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편소설 .
리화동(梨花洞) 1937
김 혁
겨울강
강은 철판처럼 단단히 얼어붙어 있다.
헐벗은 강언덕에는 하늘 향해 메마른 가지를 뻗쳐든 돌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간밤 내린 눈이 앙상한 가지에 얹혀 꽃이라도 피운듯 하다.
조밀한 아침안개의 품에서 금방 벗어난 돌배나무를 강바람이 아츠러운 소리로 건드리며 지난다.
언덕배기 어스레한 배나무숲사이로 무언가 어슬렁 거리는것이 보인다.
언덕아래에서 후미진 곳에서도 무언가 어슬렁 거리며 나타난다.
들개다.
산에서 내리는 들개와 산에 오르려는 들개, 두패의 들개떼가 돌배나무가 있는 언덕에서 조우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십여마리는 실히 되여 보이는 개떼들은 서로를 확인하는 순간 돌처럼 경직돼 버린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발톱을 사린채 상대를 뚫어져라 쏘아 본다.
목덜미의 가시털을 몽당비처럼 세운다.
충혈된 눈깔을 호동그라니 치뜬다.
입귀를 한쪽으로 치켜올려 강렬한 렬육치(裂肉齿)를 드러내 보인다.
목구멍으로는 으르르~ 맹수의 울음을 끌어올려 이빨 사이로 뿜어낸다.
대치의 숨가쁜 시간이 흐른다.
그러다 대치의 꼭지점에 다달은듯 팽팽한 기운을 찢으며 들개 하나가 반공중에 솟아 올랐고 그를 마주해 개때들이 일제히 솟아 올랐다.
허공에서 떨어짐과 함께 개들은 순간에 한데 섞였다.
으르릉, 깨갱
포효와 신음이 한데 섞여 강가는 악마구리 끓듯하다.
눈밭을 무대로 덮치고 뒹굴고 물고 뜯고 씹고 허비고 그야말로 한바탕의 혈전을 치른다.
저마다의 털들이 원색을 알아볼수 없게 흙과 피로 뒤범벅이 되여서야 싸움은 겨우 끝났다.
그누가 승자라 할것 없이 상처를 입은 개들이 혀를 빼물고 헐떡인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인지 모를 싸움 한번 거창하게 치르고나서 개떼들은 신음을 갈무리하며 언덕우로 오르고 언덕을 내린다.
얼어든 강의 복판에 아이들이 서있다.
과수원 돌배나무처럼 렬을 짓고 죽 늘어 서있는 아이들의 눈길은 일제히 강가의 언덕을 향해 몰부어져 있다. 퀭해진 눈길로 개떼들의 피터지는 싸움을 지켜본다. 경악으로 휑하니 벌린 입귀로 입김이 솥김처럼 무성하게 피여 오른다.
“무섭땅!”
어지러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진 애 하나가 쭝얼거렸다.
한결 매운 강가의 매서운 추위보다는 눈앞에서 사투를 목도한 공포에 아이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상처를 핥던 개떼들이 언덕너머로, 강굽이로 사라져서야 애들은 다시 애초에 강을 찾았던 리유를 생각해 낸다. 이른 아침부터 밥술 떨어지기 바쁘게 팽이치기를 나온 개구장이들이다.
“됐다. 이제 우리 팽이놀이하자”
“맞다! 팽이놀이 하자”
방금전 본의 아니게 목도한 혈전의 공포에서 벗어나련듯 아이들은 극구 신나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필요이상의 환성을 지른다.
아침나절의 미지근한 겨울해빛에도 강은 은박지처럼 빛을 튕겨내고 있다.
그 박명(薄明)의 차거운 빛살우로 팽이가 돌아 간다.
박달나무로 만든 팽이는 얼음장을 파고들듯 무섭게 돌아간다.
평평한 머리의 중심을 오목하게 파고 몸체에 줄무늬를 낸 원뿔형의 팽이는 강이 비좁다하게 잘도 돌아 간다.
좌충우돌 하며 팽이를 후려치는 아이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강은 아이들이 지르는 투명한 고음으로 가득했다. 그 소리에 얼음장이 깨지기라도 할듯하다.
아이들의 손에는 저마다 팽이채가 들려 있다. 엄지손가락만한 굵기의 나무가지를 다듬은 뒤 무명실을 꼬아서 달아주면 제법 그럴듯한 팽이채가 된다.
아이들의 몸과 숨소리와 피여오르는 입김이 한데 얽힌다.
팽이채의 끈과 끈이 서로 얽혔다. 확 잡아채도 끈은 끈끈이주걱풀처럼 단단히 얽혀 도무지 떨어지지를 않는다.
큰 개똥이와 작은 개똥의 팽이채가 얽혔다.
“씨!”
작은 개똥이가 볼부어 하며 다시 한번 팽이채를 확 잡아챈다. 하지만 끈은 오래된 칡넝쿨처럼 단단히 얽혀 있다.
작은 개똥이는 벙어리 장갑을 벗어들고 얽힌 끈을 풀기 시작했다.
덩치가 더 커보이는 큰 개똥은 끈을 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는 아이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하나는 하늘을, 하나는 땅을 본다. 추위에 코물이 벌창해져 엿가락처럼 줄줄 흘러내린다.
“헛방 치지말구 팽이를 쳐라, 이 사팔뜨기”
작은 개똥이 한편 끈을 풀면서 한편 단단히 타이른다.
“그래 헛방 치지말구 팽이를 쳐라, 이 사팔뜨기야”
다른 애들도 작은 개똥이와 합세하여 중구난방 떠들어 댄다.
동네북이 되여도 개이치 않고 큰 개똥이는 하하거리기만 한다. 후룩! 하고 요란하게 코를 치걷자 떨어질듯 위태롭던 코물이 굶은 걸신(乞神)의 입에 들어가는 국수발처럼 벌름한 코구멍으로 쑤욱 들어가 버린다.
작은 개똥이가 얼어드는 손가락을 호호 불어가며 겨우 끈을 풀어냈다.
“다시하자, 다시”
작은 개똥이 팽이채의 끈을 팽이 허리에 돌돌 감고는 팽이를 얼음우에 대였다. 팽이채를 옆으로 확 잡아채자 팽이가 총알처럼 튕겨 나가며 핑그르르 돌기 시작한다. 애들이 우루루 달려 들었다. 팽이가 도는 방향을 따라 무작정 때린다. 팽이를 따라 아이들이, 강이,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또 한번 끈과 끈이 얽혔다. 작은 개똥이의 팽이채에 얽힌 팽이채의 임자는 또 큰 개똥이다.
“네 절로 풀어라”
작은 개똥이가 체증에 넘쳐 팽이채를 큰 개똥에게 내민다. 큰 개똥이 비실비실 웃기만 한다. 웃입술까지 흘러내린 코물을 핥으며 말한다.
“모른다. 내는, 못 푼다 내는…”
“저 사팔뜨기는 아무것두 모룬다, 셈도 열개까지 못 세는데”
이름은 같은 개똥이여서 키 차이를 보고 “큰 개똥”, “작은 개똥”이라 불리지만 막상 덩치 큰것이 작은것에 비해 굼뜨고 우통한 편이다.
“내는 셀줄 안다, 셈…”
큰 개똥이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 양” 뿌루퉁해 우겼다.
“그럼 어디 세봐라 열개까지. 내 그럼 저 팽이 널 주마”
팽이의 임자가 얄기죽거리며 말했다.
강판에서 빙그르르 잘도 돌아가는 팽이를 지켜보며 큰 개똥이 거위춤을 꿀꺽 삼켰다. 팽이의 유혹에 빠졌던지 큰 개똥이 얼어든 손을 꼽으며 셈을 세기 시작한다.
“한나, 둘, 서, 야들, 아후, 열”
아이들이 일제히 푸하 웃음보를 터뜨렸다.
“다 틀렸잖아. 다시 세봐 다시”
“한나, 둘, 야들 열…”
애들의 웃음에 당황했던지 큰 개똥이의 셈세기는 점점 더 엉망이다.
작은 개똥이가 못말린다는듯 웃으며 장갑끝을 입으로 벗겨 물고 또 한번 힘들게 끈을 풀어 냈다.
그러나 이번에 작은 개똥이의 팽이채는 팽이를 후려치지 않았다. 짜증으로 가득한 작은 개똥이의 팽이채는 마파람으로 울며 큰 개똥의 볼을 향해 철썩 날아 들었다. 가뜩이나 터실터실한 큰 개똥의 볼에 채찍 자국이 입녘으로부터 귀전까지 선명한 자국을 남기며 죽 지나갔다.
후루룩 치걷어 올라가던 코물이 뚤렁 떨어져 내렸고 급기야 큰 개똥이 우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골안을 내리는 곰 울음같은 소리가 강안을 흔들었다.
그러건 말건 아이들은 어리석고 미련한 뒤틈바리를 내쳐둔채 저희들끼리만 어울려 팽이치기에 여념없다.
목놓아 울던 큰 개똥이가 옷소매로 코밑을 쓰윽 닦았다. 분에 못이겨 강똥 싸듯 끙끙 거리다던 큰 개똥이 엉큼엉큼 달려가 팽이채로 작은 개똥의 등짝을 철썩 후려갈겼다.
작은 개똥이 흠칫하며 돌아 섰다.
두 아이는 서로를 향해 팽이채를 휘둘렀다.
끈이 얽혀버리자 팽이채를 버리고 서로 붙안고 강바닥에 뒹굴었다.
“죄꼬만 개또이 이겨라”
“큰 개또이 져라”
팽이치기 보다 쌈박질이 더 신난듯 애들이 얼음판우에 뒹구는 두 애를 에워싸고 소리소리 지른다.
버려진 팽이가 그냥 돌아간다.
쌈박질 하는 애들이 싫은듯 돌고 돌아 강녘에 이른다.
돌고돌다 지친듯 왜틀비틀 하는 그 팽이를 느닷없는 신발하나가 사정없이 짓밟았다.
앞 코숭이가 뭉툭하고 위협적으로 빛나는 커다란 군화발이다.
우물가
잘그랑! 질그릇 깨지는 소리가 우물가를 흔들었다.
강파르게 얼어 든 우물가로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던 아낙이 그만 엉덩방아를 찧었고 그 서슬에 물도 긷지못한채 물동이를 떨구어 깨고 만것이다.
뒹구는 똬리를 주어든 북산댁이 비명인지 욕설인지 분간 못할 욕을 체증과 함께 내퍼부었다.
