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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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6) 댓글:  조회:2515  추천:0  2015-02-03
                             16               민호가 돌아오니 한반의 류자들은 무척 궁금했던지라 아니 넌  보름씩이나 어데 가 있다가 인제야 돌아왔느냐고 입가진것마다 겨끔내기로 물어댔다. 민호는 공개하기 어려운일이라 자기는 위삼포의 명을 받고 할빈에 갔다왔노라고 대답하여 안해를 찾아다닌 사실을 숨기였다. 그의 일을 알고있는 사람은 오직 하진국이와 왕견뿐이였다. 그 둘은 쪽박이 굳은 사람이다.     민호는 산채에 돌아오자 분위기가 이전만 좀 다르다는 감을 느꼈다. 다른때같으면 장기를 두거나 주사위를 놀거나 아미면 육담을 늘이면서 벅작고울 사람들이 그저 조용히 마작쪽만 주물렀다. 한풍이 휩쓸고 지나나간 듯 집안에 화기라곤 돌지 않았다. 그리고 까불이 왕은경이가 보이지 않았다.     민호는 그 애의 사촌형인 왕견이보고 물었다.    《은경인 왜 안보여. 걘 쟁반밟으러 나갔소?》    왕견은 고개를 외로 탈아버릴 뿐 대답이 없다.    아니 이 사람 왜 이래? 그가 난색이니 민호는 괴이쩍어했다.    하진국이 눈짓으로 민호를 밖에 끌어내다 알려주었다.    《은경일 빼버렸소.》    《아니 뭐라?…왜서?…무슨일에?…》    놀라 어안이 벙벙해지는 모양을 보면서 하진국은 이미 열어놓은 입으로 듣기도 끔찍스런 한심한 사건 하나를 말했다.    《뒤여질라구 환장했는지 원. 그자식이 글세 개하구 야화요(강간)를 했단말이요.》    《아니 뭐라!?…개하구 그짓을 했다?… 원 무슨소린지…아무리 쌔번진들 어쩜 그렇게까지야…치사하게.》     《글쎄말이요. 그랬다구서 위삼포는 산채를 망신시키는 세차즈라면서 일이 발각이 된 당날루 그앨 빼버린거요. 개까지 함께.》     그 말을 듣고보니 아닌게아니라 반에서 기르던 개도 보이지 않았다. 누런 암캔데 민호가 오니 그때 벌써 새끼를 두배째 낳았다고한다. 제 장단지를 칼로 찍고 제 귀를 베고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내고 짐승을 강간하고… 인간으로서 보통 할 수 없는 희한한 일들이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자식이! 추접게 놀더니 끝내 그꼴루되고마는구나.》    민호는 내놓고 웃지도못할 그런 일이 발생했으니 반장의 처지가 어떻게 됐겠는가고 했다. 그런데 하진국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전혀 생각밖이다. 왕은경이 그짓을 하는 것을 밝혀낸것도 반장이고 우에다 고발한것도 반장이거니와 총을 쏴서 그의 숨통을 끊어놓은것도 반장이라한다.   《아니 고생도 슬픔도 기쁨도 같이해야한다는고 늘 입에 달고있던 녀석이 그렇게까지 한단말인가?…제 반에서 생겨난 패륜아를 감싸줬다가는 아마 추궁이 될까봐 되게 무서웠던모양이지 그꼴로 논걸 보니… 그래두 그렇지 아무렴 어찌…제명대루 못살 놈이야!》     민호는 위진을 욕했다.     제반 새자들의 가슴에다 불만의 씨만 심어놓은게 분명했다.     민호는 우울해진 왕견이 이제 아무때건 감정을 이기지 못해 성질을 부릴 것 같아 어느날 쟁반밟으러 나갈 일이 있게되자 자진해서 차챈더의 허락을 얻어 데리고 함께 산채를 나갔다. 마침 왕견도 가슴답답해 시원히 바람이나 쐬려던참이였다.      그들은 언젠가 300여명류자가 동원하여 상탁(주)이 있었던, 위용강과 진사해가 깃대를 꽂고 온(주) 통에 재난을 면치 못한 그 기와가마가 있는 연수일대를 다시돌고나서 귀로에 올랐다가 염왕산북쪽 약 100여리 지점에 있는 진가툰에 들리였다.     그 마을의 툰장이자 점황지주인 진씨는 1000여헥타르의 땅을 혼자 독점하고있었는데 마을의 농호는 거의가 그의 땅을 소작짓고있었다. 진씨는 차지(借地)로 준 땅을 내놓고도 여러쌍지기의 밭을 자기가 손수다루고있었기에 상기적으로 집에 두고 부리는 농군만도 여나무명되였다. 진씨는 그같이 부유한 사람이지만 여지껏 토비의 시달림은 받지 않고 살아왔다. 한것은 가까이에 있는 위삼포가 그를 보호해줬기 때문이다.    환갑이 가까우나 그리 늙어보이지 않고 풍수좋은 진씨는 자기집에 나타난 두 류자손님을 각근히 대해주었다. 그는 왕견과 잘아는사이였다.   《압련자!》(주)    왕견이 소리치자 진지주집의 하인이 곰상히 말 두필을 끌고 먹이러 갔다.    진지주가 왕견을 향해 물었다.   《임잔 이번에 무슨 길이우?》   《산채루 돌아가는 길에 들렸습네다. 나온지는 여러날되지요.》   《사흘만 더 일찍왔어두 좋았을걸.》   《무슨소린가유?》   《점산두라는 패가 여게 와 재를 치구갔네.》    점산두(占山頭)라니! 그건 또 어디서 나타난 잡놈들일가?… 민호는 물론 왕견도 처음들어보는 토비무리다.    《그자들한테 그래 뿌려줬는가요?》    왕견이 물어보는 말에 진씨는 웃으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내야 당하질 않았지… 감히 덤벼들기나 할 자들인가… 다해봤자 열명도 안되더래.》    말을 들어보니 역시 좀팽이 류자들이다.    해도 진씨의 말을 들어보니 여간만 지독하지 않는 강도단이다.   《글쎄 강령감네가 뭐 있다구. 요몇해간 보따리장사해서 좀 모았다구할수야있지. 그래서 명색이 가게방이랍시구 하나 꾸려놨다우. 그런데두나 그 녀석들이 글세…그 집의 아들을 잡아다가 어떻게 했는지 아오. 고구마를 구웠다우… 돈 천원이 어디우… 그 집에서 그걸 어떻게 낸다구…날 찾아왔더구만. 사람이야 구해놓구봐야잖소. 그래서 내가…》   《돈을 대줬다는건가요?》   《그렇네 반은 내가 대줬지.》   《잘했습니다.》    민호는 그의 처사를 칭찬했다.    고구마를 굽는다는건 쇠를 달구어 지지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인질은 고통스러워 고함을 지를것이고 집사람들은 그 고함소리에 가슴찢기고 뼈가 갈리여 한시급히 요구에 응하게끔 하자는 잔인한 수단이였다.     전날 민호와 왕견이 들렸던 연수근처의 한 마을에서 생긴 일이다. 다섯놈이 어느 집의 15살나는 딸을 화방자로(주) 잡아다놓고는 아무날전으로 돈갖고 와서 찾아가라 그러지 않으면 죽여버리라했다. 그 집에서는 하는 수없이 집재산을 다 팔아버렸다. 그리고도 액수가 모자라기에 소녀의 어머니가 제 피를 뽑아 팔아 부족되는 부분을 보태였는데 그 어머니는 딸이 풀려 돌아오기전에 그만 죽고말았다. 딸이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죽은지라 자기가 살아서는 뭘하느냐며 역시 강에다 몸을 던져버렸다. 아버지는 어떻게 됐는가. 마누라가 죽고 딸까지 죽어버리니 내 혼자 살아서는 뭘하느냐며 나무에다 목을 달아매고말았다. 세 식구가 단란하게 살아오던 그 한 가정은 토비들 손에 이같이 비참하게 훼멸되고말았다.    《째째한 놈팽이들! 목대를 분질러놔야 할 놈들!》    왕견마저 악당들을 저주했다. 비록 도척(盜跖)(주7)의 후계로 되어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면서 백주창탈을 업으로 이 세상을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자긴 여직 그렇게 까지는 잔인하게 놀지 않았노라면서.    허, 이것보지! 리성이 부활해 량심을 호소하는거냐. 고통의 모든 의미를 리해한다면 넌 아마 부처님이 될거야. 민호의 생각이다.    사람마다 제가 즐겨보는 천국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진씨가 염왕산 그늘덕을 입고있는지라 왕견은 그의 앞에서 제법 은인행세를 했다. 나는 여러날이나 잘 먹지도 못했다 몽두춘을 해야겠다 주두리 넓은 놈이건 헤버리는 놈이건 아무거나 잡거라 표양자(죠즈)든 진수산(이밥)이든 하거라 요구를 내놨다.     진씨는 두말없이 그것들을 달갑게 받아주었다. 그는 종들에게 명령해 서둘러 닭을 잡고 죠즈를 싸고 술상을 차려올리게 했다.     두 사람은 배껏 먹었다.     두 머슴애가 상을 거두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주고받았다.    《얘야 오늘 온 손님들 무슨 사람이게 우리 주인이 이리두 잘 접대한다니?》    《애두 참. 네 눈으루 보면서두 모르니. 산에서 온 사람이야.》    《산에서 온 사람?…》    《것두 몰라?…토비야.》    《토비!? 그런데…왜 무섭게는 생기지 않았구나.》    《무섭긴. 사람인데. 누구보담두 잘 먹구 잘 노는 사람들이야.》    《그럼 우리두 토비질이나 해볼까.》     등을 베개로 밭히고 벽에 비스듬이 지개여 두눈을 지긋이 내리감은채 철없는것들의 말수작질에 귀구멍을 열어놓고있던 민호는 불현간 몸을 발칵 일으키면서 호되게 꾸짖었다.    《이놈들! 무슨 소릴 그렇게 해쌌는거냐? 뭘 해먹을 짓없어 토비노릇하겠다는거냐, 엉? 이제 다시 그따위소리만해봐라. 아가리를 찢어놓고말테다, 이놈들!》     머슴아이들은 그만 혼겁하여 달아나버렸다.     둘이 거기를 떠나자니 진씨가 근심스러워 만류했다.    《두분께서는 이대로 훌쩍 가버리려오. 며칠만 좀 더 눌러있으시지. 아마두 마을이 안녕치를 않을것 같아서 그럽네다. 듣자니 그 녀석들말고도 생전 못들어본 흉한 떼거리가 싸다닌다는데…》     속셈이 빤했다. 진씨는 염왕산의 위력을 빌어 만일의 경우 광기부리며 달려들 떨거지 토비들의 략탈을 피면해보자는 생각이였다. 어쩌면좋을가?…민호는 단둘이서 그자들의 행패를 막아낼수있겠는지 자신이 서지 않으나 믿고 하는 사정이니 뿌리칠수도 없는지라 그러면 사날만 더 눌러보지요 하고 주인의 청을 들어주었다.    《맹가강에 갔을적에는 내가 동생의 말 잘안들었소만 이제야… 뭐든 지시만내리라구. 그러면야 내가 어련이 듣지 않으리.》     왕견이 스스로 다지는 맹세였다.     민호는 그러는 그가 좋았다.     산채로 인차돌아가지 않기를 잘했다. 이틑날 민호가 왕견이를 데리고 전날 점산두토비손에 아들을 랍치당한 가게방을 가보자고 나섰다가 공교롭게도 진가툰에 기여든 다른 한 비도무리와 맞띄웠다. 인원이 모두 12명. 역시 좀팽이였다.     그자들의 눈에도 이켠이 어디든 행색이 달라뵈였던지 마주치자 류자식으로 말을 걸어왔다.   《보보만!》(주)   《첨자만(주). 넌 누구냐?》   《나는 나다.》   《팔굽을 눌러라.》   《불을 꺼라.》   《리마인이야.》    이번에는 이쪽에서 캐고들었다.   《보보영두!》(주)    두눈이 치째지고 바르잖게 생긴 녀석이 이쪽은 다해봤자 둘뿐인지라 허수히 보고 거만을 뺐다.   《내가 흑패천이다. 모아산 흑패천을 모르냐.》    이런 경우를 당해 성미가 화약같은 왕견이 참아 견딜리만무였다. 독이 난 그는 낯색이 단통 지지벌개지면서 욕을 퍼질렀다.   《야 이 랑비(주)같은 녀석아, 네가 똥패천은 아니구 흑패천이냐. 누굴 업시보구 이모양이냐, 엉? 돼먹지 못하게.》   《아니 저놈이!》    저켠이 총을 빼들자 왕견도 어느결에 빼든다.    이런 일촉즉발의 시각에 민호는 용케도 따라움직이지 않고 무겁한 태도로 침착하게 맛서나섰다.   《너도 염왕산이야 알겠지. 우린 염왕산이다. 대체 어쩔테냐?》   《아! 그럼 저…》    흑패천은 독이 났지만 감히 손 쓸 념을 못했다. 전혀 당황해 하는 티라곤 없는 상대측의 배때벋은 패기에 눌렸거니와 염왕산이라는 소리에 기가 질리기도 했던것이다.     민호는 기회를 놓지 않고 그루밖아 따지고들었다.   《너희들은 십팔존계률을 아느냐?》   《저, 저…》    두목은 꺽꺽거리더니 낯을 돌려 제 졸도들에게 들었던 총을 내리우라 명령하고는 타협조로 빌붙기시작했다.   《우린 오복자땜에 예까지 밀려온거요. 어쩌겠소. 형제지간에 사정 좀 봐주구려.》   《사정이라니. 벼루기가 쫓는가? 개가 쫓는가?》   《내 말하잖우. 오복자곯았다구서.》    그 소리에 왕견이 다시금 눈알을 부라렸다.   《네녀석들은 오복자곯은것만 알구 그래 염왕산 날쏘시개(탄알) 무서운건 모른단말이냐? 미런한 자식들! 썩 물러가라, 당장!》    흑패천의 두목이란 녀석이 생긴 모양을 봐서는 감때사납고 어거지센 것 같지만 감히 엇서지 못했다.    꼴을 보니 뒷근심달고있는 놈이구나. 이럴때는 계속 되게 굴어야 하는거야. 민호역시 낯색을 엄하게 굳힌채 말곁을 달았다.   《너도 위삼포가 어떤사람이란건 알겠지. 여지껏 형제간의 의리를 중히 여겨왔거니와 함부로 범계하는 자, 도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자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었단말이다. 사실이 이러니 어쩔텐가? 고집부리고 그냥 놀아볼텐가 아니면 오솝서리 물러갈텐가? 말해봐!》   《물러가지. 물러가지.》    흑패천은 꼬리를 빼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진가마을 사람들은 한차례 눈섶에 떨어진 화을 모면했다. 안도의 숨이 안나갈 리있는가. 그들은 너무도 감지덕지해서 염왕산의 두 류자를 훌륭한 협객이라느니 호한이라느니 은인이라니 칭찬이 대단했다.    둘은 이번 행차에 깃대를 꽂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민호가 자진해서 쟁반밟으러 나오기는했지만 의식적으로 깃대꽂을 기와가마를 찾지 않았던거다. 이 민호는 천죄만악의 토비떼를 숙청하느라 제 생명을 바치고 싸웠던 사람이야. 그러던 내가 부득한 사정에 이눔의데다 몸을 담근건데 그냥 진짜토비행세를 하면야 어디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게만 한다면 나는 당벽진에서 토비들 손에 살해된 내전우들의 원혼앞에, 고태자에서 살해된 허저인들의 원혼앞에, 토비손에 재난당한 이 관동땅의 무고한 백성앞에, 그리고 재난을 앞에 놓고 조이는 가슴을 붙안고 떠는 모든 백성들 앞에 천추에 용납못할 죄인이 뒤여 나중에는 천벌을 받고 말 것이다. 량심 이렇게 호소하면서 가끔 주의를 환기시켰던거다.        위삼포가 아무리 형통한들 남의 속맘까지야 어찌알랴. 여러날이나 나가있으면서도 들부실 기와가마 하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그를 꾸짖지 않았거니와 민호가 범계한 서패천을 쫓아버렸다니 외려 기뻐하면서 대단히 잘했다고 칭찬했다. 민호는 언젠가 맹가강에 갔다가 인질로 잡혀간 애를 찾아줬을 때 처럼 다시한 번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이번엔 왕견이도 함께 상까지 받았다.    《길마를 지워보면 말이 좋고 나쁨을 알수있는거네.》     위삼포가 팔대금강인 사량팔주가 다 모인데서 민호의 소행을 놓고 이렇게 다시 한번 말 할 때는 그가 언녕 제 안중에 들어 장차 써줄 생각까지 있어서였다.    무의식속에 고개를 쳐든 운이라할가. 여기서 발탁하여 우위를 잡게 될 기회가 서서히 다가오고있었건만 민호는 그런 것 까지는 꿈에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염왕산류자들은 식량만은 략탈하지 않고 여지껏 제 돈을 주고 삿다. 자금은 주로 아편을 팔아 마련되였다. 그러나 식량을 구매하자면 해마다 미리 잘 연통해야했다. 관방에서 토비에게 먹을 것을 대여주면 《통비범(通匪犯)》으로 론죄하여 가차없이 목을 잘랐기 때문이다. 형편이 그러했건만 농사군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 정부를 속여가면서 제가 지은 낟알을 한근이라도 토비에게 팔아먹으려 했다. 그네들이 그같이 위험을 불구하고 량식을 파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가? 다른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염왕산은 언제나 쌀값을 후하게 주었거니와 뒷수습을 잘해주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쌀판 이들이 후환이 없게끔 해주었다는 그거다. 위삼포는 만약 어느 마을에 고발자가 나지기만 하면 에누리 없이 그의 가족을 도룩냈다. 징계가 그러했길래 그들은 서로 감싸면 감쌌지 남을 물어먹는 짓은 절대 하려하지 않았다. 위삼포는 이같이 염왕산 주변에 있는 마을들을 어렵잖게 제 식량공급기지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을들은 실제상 그의 보호권내에 들어 다른 토비들의 위협을 적게 받았으니 편안히 보낸셈이다.     이해는 쌀농사 작황이 이왕년보다 많이 못했다. 그래도 염왕산류자들이 먹을 량식이야 있겠지만 떨거지패가 나타나 성행하니 어느정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견됐다. 하여 위삼포는 쌀수매예약을 좀 더 일찌기 하기로했다. 량태는 그렇게 하는것이 옳아 서둘렀다. 그는 우선 이미있던 량공대(糧工隊)부터 다시고쳤다. 원래 5명뿐이던 량공대인원을 배로 늘이였거니와 원래의 성원중 젊은 사람 셋만 남기고 늙다리 둘은 퇴역시켰다. 그리곤 류자들가운데서 사격술이 좋고 날파람있는 자를 선발해 인원을 확충했던 것이다.     일정한 전투력을 갖춘 이 량공대총책에 바로 민호가 위임됐다.      민호는 새로 구성된 량공대를 세 개 소조로 나누어 세 개 마을에 파견하면서 하루밤사이에 예약임무를 끝내고 날새기전에 맹가강남쪽에 모이게끔했다. 꼭마치 커다란 고분과도 같은 그 독산(獨山)의 남쪽 기슭에 토비말로는 계모점(鷄毛店)이라고 하는, 호수가 무려 40여호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농가마을이 하나 있었다.     제시간에 임무를 다 완성하고 집결한 10명의 류자가 그 마을에서 눈을 붙이고 나서 이틑날 한창 아침밥을 먹고있는데 그 마을 저선(底線―련계인)의 아들이 달려와갖고 무장갖춘 자들 한떼가 지금 막 마을에 달려들고있노라 알려주었다.     련방대가 온걸가?…민호는 들었던 밥공기를 덜렁놓고 시급히 대처할 준비를 했다.     30여명이 마을에 달려들었다. 한데 그자들의 모양새를 보니 련방대같지 않았다. 다른패거리의 류자들일가? 민호는 불을 걸지 않고 먼저 통화해보았다.   《보보영두!》    저쪽은 대답이 없다.    자식들이 어쩌자는거냐. 민호는 응대하기는커녕 이쪽에서 내치는 소리를 듣고는 바빠라고 몸을 숨기는 그자들을 향해 다시한번 높이 웨쳤다.    《래래봉!》(주)     했더니 저쪽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거니와 이쪽을 향해 총질을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이쪽에서도 맛불질을 했는데 대여섯이 곤두질하면서 련거퍼 쓰러지자 나머지 녀석들은 그만 에구머니야 줄행랑을 놓고말았다.     비겁한 놈들!     량공대의 류자가 그자들 중 궁둥이를 얻어맞아 달아나지 못한 녀석 하나를 찾아내여 끌고왔다. 땅딸보녀석이였는데 이쪽에서 자기를 죽일가봐 와들와들 떨면서 련신 신음소리를 냈다.    《네놈은 어느패냐?》    《나…나는, 오…오련 삼패입니다. 자, 장관님!》    《뭐라, 오련 삼패라!?》     민호는 량미간을 끌어모았다. 여기 염왕산을 내놓고야 어디에 또 그렇게 군인편제가 되어있는 큰 류자무리가 있단말인가. 모를일이라 생각을 굴리다가 그는 언젠가 송화강북쪽에 있는 소백룡비도가 가목사(佳木斯)를 쳐들어온다니 그 자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의란에서 파견되여왔던 관병들이 되려 토비만 못지 않은 짓을 해서 화제가 됐던 일이 떠올라 그자를 다시여겨봤다. 지금 자기 앞에 꿇어앉아 팥죽땀을 흘려가면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고있는 이 작자 역시 그따위 군인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널 잠재우지 않을테니까 그 대신 묻는 말에 곰상히 대답이나하거라. 그렇게 할수있겠냐?》     포로는 믿지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민호는 자기가 방금 한 말을 한번다시 번지고나서 캐물었다.    《너희들은 어디서왔느냐?》    《연수서왔습니다, 장관.》    《연수서라…거기서 뭘해먹었냐?》    《…》    《네가 방금 오련 삼패라구했지?》     포로는 대답못하고 엉엉 울었다.    《이자식이 울긴 젠장! 솔직히 탄백해야 살려주지. 말해봐, 너희들은 거기 관병맞지.》     포로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데 어떻게 된거냐. 여기룬 왜 왔어?》    《영장이 우릴 시켜서…》    《영장이 시켰다? 뭘 시켰단말이냐?》    《훈련두 없이 매일 빈둥거리자니 갑갑해서…그래서 우린 견디지 못하겠다구 의견을 드렸습지요.》    《그래서?》    《갑갑하다지. 거야 내가 풀어줄 방법있지 합디다.》    《그래서?》    《영장은 우릴 군복벗고 이렇게 옷을 갈아입게 했습니다.》    《옷은 왜 갈아입혔냐?》    《우리두 나와서 료략질을 하라구요. 정말입니다. 그래서…그래서 우린 그러다가 상급에서 검사나 오면 어쩌는가구했습지요. 그랬더니 영장이…》    《뭐라더냐?》    