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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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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시집 1000권 읽기 10 댓글:  조회:2231  추천:0  2015-02-09
  91□나는 사랑한다□이승훈, 세계사시인선 76, 세계사, 1997   뒤샹이 장르를 파괴했으면서도 미술가로 남아있는 것은, 그의 파괴가 미술의 관행이 연장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푸른 하늘이 정답이라고 적는 것은, 사실일지는 모르나 옳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언제부터인지 모를 기원을 갖고 있으며 그 기원으로부터 변혁을 거치면서 이른바 발전을 해왔다. 모든 예술행위는 그러한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옳고 그름, 잘함과 못함은 어느 한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옳고 그름은 수시로 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준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세월에 따라서 그 거점이 달라진 것일 뿐이다. 그런 차이를 무(無)로 간주하는 것은 비약이고 말장난이다. 언어는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한다. 시는 그러한 전달 양식 중의 하나이다. 뗏목을 버린다고 해서 뗏목이 가치 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없다면 저쪽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뗏목이 정답은 아니지만 정답과 연관이 있다. 시는 그런 것이다. 쓰는 자와 읽는 자의 관계를 맺어주는 뗏목이니 그것을 탄 뒤에 버리든 금칠을 해두든 그건 그 시대 사람들의 몫이다. 어떤 자는 버리고, 어떤 자는 금칠을 한다고 해서 그 차이가 시가 될 수는 없다. 차이가 시가 아니라 버림당한 것과 금칠 당한 것이 시이다. 이런 종합의 근거가 시이다. 그 종합은 욕망에서 나온다. 욕망은 인간이다. 인간이 뗏목을 머리에 이고 있다. 색과 공은 같지 않다. 색은 곧 공이다.★★☆☆☆[4336. 11. 13.]   92□현미경으로 보는 하늘□이근호, 세계사시인선 75, 세계사, 1997   시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고 높낮이가 다른 것이 흠이다. 사물을 관찰하는 눈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나름대로 일정한 시각을 갖추었지만,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하고 어디까지 절약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선이 그어지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푸념이나 말들은 그런 까닭이다. 현미경으로 보려면 관찰에 머물러야 하는데, 관찰을 하다 말고 감정을 드러내면 현미경으로 보는 의미가 삭감된다. 게다가 한자는 현미경의 초점을 흐린다.★★☆☆☆[4336. 11. 13.]   93□유리에 가서 불탄다□노태맹, 세계사시인선 58, 세계사, 1995   아주 독특한 상징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그러나 독특함에 매달려서 허공 중에 떠버린다. 상징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건이 필요하다. 그래서 관념 속의 사건을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인과관계 설정은 문제가 없지만, 그 무리한 설정이 사막처럼 물기를 제거한다. 무문관이나 벽암록이 사건 당사자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것은 깨달음을 상징으로 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과 말 사이로 건너뛰는 생각이 저절로 상징을 만들고 그것을 풀 기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야기로 꾸미면 장광설이 된다. 그 기백은 살 만하다. 그러나 한자표기에 기대는 사고는 해법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4336. 11. 13.]   94□내 몸이 동굴이다□박기동, 세계사시인선 83, 세계사, 1997   특별한 지식이나 사실이 시로 들어올 때 조심해야 할 것은, 그것의 특수함으로 인해 주제를 전달하는 데 그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남들이 잘 모르는 지식이나 내가 발견한 특별한 사실들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하고픈 말이 그러한 사실들에 예속이 되면 시가 무거워진다. 이 무거움에는 설명하려는 의도도 들어있다. 간간이 빼어난 시들이 있지만 대체로 방법과 수단에 목적이 혹사당하고 있다. 이것을 역전시키려면 좀더 가혹한 긴장이 필요하다. 한자는 불필요한 긴장이다.★★☆☆☆[4336. 11. 13.]   95□모든 하루는 낯설다□김추인, 세계사시인선 82, 세계사, 1997   무기력한 일상과 큰 변화 없는 따분한 세상을 아주 꼼꼼하게 잘 그렸다. 그러나 일상을 꼼꼼하게 해부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해부 당하는 것들 중에는 일상의 문제가 아닌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해부해야 할 것이며, 해부해도 소용없는 것인지, 나아가 해부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큰 효과를 내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세계는 성실함 위에서 열리지만, 성실함만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이 아니다.★★☆☆☆[4336. 11. 13.]   96□무지개가 되기까지는□박정만, 문학사상한국시선 18, 문학사상사, 1987   시가 노래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거의 잊고 산다. 아니, 아예 잊고 산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시는 노래였고, 지금도 노래이다. 이 사실을 박정만보다 더 정확히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 그의 시는 완전히 노래이다. 노래는 중간의 어느 한 구절이 애매모호해도 그 가락으로 인해 저절로 와 닿는 성질이 있다. 박정만의 시가 바로 그러하다. 중간에 나타나는 구절들의 애매함은 소리내어 읽으면 저절로 흡수된다. 김소월 이후로는 이런 시인이 없다. 이런 노래를 부르도록 영혼의 내면에서 닦달한 것이 허무와 죽음이었으니, 그런 노래의 주인공이 평탄한 삶을 산다면 그 시는 사기꾼의 말장난일 것이다. 김소월이 오래 살지 못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4336. 11. 13.]   97□단편들□박정대, 세계사시인선 81, 세계사, 1997   형식에 대한 파괴나 집착은 갈래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의미의 관점이고 역사의 관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가나인, 황지우, 박남철 같은 시인들이 그런 쪽에서 카메라를 받았다. 아마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 시집도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형식에 대한 문제는 이야기가 아니라 보여주기가 되어야 한다. 앞의 시인들이 보여주기로 성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는 형식이 허물어지고는 있지만 이야기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의 정서에 대한 어떤 발언이다. 즉 보여주기보다는 말하기를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이 시를 형식의 문제보다는 다분히 서정의 영역으로 붙잡아 놓는다. 사진과 만화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단순한 서정시라는 얘기다. 형식에 대한 집착이었다면 심각하게 방법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4336. 11. 14.]   98□황금 가지□이중수, 세계사시인선 79, 세계사, 1997   생각을 글로 나타내는 재주는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무엇을 쓰면 시가 되고 무엇을 쓰면 시가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시는 개인의 사사로운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만들려면 개인 속에 숨어있는 어떤 공공의 인식을 다루어야 한다. 내 이야기가 그냥 내 이야기로 그쳐서는 시가 되기 어렵다. 그런 내용을 다룬 작품들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이미 학계에서 설명이 끝난 개념을 시속으로 끌어들일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그 개념은 이미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난 후이기 때문에 그것을 내 삶 속에서 발견했다고 해서 독자들이 감동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는 개념이 아니라 느낌이다.★☆☆☆☆[4336. 11. 14.]   99□따뜻한 길 위의 편지□박용재, 세계사시인선 11, 세계사, 1990   시가 거칠다. 그 거칢은 시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시대의 분위기 때문인 듯하지만, 사실은 시가 삶의 어느 곳에 뿌리내려야 할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시대의 고통은 시인의 삶 어느 곳에서 피어나야 하는데, 이 시들에서는 너무 광범위한 분위기로만 잡혀있어서 허황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대를 이야기할 때 자신의 어느 부위에 닿아있는 시대를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일이다. 한자는 그런 허황함을 더욱 크게 만든다.★☆☆☆☆[4336. 11. 14.]   100□숲 속에서 묻는다□이사라, 세계사시인선 74, 세계사, 1997   내용도 괜찮고 표현도 적절한데, 무언가 그럴듯한 비유나 표현을 하지 않으면 시가 되지 않는다는 강박관념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것 때문에 표현에 무리가 생기고 생소함이 서린다. 더 큰 문제는 절망도 우아하게 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이다. 문명의 황폐함과 그 안의 절망을 다루고 있지만 그에 맞서자는 것인지, 즐기자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싸움이라면 싸움의 대상과 전략과 방법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흉내내기나 비꼬기 가지고는 싸움이 안 된다. 웃통 벗어부치고 칼로 내 배를 째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것이 문명이고 삶이다. 내 몸을 망가뜨리거나 문명을 망가뜨리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한자는 이 싸움에 커다란 장애일 뿐이다.★★☆☆☆[4336. 11. 14.]    
23    시집 1000권 읽기 9 댓글:  조회:2024  추천:0  2015-02-09
  81□나는 독을 가졌네□안정옥, 세계사시인선 60, 세계사, 1995   소재가 시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일관된 소재가 나타나면 그 소재를 통해서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이미지에 실어야 한다. 한 마디로, 소재를 극복하여 그것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데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재가 물고기와 낚시라는 통일된 내용에 머물러있지만, 그것이 내 말을 하는데 이용되지 못하고 나열되었다. 소재에 집착하느라 정작 내가 할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그 소재를 통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시는 나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도구가 아니다. 결국 수필로 다루었어야 할 내용이라는 뜻이다.★☆☆☆☆[4336. 11. 12.]   82□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박찬일, 세계사시인선 63, 세계사, 1995   무섭다고 시에다 썼을 때 무섭다는 말이 공포를 나타내면 그건 시의 언어가 아니다. 시의 언어는 그것이 직접 지시하는 것 외에 그것이 환기하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이 정서이기도 하고 상징이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데 이 시집에 쓰인 대부분의 시들이 다른 것을 환기하지 못하고 시인의 말을 직접 전달하는 기능으로 쓰이고 있다. 행과 연 구분이 되어있지만, 시가  지닌 그런 기능으로 작용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말의 순서를 바꾼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4336. 11. 12.]   83□검은, 소나기떼□김상미, 세계사시인선 73, 세계사, 1997   시들이 거의 이야기 차원에 머물러있다. 시가 특별한 장치를 갖추지 않고 이야기에 머물러 있으려면 그렇게 해도 되는 시의 커다란 틀이 다시 마련돼야 한다. 그냥 말을 해도 시가 되는 그런 장치 말이다. 그 중에서 좋은 방법은 생각을 특별한 곳에 집중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그 생각의 단련이나 집중이 그대로 시가 될 만한 빛나는 정수를 낳는 것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들이다. 그대로 두면 시라고 하기에 어려울 만큼 집중이나 단련이 늘어져있다.★☆☆☆☆[4336. 11. 12.]   84□하느님의 야구장 입장권□이만식, 세계사시인선 72, 세계사, 1997   일상을 요약하는 일은 쉽지만 그것이 시가 되는 것은 어렵다. 그 요약에 대한 성찰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일상의 작은 일에 감동하고 반응하지만, 그것이 남들이 다 느끼는 그런 것이라면 시라는 양식으로 담아봤자 아무런 울림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개인의 일기장에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이나 주제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시인만의 각성과 느낌이 있어야 한다.★☆☆☆☆[4336. 11. 12.]   85□자작나무 내 인생□정끝별, 세계사시인선 64, 세계사, 1996   초점이 맞지 않는 환등기에 필름을 넣으면 영상 역시 뿌옇게 나타난다. 아무리 좋은 깨달음을 넣어도 나타나는 건 뿌연 환영이다. 따라서 어떻게 어떤 내용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 초점을 어떻게 맞추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한 번 더 걸러내고, 그것을 어느 이미지에 맞추어서 꿰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한자도 그런 군더더기 중의 하나이다.★☆☆☆☆[4336. 11. 12.]   86□텅 빈 극장□김정환, 세계사시인선 57, 세계사, 1995   시가 짧아진다고 해서 이미지나 이야기까지 짧아지지는 않는다. 이 시인은 시에서 어디까지 말을 하고 어디쯤에서 생각을 멈추어야 할지 그것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안에 담아야 할 내용물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고, 중간 중간에서 끊어놓는다. 끊긴 내용물을 읽는 이가 연결시켜서 읽어야 하지만, 그 연결 작업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굳이 그런 작업을 할 의무를 독자에게 떠넘길 자격이 시인에게는 없다. 한자는 이미지간의 단절을 더욱 크게 만든다.★☆☆☆☆[4336. 11. 12.]   87□세상의 밥상에서□김은자, 세계사시인선 69, 세계사, 1999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른 수준과 일정한 화법을 갖추었다. 시로 말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것은 굉장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세상을 보는 눈이 정해졌으며 그것을 시로 나타내는 방법까지 확립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쉽게 쓰는 것 같지만, 이미지에 자신의 생각을 적당히 실어서 보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내용에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시의 적절하게 동원시키고 마무리까지 잘 해낸다. 인식과 형상이 아주 자연스럽게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만 인식의 깊이가 문제인데,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본래의 모습과 삶의 고민을 좀 더 깊이 파고든다면 정말 좋은 시가 나올 듯하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한자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4336. 11. 12.]   88□한 바이올린 주자의 절망□마종하, 세계사시인선 55, 세계사, 1995   ‘두 길’ 연작은 빼어난 작품이다. 특별한 수사법을 동원하지 않았어도 적당한 긴장과 알맞은 호흡이 시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다른 시들의 수준이 들쭉날쭉이다. 시가 긴장을 잃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서 할 말만 하고 마는 그런 위험들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말을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말을 절약하거나, 아니면 말하는 방법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할 말이 많아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시를 망친다. 시에서는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시에서 할 말이 아니거든 수필로 할 일이다.★★☆☆☆[4336. 11. 13.]   89□개 같은 날들의 기록□김신용, 세계사시인선 9, 세계사, 1990   체험의 강도가 격렬하면 그 때문에 자제력을 잃고 과장을 일삼게 되는데, 여기서는 체험의 강도와 딱 알맞은 말들이 동원되어 형상과 인식이 정확히 맞물리고 있다. 흥분하지 않은 그 차분함이 돋보인다. 아무도 갈 수 없는 곳에서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을 혼자서 하고 있기에 시의 광채는 더욱 빛난다. 그러나 머지 않아 큰 벽을 만날 것이다. 파헤친 곳에 지어 올릴 것을 발견하는 일은 파헤치는 일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그런 어려움을 예고하는 전주곡이다.★★★★☆[4336. 11. 13.]   90□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서림, 세계사시인선 78, 세계사, 1997   관찰은 날카롭되 생기가 없다. 이것은 이미 주제를 먼저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것들만 현실에서 골라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이리저리 바꾸고 색깔을 덧칠해보지만 그것이 근원으로부터 올라오는 느낌이 없고 마치 조화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지식으로 시를 쓸 때오는 함정이다. 한자는 그런 덫 중의 하나이다.★★☆☆☆[4336. 11. 13.]    
22    시집 1000권 읽기 8 댓글:  조회:2173  추천:0  2015-02-09
  71□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이승하, 세계사시인선 13, 세계사, 1991   어떤 큰 주제에 집착하여 시를 그리로 몰고 가다보면 표현들이 그 주제 속으로 빨려들어 빛을 잃는다. 그리고 낱낱의 시도 그러한 관성에 파묻힌다. 마치 빛이 중력에 휘어지는 것처럼. 그 시대의 거대한 명제를 분석하기 위하여 시들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에 낱낱의 시들이 생기를 잃었다.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신의 체험을 끌어들여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것이 실감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릴 필요가 있다. 거대한 바위를 쪼는데 시는 그렇게 유용한 무기가 아니다. 그것을 알 때에 시는 대단한 무기가 된다. 한자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무기의 날을 무디게 할 뿐이다.★★☆☆☆[4336. 11. 8.]   72□외계인□황동규, 문학과지성시인선 196, 문학과지성사, 1997   나이가 들면서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은 인간의 삶을 반추하는 데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여행 모티브는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딛고 있는 세계가 버려야 할 그 무엇으로 규정된다면 새로 도달한 세계 역시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긴장을 하면서 상호 교섭할 때 여행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쪽을 버리고 저쪽을 얻으려 한다면 양쪽을 다 잃는 것이 삶의 속성이다. 게다가 여행 모티브는 시 속에 반드시 서사의 구조를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당연히 시의 긴장을 해이하게 하고 늘어진 긴장 속에서 인생의 깨달음은 전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가 지닌 양식의 긴장과 아름다움은 살아나기 어렵다. 수천 년 시 형식의 역사가 이제 와서 버림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버림받아야 할 양식이 시라면 그런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극서정시라는 새 호칭으로 이 무의미한 형식을 합리화시키려는 궤변들은 시인의 주변에 진정한 동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의 진정한 벗은 시인의 시에서 나이의 주름살을 없애라고 충고해주는 자이지 주름살이 아름답다고 얘기해주는 자가 아니다. 나이 들어서 받는 칭찬은 대부분 아첨이 아니면 궤변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아첨과 궤변을 일삼는 자들은 무언가 다른 목적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4336. 11. 9.]   73□국어선생은 달팽이□함기석, 세계사시인선 86, 세계사, 1998   언어 감각이 아주 탁월하다. 그리고 그러한 탁월함이 자의식을 분해하는 데 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따금 자신의 밖으로 나온 시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맥이 빠진다. 따라서 이 시인의 시가 지향하는 바는 자신의 의식이고 자신의 의식을 낳은 가족사이다. 그 가족사가 독특한 상상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장광설인 것이 문제이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말들이 동원되고, 이것은 자신의 상상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나온 타협안이다. 과연 독자들이 이것을 알아줄까 의심스러워서 중간중간에 설명을 해주고 마는 것이다. 특히 시집의 중간 뒷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이런 설명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이 상상력의 독특함을 많이 깎아먹는다. 좀 더 자신감 있게 자신의 상상력을 펼칠 필요가 있겠다. 불필요한 말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상상력에 확신을 갖는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이후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보인 적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이 시인의 발상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런데 자신의 의식을 파 헤쳐보는 작업은 일정한 한계를 갖기 마련이다. 시집 한 권 분량이면 상상력이 바닥이 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만약 이 시집이 공들인 것이라면 이 시인은 한 동안 시를 쓰지 못할 것이다. 내부에 집착한 시인이 밖으로 나오면서 긴장을 잃지 않으려면 새로 탄생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 힘겨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장르를 전환하게 된다. 소설이나 희곡으로.★★★☆☆[4336. 11. 10.]   74□대머리와의 사랑□성미정, 세계사시인선 71, 세계사, 1997   무엇보다도 이 시인은 상징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런 만큼 상징을 통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도 상징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의 한계까지도 아주 잘 이해한다. 그런 점에서 아무나 도달하지 못할 한 경지에 이른 셈이다. 그러나 지금 사용하는 상징은 시의 상징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주로 인과관계와 논리로 상징의 틀을 만들고 풀어가고 있으나, 그렇게 한 방법으로만 사용하면 시가 딱딱하고 메마르게 된다는 것을 잘 알 필요가 있다. 상징은 이미지만이 아니라 정서로 만드는 상징도 있고 비유로 만드는 상징도 있으며 분위기로 만드는 상징도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으로 구사할 수 있도록 상징의 방법을 확산시켜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의 세계가 자신의 내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이 시집의 특징인데, 상징은 자신의 내면만이 아니라 자신 밖의 세계를 드러내는 데도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방법론을 확고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4336. 11. 10.]   75□뉴욕 드라큘라□이상호, 세계사시인선 67, 세계사, 1996   병원이라는 소재는 한 번 쯤 집중하여 다뤄볼 만한 소재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고통스런 기억이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통의 가닥을 한 올 한 올 풀어낸다면 인간의 생과 사가 지닌 어떤 의미심장한 상징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의미심장한 상징의 세계까지 가 닿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시가 소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재가 주는 영역 바깥까지 생각을 확산시키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있다. 안락사 연작의 경우도 안락사와 관련된 사람들의 상황만을 묘사하면 그저 개인 상징으로 머물고 만다. 안락사라고 하는 사회 현상의 저층과 그것이 한 개인의 삶과 무의식에 어떻게 연계되어 있으며 그것이 한 개인과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파고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안락사라는 한 현상이 불러일으키는 개개인의 심정을 노래했기 때문에 좀 더 깊은 의미로 환산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중요한 체험이지만 이것이 명작이 되기 위해서는 인식의 방법과 깊이를 한 번 더 점검해야 할 듯하다.★★☆☆☆[4336. 11. 10.]   76□누이□유안진, 세계사시인선 68, 세계사, 1997   나이가 든다는 건 경계할 일이다. 나이는 추억 속에 사람의 사고를 붙들어놓기 때문이다. 특히 시에서 추억에 붙잡혀있으면 현실이 증발된다. 현실이 증발된 시는 영원성을 갖지만, 그 대가 또한 만만치 않아서 관념성을 띠거나 한 개인의 넋두리로 변하기가 쉽다. 이 시집 역시 이러한 관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도 연륜이 갖는 묘한 무게 때문에 나름대로 읽는 맛을 갖고 있다. 특히 시에서 우러나는 운율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는 볼 수 없는 예스러운 맛이 있다.★★☆☆☆[4336. 11. 10.]   77□우주배꼽□고진하, 세계사시인선 69, 세계사, 1997   한 편 한 편의 완결성을 위해 들인 공은 살 만하다. 그러나 그런 공들을 모아놓았을 때 전체가 담고 있는 내용물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시들이 한 곳을 향해 초점을 모으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다. 모여있는 시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어떤 의미의 성을 쌓아야 하는데, 낱낱의 벽돌로 남아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벽돌을 모아놓는다고 해서 집이 되지는 않는 법이다. 무엇에 대한 고민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 화두가 될 단계이다. 그런 고민 이전에 해야 할 일은 한자표기가 시에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4336. 11. 10.]   78□날다람쥐가 찾는 달빛□유진택, 문학과지성시인선 228, 문학과지성사, 1999   시집을 낸다고 하면 나름대로 시를 쓰는 기교에 대한 자신이 있기 때문에 굳이 어려운 방법을 피하지 않는다. 많은 시들이 현란한 기교 때문에 빈 쭉정이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 아주 단순한 기교를 쓰는 시들이 돋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시집은 보여준다. 사물에 내 생각을 빗대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오래 묵은 방법이다. 그 낡은 방법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단순한 방법을 뒷받침하는 내용까지도 극히 단순해서 어떤 부분은 위태롭기까지 하다.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부분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얕아서 아슬아슬하다. 깊이와 넓이 모두 확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4336. 11. 10.]   79□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박남준, 문학동네시집 41, 문학동네, 2000   계륵이란 말이 있다.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한 닭갈비를 이르는 말이다. 이 시집에도 지독한 닭갈비가 있다. 의미가 그것이다. 이 시집에 실려있는 분위기는 아주 독특하다. 꿈 없는 자의 몽롱한 내면 스케치인데, 그런 시에서는 의미를 정확하게 찾아내면 그 스케치가 오히려 망가진다.   시의 언어는 적막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말들이 의미를 정확히 밝혀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시집 전체의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 안개 속의 희뿌연 풍경을 그리는 데는 선명한 선이 분위기를 망친다. 바로 의미가 그런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의미도 버릴 수도 없을 만큼 뚜렷하다. 어느 쪽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와있다.   시의 정서는 우리 시에서 한 번쯤 도달해야 할 그런 곳에 닿아있다. 특히 자연물에서 인간의 고독을 읽고 그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시집과 이 시집을 구별짓는 뚜렷한 요인이다.★★☆☆☆[4336. 11. 10.]   80□세상의 모든 저녁□유하, 민음의 시 56, 민음사, 1993   보통 시인들의 경우 어떤 이미지에서 발상을 얻고는 그것을 시로 완성한다. 그런데 이 시인은 평상시에 눈 여겨 봐두었던 이미지들을 시를 쓸 때 모조리 끌어다 붙인다. 이미지들은 소용돌이치며 시속으로 빨려 들어가 시의 한 부속품이 되고 그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을 낸다. 결국 마음속의 이야기를 정한 다음에 그 주변에 있는 이미지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시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여타 다른 시인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고, 이 시인의 특징이다. 이런 힘이야말로 정말 시의 참맛이다.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여서 그 반대쪽인 화이트홀 바깥에 시의 꽃 한 가지를 툭 던져놓는 것이다. 이것은 웬만큼 노력해 가지고는 얻기 힘든 것이며, 자신의 사고와 정서를 늘 칼끝처럼 날 세워 놓지 않으면 또 안 되는 일이다. 아마도 이 부분을 다른 시인들이 따라하기 어려울 것 같다. 편히 살다가 이미지가 나타나면 그때 가서 시를 만드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다.★★★★☆[4336. 11. 11.]    
21    시집 1000권 읽기 7 댓글:  조회:2147  추천:0  2015-02-09
61□만국의 노동자여□백무산, 청사민중시선 33, 청사, 1988   노동에 관한 사상은 이미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가 살아있는 한 변함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의 모순에 관한 시는 새롭다. 특히 이 시집 속에 실린 시들은 살아있다. 체험이 현실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모순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그것을 현실 속에서 몸으로 찾아냈고, 그것을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 나타냈다. 사상과 삶과 표현이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4336. 11. 6.]   62□죽은 자를 위한 기도□남진우, 문학과지성시인선 185, 문학과지성사, 1996   죽음을 카메라로 찍을 수는 없다. 카메라는 색깔로 인식하고 눈으로 보여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지도 않은 장비를 가지고 내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 그러다 보니 카메라에 잡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장례식 모습이다. 이것은 시인이 주제에 접근하는 시의 방법론을 전혀 모르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죽음을 시각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은 그림으로 그리는 것만도 못하다. 물감은 죽음의 색깔을 직접 보여주지만 문자는 주어진 문자정보를 통해서 머릿속에서 재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에서 죽음을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전혀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기초조차 모르고 쓴 무기력한 시들이다. 그러니 수박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다. 수박의 겉을 아무리 핥아야 수박 맛을 알 수는 없다.   죽음에 대해 백 날을 이야기해야 죽음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기형도가 죽은 자리에 가서 앉아본다고 해서 그의 죽음을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방법론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쓴 시이기 때문에 뜬구름 잡기가 되어버렸다. 이미지 몇 개로 죽음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4336. 11. 6.]   63□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황지우, 문학과지성시인선 220, 문학과지성사, 1998   시대의 몫이겠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환멸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게다가 생각이나 상상의 방법이 아주 거칠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불편하게 만든다. 아마도 시대와 시인 사이에 생긴 불화 때문이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무언가 좀 더 편한 방법이 있을 듯한데,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마감이 덜 된 듯한 시를 보는데, 이것을 시인의 태도라고 읽어야 할지 미숙이라고 해야 할지 구분이 잘 안 가는 시집이다. 이런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는 힘들 것 같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시가 이야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시가 아닌 형식을 시로 만들기 위해서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시의 인식이랄 만한 참신한 표현과 경구를 될수록 많이 넣었다. 그러나 경구가 몇 개 들어간다고 해서 시가 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이야기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이런 경구들이 상상력을 붙잡고 늘어져 의미 전달의 흐름을 자꾸 동강낸다. 그런 단절들이 애써 얻은 귀중한 깨달음과 표현을 시 전체로 확산시키지 못하고 자꾸 부분에 얽매이게 만든다. 어눌한 중이 대단치도 못한 깨달음을 떠듬거리며 토해놓는 것 같다. 화두나 법어가 시와 친연성이 있지만 그것이 그대로 시가 되지는 않는다. 상황이 제거되면 오히려 봉창 두들기는 소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환멸의 삶을 전하기 위해 화두 같은 말장난을 동원하는 것은 생각의 격렬한 반응이 빚어낸 결과물처럼 보이나 좀 더 냉정하게 보면 일종의 치기이고 습작기를 벗어날 무렵의 난봉 심리이다. 한자 표기는 여기에다 허영끼까지 덧칠하고 있다. 그런 표현보다 더 완벽한 건 1미터만 나가면 있다는 15층 베란다 밖이다. 거기에 기형도가 있다.★★☆☆☆[4336. 11. 6.]   64□불온한 검은 피□허연, 세계사시인선 53, 세계사, 1995   말하자면 절망의 늪에 빠진 자의 눈에 비친 세상 풍경이라는 뜻인데, 상관물이 단순히 개인의 넋두리로 그치지 않고 종 보편의 의식으로 연결되려면 그 고리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고 투철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너무 태만한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특수한 체험이 특수한 모습 그대로 고정되어 버리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특수한 체험이 특수한 방식으로 상상력에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 고리를 상상의 어느 부분에 걸어야 할지 선뜻 알 수 없다. 게다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흔하디 흔한 절망과 소외이다. 그리고 남들의 예술작품을 통해 무언가 할 말을 전하려 한다는 것이 벌써 한 수 접혀 들어가는 것이다. 남의 문자를 함부로 쓰는 것 역시 시의 세계를 전달하는 것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일이다.★☆☆☆☆[4336. 11. 7.]   65□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박용하, 세계사시인선 51, 세계사, 1995   표현은 요란한데 할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전달해야 할 내용에 비해서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고 시가 길어지고 번잡해진다. 아직 습작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주제를 먼저 정확하게 정해야 하고 거기에 꼭 맞는 표현이 아니면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한다. 버리지 못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그런 중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한자이다.★☆☆☆☆[4336. 11. 7.]   66□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오정국, 세계사시인선 19, 세계사, 1992   철지난 유행가처럼 내용도 그렇고 형식도 그렇다.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이 경우, 시가 새로워지려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욱 깊어지거나, 체험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깊이가 없기 때문에 방법이 새롭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인식이 신선하게 드러나는가 하는 것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4336. 11. 7.]   67□막연한 기대와 몽상에 대한 반역□이윤택, 세계사시인선 5, 세계사, 1989   시집에 실린 시 전체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우선 눈에 띤다. 이것은 중간중간에 보이는 희곡의 기획력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그런데 정치현실을 멀찌감치서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그 정서나 내용은 정치와 역사에 상당히 깊이 꽂혀있다. 그것이 이율배반처럼 낯설다. 1980년대의 몫이겠지만, 그런 삭은 내용을 그나마 살려주고 있는 것은 말을 다루는 솜씨이다. 군더더기 없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살 만하다. 뒤의 장시는 너무 사실에 붙잡혀서 이미지와 말들이 무겁게 쓰였다.★★☆☆☆[4336. 11. 7.]   68□개□최준, 세계사시인선 14, 세계사, 1991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시집 한 권을 낸다는 것은 시인이 성실성과 집중력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점 하나만으로 이 시집은 칭찬 받을 만하다. 한 가지 주제에 집착을 하다 보면 내용이 자꾸 깊어진다. 깊어지면서 관념화된다. 그것만 극복한다면 한 주제로 묶은 시집은 대성공이다. 과연 얼마나 시인의 사고가 현실의 곳곳으로 삼투해들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거리이다. 이 정도면 정말 많이 들어갔다. 이 시인이 신인이라면 기성시인들은 많이 부끄러워해야 한다.★★★☆☆[4336. 11. 8.]   69□매혹, 혹은 겹침□김정란, 세계사시인선 22, 세계사, 1992   내가 전봇대에 오줌을 깔기고 있는데, 어떤 점잖은 노인이 꾸짖는다면 그에 대해서 반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제일 저급한 방법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왜 남의 일이 끼어 드느냐고 욕을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 노인은 그 노인 시대를 대표하는 한 종이 아니다. 그냥 노인일 뿐이다. 그 노인에게 욕을 할 때는 그 종에 대한 분노를 실을 필요가 없다. 그런 노인은 천지에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종을 대표하는 노인에게 분노의 근원을 드러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이 시집에 실려있는 것들은 그 노인에 대한 욕들이다. 그 노인과 싸워서 내가 이길 수는 있지만, 한 노인을 이기는 것이 그 종 전체를 이기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그 종 전체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욕지거리나 멱살 드잡이 가지고는 안 되는 일이다. 말을 돌려도 욕은 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종들이 가진 가장 취약한 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 가장 좋은 효과를 내는 방법이다.   이 시집에서는 그런 지점을 찾지 못해서 전투가 별 효과를 내지 못 하고 있다. 그것은 사상 투쟁의 표적을 찾지 못함과 동시에 그 투쟁을 담보해줄 시의 방법론 역시 확보하지 못하였음을 뜻한다. 시의 형식을 비튼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4336. 11. 8.]   70□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김승희, 세계사시인선 56, 세계사 1995   다작의 병폐는 할 말에 비해 형식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특히 한 가지 주제에 매달려서 그것을 악착같이 파헤치려고 할 때는 이런 문제점이 더욱 커진다. 바로 이 시집이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형화된 것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분노, 그에 대한 반발이 격렬한데, 그 격렬한 감정이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찾지 못하여 누더기를 걸치고 있다. 해진 옷 사이로 때묻은 살결이 희끗희끗 드러난다. 시가 굳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형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식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귀찮고 어렵더라도 감정을 조절해서 시를 아껴 쓸 필요가 있다.★★☆☆☆[4336. 11. 8.]    
20    시집 1000권 읽기 6 댓글:  조회:2347  추천:0  2015-02-09
  51□반딧불 보호구역□최승호, 세계사시인선 52, 세계사, 1995   시를 산문으로 쓴다는 것은 행을 가를 때 오는 긴장과 이미지 호흡의 장점을 버리겠다는 뜻이다. 산문은 비유의 긴장마저도 떨어뜨린다. 그래서 쓰기가 꽤 어려운 방법이다. 따라서 산문으로 쓰려면 시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를 포기하면 물론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시이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어떤 새로운 방법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새로운 방법의 유일한 탈출구는 상징이다. 이 상징은 물론 앞 뒤 정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산문시에서는 생각의 질서와 작용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어떻게 생각이 전개되고, 또 전개시켜야 하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 산문과 구별하기 어려운 요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미지를 배열하는 생각이나 발상의 방법만 가지고도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발상에 의존하되 결국은 시 안의 이미지는 상징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문과 같이 문장 하나하나 이미지 하나하나는 발언이 되고 만다. 시로서는 치명상이다.   이 시집의 산문성은 시의 산문성이 아니다. 산문의 산문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이른바 ‘깨달음’을 전달하는 도구로 문장이 쓰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에 이르렀더라도 그 깨달음의 어떤 비경을 이미지에 의존해서 노래해야 그것이 시가 되는 것이지, 그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과 그 결과를 이야기해서는 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집의 내용 대부분은 그런 내용을 전달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시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일상의 깨달음이 시로 들어올 때의 모습이다. 이 시집의 대부분은 불교식 깨달음의 일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굳이 선승 흉내를 내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 늘 겪고 느끼는 것들이다. 시는 깨달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의 문제이다. 깨달음이 문제라면 굳이 시를 쓰지 않아도 된다. 수필을 써도 되고 소설을 써도 되고, 아니면 무문관이나 벽암록처럼 어록을 만들어도 된다. 그렇지만 시는 시이다. 시에는 그것을 읽는 사람의 문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법을 모르면 시라고 하기 어렵다. 대부분이 시집의 시라는 것들이 이 문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깨달음 흉내를 내려면 그것은 인류 최고의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깨달음은 현재 내가 깨달은 것이 새로운 것 같지만, 이미 깨달음의 절정에 도달한 사람이 보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도사 흉내를 내면 안 되는 것이고, 도사 흉내를 내려면 인류가 여태까지 도달해보지 못한 그 어떤 새로운 경지를 연 것이어야 한다. 말을 안 하고 있으려면 모르되 말을 하려면 그래야 하는 것이다.★★☆☆☆[4336. 10. 27.]   52□웃는 산□안정옥, 세계사시인선 93, 세계사, 1999   현상의 배후에 서린 어떤 원리와 세계를 노래하려고 집요하게 매달리는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더욱이 자연에서 인간의 어떤 구원을 탐구하려는 시각은 웬만해서는 좀처럼 갖기 어려운 발상이다. 그러나 생각에 집착하면 말하는 법을 잊는 법이다. 침소봉대하는 버릇과 문장을 굳이 어렵게 만드는 화법은 자연에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묘사를 통하여 접근한 자연은 그렇게 어려운 존재가 아니다. 어떤 관념을 해석한 끝에 문장이 어려워지는 것은 철학이지 문학이 아니다. 시는 어려운 해석을 아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깨달은 내용이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시에는 아주 간결하고 쉽게 담겨야 한다.   문장을 잘라먹고 난해한 화법을 쓰는 것은 능력이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한 까닭에 생긴 현상이다. 한 꺼풀 더 벗어서 내가 본 세계가 명징하게 드러나도록 한다면 좋은 시를 못 쓸 것도 없겠다. 여태까지 자연을 노래한 것이 허여멀건하다고 해서 거기다가 고춧가루를 퍼부은들 더 나은 맛이 나오지는 않는다. 맛은 조미료의 배합비율에 딸린 것이지 양에 딸린 것이 아니다. 언어의 절제력과 경제성을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4336. 10. 27.]   53□알 시□정진규, 세계사시인선 77, 세계사, 1997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거기에 매달려서 고만고만한 시를 꾸준히 만들어낸다는 것은 상당한 능력이다. 게다가 그런 이미지들이 형태를 규정할 수 없는 인간의 사고와 생명을 담으려고 한다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설명을 너무 많이 하려 한다는 것이 흠이다. 이미지 하나로도 끝낼 수 있는 것을 중언부언 설명하다 보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도 잊어버릴 수 있다. 게다가 한자까지 많이 섞여 있어서 불필요하게 생각의 흐름을 흔들어 놓는다. 관념을 주제로 한 시들에서 한자를 쓰는 것은 치명상에 가깝다. 한자는 사고를 담는 뜻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설명이 되고 만다.★★★☆☆[4336. 10. 27.]   54□햇빛 속에 호랑이□최정례, 세계사시인선 85, 세계사, 1998   사물을 뒤집어 보는 반짝이는 시각과 연결되지 않는 것들 속에서 시간과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는 발상의 전환까지, 시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시인이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만 가지고는 시가 되기 어렵다. 전환의 그 축을 간파한 그 순간 그 시는 맥이 풀리기 때문이다. 발상이 그렇게 된 어떤 기반까지도 제공해주어야만 발상의 신선함은 끝까지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발상의 전환을 뒷받침하는 세계관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세상을 뒤집어보는 것만 가지고는 한 세계를 이루기 어렵다. 이것은 이 세계에 대한 비밀과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들에 대해 심도 있는 공부를 덜 해서 생긴 일이다. 내 시각이 땅에 견고하게 뿌리내리려면 안경 하나 바꿔 쓰는 것 가지고는 어렵다. 안경 속의 눈을 바꾸고, 시신경에게 명령을 내리는 뇌의 세계를 얘기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뇌는 말들만의 조합물이 아니라 역사와 철학과 현실의 복합물이라는 것을 얘기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시각을 바꾸어서 말을 장황하게 할 게 아니라 간단명료한 것은 간단하게 말을 할 줄 하는 여유도 있어야 한다. 어려운 것은 시의 필요조건이지 필수사항이 아니다.★★☆☆☆[4336. 10. 27.]   55□살레시오네 집□송재학, 세계사시인선 20, 세계사, 1992   김춘수의 제자가 나타났다. 스승의 재주를 배워서 그것을 다른 분야에 적용시키는 것만 가지고는 스승보다 뛰어날 수 없다. 시에서 진정한 청출어람이 되려면 스승이 이루어놓은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방법을 만들거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스승은 밟고 넘어서는 디딤돌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섬기고 안주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김춘수의 시에서는 이미지가 의미를 벗어버리려고 하는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지만 이 시집에서는 그런 긴장을 이용하여 의미를 골라잡으려고 이것저것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긴장이 현저히 떨어진다. 말이 정확한 의미를 담자는 것도 아니고 의미를 버리자는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꼴이어서 어수선하다. 이런 어수선함을 일러 난해라고 하는 것이다. 한자는 이러한 경향을 지닌 시인들이 당연히 누리는 권리라고 착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난해하다는 건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쓴 사람 자신의 의식이 분화되지 않았다는 것과 분화되지 않은 의식이 제 몸에 꼭 맞는 언어를 선택하기는 어렵다는 것. 설령 꼭 맞는 언어를 선택했어도 의식이 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가 그리는 세계는 뜬구름 잡기가 된다. 이런 것을 해석의 다양성이라고 강변하면 그럴 듯하겠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시인 자신이 더 잘 아는 일이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말장난이다. 스승은 따라다니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는 것이다.★★☆☆☆[4336. 11. 5.]   56□슬픔의 힘□김진경, 문학동네시집 40, 문학동네, 2000   시가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아마도 무언가 인식의 단계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리라. 깨달음의 적실성이나 진실성과 상관없이 시에서 말을 많이 한다는 큰 단점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형상성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때로 형식이 갑옷처럼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는 달라진 내용이 새로운 형식을 간절하게 요구하고 있는 시기이다. 그런데 형식은 옛날 것 그대로이다. 이 시집에서는 이런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형상에 대한 인식은 짧고 할 말은 많다. 그러므로 어떻게 이미지를 잡아서 형상화시켜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4336. 11. 5.]   57□물 건너는 사람□김명인, 세계사시인선 21, 세계사, 1992   시집을 읽다 보면 살이 너무 쪄서 뚱뚱하거나, 아니면 너무 말라서 빼빼 마르거나 해서 적당한 몸매를 갖춘 것을 찾기가 아주 어렵다. 대부분 어느 한쪽으로 기우뚱 기울어있다. 애써 적당히 살도 있고 키도 있는 잘 빠진 몸매를 찾았다 싶으면 뼈와 근육의 균형이 깨져있다. 그런데 이 시집은 몸매도 아주 잘 빠진 데다가 근육과 뼈의 균형도 잘 잡혀있는 체집을 연상시킨다. 잘 빠진 몸매 속에 근육도 적당히 뭉쳐서 긴장할 곳에서는 긴장하고 풀어질 곳에서는 적당히 풀어지는, 말하자면 잘 다듬고 가꾸어진 몸매이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분명할뿐더러 그것이 적절한 이미지와 구조로 솟아올라 아주 깔끔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인식과 형상이 서로 어울려 빚은 것이 수준급이다. ‘여름 빗장’ 같은 경우는 시의 인식이 다른 갈래와 어떻게 다를 수 있으며 그것이 시인의 인식을 어떻게 형상화시킬 때 좋은 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절창이다.   다만 빼어난 인식과 작품의 구조화가 짜임새를 잘 갖추었지만, 좋은 시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러한 것을 뒷받침하는 세계가 이미 있어온 것들이라면 맥이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누구나 느끼는 인생무상이라는 단순한 주제만으로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같은 인생무상이라도 또 다른 측면에서 자신의 삶을 되새김질해볼 수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드문드문 섞인 한자는 시의 빈 구멍을 더욱 크게 만든다.★★★★☆[4336. 11. 6.]   58□검은 지층□최계선, 세계사시인선 8, 세계사, 1990   초점이 두 갈래로 찢어져있다. 시의 형식에 대한 고민과 문명 비판에 대한 고집. 어느 쪽으로도 분명한 선택을 못한 것이 흠이다. 하지만 낱낱의 발상에서 보이는 시각은 아주 참신하다. 그러나 작은 표현에 큰 것 전체를 다 담으려고 하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발상이 담을 수 있는 크기를 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욕심을 부렸다는 얘기다. 문명에 대한 막연한 비판은 치열한 듯해도 실감이 잘 안 난다. 능선의 이쪽이 밋밋하다고 해서 능선의 저쪽이 가파르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잘 써도 엄살 떠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게 하려면 어떤 부분을 찔러야만 이 문명이 비명을 지를 것인가를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찔러 가지고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자는 전혀 무기가 될 수 없는 물건이다.★★☆☆☆[4336. 11. 6.]   59□나는 햄릿이다□윤성근, 세계사시인선 18, 세계사, 1992   인생은 어떤 것이라고 규정하려 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규정하려는 자로 하여금 절망하게 하고 절망은 몸부림을 낳으며 시인의 몸부림은 장광설로 이어진다. 시집의 대부분을 채우는 내용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노력이 안 통하기 때문에 나온 것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다고 쓰는 것이 결코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본디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을 보는 어떤 시각이 이 문명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자 사명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의 질서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시인의 감정은 정직하다는 것은 살 만한 일이다. 하지만 단순한 정직만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한자까지 동원하는 현학 취미는 근원에 대해 몸부림치는 태도와는 상반된다.★☆☆☆☆[4336. 11. 6.]   60□모서리의 사랑□조윤희, 세계사시인선 94, 세계사, 1999   시집 안의 시들이 수준 차이가 심하다. 어떤 것은 아주 빼어난 이미지들을 잘 갈무리 한 반면에 어떤 것들은 내용이 잘 풀리지를 않아서 그것을 풀어내려고 너무 많은 말들을 동원한다. 이것은 시를 많이 써보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게다가 남의 상상력에 기대어 자신의 상상을 풀어 가는 것은 결코 좋은 버릇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들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이 분명치 않다. 분명치 않음도 한 세계가 될 수 있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어서 일상의 자잘한 풍경들을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꿈이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기저기 번뜩이는 발상들은 많은 가능성을 지닌 시인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미지에다가 내용을 갖다 붙이면 안 되고 내용에 따라서 이미지가 올라오도록 기다리는 훈련이 필요하다.★★☆☆☆[4336. 11.6.]    
19    시집 1000권 읽기 5 댓글:  조회:2185  추천:0  2015-02-09
  41□내 마음의 솔밭□황명걸, 창비시선 141, 창작과비평사, 1996   사람이 특별한 어려움을 모르고 곱게 늙으면 화사하고 편안한 모습이 된다. 이 시집 속에는 많은 감정이 있지만, 그 감정들이 나이를 들어서 특별히 주목할 것도 받을 것도 없는 그런 풍경을 하고 있다. 마치 잘 진열된 옷장 속의 옷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시인에게 치열한 정신을 요구할 수도 없고 치열한 실험의식도 요구할 수 없다. 살아가는 대로 구경할 뿐이다. 시가 현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있다.★★☆☆☆[4336. 10. 22.]   42□어느 별에서의 하루□강은교, 창비시선 154, 창작과비평사, 1996   시인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시각으로 특별한 생각을 노래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특수성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까봐 불안해서 결국은 다 설명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애써 찾은 특수함의 값이 많이 떨어진다. 특수함과 참신함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일치시키는 것이 시인의 능력인데, 이 시집에서는 그런 능력이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다.   특수함이 참신함으로 연결되려면 그 특수함을 감정이라는 보편성으로 감싸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특수함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곧 일반성 내지는 보편성의 인식으로 연결시켜주어야 한다. 바로 그 연결하는 법이 서투르다. 그래서 우연히 성공하는 작품은 절묘한 영상을 보여주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기괴하다. 이것은 시를 빚는 재주가 아직 서투르다는 이야기다. 서투른 시인에게 그 이상의 명성을 부여한다면 그것은 주변 사람들의 잘못이거나 작전이다.   수수께끼를 만들어서 숙제를 줄 것이 아니라면 마음속에서 생활 속으로 나오는 길을 좀 더 닦아야 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시 전체의 밑그림까지 바꾸는 그 간결한 방법 중에 하나는 한자표기도 섞여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산책 나온 독자들에게 허들경기를 시킬 필요가 없다.★★☆☆☆[4336. 10. 22.]   43□빵냄새를 풍기는 거울□박형준, 창비시선 160, 창작과비평사, 1997   이미지를 조합하는 수완이 아주 탁월하다. 오랜만에 보는 재주꾼의 시이다. 그런데 그 이미지들은 시와 시집 안에서 독특한 상징을 띠고 있다. 그래서 의미 소통의 방법으로 이미지를 보아온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설다. 그리고 해독할 수 없다. 그것은 그의 추억을 구성하는 독특한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기호가 되려면 그의 과거와 체험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밝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현란한 이미지들의 조합은 끝내 독자들에게 의미를 전달해주지 못한다. 그런데 시인의 과거는 전혀 독자들 앞에 밝혀진 바가 없다. 그래서 독자는 시에 제공된 이미지들을 통해서 시인의 과거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재구성한 그의 과거는 여전히 시인만의 독특한 과거사실로만 남아있다. 그것이 독자의 체험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울림을 갖지 못한다. 말하자면 닫힌 시이다. 시가 닫힌 것은 그의 체험이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동떨어지게 만든 어떤 원인이라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이미지들은 아름답게 빛난다.   심리학이 문학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장비라면 바로 이런 곳에서 유효적절하게 쓰일 것이다. 화법도 독특하고 이미지도 독특하다. 그 조합법 역시 독특하다. 독특함은 시인의 생명이다. 그런 점에서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시인이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의 자리에 머물러 즐긴다면 그 시는 울림을 갖지 못한다. 울림을 갖지 못하는 시는 발표하지 않은 시와 같다.★★★☆☆[4336. 10. 23.]   44□야간산행□이성부, 창비시선 147, 창작과비평사, 1996   이 시인은 언어의 간결성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느낌을 허풍선이 표현으로 과장하려 하지 않고, 평범한 말로 그려서 간결한 맛을 독자에게 주는 방법을 안다. 그만큼 농익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바위 연작으로 거의 꾸며진 이 시집의 내용물은 그 간결성의 맛을 못 따라간다. 어떤 사물에 너무 빠져들면 자신이 정작 해야 할 말을 잊는다. 자신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독자에게 전해지는 내용은 다소 황당한 내용들이다. 자신의 체험이 너무 확고하여 독자들도 수긍을 해주리라고 전제를 하고 도사처럼 말을 뱉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는 냉정하다. 아무리 자신의 깨달음이 절실해도 그 깨달음이 인류가 도달한 절정의 그것이 아니면 수다스러움으로 듣는다. 산이 주는 깨달음은 언제나 울림이 클 수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산이라는 이미지가 갖는 보편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자신만의 특수한 체험에 갇혀있기 때문에 산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세월 속에 늙어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만이 담길 뿐이다. 산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시집이다.★★☆☆☆[4336. 10. 23.]   45□날랜 사랑□고재종, 창비시선 134, 창작과비평사, 1995   시골의 현실이 시골 생활이라는 관념성에 가려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묘사가 풍경으로 많이 치우쳐있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농촌 현실의 준엄함보다는 몰락해가는 농촌의 현상에 머물러 있어서 그러한 현실의 모순을 절절하게 느끼기 어렵다. 어려운 주문이기는 하지만 농촌 문제가 시에서 제대로 다루어지려면 현재 농민들이 하는 고민과 그 고민이 어떻게 좌절하는가 하는 것을 노래해야 한다.   그런데 시인 자신이 농촌에 있을 뿐, 묘사된 농촌의 모습은 개개인의 삶에 머물러있다. 농촌을 묘사하는 데 그쳐서는 시가 되지 않는다. 농촌 사람들 사연만 담아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좌절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그 원인을 노래해야 한다.★★☆☆☆[4336. 10. 23.]   46□인간의 시간□백무산, 창비시선 152, 창작과비평사, 1996   시를 쓸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냉정을 유지할 수 없는데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때이다. 냉정을 잃으면 시는 감정을 남발하게 된다. 그러면 시는 선언문에 가까워진다. 그것을 알면서도 냉정한 이성의 편을 들 수 없는 경우가 없지 않다. 현장의 뜨거운 상황을 도외시할 수 없을 때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될수록 정신을 단련시켜서 터져 나오는 말을 빛나게 하는 일이다. 이 시집에서는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때로 위험한 곡예를 하기도 하고, 시의 바깥으로 뻗쳐나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어떤 본능이 담금질한 정신을 붙들고서 말을 아끼려고 하는 바람에 그나마 선언문까지 나아가지 않았으니,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시인의 탓이 아니라 시대의 탓이다.★★★☆☆[4336. 10. 23.]   47□당신은 누구십니까□도종환, 창비시선 111, 창작과비평사, 1993   자신이 어렵게 찾아낸 화두를 가지고 설명을 하려 들기도 하고 설득을 하려 들기도 한다. 그래서 찾아낸 이미지보다 많은 말을 하게 된다. 말들을 남발하는 것이 흠이다. 느낀 그 만큼 생각한 그만큼, 꾸미지 않고 그대로 보여줄 때 뭉클한 감동이 온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말을 많이 하면 도덕군자가 된다. 듣는 쪽에서는 잔소리로 들린다는 뜻이다. 시가 빛나는 것은 말을 많이 할 때가 아니라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버리는 절약을 할 때이다. 이 평범한 진리로 한 번 되돌아가야 할 때이다.★★☆☆☆[4336. 10. 23.]   48□최대의 풍경□심호택, 창비시선 135, 창작과비평사, 1995   시가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 나온 시집이다. 무언가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은 개인의 노래에 그치고 있고, 그것을 따라 부를 사람이 없다. 그래도 시라면 시라고 하겠지만, 그 시가 담고 있는 세계는 지극히 사사로운 체험과 세계여서 남에게 보여주잘 것도 없는 것이다.★☆☆☆☆[4336. 10. 23.]   49□풀꽃은 꺾이지 않는다□조태일, 창비시선 131, 창작과비평사, 1995   시가 긴장을 잃고 말로 전락했다. 무언가 한 바퀴만 더 구르면 시가 될 듯한데, 그 마지막 재주를 부리지 않거나 못 부리거나 하고 있다. 감동이나 느낌을 적는 방법은 꼭 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로 쓰려면 시가 지닌 긴장이나 상징 수법을 지켜줘야 하는데, 거기에도 못 미치고 있다. 시어는 다른 의미를 함축하거나 정서를 안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이미지들이 너무나 많다. 이래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4336. 10. 23.]   50□유사를 바라보며□민영, 창비시선 153, 창작과비평사, 1996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자신의 신변잡기를 꼼꼼하게 기록한 시집이다. 그러나 옛날 방식대로 영탄조 일색이어서 무언가 새로운 사상이나 새로운 형상법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것도 줄 수 없다. 다만 나름대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여기저기 엿보여서 그나마 시집의 꼴을 만들고 있다.★☆☆☆☆[4336. 10. 23.]    
18    시집 1000권 읽기 4 댓글:  조회:2203  추천:0  2015-02-09
  31□기차에 대하여□김정환, 창비시선 84, 창작과비평사, 1990   강의록이 그대로 시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이론에 무지한 노동자들을 앞에 놓고 강연을 한 발췌록에 가깝다. 강연은 뜨겁다. 군중들을 감동시킨다. 그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에게 필요한 논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강연에 참가한 사람들의 마음이 새로운 정보와 정열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발췌록을 그대로 시집으로 엮어놓으면 그 날 강의를 들었던 사람조차도 의아해할 것이다. 이미 자기화한 정보는 그 정보를 전해줄 당시의 정서를 떠났기 때문이다. 독자들 중에는 그 강의가 꼭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차마 볼 수 없는 장면이 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한자표기이다. 한자가 봉건성의 한 지표가 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과 그 발췌록들이 지향하는 방향과 일치한다고 믿는 것일까? 가당찮은 일이다.★☆☆☆☆[4336. 10. 21.]   32□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신석정, 창비시선 86, 창작과비평사, 1990   자연을 소재로 할 때 어려운 것은 시어 선택의 간결성이다. 자연은 본래 그 모습이기 때문에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취하는 기준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시집 속에 등장하는 자연물은 아주 적절하게 잘 선택되어 선택하는 자의 빛나는 감각을 잘 드러낸다. 자연을 선택하면서도 자신의 관념을 전해주기 위한 도구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 그 자체의 시각이 깔끔하게 시로 치장되도록 해준다. 자연이 인간의 맑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 노릇을 톡톡히 한다. 자연물이 그런 기능을 하도록 시인이 시어를 잘 선택해서 배치한 경우에 해당한다. 세속 도시에 파묻힌 정서로는 감히 하기 힘든 일이다.★★★☆☆[4336. 10. 21.]   33□지리산 갈대꽃□오봉옥, 창비시선 69, 창작과비평사, 1988   이 시집은 독백체로 되어있다. 굉장히 많은 말들을 하지만 그것이 서사성을 띤 줄거리 이야기가 아니라 독백체의 넋두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산문성이 지닌 시답지 않은 요소를 없애고 있다. 할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산문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시의 탄력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야기의 방식을 아주 잘 잡은 셈이다.   그리고 전라도 사투리의 억양이 시의 흐름을 아주 매끄럽게 잘 유도하고 있어서 사투리가 아주 잘 살아있는 특이한 시세계를 이루고 있다. 다만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새로운 인식이 다소 소홀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거대한 사상을 잘 형상화시키려면 그 사상을 담는 세세한 표정까지도 놓쳐서는 안 된다.★★★☆☆[4336. 10. 21.]   34□참된 시작□박노해, 창비시선 112, 창작과비평사, 1993   시가 균형 잡힌 모습으로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은 감정이 교묘하게 절제될 때이다. 절제란 현실의 격한 감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 냉정함이 시의 깊이를 깊게 한다. 그 거리가 좁아질수록 격한 감정은 시라고 하는 형식의 절제를 받지 못하고 원액 그대로 솟구친다. 원액은 톡 쏘는 맛이 있을지 몰라도 자칫하면 몸에 해를 끼친다. 사람이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순간이 없을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시에서 그렇게 한 것을 칭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뜨거운 감정을 그나마 통제하려고 형식을 간직하려 애쓴 것은 박노해만의 능력이자 본능일 것이다. 타고난 시인이 시대의 격랑 때문에 제 노릇을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4336. 10. 21.]   35□몸에 피는 꽃□이재무, 창비시선 144, 창작과비평사, 1996   삶의 성찰이 돋보이는 시다. 무엇을 일부러 말하려 하지 않고, 이미지가 찾아올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는 힘도 대단하다. 한 번 잡힌 이미지를 놓치지 않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고픈 말을 싣는다. 다만 대상에 얽매어 좀 더 큰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흠이지만, 그것은 시간이 가면 해결될 일로 본다. 한 관점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노력이 돋보이고, 그런 노력이 깔끔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나타나니, 아주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한국에도 시인 대접받을 사람이 없지 않다.★★★☆☆[4336. 10. 21.]   36□별빛 속에서 잠자다□김진경, 창비시선 143, 창작과비평사, 1996   많은 줄거리를 간직한 이야기가 시로 성공하려면 거기에는 특별한 방법과 장치가 있어야 한다. 많은 시인들이 할 말은 가슴 가득 갖고 있되, 그 장치를 찾지도 못한 채 세상에 나와서 갖은 욕을 보는 것이 오늘 한국문단의 현실인데, 이 시집은 그런 능력 없는 사람들에게 한 전범을 보여줄 만한 방법을 구사한다.   “지상에 내리는 눈”과 “청동시대”라는 시를 보면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가 어떻게 시로 승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할말을 생략할 줄도 알고 드러낼 줄도 알며, 그런 감춤과 드러냄을 통해서 거대한 줄거리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완성한다. 독자의 상상력이라는 영사막에 낱말이라는 영상 몇 개를 던져줌으로써 이야기 전체가 꾸며지도록 하는 묘한 방법을 쓰고 있는데, 그것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게다가 상징도 아주 잘 되었고, 사물에서 발견해내는 인식의 수준도 놀라울 정도로 높고 깊다. 시가 요구하는 형상성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시인이다. 할 말과 표현이 아주 잘 어울려서 읽는 자로 하여금 같이 출렁이게 한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좋은 시들이다. 시집 전체가 어떤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고, 그 이야기에 알맞은 형식이 시집 전체를 얽고 있다. 형상성에 대해 조금만 더 고민한다면 머지 않아 우리는 네루다 못지 않은 시인을 만날 것이다.★★★★☆[4336. 10. 22.]   37□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김경미, 창비시선 104, 창작과비평사, 1995   무엇을 쓰면 시의 재료가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쓴 시이다. 시가 될 것 같지도 않은 감정을 글로 옮기기 위하여 사용된 수사가 아까울 따름이다. 바둑에서 사활을 배우다가 대국을 두게 되었을 때의 그 황망함 같은 것이 가득 차있다. 대국은 바둑판 전체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부분부분에서 두 집 내고 사는 재주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들은 사활에도 미숙할뿐더러 전체 대국도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시가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4336. 10. 22.]   38□복숭아뼈에 대한 회상□정종목, 창비시선 139, 창작과비평사, 1995   습작기 수준의 시들이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 고민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들이다. 정작 해야 할 이야기들이 이미지 뒷편에 숨어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를 않는다. 시어를 통해서 정서를 전달하는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묘사가 그저 묘사로 그쳐서는 시가 되지 않는다.★☆☆☆☆[4336. 10. 22.]   39□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박남준, 창비시선 38, 창작과비평사, 1995   시대가 험할수록 순수한 마음을 갖고 살기 힘든다. 그래서 순수한 서정시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서정시는 바깥 풍경이 아니라 마음속의 풍경을 그리기 때문에 그런 심리를 겪지 않은 사람에게는 애매모호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순수한 서정시야말로 그 세계를 알아보는 사람끼리만 서로 주고받으며 감동하게 된다.   이 시집 전체가 그런 특수한 서정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좀처럼 밖으로 나오려 들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아무 것도 아닌 곳에 매달려서 눈물 질질 짜고 슬퍼한다. 그러니 관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미치광이를 볼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것이 궁상맞아 보이지 않는다면 시를 잘 쓴 때문이다. 이 순수 서정시를 시집 한 권 분량으로 담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저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가 험하지 않다면 이런 시들도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이나, 그런 시대가 온다면 시도 종말을 맞을 것이다.★★☆☆☆[4336. 10. 22.]   40□철마의 꿈□이탄, 영언시선 40, 영언문화사, 1990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주조를 이루면서 거기에다가 분단이라는 소재를 함께 다루고 있는 시집이다. 서정성이 잘 살아있고 현실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맥을 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시인이다. 그러나 단순하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 것은 그런 큰 소재를 다루는 시의 방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것과 이런 방식으로는 그런 류의 서정성이 갖는 회고 취미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4337. 12. 21.]    
17    시집 1000권 읽기 3 댓글:  조회:2186  추천:0  2015-02-09
  21□쓰러진 자의 꿈□신경림, 창비시선 115, 창작과비평사, 1993   이 시인은 시의 상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단순한 풍경 묘사 같지만, 그것이 묘사로 끝나지 않고 사람의 정서를 나타내는 배경으로 작용하다. 이 점 아주 뛰어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을 향해서 말을 아껴야 한다. 나이든 사람이 말을 하면 잔소리로 들리고, 그것이 심하면 주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는 나이 먹어갈수록 말을 줄이고 이미지를 써야 한다. 특히 상징이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시가 정갈하고 깔끔하면서도 할 말 다 할 줄 아는 것이 상징 수법이다.   신경림은 그런 비결을 누구보다도 잘 깨닫고 있는 시인이다. 다만 나이 든 자의 쓸쓸한 내면 묘사에 그칠 경우 초라해 보이는 것이 탈인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그것은 남들이 우러러 쫓아갈 만한 좀 더 큰 세계를 갖추지 못한 자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저 나이 들어가는 시인일 뿐이다. 한국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시인이 시에다가 한자를 남발한다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시에서만은 한자표기를 허용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야 시다워지는 것일까? 납득하기 어려운 묘한 관행이 창작과비평사 기획실의 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4336. 10. 20.]   22□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김준태, 창비시선 123, 창작과비평사, 1994   시가 초점이 두 갈래로 갈렸다. 일상의 새로운 모습을 노래한 시들은 잠시 반짝하다가 시들해지고, 이념의 투쟁을 선동하려던 시들은 흐르는 세월 앞에 시들해졌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시인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다. 새로운 시대는 오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여 생각나는 대로 넝마주이를 한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식과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중간중간의 한자는 이미 흘러간 세월을 바라보며 아직 벗어 던지지 못한 낡은 옷 같다.★★☆☆☆[4336. 10. 20.]   23□그래 우리가 만난다면□윤재철, 창비시선 102, 창작과비평사, 1992   똥차가 지나가면 똥 냄새가 나고, 미인이 지나가면 향이 코를 스친다. 어떤 시인이 지나갔다. 그러자 그 뒤에 무언가 냄새가 났다. 시인은 분노로 들끓는다. 온몸이 달아올랐다. 아마도 그 열기이리라. 그 열기를 느끼는 사람은 잠시 시의 형식을 따질 것인가 말 것인가 혼란스러워한다. 그 열기는 시 이전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이 가득 찼다. 그러나 그것이 세월을 넘어 감동으로 연결되려면 그런 열기를 담을 어떤 난로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알불을 그대로 두면 쬐는 사람이 손을 데는 수가 있다.★★☆☆☆[4336. 10. 20.]   24□모닥불□안도현, 창비시선 74, 창작과비평사, 1989   할 말이 많으면 절제하기 쉽지 않고, 절제력을 잃으면 이야기를 하게 되며, 이야기를 하면 시는 줄거리를 갖는다. 그렇게 되면 시어들이 줄거리에 예속되어 빛을 잃는다. 줄거리를 갖는 시가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속성 때문이다. 이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들이 줄거리를 갖고 있어서 그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 동원된 훌륭한 표현들이 제 몫을 못 한다.   안도현의 반짝이는 표현이 살아있는 것은 ‘모닥불’ 같이 줄거리를 갖지 않는 시들이다. 그런데 이 시집의 대부분은 줄거리를 갖고 있다. 특히 학교 생활을 다룬 시들은 줄거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학교 생활이란 아이들과 맺는 관계가 주를 이루고 그런 관계를 표현하려면 줄거리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과도한 욕구불만이 말을 만들었고, 그 말이 표현을 갉았다. 표현이 일정한 높이에서 안정되게 자리를 잡았는데도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것은 마지막 순간에 지켜야 할 이 절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시 한편 한편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은 시의 전부일 수도 있다. 이런 것이 시인의 능력부족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일부분은 시대에 있으리니.★★☆☆☆[4336. 10. 20.]   25□차씨 별장길에 두고 온 가을□박경석, 창비시선 106, 창작과비평사, 1992   습작기 수준의 안타까운 시집이다. 무언가 얘기는 잔뜩 늘어놓고 있는데, 깊이가 전혀 없고 역사에 대한 인식도 수박 겉핥기 식이다. 게다가 시 쓰는 방법도 멀미나게 단순하여 어렵게 돌려 얘기하는 것을 함축성으로 오해하고 있다. 쉬운 것을 어렵게 얘기하는 것은 시가 아니라 말장난이다. 시인 자신은 아주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시들이 말장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어떤 것을 노래해야 시가 되는가 하는 것부터 스스로 되물어야 될 일이다. 한자는 벗어나진 못한 습작기의 버릇처럼 곳곳에 남아있다.★☆☆☆☆[4336. 10. 21.]   26□썩지 않는 슬픔□김영석, 창비시선 108, 창작과비평사, 1992   평범한 사물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안목이야말로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의 능력인데, 이 시집에는 그런 안목이 곳곳에서 번득인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토해놓지 않고 적당히 꾸민 옷을 입혀서 내놓을 줄도 안다. 그러나 지식인의 관념성과, 풀리지 않은 것들을 설명으로 대신하려는 것은 스스로 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지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념성만 조금 더 벗는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겠다.★★☆☆☆[4336. 10. 21.]   27□우리는 읍으로 간다□이상국, 창비시선 103, 창작과비평사, 1992   차분한 시각으로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한 노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농촌과 분단 이주민을 중심으로 소재를 묶은 것도 아주 괜찮은 발상이다. 그러나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이미지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 하는 것이 흠이다. 줄거리를 갖고 있어서 그 서사성 때문에 표현의 참신함이 많이 죽는다. 몇 글자 섞여있는 한자 역시 표현을 갉아먹는다.★★☆☆☆[4336. 10. 21.]   28□하늘밥도둑□심호택, 창비시선 109, 창작과비평사, 1992   한 개인의 잊을 뻔한 추억을 오롯이 되살려 놓았다는 점을 뺀다면, 시라고 할 것도 없는 시집이다. 어른이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어서 동시의 형식을 갖춘 것도 아니다. 잊기 아쉬운 옛 추억을 담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를 그대로 노래하거나 그 과거가 환기하는 어떤 의도나 의미가 시에 담겨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과거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울림이 없다. 시에 드러나는 것은 어떤 상징이 아니라 그저 그 당시의 사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자는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다.★★☆☆☆[4336. 10. 21.]   29□희망의 나이□김정환, 창비시선 107, 창작과비평사, 1992   습작기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시다. 시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이다. 시에서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담금질이다. 그것이 비유가 됐든, 아니면 말이 됐든, 그것이 시라는 옷을 입고 나타날 때는 여러 번  두들겨서 뽑은 단단한 결정체가 되어야 하는데, 이 시집 속에서는 시도 아닌 말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다. 한 사물 또는 한 현상에서 연상되는 나의 생각을 무작위로 늘어놓고는 시라고 행가름을 한 것이다. 당연히 모든 말들이 넋두리이다.   그런 넋두리까지도 시라고 우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똥 싸고 방귀 뀌는 것까지도 시라고 해도 된다. 시에는 시라고 할 어떤 범주가 있는 법이다. 그 범주의 테두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이 중학교 때 배운 형식에다가 자기 생각을 어거지로 펼쳐놓은 것이 이 시집이다. 그러니 그런 것들이 시가 될 턱이 없다. 세계문학사에서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형식을 창안했거나 시 창작 요령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4336. 10. 21.]   30□내일의 노래□고은, 창비시선 101, 창작과비평사, 1992   과잉된 감정이 통제 받지 않고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으되 새로운 형식을 아직 찾지 못 했는데, 누군가 말을 시켜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떠들게 된 그런 경우라고나 할까? 침묵수행을 마쳤는데, 어쩐 까닭인지 언행이 깊어지지를 않고 수다쟁이로 변한 중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시집의 시들은 그렇게 어수선하다. 침묵수행 동안 그가 깨달았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깨달았다고 해도 세상을 향해 말을 할 때는 법도가 있어야 한다. 옷이 거추장스러운 물건임을 깨달았다고 해서 벌거숭이로 나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깨달았다고 제 멋대로 지껄이면 그건 말도 아니고 진언도 아니다. 이따금 보이는 반짝이는 시들이 그의 깨달음이 가짜만은 아님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시의 장황스러움과 수다스러움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게다가 거추장스러운 한자까지 뒤섞여서 이 장광설을 더욱 뒤틀어지게 하고 있다. 의미는 의미고 시는 시다. 깨달음이 그대로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4336. 10. 21.]    
