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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슬픈 족속
2018년 08월 20일 00시 32분  조회:5131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 슬픈 족속(族屬)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1938.9>

 

 

이 시는 나라를 잃고 가난하고 거칠고 슬픈 삶을 사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라를 잃은 슬픈 족속(族屬)이 흰 수건를 검은 머리에 두르고 거친 발에 흰 고무신을 신고 흰 저고리 치마를 입고
흰 띠로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인 상복을 입고 있다.
그러나 나라를 잃고 슬프지만 허리를 질끈 동여 매고 슬픔을 이겨나가려고 한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연으로 된 시로 <슬픈 족속(族屬)>은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을 의미하고 있다.
나라를 잃었다는 것은 제목이 개인을 뜻하지 않는 ‘족속(族屬)’이라 하였고
시의 내용에서 이 족속이 흰 상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에서 화자가 보는 대상은
평소에 ‘흰 고무신’을 신고 있지 않고 맨발로 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거친 발’에서 알 수 있다.
‘걸리우다’는 ‘걸리다’의 피동형이고 ‘고무신’은 신는 것이지 거는 것이 아니므로
평소에는 신을 신지 않아서 어색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픈 족속’은 신도 신지 못하는 가난한 족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에서
‘흰 저고리 치마’, ‘흰 띠’가 1연의 ‘흰 수건’, ‘흰 고무신’과 함께 ‘슬픈 족속’의 차림새가 상복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슬픈 몸집’은 상(喪)을 당해 슬픈 상태를 이야기 하면서도 ‘가는 허리’로 볼 때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처참하게 말라서 보는 이에게 슬픔을 느끼게 할 정도의 몸집을 가진 것을 말한다.
나라를 잃고 거친 일을 하면서도 먹지 못해 깡마른 몸집을 상복으로 가리운 ‘슬픈 족속’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들이 슬픔에 머물고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이다.
‘질끈’은 힘껏 힘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허리를 질끈 동이’는 것은 힘을 쓰기 전에 힘을 내기 위하여 취하는 동작이다.
이를 단순하게 치마가 흘러내리지 않게 치마를 동여매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나라를 잃은 슬픈 상황 속에서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힘을 내는 결심을 하는 모습인 것이다.///전한성

 

 

 

슬픈 족속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든 시입니다.
어두운 시기에 희망의 빛을 원했던 그는 '흰' 무언가를 계속 갈망하고 표현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슬픈 족속과 본인을 일체화시켜 민족의 슬픈 현실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거 같습니다.
시 안에서 등장하는 수건, 고무신, 저고리 치마, 띠 등은 전통적인 여성의 의상인데요.
민족성을 강하게 내세워 애국심이 표현되었습니다.
어두운 현실에서도 늘 밝은 나라를 꿈꿨던 그의 정신이 또 한 번 이 시에서도 드러났습니다.

=====================



 

  슬픈 족속(族屬)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1938.9.

 

 

 

 

학생에서 시인으로  

 

  윤동주는 민족저항종교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시인이다이는 각 수식어에 대한 대표성을 갖는

다고 할 수 있으며수식어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윤동주의 삶과 시가 포용력 있음을 말해준다

한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음을 말미암아 한국대표 시인으로 자리 잡았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윤동주는 살아생전 단 한편의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시집에

수록된 슬픈 족속은 윤동주가 민족 시인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흰 수건을 두르고’, ‘흰 고무신을 발

에 걸리우고’, ‘흰 저고리 치마로 몸을 가리고’, ‘흰 띠로 허리를 동이는’ 모습은 예부터 흰 옷을 즐겨 입

었던 백의민족(白衣民族)을 그려내고 있다.

  짤막한 시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단지 백의민족의 시각적 형상화에만 그친

것이 아닌 애한(哀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흰 옷을 통해 힘없고 슬픈 몸을 가림으로써 감정의 분출보

다는 삭임을 나타내고 있다그 당시 시가 잘 써지는 것도 부끄러워했던 윤동주의 삶과 탄압적이었던 일

제 식민지 시대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놓고 봤을 때 그를 민족 시인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내재적 근거를

시 슬픈 족속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에서는 또한학생에서 시인으로 한발 더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죽기 직전까지 학생이었던

