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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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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먹고 싸는 이야기 댓글:  조회:4220  추천:2  2013-12-29
먹고 싸는 이야기   한국소설가 천운영     이것은 똥에 관한 이야기다. 똥 중에서도 새똥. 새 중에서도 하필이면 날지도 못하고 걷는 것마저 처량한 펭귄. 날 수는 없어도 새는 새여서 새처럼 똥을 싼다는, 펭귄 똥 이야기다. 어쩌면 이것은 여름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남극의 여름. 펭귄들이 짝을 짓고 둥지를 틀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워내는 번식의 계절. 여름의 일과 똥의 일. 새들은 똥이 생기는 족족 싸지른다. 날든 걷든 앉아 있든, 언제 어디서든. 똥은 물론이고 소화되지 않은 먹을거리들을 오줌과 함께 발사한다. 그래서 냄새도 지독하고 독성도 강하다. 펭귄 똥은 분홍색이고 크릴새우 썩은 내가 난다. 이 냄새를 기막히게 알아차리고 덤벼드는 칼집부리물떼새 녀석은 펭귄 똥에 섞여 나온 소화되지 않은 크릴새우 껍데기를 주로 먹는다. 널려 있는 게 똥이니 사냥에 힘 뺄 일도 없다.   펭귄 한 놈이 크릴 사냥을 나가면 다른 한 놈은 반드시 둥지에 남아야 한다. 포식자 도둑갈매기에게 알과 새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그 자리에서 똥을 싸다 보니 둥지를 중심으로 똥 줄기가 사방무늬로 쌓여간다. 둥지를 튼 것인지 똥밭에 앉은 것인지. 똥밭에 앉았어도 새끼를 품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눈이 녹는다. 녹은 물이 펭귄 둥지를 거친다. 역한 똥물이 길을 만들어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역한 만큼 유기물이 풍부한 영양물이다. 그것이 바다에서 플랑크톤을 키워낸다. 플랑크톤이 풍부해야 크릴새우가 잘 자란다. 올해 남극 킹조지섬 앞바다는 크릴이 대풍년이다. 그래서 고래들도 펭귄도 물질에 신이 난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펭귄들은 바다를 날며 크릴 사냥을 한다.   크릴을 배에 그득 채운 펭귄이 열심히 언덕을 오른다. 뒤뚱거리기는 해도 미끄러지지는 않는다. 먼 길을 뒤뚱거려 둥지에 이르면 크릴을 내놓기 전에 우선 자랑질부터 한다. 고개를 길게 빼고 나 잘했지. 새끼를 지키고 있던 녀석은 칭찬하는 고갯짓으로 화답한다. 이리저리 고개춤을 추며 잘했군 잘했어. 그렇게 한동안 자랑질과 칭잔질의 흥겨운 의식을 끝낸 후에야 임무교대를 하고 크릴을 게워낸다. 새끼 펭귄들은 쏙쏙 잘도 받아먹으면서 또 즐겁게 똥을 싼다.   펭귄 똥을 노리는 것은 비단 칼집물떼새뿐이 아니다. 펭귄 똥을 찾아 남극까지 찾아온 인간도 있다. 그는 똥이라면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에서 얼룩말 똥과 한 계절을 보냈다. 대부분 싸 놓은 똥을 파헤치지만, 죽은 펭귄을 해부해 위장에 든 똥을 파헤치기도 한다. 그는 그 속에서 기생충을 찾아낸다.   똥에 머리를 처박고 기생충을 찾는 데 온 신경을 모으고 있는 그는 소박하지만 정성 그득한 밥상을 받은 사람 같다. 담담하게 그러나 진정으로 즐겁게 젓가락질을 한다. 그는 어쩌면 지금까지 어디서에도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기생충에 이름을 붙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올해 기생충 때문에 죽은 펭귄에 대한 사례연구를 발표하게 될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새끼 펭귄들이 털갈이까지 마치고 물질 연습까지 끝내고 나면 남극의 여름도 끝이다. 여름이 끝나면 펭귄도 떠나고 연구원도 떠날 것이다. 똥들이 있던 자리에서는 녹조류 프라지올라가 푸르게 돋아날 것이다. 눈 밑에서도 숨을 쉬며 땅의 온도를 아주 조금쯤 올려놓을 것이다.   이것은 똥에 관한 이야기다. 싸는 이야기고 먹는 이야기다.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즐거움에 관한 이야기다.  
92    미국을 배반한 제1부인 댓글:  조회:7583  추천:2  2013-12-29
미국을 배반한 제1부인     20세기의 가장 축복받은 행운의 녀인이면서도 재앙의 녀인이였던 재클린은 1929년 7월 28일에 주식투자가인 아버지 부비에와 뉴욕중앙은행 행장의 딸인 어머니 쟈넷사이에서 태여났다. 재클린은 소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내내 우등생이였고 프랑스류학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후 그녀는 기자로서 활약하면서 뉴포트사교계연회에 참석해 1951년에는 사교계의 녀왕이 되였다. 그무렵 그녀는 친구의 소개로 미래의 대통령 존 케네디를 만났다. 명문가의 아들과 빠리류학에서 갓 돌아온 미녀, 보기에도 두 사람은 어울리는 부부가 될것 같았다. 케네디를 만나는 순간부터 재클린은 그가 자신에게 있어서 운명의 남자로 될것이라고 직감했다. 그것은 적중하여 그로부터 2년뒤인 1953년 9월 12일에 그녀는 25세의 나이로 당시 37세였던 케네디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때의 결혼식이 얼마나 성대했던지 마치 대관식같았다. 이 결혼으로 재클린은 부와 권력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그로부터 8년후인 1961년 1월에 케네디가 미국 제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재클린은 일약 제1부인으로 되여 세계가 주시하는 인물이 되였다. 43세의 젊은 대통령과 33세의 미모의 부인, 마치 동화와 같은 부부가 미국에 등장했다. 전 미국의 녀자들이 재클린의 일거일동을 흉내냈고 그녀가 몸에 걸친 드레스나 액세서리는 곧 전국에 퍼졌다. 제1부인이 된 재클린은 세상의 녀자가 바랄수 있는 모든것을 손에 넣게 되였다. 그러나 케네디와의 결혼은 행이였던가, 불행이였던가? 사실 그녀와 케네디의 결혼생활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있었던것처럼 그렇게 행복한것은 아니였다. 대통령은 그녀 혼자의것이 아니였다. 그건 그래도 좋았다. 그녀가 참을수 없은것은 남편도 그녀 혼자의것이 아니였기때문이다. 케네디는 선천적으로 바람둥이였다. 남편이 누군지도 모르는 녀자와 자취를 감춰버리면 재클린은 혼자서 뒤에 남겨진 비애를 얼마나 맛보아야 했던지 모른다. 케네디는 밖에서 녀색을 즐겼을뿐만아니라 재클린의 눈을 피해 백악관에까지 녀자들을 끌어들였다. 상대도 가지리 않았다. 이름난 녀배우가 있는가 하면 하찮은 청소부녀자도 있었고 10대의 처녀가 있는가 하면 40대의 그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더 많은 녀자도 있었다.. 시간, 장소도 가리지 않았다. 때론 회의도중에도 화장실로 간다고 속여놓고 몰래 녀자와 즐긴다음 다시 회의장소로 가군했다. 한번은 제인 맨스필드라는 녀자가 임신중이여서 안된다고 했지만 “여기 배속에 당신 남편의 씨가 있다구? 묘한 기분인데”하면서 다짜고짜로 올라탔다. 또 한번은 재클린이 집에 없을 때 녀배우 소피아 로렌을 자택으로 데리고와서 즐겼는데 그녀가 어쩌자고 그랬는지 돌아갈 때 팬티를 두고갔다. 그 팬티를 발견한 재클린은 남편이 녀자를 자신의 침대에까지 끌어들이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남편이 저명한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와 깊은 사이가 되였을 때 몹시 허탈감을 느꼈다. 마릴린 먼로는 직접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부인자리를 내놓으라고까지 했던것이다. 그녀는 대통령부인이라는 허울좋은 겉치레만으로 살아가고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간이였다. 1963년은 그녀에게 있어서 재앙의 한해였다. 그해봄에 둘째아들 페트릭이 태여난지 불과 이틀만에 죽어버리자 그녀는 너무 힘들어했다. 같은해 11월 22일, 미국 남부 댈레스거리에서 소리높이 울린 “오, 아니야!”의 절규는 순식간에 그녀를 대통령부인으로부터 과부로 만들어놓았다. 그날 울려퍼진 총성은 미국인들에게서 대통령을 앗아갔고 그녀에게서 남편을 앗아갔다. 케네디가 암살당한후 미국인들은 재클린이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조용히 두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미국의 영원한 제1부인이 되여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재클린이 케네디가문의 모범며느리가 되여 망부의 동생들이 대통령이 될수 있도록 협력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재클린은 그런 미국인들의 기대와 소망을 깨뜨려버리고 1968년에 예전부터 알고 지내오던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했다. 그러자 온 미국이 격분했다. “재클린은 돈과 결혼햇다!” “재클린은 미국을 배반했다!” 재클린은 케네디가 죽은후 5년이 지나서 재혼했지만 사실 그녀가 오나시스를 만난것은 케네디가 아직 살아있을 때였다. 1963년봄에 둘째아들 패트릭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재클린에게 그리스의 선방왕인 오나시스가 요트로 놀러오라는 초대장을 보내왔다. 일찍이 케네디와 함께 초청을 받았던 적이 있는 호화롭기 그지없는 요트 《크리스티나호》로 놀러오라는 초대장을 받자 그녀는 주저없이 그리로 날아갔다.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는 돈을 종이장으로 알고있는 대부호였다. 그는 250만딸라의 돈을 들여서 세계제일의 호화요트를 만들고 귀여운 딸의 이름으로 《크리스티나호》라고 명명했다. 아버지벌 되는 오나시스와 함께 40일간의 선박려행을 하면서 재클린은 남편의 바람기로 인한 고민도 아들의 죽음으로 받은 고통도 말끔히 잊어버리고말았다. 하지만 근심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사랑의 적수때문이였다. 오나시스에게는 또다른 련인이 있었다. 바로 세기의 명가수 마리아 칼라스였다. 오나시스는 선박의 호화로운 방에서 재클린과 칼라스를 번갈아 끌어들이면서 즐겨댔다. 1968년에 40세의 재클린은 70세의 오나시스와 결혼했다. 하지만 오나시스의 딸 크리스티나는 계모를 몹시 미워했다. 크리스티나는 재클린이 자신의 계모로 되자 친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재클린은 재앙의 녀인이야. 아들과 남편이 죽고 또 남편의 동생마저 죽었어. 그녀는 재앙을 우리 집에도 가져올거야.” 과연 오나시스의 가문에 재앙이 련달아 들이닥쳤다. 재클린과 결혼하면서부터 오나시스의 사업은 불황에 직면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1973년에는 오나시스가 가장 아끼는 아들 알렉산더가 비행기사고로 죽고말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74년 10월에는 크리스티나의 어머니인 티너가 빠리에서 급사했고 또 그 이듬해인 1975년 3월 15일에는 오나시스가 세상을 떠났다. 크리스티나는 오나시스가문에 덮친 불행은 모두 재클린의 원인이라고 믿고있었다. 만년에 오나시스는 재클린을 미워했던 때문인지 유서를 다시 작성했다. 10억딸라의 유산이 대부분이 크리스티나에게 남겨지고 재클린에게는 1000만딸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분개한 재클린은 유산을 둘러싸고 크리스티나와 장장 18개월에 거친 싸움을 벌렸다. 재클린이 돈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수 있다. 결국 오나시스일가와의 일체관계를 끊는다는 조건으로 그녀는 2600만딸라를 상속받았다. 크리스티나는 죽기 얼마전에 기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재클린은 내가 알고있는 사람중에 가장 돈을 밝히는 사람이였어요. 그녀가 한가지 깨닫지 못한 점은 내가 그녀를 보지 않을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4억딸라라도 지급할 작정이였다는 사실이였어요. 그녀의 주위사람들이 모두 죽어가는데 그녀만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해요. 그녀는 위험스럽고도 무서운 존재예요. 재클린은 케네디가문과 오나시스가문의 가족을 모두 잡아먹었어요.” 오나시스가 죽은후 재클린은 뉴욕에 머물면서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1975년 9월에 《바이킹》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다가 《바이킹》출판사가 케네디암살사건을 다룬 책을 출판하자 그곳을 그만두고 《더불데이 북스》출판사로 옮겼다. 1976년이후 그녀는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수많은 남자들과 사귀면서 과부의 적적한 밤을 즐기기도 했다. 그중에는 《바이킹》출판사의 긴저버그, 방송국 리사인 칼 킬링스위스, 칼럼작가인 해밀, 작가인 피터 데이네스, 건축가인 페이 등 인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재클린이 66세의 나이로 죽는날까지 미망인의 외로운 밤을 한침대에서 보내면서 위로해준 인물도 있었다고 한다. 재클린은 만년에 암에 걸렸다. 행운의 녀인이면서도 재앙의 녀인이였던 재클린,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남자의 안해였다가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남자의 안해로 되였던 그녀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1994년 5월 20일에 끝내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죽는날까지 염문을 뿌리가간 그녀, 실로 화려하고 파란만장한 인생력정이였다.     
91    이승만대통령과 프란체스카 댓글:  조회:6355  추천:0  2013-12-29
리승만대통령과 프란체스카     한국의 초대대통령 리승만(李承晩)의 호는 우남(雩南)이고 1875년에 황해북도 평산에서 태여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으며 1897년에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90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1907년에 워싱톤대학을 졸업하였다. 1908년에 하버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10년에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이란 론문으로 프린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리승만은 1895년에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자 친일정권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렸고 1896년에 서재필이 미국에서 돌아와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하자 거기에 가담하였다. 리승만은 《협성회보》와 《매일신문》의 주필을 지내면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개화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중추원설치를 주장하다가 1898년에 황국협회의 무고로 체포되여 투옥되였으나 1904년에 출옥하였다. 그해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미국에 건너가 루스벨트대통령을 만나 일본의 세력을 몰아내는데 협력해줄것을 요청하였다. 1910년 8월 29일에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당한후 귀국해 리상재 등과 조선기독교청년회를 중심으로 후진을 양성하다가 1912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1914년에 《한국태평양》지를 발간하였고 1919년에 상해대한민국림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국무총리로 추대되였다. 림시정부의 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고 1920년에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1921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돌아오지 않자 의정원의 불신임을 받았다. 그뒤 워싱톤, 하와이 등지에서 항일외교활동을 벌리다가 광복후 귀국했다. 리승만은 독립촉성중앙위원회 총재, 민족통일총본부 총재 등을 지냈고 1948년에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이어 초대국회의장, 대통령이 되였다. 정부가 부산에 피란해있던 1951년에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자유당을 창당했고 이듬해에 정치파동을 일으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제2대 대통령에 재선되였다. 1954년에 초대대통령에 대한 중임제한조항철폐를 골자로 한 사사오입개헌으로 제3대 대통령에 세번재로 당선되였고 1960년에 제4대 대통령에 4번재로 당선되였으나 “4․19”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1960년 4월 19일에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비롯하여 서울시민 10만여명이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향하였다. 이에 당황한 정부는 서울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경찰은 시위군중에게 무력진압에 나서 이날 하루동안 전국에서 186명이 사망되고 6천여명이 부상당하였다. 리승만은 리기붕을 사임시키고 자유당총재직을 버리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수는 없었다. 1960년 4월 25일에는 대학교수 300여 명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구호판을 들고 서울시내를 행진하며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미국도 사태를 수습하려면 리승만의 퇴진이 절대적이라고 권고하였다. 결국 1960년 4월 26일에 리승만은 퇴진성명을 발표하고 4월 29일에 하와이로 망명했으며 리기붕일가는 자살함으로써 자유당정부는 종말을 고했다. 하와이로 망명한 리승만은 1965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저서로 《독립정신》, 《일본폭로기》 등이 있다. 리승만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는 뛰여난 속기와 타자능력 그리고 국제자격증을 보유한 영어통역능력 등으로 당시 비서실체제가 약했던 경무대에서 실질적인 비서실장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리승만대통령의 건강과 신변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 음식뿐아니라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과잉내조”로 리대통령의 정치적 시야를 좁게 만든 “우물안 내조”에 그쳤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받고있다. 프란체스카녀사는 1900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여나서 1934년에 뉴욕에서 리승만과 결혼했다. 리승만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리기붕의 아들인 리강석을 양자로 삼았다. 리승만을 업고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리기붕(李起鵬)은 1896년에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후산리의 몰락한 량반가정에서 독자로 태여났다 그는 1923년에 미국 아이오와주 데이버주립 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졸업직후 류학생 박마리아를 알게 되여 1935년에 결혼하였다. 부인 박마리아와의 사이에 큰딸 리강희와 리강석, 리강욱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딸 리강희는 중학교때 사망됐기에 자녀들은 두아들만 남았다. 1945년에 리승만의 비서로 정계에 들어갔으며 윤보선의 뒤를 이어 1949년 6월부터 1949년 8월까지 서울특별시 시장을 지냈다. 1949년 8월부터 1951년 5월 8일까지 다시 서울시장에 재선되였다. 1951년에 국방부장관이 된 그는 리승만의 지시로 자유당을 창당했고 2년후에 리범석의 세력을 축출하고 자유당중앙위원회 의장에 올라 명실공히 자유당의 제2인자가 되여 실권을 장악하였다. 1954년 5월에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여 민의원 의장이 되였고 1956년에 부대통령경쟁에 나섰으나 락선되였다. 1957년에는 자기 아들 리강석을 리승만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1960년 3월 15일에 공개부정선거로 부대통령에 당선되였다. 그러나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9”혁명이 일어나 결국 부대통령을 사임하고 경무대관사 36호실에 피신해 있었다. 1960년 4월 28일 새벽 5시 40분에 당시 륙군장교였던 큰아들 리강석이 권총으로 아버지 리기붕, 어머니 박마리아, 동생 리강욱을 차례로 쏘아죽이고 자살하였다. 리기붕일가족자살에 대해서는 의혹과 론란이 되였는데 당시 곽영주가 리승만의 퇴진을 막기 위해 여론을 무마시키려고 그를 비밀리에 살해했다는 설이 있으나 그것이 진실인지 알수 없다. 리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는 자식을 낳지 못했지만 외교활동 즉 미국과의 관계가 두드러졌다. 그녀는 사적인 친분관계는 물론 타고난 사교술로 워싱톤정가의 실력자들부인과 친밀한 교분을 유지하였다. 특히 루즈벨트대통령 부인과의 관계는 돈독하였다. 그녀는 한국을 워싱톤정가의 관심거리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그녀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자존심과 고집이 강한 편이였다. 그녀는 경무대내에서 대인관계에 대한 불쾌감을 대통령에게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정부인사에 개입하고 국정에 간여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녀는 리승만의 건강과 신변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다. 음식뿐아니라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대통령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방해하였다. 물론 그것은 고령의 대통령을 편안하게 보필하고싶은 안해의 순수한 마음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공인으로서의 대통령책무를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정도로 철저한 통제였다. 이런 그녀의 “우물안내조”는 국내정세에 어두웠던 대통령의 정치적 시야를 더더욱 좁게 했다. 그러나 프란체스카의 이 모든 행동들과 개입이 정치적관심으로 야기된것이 아니라 단지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야기된 결과였다는 점은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프란체스카는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상당한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대통령에게 행사하였다. 고집스럽게 남편의 건강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오히려 리승만대통령의 장기독재와 말년의 정치부패, 뒤이은 망명생활을 가져오게 했다. 리승만과 그녀의 경우는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깊이 의존하는 애정의 관계를 가졌지만 정치지도자와 그 안해로서의 적합하고 건강한 긴장관계를 갖지 못하여 국가와 지도자의 발전적 동인을 제공하지 못한것으로 평가할수 있다. 그러나 사실 프란체스카는 경무대시절 양말을 직접 기워신는 등 절약생활을 몸소 보여준 모범적인 대통령부인이였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입는 옷마다 뒤목이 닿는 부분에 명주를 대놓아 빨리 닳지 않도록 했고 긴양말도 늘 기워서 신을 정도로 검소했다. 그녀는 대통령부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집와서 평생동안 단 한벌의 례복으로 지냈다. 그녀는 1960년 “4․19”혁명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리승만대통령과 함께 하와이로 망명을 갔고 1965년에 리승만박사가 타계하자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프란체스카녀사는 1970년에 영구귀국하여 양아들 리인수내외와 함께 리화장에 정착했고 1992년 3월 19일에 동성동국립묘지 리승만박사묘소옆에 묻혔다.      
90    산타할아버지께 소원 빌어볼가? 댓글:  조회:14226  추천:7  2013-12-23
산타할아버지께 소원 빌어볼가?   김희수       우리에게는 아주 멀고도 낯선 존재였던 산타할아버지가 언제부터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절한 이름으로 다가왔던가?   19세기중엽에 중국, 일본, 한국 등은 모두 서방에서 불어온 성탄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새 중국이 성립되면서부터 중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예수그리스도가 개혁개방후에 다시 찾아왔다. 21세기초부터 성탄절은 중국에서 완전히 뿌리를 내려 음력설 못지 않은 명절로 자리잡았다. 명절이라면 만들어서라도 쇠고야 마는 우리 조선족사회가 성탄절에서도 뒤질리 없다. 며칠전부터 성탄파티를 열 준비에 서두르며 약속전화부터 해놓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술자리보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에 관심이 더 많다.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산타클로스할아버지(Santa Claus-圣诞老人)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산타할아버지가 전설의 상상 인물인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특히 어린이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소원을 빌면서 성탄절 전날밤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린다. 흰수염을 달고 빨간옷을 입고 빨간신을 신은 산타할아버지가 사슴이 이끄는 썰매에 선물을 가득 싣고 오는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기다리는 동심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이 매단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고 간다는 산타할아버지…산타할아버지가 정말로 있다고 믿거나 정말이 아니더라도 산타할아비지의 옷차림을 한 누군가 선물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는 그 동심은 어린이들뿐만아니라 어른들도 가지고있다.   산타할아버지는 어린이들뿐만아니라 동심을 잃어버리지 않은 어른들에게도 선물을 가져다준다는데 어른인 나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소원 좀 빌어볼가? 동심도 잃어버린지 오래되고 착하지도 않은 나같은 어른에게 산타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지극정성으로 빌면 혹시라도 소원을 들어줄지 누가 아는가? 어디 한번 소원을 적어서 산타할아버지가 계신다는 북극에 보내보자.   산타할아버지,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혹시 주소를 몰라서 오시지 못할가봐 상세한 주소를 알려드리려고 해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세상에서 세번째로 땅덩어리가 큰 중국에서 사는데요, 중국에서도 동북, 동북에서도 백의민족의 나라 반도에 접해있는 진달래의 고향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주로 집중해 살고있지요. 우리를 중국조선족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연변조선족자치주외에 또 동북 3성, 북경, 상해, 청도, 심수 등지에도 살고있고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나라에도 나가서 조선족의 기적을 만들어가고있어요.   동방례의지국에서 살아온 조상의 피를 물려받은 우리는 례절바르고 교양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면서 찬란한 력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랍니다. 자랑거리를 말하라면 천하루 밤낮을 가지고도 모자라겠지만 한마디로 우리는 어린이들도 착하지만 어른들도 착하답니다. 착하니까 우리에게 선물 주시겠죠? 그럼 이번 크리스마스에 이루고싶은 소원 빌어볼게요.     새 해가 닥쳐오니 새 희망이 부풀어 오르는데 크리스마스선물로 꼭 받고싶은 선물이 너무 많군요. 무엇부터 말해볼가요?   먼저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저소득가정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옷 한벌씩 선물해주시고 양로원에 계시거나 의지할 곳이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편안하게 안주하고 근심걱정 없이 살수 있도록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주세요.   혼자서 외로워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동생을 선물로 주시고 페교되여 한족학교에 갈수밖에 없게 된 애들에게 조선족학교에 다닐수 있도록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조선족마을이 하나 둘씩 없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고 장가못간 로총각들에게 착하고 예쁜 색시 선물로 주세요. 이 중국땅에서 조선민족의 얼을 지키면서 열심히 살아가고있는 200만(사실 200만이 안되여 가슴이 아프지만)동포들에게 새해에 모두 좋은 일이 생기도록 해주시고 또 외국에 나간 아빠랑 엄마랑 오래도록 헤여져 리별의 아픔을 겪고있는 아이들에게 하루 빨리 아빠랑 엄마랑 만날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주시고 그런 손자의 손을 잡고 눈길을 헤치며 학교에 가는 할머니께 춥지 않도록 따뜻한 목도리를 선물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 힘들게 일하는 재한, 재미, 재일 등 조선족들에게 돈을 많이 벌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주시고 그들이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 가족과 만날수 있도록 해주시고 병마에 시달리고있는 모든 이들이 병이 씻은듯이 낫도록 해주세요.   시골에서 다시 진달래꽃 활짝 피고 논밭에서 아리랑, 노들강변, 도라지타령에 풍년가를 부르는 젊은이들의 노래소리 넘치게 해주시고 닭음소리, 개짖는 소리, 떡치는 떡메소리 들리고 아기 울음소리, 긁읽는 소리, 할배, 할매들이 스마트폰으로 손자, 손녀들과 글 올리기를 하며 웃는 웃음소리가 마을마다 울려퍼지게 해주세요.   그리고 또 뭐가 있을가요? 음, 그리고 우리 중국조선족인구가 줄어드는 일이 없고 가족이 리별하는 일이 없이 단란히 모여서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그런 여건을 만들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너무 욕심부리는거 아닐가요? ㅎㅎㅎ 그래도 제 소원이니깐요. 이루어 지도록 빌어요. 소원이 너무 과해도 안된다던데 그러면 이런 선물을 얻을 행운의 축복이라도 한마디 해주소서!      