《우릴 임무를 집행하러 내보냈노라구하겠답디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한달만 나가 토비질하다가 부대로 돌아오라했습니다. 매인당 천원 하나는 바치기로 하구.》    《빌어먹을 관병략탈!》     민호는 관병을 저주했다.          사람의 감정을 쥐고 몹시 흔들어놓은 사건이였던만 시간이  차츰가고 새사건이 생겨나니 색이 바래졌다. 염왕산을 부산하게 만든 을 꼬리물고 생겨났던 은 한달이 되자 새로 발생한 왕은경의 에 자리를 냈다. 하여 여지껏 그 장본인으로 주시되여왔던 진사해는 남의 입끝에 올라 더 씹히지 않게 되였다.     그는 근심이 풀리니 행실이 가벼워가고 있었다. 언젠가 향란이가 위로의 말을 해준다음부터일 것이다. 싸늘하게 얼어든 가슴을 그녀가 온기를 보내여 녹여주자 그는 엉뚱하게도 그것을 이성의 체온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게다가 드믄드믄 맞띄울때마다 보게되는 녀인의 부드러움과 흐트러지지 않는 도고한 자색이 점점 더 그의 눈뿌리를 빼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희망이 거품같이 부풀어 그녀를 갖고푼 욕망이 불붙듯 하는 진사해였다. 하여 마침내 그는 저팔개모양으로 제 꼴도 보지 않는 속한이 되고말았다. 내가 언제면 저년을 품에 넣고 자볼가 하는 생각에만 달라붙다보니 상대가 때론 자기를 거들떠보지 않는데도 애절한 미련을 그냥 품은채 될수만있으면 가까이 접근하려애썼다. 가련할지경 짖꿎게.     어리석음을 깨달으면 그때는 미런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     향란은 자기를 넘써볼 주제도 못되돼갖고 덤비는 그를 길가의 언 말똥보다도 못여겼다. 그러면서도 그런 내색을 전혀 표면에 나타내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만 웃었다. 이 못난 수캐야 너도 암내에는 견디지 못해 발정하겠지. 내가 곁을 좀만 줘도 바지에 오줌쌀 놈이로구나. 난 네놈이 경각심풀고 내흉한 본심을 드러나게 만들자는거다. 그러느라 너를 우선 내 치마자락에서 맴도는 얼치기로 만드는거야.      이러다보니 어느덧 미묘한 삼각관계가 이루어졌다.     진사해도 머저리는 아닌지라 민호와 향란의 관계를 조심스레 관찰하면서 자신의 언동을 십분 주의했다. 그는 향란의 앞에서는 민호를 평가하거나 헐뜯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되도록 민호와는 마찰도 피면하려했다.     하지만 본심이야 어찌 개변하랴. 그러던 그가 어느날 조용한데서 민호를 대하고 보니 감정이 나서 끝내 정적을 깨뜨리면서 제 심태를 드러내고야말았다.    《여봐 벼슬운이 열린 것 같은데 내가 축할 하지. 어떤가?… 그리구 아마두 만난김에 일깨워주겠어. 이란 말 있잖아. 너무 그러지 말라구.》   《건 또 무슨소린가?… 쇠통 남알아듣지두 못할 말만 하니 원!》    《그것두 못알아듣겠나. 남 리간질해서 쌈붙이지 말라는거야.》      네 녀석이 갑자기 이건 또 무슨소리냐? 민호는 자기 앞에서 웃음을 느긋이 흘리면서 위협적인 교기까지 부리는 그를 마주쏘아봤다. 인(忍)자의 마음심(心)위에는 칼(刃)이 있다. 민호는 불집이 났지만 참아야했다. 의문이 신경을 오리오리 끄당겼다. 대갈통을 갈라치울  녀석이 어떻게 냄새맡고 이럴가?… 조사하고 밝혀내야했다.    민호는 저녁켠에 하진국이와 왕견을 불러놓고 이 일을 말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일은 틀림없이 반장인 위진의 작간이리라 했다. 진사해가 전에 은괴와 사이가 가까웠던것 처럼 지금은 위진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있다는거다.      민호는 그런줄을 미처몰랐다. 그래서 요즘도 위진이보고 진사해는 너희들 허저인의 원쑤란걸 잊지 말라, 너도 허저족이 아니냐, 그런자를 그냥 형제로 여겨줌은 제 민족에 대한 배반이라는것을 알라고 일깨워줬던거다. 네 충고가 옳다며 머리를 주억거리던 위진이 아닌가. 그러던 그가 변심했단말인가?    민호는 사람이 틀려먹었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랬더니 이쪽 둘은 그가 저들의 말을 믿지못해 그러는줄로 알고 펄쩍했다.   《하하 이거! 넌 아마 그 사람이 반장이래서 맹산군 호백구를 믿듯 되게는 믿는모양이구나. 이눔의데서는말이야 오늘 반강자 오늘먹구 오늘취사는 사람은 래일을 생각안하는거야. 누가 잘만 긁어주면 좋아서 따라웃어주지. 위진이가 바로 그런 사람으루 돼버렸어.》     왕견이 제법 식견넓은 사람모양으로 뚱겨주는것이였다.     민호는 그런소리를 듣고보니 내가 아닌게아니라 그자를 너무 경솔히 믿었구나 하는 후회가 썰물같이 가슴에 밀려들었다. 그자의 배신은 모멸감을 던져주면서 그를 격분케 만들었다.    이대로는 참고 묵색일수 없어서 그는 곧 위진을 찾았다.    위진은 남쪽산채에서 얻어온 강아지에다 딸랑방울을 금방달고나서 손을 씻고 있었다.   《위반장 내 좀 봅시다.》    대방의 차가운 낯색을 대하자 위진은 얼굴에 금시 피여오르던  웃음기를 거두면서 긴장해하였다.   《나하구 할 말이 뭐여?》   《저기 조용한데루 가서…》    그를 밖으로 불러내다놓고 민호는 직방따지였다.   《내가 위반장하구 한 말 진사해한테는 왜 번졌습니까?》   《엉? 저, 저 그걸 나쁘게 생각말구. 저…》    위진은 말을 꺾어먹었다.    개같은 자식! 뒤가 켕기니 이 꼴이구나, 때려죽일놈의 새끼. 민호는 속에서 울화가 왈칵 치밀었다. 내가 널 그래도 속대 좀있을 인간이리라 여겼으니 어리석었구나. 자조끝에 그는 이전의 모양으로 또다시 증오가 괴여오르기 시작했다.    상면에 난감한 빛을 피운 위진은 몸가짐도 떳떳치 못했다. 떳떳이 가꿀 수 없었다. 민호는 주대없이 발거리를 놓아 남을 함정에 밀어넣으려 든 그를 속으로 넌 과연 돼지보다 더 미런한 놈이구나 하고 욕하면서 추호도 양보하지 않으리라 별렀다.   《나더러 그걸 나쁘게 생각말라구? 그래 내가 위반장이 놀아대는 꼴을 곱게보란말인가?》    《이봐, 민호! 여기 염왕산에서야 우린 다 형제간이 아닌가. 그러니까…내 아무리 생각해봐두…서로간 등지고 지내는건말이야…그러믄 좋은거같지를 않아서. 그래서 난…정말이네…백장도 칼을 놓으면 그 자리에서 성불을 하는거야. 안그런가. 진사해 그 사람말이야 내보게는 자네말하는거같이 그렇게 나빠보이진 않아. 악한은 절대아니란말일세.》   《걷어치워! 그런 말 어디서 나오는거요! 악한아니면 그래 그가 부처님이란말인가? 한심하지 그사이 마음이 이렇게 까지 앵돌아지다니 원!》    민호는 돌연히 괴덕부리는 그가 뺨을 갈겨놓기싶도록 가증스러워 한마디만 내뱉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더 말해서는 뭘 하랴. 위진은 이미 변심해 다른 하나의 독충으로 돼버린데야. 믿는 남에 곰이 핀다더니 아마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들은 어느덧 개와 원숭이처럼 사이가 나빠지게 돼버렸다.         그로부터 썩 지나 어느날. 전부터 위진이 놀아먹는 꼴을 밉게 보아온 왕견이 민호를 두둔하면서 곪아온 제 속을 많은 새다들 앞에다 텃쳐놓고야말았다.     《여 위진이! 우린 그래두 네가 반장이라구 존경해주는데 그게 뭐야. 자길 믿구 한 소릴 남께 고해바치다니 원. 그게 어디 사람이 새끼가 할 짓인가. 임마, 메뚜기두 낯짝있구 벼루기두 이마빡이 있는거야. 그런데 너는?… 량심은 떼여서 개를 줬느냐, 던져버렸냐?…피자똥에 미끌어 소똥에 코나 박고 뒤여질 놈!》     이 자식이 왜 이래? 다짜고짜 퍼질러대는 욕설에 위진은 그만 억이 막혀 낯색이 하얗게 질렸다. 해도 그는 감히 맞다들지 못했다. 량쪽다 목숨잃을 위태로운 혈투는 말아야했다. 대방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그는 자신을 달래며 참는 수밖에 없었다.      외손벽이 소리나랴. 한쪽에서 욕을 먹고도 잠잠하니 왕견도 제똥에 물러앉듯이 그저 그쯤하고 만다.     묘동(猫冬)이 돌아왔다. 이것은 류자들이 산채를 떠나 겨울을 나는 휴가일인데 이때가 염왕산의 한량(閑良)들로 놓고보면 제일 자유를 부리며 놀아보는 즐거운 기회이기도했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묘동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거다.     민호는 이 기간에 진사해를 없애치우고 조선으로 내빼는게 어떨가 궁리하다가 거둬치웠다. 그런다면 그 하나만을 처리 할 뿐 가철군은 살려주게 되며 잃어진 안해는 더 찾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지금 가버릴수 없다. 네놈하구는 소금이 쉴때까지 해볼테다. 민호는 장구지계를 세우고 계속 지긋이 눌러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동하를 훑고나서 변비에 있는 그 궁상스러운 어래무에 갔다 온 일을 다시상기했다. 사위가 홀연히 나타나자 일희일경 어쩔줄을 몰라하던 허저인장모, 여지껏 토비노릇하다가 온다니 놀래여 낯이 대리석같이 새하얘지던 아낙네들, 눈을 흡뜨면서 사냥총을 찾아쥐던 처남 나쟈… 그때 차라리 그네들한테 따귀를 한 대 얻어맞던지 아니면 한바탕 된 욕이라도 먹었더면 좀 후련하련만. 버리지 못하는 죄책감이 늘 그를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올 묘동때는 한 번 품놓고 찾아보리라 작심했다.    《올겨울은 크게 행사없으니 여러 형제들은 많이 산채밖에서 지내도록합세. 집이 있는 이는 제 집으로 가고 제 집이 없는 사람은 친척을 찾아가구 친척도 없는 사람은 기생을 찾아가던지 유곽을 찾아가던지 아니면 벌이를 더 하던지 맘대로들하게. 이왕년과 같이 사월보름이 귀일이니 명심들을 하게.》     위삼포는 이같이 묘동을 선포하고나서 주의사항 몇가지를 강조한 후 산채를 지킬 류자 60여명만 남기고 그외는 다 내보냈다.     올겨울은 가마를 마스느라 죽음을 무릅쓰고 위태로운 싸움을 하지 않게 된 류자들은 저마다 불룩한 돈주머니를 차고 산채를 나간다. 처자가 있는 사람은 집으로 곧추가지만 집도 처자도 없는 독신들은 거의가 자기가 보아둔 계집을 찾아간다. 독신류자가 좋아하는 그런 녀인들을 접기녀(接技女)라 했다. 뜻인즉 한때를 끼고 살아보는 계집이라는거다. 그런 녀인들 중에는 제 남편이 있는 것이 적잖았는데 그 남편이라는 것도 집을 나가 뜬벌이를 하거나 풍각쟁이노릇을 하거나 아니면 비라리를 하면서 녀편네가 그사이 다른 사내와 붙어지내는것쯤은 대수로와하지 않았다. 지어 묘동기간에  돈벌이가 된다고 여겨 일부러 제 녀편네를 토비와 붙이는 자들도 적잖았다. 맡아놓은 접기녀도 없는 류자들은 우리야 알짜떠돌이가 아니냐. 해태자(주)를 보던지 라방토우(주)를 살던지 해보자며 자유만세를 불렀다. 묘동기간에 야회(주)를 꾸리여 목돈을 쥐거나 번 돈을 가랑잎날리듯 싹 다 날려버리는 자도 있었다. 그런 사람을 방태자라 한다.     왕견이 민호에게 물어보는것이였다.    《동생은 또 제 각시찾누라 팔방돌이해얄테지?》   《그래야죠. 건데 원쑤갚으려다 새원쑤 하나 더 생긴건 어쩌오.》    《그게 뭐 대순가. 메뚜기 류월한철뿐인걸 몰라.》    왕견이 이러면서 눈웃음치는데 그 웃음에는 어느덧 소름끼치게 하는 음험한 살기가 번득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민호가 그한테 물어봤다.   《왕형은 올 묘동에 뭘하려우. 또 접기녈차고 놀테요?》   《나 올 묘동에는 그럴생각이 없어.》    그의 말끝을 하진국이 이었다.   《왕형은 나하구 목재판으루나 류송장으루 살아볼 생각이요. 위진이 그 자식 돈 더 벌어보자구 그런데루 찾아간다나.》    오 그런가, 인제보니 네 녀석들은 속궁리가 달랐구나. 민호는 야수가 사냥물을 뒤쫒고있음을 감촉했다.    묘동기일이 음력 4월중순까지니 그때면 류송철이기도해서 벌목일이 끝나면 다시 류송장을 찾아가는 류자가 적잖았다.         장백산에는 홍송, 백송, 들메 등 여러종의 귀중한 목재들이 많았다. 하기에 그곳은 겨울이 되면 벌목군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군하는데 염왕산이나 다른 패의 류자들이 겨울 한철을 보내는 좋은 은신처이기도했다. 떼돈을 바라는 류자들은 다가 로동조합에는 들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하는 고용계약을 맺고 산에서 지낸다.     운수도구가 그닥잖고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다보니 베어낸 목재는 거의가 압록강과 두만강, 혼돈강 등 크고 작은 물길에 의하여 각지로 운송되는데 봄에 뗏목문이 열릴 때면 제일분망했다.    듣는말에 의하면 림강(臨江)으로부터 안동(安東)에 이르는 구간에 험구가 무려 9881곳이나 되여 뗏목이 그런 험구를 지날 때면 귀신이 늘 사람의 목숨을 빼앗각질한다고 한다. 그런다고 물목을 열어 뗏목을 놓을 때면 본영의 지배인은 뗏목장들에게 돼지를 잡아 제까지 지내면서 한 패 한 패씩 보내는데 그 장면이야말로 짜장 장엄한 생리사별(生離死別)의 시각을 방불케 하는것이다.     류송군들은 뗏목이 물길을 따라내려가다가 험구인 물목에 이르러 뗏목이 암초에 걸리는 것을 제일무서워한다. 그러기만 하면 물목이 막히는 통에 뒷따르던 떼목이 앞의 뗏목을 올라타고 앉아 그만 산더미처럼 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 그런 곳만 맡아보는 자가 따로 생겨난건데 그것을 주관하는 자 대부분이 꺾지손이 센 토비출신의 류자였다. 따라서 그런 장애를 전문풀어주는 사람가운데도 또 더 고급적인 기술자가 있기마련인데 그런 사람을 《줄밥먹이》라 불렀다. 한데《줄밥먹이》는 물론 토비출신의 류자가 독점하는 막벌이벼슬자리기도했다.     물길을 따라서 내려오던 뗏목이 암초에 걸리게 되면 험구를 지키는 주인이 인차 《줄밥먹이》를 부른다. 그래서 량자간에 협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4백원이다. 누가 해보겠는가?》   《…》   《5백원!》   《…》   《6백원!》   《내가 할테요.》    대개 이런 식으로 나설 사람이 정해지는거다.    기실 덧쌓인 그 많은 통나무가운데서 걸린 놈은 한두가지다. 하니까 그것만 뚜장질해 벗겨놓으면 문제는 대개 해결이 나는거다. 그런데 작업상황만은 상당히 위험해서 자칫하면 걸린데를 풀어놓았지만 제 몸을 미처 피하지 못해 무너져 내리는 뗏목에 깔리거나 치이거나 찟겨져 눈깜짝새에 분신쇄골이 되고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하길래 이 일을 혼자서는 절대못하는거다.    바로 이같이 위험한 작업을 담대한 왕견이 맡아나섰다. 그는 누구보다 경험이 많았던것이다.    그는 뗏돈을 나누어 갖기로 하고 함께 간 염왕산류자들로 조를 무었다. 그 속에 반장 위진이도 끼이였다.    류송은 압록강이나 두만강, 혼돈강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였다.    송화강으로도 하는데 이듬해 봄에 이 강의 상류에 있는 한 물목에 뗏목이 걸려 층집같이 높이 쌓여 그것을 풀어줄 사람을 찾고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왕견은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 선손을 썼다.    자기 패를 데리고 거기로 간 그는 정황조사가 끝나자 곧 일에 달라붙었다. 왕견은 다른사람들 보고 이제 나무가 무너져내리거든 여차여차하게 행동하라 시키고나서 자기는 따로 하진국이와 위진을 데리고 나섰다.    그들 셋은 다가 손에다 길이가 3메터가량되는, 끝이 창과 갈고리로 만들어진 장대를 들었다.    자뜩 불어오른 물이 뗏목사이로 폭포같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뗏목밑에 바투다가간 왕견은 밑부분에 깔려있는 통나무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검사했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물밑에 삐죽히 올리민 암초에 걸려있는 놈을 찾아내고야말았다.   《어이 위반장, 여기루 오라구. 이거 나혼자는 될거같잖아.》    저쪽에서 걸린 놈을 찾느라 여념이 없던 위진은 자기를 부르는지라 그리로 갔다.    왕견은 그와 함께 쇠장대로 든장질해 마침내 걸린 놈을 풀었다.    물목이 갑작스레 터져 폭포마냔 쏟아지기 시작했다.    왕견은 거기를 뛸쳐나오느라 장대기를 돌리는 순간 위진이 딛고 선 통나무를 살짝 건드려놓았다.    위진은 통나무에서 미끌어 떨어져 물에 빠지고말았다. 그는 나오려고 허우적거리다가 통나무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때는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무수한 통나무들이 그를 깔아놓아 그만 형체도 없게 만들어놓고말았다.    누가알랴, 그것은 정상적인 사고로밖에 보이지 않은데야.    위진은 이렇게 눈깜짝새에 아까운 목숨을 잃고말았다.        묘동이 끝나서 나갔던 류자들이 산채에 다시모였다.    민호도 돌아왔다. 한데 그는 이번에도 헛수고만했다. 넓디넓은 이 관동땅에서 잃어진 안해를 찾는다는건 그야말로 북데기에다 떨군 바늘을 찾는 격이였다.    그와 왕견 그리고 하진국 셋은 한자리에서 조용히 다시만났다.   《그 녀석을 빼버렸다니 속시원하구만!》    민호가 하는 말에   《앓던 이 빼버린것만큼이나 시원할거야. 그렇지.》    하진국이 동을 달았다.   《한녀석 더 있잖아. 그녀석마저 빼버려야 시원할건데…》   《진사해말이지. 그녀석두 빼버릴 날이 있을거다.》    왕견은 이러면서 속담에도 구두쟁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을 당한다고했잖안냐했다.    셋은 웃었다. 그리고는 음험하고 유쾌한 살인을 상상해보았다.     《보복》이 곧 시작되였다. 이것은 매번 묘동이 끝나면 련이어서 뒤따르는, 산채에서는 아예 명문화되다싶히 빼놓지 않는 중요한 행사이기도했다. 어떤 류자들은 묘동기간에 경찰에 잡히우고마는데 은어로는 그것을 《발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된 자를 보면 거개가 취중실언을 한 탓이였다.    관방에서 토비를 대처하는 수단역시 간단치 않았다. 어떤 류자들은 경찰에 잡히워갖고는 그들의 호된 고문을 당해내지 못해 끝내 내부의 비밀을 루설하거나 제 동료를 팔아먹고만다. 그래서 목이 날아나는 자가 한둘이 아니였다. 그런자들을 상대로 해서 벌리는 류자들의《보복》은 보통 한달내 ...............................................................................................................................    * 야화요ㅡ강간.     * 상탁ㅡ행동에 배합함.  * 깃대를 꽂다ㅡ마사버릴 기와가마를 정탐하여 결정하다.    * 압련자ㅡ말을 놓아 먹이다.  * 뿌려주다ㅡ털리우다.  * 보보만ㅡ너의 성을 대라.  * 랑비ㅡ떨돌이 류자.    * 화방자ㅡ홍표, 꽃인질, 무른 인질이라고도 하는데 녀성인질을 가리킨다.  * 첨자만ㅡ정씨(丁氏)     * 보보영두ㅡ두령이 누군지 대라.  * 날쏘시개ㅡ탄알.  * 오복자ㅡ똥집.  * 범계ㅡ토비들의 관할범위.    * 래래봉ㅡ어디서 왔느냐.    * 묘동ㅡ류자가 산채밖을 나가서 겨울을 지내는 일.  * 해태자ㅡ기생. 갈보.    * 라방토우ㅡ남편있는 녀인과 한집에서 사는 노릇.  * 접기녀ㅡ한시기 얼마간 끼고 살아보는 계집.    * 야회ㅡ본래는 밤에 하는 모임. 특히는 서양풍의 사교모임인데 여기서는 도박판으로 쓰였음.  에 끝내는데 방법은 여러 가지다. 두령은 우선 수하의 새자들을 점명하여 오지 않은 자가 누군가를 알아보고 그가 오지 않은 리유를 조사한다. 그래서 묘동기간에 그가 경찰에 붙잡혔다면 어떻게 되어 붙잡혔는가? 붙잡히운게 제 잘못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가 물어먹어서인가? 네가 잡혀서는 누구를 물어먹었는가?…그래서 제 형제를 해친자가 나지면 그 어떠한 방법을 써서든 붙잡아 목을 잘라 원쑤를 갚아주었고 내부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루설했거나 변절한 자가 있어도 역시 추호도 양보없었다.    산채로 돌아왔으면 만사필인것이 아니였다. 묘동기간에 산밖을 나가서 의리를 버리고 배신하고서도 자기의 행실을 감추자고드는 자가 있는 것이다. 하길래 두령들은 묘동후 《보복》이 끝났다하더라도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계속해서 개개인의 뒷조사를 하고 마무리짓는 것이다. 대오를 정리하는 이 일은 이같이 신비하면서 무시무시한 음영을 던져주면서 산채의 명줄을 지켜나갔다.     왕견이나 하진국이나 민호나 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무사히 지냈다.            