윤동주에게 삶의 대부분은 배움의 과정이었다그가 남긴 습작품은 배움과 익힘의 과정이었으며자선

시집에 수록한 시와 그 이후의 시는 배움과 익힘의 결과물이다유족들의 증언과 시집을 읽어가며 남긴

메모를 통해 습작기 때 어떻게 시를 써내려갔는지 엿볼 수 있는데습작기 시를 살펴보면 특히 정지용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예컨대 1933년에 발표한 정지용의 비로봉과 1937년에 쓴 윤동주의

 비로봉은 제목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형식과 절제를 통한 풍경묘사가 매우 유사한데이는 윤동주가 정

지용의 작품을 모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하늘 우에 사는 사람

      머리에다 띄를 띄고,

 

      이땅우에 사는 사람

      허리에다 띄를 띄고,

 

      땅속나라 사는 사람

      발목에다 띄를 띄네.”

                                                           -정지용」 전문

 

  

  「슬픈 족속역시 정지용의 시 와 비교했을 때 형식적인 측면이나 신체의 각 부위를 로 두르

거나 흰 옷으로 가리는 모습은 상당히 유사하다그럼에도 비로봉은 습작품으로 남았고슬픈 족

은 유일한 자선시집에 수록된다이는 시 전반적으로 정지용의 영향을 받았지만 모작을 넘어 

색체이미지와 슬픔의 정조를 결합하여 윤동주 자신만의 시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시기에 따라 시적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는 시인은 많지만윤동주와 같이 습작기에서 자신만의 시세

계를 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인은 드물다오늘날까지 윤동주의 시가 널리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의 삶과 시에서 나타나는 진정성뿐만 아니라 이를 담아내기 위한 시인의 부단한 과정 역시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훈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

 《흰 수건》, 《흰 고무신》, 《흰 저고리》, 《흰 띠》는 모두가 조선민족을 상징하는 복식들이다. 특히 《흰 수건》과 《흰 고무신》은 남성들도 사용했던것이나 그것들을 포함하여 《흰 저고리》와 《흰 띠》는 대체로 여성들이 많이 사용했었다. 조선족으로서 자기 민족의 특징을 시에 담은것은 당연히 정체성의 확인차원에서 리해할수 있다. 이국땅에서 사는 립장에서 민족동질성의 상실을 항상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그것은 시인의 정서로 볼 때는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왜 이런 차림의 사람을 시인은 《슬픈 족속》이라 했을까?

첫행은 그냥 현상의 진술이라 하겠지만 제2행에서 《흰 고무신》은 《거친 발에 걸리》웠다고 했다. 《거친 발》은 일차적으로 항상 맨발바람에 전야작업을 해야 하는 농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것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시어로 정제되였을 때 우리는 거기에서 우리 농민의 고단한 삶을 느낄수가 있다. 다음은 《슬픈 몸집》이다. 인간의 몸 자체가 슬플수는 없다. 그러니 그 몸집, 즉 《흰 저고리 치마》를 입은 인간의 몸집이 시인에게 슬픈 모습으로 보였다는 말이 된다. 다시 《가는 허리》 역시 슬픔의 한 이미지가 되겠고 동시에 동정을 유발하는 불쌍한 모습의 이미지라 하겠다. 그러니까 《거친 발》과 《슬픈 몸집》, 그리고 《가는 허리》는 제목에 나타난 《슬픈 족속》의 재해석 혹은 심화가 되겠다.

 다시 말하면 이국땅에 사는 우리 민족은 슬픈 족속이라는 뜻이 되겠는데, 그러한 슬픔이 쌓이게 된것은 더 말할것도 없이 이주민으로서의 고난과 일제강점기라는 현실의 암흑에 의해 비롯된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그냥 우리 민족의 모습, 삶의 현실을 슬프게만 보고 손을 놓고있은것은 아니다. 마지막 행에서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고있다고 했다. 허리를 질끈 동인다는것은 상식적으로 일종의 자각이나 행동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아무리 세상이 험악하고 삶이 고달프다고 해도 악착스레 생존해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것일수도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현실과 투쟁하며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것일수도 있다.

- 출처 : 윤동주 시의 이민문학적 성격 / 장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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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괴로운 자기탐색을 통해서 어디로 가려 했는가. 그것은 결국 자기회복(自己回復), 즉 재생을 겨냥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여기에서는 그가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두 지점이 있었다. 그 하나는 조국과 동포에 대한 민족적 연대의식을 자각하는 지점이었다. 그의 시 <새벽이 올 때까지>, <슬픈 족속>, <아우의 인상화> 등에는 이 의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슬픈 족속 (族屬)

                                                                윤동주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1938. 9.