“에궁, ‘아까운 고기국 쏟고 거기 덴다’더니 올 동삼에만 물똥이 벌써 몇개채 깨먹누”
오만상이 되여 엉덩이를 툭툭 털며 몸을 일으키는데 우물가를 지나는 아낙 하나가 보였다.
광대줄이라도 타는듯 둥싯둥싯 뒤똥거리며 걷는 그 아낙의 부른 배가 남산만하다. 해토머리 쯤이면 둘째를 출산하게 될 남산댁이다.
그 아낙을 지켜보는 북산댁의 메밀눈이 호동그랗게 커졌고 감파랗게 빛났다.
“에궁 내 아침부터 어째 ‘배꼽에 옴이 붙나’했더니 어떤 밉상이를 보자고 그랬고나”
좁고 동그란 남산댁의 어깨가 흠칫했다. 허나 그것은 잠시, 남산댁은 자기를 향해 쏟아지는 야유를 들은척 마는척 여전히 늦은 보법으로 미끄러운 우물가를 조심조심 지나고 있다.
툭 불거진 광대뼈를 가진 북산댁의 야유가 광대뼈처럼 높다랗게 수위를 높혔다.
“에궁 ‘눈 구멍에 식초가 들었나’ 눈 시려 못 보겠다. 퉤”
하지만 남산댁은 여전히 응답조차 없다. 터진 꽈리 보듯하며 매끈한 이마를 수긋하고 갈길을 간다.
“에궁, 빤드럽기를 여시 저리 가라 할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는실난실 걷던 남산댁의 발걸음이 드디여 난딱 멈추었다.
“뉘기냐? 뜨슨 밥 먹구 찬 소리만 골라 하는 년이?”
남산댁이 보얗게 눈을 흘겼다.
북산댁이 물동이 파편을 걷어찼다.
“아침부터 물똥이 깨먹고 재수 없어 그런다 왜?”
남산댁이 닷발쯤 입을 빼물고 퉁퉁대는 북산댁을 흘려보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꼭 저같이 생겨먹은 말만 하는구나. 물똥이를 걷어차다 못생긴 상통 다 깨겠네”
“뭐 못 생긴 상통?”
북산댁의 얼굴이 온통 달구어진 철판처럼 달아올랐고 어조가 사금파리 긋듯 고음으로 삐여져 올랐다.
“넌 대체 얼마나 잘 생긴 상통이게? 낯값하느라 남의 나그네를 야스락 야스락 꼬셔먹냐?”
“누가 누굴 꼬셔?”
북산댁이 힝 하고 말처럼 웃었다.
“에궁, 벽에도 귀가 있소. 지들이 한 짓거리 지들이 잘 알터지”
북산댁의 눈길이 두터운 털등거리를 밀고 불러오른 남산댁의 둥시런 배를 아래우로 훑었다.
“그 속에 든것이 누구 씨 종자인지 알턱이 뭐야?”
“아무리 터진 입이라구 함부로 놀리지 마라. 네 눈에는 지아비가 하늘처럼 뵈일지 모르지만 다른 아낙들 눈에는 그저 퉁소쟁이, 풍각쟁이에 지나지 않을뿐, 네가 생각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에궁, 되똑 쳐든 코대가 금강산 비로봉만큼이나 높구마이.”
북산댁은 그저 꽹가리 울듯한 높은 악청만을 무기로 삼는다.
남산댁이 야유조로 내뱉았다.
“조신해야 할 상중(喪中)에 나덤벙이질 마라. 그렇게 분수를 모르니 온 마을서 천박둥이 신셀 면하지 못하지”
“이런 썅 참아줬더니 못하는 말이 없구나”
북산댁이 덫에 치인듯 울부짖었다.
몇달전에 남편을 잃은 북산댁이였다.
아래 마을 친지의 환갑잔치에 장끼인 대금 불어주러 갔던 남편이 밤늦도록 돌아오지않았다. 술 마시고 늦은 밤에 기어이 집으로 돌아가얀다며 과수원길에 들어섰다는 남편의 시신은 며칠후 배나무숲에서 발견되였다.
시신은 처참하게 찢겨 있었다. 어떤 맹수의 이빨과 발톱에 찢긴것 같다고 했다. 늙은 촌장과 김생원은 들개를 흉수로 지목했다. 마을 변두리에서 어슬렁거리던 들개떼가 날이 갈수록 점점 야수성을 보이고 있었던것이다.
울고싶은데 얼뺨 맞은 격으로 남산댁의 말에 정곡이 찔린 북산댁이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북산댁이 오늘따라 집요하게 달려들자 그동안 북산댁의 뒤손가락질과 흠구덕에 시달려왔던 남산댁은 부른 몸이라는 체신도 잊고 판가리를 할양으로 북산댁을 향해 달려 들었다.
서로 얼굴에 침방울이 튀길 거리에서 얼굴을 딱 마주대고 두 아낙은 우물터가 떠나도록 입싸움을 해댔다.
“됐소. 적당히들 하우. 꼭두 새벽부터 무슨 분탕질이우?”
이때 남정네의 석쉠한 목소리 하나가 싸움의 복판을 가로 질렀다.
박씨였다.
뒤짐지고 어디론가 곰바지런히 걸음을 옮기던 박씨가 아낙네들의 백열화되는 싸움을 보고 한마디 한것이다.
“왜가리를 삶아먹나? 동네가 떠나겠소”
또 하나의 목소리가 끼여들었다.
박씨네 이웃 김씨다.
우물가를 지나던 그 역시 싸움의 자초지종을 목격한것이다. 버럭 소리 한번 지르고 지나치려던 김씨가 한마디를 덧붙혔다.
“앵무새들 곱새춤에 왜가리춤은 또 뭣이고? 구경났네 구경났어”
“건 또 어느 장단에 붙혀 하는 말이우?”
박씨가 아니꼽게 물었다.
“미친 굿판에 미친 장단이다 왜?”
김씨의 말에 뼈가 들었다.
“어째 무작정 투정질이우? 간밤에 잠이라도 설쳤수?”
“그래 이 나이에 아직도 잠투정이다. 오늘 제대로 투정 한번 해보자”
“어째 말이 짧다?”
“내가 워낙 혀가 짧다. 혀짤배기다 왜?”
김씨가 별렀던 말을 덧붙혔다.
“내 혀가 짧아 누구네 손 처럼 길지를 못하지. 남의 집 살림 파고드는 손처럼 ”
“건 또 어느 장단이우? 또 그 돌배 타령이우?”
박씨가 체증기에 넘쳐 소리 질렀다.
김씨네와 박씨네는 집도 서로 이웃, 과수원도 서로 이웃해 있었다. 지난 가을 김씨네 밭의 돌배가 표나게 도적맞혔고 김씨는 그것이 박씨의 소행이라고 믿고 시시때때 따지고 든다.
“나 박씨가 곁집 세간에 손 댈 정도로 그렇게 치졸스런 인간이 아니우.”
“그래도 켕기고 꿀리는데가 있나보지. 꼬박꼬박 말대답 하는걸 보면”
변명을 이어대던 박씨가 울컥해나며 김씨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가던 길 곱사리 갈거지 왜 아침 부터 걸고들고 지랄이우? 사팔뜨기가 나불대니 두눈이 멀쩡한자가 병신취급당하는구먼.”
“뭐라고?”
김씨가 급소를 찔린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김씨와 그의 아들애까지 모두 사팔눈을 가지고 있었던것이다.
코앞에 까지 다가온 손가락을 쳐던졌고 그 서슬에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졌다. 두 사람은 엉겨붙어 치고박고 하였다.
아낙들의 비명이 우물가에서 터져 올랐다.
졸지에 아낙들의 입싸움이 남정들의 피튀는 몸싸움으로 바통을 넘겼다.
“’시앗 싸움에 요강 장사’라더니 이건 또 뭐얘요?”
남산댁이 서로 멱살 잡고 치고박고하는 남정들을 뇌꼴쓰레 쏘아보며 낯꽃을 흐렸다.
“에궁, 이 년이 끝까지 잘난척 하네. 오늘 어디 잘난 년과 못난년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북산댁이 남산댁의 머리채를 끄잡았고 남산댁이 북산댁의 저고리 고름을 옴켜잡았다.
촌장의 집.
마을 사람들이 온돌이 비좁다하게 모여 있다.
며칠후면 꼭 백세 천수를 맞이하게 될 마을 어르신의 백세연을 어떻게 치를것인가? 토의 한번 해볼양으로 촌장이 불러 마을의 체면깨나 있다는 남정들이 모두 모인것이다.
그속에 눈두덩이가 퍼렇게 물들고 코구멍에 솜을 틀어 막은 박씨와 김씨도 보인다.
집안은 저마끔의 소견과 함께 뻐끔뻐금 피워대며 내뱉은 담배연기로 산자락의 운무처럼 자욱하다.
턱수염 한모숨이를 기른 김생원이 붓대를 고누잡고 주련을 쓰고 있다. 붓놀림에 따라 염소수염이 한드랑거린다.
모두가 말없이 현란한 붓놀림을 지켜보고있는데 쥐오줌 자국으로 얼룩덜룩 습기를 머금은 천정우에서 찍찍거리는 쥐들의 다툼 소리가 났다.
천장을 빤히 쳐다보다 또 한명의 생원이 느닷없이 시 한수 읊었다.
“이본무가의아옥(而
本无
家依我屋)
기의호내반천위 (旣依胡乃反穿为
)
고지이역무장려 (固知而
亦无长虑
)
아옥전시이실의 (我屋颠时而
失依)”
역시 김씨성을 가진 생원, 주련을 쓰고있는 김생원이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면 시구를 읊는 김생원은 팔자수염을 기르고있다.
턱수염 김생원이 뿔테 도수 안경을 걸고 있다면 팔자수염 김생원은 백동물부리 대통을 잡고 있다.
“무슨 말이온지?”
촌장이 팔자수염 김생원을 보고 황공스러운 낯빛으로 물었다.
“어흠”
건가래 한번 떼고나서 팔자수염 김생원이 시구의 뜻을 해석해 주었다.
“너는 집도 없어 내 집에 사는데
네가 사는 집에 구멍은 왜 뚫나.
너 정말이지 생각이 짧구나.
내 집 무너지면 너도 살 곳 없는데.”
“아”
사람들이 귀신경문읽듯 괴까다로운 그 말들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았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김생원일세”
찬탄들이 자지러졌고 그 일매진 찬탄성에 어깨가 오른 팔자수염 김생원이 불도 없는 대통을 소리나게 뻑뻑 빨았다. 팔자수염을 비비꼬며 또 한번 “어흠” 하고 건가래를 뗐다.
“어험”
이때 한쪽에서도 누군가 건가래 한번 요란하게 뗐다.