410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5) 댓글:  조회:2511  추천:0  2015-02-03
                       15               황보재의 죽음은 염왕산에다 풀기어려운 수수께끼 하나를 만들어놓았다. 그도 다른날이면몰라도 공교롭게도 딱 서은괴가 처형된 날에 그도 죽었거니와 그 죽음이 너무도 이상했던 것이다. 황보재는 왜 죽어야하고 흉수는 누구일가? 어떤 사람은 민호라느니 어떤 사람은 진사해라느니… 저마다 생각나는대로 짚어댔다. 그런데 뽐창을 보면 그것은 다른 누구의것인게 아니라 바로 황보재 그 본인의것이니 더욱 이상했다. 황보재가 제 뽐창으로 자결했단말인가? 무엇때문에?…아무리 생각해봐야 그럴 리유가 없는 사람이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타살이란말인가. 십중팔구가 그런 것 같기도한데 그렇다면  살인자는 대체누구일가? 추측과 의논이 백출하는 중에 진사해를 살인혐의로 짚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심에 불과 할 뿐 그렇다고 꼬집을만한 근거도 없었던것이다. 게다가 진사해본신도 자기는 절대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나선다. 그는 자기가 술을 마시자고 장령감의 후근사양실에 갔는데 마침 황보재가 느닷없이 나타나 말도 없이 남먹자고 부어놓은 술을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그결에 그만 취해버렸다 그런걸 자기는 제자리에 눕히려고 부축해갔을 뿐이라 자변하면서 완강히 나섰던것이다. 다가 알다싶이 그와 황보재는 자별한 사이였다. 본인의 말마따나 어느때보나 둘은 다정한 사이요 마찰이란건 없었는데 무슨 리유로 친구를 죽인단말인가?… 리유가 이러한즉 진짜흉수는 과연 그가 아닌상싶기도했다. 그렇다면 그를 죽인게 누구란말인가? 사이가 줄곧 나빴던 정민호란말인가? 말을 들어보니 그도 아니다. 사자가 뽐창을 맞은 그 시각에 민호는 분명 제 숙사에서 잠을 잤다하지 않는가…    이것은 향란이 하나만을 내놓고는 귀신도 모르는 일이였다.         이렇든 저렇든 의심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진사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기를 사멸의 궁지에 빠뜨려 넣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이 험악한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이쳤다.     많은 새자들이 이제 더는 그를 친근하고 부드럽게 대해주지 않았다. 만나면 인사도 없이 딴눈으로 보면서 경계하기 시작했다. 따돌리우고있음이 분명한데야 어찌 기가 죽지 않으랴. 이제는 꾀도 지혜도 핍진해 거의 탈진상태에 빠지나답지 않은 그는 우거지상이 되고말았다. 이러한 형편에서 안달고 당황하기도 한 그는 에라 한 번 죽지 두 번죽겠냐하면서 차라리 달아나버릴가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막궁리도 잠시였을 뿐. 하늘에도 땅에도 그가 숨어버릴데라곤없었다. 악마가 못찾아내는 것을 위삼포는 찾아낼 것이다. 일단 달아만난다면 그건 제 스스로 죄를 승인하는것으로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야 목숨은 다 살려낸게 아닌가.          불한당이 악행을 하기는 천만쉬운것이였다. 이거 내가 악한짓 너무해서 홀벌로 죽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나기도 하는 진사해. 그는 올해만도 무고한 사람을 둘이나 죽이였다. 봄에 황보재와 같이 목단강쪽으로 쟁반밟으러갔을적이다. 둘은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저기 앞에서 만삭이 되어 배가 남산만큼한 임신부 하나가 뚱기적거리며 마주오고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사해가 입을 먼저열고 지벌이였다.   《보재, 저것봐라. 저년의 배속에 뭐가 들어있겠냐?》   《아따 임신부의 배속에 뭐가 들었겠소. 사람의 새끼가 들었겠지아무렴 두꺼비가 들었겠소.》   《아니다. 내 말은 그게아니구 저년의 배속것이 남자겠냐 녀자겠냐 그거다.》   《오―나더러 그걸 알아맞히라는거요.》   《그렇다. 네 투시력이 어느정돈갈 오늘 시험쳐보자꾸나.》   《투시력시험이라. 그렇다면 가만있자…그렇지! 남자야!》   《아니다. 녀자야!》   《남자요!》   《녀자다!》   《남자란데두그러네. 배가 물항아리만한걸 보란말이요.》   《쳇! 알긴 잘안다. 그럼좋다. 네 말이 맞는가 어디볼가.》    진사해는 서슴없이 권총을 꺼내여 단방에 그 임신부를 쏴죽이고칼로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냈던 것이다.    그 다음번은 연수쪽으로 쟁반밟으러 갔을적이다. 그때도 그가 황보재와 같이가게 되였었는데 그번에는 가다가 길에서 도붓장사를 하나 만나게 되였다. 그날도 진사해가 말을 먼저끄집어냈다.   《보재야 저녀석봐. 저녀석 돈 많겠냐 적겠냐?》     《저 따위가.... 가랑잎에 똥싸먹을 장사꾼인데두?》   《그래 두 내 가질거야있겠지.》   《그렇다구 털겠소 째째하게스리.》   《챠 이거, 그놈의 입에서 별소리 다 나온다. 날 째째하다니. 네가 그래 어느때부터 보살이됐냐.》   《내가 보살루돼서가 아니라…혼자길가는 사람이나 중이나 장돌뱅이따위는 건드리지 않기루돼있지 않소. 아무리어째두 규률이야 지켜야지.》    《규률은 무슨눔의 개나발같은 규률이야. 위삼포는 쓸데없는 그따위거나 만들어 제 사람의 손을 묶어놓고있지 뭐야. 그런다구 백성들이 우릴 착하다구할가. 우린 정인군자가 아니구 토비야, 토비! 본직이 살인하구 빼앗각질하는 강도란말이야!》    이러면서 진사해는 그 도부상을 잡아세워놓고 몇푼안되는 돈을 말끔히 털어냈다. 그리고는 그가 자기의 눈두덕에 난 흉터를 보았으니 아무때건 소문이 나서 시끄러우리라 여기고는 아예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기까지했던 것이다. 산채에서는 호인풍의 사나이란 평을 받아온 그가 밖에 나와서는 바로 이러했다. 자기가 간담상조하게 된 사람이 실은 사람을 파리잡듯해온 진짜살인광임을 황보재는 미처몰랐던것이다.. 그가 청보산패에 있을 때였다. 사람의 생간을 먹으면 처음은 눈이 빨개졌다가 점차 파래지면서 나중에는 해리의 눈처럼 밝아진다는 말을 주어듣고는 거울까지 갗춰놓고 들여다보면서 련거퍼 다섯사람이나 죽이고 간을 빼먹었다. 온 관동땅을 들썽케했던 《당벽진참안》을 빚어냈을 때는 방향잃고 헤매는 나젊은 조선독립군전사를 붙잡아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깨고 대골을 빼먹었다. 그런짓을 했길래 그는 민호를 볼때마다 자기가 그때 저질러놓은 죄행이 다시금상기됐고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기분이 잡치군했다. 한 것은 눈이 밝아지기는커녕 그후부터 이뿌리가 통세나는 무서운 병만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따위짓은 다시는 하지 않고있는건데 어쩐지 민호가 자기를 뒤쫓고있는 독립군의 유령같기도해서 내가 과연 아무때건 저놈의 손에 잘못되지 않을가 하는  무서움에 가슴이 떨려나기도했던것이다.       산채에는 전에 진사해의 절름발이 할애비가 다 호적질을 해먹었다는 사이비한 얘기가 나돌아 심심해죽자는 류자들의 무료증을 풀어주고 있었다.    전에는 로씨야에서 정배살이하는 죄인들이 적잖게 변경지대에 몰려와있으면서 그곳의 한인(漢人)도적과 배가 되어 료략질을 해먹었다. 한데 그 이방인들은 동양인과는 유전인자가 달라서인지 거의가 붉은 수염이 얼굴을 덮고 있어서 퍼그나 이색적이였다. 그렇다해서 항간에서는 그자들을 몰잡아 홍호자(紅胡子)라불렀다. 수염이 붉은 마적이라는 거다.    함풍(咸豊)년간(1831년ㅡ1861년)에는 악질토호들이 사사로이 검객을 모아 그들이 붉은수염을 달고다니면서 백성집을 털게 했다.    진사해의 할애비도 그렇게 살고싶었다. 그런데 사지가 남처럼 성하지 않고 절름발이가 돼놔서 처음에는 퍼그나 고민했다. 내가 왜 이렇게 병신이 됐느냐고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고 팔자를 원망하기도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어떤 벌이로 생계를 유지하고푼 맘은 없어서 머리통을 다시굴려본 끝에 결국은 일확천금을 꿈꾸고 나도 한 번 홍호자노릇을 해보자고 맘을 먹었던것이다.    민호가 있는 산채의 류자들이 그를 입길에 올려놓고 굴리였다.   《어떻게 했는질아나. 그도 붉은 수염을 만들어달았대.》   《절름발이가? 그리구는?》   《그리구는 길목에 앉아서 지켰지 뭐야. 그리구있다가 지나가는 행인이 나지면 하구 고함을 쳤다는구나.》   《그래서?》   《그래서 어쨌겠나. 행인은 하면서 화뜰놀라는건 사실일거구.... 그러면서도 내빼려구하지.》   《그러겠지. 아무렴 다리각이 졸아붙었다구 그저 당하기만 하겠냐. 우선 달아나구봐야지.》   《체, 달아나? 그게 그리쉬울가. 이쪽은 한단말이야. 그가 절름발인걸 아는 사람이면야 어디…문제는 그런 경우를 당하면 거개가 쥐나 토끼새끼모양으루 담이 작아지는데 있는거야. 안그래? 행인은 그눔의 으름장에 넋담떨어져서 그만 꾸레미를 팽가치구 걸음아 날살리라 이거야.》   《하하하하…》    모두들 귀맛당기는 이야기가 소가지를 간지렵혀서 웃어댔다.      한쪽에서 꿩망태를 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볼만장만 듣고만있던 민호가 한마디 참견했다.   《쓴오이덩쿨에 쓴오이밖에 달릴게 있나. 원체 종자가 나뻐.》        염왕산은 주위의 골짜기에 곡식밭 뙈기들이 있어서 그런지 꿩도 많고 자고새도 많았다. 민호는 때로는 살구씨를 구멍뚫어 우레를 만들어 그것을 켜서 꿩을 얼려잡기도했다. 여기는 잡아먹을만한 새가 적잖았다. 하건만 민호 한사람을 내놓고는 웬 일인지 술먹고 육담이나 했지 손꿉을 놀려 그런걸 잡아먹을 궁리를 하는 사람이라곤 거의 없었다. 언젠가 그런 짐승을 잡아먹으면 묘동때 좋지 않다는 소릴들었는데 아마 그래서 그모양인것 같았다.      민호가 꿩망태를 방금 다 만들자 밖으로부터 말소리들려왔다.   《위아가씨 오셨구만! 민호형을 찾겠죠! 어서들어가시오!》   《그이가 있나요. 있으면 얼른 나오시라해요.》    향란이가 날 왜 또 찾을가? 민호는 들어와 이르기전에 나갔다.    둘은 북쪽골로 향했다.    이런 조용한 만남이 민호는 좋았다. 아느새 가다가 그가 먼저 황보재의 괴이한 죽음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황보재가 왜 그모양으루 죽었는지 참…아무리 생각해봐두 귀신이 곡할일입니다.》   《그게 그리두 이상한가요.》   《이상하잖구요. 그게 그래…》    민호가 머리를 살살 젓는걸 보고 향란이는 웃었다.   《그깟일같아나 머리앓지 말아요. 거치장스럽던 혹을 떼버리면 홀가분할거고 그 사람 없어지니 마음 더 편하잖아요.》   《하기야 그렇습니다만… 날 내놓구서는 여기서 그하구 척지은 사람이 없는줄로 알았는데 그런 흉사가 생겼으니… 대체 누가 뭣땜에 그랬는지 그게 의문스럽기만해서.》   《그걸 그리두 알고푸나요?》    향란이는 민호를 말끄러미 보면서 입가에 실웃음을 그렸다.     민호는 이제야 짚혀지는지라 걸음을 뚝 멈추고 서서 그녀를 다시 눈여겨봤다.    향란이는 고개를 외로 꼬았으나 더는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이젠 아버지께서도 알고계셔요. 보재는 내가 빼버렸어요.》   《뭐라?!…》   《내가 빼버렸어요. 왜요. 잘못됐나요?》   《난 위아가씨가 그렇게 독할줄은.... 지난날정을 봐서두 어찌…》   《그걸 모르는 내가 아니얘요. 하지만 죄없는 목숨이야 건지고봐야지. 안그래요.》    향란이는 이러면서 어느날 밤 보재가 취중에 한 짓을 알려줬다.     보재가 그렇게까지 됐단말인가. 자칫하면 내가 소리한번 못쳐보고 죽을번했구나. 민호는 그녀가 자기를 살리기 위해 손을 먼저쓴 것을 알았다. 한데 안도의 숨은 나가나 민호는 그녀한테 고맙다는 말은 하고싶지 않았다. 어쩐지 맘이 그리 석연치않았던것이다.    얼마간 틔여진 골안. 여기는 면적이 10여헥타르되는 콩밭이 골을 따라 길게 누워있었다. 그리고 해마다 풋것을 먹느라 후근의 부지런한 류자들이 강냉이를 심어놓은 자그마한 뙈기밭도 있었다. 곡식밭이 이같이 있으니 짐승이 모여들기마련이다.    오늘도 공탕은 아니다. 그사이 콩밭머리에 놓고갔던 착고에 자고새 한 마리 끼여 있었다. 민호가 그것을 벗기자 향란이가 제꺽 받아들고 보면서 좋아했다.    《우릴 행복하게 해주느라 찬거리생기는모양이네. 어쩔가요. 오늘 저녁상도 제가 차려야겠죠. 같이 조용히 몽두춘도 하고요.》   《그러지. 좋은 안주에 반강자없는 식사는 멋없지요. 난 아가씨가 아주 깔끔한 주부같아서 좋네요.》    민호는 흔연히 동의하고는 하하 웃었다.     가을절기가 바야흐로 끝나가고있는 조용한 골안에는 기분이 한결명랑해진 이들 두 사람이 간단없이 주고받는 말소리뿐이였다.     민호는 갖고 간 착고를 마저 다 놓았다. 그리곤 산채로 돌아가려고 향란이보고 자고새를 넣은 꿩망태를 달라해서 어깨에 멨다.   《뭘 그리급해해요. 좀 놀다가자요.》    향란이는 말라가는 풀을 깔고 앉았다. 몇 번 일깨워줬더니 지금은 몸가짐이 이전과 완연히 달랐다. 그의 앞에서는 전혀 오만을 부리지 않거니와 몸가짐도 퍽 조심했다. 그녀의 몸매는 단아한 용모에 어울려 한결 매력이 있었다.   《꺼겅―꺼겅―》    어디선가 장끼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향란이는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곤 얼른 제자리에 도루주저앉는다. 사내가 멘 꿩망태를 슬쩍 건드려놓고. 윤기도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긴 눈섭이 요염하게 그림자를 떨어뜨렸고 미소를 머금은 입술은 감추지 못할 욕정에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처녀가 늙으면 망짝지고 산에 오른다더니! 민호는 속으로 뇌이면서 그녀를 다시봤다. 오빠가 기생을 안해로 맞아들이면 자식을 못봐 위씨가문은 대가 마를거라 근심하던 녀인, 그러면서도 저는 평생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까지 내렸다는 녀인―전에 엄마의 늙은 녀종이 남겨놓고 간 밀방으로 약을 써서 자신을 스스로 불임하게 만들어버린 이 돌계집은 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실은 이성지간의 육체결합을 가장 즐거운 오락으로 여기고 갈망하는 성애주의자(性愛主義者)였다. 그리고 그녀는 출중한 무예와 더불어 나무릴데 없는 글래머 걸(glamour girl)― 육체적으로 아주 매혹적인 녀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민호가 그녀의 정부라는건 이미 공개되나답지 않은 비밀이였다.    사나이가 망설이는 것 같자 녀인은 꿩망태를 다시한번 건드렸다. 민호는 오늘만은 그러고싶지 않았다. 어쩐지 잃어진 안해에게 미안하고 여지껏 찾지 못해 죄를 짓는것만같아서. 안해를 꼭 찾겠다며 떠난 녀석이 여기에 갇혀 멀쩡하게 해를 거듭넘기면서 공전만하고 있었다!     향란이는 민호의 이러한 속내를 제꺽 짚어 보고 짚어보고 낯색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또 각시생각나는가요?》    《점 잘 치는구만!》     민호는 솔직히 승인하면서 눈길을 건너산쪽에 던졌다.     《그럴거얘요. 한달을 살아도 정들었던 안해였을테니.》    《솔직히 말해 그렇습니다. 현숙한 안해로 되어서 백로해로할 녀자였던걸요.》    《오, 그런가요! 저의 말을 격하게 들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남편이면야 그녀는 눈을 감아도 무척 행복할거얘요.》    《그럴가?》    《그렇잖구요.》     비웃음이 아니였다. 조롱도 아니였다. 향란이는 진정으로 감오하여 하는 말이였다.     민호의 구리빛나는 얼굴에 웃음이 피여올랐다. 질투하여 소가지를 낼줄로 알았던 녀인이 그러지 않고 선의적으로 나오면서 참답게 대해주고있음에 고마왔다. 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러지 않을 것이다. 남을 리해할 줄 아는 녀자다. 그같은 리해심은 두말할 것 없이 우의를 돈독히 하고 보다 진지한 신뢰를 촉구하게 될게 아닌가. 서로간 사이가 이정도로 됐는데야 더 주저할것 뭔가.     민호는 입을 다시열었다.   《향란아가씨!》   《왜 그래요?》   《아가씨가 날 좀 도와줄수 없을가.》   《뭘말인가요?… 제가 그대를 도와드릴 수 있는게 뭔가요?》   《진사해는 내 안해가 어떻게 됐는지를 알고있을텐데…》    민호는 지난때 발생한 일을 내놓고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향란이는 내심히 들어주었다. 그녀는 까딱하지 않았다. 비상한 흥미를 가지면서 어느덧 그 이야기에 빨려들고 있었다. 가끔가다 《아, 그런가요!》하고 감탄사를 발하여 자기의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녀는 깊은 동정을 품고 사나이를 다시금 여겨보기도했다. 이 용감한 조선독립군인이 겪어온 풍상과 경난은 절대 가볍게 들어둘 이야기가 아니였던것이다. 투쟁으로 엮어내는 인생! 하지만 지겨움도 고민도 없었다. 어쩌면 그는 자기가 타고난 불운과 맛서싸우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나이 같기도했다. 사람이 용감하지 않구야 그렇게 할수있는가. 전에는 미처몰랐던 이런 깨달음이 그녀로 하여금 한결 짙은 련민과 동정을 품게 하면서 숭경에 가까운 심정으로 그를 지지해나서게 만들었다.    향란이는 맑은 이슬이 미음도는 고운 눈을 들어 사나이를 올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안해는 꼭 찾아봐야해요. 어쩌면 찾아낼수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난 아가씨께 도움을 청하는겁니다.》   《저더러 진사해한테서 안해의 행방을 알아보란거겠죠.》   《그렇지. 바로 그겁니다.》   《그러면요…》    향란이는 문득 말을 끊더니 한식경이나 입을 닫아걸었었다.     왜 이모양이냐? 이 녀자가 나하구 뭘 말하자는걸가?… 민호는 수삽스러운 대방의 속내를 짚어내지 못하고 침묵속을 방황했다.    갑갑해났다. 그냥 이러구있을수는 없었다.   《그러면 어떻다는 겁니까? 왜 말하려다가 그만둡니까? 시원히 해야 나도알지.》   《한가지 요구있어서 그래요.》   《요구?》   《그래요. 요구라기보다 차라리 협약이라는 편이 더 났겠네요.》   《협약이라? 무슨소린지…향란아가씨가 그래 나하구 협약을 맺자는겁니까.》   《그렇지요. 동의하면 나도 힘써보고…》   《동의하면 힘써보겠다…?》   《그래요.》   《뭔데 어디 말해보시오.》   《말하지요. 만약 민호씨께서 안해를 찾아낸다해두 여기를 나가기전에는…생각해봐요. 워낙 녀자가 있다해도 아무나 맘대로 여기에 데려다 살수야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인즉은…》    말을 다 들어봐야 알가. 민호보고 염왕산을 나갈때까지는 자기를 버리지 말고 만족시켜달라는 그 소원이였다. 그깟거야 못들어줄게 뭔가. 민호는 그 요구를 선선히 수락했다. 한데 설사 안해를 찾았다쳐도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가 문제다. 도적놈 배에 오르긴 쉬워도 내리긴 참으로 어려운것이다.        한편 일불이살륙통(一不一殺六通)이라 서은괴가 일을 설치고 죽어버린데다 황보재마저 괴사(怪死)를 하는 통에 혐의자로 몰려 궁지에 떨어진 진사해는 어떻게 하면 목전의 처지를 돌려세울건가고 그냥 머리통을 앓고 있었다. 적중한 방도가 나지지 않았다. 어쩌면 백사가 여의치않아 자기는 이젠 촌보를 헛디뎌도 나락에 떨어져 분신쇄골이 되고 말 백척간두에 서있는것 같기도 했다. 내가 이놈의데다 발을 들여놓을건 뭔가 아예 여기로 올 궁리도 말았어야했을건데 하고 그는 후회가 막심해갔다. 이제 무슨 방법이 있으랴. 세상에 후회를 치료해 주는 약은 없었다.    가철군은 전에 벌써 그가 염왕산에다 발을 붙이고 동산재기를 꿈꾸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면서 극구말렸던 것이다. 그자식 그땐 머리가 어쩜 그리두 잘 돌았을가!    《사해형! 제발 내말듣소. 다른데루는 가도 염왕산에는 가지마오.  