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 道德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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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책. 무위자연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나라와 관련해서는 '삼국사기'에 처음 관련 기록이 보인다. 규장각도서.
유형
문헌
시대
고려
성격
도가서
편저자
노자
제작시기
기원전 4세기경
목차
정의
서지적 사항
개설
정의
중국 도가철학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책.
서지적 사항
『노자』 또는 『노자도덕경』이라고도 한다. 약 5,000자, 81장으로 되어 있으며, 상편 37장의 내용을 「도경(道經)」, 하편 44장의 내용을 「덕경(德經)」이라고 한다. 노자가 지었다고 하나 한 사람이 쓴 것이라고는 볼 수 없고, 여러 차례에 걸쳐 편집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변형 과정을 거쳐 기원전 4세기경 지금과 같은 형태로 고정되었다고 여겨진다.
여러 가지 판본이 전해 오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 하상공(河上公)이 주석한 것으로 알려진 하상공본과, 위(魏)나라 왕필(王弼)이 주석하였다는 왕필본의 두 가지가 있다.
그리고 전문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둔황(敦煌)에서 발견된 당사본(唐寫本)과 육조인사본(六朝人寫本)이 있고, 여러 곳에 도덕경비(道德經碑)가 아직도 흩어져 있어 노자의 경문을 살펴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근년에 후난성(湖南省)창사(長沙)의 한묘(漢墓)에서 출토된 백서노자(帛書老子)와 색담사본도덕경(索紞寫本道德經)은 『도덕경』의 옛 형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원래 『도덕경』은 상·하로만 나누어졌을 뿐이지만, 장구지학(章句之學)이 성행한 한대(漢代)에 들어와서 장·절로 나누어졌다고 보인다.
개설
『도덕경』의 구성 체재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였고, 성립 연대 및 실질 저자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는데, 한 사람이 한꺼번에 저술하였다는 관점과 도가학파의 손에 의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당시의 여러 사상을 융합시켜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한 사람의 전작물임을 주장하는 관점은 노자를 공자(孔子)와 같은 시대의 실존인물로 보아 『도덕경』을 그의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부정하는 관점은 노자가 가공인물이라는 점과, 또한 비록 실존인물이라 하여도 『도덕경』과는 상관이 없다는 관점에서 현존하는 『도덕경』은 여러 사람에 의하여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경』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많은 문제점과 상반된 처지에도 불구하고, 『도덕경』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기본 사상이 변함없이 계속해서 일관성을 유지해 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도덕경』의 사상은 한마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위는 ‘도는 언제나 무위이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道常無爲而無不爲).’의 무위이고, 자연은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天法道道法自然).’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도덕경』의 사상은 모든 거짓됨과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는 사상이다.
좋다·나쁘다, 크다·작다, 높다·낮다 등의 판단들은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비교하여 만들어낸 상대적 개념이며, 이런 개념들로는 도(道)를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언어라는 것은 상대적 개념들의 집합체이므로 『도덕경』에서는 언어에 대한 부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 점에서 유가사상과 현격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유가사상에서는 인위적 설정이 강조되는 예학(禮學)이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언어에 의한 규정이 강력하게 요청되기 때문이다.
반면, 『도덕경』에서는 규정성의 파기와 언어에 대한 부정을 강조하는데, 유가사상이 중국 북방의 황하유역에서 형성된 것인 반면, 이런 무위자연의 사상은 중국 남방의 양쯔강유역에서 형성되었다는 기질적인 차이로 설명되기도 한다.
즉, 북방은 생존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투쟁적이어야 하지만, 남방은 날씨가 온화하고 자연 조건이 순조로워 평화적이고 낭만적이었는데, 이런 분위기의 차이가 사상 형성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유가사상이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덕목을 설정하여 예교(禮敎)를 강조하면서 현실적인 상쟁대립이 전제된 반면, 『도덕경』의 사상은 상쟁의 대립이 인위적인 것으로 말미암아 생긴다고 보고, 무(無)와 자연의 불상쟁(不相爭) 논리를 펴나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도덕경』의 사상은 학문적인 진리 탐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위·진, 남북조시대처럼 사회가 혼란과 역경에 빠져 있을 때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혜를 밝혀 주는 수양서로서도 받아 들여졌으며, 민간신앙과 융합되면서 피지배계급에게 호소력을 지닌 사상 및 세계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우리 나라 자료에는 『삼국사기』 권24 백제본기 2 근구수왕 즉위년조에 근구수왕이 태자로 있을 때 침입해 온 고구려군을 패퇴시키고 계속 추격하려 하는 순간, 휘하의 장수 막고해(莫古解)가 다음과 같이 간언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듣기로는 도가의 말에, 족함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얻은 것이 많은데 더 욕심을 내어서 무엇합니까?” 이 말을 듣고 추격이 중지되었다고 하는데, 이 구절은 『도덕경』 제44장에 나오는 말이다.