16    시집 1000권 읽기 2 댓글:  조회:2056  추천:0  2015-02-09
11□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이영진, 창비시선 129, 창작과비평사, 1995   언어의 경제성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시집이다. 자신이 나타내기 위한 정서보다 훨씬 더 많은 낱말들을 동원하고 문장을 동원하고 있다. 시가 길고 장황하다. 그래서 읽는 속도가 늦어지고, 그다지 분명하지 않은 메시지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많이 든다. 여기다가 이따금씩 등장하는 한자표기는 시간을 더 지체시킨다. 현실에 대한 인식도 너무 아득하다. 머릿속에만 들어있는 생각이어서 관념성을 벗기 힘들다. 그러한 관념성을 자신의 체험에서 찾아내는 훈련이 더 필요하고 말을 좀 더 아끼는 버릇이 필요하다.★★☆☆☆[4336. 10. 18]   12□봄의 설법□이동순, 창비시선 133, 창작과비평사, 1995   선승의 깨달음이 법어가 되려면 인류 최고의 절정에 올라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들 말장난 같이 들린다. 그런 점에서 깨달음을 전하는 시를 쓰려면 그 깨달음의 내용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고 복종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집 앞부분의 내용들은 모두 소품이다. 그런데 그런 소품들이 고승대덕의 입에서 나온다. 격이 안 맞는다는 얘기다. 그런 깨달음이 자신에게는 진실한 것이면서도 어설프게 들리는 것은 모든 깨달음의 언어가 대중 속으로 나올 때 갖는 울림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울림만 가지고는 독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뒷부분의 동네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정서 역시 이러한 어법으로 나오기 때문에 어색하다. 묘사와 서술을 통해서 시를 쓰려고 하면 그 대상에 대해서 자신이 완전한 일체감을 이루어야 한다. 즉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그들이 된 상태에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감정이 잘 전달된다. 그러나 이 시집 속에 들어있는 나는 카메라와 같아서 단순히 풍경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 풍경이 나의 내면 풍경으로 승화되려면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시집의 편찬 의도를 시가 따라가지 못한 경우다. 이것은 시인이 너무 의도된 시만을 쓴다는 얘기다. 시인의 의도는 하늘 높은 곳에서 구름처럼 떠있어야 한다. 그 구름이 가렸다 말았다 하는 햇빛을 받으며 현실의 땅에 뿌리박은 시들은 자란다. 그 구름이 너무 땅에 바짝 붙어있으면 시들이 시들시들하다.★★☆☆☆[4336. 10. 18]   13□벽 속의 편지□강은교, 창비시선 105, 창작과비평사, 1992   감정 과잉과 선언식 자기 판결이 이 시집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판결은 남의 시선을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을 압도하면서 복종을 강요한다. 이 시집의 시들이 대부분 그렇다. 특정한 사실에 자신의 감정과잉을 싣고 그것을 남들이야 듣든 말든 선언하고 판결해버린다.   체험의 특수성은 이따금 ‘그의 초상’ 같은 빼어난 작품을 낳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것이 정답이라고 선언해버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동감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투다. 이것은 자기 인식의 특수성에 매달려서 개인의 특수한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시라고 착각하는 데서 온다. 그것이 잘 되면 아주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루는 한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보편성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뜽금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시집은 그러한 경계선에서 바깥쪽으로 쏠려있다. 그런 상황에서 골리앗 크레인, 노동 어쩌구 하는 제3부의 시들은 차라리 코미디라 할 만하다.★★☆☆☆[4336. 10. 18]   14□화개□김지하, 실천문학의 시집 141, 실천문학사, 2002   시집 제목에 한자가 섞여 있으면 한 동안 당황스럽다. 굳이 한자로 적은 사람은 나름대로 그 의도가 있을 것인데 그런 의도가 한글 전용을 고집하는 나의 의도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한자 표기는 별로 존중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웬만하면 나는 무시하고 한글로 적는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에 따라 수준이 많이 차이 난다. 그래서 쪽수대로 읽어가다 보면 울퉁불퉁한 도로를 덜컹거리며 운전하는 느낌이다. 속도를 내면 낼수록 이건 더 심해진다. 그래서 혹시 차 밑바닥이 긁히지나 않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천천히 읽게 된다. 이런 거칢은 시인이 시의 완성도에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아니면 그럴 여유가 없이 시집을 묶게 된 까닭일진대 그건 뿌리치기 어려운 현실의 유혹이다. 그러나 그런 유혹을 통제할 수 없으면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이런 점은 시의 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고민과 삶의 애잔함을 나이 먹은 자의 시각으로 나직하게 이야기하다가는 느닷없이 주장자로 맨바닥을 땅! 치며 우주 밖까지 뛰쳐나가는 상상력은 중간중간에 섞인 한자들만큼이나 읽기 불편하게 한다. 이것은 ‘늬들이 시를 알어?’ 하고는 독자들을 약간 내려다보는 오만한 위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 만큼 이루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포기하는 달관의 삶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런 오만은 그 만큼 조급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시집 한 권 속에 들어있는 시들의 키가 제 각각이라는 것은 아무리 합리화해도 성실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된다. 이발을 안 하고 사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을 보기 안 좋다고 하는 사회를 나무라는 것은 자신에 대해 결코 정직한 행위가 아니다. 독자들 중에는 바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4336. 10. 19]   15□섬진강□김용택, 창비시선 46, 창작과비평사, 1985   이 시들의 가장 큰 장점은 가락이 아주 잘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남도의 냄새가 물씬 나는 가락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느슨하고 장황한 줄거리를 갖고 있어도 읽는 사람이 그것을 참고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락이 농촌의 정서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미 도시의 정서에 묻혀버린 사람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곳에서 그 정서는 가락을 타면서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재주는 부족하지만 가슴속에 쌓여있는 분노와 열정이 시의 형식을 압도하면서 화산처럼 분출하여 뜻밖의 생기를 시에 불어넣고 있다. 말하자면 형식이 흘려 넘쳐버린 내용을 따라서 만들어진 경우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자신이 딛고 서있는 땅에서 올라오는 진솔한 정서를 떠나면 시는 공허한 느낌을 수반하게 된다.   “섬진강” 연작은 기교가 부족한 점을 이 같은 열정으로 극복했는데, 그 나머지 부분의 많은 시에서 실패를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주제로 나가는 순간 시에는 공허함이 밀려든다. 형식에 사상을 담은 것이 아니라 내용에 밀려 형식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 늘 경계하지 않으면 이 시집에서 이루어놓은 공을 아주 쉽게 까먹게 된다.★★★☆☆[4336. 10. 19]   16□바닷가 사람들□강세환, 창비시선 124, 창작과비평사, 1994   이 시집의 시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애환을 다룬 시인데, 시가 그들의 현실에 바짝 밀착해있질 못하고 기름처럼 둥둥 떠있다. 이것은 시인이 그들의 삶 어느 곳에 자신의 시각이 위치해야 할지를 터득하지 못한 것에서 온다. 그들의 삶을 묘사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맺어진 내 삶을, 내 생활의 느낌과 정서를 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 되고 있어서 느낌이 자꾸 겉도는 것이다. 소재는 참 잘 잡았다. 그렇지만 그 소재를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시의 묘사는 소설의 묘사와 달라서 시의 묘사에는 정서가 담겨야 한다. 그냥 카메라 비추듯이 해 갖고는 아무 것도 안 된다.   시가 대체로 어둡다. 어두운 것은 전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눈에 보이는 그들의 삶이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그들은 산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 절망의 순간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좀더 깊이 찾아서 그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 그것을 노래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지금까지 보여준 그런 오류와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시는 시체를 묘사해도 맥박이 뛰어야 한다.★★☆☆☆[4336. 10. 20.]   17□너는 꽃이다□이도윤, 창비시선 113, 창작과비평사, 1993   무엇보다도 사물을 보는 시각이 나름대로 잡혀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시인의 첫 조건이라면 이 시집의 주인공은 그런 자질을 이미 갖추었다. 그런 시인이 실수를 할 때는 감정을 절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괴성처럼 시를 내지르는 것이다. 이 시집의 4할 가량을 차지하는 그런 시들이 단점으로 작용하지만, 그래도 무작정 고함치는 것은 아니라서, 그 정도라면 시대 탓으로 돌려도 무방할 것이다. 감정을 절제할 수 없을 때 절제 할 줄 아는 것이 대가의 능력이다.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것은 어차피 시간이 걸릴 일이다.★★★☆☆[4336. 10. 20.]   18□아이들의 풀잎노래□양정자, 창비시선 114, 창작과비평사, 1993   시집을 읽고 나서도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그런 시집들이 있다. 이 시집이 그런 경우이다. 소품들로 가득 차서 그 소품 가지고는 뭘 만들어내기 어려운 시들. 혼자서 읽어보고 빙그레 웃으면 되는 그런 시집. 이건 잘 쓰고 못 쓰고 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시집을 창작과비평사에서 창비시선으로 냈다는 것이 놀랍다. 창비시선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건 것이 더 큰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의미 없음을 추구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일지 모르니까.★☆☆☆☆[4336. 10. 20.]   19□작은 새□김경희, 창비시선 118, 창작과비평사, 1994   우아함, 고결함, 아름다움 같은 것이 아니라면 시로 다룰 필요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따금 있어서 똥 싸고 토하며 거칠게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시들이 있다. 이 시집도 대개 이 영역에 속한다. 재주 있는 것이 오히려 화근이어서 재주를 부리면 부릴수록 더욱 경망스러워진다. 말을 아껴야 한다는 믿음이 문장을 잘라먹는 것으로 나타나고, 시는 아무나 알아보지 못하도록 적당히 어려워야 한다는 믿음이 상상의 고리를 끊어버린다. 현실의 진흙탕 속에서 진주를 캐던 창비시선이 갑자기 향기로운 촛불이 켜진 여신의 신전에 올라앉았으니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꼬?   시에서 한자가 가장 잘못 쓰이는 것은 한자의 형상성을 이용해서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경우이다. 그것은 소리글자인 우리말의 표기 원리를 정통으로 부인하는 아주 고약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소리글자는 소리 이미지를 통해서 그림을 전달한다. 이 시집의 곳곳에 쓰인 한자는 죄질이 가장 나쁘게 쓰였다.★☆☆☆☆[4336. 10. 20.]   20□말똥 굴러가는 날□이재금, 창비시선 119, 창작과비평사, 1994   언어를 잘 갈무리하여 시를 만드는 것보다 때로 더 중요한 것이, 과연 이 잡다한 삶의 체험 속에서 어떤 것을 시의 광장으로 끌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이 시집에는 그러한 고민이 별로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일상의 삶에 나름대로 충실한 묘사를 해보지만 그것이 울림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일상이 울림을 가지려면 남들의 성찰을 일깨우는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 이 시집에는 그것이 별로 없다. 시가 담아야 할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 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4336. 10. 20.]    
15    시집 1000권 읽기 1 댓글:  조회:2510  추천:0  2015-02-09
[한국 현대시의 지형도] 시집 1,000권 읽기 1|시집1000권읽기 @@1    1□김포행 막차□박철, 창비시선 85, 창작과비평사, 1990   할 말들이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하고 쏟아져 나왔다. 격한 감정들이 절제되지 못한 상태여서 시가 줄거리를 갖게 되었다. 줄거리를 가지면 설명을 하려 든다. 아직 시라는 갈래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시들이다.   ‘김포6’의 경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라는 제목으로 김포의 개울과 다리를 있는 그대로 묘사에 충실하면 현재의 김포와 그 주변의 풍경이 자신의 추억과 적당히 짜깁기되어 서구지향의 문명이 이 땅에 어설프게 적용되면서 빚어진 문명충돌의 메시지까지도 담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전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자신의 고민만을 털어놓는 수준에 머물렀다.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더 벗어야 할 껍질이 있다는 뜻이다.★☆☆☆☆[4336. 10. 17]   2□가을의 시(詩)□김광렬, 창비시선98, 창작과비평사, 1991   다루고자 하는 대상이 너무 커서 감당을 못하고 있다. 자신의 체험은 조그만데 그 조그만 것에다가 거대한 것을 담으려고 하니, 트더진 푸대처럼 내용물들이 밖으로 비져 나온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것이어서 변변치 못한 시에 대한 면죄부의 작용을 하면서 대신에 진부하다는 느낌을 준다.   두 번째 묶음으로 분류된 제주에 관한 시들이 그 중 나은데, 자신이 몸담은 곳이어서 그럴까? 제주도의 맛이 잘 나지를 않는다. 제주도의 특징과 정서를 실었다면 좋았을 텐데, 전혀 그런 쪽으로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흠이다. 제주도 방언의 리듬이나 설화세계를 변주하면 아주 좋은 시들이 나올 법도 한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애써 찾은 소재에 주제를 역사 쪽으로 자꾸 몰고 가려는 버릇도 시를 일정한 그릇 안에 가두어 두고 있다. 껍질을 한 꺼풀만 더 벗으면 괜찮은 시를 쓸 듯하다.   제목에 라는 한자로 표기한 것은 출판사의 의도일지 시인의 의도일지 잘 모르겠지만, 아주 눈에 거슬린다. 시인도 그렇고 출판사도 그렇고, 역사를 깊이 생각하는 자들이 한자가 지닌 봉건성과 반역사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4336. 10. 17.]   3□이슬처럼□황선하, 창비시선 67, 창작과비평사, 1988   빛나는 표현 몇 개 빼면 수필이다. 빼어난 구절 몇 개가 일기 문장을 무겁게 끌고 가는 형국이다. 표현에 군더더기가 많지 않아서 깔끔한 맛을 주지만, 산문의 그 무거운 걸음걸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한자표기까지 섞여있어서 이런 걸음을 더 무겁게 만들고 있다.   체계 잡힌 창작교육을 접하지 못한 것 같고, 순수한 열정으로 시를 다듬어서 쓰는 사람 같다. 빼어난 표현과 비유를 얻으면 그것을 시로 만들기 위해서 이야기하듯이 풀어썼기 때문에 문장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느슨하게 늘어졌다. 그래서 원래 얻은 비유의 신선함마저도 길게 늘어진 화법 때문에 느슨해졌다. 결국 문장을 다듬는 수련이 덜 무르익었다는 얘기다. 아마도 민족 통일과 사회를 염려한 앞 부분의 시들 때문에 창작과비평사에서 선택한 것 같은데, 글쎄….★★☆☆☆[4336. 10. 17.]   4□어머니의 물감 상자□강우식, 창비시선 132, 창작과비평사, 1995   전에 “고려의 눈보라”를 읽을 적에는 뭐랄까, 속이 꽉 차지는 못 했어도 우렁찬 맛이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시집은 매끈하게 잘 빼 입었지만, 경망스러워졌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1부의 기행시들은 거의 일기 수준이다. 행을 가른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간단한 수필로 썼으면 오히려 감동을 주었을 만한 내용들이 시로 요약됨으로 해서 오히려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불교와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한 시들은 더 참혹하다. 말을 해서는 아니 될 것들을 말을 하려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시와 이야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부실한 안목에 선경(禪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경망스러움까지 겹쳤다. 시의 형식을 빌고 있고, 언어는 제법 시의 긴장을 풍기지만 시라는 형식이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으려 한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자표기는 땡중의 옷자락을 더럽힌 흙자국 같다.★★☆☆☆[4336. 10. 17.]   5□우리들의 사랑가□김해화, 창비시선 94, 창작과비평사, 1991   이 시집에 담긴 정서는 활화산 같다. 뜨거운 불기둥과 시커먼 연기가 온 땅과 하늘을 뒤덮을 기세다. 용암이 마구 흘러내리며 거추장스럽고 잘 꾸민 것들을 모조리 삼켜버릴 것 같다. 가슴 밑바닥에서 들끓고 있는 마그마 같은 분노가 한 번 살 만하다. 그리고 그런 분노가 아무런 거침이 없이 여과장치 없이 시의 지평 위로 솟아올랐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다. 형식조차 삼켜버릴 그런 분노야말로 시의 첫새벽에 볼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시는 뜨거운 가슴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가 줄기차게 흘러온 강 같다면, 강물이 산으로 되올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강이라는 형식위로 넘쳐버리는 것이 위태롭다. 곳곳에서 서툰 표현이 나타나지만 그가 딛고 있는 세계관이 너무나 확고해서 시간이 가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듯하다. 민중시라는 이름을 단 시들이 대부분 형식에 서툰데 이 시집은 나름대로 꼴을 갖추고 있다. 다만 역시 앞선 분노의 감정 때문에 곳곳에서 불필요한 트집이 잡혀있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노동현장의 시를 다루려면 박노해와 백무산을 비켜갈 수 없는데, 아직은 역부족이다. 소재 면이나 수법 면에서 앞의 두 시인은 그 후배들에게 너무나 큰 벽을 만들어놓았다. 이 시집 역시 이들의 아류를 벗어나기는 힘들다.★★☆☆☆[4336. 10. 17.]   6□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비시선 90, 창작과비평사, 1990   이제 시는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시집은 보여준다. 일상 생활 속의 소품들이 장독대처럼 고만고만한 모습으로 한 그릇에 잘 담겼다. 그러니 이런 시들에서 표현을 읽고 의미를 따지고 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다. 아직 아마튜어 티를 벗지 못한 시들이 대부분이나 그것을 탓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4336. 10. 17.]   7□떠돌이의 노래□김윤배, 창비시선 82, 창작과비평사, 1990   묘사는 그것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시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그 묘사가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세계가 있어야 한다. 남사당패를 묘사해서 시로 만들려면 남사당패의 목소리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들의 목소리만 있으면 그것은 산문이지 시가 아니다. 하다 못해 산문조차도 그것이 그 배경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어떤 세계가 있는 법이다. 시는 그것을 일러 상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묘사 자체는 상관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광대의 세계를 노래하는 이 시집은 단순한 묘사를 벗어나기 힘들다. 옛날 광대패들의 이야기를 하면 그건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의 뼈아픈 과거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하는 것을 시가 보여주어야만 그것이 감동으로 연결된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다고 전달해 가지고는 시가 되지를 않는다.   형식도 내용도 현실의 감각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운율이나 묘사 모두 매우 정성을 들인 것이면서도 그것이 일정한 울림을 갖지 못하는 것은 그 탓이다. 게다가 서사시의 형식을 약간 빌고 있어서 더더욱 외계와 교감하기 어려운 구조를 띤다. ★★☆☆☆[4336. 10. 17.]   8□해뜨는 검은 땅□박영희, 창비시선 89, 창작과비평사, 1990   프레스에 손이 잘리고 탄광 갱도가 무너져서 사람이 죽었다고 적는다고 해서 그것이 시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체험을 한 사람들과 그 주변 사람들만이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을 기초로 하여 그러한 상황을 추리한다. 말하자면 조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유추된 감정은 아주 강한 관념성을 띤다.   노동시가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생생한 현장성이다. 생생한 현장성은 현장의 바로 그 장면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 장면을 묘사한 글을 읽고 그 현장을 실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을 읽는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재주가 필요한 것이다. 박노해나 백무산은 그런 재주가 제법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감정은 격하되 그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는 흠을 갖고 있다. 노동을 주제로 다룬 시가 영역을 넓혀가면서 일정한 형식 안에 갇히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감정과 감동 사이에는 아주 얇은 비닐막이 있다.★☆☆☆☆[4336. 10. 17.]   9□월동추□강세환, 창비시선 87, 창작과비평사, 1990   글을 다루는 재주는 이 정도면 손색이 없다. 그런데 모두가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남의 이야기를 해도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 있다. 이 시집의 내용들은 대부분 남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것은 역사라는 거대주제 속에서 자신이 어떤 자리에 거점을 잡고 들어앉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각은 카메라처럼 냉정한데, 거기에 담기는 풍경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미리 감동을 준비하지 않으면 와 닿지 않는 공허한 풍경이다. 좀 더 현실 속에 뿌리내린 소재에서 글감을 찾아야 이런 공허함이 극복될 것이다.★☆☆☆☆[4336. 10. 18]   10□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김남주, 창비시선 128, 창작과비평사, 1995   칼을 단단하게 벼리는 방법은 얇은 쇠판을 여러 번 겹쳐서 두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얇지만, 그 얇음이 갖는 약점인 옆심을 한층 더 보강할 수 있다. 그래서 칼 만드는 사람은 벌겋게 단 칼몸을 쇠망치로 두드려대는 것이다. 김남주의 시는 이렇게 해서 몇 차례 다져진 칼이다. 웬만한 압력에는 부러지지 않을 만큼 충분한 옆심도 있다.   이 시집의 장점은 글이 체험을 담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선승의 입에서 나오는 화두 같다. 깨달음에서 나오는 진언(眞言)이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형식에 집착하지 않아도 시는 신선하고, 형식은 그때그때 만들어진다. 경험으로 뭉쳐진 사상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형식을 만들어낸다. 우리 사회와 현실에 대한 규정이 남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그의 시가 남들 시와 다른 것은 그러한 규정과 선언의 밑바닥에 남들이 겪지 못한 그만의 체험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체험한 자와 추리한 자의 언어는 어떤 문맥 안에 놓일 때 전혀 다른 빛을 낸다. 그 감각부터가 다른 것이다. 세상이 김남주 김남주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그러나 이것이 온전한 시가 되려면 전체 시에 일관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용의 절실함으로 인해 시는 새로운 형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시인 자신은 그 형식에 대한 관심이 아직 없고,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을 쏟아내는데 급급하고 있다. 그런 완성된 형식에 대한 깨달음이 오려면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세상을 보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 시와 시인의 속성상 그것이 지금은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오래 산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4336. 10. 18]  
14    짧은 시 몇수 댓글:  조회:3982  추천:0  2015-02-08
    얼굴 하나야 손가락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 밖에   정지용 - 호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 풀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 흔들리며 피는 꽃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 까지 들여다 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까지   이윤학 - 첫사랑     그리움을 허물다 돌아 보니 더 많은 그리움만 쌓여 있군요 내가 정말 그대를 사랑 하고 있나 봅니다   윤보영 - 사랑쌓기         어쩌면 이토록 한 사람 생각으로 이 밤이 이다지 팽팽할 수 있느냐   이병률 - 몸살       꿈만 꾸지 않고 꿈대로 삻았더니 꿈이 이루워졌다   용혜원 - 꿈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유치환 - 낙엽     [출처] 캘리그라피 글귀 / 짧고 좋은시, 좋은 시, 짧은 시 모음|작성자 JJINssem  
13    세계 명시 모음 댓글:  조회:4040  추천:0  2015-02-08
     세계의 명시.         1낙엽 / 구르몽   시몬, 나뭇잎들 떨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2사월 / 엘리엇(미국-영국)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싸 감고, 마른 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3무지개 / 워즈워드 (영국)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마찬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4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 푸쉬킨(러시아)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 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실은 언제나 설운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가나 지난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5배 / 지센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 난 여기 파도 흉용한 육지를 항해한다. 내 파이프 자욱이 연기를 뿜으면 나직한 뱃고동, 남 저음 목청.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 나의 적재 단위는 ‘인생’이란 중량.     6바닷가에 / 타고르(인도)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가없는 하늘은 그림처럼 고요하고, 물결은 쉴 새 없이 넘실거립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소리치며 뜀뛰며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모래성 쌓는 아이, 조개 껍질 줍는 아이, 마른 나뭇잎으로 배를 접어 웃으면서 바다로 떠보내는 아이, 모두들 바닷가에서 재미나게 놉니다.   그들은 헤엄칠 줄도 모르고, 고기잡이 할 줄도 모릅니다. 어른들은 진주 캐고 상인들은 배 타고 오가지만,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또 던질 뿐입니다. 그들은 보물에도 욕심이 없고, 고기잡이 할 줄도 모른답니다.   바다는 깔깔대며 부숴지고, 바위는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죽음을 지닌 파도도 자장가 부르는 엄마처럼 예쁜 노래를 불러 줍니다. 바다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바위는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하늘은 폭풍 일고, 물위에 배는 엎어지며 죽음이 배 위에 있지만, 아이들은 놉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는 아이들의 큰 놀이터입니다.   7동방의 등촉 / 타고르(인도)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8가지 않은 길 /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갈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이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9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푸쉬킨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아직, 아마도 그럴겁니다, 나의 영혼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이 더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무엇으로도 당신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말없이, 희망도 없이,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질투로 괴로와하며.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토록 진실되게, 그토록 부드럽게, 다른 이들에 의해 사랑받도록 신이 당신에게 부여하신대로.       10추수하는 아가씨 / 워어워스   보게나, 저 밭에서 홀로 곡식 거두며 제 흥에 겨워 노래 부르는 저 외로운 하일랜드 아가씨를. 잠시 여기 서 있거나 조용히 지나가게나. 홀로 이삭 자르고 다발 묶으며 애잔한 노래 부르는 아가씨. 오, 들어 보게나, 깊고 깊은 골짜기에 넘쳐 흐르는 저 노랫소리.   아라비아 사막, 어떤 그늘진 쉼터에서 지친 나그네 무리에게 잘 오셨다 노래 부른 나이팅게일 새가 이보다 더 고운 노래 불렀을까? 아주 아주 멀리 헤브리디즈 섬들이 모여 있는 곳 그 바다의 적막을 깨치는 봄날 뻐꾹새 노래가 이 목소리마냥 가슴 죄게 했을까?   이 아가씨 노래에 담긴 이야기 들려 줄 이 있을까? 아마도 오래 전 먼 곳의 슬픈 이야기, 옛날 옛날의 싸움 이야기를 이 서러운 곡조가 담고 있을까? 아니면 오늘날의 사연이 깃들인 좀더 소박한 노래, 지금까지 있어 온, 앞으로도 있을 일상의 슬픔, 여윔, 괴로움에 대한 노래일까?   담긴 이야기야 어떻든 아가씨는 노래 불렀지, 끝이 없을 듯 오래 오래. 그 여자가 일하며 노래 부르며 허리 굽혀 낫을 쓰는 것을 보았지. 귀 기울였지, 꼼짝 않고 서서. 내가 언덕에 오를 때, 이미 들리지 않은 지 오래건만 그 노래 마음에 들리고 있었지.         11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푸쉬킨(러시아)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아직, 아마도 그럴겁니다, 나의 영혼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이 더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무엇으로도 당신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말없이, 희망도 없이,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질투로 괴로와하며.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토록 진실되게, 그토록 부드럽게, 다른 이들에 의해 사랑받도록 신이 당신에게 부여하신대로.         12눈 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 / 프로스트 (미국)   이게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겠다. 물론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고 내가 여기 멈춰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내 조랑말은 농가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저녁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춰서 있는 걸 이상히 여길 것이다.   무슨 착오라도 일으킨 게 아니냐는 듯 내 작은 말은 목방울을 흔들어 본다. 방울 소리 외에는 조용한 바람과 솜처럼 부드럽게 내리는 눈송이 뿐.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더 가야 한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더 가야 한다.           13뻐꾸기에 부쳐 / W.워즈워스   오, 유쾌한 새 손[客]이여! 예 듣고 지금 또 들으니 내 마음 기쁘다. 오, 뻐꾸기여! 내 너를 '새'라 부르랴, 헤매는 '소리'라 부르랴?   풀밭에 누워서 거푸 우는 네 소릴 듣는다. 멀고도 가까운 듯 이 산 저 산 옮아가는구나.   골짜기에겐 한갓 햇빛과 꽃 얘기로 들릴 테지만 너는 내게 실어다 준다. 꿈 많은 시절의 얘기를.   정말이지 잘 왔구나 봄의 귀염둥이여! 상기도 너는 내게 새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하나의 목소리요, 수수께끼   학교 시절에 귀 기울였던 바로 그 소리, 숲 속과 나무와 하늘을 몇 번이고 바라보게 했던 바로 그 울음소리.   너를 찾으려 숲 속과 풀밭을 얼마나 헤매었던가. 너는 여전히 내가 그리는 소망이요 사랑이었으나 끝내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들판에 누워 네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일라치면 황금빛 옛 시절이 돌아온다.   오, 축복받은 새여! 우리가 발 디딘 이 땅이 다시 꿈 같은 선경(仙境)처럼 보이는구나, 네게 어울리는 집인 양!           14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헤세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숲이며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나무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나의 인생이 아직 밝던 시절엔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는 안개가 내리어 보이는 사람 하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모든 것에서 사람을 떼어 놓는 그 어둠을 조금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다 할 수는 없다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인생이란 고독한 것 사람들은 서로 모르고 산다 모두가 혼자다     15채 사랑도 다 못하고서 / 라슬 감자토비치 (러시아)   너는, 꿈도 옛날 이야기도 아니다-   꿈이야 조만간 잊혀지게 마련이고,   옛날 얘기야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   너는 사랑의 빛, 그 살아 있는 양심,   아물지 않는 상처요,   아픔이자, 연민이며, 슬픔이라......   기대의 가물거림도, 대담한 소망의 열정도 아니다   열정이야 조만간 이뤄지게 마련이고,   기대는 쉬 부서지는 법!   두 가지 소망을 나는 지녔었네, 이상하긴 하겠지만;   언젠간 너를 보리라 소망했었지.   한 번 보고 나니-또 다시 보고픈 소망이 생겨났네   그렇게 나는 소망과 소망들 속에서 높이 떠올라 버렸네!     너는 노래가 아니지, 나는 노래가 잔잔하길 바라네. 내가 술을 마실 때 너의 말로도 취하지 않는 것은 네 말의 샘물이 그토록 신선하고 용솟음치는 까닭이지 그런데 너는 도대체 누군가? 나는 모른다. 답할 수없어   정의는 없고, 그리고 그 위. 자연의 법칙은 우리에게 진정 불공평해;   너를 만나지도 못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너를 채 다 사랑도 못하고서   내가 죽어야 하는지?     16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윌리암 예이츠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들이 윙윙대는 숲속에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랏빛 환한 기색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鋪道)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s 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r'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17너는 날렵하고 청순하여 / 게오르게 (독일 시)     너는 날렵하고 청순하여 불꽃같고   너는 상냥하고 밝아서 아침 같고   너는 고고한 나무의 꽃가지 같고   너는 조용히 솟는 샘물 같다,       양지바른 들판으로 나를 따르고   저녁놀 진 안개에 나를 잠기게 하며   어둠속에 내 앞을 비추어주는   너는 차가운 바람, 나는 뜨거운 입김       너는 내 소원이고 내 추억이니   숨결마다 나는 너를 호흡하며   숨을 들이 쉴- 때 마다 너를 들이마시며   나는 네게 입맞춤 한다,       너는 고고한 나무의 꽃가지   너는 조용히 솟는 깨끗한 샘물   너는 날렵하고 청순한 불꽃   너는 상냥하고 맑은 아침,         18그대는 울고 / 바이런     그대 우는 걸 나는 보았네 반짝이는 눈물방울이 그 푸른 눈에 맺히는 것을 제비꽃에 앉았다 떨어지는 맑은 이슬방울처럼 그대 방긋이 웃는 걸 나는 보았네 푸른 구슬의 반짝임도 그대 곁에선 빛을 읽고 말 것을 그대의 반짝이는 눈동자 그 속에 담긴 생생한 빛 따를 바 없어라   구름이 저 먼 태양으로부터 깊고 풍요로운 노을을 받을 때 다가오는 저녁 그림자 그 아름다운 빛을 하늘에서 씻어 낼 수 없듯이 그대의 미소는 우울한 이내 마음에 맑고 깨끗한 기쁨을 주고 그 태양 같은 빛은 타오르는 불꽃같이 내 가슴 속에 찬연히 빛나네       19세상은 우리에게 너무하다 / 윌리엄 워즈워스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하다. 밤낮으로 우리는 벌고 쓰는 데 우리의 힘을 탕진해 버린다. 우리 것인 자연에서 보는 것이 거의 없다. 모두가 마음마저 내버렸으니, 천박한 편익이다! 달빛에 젖가슴을 드러내는 바다 쉴 새 없이 울부짖으려 하지만 지금은 잠든 꽃처럼 움츠러든 바람 이들과 모든 것에 조화를 잃어버린 우리 무엇에도 감동받지 못하니, 신이시여! 차라리 낡은 신앙으로 길러진 이교도이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 즐거운 초원에 서서 제 마음의 쓸쓸함을 달래줄 광경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프로테우스를 보거나 늙은 트라이턴이 소라고둥 부는 것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사랑하는 사람 가까이 / 괴테     희미한 햇빛 바다에서 비쳐올 때   나 그대 생각하노라   달빛 환히 샘물에 번질 때   나 그대 생각하노라       저 멀리 길가에 뽀오얀 먼지일 때   나 그대 모습 보노라   어두운 밤 오솔길에 나그네 몸 떨때   나 그대 모습 보노라       물결높아 파도소리 아득해질때   나 그대 소리 듣노라   고요한 숲 속 침묵의 경계를 거닐며   나 귀를 기울이노라       나 그대 곁에 있노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대 내 가가이 있으니   해 저물면 별아   날 위해 곧 반짝여라   오오 그대 여기 있다면                   21첫사랑 / 수언 지에우(Ngô Xuân Diệu) -베트남명시   나는 첫사랑밖에 없다 너에게 주었다. 편지 한 통과 함께 너는 받지 않았고, 내 사랑은 사라졌다 주어버린 사랑은 결코 되돌릴 수 없으니.   편지는 삶의 몽상처럼 얄팍하고 사랑은 모든 이별처럼 슬프다 편지를 주머니에 깊숙이 감추고 수 백 번을 고쳐 쓴 다음에야 전한다.   부끄러운 마음이 어리석은 편지를 따라 너에게 다가가 돌아올 줄 모른다 너는 젊은 마음을 찢어버렸고 그날 구름은 계곡을 덮었다   운 좋게도 내 마음은 아직 젊으니 봄의 피는 꽃을 맺지 못했다 비 오는 정원에 아직도 새가 지저귀니 사랑도, 봉선화도, 석류도 필요 없다   그러나 꽃과 나비를 사랑할 때도 수 천 번이나 꿈을 꾸는 듯 하였고 두 눈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두 손은 감히 붙들지도 못했다   나는 아직도 어릴 때의 장난같이 생각되는데 언제 사랑이 깨졌단 말인가! 눈은 말랐지만 수천의 눈물방울이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첫 번째 꽃은 정백한 향을 담고 초봄은 깨끗하고 단조롭고 초향(初香)은 쇠처럼 단단히 새겨졌다 대보름 안개는 온 세상을 희미하게 한다.   사랑의 편지가 잘못 흘러갔으니 우울하고 아침 해도 빛을 잃고 나는 오직 첫사랑밖에 없었고 너에게 주었다. 나는 사라졌다.     22말해야 한다 / 수언 지에우(Ngô Xuân Diệu)   애끓도록 사랑해요, 그런데도 모자란단 말입니까? 당신은 욕심이 너무 많아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요 안다, 네가 사랑한다고 말한 것을 그런데 왜 지난 얘기를 되새기는 건가요?   애끓도록 사랑하지만 여전히 충분치가 않구나 네가 사랑한다면서 마음속에만 두고 말하지 않으면 사랑은 없는 것이며 잘난 외모도 단지 돌과 같은 것이다. 나는 완전하고 무한함을 원한다 너는 아니? 내가 너를 찾았다는 것을 오늘의 사실은 내일까지 이르지 못하니 어찌 사랑이 헌것이 있겠나?   애끓도록 사랑하지만 여전히 충분치가 않구나 사랑한다고 말해야 해, 백 번 천 번이라도 영원히 봄밤을 지키도록 뜨거워야 해 사랑의 정원에 나비를 놓아줘야지   너는 말하고 또 말하고, 말해야 해 눈으로, 눈썹으로 사랑의 몸짓으로, 수줍은 자태로 의지하는 몸짓으로, 웃음으로, 손을 잡음으로   침묵으로, 내가 알 수 있는 것으로. 그러나 겨울처럼 차갑게 하지 말고 속 타는 이에게 무정하게 굴지 말며 잠자는 호수처럼 조용히 있지 마라   애끓도록 사랑하지만 여전히 충분치가 않구나             23황학루 / 최호   길손은 이미 황학을 타고 가버리고   허허로이 빈 터엔 황학루만 남았구려   황학은 한번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건만(않는데)   유유히 흰 구름은(만) 긴 세월에 걸쳤세라   맑은 강심에 한양길 가로수 역력히 비쳐있고   긴 사연 앵무주엔 잡초들만 무심쿠나   어느덧 해 저물어 고향 땅 더욱 묘연하니   물안개 자욱한 강상의 나그네 수심 깊어 하노라           24月下獨酌 달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 / 이백(701~762)   1.     花間一壺酒 꽃나무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     獨酌無相親 홀로 따르네 아무도 없이.     擧杯邀明月 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     對影成三人 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 달은 술 마실 줄을 모르고     影徒隨我身 그림자는 나를 따르기만 하네.     暫伴月將影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함께 있으니     行樂須及春 봄이 가기 전에 즐겨야 하지.     我歌月徘徊 내가 노래하면 달은 거닐고     我舞影零亂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춤추네.     醒時同交歡 함께 즐거이 술을 마시고     醉後各分散 취하면 각자 헤어지는 거.     永結無情遊 무정한 교유를 길이 맺었으니     相期邈雲漢 다음엔 저 은하에서 우리 만나세.     2.       天若不愛酒 하늘이 술을 사랑치 않았다면     酒星不在天 주성이 하늘에 있지 않을 거고,     地若不愛酒 땅이 술을 사랑치 않았다면     地應無酒泉 땅에 주천이 없었을 거야.       天地旣愛酒 하늘과 땅도 술을 사랑했으니     愛酒不愧天 내가 술 사랑하는 건 부끄러울 게 없지.     已聞淸比聖 옛말에, 청주는 성인과 같고     復道濁如賢 탁주는 현인과 같다고 하였네.     賢聖旣已飮 현인과 성인을 이미 들이켰으니     何必求神仙 굳이 신선을 찾을 거 없지.     三杯通大道 석 잔이면 대도에 통할 수 있고     一斗合自然 한 말이면 자연과 하나되는 거라.     但得酒中趣 술 마시는 즐거움 홀로 지닐 뿐     勿爲醒者傳 깨어 있는 자들에게 전할 거 없네.         3.       三月咸陽城 춘삼월 함양성은     千花晝如錦 온갖 꽃이 비단을 펴 놓은 듯.     誰能春獨愁 뉘라서 봄날 수심 떨칠 수 있으랴     對此徑須飮 이럴 땐 술을 마시는게 최고지.     窮通與修短 곤궁함 영달함과 수명의 장단은     造化夙所稟 태어날때 이미 다 정해진 거야.     一樽齊死生 한 통 술에 삶과 죽음 같아보이니     萬事固難審 세상 일 구절구절 알 거 뭐 있나.     醉後失天地 취하면 세상천지 다 잊어버리고     兀然就孤枕 홀로 베개 베고 잠이나 자는 거.     不知有吾身 내 몸이 있음도 알지 못하니     此樂最爲甚 이게 바로 최고의 즐거움이야.       4.     窮愁千萬端 천갈래 만갈래 이는 수심에     美酒三百杯 술 삼백잔을 마셔볼거나.     愁多酒雖少 수심은 많고 술은 적지만     酒傾愁不來 마신 뒤엔 수심이 사라졌다네.     所以知酒聖 아, 이래서 옛날 주성이     酒감心自開 얼근히 취하면 마음이 트였었구나.     辭粟臥首陽 백이는 수양 골짝에서 살다 죽었고     屢空飢顔回 청렴하단 안회는 늘 배가 고팠지.     當代不樂飮 당대에 술이나 즐길 일이지     虛名安用哉 이름 그것 부질없이 남겨 무엇해.     蟹오卽金液 게 조개 안주는 신선약이고       糟丘是蓬萊 술 지게미 언덕은 곧 봉래산이라.     且須飮美酒 좋은 술 실컷 퍼 마시고서     乘月醉高臺 달밤에 누대에서 취해 볼거나.         25여인숙 / 잘랄루딘 루미 (페르시아)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저녁)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26나르키소스는 말한다 / 폴 발레리(프랑스) - 나르키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오 형제들이여! 슬픈 백합들이여, 나는 아름다움에 번민한다 너희들의 나체 속에서 나를 갈망했기에. 하여 너희들을 향해, 요정, 요정이여, 오 샘의 요정이여, 나는 부질없는 눈물을 순수한 침묵에 바치러 온다.   크나큰 고요가 내게 귀기울이고, 거기에서 나는 희망을 듣는다. 샘물 솟는 소리 바뀌어 나에게 저녁을 이야기하고, 성스런 어둠 속 은빛 풀 자라나는 소리 들려오며, 못 믿을 달은 조용해 진 샘의 깊숙한 속까지 제 거울을 치켜든다.   그리고 나는 이 갈대밭 속에 기꺼이 몸을 던지고, 오 청옥이여, 내 서글픈 아름다움으로 번민한다! 나는 이제 마법의 물밖에는 사랑할 수가 없나니, 거기서 웃음도 옛날의 장미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네 숙명의 순수한 광채는 얼마나 한스러운가, 그리고 부드럽게 내게 안긴 샘물이여, 필멸의 푸르름 속에서 내 눈은 젖은 꽃들의 화관을 쓴 나의 영상을 길어울렸어라!   아! 영상은 덧없고 눈물은 영원하도다! 푸른 숲과 우애로운 팔들 저 너머, 모호한 시간의 부드러운 미광이 있어, 남아 있는 햇빛으로 나를 벌거숭이 약혼자로 만든다 서글픈 물이 나를 유인하는 창백한 장소에서...... 환락의 악마여, 바람직하게 얼어붙었구나!   여기 물 속에 달과 이슬의 내 육체가 있나니, 오 내 눈과 마주 대한 순종하는 형태여! 여기 몸짓도 순수한 내 은빛 두 팔!..... 찬탄할 금빛 속에서 내 느린 두 손은 잎새들이 얽어맨 이 수인(囚人)을 부르다가 지치고, 나는 숨겨진 신들의 이름을 메아리들에게 외치노라!   잘 있거라, 고요히 닫힌 물결 위로 사라진 그림자여, 나르키소스...... 이 이름마저도 그윽한 가슴에는 부드러운 향기로다. 이 텅빈 무덤 위 망혼들에게 조문의 장미 꽃잎을 하나씩 떨어뜨려라.   내 입술이여, 장미꽃 되어, 사랑하는 망령을 차분히 달래줄 입맞춤 하나씩 흩날리게 하라, 가까이서 멀리서, 밤이 낮은 소리로, 그림자와 선잠 가득한 꽃받침에게 도란거리나니. 허나 달은 기름한 도금양들과 노닥거리도다.   이 도금양 아래에서, 나는 너를 경배한다, 고독 때문에 쓸쓸히 피어, 잠자는 숲속의 거울에 제 모습 비춰보는 오 무상한 육신이여. 난 너의 정겨운 현전(現前)에서 풀려날 길 없는데, 거짓말쟁이 시간은 이끼 위 사지에겐 부드럽고 어둑한 환희로 깊은 바람을 부풀린다.   잘 있거라, 나르키소스여...... 죽어라! 이제 황혼이다. 내 가슴의 숨결에 내 형태는 물결치고, 덮어 가려진 창공을 가로질러, 울며 가는 가축들의 아쉬움을 목동의 피리가 조율한다. 하지만 별이 불 밝히는 독한 추위의 수면에서, 완만한 안개 무덤이 생기기 전에, 숙명적인 물의 정적을 깨뜨리는 이 입맞춤을 받으라! 희망만으로 이 수정을 망가뜨리기에 족하리라. 잔물살이 나를 몰아내는 숨결로 나를 호리니, 내 입김이여 가냘픈 피리를 생동케 하라, 가벼이 피리 부는 이도 내겐 너그러우리라!......   사라져라, 혼란된 신들이여! 그리고 너, 겸손한 고독의 피리여, 달에게 쏟아주라, 우리의 다양한 은빛 눈물을.         27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 네루타     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낙엽 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흔이 빠져 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룻밤 새하얗게 돌아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책 아직 땅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바다가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를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페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나한 자가 먹다 남긴 빵 조각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유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 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큰곰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 내어 읽으리라.         28가을 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독일시)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극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 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넣어 주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혼자로 남아서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뭇잎 떨어져 뒹굴면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29이방인 / 샤를 보를레르 시(프랑스)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말해보라,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여   너의 아버지인가, 아니면 형제자매인가?   나에게는 부모도 형제자매도 없다   그러면 너의 친구인가?   지금 너는 뜻조차 알 수 없는 낱말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너의 조국인가?   그것이 어느 위도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나는 모른다   그러면 아름다운 여인이란 말인가?   아, 만일 불멸의 여신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있으련만   그렇다면 돈이란 말인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그것   마치 네가 신을 미워한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세상에서도 귀한 에트랑제여!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한다......   저 부지런히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한다   ....보라, 다시 보라..... 저 불가사의한 뭉게구름을.     30취하라 / 샤를 보들레르(프랑스)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그대의 허리를 땅으로   굽히게 하는 무서운 시간의 중압을 느끼지 않게 하는   유일한 과제이다 쉬지 않고 취해야 한다   무엇으로냐고   술 시 혹은 도덕 당신의 취향에 따라   하여간 취하라   그리하여   당신이 때로 고궁의 계단이나 도랑의 푸른 잔디 위에서   또는 당신 방의 삭막한 고독 속에서 취기가 이미 줄었든가   아주 가버린 상태에서 깨어난다면 물으라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벽시계에게   달아나는 모든 것 탄식하는 모든 것   구르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 물으라 지금 몇 시냐고   그러면 바람은 별은 새는 벽시계는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 시간甄? 당신이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쉬지 않고 취하라   술로 시로   또는 도덕으로   당신의 취향에 따라           31내 사랑 너를 위해 / 자크 프레베르 (프랑스)     나는 새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새를 샀네 내 사랑 너를 위해   나는 꽃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꽃을 샀네 내 사랑 너를 위해   나는 고철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사슬을 샀네 육중한 사슬을 내 사랑 너를 위해   그리고는 노예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너를 찾았네 그러나 너는 없었네 내 사랑           32가 을 / 기욤 아폴리네르   안개속을 간다 다리가 구부정한 농부와 그의 소가 조용히, 가난하고 부끄러운 오막집들을 감취주는 가을 안개속을   그리고 저쪽으로 가면서 그 농부는 노래한다 반지와 상처입은 마음을 말해주는 사랑과 부정의 노래를   오! 가을 가을이 여름을 죽였다 안개속을 지나간다 재빛 실루에뜨가 둘         33가을의 노래 / 베를렌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단조로운 우울로 내 마음 쓰라려.   종 소리 울리면 숨막히고, 창백히 옛날을 추억하며 눈물짓노라.   그리하여 나는 간다. 모진 바람이 날 휘몰아치는 대로 이리저리 마치 낙엽처럼.         34이리 오세요, 눈에 보이지 않는 피리가 / 빅토르 위고   이리오세요! --눈에 보이지 않는 피리가 목장에서 한숨 쉽니다.-- 가장 평화로운 노래는 목동의 노래.   바람은 떡갈나무 밑에서, 물의 어두운 거울에 잔물결을 일게 합니다.-- 가장 즐거운 노래는 새들의 노래.   어떤 걱정에도 괴로워해선 안됩니다. 우리 사랑합시다! 사랑합시다 언제까지나!-- 가장 매혹적인 노래는 사랑의 노래.         35감 각 / 아르튀르 랭보       여름의 파아란 저녁때면 나는 오솔길을 가리라. 보리에 찔리며, 잔풀을 짓밟으며: 몽상가 나는 그 시원함을 발에서 느끼리. 바람에 내 맨 머리를 멱 감기리.   나는 말하지 않으리, 아무것도 생각지 않으리라: 그러나 무한한 사랑이 내 영혼 속에 솟아 오르리라, 그리고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머얼리, 보헤미안처럼. 자연속을, - 마치 여자와함께 가듯 행복히.         36인생 예찬(찬가) / 롱펠로우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아라. 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어니 만물의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인생은 진실이다 !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너는 흙이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 우리의 심장은 튼튼하고 용감하나 싸맨 북소리처럼 둔탁하게 무덤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으니.   이 세상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노영 안에서 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 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라.     37잊혀진 여인 / 로랑생 (1885~ 1956 佛 화가)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슬픔에 젖은 여인입니다   슬픔에 젖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입니다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병을 앓는 여인입니다   병을 앓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버림 받은 여인입니다   버림 받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쫒겨난 여인입니다   쫒겨난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죽은 여인입니다.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입니다       38春望 봄날 고국 산천을 바라보며 / 두보   國破山河在, 고국은 엉망이어도 산천만은 의구하니   城春草木深. 온누리에 봄이 되어 초목이 무성하다   感時花濺淚, 시국이 어려우니 꽃을 봐도 눈물 나고   恨別鳥驚心. 생이별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가슴 저려   烽火連三月, 전란(戰亂)에 휩싸인지 어언 석달째라   家書抵萬金. 고향 편지 한 통에 만금은 족히 되리   白頭搔更短, 흰머리는 긁을수록 자꾸만 빠져버려   渾欲不勝簪. 이제는 비녀조차 꽂기가 어렵구료     39악양루에 올라 / 두보     昔聞洞庭水 옛날에 동정호의 (절경을) 말로만 듣다가   今上岳陽樓 오늘에야 악양루에 오르는구나   吳楚東南坼 오나라와 초나라가 동쪽과 남쪽으로 갈라졌고   乾坤日夜浮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동정호에) 떠 있구나   親朋無一字 친한 벗이 한 자 글월도 없으니   老去有孤舟 늘어가는 몸에 (의지할 곳이란) 외로운 배 한 척 뿐이로다   戎馬關山北 (아직도) 고향에선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니   憑軒涕泗流 난간에 기대어서 눈물을 흘리노라     40국화 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도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12    명시인- 김춘수 댓글:  조회:2864  추천:0  2015-02-07
      꽃을 위한 서시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거리에 비 내리듯                                      거리에 비 내리듯  비 개인 다음의  하늘을 보라.  비 개인 다음의  꼬꼬리새 무릎을 보라. 발톱을 보라.  비 개인 다음의  네 입술  네 목젖의 얼룩을 보라.  면경(面鏡)알에 비치는  산과 내  비 개인 다음의 봄바다는  언제나 어디로 떠나고 있다.                 가을 저녁의 시                                         누가 죽어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세상 외롬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시 1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새의 날개가 보이지 않는 어둠을 혼자서 날고 한 사나이의 무거운 발자국이 지구를 밟고 갈 때 허물어진 세계의 안쪽에서 우는 가을 벌레를 말하라. 아니 바다의 순결했던 부분을 말하라. 베고니아의 꽃잎에 듣는 아침 햇살을 말하라. 아니 그 울음과 굴뚝을 말하고 겨울 습기와 한강변의 두더지를 말하라.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새의 날개가 보이지 않는 어둠을 혼자서 날고 한 사나이의 무거운 발자국이 지구를 밟고 갈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네가 가던 그날은                                 네가 가던 그날은 나의 가슴이 가녀린 풀잎처럼 설레이었다 하늘은 그린듯이 더욱 푸르고 네가 가던 그날은 가을이 가지 끝에 울고 있었다 구름이 졸고 있는 산마루에 단풍잎 발갛게 타며 있었다 네가 가던 그날은 나의 가슴이 부질없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능 금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이미 가 버린 그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날에 머문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의 그의 충실만이 익어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가을이 그에게  한결같은 애무의 눈짓을 보낸다 놓칠 듯 놓칠 듯 숨가쁘게 그의 꽃다운 미소를 따라가며는 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분 수                                                        1 발돋움하는 발돋움하는 너의 자세는 왜 이렇게 두 쪽으로 갈라져서 떨어져야 하는가. 그리움으로 하여 왜 너는 이렇게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  2 모든 것을 바치고도 왜 나중에는 이 찢어지는 아픔만을 가져야 하는가. 네가 네 스스로에 보내는 이별의 이 안타까운 눈짓만을 가져야 하는가.   3 왜 너는 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떨어져서 부서진 무수한 네가 왜 이런 선연한 무지개로 다시 솟아야만 하는가.       처 용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에 밟히며 잠을 깬다. 숲 속에서 바다가 잠을 깨듯이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남의 속도 모르는 새들이 금빛 깃을 치고 있다.         인동(忍冬) 잎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근교(近郊)에서는 보지 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월동(越冬)하는 인동(忍冬) 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人間)의 꿈보다도 더욱 슬프다.           처용단장(處容斷章)                                     - 1의 1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 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날이 저물자 내 근골(筋骨)과 근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꼬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또 아침이 오고 바다가 또 한 번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뚝, 뚝, 뚝, 천(阡)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히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또 밤이 와서 잠자는 내 어깨 위 그 해의 새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의 한쪽이 조금 열리고 개동백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내리는 그 희디흰 눈발을 보고 있었다.   - 1의 2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내가 만난 이중섭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부두에서                                                   바다에 굽힌 사나이들 하루의 노동을 끝낸 저 사나이들의 억센 팔에 안긴 깨지지 않고 부셔지지 않는  온전한 바다, 물개들과 상어떼가 놓친 그 바다.   꽃의 시인 ㅡ 김춘수   1.생애 그는 1922. 11. 25. 경남 통영의 부유한'수재집안"에서 태어났다.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 동경의 예술대학 창작과에 입학했다. 1942년 일본 천황과 총독 정치를 비방했다는 혐의로 퇴학당하고 6개월간 유치되었다가 서울로 송치되었다. 통영중학과 마산중.고교 교사를 거쳐(1946-1952) 해인대학과 경북대,영남대 교수를 지냈으며(1960-1981),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이후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시작 활동으로는 1945년 '통영문화협회(유치환,윤이상,전혁림,김상옥 등)를 결성하면서 문화 계몽 운동을 하는 한편 본격적인 시 창작을 시작하였으며, 동인지 『로만파』(조향, 김수돈,1946),『시연구』(유치환,김현승,송욱,고석규,1956)를 발간한 바 있다. 시인은 초기에는 유치환,서정주,청록파의 시에 영향을 받았으며 30세가 넘어 비로소 자신의 시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시인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시쓰기와 관련된 몇개의 삽화들이 있다. 통영바다와 더불어 성장한 유년기의 기억, 유치원 선교사를 통해 경험한 이국풍의 세계,일본인 담임 교사와의 마찰 및 자퇴,일본 유학 시절 만난 릴케시집, 시인의 길로 들어서는 데 강한 영향을 준 일본인 시인 교수,사상 혐의로 투옥되어 고문을 당한 일 등이다. 생애의 이런 경험들 가운데 유년과 청년 시절에 겪은 두 경험은 김춘수의 시쓰기와 매우 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김춘수 시인은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사화집에 시 "애가"를 발표하여 등단하였으며, 초기의 시경향은 라이너마리어 릴케의 영향을 받았고, 1950년경부터 사실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성격의 시를 써왔다. 그는 사물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고 시를 써 으로 일컫어 졌다. 2004년 11월 29일 82세의 나이로 성남시 분당구 소재 서울대학병원에서 지병으로 치료를 받아오다 작고하였다. 영결식은 2004.12.1.10시경 위 서울대학병원에서 시인 김종길,정진규,조영서, 김종해,심언주,류기봉 제씨 등 생전의 절친한 시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인장으로 치러졌다. 시인은 부인 명숙경이 묻혀있는 경기 광주공원묘지에 영면하였다. 2.시세계 김춘수 시인이 처음 시를 쓰게 된 계기를 릴케와의 조우이다. 시인은 시적 혜안을 열어 준 존재로 릴케를 꼽는데 이 운명적인 계기가 종국에 그의 시적 방향을 계시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즉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시라는 것을 릴케 시의 '햇살,꽃눈보라, 기도, 날개, 꽃피어 있는 영혼' 등의 표현들로 각인하고 이런 언어에 매혹되어 시쓰기로 들어선다. 그의 초기 시는 이런 인식의 세례 아래 쓰여진 다소 감수성 짙은 시들이 주조를 이룬다. 이후 시인인 '비로소 나만의 시를 쓰게 되었다'고 기억하는 꽃에 관한 일련의 시들은 이른바 대표작이다. 김춘수 만큼 '꽃'이라는 대상에 관념의 무게를 얹은 시인이 드물 정도로 의미가 과부하된 시들이다. 꽃이라는 존재가 인격화되고 극대화된 이 시들은 인식론적 깊이, 존재론적 탐구, 이데아의 세계관으로 해석되는 관념과 비의의 시 세계이다.       꽃에 대하여  [올해 들어 하동에 사는 친구 집을 몇 번 오가면서, 섬진강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을 오지게 바라보면서 여러 상념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제각각인 듯하다. …^^ 꽃은 꽃으로 바라보면 되는 것을, 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생각으로 고운 꽃들을 저만치 버려두고 홀로 다른 꽃들을 감상하는 것이니… ㅜ.ㅜ . 오래 전에 써 둔 글을 다시 꺼내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보낸다. 지루한 글 즐겨 읽어 보시길.^^;]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億)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주지하다시피, ‘꽃을 위한 서시'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제재로 한 많은 시편의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사물에 내제되어 있는 의미(본질)를 ‘인식'하기 위해 고뇌하는 철학적, 사색적인 성격의 작품이지요.(사실, 나는 인식론(認識論)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인식론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 중의 하나는 과연 진리란 무엇인가, 내가 아는 것이 진리인가 하는 문제일진데, 이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철학적 관점이 존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른바 고전적 진리론의 관점에서는 내가 아는 것이 실재와 일치할 때 나의 앎은 진리라고 봅니다. 항상 상식을 옹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있는 것에 대해서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에 대해서 없다고 말하면 그 말이 진리이다.(형이상학)' 이 말에서 우리는 인식 내용이 객관적 실재와 일치하는 경우에 이를 진리라고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입장을 ‘진리 대응설'(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이라 합니다. 이 대응설은 동서를 막론하고 가장 오래된 진리관이지요. 이를테면 ‘눈은 희다'라는 나의 지식은 실제로 창문을 열고 내리는 눈을 확인했을 때 그 눈이 희다면, 그것은 진리인 것이지요.  그러나 고전적인 진리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실재를 알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대응설에서는, 우리 눈앞에 있는 한 송이 꽃이 원통의 줄기와 푸른 잎과 빨간 꽃잎을 가졌다고 할 때, 우리의 시각으로 파악된 표상 또는 관념(원통형, 푸르다, 빨갛다)은 앞에 있는 대상(꽃)이 ‘사실상 지니고 있는 성질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관념과 대상의 일치 내지 대응을 확인하려면 우리는 그 꽃을 다시 보아야 하는데, 이때 우리는 그 꽃에 대한 또 하나의 관념을 받아들일 뿐, 정작 꽃 자체에는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 의 ‘원통형, 푸르다, 빨갛다'는 다시 보는 ‘원통형, 푸르다, 빨갛다'와 서로 다른 관념인 것이지요. 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대상의 실재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언어적인 관념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고전적인 진리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실재를 알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인데,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 같은 합리주의 철학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 ‘진리 정합론자'들은 수학이나 기하학의 지식을 자명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외의 다른 주장들의 진리성을 ‘자명한 진리와의 일치 여부'를 근거로 판단합니다. 수학이나 기하학에는 젬병인 관계로, 다른 예를 들어보면,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주장이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에 부합되지 않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런 교조주의적 태도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많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어떤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마르크스나 레닌, 모택동 등의 권위자들의 말과 합치하느냐 여부에 따라서 판단하는 식이지요.  이러한 ‘진리 정합설(coherence theory of truth)'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사실과의 일치 여부에 진리성이 구애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정합의 기준이 되는 기성 판단을 계속 소급하여 올라간, 체계내의 최초 판단의 진리성은 정합 여부를 가려줄 더 이상의 판단을 갖지 않으므로, 정합설로 설명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정합설의 이러한 한계는 결국 진리 기준의 이중성이라는 또 다른 한계를 드러내 줍니다. 왜냐하면 정합설은 최초의 상위 판단의 진리성을 보장해 줄 정합설적 기준 이외의 ‘다른 기준'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있습니다. 만약 서로 모순되는 최초 판단을 갖는 상이한 두 개 이상의 체계가 있고, 그 최초 판단 중 어느 것이 진리인가가 확정되지 않았을 경우, 어떤 판단은 두 체계와의 각각의 정합 여부에 따라 진리인 동시에 진리가 아니기도 하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기존의 논리 체계와 논리적으로 정합하는 체계를 ‘상상'에 의해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과연 오직 정합성만을 진리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사실상 정합설적 진리가 진리로서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정합의 기준이 되는 체계내의 맨 위의 판단은 반드시 ‘사실 과학적 진리'로 확정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최초 판단이 진리로 확정되지 않는 한, 아무리 그것에 정합된 판단이라도 그 판단들 역시 진리로 확정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정합설은 어떤 판단이 참이라면 그 판단에 모순이 되는 판단은 결코 참일 수 없다는 논리학의 기본법칙 가운데 하나인 ‘모순율'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순율 자체가 정합설로 진위가 판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모순율은 사고 작용이 그 성립을 위해 필연적으로 참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진리로 요청된 사고의 전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형이상학에 대한 공부를 한 지 십 수년이나 지난 오랜 일이라서, 이런 설명이 적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합론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어서, 드디어 ‘진리 실용론'이 그 세를 넓혀갑니다. ‘진리 실용설'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미국에서 영향력을 넓힌 실용주의의 진리설에 기원하고 있습니다. 실용주의란 용어는 퍼어스(C.S.Peirce)가 의미(意味)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면서 미국의 철학에 끌어들였는데, 이 말은 그의 친구인 제임스(W. James)에 의해 19세기말 대중강연에서 자주 사용되어 처음으로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쉴러(F.C.Schiller)와 미국의 듀이(J.Dewey)도 실용주의와 유사한 논리를 주장하였는데, 우리나라 조선후기 실학파의 실사구시(實事求是)와도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실용주의는 지식을 그 자체로서 다루지 않고 언제나 생활상의 수단으로 본다는 것, 잘 아실 것입니다. 실용설에서는 지식이 실제 생활에 있어서 성공적이거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거나 실제로 유용할 때 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고 보면, 실용주의라는 것이 물리학이나 생물학과 같은 실험 과학의 방법을 논리적 사고의 영역에까지 확대 적용시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험 과학의 명제는 이론적으로 아무리 문제가 없더라도 실험의 결과에 의해서 실증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즉, 실험이라는 행위와의 관계에서 명제의 진위를 논하는 것이지요.  제임스는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유용하다.”라는 진술과 “그것은 유용하기 때문에 진리이다.”라는 진술을 비교하고, 두 진술은 같은 의미라고 말합니다. 유용한 관념은 참다운 것이요, 무용한 관념은 거짓에 불과한 것이므로, 진리는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가는 것이며, 때문에 만들어짐으로써 확인 가능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사랑의 비극이란 없다. 사랑이 없는 가운데서만 비극이 있다.(데스카)'  이 말은 진리일까요? 진리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을 해 보고, 그 결과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 주장은 참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념은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끼치며, 행위의 지침을 마련해 주고, 행위자에게 그가 의도하는 목표로 나아가는 수단을 제시합니다. 만약 우리의 행위에 대한 신념이 이와 같이 영향을 끼쳐 행위를 효과적으로 만든다면 우리의 신념은 옳은 것일 겁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랑을 했더라도, 나중에 그 사랑이 비극으로 결말을 맺었다면, 위의 주장은 진리가 아닙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진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이러한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는 때로 집안에 화를 당한 사람이 점을 보거나 무당을 데려다 굿을 하고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을 종종 봅니다. 실용주의적 진리관에 따르면 점이나 굿 같은 미신도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유용하므로 진리가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고 그 목적을 실현하였다면, 그 거짓말도 유용하였으므로 진리가 됩니다. 그것 참!  이렇게 유용성이란 것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매우 주관적인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실용주의적 진리관에서 말하는 진리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 됩니다. 이 입장도 정합론처럼 진리가 인간의 주관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주장입니다.  인간의 인식의 임무는 진리에 도달하는 것,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객관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완전히 올바른 객관적 진리'는 ‘절대적 진리'라는 명칭을 부여받습니다. 이와 반대로 ‘일정한 범위에서만 올바른 진리'를 ‘상대적 진리'라 합니다. 절대적 진리란 완전히 올바른 지식이기 때문에 장래의 과학 및 실천의 진보에 의해 번복되지 않는 지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대적 진리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간직한 채, 작년, 2004년 11월에 작고하신 김춘수 시인의 ‘꽃을 위한 서시'로 다시 돌아 갑니다. ‘꽃을 위한 서시'는 우리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사물의 본질(진리, 앎)에 도달하고자 하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不可知論)이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서 ‘꽃'은 사물에 내재해 있는 본질 혹은 본질적 의미(진리)로 해석됩니다. ‘나'는 그것에 접근하여 해명하고자 하는 인식의 주체입니다.  ‘나'를 ‘위험한 짐승이다'라 한 것은 사물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한 존재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일상적 행위를 통하여 ‘너(꽃)'의 참된 의미를 잡으려고 손을 뻗치는 순간, 그 대상이 되는 사물의 본질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은 허무일 수도 있고, 무(無)의 세계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나'는 사물의 참모습을 잡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그리하여 존재의 본질은 흔들리는, 불안정한, 가지 끝의 꽃처럼 나의 인식에 잡히지 않고 그저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집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命名)은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행위가 있어야 가능한데, 존재의 참모습으로서의 꽃은 인식될 수 없으므로 이름도 없이 머무르다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나 시적 화자는 추구의 노력을 그만 둘 수 없습니다. 진리의 세계에 다가가고자 자신의 영혼을 팔았던 ‘파우스트'처럼 인간은 거역할 수 없는 진리에의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3연과 4연은 규명되지 않는 본질로 인한 슬픔과 함께,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는 가열찬 노력이 나타납니다.  3연의 ‘무명의 어둠'이란 사물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는 세계의 상황을 간결하게 압축한 구절입니다. 우리 세계의 무질서와 혼란은 그 깊은 어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꽃보다 열매가 먼저 열리고(무화과, 김지하),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는(공자의 생활난, 김수영), 이 무저(無低)한 전도(顚倒)와 작란(作亂)의 세계는, 빛(진리)이 어둠에 묻혀있음입니다. 눈물이 젖어들듯, 젖어오는 어둠은 눈시울을 가리어, 카오스(chaos)는 ‘입을 벌리고(chainein)', ‘캄캄한 텅빈 공간'으로 내려 앉습니다.  그 속에서도 ‘나'는 알 수 없는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 삶의 모든, 그러나 하찮은, 경험과 지식들을 동원하여 끝없이, 끝없이 추구합니다..... 이 행간은 긴 휴지(休止)를 필요로 합니다. 화자는 길고 오랜 시간동안 그 노력을 계속했을 것이고, 그 노력은 숱한 방황의 연속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느니라. 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파우스트)'...... 그렇지만, 그 노력은 차츰 돌개바람으로 변하여 ‘탑(규명되지 않은 사물의 본질)'을 흔들게 되고, 탑의 내부까지 파고 들어가 돌, 어쩌면 ‘돌(사물의 본질)'에까지 스밀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돌에까지 스미면...'이 가언적(假言的) 진술임을 확인할 때, 이미 불가지(不可知)는 예정됩니다. 그래서 ‘추구의 노력'만큼은, ‘금(金)과도 같은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서둘러 선언해버립니다! 작품은 모두 끝납니다. 이로써 시인은 자신의 생각을 모두 표현한 것이지요. 마지막, 널리 회자되는 마지막 구절은, 사실 의미상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합니다. 이미 앞에서 선언한 것의 확인, 반복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표현론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사물의 본질은 얼굴을 가린 신부와 같다'라는 이 은유는 과히 감동의 도가닙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돌에까지 스미면...'이 가언적(假言的) 진술이라는 것은, 인간이 사물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그러나 아직은 스미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진술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불가지(不可知)의 상황이며, 무지의 상태이며, 위험한 짐승의 처지입니다. 다만, 인간의 그 지난(至難)한 ‘추구의 노력'만큼은, ‘금(金)과도 같은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아픔에 위안을 얹어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의 간절한 욕구와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물의 본질은 결코 밝혀지지 않습니다. 사물의 본질은 언제나 인식의 가능성 저편에 있으며, 마치 영원히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와 같이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1행으로 독립시킨 5연은, 결국 ‘미지의 상태로 남는 본질'과 화자의 안타까움이 표현된 것이지요. 이 마지막 연에 대한 김재혁(고려대) 교수의 글을 잠깐 옮겨보면,  이 시의 가장 큰 묘미는 마지막 행의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라는 구절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사물을 ‘여인'으로 파악하는 릴케의 사고에다가, ‘얼굴을 가리운'이라는 동양적 사고방식이 독특하게 결합되어 ‘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이 드러난다. 이 ‘가리운' ‘얼굴'을 펼쳐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인 자신이 ‘금'으로 화한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적 형상화의 문제와 직결된다. (시적 변용의 문제: 릴케와 김춘수)  ‘금'에 대한 생각이 나와는 사뭇 다르지만 - 위 논문은 비교문학적 측면에서 김춘수와 릴케의 작품을 고찰한 듯한데, 아시다시피 내 글은 학문적으로 책임질 일은 추호도 없는 심심파적 잡글인 관계로, 김재혁 교수의 학술논문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런데, 이 논문처럼 “시인 자신이 ‘금'으로 화한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것”이라는 주장은, 주장도, 사실은 한 학자의 개인적 견해일 뿐, 많은 평론가들의 일치된 견해가 아니라는 것, 또 일치될 수도 없다는 것, 아시죠? - ‘얼굴을 가리운'이라는 동양적 사고방식이 독특하게 결합되어 ‘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이 드러난다는 주장은 마음에, 내 마음에 아주 쏙 드네요!  아무튼, 이렇게 인식론적 관점에서 ‘꽃을 위한 서시'를 읽었을 때, 우리의 인식은 ‘사물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시는 추구의 ‘결과'가 아니라 추구의 ‘과정'을 표현한 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때쯤에서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 ‘꽃'을 읽어보도록 합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잘 알려진, 별로 난해하지 않은 듯싶은, 이 시는 사랑의 시로 읽히기도 합니다. 내가 사랑하게 됨으로써 ‘너'는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고, 네가 나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나도 너로부터 영원히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사랑의 열망을 상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인들 사이에 이 시가 회자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시가 연시(戀詩)가 아니라는 것도, 역시 잘 아실 것입니다. 사물의 본질과 진실성은 시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고 믿는 시인은 이 작품에서 ‘꽃'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를 통하여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존재(存在)라는 인식을 토대로 사물을 존재의 밝음 속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인데, 이런 시를 존재론적인 시라고 부릅니다. 감정이나 정서를 중시한 연시와 달리, 지성과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주지시 계열의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를 짧게 검토해 봅시다. 꽃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만하고 아름다우며, 실존하는 모든 가치 있는 존재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이름을 ‘꽃'이라고 불러주기(命名) 전에는 그는 많은 사물 중 하나로 무의미한 대상(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입니다. 명명 행위(命名行爲) 이전 -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에는 그는 무(無)와 다름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즉 대상을 인식하기 전의 사물은 부재하는 존재와 마찬가지이므로 나와는 전혀 무관한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즉 상대방을 인지하고 존재 이유를 긍정하고 그것에 실체를 부여했을 때, 그는 혼돈과 부재(不在)의 상태, 곧 존재의 은폐성(隱蔽性)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고서, 하나의 뚜렷한 의미 있는 존재로 나에게 다가 옵니다. 이제 ‘나'와 ‘그'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가 형성되고 인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립니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은 존재의 집이다. 만물은 본질에 따라 이름지으며, 시인의 사명은 성(聖)스러운 것을 이름짓는 데 있다'고 한 말을 상기시켜 주기도 합니다. 여기서 ‘꽃'은 존재의 참모습, 의미 있는 존재의 상징물로서 찬연히 부활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소망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나의 이름을 누군가가 불러주기를... 정말로 누군가가 나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이름으로 나를 부재(不在)에서 이끌어 준다면 그에게로 가서 나도 ‘꽃'이 되고 싶습니다. 그 ‘무엇'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마지막 연은 ‘나'가 1인칭 복수 ‘우리'로 변하면서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로 그 범위를 넓혀 갑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냥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 의해 진정한 가치가 인식되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김춘수 시인은 ‘꽃'이 지녀온 관습적인 언어의 질감을 지우고 관념화된 꽃을 통해 존재의 현현과 실존의 체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 대한 숱한 해설들이 있지만, 그러나 이 시는 결국 존재의 본질에 대해 그 무엇도 말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많은 평자들이 ‘빛깔과 향기'를 존재의 본질이라고 해석하지만, 사실 ‘빛깔과 향기' 역시 또 하나의 개념일진데, 도대체 ‘빛깔'과 ‘향기'의 본질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국 은유와 상징의 세계일 뿐, 손에 잡히는 그 무엇 하나 가지지  못합니다! 나는 이 시의 행간에 묻혀 있는 무량 없는 슬픔을 슬퍼합니다!                   
