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
텍사스, 텍사스
김 혁
“텍사스의 밤”이라 했다.
“텍사스의 봄”, “불타는 텍사스”… 골목길에는 텍사스라는 상호를 넣은 네온싸인 간판들이 많이 보였다.
안마시술소의 맹인 안마사의 손에 몸뚱아리를 맡긴채 박은 두눈을 느스름히 감았다.
래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곳도 이젠 빠이빠이다. 티켓은 이미 끊었고 박은 드디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13년만의 귀향이다.
요즘은 방문취업비자가 만료돼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박과 같은 사람들이 30만을 웃도는데 년말부터 순차적으로 비자가 만료돼 떼를 지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급소를 찔린 사람처럼 아우성을 쳤고 어떡하나 돌아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했다. 하지만 박씨만은 그들과 달랐다. 하루빨리 돌아가고만 싶었다. 더는 이곳에서 알탕갈탕 살고 싶지 않았다.
연무같이 앞길이 보이지않던 이 십수년의 세월, 허위단심 헤쳐온 나날들은 박에게는 다시 떠올리기에도 힘든 시간이였다.
십여년전, 안해가 그보다도 먼저 가짜결혼으로 출국을 했다. 너나가 출국이라는 좁은 외나무다리에 발을 올려놓기 시작하던 당시 가짜결혼을 빙자한 방식은 흔히 볼수있는 놀랄것 없는 풍경이였다.
“내 먼저 들어갈터니 인차 따라오세요”
속을 졸이면서 떠난 안해는 용케도 그 어려운 출국의 겹대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뒤를 따라선 박씨가 문제였다. 첫 출시도는 브로커에게 돈만 떼운채 무산되고 말았다. 다시 가짜비자를내서 감행했던 모험 역시 인천공항에서 들통나 가차없이 축객령을 당했다. 그러다 요행 세번째만에 남보다는어렵게 출국의 문을 열어 젖혔던 박씨였다.
“왜 텍사스촌이라 부르지요? 텍사스라면 미국쪽이지 않습니까?”
박씨가 궁금한듯 안마사에게 물었다.
내내 웃음을 고수하고 있어 가면같아보이는 얼굴의 안마사가 말했다.
“서부영화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어요. 요즘에는 잘 안보지만. 매일이고 비디오 가게를 찾아 클리튼 이스트우드의 서부영화들을 빌려보곤 했지요.
그런 서부영화들을 보면 주인공들이 총싸움도 하고 포카(카드 게임)도 치고 하는 술집 있잖아요. 그 술집들을 보면 형태가 아래 층에선 술을 팔고 윗층에선 여자를 데리고 자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지요. 이곳에서 처음영업소들이 들어섰을때 모두 그러한 형식들이였는데 그래서 영업소마다 서부의 이름을 따서 ‘텍사스" 달았다 그러네요.”
“아, 네”
“그리고 또 한국전쟁후 이런 영업소를 주로 찾는 사람들은 미군들이였는데 그때는 미국에 대한 막역한 동경심때문에 이름이 붙은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은…”
그랬다. 막역한 동경심이였다. 서울에 가면 떼돈을 벌수 있다는 막역한 동경심으로 박씨네도 미련없이 고향을 버리고 서울행을 택했다.
그런데 한국에 나간 이후로 안해는 소식이 끊어져 버렸다. 밭문서, 집문서 들이대고 여기저기 꾸어서는 빚짐 내여 출국로무의 길을 열었던 박씨는 빚에 졸려 매일을 뜨거운 양철지붕에 맨발로 올라선 처경이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안해는 어쩌면 땡전 한푼 집에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일자리 겨우 얻었는데 이번엔 자리 잘 잡은거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요! 하고 안해는판에 박은 말만을 낡은 축음기처럼 되풀이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그 락언이 번마다 거짓말로 끝나버리곤 했다. 매주마다 전화를 쳐서 원망을 토하는 그를 바라고 안해쪽에서 고성이 터져 올랐다.
“나 지금 서울에서 돈방석에 앉아있는게 아니야, 나도 힘들다고요!”
박씨는 깜짝 놀라 수화기를 멍청하니 들여다 보았다.
시골 무지렁이 안해였다. 요즘 세월에 보기드물게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고태에 절은 안해였다.
안해와 처음 사귀던 때, 반년이 지나도록 박씨는 그의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 어느 한번, 술에 취한 박씨는 취기가 발동해 안해를 부득부득 그러 안다가 그만 비명을 흘리고 말았다. 안해가 그의 어깨박죽을 물었던것이다.
“차암, 순수하기로 옛날 같으면 렬녀 될사람이야.”
웃어 넘겼지만 그때 물린 자리가 지금도 그의 어깨에 도도록한 흉터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마냥 조신스런 몸가짐으로 모기소리처럼 한 옥타브 낮게 속삭이던 안해가 그를 향해 소리소리 지르고 있는것이다.
그날 이후로 안해는 전화를 받지조차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친지들 눈에 박씨의 안해는 이미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여 있었다. 그들은 동정, 추측 혹은 조소 어린 눈길로 박씨를 끔찍하게 지켜보고있었다.
