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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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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명시인 - 엘리어트 댓글:  조회:2901  추천:0  2015-03-18
    엘리어트의 황무지                     황무지                                    - T. S. Eliot(영국 시인)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 꽃을 피우며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다.     슈타른베르가제 호수를 넘어   여름은 소낙비를 몰고  갑자기 우리를 찾아 왔다.  우리는 회랑에 머물렀다가  햇볕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하략.   [제1부] "死者의 매장" 중에서      영시 원문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from The Waste Land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하략.                해설 계절의 순환속에서 다시 봄이 되어  버거운 세계인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묘사하고 있다. '망각의 눈'에 쌓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웠지만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사월은 잔인한 달" 이란 말은 시 제목이 아니라,  란 시 중 한 부분에서 인용한 글로 "세계적 명언"이 되었다.        이라는 유명한 시구로 시작되는 엘리어트(Thomas Steams Eliot)의는  등 5장433행으로 되어 있다.   그는 황무지로 변한 현대 서구문명과 인간사회를 묘사함으로써, 이 불모지의 메마른 땅 위에 신의 자비로운 비가 내릴 것을 희구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읊었다.   이 시의 주제는 보들레르의 과 같이 근대 도시생활의 추악함이나 일반적 인간의 타락을 미와 추, 절망과 동경, 모랄과 반모랄이라는 비연속의 연속에 의하여 극적으로, 또는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 시 전편을 통해서 T.S.엘리어트는 과거 인류의 역사를 압축하여 현대인의 정신의 불모지를 그 역사적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현대사회의 는 인간이 선과 악의 의식을 잃고, 정신적 불모 속에서 가라앉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엘리어트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하기 이전에는 많은 낭만파 시인들이 4월을 예찬하였었다.   그러나 1922년에 발표된 '황무지'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황폐화된 정신적 공황상태를 간접적으로 묘사하였다. 즉, 인간의 마음은 황무지처럼 여전히 황폐한데, 자연은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꽃을 피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4월이 더욱 더 잔인하게 느껴졌으리라.   이후 많은 사람들이 '황무지'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을 자주 인용했고, 그래서 억울하게도'4월은 잔인한 달'이 되었던 것이다.           토머스 엘리어트 (Thomas Stearns Eliot, 1888.9.26~1965.1.4)    188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출생한 엘리어트는 하버드대를 3년만에 졸업하였고, 이후 영국으로 귀화, 1922년 현대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황무지'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1948년에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으로서 극작가이며, 문학비평가이다.                                                       (엘리어트의 '황무지') ※ 모더니즘 관련사항   1930년대 공감각(복합감각)적 이미지즘과 회화성을 중시한 모더니즘의 대표적 문인들로는 프랑스의 P.발레리, 영국의 T.E.흄, T.S.엘리엇, H.리드, 헉슬리 등의 이론과 작품의 영향을 받은 정지용(鄭芝溶) ·김광균(金光均) ·장만영(張萬榮) ·장서언(張瑞彦) ·최재서(崔載瑞) ·김기림(金起林) ·이양하(李敭河) 등이 있다.   김기림의 장시 《기상도(氣象圖)》(1936)는 엘리엇의 《황무지》의 영향을 받은 당시 모더니즘의 대표작이며, 김광섭(金珖燮) ·김현승(金顯承) 등의 시인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어 1950년대의 김수영(金洙映) ·박인환(朴寅煥) ·김경린(金璟麟) 등과 ‘후반기’ 동인들에 의해 모더니즘 시운동이 전개되었다. 1960년대의 ‘현대시’, ‘신춘시’ 동인들은 1930년대의 모더니즘시가 상실했던 상징적 내면의식과 초월의식을 형상화하려 했다.    최초로 모더니즘을 도입한 시인은 최재서이며, 최초의 모더니즘 시인은 이미지즘과주지주의를 파고 든 '바다와 나비'를 쓴 김기림 시인이고, 모더니즘의 작품화에 성공한 시인은 회화성에 기초한 이미지즘의 김광균과 다다이즘적 성향이 엿보인 이상 등이다.          ※ 주지주의(intellectualism, 主知主義) : 지성 또는 이성이 의지나 감정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상의 입장이며, 인간의 마음은 지(知) ·정(情) ·의(意)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이 중에서 지적인 것, 즉 지성 ·이성 ·오성(悟性)이 지니는 기능을 감정이나 의지의 기능보다도 상위에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감정을 상위에 두는 주정주의(主情主義:情緖主義)나 의지를 상위에 두는 주의주의(主意主義)와 대립된다.           ※ 다다이즘(dadaism) : 제1차세계대전(1914~1918) 말엽부터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다다(dada)라고도 하며, 조형예술(造形藝術)뿐만 아니라 넓게 문학·음악의 영역까지 포함한다. 다다란 본래 프랑스어(語)로 어린이들이 타고 노는 목마(木馬)를 가리키는 말이나, 이것은 다다이즘의 본질에 뿌리를 둔 ‘무의미함의 의미’를 암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다이즘은 1920년대에 프랑스, 독일, 스위스의 전위적인 미술가와 작가들이 본능이나 자발성, 불합리성을 강조하면서 기존 체계와 관습적인 예술에 반발한 문화 운동.    모더니즘의 대표시인 김광균은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共感覺的)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으며, 이미지의 공간적인 조형(造形)을 시도한 점 등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김광균의 시집으로는 1969년 황혼가, 1947년 기항지, 1939년 와사등, 1930년 야경차 등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추일서정, 와사등, 외인촌 등이 있다.                                          (김광균의 와사등)                       (김광균의 기항지)     - 김광균       -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 출전 : (1940)                                                                                        
223    명시인 - 존 던 댓글:  조회:3051  추천:0  2015-03-18
존 던 1572. 1. 24/6. 19 런던~1631. 3. 31 런던.   영국의 시인.   대표적인 형이상학파 시인이며 런던 세인트폴 성당의 참사원장(1612~31)을 지내기도 했다. 사제 서품을 받기(1615) 전에 주로 쓴 세속적인 시뿐 아니라 종교적 운문과 논문 및 17세기의 가장 뛰어난 것으로 꼽히는 설교들로 유명하다.   초기생애   로마 가톨릭교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풍자시인이자 극작가인 존 헤이우드의 딸로, 헨리 8세의 서기였던 토머스 모어 경의 후손이었다. 던은 그녀의 가문만큼 종교 때문에 고통을 받은 가문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성공한 런던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유서깊은 웨일스 가문의 후손이어서 던도 그 가문의 문장(紋章)을 지녔다. 1576년 아버지가 죽은 뒤 6개월 만에 어머니는 존 시밍스 박사와 재혼했는데, 그는 여러 차례 왕립의과대학 학장을 지낸 인물로 던의 형제들을 교육시켰다. 1640년 던의 〈생애 Life〉를 출판한 아이작 월턴에 따르면, 던은 집에서 가톨릭교도인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다가, 1584년 10월 형 헨리와 함께 옥스퍼드의 하트홀(하트퍼드 칼리지의 전신)에 입학했다. 월턴에 따르면 던은 이곳에서 3년을 보낸 뒤 케임브리지대학교로 전학했다고 하는데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수장령(Act of Supremacy)과 영국국교회의 39개 조항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는 가톨릭교도였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아 어느 대학의 학위도 받지 못했다. 그뒤 유럽의 여러 곳을 여행한 것으로 보인다. 1591년 5월경 새비스 인(Thavies Inn)에 법학생으로 등록했고 1592년 3월 6일 링컨스 인(Lincoln's Inn) 법학원으로 옮겼다. 1593년 형 헨리는 가톨릭 사제를 숨겨주었다가 체포되어 감옥에서 흑사병에 걸려 죽었다. 같은 해 6월 던은 성년이 되어 아버지의 재산 중 자신의 몫을 받았다. 1594년말까지 링컨스 인 법학원에 남아 법률직에 필요한 최종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법학원을 정계로 나가는 통로나 실무가들과 접할 수 있는 방편으로 여겼다.   초기 관직생활과 작품활동   1596년에 카디스를 공격하는 해상과 육상 원정에 지원, 그처럼 공직을 갈망하는 많은 젠틀맨 출신 군인과 합류했다. 다음 해에는 아일랜즈 원정(Islands expedition)에 참여하여 아조레스 제도에서 스페인 보물선을 찾아다녔다. 이때 사귄 토머스 에저턴은 국새상서(國璽尙書)인 아버지 토머스 에저턴 경에게 그를 소개했다. 1598년초 토머스 경의 비서가 되어 높은 공직 진출이 보장된 직위를 맡았다. 토머스 경은 1601년 던을 의회로 보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의회의 논쟁이나 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했고, 의원의 동향을 알아서 토머스 경에게 보고하는 역할만 했던 것이 확실하다. 이무렵 가톨릭 신앙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던은 야심을 성취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다. 이무렵에 많은 시를 썼는데, 대부분은 고대 라틴 시인들의 시를 모방한 것이다. 그 작품들로는 1592년경부터 쓴 남자 동료들에게 보내는 운문편지들이 있고, 호라티우스와 유베날리스풍(風)으로 쓴 형식을 갖춘 5편의 풍자시(1593~98경)와 풍자적 서사시 〈윤회 Metempsychosis〉(1601), 오비디우스의 시를 부분적으로 모방한 연애시와 비가집(悲歌集) 1권, 마르티알리스의 시를 다소 모방한 경구시(警句詩)가 있다. 그러나 고전적인 양식을 위트와 대담한 상상력으로 변형시킨 그의 시는 매우 독창적이다. 1601년경에 쓴 다양한 경향의 많은 연애시들은 유명한 시에 속한다. 이무렵의 시는 활력과 사실성, 열정이 넘쳐흘러 젊은시절 던의 활달한 생각과 행동을 반영한다. 동시대인 리처드 베이커 경은 던에 대해 "무절제(부주의)하지 않고 깔끔하여 귀부인과 숙녀들을 자주 방문하고 연극을 즐기는 기발한 착상의 운문의 대가"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던이 일생 동안 보여준 도덕적 엄격성과 진지성은 젊어서의 바람기를 믿기 어렵게 한다. 영국 극의 전성기에 극장 출입이 잦았다는 것은 그가 관심을 기울인 문학과 학문의 다양한 양상 중 하나를 반영하는 데 불과하다. 월턴은 던이 일생 동안 유별나게 학문에 전념한 점을 강조하는데, 그는 일찍이 1593년부터 영국 교회와 로마 교회 사이의 쟁점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방문한 '부인들'이란 후에 후원자가 된 귀족부인들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던은 위트와 매력이 있어서 국새상서 집안의 부인들에게 총애를 받았다. 특히 로슬리파크의 조지 모어 경의 딸이며 에저턴의 둘째 부인의 조카이자 피보호자인 앤 모어가 그를 좋아했다. 앤의 아버지는 1601년 의회가 소집되자 런던으로 그녀를 데려왔다. 둘은 비밀리에 만났는데 야심 많고 저명한 조지 경의 결혼동의를 얻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1601년 12월초 비밀리에 결혼했다. 이것은 예법과 교회법에 모두 위배되는 일이었으며, 사랑을 위해 그토록 큰 모험을 한 것은 월턴이 지적했듯이 "그의 인생 최대의 오류"였다. 1602년 2월 던이 조지 경에게 결혼사실을 알리자, 화가 난 장인은 그를 몇 달 동안 투옥시켰고 에저턴에게 그를 해고하게 했으며, 이 문제를 고등판무단 재판소에까지 올렸다. 판무관들은 이 결혼이 유효하다고 판정했으나, 던에게는 힘들고 긴 실업 상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내에 대한 사랑은 꺾이지 않았다.   성직자 시절   처음에는 서리 주 피어퍼드에 있는 에저턴 부인의 아들 프랜시스 울리 경의 집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여기에서 약 1년 동안 가족을 떠나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기도 했다. 1606~11년에는 런던 남부의 미첨에 집을 마련하고 런던에도 아파트를 얻었다. 뒷날 더럼의 주교가 된 토머스 모튼을 도와 가톨릭교를 비방하는 논쟁적인 팜플렛에서 특히 제임스 1세가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서 충성서약을 강요하는 것을 옹호하는 일을 한 듯하다. 여기서 던은 〈사이비 순교자 Pseudo-martyr〉(1610)라는, 왕을 지지하는 인상적인 선전문을 썼는데, 이 글로 인정을 받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쟁의 여파로 쓴 것이 예수회 수사를 공격하는 환상적 풍자문 〈이그나티우스의 비밀회의 Ignatius his Conclave〉(1611, 라틴어와 영어로 출판)이다.   던은 삶의 방향을 잃고 낙심하기도 했다.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사람은 목숨을 올바로 지켜야 한다는 내용의 추론식 저작 〈자살론 Biathanatos〉(1608경, 출판 1646)을 쓰면서 생각을 고쳤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심각한 종교적 갈등을 계속 겪었다. 머튼은 그에게 영국국교회 목사가 되라고 여러 차례 설득했고, 1607년에는 자신이 사임한 성직을 제의했다. 그러나 던은 자신이 자격도 없고 뚜렷한 소명도 없다는 이유로 수락하지 않았으며 계속하여 세속적 직업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더구나 〈사이비 순교자〉를 썼을 무렵 제임스 왕은 던이 성직에 몸담기를 바라며 세속 직업을 갖는 것을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던도 물론 한동안은 영국성공회교도였다. 1596~97년에 반대파 가톨릭교도와 맞선 신교도인 여왕을 섬겼고, 에저턴 밑에 있기 전에 공식적으로는 가톨릭교를 포기했다. 그는 결국 그리스도교의 주요교리를 받아들이는 교회는 모두 정당하며, 행정·의식 등 '종교와 무관한' 문제는 각 나라의 관행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구원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확신을 얻기 위한 그의 노력은 1607~13년에 쓴 종교시들에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영시(英詩) 가운데 손꼽히는 작품들이다. 던은 뒤늦게 지불된 아내의 지참금과 베드퍼드 백작부인 루시 러셀의 후원(1607 이후)으로 늘어나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 루시 러셀과 다른 귀부인들에게 매우 독창적인 운문 편지를 보냈으며 베드퍼드 부인의 친척이 죽으면 비가(悲歌)를 지어주었다.   1611년에는 로버트 드루어리 경이 새 후원자가 되었다. 1611~12년에 던은 그와 함께 프랑스와 북해, 연안 저지대를 여행했으며, 드루어리는 1612년까지 런던 저택의 부속채에 던 가족이 살도록 해주었다. 드루어리의 어린 딸 엘리자베스가 죽었을 때 비가를 썼고, 1611년과 1612년에도 역시 그녀의 죽음을 기리어 〈기일 Anniversaries〉을 썼다. 이 시들에서는 주로 부패한 세계를 깊이 있게 풍자적으로 '해부'하는 한편, 천상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인간의 영혼이 승천하는 것을 관조했다. 여전히 공직을 찾으면서, 1612년 헨리 왕자가 죽었을 때와, 1613년 엘리자베스 공주가 팔츠 선거후(侯) 프레더릭 5세와 결혼했을 때에도 시를 바쳤다. 1614년에 열린 '썩은' 의회에 참석하여 특별위원회 4곳에서 일했다. 던은 공직을 얻는 데 도움을 받으려고 사귀었던 궁정 총신 서머싯 백작 로버트 카르와 악명높던 에식스 백작부인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혼시를 지었다. 1614년 후반에 드디어 궁정에서 자리를 얻을 것 같았으나, 이번에도 왕이 교회 밖의 자리를 주는 데 반대했다. 마침내 신의 대리자인 왕에 의해 성직에의 소명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 그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한 뒤에 〈신성론 Essayes in Divinity〉을 완성했고, 교회에서 진로를 시작했다.   1615년 1월 23일에 존 킹 주교로부터 부제(副祭)와 사제직을 임명받았다. 곧 승급이 되어 왕실목사가 되었고, 왕의 명령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616~21년에는 왕의 하사로 헌팅턴셔에 있는 케이스턴의 교구를 얻게 되었고, 전에 그가 섬겼던 에저턴이 자청해서 1616년 켄트에 있는 세븐오크스의 교구를 주었으며, 1622년에는 베드퍼드셔에 있는 블러넘의 교구를 받게 되었다. 1624년부터 죽을 때까지 런던에 있는 서쪽 세인트던스턴의 교구신부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을 치유할' 유급 성직자의 특정직을 법이 왕실목사에게 허용한 대로 2곳에만 한정했다. 1616년 10월부터 링컨스 인 법학원에서 리더(reader:목사이자 정신적 지도자)의 중요 직책을 얻었다. 그의 설교는 곧 힘과 웅변력을 지니게 되었다. 1617년 8월 던의 아내는 12번째의 아이를 사산하다 죽었다. 그는 몹시 슬퍼했으며 더욱 종교생활에 헌신하게 되었다. 아내가 죽은 후 오랫동안 건강이 나빠 친구들을 염려하게 했으며, 1619년에 링컨스 인 법학원을 그만두고, 30년전쟁 초기에 돈캐스터 자작인 제임스 헤이의 사절단과 함께 목사의 자격으로 독일과 보헤미아의 군주들을 방문했다. 1620년초 영국으로 돌아와 1621년 11월 22일 세인트폴 성당의 수석사제로 임명되었다. 여기에서 부딪친 많은 일을 던은 아주 양심적으로 처리해나갔다. 세인트폴 성당의 관리기록부는 그의 유능함과 성실성을 입증해주고 있다.   1625년 제임스 왕이 죽었지만 그의 지위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왕위에 오른 찰스 1세는 그를 성직자며 시인으로서 존경했다. 그러나 찰스 1세의 즉위 후 던이 쓴 시는 '성가' 3편, 종교 소네트 2~3편, 제임스 해밀턴 경의 죽음을 추모하여 쓴 비가가 전부이다. 그는 모든 창의력을 설교와, 심한 재귀열(1624)에서 회복되면서 쓴 산문 〈비상시의 기도문 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에 쏟았다. 중요한 설교문 몇 편을 더 발표하기도 했으나, 런던을 휩쓴 심한 흑사병을 피해 모들린 허버트(댄버스 부인)의 집에 피신해 있던 1625년과 사위의 집에서 병을 치료하던 1630년에 자신이 메모해놓았던 설교문 100편을 옮겨 정리했고 이것을 그가 죽은 뒤 아들이 출판했다. 말년에는 친구와 후원자, 자식들(그가 죽을 때 6명만 생존)의 죽음을 겪어야만 했고 1631년 1월에 노모마저 죽자 슬픈 나날을 보냈다. 병으로 쇠약해졌지만 1631년 2월 25일에 궁정에서 마지막 설교(〈죽음의 결투 Death's duell〉로 사후 출판)를 했으며, 그 다음날 차터하우스(Charterhouse)의 간사회에 마지막으로 참석했고, 3월 21일 마지막으로 성당 일을 했다. 던은 1631년 3월 31일에 죽었고, 4월 3일 성당에 묻혔다. 월턴의 말에 따르면, 던은 마지막으로 병이 들었을 때 수의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바탕으로 하여 니콜라스 스톤은 흰 대리석으로 된 조상(彫像)을 만들었는데,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세인트폴 옛 성당이 소실되었을 때 기념물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되어 지금 성당의 남쪽 복도에 세워져 있다.   사후의 명성   던은 〈기일〉을 출판할 때 친구들에게 "운문으로 된 아무 글이나 인쇄한" 데 대해 사과했다. 왜냐하면 그당시에는 시를 인쇄한다는 것이 다분히 상업적인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쓴 시 가운데 1편만이 자필로 남아 있고, 대부분은 비교적 규모는 작지만 그의 시를 애호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서 돌려 읽은 필사본으로 남아 있다. 이미 출판된 소수의 시들을 제외하고 그의 첫 시집 〈시집 Poems〉(1633, 1635)은 실제로 이런 복사본을 모은 것이었다. 〈시집〉은 던이 죽은 뒤 90년 사이에 8번이나 출판될 만큼 인기가 있었으나 18세기에 그의 작품은 일반적 취향에 맞지 않았고, 그는 위대하지만 별난 '기지'(wit)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9세기초부터 예리한 독자들은 던의 시적 천재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시뿐 아니라 설교문도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 시인이자 산문작가로서 17세기와 20세기의 작가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이들은 던의 기지 섞인 논리와 열정의 겸비, 복잡한 마음상태의 극적 표출, 참신하고 과감한 이미지, 셰익스피어와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을 만큼 평범한 말로 영어의 진수를 살리면서 풍부한 시적 의미를 창출해내는 능력 등에서 자극을 받았다.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묵상 17번 중에서       ............前略........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   만일에 흙덩어리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게 된다면, 유럽 땅은 또 그 만큼 작아질 것 이며, 만일에 모랫벌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되어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기에. .............後略.......         이별의 말 -  哀悼를 금함              점잖은 사람들은 점잖게 숨지며 그들의 영혼에게 가자고 속삭인다.   임종을 지켜보는 슬픔어린 벗들이 숨이 졌다, 아니다, 말하고 있을 때,     그처럼 우리도 조용히 사라지세나. 눈물의 홍수나 한숨의 폭풍이 없이   속물들에게 사랑을 알린다는 것은 우리 기쁨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지구가 움직이면 재난과 공포가 따르고 사람들은 그 피해와 의미를 계산한다.   전체의 움직임은 그보다 더하지만 사람에게 끼치는 해로움은 덜하다.     우둔한 속세 사람들의 사랑이란 것은 그들이 오로지 관능만을 아는지라   이별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별은 사랑의 요소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별을 모를 만큼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믿고 있고   사랑으로 세련되어 있음으로 해서 눈, 입, 손이 없음을 탓하지 않는다.     우리 둘의 영혼은 결국 하나이니 내가 떠난다 해도 헤어짐이 아니요   가공해서 엷어진 금박 모양으로 오로지 넓게 확장되는 것뿐이다.     우리 영혼이 만일 둘이라 하더라도 콤파스의 다리처럼 한데 붙은 둘이다.   고정된 다리인 당신의 영혼은 다른 다리를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당신의 다리가 중심에 서 있어도 상대방이 멀리 움직여 떠날 때면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쪽이 돌아와야 곧게 일어선다.     당신도 나에게 정녕 그러리라. 비스듬한 다리처럼 움직이겠지만   당신의 확고함이 내 원을 바르게 하고 내 출발한 곳에서 끝나게 한다.       이 시의 상대자는 던의 아내 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잠시 동안의 이별이매 눈물에 젖어 이별하지 말자는 호소이다.   지리상의 발견이라든가 썰물과 밀물에 관한 천문학이라든가 지구의라든가 하는 따위의 르네상스의 새로운 과학도구를 도입하여 사상의 애호가다운 면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때로 사랑은 사람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 힘을 지니게 마련인데, 여기서는 정열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에 의해서 그런 변화가 생겨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결국 이별을 탄식한다고 하는 애정의 표현이 실은 사랑을 죽이는 일이 된다는 패러독스를 완성시키고 있다.     내 마음을 치소서                      내 마음을 치소서, 삼위일체 하느님 노크하고 숨쉬고 빛내고 고치려 마시고   내가 살 수 있도록 나를 밀고, 깨뜨리고, 불고, 태우고, 내가 새로워지게 당신 힘을 기울이소서.     나란 것은 적에게 점령된 포위된 도시, 당신을 맞으려 하나, 오, 소용이 없나이다.   내게 있는 당신의 섭리와 이성이 나를 막아야 하나 오히려 포로 되어, 약하옵고 참되지 못하나이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싶은데 당신의 원수에게 팔려가게 되었나이다.     나를 떼어놓아 그 매듭을 풀고 찢어주소서. 당신한테 나를 끌고 가 옥에다 가두소서.   투옥될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고 겁탈될 때 나는 비로소 정숙할 수 있사오매-.       이 시는 형이상학파 시인 던의 논리적인 구조를 잘 나타내고 있다. 던만큼 패러독스에 찬 사람은 많지 않다.   가톨릭과 영국국교회, 삶과 죽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소녀에 대한 사랑 등의 대립 속에 살았는데 이 시도 그런 패러독스에 차있다.        
222    명시인 - 랭보 댓글:  조회:3035  추천:0  2015-03-18
아르튀르 랭보 1854. 10. 20 프랑스 샤를빌~1891. 11. 10 마르세유.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모험가. 어린시절   랭보는 프랑스 북동부의 아르덴 지방에서 육군 대위와 그 지방 농부의 딸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1살 위였고, 여동생은 2명이었다. 1860년 랭보 대위는 아내와 헤어졌고, 아이들은 어머니가 키우게 되었다. 일찍부터 남다른 지적 능력을 보인 아르튀르는 8세 때부터 타고난 글재주를 보였다. 나중에 그는 샤를빌 중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 되었다. 그는 특히 라틴어 시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1870년 8월에는 경시대회에서 라틴어 시로 1등상을 받았다. 그가 처음 발표한 시는 1870년 1월 〈르뷔 푸르 투스 La Revue pour Tous〉에 실렸다.   1870년 7월에 일어난 프랑스-프로이센전쟁 때문에 그의 정식 교육은 막을 내렸다. 8월에 그는 파리로 달아났지만, 차표 없이 여행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며칠 동안 감옥에서 지냈다. 그의 옛날 은사가 벌금을 대신 물어주고 그를 두에로 보냈다. 두에에서 그는 국민군에 들어갔다. 10월에 그는 다시 사라져, 침략군이 지나간 자국을 따라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를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그는 다시 두에에 도착하여 2주일 동안 자유와 굶주림과 거친 생활 속에서 쓴 시들을 다듬었다. 삶과 자유 속에서 느끼는 천진난만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들은 그가 처음으로 쓴 완전히 독창적인 작품이다. 어머니의 고발로 그는 다시 경찰에 잡혔지만, 1871년 2월 그는 손목시계를 팔아 다시 파리로 가서 2주일 동안 거의 굶다시피하며 보냈다.   반항과 시적 환상   3월초에 그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전에 쓴 시들을 가짜라고 내팽개치고, 삶에 대한 혐오감과 순진무구한 세계로 달아나고 싶은 욕망, 그리고 선과 악의 투쟁의식을 표현한 거칠고 불경스러운 시를 썼다. 그의 행동도 그가 쓴 시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그는 종교와 도덕 및 온갖 종류의 규율에 대한 의식적인 반항으로 일하기를 거부하고 하루 종일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나날을 보냈다. 동시에 그는 신비주의 철학과 밀교(密敎) 및 마술과 연금술에 대한 책을 읽었고, 2통의 편지(1871. 5. 13, 15)에 표현된 새로운 미학을 형성했다. 특히 2번째 편지는 〈견자(見者)의 편지 Lettres du voyant〉라고 불리는데, 이 제목은 시인이란 무릇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볼 수 있고 개인의 인격에 대한 인습적 개념을 형성하는 모든 제약과 통제를 무너뜨림으로써 영원한 신의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서의 예언자, 즉 '견자'(voyant)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1871년 8월말 랭보는 샤를빌의 한 문우의 충고에 따라 시인인 폴 베를렌에게 그의 새로운 시를 몇 편 보냈다. 그중에는 각 모음에다 다른 색깔을 부여한 소네트 〈모음 Voyelles〉도 들어 있었다. 베를렌은 이 시들의 탁월함에 깊은 인상을 받고, 랭보에게 여비를 보내어 파리로 초대했다. 갑자기 폭발한 자신감 속에서 랭보는 〈취한 배 Le Bateau ivre〉를 썼다. 이 시는 전통적인 작시법을 따르고 있지만, 깊은 정서적·영적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서 언어구사의 기교가 놀랍고 상징과 은유의 선택이 대담하기 짝이 없다. 이 걸작에서 랭보는 그의 예술의 가장 높은 정점들 중 하나에 도달했다.   1871년 9월 파리에 도착한 랭보는 3개월 동안 베를렌 부부와 함께 지내면서 당대의 유명한 시인들을 거의 다 만났지만, 거만하고 버릇없는 태도와 음탕함으로 베를렌만 제외하고 그들 모두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떠나라는 요구를 받자 술을 퍼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으며, 베를렌과 동성애 관계를 맺어 추문을 일으켰다. 1872년 3월 그는 베를렌이 아내와 화해할 수 있도록 샤를빌로 돌아갔지만, 5월에 다시 베를렌의 부름을 받았다. 베를렌은 이제 그가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고 맹세했다.   이 시기에(1871. 9~1872. 7) 랭보는 운문으로 된 마지막 시를 썼는데, 이 작품은 기법의 자유분방함과 독창성에서 뚜렷한 진보를 보이고 있다. 이때 그는 베를렌이 걸작이라고 격찬한 〈영혼의 사냥 La Chasse spirituelle〉이라는 작품도 썼지만 이 작품의 원고는 베를렌과 랭보가 영국에 갔을 때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부 비평가들은 초월적인 산문시 〈일뤼미나시옹 Illuminations〉도 이 창조적인 시기에 쓴 작품으로 보고 있지만, 랭보 자신은 이 작품을 이루고 있는 어떤 시에도 날짜를 적지 않았다.   1872년 7월 베를렌은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함께 런던으로 도망쳐 소호에서 살았다. 랭보는 이곳에서 〈일뤼미나시옹〉의 일부를 썼을지도 모른다. 그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지내러 집으로 돌아갔지만, 1873년 1월 베를렌의 부름을 받았다. 베를렌은 랭보의 동정을 사기 위해 중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연극을 했다. 4월에 랭보는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머물고 있는 샤를빌 근처의 로슈에 있는 농장으로 가서 스스로 "이교도의 책, 또는 흑인의 책"이라고 부른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결국 〈지옥에서 보낸 한 철 Une Saison en enfer〉이라는 작품이 되었다. 1개월 뒤, 그 근처에 머물고 있던 베를렌은 랭보를 설득하여 함께 런던으로 갔다. 랭보는 베를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거기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고, 이 죄의식 때문에 베를렌을 가학적일 만큼 잔인하게 다루다가도 금방 그것을 뉘우치고 다정하게 대하곤 했다. 두 사람은 자주 말다툼을 벌였고, 마침내 7월초 베를렌은 랭보와 다툰 뒤 그를 버리고 벨기에로 가버렸다. 그러나 아내와 화해하는 데 실패한 그는 다시 사람을 보내어 랭보를 불러온 다음 함께 런던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했다. 그래도 랭보가 떠나려고 하자 베를렌은 랭보에게 총을 쏘아 손목에 상처를 입히고, 다시 총을 쏘겠다고 위협했다. 베를렌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나중에 재판에서 2년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랭보는 곧 로슈로 돌아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완성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정신이 지옥에 떨어지고 예술과 사랑에서 실패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1873년 가을 벨기에에서 인쇄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파리에서 호평을 받지 못한 데다 인쇄업자에게 돈을 줄 수도 없게 되자, 그는 인쇄된 책을 모두 포기하고 원고와 서류들을 샤를빌에서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이 책을 여러 권 묶은 꾸러미가 1901년에 벨기에의 장서가인 레옹 로소에게 발견되었는데, 그는 이 사실을 1915년에야 공표했다.   1874년 2월 랭보는 난폭하고 자유분방한 시인 제르맹 누보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잡역을 하여 번 쥐꼬리만한 돈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랭보는 이때에도 〈일뤼미나시옹〉의 일부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보는 6월에 파리로 돌아갔고, 랭보는 병에 걸렸거나 가난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7월말에 그는 버크셔 주 레딩에 있는 합승마차 매표소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크리스마스를 지내러 집으로 간 뒤 다시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랭보는 1875년초에 베를렌을 마지막으로 만났고, 이 만남도 역시 격렬한 말다툼으로 끝났다. 랭보가 베를렌에게 〈일뤼미나시옹〉 원고를 준 것은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여행가와 무역상   1875~76년에 랭보는 독일어·아랍어·힌두스타니어·러시아어를 배우고 세상을 구경하러 떠났다. 1879년 6월까지 그는 걸어서 알프스 산맥을 넘었고, 서인도 제도의 네덜란드 식민지 군대에 입대했다가 탈영했고, 독일 서커스단과 함께 스칸디나비아로 갔고, 이집트를 방문했으며, 키프로스 섬에서 노동자로 일했는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매번 병에 걸리거나 다른 어려움을 만나 고통을 겪었다. 1879년 겨울 내내 장티푸스와 싸우고 있을 때 그는 방랑생활을 그만두고 장래계획을 세우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 봄에 키프로스 섬으로 돌아간 그는 건축업자의 현장감독으로 취직했지만, 곧 그 일을 그만두고 다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아덴에서 커피 무역상에게 고용되어 백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에티오피아의 오가덴 지역에 들어갔다. 이 탐험에 대한 그의 보고서는 프랑스 지리학회 회보(1884. 2)에 실려 약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885년 10월 랭보는 저금을 털어 셰와(에티오피아의 일부)의 왕인 메넬리크 2세에게 무기를 팔기 위한 원정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메넬리크 2세는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인 요한네스 4세와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1888년 중엽에야 겨우 기반을 잡는 데 성공했고, 요한네스 4세가 이듬해 3월에 살해당하고 메넬리크가 황제 자리에 오른 뒤에는 총포 밀수로 얻는 수입이 계속 줄어들었다. 에티오피아에 있는 동안 그는 가장 가난한 원주민만큼 소박하게 살면서, 언젠가는 은퇴하여 느긋하게 살 수 있는 돈을 모으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는 인색했지만 남에게는 드러나지 않게 너그러웠고, 그가 원주민 여인과 함께 살던 작은 집은 에티오피아에 사는 유럽인들의 집합 장소가 되었다. 그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 타고난 재주를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에티오피아인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정직성과 성실함으로 추장들의 신뢰까지 얻었으며, 특히 메넬리크의 조카인 하레르 총독은 그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가 이 시기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애정과 지적인 친구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 있다. 1891년 봄 그는 신부감을 찾기 위해 고국에 가서 휴가를 보낼 계획을 세웠다.   해외에서 살고 있던 이 시기에 그는 프랑스에서 시인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베를렌은 〈저주받은 시인들 Les Poètes maudits〉(1884)에서 그에 대해 썼고, 그의 시를 발췌하여 발표했다. 이 시들은 열광적인 호평을 받았지만 랭보한테서는 소식이 없었다. 랭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그에게서 답장도 받지 못한 베를렌은 1886년 상징파의 정기간행물인 〈보그 La Vogue〉에 〈일뤼미나시옹〉이라는 제목의 산문시와 여러 편의 운문시를 '고(故) 아르튀르 랭보'의 작품으로 발표했다. 랭보가 이런 발표에 대해 알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저주받은 시인들〉이 출판된 뒤 자신의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1885년 8월에 그는 학교 동창생인 폴 부르드한테서 편지 1통을 받았는데, 부르드는 전위파 시인들 사이에서 그의 시(특히 소네트인 〈모음〉)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1890년 7월에 한 평론지가 보낸 편지(프랑스로 돌아와 새로운 문학운동을 이끌어보라고 권유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가 그의 서류 틈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그가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답장을 보내지는 않은 것 같다.   1891년 2월 오른쪽 무릎에 종양이 생겨, 4월초에 하레르를 떠날 때는 해안까지 1주일 걸리는 길을 줄곧 들것에 실려 가야만 했다. 아덴에서 받은 치료는 실패했고 그는 프랑스로 송환되었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직후 그는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어머니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거의 위안이 되지 못했고, 그는 여동생 이자벨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좌절감과 절망을 쏟아놓았다. 7월에 로슈로 돌아갔을 때 그를 돌보아준 사람은 이자벨이었다.   그는 여전히 결혼하여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기를 원했지만 건강은 계속 나빠질 뿐이었다. 1891년 8월 그는 마르세유로 악몽 같은 여행을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를 따라간 이자벨은 오빠의 병이 나을 가망이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 그러나 랭보는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견뎌냈다. 그가 죽기 직전에 이자벨은 그를 설득하여 신부에게 고해를 하게 했다. 신부와 나눈 이 대화는 그에게 새로운 평화를 가져다 주고, 소년 시절의 시적인 상상력을 다시 일깨워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견자'가 되어, 여동생의 말에 따르면 〈일뤼미나시옹〉에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보다 훨씬 더 깊이있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근거는 여동생 이자벨의 말일 뿐이고, 이자벨은 여러 가지 점에서 특히 랭보가 에티오피아에서 쓴 편지를 몇 군데 교정했다는 점에서 이미 믿을 수 없는 증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시 위에 가볍게 비 내리네                                   내 마음은 울고 있다네 도시 위에 비 내리듯 ;   이 우수는 무엇일까, 내 마음에 파고드는 이 우수는     오 부드러운 비의 소리여 땅 위에 지붕 위에   내 지겨운 마음을 위해 오 비의 노래여!     이유 없이 우는구나, 이 역겨워진 마음은.   뭐라고! 배반은 없다고?... 이 슬픔은 이유가 없구나.     가장 나쁜 고통이구나, 이유를 모르는 것은   사랑도 없이 증오도 없이 내 마음은 그토록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구나!       나의 방랑 생활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 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고.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구월 저녁나절에, 이슬 방울을 원기 돋구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발을 가슴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감각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 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모음                       검은 A, 흰 E, 붉은 I, 푸른 U, 파란 O: 모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   A, 지독한 악취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터질 듯한 파리들의 검은 코르셋,     어둠의 만(灣); E, 기선과 천막의 순백(純白), 창 모양의 당당한 빙하들; 하얀 왕들, 산형화들의 살랑거림.   I, 자주조개들, 토한 피, 분노나 회개의 도취경 속에서 웃는 아름다운 입술.     U, 순환주기들, 초록 바다의 신성한 물결침,   동물들이 흩어져 있는 방목장의 평화, 연글술사의 커다란 학구적인 이마에 새겨진 주름살의 평화.     O, 이상한 금속성 소리로 가득찬 최후의 나팔,   여러 세계들과 천사들이 가로지는 침묵, 오, 오메가여, 그녀 눈의 보랏빛 테두리여!     취한 배     유유한 강물을 타고 내려올 적에, 더 이상 수부들에게 이끌리는 느낌은 아니었어   홍피족들 요란스레 그들을 공격했었지, 색색의 기중에 발가벗겨 묶어 놓고서     플랑드르 밀과 영국 솜을 져 나르는 선원들이야 내 알 바 아니었어,   배를 끄는 수부들과 함께 그 북새통이 끝났을 때 나 가고 싶은 데로 물살에 실려 내려왔으니,     격하게 출렁이는 조수에 휘말린 지난 겨울, 난, 노아보다 더 넉넉한 골을 싸잡고   헤쳐 나갔지! 떠내려간 이베리아 반도도 그처럼 의기양양한 혼돈을 겪지는 못했을 거야,     격랑은 내가 항행에 눈뜬 것을 축복해 주었어, 코르크 마개보다 더 가벼이 나는 춤추었지,   끊임없이 제물을 말아먹는다는 물결 위에서, 열흘 밤을, 뱃초롱의 흐리멍텅한 눈빛을 드리지도 않으며!     셔츠를 짓찢을 듯 모진 겨울바람에,       지옥에서 보낸 한 철                               1.서시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들이 흘러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어느날 저녁 나는 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   그러고보니 지독한 치였다-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다.     나는 죽어가면서 그들의 총자루를 물어 뜯으려고   사형집행인을 불렀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 팍 쓸어졌다. 나는 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대를 잘 속여 넘겼다.     봄은 나를 향해 백치처럼 무시무시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라에,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자애(慈愛)가 그 열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보다.   "너는 잔인한 놈으로 남으리라....." 따위의 말을,     그토록 멋진 양귀비 꽃을 나에게 씌어준 악마가 다시 소리친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罪宗)을 짊어지고 죽으라"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드렸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그리고 하찮은 몇 가지 뒤늦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   글쟁이에게서 교훈적이며 묘사적인 능력의 결핍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 나의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기흉한 몇 장을 발췌해 준다.       *죄종(罪宗)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7개의 주된 죄                교만, 탐욕, 사음(邪淫), 질투, 탐심, 분노, 태만  
221    프랑스 명시인 - 빅토르 위고 댓글:  조회:3626  추천:0  2015-03-18
   빅토르 위고 1802. 2. 26 프랑스 브장송~1885. 5. 22 파리.   프랑스의 시인·극작가·소설가.     위고, Nadar (Gaspard-Felix Tournachon)가 찍은 사진 프랑스 낭만파 작가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만년에는 저명한 정치가이자 정치적 저술가로 활동하여 보나파르트주의와 권위주의를 비난했다. 가장 유명한 장편소설은 〈노트르담의 꼽추 Notre Dame de Paris〉(1831)·〈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1862)이다.   위고가 쓴 엄청난 양의 작품은 프랑스 문학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아침마다 시 100행이나 산문 200장을 썼다고 한다. 1830년에는 '낭만파 운동의 가장 강력한 정신'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1845년에는 프랑스의 계관시인이며 귀족원 의원으로, 그후에는 사회에서 추방당한 현인의 역할을 떠맡았다. 그는 권위에 대한 자각을 갖고 자신의 통찰과 예언적 견해를 산문 및 운문으로 기록하여, 마침내 프랑스 모든 도시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겨날 만큼 사랑받는 국민시인이자 온화한 할아버지 같은 모습의 인기작가가 되었다. 위고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를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했지만, 그후 얼마 동안은 그를 비판적으로 무시했다. 그러나 그의 시 가운데 몇 편은 소수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었고, 〈레 미제라블〉도 여전히 널리 읽혔다. 소수의 사람들은 그의 시 예술을 칭찬했으며, 그의 너그러운 사상과 따뜻한 표현은 여전히 대중을 감동시켰다. 소설가 프랑수아 모리아크가 '진부함의 영웅주의'라고 불렀던 대로 그는 보통 사람들의 시인이었다. 그는 평범한 기쁨과 슬픔을 단순하고 힘차게 쓰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 민중시인에게는 폴 클로델이 우주에 대한 '지나친 공포를 자아내는 명상'이라고 불렀던 또다른 측면이 있었는데, 즉 〈악마의 최후〉·〈신〉이라는 우울한 2편의 시를 관통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두려움이 그것이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말했듯이 위고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또한 프랑스 운문의 풍부한 자산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운율 및 압운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의 기교는 프랑스 시를 18세기의 빈곤함에서 구해주었다.   앙드레 지드는 누구를 가장 위대한 프랑스 시인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유감스럽지만 빅토르 위고"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비록 유감스러울지라도 사실은 어디까지나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호한 판결에 이어 또다른 시인 레옹 폴 파르그는 "빅토르 위고는 미래의 시인"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내는 시인'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시인이자 초현실의 시인인 빅토르 위고는 일부가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스텔라     그 밤에 나는 모래 밭에서 자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결에 꿈에서 깨인 나는 눈을 뜨고 새벽별을 바라보았다.   그 별은 하늘 깊숙한 곳에서 한없이 부드럽고 고운 흰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복풍은 소란을 떨고 달아났다. 빛나는 별빛은 구름을 솜털처럼 엷게 만들었다.   그것은 사객하고 호흡하는 빛이다. 물결이 부딪쳐 흐트러지는 암초 위에 조용함을 가져왔다.   마치 진주를 통해서 영혼을 보는 것 같았다. 밤이었지만 어둠은 힘을 잃어가고 하늘은 거룩한 미소로 밝아졌다.   별빛은 비스듬히 기운 돛대 위를 은색으로 물들였다. 뱃몸은 아직 어둠 속에 있었지만 돛은 희었었다.   가파른 언덕 위에 갈매기 떼들이 앉아, 생각 깊은 모양으로 그 별을 응시하고 있었다.   섬광으로 만든 천국의 새처럼. 백성을 닮은 태양은 별을 향해 움직이고,   나지막이 물결소리를 내며 별이 빛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별이 도망갈까 보아 겁내는 것 같았다.   공간?메우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랑, 파란 풀잎들이 내 발밑에서 그 사랑에 겨워 파들 거리고 있었다.   새들이 둥우리에서 소근대고, 잠을 깬 꽃아가씨가 내게 말했다. 저 별은 내 누이라고.   어둠이 천천히 장막을 여는 동안 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앞에 서서 오는 별입니다. 사람들이 무덤 속에 누워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살아나는 별입니다.   나는 시내산 위를 밝혔고 타이제트산 위를 밝혔습니다.   돌을 던지듯이 하느님께서 불의의 면전에 던지시는 황금과 불로 빛은 조약돌입니다.   세상이 무너질 때 다시 살아나오는 별입니다. 백성이여! 나는 뜨거운 시입니다.   모세의 앞길을 비춰주었고 단테의 앞길을 비춰주었습니다. 사자같이 사나운 태양도 나를 좋아합니다.   내가 여기 왔습니다,파수꾼들이여, 탑 위에 올라가시오! 눈꺼플이여, 눈을 여시오, 동자여, 빛을 내시오.   대지여, 고랑을 파오, 생명이여, 외침을 들으시오, 잠자는 이여, 일어나시오! 나를 쫓아오는 자는   나를 이렇게 전초로 보낸 자는 바로 자연의 천사요. 빛의 거인이오니!         오네요! 아련한 피리 소리       오네요! 아련한 피리 소리 과수원에서 들려와요.   한없이 고요한 노래 목동의 노래.     바람이 지나가요, 떡갈나무 그늘 연못 어두운 거울에.   한없이 즐거운 노래 새들의 노래.     괴로워 말아요, 어떤 근심에도 우리 사랑할지니! 영원히!   가장 매혹적인 노래 사랑의 노래.       꽃에 덮인 오월     꽃에 덮인 목장의 오월이 우리를 부르니, 이리 오오!     저 전원, 숲, 아양스런 그늘, 잔잔한 물가에 포근히 드리워진 달빛   신작로로 통하는 오솔길, 미풍과 봄과 끝없는 지평선   수줍고 즐거움에 겨운 이 땅덩이가 입술처럼 하늘의 옷자락 끝에 포개지는 지평선을   당신 마음속에 함뿍 끌어넣지 않으려오. 이리 오오!     겹겹의 막을 뚫고 땅 위에 내려진 마알간 별들의 시선이,   향기와 노래에 넘치는 나무가, 정년의 햇빛으로 뜨거워진 들의 입김이,   그리고 그늘과 태양이, 물결과 녹음이, 당신의 이마 위엔 아름다움을   당신의 마음속엔 사랑을 꽃 피게 하여 주리니!   탐스런 꽃송이처럼.       모래언덕 위에서 하는 말   나의 인생이 햇불처럼 옴츠러 들어간 지금, 나의 임무가 끝난 지금,   애상과 나이를 먹는 동안 어느샌가 무덤 앞에 이르게 된 지금,     그리고 마치 사라진 과거의 소용돌이처럼 꿈의 날개를 펴던 저 하늘 속에서   희망에 부풀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어둠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 지금,     어느 날인가 우리는 승리를 하지만 그 다음날은 모든 것이 거짓이 되고 만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슬픔을 안고 꿈에 취한 사람모양 몸을 구부린 체,     나는 바라본다. 뭉게구름이 산과 계곡,   그리고 끝없이 물결짓는 바다 저 위에서 욕심장이 북풍의 부리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하늘의 바람소리가 ,암초에 부딪치는 물결소리가, 익은 곡식단을 묶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 기울인다. 그리고는 속삭이는 것과 말하는 것을 내 생각 깊은 마음속 에서 비교해 본다.     나는 때때로 모래언덕 위 듬성듬성 난 풀 위에 몸을 던진체, 꼼짝 않고 시간을 보낸다.   그러노라면 흉조를 띤 달이 떠올라와 꿈을 펴는 것이 보인다.     달은 높이 떠올라 가만스런 긴 빛을 던진다. 공간과 신비와 심연 위에,   광채를 발하는 달과 괴로움에 떠는 나, 우린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사라진 내 날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를 알아주는 이, 하나라도 있을까?   이 노곤한 눈동자 속에 젊은 날의 빛 한 오라기라도 남아 있는가?     모든 것이 달아난 걸까? 나는 외롭고 이젠 지쳤다. 대답없는 부름만을 하고 있구나.   바람아! 물결아! 그래 난 한가닥 입김과 같은 존재였단 말이냐?   아 슬프게도! 그래 난 한줄기 물결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냐?     사랑했던 그 어느 것도 다시 볼 수 없단 말이냐? 나의 마음속 깊숙이 저녁이 내린다.   대지야, 네 안개가 산봉우리를 가리웠구나, 그래 난 유령이고 넌 무덤이란 말인가?     인생과 사랑과 환희와 희망을 모두 살라 먹었을까? 막연히 기대를 건다. 그러다간 애원하는 마음이 되어   한줌이라도 혹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단지마다 기울여 본다.     추억이란 회한과 같은 것인가, 모든 것은 우리에게 울음만을 밀어다 주는구나!   죽음, 너 인간의 문의 검은 빗장아, 너의 감촉이 이리도 차냐!     나는 생각에 잠긴다. 씁쓰레한 바람이 일어오는걸, 물결이 붉게 주름지어 밀려오는 걸 느끼면서,   여름은 웃고, 바닷가 모래밭에는 파아란 엉겅퀴꽃이 피어나는구나.     위고 시선 [ Poésie de V. Hugo ]   저자 빅토르 위고(Victor M. Hugo, 1802-1885) 국가 프랑스 분야 시 해설자 윤세홍(국립창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빅토르 위고는 청장년 시절, 거의 매일 아침 100행에 달하는 정교한 운문시를 써 내려갔을 정도로 필력이 뛰어난 시인이다. 평생에 걸쳐 그가 집필한 총 스무 권의 크고 작은 시집 중, 옮긴이는 이 책의 분량을 감안하여, 그의 두 번째 시집인 ≪동방시집≫(1829)으로부터 생전에 마지막으로 간행된 시집인 ≪정신의 네 바람≫(1881)에 이르기까지 열 권의 시집과 사후 유고집으로 나온 ≪모든 리라≫와 ≪마지막 꽃다발≫의 두 권을 택해 총 50편의 작품을 선별, 수록했다. 위고의 나이 27세 때 간행된 ≪동방시집≫은 빅토르 위고가 낭만주의 시인의 면모를 드러낸 첫 작품으로서, 그 이전까지의 고전적인 형식과 가톨릭ㆍ왕정주의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뚜렷한 개성으로 이국 취향을 담아낸 작품이다. 위고는 여기에서 터키인에 맞서 봉기한 그리스인의 애국적 영웅주의를 드높이 찬양하면서, 화려한 색깔과 강렬한 빛으로 지중해나 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 지방의 의복, 경치 등을 그려내고 있다. 얼마 뒤 위고는 ≪가을 나뭇잎≫(1831), ≪황혼의 노래≫(1835), ≪내면의 목소리≫(1837), ≪빛과 그림자≫(1840)와 같은 일련의 우수에 찬 서정시집들을 발표한다. ≪가을 나뭇잎≫을 쓰면서, 위고는 20대 청춘의 쇠락에서 생겨난 우울, 부인과의 불화로 인해 깊어진 불안, 문학 투쟁의 격렬함에서 빚어진 피로를 한탄하면서도, 아이들이 선사하는 가정생활의 소박한 행복 등을 노래하며 기분 전환을 하고자 애썼다. ≪황혼의 노래≫는, 혁명의 암운이 채 가시지 않은 입헌군주 체제하의 불안한 정정(政情)의 내일에 대한 위고의 고민과 함께, 여배우 쥘리에트 드루에와 가까워지면서 피어난 새로운 사랑과 그로 인한 위고의 번민을 토로한다.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서, 위고는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쥘리에트 드루에에 대한 사랑을 몽상에 잠긴 듯 읊조리면서, 한편으로는 좀 더 차분하고 진지하게 내면을 응시하는 시인이 되는데, 중상모략당하고 오해받는 고상한 스스로의 모습을 ‘올랭피오(Olympio)’라는 상징적인 인물에 투영한다. ≪빛과 그림자≫는 앞서 집필한 내밀한 서정시 연작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인류의 빛이 되어야 할 시인의 직분에 대한 한층 깊어진 철학적 명상과 함께, 가엾은 사람들의 삶을 향한 연민을 통해 개인의 불행을 딛고 일어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1850년대는 빅토르 위고가 오랜 망명 생활에 들어가면서 ≪징벌시집≫(1853), ≪정관시집≫(1856), ≪제 세기의 전설≫(1859)과 같은 세 권의 대작을 집필한 시기다. 1851년 12월 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전복시키고 황제에 즉위한 나폴레옹 3세를, 위고는 ≪징벌시집≫을 통해 거침없는 웅변과 독설로 단죄한다. 이 시집은 제2제정 권력의 철저한 감시와 출판 금지 등 숱한 어려움을 뚫고 은밀하게 반입되어 파리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프랑스인들에게 ‘정의가 승리하는 내일’에 대한 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 ≪정관시집≫은 1839년에서 1855년까지 17년에 걸쳐 쓴 시들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위고의 표현대로 “한 영혼의 회상록”이다. 이 시집은, 맏딸 레오폴딘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1843년 9월 4일을 경계로 ‘옛날’과 ‘오늘날’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그가 걸어온 영혼의 역정을 투사하고 있다. 작품의 산실이 된, 망명지 노르망디의 광막한 바다에 둘러싸여, 갈수록 인생과 우주의 불가사의에 크게 동요하던 위고는, 1853년 우연히 체험하게 된 강신술(降神術)을 통해 죽음 저 너머 영혼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철학적 성찰의 해답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정관시집≫을 완성할 무렵, 위고는 영혼의 구원에 도달하기 위해 우주 만물은 선행과 사랑의 미덕을 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설파하는 신의 메신저가 되기에 이른다. ≪제 세기의 전설≫은 특히 중세에서 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위대한 시기들을 배경으로 영웅담과 함께 시대별 영혼들을 거대 상상력으로 그려낸 서사시집으로, 위고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류 진보의 행적과 영속성을 확인하고 있다. 60대에 접어든 위고는 앞서 본 ≪정관시집≫이나 ≪제 세기의 전설≫에서처럼 방대한 스케일의 집필이 안겨준 피로에서 벗어나려는 듯, ≪길과 숲의 노래≫(1865)라는 경쾌한 작품을 발표한다. 대중성이 돋보이는 이 시집은 제목처럼 자연과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하고 있는데, 조형적인 미를 추구했던 고답파(高踏派) 시처럼 정밀한 세부 묘사를 선보이면서 원숙한 표현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뒤 위고는 ≪할아버지 되는 법≫(1877)을 간행하는데, 아내의 죽음에 이은 두 아들의 죽음으로, 어린 손자와 손녀를 유일한 가족으로 돌보게 된 쓸쓸한 노년에 발견한 뜻밖의 행복을 감미로운 노래로 표현했다. 문학비평가들은 이구동성으로 75세에 달한 위고의 이 아름다운 영감의 혁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79세의 위고는 생전의 마지막 시집이 될 ≪정신의 네 바람≫(1881)을 남긴다. 이 시집은 풍자시, 극시, 서정시, 서사시의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만년에 이른 시인 위고의 지평을 이루고 있는 네 가지 장르의 시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특히 서정시 편에서는 그가 표현했듯이 “슬프면서도 멋진, 쇠약해진 늙은 시인”의 눈으로 자연과 인생을 마지막으로 관조하면서, 영생을 얻게 될 그의 시에서 위안을 찾고 있었다.    
