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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기적은 어디에 있는가...
「이적」/ 윤동주
발에 터분한 것을 다 빼여 바리고 황혼(黃昏)이 호수(湖水)우로 걸어오듯이 나도 사뿐사뿐 걸어 보리 잇가?
내사 이 호수(湖水)가로 부르는 이 없이 불리워 온것은 참말 이적(異蹟)이 외다.
오늘따라 련정(戀情), 자홀(自惚), 시기(猜忌) 이것들이 자꾸 금(金)메달처럼 만져지는구려.
하나, 내 모든것을 여념(餘念)없이, 물결에 써서 보내려니 당신은 호면(湖面)으로 나를 불러내소서.
- 윤동주, <이적(異蹟)>, 1938. 6. 19.
세속과 신앙의 틈바구니에 끼어 고투하는 시인의 자아가 엿보입니다. 「새로운 길」을 부르며 자신 있게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면 공장에”(「해바라기 얼굴」) 가야 하는 피곤한 현실을 경성에 와서 목도한 겁니다. 그 호숫가에 가기 전에 그는 “발에 터분한 것을 다 빼여(빼어) 바리고(버리고)” 왔다고 합니다.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십계를 받을 때 신발을 벗었듯이 윤동주는 터분한 것 그러니까 더럽고 지저분한 것, 개운치 않고 답답하고 따분한 것을 버리고 호숫가 앞에 섰습니다. 윤동주 나이 21세. 이제 대학에 입학하고 2개월 보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문득 호숫가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물론 관념의 호숫가겠지만,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는 실제로 지금의 홍대 근처에 호수 비슷한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물가에서 시를 썼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연희의 숲은 무척 우거져서 여우, 족제비 등 산짐승이 많았고, 신촌은 초가집이 즐비한 서울(경성) 변두리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시골 마을이었고, 사이사이에 채마밭이 널려 있었고, 지금의 서교동 일대(1960년대까지 ‘잔다리’라고 했다)에는 넓은 논이 펼쳐 있었다. 지금의 홍대 앞 신촌 전화국 근처에 아주 큰 연못이 있었는데 1950년대에도 거기서 낚시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이러한 사실은 1946년부터 신촌에서 살기 시작한 필자가 잘 기억하고 있다.) 어느 옛글에 보면 한양 팔경 중에 ‘서호낙일’(西湖落日)이 들어 있는데 이는 바로 지금의 서교동, 합정동 일대, 즉 서강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해 지는 풍경을 가리켰다. 윤동주가 묵던 기숙사에서 잔다리의 연못까지는 약 30분 거리, 거기서 10여 분 더 걸으면 강가(서강)에 도달했다. 아마도 1938년 초여름 어느 황혼녘에 그는 잔다리의 그 연못가로 산보를 나왔다가 순간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럴 가능성도 있겠으나 실제 호숫가에서 썼는가 아닌가 하는 점보다 중요한 것은 윤동주가 쓰고자 했던 생각이겠죠. 1연 끝에 “ … 보리잇가”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나를 불러 내소서”라는 구절에서 보듯, 전체적으로 기도문의 형식으로 써 있습니다. 1연에서 “황혼이 호수우로 걸어오듯이 / 나도 삽분 걸어 보리 잇가?”라는 구절은 당연히 파도치는 갈릴리 호수를 걸어오는 예수를 보고 자신도 걸어보려 했던 베드로의 이야기(마 14:22-33)를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이 이야기 이전에 있었던 기적은 바로 예수가 오천 명을 먹인 오병이어의 이적이었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이적을 행한 뒤, 예수는 “재촉하사 자기 무리를” 흩어지게 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는 예수의 모습이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 6:14-15)라고 적혀 있어요. 때는 해가 서산으로 지고 황혼도 완전히 사라진 한밤 중 “밤 사경”이었을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전날 낮에 오병이어라는 큰 이적을 보았기에, 예수처럼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적이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했나 봅니다.
이 성서구절을 인용하면 많은 목회자들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27절)에 강조점을 두어 설교하곤 합니다. 실은 제가 성서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윤동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이 성서구절을 패러디합니다.
이제 이 성서구절을 윤동주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볼 차례입니다. “발에 터부한 것을 다 빼어 버리”면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1연의 의미죠. 아무튼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큰 이적이지요. 그런데 윤동주는 2연에서 그런 이적을 말하지 않습니다.
