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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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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시집 1000권 읽기 54 댓글:  조회:2054  추천:0  2015-02-11
  531□천둥 같은 그리움으로□이산하, 문학동네 시집 34, 문학동네, 1999   과다한 생각이 시의 초점을 흐린 경우이다. 게다가 앞부분의 선명한 이미지들이 뒤쪽의 착란에 가까운 사고들과 너무 현격한 차이를 보여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뒤쪽의 착란을 빠져 나오면서 앞부분의 시들이 쓰여졌다고 봐야겠는데, 그렇다고 해도 앞부분의 시들조차 너무 생각의 단련에 집착하고 있어서 주제만 무겁게 전달된다. 도사님 말씀하시니, 늬들 한 번 들어볼래? 하는 식이다.   시에 철학이 들어올 때는 시의 본질 문제를 늘 건드린다. 시와 철학의 경계는 사실 모호하다. 겉으로 나타나는 차이는 분명하지만, 시속에는 특히 시인의 사고 속에는 철학이랄 만한 것들이 없으면 시가 되지를 않으며 그렇다고 그대로 쏟아놓으면 그건 또 시가 아니다. 그 사이에서 둘을 매개해주는 것이 일종의 표현들일 텐데, 그 표현들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해 산란하다. 앞부분에서는 상징을 이용해야 하는 방향이 약간 드러난다. 시집의 시 배열이 시간의 역순이라면 이미지와 상징의 훈련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중요한 관문이 될 것이다.★★☆☆☆[4337. 5. 20.]   532□랭보가 시 쓰기를 그만 둔 날□서동욱, 문학동네 시집 35, 문학동네, 1999   사람이 숲도 보고 나무도 보았으면 좋겠지만, 특히나 시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이 시집은 숲을 보는 데 너무 치중해서 나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경우가 되겠다. 이야기 전개나 이미지를 펼치는 수법은 아주 뛰어나고 상상력도 거침없이 잘 달린다. 그런데 눈이 거대 담론에 가 있어서 시가 관념화하였다. 작은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것을 나타내기 위한 방편으로 현실이 선택되기 때문에 현실을 얘기할 때도 밀착된 느낌을 주지 못한다. 큰 것을 통해서 이미 전제된 어떤 관념을 설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숨어있는 것을 통해서 큰 것까지 아우르는 것이 그런 모호함을 걷어내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삶 전체를 밀고 가야 하는데 그때도 전제된 어떤 관념을 따라가면 성공하기 어렵다. 재주가 세계에 매몰된 경우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자는 혹처럼 박혀있다.★★☆☆☆[4337. 5. 20.]   533□활주로가 있는 밤□마종하, 문학동네 시집 36, 문학동네, 1999   겉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시들 같은데, 자세히 보면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보인다. 하나는 행에 나타나는 그럴 듯한 표현에 가려서 주제가 자꾸 희박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를 쓰면서 시다운 표현에 치중한 나머지 시의 초점이 흐려지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시를 쓰는 방법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를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앞의 첫 번째 문제와 뒤섞이면서 상황을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이 시집 속의 시에는 이미지가 주로 쓰였기 때문에 그 이미지의 흐름을 따라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세한 이미지는 잘 살아있는데, 전체를 조율하는 커다란 이미지들이 선명히 살아나지를 못한다. 이것은 주제의 흐름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 한 편과 시집 한 권에서 어떤 말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어쩌면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일 수 있다. 겉모양이 시 같다고 해서 속까지 시가 되지는 않는 수가 이따금 있다.★☆☆☆☆[4337. 5. 21.]   534□적멸의 즐거움□김명리, 문학동네 시집 37, 문학동네, 1999   한자를 청산하지 않으면 그 한자가 드리운 세계는 2천년대의 현실 속에서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만다. 새로운 세계를 보려는 의지가 시집 전체에 일관되면서도 어쩐지 진부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을 청산하지 못하고 옛것에 기대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집 후반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것들도 그러한 관성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풍경 묘사로 마음을 담고자 할 때는 그 취사선택이 작품의 질을 결정해버리고, 그런 까닭에 대상에 대한 선택도 극도로 절제되어야 한다. 마음이 가는 곳에 이미지가 같이 가고, 이미지가 가는 곳에 마음이 동시에 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마음과 이미지가 나아가는 속도가 조금만 어긋나면 전체의 균형이 허물어지고 만다. 옛날의 선시나 한시들은 그 속도가 기가 막히게 맞았다. 그것은 그들이 그러한 세계 속에서 오랜 숙련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 숙련을 할 세계도 없고 틈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얼빠진 한시 꼴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시집 곳곳에 그럴 위험이 아주 다분하다. 그러나 낡은 것이라도 이용해서 무언가 새로운 세계를 보고자 하는 태도와 시도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4337. 5. 21.]   535□서릿길□김익두, 문학동네 시집 38, 문학동네, 1999   묘사는 어차피 세계를 직접 보여주지 못한다. 그 세계로 가는 어떤 암시를 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묘사할 때 그 암시가 줄 수 있는 세계를 스스로 상정하지 않으면 시는 모호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상정한 그 세계가 과연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세계인가 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이다. 옛날 시인들이 근세에 들어 지탄을 받은 것은 그들이 한시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 숨가쁜 삶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세계를 넋두리처럼 읊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이라고 해서 바뀔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묘사라고 해서 다 묘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묘사가 주를 이루는 시에 설명하는 시를 끼워 넣으면 그건 더 우스운 꼴이 된다. 이 시집의 한자는 음풍농월의 혐의까지도 뒤집어 쓸 수 있는 요인이다.★☆☆☆☆[4337. 5. 21.]   536□을숙도에 가면 보금자리가 있을까□박이도,  문학동네 시집 38, 문학동네, 1999   시가 소재에 갇히면 상상력 역시 비유에 강하게 의존하게 되어 그 소재 안에 갇히기 십상이다. 이것은 특정 소재를 시집 전체에 담을 경우, 그만큼 다양한 생활의 모습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들은 스스로 고만고만한 상상력의 높이에 머물러서 지루한 읽기를 요구하게 된다. 이런 점을 극복해보려고 지역의 특색이나 그 소재에 관련된 사건을 끌어들이지만 그것이 역동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역시 상상력의 뒷받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정은 역시 마찬가지로 돌아온다. 이런 한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지만, 노장이 보는 세계에 대한 달관과 그것을 담는 차분한 어법이 이루는 세계는 시집을 가볍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있다. 한자는 그 무게를 더는 요인이다.★★☆☆☆[4337. 5. 21.]   537□빗방울에 대한 추억□김형수, 문학동네 시집 7, 문학동네, 1995   해방 전의 카프 시를 보는 것 같다. 시의 모든 장식을 걷어버리고 오로지 사상성을 선동하기 위하여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한 시들. 그런 시들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자리는 왜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의 영역을 벗어난 질문이다. 특히 시의 형상화 정도를 아주 중요한 논제로 말하고 있는 이런 자리에서는.★☆☆☆☆[4337. 5. 21.]   538□쥐똥나무 울타리□하종오, 문학동네 시집 6, 문학동네, 1995   시는 산문과 다르게 서술의 방법이 특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습작기 이전부터 본능으로 느끼는 것인데, 이 시집 속에는 그러한 방법이 거의 드러나지 않거나 산문의 일부에 종속되어 있어서 이 시인이 시를 아는 사람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시들이 가벼운 행보를 갖지 못하고 엿가락처럼 늘어진 것은 바로 그런 특성 때문이다. 한 시 안에 시랄 만한 특징이 거의 없이 일기체의 수준으로 시집 한 권을 꾸렸으니, 시가 무언인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시집이다. 게다가 한자까지 섞여 있어서 시가 너무 무겁다.★☆☆☆☆[4337. 5. 21.]   539□새의 전부□박철, 문학동네 시집 5, 문학동네, 1995   세상을 요약하는 방법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과 이웃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요약할 때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가 만들어낸 시의 상황이 세상과 어느 정도 적실성을 띠는가 하는 것과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를 결여하면 시는 초점을 잃고 산만해진다. 그리고 틀림없이 넋두리로 떨어진다.   이 시집에서는 공동체의 삶을 걱정하는 마음이 시집 전체를 떠받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많은 부분이 넋두리 가까이 가있다. 아마도 전망을 잃은 시대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거기에 주저앉으면 시를 쓸 필요가 없다. 현실을 보여주는 성찰은 미래마저 드러내는데, 주저앉으면 그것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냉정하지 않으면 성찰이 어렵거니와 그런 상태에서 나온 것이 바로 넋두리이다. 그리고 이 시집의 시들은 굉장히 거칠다. 거칠다는 것은 불필요한 말과 표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뜻이다. 문예운동은 마음만으로도 할 수 있지만, 작품은 숙련이 필요한 일이다. 역사의 전망을 보고자 하는 시집에 한자까지 섞여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4337. 5. 22.]   540□꿈을 불어로 꾼 날은 슬프다□염명순, 문학동네 시집 9, 문학동네, 1995   묘사를 통해 정서를 한 곳으로 모아서 독자로 하여금 그곳에 몰입하게 하는 묘한 능력을 가진 시인이다. 한 표현에 이끌리지 않고 전체의 묘사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결코 작은 능력이 아니다. 그리고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들을 한 정서로 느껴지도록 하는 능력까지 갖추었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이러한 정서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들이 섞여있다. 특히 2부의 시나 연작의 경우에는 그런 묘사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들이다. 그럴 때는 묘사가 아니라 인식이 중심이 되어 시를 이끌어 가야 한다. 바로 이런 구별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이 시집의 단점이다. 그리고 이런 단점은 그리 어렵지 않게 극복되는 부분이어서 앞으로 나올 작품이 기대된다.★★☆☆☆[4337. 5. 22.]    
63    시집 1000권 읽기 53 댓글:  조회:1891  추천:0  2015-02-11
  521□발자국들이 남긴 길□고창환, 문학과지성 시인선 245, 문학과지성사, 2000   서정시의 문법에 아주 충실한 시집이다. 오히려 문학과지성사에서 이런 시집을 낸다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허무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발상도 그렇고 전개 수법도 그렇고 서정시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 이 경우 정서와 세계가 그 이전의 서정시가 갖는 것과 색깔을 달리 하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다. 그 이전의 세계와 별로 색다른 것이 없는 무색무취의 세계가 이 시집이다. 그리고 내용 빈약의 특징이 이 시인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별로 할 말이 없는데 억지로 만든 시들이 적지 않다.★★☆☆☆[4337. 3. 7.]   522□먼지의 집□이윤학, 문학과지성 시인선 125, 문학과지성사, 1992   관찰력이 세밀하고 감수성도 섬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를 완결시키려는 성실성이 돋보인다. 이런 점은 시 전체를 다듬으려는 노력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어서 높이 살 만하다. 그런데 시집의 중반을 넘어서면 내용 없는 빈 쭉정이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그 만큼 이미지만으로 채워졌지, 그 이미지를 뒷받침할 만한 세계가 부실하다. ‘판교리’ 연작이 그런 경우이다. 연작 번호가 9까지 나갔으면 그에 상응하는 어떤 세계가 들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체험의 절실함이나 인식의 새로움도 없이 이미지만 나열되고 있다. 그런 이미지들이 자신의 정신세계 내의 어떤 감성을 드러내고 세계를 밝히려는 것인지 나타나야 한다. 그 뒤로 거의 모든 시들이 내용의 빈곤을 겪고 있다. 한자는 어울리지 않는 옷 같다.★★☆☆☆[4337. 3. 10.]   523□치명적인 것들□박청호, 문학과지성 시인선 157, 문학과지성사, 1995   시의 앞부분 절반과 뒷부분 절반이 너무 달라서 황당하기까지 하다. 앞부분에서는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이미지들이 낯선 충돌을 보이며 무의식의 깊이까지 들어가고 있는데, 뒷부분에서는 내용도 단순하고 방법도 건조해서, 이것이 같은 사람한테서 나온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앞부분의 시는 독특하다. 현대 문명과 삶의 양상을 숲과 우물로 요약시킨 능력이 놀랍다. 그런 실험이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려면 대상에 대한 환치에 머물지 않고 무의식을 담아내는 섬세한 감성이 요구된다. 시가 다분히 논리에 이끌리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드는 것은 바로 그런 경계까지 나아가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글자든 두 글자든 한자는 시를 그저 악화시킬 뿐이다.★★☆☆☆[4337. 3. 10.]   524□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이윤학, 문학과지성 시인선 241, 문학과지성사, 2000   사물에서 새로운 징후를 읽어내는 것은 시인의 중요한 일이고, 이 시집은 그런 노력이 아주 돋보인다. 그런데 다소 성급한 결론을 내려고 하는 것이 시의 폭을 좁게 만든다. 인식이 있으면 그 인식과 이미지에 실리는 내용들이 적당한 살을 갖추어야 이미지도 살고 주제도 사는데, 이미지 하나를 찾아내면 그 하나에 어떤 주제를 정확히 실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시들이 서둘러 결론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런 조급함만 가신다면 좋은 시를 쓸 시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시 전체에서 노래해야 할 것이 무언인가를 빨리 깨닫는 일이다. 그것은 인생의 무게이기도 해서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빨리 알수록 큰 시인이 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소멸이나 슬픔, 외로움 같은 끝이 빤히 보이는 것들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시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조작된 감정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가락 한다는 젊은 시인들이 일부러 그런 감정들을 조작해내고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나 한국 현대시를 위해서나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4337. 3. 13.]   525□벌거벗은 자의 생을 위한 주머니 속의 시작 메모□배신호, 문학과지성 시인선 219, 문학과지성사, 1998   의욕은 좋은데 수준이 그 만큼 따라가지 못한 작품이다. 장시를 쓸 때 유의할 것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주제가 분명해야 하며, 둘째,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 또렷해야 하고, 그 방법은 그 이전의 것과는 달라야 하며, 셋째, 전체 시의 주제를 상징해줄 수 있는 이미지가 필요하다. 큰 내용을 말할수록 상징은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만 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그 하나 주변에 자신의 생각을 붙잡아 둔다. 이 시집은 이런 모든 것들이 부족하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하는 것부터가 분명치 않다. 그리고 문장이 시의 문장이 아니다. 장광설이 때로는 필요하지만, 그 장광설이 갖춘 문구는 분명한 통사구조를 갖추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분명한 주제를 담고 있어야 한다.★☆☆☆☆[4337. 3. 13.]   526□그 나무는 새들을 품고 있다□이나명, 문학과지성 시인선 237, 문학과지성사, 1999   깨달음 없이 선사 흉내를 내는 것보다 더 참혹한 일은 없다. 화엄이라고 하는 것부터가 심상찮았는데, 거기에 따를 만한 깨달음이 없으니 그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단순히 나팔꽃의 과정을 노래하려고 한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시를 끌어가는 수준이 고르고 말을 다루는 것이 일관된 것이, 능력 있는 시인이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주제가 빈약해져서 큰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쓰기 위해 쓴 시가 많다. 주제가 정해지면 그 주제에 걸맞은 상황을 설정하되 그 설정된 상황에 매몰되면 정작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대상을 묘사하되 대상에 빠져서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주제에 알맞은 이미지를 찾아야 하고 그것에 매몰되지 않을 만한 세계관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작품의 양에 일정 정도 비례한다.★★☆☆☆[4337. 3. 13.]   527□부드러운 감옥□이경임, 문학과지성 시인선 209, 문학과지성사, 1998   시에는 처음 제시된 이미지에서 다음 이미지로 넘어가는 속도가 있고, 독자는 시를 따라가면서도 자신이 읽어 가는 속도가 있다. 그 속도가 잘 맞아야 독자는 쉽게 시를 읽는다. 그리고 그것은 감동으로 연결된다. 이 속도가 맞지 않는 것은 대개 시를 쓰는 사람이 불필요한 이미지나 의미를 중간에 삽입하기 때문이다. 즉 이미지 전개의 필연성과는 상관이 없는 부분이 들어갈 때 생기는 일이다.   이 시집은 감옥이라는 한 이미지에 다른 이미지들이 몰려들도록 전체의 조화까지 배려하고 있어서 시인이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도 이미지의 속도와 독자의 속도가 맞지 않아서 생기는 불편한 점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미지를 잘 전개하다가도 거기에다가 설명을 덧붙이려고 하는 버릇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한자 역시 읽는 속도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4337. 3. 13.]   524□쇼핑 갔다 오십니까?□성기완, 문학과지성 시인선 213, 문학과지성사, 1998   시집 전체가 한 작품의 짜임새와 똑같은 구성을 띠도록 구성한다는 것은 여간한 능력이 아니어서 크게 칭찬 받을 만한 일이다. 그 패기도 좋고 실험하고자 하는 의도도 좋다. 그런데 왕왕 실험시들이 갖는 한계이고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연결시키고자 하는 고리가 너무 멀어서 이미지들을 서로 연결시키기 어려운 지경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맥주거품을 씻는 하얀 손에서 겨울의 눈 이미지를 읽어야 하는 부담은 여간한 것이 아니며, 애써 그렇게 읽어서 연결시킨들 그 어려운 연결이 갖는 의미(우주의 순환성?)가 실험정신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작품으로서는 보잘것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의도는 좋지만 작품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큰 작품을 쓸 시인인 것은 분명하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4337. 3. 13.]   528□식탁 위의 얼굴들□이철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217, 문학과지성사, 1998   꿈과 무의식 속으로 드나들면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뻗는 모습이 아주 활기차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나의 과거와 만나서 씁쓸하지만 돌아볼 만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시가 늘어진다. 군더더기가 많아지고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많아 동원해서 맥이 풀렸다. 습작기의 냄새랄까?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지어낸 시들이 적지 않다. 꼭 필요한 이미지만을 정확한 곳에 쓰는 법을 좀더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4337. 3. 13.]   529□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함명춘, 문학동네 시집 30, 문학동네, 1998   시에서 필요한 기술은 거의 다 배운 시인이다. 한 번 포착된 이미지를 완결된 모습으로 만드는 능력은 시인의 기본이지만, 그것을 갖춘 시인이 그리 많이 않은 시대에는 그것조차도 소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지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이미지뿐인 것들이 많아서 결국은 시를 부실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미지는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어떤 것을 끌어안고 있어야만 빛을 제대로 낸다. 한 구절이라도 이 점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   이미지는 표현의 극대화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이미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깝다고 시에 그대로 남겨둔 이미지들은 시간이 갈수록 시에서 역겨운 냄새를 풍기게 된다. 첫 시집을 내는 시인들이 겪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허점이 용인된다면 그것은 프로의 세계가 아니다. 이미 뻔히 고정된 세계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곳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시인의 용기이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너무 많이 길들여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 시인을 이렇게 길들인 자들에게 똥침을!★★☆☆☆[4337. 5. 20.]   530□님□하종오, 문학동네 시집 33, 문학동네, 1999   방법상의 혼란이 시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시에는 말이 있고 이미지가 있다. 이 두 가지는 때로 잘 섞이면 좋지만, 잘 못 섞이면 시를 망가뜨리는 원인이 된다. 이 시집에서는 뒤쪽으로 아주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시집을 읽으면서 분명히 드러나는 주제조차도 파악하기 심히 불편한 것은 바로 이 점의 작용이다.   말은 그대로 말이고, 이미지는 그 말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앞서 말을 했는데, 그 말의 진척과는 상관없이 동어반복으로 이미지를 제공하거나 그 반대로 하면 독자의 읽는 속도는 물론 인식의 방법까지도 방해받는다. 그래서 될수록 서술과 묘사는 구별해서 해주는 것이 좋다. 말할 곳에서는 말을 하고 묘사할 곳에서는 묘사로 하는 것은 시인의 능력이다. 특별한 의도 없이 둘을 마구 섞으면 쓰기는 편할지 몰라도 읽는 사람은 불편하다. 때로 시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그러지 않아도 될 곳에서 그런다면 그건 실력 부족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시가 지닌 표현법의 기본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시집이다.★★☆☆☆[4337. 5. 20.]    
62    시집 1000권 읽기 52 댓글:  조회:1841  추천:0  2015-02-11
  511□나비를 보는 고통□박찬일, 문학과지성 시인선 222, 문학과지성사, 1999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좌충우돌 부딪히며 무언가 돌파구를 찾는 정신이 돋보인다. 그런데 깨달음을 통해서 시를 쓸 때는 그 깨달음이 일정한 층을 뚫지 않으면 시로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면 대개 야유나 말장난에 머무르기 쉽다. 이 시집이 그 선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더 깊이 판 다음에 어떤 부분을 건드려야 세계가 충격을 받고, 그것이 시로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단 한 글자라도 한자가 섞이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4337. 2. 25.]   512□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오규원, 문학과지성 시인선 223, 문학과지성사, 1999   인간은 타고나면서 교육받은 인식체계로 세계를 읽고 해석하고 그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바로 이 인식을 문제로 삼은 시집이다. 말하자면 철학의 언저리에 가있는 시집이다. 그런데 그런 세계는 그 나름의 독특한 방식을 이루면서 세계를 해석하고 그것을 행동의 근거로 삼는다. 따라서 이 세계는 덧씌워진 채로 인식된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기는 어렵다.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밴 습관을 자각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인식하면 그것을 밝힐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을 뒤집어서, 그렇게 덧씌워진 꺼풀을 벗기면 인식의 그물코가 드러난다. 따라서 사물을 인간의 의식이 덧씌운 관념에서 벗겨서 있는 그대로 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따라서 최대한 선입견을 벗기고 사물의 본래 모습에 가까이 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이 시집에서는 사물에 덧씌운 인간의 관념을 걷어내는 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이나 순수이성비판 같은 책에서 이미 상세하게 밝힌 대목이다. 그리고 칸트는 그 뒤로 훗설의 현상학과 베르그송, 사르트르, 하이덱거 같은 인물들로 이어지면서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낳는다. 그런데 이 시집은 칸트에 머물러 있다. 철학의 뒷꽁무니를 따라가고 있다. 이미 하이덱거는 해석학의 단계에 나아갔다. 그리고 그 체계 안에서 사물과 세계는 세계내존재라는 형태의, 진부한 결론으로 닿아있고, 훗설의 생활세계개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시집의 수준은 사물로부터 인간의 인식을 최대한 걷어내는, 철학으로서는 가장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앞으로 볼거리는 이 시집의 다음이다. 거기서는 걷어낸 인식의 뒤편에 서려있는 또 다른 창조된 인식이 기다릴 것인데, 제발 거기까지 가기 바란다. 한국 시는 철학에서도 너무 뒤쳐져있다.★★☆☆☆[4337. 2. 25.]   513□황금빛 모서리□김중식, 문학과지성 시인선 130, 문학과지성사, 1993   주제가 분명하고 또 굵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론도 확립돼있다. 아픈 상처를 도외시하지 않고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정신이 좋다. 그런데 시가 자기 성찰의 양식이기는 하지만, 남들을 너무 의식해서 어떤 대상을 전제로 하고 시를 쓰면 시가 이상해진다. 일종의 피해망상 같은 것이 생긴다. 그래 가지고는 스스로 지칠 뿐이다. 세계는 무덤덤하고 굳건하다. 도시 전체가 무너져도 꿈쩍 않는다. 원래 그랬다. 그러니 그거에 대해서 몰랐던 것은 나일 뿐이고 그것은 내가 순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에 너무 집착하면 싸움의 결과는 자명해진다. 분노를 분노로 노래할 필요가 있다. 자의식은 싸움에 그리 필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건 그저 거울로 작용하면 된다. 한자는 필요 없는 거울이다.★★☆☆☆[4337. 2. 25.]   514□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김명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265, 문학과지성사, 2002   아마도 동양의 이미지가 동양의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처음으로 시에 들어온 것 같다. 이미지들이 주로 전통의 정서에 맥을 대고 있고, 그것이 그런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쓰고 있다. 이것이 자각에 의한 것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의 운용이면 자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초점이 여럿으로 흩어져있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그리고 정서를 전달하는 데 불필요한 이미지들이 많고 설명이 곳곳에서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이다. 특히 식물이름이나 나무 이름을 너무 자세하게 밝힐 경우, 대부분 그것은 역효과를 내기 쉽다. 그 자세함이 독자가 읽는 속도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도 그런 우려가 다분하다. 동양의 정서를 전달하는데 한자야말로 방해가 되는 요소이다.★★☆☆☆[4337. 3. 6.]   515□황홀한 숲□조인선, 문학과지성 시인선 261, 문학과지성사, 2002   상상력의 방법이 아주 독특하고 개성 있는 시인이다. 그런데 라고 규정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런 결과론에 익숙하면 세상은 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어차피 죽음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밝히는 것이 예술일 수 있지만, 그런 예술로 밝혀봤자 드러날 것은 더 없다. 이미 다 밝혀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예술에서 난폭한 전제는 세계의 폭을 협소하게 한다. 열린 눈으로 보아도 드러날까 말까 한 것이 세상이다. 전제된 관념가지고 보는 것은 탓할 것이 없지만, 그런 관념 가지고 예술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 위험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어떤 것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미지를 동원하는가 하면 또 어떤 곳에서는 이미지 스스로 움직이도록 방치하고 있으니, 방법상의 혼돈이 세계관의 부재와 맞물려있다. 어느 쪽으로든 정리가 되어야만 좋은 시가 나올 것 같다. 이 단계에서 칭찬은 독이라는 것만 말해둔다. 한자부터 청산할 일이다.★★☆☆☆[4337. 3. 6.]   516□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차창룡, 문학과지성 시인선 143, 문학과지성사, 1994   시마다 주제가 분명한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어떤 곳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활달한 움직임이 좋다. 원기가 충실한 시이다. 그러니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고자 하는 말이 너무 분명하다 보니 이미지들이 스스로 잘 살아서 반짝이지 못하고 마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시가 딱딱해진다. 시는 결국 언어를 매개로 해서 정서를 전달하는 도구인데, 언어의 자생력을 잘 북돋아주면서 자신의 뜻을 실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미지를 잘 건사하는 것이 시인의 임무이기도 하다. 한자는 한국에 태어난 시인이 버려야 할 의무이다.★★☆☆☆[4337. 3. 6.]   517□공중 속의 내 정원□박라연, 문학과지성 시인선 247, 문학과지성사, 2000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는 묘한 버릇이 있다. 그렇게 어려운 생각의 길을 만드는 것도 자유이고 장기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복잡한 길을 따라갔을 때 받는 어떤 교훈 내지는 느낌이 그 복잡성이 만든 기대에 충족하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렵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가장 간편한 길이기는 하지만 굳이 그렇게 즐길 만한 것은 못 된다. 그리고 생각의 자취나 구도는 잘 나타나지 않는 법인 만큼 시를 생각의 질서를 드러내도록 쓰려면 그렇게 흘러간 분명한 자취가 남아야 한다. 갯지렁이가 지나간 자국처럼. 한자는 돌이킬 수 없는 병이다.★★☆☆☆[4337. 3. 6.]   518□오늘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김점용, 문학과지성 시인선 253, 문학과지성사, 2001   꿈만을 소재로 하여 쓴 독특한 시이다. 꿈은 현실과 비현실을 매개할 수 있는 유일한 형식이라는 점에서 현실을 조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이다. 그러나 그 무기는 자칫하면 황당무계한 것으로 끝날 수 있다. 그리고 꿈은 무의식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을 시로 감당하려면 정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가 건조해지고 지루해진다. 지루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정직과 뻥의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시인의 영원한 고민거리이다.★★☆☆☆[4337. 3. 6.]   519□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이원, 문학과지성 시인선 255, 문학과지성사, 2001   주제가 아주 뚜렷하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상상력도 활달하고 거침이 없다. 문명과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시인들이 흔히 갖는 불성실과 무책임이 거의 가시고 분명한 논리로 세상을 보고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다만 중간을 넘어서면서부터 긴장이 풀어지는 것이 단점인데, 이는 시집을 너무 서두른 탓이다.   문명을 그대로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내 안에서 일정한 변형을 거치면서 울림통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앞부분의 사막 이미지는 이 문명의 황폐함을 들려주는 울림통 노릇을 톡톡히 했다. 어떤 부분이 그런 작용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런 것이 없다면 시는 건조해진다. 문명비판이라는 주제는 건조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4337. 3. 7.]   520□천일마화□류하, 문학과지성 시인선 250, 문학과지성사, 2000   한 곳에 안주하지 않는 정신은 여전하지만, 긴장이 많이 풀어졌다.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 곳의 상징성을 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어떤 집중을 위해서는 좋은 방법이고, 이 시집에서는 말과 경마장의 주변에서 그것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상력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것을 드러내야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 그곳에 빠진 자의 생각만을 드러내 가지고는 잘 안 된다. 그만큼 상황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객관화가 덜 된 셈이다. 그리고 유럽 여행 중에 쓴 시들은 그런 맥빠진 상황을 되풀이하고 있다. 유하라는 상표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4337. 3. 7.]    
61    시집 1000권 읽기 51 댓글:  조회:1960  추천:0  2015-02-11
501□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김승희, 민음의 시 99, 민음사, 2000   그릇이 큰 시인이다. 할 말도 그렇고 상상력도 그렇고 거침이 없다. 걸음걸이가 크고 활달하다. 자신이 의도한 대로 상상력을 동원시켜서 할 말을 단호하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너무 조급하다. 조급성이 말의 뼈다귀를 드러내서 흉하게 만든다. 시가 흉기가 될 수 있고, 그것이 인류를 위해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것이 자신의 손을 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거나 모른 체하고 있다. 아마도 무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정말 큰 흉기는 감동이다. 감동을 가져가야만 외다리로 위태하게 서있는 제국주의도 넘어지고 신자유주의의 방패도 뚫린다. 그것은 시가 문학이라는 아주 허약하기 짝이 없는 흉기이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주의들이 이런 조급함으로 넘어갔을 것 같으면 벌써 끝장났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4337. 2. 22.]   502□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김영승, 나남포에지 1, 나남출판, 2001   영혼이 참 맑은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 전체에 걸쳐서 어려 가지 상황을 설정하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밑을 흐르는 정서는 세상의 어처구니없는 짓들에 물들지 않고 스스로 지켜야 할 그 어떤 것을 지키고자 하는 순결하고 고결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들이 사악한 이 문명 속에서 상처받지 않을 리 없건만 그런 상처마저 개의치 않고 가볍게 넘기는 자세가 아름답다. 자신의 삶과 사고를 실험대상으로 하여 쓰는 시는 시인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형식으로는 담을 수가 없고, 그런 실험성 때문에 시가 어지러워진다. 그건 불가피한 일이다. 이미 있는 것을 거추장스러워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있는 것을 편하게 따라가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것에 시인의 세계가 있고 영혼이 있다. 첫 시집 “반성”에 비해 날카로움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그 맑은 영혼은 오히려 더 순수해진 듯한 느낌이 있다. 그런 순수한 정신이야말로 서정시의 본령이다.★★☆☆☆[4337. 2. 23.]   503□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김재진, 그림같은세상, 2001   절망의 교과서 같다. 이런 시집을 보면 절망이나 염세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태어나기 전의 생부터 절망에 익숙하여 모든 인식과 사고가 그 방향으로 정해져서 스스로는 그런 인연의 고리로부터 벗어날 힘도 없는 것이다. 미리 예견하고 하는 사랑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노래하기 위해서 세상을 좌절의 창으로 비춰보는 시는 깊은 우울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시야말로 나약한 자의 전유물이고 슬픔과 좌절을 노래하기 위한 가장 알맞은 갈래일 수밖에 없다. 생각의 초점을 절망으로 맞추고 그 안에 들어온 내면 풍경을 정직하게 노래하는 방법은 이미 확실하다. 그러나 네팔 언저리까지 가서 절망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싶다. 거기까지 가는 의지가 그 노래의 절망과는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인연의 탓이라면 모르겠지만.★★☆☆☆[4337. 2. 23.]   504□나무□김용택, 창비시선 214, 창작과비평사, 2002   이런 시집을 보면 1980년대에 왜 목청 높여 싸웠으며, 그런 목청들이 한 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유행에 따라서 목소리를 냈고, 철이 지났으므로 버린 것이 1980년대의 사상이었고 뜨거움이었다는 얘기다. 진보를 향한 갈증과 진군의 등짝에 배신의 칼을 찔러버린 것이다. 그 배신 위에서 피는 것은 어설픈 꽃노래이고 식물성 깨달음이니, 그것이 감동을 줄 턱이 없다.   시를 쓰다보면 자신의 사고와 행동 모든 것이 시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움직임과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적어놓으면 시가 된다는 묘한 믿음이 지배하는 것이다. 이 시집 속의 시들은 그런 착각 속에서 나온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으면 시가 된다는 생각이 자신을 망치고 결국 독자들로부터 시 자체를 격리시킨다는 생각은 그 후에도 하지 못하는 중증 환자가 된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노래해서가 아니라 세상과 사물을 보는 상상력의 구도가 작품에 서려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곧 시가 된다는 오만은 바로 이런 구도를 작품에 싣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안 되는 것이다. 시가 안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민중의 등짝에 찍혀있는 배신의 칼을 어떻게 뽑아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4337. 2. 23.]   505□거미는 이제 영영 돼지를 만나지 못한다□김중, 문학과지성 시인선 260, 문학과지성사, 2002   학문의 안경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진리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학문이라는 안경을 벗어야 갈 수 있는, 학문과는 층이 완전히 다른 곳인데, 그런 것이 있는지 어쩐지 안다는 것도 어렵거니와,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안경을 벗을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안경을 벗었다가는 거기로 가는 길마저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유일무이한 생각의 전통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길은 끊어진 곳에서 나타나는 법이다. 백척간두에서 한 발짝 더 나가지 않으면 길은 나타나지 않는다. 길은 백척간두의 낚싯대 끝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는 학문의 경계가 사라져버린다. 그런데 안경을 벗지도 않고 거기에 가 닿겠다는 것은 오만이고 착각이다. 상상력을 작동시킨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유학 간다고 해서 볼 수 있는 세계도 아니다.   독일이나 영국에는 그 허깨비들을 잔뜩 갖다놓고서 박물관을 만들었다. 진리는 바벨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배꼽 밑에 있고, 의문의 실 끝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안드로메다 바깥까지 연결된 그 끝을 잡지 않으면 영원히 닿지 못한다. 상상력으로 연막을 친다고 해서 그곳으로 가는 길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도 장담할 수 없는 거친 상상력으로는 길만 어지러울 뿐이다. 한자에서 그 길을 구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4337. 2. 23.]   506□부론에서 길을 잃다□김윤배, 문학과지성 시인선 258, 문학과지성사, 2001   상상력에는 결이 있고 질서가 있다. 그것이 묘사로 나타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묘사는 그냥 그림이어서는 안 되며, 내면의 의식을 포착하고 담아내는 대상물로서 정밀한 그림이 되어야 한다. 그냥 이미지를 나열해서 그 정서가 전달되는 시대는 이미 1980년대로 끝났다. 따라서 제대로 시가 되려면 주제가 좀 더 분명해지거나 묘사의 방향과 의도가 의식의 촉수로 작용할 수 있도록 사고를 깊이 가다듬어야 한다.★☆☆☆☆[4337. 2. 23.]   507□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황인숙, 문학과지성 시인선 216, 문학과지성사, 1998   자신감이 때로 자신의 무덤자리가 되는 법이다. 내가 도달한 곳이 남들과 색깔이 다른 특별한 곳이라고 해서 그 색깔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시의 긴장을 잃게 하고 상상력마저 흐리게 한다면 그것은 오만이 아니라 착각일 것이다. 처녀의 뱃살이 아름답다고 해서 늘어진 내 나이의 뱃살까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때로 자신이 딛고 선 곳의 특수성에 너무 자신을 갖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설명을 해도 시가 되고, 넋두리를 해도 시가 되며 보기만 해도 시가 되는 경지에서 나온 시이니 이미 해탈의 경지에 든 고승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입은 닫혀있는가? 사리는 익어가고 있는가? 한자와 함께.★☆☆☆☆[4337. 2. 23.]   508□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장석남, 문학과지성 시인선 156, 문학과지성사, 1995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존재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연관과 인연의 고리를 갖고 있고, 그것은 마음속의 그 어떤 불가사의에 의해 낱낱의 연결을 갖는다. 그때 세상은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한 그 어떤 관계의 순서에 의해 질서정연한 원근을 갖추게 되며 그 원근을 혼돈이 아닌 세계를 구성하는 지고지순의 섭리로 받아들일 때 세상은 아름다운 충만으로 빛난다. 거기에도 슬픔은 있고, 기쁨도 있다. 물론 자신을 벗어난 슬픔과 기쁨이다. 자신을 몸담은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발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언어에 예속된 시인으로서는 더더욱 힘든 일이다. 어쩌면 이 시를 쓴 시인은 그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렇다면 그것은 남들이 이루지 못한 큰 일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만족에 그치고 있으니, 어쩌면 한 순간에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어 못내 아쉽다. 남들이 보기 힘든 것을 봤으니 시가 복잡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상상력의 질서야 선택의 몫이겠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양보다 너무 촘촘히 동원되는 이미지들과,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불필요한 배려까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곳이 여러 곳 있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기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지막 균형이 아슬아슬하지만 그것은 머잖아 곧 기울어지고 말 것이다. 꿀단지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는 개미 한 마리가 보인다. 머지 않아 꿀 속까지 들어갈 것이다. 돌아서기에는 꿀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이다. 한자에서도 꿀 냄새가 난다.★★★☆☆[4337. 2. 23.]   509□평범에 바치다□이선영, 문학과지성 시인선 231, 문학과지성사, 1999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주제를 놓치지 않고 용케 잡아내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 수법이어서 지루하지만 그래도 안정된 시작의 원리이기도 하다. 우선 주제가 선명하고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 이 시집의 장점이다. 그런데 너무 설명투가 많고, 그러다 보니 일관되기는 하지만 군더더기가 많다.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이 빠진 채 묘사로만 끝나는 경우도 있다. 한자는 피해야 할 이미지이다.★☆☆☆☆[4337. 2. 25.]   510□나는 식물성이다□김규린, 문학과지성 시인선 232, 문학과지성사, 1999   뿌리를 빼면 아무 것도 안 될 만큼 뿌리에 관심이 많은 시집이다. 그것은 뿌리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역설이다. 시를 만드는 수법이 나름대로 확립돼 있다.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세계도 일정한 선을 그으면서 형성돼있어서 발전이 엿보이는 시인이다. 그런데 원관념으로부터 보조관념이 멀어질 때 어느 선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한계가 분명치 않아서 혼란스럽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시집 한 권 안에서 색깔이 다른 시들이 들어있고, 수준도 다른 시들이 섞여있다. 한자는 꼭 필요하지 않다면 쓸 일이 아니다.★★☆☆☆[4337. 2. 25.]  
60    시집 1000권 읽기 50 댓글:  조회:1943  추천:0  2015-02-11
491□불의 폭우가 쏟아진다□권영준, 시작시인선 17, 천년의시작, 2002   시 쓰는 훈련을 아주 많이 한 시인이다. 한 번 잡힌 이미지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일관되게 이끌어 가는 능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시집 전체에 걸쳐서 한 주제로 몰고 가는 능력도 갖추었다. 그런데 시가 논리에 의해서 써진다고 할까? 너무 자세하게 이미지를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흠으로 작용하는 수가 곳곳에서 보인다. 너무 자세하게 묘사하면 독자의 상상력이 오히려 제한을 받는 수가 생긴다.   그리고 이따금 내용 없는 것들이 이미지의 연관성 때문에 나타나 스스로 시를 진행시키면서 공허해지는 수도 있다. ‘작두’ 같은 경우가 그런 시이다. 이미지로는 완벽에 가깝게 처리되고 있지만, 정작 할 말은 없는 시이다. 굳이 말하자면 내용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해야 할 어떤 말이 있는 것도 아닌 경우이다. 억지로 시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런 시가 좋은 시가 되기는 쉽지 않다. 한자는 이래저래 걸림돌이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4337. 2. 20.]   492□풋사과의 주름살□이정록, 문학과지성 시인선 191, 문학과지성사, 1996   사물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이미지에 그것을 실어서 담아내려는 노력이 좋고 또 많은 부분 좋은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이미지는 그것이 갖고 있는 고유한 영역이 있어서 새로운 발견을 담으려는 시도가 과도하면 무리가 온다. 겉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더라도 읽어가다 보면 마치 기름칠 덜 된 기계처럼 뻑뻑한 느낌이 오는 것이다. 시집 앞부분의 절반 가량이 그런 뻑뻑한 느낌이 온다. 뒤로 올수록 많이 해소되고 있지만 바로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 이 부분만 무리 없이 소화되면 좋은 작품을 쓸 것이다. 한자는 정말 뻑뻑한 장애이다.★★☆☆☆[4337. 2. 20.]   493□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곽재구, 열림원, 1999   연화리 시편이 이 시인이 정착한 요즘의 세계일 것이다. 모두 사랑시를 본따고 있다. 그런데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을 나타내려면 좀더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 즉 시의 대상을 좀더 정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단순한 이성인가, 절대신인가, 아니면 특별한 대상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만 그 시는 다양한 해석 체계 속에 들면서 울림을 갖게 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편으로 사랑시를 흉내내면 모호해지면서 관념성을 띤다. 이 시는 그런 위험에 노출돼 있다. 차라리 요즘의 생각을 직설로 담은 앞부분의 시들이 더 낫다. 한자는 장애물일 뿐이다.★★☆☆☆[4337. 2. 20.]   494□모슬포 사랑□김영남, 문학동네 시집 56, 문학동네, 2001   확실히 시의 시대가 가고 있는 모양이다. 시를 이렇게 재미 거리로 만들어야만 하는 시대에 왔으니. 어둡고 무거운 세계를 가벼운 말투로 표현하는 것도 좋고 때로 깊이 들어갈 줄도 아는 것도 좋다. 하지만 가볍게 얘기하는 것은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무겁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큰 능력일 것이다.★★☆☆☆[4337. 2. 20.]   495□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 열림원, 1996   시가 많이 명징해졌다. 할 말이 분명해졌다는 것은 세계관이 확실히 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눈도 분명해졌다. 곳곳에서 다른 사람의 흔적이 발견되지만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어떤 시각이 감지된다. 이것은 세상의 혼돈을 볼 줄 아는 성찰의 예지를 터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제는 시인이 아닌 철학자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시로서는 장식이 없이 발견의 시각만으로 이루어지는 수가 많다. 그런 정제된 시각은 어떤 비유를 동반하지 않아도 그것 자체로 묘한 시의 긴장을 이룬다.   인식은 늘 어떤 한계를 갖는다. 그것이 어떤 것을 뚫는 것이기 때문에 뚫린 그곳에서 새로운 한계를 갖는다. 인도의 어떤 사람이 네 마음이 별을 보라고 했을 때의 그 별을 찾아야 그 뚫음은 끝이 난다. 그 별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도 있고 하찮은 사물에도 있으며 그것이 세계를 움직이고 별을 돌리며 사랑을 만들고 이 세계를 움직여가는 동력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만 슬픔에 기대는 애매한 득도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다. 거기까지 가기 바란다.★★☆☆☆[4337. 2. 21.]   496□그 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김경후, 민음의 시 101, 민음사, 2001   이미지를 교란시키는 것은 세계의 혼돈을 알리기 위한 자해이다. 그런 이미지들이 세계를 해부하고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런 처절한 의도가 시집 전체를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그런 작업을 하던 사람이 있다. 이 시인은 그런 사람들의 흐름을 잇는다. 이수명, 박서원 같은 계열이다. 그런데 이 시집의 특징은 앞의 둘과도 조금 다르다. 자학의 기초 위에 있지만, 상상력이 발랄하다. 그래서 세계에 대한 해체보다는 상상력의 자기 만족 쪽에 가깝게 느껴진다.★★☆☆☆[4337. 2. 22.]   497□다른 시각에서 보다□김경수, 등불 아래의 시 8, 하늘연못, 2001   시가 필요 이상으로 길다. 이것은 덜어내는 훈련을 많이 하지 못한 탓이다. 시는 짧은 양식이고, 짧은 양식인 것은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짧음이라는 양식이 지향하는 성격과 성질을 배우는 것을 뜻한다. 짧은 사고와 표현을 통해서 인간이 전달할 수 있는 사색의 특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굳이 그렇게 길 필요가 없는데도 그렇게 길어서 지루하다. 바로 이 짧음의 양식을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따라서 시에서 다룬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발상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고 시를 써야 할 일이다.★☆☆☆☆[4337. 2. 22.]   498□버려진 사람들□김신용, 시작시인선 16, 천년의시작, 2003   시에서 한 세계관을 취한다는 것은 관념의 놀이와 말의 기교를 넘어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 시집의 시인은 그런 지점에 가있다.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이미 다들 떠난 자리에서 냉정하게 자신의 현실을 뚫어질 듯 쳐다보는 그 집착과 허물어지지 않는 신념이 놀랍다. 남들이 떠난다고 해서 그것이 청산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남들이 떠난다고 해도 바닥의 진리는 남는 법이다. 그것을 알고 거기서 그대로 서 있는 사람을 유행이라는 천박한 시각으로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천박한 시각은 스스로 시인임을 포기한 것이고 스스로 이 세계의 노예임을 밝힌 것이다. 자유를 맛본 자가 그 자유를 개인의 자유로 남기지 않고 자신이 노예였던 시절의 그 자리에서 자유를 외치고 자유를 옭는 현실을 외치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그 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무릇 시를 쓰는 자들은 이 점을 돌이켜 볼 일이다. 다들 떠난 자리에서 어려움을 기피하지 않는 시인의 올곧은 태도에 옷깃을 여밀 따름이다. 한자는 청산해야 할 이데올로기이다.★★★★☆[4337. 2. 22.]   499□브레히트의 객석□김수목, 문학아카데미시선 161, 문학아카데미, 2003   일상의 사물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성실한 태도고 돋보인다. 이미지들이 무리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 희생되지 않고 나름대로 안정된 목소리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동원되는 이미지에 비해서 내용이 좀 빈약하다. 주제를 좀 더 선명하게 해서 이미지와 내용의 울림이 좀더 큰 진폭으로 작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실 인식의 깊이를 좀 더 갖추는 시각을 갖도록 힘써야 할 듯하다.★★☆☆☆[4337. 2. 22.]   500□바늘구멍 속의 폭풍□김기택, 문학과지성 시인선 151, 문학과지성사, 1994   관찰력이 대단한 시인이다. 초정밀 현미경을 대고 한 현상을 관찰한 것처럼 포착된 대상이 낱낱이 분해되어 정밀하게 복사되고 있다. 사물을 보는 눈과 언어가 한 치 오차 없이 맞물리면서 대상을 분해하고 있다. 이것은 관찰력과 언어력이 동시에 갖추어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시인의 능력에 많이 의존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인식은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방향성이 다소 모호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문명과 그 속의 인간이라는 주제는 잡히지만, 그 방향으로 인식과 언어가 동시에 몰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자꾸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시가 길어지고 지루해진다. 시가 노래할 것이 무엇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하면 정말 좋은 시들이 나올 것이다.★★★☆☆[4337. 2. 22.]    