220    명시인 - 알퐁스 드라마르틴 댓글:  조회:3212  추천:0  2015-03-18
     알퐁스 드라마르틴 1790~1869   시인인 동시에 정치가. 낭만주의를 처음으로 작품화하였으며 시의 기교를 멸시하여 항상 풍요한 시상을 조화롭고 음악적인 리듬에 실었다.   테마는 주로 사랑,자연,죽음,추억으로 시속에서 자연을 발견, 찬미하고 또한 죽음의 관념에 늘 사로잡혀   그 너머의 영생을 꿈꿔 작품속에 종교적 명상을 불어넣은 작가다. 수많은 여행으로 인해 빛에 쪼들려 억지로 작품을 써야하는 만년을 보냈다.     호 수     이렇게 항상 새로운 여울을 향해 밀리고, 돌아올 길도 없이 끝없는 어둠에 휩쓸려   넓은 세월의 바다 위에 단 하루만이라도 닻을 내려 정박할 수가 없을까?     오, 호수여 ! 이제 겨우 한 해가 지나 갔는데, 그이가 다시 와야 할 이 사랑스런 물가에   일찍이 그이가 앉았던 바로 그 바위 위에 보라, 이젠 이렇게 나만 홀로 와서 앉았다.     너는 지금처럼 깊숙한 바위 밑에서 울부짖었고 지금처럼 그 울퉁불퉁한 바위에 마구 부딪쳤었지.   그 날도 지금처럼 바람은 네 물결을 튕겨 사랑스런 그이의 발 위에 거품을 끼얹었었지.     호수여, 그 밤을 너는 기억하는가 우리는 말없이 노를 젖고 있었다.   위로 하늘, 아래로 물결, 그 사이엔 가락맞춰 조화롭게 물결을 헤쳐 나가는 노소리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었지.     그때 갑자기 지상의 소리 같지 않은 음성이 매혹된 호수가에 메아리쳐 울렸었다.   물결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내게 지극히 사랑스런 그 음성이 이런 말들을 남겼다.     시간이여, 날음을 멈추어라. 그리고 너 행복된 시절이여, 운행을 중지하라.   우리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의 이 덧없는 희열이나마 우리 좀 맛보게 해다오.     이 세상의 많은 불행한 이들은 너를 애원하노니, 그들을 위해 어디 흘러가거라.   그들을 괴롭히는 근심들까지 그 시간과 더불어 가져가거라 그리고는 행복한 사람들을 잊어다오.     아직 몇 분 더 머물기를 바래도 소용없구나! 시간은 나를 빠져나가 자꾸 도망쳐 간다.   이 밤이 제발 느리게 지나가라 간청하지만 새벽이 와서 어둠을 흐트러 놓으리라.     그러니 우리 서로서로 사랑하며 서둘러 이 덧 없는 세월을 즐겨 보자구나.   인간에겐 항구가 없고 시간엔 기슭이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인간은 사라지고!     시기에 찬 시간들이여, 사랑의 행복에 함뿍 취한 이 기쁜 순간을   불행한 날들과 그렇게 똑같은 속도로 우리 한테서 앗아갈 수 있단 말인가?     진정 우리는 행복된 순간의 흔적조차 남길 수가 없단 말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만단 말인가.   즐거움을 주었다가, 그리고 그것을 앗아간 시간이 이제 다시는 그 즐거움을 돌려줄 수 없단 말인가.     영원이여, 허무여, 과거여, 너희들의 심연이여! 너희들이 사켜 버린 그 시간은 무엇에 쓰려느냐?   우리에게서 앗아간 그 숭고한 도취를 언제 돌려주려하느냐?     오, 호수여, 말없는 동굴이여, 어두운 숲이여! 시간이 아껴두고 또다시 젊게도 해줄 수 있는   너희들, 아름다운 자연이여, 이 밤의 추억만이라도 간직해다오.     아름다운 호수여, 네 휴식 속에, 네 폭풍 속에 그리고 물 위로 불쑥 솟은 험한 바위 사이에 그 추억을 간직해다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네 물결가에 연방 부딪치는 파도 소리에   보드라운 빛으로 수면을 희게 비추는 은빛 별들 속에 그 추억을 간직해다오!     탄식하는 바람, 한숨짓는 갈대, 향기로운 대기의 가벼운 향기,   들리고, 보이고, 숨쉬는 그 모든 것이 다같이 말해주길,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라고.   * 병상에 누워 있는 엘뷔르를 기다리며 그녀와 거닐던 호수가에서 이제는 과거가 되고 만 즐거움을 추억하여 읊은 것.   다시 되 찾을 수 없는 과거를 지워지지 않는 과거로 만들어 무상한 세월에서 짧았던 사랑의 추억을 영원토록 간직코자 한 것이다.       골짜기   내 마음은 모든 것에 지쳐, 희망에도 지쳐서, 소망을 품어 운명을 더는 괴롭히지 않으리.   내 어린 시절의 작은 골짜기여, 이제는 다만 죽음을 기다릴 잠시의 안식처를 빌려다오.     여기 어둑한 골짜기의 좁은 오솔길이 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그 둔덕에 기울어져 있다.   그 나무들은 내 이마 위에 뒤얽힌 그늘을 드리무며, 내 온 몸을 침묵과 평화로 뒤덮여준다.     저기 녹음으로 엉킨 다리 밑에 감춰진 두 시냇물이 골짜기 주위를 굽이 돌아 흐른다.   냇물은 한순간 물결과 속삭임이 한데 뒤섞이더니 내 인생의 원천도 그 냇물처럼 흘러버렸다.   소리도 이름도 없이, 다시 돌아올길 길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냇물의 물결은 맑고 투명한데 혼탁한 내 영혼은 아름답던 날의 광명을 비치지도 못한다.     서늘한 냇물 바닥과 그 곳에 드리운 그늘이 온종일 나를 시냇가에 묶어 놓았다.   단조로운 노랫가락에 고이 잠드는 어린래처럼 내 영혼은 냇물 흐르는 소리에 잠이 든다.     녹음이 성벽처럼 둘러싸이고 바라보기 아름다운 내 눈앞 지평선에 싸인곳   아, 그 곳에서 나는 즐겨 걸음을 멈추고 자연속에 홀로 서서 물결소리만을 듣고 하늘만 바라본다.     살아오는 동안 너무 보고 너무 느끼고 너무 사랑을 해본 나는 이제 레떼의 정적을 찾으러 왔다.   아름다운 고장이여, 내게 망각의 언덕이 되어다오. 이제부터는 망각만이 나의 지복이 된다.     내 마음은 휴식을 얻었고, 내 영혼은 침묵을 찾았다. 세상의 먼 소음은 바람에 실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약한 소리처럼, 명확하지 않은 내 귓가에 들려왔다가는 곧 사라져버린다.     이곳에서 나는 구름 저 너머로 나의 생이 과법의 그늘 속에 사라져가는 것을 본다.   잠에서 깨웠을 때 지워진 꿈 속에 커단 영상만이 남아있듯이 남은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희망을 가슴 가득히 품은 한 길손이 마을에 들어가기 전 그 문턱에 앉아   잠시 저녁의 향기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듯 나의 영혼이여, 마지막 이 안식처에 편히 쉬어라.     그 길손처럼 우리 이 행로의 막바지에 서서 영원한 평화의 전 인 이 정적을 흠뻑 들이마시자.     가을날처럼 우울하고 짧은 너의 일생은 언덕에 드리운 그늘처럼 기울져 간다.   우정도 너를 배반하고, 동정도 너를 버려 너는 혼자서 무덤의 오솔길을 내려간다.     그러나 너를 부르고 너를 사랑하는 자연이 거기에 있다. 항상 네게로 열려있는 자연의 품속에 가서 안겨라.   너의 모든 것이 변할지라도 자연은 항상 변함이 없고 변함없는 태양이 항상 네 인생 위를 떠돈다.     자연은 언제나 광명과 그늘로 너를 감싸준다. 잃어버린 허망한 행복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   피다고르가 사랑하던 메아리를 사랑하라. 그리고 천상의 향연 그와 함께 귀를 귀울여보라.     하늘의 광명을 보라. 지상의 그늘을 보라. 넓고 넓은 창공에선 북풍을 따라 날으고   부드러운 달빛을 받으면서 숲을 헤치고 골짜기의 그늘로 소리없이 들어서렴.     신은 인간이 자기를 알 수 있도록 지성을 부여하셨다. 그러니 자연 앞에서 그 창조자를 발견하여라.   자연은 침묵 속에 한 목소리로 영혼을 가진 자에게 말을 하노니 그 누가 가슴 속에 이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 1819년 초여름, 죽은 애인에 대한 추억과 상처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으나 건강이 회복됨에 따라 차차 마음도 자연에 의해 진정된 시기에 씀.       가을     아직 변색하지 않은 녹음에 덮인 숲이여, 잔디 위에 마구 흩어져 있는 노릇한 낙엽들이여,   아름다운 가을의 날들이여 ! 안녕 ! 자연의 슬픔은 내 괴로움과 어울려 내 눈길에 정다웁다     나는 명상에 잠겨 한적한 오솔길을 따른다. 약한 햇살로 내 발밑의 어두운 숲을 희미하게 밝혀주는   이 창백해 가는 해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보고 싶구나.     그렇다. 자연이 숨져 가는 이 가을날, 베일에 싸인 듯 몽롱한 그의 시선 속에서 나는 더 한층 매력을 느낀다.   가을은 사랑하는 친구의 이별이며 죽음으로 영원히 닫혀지려는 입술에 떠도는 미소이다.     이처럼 인생의 지평선을 떠날 준비를 갖추고, 내 오랜 생애에 품었던 희망이 이제 스러져감을 한탄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돌려 선망의 눈초리로 내가 즐겨보지 못한 인생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본다.     천지여,태양이여,계곡이여, 아름답고 다정스런 자연이여, 나는 그대들로 인해 죽음에 임해 눈물을 흘린다.   대기는 너무도 향기롭고 빛은 너무도 맑다. 숨져가는 이의 시선엔 태양은 진정 아름답고나.     나는 이제 단맛 쓴맛이 함께 뒤섞인 이 술잔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몽땅 비우련다.   내가 생명을 들이마시던 이 잔 밑바닥에 어쩌면 한 방울의 굴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어쩌면 아직도 미래가 희망이 다 없어졌던 행복을 내게 다시 돌려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군중 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한 영혼 내 영혼을 이해해주고 그리고 내게 응답해줄지도 모른다.     미풍에 향내를 풍기며 꽃잎이 떨어진다. 그것은 바로 생과 태양에 대한 이별.   내가 여기 죽어가는데 숨이지는 그 순간에 슬프고도 가락진 음향처럼 내 영혼이 퍼진다.         나 비     봄과 함께 나서 장미와 함께 죽는다. 서풍의 날개를 타고 나른다. 맑은 하늘을.   몇송이 안핀 꽃들의 가슴에 흔들리며 향내에 햇살에 창공에 취하여 어린 몸을 흔들며 분가루를 뿌린다.   한숨처럼 가없는 하늘을 난다. 정녕 홀리인 나비의 숙명   이승의 욕망처럼 휴식도 없이 꽃이란 꽃에 닿아도 마음은 그 모양 열락을 찾다 끝내는 되돌아간다. 하늘로!     아듀 그라치엘라     안녕! 눈물에 젖은 입술 위에 감도는 말. 기쁨의 문을 닫고, 사랑을 가르는,   환희에서 우리를 떼어놓는 그리하여 어느 날인가 영원 속으로 지워져 가는 말 안녕!     안녕!.....내 생에서 사랑했던 여인들과 헤어지며, 의미도 모른 채, 흘려 뱉어냈던 말.   돌아와 줘! 인간이 탄식할 때, 결코 안돼! 신의 대답이 메아리칠 때,   그 말 안에 담겨 있는 슬픔과 도취의 찌꺼기를 나는 몰랐어라, 안녕!     허지만, 오늘 나는 느낀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음을,   그 말은 바로 너로 인해 채워졌기에 심연을 안고 뒹구는 말,   나와 내 사랑의 영상 사이에 가로놓인 영겁의 이 침묵만이 오직 대답이 될 뿐인 말!.....     그걸 알면서도 마냥 그 말만을 되풀이하는 나의 마음   숨죽인 흐느낌에 드문드문 끊겼다가도 터져나오는 모든 소리는   오로지, '진정 안녕!'이라는 의미 안으로 쌓여가는 것인 양, 되풀이하는 나의 마음.       *그라치엘라; 1816년에 쓰여진 시 엘비르(Elvire)라는 신비로운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라마르틴느의 첫 번째 사랑의 대상.   이태리 나폴리 태생의 소녀. 그러나 1816년 12월 16일 그가 친구 비리유에게 써보낸 편지에서의 그녀의 이름은 마리 안토니아 이아코미노로 되어 있으므로   '그라치엘라'라는 이름도 역시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다 할 것이다. 아듀(안녕)이라는 말은 라마르틴느가 즐겨 사용하는 시어.      
219    명시인 - 프란시스 잠 댓글:  조회:3943  추천:0  2015-03-18
프란시스 잠 1868~1938       프랑스의 시인 투르네에서 태어났다. 평생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의  풍물을 종교적 애정을 가지고 쉬운 가락으로 노래하였다. 그가 시를 쓰던 때는 상징주의 말기로서 내용이 퇴  폐적일 뿐만 아니라 그 내용 또한 지나친 상징 기법을  주로 쓰던 시기였다. 이에 맞서 독자적인 세계를 연 그는 프랑스 상징파의 후기를 대표하는 신고전파 시인이다. 말라르메와 지드의 지지를 받았으며, 특히 지드와는 평생의 벗으로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문학적으로도 높이 평가된다.   주요 시집으로 《새벽 종으로부터 저녁 종까지》  (1898), 《프리물라의 슬픔》(1901), 《하늘의 빈터  Clairitres dans le ciel》(1906) 등이 있고, 아름다운  목가적인 소설에 《클라라 델레뵈즈 Clara d’Elle  beu  se》(1899)가 있다. 또, 1906년부터는 종교적인 작품  을 많이 창작하였는데, 그 집대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농목시(農牧詩) Les Glorgi  ques  christiennes》(1911∼1912) 등이 있다.           애가(哀歌)                    "내 사랑아" 너는 말했다. "내 사랑아" 나는 말했다.   "눈이 온다" 너는 말했다. "눈이 온다" 나는 말했다.   "좀더, 좀더" 너는 말했다. "좀더, 좀더" 나는 말했다.   "이렇게, 이렇게" 너는 말했다. "이렇게, 이렇게" 나는 말했다. 그런 뒤, 너는 말했다.   "난 네가 참 좋아" 그리고 나는 말했다. "난 네가 더 좋아"   "여름은 갔어" 너는 말했다. "가을이 왔어" 나는 답했다.   그리고 난 뒤 우리의 말은 처음처럼 비슷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에 너는 말했다. "사랑아, 네가 좋아."   해맑고 숭고한 가을날의 화려한 저녁빛을 받으며 그 말에 나는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렴"       순박한 아내를 위한 기도     주여, 내 아내감이 될 여인은 겸손하고 온화하며, 정다운 친구가 될 사람으로 해 주소서   우리 잠잘 때에는 서로 손 맞잡고 잠들도록 해 주소서   메달이 달린 은 목걸이를 그녀 가슴 사이에 보일듯 말듯 목에 걸도록 해 주소서   그녀의 살갗은 늦여름, 조는듯한 자두보다 한결 매끄럽고 상냥하며 보다 더한 금빛으로 빛나게 해 주소서   그녀의 마음 속에는 부드러운 순결이 간직되어 서로 포옹하며 말없이 미소짓도록 해 주소서   그녀는 튼튼하여 꿀벌이 잠자는 꽃을 돌보듯 내 영혼을 돌보도록 해 주소서   그리하여 내 죽는 날 그녀는 내 눈을 감기고 내 침대를 움켜 잡고 흐느낌에 가슴 메이게 하며   무릎을 꿇는 그 밖의 어떤 기도도 내게 주지 않도록 해 주소서..                                                                      장미로 가득한 집                           집은 장미와 꿀벌로 가득하리라.   오후 만찬의 종소리 들리고 투명한 보석 빛깔 포도알이 느린 그늘 아래 햇살을 받으며 잠든 듯 하리라.   아 그곳에서 그대를 마음껏 사랑하리! 나는 그대에게 바치리   온통 스물 네 살의 마음을, 그리고 내 조소적인 정신과 프라이드와 백장미의 나의 시를,   하지만 나는 그대를 알지 못하고, 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만일 그대가 살아있다면, 그대가 나처럼 목장속 깊이 있다면,   황금빛 꿀벌아래 웃으며 우리 입맞추리라는 것을 시원한 시냇물가에서, 무성한 잎사귀 아래서,   귀에 들리는건 오직 태양의 열뿐. 그대의 귀엔 개암나무 그늘이 지리라.   그러면 우리는 웃기를 그치고 우리들의 입술을 입맞추리. 말로는 말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사랑을 말하기 위해,   그리고 나는 발견하리라 그대 입술의 루즈에서 황금빛 포도와 홍장미와 꿀벌의 맛을.       우산을 들고서                          파란 우산을 손에 들고 더러운 양떼를 몰며, 치이즈 냄새 풍기는 옷을 입고서,   감탕나무, 떡갈나무, 혹은 모과나무 지팡이를 짚고서, 당신은 언덕위의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털이 억센 개와 불거진 등뒤에 거무스름한 물통을 짊어진 당나귀를 앞세우고.   당신은 마을의 대장간 앞을 지나가리라. 이윽고 당신은 향기로운 산에 이르리라,   당신의 양떼들이 흰덤불처럼 풀을 뜯어먹고 있을. 거기엔 안개가 지나가며 봉우리들을 감추고,   거기엔 목털이 빠진 독수리들이 날고 밤안개속에 빨간 연기들이 피어 오른다.   그곳에서 당신은 보리라 평온한 마음으로 신의 령이 이 무한한 공간위에 떠돌고 있음을.                                                                            식당방                         우리 집 식당방에는 윤이 날 듯 말 듯한 장롱이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 대고모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은 것이다.   그들의 추억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장롱. 그게 암 말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거기엔 또 나무로 된 뻐꾹시계도 하나 있는데, 왜  그런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난 그것에 그 까닭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부서져 버린 거겠지, 태엽 속의 그 소리도. 그냥 우리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의 목소리처럼.     또 거기엔 밀랍 냄새와 잼 냄새, 고기 냄새와 빵 냄새 그리고 다 익은 배 냄새가 나는   오래된 찬장도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한테서 아무 것도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충직한 하인이다.     우리 집에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왔지만, 아무도 이 조그만 영혼들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나는 빙그레 웃는 것이다.   방문객이 우리 집에 들어오며, 거기에 살고 있는 것이 나  혼자인 듯 이렇게 말할 때에는 -- 안녕하신지요, 잠 씨?  
218    명시인 - 발레리 댓글:  조회:2540  추천:0  2015-03-18
발레리 1871-1945     남 프랑스 지중해안의 항구 sete에서 이탈리아인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발레리는 프랑스정신의 '지중해적'.'아폴로적' 특질을 남김없이 발휘한 시인,평론가이다.   말라르메의 문하생으로 문학생활을 시작한 그는 전위적인 문학잡지 등에 시를 발표했으나   그후 20년간의 긴 침묵 끝에 '젊은 파르크'라는 장시를 발표하면서 부터 당대 최고의시인으로 군림,  아카데미회원, college de france교수등의 영광을 얻게된다.     주요작품: 다양성(Variete)1924,          다양성Ⅱ(VarieteⅡ)1929,          다양성Ⅲ (VarieteⅢ) 등         잃어버린 포도주     어느 날인가 나는 대양에 (허나 어느 하늘 아래선지 모르겠다)   던졌다, 허무에 진상하듯, 귀중한 포도주 몇 방울을.     누가 너의 유실을 원했는가, 오 달콤한 술이여? 내 필시 점쟁이의 말을 따른 것인가?   아니면 술을 따를 때 피를 생각하는 내 마음의 시름을 쫓았던가?     장미빛 연무가 피어오른 뒤,   언제나 변함없는 그 투명성이 그토록 청정한 바다에 다시 다다른다 ......     그 포도주는 사라지고, 물결은 취해 일렁이도다! ......   나는 보았노라 씁쓸한 허공 속에서 끝없이 오묘한 형상들이 뛰어오르는 것을 ......       석류     알맹이들의 과잉에 못 이겨 방긋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아,   숱한 발견으로 파열한 지상의 이마를 보는 듯하다!     너희들이 감내해 온 나날의 태양이, 오 반쯤 입 벌린 석류들아,   오만으로 시달림받는 너희들로 하여금 홍옥의 칸막이를 찢게 했을지라도,     비록 말라빠진 황금의 껍질이 어떤 힘의 요구에 따라   즙든 붉은 보석들로 터진다 해도,     이 빛나는 파열은   내 옛날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스런 구조를 꿈에 보게 한다.     애정의 숲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었다. 나란히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았다. 말도 없이......이름 모를 꽃 사이에서;     우리는 약혼자처럼 걸었다. 단둘이, 목장의 푸른 밤 속을;   그리고 나눠 먹었다 저 선경의 열매, 광인들이 좋아하는 달을.     그리고, 우리는 죽었다 이끼 위에서 단둘이 아주 머얼리, 소곤거리는 친밀한   그리고 저 하늘 높이, 무한한 빛 속에서 저 숲의 부드러운 그늘 사이에서;     우리는 울고 있었다. 오 나의 사랑스런 말없는 반려여!       시                시의 젖가슴에 안겨 젖을 빨던 입이   깜박 놀람에 엄습되어 입술을 뗀다.     ---- 따스한 정 흘러 나오던 오 내 어머니 지성이여   젖이 말라도 가만히 있는 이 무슨 소홀함인가!     그대 품안에서 하얀 밧줄로 짓감기면,   재보(財寶)로 가득 찬 그대 가슴의 바다 물결은 곧장 나를 어르곤 했노라.     그대의 침침한 하늘에 잠겨, 그대의 아름다움 위에 기진하면,   어두움을 삼키면서도, 빛이 나를 침범함을 느꼈노라!     자기 본질에 숨어 지고한 안정의 인식에   그지없이 순종하는 신(神)인 나,     나는 순수한 밤과 맞닿아, 이젠 죽을 도리도 없어라,   면면히 흐르는 강물이 내 체내를 감도는 것만 같아서 ......     말하라, 그 어떤 부질없는 공포 때문에, 그 어떤 원한의 그림자 때문에,   이 현묘한 영감의 수맥이 내 입술에서 끊어졌는가?     오 엄밀함이여, 그대는 나에게 내가 내 영혼 거스르는 징조여라!   백조처럼 비상하는 침묵은 우리들의 하늘엔 이미 군림하지 않나니!     불사의 어머니여, 당신의 눈시울은 나에게 나의 보물들을 인정하지 않고,   내 몸을 안았던 부드러운 살은 이제 돌이 되고야 말았구나!     그대는 하늘의 젖마저 내게서 앗아가느니, 이 무슨 부당한 보복인가?   내 입술 없으면 그대는 무엇이며 사랑이 없으면 나는 또 무엇인가?     허나 샘물은 흐름을 멈추고 박정함 없이 그에게 대답한다.   ----당신이 하도 세게 물어뜯어 내 심장이 멈추고 말았노라고!         뚜렷한 불꽃이                 뚜렷한 불꽃이 내 안에 깃들어, 나는 차갑게 살펴본다 온통 불 밝혀진 맹렬한 생명을......   빛과 뒤섞인 생명의 우아한 행위는 오직 잠자면서만 사랑할 수 있을 뿐.     나의 나날은 밤에 와서 나에게 눈길을 돌려주며, 불행한 잠의 첫 시간이 지난 뒤,   불행마저 암흑 속에 흩어져 있을 때, 다시 와서 나를 살리고 나에게 눈을 준다.     나날의 기쁨이 터질지라도, 나를 깨우는 메아리는 내 육체의 기슭에 죽은 이만을 되던졌을 따름이니,   나의 야릇한 웃음은 내 귀에 매어단다     빈 소라고동에 바다의 중얼거림이 매달리듯, 의혹을---- 지극히 불가사의의 물가에서,   내가 있는지, 있었는지, 잠자는지 아니면 깨어 있는지?    
217    세계 시인 시모음 댓글:  조회:3806  추천:0  2015-03-18
  가을 (아폴리네르) 가을 (흄) 가을날 (릴케) 가을의 노래 (베를렌)   가을의 노래 (보들레르)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감미롭고 조용한 사념 속에 (셰익스피어) 강설 (유종원) 거룩한 이여 (휠더들린) 검은 여인 (생고르) 경례 : 슈미트라난단 판트(타고르) 고향 (아이헨도르프) 고향 (휠더를린) 관저(시경) 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랭보) 교감 - 상응 (보들레르) 굴뚝소제부 (브레이크) 귀거래사 (도연명) 귀안 (두보) 그리움 (실러) 기탄잘리 (타고르) 나그네여 보라 (오든) 나는 당나귀가 좋아 (잠) 나무들 (킬머) 나이팅게일 (키츠) 낙엽 (구르몽) 낙엽송 (기타하라 하큐슈) 난 후 곤산에 이르러 (완채)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베를렌) 내게는 그 분이 (사포) 내 사랑 (로버트 번즈) 너는 울고 있었다 (바이런)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디킨스) 노래 (로제티) 노래의 날개 위에 (하이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던) 눈 (구르몽) 눈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 (프로스트)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니벨롱겐의 노래 달 (왕유)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브라우닝) 당신을 위해 ( 가키노모토 히토마로) 동방의 등불 (타고르) 띠 (발레리) 루바이야트 (오마르 카얌) 로즈 에일머 (랜도) 로렐라이 (하이네) 마리아의 노래 (노발리스) 망여산 폭포 (이백) 먼옛날 (로버트 버즈) 모랫벌을 건너며 (테니슨) 무지개 (워즈워스) 미뇽 (괴테)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 바다의 고요 (괴테) 바다의 산들 바람 (말라르메) 바닷가에서 (타고르) 바닷가에서 (고티에) 발견 (괴테) 밤의 꽃 (아이헨도르프) 밤의 찬가 (노발리스) 배 (지센) 백조 (말라르메) 벗을 보내며 (이백) 뻐꾸기에 부쳐 (워즈워스) 병거행 (두보) 병든 장미 (브레이크) 복숭아나무 봄 (도를레앙) 봄 (홉킨스) 부두 위 (흄) 붉디 붉은 장미 (번즈) 비잔티움의 향해 (예이츠 3년 후 (베를렌) 사랑의 비밀 (블레이크) 사랑의 철학 (셸리) 사자와 늑대와 여우 (라 퐁테느) 산비둘기 (콕토) 산중문답 (이백)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슈킨) 삼월 (워즈워스) 상응 - 교감 (보들레르) 새벽 (랭보) 새벽으로 만든 집 (모마데이) 서풍의 노래 (셸리) 석류들 (발레리) 석호리 (두보) 소네트76 (세익스피어) 송원이사안서 (왕유) 수선화 (워즈워스) 숲에 가리라 (하이네) 시 (네루다) 시법 (매클리시) 시에 불리한 시대 (브레히트) 신곡 (단테) 신비의 합창 (괴테) 실락원 (밀턴)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하며 (브리지즈) 아프리카 (디오프)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야간통행금지 (엘뤼아르) 에너벨리 (에드거A .포) 야청도의성 (양태사) 어느 인생의 사랑 (브라우닝) 어리지만 자연스러운 것(코울리지) 어린이의 기쁨 (블레이크) 어부 (굴원) 엘레느에게 보내는 소네트 (롱사르) 여인에게 보내는 목동의 노래(말로) 예언자 (푸슈킨) 예언자 (칼리 지브란) 오디세이 (호메로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오월의 노래 (괴테) 오후의 때 (베르하렌) 올랭피오의 슬픔 (위고) 옷에게 바치는 송가 (네루다) 우리들이 헤어진 때 (바이런) 운명에 버림받고 세상의 사랑못받어도 (셰익스피어) 울려라 힘찬 종이여 (테니슨) 원정 (타고르)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이 꺼질 때 (셸리) 이니스프리호수의 섬 (에이츠) 이 밤에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네루다) 이별 (아흐마또바) 인간과 바다 (보들레르) 인정 (왕유) 일리아스 (호메로스) 잃어버린 술 (발레리) 자유 (엘뤼아르) 잠의 천사 (발레리) 적벽부 (소식) 종이배 (타고르) 지평선을 향하여 (아마두 샤물루) 지하철정거장에서 (파운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키츠) 출정가 (몽고민요) 켄터베리 이야기 (초서) 파도 속의 독백 (네루다) 풀벌레 평화 (홉킨스) 풍차 (베르하렌) 프로테우스 (괴테) 피아노 (로렌스) 하늘은 지붕 너머로 (베를렌) 하늘의 옷감 (예이츠) 헤어짐 (랜도) 헬렌에게 (바이런) 호수 (라마르틴) 호수 위에서 (괴테) 황무지 (엘리엇) 흐르는 내 눈물은 (하이네) 흰달 (베를렌) 흰 새들 (예이츠)  
216    명시인 - 아폴리네르 댓글:  조회:2681  추천:0  2015-03-18
아폴리네르  1880~ 1918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아버지는 이탈리아 장교,어머니는 로마에 망명한 폴란드인, 아폴리네르의 혈연은 그대로 방랑자로서의 그의 운명을 암시해준다. 유년시절부터 모나코와 니스에서 프랑스교육을 받았고 1916년 정식으로 프랑스 국적을 얻고 귀화. 아폴리네르는 현대적 감흥, 이를테면 금세기 초기의 정신적 풍토를 의미하는 당대의 공업기술적.산업적.도시적 문명의 낙관주의를 노래 했는가 하면 이러한 문명에 반하는 이국적 정서를 민요적 색조와 가락으로 읊조리기도 했다.   초기의 단편 소설에는  당시 여행에서 얻은 인상과 외국의 전설, 민화를 주제  로 한 것이 많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1903년 《에조프 향년》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였으며, 피카소, 브라크 등 입체파, 야수파 화가들과 사귀며 여러 잡지에 시, 평론, 소설 등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1909) (1911) 등이  있다.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 내린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기리라,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살이   저렇듯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사랑은 흘러 간다. 이 물결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쩌면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한가.   희망이란 왜 이렇게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클로틸드에게     사랑과 경멸 사이 우수가 잠든 정원에   아네모네와 노방초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곳에 우리들의 그림자도 스며든다 밤이 흩어버릴 그림자이지만   그림자를 거두는 태양도 언젠가는 그림자와 함께 사라지리라     맑은 물의 이 신기한 힘 그것은 머리털을 적시며 흐르나니   가라 네가 찾는 이 아름다운 그림자를 너는 찾아가야만 한다     69 6666 ...6 9...   6과 9의 전도가 괴상한 숫자로 나타난 것   6 9 숙명의 두 뱀 두 지렁이 호색적이며 신비한 숫자   6 3과 3 9 3 3과 3 즉 삼위일체다   도처에 삼위일체뿐이다   이것은 양극론과도 일치하니 6은 3의 두배이기이며   삼위일체의 9는 3의 배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6 9는 양극의 삼위일체다   이 비술은 아직도 더욱 은밀하지만 나는 무서워 더 이상 캐어볼 수 없다   누가 아는가 겁을 주기 좋아하는 콧잔등 납작한 죽음의 저쪽에 영원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한데 오늘 밤 침통한 레이스가 달린 눈에 보이지 않는 수의 같이 우수가 나를 감싸고 돈다       69 6666 ...6 9...      종                   아름다운 짚시 내 여인이여 종소리 울 리는 소리 들어보오   아무도 눈치 못 채리라 생각하면서 우리는 열렬히 사랑했었지     그러나 우리는 잘못 숨었댔어요 우리 둘레의 종은   종각 꼭대기에서 우리를 보고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사랑을 소문 내네     내일이면 시프리엥도 앙리도 마리도 카트린느도   빵집 주인도 그 남편도 내 사촌 누이 제르트류드도     내가 지나갈 때면 웃어대겠지 어찌해야 될지 나는 몰라   너는 멀리 도망칠 테고 나 혼자 울거야 죽도록 울고 말거야       마리               처녀로서 당신은 춤추었습니다 이제 조모로서 당신은 춤추겠습니까   지금 뛰넘기를 하는 건 마클로트 종소리는 다 같이 울릴텐데   마리여 당신은 언제 돌아오십니까     가면은 말이 없고 음악은 멀리서 들려온다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듯이 그래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요   조금쯤은 사랑하고 싶어요 나의 이 병은 달콤하지요     양들은 눈 속으로 걸어간다 솜털 눈송이 은가루 눈송이 속으로   병사들은 지나가는데 나는 왜 갖지 못했는가 나만의 마음을   어찌하랴 이 변덕쟁이 마음을     거품 이는 바다 같은 그대의 곱슬머리는 어찌 되는가   아 그대의 머리는 어찌 되는가   우리들의 맹세로 파묻힌 낙엽같은 당신의 손은 어찌 되는가   옛날 책을 팔에 끼고 나는 세느 강가를 거닐고 있었다   세느강은 내 슬픔과도 같이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언제 이런 세월은 끝날 것인가      
215    삶은 짧고 문학은 길고... 댓글:  조회:2596  추천:0  2015-03-15
미니 칼럼   요절문인                             김혁     1937년의 오늘, 일본 도꾜제국대 부속병원에서 폐결핵이 악화된 한 시인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폐병의 절망을 안고 기생과 동거하며 난해한 초현실주의 시 ‘오감도’와 소설 ‘날개’를 써내 천재적 면모를 보였던, 카페 경영에 실패하고 절망 끝에 건너간 도꾜에서 “멜론이 먹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생을 접고 만 리상이다. 리상외에도 김소월, 라도향, 최서해, 강경애, 전혜린, 모파상, 뿌쉬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路遥, 萧红, 顾城,王小波등 세계문단사에는 그 재능을 다 펴지못하고 일찍 스러진 “별”들이 그렇게도 많았다. 요절(夭折), 여기서 요(夭)자는 무성하다, 절(折)은 부러지다는 뜻이다. 싱싱함과 향기를 채 뿌리지못하고 꺽이고 말았다는 그 뜻말에 조차 애통함이 깊이 담겨 있다.   일전 답사차로 룡정 대포산을 오르다가 길녘에서 뜻밖에도 허흥식 시인의 묘소와 마주쳤다. 무성한 풀잎속에 쓸쓸하게 방치된 그 묘소앞에 가던 길을 멈추고 머리숙여 묵도를 드렸었다. 우리 문단에도 안타깝게 요절한 문인들이 적지 않다. 류연산, 윤림호, 박향숙, 남주길, 조은철, 윤광수… 병환으로, 사고로 애닯게 일찍이도 간 그이들의 이름을 떠올리는것만으로도 눈시울이 젖어 오른다.     해외에서는 요절문인들에 대한 추모방식이 정례적으로 진행되고있다. 주기(周忌)를 꼭 챙겨 기념하고 그이들을 위한 문학비를 건립하거나 랑송회를 열며 또 요절문인 작품집도 내고있다. 우리 문단 역시 작고문인들을 추모하고 있지만 가족이나 몇몇 친구들의 작은 방식으로만 그칠뿐 보다 장중하고 조직적인 추모 방식은 결여되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생의 황홀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늘속 죽음에도 눈길을 주라”하고 어느 한 평론가는 말을 했다. 작고문인들에 대해 정례적으로 눈길을 돌리고 그이들이 우리 문단사에 남긴 업적을 기리는것은 문단의 전승과 발전에도 필수적인 례식이 아닐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이들을 추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이들이 남긴 작품을 읽는것이다.   2014년 3월 7일   “聽雨齋”에서         
214    4분 33초 ㄷ 댓글:  조회:3440  추천:0  2015-03-15
        로마 숫자가 악장을 가리키고, TACET 는 "silent(침묵)" 라는 뜻의 음악용어로 존 케이지는 세 악장의 길이를 33 초, 2분 40초, 1분 20 초로 하라고 지시한다.   백남준과 존 케이지 (1972년)         [출처] 침묵 4분 33초- 존 케이지 John Cage(US, 1912-1992) 4'33" (1952년)|작성자 panem    
213    4분 33초 ㄴ 댓글:  조회:2779  추천:0  2015-03-15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곡 - 존 케이지의 ‘4분 33초’ 미국의 전위적인 작곡가로 알려진 존 케이지의 작품 중에 ‘4분 33초’라는 작품이 있다. 1952년 발표된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하다. 즉 악보가 없이 ‘연주자는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앉아 있다가 시간이 되면 조용히 퇴장한다’는 존 케이지의 지시만 적혀 있는 것이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기만 하는 곡인 것이다. 이 정도라면 당신도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하필 4분 33초일까? 그것은 존 케이지가 절대영도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절대영도는 섭씨 영하 273도. 이를 분 단위로 환산하면 4분 33초가 된다. 아마도 절대영도에서는 음악가의 활동도 정지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참고로, 이 작품의 첫 공연 때 “이것은 선(禪)이다!”라고 높이 찬양한 평론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이 곡이 연주되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4 minutes 33 seconds John Cage (작곡자)   I  TACET   II TACET     III TACET   NOTE: The title of this work is the total length in minutes and seconds of its performance. At Woodstock, N.Y., August 29, 1952, the title was 4'33" and the three parts were 33", 2'40", and 1'20". It was performed by David Tudor, pianist, who indicated the beginnings of parts by closing, the endings by opening, the keyboard lid. However, the work may be performed by (any) instrumentalist or combination of instrumentalists and last any length of time. FOR IRWIN KREMEN                               JOHN CAGE   로마 숫자가 악장을 가리키고, TACET 는 "silent(침묵)" 라는 뜻의 음악용어이다. 밑의 글은 존 케이지가 직접 적은 지시 사항이다. 세 악장의 길이를 33 초, 2분 40초, 1분 20 초로 하라는 지시사항이다.   4' 33"의 악보는  소리 없는 음악임에도 악보는 있었는지- 연주자로 하여금  앉아서 전혀 소리 안나게 3악장을-정말 3악장이라는데-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청중은 가만히 앉아서 다른 방에서 종이를 만지는 소리라든가  바깥에서 지나가는 자동차 경적소리에나 집중할 뿐이다. 청중들의 기침 소리나 소근거림이 오히려  이 작품의 구성요소가 된다. 연주 현장에서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자연스런 소리들이  결국 이 작품을 구성하면서  이른바 우연성 음악(chance music)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음악인들 사이에 이 음악을 놓고 죠크가 있는데,  예컨대, 이 침묵의 음악에 저작권이 있는가,  이 음악을 고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가,  혹은 이 음악의 좋은 연주와 나쁜 연주를 구분할 수 있는가 등처럼  그 예술성, 음악성과 구성에 대한 진지한 비평과 토론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곡을 초연했던 연주자는 데이빗 튜터이다.              Cage, John 케이지 (1912.9.5~1992) 미국의 작곡가. 로스엔젤레스 출생.  포모나대학을 졸업하고 H.카우엘, A.쇤베르크에게 작곡을 배웠다.  1936∼38년 시애틀의 코니시스쿨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타악기만으로 앙상블을 조직하고 51년경부터는 독자적인 음악사상에 입각하여 문제작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또 52년 독일의 도나웨신겐에서 개최된 현대음악제에서는 《4분 33초》라는 작품을 발표, 음악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유럽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우연성이나 불확실성은 작곡기법의 하나로서 널리 채용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Imaginary Landscape No.4》(51)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54∼58) 《Variations I》(58) 등이 있으며, 또 도안악보(圖案樂譜)의 창안 등 독창성 넘치는 활동도 하였다.  
