의 내리며, '자동 기술법'이라는 시의 창작 방법론을 제창하였다. 브르통의 발표 다음해인 1925년 11월 파리에서 이러한 미학(美學)과 기법으로 창작된 작품들을 전시한 최초의 초현실주의전(展)이 열려 회화에서도 초현실주의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출품 작가들은 스페인의 후앙 미로, 독일의 파울 클레, 미국의 맨 레이, 이탈리아의 조르지오 키리코, 프랑스의 앙드레 마송과 피에르 루아, 독일에서 프랑스로 국적을 바꾼 막스 에른스트,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국적을 바꾼 파블로 피카소 등이었다. 주요 작가로는 살바도르 달리, 후앙 미로, 마그리트, 데 키리코 등이 있으며 샤갈 또한 이 운동의 선두주자로 언급된다. -다다이즘에서 출발한 초현실주의는 근본적으로 경험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본능적이고 잠재적인 꿈의 경험과 융합시켜서 논리적이며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현실에 도달하려 했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무의식 영역에 속하는 id의 발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이것을 화면에 표현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Sper-ego 즉 이성적 억압에 눌린 본능에의 욕구-예를 들어 성 욕구-를 여러 가지 상징물 달걀, 못을 통해 나타내려고 하였다. 또한 자유 연상법을 예술창작에 적용해 '자동 기술'이라는 창작 기법을 창안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달리, 에른스트 등이 미국으로 건너감으로써 이 운동의 흐름이 계속되었지만 미술운동의 주도권은 상실되었고, 이 영향하에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출처(쉬르리얼리즘:시사상식사전)
418    프랑스 시인 - 기욤 아폴리네르 댓글:  조회:5230  추천:1  2016-10-16
          Mirabeau Bridge           Under the Mirabeau Bridge there flows the Seine             Must I recall      Our loves recall how then After each sorrow joy came back again                          Let night come on bells end the day             The days go by me still I stay Hands joined and face to face let's stay just so             While underneath      The bridge of our arms shall go Weary of endless looks the river's flow             Let night come on bells end the day             The days go by me still I stay All love goes by as water to the sea             All love goes by      How slow life seems to me How violent the hope of love can be             Let night come on bells end the day             The days go by me still I stay The days the weeks pass by beyond our ken             Neither time past      Nor love comes back again Under the Mirabeau Bridge there flows the Seine             Let night come on bells end the day             The days go by me still I stay              (Guillaume Apollinaire / Trans. Richard Wilbur)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네    가 버린 우리의 사랑    다시금 기억해야 할까나 아픔 뒤엔 늘 기쁨이 왔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여기 머무네 손잡고 얼굴 마주보며 이대로 있자꾸나    우리 팔로 엮은 다리 아래로     하염없는 바라봄에 지쳐 버린 강의 물결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여기 머무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네    사랑은 가네    인생은 얼마나 느리고 희망은 얼마나 강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여기 머무네 날이 가고 달은 가는데    가버린 시간    떠나간 사랑 돌아옴 없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여기 머무네         (기욤 아폴리네르 / 번역: 리처드 윌버)           Notes 아폴리네르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시. 세월의 흐름, 사랑과 삶의 덧없음을 세느 강의 흐름에 비추어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허무감만 있는 건 아니다. 위에 올린 영어 번역은 미국 시인 리처드 윌버(Richard Wilbur)의 것. 영역은 원시에 없는 말을 한두 군데 넣은 곳도 있지만 음악적 효과가 섬세하다. 아래에 프랑스어 원문과 함께 영어 축자역을 싣는다. Mirabeau Bridge: 파리 교외의 오테이유 근처에 있는 다리. Le Pont Mirabeau. the Seine: 파리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강. Must I recall / Our loves recall how then: Must I recall our loves, and recall how . . . 나는 (지나간) 우리의 사랑을 기억해야 하는가, 그리고 (슬픔이 있고 나선 늘 기쁨이 되찾아 왔던 것을) 기억해야 하는가. Let night come on bells end the day: Let night come on, and let bells end the day. The bridge of our arms: 우리들의 팔로 엮어진 다리. 두 사람이 손을 맞잡으면 두 팔이 다리 모양이 된다. shall go: 2연의 While 이하의 문장은 주어 동사가 도치되어 있다. shall go의 주어는 the river's flow. 프랑스어 원문에서도 마찬가지.  Weary of endless looks: 하염없이 바라보는 데 지쳐 버린. beyond our ken: 시야를 넘어서. 안보이는 곳으로. 이 표현은 원문에 없지만 운을 맞추기 위해 넣었다. * 프랑스어 원시 Le Pont Mirabeau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ès la p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es mains dans les mains restons face à  face    Tandis que sous    Le pont de nos bras passe Des  éternels regards l'onde si lass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érance est violent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Passent les jours et passent les semaines    Ni temps passé     Ni les amours reviennent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 영어 축자역 The Mirabeau Bridge (literal translation) Under the Mirabeau Bridge flows the Seine    And our loves     Must I remember them Joy always followed after pain    Let the night fall and the hours ring    The days go away, I remain  Hand in hand let us stay face to face    while underneath     the bridge of our arms passes the so-slow wave of eternal looks    Let the night fall and the hours ring    The days go away, I remain Love goes away like this flowing water    Love goes away    How slow life is How violent hope is    Let the night fall and the hours ring    The days go away, I remain The days pass and the weeks pass    Neither past time     Nor past loves return Under the Mirabeau Bridge flows the Seine  Let the night fall and the hours ring The days go away, I remain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1880 - 1918) 프랑스 시인.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의 사생아로 출생.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어머니를 따라 남프랑스 지역을 전전하다 19세에 파리에 올라온다. 가난한 생활을 하였지만 뜨거운 문학적 정열로 여러 예술 운동에 참여하여 당시 전위예술의 중심 인물이 된다. 33세에 첫시집 Alcools(1913)을 내어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14년 1차 대전에 참전. 1916년 부상을 입고 제대한 후 파리로 돌아와 상징적인 이야기책 Le Poète assassine(The Poet Assassinated)를 내고, 이어 1918년에 전쟁의 이미지와 사랑의 번민에 가득한 새 시집 Calligrammes을 출간한다. 전쟁 때 입은 부상으로 허약해져 같은 해 인플렌자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Sweet Breeze(상쾌한 산들바람) / Isao Sasaki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 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 /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온다는 것을'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가 미라보 다리를 걷다 연인과의 사랑을 회상하며 썼다는 이 시는 20세기 초반 프랑스 파리가 가지고 있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26일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태어난 지 136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며 19살에 파리로 와 자유로운 삶을 즐겼고 아방가르드 운동에 참가하는 등 새로운 예술을 주도했습니다. 그가 미라보 다리를 건너며 떠올렸던 연인은 누구였을까요. ======================================================== 미라보 다리는 파리 센 강의 수많은 다리 가운데 별나게 매력적인 다리가 아닙니다. 알렉산드르3세 다리처럼 화사하지도 않고, 새 다리(新橋, 퐁뇌프)처럼 젊은이들이 밀어를 나눌 움푹 파인 공간들이 있는 것도 아니며, 생미셀 다리처럼 파리의 멋진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내가 처음 파리에 간 1992년 가을에 굳이 그 다리를 찾은 것은 순전히 당신의 그 유명한 시 ‘미라보 다리’ 때문이었습니다. 막상 가서 보고는 실망했습니다. 다리의 북쪽 끝에 당신의 ‘미라보 다리’ 첫 연이 새겨져 있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볼품없는 다리였습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왔었지.” 미라보 다리는 오직 당신의 시 ‘미라보 다리’ 덕택에 어떤 위광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파리시(市)가 뒷날 거기에 당신의 시를 새겨 넣은 것도 그것을 노렸기 때문이겠지요. 그 다리 위에서 나는 그 시(詩)를 이어가며 당신과 화가 마리 로랑생의 연애를, 그리고 당신의 실연(失戀)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당신이 이 다리 위에서 바라보았던 파리에는, 에펠탑 말고는 다른 현대식 건물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그 다리 위에 처음 섰던 23년 전, 거기서 본 파리는 마치 신흥개발 도시 같았습니다. 남쪽 강안의 니코 호텔과 북쪽 강안의 라디오 프랑스 방송사 건물이, 그리고 북쪽으로 멀리 보이는 TF1 텔레비전 방송사 건물이 빚어내는, 파리답지 않은 차가운 풍경 때문이었습니다. 그 건물들은 아무런 미적 고려도 부여받지 못한 서울의 아파트 건물들 같았습니다. 아무튼 이리 볼품없는 다리 위에서 당신이 어떻게 그리 낭만적인 노래를 읊었는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당신의 아흔일곱 번째 기일입니다. 당신은 유럽인들이 ‘아주 커다란 전쟁’이라고 불렀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이틀 전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포병으로 참전한 당신은 두뇌에 관통상을 입어 그 당시로서는 몹시 위험한 개두수술을 받고서도 용케 살아남았지만, 그 총상에서 회복되던 중에 독감에 걸려 종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38세의 아직 젊은 당신의 삶을 앗아간 것은 그 1년여 사이에 전 세계에서 2000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이었습니다. 중세유럽의 페스트에 버금갈 만하게 위협적인 독감이었다지요. 그 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한 독감이 국경을 넘어 퍼질 때면, 그 ‘신종’ 독감은 1918~1919년의 스페인독감에 비유되곤 합니다. 물론 스페인독감만 한 위력을 떨친 독감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총상의 회복기에 독감으로 죽었으니, 당신이 전사한 것인지 병사한 것인지 조금 모호하긴 합니다. 아무튼 당신은 참전의 대가로 프랑스 국적을 얻었고, 프랑스인으로 죽었습니다. 이방에서의 출생과 성장, 이방인의 피와는 상관없이 당신이 진정한 조국으로 여기고 자부심을 가졌던 나라의 시민으로 죽은 것입니다. 당신이 죽은 나이에 나는 파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도시의 거리들을 끊임없이 걸었습니다. 걷다가 지치면 아무 카페에나 들러 신문을 읽거나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시간은 정지돼 있는 것 같았고,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나는 문득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자주 들렀을 몽파르나스와 몽마르트르는 내가 자주 걷던 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카페들의 외진 자리에 앉아 유리벽 너머로 몽파르나스대로나 테르트르광장을 내다보노라면, 그 카페들의 옛 고객들이 다시 살아나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환각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 고객들의 얼굴 가운데는 당연히 당신의 얼굴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비평가 마르셀 레몽에 따르면 당신은 “1905년께부터 1920년 사이에 프랑스 예술이 열어놓은 모든 길에 그 그림자를 드리운 시인”이고, 시인 앙드레 브르통에 따르면 “이 세상 최후의 시인”입니다. 그 말을 했을 때, 앙드레 브르통은 자신을 시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요? 당신은 화가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가 체현할 입체주의(큐비즘)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그 입체주의에서 가지쳐나갈 오르페우스주의(오르피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또 당신은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슴)라는 말도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당신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였을 뿐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초현실주의의 주인공이라 할 앙드레 브르통은 1924년의 첫 번째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경의를 표하여, 수포와 나는 우리가 그 재량권을 획득하여 우리 친구들에게 지체 없이 이바지할 수 있게 된 이 순수한 표현의 새로운 양식을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라고 씁니다. 물론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가 당신의 초현실주의와 고스란히 포개졌던 것은 아닙니다. 브르통이 이어서 “오늘날에 이 낱말을 바꿀 필요는 없으나, 우리가 이 말에 부여하는 의미 폭이 아폴리네르의 의미 폭보다 일반적으로 우세하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브르통은 더 나아가 제라르 드 네르발이 의 헌사에서 사용한 ‘초자연주의’라는 말이 자신의 초현실주의에 더 가깝다는 것도 내비칩니다. 나는 초현실주의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합니다. 그 말에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서 앙드레 브르통을 거쳐 르네 마그리트에 이르기까지 스물은 넘겠지만, 나는 문학에서의 초현실주의와 조형예술을 비롯한 다른 장르에서의 초현실주의가 어떻게 얽히고 스며 있는지 자세히 모릅니다. 나는 그러나 당신이 작고한 뒤 1920년대부터 활짝 핀 초현실주의가 장르의 벽을 넘어 문인들과 화가들을 묶고, 저널리스트들과 예술향수자들을 아우르는 예술사의 진풍경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당신은 소위 ‘아름다운 시절(벨에포크)’을 살다 죽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외려 당신이 죽은 뒤의 1920년대 파리가 아름다운 시절로 다가옵니다. 내 상상 속 그 아름다운 시절의 주인공들은 프랑스인들만이 아니라 파리로 몰려든 많은 예술가들, 특히 ‘길 잃은 세대’라 불렸던 미국 예술가들도 포함합니다. 파리에 살 때, 내 아파트는 페르-라셰즈 묘지 근처에 있었습니다. 걸어서 10분 거리였습니다. 나는 그곳에 자주 들렀고, 당신의 무덤을 곧잘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에 새겨진 당신의 시를 읽었습니다. 그 시의 한 대목이 어슴푸레 떠오릅니다. “사람들이 결코 건드리지 못한 것/ 난 그걸 건드렸고 그걸 말했네// 아무도 그것에서 상상하지 못하는 것/ 난 모든 걸 캐냈네/ 그리고 난 여러 번 맛보았네/ 맛볼 수 없는 삶까지도/ 난 웃으며 죽을 수 있네.” 견자(見者)는 랭보가 아니라 당신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신기한 것에 잘 홀리는 부박한 성격 탓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당신의 시집은 입니다. 그러나 이 11월에는 ‘미라보 다리’가 실린 당신의 첫 번째 시집 을 읽으며 황량한 계절을 보내볼까 합니다. 서울 날씨는 보통 파리 날씨보다 훨씬 사랑스럽지만, 11월은 서울도 파리와 비슷하게 을씨년스럽습니다. 을 읽기에 좋은 철입니다. 파리에 살 때 프랑스어판으로 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허술한 프랑스어로는 당신의 그 시집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듯합니다. 마침 이제 내게는 한국어판 이 있습니다. 그 시집을 한국어로 옮기고 세세한 미주(尾註)를 단 황현산씨는 당신에 대해, 그리고 초현실주의에 대해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역자 해설에서 황현산씨는 전쟁 중에 당신에게 위문편지를 보내던 한 여성에게 당신이 보낸 편지글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나는 내 작품에 일곱 사람 이상의 애독자를 기대하지 않지만 그 일곱 사람의 성(性)과 국적이 다르고 신분이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내 시가 미국의 흑인 복서, 중국의 황후, 적국인 독일의 신문기자, 스페인의 화가, 프랑스의 양갓집 규수, 이탈리아의 젊은 농사꾼 여자, 인도에 파견된 영국 장교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이 내 바람입니다.” 이어서 황현산씨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 일곱 사람 가운데 우리는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감수성과 지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흑인 복서로, 이탈리아의 젊은 농사꾼 여자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아폴리네르의 시에 들어 있다.”   나는 당신의 시집을 펼쳐, 독일의 신문기자가 되어, 첫 시 ‘변두리’부터 읽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넌 이 낡은 세계가 지겹다// 양치기 처녀여 오 에펠탑이여 오늘 아침 다리들 저 양떼들이 메에 메에 운다// 너는 그리스 로마의 고대에 진저리가 난다//…” ///고종석 ====================================================                                                     마리 로랑생의 그림들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슬픈 여자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불행한 여자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버려진 여자                                                                                                              버려진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떠도는 여자                                                                                                     떠도는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쫓겨난 여자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                                                                                                             잊혀진다는건                                                                             가장 슬픈 일                                                                                 마리 로랑생, 화가이면서 시를 쓰기도 했던 매력적인 여인입니다.                                  한때는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그의 애간장을 타게 했던 여인입니다.                                  아폴리네르는 로랑생과 연애 하다 실연을 하죠.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던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합니다.                                    실연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아폴리네르는                                  다리에 멈춰서서 지난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는 시를 씁니다.                                  그 시의 제목은 . 그의 시로 이 다리는 유명해졌고                                  외국인들의 관광명소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진다는 것은 가혹한 형벌입니다.                                 죽음보다 더한 형벌입니다 그것은 존재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오늘의 소중함을 생각하기 위해                                  로랑 생의 그림과 아폴리네르詩를 같이 읽고자 합니다     .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마음속 깊이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위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잡고 얼굴 마주하며 우리의 팔 밑 다리 아래로 지친 듯 흘러가는 영원의 물결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물결처럼 흘러내리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삶이란 어찌 이다지도 지루하고 희망이란 왜 이토록 격렬하더냐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햇빛도 흘러가고 달빛도 흘러가고 오는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의 사랑은 가서 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 시집『알콜』(1912) .............................................................................    아폴리네르의 이 시에는 ‘마리 로랑생’이라는 화가와의 사랑과 추억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둘은 오랜 기간 사랑을 나눴지만 서로의 현저한 개성 차이와 돌발 상황으로 결별 하였고, 로랑생은 바로 독일인과 결혼하였다. 한 달 후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독일 국적을 가진 마리 로랑생은 영영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에 아폴리네르는 그녀와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이 시를 남겼는데, 그는 1918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도 미라보 다리 아래 강물이 흐르듯 이 시는 영원히 모든 연인들의 추억 속에 흐르고 있다. 사랑의 상실과 이별의 아픔은 강물 따라 흘러가버리지만 그런 상실과 아픔을 세월의 덧없는 흐름 속에 던져버릴 때의 처절한 체념은 영원히 머문다. ‘흐름’가운데 ‘머무름’의 짙은 서정이 이 시를 감싸고 있다.    도처의 이름난 명소에는 사람마다의 개별적 추억이 서려있고, 그런 까닭에 각기 독특한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1896년 완공된 파리 세느강의 미라보 다리도 그 가운데 하나이며 아폴리네르의 이 시도 그 일부일 것이다. 다리에 관한 스토리만 해도 같은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퐁네프’와 함께 ‘메디슨 카운티’가 얼른 생각날 정도다. 그런데 가본 사람은 다들 느끼겠지만 미라보다리는 학창시절 고양된 설렘을 제공했던 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그저 그런 평범한 다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또한 시 한편에 힙 입은 스토리텔링의 위력이라 할 수 있다.   권순진 ============================================ 해외 시산책   기욤 아폴리네르     저 투명한 창문에 불온한 tint coatingdmf 덧 씌운자, 기욤 아폴리네르                                                                        — Modern Poetry는 이제                           영원성 보다는 덧없음, 필연성보다는 우연성에 기대어 덧없이 순간적인 것들이 순결한 윤슬처럼 오르피즘의 물결을 타고 마침내                                                              미학적 위치에 오르게 된다.                   아폴리네르가 길을 터 수용한 에스프리 누보el'sprit nouveau                                                                    아방가르드 정신 덕택에                                                                                   김영찬 (시인)         1881년생 피카소(Pablo Picasso)는 19세 때 고향 바르셀로나를 떠나 마드 리드를 전전하다가 약관의 나이 24살이 되던 해인 1904년 파리에 정착한 다. 피카소보다 한 살 많은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로마 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미혼모인 어머니를 따라 모나코공국에서 극빈하게 살다가 그 또한 19살이 되던 해 리옹을 거쳐 파리로 입성한다. 가난에 찌 든 이들 두 젊은 예술가들은 1905년에 운명적으로 만난다. 몽마르트르라 는 기상천외의 장소가 이들 푸릇푸릇한 20대 중반의 가난뱅이 젊은 예술 혼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모든 것들의 시작, 그들은 시인 막스 자콥(Max Jacob)이 세탁선(Le Bateau Lavoir)이라고 이름 붙인 낡 고 지저분한 건물, 시궁창 냄새와 고양이 오줌자국의 천국인 몽마르트르 의 다락방에서 불행과 무명의 서러움을 견디며 오로지 예술혼을 불태웠 다. 예술만이 전 재산인 그들은 거기에 푹 빠져서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 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시인 아폴리네르가 피카소를 부추겨 그 당시 생경하기 짝 이 없었을 큐비즘에 눈을 뜨게 했다거나, 작가의 눈으로 대상을 특이하게 왜곡시켜 캔버스 위의 반란이 가능토록 추동했을 거라는 말을 하려고 피 카소를 들먹거리는 게 아니다. 당시, 기괴하기 짝이 없던 피카소의 실험적 인 그림을 곁에서 더욱 더 적극적으로 옹호한 예술가는 아마도 아폴리네 르(피카소가 아폴리Apoli라고 다정하게 부르던) 보다는 동료화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아폴리가 피카소에게 소개했다) 쪽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큐비즘의 근원을 따진다면 아폴리네르의 언어적 발상, Cubisme Orphique(Orphic Cubism)은 어휘 이전에 이미 캔버스 위의 혁명으로 활 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일찍이 바실리 칸딘스키(Wasilly Kandinsky 1866~1944)가 있었고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가 맹활동 중이지 않았던가. 그들은 아폴리네르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미래파적인 행위에 역동적일 수 있었다.   “대상을 지워 없애고 오브제가 없는 상태에서, 선과 색과 면만으로도 얼 마든지 캔버스 위의 예술(미술의 독립국가)은 가능하다”(칸딘스키)라며 아 주 멀리까지 진출해 있던 천재들이었으니.   그러나 어쨌든 당대의 현장시인이자 미술평론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 한 아폴리네르가, 입체파(Cubisme)라는 간판과 초현실주의(Sur-réalisme)를 작명한 공로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는 이태리의 미래주의자 마리네트 를 도와 미래파선언문을 작성(1913년)한 장본인으로서 당시에, 엉터리 화 가로 조롱 대상에 불과했던 입체파들을 적극 옹호했으며 Les Peintres Cubistes(1913)이라는 최초의 평론집을 내놓는 등 아방가르드 의 후견인으로서 전초병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왜 아 폴리네르 없이도 피카소가 가능했을까, 라고 묻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지 몽마르트르의 거주자라는 동질성을 넘어, 깊은 통 찰과 차원 높은 교감의 세계에서 서로 잘 통하는 관계 그 이상이었기 때문 이다. 그들은 각기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서 서로의 위상을 동반 상승시키 는데 서로가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아폴리네르는 풋내기 화가 피카소를 천재 화가로 부추기는 평론을 써서 피카소를 세상 에 알린 최초의 미술평론가가 된 셈이고 이것은 1905년의 일이다. 이를 계 기로 두 사람은 급격히 친해졌고 피카소 또한 아폴리네르에게 각별했음을 입명하는 일례로 피카소는 아폴리네르의 일생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연인, 화가이자 시인으로도 잘 알려진 마리 로랑생을 소개한다. 또한 만년에 아 폴리네르가 아내로 맞은 자크린 콜브와의 결혼을 주선한 사람 역시 피카 소였다. 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 고수들로서 예술의 진로를 한 차원 위 에서 내려다보는 통찰력을 지녔던 것이다. 우리는 왜 인접예술과의 소통 과 교류(우리 한국문단에는 인접예술과의 대화 채널이 사실상 거의 없다) 에 이처럼 소홀한가. 나는 이점을 곁들여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강조하고 싶다.         아폴리네르는, 말라르메처럼 그 우연을 없애버리고자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우   연성에 대하여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는 사고와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친화력을 들어낼 필요가 있고 비록 인위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그것들 상호간의   교류를 장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시학이란 본질적으로 자의성(恣意   性)이며, 예견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어떤 추론을 통해서도 생겨나게 만들 수 없는   자유 연상이며, 우연한 발견이며, 도취한 새가 부리로 물어다주는 순결하고도 아   름다운 이미지이므로 그(아폴리네르)는 우연을 실험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학자로서 보들레르는, 스스로 결정한 것을 정확하게 완성해낼 수 있는 시인   을 찬양했었다. 그러나 시인은 결국 선택과 결정을 포기하게 되고 말 것이다.     아마도 시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시행들은 무엇인가를 의미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발레리가 구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어떤 새로운 시적   순수라고 하겠다.     — 마르셀 레이몽   기욤 아폴리네르, 그는 20세기 시의 혁명가이자 늘 새로운 것을 꿈꾸는 자였다. ​ ​ ​ ​ ​ *​ ​ 20세기에는 두 번의 큰 전쟁이 있었다. 한번은 1차대전이고 다른 한번은 2차대전이다. ​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프랑스에스는 합리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있었다. ​ 합리적이라는 인간이 정말 별것도 아닌 사건을 가지고 그 수많은 인간을 죽이는 전쟁을 한다는 것은 라는 것이 인간 세상을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도구가 아님이 명백해졌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인간을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 인간은 합리적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것이 작용하고 있다. ​ 그 이면에 작동하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이다. ​ 프로이트가 주장한 이 을 알아야 합리적인 척 하는 인간의 이면을 볼 수 있다. ​ 그래서 나타난 문예운동이 바로 다다이즘이다. 그리고 다다이즘을 다시 변형시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 나타난 것이 초현실주의이다. ​ 다다이즘은 합리적인 사고하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을 무엇이든 모두 파괴하려하였지만 초현실주의는 그러한 파괴를 한 후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하려고 하였다. ​ 다다이즘의 이론은 트리스탕 짜라가 주장하였고 초현실주의의 이론은 앙드레 브르통이 만들어 낸다. ​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 대열에 동참한다. ​ 그런데 초현실주의라는 것이 프랑스 말로는 인데 라는 접두어는 나  등을 의미한다. ​ 하지만 그들은 자동기술(ecriture autimatique)를 추구하면서​ 무의식의 탐구에 매달리면서 먼저 가 아니라 에 몰두한다. 즉 그들은 당시까지 간과하고 있던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의 그 무엇을 찾아보려고 애쓴다. ​ ​ 하지만 그들은 내면의 탐구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 그들은 이성적이지 않은 인간들이 이성적인 척 하며 이성과 양식을 근거로 하는 자본주의 세계를​ 타파하기 위하여 즉 합리적인 척 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하여 공산주의 운동에도 적극 가담한다.​ ​ 초현실주의는 한편으로는 내면의 무의식을 탐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척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하여 혁명를 꿈꾼다.  ​ ​ 어쨌든​ 이 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 바로 기욤 아폴리네르라는 설도 있다. ​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와 센느 강을 걸으면서 큐비즘을 추구하도록 영감을 주기도 했다. ​ *​ ​ ​기욤 아폴리네르가 추구한 것은 에스프리 누보(Esprit nouveau)이다. ​ 그는 이 에스프리 누보 즉 새로운 정신에 대하여​ 훌륭한 글을 쓰기도 하였다. ​ 에스프리 누보라는 용어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먼저 사용했다. 그는 새로운 정신을 내세우며 철근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를 도입하고 근대양식의 불필요한 부분을 배제하였다. ​ 아폴리네르 역시 시에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고자 했다. ​ 그는 시를 쓰면서 단어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 ​ ​ 하지만 그의 새로운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시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라는 시이다. ​ ​ ​ ​ ​ ** ​ 는 왜 유명한 시일까? ​ 그냥 보기에는 쉽게 씌어진 것 같은데...​ 저 정도의 시라면 시인이라면 누구나 쓸 수도 있을 것처럼 느껴지지고 하는데...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내용도 단순한데...  ​ 도대체 왜? 왜 유명한 것일까? ​ 먼저 시를 한번 읽어보자. ​ ​ ​ ​ ​ 먼저​ 이 시가 좋은 시라는 것을 알려면 프랑스어 원문으로 읽어보아야 한다. ​ 왜? ​ 이 시의 운율과 리듬은 우리 말로 번역을 하는 순간 모두 사라지고 만다. ​ 시라는 것이 번역을 하면 그 맛이 사라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이 시의 리듬과 운율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맛이 새록새록 살아나며 시의 의미를 더욱 증폭시킨다.​ ​ 그렇다고 어찌 시를 원문으로만 읽겠는가? 우리 말로 번역을 해 보자.​ ​ ​ ​ ​ ​ 이 시의 내용인즉슨​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는 것이다. ​ 이 정도의 의미라면 별것이 아니다. 이 시의 새로운 정신은 거기에 있지 않다.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가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음을 알려준다.​ 즉 그는 세상이 변전하며 과거의 강물은 흘러가고 늘 새로운 강물이 흘러옴을 말한 바 있다.​ ​ 기욤 아폴리네르의 이 시가 말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괴로워 하지만 그 괴로움 후에 다시 기쁨이 옴을 안다. ​ 괴로움 후에 기쁨, 괴로움은 과거의 사랑이고 기쁨은 새로운 사랑을 의미한다. ​ 강물이 흘러가듯이 옛 사랑은 흘러가며 새로운 강물이 도래하듯이 새로운 사랑이 곧 찾아온다. ​ 아포리네르는 이 시에서 주장하고 있다​ ​ 19세기까지의 사랑이 하나의 사랑 옛 사랑에 집착하는 것이라면 ​ ​20세기의 사랑은 옛 사랑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 후 괴롭기는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맞을 기쁨도 있으니 ​ 어느 노래 가사처럼 "맨날 술이야~~ ♪♬"​ 하고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사랑의 도래를 기뻐하라는 것이다.​ ​ 과거의 생각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 그것이 바로 에스프리 누보이다. ​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는 과거의 사랑은 곧 흘러가고 새로운 사랑이 도래하나니...​ 과거의 사랑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사랑의 도래를 기뻐하라는 것이다. ​ 그래서 이 시에서는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 그렇다. 강물이 흐르긋​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 과거의 사랑은 흘러가고 새로운 사랑이 도래한다.​ ​ ​기욤 아폴리네르, 그는 지금 페르-라-셰즈에 잠들어 있다. ​ 그는 이 곳에서도 누보 에스프리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 ​ ​ *** ​ 이 시에서 배우는 시창작 방법은 기존의 사고를 뒤집어라는 것이다. ​ 시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 한번 사용된 이미지는 이미 낡은 것이듯이 관습이 되거나 습관이 된 사고, 긴 세월 동안 굳어진 사고, 그것을 깨는 것이 바로 시창작의 출발점이다. ​ 시를 쓰고자 밤을 새우는 그대여, 시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이 말을​ 꼬옥 기억하시라! ​ ​ ​ ​ ​ ​ ​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강이 흐른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 아 추억해야만 하는가 그사랑을 기쁨은 언제나 고통뒤에 왔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의 다리 아래로 영원한 시선의 나른한 물결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흘러간다 이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얼마나 인생은 느리고 또 얼마나 희망은 강열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날이 가고 ?일이 지나가고 가버린 시간도 옛 사랑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종 미남인 집시 내 애인이여 울리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우린 정신없이 서로 사랑했었어요 그러나 우린 잘 숨지 못하여 사방의 종들이 높은 종각에서 우리를 보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버려요 내일이면 시쁘리앙과 앙리 마리 위르쉴과 까뜨린느 빵집마님과 남편 그리구 나의 사촌누이 젤트뤄드가 미소지을 거예요 내가 지나갈때면 나는 몸둘 곳을 알지 못할거예요 당신은 멀리 있고 나는 울거예요 어쩌면 울다 죽을 거예요            가 을  안개속을 간다 다리가 구부정한 농부와 그의 소가 조용히, 가난하고 부끄러운 오막집들을 감취주는 가을 안개속을 그리고 저쪽으로 가면서 그 농부는 노래한다 반지와 상처입은 마음을 말해주는 사랑과 부정의 노래를 오! 가을 가을이 여름을 죽였다 안개속을 지나간다 재빛 실루에뜨가 둘                식 사   가재도구와 두 명의 자식만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 햇볕이 들고 어머니께서 앉으신 의자 뒤  탁자는 둥글지요 창도 나 있지요 그곳을 통해 바다를 보지요 햇빛에 반짝거리는 그 바다 올리브와 소나무의 어두운 잎들의 머리들 붉은 지붕의 빌라에 더욱 가까운 굴뚝이 연기를 피우는 붉은 지붕들 식사시간이기 때문이죠 모든 것에 햇볕이 들고 싸늘한 식탁보 위로 어머니는 따스한 음식을 차려 놓으십니다 식사는 값싼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배고파 봐야합니다 어머니와 두 자식은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합니다 식사 후엔 즐거운 노래가 따르죠 식기들의 즐거운 소리와 크리스탈잔의 맑은 소리 열린 창을 통해 새들의 노래가 레몬나무 속으로 들어갑니다 부엌에서는 불 위의 버터의 생생한 노래가 들려옵니다 햇볕은 물과 섞인 포도주 병을 관통하고요 아! 햇빛과 포도주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루비여 배고픔이 잦아들면 즐거운 과일과 향이 식사를 마무리짓지요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일어서며 삶을 사랑하죠 물질적인 것에 대한 불쾌감 없이 식사는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사람을 살아있게 해준다는 생각을 하면서     Le pont Mirabeau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ès la p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es mains dans les mains restons face à face Tandis que sous Le pont de nos bras passe Des éternels regards l'onde si lass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érance est violent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Passent les jours et passent les semaines Ni temps passé Ni les amours reviennnt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es cloches  Mon beau tzigane mon amant Ecoute les cloches qui sonnent Nous aimions perdument Croyant n'tre vus de personne Mais nous tions bien mal cachs Toutes les cloches  la ronde Nous ont vus du haut des clochers Et le disent  tout le monde Demain Cyprien et Henri Marie Ursule et Catherine La boulangre et son mari Et puis Gertrude ma cousine Souriront quand je passerai Je ne saurai plus o me mettre Tu seras loin Je pleurerai J'en mourrai peut-tre    Automne Dans le brouillard s'en vont un paysan cagneux Et son boeuf lentement dans le brouillard d'automne Qui cache les hameaux pauvres et vergogneux Et s'en allant l-bas le paysan chantonne Une chanson d'amour et d'infidlit Qui parle d'une bague et d'un coeur que l'on brise Oh! l'automme l'automne a fait mourir l't Dans le brouillard s'en vont deux silhouettes grises       Le repas   Il n'y a que lare et les deux fils  Tout est ensoleillé  La table est ronde  Derrière la chaise où s'assied la mère  Il y a la fenêtre  D'où l'on voit la mer  Briller sous le soleil  Les caps aux feuillages sombres des pins et des oliviers  Et plus près les villas aux toits rouges  Aux toits rouges où fument les cheminées  Car c'est l'heure du repas  Tout est ensoleillé  Et sur la nappe glacée  La bonne affairée  Dépose un plat fumant  Le repas n'est pas une action vile  Et tous les hommes devraient avoir du pain  La mère et les deux fils mangent et parlent  Et des chants de gaîté accompagnent le repas  Les bruits joyeux des fourchettes et des assiettes  Et le son clair du cristal des verres  Par la fenêtre ouverte viennent les chants des oiseaux  Dans les citronniers  Et de la cuisine arrive  La chanson vive du beurre sur le feu  Un rayon traverse un verre presque plein de vin mélangé d'eau  Oh ! le beau rubis que font du vin rouge et du soleil  Quand la faim est calmée  Les fruits gais et parfumés  Terminent le repas  Tous se lèvent joyeux et adorent la vie  Sans dégoût de ce qui est matériel  Songeant que les repas sont beaux sont sacrés Qui font vivre les hommes                기욤 아폴리네르              현대시의 시발자로 불리는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1918)의 일생은 그의 경쾌하고 화려한 인상과는 달리 슬프고 너무 짧은 일생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 태생인데 아직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은 아버지와 폴란드에서 이주해온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향락과 도박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따라 남프랑스 지방의 칸, 니스 등지를 옮겨다니며 거기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19세 때에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올라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많은 독서를 했고 이 때 폭넓은 교양을 쌓았다. 파리의 생활은 어려워 은행의 말단 행원의 일을 해오다가 한때는 어떤 부유한 독일 가정의 가정 교사로 초빙되어 독일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이 동안에 거기에 가정부로 와 있던 영국 소녀 애니라는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나 얼마 안 되어 실연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 때의 착잡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 유명한 '사랑 못받는 남자의 노래'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신문 기사를 쓰거나 잡지 등에 주로 에로틱한 글을 기고하여 생활을 하면서 앙드레 살몽, 막스 자콥 등 문인들과 문예지를 펴내기도 하고 화가 브라크, 피카소, 블라맹크 등 소위 당시 화단의 전위파들과 친교를 맺어 예술 운동을 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전위파 예술 운동에는 언제나 선두에 서서 활약했는데 입체주의, 미래파, 흑인 예술, 환상파, 그리고 초현실주의 등 새로운 유파나 이즘이 나올 때마다 그는 선구자이며 또 그 운동의 강력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초현실주의라는 낱말은 그의 창작이다. 1913년 그가 33세 때 그의 첫 시집 이 출판되어 성공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한 무겁고 음울하고 불안한 유럽 사회에 그의 새롭고 신기하고 경쾌하고 애수 섞인 유머는 인기가 있었다. 소위 새 정신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비록 외국 국적을 가졌으나 자원하여 출전했다. "나는 모든 것을 프랑스에 빚지고 있다. 프랑스를 위해 싸우는 것은 나의 최소의 봉사다"라고 했다. 1916년 그는 전장에서 포탄의 파편으로 머리에 부상을 입어 두 번이나 뇌 수술을 받았고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1918년 '아름다운 빨간 머리'로 유명한 젊은 부인의 팔에 안겨 39세를 일기로 죽었다. 그는 두 개의 시집을 남겼는데 하나는 이고, 다른 하나는 죽기 전에 끝낸 이다. 칼리그람이란 낱말도 그가 지어낸 새로운 단어다. 에는 그가 두 번에 걸쳐 겪은 실연이 서정적이며 회고적인 엘레지와 그가 본 세상에 대한 스냅 사진에다 그의 독특한 꿈과 호나상과 무의식을 병치 혹은 뒤섞은 현대적인 시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는 그의 시에서 일체의 구둣점을 빼버려 시구의 리듬을 완전히 유동화시켰다. 이는 상드라르의 시를 읽고 받은 충격으로 그는 시집 의 최종 교정시에 자기 시에서 모든 구둣점을 없앴다는 것이다. 상드라르가 무의식적으로 부분적으로 한 일을 아폴리네르는 의식적으로전적으로 한 것이다. 이후 많은 현대 시인들이 구둣점 없는 시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이며 마지막 시집인 에서는 그가 시집 출판 이후 추진해온 시에 있어서의 새로운 혁신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카페의 소음 속에서 들리는 대화를 주워모은 소위 대화시라든가 추상파 화가의 수법을 시에 적용시킨 추상시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는 이 시집에서 시에다 형상적인 요소를 합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시를 구성하는 활자나 활자로 구성되는 시구의 배치로 어떤 현상을 나타내어 무언 중에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자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와 같이 시행을 같은 모양으로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그림을 그려서 독자의 시각에 호소하는 수법이다. 심장은 하트 모양, 시가는 여송영 담배 모양으로, 분수는 물이 올라가 버드나무 같이 퍼져 떨어지는 모양으로 활자를 배열했다. 시의 음과 그림을 함께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그의 생존시에는 사람들을 놀라게 혹은 즐겁게 할 뿐이었으나 그의 사후 차츰 세월이 감에 따라 그가 시에서 시도한 새로운 정신과 형식의 추구는 20세기의 시가 갈 길에 대해 큰 시사와 문제를 남겨주었다. 지금에는 그긔 시는 고전이 되어 프랑스 중학생들이 암송하고 소르본 대학에서 강의되는 전통 문학이 되었다. [출처]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작성자 대석[출처] 새로운 정신을 추구하라 - 기욤 아폴리네르의 |작성자 행운메이커
417    한국 유명 동시모음 댓글:  조회:4786  추천:0  2016-08-04
한국 유명 동시인들 동시모음 및 동시조 모음                                   (클릭해보기)   작가명  작품명 작가명  작품명 강소천  닭 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    비누방울 권오삼  그네 〃    순이 무덤 권오순  구슬비 강수성  물 권태응  감자꽃 강영희  산골짜기의 물 김구연  꽃씨 한 개 강정안  샘물 김녹촌  꽃사슴 강준구  시계 학교 김삼진  오월의 바람 강청삼  군밤 김상옥  봉선화 공재동  별 김선현  가을이면 권명희  뜨개질 〃    외할머니집 김소운  미끄럼틀 김종상  서로가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    어머니 김영일  버들피리 김진태  달밤 김완기  시를 쓸 때면 〃    온실 김요섭  관찰 일기 남진원  어머니 김원기  아기와 바람 노원호  바다를 담은 일기장 김재원  뿌리 목일신  누가 누가 잠자나 김정일  콩 두 알 문삼석  그냥 김종상  미술 시간 〃    밤비 〃    산 위에서 보면 〃    산골물 민현숙  나무와 열매 박선미  지금은 공사 중 박경용  귤 한 개 박성룡  풀잎2 〃    코스모스 박 송  아기염소 박경종  노마 박영숙  휘파람 소년 〃    초록 바다 박용열  노을 박남수  꿈나라 박종현  손자들의 숨바꼭질 박두순  들꽃 박홍근  나뭇잎배 〃    새들을 위해 박화목  과수원 길 박목월  물새알 산새알 방정환  귀뚜라미 소리 〃    찻숟갈 서덕출  봄 편지 서재환  새 달력 신현득  경주 서정희  새장 〃    문구멍 손광세  잠실벌의 태극기 〃    엄마라는 나무 〃    토요일이 되면 〃    엄마와 나 손동연  여름 개학 심인섭  들새 손복원  유월의 노래 어효선  과꽃 손원상  아지랑이 〃    봄바람이 송명호  꽃과 병정 〃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신영승  지게꾼과 나비 엄기원  좋은 이름 신창호  목숨 오경웅  동물원에 갔다와서 오규원  나무가 있는 풍경 윤석중  먼 길 〃    여름에는 저녁을 〃    앞으로 오순택  새의 악기 윤수천  할머니는 바늘구멍으로 유경환  아이와 우체통 윤이현  가을 하늘  유희윤  사다리 이무일  참말 윤극영  반달 이문희  눈 오는 날 윤동주  산울림 이봉직  웃는 기와 윤두혁  낙하산 이봉춘  하늘 윤복진  씨 하나 묻고 이상교  나비 윤석중  꽃봉오리 이상룡  일기장 이상현  수레 이정석  어린이 이서인  한약방 할아버지 이종구  시냇물 이연승  해를 파는 가게 이종기  집 보는 아이의 노래 이오덕  꽃밭과 순이 이주홍  해같이 달같이만 〃    코스모스 이준관  별 하나 이원수  강물 이준섭  강강수월래 〃    고향의 봄 이진영  햇빛 박물관 〃    다릿목 이창건  봄언덕 나비 〃    밤중에 이해인  저녁노을 이은상  봄 이흥우  엄만 언제나 장만영  물방울 정완영  분이네 살구나무 장수철  마지막날 밤 정용원  이렇게 살아가래요 〃    봄비 정운모  풍선장수 아저씨 장용철  문을 바르며 정중수  하늘 전병호  과일 장수 정춘자  조각보 전원범  팬지꽃 정해상  봄하늘은 내꺼다 정갑숙  자판기 조동화  첨성대 정두리  엄마가 아플 때 조영미  산길 정석영  절간 조유로  노오란 한들인 것을 정완영  복사꽃 조지훈  달밤 주요한  샘물이 혼자서 하청호  풀씨 이야기 천정철  나뭇잎 한명순  할머니의 병실 최계락  꼬까신 한인현  강물 〃    꽃씨 〃    섬집 아기 〃    달력 한정동  따오기 최순애  오빠 생각 허동인  보름달이 나보고 최운걸  흙 〃    산새알 최장길  징 현이숙  인사 최춘해  시계가 셈을 세면 황베드로  노을 하청호  겨울나무 황원영  구름           2   지은이  작품  강소천  눈 내리는 밤 〃  호박꽃 초롱  강윤제  진땀  강현호  사과밭에서  공재동  들에서  곽노엽  나팔꽃  곽종분  물레방아  곽홍란  어느 화가의 정원  권기환  아이들이 차 올린 아침 해 〃  우리 나라 한 바퀴  권오순  오얏 열매  권오훈  집오리  권정생  달팽이  김구연  고추씨의 여행  김규식  교회  김녹촌  연  김동극  땅 뺏기  김동섭  미루나무  김몽선  목련꽃  김봉석  별꿈을 꾼 밤에는 김사림  꽃비  〃  잎을 모아서  김삼진  편지  김상문  가랑이 사이로 본 경치  김선영  보랏빛 눈  김선희  실비  김성규  참깨  김성도  달밤  김소운  가뭄  김숙분  아버지   김신철   까치집   김영일  노을 〃  산딸기  김완성  온도계  김용섭  산   김원룡  내 고향  김일로  어머니  김일환  옹달샘  김재수  가로수 〃  바보 용칠이   김재수  풀꽃  김재용  고추  김  정  배꼽친구  김정일  해를 그리는 아이  김종두  산골물 노래  김종목  감홍시  김종상  산에서  김종상  열차  김종석  아카시아꽃  김종영  가을  김종완  봄 햇살  김지연  아빠와 함께  김지영  그늘  김태하  봄비  김한룡  봄 오는 길  김해성  상훈이와 팽이   김행수  좋겠어요, 소년은  김형경  개나리  나해숙  오리가 되고 싶다  남진원  휴지통   노여심  순이가 웃는 것은   문삼석   밤차 〃  백두산 가는 길  민홍우  아지랑이  박경선  말  박경용  빈 가지에  박근칠  옹기 가게  박두순  나비  박목월  단추 〃  여우비  박병엽  아기 눈  박성근  수평선 박 송  학교 마당엔  박영규  종소리  박유석  배꽃  박인술  여기서 삽시다  박  일  백두산에 올라서서  박정식  허수아비  박종해  유리창을 닦으며  박지현  채소장수 아줌마    박행신   풀 한 포기가  박화목  초롱불  방우조  아버지의 구두  방정환  가을밤  배소현  나뭇잎 일기장  서영아  하늘  서오근  꽃잔디  서정봉  이름 모를 새   서향숙   시골 빈 집에  서효석  해바라기  석용원  생명을 불어넣어 주셔요  선  용  메주 쑤는 날  손동연  아가 곁에서  손명희  메아리  송년식  오두막집  신언련  연  신천희  회오리바람   신현득   난롯가 〃  바다는 한 숟갈씩   신현득  통일이 되는 날의 교실  신형건  낙서  심우천  우시장  심후섭  비 오는 날  안수휘  돌탑은  안영훈  모기향  양경한  산  양재홍  제비꽃  양회성  살구꽃 피는 마을  어효선  동무야 오월을 〃  신기료 장수 〃  하얀 손수건  엄기원  개구리  엄성기  달맞이  여영택  군인 아저씨 〃  썰렁 학교  여운교  보리밭  오두섭  난 모른다  옥미조  숨바꼭질  위영남  옥수수나무   윤규일  달력  윤동재  저녁놀  윤동주  굴뚝  윤미순  아기 사슴  윤부현  달걀  윤석산  아가의 꿈  윤석중  연꽃  윤운강  바다로 가는 숲속  윤이현  가을바람  윤일광  씨앗  이국재  나의 생각  이대영  매미  이동식  서울로 간 철이  이동운  고니  이명철  타작 마당  이문희  화분  이미애  큰 나무 아래 작은 풀잎  이민영  낙엽 편지  이범노  산골 이발소  이복자  시골의 하루   이상노  기러기  이상문  그래도 하늘은 있다  이상윤  아이에게  이상현  어머니 그리고 빛  이석장  목련  이선영  연못가의 꽃들은  이성관  호박덩굴  이성자  너도 알 거야  이소영  할머니  이연승  여름 햇살  이외희  토함산 해돋이  이용순  키재기  이응창  고추잠자리  이정석  할머니  이종택  새 고무신  이준관  새와 나무  이지산  갈대밭에는  이진호  아침해  이창규  봄에 부는 바람  이천규  꽃가게에서   이  탄  바람 속에서 〃  아버지의 안경  이태선  꽃씨 〃  시냇물   이흥규   수박  이흥종  아기 향나무  장만영  소쩍새  장수철  보슬비  장승련  분꽃  전문수  빈 운동장  전영관  소나기  전원범  비누방울   전이곤  시골 장날  전정남  강  정동현  화장실 청소  정완영  새 자전거  정원석  말   정진채   바닷가에서  정하나  알 수 없어요 〃  봄비 내리는 소리    정형택  고사리  조규영  차돌  조명제  어른이 되면  조무근  지구본  조영미  하늘  조재성  그리움  조평규  바위섬 〃  아버지의 손  주성호  숲속에서  진을주  가로수  진홍원  하늘  최계락  장다리 꽃밭  최동일  매미  최만조  초승달  최미숙  아빠 마중  최병엽  송편  최병홍  석류  최시병  갈대  최재환  꿈속에서 들은 자장가  최정심  비 개인 날 구름이    최  향  머리핀  최향숙  번데기  한정동  고향 생각  허  일  뽕밭에서  허지숙  해바라기  허호석  산새  홍선주  달팽이  홍윤기  미루나무 친구들  홍은순  시골집  황팔수  선생님   박경용 동시조 번호 작품명   1    5 : 3 2  갓길 3  개개비 4  갯마을의 봄 5  겨울잠 6  고드름 7  고모네 별 8  골문 여는 공이거라 9  꽃빛 봄빛 10  나이테 11  낙서 12  남이사 13  낯선 까닭(1) 14  낯선 까닭(2) 15  달여울   16  대보름 무렵 17  동백꽃 18  등의자 19  라이락 그늘에서 20  마른 풀내 21  마음에 눈이 생기면 22  마중 23  매미 24  모래톱 25  목울대 26  무늬(4) 27  무늬(6) 28  미워 29  반딧불   30    발자국(1)   31  발자국(2) 32  봄뜨락 33  부끄러움 34  부러움 35  뻐꾸기 36  산열매 37  살붙이 38  삼짇날 무렵 39  새김질 40  석류꽃 41  세 꽃철의 풍경 42  숨통 43  숲 44  시다운 것 45  시를 낳던 밤   46  시오리 47  심심한 아이 48  씨름판 49  아름다움 50  아빠의 바다 51  약속(2) 52  약속(3) 53  어떤 푸념 54  열린 시간   55    오월 아침 56  이름(1) 57  이름(2) 58  입속말 59  자란 눈 60  잘났어   61  장마 뒤끝 62  장마철 한때 63  조각보 64  종다리 아침 65  좋은날 66  질병 67  징검다리 68  창 69  철새 오던 날 70  컴퓨터 있는 방 71  큰눈 뒤끝 72  파도(3) 73  파도(7)   74    파도(11) 75  파도(14)   76  푸근함 77  하늘 길 78  할아버지의 더위 79  함박눈 80  해당화 81  해돋이와 햇콩싹 82  혼잣말 83   휘파람     정완영 동시조 번호 작품명   1    3월 2  갈매기 3  감꽃 4  감나무 속잎 피는 날 5  개구리 우는 마을 6  개구리 울음소리 7  겨울 갯마을 8  고추잠자리 9  고향 별밭 10  고향 차표 11  귀뚜리 울음소리 12  꽃가지를 흔들 듯이 13  꽃장수 아줌마 14  나무는 15  눈 내리는 밤(1)   16  눈 내리는 밤(2)   17    달 18  달밤 19  대추 20  목련꽃 필 무렵 21  미리 온 봄 22  바다 앞에서 23  보신각 종소리 24  복사꽃 25  봄 26  봄 생각 27  봄 오는 소리 28  분이네 살구나무 29  산골 학교 30  새 자전거    31  엄마 목소리 32  연 33  옛날옛날 옛적부터   34    옛집 35  외갓집 봄 36  우리 할아버지는 37  울 엄마 빨래 38  은행잎 철새 39  이웃사촌 40  장마 개었다 41  젖냄새 살냄새 42  제주도 감귤밭도 43  종달이가 울어싸면 44  참새길 45  참외    46  창포꽃 있는 못물 47  초봄 48  할배구름 손주구름 49  허수아비   서재환 동시조 번호 작품명   1    간호원 2  개학날 3  걸어다니는 신호등 4  귀여운 우리 자동차 5  꾀병 6  낙타 7  눈 오는 날 8  도라지 9  메아리 10  목련 11  바위와 풀꽃 12  비 맞는 아이 13  뻥튀기 할아버지 14  사전 15  산 위에 올라   16  상처 입은 나무 17  소풍 전날 밤 18  신호등 19  아빠와 봉고차 20  알밤 삼형제 21  열쇠와 자물쇠 22  우리 나라 지도 23  우리 할머니 24  우리 할아버지 25  주말 농장에서 26  천지   27    초승달 28  할아버지의 바둑   신현배 동시조 번호 작품명   1    걸음마 2  고추 말리는 날 3  구급차 4  노래방 5  눈 내리는 밤 6  대추나무 7  동네 이발소 8  동치미 9  메주 10  목련 11  바다 낚시 12  박물관 13  범종2 14  보신각 종소리 15  복조리   16  봄산(1) 17  봄산(2) 18  빈 집 19  뻥튀기 20  사진 찍기(1) 21  사진 찍기(2) 22  산성(1) 23  산성(2) 24  소나기 25  수양버들 26  신문배달원 27  여름 한낮 28  완도 배 29  우산 30  은행잎   31  장끼 32  전화기   33    종소리 34  질경이 35  탑 36  태풍 37  파도 38  풍경 소리 39  피아노 40  폭포 41  홧김에 42  회전문     진복희 동시조 번호 작품명   1    그루터기 2  낙서 3  달개비꽃 4  달력 5  들길 산길 6  뚝배기 7  라일락 8  만약에 9  먹구름 낀 날 10  몸살 11  물놀이 12  방울토마토 13  복사꽃 마을 14  봄비 15  빨래   16  산수유 17  쑥국 18  어느 날 19  어느 봄날 20  엄마손 21  엄지손가락 1 22  엄지손가락 3 23  외등 24  이삿날 25  장날 26  좌우명 27  채송화 28  초가을 29  한 울타리 30  할머니 31  함박눈       다른 분 동시조   지은이  작품 경 철  고마움  남과 북  김몽선  김치  시골에는  운동회  헤어지는 날 김상옥  눈  봉선화 김용희  꼽추 누나  목욕 일기  불꽃놀이  수도꼭지  시계는  싸락눈  입김     김용희  잔디  초승달  하루  할머니와 산나물 김창현  다람쥐  새싹 서 벌  그늘 가족 이야기  둑길에서  바람  풀 한잎 생각 한잎 이병기  가을  난초4  급행차  별  비    이상룡   눈 내리는 밤  봄  아기  일기장 이은상  봄  분꽃 이호우  개화  산길에서  살구꽃 핀 마을 전병호  달맞이꽃  도라산역  돌단풍꽃  바다새  산마을의 봄  옛 기와집    전병호  할머니  휴전선 견학  휴전선 기러기  휴전선 눈 정재익  눈꽃송이  다람쥐  목련꽃  벚꽃길  별들은  산나리꽃  우리 아빠  이슬  줄넘기 조동화  매운 달 민들레   조동화  바람은  시조 짓기 조두현  간밤에 무슨 일이  경운기  고추  도둑고양이  동네 약수터  떡볶이  봄 잔디  윈도 브러시  주말 농장  지하철 갈아타는 곳  폭포  할머니 병실에 허 일  개나리      허 일  갯벌  까치네 집  꽃밭 이슬  꾸러기 일기  다도해에서  메아리가 떠난 마을  밤 하늘  뽕밭에서  산골물  산울림  산을 오르며  세 발 자전거  쇠똥구리  아침  오리  잠자리     [출처] 한국 유명 동시인들 동시모음 및 동시조 모음|작성자 sasichun
416    윤동주 <서시> 번역시선 댓글:  조회:2372  추천:0  2016-08-02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Prelude Let me have no shame under the heaven till I die. Even winds among the foliage pained my heart. With a heart that sings of the stars, I'll love all dying things. and I must fare the path that's been allotted to me. Tonight also the winds sweep over the stars.                                                                                    序诗 至故一天,仰眄天空 一无羞耻 摇动枯叶的爽籁 我深心疚 以供星心 疼爱断气的一切 并走去吾特定的一路 今晚亦然,爽籁捎掠星光 Пролог До самого дня своей смерти живу, без стыда небеса наблюдая, хоть шелест ветра в листве болью в душе отражался. Сердцем, поющие слышащим звезды, любить буду то, что всё постепенно угаснет, и уйду тем путем, что мне предначертан. А ночью сегодня опять ветер меж звезд пронесётся. 序詩 死ぬ日まで天を仰ぎ 一点の恥もないことを 葉群れにそよぐ風にも 私は心を痛めた. 星をうたう心で すべての死んでいくものを愛さねば そして私に与えられた道を 步んでいかねば. 今宵も星が風にこすられる. ====================================
415    詩人에게 / 리상화 댓글:  조회:1993  추천:0  2016-07-04
시인에게  - 이상화  한편의 시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 하나를 낳아야 할 줄 깨칠 그 때라야  시인아, 너의 존재가  비로소 우주에게 없지 못할 너로 알려질 것이다.  가뭄 든 논에는 청개구리의 울음이 있어야 하듯.  새 세계란 속에서도  마음과 몸이 갈려 사는 줄 풍류만 나와 보아라.  시인아, 너의 목숨은  진저리나는 절름발이 노릇을 아직도 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일식된 해가 돋으면 뭣하며 진들 어떠랴.  시인아, 너의 영광은  미친 개 꼬리도 밟는 어린애의 짬 없는 그 마음이 되어  밤이라도 낮이라도  새 세계를 낳으려 손댄 자국이 시가 될 때에 있다.  촛불로 날아들어 죽어도 아름다운 나비를 보아라.     