11    명시인- 조향 댓글:  조회:2598  추천:0  2015-02-07
      시인 조향의 빛과 그늘  극우 이념성향… 문단'이단아' 낙인 군사 정권시 매카시즘 광풍 주도 스캔들 폭로·신문사 테러 전력도 현대시 업적, 저돌적 기질에 묻혀       조향은 항시 빨간 페인트 통을 들고 다니는 시인으로 보였다. 빨강 물감을 가득 채워놓고 필요할 때마다 뿌리고 칠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는 페인트공은 아니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현대시의 전파자요, 창조자인데다 그 힘이 쩡쩡 구덕골을 울리는 동아대 교수였다. 아니 교수 중의 교수로 자부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그 자신의 시나 쉬르레알리슴에 관한 강의는 딴 사람의 추종을 용납하지 않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어찌된 영문인지 기성문단에선 아예 기피당하거나 상종하지 않으려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었다. 부득불 그에 대한 사나운 인심의 근원을 찾자면 한국전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눠 그가 인심을 잃은 얘기를 해야겠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이념 문제를 들고 나와 동료나 선배 문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더구나 5·16군사쿠데타 때는 군부가 지휘하는 사회정화운동에 적극 참여, 그 나름대로의 안목으로 대상자를 골라 빨강 리스트에 올리는 역을 맡았다. 이러한 사실은 그 보조역을 맡은 그의 제자 교수가 증언한 바 있다. 1970년대 어느 날, 서울의 박남수 시인이 부산에 내려왔다. 전화로 '부산 커피'에 좀 나오라는 것이었다. 광복동에 있는 이 다방은 조향이 잘 가는 곳이었다. 얼른 내키지는 않았으나 필자를 문단에 데뷔시켜 준 분의 말이라 거역할 길이 없었다. 그 자리에 놀랍게도 박남수는 조향과 마주 앉아 있지 않는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색은 할 수 없고 차를 함께 마셨다. 비단 박 시인뿐 아니라 피란 온 북한출신 문인들이 그의 붉은 리스트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 일단 빨간색으로 낙인찍히면 살아남기 어렵고 살아난데도 생존자체가 위협을 받는 때가 아니던가. 박남수는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맨 먼저 자신에게 페인트칠을 한 조향을 왜 만나는 것일까. 박남수 시인은 "그가 나에게 용서를 빌었기 때문"이라고 짤막하게 털어 놓았다. 용서를 빈 자에 대한 예우로써 부산에 오면 맨 먼저 만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관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이데아 문제'로 다른 사람의 가슴에 페인트칠을 한 경우지만 다른 사례 하나는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여 창피를 준 일대 폭로사건이 있었다. 부산이 피란 수도 때이다. 당시 주간지에 한 페이지에 걸쳐 김동리와 손소희와의 스캔들이 대서특필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조향이 직접 제공하고 쓴 기사였다. 이들 두 작가는 정식으로 재혼이 이뤄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두 사람이 한낮에도 남포동 한가운데를 팔짱을 끼고 활보한다니, 그들의 아지트가 영주동 산기슭에 있다느니 하는 매우 구체성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피란지 부산 문단이 곧 중앙문단이었던 시절이다. 피란 온 문인들은 물론 부산쪽 문인들까지 충격을 받을 만한 기사였다. 조향의 저돌적 기질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기성 문단의 우상에 대한 파괴적 행동양식이라고나 할까. 해석 나름의 폭로기사가 그를 일약 겁을 모르는 '부산의 나이트' 쯤으로 인식되게 했다. 그런가 하면 70년대에 와서 동아대의 캠퍼스 확장 문제와 구덕공원 점유관계를 둘러싸고 부산일보가 시민 편에 서서 동아대를 한창 공격하고 있을 때 그가 부산일보를 타도하는 일선에 나섰다. 윤전기에 모래 한 줌 뿌리면 끝장 보는 일이라고 부산일보 바로 뒤에 있는 마로니에 다방에 앉아 거의 공개적으로 테러를 지휘하기도 했다. 당시 동아대생들이 편집국에 난립, 곤봉을 휘두르고 집기를 부수는 등 일대소동이 벌어졌다. 위의 몇 가지 예를 보듯이 그가 극우적 행동 양식에 젖게 된 것은 해방공간에서 좌파인 건준(建準) 일부 적색인사와 투쟁한 전력 이후라니 그 속내를 소상히 헤아리기 어렵다. 결국 서울 등지의 예술인들에게도 이념적 공세를 가해 기피인물로 간주됨으로써 그의 쉬르레알리슴 운동조차 순수하게 바라보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향의 문학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그가 재직한 동아대에 대한 충성은 지극했다. 부산일보를 상대로 한 그의 행동만 봐도 총장이 탄복할 만한 일이 아니던가. 감히 신문사를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다니….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차기 총장을 노린다는 모함에 휩쓸려 동아대를 떠난다. 그가 당시 병원에 입원중인 정재환 총장을 만나 해명하려 했으나 정 총장은 이미 결심을 한 터였다. 조향은 예닐곱 번이나 병상을 찾아갔다. 총장은 조향이 왔다하면 눈을 딱 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쪽으로 오면 총장은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저쪽으로 다시 가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을 확인한 그 날 돌아와 짐을 꾸리고 무작정 서울로 떠나야 했다.     거침없는 연애 즐긴 고독한 별 여교수와 팔짱끼고 광복동 거리 활보 장례식때 젊은 여교사가 관 붙들기도 문단서는 냉대받아 쓸쓸한 말년 보내       쉬르레알리슴의 왕국에서 미완의 황제로 군림했던 조향. 그는 일상인으로서, 자기류 시학의 명교수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한 인간으로선 끝내 한을 품고 사라진 고독한 별이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며 다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부산의 환락가는 광복동 거리였다. 서울의 명동과 진배 없었다. 조향은 이 거리를 너무 당당히 보란듯이 D대 체육과 여교수와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쯤은 예사로 여겼다. 60년대는 지금의 시각과는 아주 딴판의 시대였다. 조향은 이 거리에서 제자들을 만나도 스스로 팔짱은 풀지 않는다. 언제나 푸는 쪽은 여인 쪽이다. 조향은 거리에서 제자를 만나 곁에 팔짱을 끼고 오던 여교수가 팔을 풀면 그 여교수를 향해 "좋아하는 사람의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뭐가 부끄럽고 죄가 된다고 주저해. 여기 걸어 다니는 저 신사들도 알고 보면 다 위선자야." 그는 이렇게 사뭇 비분강개조로 설파한다. 도리어 제자들이 질려 그 자리를 뜨고 싶어 한다. 여류 시인 김춘방과는 아예 드러내놓고 팔을 끼고 다녔다. 필자도 여러 번 목격했던 사실이다. 김춘방과의 사이에 낳은 딸애를 집에 데려와 기른다는 말과 자기 큰딸이 그 애를 좋아해서 참 다행이란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 이전 50년대 후반에는 같은 과의 제주도 출신 J양과의 염문이 파다했다. 그는 23세 때 첫 결혼했으나 첫 부인과의 중매에 불만을 품고 초등학교 교사시절 동료와 사랑에 빠지고, 일본인 여교사와의 염문이 말썽이 되어 좌천되기도 했다. 줄곧 별거 해오던 첫 아내와 이혼하고 재혼하지만 그의 여성 편력은 그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속말을 숨기지 않고 털어 놓는 제자가 바로 신라대 총장을 역임한 시인 김용태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여인들을 가까이 두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 사람아, 사랑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 사랑이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위대한 힘"이라고 말했단다. 이를테면 명예나 돈이 아무리 있어도 애틋한 사랑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다. 김춘방이 늘 불쌍하다고 말해 왔다. 춘방이 일탈의 삶을 산 까닭도 6·25전쟁 중 중국인과의 뜻하지 않은 결혼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녀가 나중에 자살한 것도 결혼 생활의 불행과 더불어 아들의 걷잡을 수 없는 탈선이 복합되었기 때문으로 보고들 있다. 그녀는 경기여고를 나왔고 부산 최초로 부산극장에서 발레를 추었고 그 뒤에 시를 썼다.     용두산 공원 내 조향 시비.    그는 여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초현실주의는 위선을 가장 혐오한다. 그것이 사실주의와 다른 점이다. 연애를 하려면 위선적으로 사실주의적으로 하지 말고 자기처럼 초현실주의로 당당하게 해야 옳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60년대의 일이니 망정이지 요즘 같은 세태였다면 조향은 여인 편력 그 하나만으로도 강단에 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의 여인 편력은 서울에 가서도 쉬지 않아 기어이 장례 날 하관 때 일이 터졌다. 조향의 시신을 하관하려 할 때 26세의 초등학교 교사가 관을 붙들고 늘어졌다. 사랑은 당당히 초현실주의로 해야 가장 순수한 것이라는 교조적 신앙을 가졌던 그의 초현실주의의 연구회 회원이 주위의 눈을 전혀 의식치 않고 몸소 실천한 것이다. 대담하게도 관을 붙들고 "선생님! 저를 두고 어디로 가시렵니까." 그리고 "저도 함께 묻어 달라"고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이 지나치다 보니 옆에 있던 부인이 "저 년도 어서 같이 묻어라"고 고함쳤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의 시비는 사후에 용두산 공원에 '부산을 살다간 시인' 속에 포함되어 다음 시가 돌에 새겨졌다. '열 오른 눈초리, 한잔한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히 앉는다. 손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려다 봤다. /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구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갔다.'('EPISODE' 전문) 시인 조향은 1917년 경남 사천군 곤양면에서 태어나 진주고보를 나와 대구사범 강습과를 거쳐 일본대학 예술학원에서 수학했다. 1940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첫날 밤'이 입선되어 문단에 발을 디뎠다. 그는 일찍 동아대 국문과 교수와 문과대학장을 역임했으나 말년은 쓸쓸했다. 문단 쪽에서 그를 반기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해 서울로 온 뒤 그의 초현실주의 시학에 동조하는 모임이 있던 강릉 해변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67세, 1984년의 봄이었다. 문학과 일상의 행위가 모순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비록 그의 죽음은 릴케 같은 아름다운 모순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문학은 문학대로 평가해야 하는 경우다.   바다의 층계                                                                               -조 향-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對話)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수화기(受話器)       여인(女人)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1952)-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초현실주의적, 모더니즘적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현대문명과 상대적으로 무력하게 된 인간의 명암이 미묘하게 깔리면서, 도처에 극적인 이미지의 전개가 참신하다. 대개 이미지는 시인의 관념의 도구로써 쓰이게 마련인데, 이 시에서는 이미지 그 자체로 동원되어 한 편의 시를 이룬다. 이렇게 해서 순수시, 절대시가 되고 만다. 초현실주의 시가 난해하면서도 읽으면 매력이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시는 1950년대 초현실주의 작품을 썼던 조향 시인의 대표작이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평자들은 프랑스 초현실주의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원리를 도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는 특이하게도 초현실주의 문학 운동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근거한 무의식의 자동기술을 시작(詩作)의 근간으로 삼는 초현실주의 시들은 일반 독자에겐 매우 생소하고 난해하다. 그는 시에 외래어를 대담하게 도입하고, 산문적 · 설명적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상상의 영역에 절대적 자유를 부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의식의 심상을 발굴한 후 그것들을 비약 · 충돌하게 하는 초현실주의적 시풍을 우리 현대시에 실험한 대표적 시인이다. 그는 생전에 시집을 내지 않은 걸로도 유명하다. 앞서가거나 독창적인 사람은 대개 이단적이고 저항적이다. 그것이 도전과 공격에 대한 유일한 자기방어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귀재나 천재들의 이해하기 힘든 기벽이나 기행 등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과 문학적 이념이나 노선을 달리하는 다른 문학 집단이나 문학인들과는 아예 교류를 기피했다고 한다. 그는 철저하게 초현실주의 문학을 이론화 · 작품화하는 일에 정열을 기울이며 완고하고 집요하게 자기 영역을 고수했다. 1956년에 조봉제, 이인영 등과 '가이가(Geige)' 동인지를 내었으나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었다고 전한다. 1961년 군사 쿠테타 이후 사회정화위원회의 악역을 맡아 부산지역 예술인들의 경원과 기피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특이하다. 그는 항상 당당하고 세속적 평판에는 초연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의 곁에는 늘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비난하는 사람에겐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나는 공개적으로 떳떳하게 연애를 한다. 겉으로 도덕군자연하면서 뒷전에선 온갖 부도덕을 자행하는 위선자들과는 다르다. 초현실주의는 가식을 가장 싫어한다. 사랑이란 삶의 원동력이자 흐르는 물처럼 머무를 수가 없는 것이다." 조향 시인의 장례식 장면을 신태범 작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유족들과 조객들의 흐느낌 속에 천천히 고인의 관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어내며 흐느끼고 있던 한 여인이 갑자기 관을 붙들며 절규했다. "선생님! 이렇게 혼자 가시면 저는 어떡하란 말입니까!" 사람들은 잠시 의혹의 시선을 모았다. 첫눈에도 빼어난 미모의 그 여인은 모두에게 낯선 사람이었다. 여인은 관을 내리고 있는 사람의 팔에 매달리며 계속 울부짖었다. "저도 선생님과 같이 묻어주세요!" 1984년 여름 초현실주의 시인 조향(1917~1984, 본명 조섭제)의 장례식 도중에 일어난 일이다.'   ◆ 시를 왜 낯설게 써야 하는가 : 퍼온 글 낯설게 하기, 즉 데빼이즈망(depaysement)의 본뜻은 고향(paynatal)에 편히 길들어 있는 것들을 일부러 낯선 곳, 타향으로 보내 불편하더라도 낯가림을 겪도록 유도한다는 뜻을 지닌 불어의 어휘(de-paysement)에서 연원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선 표현, 낯선 기법에 의해서만 독자나 감상자의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낯익은 것들은 지겹도록 우리를 지루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그러므로 낯익은 것들은 낡은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우리의 지각을 자극시키기는커녕 우리의 의식을 게을러지게 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든다. 가령,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라는 농담을 처음 들었을 때는 재미있는 표현에 웃음이 났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었을 경우는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훌륭한 문학 작품이란 사물을 이화(異化), 끊임없이 낯선 관점으로 이끌어냄으로써 감상자, 관객, 독자의 의식을 혁신적으로 일깨워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이나 언어 습관은 일상화되거나 기계화, 자동화되기 쉽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기법으로 기존의 의미나 의식을 파괴하고 자율적 언어에 의한 독창적 의미의 틀을 이끌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적인 언어와 자율적인 언어의 차이란 평범한 보행과 예술가의 춤, 안무를 비교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문학적 언어 표현, 즉 자율적인 언어란 무용가가 창의적인 동작을 만들어 안무하는 춤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와 반대로 일상적인 걸음걸이는 누구나 타성에 젖어 다만 걸어다니는 것 그 자체, 보행만을 의미하므로 무용가가 취하는 낯선 걸음걸이나 예술적 동작, 무대 위의 스텝과는 아무 연관도 없고 목적의식 자체도 다른 것이다. 자율적인 언어란 새로운 표현,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무기력한 언어습관에 의해 무뎌지고 무감각해진 세상을 새롭게 자극, 각성시킴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에 깊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2009. 06. 09. 김영찬) [출처] 바다의 층계-조향|작성자 꿈꾸는 섬 조향(趙鄕) 시인의 시,        에스뀌스 ESQUISSE                                        ―조향(趙鄕)               1 눈을 감으며. SUNA는 내 손을 찾는다. 손을 사뿐 포개어 본다. 따스한 것이. ―――― 그저 그런 거예요! ―――― 뭐가? ―――― 세상이. SUNA의 이마가 하아얗다. 넓다.              2 SUNA의. 눈망울엔. 내 잃어버린 호수가 있다. 백조가 한 마리. 내 그 날의 산맥을 넘는다.              3 가느다랗게. 스물다섯 살이 한숨을 한다. ―――― 또 나일 한 살 더 먹었어요! SUNA는 다시 눈을 감고. ―――― 그저 그런 거예요! 아미에 하얀 수심이 어린다.                 4 ―――― 속치마 바람인데.…… ―――― 돌아서 줄까? ―――― 응! 유리창 너머 찬 하늘이 내 이마에 차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됐어요.                 5 SUNA가 화장을 한다. ―――― 화장도 예술 아녜요? SUNA의 어깨 넘으로 내 얼굴이 쏘옥 돋아난다. 나란히 나와 SUNA의 얼굴이. 거울 안에서. ―――― 꼭 아버지와 딸 같아요.              6 SUNA의 하얀 모가지에 목걸이. 목걸이에 예쁜 노란 열쇠가 달려 있다. ―――― 이걸로 당신의 비밀을 열어 보겠어요.              7 STEFANO의 목청에 취하면서. 눈으로 SUNA를 만져 본다. 오랜 동안. ―――― 왜 그렇게 빤히 보세요? ―――― 이뻐서. ―――― 그저 그런 거예요!              8 나의 SUNA와 헤어진다. 까아만 밤 ․ 거리 . 택시 프론트 그라스에 마구 달겨드는. 진눈깨비 같은 나비떼 같은. 내 허망의 쪼각 쪼각들. 앙가슴에 마구 받아 안으며. SUNA의 눈망울이. 검은 하늘에 참은 많이 박혀 있다. 깜박인다. 「그저 그런 거예요」                *自由文學, 4월호(1960년) 조향(趙鄕)전집 1994년 간행(刊行).      ㅡㅡㅡ(추천글 한편 더...) 거의 반세기 전에 씌여진 조향 (趙鄕)의 시, 와 같이 다소 특이한 시를 이 시를 의도적으로 소개하는 저의 의도는, 쉽고 암송이 잘 되어 뭇 사람들에게 자주 읽히고 자주 거론되는 시들이라면 구태여 시간랑비하면서 시평하지 않으려는생각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쉬운 주제로 쉽게 풀어간 시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왜냐면 복잡한 현대문명 속에서 사는 저에게 이해인, 서정윤, 용혜원, 원재훈 등의 시인들이 노래하는 정서나 어법은 별천지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시는 진통제와 같은 효능이 있어서 이제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읽으면 마음 이 편해지고 정신적 위안과 기쁨을 준다는 사실에 저는 주목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저는 , 그렇지만, 웬일이지 그들 시에서 위안이나 기쁨은커녕 미구에 닥쳐 올 예고 없는 불안만을 앞당겨 느낍니다. 이 시대는 분명 불합리, 모순, 불소통, 애매함, 불신, 모호한 시대로써 인간성 회복을 위 한 반문명 운동이라도 부르짖어야 할만큼 문명 자체가 위험 수위의 타락 지점에 와 있는 데 시인들은 그렇게 안이할 수만 있는가 하는 위기의식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시대에 맞는 오브제와 이 시대에 맞는 어법이 따로 있어야 하겠거니 하 며 이 땅에 등장할 위대한 시인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대중과의 소통? 실은, 그 것이 소통이 아니라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안 읽히고 안 들어오며 이해 안 되는 시가 어쩌면 현대인이 처한 상황 그대로 이며, 그 불통과 불안, 미완성, 난해성, 애매함, 해석 안됨이야말로 소통 안 되는 문명자체의 속성이라 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치료약 대신 진통제가 필요하듯이, 편안한 정서로 편안하게 노래하는 시와 시인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의문을 갖음과 동시에 그렇지만 그럴 수 있다고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조향의 시에 녹아있는 이색적인 정서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조차(오늘날의 contemporary 한국현대시단에서조차도) 그렇게 낯익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순수 이미지즘 image pure을 주장한 보기 드문 모던이스트였지요. 그가 추구한 세계는 근대문명, 즉 메카니즘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겠습니다. 즉 기관차, 기중기, 아코디언, 전화기 등의 기계, 기계문명 속에서 인간이 향유할 낭만적 공간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이 각박한 현대에 인간의 낭만이 병존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 에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도저히 들어설 수 없는 자리인 기중기 와 기관차, 전화 벨 소리에 자연의 일부라할 허약한 존재인 들국화와 나비를 끼워 넣는데 절묘한 기법 데뻬이즈망 을 도입하여 완성한 시가 바로 라고 생각합니다.   이 극한 대비에 의한 꼴라쥬기법의 완성은 조향 시인에게 적어도 희열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읽어 내려간 시에서는 느끼지 못한 또 다른 기쁨과 성취를 어떤 독자들은 스스로 얻어냈을 것입니다. 전에 제가 소개한 박정대 시인의 시는 조향의 모던이즘 시에 일련의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고 저는 파악합니다. (소개글)          
10    중국 력사상 위대한 시 中 몇수, 그리고 력사는 력사로... 댓글:  조회:2887  추천:0  2015-02-04
      중국 력사상 위대한 시  中  몇수   靜夜思(정야사)   -       이백   床前明月光     머리맡에 밝은 달빛 疑是地上霜     땅에 내린 서리인가. 擧頭望明月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다 低頭思故鄕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고향’을 떠올렸을 때 중국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백의 명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외우는 시이기도 하다. 독음과 뜻이 모두 명려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향수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이 때문에 천 년이 넘도록 중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시로 자리잡은 작품. 복잡한 사상이나 화려한 수식 대신, 가장 담담하고 소박한 필체로 풍부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을 묘사한 시.   遊子吟(유자음)   -       맹교   慈母手中線     인자하신 어머니 손에 실을 드시고 游子身上衣     떠나는 아들의 옷을 짓는다 臨行密密縫     먼 길에 해질까 촘촘히 기우시며 意恐遲遲歸     돌아옴이 늦어질까 걱정이시네 誰言寸草心     한 마디 풀 같은 아들의 마음으로 報得三春暉     봄 볕 같은 사랑을 어이 갚으랴.     모정을 읊은 송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정인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고 있다.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봄 볕에 비유한 마지막 두 구는 지금도 널리 쓰이는 비유. 화려한 시어는 없지만 담백하고 소탈한 어투 속에 배어 나오는 아름다움은 진하다.   賦得高原草送別(부득고원초송별)   -       백거이     離離原上草     우거진 언덕 위의 풀은 壹歲壹枯榮     해마다 시들었다 다시 돋누나. 野火燒不盡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니 春風吹又生     봄바람 불면 다시 돋누나. 遠芳侵古道     아득한 향기 옛 길에 일렁이고 晴翠接荒城     옛 성터엔 푸른빛 감도는데 又送王孫去     그대를 다시 또 보내고 나면 萋萋滿別情     이별의 정만 풀처럼 무성하리라.     백거이의 이 시는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니, 봄바람 불면 다시 돋누나’는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시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지만 또한 한 구절 한 구절 세심하게 공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七步詩(칠보시)   -       조식   煮豆燃豆萁     콩을 삶는데 콩대를 베어 때니 豆在釜中泣     솥 안에 있는 콩이 눈물을 흘리네 本是同根生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     어찌 그리도 세차게 삶아대는가     조식은 조조의 셋째 아들인데 재주가 워낙 출중해 아버지인 조조에게서 총애를 받고, 형인 조비에게서는 심한 질시와 견제를 받았다. 조비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조식을 견제하며 해치울 기회만 엿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비는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지으라고 명령하며 만약 그 동안에 시를 짓지 못하면 중벌에 처하겠다고 말한다. 이 때 조식이 지은 시가 바로 ‘칠보시’로, 조비는 이 시를 듣고 부끄러워하며 동생을 놓아주었다고 한다.     登鹳雀樓(등관작루)   -       왕지환   白日依山盡     눈부신 해는 서산에 기대어 지려하고 黃河入海流     황하는 바다를 향해 흘러 간다 欲窮千裏目     천리 저 멀리까지 바라보고 싶어 更上壹層樓     다시 한 층 누각을 오르노라.     ‘천리 저 멀리까지 바라보고 싶은’ 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층 더 누각을 올라가는 것’이다. 더 멀리 보고 싶다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시.     九月九日憶山東兄弟(구월구일억산동형제)   -       왕유   獨在異鄕爲異客     홀로 타향서 나그네 되니 每逢佳節倍思親     명절 때마다 고향 생각 더욱 간절하다 遙知兄弟登高處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 遍插茱萸少壹人     산수유 꽂으며 놀 적 한 사람이 적음을 알 것이니     고향과 가족을 향한 떠도는 이의 그리움을 노래했다. 반복해 읽을수록 의미가 새롭게 곱 씹히는 시. ‘명절만 되면 고향 생각 더욱 간절하네’란 구절은 천여 년 간 나그네의 그리움을 나타내는 명언으로 쓰였으며, 고향을 떠난 수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명절 때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중국인 특유의 문화가 배어있는 시.    關雎(관저)   -       시경 중 제 1수   關關雎鳩,在河之洲。     꾸우꾸우 물수리새 모래섬에 정답듯이 窈窕淑女,君子好逑。     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參差荇菜,左右流之。     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헤쳐찾듯 窈窕淑女,寤寐求之。     아리따운 아가씨를 자나 깨나 구하고저 求之不得,寤寐思服。     구하여도 얻지 못해 자나 깨나 생각하니 悠哉悠哉,輾轉反側。     아득하고 아득하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參差荇菜,左右采之。     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따노라니 窈窕淑女,琴瑟友之。     아리따운 아가씨 금을 타면 나는 슬을 타리 參差荇菜,左右毛之。     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골라내니 窈窕淑女,鍾鼓樂之。     아리따운 아가씨 종을 치면 나는 북을 치리      중국 최초의 시가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시경은 수천 년 전의 시구임에도 아직까지 전해지는 명구가 많다. 시경 중 제 1수로 가장 유명한 는 중국 애정시 중에서도 후대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시.   夏日絶句(하일절구)   -       이청조   生當作人傑     살아서는 당연 사람들 중 호걸이었고 死亦爲鬼雄     죽어서도 역시 귀신들 중 영웅이리라 至今思項羽     지금도 항우를 그리워함은 不肯過江東     그가 강동으로 후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중국의 여류시인 이청조의 작품으로 인생의 가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사람은 살아서는 사람들 중의 호걸이 되어 국가를 위해 업적을 세우고, 죽어서도 국가를 위해 몸바쳐 귀신들 중의 영웅이 되라는 애국의 격정이 절제된 시어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送杜少府之任蜀州(송두소부지임촉주)   -       왕발   城闕輔三秦     삼진이 둘러싸고 있는 장안 성궐에서 風煙望五津     바람과 안개 아득한 오진을 바라본다. 與君離別意     그대와 이별하는 이 마음 각별함은 同是宦遊人     나 또한 벼슬살이로 떠돌기 때문일 터. 海內存知己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만 있다면 天涯若比隣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으리니. 無爲在岐路     헤어지는 갈림길에서 兒女共沾巾     아녀자같이 눈물로 수건을 적시지 마세.     중국 송별시의 걸작. 시 속에 이별 당시의 슬픔이 절절히 전해진다.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만 있다면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으리니’는 지금도 쓰이는 명구.///     1989년 6월 5일, 텐안먼 광장에서 전진하는 18대의 전차 행진을 가로막는 남성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텐안먼 사건을 상징하는 장면, 나아가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남게 됩니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에 의해 19세의 왕웨이린이라고 보도했지만 정확히 그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처형설, 망명설 등이 있었으나 2017년 신원을 숨긴채 중국에서 은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텐안먼(천안문) 사건 30주년, 탱크맨은 어디에...| =================================================/// 중국 텐안먼 광장의 "탱크맨" 1989년 6월 5일, AP통신의 사진기자 제프 와이드너는 중국 비밀경찰들의 눈을 피해 텐안먼 광장이 잘 보이는 호텔 6층 객실 발코니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탱크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쇼핑백을 들고 천천히 걸어오더니 탱크를 가로막고 섰습니다. 굉음을 내며 질주하던 4대의 탱크는 그의 앞에 멈춰 섭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그 순간을 와이드너는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는 필름을 함께 있던 유학생을 통해 AP통신으로 보냈고, 일명 ‘탱크맨(Tank Man)’으로 이름 붙은 이 사진은 텐안먼 민주화 시위를 전세계에 알렸습니다. ‘탱크맨’은 지금도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하는 상징적인 단어로 쓰입니다.      2019.09.13  찰리 콜이 찍은 ‘탱크맨’ 사진. /월드프레스포토 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1989년 중국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집안군의 탱크 행렬을 가로막은 중국 남성 ‘탱크맨’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미국인 사진기자 찰리 콜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64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19년 9월 13일(현지시간) 콜이 지난 15년간 거주해온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지난주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콜은 1989년 6월5일 톈안먼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베이징의 한 호텔 발코니에서 남성의 모습을 포착했다. 사진에는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채 홀로 탱크와 맞서는 남성의 모습이 담겼다. 콜 외에 제프 와이드너 등 당시 4명의 기자가 같은 장소에서 이 시민의 모습을 찍었다. 사진은 미 시사잡지 뉴스위크를 통해 보도됐고, 탱크맨은 텐안먼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남성이 누구인지,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에서 이 이미지는 여전히 금지돼있다. 콜은 이 사진으로 1990년 세계보도사진상을 수상했다. 찰리 콜은 생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그(탱크맨)의 행동은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 순간을 정의했다고 생각한다”며 “그 이미지(사진)을 만든 것은 그이고, 나는 사진기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찰리 콜은 이 사진을 찍은 뒤 필름을 비닐봉지에 넣어 화장실 변기 물탱크 안에 숨겼다. 중국 공안이 호텔 방에 들이닥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공안은 그의 필름들을 훼손했지만 숨겨둔 필름은 AP통신 도쿄 지국으로 보내졌고, 마감시간에 맞춰 뉴스위크로 전송될 수 있었다. 콜은 1980년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프리랜서 사진기자로서 아시아의 민주주의 현장 곳곳을 취재했다. 1985년 필리핀 민주화 운동과 1987년 한국의 6월 항쟁 등을 기록했다. =======================/// 홍콩 경찰을 맨몸으로 막아서고있는 홍콩 시민 ​ 2019년 8월 25일 일요일 홍콩 시민들은 홍콩 송환법의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를 했고, 이 과정에서 홍콩 경찰은 실탄을 공중에 사격하며 시위대를 진압했는데 격해지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막으며 총을 쏘지 말아달라 말하며 경찰을 막아선, 우산을 든 중년의 남자. 이 남자를 "피스톨맨"이라 부르고 있다. ​ "피스톨맨" - 앤서니는 과거 중국의 천안문 사태 때 탱크를 막아섰던 "탱크맨"과 비교되고 있다. ​ [출처] 피스톨맨은 누구일까?|     홍콩시위서 맨몸으로 권총과 맞선 ‘피스톨맨’ 등장… ‘제2의 탱크맨’  2019.08.27. 오전 11:47  좋아요  슬퍼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beta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홍콩 경찰을 막고 있는 피스톨맨. 사진=트위터경찰이 물대포와 실탄을 이용해 시위대를 진압하는 등 격해진 홍콩 시위 현장에 천안문 사태의 ‘탱크맨’을 연상시키는 ‘피스톨맨’(pistol man)이 등장해 현지인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CNN 등 외신들은 25일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눈 경찰을 맨몸으로 막아선 중년 남성의 사진을 보도했다. 사진 속 민소매 차림의 남성은 별다른 방어나 공격수단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의 양손에는 각각 휴대전화와 비닐우산 하나가 쥐어져 있을 뿐이다. 이날 홍콩에서는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을 쫓는 등 폭력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경찰은 처음으로 실탄 사격을 하고 물대포를 동원하며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이 상황에서 시위대 앞에서 경찰의 총구와 맞선 남성은 “저들을 쏘지 마라!”고 연신 외친 것으로 전해진다. 남성의 사진이 보도를 통해 공개되자 홍콩 시민들은 “1989년 베이징 탱크맨이 2019년 홍콩 피스톨맨으로 돌아왔다”며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천안문 사태서 맨몸으로 탱크를 저지하고 있는 시민. 사진=바이두 탱크맨은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서 중국 정부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보낸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은 남성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홍콩 가수 데니스 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 홍콩 남성에게 큰 존경을 표한다”고 전했다. 그는 7월 홍콩 정부의 송환법 추진과 관련해 “홍콩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면서 유엔인권이사회에 중국의 회원국 퇴출을 요구한 바 있다. 피스톨맨을 발로 차서 진압하는 홍콩 경찰. 사진=트위터 반면, 이날 홍콩 경찰은 자신을 맨몸으로 막은 이 남성을 발로 차는 등 과도한 진압으로 비난을 받았다. 홍콩 경찰 대변인은 이러한 과잉진압 논란에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며 경찰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홍콩 시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현지 외신에 따르면 요란다 위 대변인은 “경찰은 저항에 맞서 영웅답게 행동했다”며 “그 상황에서 무력 진압은 필수였으며 합당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함나얀 /동아닷컴 기자 ========================================/// . 이 사람은 왕웨이린(王維林)이라는 가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천안문 6.4 항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악몽의 1989년 6월 3일 밤부터 6월 4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혈진압이 마무리되고, 탱크가 천안문 광장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를 하는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당연히 겁에 질려 도망쳤으나, 수십 미터 밖에서 진격해오는 59식 전차들을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양 손에는 검은 비닐봉투와 옷가지를 든 어떤 사람이 단신으로 막아냈다. 영상을 보면 저 사람이 막은 전차가 한두 대가 아니었고 가만히 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전차 조종수들이 차마 저 사람을 깔아뭉개고 갈 수 없었는지 옆으로 피해서 지나가려하자, 이번에는 전차가 피하는 방향으로 뛰어가면서 그야말로 몸을 던져 막았다. 그런가 하면 전차 위로 올라가서 조종사석에다 대고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몇몇 시민들이 달려와 데려가면서 위험한 상황이 끝난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주변에 포진해있던 사복 공안들이 위험한 상황을 막기 위해 달려와서 떼어놨다는 설도 있지만 최근 공개된 6.4 항쟁 관련 사진 중에 동료로 보이는 자신과 똑같은 흰색 셔츠를 입고있는 사람과 함께 몸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 이른바 탱크맨으로 불리는 왕웨이린은 대만으로 건너가 살아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는 중화권 언론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100% 밝혀진 바 없고 오히려 진압 직후 중국 당국에 체포되어 복역중이라거나 이미 처형당했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     1990년 미국 ABC 방송의 유명 베테랑 앵커인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가 강**과 단독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월터스가 대놓고 당시의 사진을 제시하며 왕웨이린을 언급하자 강**은 너털웃음을 짓는 등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그 남자가 어떻게 되었느냐는 월터스의 질문에 중국어와 영어를 번갈아쓰며 답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중국어로 사진 속 장면 자체에 대해서만 얘기하면서 말을 돌리다가, 갑자기 영어로 "그 사진이 증명해준다. 그는 탱크에 깔려죽지 않았다."는 답변을 한다. ​ 그러자 월터스는 좀 더 직설적으로 체포 혹은 처형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에 표정이 굳어진 강**은 중국어로 "그 사람이 체포되었는지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한다. 재차 질문을 받은 강**은 마침내 "하지만 내 생각에는...죽지 않았다.(But I think...never killed.)"라고 영어로 답변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월터스를 향해 다소 신경질적인 어조로 다시 한 번 똑같은 답변을 한다. ​ 즉, 왕웨이린에 대한 서방측의 의구심을 분명하게 부정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정부의 수반이 구태여 사망설을 부정했다는 것은 결국 해당 인물이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never라는 표현을 쓴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never는 일반적인 부정문에도 쓰이지만, 결코 혹은 절대로 등의 강조형으로도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 강**이 영어에 매우 능통한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그러나 2017년 6월 탱크맨이 중국에서 안전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 탱크맨 최근 수정 시각:  2021-06-04 23:41:24   분류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물 덩샤오핑 시대 민주운동가 1989년/사건사고 중국의 검열 생년 미상 몰년 미상 신원불명자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탱크맨(동음이의어)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 펼치기 · 접기 ]                                             별칭 탱크맨(坦克人, Tank Man) 이름 왕웨이린(王維林) 또는 장웨이민(張爲民) 국적 중국 관련 사건 천안문 6.4 항쟁 생몰년도 ? ~ ? 생존 여부 2017년 기준 생존. 1. 개요2. 상세3. 생존 여부 3.1. 장쩌민의 발언3.2. 2017년 보도 4. 용기에서 비롯된 행위5. 기타6. 갤러리   1. 개요[편집] 1989년 천안문 항쟁 직후 인민해방군 전차를 막아선 시위대 측 남성을 가리키는 말. 일명 '탱크맨'. 이 사람은 왕웨이린(王維林)이라는 가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천안문 6.4 항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오늘날도 회자되고 있다. 1998년,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20세기의 지도자들 & 혁명가들[1] 20명 중 한 사람으로 등재되었다. # 2. 상세[편집] 악몽의 6월 3일 밤부터 6월 4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혈 진압이 마무리되고, 6월 5일 탱크가 천안문 광장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를 하는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당연히 겁에 질려 도망쳤으나, 수십 미터 밖에서 진격해오는 59식 전차들을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양손에는 검은 비닐봉투와 옷가지를 든 어떤 사람이 단신으로 막아냈다. 영상을 보면 저 사람이 막은 전차가 한두 대가 아니었고, 가만히 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전차 조종수들이 차마 저 사람을 깔아뭉개고 갈 수 없었는지 옆으로 지나가려 하자, 이번에는 그 방향으로 달려가 그야말로 몸을 던져 막았다.  그런가 하면 전차 위로 올라가서 조종사석에다 대고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몇몇 시민들이 달려와 데려가면서 위험한 상황이 끝난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주변에 포진해있던 사복 공안들이 위험한 상황을 막기 위해 달려와서 떼어놨다는 설도 있지만, 최근 공개된 6.4 항쟁 관련 사진 중에 동료로 보이는 자신과 똑같은 흰색 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과 함께 몸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한편 중국 CCTV에서는 당연히 탱크맨을 맹비난하면서도, '그대로 짓밟고 갈 수도 있었지만 정부의 자비심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3. 생존 여부[편집] 이른바 탱크맨으로 불리는 왕웨이린은 대만으로 건너가 살아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는 중화권 언론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100% 밝혀진 바 없고, 오히려 진압 직후 중국 당국에 체포되어 복역 중이라거나 이미 처형당했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3.1. ***의 발언[편집] 위 영상은 1990년 미국 ABC 방송의 유명 베테랑 앵커인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가 장쩌민과 단독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월터스가 대놓고 당시의 사진을 제시하며 왕웨이린을 언급하자 장쩌민은 너털웃음을 짓는 등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그 남자가 어떻게 되었느냐는 월터스의 질문에 중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쓰며 답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중국어로 사진 속 장면 자체에 대해서만 얘기하면서 말을 돌리다가, 갑자기 영어로 "그 사진이 증명해준다. 그는 탱크에 깔려죽지 않았다."는 답변을 한다. 그러자 월터스는 좀 더 직설적으로 체포 혹은 처형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에 표정이 굳어진 장쩌민은 중국어로 "그 사람이 체포되었는지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한다. 재차 질문을 받은 장쩌민은 마침내 "하지만 내 생각에는... "확실히" 죽지 않았다.(But I think never... never killed.)"라고 영어로 답변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월터스를 향해 다소 신경질적인 어조로 다시 한 번 똑같은 답변을 한다. 즉, 왕웨이린에 대한 서방 측의 의구심을 분명하게 부정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정부의 수반이 구태여 사망설을 부정했다는 것은 결국 해당 인물이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never'라는 표현을 쓴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never는 일반적인 부정문에도 쓰이지만, '결코' 혹은 '절대로' 등의 강조형으로도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 장쩌민이 영어에 매우 능통한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3.2. 2017년 보도[편집] 결국 장쩌민이 단언한 대로, 2017년 6월 탱크맨이 중국에서 안전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 홍콩에 있는 중국 인권민주화운동정보센터 창립자인 '프랭크 루(盧四淸)'의 인터뷰에 따르면, 탱크맨은 망명하거나 감옥에 가지 않고 중국에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으며 왕웨이린이 본명도 아니고 굳이 해외에서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중국이 민주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조용히 살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정말 중국에 있다면 신변의 안전 때문에 자신이 진짜 탱크맨이라고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며, 공산당 1당독재가 끝나야 비로소 탱크맨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가 감옥에서 복역 중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 뉴시스의 보도와 달리 복역 중인 장웨이민이 탱크맨이 아니라는 주장도 존재한다.[2]# 4. 용기에서 비롯된 행위[편집] 6.4 항쟁 당시 인민해방군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고로 군인들이 별 생각 없이 탱크맨을 진짜로 밟고 지나가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3] 혹은 짓밟지 않더라도 탱크에서 나온 군인이 총으로 쏴버리고 옆으로 지나갔을 수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적 위상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국내에서는 반발이 더욱 거세져 시위 진압에 실패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탱크맨은 죽으려고 그 무서운 곳에 혼자 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전차 부대가 본인을 밀고 지나가게 하는 것이 탱크맨 본인의 의도였을 수도 있다. 게다가 컬러 사진으로 보면 길이 피로 물들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가 서있던 바로 그 길은 몇 시간 전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던 곳이었다. 같은 위치를 몇 시간 전에 같은 구도로 찍은 사진을 보면 미처 수습되지 못한 수많은 시신들과 부서진 자전거들이 널려있다. 시민들이 학살된 바로 그 자리에서 탱크맨 자신도 "날 죽여 봐라"는 마음을 가지고 죽을 각오를 하고 선 것이다. 군인들도 차마 시민을 눈앞에서 전차로 짓밟지 못할 양심[4]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전차 앞에 서는 데만에도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며, 죽음을 무릅쓴 자세가 가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땅이 울리도록 자신을 압도하며 서있는 몇십 톤짜리 살상무기를 상상해보자. 탱크라는 건 보통 무게가 아니기에 빠른 속도로 움직일때 바로 근처에 서있으면 진짜 지진이 느껴지고 넘어질 수도 있다. 그냥 서 있는 것만도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살벌했던 당시의 상황과 거대한 폭력 앞에 단신으로 서서 막아내는 그의 용기가 인상깊게 표현되어 위 사진은 퓰리처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5. 기타[편집] 천안문 6.4 항쟁 3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독일의 라이카 카메라가 자사 홍보 영상도(한글자막영상) 올렸는데, 탱크맨을 묘사한 장면이 있어 중국에서 반발하기도 했다. # 천안문 6.4 항쟁 당시 탱크맨을 촬영했던 찰리 콜 CNN 기자는 2019년 별세하였다. 향년 64세. 기사. 여러 스마트폰 제조사들 중에 화웨이의 스마트폰은 화질이 남다르다. 레고도 이 상황을 구현했다(A man has been spotted protesting in Lego city). 스타크래프트의 커스텀 중에 이를 반영한 것이 있다. 나는 베이징의 천안문을 사랑해(유즈맵)라는 이름이다. 6. 갤러리[편집] 넓은 화각의 사진.   탱크가 다가오기 전 근거리에서 찍은 것. 페이로더 왼쪽에 있다. 위 사진은 AP통신의 사진기사 제프 와이드너가 찍은 사진이다. 그는 3일에서 4일을 기점으로 무력 진압이 거세지자 기록을 남기려 창안제가 내려다 보이는 베이징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경비가 삼엄했고, 가까스로 6층 호텔방에 투숙 중이던 미국 대학생 커크 마첸을 설득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진 촬영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사용하던 니콘 F3 카메라는 2일 전 장안대로에서 취재 중 날아온 돌에 맞아 부서져서 니콘 FM2로 촬영을 진행해야 했고, 와이드너 본인도 뇌진탕에 걸려서 당일에도 두통에 시달리던 중이었다고 한다. 필름도 촬영 중 떨어져서 호주인 여행객에게서 간신히 한 롤을 빌려 촬영했고, 그래도 화각이 나오지 않자 사용하던 400mm 렌즈에 2X 컨버터를 급히 끼워 찍었다고 한다. 필름 자체도 사진 촬영용 고감도 필름이 아닌 ASA100짜리 필름이라 1/60~1/30까지 셔터 속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간신히 세 장을 찍었다고. 손떨림 보정 기능이 있는 현대적 DSLR로도 핸드헬드 상태에서 저 정도 셔터 속도를 유지하면서 800mm 장망원 렌즈로 흔들리지 않게 촬영하는 것이 매우 힘든 것을 감안하면 정말 기적적으로 나온 사진이었다. 사건 당시 CNN 스탭이 촬영한 영상. 주변 기자와 시민들의 반응을 들을 수 있는데, 전혀 예상 못한 상황에 놀라고 난 뒤에는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1] 탱크맨 이외에도 블라디미르 레닌, 호찌민, 넬슨 만델라, 윈스턴 처칠, 요한 바오로 2세등이 있다.[2] CP/IFC has no professional ability to assess the media’s report about the Tank Man, nor can we confirm if Zhang Weimin is indeed real. But the purpose of our Finding Tank Man campaign is to seek truth, which we believe is the critical basis to clear the name for the 1989 pro-democracy protests and to achieve transitional justice. To resolve the mystery of the Tank Man once and for all, CP/IFC calls all our friends to provide Mr. Zhang Weimin's information or give any clues that may help reveal the truth of the Tank Man.[3] 훗날 자칭 이슬람 국가 ISIL은 실제로 포로를 탱크로 뭉개서 처형했다.[4] 근데 이것도 확실하게 장담할 순 없다. 상부에서 시위 계속하면 죽이라고 시켜서 하는 거라 탱크사건 전에도 여러사람들을 참혹하게 죽인 것이므로, 탱크맨 역시 사실 탱크를 운전하던 군인이 그냥 죽인다 해도 이상할게 없는 상황이었다. 단지 평범한 사람이 그런 무서운 용기를 내는 걸 본적이 없을 것이고(전설에는 이런 사건들이 꽤 있지만, 20세기부터 증거가 남는 인류의 영상기록 역사가 시작되고는 이렇게 혼자 신념만으로 생명을 건 사건이 매우 적다.), 몇명만 쏴도 나머지가 도망가는 걸 많이 봐왔을테니, 당당한 모습에 탱크맨이 들고 있는 것이 자폭용 폭탄인가 생각하고 당황해서 일단 멈춘 것일 가능성도 있다. ===========================================/// 톈안먼 민주화시위 상징 '탱크맨', 아직 중국에 살아있다 2017-06-05 10:47   인쇄 톈안먼사태 28주년 웨이보 해외사용자 사진·영상 포스팅 금지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의 6·4 톈안먼(天安門) 시위사태의 상징적 인물이 된 '탱크 맨'이 여전히 중국에서 이름을 숨기고 생존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중앙통신은 당시 베이징(北京) 창안제(長安街)에서 시위진압을 위해 진입해오던 탱크 4대의 행렬을 맨몸으로 막아섰던 사진 속의 청년이 지금도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5일 보도했다. 그간 왕웨이린(王維林)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청년의 행방은 알려진 바 없었다. 당일 탱크에 깔려 숨졌다는 말도 있었고 당국에 체포돼 수감 중 사망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통신은 홍콩에 있는 중국 인권민주화운동정보센터를 인용해 이 청년이 중국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채 여전히 안전하게 생존해 있으며 왕웨이린이 그의 본명도 아니라고 전했다. 정보센터 창설자인 프랭크 루(盧四淸)는 왕웨이린이 탱크 행렬과 대치한 사진으로 자신이 해외에서 유명해진 것을 알고 있었으며 "중국이 민주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단지 평안한 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왕웨이린이 자신의 본명도 아니라면서 중국을 떠나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유명인이 되고 싶지도 않다고도 했다. 프랭크 루는 "그는 중국이 민주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단지 평안한 생활을 하고 싶고 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보센터가 지난 1999년 5월 톈안먼 시위진압의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뒤로 왕웨이린의 안전과 근황을 묻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개인이 국가의 폭력에 항거하는 이미지의 이 사진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진 중 하나로 꼽혀왔다. 프랭크 루는 "지난 수년간 각종 채널을 통해 이 청년의 소재를 파악해왔다"고 전했다. 톈안먼광장에 진입하는 탱크 행렬을 맨몸으로 막아선 청년   미국 워싱턴에 설립된 중국 민주화 단체인 '공민역량'(Citizen Power)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탱크 앞에 선 왕웨이린과 그를 밀어붙이지 않고 피해 움직였던 탱크 조종사를 두 '탱크 영웅'이라며 이들의 소재를 전 세계에서 찾는 운동을 시작한 바 있다. 이 단체는 그러면서 시...중국 국가주석에게 탱크맨 2명의 행방을 묻기로 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공원에 왕웨이린과 함께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 등 인권 공헌자 25명의 조각상 공원이 들어서기도 했다. 최근 재미 중국교포들은 이곳에서 톈안먼시위 28주년을 기념하는 추도 집회를 열었다. 톈안먼 사태 28주년이었던 전날 중국 당국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의 해외 사용자들이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것을 차단하는 등 인터넷 및 소셜미디어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전했다. 웨이보가 이날 오전 돌연 시스템 업그레이드 통지를 올리며 5일까지 일부 기능이 제한받을 것이라고 통지한 뒤로 웨이보 해외사용자들은 사진과 영상을 올리거나 댓글을 붙이고 자신의 프로필을 수정하는 것도 제한받았다. 아울러 인터넷엔 톈안먼 사태와 관련된 소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6·4'(六四) 등이 금지 검색어로 지정됐으며 민감한 정치 평론을 해왔던 학자나 블로거가 웨이보, 웨이신에 올리는 댓글이 삭제되기도 했다. 홍콩의 톈안먼시위 추모 거리행진[AP=연합뉴스] ================================================///          
9    애송시 100선 댓글:  조회:8652  추천:0  2015-02-04
[애송시 100편 - 제1편]  해- 박두진          [현대시 100편-2편]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 일러스트=권신아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꺾임이 없는 ‘둥근 곡선’의 자세가 풀의 미덕이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이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이변을 꿈꾸지 않는다. 제 몸이 무너지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세운다. 풀은 솔직한 육필이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새날이 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곤란은 어제의 곤란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만 명의 적이 와도 무서움이 없으며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자존(自尊)과 자립(自立)의 에너지가 우리의 자성(自性)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일어서고 있다는 믿음, 넓고 큰 세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믿음, 우리는 이 다짐으로 새날을 살아야 한다. 눈사태를 뚫고 산정(山頂)을 찾아가는 산악인처럼.   타계한 해에 발표된 ‘풀’은 김수영(1921~1968)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이기도 하다. 올해로 40주기를 맞은 김수영은 전위적 모더니즘으로, 4·19 혁명 이후에는 참여시(詩)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시는 사람들 가슴 속에 눕고 울고 일어서며 푸르게 살아 있다.     [애송시 100편 - 제3편]  남해 금산 -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일러스트=잠산   돌 속에 묻힌 한 여자의 사랑을 따라 한 남자가 돌 속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돌의 연인이고 돌의 사랑에 빠졌음에 틀림없다. 그 돌 속에는 불이 있고, 목마름이 있고, 소금이 있고, 무심(無心)이 있고, 산 같은 숙명이 있었을 터. 팔다리가 하나로 엉킨 그 돌의 형상을 ‘사랑의 끔찍한 포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데 왜, 한 여자는 울면서 돌에서 떠났을까? 어쩌자고 해와 달은 그 여자를 끌어주었을까?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한 남자를 남긴 채. 돌 속에 홀로 남은 그 남자는 푸른 바닷물 속에 잠기면서 부풀어간다. 물의 깊이로 헤아릴 길 없는 사랑의 부재를 채우며. 그러니 그 돌은 불타는 상상을 불러일으킬밖에. 그러니 그 돌은 매혹일 수밖에.   남해 금산, 돌의 사랑은 영원이다. 시간은 대과거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넘나들고, 공간은 물과 돌의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안(시작)도 없고 밖(끝)도 없는 그곳에서 시인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심연으로 잠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의 금산(錦山)에 가보면 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相思巖)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의 고통 속에서도 요지부동으로 서로를 마주한 채 뿌리를 박고 있는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 안다.   모든 사랑은 위험하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어긋난 사랑의 피난처이자 보루가 문득 돌이 되어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을, 어쩌면 한 번은 있을 법한 사랑의 깊은 슬픔이 저토록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남해 금산’에서 배웠다. 모든 문을 다 걸어 잠근, 남해 금산 돌의 풍경 속. 80년대 사랑법이었다.   80년대 시단에 파란을 일으킨 이성복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는, 기존의 시 문법을 파괴하는 낯선 비유와 의식의 초현실적 해체를 통해 시대적 상처를 새롭게 조명했다. ‘남해 금산’은 그러한 실험적 언어가 보다 정제된 서정의 언어로 변화하는 기점에 놓인 시다.      [애송시 100편 - 제4편]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일러스트=잠산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반 세기 동안이나 그는 우리말을 정갈하게 빚었고 우리말의 숨결을 세세하게 보살펴 고아(高雅)하게 했다. 놀랍게도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이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그의 데뷔작이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과 ‘편지’ 등에서 낭송되어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 제목도 ‘즐거운 편지’였다고 한다. 이제 이 시는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다. 만남과 이별의 회전 속도가 이처럼 빠른 시대에 이 시는 왜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왜 여전히 막막하게 하는가. 헤어져 돌아가던 옛사랑의 뒷모습을 보게 하는가.   하늘이 먹먹하게 어두워지고 주먹눈이 막 내리는 날이면 어디 먼 산골이나 바닷가 민박집에라도 가고 싶어진다. 작은 넝쿨에 말라붙는 붉은 열매 같은 눈빛을 하고서 눈이 내리는 그 시간을 살고 싶어진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설원과 설원 위를 유행(遊行)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멀리 두고 온 사람을 ‘가까스로’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시간에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을 떠올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잊혀진 듯 살 것이다. 폭설에 갇힌 순한 산짐승처럼 우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이별의 말은 나의 가슴에서 깨끗하게 씻어낼 것이다. 겨울 하늘에 뜬 달이 천강(千江)을 비추어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나의 사랑을 다시 받아 안는 날이 와도 내가 아직 저 산골짜기 깊은 산막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하는 그런 아주 짧은 후일에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애송시 100편 - 제5편]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일러스트=권신아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애송시 100편 - 제6편] 서정주 '冬天(동천)'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     지난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일러스트=잠산 겨울 밤하늘을 올려 본다. 얼음에 맨살이 달라붙듯 차갑고 이빨은 시리다. 문득 궁금해진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은 왜 한천(寒天)에 사랑의 일과 사랑의 언약과 사랑의 얼굴을 심어 두었을까. 손바닥으로 쓸어보아도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그곳에 왜 하필 사랑을 심어 두었을까. 매서운 새조차 '비끼어 가'는 사랑의 결기를 심어 두었을까.   생심(生心)에 대해 문득 생각해본다. 처음으로 마음이 생겨나는 순간을 생각해본다. 무구한 처음을, 손이 타지 않아서 때가 묻지 않은 처음을. 부패와 작파가 없는 처음을. 신성한 처음을. 미당이 한천을 염두에 둔 것은 처음의 사랑과 처음의 연민과 처음의 대비와 처음의 그 생심이 지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어 놨'다고 한 까닭도 생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는다는 것은 생육(生育)한다는 것 아닌가. 여리디 여린 것, 겨우 자리 잡은 것, 막 숨결을 얻은 것, 젖니 같은 것 이런 것이 말하자면 처음이요, 생양해야 할 것들 아닌가. 미당은 초승달이 점점 충만한 빛으로 나아가듯 처음의 사랑 또한 지속되고 원만해지기를 기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당의 시에는 생명 없는 것을 생장시키는 독특한 영기(靈氣)가 서려 있다. 그는 시 '첫사랑의 詩'에서 '초등학교 3학년때 /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 너무나 좋아해서요. /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 그러면서 산에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 국화밭에 놓아 두곤 /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돌을 주워 와서 물을 주어 길렀듯이 이 시에서도 미당은 '고은 눈썹'을 생장시키는 재기를 보여준다.   미당의 시에는 유계(幽界)가 있다. 그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며 황홀을 노래했지만 그는 우주의 생명을 수류(水流)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흘러가되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운행에서 그는 목숨 받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노래했다. 목숨 없는 것에는 목숨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당의 시의 최심(最深)은 삶 너머의 이승 이전의 유계를 돌보는 시심에 있다. 이 광대한 요량으로 그는 현대시사에수많은 활구(活句)를 낳았다.      [애송시 100편 - 제7편]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일러스트=권신아  조그만 간이역에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푹푹 내려 쌓이는 눈 때문에 막차는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합실에서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부려둔 보따리나 꾸러미에 기대 누군가는 졸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웅크린 채 쿨럭이기도 한다. 털모자에 잠바를 입은 사내는 간간이 난로에 톱밥을 던져 넣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난로 위 주전자는 그렁그렁 끓는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고,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시대적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되는 곽재구 시인의 데뷔작 '사평역에서'(1981)를 읽을 때마다 나는 울컥한다. 아름다우면서 서럽고, 힘들지만 따뜻했던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을 소중한 흑백사진처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지난 시절의 희망과 절망이 눈보라로 흩날리고 있다, 모래처럼 톱밥처럼. 그 울컥함이 소설(임철우 '사평역에서'), 드라마(TV문학관 '사평역', '길 위의 날들'), 노래(김현성 '사평역에서')로 장르를 달리하며 독자들의 공감을 얻게 했으리라.   이십대에 쓴 시답게 감각과 묘사가 풋풋하다. 깜깜한 유리창에 쌓였다 녹는 눈송이들은 흰 보라 수수꽃(라일락꽃)빛이다. 사람들이 그믐처럼 졸고 있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확 타올랐다 사그라지는 난로 속 불빛은 톱밥을 던져 넣는 청색의 손바닥과 대조를 이룬다. 간헐적으로 내뱉는 기침 소리는 '눈꽃의 화음'을 강조하고, 뿌옇게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담배 연기는 회억(回憶)처럼 떠올랐다 가라앉곤 한다.   한줌의 톱밥을 던지는 '나'는 무슨 사연을 간직한 걸까? 기다리는 막차는 올까? 모든 역들은 어디론가 흘러가기 위한 지나감이고 경계이다. 하여 모든 역들이 고향을 꿈꾸는 것이리라. 사평은 나주 근처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그 사평에 사평역이 없다니, 그토록 울컥하게 했던 사평역이 어디에도 없다니, 그래서 더욱 우리를 울컥하게 하는 것이겠지만.      [애송시 100편 - 제8편] 묵화 (墨畵) - 김 종 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일러스터=잠산 김종삼(1921~1984) 시인의 시는 짧다. 짧고 군살이 없다. 그의 시는 여백을 충분히 사용해 언어가 잔상을 갖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다. 언어를 우겨넣거나 막무가내로 끌고 다닌 흔적이 없다. 사물과 세계를 대면하되 사물과 세계의 목소리를 나직하게 들려준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물안개가 막 걷히는 새벽 못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작은 여울에 누군가가 정성스레 놓아 둔 몇 개의 징검돌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묵화(墨畵)'의 목소리도 자분자분하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막 돌아와 쌀 씻은 쌀뜨물을 먹고 있는 소를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소의 목덜미에 가 있다. 하루 종일 써레나 쟁기를 끌었을, 멍에가 얹혀 있었을 그 목덜미를 보여준다. 목덜미에는 굳은살이 박였을 것이다. 그리곤 소의 목덜미와 할머니의 손을 교차시킨다. 할머니도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소와 함께 날이 저무는 저녁을 맞고 있다. 할머니는 겹주름처럼 고랑이 나 있는 밭에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고 돌을 캐내고 종일 호미질을 했을 것이다. 시인의 시선은 소와 할머니의 부은 발잔등으로 옮아간다. 부은 발잔등을 보여줄 뿐이지만, 우리는 소와 할머니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눈여겨본 대목은 소와 할머니의 관계일 것이다. 소는 할머니를, 할머니는 소를 마주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쓰러운 대화와 유대가 오가고 있다. 낮의 소란과 밤의 정적이 합수(合水)하는 성스러운 시간에 마치 삶이란 본래 비곤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는 듯 소와 할머니는 잠시 멈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하여 이 둘의 '서로 돌봄'은 훈훈하면서도 슬프다. (우리는 얼마나 이 '쓸쓸한 돌봄'을 자주 잊고 사는가)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얼굴 가득 흐뭇하게 피어나던 웃음이 천천히 묽어지는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본래 삶이란 웃음과 슬픔으로 꿰맨 두 겹의 옷감이라는 듯.   김종삼 시인은 등산모를 곧잘 썼고 파이프 담배를 자주 물었고 술을 좋아했고 고전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에게 삶은 '방대한 / 공해 속을 걷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는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라며 인간의 원죄를, 불구의 영혼을 아프게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과 세상을 좋아하고 동경했다. 그의 시는 말이 적었지만 정직했다. 언어의 낭비가 많고 외화(外華)에 골몰하는 시대를 살수록 언어를 지극히 아껴 쓴, 먹그림같이 실박하게 살다 간 김종삼 시인이 그립다.     [애송시 100편- 제9편]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 일러스트=권신아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작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의 여름, 한 남학생이 보낸 대학학보의 주소 띠지 속에서 처음 읽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이 시를 옮겨 나르곤 했던가. 이 시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에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시집 '사랑의 감옥'(1991)에 3편의 연작시 중 1편으로 다시 실렸다.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라는 부제가 첨가되었고, 2연의 끝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와 3연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바뀌었다. 부제를 첨가하여 '여자'는 '언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뒤로 배치하여 여자나 언어 모두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스름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물푸레, 이 시 덕분에 물푸레나무와 그 잎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비해 여릿하고 포릇하고 정말 '쬐그만' 둥근 잎이었다. 천생 '여자'를 닮은, 이를테면 눈물 하면 떠오르는 글썽임이라든가, 슬픔 하면 떠오르는 비릿함이라든가. 병신 하면 떠오르는 어리숙함이라든가, 시집 하면 떠오르는 아련함이라든가….   그런 '여자'를 반복해 나열하면 할수록, 묘사하면 할수록 '여자'의 실체는 사라지고 '여자'는 신비의 옷을 입는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물푸레나무에 달린 '쬐그만' 잎처럼 하고많은 여자와 '여자'라는 보통명사를 이토록 입에 척척 달라붙도록, 혀에 휘휘 휘감기도록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니!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애송시100편-제10편]사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애송시 100편-제11편] 대설주의보 - 최 승 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 일러스트=권신아   눈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이 있는가 하면, 쌀랑쌀랑 푹푹 날리는 백석의 눈이 있다. 기침을 하자며 촉구하는 김수영의 살아있는 눈도 있고, 희다고만 할 수 없는 김춘수의 검은 눈도 있다. 괜, 찮, 타, 괜, 찮, 타, 내리는 서정주의 눈도 있고, 갑작스런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도 있다.   그리고 여기 '백색계엄령'처럼 내리는 최승호(54) 시인의 눈이 있다. 1980년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념의 시대였고 폭압의 시대였다. 그는 '상황 판단'이라는 시에서 '굵직한/ 의무의/ 간섭의/ 통제의/ 밧줄에 끌려다니는 무거운 발걸음./ 기차가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터널 속처럼 불안한 시대'라고 일컬었다. 그의 시는 선명하고 섬뜩하게 '그려진다'. '관(觀)'과 '찰(察)'을 시 정신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현실을 '보면서 드러내고', 자본주의와 도시문명을 '살피면서 사유한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골짜기에 눈은, 굵게 힘차게 그치지 않을 듯 다투어 몰려온다. 눈보라의 군단이다. 도시와 거리에는 투석이 날리고 총성이 울렸으리라. 눈은 비명과 함성을 빨아들이고 침묵을 선포했으리라. 백색의 계엄령이다. 쉴 새 없이 내림으로써 은폐하는 백색의 폭력, 어떠한 색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공포! 그 '백색의 감옥'에는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꺼칠한 굴뚝새'가 있고, 굴뚝새를 덮쳐버릴 듯 '눈보라 군단'이 몰려오고, 그 군단 뒤로는 '부리부리한 솔개'가 도사리고 있다. 분쟁과 투쟁, 공권력 투입, 계엄령으로 점철됐던 시대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골짜기에 굵은 눈발이 휘몰아칠 때 그 눈발을 향해 날아가는 굴뚝새가 있었던가. 덤벼드는 눈발에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췄던가. 꺼칠한 굴뚝새의 영혼아, 살아있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네 노랫소리를 들려다오! 다시 날 수 있다면 짧지만 따뜻한 네 날개를 펼쳐 보여다오!      [애송시 100편-제12편] 저녁눈 - 박 용 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일러스트=잠산    박용래(1925~1980)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기워 시를 써냈다. 