89    위험한 행로 댓글:  조회:3148  추천:0  2013-12-21
대중소설   위험한 행로     김희수   “너 직업이 뭐냐?” 아까 그 경찰이 또 물었다. 경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경찰은 담배연기를 확 내뿜었다. “이름이 뭐냐?” “지경호.” “직업은?” “직업은 없습니다.” “뭐? 직업이 없다구?” 경찰은 흥! 하고 코방귀를 뀌더니 빙그레 웃었다. “너 아마추어인가 했더니 프로였구나!” “프로라니요?” “너 다른 직업은 없고 ‘바이’만 전문업으로 삼으니깐 프로가 아니구 뭐냐?” “바이라니요?” “시치미를 떼지 마! 그래 바이가 소매치기란걸 몰라? 어느때부터 바이를 했으며 이번이 몇번째야?” 경찰은 매서운 기운이 서리발치는 눈길로 경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전 그런걸 모릅니다. 전 훔치지 않았습니다!” “임마! 바른대로 말해. 구류소맛을 보고싶냐?” “아, 아니… 전, 전…” 경호는 겁기어린 눈길로 경찰을 쳐다보며 몸을 떨었다. 경찰은 또 한번 담배연기를 확 내뿜었다. “바른대로 말해. 몇번째야?” “아니, 전 훔치지 않았습니다.” “임마, 훔치지 않은게 왜 그 돈지갑이 네 호주머니에서 나왔니? 응?” “그건 땅딸보가…” “그래 땅딸보가 널 붙잡았지. 계속 말해.” “뭘 말하란 말입니까? 전 도둑이 아닙니다.” “완고한 새끼!” 경찰은 책상을 “쾅”하고 내리쳤다. 경호를 쏘아보는 그 눈길은 한자루의 비수와 같이 날카로왔다. 하지만 경호는 몸을 떨뿐 죄를 승인하지 않았다. 경찰은 얼리고 닥치고 하다가 경호가 자백하지 않으니까 경호를 심문실에 가둬놓고 자물쇠를 잠궈놓았다. “전 억울합니다! 절 놓아주십시오!” 경호는 문을 막 두르리며 애처롭게 웨쳐댔다. 그러나 경찰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냥 가버렸다. 빈방에 홀로 갇힌 경호는 억울하고 분했다. 경찰마저 다짜고짜로 도둑으로 몰다니? 악몽같았다. 경호는 이것이 꿈이라고, 꿈에서 깨여나면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거라고 자신을 위안해보았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적 공포와 불안은 그러한 달램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이 무시로 몸을 휩쌌다. 차가운 책상우에서 하루밤을 보낸 경호는 이튿날 오전 10시쯤에 더욱 무시무시한 곳으로 끌려갔다. 그가 방안에 들어서자 문이 닫기고 “절컥”하고 자물쇠가 잠겨졌다. 그는 승냥이굴에 들어선듯 온몸을 전률했다. 두줄로 똑바로 앉아 꼼짝하지 않고있던 8~9명의 녀석들이 바깥의 발자국소리가 멀리 사라지자 삽시에 독기어린 음침한 눈길로 그를 쏘아보고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가리를 쩍 벌린 굶주린 승냥이떼같기도 했고 혀를 날름거리는 흉악한 독사무리같기도 했다. “이리 왓!” 두목인듯한 녀석이 위엄있게 호령하자 경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두목의 앞으로 다가갔다. “차렷!” 두목이 구령을 부르자 경호는 떨리는 몸으로 간신히 차렷자세를 갖추었다. 두목이 불이 번쩍나게 경호의 귀쌈을 후려쳤다. “이름이 뭐야?” “지경호.” “여긴 왜 왔니?” 경호는 도리머리질했다. 그러자 두목의 옆에 있던 한 녀석이 왼손과 오른손으로 번갈아가며 경호의 뺨을 갈겨댔다. “이 새끼야! 귀머거리야? 캉터우(炕头)가 묻는 말뜻은 네가 무슨 죄를 지어 여길 들어왔는가 말이다!” “난 아무 죄도 짓지 않았소!” “뭐라구?!” 두목은 두눈을 부릅뜨고 경호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꽥 소리질렀다. “얘들아!” “예썰!” 두목의 말이 떨어지자 말석에 앉은 세 녀석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며 일제히 일어섰다. “너희들이 이 새끼의 버릇을 좀 가르쳐줘라!” “예썰!” 세 녀석이 번갈아 다가와 경호의 귀쌈을 보기좋게 찰싹찰싹 후려쳤다. “아이쿠!” 그 다음은 주먹과 발길이 날아들었다. 경호의 코와 입귀로 시뻘건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만!” 두목이 졸개들을 제지시키고나서 살기등등해서 경호를 노려보았다. “임마, 네가 저지른 짓을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가!” 경호는 육체의 고통과 말못할 정신적 괴로움에 가슴이 찢기고 눈물이 솟았다. 구류소가 이처럼 진저리나고 무시무시한 곳인줄을 몰랐다. 억울하게 갇힌것만 해도 통분한 일인데 진짜 불량배들에게 매까지 얻어맞다니! 경호의 눈앞에 억울하게 파출소에 잡혀오던 그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룡정으로 달리는 초만원뻐스에 몸을 실은 경호는 밀치닥거리는 사람들틈에 끼워 진땀을 뺐다. 무더운 여름날씨에 공기마저 혼탁하여 질식할 지경이였다. 뭇사람들의 퀴퀴한 땀냄새를 피하느라고 머리를 이러저리 돌리던 경호는 문뜩 웬 검은 손이 곁에 있는 한 중년녀인의 호주머니에 들어가는것을 발견했다. 흠칫 놀라 다시 보니 재빠른 솜씨로 돈지갑을 후려낸 그 검은손의 임자는 스무살안팎의 땅딸보였다. 그 땅딸보는 경호의 눈길이 자기를 지켜보는것을 보고 위협적인 눈길로 쏘아보았다. 얄미운 도둑놈! 돈을 털리운 저 아주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까밝혀놓자. 뻐스안에 숱한 사람들인데 저 따위 도둑 한놈을 겁나할 필요가 있겠는가? “아주머니!” 경호가 막 중년녀인의 팔을 흔드는 찰나에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땅딸보는 번개같이 그를 밀치닥거리며 제쪽에서 먼저 소리쳤다. “도둑을 잡읍소!” 그러면서 땅딸보는 중년녀인에게 돈지갑을 털리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던 중년녀인은 울상이 되여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구, 내 돈 200원이 잃어졌구나! 아이구, 어느 놈이 내 돈을…” “아주머니, 바로 저자가 아주머니의 돈을 훔쳤습꾸마!” 경호가 손으로 땅딸보를 가리키자 몇몇 건장한 장정들이 달려들어 땅딸보의 두팔을 붙잡았다. “이 도둑놈아, 백주에 남의 호주머니를 털어?!” “아이쿠, 억울합꾸마. 도둑은 내가 아니라 바로 저 새끼입꾸마!” 땅딸보는 고개짓으로 경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놈아, 무슨 변명이냐? 어서 돈을 내놔!” “정말입꾸마. 내 저 새끼가 저 아줌마의 걸망을 터는걸 똑바로 봤습꾸마. 못믿겠으면 어디 저 새끼의 몸을 뒤져봅소!” 이리하여 뭇사람들의 시선은 땅딸보로부터 경호한테로 옮겨졌다. 경호는 뻔뻔스러운 땅딸보가 역겨웠다. 자신의 청백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숱한 눈길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져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의 호주머니에서 난데없는 돈지갑이 나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종래로 돈지갑을 사용한 적이 없는 그에게 돈지갑이 있을리 만무했다. “아, 내 돈지갑!” 돈을 털리운 중년녀인이 냉큼 돈지갑을 나꿔챘다. 그러자 교활한 땅딸보가 즉시 소리쳤다. “아줌마, 잠간만! 그 돈지갑이 정말로 아줌마의것이 옳은지 어떻게 암둥? 그러지 말고 그안에 무엇이 들어있다는것을 말해야 증명할수 있을 아님둥?” 그래서 그 중년녀인이 돈지갑을 땅딸보에게 넘겨주면서 그안에 10원짜리 인민페 15장과 5원짜리 인민페 10장 그리고 자기의 신분증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땅딸보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주위사람들앞에서 돈지갑안의 물건을 꺼내보였다. 중년녀인이 말한것과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사람은 겉을 보구선 모르겠단말이요. 알고보니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도둑이였구만!” “저런 녀석은 가만두었선 안되우. 잡아가야 하우!” 뭇사람들의 욕지거리와 눈총을 한몸에 받으며 경호는 넋을 잃은듯 서있었다. 이때에야 그는 땅딸보가 자기를 밀칠 때 작간을 부린것이란것을 깨달았다. 분했다. 치가 떨렸다. “전 도둑이 아닙니다! 사실은 저 땅딸보가…” 그가 사실의 진상을 까밝혀놓으려고 했으나 누구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뻐스는 방향을 바꾸어 파출소로 향했다. 그가 억울하다고 했으나 인증, 물증이 다 있기에 소용이 없었다… “빨리 네가 지은 죄를 말해라!” 두목이 두눈을 무섭게 부듭뜨고 재촉하자 경호는 짧은 회상에서 깨여났다. “이 새끼야, 무슨 짓을 했는지 빨리 말하란 말이다!” 두목은 자신이 경찰에게 당하던 화풀이를 경호에게 하는듯 싶었다. “난, 난…나쁜 짓을…” “임마, 네가 나쁜 짓을 했다는걸 다 안다. 그래 색갈을 했니?” “아니…” “안했다구? 임마, 니 녀자빤쯔까지 벗기구 어떻게 했다는걸 우리 다 알구있다. 솔직하게 말해라!” “아니, 난 그런 짓을 안했소!” “뭐야? 홀딱 벗겼지?” “아니…” “정말이냐?” 두목은 경호를 당장 한입에 삼켜버릴듯이 노려보았다. 경호는 사지를 와들와들 떨었다. “벗겼니? 안벗겼니?” “버…벗겼소.” 경호는 마지못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승인했다. 두목은 그제야 히죽이 웃으며 담배불을 붙였다. “벗겼으면 벗겼다구 진작 대답해야지. 야, 임마. 네가 어디 한번 재미보던 동작을 여기서 표현해봐라!” 경호는 수치와 모욕감으로 하여 슬피 울었다. 그러나 두목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았다. 경호는 그가 시키는대로 몇번 추잡한 동작을 하고나서야 숨을 돌릴수 있었다. 점심에 사발 하나 드나들만한 쪽문으로 시누런 강냉이밥과 멀건 시래기국이 들어왔다. 경호는 강냉이밥이 모래알 씹는듯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두목은 용하게도 밥 한그릇을 제꺽 조겨대고 경호의 몫까지 빼앗아먹었다. 경호는 오전에 그만큼 당했으니 오후에는 아무일도 없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두목이 또 괴롭힐줄이야. “임마, 이제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너 ‘맥주’를 마시겠니? ‘노래’를 부르겠니?” “맥주”란 두목이 선사하는 오줌이다. 경호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맥주”가 아무래도 좋지 않은것을 뜻하는것 같아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이 새끼, 목청이 좋은 모양이다. ‘령감’!” “예썰!” “마이크 준비!” “예썰!” 령감이란 녀석이 경호를 끌고가서 변기통뚜껑을 열었다. 순식간에 구린내가 코를 찔렀다. “야, 임마! 이것이 세계제1류의 고급마이크야! 여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되 3절까지 불러야 된다! 알겠니? 자아, 시—작!” 령감은 경호의 머리를 강박적으로 변기통에 틀어박았다. 경호는 고약한 냄새를 참으며 숨가삐 노래를 불렀다… 경호는 졸개중에서도 말석졸개가 되여 두목의 온갖 시중을 다 들어줘야 했다. 이부자리를 펴고 개인다, 변기통뚜껑을 여닫는다, 옷으로 부채질을 해준다, 전신안마를 해준다 하며 별의별 고생을 다 했다. 제일 힘든것은 대변을 보는 일이였다. 불량배들이 지켜보는 코앞에서 변기통에 엉뎅이를 대고있노라면 긴장감과 수치심에 배설이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을 끌면 못된 녀석들이 달려와 엉뎅이를 찰싹! 찰싹! 때려놓는다. 구류소의 밤은 고통의 밤이였다. 도리대로 말하면 밤이면 육체적인 시달림이 없으니 편안해야 했다. 하지만 낮에 받은 수모와 모욕 그리고 억울함으로 하여 무시로 파고드는 정신적 고통은 말로는 형언할수 없었다. 곁에 누운 녀석들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색정이야기를 하다가도 한바탕 음탕하게 웃어댄다. 하지만 경호는 한쪽에 돌아누워 설음에 겨워 울고 또 울었다. 아, 원통하다! 어찌하여 결백하게 살아가려는 내 인생에 이런 치욕의 력사를 남겨야 한단 말인가! 15일이란 나날이 그렇게 지루할줄은 몰랐다. 경호는 마침내 굴욕과 고통을 이겨내고 그 지긋지긋하고 진저리나는 생활을 결속지었다. 자유의 몸이 된 경호는 그 길로 목욕탕에 달려가 몸에 밴 더러운것을 씻었다. 하지만 수모와 억울함은 아무리 씻고 또 씻어도 씻겨지지 않았다. 경호는 목욕탕에서 나오다가 공교롭게도 한 청년과 마주쳤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 청년이 바로 소매치기군 땅딸보가 아닌가! 그자를 보자 경호의 가슴은 증오로 불타올랐다. “이 도둑놈아! 왜서 네가 훔치고도 나에게 덤터기를 씌웠니? 너때문에 난 억울하게 당했다. 온갖 모욕을 다 받으며…가자, 파출소로 가서 자수해라!” 경호가 손을 잡아끌자 땅딸보는 실눈을 지으며 웃었다. “노여워마오. 난 원래부터 친구를 억울하게 하려는 생각이 없었소.” 땅딸보가 능청을 떨자 경호는 화가 났다. “누가 너같은 망나니의 친구야? 어서 파출소에 가서 내 억울한 루명부터 벗겨달라!” “허허참,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파출소에 간들 어쩌겠소. 내가 잘못했다고 빌면 안되겠소? 나두 그때 친구를 해치려고 그런게 아니라 방법이 없어서 그랜게유.” “방법이 없어 그랬다구? 개나발을 불지 마!” “개나발이 아니요. 친구는 그래 ‘런짜이쟝후 썬부유지(人在江湖, 身不由己)’란 말을 못들었소? 강호에 떠도는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 할수 없이 마음에 없는 일을 하게 되는 때가 있는거요. 나는 그때 친구를 해칠 마음이 꼬물만큼도 없었지만 할수 없이 그렇게 한거요. 그때 친구가 못본척하고 가만있었더라면 난 그럴 필요가 없었을거요. 그러니까 완전히 내 잘못이 아니라 친구한테도 차실이 있는게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잡히는건 내 자신이 아니겠소? 내가 잡히면 경찰한테도 욕을 보고 우리 로따(老大)한테도 벌을 받게 된단 말이요. 그러니…” “그 무슨 개똥같은 궤변이야? 잡히는게 그리 무서우면 당장 가서 자수하고 손을 씻으란 말이다!” “손을 씻으라구? 내 배운 재간이 그것뿐인데 손을 씻구 무슨 일을 하겠소? 그리고 잡히는걸 무서워하면 아무일도 해낼수 없단 말이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모험이 필요하오. 농사군이 재해가 드는걸 무서워한다면 농사를 지울수 없고 어부가 배가 뒤집히는걸 두려워한다면 고기를 잡을수 없소. 또한 운전기사가 교통사고를 무서워한다면 핸들을 잡을수 없고 오입쟁이가 안해를 무서워한다면…” “듣기 싫다!” 땅딸보의 황당한 론리와 썩어빠진 인생관에 경호는 전률하듯 몸을 떨었다. 땅딸보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계속 떠벌려댔다. “헤헤, 친구! 우리 패거리에 가담하지 않겠소? 그럼 날마다 호강할게요. 온천하 사람들의 호주머니가 모두 우리의 은행이고 저금통이란 말이요. 친구도 어차피 도둑이란 감투를 썼으니 우리 손잡고 해보자구!” “더럽다! 나보고 도둑놈이 되라구? 네 같은 놈은 좋은 끝장이 없을게다! 아무때든 꼭 법망에 걸릴게다! 가자, 지금 나하구 파출소에 가서 자수해라!” 경호는 땅딸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때 몇몇 청년들이 나타나서 땅딸보를 불렀다. 경호는 할수 없이 땅딸보를 놓아주었다. “친구, 다시 만나자구!” 땅딸보는 패거리들과 함께 가면서 경호에게 손을 저었다. 경호가 구류소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소문은 동네에서도 퍼지고 친구들한테도 퍼졌다. 그는 밖에 나설 때마다 아는 사람들의 뒤손질을 따갑게 느꼈다. 친구들한테 놀러가도 그가 자기네것을 훔치지 않나 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하고있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나는 청백하다. 그러나 나는 세상사람들의 눈에 더러운 도둑으로 보인다. 아아, 말못할 억울함이여! 경호는 웃음을 잃었다. 련며칠 집구석에 꾹 박혀있노라니 미칠것만 같았다. 그는 감옥처럼 느껴지는 문을 밀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발길이 가는대로 이거리 저거리 쏘다녔다. 울적한 기분에 잠겨 어정어정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웬 억센 손이 뒤에서 어깨를 잡는 바람에 와뜰 놀랐다. “여, 친구. 또 만났군!” 땅딸보였다. 능글능글 웃는 그 낯짝을 보자 경호는 화가 치밀었다. “임마, 너때문에 난 진짜 도둑처럼 몰리고있다. 이 죽일놈의 새끼야!” “거참, 안됐구만. 하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한번 진짜 도둑이 돼보는게 어떻소?” “뭐야? 이 새끼…” “친구들의 의심과 사회의 차별대우를 받으며 머리도 못쳐들고 다닐게 뭐요. 나하구 손잡고 한번 해보기오. 사회는 친구를 버려도 우리 형제들은 친구를 따뜻하게 품어줄게요!” “개소리치지 마!” 경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 면상을 한대 얻어맞은 땅딸보는 두번째로 날아오는 경호의 주먹을 잽사게 피하며 덤벼들었다. 둘은 한동안 치고 박고 했다. 얼마후 맥이 지난 둘은 피투성이가 되여 주저앉았다. “허, 친구도 꽤 날파람이 있던데. 난 친구가 점점 더 맘에 드는구만.” 땅딸보가 종이로 코피를 닦으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경호는 그런 땅딸보를 성난 눈길로 쏘아보았다. “이 새끼, 널 찢어죽이지 못하는게 원통하다!” “허허, 친구.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 우리 저기 들어가 한잔 하며 화해하자구!” 땅딸보가 경호의 손을 잡아끌면서 일어섰다. 경호는 땅딸보의 손을 뿌리쳤다. “개새끼, 누가 너같은 도둑놈과 친구하겠니?” 경호는 발길로 땅딸보를 한번 더 걷어차고 몸을 돌렸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몇몇 불량배들이 경호의 앞을 막아섰다. “이봐, 친구. 왜 한잔 하자는데 남의 성의를 무시해?” 땅딸보와 녀석들은 무작정 경호를 끌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땅딸보와 경호는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고 술상에 마주 앉았다. “자, 인생은 일장춘몽이거니 먹고 마셔 보자!” 경호는 권하는 술을 마시지 않을수 없었다. 술이 몇잔 들어가자 경호는 자기절로 청해서 더 마셔댔다. 취하고싶었다. 취하여 거리를 쏘다니며 웨치고싶었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여보게, 친구. 억울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와 한길을 걷게 된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길은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한 길이라는걸 알아야 하오.” “미안하오. 이 지경호는 그 길로는 갈수 없소. 난 내 길을 나절로 갈것이요!” 경호는 비틀거리며 술집에서 나왔다. 땅딸보가 따라 나오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자기의 길을 자기절로 걷겠다구? 정말로 사내대장부의 패기가 있는 말이요. 하지만 난 조만간에 친구가 우리 형제의 품으로 들어오리라고 믿소. 지금은 강박하지 않겠으니 친구 마음대로 하오.” 경호가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서자 부모가 “사람질을 못할 놈”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경호는 “사람질”을 하기 위해 이튿날부터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에게 전과가 있다고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눈물이 나왔다. 혼자서 공원의 의자에 앉아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고있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친구. 또 만났네!” 땅딸보였다. 여기서 또 땅딸보를 만나다니? 악연이라도 이런 악연이 어디 또 있을가? “우리 인연이 깊구만! 반갑게 만났는데 어디가서 한잔 하자구!” 땅딸보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경호는 될대로 되라고 땅딸보를 따라갔다. 땅딸보는 경호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더니 3차만에 단간방이 있는 곳에 가서 아가씨까지 넣어주었다. 그날밤에 경호는 처음으로 아가씨와 재미를 보고나서 땅딸보의 도둑패거리에 가담했다. 경호는 땅딸보패거리의 두목한테서 한주일동안 소매치기에 대한 리론강의를 들으면서 호주머니를 터는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땅딸보를 따라다니면서 관찰능력을 키우면서 직접 실천에 나섰다. 연길에서 룡정으로 달리는 뻐스에 오른 경호는 한 중년사내의 웃옷 호주머니를 단단히 노렸다. 차가 시교를 방금 벗어났을 때 그는 손을 잽싸게 놀려 중년사내의 웃옷호주머니의 단추를 반쯤 벗겨놓고 시치미를 떼고있다가 뻐스가 들썩거리는 기회를 타서 손을 썼는데 그만 “노”를 감았던 손이 떨리면서 발각되고 말았다. 뒤를 봐주던 땅딸보가 비수로 중년사내를 위협해서야 무사히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 다음에는 룡정에서 연길로 달리는 뻐스에 올랐다. 노리던 사냥물이 눈에 들어오자 땅딸보가 경호를 슬쩍 건드렸다. 경호는 땅딸보의 눈짓대로 한 소녀의 곁에 바싹 붙어섰다. 경호는 가슴이 두근거려 몇번이나 쏜쓸 기회를 놓쳤다. 땅딸보의 눈짓에서 힘을 얻은 경호는 대담하게 손을 썼다. 성공이다. 처음으로 남의 돈뭉치를 자기의것으로 만든 경호는 가슴이 세차게 들뛰였다. 뻐스가 모아산에서 멈춰섰다. 땅딸보의 신호를 받은 경호가 뻐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그 소녀가 갑자기 목놓아 울며 소리쳤다. “내돈, 내돈이 없어졌어요! 입원한 어머니의 수술비를 물자던 돈인데 이걸 어쩌나요? 엉엉…” 소녀의 울음소리는 경호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로임봉투를 털리우고 소매치기를 욕하던 정경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며 그는 량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는 사람들에게 밀리는척 하며 소녀한테 몸이 쏠리는 기회를 타서  민첩한 동작으로 돈뭉치를 도로 소녀의 핸드백에 넣어주고는 부랴부랴 뻐스에서 내렸다. 그의 뒤를 따라 뻐스에서 내린 땅딸보가 성난 눈길로 경호를 쏘아보았다. “다 나꿔챈 돈을 도로 넣어주다니? 왜서 그런 바보짓을 했소?” “그애가 너무 불쌍해서…” “불쌍하다니? 하하하! 불쌍한걸 다 고려하면 우린 굶어죽소. 이런 일을 하자면 마음이 독해야 하오. 우리는 사람들의 통곡소리를 즐거운 노래처럼 들을줄 알아야 하오.” 이튿날에 그들은 룡정뻐스부에서 점잖게 거딜며 사냥물을 찾아다녔다. 한참후 경호가 투덜거렸다. “제길할, ‘천당문’은 ‘참대속’이요.” “괜찮소. ‘지하통로’에 ‘물만두’가 보이요. 몇‘타바(100원)’는 됨직한데 그거라도 따보기오.” 경호는 땅딸보의 눈짓대로 조양천방면의 검표구에 줄을 선 한 아낙네의 뒤에 바싹 붙어섰다. 땅딸보가 잽사게 차표 두장을 끊어가지고 왔다. 검표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물밀듯 터져나가며 다투어 뻐스에 올랐다. 승객들이 어찌나 많은지 경호는 그 아낙네와 같이 뻐스의 중간쯤에 서있게 되였다. 약사빠른 땅딸보가 얼마쯤 뒤에서 지켜봐주었다. 뻐스가 움직이자 경호는 손쓸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삼봉동어구의 울퉁불퉁한 흙길에 들어서자 뻐스가 몹시 들추었다. 경호는 몸이 앞으로 쏠리는 기회를 빌어 무릎으로 그 아낙네의 엉뎅이를 지긋이 밀면서 잽싸게 바지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한참후 뻐스가 재차 들추는 순간 경호는 감아올렸던 “노”를 살며시 꺼냈다. 곁사람들은 물론 그 아낙네도 눈치차리지 못했다. “지하통로”라고 하는 바지호주머니는 소매치기들의 가장 어려운 돌파구였다. 이 돌파구를 손쉽게 열어제낀 경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뻐스에서 내려 돈을 세여보니 한 “꼬재(1000원)”나 되였다. 너무도 흐뭇하여 그들은 술집에 가서 배를 두드리며 먹어댔다. “손님들은 직업이 뭐예요?” 곁에 앉은 아가씨가 술을 부으며 물었다. 경호는 어데가나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가슴이 찔리였다. 직업이 없다고 말하자니 체면이 깎일것 같고 그렇다고 직업이 “바이(소매치기)”라고 말할수도 없고…그가 처음 억울하게 잡혔을 때 경찰이 그랬다. 다른 직업이 없으니까 바이를 전문업으로 삼는 프로 아니냐고. 그런데 그렇게 억울하다고 웨치던 그가 진짜로 소매치기를 전문업으로 삼는 프로가 되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직업이 뭐예요’가 뭐야? ‘무슨 사업을 하시나요’라고 물어야지.” 땅딸보가 아가씨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아가씨가 해쭉 웃으며 다시 물었다. “손님들은 무슨 사업을 하십니까?” “우린 장사군이야!” “어마나, 그럼 사장님이시겠네요. 사장님은 무슨 장사를 하십니까?” “인육장사를 하지. 너희들은 인육을 팔고 우리는 인육을 사고. 하하하!” 땅딸보는 아가씨의 엉뎅이를 툭툭 치며 웃어댔다. 하지만 경호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자신의 운명이 한스럽고 그런 인생이 서러웠다. 경호의 소매치기솜씨가 제법 늘었을 무렵에 땅딸보가 경도선렬차에 올라 크게 하다가 덜미를 잡히여 감옥신세를 지게 되였다. 경호는 자기의 앞날을 보는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경호는 소매치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남은 패거리들이 자꾸만 떠미는 통에 마지못해 혼자서 뻐스에 올랐다. 고수머리중년사내를 목표물로 삼았다. 사람들이 밀치는 기회를 타서 경호는 잽싸게 해냈다. 다음 정류소에서 내린 경호가 성공의 기쁨에 겨워 휘파람을 부는데 어느새 따라 내렸는지 고수머리사내가 그를 불러세웠다. “여보게, 젊은이!” 에크, 들키였구나. 뛰자! 경호가 도망치려는데 고수머리가 다시 소리쳤다. “지경호, 이걸 가지고가게!” 낮도 코도 모르는 고수머리가 자기의 이름을 불러대자 경호는 깜짝 놀랐다. 고수머리가 손에 신분증을 들고 흔들어댔다. 자기의 호주머니를 뒤져본 경호는 또 한번 크게 놀랐다. 방금전에 뻐스안에서 털어냈던 고수머리의 돈지갑과 자신의 신분증이 깜쪽같이 없어졌던것이다. 아니, 저 고수머리가?! “이건 자네의것이니깐 돌려주겠네.” 고수머리가 다가와서 경호에게 신분증을 넘겨주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호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내들고 “이건 내것이니까 자네한테 줄수는 없네!” 하면서 경호를 쏘아보았다. 경호는 오금이 저려났다. “아이구, 스승님! 이거 눈이 있어도 망울이 없어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경호는 손발이 닿도록 싹싹 빌었다. 그러자 고수머리가 히쭉 웃었다. “자네 날 스승으로 모시고싶나?” “네.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자네가 나의 제자로 될 의향이 있다면 날 따라오게나.” 경호는 고수머리의 뒤를 따라갔다. 고수머리는 경호를 데리고 자동차수리부안으로 들어갔다. 고수머리는 거기서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갈아입으며 말했다. “나도 한때는 한다하는 소매치기군이였네. 하지만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좋은 끝장이 없네. 나는 끝내 잡혔고 안해마저 달아났네. 난 감옥에서 나온 뒤로 그 일에서 깨끗이 손을 씻고 자동차수리부를 꾸렸네. 이전엔 경찰만 보아도 날 잡으로 오지 않나 해서 속이 조마조마했고 잠을 자도 경찰에게 잡히는 꿈만 꾸었네. 하지만 지금은 어데가나 머리를 떳떳이 쳐들고 다닐수 있고 잠을 자도 발편잠을 잘수가 있네. 또 자기의 땀으로 번돈이니까 돈을 써도 떳떳이 쓸수가 있고…총적으로 말해서 사람답게 살수가 있게 되였다는 말이네. 어떤가? 젊은이도 그 일에서 깨끗이 손을 씻고 사람답게 살아보지 않겠나?” “…” 경호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저도몰래 고수머리의 말에 공감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젊은이, 나의 제자로 되여 여기서 일해보지 않겠나? 로임은 비록 소매치기보다 적을수는 있지만 떳떳한 직업이여서 사는 보람이 있을거네.” “…” 경호는 여전히 멍하니 서있었다. “대답이 없으면 동의한걸로 치겠네.” 고수머리가 경호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경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손님이 고장난 자동차를 끌고왔다. 고수머리가 부지런히 서두르며 경호를 보고 말했다. “젊은이, 뭘하고있나? 어서 저쪽에 가서 수리도구를 가져오게!” 경호는 장군의 명령을 받은 병사마냥 재빨리 움직였다. 고수머리에게 수리도구를 가져다주는 순간 경호는 가슴이 세차게 설레였다. 인젠 어데가나 그 누가 직업이 뭔가고 물어도 떳떳이 대답할수 있게 되였구나. “난 자동차수리공입니다!” (1989년)    
88    시골학교 댓글:  조회:3263  추천:2  2013-12-21