414    중국 唐代 詩人 - 杜牧(두목) 댓글:  조회:4004  추천:0  2016-07-02
          清明(청명) - 杜牧(두목)     淸明時節雨紛紛(청명시절우분분) : 청명절 즈음에 비가 어즈러히 내려 淸 : 맑을 청 明 : 밝을 명 時 : 때 시 節 : 마디 절 雨 : 비 우 紛 : 어지러울 분 紛 : 어지러울 분     路上行人欲斷魂(노상행인욕단혼) : 길 걷는 나그네의 넋을 잃게 하네, 路 : 길 로 上 : 위 상 行 : 다닐 행 人 : 사람 인 欲 : 바랄 욕 斷 : 끊을 단 魂 : 넋 혼     借問酒家何處有(차문주가하처유) : 주막이 어디냐 물었더니, 借 : 빌릴 차 問 : 물을 문 酒 : 술 주 家 : 집 가 何 : 어찌 하 處 : 곳 처 有 : 있을 유     牧童遙指杏花村(목동요지행화촌) : 목동은 멀리 행화촌을 가리키네. 牧 : 칠 목 童 : 아이 동 遙 : 멀 요 指 : 손가락 지 杏 : 살구나무 행 花 ; 꽃 화 村 : 마을 촌     杏花村(행화촌) : 살구꽃 핀 마을, 주막(酒幕)이 있는 마을.      이 시에서 나오는 행화촌(杏花村)이  바로 중국 명주의 하나인 분주(汾酒)와 죽엽청주(竹葉靑酒)를 만드는 산서(山西)성 분양(汾陽)시 행화촌이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과거에 분주를 만들때 살구씨가 필요해서 당(唐)조에 이르러 행화촌 인근지역에 많은 살구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때문에 당조대부터 행화촌으로 불리운 지명은 술과 연관된다고 할수 있다.          행화촌의 주기(酒旗)와 목동,          행화촌은 술집을 의미한다. 이것은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청명(淸明)〉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지난날 길가의 막걸리 술집 기둥에는 위의 두목의 시구절을 써 붙였다. 그래서 따로 주기(酒旗)가 꽂혀 있지 않아도 선비는 금세 술집임을 알아차리고 발걸음을 그 집 안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술집 앞에는 으레 한두그루의 살구나무를 심었다. 이 경우 그 살구나무는 그 술집의 훌륭한 표지 구실을 하였다.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조호익(曺好益)의 문집 [지산집(芝山集)]에 실려 있는 〈살구꽃(杏花)〉이란 제목의 시에 "오직 문앞에 붉은 살구나무가 있으니(惟有門前緋杏樹) 길가는 나그네가 응당 술집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네 (行人應擬酒家看)" 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杜牧(두목) : 경조(京兆) 만년 (萬年 : 지금의 산시 성[陝西省] 시안[西安])(803 ~ 852)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   자는 목지(牧之).  828년 진사(進士)에 급제했다. 후에 황저우[黃州]·츠저우[池州]·무저우[睦州]·후저우[湖州] 등에서 자사(剌史)를 지냈고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 시(詩)에서 이상은(李商隱)과 나란히 이름을 날려 '소이두'(小李杜 : 작은 李白·杜甫)라고 불렸다. 고시(古詩)는 두보·한유(韓愈)의 영향을 받아 사회·정치에 관한 내용이 많다. 장편시 〈감회시 感懷詩〉·〈군재독작 郡齋獨酌〉 등은 필력이 웅장하고 장법(章法)이 엄정하며 감개가 깊다. 근체시(近體詩)는 서정적이며 풍경을 읊은 것이 많은데 격조가 청신(淸新)하고 감정이 완곡하고도 간명하다.       청명절(淸明节)이란 ?    청명절(淸明节)은 중국 주나라때에 시작되여 이미 2000여년의 역사를 갖고있다. 이십사절기의 하나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의 사이에 들며, 양력으로 4월 5일 무렵이다. 물론 음력의 절기이기는 하나 매년 그 날자는 일정하지 않다. 이십사절기는 중국에서부터 시작 된 것으로 중국은 청명절의 하루 전이 한식, 한국은 다음날이 한식(寒食)이다. ‘하늘이 차차 맑아진다’는 의미의 청명절(淸明節)은 다섯 번째 절기로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고, 찬 음식을 의미하는 한식(寒食)은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중의 하나다. 중국의 청명절 풍습은 보통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봄꽃놀이나 나들이를 떠난다는 점에서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성묘뿐 아니라, 답청, 그네뛰기, 버드나무 가지 꽂기, 공놀이 등 보다 다양한 풍습들이 전해진다.       한식(寒食)의 유래 - 개자추를 추모하다.  춘추전국시대에 진문공(晋文公)은 춘추오패 중의 한 사람으로 천하를 호령하였지만,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 공자의 신분 희중이(姬重耳)로 있을 당시는 그리 평범한 삶이 아니었다. 왕위 계승권을 두고 배 다른 형제들과의 암투에 휘말리며 아버지 헌공에게 추방을 당하고 19년을 이 나라 저 나라로 망명 생활을 하며 갖은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그의 밑에는 목숨을 걸고 보필한 충신들이 여럿 있었고, 개자추(介子推)역시 그 여럿 중의 하나였다.    어느 날 공자 희중이가 배가 고파 헛것이 보이며 아사지경에 놓여 있을 때  개자추는 어디서 생겼는지 고깃국 한 그릇을 중이에게 바쳤고, 그 고깃국의 출처를 알 길도 없이 맛나게 먹은 중이가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그 고깃국은 개자추의 허벅지살 이었던 것이다. “ 넓적다리를 베어 임금에게 먹인다는 뜻으로 할고담군(割股啖君)이라는 고사 성어가 있다. ”개자추는“효자는 제 몸을 죽여서 까지 부모를 섬기고, 충신은 제 몸을 죽여서 까지 임금을 섬기는 것”이라며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고깃국이라며 끓여 바칠 정도의 충정을 보였던 것이다. 할고담군(割股啖君)이라는 성어는 이때 생겨난 것이다.      그 후 공자 중이가 왕위에 오른 후 논공행상을 벌일 때, 일등공훈은 당연히 개자추에게 돌아가야 마땅했었다. 그런데 논공행상이 모두 끝났을 때 개자추의 이름은 없었던 것이다. 논공행상이라는 잔치만 흥겨웠을 뿐이지 진문공과 신하들의 눈에는 개자추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기실 개자추는 처음부터 논공행상엔 참여 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진문공과 그의 충신들은 진문공이 왕으로 추대되어 오르는 귀국길의 배 안에서 논공행상을 벌이는 과정을 개자추는 지켜보며, 진문공과 한 때는 동지였던 신하들 모두의 속물근성에 침을 뱉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논공행상의 자리에 얼굴을 내밀지도 않았거니와 나중에 정신이 돌아 온 진문공의 부름을 피하여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이들의 처지를 가련하게 생각한 개자추의 시종은 궁궐 대문에 시를 적었고, 이를 본 진문공이 개자추가 생각나 뒤늦게 찾았지만, 이미 개자추는 금상(錦上)에 있는 산속에 들어간 이후였다. 진문공은 대신 주변 땅을 그에게 봉토로 주고 산의 이름을 개산(介山)으로 칭했다. 산속에서 은거하는 개자추를 찾기 위해 문공은 산에 불을 놓았고, 건조한 날씨에 삽시간에 온 산을 다 태워 버렸다. 하지만, 개자추와 그의 모친은 나오지 않고 불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깨달은 진문공은 그를 기리기 위해 이날만은 불을 피우지 못하게 했다.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한식(寒食)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한식(寒食)은 불에 타 죽은 개자추의 혼령을 위로하는 날로, 이 날은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후일에  탐천지공(貪天之功) 즉 "하늘의 공을 탐내어 자신의 공인 체 한다"는 고사 성어가 생겨나기도 하였다........(퍼옴)               제    목  : 석별(惜別)-두목(杜牧) 석별(惜別)-두목(杜牧) 아쉬운 이별-두목(杜牧) 多情卻似總無情(다정각사총무정) : 다정함이 도리어 무정함과 같아 惟覺樽前笑不成(유각준전소불성) : 술항아리 앞에서도 웃음이 안 나옴을 알 뿐 蠟燭有心還惜別(납촉유심환석별) : 촟불이 유심하여 이별을 아끼는 듯 替入垂淚到天明(체입수루도천명) : 다 탄 초 바꾸어 놓아 흐르는 촛물에 어느듯 새벽                                제    목  : 산행(山行)-두목(杜牧) 산행(山行)-두목(杜牧)  산을 오르며-두목(杜牧)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 멀리 늦가을 산을 오르노라니 돌길이 비탈져있고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보인다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 수레를 멈추고 앉아 늦은 단풍나무 숲을 즐기노라니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 서리 맞은 단풍나무 잎이 이월에 피는 꽃보다 붉어라                                제    목  : 영두목지(詠杜牧之)-두목(杜牧) 영두목지(詠杜牧之)-두목(杜牧) 두목지를 읊다-두목(杜牧) 飄飄千古一詩雄(표표천고일시웅) : 표표히 천고에 시웅 한사람 있으니 往事悲歌感慨中(왕사비가감개중) : 지나간 일 슬피 노래하니 감개속에 있도다. 夢覺楊州猶未晩(몽각양주유미만) : 꿈에서 깨어나도 양주의 일은 늦지 않아 襟懷朗月照靑空(금회낭월조청공) : 가슴에 품은 밝은 달이 푸른 하늘 비추는구나                               제    목  : 제안주부운사누기호주장낭중 (題安州浮雲寺樓寄湖州張郎中)-두목(杜牧) 제안주부운사누기호주장낭중(題安州浮雲寺樓寄湖州張郎中)-두목(杜牧) 안주 부운사 누각에 시를 짓고 호주 장낭중에게 보내다-두목(杜牧) 去夏疎雨餘(거하소우여) : 지난여름 비 갠 뒤에 同倚朱欄語(동의주난어) : 함께 난간에 기대어 이야기했었지. 當時樓下水(당시루하수) : 당시에 누대 아리를 흐르던 물 今日到何處(금일도하처) : 지금은 어느 곳에 이르렀는가. 恨如春草多(한여춘초다) : 나의 한은 봄풀처럼 우거지고 事與孤鴻去(사여고홍거) : 일은 기러기처럼 떠나버렸다. 楚岸柳何窮(초안류하궁) : 언덕 위 버드나무 어찌 없어지랴 別愁紛苦絮(별수분고서) : 이별의 슬픔 버들개지처럼 어지럽고 괴로워라.                               제    목  : 제오강정(題烏江亭)-두목 제오강정(題烏江亭)-두목 오강의 정자에 시를 지어 붙임-두목(杜牧)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 승패는 병가도 일을 기약하기 어려워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 부끄러움 알고 치욕을 참는 것이 사나이라네 江東子弟多俊才(강동자제다준재) : 강동의 젊은이 호걸이 많아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 다시 일어나는 일도 알 수 없는 일인 것을                               제    목  : 청명(淸明)-두목(杜牧) 청명(淸明)-두목(杜牧) 淸明時節雨紛紛(청명시절우분분) : 청명절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路上行人欲斷魂(노상행인욕단혼) : 길 가는 사람 마음이 끊어지는 듯하여라 借問酒家何處在(차문주가하처재) : 술집은 어느 곳에 있는가 물으니 牧童遙指杏花村(목동요지행화촌) : 목동은 아득히 살구꽃 핀 곳을 가리킨다                               제    목  : 강남춘(江南春)-두목(杜牧) 강남춘(江南春)-두목(杜牧) 千里鶯啼綠映紅(천리앵제녹영홍) : 천 리 먼 곳까지 꾀꼬리 울고, 푸른 잎은 붉은 꽃에 어른거리고 水村山郭酒旗風(수촌산곽주기풍) : 산 외곽 물가 고을엔 주막의 깃발 바람에 펄럭인다  南朝四百八十寺(남조사백팔십사) : 남조 시절 세워진 사백 팔십 개의 절 多少樓臺煙雨中(다소누대연우중) : 여러 누대가 안개비 속에 나타난다                             제    목  : 금곡원(金谷園)-두목(杜牧;803-853) 금곡원(金谷園)-두목(杜牧;803-853) 繁華事散逐香塵,(번화사산축향진), 번화했던 지난 일들 티끌 따라 흩어지고 流水無情草自春.(류수무정초자춘). 흐르는 물은 무정한데 풀은 저절로 봄이로다 日暮東風怨啼鳥,(일모동풍원제조), 저무는 저녁 불어오는 봄바람에 우는 새가 원망스러워 落花猶似墜樓人.(낙화유사추누인). 낙화가 오히려 누대에서 떨어져 죽은 녹주와 같아라                             제    목  : 증별이수지이(贈別二首之二)-두목(杜牧;803-853) 증별이수지이(贈別二首之二)-두목(杜牧;803-853) 이별하면서 드린다-두목(杜牧;803-853) 多情卻似總無情,(다정각사총무정), 다정을 모두 무정인양 하여도 唯覺樽前笑不成.(유각준전소부성). 이별의 술자리에선 웃지도 못 하는구나 蠟燭有心還惜別,(납촉유심환석별), 촛불이 오히려 마음 있어 이별 아쉬워 替人垂淚到天明.(체인수누도천명). 사람 대신 날 새도록 눈물 흘리네                               제    목  : 증별이수지일(贈別二首之一)-두목(杜牧;803-853) 증별이수지일(贈別二首之一)-두목(杜牧;803-853) 이별하면서 드린다-두목(杜牧;803-853) 娉娉嫋嫋十三餘,(빙빙뇨뇨십삼여), 아리땁고 가련한 열서너 살 아가씨 豆蔲梢頭二月初.(두구초두이월초). 이월 초순에 가지 뻗은 두구화구나 春風十里揚州路,(춘풍십리양주노), 양주길 십리에 봄바람 부는데 卷上珠簾總不如.(권상주렴총부여). 주렴을 걷고 둘러보아도 너만 못해라                               제    목  : 추석(秋夕)-두목(杜牧;803-853) 추석(秋夕)-두목(杜牧;803-853) 어느 가을 밤-두목(杜牧;803-853) 銀燭秋光冷畵屛,(은촉추광냉화병), 은촛대 가을빛이 그림 병풍에 차가운데  輕羅小扇搏流螢.(경나소선복류형). 가볍고 작은 부채로 흐르는 반딧불을 잡네 天階夜色涼如水,(천계야색량여수), 서울거리 밤의 달빛 물처럼 차가운데 坐看牽牛織女星.(좌간견우직녀성). 가만히 앉아 견우직녀성만 바라본다                               제    목  : 견회(遣懷)-두목(杜牧;803-853) 견회(遣懷)-두목(杜牧;803-853) 회포를 풀다-두목(杜牧;803-853) 落魄江湖載酒行,(낙백강호재주항), 뜻을 잃고 강호에 술 달고 다니는데 楚腰纖細掌中輕.(초요섬세장중경). 남방의 아가씨들 허리 가늘고 몸마저 가벼워라 十年一覺揚州夢,(십년일각양주몽), 십년만야 양주의 꿈에서 깨어보니 贏得靑樓薄倖名.(영득청누박행명). 남은 건 청루에 박덕한 이름만 얻었구나                               제    목  : 기양주한작판관(寄揚州韓綽判官)-두목(杜牧;803-853) 기양주한작판관(寄揚州韓綽判官)-두목(杜牧;803-853) 양주 땅 판관 한작에게 보낸다-두목(杜牧;803-853) 靑山隱隱水迢迢,(청산은은수초초), 청산은 흐릿하고 물길은 아득한데 秋盡江南草未凋.(추진강남초미조). 강남에 가을 다가도, 풀이 라짓 시들지 않았구나 二十四橋明月夜,(이십사교명월야), 이십사교 다리위 달 밝은 밤에 玉人何處敎吹簫?(옥인하처교취소)?그대는 어느 곳에서 피리를 가르치고 있나                             제    목  : 박진회(泊秦淮)-두목(杜牧;803-853) 박진회(泊秦淮)-두목(杜牧;803-853) 진회에 정박하며-두목(杜牧;803-853) 煙籠寒水月籠沙,(연농한수월농사), 안개는 차가운 물을 감싸고 달빛은 모래밭을 덮는데  夜泊秦淮近酒家.(야박진회근주가). 밤이 되어 진회에 배를 대니 주막촌이 가까워라  商女不知亡國恨,(상녀부지망국한), 장사치의 계집들은 망국의 한도 모르고 隔江猶唱後庭花.(격강유창후정화). 강 건너 쪽에서는 여전히 후정화 노래를 부르는구나                               제    목  : 적벽(赤壁)-두목(杜牧;803-853) 적벽(赤壁)-두목(杜牧;803-853) 적벽-두목(杜牧;803-853) 折戟沈沙鐵未銷,(절극심사철미소), 꺾어진 창 모래에 묻혀도 쇠는 아직 삭지 않아 自將磨洗認前朝.(자장마세인전조). 갈고 닦으니 전 왕조의 것임을 알겠다 東風不與周郎便,(동풍부여주낭변), 동풍이 주량 편을 들지 않았다면 銅雀春深鎖二喬.(동작춘심소이교). 봄 깊은 동작대에 두 미녀 교씨들 갇히었으리                               제    목  : 장부오흥등낙유원(將赴吳興登樂游原)-두목(杜牧;803-853) 장부오흥등낙유원(將赴吳興登樂游原)-두목(杜牧;803-853) 오흥에 부임함에 낙유원에 오르다-두목(杜牧;803-853) 淸時有味是無能,(청시유미시무능), 좋은 시대에 재미는 있으나 무능하여 閑愛孤雲靜愛僧.(한애고운정애승). 한가로이 구름과 스님을 좋아했네 欲把一麾江海去,(욕파일휘강해거), 태수가 되어 강해로 떠나려함에 樂游原上望昭陵.(낙유원상망소능). 낙유원에 올라 소릉을 바라본다                               제    목  : 여숙(旅宿)-두목(杜牧;803-853) 여숙(旅宿)-두목(杜牧;803-853) 여관에 투숙하며-두목(杜牧;803-853) 旅館無良伴,(려관무량반), 여관엔 좋은 친구 없어 凝情自悄然.(응정자초연). 생각에 잠겨 저절로 외로워라 寒燈思舊事,(한등사구사), 차가운 등잔 아래 지난 일 생각하는데 斷雁警愁眠.(단안경수면). 외로운 기러기 소리에 놀라 잠을 깬다 遠夢歸侵曉,(원몽귀침효), 먼 꿈에서 새벽에야 돌아오고 家書到隔年.(가서도격년). 집의 편지는 해를 넙긴다 滄江好煙月,(창강호연월), 푸른 강 안개속 달이 이렇게도 좋고 門繫釣魚船.(문계조어선). 문 앞에는 고기 잡는 배가 매여 있다         제    목  : 학(鶴)-두목(杜牧) 학(鶴)-두목(杜牧) 학-두목(杜牧) 淸音迎晩月(청음영만월) : 맑은 소리로 저녁 달 맞고 愁思立寒蒲(수사립한포) : 수심에 차가운 창포 밭에 서있다. 丹頂西施頰(단정서시협) : 붉은 정수리는 서시의 뺨이요 霜毛四晧鬚(상모사호수) : 흰 털은 상산사호 노인의 수염이어라. 碧雲行止躁(벽운행지조) : 하늘의 구름은 오감이 조급하나 白鷺性靈麤(백로성령추) : 백로는 영리하고 거친 성품이어라. 終日無羣伴(종일무군반) : 종일토록 짝하는 친구 하나 없이 溪邊弔影孤(계변조영고) : 개울가에서 그림자 외로움 슬퍼하노라.                             제    목  : 귀연(歸燕)-두목(杜牧) 귀연(歸燕)-두목(杜牧) 돌아가는 제비-두목(杜牧) 畵堂歌舞喧喧地(화당가무훤훤지) : 화려한 방, 노래와 춤으로 떠들썩한데 社去社來人不看(사거사래인불간) : 오고가는 제비를 사람들은 보지도 못했다. 長是江樓使君伴(장시강루사군반) : 길이 강가 누대에서 자사의 짝이 되려고 黃昏猶待倚闌干(황혼유대의란간) : 황혼이 되어도 난간에 기대여 기다리고 있다.                             제    목  : 화주절구(和州絶句)-두목(杜牧) 화주절구(和州絶句)-두목(杜牧) 화주절구-두목(杜牧) 江湖醉度十年春(강호취도십년춘) : 강호에서 취해 살아온 십년 봄 牛渚山邊六問津(우저산변육문진) : 우저산 가로 나루 찾은 지 여섯 번이라. 歷陽前事知何實(역양전사지하실) : 역양의 지난 일 어찌된 일인가 高位紛紛見陷人(고위분분견함인) : 고관들 분분히 사람들의 모함 받았나.                              제    목  : 과화청궁절구(過華淸宮絶句)-두목(杜牧) 과화청궁절구(過華淸宮絶句)-두목(杜牧) 화청궁을 지나며-두목(杜牧) 長安回望繡成堆(장안회망수성퇴) : 장안을 돌아보니 수놓은 듯 언덕이 있고 山頂千門次第開(산정천문차제개) : 산꼭대기의 수 많은 문을 하나하나 열린다. 一騎紅塵妃子笑(일기홍진비자소) : 한 필의 흙먼지에 양귀비가 웃음은 無人知是荔枝來(무인지시려지래) : 맛있는 여지를 가져온 것임을 아무도 모른다.                              제    목  : 기양주한작판관(寄楊州韓綽判官)-두목지(杜牧之) 기양주한작판관(寄楊州韓綽判官)-두목지(杜牧之) 양주의 판관 한직에게 부치다-두목지(杜牧之) 靑山隱隱水迢迢(청산은은수초초) : 청산은 아물아물, 강물은 아득한데 秋盡江南草木凋(추진강남초목조) : 가을 다한 강남 땅에 초목이 시든다. 二十四橋明月夜(이십사교명월야) : 스물네 개 다리마다 달이 밝은데 玉人何處敎吹簫(옥인하처교취소) : 옥인은 그 어디서 옥피리 불게 하는가.                             제    목  : 제안군후지(齊安郡後池)-두목지(杜牧之) 제안군후지(齊安郡後池)-두목지(杜牧之) 제한군 뒷 못-두목지(杜牧之) 菱透浮萍綠錦池(능투부평녹금지) : 마름 부평초 뚫고 나온 푸르고 잔잔한 못 夏鶯千囀弄薔薇(하앵천전롱장미) : 여름 꾀꼬리 수없이 울며 장미를 희롱한다. 盡日無人看微雨(진일무인간미우) : 종일토록 가랑비 보는 사람 아무도 없고 鴛鴦相對浴紅衣(원앙상대욕홍의) : 원앙이 마주보고 붉은 옷을 씻고 있어라.                             제    목  : 회오중풍수재(懷吳中馮秀才)-두목지(杜牧之) 회오중풍수재(懷吳中馮秀才)-두목지(杜牧之) 오나라 땅 풍수재를 생각하며-두목지(杜牧之) 長洲苑外草蕭蕭(장주원외초소소) : 장사원 밖은 풀만 소소한데 却筭遊程歲月遙(각산유정세월료) : 문득 돌아다닌 길 헤아려보니 아득하다. 惟有別時今不忘(유유별시금불망) : 오직 이별의 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하니 暮煙秋雨過楓橋(모연추우과풍교) : 저무는 연기, 가을비 속에 풍교를 지났단다.                             제    목  : 제성루(題城樓)-두목지(杜牧之) 제성루(題城樓)-두목지(杜牧之) 성의 누대에 제하다-두목지(杜牧之) 鳴軋江樓角一聲(명알강루각일성) : 강 누각 하 귀퉁이 울리는 소리 微陽瀲瀲落寒汀(미양렴렴락한정) : 희미한 햇빛 넘실넘실 차가운 물가에 인다. 不用憑欄苦回首(불용빙란고회수) : 난간에 기대어 머리 돌릴 필요 없나나 故鄕七十五長亭(고향칠십오장정) : 고향 땅은 여기서 칠십오 장정이 먼 곳이란다.                                제    목  : 송은자(送隱者)-두목지(杜牧之) 송은자(送隱者)-두목지(杜牧之) 은자를 전송하며-두목지(杜牧之) 無媒徑路草蕭蕭(무매경로초소소) : 안내인 하나 없는 길, 풀만 소소한데 自古雲林遠市朝(자고운림원시조) : 예부터 운림은 시정과 조정에서 멀었도다. 公道世間惟白髮(공도세간유백발) : 공평한 진리란 세상에 오직 백발뿐이니 貴人頭上不曾饒(귀인두상부증요) : 귀한 사람 머리에도 너그럽지 않았단다.                             제    목  : 추석(秋夕)-두목지(杜牧之) 추석(秋夕)-두목지(杜牧之) 가을 저녁에-두목지(杜牧之) 銀燭秋光冷畵屛(은촉추광냉화병) : 은촛대 같은 가을빛, 차가운 병풍 輕羅小扇撲流螢(경라소선박류형) : 가볍고 작은 비단 부채에 반딧불 날아든다. 天階夜色凉如水(천계야색량여수) : 궁궐 계단의 밤빛이 물처럼 차가운데 看臥牽牛織女星(간와견우직녀성) : 드러누워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노라.                             제    목  : 등낙유원(登樂遊原)-두목지(杜牧之) 등낙유원(登樂遊原)-두목지(杜牧之) 낙유원에 올라-두목지(杜牧之) 長江澹澹孤鳥沒(장강담담고조몰) : 장강은 잔잔하고 외로운 물새 내려앉는데  萬古銷沈向此中(만고소침향차중) : 인간의 오랜 흥망이 이 가운데 있었었구나. 看取漢家何以業(간취한가하이업) : 한나라 일을 살피건대, 어찌 일을 이루었나 五陵無樹起秋風(오릉무수기추풍) : 오릉에는 나무 없고 가을바람만 이는구나.                             제    목  : 한강(漢江)-두목지(杜牧之) 한강(漢江)-두목지(杜牧之) 한강-두목지(杜牧之) 溶溶漾漾白鶴飛(용용양양백학비) : 넘실넘실 출렁이는 물결에 흰 갈매기 날고 綠淨春深好染衣(녹정춘심호염의) : 푸르고 깨끗한 짙은 봄기운, 물들이기 좋아라.  南去北來人自老(남거북래인자로) : 남북으로 오가며 사람은 절로 늙어가나니 夕陽長送釣船歸(석양장송조선귀) : 저녁 해를 멀리 보내고 낚싯배가 돌아온다.                               제    목  : 귀가(歸家)-두목지(杜牧之) 귀가(歸家)-두목지(杜牧之) 집으로 돌아와-두목지(杜牧之) 稚子牽衣問(치자견의문) : 어린 자식 옷자락 잡고 묻기를 歸家何太遲(귀가하태지) : 어찌하여 이리도 늦어 집에 오셨나요. 共誰爭歲月(공수쟁세월) : 누구와 세월을 다투시어 籯得鬢如絲(영득빈여사) : 실처럼 흐트러진 귀밑머리 얻으셨나요.                             제    목  : 견회(遣懷)-두목(杜牧) 견회(遣懷)-두목(杜牧) 내 마음을 드러내며-두목(杜牧) 落魄江湖載酒行(낙백강호재주행) : 강호에 떠돌며 술을 싣고 가다가 楚腰纖細掌中輕(초요섬세장중경) : 미인의 가는 허리 내 품에 귀여워라 十年一覺揚州夢(십년일각양주몽) : 십년에 양주의 꿈 한 번 깨고보니 贏得青樓薄倖名(영득청루박행명) : 남겨진 건 청루에 천한 이름 뿐이로다                               제    목  : 한강(漢江)-두목(杜牧) 한강(漢江)-두목(杜牧) 한강-두목(杜牧) 溶溶揚揚白鷗飛(용용양양백구비) : 물결 출러이고 백구는 날아다니고 綠淨春深好染衣(녹정춘심호염의) : 푸른 물결 한봄 내옷을 좋게 물들인다 南去北來人自老(남거북래인자로) : 남북으로 오가니 사람은 절로 늙어 夕陽長送釣船歸(석양장송조선귀) : 석양은 돌아가는 낚싯배를 길이 전송한다                              제    목  : 기양주한작판관(寄揚州韓綽判官)-두목(杜牧) 기양주한작판관(寄揚州韓綽判官)-두목(杜牧) 양주한작판관에게-두목(杜牧) 靑山隱隱水迢迢(청산은은수초초) : 청산은 가물가물, 물은 아득하고 秋盡江南草未凋(추진강남초미조) : 늦가을강남 땅, 초목은 시들지 않았다 二十四橋明月夜(이십사교명월야) : 달 밝은 밤, 양주 이십사교 다리 玉人何處敎吹簫(옥인하처교취소) : 어느 곳 미인이 피리를 불게 하는가                              제    목  : 행원(杏園)-두목(杜牧) 행원(杏園)-두목(杜牧) 살구나무 동산-두목(杜牧) 夜來微雨洗芳塵(야내미우세방진) : 밤새 내린 보슬비에 흙먼지 씻겼는데 公子驊騮步貼勻(공자화류보첩균) : 도령들의 화려한 말들, 발걸음 잦다 莫怪杏園顦顇去(막괴행원초췌거) : 살구나무 동산에 꽃 시드는 것, 괴이 말라 滿城多少揷花人(만성다소삽화인) : 성에 가득, 꽃 꽂은 사람들 많기도 하여라                              제    목  : 제선주개원사(題宣州開元寺)-두목(杜牧) 제선주개원사(題宣州開元寺)-두목(杜牧) 선주 개원사에 제하다-두목(杜牧) 南朝謝脁樓(남조사조루) : 남조의 사조루 東吳最深處(동오최심처) : 동오의 가장 깊은 곳 亡國去如鴻(망국거여홍) : 망한 나라 떠남이 기러기 같아 遺寺藏烟塢(유사장연오) : 남겨진 절은 안개 낀 언덕에 잠겼다 樓飛九十尺(누비구십척) : 누대는 구심 척이나 날아오르고 廊環四百柱(낭환사백주) : 회랑의 둘레는 사백 개의 기둥 高高下下中(고고하하중) : 높고 낮고 중간 되는 것이 구별되고 風繞松桂樹(풍요송계수) : 바람은 소나무, 계수나무 둘러 분다 靑苔照朱閣(청태조주각) : 푸른 이끼는 붉은 누각을 비추고 白鳥兩相語(백조량상어) : 백조는 나란히 앉아 서로 지저귄다 溪聲入僧夢(계성입승몽) : 개곡의 물소리에 스님은 잠들어 꿈에 들고 月色暉粉堵(월색휘분도) : 달빛은 단장한 담장을 비추는구나 閱景無旦夕(열경무단석) : 경치를 봄에는 아침 저녁의 변화가 없고 憑欄有今古(빙난유금고) : 난간에 기대어 보니 고금의 변화가 있도다 留我酒一罇(유아주일준) : 머물러 술 한잔 기우리며 前山看春雨(전산간춘우) : 앞산에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노라                             제    목  : 증별(贈別)-두목(杜牧) 증별(贈別)-두목(杜牧) 이별하며-두목(杜牧) 多情却似總無情(다정각사총무정) : 다정은 도리어 무정함과 같아 唯覺樽前笑不成(유각준전소부성) : 술 앞에 두고서도 웃지도 못하누나 蠟燭有心還惜別(납촉유심환석별) : 초불도 마음 있어 이별이 아쉬워 替人垂淚到天明(체인수루도천명) : 사람을 대신 흘리는 눈물에 날이 샌다                             제    목  : 절국(折菊)-두목(杜牧 ) 절국(折菊)-두목(杜牧 ) 국화꽃 꺾어-두목(杜牧 ) 籬東菊徑深(리동국경심) : 울타리 동쪽, 국화 길 깊숙한데 折得自孤吟(절득자고음) : 몇 송이 꺾어서 외로이 시를 읊는다. 雨中衣半濕(우중의반습) : 빗속에 옷은 반이나 젖어있고 擁鼻自知心(옹비자지심) : 코에 안은 꽃으로 절로 마음 알겠다.                              제    목  : 과전가댁(過田家宅)-두목(杜牧) 과전가댁(過田家宅)-두목(杜牧) 농가를 지나며-두목(杜牧) 安邑南門外(안읍남문외) : 안읍 남문 밖 誰家板築高(수가판축고) : 누구네 집, 높은 담장인가 奉誠園裏地(봉성원리지) : 봉성원 안의 땅 牆缺見蓬蒿(장결견봉호) : 담장 틈으로 쑥이 보인다.                               제    목  : 독작(獨酌)-두목(杜牧) 독작(獨酌)-두목(杜牧) 혼자 술마시며-두목(杜牧) 長空碧杳杳(장공벽묘묘) : 높은 하늘 아득히 푸르고 萬古一飛鳥(만고일비조) : 오랜 세월을 날아다니는 새 한마리 生前酒伴閑(생전주반한) : 생전에는 취하여 한적함 짝하고 愁醉閑多小(수취한다소) : 수심에 취한 한가한 몇 사람이로다 烟深隋家寺(연심수가사) : 깊숙한 안개 속에 집따라 절 있어 殷葉暗相照(은섭암상조) : 무성한 나뭇잎 새로 마주 보인다 獨佩一壺游(독패일호유) : 홀로 술병 차고 혼자 다니며 노니 秋毫泰山小(추호태산소) : 가을 터럭 같은 태산이 작기만 하구나                             제    목  : 독작(獨酌)-두목(杜牧) 독작(獨酌)-두목(杜牧) 혼자 술마시며-두목(杜牧) 窓外正風雪(창외정풍설) : 창 밖에는 지금 바람과 눈 擁爐開酒缸(옹노개주항) : 화로를 안고 술항아리 연다 何如釣船雨(하여조선우) : 어찌하나, 낚시배에 내린 비 篷底睡秋江(봉저수추강) : 뜸 아래서 가을강이 잠들었구나                             제    목  : 취면(醉眠)-두목(杜牧) 취면(醉眠)-두목(杜牧) 술에 취해 자다-두목(杜牧) 秋醪雨中熟(추료우중숙) : 가을 술이 빗속에 익어가고 寒齋落葉中(한재낙섭중) : 차가운 집, 낙엽 속에 있도다  幽人本多睡(유인본다수) : 벗장이 본래 잠이 많아 更酌一樽空(경작일준공) : 다시 한 잔 술을 비워버린다                             제    목  : 부음증주(不飮贈酒)-두목(杜牧) 부음증주(不飮贈酒)-두목(杜牧) 받은 술을 마지지 않다-두목(杜牧) 細算人生事(세산인생사) : 소소한 인생사 彭殤共一籌(팽상공일주) : 팽상과 한 계산 함께 한다 與愁爭底事(여수쟁저사) : 근심과 일상을 타투나니 要爾作戈矛(요이작과모) : 너희들이 갈등을 만들어야 하나                             제    목  : 작죽(斫竹)-두목(杜牧) 작죽(斫竹)-두목(杜牧) 대나무를 베며-두목(杜牧) 寺廢竹色死(사폐죽색사) : 절이 폐하니 대나무빛도 생기를 잃고 宦家寧爾留(환가영이류) : 관가에서 어찌 너만 남겨두었던가 霜根漸從斧(상근점종부) : 뿌리마저 점점 도끼에 찍혀지고 風玉尙敲秋(풍옥상고추) : 바람에 옥같은 소리는 가을을 노래한다 江南苦吟客(강남고음객) : 강남에서 괴로이 시 읊는 나그네 何處送悠悠(하처송유유) : 어느 곳으로 애절한 마음 담아 보낼까                             제    목  : 제선주개원사수각각하완계협고인 (題宣州開元寺水閣閣下宛溪夾故人)-두목(杜牧) 제선주개원사수각각하완계협고인(題宣州開元寺水閣閣下宛溪夾故人)-두목(杜牧) 완계협의 친구에게-두목(杜牧) 六朝文物草連空(육조문물초련공) : 육조의 문물이 지금은 하늘 끝까지 풀빛인데 天澹雲閑今古同(천담운한금고동) : 담담한 하늘과 한가로운 구름은 고금이 같구나 鳥去鳥來山色裏(조거조래산색리) : 푸른 산빛 속에 새는 날아가고 날아오는데 人歌人哭水聲中(인가인곡수성중) : 강물 소리에 사람의 노래소리 통곡소리 들린다 深秋簾幕千家雨(심추염막천가우) : 가을 깊은 주렴 밖에 집집마다 비 내리고 落日樓帶一笛風(락일루대일적풍) : 해지는 누각에 쓸쓸한 피리소리 바람에 실려온다 惆悵無因見范蠡(추창무인견범려) : 슬프게도 범려 아직도 만날 방법은 전혀 없고 參差煙樹五湖東(삼차연수오호동) : 안개 속 어지러운 나무 사이가 오호의 동쪽이로다                              제    목  : 유회(幽懷)-두목(杜牧) 유회(幽懷)-두목(杜牧) 깊숙한 내 마음 속-두목(杜牧) 落魄江湖載酒行(낙백강호재주행) : 강호에 떠돌며 술을 싣고 가다가 楚腰纖細掌中輕(초요섬세장중경) : 미인의 가는 허리 내 품에 귀여워라 十年一覺揚州夢(십년일각양주몽) : 십년에 양주의 꿈 한 번 깨고보니 贏得青樓薄倖名(영득청루박행명) : 남겨진 건 청루에 천한 이름 뿐이로다                           : 제    목  : 증별(贈別)-두목(杜牧) 증별(贈別)-두목(杜牧) 이별하면서-두목(杜牧) 多情卻似總無情(다정각사총무정) : 다정함이 도리어 무정함과 같아 惟覺樽前笑不成(유각준전소불성) : 술항아리 앞에서도 웃음이 안 나옴을 알 뿐 蠟燭有心還惜別(납촉유심환석별) : 촟불이 유심하여 이별을 아끼는 듯 替入垂淚到天明(체입수루도천명) : 다 탄 초 바꾸어 놓아 흐르는 촛물에 어느듯 새벽                           :  제    목  : 궁원(宮怨)-두목(杜牧) 궁원(宮怨)-두목(杜牧) 궁녀의 원망-두목(杜牧) 監宮引出暫開門(감궁인출잠개문) : 궁궐 감시인이 나와 잠깐 문 열었으나 隨例雖朝不是恩(수례수조불시은) : 상례일 뿐 비록 아침이라도 은총 아니로다 銀鑰卻改金鎖合(은약각개금쇄합) : 은 열쇠 거두고 금자물쇠 잠겼으니 月明花落又黃昏(월명화락우황혼) : 달 밝고 꽃 지는데 더구나 황혼마저 깃드는구나               두 목 杜 牧 (803-853) 당나라 말기의 시인. 字는 牧之, 號는 樊川. 德宗 貞元 19년(803, 신라 애왕 4년) 섬서성 장안부근에서 났다. 26살때 진사, 현량과에도 급제했다. 宣宗 大中 6년(852,신라 문성왕 14년) 에 50살로 죽었다. 성질이 강직하고 호방하여 장군 재상을 역임했다지만 항상 즐겁지 못해 시문에 그 심정을 담고, 양주 진주등 당시에 유명한 환락지를 떠돌아다녔다. 杜 甫를 大杜라 함에 대하여, 杜 牧은 小杜라 일컬었다. 시집은 20권, 1권, 1권이 있다. [題安州浮雲寺樓寄湖州張郎中] 去夏疎雨餘 同倚朱欄語 當時樓下水 今日到何處 恨如春草多 事與孤鴻去 楚岸柳何窮 別愁紛若絮 [장낭중에게 부치는 노래] 지난 여름 비개인 어느날 난간에 기대어 서로 이야기하던 우리 그날 다락 아래 흘러가던 물 시방은 어디메쯤 흘러갔으리 가실줄 모르는 상채긴 사뭇 봄 풀처럼 우거지고 생각하면지난 일 기러기처럼 모두 날아가 강가에 버들 멀리 늘어섰는데 애달퍼라 그대 생각하는 이 시름이여. [經闔閭城] 遺 委衰草 行客思悠悠 昔日人何處 終年水自流 孤烟村戌遠 亂雨海門秋 吟罷獨歸去 風雲盡慘愁 [합려성을 떠나며] 옛 성터에 풀은 시들어 지나는 나그네 애달퍼라 나의 사람아 그대 지금 어딘가 강물만 소리 없이 흘러 가누나 수자리에 연기만 멀리 흐르고 해문에 흩뿌리는 가을비 어지러워...... 노래도 끝난 뒤 혼자 돌아가노라면 하늘에도 시름은 사무치는듯...... [別離] 多情却似總無情 唯覺樽前笑不成 蠟燭有心還惜別 替入垂淚到天明 [별리] 다정도 병인양하여 그리운 정을 잔들고 바라봐도 웃음은 걷고 이별은 촛불도 서러운 탓에 기나긴 밤 저렇게 울어 새우지........ [泊秦淮] 煙籠寒水月籠沙 夜泊秦淮近酒歌 商女不知亡國恨 隔江猶唱後庭花 [진회에서] 연기도 달빛도 모두다 자욱한데 밤 들자 진회 가까운 주막에 드니 장사치 계집애는 나라 망한 한을 몰라 강을 건너 시방도 후정화를 부른다. [淸明] 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 [청명] 청명절 비가 마구 쏟아져 길가는 사람도 넋을 잃었다 주막은 어디멘가 목동에게 물으니 멀리 가리키는 살구꽃 핀 마을.          
413    윤동주 英詩 댓글:  조회:2786  추천:0  2016-06-14
길 /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The Road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I lost it. I don't know where or even what it was. So, with my hands fumbling through my pockets, I walk down the road.   Stones, and stones, and stones without end The road coursed along the stone wall.   The iron gate in the wall was closed tight As the wall cast its long shadow over the road.   The road ran from morning to evening And from evening to morning.   Finding my way along the wall, a teardrop falls. I look up to see the heavens are embarrassingly blue.   Not one weed has sprouted on the dirt road Because I am left over there, beside the wall.   That I am living is only Because I am going to find that which I lost.   바람이 불어 /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理由)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理由)가 없을까,   단 한 여자(女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時代)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The Wind Blows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From where does the wind blow, and Where is it blowing next?   The wind is blowing, but There is no reason for my anxiety.   Is there no reason for my anxiety?   I have not loved even one woman. I have no sadness for these times.   The wind blows often, but I am standing on bedrock.   The rivers still flow, but I am standing on the top of the hill.     사랑의 전당 / 윤동주     순아 너는 내 전(殿)에 언제 들어왔든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든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古風)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눈을 나려감어라. 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루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성스런 촛대에 열(熱)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       The Palace of my Love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Suun! When was it that you came to my palace? When was it that you entered the inner chambers of the palace?   In this our palace Our young love was like those of antiquity.   Suun!, look down with your doe-like eyes of crystal And I will raise my shaggy, lion-like mane   Our love was like a word spoken by a deaf mute.   Before you blow out the heat of this holy candle Suun!, take a look from out the side door.  The darkness and wind are closed out As if embracing this eternal love They are long kept outside the backdoor and disappear.   And now, to you there is a vast lake in a rich forest And to me there is a great mountain range.   슬픈 족속 / 윤동주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Our Sad Clan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White is the cloth we use to wrap around our black hair; White is the color of the rubber shoes we wear.   White is the jacket and skirt that clothes our bodies; White is the belt that ties it all together around our waists   애기의 새벽 / 윤동주     우리 집에는 닭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달라 울어서 새벽이 된다.   우리 집에는 시계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달라 보채어 새벽이 된다.       The Baby’s Daybreak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At our house We don’t have any chickens. Only The baby crying out for milk Tells that it is daybreak.   At our house We don’t have a clock. Only The baby chiming out for milk Tells that it is daybreak.     귀뜨라미와 나와 / 윤동주     귀뜨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아무게도 아르켜 주지말고 우리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귀뜨라미와 나와 달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The Cricket and Me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The Cricket and me Are talking in the grass.   Chir chir Chir chir   You must not tell anyone We promised that only we would know.   Chir chir Chir chir   The cricket and me We talk in the night of the bright moon.    The Cross                                                    십자가   The sunlight is chasing after                                            쫓아 오던    햇빛인데                           The pinnacle of the church                                              지금 교회당 꼭대기 Which is hung at cross.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A very high pinnacle,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How could someone climb up that high?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The sound of the bell is Quiet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So I whisper in wandering.                                               휘바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The agonized man,                                                          괴로웠던 사나이 As if he is jesus christ                                                  Happily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 Will shed blood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Under the darkening sky                                                   Like flowers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After his neck is broken.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Who was crucified at the cross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으로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차가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Loving Memory / Translated by Mark Peterson       On a morning when spring came, at a small train station in Seoul I waited for a train like waiting for hope or love.   With long crisp shadows stretching across the platform I lit up a cigarette.   My shadow lifts the shadow of the floating smoke. A flock of pigeons, without a sense of shame, Fly into the glaring sunlight.   The train, without any news, Carries me far away.   Spring now gone, in a quiet rented room on the outskirts of Tokyo,  longing as for love or hope, I am left at an old crossroads.   Today, too, without any meaning several trains have come and gone.   Today, too, as if waiting for someone at the station, I hold my vigil on the nearby hill.    -- oh, youth has long left me behind.   소년 /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1939)       A youth / 윤동주    Falling down the blue autumn all around as maple leaves are. Preparing for spring at every place that the leaves cone from, the sky becomes unfolded above the branches. His eyebrows are already dyed blur while looking up the sky. With feeling his warm cheeks with his hands, the blue print is on the hands. Looking into the palm of his hands again.With a clear river flowing in the lines of the palm, a face as sad as his love appears up in the river---the pretty Soon-hee. Even with colsing his eyes in illusion, the river continues to flow, with the eyes being still filled with the face as sad as the love---the pretty Soon-hee.     The Cross                                                    십자가   The sunlight is chasing after                                            쫓아 오던    햇빛인데                           The pinnacle of the church                                              지금 교회당 꼭대기 Which is hung at cross.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A very high pinnacle,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How could someone climb up that high?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The sound of the bell is Quiet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So I whisper in wandering.                                               휘바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The agonized man,                                                          괴로웠던 사나이 As if he is jesus christ                                                  Happily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 Will shed blood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Under the darkening sky                                                   Like flowers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After his neck is broken.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Who was crucified at the cross                                                                                                                                               서 시/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Prelude                                         yoon, dong-ju                                                                                                                       Looking up at  the sky                              Until the last moment of my life,                              I wish I were not ashamed of any spdt in my life.                              I felt pain                              even when the wind was touching the leaf.                                I must love all dying things                              With my heart of singing the stars,                              And I  will walk the path given to me.                                The stars are touched by wind tonight, too.                                                                                                        Sad Family             Yoon, Dong - Ju                                                                                                                             The white towel covers the black hair                                   The white rubber shoes protect the rough feet.                                     The white skirt hangs on the sorrowed body                                   The white belt accentuates the thin waistline.                                   슬픈 족속/윤동주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윤동주 시의 특징 - 부끄러움의 미학 실상 윤동주의 시에는 많은 부끄러움의 증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부끄러움은 대부분 '욕됨/미움/괴로움'등의 정감과 공유적 정서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부끄러움의 결벽증은 스스로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과 반성, 그리고 그에 따르는 자기 혐오와 연민의 순수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로 시작되는 "자화상"에서 보여 주는 '미움/가엾음/그리움'의 변증법적 자기 인식과 사랑은 윤동주의 순결벽이 빚어낸, 청순한 젊음의 고뇌와 생래적 부끄러움의 변용적 실체인 것이다. 이처럼 윤동주의 시는 실향 의식과 상실감에서 모티브가 비롯되며, 존재론적 자기 인식과 정서에서의 변증법적 고뇌가 순결벽과 충돌하는 데서 부끄러움이라는 시적 정서의 실체를 획득하게 된다.  
412    다시 떠올리는 향수 시인 정지용 시모음 댓글:  조회:3132  추천:0  2016-06-07
================ 정지용 시모음 ================ 비 돌에 그늘이차고,  따로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서거니하여  꼬리치날리어 세우고,  종종다리 까칠한  산(山)새걸음걸이.  여울지어  수척한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펴고.  멎은듯  새삼듣는 빗낱¹  붉은잎 잎  소란히밟고 간다  1)원문 : '새삼 돋는 비ㅅ낯'  ~~~~~~~~~~~~~~~~~~~~~~~~~~~~~~~~~~~~~~~~~~~~ 슬픈인상화 수박냄새품어 오는  첫여름저녁때.....  먼해안 쪽  길옆나무에 늘어 슨  전등.전등. 헤엄쳐나온듯이 깜박어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울려 오는  축향의기적 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로퍼득이는  세관의깃 발.깃 발.  세멘트깐 인도측으로 사폿사폿옮기는  하이얀양장의 점경!  그는흘러가는 실심한 풍경이여니..  부질없이랑쥬껍질 씨비는 시름....  아아,에시리. 황  그대는상해로가는구료....  ~~~~~~~~~~~~~~~~~~~~~~~~~~~~~~~~~ 말 말아,다락 같은 말아,  너는점잔도 하다마는  너는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푸렁콩을 주마.  이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먼 데 달을 보며 잔다.  ~~~~~~~~~~~~~~~~~~~~~~~~~~~~~~~~~~~~~~~~~~ 구성동(九城洞) 골작에는흔히  유성(流星)이묻힌다.  황혼에 누뤼가소란히 쌓이기도 하고,  꽃도 귀양사는 곳,  절터드랬는데  바람도모이지 않고  산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 옥류동玉流洞 골에하늘이  따로트이고,  瀑布소리 하잔히  봄우뢰를울다.  날가지겹겹히  모란꽃닙포기이는듯.  자위돌아 사폿 질ㅅ듯  위태로히솟은 봉오리들.  골이속 속 접히어 들어  이내(晴嵐)가새포롬 서그러거리는 숫도림.  꽃가루묻힌양 날러올라  나래떠는 해.  보라빛해ㅅ살이  幅지어빗겨 걸치이매,  기슭에藥草들의  소란한呼吸 !  들새도날러들지 않고  神秘가한끗 저자 선 한낮.  물도젖여지지 않어  흰돌우에 따로 구르고,  닥어스미는 향기에  길초마다옷깃이 매워라.  귀또리도 흠식한양  옴짓 아니긘다.  ~~~~~~~~~~~~~~~~~~~~~~~~~~~~~~~~~~ 紅椿(홍춘) 椿나무꽃 피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시름없이 돌아간다.  어린아이들제춤에 뜻없는 노래를 부르고  솜병아리양지쪽에 모이를 가리고 있다.  아지랑이조름조는 마을길에 고달펴  아름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볼만 만지고 돌아 오노니.  실린곳: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 엽서에쓴 글  나비가한 마리 날러 들어온 양하고  이종이ㅅ장에 불빛을 돌려대 보시압.  제대로한동안 파다거리오리다.  ──대수롭지도 않은 산 목숨과도 같이.  그러나당신의 열적은 오라범 하나가  먼데 가까운 데 가운데 불을 헤이며 헤이며  찬비에함추름 휘적시고 왔오.  ──서럽지도 않은 이야기와도 같이.  누나,검은 이밤이 다 희도록  참한뮤─ 쓰처럼 주무시압.  해발이천 피이트 산봉우리 위에서  이젠바람이 나려옵니다.  ~~~~~~~~~~~~~~~~~~~~~~~~~~~~~~~~~~ 석류 장미꽃처럼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어  홍보석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 호면 손바닥울리는 소리  곱드랗게건너간다  그뒤로 흰게우가 미끄러져 간다  ~~~~~~~~~~~~~~~~~~~~~~~~~~~~~~~~~~~~~~~~~~~~~~~~~~ 湖水(호수)1  얼골하나 야  손바닥둘 로  폭가리지 만,  보고싶은 마음  湖水(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  시집: 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 산너머저쪽  산너머저쪽에는  누가사나?  뻐꾸기영우 에서  한나절울음 운다.  산너머저쪽 에는  누가사나?  철나무치는 소리만  서로맞어쩌르렁!  산너머저쪽에는  누가사나?  ~~~~~~~~~~~~~~~~~~~~~~~~~~~~~~~~~~~~~~~~~~~~ 저녁햇살 불피어오르듯하는 술  한숨에키여도 아아 배고파라.  수저븐듯 놓인 유리컵  바쟉바쟉씹는 대로 배고프리.  네눈은 고만스런 혹 단초  네입술은 서운한 가을철 수박 한점.  빨어도빨어도 배고프리.  술집창문에 붉은 저녁 햇살  연연하게탄다, 아아 배고파라  ~~~~~~~~~~~~~~~~~~~~~~~~~~~~~~~~~~~~~~~ 유리창(琉璃窓)1  유리에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시문학사  ~~~~~~~~~~~~~~~~~~~~~~~~~~~~~~~~~~~~~~~~~~~~~~~~~~~~~~~~~~~~~~~~~ 유리창2  내어다보니 아주캄캄한 밤,  어험스런뜰 앞 잣나무가 자꾸 커 올라간다.  돌아서서자리로 갔다.  나는목이 마르다.  또,가까이 가  유리를입으로 쪼다.  아아,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처럼흔들리는 창  투명한보랏빛 유리알 아,  이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열이 오른다.  뺨은차라리 연정스레이  유리에부빈다, 차디 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꽃!  도회에서고운 화재가 오른다.  ~~~~~~~~~~~~~~~~~~~~~~~~~~~~~~~~~~~~~~~~~~ 그의반  내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영혼 안의 고문 불,  공손한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솟아 올라 나래 떠는 금성,  쪽빛하늘에 흰꽃을 달은 고산 식물,  나의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나라에서도 멀다.  홀로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항상 머언 이,  나는사랑을 모르노라.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돌아 나간 시름의 황혼 길 위  나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 3호 1931.10  ~~~~~~~~~~~~~~~~~~~~~~~~~~~~~~~~~~~~~~~~~~~~~~~ 별똥 별똥떨어진 곳,  마음에두었다  다음날가보려,  벼르다벼르다  인젠다 자랐오.  별똥은본 적이 없다  난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  별똥떨어진 곳에 가보고 싶다  내눈에도 보였으면…  ~~~~~~~~~~~~~~~~~~~~~~~~~~~~~~~~~~~~~~~~~~~~~~~ 새빨간기관차  으으릿느으릿 한눈파는 겨를에  사랑이수이 알어질가도 싶구나.  어린아이야,달려가자. 두뺨에피여오른 어여쁜 불이  일즉꺼져 버리면 어찌 하자니?  줄달음질 쳐 가자.  바람은휘잉. 휘잉.  만틀자락에 몸이 떠오를 듯.  눈보라는풀. 풀.  붕어새끼꾀여내는 모이 같다.  어린아이야,아무것도 모르는  새빨간기관차처럼 달려가자!  ~~~~~~~~~~~~~~~~~~~~~~~~~~~~~~~~~~~~~~~~~~~~~~~~~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늬는내 귀가 좋으냐?  늬는내 코가 좋으냐?  늬는내 손이 좋으냐?  내사왼통 빨개졌네.  내사아무치도 않다.  호호칩어라 구보로!  ~~~~~~~~~~~~~~~~~~~~~~~~~~~~~~~~~~~~~~~~~~~~ 내맘에맞는 이  당신은내맘에 꼭 맞는이.  잘난남보다 조그마치만  어리둥절어리석은 척  옛사람처럼 사람 좋게 웃어좀 보시요.  이리좀돌고 저리좀 돌아 보시요.  코쥐고 뺑뺑이 치다 절 한 번만 합쇼.  호.호.호.호.내맘에 꼭 맞는이.  큰말타신 당신이  쌍무지개홍예문 틀어세운 벌로  내달리시면 나는산날맹이 잔디밭에 앉어  기를부르지요.  [앞으로----가.요.] [뒤로--가.요.] 키는후리후리. 어깨는 산고개 같어요.  호.호.호.호.내 맘은 맞는이.  ~~~~~~~~~~~~~~~~~~~~~~~~~~~~~~~~~~~~~~~~~~~~~~~ 춘설  문열자 선뚝! 뚝 둣 둣  먼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들어  바로초하로 아침,  새삼스레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옷고름 절로 향기롭워라.  옹송거리고살어난 양이  아아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  꽃피기전 철 아닌 눈에  핫옷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정지용시선.깊은샘. ~~~~~~~~~~~~~~~~~~~~~~~~~~~~~~~~~~~~~~~~~~~~~~~~~~~~ 카페프랑스  옮겨다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빗두루선 장명등  카페프랑스에 가자.  이놈은루바시카  또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삣적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흐늘기는 불빛  카페프랑스에 가자.  이놈의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한놈의 심장은 벌레먹은 장미  제비처럼젖은 놈이 뛰어간다.  ** *  “오오페롯(鸚鵡)서방! 굿이브닝!”  “굿이브닝!”(이친구 어떠하시오?)  鬱金香아가씨는 이 밤에도  更紗커-튼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子爵의 아들도 아모 것도 아니란다.  남달리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오異國種강아지야  내발을 빨아다오  내발을 빨아다오    황해문화,2000년 여름호, p.156.  ~~~~~~~~~~~~~~~~~~~~~~~~~~~~~~~~~~~~~~~~~~~~~~~ 향수(鄕愁)  넓은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황소가  해설피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재가 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자란 내 마음  파아란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조약돌 조약돌도글도글...  그는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앓은페에로의 설움과  첫길에고달픈  청제비의푸념겨운 지줄댐과,  꾀집어아즉 붉어 오르는  피에맺혀,  비날리는 이국 거리를  탄식하며헤매노나,  조약돌도글도글....  그는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 바다1  오.오.오.오.오.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연달아서 몰아 온다.  간밤에잠 살포시  머언뇌성이 울더니,  오늘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부풀어졌다.  철썩,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 바다2  한백년진흙 속에  숨었다나온 듯이,  게처럼옆으로  기어가보노니,  머언푸른 하늘 알로  가이없는모래밭.  *정지용시집,시문학사, 1935  ~~~~~~~~~~~~~~~~~~~~~~~~~~~~~~~~~~~~~~~~~~~~~ 바다3  외로운마음이  한종일두고  바다를불러---  바다우로  밤이 걸어온다.  ~~~~~~~~~~~~~~~~~~~~~~~~~~~~~~~~~~~~~~~~~~~~~~~~~~ 바다4  후주근한물결소리 등에 지고 홀로 돌아가노니  어데선지그누구 쓰러져 울음 우는듯한 기척,  돌아서서보니 먼 등대가 반짝 반짝 깜박이고  갈매기떼끼루룩 비를 부르며 날어간다.  울음우는 이는 등대도 아니고 갈매기도 아니고  어덴지홀로 떨어진 이름 모를 서러움이 하나.  ~~~~~~~~~~~~~~~~~~~~~~~~~~~~~~~~~~~~~~~~~ 바다7 바다는 푸르오, 모래는 희오,희오,  수평선우에  살포-시내려앉는  정오하늘,  한한가운데 돌아가는 태양,  내영혼도  이제 고요히고요히 눈물겨운 백금 팽이를 돌리오.  ~~~~~~~~~~~~~~~~~~~~~~~~~~~~~~~~~~~~~~~~~~~~~~~~~~~~~~ 고향 고향에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알을 품고  뻐꾹이제철에 울건만,  마음은제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메끝에 홀로 오르니  한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슬픈기차  우리들의기차는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온 하루를 익살스런 마도로스 파이프를 피우며 간 단 다.  우리들의기차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 소 걸어가듯 걸어 간 단 다.  우리들의기차는 노오란 배추꽃 비탈밭 새로  헐레벌떡거리며지나 간 단 다.  나는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마음만은 가벼워  나는차창에 기댄 대로 휘파람이나 날리자.  먼데 산이 군마처럼 뛰어오고 가까운 데 수풀이 바람처럼 불려 가고  유리판을펼친 듯, 뇌호내해 퍼언한 물 물. 물. 물.  손가락을담그면 포도빛이 들으렷다.  입술에적시면 탄산수처럼 끓으렷다.  복스런돛폭에 바람을 안고 뭇 배가 팽이처럼 밀려가다 간,  나비가되어 날아간다.  나는차창에 기댄 대로 옥토끼처럼 고마운 잠이나 들자.  청만틀깃자락에 마담 R의 고달픈 뺨이 불그레 피었다, 고운 석탄불처럼 이글거린다.  당치도않은 어린아이 잠재기 노래를 부르심은 무슨 뜻이뇨?  잠들어라. 가여운내 아들아.  잠들어라. 나는아들이 아닌 것을, 웃수염 자리 잡혀가는, 어린 아들이 버얼써 아닌 것을.  나는유리쪽에 갑갑한 입김을 비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이나 그시며 가 자.  나는느긋느긋한 가슴을 밀감쪽으로나 씻어 내리자.  대수풀울타리마다 요염한 관능과 같은 홍춘이 피맺혀 있다.  마당마다솜병아리 털이 폭신폭신하고,  지붕마다연기도 아니 뵈는 햇볕이 타고 있다.  오오,개인 날씨야, 사랑과 같은 어질머리야, 어질머리야.  청만틀깃자락에 마담 R의 가여운 입술이 여태껏 떨고 있다.  누나다운입술을 오늘이야 실컷 절하며 갚노라.  나는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오오,나는 차보다 더 날아가려지는 아니하련다.  ~~~~~~~~~~~~~~~~~~~~~~~~~~~~~~~~~~~~~~~~~~~~~~~~~ 황마차(幌馬車) 이제마악 돌아나가는 곳은 時計집 모롱이, 낮에는 처마끝에 달어맨 종달새란 놈이 都會바람에 나이를 먹어 조금 연기 끼인 듯한 소리로 사람 흘러나려가는 쪽으로 그저 지줄거립데다.  그고달픈 듯이 깜박깜박 졸고 있는 모양이-가여운 잠의 한점이랄지요- 부칠 데 없는 내맘이 떠올릅니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쓰다듬을 받고 싶은 내 마음이올시다. 가엾은 내 그림자는 검은 喪服처럼 지향없이 흘러나려갑니다. 촉촉히 젖은 리본 떨어진 浪漫風의 帽子 밑에는 金붕어의 奔流와도 같은 밤경치가 흘러나려갑니다. 길옆에 늘어슨 어린 銀杏나무들은 異國斥候兵의 걸음세로 조용조용히 흘러나려갑니다.  슬픈銀眼鏡이 흐릿하게  밤비는옆으로 무지개를 그린다.  이따금지나가는 늦인 電車가 끼이익 돌라나가는 소리에 내 조고만 魂이 놀란 듯이 파다거리나이다. 가고 싶어 따뜻한 화로갛을 찾어가고 싶어.  좋아하는코-란 經을 읽으면서 南京콩이나 까먹고 싶어, 그러나 나는 찾어 돌아갈 데가 있을나구요?  네거리모퉁이에 씩 씩 뽑아 올라간 붉은 벽돌집 塔에서는 거만스러운 12시가 避雷針에게 위엄있는 손까락을 치여들었소. 이제야 내 목아지가 쭐 삣떨어질 듯도 하구료. 솔닢새 갚은 모양새를 하고 걸어가는 나를 높다란 데서 굽어보는 것은 아주 재미있을 게지요.  마음놓고술술 소변이라도 볼까요. 헬멧 쓴 夜警巡査가 필일림처럼 쫓아오겠지요!  네거리모통이 붉은 담벼락이 훔씬 젖었소. 슬픈 都會의 뺨이 젖었소. 마음은 열없이 사랑의 落書를 하고 있소. 홀로 글성글성 눈물 짖고 있는 것은 가엾은 소-니야의 신세를 비추는 빩안 電燈의 눈알이외다. 우리들의 그 전날밤은 이다지도 슬픈지요. 이다지도 외로운지요. 그러면 여기서 두 손을 가슴에 념이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릿가?  길이아조 질어터져서 뱀눈알 같은 것이 반쟉 반쟉어리고 있오. 그두가 어찌나 크던동 거러가면서 졸님이 오십니다. 진흙에 챡 붙어 버릴 듯하오. 철없이 그리워 둥그스레한 당신의 어깨가 그리워. 거기에 내 머리를 대이면 언제든지 머언 따뜻한 바다 울음이 들려오더니......  ......아아,아모리 기다려도 못오실 니를 ......  기다려도못 오실 니 때문에 졸리운 마음은 幌馬車를 부르노니, 회파람처럼 불려오는 幌馬車를 부르노니, 은으로 만들은 슬픔을 실은 원앙새 털 깔은 幌馬車, 꼬옥 당신처럼 참한 幌馬車, 찰 찰찰 幌馬車를 기다리노니.  ~~~~~~~~~~~~~~~~~~~~~~~~~~~~~~~~~~~~~~~~~~~~~~~~~~~~~~~~~~~~~~~~~~ 정지용(鄭芝溶) 1903년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휘문 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가톨릭 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1946년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1950년납북  시집: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 시선』(1946), 『정지용 전집』(1988)  *절제된언어의 구사는 정지용의 시에서 일관되는 특성이지만 그의 시세계가 그리는 궤적은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보인다.  정지용시의 전개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1923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시,  둘째,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셋째,[옥류동](1937),[구성동](1928)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이다.  특히주목을 요하는 것은 정지용의 종교시가 [카톨릭 청년](1933)의 창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지면에 대부분 그의 종교시가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초기의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종교시가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용의 신앙시는 1934년 [카톨릭 청년]에 발표된 [다른 하늘], [또 하나의 다른 태양] 이후 자취를 감추며  4년여의침묵 뒤에 [옥류동], [비로봉], [구성동] 등이 발표된다.  이를카톨릭 신앙의 전면적인 포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1930년대 후반에 나름대로 각고의 방향 모색을 시도했으며, [옥류동], [백록담] 등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고 1939년 [장수산], [백록담] 등에서는 한층 더 정신주의에의 침잠을 시도하면서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견인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정지용의대표작으로서 국민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작품 한 편을 들라고 한다면, 우리는 [향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지용의 [향수]를 노래하는 사람 모두가 언제나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감을 느낀다.  정지용은[향수]에서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율격 언어로 응축시켜 한국인들이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는 심정적 통로를 열어 보였다.  [향수]가그려내는 고향의 정경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이며 따라서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호소력에 힘을 더하는 것은 뛰어난 감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금빛 게으른 울음'이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에서 보이는 언어적 환기 효과는 당시로서는 특별한 예이다.  고향에대한 그리움 표현한 [향수]는  뛰어난감각적 표현으로 온 국민의 사랑 받아  첫째연의 고향에 대한 공간적 환기와  둘째연의 전형적인 농가의 풍경에서 제시되는 육친애의 그리움에 이어 셋째 연에서는 화자의 구체적인 성장 경험이 표현된다.  흙에서자란 마음과 파란 하늘 사이의 화자의 행동 모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생겨나기 이전의 것으로서 유년 시절의 낙원에 대한 믿음을 연상시킨다. 그 정경은 어린 시절의 단순한 반추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이상과 낙원이 괴리되어 떠도는 현재의 상황을 시사한다. 넷째 연은 다시 구체적인 삶의 정경으로 돌아가고 다섯째 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포착된 고향집이 그려진다. 고향집이 내포하는 평화롭고 정겨운 감각으로 인해 가난의 어려움마저 넘어서고 있다.  [향수]는20년대 초반의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와 고향을 그리는 젊음이 용해되어 있으며, 오늘의 우리들 또한 상실한 낙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그리고 이를 넘어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향수]는 생의 근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워 준다.  - 최동호 / 1948년생, 시인, 고려대 국문과 교수 - 
411    랑송시 <<알수 없어요>> /// 타고르 <<바닷가에서>> 댓글:  조회:3160  추천:0  2016-05-27
알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서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을 알지도 못한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 노을은 누구의 시 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핵심 정리 [이 작품은] 자연 현상을 통해 드러나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절대자를 위한 희생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명상적, 관조적, 관념적, 구도적, 역설적 *제재 : 자연 현상 *주제 : 절대적 존재에 대한 동경과 구도의 정신 *특징 ① 경어체를 사용하고 의문형 어구를 반복함. ② 자연 현상을 통한 깨달음을 형상화함. ③ 동일한 통사 구조를 반복하여 음악성과 함께 형태적 안정성을 부여함. *출전 : “님의 침묵”(1926) 시어 풀이 *수직(垂直) : 똑바로 드리우는 상태. *파문 : 수면에 일어나는 물결 무늬. *날 : ‘하루’ 혹은 ‘해’로 풀이할 수 있음. *가이없는 : 끝이 없는. *단장 : 산뜻하게 모양을 내어 꾸밈. 작품의 구성 [1~5행] 자연을 통해 드러나는 절대적 존재 [6행] 절대적 존재를 위한 희생 의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물음의 방식을 통해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 현상에서 절대적 존재를 인식하고, 절대자를 향한 구도 정신을 노래한 작품이다. 1~5행까지는 신비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자연 현상이 누구의 모습인가를 묻고 있다. 그러나 화자의 물음은 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설의적 표현일 뿐이다. 화자는 자연 현상에서 절대적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즉, ‘오동잎’을 ‘발자취’로, ‘푸른 하늘’을 ‘얼굴’로, ‘향기’를 ‘입김’으로, ‘시냇물의 소리’를 ‘노래’로, ‘저녁놀’을 ‘시(詩)’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제목인 ‘알 수 없어요’는 화자가 이미 확인하여 알고 있는 사실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행에서는 절대적 존재가 지금 ‘밤’의 상황, 즉 시련을 겪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절대자에게 닥친 ‘밤’을 몰아내기 위해 자신의 가슴에 ‘약한 등불’을 밝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약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 절대자를 둘러싼 밤을 몰아내고자 하는 화자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다짐을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라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보여 준다. 한용운은 이 작품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구도 정신으로 형이상학적 깊이를 획득함으로써 우리 시 문학의 전통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품 연구실 의문문 형식이 지니는 기능은? 의문문은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물어 그 대답을 구하는 문장 형식이다.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인가를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지의 존재인 ‘누구’에 대한 신비감을 드러내며, 그 존재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끝없이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자연 현상에서 발견한 ‘누구’의 모습   ‘등불’의 의미 ‘등불’은 자신을 불태워 남을 밝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무화(無化)시켜서 남을 존재하게 하는 거룩한 존재이다. 화자는 밤을 몰아내고 밝게 비추어 절대적 존재를 지키는 ‘약한 등불’이 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시에서 ‘등불’은 시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절대적 존재를 위해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자신을 태우는 희생정신을 의미한다. 이 시에 나타난 역설적 논리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라는 표현에서 ‘타고 남은 재’는 소멸의 이미지를 지니는 부정적인 대상이다. 화자는 이러한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기름’이라는 긍정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의 ‘기름’은 생성의 이미지이다. 즉 ‘타고 남은 재’로 형상화되고 있는 부정적인 대상은 긍정에 이르기 위한 전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불교의 윤회설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소멸의 이미지를 생성의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고차원적인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의 문장 구조 이 시는 의문형으로 끝나는 몇 개의 시행이 계속되다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에서 시상이 전환되고 다시 의문형으로 종결된다. 즉, 1~5행은 각 행이 의문형의 한 문장으로 끝나고, 6행에서는 5행까지의 심상들을 종합하여 마무리하고 있다. 이러한 문장 구조를 통해 절대적 존재에 대한 동경을 강하게 표출하면서도 정연한 구조 속에 내면의 깊이와 함께 역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알 수 없어요’라는 제목에 담긴 의미 ‘알 수 없어요’라는 이 시의 제목은 절대적 존재를 알 수 없다고 고백함과 동시에 그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경어체와 의문형의 어구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절대자나 진리에 대한 끝없는 탐구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절대적 존재의 실존은 알 수 없지만 그 존재 자체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집 “님의 침묵” 1926년에 발간된 한용운의 시집 및 표제시의 제목이다. 이 시집의 구성은 앞에 ‘군말’과 뒤에 ‘독자에게’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군말’에는 창작 동기가 제시되어 있고, 본문은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알 수 없어요’, ‘자유정조(自由貞操)’, ‘복종’ 등 모두 88편의 시가 대체로 연작시적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부분 불교적 비유와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쓴 서정시로,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과 애족(愛族)의 정신이 짙게 깔려 있다. 작가 소개 - 한용운(韓龍雲, 1879 ~ 1944) 시인 · 승려 · 독립운동가. 호는 만해(萬海). 충남 홍성 출생. 1918년 불교 잡지 “유심(愉心)”에 시 ‘심(心)’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색과 신비적 명상 세계를 형상화한 철학적 · 종교적 연가풍의 시를 주로 썼다. 시집 “님의 침묵”(1926) 외에 “조선 불교 유신론”, “불교 대전” 등의 저서를 남겼다. 함께 읽어보기 ‘선운사에서’, 최영미/자연 현상을 통한 깨달음 ‘선운사에서’는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응시켜 인생의 보편적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알 수 없어요’와 ‘선운사에서’는 모두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통한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깨달음의 대상에 차이가 있는데, ‘알 수 없어요’에서는 자연 현상에서 절대자의 모습을 인식하고 절대적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 ‘선운사에서’는 꽃이 피고 지는 자연 현상에서 만남과 이별이라는 인간사의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바닷가에서’, 타고르/순수한 자연의 심상 ‘바닷가에서’는 바닷가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을 소재로 하여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자연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으며, 동심의 세계를 객관적인 관점으로 그려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는 경어체의 공손한 어조로 순수한 자연의 심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없어요’와 유사하다. =======================================   원본보기 타고르는 우리 나라에 "패자의 노래", "동방의 등불"이라는 두 편의 시를 보내기도 한바 있습니다. 그의 시는 , 등에 소개되었고, 김억에 의해 시집 , , 등이 번역되었습니다. 이렇게 번역된 타고르의 시는 임을 노래한 연시(戀詩), 산문시의 가락 등에서 만해 한용운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타고르의 다른 시 바닷가에서, 기탄잘리 경례, 원정을 소개합니다. 바닷가에서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가없는 하늘 그림같이 고요한데, 물결은 쉴 새 없이 남실거립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소리치며 뜀뛰며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모래성 쌓는 아이, 조개 껍데기 줍는 아이, 마른 나뭇잎으로 배를 접어 웃으면서 한 바다로 보내는 아이, 모두 바닷가에서 재미나게 놉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헤엄칠 줄도, 고기잡이할 줄도, 진주를 캐는 이는 진주 캐러 물로 들고   상인들은 돛 벌려 오가는데,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또 던집니다. 그들은 남모르는 보물도 바라잖고, 그물 던져 고기잡이할 줄도 모릅니다. 바다는 깔깔거리고 소스라쳐 바서지고, 기슭은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사람과 배 송두리째 삼키는 파도도 아가 달래는 엄마처럼, 예쁜 노래를 불러 들려 줍니다. 바다는 아이들과 재미나게 놉니다. 기슭은 희 이를 드러내며 웃습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길 없는 하늘에 바람이 일고 흔적 없는 물 위에 배는 엎어져 죽음이 배 위에 있고 아이들은 놉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는 아이들의 큰 놀이텁니다 경례(敬禮) -(슈미트라난단 판트) 백조여, 보라, 황금의 빛. 정상의 빛의 덮개! 황금의 빛을 흩뿌리고, 지상엔 광휘의 발자국! 나무도 둥우리도 모두 눈 뜨고, 뭇새들의 때는 수런대며, 바람에는 아름다운 노랫소리, - 하늘에는 요란한 날갯소리! 반쯤 열린 꿈의 눈동자에 입맞추는 황금의 빛 연못에는 백조와 물결 눈 뜬 빛의 파수꾼, 감정은 진작되다. 이 천국의 불멸의 접촉! 안개의 금빛 일순(一瞬) 황금의 빛을 흩뿌리네! 승리에 빛나는 하늘 깃발처럼 자유로운 바람, 구름은 새로운 마음을 품고 마음의 눈은 열리다! 뭇 세대의 암흑을 떨쳐라 이 황금의 빛! 바야흐로 빛의 문은 열리다 새로운 기쁨의 물 튀어 오르며 창조의 영광은 무한해라! 쫓는 자는 누구인가? 지상에 빛을 길러 자라게 하여, 백조여, 보라, 황금의 빛! 원정(園丁)    "아, 신이시여, 저녁 때가 다가오나이다. 당신의 머리가 희어지는구려.  당신은 외로운 명상 속에서 저 내세(來世)의 소식을 듣나이까?"  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저녁 때입니다. 나는 비록 때가 늦기는 하였지만, 마을에서 누가 부를지도 모르는 까닭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참이오.   행여 길잃은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면, 두 쌍의 열렬한 눈이 자기들의 침묵을 깨뜨리고, 이야기해 줄 음악을 간청하지나 않나 하고 지켜 보는 참이올시다.   행여 내가 인생의 기슭에 앉아 죽음과 내세(來世)를 관조(觀照)한다면, 열정의 노래를 엮을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   초저녁 별이 사라집니다.   화장(火葬)연료의 불꽃이 고요한 강가에서 가늘게 사라져 갑니다.   기진한 달 빛 속 외딴 집 뜰에서 승냥이들이 소리를 합쳐 웁니다.   행여 고향을 등지고 떠돌아다니는 이가 여기 와서 밤을 지키고 있어, 머리를 숙이고 어둠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때, 내가 문을 닫고 인간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애쓰고 있다면, 그 나그네 귀에다 인생의 비밀을 속삭일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   내 머리가 희어지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올시다.   나는 이 마을의 젊은이 중에서도 가장 젊고, 또 늙은이 중에서도 가장 늙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냥하고도 순진한 미소를 띱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활하게 눈짓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햇빛에 눈물이 솟아오르고, 또 어떤 사람은 어둠 속에 숨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모두 다 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세에 대하여 생각할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내 나이는 다른 사람과 동갑입니다. 내 머리가 희어진들 어떠하리이까?"    
410    명작 동요동시 모음 댓글:  조회:3902  추천:0  2016-05-27
1. 우리는 하나 2. 비 오는 날 3. 꽃 4. 나무노래 5. 안녕         박화목 친구, 내 친구, 정다운 친구.   선생님, 우리 선생님. 고마운 선생님.   학교, 우리 학교, 즐거운 학교.   나, 친구, 선생님, 모두 모여 우리는 하나. 오늘은 해님이 안 떠요. 비 오는 날이에요.   오늘은 지렁이가 나와요. 비 오는 날이에요.   오늘은 장화를 신어요. 비 오는 날이에요. 꽃은 참 예쁘다 들꽃도 예쁘다 이 꽃 저 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다음에 다시 태어날 때 꽃이 되고 싶다 가자 가자 감나무 가다 보니 가닥나무 앵도라진 앵두나무 거짓말 못해 참나무 오자 오자 옻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배가 아파 배나무 바람 솔솔 소나무 우리 서로 학교 길에 만나면 만나면 웃는 얼굴 하고 인사 나눕시다 얘들아 안녕   하루 공부 마치고서 집으로 갈 때도 헤어지기 전에 인사 나눕시다 얘들아 안녕 6. 구슬비 7. 오는 길 8. 아기의 대답 9. 빗방울 10. 흉내놀이 권오순 피천득 박목월   김종상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재잘대며 타박타박 걸어오다가   앙감질로 깡충깡충 뛰어오다가   깔깔대며 배틀배틀 쓰러집니다. 신규야 부르면 코부터 발름발름 대답하지요.   신규야 부르면 눈부터 생글생글 대답하지요. 또르르 유리창에 맺혔다.   대롱대롱 풀잎에도 달렸다.   방울방울 빗방울이 모여서   졸졸졸 시냇물이 흐른다. 참새 소리 내 보자. 짹짹짹짹. 오리 소리 내 보자. 꽉꽉꽉꽉.   하하하하 재미있다. 우리들은 참새다. 호호호호 재미있다. 우리들은 오리다.     11. 이슬열매 12. 작은 동물원 13. 통통통 14. 뒤뚱뒤뚱 아기 오리 15. 방귀 김인숙 김성균 김성균   신현림 어젯밤 아기 별이 뿌려 논 씨앗 해님이 일어나니 열매가 주렁주렁   작고 작아 건드려도 톡톡 터지는 열매 너무나 예뻐서 해님이 가져갔나? 삐악삐악 병아리 음매음매 송아지 따당따당 사냥꾼 뒤뚱뒤뚱 물오리 푸-푸- 개구리 찌께찌께찌께 가재 푸르르르르르르 물풀 하나둘셋넷 소라 통통통 높이 뛰다가 살살 동그랗게 뛰다가 흔들흔들 흔들흔들 춤추다가 점점 점점 아래로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살금살금 살-금 떼굴떼굴 떼굴떼굴 굴러가다가 일어섯 하나 둘 씩씩하게 걷다가 깡충깡충깡충 뛰다가 빙글빙글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물속으로 풍덩 땅을 보고 통통통 하늘 보고 통통통 첨벙첨벙 첨벙첨벙 헤엄치다가 일어섯 뒤뚱뒤뚱 아기 오리 어디를 가나요? 뒤뚱뒤뚱 엄마 따라 물놀이 가지요.   둥둥둥 아기 오리 무얼 하나요? 둥둥둥 엄마 따라 물에 뜨지요.   꽥꽥꽥 아기 오리 무엇을 하나요? 첨벙첨벙 재밌게 물장구치며 놀지요. 아빠 방귀 우르르 쾅 천둥 방귀 엄마 방귀 가르르릉 광 고양이 방귀 내 방귀 삘리리리 피리 방귀 16. 흥부와 놀부 Ⅰ 17. 흥부와 놀부 Ⅱ 18. 아침 19. 그만뒀다 20. 골목길 강소천 강소천 김상련 문삼석 김종상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흥부 놀부 살았다네 맘씨 고운 흥부는 제비 다리 고쳐 주고 박씨 하나 얻어서 울 밑에 심었더니 주렁주렁 열렸대 복 바가지 열렸대 톱질하게 톱질하세 슬근슬근 톱질하세 하나 켜면 금 나오고 둘은 켜면 은 나오고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흥부 놀부 살았다네 심술궂은 놀부는 제비 다리 고쳐 놓고 박씨 하나 얻어서 울 밑에 심었더니 주렁주렁 열렸대 헛 바가지 열렸대 톱질하게 톱질하세 슬근슬근 톱질하세 셋을 켜도 금은 없고 넷을 켜도 은은 없고 뚜, 뚜. 나팔꽃이 일어나래요..   똑, 똑. 아침 이슬이 세수하래요.   방긋, 방긋. 아침 해가 노래하재요. 신발 물어 던진 강아지 녀석 혼내 주려다 그만뒀다.   살래살래 흔드는 고 꼬리 땜에…….   우유병 넘어뜨린 고양이 녀석 꿀밤을 먹이려다 그만뒀다.   쫑긋쫑긋 세우는 고 귀 땜에……. 쪼르르르 달려갔다가 아장아장 돌아오고, 쫄랑쫄랑 따라오다가 터덜터덜 돌아가고,   심심해서 친구 찾아다니는 복슬복슬 털 강아지     21. 비 22. 태풍 23. 친구야 아프지 마 24. 사전 25. 김장하는 날 박길순   김민정 김원석 박일 비가 그치면 집에 가려고 창가에서 발을 동동동.   비는 그치지 않고 눈물만 창문에 똑똑똑. 바람이 바람이 화가 났나 봐 우루루루 왈캉왈캉 흔들어 대고 구름이 구름이 화가 났나 봐 우루루루 좌르르르 물을 끼얹고.   바람이 바람이 화가 났나 봐 우루루루 왈캉왈캉 흔들어 대고 창문이 창문이 놀랐었나 봐 덜덜덜덜 달달달달 몸을 떱니다. 친구가 아플 땐 어떻게 할까 친구를 찾아가 놀아 줄 거야 아픈 친구를 찾아가서 꼭 안아 줄 거야 친구야 아프지 마 그러면 그러면 아픈 친구 기분이 좋아져 빨리 낫겠지 그러면 그러면 내 마음도 내 마음도 기쁘겠지 친구야 아프지 마 아버지 어렸을 땐 나 같았구나.   나도 나이 먹으면 아버지 같을까? 손가락 맛이 더 좋은가 봅니다.   김치 한 가닥 찢어 입에 넣고   할머니도 쪽- 엄마도 쪽- 손가락을 빨거든요. 26. 고 벌 한 마리가 27. 기린과 하마 28. 눈 29. 눈 30. 눈 받아먹기 최승훈 문삼석 윤동주 이태선 윤석중 윙,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조그만 한 마리 벌   고것이 온 몸을 떨게 한다   벌 벌 벌 벌 하마가 기린을 보고 걱정을 했어요.   - 저렇게 키만 크다가 하늘이 뚫리면 어떻게 하지?   기린도 하마를 보고 걱정을 했어요.   - 저렇게 살만 찌다가 땅이 꺼지면 어떻게 하지?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히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 주는 이불 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눈 눈 눈 받아먹자, 입으로   아 아 아 코로 자꾸 떨어진다.   호 호 호 이게 코지 입이냐?     31. 아이스크림 32. 우리는 닮은꼴 33. 과일 이야기 34. 새는 새는 35. 재보기 최혜영 정두리 엄기원   문삼석 혓바닥으로 날름. 더 많이 날름. 손가락으로 쏘옥. 한 번 더 쏘옥.   진이, 아이스크림 먹었구나. 코랑 손이 온통 아이스크림투성이네.   참 이상하다. 코랑 손으로는 안 먹었는데. 곱슬머리 아빠 닮았다.   검지 발가락 긴 건 엄마 닮았다.   늦잠꾸러기인 건 아빠 닮았다. 나는 잠꾸러기   책 읽기 좋아하는 건 누구 닮았나. 누구 닮았나? 앵두는 작아도 귀여워 좋고 자두는 자줏빛 진해서 좋고 노오란 참외는 달아서 좋고 새빨간 수박은 시원해 좋지.   청포도 송이송이 우애도 좋고 탐스런 복숭아 몸매가 좋고 빠알간 사과는 싱싱해 좋고 구릿빛 밤아람 고소해 좋지. 새는 새는 나무에서 자고 쥐는 쥐는 구멍에서 자고   돌에 붙은 조개껍데기야 나무에 붙은 솔방울아   나는 나는 어디에서 자나 나는 나는 엄마 품에서 자지. - 나랑 키 재기 해 보겠니? 기린이 목을 길게 늘였어요.   - 그럼 나랑 코 재기 해 볼래? 코끼리가 투우! 코를 불었어요.   - 그런 것 말고……. 하마가 하아앙! 하품을 했어요.   - 나랑 입 재기는 어때?     1. 호랑나비 2. 영치기 영차 3. 달팽이 4. 개구리네 한솥밥 5. 꿩꿩 장 서방 이준관 박소농 권태응 백석   호랑나비 호랑호랑   봄이 왔다 호랑호랑   꽃이 폈다 호랑호랑 깜장 흙 속의 푸른 새싹들이 흙덩이를 떠밀고 나오면서 히-영치기 영차 히-영치기 영차   돌팍 밑에 예쁜 새싹들이 돌팍을 떠밀고 나오면서 히-영치기 영차 히-영치기 영차   흙덩이도 무섭지 않고 돌덩이도 무섭지 않은 아기 싹들이 히-영치기 영차 히-영치기 영차   달 달 달팽이 뿔 넷 달린 달팽이 건드리면 옴추락 가만두면 내밀고,   달 달 달팽기 느림뱅이 달팽이 멀리 한 번 못가고 밭에서만 놀고 옛날 어느 곳에 개구리 하나 살았네. 가난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 하나 살았네.   하루는 이 개구리 쌀 한 말을 얻어 오려 벌 건너 형을 찾아 길을 나섰네.   개구리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가 봇도랑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도랑으로 가 보니 소시랑게 한 마리 엉엉 우네. 꿩꿩 장 서방 자네 집이 어딨니? 저 산 넘어서 잔솔밭이 내 집일세. 꿩꿩 장 서방 무엇 먹고 살았니? 김칫국 끓여 밥 말아 먹고 살았다. 무슨 김치 먹었니? 열무김치 먹었다. 누구누구 먹었니? 나 혼자서 먹었다. 6. 옛날 이야기 7. 꼭꼭 숨어라 8. 봄비 내리는 소리 9. 흙 먹고 흙똥을 싸고 10. 까치 김육   정하나 김마리아 성덕제 옛날 옛적에- 그래서? 깊고 깊은 산속에- 그래서? 사람만한 쥐 한 마리가- 정말? 우는 애 배꼽 뚝 띠어 먹을랴고- 아유, 정말?   심술쟁이 내 동생은 두 손으로 자기 배꼽 꼭 쥐고는 그래서? 그래서? 하고 졸라대지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꼼짝 말고 있거라 꼭꼭 숨어라 치맛자락 보일라 꼼짝 말고 있거라 술래가 찾아가니까 점잖게 뒷짐 지고 왔다 갔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찾아다닌다 산으로 갈까? 들로 갈까? 소곤소곤 소곤소곤   꽃을 먼저 피울까? 잎을 먼저 피울까? 소곤소곤 소곤소곤 흙속에 사는 지렁이 종일, 땅을 깨우는 지렁이   흙 먹고 흙똥을 싼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땅속을 기어다닌다 느릿느릿.   구불꼬불 지렁이가 지나간 자리 -아, 잘 잤다. 땅이 일어난다. 꿈틀꿈틀. 책책책 책책책책 응원을 하나 봐요 삼삼칠 박수를 어디서 배웠을까 꼬리를 흔들어 대며 책책책책 책책책   11. 시리동동 거미동동 12. 하늘 천 따 지 13. 귤 한 개 14. 방 안의 꽃 15. 달강달강 권윤덕   박경용 김용택   왕거미 거미줄은 하얘.   하얀 것은 토끼 토끼는 난다.   나는 것은 까마귀 까마귀는 검다.   검은 것은 바위 바위는 높다.   높은 것은 하늘 하늘은 푸르다.   푸른 것은 바다 바다는 깊다.   깊은 것은 엄마 마음.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눌은 밥 벅벅 긁어서 떡떡 긁어서 선생님은 한 그릇 나는 두 그릇 아이구 맛있다. 하늘 천 따지 가마솥에 누렁지 뜩뜩 긁어서 딱딱 긁어서 선생님은 한 그릇 개 밥 그릇에 한 그릇 나는 두 그릇 은 그릇에 두 그릇 아이구 맛있다.   귤 한 개가 방을 가득 채운다.   짜릿하고 향깃한 냄새로 물들이고   양지짝의 화안한 빛으로 물들이고   사르르 군침 도는 맛으로 물들이고   귤 한 개가 방보다 크다. 오줌 싸도 이쁘고 응가 해도 이쁘고 앙앙 울어도 이쁘고 잠을 자도 이쁘고 깨어나도 이쁘고 이리 보아도 이쁘고 저리 보아도 이쁘고 얼럴럴 둥게둥게 꽃 중의 꽃 방 안의 꽃 우리 아기   달강달강 들강들강 서울 길을 올라가서 밤 한 되를 사다가 선반 밑에 두었더니 올랑졸랑 생쥐가 들락날락 다 까먹고 밤 한 톨이 남았구나 옹솥에다 삶을까 가마솥에다 삶을까 가마솥에다 삶아서 바가지로 건져서 겉껍질은 누나 주고 속껍질은 오빠 주고 알맹일랑 너랑 나랑 알공달공 나눠 먹자 달강달강 들강들강 16. 두껍아 두껍아 17. 홍시 18. 초코파이 자전거 19. 전학 20. 사물놀이   정지용 신현림 박길순 조혜란, 김동원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 오너라 너희 집 지어 줄게 두껍아 두껍다 너희 집에 불났다 솥이랑 가지고 뚤레뚤레 오너라 어저께도 홍시 하나 오늘에도 홍시 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나무 왜 앉았나   우리 오빠 오시걸랑 맛 뵐려구 남겨 뒀다   후락 딱딱 훠이훠이! 초코파이 자전거를 탔더니 바람이 야금야금 다람쥐가 살금살금 까치가 조금조금 고양이가 슬금슬금 먹어서   내 초코파이 자전거 폭삭 주저앉아 버렸네 짝이 전학을 갔다.   눈물이 나왔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집에 둔 선물도 그대로 있는데   온종일 눈물이 나왔다. 꽹과리는 객 개갱 소리를 내고 징은 징 징 징 소리를 내고 장고는 덩 덩 덩 소리를 내고 북은 둥 둥 둥 소리를 낸다.   21. 모과 22. 어머니의 눈물 23. 꼬부랑 늙은이 24. 은방울꽃 25. 개구쟁이 산복이 전병호 정두리   정두리 이문구 봉지에 담아도 모과 향기는 새어 나온다.   모과를 꺼내도 모과 향기는 봉지 속에 남는다. 회초리를 들었지만 차마 못 때리신다.   아픈 매보다 더 무서운   무서운 목소리보다 더 무서운   어머니의 눈물이 손등에 떨어진다.   어머니의 굵은 눈물에 내가 젖는다. 꼬부랑 늙은이가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개를 데리고 꼬부랑 길로 가다가 꼬부랑 지팡이로 꼬부랑 개를 때리니 꼬부랑 깽 한 줄기에 조로롱 매달린 은방울 열 개   달랑달랑 방울 소리 누가 들어 봤을까?   간당간당 고갯말 누가 알아들었을까?   은방울에 맺힌 빗방울도 흔들린다. 향기까지 흔들린다. 이마에 땀방울 송알송알 손에는 땟국이 반질반질 맨발에 흙먼지 울긋불긋 봄볕에 그을려 까무잡잡   멍멍이가 보고 엉아야 하겠네. 까마귀가 보고 아찌야 하겠네. 26. 산 위에서 보면 27. 달팽이 28. 옹달샘 29. 어서 어서 30. 털장갑 김종상 권정생 손광세 성명진 서정홍 산 위에서 보면 학교가 나뭇가지에 달렸어요.   새장처럼 얽어 놓은 창문에, 참새 같은 아이들이 쏙쏙 얼굴을 내밀지요.   장난감 같은 교문으로 재조잘 재조잘 떠밀며 날아 나오지요. 새끼 달팽이가 방귀 뀌어 놓고   누가 보았을까 봐 누가 들었을까 봐   모가지 기다랗게 늘이고는 요리조리 살피다가   아무도 없으니까 그 속에 쏘옥 들어가 잔다. 깊숙한 산골 호젓한 숲 속.   몰래 숨겨 놓은 동그란 거울.   해님이 생긋 들여다보고.   달님이 빙긋 들여다보고. 남수네 개가 우리 집 앞에 똥 싸 놓고 갔다.   으, 미치겠다 그렇잖아도 우리 개 흰이가 남수네 개 앞에서 꼼짝 못해 속상한데.   가만있을 줄 알아?   흰이를 데리고 가 ……. 설날에는 털장갑을 사 드릴게요.   동생과 저는 모자 달린 옷과 따뜻한 털장갑이 있으니 겨울이 와도 걱정이 없어요.   아침 날씨 알림 시간에 오늘이 올 겨울 들어서 가장 춥다는데,   털도 없는 실장갑을 끼고 자전거 타고 일터로 가는 아버지의 시린 손이 멀리서도 보이네요.   31. 어린 고기들 32. 추운 날 33. 작은 기차 권태응 이준관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꽁꽁 얼음 밑 어린 고기들   해님도 달님도 한 번 못 보고 겨울 동안 얼마나 갑갑스럴까?   꽁꽁 얼음 밑 어린 고기들   뭣들 하고 노는지 보고 싶구나 빨리빨리 따순 봄 찾아오거라 추운 날 혼자서 대문 앞에 서 있으면요,   지나가던 아저씨가 - 엄마를 기다리니? 발 시리겠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 원, 저런, 감기 걸리겠다. 집에 들어가거라.   지나가던 강아지가 - 야단맞고 쫓겨났군. 안됐다. 컹컹.   대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내 마음 알지도 못하고…….   팽, 팽, 팽, 돌고 싶은 팽이가 내 주머니 속에서 친구를 동동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작은 기차 두 대가 철길을 달려요. 작은 기차 두 대가 서쪽으로 가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가 철길을 달릴 때, 장난감 기차는 마루 위를 달려요. 기차가 굴로 들어가려고 할 때, 장난감 기차는 어디로 갈까요?    