212    4분 33초 댓글:  조회:2437  추천:0  2015-03-14
《4분 33초》는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가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연주 시간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음악 작품으로 유명하다. 동기[편집] 1951년에 존 케이지는 하버드 대학의 무향실을 간 적이 있었는데, 케이지는 그 방이 조용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는 후에 이렇게 썼다.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 두 개의 소리를 들었다. 공학자한테 이 이야기를 하자 그는 나에게 높은 소리는 내 신경계가 돌아가는 소리이고, 낮은 것은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를 떠나서, 그는 완벽히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소리를 들은 경험을 한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도 소리는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죽은 후에도 그것을 계속 있을 것이다. 음악의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절대적인 무음은 없다는 발견이 존 케이지로 하여금 《4분 33초》를 쓰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이 미술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존 케이지의 친구 로버트 라우쉔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빈 캔버스를 전시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작품은 걸려 있는 곳의 조명 상태나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그림자 등에 의해 모습이 바뀐다. 이것이 케이지에게 주변의 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소리로 된 빈 캔버스’를 쓰게 만든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존 케이지의 이전 작품에도 '침묵'은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어 왔다. 그는 라우셴버그의 가 '4분 33초'라는 작품을 제작할 '용기'를 주었다고 언급한바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이 뒤처질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존 케이지의 이 혁신적인 작품은 당시 음악계의 주류에서 외면당했고, 이 작품을 통해 새로이 발견된 사운드의 새로운 가능성은 시각예술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면서 오늘날의 탈경계적인 예술양상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품[편집] 《4분 33초》는 세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고, 각 악장의 악보에는 음표나 쉼표 없이 TACET(조용히)라는 악상만이 쓰여 있다. 악보에는 음악의 길이에 대한 지시가 따로 없다. 처음 연주했을 때에는 시간을 무작위로 결정하여 1악장을 33초, 2악장을 2분 40초, 3악장을 1분 20초씩 연주하였다. 《4분 33초》는 1952년 8월 29일 뉴욕 주 우드스탁에서 David Tudor의 연주로 초연됐다. 연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몇분 뒤 그는 뚜껑을 다시 닫았다. 피아니스트는 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Richard Kostelanetz는 실험음악의 권위를 가진 연주자 David Tudor라면 청중들이 우연히 소리를 내도록 유도하는 것이 비음악적인 소리로 작품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존 케이지의 음악에 부합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연주자와 청중이 소리를 죽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콘서트 홀에는 소리가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아직도 음악의 정의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진다. 분류:  무음 존 케이지의 작품 1952년 작품 포스트모더니즘   둘러보기 메뉴  
211    명시인 - 프랑시스 퐁주 댓글:  조회:3633  추천:0  2015-03-12
나비   프랑시스 퐁주       줄기에서 정성껏 만들어진 당분이 잘 씻기지 않은 컵 모양의 꽃의 바닥까지 솟구쳐 오를 때------ 땅에서는 대단한 역작이 이루어져 나비가 갑작스레 날아오른다. 그러나 애벌레로서 눈멀어 있고 아직 검은 머리를 지니고 있던 때와, 대칭의 날개가 타오르던 그 완전한 폭발에 의해 여위어진 몸통을 지녔던 때처럼, 그 후로도, 여기 저기 헤매는 나비는 단지 그 생애의 여정에 따라 혹은 그 비슷하게 자신을 내맡긴다. 날아다니는 성냥, 그 불꽃은 전염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은 너무 늦게 다가와서는 이미 피어버린 꽃들을 확인할 뿐이다. 상관없지. 점등부처럼 행동하며 꽃마다 남아있는 기름의 잔량이라도 확인하니까. 나비는 쇠약한 누더기 몸을 이끌고 와서 꽃부리에 얹고, 애벌레 시절 줄기 아래서의 기나긴 굴욕을 복수한다. 대기 중의 조그만 범선은 수많은 꽃잎 사이에서 시달리며 정원을 배회한다.     * 프랑시스 퐁주, 청하         양초(La bougie)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밤은 때때로 이상한 나무를 되살아나게 해 그 나무의 빛이 어두움으로 가득찬 방들을 분해한다.  그 나무의 금잎은 새까만 육각(肉角)에 의해 흰 대리석 기둥의 파인곳에 태연히 붙어있다  초라한 나비들은 숲을 흐리게 비추는 높이 뜬 달보다는 이것을 선호하여 공략한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이내 불에 타고 지쳐 모두가 혼미에 가까운 광란상태에서 전율한다 그렇지만 양초는  첫 연기에 치솟음으로 책 위에 빛의 반짝임을 통해 독자에게 용기를 주고- 이윽고 받침대로  기울어져 자신의 자양분 속으로 녹아내린다      *프랑시스 퐁주( Francis Ponge) 1899-   프랑스 몽텔리 출신의 시인. 퐁주의 시학:  인간 중심의 관념이론이나 위선적인 휴머니즘에 종속되어 희생당해온 사물들의 편에 서겠다고 천명한 바 있는 독특한 시인이다. 사물들 편에 서는 시인의 태도에 의해 씌여진 그의 시편들은 대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묘사이다. 그러나 사물들에 자신의 추억이나 애상, 초월적인 관념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단지 사물 그 자체의 특성만을 보여줄 뿐이다.   Francis Ponge는 1899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서 태어나 아비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0년대에 앙드레 브르통 Andre Breton과 함께 초현실주의 문학 운동에 가담했고, 1944년부터는 공산당 신문 의 문학 면을 담당했다. 작품집으로 (1942), (1961), (1965) 등이 있다.           테이블 - 프랑시스 퐁주   단언하건데 책세상은 결코 돈을 벌지 못하리라! 이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했다. 책은 항상 그런것처럼 알라딘에서 책세상 책을 무더기로 사면서 그냥 구매한 책이다. 그래서 펴보기 전에는 절대 무슨 내용인지 알지못했다. 물론 작가 역시 생전 처음듣는 낮설은 이름이었다.   책은 본문이 100P(그것도 충분한 여백과 그림을 포함하여). 판본에 관한 내용이 30P (이것도 마찬가지로 여백이 장난이 아님). 하지만 글은 이 얄팍한 책의 무게는 1000P는 족히되는 죽기전에 한번은 읽어야 할 그런 내용이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계탔다.)   이 책은 "테이블"이라는 사물에 대한 시인의 언어 유희였다. 작자가 사랑하는 프랑스어에 대한 치밀한 분석 (작자이름도 얼마나 프랑스적인가! 프랑시스 퐁주)   테이블 - (일반적으로) 네 다리 위에 수평으로 견고하게 세워진             나무판으로서 팔꿈치를 댈 수 있다.   테이블 - 그것은 가구중에 하나일 뿐이며, 필수적으로 다른              가구를 필요로한다, 앞에 놓아야 할 의자나 접는 의자              또는 안락의자와 같은 가구를,              또는 침대나 긴 의자 같은 다른 가구를              그리고 어떤 아파트에서처럼 자연이 없는경우, 램프같은 다른가구도..   테이블 - 그것은 다른 재료로 되어 있을 때는 필히 명시해야한다.              (돌 테이블, 유리 테이블과 같이) 만약 밝히지 않으면,              그것은 나무로 된 것이다.     테이블 - 펜으로 보면 그것은 땅이다.   테이블 - 내가 그것에 기대는 방법에 의미가 있다.   테이블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멋진 말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글이다. 이 말들을 만들기 위해서 ( 그가 작성한 본문은 65P이다.) 이 글을 평생동안 다듬어 왔다는데 기가 찰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의 솔직한 심정 -  미치지 않고서는 절대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쓰다보니 언젠가 에코의 글에서 그의 이름을 들은것 같다. 기호학자이니 언젠가 책에서 언급했던것 같다. 찾아볼까 하다가 포기한다. 한두권이여야지.......   문학이란 끝이없다. 그래서 행복하다.  새 -프랑시스 퐁주(1899~1988)   가는 화살 또는 짧고 굵은 투창, 지붕 모서리를 에둘러가는 대신, 우리는 하늘의 쥐, 고깃덩이 번개, 수뢰, 깃털로 된 배, 식물의 이,                                         때로 높은 가지 위에 자리잡고,                                         나는 그곳을 엿본다,                                                                                   어리석고,                                         불평처럼 찌부러져서 …… ; 공중을 활강하는 새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 상승 기류를 타고 포릉포릉 나는 새들에 늘 경탄한다. 이 경이로운 존재들, 이 사랑스럽고 하염없는 자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새들이 뼛속이 텅 빈 골다공증 환자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들은 씩씩하게 공중을 주름잡는다. 푸른 궁륭의 자식들, 가장 작은 분뇨제조기, 작은 혈액보관함, 좌우 날개를 가진 무소유의 실천자, 바람이 띄우는 작은 연들, 발끝을 딛고 춤추는 공중의 발레리나들, 은행 잔액이나 국민연금 따위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통 큰 백수들! 한편으로 새들은 “하늘의 쥐, 고깃덩이 번개, 수뢰, 깃털로 된 배”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출처] 테이블 - 프 나비   프랑시스 퐁주       줄기에서 정성껏 만들어진 당분이 잘 씻기지 않은 컵 모양의 꽃의 바닥까지 솟구쳐 오를 때------ 땅에서는 대단한 역작이 이루어져 나비가 갑작스레 날아오른다. 그러나 애벌레로서 눈멀어 있고 아직 검은 머리를 지니고 있던 때와, 대칭의 날개가 타오르던 그 완전한 폭발에 의해 여위어진 몸통을 지녔던 때처럼, 그 후로도, 여기 저기 헤매는 나비는 단지 그 생애의 여정에 따라 혹은 그 비슷하게 자신을 내맡긴다. 날아다니는 성냥, 그 불꽃은 전염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은 너무 늦게 다가와서는 이미 피어버린 꽃들을 확인할 뿐이다. 상관없지. 점등부처럼 행동하며 꽃마다 남아있는 기름의 잔량이라도 확인하니까. 나비는 쇠약한 누더기 몸을 이끌고 와서 꽃부리에 얹고, 애벌레 시절 줄기 아래서의 기나긴 굴욕을 복수한다. 대기 중의 조그만 범선은 수많은 꽃잎 사이에서 시달리며 정원을 배회한다.     * 프랑시스 퐁주, 청하         양초(La bougie)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밤은 때때로 이상한 나무를 되살아나게 해 그 나무의 빛이 어두움으로 가득찬 방들을 분해한다.  그 나무의 금잎은 새까만 육각(肉角)에 의해 흰 대리석 기둥의 파인곳에 태연히 붙어있다  초라한 나비들은 숲을 흐리게 비추는 높이 뜬 달보다는 이것을 선호하여 공략한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이내 불에 타고 지쳐 모두가 혼미에 가까운 광란상태에서 전율한다 그렇지만 양초는  첫 연기에 치솟음으로 책 위에 빛의 반짝임을 통해 독자에게 용기를 주고- 이윽고 받침대로  기울어져 자신의 자양분 속으로 녹아내린다      *프랑시스 퐁주( Francis Ponge) 1899-   프랑스 몽텔리 출신의 시인. 퐁주의 시학:  인간 중심의 관념이론이나 위선적인 휴머니즘에 종속되어 희생당해온 사물들의 편에 서겠다고 천명한 바 있는 독특한 시인이다. 사물들 편에 서는 시인의 태도에 의해 씌여진 그의 시편들은 대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묘사이다. 그러나 사물들에 자신의 추억이나 애상, 초월적인 관념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단지 사물 그 자체의 특성만을 보여줄 뿐이다.   Francis Ponge는 1899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서 태어나 아비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0년대에 앙드레 브르통 Andre Breton과 함께 초현실주의 문학 운동에 가담했고, 1944년부터는 공산당 신문 의 문학 면을 담당했다. 작품집으로 (1942), (1961), (1965) 등이 있다.       나비   프랑시스 퐁주       줄기에서 정성껏 만들어진 당분이 잘 씻기지 않은 컵 모양의 꽃의 바닥까지 솟구쳐 오를 때------ 땅에서는 대단한 역작이 이루어져 나비가 갑작스레 날아오른다. 그러나 애벌레로서 눈멀어 있고 아직 검은 머리를 지니고 있던 때와, 대칭의 날개가 타오르던 그 완전한 폭발에 의해 여위어진 몸통을 지녔던 때처럼, 그 후로도, 여기 저기 헤매는 나비는 단지 그 생애의 여정에 따라 혹은 그 비슷하게 자신을 내맡긴다. 날아다니는 성냥, 그 불꽃은 전염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은 너무 늦게 다가와서는 이미 피어버린 꽃들을 확인할 뿐이다. 상관없지. 점등부처럼 행동하며 꽃마다 남아있는 기름의 잔량이라도 확인하니까. 나비는 쇠약한 누더기 몸을 이끌고 와서 꽃부리에 얹고, 애벌레 시절 줄기 아래서의 기나긴 굴욕을 복수한다. 대기 중의 조그만 범선은 수많은 꽃잎 사이에서 시달리며 정원을 배회한다.     * 프랑시스 퐁주, 청하         양초(La bougie)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밤은 때때로 이상한 나무를 되살아나게 해 그 나무의 빛이 어두움으로 가득찬 방들을 분해한다.  그 나무의 금잎은 새까만 육각(肉角)에 의해 흰 대리석 기둥의 파인곳에 태연히 붙어있다  초라한 나비들은 숲을 흐리게 비추는 높이 뜬 달보다는 이것을 선호하여 공략한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이내 불에 타고 지쳐 모두가 혼미에 가까운 광란상태에서 전율한다 그렇지만 양초는  첫 연기에 치솟음으로 책 위에 빛의 반짝임을 통해 독자에게 용기를 주고- 이윽고 받침대로  기울어져 자신의 자양분 속으로 녹아내린다      *프랑시스 퐁주( Francis Ponge) 1899-   프랑스 몽텔리 출신의 시인. 퐁주의 시학:  인간 중심의 관념이론이나 위선적인 휴머니즘에 종속되어 희생당해온 사물들의 편에 서겠다고 천명한 바 있는 독특한 시인이다. 사물들 편에 서는 시인의 태도에 의해 씌여진 그의 시편들은 대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묘사이다. 그러나 사물들에 자신의 추억이나 애상, 초월적인 관념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단지 사물 그 자체의 특성만을 보여줄 뿐이다.   Francis Ponge는 1899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서 태어나 아비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0년대에 앙드레 브르통 Andre Breton과 함께 초현실주의 문학 운동에 가담했고, 1944년부터는 공산당 신문 의 문학 면을 담당했다. 작품집으로 (1942), (1961), (1965) 등이 있다.       랑시스 퐁주 - 책세상 - 허정아 옮김.|작성자 김남혁  
210    명시인 - 푸쉬킨 댓글:  조회:2442  추천:0  2015-03-08
푸쉬킨 1799~1837   러시아의 국민적 시인   모스크바 출생.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확립자이다.  명문 중류귀족의 장남으로 외조부는 표트르 대제(大  帝)를 섬긴 아비시니아 흑인 귀족이었다.    차르스코예셀로의 전문 학교를 졸업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외무성에 근무하였다.    시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유배되었는데, 고독하고 불우한 유폐 생활은 도리어 시인에게 높은 사상적·예술적 성장을 가져다 주어, 러시아의 역사적 운명과 민중의 생활 등에 대하여 깊이 살필 기회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푸슈킨의 작품은 모두 농노제 때의 러시아 현실을 정확히 그려 냈으며, 깊은 사상과 높은 교양으로 일관되어, 뒤의 러시아 문학의 모든 작가와 유파는 모두 ‘푸슈킨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등이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서: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달관된 입장으로 인생을 말하고 있는 듯 하나 그 속에 배어있는 우울감은 숨길 수 없다.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보따리와 지팡이가 나아요 아니, 고생스럽고 배고픈 게 차라리 더 나아요.   그것은 내가 나의 이성을 존중해서도 아니고 이성과 헤어지는 것이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나 자유로이 둔다면 그 얼마나 활개치며 어두운 숲으로 달려가리!   열병에 걸린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그 얼마나 자유로이 멋진 꿈에 도취되어 나를 잊으리.     그리고 나의 파도소리에 귀기울이고 행복에 가득차서 빈 하늘을 바라보리니   나 그 얼마나 힘차고 자유로우리 들판을 파헤치고 숲을 휘어뜨리는 회오리처럼.     그런데 불행히도 : 미친다는 것은 페스트보다 더 두려운 일,   곧 갇히고 사슬에 묶이리니,   사람들은 창살 사이로 짐승을 찌르듯 찌르러 올 것이고,     그리고 밤에는 들을 것이다. 꾀꼬리의 울 리는 낭랑한 목소리도 아니고   빽빽한 참나무숲의 웅성거림도 아니고 울리는 것은   친구들의 외침소리, 밤의 파수꾼의 욕설, 사슬이 쩔렁이고 삐걱이는 소리뿐       현실속에서 살고 싶어하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의 법칙을 떠나고자 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삶에 기쁨과 슬픔등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고자 함.         시베리아 깊은 광맥속에 제까브리스트 12월 혁명이후 유형간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                    시베리아 깊은 광맥 속에 그대들의 드높은 자존심의 인내를 보존하소서   그대들의 비통한 노력과 높은 정신의 지향은 사라지지 않으리니.     불행의 신실한 누이, 희망은 암흑의 지하 속에서   용기와 기쁨을 일깨우리니 그 날은 오리니:     사랑과 우정이 그대들에게 닿으리니 깜깜하게 닫힌 곳 빗장을 열고   지금 그대들의 감방 그 굴 속으로 나의 자유의 소리가 다다르듯이.     무거운 사슬이 풀어지고 암흑의 방은 허물어지고 - 자유는   기쁨으로 그대들을 마중나오리니 그리고 형제들은 그대들에게 검은 건네리니.        미래에 대한 신뢰, 정신적인 동지의식.  인생, 사회, 세계 등에 대한 사상이 연결됨.    여기서 '광맥'이란 -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그 노력과 정신은  나중에 또 하나의 보물이 되어 발굴되리라는 의미를 추가한다.    마지막연에서 푸쉬킨은 그대들이 옳은 사람들이니  심판해 달라고 하며 검을 건넨다.     작은 새                        머나먼 마을에 이르러 고향의 풍습을 따라서   매맑은 봄철 축제일에 작은 새 놓아 주노라.     비록 한 마리 새이지만 산 것에 자유를 주고   아쉬운 생각은 없으니 나의 마음은 평화로와라.       제 2행의 고향의 풍습이란 당시 러시아 농민들 사이에는   부활주일이면 새를 놓아주면서 행복을 비는 풍습을 말한다.   제3행의 봄철 축제일은 부활절을 말한다.         태워진 편지     안녕, 사랑의 편지여 안녕.   그 사람이 이렇게 시킨 것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나는 주저하고 있었던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나의 손은   모든 기쁨을 불에 맡기려고 맹세하였던가...   하지만 이제 지긋지긋하다.   시간이 찾아 왔다.   불타라, 사랑의 편지여!   나는 각오하고 있지,   마음은 무엇에도 현혹되지 않지.   탐욕스런 불꽃은 벌써 너의 편지를 핥으려 한다...   이제 곧.    활활 타올라 타올라 엷은 연기가 얽히면서   나의 기도와 더불어 사라져 간다.   이미 변치않을 마음을 맹세한   반지로 찍은 자국도 사라지고   녹기 시작한 봉랍이 끓는다...   오오, 신이여 일은 끝났다.   검어진 종이는 휘말리고 말았다.   지금은 가쁜한 재 위에   그 숨겨진 자국들이 새하얗게 남고...   내 가슴은 조여진다.   그리운 재여.   나의 애처로운 운명 위에   그나마 가련한 기쁨이여,   내 한탄의 가슴에 영원히 머물러라...  
209    비 관련 시모음 댓글:  조회:3098  추천:0  2015-03-07
        비 관련 시 모음     거리에 비 내리듯   거리에 비내리듯 마음 속에 눈물 흐르네 속에 스며드는 외로움 무엇이런가? 땅 위에, 지붕 위에 내리는 부드러운 빗소리 울적한 가슴을 위한 아, 비의 노래여! 낙담한 이 가슴에 까닭없이 눈물 흐르네 무엇이! 배반은 없었다고? 이 슬픔은 까닭도 없네 사랑도 미움도 없이 왜 이다지도 마음은 아픈지 이유조차 모르는 일이 가장 괴로운 아픔인 것을!     베들렌느(1844-1896)           거리에 가을비 오다     노란 우산 아래로 장화의 물방울을 튀기며 나는 거리로 나선다 비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자, 나는 들으마, 너는 말하라 나는 외로운가 보다 나는 누구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고 싶은가 보다 풋내기 시인처럼 앞뒤 운이 맞지 않는 네 말소리에 나는 열중한다 얼간이처럼 바지가 다 젖을 정도로 나는 외로운가 보다 길가에는 젖은 발들이 흐른다 젖은 발들이 내 쓸쓸한 발등을 밟는다 나뭇잎들이 비의 말을 따라 흉내를 낸다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따먹으며, 나뭇잎은 나보다 더 외로운가 보다 항상 나에겐 낯설기만 한 비의 알파벳 이국 처녀의 눈처럼 파란 비 오는 가을 풍경 나는 누구를 방문할 일도 없는데 꽃집에 들러 꽃을 산다 주정뱅이처럼 꽃을 보고 혼자 지껄이는 나는 형편없이 외로운가 보다     이 준관           겨울비1   먼 바람을 타고 너는 내린다 너 지나온 이 나라 서러운 산천 눈 되지 못하고 눈 되지 않고 차마 그 그리움 어쩌지 못하고 감추지 못하고 뚝뚝 내 눈 앞에 다가와 떨구는 맑은 눈물 겨울비, 우는 사람아   박 남준          그렇게 속삭이다가   저 빗물 따라 흘러가 봤으면 빗방울에 젖은 작은 벚꽃 잎이 그렇게 속삭이다가, 시멘트 보도 블록에 엉겨 붙고 말았다 시멘트 보도 블록에 연한 생채기가 났다 그렇게 작은 벚꽃 잎 때문에 시멘트 보도블록이 아플 줄 알게 되었다 저 빗물 따라 흘러 가봤으면 비 그치고 햇빛 날 때까지 작은 벚꽃 잎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운 상처를 알게 된 보도 블록에서 낮은 신음소리 새어나올 때까지   이 성복          마른 잎 두드리는 빗방울 하나     마른 잎 두드리는 빗방울 하나 느릿느릿, 오래도록, 그 빗방울은 늘 한 장소에서 두드리고 다시 또 일념으로 두드린다.... 초췌한 이 마음을 두드리는 그대 눈물 한 방울 느릿느릿, 오래도록 그 괴로움은 늘 한 장소에서 시간처럼 집요하게 소리 울린다 하지만 그 잎과 마음에는 밑빠진 공허가 안에 들어 있기에, 나뭇잎은 빗방울을 끝없이 받아내고 견딜 것이다 마음도 송곳같은 그대를 끝없이 받아내고 견딜 것이다   프란시스 잠               비1 가라고 가라고 소리쳐 보냈더니 꺼이꺼이 울며 가더니 한밤중 당신은 창가에 와서 웁니다 창가 후박나무 잎새를 치고 포석을 치고 담벼락을 치고 울더니 창을 열면 창턱을 뛰어 넘어 온 몸을 적십니다   이 성복 시집 문지. 2000년           비 적막강산에 비 내린다 늙은 바람기 먼 산 변두리를 슬며시 돌아서 저문 창가에 머물 때 저버린 일상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나직한 구름자리 타지 않는 일모日募 텅 빈 내 꿈의 뒤란에 시든 잡초 적시며 비는 내린다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정좌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강산 그저 이렇게 빗속에서 저문다 살고 싶어라 사람 그리운 정에 못 이겨 차라리 사람 없는 곳에 살아서 청명과 불안 기대와 허무 천지에 자욱한 가랑비 내리니 아 이 적막강산에 살고 싶어라   이 형기           빗소리 빗소리를 듣는다 밤중에 깨어나 빗소리를 들으면 환히 열리는 문이 있다 산만하게 살아온 내 인생을 가지런히 빗어주는 빗소리 현실의 꿈도 아닌 진공상태가 되어 빗소리를 듣는다 빗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이냐 눈을 감으면 넓어지는 세계의 끝을 내가 간다 귓 속에서 노래가 되기도 하는 빗소리 이 순간의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까 빗소리를 듣는다 빗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이냐 박 건호   한누리미디어. 2007년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이 없는 사람이란다 함박눈 내리는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꼭 닫힌 창문으로 눈이 가지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덫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이란다   조 병화       비 오는 날   비오는 날, 전에는 베들렌의 내 가슴에 눈물의 비가 온다고 그 노래를 불렀더니만 비오는 날 , 오늘 나는 하고 말 뿐이다 비오는 날, 포플러 나무잎 푸르고 그 잎 그늘에 참새무리만 자지러진다 앞에 앉았던 개고리가 한 놈 쩜벙하고 개울로 뛰어내린다 비는 싸락비다, 포슬포슬 차츰 한 알, 두 알, 연달려 비스듬이 뿌린다 평양에도 長別理, 오는 비는 모두 꼭 같은 비려니만 비야망정 전일과는 다르도다, 방 아랫목에 자는 어린이 기지개 펴며 일어나 운다, 나는 하며 금년 세 살 먹은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른다 석양인가, 갓틈 끝 아래로 모여드는 닭의 무리, 암탉은 찬비 맞아 우는 오굴쇼굴한 병아리를 모으고 있다 암탉이 못 견디게 꾸득인다, 모이를 주자   김 소월(1902 - 1934.12.24)       비오는 날 날은 춥고 어둡고 쓸쓸하여라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고, 허물어지는 벽에는 담쟁이 덩굴,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을 날려가네 날은 춥고, 쓸쓸하네 내 인생도 춥고, 어둡고, 쓸쓸하네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네 내 생각은 허물어지는 과거의 담벽에 붙어 불어오는 질풍에 젊음의 꿈을 날려 보냈네 날은 어둡고, 적막하네 슬픈 가슴이여, 조용하라! 불평은 그만하라! 먹구름 뒤에는 밝은 태양이 비치고 있다 그대의 운명도 예외는 아닌 것! 모든 사람의 운명에 얼마의 비는 내리는 것 인생이 어둡고 쓸쓸할 때도 있는 것!   롱펠로우         비오는 날   잠실 롯데백화점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괴테를 생각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한다 베르테르가 그토록 사랑한 롯데가 백화점이 되어 있다 그 백화점에서 바겐세일하는 실크옷 한벌을 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의 승용차 소나타lll를 타면서 문득 베토벤을 생각한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3악장을 생각한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소나타가 자동차가 되어 있다 그 자동차로 강변을 달렸다 비가 오고 있었다 ...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얼굴을 묻은 여자 고흐의 그림 '슬픔'을 생각한다 내가 그토록 사랑한 '슬픔'이 어느새 내 슬픔이 되어 있다 그 슬픔으로 하루를 견뎠다 비가 오고 있었다...   천 양희       비오는 날에 오는 저녁   비가 오는 날에도 저녁은 오네   비가 등꽃을 때리면 저녁은 등꽃을 감싸네 묵정밭 보이는 마루에 앉아서 밥 먹다가 눈 깜박이네, 꽃잎들 폴폴폴 다시는 수저를 들지 못하겠네 입가심도 하지 않고 등나무 밑으로 가서 어스름에 젖는 빗방울에 젖어 빗방울에 젖는 어스름에 젖어 落魄  십 년 보네 비가 오는 날에도 저녁은 오네 비가 밭으로 스며들면 저녁은 밭으로 내려앉네 빗물 고이면 일이 년 전에는 흙 묻은 아랫도리옷 빨고 삼사 년 전에 밥그릇 씻었네, 밤 되기 전에 묵정밭 물끄럼 보다 비 그치면 갈아엎고 뿌릴 풋나물 씨앗값 속셈하네 비가 오는 날에도 저녁은 오네 비가 마당으로 흐르면 저녁은 마당에 가만히 있네 빈 주머니에 손 넣고 마당 걷네. 해마다 알곡 거두어들여도 늘 비어 있던  집 안 구석구석에 간만에 차고 넘치는 빗소리 듣네. 저녁도 가득하여서 어둠 출렁거리며 내쉬는 가쁜 숨소리 듣네. 가슴 흥건하여서 마루에 올라 앉네 비가 오는 날에도 저녁은 오네 비가 처마 아래로 떨어지면 저녁은 처마 위로 올라가네 밥상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 전등 켜네 적막이 훤하니 그걸 낙백한 은둔자의 전 재산으로 알아서 빗물이 집 떠받들고 어둠이 집 드네 몸 가누지 못해 다신 비도 보지 못하고 저녁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드네   하 종오             비 온 뒤 아침 햇살   나뭇잎 씻어줄래 투명하도록 푸르게 씻어줄래 푸른빛 타오르게 불태울래 별들의 몸에도 붙어 반짝이며 날아갈래 죽은 나무에도 척 붙어 쓰다듬을래 바위에도 내려앉을래 거름 더미에도 내려앉을래 눈부시게 민들레 노란 꽃처럼 한 송이 노란 꽃처럼 세상을 그렇게 만들래   유 승도(1960 - )         빗소리는 길다   저 긴 빗소리 창을 열고 들어오지 못한다 저 슬피 어둠 속에서 떠돌고 있는 것들이 기억하노니 내 청춘 아닌 것들 없으나 더는 젖지 않겠다 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힘껏 누워 있다 이 긴 빗소리 밤새도록 다 풀려 나간다   문인수           서정抒情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무에 걸린 바람도 비에 젖어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내 팔에 매달린 너 비는 밤이 오는 그 골목에도 내리고 비에 젖어 부푸는 어둠 속에서 네 두 손이 내 얼굴을 감싸고 물었다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장 뜨거운 목소리로   전 봉건           細雨 옻나무 가지를 만지듯 말을 내어놓는 말더듬이를 이런 날 만나보겠다 아슬아슬한 간격이다 이렇게 가늘은 비 내려 무언가 반송해야 할 우편물을 찾는다 샐비어, 샐비어 빨간 허리가 가늘다   문 태준 창비.         숲에 내리는 비   조용해 주오 숲 속에 이르니 이제 여기엔 인간의 목소리 들리지 않고 다만 새로운 소리 물방울 소리와 나뭇잎 소리만 저 멀리서 들려오나니 들으세요 흩어진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구려 여름 더위에 찌들어진 상록수 나뭇가지에 소나무 솔잎에 비가 내린다 성스러운 이 나무들에 찬란한 노란 꽃송이 위에 모든 풀 위에 비가 내린다 우리의 즐거운 얼굴에 가리지 않고 있는 우리들 손에 우리의 가벼운 옷에 아무 관심이 될 수 없으며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로부터 항상 멀리 도피하고 있노라 내 고향 땅이건만 나는  혼자이며 이방인으로 이 봄을 지내는도다 이 마을의 축제날 해는 져서 저녁이 다가오니 사람들은 축연을 열게 되고 조용한 대기를 뚫고 종소리와 축포소리 울리며 그 소리는 집에서 집으로 멀리까지 전해지는구나 모든 이들은 예복을 입고 집을 나서 거리로 쏟아지니 젊은 남녀는 서로서로 쳐다보며 즐거워하더라   Gabriele D'Annunzio(1863-1938) 이탈리아           아궁이 속 빗소리   빈집 아궁이에 오그리고 앉아 불 지피는데 머리마저 아궁이 속에 밀어넣고 솔가지에 후후 입김 불어넣는데 매운 연기 제 젖은 눈물만 토해낼 뿐 어쩌자고 불꽃 하나 일렁이지 못하고 습한 물기로 흐려지는지 어쩌자고 아궁이로 밀어넣은 눈두덩에선 불꽃보다 물꽃이 더 튀는지 장작보다 더 바짝 마른 나를 집어넣고도 나는 타지 않고 나는 타지 않고 냉갈 냄새에 전 아랫목에 앉아 대숲이 가득 들어찬 창문을 바짝 당겨놓고 매운 벽도 끌어다 등짝에 붙인 채 깊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아궁이 속 빗소리 하염없이 듣는다 사람이 들지 않은 여러 해째 아마도 이런 소리였을 것이다 빈집이 저 홀로 긴밤 지새울 때  서까래 한쪽 어깨가 기울고 문지방까지 쑥부쟁이만 들고 날 때 내리는 빗소리 따라 맵고 젖은 불길로 툭,  투둑 툭, 울었을 터이다     정 영주   말향고래. 실천문학사.2007년           여우비   햇살인 줄만 알았던가 어떻게 햇살이기만 하겠는가 그대 다문 입가에 느닷없이 찬 빗방울 떨어질 때 고개 들어 샅샅이 바라보라 나 언제나 그대 눈과 손과 귓가에 가볍게 닿으려는 환한 햇살이지만 이 햇살엔 그대와 나를 적실 수 있는 위험한 비가 감춰져 있는 것을   이 선영 일찍 늙으매 꽃꿈> 창비.2003년         우산 속으로 비 소리는 내린다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위하여 혼자 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정작 술 취하고 싶은건 내가 아닌 나의 나날인데 비가 와 선명해진 원고지칸 같은 보도블록 위를 타인에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날들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 확 펼쳐 사랑 한 번 못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수 있나 어쩌면 틀렸는지도 모르는 질문에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 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을 확 펼쳐보는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발목으로 비가 싫어 우산을 쓴 것이 아닌 사람들의 사이를 걷고 또 걸으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함 민복                 장마   비는 하염없이 마당귀에 서서 머뭇거리고 툇마루에 앉아 있으니 습습하다 목깃 터는 비둘기 울음 습습하다 어둑신한 헛간냄새 습습하다 거미란 놈이 자꾸 길게 처져 내렷다 제 자리로 또 무겁게 기어 올라간다 두꺼비 한 마리가 느리게 가로질러 가는 ...  어머니 콩 볶으신다  비는 하염없이 마당귀에 서서 머뭇거리고   문인수           화투   슬레이트 처마 끝에서 빗방울이 똑 또 똑 떨어지구요 창에 기울은 오동꽃이 덩달아 지네요 종일 추녀물에 마당이 파이는 소리 나는 차 배달 왔다가 아저씨와 화투를 치는데요 아저씨 화투는 건성이고 내 짧은 치마만 쳐다보네요 청단이고 홍단이고 다 내주지만 나는 시큰둥 풍약이나 하구요 창 밖을 힐끗 보면 오동꽃이 또 하나 떨어지네요 집 생각이 나구요 육목단을 가져오다 먼 날의 왕비 비단과 금침과 황금 지붕을 생각하는데 비는 종일 슬레이트 지붕에 시끄럽구요 팔광을 기다리는데 흑싸리가 기울어 울고 있구요 아저씨도 나처럼 한숨을 쉬네요 이 매조가 님이라는 건 믿을 수가 없구요  아저씨는 늙은 건달이구요  나는 발랑 까진 아가씨구요 한심한 빗소리는 종일 그치지를 않구요   최 정례;  
208    보들레르 시모음 댓글:  조회:3901  추천:0  2015-03-07
보들레르 1821~1867    초기 보들레르의 아버지 프랑수아 보들레르는 나이 많은 홀아비로서 1819년에 지참금이 없는 젊은 여자와 결혼했다. 결혼을 통해 사치와 안정을 얻기 원했던 이 여자는 그 꿈을 단념하고 프랑수아 보들레르와 결혼한 것이다. 보들레르는 그들의 유일한 자식이었고, 어머니는 타고난 열정적 기질로 외아들에게 헌신적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은퇴하여 상당한 연금을 받게 된 아버지는 교양있는 사람이었고, 상당히 우수한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4~5세밖에 안 된 아들에게 형태와 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법을 가르쳤는데, 이때 쌓은 미적 취향이 나중에 보들레르가 19세기의 가장 주목받는 예술 비평가로 성장한 요인이 되었다.   1827년 2월 아버지 프랑수아 보들레르가 죽자 어머니는 1828년 11월에 자크 오피크라는 군인과 재혼했는데, 재혼할 당시 이미 계급 높은 장교였던 오피크는 그후 장군까지 승진했고, 외국 대사와 상원의원을 지냈다. 오피크는 의붓아들이 규율을 배우기를 원했기 때문에, 1832년 그를 리옹에 있는 왕립 중학교의 기숙 학생으로 들여보냈다. 학교 생활은 엄격한 군대식 일과에 따라 이루어졌지만, 이곳에서 그는 행복했던 듯하며 몇 개의 상을 타기도 했다. 그는 또한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의 문학적 표현 양식을 개발했다. 1836년 의붓아버지가 파리로 전근하자 그는 루이르그랑 고등학교로 전학했다. 아버지는 그가 '학교에 명예를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그는 아버지의 소망을 실현하는 대신 걸핏하면 규율을 어기는 불량 학생이 되었다. 선생들이 보기에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허세'를 부리고 엉뚱한 역설의 재능을 개발하는 조숙하고 타락한 비행 청소년의 표본이었다. 그는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자신이 천성적으로 고독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1839년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한 뒤, 그는 의붓아버지가 마련해준 외교관 자리를 마다하고, 글을 써서 살아갈 작정이라고 발표하여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그가 가장 간절히 원한 것은 자유, 즉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라탱 구역의 대학생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였다. 미래의 많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법과대학에 등록해,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1840년까지 학교에 적을 두고 있었다. 그가 아편과 대마초를 탐닉하고, 훗날 죽음의 원인이 된 성병에 걸린 것도 이무렵이었을 것이다.   1841년 의붓아버지는 그를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인도로 보냈다. 그는 아들을 적어도 2년 동안 인도에 머물게 할 작정이었다. 보들레르는 6월 9일에 출항했지만, 항해가 따분해지자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행동으로 다른 승객들을 아연실색하게 하면서 즐거워했고, 배가 풍랑을 만난 뒤(이때 보들레르는 놀랄 만큼 용감하게 행동했음) 수리하기 위해 모리셔스 섬에 입항하자 더이상 배를 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사람들의 설득으로 레위니옹 섬까지 갔지만, 거기서 다시 고국으로 가는 다음 배를 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1842년 2월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항해와 모리셔스 섬에서 3주일 동안 머문 경험은 그의 상상력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해주었으며, 그는 이때 얻은 이미지를 시에서 끌어내곤 했다. 그는 동양에 대한 이 유일한 체험을 결코 잊지 않았고, 동양에 대한 신비주의적 동경을 간직했으며, 이런 동경은 그의 시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항해를 떠날 때 그는 아직도 자기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 소년이었으나,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그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었다. 그의 상상력에는 불이 붙었고,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1842년 4월에 성년이 되어 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자, 그는 타고난 낭비벽을 만끽하기 위해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좋은 옷을 사들이고 생루이 섬의 로죙 호텔에 있는 아파트를 값비싼 가구로 꾸미느라 무분별하게 돈을 썼으며, 그당시의 전형적인 '멋쟁이'(당디) 생활을 시작했다. 사업이나 경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그는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유산을 큰 재산으로 생각했고, 사기꾼과 고리대금업자의 먹이가 되어 이후 평생 동안 그를 괴롭힐 빚더미에 올라앉을 준비를 했다. 그가 괴짜이고 허풍쟁이이며 부도덕하다는 평판이 난 곳은 로죙 호텔에 살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어했다는 점에서는 그당시 파리에 살고 있던 대다수 시인이나 예술가들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1844년 보들레르는 장차 그에게 수많은 불행을 가져다줄 혼혈 여인 잔 뒤발과 관계를 맺었다. 한때 그는 잔을 열렬히 사랑했고, 잔의 잔인함과 배신 및 어리석음에 절망하여 자살을 기도한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떤 면으로는 여전히 잔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잔은 그의 첫번째 연시 〈검은 비너스〉 연작에 영감을 불어넣어주었는데, 이 시들은 프랑스어로 된 성애시(性愛詩)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에 속한다.   시간 여유가 충분하고 걱정거리가 없었던 이 초기 시절에 보들레르는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을 이루게 될 거의 대부분의 시들을 썼다. 이 시집은 레즈비언에 관한 시, 반항과 퇴폐에 관한 시, 그리고 노골적인 성애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이때 들라크루아와 쿠르베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을 알게 되어 그림에 대한 지식을 얻었는데, 이런 지식은 장차 그의 예술 비평에 탁월함과 독창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그가 2년 만에 유산의 절반을 탕진하자 그의 가족은 1844년초에 그의 나머지 재산을 신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냈고, 그는 매달 들어오는 신탁수익만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의 자유를 끝장내는 이런 조치에 어머니가 동의했다는 사실은 보들레르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의 가족은 보들레르의 사정도 잘 알지 못한 채, 그의 장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가 독립성을 회복하는 것을 막았다. 아직도 빚더미에 짓눌려 있는 보들레르는 자신에게 허용된 연간수입 75파운드로는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었으므로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돈을 빌려야 했다. 상황이 이처럼 갑자기 변하자 그의 사치스럽고 무사태평한 생활도 막을 내렸다. 그의 운명은 제한된 수입에 얽매인 채 궁핍과 고난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재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작가가 되고 싶은 아들의 소망을 막으려고 애쓰는 부모가 어쩌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가족에 대한 그의 적개심은 더욱 깊어졌다. 사춘기에 겪었던 조울증이 되살아났고, 그가 '우울'이라고 부른 기분이 더 자주 그를 덮치게 되었다. 위대한 우울의 시 가운데 첫번째 작품을 쓴 것도 바로 이무렵이었다. 그의 친구들 중에는 그보다 훨씬 더 불행한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그는 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동정심을 키우게 되었다. 많은 친구들의 혁명적 이상주의에 매혹된 그는 1848년 2월혁명에 가담했고, 이 혁명은 성공하여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한편 그는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로 결심하고 직업작가가 되었다. 그가 처음 발표한 작품은 1845년 파리 현대 미술전에 대한 평론이었다. 이 예술비평은 날카로운 판단력과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여주었으며, 그가 이미 현대 예술의 방향에 대해 예견하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의 예술비평인 〈1846년 현대미술전 Salon de 1846〉은 미학적 비평의 이정표이다. 이 평론에서 그는 단순히 전시회를 설명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하는 한편, 그림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명암으로 이루어진 고유한 화음을 가지며 자연의 색깔에는 음악적인 가락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가 나중에 확립하게 될 자연과 예술의 '조응'(照應 correspondances)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1845, 1846년에는 몇 편의 시가 아방가르드 잡지들에 발표되었고, 그는 이런 잡지에 논설과 평론도 기고했다. 1847년 그는 유일한 장편소설이며 자전적 작품 〈허풍선이 La Fanfarlo〉를 발표했다. 훨씬 오래 전에 쓰기 시작한 이 작품은 자신이 로죙 호텔에서 사치스럽게 살고 있었을 때의 인간 됨됨이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 보들레르가 1848년 6월혁명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역할을 맡은 뒤 1849년 12월까지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고, 그가 왜 1849년 12월에 디종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곳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1850년에는 여느 때처럼 가난하고 불행한 모습으로 파리에 돌아와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개심한 증거를 보일 때까지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조차 거부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자극하여 정규적인 직업을 갖게 할 작정이었다. 보들레르도 얼마 동안은 열심히 일했지만 이것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끝나버렸고, 그는 어머니의 엄격함 때문에 더욱 용기를 잃었다. 