그의 시는 가난한 것과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세필(細筆)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돌보았다.   '저녁눈'을 읽으면 허름한 말집(추녀를 사방으로 삥 두른 집)에 앉아 '탁배기'를 한 잔 하고 있는 박용래 시인이 보이는 듯하다. 말집에는 마차꾼과 지게꾼이 흥성흥성하고,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온 나귀와 노새가 급한 숨을 내쉬느라 투루루 투레질을 하고, 누군가는 구유에 내놓을 여물을 써느라 작두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는 떨어지고 추운 밤은 오는데 눈발은 삭풍에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호롱불 불빛을 받으며 떠도는 눈발을, 조랑말의 정처 없는 걸음처럼 난분분한 눈발을, 여물 써는 소리처럼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에서 '붐비다'라고 써서 목탄화처럼 평면적인 풍경에 동선(動線)을 끌어넣는가 하면, 한 곳 한 곳 짚어가던 시선을 들어 올려 퀭한 빈터로 옮김으로써 시의 공간을 일순에 넓게 확장하는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물러나 앉아 늦은 저녁 눈발 내리는 그 풍경을 하나의 '공터'로 읽었을 것이다. 마차꾼과 지게꾼의 떠도는 삶과 내일이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네들의 노심초사와 나귀와 노새의 공복(空腹)을 읽었을 것이다.   박용래 시인은 술판에서 엉엉 잘 울던 마음 여린 시인이었다. 천진하게 잘 울어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용래 시인과 절친했던 소설가 이문구는 '박용래 약전(略傳)'이라는 글에서 박용래 시인의 잦은 눈물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박용래 시인이 생전에 살았던 대전시 오류동 17번지의 15호를 찾아가면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라고 노래했던 선한 그가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다시 살고 있을까     [애송시 100편- 제13편] 빈집 - 기 형 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일러스트=권신아 기형도(1962~1989) 시인의 마지막 시다. 1989년 봄호 문예지에서 이 시를 읽었는데 일주일 후에 그의 부음을 접했다. 이제 막 개화하려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맞아야 했던 그의 죽음에 이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초라했을 것인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서 이사를 계획하고 쓰여졌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밤은 짧았고, 짧았던 밤 내내 겨울 안개처럼 창 밖을 떠돌기도 하고 촛불 아래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망설이고 망설였으리라. 그 사랑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이 되었으리라. 실은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잠그는 방향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는 소중한 것들을 가둔다는 것이고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일 것이다. 사랑의 열망이 떠나버린 '나'는 '빈집'에 다름 아니고 그 빈집이 관(棺)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삶에 대한 지독한 열망이 사랑이기에, 사랑의 상실은 죽음을 환기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나직이 되뇌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씩 불러낸 후 그것들을 떠나보낼 때, 부름의 언어로 발설되었던 그 실연(失戀)의 언어는 시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실연(實演)되었던가. 죽기 일주일 전쯤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던 그의 사인은 실제로 뇌졸중으로 추정되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오래된 서적')이라 했던 그가, 애써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건만.   그가 소설가 성석제와 듀엣으로 불렀던 팝송 'Perhaps Love'를 들은 적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맑은 고음이 그의 몫이었다.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로 시작하던 화려하면서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라는 그의 독백도.          [애송시 100편-제14편]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 정 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 일러스트=잠산 이 겨울에 사랑이 찾아온 연인들에게 이 시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우선 어렵지가 않다. 쉽고, 리듬이 있어 흐르는 물처럼 출렁출렁한다.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눈이 쌓여 무게가 생기듯이 어느 순간 이 시는 우리들의 가슴께를 누르며 묵직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경험에도 '뜻밖의 폭설'은 내린다. 폭설이 내려 우리는 압도되어 이 시 안에 고립된다.   큰 고개를 넘으면서 느닷없는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좀 도발적이다. 우리는 그 불편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못 잊을 사람하고' 폭설에 갇히고 싶다고 말한다. 폭설에 갇히는 것이 고립의 공포로 엄습해오더라도. 사실 사랑만이 실용적인 것을 모른다. 사랑은 당장의 불편을 모른다.   모든 사랑은 고립의 추억을 갖고 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연애편지가 있거든 꺼내서 다시 읽어보라. 연애편지는 고립의 기억, 고립의 문장 아닌가. 둘만의 황홀한 고립. 그러니 사랑에게 고립은 고립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한 기꺼이 고립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후일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더라도. 그것이 모든 길을 끊어 놓더라도. 사랑은 은밀하고, 은밀해서 환하다.   문정희(61) 시인은 여고 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었다. 백일장 당선시들을 모아서 여고 3학년 때 첫 시집을 냈다. 타고난 재기를 미쁘게 본 미당 서정주 시인이 시집의 서문을 썼고, '꽃숨'이라는 시집 제목도 달아주었다. 그녀는 여성의 지위와 몸을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가두려는 것들을 거부하면서 한국시사에서 '여성'을 당당하게 발언해왔다. 그러면서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사랑의 가치를 활달하고 솔직하게 표현해왔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라는 그녀의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활동이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있어보라. 사랑은 소멸하고 말 것이다."        [애송시 100편-제15편] 목마와 숙녀 -  박 인 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일러스트=권신아 시냇물 같은 목소리로 낭송했던 가수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를 옮겨 적던 소녀는 이제 중년의 '여류' 시인이 되었다. '등대로(To the lighthouse)'를 쓴 버지니아 울프는 세계대전 한가운데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템스강에 뛰어들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 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하며'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목마와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페시미즘의 미래'라는 시어가 대변하듯 6·25전쟁 이후의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를 드러내고 있다.   수려한 외모로 명동 백작, 댄디 보이라 불렸던 박인환(1926~1956) 시인은 모더니즘과 조니 워커와 럭키 스트라이크를 좋아했다. 그는 이 시를 발표하고 5개월 후 세상을 떴다. 시인 이상을 추모하며 연일 계속했던 과음이 원인이었다. 이 시도 어쩐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일필휘지로 쓴 듯하다. 목마를 타던 어린 소녀가 숙녀가 되고, 목마는 숙녀를 버리고 방울 소리만 남긴 채 사라져버리고, 소녀는 그 방울 소리를 추억하는 늙은 여류 작가가 되고…. 냉혹하게 '가고 오는' 세월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로 요약되는 서사다.   우리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생명수를 달라며 요절했던 박인환의 생애와, 시냇물처럼 흘러가버린 박인희의 목소리와, 이미 죽은 그를 향해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고 쓸 수밖에 없었던 김수영의 애증을 이야기해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인 것을, 우리의 시가 조금은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목마든 문학이든 인생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모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애송시 100편-제16편]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일러스트=잠산 물은 선하다. 물은 그 자체로 흐르는 모습이다. 흐르는 에너지이다. 물은 작은 샘에서 솟고, 뿌리에게 스미고, 하나의 의지로 뭉쳐 흐르고, 환희로 넘치고, 작별하듯 하늘로 증발하고, 우수가 되어 떨어져 내리고, 다시 신생의 생명으로 돌아와 이 세계를 흐른다.   우리가 태어나고 사귀고 웃고 슬프고 울고 아득히 사라질 때에도 물은 우리보다 먼저 이 세계에 왔으며 우리보다 먼저 사라졌으며 우리보다 먼저 다시 태어났으니, 유한한 우리에게 물은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고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물은 불과 흙과 공기와 더불어 이 세계가 온존하는 한 온존할 것이다. 해서 물은 모든 탄생과 소멸을 완성하며, 그 자체로 소생하고 순환하는 생명이다.   이 시를 읽을 때면 '선한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불이 어떤 부정과 대립이라면 물은 그마저도 끌어안는 어떤 관용. 물은 사랑. 자주 침묵하지만 한 번도 사랑을 잊은 적이 없는 마음 큰 이. 우리도 서로에게 물이 되어 서로의 목숨 속을 흐를 수 없을까.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을까. 물과 같고 대지와도 같은 침묵의 큰 사랑일 수 없을까.   강은교(62) 시인이 '사랑法'이라는 시에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중략)//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라고 노래했듯이.   강은교 시인은 1968년에 등단해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았다. 초기에 발표한 시들이 강한 허무 의식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녀를 '허무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녀의 시는 민중적인 서정에도 가 닿고, 사소하고 하찮은 생명들을 끌어안기도 하는 등 아주 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느 해엔가 그녀가 시의 낭송과 울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 질병과 상처를 치료하는 '시 치료' 공연을 하는 것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때에도 지금에도 강은교 시인은 이 세계의 순례자로서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생명수를 구해오는 바리데기의 현신이다.      [애송시 100편-제17편]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일러스트=권신아정호승(58)시인만큼 노래가 된 시편들을 많이 가진 시인도 드물다. 안치환이 부른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비롯해 28편 이상이다. 그의 시편들이 민중 혹은 대중의 감성을 일깨우는 따뜻한 서정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슬픔'으로 세상을 '포옹'하는 그의 시편들을 읽노라면 좋은 서정시 한 편이 우리를 얼마나 맑게 정화시키고 깊게 위로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그는 별의 시인이다. 그것도 새벽 별의 시인이다. 별이란 단어를 그보다 더 많이 쓴 시인이 또 있을까. 그가 바라보는 별에는 피가 묻어 있기도 하고 새들이 날기도 한다. 그의 별은 강물 위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그 또한 별에 죽음의 편지를 쓰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별들도 어둠 없이는 바라볼 수 없으며, 밤을 통과하지 않고는 새벽 별을 맞이할 수 없다.   이 시는 '하늘에는 눈이 있다'라는 단언으로 시작한다. 눈은 '보리밭길'을 덮는 눈(雪)이기도 하고 '진리의 때'를 지키는 눈(眼)이기도 할 것이다. 눈 내린 보리밭길에 밤이 왔으니 '캄캄한 겨울'이겠다. 겨울의 캄캄하고 배고픈 밤은 길기도 길겠다. '가난의 하늘'이니 더욱 그러하겠다. 진리의 때가 늦고 용서가 거짓이 될 때, 북풍이 새벽거리에 몰아치고 새벽이 다시 밤으로 이어질 때 그 하늘은 '죽음의 하늘'이겠다. 그런데 그런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얼마나 따뜻할 것인가.   우리 생의 팔할은 두려움과 가난과 거짓으로 점철된 어둠의 시간이다. 눈물과 탄식과 비명이 떨어진 자리에 피어나는 꽃, 그것이 바로 별이 아닐까.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한('슬픔을 위하여')' 법이다.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별'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밝다.   눈 내리는 보리밭길에 흰 첫 별이 뜰 때부터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에 푸른 마지막 별이 질 때까지 총총한 저 별들에 길을 물으며 캄캄한 겨울을 통과하리라. 그 별들의 반짝임과 온기야말로 우리를 신(神)에 혹은 시(詩)에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리라.        [애송시 100편-제18편]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일러스트 = 잠산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은 식민지 시대를 살다 간 혁명가요, 시인이요, 수행자였다. '님의 침묵'은 1926년에 펴낸 그의 유일한 시집 '님의 침묵'의 표제시이자 서시이다. 이 시는 님과의 이별과 이별의 슬픔을 재회(再會)로 역동적으로 바꿔놓는다. 이런 극적 구성은 불교 특유의 유심적 상상력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돌이키는 것으로써 만해는 있음과 없음, 좋음과 그렇지 못한 것,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만남과 이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아마도 만해의 시를 올연히 뛰어나게 하는 힘은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려는 마음의 편당(偏黨)과 굴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 그의 수행자적 기풍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역설의 화법이 생겨났을 것이다.   만해는 시집의 맨 앞에 놓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라고 썼다. 만해는 님을 절대적인 추앙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고, 님과 나의 관계를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해석했다. 만해는 내 안에서 님을 발견하고 완성하고자 한 실천가였다.   조선의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인데 어떻게 불 땐 방에서 편히 살겠느냐며 만해는 냉골의 거처에서 꼿꼿하게 앉아 지냈다. 해서 '저울추'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돌집(조선총독부)이 마주 보이는 쪽으로 당신의 집을 지을 수 없다며 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만해는 깨달음을 얻은 후 오도송에서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그네의 수심에 잠겼던가. 한마디 소리쳐 우주를 설파하니 눈 속의 복숭아꽃 붉게 붉게 나부낀다"라고 읊었다. '눈 속에 핀 복숭아 꽃송이'가 바로 만해의 시요, 만해의 정신이었다 할 것이다.      [애송시 100편-제19편]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일러스트=권신아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새벽 교회당 구석에서, 간절히 내뻗은 자신의 두 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군 채였다. 소리 없이 일렁이는 가파른 등에서 겨울 바다 냄새가 났다. 지난밤 내내 뚝 끊긴 생의 절벽 앞에 서 있다 온 사람의 등이었다. 인간은 기도할 줄 아는 사람과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구분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새를 품고 산다, 미지라는 한 마리 새를.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 혹은 희망을 우리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리라. 그 새를 잊지 않고 간직한 사람은 미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이다. 그러나 미래의 새를 잃어버린 사람은 '겨울 바다' 앞에 서기도 한다. 그곳은 절망의 끝 혹은 허무의 끝일 것이다.   보고 싶던 미지의 새들은 죽어 있고 매운 바닷바람에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린, 허무라는 마음의 불(心火)로 불붙은 겨울 바다. 그 죽음의 공간에서 시인은 시간의 힘을 깨닫는다.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말도,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를 맑게 깨우치고 우리를 키우는 건 세상을 항해 '끄덕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기도는 시간을 견뎌내는 데서 비롯된다.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해달라는 심혼(心魂)의 기도는, 저 차디찬 바다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인고의 물기둥'을 세우는 일이었으리라. '허무의 불'을 '인고의 물'로 버텨내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힘이고 기도의 힘이다.   김남조(80) 시인은 기도하는 시인이다. 팔순을 맞이하여 어언 60여 년의 시력(詩歷)으로 간구해온 그의 시편들은 사랑과 생명과 구원으로 충만한 기도들이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설일(雪日)')를 낭독하는, 떨리는 듯한 그러나 결기 있는. 시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애송시 100편-제20편] 삽 -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 일러스트=잠산 시인은 언어의 맨살을 만진다. 말과의 상면과 말의 '한 줄금 소나기'를 만나는 순간의 경이를 시인은 표현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세상에 대한 경이가 사라지는 일은 슬픈 일이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혀를 대보고 생각을 만드는 이 날것의 감각에서 소위 맛이 사라지면 살맛이 가실 것이니 이 세상은 얼마나 캄캄한 절망이겠는가. 이 세상을 다시 맞는 아침에는 당신도 "아, 세상이 맛있다!"라고 말해 보라. 애초에 생(生)에는 무력감이 없으므로.   시 '삽'에는 경이가 있다. 나도 '삽'을 발음해 본다. 입술이 모시조개처럼 예쁘게 모인다. 손으로 목화를 따들이는 느낌이 있다. 시인은 이 발성의 쾌감에 희열한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들어간다.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에 작달막한 삽 한 자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여준다. 언젠가 제대로 한 번 써볼 생각으로 연일 '마른 볏짚으로' 문질러 놓아 녹슬지도 않았다. (나도 나의 아버지가 들일을 마친 해질 무렵에 마른 볏짚으로 삽날을 문지르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 저녁 풍경의 숙연함이여!)   시인은 무슨 일에 이 삽을 사용하려 하는 것일까. 당신의 사랑을 얻을 때에 한 번 뜨고, 종국에 닥칠 나의 죽음을 내 스스로 거두어들일 때 한 번 뜨겠다고 한다. 생의 한 경이를 포착한 이 시가 참 좋은 이유는 시 전반부의 발성의 쾌감이 후반부의 비장함으로 진행되는 데에 있다. 비장하지만 마구 심각하지는 않다.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경이다. 경이가 없다면 기다림도 없을 것이므로. (연애에 경이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의 애인들이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당장 모두 떠나가 버리는 것처럼)   시 전문지 월간 '현대시학'의 주간을 맡고 있는 정진규(69) 시인은 산문시의 성공적인 전형을 제시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산문시는 영혼을 한순간에 탁, 부려 놓는다. 그리하여 산문시 아닌 시들보다 오히려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시 쓰는 일을 비유하길 세상을 배알하는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는 올해로 칠순을 맞았다. 그의 시는 종심(從心)이되 어긋남이 없으니 무량무변하다.     [애송시 100편-제21편]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일 것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고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밖에.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시 '행복')라 일컬었던, 왼쪽 얼굴로는 늘 울고 있던 시인, 천상병!(1930~1993) '귀천'은 1970년 발표 당시에는 '주일(主日)'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의 시는 생(生)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는다. '단순성으로 하여 더 성숙한 시'라 했던가.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무욕이니 초월이니 달관이니 관조니 하는 말로 설명하지 말자. 이슬이랑 노을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으나 '동백림 사건'(1967)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은 음주벽과 영양실조로 나타났으며 급기야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더 살다 갔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이라고 노래했던 그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 갔으니, 자유롭고 가벼운 새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애송시 100편-제22편] 푸른 곰팡이-산책시1 -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일러스트=잠산 이문재(49) 시인의 시들은 치열하고 내부가 끓고 있다. 그의 시들은 결사(結社)를 한다. 주로 도시와 문명의 급소를 공격해 단숨에 제압한다. 시 '푸른 곰팡이'가 실려 있는 두 번째 시집 '산책시편'(1993)은 시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도시적 공간의 무서운(파시스트적인) 속도에 대항해 '게으르고 어슬렁거리고 해찰하는' 8편의 산책시(散策詩) 연작을 발표한다. 그는 '아파트단지가/ 웨하스처럼, 아니 컴퓨터칩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는 곳을 느릿느릿 걷는다. 그는 '도시는 단 한 사람의 산책자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느림보는/ 가장 큰 죄인으로 몰립니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혼자 있으려 하다간/ 도시에서 당하고 말지요/ 이 도시는 산책의 거대한 묘지입니다'('마지막 느림보-산책시 3')라고 썼다.   시 '푸른 곰팡이'에서도 느림을 예찬한다. 사랑도 산책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이 산책 같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랑은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이지만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을 살면서 사랑은 무르익고 완성된다는 뜻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라. 아무리 격렬한 사랑에 휩싸인 사람일지라도 백지를 앞에 두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그러나 머뭇거림이 편지의 미덕. 지우고, 생각을 구겨버리고, 파지(破紙)를 내는 시간에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나흘을 또 기다려 보라. 나의 편지가 사랑하는 이의 안뜰과 마루와 품에 전달되기까지의 그 시간을 마른 목으로 가슴 설레며 살아보라. 푸른 강이 흘러가는 그 기다림의 거리를 살아보라. 그러는 동안 사랑은 푸른 강의 수심처럼 깊어질 것이다.   요즘 이문재 시인은 따뜻한 체온의 '손'을 주목하고 있다. 나와 당신 사이에 '내미는 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년에 발표한 시 '손은 손을 찾는다'에서 '손이 하는 일은/ 결국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오른손이 왼손을 찾아/ 가슴 앞에서 가지런해지는 까닭은/ 빈손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미안함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의 시는 도시와 문명에 단호하게 맞서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괸, 그리워하고 연민하는 사랑의 마음이 산다.      [애송시 100편-제23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여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내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일러스트=권신아 평북 정주하면 소월이 있고 백석(白石·1912~1995)이 있다. 1988년의 월북시인 해금 조치 이후 '백석 붐'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백석 시인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시에서 드물었던 북방 정서와 언어의 한 정점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소장하고 있다가 1948년에 발표했다. 해방 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제목의 뜻에 주목해볼 때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낸 고백시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소리 내어 읽노라면 그가 나직이 말을 건네는 듯 '가슴이 꽉 메여 오'고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곤 한다.   '나'라는 맨 얼굴의 시어나 '-이며' '-해서' '-인데'와 같은 나열 혹은 연결어미나 '것이었다'라는 종결어미 등의 반복이 내뿜고 있는 독특한 산문적 리듬이야말로 이 시의 백미다.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한다는 직유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직설이며,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역설 등 사무치지 않는 구절이 없다.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기까지의 의연한 회복 과정이 유장한 리듬과 어우러져 한 편의 인생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1942년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즈오는 기자와 교사생활을 작파하고 만주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히 살고 있던 그를 찾아간다. 그는 가즈오에게 '나 취했노라'라는 시를 헌정했다. 20년 후 가즈오는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파')라는 시를 그에게 헌정했다. 파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을 그를 생각한다. 쌀랑쌀랑 소리를 내며 싸락눈을 맞는다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뻐근한 갈매나무를 생각한다.      [애송시 100편-제24편]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일러스트 잠산     하마터면 이 시는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유성처럼 사라질 뻔했다. 송수권(68) 시인이 서대문 화성여관 숙소에서 이 작품을 백지에 써서 응모를 했는데, 잡지사 기자가 "원고지를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의 원고"라며 휴지통에 버렸다. 당시 편집 주간이었던 이어령씨가 휴지통에 있던 것을 발견해 1975년 '문학사상' 지면에 시인의 데뷔작으로 발표했다. 이 일화로 '휴지통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입소문'을 타 문단에서 화제가 되었고, 발표 이후에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누이'를 애타게 호명하고 있지만, 이 시는 남동생의 죽음에 바치는 비가(悲歌)였다.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비어 있는 맞은편을 망연히 바라보았을 그 시방(十方)의 비통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시인은 무엇보다 죽은 동생의 환생에 대한 강한 희원을 드러낸다.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등의 역동적인 문장은 적극적인 환생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산문(山門)은 속계(俗界)와 승계(僧界)의 경계이고, 이승과 명부(冥府)가 갈라지는 경계인 바, 산문에 기대어 생사의 유전(流轉)을 목도하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생사의 감옥에 갇혀 살아도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생을 살아 이처럼 마음을 절절하게 울리는 노래를 낳았다.   송수권 시인은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어오면서 황토와 대(竹)와 뻘의 정신에 천착해 왔다. 그는 '곡즉전(曲卽全·구부러짐으로써 온전할 수 있다)'을 으뜸으로 받든다.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추억이 있고, 들숨이 있지요. 시간이 있고, 희망이 있고, 공간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시는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애지고 막막'하게 하지만 남도 특유의 가락과 토속어의 사용으로 슬픔과 한을 훌쩍 넘어서는 진경을 보여준다.      [애송시 100편-제25편]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 일러스트=잠산   여름 여치가 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가을 정미소를 지난다. 차가운 (겨울) 구름이 떠있다. 그렇게 자전거는 골목 모퉁이를 돈다. (아가였던) 할머니가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있다. '잘 익은 사과'는 이런 일상적인 풍경을 다채로운 감각의 성찬으로 펼쳐놓고 있다.   백 마리의 여치 울음 소리는 자전거의 바퀴 도는 소리, 정미소에서 나락 빻는 소리와 겹쳐진다. 처녀 엄마가 낳은 입양 가는 아가의 뺨은 구름의 차가움으로 전이되고, 그 구름은 천년 동안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로 확장된다. 고향 마을은 금세 큰 사과로 축소되고, 마을을 달리는 자전거 바퀴는 사과를 깎는 칼날 소리를 낸다. 차르르차르르(사각사각)!   자전거 바퀴가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그때마다 고향 마을만큼이나 큰 사과가 깎인다는 발상과 그 큰 사과를 노망든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파내 잇몸으로 오물오물 잡수신다는 발상은 사뭇 상징적이면서 동화적이다. 노망든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야금야금 파먹는 사과는 시간의 신(神)이 돌리는 물레의 실타래에 비견할 만하다. 기발하면서도 유쾌하다. 아가, 처녀 엄마, 할머니로 숨가쁘게 이동하는 시간을 '천년 동안 아가인 그 사람'으로 정지시켜 놓는 것도 흥미롭다.   차르르차르르 돌던 한 세월이 발갛게 잘 익었겠다. 누군가 고향 마을에서 그 한 세월을 잘 놀다 갔겠다. 껍질이 홀라당 깎인 노르스름한 사과 속살 같았겠다. 군침 가득 돌았겠다. 그렇다면, 이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는 '밤낮을 만드시고 이 지구를 세세년년토록 운항하시는' '숫자 나라의 시간 윤전기 노동자인 우리들 앞에서/ 감독을 게을리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신', '세상의 모든 달력 공장 공장장님'을 낳은 바로 그 처녀 엄마 아니었을까.   김혜순(52) 시인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다. 그는 겹침의 시학을 즐겨 구사한다.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는가 하면 수축시키고, 감각과 시점을 겹쳐놓는가 하면 뚝 떨어뜨려 놓는다. 여성의 환상적 내면을 몸의 감각과 경험으로 그려냄으로써 일견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떠올리게 한다. 그를 최근 유행하는 '환상시'의 대모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애송시 100편-제26편] 산정 묘지 -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중략)   어둠은 존재의 처소(處所)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 일러스트=잠산 시집 '산정묘지'를 펼쳐 자서(自序)를 대신하고 있는 시 '독락당'을 읽는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아주 짧지만 고절이 있다. 찬 서릿발 속에 핀 국화 같고, 차돌처럼 향기를 돌돌 말았다 피는 매화 같다. 시집에 수록된 서른 편의 산정묘지 연작시들을 꿰는 시가 바로 '독락당'이라는 시이다.   산정묘지 연작시들은 협소한 한국시의 정신적인 영역을 광대하게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불어로 번역된 산정묘지 시편들의 성과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시인이 동양적인 정신주의의 극점을 보여주는 이 시편들을 쓰게 된 것은 한학자이면서 불교학자였던 김달진 시인과의 만남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시인은 세속적인 욕망을 덜어내고 영혼의 품위와 위엄을 지향하는 '고사(高士)의 시'를 선보인다.   '산정묘지 1'은 설산의 꼭대기에 정신의 처소를 마련해 두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눈이 다 녹아버린" 질척질척하고 비루한 세계가 아니라 얼음이 꽝꽝 언 침묵의 세계에 살겠다는 결의를 드러낸다. '정신적인 공해'의 공간을 떠나 무서운 고요가 사는 산정에 오르겠다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내야 할 정신적인 기품을 잃지 않겠다는 속뜻을 내보인다.   조정권(59) 시인은 언어감각이 예민할 뿐만 아니라 고건축과 고전음악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평소에 그를 만나면 그는 "자기를 잘 견뎌내는 일 하나만 잘해도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성자가 될 수는 없지만,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시끄럽고 험악한 곳을 버리고 고독하게 물러나 앉아 스스로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자.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인 몸을 끌고 저 산정에 오르는 성스러운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애송시 100편-제27편]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러스트=권신아 시집 한 권으로 '현대시 100년'에 길이 남은 시인들이 많다. 김소월과 한용운과 김영랑이 그렇다. 특히 유고시집 한 권으로 길이 남은 시인들도 있으니, 이상과 윤동주와 기형도 그리고 여기 이육사(1904~1944) 시인이 그렇다.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이 따라 다닌다. 지사(志士), 독립투사, 혁명가, 아나키스트, 테러리스트, 의열단 단원 등. 1928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수감되었을 때 수인번호가 264(혹은 64), 이를 '대륙의 역사'라는 뜻의 한자 '육사(陸史)'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가 어떤 항일운동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단지 17회 정도 감옥을 들락거리며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 만주·북경 등지를 부단히 왕래했다는 것, 북경 감옥에서 40세의 나이로 옥사했다는 것 정도.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것인지 안 들렸다는 것인지, 초인이 있을 거라는 것인지 초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지, 이 광야에 목놓아 부르는 사람이 초인인지 나인지, 초인을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노래를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왜 천고(千古)의 뒤에야 오는 것인지 해석 이 애매한 부분이 많은데도 이 시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이 처음 열렸던 날부터 다시 천고 후까지, 휘달리던 산맥들도 범하지 못했으며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어준 이곳! 이 신성불가침의 시공간 속에서 흰 눈과 흰 말(馬), 매화 향기와 초인의 이미지는 돌올하다. 특히 까마득한 날부터 천고 뒤로 이어지는 대서사적 시제와 감탄하고 묻고 명령하는 극적인 어조 속에서 '광야'의 고결한 미감과 강렬한 정서는 한결 고무된다. 웅대하다는 말, 장엄하다는 말이 이만큼 어울리는 시도 드물 것이다.   감옥에서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시 '꽃'에서도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라고 노래했다. 오천 년의 역사가 시작된 이 광야에서, 지금-여기의 눈보라 치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찬란한 꽃을 피울 미래의 그날을 떠올려본다. 시인이 기꺼이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렸던 이유일 것이다. 기름을 바른 단정한 머리에 늘 조용조용 말하고 행동했다는, 올곧은 시인이 올곧은 삶 속에서 일구어낸 참 올곧은 시다.      [애송시 100편-제28편]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 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한 세계 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작은 새가 되어   나뭇가지 위에 내려 앉아   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후략)             ▲ 일러스트=잠산  겨울 서정시의 대표격인 이 시는 평론가 이숭원씨의 표현대로 '찬란한 시간의 금비늘'이 반짝반짝한다.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는 섬세한 감각이나,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같은 투명한 언어감각을 보라. 시인은 다른 행인들처럼 나뭇가지에 내린 눈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묘미는 자연 현상인 눈의 적설을 생명의 큰 순환으로 읽어낸 데 있다. 눈이 쌓인 원시림이 석탄이 되고, 탄부의 손에 의해 채탄이 되고, 이층방 스토브의 꽃불이 되고, 하늘로 올라가는 기운이 되고, 다시 숲으로 내려앉는 눈이 되는 그 시간의 돌고 돎-둥근 궤적을 시인은 읽어내고 있다. 이 '돌아옴'의 발견이 이 시를 빼어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신비롭고, 얼마나 기특하고, 얼마나 황홀하겠는가.   오탁번(65) 시인은 1966년에 동화 당선, 1967년에 시 당선, 1969년에 소설 당선이라는 신춘문예 3관왕의 화려한 등단 이력을 갖고 있다(김은자 시인을 아내로 둔 시인 커플로도 유명한데, 김은자 시인도 신춘문예 2관왕 출신이다). 이 시는 그의 시 데뷔작이다.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다니지 못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졸업장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는 일화를 나는 언젠가 들었다. 대학에서 시 창작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가끔은 밤새 쓴 시를 칠판에 적어놓고 학생들로부터 터놓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나도 시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기말시험에 '학교에 자목련나무가 몇 그루인가'를 묻는 문제가 있었을 정도였다.   요즘 오탁번 시인은 고향으로 내려가 살고 있다.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으로 천둥산과 박달재 사이에 있는 조그만 마을. 폐교된 모교를 사들여 '원서헌'이라는 문학관을 차렸다. 그곳서 그는 시골 아이들에게 시를 읽히는 훈장님이다. 그곳서 그는 우리가 잊어버린 토박이 우리말을 되살려내는 시를 쓰고 있다. "산 속에 큰 항아리를 하나 묻고 그 속에 들어앉아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아기를 낳는 산모의 지독한 아픔과 숨찬 기쁨이 바로 시"라고 말하는 순은의 시인이다.      [애송시 100편-제29편]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일러스트 권신아 김종길(81) 시인의 '성탄제'를 읽는 일은 내게 유년의 흑백 사진을 보는 일처럼 애틋하고 살가운 일이다. 겨울밤, 열에 시달리며 칭얼대던 어린 내게 아버지의 코트 자락은 서늘했다. 겉옷을 벗으신 아버지는 물에 만 밥 한 숟갈 위에 찢은 김치를 씻어 올려놓으시고는 아, 아, 하셨다. 하얀 가루약도 그렇게 먹이셨다. 어머니가 방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펴는 사이 오래오래 나를 업고 계셨다.   산수유 열매는 고열에 약효가 있다. 열에 시달리는 어린것을 위해 산수유 열매를 찾아 눈 덮인 산을 헤매셨을 아버지의 발걸음은 얼마나 초조했을까. 할머니가 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하고 있으니 아버지 속은 얼마나 더 애련했을까. 흰 눈을 헤치고 따오신 산수유 열매는 혹한을 견디느라 또 얼마나 안으로 말려 있었을까. 눈 속의 붉은 산수유 열매는, 바알간 숯불과 혈액과 더불어 성탄일의 빨간 포인세티아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가 찾아 헤매셨던, 탄생과 축복과 생명과 거룩을 염원하는 빛깔이다. 생을 치유할 수 있는 약(藥)의 이미지다.   김종길 시인은 명망있는 유학자 집안의 후예다. 한학과 한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가 선택한 것은 영문학이었다. 우리나라에 영미시와 시론, 특히 이미지즘을 소개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유가적 전통과 이미지즘이 어우러진 그의 시는 명징한 이미지, 절제된 표현, 선명한 주제 의식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이를 일컬어 '점잖음의 미학'이라 했던가.   차가운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 어린것의 열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특히 산수유, 서느런, 성탄제, 숯불, 설어운 설흔 살의 'ㅅ' 음이 서늘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 서늘한 청량제 속 따스한 혈맥이 우리네 가족애일 것이다. 그 따스함은,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그의 시 '설날 아침에'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마음으로 설날 아침을 맞이하자. 매운 추위 속에서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맞이하자. 그 한가운데 가족이 있음을 기억하자     [애송시 100편-제30편]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 일러스트 잠산  이별이 이별의 사건으로만 완성된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마음이라는 게 없었을 것이다. 이별 뒤에 오는 축축한 망각의 시간이 훨씬 고통스럽다. 서서히 잊어가며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이별 이전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을 아울러 우리는 이별이라는 사건의 전모(全貌)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잊는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생명 없는 사물처럼 안색 없이 돌아서기만 하면 될 것이다. 생명 없는 사물의 안색으로 헤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을 겪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큰 사랑은 사랑이 소멸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 꽃 이후의 꽃다발 혹은 열매 이후의 열매처럼 쇠잔하게 말라가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어떤 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는가.   무안의 회산 백련지를 찾아가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연꽃이 만개한 그 시간을 찾아가겠지만. 시인은 연못이 폐선처럼 가라앉는 시간에 거기를 찾아간 모양이다. 흰 연꽃도, 푸른 손바닥 같은 연잎도, 따뜻한 한 공기의 밥 같은 연밥도 없는 시간. 시인은 뒤늦게 그 연못을 찾아간 모양이다. 마치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겪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 사람처럼. 그 연못에서 시인은 연밥과 연잎과 연꽃의 시간을 다시 살려낸다. 우리의 습관인 순차적인 짐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의 말대로 나희덕(43) 시인은 '울음의 감별사'이다. 그녀는 한 산문에서 마른 석류를 들여다본 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붉은 석류가 마르면서 바람 빠진 공처럼 물렁물렁해지고 거기서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삶이란 완벽한 진공포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했다"라고 적었다. 세상의 통증 하나하나와 만날 때 투덜대고, 서운해하며 토라지고,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그녀의 시편들은 시원시원하게 정직해서 비옥하다. 그녀는 복숭아나무 같은 시인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을 펼쳐놓는 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가 그토록 눈이 부신 나무임을 처음 알게 해준, 복숭아나무와 친족인 시인.      [애송시 100편-제31편]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일러스트 권신아  '그대'는 어떻게 '당신'이 되는가. 허수경(44) 시인은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 와 저를 부빌 때"라고 한다. '사내'가 아름다울 때, 그 아름다움에 기댈 수 있을 때 '당신'이 되기도 한다. 부빈다는 것, 기댄다는 것, 그것은 다정(多情)이고 병(病)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병자처럼 당신을 묻은 마음의 무덤에 벌초하러 간다. 사실은 슬픔으로 이어진 '살아옴의 상처'와,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한 병의 맨 술을 마시는 중이리라. 백수광부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훌쩍 건너가 버린 당신! 당신이 먼저 당도해버린 그곳은 나 또한 혼자서 가야 할 먼 집이다. 그러니 남겨진 나는 참혹할밖에.   참혹은 '당신'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총체적 참혹이다. 사랑을 떠나 보낸 실연의 참혹, 아버지를 여읜 망부의 참혹, 신념을 잃은 한 시대의 참혹.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고 무를 수도 없는, 죄다 마음에 묻어야 하는 당신들이다. 그런 당신을 웃으면서 울면서 혹은 취해서 부르는 이 시의 언어는 언어 이전이거나 언어 이후다. 단속적인 말줄임표와 쉼표,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킥킥'이라는 의성어에는, 참혹인 줄 알면서도 참혹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자의 내면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나와 당신, 사랑의 마음과 마음의 무덤, 환후와 치병이 '각각 따로'이기에, 당신과 함께했던 세월과 사랑과 상처와 그 상처의 몸이 모두 적요이고 울음이다. 그런 울음을 짊어지고 가는 시인, 세간의 혼몽을 잘 먹고 잘 노래하는 시인이야말로 자신의 불우함을 다해 노래하는 시인의 지복(至福)일 터, 이 시는 그 지복의 한 자락을 걸쳐 입고 있다.   허수경 시인은 울음 같은, 비명 같은, 취생몽사 같은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직후 독일로 휘리릭 날아가버렸다. 1990년대 초반이었고, 시인의 생부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다. 동안(童顔)에, 대책 없는 맨몸이었다. 고고학을 공부한다 했다. 잘살고 있다고 했다. 독일로 날아간 지 벌써 16년째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은 언제 불러도 참 좋다, 그리고 참 참혹하다, 킥킥 당신….      [애송시 100편-제32편] 소 -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 일러스트 잠산   쟁기와 써레와 달구지를 끌던 소, 두꺼운 혀로 억센 풀을 감아 뜯던 소, 송아지를 낳아 대학 공부를 시켜주던 소, 추운 날 아버지가 덕석을 입혀주던 소, 등을 긁어주면 한없이 유순해지던 소, 코뚜레가 꿰어 있는 소, 우시장에 팔려가는 아침에는 주먹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소….   소에게 들일이 점점 없어지면서 소의 쓸모는 이제 비육에만 있다지만 소만큼 오랫동안 농가를 살려온 짐승도 드물다. 일하러 갈 땐 강한 무릎으로 불끈 일어서던 소. 뿔이 솟아 있으나 뿔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는 소. 소의 느린 걸음걸이와 큰 눈과 우직함을 생각해본다.   김기택(51) 시인은 소에 관한 시를 네 편 썼다. 꾀는 파리를 쫓아내지도 못하는 무력한 소, 무게를 늘리기 위해 강제로 물을 먹인 소, 도살되는 순간 바람이 빠져 나가서 빈 쇠가죽 부대가 되어버린 소에 대해 썼다. 시집 '소'의 표제작인 이 시는 소에 관한 그의 네 번째 시이다. 전작들이 소의 비극적인 몸에 관한 시라면 이 시는 소라는 종(種)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인의 슬픈 시선이 있다. 한마디의 말도 사용할 줄 모르고 다만 울음이 유일한 언어인 소. 오직 끔벅거리고만 있는 소의 눈. 우리가 최초에는 가졌을 혹은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내내 바라보았을 그 '순하고 동그란 감옥'인 눈. 당신에게 내뱉으면 눈물이 될 것 같아 속에 가두어 두고 수천만 년 동안 머뭇거린 나의 말….   김기택 시인의 시는 무섭도록 정밀한 관찰과 투시를 자랑한다. 그는 대상을 냉정하고도 빠끔히 묘사한다. 그는 하등동물의 도태된 본능을 그려내거나 사람의 망가진, 불구의 육체를 고집스럽게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생명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생명의 '원시림'을 복원시켜 놓는다.   시 '신생아 2'에서 '아기를 안았던 팔에서/ 아직도 아기 냄새가 난다/ 아가미들이 숨쉬던 바닷물 냄새/ 두 손 가득 양수 냄새가 난다// 하루종일 그 비린내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머리를 씻는다/ 내 머리는 자궁이 된다/ 아기가 들어와 종일 헤엄치며 논다'라고 그는 노래했다. 이런 시를 한껏 들이쉬면 어지럽고 시끄럽던 머리가 맑아진다. 선홍빛 아가미가 어느새 새로 생겨난다.         [애송시 100편-제33편] 저녁의 염전 - 김경주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 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 일러스트 권신아   바닷물을 끌어다가 삼일 정도 가둬두면 바닥에 소금 알갱이가 뭉치기 시작한다. 가만히 고인 바닷물이 제 안의 소금을 응결시키고 있는 저녁의 염전을 볼 때면 마음이 쓸쓸해지곤 한다. 스러지는 햇빛, 슬어가는 어둠, 남루한 생의 얼룩, 비늘 같은 욕망의 흔적, 서늘한 죽음의 그늘… 흩어져 있던 그리 어두컴컴한 것들이 가라앉곤 했던가.   흰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상갓집 밤불처럼 노을이 내리는 염전. 그곳에서 시인은 소금의 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와 같은 그 '희디흰 물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소금의 빛, 그 '몇 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을 본다. 소금의 근원인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은 모든 생명의 시원이자 종말이다. 그러니까 존재의 끝과 시작을 듣고 보는 셈이다. 우리의 내장이 이리 어둡고 이리 쓴 이유일 것이다. 물의 내장이 그러하고, 생의 내장이 그러한 것처럼.   노을 속으로 바닷물이 건너는 염전에 서면, 죽음과 소멸을 견뎌내는 법을 배우는 것만 같다. 실리고, 스미고, 비치고, 번지고, 가라앉고, 퍼지는 술어의 움직임 속에서 하얗게 증발하는 허공 속 흰 눈같이. 아니 깊은 바다 속 소리의 영혼같이, 아니 아니 온갖 사랑이 밀려왔다 밀려간 사람 속 쓰디쓴 내장같이. "나 없는 변방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지금 내 영혼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부재중')라는 그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김경주(32) 시인은 젊다. 2003년에 등단하여 2007년에 첫 시집을 냈으니 시력 또한 젊다. 한 시인은 "이 무시무시한 시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스무 살 이후, 이 대학 저 대학에서 이 공부 저 공부 하며 밥벌이를 위해 대필작가, 학원강사, 광고일, '야설' 작가까지 했다는 기이한 이력이 인상적이었던가. 수려한 외모에 여행, 사진, 에세이, 영화, 연극을 넘나드는 전방위적 재능이 또 신인류(!)적이었던가.      [애송시 100편-제34편] 어떤 적막 -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 일러스트 장산   들꽃을 따서 엮은 둥근 꽃팔찌. 그 반짝이는 꽃팔찌를 말없이 만들었을 당신의 낮과 당신의 손. 가는 손목에 차고 다니다 탁자에 벗어놓은 당신의 꽃팔찌. 들꽃 같은 시간의 꽃팔찌. 쓸쓸함과 적막이라는 삶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꽃팔찌.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쓸쓸함과 적막함. 당신은 없고 이제 나의 팔목에 차 본 둥근 꽃팔찌. 오, 들꽃처럼, 들꽃으로 엮은 꽃팔찌처럼 온기와 생기(生氣)의 일가를 이루려 했던 당신의 마음.   이 시처럼 정현종(69) 시인은 작품을 통해 삶의 생기를 발견해내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전후의 한국 시단에 팽배해 있던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경향을 내내 보여주었다. 그는 사물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고, 만물과의 우주적인 교감을 노래했다. 그는 탄력 있는 생각의 샘을 소유한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은유적이고 율동적인데, "가벼움, 경묘(輕妙)함이 나의 시론의 하나"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가볍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 자유로운 정신은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축복일 터. 해서 정현종 시인은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시인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단 두 줄로 짧게 쓴 시 '섬'은 많은 독자들이 여전히 사랑하는 시이며, 그가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네루다와 로르카, 옥타비오 파스 등 외국 시인들의 시집과 시론서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어둠 속에서도 샛별처럼 빛나야 하는 것. 우리의 영혼은 바닥에 떨어져도 다시 튀어오르는 공처럼 생동해야 하는 것. 시인은 한 대담에서 "이 세상이 내 앞에 처음으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라. 그렇게 살라"고 당부한다. 오늘은 그의 시 '꽃시간'을 함께 읽어보자. 당신에게도 오늘이 꽃시간이기를, 안팎이 둥근 꽃팔찌의 시간이기를. "시간의 물결을 보아라./ 아침이다./ 내일 아침이다./ 오늘밤에/ 내일 아침을 마중 나가는/ 나의 물결은/ 푸르기도 하여, 오/ 그 파동으로/ 모든 날빛을 물들이니/ 마음이여/ 동트는 그곳이여."      [애송시 100편-제35편] 그릇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일러스트 권신아   시력 44년을 맞는 오세영(65) 시인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 박사이자 교수로 시작과 평론과 시학을 병행해 왔다. 지금까지 17권의 시집으로 출간된 그의 시들은 물질과 정신, 문명과 자연, 철학적 지성과 감성적 정서가 상응하는 '잘 빚어진' 서정시를 견지하고 있다. 이를 '전통의 토대 위에 형성된 철학화된 서정시' 혹은 '모순의 시학'이라 했던가.   일찍이 노자는 말했다. 도는 빈 그릇과 같다고. 얼마든지 퍼내서 사용할 수 있고, 언제나 넘치는 일이 없고, 깊고 멀어서 천지 만물의 근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릇은 하나인데 그 하나로 인해 안과 밖이 나뉘고, 그릇에게는 밖인데 그 밖이 안을 품고 있고, 비어 있음으로 다른 것을 채운다. 그릇에 대한 시인의 통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시인은 '절제와 균형'을 긴장된 힘으로 유지하고 있던 그릇의 '깨짐'에 주목한다.   깨진다는 것은 긴장하고 날카로워진다는 것이다. 모와 날을 세운다는 것이다. 겨냥하고 노린다는 것이다. 때로 상처를 내고 피를 부르기도 한다. 그릇은 비어 있음으로 충만한 둥금의 세계지만, 언제나 깨질 위기에 처해 있고 깨졌을 때 이면을 드러낸다.   그러한 파괴는 이전을 벗음으로써 이후를 여는 파탈(擺脫)이 된다. 스스로뿐 아니라 타자의 파탈을 이끌기도 한다. 스스로뿐 아니라 타자를 상처냄으로써 상처 깊숙한 곳에서 혼(魂)의 성숙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므로 깨진 그릇이야말로 끝이면서 시작이다. 시작의 '눈뜸'은 바로 끝의 '깨짐'과 한 몸을 이룬다. 때문에 시인에게 '깨진다는 것'은 갇히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공간을 뛰쳐나온 존재의 환희다. 빈 공간이며 허공이고 무(無)다. "깨지는 그릇./ 자리에서 밀린 그릇은/ 차라리 깨진다./ 깨짐으로써 본분을 지키는/ 살아 있는 흙,/ 살아 있다는 것은/ 스스로 깨진다는 것이다"('살아 있는 흙 -그릇14').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그릇', 깨져서 새롭게 완성되는 '깨진 그릇'이야말로 오세영 시인의 가장 개성적인 개인 상징이라 할 만하다.      [애송시 100편-제36편]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 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누이동생               ▲ 일러스트 잠산   임화(1908~1953)는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문학운동을 표방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핵심 멤버로 카프의 서기장을 지낸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임화는 모던 보이였다. 영화 '유랑'과 '혼가'에서 주연을 맞기도 해 '조선의 발렌티노'로 불리었다. 그는 계급주의 문학의 선봉에 서서 카프를 이끌었지만, 막상 1935년에는 카프 해산계를 직접 내야 했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 종로 한청빌딩에 조선문학건설본부라는 간판을 내걸어 좌익 계열 문인들을 규합했다. 그 후 박헌영을 따라 월북했으나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 시는 사건적이고 소설적인 데서 시의 소재를 찾았고, 소박하고 '된 그대로의 말'을 사용했고, 노동자들의 낭독에 편한 리듬을 씀으로써 카프문학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단편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사(製絲) 공장 여직공이었다가 이제는 백 장의 봉투를 붙이면 일전을 버는 일을 하는 화자가 오빠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글 형식이다.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봐서 오빠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로에 '오빠' 혹은 '혁명가의 정신'을 빗대어서, 역경―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지는―이 지금 닥쳐왔지만 굴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뜻을 밝혀 놓았다.   임화는 올해로 김기림, 김유정, 최재서, 백철과 함께 탄생 100돌을 맞았다. 임화는 1936년에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라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20'에서 '임화'라는 시를 통해 '아직껏 한국문학사에는 버려둔 무덤이 있다/ 마른 쑥대머리 무덤/ 그 무덤 벙어리 풀려 열리는 날/ 그 무덤 속 해골/ 뚜벅 걸어나오는 날/ 임화는 오리라// 아름다운 얼굴 다시 오리라 부신 햇살 뿜어 오리라'라고 써 왕양(汪洋)한 기상의 소유자였던 그를 추모했다.      [애송시 100편-제37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주(註) : 문의(文義)-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 일러스트 권신아  중학생 때 길에서 주운 한하운 시집을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시인.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인. 출가와 환속, 숱한 기행, 폐결핵, 자살시도,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한 반독재 민주화운동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시인. 시, 소설, 평론, 평전, 번역, 수필 등 150여 권에 이르는 신화적 글쓰기로 유명한 시인. '젊은 시인이여 술을 마셔라'라고 일갈하는 말술의 시인. 격정적인 시낭송이 일품인 시인. 낭만적인 허무의식에서, 역사와 민중에 대한 첨예한 현실인식으로, 그리고 선적(禪的) 초월의식으로 시적 변모를 거듭해온 시인. 올해로 등단 반세기를 맞이하는 시인. 여러 의미로 고은(75) 시인은 '큰' 시인임에 분명하다.   이 시는 신동문 시인의 모친상을 조문하러 문의에 갔다가 쓴 시라고 알려져 있다. '문(文)'과 '의(義)'의 마을, 문사(文士) 혹은 지사(志士)들이 꿈꾸었을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명이다(실제의 문의마을은 80년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으며 그 일부가 문의문화재단지에 복원되었다). 문의마을에 눈은 만났다가 갈라지기를 거듭하는 삶과 죽음, 산과 들, 마을과 길의 경계를 덮으며 내린다. 경계를 덮으며 내리는 눈은 온 세상을 낮게 그리고 가깝게 만들고, 적막하게 그리고 서로를 껴안아주고 받아줄 듯 내린다. 시인에게 그 눈은 죽음처럼 내리는 것이다. 우리 삶 속의 죽음처럼.   그의 다른 시 "싸락눈이 내려서/ 돌아다보면 여기저기 저승"('작은 노래'),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눈길')라는 시에서도 눈은 '대지(大地)의 고백(告白)'이나 '위대한 적막(寂寞)'처럼 내린다. 한 평자는 그러한 눈을 '아름다운 허무'라고도 했다. 그러나 눈은 금세 내리고 금세 녹아버리듯, 우리가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깨닫기란 높고 먼 일이다. 상여(喪輿)의 길처럼, 마을에서 산에 이르는 길은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겨울 문의에 가서 시인이 본 것은 그 길이 '가까스로 만난'다는 것이고,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덮으며, 가깝게 낮게 내리는 눈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으리라.      [애송시 100편-제38편]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일러스트=잠산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생(生)과 견주어 보아도// 시(詩)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詩')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의 돈을 쥔다. 끙끙대고 밤을 새우며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46)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시(詩)'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애송시 100편-제38편]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 일러스트=권신아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먹었느냐고 묻지 말라/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라"(시 '나를 만나거든')던 시인 이용악(1914~1971)! 그는 한반도의 최북단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을 건너 할아버지는 소금을 밀수입했고 친척들은 그 강을 건너 아라사(러시아) 연해주 등지로 이민을 갔다. 그 두만강을 건너 밀무역 행상 중 아버지는 객사하였으며, 홀로 된 어머니는 국숫집을 하며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시인 또한 서울에서 동경에서 품팔이 노동을 하며 고학했다. 이야기성과 체험의 구체성이 두드러진 그의 시들을 읽는 일은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개인사, 가족사, 그리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북간도 어느 술막에서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가시내가 만났다. 사내는 언 발로 눈보라를 뚫고 두만강을 건너왔으며 날이 밝으면 다시 흔적도 없이 떠나야 한다. 가시내는 석 달 전에 북으로 달리는 '불술기(기차)' 속에서 치마를 뒤집어쓴 채 이틀을 울며 두만강을 건너 이곳으로 팔려왔다. 그런 두 남녀가 국경 너머에서 만나 겨울밤 내 지나온 내력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주고받고 있다.   그 밤 내 사내가 '가시내야'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것도 함경도 사내가 '전라도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 전라도 가시내는 한없이 차고 한없이 차진 느낌이다. 고향을 떠나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고 울었던 가시내, 지금은 남실남실 술을 치는 가시내. 때로 싸늘한 웃음을 보조개를 소리 없이 새기는 가시내, 까무스레한 얼굴에 눈이 바다처럼 푸른 가시내, 간간이 전라도 사투리가 섞이는 가시내…. 이 함경도 사내처럼 나는, 그 전라도 가시내를 만난 것만 같다. 전라도 개펄의 바지락 조개 같고 세발낙지 같고 때로 꿈꿈한 홍어 같기도 했으리라.   그 밤 내내 함경도 사내가 피워 올리는 북쪽 눈포래 냄새와, 전라도 가시내가 피워 올리는 남쪽 바다 냄새에 북간도 술막이 흥성했겠다. 그 술막의 술독 바닥났겠다. 눈에 선한, '흉참한' 시대를 살았던 그 전라도 가시내. "너의 노래가 어부의 자장가처럼 애조롭다/너는 어느 흉작촌(凶作村)이 보낸 어린 희생자냐"(제비 같은 소녀야-강 건너 주막에서)!      [애송시 100편-제40편] 박꽃 -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 일러스트 잠산   꽃의 개화를 본 적이 있으신지. 그 잎잎의 열어젖힘을 본 적이 있으신지.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일을 씨앗이 움트는 일이라고 했다지만, 꽃의 '열린 앉음새'라 불러도 좋을 꽃의 개화는 사람을 압도한다. 대개 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핀다.   천천히 진행되는 개화 파노라마를 관심있게 시종 지켜볼 만큼 여유롭고 섬세한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도 많지 않겠지만.   이 시에서 사람을 '벌떼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한 부분은 압권이다. 정신없이 분주하고 시끌시끌 작당(作黨)하여 몰려다니며 입으로 바늘 같은 독설을 내뱉는 세간의 사람들을 잉잉거리는 벌떼 무리에 비유했다. 인간의 시간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소란이 뚝 그쳤을 때 자연의 시간은 도래한다. 그리고 오, 하얀 박꽃은 피어난다. 물소리는 물소리로 들린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들린다.   자연의 시간에는 살기(殺氣)가 없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세계를 맑게 회복시킨다. 씻어낸다. 시 '무인도'에서 "인간을 만나고 온 바다,/ 물거품 버릴 데를 찾아 무인도(無人島)로 가고 있다"라고 했을 때의 무인도처럼. 하산(下山)한 당신도 '죄(罪) 짓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자연의 시간에 살고 싶지 않으신지.   이 시는 '산(山)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신대철(63) 시인의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에 실려 있다. 신대철 시인은 1977년 첫 시집을 출간하고 23년간 절필을 했다. 2000년 시작 활동을 재개한 후 근년에는 알래스카, 시베리아 평원, 바이칼호, 몽골, 두만강 등 원시적이고 광활한 자연에 대한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곳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의 이산의 역사와 고통을 부각시키면서. 신대철 시인은 북파 공작원 부대의 학군장교로 군복무를 했고, 그 당시의 기억을 토대로 전쟁과 남북 분단의 아픈 현대사를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충청도 청양의 깊은 산에서 화전민으로 살았던 그만의 체험은 붉은 혈액이 되어 신대철 시의 몸을 움직인다. 그의 시는 큰 산이요 큰 숲이다. 더 깊숙이 평화롭고, 깨금이 떨어지고, 아그배가 떨어지는 그런 곳. 당신도 가서 살고 싶지 않으신지.       [애송시 100편-제41편]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 박상순       첫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의 내가   열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번째는 나   열번째는 전화기             ▲ 일러스트=권신아   말문이 트인 아이는 어느 날 선언한다. "엄마, 오늘부터 엄마는 아지, 아빠는 끼리, 언니는 콩콩이, 나는 밍밍이야, 이제 그렇게 불러야 돼, 꼭." 또 어느 날은 이렇게 선언한다. "오늘부터 식탁은 구름, 의자는 나무, 밥은 흙, 반찬은 소라라고 해야 돼, 알았지?" 난감, 황당 그 자체일 때가 많은 박상순(46) 시인의 시는 이런 네 살배기 놀이의 사유로 들여다보았을 때 쉽게 이해되곤 한다. 그러니 주의하시라! 그의 시를 향해,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묻는 순간 당신은 헛방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니.   'A는 B'라는 반복으로 이루어진 시다. A와 B의 관계는 무연하고 또 우연하다. 인과관계가 없는 '관계 맺기' 혹은 '이름 바꾸기' 놀이다. 그러니 왜 첫 번째가 나이고 6이 나무이고 7이 돌고래인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독자들도 A에 혹은 B에 마음껏 다른 단어를 넣어 읽어도 무방하다. 또한, 이 시는 앞에는 숫자가, 뒤에는 낱말이 새겨진 아이들의 카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6이라 쓰인 카드의 뒷면에는 나무라고 씌어 있고, 7이라 쓰인 카드의 뒷면에는 돌고래라고 씌어 있다. 십진법에 따르면 세상 혹은 세상의 모든 숫자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환원된다. 현실과 언어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숫자와 낱말의 관계도 무연하고 우연한 약속에 불과하다면, 세상의 모든 관계도 그러하다는 것일까?   이 시의 핵심은, '내'가 이 순서와 관계를 (외우듯) 반복하는 그 리듬에 있다. '자, 아무 생각 말고 따라 해 봐'라는 식의 폭력적인 우리의 교육 현실 혹은 성장 과정을 암시하는 것일까?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내지는 언어(혹은 제도)의 감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일까? 아니면 유년의 로망이 담긴 단어의 나열이라는 점에서 상실한 본향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아무것이면서 아무것이 아니기도 할 것이다. 언뜻 보면 천진난만한데 읽다 보면 슬쩍 공포스러워지는 까닭들이다.   박상순 시인은 회화를 전공한 미술학도다. 유능한 북(표지)디자이너이자 편집자이며 출판인이기도 하다. '무서운 아이들'의 유희적 상상력, 신경증적 반복, 파격적 시 형식, 의미의 비약적 해체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시에 대해 다 알려고 하지 말자. 다 알려고 하면 박상순 시는 없다. 박상순보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 누구도 박상순처럼 시를 쓰지는 못한다. 그게 중요하다.      [애송시 100편-제42편]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일러스트=잠산 황지우(56) 시인의 시 '손을 씻는다'를 함께 읽는다.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라고 쓴 시. 한 점 오점 없이 살 수는 없다. 저질러가면서 우리는 산다. 좌충우돌하면서 난동을 부리면서.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시대가 진화해가는 것은 우리가 내부적으로 가진 자기 반성과 좀 더 나아지려는 희망의 추구 같은 것 때문이다.   이 시는 솔직하다. 나무는 꼭 나무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헐벗고 무방비이고, 때로는 벌 받고, 긴가민가 하는 사람으로 읽어도 좋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라고 중얼중얼할 줄은 아는 사람이다. 아주 숙맥이거나 속물적이지는 않아서 현재의 환멸을 볼 줄은 아는, 앙가슴이 뛰는 그런 사람. 바깥 세상이 영하인지 영상인지 구별할 줄 알아 드디어 버틸 줄도 거부할 줄도 알게 된 사람. 마침내 싹도 잎도 틔우면서 불쑥 기립하여 봄의 나무가 된 사람. 자력의 운동성을 가진, 스스로를 혁명하는 사람. 자기 몸을 쳐서 바다를 건너가는 새 같은 사람. 의지의 사람… 우리는 이런 봄나무를 기다리는 것 아닌가.   황지우 시인은 1980년대를 날카로운 풍자로 노래했다. 그는 1980년대의 독재와 살해와 검열에 맞선 '시의 시국사범'이었다. 한 대담에서 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시대가 우리를 건드렸다"고 표현했는데, 그의 시는 권력의 중증(重症)을 처절하게 해체하려한 양심이었다. 설령 그가 시 '뼈아픈 후회'에서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라고 써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있지만, 이 혹독한 자기 검열의 고백이 황지우 시의 미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시대와의 불화와 선적(禪的)인 기개를 넘나드는 그의 시는 한국시사에서 푸릇푸릇한 '방풍(防風)의 대밭'이다.      [애송시 100편-제43편] 쉬 -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2006〉)       ▲ 일러스트=권신아   해방둥이 문인수(62) 시인은 마흔이 넘어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하지만 시적 성취는 어느 시인보다 높아 환갑 지나 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시는 정진규 시인의 부친상에 문상을 갔다가 선친에 대한 회고담을 듣고 쓰인 시인데, 바야흐로 문인수 시인의 대표시가 되었다. 문상을 다녀와 순식간에 쓰였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막힘이 없이 활달하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고 있다. 정신은 아직 초롱한 아버지가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떠나버린 스스로의 몸에 난감해 하실까봐 아들이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겄다아"며 농 반 어리광 반을 부리고 있다. 상상만으로도 그 모습은 흐뭇하고 뭉클하다. 이 '쉬'는 단음절인데 그 뜻은 다의적이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일차적으로는 오줌을 누시라는 말이겠고, 그것도 쉬이(쉽게) 누시라는 말이겠고, 아버지가 힘겹게 오줌을 누시는 중이니 우주로 하여금 조용히 하라는 말이겠다. 아버지를 향해, 우주를 향해 그리고 신을 향해 내는 울력의 소리이자 당부의 소리이고 주술의 소리일 것이다.   오줌발을 '길고 긴 뜨신 끈'으로 비유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계산해 보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이 평생 눈 오줌발을 잇고 잇는다면 지구 한 바퀴쯤은 돌 수 있지 않을까. 그 길고 뜨신 오줌발이야말로 한 생명의 끈이고 한 욕망의 끈이다. 그 '길고 긴 뜨신 끈'을 늙은 아들은 안타깝게 땅에 붙들어 매려 하고 더 늙으신 아버지는 이제 힘겨워 땅으로부터마저 풀려 한다. 아들은 온몸에 사무쳐 '몸 갚아드리듯' 아버지를 안고, 안긴 아버지는 온몸을 더 작게 더 가볍게 움츠리려 애쓴다. 안기고 안은 늙은 두 부자의 대조적인 내면이 시를 더욱 깊게 한다.   마지막 행의 '쉬!'는 첫 행의 '상가(喪家)'를 환기시킨다. 이제 아들의 쉬- 소리도, 툭 툭 끊기던 아버지의 오줌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길고 긴 뜨신 오줌발'도 쉬!, 이렇게 조용히 끊기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 '시가 뭘까' 라는 고민을 할 때 이런 시는 쉬운 답을 주기도 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한순간에 집약시키는 것, 그 순간에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통찰이 녹아 있는 것이라는. 이 시가 그러하지 않는가.        [애송시 100편-제44편]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었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는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서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 일러스트=잠산 흔하게도 인생은 여행에 비유된다. 우리는 흘러가면서 만난다. 사람과 붐비는 시장과 웃음과 꽃밭과 폭풍의 바다와 벼랑과 사막을 만난다. 그러므로 삶에는 여독이 있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내 여행의 종착지를 생각한다.   이 시는 우리의 마음을 적적한 곳으로 데려간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로 가서 살자고 한다. 종일을 살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개옻 그늘과 늦가을만이 살고 있는 곳. 세상의 쓸쓸함을 다 살아본 듯 벌써 무욕을 알고, 골짜기보다 더 깊은 눈으로 속리(俗離)한 우리를 맞아줄 여인이 살고 있는 곳. 그러나 그런 곳이 있을까. 잇속이나 명리나 부귀 같은 것은 손을 털 듯 탁, 탁 털어버린 곳. 