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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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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0    바다에 뛰여들는 양떼가 되지말기... 댓글:  조회:3098  추천:0  2019-01-20
  윤동주 시  해석을 논박함     1. 문제제기의 이유 윤동주 시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을 들라면 일 것이다. 그 다음에 이 되리라 본다. 특히 는 이른바 그의 3대 명시라고 말할 수 있기에 한국명시선이나 학교 교과서 등등에 거의 빠짐없이 나오고 있는 단골 메뉴이다. 그런 만큼 이런 시를 과연 어떻게 해석해 왔고, 해석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감상이나 문학교육의 차원에서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혹여 잘못된 해석이 있다면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근래에 필자는 인터넷 ‘지식정보’ 창에 들어가 이것저것 점검해 보다 우연히 윤동주 시 해설 몇 가지를 보게 되었는데 곧바로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황스런 마음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해설용 명시선과 일부의 윤동주론을 다시 점검해 보았다. 하나같이 잘못된 해석이 판에 박은 듯 재생산되고 있다. 그 문제의 해석 부분이 바로 ‘괴로왔든 사나이’(원본 그대로)와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일인이 아닌 것이 마치 동일인인 양 앞질러 널리 유통되고 있다면, 적어도 이 시를 보는 나의 견지에서는 그것은 마치 불환지폐가 태환지폐를 대신하는 형국이고 또 가짜 불량상품이 정상품을 압도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 이에 문제제기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2. 문제 부분의 두 관점 지금까지 발표된 윤동주에 관한 연구나 평론은 너무나 많다.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와 더불어 단연 수위급에 속한다. 웬만한 일선 평론가치고 또 웬만한 현대시 담당 교수치고, 그를 언급해 보거나 논해 보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그에 관한 본격적인 접근은 1950년대의 고석규를 필두로 하여, 1660년대에 이상비, 최홍규, 이유식, 김열규., 김종길, 김상선 등에 의해 시도되었고, 이어 1970년대에는 김현자, 이건청, 정현종, 백승철, 김인환,김윤식, 김흥규, 박진환, 홍기삼, 김용직, 정한모, 오세영, 김우종, 임헌영, 김우창, 신동욱 등에 의해 가히 봇물을 만난 듯 쏟아져 나와 더러는 재해석이나 보충 ․ 보완되기도 했다. 그 다음, 198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표된 논문이나 평론은 크게 보아 1960년대나 1970년대의 그 연장선상의 반복이거나 그 짜깁기라 보아 무방하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꼭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직접적인 충동은 나 자신이 윤동주 연구사나 비평사의 그 초창기에 윤동주론을 써 보았고 또 그 글에서 문제의 란 시를 다루어 보았기 때문이다. 1963년도 『현대문학』지 10월호에 발표된 이란 제목의 평론에서이다. 그 당시 발표되는 평론으로서는 제법 긴 편에 속했는데 200자 원고지로 약 80-90매 분량이었고, 또 윤동주론으로서는 최초의 긴 글이었다. 이 글에서 나는 윤동주 시의 여러 특징을 통해 이것이 바로 이 계통의 최초의 접근이 되겠구나 생각하며 그의 내면세계를 살펴보았는데, 이 중 ‘아웃사이더의 자세’란 항에서 바로 문제가 되고 있는 란 시를 그 예증 중의 하나로 인용해 가며 설명해 보았다. 거기서 나는 4연 1행과 2행 즉 ‘괴로왔든 사나이’와 ‘행복한 예수 ․ 그리스도’가 동일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서 ‘괴로왔든 사나이’를 윤동주 자신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이나 해석은 그 후 상당기간 공감대가 형성되어 유효성을 얻었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1970년대의 몇몇 평론에서 새로운 관점 같은 다른 해석이 나오자 그만 그 시와 관련 있는 일부의 어떤 글, 어떤 해설에서 마치 전염병처럼 받아들여졌고, 지금도 받아들이고 있다. 그 필자들이 대부분 유력한 대학의 교수인지라 특히 시험과 연관 있는 문학교육현장에서는 그 전파력이 불을 보는 듯 했다. ‘괴로왔든 사나이’와 ‘행복한 예수 ․ 그리스도’를 동일인으로 보아 소가 웃을 일이지만 심지어 그 수사적 기법까지 논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괴로왔든 사나이’였지만 인류의 죄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결정적인 큰 오류이다.   3. 동일인이 아닌 이유 먼저 2004년도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원본대조 윤동주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원본을 소개해 두는 것이 순서일 상 싶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敎會堂교회당 꼭대기 十字架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尖塔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가요.   種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휫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든 사나이, 幸福행복한 예수 ․ 그리스도 처럼 十字架십자가가 許諾허락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여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이 시는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기에 구태여 구차스런 해설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대신 이 글의 진행을 위해 주제와 구성법만은 간단히 언급해 두기로 하겠다. 주제는 민족고난을 짊어져 보고자 하는 자기희생의 다짐이고, 구성면을 보면 1연과 2연은 교회당 꼭대기에 첨탑 위에 걸려 있는 ‘햇빛’(민족광복)에 대한 동경, 3연은 현실(주어진 상황)에 뛰어들지 못하고 배회만 하고 있는 망설임, 4연은 예수를 모델로 해 생각해 본 희생양 실천(행동) 에 대한 부러움, 5연은 민족구원을 위한 자기희생의 결의 표백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4연 해석이다. 동일인이 아니라 ‘괴로왔든 사나이’인 시인 자신과 ‘행복한 예수’가 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동일인이란 해석의 문제 발단은 아마도 ‘괴로왔든 사나이’란 표현이 과거형으로 되어 있기에 역시 과거의 인물인 예수와 동일시해 버린 데서 연유되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만약 그것이 ‘괴로운 사나이’라고 현재형으로 되었거나 또 아니면 이에다가 ‘행복한’까지 ‘행복했던’으로 되었다면, 시인 자신과 예수는 별개의 인물이란 점이 명명백백해져 이런 문제의 불씨는 아예 없었으리라 쉽게 가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반증을 하나하나 들어보기로 하겠다. 첫째, 민족광복의 상징일 수도 있는 ‘햇빛’이 교회당 첨탑 위 십자가에 걸리어 있는데,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감히 행동할 수 없고 또 그러다 보니 아웃사이더로서 상황 밖에서 무위롭게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 보니 행동의 양심과 자기의 나약함 사이에서 강한 갈등이 생겨 마음이 무척 괴롭고 괴로웠다. 3연 끝행 즉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에 쉼표(,)가 찍혀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원래 쉼표란 생각이나 사고의 진행을 잠시 휴지시켜 주며 시간경과를 암시도 하는 만큼 노상 현재의 상황에 뛰어들지 못하고 서성거리고만 있다 보니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겠다. 그러자 문득 예수 ․ 그리스도가 떠오르자 용감하게도 행동실천을 못하는 불행한 자기를 ‘괴로왔든 사나이’라고 낮추면서 반대로 직접 행동으로 희생양이 된 예수를 ‘행복한’ 사람으로 보며, 자기에게도 허락만 된다면 기꺼이 그 길을 택해 보겠다는 다짐을 해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 윤동주는 자기 자신을 객체화 내지 객관화 시켜 ‘나’라는 표현 대신 ‘젊은이’ 이나 아니면 ‘사나이’로 바꾸어 표현하는 관습이 더러 있다는 사실이다. 1937년도 작인 의 끝연에서 자기 심정을 “아- 이 젊은이는/피라미드처럼 슬프구나”라고 하고 있으며 또 산문 (작품연도 없음)를 보면 “이 육중한 기류 가운데 자조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두자.”라고 객체화 시키고 있다. 그리고 1938년도 작인  끝연에서는 ‘젊은이’ 대신 자기를 ‘사나이’로 지칭하고 있으며, 또 동년 작으로 되어 있는 산문 에는 ‘서러운 사나이’로 보기도 했고, 1939년도 작인에서는 익히 알다시피 ‘사나이’란 표현이 무려 7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1940년도 작인 에서도 역시 자기를 ‘젊은 사나이’ ‘이 사나이’로 객체화 시켰다. 따라서 ‘젊은이’나 ‘사나이’란 자기 객체화의 이런 습관은 역시 1941년도 작인 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고 확언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개연성의 논리다. 셋째, 윤동주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리고 자기 삶에 늘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그 겸손성을 미루어 보아 예수는 그에겐 가히 초월적, 신적 존재로 느껴졌으리라 본다. 더욱이나 그 흔한 이름으로서 ‘예수’가 아니라 ‘예수 ․ 그리스도’란 극존칭을 쓰고 있는 그 심상적 정황으로 보아 25실의 새파란 젊은 청년시인으로서 감히 불경스럽게도 예수를 ‘괴로왔든 사나이’라고 표현할 리는 없다. 넷째, 인용한 원본을 보면 과로왔든 사나이‘에 쉼표(,)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이본(異本)이 나오면서 어느 사이에 쉼표가 그만 없어진 경우가 많다. 대체로 동일인을 나타내는 동격일 경우라면 쉼표를 찍지 않는 것이 관례다. 쉼표가 있다는 것은 곧 다음 행의 ‘행복한 예수 ․ 그리스도’와 구별의 간격을 두고 보자는 휴지(休止)의 의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4연과 5연을 자연스러운 문맥 흐름에 따라 일반 산문으로 풀어 써 본다면 두 가지 문장이 가능해진다. “괴로왔든 사나이인 나에게도 행복한 예수 ․ 그리스도’에게서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 ․ (중략) ․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가 그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괴로왔든 사나이’가 주어가 되어 ‘흘리겠습니다’로 끝나는 형태다.이를 시로 압축시키려다 보니 ‘〜에게도’이나 ‘〜는’이란 조사 대신 곧 바로 쉼표 처리를 해 버린 것이다.그러니 동일인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또 한 가지 더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1939년도 작인 이란 시에서 동격을 표시하기 위해“사랑하는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라며 줄표(-)를 썼던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문장 부호 넣기 관행으로 미루어 볼 때 ‘괴로왔든 사나이’와 ‘행복한 예수 ․ 그리스도’를 동일인으로 보았다면, 아예 쉼표가 없거나 아니면 줄표라도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쉼표가 나보란 듯이 버티고 있으니 이를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섯째, 다소 견강부회란 느낌은 있지만 산문문장의 논리로 보아 예수를 한때 ‘괴로왔든 사나이’로 보고 또 그렇게 표현했다면, 바로 뒤에 나오는 수식어 ‘행복한’도 당연히 ‘행복했던’이 되어야 이치에 맞다. 그렇지 않으면 별개 인물의 설정이라고 추리해 볼 수도 있다. 여섯째, ‘괴로웠든 사나이’와 ‘행복한 예수 ․ 그리스도’를 동일 인물로 본다면, 이 시에서는 이른바 시적 자아가 과연 누구인지 불분명해진다. 물론 이 시의 화자는 시인 자신이 화자로서 작품의 이면에 숨어 말하고 있는 ‘함축적 자아’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마치 나르시스처럼 자기 존재성이나 정체성을 두고 늘 깊이 생각하고 있는 시인의 자기애적인 자성적인 체질성을 보아 그의 시 곳곳에 나오는 시적자아인 ‘나’를 대신해 보는 객체로서 ‘사나이’를 폐기처분할 리가 없다. 일곱째. ‘문체는 인간이다’라는 말이 있듯 윤동주의 성격이나 또 그의 시집에 나타나 있는 수사상의 취향으로 보아 ‘괴로왔든 사나이’를 금세 대칭해서 ‘행복한’ 사람으로 바꾸는 전화적 역설을 구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욱이나 여러 작품에서 자기를 ‘괴로워’하거나 ‘괴로운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가. (1935)에서는 걷고 있는 거리가 ‘괴롬의 거리’로 비춰졌고, (1939)에서는 자기를 스스로 ‘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라고 탄식적으로 영탄해 보고 있으며, 를 5월에 쓰고, 바로 6개월 후인 같은 해 11월에 쓴 너무나도 유명한 에서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 다음해의 (1942)에서는 ‘괴로운 수 많은 나’임을 자가진단도 하고 있다. 그러니 가 쓰여진 시기, 그 이전과 이후 작품에 나타난 ‘괴롭다’는 말의 사용 빈도수를 참고해 보아 에서 자기를 ‘괴로왔든 사나이’로 표현해 본 것은 시인의 표현 관행으로 보아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하겠다. 여덟째, 이 시를 쓸 당시 시인은 이런 논란이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겠지만, 미리 예상이라도 했다면 4연의 첫 행에 나오는 ‘괴로왔든 사나이’를 3연 끝에다 배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동일인이 아니라는 점은 명명백배하다. 그런데 짐작컨대 같은 연인 4연에다 ‘괴로왔든 사나이’와 ‘행복한 예수’를 나란히 배치해 본 시인의 의도는 대비의 효과를 예각화 시켜 보자는 의도이다. 동시에 의미단위의 문맥 흐름으로 보아 4연과 5연이 한 문장임인 만큼 ‘괴로왔든 사나이’가 주체(주어)가 되어 이번 행위의 전체를 지배시키려 한 의도였다고 짐작이 된다. 만약, ‘괴로왔든 사나이’를 3연에다 배치했다면 화자인 주체자가 문맥적 행위의 현장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우려의 배려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4.맺는 말을 남기며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물론 성경 해석상의 오류가 아니고 번역상의 오류이긴 하지만, 마태복음 19장 24절과 마가복음 10장 25절에 나오는 그 유명한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 쉽다”라는 말이 문득 떠 올랐다. 일반화 된 통용비유가 연구가들에 의해 결국 오류 번역 부분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성경사본 중 아랍어 사본을 보면 ‘밧줄’ 즉 gamta로 나와 있는데 번역 과정에서 이를 그만 ‘낙타’ 즉 gamla로 잘못 보았고, 또 가장 오래된 헬라어(희랍어) 고사본을 보더라도 ‘밧줄’ 즉 kamilos로 되어 있는데 실수로 ‘낙타’ 즉 kamelos로 보았다는 것이다. 아랍어 철자에서는 ‘t’를 ‘l’로 잘못 본 셈이고, 헬라어 철자에서‘i’를 ‘e’로 잘못 보아 ‘밧줄’이 그만 ‘낙타’로 둔갑되어 사람들의 입에 항상 오르내렸다는 것이다. 연상작용에 의한 언어의 친화성의 결합원리로 보아 ‘바늘귀’에 ‘낙타’가 연상되기보다는 실보다는 수백 배나 굵은 ‘밧줄’이 나온다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진 않았다. 결국 나의 바람도 성경의 오류가 이처럼 바로 잡히듯이, 노파심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이글로 인해 잘못된 해석이 하루 속히 바로 잡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불란서 속담에 ‘빠뉘르쥬의 양洋 떼'란 말이 있다. 영문 모르고 무조건 남의 뒤를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이 속담이 나오게 된 배경이 아주 재미있어 덤으로라도 소개해 볼 만하다. 16세기 불란서 작가 라블레(라브레르)의 작품《빵따그뤼엘르》제 3권의 한 대목에서 유래된 말이다. 빠뉘르쥬라는 이름의 건달이 거인 빵따그뤼엘르라는 사람의 부하가 되어 항해하던 중, 하도 심심해서 장난을 친다. 동승한 양洋 상인을 좀 골려 보자는 속셈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흥정의 열띤 설왕설래가 있은 다음, 그래 어디 맛 좀 보라는 식의 계략을 하나 생각해 내어 그 중 제일 크고 힘이 센 양 두 마리를 엄청난 값을 쳐주고 산다. 일부러 품에 안아본 그 양이 놀라 시끄럽게 울어대니 다른 양들도 따라 울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그러자 빠뉘르쥬는 이때다 싶어 그만 그 양을 바다 속으로 던져 넣었다. 웬걸 그 뒤를 따르는 양떼가 하나같이 바다로 풍덩풍덩 뛰어 들어갔다. 깜짝 놀란 주인은 혼비백산하여 발만 동동 구르다가 결국 마지막 남은 양 한 마리를 부둥켜안은 채 그만 바다로 떨어지고 만다. 이 우화 같은 대목에서 유래된 속담이 곧 바로‘빠뉘르쥬의 양떼’인 것이다. 여기서 내가 일부러 이 속담을 인유해 보는 의도는 벌써 짐작은 되었겠지만 의 잘못된 해석이 앞으로 잘못으로 판명이 되고, 판명이 나더라도 노상 잘못된 해석을 계속 정설로 받아들일까 보아 내 나름의 노파심에서 그 타산지석의 교훈도 겸해 소개해 보는 것이다.   ※본문 중 논박 여덟 번째는 발표 이후에 보충해 본 것임. 『월간문학』(2009년 4월호)     윤동쥬*尹東柱)북간도 동명촌 출생(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 아명은 해환 海煥 연세 전문학과 문과 졸업, 1939년 연희 전문 2학년 재학중에 『소년』지에 작품 발표하며 등단 일본 릿쿄대학 도시시 대학 수학 1943년 여름방학 대 귀국 직전 독립운동가로 체포되어  2년형을 언도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복역 중 옥사, 일제의 관헌에게 고문 당한 뒤 사마한 것을 추정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가 있다
1369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가로수 댓글:  조회:3222  추천:0  2019-01-19
          가로수  윤동주                                        가로수, 단촐한 그늘밑에 구두술같은 혀바닥으로 무심히 구두술을 핥는 시름. 때는 오정. 싸이렌, 어데로 갈것이냐? ㅁ시그늘은 맴돌고 따라 사나이도 맴돌고. * ㅁ시: ㅁ는 판독이 불가능한 부분.           윤동주 시-새로 발견된 것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새로 발굴된 윤동주시(8수)  새로 발굴된 윤동주시는 1934 - 1939년 즉 18세로부터 25세사이에 룡정 은진학교와 광명학교, 평양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 등을 다니며 시인의 꿈을 키우던 문학습작기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윤동주의 제1습작시집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와 제2습작시집 《창》에 각각 실렸으나 그가 1914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묶을 때 빼버렸으며 해방후 윤동주시집을 내는 과정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것들이다.  1. 창구멍  바람부는 새벽에 장터처가시는  우리압바 뒷자취 보고싶어서  춤을 발려 뚫려논 작은 창구멍  아롱다롱 아츰해 빛어옵니다.  눈나리는 저녁에 나무팔려간  우리압바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려논 작은 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려듭니다.  이 작품은 동요인데 창작년대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의 제1습작시집《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의 목차에 의하명 8번째작품으로 수록되였다. 그러나 그의 제2습작시집 《창》에는 크게 수정되여 《햇빛, 바람》으로 제목이 바뀌여 수록되였다. 그러므로《창구멍》을《햇빛, 바람》의 초고라고 볼수 있다.  2. 가슴 2  불꺼진 화덕을  안고 도는 겨울밤은 깊었다.  재[炭]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이 시는 시인이 1936년 3월 25일 룡정광명학원 중학부 학생시절에 쓴것이다. 처음 제1습작시집에 실렸다가 문자수정을 거친후 다시 제2습작시집에 실렸는데 해방후 정음사판《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가슴 2》로 전해지고 있는 시는 진짜《가슴 3》으로 되여야 한다.  이 시에 대하여 연세대 정형기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이 작품은 외형적으로 볼 때 쓰르타미소리 울리는 가을숲과 밤하늘에 흰달이 걸린 풍경을 그린 짧은 작품이지만 소년 윤동주가 앓고 있던 시대에 대한 절망과 처절한 자아탐구가 명료하게 드러난다.》쓰트라미는 외부에 대한 공포를 표현한것이고  흰달 이미지도 그의 후기 시 창백한 자아와 련결된다.  3. 개  이개 더럽잔니  아 - 니 이웃집 덜정수개가  오날 어슬어렁어슬렁 우리 집으로 오더니  우리 집 바두기의 미구멍에다 코를 대고  씩씩 내를 맛겠지 더러운줄도 모르고  보기 숭해서 막차며 욕해 쫓았더니  꼬리를 휘휘 저으며  너희들보다 어떻겠느냐 하는 상으로  뛰여가겠지요 나 - 참  이 작품은 동시로서 창작시간이 밝혀지지 않았다. 시인의 제1습작시집에 실렸는데 시인의 마음에 들지 않아 X를 친것이다.  이 시에은 동년시기 윤동주의 예리한 판단력과 사고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독특한 유모어감각을 보여준다. 개가 아무리 더럽고 치사하다 해도 사람들보다는 어떻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끝나는데 의미가 심장하다.  4. 울적  처음 피워본 담배맛은  아츰까지 목안에서 간질간질 타  허제밤에도 하도 울적하기에  가만히 한대 피워보았더니  이 시는 1937년 6월에 씌여졌다고 밝혀져있다. 제2습작시집《창》에 20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였다. 이 시는 단편적인 생활모습으로 청년 윤동주의 고뇌를 보여주었다. 아주 추상적이다. 시인이 스스로 불만족하여 X표를 친데 도리가 있는것 같다.  5. 야행  청각! 마음에 아픈데 있어 고약을 붙이고  시들은 다리를 끄을고 떠나는 현장  - 기적이 들리잖게 운다  사랑스런 녀인이 타박타박 땅을 굴려 쫓기에  - 이제로부터 둥산철도  이윽고 사색의 포푸파턴넬로 들어간다  시라는것을 반추하다 마땅히히 반추하여야 한다.  - 저녁연기가 놀로 된 이후  휘파람 부는 해 귀뚤램이의  노래는 마디마디 끊어져  그믐달처럼 호젓하게 슬프다  늬는 노래 배울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나보다  - 늬는 다리 가는 꾀꼬만 보헤미언  내사 보리발동리에 어머니도  누나도 있다.  그네는 노래부를줄 몰라  오늘밤도 그윽한 한숨으로 보내리니 ……  이 시는 1937년 7월 26일에 씌여진것으로 시인의 제2습작시집에 실렸다. 이 시에 대하여 연세대 심원심강사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이 시에는 식민지청년의 내적인 고뇌,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시대적 짐을 지지 못하고 가는 자아에 대한 자기 가학적 고통의 세계가 드러난다.》  시의 첫줄은 윤동주의 하나의 특점으로 되여있는 자아련  민이 나타나고 시의 뒤부분 귀뚜라미에 대해 쓴 《늬는 노래 배울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나보다》라는 구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로 상징되은 민족정체성의 상실돼있는 시인자신의 모습이 투영됐다고 볼수 있다. 이 시는 총적으로 내적고뇌와 갈등, 긍정적 미래에 대한 전말을 발견하지 못한 윤동주의 방황하던 세계가 잘 드러난 작품으로 읽을수 있다.  6. 비ㅅ뒤    할아버지의 즐거움  가물들엇든 곡식 자라는 소리  할아버지 담바 빠는 소리와 같다.  비ㅅ 뒤의 해ㅅ살은  풀잎에 아름답기도 하다  창작년대가 밝혀지지 않은 이 시에는 전원의 목가적인 풍경이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윤동주의 시에 흔하지 않은 경향의 작품으로 서평화의 행복에 대한 원초적인 갈망이 깊이 투사된것으로 우리의 흥미를 끈다.  7. 어머니  어머니  젖을 빨려 이 마음을 달래여주시오  이 밤이 자꾸 설혀 지나이다.  이 아니는 턱에 수염자리 잡히도록  무엇을 먹고 살았나이까?  오늘도 한주먹이  입에 그대로 물려있나이다  어머니  부서진 랍인형도 쓰러진지  벌써 오랩니다.  철비가 우우주군히 내리는 이 밤을  주먹이나 빨면서 새우릿가?  어머니! 그 어진 손으로  이 울음을 달래여주시오  제2습작시집에 실린 이 시는 1938년 5월 28일에 씌여진것으로 밝혀있다.  이 시에서 시적화자는 어머니에 향하여 욕구불만을 토로하  고 뜨거운 사람을 갈구한다. 시적인 환경도 밤으로 설정된것이인상 깊으며 주먹이나 빨면서 턱에 수염자리가 잡히도록 자란데 대한 원망은 바로 시인의 강렬한 생명욕구와 생명활력의 표현으로 읽을수 있다. 어머니는 상징적인 어머니로도 읽을수 있고 또 주먹이나 빠는 기갈은 물질적인 기갈로도 해석할수 있고 정신적인 기갈로도 해석할수 있다. 윤동주의 가정이 사실상에서 기아선에서 허덕인것이 아니였다는것을 련계시켜보면  배가 고파 우는 시적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결코 윤동주 하나의것이 아닌, 민주공동체의 비극과 하나로 련결되여있는 원망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8. 가로수  가로수 단촐한 그늘밑에  구두술같은 혀바닥으로  무심히 구두술을 핥는 시름  때는 오정 싸이렌  어데로 갈것이냐?  ㅁ시 그늘은 맴돌고  따라 사나이도 맴돌고  이 시도 제2습작시집에 실렸는데 창작시간은 1938년 6월1  일이라고 밝혔다. 제6행의 첫 글자(ㅁ)는 지금 판독이 어렵게 된것이다. 이 시에도 갈길을 선택하지 못하여 고민하는 청년 윤동주의 고뇌가 력력히 드러난것으로 우리의 주의를 끈다. 바야흐로 점심시간 싸이렌소리까지 울렸으나 구두술같은 혓바닥으로 구두술이나 핥을 정도로 무료한 시적화자는 그늘이 짙는 가로수밑을 맴돈다.     