주련을 쓰고있던 턱수염 김생원이였다.
“조서(嘲鼠), ‘쥐를 비웃다’의 한 구절이로구먼. 조선 영조때 권구라는 재상의 시였소.”
팔자수염 김생원의 미간에 내 천(川)자가 지어졌다. 자기의 시구에 하필이면 주석을 다는 턱수염 김생원이 팔자수염 김생원은 밉살머리스럽다.
턱수염 김생원이 쓴 글발을 지켜보는 팔자수염 김생원의 표정이 또 한번 심상치 않다.
“틀렸네. 틀렸구랴”
“백세수연(寿筵)”이라고 쓴 글발중의 “연” 자를 대통으로 그루박았다.
“수연의 연자는 잔치 연(宴)자로 써야지.”
팔자수염 김생원이 그무슨 금맥이라도 짚어낸 사람의 표정으로 소리를 높혔다.
“’갈고리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한테 주련은 왜 맡기셨소?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데 그러다 마을 어르신의 백세연을 망치겠소. ”
턱수염 김생원이 코등까지 흘러내린 안경너머로 팔자수염 김생원을 쏘아 보았다.
“어험!”하고 헛기침 한번 요란하게 했다.
“엑끼 이 사람아, ‘시거든 떫지나 말든가’. 내가 잔치 연자를 몰라서 그렇게 쓴줄 아는가 여기서 수연의 연자는 잔치 연(宴)을 써도 되지만 댓자리 연(筵)자를 써도 되네.”
팔자수염 김생원이 얼른 말을 받았다.
“좋은 날 (日), 집 면(宀)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녀식(女)들이 춤을 추는 잔치날이라고 해서 잔치 연(宴)일세 어흠!”
“빈 수레 한번 요란하군. 대자리를 펴고 그 우에 음식을 차리지 않나. 그래서 자리 연(筵)을 쓴거지. 옛날부터 왕과 신하가 대자리우에 마주 앉아 나라일을 담론하던 자리라 하여 ‘연석 (筵席)’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는가 어험!”
턱수염 김생원은 잡고있는 붓자루를 허공에 마구 저으며 거오스럽게 말을 이었다.
오지에 묻혀 사는 골샌님들이라도 고분고분한 성격들이 아니다.
“고담웅변경사연(高谈
雄辩惊四筵)이라 즉 ‘뛰여난 말솜씨가 사방에 대자리 깔고앉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네’라는 시구가 있네. 두보의 음중팔선가(饮中八仙歌)에 나오는 한 구절인데 거기에 나오는 자리 연(筵)이 아니던가 어험!”
“시성 두보를 읊는다 그말이지. 그럼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시선 태백님의 시가 있소. ‘춘야연(春夜宴) 도리원(桃李园)’에 나오는 춘야연의 그 ‘연(宴)’자가 아니던가 어흠!”
“지지기일 부지기이(只知其一不知其二)라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시누먼.
그 ‘춘야연 도리원’이라는 시에 바로 ‘개경연이좌화(开琼筵以坐花)’라 즉 ‘옥같은 자리를 열어서 꽃을 향해 앉고’라는 구절이 있소. 그에 나오는 연(筵)자가 아니던가 어험!”
턱수염 김생원이 붓자루를 저어대며 고담준언을 토하는 바람에 먹방울이 팔자수염 김생원의 얼굴에 튀였다. 그 먹방울을 훔친다는것이 팔자수염 김생원의 얼굴이 온통 비온뒤 마당에서 쥐 달아다닌 꼴이 되였다.
찍찍 천정우에서 쥐들의 다툼 소리가 났고 사람들속에서 킥킥 웃음이 새 여나갔다.
“에라 이 쫌생원아”
바작바작 신경을 긁는 턱수염의 소리에 팔자수염이 문뜩 부끄러움이 치밀었던지 소반을 와락 뒤엎었다.
소반우에 놓았던 붓이며, 벼루며 먹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이런 선무당같은 쫄망구가 어디서 패악질이냐?”
짧고 빤 아래턱을 가린 턱수염을 파르르 떨던 김생원이 붓으로 팔자수염 김생원의 얼굴에 대고 장님 지팽이 휘두르듯 마구 저었다. 원체 먹자국이 튀였던 팔자수염 김생원의 얼굴이 이제는 지우다 만 광대의 분장처럼 얼럭덜럭했다.
팔자수염 김생원이 벼루를 들어 턱수염 김생원의 얼굴에 와락 끼얹었다. 먹물을 뒤집어 쓴 턱수염 김생원의 얼굴도 순간에 저승사자의 상통을 닮은꼴이다.
“뭣하고 있는겁니까? 지금? 점잖은 사람들끼리”
촌장이 참다못해 버럭 소리 질렀다.
“뭣들하고 있소 지금? 유식깨나 떨던 사람들이”
지난해 금방 자리를 낸 로촌장도 뒤질세라 소리를 높혔다.
“어르신의 백수연은 우리 마을의 둘도 없는 경삽니다. 그런 경사를 두고 기꺼울망정 이게 무슨 망발입니까?”
촌장이 당위(当为)를 과시하며 야발스러운 책상물림들을 향해 훈계의 말을 했다.
“누구보다 앞서 기꺼워해 줄 사람들이 그러면 쓰겠소. 더구나 먹물깨나 드셨다는 분들이”
로촌장이 젊은 촌장의 말을 가로지르며 말했다.
젊은 촌장의 얼굴이 불쾌감으로 자잘하게 구겨졌다.
“았따, 형은 좀 가만있소. 남의 말 잘라 먹지 말고”
젊은 촌장이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로촌장이 아니꼬운듯 말했다. 사실 두 사람은 친 형제, 장형(长兄)과 말제(末弟)사이다.
“왜 자리를 냈다고 이젠 성쌓고 남은 돌 취급이냐?”
로촌장이 섧은듯 젊은 촌장을 향해 어성을 높였다.
“분주살 스럽소, 좀 헤적헤적 나부대지 마오.”
“뭐? 나부댄다고? 그래 내가 틀린 말을 했냐?”
“옳은 말이던 틀린 말이던 날을 가려 하오. 자리를 내고도 아직도 맘보는 파래서 사사건건 대사소사에 삐쳐드니 주책바가지라 남들이 웃소.”
“뭐? 주책 바가지? 이놈이 날 아주 깨진 바가지 취급하는구나”
젊은 촌장의 야멸스러운 말에 로촌장이 본통이 터진듯 시근거렸다.
“그래도 익은 밥 설은 밥 이 바가지에 담아 먹고 그 바가지덕에 이만큼 살아들왔잖아?”
젊은 촌장은 늙은 촌장의 푸념을 듣는척도 않고 한구들 널린 붓이며 벼루들을 챙겼다. 그러던 젊은 촌장의 손길이 후딱 멈추었다. 손바닥을 펴들고 들여다 보았다. 벼루가 금이 가 손바닥에 먹이 흥건히 묻어 들었던것이였다. 젊은 촌장이 손에 든 벼루를 바닥에 내쳤다.
“에익 더러워 못해 먹겠네. 헌 벼루가 새 벼루를 치는구만”
야유가 담긴 그 말을 가려듣고 로촌장이 다시 화통이 터져 소리를 질렀다.
“뭐라? 애송이놈 한테 자리를 내줬더니 네가 지금 제 형을 ‘말하는 허수아비, 밥먹는 장승 도깨비’ 취급을 하냐?”
분기탱천해 하는 로촌장이였지만 젊은 촌장의 염장질은 끝나지 않았다.
“집안 두엄을 남들앞에서 들추지 마오. 냄새 나오.”
동생에게 자리를 내놓았지만 마을의 애경사(哀庆事)에서 여전히 촌장 행세를 하며 동생을 안중에도 넣지않던 형이였고 그런 형이 저으기 못마땅했던 동생이였다.
“아무리 동생이고 후임이라고 내가 손아귀에 쥐인 계란인양 굴리는대로 구를줄 알았소?”
젊은 촌장이 때라도 만난듯 심중을 와락 발설했다. 그만큼 형제사이의 시샘과 원망의 앙금이 깊었다.
마을의 지경을 다져 왔고 또 다지고 있는 신구 촌장이고 또한 형제간의 싸움이라 젊은 촌장의 무례하고 압핍(狎逼)한 거동에도 사람들은 아무말도 못했다. 뚱하니 그저 기싸움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젊은 녀석이 에둘러서도 아니고 곧장 코앞에서 들이지르니 분기가 치받쳐 로촌장이 앙가슴을 줴지르기만 했다. 분김에 손에 잡히는 대로 나뒹구는 팔자수염 김생원의 대통을 쥐여 뿌렸다.
젊은 촌장이 어깨를 숙이자 대통이 곧추 박씨의 이마빡에 날아들었다. 박씨가 이마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데 김씨가 깨고소하니 웃었다.
“눈먼 돌에 개구리 상통 깨눈구나.”
“깨를 볶냐. 고소해죽는구나 이 자식이”
박씨가 쌤통이라는듯 키득거리고 있는 김씨의 머리통을 몽당 비자루를 쥐여들고 후려쳤다.
김씨가 대통을 잡아들고 맞섰다.
대통의 중등이 분질러 나갔고 몽당치마의 살이 죄다 빠져버렸다.
둘이는 다시 멱을 잡았다.
온돌이 좁다하게 뒹굴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고 뭣들하고 섰냐?”
늙은 촌장이 집안의 그릇이라도 깨질가 찬장쪽으로 밀리는 사람들을 밀쳐대며 젊은 촌장을 향해 또 한번 분통을 터뜨렸다.
“말리려거든 형이 직접 말리시우. 두집의 과수분배는 형님이 맡아 하지 않았소.”
젊은 촌장이 상관없는 사람처럼 두 팔을 가새지르고 서서 코방구를 뀌였다.
“불은 누가 놓고 이제와서 물은 누가 부으라고 해. 마을을 이꼴로 만든 사람이 누군데”
말리는 사람도 있었고 그 틈바구니에서 평소에 고까웠던 박씨나 김씨를 향해 슬그머니 발길질을 넣는 사람도 있었다.
천정에서 검붉은 먼지가 떨어져 내렸고 놀란 쥐떼들이 찍찍 거리며 천정이 무너질듯 달아 다녔다.
좁은 집안은 오해와 질시와 서로의 리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복닥복닥 빚은 연기와 열기와 분진으로 매캐했다.
자지레한 사람들이 일구어내는 는지럭는지럭하는 열기가 사위스러웠다.
이때 무작스러운 발길에 사립문이 덜컹 떨어져 나갔다.
