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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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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2008년 04월 03일 16시 48분  조회:4676  추천:62  작성자: 김혁


. 중편소설 .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제3회 "김학철 문학상" 수상작품)

김 혁


 


놈은 멋있었다.
놈은 부드러운 순백색의 털을 가졌다.
눈빛은 짙은 에메랄드색이다.
    삼각형의 귀, 엷은 핑크 색의 입과 동침 같은 은빛수염, 입 벌리면 드러나는 호랑이의 그것 같이 날카로운 렬육치(裂肉齒)...
   견갑부(肩甲部)에는 감색의 털이 조금 섞인 나비 모양의 무늬가 있다. 목과 가슴의 풍성한 털이 인상적인데 조그마한 녀석이 그 무슨 사자처럼 갈기를 가지고 있다.   
꼬리는 길고 풍성하며 높이 추켜 올라가 있다.
원산지가 노르웨이, 인위적으로 교배된 품종이 아니라 여러 대를 거쳐 북유럽의 춥고 혹독한 환경속에서 살아남은, 자연선택에 의해 탄생된 품종이라 한다.
성격이 까칠한듯 하지만 아빠트에서도 곧잘 적응을 하는 장모종(长毛种)의 고양이, 애묘인(愛猫人)들의 총애를 무척이나 받는 놈이다.
    그런데… 나는...  놈이 싫다.
    고양이를, 우리 집에서 1년도 더 살아온 고양이를 버리기로 했다.

 

 

1


한 잡지사에 있는 동료에게 고양이를 주기로 했다. 편집부에서 시 편집을 맡고 있는 후배이다.
   -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대요. 신비스러운 이미지와 개인주의적 성격이 예술가들에게 공감을 준다고 할수 있죠. 외국영화서 보면 깃털 펜을 든 시인 곁에 탐스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 않아요.
시 편집이 고양이의 턱밑을 간질이자 놈은 가래 끓는 듯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감사의 표시로 한턱 쏜다며 후배가 퇴근길에 맥주집으로 청했다.
    - 근데 선배님은 왜 고양이를 안 키우려 하세요?
    술 몇 잔이 돌자 시 편집이 나를 보고 물었다.
    - 고양이를 왜 안 키우냐고? 음... 그냥
   후배의 진지한 질문에 어눌하게 입술을 움직이다 나는 애매한 대답을 주고 말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서 한 녀자를 떠올리고 말았다. 고양이 같은 호동그란 눈매를 가진 한 녀자를.
   그녀는 마거릿 미첼의 작품을 각색한 동명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녀주역을 꼭 닮았다. 주인공 스칼렛 역을 맡은 배우 비비안 리가 평소에 “고양이 눈매를 가진 녀자”라 불렸듯이 둘의 눈매는 닮은 데가 있다. 그래서 그녀의 별명을 내가 “비비안 리”라고 지었다.
“비비안 리”는 내 소설의 애독자이다. 처음에는 문학지에서 나의 략력에 실린 주소를 보고 조심스레 문안메일이 왔다. 나의 전부의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몇부의 소설에는 깊이 빠져있었다. (실은 나 스스로 보기에도 별로인 작품임에도 말이다.) 소설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수와 작가에 대한 궁금증 등으로 메일이 몇 번 오간 뒤에 그녀에게서 만날 수 없겠냐는 간청이 왔다. 그래서 만났다. 요즘같이 문학의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진 시국에 팬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팬 쪽에서 만나고 싶다는 청구는 과히 기분 나쁜 일이 아니였다.
    어느 봄날, 그녀가 자주 간다는 차집에서 만났다.
들어서는 그녀를 보는 순간, 즐거운 기대나 궁금증 같은 것을 가지지 않았던 나는 테이블에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녀성문학인이나 문학애호가라면 두터운 도수안경에 복고적인 풍의 옷차림의, 머리는 비상하나 외모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지어 못나기까지 한 이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기존의 인상들을 엎질러버리며 미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배시시 웃어 보이며 들어서는 모습이 더없이 당차고도 단아했다. 이른봄이라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직 두껍고 칙칙했지만 그녀의 복장은 계절을 앞질러 엷고 화사했다. 블루의 상의와 스커트가 매치 되는 투피스 차림, 패션 잡지를 한 페이지 찢어 놓은 그림 같았다.  부드럽게 웨이브 진 긴 머리, 선연한 주홍색 립스틱, 핑크 빛 아이새도우(眼影)... 본능적인 관능미와 정제된 세련미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도출해내고 있는 녀자였다.
못나게도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엄지로 안경테를 연신 추어올리며 오랜만에 문학이니 인생이니 하는 대단한 명제에 대해 감상적이고도 격조 높게 담론했고 그녀는 핑크 빛 아이새도우를 바른 눈시울을 깜박이며 들어주었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만났다. 고료나 편집비가 나올 때면 나는 그녀를 불러서 같이 술을 마셨고, 그 동안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곤 했다. 얼굴바탕이 좋은 녀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가식이나 허영 같은 것이 조금 보이긴 했지만 녀자는 총명, 령리, 눈치 따위로 끝내주는 녀자였다. 그 무렵 나는 천사가 따로 없다고 믿고 있었다.
   순백색의 털에 에메랄드빛 눈을 가진 장모종의 고양이, 고양이는 이런 그녀가 키우던 고양이였다. 그녀처럼 고귀한 품종의 고양이, 그런데 지금 나는 그 고양이가 싫다.
내가 버리려던 참에 내여준 고양이를 받아 안고 괜스레 흥분하는 시 편집과 술을 억척스레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따자 언제 나와 같이 자잘한 생필품들이 너절너절 널려있는 빈방, 어지러움과 고요가 마중한다.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리모컨을 찾아 들고 TV를 향해 버튼을 눌렀다. 고요가 싫어져 집에 들어서면 내가 제일처음 하는 동작이다. TV는 왁자하니 소란한 소음을 쏟아낸다. 지루한 드라마 프로는 건너 띄고 오락쇼 프로를 틀었다. 사회자가 입담을 자랑하고 무대아래우가 웃음으로 자지러진다. 하지만 화면 가득 메운 웃음소리도 나의 기분을 상승시키지 못했다. 소리가 엄청 높았지만 볼륨을 조절하기조차 귀찮아져 버려둔채 나는 그대로 쏘파우에 무너져 내렸다.
안해가 한국으로 나간지 어언 7년째이다. 그때 겨우 걸음마를 타던 딸애가 이제는 학교를 다닌다.
   몸이 잰 안해는 그 누구보다 순발력이 있어서 사람들은 내게 처복이 있다고들 했다. 출국 붐에 세상이 들썩거리자 안해가 가만있을리 없었다. 작가님이라 우러러보고 시집왔더니 책에서 읽은 거 빼고는 아는 게 없는 나를 두고 식상한 나머지 안해는 돈벌이를 위한 출국을 유일한 비상구로 삼았다. 나는 그런 안해를 막지 않았다. 막을 수도 없었다. 
   남들과 근사하게 아니, 남보다 더 잘사는 꿈에 신명을 걸고 시악을 박박 쓰는 안해에 의해 우리 집은 변모되기 시작했다. 강을 낀 아빠트단지의 알맞은 층수의 집, 그리고 그 집안을 채우고 있는 초대형TV, 에어컨, 세탁기, 김치랭장고와 가스오븐레인지, 지어 전기압력밥솥에 이르기까지 각종 브랜드제품들이 다 안해덕에 마련된 것이다. 나의 두번째 소설집도 안해덕에 자비출판을 할수 있었다, 작품량은 적지 않은데 호주머니사정이 안되여 감질내다가 첫 작품집을 낸 5년후에야 안해덕분에 제본 훌륭하게 나올수 있었다.
황금 알을 품은 거위 같은 안해를 둔 나를 보고 모두들 복이 홍수로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야말로 가장 불안한 순간일수 있다. 요즘 내게는 행복이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견디고 있다는 말이 나을 거 같다.
   언제나 그렇게 대개는 계란 프라이 하나에 딱딱하게 굳은 빵 한 조각, 틱틱한 우유. 아니면 전기밥솥 안에서 하루를 묵은 밥과 시여 빠진 김치를 대충 올려놓고 볼 가심하는 을씨년스러운 식탁, 다른 애들보다 옷차림은 화사하지만 어미의 자리가 빈 데서 어딘가 풀죽어 있는 아이의 모습… 3년이면 돌아온다던 안해는 7년째 되건만 오지 않는다. 이제 안해의 존재는 나와 아이에게 있어서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보름마다 걸려오는 국제전화속의 판에 박은 목소리,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처럼 정물적인 것, 그리고 퍼런 액면의 지폐 같은 것이였다. 나는 안해가 3D업종에 혹사하면서 부쳐 보낸 돈으로 일껏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은연중 안해에 대한 원망의 싹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외롭기 짝이 없었다. 외로워 미칠것만 같았다. 그 외로움의 표출로 매일 술을 마시고 TV의 마지막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궁싯거리며 뽀얗게 밤을 새우는 내 모습, 오한이 들만큼 질식할 듯한 정적 속을 서성이는 나의 이런 모습들이 스스로 보기에도 소연(蕭然)하다.
    그리고 자제하기 어려운 금욕의 시간들... 늘 같이 하다가 혼자 눕는 이부자리가 얼마나 헛헛한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혼자만의 체온으로 버텨내야 하는 이불 속은 아무리 난방온돌바닥이 절절 끓어도 허전하고 쓸쓸했다. 뼈 마디마디에 남아있는 한기는 어쩌지 못했다. 처음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육체적 욕망따위는 누룰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가정을 위해 타향에서 손 지문이 지어지도록 일에 혹사하는 안해를 두고 떠올리는 육체적 욕망은 곧 오욕의 덩어리였다. 내가 욕망을 따라가려 할 때마다 멀리에 있는 안해가 그 견고한 얼굴을 들이밀며 붙잡았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자 몸과 마음에 욕망의 열기가 터질 듯이 고여 왔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 사막의 초열(焦热) 같은 괴성이 소리를 질렀다. 그 괴성은 나의 온 몸을 들쑤셨고 그 발열은 나의 온 몸을 태우려 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도 온통 이런 적막과 무미함으로 채워진 인고의 시간들이리란 상상에 두려움을 금치 못해 했다. 그러다 튕겨져 오르는 음악의 클라이막스 부분처럼 현이 끊어지기 직전의 고뇌의 분출구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다.
   여러 번의 만남이 있은 뒤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여 그녀를 편집부 동료들이 벌리는 은밀한 파티에 초청했다. 모두가 마누라를 출국시키고 볼썽사납게 남은 남편들이 모여 벌리는 파티, 모두는 자기가 지금 사귀고 있는 애인들을 현시라도 하듯 동참시켰다. 요즘 같은 세월에 애인 하나쯤 끼고 있는 것은 무슨 천기(天機)와 같은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였다. 좀 그런 모임이라지만 편집부에서 한다 하는 인물들 거의가 참가하는 모임이라 빠질수도 없었는데 번마다 혼자 참석하는 나를 보고 파티의 우두머리 격인 편집부장이 웃음을 날렸다.
- 너 혹시 고자 아니여?
부장의 웃음소리는 내 고막을 란타하며 방에 가득히 명멸했다. 헛바람이 새는 듯한 그 웃음소리는 자못 방탕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정색을 하면서 목에 잔뜩 힘을 주어 다소 경멸 섞인 어투로 부장은 덧붙였다.
- 다음에도 외짝으로 오면 사람들 앞에서 확인부터 해 볼 것이니 그리 알고 잡도리 한다 실시!
    사실 가속이 출국한 중에 나와 50대의 수필편집이 밖에 넘보는 녀자가 없다. 그래서 그 동아리들은 나와 그 로편집사이에 같기 부호를 그어주고 있었다. 생각 끝에 나는 그녀를 불렀다. 가짜 애인 역을 맡아 달라고 갑자르며 말했다. 그녀가 웃었다. 허리 까부러지게 웃었다. 그러나 흔쾌히 동의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을 닮은 “비비안 리”를 이끌고 들어선 나를 본 평집부장의 안경테가 코 마루에서 집장(執杖)고도 뛰기를 했다. 부지런히 오가던 수저를 멈춘 채 나를 쳐다보는 다른 동료들, 그들이 끼고 앉은 이젠 익숙해지기까지 한 애인들의 얼굴은 반신반의 그리고 경악 그 자체였다. 그날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워 데리고 온 왕자라도 된 기분으로 나는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
    2차 3차 끝날 것 같지 않던 파티가 드디여 파하고 내가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주었다. 그녀는 몹시 취해 있었지만, 그러나 취기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눈빛은 상쾌한 물방울처럼 나를 향해 툭툭 튀고 있었다. 그 눈은 사랑에 달뜬 십 대의 소녀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파트로 오르는 층계에서 바램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나를 그녀가 불러 세웠다.
휴~ 하고 그녀가 이마로 내려온 앞머리를 입김으로 불어 올렸다. 그리곤 말했다.
- 우리 진짜 애인 하면 안 돼요?
현관의 창으로 새여든 달빛이 층계를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알콜에 사로잡힌 나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헤맸다. 그 시선을 받은 녀자가 쓰러지듯 내 몸에 안겨들었다. 그러면서 녀자는 내 뺨을 감싸 쥐였다.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녀자의 혀가 들어왔다. 혀는 뜨겁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순간 당황했고 가슴이 더워졌다. 이러는 거 아니라고, 이러면 안 된다고 뜨거워나는 가슴을 달랬지만 몸은 뜨겁게 절절이 끓고 있었다. 그 동안 용케도 참아 왔다고 느꼈는데. 나는 어느 결에 팔로 녀자의 등허리를 감고 말았다.
녀자의 집으로 달려 올라가 우리는 카펫 우에서 뒹굴었다. 서두르며 서로를 가졌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초토화 된 사막을 건너와 물웅덩이를 만난 려행자들처럼 서로를 마셨다.
    이윽고 녀자는 커피를 끓였다. 일을 치르고 나면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별난 취향이였다. 컵에 설탕을 넣고 충분한 크림을 얹고 뜨거운 커피를 부어 저었다. “연와(燕窩)”커피, 어쩌면 내가 즐기는 커피였다. 처음 다른 녀자와 침대우에서 마시는 커피, 야릇했고 달콤했다.
    그 그윽한 향기처럼 사랑은 느닷없이 다가왔다.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의 쓴맛이나 떫은맛과 같이 고통이 따르지만. 곧이어 감미로운 뒤맛으로 바뀌여 입 속에 오래도록 추억과 흔적으로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커피를 즐기듯 사랑도 중독이 되는걸가?
    커피잔을 놓고 녀자는 나의 가슴에 뺨을 붙이며 안겨들었다. 잘 익은 복숭아 빛으로 녀자는 두 볼이 물들어 있었다. 풍성한 저녁식사 뒤에 따라나온 후식을 즐기듯 달콤하고 평안한 모습이였다. 녀자가 입을 열었다.
    - 3년이 됐어요. 혼자 있은 지가…
    남편이 로무수출로 한국에 나갔다고 했다. 시골학교가 페교되면서 체육교원이였던 남편과 작문지도교원이였던 자기는 일조일석에 직업을 잃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은 배를 탔고 자기는 상경했다고 했다. 녀자의 목소리가 내 온 몸에서 웅웅 울렸다. 녀자가 커피 포장지에 그려진 둥지 속의 한 쌍의 제비를 지켜보며 말했다.
- 우리 이렇게 가끔 즐겨요. “연와” 커피를 마시듯이.
… 이런 그녀. 이런 그녀와 키우던 노르웨이 산 고양이, 그런데 지금 나는 그 고양이가 싫다. 그래서 남에게 주어버리고 오는 길이다.