더 움켜쥐려는 근욕(根欲)이 사라져 알몸의 자아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곳. 퇴폐도 맑게 씻기어서 별처럼 빛나는 곳. 삶을 탕진한 사람도 다 받아줄 것 같은 마지막 성지(聖地). 그곳서 우리의 여행이 끝난다면 후회는 없으리니.   많은 독자들은 김명인(62) 시인의 첫 시집 '동두천(東豆川)'을 기억할 것이다. 기지촌에서 혼혈아에게 국어를 가르치던 시기의 경험을 쓴 동두천 연작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니.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지금도 기억할까 그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동두천 4')라고 써 수많은 독자를 여지없이 울먹이게 한 시!     김명인 시인은 동두천 연작 발표 후에도 지금까지 '욕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막막한 표랑을 강한 연민으로 감싸 안아온 시인이다. 그는 한국의 서정시가 실험과 해체와 생각의 과잉과 포즈의 유행을 탈 때에도 흔들림 없이 서정시를 지켜내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역할을 맡아 왔다. 그의시에 대해 이승훈 시인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한마디로 김명인의 시는 마음이 놓인다"라고. 동감이다      [애송시 100편 - 45] 향수-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일러스트 권신아   시간은 가고 기억은 쌓인다.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우리는 추억이라 하던가. 향수(鄕愁)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상처나 슬픔조차도 지나간 것이기에 아름답고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는 고향. 마음의 고향은 늘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에 자리하고, 향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게 한다.   이동원과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더 유명해진 정지용(1902~1950)의 '향수'는 이십대 초반의 시인이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 고향인 충북 옥천을 다니러가며 쓴 시다. 이제 곧 떠나야 할 고향이기에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검정 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정종을 좋아했던 그는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나면 낭랑한 목소리로 이 '향수'와 함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고향'을 즐겨 낭송했다 한다. 신석정 시인은 "지용같이 시를 잘 읊는 사람은 보지 못했노라" 회고한 바 있다.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라고 믿었던 그는 우리 현대시사에서 언어와 감각의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시 또한 소리내어 읽노라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는 ㅂㅂㅂ 말을 달리는 듯하고,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함추름 휘적시던 곳'은 ㅎㅎㅎ 흩어져 있는 듯하다. 실개천을 '옛이야기 지줄대는' 소리로, 황소를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으로, 아버지를 '엷은 졸음'으로 감각하는 솜씨 또한 일품이다. '해설피'가 해가 설핏할 무렵인지 느리고 어설프게(혹은 슬프게)인지, '석근' 별이 성근(성긴) 별인지 섞인 별인지 애매하지만 그 질감만은 새록하다.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아버지와 검은 귀밑머리를 날리는 누이와 사철 발벗은 아내가 집안에 있고 집밖으로는 넓은 벌과 실개천이, 파란 하늘과 풀섶 이슬이, 석근 별과 서리 까마귀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이미 마음의 고향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를 후렴처럼 노래하며 '그곳'을 그리듯 보여주는 단순한 시 형식은 음악적 울림은 물론 애틋한 향수의 정감을 쉽고 실감나게 전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흙에서 자란 마음'을 서늘옵고 빛나게 '이마받이'해보는 아침이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춘설(春雪)')롭지 아니한가.      [애송시 100편 - 제46편] 어디로? - 최하림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 일러스트=잠산 최하림(69)은 한글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62년 평론가 김현·김치수, 소설가 김승옥과 한글 세대 최초의 동인지 '산문시대'를 함께 냈다. 최하림 시인의 시는 점점 그윽하다. 그는 내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조금 걸어나가면 강이 바라보이는 양수리 그의 집에   갔을 때에도 그는 어둠이 내리는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그의 말은 "참 좋지요"가 전부였다. 그에게는 오연(傲然)함이 없다.     최하림 시인은 빛과 어둠, 정지와 운동 사이의 미묘한 오고 감을 살피는 데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이 시를 읽어도 그렇다. 황혼이 내리는 무렵에 나무들이 있고 바람이 있고 오두막이 있고 사내가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흐르는 물이 있다. 이 존재들의 뒤에는 커튼처럼 황혼이 있다. 황혼은 아래로 하강하고, 바람은 직립한 나무들에게 수평으로 이동하고, 오두막과 사내는 수직으로 서 있거나 수직으로 움직이고, 물은 옆으로 흐른다. 존재들은 내려오고 올라가고 옆으로 이동한다. 움직이는가 했더니 곧 멈추어 선다. 동작을 보여주지만 격하지 않다. 시인은 돌보듯이 존재들 하나하나에 시선을 건넨다. 하나만을 전유하려는 못된 버릇도 없다. 해서 존재들은 하나하나가 언뜻언뜻하고 얼핏얼핏하다. 어느 것 하나가 도드라질 양이면 그 윤곽을 살짝 지워놓는다. 마음은 곧잘 뛰쳐나가길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그렇지가 않으니 갸륵하다. 마음은 이렇게 우묵하고 참할 때가 있다.   자작나무 껍질을 머리에 쓰고 너덜너덜하게 옷을 입고 다녔다는, 숨어 살았다는 한산(寒山)은 "우스워라, 나의 길이여/ 거마(車馬)의 자국조차 없네/ 돌고 도는 시내의 굽이를 알 수 없고/ 첩첩의 산은 그 겹을 모르겠네/(…)/ 내 여기에 이르러 길 잃고 헤매느니/ 그림자를 돌아보며 '어디로?' 물어보네"라고 썼는데, 이 시에서는 나아갈 길의 향방조차 묻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고 잘 묻는다. 그러나 "어디로?" 라고 보채며 질문하지 말자. 다만 거기에 여기에 있을 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을 뿐.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고 있어야"('십일월이 지나는 산굽이에서')할 뿐. 그럴 때 손결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간 듯 삶에는 빛이 인다. 그 빛에 무엇을 더 보태겠는가.      [애송시 100편-47]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일러스트 잠산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己未) 독립선언문에는 시 못지않은 리듬과 비장한 여운이 있다. 고교 시절, 이 선언문과 함께 짝패처럼 좔좔좔 암송해야 했던 시가 이상화(1901~1943)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1919년 서울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3월 8일 장날을 기해 대구에서 학생만세운동을 모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는 상화(相和)라는 이름을 상화(尙火)나 상화(想華)로 쓰곤 했는데, 정녕 그의 시와 삶이 '항상 불' 같았으며 '만주를 오가며 늘 독립운동을 생각'하곤 했다. 그러니 3월이 되면 이 시가 떠오를 수밖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신령'이고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은'에 담긴 이 봄의 혼곤 속을 '다리를 절며 걷'고 있다.   이 시의 매력은 굳세고 비장한 의지와 어우러진 섬세한 감각에 있다. 가르마 같은 논길,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 삼단 같은 머리를 감은 보리밭, 살진 젖가슴 같은 흙 등 빼앗긴 들을 온통 사랑스런 여성의 몸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 들(판)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관능적인 연애시의 옷을 입은 지극한 애국애족의 저항시다.      [애송시 100편 - 제48편]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일러스트=잠산 너무나 아름다운 이 시를 통째로 암송할 수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말씨와 어렵지 않은 입말로 쓴 시. 무엇보다 이 시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천상의 별과 지상의 잎새에 걸쳐 있는 넓은 공간의식도 놀랍다. 삶은 잡목림 같은 것. 해서 번뇌와 의혹과 부정의 바람은 그치지 않고 불어와 잎새와 같은 우리를 교란시키는 것. 부끄러움은 하루 걸러 오는 것. 그러나 어둠을 배경으로 별은 빛나고, 바람과 같은 시련을 만날 때 큰 사랑은 움트는 것. 다만 우리는 나의 부끄러움으로, 나의 양심으로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고고함과 지순함과 강직함으로 사랑하자.   윤동주(1917~1945) 시인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어둠과 황폐를 의식의 순결함으로 초월하려고 했다. 그는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또 다른 고향')고 써 스스로를 반성했고,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고 쓰며 자신을 끊임없이 돌이켜 봤다.   종교적인 순교의 의지로도 읽히고 독립에의 의지로도 읽히는 등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갖고 있는 이 시를 쓴 것은 1941년 11월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는 1941년 자선 시집을 내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시국을 염려해서 시집 출간 연기를 권함에 따라 뜻을 미루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43년 7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출감을 기다렸지만 불운하게도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디찬 바닥에서 옥사했다.   윤동주 시인은 생전에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못했다. 다만 이 시가 포함된 원고뭉치가 국문학자 정병욱의 어머니에 의해 장롱 속에 몰래 보관되다가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정지용 시인은 유고시집의 서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써서 청년 윤동주의 죽음을 애도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헤는 밤')고 노래한 영원한 청년 윤동주. 생전에 그는 자기 성찰로 뒤척이는 한 잎의 잎새였으나, 이제 보석처럼 빛나는 천상의 별이 됐다.       [애송시 100편 - 제 49편]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일러스트=권선아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마음이 울렁거리는 일이다. 바람 불면 그곳이 어디든 따라 나서고 싶고, 바람 들면 온몸이 저절로 살랑살랑 나부끼게 되고, 바람나면 불타는 두 눈에 세상 보이는 것 아마 없으리.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사무치는 일이다.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부재와 상실,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시리고 뼛속까지 시리리. 그리고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다. 물처럼 세월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으리.   삶이, 사랑이, 시(詩)의 말이 바람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바람(願)이라서, 바람(風) 같아서 간절한 것들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간절하게 그리운 부재가 떠오르고, 간절하게 따뜻한 배려가 떠오른다. 몸을 떠나 영혼으로 떠돌며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던 영화 '사랑과 영혼', 그 애틋한 바람의 영혼도 떠오른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사랑의 괴로움, 사랑의 피로까지를 함께하는 바람의 마음. 그렇게 따뜻한 바람이라면 '가끔'이 아니라 매일매일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고 싶다. "목숨을 걸면 무엇이고/ 무섭고 아름답겠지./ 나도 목숨 건 사랑의/ 연한 피부를 쓰다듬고 싶다"('성년의 비밀')   이 시는 조용필이 부른 '바람이 전하는 말'의 노랫말과 흡사하다. 물론 이 시가 5년쯤 먼저다. 의사이기도 한 마종기(69) 시인은 고희를 앞두고도 여전히 젊고 댄디(dandy)하다. 어떤 선입관과 고정관념과 권위로부터 자유롭다. 동화작가 마해송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여성 무용가 박외선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성장해 의과대학 재학 시절 시인으로 등단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40여 년간 방사선과 전문의로 지내며 시를 써왔다.   그는 올해로 시력 49년을 맞는다. 투명하면서 울림이 깊은 그의 시에 유난히 위로받고 행복해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오롯한 그리움과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말했다. 그의 시는 '맹물' 같다고. 어느 날 마시면 상쾌하고 시원하고, 어느 날은 목이 메고 어느 날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나는 이제 고국에서는/ 바람으로만 남겠네"('산수유')라는 그의 최근 시의 구절이 떠오른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라는 이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과 함께. 그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시민임이 분명하다, 저 바람처럼.       [애송시 100편 - 제 50편]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일러스트=잠산 봄! 살찐 볼을 만지는 것 같다. 입안에 쑥 냄새가 돈다. 노란 산수유 그늘도 펼쳐진다. 연못가 버들개지도 눈을 뜬다. 볕은 보송보송하다. 옷은 가볍고 걸음은 경쾌하다. 찬 없이 따뜻한 밥과 냉잇국 한 그릇을 받고 싶다. 차닥차닥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리던 옛날의 빨래터도 다시 가보고 싶다.   봄! 자연에게만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도 그것은 돌아온다. 인심에도 계절이 있다. 정치가 싸움판을 걷어내거나, 경제가 잘 돌아 보통사람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훈풍 부는 봄이 왔다고 한다. 넉넉하고 화창하면 모두 봄이다. 그러므로 봄은 우리의 일상에서 제일로 선호하는 비유의 언어이다. 봄에는 게정게정 불평하는 소리가 싹 사라진다.   이 시의 맛은 봄을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으로 빗댄 데 있다. 그러나 이 시에 등장하는 봄의 비유로서의 사람은 순박하고 좀 어수룩하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저기서 기웃거리는 것을 좀 보라. 무리에 끼어서 한눈도 팔고 궂은 데서 뒹굴기도 한다.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줄을 모르고 한량처럼 '나자빠져' 있기도 한다. 느려터졌지만 한판 싸움질도 하는 것을 보니 강퍅하니 나름으로는 고집도 센 듯하다. 대처를 떠도느라 산전수전 다 겪었다.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아, 그러나 사람 냄새가 나는 그는 '마침내' 돌아온다. 민주주의의 도래처럼. 격전지에서 생환한 용사처럼. 봄의 백성이 되어 꿈에도 못 잊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품으로.   이성부(66) 시인은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를 지닌 민중시인이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울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라고 쓴 시 '벼'는 민중서정시의 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광주 출신의 그는 '80년 광주'를 겪은 후 죄의식으로 방황을 하다 산(山)에서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다. 그는 산행을 통해 "처음에 울적하게 막혔던 것이 나중에는 쾌함을 얻는다"라는 퇴계의 글귀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년까지는 지리산과 백두대간을 종주한 경험으로 '내가 걷는 백두대간' 연작시를 발표했다.   그가 돌아오고 있다. 오늘은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봄을 마중 나가자. 들길과 거리와 사람 사는 동네에, 그리하여 이 세상에 봄볕 그득할 때까지.      [애송시 100편 - 제 51편]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일러스트 권신아   출간되자마자 금서(禁書)가 된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구하기 위해 책방을 뒤지고 다녔던 것도, 최루 속에서 금지곡(禁止曲)이었던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던 것도, 시보다 운동을 택했던 선배가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주점에서 결혼식을 했던 것도, 지금도 김광석이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으면 뭉클해지는 것도 다 이 시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맞고 때리는, 울고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의 중첩을 통해 지난 70년대의 공포와 고통을 날카롭게 드러낸 시다. 누군가는 그렇게 피를 흘리며 뒷골목으로 쫓겼고 누군가는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자정부터 신 새벽 사이, 뒷골목과 뒷골목 사이,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열망했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이 시가 뜨거운 것은 잊혀져 가는 '민주주의'를 노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했기에 더욱 뜨겁다. 오래 가지지 못한 아니 너무도 오래 잃어버린 그 모든 목마름의 이름을 '타는 목마름'으로 남 몰래 쓰고 있는 한, 이 시는 여전히 뜨겁게 살아오는 것이다. 우리에게 되살아오는 것이다.   그의 본명은 '영일'(英一, 한 꽃송이)이다. 거리 입간판에 조그맣게 써있던 '지하'라는 글자를 보고 지었다는 필명 '지하'(地下가 芝河로 바뀌었다). 시위, 필화사건, 긴급조치 및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선동죄 등으로 체포, 투옥, 사형 및 무기징역 선고, 석방을 거듭하면서 김지하(67) 시인은 70년대 내내 박정희 정권과 맞섰다. 감옥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듣는 순간, 무상함에 휩싸여 "잘 가시오. 나도 뒤따라가리다"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투사' 김지하는 '생명사상가' 김지하로 변신한다. 감옥 창틀에 싹을 틔운 민들레를 보고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에 눈을 떴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시(詩)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속 3')임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시인, 그리고 이제 자신의 시와 삶이 우주 저편으로까지 이어지는 '흰 그늘의 길'에 서기를 꿈꾸는 시인, 그가 있어 우리 시는 또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애송시 100편 - 제 52편]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 일러스트=잠산 '입아아입(入我我入)'이라고 했다. 저것이 나한테 들어 있고, 내가 저것 속에 들어 있다고 했다. 이 세계는 서로가 연결되어 주고받는 중중무진(重重無盡) 연기의 세계이다. '법화경'을 보면 입아아입을 몸소 실천한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라는 이가 있다.   그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공경합니다. 나는 당신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고 말하면서 살았다. 막대기나 돌멩이로 때릴 때도 피해 도망가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후일에 많은 사람은 상불경보살의 큰 사랑을 알고 그를 예배 공경했다지만.   김선우(38) 시인은 90년대 여성시의 흐름을 이어오면서 여성의 '육체성'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시를 읽으면 상불경보살이라는 이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시는 너와 나의 차별이 없는 큰 화해와 사랑의 세계를 발언한다. 해서 그녀의 시에는 "너의 영혼인 내 몸"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나 아닌 것들이 나를 빚어/ 그대 아닌 것들로 빚어진 그대를 사랑하오니"와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젊은 여성 시인인 그녀가 우주 생명에 대한 무차별적 사랑을 가붓한 어조로 고백하는 이유는 이 물질세계를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자못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그녀의 시는 딱한 생명을 뱃속에 품고 강보에 받아내고 젖을 먹여 길러내는 모성을 보여준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의 몸을 과감하게 등장시켜 관능적이기도 하지만, "아프지 마, 목숨이 이미 아픈 거니까/ 아파도 환한 벼랑이 목숨이니까"라고 말할 때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시는 사바세계의 가엾은 목숨을 살려내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의 마음을 지녀 몸을 섞고 탐하는 쾌락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   개화(開花)를 모티프로 삼고 있는 이 시는 그 뜻이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러나 꽃피는 꽃의 몸과 내 몸을 교차시키면서 이 시는 의미의 확장을 얻는다. 꽃과 꽃벌의 혼례가 꽃과 나와의 혼례로 얽혀 읽히면서 이 시는 심상치 않은 의미를 낳는다. 그것은 성애적인 열락을 넘어선다. 그러나 "사랑이여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을 위해 울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밥알을/ 서로의 입에 떠 넣어주"며 살아야 하는가      [애송시 100편 - 제 52편] 바다와 나비 - 김기령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청산(靑山)이라면 몰라도 바다는 나비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거대한 바다에 비해 흰나비는 얼마나 작고 어리고 가냘픈가. 이 무구한 흰나비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알 수 없는 수심과 거센 물결에 대해 들은 적도 없다. 흰나비에게 푸르게 펼쳐진 것은 청(靑)무우밭이고 그렇게 푸른 것은 꽃을 피워야 마땅하다. 흰나비가 삼월의 바다에서 청무우꽃을 꿈꾸는 까닭이다. 그러나 짜디짠 바다에 흰나비의 날개만 절 뿐, 삼월이어도, 바다가 푸르긴 해도, 바다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만 비친다. 삼월의 바다, 어린 나비, 초생달은 모두 이른 것들이다. 시작인 것들이다.   허공을 나는 것들은 날개가 중요하고 땅을 걷는 것들은 허리가 중요하다. 헌데 '나비의 허리'라니! 공주의 아름다움은 춤에 있고 나비의 아름다움은 비상(飛翔)에 있다. '공주처럼 지쳐서' 바다에서 돌아온 나비. 바다로의 비상에 실패하고 뭍으로 귀환한 '나비의 허리'는 상징적 의미가 깊다. 이제 흰나비는 청무우 꽃그늘을 노니는 그런 나비가 아니다. 짜디짠, 바다의 깊이와 파도의 흔들림을 맛본, 허리가 실한 나비다.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고 흙이 묻"('주피터 추방')기 마련이다. 새롭고 먼 곳을 향해 비상하다 날개가 절어본 적이 있기에, 흰나비는 이제 흙이 묻더라도 땅을 밟는 사랑을 알았으리라.   이 시의 꽃은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이다. 하얗고 가늘고 기다란 나비의 몸과 초생달이 그려지고, 새파란 바닷물에 새파랗게 전 흰나비의 허리가 그려지고, 지쳐 돌아오는 흰나비 허리를 비추는 저물녘 초생달이 그려지기도 한다. '시린' 풍경들이다. 어쨌든 '바다'가 냉혹한 현실이라면 '나비'는 순진한 꿈의 표상이다. 꿈은 언제나 현실의 냉혹함을 모른 채 도전한다. 근대 혹은 서구문명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역사 혹은 시대의 흐름 앞에 무력했던 시인의 모습도.   김기림(1908~?) 시인의 탄생은 현대시 탄생과 그 햇수를 같이 한다(얼마 전 출생연도가 1907년으로 기록된 학적부가 발굴되어 탄생 101주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30년대 이상(李箱)과 더불어 한국 문단의 모더니즘을 주도하면서 서구문명 지향하는 '새로운 생활'을 동경했다. 그는 기자, 문학비평가(이론가), 번역가, 대학 교수를 겸한 모더니즘 선봉에 선 시인이었으나 분단과 전쟁은 그를 납북 이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비운의 모더니스트'로 만들어버렸다.      [애송시 100편 - 제 54편] 나그네 - 박목월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박목월(1916~1978)이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펴낸 3인 시집 '청록집'(1946)에 실려 있다. 임시 정가 30원의 '청록집'을 발간한 이후 세 명의 걸출한 시인들은 '청록파'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 서정시의 큰 산맥을 이룬 이 3인은 모두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경주에 살고 있던 박목월을 조지훈이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이 시는 박목월과 조지훈의 각별한 관계에서 태어났다.   '목월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조지훈의 시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화답으로 이 시를 썼기 때문이다. '완화삼'의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의 한 부분인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를 부제로 삼았다. '완화삼'의 시어인 나그네와 구름과 달과 강마을과 저녁 노을을 그대로 받아서 썼다. 다만 '완화삼'이 나그네의 구슬픈 우수(憂愁)를 더 드러내면서 가야 할 앞길의 정서적 거리를 '물길은 칠백리(七百里)'로 표현했다면, '나그네'에서는 물처럼 바람처럼 걸림 없이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의 길을 표표히 가는 나그네의 심사를 부각시켰다.   이 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접한 최초의 시였다. 외할머니가 벽에 붙여져 있던 이 시를 '가갸거겨'를 배우던 방식으로 흥얼흥얼하는 것을 곁에서 들었다. 그처럼 이 시는 우리말의 가락이 아주 잘 살아 있다.   조지훈은 박목월의 시에 대해 "압운(押韻)이 없는 현대시에도 이렇게 절실한 심운(心韻)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시를 읽으면 역시 그 평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시를 쓸 때에는 꼭 연필을 깎아 썼다는 박목월. 아이들에게 공책을 사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한지를 묶어 공책을 만들어줄 정도로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던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山)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산이 날 에워싸고')고 노래한 박목월. 시를 알게 되면서부터 본명 박영종(朴泳鐘) 대신 '木月'이라는 큰 자연의 이름을 스스로 붙였던 그. 식민지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박두진의 말대로 청록파에게 자연은 "온갖 제약을 타개하기 위한 시의 유일한 혈로(血路)"였는지 모른다. 그 한가운데에 '애달픈 꿈꾸는 사람' 박목월이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55편] 봄바다 - 김사인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 일러스트=권신아 구장집 마누라는 방뎅이도 크고 젖통도 크고 잠도 푸지게 잘 자니 미끈덩 아들 쑥쑥 낳겠다. 역시나 셋째가 제일 미끈덩하겠다. 미끈덩 인물 재산이겠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라도 되는 양 바람깨나 피우겠다. 도망치듯 상경해 이양저양 살피다 부잣집 과부 만나 한몫 챙기기도 하겠다. 살집 좋은 과부 곁에서 시름시름 늙어가며 이모저모 기웃대다 '인생 탕진하'겠다. 저리 생생(生生)한 구장집 마누라 몸을 거쳐 미끈덩 셋째 아들로 환생하는 것, 사내들의 로망이겠다. 이 시의 묘미는 현실 속 구장집 마누라가 아니라, 상상 속 셋째 아들의 부잣집 과부로 튀는 오지랖의 '쓰리 쿠션'에 있겠다.   이 시를 읽노라면 김 시인의 '심성'을 엿볼 수 있는 이시영 시인의 재미난 산문시 하나가 떠오른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술자리에 김사인 시인이 폭우 속 흰 고무신을 신고 와 합류했다는 것. 새벽 즈음에 이 시인의 처가 천둥치듯 "복희년 나오라고 그래!" 소리치며 들이닥쳤다는 것. 바로 그때 "나와 송 사이에서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인이가 갑자기 일어나 문밖으로 내빼는데 흰고무신 신은 발이 비호처럼 빨랐다. 그리고 빗속을 번개처럼 가르며 사라졌다. 복희씨가 졸린 눈을 뜨기도 전에, 송과 나의 처가 시퍼렇게 걷어붙인 팔을 풀기도 전에 일어난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김사인의 흰고무신')는 것.   김사인(52) 시인은 사람 좋은 충청도 양반이다. 떠듬떠듬 어눌하게, 천천히 길게, 그러나 뜨겁게 시를 쓰는 시인이다. 첫 시집을 내고 19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으니, 시 한 편을 길게는 30년을 쓰고 썼다니 '곡진'하다는 말, '지극'하다는 말은 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 그가 1980년대의 혁혁한 문화운동가이자 날카로운 논객이었다는 건, '노동해방문학'사건에 관여해 수배되기도 했다는 건 다 아는 전력(!)이다. "시는 크고 요란한 것이 아니라 작고 나지막한 섬김"이라고 말하는 그는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시를 높이고 세상과 사물을 높이는 드문 미덕을 가진 시인임에 틀림없다.   봄은 남쪽으로부터 오고, 남쪽 끝 바다로부터 온다.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같이 방방한 저 들판에, 구장집 마누라 젖통 같이 봉긋한 저 능선에, 구장집 마누라 코골이 같이 달디단 봄바람으로 온다. 바다 내음 향긋한 천지가 무릇 봄바다다. 물 맑은 봄바다에 두둥실 떠가는 저 배를 타고 미끈덩 풋것들로 환생하고 싶다. 어쨌든 봄이고 하여튼 봄밤이고 바야흐로 봄바다다.      [애송시 100편 - 제 56편]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일러스트=잠산 시름 많은 사람들과 "어두운 땅 한 평 가꾸다 갈래요/ 우리나라 하늘 한 평 비추다 갈래요"라고 노래했던 시인 고정희(1948~1991).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녀가 상한 영혼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흙에 심은 뿌리 죽는 법 보았나요"라고 묻는 것 같다.   평론가 김주연이 분석한 대로 이 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신다"는 성경의 말씀과 겹쳐 읽힌다. '하늘 아래'라는 표현도 예수의 언약과 임재(臨在)를 둥글게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넋으로 기댈 곳 없이 큰 고통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힘껏힘껏 껴안고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이 시는 보여준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다분히 기독교적인 신앙에 기초한 시편들을 써낸 고정희 시인은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칼을 들이댔다. "하느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라고 질문했고, 동시에 "하느님을 등에 업은 행복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도착 신앙인가"라며 고민했다. 그녀가 비판하고 날카롭게 투시한 대상은 눈앞의 현실 그 자체였으며, 돌봄이 있는 따뜻한 공동체는 그녀가 꿈꾸는 세계였다.   고정희 시인은 한 생애를 정열적으로 살다 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지냈고, 여성주의 문화집단인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제도적 억압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힘, 그것이 자유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항상 자유 의지에 속해 있는 하나의 에너지"라고 자평했는데, 조금의 호락호락함도 없이 평소 신념을 시 창작과 생활에서 실천했다. 한 시대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묵상했으므로 그녀의 시는 미지근하거나 융융한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는 80년대의 격문이면서 '우릉우릉 폭발하는 화산(火山)'이었다.   1991년 6월 지리산 뱀사골을 오르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생전에 쓴 시 '지리산의 봄 1-뱀사골에서 쓴 편지'가 자꾸 떠오른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뢰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라고 쓴 시. 그녀의 시를 읽고 있는 오늘 새벽은 내 가슴이 아프다.      [애송시 100편 - 제 57편]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 일러스트=권신아   동치미 무를 먹으며 아삭아삭 달을 베어먹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팥죽에 뜬 새알을 떠먹으며 어두운 밤하늘을 들락날락하는 달을 떠먹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달걀과 밀가루가 들어간 둥근 지짐이와 부침들을 먹을 때마다 달(빛)을 지져먹고 달(빛)을 부쳐 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알들은 달을, 하얗고 부드러운 가루들은 달빛을 닮았다. 그리고 흰 고봉밥이, 노란 달걀 프라이가, 토실한 감자가, 탐스럽고 둥근 빵이 죄다 달을 닮아 있지 않은가. 그뿐 아니다. 밥상에 뜬 온갖 달들을 만들어내는 엄마와 아내와 누이와 딸이 모두 달의 여인들이니, 우리는 밥상에 뜬 달을 먹고 자라는, 그 달을 만드는 이 달에 의해 키워지는, 달의 후예들이다. 그러니 밥이 달이고, 밥의 집이 달의 집이다.   '조각조각' 달집 아래를 걸을 때, '모락모락' 밥집 곁을 지나칠 때 그 집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부푸는 추억이자 꺼지지 않은 희망임을 깨닫는다. 저녁 밥상 앞에 둥그렇게 앉아 '한 그릇씩의 달'을 비우며 서로를 마주볼 때 '꼭꼭 뭉친 주먹밥'처럼 비로소 한 식구(食口)임을 확인한다. 그런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물을 구부려 물방울 보석을 만들고(…) 이 세계를 둥글게 완성시켜 놓"('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는다. 달은 어머니처럼 둥글고, 이 둥근 것들을 우리는 끊을 수 없다. 밤의 어둠을 굴리는 달(빛)이 이울며 차며 '달의 원형'을 회복하듯, 우리도 그렇게 추억과 희망을 완성할 것이다. 그것들로 배가 둥그렇게 부르리라. 또 다른 달을 낳기도 하리라. 그것이 달의 역사(歷史)이고 달의 미래일 것이다.       80년대가 끝나갈 무렵에 출간된 송찬호(49)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가 불러일으켰던 반향은 컸다. 그는 마치 연금술사와도 같이, 시대와 가족과 인간과 사물과 언어를 비극적이면서 비의적(秘儀的)으로 결합시키곤 한다. "나는 시를 무겁게 시작한다. 그리고 오래 매만진다"는 시작 태도는 시의 이미지를 돌올하게 하고 형이상학적인 깊이를 거느리게 한다. 소를 치던 어린 시절 '아이 지게'를 갖는 게 꿈이었다는, 고춧가루 몇 되를 들고 가출해 소설을 쓰기도 했다는, 군대와 대학 생활을 제외하고는 고향 보은을 떠나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그는 자신에게는 '시 쓰는 일'이 전부일 뿐이라고 일갈하는 몇 안 되는 시인이다. 이런 시인이라야 모름지기 전업시인일 것이다.      [애송시 100편 제 -58편]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일러스트=잠산 번짐이라니. 바뀜이 아니라 번짐이라니. 목련꽃이 피는 일을,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일을, 계절의 순환을, 너와 나 사이 사랑과 이별의 사건을,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그 둥?을, 시간과 공간의 옮김을 번짐이라고 부르다니. 먹물이 화선지에서 고요하게 번지듯이. 그리하여 번짐은 환함이라니. 씨나 날로 결어서 천을 짜듯이 조촘조촘 가는 것이라니.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나아가는 것이라니. 번짐이라고 부르면 나와 당신은 얼마나 가까운가. 이 생(生)을 받아 가꾸는 일이 얼마나 거룩한가.   장석남(43) 시인의 시는 강한 전염력을 갖고 있다. 그의 시는 '번지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나아간다. 밀어내고 부드럽게 떠나고 밀려들어오는, 그 '어쩌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우리들 '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들'을 아주 잘 들여다보고 귀담아듣는 출중한 감각을 자랑한다. "찌르라기떼가 왔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 검은 새떼들"('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라고 쓴다거나, "어미소가 송아지 등을 핥아준다/ 막 이삭 피는 보리밭을 핥는 바람/ 아, 저 혓자국!"('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이라고 쓸 때의 놀라운 감각이라니!   장석남 시인의 마음에는 '옹근 고요'가 살고 있는 것 같다. 옹근 고요 위에서 그의 시는 태어난다. 고독과 외면과 섭섭함과 흔들림과 설움과 간신히 잦아드는 것과 사소함과 곰곰 궁금함과 은밀함과 찬란함과 되비쳐옴과…… 그 모든 감정의 섬세한 자세를 그의 시는 그려낸다. '겨우'라고 수식될 세상 살림들의 속삭임과 혈육인 듯 함께 살면서 '물항아리에 물 차 오르면 거기에 어룽대는 물의 빛'과도 같은, 사람의 가슴에 도는 생(生)의 윤기를 발견해낸다. (삶에 윤기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시에도 자원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갈증/ 그건 아무도 모르게 영혼을 찢어놓는,/ 남은 모르는 갈증/ 갈증"('시법(詩法)')이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 시대에 아주 드문 서정시인이다.   첫 시집을 내고 "나는 춤꾼이거나 가수이거나 아니면 유능한 세션맨이 되었어야 옳았다"고 고백하는, 해서 한때는 전기기타를 배우러 사설강습소를 다녔다는, 해서 한때는 배우로도 활동한, 거문고를 안고 사치를 부리기도 한다는 시인. 장석남 시인을 만날 때마다 나는 확신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시인은 울림통 하나쯤은 지닌 근사한 악기여야 한다는 것을.      [애송시 100편 - 제 59편]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 일러스트=권신아 그늘! 나비 그늘, 꽃 그늘, 나무 그늘, 처마 그늘, 담 그늘, 당신 그늘, 심지어 위태롭게 서 있는 전봇대나 바지랑대에도 그늘은 있다. 그늘은 눈부시지 않고 어둡지 않다. 뜨거운 햇살은 가려주고 비바람은 대신 먼저 맞아준다. 여운, 깊이, 여유, 멋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림자와 다르다. 그래서일까. 그늘 아래 서면, 잠시, 시간도 잊고 이름도 잊고 일도 잊고 갈 곳도 잊는다. 그늘 아래 스스로를 부리듯 노동과 불안과 걱정을 부려두고, 잊거나 잃은 것을 떠올리며 눈물짓기도 한다.   시간과 계절은 너무 빨리 달아나고, 우리는 너무 빨리 늙고, 늘 배고픔과 실직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출근과 스트레스와 피로와 시름과 술과 담배에 지쳐 있는데… 맨땅에 뿌리를 내린 채 사시사철 변함 없는 사철나무의 그늘이니 참 깊고 넓겠다. 시인 장정일(46)이 꿈꾸던 '사철나무 그늘', 누구나 그런 그늘 하나쯤은 꿈꾸기 마련이다. '가장 장정일답지 않는 시'임에도 가장 많이 애송되고, 시인 스스로도 첫 시집을 여는 시로 삼았던 까닭일 것이다.   이 시는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이 반복되는 보니엠(Boney M)의 노래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를 들으며 읽어야 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편, 137편)라는 성경 구절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탑과 공중정원이 있었다는 번영의 땅 바빌론은, '시온(Zion·예수살렘의 도시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을 생각하며 견뎌야 했던 이방의 땅, 고난의 땅, 타락의 땅이다. 원조 '디아스포라'의 고난과 희망이 담긴 디스코 풍의 이 노래는, 80년대 내내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던 공장노동자들의 휴식시간을 장악하기도 했던가.   불온하다는 말, 문제적이라는 말이 장정일처럼 잘 어울리는 시인이 또 있을까. 중졸의 학력과 방황의 청소년기,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했다는 독학,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 수상, 극작가, 소설가, 외설 시비, 무시무시한 독서량, TV 교양프로 진행, 교수…. 그는 정복자처럼 자신의 삶을 찬탈했으며 게릴라처럼 80년대 시단을 점령했다. 그리고 어느날 '시 쓰는 법을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그가 이른바 '쉬인' 장정일이다. '동사무소 하급 공무원'을 꿈꾸며 들었을 '바빌론의 강가'를 다시 들으며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는 마음'을 헤아려보는 아침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0편]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1933~1997)은 생전에 '슬픔의 연금술사'로 불린 시인이다. 시 '눈물 속의 눈물'에서 "꽃잎 속에 새 꽃잎/ 겹쳐 피듯이// 눈물 속에 새로 또/ 눈물 나던 것이네"라고 노래했듯이 그의 시들은 눈시울이 촉초근하게 젖어 있다.   박재삼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시는 노을이 붉게 번지는, 굽이쳐 흐르는 강을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며 썼을 것이다. '눈물'과 '울음'과 '강'과 '산골 물'과 '바다'로 연결되는 물의 이미지는 누선(淚腺)을 자극하고, '햇볕'과 '불빛'으로 연결되는 불의 이미지는 삶의 소진과 소멸을 두드러지게 하는 바, 이 시는 사랑의 비극과 고독과 생(生)의 무상(無常)을 동뜨게 드러낸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자연(自然)')라는 표현과 쏙 빼닮았다. '눈물나고나'와 '보것네' 등의 종결어미에서는 그의 다른 시편에서도 예사인 전통적인 가락의 활용을 보여준다. 이 시가 처음 월간지에 발표된 후 박두진 시인은 "노도(怒濤)처럼 세찬 현대의 휩쓸림 속에서 배추 꽃목처럼 목이 가늘고 애잔한, 실개천처럼 맑고도 잔잔한 서정"이라고 평해 신예 박재삼을 주목했다.   박재삼 시의 가옥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한'과 '가락'의 능수능란한 구사는 그가 자라난 생활환경과 관련이 있다.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생선 장사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집이 가난해서 낮에는 중학교 급사로 일하면서 야간반에서 수학을 했다. 집 형편이 옹색해 책을 살 수 없어 '가람시조집'을 빌려다 공책에 베껴 쓰고 늘 외웠고, 중학 시절 김상옥 시인의 작문 지도를 받으면서 전통시의 낭창낭창한 가락에 눈떴다.   병을 얻어 직장을 그만둔 후로는 시를 쓰고 신문에 바둑 관전평을 써서 생계를 꾸렸다. '요석자(樂石子)'라는 이름으로 바둑 관전평을 썼는데 바둑계에서는 그를 '박국수(朴國手)'라고 불렀다. 병을 앓고 난 후, 가난한 시인은 새봄을 맞는 소회를 썼다. "눈여겨 볼 것이로다, 촉트는 풀잎,/ 가려운 흙살이 터지면서/ 약간은 아픈 기(氣)도 있으면서/ 아, 그러면서 기쁘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이/ 형(兄)뻘로 보이는 넉넉함이로다."('병후(病後)에') 그러니 우리네 삶이 '햇볕 반(半) 그늘 반(半)'이라 하더라도 오늘 당신은 글썽임보다 반짝이는 쪽을, 촉트는 생동(生動)을 보아라.      [애송시 100편 - 제 61편]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 일러스트=권신아 '박노해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음반'(2004)을 들으며 시집 '노동의 새벽'(1984)을 읽는다. 장사익, 윤도현 밴드, NEXT 등이 '노동의 새벽' 시편들에 곡을 붙여 노래한 앨범이다. '노동의 새벽'은 어두운 새벽빛의 표지다. "노동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라는 시인의 헌사로 시작하고 있다. '노동해방'을 줄여 필명으로 삼은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50)의 시에, 독설로 민중문학론을 설파했던 고(故) 채광석의 기획 및 해설과, 민중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고(故) 오윤의 판화가 어우러져 사회과학 출판사 풀빛에서 출간된 시집이다. '노동'과 '해방'과 '문학'의 접점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었던 이 시집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 상징이다. 금서(禁書)로 노동문학의 전범이 되었고, 판매량이 100만부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책 중 한 권이 되었다.   이 시는 '시대의 새벽을 부른' 박노해의 명실상부한 대표시다. 조출(조기출근)-야근(야간잔업)의 노동현실에서 야근현장은 졸음과 사투를 해야 하는 전쟁터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시다의 꿈')으로, 조는 순간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손 무덤')야 하는 무참한 사고 없이 무사히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이면 속이 빈 '쓰린 가슴'에 '차거운 소주'를 부을 수밖에. '어쩔 수 없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붓고, '기어코'의 깡다구와 오기의 힘으로 붓는다. 고통과 절망을 위무하기 위해 붓고, 연대와 희망을 고무하기 위해 붓는다. 차가운 소주가 뜨거운 소주로 변하는 '노동자의 햇새벽'에, 식히기 위해 붓고 태우기 위해 붓는다.   그는 열다섯에 상경해 야간 상고를 졸업하고 섬유·화학·건설·금속·운수 노동을 하며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에 투신했다.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반국가단체 수괴'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나는 노동자이자 시인이며 혁명가입니다"라는 최후진술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지금은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지역을 돌며 생명과 평화와 나눔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감 중에 썼다는 시 '그 해 겨울나무'가 떠오른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로 시작해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로 끝을 맺는다.      [애송시 100편 - 제 62편]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1957년에 펴낸 김현승(1913~1975)의 첫 시집 '김현승시초'에 실려 있다. 시집의 장정을 서정주 시인이 맡았다고 되어 있고, 가격은 육백환이라 적혀 있다. 시인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를 주선하여 준 서정주 시백의 우의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자서에 썼다. 서정주 시인은 김현승 시인에 대해 "사람 사이의 정(情)에 철저했던 그는 정의감을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고수하는 데서도 철저했던 것인데, 이것은 그의 고독(孤獨)의 원인일 것이다"라고 평가해 친근한 사이임을 자랑했다.   어린 자식을 잃은 참혹한 슬픔을 노래한 시들은 많다. 김광균의 시 '은수저'가 그렇고, 정지용의 시 '유리창'이 그렇다. 김광균은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가 앉던 밥상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라고 썼고, 정지용은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고 썼다.   아들을 잃고 난 후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시 '눈물'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그 슬픔을 넘어선다. '들이라 하올제'의 대상이나 '당신'은 그가 신앙한 절대자였다. 그는 눈물이야말로 한 점 생명의 씨앗과도 같고, 더러움이 없으며, 인간의 마음이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순금처럼 지니고 살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웃음'보다는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눈물'을 귀하게 보았다. 눈물의 참회 이후 인간이 지니게 될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옹호했다. 이 시가 기독교적 신앙시의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가 정작 염원한 것은 더 심오한 가치였다. 그는 스스로 밝히길 "나는 또한 신앙에 순응하기만 하는 시인은 아니다"라며 "떳떳하고 참되고 올바른 인간정신을 나의 시에 스며들게 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느낀다"고 했다.   눈물이 너무 흔해서 아무래도 천국엘 못 갈 것 같다고 한 김현승 시인의 자화상은 어떠했을까. "내 목이 가늘어 회의에 기울기 좋고", "연애엔 아주 실망(失望)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싸특하진 않으나,/ 신앙과 이웃들에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자화상')라고 써 본인의 내·외형적인 기질의 근사치를 내놓았다.   현대시 100년의 역사에서 김현승 시인처럼 고독과 슬픔을 지독하게 노래한 시인도 드물다. '싸늘한 증류수의 시대'를 살다간 그에게 고독과 슬픔과 뜨거운 눈물은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이었다. "슬픔은 나를/ 목욕시켜준다,/ 나를 다시 한 번 깨끗게 하여준다"며 "슬픔 안에 있으면/ 나는 바르다!"고 썼을 정도로. 숭전대학교(현 숭실대학교) 채플 시간에 기도 중 쓰러진 뒤 병석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눈물의 옹호자였던 시인은 영혼의 옷마저 벗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애송시 100편 - 제 63편]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의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노닌다.   황금(黃金)의 햇발이 부서지며   꿈결의 꽃밭을 이룬다.   나도 이 속에선   밥 먹는 짐승이 아니다.       ▲ 일러스트=권신아 구상(1919~2004) 시인은 강과 물을 유난히 사랑했던 시인이다. 당호를 관수재(觀水齋)라 하고 서재에 '관수세심(觀水洗心)'이라는 편액을 걸어놓고는, 그 글귀대로 여의도 윤중제방에 나아가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어내곤 했다. 수(水)와 심(心)은 통하는 글자이기에 관수(觀水)와 세심(洗心)은 '마음을 바라보는' 일인 바, "마치 매일예배를 보듯/ 나는 오늘도 강에 나와 있"('겨울강 산조(散調)')곤 했던 것이리라.   무릇 물은 맑다. 흐르면서 넓어지고, 끊이지 않고, 거슬러 오르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그 밑바닥으로 흘러들고, 다른 무엇에 스며들었을 때에는 이미 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물이었다./ 맑은 물이었다./ 맑은 물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면서 항상 제자리에 있었다./ 제자리에 있으면서/ 순간마다 새로웠다.// 새로우면서 과거와/ 이어져 있었다."('그리스도 폴의 강 11'). 강에서 사람을 업어 건네는 수행을 통해 예수 발현(發顯)을 체험했던 성자 '그리스도 폴'의 강처럼, 시인에게 강은 건너가야 하는 삶의 터였으며 구도의 방편이자 사랑의 궁극이었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기에, 오늘이 바로 영원이고 오늘 하루가 신비의 샘이다. 오늘 시방 그 영원을 살고 있기에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고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하는('오늘') 것이리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꽃자리')인 것이리라. 그러니 내가 앉아 있는 지금-여기의 꽃자리가 '반갑고 고맙고 기쁠' 수밖에. 그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파랑(波浪) 많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시편들은 고요한 강물처럼 조용하고 편안하다. 진솔하고 정갈하다. 그의 삶도 시와 다르지 않았다.   이 시는 아침 강의 신비와 신성을 노래하고 있다. 자욱한 아침 안개는 물과 하늘, 여기와 저기,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지운 채 세계를 하나의 '허공'으로 만들고 있다. 그 허공 속을 저어 가는 나룻배는 이미 비승비속(非僧非俗)이다. 구불구불 휜 흰 백양목 가지에 앉은 검은 까치 한 마리, 여인네 속살 같은 물밑의 모래, 생래의 즐거움으로 노니는 잔 고기떼, 동터오는 황금의 햇발은 인간이 침범하지 않는 태고(太古)적 아침 강의 이미지들이다. 이런 강을 마음에 품고 하루의 아침을 시작한다면, 매일 매일의 밥벌이 터에서도 '밥 먹는 짐승'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 같다.       [애송시 100편 - 제 64편] 섬진강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일러스트=잠산 김용택(60) 시인은 섬진강의 시인이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전북 임실군 덕치면 덕치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는 하루도 섬진강을 보지 않는 날이 없이 섬진강과 함께 살아왔다.   그를 80년대 대표적 농촌시인으로 우뚝 서게 한 섬진강 연작시는 섬진강변의 새와 풀꽃과 흙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가득 담고 있다. 그에게 섬진강이라는 공간은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을/ 강물에 가져다 버리"('섬진강 2')는 누이가 살던 곳이요, "강 건너 산밭에 하루 내내 스무 번도 더 거름을 져 나르"면서 "해 저문 강 길을 홀로 어둑어둑 돌아오시는 어머니"('섬진강 9')가 살아온 곳이요, "누구는 이라자라 쟁기질 잘하고/ 소 잘 다루고/ 누구는 선일 잘하고/ 모 잘 심고 써레질 잘하고"('섬진강 13') 그리하여 다 사람 구실을 하고 인심에 변동이 없는 곳이다.   이 시는 섬진강 연작시의 말머리 시이다. 생명들의 이마에 꽃등을 달아주는 생명의 젖줄 섬진강을 노래했다. 지도에도 없지만 그네들만은 서로 아끼고 챙겨가며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사는 곳, 일어서서 껄껄 웃는 지리산과 훤한 이마 끄덕이는 무등산을 부모처럼 이웃처럼 모시고 사는 곳, 그런 큰 산들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까닭에 지금껏 마른 적 없는 도도한 흐름이 있는 곳, 크고 굳세고 건강한 살림 공동체…….   섬진강 연작시에는 시골 사람들의 투박한 입담이 들꽃처럼 곳곳에 피어 있다. '너무 그리 말더라고' 등의 전라도 방언과 '저런 오사럴 놈들' 같은 상말을 구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툭 터놓고 말하는 그의 시는 맑고 정직하다. "나는 내 이웃들의 농사에/ 내 손이 희어서 부끄러웠고/ 뙤약볕 아래 그을린 농사군들의/ 억울한 일생이/ 보리꺼시락처럼 목에 걸려/ 때로 못밥이 넘어가지 않아/ 못 드는 술잔을 들곤 했다"('길에서')는 고해성사와도 같은 자기고백을 보라. 그럼으로써 "우리 어매 날 낳아/ 가난한 일 속에 날 기른/ 헐벗은 젖가슴 같은 산천"('섬진강 27')을 다 노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직도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의 편에 섰다. 살 아프고 맘 아픈 그들의 편에 서서 환장할 것 같은,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한 농촌의 현실을 다 발언했다.   그의 시에서는 포슬포슬한 흙냄새가 난다. 그의 시를 통해 은어 떼가 헤엄치는 푸른 강과 넓디넓은 평야를 본다. 가슴이 넓어지고 따뜻하다.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일러스트=권신아 유치환(1908~1967) 시인의 작품 가운데 애송시 후보를 꼽으라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는 시 '행복'을 떠올릴 독자도 있겠다.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라는 구절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는 편지의 고수(高手)였다. 일본 유학시절, 주일학교에서 만난 소녀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후일 그 소녀와의 결혼식 때 들러리를 섰던 화동(花童)이 먼 훗날 '꽃'의 시인으로 유명해진 김춘수였다. 시조 시인 이영도에게 보냈던 편지들은 책으로 묶이기도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나,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냐"('그리움')와 같은 절절한 연시들은 바로 사랑의 편지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러나 이런 '사랑의 시인'과는 사뭇 다른, '의지의 시인' '허무의 시인'의 면모가 유치환의 진면목에 더 가깝다. 형이상학적인 역설을 근간으로 하는 '생명의 서'는 유치환 시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 생명이 부대끼는 병든 상태에서 무생명의 공간, 바로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다. 사멸·영겁·허적 등의 관념적 시어가 사막의 무생명성을 강조한다. 또한 열사의 끝 그 '영겁의 허적' 속에 '호올로' 맞는 고독이 열렬하다는 것, 생명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회한 없는 백골'이 될 때까지 배우겠다는 것에서도 생명에의 역설은 두드러진다. 모든 생명의 본연은 무(無)다. 생명의 시작은 죽음의 끝과 이어져 있다. 그러기에 사멸의 땅 사막에서 근원적 생명을 배우려는 것이리라.   대낮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영겁의 시간이 층층이 새겨진 사막의 적막, 그 열렬한 고독 한가운데서 영원한 생명에의 충동이 샘솟는 단독자(單獨者)가 있다. 물 한 줄기 찾을 수 없는 사멸의 사막 끝을 생명에의 의지를 등에 지고 낙타처럼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러기에 생명의 '서(書)'에는 생명이 충만한 삶의 서(序)와 서(誓)뿐만 아니라 경전의 의미까지도 담고 있다. 그의 시는 형이상학적 전통이 희박한 우리 현대시사에서, 드물게도 인간의 의지 혹은 정신적 높이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를 '생명파 시인'이라 부르는 까닭이고 '사막' 하면 그의 시가 떠오르는 까닭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어른의 말씀을 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될 때가 많다. 주름살 사이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짧고 두서없이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말이지만 마늘처럼 매운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씀으로부터 태어났다. 허리가 아픈 어머니는 앉아 쉴 곳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어디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허리를 펴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가 심상찮은 것은 의자를 내놓을 데를 태연무심하게 열거하는 어머니의 품 큰 생각에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꽃과 열매와 참외밭과 호박과 망자(亡者)에게도 의자를 내주어야 한다는 그 우주적인 마음 씀씀이에 있다. 공생과 배려에 기초한 이런 모성적 마음씨는 식구를 다 거둬가며 밥을 먹여온 삶의 연륜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면 누가 인생을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것이라고 먹줄을 대듯 명쾌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정록(44) 시인의 시에는 모자(母子)가 자주 등장한다. 시 '꽃벼슬'에서는 한식날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모자가 찾아간다. 아들은 무덤에 난 쥐구멍에다 꽃다발을 꽂아드린다. "꽃밥 한 그릇 바치는 것이다". 어머니는 쥐구멍에 술잔을 따르며 "새끼들이 술 갖고 올 줄 알고/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있구나"라고 익살맞게 말씀하신다. 아들이 "무덤 안에서 뭔 소리 들려요"라고 너스레를 떨자 어머니는 농(弄)으로 "그랴 니 불알 많이 컸다고 그런다"라시며 "아예 술병을 쥐구멍에 박아놓는다". (모자 사이에 오가는 이 능청능청한 대화여.)   이정록 시인의 시는 이처럼 곰살가운 살내가 수북하니 풍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옷 벗고 대중목욕탕에 함께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사랑은 울컥이란 짐승의 둥우리"라고 말하는 그는 안간힘을 쓰며 사는, 몸살 앓는 사람들의 머리맡으로 가 슬그머니 앉는다. 식은땀을 흘리는 자식의 머리맡에서 차가운 물수건을 들고 꼬박 밤을 새던 어머니처럼.   그는 시와 삶의 거리를 18.44미터라고 말한다. (18.44미터는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이다.) 18.44미터가 곧 "너와 나,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의 거리"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의 시는 삶을 정면으로 팽팽하게 응시한다. 삶에 근거해 삶의 현장에서 그의 시는 발발한다.   "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 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들여서 술집을 내는 것"('좋은 술집')이라고 말하는 시인.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공짜 술도 나눠주고 봉지쌀도 나눠주고 싶다는 시인. 그는 소년교도소에 가서 한문을 가르치기도 하는 천안 중앙고등학교 교사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7편] 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황인숙 시인은 좀체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는 방식도, 취향도, 생각도, 표정도, 말투도,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도. 황 시인의 절친한 후배 장석남 시인은 사석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 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제 30년이 지나가는데도 정말 안 변하는 사람이 황인숙 선배라고, 그쯤이면 도(道)의 경지라고. 새들은 변하지 않는다, 늙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새'과다.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새처럼, 그는 명실상부한 '프리랜서'로 30여 년을 자유롭게 살고 있다. 글을 쓰며(맛깔스런 그의 산문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세든 집에서 혼자 산다. 책과 음악과 식도락과 고양이(들)와 그의 단짝 벗들과 더불어 산다. "마감 닥친 쪽글을 쓰느라 낑낑거리며/ 잡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부르짖는/ 가난하고 게으른 시인이/ 그 동네에도 살고 있을 것이다"('파두―비바, 알파마!')   타인에게 칼을 건넬 때는 반드시 칼등을 잡고 칼날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건네는 것이 예의다. 이사 갈 때 칼을 버리고 가면 그 집과의 인연을 끊고 가는 것이고, 부엌에 칼을 아무렇게나 놓으면 가족이 다치거나 돈이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칼(날)이 날카롭기 때문에 이런 금기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다'는 금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칼로 사과를 먹다가 언니에게 이 금기의 말을 들은 적이 있건만, 지금도 여전히 시인은 사과껍질을 깎던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칼로 사과를 먹으며 누군가에게 칼로 사과를 먹였던 일을 떠올린다.   이 시의 맛을 깊게 하는 건 마지막 연이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오래 되짚어 보게 하는 구절이다. 젊지 않은데도, 여전히 가슴 아플, 많은 일이 줄지 않는 걸 보면 칼로 사과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칼로 주는 사과를 너무 많이 받아 먹었나 보다. 칼로 먹고 칼로 먹였던 게 비단 사과뿐이었겠나 싶다. 뭔가를 준다는 게 이렇게 위태로울 때가 있다. 그것이 자기에게든 타인에게든, 그것이 사랑이든 배려든. 젊음이 아름다운 건, 가슴 아플, 많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은 그러기에 두려운 대상이다. 황인숙 시인은 여전히 젊고 경쾌하다. 계속 칼로 사과를 콕콕 찍어먹을 수 있을 만큼! 부리로 사과를 콕콕 쪼아먹는 새처럼, 아니 그의 시처럼.     [애송시 100편 - 제 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일러스트=잠산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으니, 나는 풀이 더 많고 사람이 다닌 발자취가 적은 외로운 길을 선택해서 걸어갔노라고 쓴 시. 그리고 그런 선택으로 인하여 나에게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쓴 시.   이 아침에도 우리의 목전(目前)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낯익고 평탄한 길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길이 있다. 소의 잔등처럼 유순하고 완만하고 반듯해진 길이 있고, 나아갈 틈이 없는 가시넝쿨을 헤치듯 누군가 처음으로 개시(開示)해야 하는 길도 있다. 그러나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인 우리는 각지고 불규칙한 길보단 대열의 후미에서 앞의 궤적을 뒤따라가고 싶어진다. 은근슬쩍 길들여졌으므로, 이 순응을 등지고 뒤집는 일은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어렵다.   이 시는 우리 마음에 악착스레 붙어사는 순응주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보통 사람들의 비겁과 안일에 대해 울화통을 터뜨린다. 앞선 행로에 기생하여 '꼬리를 물고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야멸치게 묻는다. 좌충우돌이면 어떠냐고, 뒤죽박죽이면 어떠냐고 묻는다. 풍파(風波), 그것이 우리들 삶의 표정이며,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므로 안주(安住)하려 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그러나, 이 야유는 좀 불편하다. "병 대신 병적인 것, 아픔 대신 아픔적인 것, 애인 대신 애인적인 것에서 우리는 위안받는다"('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그래서 만만히 볼 수 없는 이런 맹랑한 발언은 우리들의 속을 긁어 놓는다.   이 시가 실려 있는 김중식(41) 시인의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의 시편들은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과 사고를 전복하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우회(迂廻)가 없다. 그는 스스로 자초하는 존재들의 억센 자유의지를 격려한다. 시집 뒤표지 글은 이렇게 썼다. "자기 삶을 방목(放牧)시킨 그를 나는 존경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목된 삶은 야생마처럼 갈기를 세우고 주인의 울타리를 넘어서려 한다. 그 고투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연보를 읽을 때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사는 일이 지치고 가야 할 길이 막막할 때 스스로를 이렇게 불러보자. "주인공아!" 생념(生念)이라 했으니 엄두를 내보자. 박약한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자. 당신은 당신의 삶의 후견인(後見人).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을 당신이 앞서가고 앞서간 당신을 당신이 뒤따라가는 것. 야단법석인 이 삶을 살아 가야 할 주인공아     [애송시 100편 - 제 69편] 농무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 일러스트=권신아 '우리'라는 말은 참 오묘하다. '우리'라는 말에는 내가 들어있고 네가 들어있다. '지금-여기'라는 울 안에는 '너' 하나를 비롯해 무한한 '너'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그 '안'에는 널따란 품 같은 수평적 친밀함은 있지만 수직적 높낮이는 없고, '한솥밥'이라는 공모와 공유와 공감의 연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뜨끈뜨끈한 끈기가 우리의 어깨를 감싸곤 한다. 신경림(72) 시인은 '우리'라는 시어를 우리의 시와 현실 속에 말뚝처럼 세워놓았다.   긴급조치가 발령되기 시작했던 197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시집 ≪농무≫는 '우리' 현실의 사실주의적 묘사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시적 발견이었다. 이를테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이라며 민중의 삶과 민중들의 연대감을 살갑게 담아내곤 했다. 혹은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이라며 농민들의 애환과 정서를 일체의 수식 없이 단숨에 끌어올리곤 했다. 그리하여 이 시집은 '하나의 민중적 경사'로, 70년대 '민중시의 물꼬를 튼' 시집으로 평가되었다.   농무는 두렛일을 하며 두레패들과 함께 놀아야 하는 농악과 춤이다. 그러니 본래의 무대는 논두렁이나 밭두렁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시에서 농무는 운동장의 가설무대에서 분을 바르고 구경꾼들을 위한 볼거리로 전락해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비어가고 쇠락해가는 농촌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술과 노름과 빚과 주정과 싸움과 울음만 늘어나는 농촌의 현실이 답답하고 고달프고 원통해서 농사꾼인 '우리'는 소주를 마신다. 술잔이 돌고 술기운 취해서 걸립패의 후예인 '우리'는 보름달 아래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에 나선다.   소시장을 거쳐 도살장을 돌며, 임꺽정과 그의 배신자 서림이처럼 한패가 되어 놀아보지만, 쪼무래기 처녀애들이나 꼬일 뿐이다. 돌고 돌면서 점점 더해가는 '우리'의 신명에는 술기운과 분노와 원통이 묻어나고, 놀고 놀면서 점점 가벼워진 '우리'의 고갯짓에는 아직 흥과 신바람이 남아있다.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필부(匹夫匹婦)인 '우리'의 고단한 삶을 신명 난 가락에 실어, 치고 빠지는 슬픔과 해학의 정조가 일품이다.     [애송시 100편 - 제 70편] 방심(放心) -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마음을 놓다'라는 말, 참 오랜만이다. 마음을 풀어 놓아 버린 일 얼마나 오래되었나. 마음 졸이며 염려하고 살아왔을 뿐. 시인은 대청마루에 큰 대(大)자로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최대한 마음과 몸을 느슨하게 하고서. 바다처럼 편편하고 넓게 퍼져서. 그런데, 스윽, 칼날이 지나가듯 제비가 공중을 한 층 횡으로 서늘하게 자르면서 지나간 모양이다. 손가락을 퉁기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기습처럼.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 민첩한 한 줄기 바람으로.   집과 나의 중심부를 뚫고 지나갔으니 급소(명자리)를 맞은 듯 어이없고 어리둥절해서 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은 얼마나 시원한 것인가. 체증(滯症)이 가신 듯했을 것이다. 마음을 꼭 붙들어 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마음을 사방으로 허술하게 경계 없이 풀어놓는 것으로서 우리는 마음의 열림을 얻기도 한다. 그것이 무방비의 미덕이다. 좀 게으르게 혹은 별 준비 없이 멍청하게 있다가 한번쯤 당해보기도 해보라. 그런 당함에는 오히려 소득이 있다. 마음의 앞뒤 문을 다 열어놓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을 볼 수 있었겠는가. 마음을 조급하게 각박하게 쓰느니 차라리 이처럼 마음에 장애를 아예 만들지 않음이 오히려 '심심(深心)'이요, '정(定)'에 가깝다.   손택수(38) 시인은 긍정심이 아주 많은 시인이다. 다른 존재들의 '빛나는 통증'을 그의 시는 받아 안는다. 그의 시는 그가 어렸을 때 그곳서 자랐다는 전남 담양 강쟁리 마을을 배경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곳 마을 사람들의 천문(天文)적인 상상력은 그의 시에 들어와 크게 빛을 발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서정을 만들어낸다. "별이 달을 뽀짝 따라가는 걸 보면은 내일 눈이 올랑갑다"('가새각시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와 매달 스무 여드렛날은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달과 토성의 파종법')이자 "땅심이 제일 좋은 날"이라며 밭에 씨를 뿌리러 가던 할머니의 상통천문(上通天文)이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콧구멍에는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혼쥐로 살고 있다는 믿음, 임신한 몸으로 시큼하고 골코롬한 홍어를 먹으면 태어날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진다는 믿음 등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한 마을에서 자연 발효된 이런 금기사항은 우리 시에서 어느덧 희귀해진 것이어서 각별하고 값지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안마시술소에서 구두닦이를 할 때 안마시술소 맹인들에게 시를 읽어주면서 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시영 시인은 그를 "송곳니로 삶을 꽉 물고 놓지 않는, '고향의 기억'을 잊지 않는 오랜만의 생동하는 민중서사적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역린(逆鱗)'을 생각한다. "물고기 비늘 중엔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씩은 꼭 있다고"('거꾸로 박힌 비늘 하나') 하는데, "유영의 반대쪽을 향하여 날을 세우는 비늘"인 역린을 생각한다. 그의 시에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생(生)을 펄떡이게 하는, '뽈끈 들어올려주는' 힘이 있다. 시에 있어서 가장 든든한 원군(援軍)은 역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     [애송시 100편 - 제 71편]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일러스트=권신아 소월(1902~1934)을 생각하면 노랫가락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의 시가 노래처럼 가락을 타고, 실제로 그가 노랫가락을 즐겨 듣고 그 노랫가락을 시로 썼고, 무엇보다 그의 시가 많은 노래로 불렸기 때문일 것이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엄마야 누나야〉)에서 시작해 정미조의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개여울〉), 홍민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부모〉), 장은숙의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못잊어〉), 건아들의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활주로의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마야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진달래꽃〉)에 이르기까지. 가히 '국민시인'이라 칭할 만하다.   그런 소월을 생각하면 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가 〈진달래꽃〉이다. 소월은 외가인 평북 구성에서 태어나 그 가까운 정주에서 자랐으며 그 가까운 곽산에서 31세의 나이에 아편 과다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정주 가까운 영변에는 약산이 있고, 약산은 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 그가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약산의 진달래꽃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꽃'으로 보통명사화시키고 있다.   '가실 때에는'이라는 미래가정형에 주목해볼 때, 이 시는 사랑의 절정에서 이별을 염려하는 시로 읽힌다. 사랑이 깊을 때 사랑의 끝인 이별을 생각해보는 건 인지상정의 일. 백이면 백, 헤어질 때 '말없이 고이' 보내주겠다고 한다. 죽어도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고 한다. 아무튼 그땐 그렇다! 그 사랑을 아름답게 기억해달라는 소망이야말로 이별의 로망인 바, 떠나는 길에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뿌리려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아름'은 두 팔로 안았던 사랑의 충만함을 환기시켜 주는 감각적 시어다.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나는 건 아무래도 여자에게 더 어울린다. '말없이 보내드리우리다'나 '죽어도 아니 눈물을 보이겠다'는 결기야말로 남자다운 이별의 태도일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실 그때, 눈물을 참기란 죽는 일만큼이나 힘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고, 당신이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날 수 있도록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 이 시의 전모다. 얼마나 애틋한 사랑시인가. 이 사랑시는 영혼을 다해 죽음 너머를 향해 부르는 절절한 이별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초혼·招魂〉)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리라. 이렇게 노래하는 시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애송시 100편 - 제 72편]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 천양희         ▲ 일러스트 잠삼 마음을 네모진 돌과 같이 하라는 말씀이 있다. 비가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네모진 돌. 그러나 우리네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마음은 사나운 코끼리에 비유되고 번갯불에 비유되고 원숭이에 비유되니 그 분주함과 변화무쌍을 제어하기 어렵다. 