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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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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처녀귀신 댓글:  조회:5902  추천:2  2014-01-19
처녀귀신/콩트이야기 김희수   외할머니는 현성에서 소문난 점쟁이여서 외가집은 날마다 신수를 점치러 온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앞날의 길흉을 알아보려고 찾아온 사람, 병들었거나 가정불화가 있어서 찾아온 사람, 물건이나 돈을 잃었거나 친인이 실종돼서 찾아온 사람…이런 사람들은 외할머니가 신선이기라도 한듯 돈을 내놓으며 애원한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한바탕 굿을 하고는 점괘를 던진다. 나는 과학기술일군인 박사아들을 둔 외할머니가 귀신놀음을 하는것이 이상해서 짬만 있으면 그 짓거리를 지켜보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른 아침에 곽향장과 그의 아들 곽재호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외할머니를 찾아왔다. “신선할머니, 귀신…귀신…” 곽향장은 목소리가 떨려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곽재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애걸복걸했다. “시…신선…하…할머니, 우…우릴…사…살려…주십시오!” “도대체 웬 일이우? 좀 천천히 말해보우.” 외할머니가 달래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한 곽씨부자는 사건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어제저녁에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술을 퍼마신 곽향장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는데 그때 웃층에 있는 곽재호의 방에서“앗”하는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곽향장이 잘못 들었는가 해서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다급히 계단에서 내려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후 방문이 벌컥 열렸다. 곽향장이 놀라 일어서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곽재호가 경황망조하여 쏜살같이 달려들어오더니 이불을 뒤집어쓰는것이였다. “왜 그러니?” “아버지, 귀신…귀신…” “너 몽유병환자처럼 왜 이러니? 세상에 어디 귀신이 있다구 그러니?” “정말 귀신입꾸마. 방금 제 방에 나타났습꾸마!” “너 꿈을 꾼게 아니야?” “꿈이 아니라 정말입꾸마. 귀신…귀신…” “이 녀석이 무슨 허깨비를 보고 이렇게 놀라는거야." 곽향장은 아무래도 아들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문을 열고 나섰다. 막계단을 오르려던 곽향장은 그만 “앗”하고 놀란 소리를 질렀다. 계단웃쪽에 하얀 옷을 입고 봉두란발한 녀자귀신이 입에 피묻은 칼을 물고 서있었던것이다. “으흐흐…내 명을 돌려다오!” 곽향장을 본 녀자귀신은 괴상하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면서 한발작한발작 계단을 내려오고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그만 혼비백산한 곽씨부자는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밖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허둥지둥 똥줄이 빠지게 도망친 곽씨부자는 향정부의 숙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이른 아침에 외할머니한테로 뛰여왔던것이다. “그 녀자귀신이 바로 홍매화란 처녀지?” 외할머니는 눈을 꼭 감고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곽씨부자는 이구동성으로 “네!”하고 대답하면서 감탄했다. “신선할머니는 정말로 신선입니다. 우린 경황중에도 그 녀자귀신의 얼굴만은 똑똑히 봤습니다. 그 녀자귀신은 틀림없이 홍매화였습니다.” 홍매화는 나도 잘 알고있는 처녀였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것은 외가집에서였다. 그때 곽재호와 갓 약혼한 그녀는 궁합을 보러 외가집에 왔던것이다.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나는 저도몰래 가슴이 설레이며 그녀를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방긋이 웃어주던 그 모습! 나는 항상 그녀의 웃는 얼굴이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웃기를 잘하던 그녀가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던것이다. 아까운 스무살꽃나이의 생명을 스스로 종말지었다고 한다. 그녀는 “나는 이 치욕을 참을수 없다. 사랑하는 님까지 나를 버렸으니 나는 정말 이 세상에 살멋이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한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녀가 자살하다니? 나는 믿을수 없었다. 그 전날까지도 나는 그녀를 만났던것이다.   홍매화네 집은 우리집에서 외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었다. 그래서 외가집으로 갈 때마다 나는 그녀의 집을 기웃거리군 했다. 그날도 매화의 그림자라도 볼가해서 그녀의 집근처에서 서성거리고있는데 마침 그녀가 집문을 나서고있었다.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몰래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을에서 벗어난 그녀는 곧장 강가로 나갔다.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떠날줄 모르던 그녀가 수심에 잠겨 흐르는 강물만 멍하니 바라보는것이였다. 곽재호가 홍매화를 차버렸다는 소문을 들은 나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개자식, 저렇게 훌륭한 처녀를 차버리다니? 넌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강물에 풍덩 뛰여드는것이였다. 나는 “안돼”하고 소리를 지르며 뒤따라 강물에 뛰여들었다. 어느새 물속에 가라앉았는지 그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자맥질하여 그녀의 행방을 찾고있는데 그녀가 글쎄 물우에 불쑥 솟아오르더니 능란한 동작으로 강을 헤여건너는것이 아닌가! 뛰따라 강을 건너간 나는 계면쩍게 웃었다. “허허, 난 매화가 짧은 생각을 먹고 강물에 몸을 던지는가 했소.” “제가요? 전 죽지 않겠어요. 전 꿋꿋이 살겠어요!” 꿋꿋이 살겠다던 처녀가 이튿날에 갑자기 자살하다니? 나는 믿을수 없었다. 곽재호, 네놈이 홍매화의 목숨을 앗아간거야. 네놈때문에 홍매화가 죽은거야. 난 네놈을 가만놔두지 않을거야!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렇게 죽은 홍매화가 지금 귀신이 되여 나타나다니? 그 무슨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이 있어 귀신이 되여 곽씨부자를 찾아온것일가? “악귀가 붙었으니 방토를 해야겠수.” 외할머니는 몸소 곽향장의 집에 가서 부적을 붙여주었다. 그런데도 그날밤에 처녀귀신이 또 나타났다. 그래서 곽씨부자가 화들화들 떨면서 외할머니를 찾아와 또다시 애걸했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한바탕 귀신놀음을 벌리더니 눈을 감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소리치는것이였다. “그 처녀귀신이 이승에서 짝을 못 맺고 간게 한이 되여 찾아온것이니짝을 지어주어야겠수.” 홍매화는 비록 이승에서 약혼은 했지만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처녀의 이름을 달고 저승으로 간것으로 된다. 외할머니는 진흙으로 남자모형을 빚은후 거기에 신랑옷을 입히고 귀신딱지를 그린 종이를 붙였다. 그것을 가지고 외할머니는 그날밤에 곽향장네 집에 묵으면서 처녀귀신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새벽 두시가 되자 하얀 옷을 입고 봉두란발한 처녀귀신이 입에 피묻은 칼을 물고 나타났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주문같은것을 중얼중얼 외우더니 진흙으로 빚은 남자모형을 처녀귀신한테 던지며 “네 신랑이 예있으니 어서 모시고 썩 물러가라!”하고 고함쳤다. 그러자 처녀귀신이 그 진흙으로 빚은 신랑을 받아가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이튿날밤에 곽씨부자는 만시름을 놓고 잤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그 검질긴 처녀귀신이 또다시 나타날줄을. “이젠 나도 방법이 없수!” 외할머니는 세번째로 찾아온 곽씨부자를 그대로 돌려보냈다. 풀이 죽어 대문밖으로 나서는 그들을 바래며 내가 슬며시 귀띔했다. “내게 처녀귀신을 쫓을 방법이 있습니다.” 그랬으나 곽씨부자는 못미더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지푸라기도 잡는 물에 빠진자의 심정으로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외할머니께서 업었던 신이 지금 네게로 와서 붙었습니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방토가 효력이 없는겁니다.” 외할머니한테 점을 치러 올때마다 내가 곁에 있는것을 보아온 그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굽신거리며 애원했다. “그럼 방선생께서 방법을 대여주십시오!” 평소에는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던 곽씨부자가 “방선생”이라고 깍듯이 부르며 애걸했다. 나는 그런 그들이 가증스웠으나 방법을 대주지 않을수 없었다. “그 처녀귀신이 다른 사람들은 찾아가지 않고 당신들만 찾아가는것은 꼭 까닭이 있을것입니다. 당신들이 그 처녀한테 잘못을 저지른것이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가슴에 한이 맺혀가지고 밤마다 찾아오는것이니 당신들은 그 맺힌것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풀어준단말입니까?” “오늘밤에 그 처녀귀신이 나타나면 당신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처녀한테 저지른 잘못을 이실직고하면서 용서를 비십시오. 그래야 그 맺힌것이 풀리면서 처녀귀신은 영영 물러갈것입니다.” 이미 귀신에게 혼날대로 혼난 그들이라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밤에 처녀귀신이 나타나자 곽씨부자는 내가 시키는대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홍매화아가씨, 내가 며느리로 될 아가씨를 욕보였으니 용서해주오!” 곽향장이 먼저 머리를 조아리자 처녀귀신의 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어떻게 나를 욕보였단 말이냐? 사실대로 말해봐.” 그러자 곽향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에 여느때보다 일찍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나는 ‘재호야, 저녁밥을 지었느냐’하고 소리치며 2층에 있는 재호의 방으로 올라갔소. 그런데 재호는 보이지 않고 빠금히 열린 문으로 아가씨가 혼자서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소. 가슴띠와 삼각팬티만 걸친채 자고있는 아가씨를 본 나는 순식간에 온몸이 달아올랐소. 녀편네가 출국하여 몇달동안 녀자를 모르고 살아온 나는 반쯤 드러난 젖가슴과 풍만한 히프를 보자 그만 참을수 없어서 아가씨한테 덮치고말았소. 잠결에 아가씨는 나를 재호로 여기고 받아주는것 같았소. 그러다가 뭔가 잘못된것 같아 아가씨가 눈을 떴을 때는 일이 수습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소. 바로 그때 난데없이 재호가 나타났던거요. 난 재호한테 아가씨가날 꼬셨다고 거짓말을 했소. 그래서…” “매화, 내가 잘못했소. 모두 내 잘못이요!” 이번에는 곽재호가 두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었다. “그날 매화와 운우지정을 나눈후 나는 매화가 잠든것을 보고 난 남새사러 장마당으로 갔댔소. 내가 남새를 사들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보지 말아야 할것을 보게 되였소. 나는 매화의 해석도 듣지 않고 아버지의 말만 믿고 매화를 매질하여 쫓아버리면서 관계를 끊는다고 선포했소. 하지만 난 매화를 잊을수 없었소. 그래서 매화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매화가 또 아버지와…” 재호의 말을 곽향장이 다시 이었다. “아가씨가 그때 재호와 관계를 끊자 나는 아가씨의 집에 찾아가서 아가씨가 혼자있는것을 보고 내 정부로 되여달라고 애걸했소. 물론 아가씨는 견결히 반대했지만 나는 억지로 아가씨를 끌어안았는데 그때재호가 나타났던거요.” 이번에는 재호가 곽향장의 말을 이었다. “그때 매화가 아버지와 하는 짓거리를 본 나는 화가 치밀어 매화를 끌고 강변의 숲속으로 들어갔소. 거기서 나는 극도의 분노를 참을수 없어 젖먹던 힘까지 다 내여 두손으로 매화의 목을 조였소. 매화는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던거요. 그랬지만 매화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유서비슷한 쪽지가 나의 살인죄를 덮어감추어주었소. 아마도 그 쪽지는 아가씨가 아버지한테 욕을 보고 나한테 쫒겨난 그날에 분김에 몇글자 썼던것 같소. 아무튼 아버지와 나는 매화가 스스로 목을 맨것처럼 꾸며놓았소.” “악독한 살인자!” 그때 처녀귀신이 벽력같이 고함지르더니 하얀옷을 벗어던지고 위장한 피묻은 칼과 인면탈을 벗었다. 그러자 곽씨부자는 경악으로 온몸을 떨었다. “앗! 방선생…당신이?!” 그랬다. 처녀귀신은 바로 나였다. 처녀귀신이란건 바로 내가 꾸민 연극이였다. 홍매화의 자살을 의심하고있던 나는 범인을 잡아내려고 이런 귀신극을 꾸몄던것이다. 한마디 언급할것은 홍매화의 얼굴모습을 본따 만든 인조얼굴가죽은 일본에서 박사칭호를 받고 돌아온 외삼촌의 연구성과라는것이다. 거기에 천성적으로 녀자목소리를 흉내 잘내는 나의 장끼가 은을 냈던것이다. “흐흐흐, 당신이 아무리 귀신극을 꾸며도 우릴 잡을수 없어. 증거가 없으니깐!” 얼마후 놀란 가슴이 진정된 곽씨부자가 빈정거렸다. 그들의 꼬락서니를 보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사전에 경찰들과 상의하고 이 방안에 도청장치를 가설했소. 지금쯤은 이 근처에 숨어있던 경찰들이 당신들의 범죄사실을 다 듣고 달려올거요.” 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세 명의 경찰이 물을 열고 들어왔다. 곽씨부자는 찍소리도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이제는 원혼이 된 홍매화처녀도 안심하고 잠들것이다. (1998년)  
112    등소평의 계모 하백근 댓글:  조회:6365  추천:2  2014-01-19
등소평의 계모 하백근     사천성 광안현 협흥진 패방촌은 등소평의 고향이다. 어려서 고향을 떠났던 등소평은 나이 들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량친부모는 이미 사망되였고 고향에는 계모와 두 녀동생이 살고있었다. 등소평은 계모를 중경으로 모셔왔다. 물론 두 녀동생도 함께 데려왔다. 그때로부터 계모 하백근은 줄곧 등소평과 함께 반세기를 살았다. 하백근은 등소평과 5년 년상밖에 안되였다. 선박공의 딸이였던 그녀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10여세에 시집을 갔는데 얼마 안되여 남편이 병사했다. 그후 그녀는 다시 등소평의 아버지 등소창한테 시집을 갔다. 1936년에 등소창이 병으로 사망된후 하백근은 줄곧 혼자서 두 딸을 데리고 과부생활을 했다. 그녀는 글은 읽지 못했지만 대의명분을 잘 알고 사리에 밝고 활달한 성격이였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아들 등소평이 사람을 파견하여 모시러 왔을 때 하백근은 작은 보따리만 들고 문을 잠근후 중경으로 갔다. 중경에서 보따리를 내려놓은 순간부터 하백근은 등씨집안에서 생활했는데 중요한 가족구성원으로 되였다. 그녀는 등소평부부에게 맛있는 료리를 해주었을뿐만아니라 손자손녀들도 손수 키워주었다. 등용은 《강서에서의 나날들》이란 글에서 “문화대혁명이 시작된후 할머니(하백근)와 우리 몇몇 아이들은 함께 집에서 쫓겨났다. 그때 할머니는 의연히 역경속에서 온가족의 생존을 위한 중임을 떠멨다. 어렵던 그 시기에 할머니는 굴욕을 받을대로 받아왔지만 머리를 숙이지 않고 굳세게 생활하면서 우리 몇몇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여주었다”고 썼다. 그 특수한 시기에 하백근로인은 완강하였을뿐만아니라 시비도 명백하게 갈랐다. 그녀의 딸 등선군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그 시기 많은 사람들이 계선을 나누었어요. 우리 엄마는 올케를 보고 ‘탁림아, 넌 정신을 차려야 한다. 너희들 부부가 많은 세월을 함께 살아왔으니 넌 그(등소평)가 어떤 사람인가를 잘 알고있을거야. 그러니 그와 계선을 나누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해’라고 말했어요. 그때 올케는 우리 어머니를 보고 ‘전 그이를 잘 알고있어요. 마음놓으세요. 그런 일은 없을거예요’라고 대답했어요”라고 말했다. 1969년 10월에 등소평이 강서에 내려가서 로동을 할 때 등소평의 부인 탁림과 하백근도 함께 생활했다. 매일 아침마다 등소평과 탁림은 공장까지 걸어가서 로동했는데 하백근은 집에서 밥을 짓고 빨래 하는 등 집안일을 도맡아했다. 하백근은 딸이 아이를 낳은 기간에 잠간 떠나 있은 외에 줄곧 등소평부부와 함께 서로 의지하면서 살았다. 1997년 2월 19일에 등소평이 위대한 일생을 마쳤을 때 97세의 고령이였던 하백근은 이미 로년치매증에 걸렸지만 특수한 방식으로 자신보다 먼저 간 아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표시했다. 2001년봄에 하백근은 사망되였는데 향년 101세였다.       
111    등소평의 집안래력 댓글:  조회:5909  추천:0  2014-01-19
등소평의 집안래력     본적이 사천성 광안현인 등소평은 집안도 아주 훌륭한 편이였다. 조상들중에 진사에 합격한 인물도 있고 대리사정경(지금의 사법부 부장)을 력임한 사람도 있다. 1989년에 사천성 광안현 협흥향 패방촌(등소평의 고향)에 있는 등소평의 사촌집에서 “등씨가보”라는 족보가 발견되였다. (이 족보에는 적장자 직계혈통만 있기때문에 방계인 등소평집안의 직접적인 족보는 아님) “등씨가보”와 “광안주신지”의 기록에 의하면 등소평의 집안은 명대초기부터 시작되였다. 그의 조상은 명대초기의 병부원외랑 등학헌이고 원적은 강서성 길안부(吉安府) 여릉현이다. 명태조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였을 때 사천 등 서남지역은 여전히 평정되지 않고있었다. 등학헌은 홍무13년(1380년)에 황명을 받들고 사천지역에 들어갔다. 전란이 평정된 후에 사천지역의 인구는 줄어들고 토지는 피페하여 주원장은 많은 사람들을 사천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이에 등학헌도 가족들을 데리고 사천으로 이주하여 광안의 요평리(지금의 광안현 패방촌)에 정착하였다. 등소평의 딸 등용이 지은 《나의 아버지 등소평》에서는 상술한 “등씨가보”와 “광안주신지” 를 고증한 결과 명대에 등씨집안조상중 8대조 등사렴과 그의 형제 등사창이 진사출신이라 밝혔다. 등사렴은 명조말기 숭정년간에 진사에 합격하여 광동해양령과 리부시랑을 력임하였으며 명조말기에 청나라군대가 중원을 점령하여 명나라의 잔존세력이 서남으로 갔을 때에는 주계왕을 따라 운남으로 갔다. 18년후 그는 다른 41명의 대신들과 함께 순국하였다. 등사창은 명대 만력년간에 진사에 급제하여 남경호부주사를 력임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절강처주부의 지부로 승진되였다. 그후 다시 호광안찰사부사로 발탁되였다가 탄핵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청대에 이르러 등씨집안은 극도로 기울어졌다. 건륭원년에 진사에 급제한 등시민외에 벼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등시민은 진사에 급제한 후에 한림원에 들어가 편찬을 맡았다. 그후 그는 시강학사, 통정사부사를 거쳐 건륭10년에는 대리사정경에 올랐다가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66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아마도 명청시기를 통털어 등씨집안에서 관직이 가장 높았던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후로 등씨집안은 점점 위세를 떨치지 못하고 더욱 기울어져갔다. 등소평의 아버지 등소창은 두명의 소작농을 거느린 소지주였다. 등소창은 일찍이 사천의 비밀단체 “가로회”의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지방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있었는데 항상 마을사람들의 어려움과 근심을 해결해주군 하였다. 당시에 사천지역에서 일어난 많은 반청운동은 그곳의 최대세력이였던 “가로회”가 주동하였으므로 등소창도 단장의 한사람으로 그 운동에 가담하였을것이다. 등용의 기록에 의하면 등소창은 1914년에 광안현 단련국장을 력임하였다가 사직한 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향장을 력임하였다고 한다. 등소창은 등씨집안의 3대독자였기때문에 4명의 안해와 결혼하여 9남매를 두었으나 4남 3녀만 살아남았다. 등소창은 13세때 첫째부인 장씨와 결혼하였으나 장씨가 병사하여 후손을 보지 못하였다. 15세때 다시 둘째부인 담씨와 결혼하였는데 이 담씨가 바로 등소평의 생모이다. 담씨는 모두 3남 2녀를 낳았는데 첫째가 장녀 선렬, 둘째가 큰아들 선성(즉 등소평), 셋째가 둘째딸 선진(10여세 때 병사했음), 넷째가 둘째아들 선수(즉 등간), 다섯째가 셋째아들 선치(즉 등촉평)이다.   1926년에 등소평이 프랑스로 간 뒤 아무런 소식이 없자 담씨는 자식생각에 세월을 보내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등소창의 셋째부인 소씨는 등씨집안의 여섯째인 넷째아들 등선청을 낳은 뒤에 병사하였다. 그후 등소창은 다시 넷째부인 하백근과 결혼하여 3명의 딸을 낳았는데 일곱째가 셋째딸 선부, 여덟째가 넷째딸 선용(10여세 때 병사했음), 아홉째가 다섯째딸 선군이다. 하백근은 49년부터 줄곧 등소평과 함께 생활하였는데 그녀가 바로 등소창자녀의 실질적인 어머니나 다름없었다. 등소평의 형제자매들은 대부분 각급 정부나 군대에서 요직을 맡았다. 등소평의 동생 등간은 1937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기자를 력임하였고 49년이후에는 중경시 부시장, 무한시 부시장, 호북성 부성장을 력임하였다. 등소평의 녀동생 선부는 국가기관의 기밀사업에 종사하다 퇴직한 후에는 사천성 정협위원을 력임하였다. 그녀의 남편 장중인은 사천성당안국 국장을 력임하였다. 등용의 말에 의하면 그는 충직하면서도 근면성실하여 장모 하백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등소평의 막내 녀동생 선군은 할빈군사공정학원을 졸업한 후에 줄곧 군대에서 근무하면서 해방군총정치부 공작부 부장을 력임하였다. 그녀는 몇명 안되는 녀자소장중의 한 사람으로 남편 률전명과는 할빈 군사공정학원의 동기생이다. 률전명은 해방군 제2포병부대의 부사령관을 력임한 소장이다.     