 

 

2


아침, 출근하자 시 편집이 들어서는 나를 보고 다짜고짜 물었다.
    - “톡소플라스마”라고 들어 봤어요?
    목소리가 다급하고 진지했고 나는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 톡 소 플 라 스 마?
    시 편집이 허겁지겁 설명했다.
   - 임산부에게 치명적인 병균이 아니고 뭡니까! 류산을 유발하고 무뇌증과 같은 기형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요.
    - 그런 데는??
    - 그런 데라니요. 그 병균이 고양이 몸에 들어있다지 않고 뭡니까?
    그제야 나의 더듬이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시 편집의 안해는 지금 임신중, 녀석을 빼닮을 소심한 성격의 후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있었던 것 이였다.
녀석이 병원체(病原体) 샘플이라도 넘겨주듯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양이가 들었는 종이박스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 되돌려져 온 고양이를 사무실에 그냥 둘 수도 없고하여 핑계를 대고 남보다 앞당겨 퇴근했다. 집에 들어서서 장물(贓物)을 어디에 감출지 몰라하는 범죄자처럼 나는 종이박스를 든 채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 고양이의 눈매를 닮은 그녀- “비비안 리”가 어느 날 무언가 들고 나타났다. 전기 밥솥 박스였다. 그런데 박스속에 든 것은 밥솥이 아니였다. 고양이였다.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했다. 함께 키우자고 했다. 그러는 그녀의 얼굴이 아이처럼 빛났다. 그녀가 고양이 눈을 닮았던지 고양이가 그녀의 눈을 닮았던지 그 두 쌍의 눈매가 지켜보는 중에 나는 얼떨결에 고양이를 수납해 들이고 말았다.
그녀는 진짜 고양이를 좋아했다. 고양이와 머리를 맞대고 알고도 모를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핸드폰 카메라로 고양이의 재롱을 찍어 간직하기도 했다. 때때로 치솔모가 굵은 치솔로 고양이를 씻어주기도 했다. 긴 털을 살살 비벼 땟물을 씻어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빼고 큰 수건에 감싸고 물기를 닦아냈다. 헤어 드라이기를 “약(弱)”약으로 고정해 놓고 젖은 털을 말리며 천천히 빗으로 빗겨주었다. 그러면 고양이의 털이 보기 좋게 윤기가 흘렀다. 그의 애틋한 손짓은 고양이를 그리고 보는 나를 나른한 행복감에 잠기게 했다.
그녀 때문에 고양이에 대한 학문도 늘었다.
- 이쁘죠? 고양이? 털이 좀 길지만 기름기 많아 손질이 거의 필요없고 털도 잘 안빠져요. 
- 고양이는 상온(常溫)의 음식을 좋아해요, 랭장고에서 금방 꺼낸 음식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또 너무 뜨거운 거나 너무 매운 것도 주면 안돼요. 요구르트 잘 먹어요.
- 고양이는 씹지 않고 그대로 삼키는 동물이얘요. 그러니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닭고기나 물고기 등뼈는 너무 딱딱해서 소화시키지 못하고 위장에 상처를 주는 일도 있으므로 주의해 주세요. 아셨죠.
- 고양이에게 주면 절대 안되는 것이 뭔지 아세요? 양파, 양파입니다! 양파를 고양이가 지속적으로 먹으면 적혈구가 파괴되어 빈혈을 일으킨대요. 
독락(獨樂)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는 종알거렸다.
그렇게 좋아하는 고양이를 신변에 두지않고 우리 집에까지 가져 온 데는 원인이 있었다. 우선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원인은 실상 다른데 있었다. 동생부부가 출국하여 조카를 그녀가 맡고 있는데 말썽꾸러기 그 애가 고양이를 몹시 구박한다고 했다. 고양이 보호대책을 강구하던 중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도수안경에 순한 머리칼을 가진 자상한 모습의 내가 고양이를 잘 돌볼수 있으리라 그녀는 믿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고양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고양이에 대해 관대할 수 없었다. 고양이가 가구나 벽, 카펫이나 방석 따위를 발톱으로 할퀴고 물어뜯는 것을 용인할수 없다. 더욱이 서재로 뛰여 들어 책이라도 호비고 뜯기라도 하면…
하지만 그녀의 청이라 거절할수 없었고 또 애들이면 그러하듯이 딸애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 우리 사랑의 견증인이야요 이 고양이가. 고양이 볼 때마다 날 생각하세요.
어느 날, 격정의 순간이 지나고 침대우에서 게나른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 벌거벗은 우리를, 어느새 다가왔는지 고양이가 이상한듯 지켜보고 있었고 그 고양이를 껴안아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눈매를 닮은 고양이를 나는 역시 “비비안 리”이라 불렀다…
    야오옹! 가정용 전기제품 박스속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박스를 젖혔다. 나를 향한 고양이의 눈이 더욱 호동그랗게 보였다. 그 에메랄드 빛의 눈은 분명 “왜 나를 버리려 하죠?”라고 묻고 있었다.
현관에 선 채로 생각에 빠졌던 나는 고양이가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 아빠트단지 정문을 나서서 백여메터 쯤 가면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바로 거기 길녘 가로등 곁에 철제 쓰레기 분리 수거함, 4개가 놓여있다. 쓰레기들을 비닐주머니에 넣어 집 출입문 곁에 놓으면 아빠트 청소부가 쓰레기 수거함까지 가져가도록 돼 있지만 나는 층계를 내려 멀리 쓰레기 수거함까지 손수 가져갔다. 그럴수 밖에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이는 다른 폐기물과는 다른 것이였으니깐.
나의 서재 창으로 거리쪽이 보인다. 쓰레기 수거함이 놓인 그 방향이. 집으로 돌아와 왜서였던지 나는 창가에 다가섰다. 엄지로 안경테를 추어올리며 거리쪽을 향해 시선을 박았다. 빨리 청소부가 다가오고, 쓰레기를 수거하다 박스속의 고양이를 확인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리고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청소부에 의해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고양이는 부양되겠지…
누군가 쓰레기 수거함쪽으로 다가간다. 나는 긴장하며 창에 얼굴을 붙혔다. 중고품 TV의 화면처럼 멀리의 풍경은 흐릿하나 그런대로 가려 볼수 있었다. 허리를 구부정히 하고 수거함에 다가간 그 사람이 쓰레기를 뒤진다. 왠지 옷차림이 괴상했다. 귤색 노란 조끼를 받쳐 입은 청소부가 아니였다. 봉두란발, 꾀죄죄한 입성, 일견에도 분명 거지였다.
거지가 박스앞에 쭈크리고 앉는다. 비닐 테이프로 봉한 박스를 열어젖힌다. 순간 갇혔던 고양이가 용수철처럼 튀여오른다. 거지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고양이의 난데없는 출현에 기겁초풍했을 거지의 얼굴이 떠오르고  짤막한 비명이 예까지 들리는듯 하다.
뛰쳐나온 고양이는 한동안 사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곧추 아빠트 단지쪽으로 뛰여온다. 아빠트 철책 사이로 빠져 들어와 아빠트 광장을 가로지른다. 나는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저도모르게 귀를 세우고 무언가 기다렸다.
   한동안 지나자 아닌게아니라 꿈결처럼 출입문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는 절박했다. 그리고 잦게 울렸다. 울음소리는 아마 아빠트 랑하를 가득 메울것이다.  문을 열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자 고양이가 풀쩍 조약해 오르며 내 품에 안겼다. 꽃순 같은 입속을 보이며 울었다.
- 야아아옹~
오늘 저녁 나는 이 괴기스러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또 지리한 밤을 새야 할 것이다.