그는 많은 논설을 구상했지만 1편도 쓰지 못했고, 쓰기 시작한 것은 많았지만 1편도 끝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경험과 고통의 세월 속에서 그는 위대한 창조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그의 본성은 더욱 풍부해졌고,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851년 12월에 쿠데타를 일으킨 뒤로는 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잃어버리고 원숙기의 개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중기 보들레르의 원숙기는 그가 1852년초에 에드거 앨런 포의 글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당장 포의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가 포에 대해 쓴 첫번째 평론(이 글은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씌어진 포에 대한 첫번째 평론임)은 〈르뷔 드 파리 Revue de Paris〉지 3·4월호에 발표되었고, 그후 그는 포의 작품을 번역한 여러 편의 글을 평론지에 실었다. 그중 하나인 〈까마귀 The Raven〉는 그가 번역한 유일한 시였다. 1852~65년 그는 포의 작품을 번역하고 그에 대한 평론을 쓰는 일에 몰두했다. 〈기담(奇談) Histoires extraordinaires〉은 1856년에, 〈새로운 기담 Nouvelles Histoires extraordinaires〉은 1857년에, 〈아서 고던 핌의 모험 Aventures d'Arthur Gordon Pym〉은 1858년에, 〈외레카 Eureka〉는 1864년에, 그리고 〈괴기담 Histoires grotesques et sérieuses〉은 1865년에 나왔다. 처음 두 작품에는 포를 해설한 긴 서문이 딸려 있다.   이 책들은 번역서로서 프랑스 산문의 고전이다. 보들레르의 어머니는 영국에서 망명자의 딸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어렸을 때 영어를 배웠다. 그는 포한테서 자신과 똑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가 추구하고 있던 결론에 이미 독자적으로 도달한 사람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포를 통하여 자신의 미학 이론과 시의 이상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1852년 4월에 보들레르는 잔 뒤발을 떠났다(실제로는 끝내 그 여자한테서 벗어나지 못했음), 그러나 그는 여자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랑할 여자를 찾다가 여배우 마리 도브룅에게 접근했다. 마리가 그를 거부하자 유명한 미인이며 일찍이 화가의 모델이었던 아폴로니 아글라에 사바티에에게 구애했다. 사바티에는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의 친구로서 보들레르와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사바티에는 그의 〈하얀 비너스〉 연작에 영감을 주었다. 1854년 그는 다시 마리 도브룅과 관계를 맺었고, 그녀로부터 영감을 얻어 〈초록빛 눈의 비너스〉 연작을 썼다. 이 두 연작에 포함된 시는 대부분 그의 예술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한 작품들이다.   포의 작품 번역가로 또한 예술비평가로서 차츰 명성이 높아지자, 마침내 그는 자신의 시를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1855년 6월 보수적 낭만주의의 요새인 〈르뷔 데 되 몽드 Revue des Deux Mondes〉지는 보들레르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제출한 18편의 시를 발표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보들레르가 이 시들을 고른 이유는 그 표현 방식과 주제가 독창적이고 놀랄 만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들이 발표되자 그는 악명을 얻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1857년 봄에 다시 9편의 시가 〈르뷔 프랑세즈 La Revue Française〉지에 실렸고 〈아르티스트 L'Artiste〉지에도 3편이 실렸다. 그리고 6월에는 〈악의 꽃〉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시집 때문에 보들레르와 그의 친구인 출판업자 풀레 말라시스 및 인쇄업자들은 외설과 신성모독죄로 모두 기소당했다 (→ 검열). 이 유명한 재판에서 그들은 유죄 선고를 받고 벌금을 물었으며, 6편의 시가 발표 금지되었다. 이 조치는 1949년에야 겨우 해제되었다. 몇몇 독자들은 보들레르의 의도와 완전한 예술성을 이해하고 높이 평가했지만, 몇 세대 동안 〈악의 꽃〉은 여전히 타락과 불건전 및 외설의 표본으로 남아 있었다. 보들레르는 1861년 〈악의 꽃〉을 대폭 증보한 개정판을 출판했지만, 금지된 시는 삭제했다. 이 금지된 시들은 1866년 벨기에에서 출판된 〈유실물 Les Épaves〉이라는 시집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개정판을 더 증보한 제3판을 준비하고 있던 1866년에 보들레르는 온 몸이 마비되었다. 이 책은 그가 죽은 뒤 친구인 샤를 아슬리노가 출판했지만, 그것은 아마 보들레르가 구상했던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보들레르가 시집에 넣으려고 계획하지 않았던 몇 편의 시와 1866년 〈현대의 파르나스 Le Parnasse Contemporain〉에 처음 발표되었던 6편의 〈새로운 악의 꽃〉도 포함되어 있다.     후기 그가 큰 기대를 걸었던 〈악의 꽃〉이 실패한 것은 보들레르에게 쓰라린 충격이었고, 그의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은 갈수록 커지는 좌절감과 환멸 및 절망으로 어두워졌다. 사바티에와의 정신적 사랑은 슬프게 끝나버렸고, 1861년 마지막으로 헤어진 잔 뒤발은 여전히 그에게 부담과 걱정을 안겨주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이 시기에 씌어졌지만, 책의 형태로 출판된 것은 거의 없었다. 일부는 정기간행물에 발표되었다. 〈1859년 현대미술전 Salon de 1859〉은 〈르뷔 프랑세즈〉에, 〈리하르트 바그너와 파리에서 공연된 탄호이저 Richard Wagner et Tannhäuser à Paris〉는 〈르뷔 외로펜 La Revue Européene〉(1861)에, 〈현대 생활을 그리는 화가 Le Peintre de la vie moderne〉(데생 화가인 콩스탕탱 기)는 〈피가로 Le Figaro〉(1863)에, 그리고 시집 〈파리의 우울 Le Spleen de Paris〉을 엮기 위해 쓰고 있던 산문시들은 여러 신문에 나뉘어 발표되었다. 이 마지막 산문시는 보들레르가 유독 아꼈고 오랫동안 손질해온 작품이었다. 그는 마지막 쓰러지기 직전에도 여전히 이 시를 다듬고 있었다.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의 〈밤의 가스파르 Gaspard de la nuit〉에서 착상을 얻었지만, 주제는 같은 시기에 쓴 그의 운문시 주제와 같고, 작품의 분위기는 나이들고 깊은 우울증에 빠진 보들레르의 만성적인 염세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이 산문시들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근대 도시 파리에 대한 그의 감정, 그리고 파리의 거리를 헤매는 낙오자들과 버림받은 부랑자들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악의 꽃〉보다 훨씬 더 날카롭게 표현하고 있다.   1860년 풀레 말라시스는 대마초와 아편의 효과에 대한 보들레르의 연구 논문 2편을 〈인공 천국 Les Paradis artificiels〉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고, 1861년에는 〈악의 꽃〉 개정판을 냈다. 1862년 그는 파산을 선고받았다. 보들레르는 그의 출판업자의 실패에 말려들었고, 경제 사정은 절망적일 만큼 어려워졌다. 빚쟁이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리고 출판을 준비하고 있던 작품들의 판권을 팔기 위해 1864년 벨기에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이 여행은 실패로 끝났고, 그는 한 건의 출판계약도 맺지 못했다. 특히 미학이론을 규정한 평론집을 출판하고 싶어했는데, 이 책의 출판계약에 실패하자 그는 몹시 낙담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 간주했기 때문에 평론도 시 못지 않게 중요했다. 그의 시를 충분히 음미하려면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해해야 한다. 그의 시는 모두 그의 견해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결정체이며, 평론은 예술 작품의 본질과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원리에 대한 명상이다. 그는 진정으로 위대한 창조적 예술가라면 결국 모두 비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즉 예술가는 평론을 통해 자신의 시를 해설하고, 자신의 미학을 연장하여 시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벨기에의 나무르에 머물고 있던 1866년 2월 보들레르는 병세가 악화되었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1867년 8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에서 추모 연설을 해달라고 부탁받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 부탁을 받아들인 사람은 아슬리노와 시인인 테오도르 드 방빌뿐이었다. 이 두 사람은 그의 가장 오랜 친구였다. 보들레르는 인정받지 못한 채 죽었고, 그의 글은 대부분 출판되지 않았으며, 이전에 출판된 것들도 절판되었다. 그러나 시인들 사이에서는 곧 의견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미래 상징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은 이미 그의 추종자임을 자처하고 있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그는 19세기 프랑스 시인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그의 숭배자들은 그가 서유럽 전역의 감수성과 사고방식 및 글 쓰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고, 그의 미학이론이 형성된 시기는 시의 역사와 예술의 역사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상징주의 운동은 바로 이 이론에서 원천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1.  주요작품: 악의 꽃(Les Fleurs du mal)1857,          파리의 우울(Spleen de Paris)          평론집 -낭만파 예술,심미적 호기심 등           신들린 사나이                         해가 검은 베일에 가려졌다. 너도 해처럼 오, 내 생명의 달아! 그림자에 포근하게 싸여라;   네 멋대로 자거나 한 대 피우라; 잠자코, 시름에 겨워, 권태의 심연에 송두리째 잠기도록 하라;     나는 너를 이처럼 사랑해! 그러나 네가 오늘, 그림자 벗어나는 이지러진 천체처럼,   광란으로 붐벼대는 곳들에서 으스대고 싶다면, 그것도 좋다! 귀여운 비수야, 네 칼집에서 솟아나라!     샹들리에 불꽃으로 네 눈동자에 불을 켜라! 시골뜨기들 눈초리 속에서 욕망을 불붙여라!   병들었건 극성스럽건, 너의 모든 것이 내게는 기쁨이니;     네가 바라는 것이 되라, 검은 밤이건, 붉은 새벽이건;   소름끼치는 내 온몸에서, 오, 내 귀여운 베엘제불, 너를 숭배한다!고, 외치지 않는 세포는 하나도 없구나!       떠나가는 집시들                       어제 길을 떠났네, 미래를 점치며 불타는 눈동자를 한 부족   아이들을 등에 업지 않았으면, 혹은 축 늘어진 유방의 준비된 보물을 그들의 엄쳐흐르는 식욕에 내맡긴 체.     번들거리는 무기를 어깨에 멘 사나이들, 식구들이 옹기종기 탄 수레를 따라 걸어가네.   침울하게 미련을 갖고 이미 사라진 환상에 무거워진 눈으로 허공을 들러보며.     귀뚜라미는 감추어져 있는 모래 구멍 속에 숨어 그들의 행렬을 보며 한층 크게 노래 부르네.   대지의 신은 그들을 사랑하여 푸른 초목을 번창시키고.     그 길손들 앞에는 바위에서 샘이 솟고 사막이 꽃을 피우니,   그들을 맞기 위해 다가올 짙은 어둠의 왕국은 열려 있었네.       고양이              이리 오너라, 내 귀여운 나비야, 사랑하는 이 내 가슴에 발톱일랑 감추고   금속과 마노가 뒤섞인 아름다운 내 눈 속에 나를 푹 파묻게 해 다오.     너의 머리와 부드러운 등을 내 손가락으로 한가로이 어루만질 때에   전율하는 너의 몸을 만지는 즐거움에 내 손이 도취할 때에     나는 내 마음속의 아내를 그려보네.   그녀의 눈매는 사랑스런 짐승 너의 눈처럼 아늑하고 차가워     투창처럼 자르고 뚫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미묘한 숨소리, 변덕스런 향기 그 갈색 육체를 감도는구나.       돈 후안은 지옥으로                   돈 후안이 삼도천으로 가서 샤롱에게 뱃삯을 치르자   한 우울에 젖은 거지가, 앙티스테느처럼 거만한 눈초리를 한 채 거센 복수의 팔로 노를 잡았네.   늘어진 유방과 구멍난 옷자락을 내보이고 여인들은 캄캄한 하늘 아래 몸부림치며   제물로 바쳐진 한 무리의 짐승들처럼 긴 신음소리 그의 뒤에서 내고 있었네.   스가나렐은 호탕이 웃으며 돈 내라 야단이고 한편에서는 헤매는 죽은 모든 인간들에게   백발로 덮인 자신의 머리칼을 비웃던 그 뻔뻔스런 아들을 가리키네.       이 밤에                       오늘 저녁 무엇을 말하리, 가엾고 외로운 넋이여. 내 전에 시든 가슴, 무엇을 말하리.   그 성스런 시선이 어느날 그대를 다시 환하게 한 너무나 아름답고, 지극히 어질고, 가장 사랑스런 그녀에게!   ---그녀를 칭송함에 우리는 자랑으로 삼으리. 그녀의 유연함만한 것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그녀의 정신에 싸인 육체는 천사의 향기를 지니고 그녀의 눈길은 우리를 광명으로 감싸주네.   어둠 속에서나 외로움 속에서나 거리에서나 군중 가운데서나   그녀의 환상은 햇불처럼 빈 하늘에서 너울거리네.   그 환상이 가끔씩 부탁하기를 "나는 아름다워 명하노니, 오직 나를 위해 아름다움만을 사랑하라   나는 수호 천사요, 뮤즈이자 마돈나이나니!"       깊은 심연 속에서                             내 마음 떨어진 캄캄한 심연 밑바닥에서, 연민을 비나이다, 내 사랑하는 유일한 그대여.   이건 납빛 지평선의 침울한 세계, 거기서 어둠 속에 공포와 모독이 떠돌고,     열 없는 태양이 여섯 달을 감돌고, 또 여섯 달은 어둠이 땅을 덮으니,   이건 극지보다도 더 헐벗은 고장, -짐승도, 개천도, 푸르름도, 숲도 없구나!     그런데 이 얼어붙은 태양의 차가운 잔인성과 태고의 과도 같은 이 광막한 어둠보다   더 끔찍스런 것 세상에 없어라.     멍청한 잠속에 잠길 수 있는 더 없는 더러운 짐승 팔자가 샘나는구나   그토록 시간의 실타래는 더디 풀리네!    
207    명시인 - 보들레르 댓글:  조회:3376  추천:0  2015-03-07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프랑스어: 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년 4월 9일 - 1867년 8월 31일)는 프랑스의 비평가이자 시인이다.   목차     1 생애 1.1 어린 시절 1.2 작가 데뷔 1.3 《악의 꽃》 1.4 내리막길 1.5 말년 2 보들레르와 상징주의 3 대표시     §생애[편집] §어린 시절[편집] 보들레르는 182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프랑수아 보들레르(François Baudelaire)는 환속한 사제이며 아마추어 화가였는데 1827년, 보들레르가 6살 때 사망했다. 보들레르는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았다. 어린 보들레르를 위해 가족 내에서 유산 관리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보들레르는 삶 내내 이로부터 모멸감을 느꼈다. 남편보다 34살 어렸던 고아출신으로 알려진 보들레르의 어머니 카롤린 뒤페(Caroline Archimbaut Dufays)는 이듬해 권위 의식이 몸에 밴 오픽 소령과 결혼한다. 보들레르와 그의 어머니와의 관계는 가깝고도 복잡한 것이었고, 이 관계가 그의 삶 내내 계속되었다. 그는 후에 말한다. "나는 그녀의 고결함 때문에 나의 어머니를 사랑했지요. 나는 조숙한 댄디였습니다."[1]:13–14 그는 또 그녀에게 쓴 편지에서 “어린 시절에 당신을 열렬히 사랑했던 기간이 있었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1]:16 보들레르는 리옹에서 교육받았다. 리옹 왕립기숙학교의 학생이 되면서 그는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생활해야만 했으며, 그의 성적이 떨어지면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의붓아버지의 엄격한 방식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보들레르는 이 시간들을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탈속의 잔인한 시간에 대한 떨림, … 비참하고 버려진 어린시절 에 대한 불안, 강압적인 학교친구들에 대한 증오, 그리고 마음의 고독."[1]:30,32 14살 때 학급 친구는 보들레르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다른 어떤 학생들보다 세련되었으며 독특했지요… 우리는 훌륭한 문학 작품에 대한 취향과 공감, 조숙한 사랑으로 서로 묶여있었습니다."[1]:35 후에 그는 파리의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의 기숙생으로 편입하게 된다. 보들레르는 공부에 대해서는 산만하고, 이따금 성실했으나 게으른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 당시에 전국 경시대회 라틴시 부문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프랑스시 부문에서 2등상을 수상하는 등 문학에 유별난 재능을 보였다.[2]:8 18살에 보들레르는 "우아한 성품, 때로는 신비주의에 빠져있고 때로는 비도덕성과 냉소(과도하지만 오직 말로만 이루어지는)로 충만해있음"[1]:42이라고 묘사되었다. 그는 졸업 직전 학급 친구가 수업 시간에 그에게 보낸 쪽지를 선생님께 보여주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다.[2]:8 그러나 그 이후에도 가정교사의 도움으로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 파리 법과대학에 등록한다. 그는 그의 형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그 어떤 직업에도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그의 의붓아버지는 그가 법관이나 외교관이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2년간의 불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그는 많은 보헤미안 화가들과 작가들을 만난다.[1]:46 보들레르는 사창가를 드나들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 이전에 이미 처음으로 성병에 걸렸다. 그는 유대인 매춘부였던 사팔뜨기 사라(Sarah la Louchette)와 관계를 맺었으며 돈이 바닥나면 그의 형과 함께 살았다. 그는 돈이 생기면 바로 써버렸고, 옷을 사기 위해 많은 빚을 냈다. 1841년 의붓아버지는 그를 환락가에서 건져내서 새사람으로 만들려는 희망에서 그를 인도의 콜카타로 보낸다. 그러나 그 고된 여행은 문학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보들레르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그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삶에 대한 태도도 바꾸지 못했다. 결국 보들레르는 레위니옹 섬의 생드니까지만 갔다가 프랑스로 돌아온다. 이 여정에서 그는 열대의 강렬한 풍경에 매료되고 이는 후에 그의 시의 소재가 된다.[2]:10–11 곧 보들레르는 철학적으로 사색하고 그의 출판되지 않은 시들을 낭송하기 위해서 선술집으로 돌아간다. 21살 때 그는 십만 프랑이 넘는 상당량의 재산과 4군데의 땅을 상속받으나 25개월 만에 절반 가량을 탕진해버린다. 그의 가족들은 절망에 차서 금치산선고를 하고 그의 돈을 법정후견인인 앙셀에게 맡겨 1년에 일정량의 연금을 받도록 한다.[1]:71 이 기간 동안 그는 낭트에서 온 매춘부의 딸이며 아이티 태생 흑백혼혈인 잔 뒤발(Jeanne Duval)을 만나게 되고 그녀는 보들레르에게 있어 가장 긴 기간 동안 애인으로 남는다. 그의 어머니는 뒤발을 “모든 방법으로 그를 고문하는” “검은 비너스”이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여자로 묘사했다.[1]:75 §작가 데뷔[편집] 1843년 그는 아직 어떤 글도 출판하지 않았지만 예술계에서 그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책과 예술 작품, 골동품들을 사들이는 댄디로 통했다. 1844년쯤에 그는 앞서말한 것처럼 친아버지의 유산의 절반을 탕진하였고, 정기적으로 어머니를 찾아가 그가 작가로 성공할 수 있도록 돈을 요청했다. 그는 이 시기에 오노레 드 발자크를 만났고 후에 《악의 꽃》에 나타날 시들을 쓰기 시작했다.[1]:83 첫 번째로 출판된 그의 작품은 《1845년의 살롱》이라는 예술 비평이었고 그 대담성 때문에 이 책은 출판 직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들라크루아를 높이 사는 것과 같은 그의 비평들은 그 당시에 새로운 것이었으나 그때부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보들레르는 그 자신이 견문이 넓고 열정적인 비평가임을 증명해내었으며 더 큰 예술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1]:95 그러나 그 해 여름에 그의 얼마 안되는 연금과 쌓이는 빚, 외로움, 불투명한 미래에 절망하여, 그 자신에 의하면 “잠이 드는 것의 피곤함과 깨어나는 것의 피곤함은 견딜 수 없는 것”이기에 그는 그가 상속한 돈의 나머지를 모두 뒤발에게 남기기로 하고 자살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의지를 잃어버리고 칼로 자신을 상처냈을 뿐이다. 그는 회복기간 동안 그의 어머니에게 방문해달라고 간청했으나 그녀는 이를 무시해버렸다.[1]:101–102 잠시 동안 그는 머물 곳이 없었으며 그의 부모들은 그의 불쌍한 상태에 다시 연민을 갖기 시작하기 전까지 보들레르와 소원하게 지냈다. 1846년에 보들레르는 그의 두 번째 살롱 평론을 쓰고 낭만주의의 변호사와 비평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가 낭만주의 예술가의 선두주자로서 들라크루아를 지지한 것은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1]:110 이듬해 보들레르의 소설인 《라 팡파를로》가 출간되었다.[2]:56 보들레르는 1848년 혁명에 참가했다.[1]:127 몇 년동안 그는 공화당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정치적인 성향은 확고한 확신이기보다는 감정적인 상태였기에 프루동의 무정부주의로 돌아섰다. 그의 의붓아버지 역시 혁명에서 잡혔으나 교수형에서 살아남았다. 또 새 정부는 왕족에 대한 그의 충성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터키로 가는 비밀 사절로 임명했다.[1]:125 1850년 보들레르는 악화된 건강과 많은 빚, 비정기적인 창작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는 종종 거처를 바꾸고 자주 돈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며 그의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를 계속했다. 그는 감당하기 힘든 많은 작업을 떠맡았으나 에드거 앨런 포의 책을 번역을 끝마쳤다.[1]:181 보들레르는 어린 시절에 영어를 배웠고 포의 단편과 같은 괴기 소설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이며,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악의 꽃》[편집] 보들레르는 느리고 까탈스러운 작가였고 종종 게으름과 감정적인 고통과 병환으로 작업을 미루곤 했다. 결국 1857년에 가서야 그의 첫 시집이며 가장 유명한 작품인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이 출판되었다.[1]:191 이 시들 중 몇 편이 이미 《르뷔 데 되 몽드》(Revue des deux Mondes)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적은 수의 안목 있는 독자들만이 《악의 꽃》을 읽었으나 시들의 주제는 큰 이슈가 되었다. 다른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고 막대하며 예측불허였고, 선망과 정의할 수 없는 두려움과 뒤섞여” 있었다.[1]:236 그 당시 《보바리 부인》의 소재를 다룬 방식이 풍기문란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던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보들레르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당신은 낭만주의를 새롭게 할 방법을 찾아냈소. 당신은 대리석만큼 견고하고 영국의 안개처럼 예리하군요."[1]:241 이 시집의 주요한 테마인 섹스와 죽음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또한 레즈비언 관계, 성스럽고 불경한 사랑, 변형, 우울, 도시의 붕괴, 사라진 순수성, 삶의 억압성 등의 주제를 다뤘다. 노스탤지어를 일깨우는 후각과 향기의 이미지가 이 시집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1]:231 그러나 이 시집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그 시대의 주류 비평가들 사이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몇몇 비평가들은 그의 시 몇 편을 “열정과 예술, 그리고 시의 대작들”이라고 칭했으나 다른 시들은 판매 금지를 위한 법적 제제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1]:232-237 보들레르를 고발했던 비평가 하바스는 《르 피가로》에 이렇게 썼다. “이 시집에서 흉측하지 않은 것이라곤 이해 불가능한 것들뿐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타락한 것들뿐이다." 그러자 보들레르는 이 항의에 대한 대답으로 그의 어머니에게 예언적인 편지를 썼다. “ 어머니는 내가 항상 문학과 예술이 도덕으로부터 독립적인 목적을 추구한다고 생각해왔던 것을 압니다. 내게는 구상과 스타일의 아름다움이면 족합니다. 그러나 당신도 알게 되겠지만, 이 《악의 꽃》이라는 책은, 차갑고 불길한 아름다움을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노와 인내로 쓰인 책입니다. 게다가 이 책의 긍정적인 가치의 증거물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말하고 있는 악 안에 있습니다. 이 책은 사람들을 화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느껴야 하는 고통이 두려워 나는 그 증거들 중 삼분의 일 가량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들은 내게서 모든 것을 부정합니다. 발명의 정신과 심지어 국어에 대한 지식까지도. 나는 이 모든 바보짓꺼리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미덕과 단점을 지닌 이 책이 문학적 소양이 있는 독자들에게 빅토르 위고나 테오필 고티에 심지어 조지 고든 바이런의 명시들과 나란히 기억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1]:238 ” 보들레르와 그의 출판업자들은 풍기문란죄로 고소당했고 결국 벌금을 물게 되었으나 수감형에 처해지지는 않았다.[1]:248 이 6편의 시는 이후에 브뤼셀의 다른 출판사에서 《잔해들》(Les Épaves)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1861년에 6편이 삭제된 상당한 양의 시가 첨가되어 《악의 꽃》의 또다른 판본이 출판되었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보들레르 뒤에 결집하여 법원의 판결을 비난하였다. 보들레르가 탄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벌금은 감해졌다. 거의 100년이 지나서 1949년 5월 11일, 보들레르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그의 삭제된 6편의 시가 프랑스에서 다시 출판되었다.[1]:250 §내리막길[편집] 1858년 보들레르는 파리를 떠나 바닷사의 옹플뢰르에 정착하려 하나 잘 되지 않는다. 다음해 잔 뒤발이 중풍 발작을 일으키고 반신불수가 되자 보들레르는 그녀를 보살피기 위해 그녀와 동거한다. 1860년까지 보들레르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인 《고든 핌의 모험》을 번역하고, 작가론 와 라는 평론 한 편을 쓰는 등 작문활동을 계속한다. 1861년 잔 뒤발의 또다른 애인이 그들의 집에서 동거하게 되자 그는 뒤발을 떠난다. 그는 이런 상황과 매독의 재발, 상처받은 자존심과 좌절된 창작욕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고, 빚을 갚기 위해 발표되지 않은 작품의 저작권까지 모두 팔아버린다.[2]:24–27 1861년 그는 "진정한 문인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랄 수 있는 유일한 명예란 아카데미 회원이 되는 일"이라며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입후보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광기어린 실수임을 깨닫게 되는데 이때 당대 문단의 실세였던 비평가 샤를 오귀스탱 생트뵈브 역시 보들레르의 입후보를 맹비난하고 공개적으로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보들레르는 처음에는 그의 주장에 반대하나 결국 그의 요구를 받아들인다.[2]:27-28 §말년[편집] 말년에 보들레르는 자주 자살을 생각했고 어머니와 뒤발을 걱정했다. 그는 프레스 지에 《파리의 우울》에 담길 그의 산문시들을 발표하고, 또 《들라크루아의 작품과 생애》, 《현대 생활의 화가》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이내 "독자들을 권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중단된다.[2]:29-31 1864년 빚에 쪼들리던 보들레르는 브뤼셀에 가서 책을 출판하고 강연을 하려하나 출판업계는 그에게 냉담했다. 그 시기에 스테판 말라르메와 폴 베를렌가 보들레르를 찬양하는 글을 기고하며 보들레르는 상징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이를 반기지 않고 되려 경계하며 귀찮아한다.[2]:31–33 이 시기에 보들레르는 이미 계속되는 성병과 중풍으로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있었으며 여전히 빚에 쪼들리고 있었다. 결국 그는 요행원에 지내다 파리로 돌아오게 되고 1867년 8월 사망한다.[2]:33–34 §보들레르와 상징주의[편집] 상징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부득이하게 기술상의 난점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조간의 상호 관계를 일별해 보아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상징주의는 이전의 낙관주의에 기초한 사조 혹은 사회사상들에 대한 일종의 반발로 태동하였다. 즉 사회사상으로서의 사회주의(socialisme), 과학만능주의(scientisme), 실증주의(positivisme)은 상징주의가 행할 ‘모든 가치 전도’의 대상이었다. 또한 상징주의 이전 시기를 풍미했던 고답파(le Parnasse),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후자에 대해서는 상징주의가 적극적인 부정만을 행하였다고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 상징주의는 고답파의 유미주의 선언처럼 보이는 저 전언,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의 개념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보들레르는 자신의 《악의 꽃》을 테오필 고티에에게 헌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문학의 상징주의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에 앞선 고답파의 시론을 검토해보는 것이 유용하다. 고답파는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사물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보고 그것을 시 속에서 형상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즉 과학과 예술의 행복한 결합을 꿈꿔온 고답파의 고티에에게 있어 예술가는 놀라우리만치 정확한 눈과 손의 확실성을 가지고, 마치 그림이 실현할 수 있음직한 정확하고 고유한 느낌을 말로 형상화시키는 사람이다. 하지만 고답파는 시의 회화적 조형성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시를 통한 형이상학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바로 이 지점이 상징주의의 정신주의(spiritualisme)가 부재하는 지점이며 고답파가 종국에는 현실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요약해보자면, 고답파에게 있어 예술의 이상은 칸트 미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무관심적 쾌’ 혹은 ‘예술의 무목적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시인의 주관성을 중시하기보다는 고대의 테크네(τέχνη)적 예술 개념을 고수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낭만주의에 있어 30년 전쟁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듯, 프랑스 문학사에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의 참패가 미치는 영향 또한 그러하다. 보불전쟁에서의 패배는 상징주의를 태동시키는 물적 토대로 작용하였는데, 이는 이전 프랑스에 팽배했던 진보에 대한 일련의 낙관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예술적 기운은 퇴폐주의(décadentisme)을 거쳐 드디어 상징주의로 이행하게 된다. 우선 상징주의의 현실 인식은 상징주의에 있어 현실은 하나의 가상으로 존재하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플라톤주의(platonisme)의 영향 아래에 있다. 하지만 상징주의와 플라톤 철학 사이의 변별점은 개개의 현상 속에 하나의 본질로서의 관념(idée)이 상징주의의 세계관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 철학이 세계의 이원론적 구조를 상정했다면 상징주의는 더 나아가 이원론(dualisme)으로부터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일원론적 세계로 이행하고자 한다. 상징주의의 초월적 세계 인식은 가상의 현실, 즉 ‘상징의 숲’을 시인이 직관을 통해서 해독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내부에 본질로서의 관념을 내포하고 있는 현상으로서의 세계는 완전하게 자족적인 존재(ens a se)가 되지는 못하나 인식주체, 즉 시인이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실상적인 존재자로 도약하게 된다. 따라서 상징주의는 현실 세계를 초월하고자 하지만 현실 세계자체를 폐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 세계야말로 시인에게 ‘때때로 모호한 말들을 새어 보내며, 친근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보들레르의 《조응》에서)이자 시인에게 상징을 통해 자신의 존립성과 진실성의 빛을 발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상징은 하나의 기호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의미이다. 물론 일반 언어와 상징 언어 양자가 공히 기호이면서 의미이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의 양태이다. 상징은 단순히 약속되고 정태적인 기호라는 정의에서 탈피하여 배후에 스스로가 지닌 은폐되고 명료하지 않은 형이상학적 본질(또는 관념)이 파악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역동적인 기호인 것이다. 그렇기에 상징이 유추나 암시를 통해 기호로부터 의미에로의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초월을 감행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되풀이하자면, 상징이라는 것은 해석자가 부재하고 그와의 관계 속에 존재하지 못한다면 한갓 의미 없는 대상에 불과할 따름이다. 앙리 페르의 정의를 인용하자면, ‘그러므로 상징은 하나의 기호이되, 그 빛을 받고 감동하여 그 뜻을 이해하고자 하거나 그 신비를 캐내고자 하는 사람에 의해 해독되고 설명되기를 요구하는 기호’인 것이다. §대표시[편집] 교응(Correspondances) “ 자연은 살아 있는 기둥들이 때때로 모호한 말들을 새어 보내는 사원. 사람들은 친근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 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그곳으로 들어간다. 어둠처럼 빛처럼 드넓으며 컴컴하고도 심원한 통일 속에서 긴 메아리 멀리서 섞이어 들듯 향과 색과 소리가 서로 화답하네. 어린 아이들의 살처럼 싱그럽고 오보에처럼 달콤하고, 초원처럼 푸르른 향내들, 또 그밖에도 썩고 풍만하고 의기양양한 것들. 정신과 향기의 교통을 노래하는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끝없는 사물들의 확산을 가진다. ” 취해라 (Enivrez-vous) “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이다. 그대의 어깨를 짓부수고 땅으로 그대 몸을 기울게 하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하여, 쉴새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이건 시건 또는 덕이건, 무엇에고 그대 좋도록. 그러나 다만 취하여라. 그리고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 도랑 가의 푸른 풀 위에서, 그대의 밤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가 잠을 깨고, 취기가 벌써 줄어지고 사라져 가거들랑,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시계에, 사라져 가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은 몇 시인가 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그대에게 대답하리,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 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취하여라! 술이건, 시건, 또는 덕이건, 무엇에고 그대 좋도록."  ”  
206    릴케과 보들레르 댓글:  조회:2692  추천:0  2015-03-07
  가을의 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주여, 때가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녁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 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를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메일 것입니다.                         Franz von Stuck - Tilla Durieux as Circe       오 '아름다움'이여! 악마 같으면서도 숭고한 그대 눈길은 선과 악을 뒤섞어 쏟아부으니. 그대를 가히 술에 비길 만하다.   그대는 눈 속에 석양과 여명을 담고 폭풍우 내리는 저녁처럼 향기를 부린다. 그대 입맞춤은 마약, 그대 입술은 술 잔, 영웅은 무력하게 하고, 어린애는 대담하게 만든다.   ---   그대는 닥치는 대로 기쁨과 재난을 흩뿌리고, 모든 것을 지배하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Franz von Stuck - Circe           '아름다움'이여 그대는 죽은 자들을 비웃으며 그 위로 걸어간다 그대의 보석 중 '공포'도 매력이 못하지 않고, 그대의 가장 비싼 패물 중 '살인'이 그대의 거만한 배 위에서 요염하게 춤춘다.   현혹된 하루살이가 그대 촛불에 날아가 탁탁 타면서 말한다. "이 홧불에 축복을!" 하고. .....   빌로드 같은 눈을 가진 요정이여, 운율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내 유일한 여왕이여! 보들레르 '악의 꽃 - 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 中                 Wright Barker -Circe 1900           요정 키르케! 만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태양신 헬리오스와 바다의 요정 페르세의 딸로 키르케는 ‘독수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녀는 눈부신 외모와 인간을 동물로 바꾸는 마법으로 유명했는데 전설의 섬 아이아이에(Aiaie)에 살면서 그 섬에 오는 사람에게 마법을 걸어 동물로 변하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스의 최고의 영웅인 오딧세우스마저 자신의 성적 매력으로 굴복시킨 그녀의 매력은 너무도 유명하다.               Pier Francesco Cittadini - Circe and Odysseus           트로이 함락 후 영웅 오디세우스는 부하와 함께 귀국 도중 이 섬에 배를 대었다. 제비를 뽑아 23명의 부하가 선발되어 에우릴로코스를 대장으로 이 섬의 탐험에 나섰다가 키르케의 저택에 당도하였다. 문 앞에는 늑대와 사자가 있어 그들에게 달려들어 놀라게 했으나, 그녀는 일행을 맞아들여 환대하면서 약을 탄 술을 마시게 한 다음, 지팡이로 때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모두 돼지로 만들어 버렸다. 멀리서 이를 보고 있던 에우릴로코스의 급보를 접한 오디세우스는 단신으로 부하의 구조에 나섰다.              John William Waterhouse - Circe offering the Cup to Ulysses 1891             지금도 서양에서는 남자가 여인의 육체에 넋을 빼앗길 때면 '키르케에게 홀렸다'는 비유를 한다. 그녀의 냉혹한 아름다움은 이 그림에서 절정에 달한다. 알몸이 훤희 드러난 옷을 입은 요염한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에게 마법의 술잔을 내밀며 유혹을 한다. 왼손에 놓이 쳐든 막대기는 마술 지팡이다. 마법의 술에 위한 남자를 이 막대기로 치면 금새 훙측한 돼지로 변해 버린다. 키르케의 발치에 몽롱한 눈을 치뜬 채 널브러져 있는 돼지도 마법에 걸린 희생물이다. 경계심을 잔뜩 품은 얼뜬 오디세우스의 얼굴이 키르케의 등뒤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 어렴풋이 비친다. 그리스 최고의 영웅이라는 명성을 간 곳 없고 마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키르케의 눈부신 자태는 화면을 압도할 만큼 크고 당당한 반면 영웅의 모습은 초라하고 왜소하게 그린 것도 그녀의 유혹이 그만큼 치명적임을 말하는 것이리라.               John William Waterhouse - Circe Invidiosa 1892             워터하우스가 그린 위의 키르케는 마녀의 관능미가 얼마나 농염한가를 잘 보여 준다. 위의 그림은 질투심으로 독기를 품은 여인의 잔인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지금 이 장면은 연못에 마법의 약을 붓는 살벌한 키르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질투로 눈에 가득 독기를 품고 이를 악무는 키르케의 표정에서 오싹한 한기보다는 에로티시즘의 극치가 느껴진다.   키르케에게 이토록 강렬한 질투심을 불러일으킨 남자는 바다의 신 글라우코스다.                 John William Waterhouse - Circe               글라우코스는 아름다운 처녀 스킬라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만 상사병이 났다. 짝사랑에 애가 탄 글라우코스가 사랑의 열병을 이기지 못해 키르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자,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사랑의 화살이 키르케에게 꽂혔다. 당황한 글라우코스는 자신의 유일한 사랑은 오직 스킬라뿐임을 못박고 키르케의 구애를 냉정하게 거절했다.                 Neer, Eglon van der - Circe punished by Glaucus Scylla into a monster change 1695             질투심에 파랗게 질린 키르케는 스킬라가 평소 목욕을 즐기는 연못에 마법의 약을 풀어 그녀를 머리 여섯 달린 흉측한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Nicolas Regnier - Circe         키르케는 신비한 매력을 남성의 몸과 마음을 뺏어 파멸시키는 요부의 전형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남자를 사로잡는 여성의 강력한 힘은 마법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마법에 걸리지 않고서야 그토록 멀쩡하던 남자가 제 정신을 잃고 집안과 명예, 자존심을 내팽개친 채 욕정에 빠질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205    푸쉬킨 시 한수 댓글:  조회:2631  추천:0  2015-03-04
          ;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A.푸쉬킨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랑으로 인해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는 않겠습니다. 슬퍼하는 당신의 모습을  절대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말없이, 그리고 희망도 없이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때론 두려워서, 때론 질투심에 괴로워하며  오로지 당신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부디 다른 사람도 나처럼  당신을 사랑하길 기도합니다.          제작:독고혁      
204    막스 자콥과 피카소 댓글:  조회:2454  추천:3  2015-03-04
막스 자콥이 피카소를 만나게 된 것은 1901년 6월,  앙브루아즈 볼라르 화랑에서 열린 피카소의  전시회에서였습니다.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성공이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궁핍한  생활을 택했던 이 시인은 젊은 화가 피카소를 만나자마자  한 눈에 매혹당해 그와 깊은 교우 관계를 맺게 됩니다.   1904년 피카소가 파리에 완전히 정착하자 자콥은 기욤 아폴리네르나  앙드레 살몽과 함께 세탁선에 자리잡은 그의 아틀리에에 빈번하게 드나듭니다.   그리하여 피카소의 아틀리에는 곧‘ 시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자콥은 입체주의의 시발점인 의  탄생 과정을 운 좋게도 옆에서 지켜본 증인이었습니다.    피카소는 자콥의 소설 과 혁신적인 산문집 을 비롯하여  그의 이름으로 나온 여섯 권의 책에 삽화를 그려주었습니다.   또한, 1915년 자콥이 유대교에서 카톨릭교로 개종할 당시 피카소는  그의 대부가 되어 주었으며 자콥은 1918년 피카소가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을 할 때 증인이 되어 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1915년에 피카소는 막스 자콥의 초상화 한 점을 그렸는데, 여기서 보여준 치밀한  사실성 때문에, 사람들은 피카소가 입체주의와 완전히 결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이들의 우정은 1944년 3월 5일, 자콥이 유대인 집단 수용소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오히려 그 이후까지도 변함없이 지속되었습니다.  