시시각각 생기면 사라지니 붙잡으려야 붙잡을 수 없다. 마음에는 '차츰'과 '조용히'와 '차근차근'이 살지 않는다. 마음은 근심의 주머니여서 고통에 결박되므로 큰 병(病)의 뒤끝처럼 완쾌가 드물다.   이 시는 쉬지 않는 마음을 수수밭의 일렁임에 빗대었다.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이 시는 강원도 어느 마을에서 만난 수수밭이 시 창작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떠난 여행길에서 살아 돌아온 마음으로 쓴 시"라고 고백했다. 바람결에 서럽게 서걱대는 수수밭에 앉아 통곡을 했다고도 한다. 그런 일이 있은 지 8년 만에 이 절창의 시는 태어났다고 했다. 시인은 암처럼 깊어진 삶의 그림자를 끌고 보리밭과 수수밭과 계곡 초입에 있었을 절을 지나 산을 올랐을 것이다. 속 빈 고사목을 두들겨 쪼는 까막딱따구리도 도중에 만나면서. 절벽에 홀로 섰을 때 산 아래 저쪽에서 아직도 쪼그리고 앉아 수수밭처럼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멀찍이서 보았을 것이다. 비로소 고통마저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통과 안온과 증오와 자애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화엄의 생명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저속하고 용렬한 세상과의 불화가 사라졌을 것이다.   천양희(66) 시인은 1965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올해로 시력 43년이 되는 그녀는 "고통에 함몰된 나를 시가 구원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럴까. 김승희 시인은 그녀의 시를 "고독 위에 새긴 존재의 찬란한 금속세공과도 같다"고 평했다. 아직도 원고지에 시를 쓰고, 시를 쓰기 전에는 꼭 손부터 깨끗이 씻는다는 시인.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벌새가 사는 법〉) 그녀는 혹독하게 그녀의 '몸을 쳐서' 시를 쓴다. 고통의 몸을 쳐서 쓴 시들이기에 그녀의 시편들은 존재들의 뒤편을 읽어낸다. 문득 생(生)의 뒤란으로 돌아가 만나게 되는 쓸쓸함과 욕됨과 근심의 얼굴을. 시 〈뒤편〉에서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라고 썼듯이.   시집 《너무 많은 입》에 실린 '시인의 말'은 그녀의 골똘한 시작(詩作)을 짐작하게 한다. "시 생각만 했다 시 생각만 하다가 세상에 시달릴 힘이 생겼다 생긴 힘이 있어 시 생각만 했다 그토록 믿어왔던 시 오늘은 그만 내 일생이 되었다, 살아봐야겠다."     [애송시 100편 - 제 73편] 반성 704 -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   낑낑낑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   네 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 김 영 승           ▲ 일러스트 권신아 김영승(49)은 반성의 시인이다. 그는 술이나 잠에서 반쯤 깬 반성(半醒)의 시인이고 기존의 서정시로부터 반 옥타브쯤 들떠 읊조리는 반성(半聲)의 시인이다. 가난과 무능으로 일그러진 욕망의 고백을 일삼는 반성(反性)의 시인이고, 구도자적 치열함으로 당대와 스스로를 부정하는 형이상학적 반성(半聖)의 시인이다. 그는 이 모든 반성의 삶을 돌이켜 살피며 반성(反省)한다. 반성하는 기록자, 반성하는 반항인, 반성하는 백수(白手), 반성하는 주정꾼, 반성하는 폐인, 반성하는 시인이 바로 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반성시는 취언(醉言)이고 포르노이고 일기이고 철학이고 종교이기도 하다.   '밍키'는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강아지 이름이다. "놀랍고 분(憤)해 죽겠다는 듯 밍키가 짖는다/ '저젓……영키야!'/ 하며 어머니가 소리치고 나서 웃는다// 영승이를 부르시려 한 건지/ 밍키를 부르시려 한 건지// 하긴 나를 밍승이라고 부르면 또 어떠랴"(〈반성 764〉), "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 서럽다// 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 밍키를 보면/ 서럽다"(〈반성 673〉)에서처럼, 그는 스스로를 반성할 때 슬쩍 자신을 밍키에게 얹어놓곤 한다.   이 시에서도 병들고 구차한 밍키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며, 스스로가 밍키의 남편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밍키도 아닌, 밍키의 남편 같다는 데서 날카롭고 쓸쓸한 유머는 더해진다. 밍키에 대한 사랑은, 설움과 누추함 속에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동병상련일 것이다. 실은 아내도 없이 상처투성이로 뒹구는 백수의 외로움과 고독과 소외를 얘기하려는 것이리라. 그가 동병상련하는 것은 구차한 강아지, 밍키만이 아니다. 발로 눌러 끄는 선풍기(〈반성 743〉)나 똥통에 빠진 슬리퍼 한 짝(〈반성 827〉)이나 만신창이가 된 풍뎅이(〈반성 608〉)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갖다 버려도/ 주워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아름다운 폐인〉)라는 그의 자조와 위악과 오만은, 이렇게 '바닥'을 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는 자신의 시를 "훔쳐보기만을 하는 변태성욕자처럼/ 자기자신과 세계에 대한 불연속적 보고서의 작성자로 전락한/ 사실무근한// 인간과 인간사와/ 그리고 '나'라고 하는 개체의 일들을/ 왜곡되게 기록한 것//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서정시"(〈반성·서(序)〉)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렇게 반성의 끝을 향해 치달았던 그의 시는 개인과 젊음이 차압당한 폭력적이었던 80년대에 대한 저항이자, 그 회복을 위한 자존과 실존의 고해성사일 것이다. 우리 시사에서 드물게도 외설시비를 불러일으켰던 《반성》은 '아름다운 폐인'의 경지에서 '시인됨' 혹은 '시됨'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한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74편] 절벽 - 이 상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 일러스트=잠산 아마도 시인은 꽃이 핀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꽃잎이 둥글게 열리는 것과 꽃의 둘레를 달무리처럼 둥글게 감싸는 향기를 맡고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둥근 공간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눕힌다. 죽은 사람의 몸이 놓이게 되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이 묘혈인데, 그처럼 오목하게 파인 곳에 자신의 몸을 눕힌다. 이 시는 시인의 다른 시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읽히는 편이지만 문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밝게 만개한 꽃과 비산하는 꽃 향기의 반대편에 차디찬 주검과 서늘한 묘혈을 배치하고 있다. 열린 공중과 유폐된 땅 속, 두 공간은 서로 차단되어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은 이 이격된 거리를 가파르고 낙차가 큰 절벽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에도 병이 든 육체를 바라보는 시인의 황폐한 자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보여준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기이한 발상과 국어 문법을 파기한 그의 작품들은 당시에도 지금에도 파격 그 자체이다. 절망적인 근대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자아의 분열과 의식과잉을 그는 익히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해서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오감도〉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독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쳐 연재 15회 만에 전격적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독자들은 이상의 시에 대해 "개수작", "미친 놈의 잠꼬대" 등의 화포와도 같은 말들을 동원해 비난을 퍼부었다).   시인 이상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온도차가 뚜렷했다. 희대의 문제아였고, 모던 보이였고, 모더니스트였고, 천재작가였으며, "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고은)이었고, "모국어의 훼손에나 기여한 시인"(유종호)이었으며, 그는 "잉크로 글을 쓰지 않고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썼다"(김기림).   그러나 이상은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미술에 솜씨가 있어 하융(河戎)이라는 이름으로 박태원의 신문연재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그의 시는 숫자와 도형의 사용, 공간 분할 등을 보여주는 바, 이것은 그가 한때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일한 전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애송시 100편 - 제 75편]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일러스트 권신아 김광섭(1905~1977) 시인의 호는 이산(怡山), '기쁜 산'이다. 그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창씨개명을 반대한 애국교육자, 광복 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한 우익 문단의 건설자,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언론사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으로 현대사 100년을 정말 '산'처럼 살았다. 실제로도 그는 늘 산을 향해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산〉), "목마른 아스팔트를 옆으로 빠져서/ 나는 계절이 풀리는 산으로 간다"(〈산바람처럼〉).   '남포 깐다' '남포 튼다'는 말이 있었다. 남포란 다이너마이트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개발 저 개발로 너도나도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60~70년대 내내 대한민국 전역에 이 산 저 산을 깨는 남포 소리 울려 퍼졌었다. 산을 깎아 돌을 채취하고 도로를 만들고 빌딩을 올리곤 했다. 뻥 뻥 남포를 까면 산에 살던 뭇 짐승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강에 살던 뭇 물고기들은 기절을 하기도 했다. 뻥 뻥 남포 까는 소리에 밤 보따리를 싸들고 서울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산동네, 달동네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이 시의 창작 배경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돌 깨는 소리가 채석장에서 울리면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 그러나 저것들이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인가. 돌 깨는 산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집들은 모두 시멘트로 지어서 마음 놓고 내릴 장소도 없는 저것들이란 데 생각이 머물렀어요."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하던 중 성북동 집 마당에 앉아 하늘을 돌아나가는 비둘기떼를 보고 착상했다고 한다.   성북동 산과 산동네가 개발되면서 산비둘기는 둥지를 빼앗겼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이 산을 깨는 것과 비둘기들 가슴에 금이 가는 것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제 산비둘기들은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그렇게 쫓긴 산비둘기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고가 밑으로, 옥상으로, 창턱으로 흰 똥을 찍찍 내갈기며 뒤뚱뒤뚱 걸어다니고 있다. 산동네, 달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내쫓기곤 했다. 재개발과 산업화와 도시화와 문명화의 이면이었다. 유심초가 부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노래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저녁에〉)라는 시를 읊조려 보는 아침이다.     [애송시 100편 - 제 76편] 조국(祖國) - 정 완 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구비 구비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鶴)처럼만 여위느냐. 1962년>         ▲ 일러스트 = 잠산7   정완영(89) 시인은 평생 한국의 정형시인 시조만을 위해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는 정완영 시인을 통해 "이 당대, 시조 분야의 숭고한 순교자적 상(像)"(박경용)을 만난다. 시조를 말할 때 가람 이병기와 노산(鷺山) 이은상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초정(草汀) 김상옥, 이호우를 말하고, 그 뒤에 백수(白水) 정완영을 세워 말한다. "백랑도천(白浪滔天) 같은 분노도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의 석간수 같은 설움도 시조 3장에 다 담으셨다."(조오현)   박재삼 시인은 정완영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숭앙해서 "조용하게 잘 참는 것이 있다"면서 "야단스럽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성품이 그를 시조의 거목이게 했다"고 썼다.   이 시조는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정완영 시인의 초기 작품이다. 조국의 슬픈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시 〈만경평야에 와서>에서 "애흡다 열루(熱淚)의 땅 내 조국은 날 울리고"라고 썼을 때처럼. 조국을 한 채의 전통악기 가얏고(가야금)에 빗대면서 조국에 대한 큰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옛 시조의 행 배열을 살리면서 시종 장중한 어조로 감칠맛 나는 고유어를 사용했다. 청각에 시각을 한데 버무리는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압권이다. 가얏고의 서러운 가락이 귀에 들리는 듯하고,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청사(靑史)를 보는 듯하고, 한 마리 학의 고고한 성품을 가슴으로 마주하는 것 같다.   정완영 시인의 시조는 천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수사와 우주적인 상상력을 자랑한다.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초봄〉)같은 시조를 보라. 무릎을 치며 저절로 감탄할밖에.   이뿐만 아니라 정완영 시인은 정겨운 동시조도 많이 써왔다. 〈분이네 살구나무〉는 대표적이다.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시조는 말로만 쓰는 시가 아니라 말과 말의 행간(行間)에 침묵을 더 많이 심어두는 시"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도 매일 간곡하게 시조를 창작한다. 원로 시조시인의 이 창창(滄滄)한 뜻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애송시 100편 - 제 77편] 국토서시(國土序詩) - 조 태 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 일러스트 권신아  육척 거구, 고집불통, 임전무퇴, 대의명분의 시인. '쑥대머리'를 부르며 '소주에 밥말아 먹던'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시인. 국토와 식칼의 시인. 반골에 강골의 광주 시인. 의리와 정(情)의 시인. 조태일(1941~1999) 시인에게 붙여진 수식들이다. 그는 〈국토〉 연작시와 〈식칼론〉 연작시로 1970년대 우리시의 저항성에 일획을 더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에 대해 '몸도 크지만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스스로도 "이 조가야, 그 거창한 체구엔/ 노동을 하는 게 썩 어울리는데/ 시를 쓴다니 허허허 우습다, 조가야"(〈석탄·국토 15〉)라고 노래했다.   감옥에 갇힌 후배의 가솔들을 찾아 쌀과 연탄을 사주고, 언제나 제자들 밥부터 챙기는 격의 없는 스승이었다 한다. 술에 취한 야밤에 장독대에 올라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독재자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삿대질 삼창을 일삼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니의 통장에 다섯 해나 더 용돈을 송금했다고 한다. 그의 대학 은사였던 조병화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먼저 간 제자를 추모하며 "조태일은 시인이다 착하고 정직하고 곧고 의리의 시인이다 어린이도 느끼는 시인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념적 지향성은 서로 달랐으되, 스승은 젓갈 행상을 하던 홀어머니 밑에서 공부하는 제자의 형편을 알고 장학금을 받게 해주었고 제자는 두고두고 스승에게 극진했다는 미담도 잘 알려져 있다.   나라 국(國), 흙 토(土)! 국토는 우리 땅이다. 조태일 시인이 노래하듯, 우리의 하늘 밑이고 삶이고, 우리의 가락이고, 우리의 혼이고 숨결이다. 그뿐 아니다. 피와 살과 뼈에 이르는 우리의 온몸 그 자체이다. 그게 있어야 나라도 있고 국가도 있고 민족도 있다. 이 마땅하고 당연한 우리의 땅을 잃어버렸을 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김소월),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음으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한용운)라고 노래했다. 70년대 조태일에게 국토는 특히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혼'으로 상징되는 소외된 민중의 다른 이름이다. 이 땅의 주인인 그들을 위해 '일렁이는 피', '다 닳아진 살결', '허연 뼈'까지 보태리라는 시인의 뜨거운 의지가 돌올하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고 국토에 대한 숙명적 사랑을 노래했던 시인은, 간암으로 99년 9월 7일, 58세의 나이로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그곳/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풀씨〉)혔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국토이고, 오매불망 국토를 노래했던 시인의 유택이 되었다. 그는 28세에 "내가 죽는 날은 99년 9월 9일 이전"(〈간추린 일기〉)이라고 썼다. 미래를 예언한 그의 시참(詩讖)이 서늘하다.      [현대시 100년…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78) 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 일러스트 잠산 1980년대 대표적인 여성시인의 한 사람인 최승자(56) 시인. 그녀의 시는 송곳의 언어로 위선적인 세계와 정면으로 맞선 하나의 살의(殺意)였다. 가장 최승자답다는 이 충격적인 일갈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개 같은 가을이〉)   "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뼈를 잘못 삼켰다."(〈시인〉)라며 시인의 기본 성깔을 운운한 그녀는 삶의 고통과 세계의 위선을 거리낌 없이 폭로했다. 오직 자기 모욕과 자기 부정과 자기 훼손의 방식을 통해서.   이 시에도 폐광과 같은 유폐와 자기 방기가 있다. 시인은 '곰팡이'와 '오줌 자국'과 '죽은 시체'에 자기 존재의 흔적을 견준다. '나'라는 존재는 세상의 귓가를 정처 없이 떠돌다 사라지고 마는 '영원한 루머'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감히 말하며 아예 내 존재의 근거를 박탈해 버리려는 이런 듣기 거북한 발언은 그녀의 다른 시편에서도 흔하게 있다. 그녀에게 "이 조건 반사적 자동 반복적/ 삶의 쓰레기들.// 목숨은 처음부터 오물이었다."(〈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2〉)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주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이런 발언에는 위선의 세계에 대한 강한 혐오와 저주가 깐질기게 숨어 있다. 그녀는 이 세계가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깊이 병들어 있다고 보았다. 세계가 비명으로 가득 차 있고, 탐욕의 넝마이며, 치명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데 누군들 그곳서 생존을 구걸하겠는가. 그러므로 내 존재를 루머도 없게 치워달라고 할밖에.   그러므로 이 시에서 그녀가 독하고 날카로운 비유를 동원해 본인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고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은 일종의 위악의 방식이다. 이 부패한 지상에서 더 이상 썩지 않으려고 '부정하는 법'을 그녀는 선택한 것이다.   세월은 길고 긴 함정일 뿐이며 오직 슬퍼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서슴없이 말하던 시인. '허무의 사제' 최승자 시인은 세상을 혹독하게 앓고 시를 혹독하게 앓았다. 시로써는 "밥벌이를 할 수도 없고 이웃을 도울 수도 없고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고독의 창 앞에 쏟아부을/ 충분한 피"(〈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13〉)로 시를 써냈다.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된다./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예요."(〈자화상〉) 라고 읊었다. 그녀는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자살 연구》, 《침묵의 세계》 등 주옥 같은 역서를 낸 능력 있는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금 병환 중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세상에 내놓은 신작시를 찾아 읽기가 쉽지 않다. 끔찍하게 독한 그녀의 시가 그립다. 그녀가 밤새 짜낸 '치욕의 망토'로 '귀멀고 눈멀은' 우리들은 따스함을 얻겠지. 그녀가 시 〈삼십세〉에서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라고 쓴 것을 읽고 기이한 쾌감을 느꼈었던 것처럼.     [애송시 100편 - 제 79편] 투명한 속 - 이하석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 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려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어 더욱 투명해지고 더 많은 것들 제 속에 품어 비출 때,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확실히 비쳐 온다.   껌종이와 신문지와 비닐의 골짜기, 연탄재 헤치고 봄은 솟아 더욱 확실하게 피어나 제비꽃은 유리 속이든 하늘 속이든 바위 속이든 비쳐 들어간다. 비로소 쇠 조각들까지 스스로의 속을 더욱 깊숙이 흙 속으로 열며.    ▲ 일러스트 권신아   투명한 것은 비친다. 통과하며 통과시킨다. 더 많은 것들을 제 속에 '품어 비춘다'. 투명한 속은 제 속을 훤히 드러내며 더 많은 것들을 제 몸에 비추어낸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은 투명한 속을 깊숙이 열며 '비쳐 들어간다'. 시간의 흔적과 문명의 찌꺼기를 받아들이고 뱉어내는 유리 부스러기의 투명한 속은 보호구역이다. 그 투명한 속은 끝이 없다. 투명한 유리 속 제비꽃처럼, 그 찬란하고 선명하고 쓸쓸하고 고요한 남빛 그림자처럼.   이하석(60) 시인의 〈투명한 속〉을 읽다보면 영화 《밀양(密陽)》의 '햇살이 시궁창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마당 한구석의 흙탕물을 비추는 그 비밀스런 햇볕 혹은 숨어있는 햇살에 카메라 시선은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하석 시인의 시선이 그렇다. 그는 도시문명 속에서 구석지고 버려지고 망가지고 폐허화된 '것들'의 뒷풍경을, 클로즈업된 카메라 시선으로 보여준다. 인간을 편리하고 안락하게 해주는 현대문명의 뒷면에는 산업쓰레기와 비인간적 삶이 있다. 그는 1970년대 후반 그가 살고 있던 대구 주변에 널린 산업쓰레기 현장을 흑백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바탕으로 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사진처럼 감정 개입은 배제한 채. 쓰레기 가득한 이러한 낯선 시선은 '냉혹한 사실주의' '극사실주의'로 평가되었으며 1980년대 우리 시단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쇳조각, 폐타이어, 유리병, 깡통, 껌종이, 신문지, 비닐 등 산업화의 노폐물들은 흙과 풀뿌리에 뒤엉켜 덮여 있다. "폐차장 뒷길, 석양은 내던져진 유리 조각/ 속에서 부서지고, 풀들은 유리를 통해 살기를 느낀다./ 밤이 오고 공기 중에 떠도는 물방울들/ 차가운 쇠 표면에 엉겨 반짝인다,/ 어둠 속으로 투명한 속을 열어 놓으며"(〈뒷쪽 풍경 1〉)에서처럼, 그것들은 쉽사리 흙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풀과 더불어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 오랜 시간 후 흙과 풀뿌리에 깃들어 투명해지고 흙과 풀을 제 속에 품어 비칠 때, 그것들의 투명한 속은 흙과 풀을 통과하며 통과시킨다. 먼지와 녹물과 날카로움과 독성을 잠재우며 또 다른 이슬의 반짝임 쪽으로 뻗어나간다.   이 시도 버려진 유리병(조각)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있다. 유리의 반짝임과 투명함 쪽으로 흙과 풀들은 뻗어나간다.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로 상징되는 '제비꽃'은 버려진 유리 부스러기의 '투명한 속'을 비쳐 오고 비쳐 들어간다. 봄의 기운 혹은 생명의 싹 혹은 자연의 힘이다. 우리는 날마다 보고 있지 않은가. 유리 부스러기 속, 제비꽃 같은 남빛 그림자를! 시멘트 콘크리트 틈으로 돋아나는 노란 민들레꽃이나, 타일 콜타르 틈으로 삐쳐 나온 연한 세 잎 네 잎 클로버의 경이 그 자체를!     [애송시 100편 - 제 80편] 갈대 등본 - 신 용 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모의(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 일러스트 잠산  젊은 시인 신용목(34)은 "바람 교도(敎徒)"(시인 박형준의 말)다. 그의 시 곳곳에는 바람이 불어오고 멈추고 쌓이고 흐른다. 독특한 것은 그가 포착하는 바람의 속성인데, 그의 생각에 바람은 쌓이는 것이면서 강하게 '무는 힘'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바람이 비의 칼집을 잡고 서는 날"(〈바람 농군〉)에서처럼 바람을 정지시켜 묶어두거나, "느닷없이 솟구쳐 오르는 검은 봉지를/ 꽉 물고 놓지 않는/ 바람의 위턱과 아래턱"(〈새들의 페루〉), 혹은 "나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라고 써서 바람의 '무는 힘'을 강조한다. 아무튼 '바람 교도'답게 그의 시집을 펼치면 바람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문장이 모 기업의 에어컨 광고 문구로 사용되어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진 이 시에도 바람이 등장한다. 시인은 폐(廢)염전을 걸어가고 있다. 저녁 무렵이었을 테고, 갈대가 있는 곳에서 멈춰 섰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갈대는 갈대숲에 깃든 새들을 "통증처럼 뱉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늦가을이었으므로 갈꽃이 진 갈대는 '촉'처럼 '화살'처럼 서 있고 시인은 그 갈대들을 보면서 세월의 한 참극과 풍파를 기억해 냈을 것이다. 아마도 가족사에 해당될 사건들을. (그래서 제목이 〈갈대 등본〉 아닌가. 우리가 동사무소에 가서 한 장씩 떼는 '주민등록등본'처럼.) 가족사 가운데서도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의 일을 시인은 떠올렸을 것이다. 갈대처럼 누추를 입고, 뼛속까지 바람의 지층이 나 있고,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이제는 꺾인 아버지를 보았을 것이다. 지금 시인이 서 있는 공간, 즉 폐염전과 빈 둑과 꺾인 갈대와 바람이 부는 이 공간이 마치 아버지라는 존재의 영역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표현에는 개인적인 참회를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결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나비 눈》의 대본을 쓰기도 한 신용목 시인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허기'를 돌본다. 이주노동자, 구두수선공, 시장통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의 시는 따뜻하고 서글서글하다. '등이 굽은 가축'인 우리를 돌보는 아파트 경비원 정씨는 "어제는/ 물통을 청소하고 오늘은/ 배설구를 씻는다 가축은/ 정갈해야 하므로 내일은/ 쥐똥나무를 전지하고 모레는/ 짜기철망을 손질한다 가축은/ 안전해야 하므로/ 정해진 시간마다/ 상한 데는 없는지 손전등을 들고/ 고삐를 훑으러 간다"(〈경비원 정씨〉)   신용목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젊은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과 같은 시는 그런 평가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들, 뾰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죄(罪)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죄(罪)가 나를 씻어주겠다"(〈별〉)     [애송시 100편 - 제 81편]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 일러스트=권신아   사월이면 보리가 패기 시작한다. 초록이 지천으로 팬 보리밭을 지날 적이면 보리피리가 불고 싶어진다. 보리의 싹이 나오기 전의 보릿대를 꺾어 불면 피-ㄹ- 소리가 났다. 보릿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손톱으로 작은 구멍을 내 요령껏 불면 피-ㄹ 닐니리 소리가 나기도 했다. 청보리밭의 소리이자 고향의 소리 피-ㄹ 닐니리. 피-ㄹ 닐니리는 향수의 소리다.   〈보리피리〉의 시인 한하운(1920~1975).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문둥이'였다. 본명은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936년 17세의 나이에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중국 베이징대학 농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도청에 근무하며 양양한 미래를 시작하던 25세에 다시 악화되어 직장도 그만 두고 숨어들었다. 이때 이름도 하운(何雲, 어찌 내 인생이 떠도는 구름이 되었느냐)으로 바꾸었다. 1946년 함흥학생사건에 연루되어 반동분자로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월남했다. 구걸을 하며 연명하다 명동거리에서 시를 파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1949년 《신천지》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에〉) 외 12편이 실리면서, '불우의 시인' '천작(天作)의 죄수' '정처 없는 유리(遊離)의 가두(街頭)에서 방황하고 섰는 걸인'으로 소개되었다.   〈보리피리〉를 읽다보면 말 그대로 '천형(天刑)'을 짊어지고 살았던 그의 삶과 세월이 떠오른다. 보리피리를 불며 가는 '꽃 청산', '인환(인간의 세계)의 거리', '방랑의 기산하(많은 산과 들)'는, 그의 고향 함경도 함주에서부터 남쪽 끝 섬 소록도까지 이르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사월의 고향 들판에서 불었던 보리피리를 불며 그는 내내 그 멀고 먼 거리를 떠도는 구름처럼 흘러온 것이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러 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파랑새〉)라고 노래하며.   시는 행간을, 행간의 여백을 읽는 일이다. 이 시는 신문사에 갔다가 즉석에서 써준 즉흥시다. 한 편의 시에, 가곡이나 가요로 가장 많은 곡이 붙여진 시이기도 하다. 그의 삶이 그토록 불우하고 파란만장하지 않았더라면, '인환'이나 '기산하' 같은 한자어를 제외한다면 동시라 해도 무방할 이 단순한 시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기운생동 창끝처럼 패는 새파란 보리가, 지는 꽃처럼 문드러지는 붉은 살끝을 거느리고 있기에, 피-ㄹ 닐니리 봄의 보리피리 소리가 한층 깊고 서럽다.     [애송시 100편 - 제 82편]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일러스트=잠산   함형수(1914~1946) 시인은 생전에 불과 17편의 시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해서 노동자 숙박소 등을 전전했지만 하모니카와 시 노트만은 꼭 갖고 다녔다. 한 여배우와 동거했지만 사랑에 실패하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다 북에서 숨졌다. 그는 평생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못했지만, 만큼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인부락》은 서정주·김달진·김동리·오장환·김광균·함형수 등이 참여한 시 동인지였다. (《시인부락》 동인들은 '생명파'로 불렸다.) 함형수 시인은 이 시를 1936년 《시인부락》 창간호에 발표했다. 우선 이 시를 읽으면 후기 인상파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나 《해바라기》 같은 그림이 떠오른다. '압생트'라는 싸구려 술을 많이 마셔서 물체가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에 시달렸다는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술을 마시는 이유를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정신착란증으로 권총 자살한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도 함형수 시인의 불우한 죽음과 겹쳐 읽혀진다. 함형수 시인이 '청년화가 L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를 창작하면서 빈센트 반 고흐의 열정적인 삶과 죽음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헤아릴 수 없지만, 적어도 둘 사이에 적잖은 영향관계가 있다고 분석하는 의견은 많다.   시인은 자신의 무덤 앞에는 묘비를 세우지 말라고 말한다. '차거운' 주검 앞에 세운 '차거운' 비석은 죽음을 완성하고, 죽음을 죽음으로 붙박는 것. 마치 널이 죽은 사람의 몸을 사방으로 서늘하게 가두듯이. 대신 노랗게 출렁이는, 태양처럼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고 말한다. 다함이 없는, 대해(大海)와 같은 보리밭의 생명력과 공중으로 높이 날아오르는 노고지리(종다리)의 꿈과 자유를 달라고 말한다. 노란 빛깔과 푸른 빛깔의 색채대비가 인상적인 이 시는 식민지시대의 고한(苦恨)을 넘어서면서, 몸과 사랑과 꿈의 죽음을 완강하게 거부하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시종 넘쳐난다.   "눈앞에 보이는 삶의 미미(微微)한 즐거움은 선화륜(旋火輪)과 같다"고 했다. 선화륜은 횃불 같은 것을 손에 들고 빙빙 돌릴 때 생기는 불의 둥근 원(圓)을 말한다. 그만큼 삶의 즐거움은 허망하게도 머무르지 않고 흩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지속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미산(須彌山) 같고 큰 바다 같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해바라기가 자라고 보리밭이 출렁이고 종다리가 날아오르게 하자. 보리밭의 너비와 종다리의 높이를 사랑하자. 함형수 시인의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불멸의 선물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83편] 솟구쳐 오르기 2 - 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 일러스트=권신아 김승희(56)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시는 상처의 꽃'이라는 말이 입에 돈다. 상처에서 피처럼 피어나는 꽃, 그것이 시라는 생각에 미친다. 우리는 가족·사랑·출산·질병·밥벌이·이념·사회를 떠나 살 수 없기에, 우리들 상처는 우리들 보금자리에서 생긴다. 매일매일이 상처투성이다. 상처로부터 솟구쳐 오르게 하는 '용수철'이 없다면 우리는 상처로 짓뭉그러져 있을 것이다. 우리 몸에 내장된 '상처의 용수철'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삶은 상처의 화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튕겨 오르는 힘, 솟구쳐 오르는 힘이 있기에 우리는 매일 새롭게 아침을 맞는다.   〈솟구쳐 오르기〉 연작시들을 통해 시인은 "활활 타오르는 상처의 꽃에서 훨훨 날아가는 새의 날개의 푸드득 솟구쳐 오름"(시집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의 자서)을 찾아 어둡고 지리멸렬한 일상의 삶 위로 튀어 오른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창을 장대로 삼아 장대 높이뛰기를 하듯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고(〈솟구쳐 오르기1〉), 상처의 힘을 깨닫기 위해 긴 머리에 성냥불을 당기고 싶어하고(〈솟구쳐 오르기3〉), 상처의 혼(魂), 아니 혼 속에 간직한 상처의 오케스트라에서 터져 나오는 황금 별들의 찬란한 음악을 듣기(〈솟구쳐 오르기10〉)도 한다. 상처를 비상의 날개로 삼아 날아 오르고자 한다. 그는 '시인은 천형을 앓는 무당'과 같은 존재라고 쓴 적이 있다. 무당이 고통의 칼날 위에서 춤추는 자라면, 상처의 작두를 타고 상처의 작두 위에서 공중부양을 하는 이가 시인일 것이다. 그 역시 고정희, 최승자, 김혜순과 더불어 1970년대 여성시의 새로운 솟구침을 주도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시 쓰기 외에도 에세이, 평론, 장·단편 소설, 동화, 논문, 번역 등 분출하는 글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시에서도 상처에 내재한 자기갱생 및 자기정화의 힘을 노래하고 있다. 봄은 겨울에서 솟구쳐 오른다. 파란 싹, 파아란 보리, 개구리, 빨간 넝쿨장미, 민들레, 나뭇가지의 새 눈의 몸을 빌려 솟아오른다. 땅속이나 바위 밑에서부터, 담벼락을 타고 시멘트를 뚫고, 텅 빈 허공을 일으키며 기어오른다. 떨어져야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내내 얼어 있던 것들이, 넘어져야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내내 고통스러웠던 것들이, 당겨져야 다시 줄어드는 고무줄처럼 내내 아팠던 것들이, 오늘도 '상처의 용수철'을 타고 튕겨 오른다. 내일도 스카이콩콩을 타고 날아오른다. 아아 오오 우우~ 기지개를 켜며 솟구쳐 오르는 탄성(彈性)의 탄성(歎聲) 소리 가득한 아침이다.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닥이여 바닥에서/ 무거운 사슬들이/ 짤랑짤랑 가벼운 빛의 음악이 되는 그날까지"(〈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애송시 100편 - 제 84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4·19세대의 좌절과 절망을 노래한 4·19세대의 만가(輓歌)이다. 김광규(67) 시인은 한글로 교육을 받은 첫 세대로 4·19가 일어난 1960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이 시를 4·19혁명 18년 뒤에 썼다. 중남미 보컬그룹이 불러 1960년대 초반 크게 유행했던 노래와 동명의 제목이다.   터놓고 말하는 이 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변해버린 세상과 변해버린 사람들의 살풍경, 온데간데없는 열망과 초심(初心), 터럭만큼의 부끄러움조차 없게 된 양심, 판치는 속물주의와 물질주의. 이것을 시인은 부지불식간에 빠져들게 된 깊숙한 '늪'이라고 부른다. 크게 호통을 치지 않는데도 이 시를 읽고 나면 뭉근하게 가슴이 저민다. 왜 그런가.   우리는 점점 어깨가 움츠러들고 왜소화되어 간다. "작아진다/ 자꾸만 작아진다/(…)/ 모두가 장사를 해 돈 벌 생각을 하며 작아지고/ 들리지 않는 명령에 귀 기울이며 작아지고/ 제복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작아지고/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작아지고/ 수많은 모임을 갖고 박수를 치며 작아지고/ 권력의 점심을 얻어먹고 이를 쑤시며 작아지고/ 배가 나와 열심히 골프를 치며 작아지고/ 칵테일 파티에 가서 양주를 마시며 작아지고/ 이제는 너무 커진 아내를 안으며 작아진다"(〈작은 사내들〉) 시인은 어느덧 소시민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입장 없음과 순순히 따름이 정녕 우리들이 고대한 초상이었느냐며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면구스럽다.   독문학자이기도 한 김광규 시인은 일상시(日常詩)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시인이다. "김광규의 시는 그 생각에 비뚤어짐이 없으며 그 어조에 격렬한 부르짖음이 없으며 그 은유에 현란한 모호성이 없고 그 관심이 소박한 일상을 넘어서지 아니한다."(문학평론가 이남호)   김광규 시인 스스로도 자신의 시는 오페라에 있어서의 레치타티보(서창)쯤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아리아처럼 목청을 높여 외치지는 않는다. 다만 낮게 중얼중얼거릴 뿐. 하지만 이 중얼거림은 살기 바쁜,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배불리 먹는 일에 열중인 우리들을 거북하게 만든다. 마치 맨발로 사금파리를 밟은 듯하게. 일례로, 그는 우리를 '4월의 가로수'에 섬뜩하게 빗댄다. 우리의 모습이 "팔다리까지 잘려/ 봄바람 불어도 움직일 수 없고/ 토르소처럼 몸통만 남아"(〈4월의 가로수〉) 있는 수양버들이라니! 그러나 둘러댈 말이 없다.   4·19혁명 기념일이 다가오면 이 시를 다시 읽게 된다. 까슬까슬하게 카랑카랑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애송시 100편 - 제 85편]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일러스트=권신아   천지에 꽃 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 넘쳐난다. 껍질만 살짝 문질러도 생강 냄새가 확 풍기는, 산수유꽃 닮은 생강나무꽃, 사람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 달맞이꽃, 애기똥풀꽃, 쑥부쟁이꽃 본 적 있다. 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흰 동백꽃,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꿩의바람꽃, 아침이면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있다. 해가 나면 자줏빛 꽃잎을 활짝 연다는 바람난 처녀꽃, 엘레지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며느리배꼽꽃은 아직 못 보았다. 저 꽃들의 고요!   "어진 이는 만월(滿月)을 경계하고/ 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나니/ 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한용운 〈모순〉)라고 했거늘,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속의 분별과 속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리라. 올해로 40주기를 맞는 조지훈(1920~1968) 시인은 섭리로서의 소멸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보여준 시인이다. '지조(志操)'를 지킨 논객이자, '주정(酒酊)'의 교양과 '주격(酒格)'의 품계를 변별했던 풍류를 아는 학자였으며, 무엇보다 낙화를 찬미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이 시는 화두처럼 시작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꽃은 바람에 지지 않는다. 피면 지고, 차면 이울기 마련이라서, 꽃은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지는 것이다. 저 꽃을 지게 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밤을 아침으로 바꾸는 시간인 것이다. 시인은 촛불이 켜진 방안에서, 주렴 밖으로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아니 꽃이 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리라. 돋았던 별이 하나 둘 스러지는 새벽, 먼 산의 소쩍새가 울고, 뜰에는 꽃이 지고 있다. 달빛이 고즈넉했던지 꽃 지는 그림자가 미닫이에 비친다. 방 안의 촛불을 꺼야, 지는 꽃이 빛을 발한다. 인간의 촛불을 꺼야, 어둠 속에서 목숨이 지는 자연의 꽃이 내는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다.   그는 범종소리를, 과실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소리에 비유한 적이 있다. "허공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종소리는 터져서 빛이 되고 향기가 되고/ 다시 엉기고 맴돌아/ 귓가에 가슴 속에 메아리 치며 종소리는/ 웅 웅 웅 웅……/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날아오른다 아득한 것"(〈범종(梵鐘)〉)이라고. 그 새벽에도 꽃이 지는 소리 웅 웅 웅 웅…… 아득했으리라. 흰 창호지문을 물들이는, '우련(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붉은, 낙화의 그림자! 지는 꽃의 그림자를 나는 이 시에서 처음 배웠다. 꽃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꽃이 다시 보인다는 것도. 밤새 진 꽃들 한 치는 쌓이리라. 꽃은, 진 후에 더욱 꽃이기에, 지는 꽃의 슬픔을 이리 높고 깊게 맞을 일이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 과묵한 슬픔 앞에 목이 멘다.      [애송시 100편 - 제 86편] 서시 - 이시영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 일러스트 잠산   이시영(59) 시인을 떠올리면 그가 늘 쓰고 다녔던 검고 둥글고 큰 뿔테 안경과 그 너머의 빛나는 안광(眼光)이 생각난다. 깡마른 체구와 또각또각 한마디씩 끊어가며 내놓는 정직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1974년 문인들의 민주화운동 조직이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결성에 참여한 이후 엄혹의 시대와 맞서는 문인의 길을 걸었다.   이로 인해 연행되고 구금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989년 《창작과비평》 주간으로 있을 때 황석영의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잡지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유신 철폐를 위해, 구속 문인과 양심수 석방을 위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동자의 살 권리를 위해 국가 폭력에 맞서고 분연히 일어나 싸웠다. 그런 체험과 시대에 대한 울분을 선혈(鮮血)의 언어로 기동력 있게 쓴 것이 그의 민중시였다.   첫시집 《만월》에 수록되어 있는 이 시에도 그의 발자취와 육성이 살아있다. 이 시는 어둠의 시대를 살다 실종되고 도피중인 동지가 돌아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압수되고, 두들겨 맞고, 체포당한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등과 평화가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열망하고 있다. 댓잎이 살랑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숨막히는 고요가 기다림의 절절함이라면, 천지를 쿵쿵 울리는 역동적인 발자국 소리는 돌아옴의 당위에 해당한다. 저 폭압의 시대에는 자식의 생사도 모르는 채 하염없이 뜬눈으로 눈물로 밤을 지새운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시영 시인은 민중시를, 이야기시를, 우리말을 세공(細工)한 단시(短詩)를 선보여 왔다. 근년에는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스크럼을 짜고 함께 통과해온 인물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시를 써내고 있다.   광주일고 1학년 생활기록부에 장래 희망을 법관으로 적어 놓은 해방전사 김남주, 휘파람 잘 부는 송영, 마포추탕집에서 쭈글쭈글한 냄비에 된장을 듬뿍 넣고 끓여 함께 먹던 조태일, 문단 제일의 재담가 황석영, 상갓집에 가면 제일 나중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인심 좋은 이문구, 섬진강서 갓 올라와 창작과비평사 문을 벌컥 열고 사과궤짝을 쿵 하고 바닥에 내려놓던 김용택 등등.   그는 지나간 옛일들을, 고통의 역사를 애틋하게 따듯하게 불러낸다. 특히 송기원과의 두터운 교분을 자랑하는 시편들은 왁자하고 눈물겹다. (이시영 시인은 송기원, 이진행과 함께 '서라벌예대 문창과 68학번 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시영 시인은 "마치 이 세상에 잘못 놀러 나온 사람처럼 부재(不在)로서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며 살아온 사람"(〈시인〉)이 바로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미풍'이 되어 서러운 사람에게로 불어간다. 가슴이 뭉클하다.     [애송시 100편 - 제 87편] 껍데기는 가라 - 신 동 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일러스트 권신아   기운생동, 만화방창의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던 이는 엘리어트였다. 우리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부여의 시인, 금강의 시인, 신동엽(1930~1969)은 이렇게 노래했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겨울 땅을 갈아엎어 줘야 싹들이 더 잘 일어서는 이 4월에.   4월 19일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 〈껍데기는 가라〉는 벼락같은, 천둥같은 시다. 이 시에 무엇을 더 덧붙일 수 있으랴. 덧붙이는 순간 사족이고 군말일 뿐이다. 그만큼 시 자체   로 명명(明明)하고 백백(白白)하다. 1967년에 발표된 이 시는 4·19 혁명의 실패, 5·16 군사 쿠데타, 6·3 사태, 베트남 전쟁 파병, 분단의 고착, 외세의 개입 등 1960년대의 구체적 시대상황을 시의 배면에 깔고 있다. 그러니 시인에게 삼천리 한반도의 사월은 껍데기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라고 반복적으로 촉구하고 있지만 사실 이 시의 핵심은 '껍데기'보다는 '중립의 초례청'에 있다. 이 '중립(中立)'에는 남과 북,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넘어서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백두에서부터 한라까지, 동학년(1894년) 곰나루에서부터 4·19(1960년) 광화문까지, 백제의 후손 아사달과 아사녀의 못다 이룬 사랑에서부터 신라의 석가탑(無影塔)과 영지(影池)까지를 아우르는 이 중립의 스케일은 얼마나 장쾌한지.   이 웅대한 중립의 시 공간을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라는 문장 하나로 관(貫)하고 통(通)해낸다. 이 중립이야말로 진정한 알맹이이자 흙가슴이며, '부끄럼을 빛내며' 두 몸이 맞절하여 새로운 생명이 잉태할 수 있는 화해의 장(場)이라고 말하고 있다. 60년대 참여문학를 대표하는 이 시는 이후 민중·민족 문학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고 짐짓 물을 때, 시인이 보고자 했던 '하늘'은,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봄은〉)는 사월의 하늘이었을 것이다. 그런 하늘은 보지 못하는 한, 시인은 여전히 4월에는 껍데기는 가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은 것이고,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애송시 100편 - 제 88편]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일러스트=잠산   꽃이 지고 있다. 손에 꼭 쥐었던 것을 놓아버리고 있다. 어떤 꽃의 낙화에는 만행을 떠나는 수행자의 뒷모습이 있다. 미련 없이 돌아서기 때문에 낙화에는 구차함도 요사스러움도 없다.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이별은 등 뒤를 허전하게 만들고, 며칠 눈물을 돌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제때에 떠나감은 말끔하고 쾌적하다.   새잎이 돋고, 줄기가 힘차게 뻗고, 꽃이 벙글고, 벌이 꽃의 외곽을 맴돌고, 비로소 어느 아침에는 꽃이 '하롱하롱' 지고, 꽃의 시간을 구구절절 기억하며 열매가 맺히고,…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 큰 운행을 벗어나기 어렵다.   부귀는 빈천(貧賤)으로 바뀌고, 만남은 이별로 바뀌고, 건강은 늙고 죽음을 초래한다. 시시각각 바뀐다. 그래서 이런 것에는 견실성이 없다. 견실성이 없으므로 집착할 것이 못 된다. 불교에서는 "온갖 사물은 다 없어질 것이어서 공중의 번개 같고, 굽지 않은 질그릇, 빌린 물건, 썩은 풀로 엮은 울타리, 모래로 된 기슭과 같다"고 했다. 이형기(1933~2005) 시인의 초기 시에 속하는 이 시는 집착 없음과 아름다운 물러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형기 시인은 1950년 시 〈비오는 날〉을 잡지 《문예》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때 그의 나이 17세. 최연소 등단기록이었다. "시(詩)란 본질적으로 구축해 놓은 가치를 허무화시키는 작업이야. 시에 절대적 가치란 없어. 자꾸 다른 곳으로 가는 팔자를 타고난 놈들이 시인이야. 그 무엇이건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자유 말이야." 그는 시 창작뿐만 아니라 소설, 평론, 시론, 수필 등에 이르기까지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펼쳤다. 초기에는 자연 서정을 선보였으나 현대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악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시 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한국시사에서 사라짐에 대한 존재론적 미학을 선보였다. "빈 들판이다/ 들판 가운데 길이 나 있다/ 가물가물 한 가닥/ 누군가 혼자 가고 있다/ 아 소실점!/ 어느새 길도 그도 없다/ 없는 그 저쪽은 낭떠러지/ 신의 함정/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도 모르는/ 길이 나 있다 빈 들판에/ 그래도 또 누군가 가고 있다/ 역시 혼자다."(〈길〉)   "고독과 고통은 시인의 양식"이라고 말했던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랜 투병생활을 했다. 그러나 고통스런 병석에 있으면서도 그는 아내의 대필로 시를 계속 창작했다. 그는 슬픔에 휩싸인 사람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아포리즘을 남겼다.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때는 슬퍼해 봐도 물론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슬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슬픔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슬픔은 가장 순수하고 따라서 값지다."     [애송시 100편 - 제 89편] 철길 -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쇳덩어리가 이만큼 견뎌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철길의 들끓어오름을 적셔주었다.   무너져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온 것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희망이,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답답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리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남해안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한강교를 건너면서   인천 방면으로, 그리고 수원 방면으로 떠난다.   아직 플랫포옴에 머문 내 발길 앞에서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하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은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욱이 된다.       ▲ 일러스트=권신아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고 나직이 되뇌면 생각의 꼬리가 철길처럼 길게 이어지곤 한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는 순간 수수께끼라도 떠안은 듯 뒷말을 잇도록 한다. 김정환(54) 시인은 '철길이 철길인 것은'을 되뇌며 (철)길과 만남과 희망을 엮어 이렇게 노래한다. 만날 수 없음이 이리도 끈질기기 때문이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고 되뇌면 신촌역, 성북역, 용산역, 서울역을 오가던 아련한 철길들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철로도 아니고, 철도도 아니고, 바로 '철길이 철길인 것은' 그 길이 인간 안쪽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철길은 두 개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길과 또 하나의 길, 한 사람의 길과 또 한 사람의 길! 그 두 길은 서로 마주칠 수 없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서로 버팅김으로써 지나감의 속도와 무게를 견뎌내는 길이다. 지금 당장은 만날 수 없는 길이지만, 언제나 함께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시간의 누적인 역사(歷史)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1899년 제물포에서 노량진을 오가는 경인선이 첫 경적을 울린 이후 철길은 격동의 근대사를 달려왔다. 수탈하고 징병하고 피란하고 산업하러 가는 길에 철길이 있었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나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돌아간다. 상경하고 귀경하고 입영하고 귀대하고 여행하는 곳에 늘 철길이 있었다. 그러니 '철길이 철길인 것은' 그 길에 자갈돌처럼 깔려 있는 기다림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너무 길고 외로워서, 철길이 두 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철길이 철길인 것은' 끝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철길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그는 "이 살아있음이 언젠가는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고/ 또 사랑하는 것이"(〈육교〉)고, "음침한 시대가, 끝났다는 듯이/ 기름 묻은 이슬이 검게, 선로 위에서 반짝인다/ 아직 젖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검붉은 눈동자〉)라며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고통도 절망도 이별도 끝이 있기 때문에 견딜 만한 것이고,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고, 결국 희망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한" 것이다. 당신이든 미래든 휴전선 너머든 완행이든 급행이든, 바로 그곳까지 달려가는 것이 철길인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0편]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버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을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간다.       ▲ 일러스트 잠산   김광균(1914~1993) 시인은 1930년대 후반 회화적 이미지즘의 새로운 문법을 선보였다. 그는 시에 '회화(繪?)'라는 웃옷을 입혔다. 모더니즘 시론가 김기림은 "소리조차를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가진 시인"이라고 평했다.   김광균의 시는 독자들의 눈앞에 한 장 한 장의 데생을 그려 보이는 작법을 구사했다. 이런 데에는 김광균이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많은 화가와 직간접적으로 교우한 영향이 컸다. 김광균은 고흐의 그림을 처음 접한 충격을 이렇게 고백했다.   "고흐의 '수차(水車)가 있는 가교(假橋)'를 처음 보고 두 눈알이 빠지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낀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 느낀 유럽 회화에 대한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계미술전집을 구하며, 거기 침몰하는 듯하여 나는 급속히 회화의 바다에 표류하기 시작했다. 시집보다 화집이 책상 위에 쌓이기 시작했고, 내 정신세계의 새로운 영양(營養)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 같다."   그는 섬세한 감각의 촉수로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 우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뎃상〉)로 표현했고, 흰 눈이 내리는 모습은 "먼―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설야〉)로 표현했고, 성교당(聖敎堂)의 종소리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외인촌〉)로 빛나게 노래했다.   마치 먼지 낀 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시에서도 그는 공허하고 고독하고 스산한 마음을 '모양으로 번역'해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은 낙엽을 보면서 망명정부에서 발행하는 무가치한 지폐를 떠올리고, 폐허가 된 도룬(토룬) 시(市)의 공백(空白)한 하늘을 떠올린다. 구불구불한 길은 '구겨진 넥타이'로, 잎이 다 떨어진 포플러 나목(裸木)은 초라한 '근골'로, 불투명하고 얇은 구름은 '세로팡지(셀로판지)'로 표현함으로써 아주 구체적으로 대상을 조형한다.   낙엽을 망명정부의 무용한 지폐에 비유하거나, 공장의 지붕을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빨에 비유하는 대목에서는 도시적 문명에 대한 시인의 비판 의식도 엿볼 수 있다. 이 시에 나타나는 황량한 심사는 모색(暮色) 그득한 그의 다른 시편들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상실감과 창백한 감상(感傷)은 가족들의 죽음, 실향 등의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되었다. 해서 혹자는 김광균을 '엘레지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26년 12세의 나이로 '중외일보'에 처음 시를 발표하면서 천부적인 시안(詩眼)을 자랑했던 김광균 시인은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한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납북된 동생의 사업을 인수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렇지만, 그는 안개 자욱하던 한국 시단에 장명등(長明燈) 하나를 켜 놓았다. 아직도 그곳서 가늘고 고단한 불빛이 새어나오며 밤을 밝히고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91편]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 일러스트 권신아   "저질러라, 닥치면 겪는다, 긍게 긍갑다"를 인생의 3계명으로 삼고 사는 여성 시인이 있다. 실제로도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에서 살았으며, "치사량과 열정과 눈물 한 방울만큼의 광기와 고독/ 개미의 페로몬 같은 상상력"(〈짜가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재료로 '시 같은 거짓말'을 제조하고 '거짓말 같은 시'를 타전하여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씩씩하고 싹싹한 안현미(36) 시인의 얘기다.   2006년에 엮어낸 그의 첫시집 《곰곰》은 이렇게 소개되었다. "활짝 핀 착란의 찰나에서 건져 올린 생짜의 시, 시라니!"라고.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막장에서 석탄을 캐내던 내 아버지"(〈고장난 심장〉)와 "까치밥처럼 눈물겨운 엄마"(〈우리 엄마 통장 속에는 까치가 산다〉)의 틈바구니에서 '생짜'로 캐낸, 캄캄한 그러나 반짝이는, 검은 조개탄을 들여다보는 일만 같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의 비망록'은 있는 것이어서, 그 비망록이 어둡고 고통스러울수록 그 젊음은 젊었음이 틀림없다. 이 시는 시인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여상, 산동네, 등록금, 비키니 옷장, 순대국밥, 번개탄, 연탄가스 중독, 헌책방 따위로 그려지는 90년대면서도 '여전히 70년대적인' 풍경이다.   거기에는 짐작되는 아픔이 있고 헤아려지는 가난과 고독이 있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할 때, '~이었지만'을 경계로 앞 문장은 뒤 문장에 의해 뒤집힌다. 경계는 해체된다.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라고 말할 때,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라고 말할 때도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무참히 무너진다. 이렇게 앞과 뒤는 가파르게 반전하지만 사실은 동어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리듬감은 여기서 살아난다.   시인에게 '거짓말'은 '시'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진실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이러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타전하다'라는 말은 "목마른 시인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팔리지 않는 위독한 모국어로 시(詩)를 쓰고 있었다"(〈그해 여름〉)의 다른 표현이며, 그의 시에서는 거짓말을 제조하다, 환을 연주하다(보다), 몽유병에 꽂히다, 착란에 휩싸이다 등으로 변주된다.   그런데, 나를 울게 하고 결국은 가족이 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란 무엇에 대한 은유일까? 야행성의 창녀들일까, 치한 혹은 사내들일까, 불안이나 공포일까, 죽음일까…… 어쨌든 "그녀의 더듬이는 쓴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운다"(〈거짓말을 제조하다〉). 그것은 진행형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2편]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 일러스트=잠산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중략)/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5·18광주항쟁을 최초로 형상화한 이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썼던 시인이 바로 김준태(60) 시인이다.   이 시는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 1면에 일부 게재되었고, 전 세계 외신을 타고 나라 밖으로도 알려졌다. 이 시 발표 후 전남매일은 강제 폐간되었고, 김준태 시인은 재직하던 전남고교에서 해직되었다. 이 일례는 그의 문학적 이력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진보적 문인인 김준태 시인은 시를 통해 대동세상(大同世上)에의 열망을 노래해왔다.   남도의 입심을 잘 살려가며 시를 써내는 김준태 시인. 그의 시 세계의 원적(原籍)은 농민시이다. 첫 시집 《참깨를 털면서》에서도 그랬고, 그 이후 발표한 〈밭시〉 연작에서도 그랬다. "칼과/ 흙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흙을/ 찌른 칼은/ 어느새/ 흙에 붙들려/ 녹슬어버렸다"(〈칼과 흙-밭시(詩) 52〉). 그는 흙의 건강한 생명력을 강하게 신뢰하는 시인이다.   시 〈참깨를 털면서〉는 김준태 시인의 데뷔작이다. 밭에서 할머니와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가 참깨를 털고 있다. 할머니는 깻단을 슬슬 막대기질 하지만, '나'는 산그늘이 내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조바심을 낸다. 명령하듯 깻단을 한번 내리치면 복종하듯 솨아솨아 쏟아지는 깨알들이 기막히게 신기하고 신이 난다. 그예 모가지까지 털다가 꾸중을 듣는다. 목숨 가진 것에 대한 조금의 외경도 포용도 없이 무턱대고 털어대는 쾌감에 정신없으니 왜 혼나지 않겠는가. 이 시를 읽으면서, 인간의 본직을 잘 잊고 사는 나도 할머니 곁에서 참깨를 털며 한 차례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 참깨농사뿐만 아니라 사람농사까지 원융(圓融)하게 지어온 그 할머니로부터 꺼끌꺼끌한 사투리로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   준엄한 역사의식으로 당대에 대응해 우직하게 노래하는 김준태 시인의 또 다른 관심사는 통일문학이다. 말을 구부리거나 곧은 문장을 비틀어서 만든 시가 아니라 '심장을 싸늘하게 감싸는' 시를 찾는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안테나의 촉수가 쉴 새 없이 작동되어야 하고 상황이 타전이 되어 오면 재빠르게 이웃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혹은 예언의 나팔을 불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름하여 시인이 아니던가." 현실로부터 비켜서지 않는 그의 열정은 폭포수 같다 할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3편] 감나무 -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 일러스트 권신아   소설가 현기영의 발문을 빌려 말하자면, 좀 '지랄 같은 성깔'과 '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개구쟁이의 웃음'과, 그리고 '시적 허기증'이라 할 만한 왕성한 창작 욕구가 가장 그답다고 한다. 그가 바로 이재무(50)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고향과 유년에의 기억, 도시와 문명의 피로 등 자신의 삶 체험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퇴고할 필요가 별로 없는 완전한 모습의 시가 초고부터 씌어진 경우 좋은 시가 많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감나무〉야말로 단숨에 쓰여진 시임에 틀림없다.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담고 산다. 흰 보석 같은 감꽃과 달착지근했던 그 꽃맛, 새파란 감잎과 툭 툭 떨어지던 풋감들이 만들어내는 그 그늘, 꽃보다 더 고왔던 붉은 감잎과 그 거름, 감과 곶감과 까치밥의 그 달콤한 맛…. 그것들이 있는 풍경이란 하나같이 정답고 포근하다. 이 고향 같은 '감'은 도무지 어디서 비롯된 이름일까.   15년 동안을, 주인이 도망치듯 떠난 빈집에서 꽃을 내고 잎을 내고 감을 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은 애틋하다. 성큼 들어설 주인을 마중이라도 하려는 듯 사립 쪽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다. 연초록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순이 잎이 되고 그 잎이 질 때, 한 기다림을 다 살았을 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나 귀기울이는 것이리라. 날렵하게 포착해낸 이 짧은 시의 여백에는 농촌의 붕괴와 이농 현상이 있고, 한 가족의 곡절 많은 삶이 있고, 녹록치 않았을 도시살이가 있고, 무작정의 세월이 있고 계절이 있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고, 인정이 있고 섭리가 있다.   이런 감나무는 또 어떤가. "저물 무렵 밭둔덕에 외로이 서 있는/ 늙은 감나무와 나란히 서서/ 인생의 황혼을 억세게 갈무리하시는/ 아부지의 등허리엔/ 살아온 날의 높고 낮은 등고선이/ 가파르게 펼쳐져 있다"(〈아부지〉).   이 감나무는 주인과 함께 늙어가며, 뻗어가는 가지들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초겨울 인적 드문 숲속/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위태위태한 빨간 슬픔의 홍시/ 하나의 마음으로 기다린다"(〈기다림〉). 이 감나무는 기다림을 완성시켜줄 '큰 입 가진 임자'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고향이란 이런 감나무처럼 애틋하게 기다려주는 곳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감나무로 통하는 것이다.   새순이 돋았으니 감꽃마저 지고 나면, 감이 열리고 감잎이 물들 것이다. 그리고 까치밥 하나 오래 맺혀 있으리라. 고향 빈집에 남겨두고 온 저 감나무는 그렇게 삼십년을 알콩달콩 한 식구처럼 살았으니, 십오년에 또 십오년은 더, 피붙이처럼 그리워할 것이다. 속을 바짝바짝 태우며 그리 오래 기다렸던 감나무니 그 감은 또 오죽 달 것인가.     [애송시 100편 - 제 94편]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 끝 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 일러스트 잠산   정끝별(44) 시인의 시는 경쾌하다. 언어에 용수철 같은 탄력이 있고 집중력 있게 나아간다. 그녀의 시는 '불붙는 것'을 읽어내는 솜씨가 있다. 시적 대상이 갖고 있는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읽어내는 놀라운 수품(手品). 하나 속에 들어있는 상반된 성격의 팽팽한 대립을 말할 때 그녀의 시는 유니크(unique)하다. 그녀의 시는 모임과 빠져나감, 격렬함과 멸렬함, 달아남과 풀어줌 등 이 세상의 모든 시적 대상이 아마도 갖고 있을 상반된 두 성격, 한데 엉킨 두 성격을 표현한다. 해서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열망을 추슬러서 세상 안으로 돌아와 자리잡을 때 정끝별의 시에는 물기가 번지고 리듬이 인다"(소설가 김훈의 말).   이 시에서도 시인은 허공에 혹은 담장에 맞닥뜨린 가지의 엉킨 두 마음을 읽어낸다. 사람에게도 그렇듯이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감행의 신명이 공존할 것이다. 다만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는 혼연일체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것을 범박하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랑의 배후로써 우리는 금단과 망설임과 삶의 궁기(窮氣)를 넘어선다. 사랑 아니라면 어떻게 한낱 가지에 불과한 우리가 이 세상의 허공을, 허공의 단단한 담을, 허공의 낙차 큰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정끝별 시인은 시 에서 우리의 삶은 "조율되지 않은 건반 몇 개로 지탱하고"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낡아가는 악기는 쉬지 않고 음악소리를 낸다. 나 딸 나 애인 나 아내 나 주부 나 며느리 나 학생 나 선생 응 나는 엄마 그리고 그리고 대대손손 아프디아픈 욕망의 음계, 전 생을 손가락에 실어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 이 시에서처럼 그녀의 시는 삶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그것을 딛고 나아간다. 길의 상처를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타이어의 둥근 힘처럼. 조율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가 없다면 우리 삶의 악보는 진혼곡 그 자체일 터. 그녀의 시가 각별한 것은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의 음계를 연주하는, 이 특별한 식미(食味)에 있다.   바람을 표절하고, 싱싱한 아침 냄새를 표절하고,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하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되고 싶다는 정끝별 시인. 그녀의 시는 봄나물처럼 생기발랄하다. 부럽게 상큼한 맛으로 그녀의 시는 우리의 입맛까지 살려준다.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며 지친 이의 마음에 숟가락을 쥐여주는 이 시는 얼마나 푸근푸근한가.   "달아도 시원찮을 이 나이에 벌써/ 밥이 쓰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쓰고 글을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을 쓰고 관을 쓰고 쓰고 싶어 별루무 짓을 다 쓰고 쓰다/ 쓰는 것에 지쳐 밥이 먼저 쓰다/(중략)/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고/ 떼꿍한 눈이 머리를 쓰다듬는 저녁"().      [애송시 100편 - 제 95편] 인파이터 - 코끼리군의 엽서 - 이장욱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가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넌 내가 바라보던 바다를 상상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에는 날 잊어줘.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   떨어진 사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기 서해 쪽으로 천천히, 새 한 마리 날아가데.   모호한 빛 속에서 느낌 없이 흔들릴 때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 일러스트=권신아   이장욱(40) 시인의 시는 몽롱하다 아니 명쾌하다. 난해하다 아니 낯설다. 좀 다르게 말해보자. 그는 낮을 사는 시인이다 아니 밤을 사는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다 아니 소설가다. 노문학자다 아니 (픽션)에세이스트다 아니 비평가다. 현대시 모더니티의 한 극점에 서 있는 '우울한 모던보이'다, 아니 서정시의 안부(內部)를 공략하는 '진정한 인파이터'다. 짐작하겠지만, 그는 그 모두이면서 단지 문학 그 자체이다. 이 시의 묘미도 이런 어울림에 있다. 대화와 독백, 여기저기서 끌어온 문장들의 인용과 변용, 절망을 농담으로 받아치는 경쾌함, 뜬금 없고 돌연한 조증(躁症)과 울증(鬱症)의 변주, 비극적이면서 냉소적인 다변(多辯)으로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잽이 장기인 시이다.   파이터!라는 말은 자극적이다. 인파이터! 라고 듣는 순간 단전에서부터 전의(戰意)가 꿈틀거린다면 당신은 사각의 링 위에서 난투극을 벌여본 적이 있거나 벌이고 있는 자다. 외곽을 돌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아웃파이터이거나 상대에게 바짝 달라붙어 저돌적인 공격을 퍼붓는 인파이터일 것이다. 1982년 겨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인파이터 맨시니의 강펀치를 맞고 맞고 또 맞으면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던 복서 김득구, 그 경기에서 김득구는 분명 맨시니보다 더 인파이터였다. 그러나 김득구는 오는 펀치를 피해 되받아치는 카운터 펀치, 그 한 방의 나이스 펀치를 날리지 못했다.   "코끼리를 천천히 허물어지는 코끼리를/ 그대는 본 적이 있으십니까. (…) 그의 거대한 육체가/ 황폐하지 말라 황폐하지 말라 중얼거리듯/ 무심하지만 지극히 섬세한 자세로 무너져가는/ 그 아늑한 풍경을"(〈코끼리〉). 김득구는 그렇게 무너졌다. 가출해 구두닦이를 전전하다 헝그리 복서로 막 인생이 피려고 할 그때, 14회전까지 계속 얻어맞았지만, 그때까지 버텨온 김득구의 드림, 김득구의 땀과 눈물, 김득구의 피로, 김득구의 공포…김득구는 살아 생전 술을 마시면 노래했다. "권투란 무엇인가, 맞는 걸까, 때리는 걸까".   이 사각의 링에서 그 누군들 단 한 방의 펀치도 맞지 않으면서 단 한 방의 카운터 펀치를 노리는 아웃파이터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야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일 뿐, 이름하여 '인파이터 코끼리군'. 우리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저 모호한 구름에 너무 바짝 붙어 싸우고 있는 게 틀림없어! 우리 삶이란 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싸움임에 틀림없어!       [애송시 100편 - 제 96편] 비망록 -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 일러스트=잠산 누구든 삶의 중요한 골자를 적는 하나의 비망록을 갖고 있다. 생(生)의 사건은 낙차가 있고, 중립(中立)이 없으므로, 그 자체로 강렬하지 않은 생(生)의 시간은 없다. 어떤 과거는 해약하고 싶어진다. 어떤 과거는 지금에라도 더 꽃피우고 싶어진다. 어느 때는 폭풍이 지나가는 바닷가처럼 스산하고 절벽처럼 위태위태해 시큰한 냉기가 돌기도 한다. 어느 때는 사랑이 붉은 가슴에게로 오지만 눈물의 손바닥이 얼굴을 덮는 밤도 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모두 속기할 수는 없다.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는 미망(迷妄) 속에 살면서 잊을 수 없는 미망(未忘)만을 기록할 뿐.   김경미(49) 시인의 데뷔작인 이 시에는 스물네 살에서 스물다섯 살로 넘어가는 나이의, 섬세한 감성을 소유한 여성이 등장한다. 신(神)은 그녀의 절망을 구원하지 않았고, 그녀가 만나는 이들은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으며, '산두목 같은 사내'는 끝내 그녀의 사랑이 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 그러나 젊은 열정이 어딘들 못 나서랴.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그예 젊은 열정은 생의(生意)를 내는 것. 마치 견고한   배는 풍랑에도 해를 입지 않듯이.   미래에 대한 이 적극적인 의욕은 시 〈겨울 강가에서〉에도 드러난다. "딸아 기다림은 이제 행복이 아니니/ 오지 않는 것은/ 가서 가져 와야 하고/ 빼앗긴 것들이 제 발로 돌아오는 법이란 없으니/ 네가 몸소 가지러 갈 때/ 이 세상에/ 닿지 않는 곳이란 없으리". 