110    등소평의 결혼생활과 그의 가족 댓글:  조회:7309  추천:2  2014-01-19
등소평의 결혼생활과 그의 가족     등소평은 개인적으로 세번이나 결혼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치무대에서 “세번 밀려났다가 세번 일어선”것과 함께 결혼생활에서도 세번의 파란곡절이 있었다. 그가 세번째복권으로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성공적인 정치가가 되였다고 한다면 세번째결혼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룩한 성공적인 가장이 되였다. 등소평의 첫번째 부인은 장석(또는 장천원)인데 하북성 방산현출신이다. 장석의 아버지 장경해는 철도로동자로서 1922년 “2.7대파업”때 로동자대표로 지명수배를 받기도 하였다. 1925년 장석은 모스크바중산대학 류학생으로 추천되였다. 그때 그녀는 프랑스에서 경찰의 지명수배를 피해 모스크바로 와서 류학하고있던 등소평을 만났다. 1927년에 두 사람은 중국에 돌아가 상해의 중앙비서처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사랑이 싹터 1928년초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2년후인 1930년에 장석은 난산으로 상해에서 숨을 거두고말았다. 그때 등소평은 광서에서 한창 “백색봉기”를 조직하고있었다. 장석의 사망으로 등소평의 첫번째 결혼생활은 불과 3년도 못되여 끝나고말았던것이다. 등소평의 두번째 결혼도 비극으로 끝났다. 비극의 녀주인공은 김유영으로서 사람들은 그녀를 아김(阿金)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절강성 대산출신으로서 등소평과는 동갑내기였는데 두 사람은 상해에서 서로 알게 되여 1931년에 함께 강서로 간후 결혼하였다. 김유영은 쏘베트구의 도현과 승리현에서 현위원회 서기를 력임한 당시에 많지 않던 녀성간부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러나 1933년에 등소평이 강서 회창현 현위원회 서기로 있을 때 김유영도 함께 타도되여 신변에 위험이 닥치자 그녀는 그만 등소평과 리혼하고 당시 등소평을 책임지고 조사하던 조직부장 리유한(중화인민공화국 수립후 중앙통전부장 력임)과 가까운 사이로 되였다. 리유한과 김유영은 그 이듬해에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국무위원을 력임한 리철영이다. 1935년에 등소평은 김유영과 함께 홍군장정에 참가하여 같은 부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김유영은 1936년에 연안에 도착하여 리철영을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병에 시달리다 못해 모스크바로 가서 정신병치료를 받았다. 그후 1941년에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독일군비행기가 폭발되였을 때 실종되였다.   등소평의 세번째 결혼상대자는 그의 마지막 동반자 탁림이다. 탁림의 본명은 포경영으로서 1916년 4월에 운남성 선위에서 태여났다. 그녀는 1936년에 북경대학 물리과에 입학하여 운남성 최초로 북경대학에 입학한 녀성이 되였다. 등소평의 딸 등용의 말에 의하면 등박방, 등남과 등질방이 모두 어머니 탁림의 영향으로 북경대학 물리과에 들어갔다고 한다. 1937년 7월에 일본군이 북경을 점령하자 탁림은 그녀의 언니 석영과 함께 혁명성지 연안으로 찾아갔다. 연안에서 탁림은 간부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섬북공학에 들어갔다. 1939년 여름에 탁림은 다른 사람의 소개로 등소평을 알게되여 그해 9월초에 결혼을 하였다. 모택동, 강청, 류소기, 장문천부부, 왕명 등 중국공산당 군정핵심요원들이 모두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당시 등소평은 36세, 탁림은 24세였다. 탁림은 등소평이 이끄는 북방국 부녀촉진회에서 일하고있었다. 등소평과 탁림은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장녀 등림, 장남 등박방, 차녀 등남, 3녀 등용(모모라고도 함)과 막내 등질방이 있다. 등소평의 자녀들은 모두 산아제한정책의 옹호자들이다. 등박방은 불구의 몸이 되여 후사가 없지만 그 나머지 네사람은 모두 한명의 자녀만 가지고있으며 그중 등질방만 아들이 있다. 문화대혁명시기에 등소평은 당시 국가주석 류소기의 당내주자파 2인자로 지목되여 모든 당직에서 파면된후 강서성의 뜨락또르공장으로 추방되여 육체로동에 종사하였다. 이때 그는 부인 탁림과 계모 하백근만 데리고갔다. 그의 다섯 자녀들도 모두 각지로 추방되거나 남아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 그 중에서 장남 등박방의 운명이 가장 비참하였다. 1944년에 태여난 등박방은 1962년에 북경대학 물리과에 입학하여 문화대혁명초기에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았지만 1968년에 등소평이 비판받은후 그도 반대파에 의해 방사성물질에 심각하게 오염된 실험실에 갇혔다. 그곳에 오래있다가는 꼼짝없이 죽을수밖에 없는 다급한 상황에서 그는 4층에서 수도관을 따라 탈출하려 하였지만 불행히도 땅에 굴러떨어져 그만 척추에 중상을 입고말았다. 그러나 등소평의 아들이라는 리유로 그는 당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여 결국 반신불구의 몸이 되였다.   1981년에 카나다로 가서 유명한 정형외과 전문의로부터 치료를 받았지만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되여있던 상태에서 별효과를 보지 못했다. 귀국한후 등박방은 중국의 장애자복지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1983년에 “중국장애자복지기금협회”를 설립하였다. 중국 장애자의 사회적 지위를 제고시킨 그의 공헌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것이다. 현재 등박방은 흉부이하가 완전히 마비되여 휠체어에 의존하고있으나 다행히도 정형외과 전문의사 고소녕이 그와 결혼하여 함께 가정을 꾸려가고있다. 등질방은 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다. 그는 북경대학 물리과를 졸업한후 뉴욕 맨체스터대학에서 양자물리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에서 2년간 근무하다가 1988년에 생물학박사학위를 취득한 안해 류소원 그리고 미국에서 태여난 아들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가 중신(中信)의 부사장을 력임하였다. 1992년에 상해 사방부동산실업회사를 설립하여 부동산업에 종사하고있다. 장녀 등림은 수묵화화가이면서 중국 “동방미술교류협회” 회장이다. 1941년 산서성 태항산군부대에서 태여났으며 후에 북경중앙미술대학 중국화과에 입학하여 화조도를 배웠다. 문혁시기에는 남창으로 추방되여 남편 오건상을 만났다. 그후에 등소평을 따라 북경에 돌아가서 “동방미술교류협회”를 설립하고 회장이 되였다. 등림은 여러차례에 거쳐 해외전시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그녀의 남편 오건상은 중국 유색금속수출입회사와 여러개의 상장회사를 관리하고있다. 현재 국가과학위원회 부주임으로 있는 등남은 1992년에 등소평의 남방순시를 기획한 인물중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등남은 1964년에 북경대학 물리학부에 입학하여 문화대혁명시기에는 안휘성 황산으로 추방되였다. 등소평이 정권을 장악한후에 그녀는 다시 과학위원회 과학기술정책국 부국장으로 되였다. 그녀의 남편 장굉은 국가과학위원회 과학기술개발국 국장이다. 지난 수년동안 등소평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자녀는 셋째딸 등용이다. 등소평의 개인비서인 그녀는 등소평의 귀와 입이 되는 역할을 하였으며 등소평을 대신하여 정보를 듣고 지시를 하달하였다. 아명이 모모(毛毛)이기도 한 등용은 어릴 때부터 성격이 명랑하고 령리하여 부모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기도 하였다. 문화대혁명시기에 북경사범대학 부속고중 2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녀는 섬서성 부현으로 추방되였다. 당시에 그녀는 갖은 랭대를 받았으나 현재의 남편 하평만은 그녀를 잘 대해주었다. 얼마후 두 사람은 결혼하였다. 등소평이 두번째 복위되였을 때 등용은 북경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977년에 북경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해방군총정치부로 발령받았다가 1979년에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파견되였다. 그녀는 4년후에 귀국하여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정책연구실 부주임에 임명되였다. 등용은 등소평의 개인비서를 충실히 리행하였다. 그녀의 남편 하평은 해방군 최대의 무기회사인 보리회사 사장을 력임하였다. 그녀는 《나의 아버지 등소평 - 문화대혁명세월》이란 책을 출판하여 국내외의 많은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109    잠자리,대통령이 되니 한명도 거절 않더라 댓글:  조회:6545  추천:0  2014-01-18
      장관일 때는 일부 여자가 잠자리 거절했지만 대통령이 되니 한명도 거절 않더라   이성훈 특파원의 파리산책       프랑스 대통령들의 화려한 여성편력   지난 10일 주간지 클로저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여배우 쥘리 가예와 비밀연애를 해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기사 속 사진에는 올랑드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었다. 보도 직후 올랑드가 보인 첫 반응은 “사생활 침해”라는 것이었다.     결별 위기를 맞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왼쪽), 프랑수아 올랑드의 새 애인 영화배우 쥘리 가예(오른쪽)   사실 이 발언은 지극히 프랑스적(的)인 반응이다. 만약 다른 나라였다면, 일단 발뺌을 하거나 최소한 침묵을 지켰을 것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여성 스캔들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프랑스는 달랐다. 많은 대통령이 외도를 했지만, 문제가 된 적이 별로 없었다. 프랑스 사회와 언론이 모두 개인문제라며 묵인했기 때문이다. 올랑드도 그런 반응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까지 동거녀 신분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온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가 계속 엘리제궁에 머물러야 하는지, 올랑드와 가예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프랑스 사회도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의 이성(異性) 문제를 공적인 이슈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의 여성 편력      프랑스의 현재 정치 제도가 시작된 제5공화국(1958년) 이후 올랑드는 9번째 대통령이다. 약 한 달간 임시 대통령을 지낸 알랭 포에르를 제외하고 8명의 대통령 재임기간 가운데,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 집무 공간)은 늘 스캔들의 중심이었다. 이런 소문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샤를 드골이 유일하다는 평가다. 군인 출신인 샤를 드골은 평소 사생활에도 엄격했다. 아내였던 이본 드골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내조에 전념했다. 비서 1명만 두고 생활하며 자동차도 손수 운전할 정도로 검소했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퍼스트레이디 이본 드골과 샤를 드골(위),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다니엘 미테랑과 프랑수아 미테랑(아래)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은 아내 클로드 퐁피두가 스캔들에 휘말렸다. 1968년 유명배우 알랭 드롱의 경호원이던 마르코빅이라는 남성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살해된 이유가 당시 총리였던 퐁피두의 부인 클로드의 외도 사실을 마르코빅이 알고, 이를 외부에 발설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실제 마르코빅의 살해범과 살해 이유는 밝혀진 것이 없지만, 퐁피두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관련된 소문은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퐁피두에 이어 대통령직에 오른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공인된 바람둥이였다. 파리에 있는 살롱의 수만큼이나 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내가 장관이었을 때는 일부 여성들이 나를 거절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단 한 명도 거절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1974년 여배우 마를렌 조베르의 집을 방문해 밀회를 즐긴 후, 손수 페라리 자동차를 몰고 엘리제궁으로 들어가다가 우유배달차와 추돌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지스카르 데스탱의 자동차 옆자리에는 조베르가 있었다는 소문이 확산돼 나갔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대놓고 ‘두 집 살림’을 한 경우이다. 열혈 사회당 당원이었던 다니엘과 결혼한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미술사학자인 안 팽조와 외도를 했고, 1974년에는 딸 마자린을 낳았다. 1981년 취임 후에도 팽조와의 관계는 계속됐다. 미테랑은 실제 재임 기간 중 대부분의 밤을 엘리제궁이 아닌 팽조의 집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테랑의 외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일부 매체가 이를 보도했지만, 주요 언론들은 이것이 사생활에 관한 것이라며 보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르 몽드는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직무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한, 대통령의 외도는 국민의 알권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자크 시라크는 혼외자 소문이 따라다녔다. 일본 왕실과 관계가 있는 여성과 비밀 연애을 하며 딸을 낳았다는 풍문이 있었다. 실제 시라크는 거액이 예치된 일본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 딸과 함께 생활하기 위한 자금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또 모로코 여성과의 사이에 아들을 두고 있다는 소문도 지금껏 따라다니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현직일 때 이혼과 재혼을 한 대통령으로 기록돼 있다. 2007년 취임 당시 부인이었던 세실리아 아티아스는 사르코지가 파리 근교 뉘 쉬르 센느 시장일 때 결혼식 주례를 선 신부였다. 하지만 이후 이 사르코지와 세실리아는 맞바람을 피웠고, 실제 대선 당시 세실리아는 선거운동을 거의 돕지 않았다. 결국 취임 몇 달만에 두 사람은 갈라섰다. 이혼 후 사르코지가 새 퍼스트페이디로 맞아 들인 이가 이탈리아 출신의 모델 겸 가수였던 카를라 부르니였다.       대통령 재임 중 결혼한 카를라 브루니와 니콜라 사르코지.   올랑드는 국립행정학교(ENA) 동기생인 세골렌 루아얄과 약 30년간 동거하며 4명의 자녀를 낳았다. 이들은 정식 부부관계는 아니었다. 정치적 입지는 루아얄이 더 탄탄했다. 루아얄은 2007년 대선에 사회당 후보로 나서 사르코지에 패했다. 올랑드는 당시 사회당 총재로서 루아얄의 선거 운동을 돕기는 했지만, 이미 그 때 정치부 기자 출신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루아얄이 대선에서 패배한 지 몇 달되지 않아 올랑드는 루아얄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트리에르바일레르와 공식적인 동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도 올랑드가 여배우 가예와 밀애를 즐겨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종착역으로 향하는 분위기이다.   프랑스 정치인에는 불륜도 경쟁력이다?     유독 프랑스 정치인 사이에서 이성과 관련한 스캔들이 불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개방적인 성(性)문화를 꼽을 수 있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이른바 ‘양다리’는 도덕적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에는 관대하다. 이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남녀 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정치인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그 동안 정치인의 스캔들을 사생활로 묵인해 온 언론의 탓도 있다. 프랑스 언론은 영국이나 미국 언론과 달리 정치인의 이성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대통령의 여성 편력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이를 정면에서 다룬 적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분위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고위 공직자의 사생활은 공적 영역에 속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요 언론들도 이번 올랑드 스캔들은 비중있게 다루었다.   좀더 근본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2006년 프랑스에서 ‘섹서스 폴리티쿠스(Sexus Politicus·섹스형 정치인간)’라는 책이 출판됐다. 두 명의 탐사전문 기자인 크리스토프 뒤부아와 크리스토프 들루아르가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해서 역대 대통령과 주요 정치인의 여성 편력을 다룬 것이다. 그 동안 시중에 떠돌던 풍문까지도 모두 기술했다.   저자인 뒤부아는 프랑스 정치인의 여성 편력이 유별난 이유를 권력욕에서 찾았다. 그는 “권력을 쟁취하는 것과 여성을 획득하는 것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전통이 프랑스에 있다”며 “많은 여성과 관련한 무용담은 정치적 성공과 같이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적었다. 또 성적인 매력이 있는 남성이 여성을 쟁취하고, 결국 유권자에게도 인기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남성우월주의에서 비롯했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부진한 편이다. 정부와 기업의 주요 직책을 대부분 남성이 장악하고 있다. 결국엔 고위직 남성의 여성 문제에 대해 일반인들은 관심을 갖지 말라는 무언의 합의가 프랑스 사회에 존재한다는 해석도 있다.    
108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한두마디 댓글:  조회:7049  추천:10  2014-01-14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한두마디   김희수       조선족사회의 독서량이 줄어든다고 책을 읽으라고 권하면 어떤이들은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해 글을 읽는 세상인데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를 하느냐고 반박한다.   이런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智能手机)을 통해 독서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가?”하고 생각이나 해보았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스마트폰 사용자들 대부분은 문자메시지, 게임 등에 정신을 팔지 독서를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일부 누리군(누리꾼)들이 뉴스나 포토, 유머, 만화, 영화, 드라마, 좋은글, 인터넷소설 따위를 둘러 볼 정도라고 할가? 물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리용해 유용한 지식을 쌓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극소수이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진정으로 지식을 넓혀주는 유용한 책은 도서관이나 서점에 있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벗어나 종이로 된 책을 들고 읽어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유혹에서 벗어나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참된 독서를 할수 있다.   이래도 책을 읽으리고 권고하는 사람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할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외래어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말라고 하면 또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한다. 누가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우리 언어가 우리 민족을 위해 존재하는것이지 외국인을 위해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외래어를 람용하는것이야말로 대중의 언어사용에 혼란을 조성하고 신성한 우리 민족언어를 파괴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행위가 아닐가?   맹몽적으로 새로운것을 따른다고 다 시대앞에서 달리는것이 아니다. 새로운것이 나타날 때마다 그 속에서 알맹이는 접수하고 찌꺼기는 버릴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그런 찌꺼기를 버리라고 권고하는 사람을 덮어놓고 시대에 뒤떨어졌고 말하는 사람을 시대에 앞서간다고 말할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덮어놓고 류행을 따라하면 시대에 앞서가는것인줄로 안다. 류행감기도 따라하면 시대에 앞서간다는 식이다. 외래어를 쓰고 스마트폰만 들고다니면 시대에 앞서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마트폰중독을 주의하라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케케묵은 사고방식을 버리란다.   얼마전에 복주의 모 대학에 재학중인데 18세의 녀대학생이 기숙사에 함께 거주하는 학생들이 다 아이폰(苹果)5S를 사가지고 노는걸 보고 자기도 사고싶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호씨성을 가진 남성에게 몸을 팔아 소원을 이루려다가 성매매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런 방식으로 시대를 따라하려는것이 시대에 앞서가는것인가? 정말로 시대에 앞서가는 사람이라면 시대에 걸맞는 사고방식부터 갖춰야 할것이다. 대학생이면 공부도 했음직한데 사고방식은 문맹을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인재가 되라고 대학에 보낸 딸이 몸을 팔았다는것을 알면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부모의 심정을 조금만 헤여려도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것이다. 스마트폰이 자기의 몸보다 귀중한것인가? 아무리 “순결이 밥먹여주나” 하면서 정조를 헐값으로 취급하는 요즘이라지만 스마트폰 하나에 옷을 벗는다는건 내 몸이 물건보다 못하다는것을 선언하는것과 같다.   정말로 시대를 따라는 대학생이라면 남들이 다 사는 스마트폰이 정 사고싶었다면 먼저 돈을 빌려서 사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든지, 참았다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이 모아지면 사든지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런 능력이 안된다면 꿈도 꾸지 말아야 했다. 잠시 단념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꼭 남들보다 먼저 신식 스마트폰을 사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공부에 더 힘을 써야 했다.   스마트폰이 정조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대학생이 스마트폰을 들었다고 시대에 앞서가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조의 문을 열어가는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다.      
107    강청때문에 말에서 떨어져 오른팔을 다친 주은래 댓글:  조회:7149  추천:0  2014-01-13
강청때문에 말에서 떨어져 오른팔을 다친 주은래   (번역)       1939년 7월 10일 아침에 모택동은 갑자기 두곳의 청첩장을 받았는데 하나는 연안마레학원에서 보낸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공중앙당학교에서 보낸것이였다. 모택동은 주은래를 보고 말했다. “은래, 당신은 대후방에서 왔으니 바깥형세에 대해 잘 알고있잖소. 모두들 당신의 보고를 듣고싶어 할거요. 당신이 나를 도와 한곳으로 가주오. 내가 마레학원에 가겠으니 당신은 당학교로 가오.” 그때 곁에 있던 강청도 따라가겠다고 졸라댔다. 모택동은 “당신은 조건이 안되오!”라고 막아버렸다. 그러자 강청은 애교를 부리면서 “나도 가서 배우자고 그래요. 가게 해주세요. 네?”라고 말했다. 모택동은 하는수없이 양보하면서 말했다. “그럼 당신은 나를 따라 마레학원으로 가자구.” “당학교에서는 회의후에 문예공연이 있다던데 전 보고를 들은후 문예공연을 구경하겠어요.” 영화배우출신인 강청은 문예공연을 매우 좋아했다. 모택동은 시끄럽다는듯이 손을 흔들면서 “그럼 당신은 주부주석과 함께 가오”라고 말했다. 중앙당학교로 가려면 연하를 건너야 했다. 그 시기 연하에는 다리가 없었다. 그날은 간밤에 내린 비로 하여 강물이 불어서 자동차가 강을 건널수 없었다. 모택동은 왕래음을 불러 자신이 타던 대청마를 가져와 주은래를 타게 했다. 이 대청마는 모택동을 따라 2만 5000리장정을 했기에 산길을 걷고 강을 건너는데 매우 경험이 있었다. 모택동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자신의 경호참모 장택민을 불러 주은래를 보호하게 했다. 원래 장택민에게도 말이 있었지만 강청에게 양보했다. 연하를 건널 때 물은 무릎을 넘어왔다. 왕래음은 주은래의 말고삐를 잡고 앞에 서고 강청은 말을 타고 뒤를 따랐다. 장택민은 맨 뒤에서 앞사람들을 살피면서 걸어갔다. 무사하게 강을 건넌 왕래음은 주은래의 말고삐를 놓고 모래톱에서 신을 신었다. 그때 갓 강을 건넌 강청은 갑자기 사기가 나서 두발을 힘껏 모으면서 말에 채찍질을 했다. 그러자 말은 맹렬한 속도로 네굽을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대청마와 강청이 탄 말은 원래 한쌍이였다. 강청의 말이 달리자 대청마도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주은래는 말고삐를 꽉 잡았다. 강청의 말과 주은래의 말은 강가로 나는듯이 달려갔다. 강청의 말은 방향을 돌려 강안의 골목으로 달렸다. 말이 달리는 소리에 놀란 마을의 개들이 미친듯이 짖어대며 달려왔다. 대경실색한 강청은 말에 채찍질을 가했다. 말은 급한 김에 밭사이의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주은래가 탄 말도 강청의 말을 뒤따라 달렸는데 속도가 빨라 앞의 말과 부딪칠 기세였다. 이 아슬아슬한 순간에 주은래는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대청마는 눈앞에 큰 구덩이가 보이자 급히 피하려다가 주은래를 말에서 떨어뜨렸다. 주은래는 말에서 떨어지면서 땅바닥에 돌이 보이자 급히 오른손을 내밀어 땅을 짚었다. 결과 오른팔이 골절되였다. 부상을 당한후 주은래는 극심한 동통을 참으면서 당학교의 회의실까지 걸어가서 중앙위생처에서 파견해온 의사한테서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았다. 주부주석이 달을 타고 강을 건너오다가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했는다는 소식이 중앙당학교에 쫙 퍼졌다. 모두들 이 소식을 듣고 의논이 분분했다. 특무, 한간의 공격을 당한것일가? 여태껏 공산당과 홍군의 령도자들은 종래로 이처럼 큰 사고를 당한적이 없었다. 중앙당학교의 고급반(이 반의 학원들은 모두 퇀급이상의 간부임)의 학원들은 모두 주부주석을 청한것을 후회했다. 주은래는 당학교의 병상에 누워있었는데 모택동은 그때까지 소식을 모르고있었다. 가장 급해난것은 주은래와 함께 당학교로 갔던 왕래음과 장택민이였다. 주부주석이 부상당한것을 모주석께 회보해야 하는데 강청이란 이 특수한 지위에 있는 인물이 중간에 끼이다보니 보고하기도 어렵고 보고하지 않을수도 없었다. 하지만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 왕래음은 말을 타고 양가령으로 돌아가 사실대로 모주석께 보고했다. 사실을 알게 된 모택동은 급히 비서 엽자룡을 불러서 함께 당학교로 가서 주은래를 만나보고 치료를 잘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강청을 불러서 “당신이 얼마나 큰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하고 꾸짖었다. 강청은 자신이 잘못했는지라 찍소리도 못하고있다가 멀리 피해 달아났다. 그후 강청은 오래동안 감히 양가령에게 가서 모택동을 만날 엄두를 못냈다. 주부주석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삽시에 연안성에 쫙 퍼졌다. 각 부문의 령도들과 주은래의 로전우들은 선후로 주은래의 병문안을 왔다. 주은래는 부상당한 팔이 몹시 아팠지만 참으면서 그들을 일일이 접대하면서 말했다. “내가 말을 타고 당학교로 가던 도중에 강을 건넌후 말이 구덩이에 빠지면서 말에서 떨어져 오른팔을 다쳤습니다. 지금은 치료를 받고있는중이니 곧 나을겁니다. 그러니 마음을 놓으십시오.” 그 길에 확실이 일본비행기의 폭격으로 생긴 구뎅이가 있는지라 그들은 믿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미심쩍어서 중앙경위퇀에 이번 교훈을 참답게 섭취하라고 엄숙하게 요구했다. 왕래음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중앙교도대대의 령도들은 다음부터는 수장이 말을 타던 걸어서 가던 경위원들은 반드시 말고삐를 잡고 걸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당시 연안의 의료조건은 매우 차하여 접골할수 없었다. 1939년 8월 18일에 중국공산당을 지원하러 온 인도의료대가 다시 주은래의 팔을 검사해본 결과 골절부위가 잘 잇기지 않은것을 발견했다. 주은래의 팔꿈치부분은 이미 굽혔다 폈다 할수 없게 되였고 오른팔근육은 수축되기 시작했다. 안마와 찜질을 했지만 오른팔은 쭉 펼수 없게 되여 절반 굽힌 상태에 처해있었다. 이에 중공중앙에서는 주은래를 쏘련 모스크바에 보내여 치료를 받도록 결정했다. 쏘련정부에서는 많은 고명한 의사들을 배치하여 주은래의 오른팔을 치료하게 했다. 선후로 3번 상세하게 검진한후 두가지 치료방안을 내왔다. 하나는 주골(肘骨)을 떼여내여 다시 잇는것인데 이렇게 하면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게 되지만 수술을 두차례 해야 되기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 이 방안대로 하면 만약 원래의 상태대로 회복되지 못한다고 해도 효과를 볼수 있는것은 긍정적이였다. 두번째 방안은 수술을 하지 않고 이미 아문 근육을 힘껏 당겨서 펴는 방법인데 치료를 마친다고 해도 결국에는 팔을 40~60도밖에 더 펼수 없게 된다. 이 방안은 비록 치료시간은 짧지만 아무는 효과는 좋지 않은것이다. 쏘련의사들은 첫번째 방안대로 하기를 바랐다. 그들은 자존심이 있었기때문에 환자가 굽은 팔을 하고 퇴원하는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은래는 두번째 방안을 선택했다. “나는 지금 국외에서 오래동안 치료를 받을수 없습니다. 국내에서 해야 일이 매우 많기때문입니다. 원래상태로 회복되지 못한다고 해도 그저 사업과 생활을 할수 있는 정도이면 난 만족합니다.” 주은래는 9월 19일에 크레물리궁(克里姆林宫-크렘린궁)병원에서 툭 튀여나온 작은 뼈를 잘라버리는 작은 수술을 받았다. 일주일후에 상처는 전부 아물었다. 실밥을 푼 이튿날부터 안마, 전기치료, 운동, 목욕료법 등 재활치료를 받았다. 결과 주은래는 오른팔을 45도로 굽힐수 있게 되였지만 절반 장애가 되고말았다. 주은래는 2개월동안 입원해있다가 새해가 되기 며칠전에 퇴원했다.   주은래는 1939년 9월부터 1940년 3월까지 6개월동안 쏘련에 체류하면서 많은 활동을 했다. 공산국제는 당시에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하는 모택동의 혁명리론을 믿지 않았다. 주은래는 모택동이 1939년 9월 1일에 한 《국제형세에 대한 신화일보기자와의 담화》를 공산국제에 가져다주었다. 공산국제에서는 이에 찬성을 표시했고 모택동이 정확하다고 하면서 매우 큰 지지를 해주었다. 주은래는 쏘련에 있는 기간에 임필시와 함께 중국공산당제7차대회를 열게 될 시간, 새 중앙의 선발인원 및 일부 인사문제에 대해 신중하고도 전면적으로 연구했다. 그들의 의견은 중공중앙의 원칙적인 동의를 얻었다. 모스크바에서 주은래는 모택동을 대표하여 리덕이 30년대에 중국에서 중국혁명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범한 일련의 착오에 대해 성토하면서 리덕을 제3국제에서 축출해달라는 모택동의 요구를 전달했다. 또 주은래는 쓰딸린과 만나서 쏘련에서 공부하고있는 중국렬사자녀들을 전선에 보내지 말고 잘 보호해줄것을 요구했다. 모택동은 친인에게 보내는 두통의 편지를 주은래한테 부탁했다. 한통은 아들 모안영과 모안청에게 보내는 편지였고 다른 한통은 2년전에 모택동과 다투고 쏘련에 가서 병치를 받고있는 하자진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편지에서 모택동은 “이후 우리는 동지사이요…”라고 썻다. 그해 하자진은 30살이였다. 1940년 봄에 주은래는 양복을 입고 귀국했는데 영화방영기 한대와 5부의 쏘련영화필림을 가지고왔다. 말에서 떨어져 오른팔이 장애로 된 진상에 대해 주은래는 생전에 등영초한테마저 털어놓지 않았다. 이 력사의 비밀은 38년동안 묻혀있다가 주은래가 서거된후에야 강청과 관계가 있다는것이 세상에 알려졌다.     