409    랑(낭)송하기 좋은 시 모음 댓글:  조회:3405  추천:1  2016-05-27
    (랑송하기 좋은 시)   그대는 새날에 살아라 / 문태준 새날이 왔다 샘물 같은 새날이 왔으므로 그대는 하루의 마음을 또 허락받았다 그대는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라 비가 연못과 작은 돌과 우는 사람을 위로하듯이 꽃이 담장 아래와 언덕과 사랑을 밝히듯이 눈이 댓잎과 다리와 지붕을 덮는 이불이 되듯이 그대는 모두에게 공평하여라 둥근 과일과 쌀과 생선을 나누라 초승달처럼 공손하라 수행자들처럼 용서하라 그대의 말이 의자가 되게 하라 가난한 사람에겐 내일을 선물하라 어머니가 어린 누이를 업고 가듯이 그대는 하나의 생명을 업고 가라 미소가 주렁주렁 열리는 얼굴로 보아라 강물이 흘러가듯이 우연하게 하라 그래도 남는 마음이 있거든 혹여 가 닿지 않은 곳이 있을까 그 마음을 거울에게 물어보라 그대는 이 마음으로 새날에 살아라 그대는 이 일이 삼백예순날의 일이 되어라   ------------------------------------   설날 아침에 / 김남주 눈이 내린다 싸락눈 소록소록 밤새도록 내린다 뿌리뽑혀 이제는 바싹 마른 댓잎 위에도 내리고 허물어진 장독대 금이 가고 이빨 빠진 옹기그릇에도 내리고 소 잃고 주저앉은 외양간에도 내린다 더러는 마른자리 골라 눈은 떡가루처럼 하얗게 쌓이기도 하고 닭이 울고 날이 새고 설날 아침이다 새해 새아침이라 그런지 까치도 한두 마리 잊지 않고 찾아와 대추나무 위에서 운다 까치야 까치야 뭣하러 왔냐 때때옷도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 이제 우리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 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 좋은 소식 가지고 왔거들랑 까치야 돈이며 명예 같은 것은 그런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죄다 주고 나이 마흔에 시집올 처녀를 구하지 못하는 우리 아우 덕종이한테는 행여 주눅이 들지 않도록 사랑의 노래나 하나 남겨두고 가렴   ----------------------------------------- (시조) 백자부 / 김상옥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 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 틈에 불로초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 드노다.   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 날은 이리 순박(淳朴)하도다.         ----------------------------------------   새해 / 피천득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팔월의 태양   거센 한 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   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맑갛게 씻은 얼굴 고은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         사랑해야 하는 이유 / 문정희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의 강가에서 똑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며 운다는 것이라네 바람에 나뒹굴다가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 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네 ! -----------------------------------   오늘의 약속 / 나태주 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 매미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지난밤에 쉽게 잠이 들지 않아 많이 애를 먹었다든지 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 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 하나 찾아내어 숨겨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   고고(孤高) / 김종길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 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白雲臺)나 인수봉(仁壽峰)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化粧)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新綠)이나 단풍(丹楓),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薔薇)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變質)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白雲臺)와 인수봉(仁壽峰)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   겨울행 / 이근배 1 대낮의 풍설은 나를 취하게 한다 나는 정처없다 산이거나 들이거나 나는 비틀걸음으로 떠다닌다 쏟아지는 눈발이 앞을 가린다 눈발 속에서 초가집 한 채가 떠오른다 아궁이 앞에서 생솔을 때시는 어머니    2 어머니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고향엘 가고 싶습니다 그곳에 가서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름날 당신의 적삼에 배이던 땀과 등잔불을 끈 어둠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타고 내리던 그 눈물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술취한 듯 눈길을 갑니다 설해목 쓰러진 자리 생솔 가지를 꺽던 눈밭의 당신의 언발이 짚어가던 발자국이 남은 그 땅을 찾아서 갑니다 헌 누더기 옷으로도 추위를 못 가리시던 어머니 연기 속에 눈 못 뜨고 때시던 생솔의, 타는 불꽃의, 저녁나절의 모습이 자꾸 떠올려지는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자꾸 취해서 비틀거립니다.    -------------------------------------------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 고재종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無明무명을 들여다보고 동백꽃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 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 보긴 걸어 볼 참인가 2002년 제16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작   ---------------------------------------------   만들 수만 있다면 /도종환 만들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남길 수만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기억만을 남기며 삽시다   가슴이 성에 낀 듯 시리고 외로웠던 뒤에도 당신은 차고 깨끗했습니다   무참히 짓밟히고 으깨어진 뒤에도 당신은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사나운 바람 속에서 풀잎처럼 쓰러졌다가도 우두둑 우두둑 다시 일어섰습니다   꽃 피던 시절의 짧은 기쁨보다 꽃 지고 서리 내린 뒤의 오랜 황량함 속에서   당신과 나는 가만히 손을 잡고 마주서서 적막한 한세상을 살았습니다   돌아서 뉘우치지 맙시다 밤이 가고 새벽이 온 뒤에도 후회하지 맙시다   만들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 한 용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 만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   인연 / 최영철 오백년 여기 서 있는 동안 한번은 당신 샛별로 오고 한번은 당신 소나기로 오고 그때마다 가시는 길 바라보느라 이렇게 많은 가지를 뻗었답니다 오백년 여기 서 있는 동안 한번은 당신 나그네로 오고 한번은 당신 남의 임으로 오고 그때마다 아픔을 숨기느라 이렇게 많은 옹이를 남겼답니다 오늘 연초록 잎벌레로 오신 당신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이렇게 많은 잎을 피웠답니다   ---------------------------------   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의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   들길에 서서 /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거니…….   --------------------------------------------   겨울 내소사 / 김문주  세상에 수런거리는 것들은 이곳에 와서 소리를 낮추는구나, 변산 변방으로 밀려가다 잠적하는 지도들이 일몰의 광경 앞에 정처없는 때 눈내린 오전의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아름답다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도 풍경이 되고 어느새 동행이 되는 길의 지혜 작은 꺾임들로 인해 그윽해지고 틀어앉아 더 깊어진 일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도 길이 된다 나무들은 때때로 가지들어 눈뭉치를 털어놓는다 숲의 한쪽 끝에 가지런히 모여앉은 장광같은 부도탑들 부드러운 육체들이 햇빛의 소란함을 안치고 있다. 봉래루 설선당 해우소 산사의 마당에는 천년의 할아버지 당산과 요사까지 저마다의 높낮이로 중심을 나누어 가진 집채들 부푸는 고요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의 숨들 숨길이 되고 집채 사이를 오가다, 아 바람의 꽃밭, 열림과 닫힘의 자리에 바래고 문드러진 수척한 얼굴들 슬픔도 연민도 모두 비워낸 소슬무늬꽃문 난만한 열망들이 마른꽃으로 넘는 저, 장엄한 경계 대웅보전 앞마당에 발자국들 질척거리고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이여 내소사 환한 고요 속에 오래도록 읽는다 서해 바람의 이 메마른 문장을 ---------------------------------------------   너의 하늘을 보아 / 詩 박 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어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   내 마음을 아실 이 /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편 지                                      황 금 찬 소리 없이 날아온 편지 사연은 잠이 들고 추억은 눈 떴는데 아득한 수평선 먼 고향일네.   하이얀 손길 피어오르던 아침 장미 긴 사연에 돌아서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아   아지랑이 바다 위에 천년의 꽃잎 지고 있는가 오늘 다시 지고 있는가   본 웰리암스의 화상곡 (로망스) 날아오르는 종달새 보리밭 이랑이랑    파란히 잠든 5월의 하늘빛 눈 뜨는가 다시 눈 뜨는가 추억의 사람일따 어디가야 너를 만날까 눈뜨고 기다림이 아득한 수미산   이틀이나 걸려 쓴 편지 보낼 곳이 없구나. 추억 안의 사람아.      내가 사랑하는 서울                                                   황 금 찬 누가 묻거든 말하리라 서울은 나의 조국의 가슴이라고   “서울이 대단히 아름답다고 들었습니다.” 85년 그리스에서 폴란드 시인이 말했다.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이 자랑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내가 가장 자랑할 수 있는 곳이 서울입니다.   “연잎 같습니다. 서울이” 서울은 계절의 옷을 입고 구름은 사랑의 집이 됩니다. 연인들의 대화는 한강에 꽃잎처럼 떠 있고 별들이 잠든 강심에서 맑은 인정을 낚아 올리는 곳이지요.   옛날에도  이 한강에 사랑의 이야기가 있었다네. 고구려의‘사록’이라는 청년과 신라의‘꽃녀’라는 처녀가 강을 사이로 사랑하게 되었다네. 강 이쪽과 강 저쪽이지만 다 같이 서울의 땅   오동잎을 엮어 배로 띄우고 사랑을 싣고 세월을 싣고 어느 봄날 그들은 두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가고 말았다네.   서울로 오라. 묻거든 대답하라 서울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새해 첫날에                                                최 은 하 동녘이 밝아옵니다. 새해 아침이 열려옵니다. 새로운 하늘이 펼쳐집니다. 귀하기 만한 저마다 출발의 마당입니다.   이 아침엔 동해 수평선 너머 눈부시게 떠오르는 해를 맞습니다. 어제까지의 온갖 어둠 살라버리고 넘실대는 바다 물결 위로 태초의 솟아오름 그대로 한아름의 햇덩이가 솟구쳐 오릅니다.   이 아침엔 정결히 손발을 씻고 두 손 모은 기도자리로부터 저마다 밝은 앞길만 바라보게 하소서. 지나가버린 이야긴 돌아보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한마디 곱고 힘찬 한마디 고르고 골라 새겨 간직하며 한 해를 살게 하소서.  뜨거운 소망으로 넘쳐나게 하소서. 우리 가까이 사소한 사랑법을 깨우치게 하소서.   안팎으로 모두가 제 탓임을 알게 하소서. 우선 저만을 챙기는 아집을 버리고 하찮은 이웃을 찾아 함께 하게 하소서. 짜고 매운 눈물의 기도를 익히게 하소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눈 뜨고 숨쉬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하루하루가 되게 하소서.   새해 아침을 펼치는 종소리 종소리 따라 하늘과 땅이 밝아옵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하기만한 생애의 한가운데 축복의 은총이 내리는 시간입니다.   이 아침엔 동해 수평선 너머 눈부시게 떠오르는 해를 맞습니다. 넘실대는 바다 물결 위로 한아름의 햇덩이가 솟구쳐 오릅니다. 거기 우리네도 따라 마주하고 솟아오릅니다.       간밤 불구경                                                       최 은 하 엊저녁부터 줄곧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불구경하느라 꼬박 밤을 밝혔다. 타오르는 불은 소릴 내고 치솟아 불꽃을 날리고 외우침인지, 탄식인지 꺾어넘기지 못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불길 한가운데서 위로 위로만 뻗치어 솟구쳐 오르다가 사라지는 모습은 어둠자락이었다. 저마다 활기찬 승천의 용솟음은 제 무게 떨쳐버릴 수 없는 지상에 휘황한 묵언의 들어올림일까. 자리 바꿔 피우던 수다 따위가 모양새 없이 스러졌다. 불더미는 반공의 먹구름을 뚫고 별자리로 오르려 휩싸도는 몸짓 불의 품 안에서 잠들지 못하고 신새벽을 맞았다. 살아있는 불꽃들의 기침 소리 아침이 오는 언덕에서 불길은 꺼지지 않고 각기 다른 시늉으로 이글거렸다. 여기선 누구나 무엇이나 불의 주인이었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ㆍ1                                               黃 松 文 김소월 시인의 시작품 생산지 진달래 불타던 영변의 약산이 핵시설 총본산이 될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꽃 만발하여 불이 붙던 관서팔경 경승지가 핵시설의 기지로 돌변할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일성이 13세 때 조선공산당을 조직했던 박헌영은 25세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흐른 후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김일성이 박헌영을 처형할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박헌영이 감금되어 고문 받던 곳 평안북도 철산이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올린 동창리 발사장이 될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꽃이 만발하게 불붙던 영변에 핵 공장이 들어서고 박헌영 한맺힌 철산 동창리에 핵 발사장이 들어설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ㆍ2                                                      黃 松 文 신석정 시인의 촛불은 어디가고 명동 데모꾼 괴물들이 득세할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돈 없으면 죄가 되고 돈 있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나라 배가 구멍이 났는데도 진흙 밭에 개싸움질만 한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얼굴 두껍고 속 검은 흑룡(黑龍)이 사드 반대로 대한민국을 겁박할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한국의 자위권에 왜 간섭을 하는지 어찌하여 감 놔라 배 놔라 하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자유는 방종으로 무질서로 바뀌고 평화의 비둘기가 휴지처럼 구겨질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가면을 벗고               ―목욕탕에서                                                                   김 년 균 알몸은 아름답다 먼지와 때를 씻은 몸은 아름답다. 겉치레를 버린 몸은 아름답다.   곱게 여문 햇살이 눈앞에 쏟아진다. 하늘을 나는 깃털이 몸 밖에 돋아난다. 세상 풍파 뛰어넘을 용기가 솟구친다.   몸에 쌓이는 온갖 장식, 양말과 팬티와 셔츠와 옷을 벗고 목걸이 귀걸이 팔걸이 머리빗을 벗고 손목시계와 안경과 목도리와 모자를 벗고 어깨에 걸쳐 둔 허례허식을 벗고,   찌든 먼지와 때와 절벽에 놓인 허영과 욕심과 이웃 사람들이 놓고 간 음탕한 생각까지, 물속에 들어가 말끔히 씻고 나오면 얼마나 기쁨이 샘솟고 출렁이랴.   물속에서 나오는 사람은 아름답다. 몸 씻고 마음 씻은 사람은 아름답다.  껍데기를 벗은 사람은 아름답다.   너는 제발 그렇게 살아라. 몹쓸 것은 버리고, 썩은 것은 땅에 묻고, 그러면 향기로운 꽃이 될 수 있으니. 하늘까지 오르는 별이 될 수 있으니.      시간의 유희                                                   김 년 균 단 일초도 아닌 듯한데 문이 닫히고 열리더니 일은 벌써 끝났다. 한 생애도 끝났다.   몇 천 광년도 뒤돌아보면, 불과 몇 년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즐겁고 신기한 시간의 유희. 과연 이것이 관행인가, 착각인가.   그래도 용케 한 치가 다르지 않게 운행되는 우주의 질서를 지켜보노라면, 살아가는 이의 모습이 더없이 초라하다. 살아 있는 목숨 또한 애처롭기 그지없다.   이렇게 짧은 순간인데도, 우스워라, 어제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늘은 또 아들이 손자가 꿈꾸며 일어나 길가에 높다란 팻말을 꽂고, 잘 살았노라, 또는 행복했노라, 지껄이며 큰소리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그 순간도 역겨워서 못 견디며, 세상 밖으로 떨어져 내린다.   단 일초도 아닌 듯한 그 사이에 사람들은 온갖 소란을 떨며, 발버둥 치다 별 수 없이 주저앉는다. 여울목 안개 ―백담사                                        박 정 희 산자락 끌어내린 백담사 우유빛 새벽안개 풀섶에 찾아들면   물 풀빛 숨결 끝없이 풀어내 얼룩진 시간 채우고   석양빛 머리에 인 여울목 따라 수묵빛 그리운 안개꽃 은비늘 번득인다. 영랑생가에서 ―사진                                          박 정 희 호박넝쿨 기왓골 타넘고 앞마당 새암 뚜껑 위 깨진 살구 하나 뒹군다.   주인을 기다리던 사랑채 아궁이 앞 낡은 풍로 바람도 그냥 지나가고 모란은 봉오리 꽃빛 머물러있다.   누굴 기다리는 것일까 처마 밑 까치집에 봄이 매달렸다 우묵한 가슴 하나만 남았다.   찰칵 한 생의 문이 닫혔다     이른 봄날에                                            정 명 숙 산 아래 바람은 물 머금은 나뭇가지 마디마디에 실눈을 틔운다.   햇살 따라 오솔길 걷노라니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귀를 세우고 살펴보니 산까마귀 울어 제치고   양지 바른 길섶에 갓 돋아난 새싹 하나 내려쬐는 햇살 받아 소리 없이 흔들린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지난 겨울 이야기는 다져밟아 묻어두기로 하자.   계곡 물소리 밟으며 산허리 돌아서니 연두빛 향기가 눈 시리게 반짝인다.     꿈자리에서                                        정 명 숙 어젯밤 강가에 서있었다 저 멀리서 나룻배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내 몸을 강가 풀숲으로 밀어내시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손짓하셨다.   선장은 기다리고 있던 몇 사람을 불러 태우고 어떠한 말이나 표정 없이 배는 떠나갔다.   아침이 오자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오늘도 낮과 밤을 오가는 꿈 속인가보다.     사자반신사터                                           민 미 옥 주춧돌은 가슴에서 살고 햇살은 주춧돌을 다듬는다.   땀 흘리는 햇살을 불러다가 절 짓는 소리.....    대웅전은 가슴에서 살고 풍경소리는 하늘에 집을 짓는다.     밀어(密語)                                            민 미 옥 꽃상여가 조화를 날리면서 넘던 고갯길   아스라한 산허리 휘어 꼬부랑길을 이루더니 노을도 목을 길게 늘여 빼고 깊어진 하늘과 밀어를 나눈다.   그늘진 곳에 이름 없는 묘지들 영혼이 빠져나간 몸들   태양의 계절에는 묘지의 잡초들과 함께 산다.     사랑의 자물쇠                                          김 복 희 서울 타워 옆에는 수많은 사랑의 자물쇠를 걸어 놓았다.   그 언약은 담장이 되고 예쁜 트리가 되어 커플을 꿈꾼다.   정월 대보름날 간절한 마음을 달에게 보내던 그리움이 살아난다.   사랑의 방식은 변해도 풍물놀이는 여전히 이어지는 남산   자물쇠가 꿈과 사랑을 영원히 이어줄 수 있도록 밝은 달빛 아래서 두 손을 모은다.     왕벚꽃                                                      김 복 희 상왕산 소나무 숲길을 가쁘게 오르면 고즈넉한 개심사가 왕벚꽃에 묻혀있다.   모두들 법당 안에 들어설 생각은 하지 않고 꽃송이만 바라보다 사진 속에 담긴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우려고 기꺼이 속세를 떠나온 비구니스님   꽃등을 달아놓은 듯 탐스러운 불꽃 앞에 양 볼이 붉어지며 시린 기억 더듬는가.   법당에 다소곳이 번뇌를 털어내랴 눈결은 자꾸만 왕벚꽃에 머무르랴   허정의 달을 바라보다가 뜨거운 꽃 한 송이 꺾고야 말았다.     매생이 국                                                 김 상 화 명주실에 청물 들인 비릿한 바다 냄새 보드라운 실오라기 한 뭉치   냄비 속에서 푸른 바다가 들끓어 저녁상차림에 파도가 내게 밀려온다.   한 그릇의 파도 물결 속에 휘말려 허기진 뱃속을 채우며   매끄럽게 넘어가는 푸른 꿈이 출렁이며 온 몸 혈관 속에서 신선한 파도 속에 빠져든다.    춘추벗꽃ㆍ2                                        김 상 화 깨달음의 고행 길 활활 타오르는 단풍잎 사이   고뇌 속에 핀 분홍빛 꽃송이 부처님의 자비의 미소인가   희망의 끈을 잡으며 법열의 꿈을 이루고자 웃음꽃으로 피어나는가.   마음 비운 자리에 곱게 핀 깨달음의 진리 앞에 합장하며   윤회로윤회로 피어나는 꽃송이 따뜻한 눈빛, 하늘 우러러 합장하고 또 합장을 한다.      자화상                                            서 순 보 비가 오면 빗물이 흘러가는 구름덩이에 밀리고 하늘이 높아지고 긴 바람이 불어오면 떨어진 검은 낙엽이랑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밀리고 떠내려가고 뒹굴고 줄서다 코앞에 밀리고 내 인생은 바람이 절반을 그러면서 나는 여기까지 왔다.   빨간 사과를 좋아하는 여인을 사랑하고 굽은 허리에 돌팔매 맞아가며 악쓰고 떠들고 외롭고 그립고 헤어지고 더 이상의 아픔이 상처들이 슬픔이 허황과 영욕들이 밀려가고 밀리고 이제는 득도得道하여 다 버리고 당당하게 그 길을 간다.     그 섬이 되고 싶다                                          서 순 보 세상에는 섬이 많다 산에도 강에도 사람에게도 마음에게도 나는 그 섬이 되고 싶다.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빗방울이 봄날에 솟아나는 이름 모를 풀잎들이 가을을 알리는 흰 바람들이 떨어지는 별똥들이 잊혀진 여인들이 아무 때나 쉬어 가는 그 섬이 되고 싶다.    
408    한국 명작 동시 감상하기 2 댓글:  조회:2793  추천:0  2016-05-26
바다 강소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바다는 저렇게 마냥 출렁대고만 있었을 거야. 그 할아버지의 손자들도 또 그 손자의 손자들도 ―바다는 언제부터 출렁대기 시작했을까? 지금 나처럼 생각들 해 보았을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기 전부터 지구가 돈다는 것을 알기 전부터 바다는 저렇게 마냥 출렁대고만 있었을 거야 꽃사슴 김녹촌 향내 나는 풀잎만 뜯어먹고 살아서 바람처럼 매끄러운 몸매   알락달락 흰 점은 어느 풀밭을 가다 찍히운 꿏자국일까.   여우며 이리떼가 싫어 아홉 아홉 고개 주름잡던 날캉한 다리에선 아직도 풀냄새 향기로운데,   지금은 쇠우리에 갇힌 몸 산이 그리워 먼 바람결 산메아리에 귀를 모으면   이끼 낀 뿔가지 끝 깃발처럼 걸리는 구름 한 조각.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한가위의 오늘 밤 박목월 달을 보며 생각한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한가위의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들.   한라산 기슭에도 태백산 골짜기 두메 산골에도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 어린이들.   몇 명이나 될까 헤아릴 순 없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 어린이들.   성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달빛에 빛나는 하얀 이마 달빛에 빛나는 까만 눈동자   모르는 그 누구도 달을 보면서 오늘 밤 달을 보는 나를 생각할까.   모르는 그 누구도 달을 보면서 오늘 밤 달을 보는 내게로 따뜻한 마음의 손을 내밀까.   그야 모르지 그야 모르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모든 어린이들이 어쩐지 정답게 느껴진다.   언제 만날지 어떻게 사귀게 될지 그야 모르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나는 따뜻한 마음의 손을 서로 잡고 있는 것 같다.     귀뚜라미 소리 방정환 귀뚜라미 귀뜨르르 가느단 소리 달님도 추워서 파랗습니다.   울밑에 과꽃이 네 밤만 자면 눈 오는 겨울이 찾아온다고   귀뚜라미 귀뜨르르 가느단 소리 달밤에 오동잎이 떨어집니다.     가을 밤 방정환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갯머리에 어머님이 혼자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기러기떼 날아간 뒤 잠든 하늘에 둥근 달님 혼자 떠서 젖은 얼굴로 비치어도 비치어도 밤은 안 깊어.   지나가던 소낙비가 적신 하늘에 집을 잃은 부엉이가 혼자 앉아서 부엉부엉 울으니까 밤이 깊었네.     구름   윤석중 달달달달 아기 수레.   엄마는 뒤에서 밀고 ㅇ오고 아기는 편안히 누워 가고   송이송이 흰 ㄱ구름은 하늘에 둥둥 떠서 가고.   아기가 한잠 자고 나 봐도 구름은 둥둥 떠서 가고.   아기가 또 한잠 자고 나 봐도 엄마는 뒤에서 밀고 오고   잘도 잘고 굴러 간다. 달달달달 수레바퀴.       연꽃 윤석중 연꽃은 해만 뜨면 부시시 깨지요. 연꽃은 연꽃은 세수를 안 해도 곱지요.     꿏밭과 순이 이오덕 분이는 따리아가 제일 곱다고 한다. 경식이는 칸나가 제일이라고 ㅎ한다. 복수는 백일홍이 아름답단다. 그러나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순아, 넌 무슨 꽃이 더 예쁘니? 채송화가 제일 예쁘지? 그래도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순이.   순이는 목발로 발 밑을 가리켰다. 꽃밭을 빙 둘러 새끼줄에 매여 있는 말뚝 그 말뚝이 살아나 잎을 피우고 있었다. 거꾸로 박혀 생매장당한 포플러 막대기가!     강물 이원수 강물은 밤낮 없이 흘러만 가오. 어디서 어디까지 가는 걸까요.   낮에는 해님의 금빛 옷 안고 밤에는 달님의 은빛 옷 안고   강물은 옛날부터 가는 나그네 세월이 흐르듯이 끝이 없어요.   바람이 간질면은 잔웃음 짓고 우리가 장난하면 찰랑거리고   종알종알 속삭이며 가는 강물아 너따라 머나먼 곳 가고 싶구나.   낮에는 구름 보고 노래부르며 밤에는 별님 보고 옛 얘기하며.     저녁 노을 이해인 있잖니, 꼭 그맘때 산 위에 오르면 있잖니, 꼭 그맘때 바닷가에 나가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놀 그 놀을 어떻게 그대로 그릴 수가 있겠니.   한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한번이라도 입어보고 싶은   주홍의 치마폭 물결을 어떻게 그릴 수가 있겠니.   혼자 보기 아까와 언니를 부르러 간 사이 몰래 숨어 버리고 만 그 놀을 어떻게 잡을 수가 있겠니.   그러나 나는 나에게도 놀을 주고 너에게도 놀을 준다.   우리의 꿈은 놀처럼 곱게 타 올라야 하지 않겠니. 때가 되면 조용히 숨을 즐도 알아야 하지 않겠니.     달밤 조지훈 순이가 달아나면 기인 담장 위로 달님이 따라 오고,   분이가 달아나면 기인 담장 밑으로 달님이 따라 가고,   하늘에 달이야 하나인데....   순이는 달님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분이도 달님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샘물이 혼자서 주요한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짜기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웃으며 간다.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하늘은 맑은데 즐거운 그 소리 산과 들에 울려 온다.     달팽이 3 권정생 달팽이 마을에 전쟁이 났다.   아기 잃은 어머니가 보퉁이 등에 지고 허둥지둥 간다. 아기 찾아간다.   목이 메어 소리도 안 나오고 기운이 다해 뛰지도 못하고 아기 찾아가다.   달팽이가 지나간 뒤에 눈물 자국이 길 게 길 게 남았다.
407    한국 명작 동시 감상하기 댓글:  조회:3000  추천:0  2016-05-25
한국 명작 동시 감상 1 세계에서 어린이에게 동시집을 동요집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간한 사람은 세계 최초의 아동 도서 전문 출판이었던 영국의 뉴베리(John Newbery. 1713-1767)였다. 뉴베리는 아동 도서 200종을 발간하였는데, 이를 챕북(Chap book)이라 하였다. 뉴베리 챕북 200종 안에 Mother Goose's Melody(1760)라는 동요집이 있었다. 라는 이 동요집은 그 뒤
406    영국 녀성 시인 - 크리스티나 로제티 동시모음 댓글:  조회:3047  추천:0  2016-05-25
달님 크리스티나 로제티 달님, 고단하세요? 안개의 면사포로 싸감은 해쓱한 얼굴. 동에서 서로 하늘을 재며 삼백예순 날, 쉬시지 않네. 밤이 오기 전에는 종이처럼 희고. 밤이 밝기 전에 아주 꺼져 버리고. 대답 네 가지 크리스티나 로제티 무거운 것은 모래하고 슬픔. 짧은 것은 오늘과 내일. 이내 무너지는 것은 꽃과 젊음. 깊은 것은 그럼 뭐니? 바다하고 진리지. 더 아름답다 크리스티나 로제티 강 위로 달리는 보오트 바다 위로는 돛단배. 그러나 하늘에 달리는 구름 구름이 배보다 더 귀엽다. 강에는 다리가 걸렸지만 아무리 다리가 아름답지만, 하늘에 걸린 무지개다리 높은 나무보다 더 높게 하늘과 땅 사이 길을 놓은 무지개다리가 더 아름답다. 뛰어다니는 양 크리스티나 로제티 뛰어다니는 양 뛰어다니는 아기 노란 꽃 피는 목장에서 논다. 새파란 하늘 부드러운 공기 들에는 햇빛 빛나고, 들길에는 그늘 덮이고. 뭣이 뭣이 빨갛니? 크리스티나 로제티 뭣이 뭣이 빨갛니? 샘가의 장미꽃. 뭣이 뭣이 붉으냐? 밭가운데 양귀비. 뭣이 뭣이 파랗니? 구름 동동 저 하늘. 뭣이뭣이 하얗니? 햇볕에 헤엄치는 고니. 뭣이 뭣이 노랗니? 익은 배가 노랗지. 뭣이 뭣이 초록빛? 이름없는 꽃이 피는 풀잎새. 아아 뭣이 뭣이 보라빛? 여름 저녁 떠가는 구름이 보라빛. 뭣이 뭣이 귤빛이지. 그건 귤나무의 귤이 귤빛이지. 바람 크리스티나 로제티 누가 바람을 보았답니까? 너도 나도 못 본 걸. 웬걸, 나뭇잎을 흔들며 바람은 저기 지나가지 않니. 누가 바람을 보았답니까? 너도 나도 못 본 걸. 웬걸, 나무가 고개를 숙이고 바람은 저기 지나가지 않니. 어린 양 크리스티나 로제티 엄마가 없는 아기양이 혼자 외롭게 언덕 위에. 아무리 부들부들 떨고 있어도 아무도 다정하게 품어주지 않겠지. 정말 가엾은 저 어린 양을 언덕까지 달려가서 잡아와야지. 데려다가 따뜻하게 기뤄줘야지. 힘세고 씩씩하게 될 때까지. 엄마와 아기 크리스티나 로제티 엄마 없는 아기와 아기 없는 엄마를 한 집안에 모아서 정답게 살게 하자. 제비 크리스티나 로제티 날아가라, 날아가라. 바다를 넘어. 해님을 좋아하는 제비야, 이제 여름도 다 지났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날아서 오라. 여름을 데리고 돌아오라. 해님도 가지고 오너라. ……것 크리스티나 로제티 꿀벌이 하는 일은 꿀을 따오는 것.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돈을 벌어오시는 것. 엄마가 하시는 일은 한 푼 남기잖고 돈을 쓰시는 것. 아기가 하는 일은 한 방울 남기잖고 꿀을 먹는 것. 꿈 크리스티나 로제티 ―꿈 속에서 나는 작은 부엉이와 파란 새를 잡았었지. ―그렇지만 이 세상에선 너는 도저히 그런 새를 못 잡는다. ―꿈 속에서 나는 해바라기를 심었지. 핏방울처럼 새빨간 꽃이 폈어. ―그렇지만 이 세상의 저 햇빛 아래서는 그런 해바라기꽃은 피지 않는다. 무엇이 무거운가요?                                                 크리스티나 로제티(영국)       무엇이 무거울까요? 바다, 모래 그리고 슬픔이랍니다. 무엇이 잠깐일까요? 오늘과 내일이랍니다. 무엇이 연약할까요? 봄꽃과 젊음이랍니다. 무엇이 깊을까요? 바다와 진리랍니다.                                     - 송용구(시인. 고려대 연구교수)     “나”의 마음 속에 쌓여있는 “슬픔”이 바닷가의 “모래”더미처럼 “무거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은 “잠깐” 불다가 사라지는 바람 같지요. “오늘” 피었다가 “내일” 시드는 들풀 같기도 합니다. 아무리 “무거운” 슬픔이라도 “바다”처럼 깊은 “진리”의 물결 속에 잠재우세요. “젊음”의 “봄꽃”은 눈깜짝 할 사이에 시들어버리지만   “진리”는 내 마음의 땅에 깊고 영원한 뿌리를 내리니까요.   Christina Georgina Rossetti(1830-1894)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아버지는 시인이었으며 오빠는 시인이자 화가였다.  크리스티나는 아버지와 오빠의 예술가적 자질을 이어받았고 영국교회의 열렬한 신자였던 어머니에게서 종교적 영향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생활고와 질병의 고통 역시 그녀의 작가 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열살 때 부친이 병에 걸려 장기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퇴직했으므로 어린 크리스티나는 생계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탁아소 일을 했고 14세부터 각종 질병 (후두염, 결핵, 신경통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크리스티나는 두 번 약혼을 했으나 결혼하지 못했다. 첫번째 약혼자인 화가 제임스 콜린슨은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기 때문에 파혼했으며, 30세가 넘어서 사귄 두번째 약혼자 찰스 카레이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인이 아니라는 판단 으로 결국 결혼 전에 헤어졌다.   크리스티나는 일곱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31세에 첫 시집 를 출판했다. 장시 長詩 의 경우 두 자매가 악귀들의 불운을 겪는 난해한 주제가 중층적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를 종교적 시험과 구원의 은유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에로틱한 욕구와 사회모순을 폭로하는 것이라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크리스티나는 많은 신앙시와 동시를 지었으며 대부분 간결하고 운률에 철저하다. 그녀의 시 속에는 페미니즘 요소가 흐르고 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녀는 전쟁, 노예제도, 동물학대, 미성년매춘에 적극 반대했으며 친구서클에서 활동하는 한편 매음굴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했다.   크리스티나는 모더니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70년대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 재평가되어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여성시인으로 조명되었다. 용모는 아주 예쁜 편은 아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애인은 어느 화가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약혼자 카레이와 헤어진 36세 이후 그녀는 이웃을 위해 대신 속죄하는 훌륭한 삶을 살았다.   점점 더 신경통이 심해져 고생했으며 40대 초에는 큰 의지가 되었던 오빠 단테가 쓰러져 10년간 누워 있다가 사망했다. 그 충격 때문인지 최후의 12년 간은 침묵의 삶을 살다가 1894년 12월, 만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405    엄마, 어마이, 어머니, 오마니, 어머님, 모친... 댓글:  조회:3697  추천:0  2016-05-18
1  어머니   박형준     낮에 나온 반달, 나를 업고 피투성이 자갈길을 건너온 뭉툭하고 둥근 발톱이 혼자 사는 변두리 창가에 걸려 있다 하얗게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나가버린, 낮에 잘못 나온 반달이여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문학과지성사. 199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2 어머니          박성우   끈적끈적한 햇살이 어머니 등에 다닥다닥 붙어 물엿인 듯 땀을 고아내고 있었어요   막둥이인 내가 다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일요일이었던 그날 미륵산에 놀러 가신다며 도시락을 싸셨는데 웬일인지 인문대 앞 덩굴장미 화단에 접혀 있었어요 가시에 찔린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엉덩이 들썩이며 잡풀을 뽑고 있었어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어머니, 지탱시키려는 듯 호미는 중심을 분주히 옮기고 있었어요 날카로운 호밋날이 코옥콕 내 정수리를 파먹었어요   어머니 미륵산에서 하루죙일 뭐허고 놀았습디요 뭐허고 놀긴 이놈아, 수박이랑 깨먹고 오지게 놀았지       ―시집『거미』(창작과비평, 2002)   ------------------------------------ 3 어머니   이시영   어머니 이 높고 높은 아파트 꼭대기에서 조심조심 살아가시는 당신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듭니다 죽어도 이곳으론 이사 오지 않겠다고 봉천동 산마루에서 버티시던 게 벌써 삼년 전인가요? 덜컥거리며 사람을 실어 나르는 엘리베이터에 아직도 더럭 겁이 나지만 안경 쓴 아들 내외가 다급히 출근하고 나면 아침마다 손주년 유치원길을 손목 잡고 바래다주는 것이 당신의 유일한 하루 일거리 파출부가 와서 청소하고 빨래해주고 가고 요구르트 아줌마가 외치고 가고 계단청소 하는 아줌마가 탁탁 쓸고 가버리면 무덤처럼 고요한 14층 7호 당신은 창을 열고 숨을 쉬어보지만 저 낯선 하늘 구름조각말고는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허리 펴고 일을 해보려 해도 먹던 밥 치우는 것말고는 없어 어디 나가 걸어보려 해도 깨끗한 낭하 아래론 까마득한 낭떠러지 말 붙일 사람도 걸어볼 사람도 아예 없는 격절의 숨막힌 공간 철컥거리다간 꽝 하고 닫히는 철문 소리 어머니 차라리 창문을 닫으세요 그리고 눈을 감고 당신이 지나쳐온 수많은 자죽 그 갈림길마다 흘린 피눈물들을 기억하세요 없는 집 농사꾼의 맏딸로 태어나 광주 종방의 방직여공이 되었던 게 추운 열여덟 살 겨울이었지요? 이 틀 저 틀로 옮겨 다니며 먼지구덕에서 전쟁물자를 짜다 해방이 되어 돌아와 보니 시집이라 보내준 것이 마름집 병신아들 그 길로 내차고 타향을 떠돌다 손 귀한 어느 양반집 후살이로 들어가 다 잃고 서른이 되어서야 저를 낳았다지요 인공 때는 밤짐을 이고 끌려갔다 하마터면 영 돌아오지 못했을 어머니 죽창으로 당하고 양총으로 당한 것이 어디 한두번인가요 국군이 들어오면 국군에게 밥해주고 밤사람이 들어오면 밤사람에게 밥해주고 이리 뺏기고 저리 뜯기고 쑥국새 울음 들으며 송피를 벗겨 저를 키우셨다지요 모진 세월도 가고 들판에 벼이삭이 자라오르면 처녀적 공장노래 흥얼거리며 이 논 저 논에 파묻혀 초벌 만벌 상일꾼처럼 일하다 끙 당을 이고 들어오셨지요 비가 오면 덕석걷이, 타작 때면 홑태앗이 누에철엔 뽕걷이, 풀짐철엔 먼 산 가기 여름 내내 삼삼기, 겨우내내 무명잣기 씨 부릴 땐 망태메기, 땅 고를 땐 가래잡기 억세고 거칠다고 아버지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지만 머슴들 속에 서면 머슴 밭고랑에 엎드리면 여름 흙내음 물씬 나던 아 좋았을 어머니 그 너른 들 다 팔고 고향을 아주 떠나올 땐 나 죽으면 일하던 진새미밭 강 묻어 달라고 다짐다짐 하시더니 오늘은 이 도시 고층아파트의 꼭대기가 당신을 새처럼 가둘 줄이야 어찌 아셨습니까 엘리베이터가 무겁게 열리고 닫히고 어두운 복도 끝에 아들의 구둣발 소리가 들리면 오늘도 구석방 조그만 창을 닫고 조심조심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는 흰 머리 파뿌리 같은 늙으신 어머니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4』(국립공원, 2007)   ---------------------- 4 어머니 생각      이시영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부부 외출할 때나 출근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미시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 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월간『현대시학』(2011, 7월호)     -------------------------- 5 어머니   양명문   어머니, 마음 푸욱 놓으시고 어서 여기 앉아 계셔요. 봄이면 살구꽃 곱게 피고, 가을이면 대추 다닥다닥 열리는 집 들, 네모났던 섬돌이 귀가 갈리어 두루뭉실하게 된, 진짜 우리 집이올시다. 어머니, 아무런 일이 일어나도, 가령 땅 위에다 꿇는 피로 꽃무늬를 놓더라도, 여기를 떠나지 마시고 앉아 계셔요. 여기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적부터, 돌도끼로 나무 찍던 그 옛날부터 살아 온, 하늘 맑고 물 맑은 동네. 여기는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들이 살아야 할, 잘 살아야 할, 진짜 아들의 땅이니까요. 어머니, 여기 앉으셔요.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6 어머니 김초혜   한 몸이었다가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계간『주변인과詩』(2010. 겨울)   ------------------------------------- 7 어머니 오세영   나의 일곱 살 적 어머니는 하얀 목련꽃이셨다. 눈부신 봄 한낮 적막하게 빈 집을 지키는, 나의 열네 살 적 어머니는 연분홍 봉선화꽃이셨다. 저무는 여름 하오 울 밑에서 눈물을 적시는, 나의 스물한 살 적 어머니는 노오란 국화꽃이셨다. 어두운 가을 저녁 홀로 등불을 켜 드는, 그녀의 육신을 묻고 돌아선 나의 스물아홉 살, 어머니는 이제 별이고 바람이셨다. 내 이마에 잔잔히 흐르는 흰 구름이셨다.     ―시집『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시와 시학사, 1992) -------------------------- 8 어머니 이성부     서 있는 뒷모습에 힘이 꿈틀거린다 머리에 인 광주리 기름병 꼭지 하늘로 뾰족하고 옷 소매 걷어 올린 팔뚝과 불끈 쥔 두 주먹 강동한 치마 아래 두 종아리가 저리 뻣뻣하다 어지러운 세상의 얼굴 속에서도 사랑을 품고 나아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당당한 법이다 내 책상머리에 삼십여 년째 놓여 있는 박수근의 목판화 기름 장수 아낙 마주 앉을 때마다 설악 용아릉*의 험한 바위들과 낭떠러지와 거기 용솟음치는 기운이 내 앞에 나란히 놓인다 위를 겨냥하는 것들은 한결같이 불끈불끈 용틀임을 하지만 언제나 그 안에 슬픔을 다독이며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패배에 고개 숙인 짠한 몰골이 아니라 어려운 삶을 헤쳐나가는 씩씩한 두 다리와 두 팔과 어깨의 저 완강함 가장 낮은 고무신 코도 위를 향하는 저 날카로운 길항佶抗 세계가 그 앞에 엎드려 무릎 꿇게 하는 저 뜨거운 응축凝縮 저 피 울음 다음의 굳센 기립起立과 노여움을 삭여 힘으로 바꿔 만드는 저 고요함이 뒷모습에 그대로 꽃피고 있는 것 나에게는 잘 보인다     * 설악산 내설악의 용아장성능선.     ―시집『도둑 산길』(책만드는집, 2010)   ----------------------- 9 어머니 문숙   부엌 천정에 매달린 형광등 스위치를 당겨도 쉽게 스파크가 일지 않는다 빛이 다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아 깜박거린다 하얗던 몸속으로 검은 시간이 스민다   양 모서리가 캄캄해져 온다 긴 시간 나를 굽어보며 내 모퉁이를 환하게 비추던 한 생애가 속절없이 저물고 있다       ㅡ시집『단추』(천년의시작, 2006) ------------------------- 10 어머니 6   정한모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 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아내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진주를 다시 쓰린 눈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새벽』. 일지사. 1975 :『정한모 시전집』. 포엠토피아. 2002)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11 어머니 남진원   사랑스러운 것은 모두 모아 책가방에 싸 주시고, 기쁨은 모두 모아 도시락에 넣어 주신다. 그래도 어머니는 허전하신가봐. 뒷모습을 지켜보시는 그 마음 나도 알지.       (『서울 지하철 시』. 3호선 충무로역에서)   --------------------------------- 12 어머니   김영무       춘분 가까운 아침인데 무덤 앞 상석 위에 눈이 하얗다   어머님, 손수 상보를 깔아놓으셨군요 생전에도 늘 그러시더니 이젠 좀 늦잠도 주무시고 그러세요 상보야 제가 와서 깔아도 되잖아요       ㅡ제2시집『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창비, 1998) ------------------------ 13 그믐달   천양희   달이 팽나무에 걸렸다 어머니 가슴에 내가 걸렸다 내 그리운 山번지 따오기 날아가고 세상의 모든 딸들 못 본 척 어머니 검게 탄 속으로 흘러갔다 달아 달아 가슴 닳아 만월의 채 반도 못 산 달무리진 어머니.       -시집『마음의 수수밭』(창작과비평사, 1994)   ---------------------------- 14 어머니의 땅 임영조   한식날 산소에 갔다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사드린 땅 파주군 광탄면 신산리 성당묘원 남향받이 여섯 평 그 한적한 유택(遊宅)에는 바람과 햇살이 자주 놀러와 까만 빗돌 위에 하얀 그리움 가물가물 새겨 넣고 있었다 한평생 어머니의 믿음은 높은 하늘과 정직한 흙뿐 그래서 작은 유택 뜰에도 햇살을 가득 풀어놓고 사실까 바람도 몇 타래 불러들여 창(唱)을 듣고 한시름 잊듯 내내 주무시는 것일까 분향하고 읍하고 잔을 올리면 문득 귀에 쟁쟁 울리는 말씀 (너희들도 별탈 없이 사느냐?) 저승에서 이승으로 타전한 푸른 잔디가 어머니의 안부처럼 자상한 궁서체(宮書體)로 돋아나 새록새록 반갑고 눈이 부셨다.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1(제2시집)』(천년의 시작, 2008)   ----------------------------- 15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던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 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시집『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문학사상, 2005) http://www.kll.co.kr/element_express/pg_releaseview.php?id_l=221481&pn_0=2&pn_1=20   -------------------------------------- 16 어머니 발톱을 깎으며 유강희   햇빛도 뱃속까지 환한 봄날 마루에 앉아 어머니 발톱을 깎는다 아기처럼 좋아서 나에게 온전히 발을 맡기고 있는 이 낯선 짐승을 대체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싸전다리 남부시장에서 천 원 주고 산 아이들 로봇 신발 구멍 난 그걸 아직도 싣고 다니는 알처럼 쪼그라든 어머니의 작은 발, 그러나 짜개지고, 터지고, 뭉툭해지고, 굽은 발톱들이 너무도 가볍게 툭, 툭, 튀어 멀리 날아갈 때마다 나는 화가 난다 저 왱왱거리는 발톱으로 한평생 새끼들 입에 물어 날랐을 그 뜨건 밥알들 생각하면 그걸 철없이 받아 삼킨 날들 생각하면       -현장비평가가 뽑은『올해의 좋은시』(현대문학, 2009) ----------------------- 17 어머니의 기도   모윤숙   높이 잔물 지는 나뭇가지에 어린 새가 엄마 찾아 날아들면, 어머니는 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산 위 조그만 성당 안에 촛불을 켠다. 바람이 성서를 날릴 때 그리고 들리는 병사의 발자국 소리들! 아들은 어느 산맥을 넘고 있나 보다 쌓인 눈길을 헤엄쳐 폭풍의 채찍을 맞으며 적의 땅에 달리고 있나 보다. 애달픈 어머니의 뜨거운 눈엔 피 흘리는 아들의 십자가가 보인다. 주여! 이기고 돌아오게 하소서. 이기고 돌아오게 하소서.     -시집《풍랑》(1951) 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18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함민복   여보시오― 누구시유 ― 예,저예요 ― 누구시유, 누구시유 ― 아들, 막내아들 ― 잘 안들려유 ―잘. 저라구요, 민보기 ― 예, 잘 안들려유 ― 몸은 좀 괜찮으세요 ― 당최 안들려서 ― 어머니 ―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 두 내우다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 예, 죄송합니다 안들려서 털컥.   어머니 저예요 ― 전화끊지 마세요 ―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 두 내우다 예, 저라니까요!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어머니. 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안어들머려니서 털컥.   달포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네 어머니가 자동응답기처럼 전화를 받았네 전화를 받으시며 소 귀에 경을 읽어 주시네 내 슬픔이 맑게 깨어나네        -시집『자본주의의 약속』(세계사, 1994)   ---------------------- 19 외상값    신천희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 열 달동안 세들어 살고도 한 달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유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계간『문학선』(2006년 겨울호)   ------------------------- 20 어머니의 기도   모윤숙   높이 잔물 지는 나뭇가지에 어린 새가 엄마 찾아 날아들면, 어머니는 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산 위 조그만 성당 안에 촛불을 켠다. 바람이 성서를 날릴 때 그리고 들리는 병사의 발자국 소리들! 아들은 어느 산맥을 넘고 있나 보다 쌓인 눈길을 헤엄쳐 폭풍의 채찍을 맞으며 적의 땅에 달리고 있나 보다. 애달픈 어머니의 뜨거운 눈엔 피 흘리는 아들의 십자가가 보인다. 주여! 이기고 돌아오게 하소서. 이기고 돌아오게 하소서.     -시집《풍랑》(1951) 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21 어머니 닮네요 이길원       밤새 고기 재우고 김밥말던 아내가 눈부비는 내게 운전대 쥐어주고 아침해 깨우며 전방으로 달리더니 "필승"이라 외치는 아들어깨 안고 애처럼 우네요   하루내내 기차타고 버스타고 전방에서 하룻밤을 기다리다 철조망 안에서 김밥 보퉁이 펴며 돌아서 눈물 감추던 어머니처럼 아내도 우네요   아픈데 없냐 힘들지 않냐 많이 먹어라 어머니가 제게 하시던 말을 아내도 하네요 손잡아 보고 얼굴 만져 보고 어머니가 제게 눈물 그렁이듯 그렁이네요   아내의 얼굴 속에 팔순 어머니 주름진 얼굴       ―시집『계란껍질에 앉아서』(시문학사, 1998) ---------------- 22 버스에서 자는 어머니 ―고형렬(1954∼)     흰 양말에 남자 고무신을 신었다. 통치마 아래 반들거리는 정강이 항포돛색 보자기로 네 귀를 묶고 풀다라를 안고 졸고 있었다. 엷은 구름에 바다는 훤한 새벽 불켜고 버스는 북쪽으로 간다. 자식들의 늦은 등교 찻간에서 나는 동해안 어머니를 자주 보게 된다. 옆구리에 혹마냥 불거진 흔들리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보고 나는 해송 달아나는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관광 여름 한철을 따라서 어머니는 주문진으로 나가시는가 보다. 언덕바지나 동구에 삑 설 때마다 찰싹찰싹 어린 파도 소리 들린다. 저러고 눈만 감은 어머니를 나는 바람결에 알고 있다, 어머니는 해변가 여자가 아닌가. 그러나 지금 조으는 6척 어머니 짚또아리 드신 장사 같은 어머니는 아무 표정도 없이 자고 계신다. 더 위로 위로 오늘은 가시나 보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129』(동아일보. 2013년 07월 12일) ------------------- 23 후레자식 김인육   고향집에서 더는 홀로 살지 못하게 된 여든셋, 치매 앓는 노모를 집 가까운 요양원으로 보낸다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 거기가 외려 어머니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1년도 못가 두 손 든 아내는 빛 좋은 개살구들을 골라 여기저기 때깔 좋게 늘어놓는다, 실은 늙은이 냄새, 오줌 지린내가 역겨워서고 외며느리 병수발이 넌덜머리가 나서인데 버럭 고함을 질러보긴 하였지만, 나 역시 별수 없어 끝내 어머닐 적소(適所)로 등 떠민다   에비야, 집에 가서 같이 살면 안 되나? 어머니, 이곳이 집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나는 껍질도 안 깐 거짓말을 어머니에게 생으로 먹이고는 언젠가 나까지 내다버릴지 모를 두려운 가족의 품속으로 허겁지겁 돌아온다 고려장이 별 거냐 제 자식 지척에 두고 늙고 병든 것끼리 쓸리어 못 죽고 사는 내 신세가 고령장이지   어머니의 정신 맑은 몇 가닥 말씀에, 폐부에 찔린 나는 병든 개처럼 허정거리며 21세기 막된 고려인의 집으로 돌아온다 천하에 몹쓸, 후레자식이 되어 퉤퉤, 돼먹지 못한 개살구가 되어   ―계간『다층』(2009, 여름호) --------------------------- 24 어머니   류시화     시가 될 첫 음절, 첫 단어를 당신에게서 배웠다   감자의 아린 맛과 무의 밑동에서 묻은 몽고반점의 위치와 탱자나무 가시로 다슬기를 뽑아 먹는 기술을 그리고 갓난아기일 때부터 울음을 멈추기 위해 미소 짓는 법을 내 한 손이 다른 한 손을 맞잡으면 기도가 된다는 것을   당신은 내게 봄 날씨처럼 변덕 많은 육체와 찔레꽃의 예민한 신경을 주었지만 강낭콩처럼 가난을 견디는 법과 서리를 녹이는 말들 질경이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내 시는 아직도 어린 시절 집 뒤에 일군 당신의 텃밭에서 온다 때로 우수에 잠겨 당신이 바라보던 무꽃에서 오고 비만 오면 쓰러져 운다면서 당신이 일으켜 세우던 해바라기에서 오고 내가 집을 떠날 때 당신의 눈이 던지던 슬픔의 그물에서 온다   당신은 날개를 준 것만이 아니라 채색된 날개를 주었다 더 아름답게 날 수 있도록   하지만 당신의 경사진 이마에 나는 아무것도 경작할 수 없다 삶이 파 놓은 깊은 이랑에 이미 허무의 작물이 자라고 있기에       ―시집『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문학의 숲, 2012)      -------------------------------- 25 어머니   최문자     알고 있었니 어머니는 무릎에서 흘러내린 아이라는 거 내 불행한 페이지에 서서 죄 없이 벌벌 떠는 애인이라는 거 저만치 뒤따라오는 칭얼거리는 막내라는 거 앰뷸런스를 타고 나의 대륙을 떠나가던 탈옥수라는 거   내 몸 어디엔가 빈방에 밤새 서 있는 여자 지익 성냥불을 일으켜 촛불을 켜주고 싶은 사람   어머니가 구석에 가만히 서서 나를 꺼내 읽는다   자주 마음이 바뀌는 낯선 부분 읽을 수 없는 곳이 자꾸 생겨나자 몸밖으로 나간 어머니 알고 있었니 기도하는 손을 가진 내 안의 양 한 마리       ―시집『파의 목소리』(문학동네, 2015)   ------------------------ 26   어머니의 계절     최영랑     빈집엔 봄이 오지 않고 여름도 오지 않고 빈집의 계절만이 서성거린다     빈집은 쉽게 들어갈 수 없고 대문 안에 들어서도 속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곳은 시끄럽고 어스름한 저녁 누구라도 거부하는 빈집만의 습관이 있다     그림자 없는 대문에서 빈집의 툇마루를 바라보면 그곳은 포근했던 무릎, 포근한 미소가 떠올라 헐렁한 하루가 부풀었다 사라진다 눈을 감고 나는 경직된 다리를 뻗는다     가끔 무릎을 내어주는 거기, 정류장처럼 너그럽다 잡초들이 슬그머니 들어와 영역 다툼에 휘말려도 장독대의 도깨비풀이 항아리 속을 욕심내어도 그냥 말줄임표만 사용할 뿐이다     빈집은 기다린다 밤나무가 뒷마당에 밤톨을 툭 툭 던지고 바람이 기왓장을 와장창 깨뜨릴 때도 빈집은 그냥 “좋은 날이야”라고 말한다 빈집은 어느 때보다 여유로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집이 자꾸만 멀어져 간다 그 집에 가까이 가야 한다 들어가 마당을 지나 툇마루에 가서 닳은 무릎을 위로해주어야 한다 어머니의 계절       《201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죽림 김승종 시모음 새벽 (乾)(련작시 7수)     竹林 김승종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 남들을 위한 하늘, 그렇게도 성스럽게 성스럽게 펼쳐 주셨소이다...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 자신을 위한 하늘, 단 한자락도 아니 갖고 아니 갖고 가셨소이다...   아 - 버 - 님 - ...       새벽(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 남들을 위한 종을, 그렇게도 수천만번 수천만번 쳐주셨소이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 자신을 위한 종은, 단 한번도 아니 치시고 아니 치시고 가셨소이다...     어 - 머 - 님 - ...           구리종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억만겁의 맘속 한 졸가리에 구리종 하나를 달아매여 둔적 있는가유...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자애로웠던 어머님를 위해 단 한번이라도 그 구리종을 울려 본적 있는가유...   오 호 라,ㅡ 하 늘이여ㅡ ...       하늘 한자락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억만겁의 맘속 한 구석빼기에 하늘 한자락을 베여다 둔적 있는가유...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다정다감했던 아버님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그 하늘 한자락을 펼쳐 드린적 있는가유...   오 호 라,ㅡ 구 리 종이여ㅡ ...       무릎고소장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붉은 장미 한송이와 꽃브래지어와 꽃팬티와 꽃금가락지이며를 들고 사랑하는 이 앞에서 찬란히 무릎을 불꽃티게 쪼개본적 있었지...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무명모시두건과 무명젖가림띠와 무명서답과 함께 고뿔한약 반에 반첩이라도 유난히 정히 들고 세상에 둘도 없는 엄마 앞에서 새하야니 무릎을 하냥 쪼개본적 단 한번도 없었지...   아희야,- 삶의 사시(四時) 철철 이 시지기 눔의 무릎 흐려 들쑤셔놓는다...       아버지의 호롱불     그 어느 날- 그립웠습니다 아버지의 호롱불이 또 그립웠습니다 빛과 빛끼리 뒤엉켜 저만치 물러서있고 어둠과 어둠끼리 짓뭉개치며 어둠의 그 두께와 깊이를 시위하며 나 아닌 나를 흑운위에서 엇밟습니다   하지만 주름살투성이인 소리와 돌에 맞아 엉망진창이 된 소리가 빛 에돌아 어둠의 틈 사이를 굳이굳이 비집고 들어오고 나 아닌 십자가에서 슬프게 합니다 아버지의 호롱불이 또 그립웠습니다 그립웠습니다 그 어느 날...   오호라, 오늘 따라 정나미 그립고 그리운 아버지의 호롱불이여!       새벽 . 2     이제껏 이 竹琳 詩지기 두 어께에 성스러운 가 이렇게 짊어져 있는줄을 마냥 몰랐습니다...   이제껏 이 竹琳 詩지기 가슴속 모퉁이에 성금요일(聖金曜日)과 성심성월(聖心聖月)이 그렇게도 효행효오(孝行曉悟)와 함께 이빠진 그릇과 더불어 터엉 비여 있음을 참 소소리 몰랐습니다...   오 호 라,ㅡ 부모라는 공통분모앞에 선 바 보여ㅡ ...   그리고, 바보들의 새벽은,- 핫,- 무사함둥...   [시작노트];-   등단 30년, 세월은 이 竹林에게 시인이란 왕관을 씌워주려 했으나 이 눔은 굳이 詩지기라는 밀짚모자를 고집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일단 개코같은 작가, 시인라는 이름이 물우의 기름처럼 뜨니 생일축사, 회갑축사, 추도사를 써달라는 청구가 너무나 기승부려 술 한잔 얻어먹고 써줬고 또한 그 집안대신 축사해 주기도 했었다. 그리곤 부조돈도 톡톡히 내고 머리를 조아리고 "내키지 않은 절을 하기"가 기수부지였다... 그럴때마다 이 詩지기는 나의 아버님과 어머님을 떠올리군 했었다... 왜?... 그것은 당당한 작가로서, 시인으로서, 또한 아들로서 나의 아버님, 나의 어머님에 대하여 회갑축사, 추도사를 만장같이 써드리지 못한 회한의 끝자락이였기 때문이였다. 하여 "아버님"과 "어머님"에 관련된 시를 쓰려고 무등 오랜 시간을 삭혔었다. 그것은 수많은 고금중외 작가, 시인들이 "어머님"에 대하여 시를 너무나 많이 썼고 쓰고 있었는데, 그 모두가 편편 천평대등소유적인것이여서 나로서는 무척 거부감이 억척같았었다. 그리고 "아버님"에 대한 시는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그것마저도 별 "볼거리"가 없었었다... 저 세상으로 간 나의 "아버님"과 "어머님"을 거룩같이 표현하려면 남들의 답습을 꼭 회피해야 한다고, 이 세상에 詩지기만의 "시"를 써야한다고 고민, 고민하고 연금하던 끝에 잉태한 졸시가 "새벽"과 "하늘"인것이다. 그외 시는 불확실한 시대에 효(孝)문화가 썩어가고 있고 또한 사라져가고 있는 이때, 저 세상으로 간 "아버님"과 "어머님"에게 이 불효자인 詩지기가 늦게나마 두무릎 꿇고 드리는 "獻詩"이며 "축사"이며 또한, "추도사"임을 이실직고하고싶다... 아버님ㅡ, 어머님ㅡ, 오늘도 이 불효자인 詩지기는 꺼이꺼이 울고 있쑤꾸매... 아범... 어멈...                                                       ㅡ 섣부리 잠못드는 그믐께 죽림으로부터.           ///////////////////////////////////////////////////////////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정리] 갈래-자유시. 서정시 성격-회상적, 감각적 율격-내재율 어조-엄마를 걱정하고 기다리는 애틋한 어조 심상-시각, 촉각, 청각적 심상 표현-감각적 심상을 통해 외롭고 두려웠던 어린 시절의 가난 체험을 드러냄 제재-가난했던 어린 시절 주제-장에 간 엄마를 걱정하고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외로움 출전-입 속의 검은 잎(1989)   * 화자 : 나   * 상황 : 빈방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우는 아이   * 주제 : 장에간 엄마를 기다리며 보낸 유년시절의 외로움   [짜임] 1연-어머니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불안한 마음 2연-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현재의 나   [감상] 이 작품은 시인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체험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비유와 개성적인 표현 에 의해 형상화된다. 1연에는 두 개의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형으로 그려진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가서 해가 '시든 지 오래' 되어서야 '배추 잎 같은' 지친 발소리를 내며 돌아오시던 엄마의 고된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엄마가 시장에 가고 나면 '빈 방'에 '찬밥처럼' 홀로 남겨져 '어둡고 무서워' '훌쩍거리던' 어린 시절 화자의 외로움과 공포에 대한 이야기이다. 2연에서, 화자는 1연에서의 정황을 '지금까지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고 포괄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그 유년기의 고통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음을 표현하였다. 이렇듯, 이 시는 어린 시절 화자의 '그 어느 하루'를 제시함으로써 화자의 정서와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자] 기형도(奇亨度, 1960∼1989)   시인. 1960년 2월 16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79년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법계열에 입학하여 1985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문화부·편집부에서 일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89년 시집 출간을 위해 준비하던 중,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대학 재학 시절 윤동주문학상 등 교내 주최 문학상을 받았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가 당선되면서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중앙일보에 근무하는 동안 여러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주로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 (1989),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1990), 《기형도 전집》(1999) 등
404    세계 명시모음 댓글:  조회:3488  추천:0  2016-05-15
(클릭해보기) 가을 (아폴리네르) 가을 (흄) 가을날 (릴케) 가을의 노래 (베를렌)   가을의 노래 (보들레르)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감미롭고 조용한 사념 속에 (셰익스피어) 강설 (유종원) 거룩한 이여 (휠더들린) 검은 여인 (생고르) 경례 : 슈미트라난단 판트(타고르) 고향 (아이헨도르프) 고향 (휠더를린) 관저(시경) 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랭보) 교감 - 상응 (보들레르) 굴뚝소제부 (브레이크) 귀거래사 (도연명) 귀안 (두보) 그리움 (실러) 기탄잘리 (타고르) 나그네여 보라 (오든) 나는 당나귀가 좋아 (잠) 나무들 (킬머) 나이팅게일 (키츠) 낙엽 (구르몽) 낙엽송 (기타하라 하큐슈) 난 후 곤산에 이르러 (완채)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베를렌) 내게는 그 분이 (사포) 내 사랑 (로버트 번즈) 너는 울고 있었다 (바이런)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디킨스) 노래 (로제티) 노래의 날개 위에 (하이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던) 눈 (구르몽) 눈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 (프로스트)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니벨롱겐의 노래 달 (왕유)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브라우닝) 당신을 위해 ( 가키노모토 히토마로) 동방의 등불 (타고르) 띠 (발레리) 루바이야트 (오마르 카얌) 로즈 에일머 (랜도) 로렐라이 (하이네) 마리아의 노래 (노발리스) 망여산 폭포 (이백) 먼옛날 (로버트 버즈) 모랫벌을 건너며 (테니슨) 무지개 (워즈워스) 미뇽 (괴테)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 바다의 고요 (괴테) 바다의 산들 바람 (말라르메) 바닷가에서 (타고르) 바닷가에서 (고티에) 발견 (괴테) 밤의 꽃 (아이헨도르프) 밤의 찬가 (노발리스) 배 (지센) 백조 (말라르메) 벗을 보내며 (이백) 뻐꾸기에 부쳐 (워즈워스) 병거행 (두보) 병든 장미 (브레이크) 복숭아나무 봄 (도를레앙) 봄 (홉킨스) 부두 위 (흄) 붉디 붉은 장미 (번즈) 비잔티움의 향해 (예이츠 3년 후 (베를렌) 사랑의 비밀 (블레이크) 사랑의 철학 (셸리) 사자와 늑대와 여우 (라 퐁테느) 산비둘기 (콕토) 산중문답 (이백)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슈킨) 삼월 (워즈워스) 상응 - 교감 (보들레르) 새벽 (랭보) 새벽으로 만든 집 (모마데이) 서풍의 노래 (셸리) 석류들 (발레리) 석호리 (두보) 소네트76 (세익스피어) 송원이사안서 (왕유) 수선화 (워즈워스) 숲에 가리라 (하이네) 시 (네루다) 시법 (매클리시) 시에 불리한 시대 (브레히트) 신곡 (단테) 신비의 합창 (괴테) 실락원 (밀턴)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하며 (브리지즈) 아프리카 (디오프)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야간통행금지 (엘뤼아르) 에너벨리 (에드거A .포) 야청도의성 (양태사) 어느 인생의 사랑 (브라우닝) 어리지만 자연스러운 것(코울리지) 어린이의 기쁨 (블레이크) 어부 (굴원) 엘레느에게 보내는 소네트 (롱사르) 여인에게 보내는 목동의 노래(말로) 예언자 (푸슈킨) 예언자 (칼리 지브란) 오디세이 (호메로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오월의 노래 (괴테) 오후의 때 (베르하렌) 올랭피오의 슬픔 (위고) 옷에게 바치는 송가 (네루다) 우리들이 헤어진 때 (바이런) 운명에 버림받고 세상의 사랑못받어도 (셰익스피어) 울려라 힘찬 종이여 (테니슨) 원정 (타고르)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이 꺼질 때 (셸리) 이니스프리호수의 섬 (에이츠) 이 밤에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네루다) 이별 (아흐마또바) 인간과 바다 (보들레르) 인정 (왕유) 일리아스 (호메로스) 잃어버린 술 (발레리) 자유 (엘뤼아르) 잠의 천사 (발레리) 적벽부 (소식) 종이배 (타고르) 지평선을 향하여 (아마두 샤물루) 지하철정거장에서 (파운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키츠) 출정가 (몽고민요) 켄터베리 이야기 (초서) 파도 속의 독백 (네루다) 풀벌레 평화 (홉킨스) 풍차 (베르하렌) 프로테우스 (괴테) 피아노 (로렌스) 하늘은 지붕 너머로 (베를렌) 하늘의 옷감 (예이츠) 헤어짐 (랜도) 헬렌에게 (바이런) 호수 (라마르틴) 호수 위에서 (괴테) 황무지 (엘리엇) 흐르는 내 눈물은 (하이네) 흰달 (베를렌) 흰 새들 (예이츠)  
403    미국 시인 - 에드가 엘런 포우 댓글:  조회:2551  추천:0  2016-05-15
에드가 엘런 포우 1809~1849 미국의 시인·소설가·비평가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년도 못 되어 퇴학당하였으며, 그 후 군대에 들어가 한 때,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다니기도 하였다.   그는 등의 단편 소설을 통하여 오싹한 전율 과 공포를 예술적으로 표현하였고, 근대 추리소설을 개척한 작가이며, 시인으로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그의 작품들은 보들레르, 말라르메 등에 의하여 유럽에 번역되어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일생은 매우 불행하였으나 미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로 손꼽힌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 리지아> 등이 있다.   에너벨 리     아주 오래고 오랜 옛날 일이었지요.   바닷가 한 왕국에 애너벨 리라고 불리우는   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 아가씨는 나를 사랑하고 내게 사랑받는 것 외에는   아무 다른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나도 아이였고, 그녀 또한 아이었습니다.   바닷가 왕국에서,   그러나 우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사랑했습니다.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하늘을 나는 치천사(熾天使)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했던 사랑으로 말입니다.   그 때문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바닷가 이 왕국에서,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   나의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싸늘히 얼게 한 것을   그래서 그녀의 지체 높은 친척들이 와서   그녀를 내 곁에서 데려가 바닷가 이 왕국에 있는   무덤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 시는 포가 쓴 마지막 시로서 그의 시 경향을 가장 잘 나타낸다. 이 시에서의 애너벨 리는 그의 부인 버지니아를 가리킨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시는 그런 현실적인 상황을 초월해 그의 시적 상상력이 최대로 집중된 시로 평가된다.     엘도라도   호화롭게 치장한 용감한 기사 하나가   햇볕과 그늘을 지나, 노래를 부르며   오랜 여행을 했네. 엘도라도를 찾아-     그러나 그도 늙고 말았지- 그토록 용맹하던 그 기사도-   엘도라도와 비슷한 곳은 지상엔 아무 데도 없어   그의 가슴 위에 그림자 하나 떨어졌네.     마침내 그가 기진했을 때 그는 순례하는 그림자 하날 만나   '그림자여'그는 물었지 '어디에 있을까- 엘도라도의 땅은?'   '달나라의 산을 넘어 그림자나라의 골짜기 아래 말타고 달리소서, 용감히 달리소서'   그림자는 대답했네- '엘도라도를 찾으신다면!'       엘도라도는 스페인 사람들이 상상했던 남미의 아마존 강가에 있다고 하는 황금의 나라를 일컷지만, 여기서는 한때 황금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캘리포니아를 가리키는 것 같다.         헬렌에게   헬렌이여, 그대 아름다움은 마치 그 옛날 니케아의 돛단배 같아라.   방랑에 지친 나그네를 태우고 향기로운 바다를 건너 유유하게 고향 해변으로 실어다 주던-     그대의 히아신스 같은 머리카락, 우아한 모습, 여신 나이아스 같은 그대 자태는   오랫동안 거친 바다에서 헤매던 나를 그 옛적 그리스의 영광, 로마의 웅장함으로 인도하네.     오! 나는 그대가 저 눈부신 창가에 조각처럼 서서 손에 마노의 향불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나니!   아, 그대는 정녕 성스러운 나라에서 오신 여신 프시케와 같아라!       F--s S. O--d에게   사랑받고 싶습니까? 그러시다면 당신 마음이 지금의 길을 떠나지 않도록 하세요!   모든 것을 지금의 당신, 그냥 그대로, 당신 아닌 것은 무엇이든 되지 마세요.     그러면 세상에게는 당신의 상냥한 거동, 당신의 우아함과 아름다운 이상의 아름다움은   끝없는 찬양의 대상이 되리라, 그 때 사랑은---단순한 의무.       F-s S. O-d는 포가 한 때 친하게 사귄 여류시인 프랜시스 서전트 오즈굿(Frances Sargent Osgood)을 가리킨다.       꿈   - 어두운 밤의 환상 속에서 나는 사라져 버린 기쁨을 꿈꾸었다-   하지만 생명과 빛의 꿈에서 깨어 내게 남겨진 건 오직 상한 마음뿐.     아! 지난 옛날을 되비춰 주는 빛으로 세상 온갖 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대낮에도 꿈 아닌 것 무엇이 있으랴?     저 깨끗한 꿈- 저 깨끗한 꿈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꾸짖었을 때   외로운 마음을 인도하여 아름다운 빛처럼 나를 격려하였다.     그 빛, 폭풍과 밤으로 하여 저 멀리에서 떨고 있었다 한들-   '진실'이란 대낮의 별에서 더 깨끗하게 빛나는 것 그 무엇이 있으랴?  