1368    윤동주의 시 8개국 언어로 번역되다... 댓글:  조회:3455  추천:0  2019-01-19
▲ KBS 1TV ⓒKBS ▲KBS 1TV   1945년, 해방을 불과 여섯 달 앞둔 채 만 스물일곱의 나이로 후쿠오카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 윤동주. 죽을 때까지 시단에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못한 무명의 청년이었지만 그는 지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1위에 올라있으며 그의 시는 8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무명의 문학청년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 기적 같은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또한 무엇이 무명시인의 시를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불멸의 시로 만들었을까? “윤동주는 기적이에요, 기적.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육필원고가 보존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전에 시인으로 공인받은 적이 없었던 그의 시가 친구들의 힘으로 발굴된 것은 우리나라 문학의 축복입니다.” – 마광수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 연희전문학교와 일본 유학 시절까지도 윤동주는 무명시인이었다. 심지어 그의 일본유학 시절 동문들은 윤동주가 시를 쓴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렇다면 윤동주의 시는 어떻게 불멸의 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연희전문학교의 후배였던 정병욱은 당시로서는 위험했던 윤동주의 육필시고를 생가의 마루 밑에 깊숙이 숨겨둔다. 또 동기였던 강처중은 해방전후의 혼란기에 끝까지 윤동주의 유품과 편지에 담긴 시들을 지켜낸다. 결국 정병욱과 강처중, 두 친우의 헌신은 윤동주의 시를 오늘에 부활시킨 것이다. 한 무명시인의 시가 한국문학사의 빛나는 별로 자리 잡기까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펼쳐진다.     “영혼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것이 시에 나타나 있어요. 영혼의 아름다움, 슬픔이 거기에 있어요. 한 영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가 아름답게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정말 훌륭한 시입니다.” – 카와즈 키요에 (일본 현대시수첩상 수상 시인) “윤동주의 시는 결코 한 민족의 것이 아니라, 인류, 인간 그 모든 것의 근원으로 통하는 시입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역시 사랑이죠. 인류입니다. 인류와 사랑.”- 니시오카 겐지 (일본 후쿠오카현립대 명예 교수) 매년 윤동주의 기일이 되면 일본 곳곳에서 윤동주의 죽음을 추모하는 추도회와 윤동주의 시를 연구하는 강연회가 열린다. 일본에서 문고판이 나올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윤동주의 시. 그의 시는 일본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8개국에 번역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가장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윤동주의 시는 어떻게 시대와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세계인의 시선으로 윤동주 시의 아름다움을 조명해 본다.  “전 그 시를 중학교 때 처음 봤어요. 가슴이 철렁하고 이렇게 감동적이 시가 있구나 느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시어가 문어체가 아니고 구어체죠. 해방 이전, 아니 해방 전후까지도 지금까지 생생하게 읽히는 시를 대봐라, 윤동주밖에 없어요.” – 마광수 (연세대 교수) “전 윤동주 시 중 을 가장 좋아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그 시를 읽으면서 떠올리는 지점이 70년대, 80년대가 아닐까요. 사람들이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는 수도 없이 많은 이유가 있지만, 아주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희망의 단서를 놓지 않는 그만의 특징이 있어요.” – 이정록 시인 (윤동주 문학상 수상자) - 변방 출신 무명 청년이었던 윤동주. 해방 후 무명 시인의 유고집으로 세상에 처음 빛을 보게 된 윤동주의 시는 어떻게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영원성을 획득했을까? 1980년대 중반 최초로 윤동주 시 연구 논문을 발표하며 윤동주 시의 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는 평가를 받는 연세대 마광수 교수. 그리고 윤동주 문학상을 통해 한국 시단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한 김용택 · 이정록 · 공광규 시인과 함께 윤동주의 독특한 시 세계와 아름다운 시 언어의 아름다움을 조명... ///PD저널   ======================///{자료} 윤동주 3형제는 모두 시인이었다 입력 2007.03.06. 16:38 수정 2007.03.06. 16:38 댓글 1개 번역 설정   공유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6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많이 잊힌 상태지만, 일본제국주의의 압정은 간교하고 잔혹했다. 모국어(한글)로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다가 급기야 죽음까지 당한 윤동주 시인. 지난 2월 16일이 그의 62주기다.그는 정확하게 27년 2개월 동안 살았다. 그것도 죽기 전 2년 동안 감옥에 갇혔으니,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윤동주의 시는 전부 25살 이전에 쓰인 시들이다. 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고, 그가 쓴 는 가장 애송하는 시다.남의 나라 땅 북간도에서 태어난 윤동주가 2살 되던 해(1919년), 일제에 항거하는 3·1만세운동이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북간도에서도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윤동주의 형제 3남1녀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윤혜원(84)씨가 20여 년 동안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다. 3·1만세운동 88주년을 맞아, 여동생의 증언을 윤동주의 생애를 중심으로 3회에 걸쳐 들어본다. [오마이뉴스 윤여문 기자]   ▲ 윤혜원-오형범 부부가 북간도에 가서 새롭게 단장한 윤동주 묘소.       북간도-청진-서울-도쿄, 그리고 후쿠오카 감옥 윤동주 시인은 27년 2개월이라는 짧은 생애 중에서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줄곧 객지에서 공부했다. 북간도-평양-서울-도쿄-교토로 이어지는 긴 유학생활 끝에, 그는 후쿠오카에서 감옥에서의 객사(客死)라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말았다. 오죽하면 '향수'의 시인 정지용이 윤동주의 시집 초간본(1948년)서문에다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서 죽었고나! 29세(한국식으로 계산)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썼을까. 그가 숨을 거둘 당시 고향 연길에는 부모님은 물론이고 할아버지도 생존해 계셨다. 유교적 관습으로 보면 크게 불효를 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고향엔 두 명의 남동생(일주, 광주)과 여동생 혜원이 살고 있었다. 두 남동생 일주와 광주는 나중에 시인이 되었다. 윤동주의 형제들은 단명했다. 장남 윤동주 시인이 28세, 2남 윤일주 시인이 58세, 막내 윤광주 시인이 31세의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다. 결국 윤혜원씨가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다. 해외동포가 찾아내고 보수한 윤동주 무덤     ▲ 윤동주 시인이 숨을 거둔 후쿠오카 감옥.     그런 연유로, 윤동주 시인을 후세에 잘 전하기 위해서 맡아야할 윤혜원씨의 임무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다. 북간도에 남아있는 윤동주 시인 무덤의 개수와 관리도 윤혜원 권사와 남편 오형범씨의 몫이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신길우(전 상지대 교수. 현 서초문학회 회장)씨가 2003년 3월부터 중국 연변대학 초빙교수로 근무하면서, 마침 윤동주 묘를 개수하러 연길에 와 있던 80세의 윤혜원·오형범 여동생 부부와 여러 차례 만나서 확인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1945년에 장례를 지낸 이후 윤동주는 잊혀졌다. 그때 그곳 사람들은 윤동주가 누구인지, 그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조차를 몰랐다.그러다가 지난 1984년 봄, 미국에 살고 있는 의학자 현봉학 선생이 초간본(손자들이 낙서를 해놓은 상태였다고 함)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 같은 해 8월에 중국을 방문하여 연변의 유지들과 자치주정부에 가서 윤동주의 묘를 찾아주기를 부탁하였다.그런데 아무도 윤동주를 모르고 관심을 안 주어서, 그가 위대한 애국시인임을 역설하고, 내년 방문 때에는 묘소를 꼭 찾아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한편 윤동주 시인의 친동생인 윤일주 교수가 1984년 여름에 일본에 가 있던 중, 연변대학 교환교수로 가게 된 와세다대학의 오무라 마쓰오(大村益夫) 교수를 찾아가, 윤동주의 묘소가 동산 교회묘지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찾아달라고 부탁하였다.오무라 교수는 1985년 4월 12일에 연길에 도착하였는데, 연변 문학자들은 윤동주는 물론 작품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고 한다. 오무라 교수는 공안국의 허가를 받아 5월 14일 연변대학 권철 부교수, 조선문학 교연실 주임, 이해산 강사와 역사에 밝은 용정중학의 한생철 선생과 함께 동산의 교회묘지에서 윤동주의 묘를 찾아냈다. 그들이 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가지고 간 묘비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덕이었다.묘소의 첫 개수 작업은 1988년 6월에 이루어졌다. 미국에 거주하는 현봉학 선생이 주동이 된 미중한인우호협회(美中韓人友好協會)가 연증(捐贈)하고, 용정중학교 동창회가 수선을 하였다.윤동주 묘소를 두 번째로 개수한 것은 2003년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살고 있는 오형범·윤혜원 여동생 부부가 15년만에 다시 개수하면서 두어 달에 걸친 공사로 7월 15일에 완료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 호주한인문인협회 회원들이 윤동주 시인 60주기 시드니 행사를 마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윤동주 애창곡 '네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윤혜원씨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오빠의 애창곡은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다. 거기에 얽힌 얘기를 잠깐 들어보자. "그 노래는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하느라 타지를 떠돌았던 오빠가 고향 북간도와 부모형제를 그리면서 자주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또한 유학생활 중에 방학을 맞아 고향에 오면 동생과 동네아이들을 모아놓고 '아리랑' '도라지' 등의 민요와 함께 그 노래를 가르쳐주었습니다.고향의 조무래기들을 삥 둘러 앉혀놓고 위인들의 얘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가르치던 오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오빠의 단짝이었던 문익환(나중에 목사가 됨) 오빠는 주로 찬송가와 율동을 가르쳐주었지요." 그런 윤동주 시인이 떠난 지 어언 60여년, 그런데 이번엔 그가 남겨놓은 시편들이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를 부르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동안 우리가 읽어왔던 윤동주의 시들이 윤동주가 원고지에 써놓은 본디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윤동주 육필원고와 교과서나 시집에 실려 있는 그의 시들이 영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유고시집 에 실린 윤동주의 시와 원고지에 직접 쓴 시들 사이에 차이가 나는 어휘만 무려 570개에 달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윤동주가 원고지에 쓴 원래의 형태로 그의 시들이 되돌아가게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이런 사실을 밝혀낸 홍장학(53. 동성고 국어교사)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읽어온 윤동주의 시가 오리지널과 그토록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니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윤혜원씨 부부가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지난 2005년 시드니에서 열린 '윤동주 60주기 추모문학제'에 홍장학 선생을 초청하여 저간의 사정을 들었다.   ▲ 중국동포 소녀들이 재작년 윤동주 시인 60주기를 맞아 묘소 앞에서 눈이 내리는 가운데 서시를 낭송하고 있다.       해외에서 더 애틋한 윤동주 추모 윤동주 시인은 현대용어로 얘기하면 이민자에 해당하는 이주민의 후예였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윤동주 시인 추모의 열기는 모국이 아닌 해외에서 더 뜨겁다. 여동생 윤혜원씨가 살고 있는 호주 시드니와 그의 고향 룽징(龍井)을 비롯해서 일본,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추모행사가 계속해서 열리고 있는 것. 그 행사들을 취재하던 기자는 아주 뜻밖의 큰 소득을 얻었다. 윤동주 시인의 친척 김태균(전 경기대 교수)씨와 연결이 된 것. 그는 은진중학교에 다닐 때 외가인 윤동주 시인의 집에 살았는데, 그것도 윤동주 시인과 같은 방에서 2년 동안이나 지낸 사람이다. 그는 1986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현재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현재 암 투병 중이다. 함께 기거했던 연유로 그는 1937년 당시, 윤동주 시인의 시 창작과정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내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윤동주 시인이다. 내가 국문학자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면서 "아픈 몸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윤동주의 한 때를 늦게나마 증언하게 되어 기쁘다"고 토로했다. 윤동주 시인의 출생지인 연변자치주에서 전해온 소식들은 더 애틋하다. 매년 2월이면 엄청난 눈이 내려서 묘지참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동포들이 고인에게 꽃을 바치고 시를 낭송하면서 윤동주 시인을 추모한다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유학하고 옥사한 일본에서 전해오는 소식들도 애틋하긴 만찬가지다. 일본 교토에 거주하는 박세용(45. 도시샤 코리아 동창회 이사)씨가 전화와 팩스로 기자에게 전해준 소식 중에서 민단계와 조총련계가 자리를 함께 했다는 내용도 있다.   ▲ 작년 중국 연변에서 열린 '윤동주문학상' 시상식 장면. 윤혜원 오형범 부부(왼쪽에서 4-5번째)도 참석했다.       윤동주, 일주, 광주 '3형제 시인' 윤동주 시인의 3형제가 전부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건 문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3형제 모두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무심했고, 너무 일찍 작고한 것 등이 그 이유다. 또한 윤일주 시인(1927-85, 전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이 시집 한 권 펴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동주 형이 못내 안타까웠는지 살아생전에 시집 내는 걸 저어했던 탓도 있다. 형과 10살 터울인 윤일주씨는 1955년 을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유고 동시집 가 있다. 한편 막내동생 윤광주씨가 시인으로 활동했던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매형 오형범씨다. 그가 죽은 지 40여 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오씨가 연길에서 윤광주씨의 시를 발굴한 것. 윤광주씨는 해방정국의 소용돌이에서 함께 월남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렇다보니 윤광주 시인의 작품이 제대로 보관됐을 리 없다. 1990년에 연변을 방문한 오형범씨가 연변일보 10년 치와 문학지 를 다 뒤져서 몇 편의 시를 찾아냈다.(그 시들은 본 기자의 보도로 1995년 2월호에 최초로 공개됐다) 이렇듯 오형범씨는 윤동주와 관련된 일이면 미국, 캐나다, 중국을 가리지 않고 떠난다. 중국의 출입이 가능해진 1990년 이후, 매년 연변에 가서 윤동주 묘지를 새롭게 조성하고, '윤동주 문학상'을 손수 관리하고 있다.   ▲ 홍길복(왼쪽) 목사와 함께 한 윤혜원-오형범 부부.   ⓒ2007 윤여문   '3형제 시인 심포지엄'을 시드니에서 지난 2월 12일, 윤혜원 오형범 부부는 84세의 노구를 이끌고 비행기 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가족친지들과 함께 윤동주 62주기를 보내고 4월 28일 연길로 가서 5월 3일 열릴 예정인 중국조선족중학생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서울로 떠나기 전날, 시드니우리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홍길복 담임목사와 함께 만난 두 분은 "건강상 이번이 마지막 중국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행도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떠나는 것이다. 윤혜원씨는 이미 여러 차례 심장수술을 받았고 오형범씨도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상태인 것. {주; 두 분 다 작고했음} 그럼에도 두 분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2008년 윤동주 63주기에 즈음하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윤동주 연구가를 시드니로 초청해서 윤동주 문학심포지엄을 여는 것이다. 그 일로 윤동주 문학의 대단원을 장식하여 저세상에서 윤동주를 만나면 전해주고 싶어서다. 윤혜원씨에게 "왜 하필이면 시드니냐?"고 물었더니 "내가 20여 년 동안 살고 있는 곳에서 주인이 되어 그동안 보답하고 싶었던 분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이나 룽징을 고려해보았지만 건강이 여의치 않아 여동생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우려가 깊은 것. 그러면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캐나다, 독일 등지에서 윤동주 연구가들이 모일 것이다. 그 중엔 미국의 현봉학씨, 캐나다의 김태균씨가 첫 손에 꼽히는 분들인데 워낙 고령이라서 시드니까지 올 수 없을 것 같아 두 분은 걱정하고 있다. 만약에 광명학교 시절에 윤동주 시인과 2년 동안 한 방에서 기거했던 김태균씨가 심포지엄에 참석한다면 아주 귀한 체험담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윤동주의 시에서는 무슨 사상이나 무슨 주의주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시를 읽으면 사랑이 생기고, 눈물 나는 참회가 생기고, 그리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이 생긴다"고 말한 바 있다. /윤여문 기자
1367    윤동주와 "해바라기" 댓글:  조회:4118  추천:0  2019-01-17
해바라기 해바래기sunflower   분류 식물 > 쌍자엽식물 합판화 > 국화과(Asteraceae) 학명 Helianthus annuus L. 본초명 규화(葵花, Kui-Hua), 향일규(向日葵, Xiang-Ri-Kui), 향일화(向日花, Xiang-Ri-Hua) 목차 특성 적용증상 및 효능 종자 생육과정 1년생 초본으로 종자로 번식하고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재배식물이다. 원줄기는 높이 1.5~2.5m 정도이고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며 전체적으로 굳은 털이 있다. 어긋나는 잎은 길이가 10~30cm 정도인 심장상 난형으로 가장자리에 큰 톱니가 있다. 8~9월에 개화하며 지름 8~50cm 정도의 두상꽃차례의 통상화는 갈색이고 가장자리의 설상화는 황색이다. 수과는 길이 8~15mm 정도의 도란형 또는 아원형으로 백색이나 회색이며 흑색 줄이 있다. ‘뚱딴지’와 달리 꽃이 옆을 향하며 덩이줄기가 없다. 여러 가지 품종이 있어 그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식용이나 사료용으로 이용하고 관상용, 공업용으로 심기도 한다. 씨를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꽃잎을 말린 뒤 우려내서 차로 마신다. 특성 쌍자엽식물(dicotyledon), 합판화(sympetalous flower), 1년생초본(annual herb), 직립형식물(erect type), 재배되는(cultivated), 약용(medicinal), 식용(edible), 관상용(ornamental), 사료식물(forage plant) 적용증상 및 효능 강장보호, 고혈압, 골다공증, 구충, 구풍, 금창, 류머티즘, 보익, 사태, 식견육체, 요도염, 월경이상, 일사상, 지혈, 진통, 치통, 통리수도, 해수, 해열 종자 해바라기의 종자 2001년 10월 9일 채종 ⓒ 한국학술정보㈜  생육과정 해바라기 1987년 8월 22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해바라기 1989년 4월 25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해바라기 1991년 7월 5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해바라기 1993년 7월 15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해바라기 2000년 8월 16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해바라기 2003년 7월 17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해바라기 2011년 8월 10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해바라기 2012년 5월 23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해바라기 2012년 5월 23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겹꽃해바라기 2012년 8월 10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겹꽃해바라기 2012년 8월 10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해바라기 2012년 8월 10일 촬영 ⓒ 한국학술정보㈜  분류 국화과 꽃색 노란색 학명 Helianthus annuus L. 개화기 8월∼9월 목차 태양처럼 뜨거운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 꽃, 씨앗, 열매 구별하기 전해지는 이야기 이용방법 태양처럼 뜨거운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 아메리카산 한해살이로서 각지에서 심고 있으며 높이가 2m에 달하고 전체적으로 굳센 털이 났다. 잎은 어긋나며 잎자루가 길고 심장상 난형 또는 타원상 넓은 난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길이 10~30cm로서 가장자리에 큰 톱니가 있다. 해바라기 ⓒ 국립중앙과학관  꽃, 씨앗, 열매 꽃은 8~9월에 피며 지름 8~60cm 로서 옆을 향해 달리고, 가장자리의 설상화(꽃잎이 혀모양의 꽃)는 밝은 황색이며 중성화(암술과 수술이 없는 꽃)이고, 통상화(꽃잎이 서로 달라붙어 통 모양으로 생기고 끝만 조금 갈라진 꽃)는 갈색 또는 황색이며 양성화(암술 수술이 모두 있는 꽃)이고, 총포(꽃대의 끝에서 꽃의 아래 부분을 싸고 있는 비늘모양의 조각)는 반구형이며 포편은 뾰족한 달걀모양으로서 끝에 길고 부드러운 털이 있다. 씨는 달걀을 거꾸로 놓은 모양이고 흰색 또는 회색이며 흑색 줄이 있고 길이 9mm, 너비 4~8mm로서 끝부분을 제외하고는 매끈하다. 해바라기는 옆으로 향한 꽃이 햇빛이 오는 쪽을 향하고 있다. 해바라기 ⓒ 국립중앙과학관 . 구별하기 비슷한 식물로서 하늘바라기는 꽃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해바라기에 비해 꽃이 작다. 뚱딴지는 꽃의 크기가 중간 크기이며, 잎은 밑에서는 마주나기, 위에서는 어긋나기이며, 꽃은 하늘을 향하고 지하에 덩이줄기가 있다. 해바라기 ⓒ 국립중앙과학관  전해지는 이야기 그리스 어느 연못에 바다의 신의 딸 두 자매가 살았다. 그들에게는 해진 후부터 동틀 때까지만 연못 위에서 놀 수 있다는 규율이 있었다. 그러나 그 규율을 지키지 못하고 동이 트고 태양의 신 아폴로가 빛을 발하면서 그 황홀한 빛에 두 자매는 넋을 잃었다. 두 자매는 아폴로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언니는 동생이 규율을 어겼다고 말해 동생이 죄수로 갇혔다. 언니는 아폴로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하였으나 아폴로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챘다. 그녀는 며칠간 아폴로의 사랑을 애원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발이 땅에 뿌리박혀 한포기 꽃으로 변했는데 그 꽃이 바로 해바라기라고 한다. 해바라기 ⓒ 국립중앙과학관  이용방법 해바라기 씨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고급 불포화 지방산 많이 들어 있다. 옛 소련에서 기름용으로 특별히 개발한 품종들은 작은 씨가 검은색을 띠고 기름을 50% 정도 함유한다. 해바라기 기름은 세계에서 콩기름과 야자유 다음으로 중요한 식물성 기름이다. 해바라기의 씨와 줄기는 한약재로 쓰인다. 해바라기 씨 ⓒ 국립중앙과학관 =====================///   중앙 아메리카가 원산지이고 한국 전역에 널리 심고 있다. 키는 2~3m에 달하며 전체에 가늘고 억센 털이 있고 줄기는 곧게 선다. 큰 난형의 잎은 길이가 10~30㎝로서 어긋나는데 톱니가 있고 잎자루가 길다. 총포는 반구형이며 각각의 포편(苞片)은 달걀 모양의 피침형으로 가장자리에 억센 털이 많이 있다. 꽃은 8~9월경 한 방향을 향해 두상꽃차례를 이루는데 지름이 25㎝에 이른다. 꽃은 황색의 꽃잎이 길게 밖을 향해 뻗은 설상화와, 암술과 수술이 있으며 중앙 부위에 밀집되어 있는 암자색 또는 갈색의 통상화로 이루어져 있다. 열매는 2개의 능선이 있는 둥근 난형으로 길이가 1㎝ 내외이고 검은 줄무늬가 있다. 해바라기의 어원은 '꽃이 해를 향해 핀다'라는 뜻의 중국어 향일규(向日葵)에서 유래되었으며, 영어 이름 'sunflower'는 'helios'(태양)와 'anthos'(꽃)의 합성어인 속명 헬리안투스(Helianthus)를 번역한 것이다. 이 꽃은 현재 페루의 국화[國花]이자 미국 캔자스 주의 주화(州花)이다. 해바라기는 씨에 20~30%의 종자유가 포함되어 있어 이를 식용·비누원료·도료원료 등으로 사용한다. 또한 한방에서 구풍제·해열제로도 쓰인다. 해바라기의 품종은 관상용과 종자용으로 개발되어 있다. 특히 씨를 얻고자 러시아에서 많이 심고 있으며 유럽의 중부와 동부, 인도, 페루, 중국 북부에서도 많이 심는다.  
1366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해바라기 얼굴 댓글:  조회:3846  추천:0  2019-01-17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1938(추정). /윤동주     해바라기는 해가 뜨면서 얼굴을 들고 해가 지면서 고개를 숙입니다.. 해바라기는 해가 움직이는 대로 얼굴을 돌립니다. 늘 해를 바라본대서 해바라기입니다. 그리고 해바라기는 밝고 환한 얼굴입니다. 이 동시에서 누나는 해바라기와 같습니다. 아침 해가 뜨면 일어나 일터로 갑니다. 해바라기처럼 환하고 밝은 얼굴로 말입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누나는 피곤에 절인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것은 마치 해질 무렵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인 모습과 같습니다. 아마도 누나의 집은 무척 가난한가 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누나는 아침 일찍 돈벌러 일터로 나가야 합니다. 환하고 밝은 누나의 얼굴이 가난 때문에 풀 죽인 모습을 보면서 무척 안타깝습니다. 누나에 대한 고마움, 안타까움이 잘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 국화과 한해살이풀로 알려진 해바라기는 양지바른 곳에서 8~9월에 꽃이 피며, 10월에 열매가 익기 시작한다. '해바라기' 이름은 '해를 따라 돈다'는 의미로서 중국말의 '향일규(向日葵)'를 그대로 번역한 것에서 왔다. 태양의 이미지를 닮은 해바라기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후 유럽으로 전파되어 두상화에서 감각되는 것처럼 '태양의 꽃' 또는 '황금꽃'이라고 알려졌다. 활짝 핀 '해바라기 얼굴'은 아침을 시작하는 '누나의 얼굴'처럼 '해가 금방 뜨자/일터'로 가서 온종일 세상이라는 땡볕에 그을리고 있는 사이. 숭배와 기다림이라는 꽃말과 같이, 누군가는 그러한 사람을 목이 빠지라고 우러러 공경하며 기다린다. 저녁이면 해바라기 얼굴과 같이 '우리의 얼굴'도 세계로부터 숙어들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태양 아래 놓인 당신의 반복되는 일상도 '해바라기 법칙'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수심 가득한 당신의 얼굴에 수많은 씨앗을 품고 있지 않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 · 경기대 교수) =========================/// 누나! 이겨을에도   눈이가득이 왓슴니다.   흰봉투에 눈을 한줌였고 글씨도 쓰지말고 우표도 부치지말고 말숙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가요 누나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온다기에.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윤동주의 동시 ‘편지’에는 어디론가 멀리 떠난 누나에 대한 그리움이 잘 표현돼 있습니다. 윤동주 유고시집 에 실린 시 대부분에 창작 시점이 명기돼 있지만, ‘해바라기 얼굴’ ‘뀌뜨라미와 나와’ ‘애기의 새벽’ ‘햇빛・바람’ ‘반디불’ ‘둘 다’ ‘거짓부리’ ‘겨을’ 등 일부 동시는 연대 미상입니다. (소명출판 펴냄, 2009년)의 저자 권오만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3단계(1936.9~1940 전반)의 첫 무렵(1936.9~1937.4)에 “시대 인식을 기피하는 방법”으로 동시 제작이 집중됐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아마 ‘편지’도 이 시기에 쓰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기적으로 평양 숭실학교를 동맹 자퇴하고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해 다닐 때입니다. 그런데 윤동주에게는 누나가 없습니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부친 윤영석과 모친 김용 사이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으니까요. 4년 후 누이동생 혜원, 남동생 일주는 10년 터울로 태어났습니다. 막내 광주는 1933년생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그리움의 대상은 친누나가 아닌 셈입니다. 그렇다면 눈이 펑펑 내린 한겨울, 시인이 너무나 그리워한 누나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눈이 오지 않는 누나 가신 나라’는 도대체 어디일까요?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역시 연대 미상의 동시 ‘해바라기 얼굴’입니다. 시인은 해가 뜨자마자 일터로 간 누나가 종일 노동하다 돌아오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햇볕에 그을리며 누나가 일하는 동안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윤동주의 ‘누나’를 짐작할 수 있는 연관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누나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습니다. 누나는 먼 나라, 눈이 오지 않는 나라로 떠났습니다. 행방이 묘연한 누나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애달프기만 합니다.
1365    윤동주와 "귀뚜라미" 댓글:  조회:6450  추천:0  2019-01-14
분류 동물계(Animalia) 절지동물문(Arthropoda) 곤충강(Insecta) 메뚜기목(Orthoptera) 귀뚜라미과(Gryllidae) 성격 동물, 곤충 유형 동식물 학명 Velarifictorus aspersus borealis Gorochov 분야 과학/동물 요약 곤충강 귀뚜라미과의 곤충. 목차 개설 생태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현황 개설 절지동물문 메뚜기목에 속하는 귀뚜라미과는 긴꼬리류, 방울벌레류, 땅강아지 및 귀뚜라미들을 포함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약 900종이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40여 종이 알려져 있다. 학명은 Velarifictorus aspersus borealis Gorochov이다. 생태 체색은 흑갈색 또는 갈색이며, 몸 형태는 원통형이다. 머리는 둥글며, 한 쌍의 겹눈과 세 개의 홑눈을 가진다. 복부 끝에는 한 쌍의 미모가 길게 뻗어 있다. 흔히 ‘귀뚜라미’로 불리는 종은 근래 ‘탈귀뚜라미’란 국명으로 개칭되었는데, 몸색깔은 황갈색이며 머리는 앞가슴등판보다 폭이 넓고 둥글다. 몸길이는 15∼18㎜ 정도이다. 홑눈 사이의 가로띠 무늬가 선명하고 수컷머리에서 턱이 크게 돌출하여 탈을 쓴 것처럼 보인다. 암컷의 산란관은 짧은 편이다. 귀뚜라미는 연 1회 산란하며 불완전변태과정을 거쳐 늦여름에서 가을까지 성충시기를 보내다가 알 상태로 월동을 한다. 암컷은 땅속 또는 식물조직 내에 산란한다. 앞날개에 발음기를 가진 수컷은 이를 비벼 노래한다. 뒷날개는 막질로 이루어져 있으나 대부분 비행 능력이 없다. 잡식성이며, 밤에 주로 활동하는 야행성이다. 주로 다른 곤충 또는 식물을 먹고 산다. 서식지는 다양하지만 풀숲이나 돌밑, 덤불 등지에서 흔히 관찰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귀뚜라미는 식용으로 활용되는 생물자원이지만 가을을 대표하는 곤충으로 밤에 내는 소리를 외로움, 나그네의 설움, 아름다운 음악 등으로 묘사한 문학작품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많다. 또한, 전통적으로 한방에서 전통약재로 쓰였으며 애완곤충으로도 판매되고 있다. 귀뚜라미를 가을에 채집하여 끓는 물에 죽여 말려서 약재로 활용하였으며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방광괄약근 흥분작용 및 수뇨관(輸尿管) 완해(緩解)작용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귀뚜라미는 메뚜기[蝗]와 비슷하지만 작고, 칠과 같은 광택이 있으며 날개와 더듬이가 있다. 여름에 성장하여 가을이 된 뒤에 흙, 돌, 벽돌, 기와 밑에서 울기를 좋아하며 싸움을 좋아한다. 고기를 쌀알만큼씩 썰어서 영사(靈砂: 수은을 고아서 결정체로 만든 약제)와 섞어주면서 기르면 잘 싸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옛날 황제들이 즐겼다는 귀뚜라미 싸움이 일반인들에 퍼져 귀뚜라미 협회까지 결성돼 귀뚜라미 싸움을 즐긴다. 속담에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 “아는 법이 모진 바람벽 뚫고 나온 중방 밑 귀뚜라미” 등으로 유식한 듯 일에 나서는 사람을 일컫는 말도 있다. 현황 국내 전역에서 발견되며 세계적으로는 중국,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등 여러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귀뚜라미를 한시적 식품원료로 인정하였다. 쌍별귀뚜라미는 2016년 일반 식품원료로 인정돼 식품 제조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귀뚜라미 귀뚜라미는 귀뚜라미과에 딸린 곤충 무리이다. 전 세계에 3,000가지가 넘는 종류가 있다. 예로부터 노래하는 곤충으로 사람과 가깝다. 몸길이는 약 3mm에서 40mm까지 매우 다양하다. 생김새는 등과 배가 평평하여 땅 위에서 살기 알맞게 되어 있다. 몸 색깔은 흑갈색 따위의 갈색 계통이 많다. 청솔 귀뚜라미처럼 밝은 녹색도 있다. 더듬이는 몸보다 길며, 꼬리 끝에 산란관이 있다. 앞날개는 배보다 짧으며, 뒷날개는 퇴화하였다. 땅속에서 알로 겨울을 나다가 8~10월에 성충으로 나온다. 겹눈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더듬이는 실같이 길다.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길다. 수컷은 앞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낸다. 귀뚜라미 소리는 울 때, 자신의 영역을 주장할 때, 싸움을 할 때, 암컷을 유혹할 때 등 때에 따라 내는 소리가 각각 다르다. 대부분 땅 위나 사람이 사는 집에서 살지만 물에서 사는 것도 있다. 불완전 변태를 한다. 우리나라 · 중국 · 일본 등지에서 산다. ▶ 귀뚜라미의 종류 귀뚜라미의 종류 ⓒ (주)천재교육  울고 있는 왕귀뚜라미 ⓒ (주)천재교육  귀뚜라미 알 ⓒ (주)천재교육  알에서 깨어나는 귀뚜라미 ⓒ (주)천재교육     허물을 벗는 귀뚜라미 ⓒ (주)천재교육
1364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댓글:  조회:3405  추천:0  2019-01-14
요즘 동시, 어린이 마음 얼마나 담아내고 있나요 2017-05-05    이준관 시인 "어린이 목소리 흉내만…감동 주지 못해" 소파 방정환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소파 방정환(1899∼1931)은 1923년 5월1일 첫 번째 어린이날 행사 때 발표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방정환의 어린이 사랑은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한 데 있다. 월간 '어린이'를 창간해 아동문학의 길을 열고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유언을 남긴 방정환의 어린이 사랑 정신을 요즘 동시는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을까. 아동문학가인 이준관(68) 시인은 월간문학 5월호(통권 579호)에 실은 '어린이를 위한 동시문학의 길 찾기'에서 최근 동시가 어린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린이가 화자로 나오긴 하지만 정작 초점은 '엄마'나 '할머니'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시인은 "어린이들의 진정한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소망과 마음은 이렇거니 하고 동시인들이 머릿속으로 상정해서 쓴 까닭에 진정성이 부족하고 감동을 주지도 못한다"며 "어린이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지만 실상은 어른의 목소리일 따름"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동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동시집을 내서 서로 나눠 읽고 즐기는 어른들의 문학이 된 느낌도 든다"고도 했다. 아동문학가 故 임길택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인은 어린이들 생각과 느낌을 잘 살린 동시로 임길택(1952∼1997)의 '흔들리는 마음'과 윤동주(1917∼1945)의 '귀뚜라미와 나와'를 들었다. "공부를 않고/ 놀기만 한다고/ 아버지한테 매를 맞았다// 잠을 자려는데/ 아버지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으니/ 아버지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미워서/ 말도 안 할려고 했는데/ 맘이 자꾸만 흔들렸다" (임길택 '흔들리는 마음') "귀뚜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아무에게도 알으켜 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뚜라미와 나와/ 달 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윤동주 '귀뚜라미와 나와') 임길택은 강원도 산골마을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동시를 썼다. 시인은 "대부분 동시인들은 어린이들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어린이들의 생각과 마음과 생활을 잘 모른다"며 "의도적으로라도 어린이들을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생활과 심리를 눈여겨 세심하게 관찰하고 어린이들이 쓴 운문이나 산문도 관심 있게 읽어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1363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귀뚜라미와 나와 댓글:  조회:3662  추천:0  2019-01-14
                                       귀뚜라미와 나와   귀뚜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아무에게도 알으켜 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귀뚜라미와 나와 달 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윤동주(1917~1945)     가장 사랑을 받는 민족시인 윤동주는 순수한 동시를 쓴 동시인 이기도 했다.일제강점기 말기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순수한 동심을 잃지 않고 동시를 썼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동심을 노래하고 아이의 천진한 모습을 동시에 담았다. 그가 남긴 동시는 지금도 어린이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이 동시는 달 밝은 밤에 귀뚜라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심을 노래하고 있다. 외로워서일까, 쓸쓸해서일까. 우리는 가을이면 누군가와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달 밝은 밤이라면 더욱 그러할 터. 그러기에 이 동시 속 아이도 귀뚜라미와 이야기를 한다. 어디 이 아이뿐이겠는가. 우리 또한 밤새워 우는 귀뚜라미와 '아무에게도 알으켜 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아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터. 이 가을엔 동심으로 돌아가 달 밝은 밤에 귀뚜라미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1362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해빛, 바람 댓글:  조회:3386  추천:0  2019-01-13
  해빛 · 바람                    윤동주   손가락에 침 발라 쏘ㅡㄱ, 쏙, 쏙 장에 가는 엄마 내다보려 문풍지를 쏘ㅡㄱ, 쏙, 쏙   아침에 해빛이 반짝   손가락에 침 발라 쏘ㅡㄱ, 쏙, 쏙, 장에 가신 엄마 돌아오나 문풍지를 쏘ㅡㄱ, 쏙, 쏙   저녁에 바람이 솔솔. 1938(추정).  
