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 소설 .
고양이 똥 커피
김 혁
주문한 커피가 들어 왔다.
너구리를 닮은 짐승의 꼬리를 한 손으로 치켜들고 다른 한 손은 커피잔으로 배설물을 받고 있는 상표가 붙었는 커피 포장함에는 “Luwak”이라는 영문자모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 루왁이야.
허사장이 흥감스럽게 입을 열었다.
- 이 루왁커피 한잔에 얼마 하는지 알어?
허사장이 좌석의 유일한 녀편집을 향해 물었다. 녀편집이 머리를 저었다.
총편님은요? 이 커피 한잔에 얼마 하실것 같아요?
허사장이 이번에는 주필을 보고 물었다. 문예지 주필도 맹랑한 기색으로 머리를 저었다.
오늘의 주인공 김작가가 한번 맞춰 보시지?
물음의 바통은 집요하게 나에게 까지 넘겨져 왔다. 나도 그만 시무룩하게 웃고 말았다.
모두들 그저 허사장의 입만을 지켜보았다. 조도(照度)가 낮은 레스토랑의 주홍빛 불빛아래 허사장의 얼굴이 흥감스럽게 번들거렸다.
올백 머리의 이 사장님의 협찬으로 궁핍한 문학지의 올해 상이 요행 개최되였고 그 상의 대상을 바로 내가 수상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축하주까지 마셨는데 사장이 2차를 가자고 또 부득부득 끌어서 함께 한 자리였다.
허사장이 손가락 다섯개를 좌악 폈다. 손가락에 낀 세개의 알반지가 유표하게 번뜩이였다.
50원이요?
아니 500원이야!
우와! 한잔에 500원이면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 커피값만해도 5천원은 나가겠네요.
좌석에서 감탄들이 자지러 졌다.
나는 그만 떨꺽하고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내가 받은 대상의 금액이 5천원이다. 불현듯 세계에서 제일비싸다는 이 커피를 들이민 사장의 심사가 뇌꼴스러워 났다.
루왁이 뭘로 만든 커피인지 알아?
허사장이 또 물음을 물어 왔다. 년세가 한참 위인 주필이 동석했음에도 자연스레 반말이 튀여 나온다.
녀편집이 머리를 저었다. 머리에 지른 나비모양의 장식핀이 떨어질듯 위태롭다. 그냥 머리만 저어대는 품이 웬지 바보스러운 구석이 보였다. 평소에는 예쁘고 순발력있는 편집으로 알았는데…
고양이 똥이야
네 고양이 똥이요
그래 고양이 똥이지
호동그래진 편집의 눈길을 보고 허사장이 재미나다는듯 흐억흐억 웃었다.
내력있는 커피였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그 제조과정에 대해 본적 있었다. 아무리 사람이 영악하기로서니 어찌 짐승의 똥을 먹을 생각을 했을가하고 기어이 자료를 찾아보았었다.
커피 포장지에 그려진 그 동물 이름은 “긴 꼬리 사향고양이”였다.
인도네시아 커피 농장에서 이놈들이 잘 익은 커피 열매를 따 먹고 사는데 소화 안 된 씨가 배설물에 섞여 나온다. 농장사람이 우연히 커피 씨앗을 골라 정제하여 볶아냈더니 특유한 향의 커피가 나왔고 이를 상품화한 한것이 바로 세상에 이름 떨친 “루왁”커피였다. 무슨 고양이 똥으로 만든 커피가 1kg에 미화 1천불이나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루왁”의 독특한 향과 맛이 사향고양이 체내에서 소화되는 과정에 아미노산이 분해되면서 특유의 맛을 내는것으로 설명했다. 꽃속의 꿀 성분이 꿀벌 위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꿀이 되는것과 같은 원리라는것이다.
엄청난 고가이지만 정작 사람들이 이 해괴한 커피를 찾는것은 그 엄청난 가격때문이라 했다. 돈깨나 있는 사람들의 과시욕이 이 커피를 엄청난 가격임에도 찾게 만든다는것이다.
뽀이가 직접 와서 커피를 끓여 주었다. 커피메이커에서 보글보글 김이 피어오르면서 룸안에는 야릇한 향기가 자욱하다.
하지만 사장의 내내 흥감스럽고 상스러운 말과 몸짓들이 향기로운 커피의 향을 밀어내며 룸의 기운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질감이 한 가슴 가득했지만 협찬자의 흥을 깨는것도 례의가 아닌것 같아 나는 없는 화제를 만들려 했다.
고양이를 좋아한 작가들이 적지않습니다.
그래요. 좋지요. 고양이
한켠에서 졸고있던 주필이 몽롱하게 말꼬리를 잡는다.
잡지사를 위해 협찬 한푼이라도 받아오려 자신의 여직 지켜왔던 체통을 죽여가면서 목덜미를 낮추는 늙은 주필님이시다.
헤밍웨이도 마크트웬도 모두 고양이를 좋아했답니다. 디켄즈도 애묘인이였지요.
나는 기왕 고양이똥 커피를 마시는 자리라 고양이로 화제를 만들려 했다.
이쁜 편집님은 우리 회사에 들어오지 않을라나? 그 용모가 아까우이. 문학이 뭐 밥을 먹여주나?”
녀편집과 이죽거리던 허사장이 마지못해 나를 향해 응수했다.
디켄즈가 뭔데? 그것도 커피인감? 얼마짜리 커피인데?
에이 롱담도 심하시다
주필이 안면근육을 애써 동원해가며 웃었다.
디켄즈가 누군지 내가 알턱이 있나?”
디켄즈를 몰라요? 대단한 영국작가인데
녀편집도 참지못하고 한마디 했다.
몰라
허사장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난 무슨 커피 상표인줄 알았지. 그리고 마크 트웬은 또 누구고? 그것도 커피인가?
허사장이 흐억흐억하고 또 그 축축한 웃음소리를 냈다.
주필은 입 한번 다시고나서 다시 가수(假睡)상태로 들어 갔고 나는 나대로 단절된 대화를 이으려고 애썼다.
왜서였던지 나는 디켄즈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시대의 빈곤과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족의 속물근성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했던 디켄즈였다.
디켄즈는 밥 딜런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웠는데 사랑하던 고양이 밥이 죽자 장신구에 고양이의 이름을 새겨 책상우에 놓아두었답니다.
뭐 고양이 이름이 밥이라 푸하하”
사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런 감수성으로 디켄즈는 “두도시의 이야기”와 같은 대표작을 써냈답니다.
흐억흐억, 고양이 이름이 밥이라 웃긴다 웃겨…
디켄즈는 영국에서 쉑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명한 작가로…
고양이 이름이 밥이라니 흐억흐억, 밥이 먹구 싶네. 배고파 히히히.
드디여 커피가 다 끓었다.
김작가 한번 맛보시지
나는 시음(試飮)을 하듯이 커피를 한모금 입에 물었다. 나름 커피 매니아였지만 루왁만은 처음 마셔보는 나였다.
이때 사장이 커피를 입에 넣고 숭늉이라도 마시듯 훌룰훌룩 입가심을 했다.
드디여 내 안쪽에 억눌려 있던 이질감들이 토사물처럼 터져 나왔다.
우왁!하고 나는 그만 1킬로에 1천불을 한다는 루왁커피를 입으로 내뿜고 말았다.
“장백산”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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