106    입는 컴퓨터 봇물 터지나 댓글:  조회:3537  추천:0  2014-01-11
입는 컴퓨터 봇물 터지나   2014년 IT 기기 서비스 전망…3D 프린팅·모바일 기반 산업도 각광 받을 듯   전자신문 ICT방송산업부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2012년 10월 23일 서울 여의도 IFC몰에서 열린 ‘패션 웨어러블 디바이스 친절한 노트3 + 기어 패션쇼’에서 모델이 ‘갤럭시기어’를 착용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10년이 아니라 1~2년 만에도 ICT 업계 강산이 변한다. 스마트폰이 몇 년 만에 휴대전화 시장에서 대세가 됐고, 문자메시지는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2013년에도 이론상으로만 가능했던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이 등장했고, ‘갤럭시기어’나 ‘스마트와치’ 같은 웨어러블(wearable) 기기도 선보였다.   2014년에는 어떤 정보기술(IT) 기기와 서비스가 주목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여러 연구소나 컨설팅기관이 ICT 업계 전망을 내놓는 가운데 ‘웨어러블 컴퓨터’ ‘3차원(3D) 프린팅’ ‘신종 보안 위협’ ‘모바일 기반 산업’이 공통적으로 꼽히는 분야다.   구글·애플도 가세, 대중화 시대   2014년 IT 업계 핫이슈로 예상되는 분야는 웨어러블 기기다. 2013년이 웨어러블 기기 등장을 알린 해라면 2014년은 대중화하는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는 삼성전자가 ‘갤럭시기어’를 공개하면서 웨어러블 기기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삼성전자 이전부터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하는 시도는 많았다. 갤럭시기어와 비슷한 시계류 기기만 해도 소니가 앞서 선보인 ‘스마트와치’가 있다. 좀 더 단순한 기기로는 나이키가 팔에 차는 밴드 형태로 개발한 ‘퓨얼밴드’도 있다.   높은 관심을 받는 분야지만 2013년까진 뚜렷한 성공을 거둔 제품은 없다. 하지만 2014년은 다르다. 세계 IT 시장을 이끄는 구글, 애플까지 웨어러블 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구글은 개발자 버전으로 선보였던 ‘구글 글래스’의 상용제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웨어러블 기기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던 구글 글래스가 어떤 기능을 구현하고, 소비자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애플도 ‘아이워치’를 선보일 것으로 점쳐진다. 이미 스마트워치 몇 종이 시장에 등장했지만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그럼에도 애플이 선보일 아이워치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그동안 애플이 보여줬던 혁신 이미지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삼성전자 역시 시계와 글라스 등 다양한 형태의 갤럭시기어 후속 제품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웨어러블 컴퓨터는 아직 초기 시장을 형성하는 단계로, 각 시장조사기관의 주관에 따라 시장 예측치가 적잖은 편차를 보인다”면서 “웨어러블 컴퓨터가 주류로 자리 잡지 못하고 스마트폰 주변 기기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도 있지만, 그럼에도 웨어러블 기기 시장 자체는 5년 이내에 고성장하리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2014년에는 세계적으로 기대받는 제품들이 출시를 앞둬 이들의 성과가 곧 전체 시장의 장기적 성장성을 판단하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4년 상용제품 발표가 기대되는 구글 ‘구글 글래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SK C·C는 2014년 주목할 기술로 ‘3D 프린팅’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3D 프린팅이란 프린터로 문서를 출력하듯, 3D 프린터를 이용해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다. 2013년 유튜브에 3D 프린터를 활용해 플라스틱으로 권총을 만드는 동영상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3D 프린터는 설계도만 있으면 어떤 제품이든 똑같이 만들어낸다. 그만큼 기존 제조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받는다.   다만 아직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3D 프린터 가격과 소재 비용에 대한 부담이 있다. 비용을 낮추는 것이 대중화 과제로 꼽힌다.   신종 보안 위협 대비해야   기술이 진화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수록 위협도 커진다. 스마트폰 대중화 역시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은 마치 휴대용 컴퓨터처럼 기기 안에 다양한 이용자 정보를 담고 있다. 그 때문에 스마트폰을 노린 해킹, 이용자를 노린 스미싱이 잇달아 발생했다.   실제로 미국 보안기업 NQ모바일에 따르면 모바일 악성코드는 2009년 1649건에 불과했지만, 2010년 6760건, 2011년 2만4794건, 2012년 6만5227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3년 만에 40배나 악성코드가 늘어난 것이다. 특히 모바일 환경은 개인용 컴퓨터(PC)보다 보안이 취약해 해킹 등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지닌다. 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분실에 따른 정보 유출 개연성도 높다.   모바일 정보보안은 기기 제조사에게도 최대 과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기업용 업무시장까지 확산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보안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모바일 보안 플랫폼 ‘녹스(KNOX)’를 자체 개발한 이유도 여기 있다.   각종 웨어러블 기기의 등장도 새로운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야기한다. 안경이나 시계 형태 제품을 활용한 도촬(도둑촬영)이나 도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생활 침해를 막는 개인정보 보호 기술도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스마트 기기 사용 증가에 따라 보안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모바일 환경에서 정보보안이 관심을 모은다”며 “개인정보의 효과적 활용과 보호 균형을 위한 정책적 노력도 진행돼 국내 보안시장 및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신규 시장 성장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기존에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보안위협도 우려된다. NIPA는 “지난 5년간 개인정보 유출, 디도스(DDoS) 공격, 지능형 지속위협(APT) 등 다양한 보안 이슈가 발생했다”면서 “2014년에는 이들 공격 외 새로운 보안 위협이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자지갑 서비스 활성화 여부도 관심을 끈다. 전자지갑 서비스는 스마트폰에 각종 카드와 금융 결제 기능을 통합할 수 있는 편리한 기능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편리함에 비해 사용자가 많지 않다. 기존 익숙한 결제방식 대신 새로운 기능을 선택하는 데 대한 거부감도 한 이유지만, 앞서 언급한 보안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그렇지만 모바일 커머스 시장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보안 기술 역시 발전하면서 전자지갑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주간동아)  
105    세번째 남자 댓글:  조회:3819  추천:0  2014-01-11
세번째 남자/콩트이야기   김희수     명숙이는 활자로 찍혀나온 글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해도 곧이듣는 처녀이다. 신문에서 술이 여러가지 질병을 초래한다고 하니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돼지고기에 낭충이 있다고 하니 남새만 사서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여태껏 병원문이 어느쪽에 달려있는지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 그녀가 신랑감을 고르는데까지 책대로 하다가 그만 쓴맛을 보고말았다. 한창 꽃피는 나이인 그녀는 한 남자와 약혼했는데 둘이 서로 정이 들대로 들어 “당신이 없으면 못살아”하는 노래처럼 떨어질수 없을정도까지 되였다. 그런데 명숙이가 녀성잡지에 실린 《색상으로 본 남성》이란 글을 읽은탓으로 그들의 사랑은 그만 파탄되고말았다. “…남색을 즐기는 남성은 표면상에서 랑만적인것 같지만 기실은 가장 무정한 남성이다. 그들이 나타내는 정감이 놀라울정도로 부드럽고 생활에 대한 정취 또한 도도하지만 충성심은 빵점! 이런 남성들은 자기의 장점으로 자기가 노리던 녀성을 쟁취하기만 하면 점차 그녀한테서 떨어져 다른 이상한테 관심을 가진다. 통계에 의하면 선천적으로 남색을 즐기는 남성중의 50%이상이 사랑의 배신자였다.” 여기까지 읽은 명숙이는 가슴이 떨려 안절부절못했다. 미혼부도 혹시 남색을 즐기지 않을가? 그래서 그녀는 단숨에 미혼부한테로 달려가서 다짜고짜 따져물었다. “자긴 무슨 색갈을 즐기죠?” “나말이요?” 아닌밤중에 홍두깨내밀듯한 그녀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던 미혼부는 한참후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난 특히 남색을 즐기는데 명숙이는?” 그말에 명숙이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비록 자기를 미친듯이 사랑하는 미혼부이지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남색을 즐기는 그가 정말로 충성심이 빵점이여서 앞으로 다른 녀인을 엿볼지 누가 알겠는가? 천만다행이야. 내가 이 글을 읽기를 잘했지. 그렇지 않으면 그 후과는…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러던 그녀는 다시 돌려 생각해보기도 했다. 50%이상이 사랑의 배신자라면 미혼부가 혹시 사랑의 배신자가 아닌40여%안에 들수도 있지 않을가? 하지만 그녀는 50%이상의 모험을 할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과단성있게 자신이 배신을 당하기전에 먼저 첫번째 남자와 헤여졌다. 눈물을 흘리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마음의 상처도 아물게 되자 명숙이는 두번째 남자를 만났다. 이번에는 먼저번의 교훈을 잊지 않고 첫대면에 무슨 색갈을 즐기는가부터 물어보았다. “난 남색을 제일 싫어하고 좋아하는 색갈은…” “됐어요.” 그녀는 더 듣고싶지 않았다. 지내보면서 그 남자가 모든 면에서 나무랄데가 없는것을 본 그녀는 결혼날자까지 잡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는 또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어떤 혈형의 남자와 결혼하면 좋은가》라는 글을 읽게 되였다. 그 글엔 O형인 녀성이 A형, B형, AB형인 남성과 결합하면 조화되지 않아서 자식이 혈액병을 얻게 된다고 쓰고나서 O형인 녀성은 O형인 남성을 선택하는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명숙이는 O형이였다. 신랑감은 무슨 혈형일가? 급해난 그녀는 당장에서 신랑감한테 전화를 걸어 “자긴 무슨 혈형이죠?”하고 물었다. “나말이요? AB형인데… 무슨 일이요?” “앗!” 절망한 명숙이는 비명을 지르며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그 글에 부부간의 혈형이 조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꼭 자식이 혈액병에 걸린다고 하는것은 아니라는 부언이 있었지만 신랑감이 그 “꼭”안에 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는가? 그녀는 미래에 태여날 아기가 혈액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또 눈물을 흘리면서 두번째 남자와 “빠이빠이”를 하는수밖에 없었다. “책은 참 좋아. 두번이나 날 구해주었어. 인젠 남색을 즐기지 않는 O형인 남자를 찾아야지.” 그래서 명숙이는 날마다 “O형의 남성들이여, O형인 녀성을 위해서는 제발 다른 혈형의 녀성들과 결합하지 마소서!”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하늘도 그녀의 정성에 감동되였는지 정말로 그녀마음에 딱 드는 타입인 남성을 기적같이 그녀앞에 나타나게 해주었다. “저…무슨 혈형인지 물어봐도 될가요?” “난 O형이요.” O형이라는 말에 명숙이는 기쁨을 감추며 재차 물었다. “무슨 색갈을 즐기세요?” 세번째 남자는 첫대면에 별난것을 묻는 명숙이를 흥미있다는듯이 빤히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꼭 대답해야 되오?” “네. 이건 아주 중요해요.” 그렇다면 대답하지. 난 노란색을 제일 즐기요.” “OK!” 명숙이는 너무도 기뻐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번했다. 지내보니 세번째 남자는 모든 면에서 먼저번의 두 남자를 릉가했다. 명숙이는 소원대로 세번째 남자와 결혼하여 떡판같은 아들까지 낳았다. 그런데 명숙이는 결혼후 남편이 남색을 매우 즐긴다는것을 발견했다. 방안의 장식에 대부분 남색을 사용하는가 하면 가방이나 쓰는 물건도 남색을 애용했다. “자긴 남색을 즐기는게 아닌가요?” 명숙이는 미심쩍어 따지고들었다. 그러자 남편은 빙그레 웃었다. “이제야 알았소? 난 남색을 특별히 즐기오.” “뭐라나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자긴 노란색을 즐긴다고 하지 않았나요?” “허허, 그건 그때 당신이 머리에 노란색을 염색한게 예뻐보여서 그렇게 말했던거요.” “아이고, 내 팔자야!” 명숙이는 너무도 기막히고 상심하여 가슴을 치며 울어댔다. 남편이 깜짝 놀라면서 영문을 물어보자 그녀는 《색상으로 본 남성》이란 글이 실린 잡지를 꺼내보이며 넉두리를 했다. “자신 다른 녀잘 좋아하죠? 이제 곧 절 배반하게죠? 량심없는 사람!” “허허참.” 그제야 영문을 알게 된 남편은 어이없다는듯 싱긋 웃었다. “이건 죄다 한가한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지어낸 엉터리론조에 불과하니 믿을게 못되오!” “책에 난건데 왜 엉터리겠어요? 엉터리를 어떻게 책에 내요? 비법간행물도 아닌데.” “답답한 당신, 책에 난거라고 해서 무턱대고 다 믿으면 안되오. 책도 틀린점이 있으니깐.” “책이 어떻게 틀려요? 책은 절대 틀릴수 없어요. 자긴 다른 녀잘 좋아하죠?” “기실 이 세상의 남자들은 모두 다른 녀자를 좋아한단말이요.” “무슨 이 세상의 남자들이 다 그렇겠어요? 자기처럼 남색을 즐기는 남자들만 그렇겠죠.” “남색을 즐기건 노란색을 즐기건 관계없이 세상의 남자들은 다 다른 녀자를 좋아하오. 그저 소수의 남자들만이 행동에 옮기고 대부분 남자들은 마음속으로만 좋아하는 구별이 있을뿐이요.” “그럼 자긴 ‘행동파’인가요? ‘마음속파’인가요?” “난 그저 마음속에 여보당신밖에 없는 파요!” 남편이 꼭 껴안고 애무해주자 명숙이는 다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후 남편의 일거일동을 주시해보았으나 다른 녀자를 좋아하는 낌새는 꼬물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외려 안해에 대한 충성심만이 날이갈수록 더 강렬해질뿐이였다. 책이 틀렸을가? 아니, 책은 틀릴수 없어. 아마도 남편은 그 사랑의 배신자가 아닌40여%안에 든걸거야.” “남색사건”이 지난 몇달후 그들에게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여 또 한차례의 부부전쟁이 일어났다. 명숙이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는데 급히 수혈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명숙이는 자기와 남편의 혈형이 모두 O형이여서 다행으로 여기고 헌혈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혈형검사를 하겠다는것이였다. “혈형검사는 왜 해요?” “여보, 난 종래로 혈형검사를 한적이 없기에 여태껏 자신이 무슨 혈형인지 모르고있소.” “첫대면할 때 자긴 O형이라고 했잖아요?” “그땐 모른다고 하면 당신의 반감을 살가봐 아무렇게나 둘러댔던거요.” “뭐라나요? 그럼 빨리 검사해봐요.” 검사결과 남편은 제일 꺼림직한 AB형이였다. 그래서 홀로 아버지한테 헌혈하고난 명숙이는 또 한번 “아이고, 내 팔자야”를 불렀다. 그런데 다행히 아들은 혈액병에 걸리지 않고 건실하게 자랐다. “여보, 이제부터 책에 있다고해서 뭐나 덮어놓고 그대로 믿지 말고 자기절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옳고그름을 식별하는 법을 배우오.” “책이 뭐 틀린다고 그래요? 우리 애가 혈액병에 걸리지 않은건 자기가 그 ‘꼭’안에 들지 않았기때문이죠.” “허허참, 당신은 정말 막무가내야.” “그래도 제가 책대로 했길래 자기를 만날수 있은거죠. 그렇지 않으면 첫번째 남자나 두번째 남자한테 시집갔을지도 몰라요.” “그럼 내가 세번째 남자라는거요?” “호호호. 전 아마도 세번째 남자인 자기와 백년해로 할 운명인가봐요.” 명숙이는 남편의 가슴에 살며시 얼굴을 묻었다. 그런 그녀를 남편은 꼭 껴안아주었다. (1998년)     
104    중국고대 4대 추녀 댓글:  조회:7056  추천:1  2014-01-11
중국고대 4대 추녀 번역     중국고대력사에는 서시(西施), 초선(貂蝉), 양귀비(杨贵妃), 왕소군(王昭君) 4대미녀가 있었을뿐만아니라 모모(嫫母), 종리춘(钟离春), 맹광(孟光), 완씨(阮氏) 4대추녀도 있었다.   원고시대 황제(黄帝)의 넷째부인 모모     5000년전에 황제는 치우와 싸워 이겼고 신농을 항복시켜 3대부락을 통일했다. 그때로부터 인류는 야만시대를 결속짓고 문명사회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시기에 살았던 모모는 외모가 매우 추하여 낯선 사람들이 그녀를 한번 보기만 하면 놀라서 몸을 돌려 달아났다고 한다. 가련한 모모는 어려부서부터 남들에게 우롱을 당하고 부모에게 내버려지고 이웃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자매들이 피해다녔지만 선량하고 부지런하고 사리에 밝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을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것을 락으로 여겼기때문에 사람들은 점차 그녀를 좋아하게 되고 그녀와 가깝게 지내게 되였다. 그녀가 20살이 되여도 데려가려는 남자가 없는것을 보고 사람들은 “저 불쌍한 못생긴 처녀가 한평생 시집을 못가게 되겠구나”하고 탄식했다. 어느날에 황제가 지방을 순시하다가 녀성들이 뽕을 따고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녀성이 “아이구”하고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더니 울음을 터뜨리는것이였다. 원래 그 녀성은 뱀에게 물렸던것이다. 숱한 녀성들은 곁에서 구경만 할뿐 누구도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그때 저쪽켠에서 뽕을 따고있던 처녀가 고함소리를 듣고 달려오더니 신속하게 두 녀성에게 맑은물을 떠오라고 이르고 다른 녀성들에게는 몇가지 약초이름을 알려주면서 약초를 캐오라고 시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치마자락을 찢어서 뱀에게 물린 녀성의 다리 상처웃쪽을 꽉 동여맨후 머리에 꽂았던 비녀로 상처를 벌려놓았다. 다음 엎드려서 입으로 상처의 독을 빨아내기 시작했다. 황제는 그 처녀가 외모는 몹시 추하게 생겼으나 용감하게 나서서 남을 도와줄뿐만아니라 조직능력이 강한것을 보고 신하들에게 그녀가 누군가를 알아오게 했다. 신하들이 달려가 물어보더니 그 처녀가 추녀 모모라고 알려주었다. 황제는 온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을 했다. 황제는 모모를 궁으로 데리고가서 비로 맞아들이고 그녀더러 후궁의 모든 비빈들을 관리하게 했다.     제나라 제선왕의 왕후 종리춘     종리춘의 이야기는 서한 류향이 쓴 《렬녀전》중의 《변통전》에 기록되여있다. 종리춘은 춘추전국시기의 제나라 무염현 사람이였기때문에 이름을 종무염이라고도 불렀다. 그녀는 덕행과 재주를 겸비했지만 외모가 너무 못생겨서 마흔살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다. 그녀의 이마와 두눈은 모두 아래로 오목하게 들어갔고 상하비례가 맞지 않았다. 코구멍은 우로 잔뜩 치켜졌고 목에는 남자보다 더 큰 울대뼈가 자랐으며 머리가 큰데다가 머리카락은 몇오리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피부는 숯보다 더 검었다. 종리춘은 비록 보기 흉하게 생겼지만 원대한 지향을 가지고있었다. 당시 제나라를 집정하고있는 제선왕은 정치상에서 부패했고 나라일을 잘 돌보지 못했으며 성질이 불같았다. 종리춘은 나라와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위험을 무릎쓰고 제선왕을 만나서 “지금 제나라는 사방에서 위험에 처해있나이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지 않는다면 나라가 멸망되고말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위험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제선왕은 나라를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에 감도되여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렷다. 그리고 그녀를 왕후로 봉하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정력을 몰부었다. 그후 제선왕은 나라가 위급할 때에는 추녀 종리춘을 총애했고 나라가 태평할 때에는 미모가 뛰여난 하영춘을 총애했다. 종리춘은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진나라, 연나라와 싸워서 이기기도 했다.     동한시기 현사 량홍의 안해 맹광   맹광은 거안제미(举案齐眉)라는 성어의 주인공이다. 거안제미는 안해가 남편을 깍듯이 존경하다는 뜻이다. 맹광은 남편 량홍이 집에 돌아올 때마다 밥상을 눈섭우까지 치켜올릴 정도로 존중했다고 한다. 동한 평릉사람인 맹광은 뚱뚱하고 피부가 검고 매우 못생겼지만 힘이 매우 세서 돌절구를 머리우까지 들어올렸다. 숱한 사람들이 중매를 서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 그러다보니 나이 서른살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다. 맹광의 부모는 딸한데 “왜서 시집을 가지 않으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맹광은 오래전부터 마음에 둔 남자가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원래 맹광은 량홍이라는 선비가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품행이 고상하고 박학다식하다는 말을 듣고 량홍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것이다. 량홍도 청혼하는 처녀들이 많았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절했다. 그러다가 맹광의 말을 전해드고 그녀의 뜻이 기특해 맹광과 결혼을 하였다. 결혼한 첫날밤부터 맹광은 못생긴 얼굴이 근심되여 옷치장과 얼굴화장에 신경을 썼다. 그런데 량홍이 며칠이 지나도 신부와 잠자리를 같이하려고 하지 않았다. 맹광은 궁금하여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량홍은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을 걸치고 짙은 화장을 하는 녀자가 아니라 누더기옷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라도 살수 있는 녀자였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맹광은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후부터 맹광은 화장도 않고 누더기차림으로 생활하다가 남편의 뜻에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살았다. 맹광이 남편의 인품을 존경하고 그의 의지를 따르며 극진한 내조로 집안을 화목하게 꾸렸기에 량홍이 마음놓고 학문을 파고들어 수많은 명작을 저술할수 있었다.     동진시기 명사 허윤의 안해 완씨   조위(曹魏)의 허윤은 완덕위의 딸을 안해로 맞아들였다. 첫날밤에 화촉동방을 밝히려고 신부가 머리에 쓴 붉은천을 벗긴 허윤은 신부의 못생긴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달아났는데 다시는 신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후 허윤의 친구 환범이 놀러왔다가 허윤을 보고 “완씨가 추한 외모로 자네한테 시집을 온데는 반드시 연고가 있을거야. 그러니 잘 관찰해보게”라고 말했다. 허윤은 환범의 말을 듣고 그날밤에 신방으로 들어가보았다. 그러나 신부의 못생긴 얼굴을 보자 또 달아나려고 했다. 그때 신부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허윤은 못생긴 안해한테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면서 말했다. “녀인에게는 부덕(妇德), 부언(妇言), 부용(妇容), 부공(妇功) 4덕이 있어야 하는데 당신은 어느 조건에 부합되오?” 그러자 신부가 말했다. “저에게 모자라는건 용모뿐이예요. 그런데 선비한테는 백행(百行)이 있어야 한다는데 당신은 어느 조건에 부합되는가요?” “난 백행이 모두 구비되였소.” “백행에서 첫번째로 구비되여야 할것은 덕행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색을 좋아하고 덕을 좋아하지 않으니 어떻게 덕행이 구비되였다고 할수 있어요?” 허윤은 말문이 막혔다. 그때로부터 그들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는 금슬이 좋은 부부로 되였다. 허윤이 리부랑이 되였을 때 등용한 지방관리는 모두 그와 한고향사람이였다. 그때문에 위명제는 사람을 파견하여 그들을 붙잡아갔다. 허윤이 무사에게 끌려갈 때 완씨는 맨발바람으로 뛰여가서 “명군에게는 사정을 보아달라고 애걸하지 말고 도리로 설득해야 해요”라고 부탁했다. 허윤이 잡혀간후 시댁식구들이 우는것을 보고 완씨는 “별일 없을거예요. 그이는 인차 돌아올거예요”라고 위로하면서 좁쌀죽을 끓여놓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허윤은 위명제가 아는 사람만 등용한 일을 따져묻자 안해의 부탁대로 “페하, 나라를 위해 인재를 등용하려면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나이다. 신이 한고향사람을 쓴것은 신이 그들에 대해 잘 알고있기때문입니다. 페하께서 알아보고 그들이 그 직위에 알맞지 않다고 한다면 신은 죄를 달갑게 받겠나이다”라고 아뢰였다. 위명제가 알아본 결과 허윤이 등용한 그의 고향사람들이 모두 직위에 알맞는 인재들이였다. 허윤은 정말로 완씨의 말대로 인차 풀려나서 집에 돌아와 좁쌀죽을 먹게 되였다. 그후 허윤은 진북장군으로 승진했다. 허윤은 기뻐서 부인을 보고 “이제는 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걱정이 없이 자게 되였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완씨는 “기쁜 일이 온 뒤엔 화가 따를수 있으니 조심해야 돼요”라고 주의를 주었다. 과연 그후 사마사는 허윤이 가까운 관리들과 밀모하여 반역음모를 꾸민다고 의심했다. 사마사는 없는 죄를 씌워 허윤을 악양으로 귀양을 보낸후 도중에 죽여버렸다. 사마사는 부하를 시켜 허윤이 아들이 허윤처럼 총명하면 죽여버리라고 명령했다. 완씨는 허윤의 부하한테서 사마사의 부하가 찾아온다는 말을 전해듣고 급히 두 아들을 불러놓고 “너희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하거나 분개하지도 말고 조정일에도 관심이 없는척 해야 한다”고 부탁했다. 사마사의 부하가 허윤의 두 아들을 만나보고 사마사한테 “허윤의 두 아들은 평범하여 후환이 없겠다고 아뢰였다. 그리하여 허윤의 두 아들은 살아남게 되였다.      