59    시집 1000권 읽기 49 댓글:  조회:2114  추천:0  2015-02-11
  481□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임영조, 민음의 시 94, 민음사, 2000   이 시인의 시는 마치 시의 교과서를 보는 듯하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를 50:50으로 맞추어서 보조관념이 제시하는 영역 안에서 완벽하게 원관념을 전달하는 그런 방법으로 시를 쓴다. 시가 교과서 같다는 것은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방법론이 확실하여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안정된 시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보조관념이 주는 한계 때문에 자유시가 주는 형식의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그럴 듯해도 정말 큰 시인이 되려면 이 원칙론에서 균형이라도 좀 허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시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지킨다. 마치 넥타이를 단정히 맨 교장 선생님 같은 태도로. 그런데 이 시집 안의 시들은 그런 원칙을 잘 지키고 있지만, 그 밖으로 나가려는 충동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보조관념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세계를 만났기 때문인데, 그 세계는 바로 죽음의 세계이다. 죽음은 어떤 보조관념으로도 전달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직접 서술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원칙론 바깥으로 나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가 좀 늘어진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앞서 보여준 원칙론의 테두리를 많이 벗어난 것도 아니어서 여전히 넥타이를 맨 교장 선생님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하필 죽음이란 말인가? 첫 시는 절창이다. 죽음을 피부로 느끼지 않고서는 쓰기 어려운 시이다. 이런 분위기가 시집 뒤쪽까지 짙게 드리워있다.★★★☆☆[4337. 2. 18.]   482□비천한 빠름이여□한영옥, 문학동네 시집 59, 문학동네, 2001   주제는 분명하게 잡혔는데, 시는 어느 정도 어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내용을 잘 읽어보면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이상하게도 말들이 많이 꼬여있다. 이것은 쉽게 얘기하면 시가 맥없는 것이 되고 만다는 생각 때문이거나, 그 상황에 맞는 명징한 이미지를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따라서 주제를 정했으면 그것과 관련이 있는 이미지들이 나타날 때까지 집요하게 기다렸다가 쓰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지 않으면 재미도 없는 얘기를 중언부언 계속 반복하게 된다. 시 쓰는 일은 말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내용을 명징한 이미지를 통하여 쉽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일이다. 어려운 말은 철학 책 한두 권만 읽으면 충분히 체험할 수 있다. 때로 시에서 이미지가 어려울 수 있지만, 내용의 진술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 한자는 군더더기이다.★☆☆☆☆[4337. 2. 18.]   483□그의 눈빛이 궁금하다□한정원, 푸른 시떼 7, 시와시학사, 2003   이미지 묘사력도 뛰어나고 관찰에서 의미를 발라내어 살을 입히는 능력도 뛰어나다. 언어감각도 나무랄 데 없다. 그런데 방법상의 일관성을 잃어버려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즉 많은 시들이 상황의 제시를 통해서 독자가 의미를 파악하도록 하는 수법을 쓰고 있는데, 굳이 자신의 감정을 토로함으로써 이런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 부분이 눈에 띤다. 시들이 매끄럽게 잘 빚어졌는데도 이 불협화음 때문에 시집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이미지 묘사에 너무 성실하다. 이미지는 꼭 그렇게 지켜야만 하는 어떤 의미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실으면 된다. 그렇게 하려면 이미지에 대해서 그것이 뻗어 가는 방향을 좀 자유롭게 풀어놓을 필요가 있다.★★☆☆☆[4337. 2. 18.]   484□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허만하, 솔, 2002   아주 특이한 시집이다. 거의 인식으로만 이루어진 시이다. 이것은 시인의 시에 대한 규정 때문이다. ‘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풍경에 대한 추억이다.’라는 것이 시인의 규정인데, 물론 착각일 따름이다. 그건 시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편견과 오해가 아주 특이한 시세계를 만들었으니,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의 보편성을 모를 리 없을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다른 시들과 차별을 두기 위한 계산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거의 배제하고 자연물을 보는 시각과 비유만을 드러낸 시들이다. 그런데 그 인식이 아주 독특하고 다른 사람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방법으로 되어있다. 특히 소재가 물과 가을, 고개, 나무 같이 몇 가지로 극히 제한되었는데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말 놀라울 만큼 다양하여, 시인의 상상력과 사고가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가 하는 한 극점을 보여주는 시들이다. 시가 특이하다 특이하다 하지만 이처럼 특이할까? 소설의 박상륭이 특이하듯이 시에서는 이 시인이 그런 자리를 차지할 듯하다.★★★★☆[4337. 2. 19.]   485□영혼은 오래 되었으나□허수경, 창비시선 203, 창작과비평사, 2001   자신만이 알고 있는 한 세계를 미리 설정해놓은 채 흐르는 의식의 발동에 상상을 맡기고서 떠오르는 대로 그리는 것은 거의 실험에 가깝고, 그것을 특별히 이해해야 할 어떤 의무가 없는 사람에게 그런 방법은 때로 폭력이나 게으름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후진국에서는 그것이 틀림없이 나태나 불성실로 비친다. 말하자면 모자이크 방식으로 마음이 상태를 드러내서 독자들이 그것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해주기를 기대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그려낸 것을 독자들이 읽든 말든 개의치 않겠다는 결심은 가상하나 전제된 관념이 너무 강렬하면 독자에게 스며드는 확산력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이런 세계를 보고 노래하니 알아서 연결시키라는 투는 결코 칭찬 받을 일이 못 된다. 더구나 앞의 시집과 확연히 다른 세계관을 드러내면서 그런 태도를 보이면 독자는 틀림없이 우롱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누군가한테서 낯익은 바이러스가 시의 형식에 스며있음을 확인한다. 비난할 일은 아니로되 칭찬 받을 일도 못된다. 한자가 외롭다.★★☆☆☆[4337. 2. 19.]   486□너무 아름다운 병□함성호, 문학과지성 시인선 259, 문학과지성사, 2001   이 시인은,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이 구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그 어떤 해답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의식과 사고를 첨단으로 몰고 가면서 그곳을 향해 가는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철학이라면 그건 허무맹랑한 질문이지만 바로 시이기 때문에 그 질문이 유효한 것이고, 그것은 답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인의 구원은 끝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참에서 필요한 것은 아이스맨이다.★★☆☆☆[4337. 2. 19.]   487□두고 온 시□고은, 창비시선 213, 창작과비평사, 2002   격정의 시학이랄까? 격앙된 감정이 사그라드니 고은 고유의 시작법이 드러난다. 감정이 언어를 밀고 가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행시에서도 자신의 생각만이 또렷이 빛난다. 눈이 현혹되는 곳에 가서도 장소만 빌린 것이지 자신의 이야기로 모든 배경까지 채울 수 있으니, 그 또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할 말의 뼈만 발라내어 늘어놓을 줄 안다. 그 뼈들의 진행을 보며 읽는 사람은 울트라사우르스, 티라노사우르스를 맞추면 된다. 아직도 군더더기가 많이 남아있지만, 그것은 격정의 시학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로 두고 볼 수밖에 없다.★★★☆☆[4337. 2. 19.]   488□늦게 온 소포□고두현, 민음의 시 97, 민음사, 2000   이미지를 잡아내는 능력도 좋고, 그것을 꾸려 가는 힘도 뛰어나다. 무엇보다도 장황스럽지 않고 직접 추려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그런데 시집을 구성하는 시들의 전체 방향이 모호하다.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고, 작품의 경향도 두 세 가지로 갈라진다. 이런 것들을 한 공간에 모은 것이 흠집으로 보인다. 맨 뒤쪽의 발해 관련 시들은 애매하다. 역사가 시로 들어올 때는 그 필연성을 반드시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는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석은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필 시에서 역사의 의미가 왜 필요한가 하는 것에 대한 검증이 스스로 필요한 일이다. 이 시인의 능력은 유배시편에서 절정을 보인다. 김만중에 대한 역사의 의미도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4337. 2. 20.]   489□얼음 수도원□고진하, 민음의 시 100, 민음사, 2001   인식으로 쓰는 시들이 종종 범하는 오류는 상상력의 체계를 드러내는 데 게으르다는 것이다. 물론 시가 인식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인식만으로도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지만, 그 인식이 세상을 깜짝 놀랠 만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인식을 하게 된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상력의 줄기를 보여주는 것이 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삶을 곧 시로 풀어내는 능력은 원숙한 맛까지 난다. 그러나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시가 늘어지고 말았다는 것이 이 시집의 흠이다. 이것은 늙어 가는 징조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탄력을 갖기 위해서 종종 기대는 것이 종교의 세계인데, 거기에 기대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것이 때로 나태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일이다.★★☆☆☆[4337. 2. 20.]   490□격포에 가면 누구나 섬이 된다□공로, 한국현대시인선 9, 문학마을사, 2001   말을 이리저리 교묘하게 바꾸는 것이 시 전체의 흐름에 도움을 주면 그것이 한 기교로 인정을 받고 칭찬 받을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이미지 전체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말장난만도 못한 치기가 된다. 시 곳곳에서 불필요한 말 비틀기가 이루어져서 이미지의 흐름을 방해한다. 전체의 주제를 생각하고 그 주제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4337. 2. 20.]    
58    시집 1000권 읽기 48 댓글:  조회:1659  추천:0  2015-02-11
  471□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이해인, 분도출판사, 1992   순수 서정시의 한 절정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순수하고 맑은 정신이 사물에 접촉하여 어떤 반응을 보여주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다. 맑은 영혼이 사물에 접할 때에는 땡그랑 하는 소리가 난다. 바로 그런 소리가 사물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정서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신의 존재까지도 유추할 수 있는 것이어서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를 담지 않아도 그 나름대로 울림을 갖고 있다. 한자야말로 떼어야 할 혹이다.★★☆☆☆[4337. 2. 17.]   472□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이진명, 민음의 시 45, 민음사, 1992   대체로 주제에 비해서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것은 주제를 정확하게 정하지 못한 상태로 시를 썼기 때문이고, 주제를 먼저 정한 다음에 쓴 것이 아니라 시를 써나가면서 주제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가 길어지고 비슷한 이미지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인 시끼리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나타난 이미지가 뒤에서도 반복되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이 아니다. 따라서 먼저 주제를 정한 다음에 거기에 맞는 이미지들을 취사선택하여 될수록 많이 잘라내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방법일 것이다. 이미지에 끌려 다니다가는 할 말도 못하고 시를 마감하게 된다. 한자는 불필요한 이미지이다.★☆☆☆☆[4337. 2. 17.]   473□상처가 나를 살린다□이대흠, 현대문학북스의 시 2, 현대문학북스, 2001   이미지들이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뻗어나간다. 막힘이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이미지들이 떠올라, 시를 쓰는 재주만큼은 절정에 올라있음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문제는 방향이다. 몽롱하고 알 수 없는 방향은 결국 자신의 얘기인데, 그것을 어느 방향에서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절박한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라면 방향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때론 무모한 작업에 머물고 말 수 있다. 그런 우려는 특히 짧은 시들이 보이는 단정한 맛과 긴 시들이 갖는 장황스러움을 어떻게 일치시켜야 하는가 하는 해석상의 어려움 때문에 더하다.   나를 상대로 한 실험이 성공하려면 그것이 단순히 내 상상의 유희에 그치지 않고 그 실험이 시대의 한 끝을 물고늘어지는 절실함에 닿아있어야 한다. 사상을 갖지 않은 자가 판단력만으로 사상 가진 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대부분 그때의 판단은 독단이기 때문이다. 그 독단의 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것으로만 끝나도 다행인 경우가 많다. 한자는 필요할 것 같지 않다.★★☆☆☆[4337. 2. 17.]   474□이형기 시 99선□이형기, 오늘의 시인총서, 도서출판 선, 2003   어려운 표현을 굳이 쓰지 않으면서도 사물과 존재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의미들을 아주 잘 불러내었다. 그것은 오랜 관찰로 숙련된 시각이 아니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어렵고 기발하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담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순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기교의 기교가 진짜 부리기 힘든 기교인 것이다. 어눌한 듯하면서도 침착하게 할 말을 다 하는 여백의 미학 같은 맛이 시 전체에 흐르고 있다. 그런데 한자를 쓴 것은 그렇다 쳐도 오자가 너무 많다. 시인이 병중이라니, 이것은 출판사의 무성의겠지만, 그런 태도는 시인에게도 누가 된다. 어쩔 것인가?★★★☆☆[4337. 2. 17.]   475□참 오래 쓴 가위□이희중, 문학동네 시집 61, 문학동네, 2002   둔탁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반짝임이 없다고 해야 할까? 시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히 있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발상도 나름대로 갖고 있는데 읽기가 아주 거북하고 어렵고 속도가 늦다. 바로 이 점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발상의 둔중함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많은 시들이 과거를 추억하는 것으로 내용이 되어있는데, 그것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둔중한 것은,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가벼운 제시만으로도 과거는 묘한 울림을 갖고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몇 편에서는 둔중한 내용으로 되어있어서 어울릴 듯하지만 많은 시들이 가벼운 건드림만으로도 될 내용들이다.   이것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보다 발상과 그것을 시로 다듬는 작업을 덜 했거나 미숙하다는 얘기다. 상상력이 좀 더 구체화한 뒤에 시를 써야만 시가 가벼우면서도 쉽게 주제를 전달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게 된다. 몇 자 되지 않는 한자는 그러잖아도 무거운 시를 더욱 무겁게 한다.★☆☆☆☆[4337. 2. 17.]   476□민들레의 영토□이해인, 가톨릭출판사, 2001   영혼이 참 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맑은 영혼이 고여서 넘쳐 나온 시들이다. 그러니 시 쓰는 방법이 간절한 염원을 담는 것이어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시의 수법들이 예측을 불허하는 곳에서 나타나 오히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선한 맛이 들게 한다. 시를 쓰는 것은 기법이나 상상력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 간절한 기대를 만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시의 기법은 그런 상태의 보조수단이다.★★☆☆☆[4337. 2. 18.]   477□기차는 달린다□이동순, 만인시선 3, 만인사, 2001   시는 자신의 내면을 다른 이미지에 빗대어서 밖으로 드러내는 양식이다. 그러나 여행이란 바깥의 풍물을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과 시는 완전히 상반된 체계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시에서 여행을 다루면 여행지의 낯선 풍경과 그것이 내면에 미친 영향을 드러내게 된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대상을 노래하는 것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행시는 의미가 없다. 그러다 보면 내 이야기가 빠지고 그곳의 풍물과 역사를 담는 것으로 일관되는데 그렇게 되면 시의 감칠맛 나는 효과가 반감된다. 바로 이 불균형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기행시의 운명이다. 이 시집 역시 이러한 문제점에 빠져있다.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그곳의 풍물과 감상을 적는 일로 일관하고 있다. 보고서는 될지언정 시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 기행시의 속성이다. 일관된 이미지로 대상을 잘 묘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한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이다.★★☆☆☆[4337. 2. 18.]   478□내 마음의 풍란□이태수, 문학과지성 시인선 235, 문학과지성사, 1999   내 마음속의 어떤 대상을 설정해놓고 모든 이미지들을 그것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시에서 일관된 주제가 드러나도록 미리 한 세계를 설정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본 세계가 진리의 그것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전하는 방법이 있기 마련이고 세상은 그런 몇 가지 갈래가 있다. 시도 그런 갈래의 하나이다. 따라서 그런 갈래의 특징을 잘 따르는 것 역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한 방법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래의 특징이 크게 문제가 아니라면 그 갈래의 특징을 따라주는 것 역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시인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구축한 세계가 진리에 가깝다고 해서 그것을 전하는데 설명투가 되는 것까지 용인하면 그것은 자만이거나 게으름이다. 둘 다 시에서는 치명상에 가깝다.★★☆☆☆[4337. 2. 18.]   479□건봉사 가는 길□임정숙, 문학아카데미시선 146, 문학아카데미, 2001   시집 한 권을 건봉사와 관련된 이미지로 엮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노력이 아니고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특정 이미지에 집착할 때 생기는 문제는 그 이미지에 갇혀서 상상력을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개는 예찬 일색으로 흐르거나 그에 대한 설명으로 흐르고 만다. 이런 점에서 특정 소재를 중심으로 시를 쓸 때는 될수록 자유롭게 원래의 소재로부터 벗어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그것이 잘 조절되지 않아서 시가 보고서로 전락하고 말았다.★☆☆☆☆[4337. 2. 18.]   480□내 애인은 왼손잡이□임동확, 포에마쥬 2, 봄출판사, 2003   회한과 절망, 격정 같은 감정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마음속에서 들끓다가 솟아올라온 글들이다. 겉 표정은 아주 냉정하게 정리된 듯하지만 사실은 그런 격렬한 감정들이 마그마처럼 마음 밑장에 들끓고 있어서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치솟아 오를 기세이다. 시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절제해야 하는 것이 시라는 양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제되지 않는 감정들은 시라는 양식이 주는 아름다운 자태를 갖추지 못하고 성급하게 나온다. 제대로 옷을 걸치지 않은 모습은 아무리 젊더라도 아름답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그럴 듯한 시의 옷을 더 걸쳐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 시집이다.★☆☆☆☆[4337. 2. 18.]  
57    시집 1000권 읽기 47 댓글:  조회:1969  추천:0  2015-02-11
461□일찍 늙으매 꽃꿈□이선영, 창비시선 227, 창작과비평사, 2003   시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기실 새롭게 얻은 그 인식을 기존의 다른 인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떤 것으로 대체하여 표현한다는 것은 익숙한 것으로 낯선 것을 소개하는 것이고 그것이 비유의 고질병이면서 새로운 면이다. 그런데 시가 새로운 인식으로 지향할 때가 있다. 이미 있는 관념과 세계가 탄력을 잃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증이 타오를 때이다. 한 세계관이 저물어갈 때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이미 존재하는 세계가 탄력을 잃고 삶의 중심 노릇을 해주지 못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 시집은 그런 지점에서 타오르는 꽃이다. 일상 속의 느낌과 인식으로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시각으로 보고자 하는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벽은 갈수록 단단해진 공법으로 만들어졌기에 여의치 않다. 망치조차도 퉁겨내는 것이 요즘 아파트 벽의 공법이다. 그 벽에 구멍 뚫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나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 벽을 뚫는 방법은 자신의 담금질하여 더 날카롭게 더 단단하게 하는 방법뿐이다.★★☆☆☆[4337. 2. 16.]   462□목마른 우물의 날들□이안, 실천문학의 시집 139, 실천문학사, 2002   눈 덮인 산에서 보리 싹의 태기를 읽어내는 시인의 눈이 아름답다. 게다가 그것이 우리 시대가 버릴 수 없는 시대의 상징까지도 품고 있어서 든든하다. 요즘 시들이 아주 늘어진 형태로 쓰여지는데, 이 시집 속의 시들은 아주 단단하고 짧게 응축되어 있다. 이것은 만이 다듬고 많이 깎아냈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각 시의 긴장이 만만찮다. 연 가름이 많고 연과 연 사이의 이미지가 상당히 멀리 뛰어넘고 있다. 아마도 한시를 꽤 많이 읽은 흔적이 나타난다.   그러나 너무 많이 깎아내다 보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잘 포착되지 않는 수가 생기니, 그것을 경계할 일이다. 요즘 시들이 거의 개인의 고뇌를 노래하는 쪽으로 개종했는데, 그나마 이웃과 현실에 대한 전망을 놓지 않고 있어서 주목된다. 문단에 들이닥친 신자유주의의 엄동설한에 그것은 결코 작은 용기가 아니다. 한자는 쓰잘데기 없는 이미지이다.★★☆☆☆[4337. 2. 16.]   463□물고기에게 배우다□맹문재, 실천문학의 시집 137, 실천문학사, 2002   이 시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억눌린 가난과 그 억압의 폭력성이다. 자본이 내면화되면서 나타나는 여러 징후들이 이 시집에서 고발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그런 것들은 까발려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비유나 상징을 쓰면 오히려 효과가 반감한다. 시집의 시들이 모두 잘 썼다.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징으로 승화시켜서 전해주는 수법도 익을 만큼 익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문제다. 내용을 보면 치열하게 욕설을 해대야 할 것인데, 표정이 너무 엄숙한 것이다. 억지로 미문을 만들면 그게 오히려 감점 요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 시대가 경박해져서 쌍욕을 할 곳에서도 점잖은 말투를 쓰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천박한 자본주의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한자는 너무 어색한 표정이다.★★☆☆☆[4337. 2. 16.]   464□벙어리 장갑□오탁번, 문학사상 신작시집, 문학사상사, 2002   교과서식 표준 공법으로 성실하게 제작한 건축물 같다. 전후좌우는 물론 상하까지 그 긴장이며 이미지의 순서까지 아주 잘 짜였다. 그런데 이미지는 시를 아주 차갑게 만든다. 즉 이성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그래서 단순한 제시만 가지고 그 이미지 뒤에 서린 암시를 풀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내용들은 그 차가움을 없애도록 이미지를 배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집 속의 시들에는 그 차가움이 많이 남아있다. 저절로 감동의 진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미지의 원칙에 너무 충실해서 생긴 일이다. 그리고 시를 쓰는 순간에 그런 충실을 뚫어버릴 만큼 강렬한 감정의 폭발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점도 흩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아주 잘 썼는데도 시집 전체의 무게는 많이 가벼워진 것이다.★★☆☆☆[4337. 2. 16.]   465□생일□이윤림, 문학동네 시집 45, 문학동네, 2000   시에는 말하는 이와 시인 사이의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거리는 교육받은 대로 잘 인지된다. 누구나 시가 다 약간의 허풍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집에는 이 거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집 맨 뒤쪽의 몇 편을 빼고는 시인의 생각이 그대로 시로 뻗어 나온 것이다. 이것은 재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절박함이나 절실함에 휩싸였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아마도 약력에 보이는 어떤 ‘병’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굉장히 어둡고 절망에 가까운 어조와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신의 병과 세상의 모순이 만들어낸 분위기일 것이다.   그런데 시로 나타나는 감정과 이미지들은 아주 정제된 것으로 보아 시 쓰는 훈련을 꽤 거친 시인인 것 같다. 꼭 필요한 말만 골라서 제시하고 있다. 감정에 휩싸이기 쉬운 여건에서 보여주는 이런 절제력은 아주 위대한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시인임을 자각하는 상태에서 나온다. 한자는 뚫어야 할 벽이다.★★☆☆☆[4337. 2. 17.]   466□검객의 칼끝□이영유, 문학과지성 시인선 272, 문학과지성사, 2003   개인이든 국가든 과거를 돌아볼 때는 돌아봄의 의미가 중요하다. 단순히 내가 살던 옛 시절에 대한 회고 취미는 현재의 삶을 불구로 만들고 우스개로 만든다. 되돌아보는 데도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많은 부분이 마포 시절을 회고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철학이 없다. 오히려 역사를 조롱하는 일에 연계되어 시들이 말장난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생각을 비틀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가볍게 우스개로 만드는 것은 벌써 20년 전부터 있어온 일이니,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갈 때도 되지 않았는가? 오히려 집중력이 첫 시집보다도 더 떨어졌다. 한자는 알량한 지식자랑에 지나지 않는다.★☆☆☆☆[4337. 2. 17.]   467□조용한 푸른 하늘□이시영, 솔의 시선 10, 솔출판사, 1997   참 할말 없게 하는 시집이다. 극도로 절제된 묘사가 대상으로 하는 풍경은 그것이 하나씩 점을 이루어 나중에는 커다란 모자이크 그림을 만들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림이 그럴 듯해야만 낱낱의 정밀 묘사가 의미를 갖는다. 언뜻 보면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초점이 흩어졌다. 그러는 바람에 애써 얻은 정밀묘사들이 그 시 밖에서 긴장을 잃는 수가 생긴다. 선문답은 그것이 전해지는 사람들끼리 영혼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 시에서는 그런 방법이 위험한 것이, 시인은 그런 교감을 넣어서 말을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쪽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읽는 사람을 탓하다가는 사구(死句)가 되고 만다. 그 결과는 아니 함만 못한 것이다. 알든지 말든지 하라는 것은, 속세에서는 슬기가 아니라 배짱이다. 시에서는 배짱이 통하지 않는다.★★☆☆☆[4337. 2. 17.]   468□낙타와의 장거리 경주□이응준, 세계사시인선 114, 세계사, 2002   자신의 절망을 상대로 시를 쓰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시대의 상처와 억압이 내면화되던 1980년대의 산물일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에 드리운 상처를 대상으로 하는 시의 깊이는 시인 자신이 범한 상처와 절망의 깊이와 깊이 연관되어있다. 따라서 스스로 만든 것이든 남이 부여한 것이든 자신의 상처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아닌 척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집의 시들은 많은 부분이 그 전에 보아오던 절망의 표정들을 많이 닮았다. 그런데 시들이 사건화 되어 나타난다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이전의 절망과 자신의 절망을 구별짓게 하는 요인을 찾아서 파고드는 것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절망하라고 칭찬해주어야 하는데, 당사자에게는 가혹한 주문이다. 한자부터 치울 일이다.★★☆☆☆[4337. 2. 17.]   469□천천히 오는 기다림□이응인, 내일을 여는 시 34, 내일을여는책, 2001   시삶일여의 태도는 좋으나 시를 단순비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문제다. 시들이 짧은데, 시가 짧으려면 그 짧은 시 안에 담아야 할 내용들을 많이 벼려야 한다. 일상 속의 자잘한 감정들을 잡아내는 능력은 탁월한데, 그것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쏟아져나와 시가 짧은데도 어수선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시집을 묶을 때는 시들이 한 초점을 향해 달려가도록  조절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이것저것 다 모아놓으면 시들이 다 조잡해진다.★☆☆☆☆[4337. 2. 17.]   470□제비꽃 여인숙□이정록, 민음의 시 105, 민음사, 2001   시 쓰는 재주가 아주 좋은 시인이다. 비유의 진폭을 될수록 울림이 크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태도도 좋고, 글자 하나라도 제 위치에 놓으려고 다듬는 자세도 좋다.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끝까지 시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시인의 큰 능력이다. 여기서, 상상력이 자꾸 자신의 안쪽으로 달팽이처럼 오그라들고, 그런 재미에 빠지게 되면 시가 윤기를 잃게 된다는 사실만 주의한다면 큰 시인이 될 것이다. 자기 속으로만 파고들다 보면 운명론자나 회의론자로 가다가 어설픈 땡중 흉내를 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기 십상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4337. 2. 17.]    
56    시집 1000권 읽기 46 댓글:  조회:1720  추천:0  2015-02-11
  451□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김선우, 창비시선 194, 창작과비평사, 2000   나무랄 데 없이 시를 참 잘 쓴다. 헛되이 쓰이는 시어가 없고 꼭 쓰여야 할 곳에 있으면서도 시 한 편이 정확한 한 상황을 전달하는 데 기여한다. 이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다만 신인이 갖는 부담을 벗어버리지 못하여 끝까지 다 보여주려고 하는 버릇 때문에 설명조가 남아있는데, 특히 끝 부분에 몰려 있는 시들이 그렇다. 그런 부분만 깎아내면 정말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다만 자폐증으로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곳은 좋은 시는 쓸 수 있을지 몰라도 큰 시는 쓸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간과할 수 없을 만큼 큰 흠이다.★★★☆☆[4337. 2. 13.]   452□어두워진다는 것□나희덕, 창비시선 205, 창작과비평사, 2001   정말 시를 잘 쓰는 시인이다. 시가 아픔이 피워 올리는 꽃임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준 시집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제 몸 속에 송곳을 꽂고 있는 사람이 내지르는 신음소리 같은 시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온다. 고통을 이렇게 아름답고 단단하게 형상화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묘한 틀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 틀들이 시를 주물처럼 주조해내고 있다.   대부분의 시들은 철사를 구부려서 만든 작품과 같다. 작품을 써놓고서 손이 구부러졌으면 휘어서 바로잡고, 균형이 안 맞으면 구부려서 바로잡는 식이다. 그러나 이 시들은 처음부터 한 상상으로 시작하고 마감되어 수미일관한 방향을 보인다. 이것이 큰 미덕이다. 자신의 상처 속에 든 시대의 아픔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완벽에 가까운 시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완벽을 향해 가는 길에 넘어야 할 언덕 하나가 한자이다.★★★★☆[4337. 2. 13.]   453□홀로서기 시선집□서정윤, 문학수첩, 2002   장식을 버리고 절실한 고백만으로도 시가 될 수 있음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다. 우리는 멋진 비유를 통해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시의 본류라고 교육에서 강요받았고, 그런 관점으로 보지 못하는 세계가 얼마든지 있음을 보여주는 시다. 그런데 방법에 투철한 자각을 하지 못하여 쓰지 말아야 할 곳에서 비유를 끌어들여 오히려 사고의 흐름을 방해하는 곳이 많다. 이것은 시인의 재주가 미숙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게다가 그 세계가 한 곳으로 너무 치우쳐있다. 그것은 시인의 세계관의 문제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가도 되는 것을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 위에서 부레옥잠처럼 맴돌고 있다. 삶의 시궁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시는 가뭄이 오면 말라붙는다.★★☆☆☆[4337. 2. 14.]   454□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신달자, 문학수첩 시집 36, 문학수첩, 2001   시가 지닌 간결성을 잘 활용한 시다. 치열한 정신을 짧은 단상 속에 집어넣는 능력이 좋다. 다만 너무 자학에 가까운 과거에 초점을 맞추어서 어머니가 갖는 그 풍요로움을 많이 잃은 것이 아쉽다. 자학을 하다 보니 감정 조절이 안 되고 애써 만들어놓은 비유체계까지 흔들려서 시의 수준이 들쭉날쭉이다.★★☆☆☆[4337. 2. 14.]   455□현대적□이갑수, 민음의 시 59, 민음사, 1994   아이의 둘레에 금을 그어놓고 이 금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했더니 하루종일 그 안에 서서 울더라는 얘기와 똑같다. 동그라미 닮은 것만이 있을 뿐 동그라미란 원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너무 많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부실한 한국 교육에 너무 충실한 학생들이 저지르는 실수이다. 그런 실수에 대한 추억으로 시집을 메웠는데, 아직도 동그라미를 못 찾은 어린 학생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안타깝다. 뒤쪽의 과거 회상은 시집 전체에 누가 된다. 시집이 지향하는 바와 다르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한자를 버리지 않으면 동그라미의 세계에 닿을 수 없다. 그 동그라미는 자신의 안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 고생대 이전부터 지구 멸망 이후까지 계속.★★☆☆☆[4337. 2. 14.]   456□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이면우, 물길시선 1, 북갤럽, 2002   마흔에 바라보는 세상의 따스함과 한계를 아주 잘 드러냈다. 그러나 나이 먹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것이 시라는 강한 인상을 독자들이 갖게 된다면 그것은 시에서 꿈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이로 보는 것 아니라도 세상은 보여주는 것이 많다. 그것을 도외시한 인상이 짙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시가 그런 경직성 안에 갇혀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꿈이 없음을 노래할 때도 세상을 보는 눈은 꿈을 피워 올려야 하는 것이 시이다. 수필로 썼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이미지를 쓰던가 없애던가 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산만해졌다.★★☆☆☆[4337. 2. 14.]   457□식물의 시간□이명기, 문학아카데미시선 133, 문학아카데미, 2000   시작 수업을 착실히 받은 사람이다. 관념을 어떻게든 형상화해서 제시하려는 노력이 시집 전체에 일관되게 보인다. 이런 성실성은 큰 시인이 될 수 있는 바탕임은 말할 것도 없다. 두 가지 문제점이 눈에 띈다. 첫째는 불필요한 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를 쓰면서 군살을 덜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를 쓰다 보면 이것저것 비슷한 이미지도 많이 생긴다. 그런  것들이 주제를 형상화하는데 기여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판단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면 그 즉시 잘라버려야 한다. 그것이 시 전체를 무겁게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들에 오래 집착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버릇은 시가 주제 빈약에 시달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시들이 그런 위험 근처에 노출돼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물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이다. 낱낱의 비유체계도 문제지만, 시 한 편, 나아가 시집 전체가 새로운 시각을 담으려고 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낡아 보이는 것을 면치 못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심각하게 정한 다음 한자를 버릴 일이다.★☆☆☆☆[4337. 2. 15.]   458□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이기철, 문학과지성 시인선 126, 문학과지성사, 1993   나이는 평범함에 눈길을 주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시에 드러나는 지점에 이 시집이 있다. 그리고 어떤 전환을 예고하는 시집이다. 마흔이면 정신을 생각하는 나이이다. 그리고 그 정신이 일상 속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것에 관심이 가는 나이이다. 그런 마음이 경향이 일상 속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일상의 가치를 깨우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선명하지 않다. 막연한 결심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 정신의 영역이다. 방법론도 필요하고 방향도 필요하다. 그런 사유에 한자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의 형상화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4337. 2. 15.]   459□내 마음의 오후□이진우, 시작시인선 22, 천년의 시작, 2003   시는 시인의 생각에서 연유하여 그것이 정리되어 나타나는 것인 만큼 시에는 시인의 사고과정이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남들의 발상과 다르고 선명할수록 읽는 사람은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시가 전하고자 하는 정서도 정서지만, 시를 형상화하는 과정의 흔적이 오히려 더 감동을 주는 수가 많다. 그런 점에서 그 흔적이 분명하지 않거나 신선하지 않으면 초점이 흐려지고 저절로 군더더기가 많아진다. 바로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 제2부의 시 몇 편을 빼놓고는 앞서 말한 그 점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더라도 상투화된 수법이어서 별로 볼 것이 없고, 볼 것이 있다고 해도 내용이 또한 그러해서 읽기 어려운 시들이다. 따라서 생각이 난다고 해서 시로 옮길 것이 아니라 어떤 형상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은근하게 기다렸다가 쓰는 것이 이런 단계를 벗어나는 한 방법이다.★☆☆☆☆[4337. 2. 16.]   460□꽃들은 만개의 꿈을 반복한다□이숙이, 문학아카데미시선 162, 문학아카데미, 2003   시는 표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시는 반드시 표현을 거치지만 그 표현은 반드시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를 갖기 마련이고, 그것은 시집 전체에 일관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시집을 읽다보면 새로운 사실의 발견과 그것의 표현에 탐닉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곳이 아주 많다. 그러다 보니 주제도 표현을 따라가다가 나중에 형성되는 수가 생긴다. 자칫하다가는 자신의 애초 생각과 상관없는 엉뚱한 결론을 내기에 이른다. 애써 얻은 표현도 그것이 무엇을 전하는 데 잘 쓰여야 하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지 못해서 아깝게 버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내가 애써 얻은 표현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좀 더 분명하게 정하고 시를 쓸 필요가 있다. 한자는 불필요한 장비이다.★☆☆☆☆[4337. 2. 16.]    
55    시집 1000권 읽기 45 댓글:  조회:1960  추천:0  2015-02-11
  441□이팝나무 길을 걷다□박정남, 문학세계현대시선집 180, 문학세계사, 2001   사물을 보는 눈이 독특하고 그 독특한 시각을 매끄럽게 시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성이 갖는 풍부한 생명력과 모성만이 바라볼 수 있는 깊은 세계를 담고 있다. 그리고 군더더기가 거의 없이 이미지들이 주제를 향해 집중해 가는 절제력이 있다. 이 절제력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인식의 창을 마음에 열어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주 깊은 울림을 갖는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다. 다만 시집 전체의 초점이 한 군데로 집중되지 않고 산만해진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4337. 2. 12.]   442□술병처럼 서있다□진영대, 문학아카데미 시선 154, 문학아카데미, 2002   죽음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여 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능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불필요한 말을 잘라버리고 사건을 요약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재주가 뛰어나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시가 이야기를 갖게 되고 그 이야기의 논리관계가 암시하는 바를 푸느라고 마치 수수께끼를 대하는 것 같은 부담감을 주게 된다. 시에 이야기 들어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줄거리로만 이루어질 경우에 문제가 된다. 이렇게 사고를 자극하는 시들은 인식의 새로움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 부분이 보강되어야만 좋은 시가 나올 것이다.★★☆☆☆[4337. 2. 12.]   443□사람이 두렵습니다□지영희, 우리시대의 시인 100인 선집, 문학마을사, 2001   묘사력도 좋고, 시를 이끌어 가는 것도 좋은데 주제에 비해 동원되는 이미지가 너무 풍부해서 큰 옷을 입은 모양이다. 시에서 나타낼 수 없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특수한 정서에 집착하면 시가 쭉정이 같아진다. 뒤로 갈수록 그런 우려가 심해진다. 성실하게 시를 쓰는 것은 좋지만 주제의식이 박약해서는 좋은 작품을 쓰기가 어렵다. 이미지들은 어떤 정서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동원되어야 한다.★☆☆☆☆[4337. 2. 12.]   444□수련□채호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264, 문학과지성사, 2002   수련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이렇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그러나 연작은 집중력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 집중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철학이 있어야 하고 사고의 토대가 있어야 한다. 수련이라는 한 주제에 시로 집착하면 어차피 다른 대상으로 바꿔서 표시하는 비유의 체계에 들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수련이 연상되는 다양한 사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련이 사고체계 속에서 언어화되려면 단순한 대체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렇게 대체할 수 있는 출발선이 수련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그 시각을 뒷받침하는 사고방식, 즉 철학이다. 모네의 작품이 미술사의 조명을 받는 것은 그가 수련을 그렸다는 사실보다는 수련이라는 대상을 바라본 시각, 내지는 그 시각의 예술화 방법에 있는 것이다. 수련은 그 다음 문제이다. 이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수련을 다른 대상으로 바꾸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정신의 지평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열려야 하는가 하는 더 큰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인데, 바로 그 부분의 사고가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한계이다. 한자 역시 그다지 필요치 않는 도구이다.★★☆☆☆[4337. 2. 12.]   445□단 한 번의 사랑□최갑수, 문학동네 시집 44, 문학동네, 2000   내가 이 정도 묘사하면 내가 의도한 바가 전달되리라고 미루어 판단하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것은 신인들의 경우 태만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내가 의도한 대로 정확히 표현을 해도 때로 그 만큼 전달되지 않는 것이 이미지이고 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짐작대로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는 만큼 완전한 숙달에 이를 때까지 마음을 풀어놓지 않아야 한다. ‘밀물 여인숙’ 연작과 다른 작품들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것은 이미지를 잡아내고자 하는 집요함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관념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관념어를 섞으면 거의 치명상에 가까운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 이미지의 세계이다. 철저하게 단련을 해도 독자들의 미숙성 때문에 오독을 하고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흠집을 남기지 않으려면 내가 정확한 이미지를 써주어야 한다. 이 점만 좀 더 철저하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시인이다. 한자는 구시대의 유물이다.★☆☆☆☆[4337. 2. 12.]   446□미리 이별을 노래하다□차창룡, 민음의 시 83, 민음사, 1997   어떤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서울로 대표되는 도시문명과 정신의 관계를 파악해보자는 의도일 것이다. 시의 내용물은 정서인데, 정신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물질을 넘어선 정신의 세계인 자유에 닿게 되고 자유에 닿으면 정신의 해방을 추구하게 되며 해방은 정서보다는 정신의 문제여서 그런 의도를 담은 시들은 의식실험으로 나아간다. 시의 형태가 파괴되거나 건조해진다.   시집 전체에 걸친 구도를 의도한 것은 좋은데 자신의 의식과 싸우면서 이미지들이 가벼워졌다. 정신의 실험에서 가벼워졌다는 것은 말장난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 말장난들은 의도된 것이겠지만, 이 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뿌리를 건드리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위로 전락하고 만다. ‘목탁’ 연작이 좀 깊이 들어갔을 뿐 다른 부분은 좀 얕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둘기’ 연작은 서울의 겉만을 핥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좀 더 깊은 천착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런데 평론을 하는 사람이 한자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4337. 2. 13.]   447□우물□최영신, 자음과모음의 시 13, 자음과모음, 2001   어디까지가 시인지 시가 아닌지 하는 구별이 아직 안 되었다. 그래서 설명과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있다. 특히 시들이 긴 것은 꼭 그렇게 되어야 해서 된 것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시의 특징은 간결성이고, 그 간결함과 간단함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시인의 능력이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 묘사력이나 유추력은 나름대로 좋은데 그것을 너무 세세히 설명하려는 태도가 시를 지루한 것으로 만든다. 해야 할 말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구별하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비결이다.★☆☆☆☆[4337. 2. 13.]   448□열 자에 아홉 자의 단칸방□최병우, 경계시선 9, 문학과경계사, 2002   추억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울림을 갖는 데 아주 유리하다. 더욱이 그것이 오랜 세월을 뒤돌아보는 것이라면 더 그렇다. 그래서 나이가 주는 강점은 바로 그 추억이 풍성하다는 점일 것이다. 80나이에 시집을 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그 나이가 갖는 두터운 고정관념의 벽을 뚫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버리고 과거를 돌아보는 자의 고요한 세계가 잘 육화되었다. 나이 들면서 꾸미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인품이다.★★☆☆☆[4337. 2. 13.]   449□풍경 뒤의 풍경□최하림, 문학과지성 시인선 254, 문학과지성사, 2001   풍경 묘사로 감정을 대신하는 시 창작의 묘를 잘 아는 시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전혀 없는 듯이 시가 풍경 묘사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 그 풍경 스케치는 정밀하게 선택된 것들이어서 눈이 따라가는 대로 화자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드러낸 그 감정들은 이미지로 객관화되어 시의 마지막 행을 다 읽는 순간 한꺼번에 다가온다. 이미지가 강점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효과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가 시를 이끌어갈 때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면 안 되고 이미지 스스로 감정의 그 속성을 말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시를 쓸 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아주 잘 이루어졌다. 다만 이미지 뒤로 너무 물러서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아무리 이미지로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할 말은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자는 이제 이미지 자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4337. 2. 13.]   450□살아있는 것들의 무게□정양, 창비시선 158, 창작과비평사, 1997   군더더기가 거의 없이 아주 단단하게 잘 풀어나간 시다. 그런데 제2부를 넘어가면서 일기인지 시인지 구별을 할 수가 없어 아쉽다. 좌절한 혁명에 대한 회고조의 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나아갈 수 없기에 돌아보는 것은 자명한 귀결이지만 성찰이 성찰로 끝나고 나면 현재를 합리화하는 지름길이 된다. 역사와 혁명은 일상 속에도 있다. 한자는 시를 무겁게 한다.★★☆☆☆[4337. 2. 13.]    
54    시집 1000권 읽기 44 댓글:  조회:1982  추천:0  2015-02-11
  431□견딜 수 없네□정현종, 황금이삭.1, 시와시학사, 2003   정말 견딜 수 없는 시집이다. 그럴 듯한 관찰이나 비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삶의 깊은 통찰이나 깨달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을 길게 늘어진 모양으로 나열해 놓은 것이니, 그것을 시라는 양식에 담았다는 공로 빼놓고는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는 시집이다.★☆☆☆☆[4337. 2. 11]   432□내 안의 열대우림□정해종, 생각의 시 1, (주)생각의 나무, 2001   ‘당연히 일어날 것 이외에는 일어나지 않는’ 세상의 절망을 노래한 시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른 수준을 시들이 보여주고, 그 세계 또한 일관되게 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각 시가 갖는 형식도 모두 신선한 맛을 간직하고 있고, 군더더기 표현이 거의 없이 시가 아주 단정하면서도 화려하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정서를 과장되게 표현한다는 혐의가 남는다. 시집 전체에 비장미가 서려있는데, 개인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비장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과장으로 비치기 쉽다는 뜻이다. 이것은 자칫하면 진솔함과 진실성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경계에 와있다는 뜻이 된다. 바로 이 점만 경계하면 훌륭한 작품을 쓰는 진짜 실력 있는 시인이 될 것이다. 한자는 아무래도 불필요한 도구이다.★★★☆☆[4337. 2. 11]   433□매우 가벼운 담론□조말선, 제3의 시 9, 문학세계사, 2002   이제 시가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시대가 왔음을 이 시집은 보여준다. 이수명과 아주 많이 닮았고, 박서원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어쨌거나 이런 시인들의 행보는 시가 시를 위해서 존재하거나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그런 형태의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시를 보는 독자의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가 그 안에서 스스로 무성생식을 하는 그런 몸을 낳게 된 것이다.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하겠지만, 거기까지 간 뒤에 무엇이 남아 시를 말할 것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남는다.★★☆☆☆[4337. 2. 11]   434□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정채봉, (주)현대문학북스, 2000   짧은 시가 갖는 위력을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짧은 시는 잠언의 형태와 깨달음의 전달자 노릇을 하는데 아주 좋은 효과를 보인다. 이 시집들의 대부분은 그런 것들인데, 주로 사랑이 거기에 담겨있다. 그런 만큼 이미지들이 만드는 오랜 울림을 주는 시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너무 담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도가 짧은 시에 들어있는 것이 많다.★☆☆☆☆[4337. 2. 11]   435□새들은 난간에 기대 산다□조영순, 등불 아래의 시 10, 하늘연못, 2001   각각의 낱말들은 고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낱말을 많이 동원할수록 이미지는 많아지고, 그 이미지들은 무언가를 전해주려고 한다. 이 시집의 시들은 본래 하고자 하는 말에 비해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동원되고 있다. 그래서 본래의 뜻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이미지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시를 쓰면서 주제를 명확히 정하지 못한 채 썼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제를 먼저 선명하게 한 다음, 그 주제를 전하는데 긴밀하지 않은 이미지들은 아깝더라도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시가 산다. 이미지 몇 개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면 시 전체가 혼란스럽고 난삽해진다. 그리고 특수한 소재로 특수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잘 하면 신비한 느낌을 주지만 자칫하면 이상한 취미로 비치기 쉬우니 조심해서 결정할 일이다.★☆☆☆☆[4337. 2. 11]   436□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정일근, 문학사상사, 2003   시가 생활이고 생활이 시가 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청산유수로 전개되는 삶과 생각의 질서가 강물처럼 흘러간다. 한 번 제시된 생각과 이미지가 막힘이 없이 갈 곳으로 잘 찾아가서 마무리까지 한다. 시를 쓰는 방법만큼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를 이야기에 의존해서 쓰는 것과 여백을 남겨두지 않고 모두 설명하려는 것, 그리고 불교의 원형에 의존해서 생각을 전하려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그건 일종의 타성이기 때문에 감정의 울림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명작을 쓰기 위해서는 한 번 더 주춤거릴 필요가 있다.★★★☆☆[4337. 2. 11]   437□지상의 편지□조성림, 우리시대의 시인 100인 선집, 문학마을사, 2002   무리한 상상을 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연의 상징과 의미를 쉽게 풀어내는 능력이 좋다. 이미지가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거기에 삶의 의미를 담는 재주가 있다. 거기다가 추억이 주는 울림을 잘 살려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들이다. 일상의 인식을 새롭게 깨우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제 할 말을 다 하는 것은 아주 큰 능력이다. 살집이 너무 마르지도 않고 뚱뚱하지 않게 아주 알맞은 몸매로 다듬어졌다. 다만 설명을 하려고 하는 부분이 곳곳에 있고, 불필요하게 붙어있는 이미지들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덜어내는 것만 보충한다면 좋은 시를 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긴장과 구도가 계속되면 좀 지루해질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에 이 시인의 앞날이 달려있다. 한자는 불필요한 혹이다.★★★☆☆[4337. 2. 11]   438□눈잣나무□주경림, 문학아카데미 시선 131, 문학아카데미, 2000   사물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시각이 아주 참신하고 부지런하다. 그리고 그것을 형식에 담으려는 노력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건과 사고를 꼼꼼하게 시로 담으려는 성실함이 시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들이 사물에 동일시를 하여 거기에 생각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짜여졌다. 이 방법은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방법은 명징하게 드러나지만 너무 세세한 것까지 설명하려는 경향이 드러나게 된다. 실제로 시 곳곳에서 너무 많은 묘사가 이루어져서 오히려 군더더기로 느껴지는 곳이 많다. 시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대상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지만 그 비중이 문제다. 대상의 묘사에 너무 많은 설명을 하면 답답해지고,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면 관념화한다. 그래서 그 비중이 아주 중요한데, 이 시집에서는 대상에 대한 묘사가 더 많은 편이어서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시가 다양한 사회의 변화와 세계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어렵다. 좀 더 다양한 창작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교과서 식의 시만 가지고 바라보기 어려울 만큼 세상은 복잡하다.★★☆☆☆[4337. 2. 12.]   439□혼자 타오르고 있었네□조태일, 창비시선 187, 창작과비평사, 1999   뭐랄까?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씨앗을 만드는 풀이나 나무 같다고나 할까, 그런 분위기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깊다. 그렇기 때문에 시들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생각이 단단하게 뭉쳐졌다. 그때쯤이면 삶을 통찰할 수 있는 사상 내지는 사색의 흐름이 나타나야 한다. 이 시집에 나타나는 것은 죽음 때문에 그 반대편에서 빛나는 것들과 자신을 있게 한 과거에 대한 조명이다. 그것이 아주 단단하게 단련된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은 한 시인에게는 너무 큰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한자는 불필요한 흠이다.★★☆☆☆[4337. 2. 12.]   440□물빛, 그 영원□박주일, 만인시선 2, 만인사, 2001   시는 언어를 통해 나타나지만 생각은 언어를 뚫고 그 뒤의 컴컴한 세계를 드러내는 데까지 미쳐야 한다. 오래도록 다듬은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단순히 이미지만 가지고는 어려운 것이 시이기도 하다. 인식이 깊어지던가 할 말이 분명해지던가 해야 할 시집이다. 한자는 낡은 시의 유산이다.★☆☆☆☆[4337. 2. 12.]    
