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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공부시간]- 詩쓰기와 자아찾기
2016년 03월 16일 23시 52분  조회:3820  추천:0  작성자: 죽림
시 쓰기와 자아 찾기 - 이은봉

1. 언어, 나, 자아발견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지 2년이 지나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직접 발화를 하지 못하는 농아도 두 살이 넘으면 말, 곧 언어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두 살이 넘으면 말을 한다는 것,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로 상징되는 사회현실 속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현실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는 말이다. 말이라는 도구가 없는 사회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캉은 언어 이전의 삶을 가리켜 상상계라고 하고, 언어 이후의 삶을 가리켜 상징계라고 한다. 결국 전자는 요람의 삶을 뜻하고, 후자는 사회현실의 삶을 뜻한다. 요람의 삶에는 내가 없다. 내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주체로 자각되어 있지 않은 '나'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상처도 고통도 지각할 수 없는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 요람에서의 '나'의 삶이다.

요람에서의 '나'와 사회현실에서의 '나'는 삶의 존재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현실은 요람과는 달리 생존경쟁이 냉혹하고 살벌하게 전개되는 곳이다. 사회현실을 이처럼 냉혹하고 살벌하게 만드는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이론의 여지없이 그것은 언어이다. 언어는 화살촉이 되기도 하고 폭탄이 되기도 하며 '나'의, 개인의 삶을 결정한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언어 때문에 무서워 떨고, 아파 신음하고 있다.

물론 그 반대로 언어 때문에 즐거워 환호하고 기뻐 웃는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말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기도 하고 붙여놓기도 한다. 시의 언어도 다를 바 없다. 어떤 시는 '나'라는 존재를 고통에 빠지게도 하고 어떤 시는 '나'라는 존재를 '행복'에 젖게도 한다.

이처럼 사회현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언어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사회현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넘치는 언어에 치어 살고 있다. 물론 언어에 치지 않고 언어를 즐기고 향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언어의 칼날에 찔려 오랫동안 신음을 해본 체험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누구인가.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는 당연히 '나'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나는 '말'을 통해 나 자신 밖의 사회현실 속으로, 곧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세상도 언어를 통해 내 속으로 들어오기는 마찬가지이다. 흔히 이 때의 나를 개념화하여 '자아'라고 하고, 세상을 개념화하여 세계라고 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가 나, 곧 자아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언어를 통해 자아는 그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해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체성을 확보해간다는 것은 내가 나라는 의식, 곧 자아의식을 형성해간다는 것을 뜻한다. 자아의식이라는 용어는 자아개념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자아개념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없이 중요한 작용과 역할을 한다. 모든 자아는 자신의 정체성, 곧 자아개념에 맞게 사회현실과 관계하고 사회현실에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자아개념은 본래 나란 무엇이고 누구인가, 나란 있는가 없는가 등의 질문과 함께 형성되어 가기 마련이다. 이런 질문과 함께 하는 자아의 탐구는 우선 자아를 발견하도록 한다.

자아를 발견하도록 하는 자아탐구는 타자탐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나의 개인으로서 자아가 가장 먼저 인식하는 타자는 가족이다.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들로부터 자아는 처음 타자를 인식하고 경험한다. 타자를 인식하고 경험한다는 것은 주체가 저 자신을 작동시킨다는 뜻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반문해보지 못한 사람도 없지는 않으리라. 특히 지난 봉건 시대에는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미처 개인으로서의 자아가 계발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 그 시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사회에 와서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고 해야 옳다. 개인의식, 곧 자아의식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것이 근대 자본주의사회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하는 자아에 대한 반문과 인식은 따라서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오늘의 근대 자본주의사회를 결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 개인으로서의 '나', 곧 주체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나, 곧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전면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회가 근대자본주의 사회이다.

근대 자본주의사회에 와서 자아에 대한 반문과 인식은 대강 사춘기를 거치면서 구체화된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개인으로서 '나'라는 자아는 타자를 인식하게 되고, 그 타자를 통해서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 인간의 성장과정에 비추어 볼 때 사춘기만큼 중요한 시기는 없다. 사춘기는 자아가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주체로 바로 서게 되는 시기이다. 사춘기에 방황이 심한 것도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아와 세계에 대한 반문과 인식을 통해 저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 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누구라도 저 자신을 실현하도록 부추기기 마련이다. 여기서 저 자신을 실현한다는 것은 사회현실 속에 저 자신을 투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사회현실 속에 저 자신을 바로 세우려고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아실현은 '나'에 대해 반문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그리하여 자아를 발견해 가는 사람에게는 숙명적으로 뒤따라오는 성장의 과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아발견과 자아실현이 시간적 순차에 의해 線條的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아실현의 과정에 처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저 자신의 자아를 새롭게 발견하고 깨달아 가는 것이 주체로서의 개인이다. 그것은 시를 쓰는 주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시를 쓰는 자아, 곧 시인도 계속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깨닫는 동시에 발견하고 깨달은 것을 실현하는 과정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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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김수영 사진 / 정호승










金洙暎 사진

정 호 승

때묻은 런닝셔츠 바람으로
턱을 괴고
어디를 향해 있는지도 모르는
분명 열흘 곡기를 끊은 듯한
그 궹한
김수영의 눈빛을 평생 따라가다 보면
한순간 만난다
그 눈빛이 흘리는 눈물과
그 눈물이 이루는 강물과
그 강물의 따라 흐르는 나뭇잎 한 장을
만난다
그 나뭇잎 위에 말없이 앉아
어머니를 생각하는
한 마리 개미를 만난다


정호승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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