 

 

 일체의 감정이 배제된 2연 4행의 지극히 간결한 시다. 서정성이 넘치는 윤동주의 시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간결함 속에 의젓한 자세를 지닌 시이기도 하다.

 흰색은 '백의민족'으로 불리던 한 민족이 가장 즐겨 입던 옷 빛깔로 삶과 밝음을 상징한다. '흰'이란 말을 네 번이나 열거한으로써 암흑의 상황을 밀어내려는 백의민족의 의연한 저항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또 수건, 고무신, 저고리, 치마, 띠로 민족 전통의 여성 의상을 나타냄으로써 그 민족성을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당시에 누구보다도 학대받던 여성을 한가운데 등장시킴으로써 슬픈 동족 전체를 대변시켜 놓은 듯하다. 이 여인네의 검은 머리, 거친발, 슬픈 몸집, 가는 허리는 가난하고 피로에 지친 민족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이 시는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 쓴 작품으로서, 그는 이미 암담한 식민지의 현실에 직면하여 그 속에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겨레의 슬픈 모습을 예리하게, 그러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직시했던 것 같다. 이미 그는 '슬픈 족속'과 공동 운명체임을 자각하여, 민족적인 연대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해 있었다고 본다.


================{자료}


 

 

윤동주 시에 나오는 '순이'는 누굴까?

[해외리포트] 65(2010년도)주기 추도식이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이유
10.02.16   윤여문 

 

 

 

 
 
  
▲ 윤동주 시인을 회상하는 윤 시인의 여동생 윤혜원·오형범 부부.
ⓒ 윤여문  

"오빠는 항상 27살 청년의 모습인데, 동생인 내가 이렇게 '함뿍' 늙어서 미안해요.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아팠더니 오빠의 기억도 가물거리고, 아무래도 곧 오빠 곁으로 갈 것 같네요. 그때 만나요, 오빠."

 

지난 2월 14일 오전, 시드니우리교회에서 열린 '윤동주 민족시인 순국 65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윤 시인의 여동생 윤혜원씨(86)가 국화 한 송이를 바치면서 오빠에게 전한 안부다. 윤동주 시인의 정확한 순국날짜는 오늘(2월 16일)이지만 그날이 마침 설날이기도 해서 이틀 앞당겨서 추도식을 치렀다.

 

중국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이민 3세'이다. 게다가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27년 2개월의 짧은 생애를 마쳤기 때문에 그가 모국에서 머물렀던 기간은 평양 숭실학교 1년, 서울 연희전문 4년을 합해서 고작 5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는 '서시'를 비롯한 대표작들을 모국에서 썼다. 비록 일제강점기였지만 말이다.

 

한편 윤동주의 생애를 증언해줄 수 있는 여동생 윤혜원은 20년 넘게 시드니에 살고 있다. 윤동주의 삶과 문학이 해외로 떠돌아다니는 것. 어디 그뿐인가. 그의 무덤이 지린성(吉林城) 룽징(龍井)에 남아있어 혼백마저 '영원한 이방인'이 되고 말았다.

 

"오빠의 문학은 스물다섯 살에 끝났다"

 

윤동주는 3남1녀 중에서 장남이었다. 윤혜원은 7살 터울의 바로 밑 동생으로, 유난스레 명줄이 짧은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마지막 피붙이다. 윤혜원 아래로는 성균관대 교수 재임 중 50대에 타계한 윤일주(시인, 건축가)와 해방정국의 와중에 가족과 함께 오지 못하고 중국에 남았다가 30초반에 타계한 막내 윤광주(시인)가 있다.

 

이렇듯 3형제 모두 시인이었지만 동시로 등단한 윤일주 말고는 살아생전에 시인으로 등단하거나 시집을 펴낸 일은 없다. 그래서일까. 윤혜원은 "동주오빠가 1년 6개월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옥사했기 때문에 윤동주 문학은 스물다섯 살에 끝난 거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윤동주 추모제가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으니 오빠는 시인으로서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윤동주의 문학적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통은 그 나이에 본격적인 시세계를 구축하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선정됐고, '서시' 또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애송시로 꼽혔다. 25년의 짧은 생애에서 얻은 문학적 업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윤동주 문학을 접해본 몇몇 호주 시인들도 '윤동주 신드롬'에 빠지는 건 마찬가지다. 안나 비숍(크로아티아 출신 호주 시인)은 "1997년 시드니봄작가축제에서 윤동주 시편들을 접하고 나서 크게 감동받았다. 특히 '서시'와 '자화상'에 담긴 영혼은 너무 고와서 슬프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비숍은 영어로 번역된 '서시'를 원고 없이 외운다.