내사 이 호수(湖水)가로 부르는 이 없이 불리워 온것은 참말이적(異蹟)이 외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이적을 바랐을지 모릅니다. 아마 물 위를 걸었다면 베드로는 이후 간증이나 자랑거리로 여러 번 그 기적을 드러냈겠죠. 그런데 윤동주가 보는 기적은 전혀 다릅니다. 윤동주는 그저 호숫가에 불리워 온 것이 “참말이적”이라고 합니다. 풍랑 치는 고통 앞에 서 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일상 자체가 “참말이적”인 것이죠. “내사”는 나야, 나아가 나와 같은 것이라는 겸손의 표현이겠죠. 나처럼 부족한 존재가 이 호숫가로 부르는 이도 없는데 불리워 온 것이 “참말 이적”이라는 겁니다. 가령 상상치도 못했던 순간을 경험하는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와 햇살이나 공기 속에서 살아가는 일반계시(general revelation)를 구분한다면, 그냥 일상 속에서 느끼는 일반계시를 윤동주는 바로 ‘참말이적’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씁니다. 오늘따라 연정(戀情), 자홀(自惚), 시기(猜忌) 이것들이 작고 금(金)메달처럼 만저 지는구려
하나, 내 모든것을 여념(餘念)없이, 물결에 써서 보내려니 당신은 호면(湖面)으로 나를불려내소서.
여성에 대한 ‘연정’(戀情), 자기 도취(自惚), 남에 대한 시기(猜忌) 따위의 고민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원고를 보면, 자긍(自矜), 시기(猜忌), 분노(憤怒)라고 써 있습는데, 분노를 지우고 가장 앞에 ‘연정’을 써 놓습니다. 분노보다 윤동주에게 심각했던 유혹은 연정이었던 모양입니다.
연정이란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능금은 / 먼저 떨어졌습니다. /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 길가에 떨어진 붉은 능금은 / 지나던 손님이 집어갔습니다.”(「그 여자(女子)」)라고 윤동주가 청소년기에 썼던 구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붉은 능금”이라는 구절은 대단히 유혹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 능금을 얻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몰래 앓았던 사랑의 아픔도 나직히 느껴집니다.
자홀(自惚)이란 자기도취입니다. 그의 습작기의 작품인 「공상(空想)」을 보면 “무한한 나의 공상 /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 나는 두 팔을 펼쳐서 /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 금전 지식의 수평선을 향하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그가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닐 때 학교 잡지 「숭실활천(崇實活泉)」(1935, 10.)에 발표했던 시인데 나중에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에 들어가면서 끝줄의 “금전 지식”을 “황금 지욕(知慾)”으로 수정합니다. 황금의 지식을 탐하는 욕망,그것이 그에게 자기도취였을까요. 그가 억제할 수 없는 지식욕을 갖고 있었다는, 그 일에 자기 도취되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 따라 금메달처럼 만져”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금메달 같은 욕망들을 “내 모든 것을 여념 없이 / 물결에 씻어 보내”겠다고 합니다. 마음속의 욕망을 씻어 버릴 수 있을 ‘참말이적’을 경험한다는 생각이지요. 그는 이미 이적을 체험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를 파도치는 호수로 불러 세워달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힘이 있다면 물 위에 걸을 수 있다는 의타적인 말일까요. 그렇게도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자신의 연정과 자기도취와 시기를 버렸을 때 이미 그는 기적을 체험한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4연이 원래 퇴고 전에는 “하나, 내 모든 것을 바리려니 /당신이 이 호수(湖水)우로 / 나를 불러 내소서 / 걸으라 명령(命令)하소서!”였다는 흔적을 볼 때, 시련을 당하겠다는 의미의 표출이며 능동적인 다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적」을 쓰고 창작날짜를 쓴 원고지에 “모욕을 참아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메모는 옆에 이어 쓴 「아우의 인상화」와 관계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모욕을 참아라”라고 쓴 메모는 「이적」과 연관하여 시련과 부닥치고자 하는 능동적 다짐으로 읽힙니다.
결국 “당신은 호면으로 나를 불러 내소서”라는 표현은 수동과 능동 모두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수동이든 능동이든 “내게 준험한 산맥이 있다”(「이적」)는 깨달음과 비슷한 다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윤동주에게 이적은 첫째 일상 속에서 느끼는 무한한 영원회귀(니체)이며, 메시아적 순간(발터 벤야민)과 비슷했습니다.둘째 그 이적은 연정, 자홀, 시기 등을 버릴 때 가능해집니다. 그 순간이 윤동주가 느꼈던 ‘현현’(epiphany)의 순간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내게는 준험한 산맥이 있다”(「사랑의 전당」)는 다짐과 ‘참말이적’의 힘으로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십자가」)에게로 다가서기 시작하는 청년, 대학교 1학년 때 윤동주의 모습입니다.
/김응교 l 교수는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외국어대학(東京外國語大學)을 거쳐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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