103    “유식”은 자멸을 부른다 댓글:  조회:6542  추천:11  2014-01-09
“유식”은 자멸을 부른다   김희수     예전에 우리 조선족사회에는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 쓰자고 주장하는 “유식”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어가 조선어보다 월등하다는 인식이 머리에 꽉 차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한문을 잘 안다는 자신의 “유식”을 뽐내기 위해 한자를 섞어서 쓰자고 주장했던것 같아 보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런 주장을 한 리유가 뭔지 다르게는 리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 쓰면 뜻이 잘 알린다는 리유를 들고 나왔지만 여태껏 우리가 한자를 섞어 쓰지 않아도 우리 글로 무슨 뜻이든지 다 잘 표현하고 전달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억지주장은 리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한자를 혼용하면 장래가 희망차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이들의 주장대로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 쓰면 “汉字를 混用하면 前途가 光明하다”로 된다. 이렇게 장기간 쓰다 쓰다 보면 결국 우리 글은 토밖에 남지 않게 된다. 물론 뜻이 어려운 단어만 먼저 한자로 쓰자고 주장했지만 만약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 쓰게 되는 경우 날이 갈수록 한자를 더 많이 쓰려고 할것은 뻔하다. 이들은 대중들이 다 뜻을 아는 단어도 “유식”을 자랑하기 위해 한문으로 쓰려고 할것이다. 즉 “女子의 武器는 眼泪이다”라고 쓰려고 할것이다. 정말로 독자들이 뜻을 리해하기 어려울가봐 념려된다면 괄호안에 한자를 더 넣어주면 될게 아닌가?   이들에게는 “녀자”도 “女子”로 쓰면 유식해보인다. 결국 “유식”이 우리 글의 자멸을 부른다는걸 생각이나 해보았는지 모르겠다.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 쓸 경우 한자로 대신했던 “사용, 장래(전도), 희망(광명)과 같은 단어는 점차 기억속에 잊어져 버릴것이다. 나중에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글에서 남는것은 토밖에 없게 될것이다.   그때에 가서는 “우리 글은 토만 배우면 된다. 토같은건 유치원에서도 다 배울수 있다. 소학교부터 우리 글을 배울 필요없으니까 우리 아이들을 모두 한족학교에 보내자”고 하는 비극이 초래될것이다. 한자를 섞어서 써야 할 정도로 우리 글이 렬등하다고 생각되면 차라리 우리 글을 버리고 한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하지?   한문을 잘 알고 유식하다면 한문으로 글을 쓰면 될것을 왜서 하필 우리 글을 잡글로 만들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글을 쓰는것이 수치스럽고 한문을 쓰는것이 월등하다고 생각되면 한문으로 글을 써서 발표하면 될것이 아닌가? 애매하게 우리 글을 애용하는 대중들에게 혼란을 조성할게 뭔가? 아마도 이들은 한족사회에 들어가 한문으로 글을 쓰라면 한족들의 발뒤축에도 가지 못하니까 조선족사회에 비집고 들어와서 유식한척 하는것일게다.   지금에 와서 우리 글에 한문을 섞어서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잠잠해졌다. 이젠 한어도 한물가고 영어시대가 도래해서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한어도 한물갔다고 하는것은 현재 한족들중에서 한어에 영문을 섞어서 쓰는 현상이 많고 또 한영문을 혼용해 쓰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은 현실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다.     지금에 와서 한어지상주의자들이 잠잠해지니 이번에는 외국어지상주의자들이 나타나서 신성한 우리 글에 외래어를 마구 섞어 쓰고있다. 우리 글이 외래어투성이가 될 정도로 렬등하다고 생각되면 차라리 우리 글을 사용하지 않으면 될것이 아닌가? 외국어가 월등하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외국어를 사용하면 되지 않겠는가? 왜 “렬등”한 우리 글에 참여해 신성한 우리 글을 어지럽히는지?   외래어를 배척하자는 말이 아니다. 외래어사용은 피면할수 없는 일이다. 이미 장기간 사용했던 외래어, 대체어가 없거나 새로 생겨난 정보통신용어, 전문용어, 기술용어 등은 잠시 외래어로 써야할것이다. 하지만 외래어를 마구 람용해서는 안된다. 우리 언어에 있는 말도 굳이 외래어로 쓰려고 하는건 외래어람용이다. 유식을 드러내려고 의식적으로 외래어만 골라 쓰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외래어를 많이 써야 유식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유식을 뽐내기 위해서는 가급적으로 외래어를 많이 쓰려고 한다. 우리 글을 모두 외래어로 만들지 못하는것을 한스러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이런 “유식”한 사람들의 주장대로 우리 언어에 있는 단어까지 외래어로 만들어 쓰면 외래어가 점점 늘어나 우리가 쓰는 글이 외래어투성이가 되고 외래어가 고유어를 대체하는 국면이 나타나 궁극적으로 외래어로 대체되였던 우리 말이 사라지는 사태를 초래하게 될것이다. 민족의 얼과 문화가 담겨있는 고유어가 사라지고 나면 장차 후대들은 우리가 지금 써놓은 책들을 리해할수 없어 묵은 국어사전을 뒤져보는 비극이 초래될것이다.   과도한 외래어사용은 스스로 자멸의 길을 선택하는것과 같다. 외국어는 외국어울타리에서 써야지 우리 글에 도입해 외래어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스스로 자기의 무덤을 파는 일이다. 유식한척 외래어를 람용하지 말자. 필경 대중들속에는 외래어의 뜻을 다 아는 “유식”한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까. 외래어도 자꾸 사용하느라면 점차 그 뜻을 알게 된다고 반박하지 말자. 그런 반박은 외래어를 쓰지 말자는 주장에는 통하지만 외래어를 람용하지 말자는 주장에는 통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선택으로 우리 글이 망하게 되는 자멸로 치닫는 행위는 이제 그만둠이 좋지 않을가?   우리 민족의 문자가 왜 위대하고 우수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이나 다 표현, 전달할수 있고 어떤 명칭이든 만들어 쓸수 있기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라이샤워(赖肖尔)와 페어뱅크(费正清) 교수는 그들의 교재에서 “한글은 아마도 오늘날 사용되고있는 모든 문자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체계일것이다”고 극찬하였다. 라이샤워와 페어뱅크는 중국에서도 잘 알려진 외교가, 중국통이다.   우리 글은 또 유네스코에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였을뿐만아니라 해마다 세계에서 문맹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유네스코는 세종대왕문맹퇴치상을 주고있다. 이 상의 명칭에 세종대왕의 이름을 단것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가장 배우기가 쉬워 문맹자를 없애기에 좋은 글자임을 세계가 인정했기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도리를 알면 예쁜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외래어사용을 자제하고 외래어를 리해하기 쉬운 우리 말로 바꿔 써야 한다. 우리 언어에 있는 단어는 우리 말로 쓰고 우리 말에 없는 단어라도 가급적 우리 말로 만들어써야 한다. 리해하기 쉽고 아름다운 우리 말을 두고 굳이 외래어를 쓸 필요가 있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한자를 쓰지 않고 외래어를 적게 쓰지만 우리 글로 무슨 뜻이든지 다 표달이 가능하지 않는가? 대한민국내에서도 외래어람용을 우려하면서 어려운 외래어를 쉬운 우리 말로 순화해서 쓰자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조선족사회에서도 우리 언어를 천대, 만대에 길이 전해내려가기 위해 외래어람용을 자제하면서 우리 말로 대체할수 있는 외래어는 가급적 쓰지 않는것이 좋지 않을가?   《회남자 원도훈(淮南子·原道训)》에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을 잘 타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진다(善游者溺 善骑者堕)”는 말이 있다. 외래어를 잘 안다고 외래어를 과도하게 우리 글에 도입하겠다고 설치다가 궁극적으로 우리 글을 망쳐놓게 될것이다.   현재는 정보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좁아지고 영어가 대세인것은 맞다. 그 충격으로 영어를 외래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어나고있지만 영어는 영어울타리에서 써야 하고 우리 글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될것이다.    
102    딸집나들이 댓글:  조회:4861  추천:4  2014-01-04
대중소설   딸집나들이   김희수   강태호는 외동딸을 시집보낸후 처음 딸집으로 갔다. 딸이 먼 해변가 도시로 시집을 갔기때문에 한번 딸집으로 행차하자해도 쉽지 않았다. 한해에 한번씩 춘절마다 딸과 사위가 왔다가면 그뿐이였다. 그런데 올해엔 딸이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희소식이 날아와서 손자를 안아보러 가야겠다고 준비를 서두르는데 뜻밖에 또 사위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였다. 워낙 몸이 불편한 그의 처 서씨는 락루하며 주저앉았고 그가 혼자서 《불쌍한 내딸아!》하며 부랴부랴 짐을 꾸려가지고 남행렬차에 올라탔다. 강태호는 농촌에서 태여나 농촌에서 자란 농사군이였지만 농사엔 재미를 못붙이고 로씨야, 한국 등 외국을 나들며 장사도 하고 품팔이도 하여 백만장자의 행렬에 들어섰다. 하지만 도시로 들어가지 않고 그냥 그 향소재지 마을에 눌러 살았다. 도시에서 살면 소비가 많아 얼마 못가서 모아둔 돈을 다 날리고 만다는것이다. 그는 그랑데령감처럼 한심한 수전노는 아니였지만 돈은 딱 써야 할 데만 썼고 가까운 사람이 좀 꿔달라고 사정해도 일전한푼 꿔주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누가 아무리 3푼리자, 5푼리자를 준대도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그 돈을 가장 든든하다고 믿는 국가 저금에 꼭 넣어두고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큰 마음먹고 딸집행차에 1만원 현금과 20만원 저금카드를 몸에 지니고 떠났다. 강태호를 실은 렬차는 역을 벗어나자 쏜살같이 달렸다. 빠른 속도로 줄기차게 달렸지만 강태호는 어쩐지 차가 느리게 가는것 같았다. 차가 두개 역을 지나자 그는 참지 못하고 두덜거렸다. 《젠장, 기차라는게 왜 이리 굼떠? 소수레를 타도 이보다 더 빠르겠어!》 《이 기차는 쾌속렬차입니다. 차창밖으로 달리는 속도를 좀 보십시오. 나는것 같지 않습니까?》 맞은 쪽에 앉은 나그네가 어이없다는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태호는 여전히 못마땅한듯 게두덜거렸다. 《에이, 기차가 아니라 개미가 기여가는것 같군!》 나그네가 재미있다는듯 태호를 보고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허허허, 그럼 손님은 비행기를 타시지 왜 기차를 타셨습니까?》 《이보시오, 돈이 없어서 침대차표도 못 끊고 이렇게 앉아가는 신세에 어떻게 비행기를 다 타겠습니까?》 《허허, 내 보기엔 손님은 돈이 많은 분 같은데요.》 《거참, 척 보면 농사군인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나같은 농민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허허허…》 《농민이라구요? 지금 농민들을 업신여길게 아닙니다. 농민들중에는 백만장자, 천만장자가 많답니다. 경제작물이요, 양식업이요, 남새재배요 하는 치부항목들로 부자가 된 분들도 있고 출국하여 떼돈을 번 분들도 있지요. 여하튼…》 《신문에 난 치부소식들을 보고 그러는구만. 그런 소식들은 대부분 허튼소리니 믿지 마시오.》 강태호는 속으로 (이 녀석이 그래도 사람보는 눈이 있어.)하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시치미를 뗐다. 나그네는 능글능글하며 그냥 말을 걸어왔다. 태호는 나그네와 이 얘기 저 얘기하노라니 시간가는줄 몰랐다. 알고보니 나그네는 연길에 집이 있는 장사군이였는데 그와는 목적지까지 동행이였다. 렬차는 밤낮 이틀을 달려서야 해변가 도시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내렸을 때는 오후 3시가 약간 지났다. 딸에게 전화를 거니 갓 출근해서 래일 아침에야 돌아온다는것이였다. 딸 애순이는 처음에는 흠칫 놀라는듯 하더니 이내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나! 아버지 오셨군요. 왜 오시기전에 전화를 안했어요?》 《내가 며칠전에 너 보러 온다고 했잖아?》 《그래도 언제 도착한다는걸 알려줘야지요. 제가 야근해서 아버지 절로는 집을 못 찾겠는데요. 어떻게 할가요?》 《금방 몸을 풀고 무슨 일을 한다구 그러냐? 쉬면서 몸조리를 해야지. 쯧쯧…》 《애아빠가 빚을 지고 죽어서 살기가 좀 바빠요. 아버지, 하루밤만 호텔에 묵으세요. 래일 아침 제가 모시러 갈게요.》 《내 걱정은 하지 말라. 네가 홀몸으로 갓난애를 데리고 살기가 어려울줄 알고 너한테 줄려고 돈 좀 가지고 왔다.》 《아이, 제가 아버지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찌 아버지 돈을 받겠어요? 제가 저절로 살수 있으니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강태호는 딸이 고생하는것이 가슴 아팠다. 그래도 딸의 목소리가 명랑하고 밝아서 저으기 안심이 되였다. 그는 역에서 가까운 려관을 찾아갔다. 공교롭게도 거기서 또 연길에 집이 있다는 나그네를 만났다. 그는 침대 둘 있는 방에 나그네와 함께 들었다. 통성명을 하자 연길나그네는 그를 강형이라고 불렀고 그는 나그네를 연길친구라고 불렀다. 려관주인이 와서 무슨 요구가 없느냐고 물었다. 손님의 요구는 뭐든지 다 들어준다는것이였다. 강태호는 아무것도 요구하는게 없다고 말했다. 주인이 나가자 연길나그네가 그에게 귀속말로 은근히 꼬드겼다. 《강형, 우리 둘이 아가씨 하나씩 부르지 않겠습니까? 여기 아가씨들이 모두 서비스 일류지요.》 《이보게, 연길친구, 여긴 노래방도 아닌데 아가씨를 불러 뭘 하겠습니까?》 《허허, 강형도 시치미를 뗄줄 아시는구려. 그러지 말고 특수서비스를 받아봅시다. 여기 아가씨들은 모두 예쁘고 몸매가 잘 빠졌을뿐만아니라 한번 부르기만 하면 끝내준답니다.》 연길나그네가 침을 꿀꺽 삼키며 꼬드겼지만 강태호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가 외국돈벌이를 나가 돈을 그만큼 모을수 있었던것도 녀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기때문이다. 로씨야에 갔을 때 모두 금발머리아가씨를 안아본다고 장사한 돈을 털어도 그만은 정조를 지켰고 한국에 갔을 때 모두 끝내준다는 윤락녀의 몸속에 피땀으로 번돈을 집어넣어도 그만은 걸려들지 않았던것이다. 연길나그네가 다시 그를 건드렸다. 《강형, 한번 재미봅시다.》 《그럼 그쪽에서나 부르시구려. 난 싫어유.》 《나만 부르면 그쪽에서는 구경만 하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함께 놀아봅시다.》 《아니, 서로 보는 앞에서 그 따위 짓을 하겠다는겁니까?》 《그게 더 좋지 않습니까? 서로 하나씩 껴안고 놀다가 나중에 상대를 바꿔가지고 즐길수도 있으니 더 자극적이지요. 사실 난 그래서 독방에 들지 않고 강형과 함께 든겁니다.》 《아니, 이 연길친구 이제 보니 아주 저질이구려!》 《허허참, 강형, 듣기 거북하게 그런 말은 하지 맙시다. 남자들은 밖에 나오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연길친구는 큰 부자는 아닌것 같은데 피땀으로 번 돈을 계집의 구멍에 망탕 집어넣자면 아깝지 않습니까? 또 마누라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강형, 난 이래 보여도 돈을 흥청망청 마구 써버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침대차표도 끊지 않고 여기까지 앉아오는걸 보면 모르겠습니까? 절약해야 할 때는 절약하고 써야 할 때는 써야지요.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살아있을 때 먹고 마시고 놀아야지요. 하지만 나는 항상 자신을 저울질 해보면서 자신의 분수에 맞게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놀지요. 마누라에게는 언제나 생활비용을 푼푼하게 준답니다. 생활이 넉넉하니까 마누라는 아무 군말도 없지요. 강형, 한평생 쥐처럼 한구멍만 파면 무슨 멋이 있겠습니까? 우린 기차에서 만난 친구지만 려관에도 함께 들었으니 이것도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내가 혼자 전부의 비용을 대겠으니 아기씨 하나만 불러다가 우리 둘이서 함께 즐겨봅시다.》 《놀려면 당신 혼자 노시오. 난 흥치가 없어요. 그러다가 병이라도 옮으면 재수없는거 아니시우? 괜히 마누라한테까지 옮겨놓았다가 경칠라구?》 《아니, 강형은 공처가 아니시우? 마누라가 그렇게 무서워요? 허허허. 그럼 아가씨는 그만 둡시다.》 연길나그네는 껄껄 웃었다. 저녁을 먹은후 강태호가 텔레비를 보려는데 연길나그네가 또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강형, 좋은 구경거리가 있는데 보지 않으려오?》 《뭘 그러는데…》 연길나그네는 가방에서 사진첩을 꺼내들고 강태호의 앞에 와서 펼쳐들었다. 그 사진첩을 바라보는 강태호의 눈이 대번에 화등잔처럼 커졌다. 사진첩에는 녀자의 가슴만 찍은 사진이 쭉 배렬되여 있었다. 연길나그네가 사진첩을 한장 한장 번지자 가지가지 류형의 젖가슴이 다 있었다. 수박처럼 커다란 젖통이 있는가 하면 탁구공처럼 빈약한 젖가슴도 있고 또 고무풍선처럼 다치면 금방 터질듯한 젖무덤도 있었다. 또한 묵모같은 예쁜 대접젖이 있는가 하면 쇠뿔같이 끝이 쀼죽한 쇠뿔젖, 병같이 길죽한 병젖, 사발모양의 사발젖, 연적같이 납작하고 작은 연적젖, 젖꼭지가 오목하게 들어간 구융젖 등 별의별 모양이 다 있었고 유두의 모양이나 색갈도 각각 달랐다. 《헉!》 태호는 흥분으로 하여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는 특히 녀자의 가슴에 집착하고있었다. 막내둥이로 응석을 받으며 자란 그는 다섯살 때까지 엄마의 젖을 빨았다. 열세살 때 그는 학교에서 돌아와 집문을 여는 순간 속옷을 갈아입던 누나의 커다란 젖통을 보고 처음 흥분을 느꼈었다. 그리고 마누라와 첫날밤에는 옷고름을 푼뒤 성급하게 젖가슴부터 헤쳐놓고 빨아댔다. 그후부터 그는 마누라의 젖통을 쥐고 자야 잠을 잘수 있었다. 《강형, 이건 진짜랍니다. 내가 디지털카메라로 직접 찍은겁니다.》 《직접 찍은거라구? 이런걸 어디서…》 《허허, 강형은 모르는구려. 이 고장엔 녀자들이 가슴만 내놓고 파는 지하장소가 있답니다.》 《가슴만 판다구? 어떻게…》 《가슴을 파는 녀자들은 문에 가슴크기만큼 두개의 구멍을 낸 곳에 서서 그 구멍으로 젖무덤을 내놓는답니다. 그러기에 손님들은 녀자의 얼굴은 물론 다른 부위도 볼수 없답니다. 손님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녀자의 젖가슴을 한바탕 빨고 만지고 즐기다 나온답니다.》 《젖이 큰 녀자면 구멍도 더 크게 내야겠군.》 《그 구멍은 자동으로 크기를 조절할수 있는 장치가 되여있어서 큰 가슴이건 작은 가슴이건 모두 젖통만 동그랗게 내놓인답니다. 강형, 우리 오늘밤 젖이나 빨러 갑시다. 거긴 성병에 걸릴 위험도 없으니 마음놓고 즐길수 있지요.》 연길나그네는 강태호의 손을 잡아끌었다. 강태호는 못이기는체하고 따라갔다. 강태호는 스스로도 그런 곳에 선뜻 따라가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는 로씨야에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거기서 장사를 한지 1년쯤 되였을 때 훈춘친구, 도문친구, 룡정친구 등이 함께 있는 방으로 로씨야처녀가 들어왔다. 강태호가 안해밖에 모르는 사내라는 소문을 들은 로씨야처녀는 일부러 가슴을 헤쳐놓고 강태호한테 마구잡이로 덤벼들었다. 그바람에 강태호는 벽쪽으로 밀려갔다. 그녀는 다른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허옇고 커다란 젖가슴을 막 드러내며 로어로 뭐라고 지껄였다. 로어에 귀가 밝은 룡정친구가 소리쳤다. 《어이, 태호, 그녀가 젖을 빨아달라네. 어서 빨아주게나!》 《으흐흐! 어서 빨아주게!》 모두 손벽을 쳐대며 웃었다. 로씨야처녀의 수박같이 커다란 젖통이 코앞에서 흔들거렸다. 눈앞에서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탐스럽고 풍만한 젖가슴을 보자 강태호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숨쉬기조차 바빴다. 《헉!》 강태호는 더 지탱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푹 주저앉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후 모두들 태호를 입에 다 들어온 떡도 못받아먹는 바보라고 놀려주었다. 연길나그네는 태호를 신비한 장소로 데리고 갔다. 택시에서 내려 그 곳으로 들어가면서 연길나그네는 물었다. 《강형은 빈젖을 빨겠습니까, 진짜로 나오는걸 빨겠습니까?》 《진짜로 젖이 나오는것도 있습니까?》 《허허, 있다뿐이겠습니까? 그런데 좀 비싸지요. 빈젖을 빨고 만지는데는 10분에 1백원이고 나오는 진짜 젖을 먹는데는 1분에 1백원이지요. 시간만 되면 자동적으로 문이 스르르 닫혀버린답니다.》 《정말로 너무 비싸군. 이건 아가씨와 진짜로 노는것보다 더 비싸지 않습니까?》 《그래도 여긴 매일 만원이여서 손님들이 줄을 선답니다. 노래방에선 별로 만지지도 못하고 아가씨에게 팁만 50원씩 날리지 않습니까? 그 돈이면 모두 이런 곳에 오겠다고 한답니다.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녀자의 젖을 빨고 만지는 재미가 또 따로 있지요. 그런데 여기선 녀자와 절대 대화를 나누지 못한답니다. 가슴을 파는 녀자들은 몸을 파는 녀자들과는 달리 얼굴이 드러나는걸 몹시 두려워하지요. 그래서 혹시 목소리가 폭로되면 진면모가 드러날 위험이 있으니까 입을 열지 않고 손님들도 혹시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지 몰라 벙어리질 하지요. 허허, 가슴만 파는 이런 장소가 생겼기에 못난 녀자도 가슴만 잘 달리면 큰돈을 벌수 있는 길이 열렸지요. 그 곳에 가면 손님들은 자기의 요구를 말합니다. 보스는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큰 젖을 요구하는 손님은 큰 젖이 달린 녀자의 방으로 안내해주고 작은 젖을 요구하는 손님은 작은 젖이 달린 녀자의 방으로 안내해주지요. 강형은 큰걸 요구합니까, 작은걸 요구합니까?》 《난 큰걸 선호하는 편이지요.》 《역시 남자군요. 강형은 빈젖을 요구합니까, 나오는걸 요구합니까?》 《빨러 온바엔 비싸더라도 진짜 나오는걸 빨아야지.》 《허허, 이제 보니 강형도 끼가 좀 있군요. 나도 역시 나오는걸로 하겠습니다.》 강태호는 5백원을 내고 5분동안의 입장권을 샀다. 8호방이 차례졌다. 8호실 문을 열고들어서니 안은 몸집이 비대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수 있을만큼 비좁았다. 마주선 나무벽을 똑똑 두드리자 자동적으로 두개의 동그란 구멍이 열리더니 그 구멍으로 두개의 젖무덤이 불쑥 나왔다. 크고 몽글몽글한 젖가슴이였는데 유두주위가 검은 자주빛이였다. 《헉!》 강태호는 솥뚜껑같은 손으로 젖통을 한손에 하나씩 잡아쥐였다. 너무 커서 잡혀쥐지 않았다. 그는 두손으로 왼쪽 젖을 먼저 잡고 탐색하듯 주위를 만지다가 입을 유두에 갖다댔다. 그리고 천천히 혀로 유두를 희롱하다가 힘껏 빨아들이자 비릿하고 찝찔한 액체가 입속에 흘러들었다. 그는 그것을 꿀꺽 삼켰다. 《헉!》 강태호는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엄마의 젖을 빠는 기분이였다. 녀자의 젖을 빨아먹어보기는 지금까지 세번째였다. 첫번째는 당연히 엄마의 젖이였고 다음은 마누라의 젖이였다. 마누라가 해산했을 때 그는 더욱 마누라의 젖에 집착하면서 딸과 함께 마누라의 젖을 나눠먹었다. 다행이 마누라의 젖이 많아서 그는 만족을 느낄수 있었다. 《어허헉!》 그는 혀로 젖무덤주위를 애무해나갔다. 그러다가 젖무덤에 유표나게 드러난 까만점을 발견하고 더욱 흥분된 그는 혀바닥으로 그 까만점을 마구 핥아댔다. 그는 다시 오른쪽 젖을 빨았다. 힘있게 흡입하자 짜릿한 액체가 기분좋게 입안을 간지럽혔다. 그는 그 맛을 아껴가면서 쭉 들이켰다. 느낌이 너무도 좋았다. 그런데 좋은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갔다. 미처 만족을 못느꼈는데 젖무덤이 안으로 쑥 들어가는것과 동시에 두개의 동그란 구멍도 자동적으로 스르르 닫혔다. 아쉬웠지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마침 연길나그네도 나오는 중이였다. 그들은 려관으로 돌아왔다. 연길나그네는 코를 골며 깊은 잠이 들었으나 강태호는 까만 점이 유표나는 젖가슴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며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던 그는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딸이 마중을 나와서 강태호는 연길나그네와 작별하고 딸집으로 갔다. 