 

 

3


유난히도 추웁던 이 겨울이 끝나는 출구에서 나는 가상한 결정을 내렸다. 한바탕의 혼란과 망설임, 고심끝에 내린 결정이였다. 고양이 눈매를 닮은 그녀, 그 동안 나에게 경희와 사랑(?)을 주었던 그녀- “비비안 리”와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베고 자르고 할수 있는 단호한 성격은 아니였다. 비밀 실험으로 희귀한 묘종이라도 키우듯이 세간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키워 온 그녀와의 사랑의 싹을 그냥 비밀한 하우스 속에 키우고 싶어했다. 내 마음에 떠돌던 메마름에 감로수를 부어준 그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했던 내가 그녀와의 사랑을 매듭 지으려 마음먹은 것은 다름 아닌 안해쪽의 느닷없는 변고때문이였다.
안해가 귀국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오라고 애걸하듯 호소하듯 해도 조금만 기다려줘요!하고 매몰차게 거부하며 오로지 돈 버는 재미에만 환혹해 있던 안해가 드디여 귀국하겠다고 했다. 사실 너 나가 붐비며 출국돈벌이라는 외곬으로 밀려들고 있어 인력시장이 부하상태, 일거리 찾기가 쉽지 않고 임금 또한 오를줄 모르고 외려 내려갈 조짐이라 했다. 그보다도 오랫동안 음식점에서 막일에 혹사한데서 얻었던 안해의 관절염이 더는 지탱하기 어려운 정도로 심해졌던 것이다.
전화를 받으며 나의 머리속은 하얗게 비여있었다. 홀아비 생활에 질린 나머지 그렇게 안해의 귀국을 원했던 나였지만 이 순간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몰라했다.
며칠 후, 절교의 통첩을 준비하고 그녀와 만났다. 무얼 먹고픈가 물으니 우육면이 먹고싶다고 했다. 사실 마지막 만찬이니 만큼 더 근사한 곳에서 만나려 했는데.
주문한 면이 나왔는데도 나는 수저를 든 채 머뭇거렸다. 다시 보아도 그녀는 아름다웠다. 음식을 씹는 입매가 싱그러웠고, 고개를 약간 치켜들고 이발로 국수발을 뽑아 올릴 때의 턱과 턱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목선이 티없이 고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가리사니가 서질 않았다. 심각한 어지러움에 나는 자맥질하고 있었다. 비밀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어제와 복잡한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래일들을 뭉뚱거릴 한마디의 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저가락을 면발에 꽂았다. 팔꿈치를 식탁우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잡으며 군색하게 나는 입을 열었다.
- 저… 이제… 그, 그만… 만나요 우리.
더듬으며 갑자르며 매우 힘들게 한마디를 뱉어냈다. 목에 걸린 생선 뼈를 토해내는 사람처럼… 그리고 기다렸다.
- 뭐?! 갈라져? 나를 무슨 술집 여자로 알았어?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게?
악청을 지른다던가 그녀가 내 얼굴에 먹다 남은 음식을 끼얹는 등등의 격한 행위를… 상상하며 기다렸다.
그녀가 머리를 쳐들었다. 염색한, 길고 숱 많은 머리털이 흩어져 후광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작은 귀고리가 귀볼에서 흔들렸다. 내가 사준 귀고리였다.
휴~ 하고 그녀가 입김으로 앞머리를 불어 올렸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입가에 가는 명주실 같은 엷은 주름이 지어지며 미소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생각밖의 미소에 나는 당황해 지기까지 했다. 그녀가 나를 향해 짓고 있는 그 미소 속에 사람을 꿰뚫어보는 힘이 느껴져서 나는 몹시 무안해졌다. 그 미소가 나의 마음을 어지럽고 갈래지게 했다.
어정쩡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어색해져 왼손을 말아 쥐고는 입에다 대고 두어 번 잔기침을 뱉아냈다. 그녀는 다시 머리를 숙이고 그릇 속의 면을 휘젓는다. 얼굴은 내내 생각 속을 헤매는 표정이다. 그 얼굴은 내가 가진 고민과 아주 큰 공통분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 이렇게 끝나네요 우리…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또 끝나면 또 어떤 방식으로 끝나려니 궁금했는데…
독백처럼 그녀는 아주 작고 어눌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면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그릇 속의 면은 금세 식어 있었다. 표면에 떠오르기 시작한 촛농 같은 기름덩어리를 저가락 끝으로 밀어내며 그녀는 다시 면을 건져먹었다. 먹는 것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뭉때리려는 듯 하다.
집까지 바래다 주려 했으나 그녀는 혼자 택시를 잡았다.
- 잘 가.
그렇게 손들을 엇갈리며 작별인사를 하다가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는 느낌에 소스라쳐 놀라며 나는 가슴 밑바닥을 흔들고 지나가는 어떤 진동을 느꼈다. 찌르르하고 배속에서 앙가슴을 거쳐 머리까지 치솟아 오르는 그 떨림은… 미련? 아니, 말하자면 막연하고 알 수 없는 불안감 같은 것이였다. 택시는 가버렸고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찌르고 우육면 집 앞에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다.
혼자 단골로 가던 맥주집을 찾아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중얼거리며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려지던 월요일이였는데…
안경도 벗지 못한 채 쏘파에 너부러졌다가 새벽, 갈증에 잠을 깼다. 주방으로 가서 랭장고를 열어보았다. 랭장고마저 텅 비여 내 속을 우울하게 했다. 생수 한 컵을 단내 나는 입속에 부어 넣었다. 그러다 나는 보았다. 랭장고 곁에 도사리고 앉은 고양이를. 랭장고의 불빛속에 푸짐한 몸체를 한 고양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힘들어? 하고 고양이가 묻는 것 같았다. 고양이의 눈매는 천착할 듯 나를 핥고 있었다. 순간 그 눈매가 남의 속을 꿰뚫는 인간의 그것을 닮았다는 섬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정처럼 차게 빛나는 고양이의 도도한 눈을 바로 정시하지 못했다.
- 우리 사랑의 견증인이야요. 이 코냥이가
전기밥솥 박스에 고양이를 들고 나타나  “비비안 리”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안해가 오기 전 고양이부터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날 새벽 나는 하였다.
그녀에게로 전화를 넣었다.
- 그쪽에 선물한 거니 마음대로 처리하세요. 옛날처럼 그냥 기르던지, 아니면좋은 주인 찾아 주던지…
   그녀의 목소리 톤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옛날이라는과거형에, 한 때라는 시간으로 한정 지어지는 관계에 나는 새삼스런 서글픔을 느꼈다. 그 아주 허무맹랑한 태도는 나로 하여금 이 고양이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버리게 했다.
그래서 며칠 전 나는 또 고양이가 종이박스를 넣어 들고 집을 나섰다.
작은 시가지에 하나밖에 없는 륙교(陆桥), 그 우에 애완동물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부터였던지 애완동물 장사군들이 도시의 주요한 위치인 이곳에 운집해 들었다. 간혹 공상국이나 도시관리소 일군들이 나타나면 도망가고 단속이 뜸해지면 또 찾아 들곤  했다. 그래서 이곳은 사실상 애완동물시장으로 간주되여 있었다.
박스를 들고 허위단심 찾아와보니 애완동물 장사군들은 거개가 한족 아낙네들이였다. 그리고 륙교우에 펼쳐진 “애완동물 시장”에서는 거의 모두 개를 팔고 있었지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몰려든 이들은 거개가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의 10대와 화려한 옷차림의 유한부인들이였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 끼여들어 기웃거렸다. 장사군들중에 반갑게도 조선말이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그쪽으로 다가갔다. 고양이를 요구하지 않냐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그냥 그저 줄 터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 고양이보다는 개를 좋아해요 요즘 사람들…
- 왜요? 나는 떨떠름해지며 물었다.
- “개는 주인을 섬기지만 고양이는 주인이 섬긴다”잖아요. 옛말에
- 그래도 한번 보세요. 노르웨이산 명품이라는데요
나는 고양이를 박스속에서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마디로 못박아버리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장사에만 여념없다. 신통하게 새끼 노루를 닮은 애완견을 들고 지나는 사람들과 호객행위를 한다.
나는 연회석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 구석에 서 버렸다. 일순 다음의 행동반경을 구할수 없어 했다. 륙교를 지나는 쿵쾅거리는 발자국소리가 새삼 요란하다. 그렇게 서있는 나의 팔뚝을 누군가 툭툭 쳤다.
열살 푼 되여보이는, 머리가 구리철사처럼 빳빳이 선 애 녀석이다.
- 그 고양이, 내가 갖고픈데 히~
녀석이 쭈볏거리면서도 또박또박 말한다.
- 고양이 좋아해?
- 예! 녀석이 머리를 까땍까땍한다.
- 좋은 애로구나! 동물을 사랑하고
    나는 그 무슨 큰 상을 시상하는 사람처럼 덕담을 란발하며, 트로피(奖杯)를 넘겨주듯 고양이를 애의 손에 냉큼 넘겨주었다. 고양이를 받아 든 녀석의 입이 귀밑에 걸렸다. 귀엽다는 듯 고양이 머리에다 마구 입방아를 찧었다.
- 감사합니다!
녀석은 나를 향해 허리를 굽석해 보이고 나서 고양이를 안고 겅중겅중 뛰여갔다. 종이박스에 고양이를 담아 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빈 종이박스를 들고 나는 녀석을 눈바램했다. 녀석과 “비비안 리”는 재빨리 륙교아래로 사라졌다…
또 월요일이다. 월요일이면 나는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해 했다. 햇과일의 달콤한 과육을 씹듯 한 그 맛, 생생한 환희와 야생적인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잘려진 몇 컷의 필름처럼 버려졌기에 외려 너무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때로 맨 몸에 나의 헐렁한 와이셔츠를 걸치고 쏘파우에서 열심히 다듬던 메니큐어를 바른 발톱으로 클로즈업(放大)되고, 때로 주방에서 영양가 높다는 쪽을 골라 나에게 기어이 권하던 브로콜리(西蘭花)로 클로즈업되고 때로 침대우에서 나의 갓 면도를 한 푸른 턱을 비비던 붉은 뺨으로 클로즈업된다.
그녀의 훈향도 난 기억하고 있다. 살갗을 근지럽히던 냄새, 몽환제를 품은 듯 그 동안 퇴화된 내 세포들을 하나하나 깨워놓던 냄새, 아침 이슬에 젖은 꽃처럼 화사하고 푸른 그녀, 그녀가 품고 있던 그 꽃은 이제 지고, 집안엔 이제 그 숨결이 없다. 어질러진 채로 가라앉아 있는 집안, 예전처럼 홀아비만이 볼썽사납게 남은 방에선 알싸한 독풀 냄새 같은 것 만이 난다.
그녀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어려울 때면 TV를 켠다. 짐짓 분위기를 살리는 오락쇼 프로를 찾아본다. 볼륨을 높여놓고 듣는다. 보고 나면 곧 잊어질, 저질에 가까운 프로라도 보면서 시간을 잊고 자꾸만 헛헛해 지는 마음을 무마하려 한다…
높은 TV소리 사이를 비집고 초인종이 울렸다. 그간 홀로 지내면서 사람이 그리운 나에게 초인종소리는 마냥 반갑다.
달려가 문을 따던 나는 그만 눈 확을 키우고 말았다. 사내애 하나가 문 켠에 서있다. 분명 며칠 전 륙교에서 만났던 그 애, 머리칼이 구리철사처럼 빳빳한 그 애를 나는 대번에 알아볼수 있었다. 예기치 않은 애의 등장이 놀라웠고, 왜 나를 찾아 왔는지도 궁금했다.
사내애가 들고 온 종이박스 하나를 내 앞에 쑥 내민다. 이번에는 전자레인지 박스다. 순간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나는 직감으로 알아차릴수 있었다. 
- 고양이를 돌려드리려고요.
아빠 엄마가 모두 출국하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애라고 했다. 할머니가 만수받이로 애의 청구를 다 들어주는데 그 할머니마저 아직 일을 할만하다며 나이를 속이고 출국하게 되여 고양이를 키울 사람이 없다고 했다.
- 그럼 너 어디서 사니?
저도 모르게 애의 신상이 걱정되여 문가에 선채 내가 물었다.
    할머니가 가면 이모네가 맡기로 했단다. 이모네 집에 애 말고도 사촌 몇이 함께 얹혀 산다고 했다. 출국 붐에 한집 건너 한집씩 난장이 돼버린 요즘, 별 이상한 일도 아니였다. 애는 박스안에 손을 넣어 고양이 머리를 자꾸만 쓰다듬었다. 그러는 애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애는 지금 잠시는 떠나는 할머니보다 내놓아야 하는 고양이 때문에 더 서러운가 보다.
허리를 굽석해 보이고 나서 애가 몸을 돌렸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 목각인형처럼 걸음이 어색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는 애에게 내가 몸을 내밀며 순간에 떠오른 의문을 물었다.
- 근데 너 어떻게 우리 집을 알어?
우리 집 아래층인 8층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애,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본적 있다고 했다.
- 고양이를 부탁해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힘과 함께 애가 소리치듯 말했다. 그러는 녀석의 소리는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 사이 “비비안 리”는 박스속에서 뛰쳐나와 천연덕스레 쏘파우에 올라가 있다. 녀석은 에메랄드 빛 눈으로 나를 지켜본다. 그 눈이 짓궂은 개구쟁이 같다.