53    시집 1000권 읽기 43 댓글:  조회:1788  추천:0  2015-02-11
  421□바닷가 우체국□안도현, 문학동네, 1999   긴장이 좀 풀린 듯한데, 사물을 바라보는 눈의 긴장은 여전하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본 사물들의 집합과 그 집합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산만한 편이다. 아직 이데올로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도 있겠고,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잡지 못한 것이 문제겠다. 한자 역시 불편한 암초 노릇을 한다.★★☆☆☆[4337. 2. 8.]   422□젖은 눈□장석남, 솔의 시인 11, 솔출판사, 1998   대개는 이미지들이 일련의 사건 전개 순서에 따라서 인식이 되거나 마다마디가 끊어진 채로 머릿속에서 조합되는데 이 시집의 시들은 전체의 이미지들이 한꺼번에 이미지를 형성하도록 쓰여졌으니, 대단한 재주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 만큼 호흡이 길어져서 자칫하다가는 숨넘어가게 생겼다. 시를 읽는 훈련이 된 사람이 아니고는 소화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런데 불경을 뒤집어 읽었나보다. 공의 관문을 통과한 색이 이 세상에 뿌리는 색깔은 비단결 같은데, 그 실타래 끝에 놓인 단절을 보고서 삶이 도달해야 할 자리라고 한다면 비단은 한낱 거품이 아닐 수 없으나, 그 끝으로 간 인연이 다시 나타난다 하면 다시 비단의 무늬를 이룰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서 굳이 비단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을 바라본다면 동안거를 끝낸 자들이 갈 곳이 어디일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이상하리만치 현실에 대해 차가운 거리를 유지했던 미당 서정주의 옆얼굴이 언뜻언뜻 비치니 이게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한자 때문인가?★★★☆☆[4337. 2. 8.]   423□5분의 추억□윤병무, 문학과지성 시인선 248, 문학과지성사, 2000   세상의 구성요소들을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선택하고 짜깁기하는 능력이 좋다. 그럴 때 사건화 되는 이미지나 굳이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 표현들이 군더더기가 되지 않도록 생각의 질서를 한 번 더 다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자신을 도구로 하거나 대상으로 하여 쓰는 시들은 그것이 어떤 정서를 향해야 하며 그것이 독자와 관계를 맺을 때 어떤 반응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시집에서 한자가 꼭 필요한 곳은 딱 한 군데이니, 나머지 한자는 불필요한 셈이다.★★☆☆☆[4337. 2. 9.]   424□황천반점□윤제림, 민음의 시 60, 민음사, 1994   시에서 지식과 관념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언어는 그것이 지나온 역사와 배경이 있다. 그 배경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시로 적용하여 드러낸다는 것하고는 약간 차이가 있다. 원래의 개념에 너무 얽매이면 상상력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시 전체가 무거워진다. 1부의 시들이 그렇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한 주제로 몰입한 제2부의 시들은 소재주의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흠이다. 죽음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고, 그것은 사실 판단이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을 시에서 놓쳐서는 안 된다. 시집 전체는 주제가 몇으로 나뉘는 바람에 좀 산만한 느낌이 있다. 게다가 한자까지 끼여들어 그런 분위기를 가중시켰다.★☆☆☆☆[4337. 2. 9.]   425□성찰□전대호, 민음의 시 85, 민음사, 1997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세계를 사유하는 방식이 독특하고 그것은 낯설게 보여주는 수법도 나름대로 안정돼있다. 그런데 세계의 비밀과 허구를 파헤치기 위해 세계의 황폐함을 드러내는 방식은 분명한 정서와 방법이 확보되지 않으면 자칫 곁가지 잡기로 비치기 쉽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정착하려면 먼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정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정하고 나가야 한다. 방법과 내용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겠지만, 시가 너무 건조하다. 그리고 독특한 방법 가운데 너무 뻔한 방법이 드러나는 것은 전체의 긴장을 허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4337. 2. 10.]   426□지금은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용혜원, 책만드는집, 2001   말하고자 하는 정서가 분명하고 말들이 거기에 충실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고 그런 감정들의 나열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계속해서 새로운 소재로 새롭게 감정을 전달하려는 관찰력이 아주 좋다. 다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빼지 못하고 군더더기로 남겨둔 시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은 감정이 아무리 절실해도 시의 원칙에는 어긋나는 일이다. 자제하는 것도 시의 큰 덕목이기 때문이다.★★☆☆☆[4337. 2. 10.]   427□흰 책□정끝별, 민음의 시 69, 민음사, 2000   집의 상상력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집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안에 욕구불만이 가득 들어차서 어떤 방향으로든 불거져 나오는 형국이다. 그것이 자학인 것도 같고, 자학을 통해 세계의 모순을 파헤치려는 전투 같기도 한데,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감정의 나뭇가지에 목련꽃이 가득 펴있는 모습이다. 이런 것은 마음이 조급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시를 쓰기 때문이다.   시는 감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이 향하는 바가 우선 분명해야 하고, 그 방향이 섰으면 그것을 받쳐줄 상상력의 방법이 또렷이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좋고 큰 작품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주체 못할 감정이 때로 그런 일을 해주기는 하지만, 감정에 너무 맡기다 보면 수다스러워지는 법이다. 그 수다가 세계를 공격하는데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된다. 한자는 굳이 써야 할 곳이 아니라면 빼는 것이 좋다.★☆☆☆☆[4337. 2. 10.]   428□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정은호, 마이노리티 시선 19, 갈무리, 2003   시가 이렇게 간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격노하기 쉬운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감정을 자제하면서 상황을 냉정하게 제시할 줄 아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흥분하지 않는 것이 진정 싸움을 이기는 방법임을 아는 것이라면 이 시인은 그것을 안다. 유행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곳에서 홀로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시편들이다.★★☆☆☆[4337. 2. 10.]   429□비밀을 사랑한 이유□정은숙, 민음의 시 64, 민음사, 1994   한 상황에 대한 묘사는 아주 정확하고 꼼꼼하다. 그러나 의도가 너무 앞선 것 같다. 감정이 각각의 시에 엄살이나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쓰기 전부터 의도를 미리 깔아놓아서 생긴다. 의도 때문에 시야의 폭이 좁아지고, 좁아진 그 폭 때문에 상상력을 멀리까지 확산시키지 못해, 상황의 그 주변에서 비유를 찾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몰아가기에 바쁜 것도 그런 탓이다. 과장된 제스처는 감동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한자 역시 불편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4337. 2. 10.]   430□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정영선, 문학동네 시집 42, 문학동네, 2000   ‘나 아닌 것에 나를 집어넣어 보기’ 수법이 시집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동일시는 시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기법이다. 여기에 시인이 충실하다는 것은 시인이 시의 기본기에 충실하다는 것이고,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훈련을 오랫동안 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단순비유에 그치지 않고 보조관념의 뒤쪽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잠들어있는 언어를 새로운 모습으로 일깨우는 수준까지 다가가 있다. 이 점 아주 뛰어난 능력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의 한계 또한 없지 않다. 적절한 대상을 만나지 못하면 자기 생각을 나타내기 어렵다는 점이 그것이다. 시에는 어떤 대상을 만나지 않고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것들을 잡아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결국 마지막 한 관문이 남은 셈이다. 시작 수련 처음 한 동안은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좋은 훈련법이지만, 그 다음에는 그런 대상으로부터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줄 아는 것이 또 다른 방법이다. 물론 그 전제는 대상에 대한 사고 훈련이 되어있어야 한다. 이런 방법을 아는 시인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훌륭한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꼭 가 닿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다. 한자는 재삼 숙고할 일이다.★★★☆☆[4337. 2. 11]    
52    시집 1000권 읽기 42 댓글:  조회:2128  추천:0  2015-02-11
  411□끝을 찾아서□백인덕, 등불 아래의 시, 하늘연못, 2001   표현의 효율성에 대해 생각해볼 시집이다. 연작으로 꾸민 세계가 보여주는 놀라울 정도의 집요함과 장황스러움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입은 옷을 통하여 제대로 전달되는가 하는 의문에 그렇다는 답을 선뜻 주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동원된 표현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렇게 의도한 연결의 고리가 시의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데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것까지 아울러 생각해보아야 한다. 굳이 복잡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해서까지 복잡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그 의도에 대한 정당성을 시 안에서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 겁 많은 사람이 더 악랄한 척하는 법이다. 어렵게 한다고 해서 인생의 답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 몸부림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면 좀 더 말끔한 동작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한자 역시 어떤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굳이 쓸 필요가 없는 문자이다.★☆☆☆☆[4337. 2. 6.]   412□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박정대, 민음의 시 104, 민음사, 2001   이런 시들은 읽기 부담된다. 문명비판을 하자는 것인지, 자유로운 정신을 실험하자는 것인지,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자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저것 다 짬뽕통인 시를 써보자는 것인지, 끝내 그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속내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읽는 자의 세계관을 통하여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는데, 정작 쓴 사람은 그런 작업에 대해 냉소를 머금을 것이기 쉽다.   그러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작업이 스스로 정한 긴장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다면 그것이 문학이라는 관행이 인정하든 안 하든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형식 흔들기와 형식 지켜주기 사이를 넘나드는 시의 형태로 보아 어쩌면 이런 고민을 하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가면 뒤에 숨는 것은 시인이 할 바가 아니다. 형식이야 어떻든 독자가 감동하는 것은 행간에 숨어있는 시인의 진정성이기 때문이다. 그것만 보인다면 옷이 누더기인들 걱정하랴!★★☆☆☆[4337. 2. 7.]   413□그 인연에 울다□양선희, 문학동네 시집 54, 문학동네, 2001   사물을 통하여 그 배후에 잠재되어 있는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시인이고, 그것이 그리 복잡하지 않은 방법을 요구하는 것이 시라면 이 시집은 아주 좋은 시집이다. 시인은, 생활 속의 작은 사물과 소재에서 할 말을 분명히 찾아내는 아주 좋은 재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어쩐지 그 뒤쪽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야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역시 이 시집이 주는 숙제이다. 짧은 시가 갖는 함정과 한계를 그대로 안고 있다. 한자 역시 한계 중의 하나이다.★★☆☆☆[4337. 2. 7.]   414□가장 쓸쓸한 일□양정자, 문학동네 시집 46, 문학동네, 2000   꼼꼼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 시집 전체에 절절하게 드러난다는 것이 이 시인의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시는 생활의 발견만 가지고는 어쩐지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집이다. 수필과 일기와 시의 영역이 모호해지는 발상과 방법과 언어 가지고는 시의 긴장을 유지하기 어렵다. 시가 꼭 큰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물과 삶 속으로 파고드는 인식의 깊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이다. 시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굳이 스스로 채찍질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자는 시인이 스스로 불러들이는 한계이다.★☆☆☆☆[4337. 2. 7.]   415□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안도현, 현대문학북스의 시 1, 현대문학북스, 2001   자신이 근거했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서도 시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재주가 참 좋은 시인이다. 이 시집은 시인이 그런 범주의 시인임을 잘 보여준다. 발상과 일상의 관찰만으로도 시집을 엮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신에 이데올로기를 버린 자의 상상력이 지나치게 발랄하다면 그것은 스스로에게 또 다른 채찍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시의 변화가 아니라 변절일 것이기 때문이다. 시를 잘 쓰는 시인이 한자에 대해 유독 너그러운 것은 어인 까닭인가?★★★☆☆[4337. 2. 7.]   416□봄비 한 주머니□유안진, 창비시선 195, 창작과비평사, 2000   나이 들면 장식도 귀찮아지는가? 군더더기를 모두 잘라낸 간결한 맛이 새롭다. 그렇다고 나이 든다는 것이 자랑은 아닐 것이니, 나이는 먹는다 해도 시까지 나이가 든다면 그건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다. 나이 때문에 불가피하게 생긴 주름살도 있지만, 긴장이 풀려서 생긴 주름살도 적지 않다. 젊은 사람들의 주름살과 다른 것은 버릴 줄 아는 나이 때문일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한자는 버리기 어려운 일일까?★☆☆☆☆[4337. 2. 7.]   417□적멸의 불빛□오세영, 문학사상 신작시집, 문학사상사, 2001   어떤 때는 시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또 어떤 때는 시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것은 시를 만들어 가는 시인의 태도 때문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될수록 시다운 그릇에 담으려고 하는 시인의 노력에 곳곳에서 보인다. 그런 노력들이 선가의 냄새를 풍길 때는 때로 미욱하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적당한 그릇을 만나면 퉁! 하면서 영혼의 현을 울리는 깊은 떨림을 놓는다. 더구나 젊은 시인도 아니고 나이 지긋한 시인이 이렇다면 이것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나이 먹어서 느끼는 감정들이 낡고 늙은 형식이 아니라 아주 팽팽한 젊은 형식에 담겨 선명한 한 세계를 밝히고 있다.★★★☆☆[4337. 2. 7.]   418□아껴 먹는 슬픔□유종인, 문학과지성시인선 256, 문학과지성사, 2001   고립무원의 상황을 만들고 좌충우돌하며 보여주는 극단의 상상력이 다재다능함을 보여준다. 이미 세계를 보는 눈이 나름대로 확보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뒤집거나 비꼬는 방법까지도 잘 안다. 그런데 그것이 넋두리로 그치지 않으려면 자신의 내부 어디를 자극해야 세계가 아울러 반응할 것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애써 난도질해놓은 자학의 상처가 덧없이 아물고 만다. 그리고 그 전에 한자부터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4337. 2. 7.]   419□생명의 서□유치환, 한국대표시선집, 미래사, 1991   다루고자 하는 주제도 그렇고 어조도 그렇고 굉장히 크다. 그런 까닭에 현실의 어디에서부터 다루어야 할지가 분명하지 않아서 붕 떠있고, 그것이 관념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때로 그런 생각이 현실 속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만난 몇 작품은 아주 빼어난 형상력을 보이지만, 자신의 관념에 매달려서 시상을 풀어 가면 주제만 겉으로 드러나기 쉬운데, 그런 오류가 시접 전체를 관류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단련하는 어떤 치열한 정신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적당한 형상화의 방법을 만나지 못한 것이 흠이다.★★☆☆☆[4337. 2. 7.]   420□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유하, 열림원, 1999   주제도 이미지 전개수법도 선명해졌다. 이미지가 선명해졌다는 것은 사고 체계가 정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들이 상당히 질서정연해졌다. 이 질서는 혼돈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시집의 내용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내용을 채웠다는 사실이 그런 반증이기도 하다. 과거는 선명하기에 그것을 서술하는 방법도 덩달아 확실해진다. 그래서 이미지들의 질서가 깔끔해 보이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을 이제 갖추기 시작한 것일까? 장황스러움이 사라지면서 치열함도 함께 많이 줄었다. 그러나 주제를 한 가지로 몰고 가면서 언어를 동일한 초점을 향해 동원하는 수법은 여전히 뛰어나다.★★★☆☆[4337. 2. 7.]    
51    시집 1000권 읽기 41 댓글:  조회:2233  추천:0  2015-02-11
401□시와 하늘□박상배, 민음사, 2001   시가 성찰의 양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쓴 시집이다. 애써 무거운 표정을 짓지 않고 상상력을 가볍게 함으로써 묘한 탄력을 싣고 있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 써놓으면 말장난이 되고 말 텐데, 가벼운 터치가 발랄한 힘을 내는 것은 삶을 바라보는 깊은 통찰 때문이다. 가벼운 말투지만 아주 맑은 소리가 나서 곱씹게 한다. 한자는 못내 눈에 거슬린다.★★☆☆☆[4337. 2. 4.]   402□시멘트 정원□박경원, 민음사, 2001   묘사력이 뛰어난 시집이다. 보통 시들은 이미지가 의미를 전달하고 그것을 토대로 상징을 형성하는데, 이 시집은 시 한 편 한 편의 묘사가 한 덩어리로 다가와서 머릿속에 그림 하나를 그려놓는다. 이런 수법은 시에서는 낯선 것이다. 그래서 약력을 읽어보니 소설 쓰는 사람이다. 소설의 치밀한 묘사력이 시에 적용되어 성공한 경우이다. 그런데 그런 묘사는 분명한 주제를 동반하지 않으면 왕왕 뜬구름 잡기가 된다. 시에서 묘사는 거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상징으로까지 건너가야 한다.★★☆☆☆[4337. 2. 4.]   403□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이면우, 창비시선 211, 창작과비평사, 2001   삶의 성찰이 돋보이는 시다. 자신의 삶을 이만큼 낮추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시가 아주 독특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태도 때문이다. 삶을 바라보는 그런 시각이 방법론까지도 관철되어 불필요한 수사나 기교를 버리고 생각의 바른 질서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만큼 이야기가 끼어 드는 것은 당연하고, 자칫 늘어질 듯한 위태한 곳도 눈에 띤다. 또 다소 단조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가 불필요한 이미지를 버리고 이만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꿈이 없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장점이나 단점이다.★★★☆☆[4337. 2. 4.]   404□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이대흠, 창비시선 158, 창작과비평사, 1997   비유와 표현이 적실하고 대단한 울림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대상을 희화화하고 내 의도를 전하는데 큰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재기발랄함을 붙잡고 있는 것은 무겁고 둔탁한 주제여서 어쩐지 불편한 느낌을 준다. 속으로는 슬프면서도 애써 농담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어떤 때는 그것이 대단한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반대로 그것이 자신의 눈을 찌르는 눈썹이 될 수 있다. 풍자라면 좀 더 깊은 풍자를 해야 하고 반어라면 심기를 드러내지 말 일이다. 파헤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 금이 아니라 시체가 나오기 때문이다.★★☆☆☆[4337. 2. 5.]   405□다문리 박꽃□박소향, 나남시선 62, 나남출판, 2002   시를 참 잘 쓰는 시인이다. 조용한 목소리로 감정을 애잔하게 깔아서 적당한 살집에 고른 이미지로 할 말을 포장할 줄 안다. 어떻게 보면 서정시의 한 전형을 보는 듯도 하다. 그 만큼 시를 꼼꼼하게 쓸 줄 안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시선이 자신의 내부로 향해 있고, 그런 태도는 자칫 현실 인식에 둔감해지기 쉽다. 자칫 닫힌 세계에 안주하기 쉽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것이 원래 좀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이미지로 대치하려는 것인데 그게 덜 되어서 나타나는 설명조의 묘사가 군데군데 눈에 띤다.★★☆☆☆[4337. 2. 5.]   406□풀잎□박성룡, 창비시선 170, 창작과비평사, 1998   뭐랄까, 옛날에 시를 쓰던 사람들의 시를 보면 언어에 묘한 색깔이 있다. 언어가 지닌 이미지를 크게 손상하지 않고 그 안에 자신의 세계를 겸손하게 담으려는 그런 몸짓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미지를 마구 부려서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으로 몰아가는 요즘 시인들한테서는 볼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이 시집의 앞부분에서는 그런 느낌이 물씬 풍긴다. 아마도 그것은 시를 통해서 추구하는 정신의 세계가 그 당시에 보여주고자 했던 어떤 집단 주술성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의 백자 항아리에서 느끼는 그런 고졸한 맛이다. 시집의 뒷부분에서는 나이든 자의 달관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체로 평이한 편이다. 군더더기를 좀 줄였으면 하는 기대가 있는데, 그게 작품의 수준을 크게 좌우할 것 같지는 않다. 한자는 정말 한자처럼 쓰이고 있으나, 대부분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4337. 2. 5.]   407□풀밭의 담론□박진형, 만인시인선 4, 만인사, 2001   의미가 이미지를 따라가면서 무리하지 않고 제 색깔을 내도록 하는 수법이 굉장히 난숙하고 냉정하고 정확하다. 뜻을 뜻으로 말하지 않고 이미지로 담아서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도록 하는 방법을 아는 시인이다. 이것은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절제력과 통제력을 갖추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인데, 거기까지 도달했다. 다만 이미지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주제가 때로 모호해지는 수가 있어 그것이 흠이다. 더구나 절 쪽으로 뻗은 상상력은 쓸데없이 시를 어렵게 한다. 한자는 역시 문제이다.★★☆☆☆[4337. 2. 6.]   408□지금 어디 계십니까□백주은, 민음의 시 93, 민음사, 1999   어디에도 담기지 않으려는 말랑한 생각이 힘있고 재치 있다. 좌충우돌 뻗어 가는 발상이 재미있다. 특히 시에 이야기의 구도가 많이 들어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장점이기보다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시에도 이야기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 전개수법이 소설과 좀 다르다. 그 특징을 아직 소화하지 못한 흔적이 시집의 앞부분에서 많이 드러난다. 시가 지닌 순발력과 순간의 집중력, 그리고 돌파력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자는 불필요한 도구이다.★★☆☆☆[4337. 2. 6.]   409□노을의 집□배문성, 민음의 시 107, 민음사, 2002   특별한 장치를 거치지 않고 시가 될 만한 것을 직접 드러내서 시를 쓸 줄 아는, 보기 드문 재주를 가진 시인이다. 이럴 경우 감정이 절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장난으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랑에 관한 감정이 절절하게 잘 살아있어, 아마도 사랑시집으로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과 따스함이 적절히 공존하는 것이 심금을 울린다. 중간의 길다란 시들은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낫다.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4337. 2. 6.]   410□두 눈 뒤집힌 사랑□안덕상, 작은 시선 16, 인화, 2002   ‘연’ 연작은 빼어난 작품이다. 생각이 연이 지닌 속성의 깊은 곳까지 깊이 짚어 들어가서 남들이 찾아내기 어려운 부분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작품 때문에 다른 작품들이 죽는다. 대체로 작품들 간의 수준 차이가 많이 나고, 이미지들이 단순히 다른 것으로 대치되는 선에서 시들이 마무리되고 있다. 좀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도록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 사이의 영역을 매끄럽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4337. 2. 6.]    
50    시집 1000권 읽기 40 댓글:  조회:2171  추천:1  2015-02-11
  391□뿔□신경림, 창비시선 215, 창작과비평사, 2002   기량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고 신경림 시 세계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모든 언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곳을 향해 집중하고 있고, 그 언어들이 싣고 가는 생각이 분명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무엇을 노래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쓴 시들이다. 그러나 체험의 과거세계는 꿈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회고조의 시가 갖는 한계는 미래의 세계를 보여주지 못하고 전망을 잃기 쉽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이 값하고 맞물리면 더더욱 그렇다.   이 시집에서는 그 전 시집과 다른 것이 두 가지가 보인다. 문장부호와 한자가 그것이다. 그 전의 시집들을 보면 거의가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용하더라도 극히 제한된 시들에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는 첫 부분부터 아주 분명하게 마침표와 쉼표를 사용하고 있다. 앞부분의 시들은 도치법을 많이 쓰고 있는데, 그 때문에 의미의 맥락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 뒤로 가면서 어떤 시에서는 마침표가 있고 또 없기도 하다. 다른 시집에 비해 문장부호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나마 일정하지도 않다. 이것은 시인이 문장부호에 대해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신경림 같은 대가급 시인이 문장부호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문장부호 역시 닿소리나 홀소리와도 같이 엄연히 우리 말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될수록 정확히 써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말 체계에서 문장부호를 굳이 빼야 할 만큼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많은 시인들이 이 점을 소홀히 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한자이다. 이 시집에서는 한자가 액면 그대로 나타난다. 괄호로 처리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한자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이 점 역시 앞의 문장부호와 마찬가지로 신경림 같은 대가급 시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것이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자는 현재 우리말의 체계에서 외국어에 속한다. 아무리 우리가 오랜 세월 한자 문화권에서 한자 없이 살기 어려운 생활을 해왔다고 하더라도 국가에서 공인하는 어법체계가 있는 것이고 굳이 그 체계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없다면 원칙대로 써주는 것이 글을 갈고 다듬어야 하는 시인들이 제일 먼저 할 일이다. 한자는 우리말 체계에서 외국어이다. 그것도 제2 외국어이다. 그러므로 굳이 써야 할 상황이 온다면 괄호로 처리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다. 게다가 한자는 지배층의 논리를 강화하는데 기여해왔고 지금도 지배층의 배를 불리는 역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런 문자를 시인들이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 참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4337. 2. 1.]   392□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고운기, 창비시선 208, 창작과비평사, 2001   시에 꿈이 사라졌다. 비단 이 시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4년으로 접어드는 현재 시점에서 400권 가까운 시집을 읽었지만, 그 많은 시집 속에는 꿈이 없고, 안타까운 과거에 대한 회상과 한 개인의 무력감이 난무한다. 이 시집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허무감 같은 것을 쓰고 있다. 신경림의 시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이가 들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그런 시들이다. 그러나 시는 나이하고는 상관없는 양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10대의 예민한 감수성을 담는 것이 시이다. 10대는 몸부림치고 있지만, 그 몸부림은 꿈 때문에 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요즘 시집들에서는 그런 꿈을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시가 벌써 겉늙었다는 얘기다. 이 시집은 늙은이가 쓴 시집이다. 꿈이 없으면 늙은이이다. 많은 시집이 늙어버렸고, 그 늙음이 현재 한국 시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버리지 못한 한자에서는 학력의 냄새가 난다.★★☆☆☆[4337. 2. 2.]   393□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강신애, 창비시선 217, 창작과비평사, 2002   이미지들끼리 엮어 가는 구조의 튼튼함이 돋보인다. 이미지에 대한 오랜 수련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쓰기 어려운 그런 시들이다. 그런 튼튼한 구조를 만드는 시작법은 규모가 큰 작품에 어울리는데, 지금 여기서 노래하는 세계는 극히 사사로운 공간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좀 아쉽다. 시를 쓸 때 이미지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주제가 흐릿해지는 수가 많다. 생활에서 얻은 선명한 이미지들을 사용하려고 하고, 애써 얻은 이미지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생각을 그것으로 대치하려는 욕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제에 비해 표현이 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비율의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다. 그래서 할 말을 직접 말해버리는 과감한 태도도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시가 건조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한자도 눈에 거슬리는 부호다.★★☆☆☆[4337. 2. 2.]   394□붉은 밭□최정례, 창비시선 210, 창작과비평사, 2001   하고자 하는 말을 묘사로 대신하는 방법은 시 창작법의 고전에 해당하고, 이 시들은 그런 방법에 아주 충실하다. 그리고 대신하는 그 거리를 멀리 띄워서 독자들이 긴장하게 만드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방법들이 독자를 끌어들이려면 문명과 계층의 동일한 지층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 단순히 그런 기법을 배워서 자신의 사사로운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애써 터득한 그 기술로 파헤친 성과에 대한 보람을 얻기 힘들뿐더러, 적절치 못한 그 방향이 만드는 방법상의 난해성 때문에 결국 독자들이 시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표현의 수법이 어려운 만큼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성과에 만족하는 성취감을 탓할 필요는 없겠으나, 태산명동에 서일필의 운명을 벗어나기 힘든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서로 다른 것을 연결시키는 능력이나 작은 것을 잡아서 큰 것을 말하는 능력은 감탄할 만하나 그렇게 해서 표현한 내용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눈을 조금만 더 바깥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귀족으로 사는 것을 말릴 일은 아니나 귀족 티를 내는 것은 남들 눈에 역겨워 보이는 법이다. 한자는 불필요한 치레이다.★★☆☆☆[4337. 2. 3.]   395□팽이는 서고 싶다□박영희, 창비시선 209, 창작과비평사, 2001   회색분자들이 다 전향서를 쓰고 떠난 자리에서 아직도 존재의 팽이를 돌리고 있는 낡은 사람이 있어, 오히려 그 낡음이 광채를 내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창비에서 이런 시집을 내다니! 이게 어쩐 일인가? 전향하지 않는 것은 똑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임을 포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눈물겨운 절규를 이 시대의 한 역설로 만든 창비 편집자들의 오만과 오판을 물어야 할 시집이다. 장난쳐 보니 재미들 있으신가?★★☆☆☆[4337. 2. 3.]   396□물 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박형준, 창비시선 216, 창작과비평사, 2002   자신의 수사가 먹혀들면 자신감을 얻고서 상상력에 기대어 시를 쓴다. 그러면 시에는 이미지가 논리를 갖추게 되고 깨끗하게 복원되지만 상상력만 남고 느낌이 사라진다. 논리가 돌출된 시. 내가 지금 도달한 자리에서 보니 남들이 가고 있는 길이 엉뚱한 곳이라고 해서, 그들이 잘못 가고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다. 나중에 그들이 도달한 자리가 내가 지금 그들을 보듯이 그들이 나를 볼 날이 곧 오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리 잘못 가고 있다고 해도 때로는 그것이 그들의 책임이 아닐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면 안 된다. 스스로에게 좀더 겸손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겸손은 천품이어서 갈 데까지 가게 된다. 끝내 버리지 못하는 한자처럼.★★☆☆☆[4337. 2. 3.]   397□거미□박성우, 창비시선 219, 창작과비평사, 2002   시를 참 잘 쓰는 시인이다. 사물을 보는 눈도 독특하지만, 그런 인식을 일정한 생각의 질서에 담아서 배열할 줄을 아는 시인이다. 대개는 말장난에 빠져들거나 그것을 그럴듯한 의미 속에 집어넣는 것이 대부분의 시인들이 하는 일인데, 자신의 체험과 인식을 어떻게 짜면 그것이 읽는 이의 세계에 깊은 울림을 주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아는 시인이다. 그리고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른 긴장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이 시인의 재목이 큼을 보여준다. 대단하다.   다만 그런 표현과 발상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어떤 방향인지 좀 불분명한 것이 흠인데, 그 방향을 잘 설정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자신의 달팽이 껍질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 지금, 이 시집의 세계만 가지고는 큰 나무가 되기 어렵다. 좀 더 넓은 세계를 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시만 가지고는 안 되는 구석이 있다.★★★☆☆[4337. 2. 4.]   398□저 꽃이 불편하다□박영근, 창비시선 221, 창작과비평사, 2002   좌절감이 너무 깊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울하게 한다. 시대가 그러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몸부림쳐야 겨우 목숨을 보존하는 세상에서는 몸부림 자체가 희망이 될 수 있다. 그 몸부림의 자국이 열어주는 희망이 시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면 시대는 정말 깊은 골짜기까지 쑤셔 박힌 것이다. 이 시집에 의하면 세상은 그렇다. 자신의 생각 밖에 존재하는 그 어떤 세계를 좀 더 깊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이 시집을 덮으며 떠오른다. 몇 개 안 되는 한자는 끝내 청산할 수 없는 유산일까?★★☆☆☆[4337. 2. 4.]   399□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강형철, 창비시선 220, 창작과비평사, 2002   생각이 좀 안이하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 시집이다. 절실해서 쓴 것들이 별로 없다. 의무감 비슷한 태도로 쓴 것들이기에 기교도 그럴 듯하고 주제도 나름대로 다 담겨있지만 가슴을 후려치는 울림이 없다. 분노도 아니고 자성도 아니고 회고도 아니고 그냥 관찰이다. 주제의 범위와 발상의 긴장을 좀 더 팽팽하게 조여야 좋은 시가 나올 것이다. 한자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구시대의 찌꺼기 아닌가?★★☆☆☆[4337. 2. 4.]   400□중독된 사랑□박서진, 문학아카데미 시선 128, 문학아카데미, 2000   시가 지극히 단순한 양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시집이다. 일상의 아주 자잘한 감정과 발견들을 놓치지 않고 잘 엮어놓았다. 부담가지 않는 주제를 가벼운 터치로 건드려서 시로 만들었다. 그러나 시가 단순한 양식이라고 해서 인식까지 단순해서는 안 된다. 삶의 배후에 도사린 어떤 손길들이나 정서를 깊이 천착하는 고민은 단순한 양식일수록 더욱 치열해야 한다. 그리고 주제가 사랑과 일상 두 가지로 갈라진 것도 이 시집의 약점이다.★★☆☆☆[4337. 2. 4.]    
49    시집 1000권 읽기 39 댓글:  조회:1986  추천:0  2015-02-11
  381□황홀한 물살□강인한, 창비시선 183, 창작과비평사, 1999   전망이 없다는 사실 한 가지만 빼면 좋은 시들이다. 적당한 표현과 적당한 삶의 무게와 인식 이런 것들이 잘 어울려서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온 삶의 진폭이 문제가 된다. 평범한 세월에 평범한 삶, 그리고 거기에다가 평범한 깨달음으로 이어진 삶이라면 시가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살아온 것이 시의 장기가 되지는 않는다. 평범한 그 세월 속에서도 살아온 세월 그 이상의 어떤 것을 바라보는 눈을 잊어서는 안 된다.★★☆☆☆[4337. 1. 30]   382□흰 길이 떠올랐다□정윤천, 창비시선 190, 창작과비평사, 1999   제1부의 작품들은 아주 빼어난 작품이다. 마치 백석의 시가 생각날 정도로 시골의 풍경을 정밀하게 복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들은 과거의 추억에서 재구성해낸 것인데, 그 방법이 아주 독특하다. 소설 같기도 하고 환타지 같기도 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옛날의 시골 추억을 끄집어내는 아주 기발한 발상이 눈을 끌어당긴다.   그런데 과거의 추억에서 퍼 올릴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제약이 있다. 소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거기에다가 시대의 문제점까지 담으려 한다면 그런 제약은 빨리 온다. 그리고 시골의 현실을 피하지 않으면 불가피한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뒤쪽으로 가면서 대상은 나의 기억으로부터 주변의 인물로 확대되어 가는데, 접근하는 방법이나 정서는 많이 상투화된다. 제1부에서 보여준 세계는 분명히 시의 새로운 영역을 넓힌 노작들이다. 한자는 역시 눈에 거슬린다.★★☆☆☆[4337. 1. 30]   383□사무원□김기택, 창비시선 185, 창작과비평사, 1999   아주 침착하고 정밀한 묘사가 눈에 확 들어온다. 묘사 시의 위력을 아는 시인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밀하게 생각이 가 닿는 대상을 베끼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렇게 묘사가 완벽에 가까울 경우, 그렇게 묘사된 대상들의 집합이 의식의 방향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방향이 어디를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시의 품격이 결정된다. 바로 이 점에서 몇 가지로 초점이 흩어져있는 것이 옥의 티라면 티다. 한자 표기도 그렇다.★★★☆☆[4337. 1. 30]   384□먼지는 무슨 힘으로 뭉쳐지나□정복여, 창비시선 193, 창작과비평사, 2000   세심한 관찰력과 섬세한 묘사가 출중한 시집이다. 그 정도면 시를 만드는 재주는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그런데 표현과 내용의 불협화음이 문제다. 이 시집에서 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쓸쓸함과 허무함인데, 그것을 나타내는 표현들은 너무 생기발랄하다. 물론 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그 발랄함이 지나치면 생의 약동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스스로 괴리를 만드는 것이다. 제목도 좀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다.★★☆☆☆[4337. 1. 31]   385□수런거리는 뒤란□문태준, 창비시선 196, 창작과비평사, 2000   아주 독특한 시 세계이다.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시골의 세계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많은 이미지들이 이제는 갈 수 없는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1970년 생이면 이제 나이 서른 초반인데, 칠순 노인네들도 쓰기 어려운 그런 세계를 그렸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전통 사회를 관류하는 죽살이의 인식과 방법이 아주 잘 요약되어 있다. 비유가 너무 많은 탓에 읽는 속도가 늦어지지만 그런 장식조차도 그 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보일 만큼 독특한 시집이다. 한자는 불필요한 수사이다.★★★☆☆[4337. 1. 31]   386□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장석남, 창비시선 204, 창작과비평사, 2001   말하는 방식이나 발상법이 아주 독특한 시인이다. 지루한 어법이 특징이랄 수 있겠는데, 아마도 이것은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것을 제시하는 방법의 특성 때문이다. 현상의 배후 어떤 곳까지 생각의 추가 닿아있어 시의 한 특징이랄 만한 분위기가 담겨있다. 이것은 높이 살 일이다. 그러나 그 만한 재주로 한 감정만을 집중하여 탐닉하는 버릇은 좋은 것이 아니다. 고승이 말을 잘 하지 않는 것은 말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말이 가져올 그 말 바깥의 세계의 소멸 내지는 왜곡 때문이라는 것을, 도사의 어투를 내는 사람들은 한 번쯤 경건하게 생각하여야 할 일이다. 상처 없는 영혼 없듯, 그 상처가 영혼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한자 역시 마찬가지이다.★★☆☆☆[4337. 1. 31]   387□살고 싶은 아침□정철훈, 창비시선 202, 창작과비평사, 2000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이 들어 있어서 그 열정이 시를 길게 만든다. 할 말이 분명하여 시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하는 시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저력도 있다. 그러나 방향과 방법은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시의 칼끝이 찔러야 할 가장 민감한 부분이 어딘가를 알아채는 것이 시를 칼로 선택한 시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할말이 많기 때문에 시가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길어진 시에서 군더더기가 발견된다면 그건 문제이다. 그런 사소한 문제점만 해결된다면 이 시집의 호흡은 대작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간간이 끼어있는 한자는 제일 먼저 청산할 일이다. 그 한자 때문에 역사가 진보하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할 일이다.★★☆☆☆[4337. 1. 31]   388□오랜 밤 이야기□김수영, 창비시선 201, 창작과비평사, 2000   묘사력이 좋고 이야기를 짜나가는 구성력도 좋다. 특히 2부의 세계는 다른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세계인 데다가 개인의 체험과 깊이 연관되어 있어서 우리가 시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서사와 전설의 정서까지도 살릴 수 있는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전체를 볼 때 시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혹은 정서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먼저 주제를 분명히 하고 소재를 접하는 것이 시가 좀더 울림이 커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이미지는 어떤 의미를 울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지가 그 이미지의 존재로 그치는 경우가 곳곳에 포진해있다. 시의 긴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낸다. 그리고 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느낌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4337. 2. 1.]   389□시를 찾아서□정희성, 창비시선 207, 창작과비평사, 2001   사람이 나이 들면서 말수가 적어지는 것은 말의 헛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시 또한 그럴 것이다. 나이와 더불어 잔재주가 사라지고, 잔재주가 사라진 자리에 깨달음이 온다. 시가 짧아지는 것이 남은 생이 짧기 때문인 것은 아니니, 시대가 갈 길을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잠시 허둥거린 증거라면 그것은 여태까지 시대가 가르쳐준 길을 걸어온 자의 황망스러움이리라. ‘꽃샘’ 같은 절창은 나이를 넘어서도 제 길을 버리지 않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귀한 정서이다. 한자는 그런 노력을 갉아먹는 괴물이다.★★☆☆☆[4337. 2. 1.]   390□밥상 위의 안부□이중기, 창비시선 206, 창작과비평사, 2001   농촌을 배경으로 시를 쓴다면 소재주의를 벗어나기 어렵거나, 소재주의를 벗어나면 관념의 세계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아마도 처음으로 그 두 가지의 함정을 벗어난 시가 나오지 않았는가 싶다. 다만 초점이 두 가지로 흩어져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흠이지만, 아마도 그 흠이 소재주의에 떨어지지 않은 처방일 수도 있겠다. 다음 시집에서는 좀 더 선명한 방향이 필요하다. ‘늙은 집’은 절창이기는 하지만, 그쪽으로 경도되었다가는 깊은 수렁으로 빠질 것이다. 그쪽으로 이미 기운 것은 이 시집의 세계에 큰 보탬이 안 된다. 한자가 족쇄가 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것이 못 된다.★★☆☆☆[4337. 2. 1.]    
48    시집 1000권 읽기 38 댓글:  조회:2690  추천:0  2015-02-11
  371□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고재종, 문학동네 시집 25, 문학동네, 2001   언어가 시로 점화되는 시점이 인식의 어느 지점이냐에 따라 시가 갖는 생동감이 각기 다르다. 인식의 현장에서 언어가 촉발되면 생동감이 있다. 그때 언어를 동원하는 자의 관념성이 현장감에 실려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어떤 세계관이 있고, 그것에 따라서 인식이 이루어지면 언어는 동원된다. 마치 한 가지 목표를 전하기 위해 우격다짐 식으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봉사한다. 언어는 희생될 때가 많다. 대체로 노동시나 민중시 계열에서 이런 과격한 투쟁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언어가 갖는 내밀한 작용과 감성은 그런 강렬한 주제의식 때문에 시의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대체로 동원된 말들로 꾸며졌다. 그러다 보니 어떤 주제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언어들이 호출 당한 느낌이다. 감각과 체험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언어가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가 미리 준비되고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인식과 언어가 동원된 모습이다. 이런 시들은 주제가 강렬하다. 그리고 그것은 농촌의 현실을 전달하기 위한 메시지가 갖는 불가피한 속성이기도 하다. 농촌의 정서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는 시의 모습인데, 실제로 이 시집 속에는 농촌 문제가 거의 들어있지 않다. 현장만 농촌일 뿐 시인 자신의 내면 풍경이 전면으로 드러나 있다.   이것은 어투의 문제와 충돌을 일으킨다. 그 충돌은 시의 전면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관과 인식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이 농촌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농촌의 정서와 민중성을 끌어안는 더 큰 그릇으로 성장해가는 한 과정이기를 바랄 뿐이다. 전에 나온 시집이 뜬구름 잡듯 떠돌았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세계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말하는 방법이 좀 더 뚜렷해졌다는 뜻이다. 대신에 자신의 안으로 깊이 들어박혔다. 농촌의 현실을 노래하던 시인으로서는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4337. 1. 23.]   372□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푸른숲, 1991   시의 한 기준점이 될 듯한 시이다. 시집이 처음 나온 지 10년만에 100쇄 발간을 했으니, 일반 독자가 훨씬 더 많이 읽었다는 뜻이고, 이것은 바로 일반독자와 이른바 문단독자의 경계점을 가르는 그 지점에 아주 잘 살아있는 시가 되겠다. 일반독자들의 관심은 주로 사랑인데, 이 시집은 일반독자들이 약간 오해한 것 같다. 이 시집의 정서는 사랑이기보다는 삶이 피할 수 없는 어떤 세계에 대한 고뇌를 노래한 것이다.   그 중에 사랑이라는 감정도 들어있다. 그런 감정들을 노래한 시가 한 열 편 가량 된다. 열 편이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시집의 전체 방향을 좌우할 형편은 아니다. 특히 이 시집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리를 찾아가는 자의 고뇌 비슷한 것인데, 사랑이 그러한 쓸쓸한 배경 앞으로 도드라져서 사랑과 그 사랑이 만드는 삶의 공허감으로 연결이 되어 사랑을 노래한 시집으로 오해하게 된 듯하다. ‘홀로서기’처럼 좋은 사랑시 한 편만 들어있어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이니, 이 정도면 오히려 많은 수가 들어있는 셈이고, 그것이 독자의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오히려 이 시집에는 사랑말고도 더 중요하고 인생의 깊은 통찰을 추구하는 세계가 들어있다. 그런데 그 세계가 추구하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는 작품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언저리에서 무언가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건 아주 중요하다. 머지 않아 그 경계를 뚫고 그 안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용혜원이나 서정윤 같은 삼류 사랑시하고는 다른 구석이 있다. 그리고 문단의 시들로부터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 거리는 그가 현재 정신과 영혼을 실험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명상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명상의 도달점은 인간이겠지만 그 과정이 사람의 삶과 문학을 아름답게 하므로 이 시집은 그런 과정을 담아낸 공이 있다. 그가 어디에 도달하든 이 시집은 시가 닿아있어야 할 한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4337. 1. 26.]   373□전장포 아리랑□곽재구, 오늘의 시인총서 29, 민음사, 1985   할 말 많은 것이 시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표현이 주눅들었다. 시를 쓰는 능력으로 보아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하고 어디까지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닌데 전혀 그런 절제를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시가 나온다. 아마도 시대의 문제에 집착한 까닭이리라. 그런데 마치 독립군들의 외침 같은 느낌이 든다. 교사의 이야기를 하다가 친척의 이야기를 하다가 뿌리뽑힌 자들의 심정을 이야기하다가, 이야기들이 온 나라 모든 계층으로 뻗어있다. 아마도 의식이 계급화 되기 이전의 시들이기 때문이리라. 같은 말이라도 분명한 방향을 설정하고 말하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안 된 것은 1980년대의 업보이리라. 이 시집의 성과라면 운율인데, 그 운율도 너무 많은 이야기들에 붙잡혀있다. 뒤쪽의 장시는 차라리 다른 시집 한 권으로 독립시키는 것이 그 시를 위해서나 이 시집을 위해서나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4337. 1. 27.]   374□꿈의 페달을 밟고□최영미, 창비시선 175, 창작과비평사, 1998   시집 전체에 흐르는 주제는 사랑인데, 그 사랑이 개인의 사랑 체험에 머물러있고, 그 주변에 사회에 대한 마음의 짐이 찌꺼기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오히려 사랑의 이야기에서도 주제가 흩어진다. 시는 주제에 대한 감정이 분명해야 하는데, 그것이 희박한 것이 이 시집의 단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일기장에 써놓아야 할 것들이 시라는 옷을 입고 나타난다. 표현보다는 주제에 이 시집의 초점이 가 닿아있는데, 그 주제조차도 분명치 않아서 시가 무력해졌다. 사랑을 말하더라도 어떤 사랑을 말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정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 그것을 전달해주는 방법과 표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4337. 1. 29.]   375□변명은 슬프다□권경인, 창비시선 181, 창작과비평사, 1998   시를 참 잘 쓰는 시인이다. 그리고 아주 큰 세계를 노래하고, 아주 큰 작품을 쓸 수 있는 시인이다. 이런 시인을 보면 한국 시의 장래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 시인은 삶을 규정하고 삶을 열어주는 어떤 근원을 분명히 보고 그것을 노래하고 있다. 죽음, 외로움, 고통 같은 것이 그런 것들인데, 그것을 그냥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긴 구도를 이루는 한 원리로 보고 있다는 것이 다른 시인들과 다르다. 그것은 삶이라는 이 지루한 운동의 논리를 깨닫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긴 안목이 시를 아주 단단하고 큰 것으로 노래하게 한다. 그래서 단시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시가 다소 어렵고 거창해 보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점이 아니다. 이 시인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고, 그리고 그 장점은 머지 않아 자신의 장점을 가장 크게 살릴 중요한 주제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의 단련을 좀 더 거쳐야 한다. 지금 도달한 세계만 가지고는 어렵다. 한 번 더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으니, 그 관문을 통과하면 위대한 세계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 관문을 정확히 통과하려면 스승이나 도반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이 걱정이다. 산에 가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그런 세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정진하여 이룰 수밖에 없는 그 높은 고지가 바로 코앞에 닥쳤는데, 이 좁다란 한국 시를 위해서라도 그 봉우리를 넘기 바란다. 한자는 버려야 할 유산이며, 다음 시집에서는 제목을 좀 더 적절한 것으로 뽑을 필요가 있다.★★★☆☆[4337. 1. 29.]   376□성에꽃 눈부처□고형렬, 창비시선 171, 창작과비평사, 1998   활구 아래 득도하면 온 우주를 구원하지만, 사구 아래 득도하면 제 몸뚱이 하나 건지지 못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글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요, 말 중에는 해야 하는 말이 있고, 해도 되는 말이 있고, 하나마나 한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 법이다. 무릇 시인 된 자가 해서는 안 될 말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 없는데, 이 시집에는 하나마나한 말들이 가득 차 있는 가운데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많이 끼어있다. 체험하지 않은 추측은 관념일 뿐이다. 체험했다고 해도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물어야 할 것들이라면 절간 몇 번 드나든 발길로 대웅전 위에 올라앉아 함부로 설법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절간에 침묵수행이라는 것이 괜시리 있는 것이 아님을 생각할 일이다. 한자가 왜 필요한가를 되묻게 하는 시집이다. 83쪽의 는 일 것이고.★★☆☆☆[4337. 1. 30]   377□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노향림, 창비시선 180, 창작과비평사, 2000   색다른 표현이 시인의 중요한 임무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면 시에 멍 자국이 남게 된다. 이 시집의 곳곳에 그런 멍 자국이 보인다. 대체로 시의 이미지들이 스스로 존재하는 듯하다가도 다른 무엇을 위해 봉사하거나 희생하는 쪽으로 급선회하는 경우가 많다. 표현은 의미를 전달하면서 이루어져야 100퍼센트 힘을 발휘한다. 그렇지 않고 표현이 표현으로만 남아있게 되면 공허하게 된다. 칸트의 말투를 빌자면, 내용 없는 표현은 공허하고, 표현 없는 내용은 맹목이다. 좋은 표현들이 의미를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해서 공허해진 곳이 아주 많다. 그리고 이미지들이 서로 인과관계로 물고 물리면서 이어져야 하는데, 연 구분이 된 많은 시들에서 그 전후 관계가 새로 설정되어야 할 듯한 것들이 많았다. 한자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스스로 답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4337. 1. 30]   378□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이경림, 창비시선 167, 창작과비평사, 1997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능력이 있다. 바로 그런 부분이 시인만의 고유한 영역이 될 것인데, 그런 점에서 이 시집에 보이는 그런 공간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다만 그런 공간이 뻔히 예상되는 결론이나 세계관과 결합하면 애써 발견한 그 세계마저 퇴색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식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시들은 스스로 굉장한 절제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있는 형식들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개인의 가슴속에 들어있는 정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서의 촉수가 가 닿는 대로 언어를 쏟아놓게 된다. 그런데 나온 대로 쏟아버리고 말면 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시와 시가 아닌 것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되는데, 그것을 시로 만드는 것은 사고의 긴장과 활력이다. 그 활력은 여태까지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가는 자만이 만들 수 있다. 그런 긴장과 활력을 잃는 순간 시는 말장난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 굉장한 실험 가운데 전통 서정시가 박혀있는 것은 어쩐지 덜 벗은 계절의 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우 시가 좋아도 그것은 일종의 타성처럼 보인다. 한자 역시 특별한 의도가 아니라면 굳이 써야 할 무기는 못 된다.★★☆☆☆[4337. 1. 30]   379□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박영근, 창비시선 169, 창작과비평사, 1997   이미지의 의도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집이다. 이미지는 그 주된 기능이 일종의 제시이다. 제시는 보여주기의 일종이고, 보여주기는 그 뒤에 말하지 않음의 암시를 띠고 있다. 그래서 완곡 어법에 해당하고, 완곡 어법은 그것이 큰 전체를 지향하다가 그 전체가 한꺼번에 드러날 때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낱낱의 시에서 그때그때 급한 이야기를 하는 데는 아주 불리하고 어쩌면 불필요하기까지 한 것이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면 그대로 쌍욕으로 나가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 시집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있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미지가 그 앞을 가로막아서 제2, 제3의 상징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어주고 있다. 그래서 할말이 주춤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이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장점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박노해나 백무산의 시가 성공한 것은, 그러한 이미지들조차도 쌍욕의 의지 속으로 빨아들여서 할말을 위한 도구로 철저히 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지에는 어쩐지 지식인의 창백한 자기독백 비슷한 것도 들어있다. 의식의 방향이 문제인데, 과거에 집착해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어디로든 나아가야 할 불굴의 정신이 미래를 뚫는다. 한자가 왜 등장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4337. 1. 30]   380□옛날 녹천으로 갔다□장대송, 창비시선 184, 창작과비평사, 1999   빈 수레가 요란하다. 이미지들은 나름대로 법칙을 가지고 잘 짜였는데, 잘 짜여진 그 수레에다 실을 내용이 없다. 그렇다고 절대 이미지를 추구하여 이미지를 통해서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시를 쓰기 위해서 쓴 시이다. 무언가 할 말은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고 이미지 뒤로 숨어버렸다. 할 말을 정하지 않고 시를 쓸 때 어떤 결과가 오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4337. 1. 30]    
47    시집 1000권 읽기 37 댓글:  조회:1922  추천:0  2015-02-11
361□초심□백무산, 실천문학의 시집 143, 실천문학사, 2003   제목부터 한자로 뽑았으니, 자살골을 넣은 셈이다. 노동사상의 시가 봉건시대로 가면을 씌웠으니, 그것을 어찌 곱게 봐주랴? 시가 많이 늘어졌다. ‘길은 광야의 것이다’에서도 많이 늘어졌는데, 이곳에서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늘어졌다. 정말 걱정되는 시들이다. 물론 나아갈 방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혼돈에 잠시 이를 수 있지만, 그런 사상의 혼돈보다도 시들이 시의 긴장을 잃었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어쩐 일일까? 넋두리가 대부분이고 줄거리까지 드러나서 마치 일기장을 시로 배열한 것 같다. 자투리 시들을 모아서 낸 시집인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4337. 1. 3.]   362□구시포 노랑 모시조개□진동규, 문학동네 시집 66, 문학동네, 2003   식물의 상상력으로 가득 찬 시집이다. 식물은 움직임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의 폭이 적다. 그래서 짧은 시들이 많이 나온다. 시가 짧다고 단조로울 것은 없지만, 거기에 인간의 삶을 싣지 않으면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인식이 전면으로 떠오르고 체험은 뒤로 물러서 있다. 그래서 시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 편 한 편에 들인 공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시집 한 권에서 현실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뒷부분의 여행시는 앞의 노력을 깎아먹는다. 빈 쭉정이에다가 말장난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4337. 1. 7.]   363□아버지의 도시□정영주, 실천문학의 시집 144, 실천문학사, 2003   시가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려 내내 건강한 빛을 발하는 것이 아주 보기 좋다. 이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시인에게 중요한 요인이다. 시가 말장난으로 그치지 않는 바탕이 이것이다. 여기에다가 언어들도 감정을 담아내는 데 아주 가깝게 밀착해있어서 시가 좋은 긴장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묵호라는 한 도시의 삶을 아주 정밀하고 실감나게 그린 시편들은 거기에 몸담지 않은 사람이면 절대로 쓸 수 없는 절창이다. 매 편마다 들인 공이 눈에 보인다. 특히 신선한 표현들이 따로따로 놀지 않고 내용을 아주 잘 전달하고 있어서 언어의 빛깔이 곱게 빛난다.   그런데 시가 좀 부풀어있다. 실제 내용보다 과장된 표현이나 군더더기가 끼어있다. 그리고 빛나는 표현들이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불안하게 들떠있는 곳이 많다. 이것은 시를 곰삭여서 만들지 못하고 서둘러서 그런 것이거나 너무 표현에 집착해서 생긴 결과이다. 한 꺼풀만 더 벗겨낸다면 정말 좋은 시를 쓸 시인이다.★★☆☆☆[4337. 1. 7.]   364□사춘기□김행숙, 문학과지성 시인선 278, 문학과지성사, 2003   생각은 시인데 시는 시가 아닌 시가 있다. 이 시집의 시들이 그렇다. 시가 산문으로 쓰여지는 것은 탓할 것이 없지만, 산문 형식이 주는 관성 때문에 산문의 특징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뱃살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시의 사고를 산문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이야기가 끼어 들고, 이야기는 그것이 상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면 말하기는 쉽지만 긴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도착한 경지가 굉장히 높은 곳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자신은 분명히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데 읽는 사람들은 진땀을 빼기 때문이다. 잔 기교를 부리지 않고서도 거창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시가 어려워지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시작법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그 무덤 구멍에 혼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 전체를 무덤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성을 지닌다. 시가 그곳으로 갈 수는 있겠지만, 꼭 가야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에 이 시집은 닿아있다. 가지 않아도 될 곳까지 가면서 한자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요컨대 시와 시 아닌 것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것은 좋지만 여기까지가 시라고 말하는 것은 궤변이라는 뜻이다.★★☆☆☆[4337. 1. 9.]   365□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이덕규, 문학동네 시집 72, 문학동네, 2003   표현에 많은 공을 들였고 곳곳에서 번득이는 재치가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를 밀고 나가는 뚝심이 있다. 그러나 시인다운 패기는 좋은데, 너무 장광설이다. 표현의 강도나 규모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고 초점이 흩어져있다. 이렇게 되면 부분 묘사에 치중하다가 전체의 이야기를 놓치는 수가 많다. 내게는 절실한 것들이 남들에게는 별로 절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부분을 버리고 전체를 얻는 것을 생각해야 할 듯하다. 시 전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할 단계이다. 한자 역시 불필요한 장애물이다.★★☆☆☆[4337. 1. 11.]   366□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심재휘, 제3의 시 10, 문학세계사, 2002   사물을 보는 눈이 확립되어있다. 그리고 동일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긴장도 있다. 언어와 현상의 관계를 아주 잘 연결시켜서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놀랍다. 그런데 너무 한 시각으로 보다보니 시가 지루한 것이 흠이다. 게다가 시집의 뒷부분 절반이 앞의 절반과 수준 면에서 성취 면에서 달라서 아쉽다. 너무 성급하게 시집을 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쓸쓸함과 허무함만으로 세상을 도배하면 세상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엄밀히 말해 이런 관점은 도피에 가깝다. 체험의 선험성은 감동을 떨어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이고, 그런 위험에 아주 많이 노출돼있다. 한자 역시 불필요한 장비이다.★★★☆☆[4337. 1. 13.]   367□내 몸이 유적이다□이순현, 문학동네 시집 62, 문학동네, 2002   시의 초점이 인식으로 맞추어질 때 조심해야 할 것은 감정이 메마르기 쉽다는 것이다. 인식의 기능이 확대되면 될수록 이것은 피할 길 없는 숙제이다. 이 시집 역시 이런 위험에 아주 가까이 가있다. 인식이 주를 이루면 그 인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가 중요하다. 물론 시는 문학이기 때문에 언어의 작용이 그 사명을 맡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장난이 주는 맛에 빠지는 수가 많고 이 시집 역시 다분히 그런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 그렇다면 인식을 통해서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세계의 황폐함과 이루어놓은 것들의 허망함, 그리고 그러는 과정의 언어작용일 것이다.   이렇게 정해놓고 보면 치열한 인식의 노력에 비해 정작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부실함이 드러난다. 이것은 이 시집의 피할 수 없는 단점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그 인식이 거느린 세계를 찾지 않을 수 없고, 그 경우 이미 있는 것들로부터 찾는다면 틀림없이 말장난이나 남의 흉내내기로 전락하기 쉽다. 뒷부분의 선문답 주변에 퍼져있는 것들이 그런 냄새를 너무 짙게 풍긴다. 내 길을 가야 할 일이다. 이왕 나섰으니, 그 길만이 살 길이다. 돌아서는 순간 죽는다.★★★☆☆[4337. 1. 19.]   368□나무 나비 나라□민용태, 문학사상신작시집, 문학사상사, 2002   나이가 들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이 시집 역시 과거사가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시들이 좀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가벼움은 일부러 조장된 것이기에 쉽게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실험이라고 봐야겠는데, 과거로 들어간 주제들이 너무 무거워서 그 실험을 방해한다. 특히 시에서 나타나는 비슷한 어감을 나열하는 수법은 우리 문학에서 그리 많지 않는 시도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가벼움이 가시지 않은 것은 끝내 아쉽다.★★☆☆☆[4337. 1. 19.]   369□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배창환, 창비시선 199, 창작과비평사, 2000   시에서 삶의 깊이가 느껴지면 그것은 나이 값이다. 젊은 사람들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느낄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있고, 그 무게가 시집 전편에 실려있다. 젊은 사람들의 시에서 느낄 수 없는 그 무게가 좋다. 그러나 그 무게는 불필요한 수사를 거절하는 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시가 무거운 나머지 시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우려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인생을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 말들이 많아지는 것은 그런 증거이다.★★☆☆☆[4337. 1. 20.]   370□지금 우리들이 손에는□이선관, 스타시선 1, 도서출판 스타, 2003   시집을 집어들면 그 현란한 수사와 기교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팽팽한 긴장으로 시를 대하게 되고, 그 상징과 비유체계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읽어내기에 바쁘다. 그러다 보면 좀 쉽게 쓸 수 없나 하는 투정 비슷한 생각이 떠오른다. 아마도 형편없는 김광규의 시가 인기를 얻는 것은 그런 관성이 만든 것일 것이다. 이 시집의 시들도 될수록 수사와 기교를 동원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때는 사고와 논리 전개의 방법이 시다워야 한다. ‘먹이와 미끼’ 같은 좋은 작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냥 단순히 서술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 태반이어서 좀 아쉽다. 그나마 솔직하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건전한 세계가 시의 세계를 아름답게 하고 있다.★☆☆☆☆[4337. 1. 20.]    
