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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된 조카가 교과서를 들고와서
이건 뭐고
저건 뭐냐고 묻는다
대답을 못하겠다
살아보니 나 같은 건 한없이 정신이 박약해지고
사람을 멀리하고,
죽어가는 짐승처럼 사납더라
꿈은 사라지고
믿지 않고,
아무 몸이나 안을 수 있더라
-중략-
조카여, 진심을 말하자면, 네가
자빠지고 엎어지고 무르팍이 깨지면서도
꿋꿋이 교과서 속을 걸어가서
끝내 기적이 되었으면 한다
졸업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한다
(부분. 『나무는 간다』. 창작과 비평사. 2013)
이 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 있어야 할 일이 없는 세상에 대한 슬픔을 은유적으로 적어가고 있습니다.
중학생 조카가 어른이 만든 교과서에서 세상을 배워서 진실된 세상을 만나는 일은 기적과 같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은 현실에 대한 어두운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 자신이 교과서를 졸업하고도 꿈은 ‘사라지고, 믿지 않고 아무 몸이나 안을 수 있더라’라고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어른이 된 우리의 마음 한쪽 구석도 함께 쓸쓸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린 시절 싱크대 밑으로 들어가 버린 잃어버린 로봇의 팔 한쪽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부모님의 작은 도둑질을 처음 훔쳐보던 날의 경험은 누구에게 고백해야 하는 것일까요?
혼자서 빈방에 누워 있는데 문득 오래전 비 오는 밤, 이사하던 날, 빈집에 두고 온 화분이 나무가 되고 자라서 지금까지도 어른이 된 나를 찾아 멀리서 걸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일어나 문을 열어두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결들이 시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기적이 필요한 걸까요? 기적이 마음이 먼저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정말 기적적으로 살아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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