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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리별(이별)
눈이 오다 물이 되던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내, 그리고
크다란 기관차는 빼-액- 울며,
조고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리별(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하고-
더운 손의 맛과 구슬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 굽으로 돌렸다.
이 시는 일터로 가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이별하고 멀리 기차를 타고 떠나는 순간을 안타까워 하는 내용이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눈이 오다가 물이 되던 날이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추운 날이다. 하늘은 구름이 껴서 잿빛 하늘이다. 기차역이다.
뿌연 연기를 내품는 커다란 기관차는 빼-액 울며 이별을 재촉한다. 자그만 가슴이 이별의 슬픔으로 울렁거린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이별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고, 기차는 기다리지 않고 떠나서 이별하는 사람을 안타깝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떠나며 맞잡은 더운 손의 맛과 구슬 같은 눈물이 마르기 전에
기차는 끝칸이 산굽이로 돌아갔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별>은 이 시의 제재이다. 기차역에서 일터로 떠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눈이 오다 물이 되던 날 / 잿빛 하늘에 또 뿌연내, 그리고 / 크다란 기관차는 빼-액- 울며, /
조고만 가슴은 울렁거린다.’는 눈이 오다가 하늘에서 빗물이 되는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에 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며 떠난다는
신호를 하니 여인의 작은 가슴이 슬픔에 울렁거린다는 말이다. ‘눈이 오다 물이 되던 날 / 잿빛 하늘에 또 뿌연내’는 이별하는
암울한 상황을 나타내는 배경이다. ‘눈이 오다 물이 되던 날’은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로 ‘눈오는 날’
또는 ‘비오는 날’보다 더 춥고 힘들고 암울한 상황을 나타낸다. ‘또’는 ‘눈이 오다 물이 되던 날 /
잿빛 하늘’도 이별하는 여인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데 거기에 다 ‘뿌연내’까지 퍼지면서 더욱더 잿빛이 짙어지는 것으로
헤어지는 사람의 암울한 마음을 더 암울하게 만든다. ‘커다란 기관차는 빼-액- 울’어는 기차가 역을 떠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이 눈 앞에 다가온 것을 말한다. ‘조고만 가슴’은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역에 남은 대상이 여인이고 기차를 타고 떠나는 사람이 남성일 것이라고 추측하게 만드는
단서이다. ‘조고만 가슴은 / 울렁거’리는 이유는 이별로 인한 슬픔과 앞날에 대한 불안한 마음 때문이다.
배경은 이 둘의 앞날이 그리 밝지 않음을 나타낸다. 떠나는 이는 ‘일터에서 만나자’(2연 3행)고
하지만 이 약속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 이 시에서는 ‘일터’가 정해져서 가는 것인지,
아니면 무작정 일터를 찾아 떠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시의 배경과 여인의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볼 때에
일터를 찾아서 떠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터가 있는 곳은 도시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 도시에서
제대로 된 일터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 / 사랑하는 사람을 / 일터에서 만나자하고 / 더운 손의 맛과 구슬눈물이 마르기 전 /
기차는 꼬리를 산 굽으로 돌렸다’는 기차가 사랑하는 사람을 태우고 너무 빨리 가서 안타깝다는 말이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는 이유는 ‘더운 손의 맛과 구슬 눈물이 마르기 전 / 기차는 꼬리를 산 굽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일터’로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볼 때에 ‘일터’가 아주 먼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터에서 만나자하고’는 떠나는 이가 역에 남은 인물에게 자신이 일하는 일터로 올라오라는
약속과 당부의 말을 했다는 것을 말한다. 여인이 있는 곳은 직장을 잡고 가정을 이루기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더운 손의 맛과 구슬 눈물’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담긴
따스한 손의 온기와 이별하면서 슬픔에 흘린 눈물을 말한다. ‘기차는 꼬리를 산 굽으로 돌렸다’는
기차의 마지막 칸이 산굽이를 돌아가서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일터를 찾아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떠나는 모습이 이 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별이 이루어지는 곳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면
농촌이라면 이 시가 창작될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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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시인에 대하여 포스팅을 하고자 합니다
'영화'는 가끔 누군가에게 큰 전환점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저에게 있어 그런 전환점이 되어준 영화가 하나있는데요. 윤동주 시인과 독립운동가 송몽규 선생님의 인생을 담아낸 영화 ‘동주’는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 중 하나입니다. 어둠의 시대를 살아갔던 천재시인 윤동주와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 독립운동가 송몽규. 그들의 삶과 시대정신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 속에 소개된 윤동주의 시는 제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는데요.
앞서 ‘동주’라는 영화가 저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이야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윤동주 시인은 저에게 그저 교과서에 소개되는 천재 민족시인이였습니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단순히 윤동주 시인의 시를 역사적, 문화적으로 분석하기 바빴기에 저에게 그 시들이 와닿을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감정과 고뇌, 시대정신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영화속에 놓여진 시들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느낄수 밖에 없었는데요. 시를 억지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 하나 하나 그대로를 그저 체감하는 것이였습니다. 시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읽는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는 자연스럽게 윤동주 시집을 바로 구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평소에 알고 있던 그의 대표적인 시들 '자화상’ ‘서시’ ‘눈’ 등의 수많은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제가 간과했던 그의 시들에게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시 한작품을 쓸때까지 열흘이고 한달이고 두달까지도. 그의 시는 절대 짧은 시간에 쓰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연, 사람의 삶과 고뇌를 끊임없이 고찰했고 그것을 시에 담았습니다. 윤동주 시 속에 담긴 통찰과 표현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죠.
윤동주 시인은 자연을 정말 사랑했던 시인인 것 같습니다. 시집의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그는 시 속에 자연을 아름답게 접어넣었는데요. 그의 시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하나가 있는데 바로 ‘소년’이라는 시입니다.
소년-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은 어린다.
그는 자연을 너무도 아름답게 해석하고 노래했습니다. 저는 시적표현들을 하나하나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저에게는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져 봄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며 하늘의 색깔이 사람에게 묻어난다>는 표현들이 와닿았을 뿐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시대에 저항한 민족시인입니다. 그는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고 끝까지 조국과 함께했습니다. 그때 그의 시대정신은 자연스럽게 시에 녹아들었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있는데요. 윤동주는 살아생전 자신의 시집을 내고자 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를 막아섰습니다. 그런 시대의 역경과 시인의 내적갈등을 묘사하고 있는 시가 있습니다. 바로 ‘ 참회록’인데요.
참회록(懺悔錄)
윤 동 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滿二十四年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그의 내적 등과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은 많이 있지만 참회록은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입니다. 파란녹이 낀 구리거울을 통한 자기반성의 표현을 적었다는 것이 저에겐 굉장히 인상깊었는데요.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라는 문장은 시인의 아픔과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슬프고 아련하기 까지하죠. 윤동주 시인은 총을 들고 싸웠던 독립투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서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로 걸어가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민족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죠. 그래서 우리는 그의 내면적 갈등과 반성이 담긴 그의 시를, 어둠을 내몰고 빛을 되찾고자 했던 그의 시를 사랑합니다.
그는 제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시인이자, 너무도 아픈 시절을 살았던 청년이였습니다. 만일 윤동주시인이 오래도록 살아계셨더라면 한국 시문학은 또 어떻게 변했을 것이며 해방을 맞이한 후 써내려간 그의 시가 얼마나 찬란했을지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미 없지만,그러나 언제나 존재함을.... 그의 시를 사랑하고 기억한 이들. 그들이 보고 있는 그 시속에 윤동주 시인은 언제나 늘 존재했음을... 전 언제나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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