46    시집 1000권 읽기 36 댓글:  조회:2040  추천:0  2015-02-11
  351□자작나무 눈처럼□이종수, 실천문학의 시집 140, 실천문학사, 2003   말을 다듬는 능력도 있고 이미지의 조합도 매끈하게 잘 이루어진다. 그런데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할 말 때문에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이미지 때문에 시를 만들어서 생기는 일이다. 따라서 주제를 먼저 선명하게 정하고 나서 쓰는 버릇을 길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함정에 빠진다. 즉 이미지로 장난만 하는 시를 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뜬구름 잡는 시가 된다. 좀 더 체험을 시속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고, 그것은 여행 다니는 일로는 안 되며, 차분하게 세상을 살피는 태도가 오래 묵어야 이룰 수 있는 일이다. 한자는 왜 못 버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4336. 12. 25.]   352□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허수경, 실천문학의 시집 57, 실천문학사, 1988   시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다. 남의 것은 추체험이기 때문에 자신의 체험과는 간극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다. 또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남의 체험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어려워진다. 이 시집은 이런 위험과 어려움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는 별로 없고 역사의 희생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것을 시로 옮겼다. 시는 어떤 배경을 전제로 하고 읽기 때문에 시가 다루는 그 시대의 분위기에 익숙치 않는 독자들이 그 시대의 배경까지 감안해서 읽기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상대로 시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숨결을 시로 다루려면 그것이 현실의 어떤 고리와 연결되는가 하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고 그것을 어떻게 꺼내야만 현실의 독자들이 그것을 자신의 것처럼 실감나게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가 몽롱해지거나 관념성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 시집에 실리 시들은 모두 잘 다듬어진 인상을 주면서도 끝내 몽롱함이 걷혀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내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로 시집 한 권을 채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위험한 일이다. 남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할 때 그 나와 남 사이의 틈을 얼마만큼 메울 수 있느냐 하는 점이 어려운 일이고, 내가 남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끝내 보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청산해야 할 그 무엇으로 남기 때문이다.   스스로 껍질을 벗으면 그 껍질은 나무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매미가 빠져나간 허물처럼. 매미가 매미의 허물을 버리고 매미의 울음소리를 낸다면 다행이지만, 꾀꼬리 소리를 낸다면 그보다 황당한 일은 없을 것이다. 패기와 오기 사이에서 깊이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4336. 12. 25.]   353□나는 궁금하다□전남진, 문학동네 시집 63, 문학동네, 2002   기형도를 많이 닮았는데, 솔직하지 못하는 것이 다르다. 추억이 풍성한 자는 결코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럴 만큼 이 시집 속의 추억이 차지한 공간은 크다. 그 크기 때문에 앞의 도시 정서를 노래한 시들은 거짓으로 보인다. 기교가 이쯤에 이르면 무의식이 저지르는 상반성 내지는 사기성도 제어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버리지 못하는 욕심 때문이다. 버리지 못하면 버리지 못한 것만을 잃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잃는다. 이른바 ‘세계’는 그런 것이다. 어정쩡한 곳에 서있는 것은 시인의 자세가 아니다.   또 한 가지는 묘사가 너무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산문의 특징이다. 비유를 썼는데, 그 비유가 기계처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면 부족할 것은 없지만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비유는 정확한 것이 아니라 늘어진 것이다. 그 늘어짐 사이로 읽는 이의 상상력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의 기교는 정확한 표현을 찾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한자는 시와는 상관이 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겠다.★★☆☆☆[4336. 12. 25.]   354□내 기억의 청동숲□김철식, 문학동네 시집 51, 문학동네, 2001   상상력이 독특하고 시어를 다루는 능력도 있다. 그런데 시들이 주제가 빈약하다. 동원되는 이미지들의 양에 비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작다. 그래서 허우대만 멀쩡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많은 시들이 사랑의 체험을 말하고 있는데 원래 사랑이라는 것은 허망한 것이어서 진행될 때는 굉장한 것 같지만 꺼지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런 주제를 다룬 탓도 있다. 따라서 먼저 무엇을 말해야 할 것인가를 좀 더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고, 그것은 내가 무엇을 볼 것인가를 정하는 일로 직결된다. 결국 세계관의 문제이다. 세계를 보고 실천하는 시각을 확립하는 데는 세월이 좀 걸린다. 그러기까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한자를 버리는 일이다.★★☆☆☆[4336. 12. 29.]   355□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정지원, 문학동네 시집 69, 문학동네, 2003   시에서 할말이 분명하다는 것은 중요한 장점이다. 그런 시들은 시가 짧아도 힘차다. 이미지의 구조가 좀 허술해도 괜찮다. 의미의 등뼈가 확실하게 서있기 때문이다. 뼈 없는 이미지들이 갖기 쉬운 그 흐믈흐믈함이 없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다. 이 시집이 그런 장점을 갖추었다. 그리고 할 말이 자신의 것에만 그치지 않고 세상까지 배려할 줄도 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런데 이 시집에 들어있는 시들은 그런 장점을 갖추었으면서도 그 감정의 출발점이 자신의 과거 체험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 분노와 절망이 이 정도쯤 쏟아져 나오면 이제는 다른 곳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런 분노가 밀어낸 시들은 팽팽하지만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 동안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할 말이 분명하고 용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문제까지 극복하지 않을까 싶다. 말하는 방법을 좀 더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다.★★☆☆☆[4336. 12. 29.]   356□사랑이여□박재삼, 실천문학의 시집 41, 실천문학사, 1987   시가 아주 느슨하게 긴장을 잃고 풀어졌다. 일부러 긴장을 푼 것 같다. 시의 주요 내용이 사랑이고, 제목도 사랑이기 때문에 평이한 문체로 쓰려고 한 의도가 그렇게 나타난 것 같다. 그런데 그 풀린 긴장을 살아온 삶의 관조와 그 무게로 버티려고 했는데, 너무 풀려서 그 여유부림조차도 늘어졌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표현들이 좀 산만하다. 좀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는데 정제가 덜 된 듯한 부분들이 너무 많다. 다만 박재삼 시의 특징이랄 만한 어떤 형상력이 그나마 마지막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시가 되려면 이런 굴절은 거쳐야 한다는 나름대로 만든 기준이 느껴져서 그것이 오래 시를 쓴 시인의 관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바로 그 복잡한 생각의 구도 때문에 사랑시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랑은 아주 단순하고 직접 와 닿는 구조와 이미지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곳에 실린 사랑시들은 너무 복잡한 생각을 요구한다. 아마도 이것은 시가 뭔가 그럴듯한 것을 담아야 한다는 시인들의 고집 같은 것인데, 그대나 당신이 신의 그것으로도 읽히도록 배려하다 보니 이런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사랑시는 어떻게 써도 신의 문제로 환원해서 이해하는 이중성을 갖게 된다.★★☆☆☆[4336. 12. 30.]   357□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이향지, 나남출판, 2001   자연물 중에서도 특정 지명을 가진 대상을 시로 표현할 때는 대상이 주는 이미지의 고정성을 이용하여 얼마만큼 내 이야기를 실어내느냐에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 너무 대상에 집착을 하다 보면 내가 할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상만 묘사하다 끝나며, 너무 내 이야기에 집착을 하면 그 대상이 시에서 사라져버리기가 일쑤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을 끌어들이면서도 내 이야기를 잃지 않는 긴장과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 이 방법을 고안해 내느냐 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한다.   이 시집의 시들은 아주 성실하게 잘 대상을 묘사했다. 그런데 대체로 대상의 고정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산에 대한 묘사를 하는 과정에서 내 감정을 간간이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선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방법인데, 문제는 선시는 선시가 갖는 특수한 화법 때문에 묘한 상징성을 갖고 전달되는데 반해 이곳의 시들은 대개 시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이 다르다. 그 효과는 비교해볼 것도 없다. 내 이야기가 너무 적어서 대상만 크게 드러났다. 그리고 간간이 끼어있는 한자는 불필요한 사마귀 같다.★★☆☆☆[4336. 12. 30.]   358□동두천□김명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9, 문학과지성사, 1979   ‘동두천’ 연작은 다시 읽어도 명작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대상과 싸우다 얻은 감정을 시로 표현할 때는 복잡한 구조를 띠게 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보통은 나에게 그런 압력을 가한 대상에 대해 묘사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그 대상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문제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어떤 사건이 내 마음속에 어떤 모습으로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중심에 놓고 거기에 필요한 실제사건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래서 산문이나 보고문으로 전락하지 않고 시의 긴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시인의 놀라운 능력이다. 시가 자신의 내면 감정을 드러내는 양식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외부사건을 다루는데도 시에 드러나는 것은 자신의 감정에 초점이 맞춰져있고, 그곳에서 사건이 풀려 나온다. 자신의 내부에서 굴절된 감정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실제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힘들고 그것이 시의 곳곳을 석연치 않은 부분으로 남겨두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분명치 않은 감정에 집착하면 시가 길고 장황할 뿐 내용이 부실한 흠을 드러내게 된다. ‘영동행각’ 연작이 그런 경우이다. 이것은 동두천의 구조를 변형시키지 않은 채 동두천이 가진 비극의 구도를 그렇지 못한 곳에 적용시켰을 때 나타나는 문제이다. 그러니까 다른 발상과 방법으로 다루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시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구도는 단단한데 이상하게도 긴장이 떨어지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내용의 무게가 그 긴장을 받쳐주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이다. 게다가 과도한 한자는 그런 기장을 더욱 무디게 한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표점의 문제이다. 특히 마침표가 그렇다. 정말 많은 시인들이 시에서 마침표를 쓰지 않는다. 그것이 이미지를 다음 행으로 연결시켜주는 효과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외국의 표기법을 원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시의 정신이라는 충정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굳이 마침표를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지 않다면 이미 국가에서 정하고 문자 사회의 합의가 이루어진 관행과 법칙을 스스로 지키지 않아야 할 어떤 절박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그건 무책임이거나 오만이다. 시인이라고 해서 지키지 않아야 할 문법 법칙이 있다면,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하게 하는 것이 시의 본래 임무가 아니라면 굳이 특별한 효과를 노리는 것도 아닌데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무지한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집에서는 그것조차도 일관되지 않는다. ‘갱목’까지는 마침표가 없다가 ‘무전여행’부터는 마침표가 찍혀있다. 그 뒤쪽으로 오면 어떤 것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이것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심각한 문제이다.★★★☆☆[4336. 12. 31]   359□자신 없는 것들은 걸려있다□금기웅, 문학동네 시집 68, 문학동네, 2003   한 시선으로 인식한 세계를 일정한 수준의 작품으로 풀어내는 끈기와 저력이 놀랍다. 세상을 눈을 보는 눈과, 그것을 시의 인식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이 적절하게 결합하여 시마다 놀라운 세계를 빚고 있다. 그것도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런데 뭐랄까? 너무 원칙을 지키려는 태도 때문에 오히려 답답하다. 그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까지 그렇게 해주니까 이미지의 전개 속도가 오히려 늦어지고 있어서 시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이미 길을 알고 가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고 잔소리하는 식이다.   또 한 가지는 이미지에 너무 집착하여 정작 할 말이 분명치 않은 이미지들이 많다는 점이다. 아무리 참신한 이미지라고 하더라도 이미지는 어차피 무언가를 대신 알려주는 기호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의 맥락 안에서 그것이 배치되지 않으면 허망하다. 이미지만을 위한 이미지는 무미건조해진다. 애써 얻은 이미지를 버리지 못하여 그냥 둔 부분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그것이 시의 군더더기를 만든다.★★★☆☆[4336. 12. 31]   360□산촌엽서□나태주, 문학사상 신작시집, 문학사상사, 2002   화려한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간편한 복장만으로 인생을 돌아보는 소박한 맛이 있는 시들이다. 거의 모든 기교를 다 버리고 생각만을 단련하여 썼는데, 그것이 아주 빛을 낸다. 그것이 나이가 든 자의 측면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오히려 깔끔하다. 나이 들면 기교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인데, 바로 그 지점에 와있다. 화려한 기교를 부린 것보다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다만 세계가 너무 자신의 주변에만 머물러 있고, 비슷한 발상이 반복되고 있어서 지루한 감이 있지만, 그것은 누구한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니 굳이 단점이랄 것도 없다. 하지만 너무 태만한 태도로 나온 작품도 적지 않은 것이 흠이다. 시가 간편해진다고 해서 작은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데, 주변의 소품만을 담은 것도 흠이라면 흠이다. ‘가을 편지 2001’ 같은 작품은 아예 싣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수주의자가 되는 건 말릴 필요가 없지만, 그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은 어떤 상황에서든 무리다. 나이를 먹어도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것인데,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다.★★☆☆☆[4337. 1. 1.]      
45    시집 1000권 읽기 35 댓글:  조회:2344  추천:0  2015-02-11
    341□떠나가는 배□박용철,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2, 미래사, 1991   읽기가 정말 어렵고 지루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이 증발했기 때문이다. 현실이라고는 풍경밖에 없다. 사람과 삶은 없고 풍경만 있으니, 읽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글을 매끄럽게 다듬으려고 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그 방향이 현실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아름다움으로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기에 관념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평생 똥을 밟아보지 않은 듯한 태도로 시를 바라보고 있어서 몽롱하다.★★☆☆☆[4336. 12. 18.]   342□외롭고 높고 쓸쓸한□안도현, 문학동네시집 1, 문학동네, 1994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구조가 탄탄하고 어법이 안정된 것이 이 시인의 특징이다. 여기서도 그런 특색이 아주 잘 드러났다. 그러나 중압감 때문인지 상상력이 부드럽지 못하고 경직된 느낌이다. 역사에 대한 전망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눈물겹지만, 그것이 좌절로 이어질 듯한 불안함도 아울러 갖고 있다. 첫 시집에서는 세부의 표현을 넘어서 전체의 모습을 한 눈에 드러내 보이는 역량이 드러났는데, 이번에는 할 말이 많은 탓일까 부분이 눈에 들어오고 전체가 잘 안 들어오는 단점이 보인다. 상상력이 굳었다는 증거이다.★★★☆☆[4336. 12. 20.]   343□길은 광야의 것이다□백무산, 창비시선 82, 창작과비평사, 1999   노동자가 기계를 조립해놓은 것 같다. 빈틈없다. 단단하다. 군더더기가 하나 없고 빼빼 마른 상상력만 작동하여 할 말만을 골라놓았다. 대단한 능력이다. 중요한 것은 노동의 전망이 후퇴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시각이 시집의 2/3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세계를 다룬 것은 뒷부분에 꼬리뼈처럼 붙어있다. 이것은 노동계가 전망을 잃은 영향이다.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생긴 공허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이제 외부의 자본이 아니라 내부의 허무와 싸워야 하는 험난한 이정표가 이 시인 앞에 남아있다.★★★☆☆[4336. 12. 20.]   344□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있다□강연호, 문학동네 시집 58, 문학동네, 2001   시의 주제가 뚜렷하다. 할 이야기가 분명하다. 그래서 모든 이미지와 언어들이 그 할 말을 하기 위해서 적절한 긴장으로 동원된다. 그렇기 때문에 말들이 지니는 고유한 이미지가 많이 희생당한다. 그리고 시에서 이미 할 말이 정해졌다. 모든 말들이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예비군복 차림으로 동원되는 모양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울림이 거의 없고 결론이 뻔히 예상된다. 관념을 먼저 설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서 시를 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는 두 가지 특징을 갖게 된다. 엄살과 과장이 그것이다. 절망은 치솟는 의지가 바닥날 때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시집 곳곳에는 감정의 밑에서 불끈불끈 치솟는 오기나 욕심이 숨어 있다가 가끔씩 드러난다.   그런데 시집 전체에서 시인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부분은 절망과 그 절망의 양상으로 본 세상 풍경이다. 시는 한 편 한 편에서도 모순율을 지켜야 하지만 시집 전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모순을 범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이 시집에서는 감정의 모순을 범하고 있다. 이것은 거의 치명상에 가깝다. 절망의 포즈가 거짓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미숙이 기형도의 아류로 전락하는 계기가 된다. 좀 더 신중하게 삶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더 부언하자면, 자신의 관념을 전달하기 위해 언어를 너무 혹사시키면 시의 울림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언어는 내가 일그러뜨리기 전에 나름대로 고유한 이미지와 뜻을 갖고 있다. 시인이 언어를 동원할 때 그 이미지를 변형시키지만 너무 그것이 심하면 시 전체가 건조해진다. 이 시집은 지금 그 건조병을 앓고 있다. 긴 안목으로 볼 때 그것은 시 쓰는데 아주 불리한 일이다.★★☆☆☆[4336. 12. 23.]   345□아내에게 미안하다□서정홍, 실천문학의 시집 121, 실천문학사, 2003   허황하지 않고 진실한 것이 큰 장점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보려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기교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이 태도를 시인은 잘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시가 갖는 고유한 기교와 기법이 소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시들이 줄거리를 갖고 서사성을 띠고 있어서 긴장이 풀어졌다. 서사성도 그 배치의 방법에 따라서 시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데, 대부분 그냥 나열만 되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상을 정직하게 보려는 것과 허황한 말장난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빛나는 시집이다.★☆☆☆☆[4336. 12. 23.]   346□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송수권, 시와시학 시인선 3, 시와시학사   부분에 집착하면 전체를 잃는다. 시어와 이미지를 선택할 때 꼭 생각해야 할 말이다. 이 시집은 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할 말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이미지들을 동원하고 있다. 그것은 꽃 이름이나 사투리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말들을 시에서 쓸 때 그것이 사람들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을 잘 생각해야 한다. 그 말들이 전체 이미지의 흐름이나 독자의 읽는 속도를 방해하면 그것은 잘못 쓰인 것이다. 낯선 말을 끌어들일 때도 읽는 사람이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굳이 그 말을 써주기 위해서 쓴 부분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희생당하거나 쭉정이처럼 내용이 부실하게 된다. 외화내빈이다. 사투리나 우리의 전통에 대한 집착 때문에 굳이 그랬다면 시로서는 소탐대실이다. 게다가 한자까지 섞여있고, 그 한자를 배경으로 한 선의 분위기까지 끼어 있어서 산만하기까지 하다. 요컨대 시집의 초점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4336. 12. 23.]   347□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 때□권대웅, 문학동네 시집 67, 문학동네, 2003   두 가지 단점이 눈에 띈다. 언어를 필요이상으로 아름답게 다듬으려 드는 쓸데없는 버릇과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그것이다. 이 두 버릇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이미지를 아름답게 다듬으려고 하다 보면 많은 이미지와 기발한 발상을 될수록 많이 끌어들이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주제에 비해 너무 많은 군살이 붙는 것이다.   이것은 문학을 너무 고상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에서 얘기하고 하는 대로 삶이 그렇게 허무하고 쓸쓸한 것이라면 시가 그렇게 아름다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를 다듬는 데 들인 공은 시의 주제와 서로 등을 대고 있다. 여기에다가 주제까지도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두 가지로 갈라져서 산만하다. 이것은 세상에 대해서든 시에 대해서든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포장에서 시체의 썩은 물이 쏟아져 나온다면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다. 그것을 의도했노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더더욱 좋은 모습이 아니다. 시체를 비단으로 싸지 않고 베로 싸는 것은 값 때문만이 아니다.★★☆☆☆[4336. 12. 23.]   348□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정일근, 시와시학 시인선 15, 시와시학사, 2001   시와 이야기의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시속에 이야기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긴장이 일단은 성공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특히 발상과 서술 방법의 절묘함이 성공 쪽으로 가닥을 잡게 한다. 1부에 실린 시들이 특히 빼어나다. 살집도 적절하고 긴장도 줄거리도 서로 맞물리면서 뛰어난 감성까지 갖추었으니, 시로서는 그만인 셈이다.   그러나 뒷부분으로 갈수록 군더더기가 많아지는데, 특히 불교의 이미지를 차용한 부분은 침묵하지 못하는 자의 수다 같다. 선어(禪語)는 목숨을 건 정신의 대결에서 튀는 불꽃이어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인연설화는 본질을 전하기 어렵다. 그 경지에서는 차라리 침묵이 아름답다. 그 침묵을 불교 이미지 몇으로 장식한다고 시가 되지는 않는다. 정신의 타성만이 느껴질 따름이다. 그 타성은 자연을 묘사하는 곳에서 지루한 표정으로 나타난다.★★★☆☆[4336. 12. 24.]   349□도화 아래 잠들다□김선우, 창비시선 229, 창비, 2003   시를 참 잘 쓰는 시인이다. 그리고 시를 대충 내놓지 않고 끝까지 다듬으려고 한 노력이 돋보인다. 적이도 프로라는 이름을 들으려면 이 정도의 성실성은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미 결정된 어떤 결론을 향해서 이미지들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고 이미지들이 모여서 만드는 어떤 세계가 스스로 결론을 맺도록 언어를 유도하는 힘이 좋다. 이것은 배운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억지로 하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욕심을 버릴 때 일어나는 일이다. 언어에 대한 욕심, 시에 대한 욕심, 시인이라는 욕심. 그렇기 때문에 이런 욕심이 일어나는 순간 시는 쉽게 타락한다. 앞으로는 그 유혹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성패의 주요 요인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우려는, 시가 너무 자신의 과거와 내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 세계의 중요한 원리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단조로움과 동어반복의 원인이 된다. 이 세계로는 앞으로 지금과 같은 다채로운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이런 시집이 창비에서 나왔는가 하는 의구심이 절로 뒤따른다.★★★★☆[4336. 12. 25.]   350□겨울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정세기, 실천문학의 시집 136, 실천문학사, 2002   사상 부재의 늪으로 유조선이 침몰한다. 그 잔해로 남은 거대한 기름때 위로 연꽃이 하나 솟았다. 불혹에서 너무 많은 나이가 느껴진다. 세상을 이미 달관한 자세는 시인에게는 치명상이다. 그런 달관이 동양의 세계관으로 위장되어 나타난다. 기법과 발상이 주로 그러한데, 이 세계는 숨가쁜 세상을 파헤치는 데는 아주 불편한 도구이다. 그 도구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분명치가 않다. 자신을 돌아보는 데 시집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그것이 실천문학사에서 나온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자이다. 한 물 갈대로 간 문자를 꺼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사상이 분명한 것도 아니고 문학관이 분명한 것도 아니고, 이게 뭔가? 한 껍데기 더 벗겨야만 시가 나올 것이다.★★☆☆☆[4336. 12. 25.]  
44    시집 1000권 읽기 34 댓글:  조회:2166  추천:0  2015-02-11
  331□조화 속에서□구상,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7, 미래사, 1991   관념이 너무 앞서서 언어들이 제 자리에서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시인이 제일 먼저 통과해야 할 관문이 언어의 정확한 쓰임과 그것이 서로 만나서 만드는 긴장, 그리고 그 긴장 위에서 벌어지는 의미의 삼투 작용인데,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너무 강렬하다보니 그 말들이 거기에 걸맞은 이미지들을 만나기 전에 시의 전체 흐름을 좌우하고 만다. 이런 경향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모습이다. 그러니 중간에 몇 편 그럴 듯한 것들이 있다고 해도 그런 것들조차도 그 탁류에 휩쓸려 버리고 만다. 대체로 깨달음은 아무리 깊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토해놓으면 철학이다. 그 철학에 살을 입히고 시의 형상을 갖추도록 하여 독자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시인의 임무라면 깨달음의 기쁨이 너무 큰 나머지 임무를 소홀히 한 경우라 하겠다.★☆☆☆☆[4336. 12. 13.]   332□숨어서 우는 노래□조병화,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6, 미래사, 1991   시에서 치열하지 못하다는 것은 현상을 노래하는 시인의 정신이 현상 너머의 근본에 대한 의문과 회의까지 가 닿지 못한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인은 현상을 노래하지 현상의 원인에 대한 사색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리고 시는 현상만을 노래해도 되는 그런 갈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원에 대한 갈망이나 궁금증은 시의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의 태도가 그런 방향으로 정해졌으면 근원에 대한 착실한 천착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말면 그것은 대개 말장난에 머물거나 깊이를 갖지 못한 넋두리로 전락하기 쉽다.   바로 이런 위험에 이 시집은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 거의가 인생이라는 의미 그 중에서도 이 세계가 시간 위에서 어떤 법칙과 연계를 가지며 인간이 그 위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나 인간의 근원에 대해 깊이 파고들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 내게 다가오는 시간의 겉모습만을 묘사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쩐지 수박 겉 핥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때로 ‘의자’ 같은, 뜻밖의 작품이 없지 않지만, 그런 작품으로 만족하고 말기에는 이 시인이 시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인간의 본질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있다. 거기서 겉만 핥아 가지고는 되지 않는 것이 세월과 삶에는 너무 많다. 좀 더 심각해야 할 일이다.★★☆☆☆[4336. 12. 14.]   333□오장환 전집 1 시□최두석 편, 창작과비평사, 1989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시에 작용하는 심리는 양심이다. 지켜야 할 어떤 선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그것이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태도를 낳고, 그것이 세상에 대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움도 알고 자신의 한계도 알며 자신이 나가야 할 길도 안다. 해방 전의 시들은 대개 사회 문제에 대한 언급은 많이 물러나 있는데, 그런 까닭에 대신에 감상에 가까운 감정들이 시의 전면으로 나섰다. 그런데도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묘사할 줄 아는 이지력도 갖추고 있다. 이런 태도는 해방 후의 격렬한 감정을 노래할 때도 냉정을 잃지 않고 이미지에 매달리는 노력을 하게 한다. 그 결과 그와 같은 길을 간 다른 시인들과는 달리 시가 차분한 편에 속한다. 양심과 냉정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군더더기가 많고, 그런 까닭에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시들이 많다.★★☆☆☆[4336. 12. 14.]   334□불놀이□주요한,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 미래사, 1991   시가 노래해야 할 것과 시가 될 것을 아는 사람이 쓴 시다. 언어가 감정을 실어낼 줄도 알고, 무엇보다도 시가 감정을 노래하는 갈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부분 감정이 앞서고 있어서 시가 들떠있다. 그리고 뒤로 가면서 시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직된 정서가 가득 찼다. 이것이 해방 전, 우리나라 현대시의 첫 새벽에 작품들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읽더라도 앞부분의 몇몇 작품을 빼고는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다. 특히 시조는 오히려 거꾸로 간 느낌이 있다. 이병기가 이룬 성취와 비교하면 옛날 조선시대의 수준으로 퇴보한 느낌이다.★★☆☆☆[4336. 12. 15.]   335□방목시대□홍윤숙,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0, 미래사, 1991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에서 정신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한다. 적당한 표현과 적당한 주제, 적당한 깨달음과 적당한 호흡,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 그만큼 시를 만들어내는 방법과 리듬과 절제력까지도 고루 갖추었다. 특히 ‘약력’과 ‘망향사’ 연작은 빼어난 작품이다. 이것은 아마도 시인의 가슴속에 남은 상처이자 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여자의 섬세한 관찰력과 감수성으로 시의 동산을 가꾸었다.   그러나 시는 기교만 가지고 안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세상을 과거만으로 볼 수 없거니와 과거로부터 벗어나면 이제는 현실을 보는 것은 역사와 세계관의 문제이다. 분단의 아픔으로 형성된 과거의 빛나는 체험이 현재의 아픔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는 탄식으로 그치고 만다. 감상주의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든 그런 감정들이 시의 주요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는 누구나 아름답게 시로 뽑아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일정한 시각이 필요하다. 그것이 역사의 발전에 반하는 것이든 보탬이 되는 것이든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에서도 그런 선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시에 생기가 돌고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선택하지 않은 가치로 인해 시들이 많은 빛을 잃고 있다.★★☆☆☆[4336. 12. 15.]   336□국경의 밤□김동환,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7, 미래사, 1991   무엇보다도 묘사력이 뛰어나다. 이미지를 사용하여 뜻을 전하는 수법은 옛 한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기법이지만, 옛 한시의 기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법으로 소화해서 표현할 줄 안다. 잘 알려진 ‘산너머 남촌에는’이나 ‘북청 물장수’ 같은 것이 그런 묘사로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아직은 감정을 자유자재로 실어 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서사시 “국경의 밤”은 아주 빼어난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서사 구조가 튼튼하다. 마치 소설의 구조와도 같이 과거로 거슬러갔다가 극한 상황이 연출되는 현재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수법이 전체의 구조를 역동성 있게 만들었다. 국경을 넘어간 여인의 심리를 길게 묘사하여 궁금증을 더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읽는 사람의 심리와 등장인물의 심리를 잘 이용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런 긴장과 살붙임이 소설과 시의 다른 점인데, 이런 것이 서사시의 생명을 살린 셈이다. 이야기만 제시된 것이 아니라 시가 갖추어야 하는 요소를 갖추었기에 서사시라고 해도 될 그런 시이다. 중간중간에 대사가 너무 딱딱하게 진행되어서 아쉽다. 너무 이야기 전개에만 집중하다 보면 부분에서 취해야 할 표현이 죽기 마련이다. 그런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준다.★★★☆☆[4336. 12. 16.]   337□이용악 시 전집□윤영천 편, 창작과비평사, 1988   시의 경제원리를 아는 시인이다. 시는 보고서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것이, 어떤 사실과 감정을 전달하되 그 형식은 지극히 짧기 때문에 나름대로 다른 갈래와는 다른 독특한 방법을 갖고 있다. 비유나 상징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인은 사물이나 상황의 일부를 어떻게 제시하면 독자가 그것을 이용하여 전체를 한꺼번에 알아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공룡 뼈의 일부분만을 드러내서 그 뒤에 서린 공룡 전체의 모습을 보이게 하는 수법은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애써 묘사하고서도 전체를 보여주는 데는 실패하는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이 점에서 아주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특히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사회의 문제를 제시하는 데 이런 방법은 아주 훌륭한 방법이고, 당시의 현실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은 이 시인의 도덕성이 그런 방법을 만나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게다가 상징화시키는 방법까지도 알고 있어서 부분으로 전체를 드러내는 것이 상징으로 승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현실 문제에 접근할 때 감정을 앞세워서 구호에 그치고 말았는데, 이 경우에는 돌려 말하는 수법을 찾았고, 그렇게 돌려 말한 것이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시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중층으로 덧씌워져 상징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해당화’ 같은 시에서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절묘한 인식까지도 드러나서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볼 때 열리는 언어의 또 다른 면까지도 이해한 경우이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정책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당연히 농민과 노동자인데, 이 시집에는 그들의 정서가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 그 방향으로 굳어져있고, 그것은 만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로 이어진다. 우연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이 시인이 식민지 현실의 가장 중요한 핵심고리를 시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해방 전후에 낸 시집에 한자가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고 순수한 한글로만 쓰였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한자 세대의 시인들이 한자를 시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섞어 쓰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결코 범상한 일일 수 없다. 한자에 대한 사색을 깊이하지 않고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낡은 집”(1938)과 “오랑캐꽃”(1947)에서는 한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4336. 12. 16.]   338□바라춤□신석초,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5, 미래사, 1991   자리 바꾸기가 시작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즉 특정한 화자를 설정하여 그 화자의 시각으로 본 세상을 노래하는 것이다. 특히 프로메테우스를 비롯하여 서구 신화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서 노래하는 것이 많다. 자리를 바꾸면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시가 길어진다. 그래서 이런 시들은 예외 없이 길어졌다. 시의 주제가 관념 쪽으로 기울 경우에는 특히나 더 장광설로 변한다.   그리고 ‘바라춤’의 경우는 불교의 행사를 묘사하면서 인간의 고뇌를 다루고 있는데, 불교 용어나 철학 관련 용어가 직접 나타나고 고민의 내용도 형상화하고는 거리가 먼 그런 뼈들이 마구 겉으로 드러나서 좀 흉하다. 장시를 썼다는 점에서는 그 지구력을 높이 살 일이나, 길게 쓴다고 해서 감동까지도 길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시에서 쓰는 어투가 따로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술어의 처리가 독특하다. 이런 생각이 옛 풍물에 대한 묘사로 이어져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체의 흐름이 설명투가 많고 주제가 선명하지 않은 시들도 많아서 시어가 제대로 살아있는 느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시들이 많다.★★☆☆☆[4336. 12. 16.]   339□가을의 기도□김현승,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7, 미래사, 1991   ‘고독’이나 ‘영혼’ 같은 말을 빼면 남을 것이 없을 것 같다. 이것은 시에서 추구하는 세계가 관념으로 이루어졌고, 그 관념을 어떻게 현실 속으로 끌어들이고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 시인의 작업이라는 뜻이다. 관념은 모양이 없기 때문에 그리기는 쉽다. 그러나 쉬운 그 만큼 그것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과, 아무리 잘 그려도 끝내 추상성을 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여기서도 그런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주제로 하다 보니 그것을 다른 것으로 환치하여 보여주는 수밖에 없는데 그 모습을 뜻대로 그릴 수 없어 끝내 직접 말을 하고 마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시가 성공하든 말든 그러한 영혼의 세계를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집요함과 그 순수한 마음은 정말 보석처럼 빛난다. 관념은 추상성을 면하기 어렵고 결국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다보면 그것을 잘 보여줄 좀 더 편한 어떤 방법과 세계관을 찾는데 기독교의 절대자를 염두에 두고 다가간 것 같다.   그런 후원자의 영향일까? 뒷부분에서 아침을 노래하는 긴 시들이 많이 나오는데, 고독과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새벽과 아침을 찬양하는 것이기에 수다스럽게 느껴진다. 문제해결을 하지 못한 상태의 찬양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내면의 관념을 시로 빚으려는 투철한 싸움이 시의 긴장을 이끌었고 일정한 선까지 올라갔으나 결국 그 세계를 적실하게 드러내는 데는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 그리고 적당한 타협 끝에 대책 없는 찬양조로 맺음 한 것이 아쉽다. 잘 하면 형이상의 세계를 노래한 시를 만날 뻔했는데…….★★☆☆☆[4336. 12. 17.]   340□들창코에 꽃향기가□김광림,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4, 미래사, 1991   시선집이라서 그런지 좀 어수선하다. 시의 방법과 내용이 크게 양극으로 치닫는다. 진흙탕 같은 이승의 삶을 관조하면서 이 생을 넘어선 어떤 고결한 세계를 탐색하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이미지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이 시집의 특색인데, 이미지가 선명하다는 것과 주제가 모호하다는 것은 서로 병립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지는 그것이 할 말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마는 방법이 아니라 할 말을 직접 하지 않고 절제하여 제시함으로써 직접 말할 때보다 더 큰 감동과 효과를 내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집의 이미지 시들은 문제가 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고 시들의 초점이 분산되었다. 게다가 많은 시들이 그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가도 끝내 이야기로 풀어버리는 경향도 있다. 아마도 시선집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뒤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심해서 일상의 자잘한 느낌을 이미지로 담아버리는 바람에 시가 건조해졌다. 넋두리는 이성의 통제보다는 그냥 저질러 버리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낸다. 구도의 자세를 보이는 시들에서는 이미지에 생기가 돌지만 그렇지 않고 일상의 아픔을 노래하는 곳에서는 딱딱하다.★★☆☆☆[4336. 12. 18.]    
43    시집 1000권 읽기 33 댓글:  조회:2118  추천:0  2015-02-11
321□태양을 등진 거리□박팔양,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5, 미래사, 1991   무엇보다도 할 말이 뚜렷한데 그것을 너무 돌려 말하거나 있는 그대로 쏟아놓지 않고 나름대로 어떤 장치를 만들어서 나타내려는 의도가 좋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말이 감상에 치우치지 않고 분명한 것이 시를 건강하게 한다. 상당히 많은 시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어떤 시각이 확립됐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그러나 역시 할 말이 너무 많은 까닭에 형식을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가 없어서 시의 전면으로 뛰쳐나온 것이 곳곳에서 문제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에 기울어서 그 문명의 허점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시대를 너무 일찍 산 사람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여기서도 그런 단점이 드러난다. 그것은 새로운 문명에 대한 찬양과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쪽으로 기울이고 만 태도이다. 하지만 어려운 시대에 이만한 내용을 시로 담았다는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4336. 12. 12.]   322□청시□김달진,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7, 미래사, 1991   욕심 없는 청정한 세계를 짧은 형식으로 잘 묘사했다. 말을 풍경 묘사로 대체하는 수법은 뛰어나다. 그런데 많은 시들이 성공과 실패의 수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그것은 시의 발상이나 형태가 한시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자들이 이미지의 진행을 많이 방해하고 있다. 그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담월(曇月), 소경(小景), 촉규화(蜀葵花) 같은 것은 국어사전에 있다고 해도 얼마든지 풀어쓸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한시의 관성에 밀려서 저절로 나온 말들이 아주 많다. 또 절제된 풍경 묘사는 담백한 맛과 여운을 주는 법인데, 문제는 그런 풍경 묘사의 배경에 서려있는 정서이다. 한시에서는 성리학이나 선비의 정신세계 같은 것을 연상하는 관성이 배어있고 선시에는 불교의 깨달음 같은 것을 연상할 수 있는 관성이 있는데, 이 시집의 시에는 어떤 관성이 서려있는지 분명치가 않다. 막연히 유추할 수밖에 없는데 그 유추된 개념을 추려보면 앞의 한시나 선시에서 느껴지는 그런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단순히 인생무상을 노래한 시라고 보기도 어려운 구석이 있다. 조금 길어진 뒷부분의 시들은 주제가 한결 선명해졌고, 또 깊은 울림을 갖고 있다.★★☆☆☆[4336. 12. 12.]   323□어딘지 모르는 숲의 기억□박남수,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9, 미래사, 1991   시는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뽄때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시는, 언어가 의미를 끌고 가는 시가 있고, 의미가 언어를 끌고 가는 시가 있으며 언어와 의미가 서로 잘 어울리는 시가 있다. 언어가 의미를 이끌면 의미는 언어가 움직이는 질서를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명징한 이미지 속으로 의미가 숨는다. 그래서 의미는 시의 뒷편으로 멀어지고 이미지가 선명하게 전면으로 나선다. 의미는 언어의 규정 밖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애초에 의미가 아니라 언어의 움직임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시들이 바로 언어가 의미를 끌고 가는 시다. 반면에 의미가 언어를 끌고 가면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한두 낱말이 정확하지 못하게 쓰여도 전체 시의 구성에는 별 문제가 없다. 앞 뒤 문맥에 따라서 적당히 그 말의 뜻을 부연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미가 중요하지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언어 그 자체는 별로 중요시되지 않아서 상처를 많이 입는다. 시가 어떤 목적에 강하게 경도될 때 이런 일이 많이 생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시들도 있다. 내용도 무시하지 않고 언어도 무시하지 않아서 이미지와 내용이 적당히 잘 어울린 시들이 보기에도 좋고 생명력도 오래 간다. 이념에 종사한 시들이 그 이념의 종언과 함께 맥이 풀려버리는 시로 전락하는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언어에 중점을 둔 시는 거의 영원한 생명을 갖지만, 의미가 언어에 묶여서 경쾌한 움직임을 보여주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모든 선입견을 배제한 오랜 관찰 끝에 나오는 시이기 때문에 많이 쓸 수도 없다. 이 시집의 시들은 오랜 관찰과 그 관찰의 결과를 언어가 이미 갖고 있는 상투화된 쓰임으로부터 벗어난 방식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이룬 개가이다.   박남수의 시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의 작용을 보면 서정주의 시어에 매달린 의미의 세계조차도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 같다. 그리고 시어가 극히 제한된 것들만 쓰이는데도 그것으로 드러내는 세계는 굉장히 깊고 넓다. 아침, 새, 바다, 바람, 밤, 숲, 거울, 풀 같은 낱말을 빼면 남는 말이 별로 없을 정도인데도 이 말들이 드러내는 세계는 참 다양하고 신선하다. 그리고 이런 식의 천착과 관찰이 평생 동안 긴장을 갖고 이어졌다는 것이 더 놀랍다. 오히려 뒤로 갈수록 그 관찰의 섬세함과 깊이는 더 능숙해진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나이와 함께 시까지 늙어 가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보인다. 다만 간간이 집요한 관찰을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마감된 듯한 시들도 있다. ‘비가’ 같은 경우에는 당시 시의 수준으로는 잘 쓴 편이지만 시집 전체로 볼 때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작용을 한다. 그런데도 박남수는 한국시의 절정에 올라있다. 시 쓰는 사람들이 꼭 본받아야 할 시이다.★★★★★[4336. 12. 12.]   324□내 유년의 하늘엔□정한모,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9, 미래사, 1991   내용이 부실한 콩깍지다. 하고자 하는 말보다 언어가 너무 많이 동원되어 번잡하다. 언어를 정확한 곳에 정확히 배치시키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관념 덩어리여서 그것을 대체할 어떤 이미지를 찾아야 하는데, 그 이미지를 찾지 못하고 주변의 관련어들만 나열시키고 있다. 그래서 핵심을 찌를 듯하다가도 빗나가고 빗나가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하고 관찰하지 못한 채 시작을 감행해서 그런 것이다. 결국 의도가 너무 앞섰다는 얘기다. 비슷한 세계이지만 박남수가 이룬 세계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한 끝 차이일 것 같은데 그 한 끝이 천당과 지옥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소설처럼 기획된 의도와 주제를 가지고 시를 쓸 때 이런 오류를 종종 범한다. 의도와 기획을 안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삶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나가야지 저 만큼 의도가 앞서서 삶을 이끌면 시가 건조해진다.★★☆☆☆[4336. 12. 13.]   325□천지현황□김종길,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1, 미래사, 1991   박남수의 시가 언어가 의미를 끌고 가는 시라면 이 시집은 언어와 의미가 서로 적당히 어울려 이미지에 충실한 시가 된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언어가 그 이미지에 딱 알맞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아주 균형 잡히고 안정된 감각을 보여준다. 이미지를 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서 동원하는 능력이 갖추어져있기 때문에 이런 시의 성공 여부는 발상에 달려있다. 어떤 부분에서 발상을 하여 이미지를 동원하느냐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발상이 바로 시의 품격을 결정해버린다. 시집을 차지하는 많은 시들이 이런 성공을 얻고 있다. 그러나 시의 주제와 결말이 너무 흔해빠진 것이어서 빛나는 이미지들이 아까운 시들도 많다. 특히 뒤쪽으로 갈수록 그런 시들이 많아서 나이와 함께 시도 늙어간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빛나는 이미지는 그에 담기는 깨달음 역시 빛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시인이 평생 동안 쓴 작품 전부라는데, 그건 어떤 핑계를 대든 게으른 탓이다. 발상이나 시 쓰는 능력은 나름대로 안정된 방법론까지 갖추고 있으면서 작품 수가 겨우 시집 한 권이라면 게으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더 좋은 작품을 썼어야 했다. 쓰려고 애썼는데, 이 정도라면 그건 능력부족이다. 어느 쪽이든 비판받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학교수가 시를 쓰지 못할 만큼 바쁜 직업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4336. 12. 13.]   326□난초□이병기,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8, 미래사, 1991   이미 틀이 결정된 곳에 감정을 집어넣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조선시대에 시조가 양반들의 노리개로 큰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그것이 감정을 자유자재로 담을 수 있는 시의 틀이 아니라 부르고 즐기는 유행가였기 때문이다. 유행가는 그 제작의도가 가락에 있기 때문에 내용은 좀 엉뚱하거나 뒤떨어져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내용이든 이미 형식이 준비되었으면 그 형식에 맞는 노래를 부르면 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사실 한시라는 정형시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정형시가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시조는 노래하는 데 필요한 틀이었다.   그러나 만약에 형식만 존재하고 거기에 감정을 집어넣으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감정은 쉽게 정형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정형 속에 새로운 감정을 넣으려면 그러한 감정을 그 틀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시는 동일감정의 확대재생산이라는 모순에 빠진다. 이것이 정형시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시조도 마찬가지이다. 가락을 버리고 시로만 작용하는 순간 이러한 벽에 부닥친다. 정형 속에 감정을 담으려면 그 형에 알맞은 어떤 감정의 조건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단발성 시작으로 그치고 만다. 많은 작품을 쓰려면 그 틀에 맞는 정서, 나아가 삶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시조가 현대화하면서 가장 심각하게 부딪힌 벽이 바로 이 점이다. 이미 세계는 어느 한 사상으로 독점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고, 그렇다면 시조라는 정해진 틀이 누릴 수 있는 혜택도 그 형식에 맞는 사상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다면 시조에 담길 사상은 자칫하면 조선시대의 찌꺼기 정서로 전락하기가 아주 쉬운 것이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굳이 시조라는 옛 양식을 되살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그런 질문부터 스스로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미 생명을 다하고 꺼져 가는 것을 되살린들 국수주의자들의 기호에나 영합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형식이 주는 내용의 제한성을 나름대로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여 단순한 복고행각이 아닌 현대의 지평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이병기이다. 물론 그가 취한 난초 취향의 세계관은 조선시대 정취의 찌꺼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겠지만, 그런데도 조선시대의 시인들이 사군자를 끊임없이 개인의 삶 속에 개인화 시켜 되살렸듯이 이병기 역시 훌륭하게 개인화 시켜 현대시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을 한 번쯤 들여다보고픈 곳으로 바꾼 능력이 대단하다. 단순히 개념만 바꾸어 가지고서는 안 될 일을 해냈기에 그의 성취는 더욱 빛나는 것이다.★★★★☆[4336. 12. 13.]   327□길은 멀어도□김규동,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2, 미래사, 1991   이 시집의 밑바닥에 깔린 정서는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을 차단하는 것들에 대한 분노가 아주 정확한 언어에 실려 터져 나왔다. 그런 장애 중에서 분단의 현실을 중시하여 다룬 것은 이 시집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 시대의 가장 절실한 명제이기 때문인데, 그것을 자신의 그리움 쪽에서 터뜨리고 있어서 허황하지 않다. 또 특별한 이데올로기에 의존하지 않고 그리움이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로 접근한 것이 시에 윤기를 더해주고 있다. 시인이 의도하지는 않은 것이겠지만, 의도하지 않은 순수한 감정이기에 더욱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군더더기가 있는 시들이 제법 많은 것으로 보아 이것은 행사를 위해 동원된 것들인 까닭 같다. 그러나 성공하는 시들은 대개 그리움을 노래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연장선상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들이 실감난다. 북쪽에 고향을 둔 까닭이리라. 시를 이런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고 관념을 직접 드러낸 것이 못내 아쉽다.★★☆☆☆[4336. 12. 13.]   328□주막에서□김용호,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8, 미래사, 1991   될 듯 될 듯하면서도 끝내 되지 않은 시이다. 앞부분의 시에서 보여준 언어의 세계는 정말 탁월한 것이다. 청록파가 연상될 만큼 절차탁마를 많이 한 시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풍경 묘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청록파와는 또 다르다. 그런 정서의 본질은 뒤로 가면서 점점 드러나는데, 그것이 한 방향으로 고정되지를 않고 이리저리 흩어져서 변덕스러운 인상을 준다. 그것은 특정한 세계관이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시류에 따라서 이리저리 생각의 중심이 흔들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징표다. 뒤로 갈수록 쓸데없는 말이 많아지고 설명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시로 그린 지도 위에’는 너무 막연하고, ‘해마다 사월이 오면’은 시라고 보기도 어려울 만큼 흥분되었다. 그렇게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썼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4336. 12. 13.]   329□붉은 아가웨 열매를□설정식,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3, 미래사, 1991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읽을 수 있는 시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참 비극이다. 다른 시인들의 경우 아무리 시대의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더라도 대표작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것들은 나름대로 읽을 만한 법이다. 그런데 이 시집은 시들이 모두 길기도 하거니와 문장의 구조가 어지러워서 끝까지 읽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이것은 사상의 급진성이나 가치에 대한 견해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시로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4336. 12. 13.]   330□나그네□박목월,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0, 미래사, 1991   ‘나그네’나 ‘불국사’ 같은 작품들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가 앞부분의 그런 시들을 몇 편 빼놓고는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는 시집이다. 뒤로 가면서 인생의 달관을 노래한 시들은 오히려 서툴기까지 하다. 그리고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시의 주제가 거의 자신의 내면에 머물러있거나 나가더라도 가족이나 친한 이웃들에게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시선집의 편집 때문에 그럴지는 모르겠으나, 시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태도를 떠나서 관심이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다는 것은 시 세계의 다양성과 역동성에 큰 제한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춘수의 시에서 보는 그 지루한 평면성을 박목월의 시에서도 본다. 그러나 청록집에서 보여준 그 놀라운 집중력만으로도 박목월의 가치는 우뚝 선다. 어쩌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4336. 12. 13.]  