채찍처럼 후려치는 한기를 안고 한떼의 사람들이 집에 들이 닥쳤다.
거쿨진 몸퉁이를 가진 사람들이였다.
한결같이 누런 빛깔의 제복을 차려입고 장총을 꼬나들고 있다.
험악한 인상에 총대의 맨 끝에는 또 뾰죽한 창날을 서슬푸르게 세우고 있다.
집안이 좁다하게 마구발방 들뛰던 사람들이 순간 고자누룩해졌다. 움쑥한 눈을 휘등그레 뜨고 들어선 사람들을 퀭하니 바라보았다.
맨 앞장에서 군화를 신은 자가 흙투성이 된 발로 가마목에 뛰여 올랐다.
가증맞은 쪼막수염이 코밑에 붙어있는 자였다.
가증한 쪼막수염아래 입술이 매섭게 앙다물려 있다.
시푸르뎅뎅한 얼굴로 아웅다웅에 신들려 있는 사람들을 노려 본다.
지옥의 문지기처럼 쫙 찢어진 눈초리로 노려 본다.
과수원.
사람들은 총박죽에 어깨를 떠박질려 과수원 앞 공터에 모였다.
농한기면 돛자리 깔고 소주잔과 시시풍뎅한 소리와 홍소가 오가던 과수원 공터는 엄슬한 분위기로 때글때글 얼어 있다.
등등하게 차려입은 두꺼운 군복과 번뜩이는 칼날을 세워든 사병들은 대적이라도 만난듯 표정들이 굳어있다.
세워든 칼이 마치 맹수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쳐든 총구가 마치 맹수의 눈처럼 번뜩인다.
기죽은 사람들은 태덩이처럼 미동도 크게 못하고 추위속에 옹그리고있다.
모두들 숨을 꺽 죽이고 있는데 사람들의 뒤를 묻어 온 황둥개 한마리가 어쩐지 례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꼈던지 컹컹 짖어 댔다.
위협적으로 빛나는 군화를 신은 쪼막수염이 또 한번 매눈처럼 찢어진 눈매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그 눈이 먹이감을 보아내고 활강(滑降)하는 매의 눈처럼 살기에 반짝인다. 동공은 눈앞 사람들의 멱이라도 움켜 잡을듯이 또렷하고 팽팽하다.
쪼막수염이 식지를 까닥했다.
“어이 통역관”
기장을 뗀 군모를 쓴 사람 하나가 구을듯이 그 앞에 대령했다.
목을 움츠리고 거듭 굴신하는데 벋짱다리인듯 한다리를 질질 끌고 있다.
쪼막수염이 뭐라 씨부렁이는 말을 귀바퀴에 손바닥 대고 토씨 하나 빠침없이 담는다.
기장을 뗀 군모를 쓴 벋짱다리가 사람들앞에 나섰다. 행주 비틀듯 목청 다 짜내여 소리소리 질렀다.
한 손은 허리에 한손은 허리춤에 달려 데룽거리고있는 군도자루에 얹은 쪼막수염을 두 손으로 받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분은 이제부터 이지역을 관장하게 된 주둔군 731지대 이또 소좌님이시다.”
컹컹 한켠에서 황둥개가 짖었다.
쪼막수염이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하더니 입을 열었다.
“언감 대일본제국에 불온한 마음을 품고있는 후테이 센징(不逞鲜
人)들을 색출하려 임무를 받고 나섰다가 이 마을을 지나게 됐다.”
통역관이라 불리운 자가 번역하기 좋도록 쪼막수염은 한자 한자 끊어서 발음했다. 목소리가 리도(利刀)라도 휘두르는듯 날이 서있다.
”지금부터 당신들은 우리들의 행동에 공조해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 주길 바란다.”
컹컹 개가 그냥 짖었다.
“곱다랗게 공조하는 사람들에게는 포상할것이요, 거부하는 사람들은…”
쪼막수염이 말끝을 흐리더니 혁대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짖어대는 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땅! 되알진 총소리와 함께 개가 훌쩍 솟다가 피를 휘뿌리며 떨어져 내렸다.
총소리는 고막을 찢을듯 했다.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어미의 바지춤에 매달린 아이들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녀인들이 덴겁히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연기가 피여 오르는 권총을 꼬나든채 쪼막수염이 사람들을 째려보았다.
“거부하는 사람들은 저 이느노꼬(개새끼)와 같은 꼴이 될것이다”
사람들은 황황한 눈길로 머리통이 묵사발이 되여 뒹구는 개를 곁눈질해보았다.
“묻겠다. 부라끄(부락) 이름이 뭐더냐?”
벋짱다리 통역관이 사람들중에서 털 귀마개를 한 젊은 남자 한 사람 불러내여 마을 이름을 물었다.
“마,마을 이,이,이름은 리리리리리이화아아아도,동임다”
귀마개를 한 남자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뭐라고?”
“리리이이이이화도,도오옹”
킥, 맨앞에서 누군가 웃었다.
털모자도 없이 귀가 벌겋게 얼어든 나그네가 옷소매에 량손을 집어넣은채 참지못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그 사람 더듬뱅이요. 하필이면 더듬뱅일”
땅!
실소가 멈추기도전에 총성이 울었고 말더듬이가 푹 고꾸라졌다. 웃음을 흘리던 나그네가 경악한 나머지 불침에라도 찔린듯 펄쩍 뛰였다.
쪼막수염이 총구에서 연기가 몰몰 피여오르는 권총을 들고 다가왔다. 총아구리로 웃고섰던 나그네의 턱을 올리받쳤다. 총아구리가 따가워 나그네가 으으으 비명을 질렀다.
쪼막수염이 갱엿이라도 씹듯 질겅질겅거리며 말했다.
“그럼 니가 말해봐 부라끄(부락) 메이쇼(명칭)가 뭔지”
“리,리화동입니더”
이번에는 나그네가 말을 더듬었다.
“사라니 기나사이(다시 말해봐)!”
쪼막수염이 감때 사납게 소리질렀다.
“다시 말해봐 미친개 좆 떨듯 떨지말고”
곁에서 통역관이 가세해 소리질렀다.
“리화동입니더”
나그네가 겨우 그 한마디를 뱉어내였고 말을 마무리함과 함께 땅 총소리가 울렸다. 옷소매에 량손을 집어넣은채 나그네가 넘어갔다. 말더듬이의 사체우에 덧놓이며 쓰러졌다.
끌려 온 사람들은 너나할것없이 눈알을 까집었다.
뜨물이라도 뜨스하게 덥혀먹여 키우던 개도 아까운데 이건 개처럼 사람도 함부로 마구 잡아죽이고있는것이다.
두렷한 공포가 거적을 확 씌우듯 덮쳐 들었다. 살을 에이는 한기보다 더 한 공포에 들리여 사람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쪼막수염이 통역관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했다. 통역관이 벋짱다리를 질질 끌고 다가가 귀전에 손바닥을 착 붙혔다. 쪼막수염이 씨나락 까는듯한 소리로 통역관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쑤근거렸다.
알았다는듯 머리를 연신 주억거리고나서 통역관이 우묵한 옴팡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몽툭한 손가락으로 사람들중에서 박씨를 지목해 냈다.
“어이, 저 수염 텁수룩한 넘 나와바라”
다음에는 김씨를 짚었다.
“저 텁수룩이도 나와”
두 사람을 마주 세웠다.
통역관이 물었다.
“배꼽 뒤집어지게 밥 잔뜩 처 먹고 배꺼지라고 싸움질들이냐?”
옴팡눈을 희번득거리며 물었다.
“왜 싸웠냐? 용건이 뭐냐?”
김씨가 때라도 만난듯 하소연을 터뜨렸다.
“저 각다귀같은 놈이 우리 집 돌배를 훔쳤소”
“아니올시다. 없는 일이우.”
박씨가 손 사래를 치며 급변명했다. 아침부터 있은 드잡이에 박씨의 오른쪽 앞니 귀퉁이가 부서져 나가 말이 샌다.
“우리집 과수가 잘 되니 김씨가 샘이 나서 지어낸 말이우.”
“그럼 그렇게 많은 돌배를 쥐라도 올라가 후렸단 말인가? 꼭 같게 쉰그루씩 나눈 배가 우린 그냥 쌀과 바꾸어 먹고도 모자란데 니는 무엇이 그리 흔해서 과실주까지 담궈 마시고 있잖나? 훔친게 분명하이.”
“새 까먹은 소리 하지마우. 할아버지가 천식이 있어 아껴 먹던 배로 기관지에 좋다는 배 술을 담갔던것뿐이우. 그래 내가 언턱거리 잡힐 일이라도 한게 있수?”
두 사람이 다시 언성을 높혔다. 한 옥타브 두 옥타브 언성을 높여가며 자기의 생각들을 발괄하였다.
사실 박씨네 배는 김씨네 배를 분양받은것이였다.
남보다 먼저 과수농사를 시작한 김씨는 혼자서 그 많은 배밭을 다루어내기 버겁고 하니 이웃인 박씨더러 함께 하자고 들쑤셨다. 마침 그 전해에 여느때보다 배가 잘 열림을 보아온지라 박씨는 귀가 솔깃하여 김씨네 돌배나무의 상당수를 분양받았다.
원체 약삭빠른데다 부지런한 박씨라 이웃 김씨의 어깨너머로 배운 재배기술을 빨리도 익혔다. 그렇게 몇해후부터는 박씨네 과수원이 김씨네에 비해 더 반듯했고 같은 땅에서 과일도 어쩌면 더 많이 달렸다.
이에 자기가 원조라 배를 내밀던 김씨의 안색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더욱 그의 심술딱지를 자극한것은 현성에서 있은 농사장원표창회에서 먼저 시작한 그도 아닌 박씨가 과수부분 장원을 따낸것이다. 이는 김씨의 불타는 시샘에 불쏘시개를 덧놓았다. 그날부터 박씨를 향한 김씨의 강샘은 시작되였고 나중에는 의심벽에 까지 이르게 된것이였다.
“배 고픈건 참아도 배 아픈건 못 참는” 성미가 습벽을 넘어 체질이 돼 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이 마을에서 별로 희귀한 경상이 아니였다.
“집에 ‘오노’가 있나?”
두사람 사이를 가로지르고 쪼막수염이 물었다. 생경하나마 조선말을 몇마디 씩 사이사이 끼워넣어 지껄인다.
“’오노’라니요?”
두 사람이 어안이 벙벙해 졌다.
“도끼 말이다. 도끼”
통역관이 설명했다.
김씨가 얼른 답했다.