1361    [그것이 알고싶다] - "상어가족"탄생기... 댓글:  조회:3748  추천:0  2019-01-13
[인터뷰] 유튜브에서 2억번 (2017년)튼 동요 '상어가족' 탄생기   정보라 |  2017/01/13      어릴 때 떠올리는 직업군은 두루뭉술하고 제한적이다. 대통령, 과학자, 연예인, 작가, 사업가 ...... 구체적이지가 않다. 과학자만 해도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등이 있고 여기에서 더 세분화하면 수십, 수백가지로 나뉜다. 작가도 라디오 작가, 시나리오 작가, 시인, 소설가, 작사가, 블로거 글을 게재하는 매체, 글의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불린다. 그렇지만 음악가를 꿈꾸던 아이가 자라 월급쟁이 직장인이 되어도 그 끼가 사라지지 않듯, 막연하던 장래희망은 어떤 형태로든 미래의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스마트스터디의 콘텐츠 팀에서 일하는 정유진 씨. 고등학교에 다닐 땐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피아노 독주회 포스터를 보면 짐작하겠지만, 피아니스트는 한껏 차려 입고 무대에서 곡을 연주한다. 하필이면 정유진 씨는 무대체질이 아니었다. 무대 울렁증이 있었다. 음악을 전공하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음악 대신 유아교육으로 전공을 바꿨다. 음악가의 삶과 멀어지는 듯했으나 그는 스마트스터디의 최대 히트 동요 ‘상어가족’ 제작에 참여했다. 상어가족의 영어 제목은 ‘baby shark’인데 2015년 11월 유튜브에 업로드된 이후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여러 언어를 합해 2억 번 넘게 재생됐다.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조회수 2억회를 넘었을 때 화제가 됐던 걸 떠올리면 어마한 수치다. (지금은 27억회가 넘는다) 이는 영어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버전 등 여러 버전을 모두 더해서 셌다. 네이버의 유아동 서비스 쥬니버에서는 업로드 반 년만에 1천만 회 재생됐다. 상어가족을 조회수로 소개하려니 영 맛이 안 난다. 이 노래는 들어봐야 그 진가를 안다. 동요답지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댄스 영상이 제작될 만큼 매력이 있다. 가사 대부분은 ‘뚜 루루 뚜루’라는 후렴구로 구성되었는데 아이부터 고등학생, 어른에게도 인기가 있다. 인기도는 유튜브에서 ‘상어가족 댄스’를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 상어가족은 곰 세마리보다 노랫말이 단순하다. 아기부터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가족 일원을 언급하고, 상어가 등장해 혼란스러운 바닷속 풍경을 묘사한다. ‘아기 상어 뚜 루루 뚜루 귀여운 뚜 루루 뚜루 바닷속 뚜루루 뚜루 아기 상어’ “팀에서 음원 콘텐츠 기획을 맡고 있어요. 작사와 작곡에 관여하고, 장르에 대해 의견을 내죠. 이 부분에선 어떤 악기가 등장하고, 소리를 키우면 좋겠다거나, 보컬 목소리는 어떻게 들리면 좋겠다, 또는 동요 속 의성어나 대사는 어느 성우가 맡아야 한다와 같은 내용이요.” 정유진 씨가 속한 팀은 대외적으로 콘텐츠 팀이라고 밝히는데 사내에서는 ‘쩐빵’이라고 부른다. 콘텐츠 기획과 개발을 한다. 상어가족은, 상어를 주제로 한 동요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에서부터 작곡과 작사, 녹음, 애니메이션 제작을 이 팀에서 해냈다. 이렇게 설명하니 아주 간단하게 느껴지는데 아이돌을 데뷔시키는 연예 기획사처럼 일하는 조직이다. 곡 콘셉트에 맞는 악기와 연주 기법을 결정하고, 계절에 맞춰 할로윈과 크리스마스 버전을 제작하고, 율동도 직접 개발한다. 이 팀이 회의할 때에는 팀원이 일어나 춤을 추고, 핸드폰을 들고 노래를 부른다는 목격담이 있다. 정유진 씨도 그랬다. “전 작곡을 전공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멜로디가 떠오르면 작곡가에게 불러드리면서 작업했죠.” 정유진 씨는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못이룬 한을 풀려 스마트스터디에 입사한 걸까. 그건 아니라며 이렇게 해석하는 걸 말렸다. 아동 가족을 공부하면서 전공과 관련한 실습을 하려고 삼성출판사에서 잠깐 일했고, 이 인연으로 이 출판사에 취업했다. 같은 건물에 있는 스마트스터디에서 음악과 관련된 일할 사람을 찾는단 말에 이직했다. 삼성출판사에서 동요 CD북 제작에 참여한 일도 음악에 대한 아쉬움을 키웠다. 상어가족은 정유진 씨가 제작에 참여한 여러 노래 중 하나다. 주제나 프로젝트마다 담당자가 매번 바뀌는데 정유진 씨는 동물 노래를 맡았다. 상어, 사자, 공룡, 돼지 ... 등이 주인공이었다. 모든 노래를 상어가족만큼 공들여 제작했다. 홀로 작업한 것은 아니고 이 주제의 노래 제작 과정에서만큼은 그가 리더였다. 콘텐츠 팀은 이렇게 작업마다 리더가 다르다. “어떤 곡이 사랑받을지 모르잖아요. 가수랑 비슷한 것 같아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런 주제, 저런 주제... 다양한 걸 시도하다가 콘텐츠 제작 시작하고 2년 만에 상어가족이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이 원하는 게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됐어요.” 동요지만 제작 과정은 꽤 복잡하다. 노래를 만들 때 유튜브 업로드를 염두한다. 가수로 따지면, 무대 콘셉트와 작곡, 작사를 동시에 하는 것에 견줄 수 있겠다. 노랫말은 영어로 먼저 쓴다. 그 다음에 한국어와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로 쓴다. 한국어로 만든 다음 번안하는 것보다 이 편이 수월하다. 녹음은 해당 언어의 원어민에게 맡긴다. 스페인어 버전은 미국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스페인계 사람에게, 중국어 버전은 상하이 어린이 합창단에게 맡겼다. 녹음한 파일은 한국으로 가져와 믹싱한다. 영상과 음악은 다양한 버전으로 만든다. 인형 버전, 율동 버전, 주인공에게 공룡 탈을 씌운 버전, EDM 버전, 1.5배속 버전 등 다양하다. 동요 제작을 연예 기획사처럼 하다 보니 제작팀은 아이디어가 샘솟듯 솟구쳐야 한다. 그런데 그 샘이 마르면? 정유진 씨가 경계하는 부분이다. “제겐 곳간이 있어요. 콘텐츠를 만들 때마다 냉장고에서 요리재료 꺼내듯 이곳에서 알맞은 걸 찾아요. 꺼내기만 하면 언젠간 고갈되기 때문에 채우려고 노력하죠. 전시회, 뮤지컬 감상도 하고, 음악은 가리지 않고 듣고요. 동요보다 팝이나 새로운 시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며 동요와 접목하는 방법을 연구해요.” 그래서인지 0~5세를 타깃으로 만든 노래인데 상어가족은 청소년층에서도 반응이 왔다. 어느 고등학교 축제에는 상어가족 노래에 맞춘 군무가 무대에 올랐다. 기획사 소속의 페이스북 유명인은 상어가족 율동을 창작해 음악에 맞춰 추는 모습을 업로드했다. 정유진 씨는 ‘못다 이룬 꿈을 뒤늦게 이루다’와 같은 식의 해석을 경계했다. 이보다는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주고,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평범한 말을 정유진 씨 덕분에 되새겼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대충을 보낸 나에게 올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편집자 주: 상어가족 노래의 저작권과 유래에 관하여 밝힙니다. 상어 가족을 주제로 한 노래는 전래동요처럼 지역과 나라마다 각기 다른 노랫말, 멜로디로 전해져왔고, 스마트스터디는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앞부분과 자체 멜로디를 삽입하여 새로운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1360    [그것이 알고싶다] - 동요 "아기상어"... 댓글:  조회:5098  추천:0  2019-01-13
전 세계가 푹 빠진 동요.. 빌보드 차트 오른 '아기상어 송' 임태우 기자 2019.01.13.  음성 기사 듣기   번역 설정   공유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아이가 있는 집이 아니더라도 이 노래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아기상어'라는 동요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아이들의 애국가라고 할 정도인데요,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어서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에까지 올랐습니다. 임태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뮤지컬 공연에서 '아기상어' 동요가 나오자 어린이들이 환호합니다. 반복되는 가사와 멜로디, 중독성 강한 후렴구가 특징입니다. 지난 2015년 국내 한 교육 업체가 북미권 구전 동요를 한국어로 편곡한 노래입니다. 귀여운 상어 캐릭터가 더해져 영상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강수영/경기도 광명시 : 음이 계속 반복적으로 뚜루뚜 그게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포인트인 것 같아요. 따라 하기 쉽고….] 유튜브에는 다양한 언어로 개작한 영상이 이어졌고 노래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아기상어를 부르며 춤추는 영상을 공유했습니다. 외국 방송들은 앞다퉈 열풍을 소개했습니다. [미국 CBS '인사이드 에디션' :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한국의 유튜브 채널에서 현재 16억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동요로, 무엇보다도 따라 하기 쉽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지난 8일에는 이 곡의 영어 버전이 빌보드 메인 차트 32위에 깜짝 등극했습니다. [김성수/문화평론가 : 빌보드 싱글차트 순위가 다양한 음원 중심의 소비가 반영이 되는 구조인데…. 정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 좋아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콘텐츠들로 만들어진 상황이어서 부모들이 더 빠져요, 나중에는.] 싸이나 방탄소년단 등 한국 가수의 노래가 아닌 동요가 빌보드 차트에 오른 건 처음입니다. (영상취재 : 박대영, 영상편집 : 장현기)  /임태우 기자 ===================///{"아기상어" 동요가 류행되는 리유, 분석} 토론토 스타는 이를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분석하면서, K-Pop 스타일의 어린이 유아 문화 트렌드라 언급하였다. 유튜브와 아이패드, 트위터, 인스타그램의 공유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유아 문화 영역에서도 세계화를 촉진하고 있지만, 핑크퐁 콘텐츠의 전 세계인을 사로잡는 독창성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했다. 현재 전 세계 유아들의 문화 유행은 교육적이고, 전통적인 스토리를 넘어서서 창의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 요소들의 결합이 필요하지만, 연령대가 낮을수록 부모들의 선택도 무시할 수 없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기 상어’의 노래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멜로디가 아니라 지금의 부모세대가 어린 시절, 어린이집과 유치원, 그리고 여름마다 야외에서 경험한 ‘캠프’에서 익숙하게 불리던 것이라는데 특이점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익숙한 스토리 전개와 구성과 주제는 부모에게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전 세계적인 유행 동요를 자신의 아이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의식이 결합한 것이 바로, 핑크퐁의 ‘아기 상어’라는 노래에 대한 캐네디언들 그리고 전 세계 부모와 아이들의 유행의 이유라고 분석하고 있다.   ==================///   아기 상어 뚜 루루 뚜루 귀여운 뚜 루루 뚜루 바닷속 뚜 루루 뚜루 아기 상어! 엄마 상어 뚜 루루 뚜루 어여쁜 뚜 루루 뚜루 바닷속 뚜 루루 뚜루 엄마 상어! 아빠 상어 뚜 루루 뚜루 힘이 센 뚜 루루 뚜루 바닷속 뚜 루루 뚜루 아빠 상어! 할머니 상어 뚜 루루 뚜루 자상한 뚜 루루 뚜루 바닷속 뚜 루루 뚜루 할머니 상어! 할아버지 상어 뚜 루루 뚜루 멋있는 뚜 루루 뚜루 바닷속 뚜 루루 뚜루 할아버지 상어! 우리는 뚜 루루 뚜루 바다의 뚜 루루 뚜루 사냥꾼 뚜 루루 뚜루 상어 가족!   상어다 뚜 루루 뚜루 도망쳐 뚜 루루 뚜루 도망쳐 뚜 루루 뚜루 숨자! 으악! 살았다 뚜 루루 뚜루 살았다 뚜 루루 뚜루 오늘도 뚜 루루 뚜루 살았다 휴! 신난다 뚜 루루 뚜루 신난다 뚜 루루 뚜루 춤을 춰 뚜 루루 뚜루 노래 끝! 오예! ================///   Baby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Baby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Baby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Baby shark! Mommy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Mommy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Mommy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Mommy shark! Daddy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Daddy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Daddy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Daddy shark! Grandma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Grandma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Grandma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Grandma shark! Grandpa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Grandpa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Grandpa shark, doo doo doo doo doo doo. Grandpa shark!   Let’s go hunt, doo doo doo doo doo doo. Let’s go hunt, doo doo doo doo doo doo. Let’s go hunt, doo doo doo doo doo doo. Let’s go hunt! Run away, doo doo doo doo doo doo. Run away, doo doo doo doo doo doo. Run away, doo doo doo doo doo doo. Run away! Safe at last, doo doo doo doo doo doo. Safe at last, doo doo doo doo doo doo. Safe at last, doo doo doo doo doo doo. Safe at last! It’s the end, doo doo doo doo doo doo. It’s the end, doo doo doo doo doo doo. It’s the end, doo doo doo doo doo doo. It’s the end! ====================///               핑크퐁 ‘아기상어’  =================/// ‘아기상어’의 원작자가 있는가? ‘상어가족’은 구전민요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구전되어 온 챈트(chant)다.  ‘아기상어’의 원작자라고 말하는 조니 온리(Johnny Only)도 자기 콘텐츠 밑에 이를 설명해 둔 내용이다. 챈트는 사전에는 구호나 성가로 번역되어 있는데, 연세대 응원 구호 ‘아카라카’ 등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기본 성격은 단어들을 기억하게 하는 일종의 말놀이로서, 핵심이 되는 단어들을 확장하면서 반복하는 구조로 가사가 형성되고, 이를 잘 기억하기 위해 특유의 리듬과 동작을 붙인다. 그래서 유아영어를 가르치는 곳에서는 흔히 챈트를 “노래와 달리 멜로디가 없고 단조로운 말로 반복되는 문구를 리듬에 맞춰 부르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우리도 예전에는 ‘곤지곤지 잼잼’과 같은 일종의 챈트로 말문을 틔우게 했다. 쉽게 말하자면 랩에 가까운 것이 챈트인 것이다. 물론 멜로디를 가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우리말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강세(accent)와 억양(intonation)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song'에서 사용되는 창의적인 멜로디를 의미하지 않는다. 즉 챈트에서의 멜로디는 강세와 억양을 강조하다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기에 단순한  음의 높낮이 전개만으로도 충분하며, 따라서 반복되는 주 단어가 같은 강세와 억양이 있다면 비슷한 선율로 다른 챈트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뜻이 없는 후렴구를 가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단어의 리듬이나 강세를 반복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선 특히나 리듬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런 챈트에 원작자가 있을까? 근래에 영어 교재를 만들면서 언어학자나 교사들이 새로운 챈트를 만들었고 이를 밝혀두었다면 원작자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기상어’의 경우는 원작자가 누군지 모르는 구전된 챈트이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조니 온리 역시 이 사실을 자신의 동영상 채널에 명확히 밝혀놓았다. 조니 온리를 원작자라고 한 것은 의도적인 왜곡이다. 정확한 팩트는 “‘아기상어’의 원작자는 없다”인 것이다. ///뉴시안 ======================/// [N초점] 美빌보드 메인차트 입성 '상어가족', 5大 궁금증풀이 Q&A   (서울=뉴스1) 황미현 기자 | 2019-01-11            '상어가족' 영상 캡처© News1 한국에서 편곡한 동요 '상어가족'이 미국 빌보드의 싱글 메인 차트인 핫100 차트에서 32위에 진입했다.  지난 9일(한국시간) 빌보드 차트가 공개한 최신(1월 12일자) 핫100 차트에 따르면 동요 '상어가족'(영문명 '베이비 샤크')이 32위에 진입했다.   한국 동요가 핫100 상위권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까지 국내 가수 중 싸이와 방탄소년단만이 핫 100 차트에서 50위권 안에 랭크된 점을 고려하면, '상어가족'의 세계적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상어가족'이 전 세계적 인기를 끌며 빌보드 차트까지 진입하면서, 해당 콘텐츠와 관련 있는 삼성출판사의 주식도 한동안 크게 오르는 등 국내 주식 시장도 들썩였다.  '상어가족'에 대한 다섯가지 궁금증을 Q&A로 풀어봤다. 핑크퐁 / 사진출처=핑크퐁 공식 홈페이지 Q. '상어가족'(영어명 '베이비 샤크')을 부른 핑크퐁은 누구인가요? A. 핑크퐁은 삼성출판사의 자회사인 스마트스터디가 제작한 브랜드이자 캐릭터입니다. 핑크퐁 공식 홈페이지 따르면 핑크퐁은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에서 모티브를 딴 핑크색 여우 캐릭터입니다. 긍정적이고 활력이 넘쳐 친구들을 즐겁게 만드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 핑크퐁이 부른 동요가 '상어가족'입니다.   Q. '상어가족'은 한국 오리지널 창작곡인가요? A. '상어가족'은 북미권의 구전동요 '베이비 샤크'를 핑크퐁에서 편곡해 한국어 가사로 재탄생시킨 동요입니다. 핑크퐁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기가 점차 상승, 한국에서 만든 창작곡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으나, 영미권의 구전동요를 리메이크한 노래입니다. '베이비 샤크'는 저작권이 소멸된 퍼블릭 도메인이기 때문에 편곡 과정에서 저작권 문제는 없습니다. Q. '상어가족' 조회수는 어느 정도인가요? A. 2015년 말 업로드 된 후 중독성 있는 멜로디 덕분에 인기가 급상승했습니다. 2016년 한 해 동안 국내 이용자가 가장 많이 본 유튜브 영상 1위에 올랐고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 동요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17년 8월 이후 두 달 동안에만 조회수가 5억건을 돌파했으며 현재 20억뷰를 돌파했습니다. Q. 세계적 인기 어느 정도인가요? A. '상어가족'은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6개 언어로 제작됐습니다. '상어가족'이 큰 인기를 끌자 핑크퐁에서도 캐럴버전, 핼러윈 버전, 공룡 버전, 국악 버전 등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돼 더욱 인기를 끌었습니다. 최다 시청 국가는 미국입니다. '상어가족'은 미국 유명 토크쇼 '엘렌쇼'와 제임스 코든의 '레이트 레이트쇼'에도 등장했을 정도로 특히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2위는 인도네시아, 3위가 한국 순일 정도로 '상어가족'의 해외 인기는 대단합니다. 이밖에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영국, 베트남, 멕시코, 태국, 캐나다 등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Q. '상어가족' 입소문 과정은 어땠나요? A. 영미권의 구전동요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멜로디가 알려져있는데다, 귀여운 상어 가족의 스토리와 야생 세계를 풍자적으로 담아내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관심까지 높였습니다. 또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상어가족'을 각종 프로그램 또는 콘서트에서 패러디하며 입소문을 냈습니다. 대표 K팝 걸그룹 중 한 팀인 레드벨벳이 콘서트에서 커버 곡 무대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 유튜브 15억뷰 인기 동요 애니메이션을 보는 ‘불편한 시선’   푸른 원색의 바닷속, 작은 물고기들이 놀고 있다. 커다란 그림자가 다가오자 물고기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노란 아기상어가 웃으면서 다가온다. “아기상어 뚜루루뚜루 귀여운 뚜루루뚜루 바닷속 뚜루루뚜루 아기상어”로 시작하는 동요가 들려온다. 곧 예쁜 눈을 가진 엄마상어, 힘이 세보이는 아빠상어, 안경 낀 할머니상어, 콧수염 난 할아버지상어가 합류한다. ‘바다의 사냥꾼’을 자처하는 상어가족은 작은 물고기들을 뒤쫓는다. 놀란 표정의 작은 물고기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상어가 들어올 수 없는 구조물 안으로 숨어 “살았다”고 외친다. 안심하고 구조물 밖으로 나와 춤추는 물고기들 뒤로 포크를 든 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상어가족이 다시 나타난다. 여기서 노래는 끝난다. 이후 작은 물고기들의 운명은 알 수 없다.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요 애니메이션 ‘핑크퐁 상어가족’ 내용이다. 노래 전체를 들어도 2분이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판본으로 변주되며 30분 가까이 시청할 수 있다. 국악 버전, 어린이 체조 버전, 크리스마스 버전은 물론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버전도 있다. ‘상어가족’은 뮤지컬로도 제작됐다.  ‘상어가족’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지난해 말로 유튜브 누적 조회수 15억회를 돌파했다. 반복 시청하는 영·유아가 많다는 뜻이다. 등·하원길 영·유아들이 ‘상어가족’이 재생되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2살 된 딸에게 ‘상어가족’을 보여준다는 주부 정선화씨는 “친숙한 가족이 등장하고, 핼러윈, 크리스마스 등 스토리 테마가 다양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정 안양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레~솔의 4도 음역대와 후크송이라 불리는 반복되는 멜로디, 돌림노래 형식으로 아이들의 집중도를 높이고 흥미를 유발한다”며 인기 요인을 짚어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상어가족’에는 기존 인기 동화, 동요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토끼, 다람쥐, 돼지가 아니라 상어라는 강력한 포식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동화작가이자 아동문학평론가인 김지은씨는 “본래 아동문학의 서사는 피식자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서 “그런데 ‘상어가족’의 중심 제재는 포획이며 서사는 포식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상어가족’의 인기가 드러내는 사회적 징후는 무엇인가.   ▶상어는 ‘갑’ 다른 물고기는 ‘을’…“커서 강자가 돼라”는 주문일까 ‘상어가족’에 대한 불편한 시선  ‘상어가족’은 노랫말에서 ‘우리는 상어가족’이라는 1인칭 주어를 사용한다. 어린이 감상자들은 자연스럽게 상어가족과 자신의 시선을 동일시하면서 포획의 기쁨을 누린다. 김지은 작가는 “발달단계상 어린이들은 놀이문화 속에서 대장이 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지만, 대다수 어린이 서사에서 바닷속 최상위 포식자인 상어와 어린이를 동일시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힘이 약하고 체격도 작으며 정치경제적 권리를 갖지 못한 스스로를 약자로 인식한다. 그래서 전통적 동화에서는 토끼, 다람쥐, 개미 같은 약자가 어린이의 대행자로 등장해왔다. 작은 물고기가 힘을 모아 힘이 센 상어를 물리치는 것이 익숙한 서사다. 웹진 브런치 이용자 탈해는 “평온한 가족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상어가족’ 아래 박해 받는 피해자”를 말하며 “ ‘오늘도 살았다’는 가사에서 물고기들이 겪는 일상적인 폭력”이 나타난다는 리뷰를 올렸다. 어른들의 잣대를 들이대면, 상어와 물고기의 구도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관계의 그림자다. 실제로는 ‘을’인 작은 물고기 같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상어가족’을 보여주며 내 아이만큼은 상어 같은 ‘갑’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상어가족은 각자 색이 다르고 개성 있는 존재가 분명한데 (쫓기는) 물고기는 모두 색이 똑같죠. 그들은 가족이 아니에요. 그냥 무리죠. 상어가족은 여유 있고 강하며 가족애도 끈끈한 계층을 연상시키죠. 우리 사회가 현대화되었지만 퇴행적으로 봉건성을 띠는 면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재벌가의 족벌경영이라든가.”(김지은)  어린이용으로 제작됐지만 ‘중독’을 호소하는 성인이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어가족’. 국악 버전, 크리스마스 버전, 밸런타인데이 버전(왼쪽부터)은 물론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버전도 나와 있다. 상어가족에 대한 우려는 강자중심 혐오 문화의 확산과도 연관된다. 우리 사회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반작용처럼 혐오의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것도 김 작가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그는 “최근 초딩, 맘충, 노키즈존 등 아이와 엄마가 노골적인 비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며 “사회에서 비하나 멸시를 당할수록 ‘센 사람 편에 있으면 좀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의 애니메이션이나 그림책은 약자를 배려하고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혐오를 배격하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추세다. 픽사 스튜디오의 에는 채식주의 상어 브루스가 등장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의 주인공인 토끼 경찰 주디는 육식동물 동료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애들 노래’인데 너무 심각하게 보는 건 아닐까. 한 현직 교사는 “생태계 먹이사슬이라는 진실을 미리 보여줘서 나쁠 거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상어가족’ 제작사인 스마트스터디의 김민석 대표는 “세상에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비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취지에 대해서는 “ ‘뽀로로’가 펭귄인 것에 의도가 있겠느냐”며 “상어는 공룡, 자동차 등이 등장하는 핑크퐁의 2500편 넘는 시리즈 중 하나”라고 답했다.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이 같은 논의가 오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라며 “디즈니의 공주 캐릭터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해왔듯이 콘텐츠가 유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고 문제의식을 가진 부모가 늘어났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엔 ‘육아 필수템’ 아이들엔 ‘사회화 장소’…유튜브를 어쩌나   ‘국민 동요’의 파급력   어른 ‘상업적 시선’ 따른 콘텐츠들, 어린이를 소비자로 키워   영·유아 때 영상매체 접해…‘1인 미디어’ 사회적 논의 필요   ‘상어가족’이 화제의 중심이 된 것은 ‘국민 동요’라는 왕관의 무게 탓도 크다. ‘국민 동요’의 파급력은 뉴미디어 환경 속에서 가속도가 붙는다.  ■ 애니메이션도 주류 아동서사로 인식을  주부 이유진씨는 두 아들에게 ‘어여쁜 엄마상어’를 ‘힘이 센 엄마상어’로 바꿔서 불러준다고 했다. ‘상어가족’이 보수적인 가족, 젠더 정체성을 답습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는 ‘아빠 곰은 뚱뚱하고 엄마 곰은 날씬하다’는 가사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동요 ‘곰 세 마리’와 다를 바 없다. 반면 정현선 경인교대 교수는 “아기상어가 외동이로 등장하는 지극히 현대적인 가족의 모습이 투영된 텍스트로 볼 수 있다”며 “엄마상어는 분홍색, 아빠상어는 파란색인 점은 아쉽지만 아기상어는 남녀 구분이 분명치 않은 노란색을 사용해 성역할 고정관념 해소 차원에서는 긍정적으로 읽힐 수 있다”고 봤다.  를 쓴 박유신 교사는 “아이들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적 연구는 하지만, 그것을 본 아이들이 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적다”는 점이 어린이 콘텐츠 제작자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도 남아 위주의 스토리 전개 및 여아 캐릭터의 성역할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장르적 관습을 이유로 개선 없이 답습되고 있다.  “그림책은 문학의 영역이라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지만, 애니메이션은 소비 대상이 어린이임에도 극중 여아 팬티가 노출돼도 좋다는 식의 허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도 주류 아동서사로 분류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논의가 필요합니다.”(박유신)  ■ 뉴미디어와 아이들  조회수가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유튜브의 세계는 보다 노골적이다. 어른들의 문법을 그대로 옮긴 어린이 콘텐츠가 성황을 이룬다. 유튜버가 신상품의 포장을 개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른바 언박싱(unboxing) 콘텐츠는 캐리와 장난감친구들, 토이푸딩 등과 같은 어린이 채널에 응용돼 인기를 끌고 있다. 김지은 작가는 “어린이를 상시적인 소비자로 위치시키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고민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 ‘카트 시선’이라고 하죠. 요즘 유아들은 통원버스와 대형마트의 카트를 오가며 생활합니다. 아이들의 시선이 닿는 지점에는 상점의 간판, 진열대의 제품이 노출됩니다. 상업화된 세계에 최적화된 소비자로 키워지고 있죠.”(김지은)  그동안의 연구는 영·유아의 미디어 노출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미 국내 영·유아의 38%가 만 11개월 미만부터 영상매체를 접한다. 2014년 영·유아 자녀에게 영상매체를 틀어준 부모의 동기에 관한 연구를 보면, ‘아이가 시청하는 동안 다하지 못한 일(가사, 휴식 등)을 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1순위로 나타났다. 바쁜 양육자에게 ‘뽀로로’는 없어서는 안될 ‘육아 필수템’이다.( 34권)  문제는 활용법이다. 2012년 김민정 안양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유아들은 허용된 영상물 등급보다 높은 수준의 애니메이션에 노출되고 있었다. 만 4세 여아가 선호하는 의 영상등급은 ‘7세 미만 시청불가’, 만 5세가 선호하는 는 ‘12세 미만 시청불가’였다. ‘국민 애니메이션’이라고 무조건 믿고 맡겨서는 안되는 이유다. 2011년 미국에서는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폰지밥’이 아이들의 자기 통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논란이 됐다. 무해한 바다 해면동물로 평화를 사랑하는 ‘스폰지밥’이 악명을 얻은 이유는 속도감에 있었다. 영상물의 지나치게 빠른 전개 속도가 아이들이 생각하고 집중할 시간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영·유아 혼자 미디어를 시청하는 것이 언어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도 있다. 김 교수는 “아이들에게는 부모나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직접 경험이 의미 있다”며 “ ‘상어가족’ 노랫말 중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아이와 함께 개사해서 부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정현선 교수 역시 “아이가 미디어로부터 받을 영향이 궁금하다면 눈높이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지상파 MBC가 아프리카TV의 포맷을 벤치마킹해 을 방영할 정도로 1인미디어는 대세가 됐다. 박유신 교사는 “어른들은 크리에이터(1인미디어 제작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아이들은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유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유튜브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흥하는’ 콘텐츠 중에는 질이 낮은 것이 많다는 데 있다. 박 교사는 “과거 아이들이 동네 형에게 나쁜 짓을 배웠다면, 지금은 1인미디어를 통해 ‘글로벌하게’ 사회화되고 있다”고 비유했다. 김아미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인미디어에 대한 기성세대의 보호주의적 관점은 1980~1990년대 TV에 대해 가졌던 미디어 담론적 공포와 다르지 않다”며 “일방적인 규제나 교육보다는 만드는 사람이나 배포하는 플랫폼의 가이드라인과 자정작용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유어테이트(www.yourateit.eu)는 제작자 스스로 자신의 콘텐츠를 점검해볼 수 있는 플랫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조작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10대에 접어들었다.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에 대한 고민은 검열과 규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 작은 창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는지 살피는 데서 출발한다. 이제 ‘상어가족’이 무엇을 뜻하는지 천천히 바라볼 때다. /장회정 기자 ⓒ 경향신문 & 경향닷컴,
1359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애기의 새벽 댓글:  조회:3487  추천:0  2019-01-13
  윤동주 /애기의 새벽 우리 집에는 닭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 달라 울어서 새벽이 된다.  우리 집에는 시계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 달라 보채서 새벽이 된다.      @@ 1930년대 식민지의 밤은 깊었다. 집 나간 자식 생각에 새벽 닭이 울었던 시절이다. 그런 닭도 없는 가난이었고 시계도 없는 맨 살림이었다. 다만 아기만이 넉넉지 못한 젖 먹고 자고 나서 울면 그것이 새벽이었다. 오늘날은 너나 없이 시계에 묻혀 살고 시간의 노예가 되었다. 시간만 있고 인간은 어디 가고 없는 것인가.                                          ================================/// @@ 닭도 없고 시계도 없던 가난했던 시절에는 애기의 울음이 새벽을 깨웠습니다. 삶은 고달팠지만 사람 사는 멋은 있었습니다. 닭이 있으니 물질적으로 풍족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닭 소리에 놀라 일어나고 닭을 돌보느라 하루 종일 정신 없이 삽니다. 시계가 있어 새벽을 깨우지만, 사람들은 하루 종일 시계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시계의 똑딱거리는 경고 소리에 쫓겨 살며, 자신도 시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도 바쁘게 살아가는 시간에, 젖 달라며 보채는 아기 울음 소리가 귓가에 울리며 사람 사는 향취를 추억 속에서 끌어냅니다. 