먼저 한국에 갔다온 고향사람들이 띄염띄염 안해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식당일에 절은지라 무릎병이 도져 오래동안 일을 못했다고했다. 또 누구는 고시원에서 청소원으로 일하다가 불이 나면서 대피하다가 다쳤다고도 했다. 하지만 캐물을라치면 누구나 근자에는 본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에 도착하기 바쁘게 박씨는 안해를 찾았다. 하지만 안해는 깨끗이 증발하고 없었다.
안해를 찾지도 못했는데 박씨의 발등에 불이 떨어 졌다. 건설현장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막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그들에게 공사를 맡긴 원청업체가 공사대금을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체임이 수천만원까지 불어났다.
서울에 있는 동포단체의 도움으로 민사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원청업체 대표는 어느새 종적을 감춘 뒤였다.결국은 그동안 손톱 벗겨지게 일하며 벌어온 로임은 한강에 띄워보낸격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박씨는 체불도 못받은채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감탕밭길보다도 더 헤쳐나가기 어려운것은 안해를 찾는 길이였다. 휴일이면 욱신거리는 삭신을 춰세우며 안해를 찾으러 진동한동 뛰여다녔다. 고향사람들 친지들을 다 찾아 물어도 안해는 이 세상 천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마다 좌절과 렬패감같은것에 사로잡혀 박은 포장마차를 찾았고 날이 새도록 알콜로 몸과 맘을 마취시키곤 했다.
그러다 타향에서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교회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간신히 몸을 춰 세웠다. 그리고 박씨는 귀향하기로 마음먹었다. 돈은 몇장 챙기지 못해도 어서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조촐한 곳이라도 따뜻한 고향의 온돌목에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뉘이고 싶었다.
고향을 떠나기 전날 그동안 고생에 고생을 이어온 자신에 스스로 보상이라도 줄 양으로 좋은 안주에 술을엄청 마셨고 어쩌구려 취한 발길은 평소에는 엄두도 못내던 안마시술소 까지 찾아 든것이였다.
“이제 이곳도 당금 문을 닫게 된답니다.”
안마사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왜요?”
“정부로부터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됐어요.
좋은 일이지요. 토지보상문제가 해결되면 봄쯤에는 아마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될겁니다. 30층 되는복합 아파트도 들어서고 랜드마크 건물들이 들어선다고 하던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버티며 골목 업소들에선 간간이 영업을 하고 있지요.”
안마사가 한마디 꼬리를 달았다.
“우리 안마술사들은 그래도 자격증 같은것이 있어 괜찮지만 여기서 일하던 그렇게 많은 안마사들은 이제어디로 갈런지.”
안마사가 탄식같은것을 내뿜었다. 그러면서 새삼스레 박에게 물었다.
“근육이 너무 뭉쳐 있네요. 한번 풀어 보시겠어요?”
느닷없이 안마사의 음성은 방금전보다 한옥타브 낮아져 있었다.
“다른 안마를 받아 보시겠냐구요?”
그 은근한 물음에서 박씨는 어떤 핑크빛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예”
박이 웅얼거리며 답했다. 그동안 참고 견뎠던 정염이 다시 상기되여 아래배에 힘이 불끈 솟아 올랐다.
“잠간만 기다리세요”
안마사가 맹인치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익숙하게 방을 더듬어 나갔다.
인차 문이 다시 열렸고 녀자가 들어왔다.
벽에 붙은 전신 거울로 녀자의 모습이 력력히 보였다.
“미스 정입니다.”
화장기 진한 녀자는 귀바퀴의 연골을 타고 흘러 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다가왔다. 교태어린 코맹맹이 소리로 자아소개를 하고는 다짜고짜 상의를 벗었다. 묵직한 가슴을 흔들며 녀자가 엎드린 박의 등에 올라 탔다.
녀자의 손이 거침없이 박의 몸뚱아리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담대한 터치에 박은 일순 당황했으나 오랜만에 받아보는 녀자의 손길에 물먹은 솜이 되여버렸다. 박은 흐트러지는 숨을 애써 고르며 녀자의 손에 자기를 맡겼다.
뱀처럼 굼닐던 녀자의 손이 문뜩 멎었다. 녀자의 손은 박의 어깨에에 와 멎어 있었다. 녀자가 머리를 숙이며 박의 어깨를 들여다 보았다. 어깨에 난 상처를 찬히 들여다 보았다.
순간 녀자의 입에서 헛비명이 새여 나갔다.
희윱스레한 불빛을 빌어 피로에 쌍꺼풀 진듯한 녀자의 눈우로 순간에 흘러 넘치는 눈물을 박은 놀랍게 볼수 있었다.
녀자가 얼굴을 싸쥐며 방을 뛰쳐 나갔다.
박은 그 무슨 의학용 표본마냥 박제라도 된듯 그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창밖에서는 “텍사스”라는 상호가 새겨진 네온싸인이 명멸하고 있었다.
“장백산”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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