『도덕경』의 구절이 장수의 입에까지 오를 정도였다면 당시 사회에서는 상당히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임에 틀림이 없고, 나중의 일이지만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도 비슷한 내용의 시를 수나라 장수에게 보낸 것이 『삼국사기』에 나타나 있다.
『삼국유사』 보장봉로조(寶藏奉老條)에는 당나라 고조(高祖)가 고구려인의 오두미교 신봉 이야기를 듣고 624년 천존상과 함께 도사를 보내어 『도덕경』을 강론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듬해 영류왕은 당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불(佛)·노(老)를 배우고자 하였고, 고조는 이를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보장왕이 연개소문(淵蓋蘇文)의 건의에 따라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도교를 배우도록 하였는데, 당나라 태종(太宗)이 도사 8명과 『도덕경』을 보내 주자 왕은 기뻐하며 승사(僧寺)를 지어 도사를 거처하도록 하였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신라에서는 575년 화랑도를 만들고 그 정신을 현묘지도(玄妙之道)라 칭하였는데, ‘현묘’라는 말은 『도덕경』 제1장에 나오는 ‘현지우현 중묘지문(玄之又玄衆妙之門)’을 연상시키는 용어로 도가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한 상황에서 도술연구에 골몰하였던 김가기(金可紀)에 대해서는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海東異蹟)』에 나타나 있는데, 그는 『도덕경』을 비롯하여 여러 선경(仙經)을 계속해서 낭송하고 수련을 계속한 끝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고려 때는 왕 중에서도 도교신앙이 제일 돈독하고 재위 당시 도교가 융성하였던 예종이 청연각(淸燕閣)에서 한안인(韓安仁)에게 명하여 『도덕경』을 강론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유교경전과 대등하게 다루어서 강론시켰을 정도이므로, 당시 『도덕경』을 연구하던 사람의 숫자도 많았고 수준도 높았으리라 짐작된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엄격한 주자학적 사상(朱子學的思想)과 그 배타적 성격 때문에 『도덕경』에 대한 연구가 위축되었지만, 유학자들 가운데서 주석서를 펴내어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박세당(朴世堂)은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을 저술하였고, 이이(李珥)는 『도덕경』 81장을 40여 장으로 줄여 『순언(醇言)』이라는 주석서를 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도덕경』에 관한 관심은 희박하였는데, 그 이유는 자신 이외는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보는 성리학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덕경』의 기본 흐름은 일찍부터 도교신앙과 접합되어 오면서 민중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기층의 민간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덕경 [道德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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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 道德經 ]
《도덕진경(道德眞經)》의 약칭으로 노자(老子)가 지은 《노자(老子)》를 가리키는 말. 숭도(崇道) 천자인 당나라 현종이 741년(개원29) 장안ㆍ낙양 등에 도교사원 현원황제묘(玄元皇帝廟)를 세워 숭현학(崇玄學)을 두고, 《노자》ㆍ《장자(莊子)》ㆍ《열자(列子)》ㆍ《문자(文子)》의 도교 4서를 가르쳤는데, 이듬해인 742년(천보원년) 이들과 《부상자(庚桑子)》의 저자에게 각각 도덕진인(道德眞人)ㆍ남화진인(南華眞人)ㆍ통현진인(通玄眞人)ㆍ충허진인(沖虛眞人)ㆍ동령진인(洞靈眞人)의 호를 추증하고, 각각의 서적이름을 《도덕진경》ㆍ《남화진경》ㆍ《통현진경》ㆍ《충허진경》ㆍ《동령진경》이라 명명했다.