1358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거짓부리 댓글:  조회:3447  추천:0  2019-01-12
  윤동주 /거짓부리     똑 똑 똑 문 좀 열어주세요 하루밤 자고 갑시다. 밤은 깊고 날은 추운데 거 누굴까? 문 열어주고 보니 검둥이의 꼬리가 거짓부리한걸.   꼬기요 꼬기요 달걀 낳았다. 간난아 어서 집어 가거라 간난이 뛰어가 보니 달걀은 무슨 달걀 고놈의 암탉이 대낮에 새빨간 거짓부리한걸.       이 동시는 기르는 개와 닭으로 인해 오해를 한 두 가지 삽화를 표현하였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똑 똑 똑’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그네가 ‘문 좀 열어주세요. 하루밤 자고 갑시다.’란 소리인 것 같다. 그래서 화자는 ‘밤은 깊고 날은 추운데 거 누굴까?’ 생각하면서 문 열어주고 보니 나그네는 없고 검둥이가 문가에 있다. 검둥이의 꼬리가 문을 두드리면서 난 소리이다. 화자는 검둥이가 거짓부리한 것을 알았다. ‘꼬기요 꼬기요’ 하고 암탉이 운다. ‘달걀 낳았다. 간난아 어서 집어 가거라.’하고 암탉이 말하는 것 같다. 간난이 닭이 알을 나았나 살피러 뛰어가 보니 달걀이 없다. 암탉이 대낮에 거짓부리한 것이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시는 2연으로 구성되었고 각 연은 8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1연과 2연은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똑 똑 똑 / 문 좀 열어주세요 / 하루밤 자고 갑시다.’는 화자가 들은 문 두드리는 소리를 해석한 것이다. ‘똑 똑 똑’은 2연 1행의 ‘꼬기요 꼬기요’와 음성상징어로 대를 이루었다. ‘문 좀 열어주세요 / 하루밤 자고 갑시다.’는 화자의 귀에 실제로 들린 말이 아니라 화자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밤은 깊고 날은 추운데 / 거 누굴까?’는 화자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러 나가면서 밤 깊고 추운 날에 찾아올 사람이 없을 것인데 누가 찾아온 것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생각을 쓴 것이다.   ‘문 열어주고 보니 / 검둥이의 꼬리가 / 거짓부리한걸.’는 문을 열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서 기르는 개인 검둥이의 꼬리가 문을 치면서 낸 소리에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다. 이를 ‘검둥이의 꼬리가 / 거짓부리’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거짓부리’는 사전에 없는 단어로 거짓된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2연의 4-8행과 대를 이룬다.   ‘꼬기요 꼬기요 / 달걀 낳았다. / 간난아 어서 집어 가거라’은 1연 1-3행과 대를 이루는 것으로 1행은 음성상징어이고 2-3행은 이 음성상징어를 ‘간난’이가 해석한 내용으로 실제로 닭이 말한 것이 아니다.   ‘간난이 뛰어가 보니 / 달걀은 무슨 달걀 / 고놈의 암탉이 / 대낮에 새빨간 / 거짓부리한걸.’는 간난이가 닭이 알을 낳았다고 생각하고 뛰어갔으나 달걀이 없는 것을 보고 암탉이 속였다고 하는 것이다. ‘새빨간’은 강조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거짓부리한걸.’은 1연과 리듬의 통일성을 갖게 쓴 것이다. ///전한성       =====================/// 짧은 감상  거짓부리는 참으로 고약한 것이지요. 이 시에서의 거짓부리는 특히나 선량하고 순박한 사람들에게 행사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하룻밤 자고 가겠다는 과객이 안타까워 문을 열어줬더니 고작 검둥개가 장난을 치질 않나, 꼬꼬댁 울어 대며 달걀 낳았다고 하기에 달려가 보니 세상에 닭이 사람을 갖고 장난을 치질 않나, 정말 기막힐 노릇이죠?  그럼 이쯤에서 우리들이 거짓부리를 한 몹쓸 것들이 되어보기도 하고, 또 거짓부리를 당한 억울한 사람들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시에 다가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익살스러우면서도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을 듯한 이 시, 여러분은 어때요?  ======================/// '동시 시인`으로서의 윤동주. 지금까지 거의 다뤄진 적 없는 동시인`조개껍질` `병아리` `개` `만돌이``거짓부리`등을 읽으며, 윤동주가 왜 동시 시인???. 그의 전체 작품 중 30퍼센트 가까이를 동시로 분류할 수 있으며, 동시를 발표할 때는 `동주(東舟)` 혹은 `동주(童舟)`라는 특별한 필명을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1357    윤동주와 "반디불" 댓글:  조회:4759  추천:0  2019-01-12
  분류 동물계(Animalia) 절지동물문(Arthropoda) 곤충강(Insecta) 딱정벌레목(Coleoptera) 반딧불이과(Lampyridae) 성격 동물, 곤충 유형 동식물 분야 과학/동물 요약 딱정벌레목 반딧불이과의 곤충. 목차 개설 생태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현황 개설 딱정벌레목 반딧불이과는 흔히 ‘개똥벌레’로도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약 1,900종이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애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등 8종이 기록되어 있다. 생태 몸길이는 4∼20㎜ 정도이다. 체색은 노란색인 것, 검고 바깥가장자리가 노란색인 것, 앞가슴등판이 주황색인 것 등이 있다. 배마디 끝은 흐린 노랑 또는 주황색이다. 날개는 2쌍이며, 날 때에는 뒷날개만 사용한다. 늦반딧불이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가장 큰 종으로 가을에 성충으로 나타나며 눈이 가슴 아래에 위치한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배 끝의 마디들에서 나온다. 그 부분에 발광세포가 있으며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을 원료로 노란색 또는 황록색의 빛이 만들어진다. 반딧불이는 암수 모두 빛을 내며 대부분 밤에 활동한다. 낮에는 습기가 있는 곳에 숨어 지내며 밤이 되면 빛을 내어 짝을 찾는다. 종에 따라 불빛을 내는 파장, 강도 등 차이를 보이며 위협신호 및 위급상황을 알리는 신호로서도 불빛을 낸다. 알, 애벌레 시기에도 일부 빛을 내며 99%가 빛이고 1% 정도가 열로 빠져나가므로 뜨겁지 않은 냉광이다. 암컷은 풀 밑, 이끼 또는 습한 흙 등에 산란한다. 성충은 대부분 먹이를 먹지 않는다. 애반딧불이 등을 제외한 유충은 대부분 육지에서 생활하며 밤에 활동한다. 먹이로 다슬기, 달팽이 등 연체동물을 날카로운 큰 턱으로 물고 소화액을 주입하여 빨아먹는다. 애반딧불이의 성충시기는 약 15일 정도이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깜깜한 밤하늘에 작은 불빛을 내며 나는 반딧불이는 호기심의 대상이었으며 각종 동화 등 이야깃거리의 소재로 등장한다. 중국에서는 반딧불이를 여러 마리 잡아 비단 보자기에 싸서 방안에서 침실등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옛 고사성어인 ‘형설지공(螢雪之功)’은 반딧불이와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공을 쌓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반딧불이는 형화충(螢火蟲)이라 하여 중국 등지에서는 건조시켜 한약재로 쓰였으며 소아화창상(小兒火瘡傷), 열기(熱氣), 청맹(靑盲) 등의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황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하천 등지의 각종 오염과 서식지 파괴로 인하여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전라북도 무주 일대 반딧불이와 그 먹이 서식지는 1982년 11월 20일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되어 있다. =============================///   반딧불이 또는 개똥벌레(문화어: 불벌레, Firefly)는 딱정벌레목의 하위 과 가운데 하나이다. 약 1,900종의 곤충이 이 무리에 드는데, 대부분 생물 발광이라는 생리 과정을 통해 배에서 빛을 발한다. 목차 1어원 2생태 3하위 분류 4반딧불이 축제 5관련 항목 6같이 보기 7 8 어원[편집] 과거 문헌들에서는 반딧불이를 찾을 수 없으며 반되, 반도, 반듸, 반대, 반디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명칭인 반딧불이는 과거 명칭인 반디에 '불'을 합친 뒤 접미사 '-이'를 붙인 형태이다. 생태[편집] 성충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 종류도 있고, 꽃의 화분이나 꽃꿀을 먹는 종류도 있다. 유충은 다슬기나 달팽이, 다른 곤충을 먹는다. 몸길이는 4~30 밀리미터 정도이고 몸은 약간 긴 타원형이다. 몸빛은 전체가 노란색인 것, 날개 끝이 검은 것, 검고 바깥가장자리가 노란색인 것, 앞가슴등판이 주황색인 것 등이 있다. 발광기가 있는 배의 뒤쪽 마디는 엷은 노랑 또는 엷은 붉은색이다. 대부분 초저녁에 활동하며, 노란 빛을 내면서 풀밭 위를 조용히 날아다닌다. 날개는 두 쌍이며, 날 때에는 뒷날개만 사용한다. 발광기는 배의 뒤쪽 제2마디 앞뒤에 있다. 발광기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통해 빛을 내며 열이 없다. 이 빛을 신호로 보내 짝을 찾는데, 종류에 따라 신호가 정해져 있다. 성충은 보통 거의 먹지 않고, 암컷은 풀의 뿌리 곁이나 이끼 또는 습한 흙 위나 흙 속 등에 알을 낳는다. 알은 일반적으로 황백색이며 공모양이고, 종류에 따라서는 암컷의 몸 속에 있을 때부터 발광하는 것이 발견된다. 유충은 일부를 제외하고 육생이며, 낮에는 숲 속의 낙엽 밑이나 돌 밑 등에 숨고 밤에 활동한다. 주로 다슬기, 달팽이 등 조개류를 날카로운 큰 턱으로 물고, 큰 턱의 작은 홈으로 소화액을 주입하여 다슬기나 달팽이 등을 마취시킨 다음, 액체 모양으로 만들어 빨아먹는다. 종류에 따라서는 드물게 지렁이나 불가사리 등을 공격하는 것도 있다. 성충이 발광하는 종류는 유충도 발광하며 보통 제8마디에 한 쌍의 발광기가 있는데, 성충이 거의 빛나지 않는 검정늦반딧불이 등 낮에 활동하는 종류에도 유충이 빛나는 것이 많다. 일반적으로 야행성 종류는 주행성에 비해 눈이 크며 촉각이 짧은 경향이 있다. 단일종으로서의 반딧불이와 운문산반딧불이, 애반딧불이의 유충이 수생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배의 각 마디 양쪽에 둘로 갈라진 기관아가미를 가지며 주로 다슬기 등 담수 고둥을 먹는다. 속칭 물반딧불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수생 유충이며, 성장하면 땅 위로 올라와 흙 속에 작은 집을 짓고 번데기가 된다. 수생인 반딧불이는 알에서 성충까지 보통 1년, 때로는 2년이 걸린다. 성충 기간은 10~15일 정도이다. 어른벌레뿐만 아니라 알, 애벌레, 번데기도 빛을 낸다. 빛을 내는 원리는 루시페린이 루시페라아제에 의해서 산소와 반응해 일어나는 것이다. 빛은 보통 노란색 또는 황록색이며, 파장은 500∼600nm(나노미터)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하천의 농약오염과 급속한 도시화 등으로 서식지가 파괴되어 절멸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무주 일원 반딧불이와 그 먹이 서식지가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늦반딧불이 하위 분류[편집] Cyphonocerinae 반딧불이아과 (Lampyrinae) Luciolinae Ototetrinae (논란 중) Photurinae 아과 분류가 불확실(incertae sedis)한 하위 속 반딧불이 축제[편집] 전라북도 무주군에서는 매년 6월 초 애반딧불이 출현 시기에 맞춰 반딧불이 축제가 열린다. 관련 항목[편집]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 파파리반딧불이[1] 꽃반딧불이 같이 보기[편집] 무주 일원 반딧불이와 그 먹이 서식지 홍반디 홍날개 병대벌레 ===========================///   반딧불이   고사성어 ‘형설지공’은 가난 때문에 불을 밝힐 기름이 없는 진(晉)나라 사람 차윤(車胤)이 반딧불이를 잡아 그 빛으로 책을 비춰 읽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당장의 여건이 좋지 않아도 의지가 굳은 사람에게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 고사성어는 환경을 탓하지 말라는 교훈적인 얘기일 뿐이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자들은 이 얘기에서 언뜻 허무맹랑해 보이는 ‘반딧불이를 모아 그 빛을 이용했다’는 내용에 흥미를 가진다.반딧불이는 오랫동안 여름날 아이들의 놀이 도구요, 낭만의 대상이며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교훈을 주는 존재였다. 수많은 시와 소설, 노래가 반딧불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서정을 노래했다.개똥벌레라고도 불리는 반딧불이는 자기 몸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곤충이다. 일본에서는 ‘호따루’로 불리며, 영어로는 ‘파이어플라이(firefly) 즉 빛을 내는 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북극과 남극을 제외한 전세계에 1,900여 종의 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늦반딧불이’, ‘애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등 6종류가 서식한다.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반딧불은 사랑을 위한 신호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반딧불이의 성비는 보통 수컷과 암컷이 50:1로 쟁탈전이 치열한데 암컷이 빛을 내 위치를 알리면 수컷은 날아가 빛을 밝히며 구애하는 것이다. 반딧불이의 구애는 성충이 된 후 2~3일 후부터 시작된다. 빛은 배에 있는 발광세포의 ‘루시페린(Luciferin)’이 산화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반딧불은 대개 500~600um(마이크로미터)의 황색 또는 황록색의 파장을 갖지만 빛의 세기와 간격은 종에 따라 다르고 온도의 영향을 받는다.  반딧불의 밝기는 보통 한 마리가 3룩스로 이론상 80마리를 모으면 쪽 당 20자가 인쇄된 천자문을 읽을 수 있고, 200마리를 모으면 신문을 읽을 수 있는 밝기가 된다. 하지만 반딧불은 동시에 반짝이지 않기 때문에 여러 마리를 잡아도 고사성어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책을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반딧불의 특징 중 하나는 빛을 내지만 뜨겁지는 않다는데 있다. 보통 전구는 전기의 10%만을 빛으로 바꾸고 나머지는 열로 발산한다. 이에 비해 반딧불의 효율은 98%에 이른다. 이 차가운 고효율의 화학전구는 게다가 바람이 불거나 물에 닿아도 꺼지지 않는다. 이상적인 빛인 것이다.  이러한 반딧불의 성격은 현대 과학, 특히 유전자 연구에 기여한 바가 크다. 반딧불이의 발광유전자는 루시퍼라제라는 유전자인데 이 루시퍼라제 유전자를 누에 등 다른 곤충의 세포주에 이식하면, 유전자를 이식받은 곤충 세포주가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발광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집어넣어 각종 유해 세균을 검출하는 데도 쓰인다. 몇 주일 동안 박테리아를 배양하는 대신 발광유전자가 삽입된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면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여부를 몇 시간 만에 빛의 밝기로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자생종인 ‘늦반딧불이’는 외국의 것보다 상대적으로 빛이 세고 큰 발광기관을 가지고 있어 활용도가 더욱 높다.  반딧불이는 장수하늘소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곤충이다. 예전엔 누구나 어린 시절 추억 속의 곤충으로 친밀감을 느꼈지만, 이제는 책에나 나오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반딧불이는 청정지역에서만 살고, 환경에 민감한 곤충이기 때문에 밤새 환히 켜진 가로등과 차량의 불빛으로 가득찬 오염된 도시속에선 살지 못한다. 과학의 발전이라는 면에서나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측면에서나 반딧불이의 생태를 지키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마침 우리 아이들에게 반딧불이의 아름다움과 반딧불이의 소중함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바로 늦반딧불이 서식지인 무주에서 해마다 열리는 반딧불이 축제이다. 올해는 8월 20일부터 28일까지 열릴 예정인데 반딧불이 관찰체험과 생태관 운영 등 어린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풍성하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반딧불이를 아이들과 함께 직접 관찰하면서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이야기 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글:과학향기 편집부) ==================/// 개똥벌레가 만드는 신비한 불빛은 서로의 짝을 찾기 위해 암컷과 수컷이 보내는 신호다. 개똥벌레는 루시페린이라는 발광물질과 루시페라아제라는 발광효소가 들어있는 특수 세포를 만드는데, 여기에 산소가 공급되면 아데노신삼인산이라는 물질이 생긴다. 이 물질이 루시페라아제와 결합하면 불안정한 물질이 되는데, 이것이 안정한 물질로 바뀌는 과정에서 빛을 낸다. 불을 켜고 끄는 원리는 반딧불이의 발광체와 맞붙어 있는 미토콘드리아가 산소를 사용할 때와 멈출 때를 조절하는 것. 산화질소가 이 둘 사이를 조절해 불을 켜고 끄는 스위치의 역할을 한다. ===========================///   딱정벌레목의 한 과. 이 과의 곤충을 개똥벌레라고도 한다. 전세계에 약 2000종이 알려져 있고, 특히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열대지역에 그 종류가 많다.  반딧불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발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거의 반짝이지 않는 종이 많다.   반딧불이가 저마다 독특한 빛을 낼 수 있는 것은 산화질소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메드포드의 터프츠대학 연구 팀이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하면서, 이로써 스스로 빛을 통제하면서 여름 밤 하늘을 환상적인 불빛으로 수놓는 반딧불이의 신비가 풀렸다고 밝혔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짝을 짓기 위한 신호로 200여 종의 반딧불이가 각기 다른 빛을 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딧불이의 발광도 다른 생물의 발광과 마찬가지로 루시페린이 루시페라아제의 작용으로 산소와 반응하여 일어나지만, 아데노신삼인산(ATP)과 마그네슘이온이 필요하다는 점이 다른 생물과 다르다. 빛의 색은 보통 노랑·황록색·귤색이며 파장은 500∼700μm 정도인데, 주로 루시페라아제의 종류로 색이 결정된다는 것이 미국의 반딧불이에서 밝혀졌다. 또한 반딧불이의 빛은 열을 거의 동반하지 않는 효율적인 <냉광(冷光)>이며 이것에 관여하는 물질은 수용성이므로, 건조한 반딧불이의 사체는 빛나지 않으나 물에 담그면 다시 발광한다.   성충의 발광기는 종류에 따라 다른데 기본적으로는 외표에 투명한 키틴충, 그 안쪽에 큰 발광세포층, 그 속에 요산염 과립을 함유한 희고 불투명한 반사세포층이 있다. 발광세포층에는 신경과 기관의 말단이 들어가 있으며, 빛의 점멸은 뇌에서 조절되고 기관 말단의 개폐로 공기의 공급이 가감된다고 짐작된다. 반딧불이는 1분 동안에 70∼80회 점멸하며, 단순한 발광기를 가진 늦반딧불이는 지속적으로 빛난다. 일반적으로 유충·번데기의 발광은 지속적이다. 성충의 발광기세포는 유충기의 지방체(脂肪體)에 유래한다고 하며, 유충의 발광기를 제거해도 성충에서는 발광기가 생긴다고 한다. 발광이 교미를 위한 암·수의 신호라는 것은 이전부터 짐작되어 왔는데 수컷이 암컷의 빛에 유혹되고 암컷은 수컷의 빛에 반응하여 발광한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북아메리카산인 어떤 종의 암컷은 다른종과 유사한 발광으로 그 수컷을 유혹하여 잡아 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동남아시아나 뉴기니섬에는 특정 나무에 무수히 많은 같은 종의 반딧불이가 동시에 명멸(明滅)을 반복하는 것이 알려져 있는데, 이것도 성행동과 관련이 있다고 짐작된다. 또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발광유형을 나타내는 것도 있다. 주행성에서 발광이 미약하거나 미확인종에서는, 성페로몬이 암·수 사이의 유인에 중요한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 '반딧불의 원리가 궁금합니다.' - 네이버 지식iN)     ======================///   반딧불이는 배마디 아래쪽에 발광기가 있는 딱정벌레   반딧불이는 절지동물문(門)의 곤충강(綱), 딱정벌레목(目), 반딧불이과(科)의 곤충으로 보통 말하는 갖춘탈바꿈 하는 딱정벌레(beetle)인데, 성충(자란벌레), 알, 유충(애벌레), 번데기 등 모두가 빛을 낸다. 성체의 몸길이는 12∼18mm이고, 몸 빛깔은 검은색이며 앞가슴등판은 귤빛이 도는 붉은색이고, 몸은 거칠고 딱딱한 외골격으로 덮였으며, 배마디 아래 끝에 옅은 노란색(담황색) 빛을 내는 발광기(light-emitting organ)가 있다. 다른 곤충처럼 암컷 등치가 수컷보다 좀 크다. 반딧불이를 ‘개똥벌레’ ‘반디’ ‘반딧벌레’ ‘반딧불’이라 부르며,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는 8종으로 기록되어있으나 이제 와 실제로 채집이 되는 것은 기껏 애반딧불이, 파파라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 4종뿐이라는데 나머지는 어디로 갔나? 반딧불이의 발광기는 배마디 끝에 있다. 반딧불이의 아랫배의 끄트머리 두세째 마디에 특별히 분화한 발광기관이 있고, 거기에서 발광물질인 루시페린(luciferin)단백질이 산소(O2)와 결합하여 산화루시페린(oxyluciferin)이 되면서 빛을 내는데, 이때 반드시 루시페라제(luciferase)라는 효소, 마그네슘이온(magnesium ions)과 에이티피(ATP)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발광 마디에는 산소 공급을 넉넉히 하기 위해 기관(air tube)이 무척 발달하였다. 반딧불이의 빛은 차가운 빛 그리고 백열전구에서는 고작 전기에너지의 10% 정도가 가시광선으로 바뀌고 나머지는 열로 빠져나가는데 비해 생물발광(bioluminescence)은 에너지전환효율이 아주 높아서 90%가 가시광선으로 바뀌기에 열이 거의 없는 냉광(冷光, cold light)이다. 참 신비로운 일이다. 이런 차가운 빛에는 자외선이나 적외선이 들어있지 않으며,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파장이 510~670 나노미터(nm, nanometer)로 옅은 노랑 또는 황록색에 가깝다. 잽싸게 이런 발광원리를 생물공학(biotechnology,BT)에 이미 널리 응용하고 있으니, 반딧불이의 발광(루시페린)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집어넣어 각종 유해(有害)세균을 빠르게 검출하는 데도 쓴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반딧불 - 반딧불이가 내는 빛 (생물산책)  
1356    리상화 / 반디불 댓글:  조회:3107  추천:0  2019-01-12
보아라, 거기! 아아니, 또 여기 까마득한 저문 바다 등대와 같이 짙어 가는 밤하늘에 별 낱과 같이 켜졌다 꺼졌다 깜박이는 반딧불. 아, 철없이 뒤따라 잡으려 마라. 장미꽃 향내와 함꼐 듣기만 하여라. 아낙네의 예쁨과 함께 맡기만 하여라. //시 /반딧불  / 이상화 반딧불  
1355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반디불 댓글:  조회:3377  추천:0  2019-01-11
                               반디불  /윤동주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쪼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그믐달 반디불은 부서진 달쪼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쪼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맑은 영혼의 시심으로 우리 민족은 물론 일본의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는 윤동주 시인. 그가 본격적인 시를 쓰기에 앞서 여러 편의 동시를 쓰고 발표도 했다고 한다. 윤동주 동시집 『산울림』이 출간되어 그의 동시를 반갑게 읽었다. 동시「반딧불」은 윤동주의 시「또 다른 고향」의 어투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여름날 그믐밤의 반딧불이 어둠 속을 날아다니는 풍경을 3연 10행으로 짧게 노래한 이 동시는 간단하다. 그러나 1연과 3연이 단순 반복으로 된 이 동시가 갖는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두 번이나 반복된 “달 조각을 주우러/숲으로 가자”는 것이 시의 핵심적인 내용이지만, 시 창작의 시발(始發)은 “그믐밤 반딧불은/부서진 달 조각”이라고 본 2연에 있다. 사물을 새롭게 보는 데서 모든 창작의 첫 출발이 이루어진다. 한 달의 마지막 날인 그믐밤은 달이 없어 깜깜한 밤이다. 깜깜한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이니 동무들아 저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가자고 시적 화자는 노래한다. 달 없어 깜깜한 그믐밤의 이면적(裏面的) 의미는 무얼까? 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가자, 가자,”는 윤동주 시인의 외침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일제 식민지 시대 순결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그리하여 끝내 민족의 식민지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여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외롭게 죽어간 윤동주의 삶과 연관지어 이 시를 자꾸 읽게 된다.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식민의 시대에 순결한 삶을 지키려했던 젊은 영혼의 몸부림으로 남은 그의 시편들은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솟아난 별이다. -이종암(시인)   ///경북매일신문
1354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만돌이 댓글:  조회:3128  추천:0  2019-01-11
  윤동주 /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보대 있는 데서 돌짜기 다섯 개를 주웠읍니다.   전보대를 겨누고 돌 첫개를 뿌렸읍니다. ---딱--- 두개째 뿌렸읍니다. ---아뿔사--- 세 개째 뿌렸읍니다. ---딱--- 네 개째 뿌렸읍니다. ---아뿔사--- 다섯 개째 뿌렸읍니다. ---딱---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받았을까요     이 동시는 공부하기 싫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이 잘 표현된 동시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돌이가 내일 시험을 앞두고 시험공부를 안 하고 놀고 싶어서 돌멩이 다섯 개로 전봇대를 맞추는 것으로 다음날 시험을 찍었을 때에 정답을 맞추는 비율과 동일시하는 생각으로 돌멩이를 다섯 개 던져서 3개를 맞추자 다음날 시험에 나오는 다섯 문제 중 세 문제를 맞추어 육십 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공을 차러 가는 상황을 화자가 보고 그 다음날 시험에서 만돌이가 전날 생각대로 육십 점을 받았을까? 아니면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냈을까를 궁금해 하는 문제의 답을 독자에게 묻는 내용이다. ///전한성 ========================/// 이 동시는 시험을 본다는데도 공부하기가 싫은 어린 소년의 요행 심리가 유머러스하고 노련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윤동주가 중학생(21세) 시절에 쓰여진 것이라네여.  무거운 주제의 윤동주만 생각하다 이 동시 끝부분을 읽다보면 그의 장난스러움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1353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오줌싸개지도 댓글:  조회:3429  추천:0  2019-01-09