시골학교/콩트이야기   김희수     남호선생은 쓸쓸한 마음으로 휑뎅그렁한 교정을 거닐고있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수백명학생들의 글소리가 랑랑했던 이 자그마한 산골학교가 학생원천이 끊어져 문을 닫게 된것이다. 젊은 녀성들은 모두 도시거나 외국으로 나가고 늙으이들과 학부모로 될 나이의 로총각들만 이 산골마을을 지키고있으니 자연히 후대가 끊어진것이다. 학생수가 줄고 줄어 나중에는 4명만 남았댔는데 페교되면서 그 4명학생마저 배움터를 떠나게 되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교정을 바장이던 남선생은 학교문에서 나와 마을쪽으로 걸어갔다. 4명학생의 전도가 근심된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생각에 잠겨 걸어가던 남선생은 누군가 인사하는 말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인사하는 학생은 4명중의 금송이와 송국이였다. “선생님, 우린 오늘부터 한족학교에 다닙니다.” 그 말에 가슴이 쓰려난 남선생은 “한어를 배우는것도 중요하겠지만 학생들은 조선족으로서 언제든지 우리 말 우리 글을 잊지 말아야 하오”라고 당부하였다. 다른 애들의 정황을 물어보니 옥숙이는 도시학교로 가고 성무도 곧 한족학교에 다닐것이라고 했다. 남달리 총명하여 공부에 으뜸인 성무마저 한족학교에 가게 된다니 남선생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선생님, 우리 성무를 못봤수?” 금송이와 송국이가 떠난후 성무의 할아버지가 허둥지둥 달려오며 물었다. 그 애는 아버지가 학족학교에 붙이겠다니깐 싫다고 달아났다는것이다. 남선생은 성무의 할아버지를 도와 사처로 성무를 찾으러 다녔다. 나중에 페교된 학교에서 그애를 찾을수 있었다. 그애는 자기가 공부하던 교실에서 책을 펴놓고 공부하고있었던것이다. “선생님, 내가 저애를 공부시키겠다고 한마리밖에 없는 소까지 팔았수다. 그런데 학교가 없어졌으니 이젠 어째유? 저애는 한족학교에는 안가겠다지, 우리 힘으로는 도시학교에 보내지 못하지…” 성무의 할아버지가 눈물이 글썽해서 하는 말에 남선생은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말에는 “애비 없이는 살아도 소 없이는 못산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애비보다 더 귀중한 소까지 팔아 자식을 공부시키려고 했건만 배움터를 잃어버렸으니 이보다 더 큰 비애가 어디에 있겠는가! “선생님, 오늘 마지막으로 저한테 더 강의해주세요!” 성무의 간청에 의해 성큼성큼 교단에 올라간 남선생은 흑판에 큼작하게 열네글자를 써놓고 높은 소리로 읽었다. “우리는 우리 말 우리 글을 사랑한다!”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힘주어 따라 읽는 성무, 그애의 새별같은 눈에 이슬이 반짝였다. 그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난 남선생은 자신이 밥술을 드는한 꼭 성무학생을 공부시키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졌다. (1998년)    
87    복수의 도끼를 든 사나이 댓글:  조회:3498  추천:0  2013-12-21
  복수의 도끼를 든 사나이/콩트이야기     김희수     수호는 여름이면 무더위를 무릅쓰고 겨울이면 눈보라와 싸우며 하루 벌이를 해가는 가난한 삼륜차부였다. 딸애와 안해를 끔찍이 사랑한 순박한 가장이였던 그는 외도 한번 안하고 충실하게 가정의 중임을 떠메고 나갔다. 그런데 안해가 부정한 짓으로 자기를 배반할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그렇게도 다정했던 안해는 밤에 부부간의 사랑을 한번 하자고 껴안을라치면 짜증을 내며 쌀쌀한 태도로 돌아눕기만 했다. 수호는 갑자기 달라진 안해의 태도에 어리둥절해졌고 남들처럼 버젓이 차려놓고 살지 못하는 살림살이에 짜증나서 그러나? 하고 생각하며 안해를 리해하려고 애썼다. 안해여, 몇년만 더 참아다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당신의 손에 반짝반짝 눈부신 보석반지 끼워주고 당신의 목에 다이아몬드목걸이 걸어드릴테니… 수호는 삼륜차를 몰고 나가면서 올핸 꼭 장사밑천을 모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수호는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면서 부지런히 일했다. 그가 가족을 위해 피땀을 흘리며 일할 때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안해가 가끔씩 어떤 사내와 함께 데이트한다는 소문이 그의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수호는 안해를 의심하지 않았다. 한번은 가까운 사람이 그의 처가 불고기점 주인인 박씨와 놀아나고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지 말라며 버럭 화를 냈다. 한번은 같은 삼륜차부인 김씨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넌 네 처가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데 왜 그냥 삼륜차를 모니? 히히, 너 처가 불고기점 주인에게 특수접대를 해주는 수입만해도 짭짤할텐데…으하하!》 《뭐야?! 이 새끼…》 수호는 분노를 가누지 못해 주먹과 발길로 김씨를 한바탕 패주었다. 상처를 입힌 죄로 그는 쇠고랑을 찬 신세가 되였다. 일에 지쳐 집에 들어가 저녁밥을 먹기 바쁘게 TV도 못보고 피곤하여 잠들 때는 몰랐는데 감방에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별의별 생각을 다해봤다. 혹시 안해가 정말로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가? 내가 너무 안해를 믿은게 아닐가? 수호는 불길한 생각을 털어버리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불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곰곰이 돌이켜보았다. 불고기점에서 복무원으로 일하고있는 안해가 일이 끝나면 다른 녀직원들과 함께 불고기점에서 자고온다고 전화할 때가 많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녀직원들과 함께 잔다는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사실은 불고기점 주인과 붙어버린것일수도 있었다. 외박이 잦은 녀자치고 부정을 뿌리고 다니지 않는 녀자는 드물다고 어느 선배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밝혀내야 한다. 안해의 부정이 사실이 아니라면 좋은 일이고 그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그땐 도끼산장이야! 수호는 15일만에 풀려나왔다. 그런데 안해가 마중 나오지 않았다. 의심의 덩이가 더욱 커갔다. 집에 달려가니 딸애가 《아버지!》하고 달려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벌써 집을 나갔어.》 아이의 말에 수호는 눈앞이 캄캄했다. 안해가 불고기점 주인을 따라 갔다는것이였다. 안해의 부정이 사실로 밝혀지자 그의 눈엔 살기가 돋았다. 이 화냥년을 내손으로 죽여야지! 수호는 주먹을 쥐고 벼르다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가정이 망해버린 이제 내가 살아서 뭐하냐고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그러다가 화김에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그는 리성을 잃고말았다. 화냥년을 어떻게 죽일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였다. 방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도끼가 눈에 띄였다. 수호는 딸애를 이웃에 맡기고 안해의 행적을 찾아나섰다. 박씨는 불고기점을 팔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도시를 헤맸으나 헛탕이였다. 그러다가 처와 사내놈이 어느 노래방에서 놀고있다는 소식을 얻어듣고 도끼를 품속에 감추고 곧바로 노래방으로 쳐들어갔다. 212호실에 뛰여들어가니 몇쌍이 꼭 껴안고 춤추며 돌아가고있었는데 그 속에는 처와 박씨도 있었다. 《이 더러운 년놈들아!》 수호는 도끼를 꺼내들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혼비백산한 남녀들은 살길을 찾아헤맸고 노래방은 아수라장이 되였다. 수호는 처와 박씨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갔다. 처와 박씨는 뒤걸음치다가 벽이 막혀 더는 도망갈수 없게 되였다. 복수의 도끼를 높이 쳐든 수호가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처와 박씨를 향해 내리 찍으려는 찰나 《아빠, 안돼!》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빠의 심상치 않은 행동이 수상쩍어 몰래 뒤따라온 딸애가 울면서 소리쳤던것이다. 《아빠, 날 고아로 만들셈인가요? 엄마를 죽이면 아빠도 죽어요. 그럼 난 어쩌라나요?》 딸애가 훌쩍거리면서 하는 말에 수호는 들었던 도끼를 맥없이 내려놓았다. 딸애는 울면서 아빠 품에 안겼고 그런 딸애를 꼭 껴안은 그의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부둥켜안은 딸애와 아버지는 오래도록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엄마는 갈라면 가라고 해요. 내가 아빠를 잘 모실테니 우리 둘이 살면 되잖아요.》 딸애의 말에 수호는 정신이 들었다. 가정은 망해버린것이 아니다. 내겐 이렇게 셈이 든 딸애가 있지 않는가! 《얘야, 네가 아니면 내가 하마터면 살인죄를 지을번했구나. 그래, 그깟 년은 가라고 하지. 내 이를 악물고 돈 많이 벌어서 너를 큰 사람으로 키우리라.》 (1997년)  
86    국민당주력부대를 섬멸한 3대전역 댓글:  조회:6778  추천:0  2013-12-21
국민당주력부대를 섬멸한 3대전역 (번역)   1948년 9월 12일부터 1949년 1월 31일까지 료심대지에서 화북평원에까지, 황해에서 회하량안까지 드넓은 지역에서 인민해방군은 국민당주력부대와 중국의 운명을 결정한 전략적인 대결전을 치뤘다. 3대전역의 승리는 중국인민해방전쟁사에서 빛나는 리정비로 되였다. 항일전쟁이 승리한뒤 중국은 두가지 운명과 두가지 전도의 갈림길에 서있게 되였다. 중국공산당은 전국 광범한 인민군중의 근본리익을 대표하여 평화적인 방식으로 독립, 민주, 부강의 신민주주의 새중국을 건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대지주, 대자산계급리익을 대표한 국민당통치집단은 내전의 방식으로 전쟁승리과실을 독차치하며 독재적인 반동통치를 꾀했다. 국민당은 내전준비를 마친뒤 3~5개월내에 공산당이 령도하는 인민군대를 소멸하겠다고 떠벌이며 1946년 6월 26일에 22만명의 군대를 출동하여 중원해방구를 진공했다. 이로써 전면내전이 폭발되였다. 전쟁초기 쌍방의 력량대비는 현저했다. 국민당군의 병력은 430만명으로서 비행기와 땅크로 중무장했다. 해방군병력은 120만명에 불과한데다 장비는 대부분 “좁쌀에 보총”격이였다. 이 시기 모택동은 “일체반동파는 모두 종이범”이다는 저명한 관점을 제출하고 정치상에서 인민군중을 발동하고 군사상에서 우세병력을 집중하여 각개 섬멸하는 정확한 전략방침을 세웠다. 전면내전이 폭발된 첫 8개월에 인민해방군은 71만명의 국민당군대를 섬멸하여 전면진공을 파탄시켰다. 1947년 6월 30일 밤에 류백승과 등소평이 령솔한 12만 해방군이 황하를 강행도하하여 “로서남전역”을 발동하여 인민해방군의 전략진공의 서막을 열었다. 그해 10월 10일에 중국인민해방군 총부는 “장개석을 타도하고 전 중국을 해방하자”는 구호를 공개적으로 제출했다. 방어에서 진공으로 전환한뒤 해방군은 드높은 혁명기백과 탁월한 군사지휘예술로 전략결전의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고 1948년 9월 12일부터 1949년 1월 31일까지 료심전역,회해전역, 평진전역 3개 대전역을 거쳐 국민당주력부대 154만명을 섬멸했다. 1949년 4월 21일에 “백만대군 장강도하전역”을 시작하여 4월 23일에는 국민당통치수도였던 남경을 승리적으로 점령함으로써 22년간의 국민당통치를 뒤엎었다.    
85    모택동을 대만에 초청한 장개석 댓글:  조회:8703  추천:0  2013-12-21
모택동을 대만에 초청한 장개석                                                                                                      (번역)         20세기 70년대 상반기는 모택동과 장개석을 놓고 말할 때 모두 그들 인생의 최후의 날들이였다. 력사는 그들의 희망과 유감,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을 생명의 마지막까지 남겨놓았다. 1972년 3월, 재차 제5기 대만대통령으로 당선된 장개석은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이 하루라도 존재하는 한 우리혁명의 임무는 절대 끝나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천백번의 좌절과 타격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혁명의 임무를 완수하고야 말것이다!”하고“비장한” 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만년에 여러가지 질병에 시달린 장개석은 이 “웅대한 뜻”을 펴기는커녕 최후의 3년동안 공개적 장소에 겨우 세번밖에 나타나지 못했다. 반대로 중국혁명에 불후의 업적을 쌓은 위인 모택동은 장개석과 국민당반동파를 몰아내고 전중국을 해방하면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여 기쁨도 많았지만 문화대혁명의 폭풍으로 피로한데다가 림표사건의 강렬한 자극으로 하여 만년에 질병과 번민에 시달렸다. 공산당과 국민당이 싸울 때 미신을 믿은 장개석은 여러번 적수인 모택동을 망하라고 모택동의 조상무덤을 파헤쳤다. 하지만 모택동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장개석의 조상무덤을 풀 한포기, 벽돌 한장 다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문화대혁명시기 주은래가 장개석의 조상무덤을 다치지 못하도록 지시했지만 1968년에 누군가 장개석의 옛저택에 침입하여 무덤을 파헤쳤다. 다행이 유골은 가져가지 못했다. 대만에서 이 소식을 들은 장개석은 아들과 손자들을 다 모여놓고 “너희들은 영원히 이 원쑤를 기억해둬라! 모택동과 공산당을 뒤엎고 중화민국을 회복하는 날 가문의 원쑤와 나라의 치욕을 한꺼번에 씻어야 한다!”하고 훈계했다. 하지만 중앙정부에서는 재빨리 장가무덤을 수건하고 보호하는 조치를 댔다. 1972년에 중국방문을 왔던 닉슨대통령이 모택동을 보고 “장개석은 주석님을 비적이라고 부르던데 주석님은 장개석을 뭐라고 부릅니까?”하고 물어 모택동은 하하 웃었고 주은래가 대신하여“우리도 신문에 장개석을 비적이라 했습니다. 우린 서로 상대방을 비적이라고 불러왔습니다”하고 대답했다. 평화적으로 대만을 해방하기 위해 모택동은 먼저 체육운동기구에서 앞장설것을 지시했다. 그리하여 대만과 대륙의 체육선수들이 서로 래왕하며 경기를 치렀고 점차 친척방문의 길도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개석은 모택동을 일생에서 용서할수 없는 원쑤로 간주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도“나라”가 있었다. 1974년 양력설에 남부윁남에서 우리나라 령토인 서사를 침입했을 때 장개석은“중공이 출병하지 않으면 내가 출병하겠다”고 말하면서 대만 외교부문에 지시하여 “중국령토는 침범할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과 남부월남의 해상전쟁이 폭발한후 서사해군이 증병을 요구했다. 이에 등소평이 모주석께 회보하자 모주석은 동의하면서 군함이 에돌지 말고 대만해협으로 직행할것을 지시했다. 이전에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면하기 위해 중국해군은 동해와 남해를 오갈 때마다 모두 대만동남의 공해를 돌아서 래왕했다. 중국군함이 대만령해를 통과한다는 보고를 들은 장개석은 눈을 지긋이 감더니 “서사의 정세가 그렇게 긴박한가?”하고 물은후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 무조건 통과시킬것을 지시했다. 만년에 장개석은 고향생각을 몹시 했다. 1975년 양력설에 장개석은 일생의 마지막으로 되는 “복국”선언을 발표했다. 그해 음력설전후에 국민당원로 진립부는 장개석의 비밀사명을 접수하고 비밀경로를 통해 중공중앙에 모택동주석께서 대만을 방문해줄것을 초청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공산당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진립부는 향항신문에 “내가 만약 모택동이라면”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글에서 진립부는 “모택동이 대만을 방문하여 장개석과 담판의 길을 여는것을 환영한다. 나라와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모택동이 과거를 따지지 말고 북벌과 항일시기 국공량당이 두번이나 합작했던 전례대로 다시 새로운 합작의 길을 열것을 바란다”고 썼다. 모택동은 당시 명예를 회복하고 제1부총리직무를 맡았던 등소평을 불러 이 일을 토론하면서 “나는 신체가 허락되지 않으니 당신이 나를 대신해 대만을 방문할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개석은 모택동의 정식대답도 기다리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1975년 4월 5일 청명절아침에 오랜 병상에 누워있던 장개석은 휠체어에 앉아 오래동안 있어본적이 없었던 환한 미소로 병문안온 아들을 맞았다. 그는 헤여질 때 아들 장경국에게 “휴식을 많이 해라”고 당부했다. 그날밤 혼미상태에 빠졌던 장개석은 자정이 되기 10분전에 심장의 고동을 멈추었다. 향년 89세였다. 장개석의 령구를 옮길 때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진동하더니 소낙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장경국은 이것을 보고 “하늘도 력사위인의 죽음이 슬퍼서 운다”고 말했다. 장개석은 하나의 유감을 가지고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기탁했다. 그것은 모택동과 공산당을 뒤엎는 “복국”의 꿈이였다. 장개석은 해마다 “반공”의 글을 발표했고 “반공”계획을 세웠으며 1000여종의 방안을 설계하면서 하루도 “복국”의 꿈을 중단한 날이 없었다. 사람들은 장개석을 “자신의 힘도 모르고 허황하고 어이없는 꿈에 미친 늙은이”라고 비웃었지만 “복국”은 장개석에게 있어서 하나의 신성불가침의 “신념”이였으며 그가 유일하게 고독한 섬에서 버틸수 있었던 “정신법보”였다. 하지만 그 자신도 그것은 영원히 실현불가능한 꿈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그가 할수 있는 일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끝까지 분투하는것이였으며 유감을 유언에 남기는것뿐이였다. 그의 집착과 오만은 대만이란 이 “아이”가 모체를 떠나 밖에서 애처롭게 떠도는 비극을 조성했다. 1976년 9월 9일에 력사의 거인 모택동도 이 세상을 떠났다. 모택동은 장개석과 국민당반동파를 몰아내고 새중국을 건설했지만 량안의 통일은 이룩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택동은 장개석처럼 그렇게 과도한 정치적 짐은 짊어지지 않았다. 모택동은 “대만문제는 시간이 수요된다. 다음 세대에 가서 기다려야 해결될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택동이 완성하지 못한 력사적 임무를 등소평이 이어받았으며 지금은 호금도동지를 위수로 하는 당중앙에서 이 력사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있다. 어머니의 품을 떠난지 오랜 대만이란 이 “아이”는 고독하게 울면서 어머니를 몹시 그리고있다. 이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기려고 하는것을 그 누구도 막을수 없다.  
84    주은래의 첫 사랑 장약명의 비극인생 댓글:  조회:6561  추천:0  2013-12-21
  주은래의 첫 사랑 장약명의 비극인생                                                                                                                                                                                     (번역)   주은래와 장약명의 우정은 천진의 남개학교에서 시작되였다. 1902년에 하북성 청원현에서 출생한 장약명은 가정환경이 좋았고 특별히 총명했으며 성격이 강직했을뿐만아니라 다혈질이고 학생시절에 학습성적이 줄곧 1등이였으며 용모도 아름다왔다. 1919년 “5.4”운동때 장약명은 곽륭진, 등영초 등과 함께 천진녀성애국동지회를 조직했다. 그해 9월에 그녀는 주은래, 곽륭진, 류청양 등과 함께 혁명단체 “각오사”를 창건했다. 1920년초에 일본제품을 배척하는 활동을 벌렸는데 장약명은 주은래, 곽륭진, 우방주와 함께 수천명의 민중을 동원하여 직예성공서에 가서 청원하다가 당장에서 붙잡혔다. 당시 4명이 모두 붙잡혔는데 장약명은 주은래와 함께 감옥살이를 했다. 주은래와 장약명은 서로 상대방의 총명과 재능을 흠모하고 아껴주었다. 재질과 용모가 뛰여난 두 사람은 그야말로 룡과 봉황이였다. 주은래는 이 안개속에 가리운 연분에 대해 조금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1955년에 주은래는 장약명과 어떤 사이였느냐고 하는 후배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등영초앞에서 솔직하게 “처음에 우리는 사귀였어”라고 대답했다. 등영초는 당당한 공화국의 총리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것을 보고 그저 웃기만 했다. 출옥한후 “각오사” 사원들의 안전을 위해 네 사람은 프랑스류학을 떠나기로 약속했다. 1920년 11월 7일에 네 사람은 상해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로 갔다. 그 이듬해 봄에 주은래는 장신부, 류청양의 소개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중국공산당프랑스소조(후에 유럽지부로 반전)”에 참가했다. 1921년에 주은래는 프랑스어를 배웠는데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에 늘 웃음을 담고있는 장약명과 열렬한 사랑에 빠져있었다. 갓 프랑스에 갔을 때 곽륭진과 장약명은 빠리의 한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했다. 곽륭진은 장약명보다 8살 년상이였는데 큰언니처럼 장약명을 돌봐주었다. 1922년에 장약명은 곽륭진과 함께 조세염, 주은래, 리부춘이 조직한 “중국소년공산당”에 가입했다. 장약명은 맑스주의의 프랑스원작을 거침없이 량독하고 번역하였는데 공산주의연구회의에서 늘 그녀가 강의했다. 그녀는 학습심득을 써서 프랑스의 《적광》잡지에 발표하는 동시에 늘 프랑스의 통신을 써서 중국국내의 간행물에 발표했다. 장약명은 프랑스어에 능했고 또 녀자여서 신분을 숨기기 편리했기때문에 조직내에서 특별임무도 담당하여 프랑스공산당과의 비밀련락을 유지했다. 첫사랑은 특별히 아름다운것이다. 1922년은 주은래와 장약명의 사랑이 가장 열렬했던 한해였다. 하지만 주은래한테는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주은래의 선배이며 좋은 친구인 채화삼이였다. 호남사람인 채화삼은 모택동과 함께 장사에서 신민학회를 성립했고 최초로 폭력혁명의 주장을 내세웠는데 사상과 행위가 극히 진보적이고 급진적이였다. 채화삼은 괴재였다. 그는 프랑스에 온후 공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학원에 들어가 프랑스어를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회의에 참가하는외에는 프랑스자전을 안고 조용한 구석에 찾아가 혼자서 자전을 뒤지는것이 업이였다. 그는 흐트러지고 지저분한 얼굴로 맑스주의를 담론했고 입만 열면 무산계급독재를 웨쳐댔다. 그는 주은래가 련애를 하면서 사업과 학습을 좀 늦추는것을 보기만 하면 화를 내면서 “당신은 미색에 빠져선 안되오. 진정한 혁명자는 눈을 녀자한테 팔지 말고 압박받고 착취받는 로동자들에게 돌려야 하오”라고 경고했다. 가슴에 큰 뜻을 품은 주은래는 채화삼의 말을 듣고 갑자기 꿈에서 깨여난듯 사색에 잠겼다. 그는 세상을 놀래울 사업을 하려는 자신의 목표를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장약명을 일생의 반려로 선택하는것이 합당할가”고 자문하면서 고민했다. 장약명은 적극적이였지만 그녀의 가정출신은 줄곧 다른 사람의 의심을 받았다. 장약명은 사랑스러웠지만 승벽심이 강하고 다혈질이여서 무슨 일에서나 이기려고 했기때문에 가끔씩 주은래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가 있었다. 주은래는 고통스러웠지만 장약명과 헤여지기로 마음먹었다. 1923년에 주은래와 헤여진 장약명은 매우 고통스러운 심정을 안고 곽륭진과 함께 빠리를 떠나 리옹으로 갔다. 1923년에 빠리에서 리옹으로 온 곽륭진은 뜻밖에도 한고향사람인 양곤을 만났다. 곽륭진은 양곤을 자기의 친구 장약명에게 소개해주었다. 당시 양곤은 리과석사학위를 따내기 위해 공부에만 전념하는 서생이였다. 1924년에 장약명은 활동을 조직했다가 프랑스비밀경찰의 조사를 받았는데 하마트면 강제추방을 당할번 했다. 그해 주은래는 더는 소년공산당 서기를 담당하지 않았다. 새로온 소년공산당 서기는 방자하게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여서 성격이 강직한 장약명은 그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또 새로온 서기는 장약명의 출신을 문제로 삼고 그녀에  대해 조사했다. 게다가 여러번이나 정치활동을 하다가 프랑스경찰에 조사를 받게 되자 장약명은 억울하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하여 당조직에서 퇴출하고 프랑스에 남아 공부에만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장약명과 헤여진 주은래는 자신과 같은 신앙을 품은 등영초와 사귀기 시작했다. 장약명은 리옹대학과 가까운 곳에 있는 천주교녀자중학교아빠트로 이사했다. 거기에서는 집세가 싸고 식사도 책임져주었다. 그녀는 수녀처럼 그 아빠트에서 한명의 중국사람도 만나지 않고 한마디의 중국말도 하지 않으면서 근 3년동안이나 살았다. 때문에 프랑스비밀경찰의 추적에서도 벗어날수 있었다. 1927년 10월에 장약명은 우수한 성적으로 저명한 중불대학에 들어가 박사공부를 시작했다. 그 시기 그녀는 양곤과 함께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깊어졌다. 1930년 봄의 어느날 밤에 장약명이 기숙사에서 책을 읽고있는데 갑자기 아래층에서 “약명이, 약명이”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여왔다.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흰양복에 흰색 프랑스모자를 쓴 청년이 서있었다. 그 청년이 색안경을 벗자 장약명은 깜짝 놀랐다. 바로 주은래가 아닌가? 주은래는 낮은 소리로 자신의 행동은 매우 비밀적이라고 말했다. 남들이 모르게 살그머니 중불대학에서 나온 두 사람은 부근의 마을을 지나 한 자그마한 커피점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면서 주은래는 “난 모스크바로 회의하러 가는 길에 당신을 만나보려고 들렸소. 난 1925년에 광주에서 등영초와 결혼했소. 영초는 약명이가 잘 있는가 알아보라고 했소. 이제 헤여지면 우린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소. 난 앞으로 혁명을 하다가 희생되여 승리하는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원이 없소.” 그 말을 들은 장약명은 자신이 유일하게 탄복하고 사랑하던 옛 련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25년후 주은래는 질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해석했다. “남자와 녀자의 사이에는 애정이 끝나도 우정이란것이 존재한다. 평생의 반려가 되지 못하지만 친구로는 계속 지낼수 있지 않겠니? 장약명을 놓고볼때 우리는 천진에서 반년동안이나 함께 감옥에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함께 활동을 했기때문에 나는 그녀의 인품에 대해 잘 알고있다. 그녀가 혁명에 대한 추구를 포기했지만 적의 편으로 넘어가서 우리를 배반한것은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친구로 될수 있는것이다.” 1930년봄에 양곤은 안해와 리혼하고 장약명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양곤의 진심에 마음이 움직인 장약명은 마침내 그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신혼려행을 마치고 리옹으로 돌아온 장약명은 박사론문을 쓰는데 전념했다. 장약명은 우수한 성적으로 문과박사학위를 따냈다. 당시 프랑스류학을 온 녀학생은 40여명이였지만 박사학위를 따낸 녀학생은 그녀밖에 없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중국의 첫 녀박사였다. 1931년 양력설이 갓 지나자 장약명은 남편 양곤과 함께 북경으로 돌아왔다. 1948년 봄에 장약명과 양곤은 운남대학 교장 웅경래선생의 요청을 받고 운남으로 이주하여 운남대학에서 조건이 가장 좋은 교수아빠트로 들어갔다. 그들 부부는 중문학부 교수를 담임하면서 문예리론과 세계문학사를 가르쳤다. 곤명이 해방된후 장약명은 중국민주동맹에 가입했고 1950년에 다시 중국공산당에 가입할것을 신청했다. 1955년 봄은 장약명부부에게 있어서 특별히 따뜻한 봄이였다. 그들은 30여년전에 함께 프랑스로 류학갔던 전우이며 그 당시의 공화국총리인 주은래와 즐거운 상봉을 했다. 그들은 5시간이나 담화를 나누다가 함께 식사를 했다. 이는 주은래와 장약명의 마지막 만남이였다. 1958년 6월 18일 오전에 학부에서 반우파대회를 열고 장약명더러 죄를 승인하라고 핍박했다. 성격이 강직한 장약명은 없는 죄를 승인하라고 하자 모욕을 느꼈다. 오후에 계속 비판대회를 열고 더욱 압력을 가하겠다는 말을 들은 장약명은 강물에 뛰여들어 자살했다. 당시 북경에서 한 학술토론회의에 참가했던 양곤은 회의중에 운남대학에서 보내온 전보 한통을 받았다. 장약명의 병세가 위중하니 속히 오라는 전보였다. 양곤은 부랴부랴 운남대학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를 맞아준것은 장약명의 골회암이였다. 28년동안 환난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던 한쌍의 부부는 이렇게 영원한 리별을 하였다. 나중에 장약명의 억울한 죽음을 알게 된 주은래는 분노했다. 주은래와 등영초가 따져물어서야 중공운남대학당위에서는 장약명에 대한 착오적인 비판에 대해 시정하고 가족에게 사과했다. 1966년에 시작된 10년대동란때 양곤은 비판받고 매맞으면서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번 했다. 1978년에 호요방총서기가 친히 비준해서야 양곤은 북경중국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임명되였다.   