203    명시인 - 막스 자콥 댓글:  조회:2633  추천:0  2015-03-04
보아구렁이의 비정한 웃음              막스 자콥(1976 ~ 1944).                 사람들이 그러는데, 크레이 역은 북부의 공산품 집산지이다. 우아즈 강이 커다란 통들 앞을 흐르고 있다. 제방은 파스퇴르가의 차도와 흡사하다. 놀랍 게도 이 통들은 태아를 돌보고 있는 한 순진하고 뚱뚱한 늙은 여자를 숨겨주 고 있다. 강간당한 여자! 어머니! 철교는 새장이다. - 가타가 철교 위를 엄청 빨리 지나간다! - 저 아래 우아즈 강에는 낚시꾼들이 있다! 이 몽롱한 풍경이 라니! 두 개의 무덤인가? 아니다! 나는 무섭고 늙은 우는 여자를 또 보았다. 나 는 그녀를 장터에 있는 가벼운 가 건축물 앞에서 다시 보았다. 무거운 치마를 두른 한 무리가 소란스러운 장난감들을 샀다. 강간한 남자는 바이올린을 켜고 있고 강간당한 여자는 도둑질을 하고 있다. (르 비올레르 에 또 비올롱, 라비 올레 볼르)                 **막스 자콥: 유태계 프랑스의 시인. 브르타뉴의 캥페르에서 출생, 드랑시의 포로 수용소에서 사망.                      1901년 몽마르트르에서 피카소를 알게되어 친교를 맺다. 아폴리네르, 살몬 등 시인과                      교류하고, 큐비즘이나 쉬르레알리슴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는 조소적이고 풍                      자적인 정신의 소산으로 속어나 익살을 많이 썼다.                                      지평선 - 막스 자콥(1876~1944)   그녀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전부였다. @@매양 보는 그녀의 하얀 팔에서 지평선을 끌어내는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다. 내 스무 살 때 한번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여성을 연모하며 끙끙 앓았다. 때는 여름, 민소매 바깥으로 빠져나온 그녀의 하얀 팔이 눈부셨다. 그 하얀 팔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아기를 안을 팔이고, 별과 들과 강을 품은 팔이며, 은하를 다 품을 정도로 길게 늘어나는 팔이다. 그 팔은 향기로운 꽃이고, 무지개이며, 눈의 끝 간 데 홀연히 펼쳐진 지평선이다. 지금도 그 하얀 팔이 환영(幻影)으로 떠오른다. 그 하얀 팔을 볼 수 없으니, 내 지평선도 영영 사라졌다. 막스 자콥은 초현실주의 예술이 태동하는 데 힘을 보탠 프랑스 시인이다.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아폴리네르와 피카소 등과 사귀고, 가정교사·벽돌공·점술가·경비원·세일즈맨 등을 하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202    윤동주 3형제 모두 시인 댓글:  조회:2554  추천:0  2015-03-02
  윤동주 3형제는 모두 시인이었다 모국보다 해외에서 더 뜨거운 추모열기      ▲ 윤혜원-오형범 부부가 북간도에 가서 새롭게 단장한 윤동주 묘소     북간도-청진-서울-도쿄, 그리고 후쿠오카 감옥   윤동주 시인은 27년 2개월이라는 짧은 생애 중에서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줄곧 객지에서 공부했다. 북간도-평양-서울-도쿄-교토로 이어지는 긴 유학생활 끝에, 그는 후쿠오카에서 감옥에서의 객사(客死)라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말았다. 오죽하면 '향수'의 시인 정지용이 윤동주의 시집 초간본(1948년)서문에다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서 죽었고나! 29세(한국식으로 계산)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썼을까. 그가 숨을 거둘 당시 고향 연길에는 부모님은 물론이고 할아버지도 생존해 계셨다. 유교적 관습으로 보면 크게 불효를 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고향엔 두 명의 남동생(일주, 광주)과 여동생 혜원이 살고 있었다. 두 남동생 일주와 광주는 나중에 시인이 되었다. 윤동주의 형제들은 단명했다. 장남 윤동주 시인이 28세, 2남 윤일주 시인이 58세, 막내 윤광주 시인이 31세의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다. 결국 윤혜원씨가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다. 해외동포가 찾아내고 보수한 윤동주 무덤          ▲ 윤동주 시인이 숨을 거둔 후쿠오카 감옥.   그런 연유로, 윤동주 시인을 후세에 잘 전하기 위해서 맡아야할 윤혜원씨의 임무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다. 북간도에 남아있는 윤동주 시인 무덤의 개수와 관리도 윤혜원 권사와 남편 오형범씨의 몫이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신길우(전 상지대 교수. 현 서초문학회 회장)씨가 2003년 3월부터 중국 연변대학 초빙교수로 근무하면서, 마침 윤동주 묘를 개수하러 연길에 와 있던 80세의 윤혜원․오형범 여동생 부부와 여러 차례 만나서 확인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1945년에 장례를 지낸 이후 윤동주는 잊혀졌다. 그때 그곳 사람들은 윤동주가 누구인지, 그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조차를 몰랐다. 그러다가 지난 1984년 봄, 미국에 살고 있는 의학자 현봉학 선생이 초간본(손자들이 낙서를 해놓은 상태였다고 함)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 같은 해 8월에 중국을 방문하여 연변의 유지들과 자치주정부에 가서 윤동주의 묘를 찾아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런데 아무도 윤동주를 모르고 관심을 안 주어서, 그가 위대한 애국시인임을 역설하고, 내년 방문 때에는 묘소를 꼭 찾아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한편 윤동주 시인의 친동생인 윤일주 교수가 1984년 여름에 일본에 가 있던 중, 연변대학 교환교수로 가게 된 와세다대학의 오무라 마쓰오(大村益夫) 교수를 찾아가, 윤동주의 묘소가 동산 교회묘지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찾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오무라 교수는 1985년 4월 12일에 연길에 도착하였는데, 연변 문학자들은 윤동주는 물론 작품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고 한다. 오무라 교수는 공안국의 허가를 받아 5월 14일 연변대학 권철 부교수, 조선문학 교연실 주임, 이해산 강사와 역사에 밝은 용정중학의 한생철 선생과 함께 동산의 교회묘지에서 윤동주의 묘를 찾아냈다. 그들이 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가지고 간 묘비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덕이었다. 묘소의 첫 개수 작업은 1988년 6월에 이루어졌다. 미국에 거주하는 현봉학 선생이 주동이 된 미중한인우호협회(美中韓人友好協會)가 연증(捐贈)하고, 용정중학교 동창회가 수선을 하였다. 윤동주 묘소를 두 번째로 개수한 것은 2003년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살고 있는 오형범․윤혜원 여동생 부부가 15년만에 다시 개수하면서 두어 달에 걸친 공사로 7월 15일에 완료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 호주한인문인협회 회원들이 윤동주 시인 60주기 마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윤동주 애창곡 '네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윤혜원씨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오빠의 애창곡은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다. 거기에 얽힌 얘기를 잠깐 들어보자. "그 노래는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하느라 타지를 떠돌았던 오빠가 고향 북간도와 부모형제를 그리면서 자주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또한 유학생활 중에 방학을 맞아 고향에 오면 동생과 동네아이들을 모아놓고 '아리랑' '도라지' 등의 민요와 함께 그 노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고향의 조무래기들을 삥 둘러 앉혀놓고 위인들의 얘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가르치던 오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오빠의 단짝이었던 문익환(나중에 목사가 됨) 오빠는 주로 찬송가와 율동을 가르쳐주었지요." 그런 윤동주 시인이 떠난 지 어언 60여년, 그런데 이번엔 그가 남겨놓은 시편들이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를 부르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동안 우리가 읽어왔던 윤동주의 시들이 윤동주가 원고지에 써놓은 본디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윤동주 육필원고와 교과서나 시집에 실려 있는 그의 시들이 영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유고시집 에 실린 윤동주의 시와 원고지에 직접 쓴 시들 사이에 차이가 나는 어휘만 무려 570개에 달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윤동주가 원고지에 쓴 원래의 형태로 그의 시들이 되돌아가게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이런 사실을 밝혀낸 홍장학(53. 동성고 국어교사)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읽어온 윤동주의 시가 오리지널과 그토록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니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윤혜원씨 부부가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지난 2005년 시드니에서 열린 '윤동주 60주기 추모문학제'에 홍장학 선생을 초청하여 저간의 사정을 들었다.       ▲ 중국동포 소녀들이 재작년 윤동주 시인 60주기를 맞아 묘소 앞에서 눈이 내리는 가운데 서시를 낭송하고 있다    해외에서 더 애틋한 윤동주 추모 윤동주 시인은 현대용어로 얘기하면 이민자에 해당하는 이주민의 후예였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윤동주 시인 추모의 열기는 모국이 아닌 해외에서 더 뜨겁다. 여동생 윤혜원씨가 살고 있는 호주 시드니와 그의 고향 룽징(龍井)을 비롯해서 일본,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추모행사가 계속해서 열리고 있는 것. 그 행사들을 취재하던 기자는 아주 뜻밖의 큰 소득을 얻었다. 윤동주 시인의 친척 김태균(전 경기대 교수)씨와 연결이 된 것. 그는 은진중학교에 다닐 때 외가인 윤동주 시인의 집에 살았는데, 그것도 윤동주 시인과 같은 방에서 2년 동안이나 지낸 사람이다. 그는 1986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현재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현재 암 투병 중이다. 함께 기거했던 연유로 그는 1937년 당시, 윤동주 시인의 시 창작과정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내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윤동주 시인이다. 내가 국문학자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면서 "아픈 몸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윤동주의 한 때를 늦게나마 증언하게 되어 기쁘다"고 토로했다. 윤동주 시인의 출생지인 연변자치주에서 전해온 소식들은 더 애틋하다. 매년 2월이면 엄청난 눈이 내려서 묘지참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동포들이 고인에게 꽃을 바치고 시를 낭송하면서 윤동주 시인을 추모한다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유학하고 옥사한 일본에서 전해오는 소식들도 애틋하긴 만찬가지다. 일본 교토에 거주하는 박세용(45. 도시샤 코리아 동창회 이사)씨가 전화와 팩스로 기자에게 전해준 소식 중에서 민단계와 조총련계가 자리를 함께 했다는 내용도 있다.       ▲ 작년 중국 연변에서 열린 시상식 장면. 윤혜원 오형범 부부(왼쪽에서 4-5번째)도 참석했다    윤동주, 일주, 광주 '3형제 시인' 윤동주 시인의 3형제가 전부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건 문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3형제 모두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무심했고, 너무 일찍 작고한 것 등이 그 이유다. 또한 윤일주 시인(1927-85, 전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이 시집 한 권 펴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동주 형이 못내 안타까웠는지 살아생전에 시집 내는 걸 저어했던 탓도 있다. 형과 10살 터울인 윤일주씨는 1955년 을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유고 동시집 가 있다. 한편 막내동생 윤광주씨가 시인으로 활동했던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매형 오형범씨다. 그가 죽은 지 40여 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오씨가 연길에서 윤광주씨의 시를 발굴한 것. 윤광주씨는 해방정국의 소용돌이에서 함께 월남하지 못하고 중국공산치하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렇다보니 윤광주 시인의 작품이 제대로 보관됐을 리 없다. 1990년에 연변을 방문한 오형범씨가 연변일보 10년 치와 문학지 를 다 뒤져서 몇 편의 시를 찾아냈다.(그 시들은 본 기자의 보도로 1995년 2월호에 최초로 공개됐다) 이렇듯 오형범씨는 윤동주와 관련된 일이면 미국, 캐나다, 중국을 가리지 않고 떠난다. 중국의 출입이 가능해진 1990년 이후, 매년 연변에 가서 윤동주 묘지를 새롭게 조성하고, '윤동주 문학상'을 손수 관리하고 있다.       ▲ 홍길복(왼쪽) 목사와 함께 한 윤혜원-오형범 부부     '3형제 시인 심포지엄'을 시드니에서 지난 2월 12일, 윤혜원 오형범 부부는 84세의 노구를 이끌고 비행기 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가족친지들과 함께 윤동주 62주기를 보내고 4월 28일 연길로 가서 5월 3일 열릴 예정인 중국조선족중학생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서울로 떠나기 전날, 시드니우리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홍길복 담임목사와 함께 만난 두 분은 "건강상 이번이 마지막 중국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행도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떠나는 것이다. 윤혜원씨는 이미 여러 차례 심장수술을 받았고 오형범씨도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상태인 것. 그럼에도 두 분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2008년 윤동주 63주기에 즈음하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윤동주 연구가를 시드니로 초청해서 윤동주 문학심포지엄을 여는 것이다. 그 일로 윤동주 문학의 대단원을 장식하여 저세상에서 윤동주를 만나면 전해주고 싶어서다. 윤혜원씨에게 "왜 하필이면 시드니냐?"고 물었더니 "내가 20여 년 동안 살고 있는 곳에서 주인이 되어 그동안 보답하고 싶었던 분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이나 룽징을 고려해보았지만 건강이 여의치 않아 여동생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우려가 깊은 것. 그러면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캐나다, 독일 등지에서 윤동주 연구가들이 모일 것이다. 그 중엔 미국의 현봉학씨, 캐나다의 김태균씨가 첫 손에 꼽히는 분들인데 워낙 고령이라서 시드니까지 올 수 없을 것 같아 두 분은 걱정하고 있다. 만약에 광명학교 시절에 윤동주 시인과 2년 동안 한 방에서 기거했던 김태균씨가 심포지엄에 참석한다면 아주 귀한 체험담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윤동주의 시에서는 무슨 사상이나 무슨 주의주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시를 읽으면 사랑이 생기고, 눈물 나는 참회가 생기고, 그리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이 생긴다"고 말한 바 있다.    윤여문(sydyoon) 기자     오마이뉴스 2007-03-06    
201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 작곡가 - 이시우 댓글:  조회:2656  추천:0  2015-03-02
  "눈물 젖은 두만강" 작곡가- 이시우 작곡배경, 학력과 경력 등 새로운 사실 밝혀져    거제시는 거제를 빛낸 인물과 나라와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인물의 발굴과 조명사업으로 시인유치환 선생의 생가복원과 기념관 건립, 양달석 화백 그림비, 성파 하동주 선생의 묵적비, 향파 김기홍선생의 애란비와 홍준호 시인의 시비 등의 건립으로 향토 예술인에 대한 업적을 기리고 있다.       ▲ 눈물 젖은 두만강의 '작곡가 이시우'  눈물 젖은 두만강을 노래해 국민가수로 떠오르면서 1980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는 영광을 누렸던 가수 김정구씨 와는 달리 작곡자인 이시우 선생은 고향에서조차 흔한 작곡비 하나 없는 존재 자체가 잊혀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노래를 통해 조국의 광복을 소원하며 민족정서를 살려내고 조국강산을 애찬하는 우리민족의 고유정서가 강하게 담겨 국민가요가 된 눈물 젖은 두만강의 작곡가 거제출신 이시우선생에 대해 최근에 밝혀진 새로운 사실들을 바탕으로 집중 재조명 해본다.   출생 그리고 학력과 경력 민족의 애창곡인 눈물 젖은 두만강을 작곡한 이시우(李時雨) 선생은 거제사람이다. 호적등본상에 그의 본명은 이만두(李萬斗)로 기재돼 있다.   그는 1913년(대정2년) 11월 4일 거제면 남동리 45번지(현 삼성전자 거제대리점옆)에서 부친 이경수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8년 거제초등학교(19회)를 졸업(학적부에는 창가에 소질이 있다고 적어 놓았음)한 그는 한문수학을 마치고 가족을 따라 경남 창원군 국산리 부근으로 이사하였다. 그 이후 만주하얼빈상업학교(1932. 4.1~1936. 3.10 )와 만주국립대학(1936. 4.1~1941. 3.10)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 전신인 일본조도전대학(早稻田大學)전문부(1941. 4.1~1941. 12.31) 법률전공으로 졸업했다.   일반경력으로는 매일신보사하얼빈지국근무(1941년), 조선상공신문하얼빈지국근무(1941~1945)에 근무하다가 1945년 해방으로 귀국하였다.   귀국후 대한민국내무부장관촉탁(1948년), 대한반공인천시연맹 특무국장(1949), 부산시비상사태대책위원회 선전부차장(1950), 경상남도비상사태태책위원회 선무과장(1950), 치안국 지전사 주임 근무를 시작으로 경기도 부평 형사주임(1954)으로 재직하다 면직, 이후 1958년 특채로 경상남도 동부산 경사근무를 거쳐 전남함평 주임을 끝으로 퇴직했다.   면직이후 특채되기 전 기간에는 대한건설공사대표와 국제산업여신주식회사 조사국장, 국제레코드제작사 부사장(1957)을 지내기도 했다. (여태까지 거제초등학교졸업이후의 학력은 밝혀지지 않아 명치대학 작곡가를 졸업했다고 알려져 왔다.   위의 학력과 경력내용은 1951년 치안국 지전사! 로 발령을 받을시 제출한 이력서를 둘째아들 이홍장의 장남 손자 이봉희씨가 2009년 4월 9일 전남경찰청에서 발급받은 경력증명서에 의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짐).     ▲ 눈물 젖은 두만강의 포스터   눈물 젖은 두만강의 작곡 동기와 배경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고(故) 김정구씨의 구수한 목소리로 만인의 가슴에 남아 있는 이 노래는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설움과 한이 배어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북한의 월간 대중잡지 `천리마' 최근호(2005.5)는 이 노래의 창작 동기와 과정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북한은 이 노래를 `계몽기 가요'(일제 강점기에 나온 노래) 중 대표곡으로 꼽고 있다.   국민가요로 일컬어지는 이 노래의 창작 동기와 과정은 1930년대 중엽 중국 동북지방을 순회공연 중이던 극단 `예원좌'의 작곡가 이시우씨가 지린(吉林)성 도문(圖們)시의 한 여관에 머물 때 만든 작품이다.   1935년 어느 날 여관 뒷마당에 서 있는 단풍나무 두 그루를 보며 고향 생각에 잠겨 있는데 여관집 주인이 그 나무는 자신이 두만강을 건너올 때 고향에서 떠가지고 와 1919년에 심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이씨가 `추억'이라는 주제로 곡을 구상하며 잠을 못 이루던 그날 밤 옆방에서 비통하고 처절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사연을 알아보니 그 여인의 남편과 여관집 주인은 친구 사이인데 독립군 활동을 하던 남편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총살되었으며 그날이 바로 죽은 남편의 생일날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두만강 가에 나간 이씨의 눈에는 두만강의 물결이 나라 잃고 헤매는 우리 민족의 피눈물처럼 보였고 그 곳에서 만난 문학청년 한명천에게 사연을 이야기 해주자 그가 즉흥적으로 가사를 썼고 이씨가 곡을 붙였다고 잡지는 밝혔다.   이렇게 창작된 노래는 극단 예원좌의 장월성이라는 소녀배우를 시켜 공연 막간에 부르도록 했고 관중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후 순회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이씨는 김용호 시인에게 부탁해 노래가사를 다듬고 선율을 완성해 고(故) 김정구씨의 노래로 OK레코드사를 통해 취입하게 됐다.   레코드에는 작사자가 김용호로 올라 있다. 따라서 잡지는 이 노래가 한명천 원작, 김용호 개작, 이시우 작곡이 정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명천은 1940년대 후반 북한정권 초기에 활동한 시인으로 그의 대표작 `북간도'는 북한에서 아직도 조기천의 `백두산'과 함께 문학사에서 `2대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   작곡활동과 회상 이시우 선생은 퇴직이후에도 작곡활동을 계속하였으며 주요 작곡 작품으로는 눈물 젖은 두만강 외에 섬 아가씨, 눈물의 국경, 타향술집, 봄 잃은 낙동강, 님 없는 거제도, 인생역마차, 영도다리 애가, 아내의 사진, 진도 아가씨 등을 발표했다.   눈물 젖은 두만강이 국민가요로 떠올리게 된 동기는 1964년에 방송된 KBS 라디오의 김삿갓 북한방랑기 5분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흘러나오면서 본격적인 국민가요로 불리워지기 시작하면서 작곡가 이시우 선생의 이름이 되살아났다.   어린 3삼매를 돌보며 달동네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작곡활동을 계속하던  이시우선생은  1975년 1월(음력 1974년 12월 12일) 추운 겨울 하얀 첫눈이 내리는 날 집으로 귀가 하던 중 교통사고로 한양대학교 영안실에서 쓸쓸히 세상을 마감하고 인천의 용화사에 안치돼 있다.   눈물 젖은 두만강을 노래해 국민가수로 떠오르면서 1980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는 영광을 누렸던 가수 김정구씨 와는 달리 세상을 떠난지 25여년이 된 작곡자인 이시우 선생은 고향에서조차 흔한 작곡비 하나 없는, 존재 자체가 잊혀지고 있다.   이시우선생의 둘째 자부는 “남편이 철없이 아버지 작곡사무실(당시 을지로 5가에 위치)에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면 당시 3남매를 데리고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닐 처지인데도 돈이 없을 때에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전당포에 맡겨  둘째아들에게 생활비를 주는 감성이 여리고 자녀들에 대한 책임이 강한 자상한 시아버지 였다”며 당시를 회고 했다.    거제뉴스/2009-04-22    
200    서정시 모음 댓글:  조회:5588  추천:0  2015-02-24
서정시 모음     휘파람   오늘 저녁에도 휘파람 불었다오 복순이네 집앞을 지나며  벌써 몇 달채 휘파람 부는데  휘휘… 호호… 그리도 그는 몰라준다오 날마다 직장에서 보건만  보고도 다시나 못볼 듯 가슴 속엔 불이 붙소  보고도 도 보고 싶으니  참 이 일을 어찌하오 오늘도 생긋 웃으며  작업량 三백을 넘쳤다고… 글쎄 三백은 부럽지도 않아  나도 그보다 못하진 않다오 그래도 그 웃음은 참 부러워  어찌면 그리도 맑을까 한번은 구락부에서  나더러 무슨 휘파람 그리 부느냐고 복순이 웃으며 물었소 난 그만 더워서 분다고 말했다오  그러니 이젠 휘파람만 불 수 밖에… 몇 달이고 이렇게 부노라면… 그도 정녕 알아 주리라! 이 밤도 이미 늦었는데 나는 학습 재료 뒤적이며  휘휘… 호호…  그가 알아줄가? (조기천, 1947.9. 中/)      서운한 종점 헐떡이며 내닫는 것은 너뿐이랴  가까이 다가올수록  벅차만지는 나의 숨결, 미역내 구수히 풍겨오고  동백꽃 붉게 타는  남쪽바다가  그리운 내 고향은 이 길 따라  부산으로도 가지  려수로도 가지 기관차야!  숨죽이지 말고  그대로 가자꾸나 덜커덩 선 다음  왜 꿈쩍도 않느냐 달려오던 그 기세 어따 두고 너도 안타까우냐  들이 울어쌓는 기적소리 김빼는 소리 여기가 오늘의 종점이란다 꿈에서 깨여난 사람처럼 나는 또 짐을 내려야 하나   한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워진 이곳이  무척 반갑기는 하다마는 다시 천근추에 매여달리듯  홈에 돌처럼 우뚝 서  남쪽하늘을 바라본다 내 이곳에서 우선 행장을 펴  네 앞길을 닦으며  손꼽아 기다리리니 하루속히 가자꾸나  너, 나와 약속한 남으로 뻗친 지향을 싣고… (조벽암, 1956 문예출판사 1979.10.)   사랑의 향기 배가 들어 온다 ― 누군가 웨치는 소리  언뜻 머리 들어 바라보니  풍어의 기폭속에서 환히 웃는 젊은이의 얼굴  처녀의 가슴에 해'님처럼 안겨 오네 할복공들 틈에서 일'손 거들던 처녀  로라 밑에 남몰래 감춰 둔  싱그러운 꽃다발 가슴에 안으니  자꾸만 숙어지는 얼굴 붉어만 지네 드르릉… 돌아 가는 로라 소리  처녀의 가슴에서도 드르릉… 님을 반겨 맞아 들이는  마음의 문 열리는 소리 하늘과 바다의 복을 거느린양 저녁 노을에 떠밀려 오는  총각의 시원스런 걸음이여  그 걸음 맞는 수줍은 얼굴이여 심장의 깊은 곳에 고이 간직한 순정  한 묶음의 꽃에 담아 들이기에는  너무도 작은 꽃다발 이언만… 꽃향기에 묻힌 처녀의 순정이여  티 없이 맑은 사랑의 향기여  송이송이에 함뿍 담김 너의 마음 어서 젊은이 불타는 가슴에 안겨 주어라. (김규만, 1964)   달리면 서울길은 한나절인데 가슴 아프구나  이 대로 달리면 서울 실은 한나절인데  내 어찌 동창 마을에 발동을 멈추고  벅찬 숨'결 억눌러야 하느냐 저 삼각산 밑에 내 집이 있다.  내 손으로 지붕을 얹은 단간 초막  아침 저녁 여닫던 싸리문 활짝 열고  성큼 들어 서야 할 집이 저기에 있다. 저 삼각산 밑엔 내 어머니가 있다 총을 메고 집을 떠날 때  막바지 길을 따라 나오며  이기고 어서 돌아 오라 바래 주던 어머니  백발이 얹혀도 살아서 기어이  이 아들을 만나려고 저기에 산다 차체에 새겨진 붉은 별 하나로도  몇 백 몇 천 번을 오갔으련만  작별의 그 날, 그 말이 가슴에 옹이로 박힌  십여 년이 지나도록 풀지를 못 했다.   달리자, 나의 자동차야  승승장구 달려 온 사랑하는 통일호야  차체에 빛나는 이 별들이 아직 모자란다면 ] 내 어머니 바라 보실  북녘 하늘의 별들을 따다  빈틈 없이 차체에 새겨 넣으리라 꿈'결에도 핸들을 남을 돌려  눈에 더욱 훤히 익혀진 서울 길로  내 선참으로 질풍처럼 달려 갈  그 날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리자 (김재화, 1965. 9기에 실림) 문풍지 우는 소리 구들장이 얼음장같은 행랑방  사정없이 몰려드는 설한풍에  문풍지 목놓아 울던 밤,  어머니는 나를 낳았다. 기쁨보다도  설음과 걱정을 받아안은 어머니  따뜻한 국 한술 들지 못한 채  눈물만 삼키었다. 아, 저주롭던 그 밤  내 울음소리 얼마나  어머니의 가슴을 허비였으랴 생의 첫울음을 눌러버리며  스산하게 울던  아, 그날의 문풍지소리, 문풍지소리 ― 그 소리 자장가 대신 들으며  나는 모진 생명을 지꿏게 이어왔어라.  이름도 없이,  꿈도 없이… 해종일 손발이 퉁퉁 얼어붓도록  빨래를 한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잡고 밥달라 내 철없이 조르다  어머니 무릎가에 지쳐쓰러진 밤  서럽게, 서럽게만 울리던 문풍지소리   학대와 모멸의 그 세월에  어느 하루도 그칠 날이 없던 그 소리,  그것은 홀어머니의 한숨소리였고 가슴속 피맺힌 나의 하소였다,  하늘땅에 사무친 민족이 곡성이였다… 은혜로운 태양의 빛발이  행랑방 나의 문창에도 비쳐든 그날에야  어머니와 나의 가슴에 맺혔던  원한의 고드름은 녹아내렸나니 지금은 해빛따사로이 넘치는 창너머  거리를 씩씩하게 행진해가는 아이들의 노래소리,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의 웃음소리… 아, 이런 때면 내 가슴 세차게 흔들어주는  모진 세월의 비바람소리! 꽃피는 생활의 향기속에 취하지 말라고,  꽃피는 락원의 봄빛속에 조을지 말라고 내 마음 깊은곳을 흔들며  오늘도 울리는 그날의 문풍지소리… (박창화, 1976. 8기에 실림.)   무지개 돌에서 피는 꽃  조선의 비날론 꽃솜이 보고파  휘우듬히 무지개 드리웠는가 한소나기 지나간 비날론도시  하조장 유리지붕에 그 한끝을 드리운  오, 무지개!  선녀들이 타고 다닌다는 전설의 다리 눈여겨보면  사뿐사뿐 무지개 타고 내리는  선녀들의 모습 보일 듯  무지개만 쳐다보는데 신비한 조화여라  어느결에 그 무지개 사라지고  류달리 맑은 하조장 유리지붕너머   쪽빛으로 트이는 하늘가엔 뭉게뭉게 피여나는  하얀 꽃구름… 문득  내게는 생각되여라  하조장에 구름처럼 피여나는  하얀 돌꽃솜이  그대로 저 하늘에 떠실린것처럼 천년을 봐도 싫지 않을 돌꽃솜을  하늘가에 영원히 비껴담고싶어 나도 몰래  무지개 타고 내렸던 선녀들  그 고운 손으로  하조장 유리 지붕을 거울처럼 닦고간 듯이… (서진명, 1987. 5기에 실림)   봄과 처녀 파릇이 애잎을 터는  벼모를 쓰다듬으며  관리공처녀는 이야기하네  앞산 골마다 아직 눈이 하얀데 젖살오른 아기의 모습처럼  봄빛으로 싱싱한 그 한파상에서도  구석진 몇대의 벼포기  더 주어야 할 온기에 대해   처녀는 이야기하네  이제 땅을 짚고 걸차게 일어설 그 벼모  이제 쭉쭉 쳐오를 아지들을 두고  덧비료에 대해, 김잡이약에 대해… 어느덧 처녀의 얼굴엔 웃음이 무르녹고  그 웃음발에 이어져  하늘하늘 춤추는 파란 랭상모 오호! 봄  봄  처녀의 마음속에  찾아온 봄 온 들판의 푸르른 봄 시작되는곳에서  풍년꿈 아지치는 푸른 모판에 앉아  나는 이야기했네 처녀와 풍년봄과 ―   (김광춘, 1990. 11기에 실림.)  기폭 : 깃발  할복공 : 생선의 배를 따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로라 : 회전시켜서 쓰는 원통형의 물건. 롤러  선참으로 : 우선. 먼저.   허비이다 : 파헤치다. 파내다.  지꿏다 : 끈덕지다. 고집스럽다  해종일 : 하루종일.  빛발 : 빛. 광선.   비날론 : 비닐론. 합성섬유 중 성질․감촉이 가장 솜에 가깝다.  휘우듬히 : 비스듬히.   한소나기 : 한바탕 내리는 소나기  하조장 : 짐 꾸리는 곳.  덧비료 : 씨를 뿌리거나 모를 내기 전에 논이나 밭에 준 밑비료  김잡이약 : 논이나 밭에 나는 잡초를 죽이기 위해 뿌리는 약. 제초제. 
199    백석 시 댓글:  조회:2744  추천:0  2015-02-24
개구리네 한솥밥  - 백 석  옛날 어느 곳에 개구리 하나 살았네  가난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 하나 살았네  하루는 이 개구리  쌀 한 말을 얻어 오려  벌 건너 형을 찾아 길을 나섰네  개구리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가 도랑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도랑으로 가보니  소시랑게 한 마리 엉엉 우네  소시랑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소시랑게야, 너 왜 우니?"  소시랑게 울다 말고 대답하였네  "발을 다쳐 아파서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소시랑게 다친 발 고쳐 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논두렁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논두렁에 가보니  방앗다리 한 마리 엉엉 우네  방앗다리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방앗다리야, 너 왜 우니?"  방앗다리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길을 잃고 갈 곳 몰라 운다"  개구리 바쁜 길 잊어버리고  길 잃은 방앗다리 길 가르켜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복판 땅구멍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땅구멍에 가보니  소똥굴이 한 마리 엉엉 우네  소똥굴이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소똥굴이야, 너 왜 우니?"  소똥굴이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구멍에 빠져 못 나와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구멍에 빠진 소뚱굴이 끌어내줬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섶 풀숲에서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풀숲으로 가보니  하늘소 한 마리 엉엉 우네  하늘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하늘소야, 너 왜 우니?"  하늘소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풀대에 걸려 가지 못해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었네  개구리는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웅덩이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물웅덩이 가 보니  개똥벌레 한 마리 엉엉 우네  개똥벌레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개똥벌레야, 너 왜 우니?"  개동벌레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물에 빠져 나오지 못해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 주었네  발 다친 소시랑게 고쳐주고  길 잃은 방앗다리 길 가리쳐주고  구멍에 빠진 소똥굴이 끌어내주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내주고  착한 일 하느라고 길이 늦은 개구리  형네 집에 왔을 때는 날이 저물고  쌀 대신에 벼 한 말 얻어서 지고  형네 집을 나왔을 땐 저문 날이 어두워  어둔 길에 무겁게 짐을 진 개구리  디퍽디퍽 걷다가는 앞으로 쓰러지고  디퍽디퍽 걷다가는 뒤로 넘어졌네  밤은 깊고 길은 멀고 눈앞은 캄캄하여  개구리 할 수 엇이 길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하늘소 윙하니 날아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무거운 짐 지고 못 가 걱정한다"  그랬더니 하늘소 무거운 짐 받아 지고  개구리 뒤따랐네  무겁던 짐 벗어 놓아 개구리 가기 좋으나  길 복판에 소똥 쌓여  넘자면 굴러지고 돌자면 길 없었네  개구리 할 수 없이 길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소똥굴이 휑하니 굴러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소똥 쌓여 못 가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소똥굴이 소똥더미 다 굴리어  막혔던 길 열리었네  막혔던 길 열리어 개구리 잘도 왔으나  얻어 온 벼 한 말을 방아 없이 어찌 찧나?  방아 없이 어찌 쓸나?  개구리 할 수 없이 마당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방앗다리 껑충 뛰어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방아 없이 벼 못 찧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방앗다리  이 다리 찌궁 저 다리 찌꿍  벼 한 말을 다 찧었네  방아 없이 쌀을 찧어 개구리는 기뻤으나  불을 땔 장작 없어 쓸은 쌀을 어찌하나  무엇으로 밥을 짓나!  개구리 할 수 없이 문턱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소시랑게 버르륵 기어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장작 없어 밥 못 짓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소시랑게 폴룩폴룩 거품 지어  흰 밥 한 솥 잦히었네  장작 없이 밥을 지은 개구리는 좋아라고  뜰악에 멍석 깔고 모두들 앉히었네  불을 받아 준 개똥벌레  짐을 져다 준 하늘소  길을 치워 준 소똥굴이  방아 찧어 준 방앗다리  밥을 지어 준 소시랑게  모두모두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었네     
198    옛 시조 47수 댓글:  조회:2661  추천:1  2015-02-21
    ▣▣▣ 옛 시조 모음 47 수 ▣▣▣           (청산은 나를 보고) - 나옹선사       청산(靑山)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명월(明月)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욕심(慾心)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바람같이 구름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선사 (1262-1342) ;고려 말기의 고승, 공민왕의 왕사.         (춘산에 눈 녹인 바람) - 우 탁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 데 없다 저근듯 빌어다가 머리 우에 불리고자 귀밑의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우 탁 (1262-1342) ; 고려 말기의 학자, 성리학에 뛰어남.       (이화에 월백하고) -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데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냥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 (1268-1343) ; 고려 말의 학자, 시와 문장에 뛰어남.         (녹이상제 살찌게 먹여) - 최 영       녹이상제 살찌게 먹여 시냇물에 씻겨 타고 용천 설악 들게 갈아 두러 메고 장부의 위국충절을 세워 볼까 하노라     최 영 (1316-1388) ; 고려 말의 명장, 이성계에게 죽임을 당함         (가마귀 사우는 골에) -김정구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가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지은이가 정몽주의 어머니라고 하나, 연산군 때 김정구라는 설이 확실함.         (이 몸이 죽고 죽어) - 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 (1337-1392) ; 고려 말의 위대한 충신, 이방원에 의해 피살됨         (오백년 도읍지를) -길 재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 재 (1353-1419) ; 고려 말의 학자, 고려가 망하고 고향에 숨어서 살았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 이 색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이 색 (1328-1395) ; 고려 말의 학자, 조선 건국 후에 벼슬을 그만 둠.       (백두산 돌 칼 갈아 없애고) - 남 이   백두산 돌 칼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 말 먹여 없애리 남아 나이 이십에 나라 평정 못할진대 후세에 뉘라서 대장부라 하리요   남 이 (1441-1468) ; 조선 초 훌륭한 장군, 간신 유자광의 모함으로 죽음.         (흥망이 유수하니) - 원천석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원천석 ( ? ) ; 고려 말의 학자, 절개의 선비.         (눈 맞아 휘어진 대를) - 원천석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 턴고 굽을 절이면 눈 속에 푸르르랴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     원천석 ( ? ) ; 고려 말의 학자, 절개의 선비.           (오리의 짧은 다리) - 김 구   오리의 짧은 다리 학의 다리 되도록 검은 가마귀 해오라비 되도록 항복무강하사 억만 세를 누리소서   김 구 (1488-1543) ; 조선 전기 학자, 서예와 문장에 뛰어남     (고인도 날 못 보고) - 이 황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뵈 고인을 못봐도 예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쩔꼬   정 철 (1501-1570) ; 조선시대 학자, 도산서원에서 후진 양성함.           (내해 좋다 하고) - 변계랑     내해 좋다 하고 남 싫은 일 하지 말며 남이 한다 하고 의 아녀든 좇지 마라 우리는 천성을 지키어 생긴 대로 하리라     변계랑 (1369-1430) ;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 시와 문장에 뛰어남     (태산이 높다 하되) - 양사언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197    시;- 난해시 댓글:  조회:2391  추천:1  2015-02-19
  난해시 / 공석진     암호를 풀어라 지령을 내린다   곳곳에 낯선 말 심어 최대한 비비 틀고 과감하게 생략해 도치에 도치 역치에 역치 절대로 판독하지 못할 난해시에 골몰한다   과도한 집중은 꾼들의 몫 난감은 내 알 바 아니다 착시는 평가의 혼돈   암호를 풀어라 특급 지령을 내린다     秋岩 詩  
196    명시인 - 김수영 댓글:  조회:2325  추천:1  2015-02-19