[동시 100주년 대표 동시] 오줌싸개 지도 윤 동 주 / 동생 기죽이지 않으려는 형의 마음 전병호(시인·아동 문학가) 빨랫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는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 싸서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내 동생’이 요에다 지도를 그렸어요. 요를 빨랫줄에 내다 널었으니, 얼마나 창피할까요? 동네 사람들이 오며 가며 다 보겠네요. “오줌싸개래요, 오줌싸개.” 어쩌면 온 동네 아이들이 이렇게 동생을 놀릴지도 모릅니다. 이 시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형입니다. 시 속에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형의 입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쓰고 있지요. 형은 동생이 오줌 싼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야단치거나 놀리고 싶었을까요? 아닙니다. 형은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죽지 않게 하려고 애씁니다.  엄마가 별나라에 계시다고 하니 오래 전에 돌아가셨나 봅니다. 동생은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을까요? 또 아빠는 돈 벌러 만주 땅에 가셨다고 해요. 살림이 얼마나 어려우면 아빠는 어린 형제를 남겨두고 그 먼 곳까지 가셨을까요?  혹시 아빠가 독립 운동 하러 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당시 만주 땅은 ‘돈 벌러’가는 곳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독립 운동하러 가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동안 형은 아빠 대신 동생을 돌보았겠지요. 그런 형이기에 지난 밤에 동생이 엄마ㆍ아빠가 보고 싶어 오줌을 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보고 싶기는 형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말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이 시를 쓴 1936년은 우리 민족의 주권을 빼앗은 일본이 전쟁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릴 때였어요. 고아나 다름없던 형제는 핍박받던 우리 어린이들의 모습이지요. 오줌 싼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는 형의 마음은 곧 어려운 삶을 이어가던 그 당시 우리 어린이들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윤동주 시인의 따듯한 마음이고요. 윤동주 시인은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민족 시인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동시는 티 하나 없이 맑은 동심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 스며있지요. 나라를 빼앗겼다는 자각은 독립 의지를 기르게 해주었습니다. 윤동주(1917~1945) : 북간도에서 태어났으며, 독립 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1945년 감옥에서 숨졌습니다. 유고 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습니다.   //////////////////////////////////////////////////////////////// 동생이 오줌싼 요를 보고 지은 동시이다.  화자는 ‘빨래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를 보고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라는 것을 알고 동생이 오줌을 싸 만든 지도가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아니면 ‘돈 벌러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생각하고 있다.   동생이 ‘요에다’ 오줌을 싸는 것을 보면 동생은 나이가 어린 것 같다.  ‘요’는 ‘사람이 앉거나 누울 때 바닥에 까는 침구의 하나’이다.  옛날 ‘요’는 솜을 넣고 만들어 오줌을 싸도 빨 수가 없어 말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줌에 젖은 요를  햇빛으로 말릴려고 ‘빨래줄에 걸’어 논다.  그러면 누런 오줌 자국이 생기는데 그 모습이 마치 지도와 같아서 ‘지도’를 그렀다고 하는 것이다.  화자는 동생이 만든 ‘요에다 그린 지도’를 보고 동생을 놀리거나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지난 밤에 내 동생’이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를 잊지 못하고 그린 지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엄마가 ‘별나라’에 계신다고 하는 것을 보면 화자의 엄마는 죽은 것 같다.  동생이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오줌을 싸서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을 나타낸 것일 가능성을 생각한다.  아니면 ‘아빠’가 보고 싶어 ‘아빠’가 ‘돈 벌러간’ ‘만주땅 지’도를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린 동생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만주에 가 있어 집에는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자라고 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집에 없는 부모의 사랑을 꿈에서라도 충족하고 싶은  어린 동생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요’에 오줌을 싸도 놀리거나 나무라기보다는 부모의 사랑을 그리는 동생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화자가 동생의 마음을 짐작하는 이면에는 화자의 마음에도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돈 벌러’ ‘만주땅’에 갔다는 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담고 있다.  의식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린 자식을 집에 두고  먼 만주땅으로 돈을 벌러가야 하는  아빠를 통하여 당시의 어려운 삶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는 화자가 동생이 오줌 싼 요가 빨래줄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동생이 지난 밤에 돌아가신 엄마와 돈 벌러 먼 만주 땅에 간 아빠를 보고 싶은 마음이  표출된 것으로 보는 내용이다.  ///전한성 =========================///   이 시의 화자는 동생이 지난 밤에 잠자다 오줌을 싼 요를 말리기 위해 빨래줄에 걸어 논 요에 오줌자국을 보고 돌아가셔서 별 나라에 계시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그리워서 오줌을 싼 것인가? 아니면 돈 벌러 만주 땅으로 간 아빠가 보고 싶어서 오줌을 싼 것인가? 생각한다. 화자는 동생이 오줌을 싼 것을 꾸짖거나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부모가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따뜻한 시선으로 동생을 감싸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부모가 부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 만주땅’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담고 있다. 먼 만주 땅으로 어린 자식들을 놔두고 돈을 벌러 갈 정도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의 집은 만주 용정이고 이 시를 쓸 당시에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던 상황이므로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본 시대를 반영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 ///전한성   /////////////////////////////////////////////////////////////////////// 오줌싸개 지도  - 윤동주  빨래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시집 ꡔ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ꡕ, 1948)    이 시는 윤동주가  20세이던 1937년 1월에 썼다고 알려진 동시(童詩)이다. 작품의 뒷 배경으로 나타나는 비극적 현실 상황은 어린 나이 때부터의 투철했던 시인의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선경 후정(先景後情)의 2연 구성으로 된 이 시는 일제의 잔혹한 수탈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어느 가정의 비극사를 어린이 화자의 눈과 입을 통해 간결하게 보여 주고 있다. 표면적 의미로만 보면 작품 속의 어린 형제들에겐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돈 벌러 만주로 갔다. 현실의 불행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어린 화자는 어느 날 아침, 동생이 요에다 그린 ‘오줌싸개 지도’를 빨래줄에 널면서 그것은 간밤에 동생이, 죽은 엄마가 가 있는 별나라나 또는 아빠가 돈 벌러간 만주 땅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 장난스러운 상상 속에는 우리 민족의 불행했던 역사의 한 단면이 나타나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게 만들고 있다.  ////////////////////////////////////////////////////////////  해설  이 시는 비록 간단한 동시이지만 일제 시대에 우리 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불행을 어린 화자를 통해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 속에 등장하는 화자의 부모님은 모두 집에 계시지 않다.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궁핍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어린 자식들을 남겨둔 채 만주에 가셨다. 아빠가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는 상황이라 힘든데 어려운 살림에 동생 돌보기도 수월치 않다. 그런데 어제는 동생이 이불에 오줌가지 싼 것이다. 오줌 싼 이불을 빨래 줄에 걸면서 화자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 동생이 싼 오줌 자국이 부모님 계신 곳의 지도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떻게 보면 귀여운 상상일 수도 있겠으나, 당시의 어려운 생활상이 알게 모르게 녹아 있어 처연한 슬픔까지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 _ 도움말  동시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런데 식민지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순진한 아이의 마음에도 드리워져 있음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시적 자아의 유년시절은 더 이상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죽음과 가난과 궁핍이 있는 우울한 시대 현실이 유년의 공간에 스며들어 있다. 순진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꿈에 가본 엄마 계신 / 별나라',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 만주땅'이라는 우울한 현실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화해할 수 없는 현실에 차츰 눈을 떠가는 것. 이것도 세상을 배워가는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가 아닌가.       
1352    우리의 시랑송도 늘 생활속과 함께라면... 댓글:  조회:2911  추천:0  2019-01-09
"새해도 어려운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눈보라 몰아치는 자드락길을 걸어야 하는 날 있으리라 꽃 피었다 순식간에 낙화로 흩어지는 날 있으리라 오해의 화살이 맨살에 날아와 꽂히거나  비난의 날에 베어 비통해 하는 저녁도 있으리라 길이 시작되는 곳에 서서 흙먼지 먼저 덮어쓰기도 하리라 그때마다 부디 나무들처럼 잘 견디기를  그때마다 내일 아침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하기를 두려운 밤이 고요한 새벽으로 이어지기를  그대도 나도 기원하자." (도종환의 시 '새해' 중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시무식에서 신년사 대신 시(詩)를 낭송해 직원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3일 교육부에 따르면 유 장관은 전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시무식 행사에서 차분하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인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시 '새해'를 읊었다. 유 장관은 도 장관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활동을 같이 했으며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부처 새해 시무식에서 시를 읽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교육부에 오래 몸 담은 한 인사도 "역대 장관 가운데 시무식에서 시를 낭송한 건 유 장관이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스스로 시 낭송 아이디어를 낸 유 장관이 해를 넘긴 사립유치원 사태를 비롯해 고교 무상교육, 고교학점제 등 다양한 교육 현안을 처리해 나가기에 앞서 스스로 각오를 다지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유 장관은 이날 이미 배포된 신년사 대신 행사에 참석한 직원들에게 당부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유 장관은 "교육부는 국민 삶에 직접 다가가는 민생 정책 부처"라며 "더 솔선수범해 학생·청년·학부모·교직원·일반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많이 발굴해 달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한만큼 국민의 삶이 편안해지고 미래세대가 또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며 "오직 국민만 보며 최선을 다한다면 국민이 가장 큰 격려자가 돼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한 사무관은 "시 낭송은 틀에 박힌 신년사보다 식상하지 않고 참신했다"고 평했다.    
1351    [작문써클선생님께] - "시랑송"을 어떻게 할가ㅠ... 댓글:  조회:3280  추천:0  2019-01-09
  분야 문학       학예회에서 시낭송을 하기로 했어요. 평소 국어책 읽듯이 연습하니 뭔가 밍밍하고 재미없는 느낌이 들어요. 시낭송을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북멘토  시를 잘 읽는 네 가지 방법 사랑의 설렘을 표현한 시는 기쁨으로 가득하지만, 이별의 슬픔을 표현한 시는 아주 슬퍼요. 시 속에는 기쁨과 슬픔, 외로움과 즐거움 같은 정서가 담겨 있어요. 그래서 시를 낭송할 때는 뉴스를 전달하는 아나운서처럼 차분하게 또박또박 읽는 것이 아니라 시의 느낌을 잘 살려 내야 청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자, 그럼 시를 잘 읽는 방법에 대해 알아볼까요? 반복되는 표현을 살려서 시에서 되풀이되는 말과 일정하게 반복되는 글자 수를 찾아보세요. 시에는 반복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해요. 반복되는 표현은 시에 리듬감을 줘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게 해요. 글자 수가 반복되는 부분은 끊어 읽는 것이 좋아요. 끊어 읽으면 박자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시낭송할 때는 반복되는 말이 주는 운율을 살려 노래하듯 읽도록 해요. 재미있는 표현을 찾아서 시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찾아보도록 해요. 재밌는 특징을 잘 살려 읽으면 시가 마음에 바짝 와 닿지요. 예컨대 의성어나 의태어는 말속에 운율이 살아 있기도 하고 표현하는 대상의 개성을 실감나게 전달해요. 낭송할 때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잘 표현한다면 시의 느낌을 더욱 생생하고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어요. 마음속으로 깊게 음미하며 시의 느낌을 살려 읽으려면 먼저 시를 잘 이해해야겠죠. 시를 이해하는 특별한 비법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다만 한 편의 시라도 느긋하게 여러 번 읽으면서 자기의 경험과 다양한 상상력을 연결시켜 읽다 보면 그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지요. 시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작고 사소한 소재, 이를테면 코스모스 · 자갈 · 나무 · 새로부터도 특별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지요. 그것은 대상에 대한 오랜 관찰과 애정에서 얻어지지요. 시를 읽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그냥 휙 읽어 내려가면 큰 감흥을 느낄 수 없어요. 천천히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시를 느끼고 마음속에 담아야만 감동을 느낄 수 있고, 더 나아가 내가 느낀 감동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요 장면이나 분위기를 떠올리며 시를 여러 번 읽으면서 내용을 파악하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습이 있어요. 시의 장면과 분위기를 생각하면 더 실감나게 읽을 수 있겠죠? 이제부터는 시의 리듬, 표현, 장면을 생각하며 낭송해 보도록 해요.
1350    윤동주와 "참새" 댓글:  조회:3711  추천:0  2019-01-08
  분류 참새목>참새과 서식지 도시, 농촌 등 마을 주변 먹이 잡식성(꽃의 꿀, 곤충, 벼 이삭, 씨앗 등) 크기 약 10~15cm 학명 Passer montanus 수명 약 5~6년 목차 특징 번식정보 구별하기(동정 포인트) ‘참새 방앗간’ 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해로운 새인가, 이로운 새인가? 특징 • 부리는 짧고 단단해서 곡식을 쪼아 먹기에 알맞다. • 꽁지깃은 날 때 방향을 잡는 역할을 한다. • 여름에는 해로운 곤충을 잡아먹어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만, 가을에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 모래와 물을 이용해 목욕하는 것을 좋아한다. 부리로 물을 쪼아 몸에 바르기도 하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등 목욕을 통해 몸에 붙어 있는 진드기, 먼지, 비듬 등을 털어낸다. • 두 발로 뛰면서 땅 위에 내려와 먹이를 찾거나 농작물의 알곡을 먹는다. • 한쪽 눈으로 먹이를 찾아 낸 다음 양쪽 눈을 사용해 먹이를 보며 쪼아 먹는다. • 번식이 끝나고 가을이 되면 무리를 이루어 집단으로 겨울을 난다. • 참새는 산림성 조류를 관찰할 때, 발견한 새의 크기를 비교하는 ‘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하여 ‘자새’라고도 불린다. 번식정보 • 인가의 건물 틈에 마른 식물의 뿌리를 이용하여 둥지를 만들고, 내부에 동물의 털을 깐다. • 한배에 낳는 알의 수는 5~7개이다. 알을 품는 기간은 12일이다. 새끼는 부화 후 약 14일 후에 둥지를 떠나며, 약 10일간 어미로부터 먹이를 공급 받는다. • 새끼를 키우는 어미새는 둥지에서 200m 이상 멀리 날아가지 않으며, 하루에 600회 이상 먹이를 나르고 새끼가 자랄수록 그 횟수는 줄어든다. 구별하기(동정 포인트) 참새 ⓒ 국립중앙과학관 • 암컷과 수컷의 생김새는 동일하다. • 등은 갈색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다. 목뒤에는 흰색 가로줄이 있고 날개에는 두 개의 흰색 띠가 있다. 배는 회색이다. 겨울에는 부리 아랫부분에 노란빛이 나타난다. • 어린 새는 어른 새가 될 때까지 부리의 기부가 노란색이다. • 흰색 바탕의 뺨에 검은색 반원의 점이 있어 섬참새와 구별된다. ‘참새 방앗간’ 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참새는 잡식성으로 계절에 따라 다양한 먹이를 섭취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먹이들로 인해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추운 겨울에 자연에서 먹이를 구하는 것은 야생동물에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참새에게도 겨울을 나는 일은 생존과 연결되는 일이며, 겨울을 나는 방법으로 사람들의 집 주변 방앗간에 모여들어 벼 이삭과 볍씨를 먹으며 배를 채우고 추위를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특히 가을부터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특성 때문에 겨울철에도 방앗간 주변으로 참새가 가득 몰려들어 시끄럽게 지저귀는 것을 보고 유래된 말이 ‘참새 방앗간’인 것이다. 연관된 속담으로는 “눈치가 참새 방앗간 찾기다.”가 있으며, 이것은 “눈치가 상당히 빠르다.”라는 뜻이다. 해로운 새인가, 이로운 새인가? 옛날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기가 좋아하는 버찌를 참새가 먹어치우는 것에 화가 나서 참새를 모조리 잡아들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두해가 지나자 벚나무에 해충이 생겨 벚나무의 겨울눈뿐만 아니라 겨우 돋은 잎마저 먹어치워 나무가 형편없게 되었다. 결국 참새의 역할을 새로이 알게 된 대왕은 참새를 보호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사해(四害) 추방 운동’, 즉 네 가지 해로운 것을 몰아내는 운동으로써 쥐, 참새, 파리, 모기를 전멸시키는 운동을 온 국민이 펼쳐 나갔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잡아들인 참새들을 손수레에 실어 온 나라를 돌면서 사람들의 사기를 진작하는데 쓰기도 했다. 중국은 이 운동을 통하여 1967년까지 사해를 뿌리 뽑을 방침을 정하고 적극적인 구제를 실시했지만, 참새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논밭에는 해충이 더욱 극성을 부려 흉작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렸다. 중국인들은 뒤 늦게 참새의 이로움을 알게 되었고, 이로써 참새는 사해라는 불명예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참새는 언제나 ‘해로운 새인가, 아니면 이로운 새인가?’라는 논쟁의 쟁점이 되어 왔지만 실제로 참새의 먹이 조사를 해 보면 그렇게 해로운 새가 아님을 알 수 있답니다. 참새 ⓒ 국립중앙과학관 참새 ⓒ 국립중앙과학관 참새 ⓒ 국립중앙과학관 참새 ⓒ 국립중앙과학관  ====================///   유럽참새|참새 ⓒ WIKIMEDIA COMMONS (David Friel) | cc-by 몸길이는 약 14cm이며, 머리는 짙은 갈색, 등은 갈색이고 검은 세로줄 무늬가 있다. 날개에는 가는 2줄의 흰띠가 있다. 얼굴은 희고 이우와 턱밑은 검다. 암수가 같은 색을 띤다. 어린새는 전체 색깔이 흐리고 뺨의 검은색 얼룩무늬도 불확실하다. 성조의 배는 흐린 흰색이다. 크게 '짹, 짹' 운다. 마을, 시골, 도시의 공원, 농촌 등지에서 서식한다. 나무에 난 구멍, 인공새집, 벽의 틈 등에 둥지를 만들며 황갈색에 갈색 반점이 있는 알을 4~8개 낳는다. 구대륙 북반구의 유럽과 아시아의 거의 전지역에 걸쳐 서식하는 텃새이다. 아무르 지역, 우수리 지역, 중국 동북지방 및 한국에서 번식한다. 한국에서는 도시와 시골의 어디에서나 번식하며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   개설 학명은 Passer montanus dybowskii DOMANIEWSKI이다. 참새는 유라시아대륙에 널리 번식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전역에서 번식하는 가장 흔한 텃새이며 사냥새이다. 머리는 자색을 띤 갈색이고, 등은 갈색바탕에 흑색 가로무늬가 있으며, 날개에는 가는 두 가닥의 흰 띠가 있다. 얼굴은 희고 귀깃과 턱 밑은 흰색이다. 암수 같은 빛깔이다. 지붕처마 밑, 건물 틈새, 콘크리트 전주 꼭대기 등 인공건축물이나 가공물뿐만 아니라 인공새집과 다른 새가 버린 둥지, 예를 들면 까치집과 같은 것도 곧잘 이용하여 번식한다. 생태 마른 풀과 심지어 비닐 등 인공물도 이용하여 둥지를 틀고, 2∼9월에 한 배에 4∼8개의 알을 낳고, 12∼14일간 포란한 다음, 13∼14일간의 육추(알에서 깐 새끼)를 키움기간을 지나면, 새끼들은 둥지를 떠난다. 여러 쌍이 인접해서 새끼를 치기도 한다. 번식기인 여름에는 곤충도 적지 않게 잡아먹지만, 계절의 흐름에 따라 식물질이 주식물이 되며, 주로 풀씨를 먹는다. 그러나 낟알 특히 유숙기에는 벼를 먹어 적지 않은 피해를 준다. 번식기 이외에는 무리생활을 하며, 밤에는 늙은 미루나무나 대나무숲과 같은 큰 나무에 잠자리를 정하고 수백·수천 마리가 떼를 지어 모여드는데, 이들은 대개 어린 새들이다. 어미새는 번식하였던 처마 밑이나 건물 틈새, 인공새집 등의 장소에서 각기 한 마리씩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1년에 3회까지 번식을 한다. 유럽참새의 경우, 한 배에 평균 13. 7개를 낳는다. 어린 참새가 둥지를 떠난 이후 인접무리로 옮겨가는 범위는 3㎢이다. 참새는 일령(日齡)이 10일 이후 둥지를 떠날 때까지의 새끼 체중은 23g이고 어미새는 22∼26g이므로, 하루의 취식량을 체중의 5분의 1만 잡아도 약 4∼5g의 낟알이나 풀씨 또는 벌레를 먹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벼의 유숙기와 성숙기인 약 100일 동안에 먹는 벼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참새는 사냥새이므로 사냥이 허가되는 날로부터 포획할 수 있으며, 금렵기간에도 농작물에 피해가 극심할 때에는 지방장관이 유해조류로 구제(驅除)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유해조류의 구제와 수렵과는 목적과 뜻이 다르다. 유해조류의 구제란 일정한 지역에서 일정한 기간에 일정한 수량을 구제하는 것을 말한다. 지구상에는 19종의 참새가 알려져 있으나 우리 나라에는 참새와 섬참새의 2종이 살고 있을 뿐이다. 섬참새는 울릉도와 제주도 한라산에서 흔히 눈에 뜨일 뿐 내륙에서는 겨울 한때 동해안 포항이나 남해연안 도서에 상륙한 무리가 가끔 목격될 따름이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참새는 ≪물명고 物名考≫에 따르면 한자어로 작(雀)이 표준어였고 와작(瓦雀)·빈작(賓雀)·가빈(嘉賓)이라고도 하였다. 특히 늙어서 무늬가 있는 것은 마작(麻雀), 어려서 입이 황색인 것은 황작(黃雀)이라 하였다. ≪규합총서 閨閤叢書≫에는 ‘진쵸’를 참새라 하였는데 진쵸는 진추(眞隹)이니 참새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방언에는 밤주리새이·밥주리가 있다. 이 참새는 겨울철, 특히 납일(臘日:한 해에 지은 농사나 그 밖의 일을 여러 신에게 고하는 제사일, 동지 뒤의 셋째 未日)에 많이 잡아 구워 먹어서 납향절식의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특히, 함경남도 갑산에서는 추운 겨울이 되면 말총으로 만든 올가미나 덫으로 참새를 잡아 독안에 모아 두었다가 납일에 구워먹었다. ≪규합총서≫에는 “참새는 10월 후 정월까지 먹을 수 있고 나머지는 먹지 못한다. 독한 벌레를 먹으며 둥지에 깐 새끼들은 어미가 잡히면 굶주려 죽는다. 새고기는 장을 꺼릴 뿐 아니라 맛이 또한 좋지 못하니 굽거나 전을 지져도 소금기름에 한다.”고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 금부 중품에는 참새의 알·뇌·머리피의 약효가 기록되어 있다. ≪동의보감≫에는 참새의 고기·뇌·머리피·알과 수컷의 똥의 기(氣)와 미(味), 그리고 약효를 소개하였는데, 고기와 알은 쉽게 말해서 정력제이고, 뇌는 귀머거리를 주치하고, 머리피는 작맹증(雀盲症:야맹증을 말함.)을 다스리고, 수컷의 똥은 목통(目痛)·옹절(癰癤:종기의 일종)·현벽(痃癖:응어리)·산가(疝瘕)·기괴(氣塊)·복량(伏梁)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속담에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 “참새가 아무리 떠들어도 구렁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참새가 작아도 일만 잘한다.”, “참새가 죽어도 짹한다.”, “참새 굴레 씌우겠다.” 등 참새가 들어 있는 것이 많다.  
1349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참새 댓글:  조회:3418  추천:0  2019-01-08
참새     가을 지난 마당은 백로지인양 참새들이 글씨공부 하지요.   짹, 짹, 입으론 부르면서 두발로는 글씨공부 하지요.   하루종일 글씨공부 하여도 짹자 한자 밖에 더 못 쓰는걸. - 윤동주, (푸른책들, 2001) 윤동주"참새"동시비 연길공원에 서다  2010-06-28  윤동주 옥사 65주년을 맞아 윤동주시비가 연변의 명소의 하나인 연길인민공원에 세워졌다. 오늘(27일) 오전 연변작가협회,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한국청소년운동연합은 공동주최로 100여명 문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연길공원에 마련된 동시동네 유보도 옆에 윤동주시비를 제막했다. 윤동주시비에는 윤동주의 동시 "참새"가 새겨졌다. 윤동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서시"를 아로새긴 윤동주시비가 이미 룡정 명동중학 옛터에 세워진 사유도 있거니와 이번에 윤동주의 동시를 새기게 된것은 "윤동주의 동시인으로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한석윤회장이 설명했다. 윤동주의 "참새"를 읽어보면 윤동주가 역시나 동시인으로서의 기질이 뛰여남을 엿볼수 있다.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 읽으며 두발로는 글씨를 련습하지요 하루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자 한자밖에는 더 못쓰는 걸 ("참새"전문) 김득만동시인의 사회하에서 진행된 제막식에서는 한석윤회장의 시비건립경과보고에 이어 연변작가협회 허룡석 주석,한국청소년운동연합 이근규 총재가 축사를 하고 장백산발전연구회 신봉철 회장과 연변주위 선전부 채영춘 부부장이 보내온 축하문이 대독됐다. 원 연변주인대 오장숙주임과 연변대학 박문일 전임교장이 현장에 와서 격려하고 한국청소년운동연합은 20여명의 학자,문인,학생들을 이끌고 참가했으며 연길공원소학교 어린학생들이 흥겨운 사물놀이마당을 벌려 이채를 돋구었다. 주최측은 이날 오후 백산호텔에서 60여명의 작가들이 참가한가운데 "윤동주시포럼"을 개최해 "동시인"으로서의 윤동주의 시를 집중 조명했다. 연변의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손을 잡고 자주찾는 연길공원 유보도 옆에 윤동주동시비가 건립됨으로 하여 윤동주의 시와 인간이 연변시민들과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김성림 기자 ///조글로미디어 2010-06-27  ===============================///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읽으며 두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루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자 한자 밖에는 더 못 쓰는걸. ‘참새’는  집 앞마당을 짹짹거리며 거니는 참새들을 백지에 글씨 공부를 하는 아이들인 듯 그리고 있습니다. 터울이 큰 어린 동생들을 참새에 빗댄 것으로 보이는 시입니다.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시인 윤동주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읽히는 것 같아 코끝이 시려옵니다.   윤동주 /참새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로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쓰는걸.     이 시는 참새가 마당에 짹깩거리면서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보고 글씨 연습을 한다고 생각한 동시이다. 가을이 지난 마당을 하얀 종이에 비유하였다. ‘하이얀 종이’라 한 것을 보니 눈이 엷게 내린 상태로 보인다.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읽으며’는 짹짹 우는 것을 말한다.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는 참새가 마당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하로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 짹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쓰는걸.’은 하루 종일 짹짹거리며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짹’자를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동틱한 내용이다. 참새의 발자국은 한가지이므로 참새가 ‘하루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똑같은 발자국을 남기니 ‘짹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쓴다고 생각한 재미있는 동시이다. ///전한성 ====================/// 어린 아이와 같다라는 말은 순수하다라는 말이다. 순수하다라는 말은 꿈이 있다라는 말이다. 시라는 것은 순수한 꿈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윤동주 시인의 시" 참새"에서는 동심이 가득 담겨 있다. 어쩌면 참새가 "짹"자 한자로 삶의 무수한 표현을 다 한다 . 짹짹 거리는 그 소리 속에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담아 놓고 두려움과 슬픔 기쁨 등을 말한다. 참새와 참새끼리는 서로 뜻이 일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물며 사람 삶의 말은 끝없다. 그럼에도 분쟁과 갈등에 휩싸여 살아간다. 단 한 자를 터득하여 삶을 알수 있다면 그 보다도 더 좋은 삶의 방법은 없을 것이다. 모든 자연은 그러한 삶의 터득을 일러 준다. 윤동주 시인은 그러한 삶을 동심으로 받아내고 있는 듯 하다.      