 

4

 


오전나절이여서 그런지 공공뻐스에는 사람이 적었다. 하여서인지 그 녀자의 통화소리는 더욱 유표하게 들렸다. 내 앞자리에 앉은 녀자, 40대로 보이는 녀자의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린다. 전화벨소리는 핸드폰마다에서 흔히 들을수 있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이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한번 전화를 들면 수다가 넘친다. 타령조의 그 전화벨소리가 녀자에게 말문을 열도록 주문을 거는 것 같다. 벨소리 울리기 바쁘게 핸드폰을 열고 바보처럼 소리높여 말하는데 적어도 3개 역을 지나도록 녀자의 통화는 끝날줄 모른다.
그 소리의 홍수속에 나는 종이박스를 잔뜩 껴안고 무가내로 앉아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새여나와 좌중의 눈길을 끌면 어쩌랴 싶었는데 녀자의 투명한 고음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 출국했던 애초에 안해에게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전화가 왔다. 전화는 번마다 안해쪽의 수신부담으로 걸려왔고 내 쪽에서 높은 전화료금을 부과하며 전화를 하지 말라고 안해는 당부했다.
바쁘다, 힘들다, 돌아가고 싶다, 미칠것 같다… 라고 안해는 울음 잔뜩 섞인 소리로 처음 해보는 서비스 업종의 어려움과 그곳 사람들의 동포에 대한 차별시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 냈다.
잦던 전화는 보름에 한번씩 한 달에 한번씩으로 뜸해 졌다. 통화내용도 괜찮다, 견딜만하다로 바뀌였다.
그러다 전화는 한 달에 한번도 아니고 명절때만 걸려왔다. 통화내용도 낡은 레코드 되 풀듯 그저 딸애에 대한 문안과 부탁뿐이였다. 어느 한번 안해와의 통화가 일곱 달이나 없었다는 생각에 후딱 놀라기 까지 했었다.
그날도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안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따라 전화는 타이밍이 맞지 않게 울려 왔다. 나와 “비비안 리”가 한창 격정의 고조에 오르고 있는 시점이였다.
- 받지마
그녀가 헐떡이며 나의 허리를 잔뜩 껴안았다. 하지만 거실 탁자에서 전화벨소리는 집요하게 울렸고 나는 오징어 빨판처럼 내 몸에 감긴 그녀의 손을 뜯어내고 침대에서 뛰여 일어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늦게 받느냐? 잠들었냐? 또 술 많이 마시고 쓰러진 거나 아니냐?고 버릇처럼 묻는 안해의 물음에 나는 그저 응응 하고 웅얼거리며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거친 숨과 함께 나는 당황감과 안해에 대한 죄의식 같은 것들을 삭이고 있는 중이였다. 흡사 안해가 벌거벗은 나의 몸을 의식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져 활처럼 몸을 옹송그렸다.
열린 침실 문으로 “비비안 리”의 모난 시선이 나를 찔러왔다. 수화기를 든 채 갑자르고 있는 나를 침대쪽에서 그녀가 반라의 몸을 드러내고 이상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를 향해 한 쌍의 유두가 도발적으로 추켜져 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일순 당황했으나 나는 수화기를 내려 놓지 못했다. 그녀가 뒤로 나의 벗은 몸을 껴안았다. 풍성한 가슴이 비누거품을 가득 머금은 목욕용 스펀지(海綿)처럼 나의 등을 문질렀다. 귀속에는 안해의 높은 소리가 가득 차고 등에는 그녀의 풍성한 몸이 가득 실린다. 어질머리가 인다. 나는 그녀를 제지할념 못했다. 실랑이질 하다 안해가 눈치를 챌가 봐서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내 몸 구석구석을 훑는다. 그녀의 손놀림에 맞춰 나는 호흡을 고르고 몸을 비틀고 있다. 힘들게, 괴롭게. 핑크빛 매니큐어를 한 손톱이 나를 제동하는 것 같다. 그녀의 뜨거운 혀가 나의 귀등을 핥는다.  이어 그 혀는 도료를 잔뜩 머금은 한 자루의 붓처럼 나의 전신을 화선지로 삼고 훑기 시작한다. 턱선을 타고 목선을 타고 내려 딱딱해진 유두에 머물렀다가 배꼽에도 머물렀다가 아래배 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한껏 긴장해진 “나”를 한입 베여 물었다. 그녀의 대담한 터치에 나의 입으로 헛바람소리가 새여 나갔다.
고문같던 통화가 끝났고 수화기를 놓음과 함께 나는 그녀를 와락 밀쳤다.
- 장난하냐? 장난해?
그녀가 탁자에 머리를 쪼으며 넘어졌고 곁에서 고양이도 놀라 펄쩍 뛰였다. 이마를 감싸 쥐던 “비비안 리”가 몸을 후딱 일으켰고 재빨리 옷을 주어 입었다. 조금 전 까지 풀어헤쳤던 긴 머리는 보라색 구슬 핀 속에 단정히 묶여졌고 그녀의 표정도 금세 다른 사람으로 바뀌여져 있었다. 조금은 미안해져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 미안해 다치지나 않았어?
그녀가 나를 와락 밀쳤다.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나의 어깨를 강하게 밀쳐냈다.
- 왜? 지 마누라 한테서 전화가 오니 금세 내가 부담스러워 졌어요?
현관에로 나서며 그녀가 소리소리 질렀다. 그의 눈에 확 붉은 기운이 몰려들어 있었다. 
- 사실 나도 힘들어요. 힘들다구요. 어제 전화를 받았어요. 우리 그이가 일하다 다쳤대요. 힘들게 얻은 일자리서 짤릴가봐 다친 몸으로 그냥 일한다해요. 그런데 난 이게 뭐얘요! 그럼에도 이렇게 눅진눅진한 여자가 돼 있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더러워요!
그녀의 소리는 빨랐고 건조했다. 주르르 설음을 뱉어 놓고 나서 그녀는 문을 쾅 차고 나가 버렸다… 
… 뻐스 속을 휘저으며 전화벨은 그냥 울렸고 녀자의 통화는 끝날 줄 모른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 예 한국 수속하는 사람이 맞슴다. 40일내로 비자 나옴다. 예 꼭 나옴다. 백프로 나옴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 수원남자임다, 전자회사 대리임다, 마흔여섯인가… 아, 마흔여덟. 키는 64 음… 여하튼 60은 넘꾸. 키가 좀 작고 나이가 좀 있긴 한데…  집 있고 승용차도 있담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 예 한국 수속하는 사람임다. 예 이 광고 장기유효임다. 근심마쇼.
녀자의 소리는 감내이상으로 높았다. 파렬음이 섞인 거북살스런 소리다.  통화내용이 만천하에 공개되여도 녀자는 개의치 않는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 격으로 출국열에 들 뜬 사람들에게 출국수속을 해주고, 섭외혼인 중매를 해주고 떼돈을 챙기는 거간군, 요즘 세월에는 잘 나가는 신종의 직업이다.
나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고양이를 두고 내릴 기회를 호시탐탐 내리던 나는 그 고문 같은 소리를 피해 예기치 않던 다음 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좌우를 살폈다. 모든 사람의 눈길은 그 통화에 신명을 건 녀자에게 몰부어져 있다. 나처럼 이마살을 모은채…
차장이 정류소의 이름을 말하기 바쁘게 탈출하듯 뻐스에서 뛰여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우쳤다. 그러면서 입속말로 되뇌였다. 안녕! “비비안 리”!
- 이보쇼!
문뜩 부름소리 하나가 곰바지런한 나의 발목을 사로잡았다. 나는 못들은 척 하고 걸음을 빨렸다. 
- 이보쇼! 안경 끼고 쥐색 양복 입은 분!
파렬음이 나의 인상착의까지 정확하게 짚으며 울려 왔다. 나는 멈춰 설수 밖에 없었다. 뻐스속에서 독주라도 하듯 전화쇼를 펼치던 그녀였다. 들고 쫓아온 종이박스를 내민다.
- 정신을 들고 다님까? 물건 들고 다녀야지
- 저… 이거 제 물건 아닌데…
- 아니긴 뭐가 아임까? 젊은 나이에 치매라도 왔슴까? 내 분명 안고 오른걸 봤는데두…
   볼멘소리를 툭 질러놓고는 박스를 내 품에 와락 떠민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한다.
- 뭐 안에 죽은 아기라도 들었슴까?  가만히 버리게…
묘하게 한번 웃더니 또 옆구리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든다. 수다를 쏟아내며 상가쪽으로 걸어간다.
투.두.둑. 느닷없이 비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올 들어 첫 비다. 비 줄기가 제법 굵어지기 시작하자 미처 우산을 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를 피해 뛰여 간다. 지하도로 뛰여들어가는 이들,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이들, 우체국으로, 꽃집으로 들어가는 이들… 첫 비라 비를 맞으면서도 즐거운 표정들이다.
- 야옹! 천변(天變)을 알아챘는지 박스속에서 고양이가 운다. 양복을 벗어 박스를 덮었다. 굵은 비방울에 와이샤츠가 눅진하게 피부에 달라붙는다. 비방울이 안경알우로 주르르 흘러내린다. 첫 비가 내릴 즈음에 만났던 우리, 우리를 스쳐간 시간들, 손가락 사이로 마음 사이로 빠져나간 시간들이 부서져 내리는 것 같다.
첫 비가 내리는 변경도시의 번화가, 그곳에 종이박스 하나를 든 채 내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서 있다.