83    한족사위 이제는 그만! 댓글:  조회:9393  추천:20  2013-12-17
한족사위 이제는 그만!   김희수     내 송아지친구 승관의 막내누나는 비단결 같은 마음씨와 꽃처럼 예쁜 얼굴을 가진 처녀여서 따르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런 누나가 한족한테 시집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조선족남자를 마다하고 왜 하필 한족남자한테 시집을 갔을가? 리유를 들어보니 섭섭했다.   밥 할줄 몰라서 조선족남자한테 시집을 가면 시댁의 구박을 받는다는것이다. 한족남자들은 대부분이 료리를 잘하고 집안일을 도맡아할뿐만아니라 부부간에 안해의 지위가 더 높아 남편에게 떠받들리며 살수 있다고 했다.   요즘은 세상이 달라져서 조선족남자들도 집안일을 잘하고 안해를 떠받들기에 이런 리유로 한족남자한테 시집을 가는 경우는 드물다. 리유야 어떻든 한족사위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박선배 딸 결혼식에 갔을 때도 큰 충격을 받았다. 한족사위였던것이다. 결혼식을 한후 곧바로 아이의 첫돌생일잔치까지 차렸는데 한족이 된 그 아이를 보며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새롭다. 윤선배 딸 결혼식에 갔을 때도 그랬다. 윤선배의 사위는 한족사위가 아니였지만 스웨리예(스웨덴)사위였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딸들이 하나 둘씩 타민족이나 외국인한테 시집을 가는것을 볼 때마다 꼭 그래야만 하나 하는 생각에 어쩐지 슬퍼진다.  물론 그 심정은 안다. 한족사위가 달갑지는 않았겠지만 딸이 좋다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니 속수무책이였겠지. 하지만 더는 방관하거나 속수무책이여서는 안된다. 혼인은 자유이고 두 사람만 서로 행복하면 된다고 하지만 조선족녀성들은 타민족 남성을 선택할 때에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다시 다시 생각해보면서 조선족남성들에게 눈길을 돌렸으면 좋겠다.   10여년래 조선족 청년들이 청도, 북경, 상해, 심수 등지로 많이 진출하면서 한족과 결혼하는 현상이 늘어나고있다. 이렇게 한족사위를 맞으면서 그 후대가 한족으로 되여버리는 현상은 조선족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추세를 가속화하는 작용을 하고있다.   조선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가운데서 우수한 민족으로 자랑을 떨치고있지만 타민족과 인구를 비교해보면 보잘것 없다. 2000년 제5차 전국인구조사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에서 조선족보다 인구가 더 많은 민족은 12개나 된다. 우리 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소수민족은 쫭족(壮族)으로 1617만 8800명이고 그 다음순으로는 만족(满族) 1068만 2300명, 회족(回族) 981만 6800명, 묘족(苗族) 894만 100명, 위글족(维吾尔族) 839만 9400명, 토가족(土家族) 802만 8100명, 이족(彝族) 776만 2300명, 몽골족(蒙古族) 581만 3900명, 장족(藏族) 541만 6000명, 부이족(布依族) 297만 1500명, 동족(侗族) 296만 300명, 요족 (瑶族) 263만 7400명이다. 조선족은 192만 3800명으로 집계되였다.   상술한 통계를 보면 조선족인구는 타민족들에 비해 현저한 차이가 난다는것을 알수 있다. 게다가 점점 줄어들고있는 추세이다. 조선족인구감소추세가 지속되면서 연변이 조선족자치주지위를 잃게 되는 위기에 처해있다. 아무리 우수한 민족이라고 해도 인구가 줄어들면 동화되기 마련이다. 한족사위를 삼는것은 우리 민족의 동화를 재촉하는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한족한테 시집을 간 한 녀성은 조선족남자들은 술마시고 노는것을 너무 좋아하기에 믿음성이 없어 집안일을 잘해주고 안해를 떠받들어주는 한족남편을 만났다는것이다. 이것이 한족신랑을 찾는 녀성들의 공동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편면적인 생각이란것만은 틀림이 없다. 현재 가정을 이루고 사는 대부분 조선족 남자들이 집안일도 잘해주고 안해에 대한 사랑도 극진하다.   물론 술마시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없는것은 아니다. 이런 남자들은 상기 녀성의 말에서 충격을 받고 나쁜 습관을 고쳐서 한족남자한테 시집을 가려는 녀자를 꼭 잡아두어야 한다. 조선족남성들의 자질제고가 시급하다. 조선족남성들이 타님족남성보다 더 우수한 남성으로 거듭나야 조선족녀성들이 한족들에게 시집을 가는 현상을 막을수 있다.   또한 부모들부터 조선족인구의 급감세에 정신을 차리고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강한 민족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자기 민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타민족과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을것이다.   한족며느리도 문제다. 한족며느리가 아무리 정성껏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한족엄마의 손에서 자란 아이가 진정한 조선족으로 성장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한족사위는 이제 그만! 적어도 지금은 안된다!”고 고집을 피워본다. 조선족인구가 적어도 몽골족이나 장족만큼 되여야 타민족과의 결혼을 생각해볼수 있는 여유가 생길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안된다는것이다.   사랑은 국계도 없다는데 타민족과의 결혼은 왜 안되느냐고 시대에 뒤떨어진 협애한 민족주의라고 욕해도 좋다.   무엇이나 특수라는것이 있다. 지금 그 특수한 시기이다. 이런 특수한 시기에는 특수한 고집이 필요하다. 옹고집이라고 해도 좋고 똥고집이라고 해도 좋다. 이 시대의 모든 조선족아빠들이 남자친구를 찾는 딸들에게 “한족은 절대 안된다! 죽어도 안된다!”고 옹고집, 똥고집을 좀 부리라면 렴치없는 부탁일가?.        
82    청춘의 충동 댓글:  조회:3821  추천:0  2013-12-14
단편소설 청춘의 충동 김희수 박창범선생은 그저께 4차까지 마신 술로 해서 아직도 배가 따끔따끔 아파나고 맑은 정신이 나지 않았다. 멍하기만 한 머리로 어떻게 수업강의를 마쳤는지 모른다. 그는 한손으로 통증이 심한 배의 왼쪽부위를 지긋이 누르고 다른 한손으로 정신이 나지 않은 머리를 탁탁 치면서 오늘부터 술을 끊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그렇게 맹세한지 한시간도 못되여 창범선생은 장사장의 손에 끌려서 안국장이랑 함께 동방불고기성에 앉아있게 되였다. 참, 일은 공교로웠다. 만약 장사장에게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던 그녀와 그렇게 관계가 얼기설기 뒤섞어지는 않았을것이다. 낮에 서시장거리에서 우연히 세번 부딪혔는데 그렇게 인상이 깊었던것은 그녀가 너무 예쁘게 생겼기 때문일것이다. 하필이면 그 좁은 길에 차가 들어섰고 그 차를 피한다는것이 그만 마주오던 그녀와 어깨를 부딪혔던것이다. 《아, 미안…》 창범선생이 미안함을 표시하자 그녀도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나갔다. 그뿐이라면 그녀에 대한 인상도 곧 지워졌을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날 상가를 돌다가 또 한번 그녀와 마주쳤고 거리에 나와 택시를 잡다가 다시 그녀와 마주쳤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를 보고 생긋 웃었다. 창범선생이 그녀를 생각하며 퇴근하는데 장사장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창범선생은 장사장과 함께 술마시러 가기가 제일 싫었다. 장사장은 한번 간다하면 적어도 3차로 노래방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애주가였다. 그 다음은 주머니사정이야 어떠하던지 상관없이 안마방을 찾는다. 장사장은 가는 곳마다 노래방이나 안마방의 보스들을 잘 알아서 외상놀이도 곧잘 한다. 《자, 박선생, 안국장, 군침이 슬슬 도는 불고기에 한잔 들어보세.》 장사장은 술잔이야 얼마나 크던지 상관없이 첫잔부터 마지막잔까지 단숨에 건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술장사였다. 장사장과 안국장이 건배할 때 창범이는 생수를 부은 잔을 들이켰다. 《아니, 박선생은 왜 첫잔부터 재미없이 이래?》 《나 오늘부터 술을 끊었어요.》 《아하, 박선생은 왜 아까부터 박선생답지 않게 술을 끊었다고 그래?》 술을 끊기로 맹세한 창범이는 오늘은 누가 끌던지 모두 거절하고 곧바로 하숙집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방금 교문을 나서자 장사장이 지키고있은듯 그의 손을 잡아끌었었다. 《박선생, 박선생이 우리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느라 수고많았는데 오늘 내 그 〈원쑤〉를 갚아야 하겠소.》 《아니, 전에도 많이 대접받았는데 뭘 또…》 《사양하지 말게. 오늘은 내 박선생을 〈체포〉해 가야겠소.》 《싫어요. 난 술을 끊었어요.》 《뭐? 박선생이 술을 끊었다구? 이거 해가 서산에 뜨겠소. 하하하! 저기 안국장도 기다린다구. 어서 가세.》 장사장은 곧이듣지 않고 그냥 손을 잡아끈다. 장사장과 안국장은 모두 창범이가 가르치는 학급의 학부모였다. 장사장은 그 무슨 회사의 사장도 아니고 떠돌이장사군이였다. 안국장도 예전엔 모모국의 국장이였지만 지금은 개체장사군으로 탈바꿈해있었다. 《정말입니다. 난 정말 술을 끊었으니 안국장과 두분이 가세요.》 창범이가 막 뿌리치며 가려는것을 장사장이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장사장은 죄수를 압송해가듯 창범이를 억지로 택시에 밀어넣고 동방불고기성으로 왔던것이다. 《그저께 마신 술이 아직도…못견디게 배가 아픕니다. 난 이제부터 술을 끊었으니 누구도 나한테 술을 권하지 마십시오.》 《술을 끊었다구? 예로부터 술과 담배 그리고 도박과 오입은 못끊는다고 했어. 자, 첫잔만 들라구.》 《도박과 오입을 못끊는다고 했지요. 술과 담배는 끊을수 있어요.》 《하, 끊자고 마음만 먹으면 도박과 오입도 끊을수야 있지. 하지만 남자가 술마저 끊으면 무슨 멋에 살겠어. 자, 들어보세.》 《그저께 마신 술이…》 《누군 그저께 안 마셨어? 난 그저께 5차까지 마시고도 어제 또 3차까지 했어. 젊은 사람이 고까짓 술도 못하고 장가를 어떻게 가?》 《허허참, 술 잘 마시는것과 장가가는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박선생은 총각이니까 모르는군. 남자는 술이 강해야 장가를 가서도 마누라를 잘 다스린다구. 안 그런가. 안국장?》 장사장이 슬쩍 눈짓하자 안국장도 맞장구를 쳤다. 《그럼요. 남자는 술이 강해야 밤에 하는 일도 잘할수 있지. 밤에 하는 일만 잘해주면 밥상부터 달라진다구. 마누라는 남편의 구미에 맞는 음식을 차리느라고 오금에서 불이 나게 뛰여다닌다구. 어디 그뿐인가. 집안 일을 도맡아하면서도 힘든 줄을 모르고 남편의 손톱, 발톱 깎아주고 발까지 씻어준다구.》 《허허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겁니까? 내가 지금 곧 핸드폰으로 사모님께 〈사모님, 사모님은 안국장님의 발까지 씻어준다면서요? 정말 모범부인이시더군요. 나에게도 사모님처럼 미래의 모범부인이 될 색시감을 좀 소개해주세요.〉라고 여쭤볼까요?》 창범이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자 급해난 안국장이 핸드폰을 나꿔채며 술잔을 들었다. 《자, 롱담은 그만하고 술이나 들자구!》 창범이는 마지못해 한잔을 비우고나서 말했다. 《두분도 이젠 술을 좀 적당히 드십시오. 내가 건강신문에서 봤는데 술을 많이 마시면 정력이 약해진다더군요. 그리고 요즘 술과 담배로 40~50대의 분들이 성기능이 쇠퇴해져서 부인들이 욕구불만이더군요.》 그 말에 장사장과 안국장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정말로 예전만 못해. 마누라곁에 가본지도 오래되지.》 《난 이젠 마누라하고는 잘 안되네. 밖에 나가 다른 녀자랑 하면 잘도 되는데 말이야.》 창범이는 두 학부모가 권하는 술을 거절하면서 술좌석이 끝날 때까지 석잔밖에 마시지 않았다. 장사장이 오늘은 확실히 쏘겠다면서 2차로 버드나무다방에 들러 커피 마시고 3차로 노래방에 간다고 일어설 때 창범이는 사양하고 하숙방에 돌아가려고 했다. 《너무 늦었는데 두분만 가세요. 난…》 《박선생이 왜 이래? 누가 말리는걸 보자구그래?》 《총각선생이 뭐가 근심이야? 우리처럼 집에서 마누라랑 애새끼랑 기다리는것두 아니구.》 《난 술이 바빠서…》 《그럼 맥주 마시지 말고 목청만 뽑아보게나. 불야성노래방에 기막히게 예쁜 아가씨들이 왔다는데 한번 가보세.》 장사장과 안국장은 강제로 창범이를 택시에 밀어넣고 불야성노래방으로 달려갔다. 노래방에 들어서자 장사장을 아는 마담이 호들갑을 떨며 친히 8호방으로 안내했다. 마담은 또 얼마후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섹시한 아가씨 셋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얼굴이며 몸매가 제일 빼여난 아가씨를 장사장에게 소개했다. 《장사장님, 이 앤 시체말로 얼짱, 몸짱, 노래짱이예요. 얘, 미향아, 장사장님 잘 모셔라. 그리고 너들도 이분들 잘 모셔. 그럼 여러분, 유쾌하게 노세요.》 창범이는 미향이란 그녀한테서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미향이가 바로 낮에 그한테 세번 웃음을 선물했던 그녀였던것이다. 마담이 나가고 미향이란 아가씨가 장사장의 옆에 앉으려 하자 장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사양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박선생이요. 그러니 셋짱(얼짱, 몸짱, 노래짱)아가씨는 이 박선생이랑 파트너가 되는게 좋겠소. 이 박선생은 미국류학까지 갔다온 영어선생으로서 전도가 류망이오!》 장사장은 전도가 유망하다는 말을 우습게 번지면서 미녀를 창범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창범이가 총각선생이란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자 미향이는 창범의 곁에 바싹 붙어앉으며 애교를 부렸다. 《아까 첫눈에 알아봤어요. 낮에 거리에서 세번 마주쳤던 분이죠?…선생님께서 너무 미남이기에 제가 기억하고있었죠. 제 소개부터 먼저 하죠. 전 미향이라고 불러요. 오늘밤 선생님께서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미향이는 창범에게 맥주를 부어주고 《건배》하며 잔을 마주쳤다. 잔을 비우자 또 창범의 입에 포도를 넣어주었다. 《선생님은 어떤 노래를 좋아하세요? 제가 선곡해드리죠.》 미향이와 창범이는 함께 《강촌에 살고싶네》를 불렀다. 날이 새면 물새들이 시름없이 날으는 꽃피고 새가 우는 논밭에 묻혀서… 미향의 목소리는 확실히 맑고 아름다웠다. 다음에 미향이는 절주 빠른 노래를 불렀다. 창범이는 노래실력은 괜찮았지만 가사를 몰라서 마이크를 놓고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장사장과 안국장은 젊은이들처럼 머리를 정신없이 흔들어대며 춤을 추고있었다. 한곡이 끝나 장사장이 마이크를 잡자 미향이가 다가와 창범의 손을 잡아끌었다. 춤이 시작되자 미향이는 두팔로 창범의 목을 꼭 껴안고 얼굴을 그의 가슴에 폭 파묻었다. 빙글빙글 돌아갈 때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창범의 코끝을 간질거리며 이름할수 없는 향기를 물씬 풍겼다. 창범이는 그 향긋한 향기에 머리가 아찔아찔했다. 그는 그녀에게서 좀 떨어지려고 그녀를 밀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자 그녀는 두팔에 힘을 주며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박선생님, 전 선생님이랑 그냥 이렇게 딱 붙어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손을 좀 푸오. 저 사람들이 보겠소.》 《아이, 박선생님은 정말 총각이시네. 전 이런 선생님이 더 좋아요.》 미향이는 생글생글 웃다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가 뜨면서 살짝 추파까지 보냈다. 마침 노래가 끝나서 창범이는 자리에 돌아왔다. 창범이는 미향이가 권하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번에 안국장이랑 노래를 부르고 장사장이랑 춤추러 나갔다. 미향이가 손을 잡아끄는것을 창범이는 사양했다. 그러자 미향이는 창범의 무릎에 앉아 맥주를 권하며 안주를 입에 넣어주었다. 창범이는 그녀의 유혹을 물리치려고 일어서서 화장실로 나갔다. 그가 소변을 보고 나오려는데 어느새 따라 나왔는지 미향이가 다가와 귀속말로 가만히 속삭였다. 《박선생님, 오늘밤 절 아무데나 데려가 주세요. 네?》 《?…》 《박선생님 정말 멋지다! 선생님, 절 아무데나 데리고가 주실래요?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릴께요.》 미향이는 요염하게 웃으며 유혹했다. 아니, 이 녀자가 당돌하게… 《아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오.》 창범이는 미향이를 떠밀었다. 그러나 미향이는 창범이의 팔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머, 박선생님은 정말 순진한 총각인가봐. 전 이런 박선생님이 더 좋아요.》 《이걸 놓소!》 《박선생니임-》 《이걸 놓으란 말이요!》 창범이는 미향을 확 뿌리치고 장사장과 안국장한테 간다는 말도 없이 노래방에서 나왔다. 취하여 이곳이 어느 위치인지 알수 없었다. 택시를 불러 타고 《공신으로…》하고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공교로운 일도 있는가. 어제밤 퍼마신 술에 골은 나머지 늦잠을 자고있던 창범이가 《아저씨, 일어나》하고 누군가 흔들어깨우는 바람에 눈을 뜨고보니 서너살되는 남자어린애가 그의 귀를 잡아흔들고있었고 그 옆에는 어제밤 불야성노래방에서 함께 춤을 추던 아가씨가 얌전하게 앉아있는것이 아니가! 아니, 이건…창범이는 취하여 아가씨의 집에 잘못 왔나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낯익은 자신의 하숙방이 옳았다. 그렇다면 이 아가씨는… 《할머니께서 식사하시래요.》 그가 깨여나자 아가씨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어린애를 데리고 객실로 나갔다. 창범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세수부터 했다. 눈길이 마주쳐도 아가씨는 모르는체 했다. 주인집할머니가 아가씨를 데리고 와서 인사시켰다. 《어제낮에 우리 집에 하숙을 정한 새기네. 그리고 이쪽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아직 총각이라오.》 워낙은 그랬구나. 창범이는 저런 지저분한 아가씨와 한집에서 살게된것이 불쾌했다. 비록 방은 서로 다르지만…아가씨가 례절스레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전 김향옥이라고 불러요.》 향옥이라고? 어제밤 노래방에서는 미향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더니…그래, 노래방아가씨들은 모두 가명을 쓰니까 미향이란건 가명일게고…그럼 향옥이는 진짜 이름일가? 아무튼 미향이든 향옥이든 그 아가씨가 그 아가씨일텐데 사람이 어찌 이렇게 판판 다른 두개의 얼굴을 가질수가 있을가? 이 아가씨가 어제밤 노래방에서 자신의 목을 꼭 껴안고 동동 매달려 춤을 추다가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박선생님 정말 멋지다! 선생님, 절 아무데나 데리고가 주실래요?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릴께요.》하고 요염하게 웃으며 유혹해오던 그 아가씨란 말인가?! 낮에는 향옥이란 이름을 가지고 숙녀인체 하고 밤에는 미향이라는 이름으로 창녀노릇 하는 두 얼굴의 아가씨! 창범이는 경멸의 눈길로 아가씨를 쏘아보면서 물었다. 《아가씨, 날 모르겠소?》 《모르겠는데요. 우리 언제 만난적 있나요?》 아가씨는 정말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했다. 그래, 노래방아가씨라는 정체를 숨기고싶겠지. 흥! 아가씨는 어린애를 데리고 자기의 방으로 들어갔다. 리혼한 녀자인가? 저렇게 어린 자식을 데리고있으면서도 이 사내 저 사내에게 육체를 팔다니? 한심하군, 한심해! 창범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밥상에 마주 앉았다. 주인집할머니가 반찬을 데워오면서 물었다. 《박선생, 저 새기가 어떻소? 이쁘고 얌전하고…》 《할머니, 왜 저런 녀자를 받아들였습니까?》 《저런 녀자라니? 난 박선생의 색시를 만들가 하고 들였는데…》 《할머니두, 저런 녀자가 어떻게 내 배필이 될수 있습니까?》 《왜? 어린애가 달렸다구 그러오? 흐흐, 총각선생, 저 아가씬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라오.》 시집도 안간 처녀가 아이까지 있다면 미혼모인가? 아이 아빠한테 버림받고 화김에 화류계에 몸을 던진 녀자? 아니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고 이 남자 저 남자한테서 기생하며 살아가는 녀자? 《할머니, 저 아가씨가 어떤 녀자인지 알고나 그러십니까?》 창범이가 아가씨의 정체를 밝혀놓으려는데 마침 아가씨가 다가와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할머니, 이 애를 좀 봐주실래요? 어디 좀 나갔다 오자구 그래요.》 《오냐, 그래라.》 할머니가 선선히 대답하자 향옥이는 아이를 할머니한테 맡겨놓고 돌아서 나가는데 얼굴도 이뻤지만 잘 빠진 뒤모습이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인물이 아깝군! 미혼모라니…더구나…》 창범이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할머니가 싱그레 웃으며 말했다. 《미혼모라니? 그 아가씨의 몸매와 걸음걸이를 보오. 어디 애 낳은 녀잔가?》 《몸매를 보고 어떻게 애 낳은 녀잘 가려요? 요즘 세월엔 몸매를 잘 가꿔서 처녀같은 아줌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에그, 총각선생은 어째 그리 녀자 보는 눈이 없소. 저 아가씨는 처녀요. 순수한 처녀라니깐!》 아니, 이 할머니가 벌써 로망이 들었나? 애 엄마를 처녀라고 우겨대다니? 《총각선생도 빨리 장가를 가야지 요즘 세월엔 녀자들이 금값이 돼서 저렇게 참한 처녀도 드물다오. 저 건너 집의 아줌마는 애가 달린 리혼한 녀자인데 글쎄 총각들을 셋이나 줄 세워 놓고 이마들 탁탁 튕기며 고른다오.》 창범이는 픽 웃었다. 그러다 다시 탄식했다. 그는 대학교 때 약혼녀가 외국으로 시집을 간후로 사랑의 창문을 꽁꽁 닫고있다가 이제 30대중반에 들어서니 마음에 드는 처녀를 찾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우선 돈냄새부터 맡는 처녀들에게 가진것이 없는 창범이는 리상적인 배우자감이 못되였다. 창범이쪽에서도 그런 처녀들은 경멸의 대상이였다. 할머니가 뭐라고 자꾸 말했지만 창범이는 더 대꾸하지 않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싫컷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누군가 귀를 잡아흔드는 바람에 눈을 뜨고보니 남자애가 《아저씨, 점심 먹어.》하며 자기를 깨우고있는것이 아닌가. 달콤한 잠을 깨운것이 괘씸했지만 어린것이 하는 행동이 너무 귀여워서 욕이 나가지 않았다. 어린것을 안고 나가니 할머니와 향옥이는 밥상에 마주앉아있었다. 향옥이는 창범이를 보고 어느 학교에서 무슨 과목을 가르치고있는가, 조선족학생들이 줄어든다는데 그 학교정황은 어떤가고 자세히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 싫어 침묵을 지켰는데 할머니가 《이 총각선생은 영어를 가르친다우》하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러자 향옥의 크고 아름다운 눈이 반짝 빛나더니 《박선생님, 저한테 영어를 가르쳐주실래요?》하고 애걸하듯 간절한 눈길로 바라본다. 창범이는 놀랐다. 노래방아가씨가 영어를 배우겠다니? 영어를 배워서 뭘 하려고? 돈많은 외국남자를 꼬시겠다는건가? 《아이참, 보수는 후하게 드릴께요. 꼭 가르쳐주세요 네?》 창범이가 대답이 없자 향옥이는 안달아나서 바짝 달라붙었다. 흥, 돈은 얼마든지 있다 그 말이지? 사내들한테 한번 몸을 던지면 보수따윈 문제없다 그 말이지? 흥! 창범이는 코웃음을 쳤다. 《에그, 총각선생, 어서 대답하게. 이렇게 이쁜 처녀가 청드는데 어서 들어주게.》 할머니가 곁에서 보기가 민망한지 창범이의 옆구리를 치며 말했다. 창범이는 정말로 《그런 녀자》한테 가르쳐주기 싫었다. 그는 갑자기 묘한 핑계거리를 생각해냈다. 《난 밤에밖에 시간이 없는데…》 밤에는 이 아가씨가 노래방에 나가야 되니까 할수없이 제쪽에서 못하겠다고 그만둘것이 아닌가? 그런데 창범의 그 말이 끝나기 바쁘기 향옥이가 손벽을 치며 좋아서 퐁퐁 뛰는게 아니겠는가? 《좋아요. 저도 낮에는 출근하고 밤에밖에 시간이 없는데요. 잘 됐어요. 선생님, 그럼 잘 가르쳐주세요. 부탁해요.》 아니, 이 아가씨가 낮에 출근한다니? 《직업》을 바꿨는가? 밤에만 《출근》하는 노래방아가씨를 그만두고 어느 사내가 전화로 부르면 낮에만 달려가 《일》하는 콜걸? 그나저나 이건 큰일이다. 싫은대로 이 아가씨에게 영어를 가르쳐야하다니… 그날 저녁부터 향옥이는 창범이를 《선생님》, 《선생님》하며 열심히 영어공부에 달라붙었다. 창범이는 향옥의 열정에 탄복되였다. 그녀는 시간을 어길세라 매일 저녁마다 제시간에 꼭꼭 와서 가르침을 받았을뿐만아니라 아침 짬을 타서도 모르는것을 물어가며 열심히 영어단어를 외웠다. 