402    미국 시인 - 월트 휘트먼 댓글:  조회:3777  추천:0  2016-05-15
  월트 휘트먼     1819~1892 미국의 시인, 수필가, 저널리스트. 19세기 미국 문학사에서 포우, 디킨슨과 함께 가장 중요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 뉴욕의 브루클린으로 이사해 공립학교를 나온 뒤 인쇄소 사환을 거쳐 식자공일을 했다. 한때 교사직을 갖기도 했지만 1838년 이후에는 주로 브루클린 지역의 많은 신문들을 편집하였다.   1855년에 출판사와 작가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표지에 자신의 초상만을 실은 초판을 발행하였다.   형식과 내용이 혁신적인 시집이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영혼과 육체에 대한 동등한 존중, 열린 정신, 정치적 자유의 향유를 촉구한다.   형식은 정형을 타파한 자유 형식이었다. 이 작품으로 휘트먼은 자유시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면서 미국 문학사에서 혁명적인 인물로   등장하였다. 그는 유례없이 한 개인으로서의 를 대담하게 찬양할 뿐 아니라, 육체와 성욕까지도 강렬하게 표현했다. 이 시집을 읽은 에머슨은 당장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재치와 지혜가 넘치는 비범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보낸 편지를   쓴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1855년 시집 《풀잎》을 자기 돈으로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노래한 것이었다.   논문에서도 미국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였다.   1865년 남북 전쟁을 소재로 한를 출 판하고, 이듬해 그가 존경하던 링컨 대통령에 대한 추도시를 발표하였다.   오! 선장, 나의 선장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무서운 항해는 끝났다.   배는 온갖 난관을 뚫고   추구했던 목표를 획득하였다.   항구는 가깝고,   종소리와 사람들의 환성이 들린다.   바라보면 우람한 용골돌기,   엄숙하고 웅장한 배.   그러나 오오 심장이여! 심장이여! 심장이여!   오오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이여,   싸늘하게 죽어 누워있는   우리 선장이 쓰러진 갑판 위.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일어나 종소리 들으오, 일어나시라-   깃발은 당신 위해 펄럭이고-   나팔은 당신 위해 울리고 있다.   꽃다발과 리본으로 장식한 화환도   당신을 위함이요-   당신 위해 해안에 모여든 무리.   그들은 당신을 부르며,   동요하는 무리의 진지한 얼굴과 얼굴.   자, 선장이여! 사랑하는 아버지여!   내 팔을 당신의 머리 아래 놓으오.   이것은 꿈이리라.   갑판 위에 당신이 싸늘하게 죽어 쓰러지시다니.   우리 선장은 대답이 없고,   그 입술은 창백하여 닫힌 채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는 내 팔을 느끼지 못하고,   맥박도 뛰지 않고 의지도 없으시다.   배는 안전하게 단단히 닻을 내렸고,   항해는 끝났다.   무서운 항해에서 승리의 배는   쟁취한 전리품을 싣고 돌아온다.   열린 길의 노래 두 발로 마음 가벼이 나는 열린 길로 나선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세상을 앞에 두니 어딜 가든 긴 갈색 길이 내 앞에 뻗어 있다.     더 이상 난 행운을 찾지 않으리. 내 자신이 행운이므로. 더 이상 우는소리를 내지 않고, 미루지 않고, 요구하지 않고,   방안의 불평도, 도서관도, 시비조의 비평도 집어치우련다. 기운차고 만족스레 나는 열린 길로 여행한다.     대지, 그것이면 족하다. 별자리가 더 가까울 필요도 없다.   다들 제 자리에 잘 있으리라. 그것들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소용되면 그뿐 아니랴.     (하지만 난 즐거운 내 옛 짐을 마다하지 않는다. 난 그들을 지고 간다, 남자와 여자를, 그들을 어딜 가든 지고 간다.   그 짐들을 벗어버릴 수는 없으리. 나는 그들로 채워져 있기에. 하지만 나도 그들을 채운다)       강 건너는 기병대   초록색 섬 사이를 누비며 가는 긴 대열, 뱀같이 꾸불꾸불하게 가고 있다.   해빛에 무기가 번쩍인다- 들으라 음악같은 울림소리,   보라, 은빛 강물, 그 물 첨벙거리며 건너다 목을 축이는 말들, 보라, 갈색 얼굴의 병사들, 각각의 무리들과 사람들 그림을,   말 안장에 앉아 방심한 듯 쉬고 있고, 한편으로는 건너편 뚝에 올라가고 있는 병사들, 지금 강물에 들어가는 병사들,   홍, 청, 순백, 삼색기가 선명하게 바람에 펄럭인다.     낯 모르는 사람에게   저기 가는 낯 모르는 사람이여! 내 이토록 그립게 당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은 내가 찾고 있던 그이, 혹은 내가 찾고 있던 그 여인,(꿈결에서처럼 그렇게만 생각 됩니다.)     나는 그 어디선가 분명히 당신과 함께 희열에 찬 삶을 누렸습니다.   우리가 유연하고, 정이 넘치고, 정숙하고, 성숙 해서 서로를 스치고 지날 때 모든 것이 회상됩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자랐고, 같은 또래의 소년이었고, 같은 또래의 소녀였답니다.   나는 당신과 침식을 같이했고,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만이 아닌 것이 되고, 내 몸 또한 그러 했습니다.     당신은 지나가면서 당신의 눈, 얼굴, 고운 살의 기쁨을 내게 주었고,   당신은 그 대신 나의 턱수염, 나의 가슴, 나의 두손에서 기쁨을 얻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됩니다.   나 홀로 앉아 있거나 혹은 외로이 잠 못 이루 는 밤에 당신 생각을 해야합니다.   나는 기다려야 합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어마지 않습니다.   당신을 잃지 않도록 유의 하겠습니다.     짐승   나는 모습을 바꾸어 짐승들과 함께 살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평온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   나는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땀흘려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환경을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밤 늦도록 잠 못 이루지도 않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 따위를 토론하느라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불만족해 하는 자도 없고, 소유욕에 눈이 먼 자도 없다.   다른 자에게, 또는 수천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 무릎 끓는 자도 없으며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잘난 체하거나 불행해 하는 자도 없다.       시집 '풀잎' 서문에 쓴 시   땅과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필요한 모든 이에에 자선을 베풀라.   어리석거나 제 정신이 아닌 일이면 맞서라. 당신의 수입과 노동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돌려라.   신에 대해 논쟁하지 말라. 사람들에게는 참고 너그럽게 대하라.   당신이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또는 사람 수가 많든 적든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라.   아는 것은 적어도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들. 젊은이들, 가족의 어머니들과 함께 가라.   자유롭게 살면서 당신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 들에 있는 이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교회, 책에서 배운 모든 것을 의심하라. 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첫 민 들 레   겨울이 끝난 자리에서 소박하고 신선하게 아름다이 솟아나서,   유행, 사업, 정치 이 모든 인공품일랑 일찍이 없었든 양, 아랑곳 없이,   수플 소북히 가린 양지 바른 모서리에 피어나 통트는 새벽처럼 순진하게, 금빛으로, 고요히,   새봄의 첫 민들레는 이제 믿음직한 그 얼굴을 선보인다.       나 여기 앉아 바라보노라   나는 앉은 채로 세상의 모든 슬픔을 두루 본다 온갖 고난과 치욕을 바라본다   나는 스스로의 행위가 부끄러워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복받치는 아련한 흐느낌을 듣는다   나는 어미가 짓눌린 삶 속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려 주저앉고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죽어감을 본다   나는 아내가 지아비에게 학대받는 모습을 본다 나는 젊은 아낙네를 꾀어내는 배신자를 본다   나는 숨기려해도 고개를 내미는 시새움과 보람없는 사랑의 뭉클거림을 느끼며, 그것들의 모습을 땅위에서 본다   나는 전쟁, 질병, 압제가 멋대로 벌이는 꼴을 본다 순교자와 죄수를 본다   뱃꾼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일에 목숨을 걸고 나설 차례를 정하려고 주사위를 굴리는 모습을 본다   나는 오만한 인간이 노동자와 빈민과 흑인에게 던지는 경멸과 모욕을 본다   이 모든 끝없는 비천과 아픔을 나는 앉은 채로 바라본다 보고, 듣고, 침묵한다   나 자신의 노래 [나 자신의 노래 1] 나는 나를 예찬하고 나 자신을 노래한다. 그리고 내 것은 네 것이기도 하다. 대체로 내게 속하는 일체의 원자는 마찬가지로 네게도 속하는 것이다. 나는 빈둥빈둥 시간 보내며, 나의 영혼을 초대한다. 나는 마음 편히 몸을 기대고, 빈둥대며 여름 풀의 싹을 응시한다. 나의 혀, 내 피 속의 일체의 원자는 이 땅에서, 이 대기에서 만들어진 것, 나는 여기에서 내 양친에게서 생겼고, 양친은 또 그 양친에게서, 또 그들은 양친에게서, 나는 지금 37세의 완전한 건강체로 시작한다. 죽을 때까지 중단 없기를 바라면서. 종파나 학파는 잠시 두어 두고, 그것이 어떻든 지금 상태로 족하니, 잠시 거기에서 물러나, 그러나 결코 잊진 않고 나는 선악을 다 용납하고 만난을 무릅쓰고 마음껏 말하련다, 본유의 정력으로 거리낌 없이 자연을, 나의 천성을 [나 자신의 노래 2] 집이란 집, 방이란 방은 모두 향기로 가득 차고, 선반도 모두 향기에 차 있다. 나는 그 향기를 들이마시고, 그것을 분간하고 그것을 좋아한다. 그 향기를 증류하면 그것이 날 취하게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진 않겠지. 대기는 향료가 아니다, 그것은 증류수 같아서 맛도 향기도 없다. 그것은 언제나 내 입에 맞아서 나는 그것에 심취한다. 나는 숲가의 둑으로 가서, 순수하게 벌거숭이가 되리라. 나는 나에게 와 닿는 것을 미친 듯이 갈망한다. 내 숨결의 연기, 메아리, 잔물결, 은밀한 속삭임, 사랑뿌리, 비단실, 나무 아귀와 덩굴, 나의 내뱉는 숨결과 들이마시는 숨결, 내 심장의 고동, 내 폐부를 드나드는 피와 공기, 푸른 잎과 마른 잎의 냄새, 바닷가와 거무스레한 바닷돌의 냄새, 창고의 건초 냄새, 선풍의 소용돌이 속에 풀리는 내 목소리의 토해내는 언어의 음향, 몇 번의 가벼운 키스, 몇 번의 포옹, 허리를 감싸는 팔, 연한 가지가 흔들림에 따라 나무 위에 춤추는 빛과 그늘, 혼자 있든 아니면 거리의 혼잡 속이든 들판이나 언덕 기슭 따라 갈 때의 기쁨, 건강체의 감촉, 대낮의 떨리는 소리, 침상에서 일어나 태양을 맞이하는 내 노래. 너는 천 에이커의 땅을 크다고 생각하는가. 이 지구를 굉장하다고 생각했는가. 너는 읽기를 배우는 데 그렇게 오래 연습했는가. 너는 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오늘 하룻밤 하룻밤, 나와 함께 있으면, 너는 모든 시의 근본을 파악한다. 너는 이 지구와 태양의 정수도 파악한다 (기타 천만의 태양이 있다), 너는 이제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통하여 물건을 받아선 안 된다. 그리고 죽은이의 눈을 통하여 보든지, 책 속 도깨비에게서 밥을 얻어 먹어선 안 된다, 너는 이 내 눈을 통하여 보아서도 안 된다, 내게서 무엇을 얻어도 안 된다, 너는 널리 귀를 기울여야 하고, 네 자신의 체로 걸러내야 한다.              [나 자신의 노래 6] 한 아이가 두 손에 가득 풀을 가져오며 “풀은 무엇입니까” 라고 내게 묻는다. 내가 어떻게 그 아이에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애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그것이 필연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나의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거나, 신이 일부러 떨어뜨린 향기나는 기념의 선물일 것이고, 소유주의 이름이 구석 어딘가에 들어 있어서 우리가 보고서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추측한다, 풀은 그 자체가 어린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아이일 것이라고. 혹은 그것은 모양이 한결같은 상형문자일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도 좁은 지역에서도 싹트고, 검둥이 사이에서도, 흰둥이 사이에서도 자라며 태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니그로,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그들에게서 그것을 받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난 깎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털이라고 생각한다. 너 부드러운 풀이여, 나는 너를 고이 다룬다. 너는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싹트는지도 모르겠고, 만일 내가 그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그들을 사랑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마 너는 노인들, 혹은 생후 곧 어머니들의 무릎에서 떼낸 갓난아이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 여기에 그 어머니의 무릎이 있다. 이 풀은 늙은 어머니들의 흰머리에서 나온 것으로선 너무 검다, 노인의 색바랜 수염보다도 검고, 엷게 붉은 입천장 밑에서 나온 것으로서도 너무 검다. 아, 나는 결국 그 숱한 발언들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발언이 아무 의미 없이 입천장에서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젊어서 죽은 남녀에 관한 암시를 풀어낼 수 있었으면 싶다, 또한 노인들과 어머니들, 그리고 그들의 무릎에서 떼낸 갓난아이들에 관한 암시도. 너는 그 젊은이와 늙은이가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는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어딘가에서 살아서 잘 지내고 있다, 아무리 작은 싹이라도 그것은 진정 죽음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생을 추진하는 것이고, 종점에서 기다렸다가 생을 잡는 것은 아니다. 만물은 전진하고 밖으로 진전할 뿐 죽는 것은 하나도 없다, 죽는 것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며, 훨씬 행복한 것이다. [나 자신의 노래 7] 태어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한 자가 있는가. 나는 당장 그나 그녀에게 태어나는 것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행복하다고 이르리라,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임종하는 자와 더불어 죽음의 문을, 산욕하는 갓난아이와 더불어 생의 문을 통고한다, 나는 자기 모자와 신발 사이에 한정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사상을 음미한다, 한 가지도 같은 것은 없고 모두가 선하다. 지구도 좋고 별도 좋다, 그리고 거기에 뒤따르는 것들도 모두 선하다. 나는 지구도 아니고, 지구의 부속물도 아니다, 나는 민중의 벗이고, 반려자다, 그들은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불멸이며, 무한히 깊다, (그들은 어떻게 불멸인가를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세상 만물은 동류끼리 모인다, 나에겐, 나의 남자와 여자, 나에겐, 일찍이 청춘이었던 자들과 여자를 사랑한 일이 있는 자들, 나에겐, 연인과 노처녀를, 나에겐, 모친을, 그리고 모친의 모친을, 나에겐 미소 지은 일이 있는 입술을, 눈물 흘린 일이 있는 눈을, 나에겐, 아이들을, 그리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 옷을 벗어 던져라. 너희들 누구나 나에게 죄가 없다, 재미 없는 자도 배척받은 자도 아니다, 나는 검은 나사천이건, 목면이건 그 옷을 통하여 너희들의 인물을 투시한다, 나는 근처에 있어, 끈질기게 추구하고, 권태를 모르고 흔들려 떨어져 버리지 않는다. [나 자신의 노래 9] 농가의 곡간의 대문은 열려서 준비가 돼 있다, 수확철의 건초가 천천히 끌리는 마차에 높이 실리고, 밝은 햇빛이 그 황갈색과 녹색이 교차하는 짐 위에서 넘실거린다, 쌓인 건초의 느슨한 곳에 한 아름이 더 채워진다. 나도 거기에 있어 돕는다, 나는 건초 짐 위에 사지를 펼치고 돌아온다, 한쪽 도리를 다른 쪽에 포개고서 나는 마차의 가벼운 동요를 느낀다, 나는 외양간 가로대에서 뛰어내려 클로버와 큰조아재비풀을 움켜쥔다, 그리고 거꾸러져 머리가 건초를 뒤집어쓰고 헝클어진다. [나 자신의 노래 10] 홀로, 멀리 황야로, 산으로 나는 사냥간다, 자신의 경쾌함과 쾌활함에 경탄하며 방황한다, 해질 무렵이면 밤을 보낼 안전한 곳을 찾고, 불을 피워서 갓 잡은 사냥감을 굽고, 엽총을 옆에 놓고 끌어 모은 낙엽을 깔고 사냥개와 함께 잠이 든다. 양키 쾌속정이 돛을 하늘에 닿게 달고 번쩍이는 파도와 물안개를 뚫고 달린다, 내 눈은 육지를 응시하고 뱃전에 걸터앉거나 갑판에서 환희의 소리를 지른다. 가공과 조개 파는 이가 일찍 일어나 나를 찾아왔다, 나는 바지 끝을 장화 속에 구겨넣고서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너도 그 날 우리와 함께 있어 조개 남비 주변에 모였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먼 서부의 야외에서 벌어진 한 덮엽사의 결혼식을 보았다. 신부는 미국 토인의 아가씨였다, 신부의 아버지와 그 친구들은 가까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모두 사슴가죽의 신을 신고 어깨엔 큰 두꺼운 모포를 걸치고 있었다. 거의 가죽옷으로 차림하고서, 멋진 수염과 곱슬머리가 목을 덮고 있는 덮엽사는 신부의 손을 잡고 둑 위에 쉬고 있었다, 신부는 긴 속눈썹에다, 머리엔 아무 장식도 없고, 빳빳한 머리털은 그녀의 풍만한 팔다리에 처져 발까지 닿았다. 도망친 노예가 내 집에 와서 문밖에 멎었다. 그가 움직여서 쌓아놓은 땔나무에서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열린 반쪽 부엌문으로, 나는 지쳐서 다리를 저는 그를 보았다, 나는 그가 통나무 위에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그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안심시켰다, 그의 땀에 젖은 몸과 상처난 발을 씻도록 통에 물을 가득 퍼주었다, 그리고 내 방으로 통하는 방 하나를 그에게 주고서 거친 감의 깨끗한 옷가지를 내주었다, 그때 그가 눈을 휘둥글게 뜨고서 주저주저하던 것이 잘 기억난다, 또한 그의 목과 발꿈치의 상처에 고약을 붙여 주었던 것도 기억한다, 그는 건강을 회복하고서 북으로 달아날 때까지 일주간 내게 머물렀다. 나는 식탁에서 그를 내 곁에 앉히고, 방 구석에는 화승총을 세워 두었다. [나 자신의 노래 11] 28인의 젊은이가 해변에서 멱감는다, 28인의 젊은이가 모두 사이가 좋다, 28년간의 여자의 생애는 모두 고독하다, 그녀는 강둑 고지에 좋은 집을 소유하고 있다, 그녀는 곱게 화려하게 차려입고 창문 발 뒤에 숨는다. 그녀는 젊은이들 중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가. 아, 그 중에서 제일 못난 남자가 그녀에겐 아름답다. 부인, 어디로 가시나요. 내겐 당신이 보입니다, 당신은 거기 물 속에서 물을 튕기며, 그러나 당신은 자기 방에서 꼼짝 않고 있다. 해변을 따라 춤추며 웃으며 29세의 여자 수영객이 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안 보았지만, 그녀는 그들을 보고 그들을 좋아했다. 젊은이들의 수염이 물 묻어 번쩍였고, 물이 긴 머리에서 흘렀다, 작은 물줄기가 그들의 전신을 흘러내렸다. 그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의 몸을 쓰다듬었다. 그 손이 관자놀이에서 가슴으로 떨리면서 내렸다. 젊은이들이 자빠져서 둥실 떠 있고, 그들의 흰 복부가 해를 향하여 부풀어 있다, 그들은 누가 그것을 꽉 잡아 주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누가 몸을 늘어뜨리고 구부려서 훅훅 불거나 가라앉는가를 모른다, 그들은 누구에게 물을 끼얹는가를 모른다. [나 자신의 노래 15] 아름다운 콘트랄토이 가수가 오르간 놓인 단상에서 노래한다. 목수는 재목을 손질하고, 그의 대패날이 사납게 밀어올리는 마찰음을 울린다. 기혼의 또는 미혼의 자녀들이 감사절 만찬에 참석하려고 마차로 귀향한다, 키잡이가 키바퀴를 잡고서 힘센 팔로 배를 한쪽으로 기울인다, 운전사는 포경선에 긴장해서 서서, 창과 작살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사냥꾼은 발자국 소리 안 나게 조심껏 몸을 뻗치고 걷는다, 집사는 제단 앞에서 십자를 그으며 임명을 받고 있다, 실 뽑는 여공은 큰 물레바퀴의 소리에 맞추어 일진일퇴한다, 농부는 일요일 산보에 목책 옆에 서서 연맥과 호맥의 작황을 본다, 광인은 증세가 확인되어 드디어 수용소로 운반된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어머니 침실의 침대에서 다시는 자지 못하리라) 머리가 하얗고 턱뼈가 앙상한 견습 인쇄공은 활자 케이스 옆에서 일한다, 그는 흐릿한 눈으로 원고를 보면서 씹는 담배를 입안에서 돌린다, 기형의 수족이 수술대에 결박되어 있고, 제거된 것이 흉하게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다. 흑백 혼혈녀가 경매대에서 팔리고, 주정뱅이가 술집 난로가에서 졸고 있다, 기계공은 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리고, 경관은 자기 순찰구역을 순찰하고, 문지기는 통행인을 주목한다. 젊은 녀석이 화물운반차를 몰고 (그를 모르지만 나는 그가 좋다) 혼혈아가 경주에 나가기 위하여 운동화의 끈을 조른다, 서부지방에서의 칠면조 사냥에는 늙은이 젊은이가 모인다, 어떤 이는 엽총에 기대고, 어떤 이는 통나무에 걸터앉았다, 군중 사이에서 명사수 하나가 걸어나와서, 자세를 취하고 총을 겨눈다. 새로 온 이민의 무리가 선창과 부두를 뒤덮는다, 사탕수수밭에선 양털머리의 흑인노예가 풀을 뽑고, 감독은 그것을 말타고 지켜본다. 무도장에서 나팔소리가 울리자 신사들이 파트너 쪽으로 달려가고, 춤추는 짝들이 서로 인사를 한다, 삼나무 판장의 지붕밑 방에서 젊은이가 눈뜨고 드러누워서 음조 고운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휴론호로 흘러드는 지류에서 미시간주의 어부가 덫을 장치한다, 노란 테를 두른 옷을 입은 여자가 사슴가죽 구두와 구슬백을 팔고 있다, 미술 감정사는 몸을 옆으로 구부리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 전시장을 보며 돌아다닌다, 갑판에서 일하는 선원이 배를 묶어매는 동안 널판이 다리 놓여져서 상륙개을 건너게 한다. 누이동생이 실꾸리를 두 손으로 잡고 있고, 언니는 그것을 실패에 감으며, 때때로 실이 얽히면 손을 쉰다. 결혼 후 일 년의 아내는 일 주 전에 첫애를 낳고 건강이 회복되면서 행복하다. 두 발이 깨끗한 양키 소녀는 재봉틀에서, 혹은 작업장이나, 공장에서 일한다, 포도공사의 인부는 손잡이가 둘 달린 메에 기대고 있고, 기자의 연필은 수첩 위를 빨리빨리 움직이고, 간판장이는 푸른색과 금색의 글씨를 써간다. 운하공은 뱃길을 총총걸음으로 걷고, 부기사는 책상에서 계산하고 구두공은 실에 초칠을 한다, 지휘자는 악대를 지휘하고 연주원들 모두 그를 따른다, 유아는 세례를 받고, 개종자는 그의 최초의 신앙을 고백한다, 범주경기가 만 위에서 전개되어 경주가 시작됐다 (번쩍이는 흰 돛!) 가축 몰이꾼은 우리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놈에게 큰소리를 지른다, 행상인은 등에 진 짐으로 땀을 흘리고, (고객은 한 푼 두 푼을 깎는다) 신부는 흰 드레스의 주름을 펴고, 시계의 초침이 더디기만 하다, 아편 흡연자는 굳어진 머리로 멍하니 입을 벌리고서 몸을 기울인다, 창녀는 숄을 질질 끌고, 그녀의 모자는 흔들흔들하는 여드름 투성이의 목 위에 매달려 있다. 군중이 그녀의 욕지거리를 비웃고, 사내놈들은 조롱하며 서로 눈짓한다, (가엾은! 나는 너의 욕을 비웃거나 조소하지 않는다) 각의를 열고 있는 대통령은 훌륭한 장관들에 에워싸여 있다, 광장에는 부인 셋이 팔짱을 끼고 으스대며 다정하게 걷고 있다, 어선의 선원들이 선창에 넙치를 채곡채곡 쌓아올린다, 미주리주이 남자는 상품과 소떼를 끌고서 평야를 건너간다, 차삯을 거두는 차장은 열차 안을 통과할 때 거스름돈을 달랑거리며 주의를 끈다, 마루를 까는 목수는 마루를 깔고, 양철공은 지붕에 양철을 씌우고, 석공은 모르타르를 가져오라고 소리친다, 노동자들의 일단이 일렬로 각자 어깨에 벽돌상자를 지고서 나아간다, 계절은 계절을 쫓아가고, 말할 수 없이 많은 군중이 군집했다, 오늘 7월 4일, 도립기념일 (대포, 소포의 예포소리!) 계절은 계절을 쫓아가고, 농부는 밭을 갈고, 풀 베는 이는 풀을 베고, 겨울 씨앗은 땅에 떨어진다. 호수 안창에서 열기잡이가 얼은 수면에 뚫은 구멍 옆에서 지켜보며 기다린다, 그루터기가 개간지 주변에 빽빽이 서 있고, 벌목꾼은 도끼를 깊이 찍는다, 평저선 선원들이 저녁 무렵, 사시나무나 호두나무 근처로 배를 몬다, 곰 사냥꾼은 레드강 유역에, 또는 테네시강이나 아칸서스강이 흐르는 유역을 찾아다닌다, 차타후치강, 혹은 알타마호강에 깔린 어둠 속에 횃불은 타고, 늙은 노인들은 자식, 손자, 증손을 거느리고 저녁식탁에 앉아 있다, 어도우비 벽돌 담 안이나 캔버스 천막 안에, 사냥꾼과 덫꾼들이 그날의 사냥을 끝내고 쉬고 있다, 도시도 쉬고 시골도 쉰다, 산 자는 주어진 자기 시간을 자고, 죽은 자도 주어진 자기 시간을 잔다, 늙은 남편은 아내 곁에서 자고, 젊은 남편도 아내 곁에서 잔다, 그리고 그것들은 안으로 향하여 내게 오고, 나는 밖으로 향하여 그들에게로 간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러하듯이, 그런 것들은 많건 적건 나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가져와서 나는 내 노래를 짠다. [나 자신의 노래 24] 훨트 휘트먼, 나는 하나의 우주, 맨해턴 태생의 한 사나이, 성미가 거칠고, 살집 좋고, 욕정이 넘치고,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생산하고, 감상주의자는 아니고, 남의 위에 서 있는 자 아니고, 그러나 그들과 유리된 자 아니다, 방종하지도 않고, 그렇대서 도학자도 아니다. 문이란 문에서 자물쇠를 떼어 버려라! 옆기둥에서 문 그 자체를 떼어 버려라! 누구나 다른 사람을 내리깎는 사람을 나는 내리깎는다, 무엇이고 동작이 가고 말이 가면 그것은 결국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통하여 영감의 물결은 오고 가고 나를 통하여 흐르는 조류와 지표. 나는 원시적인 암호말을 하고, 데모크라시의 신호를 보낸다, 단호히!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조건으로 그들의 분신적 상대물을 취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련다. 나를 통하여 오랫돋안 입다물던 목소리들이 들린다, 무수한 세대에 걸치는 죄수와 노예들의 목소리, 병자와, 절망자와, 도둑과 난장이의 목소리, 중비와 증대의 순환의 목소리, 그리고 별들을 연결하는 맥락의 목소리, 자궁과 정자의 목소리, 다른 이들에게 짓밟혀지는 자들의 군리의 목소리, 불구자와 쓸모없는 자와 평범한 자와 어리석은 자와 경멸받는 자의 목소리, 대기 속의 안개, 변 덩어리를 굴리는 풍뎅이의 목소리. 나를 통하여 나가는 금지된 목소리, 성과 욕정의 목소리, 베일을 쓴 목소리, 나는 그 베일을 제거한다, 점잖지 못한 목소리, 그 말은 나로 말미암아 명백해지고 훌륭해진다. 나는 손가락으로 입을 막지 않는다, 나는 두뇌와 심장에 대하여 하듯이, 창자 둘레를 곱게 보살핀다, 성교는 내게 죽음이나 다름없이 추악하지 않다. 나는 성욕과 식욕을 다 인정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이 모두 기적이다, 그리고 나의 어느 부분이나 내 옷자락 하나도 모두 기적이다. 나는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신성하다, 나는 내가 손대는 것, 내게 닿는 것을 무엇이고 신성하게 한다, 이 겨드랑이에서의 냄새는 기도보다도 훌륭한 방향이다, 이 머리는 교회보다도, 성경보다도, 그리고 어느 신조보다도 그 이상이다. 만일 내가 어느 것을 다른 것보다 더 숭배한다면, 그것은 내 자신의 육체의 전부이거나 그 일부일 것이다. 반투명의 나의 모형, 정액 그것은 너다! 그늘에 있는 선반과 휴식처, 그것은 너다! 탄탄한 남성의 보습날, 그것은 너다! 나의 생식충동을 이루는 것은 무엇이고, 너다! 너, 나의 짙은 혈액이며, 너의 젖 같은 흐름은 나의 생명의 창백한 긴 가닥이다! 남의 젖가슴에 몸을 부벼대는 젖가슴, 그것은 너다, 나의 두뇌, 그것은 너의 유현한 뇌의 회전이다, 씻긴 창포 뿌리여! 비겁한 연못 도요새여! 잘 지켜진 한 쌍의 달걀이 들어 있는 둥우리여! 그것은 너다! 헝클어진 건초 같은 머리칼, 수염, 근육, 그것은 너다! 자비로운 태양, 그것은 너다! 내 얼굴에 명암을 던지는 공중의 수증기, 그것은 너다! 땀흘리는 개울과 이슬, 그것은 너다! 부드럽게 간질이는 음부로 내 얼굴을 문질러 주는 바람이여, 그것은 너다! 넓은 광대한 들판, 떡갈나무 가지,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가는 어여쁜 산책자, 그것은 너다! 내가 쥔 손, 내가 키스한 일이 있는 얼굴, 내가 일찍이 접촉한 일이 있는 인간, 그것은 너다. 나는 내 자신을 뜨겁게 사랑한다, 거기에 풍부한 나 자신이 있고, 모두 감미롭다, 하나하나의 순간도, 그리고 무엇이 일어나든, 나는 기뻐서 몸을 떤다, 나는 나의 발꿈치의 굴절을 설명할 수 없고, 나의 가냘픈 소망의 원인을 말할 수 없다, 또한 내가 발산하는 우애의 원인도, 그리고 내가 다시 받아들이는 우애의 근원도 설명할 수 없다. 집의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서 발을 멈추고 이것이 과연 내 집인가를 생각해 본다. 내 창 앞에 핀 나팔꽃이 책 속에 쓰인 형이상학 이상으로 만족을 준다. 동트는 하늘을 바라본다! 희미한 빛이 무한한 투명한 음영을 지워 간다, 대기는 내 미각에 상쾌하나다. 천진난만하게 뛰놀며 회전하는 세계의 중량이 조용히 올라오고, 신선하게 발산하고, 높고 낮게 비스듬히 달린다. 내게는 안 보이는 무엇인가가 그 음탕한 뾰족끝을 위로 내민다, 찬란한 액체의 바다가 하늘에 충만하다. 대지는 하늘 가에서 그 밤을 유숙했던 것이다, 양자가 매일 회합한 결과, 그 순간 내 머리 위에서, 동쪽에서 솟아오른 도전, 조롱조의 말, “그렇다면 네가 천지의 지배자가 될 것인가, 아닌가!” [나 자신의 노래 31] 나는 믿는다, 풀잎 하나가 별의 운행에 못지 않다고. 그리고 개미도 역시 완전하고, 모래알 하나, 굴뚝새의 알 하나도 그렇다, 그리고 청개구리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땅에 뻗은 딸기 덩굴은 천국의 객실을 장식할 만하다. 그리고, 머리를 푹 숙이고 풀을 뜯는 소는 어떤 조각보다도 낫다. 그리고 한 마리 생쥐는 몇 억조의 불신의 무리들을 아연하게 할 만한 기적이다. 나는 자기가 편마암이나, 석탄, 길게 이어진 이끼, 과일, 곡식용 풀뿌리와 일체가 되고, 또한 나는 전신이 네 발 짐승과 조류의 색과 모양이 된다, 내 뒤에 있는 것은 충분한 이유에서 멀리멀리 뒤쳐져 있지만, 내가 필요할 때엔, 무엇이고 다시 불러오게 할 수 있다. 속력을 내는 것이나 주저하는 것이나 헛된 일이다, 나의 접근에 대하여, 화성암이 그 옛날의 열기를 방출해도 헛된 일이다, 역사 이전의 거상이 가루가 된 자신의 백골 밑으로 물러가도 헛된 일이다, 물체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존재하고, 각양각색의 형상을 취하는 일도 헛된 일이다, 대양이 지구의 텅빈 곳에 자리잡고, 큰 괴물들이 해저 깊이 누워 있어도 헛된 일이다, 말똥가리 매가 몸으로써 하늘에 집을 친들 헛된 일이다, 배암이 담장이나 통나무 사이를 미끄러져 가도 헛된 일이다, 큰 사슴이 숲속의 뒤안길로 달려가도 헛된 일이다, 부리가 예리한 바다오리가 멀리 라브라도르의 북쪽으로 날아간들 헛된 일이다, 나는 재빨리 뒤쫓아, 벼랑의 틈새에 지은 둥지로 올라간다. [나 자신의 노래 32] 나는 몸을 바꾸어 동물과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아주 태평하고 자족하다, 나는 서서 그들을 오래 바라본다. 그들은 애쓰지 않고, 저희들의 상황에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 속에 깨어 일어나, 저희 죄 때문에 울지 않는다, 그들은 신에 대한 의무를 논하여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한 놈도 불만인 놈은 없고, 한 놈도 소유욕으로 미쳐 있지 않다, 한 놈도 다른 놈에 대하여, 또는 수천 년 전에 산 동류에 대하여 무릎을 꿇지 않는다, 온 세상에서 한 놈도 존경할 만하거나, 부지런한 놈은 없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들과 나와의 관계를 밝히고, 나는 그들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내 자신의 흔적을 내게로 가져와서, 그것이 그들의 소유인 것을 분명히 표시한다. 그들은 어디에서 그런 흔적을 입수했을까, 그 방면을 내가 먼 옛날에 통고하여, 무심코 그것을 떨어뜨렸던 것이 아닐까. 나 자신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영원히 전진한다, 항상 더욱 많이 모으고 드러내 보이며, 속력 있게,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재창조된다. 내 노래하는 것이 그 속에 들어 있고, 나의 기념물에 가까이 오는 자 누구도 제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려내어, 그와 형제간처럼 사이좋게 가련다. 내 애무에 응하는 한 마리 새뜻하게 아름다운 종마의 거대한 아름다움, 앞 이마 훤칠한 머리, 귀와 귀 사이가 넓고, 사지는 번들번들 유연하고, 꽁지는 질질 땅에 닿고, 눈은 반짝반짝 악의가 가득하고, 귀는 잘 서서 부드럽게 움직인다. 내가 발꿈치로 동체를 껴안으니, 두 콧구멍이 부푼다, 내가 일주하여 돌아오니, 그 잘 발달된 사지가 기쁘게 떨린다, 나의 종마여, 나는 다만 잠깐 너를 탈 뿐이니, 그리고선 놓아주마, 내 자신이 너를 앞질러 달릴 수 있는데, 왜 너를 탈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서 있건 앉아 있건, 너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다. [나 자신의 노래 35] 너에게 옛날의 해전 이야기를 들려 줄까 달과 별빛 아래에서 누가 이겼는가를 알고 싶은가. 선원이었던 나의 조모의 부친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들어 봐라. 자기들의 적이 배 속에 숨는 비겁자는 아니었다(고, 그는 얘기하기 시작했다,) 적은 무서운 영국혼을 가진 놈이었다, 이보다 강인하고 진실한 놈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결코 없을 것이다, 저녁 무렵에, 적은 맹렬한 사격을 가해 왔다. 우리는 바싹 접근하여, 돛대가 서로 얼키고, 대포가 맞붙었다, 저희들의 선장은 손수 배를 적선에 꽉 묶어맸다. 자기들은 배 밑으로 약 18파운드의 탄환의 발사를 받았다, 아래 갑판의 포대에는, 두 대의 큰 포가 첫 발 쏠 때에 파괴되어 주변의 병사를 다수 살해하고, 천정까지도 폭파하였다. 해질녘의 전투, 암야의 전투, 밤 열 시, 만월이 중천에 올라왔을 때, 침수는 늘어나, 5피트라고 보고되었다, 위병하사관은 뒤 선실에 감금된 포로들을 풀어 주어, 그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찾도록 했다. 화약고의 통로는 이제 보초에 의하여 차단되고, 낯선 얼굴이 하도 많아서 누가 아군인지, 전연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들의 군함에 불이 붙었다, 누군가는 살려 달라고 해 봤으면 하기도 했다. 자진해서 깃발을 내리고 항복하면 어떨까 하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만족스럽게 크게 웃었다, 나의 그 작은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그는 태연하게 외쳤다 “우리는 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전쟁을 막 시작한 것이다.” 불과 세 기의 대포가 사용 가능하였다, 하나는 선장이 손수 적의 중심 돛대를 향하여 쏘았다, 적의 갑판을 일소했다. 이 작은 포대를 원조하는 것은, 장루, 특히 주잘우뿐이었다, 그들은 전투 중 시종 용감하게 견뎌냈다. 전투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침수는 증가하여 펌프로는 되지 않았다, 불은 화약고 쪽으로 타들어 갔다. 펌프 하나가 탄환에 날아가 버렸다, 모두 이제는 침몰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선장은 태연하게 서 있다, 서둘지 않고,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그의 눈은 전함의 등불보다 더 형형한 불빛을 우리에게 비추었다, 자정 가까이, 달빛 휘황한 속에서 적은 우리에게 항복해 왔다. [나 자신의 노래 36] 한밤중이 긴장 속에 고요하다. 두 개의 큰 선체가 어둠의 한복판에 꼼짝 않고 있다, 그 중의 한 척 자기들의 것은, 관통되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노획한 군함으로 옮겨 탈 준비, 홑이불처럼 창백한 얼굴의 선장이 뒷 갑판에서 냉정하게 명령을 내린다, 근처에 사관실에서 일하던 소년의 시체가 눈에 뜨이고, 긴 백발에 곱게 손질한 구레나룻을 가진 늙은 해병의 얼굴도 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염이 배의 아래 위로 퍼진다, 아직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2, 3명의 사곤의 목쉰 소리, 사지가 없는 시체, 또는 시체 그대로인 것, 돛대나 돛 가로대에 붙은 살조각들, 밧줄의 단편, 매달려 있는 색구, 고요한 파도에서 오는 가벼운 충격, 머리 위에서 말없이 슬프게 비치는 큰 별, 해풍의 미묘한 소리, 바닷가 갈대풀과 들판의 냄새, 생존자에게 남겨진 유언들, 외과의의 메스 휘드는 소리, 그의 수술용 톱의 쓸어 들어가는 톱니, 힘든 호흡, 울음 소리, 떨어지는 핏방울의 튀김, 짧고 거친 비명, 길게 둔하게, 점차 날카로와지는 신음 소리, 이런 것들,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이런 것들. [나 자신의 노래 44] 이제 나 자신을 설명할 때다- 자, 우리 모두 일어서자. 이미 아려진 일체의 것을 내던지고서, 나는 모든 남녀와 더불어 미지의 세계로 돌진한다, 시계는 이 순간을 가리킨다 - 그러나 영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들은 지금까지 수억조의 겨울과 여름을 겪어 왔다, 앞으로도 수억조의 세월이 있고, 그 앞에도 수억 조가 있다. 탄생은 우리에게 풍요와 다양을 가져왔다, 그리고 또 다른 탄생이 우리에게 풍요와 다양을 가져올 것이다. 나는 어느 하나를 더 크다고, 그리고 다른 것은 더 적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시간과 장소를 점유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동등하다. 나의 형제여, 자매여, 인류는 너희에게 잔혹하거나 시기스러웠던가. 그렇다면, 안됐구나, 그들은 나에게는 잔혹하거나 시기스럽지 않았다. 모두가 나에게는 친절했다, 나는 슬픔을 말할 만한 것이 없다. (슬픔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나) 나는 완성된 사물의 극치이고, 일어날 일체의 것을 포괄하는 자이다. 나의 발은 계단의 정점의 다시 그 정점을 밟는다, 층마다에 시대의 다발, 그리고 그 층과 층 사이에 더 큰 다발이 있다, 발 아래의 것은 모두 내가 걸어온 자국, 나는 다시 오르고 또 오른다. 오르고 오르는 데 따라서, 뒤에는 지난 날의 환영들이 고개 숙이고 있다, 멀리 밑으로 나는 거대한 태초의 無를 본다, 거기에도 내가 있었음을 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상태로 언제나 기다렸다, 그리고 혼수상태의 안개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를 기다렸고, 악취를 내는 탄소의 해를 받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꼭 껴안았다 - 오래 오랫동안. 나를 위한 준비는 엄청난 것이었다. 나를 도운 팔은 성실하고 친절했다. 시간의 회전은 쾌활한 뱃사람 모양 노젓고 노저어 나의 요람을 실어 보냈다, 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별들은 저희 궤도를 벗어나 운행했다, 그들은 나를 떠받칠 것을 지켜 주기 위하여 온갖 힘을 보내 주었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탄생하기 전에, 여러 세대가 나를 인도했고, 나의 태아는 언제나 생동했고, 어떤 것도 그것을 압도할 수 없었다. 나의 태아를 위하여 이 한 구체에 집중했고, 태아를 그 위에 앉히기 위하여 오랜 완만한 지층이 쌓였다, 풍요한 식물이 거기에 양분을 주고, 거대한 도마뱀이 그것을 입으로 운반하여, 조심껏 땅에 내려 놓았다, 온갖 힘이 나를 완성하고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부단히 쓰였다. 그리하여, 이제 이 자리에 나는 튼튼한 영혼을 갖고 서 있다. - 월터 휘트만(Walter Whitman 1819-1892)이란 사람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시에서 서민들의 희망과 자유를 진실하게 노래합니다. 휘트만의 작품은 모든 인류가 하나임과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큰가를 노래하는 것이 주내용입니다. 이 시인은 말년에 여러 가지 질병으로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의사가 하는 말을 듣고 그가 노래한 인간의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의사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의사가 된지 어언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처방을 해 왔습니다만 아픈 사람에게 가장 좋은 처벙 약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휘트만은 크게 공감하면서 "그러면 사랑이란 약이 듣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지요?" 라고 의사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그땐 처방약을 두 배로 늘리게 되지요" 하고 말했답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 출생. 아버지는 목수였는데, T.페인(1737∼1809)의 인권사상 등에 심취하였고, 어머니는 네덜란드 이민 출신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풍을 지녔다. 4세 때 브루클린으로 이주, 가정사정으로 초등학교를 중퇴하여 인쇄소 직공으로 있으면서 독학으로 교양을 쌓았다. 1835년 고향에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 신문 편집 등에 종사하였다. 그 후 뉴욕으로 옮겨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846년에는 브루클린의 미국 민주당계 일간지 《이글 Eagle》의 편집자가 되었다. 그러나 1848년 ‘프리 소일(free soil) 운동’을 지지하는 그의 논설이 민주당 보수파의 분노를 사게 되어 사임, 전부터의 염원이던 프리 소일파의 주간신문 《자유민 Freeman》을 창간하여 그 주필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민주당 보수파의 공격을 받고 겨우 1년 만에 사임하였다. 1850년대에 들어서자, 그는 합승마차의 마부석 옆에 앉거나 나룻배에 타거나 하여 민중의 생태를 관찰하고, 또는 아버지의 목수일을 도우며 많은 시간을 독서와 사색으로 보냈다. 이 내부침잠(內部沈潛)의 시기를 거쳐서 그의 시인으로의 전신(轉身)이 이루어졌다. 1855년 시집 《풀잎 Leaves of Grass》을 자비출판하였는데, 이것은 종래의 전통적 시형(詩型)을 크게 벗어나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찬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3판(1860)에 이르자, 새로 수록된 《카라마스》 등의 시군(詩群)을 통해서 사랑과 연대(連帶)라고 하는 일정한 주장이 표면화하기 시작하여, 이른바 ‘예언자 시인’으로의 변모를 드러냈다. 논문 《민주주의의 미래상 Democratic Vistas》(1871)에서도 미국사회의 물질주의적인 경향을 비판하고, ‘인격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1862년 겨울, 남북전쟁에 종군 중이던 동생 조지가 부상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1863년 이후는 관청에 근무하면서 워싱턴의 병원에서 부상병을 간호하기도 하였다. 어떻든 남북전쟁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으며, 자신의 고통과 죽음을 견디는 젊은 병사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그의 마음속에 미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1865년, 남북전쟁을 소재로 하는 72페이지의 작은 시집 《북소리 Drum-Taps》를 출판하고, 이듬해 링컨 대통령에 대한 추도시(追悼詩) 《앞뜰에 라일락이 피었을 때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를 포함한 24페이지의 《속편(續編)》을 출판해서 곧 《풀잎》(4판, 1867)에 재록(再錄)하였다. 1873년에 중풍의 발작이 있었으나 요양에 전념, 1879년에는 서부 여행, 1880년에는 캐나다 여행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1882년에는 산문집 《자선일기(自選日記) 기타》를 출판, 문명(文名)도 높아졌다. 1884년에는 《풀잎》의 인세(印稅)로 세운 뉴저지주 캠던의 미클가(街) 자택에는 내외의 방문자가 빈번히 드나들었다. 그러나 체력도 약해졌지만 그 자신은 점차 염세주의로 기울었으며, 1888년 재차 중풍이 발작한 후, 1892년 폐렴(肺炎)으로 세상을 떠났다. (네이버 발췌) -   나의 자아는 그 모든 끌고 잡아당김으로부터 떨어져 서 있다, 재미있어 하고, 스스로 흐뭇해하고, 동정적이고, 한가하고, 독립적이며, 시선은 아래쪽을 향하고 똑바로 서 있거나 미묘하고 확실하게 쉬는 자세로 한쪽 팔을 구부리고서,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가 보려는 듯 호기심 어린 자세로 머리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인 채, 참여하면서도 참여하지 않고, 구경하고 경탄해 마지 않는다. /월트 휘트먼 ‘나 자신의 노래’ 일부 - =========================////============월트 휘트먼 1819~1892 미국의 시인, 수필가, 저널리스트. 19세기 미국 문학사에서 포우, 디킨슨과 함께 가장 중요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 뉴욕의 브루클린으로 이사해 공립학교를 나온 뒤 인쇄소 사환을 거쳐 식자공일을 했다. 한때 교사직을 갖기도 했지만 1838년 이후에는 주로 브루클린 지역의 많은 신문들을 편집하였다.   1855년에 출판사와 작가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표지에 자신의 초상만을 실은 초판을 발행하였다.   형식과 내용이 혁신적인 시집이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영혼과 육체에 대한 동등한 존중, 열린 정신, 정치적 자유의 향유를 촉구한다.   형식은 정형을 타파한 자유 형식이었다. 이 작품으로 휘트먼은 자유시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면서 미국 문학사에서 혁명적인 인물로   등장하였다. 그는 유례없이 한 개인으로서의 를 대담하게 찬양할 뿐 아니라, 육체와 성욕까지도 강렬하게 표현했다. 이 시집을 읽은 에머슨은 당장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재치와 지혜가 넘치는 비범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보낸 편지를   쓴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1855년 시집 《풀잎》을 자기 돈으로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노래한 것이었다.   논문에서도 미국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였다.   1865년 남북 전쟁을 소재로 한를 출 판하고, 이듬해 그가 존경하던 링컨 대통령에 대한 추도시를 발표하였다.   오! 선장, 나의 선장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무서운 항해는 끝났다.   배는 온갖 난관을 뚫고   추구했던 목표를 획득하였다.   항구는 가깝고,   종소리와 사람들의 환성이 들린다.   바라보면 우람한 용골돌기,   엄숙하고 웅장한 배.   그러나 오오 심장이여! 심장이여! 심장이여!   오오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이여,   싸늘하게 죽어 누워있는   우리 선장이 쓰러진 갑판 위.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일어나 종소리 들으오, 일어나시라-   깃발은 당신 위해 펄럭이고-   나팔은 당신 위해 울리고 있다.   꽃다발과 리본으로 장식한 화환도   당신을 위함이요-   당신 위해 해안에 모여든 무리.   그들은 당신을 부르며,   동요하는 무리의 진지한 얼굴과 얼굴.   자, 선장이여! 사랑하는 아버지여!   내 팔을 당신의 머리 아래 놓으오.   이것은 꿈이리라.   갑판 위에 당신이 싸늘하게 죽어 쓰러지시다니.   우리 선장은 대답이 없고,   그 입술은 창백하여 닫힌 채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는 내 팔을 느끼지 못하고,   맥박도 뛰지 않고 의지도 없으시다.   배는 안전하게 단단히 닻을 내렸고,   항해는 끝났다.   무서운 항해에서 승리의 배는   쟁취한 전리품을 싣고 돌아온다.   열린 길의 노래 두 발로 마음 가벼이 나는 열린 길로 나선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세상을 앞에 두니 어딜 가든 긴 갈색 길이 내 앞에 뻗어 있다.     더 이상 난 행운을 찾지 않으리. 내 자신이 행운이므로. 더 이상 우는소리를 내지 않고, 미루지 않고, 요구하지 않고,   방안의 불평도, 도서관도, 시비조의 비평도 집어치우련다. 기운차고 만족스레 나는 열린 길로 여행한다.     대지, 그것이면 족하다. 별자리가 더 가까울 필요도 없다.   다들 제 자리에 잘 있으리라. 그것들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소용되면 그뿐 아니랴.     (하지만 난 즐거운 내 옛 짐을 마다하지 않는다. 난 그들을 지고 간다, 남자와 여자를, 그들을 어딜 가든 지고 간다.   그 짐들을 벗어버릴 수는 없으리. 나는 그들로 채워져 있기에. 하지만 나도 그들을 채운다)       강 건너는 기병대   초록색 섬 사이를 누비며 가는 긴 대열, 뱀같이 꾸불꾸불하게 가고 있다.   해빛에 무기가 번쩍인다- 들으라 음악같은 울림소리,   보라, 은빛 강물, 그 물 첨벙거리며 건너다 목을 축이는 말들, 보라, 갈색 얼굴의 병사들, 각각의 무리들과 사람들 그림을,   말 안장에 앉아 방심한 듯 쉬고 있고, 한편으로는 건너편 뚝에 올라가고 있는 병사들, 지금 강물에 들어가는 병사들,   홍, 청, 순백, 삼색기가 선명하게 바람에 펄럭인다.     낯 모르는 사람에게   저기 가는 낯 모르는 사람이여! 내 이토록 그립게 당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은 내가 찾고 있던 그이, 혹은 내가 찾고 있던 그 여인,(꿈결에서처럼 그렇게만 생각 됩니다.)     나는 그 어디선가 분명히 당신과 함께 희열에 찬 삶을 누렸습니다.   우리가 유연하고, 정이 넘치고, 정숙하고, 성숙 해서 서로를 스치고 지날 때 모든 것이 회상됩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자랐고, 같은 또래의 소년이었고, 같은 또래의 소녀였답니다.   나는 당신과 침식을 같이했고,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만이 아닌 것이 되고, 내 몸 또한 그러 했습니다.     당신은 지나가면서 당신의 눈, 얼굴, 고운 살의 기쁨을 내게 주었고,   당신은 그 대신 나의 턱수염, 나의 가슴, 나의 두손에서 기쁨을 얻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됩니다.   나 홀로 앉아 있거나 혹은 외로이 잠 못 이루 는 밤에 당신 생각을 해야합니다.   나는 기다려야 합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어마지 않습니다.   당신을 잃지 않도록 유의 하겠습니다.     짐승   나는 모습을 바꾸어 짐승들과 함께 살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평온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   나는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땀흘려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환경을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밤 늦도록 잠 못 이루지도 않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 따위를 토론하느라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불만족해 하는 자도 없고, 소유욕에 눈이 먼 자도 없다.   다른 자에게, 또는 수천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 무릎 끓는 자도 없으며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잘난 체하거나 불행해 하는 자도 없다.       시집 '풀잎' 서문에 쓴 시   땅과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필요한 모든 이에에 자선을 베풀라.   어리석거나 제 정신이 아닌 일이면 맞서라. 당신의 수입과 노동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돌려라.   신에 대해 논쟁하지 말라. 사람들에게는 참고 너그럽게 대하라.   당신이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또는 사람 수가 많든 적든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라.   아는 것은 적어도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들. 젊은이들, 가족의 어머니들과 함께 가라.   자유롭게 살면서 당신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 들에 있는 이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교회, 책에서 배운 모든 것을 의심하라. 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첫 민 들 레   겨울이 끝난 자리에서 소박하고 신선하게 아름다이 솟아나서,   유행, 사업, 정치 이 모든 인공품일랑 일찍이 없었든 양, 아랑곳 없이,   수플 소북히 가린 양지 바른 모서리에 피어나 통트는 새벽처럼 순진하게, 금빛으로, 고요히,   새봄의 첫 민들레는 이제 믿음직한 그 얼굴을 선보인다.       나 여기 앉아 바라보노라   나는 앉은 채로 세상의 모든 슬픔을 두루 본다 온갖 고난과 치욕을 바라본다   나는 스스로의 행위가 부끄러워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복받치는 아련한 흐느낌을 듣는다   나는 어미가 짓눌린 삶 속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려 주저앉고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죽어감을 본다   나는 아내가 지아비에게 학대받는 모습을 본다 나는 젊은 아낙네를 꾀어내는 배신자를 본다   나는 숨기려해도 고개를 내미는 시새움과 보람없는 사랑의 뭉클거림을 느끼며, 그것들의 모습을 땅위에서 본다   나는 전쟁, 질병, 압제가 멋대로 벌이는 꼴을 본다 순교자와 죄수를 본다   뱃꾼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일에 목숨을 걸고 나설 차례를 정하려고 주사위를 굴리는 모습을 본다   나는 오만한 인간이 노동자와 빈민과 흑인에게 던지는 경멸과 모욕을 본다   이 모든 끝없는 비천과 아픔을 나는 앉은 채로 바라본다 보고, 듣고, 침묵한다                                                                     
401    다시 보는 현대시 100 댓글:  조회:3810  추천:0  2016-05-01
@@ = 클릭해보기... [애송시 100편-제100편]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애송시 100편-제99편]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애송시 100편-제98편] 오산 인터체인지-조병화 [애송시 100편-제97편] 맨발 - 문태준 [애송시 100편-제96편] 비망록-김경미 [애송시 100편-제95편] 인파이터 - 코끼리군의 엽서, ... [애송시 100편-제94편] 가지가 담을 넘을 때-정끝별 [애송시 100편-제93편] 감나무-이재무 [애송시 100편-제92편] 참깨를 털면서-김준태 [애송시 100편-제91편] 거짓말을 타전하다-안현미 [애송시 100편-제90편] 추일서정(秋日抒情)-김광균 [애송시 100편-제89편] 철길-김정환 [애송시 100편-제88편] 낙화-이형기 [애송시 100편-제87편]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애송시 100편-제86편] 서시-이시영 [애송시 100편-제85편] 낙화-조지훈 [애송시 100편-제84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김광규... [애송시 100편-제83편] 솟구쳐 오르기 2-김승희 [애송시 100편-제82편] 해바라기의 비명(碑銘)-함형수... [애송시 100편-제81편] 보리피리-한하운 [애송시 100편-제80편] 갈대 등본-신용목 [애송시 100편-제79편] 투명한 속-이하석 [애송시 100편-제78편] 일찌기 나는-최승자 [애송시 100편-제77편] 국토서시(國土序詩)-조태일 [애송시 100편-제76편] 조국(祖國)-정완영 [애송시 100편-제75편]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애송시 100편-제74편] 절벽-이상 [애송시 100편-제73편] 반성 704 - 김영승 [애송시 100편-제72편]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애송시 100편-제71편] 진달래꽃-김소월 [애송시 100편-제70편] 방심(放心) - 손택수 [애송시 100편-제69편] 농무-신경림 [애송시 100편-제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애송시 100편-제67편] 칼로 사과를 먹다-황인숙 [애송시 100편-제66편] 의자-이정록 [애송시 100편-제65편] 생명의 서(書)-유치환 [애송시 100편-제64편] 섬진강1 - 김용택 [애송시 100편-제63편]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애송시 100편-제62편] 눈물-김현승 [애송시 100편-제61편] 노동의 새벽-박노해 [애송시 100편-제60편]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박재삼... [애송시 100편-제59편]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장... [애송시 100편-제58편]수묵(水墨) 정원9-번짐-장석남 [애송시 100편-제57편]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송찬... [애송시 100편-제56편]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애송시 100편-제55편] 봄바다 - 김사인 [애송시 100편-제54편] 나그네-박목월 [애송시 100편-제53편]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애송시 100편-제52편]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애송시 100편-제51편]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애송시 100편-제50편] 봄 - 이성부 [애송시 100편-제49편] 바람의 말 - 마종기 [애송시 100편-제48편] 서시 - 윤동주 [애송시 100편-제47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 [애송시 100편-제46편] 어디로? - 최하림 [애송시 100편-제45편] 향수 - 정지용 [애송시 100편-제44편]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애송시 100편-제43편] 쉬 - 문인수 [애송시 100편-제42편]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애송시 100편-제41편] 6은 나무 7은 돌고래 - 박상순... [애송시 100편-제40편] 박꽃 - 신대철 [애송시 100편-제39편]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애송시 100편-제38편]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애송시 100편-제37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애송시 100편-제36편]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애송시 100편-제35편] 그릇1 - 오세영 [애송시 100편-제34편] 어떤 적막 - 정현종 [애송시 100편-제33편] 저녁의 염전 - 김경주 [애송시 100편-제32편] 소 - 김기택 [애송시 100편-제31편]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애송시 100편-제30편]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애송시 100편-제29편] 성탄제 - 김종길 [애송시 100편-제28편]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애송시 100편-제27편] 광야 - 이육사 [애송시 100편-제26편] 산정 묘지 - 조정권 [애송시 100편-제25편]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애송시 100편-제24편]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애송시 100편-제23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애송시 100편-제22편] 푸른 곰팡이-산책시1, 이문재 [애송시 100편-제21편] 귀천 - 천상병   [애송시 100편-제20편] 삽, 정진규 [애송시 100편-제19편] 겨울 바다,김남조 [애송시 100편-제18편] 님의 침묵 - 한용운 [애송시 100편-제17편]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애송시 100편-제16편]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애송시 100편-제15편] 목마와 숙녀, 박인환 [애송시 100편-제14편]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애송시 100편-제13편] 빈집, 기형도 [애송시 100편-제12편] 저녁눈, 박용래 [애송시 100편-제11편] 대설주의보, 최승호 [애송시 100편-제10편] 사슴, 노천명 [애송시 100편-제9편] 한잎의 여자, 오규원 [애송시 100편-제8편] 묵화, 김종삼 [애송시 100편-제7편] 사평역에서, 곽재구 [애송시 100편-제6편] 동천, 서정주 [애송시 100편-제5편] 꽃, 김춘수 [애송시 100편-제4편] 즐거운 편지, 황동규 [애송시 100편-제3편] 남해금산, 이성복 [애송시 100편-제2편] 풀, 김수영 [애송시 100편-제1편] 해, 박두진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시시지락(詩詩之樂)을 꿈꾸며 시의 부활을 노래하다   1908년에 발표된 육당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효시로 한국 현대시가 10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여 조선일보에서는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이라는 타이틀로 1월 1일부터 5월 4일까지 연재하였고, 시 연재의 새 바람을 일으키며 문단과 독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전국의 시 애호가들 사이에 신문 스크랩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며,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시를 퍼 나르는 ‘사이버 스크랩족(族)’들도 생겨났다. 이를 책으로 엮어 달라는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마침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베스트 시 100편’이 아닌 ‘애송시 100편’인 만큼 문학사적 의미를 따지기보다는 입에 착착 붙는 시들이 많다. 해설자들이 개인적인 취향으로 시를 고른 것이 아니라 100명의 시인들이 시를 추천했기 때문에 다양한 시가 소개됐다. 김소월, 한용운부터 김수영, 기형도를 거쳐 안현미, 김경주 같은 젊은 시인들의 시가 나란히 소개된 것이 참신하다. 여기에 정끝별·문태준 시인의 깊이와 재미를 아우르는 맛깔스러운 해설과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권신아․잠산의 감각적인 그림이 어우러져 시의 감동을 더했다. 해설자들은 연재할 시들의 정본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맞춤법조차 확립되지 않았을 때 쓰인 시들이 다수였고, 개정판을 낼 때 시인 스스로 작품을 고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투리 처리 문제도 늘 고민거리였다. 고민 끝에, 시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현행 맞춤법 규정을 따랐으나, 단, 어감이 현저하게 달라질 경우를 고려하여 고어, 사투리, 뉘앙스가 있는 것들은 그대로 두었다. 해설을 맡은 정끝별 시인은 “전통적인 애송시와 함께 최근 발표된 시들이 골고루 포함돼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풍성함과 신선한 느낌을 함께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으며, 문태준 시인은 “예전에는 시집이 서점에서 독자를 기다렸지만, 지금은 시를 소개할 다양한 무대와 장치를 고안해서 시가 독자를 찾아가야 한다.”라고 말하며 시단의 적극적인 대응을 강조했다.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문에서 시를 연재하며 이렇게 많은 시인을 참여시킨 전례가 없다. 기획에서부터 시인들과 국민이 동참하도록 해 시 연재를 국민적 축제로 격상시켰다.”라고 평가했으며,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일러스트에 주목하며 “젊은 영상 세대들까지 끌어들인 멋진 발상이다. 함께 소개된 일러스트는 시라는 장르가 원래 그림이나 노래와 함께 하나로 향유되던 예술이었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 주었고, 디지털 시대에 시와 다른 장르의 성공적인 합일 가능성까지 엿보게 한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애송시 100편 어떻게 골랐나   100편의 시를 선정하기 위해 현역 시인 100명에게 각자 10편씩 추천을 의뢰했다. 그 결과 156명의 시인이 쓴 작품 429편이 1회 이상 추천을 받았다. 현대시 100년이 이룬 다양한 성과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다수 추천작 순으로 시를 선정하는 대신 2회 이상 추천을 받은 시인 89명과, 1회 추천 시인 가운데 11명을 추가해 100명의 시인을 확정했고, 시인마다 1편씩 소개하는 방식으로 연재 대상 시를 골랐다. 설문 결과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는 김수영의 「풀」이었다. 이 밖에 한용운 「님의 침묵」,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김소월 「진달래꽃」, 김춘수 「꽃」, 윤동주 「서시」, 서정주 「동천」, 신경림 「농무」, 정지용 「향수」, 박목월 「나그네」가 ‘추천 횟수 베스트 10’에 포함됐다. 작가별로는 서정주 시인이 62회 추천을 받아 이 부문 수위를 기록했으며, 김수영 시인은 58회로 2위에 올랐다.    
400    [닭멱살 쥐고 詩 한컷]- 아니오 댓글:  조회:2347  추천:0  2016-04-15
    아니오   신동엽       아니오 미워한 적 없어요, 산 마루 투명한 햇빛 쏟아지는데 차마 어둔 생각 했을 리야.     아니오 괴뤄한 적 없어요, 陵線 위 바람 같은 음악 흘러가는데 뉘라, 색동 눈물 밖으로 쏟았을 리야.     아니오 사랑한 적 없어요, 세계의 지붕 혼자 바람 마시며 차마, 옷 입은 都市계집 사랑했을 리야.     이 시는 1963년, 시인이 생전에 유일하게 펴낸 시집 ‘아사녀’에 실려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 ‘4월은 갈아엎는 달’ 등 수많은 저항시를 쓴 민족시인입니다. 1975년 6월 ‘신동엽 전집’이 나왔을 때, 당시 ...정부는 책의 내용이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다며 판매금지했었다고 합니다.  