42    시집 1000권 읽기 32 댓글:  조회:2140  추천:0  2015-02-11
  311□향수□정지용,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9, 미래사, 1991   시어 조탁의 한 절정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앞부분의 시들은 좀 거칠고 혼란스럽지만, 뒤쪽의 시들은 바다의 흰 물거품에서 갓 뽑아 올린 인어들 같이 싱그럽고 아름답다. 무엇보다도 감정을 절제하면서 그것을 이미지로 대체하려는 감각이 대단하다. 마치 한시에서 영탄조의 내용을 제거하고 보조관념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것 같다. 그런데 운율도 살아있어서 어떤 경우에는 운율이 이미지와 잘 어울려 분위기를 고양시키는데 반해 어떤 경우는 운율이 이미지의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운율은 당시 시인들이 갖던 공통 요소인데, 이렇게 과감하게 이미지로 전환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이 놀랄 만하다. 다만 할말에 비해 너무 많은 이미지들을 거느린 것이 시의 행보를 무겁게 한다. 할 말을 이미지로 대신하려고 하다 보니 생기는 불가피한 일이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여건이 시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의 경지는 여건을 뛰어넘는 데 있다.★★★☆☆[4336. 12. 10.]   312□광야□이육사,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8, 미래사, 1991   시우쇠처럼 단련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고는 쓸 수 없는 시다. 어디 하나 건드릴 수 없을 만큼 완결성을 갖추고 있고 정신 또한 강건하다. 시가 가냘픈 여자의 감성에 많이 기울어져있는 양식이지만, 이토록 우렁찬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역시 이 시집이 보여준다. 형식은 정신에 어울리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시의 주제가 견고한 정신의 그것인 만큼 시들의 형식 또한 아주 견고하다. 아마도 한시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은데, 시들이 마치 정형시처럼 단단하고 어느 시도 처지는 것이 없이 똑 고르다. 운율도 살아있으며 이미지들 역시 제 위치에서 꼭 맞는 옷을 입고 있다. 마음속에 이미 자유시의 어떤 정형성을 나름대로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경향은 정신의 절제력과도 관련이 있다. 오로지 멸사봉공의 정신만을 요구하는 독립운동은 그 안에 스스로 벗어나면 안 될 어떤 정신의 영역을 갖추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 경우 어떤 정신의 영역이란 목숨과도 바꾸어야 하는 최고의 기준이고 생존의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은 물론 사고의 패턴까지도 그 정신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자유분방함은 이미 존립하기 어려운 상태가 진짜 독립운동가의 정신이다. 시의 형식성과 규칙성은 이러한 절제의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 시의 형식은 금강석처럼 빛나는 시인의 역사 정신이 만든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작품 속에서 그러한 정형성에 묶여 그곳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단점인데, 그것은 작품의 문제이기보다는 작품 수의 문제이다. 그리고 작품의 수는 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이다.★★★★☆[4336. 12. 10.]   313□가난한 이름에게□김남조,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3, 미래사, 1991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생각난다. 평생 미니스커트를 디자인 한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우아함만이 아름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어서 화려한 것만을 디자인하느라고 그랬다는 것이다. 라는 등식을 철저히 지킨 셈이다. 이 시집이 그렇다. 절망과 찬양, 감사 같은 감정들이 뿌리가 없다. 뿌리가 없기 때문에 깊이 없는 허무, 깊이 없는 절망, 깊이 없는 희망이 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절망이나 허무에 무슨 뿌리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거기에도 뿌리가 있고 깊이가 있다. 그 뿌리가 딛고 있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깊이가 달라진다.   이 시인이 평생에 걸쳐 만난 고난은 시간 밖에 없다. 우아한 삶에서 시간만이 그 우아함을 허무는 적인 것이다.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이 짜증나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늙어가게 해준 이 생이 감사한 것이다. 역사와 삶이 제거된 이런 세계가 환영받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시만의 특징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몽롱한 세계는 제도 교육의 강력한 뒷받침으로 국민들의 영혼을 마비시켰다. 그 관행의 가장 큰 수혜자가 이런 시를 쓰는 이른바 ‘여류’시인들일 것이다. 그런 특징은 언어를 보면 안다.   시인은 자신의 시가 지닌 경향에 따라 그 시인이 주로 쓰는 낱말밭이 있다. 그 낱말밭의 지도를 만들어보면 그 시인의 체험의 넓이와 영역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인의 낱말밭은 금새 그 넓이가 잡힌다. 세월, 눈물, 이슬, 향기, 바람, 허무, 그리움, 별, 구름, 바다 같은 말들로 압축된다. 우아한 삶의 세계를 나타내는데 굳이 다른 낱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때로 뛰어난 비유가 나타나지만 관념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들은 어차피 군더더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없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남한테 혹평을 받은 적이 없는 행복한 시인이 누리는 고결한 시의 세계이다.★★☆☆☆[4336. 12. 10.]   31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3, 미래사, 1991   오랜 세월 종교에 몸담은 성직자들의 지고지순한 영혼을 보는 것 같다. 고결한 영혼 뒤에 묘한 외로움이 서려있어서 읽을수록 맛이 나는 시들이다. 뒤쪽의 동시는 맑은 영혼의 결정판이다. 왕왕 시에서 보는 지나친 표현이나 감정과잉이 없이 삶을 꾸밈없이 관조하는 가운데 역사의 무거운 짐짝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 그런 성실함이 서려있다. 고독하되 절망하지 않는 것은 종교인들의 특징이다. 그런 특징이 시 곳곳에 서려있다. 세상의 더러운 욕망에 영합하기는 어려운 세계이니 아마도 이 시인이 오래 살았다면 틀림없이 종교에 귀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선이 자신의 내면에만 머물러 있어서 식민지 현실의 충격이 시의 표면에 구김살을 주지 않았고, 그것이 시를 단조롭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요컨대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가운데 순결한 영혼이 외로이 서있는 형국이다. 이것은 거친 시대의 압박을 받아들이는 한 개인의 태도일 것이다.★★★☆☆[4336. 12. 10.]   315□목마와 숙녀□박인환,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6, 미래사, 1991   뜻이 잘 통하는 몇 편을 제외하고는 도대체 의미가 통하지를 안고 말이 안 된다. 이렇게 된 데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먼저 시인의 시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이다. 시는 일상의 체험을 나타내더라도 흔히 쓰는 문장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특별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시를 처음 배울 무렵 표현에 한창 재미를 느낄 때에 한 번쯤 빠지는 유혹이다. 그 유혹은 이미 그러한 단계를 지나온 사람들의 지적이나 가르침을 통해 벗어나게 되는데, 이 시인은 그것을 자신만의 장기로 생각하고 있던 듯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한 버릇이 시에 관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자세히 읽어보면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데 그것을 이리 꼬고 저리 틀고 해서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를 만큼 배배틀렸다. 이것은 시의 재능이 특별하지 못한 시인의 탓도 있지만, 그런 것을 지적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이 더 클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경향을 모더니즘이라는 허울좋은 이념으로 착각하면 문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박인환의 시력으로 보아 이런 것을 모더니즘의 한 기법이라고 착각했기 쉽다.   또 한 가지는 세대의 문제이다. 박인환은 해방 전에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어 상용까지 나갔다가 뒤늦게 해방 뒤에 한국어를 배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일본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쓰는 언어의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이 시집의 시들은 마치 번역시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낱말들의 관계가 어설프다. 낱말 사이에는 그것들끼리 어울리는 매끄러운 관계가 있다. 그것을 낱말관계의 윤활성이라고 하자. 쑥은 뜯는 것이고, 냉이는 캐는 것이며, 두릅은 따는 것이다. 쑥을 뽑는다고도 할 수 있고 딴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정확한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특성 말이다. 이것은 언어를 무의식중에 사용하는 가운데서 저절로 익혀지는 것이다. 번역을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이런 윤활성에 대한 감각이다. 그런데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어보면 이 낱말관계의 윤활성의 거의 없다. 시의 기교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고언어와 생활언어의 차이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다.   같은 세대의 김수영과 김춘수의 시에서도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다. 김수영은 자신은 전혀 시답지 못한 용어로 평생을 일관했다. 그것은 시 쓰는 그의 스타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가 우리말의 윤활성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가 그의 후배들의 시 중에서 이른바 참여시를 긍정하는 시각으로 보았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춘수의 이른바 무의미시라는 것도 이 윤활성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생긴 방편일 수도 있다. 평생에 걸쳐 썼다는 “처용단장”을 꼼꼼히 읽어보면 말들이 대패질 안 한 송판때기처럼 꺼끌꺼끌한 것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것은 그가 우리말의 윤활성에 미진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가 무의미라는 의미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고, 그 간극을 이미지로 메우려 한 것이다.★☆☆☆☆[4336. 12. 10.]   316□푸르른 날□서정주,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3, 미래사, 1991   서정주의 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 같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탐내는 각종 꽃과 나무들이 아름답게 꾸며졌다. 누구나 감탄을 한다. 아름답다. 기괴하다. 그런데 거기엔 사람이 없다. 그냥 나무만 있고 꽃, 구름, 산, 하늘이 있다. 꽃을 그렇게 가꾸고, 나무를 그렇게 심고, 길을 내고 하여 사람이 깃들어 살 만한 공간을 만든 사람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우리가 왕왕 역사니 현실이니 하는 그런 공기와 같은 존재의 숨결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시인이 타고난 천성으로 인하여 이 같은 공기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최소한의 인연인, 부모, 처, 자식 정도만이 그의 시 주변에서 멀리 숨쉬고 있을 뿐이다. 평생을 자신의 마당 바깥으로 걸어나가 본 적이 없는 한 천재의 자기마음 노래하기가 서정주의 세계이다.   이번에 이 시선집을 다시 꼼꼼히 읽으면서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치 현실의 궤도 바깥으로 쏘아 올려진 우주선 같은 느낌이 든다. 시가 현실의 인력 밖으로 쏘아 올린 우주선. 세 살 먹은 아기한테 역사의 양심을 요구하는 형국이니, 이걸 어쩌란 말인가? 전두환이 세 살 먹은 아기한테 귀엽다고 사탕 한 알 준 것이고, 사탕을 받은 어린 아기가 단군 이래 가장 아름다운 웃음을 웃는 할아버지라고 찬양한 것이니, 누굴 탓해야 할까?   언어가 아주 정제돼 있고, 운율이 잘 살아있다. 보통 시들보다 반 박자 정도가 늦은 아주 묘한 가락이 운율에도 살아있고 이미지에도 살아있고 발상법에도 살아있다. 그리고 언어의 확산력을 최대한 살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에게 원초성이랄까 할 수 있는 관념들, 예컨대 죽음, 허무, 시간, 영혼, 절망, 사랑 같은 관념들도 묘하게 살아있는 살이 붙어서 살아 움직인다. 신라의 세계니 불교의 세계니 하는 것은 다 가짜다. 인간, 특히 개인의 본성 속에 숨어있는 어떤 세계를 이미 있는 세계 안에서 찾으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결국 새로운 세계를 보고도 그것을 본 그대로 그려내야 하는 점에서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어쩌면 죽음의 얼굴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기 두려운 까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점이 아쉽다.★★★★☆[4336. 12. 11.]   317□산제비□박세영,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6, 미래사, 1991   표제시인 ‘산제비’를 빼놓고는 별로 보잘 것이 없는 시집이다. 이 시집은 2부에서는 제법 절제미를 보이고 있는데 나머지는 하고자 하는 말이 너무 강해서 시가 거칠고 선동문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호흡이 길고 시를 엮어 가는 힘이 아주 좋아서 장시를 쓰면 크게 장기를 발휘할 시인이다. 좋은 시대를 만난다면 좋은 작품을 쓰겠지만, 험한 시대를 만나서 그 물결에 휩싸이다 보니 정작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 안 됐다고 하겠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면 누구나 겪어갔을 그런 일이니 새삼 문제삼을 것도 없겠다. 게다가 이 시인은 해방 후 월북하는 바람에 남쪽에서는 아예 잊혀진 시인이다. 그러나 해방 전의 어렵던 시절에 그나마 양심을 지키고자 한 흔적이 시집에 남아서 한 가닥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4336. 12. 11.]   318□강아지풀□박용래, 오늘의 시인총서 7, 민음사, 1975   언어로 그린 그림 같다. 앞부분의 몇 편은 절창이다. 언어가 어떤 사물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존재함으로써 그 사물을 불러온다. 존재와 사물이 아주 가까이 붙어있다. 그래서 언어가 곧 존재가 되는 형국이다. 결국 언어를 어떤 사물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쓴 것이 아니라 언어가 곧 그 사물이 되도록 전달의 기능을 배제하고 존재의 지표로 활용했다는 뜻이다. 이 경우는 언어의 선택이 곧 세계를 인식하는 창이 되고 세계가 된다. 그래서 다른 그 어떤 시보다도 선택의 안목과 선택된 언어들이 그려놓는 이 세상의 풍경이 중요하게 된다.   그런데 충남 일원의 어떤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뿐, 그 이상의 어떤 배경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단점이다. 시는 그림과 달라서 이미지가 딛고 있는 세계의 밑그림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단순히 어떤 풍경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앞부분의 시들이 묘한 긴장을 갖고 있는 것도 그 시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세계가 아주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공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그런 전통과 풍속을 갖고 있는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된 언어가 곧 존재를 대치하면서 그대로 독자의 영혼 깊숙이 박혀버리는 것이다. 뒤로 갈수록 긴장이 떨어지는 것은 단순한 풍경묘사로 그치기 때문이다. 시는 어떤 형태로든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게 된다. 풍경 묘사 뒤에도 역시 이데올로기는 없을 수가 없다.★★☆☆☆[4336. 12. 11.]   319□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문덕수,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50, 미래사, 1991   앞부분의 시들을 보면 이 시인은 시와 수수께끼를 구별하지 못하는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듯하다. 독자에게 어려운 지도를 내밀고 보물섬을 찾으라는 식의 요구를 하고 있다. ‘네 개의 막대기’나 ‘영원한 꽃밭’ 같은 작품들이 그런 것들이다. 결국 한 가지 답을 숨겨놓고서 그것을 숨기기 위해 여러 가지 낯선 이미지로 대체해가면서 독자의 눈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시는 수수께끼 놀이가 아니다. 창작의 한 이론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방법론이기는 하지만 정말 시를 아는 사람에게는 우스운 짓이다. 물론 그 시기에 그런 작업을 시도한 것은 나름대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의 형식을 놓고 실험을 하면 시가 지녀야 할 본래의 기능을 회의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시의 본래 성질에서 시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김춘수가 무의미시 운운하며 골짜기 하나 능선 한 폭 없는 지루한 벌판으로 나아간 것처럼 여기서도 그런 무미건조함을 발견하다. 즉, 언어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가까이 밀착해서 독자의 무의식 속에 숨은 깊은 정서를 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표피만을 건드려 금새 감동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간간이 빛나는 비유체계도 그것이 심금을 울리는 깊은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그냥 대체된 심상으로 그치고 있다. 이것은 언어의 기능에 너무 집착해서 생긴 현상이다. 언어와 사물 사이에는 묘한 간극이 있고, 그 묘한 간극은 독자의 체험에서 생기는 것이며, 그 간극을 사이에 두고 언어와 사물이 내진 설계된 건물처럼 흔들리는데, 그 흔들림을 잘 이용하면 상상의 깊이가 무한대로 펼쳐진다. 이 시집은 바로 이 간극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애써 얻은 비유도 그냥 비유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뒤로 올수록 이런 경향은 많이 극복되는데 끝내 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   ‘만남을 위한 알레그로’는 상당히 공을 들인 대작인데, 여기서도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분단이라는 상황과 그것을 극복한 상황을 어떤 묘사로 대체만 할 뿐 본질까지 닿지 못하고 있다. 묘사가 잘 되었는데도 시가 겉도는 것은 대부분 세계관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분단이라는 상황의 근본에 대하 인식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분단의 원인과 그 극복의 방법은 다분히 역사의 전망과 세계의 변화에 대한 시 밖의 인식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인식과 실천의 문제이다. 그에 대한 분명한 입지가 없이 분단상황이라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만 기술했기 때문에 시가 끝내 말만 번지르르 하게 끝나고 만 것이다. 시는 언어로 쓰여지지만 시인은 언어만으로는 시를 쓸 수 없다는 증거이다. 시인은 역사의 노예이자 주인인 것이다. 역사 앞에 구경꾼은 없다. 그러므로 구경꾼의 시 역시 없는 것이다.★★☆☆☆[4336. 12. 11.]   320□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 미래사, 1991   과잉된 감정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왔다. 긴 호흡을 이끌어가는 능력으로 보아 충분히 여과할 수 있을 법도 한데, 이로 보면 일부러 절제를 하지 않은 듯도 보이고, 뒤로 가서도 여전히 그런 것을 보면 절제하는 방법을 모른 듯도 보인다. 어쨌거나 지나친 감정 과잉을 절제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 특별히 눈여겨볼 만한 표현도 없거니와 그런 것 몇 가지도 감정에 휩싸여서 홍수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하나 살 만한 일은 시대 상황에 대한 울분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런 순수성이 표제시나 ‘나의 침실로’ 같은 뜻밖의 작품을 썼을 것이다.★☆☆☆☆[4336. 12. 12.]    
41    시집 1000권 읽기 31 댓글:  조회:1874  추천:0  2015-02-11
  301□진달래꽃□김소월,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 미래사, 1991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곳에 다다른 시인이다. 원래 가락을 잘 느낄 수 없는 우리말에서 운율은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다. 쉽게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통 시가 가락에서 벗어나 이미지로 달려가고 있는 까닭에 분명하지도 않은 운율이 독자에게 어떤 울림을 주기는 힘들다. 그런데 김소월은 그 생각을 뒤집어 놓고도 남을 만한 훌륭한 가락을 시에 실어놓았다. 가락이 살아있는 것은 쉽게 노래가 된다. 유행가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가 곡이 붙은 것은 김소월일 것이다. 이름난 모든 시가 거의 다 곡이 붙었다.   이미지와 달라서 가락은 영혼을 직접 울리는 형식이다. 이미지는 머릿속의 연상작용으로 재조립한 다음에 그 그림의 의미를 분석하고 해석하지만 가락은 그 의미가 와 닿기 전에 이미 심장에 꽂힌다. 심장이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몸 속에서 박동을 쳤기 때문이다. 시의 가락은 바로 그런 본능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그것을 아주 잘 살린 것이 김소월이고, 그 이후에는 김소월만큼 탁월한 성취를 보인 시인이 없기에 김소월을 최고의 시인으로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는 김소월 같은 시인이 나오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시대는 영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또 산업사회의 구조가 우리의 전통 리듬과 단절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시인들은 의미 중심의 시로 쏠리지 않을 수 없다. 김소월 이후 시에서 가락의 전통은 박정만, 문병란, 양성우, 정호승 같은 시인들의 시속으로 면면히 흘러간다. 박정만을 빼면 대부분 민중시 계열의 참여시인들이라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가락이 감정을 자극하고 이미지가 이성의 작용을 강화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재미있는 현상이다. 무엇보다도 김소월의 시에는 한국인의 영혼이 담겨있다. 때묻지 않은 한국인의 영혼이 가락에 담겨있어서 그것을 후대의 시인이 따라할 수 없는 것이다.★★★★★[4336. 12. 8.]   302□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1, 미래사, 1991   시에서 가락을 살리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많은 시에서 성공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가락의 형태가 너무 한결같다. 4․4․5조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거기서 한두 음절을 변형시켰다. 물론 뒤에 오면 시가 길어지지만 앞부분의 짧은 시들은 그런 운율실험의 산물인 것 같다. 긴 시에서도 가락이 잘 살아있지만 거기서 어떤 형식에 가까운 것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가락을 살린다고 해도 의미를 죽이거나 너무 강화하면 안 된다. 의미가 강한 것 중에도 가락이 잘 살 수 있지만, 여서는 가락의 획일성으로 인해서 의미가 두드러지는데, 많은 작품들이 가락 때문에 의미가 잘리거나 비약하고 있다. 그리고 시 전체에서 추구하는 의미나 인식이 깊지를 못하다. 먼저 가는 사람의 불리함이리라.★★☆☆☆[4336. 12. 8.]   303□세속도시의 즐거움□최승호, 세계사시인선 4, 세계사, 1990   시집 첫 장부터 끝장까지 일관된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놀라운 집중력과 뚝심이다. 이 정도면 세계와 대결해도 될 만한 일이다. 세계를 보는 눈이 확고하고 그것을 표현할 만한 능력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통해서 세계의 끔찍스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표현에는 홑겹의 묘사가 있고 겹겹의 묘사가 있다. 홑겹의 묘사는 단순하여 울림이 깊지 않다. 대부분 1:1 대응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겹겹의 묘사는 발상의 자극과 이미지의 작용이 겹겹이 이루어져 울림이 깊다. 당연히 홑겹보다는 겹겹의 울림이 나오도록 시는 써야 한다. 여기서는 홑겹의 시선에 머물러있다. 즉 낱낱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시들이 존재한다. 즉 시인이 세계를 낱낱의 개념으로 이해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한 한 개념을 설명하고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시들이 단순하다. 주로 죽음, 욕망, 허무 같이 이미 낯익게 개념화한 것들을 이미지로 풀어내려고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물론 시집 전체 속에서 세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눈 구실을 하지만, 충분히 겹겹의 방법으로 세계를 보여줄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가 창처럼 찌를 수도 있지만 눈처럼 어느 순간 온 세상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창으로 찌르면 고름이 퍼지지만 눈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세계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고 만다. 시는 그러해야 좋은 시다.★★★☆☆[4336. 12. 8.]   304□사슴□노천명,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1, 미래사, 1991   시의 전체 모습이 크게 둘로 나뉜다. 앞부분의 시들은 내용도 없이 형식에 매달려서 다듬으려고 한 것이고, 뒷부분의 시들은 내용을 담기 위해 무리수를 많이 둔 것들이다. 아마도 이것은 삶의 태도가 변화한 탓일 것이다. 시대에 대한 고민은 그것이 순진한 것이든 아니면 이데올로기 차원의 것이든 집권자들로부터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해방 전 일본이 통치하던 시절에는 그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가 자연 언어를 조탁하는 방향으로 틀어지면서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당시의 실정으로 보면 여자의 섬세한 감수성이 담긴 시를 보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시집 후반으로 넘어오면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강렬해서 언어가 마치 동원되는 듯한 느낌이 온다. 이것은 아마도 한국전쟁을 계기로 사상 논쟁에 휘말린 탓이 아닌가 한다. 결국 시가 이데올로기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노천명 이미지는 주로 앞부분의 것에 쏠려있다. 뒤의 것은 언어는 오히려 매끄러워졌는데 여기저기 불거진 사상의 몰골 때문에 그리 볼 만한 것이 없다.★★☆☆☆[4336. 12. 9.]   305□님의 침묵□한용운,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 미래사, 1991   “기탄잘리”의 영향이 한 눈에 보인다. 어떤 절대성을 향해 인간의 고뇌를 읊는 방식은 굳이 기탄잘리의 특허는 아니지만, ‘타골의 시를 읽고’라는 시를 보듯이 기탄잘리가 한용운에 미친 영향은 어조에 직접 나타나있다. 그런데 기탄잘리의 영탄 내지는 찬양 일변도의 어조와 달리 이 시집은 상당히 세속화 되어있어서 현실의 삶 속에 훨씬 더 가까이 내려왔다. 이것은 아마도 한용운의 사상 속에서 어떤 변질을 입어서 그런 것 같다. 그것은 불교의 사상체계일 것인데, 어떤 영향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영향을 받아들일 만한 성숙한 사상을 갖지 못할 경우에는 그 겉모습만 흉내내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김기림이나 김광균이 받아들인 어설픈 이미지즘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내부에 어떤 성숙된 사상이 이미 자리잡고 있으면 그 사상은 바깥의 어떤 촉발에 쉽게 싹이 터서 건드려준 외래의 것과는 전혀 다른 싹을 내민다.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붙이면 고욤이 나질 않고 탐스런 감이 열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내부에 그런 것이 없으면 그대로 고욤도 아니고 감도 아닌 엉뚱한 튀기가 나올 뿐이다. 이미 불교의 공 사상이 내부에 차지하고 있었기에 한용운은 기탄잘 리가 스치고 가자마자 그 향기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이런 놀라운 세계를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대극의 개념을 활용하여 장점과 단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시를 쓴 것이 많다. 저쪽을 찬양하고 이쪽을 비판하는 식이다. 그래야만 님의 존재가 잘 드러나고 현실의 갈등을 드러내기가 쉽다. 그리고 이 양극은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한 관련에 긴장을 주는 것도 역시 한용운의 시에 잘 나타나는데, 아마도 이것은 공과 색의 개념에 익숙한 불교의 영향일 것 같다. 그러나 설명조의 말이 많은 것은 끝내 단점이다.★★★★☆[4336. 12. 9.]   306□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천상병,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8, 미래사, 1991   마치 동시 같다. 순진하고 깨끗한 마음이 아주 자연스럽게 우러났다. 꾸밈없음이 어설픈 꾸밈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이 시집은 보여준다. 시행일치(詩行一致)를 보여주는 아주 희귀한 예가 될 것이다. 순수한 마음은 순수한 통찰을 낳고, 순수한 통찰은 때로 우주의 본질까지 꿴다. 곳곳에서 그런 놀라운 통찰이 드러난다. 설명하는 식의 화법은 중요한 단점이다.★★☆☆☆[4336. 12. 9.]   307□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도종환, 문학동네 시집 2, 문학동네, 1994   서정시의 한 절정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접시꽃 당신”에서는 격앙된 감정이 시를 밀어올린 형국이었는데, 이 시집은 그런 격랑이 가라앉고 차분해진 상태에서 뽑아 올린 절창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도 차분하고 시의 서술도 냉정하다. 외로움이 차분히 가라앉아서 감정이 일렁일 때마다 연꽃 한 줄기씩 밀어올리는 듯하다. 말들이 자기 자리에 꼭 박혀서 별처럼 빛을 낸다.   두 가지가 문제다. 어설픈 땡중의 깨달음 흉내를 내는 것이 흠이고, 또 한 가지는 뒷부분으로 가면서 시들이 마감이 덜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간결한 맛이 사라지고 느슨해졌다. 시가 깨달음을 동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선가의 발상에 너무 기울면 활구가 되지 못하고 사구로 전락하고 만다. 서쪽 하늘 이미지들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이미 사비유처럼 쓰여서 더 이상 신선한 맛을 내지 못한다. 뒤편의 시는 인식은 좋지만 앞부분의 절망과 외로움을 다룬 것들과 상당부분 배치된다. 그리고 무거운 내용을 가뿐한 발걸음으로 설명하려니 옷이 영 어울리지를 않는다. 욕심을 버릴 때는 과감히 버리는 것이 좋다.★★★☆☆[4336. 12. 9.]   308□노동의 새벽□박노해, 풀빛판화시선 5, 풀빛, 1984   여태까지 묘사되지 않은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 일은, 그 처음이란 조건 때문에, 한 글자 한 줄이 새로운 창조의 고통과 맞먹는다. 그 만큼 어려운 일이고 실험정신과 암중모색의 집념을 거쳐야만 열리는 세계이다. 그런데 그런 세계는 체험과 삶을 투자하지 않으면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곳에 실린 시의 세계는 우리 주변 가까이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전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적이 없는 세상이다. 우리의 가장 아픈 부분이면서도 아무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은 곳, 바로 노동현장이다. 이것은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사회와 역사의 비극이다. 좌우가 공존할 수 없는 현실이 이런 묘한 공동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그 속에서 사람들이 꿈틀거렸다. 바로 그 현장에서 그들이 직접 낸 목소리기에 언어 전문가들이 만든 다른 시 세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나 조직의 지원을 받은 적이 없는 내용들이기에 더욱 값지다. 어떤 이론이나 체계에 의하지 않고 이렇게 저절로 발생한 경우, 이것은 시를 쓴 사람의 감수성과 능력에 따라 수준 차이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시집의 경우 제도권의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대부분의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큼 좋은 작품이다. 인식의 힘이야말로 이 시집의 가장 큰 미덕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형상성 역시 빼어나다. 다만 격앙된 감정에 휩싸여 곳곳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만든 것은 이 시인이 프로가 아닌 한 당연한 결과이고, 그것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화 유산을 누릴 혜택을 받지 못한 이 땅 노동자의 진실한 모습이기도 하다. 노동자가 자신의 말을 시로 하는 어떤 전형을 만들어놓은 시집이다. 그런데 대도(大道)니 별종(別種)이니 하는 한자가 섞인 것은 참담한 일이다. 노동자들조차도 한자를 버리지 못한다는 것은 한자라는 봉건의 관성이 얼마나 뿌리깊고 끈질긴 것인가 하는 것을 또 다시 생각게 한다. 제발 시집 편집자의 실수이기를 바랄 뿐이다.★★★☆☆[4336. 12. 9.]   309□멧새 소리□백석,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0, 미래사, 1991   시가 감정을 담아내는 양식이고, 그것이 또 언어를 그 매개로 하는 갈래라면,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의 질감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가 된다. 언어는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이자 수단에 불과하지만, 때로는 수단이 목적을 결정하는 수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갈래보다 시에서 특히나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자신이 쓰는 언어를 잘 다듬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은 때로 수단에 불과한 언어의 존재양식에 따라서 변형을 입기까지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집착을 하면 언어의 쓰임에 소홀하기 쉽고, 이런 방심은 작품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떤 순간에는 언어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학행위가 될 수 있다. 사회변동이나 역사의 압력이 세어 언어가 기를 펴지 못할 시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일제가 조선어를 탄압하기 전까지는 조선어로 말을 하고 사고를 했겠지만, 기록은 또 다른 차원이어서 그런 살아있는 말들이 기록으로 남겨지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고, 그 와중에 조선어는 일본어인 국어의 압력을 받았다.   백석은 이러한 시점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서있던 시인이다. 따라서 그 시기에 쓰여진 그의 시는 시의 형상화 성공 여부보다는 조선어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백석의 시는 토박이말로 사고를 하고 토박이말로 정서를 그려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언어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언어를 통하여 담긴 정서는 이제는 돌아볼 수 없는 한 희귀한 풍물이 되었다. 시의 구조나 형상화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이 시집의 시들 중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토박이말이 그려낸 세계의 정서는 형상상의 기준으로 잴 수 없는 그런 곳까지 나아갔다. 그 역시 시가 도달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하는 중요한 한 경지이다.★★★☆☆[4336. 12. 10.]   310□오감도□이상,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9, 미래사, 1991   옛날에 읽을 적에는 새롭고 재미있더니, 이번에 읽을 때는 사막같이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햇빛 속으로 간밤의 몰골을 드러낸 라스베가스라고나 할까? 그리고 어쩐지 기형도와 아주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인식을 냉정한 도구로 하여 헛된 지식이 부리는 욕망의 지도를 눈에 비친 그대로 묘사한 것이나, 끝내 자신으로부터 구원을 읽지 않고 문명이 가는 대로 방치해버린 것이나 모두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시는 그것이 제대로 쓰여진 시라면 시안에 모든 비밀이 들어있는 법이다. ‘회한의 장’이란 시에 이상의 마음이 지도처럼 나타나있다. 언어는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이고, 내가 밖으로 나가는 문이다. 문은 열려있지만, 그 밖으로 나가고 안 나가고는 문 안의 주인한테 달린 것이다.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지탄하는 것이 세상이고 그런 지탄을 받지 않으려고 문안으로 더욱 숨어버리는 것은 개인이다. 아마도 이상은 단군 이래 최초의 개인이 아닌가 한다. 언어는 개인을 밖으로 소환하려고 하고 개인은 그 소환장을 받아들고 어쩔 줄을 모른다. 그 소환장을 받지 않는 것은 미치거나 죽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죽을 용기가 없던 이상은 미치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로 보기에는 시들이 너무나 정연한 이미지의 체계와 논리를 갖추고 있다. 이미지들도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맞물려 돌면서 오히려 김수영의 시에서 보이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미지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시를 이끌어간다. 아주 잘 쓴 시다. 정신이 움직이는 양상과 방향을 깊이 관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통찰이 시 곳곳에서 번득이고 있다. 이른바 근대가 개인의 발생과 자유의 실현이라면 그러한 세계를 처음으로 시에 이룩한 시인이다. 자유라는 개념조차 없는 곳에 사는 한 자유인의 처절한 절망과 유폐를 드러낸 시다. 그가 넘어설 수 없었던 일본만이 그의 벽이었을 것이다.★★★★☆[4336. 12. 10.]    
40    시집 1000권 읽기 30 댓글:  조회:1919  추천:0  2015-02-11
  291□고려의 눈보라□강우식, 창비시선 13, 창작과비평사, 1977   역사가 시와 만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관념성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는 관념의 화신이다. 역사가 마치 옛날의 어떤 사실을 다루는 것 같지만, 역사는 사실을 밝히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한 사실들이 함의하는 바를 추정하여 한 거대한 관념의 체계를 세우는 데 관심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관념은 대부분 조작된 것이고, 그런 조작된 관념이 없으면 옛날의 사실 한 조각조차도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시는 삶을 노래한다. 삶이란 관념이 아니라 체험을 말하는 것이다. 관념은 당연히 체험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관념이 체험을 이끌고 가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잘 구별하지 못할뿐더러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를 쓸 때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그래서 역사를 주제로 시를 쓰기가 어려운 것이다. 역사는 관념덩어리고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멀수록 더 심하다. 이 시집의 주제는, 특히 표제로 설정된 고려는 벌써 수 천 년이 지난 일이다. 수 천 년 전의 사실을 현실 속으로 뽑아낼 때는 현재의 관심을 노래할 수밖에 없고, 현재의 관점은 옛 사실을 희롱할 수밖에 없다.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옛 사실을 현재로 끌어들일 때 시인이 맞는 어려움은 세 가지이다. 옛 사실의 선택과 그 선택된 것을 표현하는 매개체와 그 이미지가 드리우고 있는 세계이다. 눈이라든가 바람이라든가 하는 이미지로 고려를 끌어들인 것은 아주 탁월한 수법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끌어들인 이미지가 오늘날 우리의 어떤 부분과 맞물려있는가? 우리 삶의 어떤 부분에 감성을 충전시켜 주는가 하는 것이 정작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이 시집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이다. 탈춤이나 화랑 같은 것들도 너무 관념성이 강하고 추성상이 심한 소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우리의 삶 어느 곳에 닿아있는가 하는 것이 분명한 매듭으로 이어지지를 못한 것이 단점이다. 한자는 역사에서 불가피한 도구라고 하더라도 시에서는 안 그렇다.★★☆☆☆[4336. 12. 7.]   292□우짖는 새여, 태양이여□이인석, 창비시선 22, 창작과비평사, 1980   가장 단순한 시는 구조를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 수준에서 나오는 대로 발설하는 것이다. 이때는 감정이 먼저 나가기 때문에 말들이 감정에 예속되어 울림을 갖지 못한다. 그 격한 감정을 위한 단순한 동원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말들이 서로 어떤 인과율로 묶이지를 못하고 단순한 감정의 지휘를 받아서 산만한 느낌을 준다. 때로는 서로 모순된 관계까지도 보여줄 때가 많다.   이 시집에는 무엇보다도 구조에 대한 고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뜨거운 마음뿐이다. 시의 형식이 어떠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이 내용은 어떤 구조를 띠게 해야만 독자가 시 속으로 빨려드는가 하는 그런 것에 대한 발상이나 고민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감정이 사물을 만나는 즉시 생각나는 대로 읊었을 뿐이다. 한자는 허영심처럼 그 위에 떠있다.★☆☆☆☆[4336. 12. 7.]   293□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신동엽, 창비시선 20, 창작과비평사, 1979   가슴속에 들어있는 신념과 지식이 어떻게 시로 나타나는가 하는 물음은 시인이 갖는 가장 뿌리깊은 의문가 숙제에 속한다. 이 시집을 보면 이 관계에 대한 의문이 거듭 생겨난다. 시인은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에 의해 시를 쓴다. 그 과정에서 신념을 독자에게 전하는데, 그냥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을 이용한다. 그리고 그 지식을 뒷받침해줄 만한 발상과 이미지가 시의 수준과 질을 결정한다. 따라서 이 세 가지가 시인의 영혼 속에서 교묘하게 직조되어야만 좋은 시가 나온다. 좋은 시란 가치관이 분명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이 분명한 것을 말한다. 그래야만 독자는 쉽게 그 시를 기억하고 암송한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는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지식이 너무나 선명하다. 그리고 그 지식과 신념이 여러 가지 말들을 동원하면서 시의 전면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언어들이 신념과 지식을 전하는데 일목요연한 모습을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눌하고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자세히 뜯어보면 나름대로 이미지들이 일관된 원리에 의해 연결을 맺고 있는데, 그것이 한 장면으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숲은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하여 나무를 그리다 보니 숲을 잊은 경우에 해당한다. 나무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한 색깔로만 처리해도 산은 나타난다. 그런데 거기다가 참나무, 가문비나무, 싸리나무까지 자세하게 그리려고 한 것이다. 이런 방법상의 미숙이 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안타깝게도 명징하게 시의 모습으로 다가와서 독자의 영혼에 깃을 치는 시는 두세 편 정도다. 건강한 역사의식은 만세의 모범이 될 만하지만 시의 방법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있었고, 그 중 한자는 버려야 할 세계였다.★★☆☆☆[4336. 12. 7.]   294□중심의 괴로움□김지하, 솔시인선 1, 솔, 1994   시와 철학의 관계는 늘 중요한 문제였다. 이 시집에서는 시인이 어떤 깨달음을 지향하면서 자신의 일상에서 그것을 퍼올리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음을 보여준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우주’라는 말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주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서 그 우주를 일상의 작은 체험 속에서 보고 있다. 철학은 시의 밑거름이고 재료이다. 재료가 그대로 시가 되는 수는 없다. 그러면 그것은 그대로 철학이지 시가 아니다.   이 시집에서는 위험할 정도로 철학의 줄기가 그대로 드러난 경우가 많다. 깨달음으로 시가 기울면 모든 형식을 귀찮아한다. 그래서 그대로 줄거리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시가 단조롭고 세계도 협소해진다. 우주라는 말이 수없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런 증거이다. 우주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시의 울림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일이다. 우주는 그렇게 설명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 아니고 형상화 작업을 통해서 새로 살아나야 할 어떤 것이다. 즉 재료의 차원이지 서술의 차원이 아니다. 따라서 보여주고자 하는 우주의 모습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의 원칙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는 늘 시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한자는 철학을 위해서 청산할 수 없는 것일까?★★☆☆☆[4336. 12. 7.]   295□라틴 점묘 기타□김춘수, 문비시선 1, 문학과비평사, 1988   시 쓰는 일이 달관의 경지에 이른다면 거기서는 입만 열어도 시가 쏟아져 나올까? 기행시를 쓴 시인의 태도를 보면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다. 한 번도 읽는 사람을 배려한 적이 없는 태도가 시집 전체에 일관되어 있다. 기행시는 줄거리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이 이동하기 때문이고, 이동하는 그곳에는 이야기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면 기행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만 평생을 해온 사람은 기행시를 쓰기 어렵다. 그 기행의 대상은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춘수가 기행시를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쓴다면 졸작을 쓸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갖지 않는 기행시는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행시는 발길 닿는 곳의 이야기가 주는 감상을 쓰는 시이다. 그렇지 않고 끝내 자신의 내부에 관심이 머물러있기 때문에 이른바 ‘기행’이 되어도 그 시는 단순하고 단조로운 구조를 띨 수밖에 없다. 남의 이야기를 해야 할 곳에서 자신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소통은 처음부터 차단된다.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 체험은 남들이 겪는 그런 체험도 아니어서 잠꼬대 같다. 그래서 기행시는 가장 어려운 시이다.   김춘수는 시에 대해서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체험 중에는 독자와 공유할 수 있는 체험이 있고, 굳이 그럴 필요도 그렇게 할 의미도 없는 체험이 있다. 시로는 어떤 것이든 못 쓸 것이 없지만 굳이 공유할 필요가 없는 내용을 시로 표현해서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것이 시의 울림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그런 묘한 착각을 이따금 한다. 이 기행시에서도 공항에서 만난 흑인 여자의 체험은 굳이 꺼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우연이 만드는 어떤 일치를 얘기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여행 중에 흑인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가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아서 시에 넣어둔다는 그런 투다. 이런 것은 어떤 것이 시의 내용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의 특징이다. 한글로 시를 쓰는 시인이 한자와 알파벳을 마구 섞어 쓰는 것은 어지간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4336. 12. 7.]   296□처용단장□김춘수, 미학사, 1991   제목이 “처용단장”이기 때문에 이 시집 전체의 내용은 처용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처용이란 소재는 보조관념이 될 것이다. 시는 내가 곧 주인공인 갈래이므로 결국 내 이야기를 할 것이고 그것을 어떤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비유법이다. 장시는 이 비유법이 없이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집의 상황설정은 처용의 것이면서 동시에 나의 것이다. 따라서 처용과 나의 경험이 교대로 짜여지면서 시상을 전개해나갈 것이다.   이 시집은 모두 4부로 짜여졌다. 1부와 2부는 아주 짧은 편이고 3부가 가장 길다. 그리고 본론에 해당한다. 4부는 사족이다. 따라서 1부와 2부는 이 시의 출발점을 나타낸다. 1부는 바다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그것은 처용과 시인의 출생 배경이 바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출생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곧 처용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아주 쉽게 쓸 수 있다. 굳이 내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지 않고 이미지로 몇 개 보여주기 때문에 시들이 짧ㄹ다. 이야기를 내놓을 수 없는 것은 처용과 나의 경험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둘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에 한해서 묘사해야 하기 때문에 바다를 비롯한 몇 가지 이미지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2부에서는 울음이 가장 많은 말을 차지하고 있다. 울음은 절규다. 아내를 빼앗긴 처용의 절규를 뜻한다. 그렇게 묘사하면 저절로 시인의 체험을 담게 된다. 시인의 체험을 자세히 나타내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시의 상징이고 함의이다. 시만이 가질 수 있는 기법이다. 3부에서는 처용의 얘기 대신 내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내 이야기가 처용의 구도와 맞물리면서 이미지들의 긴장을 만든다.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계속해서 처용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4부는 말 그대로 사족이다. 최근의 심사를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는 구조와 대위 때문에 겨우겨우 성공하고 있는 시다. 하지만 보조관념과 원관념 간의 간극이 너무 커서 아무리 현명한 독자라도 하더라도 그 간극을 메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태도가 무책임하고 불성실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그 후의 시단에 그런 불성실을 양산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이성복이나 송재학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성실은 인생에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결벽증을 단재하고 대비시킨 것은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다. 그런 대비는 누가 보아도 역사와 그 속에서 치열했던 한 인물의 삶을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단재가 무정부주의자로 죽었다는 사실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한 소심한 사람이 불령선인으로 몰려서 잠시 유치장 신세를 졌다는 사실을 근거로 자신이 역사에 대해 회의주의 내지는 무관심주의를 보인다는 것하고는 도저히 비교할 항목이 되지를 않는 것이다. 대비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모르면 잠자코나 있을 일이다.   한글로 시를 쓰는 시인의 자질을 의심받아 마땅한 것은 외국어의 등장이다. 한문은 기본이고 일본어도 등장하고 프랑스어까지 등장하여 세계 문화의 쓰레기통인 우리의 현재 문화를 시 속에 축소해놓은 것 같다. 정말로 각성해야 할 부분이고, 이런 자들이 문단의 어른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한심한 일이다. 그것이 시에 어떤 시각효과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해방 전후에 시를 쓴 사람들이 공통으로 갖는 원죄가 아닌가 한다. 일본어로 생각하고 한글로 번역해서 시를 쓰는 그 시대의 자화상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것이다. 한자를 모르고 일본어를 모르고 프랑스어를 모르고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시는 우리 시가 아니다.★★☆☆☆[4336. 12. 7.]   297□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박형진, 창비시선 120, 창작과비평사, 1994   농사는 하늘의 명령이다. 농사꾼은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직하고 거짓이 없다. 거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꾼의 말은 자연의 이법이다. 시 역시 진작에 그곳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나라의 시에서는 농촌 체험이 드물다. 아마도 민요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농사짓는 사람이 시를 쓰지 않는 탓이고, 그것은 시를 고상한 것으로 가르치고 시에서 삶을 제거해버린 제도 교육의 악영향 때문일 것이다. 이 시집은 농사짓는 당사자가 직접 쓴 것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고 반가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툴다. 그러나 그 서툰 행보는 결코 단점이 아니다. 시는 그러해야 한다. 농사꾼의 시가 매끈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우리가 농사꾼의 시에서 읽고자 하는 것은 매끈한 상상력이나 화려한 말발이 아니다.   그러나 과도한 이야기나 줄거리를 시에 끌어들이는 것은 좀 삼가야 할 일이다. 그것은 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시를 쓰고자 한다면 시의 기본은 지키는 것이 좋다. ‘눈 속에서’나 ‘대선을 위한 밭갈이’ 같이 빼어난 작품처럼 한 생각과 체험에 집중하여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 좋은 작품을 쓰는 비결이다. 집중하는 힘이 필요하다.★☆☆☆☆[4336. 12. 8.]   298□골목 하나를 사이로□최영숙, 창비시선 150, 창작과비평사, 1996   뿌리깊은 허무가 시집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그 허무는 추억과 교감하며 시인을 방 안에 가두고 있다. 자신의 내부에 갇혀 있기 때문에 색채는 흐리고 검다. 언어가 아무리 아름답게 다듬어져도 시는 빛나지 않는다. 어둠의 거울 같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들이 분명하지 않은 관념 주변에 모여서 빛을 제대로 내지 못한다. 이것은 시 쓰는 재주 때문이기보다는 시인이 시에서 드러내는 세계 때문이다.   허무란 주제가 원래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물건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내부에 있는 세계로 자꾸 후퇴하고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자신에게는 분명해도 독자에게는 흐릿한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당연히 시선을 현실 속의 어느 한 곳으로 돌려야 한다. 그래야만 할 말이 분명히 서고, 할 말이 서면 이미지 역시 분명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시들이 허영기 없이 아주 안정돼있기 때문에 방향만 잡힌다면 좋은 작품을 많이 쓸 시인이다.★★☆☆☆[4336. 12. 8.]   299□바람 설레는 날에□인태성, 창비시선 25, 창작과비평사, 1981   자신에 대해 엄정한 감정의 절제력과 그것이 시까지 미치는 영향을 이 시집에서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허술한 구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오랜 동안 깎고 다듬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시 전체의 논조가 일정한 반면에 강렬한 인식과 사색의 깊이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것은 삶에서 또는 인식의 방법에서 뚜렷한 방법이나 의지가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이 어느 한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살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나름대로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의 인식마저도 독특한 색채를 띠면서 쉽게 이루어진다. 이 점이 못내 아쉽다. 한자 역시 보기 좋은 모양이 아니다.★★☆☆☆[4336. 12. 8.]   300□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창비시선 19, 창작과비평사, 1979   이 시집은 묘한 맛이 있다. 대부분 시들이 개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서 개인의 체험에 서린 감정을 얘기하기 때문에 그 정서 역시 개인의 것에 머무는데, 이 시인의 경우는 거의가 집단의 그것이다. 분명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시의 전면에 떠오르는 정서는 공동체의 정서이다. 그것은 시인이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서를 정확히 읽어서 그것을 표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운율이 아주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도 증명이 된다. 거의 김소월과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정서가 깊고 그 정서의 박동을 운율로 전하는 데 크게 성공하고 있다. 다만 인식의 출발점이 흐릿하기 때문에 시 전체가 조금 몽롱한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전체의 의미가 메꿔 줄 수 있다. 농촌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시점의 우리나라 정서를 이처럼 잘 대변해주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보기 힘든 정서이다.★★★☆☆[4336. 12. 8.]    