《애순아, 내 손자는 왜 안고 오지 않았느냐? 막 안아보고싶어 죽을지경인데.》 딸집으로 달리는 택시안에서 강태호가 물었다. 애순이 생긋 웃었다. 《아버진 할아버지가 되니 좋으세요?》 《그럼. 좋다뿐이겠니?》 《뭐가 좋겠어요?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면 늙었다는 표징인데…》 《사람이 늙는거야 자연의 법칙이지. 그래도 손자를 보게 되니 기분이 좋다.》 《애는 가정부에게 맡겨두고 왔어요. 제가 출근하면 가정부가 집에서 애를 봐요.》 《난 또 애를 탁아소에 맡긴다구. 월급이 얼마나 되기에 가정부를 다 쓰니?》 《그럼 어쩌겠어요. 회사엔 탁아소가 없지…》 택시는 어느새 딸집에 도착했다. 강태호는 딸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정부한테서 손자부터 빼앗다싶이 받아서 안았다. 《허허, 이 녀석이 외할아버지를 똑 떼 닮았구나! 요 내 손자야!》 《장군아, 외할아버지다. 외할아버지.》 《장군이라구? 그 녀석 정말 앞으로 장군이 될 상이로구나.》 아이는 낯선 사람에게 안기자 으앙 하고 울어댔다. 딸이 아이를 받아 안았다. 《허허, 그 녀석 낯을 가리는 모양이구나.》 그제야 강태호는 여유를 갖고 집을 둘러보았다. 객실 하나에 침실 두칸이였다. 《애아버지가 남겨놓은건 이 집 한채 밖에 없어요.》 《그래 출근하는 데는 어디냐?》 《일본에서 꾸리는 회사예요.》 《낮에 출근하는 데는 없냐? 애를 데리고 어떻게 밤일을 하겠느냐?》 《야근하면 돈이 많아요.》 《에그, 혼자서 애만 키우자해도 바쁘겠는데 야근까지 하며 무슨 고생이냐? 내 돈을 줄테니 애가 클 때까지 집에서 쉬면서 애나 봐라.》 《안돼요. 아버지 돈을 어떻게 써요.》 그때 애가 보채면서 울어댔다. 이미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은 아버지앞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젖통을 다 드러내놓고 아이에게 젖을 물려주었다. 강태호 역시 아무 생각도 없이 아이가 젖을 먹는 모습을 대견한듯이 바라보았다. 《허허, 그 녀석 잘도 먹는다.》 무심하게 딸의 젖가슴을 바라보던 강태호는 갑자기 몸을 휘청거렸다. 딸의 왼쪽 젖무덤에 까만 점이 유표나게 나있지 않는가! 《아!》 강태호는 온몸의 피가 꺼꾸로 흐르는듯 했다. ( 혹시? 이럴수가? 아닐거야. 공교로운 일치일거야. 아니야. 아니야. ) 연신 부정했다가도 ( 어쩌면 똑같은 왼쪽 가슴이지? 그리고 까만 점의 위치나 크기도 똑같아. 또 저 커다란 젖통의 모양은 너무나 눈에 익지 않는가! ) 하고 다시 의심이 꼬리를 쳐들면서 악몽을 꾸는듯 가슴이 섬뜩했다. 《아버지, 어디 불편하세요?》 시름없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다가 무심결에 아버지의 굳어진 모습을 본 딸이 놀라서 물었다. 《아, 아니…》 《그런데 왜 낯색이 이상해요?》 《아, 저…기차에 오래 앉아왔더니 피곤해서 그런가.》 《그럼 어서 주무시세요.》 딸이 가정부를 시켜 베개를 가져오게 했다. 강태호는 베개를 베고 누우면서 물었다. 《그래 너네 회사에서는 야근만 하니?》 《네. 오후에 나갔다가 자정이 넘어야 돌아와요.》 《음…》 강태호는 낮게 신음하면서 눈을 꼭 감았다. 유표나는 까만 점이 자꾸만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그 어떤 예감이 그를 못견디게 괴롭혔다. 강태호는 출근하는 딸의 뒤를 미행했다. 그러다가 도중에 놓쳐버렸다. 다음날 다시 미행해서야 끝내 딸의 종착지점을 알아냈다. 예감이 틀림없이 맞았다. 한번 왔던 곳이지만 너무나 인상이 깊은 곳이였다. 그는 악몽을 꾸는것 같았다. (딸의 젖을 사먹다니?! 으흐흐…) 그는 주먹으로 마구 가슴을 치기도 하고 머리를 마구 집어뜯기도 했다. (에익, 더러운 쌍년! 내 손자가 먹는걸 아무 사내한테나 팔아?) 그는 주먹을 휘두르며 딸년을 욕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더러운 놈은 나지. 그런 곳을 찾아간 내가 더러운 놈이지. 내가 무슨 딸을 욕할 자격이 있단말인가? ) 하고 다시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그는 발길이 가는대로 정처없이 걷다가 날이 저물자 딸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강태호는 저금소에 가서 돈을 찾아서 딸의 이름으로 20만원을 저금했다. 그리고 밤새 쓴 편지와 함께 그 저금통장을 딸의 손에 쥐여주고 간다는 말도 없이 집으로 가는 렬차에 몸을 실었다. 한편 아버지가 쓴 편지를 읽어본 애순이는 경악했다.   애순아, 이 아비는 널 볼 면목이 없구나. 이 아비는 사람이 아니다! 이 아비는 너네 집에 오는 날 밤에 가슴을 팔고 사는 장소에 가서 어떤 녀자의 젖을 사먹었단다. 그런데 그 녀자의 왼쪽 젖가슴에는 유표나는 까만 점이 있었지. 그런데 누가 알았겠니?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네 가슴에도 똑같은 까만 점이 있을 줄을. 그 어떤 예감이 들어서 몰래 너의 뒤를 미행했더니 네가 출근한다는 곳이 바로 그 장소가 아니겠니? 아아, 이건 악몽이구나! 얘야, 이 아비는 너에게 미안하다. 부탁하건대 제발 그런 일은 그만두어라.   편지가 맥없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애순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가? 애순이가 꾸벅 무릎을 꿇고 부르짖었다. 《아버지, 추한 모습 보여드려 미안해요!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께요!》    
101    아버지를 때린 아들 댓글:  조회:3330  추천:0  2014-01-04
아버지를 때린 아들   김희수     리호는 어릴 때부터 줄곧 아버지한테서 욕을 먹고 매를 맞으면서 자랐다. 욕도 보통의 욕이 아니라 《이 뒈질 새끼야!》, 《이 사람질을 못할 새끼야!》하고 집이 떠날갈듯이 질러대는 상욕이였고 매도 한두번 뺨을 치는 정도가 아니라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차며 심지어는 재떨이, 비자루, 몽둥이까지 사용하여 온몸이 멍들도록 때리고야 그만두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리호가 큰 잘못을 저지른것도 아니였다. 밖에서 놀음에 좀 탐해도 욕을 해댔고 학습성적이 약간만 내려가도 매질을 해댔다. 지난 설명절에도 리호가 대수롭지 않은 실수를 범했는데도 화를 벌컥 내며 때리려고 들었다. 그날 리호는 《명절인데 너도 한잔 먹어라》하는 친척들의 강권에 못이겨 맥주 한잔을 마셨는데 친척들이 돌아간후 아버니는 《쬐꼬만 녀석이 벌써부터 술을 처먹어?!》하고 욕설을 마구 퍼부으면서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왜 명절날에도 사람을 때리려고 합니까?》 리호는 억울하다는듯 한걸음 물러서며 불평을 토했다. 여태껏 자기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던 아들이 말대꾸를 하자 더욱 화가 치민 아버지는 《아니, 이 녀석이 어디라고 감히 대들어?!》하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주먹으로 아들의 면상을 갈겼다. 그러나 아들이 잽싸게 피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휘청거리며 앞으로 꼬꾸라질번 했다. 《아니, 이 녀석이 어딜 피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는 아버지는 몽둥이를 찾아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들이 차갑게 쏘아보며 경고했다. 《아버지, 어서 그 몽둥이를 놓으세요!》 《너 뭐라구?!》 《아버지, 내 경고하겠는데 이제부터 날 때리지 마세요!》 《뭐… 뭐야? 이 녀석…》 《나도 이젠 컸습니다! 어느때까지 날 때리겠습니까?》 《컸다고 애비한테 대들겠단 말이냐?! 후레자식!》 성난 아버지는 아들을 향해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나 아들은 살짝살짝 피하다가 한매 맞으면서 몽둥이를 빼앗아던졋다. 그리고 주먹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힘껏 들이쳤다. 아버지는 《아이쿠!》하고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니, 이 녀석이 감히 애비를 쳐?!》 아버지가 다시 달려들려고 하자 아들은 아버지의 멱살을 힘껏 틀어쥐고 무섭게 노려보았다. 《아버지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13년동안이나 나를 때려왔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아버지를 때릴 차례입니다. 난 내가 맞은것만큼 이후 13년동안 아버지를 때릴겁니다!》 아버지는 이제부터 힘으로 아들을 당할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그후부터 아버지는 아들을 때리지 못했다. 그대신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집에 좀 늦게 들어와도 때렸고 입에서 술냄새가 나도 때렷다. 아들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아버지는 탄식했다. 《결국 나의 〈욕질교육〉과 〈매질교육〉이 이런 후과를 초래했어!》(2004년 2월)  
100    심수에서 마약중독자가 된 연변처녀 댓글:  조회:4202  추천:1  2014-01-04
심수에서 마약중독자가 된 연변처녀   김희수     연변처녀 김영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5년전에 청도에 돈벌이를 떠났다가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해 상해를 거쳐 광주에 갔다가 다시 심수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녀가 심수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있은후 여태까지 3년동안 가족과 전화련계가 끊어져 있었다. 부모들은 그녀의 소식을 몰라 여태까지 근심걱정에 애태우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그녀의 사촌언니 김화가 지난 3월 중순에 심수에 일보러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녀를 만났던것이다. 일을 다 보고 남편과 함께 도시구경을 하던 중 그녀는 길이 막혀서 남편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앞의 차가 교통사고를 냈던것이다.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부딪친 두 차가 모두 몹시 파손되고 그 때문에 길에 막혀 교통이 엉망이 되여버렸던것이다. 원래 멀미가 심했던 김화는 남편보고 내려서 걸어가자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차에서 내려 걸었는데 그만 방향을 잘못 잡아서 반대 길로 걸어갔다. 얼마후 앞에 다리가 보였는데 춘풍립체교였다. 다리아래엔 자그마한 공원 같아 보였는데 거기엔 트럼프를 치는 사람도 있었고 대낮인데도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화는 쉬다가 가자고 남편을 끌어서 그들은 다리아래로 걸어갔는데 가까이서 보니 8-9명의 남녀들이 누워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잠을 자고 어떤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워낙 호기심이 강한 김화가 찬찬히 살펴보니 그 남녀들의 팔목엔 주사자리가 다닥다닥했고 옆에는 주사바늘과 피묻은 휴지가 널려있었다. 그녀는 이상한 생각에 다시 보다가 그만 몸을 오싹 떨며 남편에게 귀속말로 《여보, 저게 말로만 듣던 마약흡입자들이 아닌가요?》했다. 남편도 《가능하오.》했다. 김화는 다시 그 쪽을 보다가 담배를 피우고있는 녀자가 어쩐지 낯익어 보였다. 《어머, 저 녀자가 김영이 아닌가요?! 김영 그애…》김영을 본적이 있는 남편도 놀라는 눈치였다. 《김영아! 김영아!》 김화가 부르는 소리를 처음엔 듣지 못하던 그녀자가 거듭 소리쳐 부르자 이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김화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니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틀림없는 김영이였다. 김영은 자기들의 패거리 눈치를 보다가 손짓으로 소리치지 말라고 암시하면서 김화한테로 천천히 다가왔다. 《김영아, 너 왜 지금까지 통 소식이 없었니? 여기선 뭘 하는거니?》 김화가 너무도 뜻밖이고 너무도 반가워서 와락 끌어안으려고 하는데 김영이가 재빨리 피했다. 《언니, 날 아는체 하지 말고 낮은 소리로 말해요.》 《넌 집에서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는데 그러니? 다른 일을 다 제쳐놓고 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그러자 김영은 눈물을 훔치더니 호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김화에게 주면서 말했다. 《언니, 난 돌아갈수 없어요! 여긴 위험하니 어서 가세요! 빨리!》 김영은 김화를 재촉하고는 곧 돌아서서 자기들 패거리한테로 돌아갔다. 김화가 다시 부르려하는것을 남편이 막았다. 하지만 김화는 재빨리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종이에 적어서 김영에게 갖다주면서 꼭 련계해달라고 부탁하고서야 눈물을 흘리며 헤여졌다. 차를 타고 호텔에 돌아온 김화는 남편과 함께 김영이주던 편지봉투를 재빨리 뜯어보았다. 그것은 이미전에 써두었던 편지였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지만 어머니, 아버지께선 영원히 이 편지를 보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이 불효녀는 길을 잘못 들어서 오늘 이 지경이 되였습니다. 심수에 온후 막벌이를 하다가 힘들어서 쉽고 수입이 많은 일을 찾아하려다가 가짜 직업소개소의 함정에 빠져 몸을 망치고 매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타락한 녀자가 되고말았습니다. 처음엔 제가 죽어도 몸을 팔지 않겠다고 저항하자 그들은 저를 묶어놓고 내 몸에 마약을 주사했습니다. 그후 마약에 인이 박힌 저는 그들이 하라는대로 손님을 받았습니다. 이런 윤락녀의 생활을 하다가 저는 어느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마약에 인히 박힌 저는 집으로 돌아갈수 없었습니다. 거를 방황하다가 지금의 패거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처럼 마약 중독자들인데 낮에는 잠을 자거나 마약을 주사하고 밤에는 남자들은 도적질하고 녀자들은 매음하여 그 돈으로 독품을 구입합니다. 우리는 주로 낮에는 립체교아래에서 드러내놓고 마약을 주사하지만 누구도 우리를 어쩌지 못합니다. 저는 팔에 너무 많이 맞아서 이제는 허벅지에 주사합니다. 경찰들이 오면 우리는 신출귀몰하게 달아났다가 다시 기여듭니다. 어머니, 아버지, 만약 이 편지를 보더라도 저를 찾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저 이 딸이 죽었다고 생각하십시오. 저도 이런 모습으로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이 딸을 잊어주세요!》 편지를 읽고나서 김화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과 함께 당지 공안국에 사건을 제보했다. 하지만 경찰들이 현장에 찾아갔을 때는 그들의 패거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경찰들은 마약사용자들이 많아서 관리하기도 바쁘다고 말했다. 김화네가 심수를 떠날 때 김영이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울면서 부모한테는 자기를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고 다시는 자기를 찾지 말아달라고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변으로 돌아오는 차에 몸을 실은 김화는 눈물이 글썽해서 마음속으로 웨쳤다. 《아, 김영아, 너를 어찌하면 좋으냐?》  
99    류호란을 작두로 살해한 흉수의 끝장과 그 진실한 내막 댓글:  조회:10124  추천:0  2014-01-04
류호란을 작두로 살해한 흉수의 끝장과 그 진실한 내막 (번역)   1946년 하반년에 국민당군대는 해방구에 대한 전면적인 진공을 중점진공으로 전이시켰다. 염석산은 근 1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진중지구에 대해 소탕을 감행했다. 염석산수하부대의 72사 소장 사장 애자겸은 3개퇀의 병력을 거느리고 산서성 문수현으로 쳐들어왔다. 정황이 악화되자 당시 중공문수현당위에서는 류호란을 부분적 간부들과 함께 산으로 전이라고 통지했다.  하지만 류호란은 “저는 어리기때문에 적들이 주의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지의 정황에 대해 익숙하니 남아서 투쟁을 견지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직에서는 류호란의 요구대로 그녀를 운주서촌에 남도록 비준했다. 염석산수하부대가 쳐들어오면서 석패회(아명 석대성)는 운주서촌의 첫 괴뢰촌장으로 되였다. 석패회는 적극적으로 염석산군대에 량식과 자금을 공급해주고 정보를 제공해주면서 중국공산당을 위해 사업하는 해당일군들을 와해했다. 류호란은 지하교통원을 통해 괴로촌장 석패회의 정황을 구장 진덕조에게 회보했다. 진덕조는 또 이 일을 상급인 문수현 현장 허광원에게 보고하면서 처리방법을 물었다. 허광원은 석패회를 처단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진덕조가 무공대원들을 데리고 서산에서 내려와서 개다리촌장 석패회를 죽일 때 류호란은 망을 보면서 엄호했다. 다음날 오후에 운주서촌괴로촌공서 서기 장덕윤은 개다리촌장이 피살된 경과를자신의 추측에 근거하여 대상진에 주둔하고있는 애자겸소속부대 1영 영장 풍효익에게 보고했다. “석촌장은 팔로군 2구 구장 진덕조, 진덕조의 동생 진덕례, 운주서촌 녀공산당원 류호란 등에 의해 살해되였습니다.” 영장 풍효익과 부영장 후우인은 비밀리에 운주서촌에 내려왔다. 장덕윤은 지주 석정박의 집에서 풍효익과 후우인에게 류호란, 장년성, 석륙아, 석오칙, 장생아, 한랍길, 매란칙, 김선아 등 간부와 적극분자들을 고발했다. 운주서촌의 공산당측 농회비서였던 석오칙은 적에게 투항하면서 운주서촌의 당조직성원의 명단을 전부 알려주었다. 1947년 1월 8일 새벽에 려덕방이 거느린 복수자위대와 염석산수하부대의 1영 2련 련장 허득승이 거느린 부대는 운주서촌을 돌연적으로 습격하여 석삼괴, 석오칙, 석륙아, 장생아, 한랍길을 붙잡았다. 이미 변절자로 된 석오칙은 자신을 가짜로 붙잡는다는것을 알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랍길도 석오칙을 따라 적들앞에 무릎을 꿇고 촌의 당원과 적극분자의 정황을 밀고했다. “부녀아동구조회의 비서 류호란, 진덕조, 석세방은 공산당원입니다. 석삼괴는 팔로군쪽 사람이고 석륙아는 팔로군의 민병입니다!” 장생아도 적들앞에서 자신이 알고있는 일부 정황을 털어놓았다. 그날 저녁에 1영 영부에서는 석패회가 갑자기 암살된것은 운주서촌의 녀공산당원 류호란, 공산당측의 구장 진덕조, 진덕조의 동생 등이 손을 쓴것이라고 215퇀 퇀부에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받은 퇀부에서는 붙잡은 공산당원과 적극분자들을 모두 죽여버리기로 결정했다. 1947년 1월 11일밤에 염석산 수하부대 72사 215퇀 1영 영장 풍효익, 1영 특파원 겸 기관총련 지도원 장전보, 부영장 후우인, 복수자위대 대장 려덕방, 새로 부임된 운주서촌 촌장 맹영안, 1영 2련 련장 허득승, 기관총련 련장 리국경 등은 공산당원과 적극분자들을 처단할데 관한 회의를 열었다. 1947년 1월 12일 오전에 애자겸, 장전보, 려덕방, 허덕승 등은 부대를 거느리고 운주서촌에 들어와 모든 길목을 봉쇄했다. 석삼괴, 석륙아, 장년성, 석세휘, 진수영, 류수산은 선후로 적들에게 붙잡혀서 남관음사당밖 서쪽광장으로 끌려왔다. 적들은 촌의 군중들도 마구 광장으로 내몰았다. 류호란은 촌의 공산당원들이 적들에게 잡혀가자 급히 갓 아이를 출산한 이웃집 김종아주머니의 집에 들어가 숨었다. 그런데 거기에 여러사람이 숨어있자 류호란은 그들에게 련루될가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용감하게 남관음사당광장으로 걸어나갔다. 복수자위대 분대장 무금천은 군중들속에 류호란이 있는것을 발견하고 백점림, 온악덕과 함께 류호란을 붙잡아서 기타의 여섯사람과 함께 묶었다. 1영 특파원 겸 기관총련 지도원 장전보는 석삼괴 등 여섯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한후 류호란을 보고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자백하면 살려준다”고 했다. 그러나 류호란은 “나는 죽어도 굴복하지 않는다. 절대 투장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화가 난 장전보는 작두로 15살밖에 안되는 나젊은 녀공산당원 류호란의 목숨을 빼앗았다. 1947년 2월 2일에 왕진장군의 수하부대 359려가 문수현을 공격하자 염석산의 수하부대는 전부 무기를 던지고 투항했다. 류호란렬사를 살해한 주범중의 하나인 려덕방은 상인으로 변장하여 도망치다가 팔로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무금천은 1947년 2월 5일에 체로되여 류호란이 희생된 곳에서 처형되였고 백점림은 2월 18일에 체포되여 공안부문에 넘겨진후 처형되였다. 온악덕은 1951년에 법에 의해 관제되였다. 석희옥은 체포된후 류호란을 밀고한 죄를 승인하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에 그는 1948년에 석방되였다. 맹영안은 1947년 7월에 체포된후 병으로 감옥에서 죽었다. 한랍길은 괴뢰향공서의 지도원를 질투하다가 1947년 l 2월에 적들에게 맞아죽었다. 염석산 수하부대 215퇀 퇀장 관기화와 1영 영장 풍효익은 1948년 6월 21일에 “장란전역”에서 해방군의 총에 맞아죽었다.  1영 2련 련장 허득승은 1951년에 공안부문에 체포된후 그해 4월 4일에 처형되였다. 류호란을 작두로 살해한 원흉인 장전보는 전투에서 포로되여 로동개조를 했는데 류호란 등 7명 렬사를 살해한 사실을 숨겼기에 1950년 7월 25일에 석방되였다. 그해 겨울에 운성에서 가극 《류호란》을 공연했는데 신분을 숨기고 담배가게를 차려놓았던 장전보는 사람들의 의론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변장을 하고 극장에 들어가 가극 《류호란》을 끝까지 보았다. 가극을 보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그는 웃음을 금할수 없었다. 원래 가극중에 류호란 등 렬사를 작두로 살해한 “긴수염”을 허련장(허득승)이라고 불렀던것이다. 가극에서도 진상을 똑똑히 모르는것을 보고 그는 자신의 죄를 숨길수 있게 되였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감옥에 갇혀있던 염석산 수하부대 72사 215퇀 1영 기관총련 문서 옥련성과 215퇀 2영 부영장 부영청은 류호란을 살해한 원흉인 장전보가 신분을 숨기고 숨어있는 사실을 자백했다.  1951년 5월 8일에 운성현공안국에서는 장전보를 붙잡아서 만천현공안국에 넘겼다. 류호란을 살해한 또 다른 흉수 후우인은 반혁명분자들과 함께 폭동을 조직하다가 1951년 5월 11일에 정산현공안국 경찰들에게 체포되여 만천현공안국에 넘겨졌다. 1951년 6월 22일 오후에 장전보와 후우인은 처형되였다. 1958년 9월에 호남성에서 사업하는 진덕린(진덕조의 여섯째 동생으로서 당시에 호남성 길수현당위 조직부장으로 임명되였음)과 기타의 수난자가족에서는 공안기관에 과거 석오칙의 수상한 행위에 대해 신고했다. 공안기관에서는 신고된 재료에 대해 자세히 분석한후 그해 12월에 공안일군을 운주서촌에 파견하여 조사하게 했다. 12월 19일에 문수현공안국에서는 조사결과를 분양현(당시 문수, 분양, 교성을 합병하여 분양현이라고 했음)정법판공실에 보냈다. 1959년 6월에 중공산서성당위 서기처 서기이며 부성장인 정림이 운주서촌에 내려와 시찰할 때 이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할것을 정법기관에 지시했다. 현당위 서기는 해당일군들을 불러  연구한후 지구당위에 회보했다. 지구당위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연구한후 유능한 간부를 려순, 태원 등 10개의 주요지구에 파견하여 2개월동안 조사하여 석오칙 등 3명을 중점혐의대상으로 삼았다. 1959년 9월에 문수현의 공안일군들은 운주서촌에서 석오칙, 장생아, 석희옥을 붙잡았다. 이듬해 8월에 공안국에서는 또 밀고재료를 쓴 장덕윤을 붙잡았다. 공안부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매우 중시하면서 성, 지구, 현에서 련합으로 특별사건수사소조를 무어가지고 철저하고도 똑똑하게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60년 5월 30일에 특별사건수사소조에서는 6개월 남짓한 조사를 거쳐 마침내 석오칙, 한랍길, 장생아가 류호란을 밀고한 전부의 진상을 밝혀냈다. 1962년에 법원에서는 장생아를 유기형 10년에 처하고 석희옥을 사형에 처한다고 판결했다. 류호란렬사를 붙잡았던 온악덕은 1959년 12월 23일에 대상진에서 체포되였는데 1962년에 유기형 7년 판결을 받았다. 문수현감옥는 또 원 염석산부대 72사 정치부 주임 장칭부, 215퇀 정치실 주임 하가정, 정치실 비서 리천과, 1영 기관총련 련장 리국경, 1영 2련 3패 패장 신조승, 1패 패장 우지의 등이 압송되여왔다. 그들은 모두 응당한 처벌을 받았다. 염석산부대 215퇀 1영 2편 4패 패장 리보산은 1960년 7월 21일에 징벌이 두려워 자살했다. 1963년 2월 14일에 문수현인민정부에서는 석오칙을 총살했다. 이로써 류호란 등 7명렬사학살사건에 대한 수사와 처리사업은 전부 결속되였다.     