399    애송시 100 댓글:  조회:3856  추천:0  2016-04-11
.bbs_contents p{margin:0px;} @@ 클릭하여 감상해 보기 [애송시 100편-제100편]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애송시 100편-제99편]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애송시 100편-제98편] 오산 인터체인지-조병화 [애송시 100편-제97편] 맨발 - 문태준 [애송시 100편-제96편] 비망록-김경미 [애송시 100편-제95편] 인파이터 - 코끼리군의 엽서, ... [애송시 100편-제94편] 가지가 담을 넘을 때-정끝별 [애송시 100편-제93편] 감나무-이재무 [애송시 100편-제92편] 참깨를 털면서-김준태 [애송시 100편-제91편] 거짓말을 타전하다-안현미 [애송시 100편-제90편] 추일서정(秋日抒情)-김광균 [애송시 100편-제89편] 철길-김정환 [애송시 100편-제88편] 낙화-이형기 [애송시 100편-제87편]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애송시 100편-제86편] 서시-이시영 [애송시 100편-제85편] 낙화-조지훈 [애송시 100편-제84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김광규... [애송시 100편-제83편] 솟구쳐 오르기 2-김승희 [애송시 100편-제82편] 해바라기의 비명(碑銘)-함형수... [애송시 100편-제81편] 보리피리-한하운 [애송시 100편-제80편] 갈대 등본-신용목 [애송시 100편-제79편] 투명한 속-이하석 [애송시 100편-제78편] 일찌기 나는-최승자 [애송시 100편-제77편] 국토서시(國土序詩)-조태일 [애송시 100편-제76편] 조국(祖國)-정완영 [애송시 100편-제75편]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애송시 100편-제74편] 절벽-이상 [애송시 100편-제73편] 반성 704 - 김영승 [애송시 100편-제72편]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애송시 100편-제71편] 진달래꽃-김소월 [애송시 100편-제70편] 방심(放心) - 손택수 [애송시 100편-제69편] 농무-신경림 [애송시 100편-제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애송시 100편-제67편] 칼로 사과를 먹다-황인숙 [애송시 100편-제66편] 의자-이정록 [애송시 100편-제65편] 생명의 서(書)-유치환 [애송시 100편-제64편] 섬진강1 - 김용택 [애송시 100편-제63편]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애송시 100편-제62편] 눈물-김현승 [애송시 100편-제61편] 노동의 새벽-박노해 [애송시 100편-제60편]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박재삼... [애송시 100편-제59편]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장... [애송시 100편-제58편]수묵(水墨) 정원9-번짐-장석남 [애송시 100편-제57편]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송찬... [애송시 100편-제56편]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애송시 100편-제55편] 봄바다 - 김사인 [애송시 100편-제54편] 나그네-박목월 [애송시 100편-제53편]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애송시 100편-제52편]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애송시 100편-제51편]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애송시 100편-제50편] 봄 - 이성부 [애송시 100편-제49편] 바람의 말 - 마종기 [애송시 100편-제48편] 서시 - 윤동주 [애송시 100편-제47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 [애송시 100편-제46편] 어디로? - 최하림 [애송시 100편-제45편] 향수 - 정지용 [애송시 100편-제44편]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애송시 100편-제43편] 쉬 - 문인수 [애송시 100편-제42편]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애송시 100편-제41편] 6은 나무 7은 돌고래 - 박상순... [애송시 100편-제40편] 박꽃 - 신대철 [애송시 100편-제39편]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애송시 100편-제38편]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애송시 100편-제37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애송시 100편-제36편]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애송시 100편-제35편] 그릇1 - 오세영 [애송시 100편-제34편] 어떤 적막 - 정현종 [애송시 100편-제33편] 저녁의 염전 - 김경주 [애송시 100편-제32편] 소 - 김기택 [애송시 100편-제31편]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애송시 100편-제30편]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애송시 100편-제29편] 성탄제 - 김종길   [애송시 100편-제28편]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애송시 100편-제27편] 광야 - 이육사 [애송시 100편-제26편] 산정 묘지 - 조정권 [애송시 100편-제25편]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애송시 100편-제24편]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애송시 100편-제23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애송시 100편-제22편] 푸른 곰팡이-산책시1, 이문재 [애송시 100편-제21편] 귀천 - 천상병   [애송시 100편-제20편] 삽, 정진규 [애송시 100편-제19편] 겨울 바다,김남조 [애송시 100편-제18편] 님의 침묵 - 한용운 [애송시 100편-제17편]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애송시 100편-제16편]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애송시 100편-제15편] 목마와 숙녀, 박인환 [애송시 100편-제14편]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애송시 100편-제13편] 빈집, 기형도 [애송시 100편-제12편] 저녁눈, 박용래 [애송시 100편-제11편] 대설주의보, 최승호 [애송시 100편-제10편] 사슴, 노천명 [애송시 100편-제9편] 한잎의 여자, 오규원 [애송시 100편-제8편] 묵화, 김종삼 [애송시 100편-제7편] 사평역에서, 곽재구 [애송시 100편-제6편] 동천, 서정주 [애송시 100편-제5편] 꽃, 김춘수 [애송시 100편-제4편] 즐거운 편지, 황동규 [애송시 100편-제3편] 남해금산, 이성복 [애송시 100편-제2편] 풀, 김수영 [애송시 100편-제1편] 해, 박두진
398    중국 력대 하이퍼시 모음 댓글:  조회:4136  추천:0  2016-04-08
중국력대하이퍼시   우리가 추구하는 하이퍼시는 어디것인가? 하이퍼시라는 이름은 서양에서 들어왔지만 그뿌리가 중국에 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현대시로부터 하이퍼시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많은 명제들은 워낙 중국고전으로부터 알려진 명제들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출판한 중국명시들을 중심으로 고대로부터 내려온 하이퍼시를 나름대로 편집하였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아직 이렇다는것이 밝혀지지 않고있습니다. 하이퍼시는 한가지 작시방법입니다. 이 작시법이 중국고전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시인들이 중시한 작시법입니다. 그러니 하이퍼시는 중국시의 전통이라고 말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중국하이퍼시는 자아의 침투가 드러난것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극복하여야 할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집성한것을 보냅니다. 시공부에 도움이 있기를 바라면서.                 /최룡관                            2016.4.6.     중국 고대 하이퍼시.   1 전당강서 밤을 새우며(외1수) 맹호연(689ㅡ740)   연기 좌욱한 나룻가에 배를 묶고 어스름 저녁, 나그네가 고개 숙인다   아득한 들끝, 하늘이 나무에 내려앉고 맑은 강물, 달님이 사람곁에 다가선다     2 광릉 친구에게 부치노라     산그늘 넘어지자, 잔나비 우는데, 강물은 밤을 타고 더욱 급하다.   바람은 두골짜기 풀잎을 울리고, 달빛은 한잎새, 조각배를 비춘다.   건덕땅은 낯설지만, 광릉땅은 향긋 그리워   두줄기 눈물을 고이고이 싸서 서녁땅 친구에게 보내고파라.     3 가을밤 왕유(701ㅡ781)   빈 산에 가을비, 쓸쓸하고 썰렁하네.   소나무새로 달님이 비치고, 바위위로 샘물이 맑아,   빨래하는 녀인 오느라, 대숲이 바슥바슥, 고깃배 돌아가느라, 연잎이 흔들흔들.   봄풀은 어이 없이 스러지는데, 왕손은 여기서 서성인다.   4 오야제(烏夜题) 리백(701ㅡ762)   황운성 변두리에 보금자리 찾는 까마귀 까악! 까악! 날아와 우네   베틀에 비단 짜던 진천의 아낙네 자욱이 파란 사창 저 안에서 무언지 중얼대다가   북을 멈춘채 멍하니 하늘 보며 먼먼 임을 그리는 외로운 방 주룩주룩 눈물 흐르네     5 촉도난   아이구! 저리도 높고 험할진저 촉나라 가는 길이 하늘 오르기보다 어려운가?   잠총이나 어부같은 선조들, 나라를 세울 때 얼마나 망연했을까?   그때로부터 사만팔천년전 바로 이웃나라인 진나라와도 벽을 치고 살았다.   서쪽으로 태백산이 막혔고, 거기엔 새 길이 났기로 그 길은 아미산꼭지를 가로 질렀다.   땅이 무너지고 산이 깎이느라 장사들이 죽은 뒤라서 저기 하늘끝에 사다리가 서고 돌띁에 다리가 매였거늘.   위로는 해를 끄는 륙룡마저도 넘지 못하는 봉우리 아래로는 넘실거리는 물결마저 거꾸로 돌아서는 골짜기   황학은 너무 높아 나래를 접고 잔나비는 너무 험해 손을 움추린다 ………………   6 나그네의 밤(외1수) 두보(712ㅡ770)   가는 풀 산들바람 강기슭에, 높은 돛대 혼자서 지새우는 밤.   별들이 들에 내려 별밭을 일구고, 달님이 따라 내려 강물에 출렁인다.   글 지어 얻은 명성 얼마나 가랴! 늙고 병들어 벼슬조차 던지련다.   훨훨 나부끼는 나무는 무엇일가? 모래사장 지평에 날으는 외기러기.     7 산에 올라   하늬바람 높은 가을하늘 잔나비 울음소리 슬프네 백사장 맑은 물에 오락가락 새 한마리   끝없이 나무잎은 우수수 쏟아지고 끝없는 장강물은 유유히 흘러간다   만리밖 나그네는 가을이 슬퍼 가도가도 병 든 몸 누대를 오른다   귀밑머리 센채로 한을 삼키고 꼬부랑 늙은 터에 술조차 끊었구나   8 영스님 거문고 소리를 듣고 한유(768ㅡ824)   속삭이는 련인들이 귀속말인가 사랑사랑 정이 넘쳐 애틋도 하다. 한번 긋자 바람소리 우렁차더니 장사가 적진에 돌진하는듯 흩날리는 버들꽃 떠도는 구름이라 드넓은 우주에서 자유로이 날아라. 백천마리 뭇새들이 지저귀는가 갑자기 들려오는 봉황새소리 더는더는 가락이 높아질수 없을 때 구천에서 떨어져 지심에 잦아드네. …………   9 오의항(乌衣港)(외1수) 류우석(772ㅡ842)   주작교다리아래 들풀꽃 만발하고 오의항어구로 석양이 내비치네   옛날 왕사집에 넘나들던 제비들 지금은 이름 모를 민가에 날아드네.     10 석두성에서     산이 옛땅을 에워싸듯 둘렀기로 썰물은 옛성을 두들기다 저 홀로 돌아간다.   회수 동쪽에 돋던 옛달은 이 밤도 저 낮은 담을 너머 가까이 다가온다.     11 강에는 눈만 내리고 유종원(773ㅡ819)   천산엔 새 끊기고 만경엔 사람 그림자 하나 없네   조각배우에 우장 삿갓 쓴 노인 혼자서 차디찬 강설을 낚네.     12 고기잡이 노인   고기잡이 노인 서쪽바위에서 밤을 새고, 새벽녘 상강물로 초죽을 태운다.   일출에 안개는 사라지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고 노젖는 소리에 강산만이 푸르다.   무심히 고개 들어 보니 하늘에서 물이 흐르고 바위위로 하염없는 구름이 오락가락.   13 가을밤(외1수) 리하(790ㅡ816)   가을바람소리 소슬히 불제 장부의 괴로운 심사, 깜박이는 등불에 여치마저 슬피우네   그 누구가 있어 올올이 엮어진 이 책을 비단벌레에게서 오래도록 지켜주리?   오늘밤 이 시름에 애타는 이 심정, 빗속에서 나를 찾는 여인의 넋이여!   가을 무덤가에는 어느 넋이 있어 포조의 시를 읊거늘 천년의 한이 흙에 묻혀 푸르리     14 장안을 떠나며     눈속에 계수나무 지고 까마귀, 총에 맞아 울고 간다.   관수엔 노새 그림자 진나라 바람결에 모자끈이 날린다.   고향 찾아 만리를 갔건만 벼슬을 얻지 못해 슬픔만이.   아내는 차마 묻지 못한채 거울에 비치는 두줄기 눈물.     15 산행 두목(803ㅡ852)   멀리 가을산의 돌길을 오르면, 흰구름 깊은 곳에 인가가 보이네.   이월의 꽃보다 붉은 단풍이 있어, 수레 멈추고 해지는줄 모르네.   16 상아여(외2수) 리상은(812ㅡ858)   운모(云母)는 병풍안 촛불 혼자서 떨고, 은하는 내려앉아 샛별도 희미하네.   지금쯤 상아는 선약 훔친것을 뉘우치며, 밤마다 푸른 하늘을 보고 가슴 치고있겠지.   17 낙화   높은 다락의 손님들 흩어질 때 뒤란의 꽃잎들 자욱이 흩날린다.   꼬부랑 논두렁을 오르락내리락 멀리 석양을 전송한다.   애타는 마음으로 낙화를 쓸수 없어 뚫어지게 보노라면 봄은 다시 돌아올듯   내 사랑 봄따라 가버리고 남은것은 눈물 젖은 옷자락뿐     18 거문고   거문고는 어이타 쉰줄인가? 줄마다 기러기발마다. 젊은 날이 묻히였네.   장자는 나비되여 새벽꿈속을 헤매고 망제는 두견되여 춘삼월을 슬퍼하네.   달 밝은 바다가에서 진주는 눈물을 훔치고, 남전(蓝田)의 따스한 날 옥구술이 연기를 뿜네.   먼 훗날에 이 모든 일들이 추억이 되련만 지금은 다만 망망한 마음, 어찌할바 모르네.   19 숙직 왕안석(1021ㅡ1086)   금로에 향불 사그라들고 누종소리 아득할 때, 솔솔 봄바람에 쌀쌀한 추위.   봄빛이 괴로워 잠 못 이룰 때, 달빛은 꽃 그림자를 마루에 드리우네.   20 봄밤 소식(1037ㅡ1101)   봄밤 한허리를 천금엔들 사겠는가?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달무리.   누각의 풍악소리 굽이마다 슬픈데, 그네 걸린 뜨락엔 밤이 깊어만 가네.   21 쾌각에 올라 황정견(1045ㅡ1105)   소관이 공무를 마치고 나면, 쾌각의 노을은 끝없이 맑아라.   우수수 쏟아지는 락엽에 하늘은 멀고, 환하게 맑은 강물엔 달이 또렷해라.   붉은 거문고줄은 그대 위해 끊었고, 파란 눈빛은 술때문에 가로 보이네.   멀리 돌아가는 배에 처량한 피리소리 이제 내 마음은 갈매기를 벗하네.   22 검문에서 비를 맞으며 육유(1125ㅡ1210)   옷자락엔 먼지 술 흘린 자국 또한 겹쳤지만, 두루 떠돌아보니 곳곳마다 그리워 넋을 뺀다.   이내 몸도 시인일수 있을가? 가랑비 내리는 날 노새 타고 검문을 들어가네.   23 화제(花题) 당인(1470-1523)   삼만경 호수물은 물인지 하늘인지? 천그루 나무끝은 깊어가는 저녁놀.   아이를 불러 작은 배로 호수를 건너며, 누워 노을에 타는 뫼부리를 본다.   중국현대하이퍼시(1집에서)   24 눈물의 자취 刘大白(1880ㅡ1932)   그리움따라 아련히 잠들 때 그대를 교살하여 구유 저 깊은 곳에 묻는다. 봄소식 되살아나는 밤이면 그대는 또 한번 홍두(红豆)가지끝에 되살아난다   비늘구름 누가 저 먼 하늘에다 그렸을가   사람은 꽃속에 사람은 바람속에 바람은 우리들 마음속에   지구에서 달빛이 사라질 때도 어쩌면 이토록 쓸쓸하겠지 ㅡ 혼자 동그마니 앉은 나처럼   25 삼현(三铉) 신인머(1882ㅡ1964)   정오! 불같은 폭염이 아스팔트에 쏟아지는데 거리엔 인적도 끊긴채 바람만 가도의 버들을 쓰다듬는다   뉘집 부서진 대문틈새로 파란 잔디가 보이고 반짝이는 금빛으로 마당이 질펀한데 그 가장자리로 낮은 흙담이 빙 둘러 삼현을 튕기는 그 사람을 에워쌌건만 삼현의 질펀한 소리는 담을 넘는다   문밖에 해진 옷자락에 주검처럼 앉은 로인 있어 머리를 부둥켜 안은채 숨소리를 죽이고있다.   26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刘復(1891ㅡ1934)   하늘엔 송이구름 나부끼고 땅엔 산들바람 불어오는데 여보게 산들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데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달빛은 저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 또한 저 달빛을 사랑하는데 여보게 벌꿀처럼 달디단 저 은하의 밤에 나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강물위에 락화가 둥둥 흐르고 물속엔 물고기 사쁜히 노니는데 여보게 제비는 무어라 지껄이는데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앙상한 가지는 바람에 흔들리고 야화는 놀속에 붉게 타는데 여보게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27 천상의 거리 곽말약(1892ㅡ1978)   가물가물 가로등이 켜있다 무수한 별들이 깜박이듯 하늘에 별이 빛난다 무수한 가로등을 켜듯   저 아물아물한 공중엔 정녕 아름다운 거리가 있겠지 거리에 진열한 상품들은 인간세상에서 볼수 없는 진품이겠지   보아요 저 나직한 은하는 정녕 널다란게 아니겠지 은하건너의 저들 견우 직녀는 필시 소를 타고 오락가락하겠지   저들은 지금 정녕 하늘의 거리를 산책하겠지 믿어지지 않으면 저 류성을 보아요 저들은 초롱을 들고 걸어요   28 굿바이 케임브리지 서지마(1896ㅡ1931)   아무도 몰래 왔듯이 아무도 몰래 떠나네 하얀 손 흔들며 서녁하늘 떠가는 구름   강가의 금빛 버들은 석양에 시집가는 새아씨 물결에 밀려밀려 고운 그림자 가슴에 철렁철렁 물결을 이네   향그런 여울위에 파란 풀잎이 비단결 물속에서 그림 그리면 케임브리지 부드러운 파상을 따라 마음은 일렁이는 한가닥 물풀   느릅나무 그늘아래 작은 호수는 샘이 아니라 하늘의 무지개 마름풀 사이로 느릅이 부서지면 무지개 고운 꿈이 그리로 가라앉네   꿈을 쫓아간 쑥대를 짚고 푸른 풀 푸른 물을 거슬러 오르면 가득히 한배에 별빛을 싣고 별빛 비단속에 노래하며 돌아가네   그러나 나는 노래할수 없어라 어디선가 피리소리 가만히 새여오네 벌레도 목이 메여 노래 삼킬 때 오늘밤 케이브리지는 침묵에 잠겨   아무도 몰래 왔듯이 아무도 몰래 떠나네 나그네 옷소매를 훨훨 털면서 행여나 묻혀질가 서녘 땅 구름   케임브리지; 영국 동부 도시이름   29 어쩌면 문일다(1899ㅡ1946)   어쩌면 당신은 너무 울었나봐요 어쩌면 어쩌면 당신은 잠을 청해보세요 부엉이더런 기침을 삼가하고 개구리더런 울지 말고 박쥐더런 날지 말라고   해빛이여! 당신의 눈까풀을 건드리지 말게 바람이여! 당신의 눈섭을 쓸지 말게 아무도 당신을 깨울수 없나니 솔그늘로 양산 삼아 당신의 잠을 보호하게나   어쩌면 당신은 지금 진흙을 뚫고 가는 지렁이 소릴 듣는게지 어쩌면 당신은 지금 작은 풀뿌리의 물 빨아올리는 소릴 듣는게지 어쩌면 이토록 미세한 음악을 아귀다툼하는 인간의 육성보다 곱게 듣는게지   그래, 당신은 먼저 눈까풀을 내리게나 고이 자게! 고이 자게 내 노란 고물흙을 사뿐사뿐 덮어줄게 그리고 얇은 지전을 훨훨 태워줄게   30 새벽 리진발(1900ㅡ1976)   새벽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게. 미소는 치아들의 틈새에 끼워두고, 조심스런 손길로는 벨을 누르고, 치마끈으로는 융단모양의 국화의 이승을 헤치면서 오게나! 숨결은 어떨까? 나는 도무지 알수 없네 금빛 눈부신 새벽이여! 성큼성큼 다가오게! 구슬소리 달랑달랑 흔들며 오게나! 자네 신비로운 발자국을 가만히 셈세. 자네 팔뚝을 내게로 활짝 벌리고, 저들은 나처럼 잠꾸러기, 깊이 잠들어있네. 들어와 내곁에 앉게. 젖은 신일랑 벗어던지고. 무슨 꽃송이를 땄나? 이리도 자네 가슴에 흥건한 꽃내음. 아니, 그런데 보이지 않더냐? 그것들(꽃송이)이 함께 놀던 작은 양떼들을 떠난지라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자네처럼 절반쯤은 엄숙한 얼굴로 오거든, 내 화필을 놓겠네. 자네처럼 눈망울을 휘둥그렇게 하면서. 밤까마귀는 까맣게 내눈을 칠하더니만 그냥 날아갔고, 장미는 자네 입술에 붉은 연지를 칠하더니만 바람결에 지고 말더군. 우린 오솔길에 숨어서 여윈 풀들이 솔뿌리에서 통곡함을 보고있었네. 자넨 바람속에서 호흡하고, 난 멀리서 바라보고, 그들은 어둠 밤을 향해 광분했네. 더운 밤은 이제야 비로소 문턱을 넘어갔네. 얼마나 웨치다 가 분노와 오열속에 갔을까? 정말 자기가 오지 않았더라면 난 꿈속에서 자네를 내 품에 안았을걸세. 그렇지 어둠은 분명 문턱을 넘어갔네.   31 실비 穆木天(1900ㅡ)   올올이 마음 가느다란 실비줄기마다 파고들어 아련한 빗소리를 파고들어 시나브로 흔들리는 실안개를 파고든다   아득히 먼 수풀 그 가지끝으로 스며든다 어둡도록 막막하게, 그리고 조금씩 들쑥날쑥한 지붕룡머리로 스며든다. 전선 한줄한줄에 스며든다 살살 불어와서 어디론지 아련히 사라지는 음악에도 스며든다   안개가 자욱한 연못에 스며든다 잠자는 련꽃위로 여기저기 엉기어 고요히 나붓기는 안개의 그물에 스며든다 끝없는 꿈속을 헤매는 공상에 스며든다 옛이야기에도 스며들어 어디론지 자욱하다   멀리 보이지 않는 산꼭대기에 스며든다 바람소리 빗소리로 오락가락한 숲속에 스며든다 영원한 순환으로 멀리멀리 휘감기는 강만에 스며든다 구름인지 물인지 , 비었는지 차있는지 모르는 영원한 하늘가로 스며든다 옛날의 도시, 농촌, 영원한 안개, 영원한 연기에 스며든다 영원한 몽롱, 몽롱뿐인 ㅡ마음에 스며든다 끝없는 담박, 끝없는 황혼, 영원한 점선, 영원한 나부낌, 영원한 그림자, 여원한 실체, 영원한 공허,   끝없는 비줄기 끝없는 마음의 실오라기 몽롱 몽롱 몽롱 몽롱 몽롱 가늘게 무한히 몽롱사이를 스며든다   32 올올이 마음 가늘게 한줄기한줄기 빗줄기 사이로 스며든다.   33 리발소 癈名(1901ㅡ)   리발사의 비누거품은 우주와 상관이 없다 마치 물고기가 강호을 잊듯 리발사 손에 쥔 면도기는 인류라는게 많은 자국을 그어야 된다는걸 상기시킨다 벽에는 사구려 라디오가 울린다 그것은 령혼의 침.   34 무덤 하나 朱湘(1903ㅡ1933)   무덤 하나 동그마니 무덤앞에 들풀이 무성하고 무덤 하나 동그마니 뱀이 기어가듯 바람이 풀을 스친다   반딧불 하나 어둠이 사방을 에워싸고 반딧불 하나 콩만한 빛을 낸다   해괴한 새 한마리 스산한 나무그림자에 숨어 해괴한 새 한마리 인간과는 달리 울음을 터뜨린다   누런 달 한갈쿠리 구름속에서 빼꼼히 내밀고 누런 달 한갈쿠리 문득 산기슭으로 진다   35 14행 대망서(1905ㅡ1950)   보슬비가 당신의 헝클어진 빈모자에 나붓기고있다 작은 구슬방울이 파란 미역덤불에 부서지듯 죽은 물고기가 하얀 파도위에 뒹굴듯 그 신비롭고 슬픈 빛을 번득이고있다   내 푸른 령혼을 데리고 사랑과 죽음이 깃든 꿈의 왕국에서 잠을 청한다 거기엔 황금색공기와 자색 태양이 있고 거기 불쌍한 생물들이 기쁨의 눈물을 가슴에 적신다 한마리 까맣게 야윈 고양이처럼 나는 그 어둠속에서 초췌하게 기지개를 켜며 내 모든 위선과 진실한 교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고양이를 따라 몽롱한 뽀얀 안개속을 비틀거리며 연분홍 술거품이 호박종에 흩날리듯 나는 뜨거운 눈망울을 거기 어두운 기억속에 감추어둔다   36 편지 卞之林(1910ㅡ)   우체부가 평상처럼 벨을 누른다 바로 대문의 한가운데를 누른다 황해를 헤염쳐온 물고기인가? 시베리아를 날아온 기러기인가? 지도를 펴고 찾아라고 멀리 간 사람이 말했다 그는 자기가 사는 곳은 그 점신이 끝나는 작은 흑점이라고 표시했다 그것이 끔빛 빛나는 점이고 내 의자는 태산의 꼭지라면 휘영청 밝은 달밤 당신이 머문 곳은 틀림없이 외로운 정거장이겠다 하지만 나는 헌 력사책을 펼치고있거늘 서쪽으로 저녁노을의 함양 옛길을 내다보며 나는 한필의 준마가 달려오는 찰그랑찰그랑 말굽소리를 기다린다.   함양; 진나라서울   37 구름 하기방(1927ㅡ1977)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해, 저 나부끼는 구름을…’’ 그것은 어쩌면 보들레르 산문시구절 그 목을 한쪽으로 빼고 근심에 차 하늘을 바라보는 멀리서 온 사람   시골을 가면 농부는 성실해서 제 땅을 잃었다 그들의 집은 줄지어 농구로 변신되고 낮이면 논밭에 나가 먹이를 찾고 밤이면 메마른 돌다리에서 잠을 청했다   나는 해변의 도시로 갔다 겨울의 아스팔트위엔 별장들이 줄을 서는데 어쩌면 거리에 서있는 창녀같았다 그들도 여름의 환락과 부옹의 탐락,무치를 기다린다   지금부터 나는 북받치는 울분속에 맹서하리라 내게 차라리 작은 띠집 한채를 원할지언정 구름을 사랑하지 않으리 달과 별도 사랑하지 않으리   38 항해 辛笛(1912ㅡ)   돛을 달았다 돛은 노을이 있는 곳으로 맑고 이끼 낀 곳으로 돛대는 까만 물을 입맞춤한다 까만 나비와 흰 나비처럼   밝은 달은 머리를 비춘다 파란 뱀이 은빛 구슬을 희롱하며 돛대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바람이 불자 뱃사람들은 비와 별들을 묻는다   낮에서 밤까지 밤에서 낮까지 우리는 이 동그라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위에도 원 앞에도 원 영원하면서도 끝이 없는 동그라미   목숨이 망망함은 망망한 연기빛 물을 벗어난다   39 배 纪弦(1913ㅡ)대만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 난 여기 파도 흉용한 육지를 항해한다 내 파이프 자욱히 연기를 뿜으면 나직한 뱃고동 저음의 목청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 나의 적재단위는 ‘’인생’’이란 중량.     40 어렸을 때(외1수) 绿原(1922ㅡ)   어렸을 때 나는 글자를 모르고 엄마는 도서관   나는 엄마를 읽는다   어느날 이 세상이 태평해서 사람이 날고… 보리가 눈더미에서 돋고… 돈이 쓸데가 없고…   금괴는 집 짓는데 벽돌로 쓰고 지페는 발라서 연을 만들고 은전은 던져서 물에 무늬를 일으키고,,,   나는 떠돌이 소년이 되련다 금을 칠한 사과 하나와 은발의 초 한자루 그리고 이집트에서 날아온 홍학 한마리를 들고.   41 우울   태양이 부채꼴의 방사선을 공급하더니 몰락하고 예수는 노새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길손은 초롱불 하나를 사서 건너마을 주막집을 찾는다   성인은 황혼의 연기빛 물가에서 고뇌한다 (우렁은 그의 껍질로 돌아갔다.) 비가 내리는 성곽의 다락엔 (저녁종은 십자가 그림자를 그리며 울린다.) 언제나 투명한 소리 있어 너의 이름을 부른다 그래, 마땅히 꿈꾸는 나그네를 깨워야지   이것은 동화   밤이 깊었다 내게 성냥 한개비를 주소서.   중국현대하이퍼시 (2집에서)   42 겁회(劫灰) 羊令野(1923ㅡ) ㅡ 다만 잡목사이로 보일뿐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다. 천둥이 치고 불이 붙고 잿더미에서 나비가 날고   모든것은 무성하지 못한채 맨 손으로 하늘을 더듬는다 북두성은 하늘을 마르도록 퍼내면서 아직껏 단 술 한잔을 따르지 못한다 다만 눈, 비의 꽃송이들 당신의 과실 하나 맺지 못할 이마에 풍성하게 열렸다   뻐꾹새 온 3월을 울었건만 한알의 쌀도 남기지 않은채 봄과 함께 훌쩍 떠나고 당신의 나이테엔 해마다 거듭되는 녹음이 남았건만 모두가 지난 해의 낡은 가락들 당신의 마음에 맴도는 한마리 잠을 잃은 사자 밤마다 풍성한 장미를 맡는다 모든 꽃다움을 후호에 뱉으면서 손바닥에 길렀던 빨간 봉황을 깨워 불붙는 태양으로 날려보낸다   누구의 도끼로 당신의 우주를 철썩 쪼개놓고 우르 꽝꽝 천둥이 울린뒤 바람결에 재더미는 훨훨 남가몽의 나비.   43 민가 위꽝중(1928ㅡ)   듣건대 북방에 민가 한편 있거늘 다만 황하의 페활량이라야 노래할수 있다네 청해로부터 황하까지 바람도 듣고 모래도 듣고   황하가 얼어 빙하가 된다면 아직도 양자강의 가장 오랜 비음 있거늘 고원으로부터 평원까지 물고기도 듣고 룡도 듣는   양자강이 얼어 빙하가 된다면 또 내가 있지 나의 홍해가 남아 울부짖거늘 새벽 밀물부터 저녁 밀물까지 깨여도 들리고 꿈에도 들리는   어느날 나의 피마저 얼게 될 때 아직도 당신의 피와 저이의 피가 남아 합창하거늘 A형에서 B형까지 울어도 들리고 웃어도 들리고   44 스트리킹(裸奔) 뤄푸(1928ㅡ)   ……… 2 모자는 벗어 아버지께 옷은 벗어 어머니께 신은 벗어 자식들에게 넥타이는 풀어 친구에게 우산은 주어 이웃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하픔을 한다)   침대는 개미더러 책들은 바퀴더러 사진은 벽더러 편지는 화로더러 시고(诗稿)는 비바람더러 술주전자는 달더러 가져가라하고   (그 혼자서 가만이 쭈그려앉는다)   손발은 삼림에게 골격은 진흙에게 모발은 풀잎에게 지방은 화염에게 혈류는 강하에게 눈은 하늘에게 돌려주고   (그는 갑자기 머리를 세운다)   참새에게 환희를 주먹에겐 분노를 생채기에겐 슬픔을 거울에겐 분함을 폭탄에겐 원한을 력사에겐 망연함을 돌려주고   (돌격준비!)   그는 지금 막 거리로 용입한다 그는 지금 막 먼지로 치닫는다 그는 지금 막 눈보라로 뛰여든다 그는 지금 막 나무들새로 걸어간다 그는 지금 막 강철들과 합류한다 그는 지금 막 꽃내음에 말려든다   드디어 길기도 짧기도 세기도 부드럽기도 구름일수도 안개일수도 숨었다가도 나오며 있다가도 없고 비였다가도 가득한 알몸으로 승화한다   산의 소나무처럼 벌거숭이로 물의 붕어처럼 벌거숭이로 바람의 연기처럼 알몸 그대로 별의 밤처럼 알몸 그대로 안개의 선녀처럼 가리지 않고 얼굴의 눈물처럼 알몸 그대로   3   그는 지금 넘실거리는 종소리를 향해 달린다 달려간다….     45 2대2 뤄먼(1928ㅡ)   1   창밖은 문 문밖은 잠기고 산밖엔 물 물밖엔 망망한 하늘과 땅   2   사람은 옷을 입고 호주머니엔 려권을 모시고 새는 하늘을 입어도 하늘 그 주머니엔 아무것도 없다   3   새는 산과 물로 날아들고 닭은 푸성귀시장으로 옹기종기   4 바람과 구름과 새의 현주소를 알고자 하늘과 평원의 끝까지 웨쳐도 저들의 다리는 그 골목 그 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5   엘리베이터로 엠파이어를 올라도 엘리베이터는 지붕아래에서 머물고 하늘이 구름을 타면 우리들의 시력이 얼마의 높이를 갖고 얼마의 깊이를 갖는지 누가 알랴!   6   낚시줄을 깊은산 시냇물에 띄우면 온 하늘은 거기서 조용히 앉았고 다시 그녀의 허리로 눈길을 옮기면 눈자위마다 번지는 죽은 이의 재즈가락 (16까지 있으나 길어서 삭제함)   46 말굽소리 바이화(1930ㅡ)   밤 댐,강물,차밭에 달빛이 살짝 깔릴 때 타이족꼬마가 엄마의 무릎에서 자고 꼬마의 꿈속엔 참새들이 줄을 지어 노래한다 꽃들은 풀더미속에 동글동글 미소하고 야자와 망고들이 산턱에 모여 아우성한다   순찰병의 말굽소리 철그럭철그럭 멀리서 가까이 다가온다… 어머니가 은근히 미소하는 순간 말굽소리는 또 멀리 사라진다   여명 풀밭, 텐트, 소, 염소들이 찬란한 서광을 이마받이할 때 이족아가씨가 님의 가슴앞에서 나직이 노래한다 그녀는 맑은 호반의 짙푸른 목장을 노래한다 소와 염소 떼속 준마를 탄 소념 그리고 와글와글 소리치는 젖소새끼들   순찰병이 말굽소리 찰그럭찰그럭 멀리서 가까이 다가온다… 아가씨가 수줍어 돌아보는 순간 말굽소리는 또 멀리 사라진다   석양 설산, 빙하, 파란 보리싹들에 지는 노을이 머물 때 장족의 손주가 할아버지어깨에서 피리를 분다 그가 스스로 그리는 먼먼 곳을 분다 먼 곳에 붉은 보석의 서울이 있고 그 붉은 보석이 성에 영원히 대지를 비추는 태양이 반짝이고있다   순찰병의 말굽소리 찰그럭찰그럭 멀리서 가까이 다가온다… 할아버지가 눈 깜박이는 순간 말굽ㅈ소리는 또 멀리 사라진다.   47 고도 호구에서 예웨이렌(1936ㅡ 대만)   줄이 끊긴 비파가 공중에 가로 놓여 바람의 손가락더러 치라한다 바람의 손가락더러 배속을 때리라 한다   그 다락에 앉은 여자가 머리를 빗는다 광서황제의 얼굴에 닿도록 빗질한다 머리가 너무 길어서 우리는 아무리 쫓아도 따라갈수 없다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우러르며 줄이 끊긴 연 한닢을 볼수밖에 없다   48 종달새 레이수얜(1940ㅡ)   날아라! 종달새! 오월의 고요한 새벽을 날개쳐라!   너는 오만한 벼락 너는 즐거운 유성 너는 장려한 일출을 보았고 네 가슴에 일렁이는 행복 너의 사랑 전부로 이 광명을 노래하렴   날아라! 종달새! 오월의 고요한 새벽을 날개쳐라!   49 보리 푸탠린(1946ㅡ)   보리, 내 사무치게 사랑하는 보리, 내 그대를 위해 시를 쓰노라   청순한 오월엔 일년에 한차례의 수확을 기다린다 봅리수염의 휘날림은 해볕의 자상한 은총 낫을 놓고 절구통과 술을 두들긴다 묶어진 보리짚단은 허리에 수건을 졸라맨 사내   내게는 보리 말고 이 세상 무엇을 갖겠나?   나는 당신이 총애하는 계절인가? 나는 당신의 원야로서 혼례를 파종하는 밀월인가? 불어나는 열매는 갈수록 풍만해지는 내허리 아침 안개를 걸친 자세는 어느 천자의 긴 두루마기   아! 이른 아침, 어느 농부가 나를 공중으로 들어올린뒤   달밤은 버드나무 한줄과 살구나무 한줄로 경계를 쌓고 어쩌다가 메뚜기 한마리가 외밭으로부터 슬금슬금 도망나온다 뼈 없이 한들한들한 싹은 감수와 항쟁의 깃발 보리! 내 사무치게 사랑하는 보리 내 그대를 위해 시를 쓴노라   50 태양성편지 뻬이따오(1949ㅡ)     목숨   태양은 위로 오른다   사랑   고요, 기러기떼가 날아간다 황페한 처녀지로 고독이 쿵 넘어진다 하늘엔 짜고 떫은 비가 나부끼고   자유   찢어진 휴지가 나부낀다   아가씨   떨리는 무지개가 나는 새의 꽃털을 채집한다   청춘   붉은 물결이 고독한 노로 스며든다   예술   억만개 휘황한 태양이 부서진 거울에서 현신(现身)한다   인민   달빛에 찢겨 반짝이는 보리알이 성실한 하늘과 땅에 뿌려진다     로동   손, 지구를 에워싼다   운명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난간을 치고 난간은 아무렇게나 밤을 때린다   신앙   양떼가 파란 늪에 넘실거리고 목동은 외마디 퉁소를 분다   평화   식품은 쇼윈도를 빙빙 돌고 말 없는 초콜렛 대포   조국   그는 청동의 방패위에 주조되여 박물관 까만 판자울타리에 기대고있다   생활   그물     51 기왕 쉬징야 (1950ㅡ)   기왕 앞으론 망망대해 뒤로는 아득한 륙지일바에야 기왕 발아래론 파란 만장을 밟고 또 숙명대로 저 파도를 그릴바에야 기왕 기대고 참을만한 초석조차 해저로 가라앉은바에야 기왕 저륙지는 멀고 바다와 하늘에 가로막혔을바에댜 차라리 내 일생을 바다에 주자꾸나 저 앞에 아무런 안전표지도 없는 바다에 주자꾸나   52 시월의 헌시(외1수) 망커(1951ㅡ)   수확   가을이 살며시 내 얼굴에 오더니 내가 익었다   로동   나는 장차 모든 마차와 함께 태양을 보리밭으로 유인할것이다   과실   얼마나 귀여운 자식 얼마나 귀여운 눈빛 태양은 빨간 사과 그아래로 무수한 아이들 기묘한 환상   과실   얼마나 귀여운 자식 얼마나 귀여운 눈빛 태양은 빨간 사과 그아래로 무수한 아이들 기묘한 환상   가을숲   당신의 눈빛도 당신의 목소리도 없이 땅에는 붉은 스카프가 내리고…   만남   그것은 구름송이처럼 나플거리는 여인의 그림자   오솔길   그것은 줄곧 흔들리는 백양나무 그것은 백양나무에 기대선 아가씨 그 길은 아가씨가 절망한 굽이굽이 오솔길   구름   나는 당신이 당신이 하얀 잠옷 입을 때를 사랑한다   개척자   나는 강물 나는 젖줄 내게 물을 주오 젖을 주오 나는 쇠쟁기 나는 낫 내게 경작과 수확의 기회를 주오   ………………. 53 가을   1 과일이 익었습니다 이 붉은 피 나의 과수원엔 하늘처럼 붉게 물든 밤 2 가을은 정욕이 이글거리는 계절 당신의 눈엔 왜 나를 드러내고있나요 3 꽃피는 계절 아이들은 논밭으로 나가 손님이 된다 그들의 재잘거림은 밭갈이하는 사람과 더불어 수확의 계절로 들어간다 아, 가을 틀림없이 당신은 꽃피는 계절 4 당신의 눈망울속 구름은 하염없이 나부끼고 가을이여! 태양은 어이하여 당신을이토록 말리나이까? 5 당신의 품에 안은것은 무엇이뇨? 당신이 휘둥그래 찾는것은 무엇이뇨? 그 눈부신 해살아래 우울한 사람들 사내, 여인, 아이, 빵 그것은 가정의 필요 그것은 요람을 가득 채운 빵 6 아이들에게 더 많은 눈물을 주지 마오 그들에겐 죄가 없나이다 7 해볕속에 찬란한 이 장미 한송이를 사랑에게 드리나이다 8 아! 가을! 당신은 몇가지 빛갈을 지녔나요? 황혼은 목욕을 마친 아가씨의 수건 물결은 아가씨를 희롱하는 부끄러움 밤은 미쳐서 녀인들과 얽혀있거늘 가을 가을임에 틀림없습니다. 9 가을 나의 생일이 지났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소 나마저 남기지 않은채 과일이 익었습니다 이 붉은 피 10 아! 문앞에 쭈그리고 있는 다신 어둔 밤 나의 적막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54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까맣게 그을린 등뼈가 있습니다 내게는 태양도 감쌀 가슴이 있습니다 내게는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이 있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누군가에게 경작된 두개골이 있습니다 내게는 하늘도 들락거리는 머리가 있습니다 내게는 아득히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누군가에게 갈고 닦인 손바닥이 있습니다 나는 별을 씨처럼 뿌리는 힘을 가졌습니다 나는 일꾼의 생각을 가졌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나는 피가 출렁출렁 흐르는 몸을 가졌습니다 나는 인류를 길러낼 젖을 가졌습니다 나는 미래에 부치는 희망을 지녔습니다   55 조국이여! 사랑하는 조국이여! 쑤팅(1952ㅡ)   나는 당신의 강가의 털털이 물레방아 여러백년 피곤한 노래로 물레질하는 방아 나는 당신의 이마에 까맣게 그을린 작업등 당신이 력사의 터널을 달팽이처럼 기여가로록 비추는 작업등 나는 말라빠진 벼이삭 망가진 길바닥 나는 좌초된 난파서 당시의 어께에 동아줄을 묶었나니 당겨주소서! ㅡㅡ조국이여!   나는 빈곤 나는 슬픔 나는 당신이 대대손손 아프디 아픈 희망이거늘 천사의 소매에서 천백년을 날다 아직도 땅에 떨어지지 않은 꽃송이 ㅡ조국이여   나는 방금 신화의 거미줄을 탈출한 당신의 참신한 리상 나는 당신의 눈더미속에 자란 고련의 싹 나는 당신의 눈물적신 보조개 나는 방금 석회를 뿌린 하얀 출발선 나는 지금 막 솟구치는 붉은 려명; ㅡ조국이여!   나는 당신의 십억분의 일 당신 구백륙십만평방의 총화 당신은 갈기갈기 찢기운 가슴으로 헤매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끓는 나를 키웠다 그것은 나의 피와 나의 살더미위에서 당신의 풍요 당신의 영광 당신의 자유를 얻었나니 ㅡ 조국이여!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여!   56 증명(외2수) 얜리(1954ㅡ)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햇살이 내게 손짓하고 있을 때 새똥이 내 손가락끝에 떨어진다 소가락 마디는 내 몸에서 빼낸 시름 한토막 하지만 얼른 봄을 확인코저 나는 일벌 한마릴 꼭 쥐어본다 여기서 봄의 강림은 한차례의 아픔에서 시작됨을 확인하거늘 생채기를 벌리고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57 빈차   스무조각으로 좌우를 바느질한다 발빛아래서 노동한다 낯익은 바람 그대는 낡은 하늘을 꿰맨다     58 나는 눈(雪)이다   나는 일기를 쓴다 온 대지에 가득히   나는 눈이다 나부낌은 다만 도중의 일   나는 눈이다 시체를 덮는 하얀 베   혹시 내가 틀렸을지라도 내 어찌 노란 잎새를 이해하랴   나는 눈이다       59 눈을 깜박인다 ㅡ이 착란의 시대에 나는 이러한 착각을 생산한다. 꾸청(1956ㅡ)   나는 죽어서도 눈을 뜰것을 믿는다   무지개가 분수속을 노닐며 부드러이 길손들으 둘러보다가 내가 눈을 깜박이는 동안 어느새 뱀의 그림자로 둔갑한다   시계가 교회에 살면서 조용히 시간을 재지만 내가 눈을 깜박이는 동안 어느새 깊은 우물이 된다   붉은 꽃이 은막에 펼쳐지며 활활 봄바람을 맞건만 내가 눈을 깜박이는 동안 어느새 비릿내 나는 핏덩이가 된다   확신을 얻기위해 나는 두눈을 부릅뜨고있다   심원춘 60 눈 모택동   북국의 풍광 천리에 얼음 덮이고 만리에 눈 날리네 바라보니 장성안팎은 망망한 은세계여라 도도히 흐르던 황하도 홀연 그 기세 잃었구나 산은 춤추는 은배암이런가 고원은 줄달음치는 흰 코끼리런가 저마다 하늘과 높이를 겨루려네 날이 개이면 붉은 단장 소복차림 유난히 아릿다우리   강산이 이렇듯 아름다워라 수많은 영웅들 다투어 허리 굽혔더라 가석하게도 진시황 한무제는 문채 좀 모자랐고 당태조 송태조는 시재 좀 무디였느리라 천제의 총아라던 칭키스칸도 독수리 쏘는 한재주밖에 없었더라 모두 지나간 일이거니 영웅 호걸 찾으려거든 오늘을 보아야 하리   61 물가 양목(1940ㅡ)   나 여기서 벌써 나흘을 앉았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곳에서 ㅡ 아무런 발소리 하나 울리지 않는 곳에서   (적막뿐)   풀고사리는 내 바지밑에 돋더니 어느새 내 어깨를 가리였네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버릴수 없는 기억의 흐름 기억도 차라리 동동 구름에 적어둘걸   지금 눈을 돌리면 마냥 헤프게 웃는 개나리 그리고 민들레는 꽃가루를 날려날려 시나브로 내 삿갓에 내려앉네 가난한 내 삿갓더러 무엇을 주란 말인가 드러누운 내 그림자더러 또 무얼 주란말인가   오후마다 나흘째의 물소리는 오후마다 나흘째의 발소리런가 그것들이 모두 발을 굴리는 소녀들의 끊임없는 열렬한 고집이라면 ㅡ 아무도 올수 없어 아무도 올수 없네 나는 그저 낮잠이나 청하는수밖에.  
397    봄날 아침, 단시 한바구니 드리꾸매... 댓글:  조회:2773  추천:0  2016-03-22
[ 2016년 03월 23일 08시 20분  ]         ///////////////////////////////////////////////////  {단시 한바구니} 소망서 [R.M. 릴케   내 눈을 감기세요. 난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내 귀를 막으세요. 난 그대 음성 들을 수 있어요. 발이 없어도 나는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께 맹세할 수 있습니다. 팔이 꺾이면, 나는 당신을 내 마음으로 잡을 겁니다. 심장이 멎는다면, 나의 머리가 울릴겁니다. 만약 당신이 머리에 불을 지르면 나는 그대를 내 피 속에 실어 나르렵니다. 아름다운 여인 -H. 헤세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 기어이 부셔버리고   다음날엔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고 있는 아이와 같이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고운 장난감같이 조그만 손으로 장난을 하며 내 마음이 고뇌에 떠는 것을 돌보지도 않습니다.     감각 -A. 랭보   푸른 여름 저녁, 보리날 쿡쿡 찔러대는 오솔길 걸어가며 잔풀을 내리 밟으면, 꿈 꾸던 나도 발 밑에 그 신선함을 느끼리 바람은 내 맨 머리를 씻겨 줄게구.   아,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래도 한없는 사랑 넋 속에 올라오리니 보헤미안처럼, 내 멀리, 멀리 가리라. 여인 데리고 가듯 행복에 겨워, 자연 속으로     서 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삶   푸쉬킨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워지느니.       나그네   박목월   강 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무지개   W.워즈워드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내 가슴은 뛰누나 내 어렸을 때도 그랬고, 늙어서도 그러기를 바라노니 그렇잖음 차라리 죽는 이만 못하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내 삶의 하루 하루가 자연에의 경건으로 얽어지기를       사 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에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동 화   G .벤더빌트   예전에 어느 小女는 날마다 날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기를 바라면서 살았답니다.       그리움   청마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귀   J. 꼭또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소리 그리워라         산비둘기   Jean Cocteau   두 마리의 산비둘기가 상냥한 마음으로 사랑하였습니다.   그 나머지는 차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호 수   정지용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충 고   괴테   너는 자꾸 멀리만 가려느냐 보아라 좋은 거란 가까이 있다.   다만 네가 잡을 줄만 알면 행복은 언제나 거기 있나니.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 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지하철 정거장에서   E. Pound   군중속에 낀 얼굴들의 환영, 비에 젖은 검은 나뭇가지에 걸린 꽃잎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축축한 검은 가지 위의 꽃잎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 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5月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한한 슬픔의 봄을.         묵도   모윤숙   나에게 시원한 물을 주든지 뜨거운 불꽃을 주셔요 덥지도 차지도 않은 이 울타리 속에서 어서 나를 처치해 주셔요   주여 나를 이 황혼 같은 빛깔에서 빼내시와 캄캄한 저주를 내리시든지 광명한 복음을 주셔요 이 몸이 다아 시들기 전에 오오 주여         한 가슴의 깨어짐을 막을수만 있다면   E.디킨스       제가 만일 한 가슴의 깨어짐을 막을 수만 있다면 저의 삶은 헛되지 않아요. 제가 만일 한 생명의 아픔을 덜어주고 고통 하나로 식혀줄 수 있다면 그리고 또한 힘이 다해 가는 로빈새 한 마리를 그 둥지에 다시 올려줄 수 있어도 저의 삶은 진정 헛되지 않아요         문둥이   서정주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어       저 산 너머   칼 부세 (독, 1872-1918)   저 산 너머 또 너머 저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 말하기에 남을 따라 나 또한 찾아갔건만 눈물지으며 되돌아 왔네. 저 산 너머 또 너머 더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 말하건만……         귀천 천 상 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반복가   게오르그 트라클   한낮의 화사함은 흘러가 버렸네 저녁을 물들이는 갈색과 푸르름 목동의 피리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네 저녁을 물들이는 갈색과 푸르름 한낮의 화사함은 흘러가 버렸네       눈뜸 J.R 히메이네스   너를 위해 나는 언제고 꽃이고 싶다 꽃잎을 달고 끝없이 풍요한 꿈을   밤이 끝나고 새벽과 함께 필 때 그 꿈의 정을 활짝 한꺼번에 퍼뜨리는 꽃이고 싶다.       기도서 R.M. 릴케   내 눈을 감기세요. 난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내 귀를 막으세요. 난 그대 음성 들을 수 있어요. 발이 없어도 나는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께 맹세할 수 있습니다. 팔이 꺾이면, 나는 당신을 내 마음으로 잡을 겁니다. 심장이 멎는다면, 나의 머리가 울릴겁니다. 만약 당신이 머리에 불을 지르면 나는 그대를 내 피 속에 실어 나르렵니다.       술 노래 W.B. 예이츠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뿐   술잔을 입에 대면서 나는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 짓는다.         모음들(Voyelles) A. 랭보   A는 흑, E는 백, I는 홍, U는 녹, O는 남색(파란색, 청색) 모음 을이여 네 잠재의 탄생을 언젠가는 말하리라 A(아), 악취(냄새)나는 둘레를 소리내어 나는 눈부신 파리의 털 섞인 검은 코르셋 그늘진 항구, E(으), 안개와 천막의 백색 거만한 얼음의 창날, 하이얀 王者, 꽃 모습의 떨림.   I(이), 주홍빛, 토해낸 피, 회개의 도취련가, 아니면 분노 속의 아름다운 입술의 웃음이련가   U(우), 천체의 주기, 한 바다의 푸른 요람, 가축들 흩어져 있는 목장의 평화, 연금술을 연구하는 넓은 이마에 그어지는 잔 주름살 O(오), 기괴한 날카로운 비명이 찬 나팔소리려니, 온 누리와 천사들을 꿰뚫는 침묵 오오, 오메가! 신의 시선의 보랏빛 광선.         교감(상응; Corespondences)   C.P. 보들레르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선 살아있는 기둥들이 이따금 어렴풋한 말들을 하고 사람은 다정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 상징의 숲 속을 지나간다.   어둡고 깊은 조화 속에 멀리서 합치는 메아리처럼, 밤처럼 그리고 광명처럼 한없이, 향기와 색채와 음향이 서로 화답한다.   어린애의 살결처럼 신선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초원처럼 푸른 향기가 있고, - 또 한편엔 썩고, 풍요하고 승리에 찬 향기가 있어,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으로 퍼져나가 정신과 감각과 환희를 노래한다.   1)자연이 하나의 사원이어서 거기서 살아있는 기둥들은 때로 혼돈한 언어를 숨으로 내쉬니 인간은 친밀한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그 안으로 들어간다.   어둠이며, 빛처럼 광활하며 아둡고도 깊은 통일 속에 멀리서 뒤섞이는 긴 메아리처럼 색채와 음향과 향기가 서로 응답한다.       가을   Thomas Ernest Hulme (영. 1881-1917)   가을 밤의 싸늘한 촉감 나는 밤을 거닐었다. 얼굴이 빨간 농부처럼 불그스레한 달이 울타리 너머로 굽어보고 있었다. 나는 말은 걸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도회지 아이들 같이 흰 얼굴로 별들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길 오카모토 쥰   올라가니 산이 있었다. 내려가니 골짜기였다. 산에도 골짜기에도 눈이 있었다. 하나님도 짐승도 만나지 않았다.   안개   칼 샌드버그   안개가 온다 작은 고양이 걸음으로 그건 웅크리고 앉아 항구와 도시를 바라보다가 다시 움직여 간다   Fog C.Sandburg   The fog comes on little cat feet. It sits looking over harbor and city on silent haunches and then moves on.     봄은 고양이로다   고월 이 장 희(1900-1929)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396    100주년 = 100명 = 100수 댓글:  조회:4117  추천:0  2016-03-15
한국 현대시 100주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100 (목록과 시) 제1편 박두진 - 해 제2편 김수영 - 풀 제3편 이성복 - 남해 금산 제4편 황동규 - 즐거운 편지 제5편 김춘수 - 꽃 제6편 서정주 - 동천 제7편 곽재구 - 사평역에서 제8편 김종삼 - 묵화 제9편 오규원 - 한 잎의 여자 제10편 노천명 - 사슴 제11편 최승호 - 대설주의보 제12편 박용래 - 저녁눈 제13편 기형도 - 빈집 제14편 문정희 - 한계령을 위한 연가 제15편 박인환 - 목마와 숙녀 제16편 강은교 - 우리가 물이 되어 제17편 정호승 - 별들은 따뜻하다 제18편 한용운 - 님의 침묵 제19편 김남조 - 겨울 바다 제20편 정진규 - 삽 제21편 천상병 - 귀천 제22편 이문재 - 푸른 곰팡이-산책시1 제23편 백 석 - 남신의주 유동박시봉방 제24편 송수권 - 산문에 기대어 제25편 김혜순 - 잘 익은 사과 제26편 조정권 - 산정묘지1 제27편 이육사 - 광야 제28편 오탁번 -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제29편 김종길 - 성탄제 제30편 나희덕 - 사라진 손바닥 제31편 허수경 - 혼자 가는 먼 집 제32편 김기택 - 소 제33편 김경주 - 저녁의 염전 제34편 정현종 - 어떤 적막 제35편 오세영 - 그릇 제36편 임 화 - 우리 오빠와 화로 제37편 고 은 -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제38편 함민복 - 긍정적인 밥 제39편 이용악 - 전라도 가시내 제40편 신대철 -박꽃 제41편 박상순 -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제42편 황지우 - 겨울 ―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제43편 문인수 - 쉬 제44편 김명인 - 너와집 한 채 제45편 정지용 - 향수 제46편 최하림 - 어디로? 제47편 이상화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제48편 윤동주 - 서시 제49편 마종기 - 바람의 말 제50편 이성부 - 봄 제51편 김지하 - 타는 목마름으로 제52편 김선우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제53편 김기림 - 바다와 나비 제54편 박목월 - 나그네 제55편 김사인 - 봄바다 제56편 고정희 - 상한 영혼을 위하여 제57편 송찬호 -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제58편 장석남 -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제59편 장정일 -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제60편 박재삼 -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제61편 박노해 - 노동의 새벽 제62편 김현승 - 눈물 제63편 구 상 -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제64편 김용택 - 섬진강1 제65편 유치환 - 생명의 서 제66편 이정록 - 의자 제67편 황인숙 - 칼로 사과를 먹다 제68편 김중식 - 이탈한 자가 문득 제69편 신경림 - 농무 제70편 손택수 - 방심 제71편 김소월 - 진달래꽃 제72편 천양희 - 마음의 수수밭 제73편 김영승 - 반성704 제74편 이 상 - 절벽 제75편 김광섭 - 성북동비둘기 제76편 정완영 - 조국 제77편 조태일 - 국토서시 제78편 최승자 - 일찌기 나는 제79편 이하석 - 투명한 속 제80편 신용목 - 갈대등본 제81편 한하운 - 보리피리 제82편 함형수 - 해바라기의 비명 제83편 김승희 - 솟구쳐 오르기 제84편 김광규 - 희미한 예사랑의 그림자 제85편 조지훈 - 낙화 제86편 이시영 - 서시 제87편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제88편 이형기 - 낙화 제89편 김정환 - 철길 제90편 김광균 - 추일서정 제91편 안현미 - 거짓말을 타전하다 제92편 김준태 - 참깨를 털면서 제93편 이재무 - 감나무 제94편 정끝별 -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제95편 이장욱 - 인파이터-코끼리군의 옆서 제96편 김경미 - 비망록 제97편 문태준 - 맨발 제98편 조병화 - 오산 인터체인지 제99편 정희성 - 저문강에 쌉을 씻고 제100편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 1 해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뉘가 오면 뉘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 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 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2008. 01. 01, 조선일보) (『해』. 청만사. 1949 :『박두진 전집 1』. 범조사. 1982)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2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모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김수영 전집』. 민음사. 198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008. 01. 02, 조선일보) ------------------------- 3 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시집『남해 금산』(문학과지성사, 1986)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7』(국립공원, 2007)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2008. 01. 03, 조선일보)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4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4』(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5』(국립공원, 2007)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10』(조선일보 연재, 2008) (『어떤 개인 날』. 창우사. 1961 :『황동규 시전집』. 문학과지성사. 1998)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5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5』(조선일보 연재, 2008) -------------------------------------------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마지막 행이 다르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이 되고 싶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가 되고 싶다. '의미' 보다, '눈짓' 이 개인적으로 더 좋아보인다. -------------------------------- 6 동천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6』(조선일보 연재, 2008) (『동천』.민중서관. 1968:『미당 시전집』. 민음사. 199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7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집『사평역에서』(문학과지성사, 1983)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7』(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6』(국립공원, 2007) ----------------------- 8 묵화(墨畵)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8』(조선일보 연재, 2008) -------------------- 9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풀푸레 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룰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9] ------------------------- 10 사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픔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0] (「산호림」. 1938: 「사슴 --노천명 시전집」. 솔. 1997)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11 대설주의보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이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다,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다,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현대시 100년 -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편 중 11) -------------------- 12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2] (『먼바다』.창작과비평사. 198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13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나,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나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3] ―시집『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시선집 박영근의 시 읽기『오는,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실천문예사. 2004) ------------------------------- 14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4] ― 시집『남자를 위하여』(민음사, 1996)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9』(국립공원, 2007) ------------------------------- 15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나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마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거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5] ---------------- 16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라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서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6] ―시집『풀입』(민음사, 1995)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박영근의 시읽기『오늘,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실천문학사, 2004)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4』(국립공원, 2007) ---------------- 17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7』(조선일보 연재, 2008) (『별들은 따뜻하다』. 창작과비평사. 1990)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18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8』(조선일보 연재, 2008) (『님의 침묵』. 회동서관. 192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19 겨울 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데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9] (『겨울 바다』. 상아출판사. 1967 : 『김남조 전집』. 국학자료원. 200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20 삽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즘은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 루 ,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0』(조선일보 연재, 2008) ------------ 21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1』(조선일보 연재, 2008) (『귀천』. 살림. 1989 : 『천상병 시집』. 평민사. 199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22 푸른 곰팡이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구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 23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불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여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내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아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사슴)』. 1956. 『백석전집)』.실천문학사. 1997)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24 산문(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날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날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산문에 기대어)』. 문학과지성사. 1980)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25 잘 익은 사과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굴게 둥굴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숫시네요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 26 산정묘지(山頂墓地) 1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뭍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 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괸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산정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입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 제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비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소거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받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나목(裸木)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봄꽃을 천상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도취의 시간에 꿈꾸지 않았는가.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인해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명령을 내려라.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처소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희망했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한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산정묘지(山頂墓地)』. 민음사. 199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27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문장』. 1939. 8: 『육사 시집』. 열린책들. 200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28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한 세계 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 작은 새가 되어 나뭇가지 위에 내려 앉아 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후략)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 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한 세계 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 작은 새가 되어 나뭇가지 위에 내려 앉아 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구두끈을 매는 순간만큼 잠시 멈추어 선다 행인들의 귀는 점점 맑아지고 지난밤의 생각에 들리던 소리에 생각이 미쳐 앞자리에 앉은 계장 이름도 버스 스톱도 급행번호도 잊어버릴 때 잊어버릴 때, 분배된 해를 순금의 씨앗처럼 주둥이 주둥이에 물고 일제히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개 짓, 지난밤에 들리던 석탄의 변성(變成)소리와 아침의 숲의 관련 속에 비로소 눈을 뜬 새들의 날아오르는 조용한 동작 가운데 행인들은 저마다 불씨를 분다. 행인들의 순수는 눈 내린 숲 속으로 빨려가고 숲의 순수는 행인에게로 오는 이전(移轉)의 순간, 다 잊어버릴 때, 다만 기다려질 때, 아득한 세계가 운반되는 은빛 새들의 무수한 비상((飛翔) 가운데 겨울아침으로 밝아가는 불씨를 분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아침의 예언』조광출판사. 1973. : 『오탁번 시전집』. 태학사. 200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29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이슈포커스 > ‘애송詩’ 100편 --------------------------------------- 성탄제(聖誕祭)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신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성탄제』(삼애사. 1969)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조선일보에 연재한 것과 연이 다름. ---------------------------- 30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31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 신……, 그대라는 자연과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조선일보 연재, 2008)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46』(조선일보 연재, 2008)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32 소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식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2』(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소』(문학과지성사, 2005) -―『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10』(국립공원, 2007) --------------------- 33 저녁의 염전 김경주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 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3』(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2007) ------------------------------------- 34 어떤 적막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들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들 손과 더불어.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4』(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광휘의 속삭임』(문학과지성사,2008) -------------------- 35 그릇1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5』(조선일보 연재, 2008) --------------------------------------- 그릇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히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사랑의 서쪽)』. 미학사. 1990)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조선일보애 연재된 시에는 제목이 로 되어 있고 한국문학선집에는 제목이 으로 되어 있다. ----------------------- 36 우리 오빠와 화로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 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슬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누이동생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6』(조선일보 연재, 2008) (『현해탄』.동광당 서점. 1938 :『임화전집』풀빛. 1988)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37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고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을 Qje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이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주(註) : 문의(文義)-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7』(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문의(文義) 마을에 가서』(1974 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38 긍정적인 밥 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8』(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비. 1996) -------------------------------- 39 전라도 가시내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9』(조선일보 연재, 2008) -------------------------------- 전라도 가시내 이용악 알록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두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게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쉬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오랭캐꽃』. 아문각. 1947 : 『이용악 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8)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40 박꽃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은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40』(조선일보 연재, 2008) ------------------------------ 41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박상순 첫번째는 나 2은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의 내가 열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번째는 나 열번째는 전화기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41』(조선일보 연재, 2008) --------------- 42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목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끈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42』(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 (1984, 민음사) ---------------------------- 43 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3』(조선일보 연재, 2008) 쉬/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 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 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 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 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문인수 쉬 -「쉬」, 문학동네, 2006년 ―반경환 명시1,2 제1권 102쪽 ―제49회 現代文學賞수상시집. 2004. 현대문학 ―도종환, 안도현 시인이 추천한 에 비치 돼 있는 시집(자연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제2편 25쪽 ------------------------------------------------------ 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 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 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 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나희덕 시인이 엮은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에 실린 시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104쪽 --------------------------------------------------------- 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3』(조선일보 연재, 2008) -출처 : 조선일보 입력 : 2008.02.26 00:12 / 수정 : 2008.02.28 11:12 *시집마다 행과 연이 조금씩 다르다. ----------------- 44 너와집 한 채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질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은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4』(조선일보 연재, 2008) [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25/17] ―시집『물 건너는 사람』(세계사, 1992) -------------------------- 45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5』(조선일보 연재, 2008) (『조선지광(朝鮮之光)』.65호. 1927. 3:『정지용 전집)』. 민음사. 1988[개정판 200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46 어디로? 최하림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서랍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6』(조선일보 연재, 2008) --------------- 47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을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닿은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7』(조선일보 연재, 2008) *마지막 행이 한 연으로 되어 있는데 다른 시집에는 다르게 나와 있다(아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을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닿은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개벽(開闢)』. 70호. 1926 : 『이상화 전집』. 새문사. 1987)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48 서시/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8』(조선일보 연재, 2008)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49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9』(조선일보 연재, 2008)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문학과지성사. 1980 :『마종기 시전집』. 1999)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50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미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누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50』(조선일보 연재, 2008)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5』(국립공원, 2007) ----------- 51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는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소리 통곡 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 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1』(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타는 목마름으로』(창작과비평사, 1982)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52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2』(조선일보 연재, 2008) ------------------ 53 행과 연이 달라 다른 시집에 있는 것도 함께 올린다.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3』(조선일보 연재, 2008) [애송시 100편 - 제 53편]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조선일보 홈페이지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11/2008031100386.html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모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선문화연구소. 194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54 나그네 박목월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4』(조선일보 연재, 2008) 조지훈의 에 화답한 시. -------------------------- 55 봄바다 김사인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결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5』(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 -제51회 現代文學賞 수상시집『목화밭지나서 소년은 가고』(현대문학, 2006) --------------- 56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을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56』(조선일보 연재, 2008) (『이 시대의 아벨』. 문학과지성사. 198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57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송찬호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57』(조선일보 연재, 2008)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송찬호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시집『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지상사, 1994년)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57]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에는 연 구분이 없습니다. 홈 > 이슈포커스 > navi.print(CatID); ‘애송詩’ 100편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16/2008031600628.html ------------- 58 수묵(水墨) 정원 9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채 번져서 봄 나비 한마리 날아온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58』(조선일보 연재, 2008) --------------------- 59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됫박 녹말이 되어--->시집과 다르다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을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서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59』(조선일보 연재, 2008)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에는 연 구분이 다르다. 홈 > 이슈포커스 > navi.print(CatID); ‘애송詩’ 100편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18/2008031800458.html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을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서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민음사, 2002) http://cafe344.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EZII&fldid=H5qF&datanum=755&contentval=&&search=true ---------------------- 60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것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0』(조선일보 연재, 2008)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에는 연 구분이 다르다. 홈 > 이슈포커스 > navi.print(CatID); ‘애송詩’ 100편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19/2008031900517.html -------------------------- 울음이 타는 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 녘 울음이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봐, 저것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 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61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오래 못가지 설을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신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스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1』(조선일보 연재, 2008)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62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2』(조선일보 연재, 2008)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운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 시초》(1957) 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작가가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기독교 신앙으로 승화시킨 작품. 주제는 생명의 영원성과 그 근원. 작자는 "외향적인 웃음보다는 내향적인 눈물에서 인생의 미와 가치를 찾으려 한다" 고 말하고 있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를 차례로 보고 있는데 이 시 뿐 아니라 행과 연이 조금씩 다른 게 많다. ------------------------------- 63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구상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이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노닌다. 황금(黃金)의 햇발이 부서지며 꿈결의 꽃밭을 이룬다. 나도 이 속에선 밥 먹는 짐승이 아니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3』(조선일보 연재, 2008) --------------------- 64 섬진강 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하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걸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4』(조선일보 연재, 2008) (『섬진강』. 창작과비평사. 198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65 생명의 서(書)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렬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5』(조선일보 연재, 2008)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에는 연 구분이 다르다. 홈 > 이슈포커스 > navi.print(CatID); ‘애송詩’ 100편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25/2008032500366.html 생명의 서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렬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하게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생명의 서(1장)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여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렬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생명의 서』.행문사. 1939 )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虛寂하다 - 텅 비어 적적하다. *같은 '시' 이지만 출처 따라 행과 연이 틀리다. ------------------------ 66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6』(조선일보 연재, 2008)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26/2008032600384.html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여 (『의자』. 문학과지성사. 2006)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나희덕엮음. 삼인. 2008)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3』(국립공원, 2007) *출처에 따라 연이 없고 연이 있다. --------------------- 67 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7』(조선일보 연재, 2008) 2011-01-016 / 일요일, 20시 53분 홈 > 이슈포커스 > ‘애송詩’ 100편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27/2008032700453.html 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 68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8』(조선일보 연재, 2008) ----------------- 69 농무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9』(조선일보 연재, 2008) 農舞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 창작과비평사. 1973 :『신경림 시전집』. 창비. 200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70 방심(放心)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 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0』(조선일보 연재, 2008) 방심放心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뒷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앞뒷문 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 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뺑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랍문을 빠져 나 가는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러 젖히고 -격월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5, 11/12) --------------- 71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1』(조선일보 연재, 2008)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꽃』. 매문사. 1925 : 『김소월 전집』. 문장. 198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말없이 고이 보내 말없이 고이 보내 ------------- 72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을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2』(조선일보 연재, 2008) 조선일보 ‘애송詩’ 100편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2/2008040200348.html 아래 시와 첫부분 행이 조금 다르다 ---------------------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을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마음의 수수밭』.창작과비평사. 199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73 반성 704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기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 낑낑깅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 네 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3』(조선일보 연재, 2008) ---------------- 74 절벽 이상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4』(조선일보 연재, 2008) 이슈포커스 > ‘애송詩’ 100편 제 74편] 절벽 절벽 이상 꽃이보이지않는다.꽃이향기롭다.향기가만개한다.나는거기묘혈을판다.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꽃은보이지않는다.향기가만개한다.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묘혈은보이지않는다.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나는정말눕는다.아아.꽃이또향기롭다.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75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도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5』(조선일보 연재, 2008) --행과 연이 틀린 시가 많다.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7/2008040700360.html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도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성북동 비둘기』.범우사. 1969 :『이산 김광섭 시전집』. 문학과지성사)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76 조국(祖國) 정완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 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어 학처럼만 여위느냐.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6』(조선일보 연재, 2008) 조국(祖國) 정완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 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어 학처럼만 여위느냐.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77 국토서시(國土序詩)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7』(조선일보 연재, 2008) 2011-02-08 / 화요일, 오전 08시 27분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8/2008040800265.html 국토서시(國土序詩)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맹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닮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일이다 (『국토』. 창작과비평사. 197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78 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8』(조선일보 연재, 2008)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79 투명한 속 이하석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 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려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캥기지 않을 때,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어 더욱 투명해지고 더 많은 것들 제 속에 품어 비출 때,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확실히 비쳐 온다. 껌종이와 신문지와 비닐의 골짜기, 연탄재 헤치고 봄은 솟아 더욱 확실하게 피어나 제비꽃은 유리 속이든 하늘 속이든 바위 속이든 비쳐 들어간다. 비로소 쇠 조각들까지 스스로의 속을 더욱 깊숙이 흙 속으로 열며.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9』(조선일보 연재, 2008) -『투명한 속』(문학과지성사, 1980) ------------------------------ 80 갈대 등본 신용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모의(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0』(조선일보 연재, 2008)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11/2008041100318.html ------------------ 갈대 등본 신용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깊은 날은 갔다 모든 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시집『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지성사, 2004) -------------------- 81 보리피리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발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ㄹ 닐니리.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1』(조선일보 연재, 2008)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보리 피리』.인간사. 1955 :『한하운 시전집』. 인간사. 1956 ) ----------- 82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2』(조선일보 연재, 2008) -------------------------------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 83 솟구쳐 오르기 2 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3』(조선일보 연재, 2008) -------------- 84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4·19가 나던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리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4』(조선일보 연재, 2008)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문학과지성사. 1979 ) - 現代試選集『70年代젊은詩人들』(文學世界史, 1981) ------- 85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5』(조선일보 연재, 2008) -김희보 편저『韓國의 名詩』(종로서적, 1986) ------------ 86 서시 이시영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6』(조선일보 연재, 2008) (『만월』. 창작과비평사. 197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87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87』(조선일보 연재, 2008) (『52인 시집』. 신구문화사. 1967 :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88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88』(조선일보 연재, 2008) 애송詩’ 100편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21/2008042100336.html ---------------------------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적막강산』. 모음출판사. 196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89 철길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쇳덩어리가 이만큼 견뎌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철길의 들끓어오름을 적셔주었다. 무너져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온 것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희망이,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답답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리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남해안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한강교를 건너면서 인천 방면으로, 그리고 수원 방면으로 떠난다. 아직 플랫포옴에 머문 내 발길 앞에서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하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은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욱이 된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89』(조선일보 연재, 2008) ------------ 90 추일서정(秋日抒情)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길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간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0』(조선일보 연재, 2008) (『기항지』. 정음사. 1947 :『김광균 전집』. 국학자료원. 2002)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91 거짓말을 타전하다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도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 치의 방과 한 달 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 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까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1』(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곰곰』(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 92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갱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2』(조선일보 연재, 2008) (『참깨를 털면서』.창작과비평사. 1997)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93 감나무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어보는 것이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3』(조선일보 연재, 2008) (『몸에 피는 꽃』.창작과비평사. 199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94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 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더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4』(조선일보 연재, 2008) (『몸에 피는 꽃』.창작과비평사. 199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제23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 2008) ------------- 95 인파이터 -코끼리군의 엽서 이장욱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병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템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기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넌 내가 바라보던 바다를 상상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에는 날 잊어줘.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 떨어진 사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기 서해 쪽으로 천천히, 새 한 마리 날아가데. 모호한 빛 속에서 느낌 없이 흔들릴 때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5』(조선일보 연재, 2008) (『정오의 희망곡』.문학과지성사. 200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96 비망록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 네 살이었다. 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 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他人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 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 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 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잇몸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 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 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6』(조선일보 연재, 2008)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집『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실천문학사,1989) ----------- 97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 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 고 슬픔을 견디었을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7』(조선일보 연재, 2008) (『맨발』.창비. 200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98 오산 인터체인지 조병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식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燈)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조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 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8』(조선일보 연재, 2008) -------------- 99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9』(조선일보 연재, 2008)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작과비평사. 1978)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100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100』(조선일보 연재, 2008) (『영랑시집』.시문학사. 1935 :『김영랑 전집』.문학세계사. 198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끝. ================================================================================================= 시인 100명의 추천시 애송시 100편과 사랑시 50편, 합 150편 중 같은 제목의 같은 시인의 시가 (2편) 이 실렸습니다. 1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4번째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10번째 2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3번째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46번째 ================================================================ 시인 100명의 추천시 애송시 100편과 사랑시 50편, 합 150편 중 다른 제목의 같은 시인의 시가 (32편) 이 실렸습니다. 1 겨울-나무로 부터 봄 -나무에로 / 황지우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42』(조선일보 연재, 2008)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5』(조선일보 연재, 2008) ------------------------------------ 2 김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2』(조선일보 연재, 2008) 낙화, 첫사랑 / 김선우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49』(조선일보 연재, 2008) ----------------------- 3 빈집 / 기형도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13』(조선일보 연재, 2008)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23』(조선일보 연재, 2008) -------------------------- 4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75』(조선일보 연재, 2008) 저녁에 / 김광섭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편 15』(조선일보 연재, 2008) ------------------------ 5 겨울 바다 / 김남조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19』(조선일보 연재, 2008) 그대 있음에 / 김남조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9』(조선일보 연재, 2008) --------------------------- 6 진달래꽃 / 김소월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71 (조선일보 연재, 2008) 후일(後日) / 김소월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3』(조선일보 연재, 2008) ------------------------- 7 풀 / 김수영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2 (조선일보 연재, 2008) 거미 / 김수영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32 (조선일보 연재, 2008) ---------------------------- 8 솟구쳐 오르기 2 / 김승희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83 (조선일보 연재, 2008) 새벽밥 / 김승희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12 (조선일보 연재, 2008) --------------- 9 섬진강 1 / 김용택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64 (조선일보 연재, 2008)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33 (조선일보 연재, 2008) ---------------------------- 10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30 (조선일보 연재, 2008) 마른 물고기처럼 / 나희덕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37 (조선일보 연재, 2008) ----------------- 11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14 (조선일보 연재, 2008) 남편 / 문정희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11 (조선일보 연재, 2008) --------------------------- 12 맨발/ 문태준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7 (조선일보 연재, 2008) 백년(百年) / 문태준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44 (조선일보 연재, 2008) --------------------------- 13 울음이 타는 강 / 박재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60 (조선일보 연재, 2008) 한(恨) / 박재삼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21 (조선일보 연재, 2008) ------------------------ 14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23 (조선일보 연재, 2008)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 백석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40 (조선일보 연재, 2008) ----------------------------- 15 동천 / 서정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6 (조선일보 연재, 2008)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7』(조선일보 연재, 2008) ------------ 16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7 (조선일보 연재, 2008) 찔레꽃 / 송찬호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8 (조선일보 연재, 2008) ------------------ 17 농무 / 신경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69 (조선일보 연재, 2008)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16 (조선일보 연재, 2008) ---------------------- 18 갈대 등본 / 신용목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80 (조선일보 연재, 2008) 민들레 / 신용목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22 (조선일보 연재, 2008) ------------------------------ 19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 (조선일보 연재, 2008) 사랑의 기교 2 / 오규원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19 (조선일보 연재, 2008) ---------------------------- 20 그릇1 / 오세영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35 (조선일보 연재, 2008) 원시((遠視) / 오세영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24 (조선일보 연재, 2008) ------------------------------ 21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 오탁번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28 (조선일보 연재, 2008) 사랑 사랑 내 사랑 / 오탁번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29 (조선일보 연재, 2008) ------------------- 22 생명의 서(書) / 유치환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65 (조선일보 연재, 2008) 행복 / 행복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50 (조선일보 연재, 2008) ----------------------------- 23 푸른 곰팡이 / 이문재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22 (조선일보 연재, 2008) 농담 / 이문재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41 (조선일보 연재, 2008) -------------------------- 24 감나무 / 이재무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3 (조선일보 연재, 2008) 제부도 / 이재무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48 (조선일보 연재, 2008) --------------------- 25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4 (조선일보 연재, 2008) 세상의 등뼈 / 정끝별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27 (조선일보 연재, 2008) ------------------- 26 어떤 적막 / 정현종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34 (조선일보 연재, 2008) 갈증이며 샘물인 정현종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13 (조선일보 연재, 2008) ------------------------ 27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16 (조선일보 연재, 2008) 그리운 부석사 / 정호승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20 (조선일보 연재, 2008) ---------------------------- 28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9 (조선일보 연재, 200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25 (조선일보 연재, 2008) ------------------------ 29 일찌기 나는 / 최승자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78 (조선일보 연재, 2008)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4 (조선일보 연재, 2008) ---------------------- 30 님의 침묵 / 한용운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17 (조선일보 연재, 2008)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2 (조선일보 연재, 2008) ------------------- 31 긍정적인 밥 / 함민복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38 (조선일보 연재, 2008) 서울역 그 식당 / 함민복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18 (조선일보 연재, 2008) ------------------- 32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 황지우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42 (조선일보 연재, 2008)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5 (조선일보 연재, 2008) ======================================================================== 같은 시인의 같은 시 1 즐거운 편지 / 황동규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4』(조선일보 연재, 2008) 즐거운 편지 / 황동규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10』(조선일보 연재, 2008) ---------------------------------- 2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1』(조선일보 연재, 2008)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46』(조선일보 연재, 2008) ================================ 현대시 100주년 기념 조선일보가 연재한 시인 100명의 추천시 100편과 사랑시 50편, 150편 중 같은 시인의 시가 (32편) -제목이 다름- 과 같은 시인의 같은 시 (2편) -제 목이 같음- 이 들어 있습니다. 좋은 시를 잘 쓰는 시인이 사랑 시도 잘 쓰는 것일까요. 150편의 시 중에 같은 시인의 시가 모두 34편이면 20% 조금 넘습니다. 사랑 시만 보면은 50편 중에 같은 시인이 무려 34명이 들어 있으니 거의 70%로나 됩니다.  
395    현대시 100년중 10 댓글:  조회:2936  추천:0  2016-03-10
    10위 : 김소월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1924)-     ==============================================================   9위 : 도종환 접시꽃 당신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덩을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 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접시꽃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   8위: 정지용 향수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게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7위 : 이형기 -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아롱아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6위 : 한용운 -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5위 : 천상병 -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4위 : 윤동주 - 별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   3위 : 김춘수 -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2위 : 윤동주 -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1위 : 김소월 -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394    多作을 꺼린, 폴란드 시인 - 쉼보르스카 댓글:  조회:3363  추천:0  2016-02-25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심안(心眼)을 가진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생애와 시(詩)의세계       1. 시인의 생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tawa Szymborska, 1923~2012)는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랜드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시인은 역사와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인간의 본질과 숙명에 대한 집요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실존 철학과 시를 접목시킨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1923년 폴란드 중서부의 작은 마을 쿠르니크에서 태어난 쉼보르스카는 여덟 살 때 폴란드 남부의 유서 깊은 문화 도시 크라쿠프krakow로 이주했다. 크라크프는 발트 해에서 흑해 연안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유럽의 강대국으로 군림하던 폴란드 야기엘론스키 왕조(1386~1572)의 수도였다. 폴란드의 역사와 전통,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도(古都)에서 시인은 시적 감수성과 풍부한 예술 감각을 키우며 성장하였다. 명문 야기엘론스키 대학에서 국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쉼보르스카는 1945년 라는 시로 문단에 첫발을 내디뎠다.     단어를 찾아서 / 쉼보르스카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피로 흥건하게 물든 고문실 벽처럼 네 안에 무덤들이 똬리를 틀지언정, 나는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고 싶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고 쓰는 것,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터무니없이 미약하다.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어떤 소리도 하찮은 신음에 불과하다.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 없다.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tawa Szymborska, 1923~2012)】 다작(多作)을 꺼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한 편의 시를 봄에 쓰기 시작해서 가을에 가서야 완성하는 경우도 많다"는 시인 자신의 고백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완성된 시를 곧바로 발표하지 않고, 오랜 수정과 선별 작업을 거쳐 출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으로 등단한 지 6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출판한 시집은 불과 열두 권에 불과하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찬사에 걸맞게 시어의 선택에 있어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완벽을 추구한 결과이다.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인 만큼 일단 시집에 수록, 공개된 시들은 한 편, 한편이 모두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출판된 저서로는 (1952), (1954), (1957), (1962), (1967). ((1972), (1976), (1986), (1993), (1996), (2002), 어른을 위한 그림책(2003), (2005), (2009), (2012)등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갑작스레 쏟아지는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부담스러워했던 쉼보르스카는 크라쿠프에 거처를 두고, 슬로바키아와의 국경 지역에 있는 휴양지 자코파네를 오가며 은둔 생활을 했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작품을 통해 꾸준히 독자들과 소통해왔던 쉼보르스카는 2012년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했다. 1991년 독일의 괴테 문학상을 수상한 쉼보르스카는, 1996년에 노벨문학상의 영예와 함께 펜클럽 문학상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쉼보르스카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발표하면서 "시인의 작품 세계는 그 특유의 치밀한 풍자로 인간의 실존 문제를 역사적, 생물학적 특성과 연계하여 명쾌하게 드러내 보였다. 시인의 시어는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으면서도 메너리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풍부한 영감, 그리고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단어를 꼭 알맞은 곳에 배치하는 '위대한 평이성'으로 인해 시인은 '문학의 모짜르트'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시 속에는 '베토벤'의 분노와 같은 그 무엇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쉼보르스카의 작품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총 28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최성은 한국 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및 같은 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 졸업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 폴란드 문학박사 학위 받음 바르샤바 대학교 한국문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  ===============================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393    [아침 詩 한수] ㅡ 달북 댓글:  조회:2321  추천:0  2016-02-20
         달북 봐, 달은 어디에나 떠 기울여 널 봐. 그 마음 다 안다, 그건 그래, 그렇다 하는…… 귀엣말, 환한 북 소리, 지금 다시 널 낳는 중.      ―문인수(1945~ )   달이 더없이 좋을 때. 대보름 달빛은 더 널리 고루 비추는 은총 같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뿐 아니라 숱한 노래들이 달에 서정과 낭만을 더해왔다. 그럴 때마다 지나칠 수 없는 시인 이백(李白)이 있지만,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운운한 우리네 전통 노래 수작(酬酌)도 격이 퍽 그윽했다. 그런데 달북이라니! 달이 곧 북이 되니 천상천하 독존의 북소리가 들린다. 달북이 울듯 '환한' 소리가 퍼지면 천지간은 금빛으로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렇게 '어디에나 떠 기울여 널' 보는 달의 눈빛, 그 눈매를 올려다 보면 때 없이 가슴이 저릿하다. 특히 '그 마음 다 안다' 끄덕여주면, '그건 그래' 따뜻이 수긍해주면, 우린 세상에 진 게 아니라고 다시 살아갈 힘도 얻는다. 언제나 편들어주는 눈빛. 거룩한 어머니 '달북'의 금빛 울림이 그득그득 퍼질 때다. 그 빛소리에 몸 마음 맑게 씻으며 한 해를 또 힘차게 걸어가리라. '지금 다시 널 낳는 중'인데, 무에 두려우랴!
392    다시보는 윤동주 시편 댓글:  조회:2966  추천:0  2016-02-17
​ [ 윤동주님 시모음 스무편 ☆★☆★☆★☆★☆★☆★☆★☆★☆★☆★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편지     윤동주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 序詩                     윤동주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워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십자가            윤동주 쫒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에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尖塔(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 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꿈은 깨어지고          윤동주 잠은 눈을 떴다 그윽한 幽霧에서 노래하든 종달이 도망쳐 날아나고, 지난날 봄타령하든 금잔디 밭은 아니다 塔은 무너졌다, 볽은 마음의 塔이 손톱으로 새긴 大理石塔이 하로저녁 暴風에 餘地없이도, 오오 荒廢의 쑥밭, 눈물과 목메임이여! 꿈은 깨어졌다 塔은 무너졌다. ☆★☆★☆★☆★☆★☆★☆★☆★☆★☆★ 호주머니     윤동주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이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겨울    윤동주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래미 달랑달랑 얼어요. ☆★☆★☆★☆★☆★☆★☆★☆★☆★☆★ 봄   윤동주 우리 애기는 아래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뜨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서 소올소올, 아저씨 해님이 하늘한가운데서 째앵째앵. ☆★☆★☆★☆★☆★☆★☆★☆★☆★☆★ 쉽게 씨워진 詩         윤동주 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六疊房은 남의 나라, 詩人이란 슬픈 天命인줄 알면서도 한줄 詩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學費封套를 받어 大學노-트를 끼고 늙은 敎授의 講義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沈澱하는 것일가? 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詩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六疊房은 남의 나라 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慰安으로 잡는 最初의 握手. ☆★☆★☆★☆★☆★☆★☆★☆★☆★☆★ 눈    윤동주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히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 무서운 시간     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게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있소.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게요.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텐데...... 나를 부르지도 마오. ☆★☆★☆★☆★☆★☆★☆★☆★☆★☆★ 별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산협의 오후    윤동주 내 노래는 오히려 설운 산울림. 골짜기 길에 떨어진 그림자는 너무나 슬프구나 오후의 명상은 아 - 졸려. ☆★☆★☆★☆★☆★☆★☆★☆★☆★☆★ 소년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순이의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아우의 인상화            윤동주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 조개껍질    윤동주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울 언니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여긴여긴 북쪽 나라요 조개는 귀여운 선물 장난감 조개껍데기 데굴데굴 굴리며 놀다 짝 잃은 조개껍데기 한 짝을 그리워하네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나처럼 그리워하네 물소리 바다물 소리. ☆★☆★☆★☆★☆★☆★☆★☆★☆★☆★  
391    신석초 / 바라춤 댓글:  조회:2587  추천:0  2016-02-11
바라춤                                        /신석초 묻히리랏다 청산(靑山)에 묻히리랏다 청산이야 번하리 없어라 내 몸 언제나 꺾이지 않을 무구(無垢)_한 꽃이언마는 깊은 절 속에 덧없이 시들어지느니 생각하면 갈갈이 찢어지는 내 마음 슬허 어찌 하리라 묻히리랏다 청산에 묻히리랏다 청산이야 변라리 없어라 나는 혼자이로라 --- 찔레 얽어진 숲 사이로 표범이 불러 에우고 재올리 바랏소리 빈 산을 울려 쨍쨍 우는 산울림과 밤이면 달 피해 우는 두견이 없으면 나는 혼자이로라 숨으리 장긴 뜰 안헤 숨으리랏다. 술으어 보살이 아니시이련ㄴ만 공산 나월(空山蘿月)은 알았으리라 괼 때도 필 데도 없이 나는 우니노라 혼자서 우니노라 아아, 적막한 누리ㅅ속에 내 홀로 여는 맘을 어찌하리라. (밤들어 푸른 장막 뒤의 우상(偶像)은 아으 멋 없는 장승일러라) 낮이란 구름 산에 자고 일어 우니노라. 밤이란 깊고 깊은 지대방에 잠 못 이뤄 하노라. 감으면 꿈결같이 떠오르는 마아야의 그리메, 가슴 속에 솟아오르는 오뇌의 불ㅅ길이 꽃바리에 타는 향연 같도소이다. 아아, 오경 밤 깊은 절은 하마 이슷하여이다. 달 밝은 구름 창에 이운 복사꽃이 소리없이 지느니, 사람도 늙어서 저처럼 이우는가, 꿈 같은 사바 세월이 덧도 없으니이다. 천만 겹 두른 산에 들리나니 물소리! 어지러운 시름의 여울 속에 보살도 와서 어릴 거꾸러진 유혹의 진주를 남하 보리라. 피어 오른 꽃잎의 심연 속에 달디단 이슬이 듣도소이다. 시름도 성체도 부질없는 우상이니다. 팔계 쇠성이 모두 다 성이 가시이다. 시왕전에 드린 원은 봄눈처럼 사라지니이다. 가사 어러 메여, 가사 어러 메여, 바라를 치며 춤을 출거나. 가사 어러 메여, 가사 어러 메여, 헐은 가슴에 축늘어진 장삼에 공천풍월을 안아 누워, 괴론 이 밤을 고이 세우고저. 괴론 이 밤을 고이 세우고저. 몸아! 맨몸아! 푸른 내 몸아! 마의 수풀을 가노라. 단꿈은 끝없는 즐김을 좇아, 꽃잎 저 흐르는 여울을 가노라. 바다로 여는 강물을 뉘라 그지리오. 어느 뉘라 그지리오. 불타는 바다 위에, 불타는 바다 위에, 난 던져진 쪽달일레라. 사갈나 너른 들에 버려진 쫓가질레라. 이슷한 사라릐 장삼 속에 꿈 어리는 몸이 부엿한 물 같으니다. 아슬히 나는 미쳤에라. 나는 짐승이 되었에라. 마라의 짐승이 되었에라. 내 혼과 몸의 씨앗을 쪼갤 빛날 장검을 나는 잃었는가. 숙명의 우리 안에, 날 지닐 오롯한 자랑을 나는 잃었는가. 묻히리란다. 청산에 묻히리란다. 청산이 변할 리 없어라. 나는 절로 질 꽃이어라. 지새어 듣는 법고 소리! 이제야 난 굳게 살리라. 날 이끌 흰 백합의 손도, 바람도, 아무것도 내 몸을 꺾을 리 없어라.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 없는 꽃잎으로 살어여러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나. 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인 종 소리를 아마 이슷하여이다. 경경히 밝은 달은 빈 절을 덧없이 비초이고 뒤안 이슥한 꽃가지에 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 저리 슬피 우는다. 아아 어이 하리. 내 홀로 다만 내 홀로 지닐 즐거운 무상한 열반을 나는 꿈꾸었노라. 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리노라. 몸은 서러라. 허물 많은 사바의 몸이여! 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 짐승처럼 내 몸을 물고, 오오, 형체, 이,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에 비밀한 뱀이 꿈어리는 형역(形役)의 끝없는 갈림길이여! 구름으로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 지는 꽃잎도 띄워 둥둥 떠내려가것다. 부서지는 주옥의 여울이여! 너울너울 흘러서 창해에 미치기 전에야, 끊일 줄이 있으리. 저절로 흘러가는 널조차 부러워라. 접동새, 우는 접동새야! 네 우지 말아라 무슨 원한이 그다지 골수에 사무치길래, 밤중만, 빈 달에 피나게 울어 남의 애를 끊느니. 이화(梨花) 흰 달 아래 밤도 이미 삼경인 제, 승방(僧房)에 홀로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나니, 시름도 병인 양하여 내 못잊어 하노라. 아아, 속세의 어지러운 진루(塵累)여. 허울 좋은 체념이여 팔계(八戒) 게송이 모두 다 허사런가 숙명이 낳은 매혹의 과실이여. 묻혀진 백옥의 살결 속에 묻혀진 백옥의 살결 속에 내 꿈꾸는 혼의 슬픈 실연이 있어라. 다디단 꽃잎의 이슬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애끓는 여울이여 길어도 길어도 끊이지 않는 가슴속의 샘물이여. 눈물이 꿰어진 진주 다래라면 눔비니 밝은 구슬성도 이루지 안했으랴. 눈물이 꿰어진 진주 다래라면 수미 높은 뫼도 아니 이뤘으랴 눈물이 흘러 이내 흔적이 없으니 내 그를 애달퍼하노라. 아아, 헛되어라 울음은 연약한 속임이여. 수유에 빛나는 거짓의 보석이여. 내가 호숫가에 쓸쓸히 설레는 갈대런가 덧없는 바람 달에 속절없이 이끌리는 값싼 시름의 찌꺼기여. 적멸이 이리도 애닯고나. 부질없는 일체관념(一切觀念)이여. 영생의 깊은 수기(授記)가 하마 허무하여이다. 관념은 모두 멸하기 쉽고 잠든 숲속에 세월이 흐르노라. 어지러운 윤회의 눈부신 여울 위에 변하여가는 구름 연기 시간이 남긴 사원 속에 낡은 다비만 어리나니 세월이 하 그리 바쁜 줄은 모르되 멎는 줄을 몰라라. 덧없이 여는 매살한 꽃이여. 창 밖에 피인 복사꽃도 바람 없이 지느니 하물며 풍상을 여는 사람의 몸이야 시름한들 어이리 오오, 변하기 쉬운 꽃여울이여. 내 아리따운 계곡에 흐느껴 우는 소리 내몸 잔잔한 흐름 위에 홀연히 여는 전이(轉移)의 물결 위에 내 끝내 지는 꽃잎으로 허무히 흘러 여는다. 다만 참된 건 고뇌하는 현유(現有)의 육신뿐인가. 순간에있는 너 삶의 빛깔로 벅차 흐르는 내 몸둥어리 순수한 욕구로 불타오르는 꽃송아리 황홀히 타는 구슬의 꽃술 속에 망령된 시름하는 나비들은 금빛으로 날아 빗발처럼 쏟아지느니 깊은 산 유리 속에 홀로 선 내 모습이 하마 청산의 허재비 같으니다. 장근 동산이 날 에워 한 조각 여는 구름모양 저 영을 넘지 못하는다 내 안에 내 안 내 누리 안에 무닐 수 없는 장 벽이 있도소이다. 아아 애절한 구속의 모래문이여. 넓은 천지간에 속세를 등져 깊이 숙여 쓴 고깔 밑에 고이 접은 네 아미 죄스럼과 부끄러움을 가려 그늘진 푸르른 정의(淨衣) 남몰래 앓는 백합을 어리는 빈 산 칡 달은 하마 휘엿하여이다. 야심경 호젓한 다락에 들리느니 물소리만 요란한데 사람은 없고 홀로 타는 촛불 옆에 풀어지는 깃 장삼에 장한이 너울져 춤추는 부나비처럼 끝도 없는 단꿈을 나는 좋니노이다. 아아, 고독은 죄스러운 . 사념의 뱀을 낳는가 내 맘 그윽히 떠오르는 마아야 남 몰래 떠오르는 꿈결 같은 마이야의 손길. ......... 천만 겹 두른 산에 어리고 서린 두렁칡이 밋밋한 오리나무를 친친 감아 얽으러져 제멋대로 살어 연다. 사람도 저처럼 어러져, 멋대로 살어 열까 바람도 그리움도 천만 없소이다.나는......... 절로 피인 꽃이니다. 만개한 꽃의 매력으로 부풀어오른 몸뚱어리 오오, 순수한 장미의 덩어리여. 바람으로 솟은 둥실한 도리(桃李)의 메여 팔상(八相)에 이끌리는 무릇 재앙의 씨여 오오, 끊기 어려운 삼계(三界)의 질긴 연(緣)이여 내가 오히려 사갈나의 꿈속을 얼 없이 헤매느니 광풍에 지부친 뱃사공처럼 물 아래 세 가닥 모래 깊은 웅뎅이를 보지 못하는다. `보리살타`오오, `보리살타`나무 여래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지장보살 중생을 건지신 높은 덕에 청정한 크신 법에 내 몸을 바침이 내 평 생의 원이니다. 시방 너른 하늘 아래 시방 너른 하늘 아래 내 몸이 한낱 피여지는 꽃이니다. 첩첩한 구름산에 남몰래 살어지어다. 살어지어다. 그러나 오오 그러나 사바를 꿈꾸는 나여. 마(魔)에 이끌리는 나여. 오오, `마라`네,`마라` 오뇌의 이리여. 바람 속에 달리는 들짐승이여 네가 만약 장송에 깃들인 학 두루미라면 구름 잠긴 영(嶺)에 흰 날이 흐르는 제 구천 높이 솟아 훨훨 날아도 여지 않았으랴 내가 적막한 기와 우리 속에 차디찬 금빛 소상 앞에 엎더져 몸부림하는 시름의 포로가 되어 감은 치의(緇衣) 속에 솟아오르는 오뇌의 불길이 꽃바리에 타는 향연 같도소이다. 오경 밤 기운 절에 헤매는 바람결에 그윽히 우는 풍경 소리 상방 닫힌 들창에 꽃가지 흔들려 춤을 추고 창 밖 구름 뜰에 학도 졸아 밤이 더욱 깊으메라. 쓸쓸한 빈 방안에 홀로 일어 앉아 남몰래 가사 장삼을 벗도소이다. 벗어서 버린 가사 장삼이 방바닥에 흐트러져 푸른 못 속에 뜬 연꽃 같으니다. 누우면 잠이 오며 앉으면 이 시름이 사라지랴 이제 누운들 어느 잠이 하마 오리 어지런 시름숲에 누워 앉아 홀로 밤을 새우나니 서역 먼 길은 꿈속에도 차노메라. 겁겁(劫劫)에 싸인 골은 안개조차 어두메라. 극락이 어디메뇨 가는 길도 모르메라. 오오, 스님. 바라문의 높으신 몸이여. 금석같이 밝으신 맘이여. 하해같이 밝으신 품이여. 백합같이 유하신 팔이여. 날 어려지이다 어려지이다 이 밤 어려 자는 목숨이 하마 절실하여이다 가뭇없는 속세의 티끌로 나는 가느이다 `사바세계``일체고액`을 넋에 지고 여느이다. 스님 오오, 모진 이 창생을 안아지이다. 가사 어러메어 가사를 어러메어 바라를 치며 춤을 출까나 가사 어러메어 가사를 어러메어 헐은 가슴에 축 늘어진 장삼에 공천풍월(空泉風月)을 안아 누워 괴론 이 밤을 고이 새우고저 괴론 이 밤을 고이 세우고저 지루한 한평생을 짧게 살어여지이다. 수유에 지는 꿈이 소중하여이다. 다디단 잊음이 영역으로 이끌어가는 육신의 발원이여 게으름에 길길이 풀어지는 보석 다래여 천길 구름샘에 폭포가 쏟아져내리노이다. 아아, 나는 미쳤는가 나는 짐승이 되었는가 마라의 짐승이 되었는가. 속세에 내린 탐람한 암삭슴이 되었는가. 제가 제 몸을 얽는 관능의 오랏줄이여. 아스리 나는 미쳤어라. 유혹을 버리리라. 나는 거룩한 얼을 잃었어라. 형산(荊山) 묻힌 백옥같이 청정한 예지의 과일을 나는 잃었어라. 환락은 아침 이슬과도 같이 덧없느니, 오오, 미친 상념이여.허망한 감각이여. 물결이 왔다 철렁 달아난 빈 모래 펄이여. 흐트러진 젖가슴에 희한의 바람이 휘돌아 불어 내 안이 텅 빈 동굴 같으니다. 꽃 지는 산 다락에 울어예는 귀촉도 영정한 저 소리만 어지러운 물소리에 적녁히 굴러 잠자지 못하는 사람의 깊은 속을 울리노라. 열치매 부엿한 둥근 달이 꽃구름에 어려 둥실 날은 추녀 위에 나직히도 걸렸어라 깊고 높고 푸른 산이 날 에워 네 골은 비어 죽은 듯 고요하여이다. 접동새. 우는 저 두견아. 어느 구름 속에 네가 울어 짧은 밤을 새우는다. 두견아, 네가 어이 남의 애를 끊느니. 쿵쿵 흐르는 물소리도 네 울음에 겨워 목이 메이노라. 물가에 내려 이슷한 수풀 속에 내 벗은 꽃 같은 몸을 씻노이다. 공산 잠긴 칡 달이 물 위에 떠 금빛으로 흐르메라 휘미진 여울에 빠져 흔들리는 내 고운 모습 여울에 잠근 하얀 진주 다래여. 물거울에 흐트러졌다 다시 형체를 짓는 보석의 더미여. 네가 물같이 흐르지 못하여 빠진 달같이 구름 샘에 머무느니. 모양에 갇힌 포말의 꾀여. 내가 이 맑은 경(境)에 와 죄업의 티끌을 씻노라 적막은 푸른 너울처럼 감돌고 부풋한 아리따운 형태의 반영에 고혹하는 비밀의 힘은 살아나노나. 아아, 몸과 영혼은 영원히 배반하는 모순의 짝이런가 씻어도 씻어도 흐려지는 관념형태여. 물아. 흐르는 물아. 철철 흐르는 물아. 풀어진 네 몸은 행복도 하여라 응고되지 않는 네 형체 번뇌도 시름도 없으리. 천 가닥 흩어지는 구슬 골짜기 네가 풀어져 흘러 산 밖으로 여는다 언제나 새로운 근원 흐려지지 않는 순수한 샘이여. 뎅!......... 새벽 종이 우노라 밤이 이내 지새련다 뎅! 뎅! 종이 우노라 종소리 굴러 물소리에 흔드노메라 소쇄한 유리 속에 넌즛 선 나 고독한 나여. 여명은 참으로 모든 형체를 드러내고 물체와 영상을 나뉘노라 보랏빛 수풀 위에 흐려지는 달 그리메 푸른봉우리가 이곳 가까이 다가서노나 청산아 네 거룩도 하여라. 구름에 솟은 바위도 자라나는 나무도 어둠에서 되살아나 불멸의 빛을 던지노라. 네가 날 위해 날 위해 언제나 있어주렴 그러나 부세(浮世)를 그리는 나 내 몸에 소용돌이치는 숙명의 부르짖음이여. 아아(峨峨)히 솟은 푸른 봉에 밝아 오는 숲 바다 밀밀한 나무가 금빛 니우리를 흔들고 지금 아침태양은 장미꽃으로 벌어지노라 가지 끝에 자던 새들 잠 깨어 생생히 우지진다. 둥, 둥, 북이 우노라. 두리둥둥, 아침 법고가 우노라. 천수 다라니 염불 소리 가사 장삼에 염주를 목에 걸고 아침 재를 올리느이다 아아, 우상에 절하는 어리석은 무리 서글픈 위선자여. 거지의 청신녀(淸信女)여. 꿈도 시름도 비명으로 사라지리 시간은 혼미에서 깨어나느니 아침 빛깔이 화려하게 불타 자잘한 삶의 소리 일어나노라. 북소리 염불 소리 염불 소리 물소리 물소리 바라 소리 바라 소리 물소리 물소리 흘러 종소리도 흔드노메라. 일만봉 구름 속에 울어예는 산울림 미풍은 참으로 내 젖가슴을 틔우고 첩첩한 산허리에 장미의 숲을 건느노라. 내, 늘어진 장삼에 소매를 떨쳐 그윽한 저 절을 내린다 무위한 슬픈 계곡을 나는 내린다........ (끝) * 불교적 언어를 통하여 불교 정신을 상징 묘사하고 있는 무려 400행이 넘는 장시이다 에 서사(序詞) 부분이 실리고 전문은 1957년 탈고되었다. 제행무상의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엄격한 구성과 고전적 심미성, 그리고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영향으로 그 말씨와 가락 등의 의고적인 형식미를 현대적으로 살리고 있다. 시집 의 표제시로, 모두 402행으로 구성된 장시(長詩)이다. 1941년 지에 발표하기 시작하여 1959년 시집 이 완성되기까지 18년 여를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바라춤’은 승무(僧舞)의 일종으로, 부처에게 재(齋)를 올릴 때 천수다라니경(千手陀羅尼經)을 외며 바라를 치면서 추던 춤이다.