1348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닭(2) 댓글:  조회:2909  추천:0  2019-01-06
  윤동주 /닭 (동요)     ㅡ닭은 나래가 커도 왜 날잖나요 ㅡ아마 두엄 파기에 홀 잊었나봐.     이 시는 큰 날개를 가진 닭이 날지 않는 이유를 먹이를 찾으려다가 잊었다고 추측하는 내용이다.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두 문장으로 되어 있고 문장의 글자 수도 의식적으로 맞추었다. 동요로 생각하지 않고 잠언이 담긴 시로 볼 수도 있다. 날개는 자유를 의미하고 ‘두엄 파기’는 ‘먹이’를 구하는 행위이므로 먹이를 위해서 자유를 잊어버린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홀’은 ‘홀라당’으로 ‘모두’의 의미로 보인다. ///전한성     =====================///   윤동주 /눈(동시)   눈이 샛하얗게 와서 눈이 새물새물 하오.   이 시는 눈이 새하얗게 와서 화자의 눈이 자꾸 웃는 모양이 된다는 내용으로 눈[雪 ]과 눈[目]의 동음이어를 이용하였다. 눈이 와서 좋다는 의미를 동음이어를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새물새물’은 ‘입술을 한쪽으로 약간 비틀며 소리 없이 자꾸 웃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 문장으로 되어 있고 이어진 문장으로 구성되어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고 언어상징을 잘 이용한 시이다. ///전한성     윤동주 /눈2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이 시는 지난밤에 소복히 온 눈은 지붕과 길과 밭이 겨울에 추워하는 것을 보고 덮어주는 이불이라고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쓴 시이다. ///전한성    
1347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비행기 댓글:  조회:2951  추천:0  2019-01-06
  윤동주 /비행기     머리에 프로펠러가 연자간 풍차보다 더---- 빨리 돈다.   땅에서 오를 때보다 하늘에 높이 떠서는 빠르지 못하다 숨결이 찬 모앙이야.   비행기는-- 새처럼 나래를 펄럭거리지 못한다. 그리고 늘-- 소리를 지른다. 숨이 찬가봐.     이 시는 프로펠러 비행기를 보고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본 것이다. 1연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프로펠러가 연자방아간 풍차 (곡물에 섞인 쭉정이, 겨, 먼지 따위를 날려서 제거하는 데 쓰이는 농기구, ‘풀무’의 방언이다. 풀무 안에는 프로펠러처럼 생긴, 오늘날 선풍기 날개처럼 생긴 것이 돌아가서 이에 비교한 것이다)보다 더욱더 빨리 도는 것을 말하였다. 2연은 비행기가 땅에서 오를 때는 가까이에서 보니까 빨리 프로펠러가 빨리 돌아 빠르게 가는 것처럼 보이고 하늘에 높이 떳을 때는 멀어서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이니까 숨이 차서 천천히 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3연은 새와 비행기를 비교하여 새처럼 날개를 펄럭이지 못하고 엔진 소리를 내는 것을 숨이 차서 소리를 지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의 시선에서 잘 표현한 프로펠러 비행기의 모습이다. ///전한성 =========================///     윤동주 /병아리     뾰뾰뾰 엄마 젖 좀 주 병아리 소리.   꺽꺽꺽 오냐 좀 기다려 엄마닭 소리.   좀 있다가 병아리들은. 엄마 품속으로 다 들어갔지요.     이 시는 병아리와 암탉의 소리를 젖먹이 아이와 엄마의 관계로 생각하는 아동의 시선이 담긴 동시이다. 병아리가 뾰뾰뾰 내는 소리를 아기가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우는 소리와 같다고 생각하고 암탉이 꺽꺽꺽 내는 소리를 엄마가 아기 소리를 듣고 ‘오냐 좀 기다려’라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소리 내며 운 뒤에 조금 있다가 병아리들 젖을 먹으로 엄마 품속으로 다 들어갔다고 말한다. ///전한성   윤동주 /봄     우리 애기는 아래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서 소올소올   아저씨 햇님이 하늘 한가운데서 째앵째앵.     이 시는 봄의 풍경을 아기와 고양이의 낮잠과 솔솔 부는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을 통해 나태내고 있다.   봄은 춘곤증을 몰고오는 계절이다. 한 낮에 하늘은 햇볕으로 쨍쨍하고 작은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솔솔 불고 아기는 엄마의 발치 아래에서 콜콜 자고 있다. 한가한 봄의 모습이다. ‘우리 애기’라 하는 이는 엄마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래발치에 아기를 재우는 사람은 엄마가 가장 적당하다. 그러므로 아기 엄마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코올코올’, ‘가릉가릉’, ‘소올소올’, ‘째앵째앵’의 음성상징어를 써서 사실감을 높였다. ‘애기 바람’은 봄바람이 부드럽게 부는 모습을 보고 아기에 비유한 것이고 ‘아저씨 햇님’은 그 빛이 따스할 정도가 넘어 뜨거움을 느낄 정도라 ‘아저씨’에 비유하여 의인화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전한성  
1346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비자루 댓글:  조회:2852  추천:0  2019-01-01
  윤동주 /빗자루     요ㅡ리 조리 베면 저고리 되고 이ㅡ렇게 베면 큰 총 되지. 누나하고 나하고 가위로 종이 쏠았더니 어머니가 빗자루 들고 누나 하나 나 하나 엉덩이를 때렸소 방바닥이 어지럽다고ㅡ 아니 아ㅡ니 고놈의 빗자루가 방바닥 쓸기 싫으니 그랬지 그랬어 괘씸하여 벽장속에 감췄더니 이튿날 아침 빗자루가 없다고 어머니가 야단이지요.       이 시는 방바닥을 어지럽혀서 엄마에게 빗자루로 맞자 빗자루가 방바닥을 쓸기 싫어서 누나와 나의 엉덩이를 때렸다고 생각하고 벽장 속에 감춰두니 엄마가 이튿날 아침에 빗자루가 없다고 야단한다는 내용이다. 동시이지만 핑계를 빗자루에게 두는 관점을 달리하여 표현하는 솜씨가 있다. 누나와 나는 종이를 가위로 베어서 저고리를 만들고 총을 만들고 놀면서 방바닥을 어지럽히니 어머니가 빗자루로 누나와 나의 엉덩이를 때려서 어머니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빗자루를 벽장 속에 감추었더니 다음날 아침에 어머니가 빗자루로 청소를 하려다 빗자루가 보이지 않자 빗자루를 찾는 야단을 한 것을 동시로 표현한 것이다. 관점은 어린 아이다우나 동시의 특성인 운율이나 대구 등은 보이지 않는다. ///전한성   윤동주 /빨래     빨랫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흰 빨래들이 귓속 이야기하는 오후   쨍쨍한 7월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이 시는 고요한 7월의 오후에 빨랫줄에 널려 있는 흰 빨래들 중에 작은 빨래만 빨리 마른다는 내용이다. ‘빨랫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 흰 빨래들이 귓속 이야기하는 오후’는 오후의 시간을 묘사한 것으로 흰 빨래를 의인화하여 표현했다. ‘두 다리를 드리우고’는 땅을 향하하여 펼쳐저 있는 모습을 말하고 ‘귓속 이야기하는’은 고요한 상태임을 말한다.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는 고요한 상태에서 쨍쨍한 햇빛을 활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오후에는 크기가 작은 아담한 빨래만 마른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전한성     윤동주 /사과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넷이서 껍질 채로 송치까지 다아 나눠 먹었소.   이 시는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네사람이 껍질 뿐만 아니라 송치(사과의 내부에 씨가 있는 곳)까지 알뜰하게 나누어서 먹었다는 내용이다. 가족이 공동체로 사과 한 개도 나누어 먹는 가족애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과가 몹시 귀한 것이어서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어서 나누어 먹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껍질과 송치까지 먹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붉은 사과’가 당시에 관습적인 상징으로 쓰인 것인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전한성    
1345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오후의 구장(球場) 댓글:  조회:2781  추천:0  2018-12-29
                                 늦은 봄 기다리던                   토요일 날,                오후 세시 반의 경성(京城)행 렬차는                석탄 연기를 자욱이 풍기고                소리치고 지나가고,                  한 몸을 끌기에 강하던                공이 자력(磁力)을 잃고                한 모금의 물이                불붙는 목을 축이기에                넉넉하다.                젊은 가슴의 피 순환이 잦고,                두 철각(鐵脚)이 늘어진다.                  검은 기차 연기와 함께                푸른 산이                아지랑이 저 쪽으로                가라앉는다. 오후의 구장(球場) /윤동주 / 1936.5.                  -윤 동주(1917.12.30~1945.2.16.)    
1344    만화로 보는 윤동주와 정병욱 댓글:  조회:3064  추천:0  2018-12-29
[역사웹툰]    잊지 못할 윤동주.   jpg   역사만화가 2017-03-05                        1940년 윤동주는 새로 연희전문에 입학한 하동 학생 정병욱(1922-1982)을 만나게 된다. 윤동주와 정병욱의 인연 역시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나중의 일이 되지만,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 의 부인인 정덕희 여사는 정병욱의 여동생이다. 또한 정병욱은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배우던 ‘잊지 못할 윤동주’의 저자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3부를 작성하여 가장 존경하는 교수인 이양하 선생과 친한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증정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제의 검열에 의해서 시가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는 이양하 교수의 권고에 의해 윤동주는 출판을 단념하게 된다.      정병욱이 받게 된 시고집 1부는 정병욱이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자신의 집에 소중히 보관해 달 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윤동주의 시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정병욱 보관본에 의한 것이다.          
1343    윤동주와 백영(白影) 댓글:  조회:3071  추천:0  2018-12-29
지난 27일(2017년 1월), 전남 광양시에서는 윤동주 문학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윤동주 문학 왜 광양인가?’라는 주제 아래 경상대 강희근 교수, 일본의 교토여자대학 우에노 준 교수, 그리고 필자가 발표자로 나서 윤동주 문학에 대한 재해석 과정과 결과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더불어 광양과 윤동주가 결속해 갈 생성적 가치에 대해 하루종일 열띤 논의를 이어 갔다. 윤동주 시의 연원과 특성 그리고 새로운 콘텐츠로의 확장 가능성이 진지하게 모색된 자리였다.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윤동주와 광양의 연관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 맥락은 이러하다. 1941년 말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친필 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3부 작성해 한 부는 자신이 가지고, 한 부는 은사인 이양하 교수께 드리고, 나머지 한 부는 문과 2년 후배 정병욱에게 건넸다. 윤동주가 타계했을 때 자신과 이양하 교수가 가지고 있던 것은 일실됐으나, 정병욱이 보관했던 원고가 해방 후에 세상에 알려지면서 우리는 윤동주라는 보석 같은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정병욱은 1943년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윤동주 시집 원고를 어머니께 맡기고 떠났는데, 어머니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마루 널을 뜯어 그 아래에 원고를 보관했던 것이다. 일찍이 정병욱은 이 원고를 어머니가 명주 보자기에 겹겹이 싸서 보관했었다고 기록한 바 있다. 그 후 정병욱의 누이동생 정덕희가 새로운 증언을 하게 되어 사실이 바로잡히게 됐는데, 정병욱이 학병 나가느라 집에 없어서 잘 몰랐을 거라고 하면서 정덕희는 그 원고가 마루 밑에 있었다고 기억해 주었다. 마루 널 아래 땅을 깊이 파서 그 속에 짚을 깐 다음 큰 독을 들여놓고, 그 안에 원고를 넣어 보관했다는 것이다. 깊이 숨겼을 뿐만 아니라 짚으로 건조 상태가 유지되도록 한 것이다. 이 과정은 정덕희 여사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윤동주 평전’의 작가 송우혜 선생이 소상하게 기록해 놓은 바 있다. 정병욱은 집에 돌아와 이 원고를 다시 받아들고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이 원고는 ?1948년 1월 한 권의 시집으로 빛을 보게 됐는데, 이 원고가 망실됐다면 우리는 최소한 윤동주의 ‘서시’나 ‘별 헤는 밤’, ‘길’, ‘십자가’, ‘또 다른 고향’ 등을 전혀 만나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 문학사에 윤동주라는 빛(光)과 볕(陽)을 한꺼번에 쏘아 준 사건이 광양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정병욱 가옥에 보존됐던 윤동주 유고 원본은 지금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원래 정병욱은 경남 남해 출신이고 하동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는데, 부친의 사업차 일가가 광양으로 옮겨 가 살게 됐다. 고택이 있는 망덕포구는 옛날분들이 섬진강을 거슬러서 구례나 광양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다. 섬진강물이 남해 바다와 합수하는 곳이기도 하다. 1925년 건물인 이 고택의 공식 이름은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고, 현재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돼 있다. 이제 이 고택은 두 사람의 우정과 믿음을 문학사의 아름다운 후경(後景)으로 두른 채 맑은 섬진강물처럼 광양 밤바다에 뜬 밝은 별빛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매천 황현 선생의 고향이기도 한 광양은 이러한 윤동주·정병욱으로 이어지는 상징 가치에 눈을 뜨고, 한편으로는 정병욱 고택을 명소로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윤동주를 가능하게 했던 이곳의 문화적 브랜드를 차근차근 만들어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윤동주와 정병욱과 광양의 세 꼭짓점을 잇는 커다란 문화적, 학문적 기념비가 될 것이다. 이제 윤동주와 다섯 살 차이였던 정병욱도 얼마 있으면 탄생 100주년(2017년)을 맞는다. 자신의 호(號)를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에서 가져와 ‘백영’(白影)이라고 지었을 만큼 윤동주를 사랑했던 정병욱. 윤동주와 그가 맺었던 생전의 인연과 사후에도 지속되는 아름다운 관계를 광양시가 잘 이어 가기를 마음 깊이 소망해 본다. ====================//// 광양시 진월면 망덕(望德)포구에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341호’로 등록된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 있다.  ▲     © 뉴스24 1925년에 지어진 이 상가주택은 양조장과 딸린 살림집인데 이곳에 윤동주 자필시집 가 고스란히 보존되었다.       정병욱(1922-1982)이 윤동주(1917-1945)를 알게 된 것은 1940년 연희전문학교 기숙사에서였다. 정병욱은 1학년, 윤동주는 3학년이었다. 윤동주가 5살 위였지만 두 사람은 선·후배로 깊이 사귀었다. (권오만, 윤동주 시 깊이 읽기, 소명출판, 2009, p 342)      1941년에 두 사람은 기숙사를 나온 후 10개월 동안에 세 번이나 하숙집을 옮겨가면서 한 방을 같이 썼다. 처음은 종로구 누상동에서 한 달 간, 두 번째는 5월말부터 누상동 9번지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하였다. 그런데 일본 경찰이 김송을 요시찰 인물로 감시했고, 윤동주와 정병욱의 책과 짐까지 뒤지는 소동을 벌였다. 별수 없이 두 사람은 9월에 북아현동으로 하숙을 옮겼다.      ▲     © 뉴스24 1941년 12월에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시집 간행을 기획하였다. 이를 위해 그동안 쓴 시중에서 18편을 뽑고 1941년 11월20일에 쓴 ‘서시 序詩’를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라는 표제를 붙이고 3부를 필사하였다.  윤동주는 자필시집 3부 중 1부는 이양하 교수에게, 1부는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고, 마지막 1부는 본인이 보관하였다.  정병욱이 받은 자필시집 필사본은 200자 짜리 세로쓰기 원고지였는데, 첫 페이지에 ‘鄭炳昱 兄(정병욱 형)앞에’, ‘尹東柱 呈(윤동주 정)’이라고 적었다. (권오만, 위 책, p 345)  그런데 이양하 교수는 윤동주에게 출간을 미루라고 하였다. 이 시집이 일본관헌의 검열에 통과되기도 어려울뿐더러 신변의 위험까지 부를 것이니 때를 기다리라고 하였다. 결국 윤동주는 시집 발간을 포기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정병욱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1월에 일제의 학도병으로 끌려가면서 광양으로 내려가 어머니에게 윤동주 시집을 잘 간수할 것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윤동주가 돌아오지 못하고 조선이 독립되면 이 시집을 연희전문학교에 보내달라는 부탁도 곁들였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윤동주 시집을 명주 보자기로 겹겹이 싸서 양조장에 딸린 살림집 마룻장을 뜯어내고 그 안에 깊숙이 숨겼다.     전쟁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온 정병욱이 윤동주 시집을 챙기자 그의 어머니는 명주 보자기를 내놓았다.     1948년 1월30일에 정음사는 윤동주 유고시집 를 간행하였다. 여기에는 정병욱이 가지고 있던 윤동주 자필시집의   시 19편과 연희전문학교 문과 동기 강처중이 보관한 시 12편 도합 31편이 실렸다.  1955년에 증보판이 나왔다. 88편의 시와 산문 5편이 실렸는데, 서울대 교수 정병욱은 편집 자문을 하였고, 시집 후기를 썼다.     또한 그는 1976년 외솔회 발행 에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을 기고하고 윤동주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윤동주 자필시집의 당초 제목은 ‘병원’이었단다. ‘세상이 온통 환자 투성이’라서 시집의 제목을 ‘병원’으로 붙이려 했단다.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 나라사랑 23집, 1976, p 140-141)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꼽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1940.12)    한편 윤동주와 정병욱은 인척을 맺었다. 윤동주 동생 윤일주와 정병욱의 누이동생 정덕희가 부부가 되었고, 윤일주의 장남 윤인석은 정병욱 가옥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2017년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다. 내년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윤동주를 기리는 행사가 활발할 것이다. 윤동주 자필시집을 고이 보관한 광양 망덕포구도 빛을 보길 기대한다.       ///뉴스24 /김세곤     ///서울신문 
1342    우지강아, 네가 말해다오... 댓글:  조회:3547  추천:0  2018-12-26
윤동주 시인 마지막 사진 촬영  교토 우지강변에 日 3번째 시비 28일 일본 교토부 우지강변에서 열린 윤동주 기념비 제막식에서 건립위원회 관계자가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시인의 조카 윤인석 성균관대 교수다. 우지(교토)=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우리는 과거에 저지른 어리석은 역사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 모였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봤던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봅시다.”  28일(2017년 10월), 오전 11시 일본 교토(京都)부 우지(宇治)시 우지강변. 하야세 가즈토(早瀨和人) 우지교회 목사의 말에 현장에 모인 시민 150여 명이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도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이어 시인의 조카 윤인석 성균관대 교수가 비석에 새겨진 시 ‘새로운 길’을 낭독했다.  이날 이곳에선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제막식이 열렸다.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건립되는 것으로 일본 내에서는 세 번째 비석이다. 높이 2m, 폭 1.4m인데 일본과 한반도의 화강암이 윤동주를 상징하는 원통을 떠받치는 형태로 제작됐다. 윤 교수는 “큰아버지(윤동주)도 추억의 장소에 시비가 세워진 걸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1943년 초여름 도시샤대 영어영문학과에 재학하던 시인은 징병을 피해 귀국을 결심했고, 학우들은 그를 위해 우지강변에서 야외 송별회를 열고 아마가세쓰리(天ヶ瀨吊り) 다리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시인은 송별회 직후인 7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수감생활을 하다 1년 반 뒤 옥사했다. 시인의 마지막 사진은 1990년대 중반 NHK와 KBS가 공동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 윤 시인의 학우였던 기타지마 마리코(北島萬里子) 씨의 앨범에서 발견됐다. 기타지마 씨의 증언에 따르면 윤 시인은 ‘마지막이니 노래를 한 곡 불러 달라’는 학우들의 요청을 받고 쑥스러워하다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이번에 비석을 세운 자리는 아리랑을 불렀던 강변 근처다.    사진에 얽힌 사연이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기념비 건립 움직임이 일었다. 2005년 시민단체가 결성됐고, 2007년 각계의 모금으로 비석 제작까지 마쳤으나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10년 동안 건립을 미뤄왔는데, 이번에 시즈가와(志津川)구에서 구 소유 땅에 건립을 허가했다.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 안자이 이쿠로(安齋育郞) 대표는 “시인이 청춘의 빛나는 순간을 보낸 이곳에 비석을 세울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윤동주의 모교 연세대를 대표해 참석한 백영서 문과대학장은 “감격스럽다. 인간의 존엄과 세계의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올해 3월 기념비 건립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를 보고 대한해협을 건너온 중학생도 있었다. 경북 구미시 광평중 3학년인 박희원 군은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는데 기사를 읽고 뜻깊은 행사라고 생각해 용돈을 모아 아버지, 동생과 함께 참석했다”고 말했다. 행사가 끝나자 다시 빗줄기가 굵어졌다. 시민들은 인근 교회로 자리를 옮겨 윤 시인의 서시, 자화상 등을 낭독하고 공연을 하며 시인을 기렸다. NHK PD 재직 시절 마지막 사진을 발굴했던 다고 기치로(多胡吉郞·61) 씨는 행사 후 기자와 만나 “비석이 세워진 것은 한마디로 감개무량한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에도 윤동주 관련 연구를 지속해온 그는 최근 ‘생명의 시인 윤동주’라는 책을 냈다. 현재 일본에는 윤 시인이 유학했던 교토의 도시샤대와 당시 하숙집이 있던 자리(현 교토조형예술대)에 비석이 있다. 이 중 이번에 건립되는 우지 기념비가 가장 크며, 대학 교내가 아닌 장소에 처음 세워진 것이다.    ///우지=장원재 특파원 ====================/// 윤동주 시인이 일본에 유학을 떠난 것은 1942년 3월이었다. 당시 유학을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윤(尹) 씨’는 ‘히라누마(平沼) 군(君)’이 됐다. 개명을 닷새 앞두고 ‘참회록’이라는 시를 썼다. 이후 유학 시절을 관통한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교토(京都) 도시샤대 학우였던 기타지마 마리코(北島萬里子) 씨는 우연히 둘만 수업을 듣게 됐을 때 윤 시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둘밖에 없는데 틀리면 부끄럽겠네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히라누마 군’이 한국에서 ‘국민시인’이 된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기타지마 씨는 전후 50년을 맞아 KBS와 함께 윤동주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NHK 제작진에 옛날 학창 시절 앨범을 찾아 윤 시인의 생전 마지막 사진을 제공했다. 1943년 우지(宇治) 강의 한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윤 시인은 중앙, 여학생들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수줍음이 많아 수업시간이면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수업을 듣던 그였다. 징병을 피해 귀국을 결심한 그를 위해 학우들이 열어준 송별회였던지라 당당하게(?) 중앙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사진을 찍고 1, 2개월 후 윤 시인은 일본 경찰에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함께 사진을 찍었던 일본 남학우들도 대부분 전선으로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마지막 사진에 얽힌 사연이 알려지면서 우지에선 윤동주 기념비를 세우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생겼다. 이를 주도한 사람이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의 곤타니 노부코(紺谷延子) 사무국장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윤 시인을 만난 후 인생이 바뀌었다. 2002년부터 매년 시를 읽고 꽃을 강에 던지는 추모 행사를 열었고, 2005년 기념비 건립을 위한 시민단체를 조직했다. 각계의 모금을 받아 2007년 기념비를 만든 후에는 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문턱이 닳도록 자치단체를 돌아다녔다. 2009년에는 6358명의 서명을 받아 교토 부(府) 지사에게 제출했다.    곤타니 사무국장의 바람은 지난해 우지 시 시즈가와(志津川) 구에서 용지 제공을 결정하며 이뤄지게 됐다. 주민 110가구의 작은 자치단체지만 “세계 평화의 상징이 됐으면 좋겠다”(구청장)며 기념비 건립을 받아들였다. 10월까지 건립될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에는 한국과 일본의 화강암에 양국 언어로 시 ‘새로운 길’이 새겨진다. 그리고 시인을 상징하는 돌기둥이 그 위에서 양국을 연결하는 디자인이다.   얼마 전 기자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드디어 우지 강변에 기념비가 세워진다는 기사를 썼다. 여러 독자들이 ‘기사를 잘 봤다’며 연락해 왔다. 이번 비석은 일본 내에서 3번째다. 윤 시인을 기리는 일본 시민들은 매년 2월이 되면 시인이 유학했던 도쿄(東京) 릿쿄대와 교토 도시샤대, 숨을 거둔 후쿠오카(福岡) 등에서 추모 행사를 연다. 일본인 중에는 중국에서 시인의 무덤을 찾아낸 학자도, 30년 넘게 일본 내 행적을 추적한 전직 언론인도 있다. 모두 시인의 ‘부끄러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이들이다.  곤타니 사무국장은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현재 한일 관계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민들은 윤동주를 통해 이어질 수 있다”며 “개막식에 꼭 와 달라”고 초청했다. 지역의 작은 시민단체가 12년 동안 한국 시인 기념비 설립을 추진했는데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마음에 기자는 그 자리에서 ‘당연히 가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 제99회(2018년 3월), 삼일절을 맞은 오늘(1일) 대표적인 ‘저항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시인 윤동주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윤동주를 ‘저항시인’으로 소개한다. 독립운동연구소 박민영 연구원은 “총칼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은 만주 독립군이라면, 저항시인은 총칼 대신 펜을 들었던 독립군”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윤동주가 남긴 마지막 사진. KBS1     현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님의 침묵’의 한용운, ‘그날이 오면’의 심훈, ‘광야’의 이육사 그리고 ‘서시’의 윤동주가 저항시인의 반열에 올라 독립기념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윤동주는 독립운동의 본거지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던 명동촌은 독립운동을 갈망하던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는 평양 순실중학교 편입 중 신사참배를 강요받자 자퇴를 결심한다. 윤동주는 자신의 첫 시집의 제목을 ‘병원’으로 지었으나, 주변의 권유에 따라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로 제목을 바꾸게 된다. 윤동주는 송몽규가 일본유학을 고민할 때 시 ‘참회록’을 써내려갔다. 해당 시에는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적혀있다. 참회록을 쓰고 며칠 뒤 그는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했다. 이후 도쿄 릿쿄대학교에서 1년여 간 공부를 하다, 윤동주는 교토 도시샤대학교로 학적을 옮겼다. 당시 유학생 윤동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언제나 경찰들의 감시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샤대학에서 윤동주와 함께 공부한 것으로 알려진 기타지마 마리코는 윤동주가 남긴 마지막 사진을 함께 찍은 이로 알려져있다. 그녀는 “윤동주는 굉장히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한편 “그가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진 못했다”고 답했다. 또한 “그가 형무소에 들어갔다는 것은 전해 들었지만 이유 같은건 듣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 같은 내용은 KBS의 다큐맨터리 프로그램 '시인과 독립운동'을 통해 전해진 바 있다. 이민재 기자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1341    서로 누워있는 자리는 달랐어도 같은 꿈을 꾸었으리... 댓글:  조회:3337  추천:0  2018-12-26
떠난 지 50년, 여전히 뜨거운 이름 시인 -'김수영' 이영경 기자  2018.12.26.  번역 설정   공유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경향신문]  ㆍ‘50주기’ 두 권의 책 나와 ㆍ21명 모여 그에 대한 글 묶고 ㆍ‘연구회’선 시 해설집 내놔 ㆍ“사후에 더 문제적 인물 돼” 한국 문학에서 김수영은 여전히 뜨거운 이름이다. 1968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수영이 올해로 50주기를 맞았다. 48세의 나이에 작고했으니, 죽음 이후 그가 우리 곁에 머문 시간이 그의 생보다 길다. ‘김수영’이란 큰 이름과 달리 그가 생전에 남긴 시집은 한 권과 합동 시집 한 권이 유일하다. 오히려 그의 사후에 여러 권의 전집과 선집이 출간됐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그는 생전보다 사후에 더 문제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김수영 시인 50주기를 기념해 김수영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창비)는 문학평론가 백낙청, 염무웅, 이어령, 황석영, 나희덕, 심보선, 송경동 등 21명의 작가와 학자들이 김수영에 대해 쓴 글들을 묶었다. 백낙청·염무웅은 대담에서 김수영이 활동했던 당시를 회고했다. 어디서나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던 김수영의 생전 모습부터 한국문학사에서 김수영이 차지하는 위상을 짚으며 제대로 된 ‘김수영 읽기’의 방법론까지 모색한다. 당대 김수영과 ‘순수/참여 논쟁’을 벌였던 이어령은 ‘맨발의 시학’이라는 이름으로 김수영 시론을 재정립하며 “오랜만에 향을 피우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며 “서로 누운 자리는 달랐어도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희덕 시인은 “제대로 보려는 부단한 노력 없이는 제대로 된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을 김수영을 통해서 배웠다. 낭만적 미화마저 거부하고 구질구질한 생활의 발견과 반성적 의식을 견지하는 태도야말로 김수영을 ‘끝까지 바로 보려는 자’로 남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권여선은 “세상에 두 종류의 감수성이 있다면, 한편엔 십대에 김수영을 읽은 쪽이, 다른 편엔 그렇지 못한 쪽이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고 말한다. 소설가 황석영은 “김수영의 시는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낡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현대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도래한 가슴 벅찬 오늘의 현실에서 김수영의 시정신은 여전히 왕성한 현대적 핏줄을 가지고 살아 꿈틀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 이영준, 고봉준 등 ‘김수영연구회’ 회원 14명이 집필한 김수영 시 해설집 (민음사)도 출간됐다. 김수영의 대표시 116편을 선정, 김수영의 시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썼다. 제목은 김수영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나와 쓴 전후의 첫 작품 ‘달나라의 장난’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너도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이영경 기자
1340    세계 문호들의 "참회록" 댓글:  조회:2779  추천:0  2018-12-24
못다 쓴 참회록   「참회록」하면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루소의『참회록』이다. 그 다음으로 다시 생각나는 것은 루소의 『참회록』과 함께 세계의 3대「참회록」이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의 『나의 참회』 그리고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이 있다. 윤동주 시인은 그의 유고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참회록」이란 시(詩)를 남겼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래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바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 나온다.       윤동주 시인의 시(詩)로서의『참회록』이다. 세계3대 「참회록」과는 다른 장르 이긴 하지만 간결하고 슬픈「참회록」이 아닌가. 가톨릭에서 하는 기도문 중에는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자기 성찰의 기도문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한국인으로서 받아드리기엔 조금 낯간지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이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종의 집단적 기도로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주술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참회의 형식이다. 비록‘무엇이 내 탓인지’는 알수 없지만 이 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범함이 나를 비롯한 한국인에게는 조금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가 들면 조금은 마음이 약해져서 가끔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은 없는가, 점검해 보기도 한다는데,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늘그막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실은 한국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격상 민망하고 쑥 스럽다는 생각 때문에 사과하거나 반성의 골든타임을 놓이고 말았기 때문이라고 함이 옳을 것 같다. 임종을 앞두고 눈물을 흘리며 과거를 후회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단히 미안한 일이고,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사후세계에 간다면 ‘지난 생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했으니 지난 잘못을 더 거론하지 맙시다.’하는 일종의 보험은 아닌가 하는 불경스런 생각도 해 본다.       명색이 문학도(文學徒)라면서 누구의 것이 되었던 그 유명하다는「참회록」한 편 읽어보지 않았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럽기 한이 없다. 한 동안 마음의 갈길을 잃어 불면의 밤을 지새우면서도 한 줄의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전전 긍긍하다가 느닷없이 이 새벽에 「참회록」이라는 화두에 침몰하고 말았다. 내가 만약에‘참회록’을 쓴다면 무엇을 써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침몰해 가는 황혼이라고 해도 자신의 발가벗은 과거를 글로 남기고 죽는 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나 같은 필부가 언감생심 어찌 진솔한 마음으로 이른바‘참회록’을 남길 수 있겠는가? 또 숨 막히도록 답답해진다. 70평생을 살아오면서 몸으로, 또는 생각으로, 또 때로는 어줍잖은 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했는가를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을까? 나로 인해 차마 말은 하지 못하면서 불편(不便)해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사죄해야 할까? 그 동안의 독서 경험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시작은 참회하는 글로 시작 해 놓고 그 마지막은 온통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는 소위‘회고록’이니‘자서전’이니 하는 이름이 되고 마는 경우를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떤 호색한(好色漢)은 수절(守節)하는 과부를 훼절(毁節)하게 해 놓고‘밤마다 외로워하는 중생을 어여삐 여겨 낙원(樂園)을 보여 줬다.’고 큰 소리치는 세상이니 어찌 조심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옛 어른들의 말을 빌려‘아서라, 네 감히 참회록 이라니 개가 웃을 일’이 아니더냐고 스스로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해서 이 여름 방학에는 세계3대 「회고록」을 읽어야 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대신하기로 정하고, 내가 쓸 ‘나의 인생 참회록’은 나 하늘이 불러 떠나는 날에 마지막 쓰는 글로 남겨두기로 했다.    더불어 이제부터라도 다른 이의 눈에 티끌을 보지 않고 내 눈에 들보를 찾는 일에 더 이상 게으르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겠다. ‘잘못된 모든 것들은 남의 탓이요 잘된 모든 것들은 내 업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는 진솔한 글을 쓸 수가 없다. 함께 하면 가볍고 즐거운 일을 내 몸이 좀 피곤하다고 해서 남에게 미루는 일은 자신만 안녕하기를 바라는 이기주의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지나친 독선이다. 옛 어른들은 ‘백짓장도 함께 들면 났다.’고 가르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어렵지 않은 일들인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 그렇게 쉬운 일들을 알면서 행(行)하지 못한 스스로는 더 나쁜 죄인(罪人)임을 이 나이가 되어서 깨닫는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 그런 깨달음을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슴속에 받아 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 하다.’적어도 대학에서 배운 것들 만큼은 작은 것들부터 실천해 나가는 것이 배우는 자의 태도이고 또 도리라고 믿는다. 그저 제멋에 겨워 여기 온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배운 대로 행(行)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다른 이에게 관대하고 스스로에게는 엄 하라.’는 가르침 때문에 그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하나를 위해 둘을 잃는 것’임을 마음에 새겨둬야 겠다.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해서 함께 있을 자격이 없다고 물러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고 현실도피의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도 마음에 간직할 일이다. 스스로 정한 규범을 잘 지켜 냈다는 판단이 섰을 때 비로소 나만의「참회록」을 쓸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언제가 될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때가 되면 내 모든 것, 부끄러운 짐들을 벗어던진 「삶의 참회록」을 남길 만하지 않겠나?     