 

  
▲ 지난 14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윤동주 시인 65주기 추도식 장면.
ⓒ 윤여문  

윤동주 문학 연구의 메카가 된 시드니

 

언제부턴가 시드니가 윤동주 연구의 중심지가 된 느낌이다. 한국인들이 사는 수많은 해외 도시에서 윤동주 50주기와 60주기 추모식이 열렸는데 가장 큰 규모로 열린 곳도 시드니였다. 또한 윤동주 관련 뉴스들이 시드니로 바로 건너온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캐나다, 독일,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2005년 '윤동주 60주기 추도식'에는 오랫동안 윤동주 시고(詩稿) 원전연구를 해온 홍장학 선생을 초청해서 강연회를 가졌다. 또한 2008년 9월에는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와세다대학교 명예교수를 초청해서 '윤동주 문학 심포지엄'을 열었다. 그는 유실될 뻔했던 윤동주 시인의 묘소를 룽징에서 찾아낸 고마운 일본인이다.

 

그뿐이 아니다. 연세대학교 김찬국 교수가 참석했던 48주기 추도식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윤동주 추도식을 겸한 시낭송회 등이 호주한인문인협회와 시드니우리교회 주관으로 거행됐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재호주광복회가 전면에 나섰다.

 

윤동주 시인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 꼿꼿한 기개를 지닌 시인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살다가 순국한 애국지사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내로라하는 단체들이 민족정기를 흐려놓은 것도 광복회가 전면에 나선 이유로 보인다.

 

  
▲ 윤동주 시인 65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시드니 교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 윤여문  

재호주광복회 주관으로 열린 윤동주 추도식

 

이번 65주기 추도식을 기획한 재호주광복회 황명하 부회장은 "윤동주 시인은 독립유공자들에게 서훈하는 훈격(勳格) 7가지 중에서 세 번째에 해당되는 '독립장'을 수훈한 순국선열"이라면서 "광복회가 나서는 건 당연하고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재호주광복회의 뜻을 대한민국광복회 본부에 전했더니 광복회장의 추도사를 보내왔다. 광복회에서 처음으로 보내온 추도사"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보내온 김영일 광복회장의 추도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윤동주 선생님의 시와 삶 속에는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일제 식민지 현실을 부정하고, 이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젊은이의 고뇌에 찬 진정성이 묻어있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시에는 유년의 평화를 갈구하고, 자아성찰의 깊이를 더해가며 일제강점기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과거 어느 해보다도 올곧은 민족정기 발현이 필요한 해입니다. 시대를 통찰한 선생님의 명징한 시 정신을 본받아 경술국치 100년이 주는 준엄한 역사의 가르침을 하시라도 잊지 말고, 나라의 소중함과 주권의 고귀함을 다시 한 번 깨우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호주동포들은 윤동주 시인에게 독립장이 서훈됐을 뿐만 아니라 애국지사이자 순국선열로 모신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윤동주 시에는 일제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결여됐다"는 평가를 받는 게 의아스럽게 생각될 따름이었다.

 

중국 룽징-청진-원산-서울-부산-필리핀-호주로

 

윤동주 시인의 유족들은 왜 그 사실을 호주동포들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그것뿐이 아니다. 윤혜원 부부는 윤동주의 생애가 드라마틱하게 극화되거나 신비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걸 단호하게 거부한다. 특히 윤동주의 생애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는 언론인터뷰 등에는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오죽하면 북간도에서 서울로 내려온 사람들이 부산-필리핀을 거쳐서 호주 시드니까지 와서 정착했을까? 시드니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윤동주의 유족이라는 걸 전혀 밝히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흐른 다음에 홍길복 목사가 한국에서 건너온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윤동주 여동생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다.