390    상징주의 시대를 연 시인 - 19세기 : 21세기 댓글:  조회:2689  추천:0  2016-02-08
취하라 -샤를피에르 보들레르 항상 취하라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시간의 끔찍한 중압이 네 어깨를 짓누르면서 너를 이 지상으로 궤멸시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끊임없이 취하라. 무엇으로 취할 것인가. 술로, 시로, 사랑으로, 구름으로, 덕으로 네가 원하는 어떤 것으로든 좋다. 다만 끊임없이 취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물 위에서나 당신만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이미 취기가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보라.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말하는 모든 것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해 줄 것이다. 취하라,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항상 취해 있으라. 술이건, 시건, 미덕이건 당신 뜻대로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 - 1867) 프랑스의 시인. 비평가. 샤를 보들레르는 상징주의 시대를 연 시인이다. 1857년 그의 걸작중의 하나인 은 시에서 산문적인 요소를 모두 배제해 시를 순수한 형태로 높이는데 공헌했다. 당시에는 외설과 신성모독으로 미풍양속을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300프랑의 벌금형과 시 6편의 삭제 명령을 받는다. 반면 현재는 현대인의 내면 깊숙이 잠재해 있는 모순을 가장 적나라하게 상징화한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보들레르의 서정시는 다음 세대인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파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죽은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그의 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다. 프랑스의 소설가 발레리는 “그보다 위대하고 재능이 풍부한 시인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시인은 없다”라고 평가했다. 타락의 존재로 동일시되는 보들레르는 19세기보다는 21세기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듯 여겨질만큼 당대의 어느 사람보다 현대에 가까이 접근한 시인이었다.
389    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나는 시인들 - 포석 조명희 댓글:  조회:3230  추천:0  2016-02-06
포석 조명희 시 모음 성숙(成熟)의 축복   가을이 되었다. 마을의 동무여 저 너른 들로 향하여 나가자 논틀길을 밟아가며 노래 부르세 모든 이삭들은 다복다복 고개를 숙이어 “땅의 어머니여! 우리는 다시 그대에게로 돌아 가노라” 한다.   동무여! 고개 숙여라 기도하자 저 모든 이삭들과 한가지로…….       경이(驚異)   어머니 좀 들어주서요 저 황혼의 이야기를 숲 사이에 어둠이 엿보아 들고 개천 물소리는 더 한층 가늘어졌나이다 나무 나무들도 다 기도를 드릴 때입니다   어머니 좀 들어주서요 손잡고 귀 기울여 주서요 저 담 아래 밤나무에 아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뚝’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우주가 새 아들 낳았다고 기별합니다 등불을 켜 가지고 오서요 새 손님 맞으러 공손히 걸어가십시다               무제(無題)   주여! 그대가 운명의 저(箸)로 이 구더기를 집어 세상에 떨어뜨릴 제 그대도 응당 모순(矛盾)의 한숨을 쉬었으리라 이 모욕의 탈이 땅 위에 나뭉겨질 제 저 맑은 햇빛도 응당 찡그렸으리라.   오오 이 더러운 몸을 어찌하여야 좋으랴 이 더러운 피를 얻다가 흘려야 좋으랴   주여, 그대가 만일 영영 버릴 물건일진대 차라리 벼락의 영광을 주겠나이까 벼락의 영광을!     봄   잔디밭에 어린 풀싹이 부끄리는 얼굴을 남모르게 내놓아 가만히 웃더이다 저 크나큰 봄을.   작은 새의 고요한 울음이 가는 바람을 아로새기고 가지로 흘러 이 내 가슴에 스며들 제 하늘은 맑고요, 아지랑이는 고웁고요.   봄 잔디밭 위에   내가 이 잔디밭 위에 뛰노닐 적에 우리 어머니가 이 모양을 보아주실 수 없을까   어린 아기가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 어리광함같이 내가 이 잔디밭 위에 짓둥글 적에 우리 어머니가 이 모양을 참으로 보아주실 수 없을까.   미칠 듯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엄마! 엄마!” 소리를 내었더니 땅이 “우애!”하고 하늘이 “우애!”하옴에 어느 것이 나의 어머니인지 알 수 없어라. 정(情)     바둑이도 정들어 보아라 그는 더러움보다 귀여움이 더하리라.   살모사도 정들어 보아라. 그는 미움보다 불쌍함이 더하리라.       내 못 견디어 하노라     반기던 그대 멀어지고 멀어진 그대 그리웁거늘, 이를 다시 슬퍼하옴은 내 마음 나도 모르거니, 꽃이야 지거라마는 물이야 흐르거라마는 이 마음 부닥칠 곳 없음을 내 못견디어 하노라.       인간 초상찬(人間肖像讚)     사람에게 만일 선악(善惡)의 눈이 없었던들 서로서로 절하고 축하하올 것을…….   보라 저 땅 위에 우뚝히 선 인간상을.   보라! 저의 눈빛을 그 눈을 만들기 위하여 몇 만(萬)의 별이 빛을 빌리어 주었나. 또 보라! 저의 눈에는 몇 억만리의 나라에서 보내는지 모를 기별의 빛이 잠겨 있음을. 또 보라! 저의 눈은 영겁을 응시하는 수위성(守衛星)이니라. 이것은 다만 한쪽의 말 아아 나는 무엇으로 그를 다 말하랴?   그리고 사람들아, 들으라. 저 검은 바위가 입 벌림을, 대지가 입 벌림을 별의 말을 들으라! 사람의 말을 들을지어다! 알 수 없는 나라의 굽이치는 물결의 아름다운 소리를 전하는 그의 노래를 들으라.   아아, 그는 님에게 바칠 송배(頌盃)를 가슴에 안고 영원의 거문고 줄을 밟아갈 제 허리에 찬 순례(巡禮)의 방울이 걸음걸음이 거문고 소리에 아울러 요란하도다 아아, 사람들아! 엎드릴지어다. 이 영원상(永遠相)앞에…….   이 신(神)의 모델이 땅 위에 나타남에 우주(宇宙)는 자기의 걸작품을 축하할 양으로 태양은 곳곳에 미소를 뿌리고 바람과 물결도 가사(袈裟)의 춤을 추거든……. 사람에게 만일 선악의 눈이 없었던들 서로서로 절하고 기도하올 것을…….       달 좇아     이 밤의 저 달빛이 야릇이도 왜 그리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지 가없이 가없이 서리고 아파라.   아아, 나는 달의 울음을 좇아 한없이 가련다 가다가 지새는 달이 재를 넘기면 나도 그 재위에 쓰러지리라.       동무여     동무여 우리가 만일 개(犬)이어던 개인 체 하자 속이지 말고 개인 체 하자! 그리고 땅에 엎드려 땅을 핥자 혀의 피가 땅 속으로 흐르도록, 땅의 말이 나올 때까지..........,   동무여 불쌍한 동무여 그러고도 마음이 만일 우리를 속이거든 해를 향하여 외쳐 물어라 “이 마음의 씨를 영영히 태울 수 있느냐”고 발을 옮기지 말자 석상이 될 때까지.       새 봄     볕발이 따스거늘 양지쪽 마루 끝에 나어린 처녀 세음으로 두 다리 쭉 뻗고 걸터앉아 생각에 끄을리어 조을던 마음이 얄궂게도 쪼이는 볕발에 갑자기 놀라 행여나 봄인가 하고 반가운 듯 두려운 듯.   그럴 때에 좋을세라고 낙숫물 소리는 새 봄에 장단 같고, 녹다 남은 지붕 마루터기 눈이 땅의 마음을 녹여 내리는 듯, 다정도 하이. 저 하늘빛이여   다시금 웃는 듯 어리운 듯, “아아, 과연 봄이로구나!”생각하올 제 이 가슴은 봄을 안고 갈 곳 몰라라.       불비를 주소서     순실(純實)이 없는 이 나라에 아픔과 눈물이 어디 있으며 눈물이 없는 이 백성에게 사랑과 의(義)가 어디 있으랴 주(主)여! 비노니 이 땅에 비를 주소서 불비를 주소서! 타는 불 속에서나 순실의 뼈를 찾아 볼까 썩은 잿더미 위에서나 사랑의 씨를 찾아 볼까.       감격의 회상     님이여 그대가 말없는 말을 이르시며 소리없는 노래를 아뢰실 때 이 어린 아이의 가슴에 안은 거문고는 목이 메여 떨기만 하더이다.   님이여 나며 들며 때로 대(對)하던 이 아이의 마음에는 마음의 곳곳마다 엄숙한 미소를 그득히 감최인 눈으로 가만히 그대를 바라보며 은근히 절하고 싶었나이다 아아 그때 나는 비로소 이 우주덩이를 보았나이다. 처음으로 님을 만났었나이다.   때는 이미 오래더이다 지금 다시 그대를 마음 가운데 그려보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기도를 드리나이다 아아 영원히 잊지 못할 나의 책상 위에 놓았던 한 낱의 도토리!       떨어지는 가을     성근 낙목형해(落木形骸) 사이 등불은 냉막(冷寞)의 꿈으로 비쳐 너의 언 가슴 속으로 쉬어 나오는 한숨같이 지면을 스쳐가는 바람에 구르는 잎 사르르 굴러 또 사르르 스러져가는 세상 외로운 자의 넋인가   아아 황금의 면영(面影)은 자취도 없다 지금은 가을이다 찬밤이다 바이올린의 떠는 소리로 굴러온 이 마음은 시들은 풀 속 벌레의 꿈 같다 바람의 부닥치는 외잎 소리에도 혼(魂)이 사라지랴든다.       고독자(孤獨者)     오오 너는 어이 인생의 청춘으로 환락의 꽃밭 백일의 왕성을 다 버리고 황량한 벌판에 노래를 띄우노.   밤중 달이 그의 그림자를 조상(弔喪)함에 그는 가슴을 안고 시들은 풀 위에 쓰러지다 바람이 마른 수풀에 울어 지날 제 낙엽의 넋을 좇아 혼을 끊도다.   별들은 비록 영원을 말하나 느껴 우는 강물을 화(和)하여 노래 부르며 희미한 등불이 그를 비치려드나 고개 숙여 어두운 그늘로 몸 감추다.       누구를 찾아     저녁 서풍 끝없이 부는 밤 들새도 보금자리에 꿈꿀 때에 나는 누구를 찾아 어두운 벌판에 터벅거리노.   그 욕되고도 쓰린 사랑의 미광(微光)을 찾으려고 너를 만나려고 그 험하고도 험한 길을 훌훌히 달려 지쳐 왔다.   석양 비탈길 위에 피 뭉친 가슴 안고 쓰러져 인생 고독의 비가(悲歌)를 부르짖었으며 약한 풀대에도 기대려는 피곤한 양의 모양으로 깨어진 빗돌 의지하여 상한 발 만지며 울기도 하였었다 구차히 사랑을 얻으려고 너를 만나려고.   저녁 서풍 끝없이 불어오고 베짱이 우는 밤 나는 누구를 찾아 어두운 벌판에 헤매이노.       아침     아침 개인 아침 지붕 지붕 나무 나무 가벼운 나의(羅衣) 맑은 향기 소안(笑顔) 오오 그 소안(笑顔)! 그래서 나래 벌린 대지는 새 아침을 맞는다 성(聖)하고 또 영광스러운 아침을.       나의 고향이     나의 고향이 저기 저 흰 구름 너머이면 새의 나래 빌려 가련마는 누른 땅 위에 무거운 다리 움직이며 창공을 바라보아 휘파람 불다.   나의 고향이 저기 저 높은 산 너머이면 길고 긴 꿈길을 좇아가련마는 생의 엉킨 줄 얽매여 발 구르며 부르짖다.   고적(孤寂)한 사람아, 시인아. 불투명한 생의 욕(慾)의 화염에 들레는 저자거리 등지고 돌아서 고목의 옛 덩굴 디디고 서서 지는 해 바라보고 옛 이야기 새 생각에 울다.   고적한 사람아, 시인아. 하늘 끝 회색 구름의 나라 이름도 모르는 새 나라 찾으려 멀고 먼 창공의 길 저문 바람에 외로운 형영(形影) 번득이여 날아가는 그 새와 같이 슬픈 소리 바람결에 부쳐 보내며 아픈 걸음 푸른 꿈길 속에 영원의 빛을 찾아가다.       인연(因緣)     만년의 봄이 와 만 가지 꽃이 피어 몇 만의 나비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 저 꽃 위에 저 나비는 미친 듯이 춤추고 있다.   영겁의 때가 있고 무한의 우주가 있어 억만 번 생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나는 이곳에 서서 맑은 바람 팔 벌리어 맞으며 피인 꽃송이 떨며 입 맞추고 있다   시(時)와 처(處)와 생의 포옹 아아 그 무도(舞蹈)! 인연의 결주(結珠)!   바라문 종소리 고개 숙이며 십자가 휘장에 황홀은 하나 이 포옹 이 무도 아아 나는 어이?       나그네의 길     남으로 남으로 북으로 북으로 훨훨히 뻗친 저 길은 가고 오고 오고 가는 이 옛적이나 이적에나.   오오 간 이의 그림자도 없는 슬픈 이야기 오는 이의 고화(古畵)에 비친 길가는 나그네.   아아 수풀의 스치는 바람은 뉘 한숨이며 여울에 우는 강은 누구의 추도(追悼)인가   낮 볕과 밤 달의 번가는 제촉(祭燭) 창공의 상여개(喪輿盖)는 영원히 떠 있어라.       고독의 가을     조일(朝日)의 황금등이 동천에 하례(賀禮)하고 뭇새들의 개가(凱歌) 둘린 숲에 시끄러이 아뢰며 ‘때’와 ‘빛’은 거기에 무도(舞蹈)하는 젊은이의 왕국 그 나라에 환락의 술잔 들며 산 꿈의 방향에 어리어 도취(陶醉) 난무하는 세계 아아 거기는 나의 주가(住家) 아니었었다.   나의 주가-고독의 세계 그곳은 ‘황량과 묘막(渺漠) 여기가 너의 방황 임종의 세계다’하는 사막 그러나 거기에 알 수 없는 신비의 금자탑이 흰 구름 위에 높이 솟아 가없는 회색 안개 속에 감추어 있어 그 꼭대기 위에 요염의 애인이 초록색 고운 면사를 가리고 나의 어린 영혼을 돌아보아 손짓하다 그때부터 내 영은 치는 종소리 요란하며   가슴에는 열탕(熱湯)의 혈조(血潮)가 치밀다 그 희미한 꿈에 뵈임 같은 그것을 찾으러 거기에 애인을 만나러 까닭도 모르고 황홀히 취하여 온 다리에 피가 마르도록 헤매이기만 하였지 다만 지금 남은 기억은 그때가 석양이더라 피곤한 낙타의 울음과 방울소리 멀리 저문 해에 사라지고 황혼의 자금색이 지평선 위에 고별의 정화(情火)를 사를 제 그때 나는 황금주를 눈물 섞어 마시며 쓰러졌다 거기가 내 영의 한 역로(歷路)이다.   아아 지금 이곳은 쇠하여 가는 가을이 회색 안개의 옷을 입고 박모(薄暮)의 빛을 받아 가만히 슬피 노래하는 강물이 흐르며 싸르르한 바람이 거치른 기슭을 스쳐 지날 제 한적(寒寂)에 마른 누런 노엽(蘆葉)이 서로 껴안고 부벼대며 애수에 못 이겨 잔 사설하다 아아 여기가 지금 나의 주가 - 광야의 일우(一隅)이다.   오오 여기에 어찌하여 또 눈물의 석양이 왔노 나는 어찌하여 또 쓰린 거문고 줄을 만지게 되노 고독은 영원의 주가 나는 그 속에 영원의 고독자 오오 그 고독자야 푸른 옷을 입고 푸른 꿈 속에 헤매이다가 푸른 안개 속으로 사라지리라 그때 나의 무덤은 「이 지상에 두지 말아라 그 욕되고 쓰린 나머지 자취를」.   비야 오너라 바람아 불어라 나의 그 성근 광야의 집에 오오 거기에 또한 밤이 오다 벌판이냐 구렁이냐 홀홀히 방황하며 잎 날리는 서릿바람에 몸부림하는 혼은 요련(夭戀) 소녀의 원혼 같은 나의 혼은 애정의 공락(空落)인 낙엽의 사해(死骸)를 밟아가며 사박사박 소리에 그 가슴은 칼질하다. 그믐 새벽달이 박운(薄雲)의 수건을 가리고 눈물 고인 눈으로 나를 맞을 제 오오 우는 자 그 누구뇨? 쓰러지는 자 그 누구뇨?   비애야 오너라 고통아 오너라 내 가슴에 불지르다 피가 끓다 몸이 타다 그러고 남의 혼이여! 멀리 가거라 끝없는 세계로 멀리 날아 가거라 지새는 별이 내게 말하기를 「너는 현실의 패잔자(敗殘者) 영원의 영승자(榮勝者)」라고 그러나 나는 슬퍼하노라   오오 사라져 가거라 아로새긴 환영(幻影)아 사막에 곤두박질하던 꿈아 대밭에 피투성이 하던 기억아 사라져 가거라 제발 사라져 다만 나는 노래하리라 또 노래하리라.       별 밑으로     세상에서 부(富)를 구하느니 가을의 썩은 낙엽을 줍지 그것이 교활(狡猾)의 보수(報酬)로 온다더라.   세상에서 명예를 구하느니 사막길 위에 모래탑을 쌓지 그것이 아첨의 보수로 온다더라.   세상에서 이해를 얻으려느니 눈보라 벌판에 홀로 돌아가지 그들 돗 같은 야인 앞에 구차히 입을 벌리느니.   그러면 고적한 동무야 연옥에 신음자야 안아라 너의 가슴을. 냉가슴을 안고 가자 가자 저 저문 사막의 길로 저 별 밑으로.   그 별에게 말을 청하다가 별이 말 없거든 그때 홀로 쓰러지자 홀로 사라지자.       누(淚)의 신(神)이여     애인아! 웃지를 말아라 돌길에 상한 나의 발을 보아다오 너의 웃음이 너무도 무정하구나.   자모(慈母)여! 미소를 떼우지 말으소서 이 상한 가슴에 이 아픈 가슴에 당신의 손만 가만히 대어주서요 미소는 너무 억울합니다.   신이여! 애(愛)의 여신이여! 당신의 그 평화의 화차(花車)도 성장도 월계관도 다 내어 던지고 다만 이 애도자(哀悼子) 앞에 그 검은 상의(喪衣)의 자(姿)로 눈물 흘린 얼굴로 맞아주소서 그때 나는 당신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엎드려 피눈물을 쏟으며 쓰러지리이다.       한숨     푸르고 검고 또는 보랏빛으로 짜낸 내 가슴의 웅덩이에 어제나 오늘이나 쉴 새 없이 일어나는 한숨이 그 무엇이뇨 오오 그 단조하게도 의미깊게 슬픈 멜로디로 치오르는 한숨이 그 무엇이뇨.   고독에 피곤한 나의 혼이 이 세상에 가장 큰 애인의 가슴에 안길 때 그때에나 이 한숨이 사라질까 오오 그것도 거짓말일까 하노라 망집의 고과에 헤매이는 이 몸이 해탈의 나라를 찾아가서 청정무구의 몸을 쉬일 제 그때에나 이 한숨이 사라질까 오오 그것도 거짓말인가 하노라   갓날 제 울던 그 울음과 숨 끊어질 제 쉬일 그 한숨이 오오 그 생이란 조롱에 갇힌 혼의 울음이 수수께끼 같은 그의 한숨이?       어린 아기     오오 어린 아기여! 인간 이상(以上)의 아들이여! 너는 인간이 아니다 누가 너에게 인간이란 이름을 붙였느뇨 그런 모욕의 말을……. 너는 선악을 초월한 우주 생명의 현상이다 너는 모든 아름다운 것보다 아름다운 이다. 네가 이런 말을 하더라 “할머니 바보! 어머니 바보!” 이 얼마나 귀여운 욕설이며 즐거운 음악이뇨?   너는 또한 발가숭이 몸으로 망아지같이 날뛸 때에 그 보드라운 옥으로 만들어낸 듯한 굵고 고운 곡선의 흐름 바람에 안긴 어린 남기 자연의 리듬에 춤추는 것 같아라 엔젤의 무도 같아라 그러면 어린 풀싹아! 신의 자(子)야!       생명의 수레     창공에 창공에 저 높은 융궁에 태양의 대영광물이 날마다 날마다 전 지상에 황금의 법의와 황금의 마권을 들이씌움이여 마치 대궁전 대광등하(大光燈下)에 마법의 진주를 내려 쏟음같이 또한 거기에 구름과 달과 별을 더 함이랴 아아 그의 앞에 나는 무슨 의식을 베풀어 절해야 옳으랴?   뻗치고 뻗치고 끝없이 뻗치고 점치고 점치고 무한히 점친 대파노라마 대수의상(大繡衣像) 산과 산이며 들과 들이며 숲과 숲이며 내와 내며 바다와 또한 바다 아아 이 장려한 대지를 나는 무엇으로 찬사를 바치랴?   밤이고 낮이며 낮이고 밤이며 방렬성주(芳烈聖酒)에 취한 만년의 꿈길 같은 그 속에 그 무변대궁궐 안에 아폴론 신은 대미술품을 그리고 그리고 쌓고 또 쌓으며 디오니소스 신은 대심포니를 아뢰고 아뢰고 또 새로이 아뢰어 그래서 대우주-대성전은 대생명-대거인은 대일월기를 들고 대수의 진주가사를 떨치고 대교향악 속에 영원으로 영원으로 그 무궁영겁의 길을 향하다       생의 광무(狂舞)     나는 인간을 사랑하여 왔다 또한 미워하여 왔다 도야지가 도야지 노릇 하고 여우가 여우 짓 함이 무엇이 죄악이리오 무엇이 그리 미우리오 오예수(汚穢水)에 꼬리치는 장갑이도 검은 야음에 쭈그린 부엉이도 무엇도 모두 다 숙명의 흉한 탈을 쓰고 제 세계에서 논다 그것이 무엇이 제 잘못이리오 무엇이 그리 미우리오 아아 그들은 다 불쌍하다 그렇다 이것은 한때 나의 영혼의 궁전에 성신이 희미한 성단에 나타날 제 얇은 개념의 창문이 가리어 질 제 그때 뿐이다 그는 때로 사라지다 무너지다       닭의 소리     백주는 수정의 적궁(寂宮)으로 돌아와 명상의 세계로 눈 뜨고 잠들다 이때 뜰 아래 풀 위에 바람이 슬- 건넛집 종려수 바르르- 카나리아 지지글지지글 먼 길에 자동차 붕- 그 소리 멀리 사라져 가고 백주는 다시 졸음으로 돌아오다 꿈으로 돌아오다 이때러라 말없는 ‘때의 바다’러라 닭의 소리 ‘꼬끼오-꼭-’ 그는 미지의 나라 한숨의 가종(歌鐘) 지상에 전하여 울리다 또 ‘꼬끼오-꼭-’ 울리다 사라지다 먼 나라로 울려와 먼 나라로 사라져 가다 태양은 여전히 웃으며 물 위에 바람은 다시 지나가다.       혈면오음(血面嗚音)     꿈에도 믿던 태양이 임종의 상(床)에 들었나 시체방 누런 포장 같은 빛을 가만히 내려라 검은 피 칠한 영어의 철벽을 두드리며 거꾸러진 사형수의 넋이런가 훈연(燻煙)의 깊은 골 신음소리 웨인 일고 마디마디 애도곡인가는 봄에 홀로 된 쿡쿡의 시절도 이미 오래됨 같도다 병든 잎사귀에는 한숨도 그치고 시들은 꽃들은 눈물조차 없어라   아아 기막히고도 기막히어라 내 영의 빈 터전에 까막거리는 등불조차 꺼지려 함이여.   옛날 길가던 백마 등 위에 꿈꾸던 아침 환영의 목련화도 붉은 발로 산봉우리 바위 덤불 밟아 헤치며 새벽 구름 소매를 잡으려던 녹의소녀의 애타던 가슴도 형적없이 무너져 가도다.   아아 애닯어라 고뇌의 청춘이 붉고 검은 바다를 거슬러 가   황금수를 떨친 진주의 물결이 햇빛을 안고 영겁의 신음에 가없이 춤추는 님의 나라가 지옥과 연옥에 고행순례자를 맞으리라는 회색 피라미드에 새긴 비문을 노래하던 것도 다 떠나 가도다 떠나 가도다.   생이란 고역장에 염일하(炎日下) 우마도 분수가 있지 지옥에 칼부림하는 망나니의 이 가는 소리에 관문을 바라본 희생수같이 떨면서도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통곡하는 치자의 마음까지 뺏어 가도다.   아아 나는 어디로 갈까 나는 어디로 가 현실이란 잿더미를 디디고 서서 허무한 나락에 혼을 굴리어 주려 죽은 갈가마귀의 넋도 길들일 곳이 있지 썩은 외가지의 그늘조차 부딪칠 데 없어라.     우주란 영원의 미(謎)의 명부 인세란 영구의 고의 환권(環圈) 진리란 허황한 미지의 음부(陰府)   나는 다만 눈먼 광승의 피 흘린 발자취를 따르리라 이 세상 행복이란 내리는 탁류의 꺼지는 물거품 길에 구르는 유리 조각-망둥이의 노름거리 생이란 불구 걸식자의 애닯은 다리 나는 구차히 삶을 원치 않는다 차라리 폐병 임사의 애인을 껴안고 무덤을 가리키며 떨어 입맞추리라 아아 사람들아 여기는 신도 없고 악마도 없음 나는 다만 그 불쌍한 애인의 사체를 부둥켜 안고 지옥의 피 노래를 홀로 부르리라.       하야곡 (夏夜曲) - 고향에서 -     반달은 벽옥반(碧玉磐)에 흰 발을 내이며 바람은 녹장(綠帳)에 향수를 뿌릴 제 엇치는 베틀에 북을 던지고 귀뚜라미 은방울을 자주 울리다.   건넛집 큰아기 머리에 인 물동이 희롱하는 달빛을 담고 사립문에 이를 제 답사리의 어두운 그늘로 보약 강아지 꼬리치며 뛰어들고 마중나온 발가숭이 “누이야! 누이야!” 강장거리다   먼 마을 북소리 때로 일고 장마 여울 물소리 아울러 요란할 제 밤은 끝없는 물결같이 흘러라.       태양이여! 생명이여!     성(聖)한 새벽에 영원히 떨쳐간 어머이가 겹겹의 코발트 미면사(美面紗)를 가리고 녹우의수(綠羽衣袖)를 들어 눈물어린 적자(赤子)를 부르는 성모(聖母)의 무변궁대(無邊宮臺)여 하(夏)의 백주(白晝)의 감벽(紺碧)의 융궁(隆穹)이여 거기에 옥반(玉盤)의 핵심에 그 가슴 속에 태양은 황금로(黃金爐)의 불길을 사르다 아아 대해(大海) 같은 황금소(黃金笑)여 끓어오르는 생명이여 광란한 영혼이여! 모든 풀들이여 모든 나무들이여 그들은 광(光)과 열(熱)의 포옹에 성향(聖餉)에 녹이는 감설에 그 약동에 소리치다 “푸름이여 뛰어라! 푸름이여 되어라!” 그리고 산이며 내며 길이며 온 지상에 백일(白日)의 궁성에 숭엄에 법열(法悅)에 떠는 모든 생물, 모든 물건 오오 그들은 광희에 소리치다 “아멘! 아멘!” 오오 뛰는 생명이여! 하(夏)의 태양이여! 나는 그대의 대궁궐에 저천탑(底天塔)의 대(大)피라미드를 세울까 그리고 거기다 거기다 이 세상에 없는 말을 듬뿍 새기려 한다 오 영혼이여! 대율려(大律呂)여! 내 심장에 뛰는 핏소리여! 나는 그 대홍수 물결에 그치는 물결에 용권채홍선(龍券彩虹船)을 달려 가리라. 오오 그러면 생명이여! 영혼이여! 너의 끝없는 대양에 불멸의 율려(律呂)에…….       알 수 없는 기원(祈願)     나는 인생에 절망을 가졌으며 인간을 무던히 미워하여 왔었다 그러나 이상도 하다 가엾으게도 어여쁘게 생기지 못한 주인 노파의 어린 딸아기 보드라운 살이 내 손에 닿을 제 이 가슴은 야릇하게도 놀래어라 야드러운 봄 물결이 스쳐감 같도다 알 수 없게도 내 눈에는 눈물이 나올 듯 그 어린 아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엇에게 기원을 바치고 싶다.       매육점(賣肉店)에서     인간이 의식의 축생을 살육하여 육림을 버리고 비린 피 임리한 도마 위에 육(肉)과 뼈에 칼질함을 볼 때 만일 인간이 해탈한 뒤에 그 피살자(被殺者)를 위하여 제단을 버리고 그 앞에 서서 눈물을 뿌릴 때가 없다 하면 오오 신이여! 인간의 정토가 영영 없으오리까? 중생의 지옥이 영영이오리까?       불사의(不思議)의 생명의 미소     내 마음 가운데 바람이 불어오다 적열(寂悅)의 바람이 봄 들에 소리 없이 부는 바람같이 고요한 호수에 넘치는 난파(暖波)같이 내 혈맥을 통하여 내 전신을 통하여 그 마음의 오궁(奧宮)으로부터 까닭 모르는 적열의 바람이 불어오다 그는 까닭 모르는 생명의 열파(悅波) 지혜와 감각을 떠난 영혼의 미소 아아 이 알 수 없는 기쁨이 넘치는 1922년 10월 15일 햇빛은 머리에 비춘 석양 침상에.       내 영혼의 한쪽 기행     나는 처음에 인간애를 무던히도 동경하였다 철 모르는 어린 아기 인생의 첫 봄 아질아질 타오르는 아지랑이 넘을넘을 듯한 비 개인 강변 황금의 비죤으로 짜낸 내 영의 야원(野原) 거기서 내 어린 영은 가로뛰며 소리치다 “동무여 이 가슴 속에 흐르는 핏소리를 들으라 홍수같은 핏소리를 그리고 동무여 손 잡아다고 네 가슴과 내 가슴에 다리를 놓자” 이것은 내 영혼의 요람의 꿈자리.   손 잡던 동무는 돌아서 가고 세상은 찬 바람이 휘몰아칠 때 그때 내 영은 얼마나 떨며 울었으랴 처음에는 경아(驚訝) 그 다음에는 공포(恐怖)   ………………………………………………   내 생명의 흐름 좁은 골짜기 거칠은 평야를 휘돌아 지나는 내 생명의 흐름 황갈색 안개 둘린 검은 핏빛 강 어구에 다달아 끝없는 암야(闇夜)의 바다가 전개될 제   아아 내 영은 다시 소리 없는 울음을 끊어 울도다 상(傷)한 피의 한숨을 내어 뿜도다 이 밤에 이 밤에 이 어두운 밤에 저 하늘 마루터기 희미한 외별빛이 내 어두운 가슴 속 바다를 밝힐 수 있을까 오오 이 어떠한 요희(妖戱)의 바다뇨 사람들아 들으라 상의 성도(喪衣聖徒)의 기도가 들리려 하면 -소리가 일어나고 미련의 꿈에 잠긴 애인이 귓속말 하려 할 제 주정꾼의 술노래 소리쳐 일도다 굴종이냐-방랑이냐 그 무엇이냐? 박암(薄暗)의 창공이 새로 열리며 방랑! 방랑! 쇠북소리같이 울려오다 옳다! 방랑이다 내 영은 여기서 길봇짐 싸다 과거에 부닥치던 갈대 여울이여 또는 갖은 바윗돌 갖은 나무 풀들이여 지금 나의 동무 동무여 모든 악한 동무며 착한 동무여 인간은 선악의 마루턱을 넘어 서서 참으로의 사랑이 있음을 그대들은 믿으라.       분열의 고(苦)     나는 우주의 어머니로부터 나온 자식 옳도다 그 어머니 가슴에 올기(兀起)한 한 낱의 수포(水泡) 윤생(輪生)의 인연의 마디 만겁(萬劫)의 시류에 보금자리 친 나의 영혼 분열의 고(苦)-생(生), 환원(還元)의 원망(願望)-사(死).       눈(雪)     눈 눈 흰 눈 -아니, 샛파란 눈- 꼬리를 살살 치는 어여쁜 백호(白狐)-도화의 요희(妖姬) 뼈가 저린 술에 취한 듯이 현매(眩昧)에 달려 가는 내 혼의 발걸음 산으로 들로 바다로 하늘가으로 먼 암사(暗死)의 나라로 끝없는 ‘팔랑개비’ 의 나라로-. 아아 쓰리기도 하여라 피 묻은 단의(單衣)를 휘감은 듯한 나의 혼은 밤놀의 휘장 둘린 동살지대(凍殺地帶)에 서서 달의 해골이 눈땅의 뺨을 갈길 때 그는 가슴을 움켜쥐고 누구를 찾아 호곡(號哭)하다 최후의 심판정(審判廷)이나 다다른 듯이   애달은 마음이 님을 부르짖으나 이 세상에는 없는 님이 올 리 만무하고 냉안(冷顔)에 눈 감은 백의보살(白衣菩薩)이 안개 속으로 나타나며 엄묵(嚴黙)에 잠긴 기도를 드리려 한다. 오오 그 백호(白狐)가 변하여 백의보살(白衣菩薩)이 됨을.       나     나의 뼈-부처의 뼈, (성모(聖母)의 웃음이 좋고, 현자의 울음이 좋더라.)   나의 살-떼카단의 살, (---------, 취살(醉殺)의 방독주(芳毒酒)가 좋더라.)       번뇌(煩惱)     우는 것은 못난이의 일 다만 참아감도 어리석은 일 웃을 수는 물론 없다 그러면 너는 어찌하려느뇨? 너는? -----------------------.       스핑크스의 비애(悲哀)     어느 술좌석 끝에 옆에 앉은 동무들이 어찌 그리 되지 않고 밉던지 주먹을 쥐고 일어서며 ‘필리스틴’의 세상 더러운 세상! 이 되지 않은 속중(俗衆)! 하고 싸우기까지 하였다 혼자 돌아올 때 “너나 내나 다 같이 불쌍한 인간 그 불쌍한 인간을 내가 왜 학대하였노?”하여 알 수 없는 비애가 가슴에 터질 듯.       어떤 동무     그는 질투심도 많이 가졌다 그는 허영심도 많이 가졌다 그는 이 시대에 상당한 교육도 받을 만치 받았다 경우는 그를 행운일 만치 하여 주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괴로워한다 자기의 과오를 생각하고 참으로 괴로워한다 말소리까지 슬픈 가락을 띠어 울려 나온다 그는 한숨 쉬며 혼자 말한다 “아이고! 저 생겨 나온 대로 하여라” 가엾으고 가엾으나마 그는 땅 위에 떨어지면서 그런 탈을 쓰고 났다 그 외에 더 어찌할 수 없다 이것이 만일 색상계에 미의 대비율이 되기 위하여 났다 하면 이 저주된 생아! 현실아! 이것이 만일 전생의 과업이 아니고 다만 신의 장난으로 났다 하면 오오 때려 죽일 놈의 신이여!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 새끼를 안고 빨고 귀여워합니다 어미 원숭이는 그 얼굴에 모성애가 넘칠 듯하고 새끼 원숭이는 자성(子性)의 미가 방글방글 웃는 듯하더이다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원숭이가 새끼를 귀여워합니다 그러나 나는 슬퍼합니다 “너는 왜, 그런 모욕의 탈을 쓰고 또 났어……” 하고.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원숭이가 새끼를 귀여워합니다 그러나 나는 슬퍼합니다.       영원의 애소(哀訴) -고향에서-     형아 아우야 이것이 웬일일까 이 세상에 왜 낮이 있고 밤이 또 있을까 * 형아 아우야 이것이 웬일이냐 한편에는 슬피 울고 한편에는 비웃음이 * 오오 무서운 현상! 무서운 모순(矛盾)! * 형아 아우야 울지 말아라 울지 말아라. 두리건대 이것이 영원(永遠)일까 하노라 영원의 모순일까 하노라 영원의 모순! 영원의 모순! *   오오 이것이 웬일이냐 이것이 무엇이냐 이 사람이 왜 생겨났을까 이 우주가 왜 생겨났을까 * 이 밤에 이 땅에 저 둘린 암흑이 영원히 영원히 내려 싸거라 영원히 영원히 잠겨 버려라.       어린 아기     어린 아기는 해의 나라에서 보낸 귀여운 아기니 서릿발같이 무섭게 성낸 아버지의 마음이 그 아기 웃음 한 번에 사라지고 마나니.   어린 아기는 힘의 나라에서 보낸 신통한 아기니 세상을 무찌르려는 아버지의 허무의 칼날도 그 아기 울음 앞에는 그만 던져지고 마나니.   보라 영원히 그 아기는 터지려는 지구의 심장을 부드러운 손으로 꿰매어 주며 넘어지려는 생명의 바퀴를 작은 팔로 받치고 서서 머나 먼 나라의 길을 어여쁜 손으로 가리켜 주나니.   그러면 아기야 우리는 어찌하여야 좋으랴 네게 무엇을 주어야 좋으랴 저기 저 하늘의 별을 따 주랴 옳도다 별 따러 가자 별 따러 가 영원히 영원히 별 따러 가자   이리하여 이 우주에 부성(父性)은 자성(子性)을 좇고 자성은 부성을 따라 울음 속에 웃음이 있고 미움 속에 사랑이 있어 영원한 원무(圓舞)와 ‘심포니’가 되어 아프게도 생명의 바퀴는 굴러 가나니 새 별을 따면서 따면서…….       ‘어둠의 검’에게 바치는 서곡(序曲)     어둠의 검! 어둠의 검! 그대에게야 설마 이 말세 인간의 더러운 냄새 같은 흐푸성스러운 말이 있사오리까 말이 있사오리까? 그대는 다만 검은 하늘빛과 같은 침묵이 있을 뿐일 줄로 압니다.   어둠의 검! 어둠의 검! 그대에게야 설마 울곧지 않은 만족에 망둥이같이 날뛰는 어리석은 자의 웃음이 있사오리까 웃음이 있사오리까? 그대는 다만 촛농같이 흐르는 눈물에 두 눈은 빛 잃은 태양같이 꿈벅거릴 뿐일 줄로 압니다.   어둠의 검! 어둠의 검! 그대에게야 설마 생쥐 인간이나 좋아하는 맛 같지도 않은 행복이 있사오리까 행복이 있사오리까? 그대는 다만 검은 피옷을 두르고 단두대 위에 선 대장부와 같을 뿐인 줄로 압니다.   어둠의 검! 어둠의 검! 그대는 이 철없는 세상의 말과 빛과 행복을 다 몰아 가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을 아픈 침묵으로만 잠가 주소서 다만 거짓 없는 영혼들의 소리 없는 통곡만이 땅 위에 사무치도록…….       온 저자 사람이     온 저자 사람이 다 나를 사귀려 하여도, 진실로 나는 원치를 아니하오 다만 침묵을 가지고 오는 벗님만이, 어서 나를 찾아 오소서.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사랑한다 하여도, 참으로 나는 원치를 아니하오. 다만 침묵을 가지고 오는 님만이 어서 나를 찾아 오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세계는 침묵으로 잠급시다 다만 아픈 마음만이 침묵 가운데 귀 기울이며…….       나에게 -반성의 낙원을 다고-     나에게 자유를 다고 나는 다만 마소가 되련다 그리하여, 이 넓은 땅 위에 짓뚱거리며 몸부림하련다.   나에게 먹을 것을 다고 나는 다만 도야지가 되련다 그리하여, 이 햇빛 아래에 곤두박질하여 통곡하련다.       세 식구     어린 딸 “아버지, 오늘 학교에서 어떤 옷 잘 입은 아이가 날더러 떨어진 치마 입었다고 거지라고 욕을 하며 옷을 찢어 놓겠지. 나는 이 옷 입고 다시는 학교에 안 갈 터이야.” 아버지 “가만 있거라, 저 기러기 소리 난다. 깊은 가을이로구나!” 아내 “구복(口服)이 원수라 또 거짓말을 하고 쌀을 꾸어다가 저녁을 하였구려. 마음에 죄를 지어가며…….” 남편 “여보, 저 기러기의 손자의 손자가 앉은 여울에 우리의 해골이 굴러내려 갈 때가 있을지를 누가 안단 말이요. 그리고 그 뒤에, 그 해골이 어찌나 될까? 또 그 기러기는 어디로 가 어찌나 되고? 나도 딱한 사람이오마는, 그대도 딱한 사람이오 그러나 우리의 한 말이 실없는 말이 아닌 줄만 알아두오.”       바둑이는 거짓이 없나니     바둑이는 거짓이 없나니 그는 싫은 이를 볼 때 싫다고 짖으며 정든 이를 볼 때 좋다고 가로 뛰나니 바둑이는 이다지도 마음의 거짓이 없나니라.   그러나 인간은 이 어이함인지 미운 이를 볼 때 웃으며 손 잡고 귀여운 이를 볼 때 짐짓 빼나니, 바둑아 너는 왜 이 몹쓸 인간을 배반치 않느뇨.   바둑이는 거짓이 없나니라 그러나 이 몹쓸 인간에게는 거짓이 있나니.       기억하느냐     물에 불을 주고 불에 물을 주는 태양의 정의를 기억하느냐, 동무야   주림에 주먹을 주고 울음에 칼을 주는 사랑의 정의를 기억하느냐, 동무야.       가을     키 큰 사람이 얇은 햇빛 쪼이는 언덕 위에 올라서 두 손을 지팡이에 얹고 생각을 영원에 놓아 끝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이제가 어느 때뇨 이제가 어느 때?”   가슴은 빈 한을 갖고 한숨은 높은 바람과도 같도다 긴 한숨 긴 바람에 부쳐 보내며 거듭 탄식에 그는 눈 내려감다.       농촌의 시(詩)     햇살이 따뜻하여가니 봄이 벌써 드나부다 금잔디가 빛이 더 나는구나 보리 싹이 멀리서 보아도 날 사이에 더 싱싱하여 가는구나 나뭇가지는 위로 향하여 위로 향하여 푸른 하늘을 가리키고 ……. 깃들였던 까막까치 건넛마을쪽으로 날아가며 ‘까까’ 짖는 그 소리 하늘가에 새 봄이 넘어다 본다고 일러준다.   이 양달마을은 볕의 천지로구나! 그러나 이 마을은 어찌 이다지도 쓸쓸하냐? 뀌여진 창구녁 넘어진 담벽 지난 가을에 흔한 집에도 썩은 새로 겨울난 이 지붕 저 지붕, 그러나 볕은 이 구석에도 저 구석에도……. 볕을 안고 앉은 ‘입분’이 볕을 안고 앉은 ‘입분’이 어머니.   볕은 참으로 따뜻하고나 그러나 ‘입분’이는 고픈 배만 움켜쥐고 앉았네. 봄은 참으로 오나부다 그러나 입분 어머니는 새삼스러이 눈물만 흘리네ㅡ ㅡ늙은 어머니 배고픈 누이 살리려고 소도적질하다 붙들려가 죽은 아들을 생각하고…… …………………………………………………………… 이 봄에 이 볕에 이 집안에 왜 이다지도 쓸쓸하냐   만세 통에 감옥에 갔던 젊은 ‘용’이 힘세고 사람 좋은 ‘용’이 늙은이는 귀여워하고 젊은이는 부러워하는 사람 좋고 날랜 이 총각 ‘용’이 그 ‘용’이가 지금 나온다고 좋아하며 쌀 꾸러 다니는 ‘용’이 어머니   그립던 세상이 왜 이리 쓸쓸하냐? 살림살이가 왜 이다지 괴로우냐? 네에기 감옥이 다시 부럽구나! 이 지옥살이를 하느니보다는 ……. 건넛산에 아지랑이는 끼어도   봄을 모르는 ‘용’이는 걱정타령, 첫봄에 가슴 놀란 이웃집 각시 흥에 겨워 콧노래 불러도 봄을 모르는 ‘입분’이는 배고픈 걱정에 눈물겨워   진달래도 피었구나 피리소리조차 요란하다. 이 갠 하늘 끝은 어디일까? 햇빛이 널렸구나! 너른 들판에 햇빛이 널려 참 이 들판은 넓기도 하다 사람이 만일 말이었던들 굴레 벗은 말이었던들 이 들판을 한 번 가로 세로 뛰어보세 동무야! 저 금잔디 강변에 줄달음쳐보지 않으려니?       무제(無題)     바다와 푸른 하늘 흙과 햇빛 아아 우리는 이 바다와 이 푸른 하늘을 잊을 날이 있을까 또는 이 검은 흙과 이 빛나는 햇빛을 비록 어떠한 세상이 오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잊을 수가 있을까 우리의 목숨을 잊을 수가 있을까 비록 어떠한 위협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것을 잊을 수가 있을까   옳도다 우리는 빵에 주린 자 사랑에 목마른 자 ○○○목숨 기나긴 어둠이 우리의 뒤에 딸려있다 또는 앞으로 널려 있다 그럴수록에 우리는 바다가 더 그리웁다 푸른 하늘이 더 그리웁다 흙냄새가, 햇빛이 더 그리웁다 사랑을 나누고 싶구나 빵을 배불리고 싶구나 싱싱한 팔다리를 가지고, 씩씩한 숨을 내들이쉬고 싶구나!   어둠에 사는 인간일수록 밝음이 더 그리웁다 자연이 더 그리웁다 산 생명의 펄펄 뛰노는 생활이 몹시 그리웁다 그러나 우리는 한 마디 말을 더 하여두자 “어둠에 사는 자는 희미한 빛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 큰 광명이 아니면 차라리 큰 어둠을 바란다 어둠을 지쳐가자 어둠을 지쳐가 그리운 햇빛을 보기 위하여, 그리운 그를 만나기 위하여 이 기나긴 어둠을 전사같이 지쳐 나가자   바다와 푸른 하늘 흙과 햇빛 사랑과 빵 그리고 또 목숨, 뛰노는 목숨 아아 백양목 같은 팔다리로 저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이 빛나는 햇빛 아래 이 넓은 땅 위에 발을 내놓아, 동무와 동무의 손을 잡아, 서로서로 일하며 서로서로 뛰놀 시절이 언제나 올고!  