그러나, 이 굽히지 않는 마음이 20대의 젊음에게만 있을쏜가. 우리는 또 내일을 만나고, 내일은 공백(空白)의 페이지이고, 내일은 새롭게 써야 할 비망록인 것을.   고형렬 시인의 표현대로, 김경미 시인은 "맵차고도 직정적인 여성시인"이다. 그녀는 자기 혐오와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과 전면전을 치르는 시인이다. 해서 그녀의 시는 이 세상의 패악함과 간활함에 맞선다. 시 〈나의 서역〉의 도발적인 허무는 또 어떤가. "서로 편지나 보내자 삶이여/ 실물은 전부 헛된 것/ 만나지 않는 동안만 우리는 비단 감촉처럼 사랑한다 사랑한다 죽도록/ 만날수록 동백꽃처럼 쉽게 져버리는 길들/ 실물은 없다 아무곳에도/ 가끔 편지나 보내어라". 이렇게 솔직하게 속내를 꺼내 보이는 시를 읽고 나면 우리는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다시 만나 동백꽃처럼 모가지를 꺾으며 서로를 외면하게 될지라도. 다시 만나 과거의 비망록을 다시 열람하려는 용기, 그것이 우리의 가슴에 아직 남아있는 그리움 아니겠는가.     [애송시 - 제 97편]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일러스트=권신아 문태준(38) 시인의 시에서는 뜨듯한 여물 냄새가 난다. 느림보 소가 뱃속에 든 구수한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투실한 입모양이 떠오른다. 잘 먹었노라고 낮고 길고 느리게 음매- 울 것도 같다. 21세기 벽두의 우리 시단에서 그의 시는 '오래된 미래'다. 찬란한 '극빈(極貧)'과 '수런거리는 뒤란'을 간직한 청정보호구역이다. '시인·평론가가 선정한 2003년 최고의 시'로 뽑히기도 했던 이 시는 겹겹의 배경을 거느리고 있다. 수묵의 농담(濃淡)처럼 그 그림자가 자연스럽다. 죽기 직전의 개조개가 삐죽 내밀고 있는 맨살에서, 죽은 부처의 맨발을 떠올리는 상상력의 음역은 웅숭깊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들 아버지의 맨발, 그 부르튼 한평생을 얘기하고 있다. 시를 포착하는 시적 예지와 시안(詩眼)의 번뜩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에 제일 나중에 나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하중을 견뎌내고서는, 세상으로부터 제일 나중에 거두어들이는 것이 맨발이다. 맨발로 살다 맨발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은 평속(平俗)한 세파를 화엄적으로 견뎌내는 존재들이다. 길 위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길 없는 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다 길 위에서 열반에 든 부처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섭을 위해 관 밖으로 내밀어 보여준 두 발에는 천 개의 바퀴살을 하나로 연결시킨 바퀴테와 바퀴통의 형상이 새겨있었다고 한다. 부처는 무량겁 지혜의 형상을,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이 하나라는 것을 제자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이 맨발의 움직임은 적막하다. 어물전의 개조개가 무방비로 내놓았다가,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맨발을 거두어들이는 그 느린 속도에는 죽음이 묻어 있다. 무언가를 잃고 자신의 초라한 움막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맨발'의, 적나라한, 온 궁리를 다한 뒤끝의 거둠이다. 탁발승의 벌거벗은 적멸이요, 개조개 속에 담긴 부처다. '조문'하듯 만져주는 시인의 손길 또한 애잔하다. 개조개가 슬쩍 내보인 맨발에서 천길 바다 밑을 걷고 또 걸었던 성스러운 걸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 범속(凡俗)한 빈궁 속에서 세계의 아득한 끝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차디찬 맨발을 만져본 사람에게 이 시의 적막함은 유난하다.   인연이든 시간이든 기적이든 순력(巡歷)을 다했기에 '바깥'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부르튼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기에, '아-' 하고 우는 것들을 채워주었기에, 느리고 느리게 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바깥〉)!     [애송시 100편 - 제 98편] 오산 인터체인지 - 조병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燈)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초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 일러스트=잠산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건/ 사람뿐이다.// 시간에 집을 지으라/ 생각에 집을 지으라//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것은/ '오고 가는 것'들이다."(〈의자 6〉)   조병화(1921~2003) 시인의 시 〈의자 6〉을 읽고서 나는 망연히 물처럼 앉아 있다. 나의 바깥은 바람 가듯 물결 지듯 지나가는 것이 있다. 순간순간이 작별이다. 여관이 여관에 들었다 나가는 하룻밤 손님과 작별하듯이. 허공이 허공에 일었다 잦아드는 먼지와 작별하듯이.   그리고 〈오산 인터체인지〉를 다시 읽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보인다. 사랑이 갈라서는 것이 보인다. 맞잡았다 놓는 당신과 나의 손을 안개가 물컹물컹 잡아 쥔다. 안개를 두른 당신과 나의 행로에 대해 알 방도가 없다. 나는 동쪽으로 사십 리를 가지만, 당신은 남쪽으로 천 리를 가야 한다. 내가 가야 할 거리보다 당신이 가야 할 거리가 까마득하게 더 멀다. 당신이 나를 떠나 보내는 거리보다 내가 당신을 떠나 보내는 거리가 훨씬 멀다. "자, 그럼"이라는 대목은 또 어떤가. 가슴이 아프다. "자, 그럼"이라는 표현에는 뒤편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단호한 듯 순응하는 듯 "자, 그럼"이라고 말하지만, 그 음색에는 애써 숨긴 슬픔의 기색이 역력하다.   이 시에서처럼 조병화 시인은 단독자인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밀통하고 내통했다. 꾸밈이 없는 어투로 그는 생애 내내 우리네 도시인들의 슬픔을 노래했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비밀을 아느냐// 나는 아직 어려서// 슬픔이 나의 빛/ 나의 구원/ 나의 능력"(〈너는 나의 빛〉). 그는 '편운(片雲)'이라는 호를 썼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의 발간을 계기로 등단한 후 유고시집을 포함해 총 53권의 창작시집과 시론집, 수필집 등 무려 160여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럭비와 그림을 좋아했다. 럭비선수로 일본 원정까지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에도 상당한 솜씨가 있었다. 여백을 넉넉하게 살린 그림을 즐겨 그려 여러 권의 화집을 냈고 여러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시를 쉽게, 빨리 쓰되 한 차례 쓰고 난 뒤에는 그냥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애써 쓴 시를 짐짓 모르는 척 내버려두는 시간은 참으로 적막하였을 것이다.) 내버려 둔 시가 며칠 후에 다시 눈에 밟히면 고쳐 썼고, 눈에 어른거리지 않으면 매몰스레 아예 버렸다고 한다.   박재삼 시인은 "조병화 시인의 시에서는 어디서든 난해한 데라곤 없다. 그저 술술 읽히는 마력(魔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시 〈어머니〉도 난해한 데라곤 없다. "어머님은 속삭이는 우주/ 속삭이는 사랑/ 속삭이는 말씀/ 속삭이는 샘"이라고 그는 썼다.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담담함은 더 감당을 못하겠다. 나직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사람의 내상이 더 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 그럼"이라고 말하며 작별을 고하는 사람, 그이에게는 "말도 무용해진다".     [애송시 100편 - 제 99편]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 희 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일이 끝나 저물어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일러스트 권신아 정희성(63) 시인은 해방둥이다. 올해로 38년의 시력에 4권의 시집이 전부인 과작(寡作)의 시인이다.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시(詩)를 찾아서〉), 그의 시를 읽노라면 언(言)과 사(寺)가 서로를 세우고 있는 시(詩)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의 시는 나직하게 절제되어 있으며 민중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쉽게 읽히되 진정하고, 단정하되 뜨겁다. "그는 자신의 시처럼 단정하고 단아하지만 단아한 외형 속에는 강철이 들어 있다"고 했던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시와 시인과 시인의 삶이 버성기지 않은, 참 보기 좋은 경우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눈덮여 얼어붙은 허허 강벌/ 새벽종 울리면 어둠 걷히고/ 난지도 취로사업장 강바닥엔 까마귀떼처럼/ 삽을 든 사람들 뒤덮인다"(〈언 땅을 파며〉)나, "퍼내도 바닥이 흰 서러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놈이/ 팔다리만 성해서 무얼 하나/ 공사판엔 며칠째 일도 없는데/ 삽을 들고 북한산을 퍼낼까/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북한산 바닥까지 눈을 퍼낸다"(〈눈을 퍼내며〉) 등의 시와 함께 읽을 때,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라는 핵심 구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삽'이라는 한 글자에는 많은 의미와 뉘앙스가 담겨 있다. 파다, 덮다, 뜨다, 퍼담다, 퍼내다 등의 술어를 수반하는 삽질은 자신의 몸을 구부리고 낮춰야 하는 일이다. 한 삽에 한 삽을 더해야 하는 묵묵하고 막막한 일이다. 흙 한 삽, 모래 한 삽, 석탄 한 삽, 시멘트 한 삽이 모여야 밥이 되고 집이 되고 길이 되고 마을이 되고 무덤이 된다. 삽질의 정수(精髓)란 그 우직함과 그 정직함에 있다. 그 정직함을 배반할 때 삽은 무기가 되기도 한다. 농민이든 노동자든, 노동의 본질이 삽질에 있는 것이다.   공자는 냇물을 보며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 아니듯, 저무는 것이 어디 하루뿐이겠는가. 인생도, 세월도 다 그렇게 흐르고 저문다. 흐르다 고이면 썩기도 하고 그 썩은 곳에 말간 달이 뜨기도 한다. 두 번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우리가 저와 같아서'는 그러한 자연의 섭리를 불운한 삶 그 안쪽으로 순하게 끌어안는 모습이다.   '저와 같아서'라는 말에는 수다나 울분이 없다. 하루가 저물듯, 고단한 노동이 저물어 연장을 씻듯, 노동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어낼 뿐이다. 저물어 가는 삶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었으리라. 흐르는 것들은, 저물 수 있는 것들은 그러한 정화와 치유의 힘을 간직하고 있다. 해서 이 시를 읽고 나면 어느덧 '우리도 저와 같은' 마음이 되고 싶은 것이다.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으니!     [애송시 100편 - 제 100편]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일러스트=잠산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 1915년 결혼했으나 일찍 상처(喪妻)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쓸쓸한 뫼 앞에 후젓이 앉으면/ 마음은 갈앉은 양금줄같이/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 넋이는 향맑은 구슬 손같이/ 산골로 가노라 산골로 가노라/ 무덤이 그리워 산골로 가노라"(〈쓸쓸한 뫼 앞에〉)라고 노래했다. 고향인 강진에서 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일본 유학 때에는 무정부주의자 박열과 가깝게 지냈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다. 1950년 9·28 수복 때 유탄에 맞아 애석하게도 운명했다.   영랑은 '내 마음'을 많이 노래했다. 초기 시에서는 '내 마음'을 빛나고 황홀한 자연에 빗대어, 주로 3, 4음보 4행시에 담아 은은하고 섬세하게 노래했다.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자연에 순결한 마음을 실어 노래했다. 이것은 불순하고 추악한 식민지 현실을 대립적으로 드러내려는 속내가 있었다.   이 시를 김영랑은 나이 서른 살을 갓 넘긴 무렵에 썼다.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나의 꿈과 그 시간의 보람, 모란이 지고 난 후의 설움과 불모성을 함께 노래했다. 이 시는 찬란한 광채의 '절정에 달한' 시간을 포착하듯 짧게 처리하면서 음울과 부재의 시간을 길고도 지속적으로 할애하는 데 시적 묘미가 있어 보인다. 시인은 낙화 후의 사건을 아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떨어져 누운 꽃잎'의 시듦뿐만 아니라, 시듦 이후의 건조와 아주 사라짐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한 데에는 모란이 피는 희귀한 일의 극명(克明)한 황홀을 강조하기 위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감미로운 언어의 울림을 살려내는 난숙함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고, '눈물 속 빛나는 보람과 웃음 속 어둔 슬픔'을 특별하게 읽어낼 줄 알았던 영랑의 유다른 안목과 영리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시가 사람이라면 그이는 무엇을 간곡하게 바라며 뛰는 가슴인가. 많은 시들이 울분과 슬픔의 감정을 표표하게 표현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이 더 찬란한 쪽으로 몰아쳐 가기를 바라는 열망에 기초해 있다. 한편 한편의 시는 그런 마음의 예감과 기미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아무리 작은 것을 노래해도 이미 뜨겁고 거대하다.   애송시 100편의 연재를 오늘로써 마친다.    가쁘게 오면서 우리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꼈다. 열독에 감사드린다. 이제 당신의 마음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살아라. '허리통이 부드럽게' 드러난 보리의 오월을 보아라. 신록의 눈동자로 살아라. 당일(當日)에도 명일(明日)에도 우리네 마음은 '향 맑은 옥돌'이요, 은물결이오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출처] 현대시 100년|작성자 옥토끼  
8    <<명시구>> 한바구니... 댓글:  조회:2292  추천:0  2015-02-04
한국을 대표하는 109명의 현역 시인들이 뽑은 ‘최고의 시구’     강은교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苦惱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時間을 위해서       ―― 김수영, 「꽃잎 2」에서 김수영, 이상한 모더니스트. 그에게 나는 참 많이 빚지고 있다. 그에게서 리듬이 왔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새벽 어떤 때, 리듬은 모든 것이니까, 형식이면서 내용이니까. 그의 시는 매끄럽지 못하나,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터억 걸리는’ 그런 리듬의 구절들이 있고, 그런 리듬들은 가끔 나를 시로 이끌곤 한다. 그 중의 하나.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꽃잎 (2)」 중에서) ‘구체 추상’의 실마리, ‘리얼 모더니즘’의 실마리, 결국 ‘상황 서정’의 실마리…… 그가 던져준 셈이다.   강   정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 김수영, 「헬리콥터」에서 자유는 대개 비상과 통한다. 그러나 자유를 꿈꾸는 마음은 늘 비상에 대한 불가능성을 인지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영원불멸하는 모순이 아니라면 나는 자유에 대해 아무 할 말도 없다. 시적 자유와 삶의 자유를 등가로 봤던 김수영에게 자유란 늘 새롭게 돌이켜야 하는 양심의 나침반이자 그 처참한 결론이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시는 언제나 미완의 결론으로 남는다. 시인에게 정작 두려운 건 자유의 결핍이 아니라 자유의 완성이었다. 자유는 관념인 동시에 행동인 모종의 음험한 도덕률이다. 자유는 구속을 전제로 했을 때만 날아오를 수 있는 불구의 정신이다. 그 불구를 불구 자체로 인식했을 때 정신은 불굴의 것이 된다. 자유는 이렇듯 정신이 노정하는 궁극의 말장난과도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가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시인들은 ‘우매’하고 ‘어린’ 종족일 수밖에 없다. 자유라는 관념은 인간을 전혀 해방하지 않는다. 해방 다음의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 다음의 꿈이 정치적 자족과 기만뿐이듯, 시인에게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 일이라면 자유는 유보되어야 한다.   고두현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 서정주, 「자화상」에서 어디 ‘스물세 해 동안’뿐이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던 청춘 시절부터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캄캄한 절망조차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듯이……   고   영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에서 은행원을 꿈꾸던 학생이 있었다. 어려운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자 마음먹고 스스로 상고에 입학해 책만 파던 학생이었다. 학교 밖은 시끄러웠다. 시국이 그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학생에게 운명이 바뀔 만한 일대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형이 유인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얼떨결에 받아든 유인물에는 군부독재니, 민주화니 하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그 유인물 내용 중에 학생의 마음을 벼락처럼 휘어잡은 글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였다. 아무튼 그 다음날 스스로 문예반을 찾아갔던 학생은 이후부터 교과서 대신 시집과 『노동법 해설』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은행 근처에는 평생 가보지 못했다.    고영민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에서 그 방을 생각한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스무 살 문청시절, 우리는 문학을 한답시고 그 컴컴한 방에 모였다. 놀란 눈으로 미제침략사를 읽고 어느 날은 하얗게 최루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가두에 나갔다가 돌아와 그 방의 차가운 바닥에 눕곤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며칠을 낯선 방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당시 우리의 교과서는 '형상과 전형'이라는 루카치의 문예미학서였다. 그리고 시를 사랑하던 한 친구 녀석은 새벽, 그 방을 걸어 나와 취한 채 술을 사러 나갔다가 차에 공중으로 들려져 영영 그 방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의 우리들은 지금 아무도 없다. 모두 그 방안에서 전사했다.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꿔버렸던 우리가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다.   고운기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1978년 가을이었다. 군부독재의 단말마斷末魔가 가까이 들리던 무렵,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국어 시간이면, 작은 키에 단아한 모습, 눈빛이 맑은 선생님 한 분을 나는 기다렸다. 정희성. 그러나 그가 좀체 시국을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 3학년의 한 선배가 어느 문학지에 실린 시를 보여주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였다. 처음 넉 줄을 읽었을 때 ‘물’과 ‘삽’과 ‘슬픔’이라는 세 단어가 주는 울림에 떨었던 기억이, 30년도 넘은 오늘까지 선연하다. 그보다 먼저 정희성은 “흐를 수 없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저문 강 언덕에 떠도는 혼이여”(「유전流轉」)라고 노래한 적이 있었다. 몇 년의 정치적 신난辛難을 겪으며, 정희성에게저문 강 흐르는 물은 어느새 자기화自己化되어 있었다.     고진하 물 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묵화」 전문 시인 김종삼의 「묵화墨畵」 전문이다. 언제 읽었는지 정확치 않지만, 이 시가 내게 벼락치듯 다가왔던 것 같지는 않다. 시를 읽고 나서 그냥 멍했던 것 같다. 하여간 이 시 때문에 나는 김종삼의 ‘시인학교’를 자주 드나들었다. 사물과 우주와의 교감을 이토록 짧은 시구로 표현하기가 어디 쉽던가. 진정한 교감은 신생의 통로이며, 자아 발견의 불꽃이다. 평화로운 풍경의 한 컷이지만, 삶의 비애와 슬픔과 적막이 부은 발잔등의 아픔처럼 스며 있다. 그 스밈은 치밀하여 시의 화자와 대상 사이에 ‘사이’가 없다. 그 사이 없음의 깊이와 넓이를 획득하는 일이 시의 지향이라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얼마나 먼가.     권현형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김수영, 「거미」에서 “너무 시퍼래서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는 저 스무살!”(김영태) 무렵에 만난 김수영의 문장은 강렬했다. 달디달았다. 빛과 어둠을 등에 짊어지고 다녔던 시절, 시지프스처럼 세계의 무게를 등짐지고 다녔던 시절, 갓 성인식을 치룬 내게 밖은 어쩐지 의뭉스러웠다. 의심스러웠다. 김수영의 설움이 나의 설움인 듯했다. 시퍼렇게 순결한 염결성을 무기로 지니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팔십년대 중후반. 왜 노랫말이 슬프냐고, 왜 행복하지 않느냐고 개인의 자의식을 검열받던 시기였다. 그때, 건전가요가 눈발 날리는 겨울 거리의 레코드 가게에서 불안하게 흘러나왔다. 하나, 어두울수록 환하고 싱그러운 문청 시절에 받아들인 설움은 외연일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흘러 풍경이었던 설움은 육체성을 내면성을 띠기 시작한다. 시의 원천으로, 소금을 뿌린 듯 아린 자의식으로 내부에 굵은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길상호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    ―― 이상, 「거울」에서 악수를 모르는 세상에 서 있었다. 그 세상은 다름 아니라 내가 만든 세상이었다. 볼 수는 있지만 손끝 하나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언제나 나와 표정을 맞추면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걷고 있었다. 그 중 내가 실체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의심하기 시작했다. 넌 왠지 허깨비 같아, 넌 너무 가득 차 보이니 실체가 아닐 거야,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을 의심해가다 보니 결국 손가락은 스스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것도 파악해내지 못하는 너도 아닐 거야. 이제는 만나는 얼굴마다 주먹질이 시작됐다. 거울 속에 갇힌 얼굴은 깨져버릴 테니까. 그렇게 깨가다 보면 결국 남는 하나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주먹의 핏물 든 상처마다 박혀든 거울조각이, 조각마다 깨져 있는 얼굴이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도 실체야! 나도 실체야! 머리는 그들의 괴성으로 날마다 시끄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머리 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꼭 그 손을 잡으려 했던 것일까? 가만히 손을 거둔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마음이 참 편하다. 거울을 뒤로하고 걷는다. 가끔 돌아볼 때에도 거울 속 너는 뒷모습을 보이지 않아 좋다. 그때서야 와장창 냉담하던 거울이 깨진다.    김광규 그립다 / 말을 할까 /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 그래도 / 다시 더 한 번 //    ―― 김소월, 「가는 길」에서 1950년 정음사에서 나온 『작고시인선』(서정주 엮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한국 시선집이다. 책이 귀하던 50년대 초반기에 일금 오백 환을 주고 샀다. 김소월, 윤동주, 한용운 등 한국 신시의 선구자 열 분의 대표작품들이 실려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특별히 사사한 시인이 없으므로, 이 얄팍한 책이 문학수업의 첫 번째 스승이었다. 여기에 수록된 김소월의 시 「가는 길」은  사춘기 청소년의 민감한 정서에 호소하는 바 크고, 3음보 율격도 친근한 매력을 풍겨 저절로 암송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내 문학교양의 기반으로 자리잡았다고 할까. 애틋한 그리움을 이처럼 짧은 3행 시연에 담은 예를 달리 본 적이 없다. 전통적 서정시의 전범은 오늘날 흔히 잊혀지거나 무시되기 일쑤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시구를 쓰지 못한 부끄러움을 나는 항상 느끼고 있다.    김광림 온길 눈이 덮여 갈길 눈이 막아 이대로 앉은 채 돌 되고 싶어라    ―― 박경수, 「눈」  해방 직후 향토(원산) 시인들이 펴낸 『응향』 시집 속에 수록된 것. 이 작자는 시인이기 전에 사학자였다. 당시의 암담한 현실과 사회상을 이렇게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집을 가장 악랄하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나선 평자는 백인준이었다. 근자에 알았지만 그는 일제 말기 윤동주 시인과 친구였다고? 60년이 넘도록 청소년기에 읽은 이 시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뿐더러 ‘돌’에 관한 ‘바위’시까지 쓰게 만들었다.  “너에게 걸터앉으면/탐나는 것 부러운 게 없어져/벼슬자리 꽃자리 내갈겨 둔 채/듬뿍 술 한 잔 들이켜고/너마냥 잠들고 싶어져” 세상사 돌아가는 꼴이 돌 되고 싶은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간혹 돌마냥 잠들고 싶은 심정임을 어쩌랴.    김규동 3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에서 경성고보 시절 영어시간에 기림 선생이 누차 당부하던 말이 생각난다. 담배 피우지 말아라. 책을 선택해서 읽어라. 새로운 문명에 접하는 생활태도를 중히 여겨라. 지금은 수학 영어 물리 화학 지리 기하, 이것을 공부 잘하고 글쓰는 일 같은 것은 기초학문을 마친 다음에 해도 충분하다. 대성하는 길이 그것이다. 이런 교훈만 하고 우리들이 만든 ‘동인지’ 따위는 봐주려 하지 않는 선생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빨리 시인이 되고 싶은데, 하지만 시인 스승은 그것을 절대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위 시구는 센티멘털·로맨티시즘의 시 풍토에서 지성을 건져올린 시작품의 한 보기다. 이미지 예술로서의 시가 여기에 암시되어 있다. 즉물적 객관적 회화적 구성적인 요소가 그것들이다. 이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이 시가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에 씌어진 작품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규성 이슬은 하늘에서 내려온 맨발 풀잎은 영혼의 깃털    ―― 정진규, 「화和」에서 내 침실 겸 서재에는 한 편의 시가 수채화처럼 걸려 있다. 예의 ‘활달한 유연柔然’이 특징인 경산체絅山體가 빚어놓은 우주시 속의 액자시이다. 그 도입부가 위 구절인데 혼의 상징적 거처인 하늘을 육감적으로, 몸의 텃밭인 대지를 정령적精靈的으로 탈바꿈한 전경화가 행여 낯설지 않다. 화급하게 “맨발”로 달려온 “이슬”을 “깃털”처럼 부드러운 설렘으로 맞는 “풀”의 조응은 원초적이면서도 그지없이 순결한 상생의 축제로, 그 정경유착情景癒着의 절경絶景이 볼수록 황홀하고 환하다.  산문시조차도 여느 정형시보다 더 맛깔스런 리듬을 자랑하는 정진규 시인의 시는 한 마디 오해도 허락지 않을 듯 수고롭지 않게 읽히면서도, 구구절절이 감미롭고 유장한 울림으로 청자聽者의 몸 속 깊숙이 녹아 흐르는 게 압권인데 위의 천지공사天地工事는 그 중에서도 백미이다. 각별한 인연일수록 ‘객관적 시 읽기’가 예의이겠지만 그런 상식과 기우쯤 무색하게 압도하는 두 행의 벅찬 은유가 내 일상의 삭막한 직유와 동거한 지도 꽤 날수가 찬 셈이다.    김남조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 서정주, 「시론詩論」에서 “바다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시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명시, 명구절은 허다하련만 그 중에서 위의 6행시 한 편을 가려 뽑았다. 앞의 3행은 전치사인 셈이고 뒷부분 3행에 있어서도 끝줄이 나의 일상에 거의 유착되어 온다. 시인이 한 편의 새 작품을 마무리짓고 나면 흔히 존재의 공동空洞현상에 빠져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 까닭은 일상의 수심이 얕았거나 비축해 둔 곡물창고가 가난했기 때문인 듯하다. . 나는 내 시정신의 빈혈현상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자주 있어오는 이 증상을 우려하고 겁먹어왔다. 한 편의 시를 얻었을 때 더 좋은 다음 시가 물속 바위에 그대로 남아 있는 그런 풍요로움이야말로 내 평생의 황홀하고 과분한 희구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시인에게 있어서도 시의 샘물이 다시금 그 전량으로 남아 부풀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바랄 것이랴.   김병호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 송기원, 「시」에서 시와 삶이 하나였던 시절, 오히려 생활이 시를 빛내 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재수 끝에 들어온 대학교에서 난생 처음 입어본 과티. 그 가슴팍에 찍혀, 시보다 먼저 옷으로 입었던 시구.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스무 살의 우리들은 시를 입고 명동과 남대문시장, 평택역을 뛰어다녔다. 가슴팍에 찍힌 화인처럼, 남몰래 어루만지거나 조용히 읊조리기만 하여도 척추가 꼿꼿해지곤 했다. 양심만으로 양심을 지킬 수 없었고, 용기만으로 승리할 수 없었던 시절의 마지막 세대였다. 심판의 날 소돔을 탈출할 때, 유황 불벼락 속에 죽어가는 이웃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뒤돌아본 채 죽어, 빛나는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시인의 삶이란 그러해야 한다고 아직 믿는다. 그리고 여전히 한 편의 시가 천만인의 가슴을 격동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김상미 나도 감히 상상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 김수영, 「거대한 뿌리」에서 여고 시절, 나는 차비를 아껴 민음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을 한 권씩 사 모으는 게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그때 산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를 읽었을 때, 나는 시라는 운명이 기지개를 켜며 힘차게 내게로 달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알았다. 내 길은 문학에 있으며, 언젠가는 누구의 의지도 아닌 내 의지로 그 길을 가게 되리라는 걸. 그 이후부턴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나는 내 안에서 자라나는 ‘문학’으로 인해 쉽게 기가 꺾이지 않았다. 남들이 볼 땐, 허허벌판 한복판에 혼자 꽃피우며 서 있는 이상의 「꽃나무」처럼 이상해 보였겠지만. 그 모든 세상일은 ‘나도 감히 상상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능히 견딜 만했으며, 스스로 힘이 되어 나를 지켜주었다.    김선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중학교 1학년 시절, 시골집 형의 골방에는 달랑 책이 한 권 있었는데, 내 고향 강진 출신인 김영랑의 시집이었다. 달리 읽을 책이 없었거니와 당시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던 나는 수십 번이나 그 시집을 읽어서 송두리째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시라는 걸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김영랑 시인과 그의 시집은 맨 처음 나를 시의 길로 인도한 운명적인 스승이요 텍스트가 된 셈이다. 특히 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나오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는 역설의 시구는 지금도 나를 경탄과 전율에 떨게 한다. 슬픔의 빛깔이 어쩌면 이토록 찬란할 수 있단 말인가. 애이불비의 촉기를 머금고 있는 이 시구로 인해 영랑의 시가 저급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았듯이, 나의 시도 어두운 과거사를 잘 다스려 승화된 시세계를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구는 아직도 내겐 불상의 광배光背처럼 환하게 남아 있다.   김   언 이 무언의 말/하늘의 빛이요 물의 빛이요 우연의 빛이요 우연의 말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이 만능의 말 겨울의 말이자 봄의 말/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 김수영, 「말」에서 여름밤이었나 겨울밤이었나. 흥건히 술에 취해 소설 쓰는 형의 집에 가서 보았던 말. 한동안 얼이 빠져서 보았던 말. 나무액자에 고이 걸려 있던 누구의 것도 아닌 그 말. 김수영의 말. 말에 대한 말. 말이 아닌 모든 것에 빚진 말. 빛이면서 우연이고 우연이면서 죽음을 꿰뚫는 말. 만능의 말이면서도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 시인의 말이면서 범인의 말. 평범한 말이면서 죄를 짓는 말. 모두를 겨냥하면서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 말. 저 혼자서 맴돌고 저 혼자서 죽음을 목격하는 말.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나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버려도 탄생하는 말. 아무도 목격하지 않는 밤의 말. 이 무언의 말이자 유언의 말. 시체의 말이자 정확히 생명의 말. 감각의 말이자 침묵의 말.   김언희 벗겨내주소서아버지 나를아버지 콘돔처럼아버지 아버지의좆대가리에서아버지!”    ―― 김언희, 「벗겨내주소서」에서 한국현대시사 100년이거나 말거나, 가장 빛나는 표현이거나 말거나, 최근에 나로 하여금 ‘절정의 순간을 체험케’ 한 것은 위의 구절이었다. 십수 년 전의 글을 뜻밖에, 그것도 토막으로 지면에서 대면한 순간, 내장 속으로부터 차디찬 전율이 번져나왔다. 감동이 아니라 전율이, 살갗을 기는 지네 같은 전율이. 쓸 때는 무엇을 왜 쓰는지 모르고 썼던, 써 놓고서도 여직 깨닫지 못했던, 이 구절은 이상의 “義足을담은軍用長靴가내꿈의白紙를더럽혀놓았다”의 대구對句였으며, 김수영의 “한 가지를 안 속이려고 모든 것을 속였다.”의 대구였다. 나의 대구였으며, 나의 대꾸였던 것이다. 나의 온 몸과 마음, 온 생활을 건!   김왕노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 기형도, 「밤눈」에서 시인의 눈이 미모사보다 더 예민하고 말미잘보다 더 감각적인 촉수를 가졌음을 그리하여 내가 그보다 더한 감각체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고 내통해야 함을 일러 준다. 시인은 누구나 쉽게 간과해가는 하찮은 것에서부터 미세한 것을 영혼의 세포 하나하나로 읽어간다. 뒷전에 있거나 잊혀지거나 소외된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한다. 그러므로 시인의 위대함은 완성된다. 나는 언제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을 읽어내고 노래할 수 있나. 시인이 예민한 감각의 영혼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를 쉽게 입고 존재가 불안하다. 하지만 예민한 감각을 가졌기에 세상의 모든 어둠을 감지하며 어둠에 대해 고발해 온다. 그러므로 시인은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이 입증된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에서……   김이듬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오    ―― 이상, 「거울」에서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중얼거리며 버티던 때였다. 나는 왼손잡이, 안경잡이에다 소위 말하는 결손가정의 병약한 소녀였다. ‘거울 속의 나는 정상/왼손잡이 아냐, 풀 같은 머리칼/거울 속에서 나는 두 개의 눈동자’. 나름 신경 쓴 몇 문장 때문에 국어선생은 화를 내셨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베끼고 난리야!’ 출석부로 머리를 탕탕 치셨다. 증거물로 내민 이상의 시집이야말로 난생 처음 보았다고 아무리 해명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나는 이름도 시도 이상한 이상이 나보다 빨리 태어나서 내가 할 말을 선수친 것에 분개했지만,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처음으로 당혹케 안절부절 못하게 한 시였으니까.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최고’는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오라! 네 천둥벼락을 내 심장에 꽂아서 제발 나를 잠잠하게 해줘.)      김정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서시」에서 단발머리 시절의 어느 여름밤, 툇마루에 누워 본 하늘의 별빛이 청명하게 가슴속을 파고든다. 바람에 스치는 별, 나의 별, 나의 존재, 불현듯,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별빛 쏟아지듯 내 몸을 덮친다. 모공마다 솜털 일제히 일어선다. ‘흔들리는 바람은 씨앗을 퍼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이후,「서시」의 날카로운 반성의 언어는 불안한 성취마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낱낱의 길목에서 함께 서성이던 그 불안은 어느 극점에서 시를 엿보게 하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만화경을 흔들어 섞어 놓은 듯 미로를 헤매는 나의 시 쓰기. 지금도 나는 처음 감격 그대로 「서시」를 통해 끊임없이 채널링하고 있다.   김종길 이 말은 누가 난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 정지용, 「말 1」에서 지용의 「말 1」은 동시풍의 작품인데 앞에서 인용한 두 행으로 끝난다. 나는 이 두 행을 지용시 가운데서 최고의 순간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한국 현대시를 통틀어서도 시적으로는 최고의 시구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경우 그 이유를 이야기하기란 지난하다. 엘리엇이 젊었을 때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좋은 시를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올 여름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비엔나미술사박물관 소장 합스부르크 왕가 수집 작품들을 둘러보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책을 읽는 자기의 아들을 그린 렘브란트의 그림이었을 때도 그러했다. 그 화폭에 신운神韻이 감돌듯이 지용의 그 두 행에도 신운이 감돈다고나 할까.    김종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서시」에서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에 만난 시입니다. 스무여덟 살에 옥사한 그는, 시인으로서 시를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다만 유고 시집이 나오고 난 후 우리는 그를 시인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는 그래서 더욱 정갈하고 곡진하게 내 마음 속에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단 한 줄의 표현에 괴로워했던 철없던 시절, 나도 윤동주의 잎새처럼 괴로워했습니다 ‘한 점 부끄럼’ 없었던 까까머리의 문청 시절이 바로 나의 서시입니다.     김종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에서 캄캄하고 외로웠던 문청 시절, 부산은 어두웠다. 나는 혼자서 그 어두운 유적지에 남아 있었다. 내 호주머니 속엔 언제나 청산가리, 죽음도 무섭지 않았다. 그때 내게 투사되었던 한 줄기 불빛, 시詩였다. 칼릴 지브란은 속삭였다.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아 주지 않으리라.” 그의 음성은 나를 시에 눈뜨게 했다. 칼릴 지브란과 함께 김춘수의 시 「꽃」이 왔다. 「꽃」은 나를 적대적이었던 세상 속으로 부드럽게 연착륙시켰다. ‘세상 사는 법’과 ‘사랑하는 법’까지. 나는 당당하게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까지 부르게 되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그 이름을 불러보고 각인시켜 보라. 어쨌든 “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중식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 김수영, 「거대한 뿌리」에서 한갓 변명에 불과하겠지만, 1980년대 중반, 나의 습작시절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브레히트)였다. 짐승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믿고 있었다. 혼의 절창絶唱들인 소월과 미당은 너무 아름다웠으므로 욕이 나왔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아도르노)는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나의 두개골을 반쪽으로 쪼갠 섬광 같은 시구가 어찌 한둘이겠는가. “날카로운 첫 키스”는 지금까지도 내 삶의 화두다. 그 가운데 “미국놈 좆대강”을 들이민 이유는 내 시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외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지는 글, 남들이 지금껏 하지 못한 말이 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나의 시는 모두 그 구절의 표절이자 변주이다.   김   참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 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 이상, 「오감도 시제15호烏瞰圖 詩第十五號」에서 고등학교 때 아주 두꺼운 시선집에서 이상의 시를 처음 읽었다. 그의 시는 시선집에 수록된 다른 시인들의 시와는 달리 무척이나 강렬했다. 지금까지 읽어본 수많은 국내외의 시 가운데 인상적인 작품들은 적지 않지만, 거울을 소재로 이상이 쓴 시만큼 독특한 느낌을 주는 시는 그리 많지 않다.  거울을 소재로 쓴 시도 그렇지만 나는 이상의 다른 시들도 대부분 꿈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잘 몰랐던 습작시절, 나는 간밤에 꾼 꿈을 노트에 옮겨두곤 했다. 그때 내가 옮겨둔 내 꿈들은 내 시의 일부가 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한갓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꾼 꿈은 내 삶의 절반이다. 내가 꾼 꿈과 내가 쓴 시는 내 삶을 거꾸로 비추는 거울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꿈꾸는 사람이니, 그가 꾼 꿈들은 시가 아닌가?   김행숙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김소월, 「초혼」에서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소월의 이 구절이 아직까지도 내게 그 진동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 그것은 이름이랄 수도 없는 울림이자 파동 자체로 변용되어 내게 무한한 가능성의 지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시쓰기는 사라지는 중이면서 동시에 구성되는 과정인 그러한 상태를 체현하는 특이한 신체가 되는 일이다. 이제 내게 소월의 「초혼」은 절대적인 이별 앞에서 슬픔과 격정의 최대치를 실연하는 연인의 노래가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 그 너무 넓은 공간 속에서 비껴가는 것, 희박해지는 것, 조밀해지는 것, 그러한 이질적인 흐름과 리듬을 부르는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하늘과 땅 사이, 그 과도한 넓이를 몸으로 품은 이상한 내부에서 그 내부를 찢으면서 폭발하는 기쁨을 나는 부르고 싶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나태주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 중학교 3학년 때. 열다섯 살 때. 적산가옥으로 남겨진 썰렁한 다다미방 하숙집에서 겨울을 나며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하던 때. 함께 하숙하고 있던 동급생으로부터 얼핏 전해들은 한 편의 시, 그리고 그 첫 구절은 나의 어린 영혼을 흔들어주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가슴속이 쩌르르했다. 어쩌면 이리도 내 마음 그대로일까. 시란 이렇게 다른 사람 마음을 대신해서 표현해주고 또 그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주는 것인가 보구나. 막연히, 참으로 막연히 나는 이 한 편의 시를 앞에 두고 시인이 되어보고 싶었다. 만약 내가 중학교 시절 이 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모르면 몰라도 나는 시인이 되지 않았어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바꾸어 버린 한 편의 시, 그리고 한 구절. 그 사무치는 풋내기 소년의 감동 앞에 다시 한번 선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희덕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에서 김수영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월리스 스티븐즈의 시 「혼돈의 감정가」에 나오는 두 개의 명제를 떠올리게 된다. “A.폭력적 질서는 무질서이다”와 “B.위대한 무질서는 질서이다”라는 명제가 그것이다. 김수영에게 있어서도 폭력적 질서란 낡고 고정된 질서를 의미하고, 위대한 무질서란 무한대의 운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수영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예민한 혼돈의 감별사이자 창조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진정한 혼돈의 진원지를 ‘욕망’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는 욕망의 검은 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이 구절은 거대한 뿌리, 또는 고요한 사랑의 발견에 도달하는 김수영의 시적 도정을 압축하고  있는 셈이다. 욕망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사랑을 발견할 수 없다는 그의 전언은 혼란도가 낮은, 그리하여 폭력적 질서에 갇혀 있는 나의 시들을 화들짝 깨우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노향림 내가 많은 돈이 되어서 선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맘놓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리니     ―― 김종삼, 「미사에 참석한 이중섭 씨」에서 김종삼 시인은 한 시대를 불행하게 살다 간 시인이었다. 가난과 알코올 중독으로 시달리다 끝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시를 발표할 무렵도 시인은 늘 소주병을 뒷주머니에 넣고 조선일보 뒷골목 지금은 없어진 아리스 다방에 나타나곤 했다. 차를 시키진 않고 컵을 달래서 소주를 마시곤 했다. 시는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하게 읽혀도 과음에서 오는 자신의 육신의 망가짐을 미처 알지 못했을까. 그토록 버티기 어려운 환경에서 이처럼 놀라운 시를 쓰다니, 나는 이 시를 읽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병들고 가진 것 없는 자의 시혜를 말하기 위해 불행하게 살다간 이중섭의 혼을 빌어 시인은 말하고 있었다. 선택하지 않아도 불행은 예고되듯이 시인은 끝내 술로 세상을 떠났다. 육신의 스러짐을 알고도 오히려 시로써 우리에게 시혜를 베풀고자 했을까.   마경덕 집은 벽 속의 곳간에서 제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간다 집은 저 벽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     ―― 손순미, 「담벼락 속에 집이 있다」에서 집은 담쟁이덩굴 속에 갇혀 있다. 고집이 센 덩굴은 스스로 손을 풀지 않는다. 덩굴은 담벼락을 옥죄며 더 깊이 뿌리를 묻는다. 나는 그때 그 담쟁이 속에 갇혀 있었다. 담쟁이는 날로 그늘을 넓히고 오래된 몸은 자주 삐걱거렸다. 낙심이란 마음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바닥을 친 마음은 좀처럼 일어설 수 없었다. 나를 포기하고 나니 어느 날 그늘이 되어 있었다. 하릴없이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 가는 그때 이 시구詩句가 내게 왔다. 벽을 부수고 나오라고 했다. 덩굴을 걷어내는 일은 벽을 부수는 일, 생각을 깨뜨리지 않고는 나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나를 붙잡고 늘어지던 덩굴손의 마디가 툭툭 끊어지고 벽 속에서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 나는 오랫동안 나에게 갇혀 있었다.    마종하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    ―― 이육사, 「절정」에서 뼈를 추리자니 한 뼈로 순수한(!) 저항 시인 이육사를 떠올렸는데, 예수보다 짧게 주기의 「절정」을 밝힌 그와 더불어, 썩지 않은 육질로도 발라 일컫자면 유약한 김영랑의 “찬란한 슬픔”이 김현승의 견고한 “절대고독”으로, 박노해의 유연한 “강철의 풀잎”으로 맥을 잇는 것이다. 자리끼가 얼어붙는 오막살이에서 “강철로 된 무지개”는 섬광처럼 번개치는 작렬로 미친 듯이 나를 솟구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1 때 나는 투쟁의 앞장에서 모든 부정한 봄(3·15)을 「절정」의 꽃(4·19) “무지개”로 터뜨렸던 것이다. 절대로 자랑일 수 없는 기름 뺀 당위로써.그 시대의 친일파나 다름없는 낭만적 낭인들에게 “시인이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 이른 유치환의 촌철살인도 자못 서릿발 같은 결기가 서린 “소리 없는 아우성”의 「깃발」로서, 그들의 핏맥은 오늘도 단단히 눈부신 다리로 질러 우리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    맹문재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 박노해, 「하늘」에서 나는 아직도 ‘밥줄’이라는 말에 가슴이 아리다. 밥줄 때문에 자존심을 버리고 얼마나 세상 앞에서 허리를 굽실거렸던가. 내가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에 들어 있는 시들에 감동한 것도,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해진 신발 같은 인상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바닥에 드러누워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옹호하는 것도, 밥을 남기지 않고 악착같이 먹는 것도 밥줄 때문이다. 내가 문학의 지향점으로 삼는 근거이기도 하다. 밥줄을 쥐려고 몸부림쳤던 순간들,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밥줄의 운명에 당당히 맞서자. 밥줄을 쥐지 못한 사람들을 품자.    문인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새떼는 계절풍, 바람에게서 몸을 배웠다. 새떼는 일체다. 새떼 속의 새는 그 한 마리 한 마리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공중에 거구를 두는 일군의 세포, 세포다. 그것이 아니라면 군무는 없다. 산 너머 바다 건너 확신의 땅, 거기로 가는 길도 없다. 새떼는 바람을 입는다.어깨에 힘 빼고, 혀 꼬부리지도 않고 그저 한 마디 툭, 던진 이 말이 자주 날 들어올리곤 했다. 나는 늘 맥없이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으면서도 욕망은 왈칵, 저 새떼의 일원이었다. 그야말로 서러운, 저 ‘새떼에게로의 망명’이었다. 그렇게 곧 그 바닥을 뜨고 싶었다. 이 시를 낳게 한 80년대 상황에 관해선 나는 할 말 없다. 다만, 시인이 발견한 이 한 마디 말, 그 힘이 굉장해서 놀라웠다. 늦깎이, 내가 절망하고 분발한 첫 구절이다.    문정희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 서정주,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에서 불행히도 나에게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는 없다. 나는 너무 어린 시절부터 시 애호가가 아니라 시 창조자가 되어버렸다. 눈부신 시구를 보면 감동과 전율보다는 질투에 온 입술이 파래지기 일쑤였다.  10대 때는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라는 발레리의 시구와 함께 미당의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는 시구를 좋아했다. 그러나 후에 보니 미당에게는 황홀한 시구가 너무 많았다. “문열어라 꽃아”(「꽃밭의 독백」)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문둥이」) 등……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내가 나를 전율시킬 한 줄의 시구를……    문태준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 이성복, 「아주 흐린 날의 기억」에서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이 출간된 1990년 5월에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내 기억으론 이 시집을 몇 차례 산 것 같다. 나눠준 것도 있고 분실한 것도 있는데, 내가 지금 소중하게 갖고 있는 시집은 휴가를 나왔다 화천에 있는 군부대로 복귀하면서 산 것이다. 동보서적에서 구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이 시집을 사서 군복 속에 감춰 넣고 부대 위병소를 통과했던 것 같다. 위병소에서 물품 검사를 했었고 또 시집 같은 것을 부대로 갖고 들어가기가 그때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시집을 또 군복 속에 감춰 넣어 주로 부대의 재래식 화장실에서 즐겨 읽었다. 검열을 피하느라 이 시집을 땅속에 몇 날을 묻어두기도 했다. 여름장마가 지나가던 때여서 나중에 땅을 열고 꺼내보니 흙물이 들었다. (사실 이 시집은 검열을 피해야 할 책은 아니었는데 나는 어쨌든 노루처럼 겁이 있었다.)  실탄사격을 하고 와서도 읽고, 행군을 마치고 와서도 읽었다. 강한 군대에 살면서 나는 여린 속잎 같은 이 시집을 꺼내 읽었다. 시 「아주 흐린 날의 기억」은 짧다. “새들은 무리지어 지나가면서 이곳을 무덤으로 덮는다//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이 시구를 읽으면서 나는 널 안에 매장된 나를 보았다. 막연하게 슬픔에 기대게 되었다. 군대 가서 나는 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곳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시집을 읽다가 이 일구를 만났다.    박남철 “아, 참, 그리고 선생님, 벌써 한 두어 달 됐네요? 저, 요즘 회사 못 나가고 있습니다.” “왜에?” “저, 위암 수술했습니다.” “요일아…… 너 지금 ‘위염’이라고 그랬니, ‘위암’이라고 그랬니?” “선생님, 저 ‘위암’ 수술했습니다.” “……”   ―― 2007년 8월 31일 저녁; 정병근 시인의 근황 때문에 해본 전화에서                                           흘러나온 김요일 시인의 육성시 갑자기, 눈물이 비오듯이 흘러내려서, 더 이상 말을 잇지도 못했었다. 어머님 타계 소식을 두어 달이나 지난 뒤에 법원에서 날아온 우편물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때도 눈물은 나오지도 않았었건만…… 지난 6월에 있었던 ‘시작문학상’ 뒤풀이에, 뒤늦게 참석해서는, 갑자기 뒤에서 나를 껴안고 볼을 부벼대면서, 처음으로, “사랑의 스킨십”을 다 표현해주었던 녀석이…… 고은경 시인은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지 두어 달만에 위를 들어내서 나를 절망케 해주더니, 너는 이제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니, 또 나를 절망케 해주는구나……     박제천 오오 견디련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 정지용, 「장수산」에서 한때 유엔 고지 밑에서 군생활을 하였다. 산으로 둘러싸여서 하늘이 손바닥만큼 보이는 분지였다. 어느 날 밤 동초를 서다가 정지용의 「장수산」이 떠올랐다. 그리고 누군가 내가 말해주듯 “오오 견디련다/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가 들려왔다. 그때나 이제나 시를 외지 못하는데 그냥 탄식처럼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아마도 중학생 무렵에 읽었던 시, 그때는 그냥 그저 덤덤한 구절이 내 가슴 어디에 잠복되었다가 나타난 것이다. 이 시를 쓸 무렵의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했다 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40년 뒤, 또 이 구절이 떠오른다. 스무 살 무렵에는 비감하였다면, 늙마의 이제는 정신이 백골처럼 무심하여선가, 그냥 그저 무심한 내 자신에게 일러주는 말이 되었다.   박주택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백석의 시는 아련한 그리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고향 같기도 하고 꿈 속 같기도 하고 태반 같기도 한 백석 시를 읽고 있노라면 아득한 시간의 수염을 만지며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는 아내도 없고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부모며 동생들과도 떨어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을 헤매이다 가슴이 메여오고 눈에 뜨거운 것이 괴여 오는 것을 적막하면서도 낮게 노래한다. 크고 높은 것을 생각하며 눈을 맞는 정한 갈매나무는 그러나 나의 가슴에 자라며 쌀랑쌀랑 생애의 문창을 친다.    박형준 선량한 아버지와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거기서 너는 살았다    ―― 이성복, 「모래내·1978년」에서 내가 이성복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1982) 겨울이었다. 어느 날 인천 대한서림에서 계간 《세계의 문학》을 한 권 샀다. 페이지를 넘기다 김수영이 자기의 자화상 밑에 “시는 나의 닻(錨)이다’라고 써놓은 문장을 보고 석쇠에 올려진 생선구이처럼 온몸이 막대기로 관통당한 느낌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김수영의 자화상과 그의 단 한 문장에 이끌려 제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인 이성복의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김수영 때문에 이성복의 시에 빠졌고, 이성복이 김수영의 이름으로 상을 받은 덕분에 김수영의 시를 탐독했다. 한동안 《세계의 문학》에 실린 이성복의 대여섯 편의 시를 뜯어내 호치키스로 찍어 수업시간에도 읽고 집에 와서도 읽었다. 그리고 나는 위의 시구절을 통해 내 가족 이야기를 시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박후기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 박남수, 「새」에서 일곱 살, 글을 깨치면서 가장 먼저 읽은 시가 박남수의 「새」라는 작품이다. 문학청년이었던 큰형님이 솜씨 좋게 그림까지 곁들여 마루에 떡하니 걸어놓았으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냥 외워져 버린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시원찮은 발음으로 종알종알!  다시, 「새」를 생각한다. 한 덩이 납의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늘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 역할에 익숙해져 있는 나를 들여다보면, 참 우습다. 사랑이 떠나갔다. 납의 마음을 버리는 순간, 나는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로 남겨진다.    반칠환 비비새가 혼자서/앉아 있었다.  //(중략) 한참을 걸어가다/되돌아봐도  그 때까지 혼자서/앉아 있었다.    ―― 박두진,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 품에서 떨어진 꿩에병아리 같던 때였다. 귀 기울이면 달맞이꽃 씨앗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던 적막한 산골이었다. 해종일 외딴집 홀로 지키다 집안에 뒹굴던 형아들 초등학교 국어책을 읽던 일곱 살 무렵이었다. “마을에서도/숲에서도/멀리 떨어진/논벌로 지나간/전봇줄 위에 //혼자서 동그마니” 앉아 있던 ‘비비새’가 내 가슴으로 날아왔다. 젖은 손으로 피복이 벗겨진 전깃줄을 만진 듯하였다. 어린 속으로도 그렁그렁하여 중얼거렸다. ‘비비새도 혼자서 앉아 있구나.’ 머리 굵으며 나는 생각했다. ‘비비새가 혼자 있는 걸 아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시인이 되었다.    서규정 너는 살고 나는 죽고  이것으로 이번 생에서 우리는 비겼다    ―― 최영철, 「아버지와 아들」에서 초등학교 무렵 우연히 읽은 《아리랑》이란 대중잡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시구는 어린 심중에 말뜻은 몰라도 그 한 줄은 스물여덟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까지 주문처럼 따라다녔다. 현실은 늘 불안하고 불만스럽고 불순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인들의 공적지평이란 생활의 역경과 고통을 주변부에 두었을 땐 중창단의 합창처럼 한번 부르고 잊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각인인 것이다. “너는 살고/나는 죽고//이것으로 이번 생에서 우리는 비겼다” 윌슨병 앓는 오십대 아버지가 윌슨병 앓는 아들의 부탁을 받고 아들을 목졸라 죽였다는 처연한 단언이다. 위 시구가 아찔하고 아리고 섬뜩한 것은, 당뇨와 고혈압 거기다 신경계 질병을 앓는 팔십이 훌쩍 넘은 어미를 두고, 역시 수발을 들어줄 사람 하나 없이 당뇨와 고혈압을 안고 있는 내가 잘못되어 먼저 떠난다면…… 가족을 베고 황산벌로 나서는 계백처럼 나는 틀림없이 분기탱천하겠지만, 하여 빛나는 시구는 아포리즘적인 사유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결국 삶은 견성이고 발견인 것이다.    성찬경 백금처럼 빛나는 노년을 살자.    ―― 구상, 「노경老境」에서 한국 현대시에 명시 명구도 많지만 문자 그대로 나를 벼락치듯 전율시키는 시구는 바로 이 구절이다. 이 시구를 처음 보았을 때도 그러하였지만 내가 노년이 된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러하다.백금은 무게가 나가는 귀금속 중의 귀금속이다. 황금보다 더 귀하다. 그러나 그 빛은 황금처럼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흰색이다. 노년의 은유로 이보다 더 들어맞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리 높이 읊으며 아로새기는 것이다. 그렇다. 백금처럼 빛나는 노년을 살자!   손세실리아 여자는 함께 있으면 계집이 되고 헤어지면 어머니가 된다    ―― 정진규, 「이별」에서 나는 아직 이보다 슬픈 시구를 본 적이 없다. 한때, 누군가의 ‘계집’이었으나 이제는 헤어져 ‘어머니’로 돌아간 ‘계집’의 비애가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시인의 별사別辭는 매정하기도 뭉클하기도 하다. ‘어머니’이기보다는 ‘계집’으로 남고 싶은 여자의 마지막 염원마저 꺾어버리는 단호한 이별통보인 까닭이다. 함께 있을 때 계집일지라도, 헤어지면 그 즉시 어머니가 되는 게 여자의 몸이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싶은 건지도 모를 일이겠다.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서로 다르다. 여하튼, 살아오면서 지금껏 ‘계집’일 뻔했던 시절 나라고 왜 없었겠는가. 이 한 줄 시구로 말미암아 ‘계집’과 ‘어머니’ 중 후자를 택했을 뿐.    손현숙 그 누구도, 하느님도 따로 한 봉지 챙겨 온전히 갖지 못한 하루가 갔다    ―― 문인수, 「최첨단」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일 뿐이다. 어제의 당신이 오늘의 당신이 아니듯이,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원이라는 말. 변치 않겠다는 맹세. 이런 것들에 모든 것을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나간다. 시간은 누구의 울 안에도 갇히는 법이 없다. 달이 해를 따라가듯 언제나 시작 안에는 끝이 존재하는 거다.  봐라! 시인은 하느님도 하루는 온전히 챙겨 갖지 못한다고 일갈한다. 그러나 그 하루는 목숨이 끝나지 않는 한은 또다시 싹트는 미물, 송곳 끝 같은 느낌으로 가고, 또 온다. 가난도, 부귀도, 사랑도. 오랜 백수白手가 빚어낸 시간의 철학! 해일이다. 지진이다. 쓰나미다.       송승환 싱그러운 거목巨木들 언덕은 언제나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나 한번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었다   ―― 김종삼, 「풍경」에서 등단 전에 나에게 주어진 화두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이면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복합적 의미를 은연중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 화두가 제기된 것은 해안의 저녁 노을 때문이다. 노을은 왜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안겨주는가, 라는 의문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진술과 묘사의 구분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노을의 아름다움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다시 읽은 김종삼의 시는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내가 써야 할 시의 스타일과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송재학 새벽에 쫓아나가 빈 거리를 다 찾아도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 닫혀 있어라.   ―― 고은, 「작은 노래」에서 스무 살 미만의 고 3짜리가 이 구절을 섬광으로 문득 만났다. 만상은 물질이다. 개념과 추상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만지고 구부리고 맛볼 수 있는 구체적인 물질이 된 것은 그 이후. 아마 처음 내 머리의 골통 물질에 들어왔던 희미한 자각은 범신론이거나 정령주의 주변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라고 생각한 것은 고은의 시선집 『부활』을 몇 번 거친 후였다. 범신론이나 정령주의는 신비적 세계관, 대상을 만지고 씹어먹고 뱃속에 오래 삼켰다가 다시 똥을 누려면 시적 대상은 지척지간 친밀한 물질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뻔뻔한 물질들! 비의 속에 자신을 자꾸 숨기는 시/물질은 철면피하기도 하다.    신달자 어느날에사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이 비치리오    ―― 박목월, 「임」에서 천둥의 빗금이 내 가슴을 쫙 후비듯 금을 긋는 싯구는 결코 한 시인이나 한 구절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젊은날에 속절없이 시가 부풀어 올라 하루살이도 푹푹 빠지기만 했던 앳되고 물렀던 내 가슴에 쾅하고 천둥이 내려치던 시들 때문에 나는 각혈을 하지 않고서도 젊은날을 잘 보냈는지 모른다. 그 많은 시구 중에 만난 박목월의 시 「임」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혼절할 뻔하였다.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그것은 내가 무슨 백일기도 끝에도 닿지 못할 것 같은 선명한 이미지요, 손쉽게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무거운 의미의 밀착이었다. 언제 나는 저기에 닿을 수 있나! 그 충격은 지금도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   신대철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어서 너는 오너라」에서 어떤 기운이 갑자기 핏속을 흔들 때 나는 문득 시성을 느낀다. 그 시성은 물론 기발한 시구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억누를 길 없는 죄악에 몸부림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에게서도 온다. 이젠 차가운 대기처럼 온몸을 스쳐가는 시 전체에 집중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끝없는 갈망과 끝없는 결핍이 하나로 뭉쳐져 나는 잠시 정신의 균형을 되찾는다. 사는 게 무엇인지, 신념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나는 데마(디모데후서 4:10 참고)처럼 세상으로 나가 보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래 방황했다. 방황하는 곳이 그 어디든 밤마다 허공에서 푸른 목소리가 울려왔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길모퉁이에서 불안스레 듣던, 저 맑고 뜨겁고 목 타는 울림, “어서 너는 오너라”.    심재휘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에서 윤동주 시의 이 구절은 나에게 벼락처럼 왔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시는 평범했고 안이했다.그리고 나는 시인이 되었다. 시를 쓰는 일은 시를 읽는 일과 같거나 달랐다. 가장 고통스럽게 정직할 때 최고의 절창이 나온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는 세상에서 진짜 부끄러워할 수 있는 사소한 능력은 시 쓰기의 전부가 되었다.    “최후의 나”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언젠가부터 이 너무나 평범한 구절이 나에게 벼락이 되었고, 시를 쓸 때마다 갈수록 더 강한 벼락을 치고 한다. 잘 보면 ‘부끄러운’이라는 말에 피가 비친다.     안도현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푹푹 눈이 내린다는, 이 말도 안 되는 구절 때문에 나는 백석을 좋아한다. 분명히 문장구조의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충돌이거나 모순이다. 연애의 달인답다. 여기에 넘어가지 않을 여자는 없을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우주에 눈이 내린다니! 그리하여 나는 가난하고, 너는 아름답다는 단순한 형용조차 찬란해진다.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30년대에 이미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연인에게 산골로 가서 살자고 하면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사내는 백석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듯하다.    오탁번 눈보라는 꿀벌 떼처럼  닝닝거리고 설레는데,  어느 마을에서는 홍역紅疫이 척촉??처럼 난만爛漫하다    ―― 정지용, 「홍역」에서 정지용이야말로 한국 현대시사의 본문本文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시답잖게 읽는 시러배들이야 알 수 없겠지만, 우리 말의 영혼에 가슴 저려본 이는 아무도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내가 현대시를 전공하면서 딱 맞닥뜨린 시인이 정지용인데 그것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형벌과도 같았다. 와 으로 벼락치듯 섬광을 일으키는 언어의 막강한 힘은 쓰나미와도 같고 화산과도 같고, 내 운명의 바늘을 홱 돌려놓고는 무명無明 저편에 숨어서 ‘용용 죽겠지’ 나를 울리는 시의 여신의 잉걸불보다 뜨거운 젖꼭지와도 같다.    유안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김소월, 「초혼」에서 시인 아닌 아무것도 안되겠다고 스스로 맹세했던 중학생 적에는, 하교길 오뉴월 땡볕을 이고 걸으면서도 구르몽의 시구였던가 “시몽, 너는 좋아하니 낙엽 밟는 소리를” 이 구절이 알사탕처럼 입안에 굴러다니곤 했는데, 대전시를 가로지르는 목척교를 건널 때는 영락없이 입 속에서 굴러다니는 구절은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흐르네”였다고 기억되는데― 그 맹목과 무지와 순백의 백지 같은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해서 소월의 「초혼招魂」과 마주치게 되었던가? 분명하게 기억되진 않지만, 소월의 「산유화」에서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를 두고 계절의 순서가 바뀐 까닭을 질문했다가 문예반 선생님께 망신을 당하고, 「산」이라는 시에서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에서 “산새도”의 “도”와, 왜 하필 “오리나무”였을까를 혼자 곰곰 생각하던 때와 거의 같은 때였을라?! 소월에 미쳤던 여중학생은 「초혼」을 만나자마자 까무라칠 것만 같았지. 부르다가 죽어도 좋을 이름 하나를 갖고 싶었고, 나에게도 내 이름을 부르다 죽을 누군가가 있었으면 소원했지.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붉은 피가 솟구치는 이 뜨거운 한 구절로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로 혼자서 약속하고 굳게굳게 맹세했는데― 성적이 올라가자 스스로 그 맹세를 깨뜨려버렸지만.    유영금 그러나 그보다는 차라리 빨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 최승자, 「오 모든 것이 끝났으면」에서  내가 나를!!, 찔러 죽이거나 목을 매달아 죽이거나 청산가리를 먹여 죽이거나 가스를 마시게 해 죽이거나 총으로 두개골을 쏴 죽이거나 달리는 열차 바퀴에 던져 죽이거나 고층건물 위에서 떨어뜨려 죽이거나 손목의 동맥을 잘라 죽이거나 신나를 뿌려 태워 죽이거나… 그 중 빠르게 죽여 버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선택 때문에 분열에 시달리던 오래 전의 내게 최승자의 시 “그러나 그보다는 차라리/빨리 나를 죽여주십시오”는 내가 죽음에 성공한 것처럼 황홀했다. 실패에 짓밟혀 구차스러운 숨을 끌고 가고 있지만 벼락같이 섬뜩한 이 시구는, 눈을 떠야만 하는 매일 아침의 나를 희망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다. 누군가 나를 죽여 버리는 것이 더 빠르다.            유홍준 무수한 정적은 와글와글거린다    ―― 문인수, 「무수한 정적은 와글와글거린다」에서 “슬픔은 물로 된 불인 것 같다”고 할 무렵의 문인수는 한동안 내 텍스트였다. 글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문인수의 『뿔』이라고 하는 시집을 나는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내 안목이 그랬다. 그러니까 아직 늦깎이 시인 문인수가 뜨기(?) 전의 일이었다.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문인수는 나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것, 묘한 정서적 일체감이었다. 하여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좌우지간 쓸데없는 말 필요 없고, 언제 시인과 매운 고추 다대기 왕창 푼 순대국밥이나 한 그릇 했으면 좋겠다. 무수한 정적은 와글와글거리는 것처럼, 슬픔은 물로 된 불인 것처럼, 겸상을 해 보았는데 문인수와 나에게 짜고 독하고 매운 것은 속이 다 시원한 것이다. 역설이다. 하여간……    이가림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 정지용, 「고향」에서 지금으로부터 45~6년 전, 그러니까 내가 전주고교에 다니던 시절, 국어를 가르치시던 신석정 선생으로부터 처음으로 정지용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당시 월북시인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탓에, 정○○으로 부르며 금기시했음에도, 석정 선생께서는 수업시간 중에 「유리창」,「고향」,「바다」 같은 작품을 받아쓰게 했다. 특히 「고향」에 나오는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이란 구절은 그때 이래 “바람 먹고 구름똥 싸는” 방랑아의 꿈을 늘 내 가슴에 심어주는 벅찬 출발의 신호가 되었다. 내가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답시고 파리를 어슬렁거린 것도, 최소한 5년 주기로 이국땅을 떠돌아다니게 되는 것도 다 이런 낭만적 역마살의 노래를 좋아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번 고향을 떠난 자는 항상 이곳이 아닌 저 먼 미지의 나라에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인가 보다.    이건청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제목이 되어 있기도 하고 곡진하기 이를 데 없는 절창,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시를 읽다가 보면 공들여 힘들게 쓴 흔적이 나타나 있는 시가 있기도 하고, 시인의 내면에서 충분히 무르익어 저절로 흘러나온 듯하면서도 치밀한 구조를 이룬 시를 만날 수도 있다. 나는 물론, 뒤의 경우의 시를 훨씬 윗질로 보는 사람이다.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자신의 심적 정황을 ‘저물녘 노을 속으로 흘러가는 강물’로 치환하면서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으로 슬픔의 깊이를 인식해내고 있으며,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랑 끝 울음”을 거쳐 “미칠 일 하나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 정서의 고양 과정을 치밀하게 끌어 담고 있다. 이렇게, 격정의 정서를 모두 포용하고 있으면서도 ‘소리 죽은 가을 강’이 되어 흘러간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그런 심회의 절정에서 만나게 되는 진한 감동의 언어이다.   이근배 나는 지낸 밤 꿈속의 네 눈썹이 무거워 그걸로 여기 한 채의 절간을 지어 두고 가려 하느니    ―― 서정주, 「기인 여행가」에서 영혼의 작은 숨결도 그려낼 수 있는 내 어머니의 나랏말씀은 어떻게 짚어 내야 시가 되는가? 이 물음 앞에서 나는 서정주 선생을 먼저 머리에 떠올린다. 해묵은 것이려니 하고 오래 덮어두었다가도 여기저기 자주 들춰지는 미당 시에 눈이 가면 내 머릿속은 회오리바람이 분다. 첩첩한 미당 시의 산맥 어디를 기웃거려도 마치 신들린 듯이 쏟아내는 낱말 하나 시구 하나에 내가 가진 말들은 삽시간에 꼬리를 감춘다.  미당이 시 속에 감추고 있는 ‘눈썹’은 우리 시문학사의 화두가 되고 있다. 「수대동시」(1941) 「동천」(1966) 「추석」(1966) 등에 나오는 ‘눈썹’의 절정은 아무래도 이 「기인 여행가」에서 보게 된다. 미당에게 있어 ‘눈썹’은 우주만큼이나 크고 영원한 사랑의 표상이다. 꿈 속에서 만난 ‘눈썹’으로 절간을 세웠으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사랑의 공양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지금 그 절간의 풍경소리가 자꾸 귀속에서 울리는 것을 듣고 있다.    이대흠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날」에서 “내가 없었을 때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오래도록 세상은 젓갈처럼 깊어가고 나는 아무런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고, 한 나라를 이루지도 못했다. 지네인 듯 발이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고, 처음보다 부피만 더 커진 몸뚱이로 나는 외길에 서 있”었다. (졸시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에서 인용) 짐승들은 제 입으로 짐승이라 하지 않았고, 피 묻은 입을 다른 피로 닦았다. 미친 자들이 지배하였으므로 미치지 않는 자가 미친 것처럼 보였던 1980년대. 극약을 가지고 다녔지만, 순교할 기회조차 없었다. 미친개가 미친개를 물어 모두 미쳐갔던,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이동순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백석, 「모닥불」에서 1980년대 초반, 그 엄혹하던 시절에 나는 이름이 낯선 한 시인의 작품에 푹 빠져 있었다. 백석白石, 우리 문학사에서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특이한 존재였다. 하지만 뒤에 알고 보니 이미 1930년대의 찬란한 별이었다. 분단의 폭풍 속에서 가랑잎처럼 흩어진 그분의 작품을 하나 둘 모으고 정리하던 중 시 「모닥불」과 만나게 되었는데, 내 가슴 속은 그야말로 번개가 치는 듯 수백만 볼트에 감전이 된 듯 무서운 전율이 왔다. 모닥불 속에서 우리 민족사의 상처와 불구성을 읽어내다니…… 나는 미친 듯이 백석의 작품을 모았고, 마침내 분단 이후 최초로 한 권의 전집을 발간하였다. 이제 그분의 문학은 우리 문학사에서 당당한 위상으로 복원되었다. 백석과의 만남은 나의 감격이었고, 나의 행운이었으며, 이젠 나의 자부심으로 살아 있다.    이병률 나는 이렇게 한가하고 게으르고 그러면서 목숨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하는 것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그 오래고 깊은 마음들이 참으로 좋고 우러러진다    ―― 백석, 「조당?塘에서」에서 이상하다. 아직도 따뜻한 것에 연연해함은, 밋밋하게 편편하게 살아도 살아지는 세상에 자꾸 목 뒤에 뭔가가 켕긴 것이 있는 사람처럼 따뜻한 것을 찾아 자꾸 뒤돌아보게 됨은 부끄럽기조차 하다. 그래도 이 한 줄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다 보면 나아진다. 목욕이라도 한 기분이 된다. 삶을, 인생을 저리 순연하게 ‘우러러’볼 수 있다니 백석은 참 인간으로서도 잘 살았다 싶다. 