상ㆍ하 2권으로 《장자》와 함께 도가사상의 중핵을 이루며, 도교의 근본경전으로 존숭된다. 공자(孔子)가 예를 물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사기(史記)》의 노자백이열전(老子伯夷列傳)에 의하면, 노자는 주나라 수장실(守藏室)의 사관(史官)으로 일했는데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은퇴하여 서쪽으로 가다가,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러 관령(關令) 윤희(尹喜)의 청에 따라 5천자의 글을 남겨서 이를 《오천언(五千言)》이라고도 부른다. 《도덕경》은 상ㆍ하 2권, 81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전반 37장의 상권을 《도경》, 후반 44장의 하권을 《덕경》으로 이름한다.
1973년 장사의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견된 고조대 필사본 백서(帛書) 《도덕경》은 현재 장으로 나눈 부분에 방점을 찍고 《덕경》을 앞에, 《도경》을 뒤에 두었는데, 《하상공주도덕경(河上公注道德經)》에 이르러 장으로 나뉘었고, 이후 《도경》과 《덕경》 순으로 바뀌었다. 《도덕경》은 우주의 궁극적 실체를 도(道)로써 파악하고, 무위(無爲)를 정치처세술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는 “도의 본체는 공허하나 그 작용은 무궁무진하다. 도는 심오하여 잘 알 수 없으나 마치 만물의 종주같다”(제4장)하고, “상덕(上德)은 스스로 덕을 의식하지 않으므로 덕이 있을 수 있다. 하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므로 덕이 없게 된다”(38장)고 했다.
《도덕경》은 우리나라에 삼국시대부터 유행했다. 유ㆍ불ㆍ도 삼교가 정족(鼎足)의 치세관(治世觀)을 이룬 가운데,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설이 베풀어졌다. 소태산대종사도 교리형성에 있어서 이러한 흐름을 수용하여 “노자께서는 ‘상덕(上德)은 덕이라는 상이 없다’ 하셨으니, 공부하는 사람이 이 도리를 알고 이 마음을 응용하여야 은혜가 영원한 은혜가 되고 복이 영원한 복이 되어 천지로 더불어 그 덕을 합하게 될 것이니, 그대는 그 상 없는 덕과 변함없는 복을 짓기에 더욱 꾸준히 힘쓸지어다”(《대종경》 인도품17)라고 부촉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덕경 [道德經] (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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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 道德經 ]
요약 중국의 사상가 노자(老子)가 지은 것으로 전하는 저서명.
저자
노자(老子)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인 노자(老子)가 지은 책이며 약 5,000자, 상하 2편으로 되어 있다. 도덕경이 쓰여진 연대에 관해서는 이설(異說)이 분분하며, 그 사상 ·문체 ·용어의 불통일로 미루어 한 사람 또는 한 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특히 후대에 오면서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판명되어 저자가 노자 한사람으로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도덕경의 내용은 BC 4세기부터 한초(漢初)에 이르기까지의 도가사상의 집적(集積)으로 보여진다. 선진시대(先秦時代)에 원본 《노자》가 있었던 모양이나, 현행본의 성립은 한초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 후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상편 37장, 하편 44장, 합계 81장으로 정착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노자 사상의 특색은 형이상적(形而上的)인 도(道)의 존재를 설파하는 데 있다. ‘무위(無爲)함이 무위함이 아니다’라는 도가의 근본교의, 겸퇴(謙退)의 실제적 교훈, 포화적(飽和的) 자연관조 등 도가사상의 강령이 거의 담겨 있어 후세에 끼친 영향이 크다. 《노자》는 흔히 말하는 도(道)가 일면적 ·상대적인 도에 불과함을 논파하고, 항구 불변적이고 절대적인 새로운 도를 제창한다.
그가 말하는 도는 천지(天地)보다도 앞서고,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적 존재이며, 천지간의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이를 성립시키는 이법(理法)이다. 다시 말하면, 대자연의 영위(營爲)를 지탱하게 하는 것이 도이며, 그 도의 작용을 덕(德)이라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도와 덕을 설파하는 데서, 《노자》의 가르침은 도덕(오늘날의 도덕과는 다름)으로 불리어 《도덕경》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노자사상의 중심은 오히려 정치 ·처세의 술(術)로서의 무위를 설파함에 있고, 형이상적인 도의 논설은 그 근거로서의 의미를 지님에 불과하다. 노자는 하는 일만 많으면 도리어 혼란을 초래하고, 공을 서두르면 도리어 파멸에 빠지는 일이 흔한 세상에 비추어, 오히려 무위함이 대성(大成)을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선 의도하는 바는 아무런 작위(作爲)가 없고, 게다가 그 공업(功業)은 착실절묘하다고 설파하였다.