1339    "일본의 윤동주" - 마키무라 고 댓글:  조회:2910  추천:0  2018-12-24
[잊혀진 의인들- 마키무라 고] 한국인만큼 뜨겁게 대한독립을 노래한 '일본의 윤동주'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2018-11-27    마키무라 고.   고치시 ‘The 創’ 연극단원들이 마키무라 시인의 사후 80주년을 맞아 대표작 ‘간도 빨치산의 노래’를 한국어로 낭독하고 있다. 한일 울린 ‘간도 빨치산의 노래’  ‘분노의 울림을 담아...쏟아져오라!  격분의 물방울을 높이...용솟음쳐라’  한국인인듯 민족혼 대변한 서사시  발표 직후 日에 체포돼 옥고끝 요절  민족·국가 초월한 비운의 반전시인  日 절대 존재 천황도 서슴없이 비판   펜으로 치열하게 평화 부르짖어  의인의 삶, 시대 초월한 감동 선사  윤동주(1917년 12월~1945년 2월)의 ‘서시(序詩)’는 아마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애송하는 시일 것이다. 또 윤동주 시인의 고결한 삶과 민족혼이 깃든 주옥같은 시는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상당한 카타르시스와 영혼의 안식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민족시인’ 윤동주가 살고 있던 시기에 비슷한 삶을 살다가 같은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옥고를 치르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일본의 반전(反戰) 시인이 있다고 하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바로 마키무라 고(전村浩, 1912년 6월~1938년 9월)다. 일부에서는 ‘마키무라 히로시’로 부르기도 하지만 자신은 마키무라 고라고 불렀다. 본명은 요시다 도요미치(吉田豊道)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났다. 그는 1912년 6월 일본 서남부 시코쿠의 고치현에서 태어났다. 올해 9월3일은 서거 8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일본 경찰의 고문과 옥고의 후유증으로 1938년 9월 2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마치 윤동주의 시 원고를 친구인 정병욱이 전남 광양에 있던 자신의 집에 묻어뒀다가 일제 패망 이후 다시 찾았듯이 마키무라의 원고 역시 일본 군국주의가 발호하고 있던 1930년대 일본에서 출판되지 못했다. 출판사 사장이 기름종이에 싸서 땅에 묻어뒀다가 그가 죽은 지 25년 만인 1963년에야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1년 뒤인 1964년 10월에 ‘간도빨치산의 노래 -전村浩시집(신일본출판사, 1964)’가 최초로 간행됐다.  그가 남긴 시는 모두 26편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생전에 발표된 것은 대표작 ‘간도 빨치산의 노래’ 등 6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첫 작품은 ‘살아있는 총가(銃架)’다. 그는 만 20세에 ‘간도빨치산의 노래(間島パルチザンの歌)’를 ‘프롤레타리아문학(プロレタリア文學)(1932년 4월 임시 증간호)’에 발표했다. 이 시는 모두 12연 187행에 달하는 방대한 서사시다. 그러나 그는 이 시 발표 직후 고치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고치형무소에서 3년의 옥고를 치렀다. 이 시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전략) 오오, 3월 1일 / 민족의 피가 가슴을 치는 우리의 그 누가 / 무한한 증오를 한순간에 내동이친 우리들의 그 누가 / 1919년 3월 1일을 잊을쏘냐! / 그날 / 「대한독립만세!」 소리는 방방곡곡을 뒤흔들고 / 짓밟힌 일장기 대신 / 모국의 깃발이 집집마다 휘날렸다 / 가슴에 다가오는 뜨거운 눈물로 나는 그날을 생각한다! / 반항의 우렁찬 소리는 고향마을까지 울려 퍼지고 / 자유의 노래는 함경의 봉우리마다 메아리쳤다. (중략)   우리들은 함경도 사내와 여자 / 착취자에 대한 반항으로 역사를 새로 쓰는 내 고향의 이름에 맹세코 / 온 조선 땅에 봉화를 올렸던 몇차례 봉기에 피를 흘린 이 고향의 흙에 맹세코 / 고개를 숙이고 순순히 진지를 적에게 넘겨줄 수 있단 말인가 (중략)   바람이여, 분노의 울림을 담아 백두에서 쏟아져오라! / 파도여, 격분의 물방울을 높이 올려 두만강에서 용솟음쳐라 / 오오 일장기를 휘날리는 강도들아 / 부모와 누나와 동지들의 피를 땅에 뿌리고 / 고국에서 나를 쫓아내고 / 지금 칼(劍)을 차고 간도(間島)로 몰려오는 일본의 병비(兵匪: 병사 비적떼)여! / 오오, 너희들 앞에 우리가 다시 굴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려는 거냐 / 뻔뻔스런 강도들을 대우하는 법을 우리가 모른다고 하는 거냐”(후략)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이나 간도(중국 연변)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던 젊은 청년 일본인이 이렇게 감동적이면서도 빼어난 서사시를 썼다. 물론 한국인과의 교류가 이 시의 토대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마키무라를 연구한 전문가 미야자키 키요시(宮崎淸)는 그의 시가 일본에서 사랑받고 높이 평가받는 이유를 ①청춘의 모든 것을 쏟아서 시인 자신의 혁명운동에 대한 정열과 체험을, 무엇보다도 그 마음의 진실로 표현해 객관화한 점, ②당시 일본인들이 부딪히고 있던 전쟁, 억압 등 냉엄한 현실과 그 역사적인 명운(命運)을 전위(前衛)의 입장에서 분명히 형상화해 보여줬던 것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위의 시는 무엇보다도 일본인인 마키무라가 마치 한국인인 것처럼 너무나 생생하고 투철한 혼연일체의 몰입과 동일시, 철저한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 이 시를 읽는 누구나 작자가 한국인일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1931년 9월 일본이 중국 동북(만주) 침략 이후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어떻게 이처럼 우리의 독립운동과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깊은 감동과 동참을 토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만큼 그는 한국인들의 독립운동과 반일투쟁에 깊이 공감하고 국제적 연대를 갈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키무라 시인은 만 열 살 때 고치시를 방문한 황족 앞에서 세계사를 강의하고 시를 짓는 등 조숙한 천재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특히 일본이 1931년 9월 만주를 침략한 ‘만주사변’ 직후부터 이를 비판하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반전 문예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1932년 2월 고향 고치시에서 열리는 우익단체 ‘신무회(神武會)’의 연설회를 반대하는 삐라를 뿌리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다리 주변에 붙였다. 역시 이달 27일에는 고치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육군 보병 제44연대가 중국 상하이로 출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반대하는 삐라를 제작 살포하는 등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반대하는 구체적 실천행동을 벌였다. 특히 마키무라는 반전 삐라의 원고를 주로 군대신문 ‘병사의 벗(兵士の友)’에 활용했는데 병사용 삐라는 카페 광고와 흡사하게 해 봉투에 넣거나 성냥에 넣어 외출병사에게 전하기도 했다. 또 밤에는 병영 안으로 직접 잠입해 전쟁에 반대하는 삐라를 뿌리기도 했다.  그는 같은 해 4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고향인 고치경찰서와 형무소에서 3년이 넘게 옥고를 치렀다. 특히 마키무라는 일본인들에게 절대적 존재인 천황에 대해서도 비판적 내용의 시 ‘떡의 노래(餠の歌)’를 지어 더욱 탄압을 받기도 했다. 고치형무소 수감 동안 심한 고문과 학대를 받아 심신에 큰 상처를 입었다. 특히 마키무라는 일본 당국의 전향 요구를 거부했는데 출옥 후 끝내 도사의 한 정신병원에서 불우하게 일생을 끝마치고 말았다.  감옥에 있던 마키무라는 조선 출신으로 일본 도쿄에서 활동한 좌익작가이자 운동가인 김용제(金龍濟, 1909년~1994년)의 ‘조풍(潮風)’ ‘사랑하는 동지에게’ ‘성장한다는 것’, 이 세 편의 시를 자신의 노트에 필사해놓았다. 마키무라는 충북 음성 출신의 김용제와 교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인 학자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에 따르면 김용제는 일본에서 맹렬한 프롤레타리아문학 활동과 좌익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7년 7월 조선으로 돌아온 뒤에는 변절, 전향해 오히려 맹렬한 친일분자로 일본 군국주의의 앞잡이로 활동했다고 한다. 마키무라의 초지일관한 행적과 너무나 대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키무라는 오랫동안 잊혀졌으나 1964년 10월 유고 시집 ‘간도 빨치산의 노래’가 출판되고 고치시 출신 작가 도사 후미오(土佐文雄)가 1966년에 소설 ‘인간의 뼈(人間の骨)’를 내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좌익작가로서 반전 시인으로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됐다. 그의 대표시 ‘간도 빨치산의 노래’는 정말 대단한 시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이 시는 서사시라는 문학작품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작자가 마치 한국인인 것처럼 느껴지고 진정으로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고무하고 찬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역사학자나 역사학계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키무라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민족시인’ 윤동주와 마찬가지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지만 윤동주보다 1년이 더 짧은 비극적 삶을 살았다. 우리 민족의 저항에 깊이 공감하고 이웃 중국 침략을 비판하며 저지하려 한 마키무라 시인의 뛰어난 저항시 ‘간도 빨치산의 노래’와 일련의 저항시를 읽고 이 천재시인의 사상과 삶을 기억, 추모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가끔 논란이 되는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교과서 문제 등 한중일 사이의 복잡한 현안과 역사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중일 3국 국민과 민중, 학생들의 진정한 상호이해와 연대·성신(誠信)에 바탕한 교류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윤동주 시인이 주목받듯이 우리에게 아직 낯선 미키무라 고 시인의 시와 반전 평화사상, 민중연대에 대한 이상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음미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치열한 반전 평화사상을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실천하면서 일제 당국의 모진 탄압을 받은 마키무라 고 시인. 간절히 한일 민중연대를 꿈꿨다는 점에서, 그리고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진정한 공공선과 피압박 근로대중이 주인인 사회, 나아가 인도·정의·평화를 실천하려 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의인’이라고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마키무라 고의 시 ‘간도빨치산의 노래’를 한국어로 낭독하는 ‘The·創’ 연극단원들. 마키무라 고의 묘. 일본 고치시 성서(城西)공원 옛 고치형무소 자리에 있는 ‘간도 빨치산의 노래’ 시비.  
1338    ... 댓글:  조회:2690  추천:0  2018-12-23
시들은 잎새속에서 고 빠알간 살을 드러내 놓고, 고추는 방년(芳年)된 아가씬양 땍볕에 자꼬 익어간다.   할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밭머리에서 어정거리고 손가락 너어는 아이는 할머니 뒤만 따른다. 비오는날 저녁에 기왓장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웁니다               대궐지붕 위에서 기왓장내외 아름답던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고추밭’과 ‘기왓장내외’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손주와 할머니의 정겨운 풍경이 미소를 자아내는 ‘고추밭’과 달리 ‘기왓장내외’에서는 식민지 시대를 사는 청년의 암울한 시대 인식이 드러나 보입니다. ‘고추밭’은 윤동주가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르지 않고 4월 서울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한 뒤 9월에 쓴 동시이고, ‘기왓장 내외’는 1936년 3월 평양 숭실학교 자퇴 직전 쓴 작품입니다. 이들 동시 작품이 각각 쓰인 시대적 배경을 고찰하면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북간도 이민족 사회에서 모처럼 동족 사회로 전입한 윤동주의 밝고 즐거운 평양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가 갈수록 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숭실학교 맥큔(George Shannon McCune, 한국명 윤산온) 교장은 일제의 신사 참배 요구를 끝내 거부했습니다. 결국, 평남도지사는 1936년 1월 18일 자로 맥큔의 교장 인가를 취소했습니다. 이틀 후에는 총독부가 맥큔의 숭실전문 교장 인가까지 취소했습니다. 해임된 맥큔은 연금에 가까운 감시를 받다가 그해 3월 21일 조선을 떠났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왓장내외’는 숭실 자퇴 직전 쓴 동시입니다. 시대 인식이 강렬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시기입니다. 시대의 모순을 그린 ‘이런 날’ ‘꿈은 깨어지고’ 등이 대표적입니다. 혹독한 시대의 무력감, 절망감과 함께 불안과 공포에 짓눌린 시인의 정서가 드러난 ‘산림(山林)’ ‘가슴1’ ‘가슴2’ ‘가슴3’도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그러던 윤동주가 철저히 시대 인식을 기피하게 됩니다. 윤동주는 맥큔 추방 후인 4월 초 숭실을 동맹 자퇴하고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합니다. 용정으로 돌아온 윤동주는 북간도 연길에서 발행하던 잡지 에 ‘용주(龍舟)’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동시 제작 쏠림 현상이 나타납니다. (소명출판 펴냄, 2009년)의 저자 권오만 전 서울시립대 교수가 분류한 제3단계(1936.9~1940 전반)의 시작(詩作) 시기입니다. 특히 3단계의 첫 무렵에 쓴 작품 대부분이 동시였는데, 이는 시대 인식을 기피하는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권오만 선생은 “윤동주가 의도적으로 동시 형태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시작품들이 시대의 문제에 뛰어들 가능성을 고의로 차단한 기미를 농후하게 보여 준다”고 봤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젊은이로서 자신을 자유롭게 성장, 발전시키고 자유롭게 표현하기가 얼마나 지난 한 과제였던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증표”라는 겁니다.
1337    동주, 그는 죽지 않았다... 댓글:  조회:2670  추천:0  2018-12-23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새벽녘에 만나는 윤동주, 그는 죽지 않았다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망명의 땅 간도에서 태어나 한시대의 괴로움을 아름다운 언어로 노래했던 윤동주(尹東柱, 1917~1945). 그의 필명은 동주(童舟)입니다. 그는 하늘을 사랑하고 바람과 별과 시를 사랑했던 시인입니다. 옥천이 고향인 향수(鄕愁)의 시인 정지용(鄭芝溶)은 1947년 12월, 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으로 이렇게 썼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날뛰던 일본에 빌어먹은 놈들의 글을 다시 보고 침을 뱉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도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냐?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동주는 가을 하늘같은 파란 마음으로 독립을 염원한 서정적 민족 시인입니다. 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해방 후에 나왔습니다. 원래 1942년 연희전문 졸업 기념으로 77부 한정판을 출판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시 자필로 시집을 3부 만들었고 그중 하나가 연희전문 후배 정병욱(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 1922~1982)에게 주어졌습니다.   다음 해인 1943년 윤동주가 검거된 후, 정병욱도 학병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 한 부를 정병욱 모친에게 맡겨 용케 보관하다가 1948년 1월 30일 정음사(正音社)간으로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때야 세상 사람들이 동주를 시인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 저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 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에 쓴 ‘자화상(自畵像)’입니다.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이 담겨 있으면서도 일제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겪어야만 했던 슬픈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홀로 외딴 우물을 찾아가서는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우물은 윤동주 자신의 내면입니다. 그런데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우물 속에 비친 그가 가여워집니다. 도로 가서 들여다보니 그는 아직 미운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자신이 싫은 것입니다. 돌아가 생각하니 또 그리워집니다. 미운 자신, 가엾은 자신, 그리운 자신이 겹칩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에 갇힌 슬픈 숙명입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941년에 쓴 시 ‘십자가’입니다. 왜 동주는 자기에게 십자가가 허락되기를 바랄까요?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이지만 진리의 길인 신(神)을 증거하고 부활하는 위대한 일을 의미합니다. 시대적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 해보고 싶지만 할 수 있는 일이란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겨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표현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괴감을 표현했습니다. 동주는 자필 시집을 내기 전, 연전 스승인 이양하(李敭河, 1904~1963) 선생에게 시집을 보여줍니다. ‘십자가’, ‘슬픈 족속’, ‘또 다른 고향’ 등이 아무래도 일본 관헌의 검열에 통과되지 못하고, 동주의 신변에 위험이 따를 수 있다고 보고, 때를 기다리자며 출간을 반대하셨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동주의 시 중 가장 많이 불리는 시인 ‘서시’는 연희전문을 마친 후 일본 유학을 앞둔 1941년 11월 20일에 쓴 시입니다.  이 시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을 대신하여 쓴 시로 동주의 나이는 당시 26세였습니다. 일본은 최후 발악을 하였고 시국은 점점 흉흉해지고 있었습니다.   ‘서시’는 시집의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부끄러움과 한편으로 괴로움을 극복하고 별을 노래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죽는 날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인 우리 민중과 조국을 사랑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가을 지난 마당은 하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 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루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쓰는 걸. 윤동주는 중학시절 동시를 지었습니다. 연길에 있는 ‘카톡릭 소년지’에 발표했습니다. 해란강(海蘭江) 여울소리, 아름다운  산천과 호흡하면서 쓴 30여 편의 동시가 남아 있습니다. 동시 ‘참새’는 1936년에 지은 시입니다. 가을이 지나고 마당에 참새들이 ‘짹짹’ 하는 소리를 내며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귀여운 모습이 평화롭게 느껴집니다. 마당에 남아있는 발자국을 참새들이 쓴 글씨라는 표현은 순수하고 천진스럽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줄의 ‘하루 종일 글씨 공부하여도, 짹 자 한자 밖에 더 못 쓰는걸'이라는 구절에서는 일제강점기 지식인으로서의 무력감도 묻어납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둔 1941년 11월 5일, 동주는 자선시집(自選詩集) 19편 중 제일 마지막에 ‘별 헤는 밤’을 썼습니다. 일반적인 동주의 시처럼 이 시도 그리움과 자기 성찰이 주제입니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통하여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을밤에 계절의 변화를 몸 가득 느끼면서 하늘의 별들을 어둠속에서 헤아리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들만큼이나 가슴속에 수없이 많은 상념이 떠오릅니다. 그의 눈앞에 온갖 그리운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다시 이런 추억으로부터 깨어나 자신이 처한 현실에 눈을 뜨고 괴로워합니다. 그 고통을 자기 이름 석 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는 행위로 표현합니다. 동주다운 부끄러움입니다. 그러면서 봄과 풀로 형상화된 미래를 보는 희망적인 시선을 놓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는 길이 심지어 죽음일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담고 있습니다. 정신 병동에서 창밖의 별을 보고 그린 고흐(1853~1890)의 ‘별이 빛나는 밤’과 전혀 다른 이미지입니다. 1943년 7월, 동주는 일본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첫 학기를 마치고 고종사촌 송몽규(宋夢圭)와 함께 귀향길에 오르기 직전, 독립운동을 이유로 체포되었고, 2년 언도를 받아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이 형무소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자주 맞았다고 합니다.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불과 6개월 남기고 무슨 뜻인지 모르나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운명하였습니다. 3월 초순 윤동주를 보낸 날은 눈보라가 몹시 쳤습니다. 집 앞 뜰에서 거행된 장례식에서 연희전문 졸업 무렵 발표한 ‘새로운 길’이 낭독되었습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쓰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되뇌었던 윤동주. 윤동주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깊어가는 가을밤에 새벽이 올 때까지 읽어 볼 만한 시집입니다. 시는 인간 속에 있는 신성함을 퇴락 속에서 구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환원시킨다는 말이 백번 맞습니다.