“물론 있읍죠”
“가서 가져와라”
김씨가 털레털레 집으로 달려가 큼지막한 도끼를 들고 달려왔다.
“과수가 어데 있는데?”
김씨가 통역관의 등뒤 언덕우를 가리켰다. 손가락으로 지경을 표시하며 말했다.
“저쪽이 박씨네 꺼, 이쪽이 우리 껍니다.”
“기르!”
이또가 한마디 내 뱉았다.
“네?”
“찍어라”
통역관가 번역했다. 김씨가 되물었다.
“네? 무엇을 찍는뎁쇼?”
“배나무를 찍어 넘기란 말이야. 화근을 모조리 찍어버리면 이제 다툴 일 없게 되잖겠냐”
통역관이 시끄럽다는듯 말했다.,
김씨의 입가에 얼핏 야릇한 미소가 얼비쳤다.
“박씨네 과수를 모조리 찍어 넘기란 말입니껴? 쉰그루 몽땅 말입니껴?”
통역관이 피식 물찌똥같은 웃음을 웃었다.
“왜 박씨네껄 찍어. 당신네 과수를 찍으란 말이야. 의심은 그쪽에서 시작되지 않았소. 이제 찍어서 불이나 한구들 뜨습게 때시오. 한겨울 불소시개로는 과람할거요.”
김씨의 얼굴이 납빛으로 물들었다.
“어이구, 이게 웬 마른 벼락입니껴? 과수를 다 베넘기면 우린 무얼 먹고 살란 말입니껴?”
사병 하나가 총박죽으로 김씨의 잔등을 윽박질렀다.
“하야꾸 (냉큼)”
박씨가 곁에서 들릴듯 말듯 모기소리로 한마디 했다.
“자업자득이우”
이윽고 언덕우에서 도끼질 소리가 들려왔다. 김씨의 넋두리도 섞여 들려 왔다.
“망했다. 망했어”
총창에 떠밀려 석대째 찍어 넘기고 나서 김씨가 더는 못하겠다고 나누웠다.
“다 찍어넘기면 무얼 먹고 살란 말입니껴? 이제 그만 찍읍시다. 제발 제발 빕니다용.”
그런 김씨의 가슴패기를 향해 사병의 군화가 날아들었다. 빨리 찍으라고 총박죽으로 어깨를 윽박질렀다.
김씨가 다시 도끼를 집어 들었다. 터진 입가장이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켰다.
“이 배나무는 내 목숨과도 같은거여. 그런걸 찍으라니 차라리 내 목숨과 바꿔 볼테여”
증오의 광염이 푸들푸들 타오르는 눈길로 김씨가 도끼를 들고 사병을 향해 달려 들었다.
탕! 총소리가 울렸고 베인 과수나무처럼 김씨가 넘어갔다.
어깨에 총을 맞은 김씨는 눈밭에서 괴롭게 뒹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였고 발포한 사병이 장관의 눈치를 보았다. 쪼막수염이 다가가 온몸이 벌레처럼 꼬부라져 신음하고있는 김씨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스스로 저승길을 재촉하는구나”
이또가 혁대에서 권총을 빼내여 박씨의 머리통에 대고 쏘았다.
피 묻은 도끼가 이번에는 박씨의 손으로 넘어갔다.
“기르(찍어라)!”
도끼를 받는 박씨의 손이 곱아들어 있었다.
덜렁. 제대로 받지 못해 도끼를 떨구어 버렸다.
추위때문이 아니였다. 김씨의 참화에 넋이 빠져버린 박씨였다. 하루가 멀다하게 드잡이를 하며 천하의 저주를 골라 퍼붓던 구인(仇人)이였지만 막상 눈앞에서 피를 물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처량맞기 그지없었다.
총을 든 사병이 박씨의 뱃구레를 발로 걷어 찼다.
“모조리 찍어 넘겨! 꾸물거리다간 저 자식처럼 되고 말거다”
통역관이 위협조로 말했다.
도끼를 주으려 허리를 굽히던 박씨가 오금이 풀려 주르르 주저앉았다. 얼굴이 걸레처럼 구겨져 울부짖었다.
“우리가 왜 요 모양 요 꼴이 되였수?”
박씨가 곱아든 손으로 도끼를 쥐여들었다.
굿소리에 들린 무당처럼 쟁기를 쥔 손이 춤추듯 덜덜 떨렸다.
홀연 천둥같이 고함지르며 박씨가 도끼등으로 자기 이마를 사정없이 올리 박았다.
피의 분수가 터져 올랐다.
이마빡이 온통 피칠갑이 되여 김씨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통역관이 대자로 넘어진 김씨를 들여다보았다.
“나 원, 도끼로 제 발등 찍는다더니만 도끼로 제 이마를 까는 놈 첨 봤네”
다음에는 북산댁과 남산댁이 마주 섰다.
북산댁에게 호비운 남산댁의 하얀 볼에 붉은 빗금이 사납게 번져있다.
쪼막수염의 찢어진 눈이 흥미롭게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코밑 물집을 긁다가 생채기가 덧난 피딱지처럼 가증스러운 쪼막수염이 옴찔거린다.
마을 변두리로부터 마을어구에로 마을 어구에서 마을 복판까지 연줄로 이어지는 그 이악한 싸움의 내용들에 대해 금방 이 지역을 관장하게 된 이또는 알고싶어 했다. 알고싶었다.
“저년이 어떤 년입네까? 여시같은 년, 천하 내숭 혼자 떠는 년입죠”
북산댁이 눈물코물 흘려가며 남산댁과 자기 남편이 눈 맞고 배맞은 사연을 양념 듬뿍 쳐가며 이야기 했다.
코앞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참화를 잠간 잊은듯 사람들 저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북산댁과 남산댁의 싸움은 온 마을이 눈 돌리고 귀 기울이는 가십거리였다.
그것은 온 마을 남정들의 가슴을 할랑이게 만든 남산댁의 월등한 미모로부터 기인된것이였다.
어쩌면 거무튀튀한 돌같은 마을 녀자들중에서 그녀 혼자만이 물에 씻긴 조약돌처럼 해반드르르했다. 이 배꽃마을이 서서 그 이름에 걸맞게 그렇듯 배꽃처럼 화사한 녀자는 처음이였다.
북산댁은 그에 비하면 명함도 내놓지 못했다. 남산댁이 배꽃이라면 그녀는 감자꽃이라고나 할가? 아니 감자꽃도 아니고 그냥 우둘투둘 툽상스럽게 생긴 토스레 감자 그 자체였다.
게다가 남산댁은 남편도 잘 만났다. 그보다 몇살 손아래인 “아기 신랑” 남편은 골이 깊고 길이 외진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경성의 고등학부에 붙은 수재였다.
마을훈장의 자제로서 촌티나 빈티를 전혀 찾아볼수 없는 그 남편은 아직도 경성에서 학업에 매진하고있다.
방학때면 머리에 얹은 학모에서는 모표가 번쩍이고 웃저고리에서는 일매진 단추가 번쩍이는 교복을 차려입고 그야말로 금의환향으로 돌아오는 남편을 맞아 때맞추어 새물내 나는 색동 한복을 떨쳐입고 남산댁은 동구밖 우물가로 마중나가곤했다. 그때마다 남편의 손에서 트렁크를 받아드는 남산댁의 얼굴은 도화색으로 화사하게 물들었고 그들먹한 자호감으로 매끈한 광채를 머금곤 했다.
“성춘향 리몽롱이 저리 가라 하겠소. 남재녀모라더니 실루 천생배필이오.”
마루문을 빼꼼히 열고 그림같은 그 풍경을 훔쳐보며 마을 사람들은 쯧쯧 소리나게 혀를 차며 찬탄을 혹은 시샘을 금치못해 했다.
아무리 눈씻고 봐도 북산댁은 남산댁과 아무쪽에도 비하지 못했다.
박색인 북산댁이라도 그나마 남편은 잘 얻어 걸려든 편이였다. 경성까지는 못되여도 현성의 학교라도 나온 남편이였고 대금같은 악기도 다룰줄 알았다.
그 남편과 남산댁의 남편은 마을에서 유일한 친구였었다.
문제는 북산댁의 남편과 남산댁의 남편이 동시에 남산댁을 향해 동네가 떠나게 구애를 펼쳤는데 북산댁의 남편이 그만 녀신같은 그녀의 “간택”을 받지못하고 만것이다.
그것은 말그대로 버덕과 골안, 현성의 남자(县城男)와 경성의 남자(京城男)의 차이였다.
하늘같은 실의를 머금은 현성의 남자는 남산댁네가 마을이 떠나가게 결혼식을 치른 며칠후 “꿩 대신 닭”이라는듯 북산댁과 벼락결혼을 해버렸다.
하필이면 북산댁과 결합한것은 “현성남(县城男)”의 집안이 북산댁네 집 신세를 무던히 진 과거가 있은터였다.
춘궁기에 쪼들려 구들목 가득 잔밥들이 배고프다고 악바리처럼 울다가 쓰러져 울음소리도 내지못하고있는 “현성남”의 집에 북산댁네 아버지가 토스레 감자를 한가마나 통째로 지고와 건네준적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강을 건너 이 마을에 정착하기 전까지 떠나 온 옛 고향마을에서 두 집안은 서로 이웃이였다. 이미 두 집안끼리 “지복위혼(指腹为婚. 임신부가 있는 두 집안에서 아이들이 태여나기전에 혼약을 맺는 일)”을 맺은터였다. 그래서 심약한 “현성남”은 부모의 의지대로 토스레감자같은 북산댁과 “지복위혼”을 이어나가기로 했던것이다.
지지리 못난 마누라가 싫었던 “현성남”은 결혼후로 술을 입에 대였고 늦게 배운 술에 절어들어 마을과 린근 마을의 술도가들을 모조리 소탕할 지경이였다. 현성에서 온 남자는 어느덧 마을에서 두번째 가면 섧다할 고주랑망태로 변해 버렸다.
그런 남편과 남산댁 사이를 얽혀 생각하게된것은 현성에서 있은 농사장원표창대회에서 박씨가 과수장원으로 뽑히면서 그날저녁 마을에서 벌어진 축하연때부터였다.
누구보다 술을 많이 마시고 취기가 도도해진 남편이 불쑥 장농에 넣어두었던 대금을 꺼내가지고 왔다.
주흥으로 불어댈망정 대금소리가 제법 구성졌다.
하소하는듯 떨리는듯 구곡간장 들쑤시는 그 소리에 남산댁이 스르르 몸을 일으켰다.
대금산조에 맞추어 남산댁이 자청으로 타령 한소절을 뽑았다.