《그런 녀자》가 배움에 이처럼 열성을 몰붓다니…이렇게 참한 녀자가 어떻게 되여 그런곳에 잘못 발을 들여놓았을가? 창범이는 탄식했다. 아깝다, 아까워! 《그런 녀자》가 아니라면… 창범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향옥이한테 끌리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그녀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겠지만 특히 그녀의 향학열에 탄복되였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좋아졌다. 그녀의 그 깊이를 알수 없는 호수같이 그윽한 눈길이 좋았다. 그녀의 부드럽고 친절한 말씨가 좋았다. 그는 영원히 그녀와 함께 있고싶었다. 그러다가도 도리머리질 했다. 내가 《그런 녀자》한테 끌리다니? 더구나 아이까지 달린…이래선 안되는데…하지만 향옥이와 마주하면 그녀가 《그런 녀자》란 생각이 말끔히 없어졌다. 《그런 녀자》면 어떤가 말이다. 그녀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시작한다면 역시 훌륭한 녀자가 아니겠는가. 어느날 주인집할머니가 창범이를 보고 벙그레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총각선생이 나한테 한턱을 내야겠네.》 《제가요? 무슨 턱을…》 《총각선생이 향옥처녀를 좋아하고있잖아. 이 늙은이가 그런 기회를 마련해줬는데 그래 보답이 없어서야 되겠소?》 《아…네…》 《총각이 쑥스러워하긴. 처녀도 총각을 좋아하는 눈치던데 빨리 다그치게.》 창범이는 꼭 향옥이한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날, 창범이는 교무주임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2차로 노래방까지 끌려갔다. 향옥이한테서 전화가 와서 곧 가마하고 말해놓았기에 2차는 아니 가려고 했지만 교무주임이 《노래 잘하는 창범선생이 축하노래 한곡 불러달라》고 어찌나 잡아끄는지 하는수 없이 따라 가고말았다. 또 불야성노래방이였다. 창범이가 먼저 한곡 부르고있는데 아가씨들이 뒤늦게야 들어왔다.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던 창범이는 갑자기 마이크를 쥔 손을 떨었다. 아가씨들속에 미향이, 아니 향옥이도 끼여있었던것이다. 아까는 영어공부시간이 늦었다면서 빨리 오라고 전화하던 향옥이가 여기 노래방에 나타나다니? 《본업》을 다시 시작할 작정인가? 아니면 내가 약속을 어겼다고 화가 나서 여기로 온것일가? 향옥이는 손님들을 둘러보니더니 곧바로 창범이한테로 다가왔다. 《어머, 멋진 선생님이 또 오셨네.》 향옥이는 리별했던 련인을 다시 만난듯 반기면서 창범의 목을 두손으로 꼭 껴안았다. 하숙집에서는 창범이와 손이라도 부딪칠세라 조심스레 행동하던 향옥이가 노래방에서는 누가 보는 앞에서도 이처럼 대담한 행동을 한단말인가? 창범이는 몹시 불쾌하여 향옥이를 슬며시 밀치며 물었다. 《아가씬 누구요?》 《어머, 귀인은 잊음이 헤픈가봐. 먼저번에 저랑 파트너가 되여 춤도 함께 추고…그랬잖아요.》 《그랬던가? 난 기억에 없는데…》 《어머, 선생님두, 일반적으로 우린 손님들을 다 기억 못해도 손님들은 우릴 기억하는데…아마도 제가 매력이 없었던가봐요. 선생님, 전 미향이예요. 미향, 기억 안나요?》 《미향? 그래 노래방에 왔으니 이름도 미향이라 바꿔야겠지. 하하하!》 창범이는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미향이를 뿌리치고 노래방에서 나왔다. 창범이는 배반당한듯 가슴이 쓰려났다. 소중한 그 무엇을 잃은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그래 《그런 녀자》를 맘속으로 사랑했었단 말인가? 바보같이 못난 자식! 창범이는 스스로 자기를 비웃었다. 더러운 년!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 구석에 가서 왝왝 토해버렸다. 그는 휴지를 꺼내 입을 닦고는 손을 들어 택시를 불렀다. 하숙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향옥이가 그를 맞아주었다. 《어머, 선생님, 인제 오셨군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요걸 딱 몰라서…》 《날 기다렸다구? 흥, 왜 노래방에서 더 놀아대지 않고 벌써 왔소?》 《노래방이라니요? 전 노래방에 간적이 없는데…》 향옥이는 아닌 밤중에 무슨 홍두깨냐는듯 의아한 눈길로 창범이를 바라본다. 창범이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무슨 녀자가 이처럼 낯가죽이 두껍담? 《그래 이름을 미향이라고 고치고 옷을 바꿔 입으면 내가 못 알아보는줄 아오? 아까는 노래방에서 나한테 매달려 갖은 아양을 다 떨더니 왜 집에 와서는 내숭을 떠는거요? 난 아가씰 경멸하오! 아가씨가 노래방아가씨라고 경멸하는것이 아니라 아가씨가 야누스처럼 두개의 얼굴을 가진 가면을 쓴 위선자이기때문이요.》 《무슨 말씀인지…혹시 선생님이 노래방에서 저랑 똑같이 생긴 미향이란 아가씰 만나셨어요?》 《아직도 시치미를 떼겠소? 미향이가 향옥이고 향옥이가 미향이지 그래 딴 사람이겠소?》 《그 미향이가 바로 향미일거예요. 저의 쌍둥이언니 향미…》 《뭐?! 쌍둥이…향옥이가 쌍둥이라구?!》 창범이는 깜짝 놀랐다. 내가 왜서 그 생각을 못했을가? 《향미언닌와 전 쌍둥이자매인데 향미언니는 불행하게도 처녀몸으로 아이까지 낳은후 타락하여 자기의 인생이 거꾸로 됐다면서 이름자를 거꾸로 고치고 유흥가를 돌아다니며 아가씨질 했어요. 아이는 저한테 맡기고…》 워낙은 그런 일이였구나. 창범이는 그만 향옥의 앞에서 면구스러워 어쩔줄 몰랐다. 《향옥이, 미안하오. 내가 영문도 모르고 마구 욕부터 했으니…》 《미안하면 저한테 영어를 더 잘 가르쳐주세요.》 향옥이가 방그레 웃었다. 《그거야 응당 그래야지…》 아, 인생은 워낙 이렇게 아름다운것이였구나! 창범이는 온몸에서 힘이 솟구치는것 같았다. 며칠후 하숙집에서 영어공부를 하다가 향옥이가 창범이를 보고 말했다. 《우리 나가 바람이나 쏘일까요?》 《좋아.》 창범이와 향옥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부르하통하로 나갔다. 주말이라 강변엔 낚시질을 하는 사람, 배놀이를 하는 사람, 산보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강가의 경치를 구경하면서 나란히 걸어갔다. 창범이는 어쩐지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기회에 사랑을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다가도 용기가 부족하여 입밖에 내보내지 못하고 도로 삼켜버리기를 몇번, 그러다가 크게 용기를 내여 《저…향옥이…》하는데 갑자기 향옥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 여기까지 왔다구요? 저는 배놀이하는 부근에 있어요. 제가 보인다구요?》 향옥이는 핸드폰을 끄더니 뒤를 돌아다보았다. 무지개다리 쪽에서 몸집이 웅장한 사내가 계단을 밟고 내려오고있었다. 그 사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창범이네 앞까지 달려왔다. 향옥이가 그 사내를 보고 방긋이 웃더니 창범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소개하지요. 이 분이 바로 저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박선생이예요.》 창범이는 또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분은 향옥이의 오빠가 틀림없을꺼야. 향옥이가 나를 오빠한테 소개하는구나. 이러면 벌써 나한테 마음이 있다는게 아닌가.) 그런데 다음순간 향옥이가 《그리고 이분은…저의 남자친구예요. 이제 곧 결혼하게 될…》하고 그 사내를 가리키며 창범이한테 소개하는게 아닌가?! 그 순간 창범이는 몽둥이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듯 멍해졌다. (그녀에게 약혼한 남자가 있다는걸 왜 생각 못했을까? 그런줄도 모르고 제 좋은 멋에…얼마나 바보였는가.) 창범이는 갑자기 이 세상이 어두워진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소중한 그 무엇을 잃은듯 가슴이 아팠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듯 했다. 그는 그 사내가 《수고 많이 했습니다!》하고 손을 잡을 때 어떻게 대꾸했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내가 《저기 포장마차에 가서 한잔하며 이야기합시다.》하고 끌어서 따라 갔던것 같았고 거기서 술만 연신 들이켰던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 장사장을 만나서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가 3차만인가 4차만인가 무슨 노래방인가 간것 같았는데 그 이상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새벽에 목이 말라 깨여난 그는 깜짝 놀랐다. 자기는 낯선 침대에 누워있는데 글쎄 자기곁에 향옥이가 누워있지 않는가. 그것도 발가벗은 향옥이가…그리고 자신의 몸도 어느새 발가벗겨져 있지 않는가.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가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는데 어느새 눈을 뜬 향옥이가 정겨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 깨나셨어요? 목이 마르지요? 제가 생수 떠다드리죠.》 《아니, 여기가 어디요? 내가 어떻게 여기에 누워있지?》 《어머, 선생님두, 기억 안나세요? 선생님께서 어제밤에 장사장이랑 함께 노래방에 왔는데 몹시 취하셨더군요. 저를 보더니 〈향옥이, 향옥이…〉하고 부르더니 막 토하고…그래서 제가 저의 세집에 모시고 온거죠.》 《아니, 내가…이게 무슨 실례…그럼 거기는 미향이?》 《이제야 절 알아보시는군요. 온밤 저를 향옥이라고 부르시더니…호호호…》 창범이는 너무도 창피하여 얼굴을 들수 없었다. 미향이가 속옷을 입더니 일어나 생수를 떠왔다. 창범이는 생수를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원한 랭수가 들어가자 속에서 일던 불이 꺼지며 살것 같았다. 정신이 들자 또 자신이 한 행동이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내가 지난밤 추태를 보이고 또 미향이와 발가벗고 한 이불을 덮고 잤다니…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가? 혹시 내가 취하여 미향에게 무슨 일을 저지른건 아닐까? 《내가…혹시…미향에게 불순한 행동을 한건 아닌지…》 《어머, 자기가 한 행동도 모르세요?》 《난 정말 기억나지 않는데…》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책임을 회피하려는건 아니겠죠?》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정말 미안하오. 난…난…》 창범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자 미향이가 깔깔 웃어댔다. 《호호호. 선생님은 정말 순진하시네. 제가 책임지라는 말을 안 할테니 안심하세요. 지난밤에 제가 취한 선생님을 모시고 와서 저의 침대에 눕혔는데 선생님은 갑자기 〈향옥이…향옥이!〉하며 저를 막 껴안더군요. 전 피할수도 있었지만 선생님이 좋아서 옷을 벗고 선생님에게 맡겨버렸어요. 전 알아요. 선생님은 저의 쌍둥이동생 향옥이를 사랑하죠?》 《…》 《향옥인 착하고 현숙한 애지요. 제가 절망에 빠졌을 때 그 애는 절 위로해주었고 제가 갈팡질팡하여 아이마저 버리려고 할 때 그 애는 선뜻이 나서 제 아이를 맡아 키웠죠. 이젠 미국류학을 갔던 그 애의 미혼부가 돌아왔으니 저의 아이를 제가 찾아서 키워야 하겠어요. 엄마구실을 못한 저의 죄를 반성하고 죄없는 아이를 버린 그 빚을 갚아야하지요.》 미향이의 예쁜 눈에서 이슬이 반짝거렸다. 창범이는 그녀에게도 모성애가 있구나 하고 느끼면서 그녀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였다. 미향이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이 세상 남자들을 모두 저주하며 노래방아가씨가 되여 남자들의 팁을 꼬셔냈죠. 하지만 여태껏 어느 남자에게나 몸을 허락한 적은 없었어요. 몸만은 팔지 않았죠. 그런데 선생님만은 달랐어요. 선생님처럼 순진한 남자는 처음 봤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꼬시려했지요. 그러면서 저도 몰래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거죠. 선생님, 사랑해요!》 미향이는 방그레 웃으며 다가와 창범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창범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미향이를 밀치며 떠듬거렸다. 《미…미안하오. 난…》 《호호호. 선생님, 미안해할것 없어요. 전 알아요. 저같은 녀자가…더구나 아이까지 달린 녀자가 선생님의 배필이 안된다는것을. 전 선생님께 부담을 주지 않겠어요. 선생님, 시름놓고 가세요. 하지만 제가 수요된다면 아무때나 불러주세요.》 《미향이…》 창범이는 입을 열었으나 무슨 말을 더 할수 없었다. 그는 미향이를 사랑하고싶었으나 그런 용기가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창범이는 미향이가 지어주는 아침밥을 먹고 그 길로 등교했다. 오후에 퇴근하여 하숙집에 돌아오니 향옥이가 짐을 꾸리고있었다. 미혼부가 왔으니 여기서 떠나려는게로군. 하고 생각하면서 창범이는 짐을 꾸리는것을 거들어주었다. 주인집할머니가 아쉬운듯이 말했다. 《에그, 저 새기를 박선생과 약혼시키자 했더니 임자가 있었군. 박선생, 저 새기가 래일 새집에 이사하고 다음달에 결혼잔치를 한다오.》 《거, 반가운 소식이군요. 향옥이, 축하하오!》 창범이는 겉으로는 대범하게 말했으나 속은 알짝지근했다. 할머니는 향옥에게 마지막 끼니를 대접시킨다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짐을 다 꾸린 향옥이는 창범이를 보고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수고했어요.》 《아니, 수고는 뭘…》 《저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또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셔서 감사해요.》 창범이는 같은 쌍둥이인데 왜 이렇게 다를가? 미향이도 향옥이처럼 순수하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생각하다가 문뜩 아이가 보이지 않는것을 보고 물었다. 《아이는?》 《언니가 데려갔어요. 이제부터 자기가 키우겠대요. 이제 곧 결혼하는 저에게 더는 부담을 줄수 없다면서 데려갔어요. 사실 언니는 아주 훌륭한 녀자예요. 거기에 비하면 전 정말 나쁜 녀자예요. 언니가 타락하게 된것도 모두 저때문이죠.》 《향옥이때문이라니. 그건?》 《몇년전에 저의 남자친구가 미국류학을 떠나겠는데 자금이 모자랐어요. 그래서 친구랑 술상에서 만나서 노래방에도 몇번 함께 다니며 풋 면목을 익힌 최사장한테서 사정을 말했더니 선선히 2만원을 꿔주더군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떠난후 최사장은 저한테 와서 치근거리면서 꾼 돈을 받지 않겠으니 자기와 동침하자는것이였어요. 제가 과분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깡패를 추겨서 저의 다리를 잘라 놓게 하겠다고 위협했어요. 그자가 평소에 어중이떠중이 깡패무리와 사귀고있다는것을 알고있는 저는 무서워 벌벌 떨었어요. 저한테서 모든 사연을 들은 언니가 격분하여 나섰어요. 언니는 그날로 최사장을 만났는데 물론 최사장은 언니를 저인줄로 알고있었죠. 언니는 어느 다방에서 그자를 만나서 그 따위 위협은 안 통한다, 빚은 꼭 물겠으니 시간을 달라, 하고 말했죠. 그자는 교활하게 웃더니 어느새 언니가 마시는 커피에 몽혼약을 탔어요. 그리고 언니가 혼미해지자 택시에 싣고 가서 언니의 순결을 빼앗았어요. 그때 언니는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남자친구에게마저 주지 않았던 처녀의 순결을 이렇게 빼앗겼던것이였어요. 언니는 너무도 통분하여 울었으나 이미 엎지른 물이라 이것으로 빚을 청산하자고 했지요. 하지만 그자는 한번으론 안된다면서 한달동안 동거해야 빚을 안받겠다는 조건을 내놓았어요. 언니는 이미 젖은 몸이 물에 들어가는걸 꺼리랴 하고 그자의 요구를 들어줬어요. 한달후 빚을 청산하고 그자의 마수에서 벗어났지만 이 일을 알게 된 언니의 남자친구는 언니를 더러운 년이라고 욕하면서 차버렸어요. 실련의 고통에 모대기던 언니는 자살할 마음까지 먹었어요. 언니가 유서까지 써놓은것을 본 저는 언니를 붙잡고 네가 죽으면 나도 함께 죽겠다, 우리는 같은 날에 태여난 쌍둥이니까 죽어도 같이 죽자, 하고 말하며 통곡했어요. 그러니까 언니는 유서를 찢어버렸는데 그후에도 자살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언니는 문뜩 자신이 임신한걸 발견했어요.》 워낙은 그랬구나! 창범이는 쌍둥이자매가 당한 봉변을 듣고 한숨을 내쉬였다. 향옥이가 말을 이었다. 《자신의 배속에서 작은 생명이 꿈틀거리는것을 발견한 언니는 그 생명을 살려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자신의 몸은 이미 자신의 생명 하나뿐만이 아니라는것을 발견하는 순간 언니는 자살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그 작은 생명을 사랑하게 되였어요. 결국 언니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았어요. 그후 언니는 아이를 키우며 혼자 살아가려고 마음먹고 사랑의 창문을 꽁꽁 닫아버렸어요. 그러다가 한 남자의 출현으로 언니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되였는데…》 향옥이는 말을 잠깐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언니는 아는 사람의 중매로 리혼하고 아이가 없는 남자를 만났어요. 처음에 언니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남자가 주동적으로 찾아와서 사랑을 고백하면서 언니를 꼬셨어요. 언니는 그 남자를 상대하기 싫어했지만 그 남자는 혼자서 달콤한 말을 늘여놓았어요. 언니는 그 남자를 랭대하면서 쫓아냈지만 그 남자는 물러가지 않고 날마다 찾아와서 끈질기게 달라붙었어요. 그 남자는 우리 먼저 결혼상대로가 아니라 우정을 주고받는 보통친구로 사귀자, 그러다가 서로 상대방을 료해한후에 다시 보자, 하면서 언니의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뜨렸어요. 그 남자는 기회만 있으면 언니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온갖 감언리설로 언니의 마음을 녹였어요. 키 크고 준수한 용모에 청산류수같은 말솜씨를 가진 그 남자에게 언니는 차츰차츰 마음이 흔들렸어요. 언니의 마음이 움직이는것을 발견한 그 남자는 다시 언니에게 사랑을 고백했어요. 언니는 이미 그 남자에게 마음이 빼앗겼음에도 나는 미혼모이니 당신과 짝이 기운다, 당신은 나보다 훌륭한 녀자를 찾아가라, 하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 남자는 내 눈에 당신은 가장 훌륭한 녀자다, 나는 당신을 생명처럼 사랑하면서 당신의 아이를 내 친아들처럼 키우겠다, 하고 말하며 언니를 포옹해주려고 두 팔을 벌렸어요. 그러자 언니는 감동되여 그 남자의 품에 안겨버렸어요. 하지만 그 남자의 속셈은 그게 아니였어요. 그 남자는 언니의 미모에 반하여 언니가 미혼모라는것도 꺼리지 않는다고 대답했던거예요. 이렇게 그 남자에게 속아넘어간 언니는 그 남자와 동거했어요. 언니는 그 남자와 동거하면서 결혼을 재촉했지만 그 남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어요. 언니가 자꾸만 결혼등기를 하러 가자고 재촉하자 그 남자는 왜 이리 시끄럽게 놀아? 계속 이러면 너와는 끝이다! 하면서 발칵 화를 냈어요. 그 남자는 언니 모르게 다른 녀자를 사귀고있었던거예요. 그 사실이 언니한테 들통나자 그 남자는 제 쪽에서 성을 내면서 언니와 관계를 끊어버렸어요. 그 남자의 배반이 언니에게 준 타격은 너무 컸어요.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은 언니는 이때부터 모든 남자들을 저주하게 되였어요. 그리고 타락하여 노래방아가씨로 되여 남자들의 돈주머니를 털어내는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언니가 변하자 제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언니의 아이를 도맡아 키웠어요.》 향옥이는 한숨을 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언니는 타락한게 아니예요. 언니는 본바탕이 선량하고 순결하고 착한 녀자예요. 지금도 언니는 변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언니의 마음은 저보다 더 깨끗해요. 저는 겉보기엔 남들에게 좋은 녀자로 보이지만 속마음은 허위적이고 리기적이지요. 언니가 저때문에 그렇게 됐는데도 저는 남들에게 〈처녀의 몸으로 타락한 언니의 아이를 키워주는 훌륭한 녀자〉라는 이미지를 자랑하고싶었어요. 선생님, 제가 이렇게 선생님께 속마음을 다 말하는것은…》 향옥이는 기대에 찬 눈길로 창범이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주인집할머니한테서도 듣고 저도 눈치챘어요. 선생님께서 저한테 마음을 두고있다는것을요. 전 선생님을 다는 료해하고있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여태까지 관찰을 통해 선생님은 훌륭한 남자라는것을 보아냈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결혼할 상대가 있고…아니 제가 약혼한 몸이 아니라 해도 저같은건 선생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훌륭한 녀자가 못돼요. 선생님께서 진짜 녀자 보는 눈이 있다면 저같은 녀자보다 우리 언니 미향이를 사랑해주세요.》 향옥이의 이야기는 창범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었다. 창범이는 자기가 여태껏 30여년을 살면서 이 사회에 대하여, 녀자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고있었다는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때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어느 주말, 창범이가 하숙집에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있었다. 그때 예쁘장한 녀인이 커피를 따라 가지고 와서 창범에게 권했다. 《선생님, 좀 쉬면서 가르쳐요.》 그러자 아이가 녀인을 흘겨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엄만 나빠. 선생님한테만 커피 갖다드리고…흥! 나보다 선생님을 더 이뻐하면서…》 그러자 창범이도 미향이도 유쾌하게 웃었다. (2005년)  
81    숨결 댓글:  조회:3457  추천:0  2013-12-14