 

5


밤하늘에 달 하나가 덩그마니 떠 있다. 9층집 높이에서 달은 손을 뻗치면 잡기라도 할듯 가깝다 그리고 크다.
나는 달의 장력(張力)에 끌리듯 창가로 다가갔다.
창을 열어젖혔다. 작은 환기창이 아닌 옹근 전체의 창을 열어젖혔다.
추위를 떠나온 봄이였고 그래서 올 들어 처음으로 창을 크게 열어젖힐수 있었다.
그 크게 열린 창으로 나는 고양이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덴겁히 창을 닫았다. 커튼을 가렸다.
불 밝히지 않은 거실에서는 오락쇼 프로의 웃음소리가 터져 오르고 있었다. 높이 틀어놓고 어둠속에서 들으려니 웃음소리도 왠지 불안한 음조로 변형되여 들리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는 빈 술병이 연주를 마친 취주악기처럼 아가리를 크게 벌린 채 내 버려져 있다. 술병을 들어 귀가에 흔들어 보았다. 술이 없다. 슈퍼에 전화를 걸어 더 주문하려다 귀찮아져 그만두었다. 사실 오늘 마신 량도 만만치 않다. 마른 낙지 다리를 입에 넣고 허겁지겁 씹었다. 입아귀가 찢어져라 씹었다. 아래턱에서 힘이 빠졌지만 아귀아귀 그 무슨 불안처럼 씹고 씹었다.
“비비안 리”도 마른 낙지를 좋아했다. 그녀 “비비안 리”, 그 고양이 “비비안 리”도.
그녀가 붉은 입술을 O형으로 만들며 낙지다리를 씹을 때면 나는 곧바로 이상한 충동을 느끼군 했다. 그래서 한참 먹고 있는 그녀를 침대에 쓰러뜨리기도 했다. 그리고는 둘이서 달아오른 몸을 엮고 문어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녀와 나는 침대에서 고양이는 그 아래에서 낙지의 향연을 벌리곤 했다.
어느 날 한낮에 “낙지의 향연”을 벌리고 있는데 출입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 오늘이 무슨 요일이던가?
그녀의 몸우에 엎딘 채 내가 물었다.
- 화요일
- 오, 마이갓! 똥됐다!
그녀와 나는 월요일이면 우리집에서 만났다. 주말이면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던 딸애가 오는 날이기에 만날수 없고 또 홀아비 살림에 난장이 된 집안을 장모님이 때때로 집을 거두어 주려 오시기에, 그래서 한 주동안, 가장 바빠야 할 월요일이 우리에게는 만남의 날이였다. 웬일인지 월요일에 장모님이 왔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수치까지 계산해야 하는 내가 치졸스러워 보이겠지만 여하튼 우리에게는 월요일이 그 무슨 미사의 날같이 빠칠수 없는 날로 여겨졌고 이날이면 어김없이 만나서 육체의 향연을 즐기곤 했다.
미치도록 서로를 원했던 우리는 이날 위험 수위를 잊은 채 또 만났던 것이다. 우리는 둥지를 털린 개미처럼 헤매였다. 서두르며 침대를 수습하고 그녀를 옷장속에 숨기고 그녀의 신발을 컴퓨터 테이블 밑에 감추었다.
나의 예감대로 장모였다. 장모는 따로 소지한 우리 집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왔다. 하지만 장모는 겹겹이 잠긴 방범문을 여는데 매번 서툴렀다. 그 서투름이 우리에게 금쪽 같은 대피의 시간을 만들어준 것이다.
- 엊저녁 편집부서 회식 있어서 술 좀 과했습니다. 늦잠 자느라고
장모가 따져 묻지 않았지만 나는 늦게 문을 연 사연에 주해를 달았다. 핑계에 신빙성을 가하느라 짐짓 하품까지 만들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하품이 신통치 않았다.
집안을 둘러보는 장모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나 스스로 보기에도 민망했다. 집을 거두기에 앞서 육체의 향연에만 급급했던 집안은 문자 그대로 난장이였다. 하지만 언제고 장모는 미주알고주알 까발리는 법이 없다. 다른 집 같으면 장모님의 입방아가 오죽하랴만 하지만 워낙 말수적은 장모는 그 그늘을 구태여 잔소리 같은 표현에 담아내려 하지 않았다. 화려한 경력은 없지만 퇴직후 가두에서 오래동안 주임직을 맡을 만큼 대바른 성품과 사리에 밝기로 정평이 난 장모는 아낙없이 홀로 지내고 있는 사위의 처경에 대해 누구보다 리해해 주었다. 때때로 찾아와 맛있는 찬거리도 가져다 주고 어지러워 진 방도 치워 주곤 했다.
장모는 또 예전처럼 아무 말도 없이 쓸고 닦고 씻고 만들고 하였고, 그 동안 나의 신경은 온통 옷장쪽에 쏠려 있었다. 옷장속에서 “형벌”아닌 형벌을 받고 있을 그녀가 미안했지만 거기까지 배려할 게제가 못 되였다.
장모가 걸레를 들고 옷장가까이로 갔을 불안한 시선을 연신 좌우로 날려보내고 있던 나는 기겁하며 장모의 손에서 걸레를 앗아 들었다.
- 제가 좀 할게요. 방 닦는 것쯤은 저도 할수 있습니다.
낚아채기라도 하는듯 걸레를 앗아냈고 그러는 나를 장모가 의아쩍은 눈길로 쳐다 보았다. 
- 앗취!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이때 옷장속에서 재채기 소리가 울렸다.
(오, 마이갓!) 나는 순간 얼음구덩이에 빠진듯 했다. 차고 매끄럽고 각진 당황함의 모서리리 어느 곳을 잡아야 할지 몰라 절절 매였다.
장모가 옷장쪽을 쳐다보았다. 그 잠깐 동안의 일별이 나에게는 영원인 것처럼 여겨져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였다. 장모가 입을 열었다.
- 계절이 바뀌는 때이니 감기 조심하게나. 
이전 같으면 옷장을 뒤져 꿍져둔 속내의 따위를 찾아냈을 장모가 다행히 오늘만은 옷장 문을 열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극을 향해 치닫던 시간이였다.
고양이에게 따뜻한 국에 밥까지 말아 주고 나서야 장모는 몸을 일으켰다.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청결을 찾은 집을 휘둘러보았다. 장모의 주름이 더 깊어졌음을 나는 새삼 느꼈다. 주름사이로 미지근한 피로 같은 것이 느껴졌다.
떨꺽! 목에 고인 침을 소리나게 삼키고 나서 역시 아무 말도 없이 문을 나섰다.
나는 서둘러 옷장을 열어젖혔다.
- 옹이에 마디라더니, 요긴한 대목에 재채기 하면 어떻게 해! 나 오늘 죽는 줄 알았어
나는 탕개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녀도 얼빠진 듯 침대모서리에 앉아버렸다. 무생물체 같은 얼굴로 표정 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요즘 들어 그녀의 무표정은 늘 무언가 참고 인내하고 있는 듯한 무거운 인상을 주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 인내의 대상이 바로 자신의 곁에 부적당하게 끼쳐있는 나라는 부조화였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감당하고 있는 부조화의 대상이 정말로 나였다면 우리들 사이에 비밀스러이 웅크리고 있는 것을 풀어야 될 것이라고 나는 단정을 내린 적이 있었다.
무심한 척하고 있었으나 그 눈빛 속에서 나는 쉽사리 불안을 읽어내고 말았다. 둘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그 분명한 불안이 나는 서글펐다. 나는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다친 짐승을 감싸고 어루만지듯이, 천. 천. 히. 그녀는 고양이처럼 내 가슴에 고개를 기대고 손길에 얌전하게 등을 내맡겼다. 그리고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울기 시작했다…
…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낙지를 씹다 말고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집안 구석구석에 배였는 그녀의 소리와 냄새, 언제면 이 소리를 지워질수 있을가? 혹 돌아온 안해가 이 냄새 이 소리를 맡아내고 들어낼수 있지 않을가?
소리는 그냥 울렸고 환청을 의심하던 나의 입귀에서 낙지꼬리가 떨어져 나갔다. 소리는 출입문 쪽에서 울리고 있었다.
의식이 허공에 아연하게 떠서 기계적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다음순간, 나는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종아리를 접고 벽에 기대여 쪼그리고 앉아 버렸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솜털이 일어나는 듯한 소름이 온몸을 쓸고 지나갔다. 현실감을 붙잡기 위해 눈확을 키우며 다시 문밖을 바라보았다.
문가에 고양이가 도사리고 있었다.
방금 전 내가 9층에서 내던진 고양이가 눈망울을 크게 열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6