39    시집 1000권 읽기 29 댓글:  조회:2234  추천:0  2015-02-11
  281□그대의 하늘길□양성우, 창비시선 63, 창작과비평사, 1987   분노가 단련되면 운율을 낳는 게 아닌가 싶다. 문병란의 경우도 그렇지만, 양성우의 경우도 시가 담고자 하는 감정은 지극히 단순한데, 시에 살아있는 것은 운율이다. 운율은 본능에 호소하는 양식이다. 아마도 분노를 전달하는 것은 명석한 인식이나 분석보다는 쿵쿵 뛰는 심장과 같은 계열인 리듬에 의존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기 때문일 것 같다.   이 시집의 시들도 거의가 현장에서 낭독을 하면 굉장한 효과를 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운율이 시집 전체를 감싸고 있어서 열 편을 읽으나 스무 편을 읽으나 주제는 동일하다. 그 동일한 주제를 장중하게 몰고 가는 것이 운율이다. 그리고 문병란은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아서 운율이 냉정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이 시집은 그보다 조금 더 격렬하고 떠 있어서 운율 역시 더욱 거칠고 세게 일렁인다. 박진감이 넘치는 운율이 시를 끌고 있다.★★★☆☆[4336. 12. 5.]   282□외로우니까 사람이다□정호승, 열림원, 1998   시의 주제가 단순한 사랑인지 사랑 너머 그 어떤 존재까지인지가 분명치 않다. “서울의 예수”에서는 사랑의 주제가 분명했다. 약자를 감싸는 예수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시대의 험난한 굴곡과 맞물려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들이 한결 짧아지고 깨달음의 방법이 많이 나타나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의 종류는 분명치 않다. 어떤 배경 위에서 그것이 떠올랐는지 분명하지 않은 것이 이 시집의 단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처음부터 이 시인이 갖고 있는 문제였는데 여기에 와서 그것이 좀더 분명해졌다는 것이다.★★☆☆☆[4336. 12. 5.]   283□황지의 풀잎□박봉우, 창비시선 5, 창작과비평사, 1976   문학은 형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역사를 더듬는다면 형식에 집착할 수밖에 없지만, 시에도 세대에서 세대로 넘어가는 시의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그 시대의 아픔을 민감하게 느끼는 어떤 정신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염된다. 사람에서 사람에게 감염되는 정신이 있다. 그것이 시의 정신일 것이다. 그 시정신의 역사로 본다면 이 시집은 196~70년대를 일구어놓은 큰 산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픔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갔기에 여유가 있을 때 발견되는 새로운 형식을 건져 올리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다. 한자는 그 시대의 업보라고 쳐도…….★★☆☆☆[4336. 12. 5.]   284□다시 광야에□김관식, 창비시선 6, 창작과비평사, 1976   한국 시가 이른바 근대로 넘어오면서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유산은 한시의 깊은 세계이다. 그것이 중세봉건의 세계를 고착화시킨 주범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기까지는 상당한 연유가 있기 마련이고, 그 연유란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쉽게 버려도 되는 그런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인류의 역사가 너무 짧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런 미련 없이 깡그리 버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세계의 정서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 현대시를 썼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것은 시대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한시의 고결한 세계를 현대시 속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시들이 이쯤에서 머문 것이 너무 아쉽다. 한 발만 더 깊이 들어갔더라면 아주 독특한 세계를 이루었을 것이다.★☆☆☆☆[4336. 12. 5.]   285□벌거숭이 바다□구자운, 창비시선 8, 창작과비평사, 1976   아름답고 고운 말로 시를 써야 한다는 믿음이 일관된 시집이다. 아름다움을 인간의 사고와 감성의 형식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언어에서 찾은 셈이다. 그래서 끝내 뜨거운 현실이 시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이다. 언어는 중립이다. 그것을 어떤 사람이 어디에다 갖다 쓰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그 색깔도 달라진다. 도자기에 관해서 읊은 시들을 보면 시인이 생각한 아름다움의 개념이 잘 드러난다. 시가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언어는 아름답지만, 감동은 가까이 오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는다.★☆☆☆☆[4336. 12. 5.]   286□한국의 아이□황명걸, 창비시선 9, 창작과비평사, 1976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데 아주 익숙한 시인이다. 묘사력이 뛰어나다. 그런데 시각 이미지를 이용한 묘사는 감정을 앞세우면 대부분 실패한다. 감정을 앞세우려면 시각보다는 청각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청각은 운율을 살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 시집에서는 뛰어난 묘사들이 곳곳에서 동원되고 있는데 많은 시들이 감정이 앞서나가는 바람에 묘사가 주는 효과를 최대한 살리지 못했다. 그리고 시집 전체를 떠받치는 건강한 사상은 조금 더 단련되었더라면 풍자로 나아갔을 그런 것이다. 풍자로 나아가기 바로 전 단계에 머물러서 자칫하면 우스갯소리로 전락하기 직전에 머물러있다. 그러나 시들의 구조가 아주 튼튼하여 시원한 맛이 있다. 한자는 끝내 아쉬운 흠집이다.★★☆☆☆[4336. 12. 5.]   287□백제행□이성부, 창비시선 12, 창작과비평사, 1977   시가 아주 단단하다. 군더더기 표현을 버리고 의미로 뼈대를 만들어 세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시는 강철처럼 단단해지지만 풍성한 느낌이 많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단단함이 지나치면 울림까지도 사라진다. 이 시집은 그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머물러 있다. 앞부분의 시들과 뒷부분의 시들이 너무 수준 차이가 나는 것도 흠이다. 시가 의미 쪽에서 단단해지는 것은 조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신감은 시를 건조하게 만든다. 시가 건조해지면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지루해진다. 자칫하면 시 쓰는 일까지 지루해져서 절필까지 나아가는 수도 있다. 시가 끝없는 지구력을 가지려면 새로 생기는 내용을 담을 형식에 대한 고민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시인은 잠자는 시간에도 시의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다. 한자 역시 그러한 한계의 걸림돌이다.★★☆☆☆[4336. 12. 5.]   288□사랑의 감옥□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102, 문학과지성사, 1991   인간은 무수한 제도와 규제에 둘러 싸여있고, 그러한 규제는 문화로 작동한다. 따라서 문화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 올린 수갑과 차꼬와 감옥에 지나지 않는다. 시가 그러한 감옥을 공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감옥은 시 따위의 공격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공격하는 그것마저도 감옥의 한 편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의 양식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욕망의 조종을 받기에 끝없는 싸움이 된다. 결국은 욕망을 줄이거나 욕망을 대체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시집 속의 내용은 거의가 그러한 규제와 문명과 욕망에 대한 공격 내지는 풍자로 가득 차있지만, 간간이 그 또 다른 세계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곳곳에서 그런 낌새가 감지된다. ‘후박나무’에 관한 연작이라든지 누란, 다라니에 대한 관심이 그러한 기미를 보여준다. 어쩌면 머지 않아 시를 안 쓰게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여태까지 쓴 시를 거두어 태우려들지도 모른다. 공(空)의 세계 앞에 욕망은 부질없는 짓이다. 시인이 그 공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공이 그를 찰 것이다.★★★☆☆[4336. 12. 6.]   289□참깨를 털면서□김준태, 창비시선 14, 창작과비평사, 1977   시들이 아주 건전하고 건장하다. 그리고 튼튼하다. 이것은 정신의 바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말을 통제할 줄도 알고 아낄 줄도 안다. 특별히 눈을 끌 만한 교묘한 재주는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진솔한 느낌을 주어 감동으로 연결된다. 다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시에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군더더기가 많아지고 길어졌다. 시는 길어지면 긴장이 느슨하게 돼버린다. 이것은 앞서 유지했던 긴장의 느낌마저도 늘어지게 해서 실력을 의심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한자는 끝내 청산되지 않는 어떤 한계 같기도 하다.★★☆☆☆[4336. 12. 6.]   290□인동일기□김창완, 창비시선 17, 창작과비평사, 1978   감정을 흥분된 상태로 내놓지 않고 바깥의 상관물로 바꾸어서 표현할 줄 하는 여유와 솜씨를 두루 갖추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호흡으로 세계를 이끌어 올리는 능력이 돋보인다. 그런데 시집을 읽다 보면 어딘가 뿌리가 내리지 못한 개구리밥 모양 같다. 분명히 묘사력은 아주 뛰어나게 대상을 포착하고 있는데, 막상 나타나는 시의 모습은 뿌옇다. 이것은 할말을 너무 숨기려고 해서 그런 것이다. 때로는 말로 직접 드러내야 효과를 크게 보는 대목에서조차 조심스럽게 돌려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시인의 기질 탓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할 수 없던 시대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그런 한계는 개인의 탓만으로 돌기도 어려운 바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왕에 돌려 말하는 것과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하고는 차이가 있다. 직접 발언하기 어려우면 돌려 말하는 것이 장기인 시의 특성을 살려서 좀 더 박진감 있는 묘사를 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980년대 이후에 썼다면 분명 뭔가 달라졌을 그런 시들이다. 시 쓰는 사람이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임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그런데 한자는 끝내 눈에 거슬린다.★★☆☆☆[4336. 12. .]    
38    시집 1000권 읽기 28 댓글:  조회:2116  추천:0  2015-02-11
  271□게 눈 속의 연꽃□황지우, 문학과지성시인선 97, 문학과지성사, 1990   인식은 실천의 문이다. 문을 열어놓고 들어가지 않으면서 문만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은 말장난이다. 시가 꼭 진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지한 자들의 태도가 거짓일 리도 없다. 진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시가 굳이 노리개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귀족문학의 본질이다. 문학이 귀족의 옷을 벗지 않아도 되지만, 그것이 귀족답지 못한 것에 대한 경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귀족답지 못함 역시 시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시집 전체가 코미디 대본이 되고 말았다. 뛰어난 작품인 ‘화엄 광주’ 역시 코미디 대본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지했던 명작이 그야말로 진짜 코메디가 되어 버렸다. 어렵게 이루었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공을 스스로 깎아먹은 셈이다. 삶 자체가 코미디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말 없지만, 유독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치밀어 오르는 그 어떤 의지가 존재한다면 내가 기댄 언덕이 굳이 시이어야 할 것이 없고, 또 그 언덕에 등 비비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침묵할 수 없다면 혼자서 즐길 일이다. 남의 대척점이 되기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희미한 의도라 할지라도 나 자신의 비극에만 그치지 않고 세계 전체를 그 비극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것조차도 자유이기 때문에 아무도 말릴 수는 없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비극이다. 그 비극의 서까래 끝에 연꽃이 피었다. 게눈처럼…….★★★☆☆[4336. 12. 4.]   272□엉겅퀴꽃□민영, 창비시선 59, 창작과비평사, 1987   시집 곳곳에서 운율이 느껴진다. 아마도 시에서 운율이 저절로 살아나게 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다. 다시 찾기 어려운 세계를 우리는 떠나왔다. 그리고 단련된 정신이 짧은 시 구절 속에 잘 들어있다. 시를 짧게 쓰기가 참 어려운 법인데, 위태위태하지만 슬기롭게 넘어가고 있다. 다만 의도가 너무 강해서 옷 밖으로 삐져 나오는 바늘이 곳곳에서 보인다. 나이 들어갈수록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법인데, 운명을 공동의 것으로 규정지은 모습이 당당하고 아름답다. 운율이 버릴 수 없는 좋은 유산인 것처럼 한자는 끝내 버릴 수 없는 나쁜 유산인가!★★☆☆☆[4336. 12. 4.]   273□자유가 시인더러□조태일, 창비시선 60, 창작과비평사, 1994   내용은 너무 단조로운데, 자세히 보면 그것을 말하는 방법과 접근법이 의외로 다양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대부분 선언에 가까운 말들이지만 그 말들을 받쳐주는 어조는 어느 시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참 묘한 일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발언이 상당히 과격한데도 그것이 허황하게 느껴지지 않고 차분하게 와 닿는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것은 역사에 대한 믿음과 진실성, 또는 진정성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목소리를 전하는 시인들이 왕왕 갖는 탁한 격함이 없고 아주 깨끗하고 맑다. 단순히 역사를 말한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닌데, 이런 깨끗함에는 아무런 거짓도 끼어들 수 없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시가 살아나는 것이다. 정신이 이룬 깨끗함이 아마도 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리라. 그러고 저러고 깨끗한 역사의 영혼으로도 청산되지 않는 한자는 어쩔거나!★★★☆☆[4336. 12. 4.]   274□푸른 별□김용락, 창비시선 62, 창작과비평사, 1987   주제가 강한 시들이 대부분 갖는 단점은 무겁고 강한 그 주제를 가볍게 전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전해줄 수 있는 장기를 지닌 갈래이다. 그 갈래의 장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코 잘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시집의 시들도 빛나는 정신을 빼놓는다면 대부분 이런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들이다. 특히 사람의 일생을 다룬 시들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에 따라서 전달되는 내용이나 효과가 아주 다른데, 이 방식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어서 매번 비슷한 유형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아주 아쉬운 점이다. 이왕에 시를 쓰려면 시의 장기를 잘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4336. 12. 4.]   275□땅의 연가□문병란, 창비시선 26, 창작과비평사, 1981   시를 막 배우던 1980년대 중반에 이 시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정말 잘 쓴 시들이다. 무엇보다도 끝까지 일관된 세계관이 훌륭하다. 그리고 그 세계를 한결같은 목소리로 뽑아 올린 유장한 말투가 좋다. 시가 길어서 얼핏 보면 좀 느슨한데, 읽다 보면 저절로 어떤 가락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 가락이 거의 일정하다. 시에 운율이 살아있는 것은 아마도 옛 사람들이 공통된 점이 아닌가 싶다. 소리내서 책을 읽은 세대의 축복이리라. 한자는 그 세대의 숙명 같아서 영 안타깝다.★★★★☆[4336. 12. 4.]   276□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창비시선 16, 창작과비평사, 1978   시대의 몫이겠지만 그 얼어붙은 시대에 이런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시인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20년도 넘은 지금 읽어보아도 언어의 감각이라든가 말투가 우아하고 위엄 있다. 자신의 체험 밖의 것까지 노래하는 바람에 시가 좀 헐렁해지기는 했지만, 한 시대의 정곡을 찌른 시들이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는다.★★☆☆☆[4336. 12. 4.]   277□바보일기 2□가나인, 외톨박이마을, 1984   이 시집이 출판된 시기상으로 보면 아마도 황지우나 박남철 같은 시인과 비슷한 시기에 시의 실험을 시도한 것 같다. 그런데 황지우나 박남철 같은 시인들이 의미의 맥락에서 언어의 연장으로 그림을 끌어들이거나 형태를 흔들었는데, 이 시집의 경우는 의미보다는 형식사의 차원에서 시의 모습을 파괴한 것 같다. 그것은 전위예술의 한 차원이다. 그런데 그런 전위예술은 벌써 수십 년 전에 서양에서 나타난 것이고, 그것이 뒤늦게 시에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이를 시의 역사에서 볼 때 한국에 나타났다는 점 이외에는 어떤 의미의 맥락에서 평가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언어는 어차피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고 그런 속성 때문에 실제를 대신 전달하는 도구 노릇을 한다. 따라서 실제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만 고민한다면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대체하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가 꼭 그림 같은 대체물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만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학이나 생물학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이지만, 언어가 주는 그 규정의 원초성 때문에 인간은 사회 생활의 척도로 언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면화시킨다. 바로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 같은 부분을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은 시의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다.★★☆☆☆[4336. 12. 4.]   278□민속서사시 자청비□문충성, 문장, 1980   서사시는 이미 멸종된 갈래이다. 옛날에 서사시가 가능했던 것은 노래였기 때문이다. 가락에 실어서 뜻을 전달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지루한 얘기를 해도 가락이 그 지루함을 달래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가 지나고 줄거리를 가진 것들이 소설로 진화하고 가락을 가진 것은 대중가요로 진화하면서 시는 시만의 고유한 영역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에 서사시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대답부터 한 다음에 작품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 시집은 제주 서사무가 중 세경 본풀이 내용이다. 농사의 신 자청비의 파란만장한 삶을 복원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집은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에서 나온 것이다. 먼저 서사시가 필요 없는 시대에 서사시를 썼고, 이미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겼고, 그렇기 때문에 신선도에서 떨어진다. 그래서 몇 가지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다. 서사시는 길기 때문에 호흡을 의식해야 하고 말투는 바로 그 호흡에 걸맞은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긴 호흡에 필요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구조는 너무 복잡해도 안 되고 너무 단순해도 안 된다. 말투는 역시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써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현대에서 서사시는 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 시집의 시도 역시 이런 한계를 거의 다 갖고 있다. 그러나 서사시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깨우쳐주었고 그리고 서사시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큼은 이 시의 공로라 하겠다.★★☆☆☆[4336. 12. 4.]   279□겨울날□김광섭, 창비시선 4, 창작과비평사, 1975   시가 한편 한 편으로 쓰여지지만 그 시들이 모여서 보여주는 전체는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사람의 일생이다. 물론 그 일생이 다 드러날 리는 없지만, 시는 정신을 노래하는 것이기에 그 정신이 시의 뒤에 후광처럼 어린다. 이 시집에서는 1980년대 이후의 젊은 시인들한테서는 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모습은 양심에 찔려서 어쩔 줄 몰라하는 한 노인의 모습이다. 나이가 들어도 부끄러움을 알고 그 부끄러움 앞에 정직하려고 하는 그런 시인. 그러니까 올곧은 선비의 정신이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 시의 후광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시의 성취는 들쭉날쭉이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시들조차도 마치 여백처럼 여겨져 묘한 친화력을 준다.   시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우리나라처럼 어지럽고 어려운 역사를 겪은 나라의 문단에서 시 뒤에 그런 정신이 서린다는 것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일이다.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는 기교에 묻혀서 본심이 드러나지 않는데, 이 시집의 시들은 기교가 본심에 딸려서 장난을 치지 못하고 순한 소처럼 본심이 부리는 대로 따라간다. 이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정신의 승리이리라.★★★★☆[4336. 12. 5.]   280□봄 여름 가을 겨울□이은봉, 창비시선 78, 창작과비평사, 1989   혼자서 가뜬히 갈 것이 아니고, 누군가 함께 가고자 한다면 그때의 태도는 나만 갈 때와는 달라야 한다. 우선 동행의 호흡을 맞추어야 하고, 동행의 의식과 동행의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내 생각만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과연 그들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내 생각에 동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만 해결되면 도착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만약에 그들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나아가기만을 독려한다면 그것은 대부분 공허한 목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목소리를 조금 더 크게 높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 상황과 도달해야 할 목표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것은 나만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 시에서 그런 태도란 어떤 지점에 서서 어디서부터 할말의 고리를 풀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곳에서도 조국의 장래까지 깨우칠 수 있는 단서가 있고, 아무리 거대한 노래라고 하더라도 봉창 뚜들기는 소리로 내려앉고 말 수도 있다. 그것은 대개 발상의 문제이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발상의 방법을 심사숙고해야 한다.★☆☆☆☆[4336. 12. 5.]    
37    시집 1000권 읽기 27 댓글:  조회:1880  추천:0  2015-02-11
  261□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유하, 문학과지성시인선 104, 문학과지성사, 1991   종횡무진하는 말빨이 적당한 상상력과 맞물려서 읽는 자의 눈을 솔깃하게 한다. 시에 적당히 살을 입힐 줄도 알고 건너뛸 줄도 안다. 요컨대 시라는 갈래가 지닌 속성을 잘 활용할 줄 안다. 그런데 장광설이 문제이다. 복어처럼 몸을 부풀려야 하는 세상에 대한 역설이겠지만 장광설은 때로 허황함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허황함이 시의 도처에 서려있다. 압구정동의 거품에 대한 비판은 거품 방울 위에 뜬 거품일 뿐이다. 거품에 아무리 아름다운 색채가 어린다고 해도 거품은 거품이다. 중요한 것은 시의 경제와 본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헛것을 쫓다가 좋은 재주만 날리고 만다. 글러브를 끼고서 땀을 흘렸으면, 이제는 그 맨주먹으로 적의 급소를 노려볼 일이다. 허무한 일에 매달려 탕진하기에는 우리네 인생이 너무 짧다. 한자는 발랄한 행보에 무거운 짐일 뿐이다. 벗을 때가 한참 지났다.★★☆☆☆[4336. 12. 3.]   262□꿈속의 사닥다리□이태수, 문학과지성시인선 127, 문학과지성사, 1993   시가 지닌 장점 중의 하나는 어려운 내용을 극히 짧은 내용으로 쉽게 전달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잘 살리는 것이 시를 잘 쓰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가득 써도 이 점을 살리지 못하면 결코 잘 쓰는 시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깨달은 일상의 자잘한 생각이 수북히 쌓여있다. 그러나 그것이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것은 깨달음은 분명하되 그것에 걸맞는 좋은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를 쓴다는 얘기이다. 할말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말하는 통로를 찾지 못하면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둘레를 맴돌기 마련이다. 동어반복이 무상하고 같은 이미지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따라서 이런 모습을 극복하려면 먼저 깨달음의 성격부터 분명히 한 다음 그것을 어떻게 해서 어디에 담아서 빚을 것인가 하는 것을 정확히 찾을 필요가 있다. 일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일상의 바깥으로 한 번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4336. 12. 4.]   263□세월의 거지□김갑수, 문학과지성시인선 84, 문학과지성사, 1989   사람이 한 시각으로 세계를 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시집 속의 세계는 희한하게도 과거가 마구 헝클어지고 구겨진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희망 없음을 노래한 시집들은 많지만 이렇듯이 과거나 추억이 불행의 그 어떤 지표로만 인식되는 시집은 거의 없었다. 무언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나 절망이 훑고 지나간 것 같다. 아마도 그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상상력이 자유롭지 못하고 무엇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는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일부러 그렇게 해버린 상상력의 흔적들. 시가 딱딱해 보이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좀 더 상상력이 부드럽게 작용하도록 방임해주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열쇠일 것인데, 그것은 세계를 보는 태도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스스로 변화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고, 그 몫은 물론 시인 자신의 몫이다. 제목에 남아있는 한자는 딱딱한 지문 같다.★★☆☆☆[4336. 12. 4.]   264□가을 악견산□박태일, 문학과지성시인선 83, 문학과지성사, 1989   시가 지향하는 바는 여러 곳이지만, 그 지향이 빛나게 하는 것은 시인의 태도이다. 이미지들이 그 자체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태도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이미지가 시를 이끌어 갈 때 그 이미지들이 마침내 전하고자 하는 그 세계가 그 이미지의 뒤쪽에 서려있지 않으면 그 이미지들은 아름다울지라도 내용 없는 허망함을 면치 못한다. 특히 자연물 같은 풍경을 묘사할 때 이러한 배경은 더욱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 시집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묘사는 이 같은 문제점들을 많이 안고 있다. 듣는 사람이 없는 독백에 가까운 주절거림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시는 대화의 일종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듣거나 말거나 나 혼자 얘기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소통할 의지를 갖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어떻게 독자에게 다가가는가 하는 방법을 상실할 염려가 많다. 그런 우려가 곳곳에 서려있다. 시는 매끈하지만 읽을 사람이 없다. 이것은 시의 잘못이 아니라 시인의 잘못이다.★★☆☆☆[4336. 12. 4.]   265□다시 시작하는 나비□김정란, 문학과지성시인선 82, 문학과지성사, 1989   열정이 대단한 시인이라는 느낌이 먼저 온다. 그 열정은 존재를 감싸고 있는 모든 굴레에 대한 것이기에 예수가 갖는 열정과도 닮은 점이 있다. 다르다면 그 종착점이 구원에 있지 않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고, 지켜야 할 것도 없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오히려 시에 너무 성실해서 탈인 시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시인에게도 어떤 집착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집착이 이따금 설명으로 나타난다. 설명은 불안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끝없는 전쟁이기에 그 불안은 씻을 수 없다. 처음부터 선택한 것이기에 끝까지 나아가는 수밖에 없으나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다만 방향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니, 그 방향의 끝을 보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있는 것이 중요하리라. 이 파괴의 시 속에 한자가 성실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믿기 싫은 상처이다.★★☆☆☆[4336. 12. 4.]   267□성에꽃□최두석, 문학과지성시인선 87, 문학과지성사, 1990   할 말 많은 시대에 시에 이야기가 끼어 드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야기로 시를 만들어갈 수도 있음을 우리는 많은 이야기 시에서 보아왔다. 그런데 거기에는 산문과 시를 구별해주는 요인이 있다. 요인 역시 여러 가지이지만, 중요한 것은 전체의 틀이다. 틀이 산문의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시집에서는 벗어날 듯 날 듯하면서도 마지막 처리를 못해서 산문의 굴레에 묶인 것이 많다. 시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는 Ⅰ부의 작품들도 그 흔적을 벗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몇 글자만 바꾸고, 시 행만 뒤집어도 될 일들인데, 그게 안 된다. 그런데도 건강한 의식이 시집 전체를 감싸고 있어서 이런 아쉬움을 많이 달래준다. 대개 남의 이야기를 할 때는 꼭 정말로 남의 이야기를 하고 마는 수가 많은데, 여기서는 남의 이야기를 제 이야기처럼 하는 능력도 있다. 아마도 이런 것을 양식이라고 하는 것이리라.★★☆☆☆[4336. 12. 4.]   268□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이동순, 문학과지성시인선 116, 문학과지성사, 1992   역사의 죄의식이 강하면 시를 이렇게 쓸 수밖에 없으리라. 억눌린 죄의식 때문에 시들이 기를 못 피고 억눌려있다. 그리고 시인이 그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발치에 나가있어서 언어 역시 멀리 떠돌고 있다. 시대의 아픔을 모르는 자는 시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얽매어 있으면 노래할 그것을 노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자유를 잃고 관념의 추를 드리우고 있으면 결코 날아오르지 못한다. 무거운 주제일수록 가볍게 접근해야 한다. 역사라는 무게 때문에 현실이 짓눌려버린 상황이면 거기서 나올 이미지는 거의 없다. 게다가 관찰의 시각으로 실천을 말하려 하기 때문에 그 불협화음이 끝내 시를 어색하게 만든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자이다. 그 투철한 역사의식조차도 한자를 청산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아리송한 일이다.★★☆☆☆[4336. 12. 4.]   269□해청□고형렬, 창비시선 61, 창작과비평사, 1987   기교를 부리면 큰 벌을 받기라도 한다는 듯이 지루한 넋두리로 일관하고 있다. 실제로 발언된 내용을 보면 정말 좋은 시가 될 것도 같은 것들인데, 그것이 그냥 평면으로 나열만 되어서 아무런 설득력도 갖추지 못하였다. 시는 3차원으로 넘어서 4차원 5차원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서술은 1차원이라고 해도 그것은 울림을 갖기 때문에 이렇게 고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서술하고 어떻게 구조를 만들어야 이러한 울림이 오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시집에서는 그러한 구조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써온 반동으로 같은 내용을 반복할 뿐이다. 지루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오히려 질리게 한다. 말하는 방법을 다시 공부할 일이다. 내용으로 보면 틀림없이 역사에 대한 어떤 투철한 인식이 있을 법도 한다. 그런 인식이 한자를 그대로 용납하는 것을 보면 그 인식조차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한자가 봉건의 상징이라는 것은 이미 상식 아닌가!★☆☆☆☆[4336. 12. 4.]   270□맑은 날□김용택, 창비시선 56, 창작과비평사, 1986   시집 “섬진강”이 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건전한 정서와 그것을 뒷받침한 일정한 형식 때문이다. 그 형식 안에는 비록 늘어지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상황 배치와 이미지 천착도 있고 또 남도의 유장한 가락도 있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는 모든 허울 다 벗어버리고 막 나갔다. 긴장과 절제는 찾아볼 수 없고, 가락 역시 전체 내용을 담기에는 너무 단조롭다. 사상이야 탓할 것이 없지만 그 때문에 시가 그렇게 늘어진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서 뱉는 모든 것이 시가 되는 그런 곳에 시인은 도달해 있으니, 앞으로 시를 쓰기 어려우리라.★☆☆☆☆[4336. 12. 4.]    
36    시집 1000권 읽기 26 댓글:  조회:2399  추천:0  2015-02-11
  251□오장원의 가을□복거일, 문학과지성시인선 70, 문학과지성사, 1988   소설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대사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설정도 그 발언을 위한 배경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바로 이 소설 비스무리한 구조가 독특한 맛을 낸다. 시보다는 소설쪽 발상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언어들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그물을 펼쳤다가 그 의미의 주변으로 점점 압축해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는 소설의 박진감이 있는 구도와 특색이다.   그러나 소설의 언어와는 달리 시의 언어는 어떤 초점을 향해 움직이지만 이렇게 그물 속의 물고기를 몰아가듯이 가지 않는다. 시의 언어는 주제의 핵심에 끈을 드리우고서 이미지들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마치 여왕벌을 중심에 놓고 한 뭉치를 이루는 꿀벌들 같다. 아니면 한 가지에 달려있지만 그것대로 꽃이면서 전체가 큰 꽃송이를 이루는 불두화 같다. 이 시집은 소설의 특징이 가미된 독특한 시세계이지만 시의 본질과는 좀 거리가 있는 시들이다.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이 적지 않다. 한자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말이다. 영어상용이 실현되기 전까지는…….★★☆☆☆[4336. 12. 3.]   252□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황인숙, 문학과지성시인선 69, 문학과지성사, 1988   특이하다. 언어들이 시의 이미지로 전용되는 순간 묘한 변질을 일으키며 독특한 색채를 낸다. 그 색깔의 원인은 물론 세계이다. 그는 이 세계 안에 몸을 두고 있지만, 그의 의식은 이 세계에는 없는 어떤 곳에 가있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스스로를 유배 보낸 삶의 쓸쓸한 풍경이라고나 할까? 희한하다. 여간한 감각으로는 알아채기 어려운 묘한 곳에서 세상을 보고 있다. 그 독특함이 시를 만들고 일상언어를 시의 언어로 만든다. 그것은 언어와 존재의 중간에 있는 그 어떤 세계인데, 언어에도 속하기 어렵고 존재에도 속하기 어려운 아주 독특한 정서이다. 그런데 그 정서는 아주 풍부하다. 시가 말랑말랑한 것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러나 사물을 뒤집어보는 것은 새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일정한 한계가 있다. 뒤집어본다고 해서 뒤집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뒤집은 세계가 아무리 위안이 된다고 해도 거기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위선에 가깝다. 또 한 가지, 지금의 상태는 시인에 이 시와 이미지를 잘 조율하고 있지만, 정서와 의미의 확산을 사물의 이미지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모호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시인의 통제 바깥으로 이미지를 떠나보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세계는 한 동안 더 머물러있어야 할 세계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4336. 12. 3.]   253□56억 7천 만 년의 고독□함성호, 문학과지성시인선 124, 문학과지성사, 1992   야심만만한 태도와 용기가 시원하다. 자신과 자신의 육화인 서울에 대한 노래이다. 방법은 장광설이다. 후주를 갑옷 속에 안고 적진에서 좌충우돌하는 조자룡 같다. 긴 창끝에서 서울의 욕망이 내장을 쏟는다.   그러나 장광설은 좋은 무기이지만 핵심을 찌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적들은 순식간에 백만대군을 자가증식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조자룡은 이기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후주를 안전하게 선주에게 넘겨주는 것이 조자룡의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날랠지언정 그의 창 끝은 적의 심장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달아날 구멍을 향해 있다. 전략이 필요한 시집이다. 스스로 침몰하는 것도 의미 없지는 않지만 재미에 탐닉하면 침몰 저편의 또 다른 세계가 드러나지 않는다.★★☆☆☆[4336. 12. 3.]   254□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문학과지성시인선 80, 문학과지성사, 1989   시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퍼올려 그것을 우주의 모든 존재와 동일체로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은 무엇인가?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이다. 한 구절 또는 한 상황에서 상관물을 발견한 사람은 많았다. 실제로 한자시대의 모든 시인들은 이것을 당연한 방법으로 구사했다.   그러나 움직이는 모든 동작과 사고, 그를 통하여 울려나오는 시 전부가 상관물로 바뀌어 버리는 기적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기형도가 처음으로 이루었다. 그 내공은 노화순청의 경지이다. 왜냐하면 시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그의 불꽃에서는 붉은 색이 아니라 파란 빛이 난다. 언어들이 위치한 바로 그 자리에서 표현된 것 이상으로 자신의 내장까지 들어내 보인다. 언어가 그것이 지시하는 것 이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기법은 시가 발견해낸 것이다. 그 내용의 풍성함을 기형도보다 더 만들어낸 시인을 나는 아직 못 보았다. 한자를 버리지 못한 채 떠나간 것은 끝내 아쉬움이다.★★★★★[4336. 12. 3.]   255□무진일기□정인섭, 문학과지성시인선 79, 문학과지성사, 1989  긴장의 구조를 너무 의식하면 이미지의 잔가지를 모두 쳐버리게 된다. 그러면 극도의 상징과 논리의 비약이 남는데, 남아있는 그것들끼리 어떤 자장을 형성하여 서로가 서로를 비추면서 한 세계를 끌고 가는 것이 집(集)으로 묶인 시들의 운명이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들이 떠있는 구름을 뒤적거려도 그 구름이 어디서 올라와서 형성된 것인지를 알 수 없다면 그것은 결국 시를 잘 못 썼다는 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 시집의 많은 시들이 그런 위험을 안고 있다. 간혹 가다 절묘한 절제를 보여주면서 성공하는 시들도 몇 있지만, 대부분이 상징 의 우물 속에 담긴 물의 결정체를 드러내주지 못하고 상징으로만 남아있다. 좀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4336. 12. 3.]   256□칼과 흙□김준태, 문학과지성시인선 76, 문학과지성사, 1989   쓰자면 못 쓸 것도 없지만, 말이 곧 시가 된다는 믿음은 시에도 삶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가 역사의 죄를 담을지라도 그 시에도 예절이라는 것이 있다. 격식 없음이 또 다른 격식일 수 있지만, 애초에 격식이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것은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로부터 배척 당할 위기를 스스로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성급한 마음과 분노하는 마음이 어떤 형식을 거추장스러워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나, 삼척동자에게 그 분노를 그대로 다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 쓰는 솜씨는 그렇다 쳐도 버릴 수 있는 한자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4336. 12. 3.]   257□본동에 내리는 비□윤중호, 문학과지성시인선 74, 문학과지성사, 1988   묘사로 말을 대신하는 능력도 좋고 어조도 차분하여 시가 갖는 품격을 잘 갖추었다. 작품들도 고만고만한 수준을 보여서 안정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의 초점이 둘로 갈라지고 있는 것이 흠이다. 또 이 사회의 어떤 부분을 깊이 파고들어야 그 내장을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을 좀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 칼끝이 들어가다가 말고 되돌아 나온다. 감질난다. 그러다 보니 정작 들어가야 할 곳에서 설명으로 대체하고 마는 수가 많다. 설명은 묘사가 주를 이루는 시에서는 치명상이다. 스스로 상처를 만들지 않으려면 시각을 좀더 확고하게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 냉철한 정신이 요구된다.★★☆☆☆[4336. 12. 3.]   258□천로역정, 혹은□김정웅, 문학과지성시인선 72, 문학과지성사, 1988   우리가 시를 쓰고 읽는 이유는 복잡하게 얽힌 이 세상의 의미를 좀 쉽고 알기 좋게 즐기자는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시에서는 특별한 의도를 갖지 않는 한 이미지나 비유를 통해서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전하는 방법을 쓴다. 그것이 시의 덕목이다.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버릇이 든 것인 근대의 일이고, 그것은 그렇게 하는 어떤 의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시가 어려워져야 할 이유가 없는 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시를 쓰는 사람들의 합의이고, 그것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시를 ‘못’ 쓰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중요한 어떤 것을 깨달음으로 얻어서 그것을 나누어주려는 사람은 시로 나누어주어야지 철학으로 나누어주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여기서는 어렵게 얻은 깨달음을 어렵게 전하고 있다. 그 깨달음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시가 철학의 잔해를 너무 겉으로 노출시켰다. 한자도 모자라서 괘사까지 들먹이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이해하든 안 하든 어려움을 어려운 방법으로 전하는 어려운 이유를 한 번쯤 반문케 한다. 그것은 시의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에서 철학의 부스러기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치기이다.★★☆☆☆[4336. 12. 3.]   259□모자 속의 시들□박상배, 문학과지성시인선 67, 문학과지성사, 1988   시들이 대개 말장난 수준에 머물러있다. 말장난이란 말의 부질없는 반복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본 것을 본 그대로 얘기하는 것을 말장난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산문에서도 잘 그러지를 않는 것이다. 산문에서조차 언어는 어떤 대상을 그리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대상을 그리려고 하는 말들의 의미를 버리는 듯하면서도 기실은 그 말들의 의미체계에 매달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장난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장난이 시의 중요한 속성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말의 반복이 주는 운율 역시 이 시집 곳곳에 살아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거기서 느껴지는 절제미라든가 그런 형식 지향의 의식을 나타내는 것은 조작이 아닌 체험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시는 관념만으로 접근하기에 너무 힘든 갈래이다. 한자 역시 그런 모순을 보여주는 대목이다.★☆☆☆☆[4336. 12. 3.]   260□첫사랑□강인봉, 문학과지성시인선 177, 문학과지성사, 1992   자신이 뚫은 벽 안에는 언제나 남들이 모르는 커다란 세상이 있고, 그 세상이 세상과 공유할 수 없는 어떤 것일 경우에는 그것을 보여주는 자의 무상한 몸짓만 반복된다.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추억의 공간으로 가서 이미지를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과거 속에 안주하게 되며, 그것은 이미지의 신선함을 넘어서 새로운 전망을 잃는 우를 범한다. 깊이가 문제가 아니라 방향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종교의 시간은 늘 한쪽으로 흐른다. 흘러간 것이 다시 내 등뒤로 흘러오지만 그래도 방향은 한 가지이다. 그리고 그 방향이 닿은 곳은 시가 그릴 수 없는 곳이고, 시가 그릴 수 없는 곳이기에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묘사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시는 일상의 모습으로 남아있게 된다.   이 시집에서는 시인이 딛고 있는 그 준엄한 세계가 과거 추억 속의 이미지에 담겨있어서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혼란을 준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강은 한 줄기이지만 강속에서 겪는 강은 현란하다. 달빛이 머문 곳의 공기 층이 어떠냐에 따라 사람들의 눈에 비친 색깔은 달라진다. 달라진 색깔을 그림으로써 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리라.   시는 도가 아니지만 도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은 시이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깨달음을 전하는 데 산문 안에서는 어렵게 얘기할 수밖에 없겠지만, 산문 밖에서는 쉬운 말로 전하는 것이 중생을 제도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중이 속인보다 더 속인 같아서는 안 될 일이다. 승속불이는 시에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한자는 산문 안에서 필요하지만 산문 밖에서는 불필요한 것이다.★★☆☆☆[4336. 12. 3.]    
35    시집 1000권 읽기 25 댓글:  조회:2227  추천:0  2015-02-09
  241□즐거운 일기□최승자, 문학과지성시인선 40, 문학과지성사, 1984   좀 경망스럽다. 그 경망스러움은 불필요한 과장에서 나오고 불필요한 과장은 내가 보고자 하는 세계 밖에도 내가 알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짐작하면서도 그러한 짐작에 대해 스스로 외면을 하고 내가만 아는 세계로 용감하게 나아갈 때 생긴다. 그러나 내가 그쪽으로 나아가도 내가 나가지 못한 곳에 나와는 다른 세계가 있음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안다. 외면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가수는 신념만으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나의 신념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 신념이라고 굳게 믿는 오만이 때로는 필요한 법이다. 그 문법에 충실한 시집이다.   이때 가장 큰 문제는 그 문법이 내 삶에 굳건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허공에 떠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잘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해골이 신사복을 입은 형국이다. 관념이 여과를 거치지 않은 채 마구 쏟아진다. 그것을 새로운 형식이라고 우긴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흉하다고 꼬집어주는 벗들이 없기에 더욱 문제인 것이다. 기형도한테서 한 수 배우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되면 시를 쓸 밑천이 남지 않을 것이다. 같은 얘기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보면 이제 한 번 옷을 갈아입어야 할 때가 왔다. 그리고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눈을 주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큰 것 때문에 작은 것을 잃는 일을 이미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한자는 가장 먼저 벗어야 할 옷이다.★★☆☆☆[4336. 12. 2.]   242□우리 이웃 사람들□홍신선, 문학과지성시인선 39, 문학과지성사, 1984   시의 참맛을 아는 시인이다. 무엇보다도 시가 어떤 발상에서 나와서 어떻게 형상화되어야 하는가를 아는 시인이다. 그런 시인은 대개 게으른데, 이 시인은 그러면서도 아주 꼼꼼하고 성실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 한 자 놓치지 않고 그것이 이미지와 잘 맞도록 조탁한 흔적이 역력하다.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시를 쓰다보면 발상이나 이미지 전개 수법도 일정한 틀을 보이게 마련이어서 그와 함께 시인의 능력도 대충 드러나는데 워낙 성실하게 작품을 다듬고 만들어서 그러한 타성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세계에 대한 비전이 없어서 이 뛰어난 재능과 성실로 보여줄 세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 보여준 세계는 이러한 기교로 보여주기에는 너무 하찮은 것들이다. 이것은 시인을 탓해야 할지 시대를 탓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시대는 늘 있어온 것이니 시인 자신의 탓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이리라. 이 꼼꼼함과 성실함이 한자를 허용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4336. 12. 2.]   243□살풀이□홍희표, 문학과지성시인선 34, 문학과지성사, 1982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풍자의 어조와 운율. 연을 나눈 시가 많은 가운데 각 연이 어떤 운율을 지향하는 것이 눈에 뚜렷이 드러난다. 운율 때문에 이미지가 잘 살아나지 않는데 이것은 운율이 그만큼 강하게 시를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변화는 제법 있지만 주로 2음보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2음보는 상당히 무거운 음보이다. 무거운 음보에 실리는 세계는 스케일이 큰 것이어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 음보의 무거움이 풍자와 야유로 연결되고 있어서 묘한 불협화음을 낸다.   세계를 보는 시각이 세계의 저편에 대한 탐구도 들어있지만 주로 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에 대한 풍자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운율보다도 이 풍자의 태도를 읽는 데 온 신경이 쏠린다. 태도와 운율이 서로 간극을 보인 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운율의 움직임이다. 한자는 풍자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운율에는 쥐약이다.★★☆☆☆[4336. 12. 2.]   244□시간은 이미 더 높은 곳에서□장영수, 문학과지성시인선 28, 문학과지성사, 1983   어떻게 쓰면 시다운 것으로부터 멀어질까 하는 고민을 갖고 쓴 시들 같다. 시가 늘어지고 자신의 문법을 어그러뜨리는 것은 시인의 의도 때문이다. 그 의도가 그럴만한 어떤 이유를 일그러진 시 안에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의 주제는 자신의 체험이고, 그 체험들이 일반화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시는 자신만의 체험에 의존하지만 그렇더라도 거기서 나온 시는 독자가 지닌 감성의 안테나를 건드려 반응하도록 해야 한다.   만들어 놓는 데에만 의미를 찾는 것은 들어와 살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집짓기와 같다. 그것이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건축사가들의 몫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것은 현실이다. 그 현실이 어디인가를 이 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이것을 말하려면 시의 출발점을 정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 속이냐 나의 관념 속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시가 어디서 출발하는 갈래인가 하는 근원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일이다. 시에 산문의 진술을 남기는 것은 잘 정돈된 침실에 흙 묻은 군화발로 들어서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한자는 문설주에 남은 흙덩이 같은 것이다.★☆☆☆☆[4336. 12. 2.]   245□이 시대의 아벨□고정희, 문학과지성시인선 30, 문학과지성사, 1983   중무장한 전사의 날렵한 몸매가 연상되는 시들이다. 적들도 분명하고 나의 목표도 분명하다. 공격을 하기 위해서 펼치는 전략도 좋고 전술도 좋다. 무엇보다도 힘찬 기세가 보기 좋다. 어떤 벽도 뚫어버릴 듯한 의지와 투지가 시 전체를 맹렬하게 불타오르게 하고 있다. 하고자 하는 말의 의지 때문에 시가 길어지는 흠이 있지만, 그런 흠조차도 작은 티끌로 만들  만큼 주제가 강렬하다. 강렬함은 형식을 뭉갠다. 그 과정에서 운율이 전면으로 떠오르는 양상이 이루어지는데 남도의 구성진 가락이 연상된다. 한 시대의 절실한 문제가 개인의 정서에 이렇게 깊이 드리울 수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런 세계관 속에 한자가 낑겨있다는 것은 참 이상하다. 근데 이 시집이 왜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을까?★★☆☆☆[4336. 12. 2.]   246□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마종기, 문학과지성시인선 55, 문학과지성사, 1986   시에서 외로움이 물씬 묻어난다. 이것이 시를 만든다. 잃어버리지 못하는 작은 꿈들이 어둠 속으로 사뿐히 날아올라 별빛을 낸다. 그러니 그 별빛은 그리움의 산화일 뿐, 산화에 어찌 형식이 필요하겠는가? 형식이 필요하다면, 그래서 끝내 시인으로 남고자 한다면 사물의 내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자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4336. 12. 2.]   247□결혼식과 장례식□김영태, 문학과지성시인선 54, 문학과지성사, 1986   물렁한 고무푸대 안에 알 수 없는 짐승이 하나 들어있다. 그 짐승이 움직일 때마다 고무푸대의 가장자리가 이리로 몰렸다 저리로 몰렸다 한다. 그 고무푸대는 시인데 가장자리가 미술로 갔다가 연극으로 갔다가 쌍욕으로 갔다가 저잣거리로 갔다가 하늘로 솟았다가 뒷간으로 갔다가 어지럽다. 시가 이리로 쏠렸다가 저리로 쏠렸다가 하는 바람에 그 안에 든 짐승도 상처받고 시도 상처받는다. 고무푸대의 중심에 대해서 말하자면, 시의 영역을 넓히는 것과 갈래의 어중간한 곳에 서있는 것하고는 다른 것이다. 연극이 아니라면 연미복을 입었을 때는 언행도 연회 분위기로 맞추는 것이 좋을 듯하다. 연미복에 육두문자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한자는 연미복에 묻은 흙자국 같다.★★☆☆☆[4336. 12. 2.]   248□프리지아 꽃을 들고□권혁진, 문학과지성시인선 65, 문학과지성사, 1987   시가 모든 장식을 버리고 짧아질 때는 무기로 쓰일 때다. 그때는 창칼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창칼은 극도로 짧기 때문에 급소를 정확히 찔러야 한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살행위이다. 급소를 정확히 찌르지 못 했다면 그것은 무기를 잘 못 고른 것이다.   이 시집에서는 급소가 아니라 허벅지를 찔렀다. 결국 형식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짧을 경우 그 짧은 시 속에 들어있는 것은, 그것이 형식이든 내용이든 독자의 눈에 닿는 순간 보석처럼 빛을 발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 있는 시들은 몇 편을 빼놓고는 흐리멍덩하다. 인식의 단련이 덜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방법을 잘못 선택한 경우가 되겠다. 그래서 시의 소재를 나열해놓은 꼴이 되었다. 시를 쓰는 방법은 대개 살을 붙이는 경우이지만, 이 경우는 살을 빼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시집에 실린 모양새를 보면 반대로 나아간 것이다. 한자 역시 칼날을 무디게 한다.★☆☆☆☆[4336. 12. 2.]   249□지리산의 봄□고정희, 문학과지성시인선 64, 문학과지성사, 1987   신들린 무당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신의 목소리가 된다.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이 시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은 관념어, 추상어를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시로 쏟아져 나온다. 이것은 정신의 승리 때문이다. 정신이 옹골차게 빛나는 사람한테는 언어가 조아리며 다가간다. 다가가서는 순한 강아지처럼 그의 지휘를 받는다. 이상한 일이다.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김남주나 김수영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그런 시를 본다. 이미지들도 그렇고 논리의 비약이나 지루한 말들도 그렇고 모두 위태위태한데, 그 위태위태함을 넘어서 묘하게 시로 살아난다. 이것은 정신이 형식을 끌고 가기 때문이다. 작두날 위에 올라선 무당에게는 모든 존재를 한 몸짓으로 휘어 감는 이상한 힘이 있는 법이다. 이 시집에서는 불굴의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는데, 그 중간 중간에 이상하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물씬 드리워져있다. 관념으로 표상된 죽음이 아니라 삶을 밀어 올린 죽음의 실제이다. 곳곳에서 옆구리 터지듯이 설명이 맨살로 드러나고 있지만, 한자까지 깔끔하게 청산한 세계의 박동이 우렁차다.★★★☆☆[4336. 12. 2.]   250□물구나무서기□최석하, 문학과지성시인선 63, 문학과지성사, 1987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이 우선 아주 독특하다. 인식이 그런 정도로 남다른 특색을 띠면 필연코 그런 특이성으로 인해 기존의 시 형식을 깨고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런데 이 시집들은 너무나 충실하게 기존의 시 형식을 고수하려고 하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인식의 특이성은 세계에 대해 할 말이 많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말이 많은 바를 기존의 시 형식에 담으려고 하면 반드시 이야기를 동반하게 되고 시가 그 때문에 길어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식의 새로움이 끝까지 지탱되면 문제가 커지지 않지만 새로움의 강도가 점차 떨어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넋두리로 변하는 것이다. 이 시집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설명과 이야기가 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어서는 시가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이야기를 하되 산문의 어법이 갖는 무거운 발걸음을 버리고 시의 산뜻한 발걸음을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이런 류의 시를 살리는 대안일 것이다. 한자는 발걸음조차 무겁다.★★☆☆☆[4336. 12. 3.]    