단편소설   숨 결   김희수     그날 아침 공장사람들은 하나, 둘 출근하는 길로 벽보를 둘러쌌다. 홍상철이도 사람들 틈에 끼여 제일 첫머리에 있는 자기의 이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눈살이 찌푸려지고 얼굴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홍동문 이번에도 주력이군. 영광스럽겠네!》 리회계가 상철이의 어깨를 툭툭치며 웃었다. 상철이가 한마디 툭 쏘아주려는데 몇몇 로동자들이 걸어왔다. 《허허, 이번엔 〈앉은 놈〉들이 로동개조를 든든히 하게 됐군!》 《그만큼 편안했으면 내려와 뼈다구를 좀 놀려보는것도 마땅하지!》 《제길, 한달이 아니라 한 일년 붙들어뒀으면 좋겠는걸!》 공장은 추석월병철이면 농촌의 모내기철처럼 분망하다. 추석을 한달 앞두고 돌격적으로 월병생산에 들어서는데 이때면 《앉은 놈》들도 절반은 의자에서 엉뎅이를 털고 일어나 의무로동을 해야 한다. 이런 일은 두해에 한번밖에 없으나 (워낙 한해에 한번씩인데 륜번으로 사람을 바꾸다보니 평균 한사람에게 두해에 한번씩 차례지는 셈이다.)앉은 놈들은 거의 모두가 직장에 내려와 밀가루먼지를 뒤집어쓰기 싫어 병을 핑계댄다든가 집에 무슨 딱한 사정이 있다든가 하며 구실을 만들어 가지고 몸을 빼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제1, 2, 3 《쏘파분》들께서 토론하여 명단을 작성했던것이다. 이런 연고로 홍상철이는 노기등등하여 《제일쏘파분》을 찾아가 따지고들었다. 《전 작년에 내려갔는데 왜 또 내려가라는겁니까?》 《제1일쏘파분》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고 상철이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사실 나도 이번엔 홍회계를 내려보내지 않으려고 했소. 그런데 직장에서 홍회계의 이름을 특별히 찍어서 요구했소. 그러니 고생스럽지만 좀 수고해주오. 허허허!》 직장에서 홍상철의 이름을 찍어 요구했다는것은 사실이였다. 홍상철이가 어찌나 몸을 내번지고 일을 잘했던지 이번해에는 여러 작업반장들이 서로 자기반조에 보내달라고 다투어 요구했던것이다. 《전 제가 내려가는데 불만이 있어 그러는게 아닙니다. 왜 리회계같은 사람은 몇년째 한번도 내려가지 않습니까?》 《허허참, 모든 일이 어떻게 천편일률로 되겠소. 홍회계, 한달만 수고해주오!》 말해봤자 헛수고였다. 이런 대답이 나올 줄 미리 알고있은 홍상철이는 구태여 더 따지지 않고 공장장사무실을 나와버렸다. 누가 그랬는지 공장사람들을 두패로 나누어 《앉은 놈》과 《선놈》으로 갈라놓았다. 《앉은 놈》이란 의자가 차례진 지체높은 분들을 가리키고 《선놈》이란 직장에서 일하는 로동자들을 말하는것이다. 《앉은 놈》을 또 쏘파, 나무의자, 절반의자로 세등급을 내였다. 쏘파에 의젓이 앉은 분들은 상등분들이고 나무의자에 편안히 앉은 분들은 중등분들이니 절반의자에 쪼크리고 앉은 분들은 하등분들이라 해야겠다. 그런데 하등분들을 어째서 절반의자라고 하는가? 반쪽의자를 깔고 둘이서 한의자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는다는 뜻인가? 아니, 하등분들도 중등분들과 마찬가지로 나무의자에 앉아 사무를 본다. 다르다면 상등쏘파분들의 지시를 받는다든가 하층 선놈들의 부름을 받는다든가 할 때면 즉시로 의자에서 엉뎅이를 털고 일어나 《앞으로 갓!》을 해야 하는것이다. 절반의자는 전공과 접수실인원 그리고 창고보관원을 례로 들수 있다. 전공은 말로는 절반의자라고 하지만 기실 위세를 부리는 면에서나 자기 배를 채우는 면에서나 모두 나무의자들보다 나은것이다. 접수실인원은 비록 지위면에서 창고보관원만 못하지만 편안한 일자리만 탐내는 공장사람들은 문지기라고 천하게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나무의자들도 그 자리를 탐내는것이다. 그러니 절반의자에서도 창고보관원이 꼴찌인것이다. 공장에는 네개의 창고에 보관원 넷이 있다. 철물교전류창고, 포장물창고, 제품창고, 원료창고 이 네개의 창고중에서 최령감이 맡았던 원료창고의 일이 제일 어지럽고 힘들다. 그래서 공장사람들은 최령감을 《말석령감》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그가 퇴직하여 잠시 그 말석의자가 비여있다. 홍상철이는 공장에서 문화정도가 제일 높은 《1등수재》이다. 그는 공장에서 유일한 중등전문학교졸업생인데 자습하여 대학본과졸업증서까지 탔었다. 홍상철이가 있는 재무과에서는 과장자리에 앉아있던 분이 관계망을 통해 모 은행으로 뚫고 들어가는 바람에 잠시 그 과장자리가 비여있었다. 도리대로 말한다면 이 자리는 응당 주관회계인 홍상철에게 차례져야 할것이나 고중졸업생인 리회계에게 이 자리가 차례진다는 소문이 떠돌고있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홍상철이가 《제1쏘파분》의 눈에 난것을 다 알고있다. 홍상철이가 경제를 틀어쥐고있는데서 가끔 모순이 생기게 되였다. 《제1쏘파분》께서 이렇게 하라하면 고분고분 그대로 해야겠는데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홍상철이는 이렇게 하면 좋지 않으니 저렇게 하는게 어떻겠냐 하면서 제 의견을 내놓는가 하면 이건 절대로 이렇게 할수 없다고 외고집을 부리기까지 하였다. 리회계가 찦차를 사자는 제의는 《제1쏘파분》의 지시를 받고 내놓은것인데 홍상철이는 찦차를 사는 나쁜 점에 대해 열가지로 렬거하면서 견결히 막아나섰고 그대신 공장운영에 리로운 트럭을 사야한다고 손을 흔들어댔다. 그래서 《제1쏘파분》께서 찦차를 사는 일을 뒤로 미루었으나 이 일로 하여 홍상철이는 리회계와 《제1쏘파분》의 눈에 나게 되였다. 공장에는 원래 생산직장마다 남자가 희소했는데 홍상철이가 내려간 오춘화작업반에는 남자라곤 한사람도 없는 《랑자군》반이였다. 게다가 그와 함께 내려간 세명의 《앉은 놈》도 녀자여서 그가 유일한 남자였다. 마침 그의 이름이 영화 《홍색랑자군》에서 나오는 당대표 홍상청이와 비스했기에 누군가 그에게 《당대표》란 별명을 달아주었다. 《당대표》가 《랑자군》을 거느리고 창고에 가서 원료를 타내올 때는 볼만했다. 사탕가루와 밀가루포대를 가득 실은 밀차를 뒤에서 숱한 랑자군들이 밀고 앞에서는 《당대표》가 혼자 끌고 간다. 그때면 직장에 내려가지 않은 몇몇 《앉은 놈》들이 그늘밑에 앉아서 《샹챈진! 썅챈진!》하고 《홍색랑자군》의 행진곡을 부르며 《당대표》를 골려주는데 그중에서도 리회계의 목소리가 제일 높았다. 《어이, 〈당대표〉! 일 잘하는데, 하하하!》 《당대표》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앉은 행운아들을 쏘아본다. 그러면 그게 더 재미있다고 그치들은 목청을 높여 소리친다. 《어이, 《당대표》, 오청화가 련애하자고 따르고있네!》 작업반장 오춘화는 자기를 빗대고 놀리는 줄 알고 밀가루를 한웅큼 손에 쥐고 달려가서 그치들에게 밀가루벼락을 안긴다. 《어이쿠, 퉤!퉤!》 얼굴에 밀가루먼지를 푹 뒤집어 쓴 리회계가 우거지상이 되여 툴툴거린다. 그러자 《랑자군》들속에서 일시에 짜그르르 유쾌한 웃음보가 터지고 《앉은 놈》들도 제멋에 배를 끌어안고 웃는다. 《하하하, 오청화가 리과장에게 고급분을 발라줬군!》 한 《앉은 놈》이 손벽을 치며 고아대자 《선놈》들은 그만 어정쩡해졌다. 리과장이라니? 리회계가 언제 과장으로 승급했단말인가? 리회게가 공장에 들어오자마자 회계자리에 앉은것은 그가 배전국 모 과장과 사돈이 되였기때문이다. 몇달전에는 상업국 국장이 후실을 맞아들이는 바람에 뜻밖에도 그분의 처5촌조카가 되는 행운까지 지니게 되였다. 직장에 돌아온 《선놈》들은 분통이 터지여 너도나도 욕설을 퍼부었다. 《정말 기차오! 어째 개뿔도 모르는 리회계를 다 과장을 시켰다오?》 《응당 홍회계가 과장이 돼야지요!》 《그렇지 않구! 그 눈깔 먼 병신들이 인재를 몰라본당이!》 했건만 홍상철이는 말없이 일만 했다. 요란한 반죽기와 전기화로의 동음속에서 떠들썩한 녀인들의 웃음속에서 《당대표》는 기름때를 묻혀가며 한달을 보냈다. 《랑자군》들과 작별의 술을 마신 이튿날 아침, 홍상철이는 사무실계단을 오르다가 웃층에서 내려오는 《제1쏘파분》과 만났다. 《제1쏘파분》은 싱글벙글 웃으며 《당대표》의 어깨를 친절하게 두드렸다. 《허허, 홍동무, 수고했소!》 《수고야 뭘, 응당한 일이지요.》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당대표》의 입가엔 쓰거운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가 재무과로 발길을 옮기려는데 《제1쏘파분》께서 다시 불러세웠다. 돌아다보니 최고분은 웃고있었다. 《홍동무, 한달만 더 수고해야겠소!》 《?》 《홍동무도 알다싶이 한달동안 내처 월병만 생산하다보니 지금 다른 품종의 생산이 딸리고있는 형편이오. 그런데 오춘화작업반엔 남자가 없어 생산에 영향을 받고있소. 맨 녀자들이 100킬로그람짜리 쌀마대랑 어떻게...》 《오, 그래서 저더러 직장에 남으라는겁니까?》 《영 남으라는게 아니오. 다른 남자를 배치하기전까지 홍동무가 좀 수고해달라는거요!》 이리하여 《당대표》는 또다시 《랑자군》들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다시 한달만에 재무과로 들어가니 리과장이 득의에 찬 미소를 짓고있었다. 《오, 홍동무, 무슨 용무가 있소? 아니면 옛 사무실이 그리워...》 《리회계, 난 사업하러 왔소!》 《사업하러 왔다구? 하, 이거 아직 모르고있소? 여긴 홍동무의 자리가 없는데...》 《당대표》가 보니 자기의 자리엔 웬 낯선 녀인이 앉아있었다. 주먹같은 분노가 가슴에서 올라왔다. 재무과를 나온 그는 한달음에 공장장사무실로 달려들어갔다. 마침 쏘파에 비스듬히 앉아 신문을 보고있던 《제1쏘파분》이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오, 홍동무구만! 무슨 일로?...》 아닌보살하는 최고분을 보자 《당대표》의 불끈 틀어쥔 주먹에서 우득우득 소리가 났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 그 일말이오? 이거 참, 일이 딱하게 됐소. 재무과에 새로 온 동무는 방역소의…》 《알만합니다!》 《당대표》는 뿌질뿌질 끓어오르는 격분을 가까스로 참았다. 담배불을 붙여무는 《제1쏘파분》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알면 됐소. 재무과엔 인원이 넘어나니까 어쩌겠소. 원료창고의 보관원자리가 비여있는데…》 최고쏘파분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또 한번 말끝을 흐리였다. 《당대표》는 두눈을 부릅뜨고 최고분을 쏘아보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춘화작업반에 남자가 없어서 어쩝니까?》 《거긴 보이라공 주충일이를 보내기로 했소.》 《주충일?》 《당대표》는 주충일이를 잊을수 없었다. 지난해의 어느날밤, 그가 간부직일을 설 때였다. 손전지를 켜들고 공장안을 돌아보던 그는 갑자기 배가 아파나 땅바닥에서 대굴대굴 구울었다. 그때 보이라불을 때던 주충일이가 아우성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그를 업고 시병원까지 달려갔다. 말수 적고 수걱수걱 일만하는 주충일, 《당대표》는 이 주충일을 돕고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렇다면 저대신 주충일이한테 창고보관원을 넘겨주십시오. 전 그냥 오춘화작업반에 남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앉은 놈》이였던 홍상철이는 《선놈》이 되고 《선놈》이였던 주충일이는 《〈앉은 놈》이 되였다. 《말석의자》에 앉기전까지 주충일은 공장사람들에게 《주깍쟁이》로 불리웠다. 주충일이가 성이 주씨인데다가 한심한 깍쟁이라고 그런 별명을 달았는지 아니면 소설 《고옥보》에서 나오는 주깍쟁이를 생각하고 그런 별명을 달았는지 하는건 딱히 알수 없지만 그가 소문난 깍쟁인것만은 사실이였다. 주충일은 술담배와는 인연이 없고 마작이나 트럼프놀음도 깜깜부지이다. 옷도 일년 사시절 늘 그 한벌밖에 없는듯한 초록색 옷에 남색바지를 입고 《해방군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겨울이면 밑에 솜옷을 더 껴입을뿐이다. 그가 그 옷을 20년전 공장에 들어올 때부터 입었다는 사람도 있고 10여년전 장가 들 때부터 입었다는 사람도 있는데 여하튼 그 옷을 오래전부터 입고 다닌것만은 사실이다. 주충일이는 홍상철이가 재무과에서 밀려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쓰려났다. 홍상철이가 자기보다 서너살 더 어리다고 하지만 학식있는 그를 몹시 존경하는터였다. 상철이를 찾아가 한마디 위안이라도 해주고싶었다. 그가 과자직장문어구에 이르렀을 때 안에서 숱한 《선놈》들이 왁작 떠들어대고있었다. 《세상에 어디 이런 법이 있어요! 인재를 밀어내다니? 홍회계가 억울해요!》 《공장이 망하자고 하는 짓이야!》 《홍회계를 밀어내선 안되오! 우리 올라가 해내기오!》 《옳소! 우리 모두 올라가 도리를 따지기오!》 《선놈》들이 벌떼처럼 직장안에서 밀려나왔다. 주총일이는 얼른 한켠에 비켜섰다. 분노에 찬 《선놈》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사무청사로 돌진하려 할 때 홍상철이가 뒤따라나오며 앞을 막아섰다. 《여러분, 이러지 맙시다! 떠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 직장에 내려와 여러분들과 함께 일하는게 더 마음이 편안합니다!》 홍상철이가 이렇게 나오자 선두에 섰던 오춘화는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여럿ㅇ르 이끌고 직장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주충일이는 홍상철의 앞으로 다가서며 그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아쥐였다. 《상철아, 난 무슨 말로 널 위안했으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형님! 형님과 같은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으니 난 조금도 괴롭지 않소!》 《상철아, 네가 보관원직을 내게 양보했다면서? 감사는 하다만...》 《허허 참, 형님두, 그 일이 보이라공보다는 나을거요. 난 일하러 가야겠소.》 상철이가 떠나자 주충일이는 열쇠뭉치를 흔들며 원료창고로 돌아갔다. 공장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소문난 《쓰레기대장》인 주충일이를 하찮게 보고있었다. 집에 아무런 가장집물도 없는데다가 몇해전에는 안해까지 달아나서 홀아비가 되였지, 후에 외국에 있는 그의 친척이 거금을 보내왔다는 소문이 났건만 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그대로 업심을 받고있는 상태였다. 그런 속에서도 이 《말석의자》를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이 대해주는 사람이 딱 둘이 있는데 그들인즉 《당대표》와 작업반장 오춘화였다. 오춘화는 남편이 늘 술을 마시고 폭행을 저질러서 리혼한 녀인인데 인물은 수수해도 마음씨가 비단같고 성미가 시원시원했다. 그녀는 누가 뒤에서 《말석의자》를 《깍쟁이》, 《쓰레기》, 《눈병신》이라고 헐뜯기만 하면 당장에서 남의 인격을 모욕하지 말라고 따갑게 타이르군 했다. 워낙 말수가 적은 《말석의자》도 오춘화와 마주서기만하면 말이 그칠새 없었다. 이 모든것을 한눈에 꿰뚫어본 《당대표》는 좋은 일을 하려고 오춘화를 찾아 가만히 대중을 떠보았으나 그녀는 무슨 롱담을 하느냐고 아닌보살하며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타내온 원료가 모자라서 《당대표》와 오춘화는 일하던 도중에 《말석의자》한테로 가게 되였다. 빈 밀차를 함께 밀고 가던 오춘화가 갑자기 밀차에 뛰여오르며 까르르 웃어댔다. 《호호호, 동갑이, 내가 앉으니 더 가볍지?》 사실 사람이 앉으니 밀차가 평형을 잡으며 끌기가 더 쉬웠다. 《당대표》는 오춘화를 태운 밀차를 밀고 쏜살같이 달렸다. 《이제 내 혼내주지 않나봐!》 밀차의 속도가 빨라지자 오춘화는 질겁하여 《멈춰요, 멈춰요!》하고 소리쳤다. 바로 그때 뿡뿡-요란한 경적소리가 울리며 달려오던 새 찦차 한대가 밀차옆을 스쳐지나더니 공장마당을 한바퀴 빙빙 돈후 다시 그들 앞에 와서 멈춰서는것이였다. 운전수좌석에서 최고쏘파분의 아드님이 내리고 뒤좌석에서 최고쏘파분과 재무과 리과장이 위풍당당하게 나왔다. 최고분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리과장을 보며 말했다. 《허허, 새차가 좋긴 좋구려!》 《더이를데 있습니까? 이제부터 우리한테도 자기 차가 있으니 연길로 갈 때 편리하게 됐습니다!》 맞장구를 치던 리과장은 밀차를 밀고 가는 《당대표》를 발견하고 손을 저어대며 소리쳤다. 《어이-〈당대표〉! 오청화와 둘이서 재미 좋은데, 하하하!》 《제길, 너무 좋아하지 말어!》 홍상철이는 리과장을 쏘아보고는 계속 밀차를 밀었다. 밀차에 앉아 최고쏘파분의 아드님이 찦차를 닦고있는것을 바라보며 오춘화는 입을 삐죽거렸다. 《하긴 잘하오. 공장은 밑지기만 하는데 저들은 호강을 부리고...》 《호강을 부리라지.》 《운전수가 남아도는데 찦차는 제 아들을 몰게 하구 참!》 《맘대루 날뛰라지!》 창고문앞까지 갔을 때 홍상철이는 문에 자물쇠가 걸리지 않은것을 보고 안에 대고 소리쳤다. 《형님, 문을 여오! 새각시를 데려왔소!》 《아이, 동갑이두!》 오춘화는 갑자기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빨개서 밀차에서 뛰여내렸다. 이윽고 창고문이 열리며 《말석의자》가 나왔다. 그는 온몸에 밀가루먼지를 보얗게 뒤집어쓰고있었는데 흰 위생모밑에 드러난 머리카락은 《백발》이 되여있었다. 그 모양을 보고 입을 싸쥐고 키득키득 웃던 오춘화가 주충일에게 눈을 곱게 흘겼다. 《아이참, 주동무, 어서 옷을 갈아입고 세수하세요!》 《아니, 또 일하면 묻겠는데 뭘...》 오춘화가 손으로 주충일의 옷을 털어주자 홍상철이가 놀려주었다. 《어허, 동갑이, 신랑재만 생각하다가 원료는 안 타가겠소?》 《아이, 괘씸해라!》 오춘화는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상철이한테 막 대들었다. 상철이가 요리조리 피하며 달아나자 춘화는 붙잡겠다고 기를 쓰고 쫓아다녔다. 《상철아, 아이들처럼 무슨 장난이냐? 빨리 싣기나 해라!》 주충일이가 말려서야 그들은 《정전》을 하고 밀차에 원료를 실었다. 오춘화가 주충일이와 표를 맞춰보는 사이에 혼자서 밀차를 밀고 나간 홍상철이는 재빨리 밖으로 문을 걸어놓았다. 오춘화가 상철의 의도를 알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는 열리지 않는 문을 안타깝게 밀어댔다. 주충일이도 달려와 문을 밀며 소리쳤다. 《상철아, 문을 열어라! 어서!》 《하하하, 형님, 둘이 마음놓고 련애를 하오. 내 한시간후에 와서 문을 열어줄게.》 상철이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밀차를 밀고 떠나버렸다. 그때로부터 석달이 지난후 주충일이와 오춘화가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렸는데 상철이는 남의 기쁜 날에 흰술 많이 마시고 취해서 울었다고 한다. 《혀...형님! 우...우리 공장이 마...망하게 됐소! 나...난 시...실망했단말이우!》 상철이는 충일의 어깨를 막 부여잡고 흔들다가 자기이 가슴을 마구 두드려댔다. 술을 입에 대보지도 못한 충일이였지만 취중진담이란것만은 아는지라 크게 한숨를 내쉬였다. 《내 가슴도 찢어지는것 같다!》 상철이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눈앞에는 얼마전에 있은 일들이 영화필림처럼 스쳐지났다. 삼복철이여서 《선놈》들은 직장에서 땀을 철철 흘리며 일하는데 《앉은놈》들은 밖이 그늘밑에 한두줄로 쭉 줄지어 앉아서 부채질하며 한담을 하고있었다. 밸이 꼬인 상철이가 《앉은놈》들의 사무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보니 두칸을 제외하고 모두 텅텅 비여있었는데 그 두칸나마 한칸에 한놈씩 낮잠을 자고있었다. 듣자니 오늘도 최고분은 찦차를 타고 연길로 공원놀이를 갔다고 한다. 원료나 제품을 싣지 못하는 찦차는 《쏘파분》들을 위해 잘도 봉사했다. 공가일이나 사사일이나 찦차, 코앞을 가도 찦차, 쩍하면 연길로 내달리는 찦차... 한번은 생산도중에 기계가 고장나서 상철이는 수리공과 전공을 데리러 갔댔는데 꽁꽁 잠긴 자물쇠만 그를 맞아주었다. 온 공자안을 다 돌아다녔으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다른 《앉은 놈》들도 태반이나 보이지 않았다. 알아보니 더러는 트럼프놀이를 하러 가고 더러는 마작를 놀러 갔다고 한다. 그가 공장장실로 찾아가니 최고분은 보이지 않고 제2쏘파분이 맞아주었는데 정황을 들은 두번째분은 사정이 그렇게 됐으니 오늘은 잠시 생산을 중지하라는것이였다. 그래서 여느때보다 일찍 퇴근한 상철이는 오래동안 만나보지 못한 친구네 집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그 친구네 집은 바로 최고분네 집 앞집이였다. 듣자니 최고분네는 요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집을 짓는다고 했다. 그가 친구네 집부근에 이르러보니 최고분네 층집은 거의 마무리가 되여가고있었다. 그런데 바삐 도아치는 일군들이 태반이나 낯익은 얼굴들이 아닌가! 공장의 전공들은 전기를 가설하느라고 정신없이 돌아치고 공장의 수리공들은 계단란간을 만드느라 뒤나가는 줄도 모르고있었다. 리과장과 나머지 《앉은 놈》들은 땀벌창이 되여 이리저리 뛰여다니며 잔심부름을 하고… 《자네 공장치들이 집을 허물때부터 와서 저렇게 땀을 흘리며 일하고있네. 지도자분의 군중위신이 높은 모양이지? 그런데 정직한 지도자분이라면 왜 공장의 직원들을 데려와 제집을 짓는 일을 시키겠나? 허허, 저 집을 짓는 자금도 제호주머니의 돈이겠는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나?》 어느새 왔는지 친구가 히죽거리며 하는 말에 상철이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상철이는 최고분이 미웠다. 공장의 운명엔 관심이 없이 제 배만 채우기에 급급한 최고분이 미웠다. 그래서 어느날 최고분께서 그들이 일하는 직장에 내려왔을 때 심술을 부렸다. 그날은 수공과자를 만들었는데 상철이가 밀가루반죽을 책임졌다. 최고분께서 뒤짐을 지고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반죽기 있는데로 다가올 때 기다리고있던 상철이는 채 쏟지 않은 밀가루포대를 뒤번져가지고 반죽기 안에 대고 탁탁 정신없이 털어댔다. 그러자 새뽀얀밀가루먼지가 주위에 날리면서 최골분의 양복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 모양이 어찌나 우스웠던지 《랑자군》들 속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제야 상철이는 《미안합니다!》하며 아닌보살하며 콩기름이 번지르르한 두 손으로 최고분의 신사양복을 탁탁 털어드렸다. 그러자 그 멋진 양복이 얼룩덜룩 불꼴없이 되였다. 상철이는 최고분이 성내기를 기다렸다. 성내는 그 모습을 보는것이 그의 목적이였다. 그런데 최고분께서는 아무 일도 없는듯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젊은이, 일할 땐 조심하게나.》하며 빙그레 웃기까지 하는것이였다. 상철이는 분했다. 하지만 상철이는 알지 못했다. 최고분은 벌써 가슴속에 《칼》을 갈고있었던것이다. 바로 그해 공장은 불경기여서 절반 로동자들을 《방학》시키게 됐는데 그 명단에는 상철이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공장사람들은 어째서 직장에서 일 잘하고 주력인 상철이를 《방학》시켰을가고 의문을 품었으나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은 많지 못했다. 하지만 이 《방학》이 상철에게 얼마나 유리했는가를 그들은 몰랐었다. 《당대표》가 공장에서 나간지 딱 석달만에 《말석의자》도 《벼슬》자리를 떼우고 공장에서 나가게 되였다. 충일이가 《말석의자》를 빼앗기우기 한달전에 《제1쏘파분》의 아드님이 결혼잔치를 했는데 종업원당 최저로 20원씩 로임에서 떼내여 부조를 했다. 그때 20원이 뭉텅 잘리운 로임봉투를 받아든 충일이는 당장에서 부조돈을 거둔 리과장을 찾아가 한다는 말이 《내 돈을 돌려줍소!》였다. 하니까 리과장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다른 사람들은 50원, 100원, 300원, 500원씩 하는데 동문 낯이 간지럽지 않소?》하고 면박을 주니 충일이는 《남은 싫다는데 왜 억지로 그램둥?》하며 끝내 그 돈 20원을 도로 찾아갔다고 한다. 이 일로하여 충일이가 《방학》하게 된 일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충일이가 《방학》한 그해 그의 부친이 병으로 돌아갔다. 그의 부친의 장례날은 공장이 완전히 문을 닫는 날이였다. 그날 충일이는 땅을 치며 통곡하다가 드러눕고말았다. 6개월후 춘화가 공장에서 전체종업원대회를 열고 새 공장장을 선거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충일이는 너무도 기뻐 안해를 안고 몇바퀴 빙빙 돌기까지 하였다. 《춘화, 우리 상철이를 찾아가기오. 새 공장장 적임자는 상철이밖에 없소!》 범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이때 상철이가 문을 노크하고 들어섰다. 그는 《방학》기간에 기업관리에 관한것을 파고들어 학습도 하고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시장정보도 료해하면서 많은것을 배웠다. 그러다가 남방에서 큰 기업을 꾸리고있는 동창생을 만났는데 그 동창생이 그의 재능을 보아내고 월로임 1천 5백원에 그를 초빙했다. 공장에서 받던 60~70원의 로읾에 비하면 그것은 대단한 유혹이 아닐수 없었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와 떠날 준비를 하고 옛정분을 생각하여 충일이한테 작별인사를 하러 왔던것이다. 《상철아, 너 떠나겠다는 말이냐? 공장이 싹 잘못되는데 못본척하고 떠나겠단말이냐? 엉?》 충일이는 성이 나서 입술을 푸들푸들 떨었다. 상철이는 충일이를 외면하며 한숨을 내쉬였다. 《형님, 나도 공장을 사랑하오. 하지만 이미 망태기가 된 공장을 춰세우자면 곤난이 막심하오. 벌써 1년동안이나 로임을 못내주고있지 않소? 형님도 나와 함께 가기오. 내 좋은 자리를 알선해줄께.》 《사람이 돈을 보고 살겠니? 내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먹고 입고 쓸 돈이 있다. 하지만 내가 죽게 일하는게 무엇때문이겠니? 공장은 내 집이란 말이다. 나를 20여년이나 먹여준 공장이 지금 망하고있다. 상철아, 난 너에게 희망을 걸고있다. 내 비록 배운것은 없어도 사람 볼줄은 안다. 이번 공장장선거경쟁에 참가해다구! 내 빈다!》 《형님, 지금 형편에 50~60년대의 과자를 생산해선 팔아먹을수 없소. 새항목을 하자면 자금이 수요되는데 지금 국가재정도 곤난하여 대부금을 맡자해도...》 《네가 정말 해낼 신심만 있다면 돈은 내가 대주마!》 《형님!...》 상철이는 감격에 겨워 충일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바로 이때 밖에서 떠들썩하더니 오춘화가 이끌고 온 숱한 《선놈》들이 집안에 들어섰다. 《홍동무! 우리 공장 200여명 종업원들을 위해 이번 선거에 참가해주오!》 《우린 모두 홍동무를 지지하오!》 집안에서부터 밖에까지 쭉 늘어선 방대한 대오를 본 상철이는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이처럼 뜨거운 마음들을 저버리고 떠나려고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당장에서 초빙장을 찢어버렸다. 상철이가 공장장선거경쟁에서 승리하게 된것은 그가 내놓은 방안의 세밀성과 빈틈없는 과학성, 대다수 종업원들의 지지도 있겠지만 곤난한 국가재정에 손을 내밀지 않겠다는 그 한마디가 논 역할이 컸다. 이것은 주충일의 공로였다. 공장구락부에서 상철이는 격정에 넘치는 취임연설을 하였다. 《모두들 알다싶이 우리 공장엔 〈앉은 놈〉과 〈선놈〉이 있습니다. 200여명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공장에 100여명이나 되는 〈앉은 놈〉이 있습니다. 이후엔 〈앉은 놈〉이건 〈선놈〉이건 구별이 없습니다. 오직 능력에 따라 사람을 쓰고 로동강도에 따라 로임을 내주겠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 할일은 찦차를 파는것입니다.》 장내에선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조용하십시오. 한가지 공포하겠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말석의자〉에 앉아있던 주충일동지가 우리 공장을 위해 100원이란 거액의 돈을 무리식으로 선대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공장사람들은 왁작 끓어번졌다. 《여러분! 주충일동지는 또 공장의 돼지먹이로 돼지를 먹여 판 돈과 공장의 페품을 팔아 모은 돈을 저금했는데 2만원이랍니다. 그는 이돈을 몽땅 공장에 바치면서 오래동안 로임을 타지 못해 곤난을 겪고있는 여러분들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만세!》 《만세!》 공장사람들은 눈물이 글썽하여 웨쳐댔다. 이때로부터 공장은 들끓기 시작했고 공장사람들의 숨결은 전례없이 높뛰였다. 1992년 9월.  