                    김수영  시 모음                                                  (본관 김해김씨)     김수영은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통해 현대시 영역에서 시의 현대성을 가장 적극적 이고 날카롭게 탐구한 시인입니다. 그의 초기시는 난해한 성향을 띤 모더니즘시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4·19 를 겪으면서 자유와 그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 그리고 소시민의  비애를 성찰하는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시, 시론, 시평 등을 발표한 대표적인 참여시인입니다.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인의 대표시입니다. 2008년 조선일보에서 현존하는 문인 100명에게 애송시 100편을 뽑는 투표를 하게 하였는데, 그때 1등으로 뽑힌 시가 이 시입니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풀을 노래한 시로 읽어도 좋고, 민중시나 저항시로 읽어도 좋습니다. 읽는 우리들 마음이겠지만 저는 그냥 풀로 읽는게 더 좋네요.                                                      눈 /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눈에다가 기침을 하고 가래라도 뱉자'고 외치는 아주 단순한 시이지만,,,  눈을 닮기 위해 자신을 정화하려는 시인의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살아 있다'라고 외치는 시인의 순수하고 정정한 모습이 우리를 압도합니다.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혁명은 고독하다' - 자유를 향한 자의 고독한 의지가 우리의 가슴을 찡하고 울리네요.  김수영시인은 '시인은 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혁명가와 같은 존재로서  그런 인식으로 시인은 시를 써야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미 /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지독히 비시적(非詩的)인 산문 문장을 그대로 시로 살려놓고 있는 이 시는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치 떨리게 서럽다. '몸이 까맣게 타버려서' 멀리 있는 사람의 가을까지 보인다. '여전히 바라는 것'이 있고, 나의 바람이 '으스러진 설움'이 될 것을 알기에 나는 악착같이 시를 쓰고 사랑하는 것이리라.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가 '나'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거미' 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우리의 설움은 가뭇하게 타버리고 가을 찬바람처럼 맑아져 다시 오리라. 모든 사랑을 첫사랑이라 생각하면서, 첫사랑처럼 마지막 사랑에 몸서리치리라. 까맣게 몸을 태우면서. (김선우, 시인)                           공자의 생활난  /  김수영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矜持의 날 / 김수영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나는 피로하였고  또 나는  영원히 피로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개의 번개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  청춘 물 구름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  파도처럼 요동하여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사랑의 변주곡(戀奏曲)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三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삼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뱥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節度는  열렬하다  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暴風의 간악한  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人類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美大陸에서 石油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都市의 疲勞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冥想이 아닐 거다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라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년전의 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폭포 /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楕)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殘滓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거대한 뿌리 / 김수영                                               나는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南쪽 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팔·일오 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사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일팔구삼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궁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는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입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삼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지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시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병풍 / 김수영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하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詩人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거미  /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사랑의 변주곡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삼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사·일구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면상이 아닐 거다               꽃 잎  / 김수영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기 도   /  김수영                                                     -사일구순국학도위령제에 부치는 노래    詩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革命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革命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삵괭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쟝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삵괭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  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  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革命이 성취하는 마지막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罪있는 몸의 억천만개의 털구멍에  罪라는 罪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려니 詩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革命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195    문덕수 장시; <우체부> 댓글:  조회:2589  추천:0  2015-02-19
  * 이 시는 월간 2008년 11월, 12월호에 발표되어 만네리즘에 빠진 21세기 한국 현대시단에 충격과 함께 각성을 일깨워 주면서, 하이퍼텍스트 기법의  문제작으로 거론되고  있는 원로 시인 문덕수(예술원회원)의 470행 장시 전문입니다. *                            우체부                          -다시 태어나 우체부 되고 싶네       문 덕 수         Ⅰ 조셉 룰랭     고향 뒷산 기슭에 옥으로 박힌 호수 그 어머니의 양수(羊水)에서 너는 물장구쳤네 잉어 가물치와 놀고 물밤 먹고 자랐네 어느날 서낭당 나무에 몸 칭칭 묶어놓을 듯이 노끈 한 줄 날아와 네 어깨에 걸리고 고무줄처럼 늘어져도 나긋나긋 끊이지 않는 우체부 ‘가방’ 하나 달랑 달렸네 지구의 궤도 같은 빈 동그라미 달마상처럼 눈에 잘 띄게 또렷하네 물결 서로 부르며 몸 섞고 짙푸른 우발수(優渤水) 가에서 금와를 만난 유화 미쓰 고구려 유화(柳花)의 침실에 햇빛이 들어와 좇으니 태기 있어 닷되들이만한 큰 알을 낳으니 네 가방 그 알만 하네 네 가방 그 알만큼 불룩거리네 나라를 밴 첫 어머니의 배만큼 둥글해지네 사문(沙門)의 ‘바랑’ 이네     반 고흐의 ‘우체부 조셉 룰랭’ 반짝이는 노란 수염발 코 밑과 두 볼때기에서 입술을 둘러 용수철처럼 고불고불 곰실거리며 두 갈래로 갈라져 내려와 가슴을 덮고, 그 새로 청색 유니폼의 넓은 목깃이 언뜻 비치네 두 줄의 웃옷 금단추 두 점 ‘포스트(postes)’ 모표가 또렷한 앞 차양 짤막한 캡을 썼네 눈동자는 박아 끼운 녹색 구슬이네   아무래도 그 유니폼은 네게 어울리지 않네 그의 연인도 그의 가방도 맞지 않겠지 개울가로 떠내려온 누더기를 줍거나 포로수용소의 포로들이 입다가 버린 군복 누더기가 맞겠네 올 굵고 거친 무명의 임란 때 융의(戎衣)가 좋겠네     바위를 종이처럼 가볍게 밀어내거나 태평양을 개천처럼 건너뛸 듯이 먼저 한 발을 앞으로 살풋 나비처럼 가벼이 떼어 내미네 턱밑이나 코끝을 넘을 만큼 수평으로 높이 뻗은 보폭은 상체를 실어 앞으로 옮긴 뒤 그 발끝을 살짝 땅바닥에 내려 놓네 힘껏 던진 긴 창대가 멀리 날아 한 지점에 박히듯 그 반동으로 지렛대의 뒷발은 얼른 번갈아 맡아 다시 창대처럼 뻗으며 앞으로 뛰네 9.96초의 두 다리네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가슴 알 배듯 힘줄 통글통글 뭉쳐 거인이 지구를 히끈 들어 올리네 두 발로 지축을 딛고 꼿꼿이 서서는 무릎을 펴고 천년을 벼른 듯 벌떡 일어서네 186kg이 일순 두 팔에서 가슴과 허리로 다시 무릎을 거쳐 내려온 긴장의 위험을 입 꼭 다물고 두 발이 받쳤네 장미란(張美蘭)이 당당히 해내네   보라, 보리수 밑의 앉은이 두 발을 무릎에서 꺾고 접어 결가(結跏)하였네 오른발을 왼발의 넓적다리 위에 얹어 바위처럼 꾹 누르고 아래로 내린 두 손가락 끝으로 두 세계 잡아 이으셨네 포탄이 날아올 땐 인지(人指)를 펴어 밑을 가리키고 전란과 굶주림 속의 모든 염원과 기도를 도맡아 손바닥을 위로 하고 다섯 손가락 다 펴니 두 발의 결가부좌가 받드네   어버이 부축한 외나무다리 길도 5백킬로 상공의 무중력 궤도도 묵직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 뛸 우체부도 두 다리네         Ⅱ 격군들       격군(格軍)의 노는 탱크의 캐터필러 사부(射夫)의 화살은 105미리 155미리 야포네   쇠나팔이 울돌목을 휘감아 길게 세 번 울고 그 꼬리 허공으로 풀리니 발진 명령이 복창으로 전군에 하달되네 배의 노가 일제히 물위로 치솟다가 내려가고 이물에 덤비는 물결은 길길이 뛰며 달라들고 부딪친 물결이 깨어져 갈리며 소용돌이치네 노 한 자루에 네 사람이 붙어 서로 마주보며 몸을 숙이고 젖히네 온 몸이 북소리 한 번에 앞으로 밀고 또 한 번에 뒤로 당기네 노를 질타하는 북소리 다급해지니 빠른 뇌고(雷鼓)로 바뀌고 역류로 달라드는 물결과 북소리 틈새에서 격군들 몸은 으스러지네*     펜대를 쥐었던 연약한 손이 MI을 받들어총의 자세로 잡고 하낫 둘 하낫 둘 역사의 구령에 길들여지네 구슬땀이 염주알로 익어 한 겹 두 겹 모가지를 두르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한 시대가 그대로 시뻘건 용광로로 달구어지네 바로 네 턱 앞의 헉헉거리던 한 병사의 묵직한 MI총대가 두 손아귀에서 빠질듯 미끄러져 내리니 어디서 번갯불처럼 채찍이 날아와 다그치네 행진을 이끄는 구령이 더 촉박해지고 움찔 놀라 추스러 끌어올리나, 그뿐 다시 미끄러져 내리네, 땀 훔치며 히끈 들어올리니 아이고매 죽여줍소 아이고매 죽여줍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유고매 죽여줍소 데이고매 죽여줍소로도 들렸지** 옴마니밧메훔으로도 들렸지 그 소모품 육군소위 지금 더욱 궁금하네, 에카스민 사마예 에카스민 사마예***     밤비가 주룩주룩 죽죽 내리네 퍼붓네 한낮의 찐 더위도 밤에는 오히려 초겨울 지옥보다 더 캄캄한 비의 산길을 더듬어 헤드라이트를 끈 군용차들이 앞차의 반딧불만한 미등을 따라 진흙이 튕겨서 유리에 칙칙 뿌리는 도로를 꼬불꼬불 도네 네 우체부 가방도 진흙 투성이네 병사들은 군복 위로 둘러쓴 판초에 머리만 내어놓고 덜커덩 덜커덕 흔들리는 자세를 가누면서 전방을 보고 두 눈을 부릅뜨고 가네   가느다란 쇠소리의 저 철모는 안전할까 풀과 잎사귀와 나뭇가지로 위장했네 한 손에는 소총을 들고 어깨는 기관총을 메고 가슴에는 수류탄이 달렸네 구릉이나 언덕을 돌처럼 굴러서 오르내리고 비오듯 쏟아지는 포화 속 고지를 오르며 진격하는 보병이라는 이름의 저들은 누구일까 임란 때 사부 격군의 아들들일까   허리에 권총을 찬 소대장도 어깨는 한 자루 카빈 등에는 포탄 1발 한 병사는 포신(砲身)을 들고 또 한 병사는 포가(砲架)를 메고 또 다른 병사는 포반(砲盤)을 짊어지고 헐떡거리는 저들은 누구일까 발사의 반동으로 후진하는 포신에 부딪쳐 마냥 스스로 닦고 아끼던 105미리 야포 밑에 제 몸 영원히 눕고 싶네       *김훈의 (2005), 84~85쪽 참고. 임란 때 울돌목에서의 조선 수군 해전의 한 광경. **‘아이고매’는 ‘아이고머니’와 같은 감탄사. 음을 따서 ‘I go 어머니’의 축약형으로 보고, ‘유고매’, ‘데이고매’도 ‘You go 어머니’, ‘they go 어머니’도 축약형으로 본 펀(pun). ***‘옴마니밧메훔’(om ma-i pa-dme hūm)은 산스크리트어. 불교의 육자대명주(六字大明呪). 에카스민 사마예:ekasmin samaye. 산스크리트어인 듯. ‘일시’ ‘한때’의 뜻. 불교에 관련된 말.         Ⅲ 불의 기호       열길 물 속은 알고 한길 사람 속은 몰라도 붓다는 보았네 네 보석 눈에서 타오르는 불기둥을 보았네 네 차디찬 샘 같은 눈 속에 들어 앉은 시뻘건 불가마를 보았네 눈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못갑니다고 막았으나 라이오스 왕은 나라의 재난은 내탓이라며 신전을 찾아 길을 떠났네 으슥한 갈림길에서 전날에 산중에 버린 아기 오이디푸스를 만나 길을 비켜라 옥신각신 실랑이 중에 수레의 말발굽에 발등이 밟힌 오이디푸스는 들고 있던 막대기로 그를 쳐죽였네 아버지를 죽였네 어린 조카의 울부짖는 눈에서 수양(首陽)은 불의 칼을 보았을까 어린 아들 사도의 눈에서 영조는 불의 왕관을 보았을까 영월의 청령포에는 강물 위로 화염이 U턴을 하네 푸른 소나무 숲을 이글이글 타는 욕망의 불꽃이 안고 휘감아 도네 아 저 불의 막대기 불의 칼 불의 포탄 불의 핵…… 굴뚝새는 깊은 숲속에 둥지 트나 가지 한 개요 두더지는 황하(黃河)를 탐하나 쬐그마한 제 배 채울 뿐이네 누가 투덜거렸나 쯧쯧     우체부 ‘가방’은 평촌(坪村)에도 갔지 인제를 지나 원통리(元通里)부터는 개천 쏟아져내려 덮칠 듯한 험준한 절벽밑 길이었지 개 한 마리 지나도 무너질 듯한 다리와 빗물 먹은 길바닥이 갈라지고 허물렁한 산길을 가다서다를 거듭했네 삽으로 마른흙을 떠 던지며 길을 다시 다지고 범람한 곳에 다리를 다시 놓는 흙투성이 공병(工兵)도 보았지 차에서 내려 진창을 휘감고 헛도는 트럭 장갑차 타이어 밑에 짚을 깔고 차를 밀었지 12시간 우중의 행군 끝에 평촌이 보였네   우체부 가방은 다시 ‘개(犬)고개’를 넘었지 가전리(加田里)로 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에 솟은 ‘개고개’ 왼편에는 저 멀리 흰 거품을 뿜으며 산골을 굽이굽이 적시는 소양강 상류가 보이고 그 앞의 나즈막한 구릉 기슭에 제1소대 제2소대 제3소대 순으로 진을 쳤네 박격포 12문을 방렬(放列)했네 호를 깊이 파, 더 깊이 머리를 내어 멀리 지평선까지 투시할 수 있도록 호를 2층으로 파라구 포탄이 날아들면 자라처럼 머리를 옴츠려넣고 몸을 옹크려야 탄약도 충분히 준비해 중대장의 이런 다급한 소리 들었지   남북이 갈린 숨막히는 포격전도 겪었지 전쟁은 안 돼 총을 쏘지마를 내심으론 외치면서 보았지 사단 CP 후방에서 포물선의 포성이 메아리치고 FDC 에서는 기어이 발사명령이 떨어졌네 발사준비 편각(偏角) 1635 고각(高角) 777 장약 20호! 1번 포수가 편각과 고각을 맞추고 2번 포수가 각도를 올렸다 내렸다 조정하고 3번 포수가 장약을 맡고 4번 포수가 포탄을 들어 포구(砲口)에 집어 넣으니 포강(砲腔)에 떨어져 바닥의 격침에 닿는 순간 쾅! 발사되네 병사들이 확 밀려와 덮치는 폭풍을 피해 몸을 옹크리고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조금 물러서네* 이 모두가 눈깜작할 사이   북쪽에서 날아오는 포격도 소련제 122미리 152미리 중중포(中重砲)가 잇달아 쾅쾅쾅 불길을 길게 내뿜고 120미리 박격포탄이 얼레가 돌듯 연발하네 쉿쉿 쉬르르 쉿 무겁고 쇠를 끊는 철사줄 같은 긴 연음이 고압선을 타고 내려오네 포격이다 호 속으로 피해라 병사들이 벙커 속으로 날쌔게 뛰어들고, 쾅! 토사가 무너져 내려 앞을 막네 흙먼지와 포연에 숨이 막힌 한 병사 쿵킁 흑 기침을 짐짓 참으면서 쓰러지네 어서 물 가져와, 물! 덜덜덜 떨고 있는 부상병을 붙들어안고 물을 멕이며 괜찮아 안심하라 몸을 흔드니 머리는 한쪽으로 쳐지고 힘이 빠져 사지가 느러지네   죽음에는 남과 북의 구별이 없네 고지의 턱을 칼금처럼 판 구불구불 긴 벙커에는 기관총 다발총 따따따 탕탕 따따따 쿵 쾅 백병전의 불구덩이로 변하네 대검을 뽑아 형제의 목을 노리고 긴 총검이 가슴을 찌르네 핏방울은 확확 튀어 얼굴을 뿌리고 포반(砲盤)이 갈라지고 포가(砲架)가 녹을듯 굽으러지며 포신(砲身)은 벌건 불굴뚝이네     죽음에는 남과 북의 구별이 없네 974고지에는 이틀만에 비로소 주먹밥과 물이 왔네 노무대원 아저씨들이 가풀막 산길을 내며 져올렸네 위생병들의 부축을 받고 내려가는 부상병들의 행렬 두 눈만 빠끔 내놓고 붕대로 머리를 칭칭 감긴 자 흙투성 몸으로 막대기에 의지해 절뚝거리는 자 조금 성한 병사에게 엎이듯 끌려가는 자 들것에 누워 중얼거리듯 신음하며 내려가는 자 계곡에 머리를 박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는 자   주검들이 고지를 덮고 널렸네 해골 바가지들이 공처럼 두굴두굴 굴러가다가 발 끝에 채여 시커멓게 불탄 돌무더기에 걸리네 두개골 속에 갇힌 바람이 휘파람을 부네 반듯반듯 바랜 평평한 이마 밑을 두 개의 눈구멍이 펑 뚫리고 아래 위의 잇발이 뭔가를 더 씹을 듯 벌리고 가지런해지네 탄피와 불발탄에 섞인 팔뼈 턱뼈 무릎뼈 갈비뼈 척추 토막   병사들은 뭣인가를 중얼거리며 죽어갔네 으으이 윽, 말하기 전의 시니피앙 말이 끝난 뒤의 소리를 내지르며 죽어갔네 한숨 중얼거림 신음 절규 호곡 어머니 불효자 용서하세요 어머니 만수무강하세요 어머니 ‘빽’하고 죽습니다 불룩거리는 네 가방 속은 무슨 소리지 더그럭 덜그럭 쟁그랑 딱 딱 왁자그르 와글북적 미미발휼(浘浘浡潏) 우체부 조셉 룰랭의 금단추 벗는 소리 겉보리 찐쌀 된장 미역이 한데 섞이는 소리 논두렁에서 참 함지를 이고 가는 처녀의 속치마 소리 요강에 조용히 앉아 잠이 든 여인 요조숙녀 죽치고 마주 앉아 고스톱하는 친구 죽마고우 施發勞馬 始發奴無色旗 캥캥 캥 대굴대굴 팽이처럼 돌면서 찍 찍 찍 찌르르 윙윙윙 울면서 몰려오는 두개골들 발끝에서 어깨까지 차도르(chādor)를 들러쓴 주검들 피에타의 숨소리 피에타의 맥박 소리 깨어지는 사금파리가 아니라 불발탄과 파편들이 뼈다귀를 녹이는 소리네 편지와 엽서는 모두 불탔네     *崔極 (東京:光人社 2004) 참고. 6.25 관련 장면은 이 저서에서 많이 참고함.       Ⅳ DMZ       야윈 엉덩이에서 춤추듯 덜렁거리는 가방 속에서 장총(長銃)은 막대기처럼 두 동강으로 부러지네 압록강 임진강 철교도 한갓 장난감이네 남쪽의 일요일 새벽을 놀라게 한 소련제 T34의 캐터필러도 종이네 납작 구겨지네 목에 걸려 되넘어간 유언은 많으나 그 사람 안보이고 받을 사람 다 어디로 갔는지   헬멧을 쓰고 검은 긴 장화를 신은이 임진강 입구에서 철원김화를 거쳐 고성 쪽으로 위도의 높낮이를 더듬는지 예사롭지 않네 마치 제 소유인 것처럼 발걸음 뚜벅뚜벅 당당하네 총을 겨누어 맞선 중간을 긋고 남북으로 2킬로씩 물러나게 하네 우악한 손이 쇠막대기를 차례로 박아나가고 묵직한 쇠망치로 탕탕 치니 허벅살처럼 물렁물렁한 땅에 깊이 들어가네 아프네 또 어디서 무장한 헬멧이 돌돌 말아온 쇠그물 다발을 세워서 돌리며 서에서 동에까지 144 마일을 빈틈없이 펴네 이러히 땅과 나라는 두 동강 나고 허리를 잘라 살붙이들 가르고 찢어놓으니 아픔 슬픔 원한 피눈물의 소용돌이 구름과 바람과 하늘은 남북이 없네 고니는 높은 소나무 가지의 둥지에 알을 낳고 다람쥐 멧돼지 산토끼 오가며 놀고 푸른 숲속 백로의 하얀 몸빛 유난히 눈부시지만 철조망 안의 DMZ네     공(空)이 한 시대의 밑바닥을 다 읽은 듯 탕 치고 튕기네 풍선처럼 점점 부풀다간 탁구공만해지면서 저쪽으로 굴러가네 축구 선수들 발 끝에 붙어 맨체스터 밀라노까지 갔다 오네   한 군데 가만히 머물지 못하지 배트에 맞아 지구를 한 번 돌면 궤도가 되지 네가 멘 그 우체부 가방의 불룩한 무(無)의 브랜드 인도인이 맨 먼저 발견한 ‘제로’지 지층의 깊은 벽을 뚫으면   그 틈에서 발원지의 먼 맑은 물소리 오줌발처럼 새어나오고 아이들처럼 응석부리고 흥얼대면서 곤히 잠자는 이 깨우네 공이 공(空)으로 굴러가네 그러나 해골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지 사막에서도 바다에서도 도글도글 토글토글 똥글똥글 통글통글 사막을 깊숙이 떠서 동그랗게 말고 바다를 두세 겹 비단으로 거두어 말아 굴러가네 바람 개스 굶주림 절망 포화(砲火) 핵버섯구름도 안으로 짓이겨 빻아서 가루로 다져 굴러가네   호주의 모랫바람에 숨구멍이 막히고 2004년던가 지중해 신화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바람둥이 파리스가 아프로디테 누나에게 준 탐스러운 사과도 맛보았지 그 사과 아내와 나누니 지중해의 물빛으로 익은 신화의 깊음이 서걱거리네 두 눈을 가리고 오른 손에 ‘저울’을 왼손에 시퍼런 칼을 든 여신 테미스도 힐끗 보았지   지진의 무너뜨린 암석을 들어올리고 깨어진 벽돌의 틈을 비집고 빛살처럼 스며들어 숨길을 빠끔 빠끔 튀웠지만 수마트라 이체에서도 쓰촨에서도 그래도 공은 바닥을 치고 솟네 네 키를 넘고 북한산을 넘네 2천 7백미터 백두산 맑은 물을 한 번 돌고 예수께서 맨발로 걸어오신 갈릴리 호수 위를 굴러 8천 848 미터 에베레스트 정상 룸비니에서 본 싯다르타의 시선이 상기 머무는 저 바위에도   공은 스스로를 지우네 굴러가면서 제 온갖 몸짓을 지우네 날아가면서 날아간 길을 지우네 폭발과 살육 속에서도 숨 쉬며 지우네 지우는 방식까지 지우네 사무실의 안팎과 도시의 미로에 가득차 넘실거리는 것 만지거나 볼 수는 없으나 나무와 꽃을 가꾸듯이 기르고 있는 300층을 300층으로 꼿꼿이 세우고 있는 것 213360 네 군번까지 지우네 피구슬 번호의 한 자 한 자 전선(電線)에 한 줄로 나란히 앉은 꽃새로 폴폴 날리네         Ⅴ 모데라토       공자님은 장난감 나무 수레바퀴를 혼자 끙끙거리며 돌리시고 예수님은 새끼 나귀 등에 안장도 없이 발끝 걸고 오르내리시고 부처님은 보리수 밑의 결가부좌로 눈떴다 감았다 하시네 너는 흙탕물 속에서 아직 칠삭둥이로 물장구 치네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 툭 떨어져 굴러가네, 유리 조각의 ‘인장’(印章) 마루바닥의 틈새로 빠지기 전에 얼른 집어 꼭 쥐어 보네 다섯 손가락에 힘을 줘 마디마디 뭔가를 확인하듯이 포화(砲火)에서도 불붙지 않고 칼 맞아도 금 가지 않음을   지중해 땅속의 빨간 장미뿌리도 아프리카 밀림 속 코끼리의 상아도 아닌, 쓰레기로 내다버린 고물 헬리콥터의 유리조각 둥글고 매끈하게 자르고 다듬어 새겼네 새끼 손가락보다는 조금 더 동그란 아버님 짓고 어머님 품에 안고 기른 이름 지금은 모서리 닳고 획도 희미하네 제라늄 꽃빛 인주를 듬뿍 묻혀 꾹 눌러도 네 나이만큼 몽글었네   억새 바래기 무성한 풀덤불 속의 숨은 총탄 따따따 딱 쿵 딱 쿵 쾅 쾅 언덕 밑 흙고랑의 잡초 속으로 나무토막처럼 튕겨 날아갔네 넓적다리 뚫리고 허벅지뼈 두 동강으로 부러지고 눈썹을 가로질러 긁고 이마 앞머리 모두 찢어진 온 몸 피의 파편을 둘러썼네 죽음의 그물 둘러썼네 그때   너를 번쩍 들어 어깨에 멘 이는? 들것의 앞뒤 채를 덥석 잡고 들어올린 이는? 길가의 저 바위돌일까 풀꽃일까 그 쪽의 팔목을 접고 머리를 잘 받쳐 바로해 아직은 숨이 붙어 있어, 얼른 서둘러   포탄이 텐트를 물고 날아갈듯이 펄럭이는 야전 막사에서 수술의 칼을 잡은 이는 누구일까 깁스 붕대 속의 미라에게 계속 맥박이 살아 발딱발딱 뛰도록 신비의 바늘을 찌른 손은 누구일까 포격에 쫓기면서 경복궁 옆의 수도육군병원까지 실어 나른 이는 누구일까 신(神)을 보지 못했다고 함부로 입 열지 말라 이 세상에는 모르는 일이 너무 많네   포성을 맞으며 새벽을 떠난 후송 열차는 느릿느릿 한밤의 대구(大邱) 제1육군병원이네, 들것은 다시 트럭으로 옮겨지고 닭도 울지 않는 달구벌에 내려졌네 전선에서 몰려든 부상병들이 누더기처럼 광장을 다 덮었네 하늘의 은하수처럼 빽빽하게 쏟아부었네 만발한 한겨울의 꽃밭이네 그때 네 인장은 저 별이 간직하고 있었을까 세상에는 모르는 일이 너무 많네 추위가 추위에 눌려 지층(地層)으로 켜켜이 쌓인 달구벌의 겨울밤은 차라리 원시적 아픔이었네 눈물과 신음이 얼어붙는 북극 도시였네   끊어지는 숨소리 헐떡거림 끙끙거림 울부짖음 아아 아야야 윽윽 음음 응응 비명의 격류 다리 잘린이 눈 잃은이 부러진 척추 잘린 발목 부여잡은이 팔 없는 어깨죽지 노호 탄식 통곡 읍소 절규…… 탑 속에 유폐된 탄식도 들은 제우스, 이곳엔 없네 죽은 자는 고지에서 여기 오지도 못했네 가을 들판을 덮은 온갖 풀벌레 울음의 잔치 지옥은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바지에서 동그란 것이 툭 떨어져 제 홀로 굴러가네 끝없이 에카스민 사마예 에카스민 사마예           Ⅵ 지금 여기         무리들이 끌고 온 간음한 여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는 몸을 굽혀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을 썼네 그때 치솟아 가래처럼 목구멍에 뭉클 걸린 신음 으음 으음 음 으으이 으윽 윽 죽음에 꾹 눌려 꿈틀거린 숫한 유언을 눈(雪)에 쓰니 다 녹아 버리네 바람이 물살에 뿌리고 달아나네 물 건너 이민 간 누나의 발자국은 하늘이 지우네 어둔 병실 구석에서 콜록거리다가 종적을 감춘 아버지 모깃불 피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밤하늘의 손주 별을 찾던 백발의 머리 든 채로 화석이 된 할머니 아들 만나려고 강 가의 나룻배 기다리는 동안 넋을 잃고 홀연히 실종된 어머니 네 가방, 해산한 어머니의 뱃가죽처럼 쭈그러들고 집히는 편지도 없고 받을 이도 없네     삿 삿 삿 삿각삿각삿각…… 어디서 로봇 전사들의 군단이 몰려오네 먼 태풍 소리가 아니네 점점 다가오는 하낫둘 하낫둘 금속성 구령의 불협화음 복제 병사의 군단이 몰려오네 한손에는 단총 한손은 기관총 가슴에는 과일처럼 달린 수류탄 포탄들 손목의 맥박이 발사명령 신호를 받아 반짝하면 그들은 엎드리지 않네 선 채로 따따따따 타타타타 딱탕 딱탕   아버지 로봇과 아들 로봇 울돌목의 일자진 뒤에 배치한 가병(假兵)들이네 큰 로봇이 대장선의 좌현을 막아 칼을 빼고 다가오는 적병을 돌로 찍네 큰 로봇이 노를 맡고 작은 로봇이 돌을 들었네 칼을 빼어든 적의 배에 큰 로봇이 뛰어들 때, 적의 칼을 맞아 물 위로 꼬꾸라지네 작은 로봇이 애비를 벤 적의 머리를 돌로 치고 다른 적병이 그의 허리를 베었네*   전사한 할아버지 애비 손자의 두개골들이 고지(高地)를 왕릉처럼 덮네 공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네 어깨에 멘 황갈색 가방에 부딪쳐 튀어나가 저쪽 불탄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서 멎네 솔제니친이 삽 들고 헐떡이다 남겨놓은 굴라그(Gulag) 으슥한 흥안령 기슭을 돌아 밤의 두만강을 건넌 굴라그 구라게 굴라그 구라게 갓 속에서 촉수의 쇠그물 늘여친 クラゲ 굴라그   룩소르의 오벨리스크 꼭대기에서 나일강을 굽어보다 내려온 망령 9.11테러로 죽은 해골들과 얼싸절싸 어울리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서 해골들이 날아오네 파르테논 신전 주춧돌에 눌리다가 빠져나온 야윈 혼령들이 돌계단을 내려와선 올리브 숲으로 얼른 숨거나 북쪽의 에렉트리온 신전 담을 뛰어넘어 사라지네 로봇들이 924고지의 어둔 계곡을 다 덮네 토끼처럼 재빠르게 개울을 뛰고 지렁이로 몸을 비틀며 꾸물꾸물 산비탈을 기어오르고 원숭이로 변해 날쌔게 떡갈나뭇가지로 뛰어 올라가 숨네 탱크를 장난감처럼 뒤집어 던지는 로봇의 팔들 가을의 붉은 속치마를 두른 680고지 673고지 749고지 펀치볼을 두른 칼날의 능선바위도 오르내리네 지금 네 빈 가방에는 무엇이 울고 있느냐 파편이냐 보석이냐 두개골이냐 더그럭 덜그럭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기사 양반 저짝으로 쪼깐 돌아서 갑시다 어찮게 그런다요 버스가 머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 물팍이 어링께 그라재 쓰잘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저번 착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그 기사 미쳤는갑소** 이러히 그들은 연애하네 가끔씩 닭이 보이지 않으면 소가 목 빼고 두리번거리고요 소가 한 구석에 엎디어 있으면 닭은 소막까지 가서 갸우뚱갸우뚱하다가 뒤뚱뒤뚱 돌아나오지요 이러히 소와 닭은 연애하네*** 저녁 바람이 이렇게 드세니 동백꽃도 뺨따구 맞듯 다 저버리겠어 진 꽃잎은 땅에서도 서성거리지 못해 바다로 쓸려 가버리겠고 동백꽃은 왜 선혈처럼 그렇게 붉고 붉은지… 그러면 보자 그 여자분 열 아홉 살 영감님 나이 수물 한 살에 만나가꼬 용초도에 동백꽃 필 때 동백나무 숲에서 오 년마다 미아이하기로 하고 마 헤어졌다는 그런 말씀 같으신데… 참말로 세상에 그런 기구한 곡절도 있다니 소매자락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라 말도 있드키 시상 오래 살고 볼 일임더**** 이러히 그들의 연애 동백꽃도 붉네     PC TV 냉장고 에어콘 로봇 해골 하나님 손때 묻어 반질반질하네 지금 어디메 길바닥을 솟은 돌부리 빼시고 꽃씨 뿌리시네 병원 묘지 양로원 숲 바위 사이사이에 복권처럼 수상기 숨기시고 안테나 세우시네 휴대폰 좀 빌려줘 하나님과 통화하고 싶네 이러히 모두 연애하고 싶네   때때옷 꼬마 엄마의 손 꼭 잡았네 어머나 어쩌믄 저리도 쏙 빼닮았나 뭍과 섬 하나로 붙은 견내량(見乃梁) 울돌목[鳴梁] 동과 서 이어 백성 지킨 그 물길 더욱 푸르네 한 뿌리에서 뿜는 압록 한강 영산 낙동 멀리 태평양 대서양 감쌌네 제 타원형 궤도를 잡아 도는 이 초록별 알구슬 이브의 손 들어 올리니 온 몸 떨려 두렵네         *김훈의 93쪽 참고. 임란의 울돌목 해전에 장흥 백성 정명섭과 해남의 오극신 부자가 고깃배를 몰고 참전하여 오극신 부자와 정명섭이 전사했다. **이대흔의 시 「아름다운 위반」 ***서정우의 시 「소 닭 보듯이」에서. ****김원일의 「용초도의 동백꽃」에서.  
194    하이퍼에서 종이냐 전자냐 댓글:  조회:2447  추천:0  2015-02-19
종이 하이퍼텍스트와 전자 하이퍼텍스트                                                                                                                           문 덕 수(시인, 예술원회원)    다음의 글은  '하이퍼택스트 지향의 동인지' 대담( 월간『시문학』4월호, 2008년 )에 붙이고 있는 문덕수시인의 ‘종이 하이퍼텍스트와 전자 하이퍼텍스트’이다.   종이 위에 쓴 하이퍼텍스트와 인터넷이나 TV 모니터에 비친 하이퍼텍스트(전자 하이퍼텍스트)는 원리 면에서는 본질적으로 같으나, 일단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터넷이나 TV 화면의 세계를 가상공간(假想空間)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사이버 세계 또는 ‘버추얼’(virtual) 세계라고도 말합니다. 하이퍼텍스트는 이 버추얼세계에서 결합되는 이미지, 텍스트, 음성이 합성된 네트워크를 말합니다.   (1)종이 위에 글자로 씌어진 시의 언어는 버추얼화(virtual化)된 언어라고 합니다. 흔히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를 ‘가상현실’이라고 번역합니다만, 종이에 씌어진 시의 언어도 버추얼 리얼리티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미끈하게 잘 성장한 적송 소나무를 보고, 그것을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마음속에 떠올린다고 가정합시다. 이것은 분명히 ‘기억’입니다만, ‘기억’이라고 해도 좋고, ‘회상’이라고 해도 좋고, ‘재생(再生) 이미지’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또 소나무가 아닌 산수유꽃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쨌든, 소나무나 산수유꽃은 언어화(기호화) 하여 기억해 둔 것을 다시 상상하여 떠올린 것입니다. 시인은 언어화 하여 기억해 둔 이러한 여러 가지 자원을 소재로 하여 시작품을 쓰고 있음은 이미 여러분들께서 잘 알고 있고, 또 늘 경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기억해 낸 ‘소나무’나 ‘산수유꽃’은 어제 공원이나 길가에서 보고 인식한 그대로의 소나무나 산수유꽃이 아니라, 즉 실재(實在)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그것을 의식 속에 대리해서 떠올려 나타내는 이미지이거나(이때의 이미지를 철학에서는 表象 representation이라고도 합니다.) 가상현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현실이 소멸된 이미지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심상(image)라고 말하지요. 심상은 현실에 있는 사물의 모습 그대로라고(즉 사물 자체) 할 수 없으나, 그 사물을 가리키는 어떤 관련성은 있습니다. 대상에 관련되는 사실을 가리키는 성질을 ‘지향성’이라고 하고, 지향성이 가리키는 바깥의 대상을 지향대상(指向對象, referent)이라고 합니다. 시는 언어예술이면서도 언어를 넘어선다고 하는 주장(문덕수 지음 『오늘의 詩作法』, 시문학사, 2004)도 언어가 가지는 지향대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한 것입니다. 둘째, 기억해 둔 언어기호를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끄집어내어 되풀이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끄집어내어 되풀이할 때마다 언어기호가 가지는 법칙에 따라서 조금 다르게 현세화(顯勢化) 또는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소나무나 산수유꽃이라는 사물이 언어에 잠세된 모양(潛勢態라고도 함)으로 그것의 원래 지위를 바꾸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언어의 잠세태로 전위(轉位)하는 것인데, 이것을 언어의 버추얼화(化)라고도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다면 인터넷이나 TV 등의 IT기기가 탄생되기 이전에 이미 언어 자체에도 버추얼화의 성질이 있었다고 보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상(李箱)의 시나, 60년대 시집 『선.공간』(문덕수 지음, 성문각, 1966)의 수록 작품을 하이퍼텍스트 시의 남상이나 선구작(오남구 시인이 이상옥과의 대담에서 문덕수의 시를 하이퍼텍스트의 선구작으로 거론함.)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언어의 이러한 버추얼 기능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봅니다.   (2)그런데, 문제는 예상하는 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령 “작난감 신부에게 내가 바늘을 주면 작난감 신부는 아무것이나 막 찌른다”(이상, 「I WED A TOY BRIDE」의 2)의 경우, “작난감신부”는 생명이 없는 작난감이므로 ‘찌르는 현실적 동작’은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가상세계에는 얼마든지 가능한 동작입니다. “白紙 위에 한 줄기 鐵路가 깔려 있다”(이상,「距離」)의 경우에도,‘백지’(白紙)라는 언어화된 세계가 있고(즉 버추얼화된 언어가 있고), 다시 그 ‘백지 위에 깔려 있는 철로’라는, 버추얼 세계에서만 가능한 이미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백지 위에 깔려 있는 철로’라는 언어 기호를 그대로 한꺼번에 기억한 단일한 의미 체험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시나, 그 후의 이 계열의 실험시는 모두 이와 같이 이중(二重)의 버추얼화한 현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버추얼화가 겹쳐 있는 복합적 특성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3)컴퓨터에서는 입력 때 이미지, 문자, 소리(음성) 등이 모두 이진법(二進法:0,1)이나 화소(畵素) 인공기호(컴퓨터 언어)로 바뀌게 되고, 출력시에는 화상, 언어, 음성이 합성되어 다시 ‘자연기호’로 바뀌어 화면(모니터)에 나타나게 됩니다. 자연기호로 바뀌게 된다고 했지만, 지향대상(즉 사물), 언어, 음성 등을 다시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변화를 기호의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라고 합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나 사물, 어느 곳에도 볼 수 없는 인간의 얼굴, 누가 지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이야기나 음성 등을 마음대로 합성하여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컴퓨터의 공간 안에서 컴퓨터 언어로 전위(轉位)되고 합성되어, 그 인공기호로 다시 시청자가 시청할 수 있는 현실세계로 시뮬레이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컴퓨터라는 버추얼세계의 원리입니다.   컴퓨터의 인공언어(이진법과 화소 등)가 합성해서 만들어내는 이러한 버추얼 리얼리티(가상현실)의 원리는 시쓰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사(示唆)를 던져줍니다. 그것은 교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원고지 위에 우리가 쓰는 언어기호에도 이러한 버추얼 리얼리티의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컴퓨터의 인공언어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은 지향대상(작품의 바깥에 있는 현실의 어떤 세계나 사물)을 시뮬레이트해서, 즉 허구적으로 구성해서 우리에게 보고 듣게 해주는 것과 같이, 우리가 쓰는 언어도 컴퓨터의 인공언어처럼 가상현실을 창조하고, 그리고 그 ‘가상현실’은 흔히 우리는 ‘이미지’라고 부르고 있는 그런 세계를 우리에게 체험하도록 해 줍니다.   물론 디지털 기술에 의해서 인공언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컴퓨터의 인공언어(인공기호)가 형성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電腦空間. 컴퓨터의 네트워크로 맺어진 가상세계)라고 말한다는 것은 여러분들께서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의미세계가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가를, 그 변용의 여러 가지 방법을 안다는 것은, 그대로 종이 위에 쓰는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에 직결되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에 의한 컴퓨터 공간에서의 의미 변용에는 ‘인터페이스’(interface:화면의 ‘접촉면’을 의미하나, 특히 유서(user)가 직접 접촉하는 면을 의미함),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쌍방향 대화 또는 상호작용성), 그리고 여기서 화제가 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등 여러 가지 의미 변용의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시급한 ‘하이퍼텍스트’의 문제부터 보기로 하겠습니다.   (4)대담 중에는 ‘hypertext’라는 말은 넬슨(Theodore Nelson)의 조어라든지, 또 시쓰기의 방법 면에서 ‘건너뛰기’등의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하이퍼텍스트는 컴퓨터의 사이버 공간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종이 위에 쓰는 언어기호(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에서도 그 성립이 가능한 사실을 먼저 지적해 둡니다. 이 사실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시집의 부록인 「한국시의 동서남북」(문덕수 시집 『꽃먼지 속의 비둘기』에 수록, 2007)에도 예시를 들어 설명되어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하이퍼텍스트는 ‘여러 가지 텍스트를 서로 관련시켜 하나의 데이터로 다루는 복합 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텍스트의 특정 부분으로부터 다른 별개의 텍스트를 관련시킬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에서는, 컴퓨터 화면과 유서(user)의 메시지를 접속시키는 ‘시프터’(shifter)라는 이동장치가 있음은 여러분들께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장치를 이용하여 어떤 한 시행(詩行)이나 센텐스의 임의의 부분에 다른 어구나 시행 또는 텍스트가 연결되어(링크되어), 복수의 텍스트가 상호간에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됩니다. 기존의 시 텍스트나 산문 텍스트는 그 문맥이 선조적(線條的), 일방적 순서로 진행됩니다만, 이동장치인 시프트를 이용함으로써 사용자가 맥락을 자기 시점에서 자유롭게 접속하여 전환하게 됩니다. 시간적, 선조적, 앞뒤의 순서로 진행되는 한 맥락이, 중간에서 전혀 다른 맥락이 가지처럼 붙어서 갈라지고, 다시 그 가지에서 또다른 맥락의 가지로 갈라져, 이리하여 맥락을 달리하는 많은 복수의 텍스트가 얽혀 하나의 커다란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됩니다.   ①여자의눈은北極에서邂逅하였다.②北極은초겨울이다.③여자의눈에는白夜가나타났다.  ― 이상, 「興行物天使」에서   “여자의 눈은 北極에서 邂逅하였다”의 1문 다음에, “北極은 초겨울이다”의 2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2문은 1문의 “北極”이라는 맥락의 한 부분에서 갈라져나간 또다른 맥락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3문은 1문의 “여자의 눈”이라는 주어에 링크됨으로써 원래 문맥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엄밀한 의미에서 제2문도 맥락에서 완전히 일탈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1문의 “여자, 여자의 눈, 북극, 해후” 등의 부분에서 갈라져 또 다른 맥락의 텍스트가 증식되어 하나의 복잡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하이퍼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내 귀 속으로 한 새가 검불을 물어나르듯 종일 소리를 물어다 나르고 ②나는 것을 못견뎌 하는 소리를 지를 듯 말 듯 ③어머니! 이제 고압선에 옹크리고 있는 새만 보아도 무섭습니다. ― 양준호 「바다.1」 전문   편의상 ③문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①문의 “소리”와 ②문의 “소리”를 맥락이 갈라진 실례로 볼 수 있을 것 같고, ①문의 “새”와 ③문의 “새”도 역시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이퍼텍스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맥락을 의미하는 ‘컨텍스트’(context)의 어원은 하나의 텍스트와 함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텍스트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마치 나방이 같지?/시궁창에 처넣어진 거야”(초현실주의 문학,예술 시리즈 (3) 『오브제』, p.43)와 같은, 일종 선문답 같은 예도 하이퍼텍스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문덕수, “종이 하이퍼텍스트와 전자 하이퍼텍스트”, 월간『시문학』4월호, 2008년 4월]  
193    명시인 - 정지용 댓글:  조회:2439  추천:0  2015-02-19