아아니이 아니 노오지는 못하아리라
차앙문을 닫아도 스으며드는 다알빛
마아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아랑
사아랑이 다알빛인가 다알빛이 사아랑인가
보일 듯 아아니 보오이고 잡힐듯 허어다가 놓쳤으니
아아니이 아니 노오지는 못하아리라
불고 뽑고하는 품이 어쩌면 두 사람은 죽이 그렇게도 잘 맞았다.
구석에 죽치고 앉아 둘이 난짝 어울려 돌아가는 꼴을 보는 북산댁의 광대뼈 도드라진 안면이 면풍에라도 들린듯 푸들푸들 뛰였다.
축하연이 끝나고 산끝자락 남산댁네 집에서 온 마을이 요동질치도록 부부싸움이 거하게 펼쳐졌지만 그날 이후로 마을에 희사가 있을때면 두 사람의 대금산조와 “사랑가”는 꼭 대미를 장식하는 보류절목이 되여 버렸다.
그후로 북산댁집안의 싸움화제에는 꼭 남산댁이 거론되곤했다. 남편이 그저 춤노래의 음절을 맞추는 사이지, 눈 맞추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맹세를 거듭했지만 부아살이 꼭두로 뻗친 북산댁은 남편의 대금을 돌절구로 쳐서 박산내기까지 했다.
무작스러운 녀편네를 둔 “경성남”은 그저 술로 마음을 달랬다. 천지분간 못하도록 술에 취해 마루건 측간이든 자빠져서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타령을 했다. 동네가 떠나갈듯 악청을 뽑았다.
아아니이 아니 노오지는 못하아리라
마을에서 대금소리를 더는 들을수 없었고 북산댁의 시샘도 아이들의 짗궇은 돌멩이에 흐렸던 샘물 가라앉듯 슬몃 가라앉았다.
그러다 어느날인가부터 남산댁의 몸피가 굵어지며 임신의 조짐을 보였고 그 몸매를 뚫어져라 눈박아 보던 북산댁의 의심이 다시 도가집에 모인 사람들의 귀처럼 바짝 쳐들렸다.
남산댁의 그 “경성남(京城男)”은 학업이 딸린다면서 지난 겨울방학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남산댁의 배가 되박처럼 불러있는것이다.
사실은 남산댁이 자랑을 입에 달고 다니는 그 “경성남”남편이 서울에서 이름 번드르르한 유지의 딸과 눈맞아 돌아가며 이쁜 고향 마누라를 외면한다는 소문도 흘러든지 오래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쉬쉬대며 찧어대는 입방아 소리가 높아갔다. 그럴수록 그 찧어대는 돌확속에 든것이 백옥미같은 남산댁 그리고 보리쌀같은 자기라고 북산댁은 생각되였다.
“가루받이를 하지않은 배나무에 꽃이 필 턱 있나?”
“필시 슬그머니 수분해준 수펄이 있다 그말일세.”
“꽃이 흐드러지게 피여있는데, 그것도 혼자서 살랑살랑 요분질하고 있는데 어느 수펄인들 홀따닥 홀리지 않겠나?”
“아무렴 홀리고 말고.”
“산 높고 물이 막힌 천리길을 경성의 수펄이 날아들수는 없을거고”
“맞네. 맞아. 필시 골안의 수펄일세”
시럽쟁들의 이죽거리는 패담에 북산댁의 높은 광대뼈가 험상궃게 씰긋거렸다.
밤이면 과수밭에 기여들어 난딱 끌어안고 뒹구는 남편과 남산댁의 허연 궁둥이가 환시처럼 눈앞에 어른거렸고 뼈를 삭이는 농탕질 소리가 귀전에 환청으로 들려왔다.
남산댁은 “토끼가 고기 씹고 호랑이 풀 뜯었다”는 식의 전혀 기성화되지 않은 일을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문제는 아무리 북산댁이 난동을 피우며 배속 아이의 임자를 대라해도 남산댁이 그냥 함구하고 있는것이다. 그럴수록 쉬쉬하는 소문은 떡고물 뭍이듯 점점 더 두터워 갔고 나중에는 쉬쉬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북산댁이 울꺽 설음에 치받쳐 악다구니를 쳤지만 남산댁은 여전히 그 모양 그 본새로 아무말도 없다.
통역관에게서 간추린 사연을 듣고난 쪼막수염이 허리춤에서 데룽거리는 칼집에서 군도를 쑥 뽑아 그에게 넘져주었다. 그리고는 턱짓을 했다.
알았다는듯 군도를 받아들고 통역관이 남산댁을 향해 벋짱다리를 끌며 다가 갔다.
“뉘길까? 이 함함한 배를 둥시렇게 불려준 사람이”
통역관이 이죽거리며 물었다.
남산댁이 기다란 눈초리를 들어 통역관을 한번 보고는 깔낏하게 눈길을 돌렸다.
통역관이 칼등으로 남산댁의 배를 쓱 문질렀다. 남산댁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배를 감싸안았다.
“뉘기냐고? 그 씨도둑놈이?”
통역관이 궁금해 미치겠다는듯 또 한번 채근해 물었다.
남산댁이 또 한번 깔낏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대답을 단념한듯한 표정이다. 예쁘게 그러나 깊이 닫힌 눈꼬리를 홀린듯 쳐다보던 통역관이 칼을 쳐든채 이번에는 북산댁쪽으로 다가갔다.
군도를 거꾸로 잡고 북산댁에게 칼자루쪽을 내밀었다. 그 용의를 몰라 북산댁이 통역관쪽을 벙하니 쳐다보았다.
통역관이 잔인하게 웃었다.
“속시원히 갈라봐. 저 안에 든것이 네 남편의 씨종잔지 아닌지. 갈라보면 알거 아니냐?”
북산댁이 얼떨결에 군도를 받았다. 작대기처럼 뵈이는 칼이 정작 무거웠다.
군도의 무게가 두 손 가득 느껴지자 북산댁의 얼굴에 야릇한 표정이 떠올랐다. 광대뼈를 들추며 지어지는 그 표정이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사람의 본색은 원체 궃은날 궃은 자리에서 비로서 확연히 드러나는것이였다.
북산댁이 가치작거리는 치마를 단단히 추슬려 입었다. 곧추 남산댁을 향해 다가갔다.
두 눈에 암상이 닥지닥지한 북산댁이 두손으로 으득부득 칼을 꼬누어 들고 남산댁을 향해 일보일보 죄여 간다.
“너,너 미쳤구나”
남산댁이 배를 부등켜 안은채 뒤걸음 쳤다. 보기에 자닝스러운 그 걸음이 어랜애처럼 지적지적 위태로웠다.
오로지 칼을 부여잡고 덜퍽스러운 젖두덩이를 덜렁대며 남산댁을 향해 죄여 간 북산댁이 문제의 부푼배를 향해 무작정 찌르려 했다.
탕!
후터분한 공기를 찢으며 총성이 울었고 북산댁의 손에서 군도가 떨어져 나갔다. 북산댁이 콩단처럼 뒹굴었고 그와 함께 남산댁도 얼음땅에 주저 앉아버렸다.
“미친년. 찌르는 짓시늉을 하라했더니 정말로 쑤셔박으려 드네”
통역관이 씨부렁대며 흙묻은 군도를 집어들어 바지단에 쓰윽 문댔다. 굴신하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쪼막수염에게 올려 받쳤다.
다음순간 총알이 잔등을 관통하며 쓰러졌던 북산댁이 후딱 머리를 쳐들었다.
선불맞은 짐승처럼 피를 흘리며 지척에 있는 북산댁을 향해 기여갔다.
피 발린 두 손을 오무려 남산댁의 얼굴을 호비려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꾸역꾸역 신음을 자아올리며 단말마의 모지름을 쓰던 북산댁이 마침내 끝내는 풀지못한 그 문제의 부푼 배우에 쓰러지고 말았다.
자기 배우에 덩그렇게 놓인 북산댁의 머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남산댁이 쩔쩔 맸다.
구원을 청하는듯한 그의 눈길이 잠깐 어느쪽인가 쳐다보았다.
그러다 눈시울이 질크러지도록 두눈을 딱 내려 감은채 그저 생광목 찢는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퍼더리고 앉은 두 다리 새로 붉은 피가 새여나와 눈밭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두 김생원이 호명되여 나왔다.
턱수염 김생원의 도수 안경은 란투중에 깨져 거미줄인양 금이 갔고 팔자수염 김생원의 대통 물주리는 백동이 벗겨져 나가고 중등 부르져 맨 나무자루 한 토막만 볼썽사납게 남았다. 그래도 그 물주리를 버릇처럼 쥐고 있는 김생원이다.
두 사람의 옷에 서로 흩뿌린 먹자욱이 아직도 력력하다.
공자를 판독하고 맹자를 완독하고 순자를 다독했다는 두 사람은 만나면 서렬싸움을 벌리고 있었다.
마치 조정의 사대당들의 싸움같은것이 골 깊은 오지에서도 벌어지고 있는것이다. 그렇다고 개화당같은 조금이나마 개운할 론리도 없었다. 그저 수구파와 수구파끼리 고리타분한 문자놀이와 말싸움을 사계절 내내 싫증모르고 되풀이하고 있는것이다.
턱수염 김생원이 한숨 한번 짓고나서 입을 열었다.
“어리석음이 화를 부르는구료.”
나름 감개에 넘쳐 말을 이었다.
“미워하는 일, 시기하는 일, 원망하는 일… 모두다 내가 스스로 만드는 일일세. 정작 저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데 내가 저사람을 미워하면 내가 괴로울뿐. 어리석은 사람들이 사는 모양은 다 이러하이. 세상 탓을 하지 말고 나를 들여다 볼 일일세. 다 내가 만든 일로 내가 불행하게 되는게 아니겠나.
보게나. 그따위 짜부라지게 못생긴 돌배 한 두개를 두고 다투다 지 목숨까지 잃누만. 공연히 의심하다 엄마 잃고 배속 태덩이까지 잃고.”
팔자수염 김생원이 말을 받았다.”
“그렇다고 온 마을 사람들 죄다 싸잡아 백안시 하지 말게. 잔치’연(宴)’자도 쓸즐 모르는 위인이.”
팔자수염 김생원은 여전히 전의 화제를 집요하게 움켜잡고 퉁겨댔다.
“뭐 내가 백안시를 한다고? 백안시를 하면 자네같은 청맹과니가 했을거지. ‘맹자단청(盲者丹靑)’이란 말이 있네. 그렇게 먼눈으로 청홍황흑백 오색단청을 쳐다 봤자 무슨 소용일가? 어험!”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 하는구먼 어흠!”