이 도를 본으로 하여 무위함에서 대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파하며, 이 점에서 형이상의 도와 실천적인 가르침이 관련된다. 무위의 술(術)이란 구체적으로는 유약 ·겸손의 가르침이 되고, 무지 ·무욕의 권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징으로서는 물[水] ·영아(嬰兒). 여성에의 예찬이 된다.
유가가 말하는 인의예악(仁義禮樂)이나 번잡한 법제금령(法制禁令)은 말세의 것으로 배척하고, 태고(太古)의 소박한 세상을 이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궁극적으로는 세속적인 성공을 쟁취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그 논법에는, ‘도는 언제나 무위하면서도 무위함이 아니다’ ‘대공(大功)은 졸(拙)함과 같다’ ‘그 몸을 뒤로 하여 몸을 앞세운다’와 같이 역설(逆說)이 많은 점이 두드러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덕경 [道德經]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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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교과단원
전통윤리, Ⅱ. 개인과 가족의 가치 있는 삶, Ⅱ-1 인격 수양의 길
목차
1. 교과서 속 주개념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2. 확장 개념
고자의 인성론
3. 관련 지식
인식보다는 체험을 중시한 장자의 사상
1. 교과서 속 주개념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도(道)를 도라고 말로 표현하면, 그 도는 항구 불변한 본연의 도가 아니고, 이름지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참다운 실재의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 앞의 ‘도’는 명사로, 노자 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우주의 본원, 즉 우주의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운행하고 발전시키는 실체이자, 원리이고 원동력이다. 뒤의 ‘도’는 동사로, ‘말하다.’의 뜻을 지닌다. ‘상’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항상 같다.”는 뜻이다. ‘상도’는 항구 불변의 본체를 의미한다.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 : 앞의 ‘명’은 명사로 실재나 실상을 의미하고, 뒤의 ‘명’은 동사로 “말로 나타내다.”, “일컫다.”의 뜻이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인간의 감각이나 인식을 초월한 형이상적(形而上的)인 것이므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도는 만물의 근원이자 시간과 공간 밖에 있는 것이므로, 피조물의 유한한 말로 규제될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는 방편으로 이름지어 도라고 하는 것이다.
2. 확장 개념
고자의 인성론1)
인간의 성(性)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생리적 욕망이 성품이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식욕과 색욕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나 동물이 다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 자체를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봇물을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인성에는 인의(仁義)가 들어 있지 않으므로, 그 자체를 선 또는 악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인의란 후천적인 교육이나 학습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이지, 본래부터 고유하게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다. 이는 장인(匠人)이 버드나무로 바구니를 만드는 것과도 같은데, 버드나무 속에 바구니가 들어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인성은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개조시킬 수 있다. 즉 후천적 환경이 중요하다.(性無善惡說)
3. 관련 지식
인식보다는 체험을 중시한 장자의 사상
세상에서 도를 귀히 여겨 찾는 데는 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책은 말을 기록해 놓은 데 불과하고, 말이 귀히 여기는 것은 뜻이다. 그런데 그 뜻은 추구하는 바가 있는데, 그 뜻이 추구하는 바는 말로써는 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말을 귀히 여겨 책을 전한다. 세상 사람들이 비록 그것을 귀히 여기나 오히려 귀히 여길 것이 못 된다. 그러므로 보아서 볼 수 있는 것은 모양과 빛이요. 들어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이름과 소리이다.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모양 과 빛, 이름과 소리로써 저 도의 진실을 알 수가 없다. 대저 양과 빛, 이름과 소리로써 저 도의 진실을 알 수 없다면,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그것을 알까?
제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윤편은 대청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윤편은 망치와 끌을 놓고서 제환공에게 물었다.
“대왕께서 읽으시는 것은 무슨 책입니까?” “성인의 말씀이시니라.” “그 성인은 지금 살아 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셨느니라.” “그렇다면 대왕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 사람의 찌꺼기입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수레바퀴나 깎는 네 놈이 무슨 참견이냐? 네 변명할 구실이 있으면 좋거니와 변명을 못하면 죽이리라.”