비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서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¹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1) 원문 : '새삼 돋는 비ㅅ낯'  ~~~~~~~~~~~~~~~~~~~~~~~~~~~~~~~~~~~~~~~~~~~~  슬픈 인상화  수박냄새 품어 오는  첫여름 저녁때.....  먼 해안 쪽  길옆 나무에 늘어 슨  전등.전등.  헤엄쳐 나온듯이 깜박어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 울려 오는  축향의 기적 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로 퍼득이는  세관의 깃 발.깃 발.  세멘트 깐 인도측으로 사폿사폿옮기는  하이얀 양장의 점경!  그는 흘러가는 실심한 풍경이여니..  부질없이랑쥬 껍질 씨비는 시름....  아아, 에시리. 황  그대는 상해로가는구료....  ~~~~~~~~~~~~~~~~~~~~~~~~~~~~~~~~~  말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 푸렁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  구성동(九城洞)  골작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혼에  누뤼가 소란히 쌓이기도 하고,  꽃도  귀양 사는 곳,  절터 드랬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고  산 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  옥류동玉流洞  골에 하늘이  따로 트이고,  瀑布 소리 하잔히  봄우뢰를 울다.  날가지 겹겹히  모란꽃닙 포기이는듯.  자위 돌아 사폿 질ㅅ듯  위태로히 솟은 봉오리들.  골이 속 속 접히어 들어  이내(晴嵐)가 새포롬 서그러거리는 숫도림.  꽃가루 묻힌양 날러올라  나래 떠는 해.  보라빛 해ㅅ살이  幅지어 빗겨 걸치이매,  기슭에 藥草들의  소란한 呼吸 !  들새도 날러들지 않고  神秘가 한끗 저자 선 한낮.  물도 젖여지지 않어  흰돌 우에 따로 구르고,  닥어 스미는 향기에  길초마다 옷깃이 매워라.  귀또리도  흠식 한양  옴짓  아니 ?다.  ~~~~~~~~~~~~~~~~~~~~~~~~~~~~~~~~~~  紅椿(홍춘)  椿나무 꽃 피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어린아이들 제춤에 뜻없는 노래를 부르고  솜병아리 양지쪽에 모이를 가리고 있다.  아지랑이 조름조는 마을길에 고달펴  아름 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 볼만 만지고 돌아 오노니.  실린 곳: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  엽서에 쓴 글  나비가 한 마리 날러 들어온 양하고  이 종이ㅅ장에 불빛을 돌려대 보시압.  제대로 한동안 파다거리오리다.  ── 대수롭지도 않은 산 목숨과도 같이.  그러나 당신의 열적은 오라범 하나가  먼 데 가까운 데 가운데 불을 헤이며 헤이며  찬비에 함추름 휘적시고 왔오.  ── 서럽지도 않은 이야기와도 같이.  누나, 검은 이밤이 다 희도록  참한 뮤─ 쓰처럼 주무시압.  해발 이천 피이트 산봉우리 위에서  이젠 바람이 나려옵니다.  ~~~~~~~~~~~~~~~~~~~~~~~~~~~~~~~~~~  석류  장미꽃처럼 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  호면  손바닥 울리는 소리  곱드랗게 건너간다  그 뒤로 흰게우가 미끄러져 간다  ~~~~~~~~~~~~~~~~~~~~~~~~~~~~~~~~~~~ 湖水(호수) 1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둘 로  폭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호수)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시집 : 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  산너머 저쪽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우 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 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맞어 쩌르렁!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 저녁햇살  불 피어오르듯하는 술  한숨에 키여도 아아 배고파라.  수저븐 듯 놓인 유리컵  바쟉바쟉 씹는 대로 배고프리.  네 눈은 고만스런 혹 단초  네 입술은 서운한 가을철 수박 한점.  빨어도 빨어도 배고프리.  술집 창문에 붉은 저녁 햇살  연연하게 탄다, 아아 배고파라  ~~~~~~~~~~~~~~~~~~~~~~~~~~~~~~~~~~~~~~~  유리창(琉璃窓)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시문학사  ~~~~~~~~~~~~~~~~~~~~~~~~~~~~~~~~~~~~~~ 유리창 2  내어다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 앞 잣나무가 자꾸 커 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쪼다.  아아, 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랏빛 유리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뺨은 차라리 연정스레이  유리에 부빈다, 차디 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 꽃!  도회에서 고운 화재가 오른다.  ~~~~~~~~~~~~~~~~~~~~~~~~~~~~~~~~~~~~~~ 그의 반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영혼 안의 고문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 솟아 올라 나래 떠는 금성,  쪽빛 하늘에 흰꽃을 달은 고산 식물,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 돌아 나간 시름의 황혼 길 위  나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 3호 1931.10  ~~~~~~~~~~~~~~~~~~~~~~~~~~~~~~~~~~~~~ 별똥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별똥은 본 적이 없다  난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  별똥 떨어진 곳에 가보고 싶다  내 눈에도 보였으면…  ~~~~~~~~~~~~~~~~~~~~~~~~~~~~~~~~~~~~~~ 새빨간 기관차  으으릿 느으릿 한눈파는 겨를에  사랑이 수이 알어질가도 싶구나.  어린아이야,달려가자.  두뺨에 피여오른 어여쁜 불이  일즉 꺼져 버리면 어찌 하자니?  줄 달음질 쳐 가자.  바람은 휘잉. 휘잉.  만틀 자락에 몸이 떠오를 듯.  눈보라는 풀. 풀.  붕어새끼 꾀여내는 모이 같다.  어린아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빨간 기관차처럼 달려가자!  ~~~~~~~~~~~~~~~~~~~~~~~~~~~~~~~~~~~~~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늬는 내 귀가 좋으냐?  늬는 내 코가 좋으냐?  늬는 내 손이 좋으냐?  내사 왼통 빨개졌네.  내사 아무치도 않다.  호호 칩어라 구보로!  ~~~~~~~~~~~~~~~~~~~~~~~~~~~~~~~~~~~~~ 내맘에 맞는 이  당신은 내맘에 꼭 맞는이.  잘난 남보다 조그마치만  어리둥절 어리석은 척  옛사람 처럼 사람 좋게 웃어좀 보시요.  이리좀 돌고 저리좀 돌아 보시요.  코 쥐고 뺑뺑이 치다 절 한 번만 합쇼.  호.호.호.호. 내맘에 꼭 맞는이.  큰말 타신 당신이  쌍무지개 홍예문 틀어세운 벌로  내달리시면  나는 산날맹이 잔디밭에 앉어  기를 부르지요.  [앞으로----가.요.]  [뒤로--가.요.]  키는 후리후리. 어깨는 산고개 같어요.  호.호.호.호. 내 맘은 맞는이.  ~~~~~~~~~~~~~~~~~~~~~~~~~~~~~~~~~~~~~~ 춘 설  문 열자 선뚝! 뚝 둣 둣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로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워라.  옹송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  꽃 피기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정지용시선.깊은샘.  ~~~~~~~~~~~~~~~~~~~~~~~~~~~~~~~~~~~~~ 카페 프랑스  옮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빗두루 선 장명등  카페 프랑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시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삣적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늘기는 불빛  카페 프랑스에 가자.  이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은 벌레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 * *  “오오 페롯(鸚鵡)서방! 굿이브닝!”  “굿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鬱金香 아가씨는 이 밤에도  更紗 커-튼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子爵의 아들도 아모 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오 異國種강아지야  내 발을 빨아다오  내 발을 빨아다오    황해문화, 2000년 여름호, p.156.  ~~~~~~~~~~~~~~~~~~~~~~~~~~~~~~~~~~~~~ 향 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조약돌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앓은 페에로의 설움과  첫길에 고달픈  청제비의 푸념겨운 지줄댐과,  꾀집어 아즉 붉어 오르는  피에 맺혀,  비 날리는 이국 거리를  탄식하며 헤매노나,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 바다 1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  바다 2  한백년 진흙 속에  숨었다 나온 듯이,  게처럼 옆으로  기어가 보노니,  머언 푸른 하늘 알로  가이없는 모래밭.  *정지용시집, 시문학사, 1935  ~~~~~~~~~~~~~~~~~~~~~~~~~~~~~~~~~~~~~ 바다 3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우로  밤이  걸어 온다.  ~~~~~~~~~~~~~~~~~~~~~~~~~~~~~~~~~~~~~~ 바다 4  후주근한 물결소리 등에 지고 홀로 돌아가노니  어데선지 그누구 쓰러져 울음 우는듯한 기척,  돌아서서 보니 먼 등대가 반짝 반짝 깜박이고  갈매기떼 끼루룩 비를 부르며 날어간다.  울음 우는 이는 등대도 아니고 갈매기도 아니고  어덴지 홀로 떨어진 이름 모를 서러움이 하나.  ~~~~~~~~~~~~~~~~~~~~~~~~~~~~~~~~~~~~~~ 바다7  바다는  푸르오,  모래는  희오, 희오,  수평선 우에  살포-시 내려앉는  정오 하늘,  한 한가운데 돌아가는 태양,  내 영혼도  이제  고요히 고요히 눈물겨운 백금 팽이를 돌리오.  ~~~~~~~~~~~~~~~~~~~~~~~~~~~~~~~~~~~~~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한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슬픈 기차  우리들의 기차는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온 하루를  익살스런 마도로스 파이프를 피우며 간 단 다.  우리들의 기차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 소 걸어가듯 걸어 간 단 다.  우리들의 기차는 노오란 배추꽃 비탈밭 새로  헐레벌떡거리며 지나 간 단 다.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마음만은 가벼워  나는 차창에 기댄 대로 휘파람이나 날리자.  먼 데 산이 군마처럼 뛰어오고 가까운 데 수풀이 바람처럼 불려 가고  유리판을 펼친 듯, 뇌호내해 퍼언한 물 물. 물. 물.  손가락을 담그면 포도빛이 들으렷다.  입술에 적시면 탄산수처럼 끓으렷다.  복스런 돛폭에 바람을 안고 뭇 배가 팽이처럼 밀려가다 간,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나는 차창에 기댄 대로 옥토끼처럼 고마운 잠이나 들자.  청만틀 깃자락에 마담 R의 고달픈 뺨이 불그레 피었다, 고운 석탄불처럼  이글거린다. 당치도 않은 어린아이 잠재기 노래를 부르심은 무슨 뜻이뇨?  잠들어라.  가여운 내 아들아.  잠들어라.  나는 아들이 아닌 것을, 웃수염 자리 잡혀가는, 어린 아들이 버얼써 아닌 것을.  나는 유리쪽에 갑갑한 입김을 비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이나 그시며 가 자.  나는 느긋느긋한 가슴을 밀감쪽으로나 씻어 내리자.  대수풀 울타리마다 요염한 관능과 같은 홍춘이 피맺혀 있다.  마당마다 솜병아리 털이 폭신폭신하고,  지붕마다 연기도 아니 뵈는 햇볕이 타고 있다.  오오, 개인 날씨야, 사랑과 같은 어질머리야, 어질머리야.  청만틀 깃자락에 마담 R의 가여운 입술이 여태껏 떨고 있다.  누나다운 입술을 오늘이야 실컷 절하며 갚노라.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오오, 나는 차보다 더 날아가려지는 아니하련다.  ~~~~~~~~~~~~~~~~~~~~~~~~~~~~~~~~~~~~~~~~~ 황마차(幌馬車)  이제 마악 돌아나가는 곳은 時計집 모롱이, 낮에는 처마끝에 달어맨  종달새란 놈이 都會바람에 나이를 먹어 조금 연기 끼인 듯한 소리로 사람  흘러나려가는 쪽으로 그저 지줄거립데다.  그 고달픈 듯이 깜박깜박 졸고 있는 모양이-가여운 잠의 한점이랄지요-  부칠 데 없는 내맘이 떠올릅니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쓰다듬을 받고 싶은  내 마음이올시다. 가엾은 내 그림자는 검은 喪服처럼 지향없이 흘러나려갑니다.  촉촉히 젖은 리본 떨어진 浪漫風의 帽子 밑에는 金붕어의 奔流와도 같은  밤경치가 흘러나려갑니다. 길옆에 늘어슨 어린 銀杏나무들은 異國斥候兵의  걸음세로 조용조용히 흘러나려갑니다.  슬픈 銀眼鏡이 흐릿하게  밤비는 옆으로 무지개를 그린다.  이따금 지나가는 늦인 電車가 끼이익 돌라나가는 소리에 내 조고만 魂이  놀란 듯이 파다거리나이다. 가고 싶어 따뜻한 화로갛을 찾어가고 싶어.  좋아하는 코-란 經을 읽으면서 南京콩이나 까먹고 싶어, 그러나 나는 찾어  돌아갈 데가 있을나구요?  네거리 모퉁이에 씩 씩 뽑아 올라간 붉은 벽돌집 塔에서는 거만스러운  12시가 避雷針에게 위엄있는 손까락을 치여들었소. 이제야 내 목아지가  쭐 삣떨어질 듯도 하구료. 솔닢새 갚은 모양새를 하고 걸어가는 나를  높다란 데서 굽어보는 것은 아주 재미있을 게지요.  마음놓고 술술 소변이라도 볼까요.  헬멧 쓴 夜警巡査가 필일림처럼 쫓아오겠지요!  네거리 모통이 붉은 담벼락이 훔씬 젖었소. 슬픈 都會의 뺨이 젖었소.  마음은 열없이 사랑의 落書를 하고 있소.  홀로 글성글성 눈물 짖고 있는 것은 가엾은 소-니야의 신세를 비추는  ?안 電燈의 눈알이외다. 우리들의 그 전날밤은 이다지도 슬픈지요.  이다지도 외로운지요. 그러면 여기서 두 손을 가슴에 념이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릿가?  길이 아조 질어터져서 뱀눈알 같은 것이 반쟉 반쟉어리고 있오.  그두가 어찌나 크던동 거러가면서 졸님이 오십니다.  진흙에 ? 붙어 버릴 듯하오. 철없이 그리워 둥그스레한 당신의 어깨가 그리워.  거기에 내 머리를 대이면 언제든지 머언 따뜻한 바다 울음이 들려오더니......  ......아아, 아모리 기다려도 못오실 니를 ......  기다려도 못 오실 니 때문에 졸리운 마음은 幌馬車를 부르노니,  회파람처럼 불려오는 幌馬車를 부르노니, 은으로 만들은 슬픔을 실은 원앙새  털 깔은 幌馬車, 꼬옥 당신처럼 참한 幌馬車, 찰 찰찰 幌馬車를 기다리노니.  ~~~~~~~~~~~~~~~~~~~~~~~~~~~~~~~~~~~~~~~~~~~                                    【정지용(鄭芝溶)시인】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 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1950년 납북  시집 :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 시선』(1946),  『정지용 전집』(1988)  *절제된 언어의 구사는 정지용의 시에서 일관되는 특성이지만  그의 시세계가 그리는 궤적은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보인다.  정지용 시의 전개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23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시,  둘째, 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셋째,[옥류동](1937), [구성동](1928)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정지용의 종교시가 [카톨릭 청년](1933)의  창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지면에 대부분 그의 종교시가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초기의 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종교시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용의 신앙시는 1934년 [카톨릭 청년]에 발표된 [다른 하늘], [또 하나의 다른 태양] 이후 자취를 감추며  4년여의 침묵 뒤에 [옥류동], [비로봉], [구성동] 등이 발표된다.  이를 카톨릭 신앙의 전면적인 포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1930년대 후반에 나름대로 각고의 방향 모색을 시도했으며, [옥류동],  [백록담] 등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고 1939년 [장수산], [백록담]  등에서는 한층 더 정신주의에의 침잠을 시도하면서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견인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정지용의 대표작으로서 국민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작품 한 편을 들라고 한다면,  우리는 [향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지용의 [향수]를 노래하는 사람 모두가  언제나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감을 느낀다.  정지용은 [향수]에서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율격 언어로 응축시켜 한국인들이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는 심정적 통로를 열어 보였다.  [향수]가 그려내는 고향의 정경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이며 따라서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호소력에 힘을 더하는 것은  뛰어난 감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금빛 게으른 울음'이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에서 보이는 언어적 환기 효과는 당시로서는 특별한 예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표현한 [향수]는  뛰어난 감각적 표현으로 온 국민의 사랑 받아  첫째 연의 고향에 대한 공간적 환기와  둘째 연의 전형적인 농가의 풍경에서 제시되는 육친애의 그리움에 이어  셋째 연에서는 화자의 구체적인 성장 경험이 표현된다.  흙에서 자란 마음과 파란 하늘 사이의 화자의 행동 모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생겨나기 이전의 것으로서 유년 시절의 낙원에 대한 믿음을 연상시킨다.  그 정경은 어린 시절의 단순한 반추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이상과 낙원이  괴리되어 떠도는 현재의 상황을 시사한다. 넷째 연은 다시 구체적인 삶의  정경으로 돌아가고 다섯째 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포착된 고향집이 그려진다.  고향집이 내포하는 평화롭고 정겨운 감각으로 인해 가난의 어려움마저 넘어서고  있다.  [향수]는 20년대 초반의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와 고향을 그리는 젊음이 용해되어  있으며, 오늘의 우리들 또한 상실한 낙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그리고 이를 넘어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향수]는 생의 근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워 준다                 - 최동호 / 1948년생, 시인, 고려대 국문과 교수                                                              정지용 생가 / 정지용 문학관                    1910년대부터 50년대까지 현대시가 어떻게 변화.발전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문학독본', '산문' 등                                            정지용 시인의 시.산문지 원본이 전시되어 있습니                                                         줄겁고 행복한시간 되십시오..                                                                                                      
192    봄맞이 시 모음 댓글:  조회:2895  추천:0  2015-02-19
         ◆   + 봄아, 오너라 먼 남쪽 하늘 눈 덮인 산봉우리를 넘고 따스한 입김으로 내 이마에  불어오너라. 양지쪽 돌담 밑 소꿉놀이하던 사금파리 옆에서 새파란 것들아, 돋아나거라. 발가벗은 도토리들 가랑잎 속에 묻힌 산기슭 가시덤불 밑에서 달래야, 새파란 달래야, 돋아나거라. 종달새야, 하늘 높이 솟아올라라! 잊었던 노래를 들려 다오. 아른아른 흐르는 여울물 가에서 버들피리를 불게 해다오. 쑥을 캐게 해다오. 개나리꽃 물고 오는 노랑 병아리 새로 받은 교과서의 아, 그 책 냄새 같은 봄아, 오너라. 봄아, 오너라. (이오덕·소설가, 1925-2003) + 봄눈 나 오늘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봄바람에 살살 녹아나는 저 봄눈 앞에, (정세훈·시인, 1955-) + 경칩 부근 견디기 어려워, 드디어 겨울이 봄을 토해 낸다 흙에서, 가지에서, 하늘에서, 색이 톡 톡 터진다 여드름처럼  (조병화·시인, 1921-2003) + 봄을 위하여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다시 오는 봄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도종환·시인, 1954-) + 봄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물에 꽃봉오리 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아가씨 창인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김광섭·시인, 1905-1977) + 봄 풍경 싹 틀라나 몸 근질근질한 나뭇가지 위로 참새들 자르르 내려앉는다 가려운 곳을 찾지 못해 새들이 무작위로 혀로 핥거나 꾹꾹 눌러 주는데 가지들 시원한지 몸 부르르 떤다 다시 한 패거리 새 떼들 소복이 앉아 엥엥거리며 남은 가려운 곳 입질 끝내고는 후드득 날아오른다 만개한 꽃 본다 (신달자·시인, 1943-) + 난 지금 입덧 중 - 입춘  하얀 겨울,  치마끈 풀어내고 살그머니  가슴에 작은 꽃씨 하나 품었다.  설 넘긴 해가 슬금슬금 담을 넘자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  토해도 토해도 앙금으로 내려앉는 금빛 햇살  매운 바람 속에 꼼지락거리던  꽃눈 하나 눈 비비고 있다.  (목필균·시인) + 봄  멀리서 우리들의 봄은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아프게 아프게 온다고 했으니  먼 산을 바라보며 참을 일이다.  가슴에 단단한 보석 하나 키우면서  이슬 맺힌 눈으로 빛날 일이다.  (최종진·신부 시인) + 벗에게 부탁함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 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정호승·시인, 1950-) + 봄이 오는 쪽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차가운 얼음장 밑 실핏줄처럼 가느란 물소리 따사로운 소리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 귀기울일수록 힘세어지는 소리 알아듣는 가슴속에서 저 겨울산의 무거운 침묵 속 벼랑과 벼랑 사이 숨었다 피어나리  저 겨울벌판의 얼어붙은 땅 위에 납작 엎드렸다 피어나리 피어나 노래하리 은방울꽃, 애기나리, 노랑무늬붓꽃,  회리바람꽃, 지느러미 엉겅퀴,  땅비싸리, 반디지치, 숲바람꽃, 그리고 베고니아 베고니아 울어울어 마음에 가슴에  푸른 멍 붉은 멍들었을지라도 눈앞 코앞 하루 앞이 우울할지라도 계절이야 끊임없이 갈마드는 것 흥함도 쇠함도 갈마드는 것 이 모두도 지나가리니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봄을 버리지 않는 마음속에서 외따로 멀리도 바라다보는 눈雪길 속에서 (홍수희·시인) + 사기꾼 이야기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 언제나 추운 앞마당 내다보며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내일 아침엔 정말로 봄이 오고야 말 거라고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 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 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 (정성수·시인, 1945-) + 행복을 향해 가는 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걸음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간격 봄이 오고 있다 겨울에서 이곳까지 굳이  기차를 타지 않아도 된다 걷다보면 다섯 정거장쯤 늘 겨울 곁에 있는 봄 그 간격이 좋다 친하지도 무심하지도 않은 꽃과 잎사귀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슬픔과 기쁨 사이 가끔은 눈물과 손수건만큼의 그 간격이 좋다 허공을 채우고 있는 겨울, 나무와 나무 사이 외로움과 외로움 사이에 떠 있는 간이역 기차표와 역정다방의 여유 그만큼의 간격이 좋다 미처 떠나지 못한 겨울과 오는 봄을 내버려두고 그대와 나 사이 그 간격 속에 빠져버리고 싶다 (정용화·시인, 충북 충주 출생)        + 봄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반칠환·시인, 1964-)  + 봄 봄꽃은 승전가다.  혹독한 추위와  칠흑의 어둠을 이겨낸  그들 생명만이 부를 수 있는  승리의 찬가다. (김필연·시인) + 無言으로 오는 봄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天地神明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혀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말이 가장 많을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 보게나.  (박재삼·시인, 1933-1997)   + 봄이 오는 모습  봄은 나 봄입네 하고 오지 않는다 속으론 봄이면서 겉으론 겨울인 양 온다 그러다가 들통이 나면 그때야 비로소 꽃망울을 터트린다 경제도 그렇고 불황에서 호황이나 좋은 일은 그렇게 오는지 모르게 온다 (차영섭·시인) * 봄꽃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함민복·시인, 1962-) + 봄  봄은 그 이름만으로도 달뜬다 예서 제서 쭈뼛거리는 것들  쭈뼛거리다 돌아보면 터지고  터지다 못해  무덤덤한 심장까지 쫓아와 흔들어대는  연초록 생명에 오색 꽃들에...,  하늘마저 파래 주면 꽃잎 날리듯  심장도 풋가슴으로 춤을 춘다 애먼 걸 둘러대어도 이유가 되고  용서가 될 것만 같은 봄, 봄. (김필연·시인) + 난생처음 봄 풀 먹인 홑청 같은 봄날 베란다 볕 고른 편에 아이의 신발을 말리면 새로 돋은 연둣빛 햇살들 자박자박 걸어 들어와 송사리 떼처럼 출렁거린다 간지러웠을까 통유리 이편에서 꽃잠을 자던 아이가  기지개를 켜자 내 엄지발가락 하나가 채 들어갈까 말까 한 아이의 보행기 신발에 봄물이 진다 한때 내 죄가 저리 가벼운 때가 있었다. (김병호·시인, 1971-)  + 사람들 봄은  얼음장 아래에도 있고  보도블록 밑에도 있고  가슴속에도 있다  봄을 찾아  얼음장 밑을 들여다보고  보도블록 아래를 들추어보고  내 가슴속을 뒤지어 보아도  봄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 속에서  나는  봄을 보았다  봄은 사람들이었다.  (강민숙·시인, 1962-) + 그해 봄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나는 지쳐 쓰러져 있었고 병든 몸을 끌고 내다보는 창 밖으로 개나리꽃이 느릿느릿 피었다 생각해보면 꽃 피는 걸 바라보며 십 년 이십 년 그렇게 흐른 세월만 같다 봄비가 내리다 그치고 춘분이 지나고 들불에 그을린 논둑 위로 건조한 바람이 며칠씩 머물다 가고 삼월이 가고 사월이 와도 봄은 쉬이 오지 않았다 돌아갈 길은 점점 아득하고 꽃 피는 걸 기다리며 나는 지쳐 있었다 나이 사십의 그해 봄  (도종환·시인, 1954-) + 내 마음에도 봄이 오면 내 마음에도 봄이 오면 노랗고 빨간 꽃들이 지천으로 필까. 파아란 하늘 아래 연한 바람이 불고 연녹색 환희로 가슴 벅찰까. 오순도순 웃음소리가 들리고 포근한 정이 보드랍게 쌓일까. 내가 순수했던 어릴 적엔 몰랐네 마음에도 오솔길이 있었고  마음에도 꽃길이 있었고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네 마음에도 겨울이 길어 찬바람 불고 마음에도 슬픔이 많아 꽃이 진다는 걸..  아무래도 내일은  태양을 하나 따서 불지펴야겠다. 언 땅을 녹이고 언 마음을 녹이고 차가운 겨울 단숨에 떨쳐내고 꽃잎 같은 봄 하나 만들어야겠다. 마음에 푸른 숲 만들며 살아야겠다. 꿈결같은 그 숲길 나란히 걸으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어야겠다. (김용화·시인, 1971-) + 햇빛이 말을 걸다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권대웅·시인, 1962-)  + 봄날의 산책  어떤 길은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낯설지 않은 길, 길을 음미하며 찬찬히 걷다보면  나는 어느새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흔들흔들 걸음을 옮기면 그 사람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을 닮은 물푸레나무 아래 앉아 이야기하듯 잠깐 졸기도 하는 것이다.  맨몸을 드러내며 그 사람 앞에서 춤추다 무거운 햇살에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박순희·시인)  + 나는 봄이었는가  봄이 오고야 나는 나의 봄을 생각한다 나는 봄이었는가  바람 부는 날에도  눈보라 머리 풀어헤치던 날에도 나는 봄이었는가 봄은 봄이라 말하지 않는다 조용히 수줍게 올 뿐 나는 친구를 사랑하였는가 따듯한 마음을 꺼내어 주고 싶을 때 아픔 많은 친구를 위해 나눠줬는가 마땅히 줄 것 없어도 따듯한 마음을 내어주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다 나는 봄이었는가 봄이 오고야 나는 나의 봄을 생각한다 따듯하자고 만나는 사람을 흐뭇하게 하고 시냇물 졸졸 흐르게 하자고 꽃이 피면 새들은 천리 밖에서 온다 꽃이 피면 나는 봄이 되고야 만다. (윤광석·목사 시인) + 봄을 먹다  봄은 먹는 것이란다 제철을 맞아  살이 통통하게 올랐으니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것이란다 얼었던 땅을 쑤욱 뚫고 올라온 푸르고 향긋한 쑥에 깊은 바다 출렁거리는  멸치 한 그릇 받아 쌈 싸서 먹어 보아라 봄은 야들야들 부드러운  육질의 맛이다 生으로 먹으니 날맛이란다 자연에서 방금 건져내서 싱싱하다 매화 넣고 진달래 넣고 벚꽃도 넣고 빗물에, 산들바람에, 햇살에  한바탕 버무렸으니 저 봄을 뼈째 썰어 먹는 것이란다 살짝 씹기만 해도 뭉그러질만큼 살이 부드럽다 우리네 산하가 국그릇에 담겨 있어 후루룩 봄을 들여마시는 것이란다 맑고 담백한 봄국으로  입안에 향기가 가득 퍼지니  갓 잡아 비릿하면서도 감칠맛의 봄은 따스한 국밥이란다 허기진 속을 달래주는 부엌의  뜨거운 솥의 탕 같은 것이란다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191    "새해" 시 모음 댓글:  조회:2755  추천:0  2015-02-19
  1. "새해"에 대한 시모음 10편       1)새해 인사 - 김현승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굴러라 발굴러라.  춤추어라 춤추어라.   2.) 새해 첫 기적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3) 새해 아침 - 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4)새해 새 아침 - 이해인 새해의 시작도  새 하루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을 잘 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겸손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아침이여 어서 희망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사철 내내 변치 않는 소나무빛 옷을 입고 기다리면서 기다리면서 우리를 키워온 희망 힘들어도 웃으라고 잊을 것은 꺠긋이 잊어버리고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희망은 자꾸만 우리를 재촉하네요 어서  기쁨의 문을 열고 들어 오십시오 오늘은 배추밭에 앉아 차곡차곡 시간을 포개는 기쁨 흙냄새 가득한 싱싱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네요 땅에 충실해야 기쁨이 온다고 기쁨으로 만들 숨은 싹을 찾아서 잘 키워야만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조용조용 일러주네요 어서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언제나  하얀 소금밭에 엎드려 가끔은 울면서 불을 쪼이는 사랑 사랑에 대해 말만 무성했던 날들이 부끄러워 울고 싶은 우리에게 소금들이 통통 튀며 말하네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 팽개쳐진 상처들을  하얀 붕대로 싸매주라고 새롭게 주어진 시간  만나는 사람들을 한결같은 따듯함으로 대하면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눈부신 소금곷이 말을 하네요 시작을 잘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설레이는 첫 감사로 문을 여는 아침 천년의 기다림이 비로서 시작되는  하늘빛 은총의 아침 서로가 복을 빌어주는 동안에도 이미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새해 새 아침이여   5)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1 - 이동순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기념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지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뭉치는 그대로 밀려 있는데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도 있는데  불현듯 불현듯 새해는 왔는가  기다리던 첫눈도 나리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왔는가  헛꿈을 잔뜩 안고 돌아와 저 혼자 설레이는  놈팡이처럼 새해는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는가  모듬판에서 돌아오는 밤  이미 자정을 넘겨 볼에 스미는 찬 기운  텅 빈 호주머니와 마음 속으로  아무거나 새것이라면 마구 채워야 하는 걸까  해마다 와서 속절없이 가 버리는 것이  새해일까 나라는 깨어지고 깨진 틈서리는  서로 붙을 생각조차 품지 않는데  보리싹 파릇파릇 움 틔우는 저 들판이  후루룩 겨울참새를 허공에 뿌리는 그 속마음은  무엇일까    6) 새해 아침 - 양현근   눈 부셔라 저 아침 새벽길을 내쳐 달려와 세세년년의 산과 들, 깊은 골짝을 돌고 돌아 넉넉한 강물로 일어서거니 푸른 가슴을 풀고 있거니 이슬, 꽃, 바람, 새 온통 그리운 것들 사이로 이 아침이 넘쳐나거니 남은 날들의 사랑으로 오래 눈부시거니         7)새해에 부치는 시 /김남조   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득한 날에   예비하여 가꾸신 은총의 누리   다시금 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   젊디젊은 심장으로   시대의 주인으로 기름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       생명의 생명인 우리네 영혼 안엔   사철 자라나는 과일나무 숲이 무성케 하시고   제일로 단맛나는 열매를   날이 날마다   주님의 음식상에 바치게 하옵소서   8)임진년 새해/황갑윤     새벽에 일어나 파란 하늘을 본다 이슬에 목을 축인 숲들 사이로 방금 배달된 갓-구운-365일에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해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나 또한 해로 들어간다 우리가 서로 안에 들어가지 않는 그런 순간은 없다   정월초하루의 우렁찬 발소리 자욱한 새벽의 기운에 가슴이 가득차서 터질듯하다   해야 솟아라 바다마저 흔들리고 땅마저 요동치도록  힘차게 솟구쳐라  그리하여 마셔도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여명의 빛으로 멈추게 하라   뜨겁게  박동치는 심장은 새 삶의 부활을 위해 붉은 피를 끓이고 있다    9)새해의 시 / 김사랑  새 날이 밝았다 오늘 뜨는 태양이 어제의 그 태양은 아니다 겨울 산등성이로 불어가는 바람이 지난 밤에 불던 바람이 아니다 독수리는 하늘 높은 곳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땅에 꼿았다 산양은 절벽의 바위를 뛰어 올라 산정을 향한다 우리가 꾸는 행복은  내일을 향해 뻗어있고 사랑하는 심장은 겨울에도 장미처럼 붉었나니 이루지 못할 꿈은 어디에 있던가 나의 하루의 삶이 나의 인생이 되듯 흘러지난 세월은 역사가 되나니 다시 나의 소망을 담아 꿈을 꾸나니 가슴은 뜨겁고 나의 노래는 날개를 매단듯 가볍다 이 아침에 돋는 태양을 보라 이글거리며 타는 태양은 나를 위해 비추나니 고난 속에 시련이 온다해도 나 이겨 내리니 그대 소망하는 바 더디게 올뿐 언젠가 다 이루어 지리니 우리 함께 달려 가보자 2."설날"에 대한 시모음 - 10편     1.)설날 - 최경신   아직 살아 새해를 맞으니 고맙다    내 앞에 엎드린 너희들의 듬직한 등이 너희 서로를 바라보는 가슴들이 따뜻해서 고맙다    이것 줘서가 아니고 저것 줘서가 아니고 세상을 바르게 살아 줘서 고맙다    너희가 있는 자리에서 너희가 받는 신뢰와 사랑과 칭찬이 하나같이 이 어미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 주니 이 보다 더 큰 효 어디 있으리    이런 나날이 있어 내 사람이 고맙다       2.)설날 아침에 - 김종길        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3)설날 전야/이재무   아부지와 엄미가 죽고 나서 맏이인 내가 제사 모셔온 지 시오년이 넘는다 오늘은 설날 전야 동생네 식구들을 데리고 중국집에 간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저녁을 먹는다 숟가락 젓가락 소리 높고 맑고 환하다 생활은 빨지 않은 이불처럼 눅눅하고 무거운 법이지만 모처럼 이산을 살아온 가족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덕담을 하고 집 떠나 돌아오지 않는 살붙이들 하나하나 떠올리며 호명하다 보면 영하권의 추위도 무섭지 않고 또, 마음은 금세 더운 국물과 함께 후끈 달아오른다     2   돌아와 아홉 시 뉴스를 본다 화면 속으로 모천회귀하는 연어떼 같은 귀성차량 행렬이 어지럽게 지나고 천장에 매달려 곰팡이냄새를 피우는 시골집 오래된 메주같이 누렇게 뜬 얼굴들 클로즈업 되고 있다 '6개월 체불임금 돌려 달라' 절규하는, 연변에서 온 저, 비늘 떨어지고 지느러미 상한 연어들! 달게 먹은 저녁 늦도록 내려가지 않아 더부룩한 아랫배 하릴없이 문질러대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벌린 입 다물지 못하는 아내에게 벌컥 화를 내며 소화제를 찾는다     4) 설날가는 고향 길 / 오광수 * 내 어머니의 체온이  동구밖까지 손짓이 되고 내 아버지의 소망이 먼길까지 마중을 나오는 곳 마당 가운데 수 없이 찍혀있을  종종 걸음들은 먹음직하거나 보암직만해도 목에 걸리셨을 어머니의 흔적 온 세상이 모두 하얗게 되어도  쓸고 또 쓴 이 길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종일 기다렸을 아버지의 숨결 오래 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구요 자주 오도록 할께요 그냥 그냥 좋아하시던 내 부모님.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이젠 치울 이 없어 눈 쌓인 길을 보고픔에 눈물로 녹이며 갑니다                                                                                                                                                                                                                                                                                                                                             5) 귀성길 / 문인수      앞차에 헌 자전거가 한 대 실려간다. 끈을 문 트렁크 뚜껑이 질겅질겅, 자전거를 씹는 형국이다. 불가사리다. 자전거에 잠긴 길, 길이 길 잡아먹는 것 본다. 경부고속도로, 나는 조수석에 기대앉아 지그시, 되새김질에 빠진 하마다. 청춘…… 제맛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아, 잘 씹지도 않고 삼킨 길이 지금, 막힌 길이 저 아가리에 깜깜 오래 질기다.     6) 설날/권영우 뒤뜰 청솔 더미에서 목욕한 해묵은 석양이  동쪽 하늘 붉은 때때옷으로 치장하고  대청마루에 새해 복(福), 한 광주리를 걸어 놓는다  날마다 맞이하는 무덤덤한 햇살이  오늘 아침은  가난한 가슴에 부푼 꿈을 가득가득 안겨온다  섣달 그믐 묵은 때를 열심히도 벗기시던  어머니는  밤새도록 지극 정성 차례상을 준비하셨다  설빔하는 어머니 무릎에 누워  자지 않으려 용쓰다 깜박 잠든  새해 새 아침 설날 어둑새벽  개구쟁이 동생이 찬물에 세수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넙죽 세배를 드린다  큰 누나가 지어준 색동 주머니에  깜박깜박하시는 할머니의  손 때묻은 무지개 알사탕이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는 오늘은 설날이다  소식 없는 대처의 둘째형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끓는 정성이 담긴  떡국 한 그릇  삼신할미에게 공양 되는 오늘은 설날이다  동네 어귀를 들어오지 못해 망설이던  떠돌이 새가  하얀 눈밭에 걸린 청솔가지에서 밤새 울다가,  일 년 365일 눈물로 지새운  어머니 치마폭에 용서를 비는 오늘은 설날이다  그렇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모든 걸 용서해주고 용서받고  그리운 가족 사랑을 주고받으며  정겨운 희망의 닻을 올리는 오늘은 설날이다   6)설날 / 월암     아버지 설장 보러 가시던 날 나는 양지쪽 논둑에서 연을 날렸다   섣달 그믐밤엔 눈썹이 희도록 새 아침 기다리다 곶감 대추 차린 음식 차례 모시고 복주머니 두둑해지는 재미로 온 종일 세배도 다녔다   지금은 섬돌 위 신발을 정리하며 마당에서 팽이 치는 손주 한 번 쳐다보고 안방에서 윷놀이하는 아들 딸 한 번 보고 나이테에 묶인 나를 또 한 번 보며   아직도 주방을 지키고 서서 사위들 상차림 걱정하는 아내의 더덕껍질 손을 본다   -2010.2.14-     2)설날 풍경 - 월암    제기차기 팽이치기 사물놀이 연날리기 팔방차기 널뛰기 어우러진 민속극장 뜰 할배가 손주 연 자새 감아주고 아배는 바닥에 깔린 연 올려주고 할매는 손녀와 팔방차기하고 어매는 빗나간 팔방 돌 제자리에 놓고 투호가 빗나가서 쨍그랑거린다 곰배팔 절뚝발이가 제기를 차고 코 묻은 팽이가 돌다가 멈춘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김삿갓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웃다가 훈수를 하다가 민속주 한 잔에 붉어진 얼굴로 육자배기 속으로 빠져들다가 명창 임방울과 또 한 잔하고 어매는 늙어가고 할매는 젊어진다   -2011. 02. 03.-     3)설 - 월암   아내는 동지가 지나면 설 만들기에 든다 무를 썰어서 말리고 조기 얼간 속에 설을 쟁이고 소꼬리 우족의 족편 속에 가풍과 모성애를 심어 숭모-崇慕의 얼을 지핀다   설날이 되면, 나는 어릴 적 할아버지의 체온에 땀이 배고 어머니를 닮은 아내는 손등이 짓물러도 손주들 재롱에 앉을 틈이 없다 나는 아내와 손자들 사이에서 엉거주춤한 설을 보내고 또 다음 설을 기다린다   -2011.01.22-     4)설날 아침에/월암   언제부터인가 설날 아침을 반기지 않고 있었다   나는 세월을 사랑한 바 없지만 세월은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설날 아침이면 차례상 앞에 나를 꿇어 앉힌다   헛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은 세뱃돈 생각에 여념이 없고 아내와 며느리는 허리 통증을 미소로 감추며 뒷바라지에 열심이다   나는 정성 것 큰절을 올리면서 내년에는 꼭 간소화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매년에도 그런 다짐은 반복된다.   설날은 억지로 밀고 쳐들어오는 불청객인가보다.     5)송구영신(送舊迎新)/월암 -제1시집에서 옮김   한해가 저물면서 뻥 뚫린 가슴에 아쉬움이 찬다   창을 열면 찌부둥한 하늘이 밀고 들어 올 것만 같아 문을 걸어 잠그고 흘러간 한해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웃음도 눈물도 아픔을 달래던 날들이 깊어 가는 그믐밤 찬바람에 묻히고   새해 아침 밝은 빛이 내 가슴을 열고 조용히 스며들어 불을 밝힌다.   -2005.1.2. -   6)새해 아침에 -제1시집(여름밤)에서    내가 세월을 사랑한바 없지만 세월은 나를 항상 찾아든다. 오늘도 전혀 기다리지 않는 새해가 와서 아침을 밝히고 있다   내가 별로 바라지 않는 일이 매년 이만 때면 꼭 반복 뒤며 나로 하여금 받아드리도록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 태초부터의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알 수 없고 신(神) 만 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새 해 아침이 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단 것을 신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반기는 어린이들과 함께 가져다주신다.   반갑지 않는 설날 아침이지만 그런 기색 없이 손주들과 함께 웃고 있다.     -2004.12.30.   7)설 명절과 아내 (제1시집에서)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아내 올 설도 치다꺼리에 짜증과 웃음의 범벅이다.   방과 방에 가득한 술상과 윷놀이 판 먹고 마시고 웃고, 추억담의 꽃 잔치 팽이치기 숨바꼭질에 신이 난 꼬마들 부딪혀서 울다가 또 웃고 승용차 네 대에 가득 실어 보내며 그래도 더 줄게 없나 구석구석 더듬다가 멀리 사라진 뒷모습 눈물로 씻어낸다.   아내는 몸져눕고 나는 그 뒷바라지에 매달리다가 무사도착 전화벨이 울리면 아내는 벌떡 일어나 앉고 나는 일손을 멈춘다.   정원이 비에 젖고 있다 사흘간 명절의 들뜸도 뒷바라지의 시달림도 빗물이 씻어 내리며, 손녀의 젖꼭지 같은 동백꽃망울 속에 녹아든다. - 006.2.1.금암동 자택에서-   8)설날 / 김 용 복     설날 지금은 나에게 서러운 날 몇 개가 남았는지 모를 나이 곶감 빼어 먹는 것 같은 허전함을 흩어진 형제와 떠나신 부모님 생각으로 메운다.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5일 대목장에서 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우린 저녁노을 등에 지고 목이 길어진 그림자만큼 선물꾸러미가 궁금해 까치발 세워 목을 늘렸지.     오형제 발 크기를 지푸라기로 잘라 가신 아버지 저 멀리 고갯길 넘어오시는 아버지 낮술의 흥에 겨워 비틀비틀 지게에 매달린 검정고무신 흔들흔들     대청마루에는 설날 입을 옷 바지저고리 조끼 버선 댓님 키순으로 놓이고 아버지가 사온 검정 고무신 오형제 그믐 날 새워 설날 기다리다 등잔 그름으로 아궁이처럼 콧구멍이 까맣게 그슬렸지.     해질녘 굴뚝 연기가 하늘에 머리 풀고 가마솥 시루떡 익는 김 서린 부엌의 떡 냄새 초가추녀 밑을 돌아 문풍지 따라 방에 들면 허기진 배가 꼬르륵 군침은 목젖을 넘는다.     다시는 오지 않는 고향의 어린 시절 아주 멀고 먼 지난 세월의 강 저편을 그리며 이 글을 읽는 손자들에게 할아버지의 마음을 전한다.        