8촌 동생이 왔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친지들과의 교왕이 적은 편이였다. 그러니 8촌의 뻘수면 나에게는 남과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 8촌 동생은 남보다 달랐다. 얼굴에 두툼히 철판을 깔고 다가왔다. 형! 형! 하면서 외려 촌수가 밭은 4촌이나 6촌보다 더 자주 나타나곤 했다.
- 나 본디 롱구선수 감인데… 돈 있는 집에서 났더라면 체육학교 가서 롱구했을 건데…
녀석이 늘 입에 달고있는 말이다. 키 큰 거 빼고는 장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녀석, 키가 커도 어중간히 큰거 아니다. 180이 넘는다. 녀석은 나에게서 괴물 같은 존재, 지금 버리려는 고양이 만치로 귀찮은 존재다.
...내가 던진 고양이가, 그것도 9층에서 내던진 고양이가 다시 돌아왔다. 그것은 어찌보면 한차례 기이한 체험이였다. 9층 높이에서 추락한 고양이가 아무 탈 없이 돌아오다니?!
- 야옹! 어디가 말째인지 아니면 배가 고픈지 고양이는 자주 운다. 아주 작은 소리인데도 권태롭고 적막하기만 한 방의 정적 속에서 그것은 제법 큰 소리로 들렸다.
고양이 소리는 마치도 주술적인 힘을 지닌 북소리처럼 어둠 저편으로부터 갑자기 그리고 은밀하게 나를 덮쳐 온다. 그 소리 속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어떤 불길한 파괴의 냄새를 감지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안해와 내가 일껏 이루어온 것들을 밑바닥부터 송두리째 휘저어 놓고, 그리고 어쩌면 머잖아 그것들과 가차없이 결별해야만 하는 최악의 상태까지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는 위험스러운 사실을 예고하는 것 같게 들렸다. 때문에 전에는 자주 들어왔을 고양이 울음소리에 나의 불안과 초조함은 배가해 가기 시작했다.
고양이 울음소리 속에 컴퓨터의 검색창에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왜 아무렇지도 않는 것일까?”라고 쳐 넣고 답을 구해 보았다.
    해답이 여러 개 나와 있었다. 엄지로 안경테를 추어올리며 허겁지겁 읽었다.
“그 비밀은 귀 안과 눈 속에 있습니다. 고양이 귀 안에는 평형감각을 주관하는 반고리관이 있습니다.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뛰여내리거나 떨어지면 자극을 받아 뇌로 반고리관의 평형상태를 전합니다. 눈 속의 수정체에도 자극이 더해져 자신의 머리위치가 뇌에 빠르게 전달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들에 의해 고양이는 재빠르게 머리의 위치를 바꾸어 몸도 방향을 바꾸어서 다리를 지면에 착지할수 있습니다. 고양이의 회전 락하와 착지를 가능케 하는 것은 유연한 등뼈와 다리의 골격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터운 발바닥의 쿠션, 게다가 겨드랑이 밑과 다리 부분의 막이 락하산 역할을 해 줍니다.
아무튼 고양이는 몸의 구조상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회전 락하로 한군데도 다치지 않고 착지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불이 났을 때 20m높이에서 뛰여내려도 상처를 입지 않은 고양이도 있다 합니다…”
-  20메터 높이서 뛰여내려도 다치지 않는다? 이거 액션배우 뺨치게 생겼구만
느닷없이 밀려오는 망연자실함에 나는 실없는 소리를 되뇌였다…
… 동생이, 8촌동생이 오는 날은 우리 집 수난의 날이다. 랭장고속 식품이 거덜난다던가, 아끼던 CD가 깨여진다던가, 일껏 골라 산 재미난 모양의 맥주병 따개가 잃어진다던가
오늘도 들어서기 바쁘게 녀석의 입에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튀여나온다.
- 헝님! 나 돈 한번 꿔주송!
- 돈은 왜?
나는 천정 등에 닿을듯한 녀석의 머리를 위태롭게 바라보았다.
- 나두 로무 나갈까 하우. 동생이 마음 한번 다잡고 열씨미 돈 벌어볼려 는데 한번 꿔주송!
울 가문에 헝님네 젤 가는 부자아니우! 이제 떼돈 벌면 리자도 다 쳐 드릴테니. 꿔주송!
나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녀석의 입막음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의 마음은 바빠지고 있었다.
- 사실은…
그럴듯한 거짓말을 짜내려다 나는 엉뚱한 쪽으로 내 뱉고 말았다.
- 장모님이 위독하셔. 큰 병으로 진단 나와서…
- 뭐유? 그럼 암이란 말이우?
나는 차마 말 못하고 머리를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미안합니다. 이 천둥벌거숭이를 막으려고 내가 그만…” 나는 속으로 본의 아니게 불치병 환자로 치부된 장모님께 용서를 빌었다. 한편 요즘 친지친우간에 우애가 이렇게 까지 땅에 떨어졌나하는 자문이 스스로 들었다.
 돈이 엄청 들 것 같다. 미안하다! 니가 어쩌다 청 드는데…
키가 컸지만 녀석의 머리통은 작았고 그만큼 지극히 단순했다.
- 정 그렇다면야 별수 없지. 환자집에 돈 꾸러 왔으니 내가 무지한 놈이우.
엄청난 거짓말로 녀석의 진지한 청구를 밀막아 버리고나니 일순 녀석에게 미안했다. 다른 보상이라도 주고픈 생각이 일었다. 그러는 나의 눈에 발치에서 어른거리는 고양이가 보였다.
- 정말 저 고양이 네가 가져라
- 어허, 왜 하필이문 고양이를 주시우? 줄라면 돈이나 꿔줄 것이지
- 너 고양이 고기도 먹을수 있다면서
말해놓고 스스로도 놀랐다. 왠지 오늘의 나는 잔인한 별종으로 둔갑해 버렸다.
사실 녀석에게 특기가 하나 있었다. 롱구쪽이 아니다. 녀석은 음식탐이 심했다. 그리고 괴이했다. 무어든 잘 먹어 주었다. 하늘에 나는 건 비행기 빼고, 땅우에 네발 달린 건 책상 빼고는 다 먹을수 있다는 녀석이다. 어느 한번, 밤참 먹으로 녀석과 함께 야 시장으로 나갔다가 녀석이 털이 까시시한 병아리의 형체가 그대로 들어잇는 곤계란을 구워먹는 것을 보고 진저리 치며 놀란적 있다. 그런 나를 보고 그때 녀석이 무용담을 펼쳤다.
- 나 고양이 먹어 봤수. 쥐고기도 먹어 봤지. 고양이 고기 범고기와 맛이 꼭 같수.
개그맨 같은 허세로 말하는 품이 범의 고기까지 맛 본 듯한 양이다.
- 거짓말 없기우. 나 정말 가져다 먹을거유.
녀석이 고양이를 추켜올리며 입을 쩌억 벌렸다. 대사를 하듯이 과장된 소리를 내였다.
- 니가 내 밥이로구나 히히
벌건 혀바닥과 드러난 목젖, 마치 외국영화속 드라큐라(吸血鬼)를 보는 것 같다.
랭장고속 먹을 것을 결단내고서야 이튿날 떠나는 8촌 동생에게 나는 촌마을 학교에 전해주라고 아이들에게 맞을 책과 잡지들을 묶어 주었다. 그런데 녀석은 무겁다며 뿌리쳐버렸다.
대신 고양이만은 안고 갔다.

 

 

7


4월의 해맑은 태양이 머리 우에서 빛살을 흩뿌리고 있다.
푸르고 청정한 공기, 력동성과 온기가 물씬 풍기는 봄이 새삼 느껴진다.
길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우에서 햇살은 더욱 부풀어오르고 그 길을 내가 가고 있다. 손에는 종이박스를 든 채…
고양이는 9개의 목숨을 가졌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고양이가 목숨이 매우 질긴 동물, 죽었다가도 되살아나는 영악한 동물이라던 옛사람들의 말 그른데 없다. 
고양이가 돌아왔다. 녀석이 되돌린 것이다. 햇나물 팔러 시내 장터로 오는 마을 아낙에게 부탁해 우리 집에까지 되돌려 왔다. 뒤미처 전화로 녀석이 전하는 고양이를 돌린 리유는 간단했다. NBA 롱구 스타 요명이 먹지 말라고 했다나. 요명이 공익광고에서 야생동물을 먹지 말라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 요명이 누군데? 내 우상 아니우? 요명도 안 먹는다는데. 내가 어찌 먹수! 나 돈 있는 집서 났더면 롱구 할 사람인데… 나 이제부터 곤계란, 고양이 고기 이런거 안 먹수. 그때 싸스도 이래서 온거 아니우! 
끓어오르는 속을 누르며 그러면 마을 아무 사람에게나 주고 말지 구태여 먼 길 떠난 장군에게 짐이 되게 예까지 돌려왔는가 묻자 명색이 작가분이 기르던 고양이인데 함부로 취급할수 없었다고 했다. 녀석! 잡아먹겠다며 덥석 안고 가던 때는 언제고.
- 키만 컸지 롱구뽈도 만져 못 본 녀석이 맨날 롱구타령은… 짜식, 요명좋아하네.
짜증이 끓어올라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녀석이 말하던 그 광고가 저녁 프로 중간에 방송되고 있었다. 요명은 미국에 본부를 둔 유명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동물보호 캠페인에 나선 것이였다.
- 참, 너와 나는 참말로 악연이다. 악연
잠시의 려행에서 돌아오기라도 한듯 집안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다 내 발목에 감겨 드는 고양이를 발로 치워버리며 내가 불쾌감을 내뱉었다.
- 그렇다면 그녀와의 인연은? 어떤 인연이라 말해야 할가?
스스로 무심코 내뱉은 말에 나는 스스로도 자문을 구하지 못했다.
… 포장도로를 벗어나 농로에 오르자 산개하는 푸른빛이 더 실감되였다.
인공의 소음 대신 점점 자연의 향기와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생각 밖으로 시교에도 사람들의 발길은 무성했다. 어떤 이는 도보로, 어떤 이는 자전거로 산자락을 향한다. 등산객들은 아닌 것 같았다. 차림새도 등산복장이 아니고 평소의 입성, 저마다의 손에는 커다란 비닐물통들이 들려있다. 나이 지긋한 한 남정네와 물으니 나의 예측대로 산기슭에 약수터가 있다고 했다.
- 헌데 그쪽에선 왜 물통 아니고 종이박스를? 물 받으러 가는 거 아닌가 봅니다.
- 아. 네 그냥, 허허.
나는 마땅한 답변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멍청한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남들이 보면 의문스러울 법도 했다. 산길을 약수 뜨는 물통도 등산용 장비도 아니고 종이박스를 들고 가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론리적, 리성적 설명이 불가능했다.
사람 없는 쪽을 찾다 보니 어느 새 산중턱 소나무 숲에 까지 왔다. 해볕이 쨍쨍한 날이였지만 막상 숲에 들어서니 숲바람이 바람이 우수수 소리내며 내달리고 있다.
    종이박스 뚜껑을 조금 열고 쟁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땅을 파려니 삽 같은 마땅한 쟁기가 없었다. 도시 사는 사람 집이고 더욱이 글 쓰는 사람 집이니 그럴법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국자였다. 목제자루가 자주 빠져 버리려던 국자, 그것이면 흙을 팔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자문과 자조가 들었지만 나는 이미 자신을 주체할길 없어 하고 있었댜. 고양이는 이미 내 생활 전체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제 고양이만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수 있을 것 같았다.
산속 어딘가에서 나로서는 이름 모를 새가 청아한 울음을 토한다. 그 괴이쩍게 들리는 투명한 고음속에서 나는 국자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완연한 봄임에도 땅은 채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겉흙을 치우기까지는 쉬워도 정작 깊게 파려니 힘이 들었다. 상자크기만큼 파면 되는데…
땅을 파면서 나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를 떠올려 보았다. 벽에 가두어 놓은 고양이의 울음소리에서 죄의식을 느끼는 환상적이고 괴기스런 단편소설. 실제 서양에서는 고양이를 건물의 벽 속에 넣은 채 건축하면 악령에게서 건물을 지킬수 있고 또 쥐들이 범접하지 못한다는 미신이 있었다. 실제로 런던에서는 18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의 보수 공사 중에 고양이의 사체가 여럿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고양이는 오랜 이전으로부터 인간과 함께 해온 집짐승으로서 고대 애급에서는 고양이가 숭배의 대상이기까지 했다. 기르던 고양이를 잃거나 죽으면 가족이 눈썹을 잘라 죽음을 슬퍼했다는 풍속도 있다.
그러나 서양의 중세시대에 들어서면서 “고양이 수난시대”가 열렸다. 고양이를 이교도의 상징이자 사탄의 앞잡이로 연결해 마녀들이 기르는 사악한 동물로 취급했다. 마녀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 사람들은 고양이의 꼬리를 자르거나 귀를 잘랐고 모의재판을 거쳐 화형을 하거나 교수형을 하는 등 “고양이 학살 놀이”를 하기까지 했다. 이 풍조는 미국에까지 번져 15세기 말엽부터 18세기에 걸쳐 고양이는 심한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던 그녀에게서 듣고 또 요즘들에 고양이에 대해 심각한 콤플렉스를 앓는 내가 인터넷에서 수집한 고양이에 대한 일화들이다. 어찌되여 나는 고양이학살에 광분했던 그 시대 사냥군처럼 돼 버린 것이다.
- 어흠!
구덩이를 파느라 끙끙대고 있는 나를 향해 소리가 날아왔고 그 소리가 바로 등뒤에서 울려 나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다. 솔숲에서 점퍼차림의 사내가 헛목청을 가다듬으며 나왔다. 바지춤을 추슬리며 다가오는걸 봐선 용변을 보다 나온 것 같다.
- 지금 뭐 하는 겐가? 산속에서
   귀밑머리에 희끗한 새치가 보였지만 사내의 눈매는 매웠고 목소리는 저력감 있었다. 나는 순간에 그 기세에 눌려버렸고 답변거리를 찾느라 낑낑댔다. 국자를 손에 든 채…
사내가 발로 종이박스를 건드렸다. 야옹! 고양이가 구원을 바라는 듯 울었고 발톱으로 박스를 박박 긁어댔다. 
- 고양인가? 지금 고양이를 묻으려는 겐가?
반말로 사내가 물어왔고 나는 공채에 나선 신인배우처럼 예하고 공손하게  대답을 올렸다.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움츠러 들어 있었다.
- 왜?
    - 저… 집에 안 좋은 일 있어… 방, 방토를 좀 해볼려구…
더듬기까지 하며 겨우 변명거리를 찾아 냈다. 그럴듯한 변명거리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데 그 사람의 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 참 못 됐구먼 이사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지랄춤 추는 겐가?
형법에 동물학대죄도 있다는 거 모르는 겐가? 97년에 수정한 형법에 동물학대죄가 규정 돼있다고. 형법 260조! 경하면 1년이하 유기도형 먹고 구류, 관제 먹을수도 있고, 벌금형도 있다고. 엄중하면 1년이상 5년까지 갈수 있다고!
버럭 호통 치는 그 량반앞에서 나는 문자 그대로 고양이 앞에선 쥐 모양이 되여 버렸다. 그래도 명색있는 신분인데 누구의 호통질과 삿대질 받는 건 처음이였다.
- 그런데…
구박 받으면서도 나는 궁금증을 참을수 없어 의문점을 하나 내 들었다.
- 어떻게 되여 법률지식에 그렇게 해박하신지…
- 나 변호사 35년에 정년 퇴직한 사람이요 왜?
아, 자꾸만 처져 내리는 안경테를 검지로 추어올리며 나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종이박스를 내밀었다.
- 그럼 선생님께서 이 고양이를 가지시던가…
버럭 호통이 또 한번 울었다.
- 이 사람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겐가? 어디서 갖고 왔으면 어디로 돌려가아!
누군가 손에 쥐여준 연극대본을 들고 전전긍긍하다가 엉겁결에 무대에 나가서는, 어설프게 연기를 하고 내려오는 배우처럼 나는 종이박스를 들고 향해 휘적휘적 산을 내리고 말았다. 
종이박스를 그대로 내동댕이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나를 향해 고정시킨 시선이 있을 것 같았다. 뒤덜미가 어쩐지 서걱거렸다. 약수 뜨러 산을 오르고 내리는 모든 사람들마다 의심과 호기심을 가득 담은 초점을 내게 모으고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나를 타매할것만 같았다.
오늘 하루 마치 자신이 연극 무대우에 서 있는 느낌이다. 고양이 때문에 요즘 들어 나는 본의 아니게 코등에 분칠한 광대가 되여버렸다.