80    몸은 지켰건만 댓글:  조회:3605  추천:1  2013-12-14
몸은 지켰건만/콩트이야기   김희수     선녀는 떨리는 손으로 방금 옥금이가 두고간 돈을 세여보기 시작했다. 100원짜리 묶음 다섯이니 5만원이였다. 이렇게 큰돈을 앞에 놓고 선녀는 전률하듯 몸을 떨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돈 5만원이 10만원으로 불어날것이고 그러면 괜찮은 아빠트에 반듯한 새 살림을 처려놓을수 있을거야.” 선녀의 귀에는 옥금이의 오렌지빛 입술사이로 새여나온 간드러진 음성이 지금도 귀전에 울려오는듯 했다. 옥금이는 선녀의 친구이자 사랑의 적수였다. 3년전, 미모의 두 처녀는 인물체격이 엇비슷했으나 선녀쪽이 마음씨가 더 착했다. 그 착한 마음씨때문에 선녀는 경쟁에서 이길수 있었다. 련적과의 경쟁에서 실패한 옥금이는 분김에 한번 만나본적도 없는 총각에게 급급히 시집갔다가 석달만에 리혼하고 홀로 나앉았다. 그때로부터 옥금이는 돈많은 사내들한테 붙어서 돈을 물쓰듯 했다. 그런 옥금이가 선녀와 성호가 잔치하기 전날인 오늘 돈 5만원을 가지고 선녀앞에 나타났던것이다. “그 한국사장님 말이야. 잔치하는 색시를 실랑보다 먼저 차지해보는 기호가 있는데 여기에 돈을 아끼지 않아. 먼저 5만원을 주고 하루밤을 차지한 다음에 5만원을 더 준단 말이야. 하루저녁에 어디가서 10만원을 번단 말이야. 그래 넌 집도 없이 그냥 세방살이를 하겠니?” 옥금이의 이 말은 선녀의 정통을 찔렀다. 집!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에게 집보다 더 중요한게 뭐겠는가. 그런데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잔치나 치러주면 고작일 그녀의 부모나 신랑의 부모는 그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줄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먹고 입고 쓰고나면 별로 남아돌것이 없는 그들의 몇푼 안되는 로임으로 집을 마련한다는것도 아득한 일이다. 여태껏 결혼잔치를 미룬것도 집때문이였다. 그러다가 더는 방법이 없어 세집을 맡아놓고 래일 잔치를 하기로 날자를 잡았는데… “그게 그렇게 좋은 노릇이라면 넌 왜 못하고 날 꼬드겨? 네 눈엔 내가 그 따위 몸이나 파는 계집으로 보이던?” 선녀는 갑자기 목욕감에 온몸을 떨었다. 그러자 옥금이는 머루알같은 눈을 곱게 흘겼다. “어머, 애두! 내게 그런 큰떡이 차려질수 있다면 그 좋은 떡을 내가 먹지 왜 너를 주겠니? 내가 먹을 자격이 안되니깐 너라도 먹으라는거지.” “넌 사내를 꼬시는 솜씨가 이만저만 아닐텐데 왜 자격이 안된다구 그러니?” “애두참, 하루밤에 10만원이란게 아무 녀자한테나 메치는 돈인줄 아니? 나같은 리혼녀는 어림도 없어. 그 김사장님은 잔치하기 전날밤인 신부를 특별히 애호하는 괴상망측한 기호가 있대. 바로 너 같은 준신부라면 고가로 산대. 이건 선금 5만원이고 일이 성사된후에 또 5만원을 마저 준대. 하루밤에 10만원 벌이가 어디 흔한 것 같니? 기회는 한번밖에 없어. 오늘밤만 지나면 너도… “ “그만 지껄이고 나가라!” 선녀는 돈묶음을 옥금에게 돌려주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나 옥금이는 개의치 않고 그냥 종알거렸다. “뭐 상습으로 하라는것도 아니고 단 한번뿐이니깐 뒤탈이 없을거야. 그리고 이 일은 너하구 나하구 사장님 내놓구는 이 세상사람들은 누구도 모를거야.” “너 사내들한테 잘 붙어먹더니만 인젠 뚜쟁이질까지 하는구나. 왜 친구를 팔아먹지 못해 안달이냐! 이 더러운 돈을 가지고 내앞에서 당장 꺼져라!” “얘, 그렇게 성급하게 거절하지마. 이런 기회는 두번 다시 없어. 싫으면 돈은 후날 돌려줘도 되니깐 김사장님과 저녁에 만날 시간까지 잘 고려해봐.” 옥금이는 김사장과 만날 지점과 시간을 적은 쪽지를 돈묶음과 함께 놓아두고는 급급히 나가버렸다. “이 돈을…” 한동안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던 선녀는 뒤늦게야 돈묶음을 들고 따라 갔으나 옥금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이 돈을 선뜻 돌려주지 못했는가. 그래 내가 돈의 유혹에 넘어갔단 말인가? 금전의 유혹에 빠져 정조를 팔아먹는 더러운 년이 되겠단 말인가. 아니야. 이 돈은 절대 가질수 없어. 돌려줘야 해! 그래 돌려주자!” 그러나 이 거금을 세여보는 선녀의 마음은 도무지 평온할수가 없었다. 그녀의 일생에서 앞으로 이런 큰돈을 다시는 쥐여볼것 같지 않았다. 옥금이의 말처럼 이 돈이 그녀의것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한번만 몸을 내던지면 세방살이 고생을 면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김사장과 만날 시간까지 선녀의 머리속에서 천사와 악마의 싸움은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이제 더 지체할수 없었다. 선녀는 돈묶음을 집어넣은 핸드빽을 들고 집에서 나왔다. 한창 걸어가던 선녀는 주춤거렸다. (내가 왜 이러는걸가? 변태색광인 김사장을 만나서 어쩌자는건지? 승냥이에게 먹히려고? 아니야. 난 지금 돈을 돌려주려 가는거야. 이 돈을 돌려주는 즉시 돌아올거야. 이 시한폭탄 같은 돈을 곁에 두고는 잠시도 안녕할수가 없어. 빨리 돌려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선녀는 택시를 잡아탔다. 50대의 호색한인 김사장은 생각밖에도 행동거지가 점잖았다. 선녀는 선뜻 돈을 꺼내놓지 못하고 귀신에게 홀린듯 김사장이 권하는 쏘파에 앉았다. 김사장은 사후에 주는 다른 돈 5만원을 꺼내보이며 자연스럽게 선녀의 손을 잡았다. 순간 선녀는 (이럴바엔 어디 한번 눈 딱 감고 김사장의 품에 안겨볼가. 그러면 10만원 거금이 모두 내것이 될것이다.)라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이였다. 김사장이 “요 내 신부! 요 내 각시!”라고 하며 입술을 덮칠 때 그녀는 덴겁한듯 몸을 떨었다. 성난 눈길로 쏘아보는 신랑 성호의 얼굴이 떠오른것이다. 아, 래일이면 결혼식을 올릴 신랑 성호! 사랑하는 성호에게 곱게 드려야 할 귀중한 첫날밤을 어찌 팔아먹을수 있단 말인가? 안된다. 절대 안된다! 선녀는 김사장을 콱 밀치고 벌떡 일어섰다. “미안해요. 전 이 돈을 돌려주려 왔어요!” “어, 그렇다면 난 절대 강박하지 않겠소. 여태껏 날 거절한 아가씨는 없었으니깐. 어디 잘 생각해보오. 10만원이 적은 돈이 아니요?” 김사장은 여유작작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선녀가 다시 품에 안기기를 기다렸다. 그는 남의 신부를 자기가 하루밤 먼저 차지하는것을 최대의 락으로 여기고있었다. 그래서 1천만원을 미끼로 내던져 100명의 신부를 품어보려고 계획하고있는데 선녀가 벌써 스무번째였다. 먼저번의 녀인들은 돈의 유혹앞에서 모두 고분고분 말을 들었던것이다. 그는 선녀도 그러리라고 확신하고있엇다. 그런데… “김사장님께서 신혼부부의 사랑과 행복을 파탄하는 그런 짓은 이젠 그만두세요. 녀자를 사겠으면 기생이나 사고요.” 그런데 뜻밖에도 선녀가 이렇게 충고하며 핸드빽에서 5만원을 집어내여 던지는것이 아닌가. “아니, 아가씨! 아가씨…” 김사장이 황급히 불렀지만 선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선녀는 마귀굴에서 벗어난듯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천근 같은 짐을 벗어던진듯 걸음걸이도 가벼웠다. 이 시각 선녀는 성호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성호는 지금 그들의 신방으로 정한 세집에 홀로 있을것이다. 선녀는 한시급히 그의 품에 안기고싶었다. 하루밤을 앞당겨 사랑의 감미로운 낚시밥을 훔쳐먹고싶었다. 선녀가 세집에 도착했을 때 집안엔 불이 꺼져있었다. 돌아갈가 말가 망설이는데 안에서 웬 녀인이 애교를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난 끝내 성호씰 내 신랑으로 만들었어요. 선녀보다 내가 하루밤 먼저 성호씨와 신방에서 잔치를 하고있으니 난 사랑쟁탈전에서 이긴거야. 어때, 내가 성호씨 각시 옳지?” “그래. 옥금이는 내 각시야! 선녀가 김사장한테로 가는걸 내 눈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난 오쟁이를 지고도 모를번 했지. 옥금이가 알려줬으니 망정이지 그것도 모르고 난 선녀와 잔치를 치를번 했지. 제길 난 옥금이와 잔치하겠어!” 이어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남녀의 야릇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선녀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아, 통탄할 일이다! 신혼의 사랑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금전의 유혹을 물리치고 천금보다 귀중한 모을 지켰건만… (1997년)  
79    보복행동 댓글:  조회:2810  추천:0  2013-12-14
보복행동/콩트이야기   김희수     여보게, 친구! 자넨 나를 그지없이 순진하고 마음이 착한 사람이라고 믿고있겠지?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야. 사실 나는 악한 사람이구 나쁜 사람이라구. 요즘 난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먹고있으니말이네. 무슨 롱담인가구? 자넨 물론 내가 진짜로 살인했다고 해도 “저 사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법정에 증인으로 나설만큼 나를 믿고있으니깐 롱담으로 생각하겠지만 난 정말로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먹은거네. 여보게, 내가 왜 살인할 마음을 먹었으며 도대체 누구를 죽이려고 하는지 궁금하겠지? 하자만 내가 살인하려는건 악인 이등박문을 쏜 안중근의사처럼 의로운 거사도 아니고 호인 링컨을 암살한 자객처럼 테로행동도 아니네. 나는 염파석을 죽인 송강처럼 한낱 평범한 녀자를 죽이려고 한거네. 바로 지금 내앞에 있는 이 녀자를 말이네. 이 녀자는 내 안해가 아닌가구? 아니네. 이 녀자는 내 안해가 아니라 내 안해였던 녀자네. 내가 이 녀자를 안해로 맞은것은 이 녀자의 마음이 비단같이 고왔기때문이네. 그런데 이 녀자가 야누스 같은 두개의 얼굴을 가진 녀자인줄은 정말 몰랐네. 어느날 갑자기—아니, 사실은 오래전부터 획책하고있은 그 음모를 내가 모르고있었을뿐이네. 이 녀자는 나를 차버리고 외간사내를 따라 멀리 도망가버렸네. 이 녀자가 단지 남편인 내가 싫어서 다른 사내를 따라간것이라면 나는 이 녀자를 죽여버릴 마음까지 먹지 않았을거네. 용서할수 없는것은 이 녀자가 거금(내가 한국에 가서 3년동안 피땀으로 벌어온 돈)을 몽땅 털어가지고 도망간것이네. 아무리 순진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만하면 살인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수 있겠나? 나는 칼을 찾아들었네. 그런데 칼앞에서도 이 독한 녀자는 낯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서있었네. 회개의 뜻이 전혀없는 이 녀자의 태도는 내 분노를 더욱 야기시켰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 내여 이 녀자의 심장에 복수의 칼을 꽂았네! 영국의 저명한 심리학박사 디죨은 세상에서 상상강간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네. 말하자면 상상으로 녀성의 옷을 벗겨보지 않은 남자는 없고 상상으로 남성을 침상으로 끌어들이지 않은 녀성은 없다는 뜻이네. 상상살인도 마찬가지라고 했네. 이 세상사람치고 상상으로 사람을 죽여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거네. 여보게, 이쯤하면 자네도 뭔가 깨달았겠지? 그렇네. 난 방금 상상살인을 한거네. 난 내 안해였던 녀자의 사진에 칼을 꽂은거였네. 비록 상상살인이라지만 나는 복수의 쾌감을 느꼈네. 난 이것으로 보복행동을 그치겠네. 안해야 다시 얻으면 되고 돈도 다시 벌면 되는게 아니겠나? 여보게, 자네도 상상살인을 해본 경험이 있겠지? 상상살인을 하는건 나쁘지 않지만 절대 행동에 옮기지 말라구. 행동에 옮기면 범죄가 된다구. 그러나 지금 나 같은 경우에 상상살인이 얼마나 나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구.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녀자가 아무리 나쁜 녀자라고 해도 그녀의 가슴에 칼을 박아 새빨간 피를 보려는 마음은 없네. 내가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녀자를 죽이고 나도 따라서 살인범이란 악명을 쓰고 사형당해야 할 가치가 없다는것을 깨달았기때문이네. (1996년)
78    고요한 거리/콩트이야기 댓글:  조회:3191  추천:0  2013-12-14
고요한 거리/콩트이야기   김희수     허, 저 녀인을 보면 왜서 자꾸만 가슴이 달아오를가? 조 눈! 호수같이 맑고 그윽한 조 눈의 깊이는 얼마? 과연 조물주의 걸작이야! 봄날의 꽃처럼 싱싱한 얼굴, 백양처럼 미끈한 몸매, 봉긋한 젖가슴, 온몸에 체형미, 곡선미, 자연미가 재치있게 조화되여 청춘의 매력이 흘러남치는 이 조물주의 걸작을 감상한다면 누가 가슴이 달아오르지 않으랴! “저, 복희야, 난 너를…” 저 녀인앞에 서면 왜 목소리마저 떨릴가? 저 녀인도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있다는걸 알아. 그런데 내 마음을 고백하려면 왜 이다지도 가슴이 떨리는걸가? “날 어쩌겠단 말이야? 또 업어주겠다는거야? 호호호.” 조 웃음! 조 웃는 얼굴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래, 난 저 녀인을 업어준적이 있었지. 밤대거리 퇴근길. 내 자전거뒤에 앉아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그녀. 신나게 자전거를 달리는 나. 그런데 저건 뭐야? 자전가를 이리비틀 저리비틀 몰면서 마주 달려오는 녀석은? 아차! 재수없이 주정뱅이의 자건거와 부딪쳐 넘어지다니? 자전가는 망가지고 그녀는 다리를 상하고…허허, 절뚝절뚝 다리를 저는 그녀의 모습이 우습구나. “웃긴? 남은 아파죽겠는데…” “내 업어줄가?” “호호, 쑥스럽게…” “밤중에 보는 사람도 없는데…”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가 내 잔등에 찰싹 매달리는구나. 그녀를 업고가는 난 왜 이리 기분이 좋은걸가? 그녀의 집으로 가는 이 길이 영원히 끝이 없기를… “무겁지?” “아니…” “피—” “점점 더 기운이 나는데 뭐.” “너 정말 힘이 세구나.” “힘이 센게 아니구. 이건 그런 힘이야.” “무슨 힘?” “있잖아. 그런 힘…” 그 말을 하고싶은데 왜 그 말이 입밖에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저 녀인도 이만하면 눈치를 챘을텐데 시치미를 떼고 또 업어주겠냐고 묻는걸 좀 봐. “업어달라면 업어주마. 그런데 넌 날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긴?” “남자로 말이야?” “음—남자다운데가 있긴 있지만 남자중의 남자가 되자면 아직 멀었다고 봐.” 조 입! 조 입에선 왜 내가 그토록 듣고싶어하는 그 말이 쏟아져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만약 조 입에서 그 한마디말만 나온다면 당장 조 입에 키스를 퍼부으련만. 아, 야속하구나! “넌 그래 녀자중의 녀자야?” “그럼.” 제길할, 너무 우쭐대지말아! 사나이의 자존심을 꺾어도 분수가 있지. 이럴 땐 내쪽에서 슬쩍 빠져달아나야지. 정작 그녀를 떠나니 서운하구나. 고독하고 쓸쓸하고 허전하고…누가 사랑이 꿀처럼 달콤하다고 했던가.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사랑이란 기실 커피처럼 쓰디쓴거야. 쓰지만 자꾸 마시고싶은… “안녕하세요?” 저건 또 누구야? 허리를 곱삭거리며 인사하는 저 녀인은…언제나 나만 보면 호감을 사려고 새물새물 웃어준다만 흥! 그 웃음이 다른 남자들은 꼬실수 있어도 나만은 어림도 없지. 가무잡잡한 그 얼굴은 보기도 싫어! 방정맞게도 저런 녀자와 한 작업반이 될건 뭐람? 그렇다고 웃는 낯에 침을 뱉을수도 없고…헤이참! 이튿날. 직장에서 수군거리는 두 녀인. 가만, 어디 저 두 녀인이 뭐라고 말하는가 숨을 죽이고 들어보자. “복희야, 넌 참 좋겠어. 미끈하게 쭉 빠진 공군체격의 미남자가 너에게 반한것 같더라. 그 미남자가 뿌쉬낀의 시를 읊을 때면 난 가슴이 막 활랑거려.” “호호호. 그럼 그 미남잘 너한테 소개해줄가?” “야, 그럼 난 그 미남자의 발밑에 무릎을 꿇겠어. 그런데 너네 둘은 서로 좋아하는 눈치던데 왜 진전이 없니? 약혼턱은 언제 낼래?” “약혼은 무슨 약혼…” 저런, 저건 내 마음속 녀인과 가무잡잡한 녀인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그런데 저 녀인이 날 애태워 죽일 작정이구나. 마냥 시치미를 떼니 말이야. 그럼 내가 사나이의 자존심을 꺾으며 한번 더 고백해본다?” “복희, 내 할말이 있어.” 그녀의 손목을 끌고 조용한 곳으로 가니 또 가슴이 떨리는구나. “너는 나를 어떻게…” “내가 널 어쩐단 말이지?”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긴? 얼굴도 잘 생기고 뿌쉬낀의 시도 잘 읊는 남자로 생각하지.” “아니, 말 아니고…” “그럼 무슨 말?” “있잖아. 그런 말…” “그런 말이라니? 에돌지 말고 직방 말해.” “뭔가 하면…저 있잖아. 나는 너를…” 왜 그 말이 나오지 않을가? 마음속으로 천번만번 외워두었던 그 말이 왜 관건적인 시각에는 홀랑 쏟아져나오지 않을가? “네가 나를 어쩌지? 답답해. 어서 말해봐.” “나는 너를…” 그 다음은 또 말이 나오지 않는구나. “바보!” 곱게 눈을 흘기고는 총알같이 달아나는 그녀! 이렇게 놓지면 안되는데…쫓아가야지. 그런데 또 가무잡잡한 녀인과 만나서 무슨 말을 하는구나. 어디 엿들어보자. “복희야, 그 미남자가 널 데리고가서 무슨 비밀말을 속삭였어? 프로포즈했어?” “흥, 그는 바보야!” “바보라니?” “그 한마디말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야.” “무슨 말?” “그런게 있어. 게다가 그는 참대나무처럼 속이 텅 비였어.” 뭐라구? 내가 참대나무처럼 속이 텅 비였다구? 그럼 넌 박달나무처럼 단단하다는거냐? 제길할… 밤대거리 퇴근길. 내 자전거뒤에 앉아야 할 그녀가 어디로 갔을가? 엉? 저건 어떤 자야?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세워놓고 헤벌쭉 웃으며 저 녀인을 맞아주는 낯선 자는? 저런, 저 녀인이 저 자식의 오토바이뒤에 훌쩍 뛰여오르는걸 좀 보지. 아니 저걸 좀 봐. 저 녀인이 저 자식의 허리까지 꼭 껴안는구나. 안돼. 어서 달려가 저 녀인을 끌어내려야지. “어서, 내려와!” “왜 이런는거야?” “저 남자 누구야?” “약혼한 남자야.” “뭐? 네가 약혼해? 누구 맘대로!” “왜? 내가 약혼하는것도 너한테 비준맡아야 되니? 네가 뭐 내 아빠라도 되니?” 화를 버럭 내고는 오토바이뒤에 다시 앉아 바람같이 사라지는 그녀! 아니, 저 녀자가 미쳤잖아? 구름처럼 변하는 녀자의 마음은 알수 없다더니…어찌 하루밤사이에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단 말인가? 오, 실련의 고통이여, 상처입은 사나이의 가슴에서 피가 막 끓는구나! 이럴 땐 뿌쉬낀의 시라도 읊어야 마음이 쑥 내려가겠는지. 연회의 꽃다발이여, 동그란 술잔이여 // 허실한 벗들아, 배반하고간 계집이여 // 그대를 아깝게 여기진 않노니 // 나는 그런 향락을 버리고 혼자 생각에 잠겼노라. 젊은 가슴에 애틋이 끓어오르는 이 감정! 이 감정이 왜 이다지도 스러지지 않을가? 배신자에 대한 그림움? 미련? 안돼. 그 녀자앞에서 애석해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눈치를 보여선 절대 안돼. 자신을 진정시키자면 웃고 떠들면서 종전처럼 뿌쉬낀의 시도 읊어야지.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 슬퍼 말어라 성내지 말어라… 그래, 마땅히 굳세여야지. 흥, 네가 아니면 내가 장가를 못갈가? 고요한 밤거리, 희미한 가로등. 그녀와 함께 거닐 때에는 얼마나 즐겁고 생기넘치던 거리였던가. 내가 목청을 가다듬어 뿌쉬낀의 시 《미녀여 내곁에서 노래하지 말아다오》를 소리높이 읊으면 그녀가 옆에서 깔깔 웃어대며 손벽을 치지 않았던가! 그녀와 나란히 속삭이며 거닐던 이 길을 홀로 걷자니 허전하구나. “저랑 함께 가자요!” 저기, 누가 나하고 함께 가겠다는거냐? 엉? 이게 무릎을 꿇겠다던 녀인이 아니야? 그런데 가만…이 녀인이 그새 몰라보게 변했는걸. 외가풀눈은 쌍가풀이 되고 가무잡잡하던 얼굴은 하야물쑥하게 변하고…미용원에 부지런히 다닌다더니…그 덕인가? 나이찬 계집 미운데 없다더니 제법 쓸만해 보이는데… 다음날의 밤대거리 퇴근길. 저 녀인이 또 오토바이한테로 가는구나. 제길할, 저 녀인을 붙잡고 나도 자랑 좀 해야지. “너만 약혼한줄 알아? 나도 약혼했어!” 배신자앞에서 무릎을 꿇겠다던 녀인을 꼭 끌어안고 시위하는 이 순간 기분이 왜 이리 좋을가? “야, 내 좀 보자!” 다음 수간 그녀가 무작정 내 손목을 잡아끄는구나. 이때 무슨 일이냐고 관심을 보이며 “오토바이”가 다가서는구나. 그런데 그녀가 “오토바이”한테 “삼촌은 먼저 가세요”라고 하다니?! “저분이 삼촌이라구?!” “삼촌이든 사촌이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아니, 너…너…” 어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이럴수가… “상관하지 말고 우린 가자요.” 이럴 때 밉살스럽게도 무릎을 꿇겠다던 녀인이 내 손목을 잡아끌다니? 정말 약혼녀라도 된것처럼. “저리 비켜!” 나의 노한 목소리에 쿨적거리며 달아나는 무릎을 꿇겠다던 녀인. 너도 불쌍하구나. 애매하게 욕을 얻어먹다니? 그런데 그녀와 나는 이게 뭐람? 싸움을 앞둔 닭처럼 서로 마주서서 노려보다니? 그녀의 저 눈길 좀 봐. 표독스러운 저 눈길. 아이 무서워! 왜 날 그렇게 쏘아보는거냐? 그렇지. 난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왜 약혼했다고 거짓말을 했니?” “그것도 몰라? 넌 바보야. 바보! 바보!” 내 가슴에 주먹을 안기는 그녀. 녀자한테 얻어맞는 순간 기분이 왜 이리 좋을가? “씨, 바보를 좋아하는 너도 바보야!” “흥, 누가 널 좋아한다고 그래?” “네가 날 좋아하잖아?” “쳇, 그 말 한마디도 못하는 바보를 내가 왜 좋아해?” 아, 가슴이 떨려서 하지 못한 그 말… “넌 왜 알면서 먼저 그 말을 못했니?” “야, 녀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 먼저하니?” “그럼 우리 둘이 한번 다 같이 그 말을 해볼가?” “그게 굿아이디어다! 그럼 우리 같이 시—작!” “사랑해!” 호호호! 하하하! 유쾌한 웃음소리. 랑만의 밤, 고요한 거리! 손에 손잡고 걸어가는 청춘남녀. 행복의 코노래… “그런데 한가지 물어보자. 날 참대나무처럼 속이 텅 비였다고 한건 속에 든게 없다는거지?” “그래, 화 내지 마. 말하자면 실속이 없다는건데…” “화 내지 않아. 나도 알아. 그래서 나도 박달나무처럼 속까지 단단해지려고 하는거야.” “정말?” 좋아서 웃는 그녀. 이럴 땐 업어주고싶구나! “내 업어줄가? 이 세상끝까지 계속…” “네게 그럴 힘이 있니?” “있어. 얼마든지. 그게 무슨 힘인지 아니?” “몰라. 뭔데?” 나쁜 계집애!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 그래. 그건 이 세상에 가장 강한 사랑의 힘이야! (1985년)    
77    모택동과 장개석의 제자 장선운 댓글:  조회:9316  추천:1  2013-12-14
모택동과 장개석의 제자 장선운   (번역)       중국력사거인과의 관계를 놓고 보아도 장선운(蒋先云)은 전기적색채를 띤 인물이다. 장선운은 황포군관학교 교장 장개석이 가장 총애하는 학생이였지만 그의 첫선생은 장개석의 가장 큰 적수 모택동이였다. 어떤 사람은 태여날 때부터 천재인데 “황포3걸(장선운, 진갱-陈赓, 하충한-贺衷寒)”중의 한사람인 장선운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하늘의 별처럼 어디가나 빛을 뿌리는 천부적인 지도자였다. 만약 장선운과 엽정이 50년대까지 살아있었다면 공화국의 10대원수명단은 바뀌였을것이라고 어느 력사학자는 말했다. 호남성 신전에서 온 장선운은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졸업할 때까지 모든 과목의 시험성적이 줄곧 전교 1등이였다. 황포군관학교의 가장 우수한 인재로 불리운 장선운은 장개석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학생이였다. 평소에 학생들을 매우 엄하게 대했던 장개석이였지만 장선운만은 아주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해주었다. 그런데 장개석이 가장 총애하는 이 학생의 첫선생은 이후 장개석의 가장 큰 적수로 된 모택동이였다. 또 장선운을 황포군관학교에 추천해준이도 모택동이였다. 장선운은 모택동이 1921년에 형양에서 당창건시기 가장 일찍 발전시킨 당원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20세도 안된 장선운은 수구산광산로동자운동을 지도했으며 로동자구락부주임을 담임했다. 안원대파업 때 그는 모택동, 리립삼의 유력한 조수였다. 황포군관학교에 들어간후 장선운은 신속히 많은 학생들을 흡인하여 중공황포지부를 성립하고 지부서기직무를 맡았으며 좌익의《청년군인련합회》를 발기하고 지도했다. 그후 황포군관학교를 나온 공산당원의 대부분은 장선운이 발전시킨 사람들이다. 장개석은 장선운이 중국공산당의 골간지도자라는것을 알고있었지만 인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장선운에게 매우 큰 희망을 기탁하고있으면서 “앞으로 혁명이 승리하여 내가 군복을 벗으면 이 황포의 룡과 범들은 오직 장선운만이 지휘할수 있다”고 장선운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장선운은 장개석의 총애를 받아 황포의 동학들중에서 제일 빨리 승급하였지만 장개석과 점점 멀어져갔다. 장개석이 공산당과 반목하여 《중산함사건》을 일으키자 국공량당의 2중당원의 신분을 가지고있던 장선운은 국민당에서 탈퇴한다고 공개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1927년 4월 12일에 장개석이 공산당을 대대적으로 학살하자 장씨성을 가진 선생과 제자의 인연은 철저히 끊어지고말았다. 1927년4월 17일에 장선운은 무한에서 황포학생장개석성토대회를 발기하고 대회주석을 맡았다. 그는 30만명이 모인 대회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혁명을 배반한 장개석을 성토했다.   북벌기간 북벌군총부 비서, 제5퇀 퇀장으로 된 장선운은 광동, 호남, 강서, 무한으로 진군하면서 군벌을 쳐부셨다. 장선운이 무한에 도착했을 때 남창에 있었던 장개석은 장선운의 재간을 몹시 아끼면서 부하를 파견하여 장선운을 제1사의 사장으로 임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장선운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자 장개석은 신문에 자기와 장선운이 함께 찍은 사진을 실었다. 이 때문에 장선운은 공산당내부에서 충분한 신임을 얻지 못했다. 중국공산당의 책임자의 한 사람이였던 장국도는 장선운을 의심하면서 배척했다. 이때 제26사 77퇀 퇀장 겸 정치위원으로 있던 장선운은 타격을 받고 고민하던중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제2차 북벌전쟁에 뛰여들었다. 1927년 5월 하순에 북벌군은 하남성 림영에서 아군보다 몇배나 더 많은 봉계군벌과 격전을 벌렸다. 봉계군벌 지휘자 장학량은 군장 한명을 철직하고 려장 1명, 퇀장 3명을 잃으면서 땅크, 비행기, 독가스까지 동원하여 맞서 싸웠지만 결국 장선운에게 대패하고말았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던 천재적인 군사가 장선운은 진장한 장성이 되기도전에 림영성아래에 지고말았다. 때는 1927년 5월 28일이였고 그는 향년 25세였다.     