190    12월 시 모음 ㄷ 댓글:  조회:2580  추천:0  2015-02-19
박재삼의 '12월' 외  + 12월   욕심을 털어 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1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 벗고 눈에 젖는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은 심사로 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 (박재삼·시인, 1933-1997) + 12월 해진 뒤 너른 벌판, 하늘엔 기러기 몇 점. 처마 밑 알록달록한 거미에게 먼 지방에 간 사람의 안부를 묻다                                       (정석주·시인, 1940-1987) +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천상병·시인, 1930-1993) + 12월엔  그리움이 얼마나 짙어  바다는 저토록 잉잉대는지  바람은 또 얼마나 깊어  온몸으로 뒤척이는지 묻지 마라  차마 말하지 못하고  돌아선 이별처럼  사연들로 넘쳐나는 12월엔  죽도록 사랑하지 않아도 용서가 되고  어쩌다보니 사랑이더라는  낙서 같은 마음도 이해가 되는 12월엔  (이희숙·시인, 1964-)  + 12월  12월의 저녁 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황지우·시인, 1952-) + 12월 저녁의 편지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지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두었구나 여기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안도현·시인, 1961-) + 12월에  가슴에 담아두어 답답함이었을까  비운 마음은 어떨까  숨이 막혀 답답했던 것들  다 비워도 시원치 않은 것은  아직 다 비워지지 않았음이랴  본래 그릇이 없었다면  답답함도 허전함도 없었을까  삶이 내게 무엇을 원하기에  풀지 못할 숙제가 이리도 많았을까  내가 세상에 무엇을 원했기에  아직 비워지지 않은 가슴이 남았을까  돌아보면 후회와 어리석음만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걸.  또 한해가 가고  나는  무엇을 보내고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박상희·시인, 1952-) + 12월의 시 12월은 잿빛 하늘, 어두워지는 세계다  우리는 어두워지는 세계의 한 모퉁이에  우울하게 서 있다  이제 낙엽은 거리를 떠났고  나무들 사이로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눈이 올 것 같다, 편지처럼  12월엔 적도로 가서 겨울을 잊고 싶네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한 해가 가는 것을 잊고 싶네  아니면 당신의 추억 속에 파묻혀 잠들고 싶네  누군가가 12월을 조금이라도 연장해준다면  그와 함께 있고 싶네  그렇게 해서 이른 봄을 만나고 싶네, 다람쥐처럼 12월엔 전화 없이 찾아오는 친구가 다정하다  차가워지는 저녁 벽난로에 땔 장작을 두고가는 친구  12월엔 그래서 우정의 달이 뜬다  털옷을 짜고 있는 당신의 손, 질주하는 세월의 삐걱거리는 소리, 바람소리, 그후에 함박눈 내리는 포근함  선인장의 빨간 꽃이 피고 있다  시인의 방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다  친구의 방에는 물이 끊고 있다  한국인의 겨울에는 (최연홍·시인, 1941-) + 12월의 노래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12월의 노래 마침내 달랑 한 장 그렇지만 마지막은 싫어요 처음 시작이라 불러 주세요 차가운 손길 하지만 마음만은 아니랍니다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입니다  나를 보면 행복해 합니다 나를 보면 추억으로 여깁니다 나를 보면 삶을 느낍니다 나는 행복입니다 나는 추억입니다 그래서 나는 12월입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소년 소녀 가장과 함께 외로운 무의탁 노인들과 함께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한해를 뒤돌아보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기쁨의 합창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마지막이 아닙니다 나는 희망이고 기쁨이고 사랑이고 싶습니다 나는 12월입니다  (박종학·시인, 1963-) + 12월   12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왕겨 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집에 오래 갇혀 있던 맷돌이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귀때기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서나서나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2월의 나무들은 마을 옆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너무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퍼런 별이 된다 12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왕겨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솥 하나 있음을 안다 (유강희·시인, 전북 완주 출생)
189    12월 시 모음 ㄴ 댓글:  조회:3992  추천:0  2015-02-19
12월에 관한 시 모음        12월의 독백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 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오광수·시인, 1953-)         12월 어느 오후  덜렁 달력 한 장  달랑 까치 밥 하나  펄렁 상수리 낙엽 한 잎  썰렁 저녁 찬바람  뭉클 저미는 그리움  (손석철·시인, 1953-)       12월 잊혀질 날들이  벌써 그립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자꾸 생각납니다  상투적인 인사치레를  먼저 건네게 됩니다  암담한 터널을 지나야 할  우리 모두가  대견스러울 뿐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들을 꼭 품고 싶습니다  또 다른 12월입니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12월은  사랑의 종  시린 가슴 녹여 줄  따뜻한 정이었음 좋겠다.  그늘진 곳에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이었음 좋겠다  딸랑딸랑 소리에  가슴을 열고  시린 손 꼭 잡아주는  따뜻한 손이었음 좋겠다  바람 불어 낙엽은 뒹구는데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허전한 가슴  (하영순·시인)       12월은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한 장 남은 달력 속에 만감이 교차한다.  정월 초하룻날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설계했을까  지나고 보면 해 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고 누에 뽕잎 갉아먹듯  시간만 축내고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  죄인이다 시간을 허비한 죄인  얼마나 귀중한 시간이냐  보석에 비하랴  금 쪽에 비하랴  손에든 귀물을 놓쳐 버린 듯  허전한 마음  되돌이로 돌아올 수 없는  강물처럼  흘러버린 시간들이 가시 되어 늑골 밑을 찌른다.  천년 바위처럼 세월에 이끼 옷이나 입히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문틈으로 찾아드는 바람이 차다  서럽다!  서럽다 못해 쓰리다  어제란 명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가? (하영순·시인)        12월  한 해를 조용히 접을 준비를 하며  달력 한 장이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며칠 후면 세상 밖으로  사라질 운명이기에 더욱 게슴츠레하고  홀아비처럼 쓸쓸히 보인다  다사다난이란 단어를 꼬깃꼬깃  가슴속에 접어놓고  아수라장 같은  별종들의 모습을 목격도 하고  작고 굵은 사건 사고의 연속을  앵글에 잡아두기도 하며  허기처럼 길고 소가죽처럼 질긴  시간을 잘 견디어 왔다  애환이 많은 시간일수록  보내기가 서운한 것일까  아니면 익숙했던 환경을  쉬이 버리기가 아쉬운 것일까  파르르 떨고 있는 우수에 찬 달력 한 장  거미처럼 벽에 바짝 달라붙은 채  병술년에서 정해년으로  바통 넘겨 줄 준비하는 12월 초하루 (반기룡·시인)        12월 중턱에서  몸보다 마음이 더 급한 12월, 마지막 달  달려온 지난 길을 조용히 뒤돌아보며  한 해를 정리해보는 결산의 달  무엇을 얻었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를 미워하지는 않았는지  이해할 자를 이해했고  오해를 풀지 못한 것은 없는지  힘써 벌어들인 것은 얼마이고  그 가운데서 얼마나 적선을 했는지  지은 죄는 모두 기억났고  기억난 죄는 다 회개하였는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한 일에 만족하고 있는지  무의식중 상처를 준 이웃은 없고  헐벗은 자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잊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있고  꼭 기억해야할 일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  이런 저런 일들을 머리 속에 그리는데  12월의 꽃 포인세티아  낯을 붉히며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오정방·미국거주 시인, 1941-)         12월의 단상  저기 벌거벗은 가지 끝에 삶에 지쳐 넋 나간 한 사람  걸려 있고 숭숭 털 빠진  까치가 걸터앉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참새는 조잘거리고 지나던 바람은 쯧쯧, 혀차며 흘겨보는데 추위에 떨던 고양이 한 마리 낡은 발톱으로 기지개 편다. (구경애·시인, 1961-)     12월  올 데까지 왔구나  막다른 골목  피곤한 사나이가 홀로 서 있다  훤칠한 키에 창백한 얼굴  이따금 무엇엔가 쫓기듯  시계를 자주 보는 사나이  외투깃을 세우며 서성거린다  꽁꽁 얼어붙은 천지엔  하얀 자막처럼 눈이 내리고  허둥지둥 막을 내린 드라마  올해도 나는 단역이었지  뼈빠지게 일하고 세금 잘 내는  뒤돌아보지 말자  더러는 잊고  더러는 여기까지 함께 온  사랑이며 증오는  이쯤에서 매듭을 짓자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입김을 불며 얼룩을 닦듯  온갖 애증을 지우고 가자  이 춥고 긴 여백 위에  이만 총총 마침표 찍고. (임영조·시인, 1943-)      12월의 공허  남은 달력 한 장  짐짓 무엇으로 살아왔냐고  되물어 보지만  돌아보는 시간엔  숙맥 같은 그림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고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실을  알고도 못함인지  모르고 못함인지  끝끝내 비워내지 못한 아둔함으로  채우려는 욕심만 열 보따리 움켜쥡니다  내 안에 웅크린 욕망의 응어리는  계란 노른자위처럼 선명하고  뭉개도 뭉그러지지 않을  묵은 상념의 찌꺼기 아롱지는  12월의 공허  작년 같은 올 한 해가  죽음보다 진한 공허로  벗겨진 이마 위를 지나갑니다. (오경택·교사 시인)        12월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오세영·시인, 1942-)    12월의 기도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재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 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 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 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목필균·시인)     var articleno = "18279533";     *12월의 시*                       - 詩:이해인*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시간을 아켜 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하는  것...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강 건너 간 노래           이육사                                                               섣달에도 보름께 달 밝은 밤                                앞냇강 쨍쨍 얼어 조이던 밤에                                내가 부른 노래는 강 건너갔소                                  강 건너 하늘 끝에 사막도 닿은 곳                                내 노래는 제비같이 날어서 갔소                                  못 잊을 계집애 집조차 없다기에                                가기는 갔지만 어린 날개 지치면                                그만 어느 모랫불에 떨어져 타서 죽겠죠                                 사막은 끝없이 푸른 하늘이 덮여                               눈물 먹은 별들이 조상 오는 밤                                 밤은 옛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                               한 가락 여기 두고 또 한 가락 어데멘가                               내가 부른 노래는 그 밤에 강 건너갔소                                                                카나모리 사이지 (일본)            다시 성탄절에            홍윤숙   내가 어렸을 때 12월, 성탄절은 눈이 내리고 눈길 걸어 산타할아버지 오시는 밤 머리맡에 양말 걸어놓고 나비잠 들면 별은 창마다 보석을 깔고 할아버지 굴뚝 타고 몰래 오셨지   지금은 산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그 아들 2세 산타 아들이 백화점 대문마다 승용차 타고 오시지만 금테 안경 번쩍이며 에스컬레이터로 오시지만 꽃무늬 포장지에 사랑의 등급 매겨 이름 높은 순서대로 배급도 하시지만   이런 밤 홀로 2천 년 전 그날대로 오시는 예수 어느 큰길 차도에 발묶여 계신가 너 어찌 나를 저버리는가 이 세상 끝에서도 잊지 못하는 내 사랑 이리 아프게 하는가 몰래 몰래 숨어서 울고 계신가                           동지  김영산   팥죽을 쑤다 어머니는 우신다 마당가에 눈이 쌓여 회붐한 저녁나절 시장한 식구들이 안방에 모여앉아 짧은 해처럼 가버린 언니를 생각한다 동생들 학비와 무능한 아비의 약값과 70년대 말 쪼든 양심을 위해 십년이 지나도록 구멍난 생계를 뜨게질하지 못한 딸들을 위해 긴긴밤 무덤들 위에 목화송이 흰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동지         조용미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     우레가 땅 속에서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비익총에 든 두 사람의 뼈는 포개어져 있을까요  생을 거듭한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붉고 노랗고 창백한 흰 달에 이끌려                                      나는 언제까지고 들길을 헤매 다니지요        사랑이나 슬픔보다     더 느리게 지나가는 권태로 색색의 수를 놓는 밤입니다       하늘과 땅만 자꾸 새로워지는 날     영생을 누리려 우레가 땅을 가르고 나오는     적막한 우주의 한 순간입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春風 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바밍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내여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동지 다음날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ㅡ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ㅡ 밥은 굶지 않는가?                                         ㅡ 아이들은 잘 크는가?                     성탄전야       최영철   맛난 것 먹고 빵빵해진 일가족 오색 풍선 따라 땡그랑 땡그랑 배고프다 노래하는 자선냄비 따라 행복 몇 스푼 눈발로 내리고 있었대요 더운 국물이나 마셔 두려는 가난한 식탁에 저 멀리 하늘에서 뭉텅뭉텅 수제비 알로 오시다가 하얀 쌀 소록소록 눈발로 오시다가 그만 내려앉을 곳 잃고 성탄 폭죽 선물 꾸러미 어깨 위로 내리고 있었대요 하얀 쌀 수제비 빈 장독에 닿기를 기다리다 네 살 두 살 아이 재워주고 어마는 술집 나가고 아빠는 인형 뽑으러 가셨대요 인형 다 뽑으면 시름 다 가고 꿈 같은 새날 온다며 아이들 깰까봐 살금살금 문 잠그고 가셨대요 꿈결 아이들 구름 타고 다니며 하얀 쌀 수제비 받아 붕어빵 빚고 산새로 날리고 불살라 언 손발 쬐며 다 녹여버리고 엄마 아빠 오시면 야단 맞을까봐 그 불길 따라 하늘로 하늘로 올라 갔었대요 소방차 오고 아빠는 눈이 커다란 눈사람 인형 한 아름 뽑아 오셨대요 아이들 훨훨 날개를 단 줄 모르고 엄마는 실비주점 더러워진 접시를 닦으며 내년 봄 유아원 보낼 생각에 유행가 한 자락 흥얼거리고 있었대요        세모       엄원태   한 해가 저문다 파도 같은 날들이 철썩이며 지나갔다 지금, 또 누가 남은 하루마저 밀어내고 있다 가고픈 곳 가지 못했고 보고픈 사람 끝내 만나지 못했다 생활이란 게 그렇다 다만, 밥물처럼 끓어 넘치는 그리움 있다 막 돋아난 초저녁별에 묻는다 왜 평화가 상처와 고통을 거쳐서야 이윽고 오는지를 ... 지금은 세상 바람이 별에 가 닿는 시간 초승달이 먼저 눈 떠, 그걸 가만히 지켜본다       세모 이야기        신동엽   싸락눈이 날리다 멎은 일요일 북한산성길 돌틈에 피어난 들국화 한송일 구경하고 오다가 샘터에서 살얼음을 쪼개고 물을 마시는데 눈동자가 그 깊고 먼 눈동자가 이 찬 겨울 천지 사이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더라   또, 어느 날이었던가 광화문 네거리를 거닐다 친구를 만나 손목을 잡으니 자네 손이 왜 이리 찬가 묻기에 빌딩만 높아가고 물가만 높아가고 하니 아마 그런가베 했더니 지나가던 낯선 여인이 여우 목도리 속에서 웃더라   나에게도 고향은 있었던가 은실 금실 휘황한 명동이 아니어도 동지만 지나면 해도 노루꼬리만큼씩은 길어진다는데 금강 연안 양지쪽 흙마루에서 새 순 돋은 무우을 다듬고 계실 눈 어둔 어머님을 위해 이 세모엔 무엇을 마련해 보아야 한단 말일까   문경 새재 산막 곁에 흰 떡 구워 팔던 그 유난히 눈이 맑던 피난소녀도 지금쯤은 누구 그늘에선가 지쳐 있을 것   꿀꿀이죽을 안고 나오다 총에 쓰러진 소년 그 소년의 염원이 멎어 있는 그 철조망 동산에도 오늘 해는 또 얼마나 다숩게 그 옛날 목홧단 말리던 아낙네 입술들을 속삭여 빛나고 있을 것인가   어디메선가 세모의 아침이 열리고 있을 것이다 화담 선생의 겨울을 그리워 열두폭 치마 아무려 여미던 진이의 체온으로 그 낭만들이 뿌려진 판문점 근처에도 아직 경의선은 소생되지 못했지만 서서히 서리아침이 열리고 있을 것이다   조용히 한강 기슭이라도 산책하련다 이 세모에 어느 날이었던가 비밀의 연인끼리 인천바다 언덕 잔디밭에 불을 질러놓고 오바깃 세워 팔짱 끼던 그 말없는 표정들처럼   나도 먼 벌판을 조용히 산책이나 하며 김서린 한 해 상처들이나 생각해 보아야지...       .                                           12월           강성은   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 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래도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남극의 해처럼 게으르게 얼음을 녹이려 애썼다 달력을 떼어 죽은 숫자들을 말아 피웠다 뿌연 햇빛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아무 것도 녹진 않았다            12월           박재삼   욕심을 털어 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1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벗고 눈에 젖는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은 심사로 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                                        12월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12월           유강희                                             12월이 되면 가슴 속에서 왕겨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집에 오래 갇혀 있던 맷돌이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귀때기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서나서나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2월의 나무들은                       마을 옆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너무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퍼런 별이 된다                         12월이 되면 가슴 속에서 왕겨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솥 하나 있음을 안다                                                   12월       장석주                                                                       해진 뒤 너른 벌판,                                    하늘엔 기러기 몇 점.                                    처마 밑                                    알록달록한 거미에게                                    먼 지방에 간 사람의 안부를 묻다                                                                                                                                      12월           황지우                                                                       12월의 저녁 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12월, 방랑자여 슈파로 가려는가     박정대                                                 펄럭인다 또 몇 개의 바람을 흔들며                         너는 펄럭이고 있다 겨울의 문 앞에 서서                         외로운 파수병처럼 너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다                         눈발이 날린다 하얀 기절의 눈발이 날린다                         밤의 한기류 속으로 사랑이 흐른다 낯선                         느낌표를 찍으며 굴뚝새들이 날아가고 아마                         누군가 너에게로 다가가고 있다 잠시                         기다려라 춥게 올지라도 사랑은 아름답다                          시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바람이 분다                        밤이 빛난다 몇 개의 등불을 달고 너는                        물음표처럼 웅크려 잠잔아 오늘밤은                       별이 없다 그래도 하늘은 있다                       젖은 하늘을 덮고 네가 잠들 때                       저 성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강물 소리                       바람에 귀를 대어보면 멀리서                       네게로 다가오는 소리 들리리니 잠시                       기다려라 멀리서 올지라도 사랑은 아름답다                         살아가는 데는 제목이 없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살아가는 데는 제목이 없다                       너의 가슴팍에서 필사적으로 타오르는 불꽃                       너는 외롭지 않다 다만 홀로 있을 뿐이로다                       시간은 어디에서도 읽혀지지 않고                       불면의 외로운 마침표를 찍으며 너는                       아직 오지 않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로다                       바늘 끝에 맺힌 핏방울을 보듯                      우리의 생활은 가끔씩 아프지만                      시간이 있는 곳에서는 늘 바람이 불고 잠시                      기다려라 아프게 올지라도 사랑은 아름답다                                                      12월 저녁의 편지       안도현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지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두었구나                                여기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12월의 기도      목필균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 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제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 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12월의 숲      황지우                                           눈맞은 겨울 나무 숲에 가보았다                      더 들어오지 말라는 듯                      벗은 몸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목숨들로 連帶해 있었다                      눈 맞는 겨울나무 숲은                        木炭畵 가루 희뿌연 겨울나무 숲은                      聖者의 길을 잠시 보여주며                      이 길은 없는 길이라고                      사랑은 이렇게 대책 없는 것이라고                      다만 서로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듯                        형식적 경계가 안 보이게 눈 내리고                      겨울 나무 숲은 내가 돌아갈 길을                      온통 감추어 버리고                      인근 산의 積雪量을 엿보는 겨울나무 숲                      나는 내내,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12월의 아침 시간      헤세   비는 엷게 베일 드리우고, 굼뜬 눈송이들이 잿빛 베일에 섞여 짜여 위쪽 가지와 철조망에 드리워져 있다 아래쪽 창유리에 오그리고 앉아 있다 서늘한 물기 속에서 녹아 유영하며 축축한 땅 냄새에 뭔가 엷은 것, 아무 것도 아닌 것 어렴풋한 것을 준다 또 물방울들의 졸졸거림에 머뭇거림의 몸짓을 주고, 대낮의 빛에게는 마음 상하게 하는 언짢은 창백함을 준다   아침에 눈먼 창유리들의 열 가운데서 장밋빛으로 따뜻한 흐린 광채가 어렴풋이 밝아 온다 외롭게 아직 창문 하나 어둠의 조명을 받아 간호원 하나 온다 그녀는 눈雪으로 눈眼을 축인다, 한동안 서서 응시한다 방으로 되돌아간다 촛불이 꺼진다 잿빛의 빛바랜 날 속에서 장벽이 늘어난다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천상병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 ㅡ 음력으로 12월 30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섣달 그믐    김사인                                                     또 한 잔을 부어넣는다                           술은 혀와 입안과 목젖을 어루만지며                           몸 안의 제 길을 따라 흘러간다                           저도 이젠 옛날의                           순진하던 저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뜨겁고 쓰다                            윗목에 웅크린 주모는                          벌써 고향 가는 꿈을 꾸나본데                          다시 한 잔을 털어넣으며                          가만히 내 속에 대고 말한다                            수다사水多寺 높은 문턱만 다는 아니다                          싸구려 유곽의 어둑한 잠 속에도 길은 있다                                고갱                        섣달 그믐       김은경(1976 - ) 경북 고령                          오래 전                          붉은 그믐의 밤이 반죽한                          한 몸이 있었는데                          무딘 칼 한 자루에도                          마음 곧잘 내어 주던                          착한 영혼이 있었는데                            잠깐의 목멤이 없지는 않았으나                          모르는 척                          식당에 혼자 앉아                          팥칼국수를 먹는 저녁                          내가 미처 음복 못하고 보낸                          첩첩의 고통이 긴 실타래 풀어                          마침내 나를 먹이는가                          떠난 당신이 내 앞에 앉아                          허연 국수사발 같은 눈동자로 멍하니                          나를 응시하는데                            살아야 한다고, 때로는 무심한 듯                          살아야 한다고                          왼손이 오른손에게 더운 손이                          찬 손에게                          몸이 일부를 내어 주며                          숟가락을 내미는 시간, 핏빛의 당신을                          물 한 모금 없이                          후루룩 삼키는 저녁                            목으로 넘어가는 이 따뜻한 어둠이                          당신의 눈물인 듯 간간하다                                            2000년 실천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허영자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묵은 편지의 답장을 쓰고                            빚진 이자까지 갚음을 해야 하리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진 못하였으니                              이른 아침 마당을 쓸 듯이                            아픈 싸리비 자욱을 남겨야 하리                               주름이 잡히는 세월의 이마                             그 늙은 슬픔 위에                               간호사의 소복 같은 흰눈은 내려라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12월의 노래                       한해 마무리해 보내는 겨울 12월이 다시 돌아오네   인생은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나뭇가지에서 놀던 참새는  어디론가 날아간 그 자리   나이테를 하나 더 만들어  겨울안개 뒤에 서있네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을 안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섣달눈은   가장 가벼운데도  달력 맨 끝에 서있다가  허공의 허파에서 계속 숨쉬네   차가워진 가슴과 들녘에 앉은  하얀 눈 사이로 다른 세상을 향하여   언제나 따스하게 안아주려는  또 한 세월을 향하여  그 숱한 생각들의 깊이를 향하여   한 해를 마무리해 보내는  겨울12월이 다시 돌아오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숨겨진 향기가 겨울안개 뒤에 서서  떠도는 바람이 가슴을 두드리네   오가는 세월을 안고  오 지워지는 세월을 안고.         12월의 노래                       마침내 달랑 한 장 그렇지만 마지막은 싫어요 처음 시작이라 불러 주세요 차가운 손길 하지만 마음만은 아니랍니다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입니다   나를 보면 행복해 합니다 나를 보면 추억으로 여깁니다 나를 보면 삶을 느낍니다 나는 행복입니다 나는 추억입니다 그래서 나는 12월입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소년 소녀 가장과 함께 외로운 무의탁 노인들과 함께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들과함께 한해를 뒤 돌아보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기쁨의 합창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마지막이 아닙니다 나는 희망이고 기쁨이고 사랑이고 싶습니다 나는 12월입니다         12월의 노래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 말을 많이 했던  빈 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 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188    12월 시 모음 댓글:  조회:2858  추천:0  2015-02-19
  12월에 관한 시모음         12월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12월의 시             이해인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시간을 아켜 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하는  것...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강 건너 간 노래             이육사                                섣달에도 보름께 달 밝은 밤 앞냇강 쨍쨍 얼어 조이던 밤에 내가 부른 노래는 강 건너갔소   강 건너 하늘 끝에 사막도 닿은 곳 내 노래는 제비같이 날어서 갔소   못 잊을 계집애 집조차 없다기에 가기는 갔지만 어린 날개 지치면 그만 어느 모랫불에 떨어져 타서 죽겠죠   사막은 끝없이 푸른 하늘이 덮여 눈물 먹은 별들이 조상 오는 밤   밤은 옛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 한 가락 여기 두고 또 한 가락 어데멘가 내가 부른 노래는 그 밤에 강 건너갔소       다시 성탄절에              홍윤숙   내가 어렸을 때 12월, 성탄절은 눈이 내리고 눈길 걸어 산타할아버지 오시는 밤 머리맡에 양말 걸어놓고 나비잠 들면 별은 창마다 보석을 깔고 할아버지 굴뚝 타고 몰래 오셨지   지금은 산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그 아들 2세 산타 아들이 백화점 대문마다 승용차 타고 오시지만 금테 안경 번쩍이며 에스컬레이터로 오시지만 꽃무늬 포장지에 사랑의 등급 매겨 이름 높은 순서대로 배급도 하시지만   이런 밤 홀로 2천 년 전 그날대로 오시는 예수 어느 큰길 차도에 발묶여 계신가 너 어찌 나를 저버리는가 이 세상 끝에서도 잊지 못하는 내 사랑 이리 아프게 하는가 몰래 몰래 숨어서 울고 계신가               동지    김영산   팥죽을 쑤다 어머니는 우신다 마당가에 눈이 쌓여 회붐한 저녁나절 시장한 식구들이 안방에 모여앉아 짧은 해처럼 가버린 언니를 생각한다 동생들 학비와 무능한 아비의 약값과 70년대 말 쪼든 양심을 위해 십년이 지나도록 구멍난 생계를 뜨게질하지 못한 딸들을 위해 긴긴밤 무덤들 위에 목화송이 흰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동지           조용미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 우레가 땅 속에서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비익총에 든 두 사람의 뼈는 포개어져 있을까요 생을 거듭한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붉고 노랗고 창백한 흰 달에 이끌려                                      나는 언제까지고 들길을 헤매 다니지요   사랑이나 슬픔보다 더 느리게 지나가는 권태로 색색의 수를 놓는 밤입니다   하늘과 땅만 자꾸 새로워지는 날 영생을 누리려 우레가 땅을 가르고 나오는 적막한 우주의 한 순간입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春風 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바밍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내여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동지 다음날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ㅡ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ㅡ 밥은 굶지 않는가? ㅡ 아이들은 잘 크는가?               성탄전야         최영철   맛난 것 먹고 빵빵해진 일가족 오색 풍선 따라 땡그랑 땡그랑 배고프다 노래하는 자선냄비 따라 행복 몇 스푼 눈발로 내리고 있었대요 더운 국물이나 마셔 두려는 가난한 식탁에 저 멀리 하늘에서 뭉텅뭉텅 수제비 알로 오시다가 하얀 쌀 소록소록 눈발로 오시다가 그만 내려앉을 곳 잃고 성탄 폭죽 선물 꾸러미 어깨 위로 내리고 있었대요 하얀 쌀 수제비 빈 장독에 닿기를 기다리다 네 살 두 살 아이 재워주고 어마는 술집 나가고 아빠는 인형 뽑으러 가셨대요 인형 다 뽑으면 시름 다 가고 꿈 같은 새날 온다며 아이들 깰까봐 살금살금 문 잠그고 가셨대요 꿈결 아이들 구름 타고 다니며 하얀 쌀 수제비 받아 붕어빵 빚고 산새로 날리고 불살라 언 손발 쬐며 다 녹여버리고 엄마 아빠 오시면 야단 맞을까봐 그 불길 따라 하늘로 하늘로 올라 갔었대요 소방차 오고 아빠는 눈이 커다란 눈사람 인형 한 아름 뽑아 오셨대요 아이들 훨훨 날개를 단 줄 모르고 엄마는 실비주점 더러워진 접시를 닦으며 내년 봄 유아원 보낼 생각에 유행가 한 자락 흥얼거리고 있었대요       세모         엄원태   한 해가 저문다 파도 같은 날들이 철썩이며 지나갔다 지금, 또 누가 남은 하루마저 밀어내고 있다 가고픈 곳 가지 못했고 보고픈 사람 끝내 만나지 못했다 생활이란 게 그렇다 다만, 밥물처럼 끓어 넘치는 그리움 있다 막 돋아난 초저녁별에 묻는다 왜 평화가 상처와 고통을 거쳐서야 이윽고 오는지를 ... 지금은 세상 바람이 별에 가 닿는 시간 초승달이 먼저 눈 떠, 그걸 가만히 지켜본다         세모 이야기          신동엽   싸락눈이 날리다 멎은 일요일 북한산성길 돌틈에 피어난 들국화 한송일 구경하고 오다가 샘터에서 살얼음을 쪼개고 물을 마시는데 눈동자가 그 깊고 먼 눈동자가 이 찬 겨울 천지 사이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더라   또, 어느 날이었던가 광화문 네거리를 거닐다 친구를 만나 손목을 잡으니 자네 손이 왜 이리 찬가 묻기에 빌딩만 높아가고 물가만 높아가고 하니 아마 그런가베 했더니 지나가던 낯선 여인이 여우 목도리 속에서 웃더라   나에게도 고향은 있었던가 은실 금실 휘황한 명동이 아니어도 동지만 지나면 해도 노루꼬리만큼씩은 길어진다는데 금강 연안 양지쪽 흙마루에서 새 순 돋은 무우을 다듬고 계실 눈 어둔 어머님을 위해 이 세모엔 무엇을 마련해 보아야 한단 말일까   문경 새재 산막 곁에 흰 떡 구워 팔던 그 유난히 눈이 맑던 피난소녀도 지금쯤은 누구 그늘에선가 지쳐 있을 것   꿀꿀이죽을 안고 나오다 총에 쓰러진 소년 그 소년의 염원이 멎어 있는 그 철조망 동산에도 오늘 해는 또 얼마나 다숩게 그 옛날 목홧단 말리던 아낙네 입술들을 속삭여 빛나고 있을 것인가   어디메선가 세모의 아침이 열리고 있을 것이다 화담 선생의 겨울을 그리워 열두폭 치마 아무려 여미던 진이의 체온으로 그 낭만들이 뿌려진 판문점 근처에도 아직 경의선은 소생되지 못했지만 서서히 서리아침이 열리고 있을 것이다   조용히 한강 기슭이라도 산책하련다 이 세모에 어느 날이었던가 비밀의 연인끼리 인천바다 언덕 잔디밭에 불을 질러놓고 오바깃 세워 팔짱 끼던 그 말없는 표정들처럼   나도 먼 벌판을 조용히 산책이나 하며 김서린 한 해 상처들이나 생각해 보아야지...         마지막 달력을 넘기며             金 石 林  수봉산 향해 머리 숙인   겨울 나목裸木 참회의 눈물 한 방울      툭 떨어진 자리로  흐릿한 새벽종소리  차갑게 식어버린  열망의 찌꺼기를 토해낸다        덜 깬 잠 탓인지   혼미한 의식이 촛불에 흔들리고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나    지난 밤 꿈의 흔적을 더듬는다  메모 한 줄 벽에 걸어놓고   기어이 떠났구나    하늘의 은총으로 주신   삼백예순 날   이제 마지막 남은     조촐한 식탁    차마 접기 아쉬워, 아쉬워    창문 두드리는  아침 햇살   문 밖에 세워둔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찬란한 새날이 내 고향 왜목마을 갯벌에서   잉태하고 있는데     빛으로 오실  새 주인을 위하여  기꺼이 자리를 비워야겠다        12월             강성은   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 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래도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남극의 해처럼 게으르게 얼음을 녹이려 애썼다 달력을 떼어 죽은 숫자들을 말아 피웠다 뿌연 햇빛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아무 것도 녹진 않았다           12월             박재삼   욕심을 털어 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1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벗고 눈에 젖는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은 심사로 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        12월             유강희                       12월이 되면 가슴 속에서 왕겨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집에 오래 갇혀 있던 맷돌이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귀때기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서나서나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2월의 나무들은 마을 옆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너무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퍼런 별이 된다   12월이 되면 가슴 속에서 왕겨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솥 하나 있음을 안다                  12월         장석주                                   해진 뒤 너른 벌판, 하늘엔 기러기 몇 점. 처마 밑 알록달록한 거미에게 먼 지방에 간 사람의 안부를 묻다                                                                                                       12월             황지우                                    12월의 저녁 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12월, 방랑자여 슈파로 가려는가       박정대                         펄럭인다 또 몇 개의 바람을 흔들며 너는 펄럭이고 있다 겨울의 문 앞에 서서 외로운 파수병처럼 너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다 눈발이 날린다 하얀 기절의 눈발이 날린다 밤의 한기류 속으로 사랑이 흐른다 낯선 느낌표를 찍으며 굴뚝새들이 날아가고 아마 누군가 너에게로 다가가고 있다 잠시 기다려라 춥게 올지라도 사랑은 아름답다   시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바람이 분다 밤이 빛난다 몇 개의 등불을 달고 너는 물음표처럼 웅크려 잠잔아 오늘밤은 별이 없다 그래도 하늘은 있다 젖은 하늘을 덮고 네가 잠들 때 저 성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강물 소리 바람에 귀를 대어보면 멀리서 네게로 다가오는 소리 들리리니 잠시 기다려라 멀리서 올지라도 사랑은 아름답다   살아가는 데는 제목이 없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살아가는 데는 제목이 없다 너의 가슴팍에서 필사적으로 타오르는 불꽃 너는 외롭지 않다 다만 홀로 있을 뿐이로다 시간은 어디에서도 읽혀지지 않고 불면의 외로운 마침표를 찍으며 너는 아직 오지 않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로다 바늘 끝에 맺힌 핏방울을 보듯 우리의 생활은 가끔씩 아프지만 시간이 있는 곳에서는 늘 바람이 불고 잠시 기다려라 아프게 올지라도 사랑은 아름답다                             12월 저녁의 편지         안도현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지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두었구나   여기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12월의 기도        목필균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 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제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 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12월의 숲        황지우                      눈맞은 겨울 나무 숲에 가보았다 더 들어오지 말라는 듯 벗은 몸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목숨들로 連帶해 있었다 눈 맞는 겨울나무 숲은   木炭畵 가루 희뿌연 겨울나무 숲은 聖者의 길을 잠시 보여주며 이 길은 없는 길이라고 사랑은 이렇게 대책 없는 것이라고 다만 서로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듯   형식적 경계가 안 보이게 눈 내리고 겨울 나무 숲은 내가 돌아갈 길을 온통 감추어 버리고 인근 산의 積雪量을 엿보는 겨울나무 숲 나는 내내,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12월의 아침 시간        헤세   비는 엷게 베일 드리우고, 굼뜬 눈송이들이 잿빛 베일에 섞여 짜여 위쪽 가지와 철조망에 드리워져 있다 아래쪽 창유리에 오그리고 앉아 있다 서늘한 물기 속에서 녹아 유영하며 축축한 땅 냄새에 뭔가 엷은 것, 아무 것도 아닌 것 어렴풋한 것을 준다 또 물방울들의 졸졸거림에 머뭇거림의 몸짓을 주고, 대낮의 빛에게는 마음 상하게 하는 언짢은 창백함을 준다   아침에 눈먼 창유리들의 열 가운데서 장밋빛으로 따뜻한 흐린 광채가 어렴풋이 밝아 온다 외롭게 아직 창문 하나 어둠의 조명을 받아 간호원 하나 온다 그녀는 눈雪으로 눈眼을 축인다, 한동안 서서 응시한다 방으로 되돌아간다 촛불이 꺼진다 잿빛의 빛바랜 날 속에서 장벽이 늘어난다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천상병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      김사인                           또 한 잔을 부어넣는다 술은 혀와 입안과 목젖을 어루만지며 몸 안의 제 길을 따라 흘러간다 저도 이젠 옛날의 순진하던 저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뜨겁고 쓰다   윗목에 웅크린 주모는 벌써 고향 가는 꿈을 꾸나본데 다시 한 잔을 털어넣으며 가만히 내 속에 대고 말한다   수다사水多寺 높은 문턱만 다는 아니다 싸구려 유곽의 어둑한 잠 속에도 길은 있다       섣달 그믐         김은경(1976 - )                          오래 전 붉은 그믐의 밤이 반죽한 한 몸이 있었는데 무딘 칼 한 자루에도 마음 곧잘 내어 주던 착한 영혼이 있었는데   잠깐의 목멤이 없지는 않았으나 모르는 척 식당에 혼자 앉아 팥칼국수를 먹는 저녁 내가 미처 음복 못하고 보낸 첩첩의 고통이 긴 실타래 풀어 마침내 나를 먹이는가 떠난 당신이 내 앞에 앉아 허연 국수사발 같은 눈동자로 멍하니 나를 응시하는데   살아야 한다고, 때로는 무심한 듯 살아야 한다고 왼손이 오른손에게 더운 손이 찬 손에게 몸이 일부를 내어 주며 숟가락을 내미는 시간, 핏빛의 당신을 물 한 모금 없이 후루룩 삼키는 저녁   목으로 넘어가는 이 따뜻한 어둠이 당신의 눈물인 듯 간간하다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허영자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묵은 편지의 답장을 쓰고 빚진 이자까지 갚음을 해야 하리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진 못하였으니   이른 아침 마당을 쓸 듯이 아픈 싸리비 자욱을 남겨야 하리   주름이 잡히는 세월의 이마 그 늙은 슬픔 위에   간호사의 소복 같은 흰눈은 내려라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12월의 노래   이효녕    한해 마무리해 보내는 겨울 12월이 다시 돌아오네   인생은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나뭇가지에서 놀던 참새는  어디론가 날아간 그 자리   나이테를 하나 더 만들어  겨울안개 뒤에 서있네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을 안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섣달눈은   가장 가벼운데도  달력 맨 끝에 서있다가  허공의 허파에서 계속 숨쉬네   차가워진 가슴과 들녘에 앉은  하얀 눈 사이로 다른 세상을 향하여   언제나 따스하게 안아주려는  또 한 세월을 향하여  그 숱한 생각들의 깊이를 향하여   한 해를 마무리해 보내는  겨울12월이 다시 돌아오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숨겨진 향기가 겨울안개 뒤에 서서  떠도는 바람이 가슴을 두드리네   오가는 세월을 안고  오 지워지는 세월을 안고.     12월의 노래   박종학    마침내 달랑 한 장 그렇지만 마지막은 싫어요 처음 시작이라 불러 주세요 차가운 손길 하지만 마음만은 아니랍니다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입니다   나를 보면 행복해 합니다 나를 보면 추억으로 여깁니다 나를 보면 삶을 느낍니다 나는 행복입니다 나는 추억입니다 그래서 나는 12월입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소년 소녀 가장과 함께 외로운 무의탁 노인들과 함께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들과함께 한해를 뒤 돌아보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기쁨의 합창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마지막이 아닙니다 나는 희망이고 기쁨이고 사랑이고 싶습니다 나는 12월입니다      12월의 노래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 말을 많이 했던  빈 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 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187    11월 시 모음 ㄹ 댓글:  조회:2210  추천:1  2015-02-19
  홍수희의 '11월의 시' 외  + 11월의 시           텅텅 비워 윙윙 우리라 다시는 빈 하늘만 가슴에 채워 넣으리 (홍수희·시인) + 11월이 지는 날   눈부시게 저무는 저 노을빛은  땀내며 타들던 산골 그 아궁이 장작불빛 같다  아이의 사타구니가 노릇노릇 익고  불 내를 품은 얼굴엔 졸음이 잔뜩 달라붙을 때쯤  밥 냄새를 뿜던 장작불 삭은 재 속에서 터지던  알밤의 요란한 웃음  아버지의 등에 업혀온 장작도  호주머니에 담겨온 알밤도  그 저녁 담 넘어 퍼지던 촌락의 냄새도  노을을 등지고  그 돌아서서 웃으시던 아버지의 환한 빛인 듯  11월의 노을빛은 아직 저리 눈부시다.  결실을 내어주고 뿌리 밑 샘까지 말려버린 고목  그 저녁 빛 속에 학 다리로 환히 서 있다  (이영균·시인, 1954-) + 11월의 노래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로움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스칩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납니다.  (김용택·시인, 1948-)      + 11월의 편지  지구가 뜨거워졌는지  내가 뜨거워졌는지  아직 단풍이 곱다  갈색 플라타너스 너른 잎새에  네 모습이 서있고  11월이 되고서도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꼬깃꼬깃 접힌 채  쓸려간다  모니터에 네 전령처럼  개미 한 마리  속없이 배회하는 밤이 깊다  네가 그립다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밤을 밝힌다  11월 그 어느 날에 (목필균·시인) + 11월 - 마지막 기도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고 갈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는 가벼운 충만함이여 헛되고 헛된 욕심이 나를 다시 휘감기 전 어서 떠날 준비를 해야지 땅 밑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기보다 하늘에 숨어사는 한 송이의 흰 구름이고 싶은 마지막 소망도 접어두리 숨이 멎어가는 마지막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으면 희미한 빛 속에 길이 열리고 등불을 든 나의 사랑은 흰옷을 입고 마중 나오리라 어떻게 웃을까 고통 속에도 설레이는 나의 마지막 기도를 그이는 들으실까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11월  바싹 마른 입술로  나뭇잎 하나 애절하게  자작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곧 어디론가 떠날 듯한  몸짓으로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고개를 내젓고 있다  양재동에서 안양으로 가는 913번 좌석버스  차장 밖으로 이별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해마다 잎을 갈아치우는  나뭇가지의 완강한 팔뚝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린 잎들이 모조리 소스라쳐 있다  더 이상 내줄 것 없는 막막함으로  온몸 바스라질 것 같은 눈빛으로  속이 다 삭아버린  사랑에 매달리고 있다  입을 앙다문  여윈 나뭇잎 같은 계집 하나,  바싹 마른 입술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송정란·시인) + 11월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  얼음이 가득하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  움츠린 어깨마다 수북한 근심 어둠은 더 빨리 얼굴을 들이민다 종종걸음으로 시간을 뒤쫓아도 늘 손은 비어있다         비어 있어도 아름다운 나무들 제자리 묵묵하게 삶을 다진다 비늘 떨군 담담함으로 12월을 기다린다 마지막이란 이름 붙은 것의 앞은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거름이라서 마음이 조금 흔들리는 것 낙엽을 떨구는 몸짓을 사람들도 한다 잠시 어깨 움츠렸다가  눈이 오면 곧 환하게 웃는다 (노연화·시인)  + 11월의 마지막 날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첫눈이 내리다가 비로 바뀌고  다시 비가 눈으로 바뀌곤 한다.  가을과 겨울이 시간의 영역을 다툰다.  단풍나무는 화려한 가을 송별회를 하고  눈바람은 낙엽을 휩쓸며 겨울의 환영회를 벌인다.  가을과 겨울이 줄다리기를 하지만  위풍당당한 겨울에 가냘픈 가을은 당할 수 없다.  젊은이들도 첫눈을 반기며 만남을 약속한다.  가을은 울며 남으로 떠난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내년에 오리라.  계절의 쳇바퀴는 누가 돌리나?  추동춘하 추동춘하 추동춘하...  계절의 쳇바퀴를 돌리면서 세월은 간다.  세월이 가면 사람도 가고 만물도 흐른다.  (진장춘·시인) + 11월의 허수아비 오소서, 오소서  상처뿐인 이 계절에 오소서  기다리다 흘리는 눈물이  차갑게, 차갑게 얼어붙어  날카로운 고드름 되어  그대 가슴 찌르기 전에  그리움에 지친 영혼  구름처럼 붉은 노을 되어  어딘지 모를 곳에 부서져  흔적 없이 사라지기 전에  넘치는 사랑으로  누렇게, 누렇게 삭아 내리는  저 들녘의 얼빠진 바람둥이들  돌아보지 말고 빨리 달려와  모닥불 같은 사랑으로  굳어진 혈관을 달구어  녹슬어 멈춰 버린 심장에  뜨거운 피를 부어 주오  그대여, 그대여,  꿈속에서 서성이는  신기루 같은 그대여 (김태인·시인, 1962-)
186    11월 시 모음 ㄷ 댓글:  조회:2546  추천:0  2015-02-19
  황인숙의 '11월' 외   + 11월     납물처럼 떨어지는 빗줄기 속.  온종일 슈퍼마켓 처마 밑에서  발이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이들의 구두코를 바라보던  거지 아이의 마음을, 은전 한 닢,  햇빛으로 주조한 것인 양  따스하게 하네. (황인숙·시인, 1958-) +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정희성·시인, 1945-) + 입동 이후       가을 들판이 다 비었다 바람만 찬란히 올 것이다 내 마음도 다 비었다 누가 또 올 것이냐 저녁 하늘 산머리 기러기 몇 마리 날아간다 그리운 사람아 내 빈 마음 들 끝으로 그대 새가 되어 언제 날아올 것이냐 (이성선·시인, 1941-2001) + 11월의 나무  십일월도 하순 해 지고 날 점점 어두워질 때 비탈에 선 나무들은 스산하다 그러나 잃을 것 다 잃고 버릴 것 다 버린 나무들이 맨몸으로 허공에 그리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건 이 무렵이다 거기다 철 이른 눈이라도 내려 허리 휘어진 나무들의 모습은 숙연하다 이제 거둘 건 겨자씨만큼도 없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는 건 이 때다 알몸으로 맞서는 처절한 날들의 시작이 서늘하고 탁 트인 그림이 되는 건 (도종환·시인, 1954-) + 11월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나희덕·시인, 1966-) + 11월의 어머니 11월 들판에 빈 옥수숫대를 보면 나는 다가가 절하고 싶습니다 줄줄이 업어 기른 자식들 다 떠나고 속이 허한 어머니 큰애야, 고르게 돋아난 이빨로 어디 가서 차진 양식이 되었느냐 작은애야, 부실한 몸으로 누구의 기분 좋은 튀밥이 되었느냐 둘째야, 넌 단단히 익어서 가문의 대를 이을 씨앗이 되었느냐 11월의 바람을 몸으로 끌어안고 들판을 지키는 옥수숫대 날마다 부뚜막에 밥 한 그릇 떠놓으시고 뚜껑에 맺힌 눈물로 집 나간 아들 소식을 들으시며 죽어도 예서 죽는다 뿌리에 힘을 주는 11월 들판에 강한 어머니들에게 나는 오늘도 절하고 돌아옵니다 (윤준경·시인, 경기도 양주 출생) + 11월의 나무들 세 계절 동안 무성했던 잎새들 아낌없이 내려놓고 알몸의 기둥으로 우뚝 서는 11월의 나무들은 얼마나 의연한 모습인가 비움으로써 결연히  맞설 태세인 나무들을  겨울 칼바람도 어찌하지는 못하리. 저 나무들이 있어 오고야 말리 겨울 너머 꽃 피는 봄 기어코 오고야 말리. (정연복·시인, 1957-)
185    11월 시 모음 ㄴ 댓글:  조회:2510  추천:0  2015-02-19
나태주의 ´내가 사랑하는 계절´ 외    내가 사랑하는 계절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나태주·시인, 1945-)       11월 늑골 뼈와 뼈 사이에서 나뭇잎 지는 소리 들린다  햇빛이 유리창을 잘라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정오  파닥거리는 심장 아래서 누군가 휘파람 불며 낙엽을 밟고 간다  늑골 뼈로 이루어진 가로수 사이 길  그 사람 뒷모습이 침묵 속에서 태어난 둥근 통증 같다  누군가 주먹을 내지른 듯 아픈 명치에서 파랗게 하늘이 흔들린다   (배한봉·시인, 1962-)       11월  한 그루의 나무에서 만 그루 잎이 살았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용하·시인, 1963-)      11월의 비가  길이  어둠을 점화한다  결코 닿을 수 없는 하늘을 향해  바다는 별을 쏘아 올리고  바람,  네가 피워대는 슬픔의 무량함으로 온 산이 머리끝까지  붉게 흔들린다  (도혜숙·시인, 1969-)         11월  너희들은 이제  서로 맛을 느끼지 못하겠구나.  11월,  햇빛과 나뭇잎이  꼭 같은 맛이 된  11월.  엄마, 잠깐 눈 좀 감아봐! 잠깐만.  잠깐, 잠깐, 사이를 두고  은행잎이 뛰어내린다.  11월의 가늘한  긴 햇살 위에. (황인숙·시인, 1958-)        11월의 나무처럼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 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이해인·수녀 시인, 1945-)       11월의 나무  가진 것 없지만  둥지 하나 품고  바람 앞에 홀로 서서  혹독한 추위가 엄습해도  이겨낼 수 있는  튼튼한 뿌리 있어  비워낸 시린 가지  천상 향해 높이 들고  흩어진 낙엽 위에  나이테를 키우는  11월의 나무 (김경숙·시인    11월  무어라고 미처  이름 붙이기도 전에  종교의 계절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사랑은 차라리  달디단 살과 즙의  가을 열매가 아니라  한 마디에 자지러지고 마는  단풍잎이었습니다  두 눈에는 강물이 길을 열고  영혼의 심지에도  촉수가 높아졌습니다  종교의 계절은 깊어만 갑니다  그대 나에게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안진·시인, 1941-)            + 11월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  (오세영·시인, 1942-)      11월 저물 무렵 마루에 걸터앉아 오래 전 읽다 놓아두었던 시집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11월의 짧은 햇빛은 뭉툭하게 닳은 시집 모서리 그리운 것들 외로운 것들, 그리고 그 밖의 소리나지 않는 것들의 주변에서만 잠시 어룽거리다 사라지고 여리고 순진한 사과 속 같은 11월의 그 햇빛들이 머물렀던 자리 11월의 바람은 또 불어와 시 몇 편을 슬렁슬렁 읽어내리고는 슬그머니 뒤돌아서 간다 그 동안의 나는 누군가가 덮어두었던 오래된 시집 바람도 읽다 만 사랑에 관한 그렇고 그런 서너 줄 시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길을 걷다 무심코 주워보는 낙엽처럼 삶에 관한 기타 등등이 아니었을까, 시집을 덮고 고개를 들면 더 이상 그리워할 일도 사랑할 일도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담담하기만 한 11월의 하늘 시집 갈피 사이 갸웃이 얼굴을 내민 단풍잎 한 장이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처럼 낯설고 겸연쩍기만 한데 (최갑수·시인, 1973-)       11월  아내의 손을 잡고 밤거리를 간다  불빛 사이로 잎이 진다  겨울로 가고 있는 은행나무  아내는 말이 없다  그 손금에서도 잎이 지고 있다  문을 닫지 말아야지  겨울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찬바람이 이는 마음의 문을 열어 놓는다  벌거벗은 나무가  나이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사람들이 가고 있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이 밤  그들은 얼마나 긴 성을 쌓을까  구급차의 경적소리가 들린다  이 밤에 다 지려는가  몇 잎 남은 은행잎이  바람에 실려가다  아내와 나의 발등에 떨어진다 (정군수·시인, 1945-)     11월 안부  황금빛 은행잎이  거리를 뒤덮고  지난 추억도 갈피마다  켜켜이 내려앉아  지나는 이의 발길에  일없이 툭툭 채이는 걸  너도 보았거든  아무리 바쁘더라도  소식 넣어  맑은 이슬 한 잔 하자  더 추워지기 전에  김장 끝내고 나서 (최원정·시인, 1958-)    11月 추수 끝낸 들판 찬바람이 홰를 치고 바라보이는 먼 산들 채색옷 단장을 하고는 먼데서 오는 손님을 기다린다 잎을 지운 나무 위에 까치집만 덩그마니 11月 가로수 은행나무 줄을 서서 몇 뼘 남은 햇살에 마냥 졸고 있다 채마밭 식구들 실한 몸매를 자랑하며 초대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길 옆 목장 젖소들 등마루에 남은 가을이 잠시 머문다. (홍경임·시인, 경기도 안성 출생)     11월을 보내며 하늘엔 내 마음 닮은 구름 한 점 없이 말짱하게 금화 한 닢 같은 11월이 가는 구나 겨울을 위하여 서둘러 성전에 영혼을 떨구는 사람도 한 잔의 깡소주를 홀로 들이키며  아찔하게 세상을 버티는 사람도 가을과 겨울의 인터체인지 같은 11월의 마지막 계단을 밟는구나 뜰 앞 감나무엔 잊지 못한 사랑인 양 만나지 못한 그리움인 양 아쉬운 듯 애달픈 듯 붉은 감 두 개 까치도 그냥 쳐다보고만 가는... 그래 가는 것이다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추운 겨울 바람 찬 벌판 쌓인 눈 속이라도 살아있으니 가는 것이다 희망이란 살아있는 것일 뿐이라 해도 사랑이란 더욱 외롭게 할 뿐이라 해도  착한 아이처럼 순순히 계절 따라 갈 일이다 사람의 길  사랑의 길을 (유한나·시인)    11월이 전하는 말  한 사람이 서 있네  그 옆에 한 사람이 다가서네  이윽고 11이 되네  서로가 기댈 수 있고 의탁이 되네  직립의 뿌리를 깊게 내린 채  나란히 나란히 걸어가시네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꿈쩍하지 않을 곧은 보행을 하고 싶네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만나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올곧은 모습으로  어기여차 어기여차  장단에 맞춰 풍악에 맞춰  사뿐히 사뿐히 걸어가시네  삭풍이 후려쳐도  평형감각 잃지 않을  온전한 11자로 자리매김하고 싶네 (반기룡·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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