34    시집 1000권 읽기 24 댓글:  조회:2288  추천:0  2015-02-09
  232□제주바다□문충성, 문학과지성시인선 12, 문학과지성사, 1978   상상의 가벼움과 상상력의 진지함에 대해서 생각할 시집이다. 진지함은 무겁다. 그러나 그 무게에 매달리면 상상은 풀리지 않는다. 나비처럼 가벼운 동작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상상이다. 제주도가 지닌 상징성은 시에서 무한정으로 클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의도한 듯 시집 곳곳에서는 제주의 정서와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특수성이 시로 승화되려면 그 특수성을 감쌀 수 있는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조건에 상상의 가벼움이 사물과 접촉하여 나비를 날릴 수 있는 순발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한 번 더 허물을 벗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끝까지 남는다. 소재를 선택하는 것과 그것을 시발점으로 시상을 풀어 가는 노력과 집착은 대단한데 상상력의 무게를 상상의 가벼운 몸짓이 끌고 올라가지를 못하고 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제주에 대한 집착을 끊던가 역사의 고리를 잡던가. 그래야만 상상력이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제주의 특수성에 대한 천착은 그 다음의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한자는 도움이 되지 않을 돌덩어리이다.★★☆☆☆[4336. 12. 1.]   233□메이비□장영수, 문학과지성시인선 11, 문학과지성사, 1977   과장되지 않게 사물을 보고 한 사물에 집착하여 그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그런데 방법상에서는 아직도 혼돈을 겪고 있다. 주로 보여주기 수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줄거리를 가진 것들이 특별한 장치의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지거나 설명으로 대신하려는 듯한 구절들이 많다. 대개 이것은 주제가 빈약한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메이비’ 같은 작품이 그런 애매함을 말끔히 걷어내고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과 비교하면 다른 작품들의 한계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연작들이 일부만 제시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시는 원래 한 몸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존재하지만 생각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는 경우, 앞의 것이 뒤의 것을 이해하는 전제가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자는 도움이 안 된다. 한자는 내용이 애매한 것을 더욱 애매하게 만드는 수가 많다.★★☆☆☆[4336. 12. 1.]   234□무지리 사람들□정대구, 문학과지성시인선 49, 문학과지성사, 1986   무엇보다도 시를 아는 시인이다. 크지 않은 목소리로 결코 과장이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시의 한계까지도 잘 아는 시인이다. 한계를 알 때 경건해지고 겸손해진다. 지금까지 읽은 시들 가운데에는 이것을 아는 시인이 너무 적었다.   그러나 그 한계를 안다고 해서 그 한계에 주눅이 든 것은 그 한계를 아는 것보다 더 큰 병폐이다. 한계를 알고 그 한계를 뚫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진짜 시인 것인데, 몸부림까지 가지를 못하고 그냥 그 한계 안에 머물러있다. 그것이 안타깝다. 나이 탓만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시 전체의 내용에는 나이 문제가 들어있지만, 시에서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계에 구애되지 않고 시의 형식조차도 버릴 줄 아는 과감성과 신념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지금 서있는 그 자리이다.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문이 열린다. 끈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계 앞에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끈기. 드문드문 섞인 한자는 제일 먼저 넘어야 할 한계이다.★★☆☆☆[4336. 12. 1.]   235□악어를 조심하라고?□황동규, 문학과지성시인선 53, 문학과지성사, 1993   시대가 복잡할수록 시인은 말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리고 그런 시들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말이 세월의 침식을 견디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산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말을 하려 하면 반드시 그 말이 거느린 배경이 필요하게 마련이고, 그 배경 때문에 반드시 이야기가 나오게 되며 이야기는 산문의 것이기에 시로서는 보통 부담이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이야기는 산문으로 떨어지지 않고 시의 긴장 속으로 아슬아슬하게 솟아올랐다. 아마도 그 커다란 구조가 시집 전체를 건지고 있다. ‘풍장’ 연작은 압권이다. 어쩌면 이 풍장이 후배 시인들에게 한 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집 전체의 정신에 투철함은 있을지언정 처절함이 없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죽음의 문제는 늘 개인의 것이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은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굳이 남의 이야기를 죽음에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죽음이 갖는 어떤 그늘에서 사회의 영향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은 폭이 좁은 시인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좁은 폭이 깊이를 만들지만, 정말 깊은 깊이는 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좁게 쌓기 시작하면 높이 쌓을 수 없듯이 좁게 파기 시작하면 깊이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은 공법의 문제이지만, 공법도 어느 한계가 있는 법이다. 도는 돈오로 온다. 돈오는 걸림이 없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걸려있으면 활연(豁然)하지 못하다. 한자는 깨달음의 한 장벽이다.★★★★☆[4336. 12. 1.]   236□그림자 없는 시대□이영유, 문학과지성시인선 47, 문학과지성사, 1987   풍자가 사회의 내면을 울리지 않고 겉면만을 흔들면 초라하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더라도 그것이 사회의 어떤 의식을 향한 집중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집중 속에는 무엇이 나와 내가 담긴 사회를 이끌고 가는가 하는 근본에 대한 물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유에 그치고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편에 그칠 뿐이다. 아버지에 관한 문제라든가 한국인의 특성에 관한 문제를 파고드는 것은 방향도 잘 잡았고, 깊이도 어느 정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근본을 이루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성찰이 아직 잡히지 않는다. 말하자면 아직 덜 들어간 것이다. 덜 들어간 상태에서 야유를 하면 쾌감은 있을지언정 적들은 꿈쩍도 않는다. 적들은 의외로 강하다. 그들의 생리를 간파하는 것이 공격의 첫 조건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시집의 큰 맹점이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려 말하는 것은 풍자가 아니라 회피이다. 회피도 풍자의 일종이지만, 약간 다르다. 그 색깔을 빨리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내내 김수영이 생각났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4336. 12. 1.]   237□전쟁과 평화□이기철, 문학과지성시인선 43, 문학과지성사, 1985   시인은 수리나 매와는 달라서 너무 높이 떠있으면 지상의 작은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다. 시인의 조리개는 매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너무 높이 올라가면 뜬구름 잡기가 된다. 바로 이 시집이 그렇다. 큰 구도와 아름다운 말들을 잘 꾸몄지만, 그러한 뜬구름들이 발원하는 작고 미세한 것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전쟁이라고 하는 거대한 구름은 지상을 덮고 있지만, 그것을 걷는 방법은 해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해를 노래하기보다는 구름의 분자를 분석하여 강제강우를 실시하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아니면 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던가. 구름은 우리 집 앞을 흐르는 개울에서 생긴 안개가 다른 곳의 안개와 뭉치면서 생기는 것이고, 그 가벼움이 폭풍우를 만나서 빗방울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 순환의 원리를 깊이 살펴보아야만 구름에 대한 해결책이 보인다. 드물게 섞인 한자는 구름인가 평화인가?★★☆☆☆[4336. 12. 1.]   238□대꽃□최두석, 문학과지성시인선 42, 문학과지성사, 1984   상징을 잘 이해하지만 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야기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시의 법도를 무시할 권리까지 갖는 것은 아니다. 시에도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 시는 지켜야 할 매무새가 있다. 그 매무새는 딱히 이렇다고 정할 수는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상황에 대한 요약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상징으로 승화해야 한다는 것과 이미지의 리듬을 타야 한다는 것이 요결이다.   이미지의 리듬이란 주제의 주변으로 초점을 몰고 가서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가 어렴풋이 떠오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흩어져있던 이미지들이 어느 순간 그 주변에 한꺼번에 서려서 어느 순간 주제가 한 덩어리로 달려들듯이 머릿속에서 지펴지도록 하는 방법을 말한다. 골짜기로 파고 들어간 비행기가 어느 순간 하늘로 치솟으면서 그 밑으로 그때까지 보아온 모든 골짜기 풍경들이 내면까지 펼쳐 보이면서 한 눈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언어가 사물을 1:1로 지시하는 경직성을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곳의 시들은 될 듯 될 듯하면서도 몇 편을 빼놓고는 그 수위에 이르지 못하였다. 대부분 잘 정돈한 쪽지소설(掌篇小說)이나 수필 수준이다. 그리고 시가 지향하는 방향과 한자는 서로 다를 듯한데, 봉건유산인 한자가 이따금 돋아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4336. 12. 1.]   239□머나먼 곳 스와니□김명인, 문학과지성시인선 71, 문학과지성사, 1988   김명인 시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단단하고 복잡한 구조이다. 그 복잡하고 단단한 얼개 속에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걸어놓으면 시인의 내면 풍경이 그대로 살아나면서 그 이상의 것이 전해온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는 그 단단한 구조에 비해 들어있는 내용이 알차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동두천”에서 느껴지는 구조에 담긴 정서가 동두천의 그것만큼 치열하지 못하기에 무언가 얼이 빠진 듯한 느낌이다. 새로운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으면서 옛날의 관성으로 작품을 쓰기 때문이다. 새로운 털갈이를 할 철이 온 것이다. 한자는 제일 먼저 갈아내야 할 털이다.★★★☆☆[4336. 12. 1.]   240□그리운 주막□박태일, 문학과지성시인선 41, 문학과지성사, 1984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태도가 맹목에 점점 가까워질 때 그 증상이 시에 드러나는 양상은 내용의 빈곤이다. 아름다움에 기운 마음 때문에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때도 있고, 한 가닥 실낱같은 내용이라도 있어서 그 아름다움을 버텨준다면 그 때는 용기 있게 밀고 나간다. 이 시집이 그런 지경에 와있다.   그러나 시의 아름다움은 낱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낱말이 이미지의 근원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이다. 언어들이 만나서 이루는 조합이 아름다우려면 그것을 그렇게 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워야 하며, 그 아름다움은 혼돈 속의 질서정연함과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 뒤의 심리변화를 언어에 실어내는 능력에 딸린 것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대부분 내용의 빈사상태에 있다. 풍경을 묘사할 때도 그것이 대상을 담거나 정서를 환기시켜주어야 하는데, 곳곳에서 난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런 원인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서 캐낸 조개가 아니라 부둣가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의 손에 들어있는 조개를 보는 태도에 있다. 그 거리가 내용의 빈곤을 낳고 이미지의 몽롱함을 낳는다. 높이 살 만한 것은 각주처리를 해서라도 한자를 배격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그런 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낱말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 시는 낱말과 낱말 사이에 있다.★★☆☆☆[4336. 12. 2.]    
33    시집 1000권 읽기 23 댓글:  조회:2230  추천:0  2015-02-09
  221□나무는 즐겁다□송욱, 오늘의 시인총서, 민음사, 1978   글쎄, 그때 당시에 보면 좀 신선해 보였을지 모르나, 20년도 한참 넘은 지금 보면 겨우 습작기를 지났을까 말까 한 수준이다. 우선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것이 시라는 잘못된 생각이 곳곳에 보이고,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 관계가 너무 가까워서 민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민망함을 덜려고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지만, 그건 더 민망하다. 그리고 그나마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보아서 불안했는지, 바로 뒷구절에서 설명해주고 마는 경우가 많다. 더 문제인 것은 시가 노래할 것이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역사의식이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문학을 무슨 진열장 속의 장식을 보는 일이라는 어이없는 설정까지 해놓고 만다. 그러니 제대로 된 치열한 정신의 불꽃이 시에 당겨질 리 만무하다. 한자는 씻지 못할 얼룩이고, 김현이 붙인 해설은 꿈보다 해몽이다. 가당찮은 일이다!★★☆☆☆[4336. 11. 28.]   222□나를 깨우는 우리들 사랑□정인섭, 문학과지성시인선 21, 문학과지성사, 1981   방향은 잘 잡았는데, 운전실력이 영 시원찮다. 말들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자신을 죽이고 전체의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데, 말들이 행마다 자기 갈 길을 주장하고 나서서 전체의 뜻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것은 어눌함이라 하겠는데, 그 어눌함이 시에서 꼭 필요한 요소라면 좋겠지만, 여기서는 그 어눌함이 독자들의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지미가 어디서 어떻게 촉발되어 다른 이미지로 건너가고 그런 건너뜀이 의미를 어떻게 싣고 가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할 시집이다.   그리고 주제도 정말 중요한 곳까지 깊이 도달하지 못하고 정작 해야 할 말들의 주변에서 겉돌고 있다. 이 점이 사실 더 큰 걱정거리다. 그리고 이미지 문제도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아니 갈 거라면 모르되 이왕에 나선 길이라면 인식의 칼을 좀 더 날카롭게 벼려야 할 일이다. 한자는 그 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4336. 11. 29.]   223□작아지는 너에게□홍영철, 문학과지성시인선 25, 문학과지성사, 1982   시가 주제 없이 이미지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이 시집은 보여준다.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 순간 말들은 긴장을 잃는다. 긴장을 잃은 말은 어디서 서술어를 마감해야 할지 그것을 몰라서 갈팡질팡한다. 그렇다고 자유롭게 흐르는 연상작용을 따라서 자신의 진폭을 펼쳐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변의 그럴 듯한 이미지들을 동원하여 홀로 설 수 없는 이미지의 외로움과 서러움을 달랠 뿐이다. 이미지들이 자신의 존립을 견디기 위하여 희박한 의미들을 끌어당기는 애처로운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이것은 애초에 시에 의미를 두려 하지 않는 의도에서 나온 숙명이다. 이 숙명을 시집은 원죄로 안고 있어서 끝내 그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끝내 독자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 하는 것부터 고민할 일이다. 의미 없는 세계에 의미를 강요하는 한자가 끼어 든 것은 더더욱 이상하다.★☆☆☆☆[4336. 11. 29.]   224□섬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문충성, 문학과지성시인선 20, 문학과지성사, 1981   시를 쓰는 마음이 허황하지 않다는 것이 우산 살 만한 일이다. 자신의 삶 주변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모든 것을 시로 만들려는 마음이야말로 시인의 마음이다. 특히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두고 이런 작업이 진행된다면 그것은 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 수 있는 특이한 환경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그렇게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은 시인의 재능이다.   그런데 이 시집의 대부분이 갖는 한계는 일상 속에 파묻혀서 일상의 그늘을 극복하지 못 한다는 점이다. 일상의 애환을 시로 다룰수록 시인의 정신은 더욱 빛나서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 것을 찾아내어야 한다. 그래야 시에 생기가 돈다. ‘나팔꽃’ 연작 같은 수준만 되어도 좋을 뻔했다. 일상이 시의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 중력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일상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구는 지구 밖에서 볼 수 있다. 지구 안에서는 지구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땅이 보인다. 땅만 보아 가지고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일상과 시의 관계가 그러하다. 한자는 중력의 무게만 더할 뿐이다.★★☆☆☆[4336. 11. 29.]   225□불꽃놀이□박이도, 문학과지성시인선 26, 문학과지성사, 1983   이곳 저곳으로 눈 돌리지 않고 한 세계를 깊이 천착하여 꾸준히 밀고 가는 것은 보기에도 좋다. 그러나 시에 대한 고정관념이 시의 세계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방법 역시 고전 중의 고전이어서 다음 행과 다음 연에서 무슨 내용과 이미지가 등장할까 다 예상이 될 정도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방법이 상투화되어서 독자에게 새로움을 주기 어렵다는 뜻이다. 새로움이 없으면 시는 쓰나마나 한 것이다. 그 새로움은 내용이든 형식이든 인식에서 오는 것인데, 스스로 시의 함정과 범주에 빠져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먼저 시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버릴 일이다. 그리고 일상의 의미에 좀 더 치열한 정신을 작동시켜서 시삶불이(詩-不二)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시에다가 내 삶을 맞출 것이 아니라 삶을 먼저 열어서 그 안에서부터 시가 쏟아져 나오게 할 일이다. 한자가 섞이면 열렸던 삶조차도 닫힌다. 시의 언어에 오래도록 고민한 흔적이 있는 시집에서 한자가 서슴없이 등장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4336. 11. 29.]   226□또 다른 별에서□김혜순, 문학과지성시인선 17, 문학과지성사, 1981   장면 전환이 너무 빨라서 따라 읽기 숨찬 시집이다. 그것은 이 시인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원관념 쪽에 서거나 보조관념 쪽에 서서 그 연관을 지워버리는 수법은 일견 새로운 방법인 것 같지만, 아주 구태의연한 방법이다. 그 구태의연함을 새롭게 하려는 시도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런 훈련을 거치고서 상징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중요한 것은 언어와 상황의 정확한 쓰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틀린 지식이 한 군데라도 발견된다는 것은 이러한 방법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장면 전환이 빠른 시일수록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시집에서 방법을 너무 많이 바꾸는 것은 시인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빈약한 내용을 가리려는 유치한 방법이나 마무리를 덜한 것으로 충분히 오해받을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오해들에 대한 곡해이다. 시는 정신의 문제이다. 형식과 내용에 대한 변혁은 인식에서 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떠받치는 것은 정신의 치열함이다. 그리고 그 치열함은 진실 쪽에서 점화될 때 아름답게 타오른다. 그리고 타오름에 의미가 있다.   진실이 있느냐고 묻는 오만은 자신만의 진실 이외에는 모두 가짜라는 모순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 모순을 시에서 드러낸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숙한 짓이다. 시에서 드러내지 않아도 독자는 그것을 알아낸다. 시 몇 편에 속아넘어가는 독자들 몇을 만나보고서 나머지 독자들까지 그럴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완전범죄를 꿈꾸다가 잡히는 똑똑한 범인들의 생각이다. 잡히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죄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시 몇 편에 농락 당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자 역시 머지 않아 그러한 죄가 될 것이다.★★☆☆☆[4336. 11. 29.]   227□이 시대의 사랑□최승자, 문학과지성시인선 16, 문학과지성사, 1981  날카롭고 튼튼한 송곳이 하나 시집 속에 들어있다. 어느 벽이든 뚫리지 않을 수 없는 대단한 송곳이다. 그러나 송곳은 날만 가지고 쓰는 물건이 아니다. 자루가 있어야만 그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 뚫어야 할 것이 관념의 벽이기에 손잡이의 모양새는 더욱 중요하다. 그 손잡이는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다.   이 송곳이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일이다. 송곳의 흐름과 어긋나는 시들이 들어있다는 것은 이 시집의 큰 취약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직유가 너무 많은 불편함에 비하면 그리 큰 것은 아니다. 직유는 날카롭기는 하지만 깊이를 갖기 어렵다. 조심해서 써야 한다. 이 모든 허점을 다 덮을 수 있는 것은 치열한 정신이다. 그리고 그 치열함을 퇴색시키지 않는 순수함이다. 한자는 송곳의 날을 무디게 할 뿐이다.★★☆☆☆[4336. 11. 29.]   228□예레미야의 노래□박두진, 창비시선 29, 창작과비평사, 1981   해방 전후에 쓰여진 앞의 시 몇 편을 빼면 특별히 볼 만한 작품이 없는 시집이다. 그러나 험난한 역사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그 분노를 시로 발언할 수 있는 정신은 시의 모자람을 덮고도 남는다. 남들이 다 늙어갈 때에 늙은 사람이 늙지 않은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형상화의 문제 이전에 시인이라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요건이다. 그 요건을 못 지키는 자들이 시인 행세를 하고 다니기에 모자람조차도 빛나는 것이니 이것은 이 시인의 뛰어남이기보다는 문단의 못남이 더 큰 증거이다.★★★☆☆[4336. 11. 29.]   229①□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이성복, 문학과지성시인선 13, 문학과지성사, 1980 230②□남해 금산□이성복, 문학과지성시인선 52, 문학과지성사, 1986 231③□그 여름의 끝□이성복, 문학과지성시인선 86, 문학과지성사, 1990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다. 1:1 대응이 기본이 되기는 하지만 사물과 사물, 이미지와 이미지, 상황과 상황, 정서와 정서, 세계와 세계, 추억과 추억이 만나는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 발상의 고전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미지의 흐름이 초현실주의 비슷한 분위기를 내기도 하지만, 위의 시집들은 이 같은 시 발상의 고전 형식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된다. 원칙에 너무 충실하기에 그 한계 안에 갇혀서 답답함을 주고 있는 것이다.   ①은 상황이 만든 원관념의 세계를 보조관념만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원관념이 현실 속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에 시간과 공간이 뒤섞여서 겉으로 보기에는 혼란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 혼란스러움은 방법의 혼돈까지 겹쳐서 독자들의 접근을 더욱 어렵게 한다. 그러나 사실은 시인으로서는 독자들을 배려하고자 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것은 자신의 방법이 먹혀들지 않을까 보아서 불안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②와 ③에서는 그런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시의 긴장은 ②나 ③보다 ①에서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불안함이 보조관념을 어떻게든 원관념에 드리게 하려고 하는 성실함 때문이다. 따라서 ②와 ③은 방법상으로 보면 성실성을 결여한 오만한 태도에 가깝다. 이 오만함이 시의 성취로 이어지면 별 문제인데, 추억은 울궈먹을 수 있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미 ①에서 울궈먹을 대로 다 울궈먹었기 때문에 ② 이후에는 동어반복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시의 발상에서 나타나는 매너리즘과 결합하여 시의 긴장까지도 떨어뜨린 원인이 된 것이다. ②나 ③에서는 무언가 ①과는 분명히 다른 세계관으로 나아갔어야 했던 것이다. 삼류 유행가에도 다 들어있는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말만 가지고는 안 된다. 실천까지는 못 가더라도 개념이라도 만들어서 나아가야 그 그릇 안에서 시가 나오는 것이다. 말만 바꿔 가지고는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②에서는 원관념을 버리고 보조관념만을 등장시켰기 때문에 그나마 ①에서 원관념에 드리우려던 연결의 긴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시가 매끄러워졌어도 늘어진 것이고, ③에서는 ②의 방법을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같은 추억과 세계를 울궜기 때문에 원관념을 ‘당신’이라는 관념으로 대체한 것인데, 그래도 당신이라는 것 자체가 관념 덩어리이기 때문에 어떤 보조관념을 대체해도 시가 몽롱해진 것이다.   결국 방법의 문제이기보다는 세계관의 문제이다. 세계관을 그대로 두고서 방법을 바꾼들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매너리즘의 반복만이 남을 뿐이다. 정말 좋은 씨를 쓰는 것은 방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뜯어고치는 일이다. 치열하지 않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하리오! 한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꽃이 되지 않는다.★★★☆☆[4336. 11. 30.]    
32    시집 1000권 읽기 22 댓글:  조회:2067  추천:0  2015-02-09
  211□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황동규, 문학과지성시인선 1, 문학과지성사, 1978   전에 읽을 때는 구조가 탄탄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근 15년만에 다시 읽어보니 탄탄한 게 아니라 딱딱하다. 이미지들이 의미의 고리에 단단히 묶여서 쥐죽은듯이 숨죽이고 있다. 이것은 시를 논리로 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자꾸 사건화 하려고 하고, 많은 이미지가 동원됐는데도 시를 읽고 나면 잔상이 의미에 집중된다. 이것은 시집의 앞부분으로 올수록 더하다. 그리고 이른 시기에 쓴 뒷부분은 당시의 시대상황이 연상되는 구절과 분위기 때문에 어떤 암시성과 상징성까지 울림을 갖는데, 앞부분으로 올수록 그런 울림의 진폭이 적어진다.   생각건대 이것은 시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무료한 일상에 대한 비판인지, 그 일상 속의 의미 찾기인지, 아니면 일상 건너편의 어떤 세계에 대한 동경인지 그것이 분명치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섞여있다. 결국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뚜렷한 신념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태도가 시를 모호하게 만들고 탄력을 잃게 만든다. 집이 크면 살기는 편하지만 썰렁한 게 흠이다.★★☆☆☆[4336. 11. 27.]   212□투명한 속□이하석, 문학과지성시인선 8, 문학과지성사, 1980   시각 설정의 통쾌한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을 확고하게 정한 뒤의 아름다운 질서가 시집 한 권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너무 확고하다. 첫 시집이 갖는 몽롱함이 없고 너무나 당당하다. 그 당당함이 좋다. 광물질은 시의 소재로 꺼리는 것인데, 이러한 광물성을 가지고 문명의 중요한 측면을 끄집어내어 사람의 상상을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은 대단한 힘이다. 그런데 소재를 몇 가지로 국한시키다 보니 답답한 것이 흠이다. 그러나 그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능력은 놀랍다.★★☆☆☆[4336. 11. 27.]   213□무인도를 위하여□신대철, 문학과지성시인선 7, 문학과지성사, 1994   자연에 대한 관찰이 순수한 시각과 만나서 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자연을 대하는 마음이 자연에 대한 묘사 자체로 끝나거나 관념의 이입으로 그치기 일쑤인데, 여기서는 자연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연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감정을 실어내고 있다. 묘한 재주이다. 결국은 관념을 이야기하게 마련이지만 그런데도 자연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자연을 생각이 아닌 몸으로 체득하지 않으면 가닿을 수 없는 세계이고,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만나기 어려운 세계여서 더욱 돋보인다.   말들은 그 말들이 거느리는 배경이 있다. 낱말 하나를 선택하면 그 낱말이 거느리는 배경의 언어들이 동시에 떠올라야 한다. 이 질서를 파괴하면서 시를 쓰는 수법이 있고, 이 질서를 잘 살리면서 시를 쓰는 수법이 있는데, 이 경우는 후자이다. 말 한 개가 숱한 배경의 언어를 끌어올리면서 독자를 자연 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뒤로 가면서 관념이 강해져서 그런 분위기가 많이 깨졌지만, 이 정도의 성과만으로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 관념이 강해지면 자연 경관이 훼손당한다. 관념이 강해진 것은 자신의 방법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곁엣사람들이 동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의 줏대는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곁엣사람들은 함부로 입방아 찧을 일이 아니다. 한자는 청산해야 할 군더더기이다.★★★☆☆[4336. 11. 28.]   214□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친다□김형영, 문학과지성시인선 6, 문학과지성사, 1979   미늘이 시원치 않은지 애써 바늘을 문 고기가 수면 밖까지 끌려나왔다가 빠지고 빠지곤 한다. 이미지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한 단계만 더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찔러야 할 그곳까지 가지를 못하고 바깥에서 걸리고 만다. 이미지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의미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아니다.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면 의미가 사라지고,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이미지가 흐려진다. 시상을 어디에서 잡아서 어디로 끄집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이다. 자못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이 해결되어야만 시가 나아갈 방향도 잡힌다. 한자 역시 부실한 미늘 노릇을 한다.★☆☆☆☆[4336. 11. 28.]   215□신들의 옷□안수환, 문학과지성시인선 23, 문학과지성사, 1982   이 시집에서 눈을 끄는 것은 사상이다. 형식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그나마 시가 되는 것은 나름대로 치열한 고민이다. 그것이 인간 속에 내려온 신의 존재나 신이 방관하는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몸부림과 연결되어 독자에게 반추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시의 형식에 대한 고민이나 노력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서 읽는 이로 하여금 맥이 빠지게 한다. 이따금 저절로 생겨난 형식이 어떤 단계까지 올라선 경우도 적지 않지만 많은 시들이 도달해야 할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한자는 그 무거운 발걸음을 더욱 죄고 있다.★☆☆☆☆[4336. 11. 28.]   216□작은 마을에서□최하림, 문학과지성시인선 22, 문학과지성사, 1982   무엇이 시를 쓰게 하는지 그것이 분명치 않다. 시 전편이 시를 써야 한다는 어떤 절박한 동기가 있어서 쓴 것이 아니라 쓰다 보니 쓰게 된 것들이다. 그러니 긴장이고 이미지고 거론할 것도 없다. 거의 넋두리에 가깝다. 언어가 사물을 어떻게 촉발시켜야 그것이 읽는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지 아니면 이야기라도 있으면 그것을 어디서 풀어가야 하는지 하는 시의 그런 동기에 대한 고민도 찾아볼 수 없다. 있다면 시간뿐인데, 그 시간마저 자신 속에 갇혀있다.   이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고민을 덜 한 데서 오는 현상이다. 시가 무엇을 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시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에 겨울 이미지가 많이 나오는데, 이 겨울이 시집을 위해 어떤 기능을 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냉랭한 겨울을 인생의 후반부 어디쯤일 꺼라고 막연히 설정하는 것은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일이다. 풍경을 통해 독자에게 말을 시킬 때에도 선택의 감각과 절제가 필요한 일이고, 그건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 시의 기본을 생각할 때다. 정말 버려야 할 것은 한자이다.★☆☆☆☆[4336. 11. 28.]   217□안개와 불□하재봉, 민음의 시 20, 민음사, 1988   세계 없이 이미지만 가지고 시를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하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차라리 앞 부분의 세 편, 그러니까 어린 시절을 되살려놓은 시들은 아기자기 하고 고만고만한 이미지들이 모여서 정말 아름다운 신화를 되살려놓을 뻔했다. 그것은 시인이 살아온 그것의 실감나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에 펼쳐진 세계는, 이미지와 구조는 서구신화의 그것인데, 내용은 서구 신화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 전통의 어떤 기슭에 기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복원할 신화세계도, 본 적이 있는 신화세계도, 가야 할 신화세계도 아닌, 이미지로만 치장된 신화 비슷한 세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지 못하고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글을 다루고 짜임새를 만들어가는 저력은 경탄할 만하다. 그러나 시는 그러한 능력보다 현실의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 하는 지극히 간단한 사실에 진지할 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전혀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는 불필요하게 장황하고 길어지는 것이다. 세계를 못 갖춘 말들은 거품처럼 흩어지기 마련이며, 세계를 갖추지 못한 시인은 자신의 현실 속에 뿌리내릴 때까지 시를 쓰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기에 이 같은 몽환의 세계에서 빠져 나와 현실로 돌아올 때 부딪힌 세계가 바로 문명이라고 하는 껍데기였으니, 껍데기를 진실로 알고 밀어붙이면 나중에는 아예 시가 아닌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 시인이 시를 버리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길이었다.★☆☆☆☆[4336. 11. 28.]   218□대설주의보□최승호, 오늘의 시인총서 22, 민음사, 1983   시인의 섬세한 관찰력이 사물에 접촉할 때 어떤 기적을 가져오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물의 질서를 일부러 일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그 관찰이 가져온 인식의 변화와 그 변화 속의 의식이 저절로 드러내는 인간 보편의 감성까지도 보여준다. 시인이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이 이렇게도 영롱하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이런 세계는 이미 시인학교의 기본 과정이 되었지만, 이 시집이 발간되던 즈음의 상황에서는 한 놀라움이었다. 20년이 다 된 지금에 보아도 그 인식의 팽팽한 힘과 그 확산력은 아직도 싱싱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초점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여러 곳으로 흩어져서 주제가 좀 산만해졌다는 점이다. 한 곳에 집중하는 힘만 갖추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주제나 관점이 한 곳으로 집중될 경우 필경 인식의 긴장이 허물어지는 것은 인간이 지닌 불가피한 내력이다. 어느 곳으로든 이 긴장이 따라만 간다면 그야말로 위대한 시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한 장애 중의 하나가 한자이다.★★★☆☆[4336. 11. 28.]   219□농무□신경림, 창비시선 1, 창작과비평사, 1975   시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자신의 가슴속에 할 말이 가득해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독자가 그것을 눈치채게 하는 방법을 이 시인은 알고 있다. 그것은 시각을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처럼 묘사해주는 것,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전해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그러면서도 카메라에 포착하는 그 대상들을 통해서 가슴속의 울분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 그것이 이 시를 성공하게 하고 있다.   이 시를 읽는 사람은 시인이 처해있는 곳으로 따라가게 되는데, 그곳은 시인의 삶을 쓸쓸하게 만드는 그 어떤 손길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곳을 지배하면서 불행하게 만드는 그 어떤 손을 독자는 저절로 감지하게 되며 그 존재에 대한 분노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느끼게 된다. 눈에 비치는 광경을 가볍고 선명하게 요약하여 포착하는 것이 이 시인의 능력이다. 풍경 묘사라고 해서 함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시들은 보여준다. 몇 군데 남은 한자는 끝내 옥의 티다.★★★★☆[4336. 11. 28.]   220□가난한 사랑노래□신경림, 실천문학의 시집 50, 실천문학사, 1988   시골에 머물러 있던 “농무”의 시각이 그대로 도시로 옮아왔다. 변두리에 머물러서 농무의 주인공들이 서울로 올라온 삶과 현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방법도 시각도 20년 전 그대로다. 그러나 약간 달라진 것이 감지된다. 보여주는 수법은 똑같지만 그 속에서 하는 말의 농도가 같지 않다. 하고자 하는 말이 앞으로 많이 나섰다. 그리고 지은이의 말이 시의 겉으로 많이 드러났다. 시인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니, 아마도 도시 생활이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제는 이 방법 가지고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뭔가 달라져야 하겠는데, 그 변화의 조짐은 드러나지 않는다. 옷은 아직 옛날 옷이다. 한자가 청산된 것이 반갑다.★★★☆☆[4336. 11. 28.]  
31    시집 1000권 읽기 21 댓글:  조회:2220  추천:0  2015-02-09
  201□사랑의 위력으로□조은, 민음의 시 38, 민음사, 1991   말을 다듬고 이미지를 배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젊은 사람이 갖는 패기도 돋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시에서 하고자 하는 내용에 비해 이미지가 너무 많이 동원되고 있다. 반짝이는 이미지들을 아껴두었다 써야 할 곳에 쓰는 것도 시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작은 깨달음이 소중해 보여도 그것이 인생의 큰 궤도 안에서 어떤 울림을 갖고 있을 것인가 하는, 좀 더 큰 고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소품만 낳다가 만다. 한자는 그러한 소품을 더 왜소하게 만드는 요인이다.★★☆☆☆[4336. 11. 26.]   202□김씨의 옆 얼굴□이하석, 문학과지성시인선 35, 문학과지성사, 1984   한 인물을 작품 속에 등장시켜서 관찰자 시각으로 서술하는 것은 시에서는 낯선 것이다. 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말하는 사람과 작가가 일치한다. 관찰자가 존재하는 것은 대개 소설 쪽에서 많이 쓰는 수법이다. 그런데 그런 방법을 시속에 도입시켜서 크게 성공한 경우이다. 물질화 되고 비인간화 된 도시 문명의 잔혹함을 이야기할 때는 감정을 싣게 마련인데, 그렇게 되면 불가피하게 싸우게 된다.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감정 때문에 잔혹함이 가려지기 십상이다. 바로 이 같은 거품을 걷어내는 방법으로 관찰자 기법을 끌어들였고, 그것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부분부분 표현까지 신경 쓴 것이 눈에 보인다.★★★☆☆[4336. 11. 26.]   203□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박상순, 세계사시인선 65, 세계사, 1996 204□6은 나무 7을 돌고래□박상순, 민음의 시 55, 민음사, 1993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미래를 확신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힘든 일이다. 그런 확신에 잠시 회의가 올 때 남의 눈치를 살핀다. 앞으로 한 참 나아간 사람이 너무 나간 탓일까 불안해서 잠시 뒤돌아보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어차피 환영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가는 곳까지 힘차게 가고 볼 일이다. 관계에 대한 파괴와 파탄은 읽기에 즐거운 바가 있다.★★☆☆☆[4336. 11. 27.]   205□뿔□문인수, 민음의 시 42, 민음사, 1992   절대의 이미지를 노래하려고 한 것인지 일상의 자잘한 감정을 이미지로 대체하려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아서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는 듯한데 중간중간에 관념들이 내비친다. 그 관념들은 일상의 체험을 반영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이 서로 맞물려서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논다. 그래서 난삽해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난삽할 것도 없다. 평이한 것들이 난삽해 보이면 그건 방법상의 문제이다. 이미지가 감정을 빨아들이게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일이다. 아니면 이미지에게 말을 내맡기던가……★☆☆☆☆[4336. 11. 27.]   206□황금 연못□장옥관, 민음의 시 44, 민음사, 1992   관념을 이미지로 빨아들여 생생한 힘으로 살아나게 하는 힘이 있다. 멀뚱하게 나자빠져있던 낱말들의 꽁지에 불을 붙여서 팔딱팔딱 살아나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 관념 덩어리를 생활 속의 친근한 이미지로 분해하여 독자를 깊은 사유의 골짜기로 끌어들여 함께 가는 방법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삶의 근원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그것을 말하는 방법까지 깊이 고민한 뒤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가 차분하고 냉정하면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다. 그 따스한 태도와 마음이 이 시집을 황금으로 만든다. ‘두레박’, ‘꽃잎 필 때’ 같은 경우는 절창이다. 그런 류의 사색을 해본 사람은 이것이 왜 절창인가를 알 것이다. 군더더기도 없지 않다. ‘수련’ 같은 경우는 뒷부분은 자살골이다. 그렇게 친절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안다. 시집 곳곳에 그런 군더더기가 많이 끼어있다. 특히 시가 이야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이 군더더기만 걷어낸다면 정말 상큼한 시를 쓸 것이다. 한자야말로 걷어내야 할 첫 번째 군더더기이다.★★★☆☆[4336. 11. 27.]   207□바퀴소리를 듣는다□장옥관, 민음의 시 67, 민음사, 1995   시가 선명해졌다. 그러나 이것은 비극이다. 주제가 뚜렷해지면서 이미지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독자를 빨아들이던 흡인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의미의 철골구조만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방향으로 성공하려면 의미가 깊고 단단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의미체계는 그전과 다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긴장이 그 전보다 훨씬 더 떨어졌다는 얘기다. 시의 구조는 나름대로 튼튼한 것으로 보아 어쩌면 그 전의 뿌연 세계에 대해 주변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던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그렇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얘기는 다 들을 일이 아니다. 한자부터 버린 뒤에 다음 행로를 신중히 결정할 일이다.★★☆☆☆[4336. 11. 27.]   208□잠든 그대□배창환, 오늘의 시인총서 25, 민음사, 1984   잘 썼다 못 썼다고 말하기가 참 곤란한 시다. 왜냐하면 시를 끌어가는 저력이나 말솜씨를 보면 분명 한 가락 하는 사람인데, 막상 나타난 시를 보면 그런 절제나 형식에 기대어 말한다는 것조차도 사치로 여기는 듯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뜨거운 지점에서 불에 데인 듯한 그 심정을 화산처럼 분출시키는 사람들 앞에서 불기둥의 모양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건 시 이전의 문제이다. 시 이전의 문제와 시 이후의 문제를 구별해야 하는 이 껄끄러움을 이 시집은 제공한다. 시대라는 것이 문학을 이 모양으로 만들기도 한다.★★☆☆☆[4336. 11. 27.]   209□북치는 소년□김종삼, 오늘의 시인총서 15, 민음사, 1979   ‘북치는 소년’이 서양 노래의 제목이라는 것을 모르고 제목과 내용의 연관성을 억지로 해석하려 하던 어느 원로시인의 글을 보고서 실소를 금치 못하던 생각이 난다. 이 시는 ‘북치는 소년’이라는 캐롤송을 듣고서 그 느낌을 시로 적은 것이다. 노래의 ‘의미’를 제거하고서 이미지만으로 보려고 하니 어디 풀릴 까닭이 있는가? 그런데도 열심히 해석하는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렇다고 애숭이 독자가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에게 전화를 해줄 수도 없고…….   이미지와 의미의 극단을 오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들의 표정도 극단으로 치우쳐있다. 이미지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에만 몰두하는가 하면 마당쇠가 되어 의미를 열심히 전하기도 한다. 특히 의미를 싣고 가는 말들에 외국인 이름이나 노래 이름 같은 것들이 많이 등장해서 시다움을 이곳이 아닌 저곳의 그 어떤 취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언어가 빛을 발하는 것은 이미지 쪽으로 쏠린 시들이 아니라 의미 쪽으로 쏠린 시들이다. 이 시집이 시선집이므로 끝내 시인은 어느 쪽으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다. 끝까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자는 그 시대 시인들의 원죄이리라. 원죄라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4336. 11. 27.]   210□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4, 문학과지성사, 1978   인류가 지금의 고생을 두고 아담과 이브를 탓할 필요 없듯이 현대인이 지금의 고생을 두고 영국을 탓할 필요는 없으리라. 자본을 앞세운 물신이 지금 그 시를 쓰게 하고 있으므로. 다만 독자도 나와 같다고 생각하고 독자를 꾸짖는 것은 머리 물들였다고 지나가는 청년의 뒤통수를 맥주병으로 까는 노인과 같다. 병이야 깨지면 그만이지만, 병은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독자와 싸우는 일이 재미있을지 몰라도 그 싸움은 끝이 없고 결국 내가 지친다. 그리고 독자들이 그만큼 싸움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런 불편한 싸움 대신 외면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시는 재미있다. 싸움의 방식 때문이다. 누구나 다 싸우지만 이런 식의 싸움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그런 즐거움을 준다. 바로 이 영역이 이 시인의 자리이리라.   그러나 싸움은 누구와 싸우는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가가 더 중요하다. 오로지 싸움의 본능 때문에 싸우는 사람이 있고, 남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있고, 자신만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있으며,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도 있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이 무엇인가를 자신에게 되물을 일이다.★★★☆☆[4336. 11. 27.]    
30    시집 1000권 읽기 20 댓글:  조회:2075  추천:0  2015-02-09
  191□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이성복, 문학과지성시인선 128, 문학과지성사, 1993   시에도 예의가 있다. 그 예의는 성실함에서 온다. 그 성실함을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 ‘높은 나무 흰 꽃들은 등을 세우고 12’ 같은 뛰어난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사이를 한껏 벌려놓고서 그 사이를 연결시키든 말든 독자더러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는 시의 기교라기보다는 게으름과 오만이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생각의 삼겹살들을 처치하는 뭔가 깔끔한 처리가 있을 법한데, 그걸 하기가 귀찮아서 한 꺼풀 덜 벗겨진 그대로 내보냈다. 미숙한 마감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우리 건축의 심오한 원리를 갑자기 터득하기라도 한 것일까? 모를 일이다. 당상관의 복장을 하고 등장한다고 해도 머리 조아릴 백성이 없는 세상이다. 신분을 드러내고 싶거든 제대로 된 옷을 입을 일이다. 한자는 청산되지 않은 봉건 같다.★★☆☆☆[4336. 11. 25.]   192□몸나무의 추억□박진형, 민음의 시 61, 민음사, 1994   나무와 숲을 소재로 사용하여 한 상상의 집을 지어 올린 것이 돋보인다. 그런데 나무를 심었을 때 그 나무가 영혼의 어느 부분으로 가지를 뻗으며 자라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시들이다. 가지가 이곳저곳으로 마구 뻗어서 단정한 맛이 나지를 않고 산만한 흠이 있다. 그리고 시의 곳곳에 필요 이상으로 수식과 수사를 동원한 곳이 많다. 부분에서는 참신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전체의 이미지에서 돌출하면 좋은 표현이 될 수가 없다. 시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에 의해서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은 군더더기랄 밖에 없다. 시 전체의 매무새와 시집 전체의 초점을 한 번 검토해야 할 시집이다. 한자는 불필요하게 과장된 이미지 같아서 어느 경우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4336. 11. 26.]   193□반달곰에게□김광규, 민음의 시 18, 민음사, 1981   시가 독자에게 성찰의 짧은 계기를 제공하는 도구라면 이 시집이야말로 가장 높은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시집이다. 시가 갖추어야 할 모든 옷을 벗어버렸으니 솔직해 보인다. 그 솔직함이 시의 관행에서 볼 때 문제가 되는 부분이든 그렇지 않든 어쨌거나 이 시집은 초지일관이다.   인식으로 이루어진 시. 그 인식을 남들이 뻔히 예상하는 방법으로 전개시켜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시. 시작도 끝도 너무 뻔해서 반가운 시. 독자를 기죽이지 않는 시. 한국시가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면 이런 시집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묘한 고민을 하게 하는 시. 그런데 그런 시에서 한자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벽을 허는 자가 스스로 그 벽 위에 올라앉다니!★☆☆☆☆[4336. 11. 26.]   194□처용□김춘수, 오늘의 시인총서 2, 민음사, 1974   시가 해탈이기에, 모든 언어는 존재의 죽음이다. 존재를 버린 언어들의 현란한 춤사위와 아직 해탈에 이르지 못한 존재들의 안타까운 몸부림이 시가 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자기모순에 직면한 이 말장난에 김수영이 반응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시는 풍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해탈의 반대가 풍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해탈의 반대는 풍자가 아니라 만행, 또는 연꽃의 삶이다. 그런데도 풍자라고 한 것은 언어가 존재를 버릴 수 없다면 풍자야말로 연꽃의 유일한 발현 양식이기 때문이다. 불이문 밖은 모두가 모순이다. 그건 뚫어야 할 화두지만, 결코 뚫리지 않는다. 뚫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즉 침묵인데, 침묵하지 못하는 자의 넋두리는 그렇기에 단조롭고 지루하다.★★★☆☆[4336. 11. 26.] [추신] 내가 가해한 기억이 없다고 해도 가해자가 되는 수가 있다. 그런 상황을 부인하는 것은 순진둥이나 무식쟁이, 둘 중의 하나이다. 그 중간은 없다. 그런데 이 시집은 그 중간이 있다고 자꾸 주장한다. ‘처용단장’은 그 절창이며, 부다베스트 어쩌구 한 시는 차라리 해프닝이다. 겸손할 일이다.   195□청산행□이기철, 오늘의 시인총서 20, 민음사, 1982   길든 언어를 다시 다듬고 닦고 빛내는 일이 또한 시인의 몫이라면 이 시집은 그런 점에서 충실하고, 이 점은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미지를 다듬고 거기에 적당한 의미를 넣기 위해서 애쓴 모습이 역력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맛있게 살아있다. 바로 이 매끈함과 정성 때문에 의미를 탐색하는 일이 무색할 지경이다. 여기서 의미로 한 발짝만 더 나아간다면 시에 때가 묻을 것이다. 그것을 경계한다. 굳이 나아가려 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자는 이런 아름다운 성취에 무책임한 낙서처럼 섞여 있다.★★★☆☆[4336. 11. 26.]   196□서울로 가는 전봉준□안도현, 오늘의 시인총서 30, 민음사, 1985   80년대 정서의 한 절정을 노래한 작품집이다. 적당한 역사의식과 적당히 신선한 표현, 정당한 죄의식과, 적당한 이야기,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절묘한 절창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등장한다.   그러나 의욕이 앞선 까닭에 곳곳에서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줄거리를 갖게 되고 줄거리는 시의 긴장을 이완시키며 나아가 이미지를 버리고 의미만을 전달하게 한다. 이런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또 시집 전체를 밀고 가는 역사의식은 좀 위험스러운 데가 있다. 넘어가지 말았으면 하는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놀고 있다. 시에서 역사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세월의 침식까지 이겨낼 수는 없는 것이기에 종종 허망한 몸짓으로 끝나는 수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건장한 역사의식이 유독 한자에 대해서 이상하리만치 관대한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4336. 11. 26.]   197□월식□김명수, 오늘의 시인총서 17, 민음사, 19890   시들이 모두 깔끔하다. 할말과 이미지들이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긴장을 주도 받으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시집 전체에 뚜렷한 흐름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시로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모여서 흐르고자 하는 어떤 방향과 의지가 있는 법인데, 이것이 분명하지 않다. 이것은 시인의 꿈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를 쓰는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하는가 하는 결심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시에서 투지가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앞으로 시를 쓰기 어렵다는 뜻이다. 매우 위험하다. 꺼져 가는 촛불을 보는 듯하다. 심지를 똑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한자는 불빛을 갉으면 갉았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4336. 11. 26.]   198□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백학기, 문학과지성시인선 45, 문학과지성사, 1985   한 관념이 시집 전체에 서려있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그 관념 덩어리가 언어와 이미지들을 먼지처럼 떠있게 한다면 문제가 된다. 관념 덩어리에 휘둘려서 언어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먼지처럼 떠있다. 이미지들은 국가와 역사에 죄의식이라는 투명한 끈을 드리우고서 물거품처럼 떠돈다. 이것은 마음이 앞서간 까닭이다. 시가 어차피 관념을 나를 수밖에 없지만, 어떤 곳에서 어떻게 출발해야 그 전달이 잘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에 황톳길에서 속도를 내는 자동차 바퀴처럼 매캐한 흙먼지를 날리는 것이다. 그 흙먼지를 뭉게구름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고 그것을 어디에다 묶어야 시가 아름다운 애드벌룬을 이루면서 두둥실 떠오를 것인가를 숙고해야 할 것이다. 한자는 무거운 짐이다.★★☆☆☆[4336. 11. 26.]   199□우리들의 왕□서원동, 문학과지성시인선 31, 문학과지성사, 1983   다루는 주제가 관념이라면 관념의 끄트머리를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야 그 나머지 전부가 저절로 드러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 끄트머리가 미약하다고 하여 관념을 다른 관념어로 대체한다든가 관념의 연관성을 보여주지 않은 채로 이미지를 끌어들이면 한 행 안에서 그것의 연관은 파악될지 몰라도 한 행만 넘어서면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 버려서 시 전체에서는 아주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이게 된다. 당연히 시가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시집이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시를 쓰게 된 사고와 발상의 출발을 분명히 하고 그것에서 매개된 이미지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표출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혼란을 조금이라도 없애는 방법이 될 것이다. 한자를 없애는 것도 그런 혼란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4336. 11. 26.]   200□홀로서기□서정윤, 청하시선 28, 청하, 1980   시가 의미를 전달할 때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느냐 말을 직접 하느냐 하는 것은 방법의 문제이다. 대부분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가 시를 이끌고 간다. 그리고 주가 된 하나가 나머지 하나의 도움을 받으면서 독자에게 의미를 전달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서로에게 장애를 일으키는 수가 있다. 이미 말로 의미전달을 마쳤는데, 뒤늦게 이미지가 나타나서 그 의미를 흐리게 하거나 이미지가 의미전달을 마쳤는데 뒤늦게 설명을 해준다던가 하는 식이다. 이건 불필요한 일이고, 이런 일이 시에서 반복되어 일어나면 그것은 시인이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 시집에서는 이러한 혼동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의미 전달의 효율성과 그 해결방법을 고민해야 할 단계에서 나온 시들이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 나름대로 너무 확고한 결론을 내놓고 있어서 어떤 주제와 이미지로 시를 쓰더라도 그 갈 길은 훤히 내다보인다. 이것이 시의 맛을 많이 줄이고 있다. 확고한 신념이 문제가 될 리는 없지만 그것이 더 이상 두고 볼 것 없다는 쪽이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자는 그런 옹고집을 위한 장식 같다.★☆☆☆☆[4336. 11. 26.]    