사해형이 아무리 지혜령통해서 권모술수를 쓴대두 뼈속까지 독이 배여있는 위삼포를 그래 삶아낼만하겠소. 듣자는 그 수괴는 계모가 난당이라 여기 북만은 물론이거니와 온 관동땅에도 겨룰자가 없다는데 안그렇소. 공연히 섶을 쓰고 불가마에 뛰여들지마오.》    《모험이라는건 나도 안다만 방법있냐. 사실말해 내가 이제 국을 다시 만들기는 다틀려서 그런다. 염왕산이 대물림이라지만 그것이 영원히 위씨네거로만돼야한다는 리유야 없잖으냐. 그놈의 세습제를 내가 들어가 망가놓을테다. 처음 얼마간은 머리숙여야 하고 수모도 받겠지만 차츰지나누라면 달라지겠지. 결찌가 많아지면 그게 바로 내 성장이구 력량인거야. 때를 잡아 왈칵 뒤집어만놓으면 그때는 모든게 이 사해의 거로 될거란말이다. 알았냐. 그래서 난 거기를 놔둘 수 없단말이다.》    《생각은 좋지만 만사가 뜻대로되는건 아니잖소. 내가 꿈꾸면 남은 해몽한다는걸 사해형도 알아야하오.》    《아무튼 난 가련다. 산에 들어가잖구야 어떻게 범을 잡겠냐. 그깟거 눈감으면 한 번 감지 두 번 감을가. 넌 이 형님이 어떻게 성공하나 그거나 지켜보거라. 국이 밝아지면 그땐 내가 널 의례 부르지 않으리. 그때가 되면 우린 이 관동을 독천장으루 삼고 한 번 실컷 지랄발광 네굽질을 하면서 맘껏 살아보잔말이다. 백년행락은 못하더래두 그렇게… 인생이 한 번 뿐인거야.》    진사해는 이렇게 장담하면서 줴치곤 갈라졌던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었다. 여기다 발을 들여놓은 그 시각으로부터 자기가 금고종신(禁錮終身)이라는것을 알기나했으랴!     그자식이 지금 어디에 가 있을가. 진사해는 지금도 의연히 자기와는 사교지간이라여기는 가철군의 행방을 몰라 아타까와하면서 몹시 그리였다. 약삭바른 그를 장차 옆에 두고 지내려했다. 진사해는 아첨을 해가면서라도 자기의 감정을 발라마추는 인간이면 좋게 보고 믿어주는 위인이였다.    어느날 향란이는 후근마사에 가 장령감을 찾아 그보고 내가 진사해를 조용히 만날일이 있으니 가서 데려오라했다.        장령감은 가더니 얼마있지 않아서 진사해를 사양실로 데려왔다.    위두령의 딸님이 날 만나자구한단말이지… 대체 무슨일에?…술좌석이 벌어졌을 때를 내놓고는 그리 교제도 없이 지내는데…사나운 그놈의 암캐가 혹시 내 일을 냄새맡고 버르집자고 드는거나 아닌지?…종잡기어려운 의문과 의심이 갈마들면서 마음번거로와 진사해는 다소 주저하다가 따라온거다.   《아가씨께서 날 찾았습니까?》   《그랬어요. 들어와요.》    향란이는 말투를 봐서는 여전하지만 경계하는 낯빛이라 우선 긴장부터 풀게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웃음기어린 부드러운 태도로 그를 살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상대측은 의연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무슨일에 아가씨가 나를?…》   《호호호…아니 날 왜 그렇게 서먹하게 대하나요. 다른일아니얘요. 아침에 식당서 볼라니 아까운 분이 몰골이 영 말이 아니더군요. 그래 내가 찾은거얘요. 신외무물이라 사람은 누구나 몸이 중천금아닌가요. 무리하게 혹사말아요. 내 말은 너무 그렇게 고민하지 말라는거얘요. 그러다가 지쳐눕기나하면 어쩔라구요.》    뜻밖이였다. 녀인의 입에서 튀여나오는 이런 지극한 념려와 애틋한 관심에 사나이는 얼어들던 가슴이 화끈 더워나기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그래두 아가씨만은 날 믿어주는구만요!》   《왜 저만이겠어요. 아버지도 오빠도 다 믿어주는데요. 보재의 피살건을 우린 거기다 밀지 않아요. 흉수는 꼭 다른누굴테니까요.》    향란이가 내친 이런 확신에 가까운 림기응변은 효력을 냈다.    《그게 정말입니까! 과연 그러하다면 난 절이라도 올려야겠군요.  사실말이지 난 형제들이 나를 믿어주지 않구 그냥 의심하면서 백안시하는게 억울합니다. 향란아가씨도 알다싶이 내가 그하구야 그 누구보다도 극친한 사이아닙니까. 나도 인피를 쓴 놈인데 어찌 그런짓이야 하겠습니까. 안그렇습니까. 원 참 억울해서.》    진사해는 이러면서 죄는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느니 어쩐다느니 자기의 억울함을 하소했다.   《그래요. 지은 죄도 없어갖고 바가지를 뒤집어써서야되나요. 억울할거얘요.》    녀인이 자기를 의심하지 않거니와 이같이 편을 서주기까지 하니 진사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허허 웃었다. 그리고는 지어 엉뚱한 생각에 단침을 삼키면서 죽어버린 황보재의 생전의 신세를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보재가 그렇게 고기값을 못하구 갔지만두 생전에 아가씨께 남못받는 대접을 받았으니 운수야 참 대통한 녀석이였지.》   《그래요. 그인 생전에 나를 거의 독점하다싶이했거든요.》   《허던것이 어떻게 돼서 물러나구말았습니까?》   《그걸 몰라서 나하구 물는가요?… 생각해봐요. 끈짜른 드레박갖구야 어떻게 우물의 물을 길어먹나요. 안그래요. 안되겠으니 저절로 물러난거죠뭐얘요.》    《오, 그래!? 하하하…》    녀인이 추호의 부끄럼도 없이 내던지는 저돌적인 언동에 진사해는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요란스레 웃어댔다.   《아무때봐도 아가씬 가식없구 소탈해 좋구만. 완벽한 녀자는 아마 그런 천부 하나씩은 다 갖고있는모양이지. 정말입니다. 어찌보면  위아가씨는 설보채같기두해서 나는 볼때마다…》   《호호호…별소리 다 하네요. 내가 어쩜 설보채같겠나요. 칭찬이 과분해서 낯이 숯불에 익어드는 것 같네요.》   《정말입니다. 아가씨는 우선 자색부터 설보채만 못지 않지요. 진심의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가씨한테 그 고려놈도 반한거아니겠습니까. 참 어떻습니까, 아가씨를 끔찍히 사랑하겠지요.》    《그래요. 그인 날 지극히 사랑해줘요. 나도 그렇구요. 그런데 참 별일이지. 접촉은 잦건만 아직도 난 그일 리해할 수 없네요. 뭔가를  나한테 숨기고 있는 사람만같아서요. 그리구…난 보재를 살해한 흉범은 바로 그가 아닌가구 자꾸의심하게된단말이얘요.》    이러면서 향란이는 진사해의 앞에서 만약 제 예감이 맞아떨어지는 날이면 그를 극형에 처함이 옳다고 했다.    녀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거침없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못했던 진사해는 불시에 온 몸에서 심줄이 튀면서 용기가 솟아났다.   《아 어쩌면…아가씨의 생각이자 바로 내 생각이였구만! 난 어녕 그렇게…》   《보아하니 사람 잘못받아 산채만 소란케 만드는 것 같애요. 안그런가요. 그일 괘주시키지 말구 내쫓아 차라리 제 다즈각시나 찾게했더면 좋았을걸그랬네요. 안그런가요.》   《체, 제깟게 나간다구 찾을가. 못찾아, 못찾아!》   《아니 그걸 어떻게 장담하나요.》   《내가 왜 장담못해. 그건…》    진사해는 말끝을 그만 사리고 만다. 한 번 다시 녀인을 유심히 보는 눈, 웃음은 짖는다만 어쨌든 흉하게만 보이는 그 게뚜더기 눈은 이 시각 네년이 정말 민호를 의심하고 이러는거냐 아니면 사내맛 바꿔보자구이러는거냐 하고 속으로 점치고 있었다.   《왜요. 날 믿지 못해 말 못하는거죠. 정녕 그러하다면 관둬요.》   《아, 아닙니다. 그런게 아니라 저…》    진사해는 황급히 변명했다. 녀인이 제 속창을 빤히 들여다보고 이는것만같아서. 내가 이 녀자한테 배척당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당황해지기도했다. 하지만 그건 잠간사이. 자제력을 갖고있는 그는 마음의 평온은 찾으면서 얼굴에 웃음을 발랐다. 원인은 다른게 아니다. 이시각 녀인의 요염한 자태가 눈을 희롱해서 이성에 굶주리다못해 무감각해진 사내의 잠재한 의식을 못견디게 든장질하고있기 때문이였다. 고니의 고기를 먹고싶어하는 두꺼비랄가, 이 시각 그는 네년을 데리고 노는 놈 따로있다냐 이젠 내가 출마를 해봄도 괜찮은거야 하고 엉뚱한 궁리를 했다.   《아가씨 웃질마시오. 민호 그 녀석 각시잃어진건 제대루말해서…그건 내가 한 짓이외다.》    그는 끝내 괘방을 치고말았다.   《아유, 별소리 다하네! 아무렴 거기서 어찌…호호호!》    향란이는 우습다고 입을 싸쥐며 도리질했다.    진사해는 녀인이 제 말을 곧이듣지 않는 것 같자 헤벌려지는 입을 다물면서 거짓말이 아니니 믿어달라했다.     《정말입니다. 아무렴 혀가 무르다구 내가 아가씨앞에서 언감생심없는 일을 왕창꾸미겠습니까. 그 사람의 다즈각시는 나하구 철군이가 랍치해서… 앙갚음을 하느라구요. 본래는 잠재워버릴려다가 고년이 하두 고우니까 그만 살려뒀지요. 우린 한동안 오동하에 가 있다가…그러다가…보다싶히 난 여기로 들어오구만겝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녀잔 지금도 살아있겠네요. 그렇죠?》   《그렇지. 내 생각은 철군이 그 녀석은 호색한이 돼놔서 거기서 그냥 데불구살거라는겁니다.》   《철군이란건 누군가요?》   《내 친굽니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진사해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쪽도 그의 닫힌 입을 굳이 다시열려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민호가 얻으려는 정보와 비밀은 다 알아낸 것 같았다.    진사해는 녀인의 기만술에 보기좋게 넘어가고서도 그것을 감촉못한채 자기가 그녀를 손에 넣기라도한것같이 좋와했다.        한편 향란이가 발쇠를 서준 덕에 이제야 비로서 제 안해의 생사여부와 그녀가 가있는 곳 까지 알게된 민호는 위삼포를 찾아가 보름간의 외출허가를 받았다. 지지리 애태운 끝에 찾아온 기회였다.    그는 산채를 나오자 곧추 오동하에 갔다. 그런데 오동하에 가서 써캐훝듯했건만 거기에 츄얼이가 있기는 고사하고 가철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민호는 산채로 되돌아오려다가 생각을 고쳐 발길을 곧추 어래무쪽으로 돌렸다. 그때 츄얼이를 찾아나간 나쟈형제와 치더룽을 만나보지도못하고 훌쩍 떠나온건데 혹시 그들이 후에라도 츄얼이를 찾아가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 돌아서였다.    그사이 어래무마을은 변하지 않고 궁상그대로였다.    린화의 각시가 마침 밖에 나왔다가 마을로 돌아온 민호를 발견하고는 달려들어가며 소리쳐 알려서 나쟈의 처가 나오고 뒤미쳐 장모도 달려나왔다.    《아이고 이 사람아 살아왔고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엽때껏 어데가있었나요?》   《츄얼이 집에 있어유?》    민호는 일희일경 어쩔줄몰라하는 녀인들에게 마치 이웃집에 마실을 갔다가 돌아온 사람모양으로 오래간의 만남을 반가와하기에 앞어 안해의 정황부터 알아보았다.    《아니 이 사람아! 자넨 그래 엽때껏 츄얼이두 못찾고 이러나?…아이고 내 딸아!》    허저인장모는 사위가 딸을 못찾았다고 머리젖는 것을 보자 락담하여 한숨을 훌 내쉬더니 땅을 치며 울음을 텃뜨렸다.    처남 나쟈도 마침 집에 있었는데 유령처럼 불쑥나타난 사나이를 경아한 눈으로 이으토록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매부는 그래 여태껏 어디가 뭘하고있었더랬소?》   《염왕산에서 토비노릇했소.》   《아니 뭐라?…다시말해봐. 토비노릇을 했다구?…제 녀편네는 찾잖구 그래 여직 백주창탈이나하구다녔단말인가?》    나쟈는 목청을 곤두세우며 발작적으로 부르짖더니 제 사냥총을 찾아 들었다.    넋이 나갈지경으로 경겁한 아낙네들이 새된 비명을 내지르면서 달려들어 그의 손에서 부덕부덕 총을 앗아냈다.    민호는 갈린 목소리로 웨쳤다.   《형님 날 죽이오! 제 색시두 하나 건사못한 이 불민한 놈을 차라리 없애주!》    나쟈는 숨을 거세게 톺았다. 량볼근육이 간헐적으로 실룩거린다.     장모가 사위의 손을 꼭 잡고 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다.   《난 방정으루간다잖던가요. 여기서 떠나 동강서 배타고 열래진까지 갔습니다. 거기서 권총 한자루 사갖구는…바로이겁니다.》    민호는 품속에서 골트권통을 꺼내놓았다. 그는 그 권총을 사갖고 가목사와 의란을 거쳐 방정에 갔던 일, 거기서 려관에 머므르면서 여러날이나 안해를 찾아 헤맨 일, 그러다가 경찰의 수사에 들게되니 쪽배에 숨었다가 이틑날 말을 빼앗아 타고 현성을 탈출했던 일, 그랬다가 추격받아 가고가다나니 나중에는 염왕산토비굴에 떨어진 일, 거기를 나오려던 차 마침 원쑤가 들어오니 그를 잡자고 자기도 그만 류자로 되여 여지껏 눌러있은 일을 쭉 말했다.   《그래 그놈은 잡았는가?》   《아직 못잡고있습니다. 손쓸 기회를 종시 만나지 못해서요. 그러다보니 세월은 흘러서… 원쑤는 아무 때건 갚을겁니다.》    장모가 흐르는 눈물을 닦고나서 말했다.   《옹군 세해철이 되네 이 사람아. 츄얼이는 자네가 나간지 석달만에 돌아왔더랬네. 진사해라구 하는 놈허구 가철군이라구 허는 놈한테 잡혀간거라네. 저 오동하라는델 가서…강이 얼어붙으니까 도망쳤다네. 그래 집에서 자네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있는데 마침 자네허구 같이 여게 와 있었던 그 사람이 왔던거네.》   《아니 뭐랍니까. 내 친구가 왔더랬습니까?》   《그랬어. 그 사람 자네보러왔다가 없으니까 그만 가버렸지. 저 녕안쪽으루말이네. 거기메 자네네 사람의 군대가 모집돼서…그 사람 로씨야서 건너와갖구는 아마 다른데루갔던모양이지. 일은 이렇게 된거네. 그 사람이 가서두 오래도록 자네가 돌아오질 않고있으니 츄얼이가…닭한테 시집갔으면 죽더래두 닭을 따라야잖는가 이 사람아. 그래서 츄얼이는 떠나간거네 자네를 찾아서. 우리 생각두 그랬구. 자네가 혹시 그쪽갔다가 군대에나 들어가잖았을가했네. 그런데 인제보니 자넨 거기루두안가구 왕청같은델 가 있다가 인제야 이렇게 나타난게 아닌가. 원, 어쩜!… 귀신이 피똥쌀 일이지!》    한숨많은 장모는 한바탕 장탄을 늘여놓았다.    민호는 그날밤을 지내고 인츰 어래무를 떠났다.    두줄기의 실배암같은 레루장이 동에서 서로 한없이 긴 평행선을 그어놓고 있었다. 그우로 괴물같은 검은 장사가 나타나 달리면서 만고의 정적을 깨뜨린지 이제 겨우 20해포. 토비들의 준마와 비기는 그것이 생김으로하여 널다란 관동의 이 북만땅도 뒤늦게나마 인류문명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었다.    바로 이 철로연선에 있는 해림(海林), 산시(山市)와 석두하자(石頭河子), 그리고 목단강(牡丹江)과 그 이남의 녕안을 중심으로 해서 남쪽으로는 천리넘는 저 멀리의 백두산록(白頭山麓)에 닿으는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는, 이름을 신민부(新民府)라 지은 조선족의 망명정부가 근년들어 생겨났으니 그것은 바로 일본놈께 제 나라를 잃고 살길을 찾아 국경넘어 이곳 북만까지 깊숙히 들어와 사는 동포들의 자치를 목적해서 이룩된 정부였다. 그것의 조직자와 지도자는 우국우민의 독립투사들이였다. 초라하긴하지만 준국가식의 그 정부는 중앙위원회와 더불어 혁명원로들로 참의원(參議院)과 검사원(檢査院)을 두어 삼권분립의 민주제도를 확립하고자 하면서 산하에 500여명의 보안대와 별동대까지 두어 자신을 보위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그들은 또한 서쪽으로 수백리되는, 로씨야와 가까운 국경지대인 십리평(十里坪)산골에다 사관학교까지 세워 군사를 양성하는 한편 자기의 관할내에서 군구제(軍區制)와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하여 18세이상 40세이하의 청장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켜 항전을 준비하면서 상비군을 보충하고 있었다.     이런때에 민호느 자기의 허저인 안해를 찾는 한편 독립진영의 형편을 알고자 그 구역에다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운명이 이같이 희롱을 당할줄이야. 그는 안해를 찾지도못하고 적의 밀정으로 의심되여 어느날 해림에서 보안대의 손에 잡히우고말았다.   《넌 누구냐?》   《정민호올시다.》   《뭘하는 사람이냐?》   《안해를 잃어버려서 찾고있는중입니다.》   《또 그 소리냐, 이실직고를 해.》   《정말입니다. 거짓말아닙니다.》   《거짓말아니라? 그럼좋다. 네가 여기의 정황은 왜 탐지하는거냐?…넌 이것 저것 캐물었다지. 그리구 권총은 뭣에 쓰느라구 갖고다니는거냐? 솔직히 말해. 어디서 무슨 임무를 맡았는가말이다.》    《너무 그렇게 의심마시오. 사실은 나도 독립군인이였습니다. 반일투쟁을 해온 사람입니다. 첨엔 김원봉의 의렬단에 들었다가 북로군정서로 너머갔고 청산리싸움끝나서는 로씨야에 건너가…자유시사변에 그만....》   《가만! 그러니까 나도 독립혁명에 몸바친 사람이라는 소리냐?》    《그렇죠. 거짓말아닙니다. 조사해보시오. 그러면 알게될겝니다.》    《어디루가서 조사하란말이냐. 우린 뭐 할 일없어서 널 붇들구있는줄알어. 이실직고하면 될걸가지구 왜 이모양이냐. 그래 그것두 말이되기냐하느냐? 이제야 알구서 찾아왔다. 안해를 찾는다…오년철이나되는데 어데가있다가 인제야 나타났느냐말이다.》   《처음에는 어래무라는 허저인의 마을에 있으면서 거기서 장가를 갔구…그래 살다가 안해가 잃어져서…》    자초지종을 차견히 얘기했더면 이렇게 되진 않으련만 처음부터 저쪽에서 무턱대고 의심하면서 다구쳐 족치는통에 그대로 응변하다보니 점점 더 험하게 궁지에 드는 꼴이 되고말았다.   《어디서 뭘해먹었냐말이다.》   《저…》    언어도단이였다. 민호는 자기가 토비노릇해온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미처 생각이 돌지 않아 어물거렸다.    보안대의 사나이가 발끈했다.   《넌 아무리봐도 문제있는 녀석이다. 걸어라!》   《어디루갑니까. 제 말 좀 자상히 들어보시오. 처음부터 차례로할텝니다. 그러면 알게될겝니다.》   《난 알만큼알았다.》    보아하니 그 사람은 이 민호를 에누리없는 적의 첩자로 인정하고 처리할 잡도리인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럴법이라구야! 내 목숨이 경각에 달린거아니냐. 고질된 의심은 풀기힘든것이니 대응책은 오로지 수단을 가리지 않는 강포한 행동뿐이였다. 내가 그러지를 않으면 여기서 볼장은 다보는 거야. 민호는 속으로 뇌였다. 얼마간걸어가다가 그는 자기를 어디론가 압송하고있는 젊은보안대원을 향해 나 오줌마려운데 어쩌라는가 하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압송하던 보안대원은 마려우면 눌게지 무슨 투정질이냐했다. 민호는 돌아서서 띠를 푸는척하다가 앞배에 차고있는 뽐창 하나를 뽑아 돌아서며 훽 뿌렸다.   《앗!》    보안대원은 비명을 지르면서 땅에다 총을 떨구었다. 뽐창은 날가 가 견준대로 그의 팔목에 적중히 박혔던거다.    민호는 거기서 도망쳤다…        신수멀끔한 놈이 운수는 개코같구나. 무슨눔의 일이 오리변자모양으루 요렇개 배배탈리는거냐 제길할! 민호는 안해를 찾지 못하게된것도 그렇거니와 맘속에 두고 몹시 그려오던 독립군에서마저 자기를 랭혹하게 대해주니 야속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렴 상세한 조사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의심만하면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려드니…물론 적의 잠입과 파괴를 막느라 그러겠지만 거칠고 조폭한 그따위의 취급법은 커다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찾아간 사람의 정직과 선량함을 너무나도 몰라봐주고 우롱하며 타격하는것이였다. 개밥에 도토리라더니 내가 그 신세로 된거아니여. 지나친 의심과 배척에 민호는 정나미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여지껏 느껴보지 못했던 극심한 고독속에서 소외감을 절절히 느꼈다.    안해를 어떻게 하면 찾을수있을가? 녕안에 가 돌아봤더니 거기에 사는 동포가 몇년전의 어느 계절인가 민족을 분간키어려운 미모의 젊은 녀인이 제 조선인 남편을 찾아다닌적이 있었노라알려주었다. 하니까 츄얼이는 이 일대에 와서 민호를 찾은것만은 확실하였다. 지금은 어디에 가 헤매고있는지?…혹시 정의부(政義府)가 있다는 남쪽으로나 참의부(參義府)가 있다는 서간도쪽으로 가지나않았나싶었다. 민호는 이미나선바에 위험이 닥치더라도 그곳들을 한 번 돌아보고싶은 마음이 불붙듯했다.    그러나 염왕산을 나올 때 허가맡은 기일이 다되였으니 백수불구 우선 산채로 돌아가고봐야했다.     