388    천재시인 - 오장환 시모음 댓글:  조회:4906  추천:0  2016-02-06
      시인 오장환과 그의 문학친구들... ================================== The Last Train                           /오장환   The Last Train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路線)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헌사, 남만서방, 1939           가거라 벗이여 오장환   가거라 벗이여   가거라 벗이여! 너의 고향에……   우리는 눈물로 손잡는 게 아니라 그대 내어친 발길 이 길을 똑바른 싸움의 길로 디디라.   아 우리의 수많은 재물 반가운 마음에 적시는 눈시울 어찌나 굳게 잡은 우리의 손 모든 것은 설움이 이끌은 것을……   가거라 벗이여! 너의 고향에! 지난날은 모두 다 조약돌모양 차버리고 거기도 설움만이 맞이할 너의 고향에   벗이여! 그러나 손잡은 우리의 보람 손잡은 이 마음이 기쁨으로 떨릴 때까지 우리는 제각기 차내 버리자 ―지난날이 달래 주던 눈물의 달디 단 맛을……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경 오장환   경(鯨)   점잖은 고래는 섬 모양 해상에 떠서 한나절 분수를 뿜는다. 허식(虛飾)한 신사, 풍류(風流)로운 시인이여! 고래는 분수를 중단할 때마다 어족들을 입 안에 요리하였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고전 오장환   고전(古典)   전당포에 고물상이 지저분하게 늘어선 골목에는 가로등도 켜지는 않았다. 조금 높다란 포도도 깔리우지는 않았다. 조금 말쑥한 집과 조금 허름한 집은 모조리 충충하여서 바짝바짝 친밀하게는 늘어서 있다. 구멍 뚫린 속내의를 팔러 온 사람, 구멍 뚫린 속내의를 사러 온 사람. 충충한 길목으로는 검은 망또를 두른 주정꾼이 비틀거리고, 인력거 위에선 차(車)와 함께 이미 하반신이 썩어가는 기녀들이 비단 내음새를 풍기어 가며 가느른 어깨를 흔들거렸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고향 앞에서 오장환   고향 앞에서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듯하리라.   고향 가차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구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잰내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간다.   예 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듸듸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공청으로 가는 길 오장환   공청(共靑)으로 가는 길   눈발은 세차게 내리다가도 금시에 어지러이 흐트러지고 내 겸연쩍은 마음이 공청(共靑)으로 가는 길   동무들은 벌써부터 기다릴 텐데 어두운 방에는 불이 켜지고 굳은 열의에 불타는 동무들은 나 같은 친구조차 믿음으로 기다릴 텐데   아 무엇이 자꾸만 겸연쩍은가 지난날의 부질없음 이 지금의 약한 마음 그래도 동무들은 너그러이 기다리는데……   눈발은 펑펑 내리다가도 금시에 어지러이 흐트러지고 그의 성품 너무나 맑고 차워 내 마음 내 입성에 젖지 않아라.   쏟아지렴…… 한결같이 쏟아나 지렴…… 함박 같은 눈송이.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구름과 눈물의 노래 오장환   구름과 눈물의 노래   성(城)돌에 앉아 우리 다만 구름과 눈물의 노래를 불러 보려나.   산으로 산으로 따라 오르며 초막들 죄그만 죄그만 속에 그 속에 네 집이 있고 네 집에서 문을 나서면 바로 성 앞이었다.   어디메인가 이제쯤은 너 홀로 단소 부는 곳……   어둠 속 성(城)줄기를 따라 내리며 오로지 마음 속에 여며 두는 것 시꺼먼 두루마기 쓸쓸한 옷깃을 펄럭거리며 박쥐와 같이 다만 박쥐와 같이 날아 보리라.   성(城)돌에 앉아 우리 다만 구름과 눈물을 노래하려나   산마루 축대를 쌓고 띄엄띄엄 닦아 놓은 새 거리에는 병든 말이 서서 잠잔다.   눈감고 귀기울이면 무엇이 들려올까 들컹거리고 돌아가는 쇠바퀴 소리 하염없이 돌아가는 폐마의 발굽소리뿐.   성(城)돌에 앉아 우리 다만 페가사쓰와 눈물의 노래를 불러 보려나.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귀촉도 오장환   귀촉도(歸蜀途)&   파촉(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리. 뜸부기 울음 우는 논두렁의 어둔 밤에서 길라래비 날려 보는 외방 젊은이, 가슴에 깃든 꿈은 나래 접고 기다리는가.   흙먼지 자욱히 이는 장거리에 허리끈 끄르고, 대님 끄르고, 끝끝내 옷고름 떼고,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앉아서 창(窓) 넘에 뜨는 달, 상현달 바라다보면 물결은 이랑이랑 먼 바다의 향기를 품고, 파촉(巴蜀)의 인주(印朱)빛 노을은, 차차로, 더워지는 눈시울 안에―   풀섶마다 소(小)해자(孩子)의 관들이 널려 있는 뙤의 땅에는 너를 기두리는 일금칠십원야(一金七十圓也)의 쌀러리와 죄그만 STOOL이 하나 집을 떠나고, 권속마저 뿌리이치고, 장안 술 하룻밤에 마시려 해도 그거사 안 되지라요, 그러사 안 되지라요.   파촉(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하늘 밑. 둘러보는 네 웃음은 용천병(病)의 꽃피는 울음 굳이 서서 웃는 검은 하늘에 상기도, 날지 않는 너의 꿈은 새벽별모양, 아 새벽별모양, 빤작일 수 있는 것일까.   춘추, 1941. 4           귀향의 노래 오장환   귀향의 노래   굴팜나무로 엮은 십자가, 이런 게 그리웠었다 일상 성내인 내 마음의 시꺼먼 뻘 썰물은 나날이 쓸어버린다 깊은 산발에서 새벽녘에 들려오는 쇠북 소리나 개굴창에 떠나려온 찔레꽃, 물에 배인 꽃향기.   젊은이는 어디로 갔나, 성황당 옆에…… 찔레꽃 우거진 넌출 밑에 뱀이 잠자는 동구 안 사내들은 노상 진한 밀주에 울고 어찌나, 이곳은 동무의 고향 밤그늘의 조금 따라 돛단 어선들은 떠나갔느냐 가까운 바다 건너 작은 섬들은 먼 조상이 귀양 가서 오지 않은 곳 하늘을 바라보다 돌아오면서 해바라기 덜미에 꽂고 내 번듯이 웃음 웃는 머리 위에 후광을 보라   목수여! 사공이여! 미장이여! 열두 형제는 노란 꽃잎알 해를 좇는 두터운 화심(花心)에 피는 잎이니 피맺힌 발바닥으로 무연한 뻘 지나서 오라.   춘추, 1941. 7           길손의 노래 오장환   길손의 노래   입동(立冬)철 깊은 밤을 눈이 나린다. 이어 날린다. 못 견디게 외로웁던 마음조차 차차로이 물러 앉는 고운 밤이여!   석유불 섬벅이는 객창 안에서 이 해 접어 처음으로 나리는 눈에 램프의 유리를 다시 닦는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리움일래 연하여 생각나는 날 사랑하던 지난날의 모든 사람들 그리운 이야 이 밤 또한 너를 생각는 조용한 즐거움에서 나는 면면한 기쁨과 적요에 잠기려노라.   모든 것은 나무람도 서글픔도 또한 아니나 스스로 막혀 오는 가슴을 풀고 싸늘한 미닫이 조용히 열면 낯선 집 봉당에는 약탕관이 끓는 내음새 이 밤따라 가신 이를 생각하옵네 가신 이를 상고하옵네.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깽 오장환   깽   깽이 있다. 깽은 고도한 자본주의 국가의 첨단을 가는 직업이다. 성미 급한 이 땅의 젊은이는 그리하여 이런 것을 받아들였다. 알콜에 물 탄 양주와 댄스로 정신이 없는 장안의 구석구석에 그들은 그들에게까지 이러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아 여기와는 상관도 없이 또 장안의 한복판에서, 이 땅이 해방에서 얻은 북쪽 38도의 어려운 주소(住所)와 숱한 `야미'꾼으로 완전히 막혀진 서울길을 비비어 뚫고 그들의 행복까지를 위하여 전국의 인민대표들이 모였다는 사실을……   그러나 깽은 끝까지 직업이다. 전국의 생산이 완전히 쉬어진 오늘에 이것은 확실히 신기한 직업이다.   그리하여 점잖은 의상을 갖추운 자본가들은 새로이 이것을 기업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번창해질 장사를 위하여 `한국'이니 `건설'이니 `청년'이니 `민주'니 하는 간판을 더욱 크게 내건다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나 사는 곳 오장환   나 사는 곳   밤늦게 들려오는 기적 소리가 산짐승의 울음소리로 들릴 제, 고향에도 가지 않고 거리에 떠도는 몸은 얼마나 외로울 건가.   여관방의 심지를 돋우고 생각 없이 쉬고 있으면 단칸방 구차한 살림의 벗은 찬 술을 들고 와 미안한 얼굴로 잔을 권한다.   가벼운 술기운을 누르고 떠들고 싶은 마음조차 억제하며 조용조용 잔을 노늘 새 어느덧 눈물 방울은 옷깃에 구르지 아니하는가.   `내일을 또 떠나겠는가' 벗은 말없이 손을 잡을 때   아 내 발길 대일 곳 아무데도 없으나 아 내 장담할 아무런 힘은 없으나 언제나 서로 합하는 젊은 보람에 홀로 서는 나의 길은 미더웁고 든든하여라.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나의 길 오장환   나의 길   부제 : 3․1 기념(三․一紀念)의 날을 맞으며   기미년 만세 때 나도 소리 높이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아니 흉내라도 내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전해에 났기 때문에 어린애 본능으로 울기만 하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광주 학생 사건 때 나도 두 가슴을 헤치고 여러 사람을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중등학교 입학 시험에 미끄러져 그냥 시골 구석에서 한문을 배울 때였다. 타고난 불운이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그 뒤에 나는 동경에서 신문 배달을 하였다. 그리하여 붉은 동무와 나날이 싸우면서도 그 친구 말리는 붉은 시를 썼다.   그러나 이때도 늦은 때였다. 벌써 옳은 생각도 한철의 유행되는 옷감과 같이 철이 지났다. 그래서 내가 우니까 그때엔 모두 다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8월 15일 그 울음이 내처 따라왔다. 빛나야 할 앞날을 위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지난 일을 돌이키게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울음뿐이다. 몇 사람 귀기울이는 데에 팔리어 나는 울음을 일삼아 왔다. 그리하여 나는 또 늦었다. 나의 갈 길, 우리들의 가는 길, 그것이 무엇인 줄도 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물음에 나의 대답은 또 늦었다.   아 나에게 조금만치의 성실이 있다면 내 등에 마소와 같이 길마를 지우라. 먼저 가는 동무들이여, 밝고 밝은 언행의 채찍으로 마소와 같은 나의 걸음을 빠르게 하라.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나의 노래 오장환   나의 노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러   단 한 번 나는 울지도 않았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아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여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여   단 한 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헌사, 남만서방, 1939           나폴리의 부랑자 오장환   나폴리의 부랑자(浮浪者)   어둠과 네온을 뚫고 적은 강물은 나폴리로 흘러내렸다. 부두에 묵묵히 앉아 청춘은 어떠한 생각에 잠길 것인가, 항구의 개울은 비린내에 섞이어 피가 흘렀다. 무거이 고개 숙이면 사원의 종소리도 들려오나 육중한 바닷물은, 끝없이 출석거리어 기―단 지팡이로 아라비아 숫자를 그려보며 마른 빵쪽을 집어던졌다. 글쎄 이방귀족이라도 좋지 않은가 어느 나라 삼등선에서 부는 보이라 소리 연화가(煙花街)의 계집이 짐을 내리고 공원 가까이 비둘기떼는 구구 운다 도미노의 쓰디쓴 웃음을 웃으나 마지막 비로―드의 검은 망또를 벗어버리나 붉은 벽돌담에 기대어 서서 떠가는 구름 바라보면 그만 아닌가 밤이면 흐르는 별이며 적은 강물에 나폴리는 함촉히 젖어 충충한 가로수 아래 꽃 파는 수레에도 등불을 끈다. 호젓한 뒷거리에 휘파람 불며 네가 배울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겠나 말없이 담배만 말고 돌층계에 기대어 앉아 포도(鋪道) 위의 야윈 조약돌을 차내 버리다.   헌사, 남만서방, 1939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 오장환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   부제: 씩씩한 사나이 박진동(朴晋東)의 영(靈) 앞에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야 강도만이 복받는 이처럼 아름다운 세월 속에서 파출소 지날 때마다 선뜩한 가슴 나는 오며 가며 그냥 지냈다.   너는 보았느냐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는 이들이 다 살기 띠운 얼굴에 장총을 들고 선 것을……   그들은 장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총 속엔 탄환이 들었다.   파출소 앞에는 스물네 시간 그저 쉬지 않고 파출소만 지키는 군정청의 경찰관!   어디다 쏘느냐. 오 어디다 쏘느냐! 이것만이 애타는 우리의 가슴일 때 총소리는 대답하였다. ―여기는 삼청동이다. 죄 없는 학병의 가슴 속이다.   그리하여 죽어 가는 학병들도 대답하였다. ―우리 학병 우리 동무 만세! 조선인민공화국 만세!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야, 강도만이 복받는 이처럼 화려한 세월 속에서 아 우리는 어찌하여 우리는 어찌하여 우리의 원수를 우리의 형제와 우리의 동무 속에 찾아야 하느냐.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너는 보았느냐 오장환   너는 보았느냐   너는 보았느냐 마차발에 채어 죽은 마차꾼을, 그리고 장안 한복판에 마육(馬肉)을 싣고 가는 마차말같이 인육(人肉)을 싣고 가는 폭력단을―   한 나라의 집결된 의사, 인민의 입, 신문이 있다. 그리고 아 끝까지 배지 못한 인육의 마부는 성낸 말들을 이곳으로 몰아 넣는다.   너는 보았느냐, 타성의 뒷발질밖에 아무런 재주도 없는 이 마차말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늙은 마부를……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다시금 여가를…… 오장환   다시금 여가(餘暇)를……   아, 내 사랑하는 꽃잎알이 지난다. 불 타오르는 햇덩이어! 너의 굴리는 수레바퀴 더욱 힘차고 나는 내 몸에 풍기는 향기조차 잊어 왔고나.   어느 것에 앗기웠는가, 무엇에 골독하였나, 예사 젊음에서 사라지는 꽃향기.   장마 전 시내 정다이 흐르고 새들은 즐거이 노래 불렀으련만 다가오는 칠월(七月)이어 그대는 나에게 어떠한 열매를 맺어 주려나.   다시금 여가(餘暇)를 나에게…… 다시금 여가(餘暇)를 나에게…… 온통 눈물에 젖었던 얼굴이 스스로 붉어 보도록   봄날의 다사로히 퍼지는 햇살들이어! 또 한 번 나의 볼을 어루만지라 더 한 번 내 목에 감기라.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다시 미당리 오장환   다시 미당리(美堂里)   돌아온 탕아라 할까 여기에 비하긴 늙으신 홀어머니 너무나 가난하시어   돌아온 자식의 상머리에는 지나치게 큰 냄비에 닭이 한 마리   아직도 어머니 가슴에 또 내 가슴에 남은 것은 무엇이냐.   서슴없이 고깃점을 베어 물다가 여기에 다만 헛되이 울렁이는 내 가슴 여기 그냥 뉘우침에 앞을 서는 내 눈물   조용한 슬픔은 알련만 아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당신에게 바치었음을……   크나큰 사랑이여 어머니 같으신 바치옴이여!   그러나 당신은 언제든 괴로움에 못 이기는 내 말을 막고 이냥 넓이 없는 눈물로 싸 주시어라.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독초 오장환   독초(毒草)   썩어 문드러진 나무 뿌리에서는 버섯들이 생겨난다. 썩은 나무 뿌리의 냄새는 훗훗한 땅 속에 묻히어 붉은 흙을 거멓게 살지워 놓는다. 버섯은 밤내어 이상한 빛깔을 내었다. 어두운 밤을 독한 색채는 성좌를 향하여 쏘아 오른다. 혼란한 삿갓을 뒤집어 쓴 가냘픈 버섯은 한자리에 무성히 솟아올라서 사념을 모르는 들쥐의 식욕을 쏘을게 한다. 진한 병균의 독기를 빨아들이어 자줏빛 빳빳하게 싸늘해지는 소(小)동물들의 인광! 밤내어 밤내어 안개가 끼고 찬이슬 내려올 때면, 독한 풀에서는 요기의 광채가 피직, 피직 다 타 버리려는 기름불처럼 튀어나오고. 어둠 속에 시신만이 겅충 서 있는 썩은 나무는 이상한 내음새를 몹시는 풍기며, 딱따구리는, 딱따구리는, 불길한 가마귀처럼 밤눈을 밝혀가지고 병든 나무의 뇌수를 쪼으고 있다. 쪼으고 있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매음부 오장환   매음부(賣淫婦)   푸른 입술. 어리운 한숨. 음습한 방안엔 술잔만 훤―하였다. 질척척한 풀섶과 같은 방안이다. 현화식물(顯花植物)과 같은 계집은 알 수 없는 웃음으로 제 마음도 속여 온다. 항구, 항구, 들리며 술과 계집을 찾아다니는 시꺼먼 얼굴. 윤락된 보헤미안의 절망적인 심화(心火). ―퇴폐한 향연 속. 모두 다 오줌싸개 모양 비척거리며 얕게 떨었다. 괴로운 분노를 숨기어 가며…… 젖가슴이 이미 싸늘한 매음녀는 파충류처럼 포복한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목욕간 오장환   목욕간   내가 수업료를 바치지 못하고 정학을 받아 귀향하였을 때 달포가 넘도록 청결을 하지 못한 내 몸을 씻어 보려고 나는 욕탕엘 갔었지 뜨거운 물 속에 온몸을 잠그고 잠시 아른거리는 정신에 도취할 것을 그리어 보며 나는 아저씨와 함께 욕탕엘 갔었지 아저씨의 말씀은 `내가 돈 주고 때 씻기는 생전 처음인걸' 하시었네 아저씨는 오늘 할 수 없이 허리 굽은 늙은 밤나무를 베어 장작을 만들어 가지고 팔러 나오신 길이었네 이 고목은 할아버지 열두 살 적에 심으신 세전지물(世傳之物)이라고 언제나 `이 집은 팔아도 밤나무만은 못 팔겠다' 하시더니 그것을 베어 가지고 오셨네그려 아저씨는 오늘 아침에 오시어 이곳에 한 개밖에 없는 목욕탕에 이 밤나무 장작을 팔으시었지 그리하여 이 나무로 데운 물에라도 좀 몸을 대이고 싶으셔서 할아버님의 유물의 부품이라도 좀더 가까이 하시려고 아저씨의 목적은 때 씻는 것이 아니었던 것일세 세시쯤 해서 아저씨와 함께 나는 욕탕엘 갔었지 그러나 문이 닫혀 있데그려 `어째 오늘은 열지 않으시우' 내가 이렇게 물을 때에 `네 나무가 떨어져서' 이렇게 주인은 얼버무리었네 `아니 내가 아까 두시쯤 해서 판 장작을 다 때었단 말이요?' 하고 아저씨는 의심스러이 뒷담을 쳐다보시었네 ` へ, 實は 今日が市日で あかたらけの田舍っぺ―が群をなして來ますからわえ'* 하고 뿔떡같이 생긴 주인은 규격이 맞지도 않게 피시시 웃으며 아저씨를 바라다보았네 `가자!' `가지요' 거의 한때 이런 말이 숙질의 입에서 흘러나왔지 아저씨도 야학을 다니셔서 그 따위 말마디는 알으시네 우리는 괘씸해서 그곳을 나왔네 그 이튿날일세 아저씨는 나보고 다시 목욕탕엘 가자고 하시었네 `못하겠습니다 그런 더러운 모욕을 당하고……' `음 네 말도 그럴듯하지만 그래두 가자' 하시고 강제로 나를 끌고 가셨지   * 에, 실은 오늘이 장날인데 때투성이 시골뜨기들이 떼를 지어 오기 때문에.   조선문학, 1933. 11.           무인도2 오장환   무인도(無人島)2   나의 지대함은 운성(隕星)과 함께 타 버리었다. 아직도 나의 목숨은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언제인가 그 언제인가 허공을 스치는 별납과 같이 나의 영광은 사라졌노라   내 노래를 들으며 오지 않으려느냐 독한 향취를 맡으러 오지 않으려느냐 너는 귀기울이려 아니하여도 딱다구리 썩은 고목을 쪼으는 밤에 나는 한 걸음 네 앞에 가마   표정 없이 타오르는 인광(燐光)이여! 발길에 채는 것은 무거운 묘비와 담담한 상심(傷心)   천변(川邊) 가까이 가마귀떼는 왜 저리 우나 오늘밤 아―오늘밤에는 어디쯤 먼―곳에서 뜬 송장이 떠나 오려나   헌사, 남만서방, 1939           밤의 노래 오장환   밤의 노래&   깊은 밤중에 들려오는 소리는 시냇물 소리만인가 했더니, 어두운 골짜기 노루 우는 소리. 또 가까운 산발에 꿩이 우는 소리. 그런가 하면 두견이의, 소쩍새의, 쭉쭉새의, 신음하듯 들려오는 울음소리   아, 저 약하디 약한 미물들이, 또 온 하루를 쫓겨다니다 깊은 밤 잠자리를 얻어 저리도 우는 것인가. 아니, 저것이 오늘 하루를 더 살았다는 안타까운 울음소린가. 피곤한 마음은 나조차 불을 죽이고 어둠 속에 누웠다.   깊은 밤중에 들려오는 소리는 시냇물 소리만인가 했더니 잠결에도 편안하지 못하고 흐느껴 우는 소리…… 이처럼 약하디 약한 무리는 아, 짧은 하루밤의 안식도 있지는 못한가 외저운 마음은 나조차 불까지, 아 이 작은 불빛이 무엇이겠느냐.   차라리 어둠으로 인하여 가벼워지는 마음이어! 만상은 모두가 잠들었나 했더니 먼―발의 노루며 아 소쩍새, 쭉쭉새, 또 두견이 그러나 이들이 운다는 것은 나의 생각뿐이고 그들은 어려운 하루 하루를, 무사히 살았다는 즐거움에서…… 참으로 즐거움에서 부르는 노래라 하면…… 나의 설움이어! 아니 나의 많음이어! 너는 어찌하느냐.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병든 서울 오장환   병든 서울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 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 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구융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이……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 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북방의 길 오장환   북방(北方)의 길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머구리 울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 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헌사, 남만서방, 1939           불길한 노래 오장환   불길(不吉)한 노래   나요. 오장환이요. 나의 곁을 스치는 것은, 그대가 아니요. 검은 먹구렁이요. 당신이요. 외양조차 날 닮았다면 얼마나 기쁘고 또한 신용하리요. 이야기를 돌리오. 이야길 돌리오. 비명조차 숨기는 이는 그대요. 그대의 동족뿐이요. 그대의 피는 거멓다지요. 붉지를 않고 거멓다지요. 음부 마리아모양, 집시의 계집애모양,   당신이요. 충충한 아구리에 까만 열매를 물고 이브의 뒤를 따른 것은 그대 사탄이요. 차디찬 몸으로 친친이 날 감아주시오. 나요. 카인의 말예(末裔)요. 병든 시인이요. 벌(罰)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능금을 따먹고 날 낳았소.   기생충이요. 추억이요. 독한 버섯들이요. 다릿한 꿈이요. 번뇌요. 아름다운 뉘우침이요. 손발조차 가는 몸에 숨기고, 내 뒤를 쫓는 것은 그대 아니요. 두엄자리에 반사(半死)한 점성사(占星師), 나의 예감이요. 당신이요. 견딜 수 없는 것은 낼름대는 혓바닥이요. 서릿발 같은 면돗날이요. 괴로움이요. 괴로움이요. 피 흐르는 시인에게 이지(理智)의 프리즘은 현기로웁소 어른거리는 무지개 속에, 손가락을 보시오. 주먹을 보시오. 남빛이요―빨갱이요. 잿빛이요. 잿빛이요. 빨갱이요.   헌사, 남만서방, 1939           붉은 산 오장환   붉은 산(山)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이따금 솔나무 숲이 있으나 그것은 내 나이같이 어리고나.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비둘기 내 어깨에 앉으라 오장환   비둘기 내 어깨에 앉으라   그리하야 내 마음에 평화(平和)로운 짐을 지우라.   그리움이어 속절없노라. 멀리 바라옴이어… 깊은 농 속에 숨겨 둔 향료(香料)와 같이 아, 그대 또한 흔적 없이 사라지려나   멀리서 오라. 아니 다만 먼 곳에 있으라. 이처럼 바라는 나의 마음이 복받히는 사랑이었든, 설음이든 끝없이 이끌리는 안타까움에 언제나 내 마음은 아름다웠다.   다가서라. 나의 비둘기 한동안 적은 새야 너 어디로 어디로 날 찾아 왔느냐 이제는 내 노래의 샘이 막히고 이제는 내 노래에 아무도 귀기울이지 아니하노라. 아침 이슬 밟고 오는 고 빨간 다리 비둘기 나와 함께 거닐자 깊은 밤 우리들 잠든 새에도 거리엔 낙엽(落葉)이 졌어라.   입맞추라 비둘기! 사랑하는 이의 이마에, 나의 뺨에, 나의 목에, 그리고 나의 가슴에…… 늬들 사랑에 못 이겨 구 구 구 울듯이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산협의 노래 오장환   산협(山峽)의 노래   이 추운 겨울 이리떼는 어디로 몰려다니랴. 첩첩이 눈 쌓인 골짜기에 재목을 싣고 가는 화물차의 철로가 있고 언덕 위 파수막에는 눈 어둔 역원이 저녁마다 램프의 심지를 갈고.   포근히 눈은 날리어 포근히 눈은 내리고 쌓이어 날마다 침울해지는 수림(樹林)의 어둠 속에서 이리떼를 근심하는 나의 고적은 어디로 가랴.   눈보라 휘날리는 벌판에 통나무 장작을 벌겋게 지피나 아 일찍이 지난날의 사랑만은 따스하지 아니하도다.   배낭에는 한 줌의 보리 이삭 쓸쓸한 마음만이 오로지 추억의 이슬을 받아 마시나 눈부시게 훤한 산등을 내려다 보며 홀로이 돌아올 날의 기꺼움을 몸가졌노라.   눈 속에 싸인 골짜기 사람 모를 바위틈엔 맑은 샘이 솟아나고 아늑한 응달녘에 눈을 헤치면 그 속에 고요히 잠자는 토끼와 병든 사슴이.   한겨울 내린 눈은 높은 벌에 쌓여 나의 꿈이여! 온 산으로 벋어 나가고 어디쯤 나직한 개울 밑으로 훈훈한 동이가 하나 온 겨울, 아니 온 사철 내가 바란 것은 오로지 따스한 사랑.   한동안 그리움 속에 고운 흙 한 줌 내 마음에는 보리 이삭이 솟아났노라.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상렬 오장환   상렬(喪列)   고운 달밤에 상여야, 나가라 처량히 요령 흔들며   상주도 없는 삿갓가마에 나의 쓸쓸한 마음을 싣고   오늘밤도 소리 없이 지는 눈물 달빛에 젖어   상여야 고웁다 어두운 숲 속 두견이 목청은 피에 적시어……   헌사, 남만서방, 1939           석양 오장환   석양&   보리밭 고랑에 드러누워 솟치는 종다리며 떠가는 구름장이며 울면서 치어다 보았노라.   양지짝의 묘지는 사랑보다 다슷하고나   쓸쓸한 대낮에 달이나 뜨려무나 조그만 도회의 생철 지붕에……   헌사, 남만서방, 1939           성묘하러 가는 길 오장환   성묘하러 가는 길   솔잎이 모두 타는 칙한 더위에 아버님 산소로 가는 산길은 붉은 흙이 옷에 배는 강팍한 땅이었노라.   아 이곳에 새로운 길터를 닦고 그 위에 자갈을 져 나르는 인부들 매미 소리 풀기운조차 없는 산등성이에 고향 사람들은 또 어디로 가는 길을 닦는 것일까.   깊은 골에 남포소리, 산을 울리고 거칠은 동네 앞엔 예전부터 굴러 있던 송덕비.   아버님이여 이런 곳에 님이 두고 가신 주검의 자는 무덤은 아무도 헤아리지 아니하는 황토산에, 나의 가슴에……   무엇을 아뢰이러 찾아 왔는가, 개굴창이 모두 타는 가뭄 더위에 성묘하러 가는 길은 팍팍한 산길이노라.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성벽 오장환   성벽   세세전대만년성(世世傳代萬年盛)하리라는 성벽은 편협한 야심처럼 검고 빽빽하거니 그러나 보수는 진보를 허락치 않아 뜨거운 물 끼얹고 고춧가루 뿌리던 성벽은 오래인 휴식에 인제는 이끼와 등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 않은 터거리처럼 지저분하도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성씨보 오장환   성씨보(姓氏譜)   오래인 관습―그것은 전통을 말함이다   내 성은 오(吳)씨. 어째서 오(吳)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어 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온 일(一) 청인(淸人)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 숭배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니는 진실 이(李)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를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아도 좋다. 해변가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고나. 수퉁하고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으려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성탄제 오장환   성탄제(聖誕祭)&   산밑까지 내려온 어두운 숲에 몰이꾼의 날카로운 소리는 들려오고, 쫓기는 사슴이 눈 위에 흘린 따뜻한 핏방울.   골짜기와 비탈을 따라 내리며 넓은 언덕에 밤 이슥히 횃불은 꺼지지 않는다.   뭇 짐승들의 등 뒤를 쫓아 며칠씩 산 속에 잠자는 포수와 사냥개, 나어린 사슴은 보았다 오늘도 몰이꾼이 메고 오는 표범과 늑대.   어미의 상처를 입에 대고 핥으며 어린 사슴이 생각하는 것 그는 어두운 골짝에 밤에도 잠들 줄 모르며 솟는 샘과 깊은 골을 넘어 눈 속에 하얀 꽃 피는 약초.   아슬한 참으로 아슬한 곳에서 쇠북소리 울린다. 죽은 이로 하여금 죽는 이를 묻게 하라.   길이 돌아가는 사슴의 두 뺨에는 맑은 이슬이 내리고 눈 위엔 아직도 따듯한 핏방울……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심동 오장환   심동(深冬)   눈 쌓인 수풀에 이상한 산새의 시체가 묻히고   유리창이 모두 깨어진 양관(洋館)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언덕 아래 저기 아, 저기 눈쌓인 새냇가에는 어린 아이가 고기를 잡고   눈 위에 피인 숯불은 빨―갛게 죽음은, 아, 죽음은 아름다웁게 불타 오른다.   헌사, 남만서방, 1939           싸늘한 화단 오장환   싸늘한 화단(花壇)   싸늘한 제단(祭壇)이로다 젖은 풀잎이로다   해가 천명(天明)에 다다랐을 때 뉘 회한의 한숨을 들이키느뇨   짐승들의 울음이로라 잠결에서야 저도 모르게 느끼는 울음이로라   반추하는 위장과 같이 질긴 풍습이 있어 내 이 한밤을 잠들지 못하였노라   석유 불을 마시라 등잔 아울러 삼켜 버리라 미사 종소리 보슬비 모양 흐트러진다   죄그만 어둠을 터는 숫닭의 날개 싸늘한 제단이로다 기온이 얕은 풀섶이로다   언제나 쇠창살 밖으론 떠 가는 구름이 있어 야수들의 회상과 함께 자유롭도다   헌사, 남만서방, 1939           양 오장환   양(羊)   양아 어린 양아 조이를 주마. 어째서 너마저 울 안에 사는지   양아 어린 양아 보드라운 네 털 구름과 같구나.   잔디도 없는 쓸쓸한 목책(木柵) 안에서 양아 어린 양아 너는 무엇을 생각하느냐.   양아 어린 양아 조이를 주마. 보낼 곳 없이 그냥 그리움에 내어친 사연   양아 어린 양야 샘물같이 맑은 눈 포도알모양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 좀 보아라 가냑한 목책(木柵)에 기대어 서서 양아 어린 양아 나마저 무엇을 생각하느냐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어린 동생에게 오장환   어린 동생에게   술취한 사나이 위태로운 걸음걸이를 부축이듯, 사랑이여! 아니 나를 사랑하는 스승이여! 동무여! 또 나어린 동생아! 너희들이다 ―몸 가누지 못하는 내 마음을 바른 길로 이끎은……   걷잡을 수 없는 세월 속에서 어린 동생아 너는 강철 같은 규율, 열화 같은 의지에조차 동방(東紡)에서 경전(京電)에서 철도 노조에서 화신(和信) 쟁의단 속에서, 또 눈에 뵈지 않는 곳곳에서 근로하는 인민들의 눈을 띄우고 그것이 또한 온 인류의 눈을 띄우는 것이기도 할 때 나는 오늘도 보았다   7월 3일 피로 물든 저녁 훈련원 앞에 조선 화물 수천의 종업원이 생사의 문제를 위하여 그 속에는 자기의 몸이 화차에 깔리우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정당한 요구를 위하여 싸운 사람이 있다.   육십여 명의 중경상자 총대를 던지고 직업을 팽개치는 사나이 길거리에서 날라 온 무수한 유리병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 나어린 동생아 나는 피할 길 없이 후끈거리는 네 입김에 온몸이 바작바작 마른다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무한히 어수룩하고 어려 보이는 너희들 어디서 나오는 거친 힘이냐   성낸 말같이 너희들을 앞으로 앞으로 달리게 하는 힘이 강철 같은 규율― 불타는 의지라 하면 끝없이 연약한 기운, 예릿예릿한 사랑만이 나를, 몸 가누지 못하는 나를, 그 뒤에 따르게 하는 것이다 아 이처럼 말하려는 나 이처럼 발 빼려는 나,   너의 뜨거운 사랑을 육친이란 묵은 생각에서 느끼던 다만 옳다는 그것만이 냉혹한 현실에서 합치던, 너의 불붙는 의지로 가물거리는 참으로 가물거리는 내 사랑의 심지에 폭발되게 하여라!   강철 같은 규율― 열화 같은 의지, 아 이런 것이 불붙기 비롯하는 내 가슴에 끝없는 내 것으로 만들어 달라   백제, 1947. 2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오장환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탕아 돌아가는 게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병든 자식을 찾아오시다.   ―아 네 병은 언제나 낫는 것이냐. 날마다 이처럼 쏘다니기만 하니…… 어머니 눈에 눈물이 어릴 때 나는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내 붙이, 내가 위해 받드는 어른 내가 사랑하는 자식 한평생을 나는 이들이 죽어갈 때마다 옆에서 미음을 끓이고, 약을 달인 게 나의 일이었다. 자, 너마저 시중을 받아라.   오로지 이 아들 위하여 서울에 왔건만 며칠 만에 한 번씩 상을 대하면 밥숟갈이 오르기 전에 눈물은 앞서 흐른다. 어머니여, 어머니시여! 이 어인 일인가요 뼈를 깎는 당신의 자애보다도 날마다 애타는 가슴을 바로 생각에 내닫지 못하여 부산히 서두르는 몸짓뿐.   ―이것아, 어서 돌아가자 병든 것은 너뿐이 아니다. 온 서울이 병이 들었다. 생각만 하여도 무섭지 않으냐 대궐 안의 윤비는 어디로 가시라고 글쎄 그게 가로채였다는구나.   시골에서 땅이나 파는 어머니 이제는 자식까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신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 가슴에 넘치는 사랑이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이 가슴에 넘치는 바른 뜻이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모든 이의 가슴에 부을 길이 서툴러 사실은 그 때문에 병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탕아 돌아가는 게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병든 자식을 찾아오시다.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어육 오장환   어육(魚肉)   신사들은 식탁에 죽은 어육을 올려 놓고 입천장을 핥으며 낚시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천기예보엔 일기도 검어진다는(승합마차가 몹시 흔들리는) 기절(氣節)을, 신사들은 바다로 간다고 떠들어 댔다. 천후(天候)일수록 잘은 걸려드는 법이라고 행랑아범더러 어류들의 진기한 미끼, 파리나 지렁이를 잡아오라고 호령한다. 점잖은 신사들은 어떠한 유희에서나 예절 가운데에 행하여졌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어포 오장환   어포(漁浦)   어포(漁浦)의 등대는 귀류(鬼類)의 불처럼 음습하였다. 어두운 밤이면 안개는 비처럼 나렸다. 불빛은 오히려 무서웁게 검은 등대를 튀겨 놓는다. 구름에 지워지는 하현달도 한참 자옥―한 안개에는 등대처럼 보였다. 돛폭이 충충한 박쥐의 나래처럼 펼쳐 있는 때, 돛폭이 어스름―한 해적의 배처럼 어른거릴 때, 뜸 안에서는 고기를 많이 잡은 이나 적게 잡은 이나 함부로 투전을 뽑았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여수 오장환   여수(旅愁)&   여수에 잠겼을 때, 나에게는 조그만 희망도 숨어 버린다. 요령처럼 흔들리는 슬픈 마음이여! 요지경 속으로 나오는 좁은 세상에 이상스러운 세월들 나는 추억이 무성한 숲 속에 섰다.   요지경을 메고 다니는 늙은 장돌뱅이의 고달픈 주막꿈처럼 누덕누덕이 기워진 때묻은 추억, 신뢰할 만한 현실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시정배와 같이 현실을 모르며 아는 것처럼 믿고 있었다.   괴로운 행려 속 외로이 쉬일 때이면 달팽이 깍질 틈에서 문 밖을 내다보는 얄미운 노스타르자 너무나, 너무나, 뼈없는 마음으로 오―늬는 무슨 두 뿔따구를 휘저어 보는 것이냐!   성벽(城壁), 풍림사, 1937           연안서 오는 동무 심에게 오장환   연안(延安)서 오는 동무 심(沈)에게   그 전날 이웃나라 동무들이 서금(瑞金)에서 연안으로 막다른 길을 헤치고 가듯 내 나라에서 연안으로 길 없는 길을 만여 리. 다만 외줄로 뚫고 간 벗이여!   동무, 이제 내 나라를 찾기에 앞서 벗에게 보내는 말 `동무여! 평안하신가.' 심(沈)이여, 아니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동무와 동무여! 나도 눈물로 외친다. `동무여 평안하셨나.'   동무, 이제 벗을 찾기에 앞서 소식을 전하는 뜻 `부끄러워라. 쫓겨 갔던 몸 돌아옵니다. 내 나라에 끝까지 머무른 동무들의 싸움, 얼마나 괴로웠는가' 얼굴조차 없어라. 우리는 이제 무어라 대답하랴.   불타는 가슴, 피끓는 성실은 무엇이 다르랴 그러나 동무, 심(沈)이여! 아니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동무와 동무들이여! 우리들 배자운 싸움 가운데 뜨거이 닫는 힘찬 손이여! 동무, 동무들의 가슴, 동무들의 입, 동무들의 주먹, 아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다.   ―1945. 12. 13, 김사량(金史良) 동무의 편으로 심(沈)의 안부를 받으며.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영원한 귀향 오장환   영원한 귀향   옛날과 같이 옛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밤마다 바다는 희생을 노래 부르고   항상 돌이키고 다시 돌떠스는 고독과 무한한 신뢰에 바다여! 내 몸을 쓸어가는 성낸 파도   부두에 남겨둔 애상은 어떤 것인가   진정 나도 진정으로 젊은이를 사랑했노라. 왔다는 다시 갈 오― 영원한 귀향   계후조(季候鳥)는 떠난다. 암초에 쎈트 헤레나에 흰 새똥을 남기고.   헌사, 남만서방, 1939           영회 오장환   영회   후면에 누워 조용히 눈물지우라. 다만 옛을 그리어 궂은 비 오는 밤이나 왜가새 나는 밤이나   조그만 돌다리에 서성거리며 오늘밤도 멀―리 그대와 함께 우는 사람이 있다.   경(卿)이여! 어찌 추억 위에 고운 탑을 쌓았는가 애수(哀愁)가 분수같이 흐트러진다.   동구 밖에는 청랭(晴冷)한 달빛에 허물어진 향교(鄕校) 기왓장이 빛나고 댓돌 밑 귀뚜리 운다.   다만 울라 그대도 따라 울어라   위태로운 행복은 아름다웠고 이 밤 영회의 정은 심히 애절타 모름지기 멸하여 가는 것에 눈물을 기울임은 분명, 멸하여 가는 나를 위로함이라. 분명 나 자신을 위로함이라.   헌사, 남만서방, 1939           온천지 오장환   온천지(溫泉地)   온천지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 은빛 자동차가 드나들었다. 늙은이나 어린애나 점잖은 신사는, 꽃 같은 계집을 음식처럼 싣고 물탕을 온다. 젊은 계집이 물탕에서 개구리처럼 떠 보이는 것은 가장 좋다고 늙은 상인들은 저녁상 머리에서 떠들어 댄다. 옴쟁이 땀쟁이 가지각색 더러운 피부병자가 모여든다고 신사들은 투덜거리며 가족탕을 선약하였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월향구천곡 오장환   월향구천곡(月香九天曲)   오랑주 껍질을 벗기면 손을 적신다. 향내가 난다.   점잖은 사람 여럿이 보이인 중에 여럿은 웃고 떠드나 기녀(妓女)는 호을로 옛 사나이와 흡사한 모습을 찾고 있었다.   점잖은 손들의 전하여 오는 풍습엔 계집의 손목을 만져 주는 것, 기녀는 푸른 얼굴 근심이 가득하도다. 하―얗게 훈기는 냄새 분 냄새를 지니었도다.   옛 이야기 모양 거짓말을 잘하는 계집 너는 사슴처럼 차디찬 슬픔을 지니었고나   한나절 태극선 부치며 슬픈 노래, 너는 부른다 좁은 보선 맵시 단정히 앉아 무던히도 총총한 하루 하루   옛 기억의 엷은 입술엔 포도물이 젖어 있고나.   물고기와 같은 입 하고 슬픈 노래, 너는 조용히 웃도다   화려한 옷깃으로도 쓸쓸한 마음은 가릴 수 없어 스란치마 땅에 끄을며 조심조심 춤을 추도다.   순백하다는 소녀의 날이여! 그렇지만 너는 매운 회초리, 허기찬 금식(禁食)의 날 오―끌리어 왔다.   슬픈 교육, 외로운 허영심이여! 첫사람의 모습을 모듬 속에 찾으려 헤매는 것은 벌―써 첫사람은 아니라 잃어진 옛날로의 조각진 꿈길이니 바싹 마른 종아리로 시들은 화심(花心)에 너는 향료를 물들이도다.   슬픈 사람의 슬픈 옛일이여! 값진 패물로도 구차한 제 마음에 복수는 할 바이 없고 다 먹은 과일처럼 이 틈에 끼여 꺼치거리는 옛 사랑 오―방탕한 귀공자! 기녀는 조심조심 노래하도다. 춤을 추도다.   졸리운 양, 춤추는 여자야! 세상은 몸에 이익하지도 않고 가미(加味)를 모르는 한약처럼 쓰고 틉틉하고나.   성벽(城壁), 풍림사, 1937           이 세월도 헛되이 오장환   이 세월도 헛되이   아, 이 세월도 헛되이 물러서는가   38도라는 술집이 있다. 낙원이라는 카페가 있다. 춤추는 연놈이나 술 마시는 것들은 모두 다 피 흐르는 비수를 손아귀에 쥐고 뛰는 것이다. 젊은 사내가 있다. 새로 나선 장사치가 있다. 예전부터 싸움으로 먹고 사는 무지한 놈들이 있다. 내 나라의 심장 속 내 나라의 수채물 구멍 이 서울 한복판에 밤을 도와 기승히 날뛰는 무리가 있다. 다만 남에게 지나는 몸채를 가지고 이 지금 내 나라의 커다란 부정을 못 견디게 느끼나 이것을 똑바른 이성으로 캐내지 못하여 씨근거리는 젊은 사내의 가슴과 내둥 양심껏 살 양으로 참고 참다가 이제는 할 수 없이 사느냐 죽느냐의 막다른 곳에서 다시 장삿길로 나간 소시민의 반항하는 춤맵시와 그리고 값싼 허영심에 뻗어 갔거나 여러 식구를 먹이겠다는 생활고에서 뛰쳐나갔거나 진하게 개어 붙인 분가루와 루―쥬에 모든 표정을 숨기고 다만 상대방의 표정을 좇는 뱀의 눈같이 싸늘한 여급의 눈초리 담요때기로 외투를 해 입는 자가 있다. 담요때기로 망또를 해 두른 놈이 있다. 또 어떤 놈은 권총을 희뜩희뜩 비치는 자도 있다. 이런 곳에서 목을 매는 중학생이 있다. 아 그러나 이제부터 얼마가 지나지 않은 해방의 날! 그 즉시는 이들도, 서른여섯 해 만에 스물여섯 해 만에 아니 몇살 만이라도 좋다. 이 세상에 나 처음으로 쥐어 보는 내 나라의 깃발에 어쩔 줄 모르고 울면서 춤추던 그리고 밝고 굳세인 새날을 맹서하던 사람들이 아니냐. 아 이 서울 내 나라의 심장부, 내 나라의 똥수깐, 남녘에서 오는 벗이여! 북쪽에서 오는 벗이여! 제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 오는 벗이여! 또는 이곳이 궁금하여 견디지 못하고 허턱 찾아오는 동무여! 우리 온몸에 굵게 흐르는 정맥의 노리고 더러운 찌꺼기들이여! 너는 내 나라의 심장부, 우리의 모든 피검불을 거르는 염통 속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우리의 백혈구를 만나지 아니했느냐.   아, 그리고 이 세월도 속절 없이 물러서느냐.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장마철 오장환   장마철   나는 보았다. 철마다 강기슭에서 큰물이 갈 때에……   아 모든 것은 이냥 떠내려가는가 시뻘건 물 위에 썩은 용구새 그 위에 날았다 다시 앉고 날았다는 다시 앉는 참새떼.   어쩌면 나의 설움은 이처럼 여럿이 함께 외치고 싶은가.   나는 자랐다. 메마른 강기슭에 나날이 울어예는 여울가에서   □ *   꿈 아시 아슬하게 높이는 흰구름.   아 모든 것은 이냥 흘러만 가는가 내 노래에 젖은 내 마음 내 입성에 배인 내 몸매 다만 소리 없는 흰나비로 자취 없이 춤추며 사라질 것인가   꽃비늘 어지러이 흘러가는 여울가에서 온통 숨차게 흔들리는 가슴 속   그러나 이것은, 어디로서 오는 두려움인가 아니, 어디에서 복받치는 노여움인가.   나는 보았다. 철마다 강기슭에서 큰물이 갈 때에……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전설 오장환   전설&   느티나무 속에선 올빼미가 울었다. 밤이면 운다. 항상, 음습한 바람은 얕게 나려앉았다. 비가 오든지, 바람이 불든지, 올빼미는 동화 속에 산다. 동리 아이들은 충충한 나무 밑을 무서워한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절정의 노래 오장환   절정(絶頂)의 노래   탑(塔)이 있다. 누구의 손으로 쌓았는가, 지금은 거치른 들판 모두다 까―맣게 잊혀진 속에 무거운 입 다물고 한(限)없이 서 있는 탑(塔), 나는 아노라. 뭇 천백(千百)사람, 미지(未知)와 신비(神秘) 속에서 보드라운 구름 밟고 별과 별들에게 기울이는 속삭임.   순시(瞬時)라도 아, 젊은 가슴 무여지는 덧없는 바래옴 탑(塔)이어, 하늘을 지르는 제일 높은 탑(塔)이어!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나는 무게, 아득―한 들판에 홀로 가없는 적막을 누르고……   몇차레나 가려다는 돌아서는가. 고이 다듬는 끌이며 자자하던 이름들 설운 이는 모두 다 흙으로 갔으나 다만 고요함의 끝 가는 곳에   이제도 한 층 또 한 층 주소로 애처로운 단념의 지붕 위에로 천년(千年) 아니 이천년(二千年) 발돋음하듯 탑(塔)이어, 머리 드는 탑신(塔身)이어, 너 홀로 돌이어! 어느 곳에 두 팔을 젓는가.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정문 오장환   정문(旌門)   부제: 염락․열녀불경이부(廉洛․烈女不更二夫)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열녀를 모셨다는 정문(旌門)은 슬픈 울 창살로는 음산한 바람이 스미어들고 붉고 푸르게 칠한 황토 내음새 진하게 난다. 소저(小姐)는 고운 얼굴 방안에만 숨어 앉아서 색시의 한시절 삼강오륜 주송지훈(朱宋之訓)을 본받아왔다. 오 물레 잣는 할멈의 진기한 이야기 중놈의 과객의 화적의 초립동이의 꿈보다 선명한 그림을 보여 줌이여. 시꺼먼 사나이 힘세인 팔뚝 무서운 힘으로 으스러지게 안아 준다는 이야기 소저에게는 몹시는 떨리는 식욕이었다. 소저의 신랑은 여섯 해 아래 소저는 시집을 가도 자위하였다. 쑤군, 쑤군 지껄이는 시집의 소문 소저는 겁이 나 병든 시에미의 똥맛을 핥아 보았다. 오 효부라는 소문의 펼쳐짐이여! 양반은 조금이라도 상놈을 속여야 하고 자랑으로 누르려 한다. 소저는 열아홉. 신랑은 열네 살 소저는 참지 못하여 목 매이던 날 양반의 집은 삼엄하게 교통을 끊고 젊은 새댁이 독사에 물리려는 낭군을 구하려다 대신으로 죽었다는 슬픈 전설을 쏟아 내었다. 이래서 생겨난 효부 열녀의 정문 그들의 종친은 가문이나 번화하게 만들어 보자고 정문의 광영을 붉게 푸르게 채색하였다.   시인부락, 1936. 제 1호           종소리 오장환   종(鍾)소리&   울렸으면……종소리 그것이 기쁨을 전하는 아니, 항거하는 몸짓일지라도 힘차게 울렸으면……종소리   크나큰 종면(鍾面)은 바다와 같은데 상기도 여기에 새겨진 하늘 시악시 온몸이 업화(業火)에 싸여 몸부림치는 거 같은데 울리는가, 울리는가, 태고서부터 나려오는 여운―   울렸으면……종소리 젊으디 젊은 꿈들이 이처럼 외치는 마음이 울면은 종소리 같으련마는……   스스로 죄 있는 사람과 같이 무엇에 내닫지 않는가, 시인이여! 꿈꾸는 사람이여 너의 젊음은, 너의 바램은 어디로 갔느냐.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종가 오장환   종가   돌담으로 튼튼히 가려 놓은 집안엔 검은 기와집 종가가 살고 있었다. 충충한 울 속에서 거미알 터지듯 흩어져 나가는 이 집의 지손(支孫)들. 모두 다 싸우고 찢고 헤어져 나가도 오래인 동안 이 집의 광영을 지키어 주는 신주(神主)들 들은 대머리에 곰팡이가 나도록 알리어지지는 않아도 종가에서는 무기처럼 애끼며 제삿날이면 갑자기 높아 제상 위에 날름히 올라 앉는다. 큰집에는 큰아들의 식구만 살고 있어도 제삿날이면 제사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 오조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손자 손주며느리 칠촌도 팔촌도 한테 얼리어 닝닝거린다. 시집 갔다 쫓겨 온 작은딸 과부가 되어 온 큰고모 손가락을 빨며 구경하는 이종언니 이종오빠. 한참 쩡쩡 울리던 옛날에는 오조할머니 집에서 동원 뒷밥을 먹어 왔다고 오조할머니 시아버니도 남편도 동네 백성들을 곧잘 잡아들여다 모말굴림도 시키고 주릿대를 앵기었다고. 지금도 종가 뒤란에는 중복사나무 밑에서 대구리가 빤들빤들한 달걀귀신이 융융거린다는 마을의 풍설. 종가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 일을 안 해도 지내 왔었고 대대손손이 아무런 재주도 물리어받지는 못하여 종가집 영감님은 근시안경을 쓰고 눈을 찝찝거리며 먹을 궁리를 한다고 작인들에게 고리대금을 하여 살아 나간다.   풍림, 1937. 제 3호.           찬가 오장환   찬가&   한때, 우리는 해방이 되었다 하였고 또 온 줄로 알았다. 그러나 사나운 날씨에 조급한 사나이는 다시금, 뵈지 않는 쇠사슬 절그럭거리며 막다른 노래를 부르는구나   아 울음이여! 울음이여! 신음 속에 길러 오던 너의 성품이, 넘쳐나는 기쁨에도 샘솟는 것을 아주 가까운 이마즉 우리는 새날을 통하여 배우지 아니했느냐.   젊은이여! 벗이여! 손과 발에…… 쇠사슬 늘이고 억눌린 뱃전에 스스로 노를 젓던 그 옛날, 흑인의 부르던 노래 어찌하여 우리는 이러한 노래를 다시금 부르는 것이냐.   뵈지 않는 쇠사슬 마음 안에 그늘지는 검은 그림자에도 내 노래의 갈 곳이 막다른 길이라 하면 아, 젊음이여! 헛되인 육체여! 너는 또 보지 아니했느냐. 8월 15일 아니 그보다도 전부터 우리들의 발길이 있은 뒤부터 항거하는 마음은 그저 무거운 쇠줄에 몸부림칠 때 온몸을 피투성이로 이와 싸우던 투사를……   옥에서 공장에서 산 속에서 지하실에서 나왔다. 몇천 길을 파고 들어간 땅속 갱도에서도― 땅 위로 난 모든 문짝은 뻐개지고 구멍이란 구멍에서 이들은 나왔다. 그리고 나와 보면 막상 반가운 얼굴들 함께 자란 우리의 형제 우리의 동무   K가 나왔다. 또 하나의 K가 나왔다. A가 나왔다. P가 나왔다. 그 속에는 먼― 남의 나라까지 찾아가 원수들 총부리에, 우리의 총부리를 맞들이댄 동무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전부터 부르는 나즉한 노래를 이제는 더욱 소리 높여 부를 뿐이다.   뵈지 않는 쇠사슬 절그럭거리며 막다른 노래를 노래 부르는 벗이여! 전에는 앞서가며 피 흘리던 이만이 조용조용 부르던 노래 이제는 모두 합하여 우리도 크게 부른다. `비겁한 놈은 갈려면 가라'   곳곳에서 우렁차게 들리는 소리 아, 이 노래는 한 사람의 노래가 아니다. 성낸 물결모양 아우성치는 젊은 사람들…… 더욱 세찬 이 바람은 귀만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애타는 가슴 속 불을 지른다.   아 영원과 사랑과 꿈과 생명을 노래하던 벗이여! 너는 불타는 목숨을 그리고 불타면 꺼지는 목숨을 생각한 적이 있느냐 모두 다 앞서가던 선구자의 죽음 위에 스스로의 가슴을 불지르고 따라가는 동무들   우렁찬 우렁찬 노래다. 모두 다 합하여 부르는 이 노래 그렇다. 번연히 앞서보다 더한 쇠줄을 배반하는 무리가 가졌다 하여도 우리들 불타는 억세인 가슴은 젊은이 불을 뿜는 노래는 이런 것을 깨끗이 사뤄버릴 것이다.   우리들의 귀는 한 번에 두 가지를 들을 수 없다. 우리들의 마음은 한 번에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없다. 벗이여! 점점 가까워 온다. 얼마나 얼마나 하늘까지 뒤덮는 소리냐 `비겁한 놈은 갈려면 가라'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체온표 오장환   체온표(體溫表)   어항 안 게으른 금붕어   나비 같은 넥타이를 달고 있기에 나는 무엇을 하면 옳겠습니까   나래 무거운 회상에 어두운 거리 하나님이시여! 저무는 태양 나는 해바라기모양 고개 숙이고 병든 위안을 찾아 다니어   고층의 건축이건만 푸른 하늘도 창 옆으로는 가까이 오려 않는데 탁상에 힘없이 손을 내린다. 먹을 수 없는 탱자열매 가시나무 향내를 코에 대이며……   주판알을 굴리는 작은 아씨야 너와 나는 비인 지갑과 사무를 바꾸며 오늘도 시들지 않느냐 화병에 한 떨기 붉은 장미와 히아신스 너의 청춘이, 너의 체온이……   헌사, 남만서방, 1939           초봄의 노래 오장환   초봄의 노래   내가 부르는 노래 어디선가 그대도 듣는다면은 나와 함께 노래하리라. `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렸는가'……하고   유리창 밖으론 함박눈이 펑 펑 쏟아지는데 한겨울 나는 아무데도 못 가고 부질없은 노래만 불러 왔구나.   그리움도 맛없어라 사모침도 더디어라   언제인가 언제인가 안타까운 기약조차 버리고 한 동안 쉴 수 있는 사랑마저 미루고 저마다 어둠 속에 앞서던 사람   이제 와선 함께 간다. 함께 간다. 어디선가 그대가 헤매인대도 그 길은 나도 헤매이는 길   내가 부르는 노래 어디선가 그대가 듣는다면은 나와 함께 노래하리라. `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렸는가'……하고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팔월 십오일의 노래 오장환   팔월(八月) 십오일(十五日)의 노래   기폭을 쥐었다. 높이 쳐들은 만인의 손 위에 깃발은 일제히 나부낀다.   `만세!'를 부른다. 목청이 터지도록 지쳐 나서는 군중은 만세를 부른다.   우리는 노래가 없었다. 그래서 이처럼 부르짖는 아우성은 일찍이 끓어 오던 우리들 정열이 부르는 소리다.   아 손에 손에 깃발들을 날리며 큰길로 모이는 사람아 우리는 보았다. 이곳에 그냥 기쁨에 취하고, 함성에 목메인 겨레를…… 그리고 뒤끓는 환희와 깃발의 꽃바다 속에 무수히 따라가는 아동과 근로하는 이들의 행렬을……   춤추는 깃발이여! 나부끼는 마음이여! 이들을 지키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너희들 가슴으로 해방이 주는 노래 속에서 또 하나의 검은 쇠사슬이 움직이려 하는 것을……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할렐루야 오장환   할렐루야   곡성이 들려온다. 인가(人家)에 인가(人家)가 모이는 곳에.   날마다 떠오르는 달이 오늘도 다시 떠 오고   누―런 구름 쳐다보며 망또 입은 사람이 언덕에 올라 중얼거린다.   날개와 같이 불길한 사족수(四足獸)의 날개와 같이 망또는 어둠을 뿌리고   모―든 길이 일제히 저승으로 향하여 갈 제 암흑의 수풀이 성문을 열어 보이지 않는 곳에 술 빚는 내음새와 잠자는 꽃송이.   다만 한 길 빛나는 개울이 흘러……   망또 우의 모가지는 솟치며 그저 노래 부른다.   저기 한 줄기 외로운 강물이 흘러 깜깜한 속에서 차디찬 배암이 흘러…… 사탄이 흘러…… 눈이 따갑도록 빨간 장미가 흘러……   헌사, 남만서방, 1939           해수 오장환   해수(海獸)   사람은 저 빼놓고 모조리 짐승이었다   항구야 계집아 너는 비애를 무역하도다.   모―진 비바람이 바닷물에 설레이던 날 나는 화물선에 엎디어 구토를 했다.   뱃전에 찌프시 안개 끼는 밤 몸부림치도록 갑갑하게 날은 궂은데 속눈썹에 이슬을 적시어 가며 항구여! 검은 날씨여! 내가 다시 상륙하던 날 나는 거리의 골목 벽돌담에 오줌을 깔겨 보았다.   컴컴한 뒷골목에 푸른 등불들, 붕― 붕― 자물쇠를 채지 않는 도어 안으로, 부화(浮華)한 웃음과 비어의 누른 거품이 북어 오른다.   야윈 청년들은 담수어처럼 힘없이 힘없이 광란된 ZAZZ에 헤엄쳐 가고 빨간 손톱을 날카로이 숨겨 두는 손, 코카인과 한숨을 즐기어 상습하는 썩은 살덩이   나는 보았다. 항구, 항구, 들레이면서 수박씨를 까바수는 병든 계집을― 바나나를 잘라내는 유곽 계집을―   49도, 독한 주정(酒精)에 불을 달구어 불타오르는 술잔을 연거푸 기울이도다. 보라! 질척한 내장이 부식한 내장이, 타오르는 강한 고통을, 펄펄펄 뛰어라! 나도 어릴 때에는 입가생이에 뾰롯한 수염터 모양, 제법 자라나는 양심을 지니었었다.   발레제(製)의 무디인 칼날, 얼굴이 뜨거웠다. 면도를 했다. 극히 어렸던 시절   항구여! 눈물이여! 나는 종시(終是) 비애와 분노 속을 항해했도다.   계집아, 술을 따르라. 잔잔이 가득 부어라! 자조와 절망의 구덩이에 내 몸이 몹시 흔들릴 때 나는 구토를 했다. 삼면기사(三面記事)를, 각혈과 함께 비린내나는 병든 기억을……   어둠의 가로수여! 바다의 방향(方向), 오 한없이 흉측맞은 구렁이의 살결과 같이 늠실거리는 검은 바다여! 미지의 세계, 미지로의 동경, 나는 그처럼 물 위로 떠다니어도 바다와 동화치는 못 하여 왔다. 가옥(家屋) 안 짐승은 오직 사람뿐 나도 그처럼 완고하도다.   쇠창살을 붙잡고 우는 계집아! 바다가 보이는 저쪽 상정(上頂)엔 외인의 묘지가 있고 하얀 비둘기가 모이를 쪼으고, 장난감만하게 보이는 기선은 퐁퐁 품는 연기를 작별인사처럼 피워 주도다.   항구여! 눈물이여!   절망의 흐름은 어둠을 따라 땅 아래 넘쳐 흐르고, 바람이 끈적끈한 요기(妖氣)의 저녁, 너는 바다 변두리를 돌아가 보라. 오 이럴 때이면 이빨이 무딘 찔레나무도 아스러지게 나를 찍어 누르려 하지 않더냐!   이년의 계집, 5색, 7색, 영사관 꼭대기에 때 묻은 기폭은 그 집 굴뚝이 그려 논 게다. 지금도 절름발이 노서아의 귀족이 너를 찾지 않더냐.   등대 가까이 매립지에는 아직도 묻히지 않은 바닷물이 웅성거린다. 오―매립지는 사문장 동무들이 뼈다귀로 묻히어 왔다.   어두운 밤, 소란스런 물결을 따라 그러게 검은 바다 위로는 쑤구루루…… 쑤구루루…… 부어 오른 시신, 눈자위가 해멀건 인부들이 떠올라 온다.   항구야, 환각의 도시, 불결한 하수구에 병든 거리여! 얼마간의 돈푼을 넣을 수 있는 조그만 지갑, 유독식물과 같은 매음녀는 나의 소매에 달리어 있다.   그년은, 마음까지 나의 마음까지 핥아 놓아서 이유 없이 웃는다. 나는 도박과 싸움, 흐르는 코피! 나의 등가죽으로는 뱃가죽으로는 자폭한 보헤미안의 고집이 시르죽은 빈대와 같이 쓸 쓸 쓸 기어다닌다.   보라! 어두운 해면에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 짐승과 같이 추악한 모습 항시 위협을 주는 무거운 불안 그렇다! 오밤중에는 날으는 갈매기도 가마귀처럼 불길하도다.   나리는 안개여! 설움의 항구,   세관의 창고 옆으로 달음박질하는 중년 사나이의 쿨렁한 가방 방파제에는 수평선을 넘어온 해조음이 씨근거리고, 바다도, 육지도, 한 치의 영역에 이를 웅을거린다.   항구여! 눈물이여! 나는 못 쓰는 주권(株券)을 갈매기처럼 바닷가 날려 보냈다. 뚱뚱한 계집은 부―연 배때기를 헐덕거리고 나는 무겁다.   웅대하게 밀리쳐오는 오―바다, 조수의 쏠려옴을 고대하는 병든 거위들! 습진과 최악의 꽃이 성화(盛華)하는 항시(港市)의 하수구, 더러운 수채의 검은 등때기, 급기야 밀물이 머리맡에 쏠리어올 때 톡 불거진 두 눈깔을 희번덕이며 너는 무서웠느냐? 더러운 구덩이, 어두운 굴 속에 두 가위를 트리어 박고   뉘우치느냐? 게거품을 북적거리며 쏠려가는 조수를 부러이 보고 불평하느냐? 더러운 게거품을 북적거리며……   음협(陰狹)한 씨내기, 사탄의 낙륜(落倫), 너의 더러운 껍데기는 일찍 바닷가에 소꿉 노는 어린애들도 주워 가지는 아니하였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해항도 오장환   해항도(海港圖)   폐선처럼 기울어진 고물상옥(古物商屋)에서는 늙은 선원이 추억을 매매하였다. 우중중―한 가로수와 목이 굵은 당견(唐犬)이 있는 충충한 해항(海港)의 거리는 지저분한 크레용의 그림처럼, 끝이 무디고. 시꺼먼 바다에는 여러 바다를 거쳐온 화물선이 정박하였다.   값싼 반지요. 골통같이 굵다란 파이프. 바다 바람을 쏘여 얼굴이 검푸러진 늙은 선원은 곧―잘 뱀을 놀린다. 한참 싸울 때에는 저 파이프로도 무기를 삼아왔다. 그러게 모자를 쓰지 않는 항시(港市)의 청년은 늙은 선원을 요지경처럼 싸고 두른다.   나폴리(Naples)와 아든(Aden)과 싱가포르(Singapore). 늙은 선원은 항해표와 같은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해항의 가지가지 백색, 청색 작은 신호와, 영사관, 조계(租界)의 갖가지 깃발을. 그리고 제 나라 말보다도 남의 나라 말에 능통하는 세관의 젊은 관사를. 바람에 날리는 흰 깃발처럼 Naples. Aden. Singapore. 그 항구 그 바의 계집은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망명한 귀족에 어울려 풍성한 도박. 컴컴한 골목 뒤에선 눈자위가 시퍼런 청인(淸人)이 괴춤을 훔칫거리며 길 밖으로 달리어간다. 홍등녀(紅燈女)의 교소(嬌笑), 간들어지기야. 생명수! 생명수! 과연 너는 아편을 가졌다. 항시의 청년들은 연기를 한숨처럼 품으며 억세인 손을 들어 타락을 스스로히 술처럼 마신다.   영양(榮養)이 생선가시처럼 달갑지 않는 해항의 밤이다. 늙은이야! 너도 수부(水夫)이냐? 나도 선원이다. 자― 한 잔, 한 잔, 배에 있으면 육지가 그립고, 뭍에선 바다가 그립다. 몹시도 컴컴하고 질척거리는 해항의 밤이다. 밤이다. 점점 깊은 숲속에 올빼미의 눈처럼 광채가 생(生)하여 온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향수 오장환   향수&   어머니는 무슨 필요가 있기에 나를 만든 것이냐! 나는 이항(異港)에 살고 어메는 고향에 있어 얕은 키를 더욱 더 꼬부려 가며 무수한 세월들을 흰머리칼처럼 날려 보내며, 오―어메는 무슨, 죽을 때까지 윤락된 자식의 공명(功名)을 기다리는 것이냐. 충충한 세관의 창고를 기어 달으며, 오늘도 나는 부두를 찾아 나와 쑤왈쑤왈 지껄이는 이국 소년의 회화(會話)를 들으며, 한나절 나는 향수에 부대끼었다.   어메야! 온―세상 그 많은 물건 중에서 단지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어메! 지금의 내가 있는 곳은 광동인(廣東人)이 싣고 다니는 충충한 밀항선. 검고 비린 바다 위에 휘이―한 각등(角燈)이 비치울 때면, 나는 함부로 술과 싸움과 도박을 하다가 어메가 그리워 어둑어둑한 부두로 나오기도 하였다. 어메여! 아는가 어두운 밤에 부두를 헤매이는 사람을. 암말도 않고 고향, 고향을 그리우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모두 깊은 상처를 숨겨 가지고…… 띄엄, 띄엄이, 헤어져 있는 사람들.   암말도 않고 검은 그림자만 거니는 사람아! 서 있는 사람아! 늬가 옛 땅을 그리워하는 것도, 내가 어메를 못 잊는 것도, 다 마찬가지 제 몸이 외로우니까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어메야! 오륙년이 넘두락 일자소식이 없는 이 불효한 자식의 편지를, 너는 무슨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냐. 나는 틈틈이 생각해 본다. 너의 눈물을…… 오―어메는 무엇이었느냐! 너의 눈물은 몇 차례나 나의 불평과 결심을 죽여 버렸고, 우는 듯, 웃는 듯, 나타나는 너의 환상에 나는 지금까지도 설운 마음을 끊이지는 못하여 왔다. 편지라는 서로이 서러움을 하소하는 풍습이려니, 어메는 행방도 모르는 자식의 안재(安在)를 믿음이 좋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헌사 Artemis 오장환   헌사(獻詞) Artemis   마귀야 땅에 끌리는 네 검은 옷자락으로 나를 데려가거라 늙어지는 밤이 더욱 다가들어 철책 안 짐승이 운다.   나의 슬픈 노래는 누굴 위하여 불러 왔느냐 하염없는 눈물은 누굴 위하여 흘려 왔느냐 오늘도 말 탄 근위병의 발굽 소리는 성 밖으로 달려갔다.   나도 어디쯤 조그만 카페 안에서 자랑과 유전(遺傳)이 든 지갑마구리를 열어 헤치고 만나는 청년마다 입을 맞추리   충충한 구름다리 썩은 은기둥에 기대어 서서 기이한 손님아 기다리느냐 붉은 집 벽돌담으로 달이 떠 온다   저 멀리서 또 이 가까이서도 나의 오장에서도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   스틱스의 지류(支流)인가 야기(夜氣)에 번적거리어 이 밤도 또한 이 밤도 슬픈 노래는 이슬비와 눈물에 적시웠노니 청춘이여! 지거라 자랑이여! 가거라 쓸쓸한 너의 고향에……   헌사, 남만서방, 1939           호수 오장환   호수   호수에는 사색(四色) 가지의 물고기들이 살기도 한다. 차디찬 슬픔이 생겨나오는 맑은 새암 푸른 사슴이 적시고 간 입자욱이 남기어 있다. 멀리 산간에서는 시냇물들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어 오고 어둑한 숲길은 고대의 창연한 그늘이 잠겨 있어 나어린 구름들이 한나절 호숫가에 노닐다 간다. 저물기 쉬운 하룻날은 풀뿌리와 징게미의 물 내음새를 풍기우며 거무른 황혼 속에 잠기어 버리고 내 마음, 좁은 영토 안에 나는 어스름 거무러지는 추억을 더듬어 보노라. 오호 저녁바람은 가슴에 차다. 어두운 장벽(臟壁) 속에는 지저분하게 그어 논 소년기의 낙서가 있고, 큐비트의 화살 맞았던 검은 심장은 찢어진 대로 겉날리었다. 가는 비와 오는 바람에 흐르는 구름들이여! 너는 어느 곳에 어젯날을 만나 보리오. 야윈 그림자를 연못에 적시며 낡은 눈물을 어제와 같이 흘려 보기에 너는 하많은 청춘의 날을 가랑잎처럼 날려 보내었나니 오― 나는 싸늘하게 언 체온기를 겨드랑 속에 지니었도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화원 오장환   화원(花園)   꽃밭은 번창하였다. 날로 날로 거미집들은 술막처럼 번지었다. 꽃밭을 허황하게 만드는 문명. 거미줄을 새어 나가는 향그러운 바람결. 바람결은 머리카락처럼 간지러워…… 부끄럼을 갓 배운 시악시는 젖통이가 능금처럼 익는다. 줄기째 긁어먹는 뭉툭한 버러지. 유행치마 가음처럼 어른거리는 나비 나래. 가벼이 꽃포기 속에 묻히는 참벌이. 참벌이들. 닝닝거리는 울음. 꽃밭에서는 끊일 사이 없는 교통 사고가 생기어났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황무지 오장환   황무지   □ 1   황무지에는 거칠은 풀잎이 함부로 엉클어졌다. 번지면 손가락도 베인다는 풀, 그러나 이 땅에도 한때는 썩은 과일을 찾는 개미떼같이 촌민과 노라리꾼이 북적거렸다. 끊어진 산허리에, 금돌이 나고 끝없는 노름에 밤 별이 해이고 논우멕이 도야지 수없는 도야지 인간들은 인간들은 웃었다 함부로 웃었다! 웃었다 웃는 것은 우는 것이다 사람쳐놓고 원통치 않은 놈이 어―디 있느냐! 폐광이다 황무지 우거진 풀이여! 문명이 기후조(氣候鳥)와 같이 이곳을 들러 간 다음 너는 다시 원시의 면모를 돌이키었고 엉클은 풀 우거진 속에 이름조차 감추어 가며…… 벌레 먹은 낙엽같이 동구(洞口)에서 멀리하였다.   □ 2   저렇게 싸늘한 달이 지구에 매어달려 몇 바퀴를 몇 바퀴를 몇 바퀴…… 를 한없이 돌아나는 동안 세월이여! 너는 우리게서 원시의 꿈도 걷어 들였다 죽어진 나의 동무는 어디 있느냐! 매운 채찍은 공간에 울고 슬픔을 가리운 포장 밖으로 시꺼멓게 번지는 도화역(道化役)의 커단 그림자 유리 안경알에 밤안개는 저윽이 서리고 항상 꿈이면 보여 주던 동무의 나라도 이제 오래인 세월에 퇴색하여 나는 꿈 속 어느 구석에서도 선명한 색채를 보지는 못하였다 우거진 문명이여? 엉클은 풀 너는 우리게 무엇을 알려주었나   □ 3   광부의 피와 살점이 말라붙은 헐은 도로꼬 폐역(廢驛)에는 달이 떴다 텅―비인 교회당 다 삭은 생철 지붕에 십자가 그림자 비 뚜 로 누이고 양(洋) 당인(唐人). 광산가의 아버지, 성당의 목사도 기업과 술집과 여막(旅幕)을 따라 떠돌아 가고 궤도의 무수한 침목(沈木) 끝없는 레일이 끝없이 흐르고 휘이고 썩은 버섯 질긴 비듬풀! 녹슨 궤도에 엉클어졌다 해설피 장마철엔 번갯불이 쏘ㅏㅇ 쏘ㅏㅇ―하늘과 구름을 갈라 다이나마이트 폭발에 산맥도 광부도 경기(景氣)도 웃음도 깨어진 다음 비인 대합실 문 앞에는 석탄 쪼가리 싸늘한 달밤에 잉, 잉, 잉, 돌덩이가 울고 무인경(無人境)에 달빛 가득 실은 헐은 도로꼬가 스스로이 구른다 부엉아! 너의 우는 곳은 어느 곳이냐 어지러운 회오리바람을 따라 불길한 뭇 새들아 너희들의 날개가 어둠을 뿌리고 가는 곳은 어느 곳이냐   헌사, 남만서방, 1939           황혼 오장환   황혼&   직업소개에는 실업자들이 일터와 같이 출근하였다. 아무 일도 안하면 일할 때보다는 야위어진다. 검푸른 황혼은 언덕 아래로 깔리어 오고 가로수와 절망과 같은 나의 기―ㄴ 그림자는 군집(群集)의 대하(大河)에 짓밟히었다.   바보와 같이 거물어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나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 섰다. 병든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근육이 풀릴 때 향수는 실마리처럼 풀려 나온다. 나는 젊음의 자랑과 희망을, 나의 무거운 절망의 그림자와 함께, 뭇 사람의 웃음과 발길에 채이고 밟히며 스미어 오는 황혼에 맡겨 버린다.   제 집을 향하는 많은 군중들은 시끄러이 떠들며, 부산―히 어둠 속으로 흩어져 버리고. 나는 공복의 가는 눈을 떠 희미한 노등(路燈)을 본다. 띄엄띄엄 서 있는 포도 위에 잎새 없는 가로수도 나와 같이 공허하고나.   고향이여! 황혼의 저자에서 나는 아리따운 너의 기억을 찾아 나의 마음을 전서구(傳書鳩)와 같이 날려 보낸다. 정든 고샅.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얀 상투에는 몇 나절의 때묻은 회상이 맺혀 있는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여! 병든 학이었다. 너는 날마다 야위어 가는……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 가고, 나는 병든 사나이. 야윈 손을 들어 오랫동안 타태(隋怠)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졌다. 어두워지는 황혼 속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보이지 않는 황혼 속에서, 나는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 버린다.   성벽(城壁), 풍림사, 1937
387    칠레 시인 - 네루다 댓글:  조회:3134  추천:0  2016-02-01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당신은  해질 무렵  붉은 석양에 걸려 있는  그리움입니다  빛과 모양 그대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름입니다.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부드러운 입술을 가진 그대여  그대의 생명 속에는  나의 꿈이 살아 있습니다  그대를 향한  변치 않는 꿈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사랑에 물든  내 영혼의 빛은  그대의 발 밑을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입니다  오, 내 황혼의 노래를 거두는 사람이여  내 외로운 꿈속 깊이 사무쳐 있는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입니다  석양이 지는 저녁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나는 소리 높여 노래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영혼은  그대의 슬픈 눈가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대의 슬픈 눈빛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               나는 밤새 세상에서 가장 슾른 시를 쓸 수 있네.     예를 들면 밤하늘을 가득 채운 파랗고 멀리서 반짝이는 별들에 대하여 하늘을 휘감고 노래하는 밤바람에 대해서.   나는 밤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나를 사랑한 때 있었네.  이런 밤에, 나는 그녀를 내 팔에 안았네.  무한한 밤하늘 아래 그녀에게 무수히 키스했었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녀를 사랑한 때 있었네.  그녀의 크고 조용한 눈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밤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더이상 그녀가 곁에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하며 내가 그녀를 잃은 것을 느끼며   거대한 밤을 들으며 그녀 없이 더욱 거대한  그리고 시는 풀잎에 떨어지는 이슬처럼 영혼으로 떨어지네.   내 사랑을 지키지 못했는데 무엇이 중요할까.  밤하늘은 별로 가득 찼어도 그녀는 나와 함께 있지 못한데.   그게 다야. 멀리 누군가 노래하는 멀리 내 영혼은 그녀 없이는 없어.  그녀를 내 곁에 데리고 올 것처럼 내 눈은 그녀를 찾아 헤매지.   내 심장도 그녀를 찾아 헤매지만 그녀는 내 곁에 없지.  똑같은 나무를 더욱 희게 만드는 그날 같은 밤   우리 예전의 우리 우리는 더이상 같지 않지.  나 역시 그녀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지만 예전에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내 목소리는 바람 속을 헤매다가 그녀의 귀를 매만질 수 있겠지.  누군가 다른 사람을 그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사랑이겠지.  예전에 그녀가 나의 사랑이였던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가벼운 육체 그녀의 무한한 눈동자   나는 그녀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지만 어쩌면 나는 아직 그녀를 사랑해.  사랑은 짧게 지속되고 망각은 먼 것이니.  이런 밤에 내가 그녀를 내 팔에 안았던 것처럼.  내 영혼은 그녀 없이는 더 이상 없네.   어쩌면 이것이 그녀가 내게 주는 마지막 고통일지라도  어쩌면 이것이 내가 그녀를 위해 쓰는 마지막 시일지라도...             충만한 힘     나는 쓴다 밝은 햇빛 속에서, 사람들 넘치는 거리에서, 만조 때,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곳에서; 제멋대로인 밤만이 나를 억누르지만, 허나 그것의 방해로 나는 공간을 되찾고, 오래가는 그늘들을 모은다   밤의 검은 작물은 자란다 내 눈이 평야를 측량하는 동안. 그리하여, 태양으로만, 나는 열쇠들을 버린다. 불충분한 빛 속에서는 자물쇠를 찾으며 바다로 가는 부서진 문들을 열어놓는다 찬장을 거품으로 채울 때까지,   나는 가고 돌아오는 데 지치는 법이 없고, 돌 모양의 죽음은 나를 막지 못하며, 존재에도 비존재에도 싫증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내 모든 광물성의 의무를 어디에서 물려받았을까 아버지나 어머니일까 아니면 산들일까,   생명줄들이 불타는 바다로부터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계속 가니까 나는 가고 또 간다는 것 또 내가 노래를 하고 또 하니까 나는 노래한다는 걸.   두 개의 수로 사이에서 그러듯 내가 눈을 감고 비틀거릴 때 일어난 일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쪽은 죽음으로 향하는 그 지맥속에서 나를 들어올리고 다른 쪽은 내가 노래하게 하기 위해 노래한다.   그리하여 나는 비존재로부터 만들어지고, 바다가 짜고 흰 물마루의 파도로 암초를 연타하고 썰물 때 돌들을 다시 끌고 가듯이 나를 둘러싼 죽음으로 된 것이 내 속에서 삶을 향한 창을 열며, 그리고, 존재의 경련 속에서, 나는 잠든다. 낮의 환한 빛 속에서, 나는 그늘 속을 걷는다.       건축가   나는 나 자신의 환상을 선택했고, 얼어붙은 소금에서 그것과 닮은 걸 만들었다 나는 큰비에다 내 시간의 기초를 만들었고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내 오랜 숙련이 꿈들을 분할한 게 사실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채 벽들, 분리된 장소들이 끝없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나서 나는 바닷가로 갔다.   나는 조선의 처음을 보았고, 신성한 물고기처럼 매끄러운 그걸 만져보았다- 그건 천상의 하프처럼 떨었고, 목공작업은 깨끗했으며,   꿀 향기를 갖고 있었다. 그 향기가 돌아오지 않을 때는 그 배가 돌아오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물 속에 익사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별처럼 벌거벗은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돌아갔고.   내 믿음은 그 배들 속에 있다.   나는 사는 것 외에 다른 대책이 없다.       작별들     안녕, 안녕, 한 곳에게 또는 다른 곳에게, 모든 입에게, 모든 슬픔에게, 무례한 달에게, 날들로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사라지는 주週들에게, 이 목소리와 적자색으로 물든 저 목소리에 안녕, 늘 쓰는 침대와 접시에게 안녕, 모든 작별들의 어슴푸레한 무대에게, 그 희미함의 일부인 의자에게, 내 구두가 만든 길에게.   나는 나를 펼친다, 의문의 여지 없이; 나는 전 생애를 숙고한다, 달라진 피부, 램프들, 그리고 증오들을, 그건 내가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규칙이나 변덕에 의해서가 아니고 일련의 반작용하고도 다르다; 새로운 여행은 매번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장소를, 모든 장소들을 즐겼다.   그리고, 도착하자 또 즉시 새로 생긴 다감함으로 작별을 고했다 마치 빵이 날개를 펴 갑자기 식탁의 세계에서 날개를 펴 갑자기 식탁의 세계에서 달아나듯이. 그리하여 나는 모든 언어들을 뒤에 남겼고, 오래된 문처럼 작별을 되풀이했으며, 영화관과 이유들과 무덤들을 바꾸었고, 어떤 다른 곳으로 가려고 모든 곳을 떠났다; 나는 존재하기를 계속했고, 그리고 항상 기쁨으로 반쯤 황폐해 있었다, 슬픔들 속의 신랑, 어떻게 언제인지도 모르는 채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고, 돌아가지 않은.   돌아가는 사람은 떠난 적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나는 내 삶을 밟고 되밟았으며, 옷과 행성을 바꾸고, 점점 동행에 익숙해지고, 유배의 큰 회오리바람에, 종소리의 크나큰 고독에 익숙해졌다.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사람을 묻는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너무도 어렵게 지낸 나머지  그가 사람으로서 인격을 지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집도 땅도 없었고, 알파벳도 이불도  구운 고기도 없었으며,  그리하여 여기저기로 노상 옮겨다녔고, 생활의 결핍으로 죽어갔다,  죽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그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온 삶이다.   다행히도(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들은 마음이 똑같았다, 주교에서부터 판사에 이르기까지 그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죽었다, 나무랄 데 없이 죽었다, 우리의 가나한 사람,  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그 많은 하늘을 갖고 뭘 할지 모를 것이다. 그는 그걸 일굴 수 있을까, 씨 뿌리고 거둘 수 있을까?   그는 항상 그걸 했다; 잔혹하게  그는 미개지와 싸웠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그가 일구도록 완만히 놓여 있다,  나중에, 하늘의 수확 중에  그는 자기 몫을 가질 것이고, 그렇게 높은 데서  그의 식탁에는, 하늘에서 배부르기 위해  모든 게 차려진다,  우리의 가난한 사람은, 아래 세상에서의  운명으로, 약 60년의 굶주림을 갖고 왔다,  마침내, 당연하게도,  삶으로부터 더 이상 두들겨맞지 않고  먹기 위해 제물이 되지 않은 채 만족스럽기 위하여,  땅 밑 상자 속에서 집처럼 안전해  이제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고,  임금 투쟁을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런 정의를 바라지 못했다, 이 사람은. 갑자기 그들은 그의 컵을 채워주었고 그게 그는 좋았다; 이제 그는 행복에 겨워 벙어리가 되었다.   이제 그는 얼마나 무거운가, 그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은! 그는 뼈 자루였다, 검은 눈을 가진,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안다, 그의 무게 하나만으로,  너무 많은 걸 갖지 못했었다는 걸,  만일 이 힘이 계속 쓰여서  미개지를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밀을 거두고, 땅에 물을 주고,  유황을 갈아 가루로 만들고, 땔나무를 운반했다면,  그리고 이렇게 무거운 사람이 구두가 없었다면,  아, 비참하다, 이 힘줄과 근육이 완전히 분리된 인간이, 사는 동안 정의를  누린 적이 없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때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넘어뜨리며, 그런데도  노동을 계속했고, 이제, 관에 든 그를  우리 어깨로 들어올리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적어도 안다 그가 얼마나 갖지 못했는지를,  그가 지상에 살 때 우리가 그를 돕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가 그에게 주지 않은 모든 걸 우리가 짊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때가 늦었음을;  그는 우리한테 무게를 달고, 우리는 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의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무게를 달까? 그는 이 세상이 하는 만큼 많이 무게를 단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 죽은 사람을 어깨에 메고 간다. 분명히  하늘은 빵을 풍부하게 구우시리라.        물     지상의 모든 건 빽빽하게 서 있었다, 가시나무는 찔렀고 초록 줄기는 갉아먹혔으며, 잎은 떨어졌다, 낙하 자체가 유일한 꽃일 때까지, 물은 또다른 일이다, 그건 그 자신의 빛나는 아름다움 외에 방향이 없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깔 속을 흐르며, 돌에서 명쾌한 교훈을 얻고, 그런 노릇들 속에서 거품의 실현되지 않은 야망을 이루어낸다.       그건 태어난다   여기 바로 끝에 나는 왔다 그 무엇도 도대체 말할 필요가 없는 곳, 모든 게 날씨와 바다를 익혔고 달은 다시 돌아왔으며, 그 빛은 온통 은빛, 그리고 어둠은 부서지는 파도에 되풀이하여 부서지고, 바다의 발코니의 나날, 날개는 열리고, 불은 태어나고, 그리고 모든 게 아침처럼 또 푸르르다.         탑에서     이 장엄한 탑에는 투쟁이 없다. 안개, 공기, 날이 그걸 둘러쌌고 떠났으며 나는 하늘과 종이와 더불어 머물렀다, 고독한 기쁨과 부채와 함께. 증오가 있는 지상의 투명한 탑 그리고 하늘의 파동으로 움직이는 먼 바다. 그 구절에는 얼마나 많은 음절이 있는가, 그 단어에는? 내가 말했던가?   이슬의 불안은 아름다워라- 그건 아침에 떨어진다 새벽에서 밤을 분리하며 그리고 그 차가운 선물은 불확실하게 매달려 있다 강렬한 태양이 그걸 죽게 하기를 기다리며, 말하기 어렵다 우리가 눈을 감는 건지 아니면 밤이 우리 속에서 별 박힌 눈을 뜨는 건지, 어떤 문이 열릴 때까지 그게 우리 꿈의 벽에 구멍을 파는 건지. 그러나 꿈은 한순간의 휙 지나가는 의복일 뿐, 어둠의 한 번의 고동 속에 소모되고, 우리 발 앞에 떨어져, 벗어던진다 날이 움직여 우리와 함께 출범할 때. 이게 거기서 내가 내려다보는 탑이다, 빛과 말수가 적은 물 사이, 칼을 지닌 시간, 그러고 나서 나는 살기 위해 서두른다, 나는 온 공기를 마시고 도시에 들어찬 불모의 빌딩들에 간담이 서늘하며,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혼잣말을 한다, 높은 곳들의 침묵에서 한 잎씩 떼어내며.              시인의 의무   이 금요일 아침, 바다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집이나 사무실에 갇혀 있거나 공장이나 여자, 거리나 광산 또는 메마른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나는 그에게 왔다, 그리고 말하거나 보지 않고 도착해서 그의 감옥문을 연다, 희미하나 뚜렷한 동요가 시작되고, 천둥의 긴 우르릉 소리가 이 행성의 무게와 거품에 스스로를 더하며, 바다의 신음하는 물흐름은 물결을 일으키고, 별은 그 광관光冠 속에서 급속히 진동하며, 바다는 파도치고, 꺼지고 또 파도치기를 계속한다.   그리하여, 내 운명에 이끌려, 나는 바다의 비탄을 듣고 그걸 내 의식에 간직해야 하며, 거친 물의 굉음을 느끼고 그걸 영원한 잔에 모아, 그들이 수감되어 있는 데가 어디이든, 그들이 가을의 선고로 고통받는 데가 어디이든 나는 유랑하는 파도와 함께 있고, 창문으로 드나들며, 내가 "어떻게 그 바다에 닿을 수 있지?" 하고 두 눈은 치켜뜬 채, 묻는 소리를 스스로 들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말없이, 파도의 별빛 밝은 메아리를 건넬 것이다, 거품과 유사의 부서짐을, 움츠러드는 소금의 바삭거림, 해변 바닷새들의 음울한 울음을,   그리하여, 나를 통해, 자유와 바다는 어두운 가슴에 대답해줄 것이다.       말   말은 피 속에서 태어났고, 어두운 몸속에서 자랐으며, 날개 치면서, 입술과 입을 통해 비상했다.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여전히, 여전히 그건 왔다 죽은 아버지들과 유랑하는 종족들에서, 돌이 된 땅들에서, 그 가난한 부족들로 지친 땅, 슬픔이 길이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은 떠나서 새로운 땅과 물에 도착하고 결혼하여 그들의 말을 다시 키웠느니. 그리하여 이것이 유산이다; 이것이 우리를 죽은 사람과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새로운 존재들을 연결하는 대기大氣   대기는 아직 공포와 한숨을 차려입은 처음 말해진 말로 떨린다. 그건 어둠에서 솟아났고 지금까지 어떤 천둥도 그 말, 처음 말해진 그 말의 철鐵 같은 목소리 와 함께 우르렁거리지 못했다- 그건 다만 하나의 잔물결, 한 방울의 물이었을지 모르나 그 큰 폭포는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그러다가, 말은 의미로 채워진다. 언제나 아이와 함께, 그건 생명으로 채워진다. 모든 게 탄생이고 소리이다- 긍정, 명확성, 힘, 부정, 파괴, 죽음- 동사는 모든 힘을 얻어 그 우아함의 강렬한 긴장 속에서 실존을 본질과 혼합한다.   인간의 말, 음절, 퍼지는 빛의 측면과 순은세공, 피의 전언을 받아들이는 물려받은 술잔- 여기서 침묵은 인간의 말의 온전함과 함께한다, 인간에게, 말하지 않는 건 죽는 것이니- 언어는 머리카락에까지 미치며, 입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고, 문득, 눈은 말이다.   나는 말을 취해서 그걸 내 감각들을 통해 보낸다 마치 그게 인간의 형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그것의 배열은 경외감을 느끼게 하고 나는 말해진 말의 울림을 통해 나의 길을 찾는다- 나는 말하고 그리고 나는 존재하며 또한, 말없이, 말들의 침묵 자체의 가장자리를 가로지르며 접근한다.   나는 한마디 말이나 빛나는 잔을 들어올리며 말과 건배한다; 나는 거기 들어 있는 언어의 순수한 포도주나 마르지 않는 물을 마신다, 말의 모성적 원천을, 그리고 컵과 물과 와인은 내 노래를 솟아오르게 한다 왜냐하면 동사는 원천이며 생생한 생명이므로-그건 피이다 그 참뜻을 표현하는 피, 그리하여 스스로 뻗어나가는. 말은 잔에 잔다움을, 피에 피다움을, 그리고 생명에 생명다움을 준다.       파블로 네루다/ 1904년 남칠레 국경 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때 '스무 편의 사랑과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간하여 남미 전역에서 사랑을 받았고, 스물세 살 때 극동 주재 영사를 맡은 이후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의 영사를 지냈다.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이 일어나자 파리에서 스페인인들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돕는 등 정치활동을 했으며, 칠레 공산당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곤살레스 비델라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자 망명길에 올랐다가, 귀국 후 아옌데정권이 들어서면서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에 임명되었다. 1973년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 의 원 이름은,ㅡ  네루다 Pablo Neruda 본명은 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 1904. 7. 12 칠레 파랄~1973. 9. 23 산티아고. 칠레의 시인·외교관·마르크스주의자. 1971년 노벨 문학상, 1953년 레닌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철도노동자인 아버지 호세 델 카르멘 레예스와 어머니 로사 바소알토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죽었으며, 2년 뒤 가족은 남부의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테무코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재혼했으며, 네루다는 계모를 친어머니처럼 사랑하였다. 뒤에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여 "조국의 개척지인 '머나먼 서부'에서 나는 삶과 대지, 시, 비 속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그는 1910년 테무코 남자국민학교에 들어가 1920년 중등과정을 마쳤다. 1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일부는 나중에 학생잡지에 실렸으며 처음에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고 가명을 썼다. 1920년부터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으며, 1946년에는 법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12세 때 칠레의 저명한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을 만나 위대한 고전작가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이들은 그가 진로를 선택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투적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한 탁월한 이론가 장 그라브의 저서를 번역했다.   1921년 테무코를 떠나 수도인 산티아고로 갔다. 현실적인 목표는 사범대학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는 것이었지만, 공부보다는 시를 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방 출신의 이 낭만적인 학생은 어깨에 시인의 망토(아버지가 쓰던 철도노동자 망토)를 두르고 챙 넓은 솜브레로 모자를 쓴 차림으로 칠레 수도의 문학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그해 10월 〈제가(祭歌) La canción de la 〉라는 시로 칠레 학생연맹이 주최한 백일장에서 1등상을 탔으며, 이 연맹이 펴내는 잡지 〈클라리다드 Claridad〉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3년 갖고 있던 가구와 아버지에게 받은 시계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처녀시집 〈황혼의 노래 Crepusculario〉를 출판했다. 이듬해에는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업자를 만나 〈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ón deseperada〉(1924)를 냈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읽혔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성공을 거두었고, 그뒤로도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네루다는 그토록 고통스럽게 쓴 이 시들이 새 시대의 연인들에게 위안을 주었다는 사실에 놀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기적에 의해서, 이 고통스럽게 씌어진 책은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에 이르는 길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이미 20세에 2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던 네루다는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불문학 공부를 그만두고 시에만 몰두해 〈조물주의 시도 Tentativa del hombre infinito〉, 토마스 라고와 함께 쓴 〈반지 Anillos〉ㆍ〈고무줄새총에 미친 사람 El hondero entusiasta〉을 발표했다.   네루다는 1927년 버마 랑군 주재 명예영사로 임명받아 그뒤 5년 동안 아시아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 랑군에서 콜롬보·실론·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자바·싱가포르로 옮겨다녔으며, 자바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마리아 하게나르와 첫 결혼을 했다. 캘커타에서 열린 '범힌두인 회의'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행들을 회고하는 책들은 감동적이지만 때로는 가슴아픈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당시 그의 생활은 외로웠으며, 버마 처녀 조시 블리스와의 연애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대지에 살다 Residencia en la tierra〉를 쓴 것은 남아시아에서 지낸 이 무렵이었다. 193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칠레 영사로 발령받았으며, 그곳에서 당시 그 도시를 방문중이던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친구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바르셀로나로, 그뒤에는 마드리드로 전출되어 그곳에서 델리아 델 카릴과 재혼했다.   칠레의 문단에 충격을 주었던 것처럼, 유럽 문학계에도 그의 시는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빠른 속도로 알려졌다. 스페인 시인들은 스페인의 대표적 지성인들이 서명한 〈파블로 네루다에게 바침 Homenaje a Pablo Neruda〉을 출간하여 그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시인으로서 발전을 거듭하던 이 시기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 터짐으로써 중단되었다. 친구 가르시아 로르카의 처형과 미겔 에르난데스의 투옥을 비롯한 '거리의 유혈사태'는 이 칠레 시인의 정치적 태도를 성숙시켰다. 뒷날 "세계는 변했고 나의 시도 변했다. 시구 위에 떨어지는 피 한 방울은 그 속에서 숨쉬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가슴 속의 스페인 España en el corazón〉은 내전중 공화군 전선에서 출판되었다.   그는 1938년 스페인 망명객들을 이끌고 칠레로 돌아왔으나 칠레 정부는 곧 그를 멕시코로 보냈다. 이곳에서 왕성한 창작기에 접어들었으며, 이때 쓴 시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과 특히 독일군의 맹공격에 맞서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려는 영웅적 활약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이당시 멕시코의 벽화도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1943년 태평양 연안의 모든 나라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배를 타고 칠레로 돌아왔다. 1945년 상원의원으로 뽑혔고 3년 동안 조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문학에 바쳤던 것만큼이나 많은 열정을 바쳤다. 그러나 칠레에 우익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활동은 끝나게 되었다. 공산주의자인 네루다는 다른 좌익 인사들과 함께 몸을 숨겨야만 했다. 숨어 살던 이 시기는 작품을 쓰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시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쓴 가장 위대한 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모든 이를 위한 노래 Canto general〉가 탄생했다. 그는 1948년 2월 칠레를 떠나 말을 타고 안데스 산맥 남부를 가로질러 4월에 파리에서 열린 평화지지자회의에 참가했다. 또 1949년에는 알렉산드르 푸슈킨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했다. 그뒤 유럽의 다른 지역을 돌아보고 다시 멕시코를 방문했다. 1952년 좌익작가와 정치인에 대한 검거령이 철회되자 칠레로 돌아왔으며 칠레 출신의 마틸데 우루티아와 3번째로 결혼했다.   그는 계속 태평양 연안의 이슬라네그라에서 살았지만, 1960년 쿠바, 1966년 미국 방문을 비롯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그의 시는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산티아고의 산크리스토발 언덕 기슭에 '라차스코나'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발파라이소에도 '라세바스티아나'라는 집을 지었다. 이 집들은 그가 여행하면서 모은 배의 선수상(船首像)과 그밖의 갖가지 기념물을 진열한 심미적 분위기로 이름난 명소가 되었다.   본질적으로 네루다의 시는 인간이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끊임없는 변화를 대변한다. 젊은 시절에는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작품인 〈황혼의 노래〉와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를 썼으며 뒤이어 좀더 영적인 작품 〈조물주의 시도〉·〈고무줄새총에 미친 사람〉을 쓰게 되었다. 외부세계와 이러한 세계가 주는 창조적 자극에서 내적 자아의 영역으로 침잠하게 되면서 독보적이고 신비로운 작품 〈대지에 살다〉가 탄생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시형식에서 벗어나 '네루디스모'(nerudismo)라는 매우 개성적인 시적 기법을 창조해냈다. 그가 스페인 내전 기간에 쓴 시들은 더 사실성이 강하고 외부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더 많이 깨닫게 되었음을 나타내준다. 이러한 현실지향적이며 고발조의 시에 이어 장엄한 서사시 〈모든 이를 위한 노래〉가 나왔다. 그러나 이 웅장한 문체는 곧 사라지고 좀더 단순한 주제를 다룬 사회비평시가 등장하게 된다.   그의 주제와 기교의 다양함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했다. 〈100편의 사랑 노래 Cien sonetos de amor〉에서는 사랑이, 〈Estravagario〉에서는 해학이 다시 주제로 다루어졌으며, 〈이슬라 네그라의 회고록 Memorial de Isla Negra〉은 향수 어린 자서전이다. 네루다는 "나는 장대한 연작시를 계속해서 써나갈 계획이다. 왜냐하면 이 시는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의 말로써만 끝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으며, 실제로 그 마지막 순간은 1973년 9월에 왔다.    답변추천해요0 네루다 Pablo Neruda 본명은 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 1904. 7. 12 칠레 파랄~1973. 9. 23 산티아고. 칠레의 시인·외교관·마르크스주의자. 1971년 노벨 문학상, 1953년 레닌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철도노동자인 아버지 호세 델 카르멘 레예스와 어머니 로사 바소알토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죽었으며, 2년 뒤 가족은 남부의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테무코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재혼했으며, 네루다는 계모를 친어머니처럼 사랑하였다. 뒤에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여 "조국의 개척지인 '머나먼 서부'에서 나는 삶과 대지, 시, 비 속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그는 1910년 테무코 남자국민학교에 들어가 1920년 중등과정을 마쳤다. 1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일부는 나중에 학생잡지에 실렸으며 처음에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고 가명을 썼다. 1920년부터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으며, 1946년에는 법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12세 때 칠레의 저명한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을 만나 위대한 고전작가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이들은 그가 진로를 선택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투적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한 탁월한 이론가 장 그라브의 저서를 번역했다.   1921년 테무코를 떠나 수도인 산티아고로 갔다. 현실적인 목표는 사범대학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는 것이었지만, 공부보다는 시를 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방 출신의 이 낭만적인 학생은 어깨에 시인의 망토(아버지가 쓰던 철도노동자 망토)를 두르고 챙 넓은 솜브레로 모자를 쓴 차림으로 칠레 수도의 문학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그해 10월 〈제가(祭歌) La canción de la fieta〉라는 시로 칠레 학생연맹이 주최한 백일장에서 1등상을 탔으며, 이 연맹이 펴내는 잡지 〈클라리다드 Claridad〉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3년 갖고 있던 가구와 아버지에게 받은 시계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처녀시집 〈황혼의 노래 Crepusculario〉를 출판했다. 이듬해에는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업자를 만나 〈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ón deseperada〉(1924)를 냈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읽혔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성공을 거두었고, 그뒤로도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네루다는 그토록 고통스럽게 쓴 이 시들이 새 시대의 연인들에게 위안을 주었다는 사실에 놀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기적에 의해서, 이 고통스럽게 씌어진 책은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에 이르는 길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이미 20세에 2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던 네루다는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불문학 공부를 그만두고 시에만 몰두해 〈조물주의 시도 Tentativa del hombre infinito〉, 토마스 라고와 함께 쓴 〈반지 Anillos〉ㆍ〈고무줄새총에 미친 사람 El hondero entusiasta〉을 발표했다.   네루다는 1927년 버마 랑군 주재 명예영사로 임명받아 그뒤 5년 동안 아시아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 랑군에서 콜롬보·실론·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자바·싱가포르로 옮겨다녔으며, 자바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마리아 하게나르와 첫 결혼을 했다. 캘커타에서 열린 '범힌두인 회의'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행들을 회고하는 책들은 감동적이지만 때로는 가슴아픈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당시 그의 생활은 외로웠으며, 버마 처녀 조시 블리스와의 연애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대지에 살다 Residencia en la tierra〉를 쓴 것은 남아시아에서 지낸 이 무렵이었다. 193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칠레 영사로 발령받았으며, 그곳에서 당시 그 도시를 방문중이던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친구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바르셀로나로, 그뒤에는 마드리드로 전출되어 그곳에서 델리아 델 카릴과 재혼했다.   칠레의 문단에 충격을 주었던 것처럼, 유럽 문학계에도 그의 시는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빠른 속도로 알려졌다. 스페인 시인들은 스페인의 대표적 지성인들이 서명한 〈파블로 네루다에게 바침 Homenaje a Pablo Neruda〉을 출간하여 그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시인으로서 발전을 거듭하던 이 시기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 터짐으로써 중단되었다. 친구 가르시아 로르카의 처형과 미겔 에르난데스의 투옥을 비롯한 '거리의 유혈사태'는 이 칠레 시인의 정치적 태도를 성숙시켰다. 뒷날 "세계는 변했고 나의 시도 변했다. 시구 위에 떨어지는 피 한 방울은 그 속에서 숨쉬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가슴 속의 스페인 España en el corazón〉은 내전중 공화군 전선에서 출판되었다.   그는 1938년 스페인 망명객들을 이끌고 칠레로 돌아왔으나 칠레 정부는 곧 그를 멕시코로 보냈다. 이곳에서 왕성한 창작기에 접어들었으며, 이때 쓴 시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과 특히 독일군의 맹공격에 맞서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려는 영웅적 활약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이당시 멕시코의 벽화도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1943년 태평양 연안의 모든 나라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배를 타고 칠레로 돌아왔다. 1945년 상원의원으로 뽑혔고 3년 동안 조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문학에 바쳤던 것만큼이나 많은 열정을 바쳤다. 그러나 칠레에 우익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활동은 끝나게 되었다. 공산주의자인 네루다는 다른 좌익 인사들과 함께 몸을 숨겨야만 했다. 숨어 살던 이 시기는 작품을 쓰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시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쓴 가장 위대한 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모든 이를 위한 노래 Canto general〉가 탄생했다. 그는 1948년 2월 칠레를 떠나 말을 타고 안데스 산맥 남부를 가로질러 4월에 파리에서 열린 평화지지자회의에 참가했다. 또 1949년에는 알렉산드르 푸슈킨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했다. 그뒤 유럽의 다른 지역을 돌아보고 다시 멕시코를 방문했다. 1952년 좌익작가와 정치인에 대한 검거령이 철회되자 칠레로 돌아왔으며 칠레 출신의 마틸데 우루티아와 3번째로 결혼했다.   그는 계속 태평양 연안의 이슬라네그라에서 살았지만, 1960년 쿠바, 1966년 미국 방문을 비롯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그의 시는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산티아고의 산크리스토발 언덕 기슭에 '라차스코나'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발파라이소에도 '라세바스티아나'라는 집을 지었다. 이 집들은 그가 여행하면서 모은 배의 선수상(船首像)과 그밖의 갖가지 기념물을 진열한 심미적 분위기로 이름난 명소가 되었다.   본질적으로 네루다의 시는 인간이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끊임없는 변화를 대변한다. 젊은 시절에는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작품인 〈황혼의 노래〉와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를 썼으며 뒤이어 좀더 영적인 작품 〈조물주의 시도〉·〈고무줄새총에 미친 사람〉을 쓰게 되었다. 외부세계와 이러한 세계가 주는 창조적 자극에서 내적 자아의 영역으로 침잠하게 되면서 독보적이고 신비로운 작품 〈대지에 살다〉가 탄생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시형식에서 벗어나 '네루디스모'(nerudismo)라는 매우 개성적인 시적 기법을 창조해냈다. 그가 스페인 내전 기간에 쓴 시들은 더 사실성이 강하고 외부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더 많이 깨닫게 되었음을 나타내준다. 이러한 현실지향적이며 고발조의 시에 이어 장엄한 서사시 〈모든 이를 위한 노래〉가 나왔다. 그러나 이 웅장한 문체는 곧 사라지고 좀더 단순한 주제를 다룬 사회비평시가 등장하게 된다.   그의 주제와 기교의 다양함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했다. 〈100편의 사랑 노래 Cien sonetos de amor〉에서는 사랑이, 〈Estravagario〉에서는 해학이 다시 주제로 다루어졌으며, 〈이슬라 네그라의 회고록 Memorial de Isla Negra〉은 향수 어린 자서전이다. 네루다는 "나는 장대한 연작시를 계속해서 써나갈 계획이다. 왜냐하면 이 시는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의 말로써만 끝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으며, 실제로 그 마지막 순간은 1973년 9월에 왔다.    