 

룽징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했던 윤혜원은 1948년 12월, 중국에서 한국으로 내려오면서 고향집에 남아있던 윤동주의 원고와 사진을 가져온 당사자다. 그 이전에 발간된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31편의 작품만 게재됐을 뿐이다. 현재 116편이 게재되어있는 증보판의 시편들 중 85편이 윤혜원에 의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 공을 세웠지만 윤혜원은 젊은 나이에 순절한 오빠의 고결한 이미지에 단 한 점이라도 흠결이 남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입을 꼭 다물고 살아왔다. 특히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무진 애를 썼다. 윤혜원 부부가 서울-부산-필리핀-호주로 계속 남하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 지난 2008년 시드니에서 열린 오오무라 교수가 문학세미나에서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윤여문  

"시인은 시로서 말한다"면서 말을 아껴온 유족들

 

기자가 언젠가 대화 도중에 "윤동주의 민족의식이 어땠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더니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잘 몰라. 하지만 변절한 문학인들, 특히 이광수의 얘기를 하면서 아주 우울한 표정을 지었던 걸 잊을 수가 없어. 그리고 오오무라 교수가 전해준 재판기록 사본을 보니 1943년 7월 14일에 '조선독립운동' 등의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받았더군. 어린 동생들에게 민족 운운 할 수 없었을 터이니 그런 걸로 짐작할 수밖에 없지."

 

그런 다음 한참동안 망설이다가 말을 어어 갔다. "오빠의 시를 읽으면 오빠가 그냥 보여. 신기할 정도로 오빠의 꼿꼿한 정신과 정갈한 삶이 시속에 담긴 거야. 어떤 평론가가 '윤동주는 시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일치한다'고 평했는데 그 말이 꼭 맞는다"고.

 

한편 2008년 9월에 '윤동주 문학 심포지엄' 참석차 호주를 방문한 오오무라 교수는 기자한테도 '윤동주 재판기록 사본'을 건네주었다. 재판기록과 함께 가져온 <홋카이도 신문>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윤동주는 조선 민족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전반에 걸쳐 준엄한 민족적 저항정신과 기독교적 인간애로 가득 찬 서정시 124편을 남겼다. 그의 시는 그의 생애와 마찬가지로 청렬(淸冽)하고 우아한 혼을 지닌 동시에 민족의 운명 역시도 짊어지고 있었다."

 

윤동주 시 세 편에 등장하는 순이(順伊)는 누구?

 

65주기 추도식은 예배형식으로 진행됐다. 홍길복 목사는 "윤동주 시인은 죽어서도 말하는 사람"이라면서 "살아서도 죽은 것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죽은 다음에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평가받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설교했다.

 

김병일 시드니한인회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윤동주 선생이 윤혜원 여사께는 혈육이시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별과 같은 시인"이라면서 "특히 시드니에서 윤동주 선생의 추도식이 열린다는 사실이 한인동포들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복"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낭송 순서를 맡은 호주한인문인협회 이동일 부회장은 "윤동주 시인한테는 여자친구가 없었던 걸로 알려졌는데, 그의 시 세 편에 '순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면서 "윤동주 연구자들이 한번쯤 연구해볼만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은 이어서 순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윤동주의 시 <사랑의 전당>(1938), <소년>(1939), <눈 오는 지도>(1941)를 낭송했다. 한편 1941년에 쓴 시 <바람이 불어>에는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비록 시적화자(persona)의 고백이지만 그게 윤동주의 진짜 삶이었을 수도 있다.

 

  
▲ '서시'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
ⓒ 오마이뉴스  

성가대원 박춘애와 결혼할 뻔 했던 윤동주

 

윤동주의 생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윤혜원의 증언은 또 어떤가. "오빠는 여자친구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다만 일본 유학 중에 만난 박춘애라는 이름의 여학생 사진을 가져와서 할아버지께 보여드린 적이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좋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여성과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빠가 어른들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 오형범도 비슷한 회고담을 털어놓았다. "해방 후에,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 사후에 박춘애를 만난 적이 있었다. 옌볜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에 청진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는 박춘애를 만났다.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윤동주가 마음속으로만 좋아했을 뿐이고 프러포즈도 못했다고 하더라."

 

윤동주 시인 65주기를 갈무리하면서 오형범 장로가 나와서 유족대표 인사말을 했다. "시드니에서 윤동주 50주기와 60주기 추도식을 큰 규모로 치렀다. 그래서 보다 의미 깊은 70주기를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윤혜원이 그때까지 살 것 같지 않아서 광복회의 65주기 추도식을 수용했다"고.

 

윤혜원은 심장병 수술을 두 번이나 한 상태이고 치매 치료까지 받고 있다. 남편 오형범도 건강이 나쁜 건 마찬가지. 뇌수술을 받았고 암 치료까지 받는 중이어서 정기적으로 병원에 간다. 그래서였을까. 추도식 참가자들 모두 두 분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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