409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4) 댓글:  조회:2860  추천:0  2015-02-03
                         14             류자들은 꿈을 대단히 중히 여긴다. 간밤에 꿈을 꾸었다면 그 꿈을 꼭 해몽했고 그런후에야 행동했는데 특히 맏두령이 더 그러했다. 만일 아이들이 나가는 상여를 붙잡고 우는 꿈을 꾸었다면 그것은 대단히 불길한 징조로 여겼고 큰 바람이 부는 꿈을 꾸었다면 그것은 바람이 재산을 날려보낼 징조라면서 산채밖을 나가지 않았다. 꿈에 늙은 범을 보았어도 산채밖을 나가지 않았다. 늙은 범은 산신령나으리였는데 나가기만 하면 강자를 만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더욱히는 개가 사람쫓는 꿈을 꾸었거나 나무에서 사람이 뛰여내리는 꿈을 꾸었다면 절대 가마마스러 나가지 않거니와 새자들이 개별적으로 산채를 나가는것 조차도 허락치 않았다. 그따위 꿈은 경찰이나 군대가 류자를 잡자는 흉몽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한즉 두령이 꾸는 꿈은 실제상 산채의 모든 행사를 결정하고 모든 류자의 행동을 통제하는 지휘봉이나답지 않았던것이다.     맏두령이 이같이 꿈을 중시하니 그본새로 아래 사람들도 그러했다. 꿈을 꾸고는 저마다 오늘은 좋으리라 혹은 나쁘리라 어떻고 어떠하리라했다. 이같은 꿈풀이가 사회와 접촉못하고 산속에 같혀 무료하게 나날을 보내는 그들에게는 하나의 심심풀이기도했다.     닭도 오리무리에 오래있노라면 오리의 지절대는 소리를 흉내내게되는 것이다. 주위사람들한테서 물이 들어 민호도 어느덧 꿈풀이를 즐겨했다. 어느날이다. 그는 난생처음 자기의 온 몸에서 피고름이 흐르는 꿈을 꾸었다. 흘러도 육실하게 많이도 흘렀다. 내가 어쩌자구 이런 꿈은 꾸었을가?…그는 워낙 무신론자에 가까와 그따위 꿈같은건 믿지도않았지만 어쩐지 꾸고나니 께림직한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여 그것을 가까운 하진국이와 얘기했더니 하진국은 듣고서 손바닥을 찰싹 때리면서 그런 꿈이 자기한테는 왜 생기지 않을가 했다. 대단히 얻기 힘든 길몽이라는거다. 이상했다. 그 해몽을 들으니  민호가 이날은 다른때만 기분이 훨씬좋았다.     인간은 리성적이지만 동물이였다.     민호는 떠들고 복잡한 집안에만 박혀있기싫어 밖으로 나왔다.      그가 들어있는 산채의 왼켠에 얼마가지 않아 저기 동쪽의 고산과 줄기가 이어진 아기모양의 봉긋한 키낮은 산이 있고 그 키낮은 산의 북켠기슭을 따라돌면 그윽한 골이 나진다. 그 골은 좀만 들어가도 나무에 넌출들이 이리저리 휘감겨 있고 넌출과 넌출들이 서로 엇갈리고 엉켜붙어서 발을 더 들이밀기 어려울지경이다. 지금은 가을철이여서 갖가지의 나무들이 한창 단풍들고 있었다. 혹은 붉고 혹은 누르러서 심천이 아롱진 것이 더욱아름답게 보였다. 민호는 이런 자연풍경을 보노라니 알락달락 고운 뱀이 독이 있다는 중국속담이 새삼스레 상기됐다.     서은괴의 돼지대갈사건이 발생한지도 어느덧 열흘이 넘는다. 한데도 산채를 나간 진사해는 돌아오지 않고있었다. 돌아와 갖고 자기도 서은괴도 함께 음모를 획책한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고 나눕는다면 그때는 어쩌는가. 그때면 장평이 아마 무함죄를 쓰게될게 될 것이다. 황차 여지껏 다른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진사해는 그만하면 류자들 속에 위신을 어느정도 세워놓은 셈이니 이제 어떤 역전이 생길런지도 모를 일이기도했다. 위삼포는 자기가 친히 죄증을 손에 쥐기전에는 진사해를 처리하지 않으리라했다.     민호는 눈앞에 진사해의 몰골이 다시밟히자 또 한번 신경을 모았다. 사심불구(蛇心佛口)의 그 인간을 내가 어떻게 대하면 좋을가?…또 다른 하나의 몰골―한쪽귀 반쪽이 달아난 황보재도 떠올랐다. 장정이 센 그 녀석은 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산기슭을 돌던 민호는 걸음을 뚝 멈췄다. 골을 파고들어선 뭘하는가. 그는 고개를 번쩍 치키고 산등성이를 쳐다봤다. 그러다 그는 그 낮은 산의 등성이를 향해 오르기시작했다. 좀 올라가니 거기 두아름이나됨직한 높이 자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시선을 유별나게 끄당겼다. 그 나무는 한쪽몸체가 벌집같이 되어있었다. 그건 류자들이 총질을 너무해서 만들어진 흉터였던거다.     민호도 탄알 세발을 거기다 박아넣은적이 있다. 바로 위진이가 부질없이 그의 진짜사격술을 떠보느라 내기를 걸어왔을적이였다. 민호가 세발쏴 관혁을 다 맞히면 위반장이 속옷만 입고 자라처럼 기여서 가고 민호가 세발 다 못맞히면 그의 발바닥을 개처럼 핥아주기로 내기를 했던 것이다. 결과 반장이 져서 놀림받았다.     그것이 물론 문명치 못한 놀음이였지만 심심해서 속이 클클했던 류자들을 또 한번 열락의 경지에 잠겨들게했던거다. 그럼으로해서 민호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허물없이 사귈만한 형제로 취급되였거니와 민족이 다르다해서 그들로부터 배척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따위의 불쾌한 일이 없게되였다. 오리무리에 끼였으면 따라서 오리짓을 해야지 별도리없다는 왕견의 충고는 옳았던거다.     그 느티나무를 지나서 좀 더 가면 산등성이에 오르게 되는데 이 낮은 산 남쪽켠으로 산굽이를 요리조리돌아 산채를 빠져나가는 한갈래의 통로가 코아래 내려다보인다. 여기에 들어와 첨으로 외선경비를 서러 가던 그 길이다. 민호가 산등성이에 방금 오르자 바로 그 길로 백말을 타고 산채로 들어오고있는 사나이 하나가 눈에 안겨들었다. 말의 목덜미에 너풀거리는 것은 검은갈기였다. 황보재의 말이 저런 가리온이다. 그럼 저것이 황보재일가! 과연 황보재가 옳다면 도대체 산채는 왜 나갔다오는걸가고 민호는 생각했다.     민호가 시선을 거기에 밖고 선채 자기 생각에 골똘해있는데 홀연 뒤로부터 뽐창 다섯 개가 쌩… 날아와 가까이에 있는 황철나무에 일직선으로 내리밖혔다.     이건 또 웬 일이냐면서 뒤를 돌아다보니 저쯤에서 향란이가 두 손을 옆구리에 지르고 서서 입에 웃음을 빼물고 있었다.     《젠장!》    《호호호…간떨어졌나요.》    《뭐 간까지 떨어질거 있겠소만 례모가 하도 고약하니 아가씨가 이뻐보이질 않습니다.》     민호는 탈았던 목을 되돌려왔다.     녀인은 입을 감쳐물고 노려보다가 목청을 뽑아세웠다.    《돌아서요!》    《명령인가.》     민호는 몸을 되돌려 뽀로통해진 녀인을 마주보며 웃음을 날렸다. 이젠 어쨌든 외면해버릴 존재가 아니였다.     기분이 되돌아진 향란은 유순한 녀인으로 변해갖고 다가왔다.    《요즘은 왜 만나기 힘드네요.》    《아가씨가 날 찾았습니까?》    《그랬어요. 요긴한 일 있어서요.》    《요긴한 일이라니?…》    《놀아보자구요.》     허 이런! 씹새바람 들었구나. 민호는 욕구불만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녀인의 솔직함에 저으기 놀래면서 부러 딴청을 부렸다.    《아가씨, 우린 이렇게 놀고있잖습니까.》     향란은 낯이 확끈 했다. 자기의 속내를 빤히 알면서도 그러는 사내가 야속했던거다. 그녀는 주먹을 들어 느믈대는 그를 조겨주려다말고 점직해지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한가지 물어보자요. 저번때 그 보물 혼자서 얻은거겠죠. 금팔찌 두개하고 은비녀 하나 그리고…그건 어느 부인해였나요?》    《나두모르겠습니다 그게 뉘핸지. 내가 그걸 아마 어느 경대밑 뻬랍에서 꺼낸거같은데…생급스레 그건 왜 묻습니까?》    《수확이 적잖더군요.》    《수치스러워.》    《아니 왜서요. 지금도 그걸 략탈로 여기나요. 직업인걸요.》    《직업?…하긴그래!》     민호는 웃어넘기면서 녀인의 팔목에 새로 끼고 온 옥팔찌에 눈길이 다았다.    《그 옥팔찌 과연 곱구만. 누가 준 선물입니까?》    《이거말이죠. 어머님이 생전에 준신거얘요.》    《오, 그렇습니까. 그런걸 난 또…보재가 아가씰 그토록 사랑하면서두 그래 금팔지 하나 안얻어줍디까.》    《아니, 뭐라구요? 다시말해봐요. 날 뭐로 보고 그 소린가요.》     향란은 낯색이 당장 흐려지면서 독을 썼다. 고귀한 녀인을 남이 주는 장물로 제 몸단장하는 속물로 보았으니 그럴수 밖에.    《이런 제길할. 내가 이게 무슨눔의 실수람.》     자신이 경망함을 깨달은 민호는 자칫하면 화재를 일으킬 불찌를 꺼버리느라 급히 사과했다.    《이거 생각없이 말이 헤펐구만. 노여워마시오.》    《이제 다시 그따위소리해봐요.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요.》    《주의하지. 헌데 참 방금 저기루 말타고 들어온건 누굽니까?》      향란은 옹쳐지려던 속을 풀면서 대구했다.    《보구두 모르나요. 보재얘요.》    《보재가 어디멜갔다오게?》    《태평진에 갔다올거얘요.》     태평진(太平鎭)은 염왕산의 동남쪽통로로 나가 약담배밭 산채에 이르러 남족으로 방향을 꺾어 곧추 200여리 상거한 지점에 있는데 무려 2000여호에 달했다. 매는 둥우리주변의 것을 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듯 염왕산은 생겨난 이래 여지껏 한 번도 거기를 괴롭힌적이라곤 없다. 한 것은 그곳이 염왕산에서 거리가 가까운것도 있거니와 그보다도 류자들이 일상생활에 쓰는 필수품들은 거의 그곳으로부터 공급받고있기 때문이다.     민호는 황보재가 태평진에는 왜 갔댔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그런것까지 캐물른건 싱거운짓같아서였다.     서은괴와 한구들에서 딩굴어 온 황보재였다. 그런 그를 부대화상이 보우했는지 때마침 외출을 해서 그는 그날 당석에 끼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용케도 련루를 모면하게된것이요 향란이는 그가 자기에게 서은괴의 반역행위를 맨먼저 알려준 일이 아무튼 고마와 요즘은 이전만 좀 살갑게 대해주고 있었다.      한편 남의 추김대로 놀다가 자기수를 먹게된 서은괴는 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제때의 한수가 때늦은 백수보다 났다는 걸 왜 그리도 몰랐는지. 그는 모반자에게 떨어지는 형벌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서도 늦게야 탈주를 꾀했다가 그만 암암리에 자기를 감시하고있던 수하새자들의 손에 잡히우고말았다. 그통에 서은괴는 탈주를 성공못한채 잡아먹을 개같이 양즈방에 같히우고말았다.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소용있는가. 기다리고있는건 오로지 죽음뿐.     산채가 끓어났다.     민호와 향란이는 이 일을 하진국이 달려와 알려서 알게됐다.    《제깟게 어디멜 달아난다구, 흥.》     향란이 내뱉는 말 끝에    《무쇠두멍쓰구 소에 빠졌어. 이게 바루 자작지얼이지 뭐야.》     민호도 따라서 미런스레 논 서은괴를 조소했다…          차챈즈의 명을 받고 여러날전에 쟁반밟으러 산채를 나갔던 위용강이와 진사해가 돌아왔다. 헛걸음을 하지 않았다. 연수(延壽)쪽에 있는 기와가마 하나를 정탐하고왔는데 들이친다면 성공할 가망성이 아주많았다. 지주가 첩년만 편애해서 본댁이 역심이 생기게됐는데 이쪽에서는 그를 꾀어 저선(底線)으로 만들어 때만 되면 내외가 호응키로 약속이 되어진것이다.     그들이 돌아오자 향란이는 그날밤으로 자기 방에다 주안상을 차려놓고 그들을 청했다. 이것은 그녀가 민호와 짜고서 꾸민 연극이였다. 위용강은 그런줄도 모르고 녀동생이 남매지간의 정과 사랑을 돈독히 하느라 그러는가 여기고 고마와했고 진사해는 진사해대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으니 환영하는걸로 생각했다.     민호가 매양 대접받을 때 처럼 접시도 그 은접시 술잔도 그 은술잔 젓가락도 그 은저가락이였는데 주호만은 다른것이였다. 그것은 푸른 룡무늬를 그린 흰 자기병이였다.     향란이는 해낙낙한 얼굴에 례모를 갖춘 우아한 동작으로 주호의 술을 먼저 나이가 웃벌되는 진사해의 잔부터 붇고 그 다음에 오빠의 잔에다 부었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에 자기 잔에다도 부었다.    《별다른 의미가 아니얘요. 두분오빠께서 쟁반밟으러 나가 여러날 고생한 일 생각해서 제가 한잔 드리는거얘요.》    《난 위아가씨가 생각이 이렇게 주도한줄은 몰랐지. 감사하오.》      진사해가 먼저 례모를 차리더니 술잔을 코밑에 대고 개처럼 냄새를 맡았다.    《건데 이 반강자는 향기가 다르군. 금분로아닌가!》    《과연 몽두춘 제대로 많이 해 본 분이네요. 어쩜 그리도 신통히 알아맞추나요. 옳아요. 금분로예요. 아마 십년은 묵었을거야.》     녀동생의 말에 위용강의 눈이 둥그래진다.    《아니 이건 어디서 난거냐?!》    《오빠도 몰랐죠. 이건 내가 전날 엄마방에서 찾아낸거얘요. 구석궤안에 고스란히 있더군요. 전에는 왜 발견못했는지…》    《이게 모두냐? 더 없니니?》    《그래요. 모두얘요. 엄마궤짝이 술창고야 아니잖아요. 더 있을리없죠. 절반가량 부친께 딸카드리구는 깔축없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아마 두근은 잘 될거야. 도수를 놓구봐두 늘 마시는 배갈따위야 옆에두 못오지요. 두분께서 오늘밤 그저 이 반강자만 다 축내요. 그런다면 제가 두분께 영예증서를 발급하겠어요. 정말이예요.》     두 사나이는 요까짓게 뭐냐 아무리 독하더라도 마셔내리라 장담하면서 술을 목구멍에 털어넣었다.     진사해는 젓갈을 들어 채를 집으면서도 매양 미식가의 기질을 과시했다.    《아가씨, 이건 멧닭고기아닙니까.》    《옳아요. 어쩜 그리두 검식잘하나요.》     위용강이 멧닭고기볶음채에 절을 대려다말고 녀동생의 얼굴을 말끄미 본다.    《향란아, 멧닭은 어디서 난거니? 네가 잡은건 아니겠지?》    《내가 언제는 멧닭사냥하던가요. 이건 저…맛이 어때요. 대단히 좋을거야. 많이 집어요.》     향란이는 혀끝까지 나온 말을 되삼키고 대답을 뭉때렸다.     위용강은 집히는데가 있는지라 미간을 끌어모았다.    《이건 꼬리방즈가 잡은거 아녀. 듣자니 짐승잡이 잘한다던데.》     《그래요. 그이가 잡은거죠. 건데 뭐가 잘못됐나요?》     다른때는 민호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말이 없던 오빠였는데 오늘은 혐오를 품으니 이상했다.    《난 네가 그하구 가깝게 지내는게 맘에 안든다.》    《왜서요, 오빠?》    《보재는 그예 떼버렸니. 그가 널 뭘 나쁘게해쥈게.》     진사해가 오빠의 말끝을 물고 의뭉스레 부채질했다.    《보재가 향란아씨한테야 변함없는 충신이지 안그래?》     향란이는 입가에 쓴웃음을 피우면서 그의 말을 반박했다.    《꽃감 보기좋다구 떫어도 먹어라는 법이야 없잖아요.》     진사해는 게뚜더기를 실룩하더니 입을 뻐개며 웃어댔다.    《어, 하하하…그, 그래! 그래!… 감탄고토라 달면 삼키구 쓰면 뱉는거야 당연하지. 맞소 맞아, 아가씨말이 맞다니까. 하하하…》     얼마나 천연덕스러운 놈팽인가. 향란이는 말이 까이고는 무안을 묘하게 넘겨버리는 능구렁이를 다시보면서 속으로 네놈이 과연 여간내기아니구나했다.     둘은 권커니 작커니 술잔을 련커퍼 맞쫏고 기우린다.     그사이 무척 친해진 모양이다.     진사해가 오늘따라 유별나게 술맛이 좋다느니 기분이 좋다느니 떠벌렸다. 연기술이 어쩜 이리도 신통할가! 그러는 모양을 봐서는 전혀 뒤가 켕기는 사람같지 않았다. 마치 자기는 서은괴일과는 아무런 관계없고 그가 갇힌것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한 사람같았다.     오빠도 웬 일인지 서은괴의 돼지대갈껍지바른 일도 그가 양즈방에 갇힌 일도 까맣게 잊고있는것만같았다. 술상에 마주앉기전에 그저 서은괴를 홀벌로 죽일 놈 아니라고 한마디 던졌을뿐이다. 괘씸했다. 하마터면 큰 변이 일어날번한 요란한 일이건만도 어찌 꿈만해할 수가 있단말인가?     오빠는 입을 열더니 이번에 쟁반밟으러갔던 일을 쏟아냈다.    《우린 이번에 저선을 멋들어지게 면바루잡았지.》    《맞았어! 그렇구말구! 위포토우 두령의 지기와 총명이 없다면야 어디 되기나할가. 이 진사해가 과연 탄복했소. 탄복했다니까.》     쟁반밟으러 나간 사람이 저선을 구해놓는거야 예전부터 써온 술책이 아닌가. 한데도 진사해가 엄지손가락까지 빼들면서 제일이라느니 고명하다느니 하면서 오빠를 개여올린다. 왜서 저러는가? 아첨해도 분수있지. 낯가죽가려운줄은 저리도 모르는가, 뒤에서는 엉꿍한 짓을 하면서. 하여튼 대단한 변신술이였다. 이시각 진사해의 이따위의 과장된 치살림뒤에는 모든 곡절을 겪어낸 간능한 자의 잔인이 꽂너울을 쓰고 숨어있음을 향란이는 보아냈다.     진사해가 취기오른 상판에 웃음을 다시발라붙이고 비나리쳤다.    《아가씨, 국이 밝아지자면야 대들보가 든든해얄게 아닙니까. 장차 맏두령을 승계 할 오빠를 잘 두었습니다. 아버지 영웅이면 아들이 대장이라더니 속담 그른데없지. 그리고 아가씨도 역시 재모가 출중하온즉 목계영하구두 가히 비길만할 녀걸이라 이 염왕산의 전도는 아무쪽으루 봐도 양양하단말이요. 안그러우?》    《아니 어쩜…》     향란이는 말을 하려다 그만두고 두눈을 살풋이 내리깔았다. 여지껏 남의 떠받들림속에 살아온 그녀였거만 진사해의 그런 치살림은 구역질이 나올지경 듣그러웠던거다.     잔을 련거퍼 비우다보니 사나이 둘다 이제는 술에 감취되여 주석이 파해질 림박인데 황보재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손에는 대오리를 무어서 만든 두루마리 족자가 쥐여 있었다. 황보재는 들어오면서 눈길을 술상에 던졌다가 인츰거두고는 위용강과 진사해에게 부러 크게 국궁재배하면서 혀꼬부랑소리로 노적부렸다.    《두분 각하께서 귀체안녕하셨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데 대해 짝짝귀 보재가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산채를 대표해서 형제들을 대표해서.》    《인사는 좋다만 네가 대표할 자격이나 되냐, 이 자식아! 그런 입치례인사는 상다리부러지게 해대두 반갑잖다. 진솔로 하겠거든 반강자나 한 병 들고오란말이야.》     진사해가 반죽좋게 받아치는 소리였다.    《말인사래두 절반받아주니 기분 좋을걸.》     황보재는 좌석에 끼이면서 떡심좋게 그냥 넌덕부렸다.    