1336    ... 댓글:  조회:3405  추천:0  2018-12-21
[카드뉴스] 영화 '동주'... 영원한 청년 윤동주를 추억하다              2016.                                                   [중앙일보] [카드뉴스] 영화 '동주' 개봉...영원한 청년 윤동주를 추억하다     서 시 윤 동 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 저자: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호주머니 윤동주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이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갑북'은 '가뜩'이라는 의미의 평안도 방언이다. 먹을 것, 입을 것 모자랐어도 마음만은 따스하고 갑북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 어느날 오후 풍경 윤동주  창가에 햇살이  깊숙히 파고 드는 오후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하늘에 구름 한점  그림처럼 떠 있다.  세월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살아가면 갈수록  손에 잡히는 것 보다  놓아 주어야 하는 것 들이 많다.  한가로운 오후  마음의 여유로움 보다  삶을 살아온 만큼 외로움이 몰려와  눈물이 왈칵 쏟아 질 것만 같다. ................................................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1917∼1945)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艱辛)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또 다른 고향 윤 동 주 故鄕(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宇宙(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풍화작용)하는 白骨(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고향)에 가자 .............................................. 십자가(十字架)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붉은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쉽게 씌어진 시  윤 동 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참 회 록  윤 동 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 만 이십 사 년(滿二十四年) 일 개월(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그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위로  윤동주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옥외 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쳐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오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거미가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 몸을 감아 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다 무수한 고생 끝에 떼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 ..............................................   팔복(八福)  -마태복음 5장 3~12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  새벽이 올 때까지  다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요.  다들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요.  그리고 한 침대에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요.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요.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 소리 들려올 게외다.  ~~~~~~~~~~~~~~~~~~~~~~~~~~~~~~~~~~~~~~~~~~~~~~~~~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  봄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 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가슴에 꽂고 병원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  가슴 1  소리 없는 북  답답하면 주먹으로  뚜다려 보오.  그래 봐도  후...  가아는 한숨보다 못하오.  ~~~~~~~~~~~~~~~~~~~~~~~~~~~~~~~~~~~~~~~~~~~~~~~~~~~~~~~~~~~~~~~~~~  가슴 2  불꺼진 화덕을  안고 도는 겨울 밤은 깊었다.  재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  간판 없는 거리  정거장 플랫폼에  나렸을 때 아무도 없어  다들 손님들뿐  손님 같은 사람들뿐  집집마다 간판이 없어  집 찾을 근심이 없어  빨갛게  파랗게  불 붙는 문자(文字)도 없이  모퉁이마다  자애로운 헌 와사등(瓦斯燈)에  불을 혀놓고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사람들  다들 어진사람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돌아들고.  ~~~~~~~~~~~~~~~~~~~~~~~~~~~~~~~~~~~~~~~~~~~~~~~~~~~~~~~~~~~~~~~~~~~  간(肝)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쓰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든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  개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  가리에서  달밤의 거리 광풍이 휘날리는  북국의 거리 도시의 진주  전등 밑을 헤엄치는 조그만 인어, 나  달과 전등에 피쳐 한몸에 두셋의 그림자  커졌다 작아졌다.  괴롬의 거리  재색빛 밤거리를  걷고 있는 이 마음  선풍이 일고 있네  외로우면서도  한 갈피 두 갈피  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  푸른 공상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  거짓부리  똑 똑 똑  문 좀 열어주세요  하루밤 자고 갑시다.  밤은 깊고 날은 추운데  거 누굴까?  문 열어주고 보니  검둥이의 꼬리가  거짓부리한걸.  꼬기요 꼬기요  달걀 낳았다.  간난아 어서 집어 가거라  간난이 뛰어가 보니  달걀은 무슨 달걀  고놈의 암탉이  대낮에 새빨간  거짓부리한걸.  ~~~~~~~~~~~~~~~~~~~~~~~~~~~~~~~~~~~~~~~~~~~~~~~~~~~~~~~~~~~~~~~~~  고추밭  할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밭머리에서 어정거리고  손가락 너어는 아이는  할머니 뒤만 따른다.  시들은 잎새 속에서  고 빠알간 살을 드러내 놓고  고추는 방년(방년)된 아가씬 양  땍볕에 자꼬 익어 간다.  ~~~~~~~~~~~~~~~~~~~~~~~~~~~~~~~~~~~~~~~~~~~~~~~~~~~~~~~~~~~~~~~~~~  고향집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  공상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혜엄친다.  황금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하여.  - 목 차로 -  ~~~~~~~~~~~~~~~~~~~~~~~~~~~~~~~~~~~~~~~~~~~~~~~~~~~~~~~~~~~~~~~~  귀뜨라미와 나와  귀뜨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아무에게도 아르켜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귀뜨라미와 나와  달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  그 여자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능금은  먼저 떨어졌읍니다.  오날도 가을 바람은 그냥 붑니다.  길가에 떨어진 붉은 능금은  지나는 손님이 집어 갔읍니다.  ~~~~~~~~~~~~~~~~~~~~~~~~~~~~~~~~~~~~~~~~~~~~~~~~~~~~~~~~~~~~~~~~~~  기왓장 내외  비오는 날 저녁에 기왓장 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 웁니다.  대궐 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든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  길  잃어버렸읍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읍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꿈은 깨어지고  잠은 눈을 떴다.  그윽한 유무(幽霧)에서.  노래하는 종달이  도망쳐 날아나고  지난날 봄타령하든  금잔디밭은 아니다.  탑은 무너졌다  붉은 마음의 탑이...  손톱으로 새긴 대리석탑이...  하로저녁 폭풍에 여지없이도  오오 황폐의 쑥밭  눈물과 목메임이여!  꿈은 깨어졌다.  탑은 무너졌다.  ~~~~~~~~~~~~~~~~~~~~~~~~~~~~~~~~~~~~~~~~~~~~~~~~~~~~~~~~~~~~~~~~~~~~  나무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  남쪽 하늘  제비는 두 나래를 가지었다.시산한 가을날.....  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운서리 나리는 저녁.....  어린 영(靈)은 쪽나래의 향수를 타고  남쪽 하늘에 떠돌 뿐.....  ~~~~~~~~~~~~~~~~~~~~~~~~~~~~~~~~~~~~~~~~~~~~~~~~~~~~~~~~~~~~~~~~~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  ~~~~~~~~~~~~~~~~~~~~~~~~~~~~~~~~~~~~~~~~~~~~~~~~~~~~~~~~~~~~~~~~~~~~  눈 1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램이  달랑달랑 얼어요.  ~~~~~~~~~~~~~~~~~~~~~~~~~~~~~~~~~~~~~~~~~~~~~~~~~~~~~~~~~~~~~~~~~~  눈 2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와짝 떠라.  ~~~~~~~~~~~~~~~~~~~~~~~~~~~~~~~~~~~~~~~~~~~~~~~~~~~~~~~~~~~~~~~~~  눈 오는 지도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우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든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꼬 나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어 나서면 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도 눈이 나리리라.  ~~~~~~~~~~~~~~~~~~~~~~~~~~~~~~~~~~~~~~~~~~~~~~~~~~~~~~~~~~~~~~~~~~~~  달 같이  연륜이 자라듯이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 하나 뻐근히  연륜처럼 피어 나간다.  ~~~~~~~~~~~~~~~~~~~~~~~~~~~~~~~~~~~~~~~~~~~~~~~~~~~~~~~~~~~~~~~~~~  닭 1  .....닭은 나래가 커도  왜 날잖나요  .....아마 두엄 파기에  홀 잊었나봐.  ~~~~~~~~~~~~~~~~~~~~~~~~~~~~~~~~~~~~~~~~~~~~~~~~~~~~~~~~~~~~~~~~  닭 2  한간 계사(鷄舍) 그 너머 창공이 깃들어  자유의 향토를 잊은 닭들이  시들은 생활을 주잘대고  생산의 고로를 부르짖었다.  음산한 계사에서 쏠려 나온  외래종 레구홍,  학원에서 새무리가 밀려 나오는  3월의 맑은 오후도 있다.  닭들은 녹아드는 두엄을 파기에  아담한 두 다리가 분주하고  굶주렸든 주두리가 바즈런하다.  두 눈이 붉게 여므도록.....  ~~~~~~~~~~~~~~~~~~~~~~~~~~~~~~~~~~~~~~~~~~~~~~~~~~~~~~~~~~~~~~~~~  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  둘다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끝없고  하늘도 끝없고  바다에 돌 던지고  하늘에 침 뱉고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  ~~~~~~~~~~~~~~~~~~~~~~~~~~~~~~~~~~~~~~~~~~~~~~~~~~~~~~~~~~~~~~~~~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또 태초의 아침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 온다.  무슨 계시(啓示)일까.  빨리  봄이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가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보대 있는 데서  돌짜기 다섯 개를 주웠읍니다.  전보대를 겨누고  돌 첫개를 뿌렸읍니다.  .....딱.....  두개째 뿌렸읍니다.  .....아뿔사.....  세 개째 뿌렸읍니다.  .....딱.....  네 개째 뿌렸읍니다.  .....아뿔사.....  다섯 개째 뿌렸읍니다.  .....딱.....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받았을까요  ~~~~~~~~~~~~~~~~~~~~~~~~~~~~~~~~~~~~~~~~~~~~~~~~~~~~~~~~~~~~~~~~  명 상  가츨가츨한 머리칼은 오막살이 처마끝  쉬파람에 콧마루가 서운한 양 간질키오.  들창같은 눈은 가볍게 닫혀  이밤에 연정은 어둠처럼 골골히 스며드오.  ~~~~~~~~~~~~~~~~~~~~~~~~~~~~~~~~~~~~~~~~~~~~~~~~~~~~~~~~~~~~~~~~  모란봉에서  앙당한 소나무 가지에  훈훈한 바람의 날개가 스치고  얼음 섞인 대동강물에  한나절 햇발이 미끌어지다.  허물어진 성터에서  철모르는 여아들이  저도 모를 이국말로  재잘대며 뜀을 뛰고  난데없는 자동차가 밉다.  ~~~~~~~~~~~~~~~~~~~~~~~~~~~~~~~~~~~~~~~~~~~~~~~~~~~~~~~~~~~~~~~~~~  무서운 시간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 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 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  무얼 먹고 사나?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어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어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  십자가  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놓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황혼이 바다가 되어  하루도 검푸른 물결에  흐느적 잠기고......잠기고......  저--왼 검은 고기 떼가  물든 바다를 날아 횡단할꼬.  낙엽이 된 해초  해초마다 슬프기도 하오.  서창에 걸린 해말간 풍경화.  옷고름 너어는 고아(孤兒)의 설움.  이제 첫 항해하는 마음을 먹고  방바닥에 나뒹구오......뒹구오......  황혼이 바다가 되어  오늘도 수많은 배가  나와 함께 이 물결에 잠겼을 게오.  ~~~~~~~~~~~~~~~~~~~~~~~~~~~~~~~~~~~~~~~~~~~~~~~~~~~~~~~~~~~~~~~~~~  소 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삶과 죽음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  뼈를 녹여 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 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  슬픈 족속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  못 자는 밤  하나, 둘, 셋, 넷  ................  밤은  많기도 하다.  ~~~~~~~~~~~~~~~~~~~~~~~~~~~~~~~~~~~~~~~~~~~~~~~~~~~~~~~~  蒼空창공  그 여름날  열정의 포플라는  오히려 창공의 푸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려  팔을 펼쳐 흔들거렸다.  끓는 태양 그늘 좁다란 지점에서  천막 같은 하늘 밑에서  떠들던 소나기  그리고 번개를,  춤추던 구름을 이끌고  南方남방으로 도망하고,  높다란 창공은 한 폭으로  가지 위에 퍼지고  둥근 달과 기러기를 불러왔다.  푸르던 어린 마음이 理想이상에 타고  그의 동경의 날 가을에  조락의 눈물을 비웃다.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의 詩/미래사  ~~~~~~~~~~~~~~~~~~~~~~~~~~~~~~~~~~~~~~~~~~~~~~~~~~~~~~~~  트루게네프의 언덕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그때 세 소년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니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면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니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를 넘어갔다.  언덕 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가다려,  나는 플랫포옴에 간신히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ㅡ 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ㅡ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달갈이  연륜이 자라듯이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 하나 뻐근히  연륜처럼 피어 나간다.  ~~~~~~~~~~~~~~~~~~~~~~~~~~~~~~~~~~~~~~~~~~~~~~~~~~~~~  코스모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뿐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겨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는 내 마음이다  ~~~~~~~~~~~~~~~~~~~~~~~~~~~~~~~~~~~~~~~~~~~~~  둘다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끝없고  하늘도 끝없고  바다에 돌 던지고  하늘에 침 뱉고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  ~~~~~~~~~~~~~~~~~~~~~~~~~~~~~~~~~~~~~~~~~~~~~~~  이별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내, 그리고  크다란 기관차는 빼 ㅡ 액 ㅡ 울며,  조고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 ㅡ  더운 손의 맛과 구슬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  ~~~~~~~~~~~~~~~~~~~~~~~~~~~~~~~~~~~~~~~~~~~~~~~~~~~~~~~  장미 병들어  장미 병들어  옮겨 놓을 이웃이 없도다.  달랑달랑 외로이  황마차(幌馬車) 태워 산에 보낼거나  뚜--- 구슬피  화륜선(火輪船) 태워 대양(大洋)에 보낼거나  프로팰러 소리 요란히  비행기 태워 성층권(成層圈)에 보낼거나  이것 저것  다 그만두고  자라가는 아들이 꿈을 깨기 전  이내 가슴에 묻어다오.  오후의 구장  늦은 봄 기다리던 토요일날  오후 세시 반의 경성행 열차는  석탄 연기를 자욱이 품기고  한몸을 끄을기에 강하던  공이 자력을 잃고  한모금의 물이  불붙는 목을 축이기에  넉넉하다.  젊은 가슴의 피 순환이 잦고  두 철각이 늘어진다.  검은 기차 연기와 함께  푸른 산이  아지랭이 저쪽으로  가라앉는다.  ~~~~~~~~~~~~~~~~~~~~~~~~~~~~~~~~~~~~~~~~~~~~~~~~  호주머니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  1917 12월 30일,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부친 윤영석 모친  김용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남.  아명은 해환. 조부 윤하현은 부농으로서 기독교장로, 부친 윤영석  은 명동학교 교원이었음.  기독교 장로교 유아세례 받음.  1925 4월4일, 명동소학교 입학.  1928 서울에서 간행되던 어린이 잡지 정기구독 시작.  1929 4월,명동소학교가 '교회학교' 형태에서 '인민학교' 로 넘어감.  1930 외삼촌 김약연 - 평양장로교 신학교 1년 수학 후 명동교회 목사 부  임.  1931 3월 20일, 명동소학교 졸업.  명동에서 10리 남쪽에 있는 대랍자의 중국인 소학교 6학넌에 편입  하여 1년간 수학.  1932 4월, 용정 기독교 교육기관인 은진중학교 입학.  1934 12월 24일, 최초의 시 , ,  씀.  1935 9월 1일,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전학.  10월, 숭실중학교 학우지인 제 15호에 시 게재.  1936 3월, 숭실중학교에 대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항의 자퇴.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 편입.  동시,( 1937.1. 발표).  동시 ( 12월 발표.)  1937 4월, 졸업반인 5학년으로 진급.  8월, 백석 시집 을 베껴 필사본을 만듬.  동시 ( 10월 발표).  시( 학생란 1939. 1. 23자 발표).  1938 2월 17일,광명중학교 5학년 졸업.  4월 9일,연희전문 문과입학.  연전기숙사 3층 지붕밑 방에서 송몽규,강처중과 함께 3인이 한을  쓰면서 연전 생활 시작.  시 (학우회지 1941. 6 발표),  (학생란 발표 - 1939, 추정).  동시 , ( 1939 발표).  1939 연희전문 문과 2학년으로 진급. 기숙사를 나와서 북아현동, 서소  문 등지에서 하숙생활.  학생란에 산문 발표.  1940 다시 기숙사로 돌아옴. 1939년 9월 이후 절필하다가 이해 12에  가서 3편의 시 , , 을씀.  1941 5월, 정병욱과 함께 기숙사를 나와 종로구 누상동 소설가 김송씨  집에서 하숙생활 시작,  9월, 북아현동으로 하숙집 옮김.  12월 27일, 연희전문 4년 졸업 (전시 학제 3개월 단축).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시를 묶어 란 제목  의 시집을 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음.  시 , , , ,  .  산문  1942 연전 졸업 후 일본에 갈 때까지 한달 반 정도 고향집에 머무름.  부친 일본 유학 권함. 키에르케고르 탐독.  1월 19일 도일 수속을 위해 연전에 라고 창씨한 이름 제  출.  4월 2일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  10월 1일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학과 전입학.  *시 , , .  1943 7월 14일, 송몽규에 이어 윤동주, 고희욱도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  됨.  1944 2월 22일, 윤동주,송몽규 기소됨.  3월 31일. 경도지방재판소 윤동주에게 징역2년 선고.  1945 2월 16일,오전 3시 36분, 윤동주,복강형무소에서 운명.  2월 18일, 북간도의 고향집에 사망통지 전보 도착.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도일.  송몽규로부터 자신들이 이름모를 주사를 강제로 맞고 있으며 동주  가 그래서 죽었다는 증언을 들음.  3월 6일, 북간도 용정동산의 중앙교회 묘지에 윤동주 유해 안장.  봄이 되자 란 비석을 세움.  8월 15일,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조국이 해방됨.  1947 2월 13일,광복 후에 처음으로 유작 가 당시  편집국장이던 시인 정지용의 소개문을 붙여 지상에 발  표됨.  1948 1월, 유고 30편을 모아서 시집 를 정지용  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을 붙여서 정음사에서 출간.    
1335    윤동주와 영화 "동주" 그리고 그의 시 15편 댓글:  조회:2948  추천:0  2018-12-21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對答)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내일은 없나니       눈 감고 간다   태양(太陽)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었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와짝 떠라.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 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 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 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흰 그림자 황혼(黃昏)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하게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사슴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 포기나 뜯자.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 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젋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둣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차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東京)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봄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들, 들, 시내 가까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을 살아온 나는 풀포기 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서시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줄 모르고  한층 두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의 수평선을 향하여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쉽게 씌어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334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종달새 댓글:  조회:3624  추천:0  2018-12-21
윤동주 /종달새   종달새는 이른 봄날 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이 싫더라. 명랑한 봄 하늘, 가벼운 두 나래를 펴서 요염한 봄노래가 좋더라. 그러나 , 오늘도 구멍 뚫린 구두를 끌고, 훌렁훌렁 뒷거리 길로 고기새끼 같은 나는 헤매나니 나래와 노래가 없음인가. 가슴이 답답하구나.   이 시는 이른 봄에 하늘을 날며 봄노래를 부르는 종달새와는 달리 진 거리의 뒷골목을 헤메는 화자의 답답한 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봄이 왔다. 종달새는 이른 봄날에 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이 싫어 명랑한 봄 하늘을 가벼운 두 나래를 펴서 나른다. 종달새는 요염한 봄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구멍 뚫린 구두를 끌고, 질디진 땅에 훌렁훌렁 구두가 벗겨지는 뒷거리 길을 고기새끼처럼 헤맨다. 종달새처럼 나래와 노래가 없기 때문인가? 가슴이 답답하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는 화자가 부럽게 생각하는 존재이다. 이른 봄날 명랑한 봄의 하늘을 요염한 노래를 마음껏 부르는 존재이다. 이에 비하여 화자는 진창인 거리의 뒷골목을 헤매며 다니며 답답해하고 있다.   ‘종달새는 이른 봄날 / 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이 / 싫더라. / 명랑한 봄 하늘, / 가벼운 두 나래를 펴서 / 요염한 봄노래가 / 좋더라.’는 이른 봄날에 진창인 거리의 뒷골목을 싫어하고 명랑한 봄의 하늘을 가벼운 두 날개를 펴서 날면서 요염한 봄노래를 좋아서 부르고 화자도 그 모습이 좋다는 말이다. ‘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은 명랑한 봄 하늘’과 대조되는 곳으로 화자가 살고 있는 현실을 의미한다. 진창인 곳으로 살기가 힘든 삶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 오늘도 구멍 뚫린 구두를 끌고, / 훌렁훌렁 뒷거리 길로 / 고기새끼 같은 나는 헤매나니 / 나래와 노래가 없음인가. / 가슴이 답답하구나.’는 종달새와는 달리 화자인 나는 오늘도 구멍 뚫린 구두를 신고 진창으로 인하여 훌렁훌렁 벗겨지는 진창인 뒷거리 길을 헤매면서 마음이 답답한 상황인데 그 이유가 종달새와는 달리 날개와 노래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는 종달새와는 대조적인 상황에 있는 화자의 처지를 말하기 위한 접속사이다. ‘오늘도 구멍 뚫린 구두를 끌고’에서 ‘구멍 뚫린 구두’는 화자의 경제적인 상황이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면서 화자의 신분이 구두를 신고 다녀야 되는 신분임을 알려주고 있다. ‘구멍 뚫린 구두’는 진창을 헤맬 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멍을 통해서 진창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화자는 ‘구두를 끌고’라고 한다. 그 이유는 구두가 헐렁하기 때문이다. 진창에 구두가 빠져서 ‘훌렁훌렁’ 벗겨지니 끌고 다녀야한다. ‘뒷거리 길로 / 고기새끼 같은 나는 헤매나니’는 화자가 가는 ‘뒷거리 길’이 물이 흥건한 상태임을 말한다. 그래서 그 흥건한 물이 있는 진탕을 헤매는 자신을 ‘고기새끼’라고 표현한 것이다. ‘헤매나니’는 화자가 방향을 잃었음을 말한다. 삶의 방향을 잃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면서 ‘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을 헤매는 이유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종달새와는 달리 ‘나래와 노래가 없’기 때문인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렇다면 화자의 다음 행동은 종달새처럼 명랑한 하늘을 날을 ‘나래’를 갖고 요염한 ‘노래’를 찾고 익히고 불러야하는 것이다. 계절의 봄은 왔건만 화자가 바라는 봄은 오지 않은 것이다. /전한성      
1333    ... 댓글:  조회:2996  추천:0  2018-12-20
윤동주 탄생 100주년-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김영학 기자 유리처럼 투명하지도, 벽처럼 막히지도 않은 안과 밖의 반투명창 창호지 너머 아버지가 계신다.   아버지가 새벽에 장터가시는 날,아이는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까 침을 발라 구멍을 뚫는다.   다시 눈 내리는 저녁 나무 팔러가 난 우리 아빠를 기다리는 궁금증이 그만 창문에 더 큰 구멍을 내고 말았다. 가족의 그리움과 소중함이 윤동주 시인의 ‘창구멍‘이라는 시에 새록 새록 묻어나온다.   28일 세목회 초청(회장 석명복) ,고두현시인(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의 “윤동주 탄생 100주년 그의 시 세계와 삶”에 대해 90분 동안 귀한 시간을 가졌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 완결본 필사본 ‘동주 필사’의 책에서 발췌한 ‘창구멍’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고 싶어서 침을 발라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옵니다.   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 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살랑 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19살의 윤동주 시인의 어린 마음, 시심은 이러했다. 윤동주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의 용두레 우물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시를 따라 쓰다, 고두현 시인 자신도 시인이 되어 올해 5월 ‘동주 필사’를 이렇게 출간하게 된 것은 어쩌면 인연이 아닌 필연일지도 .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현재까지 윤동주의 마지막 시작으로 알려진 ‘쉽게 씌어진 시’의 한 구절을 읽으며 나의 소명을 생각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가 1941년 11월20일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한달 앞두고 쓴 서시(序詩)가 윈래 제목 없이 쓰여졌다는 것이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동주필사'를 만나길 망설임 없이 권한다.
1332    ... 댓글:  조회:2698  추천:0  2018-12-20
평양 숭실학교 윤동주의 시 ‘모란봉에서’(위 사진 오른쪽) 및 ‘창구멍’의 육필원고 일부와 1930년대 윤동주가 다녔던 평양 숭실중학교(아래 사진). 유족대표 윤인석 교수 제공·숭실고등학교 제공   “이제 북한에서도 윤동주를 언급하기 시작했어요.” 1993년 스승 오무라 마스오 교수님(일본 와세다대)께서 복사물 몇 장을 주셨다. 어떤 일에도 흥분하지 않는 분의 약간 달뜬 표정이 낯설었다. 윤동주를 과대평가된 작가로 폄훼하고 있었던 미물이 스승의 깊은 뜻을 알 리 없었다. 종이 몇 장을 대수롭지 않은 듯 가방에 쑤셔 넣고 나왔다. 다음 해 1994년 평양에서 출판된 ‘문예상식’에 3면에 걸쳐 윤동주 시 ‘서시’ ‘슬픈 족속’ ‘쉽게 쓰여진 시’에 대한 분석이 실렸다. 북한에서 윤동주를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국외에서 성장한 윤동주가 국내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면 총독부에서 지정한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총독부 지정학교로 인정받은 숭실중학교 4학년에 입학하려 했던 18세의 윤동주는 4학년 편입에 실패하고 3학년에 편입한다. 최초의 큰 좌절이었다. 9월에 입학한 그는 처음 자신의 글이 활자로 변하는 체험을 했다. 10월에 숭실중학교 YMCA문예부에서 낸 ‘숭실 활천’에 ‘공상’을 발표했다. 1935년 12월에는 최초의 동시 ‘조개껍질’을 썼다. 이 시 끝에는 현재 평양의 봉수동 ‘봉수리에서’ 썼다고 쓰여 있다.  편입 실패보다 더 큰 좌절이 그에게 다가온다. 1925년 조선신궁을 세운 뒤 조용했는데, 1935년 4월 19일 조선 도지사 회의에서 이마이다 기요노리(今井田淸德) 정무총감은 신사참배를 강조한다. 1935년 9월 애써서 입학한 숭실중학교는 신사참배에 반대했다. 평남도지사는 1936년 1월 18일자로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는 숭실중 교장 맥큔의 교장 인가를 취소했고, 3월 20일 총독부가 교장을 파면한다. 곧바로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시작하고, 3월에 윤동주는 문익환 등과 숭실중학교를 떠난다. 이 무렵 3월 24일에 시 한 편을 쓴다.   앙당한 소나무 가지에  훈훈한 바람의 날개가 스치고, 얼음 섞인 대동강 물에,  한나절 햇발이 미끄러지다. 허물어진 성터에서  철모르는 여아들이 저도 모를 이국 말로  재질대며 뜀을 뛰고. 난데없는 자동차가 밉다.    ―윤동주, ‘모란봉에서’  모란봉과 대동강이라는 지명이 나오니 분명 평양에서 쓴 글이다. 작게 움츠러져 있는 ‘앙당한’ 솔나무는 윤동주나 친구들 모습일까. ‘얼음 섞인 대동강 물에,/한나절 햇발이 미끄러지다’라는 표현도 신선하지만, 2연을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다. 허물어진 모란봉 성터에서 ‘철모르는 여아들이/저도 모를’ 이국 말(일본말)로 노래 부르며 ‘재질대며’ 뜀 뛰며 일본 놀이를 하고 있다. 명동마을에서 이렇게 놀면 야단맞을 괴이쩍은 풍경이다. ‘난데없는 자동차가 밉다’는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침략해 오는 일제가 밉다는 뜻이다. 이 시는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년)나, 이태준 단편소설 ‘패강랭’(1938년)을 생각하게 한다. 성터와 함께 허물어지는 한 나라의 언어와 생활을 천천히 응시하게 하면서도, 윤동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동시 ‘창구멍’은 1936년 초에 창작된 시로 추정된다.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  침을 발라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웁니다 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   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윤동주, ‘창구멍’   구절구절 아빠 사랑이 간절하다. ‘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침 발라 작은 창구멍을 뚫는다. 얼마나 궁하면 나무가 젖을 수밖에 없는 눈 내리는 날 나무 팔러 나갈까. 새벽도 아니고 저녁에 말이다. 새벽부터 밤늦게 고단하게 일하는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 마음, 소담한 비애가 독특한 리듬으로 반복된다.  숭실에서 머문 7개월 동안 시 10편, 동시 5편을 썼다. 15편의 시를 쓰며 창구멍으로라도 들어오는 희망을 꿈꾸지 않았을까. 그러나 희망은 싸구려가 아니다. 희망은 ‘살랑살랑 찬바람’으로 날아든다. 마치 발터 베냐민이 나치 정권에서 잔혹한 낙관주의로 희망을 얘기했듯이, 희망은 냉혹하다.  윤동주는 연희전문 시절 때도 평양에 가서, 서양 고전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다방 ‘세르팡’에 들르곤 했다. 원로 화가 김병기 선생은 중요한 순간을 회고했다. “한번은 초현실주의 등 현대예술 관련 토론이 벌어졌다. 옆 테이블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청년이 불만스럽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초현실주의 같은 사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시인 윤동주, 바로 그였다. …1940년대 초 연희전문 시절에도 곧잘 평양 나들이를 했다.”    고전음악을 듣던 평양은 윤동주에게 편입시험 실패라는 좌절을 안긴 곳이다. 자신의 작품이 활자로 변하는 기쁨을 체험한 평양에서 ‘조선=식민지’라는 환멸을 몸으로 체험한다. 중국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 서울의 연희전문에서 공부하고, 일본에 가서 절명했던 그의 이력은 ‘중국-북한-한국-일본’을 연결하는 아시아평화공동체에 대한 작은 창구멍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윤동주 강연을 할 때, 중국과 일본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를 볼 때마다, 나는 윤동주가 내놓은 작은 창구멍이 떠오른다.    이제 북한에서 윤동주가 연구된 것을 반가워하던 오무라 교수님의 반가운 표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한때 남북공동 문학교과서를 만든다면 어떤 작가를 넣어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다. 북한에서도 높이 평가받는 김소월, 이육사 등과 함께 윤동주는 통일문학을 위한 창구멍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시아문학교과서를 만든다면 윤동주가 작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윤동주는 우리 시대와 아시아인에게 다가오는 희망과 실천의 상징이다. 희망은 아롱아롱 아침해, 살랑살랑 찬바람으로 희미하게 다가온다.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1331    ... 댓글:  조회:2855  추천:0  2018-12-20
   시인 윤동주 윤동주는 우상일까, 팬시상품일까. 왜 사람들은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고, 그의 삶을 기억하려 할까. 탄생 100주년이라 하여 왜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을까.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그를 생각할 때 작은 창구멍이 그려진다.  당시 종이로 만든 창호지 문에는 구멍이 나곤 했다. 윤동주는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십자가`, 1935)했다고 신선하게 표현했다. 창구멍으로 도망 가는 암흑을 매를 본 꿩 같다고 재밌게 표현했다.   `창구멍`(1936)이라는 제목의 짧은 동시도 있다.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  침을 발라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웁니다  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  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 윤동주, `창구멍` 1936년  구절구절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진지하다. "새벽에 장터 가시는 /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 침 발라 작은 창구멍을 뚫는다. 자식 키우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일하는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대견하고 안타깝다. 이 동시는 1999년에 발굴된 시로 용정은진학교, 평양숭실중학교에 다닐 때 쓴 시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1936년 초에 창작된 시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숭실중학교를 떠날 무렵 쓴 시다.  1935년 9월 애써서 입학한 숭실중학교지만 총독부는 계속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1936년 1월 20일 총독부가 윤산온(George S McCune) 교장을 파면하자, 학생들은 곧바로 동맹휴학을 시작하고, 3월에 윤동주는 문익환 등과 숭실중학교를 떠난다. 1938년 3월 19일 숭실학교, 숭의여, 숭실전문학교 등 3숭(崇)은 마침내 신사참배 반대 사건으로 폐교된다. 숭실에서 머문 7개월 동안 시 10편, 동시 5편을 썼다. 그는 15편의 시를 쓰며 창구멍으로라도 들어오는 희망을 꿈꾸지 않았을까. 절망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윤동주는 속삭이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윤동주가 단순히 희망만을 그리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십자가`)를 드리우고 피를 흘리겠다는 다짐이 이어진다.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서시`)라고 썼다. 이 사회에서 낮고 천한 죽어가는 존재에 대한 실천을 그는 썼다. 가장 아픈 분 `곁으로` 다가가 연탄 나르기라도 할 때, 독거노인에게 반찬을 드릴 때, 우리는 윤동주 시의 진정한 독자로 다가설 수 있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는 의지가 없이 책만 읽고 영화만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윤동주를 `상품`으로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윤동주는 `배설`의 한 방도가 될 수도 있다. 윤동주는 `자기성찰`로 방 안에만 있던 시인이 아니다. 모가지까지 내놓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 할 때 이 사회에는 진정한 `윤동주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참혹한 시대라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창구멍`으로 들어올 희망을 꿈꾸며 버티고 이겨내라고 윤동주의 시는 응원한다.  중국에서 태어나 북한의 평양숭실중학에서 공부하고, 남한의 연희전문에서 공부하고, 일본에 가서 절명했던 그의 영혼은 단순한 희망을 넘어선다. `중국-남한-북한-일본`을 연결하는 아시아평화공동체에 대한 작은 희망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윤동주 강연을 할 때마다, 중국과 일본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를 볼 때마다, 중국인과 일본인이 윤동주 시를 읽고 공감하여 흘리는 눈물을 볼 때, 나는 작은 창구멍이 생각난다.  다가올 봄이 우리에게 `창구멍`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롱아롱 아침해"가 당신과 이 나라에 비치면 좋겠다.   "살랑살랑 찬바람"도 날아들어 게으른 정신도 깨어나면 좋겠다. 희망은 아롱아롱 아침해처럼, 살랑살랑 찬바람처럼 희미하게 다가온다. 우상이나 팬시상품이 아니다. 윤동주는 우리 시대와 아시아인에게 다가오는 희망과 실천의 상징이다. ⓒ 매일경제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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