386    '2016, 각 신문사 신춘문예 詩調 당선작 모음 댓글:  조회:3805  추천:0  2016-01-21
  [201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이중원   파란 잉크 주식회사                                            이 중 원     새초롬한 잎사귀에 햇살이 내리쬐어도   버스가 남기고 간 잿빛의 연기만이   망막에 재고가 남은 유일한 색채일까     발 아래 선이 있고 내 뒤로 줄이 있다   느려지는 발자국을 억지로 잡아끌어   통근의 컨베이어에 실려가는 유리병     모래알 흐르듯이 부서지는 빛줄기가   정류장 팻말 옆의 풀 허리에 한껏 고여   메마른 마개 틈새에 떨어지는 오전 10시     빵, 하는 경적음에 뜬 눈이 부시도록   생생하게 흔들리는 푸릇한 잡초들만,   염가에 세일 중인 창공, 한없이 싱그럽다       [시조 당선소감] 나만의 빛의 온도로이 길의 끝까지…   싸늘하게 입김마저 얼 것 같은 공기만큼이나 햇볕이 곱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날. 당선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가슴 벅찬 기쁨도 있었지만 ‘아, 이제 정말로 시작이구나’… 글을 쓰는 손 위에 좀 더 무겁게 실리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오래전에 꺼져버린 것 같은 마음속의 불을 다시 지펴주신 아버지, 그리고 언제나 격려 어린 말과 함께 객관적 태도로 작품을 읽어주시는 어머니와 형님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건축학적 접근과 관련하여 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르쳐주신 이승훈 교수님, 어려운 순간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시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챙겨주신 유성호 교수님, 금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남규형, 그리고 미력한 습작에도 분에 넘치는 격려를 보내주신 오세영, 윤금초, 홍성란, 박형준 선생님께도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작가란, 그리고 시인이란 아마도 자신만의 빛으로 온갖 온도의 현실을 표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저 자신이 그것을 앞으로 얼마나 더 잘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것을 좀 더 철저하게 고민하는 것부터가 저의 첫걸음이리라 생각합니다. 이 길의 끝까지,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1986년 서울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입학 ―제4회 님의 침묵 전국 백일장 차상         [시조 부문 심사평] 정형 구조 넓힐 신인… 더 놀라운 '파란' 기대돼   오래된 형식으로 어떻게 오늘의 시를 열어갈까. 기대와 설렘으로 거듭 읽었다. 시조에 입혀온 선입견이나 관념적 답습에 그친 낡은 모사(模寫)와, 작년 응모작을 살짝 고쳐 낸 것들부터 내려놓았다. 새로움을 향한 도전으로 께름한 데다 습작의 양이 등단 후 생존에도 큰 바탕이기 때문이다.   당선작으로 이중원씨의 ‘파란 잉크 주식회사’를 올린다. 끝까지 겨룬 응모자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대상을 파고드는 시선이 예각적인 조우리씨, 참신한 어법으로 진술과 이미지의 명도를 높인 김상규씨였다. 서정적 여운을 형식의 미덕으로 삼을 줄 아는 정영희씨, 재기로 정형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 조선의씨도 다시 읽게 했다. 서희정·이태수·이예연씨 등 이십 대가 펼쳐낸 상상력과 발랄한 문법에서도 새로운 시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중원씨의 독창적 세계 개진은 그중 단연 돋보였다. ‘파란 잉크 주식회사’는 언어에 촉수를 달고 탐사하듯 세밀한 감각의 깊이로 잡아 엮는 묘사와 진술이 긴밀한 조화가 압권이다. 현실의 다면을 꿰는 독법으로 발생시키는 낯선 미감의 어조 속에 유지하는 정형성도 견고하다. 제목 ‘파란’이 촉발하는 원인에 대한 다양한 상상 또한 작품 전편에 이상한 생기와 냉기를 부여한다. 지면 사정상 미룬 ‘열두 개의 계단’은 긴 분량(12편 33수)임에도 매 편 다른 발성과 기법으로 시적 역량의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응모작(총 9편 58수)마다 색다른 어법과 고른 수준과 능숙한 형식 운용 등으로 미루어볼 때, 정형 구조를 확장할 신인 탄생으로 기대된다.   당선을 축하한다. 더 놀라운 ‘파란’을 열어가기 바란다. 정수자(시조시인)       [2016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김광희     바다가 끓이는 아침                                       김광희       냄비 속 두부 비집고 순하게 누운 청어   여태껏 제 살 찌른 가시들 다독여서   들끓는 파도소리로 어린 잠을 깨운다     물 얕은 연안에도 격랑이 일었던지   거친 물살 버티느라 활처럼 등이 굽은   어머니 갈빗대마다 소금눈물 가득 찼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대양을 꿈꿨던지   시퍼런 등줄기가 심해를 닮아 있는,   몸속의 수평선 꺼내 끓여내는 아침바다     신춘문예-시조 당선 소감 /“시조의 세계가 궁금…이제 용기내 파헤쳐볼 것” 어릴 적 제가 살던 집은 북명사라는 절터에 지은 집이었습니다. 그 집의 부엌 살강 밑의 바닥이 망치나 괭이로 두들기면 흙이 튀어 오르고 속이 비어 있는 것처럼 북소리가 났습니다. 늘 궁금했지만 차마 그 바닥을 괭이로 파 보지는 못했습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 집을 떠나온 후 아직까지도 그 부엌 바닥이 궁금합니다.    그 부엌 바닥처럼 문학의 세계, 시조의 세계가 궁금합니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캐고 파헤쳐서 그 궁금증을 내 손으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정해 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고 뒤만 따라다녀도 내 자국에 빠져 허둥거렸습니다. 이제는 내 이야기도 해보려 합니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찾는 것을 향하여 길을 나서겠습니다.    아버님의 제사장을 보는 중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절로 고기도 더 큰 것이 사졌습니다. 묵직한 장바구니가 무겁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부담스러웠던 제사가 즐거웠습니다. 늘 소심했던 제 자신에게 칭찬도 좀 해 주고 잘 지내자고 악수를 하고 싶습니다. 시간을 내어 어릴 적에 살았던 그 집을 찾아가 보아야겠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면 환하게 웃어줄 분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에 감사드리며 땀 흘리는 농민을 위해 더욱 발전하는 신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광희 ▲1957년 경북 경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200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13년 경주문학상 수상 ▲시in 동인, 이목회 회원       신춘문예-시조 심사평 /“평범한 생활시조의 상상력과 개성적 접근 주목”     농민신문사가 시조를 통해서 민족 고유의 시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까닭은 농심의 현재적 관찰과 미래지향적 가치 질서를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러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주제나 소재가 시조의 작품성에 우선할 수는 없었다.    예심 없이 두 심사위원이 골라와 최종적으로 거론된 ‘하늘공원, 슈퍼문 뜨다’ ‘소금이 온다’ ‘바다가 끓이는 아침’ 세 편은 각기 다른 개성과 장점을 지니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하늘공원, 슈퍼문 뜨다’는 상상력을 통해 역사적 비의(悲意)를 부각하여 호감이 갔으나 표현에 치중하느라 전달력을 잃어버려 배제되었다. ‘소금이 온다’는 아버지가 한평생을 바친 염전에서의 명상적 접근은 좋았으나 삶의 의미와 소금의 가치 사이에서 선택을 놓쳐 공감대를 약화시켜 흠결로 지적됐다.    마지막으로 남은 ‘바다가 끓이는 아침’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청어찌개를 끓이는 평범한 생활 소재를 통해서 힘겹게 살아온 어머니를 발견하는 상상력과 셋째 수 종장의 ‘몸속의 수평선 꺼내 끓여내는 아침바다’의 힘을 확보하는 사유의 깊이에 박수를 주기로 한 것이다. 지나친 정보의 홍수 속에 획일화되고 서로 닮아버린 시조의 현실에서 체험적 생활시조의 또 다른 개성적 접근은 시조의 문을 넓혀 줄 것이란 관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한분순 시조시인 민병도 시조시인           [2016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조경선   옆구리 증후군                                 조경선     손가락을 때렸다 매일 하는 일인데   못은 이미 달아나고 의자는 미완성인데   날아 온 생각 때문에 한눈팔고 말았다     상처 많은 나무로 사연 하나 맞추어 간다   원목의자만 고집하는 팔순의 아버지에게   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어머니 보내고 생의 척추 무너진 후   기우뚱 옆구리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낯익은 것 사라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   최초의 의자는 흔해빠진 2인용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     ◆당선 소감   나무를 다듬는 일이 요즘은 두려워집니다. 끌로 모서리를 쳐내고 죽은 참죽나무의 변죽을 다듬어 봅니다. 외풍을 견디느라 거칠어지고 휘어진 것이 눈앞에 있습니다. 한참을 깎아 내고 다듬다 보면 벗겨져 나간 껍질들이 내 손의 흐름을 지켜보며 재탄생의 떨림으로 다가옵니다. 그럴 때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공방에서 일을 하다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시조를 쓰면서 수년간 다루어왔던 나무의 속을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글 쓰는 방법을 처음으로 열어 주신 장석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바쁜 시간에도 끊임없이 가르침을 준 하린 시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정진하라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매일신문사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가족들과 오랫동안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심사평   어릴 적부터 한글을 익힌 사람이 일평생을 이 땅에 살면서 시조 한 편 써 본 일이 없이 자신의 삶을 끝맺는다면 그는 어떤 의미에서‘직무유기를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조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볼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가 물려준 정신적 문화유산 가운데 그만큼 시조는 값어치가 있다. 이 사실은 시조를 한 두 편이라도 써 보게 되면 곧 알 수 있는 일이다. 시조는 일정한 형식으로 말미암아 자칫 딱딱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율격을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율격에 매일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 까닭에 오랜 절차탁마가 필요하다. 많은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공통점은 정형률을 잘 숙지하고 있지만, 그 그릇 안에 새로운 것을 담는 일에 미숙하다는 점이다. 즉 안간힘을 다한 흔적은 역력하나 맛을 내는 일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시조의 종장 몇 군데만 살펴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당선작 조경선 씨의 '옆구리 증후군'은 연로한 아버지를 위해 원목의자를 만드는 과정을 노래하면서 넌지시 삶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역작이다. 일상의 삶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끈끈한 가족애를 실감실정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라는 대목들이 주는 울림이 크다. 남다른 직조능력에서 얻은 표현들이다. 이처럼 일상을 소재로 하되 일상적이지 않다. 새로움이 있다. 수많은 응모작들 중에 단연 돋보인다. 다른 목소리의 출현이다. 같이 보내온 '얼음 발자국'과 '장작'도 참신했다. 신선한 시각과 개성적인 언어 운용이 묘하게 맞물려서 새로운 미학적 발화를 보인다. 끝까지 남은 이들로는 김수환, 이희영, 이윤휸, 김경연 제씨 등이었다. 이들도 나름대로 공정을 오래 쌓은 것이 엿보였지만 당선작에는 다소 못 미쳤다. 당선된 이의 대성을 기원하며, 시조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줄기찬 분발을 빈다.   심사위원 : 이정환`시조시인             [2016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최정연   물의 독서                              최정연   물 아래 달을 봐라 콸콸한 문장이네 몇 개의 모음들이 괄호 밖에 흘러넘쳐 지금은 은어가 오는 시간, 달빛공지 띄우라네   산란하는 조약돌도 물 소리 헤이는 밤 오십천 수면 아래 무슨 등불 켜두어서 뜨거운 이마 짚으며 다상량의 달을 보나   수심 찬 질문들이 부서지고 또 고여서 물결 책 갈피마다 각주로 박혀있네 내 몸도 출렁, 불려나와 행간의 밑줄 될까   [2016 신춘문예] 시조 - 최정연 씨 당선 소감 / 이제는 나만의 색깔로 물들이고 싶어   마음이 산만해져 어둑해진 바닷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또 잃었다. 잿빛 하늘이 바다에 닿아 출렁이는 돌담 사이를 기웃거릴 때까지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는 사람 하나를 그리워했다.  하늘 거긴 어때? 여긴 좋아. 마음 쓸쓸해지는 그런 저녁에 날아온 소식은 떠난 이가 보내 준 애틋한 선물 같기도, 오래 게으른 자에게 당신이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느냐고 묻는 서러운 질문 같기도 했다. 잠시 울컥했지만, 저 겨울나무처럼 초연하기로 하자. 그동안 새겨놓은 내 발자국은 지워지고 없거나 삐뚤삐뚤한 모양새다. 부끄럽다. 어린 시절 추억 속에는 늘 시가 있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사소함 속에도 시는 조용히 함께하지만, 너무 오래 돌보지 않은 그것은 녹슨 피리나 다름없다. 칭얼대고 흐느끼는 그들을 끝끝내 버리질 못하고 살았다. 이제는 나를 갱신해야 할까. 스스로 깊어지는 힘으로 가장 정직한 나만의 색깔로 자신을 물들여 보고 싶기도 하다. 먼 길 돌아서 오는 사람에게 새로운 꽃 피우도록 지면을 허락해주신 국제신문과 모국어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보라 다독여주신 심사위원 전연희 서태수 선생님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겸손한 자세로 오래 보답하겠습니다. 오래전 한 그루 나무로 그 숲이 되고 산이 되신 모교의 스승 오규원 선생님! '자네가 그것이 시라면 시가 맞네'라며 빙그레 웃으시던 그 미소가 그립습니다. 다정한 벗님들, 함께 가자며 내내 손잡아 주시는 영덕문협 회장님께도 넙죽 인사 올립니다. 어두운 밤길에 나를 바른길로 돌아오게 해주는 내 살 같은 가족, 그리고 자식을 하늘로 먼저 보내고 힘든 시간을 홀로 지키고 계시는 친정어머니, 아프도록 사랑합니다. ▶약력=1968년 경남 거창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제1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 부문 '정열식물원' 금상 수상(2015년). 현재 경북 영덕에 살며 논술글짓기 강사로 활동.       [2016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 신선한 패기와 성장 가능성에 방점   98명 361편의 응모작을 두고 우선 심사위원의 자의성을 최소화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준거를 마련했다. 예심에서는 시조 형식과 문학 미학의 보편적 속성을 기준으로 많은 작품을 배제하고 10여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본심 기준을 세분화하여 '1. 율격 운용의 자질 2. 제재 해석의 참신성 3. 시상의 심화 확장성 4. 정서 전달의 효율성'을 준거로 삼았다. 본심에서는 동일인의 다른 응모작의 균등한 수준 유지 여부도 참고하면서 거듭 논의를 거쳐 여섯 편을 선정하고, 다시 논의 끝에 '곶감, 먼 길 뜨다' '쉬어가라, 쉬어가라' '횡단보도'를 내려놓았다. 최종으로 최정연의 '물의 독서', 나동광의 '낚시', 백윤석의 '돌도끼 리모컨' 세 편 작품의 장단점에 대한 세밀한 검토를 거듭하였다. '돌도끼 리모컨'은 마지막 수인 셋째 수가 시상 확장, 상징성에서 결정적인 아쉬움을 남겼다. 나머지 두 작품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낚시'는 원숙미가 돋보이는 흠결 없는 완제품 같이 다듬어졌지만, 그것이 오히려 신선함을 떨어뜨렸다. '물의 독서'는 발랄한 위험성이 있지만, 생동감 넘치는 신선미가 돋보였다. 심사위원들은 신춘문예 공모의 전통적 취지를 살리고, 아울러 시조단에 청량감 전파를 위해 작품의 완성도를 우선하기보다 신선한 패기와 성장 가능성에 방점을 찍기로 하였다. 특히 당선작 '물의 독서'는 찰랑이는 시어로 이미지를 다양화하고 있다. 시조의 보법을 경쾌하게 운용하는 능숙함, 행갈이와 쉼표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담고자 하는 섬세함을 함께 지녔다. 다만, 최정연 씨 작품들은 자유분방함으로 인하여 시조가 지닌 형식적 미감이 오히려 넘치는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작가의 의도적 장치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발전할 시조 창작의 소양이 될 것이라는 점에 심사위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    심사위원 전연희 서태수 시조시인         [2016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정지윤   날,세우다                            정지윤     동대문 원단상가 등이 굽은 노인 하나   햇살의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숫돌에 무뎌진 가위를 정성껏 갈고 있다     지난밤 팔지 못한 상자들 틈새에서 쓱쓱쓱 시퍼렇게 날이 서는 쇳소리 겨냥한 날의 반사가 주름진 눈을 찌른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눈초리를 자르고  무뎌진 시간들을 자르는 가위의 날 노인의 빠진 앞니가 조금씩 닳아간다   늘어진 얼굴에서 힘차게 외쳐대는 어허라 가위야, 골목이 팽팽해지고 칼칼한 쇳소리들이 아침을 자른다     잘 쓴 시보다 울림이 있게… 시 오는 문 열어두겠습니다     시조의 멋과 맛에 끌려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혼자서 시조를 쓰면서 막막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없는 숲에서 노래하는 새처럼 자유로웠다. 외로웠으나 충만했다. 오래전 나를 떠난 말들이 수많은 것을 스쳐 내게로 온다. 아픔은 늘 길들여지지 않은 채 달려온다. 슬픔을 잃는 것은 사랑을 잃는 것. 살아 있는 시를 쓰기 위해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더 많이 아파해야 할 것이다. 두렵고도 가슴 벅찬 당선, 이제 시작이다. 잘 쓴 시보다는 울림이 있는 시, 세계에 대한 고민과 아픔이 녹아 있는 시를 쓰기 위해 치열하게 갈고닦으며 정진할 것이다. 나의 기준과 경계를 넘어야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늘 시가 오는 문을 열어 두고 기다릴 것이다. 혹한의 추위보다 사람들 사이에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더 춥고 서글프다. 모두가 힘들다고, 어렵다고 몸을 움츠릴 때 멀리서 매화가 한 뼘 부풀어 오른다. 사랑하는 가족들, 문학의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모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에 용기를 주신 동아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2015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심사평]시조  ▼고된 삶에서 찾은 건강한 희망… 상투성 벗고 미학적 도전 주목▼      신춘문예 투고작을 심사하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하는 기도는 언제나 같다. 젊고 새로운 작품이 있기를, 날카로운 도전의 미학이 있기를, 기성에 물들지 않은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기를, 그리고 시조의 경우 하나 덧붙여서, 정해진 음보(마디)를 자신의 가락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노래가 있기를 빈다. 올해도 이 기도에 응답해주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울돌목에서’ ‘하피첩을 읽다’ ‘금빛 자오선’ ‘거미’ ‘응웬씨의 저녁’ ‘날, 세우다’ 등이 그랬다. ‘울돌목에서’와 ‘하피첩을 읽다’는 역사적 소재를 시화한 작품으로 시대의식을 반추하고 촉구하는 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큰 울림과 개성이 부족해 보였다. 오늘의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금빛 자오선’의 경우, 시조의 사명을 자각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보지만 인식의 깊이나 시문장의 묘미를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거미’와 ‘응웬씨의 저녁’은 노동자의 삶을 다룬 체험 위주의 작품들로 삶에 대한 섬세한 관찰에는 성공적이지만 이 시조를 쓴 시인들의 상상력의 깊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우리 선자들은 ‘날, 세우다’를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어렵지 않게 합의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삶의 현장을 노래하되, 고된 삶의 값싼 비애나 연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는 건강한 희망을 보여주었다.   ‘눈초리를 자르고’, ‘시간을 자르’고 ‘아침을 자르’는 가위의 변용 이미지를 통해 자칫 상투적인 내용을 지루하게 끌고 가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우리 시조의 지평을 확장시킬 미학적 도전 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건강한 삶의 자세, 날카로운 시선, 그만이 지닌 감수성과 시적 화법은 이 신인을 믿는 선자들의 희망의 근거다. 대성을 빈다.   이근배·이우걸 시조시인        [2016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백윤석   문장부호, 느루 찍다2                                         백 윤 석   점 하나 못 챙긴 채 빈 공간에 갇히는 날 말없음표 끌어다가 어질머리 잠재우고 글 수렁 헤쳐 나온다, 바람 한 점 낚고 싶어 발길 잡는 행간마다 율격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말의 지문 따옴표로 모셔다가 들레는 몇 몇 구절을 초장으로 앉혀야지 까짓것, 급할 게 뭐람 쌍무지개 뜨는 날엔 벼룻길 서성이는 달팽이도 불러들여 중장은 느림보 걸음, 쉼표 촘촘 찍어 보다 그래도 잘 익혀야지, 오기 울컥 치미는 날 뙤약볕 붉은 속내 꽉 움켜쥔 감꼭지로 밑줄 쫙! 종장 그 너머 느낌표를 찍을 터       [당선소감] / 꿈에서 조차 글 썼던 힘든 시간들의 보상인듯        꿈에서도 글을 썼습니다. 꿈속에서 쓴 글이 너무 좋아 잊지 않으려고 반복해서 외우다가 다 외웠다 싶어 눈을 뜨면 캄캄 절벽 같은 앞날…. 2000년부터 글을 썼으므로 햇수로 따지면 꽤 오랜 시간이지요. 신춘문예 최종심에 몇 차례 거론된 후 절필한지 5년. 늦게 떠났던 이민생활의 어려움이 다시 펜을 들게 했습니다. 작년 9월 부랴부랴 귀국해서 근 1년여를 잠을 아끼며 창작과 퇴고를 거듭했습니다. ‘이 힘들고 고된 길을 왜 내가 사서 가려 하는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을 사리물고 버텨내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시련 뒤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온다는 걸 몸소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행복합니다. 힘겨웠던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준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경상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 시조의 눈을 뜨게 해주신 윤금초 교수님, 한분순 선생님, 같이 공부한 열린시조학회 회원들, 그리고 배우식 회장님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부모의 이민에도 구김살 없이 훌륭하게 자라준 아들 세진과 딸 유진이와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가 걸음마의 시작입니다. 방심하지 않고 치열하게 우리의 가락을 노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1961년 서울 출생·건국대 경영학과 졸업 ●중앙시조백일장 4회 입상 ●현재 (주)예인건설산업 근무     [심사평-박기섭]‘느루 찍은’ 문장부호, 행간의 변화 이끌어     새해 벽두, 우리는 신생의 불씨를 안고 완고한 기성의 벽을 허무는 한 편의 득의작을 기대한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역사와 자연, 인간과 생명에 대한 다양한 성찰과 인식의 층위를 보여주었다. 정독 끝에 ‘다산, 화성에 오르다’(송태준), ‘김 발장을 뜨며’(김승재), ‘막그릇을 위한 안단테’(송정자), ‘구형왕릉’(임채주), ‘문장부호, 느루 찍다’(백윤석) 등을 가려냈다.   그 중에서 올해의 당선작은 ‘문장부호, 느루 찍다’다. 제목부터가 현대시조의 ‘현대성’을 강하게 부각하는 이 작품은 메타시의 성격이 짙다.   시조 3장의 속성을 적절한 비유와 적확한 표현으로 풀어내고 있다. 말없음표·따옴표·쉼표·느낌표 같은 문장부호를 제목 그대로 느루 찍음으로써 행간의 변화를 이끈다.   네 수의 결구를 각기 다르게 처리한 데서 보듯, 일상에 만연한 감성의 상투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창조의지가 충일하다. 이는 신춘문예에서 기대하는 분명한 미학의 개진을 보여주는 일이다.   또 한 사람의 시인을 맞는 기쁨이 크다. 시조의 묵정밭을 가는 보습이 된다는 각오로 정진해 주길 바란다.     박기섭 시인       [2016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김연희   봄눈                   김 연 희   사뭇,    그리운 이는    사뭇 그리운 채로     뚫린 허공에 낮달이라 걸어두고     홀로 핀 매화 가지에   난   분   분    눈이 오네       [2016 신춘문예-시조 당선 소감 김연희] "초심으로 '詩中有畵 畵中有詩' 길 찾아갈 것" 어두운 벽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달력을 못 박아 두고 싶은 12월! 마음 졸이던 몇 날이 초조히 흐르다 날아든 당선 소식에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과 그리고, 이내 밀려드는 중압감에 시조공부와 함께 시작된 박물관 산책길에 들어섭니다. 마지막 휴가 나오는 날 기쁜 소식을 안고 온 작은 아이와 기다리던 첫눈이 축복하듯 반겨주네요! 서예문인화 전공강의 시간마다 모암 윤양희 교수님께서 좋은 시를 선별하여 소개해 주시던 한편 한편들이 저를 시조의 길로 들어서게 했고, 그림을 그린 뒤 畵題를 쓰기 위해 시집과 한시를 찾아 읽으며 나의 그림에 내가 지은 시와 글씨와 전각으로 詩 書 畵 刻을 함께 이루고 싶다는 저의 수줍은 바람에 언제나 한결 같이 멘토가 되어주신 모암 선생님께 머리 조아려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공부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는지를 날마다 깨닫는 일입니다.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따뜻한 눈길과 느린 걸음으로 '詩中有畵, 畵中有詩'의 길을 찾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올려주신 심사위원님과 부산일보사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고, 많은 날들을 함께 해 온 또 함께 걸어 갈 문우들과 어려울 때마다 아낌없이 마음을 얹어주신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축하를 보내 온 많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에 빠져 소홀했던 가족들과 성탄의 달에 감사와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김연희/1959년 강원도 태백 출생. 계명대 서예학과 졸. 서예문인화작가 겸 방과후학교 서예강사           [2016 신춘문예-시·시조 심사평] '큐브'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 참신한 표현 돋보여 '봄눈' 가락의 묘미, 회화성,연가류의 애틋함 조화   올해 접수된 시작품은 2천 편에 가까웠다. 지난해보다 배 가까이 많게 투고됐다. 시의 저변 확대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이긴 하나 다르게 보면 올 한 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로 표현하고 싶으리만큼 힘들고 스산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상당수의 시가 생활고에 젖은 내용이거나, 늙음과 관련된 쓸쓸한 감정을 많이 배출하고 있어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어두운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음을 밝힌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주름의 집', '움파', '물의 건축설계도', '자연사박물관', '큐브' 등이다. 먼저 '주름의 집'은 삶의 쓸쓸함을 거미의 집에 빗대어 탁월하게 형상화한 점은 돋보였으나 삶의 문제를 너무 탐미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한계로 제기되었다. '움파'는 파의 움이 싹트는 자연적 현상의 의미를 잘 살려내었으나 표현의 신기성에 머물고 만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물의 건축설계도'는 삶의 외로움을 풍부한 감성과 사물의 참신한 형상으로 표현해내는 점이 눈길을 끌었으나 시대적 문제의식이 빈약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자연사박물관'은 뼈 이미지의 특성을 통해 삶의 쓸쓸한 이면을 독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점이 계속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붙잡았으나 너무 미학적으로 완성되어 있는 점이 신춘작품으로 뽑기에 주저케 하였다.   이에 비해 '큐브'는 작품 전체가 우리시대의 문제의식을 참신한 발상과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고, 무엇보다 투고된 다른 작품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전망에 대한 가능성이 풍부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제기되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큐브'를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당선자의 등단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시단의 빛나는 별이 되기를 바란다.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듯 한 편 한 편 작품을 읽어나갔다. 소재가 새로워졌다는 점, 형식을 모르는 응모자가 거의 없다는 점, 제목이 구어체로 달려 있어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우리 생활과 가까운 노래라서 시조의 현실의식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점 등이 선자를 기쁘게 했다. 그러나 특별한 개성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서정시로서 시조를 읽는 재미를 선사해주는 '벌초' '어머니의 틀니' '푸성귀 음표 피어나다' '가을 한토막' 등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당선작으로 밀기엔 조금씩 약점이 있었다. 지나치게 예스럽다거나 참신성이 부족하다거나 혹은 상이 너무 평이하고 제목과 내용이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있었다.   당선작으로 정한 '봄눈'은 달랐다. 응모한 4편이 두루 고를 뿐 아니라 넘치는 가락의 묘미와 회화성 그리고 연가류의 애틋함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시인의 안목과 능력은 우리 시조시단의 한 이채가 되리라 확신하며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오정환·이우걸·김경복         [2016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고혜영                    역광의 길   ※소감·심사평은 2016년 1월 1일자, 당선작은 1월 4일자부터 게재됩니다.     [시조 부문 당선소감]아이 위한 치유로 시작한 글쓰기 덕분   30여년 봉직했던 직장 퇴임 후, 계약직 첫 출근 날, 신문사가 당선소식을 알려왔다. 막내 아이의 독서 치유로 시작된 것이 글쓰기 치유로 이어지면서 우리 아이는 어느새 꽃과 별과 달과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어눌한 표현들이지만 아이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줄 만한 보석들이다. 나에게 글을 쓰게 한 것은 바로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승일이의 덕이었다.  아이의 눈높이로 단어를 이어가며, 단어 하나하나에 가락을 입혔다. 그렇게 시조는 내게로 왔고, 글쓰기야말로 가족에게는 슬픔을 이기는 약이었다. 직장, 사회활동, 가족 및 불편한 아이의 수발 등의 그 와중에 끼어든 글쓰기가 어느새 나의 중심에 자리 잡고 말았다. 시조라고 해서 과거형 노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부르는 노래의 한 형태라 배웠다. 이번 당선작 '역광의 길'은 순전히 일요일 아침 친정인 성산포 신양리로 향하는 동부산업도로가 선사한 초딩 수준의 가을 수채화인 셈이다. 미흡한 제 글로 문단 말석에 세워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우선 감사드린다. 시조가 젊어져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안고 시조쓰기에 골몰하는 우리 '젊은시조 문학회' 회원들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기억의 창고에서 아직도 유년의 감성을 꺼내 쓸 수 있도록 배경이 되어 준 나의 고향 신양리 바다와 올레길, 동네 그리고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시심을 품게 키워주신 부모님을 꼭 껴안아드려야겠다. 공직생활을 은퇴하고 멀리 캄보디아에서 공직의 경험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 남편께 사랑한다 전한다.  ▶약력 ▷1958년 제주 성산읍 신양 출생 ▷탐라대학교(현 국제대학교) 사회복지(석사) 졸 ▷전 NH농협은행 지점장 ▷젊은 시조문학회 회원.       [시조 심사평]'역광' 속의 의미 찾기   2016 한라일보 신춘문예가 사고를 쳤다. 지금까지 시와 소설만 공모해 오던 낯익은 풍경 대신, 시조부문을 신설하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한라일보가 신춘문예를 시행한지 사반세기 만의 일이다. 사실 신춘문예를 시행하는 전국의 거의 모든 일간지들이 그렇듯이 시, 소설과 더불어 시조를 공모하는 것이 대세다. 현대시조의 역사적, 문화적, 문학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면을 빌어 언급해야 하겠지만, 한라일보의 변화가 한국시조계에 던지는 희망은 크다.   그만큼 큰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작품을 읽었다. 공모 첫해임에도 불구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응모작의 숫자도 많았고, 작품의 질적 수준도 오랜 기다림에 값하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이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을 작품을 가리는 것은 결코 녹록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고심 끝에 '개밥바라기별'(조우리) '어느 아침'(장영심) '역광의 길'(고혜영) 등 세 편을 최종적으로 남겨두었다. 어느 작품을 선택해도 개성적 목소리로 시조에 현대적인 새 옷을 입혀줄 신인이 될 것이란 기대를 걸어도 좋을 작품들이었다. '개밥바리기별'은 신선하고 패기는 있었으나, 비유를 통한 참신한 이미지의 생성이 아쉬웠고,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다소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아침'은 물질로 쏠리는 현대인들의 심리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지만, 역시 시적 이미지 형성이 아쉽고, 신선미가 부족했다. 결국 '역광의 길'을 당선작으로 민다. 이 작품은 가을 숲의 나뭇가지들처럼 비움의 미학을 통해서 고단한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성찰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떠나갈 무렵 해서 제 속내 다 드러낸 길'에서 '빨간색 화살표 하나가 역광 속에 보인다'는 표현은 압권으로 시 전체에 탄력과 긴장감을 준다. 어쩌면 그 표현대로 시인의 길, 특히 신인의 길은 역광 속의 의미 찾기일 지도 모른다.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1호 당선자로서의 기대에 값해 주기를 바란다. 시인 오승철   //
385    ' 2016, 30개 신문사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댓글:  조회:3860  추천:0  2016-01-21
  [2016 경향신문 신춘문예]   의자가 있는 골목 - 李箱에게   변희수   아오? 의자에게는 자세가 있소 자세가 있다는 건 기억해둘 만한 일이오 의자는 오늘도 무엇인가 줄기차게 기다리오 기다리면서도 기다리는 티를 내지 않소 오직 자세를 보여줄 뿐이오 어떤 기다림에도 무릎 꿇지 않소   의자는 책상처럼 편견이 없어서 참 좋소   의자와는 좀 통할 것 같소 기다리는 자세로 떠나보내는 자세로 대화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하오 의자 곁을 빙빙 돌기만 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힘드오 그런 사람들은 조금 불행하오 자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이오 의자는 필요한 것이오, 그런 질문들은 참 난해하오 의자를 옮겨 앉는다 해도 해결되진 않소 책상 위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백지가 있소 기다리지 않는 질문들이 있소 다행히 의자에게는 의지가 있소 대화할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저 의자들은 참 의젓하오 의자는 이해할 줄 아오 한 줄씩 삐걱거리는 대화를 구겨진 백지를 기다리지 않는 기다림을 이해하오 이해하지 못할 의지들을 이해하오 의자는 의자지만 참 의지가 되오 의자는 그냥 의자가 아닌 듯싶소 의자는 그냥 기다릴 뿐이오 그것으로 족하다 하오 밤이오 의자에게 또 빚지고 있소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소 따뜻하게 남아 있는 의자의 체온 의자가 없는 풍경은 삭막하오 못 견딜 것 같소 의자는 기다리고 있소 아직도 기다리오 계속 기다리오 기다리기만 하오 여기 한 의자가 있소 의자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골목을 보고 있소 두렵진 않소     - 변희수(본명 변정숙) 1963년 경남 밀양 출생. 대구 거주 | - 영남대 국문과 졸업      [2016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생일 축하해 안지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신기하지 낯선 골목에 당신의 얼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니 네게선 물이 자란다, 언제 내게서 그런 표정을 거둘거니 누군가가 대신 읽어준 편지는 예언서에 가까웠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나의 감정을 선언하니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 때에 당신은 살아있구나, 눈치 챘지 문장의 바깥에 서서 당신은 긴 시간동안 사람이었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언젠가 손을 맞잡았던 적이 있지, 짧게 우리라고 불릴 시간은 딱 그만큼이어서 나에겐 기도가 세수야 당신을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오래 마주보고 있기엔 당신의 눈동자는 너무나 투명해 표정은 쉽게 미끄러지고 벽을 등지고 걸으면 내 등이 보이는 오늘 누구랄 것 없이 녹아 흘러내리지만 언제나 당신은 젖지 않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당신의 종교가 되길 바랄게 기일 축하해, - 1992년 8월 6일 서울 출생 -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2016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봄 한상록   보십시오. 내게 빈 하늘을 열어 가벼운 마음 옷차림으로 흙을 밟게 하십시오 어디선가 두엄 지피는 향내 그윽하고 새살 돋는 들풀의 움직임 간지럽지 않습니까 돌아오지 않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꿀벌의 잉잉거림 속에 묻어오고 겨우내 강을 건너지 못했던 나무들의 희미한 그림자가 아지랑이 실핏줄로 살아나지 않습니까 잃은 것이 있다면 내 뜰로 와서 찾으시지요 이제 내 뜨락에 샘을 내므로 흩어진 목숨붙이들 찾아 모으려 합니다 바람만 드나들던 수족관을 가셔내고 맑은 수면에다 튀어오르는 날빛 지느러미를 풀어놓으면 찰랑거리는 햇빛을 입고 내 생의 물보라 아름다울 겁니다 옥상에 내어걸린 빨래 나날이 눈부시어가고 누군가가 돋움발로 벗어붙힌 몸을 넘겨다 보면 산록의 묵은잠을 흔들어 놓을 아스라한 진달래향 더욱 곱지 않겠습니까 저 만치 다가오는 나무들의 길이 보이고 새순같은 배꼽을 드러낸 개구쟁이 아들놈 동화 속의 악당을 찾아 타앙 탕 말을 달리면 그 길목을 따라 몇굽이의 강이 흘러서 우리의 얼어붙은 꿈도 촉촉이 적셔지지 않겠습니까       [201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위험 수목 노국희   물음으로 짜인 나무 그늘에 앉아있어 긴 오후가 지나가도록 지금 나뭇잎 한 장이 세상의 전부인 왕개미 옆에서 나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헤프게 구걸도 해보았다 당신의 삶을 훔치는 것으로 도벽을 완성하고 싶었어 알록달록 실패들을 엮어 만든 바구니를 들고 저기서 당신이 걸어온다 마른 생선 하나를 내어주고는 가던 길을 간다 비릿한 기억이 손 안에서 파닥거린다 목이 없는 생선이 마지막에 삼킨 말들이 마른 비늘로 바스러진다 낡은 허물 위로 매미소리가 내려온다 울어본 기억만 있고 소리를 잃은 말들이 그림자 속에서 가지를 뻗는다     [2016 무등문예 신춘문예 당선작]   비가 오고 이팝꽃이 떨어지고 진흙이 흘러내리고    지연     무덤 자리에 기둥을 세운 집이라 했다 비가 오고 이팝꽃이 떨어지고 진흙이 흘러내리고 나는 당장 갈 곳이 없었으므로 무너진 방을 가로질러 뒤안으로 갔다 항아리 하나가 떠난 자들의 공명통이 되어 여울을 만들고 있었다 관 자리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던 일가는 어디로 갔을까? 한때 그들은 지붕을 얹어준 죽은 자를 위해 피붙이 제삿날에 밥 한 그릇 항아리 위에 올려놓았을 것도 같고 그 밥 그릇 위에 달빛 한 송이 앉았을 것도 같은데 지금은 항아리 혼자 구멍 뚫려 떨어지는 빗방울의 무게만큼 물을 조용히 흘러 보내고 있었다 산자와 죽은 자의 눈물이 하나가 되어 떠나는 것 같았다 어디를 가든 이 세상에 무덤 아닌 곳 없고 집 아닌 곳 없을지도 항아리 눈을 쓰다듬으려는 순간 이팝꽃이 내 어깨에 한 송이 툭 떨어졌다 붉은머리오목눈이 후두둑 그 집을 뛰쳐나갔다 비가 오는 날 내 방에 누우면 집이기도 하고 무덤이기도 해서 내 마음은 빈집 항아리 위에 정한수를 올려놓는다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대봉 김이솝   파르티잔들이 노모의 흐린 눈에 가을을 찔러 넣는다. 턱밑에 은빛 강물을 가두고 은어 떼를 몰고 간다. 쿵! 폭발하는 나무들. 온통 달거리 중인 대봉 밭에 감잎 진다. 며느리가 먹여주고 있는 대봉을 다 핥지 못하고 뚝뚝, 생혈(生血)을 떨구는 어머니. 남편과 아들이 묻힌 지리산 골짜기 유골을 찾을 때까진 살아 있어야 한다고 삽을 놓고 우는 섬진강변. 귀를 묻고 돌아오는 저녁.     [2016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농림6호   김우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볍씨를 담갔다. 바람 한 잎과 구름을 벗겨낸 햇살도 꺾어 넣었다. 봄 논의 개구리 울음도 잡아다 넣었더니 비로소 항아리가 꽉 찼다. 나흘 밤의 고요가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항아리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저 경건한 나흘, 지나가는 빗소리도 발끝을 세우고 갔으며 파란색 바람이 일렁이다 갔으며 또한 파란 별들이 농부의 발목 근처에서 무수히 떴다 갔다. 항아리 속에서 적막의 힘이 차오른다. 씨앗들이 뿜어내는 발아의 열, 항아리가 드디어 익어가기 시작한다. 촉촉이 스며든 물기에 몸을 여는 씨앗들, 부드러워진 껍질을 걷어내며 깊은 잠에서 눈을 떴다. 귀가 열리고 부리가 생겼다. 몸속에 숨겨둔 하얀 발을 내밀었다. 흙이 묻지 않은 순결한 발들, 뿔을 달고 푸른 들판으로 달려가고 싶은,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며 도란거리는 그들 모습을 보고 나는 씨나락경전을 듣는다. 적막은 발아의 요람 작은 항아리 속에서 거대한 우주가 발아하고 있다.    *1960~1970년대 재배된 볍씨 품종.     [2016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스티커   이명우   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뜯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붙는 스티커를 뜯다가 스티커 뜯기를 멈추고 산동네를 떠났다 멈추고 떠날 때는 다 지운 것이어서 지운 것은 없는 것이어서 없는 여기 산동네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 몰랐다   대문을 겹겹이 도배한 스티커 화려하기조차 했다 긁히고 찢긴 조금도 아물지 않는 가업 허파와 심장과 위장이 모두 철대문에 붙어 겨울 냉기를 고스란히 빨고 팽팽해졌다   추락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력서를 쓰고 찢고 쓰고 찢었던 것 부도난 회사의 대표였던 이력은 지급기일을 넘긴 어음처럼 휴지였던 것 부도를 막기 위해 오래전에 빌린 사채가 펄럭이며 휴지를 산동네 꼭대기까지 얼마나 난타해댔던가    골목을 돌며 전봇대 기둥과 자주 부딪친다 골목에는 늘 똑같은 소리로 이자가 와 달라붙는다 눈치 없는 거미줄에 발걸음에 와 걸린다 발이라도 와 걸어주는 이것이 거미줄의 눈치   잠만자는직장여성환영 오십세이상알바모집 선원大모집 배달부즉시출근가능 일수당일대출 신용불량자도대출可   얼어붙은 전봇대를 덮는 환영, 가능, 대박, 대문에 붙어서 스티커를 뜯어내고 있는 아들이 보인다 컴퓨터 게임 대신 싫증 모르는 스티커 뜯기 놀이 경첩이 떨어지려는 대문을 어서 받쳐보려는데 어제까지 떼어낸 적색 신불자대환영 스티커가  어린 아들의 등에 세습처럼 붙어 있다     [2016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큐브 강기화     면을 돌린다 네 개의 뿔을 가진 성난 눈초리 다가갈 수 없는 모서리 익숙하지 않은 경계   면을 돌린다 반듯하게 줄을 긋는 곧은 대답 전설처럼 등지고 있는 벽 위로받을 수 없는  네모의 의혹은 커지고 수상한 귀퉁이의 각은 증명한다   면을 돌린다 중앙을 공격한다 눈을 뜬다 놀이가 된 도형 일정한 방향으로 서로 맞춘다   다시 면을 돌린다 갇혔다가 풀려나는 매혹을 느끼며 활기차게 뛰어든다   비즈니스센터의 저녁 창문은  퍼즐의 공식 밀폐된 면과 면이  독기를 띠며 부활한다       [2016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가족 정신희   공손하게 마주 앉아 서로를 향해 규칙적으로 다가갔다 흑백으로 갈라지는 길들이 뒤섞이더니 우리 사이는 점점 간격이 사라졌다 기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가 올 때까지 기도했다는 것 그가 먼저 돌을 놓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끝까지 돌을 움켜쥐고 있었다 입 안에선 쉬지 않고 돌들이 달그락거렸다 우리는 마주 보고 있었지만 서로에게 위험했다 돌을 던지고 끝까지 서로를 모른 체하고 싶었다 길이 팽창하고 수거함엔 깨어진 얼굴이 가득하고  우리는 맹목적으로 달려갔다 한번 시작한 길은 멈출 줄 몰랐다   [2016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타크나 흰 구름 이윤정   타크나 흰 구름에는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배웅이 있고 마중이 있고 웅크린 사람과 가방 든 남자의 기차역 전광판이 있다 전광판엔 출발보다 도착이, 받침 빠진 말이 받침 없는 말에는 돌아오지 않는 얼굴이 있다가 사라진다 흰 구름에는 뿌리 내리지 못한 것들의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자정을 향해 흩어지는 구두들 구두를 따라가는 눈 속에는 방이 드러나고 방에는 따뜻한 아랫목, 아랫목에는 아이들 웃음소리 몰래 흘리는 눈물과 뜨거운 맹세가 흐른다 지금 바라보는 저 타크나 흰 구름은 출구와 입구가 함께 있다 모자 쓴 노인과 의자를 잠재우는 형광등 불빛 그 아래 휴지통에 날짜 지난 기차표가 버려져 있다 내일로 가는 우리들 그리움도 잠 못 들어 나무와 새소리, 새벽의 눈부신 햇살이 반짝이고 어제의 너와 내일의 내가 손을 잡고 있다 새로운 출발이 나의 타크나에서 돌아오고 있다 우린 흘러간 다음에 서로 흔적을 지워주는 사이라서 지우지 않아도 지워지는 얼굴로 지워져도 서로 알아보는 눈으로 뭉치고 흩어지고 떠돌다 그렇게 너의 일기에서 다시 만나리     이윤정  ▲1961년 대구 출생 ▲한양대학교 행정자치대학원 수료 ▲커리어 컨설턴트     [2016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입과 뿌리에 관한 식물학  조상호   입술을 달싹일 때 해안선이 느리게 펼쳐진다 거기 해가 있다 행려병자의 시체 같은 풀잎처럼 흔들리는 그림자, 달은 빙산이 되어 은빛을 풀어헤친다 물빛을 깨고 비치나무 냄새 번져오는 젖을 희끗희끗 빤다 안개, 서늘한 빗방울, 물방울 띄워올린다 뿌리가 부풀어오른다 물거품처럼   * 웅웅거리고 부서지고 내장처럼 고요  쏟아져 내리고 내려야 할 역을 잃고 흘러가는 페름 행 전신주 흰 눈송이들 백야의 건반을 치는 사내- 창문을 두드리는 나뭇가지- 길고 가는 손가락 갈라지고 떠도는 핏방울 소용돌이 변두리로 나를 싣고, 창 밖 쁘이찌 야호 행 마주보며 또 길게 늘어나고 민무늬 토기처럼 얼굴 금이 가고 스쳐가는 가, 가문비 나무 그늘 나뭇가지 그림자 일렁이는 시간 산란하는 밤의 시작을 경계를 지나 나는 또 바라보고 있고 마젤란 펭귄들 발자국 소리 울음 아, 미역줄기처럼 늘어지고 * 움푹 파인 자국 발자국들 혀뿌리가 길게 늘어져 꿈틀거린다 하얀 모래밭, 그리고 하얀 추위 그리고 하얀 포말 기억과 마디가 끊긴 생선뼈와 조개무덤 사이를 가마우지들 총총 걸어나오고 점령할 수 없는 나라의 국경 우수아이아 숲길 뒤틀린 비치나무 뿌리 물거품이 사그라든다       [2016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맹목 김종화     너의 서식지는 날짜 변경선이 지나는 곳,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가방 속에 접어 넣은 지도의 모서리가 닳아서 어떤 도시는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오늘의 해가 다시 오늘의 해로 떠오를 적도 부근에 숙소를 정한다 날개를 수선할 때는 길고양이의 방문을 정중히 거절해야 한다 난 철새도 아니고 지금은 사냥철도 아니니까 너에게 이미 할퀸 부분을 다시 또 할퀴는 일 따윈 없어야 하니까   기착지를 뒤적이다 마지막 편지를 쓴다 마지막이 마지막으로 남을 때까지 쓴다 나를 전혀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는 너에게   삼일 전에 보낸 안부가 어제 도착한다 너는 나를 뜯지 않는다 흔한 통보도 없이 너는 멀어졌고 난 네가 떠난 지점으로부터 무작정 흘러왔다 너의 안부는 고체처럼 딱딱하고 나의 안부는 젤리처럼 물컹하다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 기미조차 미약하여 난 비행(非行)이 너무나 쉽다   싸구려 여관방에서 보이는 야경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린다 오늘도 나의 다짐은 추락하지 않고,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나의 착란은 뼈마저 버린다 너는 결코 이방(異邦)이 아니다 태초부터 회귀점이다     -「열린시학」회 회원 - 부평구정신문 「부평사람들」 취재 기자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재학중       [2016 광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둥근 길 문귀숙   허풍빌라에서 내린, 수백억 상속녀가 떨어뜨리고 간 셀 수 없는 동그라미의 말들 깔깔 거리다 휘청거리며 사라졌다 꽃뱀의 뱃속 같은 골목을 후진으로 나오는 오늘 일진은 구부러진 끗발이다 금요일을 발광하는 네온사인을 비켜선 흐린 그림자 하나, 번쩍 손을 들었다 뒷자리에 앉자마자 웅얼거리는 목소리 백미러로 읽어야 하는 목적지가 번져 읽을 수 없다 붉은 신호등 하나를 넘으며 자정의 경계를 넘었다 어떤 넋두리도 용납되는 할증의 시간 갈림길 마다 좌회전을 외치며 더 흐려진 그림자 젖은 넋두리에 수몰된 길을 재탐색하라고 내비*가 얼굴을 붉힌다 붉은 기운이 부족한 사납금만큼 미터를 올리고 대낮처럼 환한 불면의 광장을 지나고 늙은 벚꽃나무가 떨어뜨리는 흐린 시간을 지나 돌고 돌아도 이어지는 길 더 이상 택시로는 갈 수 없는 길 내비가 멈췄다 그림자의 손가락 끝에 만월이 걸렸다.   *내비게이션     - 1964년 전남 진도 출생 -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 2009년 5ㆍ18문학상 동화 당선 - 현재 국립5ㆍ18민주묘지 근무 - 광주시 문화관광해설사 - 일곡시회 동인       * 매일신문 신춘문예는 당선 취소로 당선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2016 경향신문 신춘문예]   의자가 있는 골목 - 李箱에게   변희수   아오? 의자에게는 자세가 있소 자세가 있다는 건 기억해둘 만한 일이오 의자는 오늘도 무엇인가 줄기차게 기다리오 기다리면서도 기다리는 티를 내지 않소 오직 자세를 보여줄 뿐이오 어떤 기다림에도 무릎 꿇지 않소   의자는 책상처럼 편견이 없어서 참 좋소   의자와는 좀 통할 것 같소 기다리는 자세로 떠나보내는 자세로 대화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하오 의자 곁을 빙빙 돌기만 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힘드오 그런 사람들은 조금 불행하오 자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이오 의자는 필요한 것이오, 그런 질문들은 참 난해하오 의자를 옮겨 앉는다 해도 해결되진 않소 책상 위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백지가 있소 기다리지 않는 질문들이 있소 다행히 의자에게는 의지가 있소 대화할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저 의자들은 참 의젓하오 의자는 이해할 줄 아오 한 줄씩 삐걱거리는 대화를 구겨진 백지를 기다리지 않는 기다림을 이해하오 이해하지 못할 의지들을 이해하오 의자는 의자지만 참 의지가 되오 의자는 그냥 의자가 아닌 듯싶소 의자는 그냥 기다릴 뿐이오 그것으로 족하다 하오 밤이오 의자에게 또 빚지고 있소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소 따뜻하게 남아 있는 의자의 체온 의자가 없는 풍경은 삭막하오 못 견딜 것 같소 의자는 기다리고 있소 아직도 기다리오 계속 기다리오 기다리기만 하오 여기 한 의자가 있소 의자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골목을 보고 있소 두렵진 않소     - 변희수(본명 변정숙) 1963년 경남 밀양 출생. 대구 거주 | - 영남대 국문과 졸업      [2016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생일 축하해 안지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신기하지 낯선 골목에 당신의 얼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니 네게선 물이 자란다, 언제 내게서 그런 표정을 거둘거니 누군가가 대신 읽어준 편지는 예언서에 가까웠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나의 감정을 선언하니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 때에 당신은 살아있구나, 눈치 챘지 문장의 바깥에 서서 당신은 긴 시간동안 사람이었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언젠가 손을 맞잡았던 적이 있지, 짧게 우리라고 불릴 시간은 딱 그만큼이어서 나에겐 기도가 세수야 당신을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오래 마주보고 있기엔 당신의 눈동자는 너무나 투명해 표정은 쉽게 미끄러지고 벽을 등지고 걸으면 내 등이 보이는 오늘 누구랄 것 없이 녹아 흘러내리지만 언제나 당신은 젖지 않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당신의 종교가 되길 바랄게 기일 축하해, - 1992년 8월 6일 서울 출생 -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2016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봄 한상록   보십시오. 내게 빈 하늘을 열어 가벼운 마음 옷차림으로 흙을 밟게 하십시오 어디선가 두엄 지피는 향내 그윽하고 새살 돋는 들풀의 움직임 간지럽지 않습니까 돌아오지 않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꿀벌의 잉잉거림 속에 묻어오고 겨우내 강을 건너지 못했던 나무들의 희미한 그림자가 아지랑이 실핏줄로 살아나지 않습니까 잃은 것이 있다면 내 뜰로 와서 찾으시지요 이제 내 뜨락에 샘을 내므로 흩어진 목숨붙이들 찾아 모으려 합니다 바람만 드나들던 수족관을 가셔내고 맑은 수면에다 튀어오르는 날빛 지느러미를 풀어놓으면 찰랑거리는 햇빛을 입고 내 생의 물보라 아름다울 겁니다 옥상에 내어걸린 빨래 나날이 눈부시어가고 누군가가 돋움발로 벗어붙힌 몸을 넘겨다 보면 산록의 묵은잠을 흔들어 놓을 아스라한 진달래향 더욱 곱지 않겠습니까 저 만치 다가오는 나무들의 길이 보이고 새순같은 배꼽을 드러낸 개구쟁이 아들놈 동화 속의 악당을 찾아 타앙 탕 말을 달리면 그 길목을 따라 몇굽이의 강이 흘러서 우리의 얼어붙은 꿈도 촉촉이 적셔지지 않겠습니까       [201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위험 수목 노국희   물음으로 짜인 나무 그늘에 앉아있어 긴 오후가 지나가도록 지금 나뭇잎 한 장이 세상의 전부인 왕개미 옆에서 나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헤프게 구걸도 해보았다 당신의 삶을 훔치는 것으로 도벽을 완성하고 싶었어 알록달록 실패들을 엮어 만든 바구니를 들고 저기서 당신이 걸어온다 마른 생선 하나를 내어주고는 가던 길을 간다 비릿한 기억이 손 안에서 파닥거린다 목이 없는 생선이 마지막에 삼킨 말들이 마른 비늘로 바스러진다 낡은 허물 위로 매미소리가 내려온다 울어본 기억만 있고 소리를 잃은 말들이 그림자 속에서 가지를 뻗는다     [2016 무등문예 신춘문예 당선작]   비가 오고 이팝꽃이 떨어지고 진흙이 흘러내리고    지연     무덤 자리에 기둥을 세운 집이라 했다 비가 오고 이팝꽃이 떨어지고 진흙이 흘러내리고 나는 당장 갈 곳이 없었으므로 무너진 방을 가로질러 뒤안으로 갔다 항아리 하나가 떠난 자들의 공명통이 되어 여울을 만들고 있었다 관 자리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던 일가는 어디로 갔을까? 한때 그들은 지붕을 얹어준 죽은 자를 위해 피붙이 제삿날에 밥 한 그릇 항아리 위에 올려놓았을 것도 같고 그 밥 그릇 위에 달빛 한 송이 앉았을 것도 같은데 지금은 항아리 혼자 구멍 뚫려 떨어지는 빗방울의 무게만큼 물을 조용히 흘러 보내고 있었다 산자와 죽은 자의 눈물이 하나가 되어 떠나는 것 같았다 어디를 가든 이 세상에 무덤 아닌 곳 없고 집 아닌 곳 없을지도 항아리 눈을 쓰다듬으려는 순간 이팝꽃이 내 어깨에 한 송이 툭 떨어졌다 붉은머리오목눈이 후두둑 그 집을 뛰쳐나갔다 비가 오는 날 내 방에 누우면 집이기도 하고 무덤이기도 해서 내 마음은 빈집 항아리 위에 정한수를 올려놓는다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대봉 김이솝   파르티잔들이 노모의 흐린 눈에 가을을 찔러 넣는다. 턱밑에 은빛 강물을 가두고 은어 떼를 몰고 간다. 쿵! 폭발하는 나무들. 온통 달거리 중인 대봉 밭에 감잎 진다. 며느리가 먹여주고 있는 대봉을 다 핥지 못하고 뚝뚝, 생혈(生血)을 떨구는 어머니. 남편과 아들이 묻힌 지리산 골짜기 유골을 찾을 때까진 살아 있어야 한다고 삽을 놓고 우는 섬진강변. 귀를 묻고 돌아오는 저녁.     [2016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농림6호   김우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볍씨를 담갔다. 바람 한 잎과 구름을 벗겨낸 햇살도 꺾어 넣었다. 봄 논의 개구리 울음도 잡아다 넣었더니 비로소 항아리가 꽉 찼다. 나흘 밤의 고요가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항아리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저 경건한 나흘, 지나가는 빗소리도 발끝을 세우고 갔으며 파란색 바람이 일렁이다 갔으며 또한 파란 별들이 농부의 발목 근처에서 무수히 떴다 갔다. 항아리 속에서 적막의 힘이 차오른다. 씨앗들이 뿜어내는 발아의 열, 항아리가 드디어 익어가기 시작한다. 촉촉이 스며든 물기에 몸을 여는 씨앗들, 부드러워진 껍질을 걷어내며 깊은 잠에서 눈을 떴다. 귀가 열리고 부리가 생겼다. 몸속에 숨겨둔 하얀 발을 내밀었다. 흙이 묻지 않은 순결한 발들, 뿔을 달고 푸른 들판으로 달려가고 싶은,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며 도란거리는 그들 모습을 보고 나는 씨나락경전을 듣는다. 적막은 발아의 요람 작은 항아리 속에서 거대한 우주가 발아하고 있다.    *1960~1970년대 재배된 볍씨 품종.     [2016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스티커   이명우   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뜯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붙는 스티커를 뜯다가 스티커 뜯기를 멈추고 산동네를 떠났다 멈추고 떠날 때는 다 지운 것이어서 지운 것은 없는 것이어서 없는 여기 산동네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 몰랐다   대문을 겹겹이 도배한 스티커 화려하기조차 했다 긁히고 찢긴 조금도 아물지 않는 가업 허파와 심장과 위장이 모두 철대문에 붙어 겨울 냉기를 고스란히 빨고 팽팽해졌다   추락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력서를 쓰고 찢고 쓰고 찢었던 것 부도난 회사의 대표였던 이력은 지급기일을 넘긴 어음처럼 휴지였던 것 부도를 막기 위해 오래전에 빌린 사채가 펄럭이며 휴지를 산동네 꼭대기까지 얼마나 난타해댔던가    골목을 돌며 전봇대 기둥과 자주 부딪친다 골목에는 늘 똑같은 소리로 이자가 와 달라붙는다 눈치 없는 거미줄에 발걸음에 와 걸린다 발이라도 와 걸어주는 이것이 거미줄의 눈치   잠만자는직장여성환영 오십세이상알바모집 선원大모집 배달부즉시출근가능 일수당일대출 신용불량자도대출可   얼어붙은 전봇대를 덮는 환영, 가능, 대박, 대문에 붙어서 스티커를 뜯어내고 있는 아들이 보인다 컴퓨터 게임 대신 싫증 모르는 스티커 뜯기 놀이 경첩이 떨어지려는 대문을 어서 받쳐보려는데 어제까지 떼어낸 적색 신불자대환영 스티커가  어린 아들의 등에 세습처럼 붙어 있다     [2016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큐브 강기화     면을 돌린다 네 개의 뿔을 가진 성난 눈초리 다가갈 수 없는 모서리 익숙하지 않은 경계   면을 돌린다 반듯하게 줄을 긋는 곧은 대답 전설처럼 등지고 있는 벽 위로받을 수 없는  네모의 의혹은 커지고 수상한 귀퉁이의 각은 증명한다   면을 돌린다 중앙을 공격한다 눈을 뜬다 놀이가 된 도형 일정한 방향으로 서로 맞춘다   다시 면을 돌린다 갇혔다가 풀려나는 매혹을 느끼며 활기차게 뛰어든다   비즈니스센터의 저녁 창문은  퍼즐의 공식 밀폐된 면과 면이  독기를 띠며 부활한다       [2016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가족 정신희   공손하게 마주 앉아 서로를 향해 규칙적으로 다가갔다 흑백으로 갈라지는 길들이 뒤섞이더니 우리 사이는 점점 간격이 사라졌다 기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가 올 때까지 기도했다는 것 그가 먼저 돌을 놓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끝까지 돌을 움켜쥐고 있었다 입 안에선 쉬지 않고 돌들이 달그락거렸다 우리는 마주 보고 있었지만 서로에게 위험했다 돌을 던지고 끝까지 서로를 모른 체하고 싶었다 길이 팽창하고 수거함엔 깨어진 얼굴이 가득하고  우리는 맹목적으로 달려갔다 한번 시작한 길은 멈출 줄 몰랐다   [2016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타크나 흰 구름 이윤정   타크나 흰 구름에는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배웅이 있고 마중이 있고 웅크린 사람과 가방 든 남자의 기차역 전광판이 있다 전광판엔 출발보다 도착이, 받침 빠진 말이 받침 없는 말에는 돌아오지 않는 얼굴이 있다가 사라진다 흰 구름에는 뿌리 내리지 못한 것들의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자정을 향해 흩어지는 구두들 구두를 따라가는 눈 속에는 방이 드러나고 방에는 따뜻한 아랫목, 아랫목에는 아이들 웃음소리 몰래 흘리는 눈물과 뜨거운 맹세가 흐른다 지금 바라보는 저 타크나 흰 구름은 출구와 입구가 함께 있다 모자 쓴 노인과 의자를 잠재우는 형광등 불빛 그 아래 휴지통에 날짜 지난 기차표가 버려져 있다 내일로 가는 우리들 그리움도 잠 못 들어 나무와 새소리, 새벽의 눈부신 햇살이 반짝이고 어제의 너와 내일의 내가 손을 잡고 있다 새로운 출발이 나의 타크나에서 돌아오고 있다 우린 흘러간 다음에 서로 흔적을 지워주는 사이라서 지우지 않아도 지워지는 얼굴로 지워져도 서로 알아보는 눈으로 뭉치고 흩어지고 떠돌다 그렇게 너의 일기에서 다시 만나리     이윤정  ▲1961년 대구 출생 ▲한양대학교 행정자치대학원 수료 ▲커리어 컨설턴트     [2016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입과 뿌리에 관한 식물학  조상호   입술을 달싹일 때 해안선이 느리게 펼쳐진다 거기 해가 있다 행려병자의 시체 같은 풀잎처럼 흔들리는 그림자, 달은 빙산이 되어 은빛을 풀어헤친다 물빛을 깨고 비치나무 냄새 번져오는 젖을 희끗희끗 빤다 안개, 서늘한 빗방울, 물방울 띄워올린다 뿌리가 부풀어오른다 물거품처럼   * 웅웅거리고 부서지고 내장처럼 고요  쏟아져 내리고 내려야 할 역을 잃고 흘러가는 페름 행 전신주 흰 눈송이들 백야의 건반을 치는 사내- 창문을 두드리는 나뭇가지- 길고 가는 손가락 갈라지고 떠도는 핏방울 소용돌이 변두리로 나를 싣고, 창 밖 쁘이찌 야호 행 마주보며 또 길게 늘어나고 민무늬 토기처럼 얼굴 금이 가고 스쳐가는 가, 가문비 나무 그늘 나뭇가지 그림자 일렁이는 시간 산란하는 밤의 시작을 경계를 지나 나는 또 바라보고 있고 마젤란 펭귄들 발자국 소리 울음 아, 미역줄기처럼 늘어지고 * 움푹 파인 자국 발자국들 혀뿌리가 길게 늘어져 꿈틀거린다 하얀 모래밭, 그리고 하얀 추위 그리고 하얀 포말 기억과 마디가 끊긴 생선뼈와 조개무덤 사이를 가마우지들 총총 걸어나오고 점령할 수 없는 나라의 국경 우수아이아 숲길 뒤틀린 비치나무 뿌리 물거품이 사그라든다       [2016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맹목 김종화     너의 서식지는 날짜 변경선이 지나는 곳,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가방 속에 접어 넣은 지도의 모서리가 닳아서 어떤 도시는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오늘의 해가 다시 오늘의 해로 떠오를 적도 부근에 숙소를 정한다 날개를 수선할 때는 길고양이의 방문을 정중히 거절해야 한다 난 철새도 아니고 지금은 사냥철도 아니니까 너에게 이미 할퀸 부분을 다시 또 할퀴는 일 따윈 없어야 하니까   기착지를 뒤적이다 마지막 편지를 쓴다 마지막이 마지막으로 남을 때까지 쓴다 나를 전혀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는 너에게   삼일 전에 보낸 안부가 어제 도착한다 너는 나를 뜯지 않는다 흔한 통보도 없이 너는 멀어졌고 난 네가 떠난 지점으로부터 무작정 흘러왔다 너의 안부는 고체처럼 딱딱하고 나의 안부는 젤리처럼 물컹하다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 기미조차 미약하여 난 비행(非行)이 너무나 쉽다   싸구려 여관방에서 보이는 야경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린다 오늘도 나의 다짐은 추락하지 않고,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나의 착란은 뼈마저 버린다 너는 결코 이방(異邦)이 아니다 태초부터 회귀점이다     -「열린시학」회 회원 - 부평구정신문 「부평사람들」 취재 기자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재학중       [2016 광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둥근 길 문귀숙   허풍빌라에서 내린, 수백억 상속녀가 떨어뜨리고 간 셀 수 없는 동그라미의 말들 깔깔 거리다 휘청거리며 사라졌다 꽃뱀의 뱃속 같은 골목을 후진으로 나오는 오늘 일진은 구부러진 끗발이다 금요일을 발광하는 네온사인을 비켜선 흐린 그림자 하나, 번쩍 손을 들었다 뒷자리에 앉자마자 웅얼거리는 목소리 백미러로 읽어야 하는 목적지가 번져 읽을 수 없다 붉은 신호등 하나를 넘으며 자정의 경계를 넘었다 어떤 넋두리도 용납되는 할증의 시간 갈림길 마다 좌회전을 외치며 더 흐려진 그림자 젖은 넋두리에 수몰된 길을 재탐색하라고 내비*가 얼굴을 붉힌다 붉은 기운이 부족한 사납금만큼 미터를 올리고 대낮처럼 환한 불면의 광장을 지나고 늙은 벚꽃나무가 떨어뜨리는 흐린 시간을 지나 돌고 돌아도 이어지는 길 더 이상 택시로는 갈 수 없는 길 내비가 멈췄다 그림자의 손가락 끝에 만월이 걸렸다.   *내비게이션     - 1964년 전남 진도 출생 -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 2009년 5ㆍ18문학상 동화 당선 - 현재 국립5ㆍ18민주묘지 근무 - 광주시 문화관광해설사 - 일곡시회 동인       [2016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맹수   정율리       하늘에는 울타리가 없다 이 쪽 저 쪽으로 몰려다니는 철새들 초승달로 기러기 행렬이 지나간다   하늘을 맹수라 불러보다 깜짝 놀란다 이동하는 저 철새들의 몇 마리는 땅으로 혹은 바다위로 곤두박질 칠 거다 초승달이 몇 마리 삼키고 구름이나 혹은 비바람이 또 몇 마리 삼키겠지   기러기들 서둘러 달빛을 벗어나려 한밤의 속도로 튕겨져 나온 행렬 어둠에 묻힌 채 날고 있다 하늘은 야생이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려는 난무(亂舞)의 태생지다   밤낮이 자유롭고 계절도 마음대로 바꾼다 낮과 밤은 서로 피해 다닌다 가끔 날아가는 비행기가 지상으로 떨어지고 하늘을 날아오른 집이며 자동차들이 구겨진 채 떨어진다 빈 껍질만 떨어지는 걸로 보아 저 하늘에 포악한 야생의 무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울타리가 없으니 야생이다 날아가는 것들은 무엇에 쫓긴 듯 서둘러 날아간다 낮과 밤이 맹수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폭식을 하고 낮엔 낮에 보이는 것들을 사냥하고 밤엔 밤에 보이는 것들을 사냥한다 조용한 날들이 없는 입이다   - 중앙대 예술대학원 수료 고려대사회교육원 시창작반수료 현 삼정문학관 관장   [2016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화해花蟹   하송     냄비뚜껑을 열자 꽃처럼 붉은 꽃게가 철갑을 하고 있다 건들기만 하면 잘라버리겠다는 듯 엄지발을 치켜든다 뭉툭한 가위로 발을 절단하자 소리를 지르는 것은 꽃게가 아니라 가위였다 골수가 울컥 쏟아지자 바다는 잠잠했다 사는 일은 파도가 잠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갯벌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기는 것 꽃게, 파도가 거칠수록 두 눈 똑바로 뜨고 등딱지에 힘을 준다 한 평생 꽃처럼 배를 보이지 않는 것이 꽃게다 섬 하나가 안테나를 세우고 육지로 나간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지 바닷바람에 허리가 꼿꼿하다 바다를 버린 꽃게, 절대 바다를 돌아보지 않는다     ·화해花蟹 : 꽃게     [2016 한경청년 신춘문예 당선작]   므두셀라 이서하   납작한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가락들 그 손가락들은 내 안에 들어온 적이 있다 내게 주먹을 쥔 적이 있다 배가 부은 날엔 혼자 병원에 갔다 두 개의 주머니가 팽창하는 중이다 주머니 속 먼지를 작게 쪼개면 더 작아져 날아가는 티끌처럼 수십 억 년을 떠돈 므두셀라처럼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욥기 29:18) 나는 처음부터 혼자였어 두 개의 주머니를 오렸다 피 묻은 봉투 속에서도 나는 편안하다 좋은 것만 기억하라는 그의 말이 잠속까지 따라온다                                    나를 작게                                                         쪼개면                        더                                              작게 쪼개지는                           내 아이들 혼자 떠도는 행성이 있다 그 행성의 이름은 므두셀라다   - 1992년 경기 양주 출생 -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 매일신문 신춘문예는 당선 취소로 당선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처음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