 

 

8


  처치곤란의 고양이는 이제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정신은 온통 고양이에게 쏠려져 있다.
열번 못해주고 한번 잘해줘도 그 한번을 기억하는 개라면 열번 잘해주고 한번 못해줘도 그 한번을 기억하는 고양이라 한다. 고양이가 자기를 버리려 하고 지어 없애려는 나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생각되였다.
고양이 발바닥에는 연한 육구(肉球)가 있어 소리를 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컴퓨터를 치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고양이가 어느새 뒤에와 옹송그리고 있다.
스멀스멀 상기되는 공포에 잠을 설치기가 일쑤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괴물이 머리맡에서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절박한 위기감이 나를 짓눌렀다. 가르랑. 가르랑. 고양이가 목구멍으로 내는 소리가 들린다. 뒤로 팔을 뻗으면 정삼각의 고양이 머리에 손가락이 스칠 것 같다. 얽히고 설킨 그 음산한 숨소리에 모골이 쭈뼛해지면서 진저리를 친다. 적막한 귀속에 가득 담긴 그 소리는 잠 속으로까지 밀려들어와 소용돌이치며 떠돌다가 식은땀으로 밀려나온다.
밤에 깨여 어둠을 더듬으며 화장실로 가다가 고양이에게 발이 걸채여 와들짝 놀란 적도 있다. 조도 낮은 화장실 조명 속에서 맹수처럼 두 개의 눈이 번쩍인다. 고양이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라서 불티가 탁탁 튈 것만 같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약 14년이며, 최고 31년의 기록도 있다고 한다.
고양이의 한 살은 사람으로 치면 15세와 맞먹는 나이라고 한다. 6개월의 고양이는 10살의 어린이와 비교가 되며 한 살된 고양이는 18세의 청년과 맞먹는 나이이고 두 살된 고양이는 24살에 해당된다고 한다. 두 살 이후에는 고양이도 조금씩 로화가 되여 1년마다 사람의 나이로 4년에 해당된다고 한다.
6년생인 “비비안 리”는 40세, 어쩌면 나와 나이가 꼭 같다. 녀석은 몸부림치는 이 시대 40대의 인간들과 꼭 같이 생존을 위해 발악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신화서점에 들리고 정류소로 가려고 거리를 가로지르는 지하도 층계를 내리다 그녀- 고양이의 임자를 보았다. 선글라스를 머리띠처럼 이마전에 올리고 있었다. 머리를 높이 틀어 올려 깨끗한 목덜미, 내가 무수히 입맞춤 했을 그 목덜미가 오늘따라 환장하게 눈부시다. 그녀의 익숙한 웃음이 지하도에 차고 넘쳤다. 
그러나 다음순간 도수안경을 밀며 나의 코마루가 움찔했다. “비비안 리”는 다른 남자와 같이 있었다. 훤칠한 키의 준수한 남자, 건강미가 일신에 풍기는 남자와 팔을 겯고 있었다. 그 남자는 언젠가 “비비안 리”의 핸드폰속에 저장된 사진속에서 보았던 그 남자, 바로 그녀의 남편이였다. 아주 잠깐 나는 몸이 굳었다. 놀라움과 더불어 가벼운 질투 같은 것이 일었다.
어깨를 스치는 순간 나와 그녀의 눈이 시선이 섬광처럼 부딪혔다. 휴~ 그녀가 입김으로 앞머리를 불었다. 그리고 그녀는 황급히 나를 외면했다. 별안간 머리가 텅 비여 오는 듯한 느낌에 나는 멍청하게 그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무인지경을 가듯이 그렇게 나를 지나쳐 가버렸다. 한번이라도 돌아볼 줄 알았지만 그녀는 남편의 팔뚝에 매달린 채 그냥 그렇게 가버렸다. 층계를 오르는 그녀의 구두소리가 또각또각 내 심장에 와 박혔다.
그녀에게 들붙은 시선이 거둬지지 않아 나는 층계에 못박히고 말았다.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고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아 나는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귀볼을 간지럽히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말들이 아직 귀바퀴를 맴돌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서로를 떠나 버렸다. 그와 몸을 섞고 그의 몸을 어루만지며 열락에 들뜬 시간들이 한낱 춘몽이였다는 자각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부드러운 혀로 그의 몸뚱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핥으면서 그는 내 것이라는 충만감에 전률하곤 하지 않았던가. 사귀여 온 동안 내내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환상에 뜨겁게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그것을 정리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지하통로에서 어깨를 스쳤지만 그 멀지 않은 듯 먼 거리의 의미를 나는 다시 한 번 고통스럽게 확인했다. 만나서는 마치 자신을 소진시키듯 살을 섞고, 푸슬푸슬하게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만 우리였다. 응집된 환상이 깨여진 뒤면 인간들은 자아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 간다. 그 깨여진 환상의 조각에는 현실, 우리들 각자의 새로운 시작이라는게 던져져 있을 뿐이였다.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도 분간키 어려운 온갖 감정들이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엉켜져서 가슴 한 귀퉁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 내리는 듯한 느낌에 나는 손마디를 뚝뚝 꺾었다. 절교한지 한달 만에 보는 그녀, 기묘하고 쓸쓸하기만 한 재회였다.
    … 알아듣기 어려운 경제론단 프로를 켜놓은 채 나는 TV앞에 멍하니 앉아 상념에 빠져 있다. 그런 나의 무릎으로 고양이가 스르륵 기여 올랐다. 천연덕스럽게 내 품으로 기여드는 고양이를 보는 순간, 불쑥 혐오와 허탈감이 뒤엉켰다.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짐승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나는 느꼈다.
   고양이의 몸에 손을 얹었다. 요즘 나 못지 않게 시련을 겪고있는 녀석은 살이 몹시 빠져 있다. 갈비뼈가 만져진다. 그 갈비뼈의 개수를 세는 듯 하다가 나의 두 손이 고양이의 목을 잡아 눌렀다. 나의 내면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것이 투두둑 터져 나왔다. 나는 몹시 곤혹스러웠고 속에서는 알 수 없는 반란이 일고 있었다. 미쳤어, 내가 미쳤어! 자신에게 채찍을 내리치듯 나무라면서도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고양이의 투덕거림이 손으로 전해져온다. 나는 이 순간 쾌감을 느낀다. 녀석이 움직임이 힘차다.  필사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비비안 리”의 몸이 터질 듯 팽팽하다. 둥근 갈비뼈 밑에서 툭, 툭, 툭, 진동이 느껴진다. 유리섬유처럼 털이 뻣뻣해 진다. 경련이 시작된다.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쉬려는 고양이의 턱이 벌어진다. 눈이 돌아간다. 네 개의 다리가 나무 막대처럼 꼿꼿해진다. 경련과 고통스러운 호흡이 번갈아 이어진다. 문득 “비비안 리”가 숨을 크게 들이쉰다 불그스름한 거품이 “비비안 리”의 코구멍과 이빨 틈으로 흘러내린다.
- 힘드냐? 나도 힘들다… 그러니 차라리 죽어, 빨리 죽어!
   나는 나직하게 넋두리하듯이 하며 고양이와 함께 몸부림쳤다.
이때 출입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내가 흠칫 하는 사이 죽은 줄로 알았던 고양이가 최후의 발악으로 몸을 솟구며 내 손에서 벗어났다. 녀석은 고통에서인지 공포에서인지 목구멍으로 그르렁대는 소리를 내며 주방쪽으로 사라졌다.
    장모였다. 여느 때와 같이 짠지 등속을 가져다 주고 어질러 놓은 집을 거두어 주려 온 것이다.
- 집에 있었구만
힘들게 문을 따고 들어온 장모가 거실 복판에 서있는 나를 보고 놀란 기색이였다.
- 그런데 자네 어디 아프기라도 하남? 얼굴색이 왜 그래?
장모의 이상한 눈초리가 나를 찔러온다. 분명 붉게 상기되였을 내 얼굴을 상상하며 구차한 변명을 둘러댔다.
- 아, 운동 좀 하느라고요
- 밖에 나가 소풍이라도 좀 허지 날씨도 따뜻한데. 뭐니뭐니 해도 건강이 첫째일세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며 장모는 집안 구석구석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마에 흠씬 배인 땀을 씻으며 나는 고양이의 종적을 살폈다. 손등이 얼얼해 나서 그제야 살펴보니 붉은 줄 네 개가 선명히 그어졌고 그 줄을 따라 살갗이 보풀처럼 일어나 있다. 분명 고양이 발톱에 할퀸 것이다.
베란다에서 잘 거두지 않아 희뜩희뜩 말라 가는 화초에 물을 뿌려 주시던 장모가 문뜩 나를 불렀다. 
- 사위, 나 좀 보세
아마 아끼는 화분을 잘 거두지 않아 화가 나신 모양이다. 물 조로로 꽃에 물을 주고 늘어진 잎 파리를 걸레로 닦아주며 장모는 입을 열었다.
- 나 이 말 할가 말가 고민이 많았네만… 한 번만 물읍세
    장모가 머리를 돌렸다. 그런 장모의 얼굴은 꼿꼿하게 들려 있었다.
- 그 날… 옷 장속에 숨어있던 사람은 누군가?
나는 찬물이라도 뒤집어 쓴 듯 몸을 흠칫 떨었다. 장모가 오랫동안 뒤집어 썼던 나의 비밀의 한 자락을 잡아채어 매몰차게 벗겨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부자리 속에서 기어코 우리의 수치스런 알몸은 드러나 버린 것이였다.
    장모는 구태여 나의 답변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시 조로를 집어 들었다. 구멍이 좀 막혔던지 물 줄기가 간신히 새 나왔다. 장모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 처자가 좀 잘 살아보겠다고 외국가서 애면글면 손톱 벗겨지게 일하는데 그게, 그게 사람 된 도린가? 자넨 책 읽은 사람이니 이런 리치는 나보다 더 잘 알겠소마는 내 굳이 한 마디만 해야겄네. 이 한마디도 못 하다간 내 속이 뒤집혀서 못 살 것 같아 그러네.
장모의 소리는 메마른 저수지처럼 갈라져 있었다. 화분 잎 파리를 닦는 그의 손이 눈에 띄이게 떨리고 있었다.
- 물론 홀아비 처지로 한 두해도 아니고 7년 8년 지내온 사위 처지도 리해 할만하이. 아직 젊은 나이에 참고 견디려니 오죽하겄나? 허지만 자네 같은 처지가 어디 한두 집인가? 그렇다고 집집마다 자네처럼 처사한다면 요즘 같은 세상 성한 집이 남아 있을란가 모르겄네.
장모의 떨리는 목소리는 채찍이 되여 나를 후려쳤다. 그 소리는 고요하면서 강렬하게 고동치며 내 몸을 장악해나갔다. 극심한 부끄러움과 죄의식이 나의 온 몸을 강타했다. 살갗 깊숙이 박히는 장모의 시선을 받아내며 나는 뒤미처 장모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 애 어미한테는 알리지 않겠네. 남들처럼 돈 벌어 와 갔고는 오히려 갈라지고 부서지고 하는 꼴 난 볼수가 없네. 다음 달이면 애 어미가 돌아오겠는데 이제 좀 자제해 주게나.
자네가 누군가. 책 쓰는 사람 아닌가. 내 딸 뿐 아니라 나도 자네가 맘에 들었네. 자넨 이 집안의 자랑이자 희망이기도 허지. 이 희망을 이 집안을 하루밤 정분 때문에 그렇게 쉽게 부서뜰릴겐가. 왜 그러나 이 사람아~
장모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 들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애증만을 꺼억 거릴 뿐이였다. 남향 창으로 미여지게 들어오는 해빛에 장모의 얼굴에는 굴곡마다 진한 그림자가 생겨나 있었다. 나는 장모의 얼굴에 깊숙하게 깃든 주름과 그 주름에 앙금진 음울한 그늘을 보았다. 그것은 예의 피곤함이였다. 형언하기 어려운 짙은 피곤함이였다. 금방이라도 후두둑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이 지쳐 있는 장모의 지친 눈빛이 나의 가슴을 후벼냈다. 그 눈길을 보노라니 마치 커다란 엿 한 덩이를 목구멍으로 겨우 삼키고 있는 듯한 기분이였다.
이윽고 한숨 같은 심호흡으로 머리속을 정돈하고 나서 장모가 말을 이었다.
- 난 자넬 믿네. 신분있는 사람이니만큼 우리가 믿는 사람인 만큼 조신있게 처사할수 있으리라 믿네.
장모의 말에서는 여러 가지 느낌이 묻어 났다. 그 참담한 진정을 나는 숙연한 마음으로 들었다. 그 말들이 풍겨내는 체념과 초월의 냄새를 나는 맡을수 있었다.
마침내 나는 고개를 깊숙이 떨어뜨리고 말았다.
- 죄송합니다!