76    장개석의 신변에 잠복했던 녀공산당원 심안나 댓글:  조회:6593  추천:2  2013-12-14
장개석의 신변에 잠복했던 녀공산당원 심안나     (번역)       1915년에 강소성 태주에서 출생한 심안나는 1935년 1월에 시험에 합격되여 절강성정부비서처 의사과(议事科)의 속기원(速记员)으로 들어갔다. 1938년에 주은래의 파견을 받고 심안나는 국민당정부최고층으로 잠입해들어갔다. 그녀는 속기원의 신분으로 여러번이나 국민당의 당, 정, 군 최고층의 중대한 회의에 참석하여 대량의 중요한 정보를 수집해 연안에 보내주었으나 폭로되지 않았다. 그녀는 장개석의 신변에서 장장 11년이나 잠복해있었다. 심안나는 국민당중앙상무위원회와 중앙전회에서 모두 속기사업을 담당했으며 국방최고위원회, 국민정부위원회, 최고군사회의 속기사업을 담당했다. 심지어 장개석이 중앙훈련탄에 가서 강의할 때에도 속기사업을 담당했다. 그전에 심안나는 이미 절강성정부비서처 의사과의 속기원이였다. 조직에서 암호로 그녀에게 상해로 돌아오라고  했을 때 그녀는 즉시 성정부의 중요한 회의서류와 회의기록을 트렁크의 옷속에 감춰가지고 와서 조직에 바쳤다. 조직에서는 빈틈없이 임무를 완성한 그녀를 칭찬했다. 그후 그녀는 국민당의 계획 및 무기장비, 도로또치카의 분포정황, 설계도 등 중요한 정보를 특수한 약물을 리용하여 편지지의 뒤면에 썼다. 그리고 정면에는 일반적인 문안인사를 적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조직에 전해주었다. 장개석은 주석대에서 발언하면서 옆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속기원아가씨가 중국공산당의 비밀당원이라는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것이다. 심안나는 1946년말에 중경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이 담판할 때 당중앙에 전략가치가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주은래부주석은 심안나의 정보사업을 “신속하고 정확하다”는 말로 칭찬해주었다. 심안나는 1949년에 중공중앙의 표창을 받았고 1989년에 국가안전부에서 내여준 영예상과 영예증서를 수여받았다. 1947년에 해방전쟁은 대치상태에 있었다. 이 시기에도 심안나는 끊임없이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여 남편 화명지의 손을 통해 중공중앙남방국 령도의 손에 들어가게 했다. 국민당고위층에서 얻은 이런 극비정보를 장악한 공산당은 국민당군대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적의 심장에 잠복하여 사업하려면 혁명정신을 견지하는외에 반드시 기술이 받쳐주고 어떠한 정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심리감당능력이 있어야 한다. 심안나는 매분당 200자를 기록할수 있는 놀라운 속기속도를 가지고있었다. 이는 그녀가 적의 심장에 잠복할수 있는 선결조건이였다. 새 중국이 성립된후 심안나와 그녀의 남편 화명지는 모두 국가안전부문에서 사업했다. 1946년 6월에 장개석은 고급군사회의에서 발언하다가 절대적인 비밀에 대해 말하기전에 “아래의 말을 기록하지 마시오”라고 명령했다. 심안나는 필을 놓고 장개석이 하는 말을 머리속에 기억해두었다가 휴식시간에 변소로 가는 기회에 슬그머니 중요한 정보를 기록했다. 군통국의 반간첩기구에서 한동안 결사적으로 비밀공산당원을 붙잡으려고 날뛰는 바람에 심안나는 조직과의 관계를 중단하지 않을수 없었다. 1946년 3월 17일에 대립이 비행기추락사고로 죽은후에야 심안나는 중단됐던 조직관계를 회복했다. 그 시기 그녀는 장악한 모든 정보를 직접 《신화일보》총편집이였던 오극견에게 넘겨주었고 오극견은 직접 전파로 연안에 보내주었다. 주은래는 “대립의 죽음은 공산당의 혁명을 10년 앞당겨 성공할수 있게 했다”고 말했고 장개석은 1950년 3월 17일에 있은 대립사망 4돐기념회의에서 침통한 목소리로 “대우농(우농은 대립의 자임)동지가 죽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오늘 대만으로 후퇴하지 않았을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말은 대립이 살아있었더라면 국민당심장에 잠복해있는 심안나와 같은 공산당원들을 붙잡아냈거나 그런 지하공산당원이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을것이라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여러 영화회사에서 심안나를 원형으로 한 영화를 찍으려고 했지만 심안나는 모두 거절했다. 텔레비죤련속극 《특수사명》에 나오는 구양하의 원형은 심안나라고 하는데 “80후”, “90후”의 녀배우들이 어찌 인간의 본성인 칠정육욕을 억제해야 했던 심안나의 고통을 알수 있겠는가? 심안나는 국민당의 심장부위에서 장기간 잠복해있으면서 심리압력이 매우 컸다. 그녀는 다른 지하공산당원들과 달리 활동반경이 매우 작았고 사면에 모두 적이였기때문에 자칫하면 신분이 드러날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뛰여난 지혜로 당이 맡겨군 임무를 출중하게 완성하고 무사하게 당의 품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75    주은래가 계획한 “동방제1암살사건” 댓글:  조회:6498  추천:0  2013-12-14
주은래가 계획한 “동방제1암살사건”   (번역)     호남성 상덕출신인 백흠은 1926년 3월에 황포군관학교 4기생으로 입학했다. 그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1927년에 “8.1남창봉기”에 참가했으며 1929년초에 상해에 들어가 중공중앙군위의 비서로 지하활동을 시작했다. 1929년 8월 24일 오후에 백흠의 집에서 군위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중공중앙정치국위원, 중앙농민위원회 서기 겸 강서성위 군위서기인 팽배, 중앙정치국후보위원이며 중앙군위위원 겸 강서성위 군위위원인 양은, 중앙군위위원 겸 강서성위 군위위원 안창이, 중앙군위위원이며 사병운동사업을 책임졌던 형사정이 참가했다. 원래 당중앙군위서기 주은래도 참가하게 되여있었지만 림시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 그런데 회의도중에 국민당특무들이 회의장소에 뛰여들어 팽배, 양은, 안창이, 형사정을 붙잡아갔다. 사건이 발생된후 주은래와 중국공산당중앙특별행동과를 책임졌던 진갱은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당내에 반역자가 생겼다는것을 알아냈다. 그 반역자는 바로 백흠이였다. 대혁명이 실패한후 상해는 매일 피비린 학살이 벌어졌는데 백흠은 적들의 백색공포에 온몸이 떨려났다. 그는 남경이불공장에서 공장장을 맡고있는 형을 통하여 국민당상해당지휘부정보처 처장 범쟁파를 만났다. 그는 공을 세우고 상을 타기 위해 국민당을 도와 오호(주은래의 별명), 팽배 등 공산당고위급간부를 붙잡게 하겠다고 말했다. 범쟁파는 크게 기뻐 백흠과 상의하여 중공중앙군위에서 회를 열 때 그들을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도 주은래는 림시 다른 일이 있어서 군위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변고를 면하게 되였던것이다. 주은래는 진갱에게 국민당내부에 잠복한 동지들을 통해 팽배, 양은 등 동지들이 갇힌 곳을 알아낼것과 그들을 구원할것을 지시했다. 진갱은 적들의 심장에 잠복한 공산당비밀특공요원인 양등영을 통해 팽배 등 동지들이 갇힌 곳을 알아냈고 장개석이 이미 팽배 등 동지에게 사형명령을 내린 시간이 8월 28일 아침이란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국민당의 경계가 삼엄하여 팽배 등을 구해내지 못했다. 결국 팽배 등은 국만당반동파에게 살해당했다. 그후 팽배 등을 밀고한 반역자가 백흠이란것을 알아낸 주은래는 진갱에게 백흠을 처단하라고 지시했다. 1929년 9월말에 백흠은 갑자기 국민당특무를 데리고 상해달생병원의 가달문의사를 찾아와서 병을 보였다. 원래 백흠은 팽배를 밀고하여 살해되게 한후 중공상해지하당당조직에서 자신을 가만놔두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알고 온종일 극도의 공포에 처했다보니 머리가 아픈 병이 생겼던것이다. 가달문은 백흠을 진찰하고나서 말했다. “여기 잠시 앉아있으십시오. 몇가지 약이 아래층에 있으니 내가 가져오겠습니다.” 가달문은 총망히 아래층으로 내려온후 이웃집에 가서 진갱한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백흠은 혹시나 가달문이 고발하러 갔을가봐 꼬리빳빳이 줄행랑을 놓았다. 백흠이 도망친것을 본 진갱은 가달문을 보고 “백흠이 병에 걸렸으니 아무때든 또 의사를 찾아올것입니다. 그가 다시 찾아오면 먼저 방법을 대여 안심시키십시오. 우리가 수시로 찾아올것입니다”라고 지시했다. 가달문은 중공지하당원인데 본명이 가린이였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은페하기 위해 상해 위해위로에 달생병원을 꾸려놓았다. 아래층은 진료소이고 웃층은 지하당조직의 회의실이였다. 상해지하당조직에서는 매달 여기에서 회의를 열었는데 주은래도 가끔씩 여기서 외지에서 회보하러 온 지하당원들을 접견했다. 그러나 백흠은 당내에서의 지위가 높지 않고 상해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때문에 가달문의 진실한 신분을 알지 못했다. 그는 가달문을 의술이 높은 의사로만 알고있었다. 과연 백흠은 며칠후 가달문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교활한 백흠은 달성병원으로 오지 않고 가달문더러 프랑스조계지의 한 호텔로 와서 자신의 병을 봐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어느 호텔인지는 가달문이 프랑스조계지에 오기만 하면 알려주는 사람이 있을것이라고 했다. 가달문은 이 정황을 즉시 진갱에게 회보했다. 진갱은 가달문더러 백흠을 치료해주면서 그의 병세가 차도가 보이되 완쾌됐다는 느낌은 가지지 못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가달문이 약속한 지점으로 가니 거기에는 백흠과 그의 안해가 있는외에 정보처 처장 범쟁파도 있었다. 백흠은 가달문이 들어서자마자 의심스러운 말투로 “그날 당신이 약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고 해놓고는 왜서 밖으로 나갔습니까?”라고 물었다. 가달문은 웃으면서 “제가 아래층으로 내러가보니 한가지 약이 모자라기에 가까운 약방에 약을 사러 갔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당신이 이미 갔더군요. 왜서 약도 가지지 않고 갔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백흠도 그날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며칠후 백흠은 두번이나 가달문을 불렀는데 모두 하비로의 한 골목에 있는 43호의 저택으로 안내했다. 백흠이 이 저택에 거처한다고 짐작한 가달문은 이 정황을 진갱한테 회보했다. 진갱은 비밀특공요원인 양등영에게 반역자를 처단할데 관한 주은래의 지시를 전달하면서 43호가 어떤 곳인가를 알아오라고 지시했다. 본명이 포군보인 양등영은 어릴 때 일본에서 공부한적이 있어서 일본어에 능했다. 그는 국민당특무기관내부에 들어온후 국민당특무조직 중통의 두목인 진립부의 신임을 얻어 국민당중앙조직부 상해주둔 특파원으로 임명되였다. 그는 상해에 파견된지 얼마 안되여 중국공산당력사에서 첫 사람으로 당원이 아닌 신분으로 공당산당의 특공요원이 되였다. 양등영은 많은 중요한 정보를 공산당에 제공해주어 긴요한 관두에 수많은 중공상해지하당 동지들을 구해주었다. 이번에 양등영은 신속하게 “43호가 바로 정보처 처장 범쟁파의 저택이며 국민당특무들이 밤낮으로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있다”는 정보를 진갱한테 전해주었다. 그후 양등영은 리유를 찾아 범쟁파의 저택으로 찾아갔다. 범쟁파는 진립부의 신임을 얻고있는 특파원을 깎듯이 모시면서 백흠을 소개해주었다. 양등영은 불안에 떨고있는 백흠을 자신이 보호해주겠다면서 몹시 관심해주는척 했다. 백흠은 정보처 처장 범쟁파의 저택에 거주하면서 양등영특파원의 “보호”를 받고있지만 팽배 등 렬사들의 피투성이 된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떠오르는가 하면 지하당원들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정경이 자꾸 눈앞에 나타나면서 발편잠을 잘수 없었다. 그는 날마다 공포에 떨면서 범쟁파에게 남경방면에 보고하여 자신을 빠른 시일내에 외국에 피신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남경이나 광주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국내에 있는한 지하당원들이 꼭 자신을 찾아내여 팽배의 원쑤를 갚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결국 남경방면에서는 백흠을 이딸리아에 피신시키는데 동의했다. 이는 절대기밀이였지만 범쟁파와 백흠은 “보호자”인 양등영특파원에게 알려주었다. 양등영은 이 소식을 진갱에게 전해주었고 진경은 또 주은래한테 회보하였다. 주은래는 백흠이 도망치는 시간, 부두, 출발차량 등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내여 반역자를 처단하라고 지시했다. 백흠과 범쟁파는 양등영과 상의하여 출발시간을 1929년 11월 11일 밤 11시로 정하고 배표도 미리 사놓았다. 범쟁파는 승용차 2대를 저택뒤문어구에 세워두어 백흠부부가 도망칠 때 타고갈수 있도록 했다. 양등영은 만약 백흠이 차에 앉아서 뒤문을 나서게 되면 지하대원들이 그를 처단하기가 매우 힘들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배치가 좋기는 하지만 만약 깊은 밤중에 2대의 차량이 문어구에 주차해있으면 사람들의 의심을 자아낼것입니다. 만약 소식이 공산당한테 전해지기라도 하면…” 양등영이 일부러 이렇게 말하자 범쟁파는 “그럴수 없습니다. 이 일은 우리집의 집사도 모르고있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양등영은 “팽배가 살해된후 공산당은 몰래 백흠의 종적을 정찰하고있습니다. 그들은 틈만 있으면 파고드는데 만약 그들이 이곳을 의심하고있고 또 문어구에 2대의 차가 세워져있는것을 보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라고 한술 더 떴다. 결국 범쟁파는 2대의 차량을 43호문어구에 세워두지 않고 뒤문에서 50메터 떨어진 골목에 세워두었다. 양등영은 이 모든 정황을 진갱한테 전해주었다. 진갱은 “참 잘했소”라고 양등영을 칭찬해주었다. 1929년 11월 11일 저녁에 양등영은 작별인사를 한다는 명의로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범쟁파의 저택으로 찾아가서 백흠한테 주었다. 백흠은 자신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줄도 모르고 양특파원의 “관심”에 너무도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다. 양등영은 백흠이 원 계획에 따라 도주하려는것을 알고 시름을 놓고 돌아갔다. 그날밤에 반역자를 처단하러 온 지하공산당원들은 43호의 뒤문에 매복했다. 밤 11시에 43호의 뒤문이 살그머니 열리더니 한 사람이 나와서 동정을 살피더니 주위가 조용한것을 보고 손을 저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안에서 백흠부부, 범쟁파형제와 3명의 경호원이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몇발자국도 못가서 “땅! 땅!”하는 총소리와 함께 하나, 둘씩 쓰러졌다. 백흠이 죽은것을 확인하자 대원들은 전투를 끝내고 철퇴했다. 이튿날에 백흠, 범쟁파의 동생과 2명의 특무가 죽고 범쟁파와 백흠의 안해가 중상을 입은것이 밝혀졌다. 이 소식은 중외의 여러 신문에 보도되였는데 어떤 신문에서는 “동방제1암살사건”이라고 하면서 경계가 삼엄한 프랑스조계지에서 이토록 주도면밀한 대암살사건이 발생된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74    조선족다운 조선족되기 댓글:  조회:8376  추천:16  2013-12-11
조선족다운 조선족되기   김희수     내가 어릴적에 우리 마을에는 한족학교에 다니는 오씨네 형제가 살고있었다. 형은 오성관이라고 불렀는데 나보다 한살 년상이였고 동생은 오웅관이라고 불렀는데 나보다 한살 년하였다. 그들 형제에게는 또 오영, 오웅이라는 한족이름도 있었다. 오씨형제가 한족말을 잘 해서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 마을 애들은 그들을 “오개” 또는 “오줌물에 덴 눔”이라고 놀려주었다.     또 분필로 오씨네집 널바자에 마구 락서까지 해놓았다. 하지만 조선글(한글)을 몰랐던 오씨형제는 화가 나도 뭐라고 썼는지 몰라서 대들지 못했다. 나중에 퇴근하여 돌아온 아버지에게 물어서 그 뜻을 알게 되였지만 이미 날이 저물어 애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라 화풀이를 할수 없게 되였다.     그런 일은 그 뒤에도 여러번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에 우리는 오씨네집으로 놀러갔다가 놀라운 일을 발견하게 되였다. 오씨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조선글을 가르쳐주고있었던것이다. 우리는 그때 중학교로 갈 나이가 된 오씨형제가 유치원생처럼 “ㄱㄴㄷㄹ, ㅏㅑㅓㅕ”하고 따라 읽는것을 보고 한바탕 웃기만 했을뿐 그것이 얼마나 장한 일인지를 모르고있었다.     지금 오씨형제는 모두 연구원사업을 하고있는데 어릴때 아버지가 조선글을 가르쳐주었기에 조선족으로 떳떳이 살수 있게 되였다면서 그런 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오씨형제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한족학교에 보냈지만 나중에 조선족이 조선글을 모르면 안된다는 도리를 알게 되여 조선어교과서를 구해다가 아들들에게 조선글을 가르쳐주었던것이다. 그리고 한족학교에 다녀도 자신이 조선족이라는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된다는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다. 조선족으로서 조선글을 모르면 진정한 조선족이라고 할수 없다. 조선족다운 조선족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조선민족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나에게는 박승관이란 송아지친구가 있는데 유치원때부터 한족학교에 다녀서 조선글을 모른다. 그에게는 오씨형제의 아버지처럼 조선글을 가르쳐주는 부모가 없었다. 어릴 때에는 둘도 없는 딱친구였지만 점점 자라면서 조선말보다 한족말을 더 잘하는 그가 서먹서먹할 때가 많았다. 그가 어쩐지 절반 조선족처럼 느껴졌던것이다.     지금도 내 송아지친구 승관이같은 절반 조선족이 적지 않다. 또 이런 절반 조선족을 만들려고 아이를 한족학교에 보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물론 자식의 전도를 생각해서 저울하여 한족학교가 낫다고 판단되여 그런 결정을 내리겠지만 그런 부모들은 한족학교에 보내는것이 자식이 잘되는 길이 아니라는것을 모르고있다. 자식을 한족학교에 보내는 리유는 여러가지이만 이미 그런 리유는 토론을 거쳐 모두 부정되였기에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 아이들을 한족학교에 보내지 말아야 하는 리유는 충분하지만 그런 리유는 다른이들이 이미 언급했다.     어떤 조선족부모들은 조선어를 렬등언어라고 무시하면서 “영어와 한어만 잘하면 되지 그까짓 조선어를 알아서 뭘하겠소?”하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글의 우수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리 글의 우수성은 한국이나 조선밖에서도 인정받고있다. 미국의 석학이자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박사는 세계의 모든 언어를 통합하기 위해 하나의 문자체계를 고르라면 한글(조선글)이 가장 적합할것 같다는 말을 했다. 우리 글 만큼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문자시스템은 이 세상에 다시 없다.     또한 우리 글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된 정보화시대에 가장 적절한 언어이다. 지금 컴퓨터를 떠나 펜으로 글을 쓰라면 못쓰는 한족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입력법으로 저절로 글자가 솟아나오는 타자에 습관되여 복잡한 획으로 이루어진 한어글의 모양을 다 잊어먹었던것이다. 하지만 우리 글은 한번 배우면 컴퓨터를 떠나도 잊어먹게 되지 않는다. 컴퓨터자판으로나 펜으로나 눈을 감고 쓸수 있는것이 우리 글이다. 우리 글의 우수성을 말하자면 밤을 새워도 다 말하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는 우월감을 갖고 우리 민족언어를 천대만대 전해 내려가야 한다.     조선족으로서 우리 민족의 언어를 알아야 하지만 우리 민족의 언어만 안다고 조선족다운 조선족이라고 할수 없다. 조선족다운 조선족이 되려면 우리 민족의 얼을 지키려는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또 우리 민족의 문화와 력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 민족의 문화에 대해서는 조선족 대부분이 체계적으는 몰라도 얼마간은 알고있다. 하지만 조선족중에 우리 민족력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분들이 많다. 신세대가 더욱 엄중하다.       며칠전에 길을 가다가 어느 음식점앞에서 20대의 녀자 셋이 대화를 하는 소리를 듣게 되였다. 한 녀자가 “야, 어제 (한국드라마) 《수백향》에서 진짜수백향이 고구려세작이라고 붙잡혀갔는데 어떻게 될가?”하고 물어서 다른 한 녀자가 “글쎄말이다. 그런데 야, 고구려는 뭐고 고려는 뭐야?”하고 되물었다. 그런데 세번째 녀자가 하는 대답이 정말 황당했다. “야, 그것도 모르니? 고려는 고구려의 줄임말이다!”     이 정도이니 우리 민족이 우리 력사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있는가를 알수 있다. “진시황이 누구냐?”고 청소년들에게 물으면 하나같이 “전국시대의 6국을 통일하고 중국의 첫 황제로 된 인물”이라고 대답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단군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단군이 누구인지 주몽이 누구인지 모르는 우리 민족이 너무나 많다. 이것은 우리 민족에 관한 력사적인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하지 못했기때문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것일가? 우리는 중국에서 살기때문에 중국력사만 알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일부 어른들의 머리에 자리잡고있기때문이다.     독립운동가이며 력사학자인 신채호는 “력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독일은 고급중학교교과에서 전체수업비중의 20%를 력사수업에 치중하고있으며 나치스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을 향해 지속적인 사죄와 보상을 해오고있다. 이처럼 올바른 력사교육을 다음 세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하고있기에 독일은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나라로 다시금 우뚝 설수 있게 된것이다.     하지만 조선족학교에서는 중국력사만 중시할뿐 우리 력사수업은 홀시하고있다. 그러니 우리 청소년들이 우리 력사를 제대로 알리가 없었던것이다. 단지 우리 청소년들만 잘못했다고 탓할순 없다. 이런 현실을 만든 우리 어른들이 더 큰 반성을 해야 할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는 격언을 잊지 말고 우리 력사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후대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조선족다운 조선족으로 되기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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