팔자수염이 퉁겨대든 말든 턱수염 김생원은 혼자에게 하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삼국시대 조식(曹植)의 ‘칠보지시(七步之诗)’가 생각나누만. 자두연두(煮豆燃豆)두재부중읍(豆在釜中泣)본시동근생(本是同根生)상전하태급(相煎何太急)이라.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 골육상잔이 웬 말인고하는 그 천하 절구말일세.”
공포가 슴배여 어딘가 떨리는 음조였지만 턱수염 김생원은 꼬박꼬박 긴 말을 늘여 놓았다. 습관처럼 턱수염을 엄지와 검지로 비비꼬는것도 잊지 않았다.
“당나귀 귀치례라더니 거북털 처럼 없는 수염 내리 쓸고 있군.”
팔자수염이 턱수염을 비웃고는 말했다.
“서재에 붙박혀 고스란히 학문을 연찬하는 진유(真儒)보다 집집의 기둥에 춘련이나 써 붙여주며 잔 재주 떠벌리는 처세에 능한 세유(世儒)가 칭송받으니 이 마을이 날이 갈수록 잡음으로 들끓을수 밖에 어험!”
턱수염이 바람에 모필 한가닥 살랑이듯 가볍게 웃으며 따졌다.
“그럼 자네가 진유고 내가 세유란 말이오? 입으로는 천하의 가언을 지껄이고 있다만 떡고물 떨어지는 일에 얌치도 없이 달려들 사람이 바로 자네 아니겠나
이 바닥에서 사실 누가 량유(良莠. 벼와 가라지) 인지 누가 훈유(薰蕕) 향기나는 풀과 냄새나는 나쁜 풀)인지 종당에는 알게 될걸세 어흠!”
한켠에서 피가 튀고 시체가 뒹구는 참극에 무섬증이 일었지만 이런 형국이 오히려 두 생원의 승부사 기질을 더 짜릿하게 자극하고있었다. 두 생원은 위태로운 칼끝우에서 번드르르한 말타령을 늘여놓으며 넌덜머리나는 춤사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한켠에서 들어주던 통역관이 버럭 소리질렀다.
“뭐라 지껄여치고 있냐? 귀신축문 외우냐? 말끝마다 꼴랑꼴랑한 문자만 골라 쓰고 있네”
통역관이 벋짱다리를 들어 두 사람을 걷어차며 사이를 갈랐다.
하지만 두 유생의 싸움은 끝날줄 모른다. 서로 입이라도 맞출양 코맞대고 마주서서 허연 입김을 피워 올리며 뜨슨 침을 서로의 낯에 튕기며 유식한 말마디를 극구 골라 서로를 험담하고있다.
쪼막수염의 인내가 한계를 넘었다. 여전히 긴장태세를 풀지않고 총창을 가슴패기까지 받쳐든 사병을 향해 쪼막수염이 손을 홱 저었다.
병사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나왔다.
와락 달려들어 다짜고짜 총검으로 먹물 자국이 번진 김씨의 잔등을 푹 들이 찔렀다.
호박살 찌르듯 깊숙히 들어간 날창이 마주서 대거리를 하던 두 사람을 한데 꿰였다.
팔자수염 김생원의 손에서 허세처럼 늘 잡고 있던 대통이 떨어져 나갔다.
두 생원의 눈이 심지를 돋군 화등잔처럼 동시에 커졌다.
명태두름처럼 한데 꿰인 두 사람이 극통으로 몸부림쳤다.
순식간에 얼음물에 빠진 자처럼 경련 일으키며 입으로 꿀럭꿀럭 피를 쏟았다.
턱수염 김생원이 코앞에 닿아있는 팔자수염 김생원의 일그러진 얼굴을 처량하게 지켜보았다. 금 실린 안경너머로 그 얼굴이 더없이 추레해 보였다.
“함혈분인(含血喷人)이라더니 우리 마지막 까지 서로를 매도하며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는구만”
팔자수염 김생원이 꺼져드는 소리로 말을 받았다.
“선오기구(先汚其口)라. 그러자면 먼저 제 입이 피로 더러워질뿐”
턱수염 김생원이 입술을 짓씹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와우각상쟁하사(蝸牛角上争何事. 달팽이뿔같은 세상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팔자수염 김생원도 간신히 입귀를 비틀어 자조같은것을 만들며 아래구를 받았다.
“석화광중기차신(石火光中寄此身. 부시돌 불속에 이 몸을 붙였네)”
사병이 와락 창을 빼자 등짝에서 먹물처럼 검붉은 피가 솟구쳐 흘렀다.
두 사람은 바람에 불리는 허수아비인양 왜틀비틀거리다가 동시에 넘어갔다.
두 사람은 엇누워 죽었다.
피를 본 이또가 흥분하며 멱따는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은 마치 수렵에 열광하는 렵사와도 같다.
“다음은 손쬬(촌장) 나와라!”
사람들의 눈길은 가장 오래된 돌배나무를 향해 얼빠진듯 고정되여 있다.
오래된 나무를 배경으로 늙은 촌장과 젊은 촌장이 섰다.
손을 뒤로 결박당한 늙은 촌장은 젊은 촌장의 어깨를 밟고 섰다.
젊은 촌장은 그 아래서 늙은 촌장의 발을 받치고 섰다.
늙은 촌장의 목에 동아줄이 걸려 있다. 과수나무에 그네를 매달았던 굵은 동아줄이다.
젊은 촌장이 맥이 진해 주저앉기라도 하면 늙은 촌장은 영락없이 목이 졸려 교수(绞首)를 면치못한다.
사병들은 총대를 거꾸로 땅에 박고 총박죽에 두 팔을 얹은채 흥미진진하게 하회를 기다린다.
지독한 형벌을 고안해 낸 통역관은 더구나 흥분한 모습이다.
“애썼다, 동생. 이제 그만 끝내자.”
늙은 촌장이 절벽에 매달린 자같이 기를 쓰며 연신 처져 내리는 몸을 추슬려 올리는 젊은 촌장을 안쓰럽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되오. 밉던 곱던 우린 한 피줄 한 혈통이오.”
“미안하다.”
늙은 촌장이 목메여 말했다.
“미안하다, 모든것이. 내가 완력과 재주가 없어 구멍 숭숭난 마을을 그대로 네게 넘겼구나. 미안하다.”
헐떡이며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동생은 아득바득 형의 발목을 한사코 부여잡고 발끝에 힘을 괴인다.
“그런 처경에서도 네가 칠삭둥이로 보여 사사건건 너만 탓해댔지”
늙은 촌장이 한숨에 섞어 어제를 반추했다.
“’서울 남대문에 문턱이 없는데 가보지도 못하고 문턱이 있다’고 우겨댔구나. 미안하다.”
형의 굵은 눈물이 뒤미처 동생의 뒤통수로 떨어져 내렸다.
“아니오. 난 또 하필이면 그 ‘문’에 기어이 문턱을 놓으며 엇서댔소. 젊은 혈기를 믿고 만용을 부린 내가 잘못이오.”
형의 뜨거운 눈물이 느껴지자 동생도 마음속에 맺혔던 옭매듭을 풀려했다.
형이 또 한번 하늘 우러르며 탄식을 뿜어 냈다.
“마을이 곤액 한번 단단히 치르는구나. 어디 란마(乱麻)에 든 이 마을을 구해줄 사람이라도 없소???”
“장님이 장님을 업고 썩은 나무다리를 건느려 했으니 강에 빠지는 길밖에 안 남았소”
이번에는 동생이 한숨을 토해냈다.
형의 한숨이 그 한숨에 덧놓였다.
두 사람의 눈섭은 한숨이 피여올린 입김으로 하얗게 성에가 매달렸다.
절벽에 매달려 잡을 옹두리 하나 없는 형국이 되여서야 두 사람은 뒤늦은 리해와 깊은 회오에 빠져 든것이다.
늙은 촌장의 벌창해진 눈물샘에서 눈석이같은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눈물은 볼의 살갗에 흘러내리기 바쁘게 얼어붙었고 그 얼음길 우로 새로운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홀연 늙은 촌장이 언덕배기 아래를 굽어보며 대함을 질러댔다.
“미안하이, 남산댁”
남산댁이 쓰러졌다 들려나간 자리에는 아직도 하혈한 피가 괴여 시커먼 룡탕 하나가 동그마니 얼어든 자국을 남기고있었다.
마을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늙은 촌장을 향해 몰부어졌다. 쉬쉬하는 소리가 새여나왔다.
늙은 촌장의 눈길이 이번에는 볼썽사납게 쓰러져 있는 북산댁의 사체에 머물렀다.
“그리고 미안하이 북산댁”
늙은 촌장이 대롱거리며 오열을 뿜어냈다. 그리고는 동생을 향해 말했다.
“나 이렇게 못난 놈이니 그만 내버려둬.”
동생은 아무런 화답도 없었다. 발끝을 세워 얼어든 흙속에 박아넣으려 허비적거리며 극구 앙버텼다.
“애썼다. 동생, 이제 그만 끝내자. 동생”
젊은 촌장은 힘에 부쳐 후들거리며 그저 숨 모자란 물짐승처럼 입만 뻥긋댄다. 풀리는 삭신에 힘을 주느라 목줄기에 퍼렇게 지렁이가 섰다.
“오모 시로이~(재미 없잖아!)”
쪼막수염이 체증을 뿜으며 총을 빼들고 두 사람을 겨누었다.
총소리와 함께 쓰러진쪽은 젊은 촌장이였다.
그와 함께 늙은 촌장의 발이 허방치듯 들렸다. 늙은 촌장이 눈알을 까집으며 발버둥을 쳤다.
돌배나무가지가 끊어질듯이 요동쳤다.
이윽고 나무의 요동질이 멈추었다.
장형과 말제는 하나는 나무에 달려 하나는 나무 그루터기에 쓰러져 죽었다.
“이 귀축같은 놈들아!”
이때 등뒤에서 소리 하나가 터져 올랐다.
가래가 그렁이는 소리일망정 필사의 힘을 다해 지르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의 년장자어르신이였다. 이제 곧 백세연을 치르게 될 바로 그 로인장이다.
허리가 곱꺾인 로인장은 털등거리도 입지 않고 아래는 속곳, 우에는 맨 저고리 차림으로 과수원에까지 나왔다.
웬체 잔시비 큰 싸움으로 매일이고 수런거리던 마을이였지만 오늘따라 그 소요로움은 커서 로인장이 웬일이냐고 비척걸음으로 밖으로 나왔고 그러다 돌연한 장면들을 목도하게 된것이다.