이 땅의 전부를 담고 있으며 한 생의 궁극을 집어낸 이 한없이 느리고 미쁘며 태연하고도 갸륵한 한 줄이여. 나는 이 한 줄이 참으로 애틋하고 뜨겁다.     이선영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렸다.   ―― 김수영, 「거미」에서 ‘바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기에, 또한 얼마나 절절하기에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그러다 ‘까맣게 몸이 타 버’린 김수영의 ‘거미’는 이후 내 뇌리에 각인된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였다. 본시 거미에 대해 생명으로서의 한치의 외경심이나 일말의 연민조차 가져본 적이 없던 나에게 김수영의 ‘거미’는 그대로 섬광 같은 시인의 실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시인의 길을 가려던 나의 실존에 대한 섬뜩한 예감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성부 먼 길에 올 제  호을로 되어 외로울 제  푸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 김현승, 「푸라타나스」에서 열여섯 살의 여드름 투성이였던 소년에게 이 시구는 충격이라기보다 큰 그리움의 하나로 다가왔다. 그때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먼 길’과 ‘외로움’의 실체가 눈에 선하게 잡혀지는 것 같았다. 집을 떠나 어디론가로 가고 싶다는 여행에의 욕망, 그 여로에서 터득하게 될 고독의 본질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는데, 세계와 삶에 대한 어떤 각성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정지된 나무가 하나의 영혼으로, 그리고 한 고독한 인간을 고독하지 않게 위무하는 손길로 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수명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소    ―― 이상, 「꽃나무」에서 이것을 읽었을 때, 시가 무엇인지 알았던 것 같다. 욕망과 함께 욕망의 불가능함을 말이다. 시는 이 불가능으로 시작된다.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는 또 다른 자아일까, 타자일까. 이상은 양자가 하나가 되는 어느 지점이 시의 뇌관임을 보여준다. 시인들은 안에, 혹은 밖에 꽃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겠지만.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 거리감을 직관하는 것이 시이다. 그것을 채우는 것이 시이고, 또 내버려두는 것이 시이다. 나는 시의 이러한 운명을 사랑한다. 시는 “갈 수 없”음으로 도달하기 때문이다. 관통하기 때문이다.    이수익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 서정주, 「화사花蛇」에서 서정주 초기 시편의 휘황한 원초적 생명력은 나의 10대 문학소년 시절을 뜨거운 피로 세례하였다. 그 중에서도 원죄의 달콤한 유혹과 관능을 징그러운 배암으로 육화시킨 「화사花蛇」는 언제나 그 절정에서 나를 숨가쁘게 조여 왔다. 내 몸 안의 피의 유전자와 상통하는 ‘어떤 무엇’이 있었음이 틀림없었으리라. 특히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라는 구절에 이르면 나는 늘 숨막히는 희열을 전신으로 감싸 안곤 했다. 그런 내면적 뜨거움이 이후 나의 시에서 피, 절정, 죽음, 황홀, 비애 등의 언어로 채색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승하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서정주, 「자화상」에서 미당은 23세 되던 해 가을에 「자화상」을 썼다. 나는 바로 그 나이에 미당 선생의 제자가 되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스승은 호되게 꾸중을 하셨다. “이건 시가 아닐세!”라고. “이런 시는 앞으로 쓰지 말게!”라고. 스승의 시 수십 편을 이마 위에 얹고 있던 나는 스승의 몰인정에 학교 앞 주점 왕개미집에서 오랜 날을 살았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전시 체제로 바뀌어 가던 1937년, 스승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간질병 환자인 양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나 역시도 1982, 83년 그 언저리에서 분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치를 떨고 있었다. 시대가 참으로 어두웠기에, 스승의 말마따나,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을 남몰래 꿈꾸며 시를 쓰고 있었다. 스승은 말더듬이 환자였던 나의 자화상인 「화가 뭉크와 함께」를 등단작으로 뽑아주셨다. 스승의 파안대소가 미치도록 듣고 싶은 2007년 9월의 어느 아침이다.    이승훈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    ―― 이상, 「아침」에서 고교 시절 처음 이상의 시를 읽고 충격을 받는다. 세상에 이런 시가 있다는 것도 충격이고 이런 시인이 있다는 것도 충격이고 이런 시인과 만난 것도 충격이다. 그가 노래하는 병든 내면은 당시의 나의 내면이고 그 후 나는 이상의 정신적 가족이 된다. 그는 폐결핵으로 시달리는 밤을 노래하고 이런 밤은 당시의 어둡던 가정, 나약한 감성, 우울한 사춘기의 은유가 된다.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결국 고독한 체념과 말라버린 사유와 초췌한 감성이 있을 뿐이다. 사는 건 병드는 것. 그렇게 고교 시절을 보냈다. ‘밤은 참 많기도 하더라.’ 이런 밤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   원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 오규원, 「버스정거장에서」에서 1987년 3월 서울예대 문창과에 들어갔고, 1987년 10월 명동의 서점에서 오규원 선생님의 새 시집을 샀다. 「버스정거장에서」의 첫 구절인, 이 시구를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습작을 하던 1991년, 밥그릇을 소재로 시를 쓰게 되었다. 이런 것도 시가 되나요, 하고 여쭈었다. 이 세상에 시 아닌 것은 없다. 네가 쓰는 모든 것이 시다, 오규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순간 즉각적으로 이 시구가 다시 떠올랐고, 이 시구를 처음 보았을 때 무너져 내렸던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짐짓 태연해 보이는 이 진술은 내가 시에 대해, 삶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한 번에 무너뜨렸던 것이다(내가 안다고 믿고 있던 것들은 내가 가장 모르는 것들이었다). 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시다, 언어도 삶도 벼랑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나는 언어가, 삶이 균형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이 시구를 붙잡고 날아오르며 벼랑을 만든다.    이유경 내 너를 찾아 왔다.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 서정주, 「부활」에서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은 아니지만, 최초로 나를 감동시킨 시 한 구절은 서정주의 「부활」의 도입부였다. 이 시를 처음 대한 것은 고교에 입학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한답시고 서정주 조지훈 박목월 공저의 『시창작법』(1954)이란 책을 사 읽으면서였다. 미당의 란 글에 시 전문이 실려 있었다.  열여섯 일곱의 사춘기를 갓 지난 나의 감성에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는 황홀한 사랑의 풍경을 전개해 주던 것이었다. 슬프고 쉬운 시였기에 감동이 더했던 모양이다.  훗날 성인이 되어서도 한동안 나는 술에 취하면 노래 대신 이 시 전문을 소리쳐 외곤 했다.   이윤학 아침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씩씩하고 활기차게 ‘필승’ 또 ‘필승’/경례를 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그렇게 인사를 하십니까// 네, 저기 있는 까치를 보고 인사합니다/필승!    ―― 정용주, 「필승」 전문 3,4년 전 이 시를 처음 읽게 되었다. 한 남자가 아침마다 창문을 열어놓고 까치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부동자세로 까치가 날아올 나무를 아니면 지붕을 또는 전봇대를 힘주어 바라보았다. 왜 반드시 이겨야 하나, 왜 반드시 이겨야 하나, 왜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 되나? 씩씩하고 활기차게 ‘필승’ 또 ‘필승’을 외치지 않으면 안 되나? 왜 하필 까치에게, ‘필승’ 또 ‘필승’ 경례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되었나?  처음에는 화자 자신에게 퍼붓는 ‘냉소冷笑’로 읽히더니, 종내는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자기 암시暗示로 옮겨갔다. 까치를 보면 이 시가 생각나더니, 나무나 지붕이나 전봇대만 봐도 ‘필승必勝’이 들려왔다.  “……오직 하나, 나는 나 자신에게 승리했을 뿐이다.” 김산 평전에서 읽은 구절과 함께.     이윤훈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이 시는 젊다.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신선한 감각이 살아나  시의 자장을 잃지 않고 있다. 이 시 속에서는 야사 하이페츠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아련하다. 극도로 절제된 감정과 섬세한 감각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시의 공간이 있다. 그 속에 고양이로 현현된 생생한 봄을 만난다.나른한 아침 봄볕 속 이 시를 진언처럼 읊조리면 이 시와 내 시의 한 접점에서 모를 새 한 마리 고양이로 변한 나를 발견한다   이재무 죽은 고기처럼 혈색 없는 나를 보고 얼마 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 김수영, 「강가에서」에서 지금 읽어보면 지극히 평범한 진술이다. 하지만 30년 전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물 묻은 손으로 전선을 만진 듯 전율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은 이 시가 김수영의 다른 시편들에서도 보이고 있듯이(일테면 「거대한 뿌리」 「성」 같은 시편들) 시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크게 위반했기 때문이다. 시라면 응당 고상하고 아름답고 선하고 우아해야 한다는 고루한 생각에 갇혀 있던 내게 그의 시편들 속의, 정도를 넘어선 과감한 시적 표현들(비속어, 욕설 등 일상 언어의 과감한 창조적 차용)은 당혹감을 넘어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전복과 위반의 진술들은 막힌 것이 확 터지는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제도와 이념의 금기를 훌쩍 뛰어넘으려는 시인의 고투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세계의 발견과 개진에 뒤따른 기법과 표현에서의 그의 이러한 과격한 도전과 실험이 있었기에 우리 현대시는 그만큼 영토를 실질적으로 확장해 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정록 나무를 베면 뿌리는 얼마나 캄캄할까     ―― 이상국, 「어둠」 전문 가장 최근에 친 벼락이다.  봄이 되면, 나무는 깜깜한 어둠을 딛고 새싹을 밀어 올릴 것이다. 맨 처음, 씨앗 속의 어둠을 송두리째 끌어올려 초록지붕을 지었듯이, 다시 초록의 일주문 하나 세울 것이다. 발밑 어둠의 실뿌리를 더 깊게 박을 것이다. 잘려나간 그루터기의 겹눈, 칠흑 중의 칠흑은 발밑 어둠이다. 발바닥에 눈을 달고 세상을 읽자. 똥독에 빠진 쥐의 눈이 가장 반짝인다. 연필심은 종이보다 깜깜하다. 어둠의 핵에서 글이 나온다. 아버지가 누워 있는 방이 가장 어둡다. 새벽 일찍 쌀을 안치던 어두운 솥단지, 깜깜하기에 쌀보리는 더욱 희게 눈뜬다.    이진명 몸은 왜 있을까    ―― 김정환, 미상 김정환 시인의 시 구절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장을 뒤졌으나 80년대에 읽으며 줄쳐 놨던 옛 시집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사람한테 문의하였지만 이 시구가 있는 시집과 시의 제목을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채로 이 시구를 만났을 때의 나를 불러보련다. 데뷔 이후 1992년 첫시집을 얼굴도 본 적 없는 김정환 시인께 부쳤다. “몸은 왜 있을까” 오직 이 한 구절을 허락도 없이 품고 있었던 오랜 빚을 갚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아아, 탄식의 수긍을 몸을 궁글리며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몸은 왜 있을까”. 모든 오욕칠정과 생로병사와 살아 있다고 들고나는 이 물질적 숨의 현재, 이런 모욕이, 이런 치욕이 어디 다시 있을 수 있을까.  그때 내 나이 삼십 중반. 무슨 제1의 대문짝이라도 되는 양 모가지 위에 얼굴을 올리고, 걸음 같지도 않는 걸음을 끌며 길거리를 헤매고 직장으로 십수 년을 흘러다녔다. 왜 이토록 피로하게 밥을 벌어야 하는지 돈을 벌어야 하는지를 도무지 알아낼 재간이 없는 채. 그런데 답이 온 것이다. 몸은 왜 있을까, 질문이며 답인 이 시구를 받아올리자, 온 세월의 체증이 슬픔도 없이 녹아내리며 화장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두 손 받쳐 지심으로 풀어 내리는 나를 보았다. 이 지난한 밥벌이의 되풀이가 똥 닦을 두루마리 화장지(세상 어디에 똥 닦을 휴지 하나를 거저 주는 데 있으랴) 한 뭉치를 사기 위해서라고 겨우 깨닫게 되자 화장실에서 돌아와 책상에 앉아 그날 오후의 나머지 일을 고요하게 마칠 수 있었다.  이   탄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에서 정지용의 시 「유리창」의 끝연 10째줄이다. 이 시의 “산ㅅ새처럼 날러 갔구나”처럼 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사라진 정황을 볼 수 있다.이 시는 정지용이 죽은 아이를 보고 지었다고 한다. 9째줄의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만 보더라도 불길한 상징이 잘 되어 있다. 정지용은 시를 지을 때 아무리 슬퍼도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한다.슬퍼도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일까. “날러 갔구나!” 이 한 구절이 내 마음 속에 오랫동안 맺히게 된 것은 내가 1960년대에 《새소년》 잡지를 만들 때부터였다. 잡지 《새소년》이 잘 나갈 때 마음 속에서 부정을 타서 《새소년》이 안 팔리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은 우려와 함께 “날러 갔구나!”와 같은 암시는 항상 내 마음을 불안케 했다. 새시대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암시해준 시구였다.   이태수 저 금박金箔 바람,  저린, 낯선, 눈부신…    ―― 황동규, 「사라지는 마을」에서 우울하게 헤매면서 시에 이끌려 다니던 문학청년 시절, 유치환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그리움」)라는 ‘절규’에 빠져들곤 했다. 현실과 꿈의 동떨어짐, 방황과 갈등 때문이었다. 그 뒤 박목월의 빼어난 언어감각과 조지훈의 의젓한 지사적 풍모에 매료되고, 김춘수와 황동규를 가까이 느끼게 됐다. 스승인 김춘수의 ‘꽃’을 노래한 시편들, 서정의 옷을 입은 그 인식론(또는 존재론)의 세계는 매력적이었다.  이어 황동규의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시편들은 부러움과 극복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황동규는 여전히 저만큼 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감들이 황금빛 불을 켜고 있으며 그 금박 바람이 “저린, 낯선, 눈부신…”으로 읽는 그 황홀하고 서늘한 정신의 불빛이 전율을 안겨주고 있는 것 같다.    이하석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 한용운, 「알 수 없어요」에서 이 시구는 ‘한심하게 어둡고 쓸쓸했던’ 고등학생 시절에 ‘문득 내게 왔다’. 참 많이도 이 시구를 중얼중얼대며 다녔다. “시의 언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는 예이츠의 말마따나 이 구절은 한용운이 살았던 삶의 한복판에서 필연적인 목소리로 나타났다고 믿으면서. “그래, 재는 불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지. 그건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것. 마치 이별이 끝이 아니라 만남의 시작인 것처럼 말이다”라고 믿으면서. 이 놀라운 전환, 끊임없는 부정으로 인해 열리는 큰 긍정의 꿈의 실현의지야말로 ‘한심하게 어둡고 쓸쓸했던’ 나를 밀어올리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장석남 산山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김소월, 「산유화」에서 미인이 좋은 건 그저 좋은 것이지 까닭이 있지 않다. 늘 명확한 그 사실 앞에 엉뚱한 까닭들을 늘어놓는다. 좋은 시가 왜 좋으냐고 하면 어떠한 답이 나와도 그 시가 가지고 있는 함량에 미달인 채로 구차하다.  뼈가 굳기 전부터 이 시가 좋았다면 거짓일 공산이 크다. 확실히 이 시는 천재의 산물보다는 달관의 산물이다. 이십대 후반쯤일까 이 시가 막 쳐들어왔다. 좋은 시는 막 달려 들어오는 것이다. 저 꽃은 하나의 절간이기도 하고 백골이기도 하다. 때로는 남모르는 연애이기도 하고 도피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다. 흔히 도피를 현실 망각의 행태로 간주해 버리고 마는 경우가 있다. 예술이 현실 도피라는 걸 모르는 탓이다. 도피가 아니라 초월이라고 하면 책망에서 면할까? ‘저만치’ 피어 있으니 목마름이요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다. 늘, 궁극적으로는 저만치 혼자서 피다 지고 싶었다. 다시 구차하다!    장석원 날아간 제비와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反逆의 정신//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시를 반역한 죄로/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 김수영, 「구름의 파수병」에서 여름의 산정에 삐쩍 마른 해골이 있다. 겨울 설산이 보낸 엄혹한 마른 바람이 보인다. 뽀개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온다.시가 두려워질 때마다 김수영을 읽는다. 비애의 정점에 다다른 시인을 본다. 그의 얼굴은 구름에 먹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곧 산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그는 다시 시를 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반역할 것이다.‘가장 높은 정신’(조정권)의 거처, 산정에 서 있는 반역자, 시인. 그의 정신과 구름의 방향.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디로든 가야 한다.청빈과 쓸쓸함이 노래가 되는 순간. 이 염결성이 시인을 지키는 도덕이라는 것을 안다. 사랑의 끝이 보인다. 고요하다.   장석주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悲哀를 알고 있느냐     ―― 김수영, 「비」에서 이 시구가 마음에 화살처럼 꽂혔다. 시인은 제 아내에게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놀라워라, “움직이는 비애”라니! 비와 비애의 음가音價가 겹쳐지며 한 순간에 눈이 번쩍 뜨인다. 비의 운동역학에 “비애”를 슬쩍 얹는 솜씨라니 ! 비애에 비의 운동성이 합쳐짐으로써 돌연 비애의 동학動學이 발생한다. 김수영은 아무런 운동성을 갖지 않은 정적인 것에 비의 운동성, 비의 속도를 부여한다. 대상적으로 존재하던 “비”라는 사물은 돌연 경계를 넘어 “움직이는 비애”라는 현존을 품는다.  시인은 음과 양이 하나로 포개지듯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하나로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인식하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가 지워질 때 움직이는 “비”는 움직이지 않는 “비애”를 품고 떨어지는 그 무엇으로, “비”라는 보편다수의 존재자에서 “움직이는 비애”라는 일자, 혹은 초월자로, 그리고 세계의 중심이 사물에서 사건으로 옮겨 간다.    장인수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 한용운, 「알 수 없어요」에서 시라는 놈이 나에게 기습한 경로는 아주 평범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국어 선생님은 교과서에 시가 나오면 무조건 외우라고 하셨다. 지금도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수십 편의 시를 달달 암송하고 있는 것은 그 분 덕분이다. 달달 외우기 위해서는 밥 먹다가도, 똥 싸다가도,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하면서도 혀에 가시가 돋도록 연습해야 한다.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라는 시를 암송하면서 “수직垂直의 파문波紋”,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라는 글귀가 서서히, 자꾸 미꾸라지처럼 꿈틀거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게 시는 내게 엄습했다. 처음 읽을 때에는 싱겁거나 무덤덤했던 글귀였는데 어느 날 하루 종일 입술에 붙어서 팔딱이더니 전압이 세지면서 번개가 치고 온몸의 혈류가 범람하는 전율을 받게 된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수천만 개가 새우 떼처럼 튀었다. 그 이후 장석주의 시편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전윤호 고한읍 어딘가에 고래가 산다는 걸, 나는 몰랐다.    ―― 이건청, 「폐광촌을 지나며」에서 이 나라에서 석탄이 가장 많이 나던 동네에서 자라며 광부의 아이들과 학교를 다니고 검은 산과 검은 강을 보며 자란 나였지만 나도 몰랐다. 고래를 잡으려면 동해바다로 가야 하는 줄 알면서 살았다. 내 친구가 고한초등학교에서 선생을 하고 가끔 도박에 미친 놈들이 손을 끌고 올라가 카지노를 찾을 때도 나는 몰랐다. 그곳에 고래가 있는지, 그곳에 있는 고래를 누군가 보고 있는지. 가끔은 내가 뭔가를 놓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시를 읽으면 그렇다. 시인은 내 척추를 지나 심장으로 파고든다. 이젠 나도 고래를 잡으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정끝별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에서 내 스무 살의 ‘그 어떤 포스와 비전’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 스무 살 무렵, 학관의 전용(!) 화장실 벽에는 “님은 갔습니다. 지가 갔습니다. 그놈은 붙잡아도 갈 놈이었습니다”가 새겨져 있었다. 읽고 또 읽었으리라. 역시 그 무렵, 일요일의 나는 교회를 들락거렸고, 일요일을 뺀 허구헌날의 오전은 시와 사회과학을 한답시고 써클룸을 들락거렸고, 나머지 허구헌날의 오후는 술집을 들락거렸다. 시에 울고 사람에 울고 신에 울고 최루탄에 울고 술에 울었다. 초월과 역사와 현실 사이를 들락거리며 징징징 울던 그 무렵,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라는 구절은 얼마나 비장한 ‘포스’를 내뿜었던가. 얼마나 확고한 ‘비전’이었던가. 당신만 당신이 아니라 기리운 것이 다 당신이라는데……    정병근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 김수영, 「눈」에서 기침을 하자고?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나는 시인이 폐병쟁이인 줄 알았다. 마른 얼굴에 유난히 퀭한 눈을 가진 시인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기침을 하고 싶었다. ‘기침’은 살아 있고자 하는 자유의 분명한 언표임을, ‘눈雪’과 ‘눈目’이 다르지 않음을 지나오면서 더 절절히 공감하게 되었지만. 나는 기침을 자주 했다. 새벽녘 기침소리로 할아버지는 그 높은 존재를 알렸고, 아버지는 헛기침 끝에 우리를 나무랐다. 할 말이 없을 땐 자꾸 기침이 나왔다. 침묵이 나를 가로막을수록 기침은 더 날카롭게, 더 깊이 내장되었다.  기침은, 타성과 혼곤의 등짝을 후려치는 나 스스로의 죽비이면서 부조리와 억압에 항거하는 ‘한소리’일 것이다. 보라는 듯이. 들으라는 듯이. 하여, 기침은 지금도 저 희고雪, 퀭한目 ‘눈’과 함께 여태껏 내 폐부 속에 칼날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정일근 캄캄한 교실에서 끝까지 남아 바라보던 별 하나    ―― 김명인, 「동두천 2」에서 시인이 되고 국어선생이 되어 김명인 시인의 처녀시집 『동두천』을 다시 읽었다. 그 시절 나는 주당 45시간의 수업을 하는 교육노동자였고, 교실에서 교실을 떠도는 유목민이었다. 야학선생을 오래 한 나는 야학과 다른 분위기인 제도교육의 폭력에 가까운, 불합리한 제도에 적응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 필사를 하며 공부를 한 시집 『동두천』을 다시 읽으며 “캄캄한 교실에서 끝까지 남아 바라보던 별 하나”란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그때까지 나는 미래의 ‘별’인 학생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주장자처럼 나를 쳤다. 단지 분노에 차, 별을 보지 못한 나에게 별을 보게 만든 그 한 구절 덕분에 나는 「바다가 보이는 교실」 연작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후 그 연작시가 내 처녀 시집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정재학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 폐벽에 끌음이 앉는다.    ―― 이상, 「아침」에서 폐병을 앓았던 시인의 재미있는 구절이다. 결국 폐결핵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잃었지만 이상에게 폐병으로 인한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시는 찾을 수가 없다. 과거로부터, 앞으로도 시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있겠지만 이상은 ‘시는 결국 이미지이며 유희’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듯하다. 그것이 1930년대 시인들 중 그가 고립적인, 독자적인 위치를 갖는 이유일 것이다. 삶 혹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진정성의 척도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답답하고 재미없는 일이다. 시인은 스스로 환자이자 의사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안목을 가진 시인이라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이상은 보여주었다. ‘시에서의 진정성’과 ‘시에 대한 진정성’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이 둘의 사이가 그리 먼 것은 아닐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에 나오는 어느 대사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잘 요약해 주는 것 같아 말미로 대신한다.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아. 그래서 더욱 잊혀지지가 않아.”    정진규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 「동천冬天」 전문 1연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전문을 다 옮길 도리밖에 없다. 이미 분석이 완벽하게 끝나 있는 시랄 수 있겠으나, 오히려 오독誤讀이 내게는 정독正讀이 된 경우가 많다. 그만큼 벼락으로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이 시도 내게는 그런 범주에 속하는 시가 아닌가 한다. 이 시의 벼락의 정체는 마지막 쉼표(,)다. 이토록 호흡(리듬)과 의미와 리듬에 모두 걸려 영향하고 있는 부호를 나는 여기서 처음 만났다. 마침표로 마감하면 이 시는 형식상의 리듬이 단절되고 산문적인 설명이 되어버린다. 꿈으로 맑게 씻는 이미지의 행위도 불가능해진다. 눈썹의 의미도 사실로 끝나고야 만다. 일거에 하나의 사물(반달)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개벽開闢이 벼락으로 왔다.    조말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윤동주, 「길」에서 열일곱 살 때는 ‘13인十三人의 아해兒孩가 도로道路로 질주疾走하’(이상)느라 막다른 골목이 좋았고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도 좋았다. 재미없는 교과서 속에서 이상은 이상해서 좋았다. 그는 열둘이라는 딱 맞춤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에게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했다. 많은 제십삼 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항상 줄을 잘 서는 학생에게 도주하기 좋은 막다른 골목은 쾌감이기에 충분했다. 윤동주는 너무 반성적이어서 거리를 두었다. 좀 쓸쓸해 보이기는 하였으나 그는 너무 정직했다. 그래서 얼마 전 드라마 자막에 떠오른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는 신선했다. 그것은 반성적이었으나 막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한창 길에 심취해 있을 때였다. 아침에도 걸었고 저녁에도 걸었다. 그것은 막다른 길이었으나 아스라이 멀어서 내가 걸어가고 걸어오는 길이 한없이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조정권 지난 여름은 줄곧 난행亂行만 당하고 겨우 한 줄의 시를 써서 수습하고…‥ 빈자貧者로다. 빈자로다. 나 이 땅의 일등 가는 빈자로다.”     ―― 정진규, 「곳곳에 가을이 당도하였으매」에서 젊은 시절 내가 외우고 다닌 구절이다. 이 시의 빈취貧臭를 좋아했다. 그와 나는 한동네에서 살았다. 거나해지면 그 앞에서 나는 이 시를 낭송했다. 아름다웠던 시절이다. 한국 가톨릭의 빈승貧僧 구상도 그의 시엔 쇠락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에 매달려 있음의 세상! 우리가 추구했던 순수시의 빈취성貧臭性에는 상처받을 수 없는 순결과 도도한 처녀성이 자만심으로 살아 있었다.  누가 일등 가는 빈자라 자부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빈자로 남는다. 시인은 상처받을 뿐 훼손되지 않는다.  조창환 누군가 목에 칼을 맞고 쓰러져 있다 흥건하게 흘러 번진 피 그 자리에 바다만큼 침묵이 고여 있다    ―― 이형기, 「황혼」에서 어느 위대한 영웅의 비장한 죽음과 그 자리에 흥건하게 흘러넘친 피를 연상시키는 황혼의 짙붉은 색감은 극한에 다다른 순수의 모습이다. 피와 죽음의 장면에 배음背音처럼 깔리는 절대침묵을 느끼는 순간, 나는 저 무서운 소멸과 황량한 무화無化에 대한 두려움 섞인 전율에 사로잡혔다. 일체의 잡음이 제거된 순수 그 자체인 죽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는 공포보다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시인의 내면에 깃든 극한적 순수지향의 의지가 빚어낸 이 장면의 미학적 전율은 내 심리의 저층에 잠들었던 원색적 비장감을 깨워 일으켰다. 이형기 시 「황혼」이 보여준 환상과 꿈의 실재화實在化에 대한 치열한 탐닉은 한때 이미지의 감각적 형상화를 추구하는 내 시의 지향점이 되기도 하였다.    조현석 귓속에/복숭아꽃 피고/노래가/마을이 되는/나라로/  갈 수 있을까/어지러움이/맑은 물/흐르고/  흐르는 물 따라/불구의 팔다리가/흐르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죽은 사람도 일어나/  따뜻한 마음 한 잔/권하는 나라로/  아, 갈 수 있을까/언제는/몸도/마음도/안 아픈/나라로    ―― 이성복, 「정든 유곽에서」에서 엄마는 늘 아팠다. 시도 때도 없이 무릎 관절이 쑤셨고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했고 당뇨에 고혈압도 있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도를 낸 아버지가 근 1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그 기간 중 엄마는 몇 개월 동안 병석에 있었다. 예전에 앓았던 결핵성뇌막염이 다시 도졌다는 말을 이모에게서 들었다. 그때 나는 숱한 밤을 앉은뱅이책상에서 울다가 지쳐서 엎드려 잠들었다. 커다란 이불짐과 옷보따리를 지고 메고 판자촌이 즐비한 청계천 옆 왕십리로 이사를 했다. 그 시절 아버지 없는 집에 앓아누운 엄마를 보며 “갈 수 있을까. 언제는 몸도 마음도 안 아픈 나라로”를 생각하며 병이 낫기를 기원했다. 지금은 15년 전 돌아가신 엄마가 “일어나 따뜻한 마음 한 잔 권하는 나라”를 떠올린다. 딱히 마음 한 잔이 아니더라도 찬 술 한 잔이라도 권하기를.   천양희 움직이는 비애悲哀를 알고 있느냐    ―― 김수영, 「비」에서 “시를 쓰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시를 쓰라(릴케)”는 말 앞에서 오래 마음이 들리던 시절, 움직이는 비애란 말은 “내 속엔 언제나 비명이 살고 있다(실비아 플라스)”라는 구절과 함께 내 정신을 내리치는 죽비였다.움직이는 비애가 내면을 훑고 지나갈 때 나는 시詩라는 위독한 병을 철저히 앓을 수 있었다. 정신의 지문指紋 같은 이 한 구절은 내가 초극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며 시작詩作에 가해야 할 박차이다. 오늘도 시가 내게 묻는다.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고.    최영철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시를 쓸 종이가 없어 날 지난 신문지 한 귀퉁이에 몇 줄을 끄적거려 그것을 천금인양 가슴 한편에 감추던 시절이 있었다. 시를 쓸 필기구가 없어 부러진 연필을 황급히 깎아 침 묻혀가며 눌러 쓰던 시절이 있었다. 멀쩡한 팔다리를 떼내어 버릴 수는 있어도 그렇게 얻은 시 몇 줄은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호주머니에는 잘 해야 천 원 지폐 한 장이 고작이었다. 그것으로 낱담배를 사고 가락국수로 허기를 넘기고, 잔술 두어 잔이라도 마신 날은 찬바람이 씽씽 들어오는 어깨를 구부리고 두어 시간 집까지 걸어야 했다. 그리고 새롭게 뜬 아침 햇살 아래 지난밤의 모든 기대와 몽상을 찢고 불태워야 했다. 가난하고 외로웠으나 높고 뜨거울 수 있었던 동력은 얄궂게도 그렇게 진저리를 쳤던 가난과 외로움이었다. 그다지 가난하고 외롭지 않게 된 지금, 나는 그래서 그다지 높고 뜨겁지도 않게 되었다.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그것이 두렵고 절망스럽다.    최종천 그러나 누구하나 정작 보면서도 보지 못할 아득한 헤루크레스 성좌 부근 광막한 시공 속에 이미 환원한 나를    ―― 유치환, 「모년某年 모월 모일」에서 시를 읽다 보면 놀라우리만큼 닮은 구절을 만나게 된다. 청마 선생의 위 구절은 T.S. 엘리어트의 「게론쫀」의 끝에 나오는 다음 구절과 많이 닮았다. “바스러진 원자로서, 떨리우는 곰좌의 궤도 저편에 회오리치는 벨라슈 프레스카 캐멀부인은” 한창 시를 공부하던 시절 내가 좋아하는 시를 모아 놓고 보니, 박목월의 「하관」, 유치환의 「모년 모월 모일」, 정지용의 「유리창」 등으로 모두 죽음을 다루고 있는 시였다. 청마 선생의 이 작품은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물게 드높고 명료한 정신의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닮은 상상력과 감수성을 만날 때는 경이와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 전율은 청년으로서 느끼는 좌절과 고독을 달래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엘리어트의 시를 좋아해서 어느날 교보로 시집을 사러 갔다가 주머니에 돈이 없는 것을 알고도 훔쳐 가지고 나오다가 교보 직원에게 들킨 적이 있다. 내 호주머니 속에 든 것을 모두 꺼내놓으라고 하여 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책을 주면서 다음에 오면 갚으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다음에 가서 책값을 갚으려고 하니 없었던 일이 되어 있었다. 탐구당 문고판 엘리어트 시집 당시 값은 2천 원이었다. 1978년의 일이었다.   최창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내 삶의 길을 크게 벗어났거나, 너무 멀리 나왔다는 생각이 들 때에 백석의 시는 엄하고도 얼마나 정감 어렸던지, 나는 그대로 꼭 따라 했던 것이다. 아궁이에서 불씨를 화로에 담아, 꼭같이 무릎을 꿇고… 시를 쓰거나보다, 시를 빚거나보다, 시를 산다는 일이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줄곧 내 우매한 정신의 불씨를 살려주는 싯구는 참으로 많으나,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고 저 백석이 다가 낀 화로의 불씨로 보태보는 것이다.    최치언 너는 해바라기처럼 웃지 않아도 좋다 배고프지 나의 사람아 엎디어라 어서 무릎에 엎디어라    ―― 이용악, 「장마 개인 날」에서 모든 것이 다 엉망진창인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자꾸 꿈속에 찾아와 밥을 해주시며 ‘배고프지 않니, 배고프지 않니’ 그랬다. 그런 날이면 북쪽으로 머리를 둔 옥탑방에 누워 천장에 드리워진 두꺼운 구름장들을 보았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울면 지는 거니까. 그러나 울었다.“배고프지 나의 사람아/엎디어라 어서 무릎에 엎디어라” 되뇌이며 울었다.    한명희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 김광균, 「설야」에서 김광균의 「설야」와 신경림의 「갈대」를 놓고 망설인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와 “산다는 것은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본다. 난독의 시절이자 남독의 시절이었고 사춘기로 접어들까 말까 한 시기였다. 눈 내리는 소리가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들리다니! 이 구절은 야한 비디오 화면처럼 저절로 자꾸만 떠올랐고 나는 몰래 혼자 설레어하며 부끄러워했고 그러면서 몰래 이 구절을 계속 읊조렸다. 「갈대」를 읽고는 산다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인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나는 내 삶에 대한 비극적인 예감으로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한편 그 괴로움을 즐겼다. 오랜 망설임 끝에 나는 괴로웠던 기억보다는 설레고 부끄러웠던 기억에 한 표를 던지기로 한다. 세상에, 눈 내리는 소리가 옷 벗는 소리로 들리다니!      한미영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전문 스무 살이었다. 새내기 문학도였던 내게 정현종의 「섬」은 알 수 없는 힘으로 오롯이 내 가슴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알베르 까뮈에 심취해 있었고 까뮈가 스무 살에 읽었다던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섬』을 읽은 것도 스무 살, 그 무렵이었다. 가슴에 섬을 품고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연애는 수없이 내 안에 떠 있던 섬으로 인해 좌초했다. 떠나간 사랑을 탓하느라 청춘을 소비했다.돌이켜보면 연애가 실패한 건 내 책임이었다. 섬은 내게 사랑의 은유와도 같았다. 왜냐하면 나의 연애는 끝없이 미끄러지는 운명을 반복하는 어떤 실현 불가능한 욕망의 치환이었으므로. 나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아직도……    함성호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별 헤는 밤」에서   따는, 나는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생명의 존귀함이 아니라 나라는 우주에 갇혀 있었다는 말이다. 그때 문득 이 한귀절로 나는 나라는 닫힌 우주에서 나라는 열린 우주로 귀환했다. 귀환이라는 것은 본래 그랬다는 말이다. 불가에서는 이 본래의 모습을 깨닫는 것을 ‘견성’이라고 한다. 견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못생긴 얼굴이었다. 폭력 앞에서 비겁하며, 이익 앞에서 이기적이고, 공동의 선 앞에서 게을렀다. 이것이 나의 본래의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이후 내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단지 이 본래의, 못생긴 내 얼굴을 보고 난 후 나는 비로소 내 시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공자는 시경 삼백 수의 뜻을 한 마디로 말했다.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이 말을 나는 시는 솔직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이 부끄러움을 통하지 않고 시는 없다.    허만하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 정지용, 「백록담」에서   망설임 끝에 시인 정지용의 「백록담」의 이 구절과 「향수」의“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울음 우는 곳…” 중에서 「백록담」 쪽 구절을 고른다. 의예과 학생시절 다방에서 문리대 친구가 읽던 시집을 어깨 너머 훔쳐 읽었을 때 만난 추억의 구절이다. “꽃도/귀향 사는 곳”(「구성동九城洞」)도 좋지만, 이 구절은 「백록담」 구절에 비해서 색채감이 덜하고 앞연에 기대어 비로소 그 빛남이 더해지는 듯해서, 홀로서기로도 반짝반짝하는 인용문을 든다. 도체비꽃이 어떤 꽃인지 모르지만, 어릴 때 아버지의 고향 뒷산에서 처음 보았던 도라지꽃의 신선한 푸름보다도 더 새파란 꽃인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릴케가 그의 「두이노의 비가」에서 말한 용담꽃도 이렇게 새파랄 수 없는, 나에게는 환상의 꽃이다. 도체비꽃이란 말이 그 앞 구절 “귀신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롱이”와 내통하는 것도 얄밉다.  “아름다움이란 무서움의 시작이다.”    허   연 교실내에 쌓인 두터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 김종삼, 「시인학교」에서   한 손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통닭 10마리를, 다른 한 손에는 김종삼의 시집을 들고 터미널에 서 있었다. 살기 싫은 휴가병이었다, 나는. 첫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던 날 김종삼 시집 『북치는 소년』을 샀다. 덜컹대는 직행버스 안에서 시집을 읽었고, 다시 살고 싶었다. 그날 난 아주 나른한 계시를 받았다. 통닭 냄새를 맡으며 제외된 자들이 주는 눈부심을 알았다. 절창絶唱은 제외된 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시를 씀으로써 세상에서 제외되고 싶었다.    허영자 서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 서정주, 「추천사?韆詞」에서 열일곱 살 때 처음 읽은 미당의 이 시구는 지금 읽어도 나의 고개를 떨구게 만든다. 아니 절벽에서 툭 떨어지듯이 나의 고개를 절망적으로 꺾어지게 한다고 함이 더 옳을 것이다. 그만큼 이 구절은 비극적인 메시지를 나에게 전하는 시구이다. 인간의 한계― 유한한 목숨과 의욕에 못 따르는 능력의 한계, 찬란한 꿈에 비한 현실의 초라함 등을 이 한 구절은 절실히 감지케 하기 때문이다. 이 시구에서 역으로 읽어낼 수 있는 간절함 때문에 나는 수십 번, 수백 번 이 구절을 읊조려 왔으며, 아마 앞으로도 여러 번 같은 일을 되풀이하리라 생각한다.    허형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 한용운, 「알 수 없어요」에서   60년대 중반, 법대로 가기를 권하신 아버지의 명령을 배반(?)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국문과를 택하여 상경한 서울은 참으로 우울의 극치였다. 날마다 흑석동 연못시장 안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지지고 볶은 문학론만 해도 하룻밤이면 족히 서너 말은 될 성싶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정치사상사, 중소기업론, 동양철학 등 전공과 관련 없는 과목을 공부하면서도 청계천 헌책방을 뒤지며 시집은 닥치는 대로 사서 읽어 제쳤던 시절, 밤새 미당의 “꽃처럼 붉은 울음”을 울고 있던 어느 날 밤, 만해가 내게 와 나의 정수박이에 기름 한 바가지를 붓고 떠났다. 알 수 없는 시에 대한 희열을 맛본 순간이었다. 아마, 네루다의 시처럼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신념은 그 뒤의 일이지 싶다.    홍신선 귀신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 정지용, 「백록담」에서 막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였다. 그때까지도 문청 기분을 완전히 청산 못한 나는 천둥벌거숭이로 살았다. 대학 시절의 글 친구인 박제천이나 한국시 동인인 오규원 등등 숱한 사내들과 어울려 술과 시 이야기로 시간을 죽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절제한 술과 젊음, 그리고 독서로 지새운 시절이었다. 학생들에게 어쩌다 그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지금도 거침없이 ‘화류계 뜬 시절’이라고 말한다. 화류계라니?  말 그대로 술과 책에 빠져 살던 황음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절 한편으로는 청계천 8가를 곧잘 혼자 헤매었다. 끼니도 거른 채 고서점, 헌 책방이 늘비한 그곳을 헤매며 책 구경 내지 낡은 책들을 열심히 사 모았다. 그렇다. 헌책더미에서 마침 해방 직후 을유문화사에서 낸 『지용시선』를 찾았던 날의 그 득의양양함이라니. 지금도 그날의 째지던 기분은 마냥 생생할 밖에…… 집에 돌아와 풍문으로만 듣던 지용의 시를 나는 감격에 겨워 읽었다. 그때만 해도 정지용은 풍문 속의, 이름 석 자조차도 복자로 표기해야 했던 때가 아니던가. 작품 「백록담」을 읽어가다 4번에서 만난 이 한 구절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쓸쓸함’이, ‘홀로됨’이 말 그대로 ‘파랗게 질려야 하는’ 공포 자체라니. 그러나 정신의 도저한 경지는 이 공포를 극복한 자만의 것임을 나는 이즈음 체감으로 새삼 깨닫는다. 어즈버, 나도 이미 별수없이 늘그막에 들어선 것이다.    황병승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기형도,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 축축한 손길이 다가와 나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짓누르는 밤의 숲처럼. 처음 이 시를 읽어내려가던 스물일곱, 겨울, 나의 12월. 춥고 큰 방에서 혼자 울고 있는 서기와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내의 고통스러운 침묵이 나의 입을 틀어막았고, 그것은 등 뒤의 짐승처럼 나를 두렵게 했었다. 그리고 다시 펼쳐든 페이지, ‘거의 고통스러웠다’고 말하던 그때의 사내는 여전히 축축한 손을 내밀어 스물일곱, 겨울, 12월 쪽으로 나를 질 질 질 끌고 간다.    황인숙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죽어서도/영혼이/없으리    ―― 김종삼, 「라산스카」에서   그냥 하염없이 좋다. 김종삼 선생의 모든 시를 좋아하지만 내 머리와 혀에 그 맛이 가장 짙게 감도는 시는 이 「라산스카」다. 끝없이 울려 퍼지는 조종소리처럼 사무쳐서 온몸이 저리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얘기했는데, 「라산스카」는 아름답도록 슬픈 시다. ⓒ삶의 향기가 가득한 문화 [출처] 한국을 대표하는 109명의 현역 시인들이 뽑은 ‘최고의 시구’ |작성자 옥토끼    
7    명시인- 김소월 댓글:  조회:2417  추천:0  2015-02-03
  명의 시인, 평론가가 선정한 “10명의 시인”     1.김소월/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宁边에 약산药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별의 이유, 또는 또 하나의 반어 이 희 중 / 시인. 문학평론가. 전주대 교수   김소월의 시”진달래꽃’을 연시로 읽지 않을. 또는 연시 이상으로 읽을 도리는 없다. 그만큼 순정한 사랑 노래이다. 이 점이 연시이면서, 연시로 읽지 않을 수도 있고. 연시 이상으로 읽히는 한용운의 연시들과 선명히 구분되는 자리이다.   이 시의 주제는 ‘이별의 정한’도 ‘슬픈 헤어짐’도 아니다. 이 시의 내용은 가정된 상황에 기초한 미래의 각오이자 계획이다. ‘가실 때에는’ ‘가실 길에’에서 미래시상를 표시하는 “ㄹ”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또한 “보내드리우리다”, “뿌리우리다”, “흘리우리다”의 “-우리다”에서 “우”는 존대의 뜻을, “리”는 계획의 뜻을 표시한다. 셋째 연의, “가시는”과 “놓인”에 쓰인 현재시상은 가정된 미래 상황 위에 얹힌 제한적 현재로 보아야 한다. “가시옵소서”는 기원 또는 완곡한 명멸이므로 현재 실현되고 있는 행동과 상관 없다. 그러므로 이별은 목전의 일이 아니다.   시의 화자는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이별을 걱정하고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 때는 언제인가, 현재 진행되는 사랑이 불행한 결말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여길 때이다. 물론 이 판단은 주관적일 수 있다. 객관적 상황이 그럴 수도 있으나, 주체의 심리적 성향 때문에 과장 또는 왜곡된 것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ㅅㅏ람들의 대화에서 ‘내/네가 떠난다면’같은 유의 가정은 사랑의 현재를 환신하게 하고 이 확신을 공고히 하는 데에 자주 소용된다.   시의 문면에서 화자가 미래의 이벌을 걱정할 객관적 증거는 없다. 걱정하는 화자만 있다. 이별은 현재 징후로만 존재할 수도 있고 아무 징후도 없을 수 있다.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최악의 상황은 현재의 사랑이 소중하기 때문에 소심한 연인의 내면에서 반추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 시의 내용은 ‘이별을 당면한 연인의 각오’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사람의 행복한 투정’이 될지도 모른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떠나는 연인의 발 아래 눈물 없이 꽃을 뿌리겠다는 화자의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놀라움은 ‘어쩌면 그렇게 거룩할 수 있는가’ 또는 ‘어쩌면 그렇게 독할 수 있는가’등의 질문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역설 또는 반어로 이 각별한 놀라움의 원인을 해명하려 애써 왔다. 좀더 풍요롭게 읽기 위해서 “나 보기가 역겨워”라는 구절을 더 살필 필요가 있다. 이 구절이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이별과 관련하여 화자가 문제삼는 유일한 이유로 보이기 때문읻. 헤어짐의 이유는 다양하다. 둘 사이의 감정 변화일 수 있고, 외부 조건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화자가 특히 걱정하는 이유는 바로 “나 보기가 역겨워”이다. 이는 사랑의 근원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상대가 보기 싫어지면 사랑은 없다. 사랑이 개재되지 않은 연인은 의미론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랑이 소며로딘 자리이므로 그렇게 거룩할 수 있고, 그렇게 독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상대 앞에서 주체는 부끄러워지고 초라해진다. 자신이 그에게 얼마나 부족한 상대인지에 집착하며 괴로워한다. 사랑 덕택에 밝아진 자의식의 거울이 그를 허무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상대가 바로 그 이유, 즉 자신의 부족을 탓한다면 울지 않고 꽃까지 뿌리면서 고이 보내드리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욕망의 자아를 내면화한 윤리적 자아의 대표 발언으로서, 원망을 내면화한 축복의 몸짓으로 완성된다. 여기서 화자가 집요하게 추궁한 하나의 이유, “나 보기가 역겨워”는 그밖의 다른 모든 이유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또 다른 반어 또는 역설이 된다.  
6    지하철에서의 시 댓글:  조회:2207  추천:0  2015-02-02
                      ge/185A17444F1772EB18F4F5" width=1024 actualwidth="1024">                              
5    李箱시인은 以上 그 이상이ㅠ. 댓글:  조회:2456  추천:0  2015-01-31
      오감도(시 제1-15호 전편) - 이상     오감도 시제1호 | 조선중앙일보 1934.7.24 이상 13人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길이적당適當하오.) 제第1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2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3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4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5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6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7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8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9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10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11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12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13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兒孩는무서운아해兒孩와무서워하는아해兒孩와 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中에1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운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2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운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2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워하는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1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워하는아해兒孩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適當하오.) 13人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오감도 시제2호 | 조선중앙일보 1934.7.25 이상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 아버지가되느냐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오감도 시제3호 | 조선중앙일보 1934.7.25 이상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던아니하던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오감도 시제4호 | 조선중앙일보 1934.7.28 이상   환자患者의용태容態에관關한문제問題 진단謬斷 0:1 26.10.1931 이상以上 책임의사責任醫師 이 상李 箱           오감도 시제5호 | 조선중앙일보 1934.7.28 이상   전후좌우前後左右를재除하는유일唯一의흔적痕跡에있어서 익은불서翼殷不逝 목불대도目不大覩 반왜소형矮小形의신神의안전眼前에아전낙상我前落傷한고사故事를유有함.   장부臟腑라는것은침수浸水된축사畜舍와구별區別될수있을는가.           오감도 시제6호 | 조선중앙일보 1934.7.31 이상   앵무鸚鵡 ※ 2필                 2필                 ※ 앵무는 포유류에 속하느니라. 내가2필을아아는것은내가2필을아알지못하는것이니라. 물론나는희망할것이니라. 앵무          2필 "이소저小姐는시사이상李箱의부인이냐""그렇다" 나는거기서앵무가노한것을보았느니라. 나는부끄러워서얼굴이붉어졌었겠느니라. 앵무          2필                 2필 물론나는추방당하였느니라. 추방당할것까지도없이자퇴하였느니라. 나의체구는중축中軸를상실하고또상당히창량하여그랬든지나는미미하게체읍涕泣하였느니라. "저기가저기지""나""나의-아-너와나" "나" SCANDAL이라는것은무엇이냐."너""너구나" "너지""너다""아니다너로구나" 나는함뿍젖어서그래서수류獸類처럼도망하였느니라. 물론그것을아아는사람혹은보는사람은없었지만그러나과연그럴는지그것조차그럴는지.         오감도 시제7호 | 조선중앙일보 1934.8.1 이상 구원적거久遠謫居의지地의일지一枝·일지一枝에피는현화顯花·특이特異한사월四月의화초花草·삼십륜三十輪·삼십륜三十輪에전후前後되는양측兩側의명경明鏡·맹아萌芽와같이희희戱戱하는지평地平을향向하여금시금시낙백落魄하는만월滿月·청간淸澗의기氣가운데만신창이滿身瘡痍의만월滿月이의형당刑當하여혼륜渾淪하는·적거謫居의지地를관류貫流하는일봉가신一封家信·나는근근僅僅히차대遮戴하였더라·몽몽 한월아月芽·정밀靜謐을개엄蓋掩하는대기권大氣圈의요원遙遠·거대巨大한곤비困憊가운데의일년사월一年四月의공동空洞·반산전도槃散顚倒하는성좌星座와성좌星座의천열千裂된사호동死胡洞을포도逋逃하는거대巨大한풍설風雪·강매·혈홍血紅으로염색染色된암염岩鹽의분쇄粉碎나의뇌腦를피뢰침避雷針삼아침하반과沈下搬過되는광채光彩임리한망해亡骸·나는탑배塔配하는독사毒蛇와같이지평地平에식수植樹되어다시는기동起動할수없었더라·천량天亮이올때까지           오감도 시제8호 해부解剖 | 조선중앙일보 1934.8.2 이상 제일부시험第一部試驗 수술대手術臺                       일一                              수은도말평면경水銀塗抹平面鏡 일一                              기압氣壓         이배二倍의평균기압                              온도溫度         개무皆無   위선마취爲先痲醉된정면正面으로부터입체立體와입체立體를위爲한입체立體가구비具備된전부全部를평면경平面鏡에영상映像시킴. 평면경平面鏡에수은水銀을현재現在와반대측면反對側面에도말이전塗沫移轉함. (광선침입방지光線侵入防止에주의注意하여)서서徐徐히마취痲醉를해독解毒함. 일축철필一軸鐵筆과 일장백지一張白紙를지급支給함.(시험담임인試驗擔任人은피시험인被試驗人과포옹抱擁함을절대기피絶對忌避할것)순차수술실順次手術室로부터피시험인被試驗人을해방解放함.익일翌日.평면경平面鏡의종축縱軸을통과通過하여평면경平面鏡을이편二片에절단切斷함. 수은도말이회水銀塗抹二回.   ETC 아직그만족滿足한결과結果를수득收得치못하였음. 제이부시험第二部試驗 직립直立한평면경平面鏡 일一                              조수助手 수명數名   야외野外의진공眞空을선택選擇함. 위선마취爲先痲醉된상지上肢의첨단尖端을경면鏡面에부착附着시킴. 평면경平面鏡의수은水銀을박락剝落함. 평면경平面鏡을후퇴後退시킴.(이때영상映像된상지上肢는반드시초자硝子를무사통과無事通過하겠다는것으로가설假說함)상지上肢의종단終端까지. 다음수은도말水銀塗抹.(재래면在來面에)이순간공전瞬間公轉과자전自轉으로부터그진공眞空을강차降車시킴. 완전히이개二個의상지上肢를접수接受하기까지.익일翌日.초자硝字를전진前進시킴.연連하여수은주水銀柱를재래면在來面에도말塗抹함.(상지上肢의처분處分)[혹은멸형滅形]기타其他.수은도말면水銀塗抹面의변경變更과전진후퇴前進後退의중복重複등等.   ETC 이하以下미상未詳           오감도 시제9호 총구銃口 | 조선중앙일보 1934.8.3 이상 매일每日같이열풍烈風이불더니드디어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닿는다.황홀恍惚한지문指紋골짜기로내땀내가스며드자마자쏘아라.쏘으리로다.나는내소화기관消化器管에묵직한총신銃身을느끼고내다물은입에매끈매끈한총구銃口를느낀다. 그리더니나는총銃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총탄銃彈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배앝었더냐.           오감도 시제10호 나비 | 조선중앙일보 1934.8.3 이상 찢어진벽지壁紙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그것은유계幽界에낙역絡繹되는비밀秘密한통화구通話口다.어느날거울가운데의수염鬚髥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통화구通話口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일어서드키나비도날아가리라.이런말이결決코밖으로새어나가지는않게한다.         오감도 시제11호 | 조선중앙일보 1934.8.4 이상 그사기컵은내骸骨과흡사하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엿슬때 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接木처럼도치더니그팔에달린손은 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여부딧는다. 내팔은그사기컵을死守하고잇스니散散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骸骨이다. 가지낫든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前에내팔이或움즉엿든들洪水를막은白紙는찌저젓으리라. 그러나내팔은如前히그사기컵을死守한다.           오감도 시제12호 | 조선중앙일보 1934.8.4 이상 때묻은빨래조각이한뭉텅이공중空中으로날라떨어진다.그것은흰비둘기의떼다.이손바닥만한한조각하늘저편에전쟁戰爭이끝나고평화平和가왔다는선전宣傳이다.한무더기비둘기의떼가깃에묻은때를씻는다.이손바닥만한하늘이편에방망이로흰비둘기의떼를때려죽이는불결不潔한전쟁戰爭이시작始作된다.공기空氣에숯검정이가지저분하게묻으면흰비둘기의떼는또한번이손바닥만한하늘저편으로날아간다.           오감도 시제13호 | 조선중앙일보 1934.8.7 이상 내팔이면도칼을든채로끊어져떨어졌다.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위협威脅당하는것처럼새파랗다.이렇게하여잃어버린내두개팔을나는촉대燭臺세움으로내방안에장식裝飾하여놓았다.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겁怯을내이는것만같다.나는니러한얇다란예의禮儀를화초분花草盆보다도사랑스레여긴다.           오감도 시제14호 | 조선중앙일보 1934.8.7 이상 고성앞에풀밭이있고풀밭위에나는모자를벗어놓았다.성위에서나는내기억에꽤무거운돌을매어달아서는내힘과거리껏팔매질쳤다.포물선을역행하는역사의슬픈울음소리.문득성밑내모자곁에한사람의걸인이장승과같니서있는것을내려다보았다.걸인은성밑에서오히려내위에있다.혹은종합된역사의망령인가.공중을향하여놓안모자의깊이는절박한하늘을부른다.별안간걸인은율률한풍채를허리굽혀한개의돌을내모자속에치뜨려넣는다.나는벌써기절하였다.심장이두개골속으로옮겨가는지도가보인다.싸늘한손이내이마에닿는다.내이마에는싸늘한손자국이낙인되어언제까지지어지지않았다.           오감도 시제15호 | 조선중앙일보 1934.8.8 이상 1 나는거울없는실내室內에있다.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外出 中이다.나는지금至今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덜고있다.거 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陰謨를하는중中 일까. 2 죄罪를품고식은침상寢床에서잤다.확실確實한내꿈에나는결 석缺席하였고의족義足을담은군용장화軍用長靴가내꿈의백 지白紙를더럽혀놓았다. 3 나는거울속에있는실내室內로몰래들어간다.나를거울에서해 방解放하려고.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沈鬱한얼굴로동 시同時에꼭들어온다.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未安한뜻을전傳한 다.내가그때문에영어囹圄되어있드키그도나때문에영어囹圄 되어떨고있다. 4 내가결석缺席한나의꿈.내위조僞造가등장登場하지않는내거 울.무능無能이라도좋은나의고독孤獨의갈망자渴望者다.나 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自殺을권유勸誘하기로결심決 心하였다.나는그에게시야視野도없는들창窓을가리키었다. 그들창窓은자살自殺만을위爲한들창窓이다.그러나내가자살 自殺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自殺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 다.거울속의나는불사조不死鳥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心臟의위치位置를방탄금속防彈金屬으로엄 폐掩蔽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券銃을발 사發射하였다.탄환彈丸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貫通하였으나 그의심장心臟은바른편에있다. 6 모형심장模型心臟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내가지각遲刻 한내꿈에서나는극형極形을받았다. 내꿈을지배支配하는자者는내가아니다.악수握手할수조차없 는두사람을봉쇄封鎖한거대巨大한죄罪가있다.         + 이상 (李箱, 1910~1937) 본명 김해경, 본관은 강릉 요절한 천재-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되던 오감도로 한국 난해시의 새역사를 쓰기 시작한 인물. 당시 "하융(河戎)"이란 가명으로 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당시의 신문이미지에는 하융이라는 가명을 썼던 이상의 삽화와 오감도 제 7호가 함께 나와있다.       지난 2006년 10월..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열렸던 작고문인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이상의 친필문고 그의 문고는 원고지에 쓰여진 것이 없다고 한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갱지나 노트에 한글과 일어를 섞어 쓴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4    한국 유명한 시모음 댓글:  조회:3157  추천:0  2015-01-31
유명한 시인의 시모음           강우식  어머니의 물감상자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고  은  눈길  머슴 대길이  문의 마을에 가서  자작나무숲으로 가서  화살   곽재구  계단  사평역에서  새벽 편지   기형도  가을무덤  엄마걱정  안개  식목제   김광규  상행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균  노신  설야  시인  와사등  추일서정   김광섭  변두리  성북동 비둘기  저녁에  해바라기   김기림  바다와 나비  연륜   김남조  생명  설일  정념의 기   김남주  시인은 모름지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동환  국경의 밤  산넘어 남촌에는  북청 물장수   김명수  하급반교과서 김명인  겨울의 빛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수영  눈  사령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  폭포  풀   김억     봄은 간다   김영태  멀리 있는 무덤   김종길  성탄제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민간인   김준태  참깨를 털며   김지하  둥굴기 때문에  무화과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초파일 밤  타는 목마름으로  푸른 옷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분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현승  가을의 기도  눈물  아버지의 마음  흙 한 줌 이슬 한 방울   김혜순  납작납작 - 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노천명  자화상  사슴   도종환  가을비  담쟁이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접시꽃 당신  흔들리면서 피는 꽃   문병란  직녀에게   박남수  아침 이미지   박두진  도봉  묘지송  어서 너는 오너라   박목월  나그네  나무  난   박봉우  휴전선  나비와 철조망   박양균  꽃   박용철  떠나가는 배   박재삼  수정가  울음이 타는 가을강  추억에서  흥부 부부상   박형준  장롱 이야기   백  석   고향  나와 나타샤화 흰 당나귀  수라  여승  팔원  흰 바람 벽이 있어             백석의 시어사전   복효근  춘향의 노래   서정주  견우의 노래  무등을 보며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추천사  춘향 유문   송수권  산문에 기대어   송찬호  구두   신경림  가난한 사랑의 노래  갈대  나목  나의 신발이  농무  목계 장터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너에게  봄은  산에 언덕에   신동집  오렌지   신석정  꽃덤불  슬픈 구도  어느 지류에 서서  임께서 부르시면   심훈     그 날이 오면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고추밭  너에게 묻는다  모닥불  연탄 한 장  우리가 눈발이라면   양성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오규원  개봉동과 장미  프란츠 카프카   오세영  그릇1   오장환  고향 앞에서  여수   유치환  깃발   바위  일월   유하     생(生)   윤동주  간  길  또 다른 고향  서시  쉽게 씌어진 시  십자가  아우의 인상화  참회록   이병기  매화2   박연 폭포   이상     거울  운동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성부  벼   이승하  이 사진 앞에서   이시영  마음의 고향6 - 초설 -   이용악  그리움   낡은 집  다리 위에서  오랑캐꽃  전라도 가시내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육사  교목   꽃  노정기  절정  청포도   이한직  낙타   이해인  살아 있는 날은   이형기  낙화  폭포   이호우  개화   임  화  우리 오빠와 화로  자고 새면   전봉건  피아노   정  양  참숯   정지용  삽사리  인동차  장수산1  향수   정한모  가을에  몰입   정호승  겨울 강에서  또 기다리는 편지  수선화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폭풍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조지훈  마음의 태양  병에게  봉황수  승무   조태일  가거도   주요한  불놀이   천상병  귀천  나의 가난은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최두석  노래와 이야기  성에꽃   최승호  북어   한용운  나의 노래  님의 침묵  당신을 보았습니다  찬송  타고르의 시'Gardenisto'를 읽고   한하운  자화상  전라도 길  파랑새   함민복  긍정적인 밥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   황동규  
3    명시인- 윤동주 댓글:  조회:2910  추천:0  2015-01-31
  윤동주 시 모음  추천 0    스크랩  0        윤동주 시 모음 / 빈하늘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워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순이의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트르게네프의 언덕     윤동주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그때에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 나 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 다 병, 간스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세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 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찣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의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있 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 작 만자작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너와는 상관 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곤소곤 이 야기 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어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2    만해 한용운 대표작시 댓글:  조회:2545  추천:0  2015-01-31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 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 (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 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 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 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잎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 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 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주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나의 꿈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뚤귀뚤」 울겠습니다       복 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 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행 복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합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발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고통도 나에게는 행복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일생에 견딜 수 없는 불행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자 하여 나를 미워한다면, 나의 행복은 더 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원한의 두만강이 깊을수록 나의 당신을 사랑하는 행복의 백두산이 높아지는 까닭입니다.       사랑의 존재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이름지을 만한 말이나 글이 어디있습니까. 미소에 눌려서 괴로운 듯한 장미빛 입술인들 그것을 스칠 수가 있습니까. 눈물의 뒤에 숨어서 슬픔의 흑암면(黑闇面)을 반사하는 가을 물결의 눈인들 그것을 비칠 수가 있습니까. 그림자 없는 구름을 거쳐서, 메아리 없는 절벽을 거쳐서, 마음이 갈 수 없는 바다를 거쳐서 존재? 존재입니다. 그 나라는 국경이 없습니다. 수명은 시간이 아닙니다. 사랑의 존재는 님의 눈과 님의 마음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의 비밀은 다만 님의 수건에 수놓는 바늘과, 님의 심으신 꽃나무와, 님의 잠과 시인의 상상과 그들만이 압니다.       고적한 밤    하늘에는 달이 없고 땅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소리가 없고 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주는 주검인가요. 인생은 참인가요. 한 가닥은 눈썹에 걸치고, 한 가닥은 작은 별에 걸쳤던 님 생각의 금실은 살살살 걷힙니다. 한 손에는 황금의 칼은 들고 한 손으로 천국의 꽃을 꺽던 환상의 여왕도 그림자를 감추었습니다. 아아, 님 생각의 금실과 환상의 여왕이 두손을 마주잡고, 눈물 속에서 정사(情死)한 줄이야 누가 알아요. 우주는 주검인가요. 인생은 눈물인가요. 인생이 눈물이라면 죽음은 사랑인가요.       해당화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 려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1879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부 韓應俊의 차남으로 출생, 속명은 貞玉,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   1884 ~1897 향리에서 한학 수학   1892 천안 전씨와 결혼   1899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 등지를 전전   1904 귀향하여 향리에서 수개월간 머물다   1905 백담사 김연곡 스님에게서 득도. 김영제 스님에 의하여 수계. 이후 이학암 스님으로부터 , , 등을 사사받음   1908 4월경 일본으로 건너가 下關 등지를 순유하고 동경의 曹洞宗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철학을 청강함. 10월경 귀국   1910 탈고 (1913년 불교서관에서 간행)   1912 불교경전 대중화의 일환으로 을 편찬하기 위해 양산 통도사의 고려 대장경을 열람함   1913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 박한영 등과 함께 불교 종무원을 창설. 통도사 불교강사에 취임. 을 국한문으로 편찬(1914, 홍법원)   1918 월간 교양지 을 발간하여 편집인 겸 발행인이 됨   1919 1월경 최린, 현상윤 등과 조선독립에 대해 의논함. 최남선이 작성한 의 자구 수정을 하였으며 을 추가함. 3월 1일 명월관 지점에서 33인을 대표하여 독립선언 연설을 하고 투옥됨. 7월 10일 제출   1926 시집 을 회동서관에서 발행하다   1927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서울지부장에 피선됨   1931 김법린, 최범술 등이 조직한 승려비밀결사인 卍黨의 영수로 추대됨   1933 유숙원과 재혼. 벽산 스님, 방응모, 박광 등의 도움으로 성북동에 尋牛莊을 짓다. 여기에서 소설 , 등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1944 6월 29일 심우장에서 이적. 미아리에서 화장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다   1962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重章이 수여되다   1967 가 파고다 공원에 건립됨   1973 (전 6권)이 신구문화사에서 간행됨    
1    한국 대표시 모음(ㄱ) 댓글:  조회:3136  추천:0  2015-01-31
한국 유명 시인의 대표시 모음 (222인) (보고픈 제목 클릭)   - 가-     산에 언덕에(신동엽) 가는길(김소월)   산유화(김소월) 가을에(정한모)   살구꽃 핀 마을(이호우) 가을의 기도(김현승)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박인환) 가정(박목월)   상리과원(서정주) 가정(이상)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김춘수) 간(윤동주)   새(박남수) 갈대(신경림)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강강술래(이동주)   샘물이 혼자서(주요한) 개화(이호우)   생명의 서(유치환) 거울(이상)   생의 감각(김광섭) 검은 강(박인환)   서시(윤동주) 겨울바다(김남조)   석문(조지훈) 견우의 노래(서정주)   설날 아침에(김종길) 고풍의상(조지훈)   설야(김광균) 고향(백 석)   설일(김남조) 고향(정지용)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고향 앞에서(오장환)       광야(이육사)   성탄제(김종길) 교목(이육사)   성호부근(김광균) 국토서시(조태일)   손무덤(박노해) 국화 옆에서(서정주)   쉽게 쓰여진 시(윤동주) 국경의 밤(김동환)   슬픈 구도(신석정) 귀천(천상병)   승무(조지훈) 귀촉도(서정주)   시1(김춘수) 그 날이 오면(심훈)   신록(이영도)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신석정)   신부(서정주) 기항지 1(황동규)   십자가(윤동주) 길(김소월)       깃발(유치환)   - 아 -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아버지의 마음(김현승) 꽃(김춘수)   아우의 인상화(윤동주) 꽃(박두진)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신석정) 꽃(이육사)   아침 이미지(박남수) 꽃덤불(신석정)   알 수 없어요(한용운) 꽃을 위한 서시(김춘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김영랑)   어머니(정한모) - 나 -   어서 너는 오너라(박두진) 나그네(박목월)   엄마 걱정(기형도) 나는 별아저씨(정현종)   여승 나는 왕이로소이다(홍사용)   여우난 곬족(백석) 나룻배와 행인(한용운)   연시(박용래) 나비와 광장(김규동)   오감도-제1호(이상) 나비의 여행(정한모)   오랑캐꽃(이용악) 나의 침실로(이상화)   오렌지(신동집) 낙화(조지훈)   오월(김영랑) 낙화(이형기)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도종환)       와사등(김광균) 난초(이병기)   외인촌(김광균)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이용악)       우리가 눈발이라면(안도현) 낡은 집(이용악)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남사당(노천명)   울릉도(유치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백석)   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재삼)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상용)   위독(이승훈) 내 마음을 아실 이(김영랑)   유리창(정지용) 논개(변영로)   윤사월(박목월) 농무(신경림)   은수저(김광균)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신동엽)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김영랑)   이별가(박목월) 눈(김수영)   일월(유치환) 눈길(고은)   임께서 부르시면(신석정) 눈물(김현승)   입추(김현구) 눈이 내리느니(김동환)   - 자 - 능금(김춘수)   자모사(정인보) 님의 침묵(한용운)   자야곡(이육사) - 다 -   자연(박재삼) 달밤(이호우)   자화상(서정주) 달.포도.잎사귀(장만영)   자화상(윤동주) 당신을 보았습니다(한용운)   작은 짐승(신석정)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뎃생(김광균)   적군의 묘지 앞에서(구상) 도봉(박두진)   절정(이육사) 독을 차고(김영랑)   접동새(김소월) 동천(서정주)   정념의 기(김남조) 들길에 서서(신석정)   정천한해(한용운) 떠나가는 배(박용철)   조국(정완영) 또 다른 고향(윤동주)   조그만 사랑 노래(황동규)     종(설정식) - 마 -   종소리(박남수) 마음(김광섭)   주막에서(김용호) 말(정지용)   진달래꽃(김소월) 머슴 대길이(고은)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 차 - 목계장터(신경림)   참회록(윤동주) 목마와 숙녀(박인환)   청노루(박목월) 목숨(김남조)   청산도(박두진) 목숨(신동집)   청포도(이육사) 묘지송(박두진)   초혼(김소월) 무등을 보며(서정주)   추억에서(박재삼) 문의 마을에 가서(고은)   추일서정(김광균) 민간인(김종삼)   추천사(서정주) 민들레꽃(조지훈)   춘향유문(서정주) - 바 -   - 타 - 바다와 나비(김기림)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보습...(김소월)   - 파 - 바라춤(신석초)   파도(김현승) 바위(유치환)   파도타기(정호승) 밤바다에서(박재삼)   파랑새(한하운) 방랑의 마음(오상순)   파장(신경림) 백자부(김상옥)   파초(김동명) 벼(이성부)   폭포(김수영) 별 헤는 밤(윤동주)   폭포(이형기) 병원(윤동주)   푸른 하늘을(김수영) 보리피리(한하운)   풀(김수영) 봄비(이수복)   풍장1(황동규) 봄비(변영로)   플라타나스(김현승) 봄은(신동엽)   피아노(전봉건) 봄은 간다(김억)   - 하 - 봄은 고양이로다(이장희)   하관(박목월) 봉황수(조지훈)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김남주) 북(김영랑)   향수(정지용) 불놀이(주요한)   향현(박두진) 비(정지용)   해(박두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해마다 봄이 되면(조병화) - 사 -   해바라기의 비명(함형수) 사령(김수영)   화사(서정주) 사슴(노천명)   휴전선(박봉우) 사평역에서(곽재구)       사향(김상옥)   흥부 부부상(박재삼) 산(김광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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