“저는 제가 하는 일의 경험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느리게 깎으면 헐렁해서 꼭 끼이지 못하고, 빨리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는 것은 손에 익숙하여 마음에 응하는 것이나 입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이에는 익숙한 기술이 있는 것이나, 저는 그것을 제 자식에게 가르칠 수가 없고, 제 자식도 그것을 저에게서 배워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제 나이 70이 되도록 늙게까지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날의 성인도 마찬가지로 깨달은 바를 전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읽으시는 것도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해설] 중국에는 예부터 “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곧 말로는 추상적인 생각이나 영상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마치 불교의 불립문자(不立文字)나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경지와 같다고 하겠다. 따라서 장자는 인식보다는 체험을, 이론보다는 실제를 중시하여 도의 본체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표현은 노자가 도의 개념을 말한 「도덕경」 제14장이나 제35장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도의 진상은 언어와 문자로써는 표현할 수 없다는 전제를 내세워 놓고, 제환공과 윤편의 유명한 대화로써 실증을 보이는 것이다.
즉 장자는 현실적 체험과 소통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자 「도덕경」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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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1,2,3장...
1.
道可道(도가도), 非常道(비상도), 名可名(명가명), 非常名(비상명), 無(무), 名天地之始(명천지지시), 有(유), 名萬物之母(명만물지모), 故常無(고상무), 欲以觀其妙(욕이관기묘), 常有(상유), 欲以觀其(욕이관기)교, 此兩者(차량자), 同出而異名(동출이이명), 同謂之玄(동위지현), 玄之又玄(현지우현), 衆妙之門(중묘지문).
[말로 나타낼 수 있는 도는 영구 불변의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구 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무명은 천지의 시원이고 유명은 만물의 모체이다.
그러므로 영구 불변의 무에서 만물의 미묘한 이법을 보도록 해야 할 것이며,
영구 불변의 유에서 그 귀착점을 살펴보도록 해야 한다.
없는 것과 있는 것은 같은 근원에서 나왔으되 그 이름은 다르다.
그 같은 바를 신비로움이라 한다.
신비하고도 신비하여 모든 오묘한 이치가 나오는 문인 것이다.]
2. 天下皆知美之爲美(천하개지미지위미), 斯惡已(사악이), 皆知善之爲善(개지선지위선), 斯不善已(사부선이), 故有無相生(고유무상생), 難易相成(난이상성), 長短相較(장단상교), 高下相傾(고하상경), 音聲相和(음성상화), 前後相隨(전후상수), 是以聖人處無爲之事(시이성인처무위지사), 行不言之敎(행부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만물작언이부사), 生而不有(생이부유), 爲而不恃(위이부시),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 夫唯弗居(부유불거), 是以不去(시이부거).
[이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것은 추악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착한 것을 착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착하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서로를 낳게 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생성케 하며,
긴것과 짧은 것은 서로 모습을 노출시키기 때문이며,
높음과 낮음은 서로 가지런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과 성은 서로의 존재로써 화음을 이루고
전과 후는 앞이 있으므로 뒤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의도적인 행위 없이 일을 처리하며 무언의 가르침을 베푼다.
만물의 활동을 위하여 그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며, 만물을 육성시키면서도 소유물로 삼지는 않는다.
일을 하고도 뽐내지 않고 공을 세우더라도 자신의 공로로 자부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공로라고 자부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공은 항상 그에게서 떠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3. 不尙賢(부상현), 使民不爭(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부귀난득지화), 使民不爲盜(사민부위도), 不見可欲(부견가욕), 使民心不亂(사민심부란), 是以聖人之治(시이성인지치), 虛其心(허기심), 實其腹(실기복), 弱其志(약기지), 强其骨(강기골), 常使民無知無欲(상사민무지무욕), 使夫智者不敢爲也(사부지자부감위야), 爲無爲(위무위), 則無不治(칙무부치).
[현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경쟁 의식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손에 넣기 어려운 재물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도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욕심을 부추길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백성의 마음은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정치는 백성들의 마음을 비게 만들고 그들의 배는 부르게 만들며,
그들의 의지력은 약화시키며 그들의 신체는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
언제나 백성들을 무지 무욕의 상태에 두게 한다.
비록 지혜와 수완을 갖춘 자가 있을지라도 감히 제주를 부리지 못하게 한다.
작위 함이 없는 다스림에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