29    시집 1000권 읽기 19 댓글:  조회:2111  추천:0  2015-02-09
  181□좀팽이처럼□김광규, 문학과지성시인선 73, 문학과지성사, 1988   문학이 인식과 형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지고 합의 본 사실이다. 그런데 때때로 이 둘 중의 하나로만 되어있거나 넙치처럼 어느 한쪽으로 몰려서 이루어진 작품들이 있다. 그럴 경우에는 반드시 그렇게 된 무슨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한쪽으로 몰리면 그건 이상한 것이다. 이 이상함을 우리는 졸작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의 특징을 이루는 요소는 형상이 아니라 인식이다. 세상을 보는 어떤 작은 깨달음이 먼저 오고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 서술이 인식의 형상성을 전혀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일기문으로 전락한 경우이다. 새로운 깨달음만 있으면 그 모양새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그래서 수영장에 뛰어드는데 잠방이 차림으로도 나서고, 윗도리만 입고도 나서고, 알몸으로도 나서는 것이다. 미니스커트는 한 때 입는 것이다. 늙은 것의 종아리를 예쁘다고 하는 사람은 그의 애인뿐이다. 칭찬도 봐가면서 해야 할 일이다. 자기 입맛에 맞는다고 칭찬하는 것은 칭찬 받는 그 사람을 아예 죽이는 것임을 새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서술의 평이성이 형상성을 보장하진 못한다.★☆☆☆☆[4336. 11. 24.]   182□참 이상한 상형문자□이승욱, 민음의 시 68, 민음사, 1995   대체로 너무 서둘러서 쓴 시들이다. 그래서 시들이 대체로 짧고 할 말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까닭에 너무 뼈만 앙상하다는 느낌이다. 이것은 이미지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서 쓰지 않고 한 순간에 온 깨달음에 집착한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건조해졌다. 시에 살이 없는 건 단점이 아니지만, 너무 깡마른 것은 단점이다. 비슷한 이미지들도 많고 비슷한 내용들도 많다. 이런 것들은 묶어서 한 시로 용해시키는 것이 좋겠다. 한편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을 열 편으로 얘기한다고 해서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어떻게 살을 붙여야 맛있는 시가 되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인데, 한자는 전혀 맛을 내지 못하는 물건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할 일이다.★★☆☆☆[4336. 11. 25.]   183□서랍 속의 여자□박지영, 민음의 시 73, 민음사, 1995   발상의 경쾌함도 있고, 이미지를 다루는 솜씨도 그런 대로 괜찮은데, 너무 서둘러서 쓴 작품들이 많다. 시는 발상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말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할 말이 생겼으면 그것을 싣고 갈 수레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의 관념과 삶을 분해하려면 웬만큼 날카로운 칼 가지고는 어림없다는 것이다. 아주 날카로운 칼로 한 꺼풀씩 벗겨내야 하는데, 그 날이 너무 무디다. 인식의 힘을 좀 더 날카롭게 하고 그것을 어느 곳으로 들이밀어야 이 무거운 일상이 쪼개질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뒤쪽의 무거운 걸음걸이 때문에 앞쪽의 경쾌한 발걸음마저 같이 둔탁해졌다.★★☆☆☆[4336. 11. 25.]   184□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최정례, 민음의 시 66, 민음사, 1994   시가 대체로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안정된 인상을 준다. 시상을 전개시키는 수법도 무난하고 이야기를 전하는 목소리도 고만고만하다. 그러나 시들이 소품인 데다가 대부분 자신의 과거에 무겁게 묶여 있어서 독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다. 사회 인식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내면의 고민이나 사고를 해도 독자들이 따라 들어가 섞일 수 있는 어떤 공간이나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공간이 아주 좁다. 이 공간을 넓히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이 작업에 한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4336. 11. 25.]   185□우수의 이불을 덮고□이기철, 민음의 시 17, 민음사, 1988   흥분된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안정된 시선과 안정된 마음으로 세상을 읽는 태도는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너무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시가 꼭 탄탄한 구조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말들을 늘어놓으면 설명이 되고 설명이 끼어들면 긴장을 잃게 된다. 부분부분의 빛나는 구절들이 그런 넋두리에 파묻혀서 시 전체가 설명문으로 떨어지고 있다. 시의 경제와 언어의 경제를 생각해야 할 일이다. 불필요하게 끼어있는 한자는 그 흠을 더욱 크게 한다.★★☆☆☆[4336. 11. 25.]   186□낯선 길에 묻다□성석제, 민음의 시 39, 민음사, 1991   인식의 깊이가 남다르고 세계를 보는 눈이 확립되었다. 게다가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말만을 동원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독자의 눈을 잡아끄는 요령과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방법도 긴장을 갖고 있다. 다만 설명하는 듯한 구절이 간간이 눈에 띈다는 점인데, 그것은 인식의 방법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니, 큰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소한 사건이나 사물을 통해서 세계의 본질을 보여주고 드러내는 수법이 능수능란하다. 사건을 축약하여 상징으로 만드는 뒷부분의 시들 역시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다. 드물게 나타나는 한자는 문제지만, 큰 작품을 쓸 수 있는 조건이 고루 갖추었다. 이 긴장을 잊지 않고 세월과 싸우는 일이 남은 숙제일 것이다.★★★☆☆[4336. 11. 25.]   187□입국□사이토우 마리코, 민음의 시 53, 민음사, 1993   세계를 보는 시각도 확립되었고, 시상을 전개하는 힘도 적당한데, 시가 좀 메마르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이 느낌은 언어의 감각이 주는 것인데, 여기서는 인식이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는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야기가 끼어 들고 그 때문에 시가 느슨해졌다. 말에는 그 말에 스민 묘한 정서가 있다. 외국인이 그 말의 정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러한 특수성 이외에도 보편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지닌 그런 특수성을 살리기보다는 보편성에 의존하는 것이 시를 쉽게 쓰는 방법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 구성을 다양하게 만들고 화법을 변화시키며, 상징이나 비유를 활용하여 시의 역동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 시집은 너무 조용하다. 그러나 외국인이 남의 나라 말을 배워서 이만큼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비록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시인들이 한자를 섞어 쓰는 묘한 관행이 남아있지만 남의 나라 말로 시를 쓸 때 그 나라 말이 아닌 것을 섞어 쓰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은 알 필요가 있다. 허긴 시인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인의 언어는 그를 가르친 사람에게 배웠을 것이니!★★☆☆☆[4336. 11. 25.]   188□물 위를 걷는 자 물 밑을 걷는 자□주창윤, 민음의 시 23, 민음사, 1989   단순한 풍경을 상징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상징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뒷면까지 드러나게 하는 것은 좋으나 장난스런 표정을 섞어 넣는 것은 의미 전달의 장애가 된다. 상징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으면 설명하게 된다. 짧은 시안에서 설명을 하려하면 시가 번거로워지고, 길게 시를 만들면 긴장이 떨어진다. 말을 하기보다는 제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이 시집의 분위기에 어울린다. 한자는 잘못 박힌 못 같다.★★☆☆☆[4336. 11. 25.]   189□에로스의 반지□민음의 시 76, 민음사, 1995   앞부분의 긴장이 뒤쪽까지 연결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앞부분의 상황설정과 이미지들이 서로 얽혀 도는 짜임새는 거의 현란한 수준이었는데, 뒤로 가면서 설명이 많아지고 관념 덩어리가 그대로 드러나서 균형을 잃고 있다. 너무 서둘러서 시를 쓴 까닭인데, 진득하게 기다리는 것이 시인의 큰 저력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케 한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주제가 한 가지로 집중되지 않고 흩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미지가 분산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4336. 11. 25.]   190□땅의 뿌리 그 깊은 속□배진성, 민음의 시 24, 민음사, 1989   선택된 이미지들이 모여서 한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그 속으로 독자를 불러들이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추억의 공간 속에서 모든 고통도 두려움도 아름답게 되살아난다. 이미지들 역시 단정한 모습으로 안개처럼 추억을 들어올리며,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다. 묘사가 빼어나며 깊은 울림을 갖는다. 요컨대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러나 추억을 시의 중요한 소재로 삼을 경우, 투명하지 못한 기억과 그것이 재구성한 막연한 추억에 가려 현실의 중요한 모순이 가려져 버리기 쉽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시집 역시 그러한 위험을 곳곳에 안고 있다. 가족사의 비극과 그 주변의 고통들이 추억이라는 안개 속에 가려서 드러나지를 않는다. 시가 끝내 개인의 넋두리 속에 남아있게 될 운명이다. 넋두리가 시의 큰 장점이고 또 그래야 할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만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빨리 벗어나야 할 곳에 시인이 서있고,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법론이 필요하다.★★☆☆☆[4336. 11. 25.]    
28    시집 1000권 읽기 18 댓글:  조회:2052  추천:0  2015-02-09
  171□늙은 퇴폐□이승욱, 민음의 시 50, 민음사, 1993   ‘진홍빛 꽃’ 같은 빼어난 작품이 꽤 많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을 보면 이 시인은 상징의 기법을 알고 그것을 통해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그런데 그에 반해 세계관이 너무 확고하고 고정되었다. 사물을 상징화시키는 것은 제시의 방법에 가깝다. 제시란 단정보다는 제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징으로 잘 다듬어놓은 것에 군더더기를 붙여서 독자에게 제시하게 된다. 그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열쇠이다. 생각을 제시할 뿐 말을 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면 정말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시인이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외국어부터 추방해야 한다.★★☆☆☆[4336. 11. 24.]   172□저녁의 첼로□최계선, 민음의 시 54, 민음사, 1993   하고자 하는 말에 비해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것은 언어에 대한 감각은 뛰어난데, 인식의 깊이가 부족한 탓이다. 세계를 보는 눈을 좀 더 깊고 넓게 확립할 필요가 있다. 세계에 대한 명징한 깨달음에서 언어가 떠올라야만 그 언어는 연꽃 같은 신선함을 준다.   그리고 사물에 대한  슈퍼마켓 식 지식이 주제를 전달하는 도구로 충실한 기능을 하지 않고 오히려 주제 전달에 장애를 주는 수가 많다. 이 역시 할 말을 정하고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이미지 하나 때문에 할 말을 만든다는 증거이다. 대체로 어떤 사물에 감상이 촉발되어서 시를 쓴다. 시를 써야 한다는 시인의 의무에 충실한 것은 좋지만 그런 부담마저 벗어버릴 때 좋은 작품은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에서 한자는 불필요한 지식 자랑과 같다.★☆☆☆☆[4336. 11. 24.]   173□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있는가□최동호, 민음의 시 72, 민음사, 1995   풍경 묘사로 마음을 대신하는 시를 쓸 때는 될수록 자신의 위치를 시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 게다가 마음이 깨달음을 풍경으로 담아내려면 절제된 언어로 그 끝을 조금만 드러내주면 된다. 이 시집의 대부분은 몇 가지 방법론이 섞여 있어서 방법론으로도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마음을 풍경을 묘사로 대신하려고 한 시들은 대부분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은 스스로 주제를 말로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히려 비유를 통한 시들이 더 깔끔하다.   그러나 이 시집의 본령은 실패한 시들이다. 그것이 시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가벼워지는 시의 환경 속에서 아주 값진 것이다. 이미 진리가 없는 것으로 판정 난 듯한 시인들의 무수한 발언 속에서 진리를 찾는 것은 그것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그 진리의 문을 열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이기 때문이다.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서쪽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한자 속으로 왔지만 지금은 한자 밖으로 벗어났다는 것도 알아야 할 일이다.★☆☆☆☆[4336. 11. 24.]   174□숨은 사내□박기영, 민음의 시 37, 민음사, 1991   보여주기의 수법이 아주 잘 살아있다.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한 풍경을 제시하여 그 뒤에 어리는 이 세계의 주재자를 보여주는 확실한 방법론이 눈에 띈다. 그 매개체로 문명의 이기인 전화와 텔레비전의 눈을 이용하는 발빠른 움직임까지 보여준다. 그러나 보여주는 늘 한계를 갖고 있다. 아무리 잘 보여주어도 카메라나 텔레비전처럼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주재자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로 가야 하는 것과 같다. 범이 사는 동굴을 촬영해 가지고는 범을 결코 잡을 수 없다. 한자가 과연 범을 잡는 데 효용이 있는 그물인가 아닌가 하는 것도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4336. 11. 24.]   175□신은 망했다□이갑수, 민음의 시 34, 민음사, 1991   재치는 시가 아니라 발상의 몫이다. 시를 쓰기 위한 노트에 빽빽이 적어놓은 뒤 그것을 시를 읽어 가는 독자를 위해 살을 붙이고 완성하는 것이 시라는 형식이다. 그러나 재치 있는 발상을 적어놓는다고 해서 시가 되지는 않는다. 시에는 다른 예술 갈래와는 다른 겉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전체가 인식으로만 구성되어있다. 시의 형식을 모르거나 무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시의 형식으로는 전하기 어렵거나 시로 만들기 어려운 사금파리 같은 깨달음이 나열되어있다. 이것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형상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형상 이전의 질료들이기에, 이 시인은 앞으로 시를 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깨달음은 형식을 아주 거추장스러워 한다. 만약에 시로 돌아오려면 엄청난 고생을 하고 난 다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생을 감수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발랄하고 경쾌하다. 이 발랄함은 시 같은 묵은 형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자는 이 경쾌함과 묘한 부조화를 이룬다. 시는 깨달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4336. 11. 24.]   176□침엽수림에서□엄원태, 민음의 시 36, 민음사, 1991   하고자 하는 말에 비해 동원되는 이미지들이 약간 많다. 그 군더더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시집 전체의 내용이 두세 군데로 분산되는 것도 흠이다. 이것은 할 말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훈련이 아직 덜 된 까닭이거나 써놓은 시들을 별다른 생각이 없이 시집으로 모아서 그렇다. 시를 쓸 때와 시집을 엮을 때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시가 벽돌이라면 시집은 집이다. 벽돌만 모아놓는다고 집이 되는 것이 아니다.★★☆☆☆[4336. 11. 24.]   177□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손진은, 민음의 시 43, 민음사, 1992   이른바 신춘문예 용 시라는 것이 있다. 매년 초, 각 신문사에서 과거 보듯이 시인 지망생들이 자원해서 보낸 작품을 평가해서 급제자를 뽑는 것이다. 거기를 통과한 시들에는 한 동안 뚜렷한 형식이 있었고, 그런 형식이 급제자들의 실력을 판가름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심사라는 발상이 어쩔 수 없이 만드는 굴레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한 깨달음과 그 깨달음을 포장할 수 있는 그럴 듯한 미사여구 역시 중요하다. 미사여구도 그 발상법과 배열법까지 갖추어야만 시인의 능력이 드러난다.   이 시집 속의 시들에서 그런 형식성을 느낀다. 너무나 원칙에 충실하다보니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곳에서까지 그렇게 해서 답답해지기도 한다.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엔진소리 같다. 한자가 이따금 그 흐름을 끊지만, 그때는 덜컹거린다. 역시 시집이라는 것이 문제다. 시집은 내용의 구도가 없다면 형식의 요철(凹凸)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4336. 11. 24.]   178□여우를 살리기 위해□이학성, 민음의 시 58, 민음사, 1994   삶의 근원을 이루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시다. 사고가 철학의 어떤 체계에까지 닿아있지만, 그것을 상상력의 옷으로 적당히 감쌀 줄 알고 이미지들을 상징화시켜서 어려운 개념을 녹이는 방법도 알고 있다. 이미지들이 지시어에 머물지 않고 정서를 환기시키도록 잘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시들이 너무나 명료해서 애써 만든 정서를 쫓아버리고 있다. 이 점만 극복한다면 좋은 작품을 쓸 것이다. 한자는 제일 먼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4336. 11. 24.]   179□아름다운 사냥□박덕규, 문학과지성시인선 37, 문학과지성사, 1984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모여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놀고 있다. 그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지만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끝내는 성장을 기피하는 아이에 그치고 말 것이다. 영원히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동네가 아니다. 이미지도 그렇고 말의 구조도 그렇고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는데 전후좌우로 꼭 막힌 것 같은 느낌이 가시지 않는 것은 원관념이 아주 엷기 때문이다. 이미지들의 조합이 전할 메시지가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발표되던 치열한 현장 중심의 시에 대한 반발로 이미지 중심의 시상 전개를 의도했을 법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 이미지를 뒷받침해야 할 어떤 세계를 염두에 두었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속 빈 강정처럼 거품이 많이 남은 상태로 시가 쓰여졌다.★☆☆☆☆[4336. 11. 24.]   180□얼음시집□송재학, 문학과지성시인선 75, 문학과지성사, 1988   시의 귀족화는 비난할 것이 못 되지만, 귀족화 한 그 문학이 자신의 위안거리로만 남아있던가 타인이 접근하기 힘든 한 개인의 과거에 고착되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시집은 동원된 시어들도 이미지들도 나름대로 무언가를 나타내기 위해서 잘 정돈되어있다. 그러나 그 안으로 접근해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바로 기억의 폐쇄성 때문이다.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개인과 가족사의 특수한 관계와 정서 속에서 시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남들의 접근을 거의 막고 있다.   이것은 좋게 말하면 귀족화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능력부족이다. 실제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보다 불필요하게 많은 이미지들과 언어가 동원되고 있어서 살집이 무겁다. 체중 감량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려면 주제를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드러내야 할 주제가 이미 드러난 것 이상으로 없기 때문에 거품이 생긴 것이다. ‘얼음시 2’와 ‘얼음시 4’조차도 숨가쁜 작품인데, 이를 능가하는 작품이 없다는 것은 이 시집의 비극이다. 이 비극에 풀무질하는 것이 바로 한자이다.★☆☆☆☆[4336. 11. 24.]    
27    시집 1000권 읽기 17 댓글:  조회:2180  추천:0  2015-02-09
  161□햄버거에 대한 명상□장정일, 민음의 시 7, 민음사, 1987   무거운 주제를 아주 가볍게 말하는 방법을 안다. 발상도 발랄하고 이미지를 밀고 가는 발걸음도 가볍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표현과 말투가 뛰어나다. 이것은 시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무언가 이야기를 꾸밀 줄 아는 그런 갈래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심리를 빨아들이도록 사건을 배치하고 말을 사용하는 그런 갈래이다. 그런 만큼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덩어리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수기를 즐기다 보면 방법만이 남는다. 방법만이 남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매너리즘에 빠지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으며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치열한 정신은 자살을 택한다.★★★★☆[4336. 11. 21.]   162□접시꽃 당신□도종환, 실천문학의 시집 37, 실천문학사, 1986   불에 데인 듯 뜨거운 감정에 휩싸여 그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터져나오는 노래가 서정시라면 이 시집은 그러한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준다. 가슴속에 고인 감정이 주변의 사물을 빨아들여 정서를 나타내는 도구로 변환한다. 게다가 부부관계는 인간의 삶 중에서 자연 현상에 가장 가까운 것인데, 그런 것이 자연물을 매개로 감정을 전달하기 때문에 더더욱 순수한 맛을 내며 읽는 사람의 심장을 두드린다. 이런 종류의 순수 서정시를 쓸 기회는 일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하는데, 그런 기회를 알지도 못 한 채 흘려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순간을 잡아서 시로 엮은 것이 시인의 영혼 속에 내장된, 시를 보는 안목이기도 하다. 감정을 쏟아내는 방법이 시였던, 진짜 시인인 것이다.★★★☆☆[4336. 11. 21.]   163□검은 소에 관한 기억□채성병, 민음의 시 32, 민음사, 1990   검은 소에 대한 연작 같은 빼어난 작품이 있고,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긴장도 방법도 확립돼있지만, 대체로 작품의 높낮이가 심하다. 중간에 섞여있는 말장난 같은 생각들은 발상의 유연함을 보여줄지는 몰라도 다른 치열한 정신과는 어긋난다. 치열한 정신이 뚫어야 할 화두를 정한 듯한데, 그 치열함이 마지막에서 조금 무뎌지면서 벽이 뚫리지 않는다. 치열함을 높이던가 방법을 높이던가 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듯하다. 그러기 전에 한자부터 버려야 한다.★★☆☆☆[4336. 11. 21.]   164□고통의 축제□정현종, 오늘의 시인총서 3, 민음사, 1974   사색이 그대로 시가 될 수 있을까?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철학과 시는 구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철학의 사고나 행위가 그대로 시가 될 테니까 말이다. 철학이 시가 되려면 시에서 요구하는 옷을 입어야 한다. 물론 그 옷의 디자인이 어떠냐 하는 것이 시를 잘 쓴다 못 쓴다 하는 기준이 된다. 그것은 시 쪽에서 마련하는 것이지 철학 쪽에서 마련해서 시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시집의 시들은 철학 쪽에서 디자인해서 시에게 넘겨준 꼴이다.   우선 문법이 제대로 안 지켜진다. 그것은 영어식 사고를 해서 그렇다. 제일 먼저 ‘의’의 쓰임이 잘못 되었다. ‘의’가 두세 차례를 넘어 서너 차례까지 반복되어 쓰이는 것은 우리말의 문법에는 없다. 일본어 문법이나 영어 문법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잘못된 문법 위에 영어 번역체의 문장이 시집 전체에 넘쳐흐른다.   여기에다가 사고 방식의 혼란까지 겹치면 지금 보는 시집의 문장이 된다. 내용이 어려워서 이해가 안 가면 모르나 이 경우에는 문장의 구조가 이상해서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시의 어려움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다. 시작을 위한 메모 수준의 시들이다. 한자와 일본어 문법과 영어 번역투 문장이 짬뽕 되어 시 이전의 사고 미숙과 언어 착란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그것을 시의 특징으로 여기고 자족하고 있다면 그건 신념이 아니라 뻔뻔스러움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후의 시집이 증명할 것이다. 과연 그 이후의 시집들이 이 시집의 수준보다 더 높아졌는가? 어눌함은 단점이 아니다. 말이 안 되는 것이 문제이지…….★☆☆☆☆[4336. 11. 21.]   165□색동 단풍숲을 노래하라□김영무, 민음의 시 51, 민음사,  1993   시를 전문으로 하는 시인들이 낸 시집을 많이 읽다 보면 과장된 감정과 불필요한 말장난에 질리게 된다. 그런 때에 아무런 수식도 없이 일생생활의 느낌을 그대로 적은 글들을 보면 오히려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조미료에 지친 혀가 아무런 맛을 첨가하지 않은 물 한 잔에 감동하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 점 시인들이 불필요한 말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감동이 곧 좋은 시라는 등식으로 연결될 수는 없는 일이다. 수필로 쓰면 더 좋았을 그런 내용들이 많다. 시의 문법을 좀 더 익혀야 하며 어느 것을 건드릴 때 생각이 시로 풀리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일이다.★☆☆☆☆[4336. 11. 22.]   166□산화가□노혜봉, 민음의 시 57, 민음사, 1993   예술이 여러 갈래로 분화하면서 문화의 발전을 도모한 것은 갈래진 그것에 인간들이 즐거워하는 그 어떤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즐거움을 크게 하기 위해서 그런 갈래로 뻗어나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갈래들이 서로 넘나들며 인식의 즐거움을 즐기려고 하는 시도가 예술사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주로 전위예술이라는 이름들이 그런 시도를 주도해왔다. 시가 다른 예술과 만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시가 다른 예술과 섞이지 못하고 그 스스로의 갈래를 수 천 년째 고집하는 것 역시 이유가 있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시가 다른 예술을 만날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이 시집의 대부분은 음악과 만나고 있다. 음악은 시보다 훨씬 더 직접 본능과 감정을 자극한다. 그에 비하면 시는 언어의 환기작용에 의하기 때문에 한 단계 늦다. 이때 음악에서 자극 받은 것을 시라는 갈래로 담으면 그것이 음악에 대한 설명인지 감정에 대한 설명인지 분명치 않게 되고 이것은 읽는 자의 혼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접근법에서 혼돈을 주면 시는 실패하기 쉽다. 그리고 그 실패는 어렵다는 느낌으로 압축된다. 이 시집이 바로 그런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앞부분의 시들은 아주 독특한 발상법을 갖고 있고, 그것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부분으로 살려야 할 일이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음악 감상에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시 역시 음악을 위한 해설 도구가 아니다. 한자는 호사 취미의 상징 같다.★☆☆☆☆[4336. 11. 22.]   167□아침 책상□최동호, 민음의 시 19, 민음사, 1989   시는 속세의 물건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의 애환을 담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선승들이 제자들의 깨우침을 돕기 위해 그것을 원용한 것은 그래도 세속의 물건 중에서 가장 긴하게 사용할 만한 물건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 선계(禪界)의 분위기가 그대로 시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된다.   시집 앞부분의 분위기는 해서는 안 될 그 분위기에 닿아있다. 어설픈 땡중이라는 지탄을 받기 쉽다. 뒤로 가면서 그 분위기가 다시 저잣거리로 돌아오지만 버리지 못한 습관 때문에 역시 매끄럽지 못하다. 요새 세속의 이야기란 것이 원래 그런 솔바람 소리 들리는 양식 가지고 다루기에는 벅찬 것이기 때문이다.   선시나 한시의 가장 큰 특징은 간결함인데, 그 간결함은 자연물에 대한 취사선택의 시각과 절약 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절약된 그 대상들 뒤에 서려있는 주제들은 무지개처럼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 무지개는 개인의 단순한 체험이기보다는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가깝기에 우리 시대에는 어려운 수법인 것이다. 무언가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인데, 우선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4336. 11. 22.]   168□매장시편□임동확, 민음의 시 13, 민음사, 1987   꼭 나와야 할 시집이지만, 너무 일찍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광주항쟁은 한국사만이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것이 지닌 상징성은 문학의 훌륭한 주제가 된다. 그리고 그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문학 정신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상상력은 격앙된 감정 속에서는 오히려 얼어붙는다. 적당한 거리가 유지될 때 적당한 긴장이 생기고, 그러한 적당함이 상상력을 무한한 높이까지 뛰게 만든다.   이 시집에서는 아직 그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시인의 감정이 처했기에 시가 버리고 취해야 할 내용들에 대해서 분별하는 여유를 얻지 못했다. 장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정과 시각의 문제이다.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떤 상황을 설정해야만 내가 구상한 것 이상으로 독자들이 읽어주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광주를 살리려면 한자부터 버려야 한다.★★☆☆☆[4336. 11. 22.]   169□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문학과지성시인선 32, 문학과지성사, 1983   문학작품을 이루는 요소가 형상과 인식이라면 이 시집은 형상은 없고 인식만 있다. 욕망과 의지를 모두 버리고 조리개만 남은 눈으로 세상을 비추다보면, 의지를 가진 자들의 눈이 놓친 부분이 포착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형식으로는 담을 수 없고, 오로지 선입견 없는 조리개의 인식이 찾아낸 어떤 낯선 알몸만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인식의 끝에서 나오는 발설은 그 자신만의 새로운 형식을 만든다. 이 시집은 그런 새로운 형식 실험이다.   그런데 그 형식은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식이 형상을 만든 것이 이 시집이다. 놀라운 일이다. 보통 시는 어떤 형상을 전제로 하고서 그 안에서 옷을 입고 탄생하는데, 이 시집 속의 시들은 탄생 자체가 새로운 디자인으로 꾸며진 옷을 입혀서 이루어졌다. 그 옷에 대한 평가는 제 각각이겠지만, 인식의 방법과 깊이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형식으로 존중받을 것이다.★★★★☆[4336. 11. 22.]   170□귀골□마광수, 평민의 시 16, 평민사, 1985   인간은 스스로 모순을 갖고 있다. 그것을 극단화하여 추적한 것이 실존주의인데, 이 시집은 실존이랄 것도 없는 곳에서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고 있다. 고발은 르뽀의 형식이 알맞다.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르뽀는 관찰자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성으로 포장되지만 그 포장 속에 얼렁뚱땅 파묻히는 시각의 편협성이 문제이다. 이 시집 역시 그러한 문제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객관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노래하는 것이 시이기도 하다.★★☆☆☆[4336. 11. 22.]    
26    시집 1000권 읽기 12 댓글:  조회:1979  추천:0  2015-02-09
  110□난간 위의 고양이□박서원, 세계사시인선 59, 세계사, 1995 111□이 완벽한 세계□박서원, 세계사시인선 80, 세계사, 1997   비유는 원관념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만, 대체된 이미지가 원관념과 너무 멀리 있거나 아예 그 고리를 끊어버릴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무능력의 문제일 수도 있고, 형식사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 고리가 끊어지면 대개는 상징으로 휘발하거나 단순한 형식파괴의 쾌감으로 산화한다.   앞의 시집에서는 상징으로 휘발하던 이미지들이 뒤의 시집에서는 장렬하게 산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산화하는가 라고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질문이 양식사의 거울에 비치면 잘 익은 사과를 줄 것이고, 비유사의 거울에 비치면 썩은 사과를 줄 것이다. 양식사의 거울에 비칠 것이라면 너무 얌전하다. 정신의 휘발은 형식마저 함께 날려버리기 때문이다. 형식이 휘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지의 파괴를 시도하는 것은 의미의 변환이나 관념의 대체를 의도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려면 독자의 관념체계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이 이 시집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앞의 시집에서 보여준 상상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이후의 작품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4336. 11. 15.]   112□오래된 골목□천양희, 창비시선 179, 창작과비평사, 1998   글을 다루는 재주가 수준급에 올라있다. 하고픈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절약하며 조금씩 꺼내놓은 재주와 자연을 다루는 솜씨도 탁월하다. 그런데 자연을 시속으로 끌어들이다 보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멀리 후퇴한다. 자연은 그만큼 시에서 다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우리 조상들이 써온 시들의 대부분이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것이어서 그 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자연이 우리게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시집 역시 그러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아주 엷어서 시 전체는 묘사 중심으로 가고 있고, 그 묘사가 실어야 할 원관념의 무게가 가벼워서 언어들이 제 빛을 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먼저 깊이 생각하고 정한 다음에 자연을 다루는 것이 좋겠다.★★☆☆☆[4336. 11. 16.]   113□비디오/천국□하재봉, 문학과지성시인선 88, 문학과지성사, 1990   의도가 너무 강해서 시가 망가진 경우이다. 영상매체가 갖는 괴력과 그것을 조종하는 세계의 배후에 대한 존재에 대해서 파헤쳐 보겠다는 의도는 잘 설정되었는데, 그 의지가 너무 강렬하여 의도만 드러났지, 각각의 시는 그 강렬한 의도에 희생당하여 연설문 비슷하게 변해버렸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일이다.   각각의 시에서 부릴 수 있는 재주가 좋아도 전체 의도에 너무 강하게 매달리면 그 집착 때문에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간과한 결과치고는 너무 참혹하다. 그리고 TV를 나의 눈으로 갈아 끼웠으면 나타나는 것만을 보아야지 그것으로 마음까지 비추어 내려고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보여주어야 하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에 큰 불협화음이 생겼고, 그 불협화음이 억지라는 느낌을 계속해서 독자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독자의 눈은 TV일지 몰라도 독자의 무의식과 느낌은 결코 TV가 아니다.   그리고 형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시의 내용과 의지가 너무나 서정성이 짙다. 형식 파괴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 전에 형식 파괴에서 서정이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가 하는 것을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노동해방의 수단으로 자처하는 노동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기능으로 전락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다.★★☆☆☆[4336. 11. 16.]   114□구절리 바람소리□이향지, 세계사시인선 46, 세계사, 1995   체험이 시로 승화될 때는 그 체험의 미세한 부분이 개인의 체험만으로 남아있으면 안 된다. 그 특수한 체험은 어떤 정서를 환기하는 한 부분으로 기능해야 한다. 거기서 자신의 체험이나 발견이 그것을 전달하는 것으로 기능한다면 그것은 시에서 아주 중요한 결격사항이다. 그때는 정서가 아니라 의미가 시의 전면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뛰어난 인식을 보여주는 데도 그것이 곳곳에서 위와 같은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있기 때문에 독자가 시속으로 빠져들기 쉽지 않다. 개인의 체험이 중간중간에 솟아올라서 정서로 들어가려던 것이 그곳에서 자꾸 걸리곤 한다. 따라서 체험이 시로 형상화될 때 그 체험을 어떻게 활용하고 이미지화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검토해야 할 일이다. 그 과정에서 한자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 역시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4336. 11. 17.]   115□의자와 이야기하는 남자□김형술, 세계사시인선 54, 세계사, 1995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양이다. 보조관념이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원관념을 올려놓으면 마치 작은 옷을 입고 힘을 쓴 헐크처럼 돼 버리고 원관념이 너무 부실하면 뿌리를 내리지 못한 개구리밥처럼 이미지들이 허공에 떠돈다.   이 시집의 곳곳에는 정말 좋은 이미지들과 기발한 발상들이 널려있다. 그런데도 읽을수록 혼란스러운 것은 말하고자 하는 주제보다 너무 많거나 적은 말들이 동원되고 있어서 간결한 맛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간결함을 갖추지 못하는 것은 발견에 너무 정열을 쏟거나 집착하기 때문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는 균형감각 역시 중요한 시 창작의 기술이다. 다루고자 하는 세계는 세기말의 어지러운 세속인데, 시의 방법에 주로 사용된 것들은 농경시대의 농기구들이다. 이 불균형의 문제와 간결함의 미학을 조금만 더 고민한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한자는 시에서 언제나 말썽꾸러기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4336. 11. 17.]   116□저녁 6시의 나비□이혜영, 세계사시인선 98, 세계사, 1999   엉뚱한 상상력과 말을 빚는 솜씨가 탁월한데도 시집 안에 들어있는 시들의 경향이 서로 다른 것이 흠이다. 형식을 파괴하는 감정은 늘 격렬하기 마련인데, 이 시집을 지배하는 감정이나 발상은 의외로 전통 서정시의 범주 안에 있다. 이것은 시를 쓰는 의지에 비해 시집 전체를 조율하는 균형감각이 처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두 계열을 분리하여 정리한다면 훨씬 더 좋은 시집이 될 뻔했다. 형식에 대한 도전은 이미 많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뒤따라가는 사람들로서는 부담이 안 될 수 없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형식파괴와 한자가 연관이 없다면 한자를 굳이 쓰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4336. 11. 17.]   117□뜯어먹기 좋은 빵□노혜경, 세계사시인선 95, 세계사, 1999   이미지가 원관념을 버리고 흩어지면 상징이 된다. 이 흩어진 상징들이 난해성을 만들게 되는데, 그때는 해석하는 자의 관념에 의해 재조립되는 것이 그의 세계이기도 하다. 답이 없는 것이다. 이런 시들은 특별한 시각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실험이다. 그 실험이 어떤 의도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겠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세계를 갖고 평가를 하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4336. 11. 17.]   118□울음소리 작아지다□최문자, 세계사시인선 97, 세계사, 1999   감정의 미세한 떨림과 일상의 작은 변화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내고 그것을 시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적당한 이미지를 선택하고 거기에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알맞은 크기로 넣어서 독자를 자신의 생각으로 끌어들이는 수법도 아주 뛰어나다. 다만 깊이가 문제이다. 좀더 깊이 삶을 꿰뚫어보고 인간의 의식 깊은 곳으로부터 할 이야기를 끌어올려야 한다. 일상의 자잘한 감정들을 정리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감동으로 이어지려면 정신을 좀 더 야무지게 담금질하여 인간의 저 깊은 내부에서 울리는 영혼을 퍼올릴 수 있어야 한다. 두레박의 모양은 좋은데, 끈이 좀 짧아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시상전개의 단조로움은 그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4336. 11. 17.]   119□잠그는 것들의 방향은?□강문숙, 세계사시인선 47, 세계사, 1995   시에 들인 공과 그 결과들이 잘 돋은 이빨처럼 가지런하다. 그런데 무엇을 노래하면 시가 되며 무엇을 노래하면 시가 되지 않는가에 대한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시를 읽어가다 보면 그 매끈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허전한 느낌이 가시지를 않는데, 그것은 시의 내용이 삶의 깊은 통찰로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써 얻은 귀한 표현들도 현실 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어딘가 허둥지둥 마감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한 이미지를 얻었으면 그것의 뿌리를 어디까지 밀어 넣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시의 표현은 반드시 그것이 환기해주는 어떤 세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세계가 얼마만큼 시의 밖으로 드러나느냐 하는 것은 시인의 선택 문제이지만, 그 세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한테나 다 해당하는 일이다.★★☆☆☆[4336. 11. 17.]   120□저 돌이 문을 열어□오선홍, 세계사시인선 45, 세계사, 1995   군더더기 하나 없이 명징한 세계가 높이 살 만하다. 인식의 새로움을 다루는 시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왕왕 설명으로 끝나기 쉽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랜 사색 끝에 제시된 이미지들이 한 번 노출되면 다시는 그 첫 빛깔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 빛을 끝까지 바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미지가 삶의 깨달음을 오래도록 주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깃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동서양의 성현들이 태어난 지 2000년이 넘어서는 시점에서 시인의 깨달음이 얼마만한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래도 그만 둘 수 없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다. 깨달음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시는 너무 어려운 갈래이다. 시가 담아야 할 것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명징한 세계에서 한자는 혹과 같다.★★☆☆☆[4336. 11. 17.]    
25    시집 1000권 읽기 11 댓글:  조회:2290  추천:0  2015-02-09
  101□기둥만의 다리 위에서□조원규, 세계사시인선 6, 세계사, 1989   문명을 보고 재단하는 시각과 능력도 갖추었고, 그것을 말하는 방법도 나름대로 터득했다. 문명의 구조와 그 속에서 견디기 어려운 자의 꿈 없는 삶이 만드는 순간 순간의 단면들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때 그 순간의 심리상황일 뿐이다. 그러나 말은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문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명에 대한 진단서만으로는 공유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 표정이 없다. 정서가 없다. 자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독자 혹은 이 세계에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점검해야 할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의지이기 때문이다. 의지를 가진 자가 대화의 통로를 스스로 차단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렇겠지만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문명과 사회에 대한 감정을 시에 싣지 않는다는 것은 무질서한 잠꼬대가 될 것이고 잠꼬대에 의미를 부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투명인간은 말을 하면 안 된다. 그 인간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족하다. 투명인간에게 한자는 의지이자 혹이다.★★☆☆☆[4336. 11. 14.]   102□소돔성□윤성근, 세계사시인선 7, 세계사, 1990   소돔성은 파국을 눈앞에 둔 도시이고, 시인이 처해있는 현실의 도시일텐데, 자신이 딛고 있는 위치를 이미 그렇게 정해놓고 도시를 파악하기 때문에 그 도시는 소돔성 이외의 것으로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예루살렘도 있고, 청주도 있고, 파주도 있다. 그런 도시를 소돔성이라고 규정했을 때의 문제의식을 자꾸 남에게 설명해주려고 하는 태도가 이 시집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그것이 시를 딱딱하게 만든다. 시를 만드는 능력이나 재주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지만, 내 시의 근원에 대한 설정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일찍 결정돼 버려서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한 채 메아리처럼 떠돈다. 관념을 버리고 현실로 좀 더 낮게 내려올 때이다.★★☆☆☆[4336. 11. 14.]   103□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김상미, 세계사시인선 32, 세계사, 1993   기묘한 상식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이 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세계이다. 큰 논리의 단절 없이 담담하고 깔끔하게 시를 쓴다. 그런 점이 장점이다. 그러나 기묘한 상식에 도전을 내면 결국은 싸움으로 가게 되고 싸움을 하면 스스로 언어의 함정에 빠진다. 그 언어의 함정에 빠져서 공격대상과 뒤얽혀서 스스로 지치고 만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문명비판의 한 방식이 될 수는 있지만,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여기에 인식이 이르면 이제는 언어의 바깥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긴장을 잃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선시나 화두 같은 시를 쓰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공격하는 일상의 포로가 되고, 더 나아가면 시를 포기하게 된다. 어느 쪽으로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공격 대신 젖어드는 법도 있다.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할 때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말에 견줄 때 동원되는 상상력이 좀 둔한 맛이 있다. 시를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진폭을 크게 하는 것이 싸움에는 더 유리하다는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말의 모자에 갇혀 가지고는 뛰어난 상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상상은 말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때 잘 나오는 것이다.★★☆☆☆[4336. 11. 14.]   104□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이경림, 세계사시인선 49, 세계사, 1995   시를 많이 써본 사람이다. 이미 틀이 짜여있고, 아름다움이 어디서 오는지도 안다. 그러나 베잠방이 차림인데 마음은 명동에 가있다. 이 엉뚱함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문명이 강요한 삶의 모순을 아주 담담하게 그림으로 그리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격렬한 반항으로 그 모순을 고발하는 방법도 있다.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러나 이 시인이 나갈 길은 고발을 줄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시를 쓰는 방법과 발상이 그쪽에 아주 가깝게 가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한 동안 고생할 것이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 일이다. 무뚝뚝한 겨울의 목련 가지에서 하얀 꽃잎이 나오기를 기다려야지 종이로 꽃을 만들어다가 나무에 얹지는 말 일이다.★★☆☆☆[4336. 11. 14.]   105□불멸의 눈꽃□양용직, 세계사시인선 48, 세계사, 1995   “양평역에서” 같은 빼어난 작품이 몇 있지만, 아직도 벗어야 할 마지막 꺼풀이 남아있다. 인식의 명료함이 드러나서 그것이 적절한 이미지를 얻어야 하는데, 곳곳에서 그런 작업이 순탄치 못한 흔적이 드러난다. 이것은 이미지가 잘 숙성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 아니라 억지로 쓴 시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정말 좋은 시인이 되려면 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내용에 꼭 맞는 이미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때까지 한 올 마음의 긴장을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힘겹고 고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인의 운명이다.★★☆☆☆[4336. 11. 15.]   106□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신현림, 세계사시인선 41, 세계사, 1994   무엇보다도 확고하고 강렬한 의지가 눈에 띈다. 시로 무엇을 말해야 하며,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안다. 시를 무기로 쓸 줄 알며, 작전을 짤 줄도, 어떤 대상을 정확히 골라서 찔러야 적이 쓰러지는가 하는 것까지도 잘 안다. 요컨대 전사의 시로서 나무랄 데가 없다.   시집에 실린 전체 시들이 아주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시를 꽤 많이, 그리고 오래 연습했음을 짐작케 한다. 여자의 운명과 그를 둘러싼 질곡의 세계를 정확히 포착해서 칼끝을 그리로 몰고 가는 집중력도 살 만하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설명은 그 날을 무디게 하고 그림은 구차한 변명 같다. 게다가 한자는 칼날의 이빨 빠진 자국 같다. 남의 말에 솔깃하다 뿌리째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세계와 시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면 아주 좋은 시, 특히 대작을 쓸 수 있는 저력이 엿보인다. 그렇게 하려면 칼끝이 지금 겨누어진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4336. 11. 15.]   107□1차원 나라□박순업, 세계사시인선 25, 세계사, 1992   발상과 방법이 너무 선명하다. 한 개인의 체험이 녹아있지만, 시에서는 문명의 단층마저 드러난다. 어떻게 시를 써야 하며 무엇을 다루어야 하는 것까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의 단점은 1회성으로 끝나기 쉽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앞으로 시를 쓰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확고한 방법을 버리고자 할 때 새로운 방법을 얻기가 힘들뿐더러 옛 방법의 확고함이 벽이 되어 그것을 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형식을 흔들어서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도 없지 않다. 그것이 형식을 흔드는 자의 고뇌이다.★★★☆☆[4336. 11. 15.]   108□모든 길은 노래를 부른다□김수복, 세계사시인선 90, 세계사, 1999   ‘연어’ 같은 빼어난 작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마지막 한 꺼풀을 벗지 못하여 단순한 묘사에 머물고 말았다. 시로 풍경을 묘사할 때 체험이 어디까지 드러나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선이 없어서 어떤 때는 풍경묘사로 그쳤다가 어떤 때는 풍경을 묘사하다 말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가 하면서 왔다갔다하는 바람에 풍경 묘사에 의한 상징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다.   풍경으로 쓰는 시는 특히 개인의 체험이 섣불리 드러나면 안 된다. 개인의 체험은 체험일 뿐이다. 그 체험이 환기하는 어떤 정서를 담아줄 대상을 꼼꼼하게 골라서 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그 묘사가 묘한 상징을 이루며 정서를 전달한다. 굉장히 어려운 수법인데,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다. 그 중에는 한자의 탓도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4336. 11. 15.]   109□갈대는 배후가 없다□임영조, 세계사시인선 23, 세계사, 1992   비유로 시를 쓸 때는 누구나 과장을 일삼기 마련이다. 제시된 대상이 품을 수 있는 내용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한계를 초과하면 엄살이나 허풍이 된다. 결국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무게가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시의 원칙을 너무나 준수하고 있어서 오히려 답답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무게가 서로 다른 것들이 많아서 읽기에 불편한 것들도 있다. 단순한 방법으로 삶을 조명해보는 것이 어떤 때는 정말 시원한 느낌을 주지만 그 단순명쾌한 방법이 내용을 담아내는 어떤 한계가 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원관념만으로 조합해서 본 세계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있을 때에는 더더욱 문제가 된다. 그러나 순진무구할 정도로 깨끗한 시각은 본받을 점이 분명하다. 방법은 정말 단순하고 확고한데, 좀 위태위태하다. 한자는 그 위태함을 더욱 흔든다.★★☆☆☆[4336.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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