《손엣건 뭔가요?》     향란이 묻는 말에    《참 깜빡 잊었네. 향란아씨주려구 멋진 족자 하나 사왔지.》     황보재는 이러면서 갖고 온 족자를 내놓았다.     향란이가 두루마리를 감은 끈을 풀고 펼쳐보니 그 족자에 이런 글 여덟자가 씌여있었다.                     女慕貞烈  男效才良      《위아가씨 그걸 좀 높이 드시오.》      향란이가 시키는대로 하자 진사해는 목청을 돋구어 읽었다.    《이라. 거 천하의 일품이로다! 그렇지, 그래! 천만 지당한 말이야! 녀자는 절개굳은 렬려를 사모하고 남자는 재간있는 어진 사람을 본받아야 함은 지극히 옳은행실아닌가!》     방안은 일시 진사해의 도도한 열변뿐이다.     례물이라고 다 좋을가. 향란이는 족자에 씌여진 글을 재다시 음미해보면서 낯색이 점점 굳어갔다. 저 짝짝귀가 왜서 이따위글은 내한테 사다주는거냐. 저놈이 나를 부정한 녀자로 치부하고 놀리는게 아니냐. 목대꺾어치울 빌어먹을 자식!    《누나 조심해. 보재가 누날 가만두지 않겠다 했어. 빼버릴 재간은 없어두 가슴 딱 결리게라두.》     언젠가 장평이 귀띔해주던 일이 새삼스레 상기됐다.     있기는해도 요긴한데는 쓸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나 답잖아 개나 먹게 떼주면 좋을걸 달고있는 황보재, 꼴이 그러하건만도 이성에 대한욕구와 점유욕만은 죽지 않아서 녀인의 버림에 반발하는 황보재였다. 술은 어디서 저렇게 퍼마신걸까. 울기올라 벌개진 얼굴을 들어 넌지시 말을 걸어오는것이였다.    《향란아가씨 이 글이 어떻소? 맘에 드는지?》    《뭐라구 대답할가요…아무튼 감사해요.》     향란이는 곧추일어서려는 눈살을 얼른 사르고는 부어놓은채 마시지 않은 자기 잔을 그한테 넘겨주며 권했다.    《자 받아요. 오늘밤 이 술좌석은 산채를 나갔다 돌아오신 두분 오빠를 위해 제가 특별히 마련한거얘요. 모처럼 찾아왔으니 잘된셈치죠. 어려워말고 들어요.》     황보재는 턱을 치켜들며 웃었다.    《그래볼까. 하하하…》     진사해도 따라웃어댔다.    《하하하…》     내막을 모르는건 오로지 위용강이뿐. 그는 황보재가 지금도 의연히 제 녀동생을 열성지극히 사랑하고있는줄로만 여기면서 나무리는 눈길로제 이켠을 본다.    황보재는 향란이가 준 술잔을 들어 단모금에 비웠다.       진사해가 밸을 돋궈놓을 심산이라 일부러 아픈데를 건드렸다.   《보재 너 백탁은 나았나?》   《아직은…》   《귀잃구 백탁걸리구…네 신세가 왜 그렇게 오그라지는거냐.》    응대가 없으니 한술 더 뜬다.   《여봐 보재, 넌 족자사느라 아마두 거리바닥을 싸댔을텐데.》   《말두 별나게 하네. 거리를 나돌지 않구두 사는 재간있소?》   《네가 아마두 소가죽을 무릅쓴거같애서 그런다. 그모양으루 짝짝귀를 해갖구두 부끄럽지 않더냐?》    붙는 불에 키질이였다. 애들이 길거리에서 짝짝꿍을 치며 놀려주던 일이 상기되는데다 진사해의 심한 야유가 그를 촉노시켰다.   《제길할 심통이 터져서 원!》    향란이는 지짐떡같이 달아나고있는 황보재의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짝짝궁을 치고나서 기름을 쳤다.   《호호호…그리두 밸나던가요. 걱정말아요. 곽란에는 생숙탕. 심통에는 울금분이 약이래요.》    녀인의 조롱에 분통이 더 크게 터지는지라 보재는 갑자기 야수같이 사나와지면서 제 본심을 드러내고야말았다.   《내가 그 녀석을 가만둘 바보같은가. 아니야, 아니! 아무 때든 분을 풀고말테야, 분을! …약! 약! 약은 이거야!》    하면서 그는 어느새 뽐창 다섯개를 꺼내 문설주에다 활 뿌렸다.    그것들은 쌩―날아가더니 모두 단단히 밖히였다.   《아니 이 자식이!…그런데 왜 이 야단질이냐. 네가 살수신이나 붙은거아니여?》    진사해가 짐짓 놀랜 것 처럼 제 친구를 꾸짓었다.    향란이는 속으로 쓰거워했다. 병주고 약주는 비루한 놈. 저는 손안대고 남을 추겨대는 야바위같은 네놈의 그 불측한 심보를 내가 그래 모르는줄아느냐.    《아무리 어찌구 어째두 일낼짓은 말라구. 알았는가.》     위용강이 기분이 언잖아 경고한다.    《취했네요… 내가 놀랬어요… 옛어요… 잘 건사해요.》     향란이는 문설주에 밖힌 뽐창들을 뽑아다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못하는 황보재의 손에 쥐여주었다.     사나이는 주는대로 받아서 세여보지도 않고 제 품에다 넣고는 비츨거리면서 일어났다.    향란이는 감쪽같이 채낸 뽐창 하나를 자리밑에 감추고나서 술상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사흘이 지나서 위삼포는 오장이 바뀌여 감히 자기 앞에서 돼지대갈을 놓고 깝지발쿠는 놀음을 논 서은괴를 끌어냈다.    무릎꿇고 않아서 고개를 푹 떨군 40대의 상고머리 사나이. 위삼포는 그의 오장륙부를 당장 뽑아낼듯이 쏘아본다.   《은괴 넌 네가 무슨 죄를 졌는지 알겠지?》    서은괴는 뜻밖에 숙였던 머리를 번쩍 치켜드는데 나오는 태도 역시 완강하거니와 당당했다.       《내가 무슨 죄를 졌습니까. 난 죄없습니다. 난 그저 형제들의 의사를 대변했을뿐인데요.》    반둬더가 랭소를 머금은채 어처구니없어 껄걸 웃었다.   《네가 형제들의 의견을 대변했다? 미친녀석! 그래서 그런걸 갖구 작난질쳤다는거냐, 엉?》    사량팔주 모두가 서은괴를 향해 불탄을 던졌다.   《이자식, 무슨 궤변을 그렇게 해. 돼먹지못하게!》   《뻔뻔스런 자식! 반역을 하구두 변명은 웬 변병이이냐?》   《네가 감히 그런짓을 하다니. 아니다 이건 네 혼자의 소행이 아니다. 말해라 어느 도까비한테 홀렸어? 동당을 대란말이다.》    위삼포는 헛짓임을 알면서도 심문을 들이댔다.   《은괴야, 어서 이실직고하거라. 동당이 누구냐?》   《원, 무슨말씀인지…없습니다.》   《없다? 없다구? 그렇다면 너한테 묻겠다. 어미소죽으면 새끼소가 멍에를 질텐데 밭이 묵을가봐 걱정인가구 지벌인건 누구냐?》   《난 모릅니다. 내한테 그런 말 한 사람이 없습니다.》   《없다? 자기는 돼지대갈발쿤적있다구 너께 말한 사람두 없단말이냐 그래?》   《없습니다. 그건 꿈밖의 소립니다.》   《꿈밖의 소리라? 자식이! 허다면 네가 그놈의 재간을 꿈에 귀신한테서 배웠단말이냐 그래?》   《거야 배우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닙니까.》   《배우지 않아도 아는 일 너만은 했구나. 그렇지?》   《위두령께서는 공모자를 찾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될 일입니다.솔직히 말씀드려 없으니까요.》   《공모자가 없다? 좋아. 그럼 네 혼자의 짓이라구하자. 넌 그게 무슨짓인지야 알겠지.》   《압니다. 한차례 성공못한 반란이였습니다.》   《그런걸 그래 너 혼자서 꾸밀 수 있다는말이냐, 자식!》   《제 말을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맘대로하시오.》   《그럴테지. 아무렴 네가 제 동아리를 치겠냐.》    위삼포의 얼굴에서 한번다시 얼음장같은 조소가 피여오르면서 경멸의 빛을 띠더니 그대로 굳어져버린다. 내가 저따위것을 사람이라 믿어줬으니 눈이 멀었지 하고 탄식하는 것 같았다.    위삼포는 멀정한 거짓말로 엇서는 서은괴를 아느새 노려보다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내던지였다.   《개입에서 상아를 끄집어내려했으니 내가 어리석도다. 공모자가 누군건 나도 대개는 아는바니 아무때건 그도 네 꼴로 될거다.》    위삼포는 진사해의 이름을 찍지 않았다. 한 것은 사량팔주가운데 그의 괘주를 도와준 사람이 있기때문이다. 이 일은 호상간의 불신과 반목을 야기시켜 내부를 혼란에 집어넣을수 있길래 서둘러 끝맺지 말고 각별히 조심해야했던것이다.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지고무상의 신조로 삼고있는 류자들은 제 동아리를 물어먹는 것을 가장 용서못할 죄악으로 치부한다. 하기에 류자내에서 만약 의절하고 배신하는 자가 발생하기만 하면 그들은 짜고서 그런자의 집을 도룩을 내거니와 지어 어떤때는 삼대까지 멸종시켜버리는 것이다.        서은괴는 내란음모죄로 판결이 내렸다. 처형이다.    사형장은 산채서쪽골의 벼랑가. 언제나 사령(死靈)이 술렁대는 곳이였다. 여기가 염왕산으로 이름이 지어진 이래 줄곧 으로 불려지기도했다. 여기의 돌과 모래에는 다른 패거리에서 잡혀온 류자의 피도 숱해 뿌려졌던거다.    벼랑의 한귀퉁이에 돌로 만든 자그마한 신단이 있다.    결박을 지우지 않은 서은괴는 신단에 놓여있는 향로에 향을 세대꽂고 절을 했다. 그런 후 절로 벼랑가에 있는 돌걸상에 가 앉았다. 그에게 차례진 최후의 자유는 그것뿐이였다.    이들은 무릇 사형시면 총을 절대 뒤에서 쏘지 않았다. 한 것은 그따위《검은 총질》을 그들은 광명정대한 행위가 아니라고 여겼기때문이다. 그래서 총살은 언제나 꼭 앞에서 했다. 그러되 머리도 쏘지 않고 단방에 숨통을 구멍내는것으로 사형을 끝내군했다.    위삼포는 자기 대오의 모든 류자가 모인 앞에서 자못 정중하면서도 조금 갈린 음성으로 간단히 말했다.   《각심소위는 분렬을 초래할 뿐이다…서은괴가 비록 공은 있다만 용서치 못할 죄를 지었다. 그 죄가 무엇이겠는가. 곧바로 내란을 음모한 그것인거다…각자는 한번다시 명기해야할지로다. 우리네 염왕산이 국이 밝아지자면 형제 모두가 각립각행을 말고 결심륙력하여 하나의 몸으로 돼야할 것이다.》    사형은 일반적으로 포토우가 집행하기로 돼있다. 한데 서은괴를 괘주하게끔 소개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포토우였다. 하니까 그가 제 손으로 그의 명줄을 끊어놓고싶어할리만무였다. 아무튼 사람지간에 인정이라는건 있기마련이요 또한 숨길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서은괴를 놓고 보면 살려두지 못할 대죄를 짓기는했어도 여직 용감한 사나이로 인정받아왔고 패장노릇하면서도 남과 척지은 일이 별로없으니 미움도 별반사지 않았던거다. 그런즉 다른 누구보고 나와 총을 쏘라해도 선듯이 나설자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럴때는 억지명령보다 제 손으로 직접 없새치우는게 상책이였다. 그래서 위삼포가 권총을 뽑는데 그의 처지를 벌써 알아채고 선듯이 자진해 나서는 자가 하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진사해였다.   《이일을 맏두령께서 어떻게…》    자기는 사정을 두지 않는 듯 하는 그 거동이 너무나 태연했다.    진사해는 당장 생명을 잃게된 서은괴를 향해 제법 노기서린 목소로 한바탕 그럴 듯한 질타를 퍼부었다.    《나라에 임금이 있고 산채에 두령님이 있다. 가 만백성이 임금을 대함에 례의일진대 그것은 또한 우리들 류자 매인이 제 두령님을 대함에 도의로 비춰지기도 하는거다. 그런데…서은괴야 너는 괘주때의 맹세는 어데다 팽가쳤느냐. 변심하면 엄벌받는줄이야 알았을테지. 그리고도 불궤지심으로 두령님을 노엽히고 모든 형제들을 실망케 했으니 이보다 더 대역부도한 짓이 어데있겠냐… 은혜도 모르는 발칙한 네놈을 오늘 내가 빼버릴테다.》    총소리울림과 함께 서은괴는 꼭끄라졌다.    자기가 가장 믿어온 자의 손에 명줄을 끊기우고말았다.    하지만 그는 죽어도 눈은 감을 수 있게되였다. 그렇게된 것은 최후의 조식때 만투속에 들어있는 《너의 식솔을 책임지고 부양할것이요 원쑤를 갚아줄테니 안식하라》는 쪽지를 그가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를 죽음에로 몰아넣은 진사해가 량심상 가책을 느낀나머지 제때에 손을 써 자기 주머니를 털어낸 거액으로 그에게 먹을 것을 날라가는 한 새자를 매수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위삼포는 심복지환으로 변해버린 서은괴를 처단했다.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수하 새자들을 다스리려함이니 적시적인 조취였다.  일호백낙(一呼百諾)이다. 위삼포의 호소를 천명으로 받들어 온 류자들은 다가 그의 처사를 천만지당하게 여기면서 의견도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진사해의 저돌적인 행위에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진사해가 저같이 지독할줄은 몰랐다고 하는 사람, 서은괴가 친구를 어떻게 사귀였으면 저모양이 되느냐 하는 사람…하여튼 그의 이번 거동은 생각밖에 너무나 반상적이여서 의분을 백출시키면서 적잖은 류자들을 종잡을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위삼포와 사량팔주는 다가 류자들의 반향에 신경을 세웠다.        입이 무거워 쉬히 발설하지 않는 것을 보고 쪽박이 굳다고하는데 이번 일을 치루면서 장평이 바로 그런 새자로 변하고말았다. 처음에는 진사해의 편을 서던 그가 지금은 이쪽에 리용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이왕과 같이 진사해와 남모르게 각별한 사이인 것 처럼 지내면서 그의 일거일동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알짜특무였다. 이것은 향란이와 민호가 시켜서 된것이거니와 맏두령이 그한테 비밀리에 임무를 주었기때문이기도 했다. 바로 이 모양으로 발을 량쪽배에 올려놓고 있는 장평이였기에 자칫잘못하면 진사해의 손에 감쪽같이 죽을수도 있고 위삼포의 손에 잘못될수도 있었다. 하니까 정신을 바싹 차리지 않으면않안되였다.       향란이가 민호를 찾아와 알아봤다.     《게뚜더기 노는 양을 잘 보셨겠죠. 거기는 감상어때요?》   《그자가 그토록 미런한줄은 몰랐지. 연기가 너무나졸렬했어.》   《면바로봤네요.》   《제딴엔 이목을 흐리게 한다는게 되려 제 본심만 드러내고말았어. 아가씨보게는요?》   《글쎄요. 내 눈에도 그렇게 밖에 안보이더군요. 우릴 아두로 알았는지… 그자가 글쎄 그따위 어리석은 광대극까지 놀줄이야 뉘알았겠어요. 그야말로 소웃다 구럭터질 일이지.》   《제깟것이 아무리 그래봐야. 송곳을 호주머니에 넣는 격이지. 오래감추진 못할 걸.》    민호는 이러면서 아무때건 흉계의 밑바닥이 드러나게 해서 그자에게 참혹한 죽음을 주리라 별렀다. 얼마나 애를 끓였던가. 원쑤갚을 기회만 호시탐탐 노려온 그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장평이 향란이를 찾아와서 진사해가 사양실의 장령감보고 반강자있느냐고 물어보는 걸 보니 아마도 또 술을 마실모양이라 고해바쳤다.    산채를 나갔던 진사해는 자기가 돌아오면 염왕산에는 큰 변이 나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리라 생각했었는데 빌어먹게도 그렇게 돼주질 않았다. 돌아와 보니 반란이 생기기는 커녕 위삼포를 없애치우리라던 서은괴가 되려 잡히우고말았다. 후회막급했다. 내가 이게 뭐냐. 너무나 조급하고 단순했지. 왜서 잘 조직된 다음에 행동하게끔 하지 않았더냐. 자신을 위장하느라했지만 진사해는 식혜훔쳐먹은 도적개가 몽둥이를 본 것 같이 가슴이 떨렸다.     궁여지책《窮餘之策》이랄가, 제 손으로 서은괴를 천당보낸 진사해는 조용한 곳에서 술로써 밀려드는 고통과 번뇌를 달려보려했다. 그는 장령감보고 술을 준비하라해놓고는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후근마사로 갔다. 그런데 황보재가 나타났다. 그를 찾아다니다가 드디여 여기로 온 꼴이다. 이런 제길할거 혼자 좀 있자니 원. 진사해는 그가 온 것이 반갑지 않았지만 쫓아버릴재간이 없었다.   《쇠천뒷글자라더니 내사 진형의 속맘 알아보지 못하겠소.》    이러면서 황보재는 진사해를 만나자 두억시니같이 당장 잡아먹을양 두눈을 지릅뜨고 보더니 남이 먹자던 술 한사발을 벌물켜듯이 하고나서 뱃속에서 부글거리는 불만을 내뿜기시작했다.   《진형은 오늘 무슨짓을 했소. 그래 그 짓을 할 사람 여기 염왕산에서 진형밖에 없단말이요? 왜 그렇게 우쭐렁거렸소, 엉?》    진사해는 그한테 제 속을 내비칠수는 없는지라 해석조로 조용히 말했다.   《난 그렇게 해야한다.》   《아니 뭐라우? 사해형은 그렇게 해야한다구?…그건 대체 무슨소리요. 그렇게 해야한다니. 사람이 어쩌믄…량심이 있소 없소?》   《야 이거, 어째서 이렇게 소가지를 내는거냐. 내가 잘못한게 뭐 있다구… 너 좀 잠자쿠있거라, 제발.》   《뭐라우? 날보구 잠자쿠있으라?…건 왜서요?…난 그러지 못하겠소! 그러지 못하겠단말이야! 진짜루 환난지우라면 안그래. 건데두 진형은 어떻게 했는갈 좀 보란말이요. 자기가 무슨꼴로 놀았는갈 좀 생각해보란말이여. 어이구 참. 별꼴 따 본다!》   《이자식이 게사니고기를 먹었나. 소래기는 왜 이렇게 쳐.》    진사해는 머리가 단순한 이런 인간을 내가 왜 친구로 사귀였더냐고 속으로 후회하면서 제발 입다물고 떠들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내막에 깜깜인 황보재는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배속에다 부어넣은 도수높은 배갈이 배짱을 쓰게 했다. 나라님이 내 손자같고 애비도 내아들같아뵈였던지 그는 얌전해지기는 새려 들말같이 점점 더 성깔만 부리기 시작했다.   《쳇. 날보구 입다물라구? 떠들지 말라구?…물어보기오. 은괴가 진형한테 잘못한게 뭐요? 그가 사해형 섧게해준게 뭔가말이요, 엉? 적잖은 형제들이 진형을 제사람으루 여기도록 해줬지…떠받들게 해줬지…그런데두 나 원. 이…이눔의데가 이래. 선인은 하나두없구 악인만 모여 사는 이눔의데가 이래. 큰 뱀이 작은 뱀을 잡아먹구. 개구리가 메뚜기를 잡아먹구…》   《닥쳐! 떠들지 말란데두 무슨놈의 개소리 괴소리냐, 이렇게.》   《큰 놈은 작은 놈을 잡아먹구. 네가 은괴를 잡아먹었어.》   《야 이자식이 인사불성이구나!》    진사해는 벌컥일어나면서 주먹으로 그의 귀통을 한매 되게 우려줬다. 그리고는 그를 잠이나 재우려고 사양실에서 끌고 나왔다.    밖은 코를 떼가도 모를지경 캄캄했다.    어둠속에 무슨 괴사가 없으랴. 그들이 사양실을 방금나서자 황보재가 《억!》하고 앞으로 꼭그라졌다.   《이 자식아, 내먹자던 반강자 네 다 처먹더니 이꼴이구나. 일어서라, 이 자식아!》    진사해는 망돌같이 무거워진 그를 끌고 그의 잠자리가 있는 산채로 들어갔다.   《어딜 가 처먹고 곤죽이 됐어?…아니 그런데?!》    아직 잠들지 않은 류자가 구시렁거리며 일어나 불을 켜고 보더니만 살인이 났다고 벅작고왔다.    황보재의 가슴에 뽐창이 박혀있고 피가 흘러나와 흰적삼을 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던것이다.      