 


9


고향은 번개를 맞은 괴사목(愧死木)을 방불케 했다. 학교는 페교되고 비운 채 떠나버린 집들은 이영이 곰삭아 주저앉고 있었다. 봄이라지만 전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젊은 층이 죄다 도시로 해외로 나가버려 로인네 몇몇이 남았으니 그럴법도 했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던 나는 참담한 기분으로 나를 낳고 키워 주었던, 이제는 살풍경으로 남은 그 곳을 점도록 지켜 보았다. 팔 목 시큰하게 들고 온 종이박스를 내려놓을 것도 잊은 채…
 요사이 편집부에 허리케인(龍券風)이 몰아쳤다. 그것은 우리로 말하면 7시 황금뉴스 시간에도 톱뉴스로 나올만한 참말로 특대뉴스였다.
수필편집의 로친네가 귀국했다. 로씨야로 옷장사를 나갔다 4년만에 돌아왔는데 그가 새삼스럽게 우리 편집부를 찾아 왔다. 그런 인상을 가져서 였던지 로씨야 녀인들처럼 풍성한 몸매를 한 그녀는 편집부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남편, 수필편집의 얼굴에 책상우에 놓여진 두툼한 사전을 집어 던졌다. 카랑카랑한 악청이 사무실을 강타했다.
- 빵 부스러기 같은 령감태기, 기껏 공대해 주었더니 바람을 펴!!!
유독 다른 녀자에게 한 눈 파는 일 없이 곧은 직(直)자로 살아오려니 여겼던 ,그래서 편집부내에서 놀림 과녁으로 되였던 그에게 밖에 둔 녀자가 있었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 숨겨두었는데 어찌구려 그 사진이 귀국한 호랑말코 같은 로친에게 발견된 것이다. 세대차이는 못 말릴 듯 했다. 디카(디지털 카메라) 세월에 하필이면 필카(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뽑아 간직해 두었으니 걸릴 법도 했다. 
- 황홀한 바람 피워 볼려면 “까게베”를 배워야 돼, 눈치가 빠르고 몸이 빨라야지. 그보다 중요한건 증거나 단서를 남기지 말아야는 거야. 간첩 같은 스릴 그 스릴을 즐기는 거라고
  수필편집의 로친네가 울고불고하며 한바탕 벌린 공소의 굿 장단을 파하고 돌아간 뒤 스산한 분위기를 무마하련 듯 부장이 우스개를 피웠다. 하지만 웃음이 들리지 않았다. 모두는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모습이였다.
누구보다 나의 뇌리를 선점한 건 나의 장모님의 얼굴이였다. 무너져 내릴 것 같던 장모의 눈빛, 그 락망과 희망이 교차한 눈길을 며칠 내내 잊을수 없었다.
곁의 눈을 살피며 나는 슬그머니 핸드폰을 열었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그녀의 사진이 문득 생각 났던 것이다.
핸드폰 속 비밀한 파일속에 그녀, “비비안 리”가 있었다. 그녀의 눈매를 닮은 고양이를 안고 있다. 사진 속에 갇힌 시간들이 보인다. 그녀의 둘레를 꽉 채우고 있는 비밀한 나날들. 그녀 곁에 나도 보인다. 이제 보니 왜서였던지 우리의 얼굴들은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남몰래 어울려 있음에 대한 비밀함, 혹은 힘든 삶의 도피에서 맛본 향수의 모습이 라 할까.
이제 그 모습을 지워야 한다. 지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힘겨운 리별. 이 리별이 힘들었던 건, 우리에게 무수한 만남들이 있지만 어떤 만남은 꼭 헤여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충동이 자초한 것이 기때문이리라.
한숨 한번 짓고 나서 나는 단연히 삭제버튼을 눌렀다…
중세기 고양이 학살에 광분했던 그들처럼 고양이와의 전쟁을 벌리던 나는 뒤늦게 흩어진 리성을 수습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고양이를 그렇듯 미워하고 버리려하고 지어 죽이기까지 하려 했던 것이 단지 애완동물에 대한 무감각한 정서따위가 아니라 그녀와 남겼던 즉물적인 사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하지만 지우기 어려운데서 다른 곳에 투영된 변형된 아집임을 뒤늦게 깨우칠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미안쩍은 생각이 드는 고양이를 버리되 정중하게 내가 나서 자란 고향에 버리기로 했다. 겸사겸사 오랫동안 발길이 미치지 못했던 고향에도 가볼 겸. 인품 순후한 그곳이면 누군가 나의 고양이를 거두어주고 잘 키워 줄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동구밖에서 나는 박스를 열어젖혔다. 갑갑했던 고양이가 용수철처럼 튀여나왔다. 만곡된 허리를 펴며 꽃잎 같은 입술을 열며 기지개를 쭈욱 켰다.
나는 고양이의 보법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다행히도 따라오지 않았다. 해바라기를 하는 듯 고양이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꼼짝하지 않는다.
탈출하는 사람처럼 먼지를 일구며 걸음을 재촉하다가 나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보다 강렬해진 봄 해살이 쏟아지고 그 빛 속에서 고양이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뻐스에서 나는 길게 별렀던 살인을 마친 킬러처럼 단잠에 곯아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먼지투성이의 몸을 샤워기 밑에 들이 밀었다. 따뜻한 물줄기에 그 기간 온몸 골골샅샅에 밴 채 응어리로 남아돌던 피곤이 싹 풀리는 듯 했다. 홀가분했다. 묵은 각질을 벗겨낸 것 같은 후련한 심정이였다.
겨우겨우 촌극을 벌여 나는 드디여 고양이에서 벗어났다. 그 동안 자신의 보따리를 버려야 한다는 강박증에 나는 줄곧 시달린 듯 했다. 나에게 씌워진 모든 감정과 책무, 그 동안의 삶을 속박했던 육신의 욕망, 그리고 그 주기에서조차 벗어난 기분이였다.
무성했지만 귀찮아 내버려두었던 수염도 깎았다. 뺨과 턱에 비누를 허옇게, 신명나게 칠하고 면도칼을 들었다.
- 옛날 애급사람들은 고양이를 잃으면 한쪽 눈썹을 밀어 기념했대요
   어데선가 내레이션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소를 머금으며 나는 면도를 시작했다.
- 오, 마이갓!
   면도를 끝내고 무우 밑둥처럼 매끈하고 수염 터기가 파란 턱을 기분 좋게 만지던 나의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 나갔다. 어느결에 왜서 그랬던지 나의 왼쪽 눈썹의 절반이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

 

안해가 왔다. 드디여 안해가 돌아왔다. 공항터미널에서 나를 보고 처음 한 안해의 말은 “당신 눈썹이 왜 그래요?” 였다. 과거는 흔적을 남긴다. 집에는 아직도 모서리마다 고양이에게 긁힌 자국이 어딘가 있고, 내 얼굴에도 그 흔적은 남아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안해를 껴안았다. 오래도록 그리고 꼭 껴안아 주었다.
안해는 눈에 띄이게 얼굴이 갸름해져 있었다. 그는 이 몇년동안 마치 다른 시간의 경계를 지나 이 곳으로 온 것처럼, 여리고 화사하던 얼굴빛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눈빛은 열에 들뜬 것처럼 깊고 강했다. 가늘던 목소리도 명료하고 무겁게 변해 있었다.
그날 저녁, 참말로 오랜만에 안해와 정을 나누었다. 첫사랑 그때처럼 다소 민망하고 부끄러워하면서 하지만 격렬하게 서로를 가졌다. 오래동안 덮었던 솜이불 같은 친근한 느낌이 몸을, 마음을 감쌌다. 버릇처럼 내가 커피를 풀었다. “연와” 커피 한 잔을 받쳐주는데 안해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록차를 마신다고 했다. 커피를 버리고 다시 록차를 풀었다. 뜨거운 록차를 마시며 우리는 7년이라는 세월의 시차(視差)에 담겨진 많은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귀국 후의 그 며칠은 친척친지들과의 해후상봉의 술자리가 발에 발을 이었다. 그리고 안해는 오래전에 원했던 것을 하나둘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기물도 사들이고 가물도 바꾸었다. 이제 옛말하며 잘 살아봅시다. 흥분한 안해의 얼굴과 몸짓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느 날, 딸애와 함께 쇼핑을 마치고 돌아온 안해의 눈이 여느 때보다 빛나며 얼굴에 감추지 못하는 웃음이 묻어 났다. 커다란 쇼핑백에서 무언가 끄집어 냈다.
안해가 사온 물건에 궁금증을 가지며 눈길이 주던 나는 급기야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입에서 소용돌이처럼 맴도는 비명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 오, 마이갓!
그것은 한 마리의 고양이였다.
- 애가 하도 졸라서 사줬어요. 그 동안 집에서 고양이 기르다 잃어버렸다면서요.
짙은 에메랄드 색 눈빛을 하고 견갑부(肩甲部)에 감색의 털이 조금 섞인 나비 모양의 무늬가 있고 목과 가슴의 털이 풍성한 고양이는 호랑이의 그것 같이 날카로운 렬육치(裂肉齒)를 드러내며 나를 바라고 야옹!하고 울었다.
 

"도라지" 2008년 3월호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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