아래턱을 달달 떨며, 목갈린 소리를 드높이며 비척비척 다가오던 로인장은 끝내 저만치에서 철퍼덕 엎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덴겁히 달려가 로인장을 안아들었다.
로인장은 이미 마시는 숨조차 버거워 하고있었다.
로인장이 혼탁해진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잎을 모조리 떨구어낸 돌배나무는 하늘향해 앙상하게 가지를 쳐들고 있다. 그 겨울에 꺼둘린 돌배나무를 로인장이 멀거니 쳐다보았다.
이 마을에서 맨 처음 강을 건넜왔던 로인장이였다.
조롱박처럼 달린 아이들을 업고 안고 둘러메고 강을 건너와 볼모지에 괭이를 박고 맨처음 심은 것이 바로 돌배나무였다.
떠나온 고향마을에서 배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이곳의 돌배나무에 접목을 했다.
버려진 우물을 가시고 그 우물을 자아올려 한지게 두지게 길어올려서는 나무뿌리를 적셨다.
태를 묻었던 고향보다 맹추위가 깊은 이 곳에서 나무가 얼어튈가 창호지를 하려던 천쪼박까지 다 떼내여 나무둥치를 감쌌다.
그렇게 지극정성을 바친 돌배나무는 봄이 되자 하얀꽃을 피워 올리다 하얀 꽃이 떨어지자 짙은 초록색 이다가 다 익어지자 노란빛에 가까운 연두색꽃이 되였다.
그리고는 황금색의 납작한 열매를 선물했다.
강 건너 그것보다 더 크고 더 때깔고운 돌배가 나무가 휘도록 주렁주렁 달렸다.
여느 돌배의 떨떠름함이 가시고 단물이 새록새록 배여 나오는 신종 돌배였다.
이렇게 애지중지 키운 돌배나무가 리화동마을이 린근에 유명한 과수촌으로 이름을 날리게 까지의 단초(端初)를 열어놓은것이였다.
한대 두대 심어 이제는 숲을 이룬 돌배나무숲은 마을에 절경을 수놓았다. 보듬은 산더기는 서기롭게 하얀 빛을 떠이였고 기름지게 가꾼 들판은 정다운 취록(翠绿
)으로 빛났다.
크고 너른 배나무 그늘 아래 마을사람들은 새곰달콤한 풍요를 즐겼다.
그로서 리화동이라는 마을이름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 풍요로운 경상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심을 잃고 더는 애초의 바지런한 손길이 가지않은 돌배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지탱하듯 위태롭게 뻗치고있다.
그 어설피 뻗은 앙상함에 마을이 떠인 하늘이 조각조각 쪼각나 있다.
로인장이 모지름하며 머리를 쳐들었다.
백세연을 앞두고 로촌장이 “바리깡”에 새로 기름을 쳐서는 들고 찾아가 로인장의 파뿌리 같이 하얗게 센 머리를 파르라니 깎아주었고 수염도 가위로 단정하게 다듬어주었다.
로인장이 단정한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워낙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마을이였었는데…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데 사람들만이 어지러이 들노는구나”
눈이 화등잔같이 우묵해진 어르신은 가슬가슬하게 들뜬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을 이었다.
“쇠가 쇠를 먹고… 살이 살을 먹는다더니... 이 모두 업보로다”
비리비리하게 깡마른 로인장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던지 짱짱한 소리로 한마디를 단말마로 내질렀다.
“업보로구나!”
머리우에서 대롱거리는 마른 나무잎을 만지기라도 할듯 데거친 손이 허공을 향해 쳐들렸다.
그러다 로인장의 삭정이 같은 팔이 툭 떨어져 내렸다.
로인장은 짤각눈조차 감지 못하고 멀거니 뜨고 있었다.
“아이고, 어르신”
“아이고, 래일모레면 백세 상수(上寿)를 채우실 분이신데”
지자러진 곡성이 터져 올랐다.
“아이고, 축수연이 초상연으로 돼버렸구만이라”
“아이고, 어르신”
코물눈물 찍어내던 중 누군가 흐느낌을 섞어 물었다.
“그나저나 시신을 어데로 모셔야 하는감?”
“어데 모시겠수? 강 건너 고향마을의 장지에 모셔야지”
“강 건너 온 사람을 하필 강 건너에 다시 모시겠수?”
“이 마을에 모셔야지”
“마을 배나무숲 언덕배기에 모심이 좋을듯 하이.”
“고향에 처자의 뫼가 있지않나. 그러니 강건너에 모셔야지”
“앗따 말이 많네, 평생 이 마을에 수고로움을 바치신 분이니 이 마을에 모심이 마땅하이”
“강 건너에 모셔야해”
“과수원에 모셔야해”
시신을 사이두고 의견이 두패로 갈렸다.
떠들썩하던 소동이 얼마쯤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나 했더니 다시 싸움이 시작되였다. 서로는 어르신의 죽음과 마을의 참화도 잊은채 심한 맞대거리에 빠져있었다.
듣고보면 허황하고 시시풍덩한 일조차 저마다 내가 옳다고 피대를 세우고 내가 이겨야 한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름밤 개구리들처럼 시끄럽게 째깍거리기만 하더니 이어 돌주먹 쇠주먹이 마구잡이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서로의 멱살을 잡고 머리채를 꺼두르며 뒹굴었다.
그 뼛센 싸움짓거리에 관망하는 사람들이 그만 모골이 송연해 질 지경이였다.
아무런 소득도 없는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가칠한 어투에 뻐센 억양의 사투리로 격조없는 불뚝성들이 서로 판가리를 하고 있다.
독선에 사로잡혀 한사코 상대를 파괴시키는 가운데 파괴된 자신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을은 무참히 망그러지고 서서히 바서지고 있었다.
도우시데 (왜? 어째서?)
이또의 미간이 의문을 품고 일그러졌다. 이마살을 모은채 왠지 동족상쟁의 광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활동사진 찍듯 하나하나 동공에 찍어보았다.
불개미처럼 모여 버글대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이또가 더는 참을수 없다는듯 소리질렀다.
솟또! (조용히 해)
화딱지가 난듯 그 소리가 발작적이였다.
통역관이 냉큼 그 말을 받아서 소리소리 질렀다.
“그만들 하랍신다. 송장 빼고 장사 치르겄냐?”
하지만 사람들은 주체못하고 있었고 란투는 계속 되고있었다.
“칙쇼! 그만들 두지 못해?”
이또가 또 한번 소리 지르며 사병들을 돌아다 보았다.
철컥 철컥 철컥
이또의 눈동자에서 귀린(鬼燐)같은 푸른 불꽃이 퍼르르 타올랐고 그 눈짓에 밀린 사병들이 총을 장전했다.
하지만 그 소리도 듣지못한채, 듣는척도 않고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또의 쪼막수염이 씰룩했다.
이또가 손을 홱 저었다.
“고로스! (죽여라)”
탕! 탕! 탕!
탕! 탕! 탕!
총성이 울렸다.
돌배나무의 몸체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마른 돌배나무 잎들이 찢겨져 우수수 날렸다.
밑동을 잘린 배나무처럼 사람들이 하나둘 넘어 갔다.
돌배나무가지에 쌓였던 눈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악마구리 끓듯 하던 마을은 괴괴한 정적속에 잠겨버렸다.
강가.
아이가 팽이를 치고있다.
군화발에 짓밟혀 짜부라진 팽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아이는 부지런히 팽이채를 휘두른다.
마을에서 어떤 천재지변이 이는지도 모르고 혼자서 넓은 강과 팽이의 향연을 향수하는것이 아이는 즐거운듯 하다.
강기슭 악귀들이 지른 불에 불길이 훨훨 솟는 마을은 꼭 마치 가위 눌린 몽매(梦寐)속 세상과도 같이 끔찍하다.
불란리 물란리의 아수라장에도 세상천지 혼자서 놀음에 탐해 있는 그 아이를 지켜보던 통역관의 입가에 씰룩 야릇한 웃음이 새겨졌다 사라진다.
뻗장다리를 끌며 다가가 통역관이 무언가 아이에게 넘겨준다.
철덩이에 나무자루가 달린, 방망이를 신통히 닮은 물건이다.
수류탄이다.
통역관이 수류탄의 심지를 애의 식지에 돌돌 말아주었다.
“좀 있다 이걸 당겨봐라”
“우째요?”
아이가 맹한 눈길로 되묻는다. 그런 아이의 한쪽 눈알이 통역관의 상판을 올려다 보고 한쪽 눈알은 수류탄을 내려다 본다.
“당기면 이 속에서 보물이 나올끼다”
“보물이요?”
퍼렇게 얼어들었던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비껴들었다.
“그래 보물이지. 암 보물이고 말고. 니가 이 염병할 마을에서 마지막 보물이다.”
통역관은 또 하나의 볼거리를 연출해낸듯 크그극 웃었다. 잔인하게 웃으면서 히끗 쪼막수염을 쳐다본다.
아이를 둘러 싼 쪼막수염과 사병들이 낄낄 음습한 웃음을 웃었다.
“그래 당겨봐라.”
통역관이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간활한 어조로 말했다.
“천천히 열까지 세고 그담에 당겨봐. 천천히, 꼭 열까지 세얀다. 열까지”
통역관이 아이를 꾀이며 얼른 피하라고 사병들에게 손을 저었다. 그와함께 아이의 셈이 시작되고 셈은 순간에 끝났다.
“한나 둘 여덜 아홉 열”
쾅!
굉음이 일었다.
뿌연 흙먼지가 만장처럼 펄럭이였다.
이윽고 고요가 흘렀다.
어디선가 승냥이의 그것을 닮아 가는 들개의 울음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려 올뿐이였다.
하천과 산맥이 뒤바뀌는 괴멸의 란리를 겪은 마을은 언제 그런일 있었냐는듯이 정적의 얼음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그 고요는 기괴하기 까지 했다.
까악 까악
돌배나무우에서 새청맞은 비명을 지르는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그 정적사이를 비집었다.
까마귀떼는 비명같은 울음소리를 지르고는 음음한 하늘로 빠르게 빠르게 날아가 버렸다.
구물구물 지평까지 밀고 내려온 구름 사이로 희끗희끗한 눈송이들이 번지기 시작했다.
눈송이는 조화(弔花)처럼 어지러이 나붓기며 내렸다.
내려서 마을을 하얗게 봉분처럼 뒤덮어버렸다.
… …
… …
“연변문학” 2014년 10월호
ny No 4 in c minor D.417 tragic 1,2,3,4.......순으로 연속듣기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1 /
부언 하나 하면 잘 꾸린 블로그 역시 젤 멋지시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