408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3) 댓글:  조회:2140  추천:0  2015-02-03
                      13             침략자의 철학은 강권이 진리라지만 토비의 철학은 폭행이 진리였다. 돈을 벌자, 큰돈을 벌어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깃발을 꽂은 큰기와가마를 마사야한다! 이것이 바로 위삼포가 여지껏 웨쳐온  구호였고 목표였다.    그들이 기와가마라고 부르는 부호를 털때 계획대로 성공하면 그걸《소리났다》하고 실패하면《소리못났다》고 한다. 기와가마에는《무른가마》와《단단한 가마》두가지 류형으로 나뉘는데《무른가마》란 울타리를 나무로 했거나 아니면 널판자로 한 부자집을  가르킨다. 이런 부호들은 거개가 집모퉁이거나 마구간이거나 아니면 사람 다니는 곳에다 은페된 저격시설을 해놓았다. 《단단한 가마》란 집주위에 토성을 했거나 아니면 벽돌이거나 돌로 든든하게 담을 높이쌓고 사는 대부호를 가리키는데 어떤 부호들의 성에는 지어 네귀에 포대가 있고 지키는 사람도 전문 따로 있었다. 그런  대부호들은 돈을 아끼지 않았는바 산에서 퇴역군인이나 불질잘하는 포수를 청해다 고용하기도했다.     한편 어떤 군벌과 대부호들은 토비의 습격과 략탈을 막기위해 자체의 무장대를 따로갖기도했다. 그리고 그럴 형편이 못되는 부호들은 관병을 청하거나 아니면 정규화가 못되는 화방자(花膀子)경찰대같은 지방의 무장대를 돈을 주고 청하거나 아니면 촌단(村團)이거나 련방(聯防)같은 무장대를 조직하여 토비들의 습격에 대처하고있었다.    아무리 그렇게 한들 그들이 생존활기를 위해 광분하는 사나운 토비의 발호(撥扈)를 어떻게 다 당해낸단말인가!    광활한 관동땅 도처에서 거의 매일이다싶이 토비와 부호들지간에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지고있었으니 그것은 짜장 전쟁다운 기분을 풍기고 있었다.    자체의 무장대를 갖고있는 토호거나 큰 재록신들은 자기 집의 굴뚝에다 붉은기를 높이 꽂아놓음으로써 위풍을 과시했다. 그같이 붉은기를 내꽂은 것은 내가 너깟 토비쯤은 무섭지도 않으니 어디 덤벼들겠거든 덤벼들어봐라는거니 그것이 실질상에는 토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웬간한 실력으로야 감히 얼씬거리기나하겠는가. 하길래 작은 무리의 토비들은 그저 깃대를 꽂지 않은 만만한 부호나 돌아가며 못살게 굴었다.     큰나무여야 그림자도 큰것이다. 여기 북만은 물론 온 관동땅에서 굴지인 염왕산은 언제나 담이 크게 놀았다. 이듬해의 가을이 돌아오자 그들은 또 한차례의 기와가마마슬 새 작전이 무르익었다. 방향은 계서(鷄西)일대. 그들이 노린 몇 개의 부호중 첫목표물은 그곳 조씨(曹氏)성을 가진 깃발꽂은 대부호였다. 조씨는 근년에 나타난, 말하자면 이른바 운수가 대통해서 생겨난 폭발호(爆發戶)였다. 그는 관내에서 몰려온 난민들을 싼값으로 모아갖고 채탄업을 벌려 거부로 된건데 처첩을 여럿거느리고 예황제부럽잖게 호강살이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니 위삼포의 과녘으로 될 수밖에.    계서는 이때 개발이 한창인 탄광지대였다. 그런데 탄갱이 여기저기 널려있다보니 그에따라 인가도 자연히 널려서 혹은 적게 혹은 많게 제마끔 무덕무덕 군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스산한 곳이였다. 그렇다해서 만만히 봐서야 될가? 절대 그럴수 없었다. 한 것은 집이 도회지에 있지 않고 거기다 자리잡고있는 부호마다 자기 무장을 갖추고있었기 때문이다.      꽤 오랜기간의 정찰끝에 준비가 다 되자 염왕산의 군사 반둬더는 황도길일(黃道吉日)을 보았다. 그리고는 그날이 돌아오자 위삼포가 산채에다는 60명만 남아지키게 하고 자기가 친히 300여명의 인마를 거느리고 나섰다.     그들은 목단강을 건너서 동진(東進)했다.      가마마스는 일이 번마다 쉬운건아니였다. 이번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관병이나 련방대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행군을 거의 밤에 했다. 그렇게 해서 이틑날 먼동이 틀 무렵에 목적지에 당도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공격전이 벌어졌다.     한데 저항이 어찌나 완강한지 이쪽은 뜻과 같이 공략할 수 없었다. 포대가 이쪽의 밀집사격에 의하여 작용을 잃었지만 대문은 든든해서 열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담장의 사격구로 총알이 련발날아와 적잖은 새자가 쓰러졌다.     위삼포는 겁을 집어먹고 물러서는 새자 하나를 쏴눕히고나서 그결에 권총쥔 손을 높이들고 웨쳤다.    《누구든 문만 열라, 그러면 자유를 줄테다!》     그가 선포한 자유가 다른때는 볼 수 없는 특허였다. 제2련에서 서은괴가 거느리는 3패가 맏두령이 던져주는 그 특혜를 쟁취하려고 나섰다.   《자유를 위해 싸워보자!》   《향락을 위해 싸워보자!》    그들은 미친듯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달려나갔다.    헛짓이 아니였다. 이쪽에서 대머리 포토우가 새로 밀집사격을 조직해 대방의 화력을 견제한 틈을 타 그들은 결사적으로 담을 넘어들어가 끝끝내 대문을 열어놓았다. 그래서 싸움이 붙은지 근 반시간만에 첫 번째의 《단단한 가마》는 마침내 부셔지고 말았다.    위삼포는 조만해서는 계획한 일을 그만두는 성질이 아니였다.    첫 기와가마가 공점되자 위삼포는 공을 세운 3패만 거기에 남겨놓고 자기는 주력을 끌고 인차 그 다음의 사냥물로 정해진 기와가마를 마스러 떠났다.     이미 허락된 자유가 아닌가. 그것을 누려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최대의 유감으로 되고말 것이라면서 이곳에 남은 서은괴패의 류자들은 두령이 가버리기바쁘게 제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시작했다. 그들은 우선 손에 무장들고 대항했던 자들을 다 끄집어내다가 담장밑에 세워놓고 총을 놓아 죽여버렸다. 그러고나서 그들은 서둘러 그야말로 쥐새끼도 빠져나가기 어려울 수색과 무자비한 략탈을 감행했다. 물론 망탕히 한것이 아니라 서은괴가 끄는대로 깐깐히 해나갔다.     그것이 일단 끝나자 서은괴는 그 집의 종들에게 말을 잘 먹이게 호령하는 한편 죽일가봐 겁나서 벌벌 떨어대는 그 집 사람들을 닭이며 오리를 있는대로 잡게했다. 반강자(기름떡)며 표양자(죠즈)며 진주산(이팝)도 하게했다.     3패의 류자들은 배껏먹고 마시였다.     야수는 배만 부르면 늘어지게 쉬건만 이들은 그러지를 않았다. 서둘러 계집데리고 노는 행사를 벌렸던 것이다. 그런데 새자 여럿이 죽어버려 수자가 줄었건만 그 집의 녀인수가 이쪽과 정비례가 되지 않는게 문제였다.    《제밀할거, 어쩐다?…》     서은괴는 불만에 볼이 부어오른 자기 패의 새자들을 향해 팔을 홰홰 저었다.    《제밀할거, 우리 이러잔말이야. 보다싶이 년놈의 수가 모자라잖은가. 이럴때는 우리두 한 번 공산을 하잔말이다. 그러는게 어때?》     그의 제의는 날이 서지 않았다. 개방구라면서 코방구뀌고 돌아서는 자들이 있었다.     두녀석이 얻어맞아 늘어진채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는 집주인 조씨의 해사하게 생긴 첩년 하나를 놓고 서로 제가 가지고놀아야한다고 우기면서 다툼질을 했다.     《자 자, 그럼 차라리 이렇게 하자. 너들 누가 담이 더큰갈 어디 한 번 멋지게 비겨보란말이다.》     누군가 현명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할려면해봐!》     다투던 자 중 하나가 선듯이 먼저나섰다. 그자는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더니 내놓인 자기 다리의 장단지에다 비수를 쿡 밖았다.     《아!…》     곁에서 모두 탄성을 올렸다.     자상을 한 그 류자는 상대측을 향해 어떠냐 자신있거든 너도 어디 나처럼해봐 하고 눈길을 날렸다.    그러자 저쪽 자가 칼로 제 한쪽다리의 장단지살을 썩 베여 그자의 앞에다 던진다.   《와아!…》    이번에는 더 큰 탄성이 터지면서 갈채까지 곁든다.    칼끝을 장단지에 밖은 자가가 그만 고개를 떨궈버린다. 이제 더 큰 동통을 만들어 낼 용기가 없는모양이다. 결국 제 장단지살을 베낸 자가 승리한것이다.     녀자쟁탈전이 그 한가지 모양만이 아니였다.     저기 다른 한켠에서는 울음을 그쳤지만 내내 놀랜 토끼새끼모양으로 제 가슴을 부등켜안고 오돌오돌 떨고있는 애처로운 계집하인 하나를 놓고도 류자 둘이 서로 제가 먼저맡아놓은거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녀인이 목과 젖가슴에는 그리 험하지 않은 칼상처가 가늘게 나있었다. 그것이 그들이 제마끔 제것이라 만들어놓은 표식이였던것이다…          위삼포는 계서일판을 이틀간 불나게 휩쓸고나서 말머리를 급히 돌렸다. 좀만 더 지체했다가는 련방대의 포위에 들 위험성이 있었으니까. 말타고 행패부리는 그들이야말로 과연 신출귀몰하다는 평을 받을만도했다.     전번날 건넜던 강가에 이르고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숨을 돌려야했다. 게다가 어둠의 장막속을 그냥갈수도 없는지라 위삼포는 날이 새면 건너기로 하고 강변에다 둔을 쳤다.     류자들은 련며칠간 사정없이 혹사한 말들을 휴식시키면서 단잠에 골아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잡혀온 5명의 운수사나운 인질들은 눈을 전혀 붙일수 없었다. 양즈방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빙 둘러앉게 한 후 방울을 주어 인질마다 그것을 다섯 번 흔들곤 다음사람한테 넘겨주는 계주를 끊지 않고 계속하게끔했던거다. 그것을 수이꾸이(水櫃)가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방울소리가 좀만 멎어도 채찍을 사정없이 날렸다. 수이꾸이는 전문 인질만 감독하는 류자였다. 양즈방이 왜 이런 방법을 쓰겠는가? 그건 두말할것없이 바로 비호자(飛虎子) (돈많은인질)를 이같이 괴롭힘으로써 굴복시켜 자기의 목적을 어서빨리이뤄보자는 목적에서였다. 토비손에 인질로 잡힌 자 모두 겁을 집어먹고 떨어대는건 아니다. 목숨보다 돈을 더 귀중히 여기는 수전노거나 이쪽에서 요구하는건 돈이지 사람의 목숨이 아니니 간대르야 하고 쓸데없는 배짱을 부려보는 자가 그러했다. 하길래 양즈방은 인질을 잡는 그 시각부터 내가 어떻게 하면 완고한 이 자식을 굴복시킬가고 골머리를 쓴다. 어쨌든 시일을 오래끌지 않고 인질을 돌려보내는게 상수요 재간이였다.    《오래잡아둬선뭘해 밥축만내는걸. 나도 고생이고.》     양즈방이 이런말하는 걸 민호도 들은적이 있다.     염왕산도 인질을 잡아가두고 협박해서 돈을 내게 하기도 하고 금품(金品)을 바치게도 하는데 다른 여느 도당과 색다른것이라면 이들이 잡는건 다가 먹을알이 큰 비호자(飛虎子)라는 것과 조만해서는 잡은 인질의 모숨은 빼앗지를 않는 그것이였다.     양즈방은 마음이 독해야 하지만 우선 수완가여야한다. 이 한 도당의 중점활동의 하나가 인질을 잡아오고 그를 다루는것이였기에 외사량 넷중 양즈방이 첫 자리에 서는 것이다.     염왕산의 양즈방은 환갑이 방금지난, 눈이 치째진 사나이였는데 모색이 어찌나 쌀쌀하고 독살스레 생겼는지 인정미라곤 꼬물만치도 있어보이지를 않거니와 어찌나 엄한 티를 내는지 일반사람은 감히 부접도 못할지경이다.     그런 사람이 잡아온 인질을 제 양아들로 삼았다니 민호는 종시 리해되지 않았는데 마침 그 리유를 알아볼 기회가 왔다. 인질보러 갔던 양즈방이 지나다가 아직 잠자지 않고 우등불가에 홀로앉아있는 그를 발견하고 가까이에 다가왔던거다.    《넌 왜 자잖아?》    《잠안옵니다. 양즈방두령께서두 앉으시여 불이나 쬐시죠.》    《그럴가. 밤기온이 과연 쌀쌀하구나.》     이러면서 그도 우둥불가에 쭈크리고 앉는다.     민호는 인질쪽에 눈길을 던졌다가 거두고 입을 열어 물었다.    《저 표들이 이틀이나 눈을 영 붙혀보지 않아서…》    《방금도 한 녀석이 낯까지 뎃네라.》    《불더미에 꼭그라졌던모양이죠.》    《……》    《그토록하면 너무혹독하잖을까요?》     민호는 물어보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류자내에서 일반새자는 웃나으리앞에서 그 어떤 일이든 함부로 간섭하지 않기로 되어있다. 한데도 양즈방은 오늘만은 개의치않고 응대하는것이였다.    《혹독하게 굴잖으면 어떡하겠나, 마음편하면 집에다 사정도 알리지 않는데. 돈많고 구두쇠질하는것도 아마 부자들의 류행병인가보다. 생각해봐라. 그런자한테 자비를 베풀어서야 무슨일이 성사되겠냐. 이 일을 하자면 우선 손이 매워야 하네라.》    《저도 그렇다는건 압니다만…》     민호는 말을 끊고 양즈방의 기색을 살피다가 입을 다시열어 궁금한 것을 꺼냈다.    《저 양즈방두령님, 한가지 물어봐도될까요?》    《뭘말이냐?》    《언젠가 제가 들을라니 두령께선 전에 인질로 잡아온 애를 양자로 받으셨다더군요. 부모가 찾아가려하지 않아서 그리했다는게 사실인가요?》    《그렇게 됐네라. 넌 장평일 놓구 하는 말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애가 귀엽게 생겼더구나. 내가 걔의 부모들이 얼마나 상심이 크겠나 생각하고 해엽자를 인츰띄워 데려가라했지. 그런데 응대가 없더구나. 그래 어떻게 했겠냐. 우리쪽에서 요구하는 액수가 너무많아 그런는모양이구나 생각하고 퍽 줄여갖구 화서즈더러 해엽자를 한 장 더 띄우라했지. 그래서 와서즈가 곧 그렇게 한건데 애비란 녀석이 의연히 응대가 없더란말이다. 귀신하품할 일이지. 보아하니 방귀도 제거면 아까와서 악귀한테 물려간대두 안뀔 놈팽이야.》    《아무렴 그렇게까지야 원!》    《한심한 수전노지.》    《그래 어떻게 했습니까? 그저 그렇게 끝나고만건가요?》     양즈방은 힐끗 치떠볼뿐이다. 그는 두 번씩이나 해엽자를 보냈건만 끄떡하지 않으니 화가 동해 훗날 그를 잡아 죽여버린 일은 말하지 않고 입을 다시열어 동강나려던 이야기를 계속이었다.    《너 생각해봐라. 그런 애비의 손에서 자라는 애가 그래 무슨 사람의 값에 가겠냐. 그래 내가 걔보고 얘야 안되겠다. 내가 네 애비루 돼주마. 이젠 집에 갈 념은 말고 여기서 살거라했네라. 걔도 말을 듣더구나. 그래서 그렇게 된거다.》     양즈방은 잠간 쉬였다가 자기 말에 그루밖았다.    《사람살아가는 세상이란 본시 이런거네라.》     여름에 인질을 묶어서 여러날 끌고다니다 보면 묶인 자리가 꺼지면서 거기에 구더기 생길때가 있는데 그때면 양즈방은 수레기름을 태워 발라준다. 인질은 물론 아파죽겠다고 아부재기친다. 그러면  양즈방은 으레 널 잡자구그러는게 아니니 참거라 이게 약이네라 하면서 치료를 늦추지 않는다.     안그러면 어쩌는가. 언젠가 민호는 주하쪽에 있는 가마를 마스고 돌아와 양즈방이 산채에 있는 양즈방에 가둬놓은 인질을 그렇게 치료해주는것을 보고 우둔하고 잔인한 놈이라 했는데 다시생각해보면 그럴법도했다. 특효약이 따로 없는데야 그인들 별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고통스레 내쳐두지 않는것만봐도 가슴한구석에는 그래도 한쪼각의 자비가 남아있는 것 같기도해서 속으로 너도 사람이 옳기는 옳은모양이구나했다.     양즈방이 어깨를 추스르더니 입을 열어 물어왔다.    《네가 여기루 온지가 언제더라?》    《지금이 양력으루 구월초니 옹근 두해째지요, 두령님.》    《벌써 그리되던가. 세월이 류수라더니…그래 지내보니 재미는 어떠하냐?》    《재미가요…》    《맘은 안착이 돼느냐?》    《안착이요…》    《차츰지내누라면 살멋이 있을거다.》    《거야 그렇겠지요.》    《건데 언젠가 듣자니 거 한심한 내기들을 했더구나. 그런 짓은 왜 해.》     양즈방이 지난일을 문득 꺼내는것이였다.     무엇이라 말하랴. 민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마침 화서즈가 양즈방을 찾아왔다. 방금 인질 하나가 배겨내지 못하고 굴복했는데 함께 해엽자띄울 일을 상론해보지 않으려는가 했다. 반둬더는 잠못자며 지킨 보람이 있다면서 기뻐했다.     그들이 가버리자 민호는 졸음이 와서 자기 말곁에 쪼크리고누웠다. 그리곤 인차 쪽잠이 들었다. 꿈에 그는 방금 끓여서 김이 물물나는 라라부다 한그릇을 들고와서 먹으라고 주는 츄얼이를 보았다. 안해는 그보고 그지간 당신은 어데가있었길래 몰골이 그리도 축갔느냐며 상심하는것이였다. 과연 오래간만에 보는 모습이다.     말이 투레질했다. 그바람에 민호는 단잠에서 깨여나고말았다. 대체 어느땐지?… 하늘은 구름이 끼여 별들이 보이지 않고 소슬한 가을바람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가까운 어디에선가 반둬더가 주문외우는 소리 들려왔다.           일칠간위에야 모자람이 있으리오        혀는 돌아가지 않아 말하기 어렵도다        열시인지 열두시인지 알려주소서        삼구태위에 횡사가 있으니        상망이 많을가봐 근심이외다        한시인지 두시인지 알려주소서        오십일곤에 꼭 죽게되니        별이 나지면 구성이 되련만        세시인지 네시인지 알려주소서        ……        가마마슬때건 보복할 때건 시퍼런 대낮에는 대로를 맘대로 활개치며 다니지 못하는거다. 그래서 이들의 행동은 거진 어두운 밤에 있게되는건데 그러노라면 어렵고 기분잡치는 일에 자주부닥친치게되는것이다. 그럴때면 거기서 해탈하기위해 군사인 반둬더가 책임지고 온갖의 방법을 다하는 것이다. 례를 들어 행군도중 대오가 길을 잃으면 반둬더는 땅에 꿇어앉아 《팔문지패》를 논다. 반둬더는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 팔방문이 열리는 점괘를 보는거다. 그래서 그는 패쪽이 열리는 방향에 따라서 대오를 움직이게 하는것이다.     어떤때는 모자를 벗어 던져 그것이 놓이는 것을 보면서 중얼거리기도한다.                           십팔라한 신선이시여                    우리한테 길을 알려주시오                    대오를 이끌어주신다면                    신선님을 잘 모시리다       어떤때는 네 방위에다 향을 피워놓고 그것이 빨리타는 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손수건을 꺼내여 네귀를 접은 후 《십팔라한 신선님이시여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주십사》하고 뇌이면서 공중에다 올려뿌려 접은 귀가 펴지는 것을 보고 대오의 행진방향을 정하기도한다. 이같이 지패를 놀아 점을 치거나 주문을 외우는건 반둬더가 늘 해야하는일이였다.     동녘이 푸름푸름해지더니 먼동이 트기시작한다.     잠을 깬 인마는 강을 건넜다.     련락원이 선통해서 염왕산은 경사났다. 폭죽소리 요란하고 곡분지에는 파아란 연기가 자오록했다.    붉은 비단치포를 화려하게 떨쳐입은 향란이가 산채에 남아있은 백두옹 량태와 즈좡 그리고 후근의 몇사람과 함께 개선하는 대오를 환영했다.    산채를 나간 류자들이 계획한 일을 성공하고 돌아올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벌어지군하는 한나의 경건한 의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중앙산채의 널다란 앞마당 한가운데 놓여있는 단우에다 커다란 붉은 비로도를 펴놓았는데 산채로 돌아온 류자들은 말을 탄채 렬을 지어 지나면서 순서대로 자기가 여직까지 건사해온 장물들을 꺼내여 그 비로도우에다 던진다.    빨간 비로도우에는 보물이 싸인다.    민호역시 말안장에 매여있는 가죽주머니끈을 풀어 거꾸로 털었다. 금팔지 두 개와 은비녀 하나 진주목걸이 하나가 떨어졌다.   《저치가 수확이 괜찮네!》    누군가의 뇌임이 들려왔다.    돈과 보물은 점점 더 쌓이였고 류자들은 기뻐한다. 해빛에 눈이 부시게 령롱한 그것들이 이제 돈으로 바뀔것이며 그런 후에는 그들 저마다에게 다시금 분배될것이다. 바로 그것을 바라고 료략질을 해먹는 이네들이 아닌가.    보통 석달만에 소배일(小配日)이 있게되는데 그때면 류자들은 다시한번 명절기분에 잠기면서 배껏 먹고 마시고 푹 취해서 마음껏 놀아본다. 그러는 재미로 제 목숨을 그 어렵고도 무서운 도박판에다 걸고 한 번 또 한 번 출전하는건데 그들은 그 고비를 무난히 넘긴 안도감과 감출 수 없는 희열을 안고 소배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웬 일인지 소배일이 전보다 열흘이나 늦어졌거니와 분배액수도 바라던것보다는 적었다. 그래서 왕견이도 하진국이도 민호앞에 왜 요것만 주나 하고 내심좋잖은 기분을 나타냈다. 한반의 다른 류자들도 왜 이럴가고 했다. 하지만 그 이상 더 떠들지는 않았다. 의견이 있어도 참는데 습관된 그들이요 두령들이 사욕이 있어서 따로 챙기는건 아니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반이 그런다고 다른반도 그럴가?    소배가 지난지 3일만이다. 위삼포는 북쪽산채에 있는 새자 하나가 와서 맏두령님께서 한 번만 좀 오셨다가십시오.》해서 그리로 갔다.     문을 떼고 들어 가 보니 2련 3패의 새자들이 다 모인것같은데 한자가 바당에 돼지대가리를 놓고 퍼더버리고 앉아 칼로 깝지를 바르고 있는것이였다. 위삼포의 눈길이 주위를 한 번 쭉 훝고나서 그자의 몸에 다시떨어졌다. 지금 돼지대가리깝지를 바르고있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패장인 서은괴였던것이다.     납덩이같이 무겁고 랭랭한 침묵이 꽉 내리누른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류자무리에서 새자가 이같이 모여 돼지대가리를 깝지바르는건 두령 네가 보아라 우린 지금 너한테 불만이 생겼다 그런줄을 알고 정신차리거라 그러지 않으면 처리해버리겠다  하는 암시인 것이다. 