98    대만에서 건너 온 천재학자 림의부 댓글:  조회:5211  추천:0  2014-01-04
전체 중국인의 복지 위해 바다를 헤염쳐 건넌 경제학자 — 세계은행 부총재이며 저명한 경제학자인 림의부의 인생려정   (번역)   본명이 림정의인 림의부는 원 북경대학중국경제연구중심 주임, 교수, 박사생도사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제7, 8, 9, 10기 정협전국위원회 위원, 전국정협경제위원회 부주임, 중화전국공상련합회 부주석인 림의부는 2005년에 제3세계과학원원사로 당선되였고 현재 세계은행 수석경제학가 겸 발전경제학을 책임진 고급부행장직을 맡고있다. 1979년 5월16일에 대만에서는 금문도선전방송전방초소의 련대장 림정의가 바다에서 신비하게 실종된 사건이 발생되였다. 1년지 지난뒤 대만측은 림정의가 실종된후 사망되였다고 발표하고 유가족에게 위로금을 주었다. 가족과 친척들은 모두 림정의가 세상을 떠난 줄로만 알고 묘비까지 세웠다. 하지만 림정의의 부인 진운영은 눈물로 지새우면서도 결코 그가 죽였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당시 그녀에게는 세살된 아들이 있었고 또 임신중이였다. 몇년이 흐른뒤의 어느날 진운영은 림정의가 미국에서 류학을 하고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이 기쁜 소식에 그녀는 울면서 곧장 미국으로 달려갔다. 마침내 온가족이 극적으로 다시 만날수 있었다. 림정의는 왜서 실종되였는가? 림정의는 어릴 때부터 손중산의 “제군들에게 바라는것은 오직 중국진흥의 책임을 자신의 어깨에 지는것일뿐이다”라는 유훈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살았던 청년이였다. 그는 자신이 10억(당시의 기준)중국인들의 복지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마땅히 자신의 몸을 던져 기여하리라 결심하고있었다. 후날 림정의는 이렇게 말했다. “아편전쟁후 중국은 제국주의렬강에게 릉욕당하는 력사를 겪어야 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중국이 하루 빨리 부강해질수 있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 골몰했었다. 닉슨의 중국방문이후 나는 대륙을 중시하게 되였고 중일수교, 중미수교후에는 중국부강의 희망을 중국대륙쪽에 두게 되였다. 한명의 중국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공헌을 하려면 반드시 대륙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륙으로 가려고 마음먹은 그는 곧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금문도선전방송전방초소의 련대장이였던 그는 1979년 5월16일에 부대의 부하들에게 거짓으로 “훈련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야간점검후 반드시 자기의 방에서 머물고있어야 한다. 만약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을 발견해도 사격을 해서는 안된다. 이는 엄명이다.” 그날 부대의 대원들은 정말로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림정의였다. 림정의는 그렇게 “실종”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였다. 대만군대측은 림정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이미 림정의는 중국대륙에 성공적으로 상륙해있었다. 하지만 중국측이 림정의의 상륙사실을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기때문에 대만측도 그가 “반역죄를 저지르고 중국에 탈출한” 증거를 가지고있지 못했다. 림정의는 대륙으로 건너간후 이름을 림의부라고 고쳤다. 그런데 당시까지 림의부가 중국대륙으로 탈출할 때 롱구공 2개를 품고 해협을 헤염쳐 건넌것으로 알려지고있였다. 그러나 그 소문은 2008년에 림의부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을 때 림의부가 수영실력이 뛰여나 2000메터정도는 충분히 수영할수 있다는 부인의 증언에 의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림의부의 부모는 계속 대만에서 살고있었다. 1996년에 림의부의 어머니가 불행하게 사망되엿다. 대만정부에서 림의부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기때문에 림의부는 어머니의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것이 평생의 유감으로 되였다. 2002년에 또 림의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림의부는 대만정부에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인권과 민주”를 내세우던 민진당정부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만국방부는 대륙에 “투항”한 죄목을 들어 그의 대만방문을 반대했다. 심지어 국방부장관은 만약 림의부가 온다면 반드시 체포해 조사할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림의부의 부친장례식참석을 둘러싸고 대만사회는 찬반으로 나뉘어 의견이 분분해졌다. 결국 림의부는 대만방문을 포기하고 대신 부인을 장례식에 참석하게 했다. 1952년10월 15일에 대만 의란현에서 태여난 림의부는 대만대학에 다니다가 대학을 포기하고 대만륙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75년 2등으로 륙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생련대장을 맡았다. 다음해에 그는 대만의 정치대학 기업관리연구소 석사과정에 국방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1978년에 기업관리학 석사학위를 받은뒤 그는 다시 군인으로 돌아가 금문도선전방송 전방초소의 련대장을 맡아 외빈들의 참관을 접대하는 임무를 책임졌다. 이 부대는 전 사단에서 가장 중요한 부대로서 우수한 병사들만 선발될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장비와 복지의 수준도 가장 좋은 부대였다. 특히 이곳은 금문도에서 중국대륙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서 썰물 때가 되면 그 거리가 고작 2300메터에 불과했다. 림의부는 바로 이 기회를 리용하여 바다에서 헤염쳐서 대륙으로 건너갔던것이다. 그후 림의부는 북경대학에서 공부했다. 서방경제학리론을 거의 암송하고 능숙한 영어실력을 갖춘 그는 이미 유명한 학생으로 되였다. 1980년에 대외개방을 시작한 중국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1979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학 명예교수 슐츠였다. 당시 슐츠는 북경대학에서 강연을 하게 되였는데 그때 통역을 한 사람이 바로 림의부였다. 림의부의 통역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던 슐츠는 귀국후 곧바로 림의부를 시카고대학에 추천했다. 북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림의부는 1982년에 꿈에도 그리던 시카고대학에 가서 류학하게 되였다. 1987년에 귀국한 림의부는 개혁개방이후 해외에서 귀국한 중국 최초의 경제학박사였다. 귀국후 국무원 발전연구중심 부소장직을 맡았던 그는 4년 뒤 북경대학 중국경제연구중심 주임으로 되였다. 북경대학 중국경제연구중심은 이제까지 중국경제학연구의 중심지로 되였다. 뿐만아니라 림의부는 장성금융연구소를 설립해 중국에서의 금융체제개혁과 민영은행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있었다. 2008년 2월 4일에 세계은행 행장 로버트 졸릭은 북경대학경제학교수인 림의부를 세계은행 부행장 겸 수석경제학자로 임명했다. 림의부는 중국경제와 세계경제에 탁월한 공헌을 했다. 한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이 중등수준에 이르게 되면 경제발전방식의 전환을 순조롭게 실현할수 없게 되여 경제장성의 동력이 부족하게 되고 결국 경제가 정체된다. 이것을 이른바 “중등소득의 함정”이라고 한다. 세계은행 부총재이자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림의부는 정책과 발전방식이 타당하기만 하면 중국은 그러한 상황을 충분히 피할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중국경제가 직면한 통화팽창의 압력과 부동산거품위기 등의 문제를 적절한 거시경제정책을 조정하는것으로 해결해나가면서 동시에 장기적으로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경쟁력을 높이고 소득재분배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며 경제장성과 환경의 관계를 잘 처리해나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림의부는 주용기총리로부터 온가보총리에 이르기까지 줄곧 중국경제정책결정에서 핵심적인 두뇌역할을 하고있다. 특히 농업경제와 국유기업개혁 등의 분야에서 그의 영향력은 매우 큰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또 오랫동안 대만의 재계 및 정계인물들과 중국대륙을 련결해온 핵심인물이였다. 림의부는 2011년 7월 3월에 중국경제가 향후 20년동안에도 8%의 고속장성을 지속해 2030년이 되면 중국의 경제총량은 구매력기준으로 미국경제의 2배가 될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바 있다. 림의부는 현재 중국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에 가장 접근한 인물로 평가받고있다. 그는 “군인은 말가죽에 싸여 시체로 돌아오는것을 영광으로 삼는다. 나의 가장 큰 소망은 바로 과로로 책상우에서 죽는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는 학자로서 언론접촉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국제경제학술지에 가장 많은 론문을 발표한 중국경제학자이기도 하다.     
97    강유위와 그의 부인들 댓글:  조회:7464  추천:0  2014-01-04
강유위와 그의 부인들 (번역)       강유위(康有为)는 모순된 사람이였다. 그는 “1부1처제”를 주장했지만 자신은 본 부인 장운주외에 둘째부인 량수각, 셋째부인 하전리, 넷째부인 세즈코, 다섯째부인 료보미, 여섯째부인 장광을 선후로 맞아들였다. 1858년 3월 19일, 광동성 남해에서 출생한 강유위는 중국 근대사에서 저명한 정치가이고 사상가이며 사회개혁가일뿐만아니라 서법가이며 학자였다. 그는 외래침력자들이 다투어 중국의 령토를 강점하자 강유위는 여러번이나 광서황제에게 글을 올려 변법을 실시할것을 요구했다. 광서황제는 강유위의 글에 깊은 감동을 받고 1898년 6월 11일에 :무술변법:을 실시했지만 자희태후를 위수로 한 완고파들의 반대로 103일밖에 실시되지 못하고말았다. 강유위는 “무술변법”이 실패하자 향항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후에 또 미국으로 넘어갔다. 그는 자신의 정치주장을 선전하기 위해 미국서부로 갔다. 당시 해외화교들은 강유위가 나타나는 곳이기만 하면 떼를 지어 모여들었다. 1907년, 강유위가 강연한다는 소식이 몇십리밖에 있는 종식원에까지 퍼졌다. 종식원의 주인은 로화교였는데 슬하에 10여명의 자녀를 두고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총명하고 미모가 뛰여난 딸은 하금란이였다. 하금란은 하전리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학식이 깊은 유생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그녀는 4개 나라의 언어를 통달하였을뿐만아니라 중국문화에 대해서 익숙했으며 춤과 노래에 능했다. 하전리는 오래전부터 강유위의 전기적경력을 듣고 흠모해오던터라 강유위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 동생들을 데리고 강유위의 구국론설을 들으러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날 강유위는 화교수령의 안내하에 강단에 올라 손을 흔들면서 2시간에 달하는 격정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격정적으로 손을 흔들며 웨쳐댔다. “동포들! 제국주의 렬강들은 우리 나라를 나누어 삼키려고 발광하고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약하고 힘이 없기때문입니다. 변혁하지 않았기때문에 우리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변혁해야 합니다! 반드시 변혁해야 합니다! 변법을 실시하는것만이 나라를 멸망으로부터 구원하는 유일한 출로입니다!” 하전리는 강유위의 청산류수같은 말재주와 박학다식하고 우아한 기품에 홀딱 반해버렸다. 강유위의 연설이 끝나자 그녀는 강유위의 앞에 다가가서 공경스럽게 인사를 하면서 흠모의 마음을 토로했다. “선생님의 론술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듣고싶습니다.” 강유위는 놀란 눈길로 눈앞의 예쁘장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한떨기 해당화처럼 곱게 피여난 소녀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날밤, 강유위는 해당화처럼 탐스럽게 피여난 하전리의 얼굴이 눈앞에 삼삼거려서 도무지 잠들수 없었다. 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박식하고 어여쁜 소녀에게 정이 들었던것이다. 이튿날 그는 다른 곳으로 연설하러 떠나야 했다. 그가 짐을 꾸려가지고 주숙집문을 나서는데 놀랍게도 하전리가 문앞에 서있었다. 하전리는 그를 송별하려고 새벽이슬을 차고 몇십리길을 달려온것이였다. 강유위는 기쁨과 감격으로 하여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전리, 전리…”하고 그녀의 이름만 부를뿐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도 눈물을 머금고 강유위의 손에 자신의 주소를 적은 쪽지를 쥐여주었다. 강유위는 17세의 소녀 하전리와 애틋한 작벽을 하였다. 그후 미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연설을 하면서도 강유위는 하전리를 잊은적이 없었다. 밥을 먹을 때도 그녀의 얼굴이 눈에 삼삼거리고 잠을 잘 때에도 그녀의 얼굴이 눈에 삼삼했다. 그는 사흘이 멀다하게 하전리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젊은이처럼 글줄마다 끓어넘치는 사랑을 토로했다. 하전리도 그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의 뜻이 담긴 회신을 보내왔다. 이렇게 50세의 로인과 17세 소녀는 편지로 불타는 사랑을 주고받았다. 청정부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정부가 일떠서자 강유위는 귀국을 서둘렀다. 그는 떠나기전에 하전리와 만났다. 교교한 달빛아래 두 사람은 서로를 꼭 껴안은채 떨어질줄을 몰랐다. 소녀는 물기어린 그윽한 눈으로 강유위를 바라보더니 무엇인가 갈망하는듯 사르르 눈을 감았다. 강유위는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소녀의 입술우에 포갰다. 격렬한 키스를 나누던 두 사람은 잠시 떨어졌다. 하전리는 갑자기 옷을 벗으면서 말했다. “강선생님, 오늘밤 저는 이 몸을 선생님께 바치겠어요! 전 선생님의 녀자로 되겠어요!” 17세 소녀의 하얗고 탱탱한 가슴이 달빛아래 반짝거렸다. 강유위는 온몽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리지를 잃지 않고 끓어오르는 정욕을 참으면서 소녀의 옷을 도로 입혀주었다. “전리, 난 널 사랑해. 하지만 우린 나이 차이가 많아서 결합하려면 저애력이 많을거야. 만약 우리 둘이 결혼하지 못한다면 난 전리를 해친것으로 되는거야.” 집에 돌아간 하전리는 부모앞에서 강유위와 결혼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의 부모와 오빠, 언니들은 깜짝 놀랐다. 새파란 처녀가 처첩이 있는 로인한테 시집을 가겠다니! 부모와 오빠, 언니들이 견결하게 반대했지만 하전리는 울고불고 떼를 쓰면서 강유위가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노라고 야단쳤다. 부모는 하는수 없이 이 혼사에 동의하고말았다. 며칠후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렇게 하전리를 셋째부인으로 맞아들인 강유위는 1913년 12월에. 해외에서의 15년이란 망명생활을 결속짓고 귀국했다. 정처없이 떠돌던 그들의 류랑생활은 금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행복하게 살아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미인은 박명하다고 하전리는 성홍렬증에 걸려 1914년에 행가의 화원에서 불행하게도 2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되고말았다. 강유위는 사랑하는 셋째부인을 잃자 너무도 비통하여 밥술도 뜨지 않고 울기만 했다. 1912년, 강유위는 일본에 건너가 어느 한 별장에 거주하였는데 그때 그는 중개인의 소개로 16세 되는 일본 소녀를 하녀로 두었다. 세쯔꼬라고 부르는 일본 소녀는 신비스러운 감을 품고 중국인의 집에 들어섰다. 그녀는 병장의 호화로운 장식을 보면서 이 집의 주인이 범상하지 않은 인물이란걸 느꼈다. 일본인의 전통적인 복장인 화복을 입고 게다짝을 신은 그녀는 강유위의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가서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곱게 인사했다. 강유위가 일본소녀를 찬찬히 바라보니 눈은 좀 작은 편이였지만 입술은 앵두같고 얼굴이 하야말쑥했다. 미인은 아니지만 부끄러움을 머금은 표정이라든가 방금 피여난 꽃봉오리같은 얼굴이 매우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강유위는 일본녀성 특유의 온화함과 유순함을 가진 착하고 사리밝은 소녀를 날이갈수록 사랑하게 되였다. 어느날밤, 강유위는 소녀의 방에 가서 그녀와 후지산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중국의 만리장성과 황하, 장강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소녀가 신비함과 호기심에 도취되였을 때 강유위는 소녀를 끌어안고 연신 사랑한다고 말했다. 소녀는 놀란듯 몸을 떨었으나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온몸이 화끈 달아오른 강유위는 소녀를 끌어안고 침대우에 올라갔다…그후 한달동안 강유위는 하전리를 빈방에 둔채 하녀의 방에서 일본소녀를 안고 즐겼다. 강유위는 1913년에 귀국하여 상해에 돌아와서도 세쯔꼬를 잊을수 없었다. 그는 즉시 세쯔꼬를 초정한다는 편지를 써보냈다. 절절한 사랑이 담긴 편지를 받아쥔 세쯔꼬는 주저없이 바다를 건너 강유위의 곁으로 찾아왔다. 강유위는 너무도 기뻐서 잔치를 차리고 세쯔꼬를 넷째부인으로 맞아들인다고 선포했다. 1920년, 강유위는 항주 서호강반에 30무나 되는 “일천원”를 일떠세웠다. 그해 봄날 강유위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면서 시를 읊조리다가 풍령사앞부두에서 고기그물을 씻고있는 농가의 처녀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그 처녀는 타고난 아름다움에 매력적인 건강미가 흐르고있었다. 항주처녀가 천하미인이란 소문을 들은 강유위는 그날로 매파를 보내 혼사를 성사시켰다. 그 처녀의 이름은 장광이고 아명은 아취로서 당시 19살이였다. 5월의 푸른 계절에 강유위는 장광을 여섯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강유위와 장광은 결혼후에 서호 거룡교 18호에서 한동안 살았는데 63살의 신랑과 19살의 신부는 아침이면 배를 타고 서호를 유람했고 저녁이면 산에 올라 항주의 경치를 감상했다. 장광은 강유위가 마지막으로 총애한 부인이였다. 강유위가 1927년 3월 31일에 70세를 일기로 청도에서 세상을 떠나자 장광은 과부로 되였다. 강유위는 서예작품을 비롯한 귀중하나 물품을 만년에 총애하고있던 장광에게 맡겼다. 장광은 강유위의 유물을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있었다. 그런데 장광은 1945년에 자택에서 강유위의 유물을 도적맞히자 그 충격으로 병이 들어 사망되였다.     
96    세방살이 댓글:  조회:3424  추천:1  2013-12-29
세방살이/콩트이야기   김희수   퇴근길은 오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루일을 마치고 총망히 자기의 보금자리로 찾아가는 사람들속에 근심에 쌓여 터벅터벅 걸어가는 명호라는 젊은 사나이가 있다. 동료들이 술 마시러 가자고 끌었으나 그는 집에 급한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 그의 호주머니에는 같은 작업반에서 일하는 승호가 베껴준 유상저금당첨번호를 적은 종이 한장외에는 일전한푼도 없다. 손목시계는 팔아서 전기세와 위생비, 수도세를 물었고 자전거는 팔아서 새해분 집세에 보탰다. 결혼해 8년은 세방살이 8년이였다. 세집만 해도 아홉번 바꿨는데 아홉번 이사에 안해 순실이의 손목시계와 자전거, 결혼잔치 때 갖춘 재봉기와 세탁기를 모두 집세에 밀어넣었다. 이제 가장집물이란 이불장과 찬장, 텔레비죤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도 팔아야 할 위기에 직면하였다. 처제의 결혼잔치와 삼촌의 환갑잔치가 당금인데다가 조카의 첫돌생일까지 겹치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안해가 출근하는 공장이 문을 닫아 밥통까지 떨어지게 되였다. 《부조에 나갈 돈만해도 몇백원인데…호―》 한숨을 내쉬는 순실이의 앞에서 무기력한 명호는 《텔레비죤을 팔기요》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텔리비죤을 팔지 마! 으응…응…》 딸애가 당금 누가 빼앗아가기라고 할듯 텔레비죤을 꼭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당신은 정말…》 순실이는 딸애를 달래며 애틋하고도 야속스러운 눈길로 명호를 쳐다본다. 그런 눈길이 이젠 몇번째인지 모른다. 새해분 집세를 물지 못하여 임신한 몸으로 한 겨울에 집주인에게 쫓겨날 때도 순실이는 그런 눈길로 명호를 쳐다보았다. 그런 눈길이 말보다도 더욱 명호의 가슴을 찔러준다. 날로 초췌해가는 안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명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았다. 생활고에 부대낄대로 부대끼면서 불평 한마디 없는 안해를 대할 때마다 명호는 무능한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고지식한 자기를 만나 온갖 고생을 다 겪고있는 안해가 불쌍하기만 했다. 원래 새해에는 그에게 집이 차례질 순서였지만 공장에서는 갑자기 처한 불경기로 인해 종업원의 주택을 지을 계획을 포기해버렸던것이다. 명호가 세집에 들어섰을 때 순실이가 벌써 딸애를 유치원에서 데려다 놓고 밥을 짓고있었다. 딸애는 명호의 눈치를 슬슬 살피며 텔레비죤을 막아섰다. 기분이 잡친 명호는 저녁술을 드는둥마는둥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듯 호주머니에서 유상저금당첨번호를 적은 종이장을 꺼내 순실앞에 내밀었다. 《전번에 산 유상저금권이 있지 않소? 당첨번호가 나왔는데 어디 한번 맞춰보오.》 《우리한테 언제 그런 복이 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순실이는 서랍에서 유상저금권 두장을 꺼내 말등부터 하나하나 대조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실이가 유상저금권 한장을 높이 쳐들고 집이 떠나갈듯 환성을 질렀다. 《빨리 와보세요. 당첨됐어요! 우리 당첨됐어요!》 《보나마나 또 말등이겠지.》 《특등입니다! 특등!》 《뭐요? 그게 정말이요?!》 특등이면 1만원이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명호는 믿어지지 않아 재빨리 순실이의 손에서 유상저금권과 당첨번호를 빼앗다싶이 해서 한글자 한글자 맞춰보았다. 특등에 13075인데 유상저금권번호도 한글자도 차이 없는 13075였다. 《야, 특등에 당첨됐구나! 만세!》 명호는 미칠듯이 기뻤다! 딸애를 끌어안은 순실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함뿍 피여났다. 이 돈으로 무엇을 살가? 명호도 순실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순실이가 먼저 물었다. 《우리 이 돈으로 뭘 사겠습니까?》 《전자풍금!》 딸애가 선참으로 요구했다. 《저…》 명호는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들어 안해를 보고 말했다. 《우리 먼저 자기가 사고싶은걸 손바닥에 쓰기요. 그 다음 〈시작〉하고 동시에 손바작을 펴보는게 어떻소?》 《그게 참 재미있겠습니다!》 명호와 순실이는 각각 손바닥에 쓰고 나서 《시작!》하는 소리와 함께 동시에 손을 쭉 폈다. 서로 상대방의 손바닥에 적힌 글자를 바라보던 그들 부부는 한바탕 통쾌하게 웃고말았다. 그들의 손바닥에는 모두 똑같은 《집》이란 글자가 큼직하게 적혀져있었던것이다. 아, 얼마나 마음속으로 갈망하던 집이였던가! 1만원이면 괜찮은 위치의 30평방메터정도의 단층벽돌집을 살수 있다. 이제 곧 내집마련꿈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날밤 그들은 궁궐같은 집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은 명호가 휴식하는 화요일이였다. 아침을 먹은후 그들은 딸애를 유치원에 맡겨놓고 곧추 은행으로 향했다. 숱한 사람들이 은행문앞에 나붙은 당첨번호를 맞춰보느라고 법석거리고있었다. 그들이 사람들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할때 명호에게 당첨번호를 베껴줬던 승호가 안으로부터 나오다가 그들을 알아보고 근시안경을 추스르며 쑥스럽게 웃었다. 《명호, 어제 내가 베껴준 당첨번호 특등이 있잖아? 오늘 다시 살펴보니 한글자가 틀렸더라. 원래 번호는 13675인데 내가 가운데 6을 0으로 빗보고 잘못 베꼈더라.》 《뭐라구?!》 명호는 두 어깨가 내려앉으며 사맥이 나른해졌다. 순실이도 실성한 사람처럼 멍해있었다. 명호는 믿어지지 않아 사람들속을 비집고 들어가 다시 대조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명호는 실망해 주저앉은 안해가 더 근심되였다. 그는 재빨리 사람들속을 비집고 나와서 안해를 위안해주었다. 《순실이, 너무 괴로워 마오! 내가 앞으로…》 《앞으로는 그냥 이렇게 살지 맙시다!》 명호는 《이렇게 살지 말자》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안해가 이젠 지긋지긋한 가난에 질려 나와 헤여지려는게 아닐가? 순실이는 뜻밖에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행운을 바라지 맙시다. 우린 아직 젊습니다. 우리 자신의 두손으로 행복을 창조합시다. 전 이제 곧 장사할 생각입니다. 내 두손으로 벌어서 꼭 우리의 보금자리인 내집마련을 실현할 결심입니다!》 《순실이, 고맙소!》 명호의 눈에서 이슬이 반짝였다. 그는 안해의 손을 뜨겁게 잡고 말했다. 《나도 한몫 감당하겠소!》 《우리 손잡고 해봅시다!》 나젊은 부부는 손에 손을 잡고 자기들의 행복한 앞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1991년)     
95    파산전야에 가져가는 사람들 댓글:  조회:3561  추천:2  2013-12-29
대중소설   파산전야에 가져가는 사람들   김희수     20세기 80년대말에 신주대지에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고 시장경제가 들어서면서 수많은 국영기업들이 불경기를 맞아 “방학”하지 않으면 문을 닫고 말았다. 그 시기 어느 식료품공장도 결국은 파산되고 말았는데 지금은 이름조차 없어진 그 공장에서 그 당시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주 황당한 일들이 일어났다. 아래의 이야기들은 째이지 못하고 뒤죽박죽이 되였다. 하지만 공장이 뒤죽박죽이 된 상태여서 이야기도 따라서 뒤죽박죽이 될수밖에 없었다.   1. 문지기와 집안도적 새벽 두시, 걸상에 앉은채 쪽잠이 들었던 접수실문지기 고털보는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깨여났다. 창문밖에서 세 녀성로동자가 창문을 두르리며 소리치고있었다. “고스푸(高师傅), 어서 대문 열어줘요!” 고털보는 쪽문으로 잰내비상같은 얼굴을 내밀고 밖을 내다보았다. 꽃같이 예쁜 처녀 추매와 왈패 녀인 금자 그리고 못생긴 녀인 오나가 뭔지 모를 포대를 가득 실은 밀차를 접수실앞에 세워놓고 서있었다. 저걸 가지고 공장문을 나가려고? 고털보는 의심스러웠다. 그는 요즘 종업원들이 공장의 물건을 몰래 집으로 가져가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어떤 종업원들은 공장문을 순조롭게 통과하기 위해 장물의 일부를 갈라내여 접수실문지기에게 주군 했다. 고털보도 여러번 이런 장물을 얻어가졌었다. 하지만 야금야금 가져가는 종업원들은 가끔 있었지만 이렇게 밀차들이로 가져가는 담큰 도적은 여태껏 보지 못했다. 고털보는 씽하니 문을 열고 나가 세 녀인의 앞을 막아섰다. “이 포대안의것은 뭐요?” 고털보가 포대끈을 풀어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금자가 고털보에게로 바싹 다가서며 눈을 곱게 흘겼다. “아이, 보면 모르오? 돼지먹이요!” “밤중에 무슨 돼지먹이를 이리 많이 실어가우? 내 어디 좀 볼가?” 고털보는 포대아구리를 헤쳐고 살펴보았다. 웃부분은 하품(次品)과자거나 일하다가 바닥에 흘린 밀가루를 쓸어모은 돼지먹이가 옳았지만 밑부분은 상품으로 완성품창고에 들어가야 할 정품(正品)과자였다. 그는 또 포대 몇개를 들어서 땅에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밀차밑부에 무슨 물건을 가득 넣은 마대가 드러났다. 그 큰 마대를 헤쳐보니 안에는 전부 차입쌀이 들어있었다. 요즘은 공장에서 한창 원소(元宵)생산에 바삐 돌고있었다. 원소를 만들려면 속을 만드는 원료도 있어야 하지만 찹쌀가루가 있어야 한다. 추매와 금자, 오나는 요즘 밤에 출근하여 찹쌀가루를 내는 일을 하고있었다. 그녀들은 다른 밤대거리패들이 퇴근한 자정에 출근하여 일을 하다가 중도에 과자와 찹쌀 한마대를 실어내다가 나누어 가지려고 했다. 먼저 주일에는 돼지먹이라고 하여 다른 문지기들을 깜쪽같이 속였는데 오늘은 재수없이 고털보에게 덜미를 잡힌것이다. 공장에서는 이전에 하품과자거나 땅바닥에 흘린 원료를 쓸어모은 밀가루따위 식료품찌꺼기들을 일률로 창고에 바친 다음 다시 값을 쳐서 돼지먹이로 처리했지만 지금은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없이 가져가고싶은 사람이면 모아두었다가 일전한푼 내지 않고서도 공장문을 무사통과했다. 세 녀인은 바로 이런 빈틈을 리용하여 사욕을 채우려고 했던것이다. “흥, 이것도 돼지먹이요?” 고털보는 발로 찹쌀마대를 툭툭 차면서 세 녀인을 쏘아보았다. “보아하니 여러번 해먹은 솜씨구만. 밑엔 장물을 감추고 우엔 돼지먹이로 가리워놓고…” 다른 사람같으면 당황하여 용서해달라고 빌기라도 했을테지만 담이 큰 금자는 낯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아이, 고스푸가 돼지먹이라고 하면 돼지먹이가 되는게 아니겠소? 한번만 눈감아주오. 양?” 왈패로 소문난 금자는 고털보의 몸에 가슴을 막 들이대면서 애교를 떨었다. 금자는 마흔살이 다 되였지만 아직도 처녀때의 매력이 여전했다. 녀인의 가슴이 딱 붙어왔지만 두터운 깃털옷때문에 전기가 안통했는지 고털보의 눈길은 예쁘고 나어린 추매에게 쏠려있었다. 금자를 밀치고 추매의 가슴을 노려보던 고털보는 접수실쪽문을 열고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아니, 뭘하려고 그래요?!” 깜짝 놀란 추매가 소리질렀다. 고털보는 추매를 삼켜버릴듯이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난 공장내부의 큰 도적을 잡았다고 보위과장네 집에 전화를 걸겠어!” “제발 전화하지 마세요!” 당황해난 추매가 고털보의 손에 매달리며 애걸했다. “고스푸, 다신 안그럴테니 이번만 눈감아줘요.” 고털보는 예쁜 한족처녀의 앵두같은 입술을 노려보며 침을 꼴딱 삼켰다. “눈감아달라구? 글쎄 눈은 감을수 있는데 내 입은 어쩌겠니? 네 입으로 내 입을 막아준다면 대문을 열어줄수도 있는데…” 고털보는 늑대의 눈길로 추매를 노려보았다. 고털보의 잰내비얼굴이 가까이다가오자 추매는 질겁한듯 뒤걸음쳤다. 남자를 모르는 추매가 아니였지만 잰내비상인 고털보만은 싫었던것이다. 그때 금자가 추매의 귀가에 입을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다. 그러자 추매가 해시시 웃으며 고털보에게 다가갔다. “고스푸가 눈 딱 감고 입 꽉 다물어준다면 하라는대로 하겠어요.” 미칠듯이 기뻐난 고털보는 신바람이 나서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문지기가 푸른등을 켜주자 금자와 오나는 밀차를 밀고 당당하게 공장문을 나섰다. 고털보는 추매를 데리고 접수실로 들어가기 바쁘게 끌어안으려고 했다. 추매는 살짝 몸을 피하며 밖을 가리켰다. “누가 오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이 시간에 누가 온다구 그래? 지금 공장안에는 우리 둘 외엔 다섯 사람밖에 없어. 변전실에 당직을 서는 전공 한놈이 있고 보이라실에 보이라를 지키는 보이라공 두놈이 있고 된장직장에 계기를 보는 놈 두놈이 있지. 그외 다른 직장은 모두 비여있어. 원래 간부숙직 당번인 왕부공장장이 더 있었지만 그놈은 초저녁에 잠간 얼굴을 보이고는 녀편네의 궁둥이를 만지러 집으로 돌아갔지.” 고털보가 바싹 붙어앉으며 처녀의 엉뎅이를 살살 만지자 추매는 한발 물러나 앉으며 말했다. “그 봐요. 다섯 사람이나 있는데 그들이 불쑥 나타나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그래요?” “그런 근심은 하지두 마. 그 다섯놈은 돼지처럼 쿨쿨 자고있을거야. 만약 자지 않는다고 해도 이 시간에 접수실로 올 까닭이 없지. 정 무서우면 우리 불을 끄고…” 고털보는 전등을 끄고 어두운 곳에서 추매를 와락 끌어안았다. “추매야, 난 꿈에도 이날을 기다렸다. 너와 한번만 자봤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지. 아, 드디여 오늘…” 고털보는 추매의 입술을 찾으려고 했으나 추매가 잽사게 얼굴을 돌리는 바람에 처녀의 귀방물만 핥게 되였다. 그는 추매의 가슴을 만지려고 했으나 두터운 겨울옷때문에 잘 만져지지 않았다. 그는 급히 추매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그러자 추매가 그를 밀치면서 전등을 켰다. 방안이 밝아지자 고털보가 투덜거렸다. “제길, 불은 왜 켰어?” “련애를 하자구 그래요.” “련애? 어떻게 하지?” “서로 달콤한 말로 속삭이며 상대방을 료해하는거죠. 료해도 없이 어떻게…” “한 공장에 출근하면서 서로 잘 아는 사이에 뭘 또 료해한다구 그래? 종업원이 모두 200명밖에 안되는 공장에서 누가 누구를 모르겠니? 더구나 우리는 한 마을에서 살고있지 않느냐?” 고털보는 씩씩거렸다. 내키지 않았지만 추매가 종알거리면서 참새처럼 쉴새없이 횡설수설 늘여놓는 말을 들어야 했다. 건성으로 응대하고 듣고있던 고털보는 더는 못견디겠는지 또 달려들었다. “추매야 련애는 그만하고 이제 시작하자. 응?” “이걸 놔요! 점잖지 못하게 왜 이래요?” “아니?! 너…가만있지 못하겠니?” “저리 썩 비켜요! 이만하면 동무를 잘해줬으니 고마운줄 알아요. 난 집으로 돌아가겠어요!” “흥! 몸을 빼려고? 도둑년같으니!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으면 난 널 고발할테다!” 추매한테 거절을 당하자 고털보는 펄쩍 성을 내며 위협했다. 그러나 추매는 겁나는 기색이 아니였다. “고발하겠으면 해요. 고스푸도 우리와 한동아리인데 두려울게 뭔가요?” “허튼소리, 내가 어떻게 너와 한동아리란 말이냐?” “우리가 공장물건을 도적질해 나가는걸 알면서도 문을 활짝 열어준건 누구예요?” “그건…하지만 난 이렇게 말할거야. 난 너희들이 찹쌀을 도적질하는걸 발견하고 못나가게 막았는데 너희들이 어떤 남자들이랑 짜고들어 강제로 날 접수실에 묶어놓고 나갔다구 말이야. 여기 마침 바줄도 있어. 난 이제야 저절로 바줄을 풀고 사건을 제보하는거라고 할테야. 보위과장네 집에도 전화하고 파출소에도 전화할테야!” 고털보는 전화기를 들고 추매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추매는 겁나할 대신 코웃음을 쳤다. “흥! 어디 고발해봐요! 금자아줌마랑 오나아줌마랑 밀차를 밀고 먼저 고스푸네 집으로 갔거든요.” “우리 집엔 왜?” “금자아줌마는 밀차의 과자와 찹쌀을 고스푸네 집에도 한몫 갈라내여 나눠줄거예요. 고스푸의 부탁을 받고 왔다면 고스푸네 집에서도 받아줄거예요.” “내가 언제 그런 부탁을 했어?” “고스푸가 다른 사람한테도 이런 장물을 받아먹은걸 모르는줄 아세요? 금자아줌마, 오나아줌마, 나 이렇게 셋이서 고스푸의 부탁을 받았다고 딱 잡아떼면 고스푸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을거예요. 어때요? 앞으로도 우리 합작하지 않겠어요?” 고털보는 다리맥이 탁 풀렸다. 지금이라도 물건을 받지 말라고 집에 전화하면 늦지 않겠지만 맹랑하게도 집에 전화가 없다. 공장장이나 보위과장네 집에 전화할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도적과 한동아리로 몰리지 않으면 강간미수범으로 잡힐수도 있었다. “빠이빠이!” 추매는 고털보에게 비웃는 손짓을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고털보도 따라 나갔다. 추매는 풍만한 궁둥이를 보기좋게 흔들며 공장문을 나서고있었다. “씨팔년, 너한테 속았구나!” 고털보는 닭쫓던 개 지붕쳐다보듯 멀리 사라지는 추매의 예쁜 궁둥이만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2. 강장장의 아들과 녀도적   밤대거리 퇴근후에 온 공장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더구나 뒤마당은 어두컴컴하여 무시무시한 기운까지 감돌았다. 워낙 뒤마당에도 촉수 높은 전등을 켜놓았으나 누군가의 돌팔매에 전등알이 명중되군 했다. 괴상한것은 전공들이 전등알을 바꿔넣으면 그날로 박살나군 했다. 처음에는 부지런히 전등알을 갈아대던 전공들도 나중엔 지쳤는지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지금처럼 어두컴컴하다. 이런 어두운 곳에서는 귀신과 도적이 활동하기가 제일 좋은 법이다. 자정이 지났을 때 귀신인지 도적인지 모를 검은 그림자가 제과직장에서 빠져나와 공장의 뒤마당으로 슬금슬금 걸어가고있었다. 어깨에 멘 물건이 무거운지 자꾸만 올리추면서 걸어간다. 뒤대문에 이른 검은 그림자는 메였던 물건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긴 끈을 꺼내여 한끝으로 물건포대의 아구리를 꽁꽁 동여맨후 다른 한 끝을 쥐고 날렵하게 대문우로 바라올라간다. 잠간후 대문꼭대기의 가름대를 가로 타고앉은 검은 그림자는 손에 쥔 줄을 잡아당긴다. 땅바닥에 놓여있던 물건이 허공에 들리워 줄을 따라 점점 우로 올라간다. 바로 그때 난데없는 찦차가 달려오며 두줄기의 강한 헤드라이트불빛으로 그 검은 그림자를 비추었다. 그 바람에 물건을 묶은 줄을 쥐고 당기던 검은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 검은 그림자는 예쁜 처녀 추매였다. 깜짝 놀란 추매는 물건을 끌어올리던 줄을 놓고야 말았다. 평소에는 밤중에 공장마당에서 차가 달리는 일이 없었는데 그날 추매는 재수없게도 운전수녀석에게 현장을 들켰던것이다. 공장의 몇몇 남성들이 도적질해가던 방법대로 멋지게 한번 슬쩍 해먹자던 일이 불운하게도 운전수녀석에게 발각되고 만것이다. 추매는 경을 치를 단단한 각오를 하고 아래로 도로 내려갔다. 찦차가 멎더니 운전석에서 한 사내가 나왔다. 그 사내는 음험하게 웃으며 추매한테로 다가갔다. 그 사내를 본 추매는 “쟝꺼?(姜哥)”했다. 그 사내는 강공장장의 아들 강명호였다. 명호는 뭐라고 지껄이더니 물건을 안고 처녀를 앞세우며 찦차에 올랐다. 둘 사이에 무슨 말이 몇번 오가더니 명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은 정말로 운수가 좋구나. 요렇게 미인을 껴안게 됐으니…흐흐…” “으응…사람을 놀래워놓구도 뭘…간 떨어질번 했잖아요?” 추매는 명호의 품에 안기면서 애교를 떨었다. 명호는 그런 추매를 꼭 껴안고 말했다. “너 담이 크게 그게 뭐야? 그러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어쩌자구 그래? 다신 그런 우둔한 짓을 하지 말어.” “왜 아깝나요? 공장장의 아드님이 보호해주는데 이제부터 마음놓고 더 크게 해재껴야죠.” “이 바보야! 공장의 물건이 내것두 아닌데 뭐 아깝겠니? 가져가겠으면 맘대로 가져가라. 그런데 우둔하게 훔치지 말고 다음부터 욕심하는게 있으면 나하고 슬쩍 귀띔해라. 원료가 공장에 들어오기전에 도중에서 슬쩍 한두포대씩 빼내면 쥐도새도 몰라.” “장부가 있는데 어떻게…” “그런건 내게 다 방법이 있다. 넌 그저 내 말만 고분고분 잘 들으면 된다. 씨, 여기선 멋이 없구나. 우리 집에 가서 재미있게 놀자.” “쏘우즈너(嫂子呢—오빠 각시는…)?” “그 녀잔 조선으로 마른명태 가지러 갔어. 방해될게 없으니 우리 둘이 오늘밤에 죽었다 살아났다 하면서 신나게 놀아보자!” “어머,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 얼마후 찦차는 공장문을 빠져나와 나는듯이 달려갔다. 3. 강공장장과 풍류녀인   금자는 지금 마흔살이 가까왔으나 무도장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스캔들을 달고다녔다. 그녀의 풍류적인 이야기는 많고도 많지만 그중에서 치마를 벗어 강공장장을 쫓은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그것은 그녀가 밤대거리를 하던 어느날이였다. 제과직장의 제2작업반의 녀성종업원들은 썰썰하다면서 닭알과자를 생산하는 원료인 닭알을 삶아먹자고 쑥덕공론을 하더니 곧 행동을 시작했다. 과자를 굽는 전기화로는 마치 기차굴 같았고 그 “터널”속을 잇달아 줄지어 들어가는 과자철판은 기차바곤 같았다. 철판에 짜놓은 하얀 반죽의 생과자가 입구로 들어갔다가 출구로 나올 때에는 노르스름하게 익어서 나온다. 먹는 일에는 언제나 극성인 금자는 두개의 철판에다 물을 반쯤씩 붓고 생닭알을 그득 담아서 전기화로의 입구에 밀어넣었다. 닭알은 과자와 달라서 출구로 나왔을 때 채 익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들고와서 입구에 밀어넣어을 때 강공장장이 불쑥 제과직장에 들어섰다. 마작판에서 헤여지는 길에 공장을 순시하러 나왔던것이다. 느닷없이 호랑이같은 공장장이 나타나자 녀종업원들은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출구로 닭알철판이 당금 나오려는데도 강공장장은 출구쪽에 떡 버티고 서서 과자의 품질을 검사하는지 배가 고팠던지 닭알과자를 와작와작 씹어먹으면서 떠날념을 하지 않았다. 모두들 이제 금시 시한폭탄이 폭발하듯 신경이 팽팽하여 숨을 죽이고있었다. 만약 과자 대신 삶은 닭알이 나오는것이 강장장이 눈에 뜨이면 제2작업반의 모든 성원들이 공장전체종업원대회에서 공개비판을 받는것은 물론 거액의 벌금까지 안게 된다. 출구에서 전기화로의 온도를 조절하며 과자굽는 일을 맡고있던 녀인은 “시한폭탄”이 눈앞에 보이자 “어!”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이제 10초만 지나면 “닭알폭탄”이 출구로 나와 강공장장의 눈에 뜨이게 될 아슬아슬한 순간이였다. 급한 중에 꾀가 나온다고 위기일발의 시각에 금자는 강공장장의 코앞에서 치마를 와락 벗어내리우면서 “어마나, 치마끈이 끊어졌네!”하고 화닥닥 놀란 소리를 질렀다. 과자를 씹어먹고있던 강공장장은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 금자를 바라보았다. 순간 노란 팬티와 하얀 넙적다리가 한눈에 안겨왔다.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보게 된 강공장장은 단통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황망히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새끼처럼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와 동시에 “시한폭탄”이 안전하게 출구로 나왔다. 이렇게 제2작업반의 녀종업원들은 금자의 기지덕분에 무사히 고비를 넘기게 되였다. 그런데 그날 쫓기듯 제과직장에서 나온 강공장장은 “무사”하지 못햇다. 집에 돌아가 자리에 누운 강공장장은 눈앞에 자꾸만 금자의 하얀 넙적다리와 노란 팬티가 떠올라 도무지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며칠후 직장에서 힘든 일을 하던 금자는 창고보관원으로 “승급”되였다가 얼마후에는 출납원의 자리에까지 올라앉았다. 금자의 “벼락출세”와 동시에 공장에는 쉬쉬한 소문이 나돌았다. 강공장장이 몰래 금자를 불러서 금자가 입은 노란 팬티가 보고싶다고 해서 금자가 살짝 노란 팬티를 벗어주었다는것이다.   4. 좀도둑 왕씨의 “강의”     음력설이 다가왔다. 명절이면 공장에서 접수실문지기를 휴식시키고 그 대신 숙직일군을 따로 배치했다. 숙직일군은 낮과 밤을 갈라서 낮에는 녀성, 밤에는 남성이 지킨다. 인원수는 매일마다 낮고 밤에 각각 간부 2명과 보통로동자 4~5명씩 배치한다. 사람들은 벽보에 붙은 명단을 보고 자기의 이름이 붙어있으면 자발적으로 날자에 맞춰서 나온다. 이번 음력설 숙직인 창덕이는 제시간에 공장에 나와서 낮에 숙직을 서고있는 사람들을 교대해주었다. 저녁때까지 기다려도 보이라공 왕씨만 나오고 다른 숙직일군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왕씨는 평소에는 창덕이와 별로 인사도 없이 지내는 사이인데 그날은 웬일인지 각별히 친절을 베풀며 맥주까지 대접시키는것이였다. “공장에 지금은 너와 나밖에 없구나.” 창덕이가 마지막잔을 들며 탄식하자 왕씨가 신비하게 웃으며 씨벌여댔다. “좋은 기회인데 슬쩍 해재껴야지.” 이놈도 훔치려는게 아닐가? 요즘 공장물품을 가져가는 좀도둑이 늘어나고있다는것을 창덕이는 알고있었다. 제과직장의 일부종업원들은 과자나 밀가루, 사탕가루를 야금야금 훔쳐갔고 사탕직장의 일부종업원들은 사탕이나 사탕가루를 살금살금 빼내갔으며 빵직장의 일부종업원들은 빵이나 밀가루, 사탕가루를 가만가만 가져갔다. 그런가 하면 기름튀기직장에서는 꽈배기따위를, 두부직장에서는 두부를, 우유직장에서는 우유를, 얼음과자직장에는 아이스크림을, 된장직장에서는 된장과 간장을 가져가군 했다. 일부 좀도둑들은 다른 직장의 물품을 서로 바꿔서 가져가기도 했다. 그외에도 콩기름, 입쌀, 찹쌀, 콩, 팥, 락화생, 참깨, 호두, 닭알, 각정 첨가제…등등을 가져갔다. 창덕의 의심은 옳았다. 과연 왕씨는 담이 크게도 보이라용석탄을 손잡이뜨락또르에 가득 실어서 집으로 몰고갔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빈차를 몰고 돌아온 왕씨는 창덕이를 부추겼다. “생각이 있으면 너도 가져가라.” “싫어. 공가의 물품을 맘대로 가져가서 되니?” “바보야, 남들이 해먹는판에 못가져가는게 머저리야. 우리 보이라공들이야 뭐 가져갈게 있니? 어쩌다 철관이나 마사진 부속품따위를 팔아 개추렴이나 하면 다지. 전공과 수리공놈들은 전기기재거나 낡은 기계, 철물따위를 팔아서 늘 식당놀음을 하지. 제길할, 보관원, 운전수, 위생소놈들 할것없이 해먹지 않은 놈이 어디 있다구!” “창고보관원도 해먹니?” “해먹기만 하겠니? 머리만 굴리면 창고가 금광이지. 위생소의 의사놈과 간호원년들은 약품따위를 가져다 팔아서 제 주머니에 쑤셔넣고…운전수놈들은 공가의 차를 굴리지만 제집이 넘쳐나게 공짜물건이 들어오지. 알고보면 다 해먹는 판이야.” “이건 제 지붕을 털어 불을 때는 격이 아니야? 이러다간 나중엔 한데 나앉게 되잖겠니?” “이미 한데 나앉게 된 판이야. 우리 좀도둑들이 가져가는건 아무것도 아니야. 큰 도둑들은 간부놈들이지.” “간부들도 가져간다구? 모두 자기의 우세를 리용해 가져가는데 간부들은 무엇을 가져가겠니? 책걸상, 사무용품, 차잔이나 주전자따위를 가져갈리 만무하지 않겠니? 매일 신문과 문건학습을 하면서 사상각오가 높아질대로 높아진 그분들은 가져갈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져가지 않을거야.” “넌 정말 유치하구나. 그래 옳다. 그분들은 매일 신문과 문건학습을 하면서 법을 알고있길래 우리처럼 보이는 좀도둑질은 하지 않아. 그분들은 말이야. 보이지 않게 슬쩍 해도 크게 해먹는단말이야!” 목에 피대를 세워가지고 손짓까지 하면서 큰소리로 엮어대는 왕의 “강의”는 끝이 없었다. 창덕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5. 천과장을 믿은 후과     추석을 한달 열흘을 앞두고 강공장장은 공장구락부에서 전체종업원대회를 열었다. 월병생산 40일대회전 동원대회였다. 강공장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두시간에 달하는 장편연설을 했는데 중점은 월병을 많이 생산하라는 호소령이였다. 전 공장의 상하가 일심협력하여 월병생산에 총궐기하라! 매 직장마다 두대거리를 세대거리로 늘이며 간부들도 대부분 직장에 내려가 생산로동을 지원하라! 초과량에 따라 상금도 푸짐히 안겨줄것이니 있는 힘을 다해 많이 많이 생산하라! 월병대생산이 시작되였다. 타지방의 식료품공장들과 숱한 개체식료품공장들에서 월병시장을 쟁탈하려고 치렬한 경쟁을 벌리고있는 형세였지만 강공장장은 생산량만 추구했다. 그러다보니 월병질이 말이 아니였다. 일부 종업원들이 정황을 반영했지만 강공장장은 그들의 말을 귀밖으로 들었다. 능력있는 공급판매과의 천과장이 있는한 판로는 근심하지 않아도 되니 생산이나 많이 하라는것이였다. 한편 천과장은 식당에 푸짐한 술상을 차려놓고 각 향, 진의 공급판매합작사와 큰 식료품상점의 구입원들을 모두 청했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구입들이 천과장을 청해 먹이면서 제발 더 달라고 애걸했지만 지금은 세월이 바뀌여 천과장쪽에서 구입원들을 청해놓고 먹이면서 제발 더 가져가달라고 애걸하는 판이였다. 이 장면을 목겫한 창덕이가 몇몇 종업원들과 함께 강공장장을 찾아가 말했다. 먹은쇠 똥 눈다고 먹이기도 해야겠지만 제품의 질을 틀어쥐지 않고 맹목적으로 구입원들을 먹이기만 해서야 무슨 쓸데 있는가. 어디서나 책임제를 실시하는 이때에 누가 팔아먹지 못할 월병을 가져가려고 하겠는가. 더구나 숱한 동업종에서 월병시장을 쟁탈하려고 치렬한 경쟁을 벌리고있는 이때에 질은 생명이 아니겠는가. 이런 내용으로 진언을 했지만 강공장장은 한마디로 물리쳐버렸다. “천과장만 믿으면 돼. 빨리빨리 생산이나 다그치라구!” “계속 이대로 나가다간 천과장이 아니라 만과장이라 해도 안됩니다. 생산을 줄이고…” 창덕이가 답답하여 한마디 하자 강공장장이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동무가 뭘 안다구그래. 천과장은 혀바닥을 한번 놀리면 개똥도 황금으로 팔아먹는 사람이야!” 강공장장은 천과장을 굳게 믿고 “생산, 생산, 또 생산!”이란 구호를 높이 웨쳤다. 생산량을 추구하느라고 생산속도를 다그친데다가 생산원가를 낮추라는 강공장장의 지시대로 원료를 줄이고 하품과자를 대량적으로 물에 불궜다가 월병속에 섞어 쓴데서 월병질이 현저하게 나빠졌다. 천과장한테서 술을 얻어먹고 선물을 받아갈 때만 해도 한톤이요, 두톤이요 하며 어벌크게 사가겠다고 선선히 응낙하던 구입원들은 월병질이 나쁜것을 보고는 낯가림으로 한두상자씩밖에 가져가지 않았다. 그외의 작은 상점들에서는 어쩌다가 한상자씩 가져가군 했다. 대부분 식료품상점들에서는 이미 타지방이나 개체공장들의 질좋은 월병을 구입해놓았던것이다. 추석이 래일로 다가오는데도 월병은 창고에 그대로 가득 쌓여있었다. 이때에야 급해난 강공장장은 천과장을 불러놓고 따지고들었다. “숱한 돈을 처넣어 배불리 먹였겠는데 한상자도 가져가지 않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이게…” “그 사람들이 가져가겠다고 대답을 해놓고서는…말하면 말한대로 안한다니깐요.” 천과장도 속수무책인듯 두손만 마주 비볐다. 그해가 지나서 이듬해 여름이 되도록 100여톤의 월병이 팔리지 않은채 창고안에서 썩고말았다.   6. 강공장장과 재무과장     공장이 다섯번째로 “방학”을 하던 어느날에 창덕이는 친구들과 함께 술마시러 갔는데 뒤쪽 칸막이를 한 방에서 귀에 익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창덕이가 가만히 엿보니 강공장장과 재무과 과장이며 주관회계인 우치가 마주앉아 쑥덕공론을 하다가 갑자기 다투는것 같았다. “그건 안되오!” 강공장장이 손을 홱 내젓자 우치가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송이버섯때도 난 한몫 빠지지 않았습니까?” 일본에서 송이버섯을 대량으로 수요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강공장장은 공장의 몇몇 골간들을 운남성에 파견하여 송이버섯을 구입해오게 했다. 운남에는 송이버섯이 많이 나기에 전국각지에서 온 구입원들도 많았다. 하지만 송이버섯을 따는 채집인들의 손에서 직접 구매할수는 없었다. 당지의 세력있는 장사군들이 산속의 길목마다 지키고있다가 채집인들의 손에서 헐값으로 넘겨받아서 앉은 자리에서 높은 값으로 외지의 장사군들에게 되넘겼기때문이다. 이런 당지의 장사군들을 얼도판즈(二道贩子)라고 한다. 그런데 외지의 장사군들이 이 당지 얼도판즈의 손에서 직접 송이버섯을 구매하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거기에는 따로 “문”이 있고 “통로”가 있었는데 아무나 “문”을 열고 “통로”로 들어갈수 없었다. 외지인들이 이 “문”을 찾아 “통로”를 뚫기는 더욱 어려웠다. 강공장장이 파견한 골간들은 아는 사람을 통해 “문”을 찾아 “통로”를 뚫었기에 얼도판즈의 손에서 직접 송이버섯을 구입할수 있었다. 공장의 골간들은 구입한 송이버섯을 모아서는 공장에 부쳐보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리속을 채우는것도 잊지 않았다. 골간들은 공가의 돈을 리용하여 얼도판즈의 손에서 송이버섯을 구입해다가 통로를 모르는 외지의 장사군들에게 되넘겨주어 그 라리에서 폭리를 얻었다. 운남에 한두달 있는 사이에 매 사람앞에 5만원씩 돌아갔다. 몰론 강공장장의 몫도 있었다. 1980년말에 “만원호”라면 높이 우러러 볼 때였으니 5만원이란 얼마나 큰 돈이였는지 짐작할수 있을것이다. 첫해에는 송이버섯장사가 잘되여 전체종업원들에게 매인당 200원이란 년말상금을 내주게 되였다. 하층로동자들에게 200원이란 적지 않은 돈이였기에 모두들 기뻐했다. 이듬해의 7월이 되자 강공장장은 직접 나서서 첫해에 갔던 골간들외에 우치를 더 데리고 서둘러 운남으로 출발했다. 강공장장과 우치는 한달만에 먼저 돌아왔으나 남아있던 골간들과 똑같은 몫으로 한 사람이 10만원씩 손에 쥐게 되였다. 두번재해에는 장사가 더 잘되여 종업원마다 년말상금을 300원씩 타게 되였다. 련속 두해째나 재미를 본 강공장장은 세번째해에는 더욱 크게 해보려고 별렀다. 송이버섯은 비싼 물건이여서 자금이 많이 수요되였다. 강공장장은 거액의 대부금을 맡아가지고 먼저번보다 몇배 더 많은 수량의 송이버섯을 구입해들였다. 그런데 그해엔 다른 기업들에서도 정보를 얻어가지고 대량으로 송이버섯을 구입해들이는 바람에 송이버섯시세가 갑자기 폭락하고말았다. 게다가 일본 사람들도 배가 불렀는지 값을 깎기만 하고 사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라도 일본사람들이 달라는 값에 팔았으면 리윤은 못보더라도 본전쯤은 거의 찾았을것이다. 그러나 강공장장은 지난해의 가격에 팔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송이버섯이 똥값이 되자 강공장장은 사용하지 않은 우유직장에 송이버섯을 보관했다. 비닐통에 포장한 송이버섯은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후 또 다른 일본사람들을 찾아 흥정했는데 원가를 고집하다가 한해를 더 묵여두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소금에 절인 송이버섯이라고 해도 그맘때면 변질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강공장장은 전체종업원들을 총동원하여 변질된 송이버섯을 가려내고 1, 2, 3등으로 나누어 다시 포장하게 했다. 결국 배부른 흥정을 하는 장사군을 찾아 똥값의 똥값에 처리하긴 했지만 대부금의 리자를 물기에도 모자라는 금액이였다. 공장에서는 밑졌지만 세번째해에도 송이버섯을 구입하러 운남에 갔던 골간들은 한 사람이 10만원씩 손에 쥐게 되였다. 이렇게 운남에 갔던 골간들은 3년동안에 한 사람이 25만원씩 호주머니에 넣었는데 재무과장 우치만이 첫해에 빠지다보니 다른 골간들에 비해 5만원을 적게 가졌던것이다. “이 사람아, 자넨 첫해에 빠졌을뿐인데 그땐 절반수자밖에 안되고 또 자녀에게 몰래 상금 5000원을 주지 않았는가? 그런데두…” 강공장장이 기분 나쁘다는듯 담배연기를 홱 내 뿜자 우치가 손으로 담배연기를 쫓으며 말했다. “강공장장은 어디 송이버섯때뿐입니까? 집을 셋채나 지어 둘째아들의 집까지 마련했지. 그리고…” “그만하게! 5만원을 보충해주면 되잖은가? 이 사람아!” “제가 고까짓 5만원때문에 그러는줄 압니까? 저에겐 강공장장이 어느때 어떻게 공가의 자금을 따돌렸다는 증가가 있습니다.” 우치가 교활하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추자 강공장장은 얼굴이 수수떡처럼 뻘개져서 씨근거렸다. “자네 날 위협하는건가?” “제가 어찌 감히 공장장님을 위협하겠습니까? 그저 저의 조그마한 요구를 들어달라는것뿐입니다.” “도대체 얼마를 요구하나?” “제가 첫해에 못가진 수자에 동그라미를 하나 보태서 주십시오.” “50만원? 자네 정신 있나? 자네도 알다싶이 지금 공장의 형편이 말이 아니잖은가?” “손해보거나 망해가는 기업일수록 공장장의 배가 더 불러가는 법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야 몰라도 제가 이런 리치를 모를리 있겠습니까?” “자네 정말 욕심이 과하군!” “피차일반이지요!” 강공장장이 마지 못해 웃음을 짓자 우치도 교활하게 따라 웃었다. 창덕이는 거기까지 엿듣고 길게 탄식했다. 그때로부터 식료품공장은 줄곧 생산을 정지하고있다가 3년후에 파산선고를 받았다. (1997년)    
94    살모사행동 댓글:  조회:3870  추천:0  2013-12-29
살모사행동/콩트이야기   김희수     어느 시공을 중지당한 건물안에서 마약암거래가 시작되고있었다. 두 쪽이 5메터의 간격을 두고 마주서서 검은가방을 열어보인다. 다음 “두더지”와 “살모사”가 “물건”이 든 가방을 넘겨주자 상대방에서도 현금이 든 가방을 넘겨준다. 바로 그때였다. “꼼짝말앗!” 갑자기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총을 빼든 경찰이 그들앞에 나타났다. 난데없는 경찰이 나타나자 암거리쌍방은 혼비백산한듯 멍해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수갑을 꺼내는 찰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살모사가 번개같이 발길을 날려 경찰의 손에 든 총을 떨궈버렸던것이다. 너무나도 잽싼 행동에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란것은 다음 순간이였다. 경찰의 총을 주어든 살모사가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경찰을 향해 련방 불을 토했던것이다. 경찰은 가슴에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경찰이 죽은것을 보자 두더지는 “빨리”하고 소리치며 부하들을 이끌고 황망히 도망쳤다. 그들은 본부인 “천하제일술집”의 지하실에 돌아와서야 숨을 돌릴수 있었다. “경찰이 어떻게 냄새를 맡았지? 그런데 살모사, 자네가 경찰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네. 가방안에 든건 마약이 아니라 우유가루였으니깐.” 두더지파의 마약밀수조직의 두목인 두더지가 새로 받아들인 조직원 살모사를 보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살모사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니, 그럼 이번 행동은 날 고험하기 위한 가짜행동이였다는 말입니까? 보스, 정말 섭섭합니다. 아직도 저를 믿지 못하다니요?” “살모사, 노여워 말게. 이건 생사와 관계되는 큰일이길래 그 어떤 사람이든지 반드시 고험을 받아야 하네.” 두더지가 살모사의 어깨를 다독여주는데 마약을 매입할 상대방으로 가장했던 셋중에서 한자가 의심스럽다는듯이 말했다. “보스, 그 경찰녀석이 어떻게 냄새를 맡고 우리 뒤를 밟았을가요? 왜 혼자였을가요?” “그놈들이 우리를 의심한지는 오래지. 아마 그놈이 우리를 감시하고있다가 혼자서 공을 세워보겠다고 뒤따른것 같아. 현장에 와서 다른 경찰한테 통지하고 혼자서 뛰여들었다가 개목숨을 잃은걸거야.” 두더지는 쏘파에 기대여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는 오늘 살모사의 기지넘치는 용맹성에 탄복했다. 경찰까지 죽여버린 살모사를 인젠 완전히 신임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더지파에서 몇몇 측근들을 내놓고는 다른 조직원들은 그가 진짜 보스라는것을 모르고있었다. 어느 한번은 그가 한 조직원의 계집을 데리고놀다가 그 조직원이 거느리고 온 무리들에게 뭇매를 맞게 되였다. 그때 한 건장한 청년이 뛰여들어 보기좋게 무리들을 때려눕히고 반죽임이 된 두더지를 병원에 업고갔다. “젊은이는 왜 날 구했지?” 구급을 받고 정신을 차린 두더지는 그때까지 곁에서 시중드는 청년을 보고 물었다. 그러자 청년은 빙그레 웃었다. “사장님같은 분을 구해주면 일자리라도 얻을수 있을가해서요.” “음, 그래?” 두더지는 청년의 솔직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퇴원하는 길로 청년을 “천하제일술집”의 경비일군으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에 청년에게 당한 깡패들이 더욱 많은 무리들을 끌고와서 청년을 죽여버리겠다고 행패를 부렸다. 한 깡패가 앞장서 칼을 빼여들고 달려들자 청년은 태연자야갛게 맞받아 나가며 소리쳤다. “찔러라, 이놈! 담이 있으면 어디 찔러봐!” 비실비실 뒤걸음치던 깡패녀석은 떨리는 손으로 청년의 가슴을 쿡 찔렀다. 청년은 가슴에서 피가 흘러나오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슴을 내밀며 고함쳤다. “이놈아, 어디 한번만 더 찔러봐! 어서 찔러보란 말이다!” 그러자 부들부들 떨던 깡패녀석은 끝내 칼을 놓아버리고 청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때로부터 두더지는 청년에게 “살모사”란 별명을 달아주고 측근으로 삼았다. 물론 부하들을 시켜 청년의 뒤를 파보는것도 잊지 않았다. 뒤조사를 해본 결과 청년은 상해죄와 절도죄로 콩밥을 먹은적이 있는 알짜 불량배였다. 살모사가 경찰을 쏜 그날저녁에 두더지는 련속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나는 공안국내부에 매수한 23호한테서 날아온 소식인데 살모사가 죽인 경찰이 마약수사과 부과장이라는것과 흉수를 잡으려고 공안국이 총동원됐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마약밀매조직에서 파견한 K라는 인물이 물건을 가지고 곧 도착한다는 기별이였다. 그리고 새로 나타난 “미꾸라지파”란 마약밀매조직에서도 K가 소속되여있는 해외밀수조직과 련계를 달고있다는 소식도 잇달아 들려왔다. 얼마전에 두더지는 “물건”을 들고 암거래에 나서려고 했는데 물건을 도거리하다싶이 거두어들이던 거래측의 한 조직원이 경찰에 꼬리를 잡혔다. 이 소식을 23호한테서 들은 두더지는 재빨리 그 조직원을 제거해버렸다. 그후 물건을 사려는 측이 잠시 나타나지 않아 두더지는 골치를 앓고있었다. 이번에 K의 물건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면 이 좋은 “장사”를 미꾸라지파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있었다. 생각다못해 두더지는 유력한 조수인 살모사를 불러 방도를 상의했다. “지금 물건을 얻지 못해 안달인데 수소문하면 사려는 사람을 얼마든지 찾을수 있을겁니다.” “자금줄이 든든한 측을 잡아서 거래해야 하는데…”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사귄 친구가 있는데 황금장사를 하여 돈도 많고 통이 큽니다. 그 친구가 언제부터 물건을 얻지 못해 그러던데요.” “그 친구 믿을만한가?” “백프로 믿어도 됩니다.” “그럼 가서 알아보게.” 이튿날에 살모사가 희색이 만면하여 돌아왔다. “련계했습니다. 그 친구가 현금을 준비해놓겠답니다. 시간과 지점은 우리쪽에서 따로 통치하겠다고 했습니다.” “잘했네. K도 오늘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마침 잘됐네.” 두더지가 흐뭇하여 살모사를 칭찬하고있을 때 전화가 왔다. “여보시우? 엉? 23호인가? 그래…알았네. 20분후에 손님을 그리고 보내지.” 전화를 마친 두더지는 상을 잔뜩 찌푸렸다. 23호가 스파이라는것을 알고있는 살모사는 조심스레 물었다. “23호한테서 무슨 새로운 정보라도 왔습니까?” “공안국에서 지금 마약수사과 부과장을 살해한 흉수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느라고 잠시 마약밀수타격을 늦추고있다네. 이 좋은 시기를 놓치면 안되지. 래일쯤 행동해야지. 그런데 23호가 또 돈을 독촉해왔네. 제길, 그놈은 돈밖에 모른다니까. 왕거미가 전문 그놈에게 돈을 보내주었는데 지금 K의 마중을 가고 없으니 어쩐담…” “보스께서 직접 가시지요.” “내가 직접 가면 그놈은 더 크게 요구하면서 시끄럽게 구네. 그놈은 중요한 인물이여서 우리 조직에서 나하고 왕거미외에는 아무도 23호가 누군지 모르네. 내가 자네를 믿으니 이번에 자네가 가서 23호를 만나게. 지금 즉시 ‘놀부다방’의 맨 끝방으로 가게. 접선암호는 여차여차하네.” 살모사가 “놀부다방”의 맨 끝방에 들어가니 한 낯선 사나이가 앉아있었다. 그 사내가 23호라고 단정한 살모사는 맞은켠에 앉으며 접선암호를 외웠다. 암호가 맞아떨어지자 살모사가 조용히 물었다. “자네가 23호인가?” “그렇네. 보스가 가방을 보내던가?” 살모사는 대답대신 잽사게 달려들어 23호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그를 걸상에 꽁꽁 묶어놓았다. “당신은…누구요? 왜 이러는거요?” 너무나도 급작스레 당한 23호는 놀라움과 의혹에 찬 눈길로 살모사를 바라보았다. 살모사는 핸드폰으로 경찰을 불렀다. 그러자 혼비백산한 23호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너…넌 도대체 누구야?” “흐흐흐, 23호! 난 너에게 주는 이 돈이 욕심나서 두더지를 배반하고 ‘미꾸라지파’로 가는거야!” 한참후 경찰들이 달려들어오는것을 보자 살모사는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살모사가 돌아오자 왕거미와 K도 마침 도착하여 그들은 마약밀매를 그날저녁으로 앞당겨 하기로 결정하고  상대방에 통지했다. “이번 행동을 ‘살모사행동’이라고 하자구!” 두더지는 살모사에게 마약가방을 넘겨주고 넷은 승용차에 올랐다. 교활한 두더지는 접선지점을 도중에 세번이나 바꾸어 상대방에게 통지했다. 끝내 마지막 지점에서 쌍방은 접선했는데 상대방도 넷이였다. 쌍방은 서로 물건과 현금을 확인한후 교환했다. 두더지가 성공의 미소를 짓고있을 때 상대방의 색안경을 낀 사나이와 살모사의 시선이 신속하게 마주쳤다. 때를 같이하여 “꼼짝말앗”하는 벽력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상대방에서 일제히 총을 꺼내들었다. 두더지와 K, 왕거미가 황망히 반항하려고 했으나 때는 늦었다. 살모사가 어느새 그들의 무기를 해제했고 상대방에서 번개같이 달려들어 세놈에게 수갑을 채웠다. 색안경을 낀 사나이가 살모사의 손을 잡자 두더지가 증오의 눈길로 살모사를 쏘아보았다. “살모사, 넌 왜 날 배반했어? 이놈들은 ‘미꾸라지파’겠지? 넌 날 배반하고 이놈들에게 넘어간거지? 이 배은망덕한 놈아!” “두더지! 꿈을 꾸지 말아. ‘미꾸라지파’란 우리가 꾸며낸것으로 존재하지도 않아. 난 경찰이야! 알겠어?” “뭐? 네가 경찰이라구? 넌 마약수사과 부과장이란 놈을 쏴죽이지 않았니?” 두더지가 의혹에 찬 눈길로 바라보자 색안경을 낀 사나이가 빙그레 웃으며 색안경과 가발을 벗고 가짜코수염을 떼여냈다. “아니, 넌 사람이냐? 귀신이냐?” 살모사의 총에 맞고 저승에 갔던 마약수사과 부과장이 눈앞에 서있는것이 아닌가! “이 미련한 두더지야! 넌 총싸움영화에서 배우들이 진짜로 죽는걸 봤어?” 그제야 두더지는 경찰들의 연극에 넘어가 살모사를 신임한 자신을 저주했으나 후회막급이였다. 두더지마약밀수조직을 짓부셔버린 영웅사나이 살모사는 상급의 지시에 따라 자신을 위장하기 위해 여러해전부터 깡패들과 휩쓸리기도 하고 감옥밥도 먹으며 잠복임무를 대기하고있다가 이번에 살모사행동에 나선 인민경찰이였다.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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