수백을 헤아리는 토비떼가 성행하고있는 여기 이 관동땅에서는 이같은 일이 비일비재다. 그래서 어제까지도 맏형님이요 두령님이요 떠받들리던 자가 눈깜짝새에 제 수하의 손에 목숨을 잃고마는것이다.     염왕산이 생겨 여지껏 그따위 불의지변(不意之變)이라곤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다. 지어는 꿈조차 꾸지 않았다. 한데 오늘에 이르러 이러한 장면을 당할줄이야 어찌알았으랴!    이들의 반역은 배타를 목적하는 철저한 결연을 의미하거니와 거기에 보복이 가해질 때면 잔인한 참살로 결말을 짖는것이다. 한데 이는 또한 어디까지나 음모적인것이여서 아직 성공하기 전에는 광명정대한 것이라 할 수 없다. 하기에 남의 충둥질에 못이겨 심기일전(心機一轉)하지 않고 동참했거나 주모자의 위력에 눌리고 강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휘말려든 자는 자신의 죄책감으로 하여 어쨌는 행동이 떳떳치 못하고 어색한 것이다.    이런 어색함이 반죽된 집안에서 경계와 긴장으로 곧아진 여러쌍의 눈길이 두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지켜보고 있었다. 깝대기를 발라 죽여치울 녀석, 네놈이 언감생심(焉敢生心) 내 앞에서 이런짓을 해?… 위삼포는 눈섶이 푸뜰거리면서 속에서 불똥이 튀였다. 그렇다고 당금 펄펄 뛰겠는가. 이 자리에서 당장 팔열지옥에 떨어진다해도 꿈쩍안할 이 억척보두는 끓어오르는 노기를 지긋이 눌렀다. 그리고는 일순간 돌이 되어 굳어졌던 얼굴의 근육을 느슨히 플면서 되려 여유있게 웃음까지 지어보이면서 부드럽게 물었다.   《동생은 갑자기 무슨일인가. 보아하니 내한테 그 무슨 불만이 생긴거같은데… 정녕 그러하다면야 시원히 말이나할게지.》   《좋습니다. 말하지요. 우리 삼패는 이번 출전에 인명도 잃고 공도 세웠습니다. 이 점은 큰형님께서도 잘 알고계시는게 아닙니까.》   《오 그러니까 배분이 잘못됐다 그건가?》   《그렇지요. 바로 그겝니다. 아무리 소배라두 분금은 되려 이전만못하니 대체 어찌된일입니까. 식소사번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    《오 그런가! 내 알아들었네.》    서은괴는 돼지대갈을 그냥 바르면서 게정부렸다.   《안다면 왜 그러십니까? 유공자필득이라하구서는.》   《그래 그건 내가 한 소리야. 유공자필득이라구…동생은 그래 상이 없을가봐 그러나. 그리구…자네들이 목숨내걸구 벌어온 금전이야 까마귀가 물어갔을가. 있네, 있어. 깔축없이 그대루있단말일세. 건데 그걸 다 주자구보니 한가지 결리는게 있구만…그게 뭐겠나… 보다싶이 형제들이 여럿 눈감았는데 그분들의 식솔은 누가 봐줘야 하겠나. 그걸 우리가 돌봐야 할게 아니겠는가…내가 생각을 많이해봤지. 그래서…그러누라니 배분이 늦어지구 적게된건데 이제 또 묘동이 있잖은가…그때를 바라구 취한 소밴데 사전에 미처 설명을 못했군…기분잡치게됐어. 어쩌겠나 내 이제야 생각이 도니 알아서 다시보도록허지.》    위삼포는 돌아가자 지체없이 3패에다 이미받은 액수의 근 배되는 돈을 부가해주었다. 이건 물론 그가 마음내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패 류자들의 내심도 한번 점검해보자는 수단이였다.            시골까마귀우는데 버덕가마귀가 울지 못하랴. 이 일은 자연히 파문을 일으키기마련이였다.     이날 민호가 있는 산채에서는 그런줄도 모르고 서은괴패의 류자들이 계집쟁탈전을 벌린끝에 제 다리장단지에 칼박고 살을 베여 자상한 미런한 짓을 화제에 올려놓고 왈시왈비했다.   《물쥐도 짝있고 딱정벌레도 짝있네라.》   《그렇다구 산채에는 제 다리장단지갖고 노는 짝이 나진거야.》   《건데 왜 외짝귀 보재만은 짝없이 홀로보낼고.》   《말짱 바보병신들이야.》    하진국이 그따위 담량자랑이야말로 알짜바보짓이 아닌가고 하면서 자칫 놀림가마리로 될번했던 민호역시 신수멀끔하게 생긴 사람이 얼이 나갔던지 한심한 짓을 했던게 아니냐면서 혀를 찼다.    지난해의 그번 뽐창뿌리기시합에서 민호는 부개비를 잡히기는커녕 외려 뽐창명수로 불리우게되였다. 그러나 시합에서 패한 황보재는 신세가 마른 무우쪽같이 오그라지고만거다. 민호는 물론 처음 한동안은 속이 후련했던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그렇지 않았다. 날이 가면서 황보재가 그번에 제 손으로 제 귀를 사정없이 베던 끔찍스런 장면을 눈앞에 떠올릴때마다 오연한 승리감에 젖어들기보다 죄스러운 미안감이 파고들면서 기분이 잡치군했다.     모략이 성공못한 자에게 앙심이 더 생기는거야 당연한 일. 민호는 겉으로는 대수로와하지 않지만 속은 시퍼렇게 살아 두억시니같은 그자가 지금도 여전히 절치부심하고있을것이요 이제 아무때건 기회만생기면 달려들어 보복하리란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귀떨어진 말만 꺼내면 신경이 일어섰다.     밖에 나갔던 왕은경이 젖떨어진 망아지같이 까불대며 달려들어오더니 폭발성적인 새 뉴스 한가지를 던졌다.    《어이, 어이!…희한한 소식이야, 희한한 소식!…서은괴네 패있잖아, 북채 거기말이야…소배를 다시했대. 돼지대갈을 발쿠구서! 》    《와!…》    《뭐라니?》    《다시말해라.》    《무슨 창빠진소릴 저렇게…》     류자들은 모두 천둥에 놀라듯 멍해졌다가 왁짝 떠들었다.      왕견이 눈알을 굴리였다.    《자식! 임다물지 못해. 누가 감히 그따위짓을 한단말이냐?》    《서은괴가 발퀐다오. 장평이가 그러는데…정말이요.》     떠듬이 잠간 멎었다. 너구리가 호랑이를 물어메쳤다면 누가 곧이듣기나하겠는가. 도무지 믿기어려운 일인지라 류자들은 제 귀를 의심하기도 하고 눈을 다시 화등잔같이 뜨기도했다.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은괴가 감히 그런짖을 해?…우둔하지.》     그러자 너 한마디 나 한마디 말문이 터졌다.    《우둔하구 미런하다.》    《맞아. 돌을 들어 제 발 등깨는거야.》    《과연그럴가?》    《글쎄…》    《가만있자, 나눠준게 적으니까 더 달라구 한짓이겠는데 말과 같이 과연 더 받았다면야 그치들이 제 목적은 이룬셈이야.》    《우리도 응당이면…》    《너 무슨소릴 그렇게…》    《목적을 이뤘다해두…》    《문제는 돼지대갈을 껍질바른거야.》    《그렇지! 내 생각두 그렇구나. 그게 어째 신통치 않아. 생각해봐라. 그치들이 이번 출전에 아무리 공을 세웠다해두 어쩜 그렇게까지야…》    《한심하구나. 한심해.》    《공은 공이구 소배가 적다구 그렇게 불만부려서야 어디.》     왕견이 눈을 꺼물거리며 오가는 소리를 여겨듣더니 제 입을 끌어다 민호의 귀가에 댔다.    《그저일같잖다. 서은괴가 꼭 뉘기추김에 들었어.》    《허, 이거. 오늘은 제법 머리도는구만!》     민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동감이였다. 서은괴가 담이 아무리큰들 남의 추김에 들지 않구서야 배꼽이 웃을 그런 미런한 짓을 할가. 운수사나운 인간은 운명이 한순간에 역전하고마는건데 서은괴가 지금이 바로 그런꼴이였다. 누군가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며 반장을 불렀다. 멍청해 있던 위진은 고개를 드는 것 같더니 제 머리만 썩썩 긁는다. 태도를 어떻게 표시할지 몰라 난감한 상태다.     민호는 들떠나려는 기분을 차분히 가라않히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분별없이 날뛰려는 류자들을 향해 우선 떠들지 말고 조용하라해놓고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개구리뛴다구 강아지도 뛸가. 칼물고 뜀뛰는 자 끝장좋을리 없는거다. 그러한즉 모두들 주의하라. 내 말인즉은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절대 남의 장단에 맞춰 춤추지 말자는거다. 명철한 두뇌로 제 주견이이 있게 놀자는 그거다.》    모두들 그의 말이 옳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서은괴가 사람됨이 팔부는 아닌데 왜 그같이 갑작스레 미런한 짓을 했을가? 이번사건은 민호의 흥미를 부쩍 자아냈다. 보아하니  남의 충둥질에 놀아댄것만은 분명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뒤에서 든장질하고 부채질한건 누굴가?… 듣자니 서은괴가 진사해와 보통관게가 아니라 한다. 그렇다면 장본인은 진사해가 아닐가? 그럴거야. 민호는 속으로 그를 짚었다. 한데 그렇다면 진사해는 또 어느만큼한 자신이 있길래 뒷심이 돼주는걸가?… 민호나 그나 여기에 들어와 지낸 시간이 거진같은데 어찌보면 진사해가 그사이 물망에 오른 것 같기도했다. 아직 그의 본질을 모르고있는 적잖은 류자들이 그를 호인풍의 남아로 보면서 존경까지하는 것을 보면. 한데 그런 사람이 왜 아직 일자반급도 못하고있는걸가? 분석해 보면 이건 바로 그라는 존재가 아직도 위두령의 안중에는 들지 않고있음을 말하는것이다. 그자는 야심많고 속이 엉큼해서 아무때건 스스로 마각을 드러내고말것이다. 민호는 속으로 이렇게 짚었다. 그렇다고 딱 찍을만한 근거는 대기어렵지만.     민호가 자기를 원쑤로 여기고있음을 알게되였던 진사해는 자기가 직접 독수를 뻗치기 어려우니 황보재의 손을 빌려고했던 것이다. 그의 그런 속수는 장평이 입을 연데서 더 명백하게 밝혀졌다. 뽐창시합직후 향란이는 자기의 은사를 진사해한테 발설한 장평을 불러다놓고 한바탕 되게 족쳤다. 그런결과 장평은 언녕부터 진사해가 자기더러 향란이와 민호지간의 왕래를 감시하라고 시킨일과 정황을 수시로 자기한테 반영하라고 했던일을 실토했다. 그것만이 아니였다. 장평은 또 진사해가 황보재보고《여기서 뜻을 이루려면 우선 그 꼬리방즈놈부터 없애야한다》고 충둥질을 한것까지도 알려주었던것이다.          향란이는 보기와 다르게 인내력이 대단한 녀인이였다. 그녀는 황보재를 그리 각박하게 굴지 않고 제똥에 물러나게 처박아두는 한편 처음부터 그와 배짱이 맞아도는 진사해에 대해서는 곁을 약간씩 주면서 살살 끌었다. 그가 의뭉수를 쓰는 능구렁이라는것을 알면서도 향란이는 전혀 무감각한 것 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대방은 이 계집이 과연 내 속이 어떤건 모르는모양이구나 했다. 제아무리 총명한 사내라 해도 녀인의 홀림수에 들면 그렇게 어리석어지는 법이다. 그녀의 눈에는 그가 덩치값못하는 너절한 비게덩이로 보일뿐이였다. 그가 비루하게도 남의 정사를 들춰낸 일을 생각할수록 이갈리도록 괘씸했다. 했지만 향란이는 그렇다는 내색은 좀치도 겉에 드러내지 않은채 만날때마다 외려 각별히 친절한양했다. 그래서 사내로하여금 두꺼비가 고니고기먹어보려고 하듯이 엉뚱하고 과분한 궁리까지 하게 만들었다. 향란이는 누가 만약 제 앞에서 그를 호인풍의 남아라 칭찬할라치면 그런가요 내가 보게도 어쩜 그런거같네요 했다. 그렇게 맞장구치면서 속으로는 야 이 얼빠진 놈아, 네가 그 사람을 그렇게 보니 정신이 어지간히두 빨렸구나, 그 녀석은 시궁창에서 바라다니는 부덕쥐만도 못한 더러운 비렁뱅이야, 그런걸 보구 호인풍의 사나이라면 네 눈에 정말 곰팡이꼈다 하고 욕했다.     아무때건 네놈의 깝지를 라쿠고말리라 벼르는 향란이였다.     어느날 민호는 장평을 만났다.    《여봐, 장평동생! 전날있잖아. 우리 계서엘 갔다오다가 강변서 로숙하던날말이야…그날밤 난 양즈방하구 오래얘기했었는데 참 재미있었어. 그분이 어쨌는지 알어. 나한테 너의 얘길 하더란말이다. 난 정말 잘 들었어. 》    《뭐라우, 내 양부가?…》    《그렇잖구. 그인 어떻게 돼서 널 수양하게 됐는갈 내한테 알려주더구나. 그리구…저기 좀 가자.》     민호는 이렇게 말을 걸어 대방을 곁으로 당긴 후 그를 조용한데 끌고가서 하나하나 집요하게 캐물었다.    《네희들 거기서 소배를 더 했다는게 정말이냐?》    《정말이잖구.》    《듣자니 돼지대갈껍지를 발퀏다며?.》    《그랬소.》    《사실이란말이지?》    《사실아니구. 서은괴가 그랬는데 뭐.》    《서은괴가? 아니 그가 어째서 그랬다니?》    《거야 간단하죠. 우리 패는 그번에 공까지 세웠는데두 주는건 외려 다른때만두 형편없더란말이요. 그래서...》    《무슨소린지…》    《위두령 정신 좀 차리라구.》    《그래서 위두령이 과연 정신차렸다 그 말이겠구나…그렇지?…갑을간 너들이 목적은 이룬거같구…그러니까 서은괴가 머리는 돈 것 같기도하구. 담통이 큰데다 총명해서!》    《그가 담크고 총명해서라구? 아니요.》    《아니라니 건 또 무슨소리냐?》    《그게 뭐 서패장이 궁리해낸 술책인줄아오.》    《그렇다면? 그토록 머리돈게 누구였단말이냐?》    《그건 진수이샹이가…》     장평은 낯이 빨개지면서 입밖으로 튀여나온 말을 꺾어버렸다.  갑작실수로 인한 파설(播說)의 후과를 깨닫고 입을 닫아걸려했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였다.      《왜그래. 꼴보니 넌 거짓말해놓구 그러는거같구나. 말해라.》     민호는 심히 불쾌한양 눈살을 찌프렸다.    《…》    《믿고싶지도않은 소리지. 그가 어디 그럴사람이냐. 제 눈으루 보지두못해갖구 그런 말 하면 못써. 그러면 무함이 되니까.》     류자지간에 무함은 배신이며 용서못할 죄악으로 치부되는거다.      장평은 자기가 죄인취급을 받고싶지는 않아 입을 열었다.    《난 보았소. 보지 않구서 어떻게 맘대루 지껄이겠소. 진사해 그이가…》    《그이가 뭐라더냐?》    《음…저…》    《왜 그러니. 시원히 말을 할게지.》    《말하겠소. 그인 은괴보구서 가만있을 일이 아니다. 우는 애 젓한모금 더 먹이는거야. 떠들구일어나야한다구했소. 그리구는 어미소죽으면 새끼소 멍에지기마련인데 밭이 묵어 자빠질가봐 걱정이냐 했소.》    《그리구는?…그런말만 한건 아니겠지?》    《그리구 자기는 돼지대갈 껍지를 발쿤적있었다구했소.》    《진사해가 그러더란말이지.》    《그랬소, 정말. 거짓말이면 내가 피자새끼지(개).》     장평이 이러면서 말추를 누르는 걸 보면 믿을만한 소리였다.     이젠됐다, 어디보자! 원쑤를 찍어넘길 칼을 자기 손에 쥔 것만같아 민호는 기뻤다. 하지만 지금의 심정을 웃음으로 밖에 뿜어 낼 수는 없었다. 그는 그저 이마살을 찌프리기도 하고 턱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머리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렇다면?…네가 다른소리는 더 들은거없냐?》    《없소. 다른소린 못들었소. 그것두 내가 적삼씻자구 양푼에 물담아갖구 나가다가 면바루 잡아들은거요.》    《됐다. 알았다. 넌 이런 말 다른데가서는 번지지말거라. 알아들었냐. 네가 이제 더 발설했다가는 좋은일없을테니까.》     알고푼 것을 다 알아낸 민호는 그한테 그루밖아 주의주었다. 생각과 다르게 경계심풀고 대방을 믿어주면서 사실을 곧이곧대로 알려준 그가 자칫 변을 당할 것 같아서였다.          이쯤하면 진상은 다 밝혀진건데 어떻게 하면 좋을가? 요즘 진사해는 산채에 있지 않았다. 듣자니 위용강이와 같이 어덴가 외출을 했다고 한다. 민호는 생각했다. 그들이 산채를 나간게 소배가 있은 이틑날이라니 진사해가 그때 서은괴를 추긴것이다. 이 추리가 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확실히 한차례의 실패한 모반(謀叛)이다.     일은 잘되여간다! 명민한 사람은 자기의 칼을 쓰지 않고서도 얼마든 원쑤의 피를 볼수있는 것이다. 형세는 이러한데 자 이젠 어떻게 할것인가고 생각을 굴린 끝에 민호는 이 일을 우선 위삼포한테 알리기로 맘먹었다. 그러되 그를 따로 조용히 만나서 알려주고싶었다. 조심해야 할 일이니까.     민호는 위삼포를 어떻게 만날가 궁리하다가 향란이를 생각했다. 그한테 이 사실을 먼저알려준다면 그녀가 가만있으려 하지 않을건 물론 그녀와 합심하면 일은 더 잘 되어갈것 같았다. 하여 그는 그렇게 하리라 맘먹었다.     민호는 지체없이 그녀를 찾아갔다. 한데 이럴변이라구야! 그가 가보니 거기에 뜻밖에 황보재가 먼저와있지를 않는가. 되돌아나오려는데 향란이가 발목을 잡는것이였다.     《왜 가요! 가지 말아요!》     그녀의 신경질적인 만류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처럼 들리였다.     황보재가 힐끔 눈치를 보더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민호는 향란이를 향해 물었다.    《보재는 왜 왔댔습니까?》    《그가 글쎄…내 그놈을…》     향란이는 당혹감을 금치못하면서 분노하고 있었다. 요즘 밖을 나오지 않고 혼자 방구석에 들어않아 내내 무협소설에만 정신팔려있다보니 산채에서 발생한 일은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보재가 서은괴의 얘길합디까?》    《그래요. 방금알려줬어요. 이가 막 갈려요. 서은괴가 어쩜…》    《그러니 는 속담생긴게지.》    《한심하지. 그자가 글쎄 담통이 어쩜 그렇게두 커졌을가요.》    《생각해보시오. 그자한테 왜 그런 담이 갑자기 생겼겠는가구.》     《글쎄요. 이게 그래 귀신이 들어두 피똥쌀 일이 아닌가요.》    《보재가 그걸 알려주지 않았습디까?》    《뭘 말인가요?》    《뒤에서 그렇게 하라구 추겨댄 사람이 있다는 걸.》    《아니 뭐라구요? 그런가요!》     민호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향란이가 숨가쁘게 졸랐다.    《말해요. 어서알려줘요. 대체 어느 놈이 그랬는가요?》    《진사해!》    《뭐라구요!?》     민호의 말에 향란이는 아연해지면서 진정못한다.     황보재는 서은괴가 돼지대갈껍지바른 일만 알려줬던거다. 그가 이번 사건에 진사해가 어떤 역을 논건 모르는 것 같았다.      민호는 녀인을 이윽히 지켜보다가 입을 다시열었다.    《향란아가씨, 우선 진정하시오! 그래야만 내가 말하겠어.》     향란이는 발끈했다.    《날 놀리는가요. 어떻게 진정할수있나요.》    《천만에. 아무렴 내가 감히 아가씰 놀리자구 찾아왔을까.》     녀인이 태도가 야속해서 민호도 어성을 높혔다.     이럴 때 마침 소풍하러 밖에 나왔던 위삼포가 딸거실의 창가를 지나다가 안에서 나는 소리를 잡아듣고 들어왔다.    《너희들은 대체 무슨일에 그러느냐?》     민호는 숙였던 머리를 다시치키고 배품했다.    《두령님께서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러잖아 제가 지금 막 찾아가 뵙자던참이였습니다. 서은괴가 돼지대갈을 껍지발쿠게 된 내막에 대해서…》    위삼포는 귓뿌리를 세웠다.   《뭐라!?…》    차고 예리한 눈매로 자기 딸과 언쟁하던 조선사나이를 드레질하면서 그는 아래에 이어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민호는 이 억척스런 두목이 이제 제 고발을 듣기만 하면 선불맞은 호랑이같이 격노하여 날뛸거라고 생각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두령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번일이 서은괴혼자서 주도한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절대 그런게 아닙니다. 서은괴혼자서는  그럴 담도 없지요. 그자는 무모한 표연자였을 뿐 막후에 지휘자가 따로 하나 있었던겁니다.》   《뭐라!?…》   《이번사건은 진사해가 조작하고 추긴겁니다.》   《진사해가 조작하고 추겼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장평이한테 들어서 압니다. 그 애가 그들이 하는 얘기를 제 귀로 똑똑히 들었노라구 했습니다. 일은 이런겝니다.》    민호는 진사해가 서은괴에게 했다는 말을 들은대로 번지였다.    위삼포는 낯가죽이 몇번 실룩거리더니 돌같이 굳어버렸다. 괴여오르는 노기를 지긋이 누르면서 귀담아 들을 뿐 억척스런 이 사나이는 이쪽의 생각과는 다르게 격분해서 날뛰지는 않았다.    민호는 그의 참을성에 한번다시 감탄했다.    위삼포는 알려줘서 참 고맙다면서 자기가 이 일을 알아서 처리할것이니 다른 누구한테도 더 발설하지 말라고 민호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자기 딸을 보고는 자칫했다가는 일을 그르칠수있으니 절대 감정에 들뜨지 말고 신중이 행동하라 주의주고 돌아갔다.    《호ㅡ어쩜! 저렇게 배은망덕하는 불한당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나요. 아버지는 큰 실수를 한거얘요. 그따위 거지를 다 불쌍히 여겨주다니 원. 애초에 들여놓지도 말고 쫓아버렸어야 옳은걸 그랬어요. 안그런가요. 양호우환(養虎憂患)이라더니 이런걸 보고 하는 말이 아닌가요. 봐요, 그자를 받아들였기에 하마터면 큰 변을 당할번하잖았나요. 과연 그럴사한 위선자였지. 그러잖아 어쩐지 눈에 거슬리기에.... 과연 교활하기 짝없는 놈이지! 이번까지 지내보니 그놈의 배속에는 전갈모양으로 온통 독밖에 없네요.》     아버지가 가자 딸이 이를 악물면서 진사해를 욕하는것이였다.    《제 아무리 교활해두 오산을 했으니 행동이야 서툰놈이지.》    《나하구 어디 밸 좀 더 써보죠. 거 참 볼만하던데.》     향란이는 게면쩍은지 낯색이 약간 붉어지더니 사과했다.    《미안해요. 난 첨엔 정말 참기어려웠던거얘요.》    《참기어려우면 고래질인가. 제 남편이면 그러지 않을걸.》    《입다물어요. 그따위소린 작작하고.》    《하지말랍니까. 그럼 하지말지.》     본래는 서은괴가 돼지대가리껍지를 발쿠면 위삼포가 보고서 발연대로하여 새자들을 마구욕질할것이고 그러면 격분한 새자들이 들고일어나 합심하여 두령을 그 자리에서 요정낼줄로 알았다. 그런데 위삼포는 발연대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온화해지면서 내놓는 요구를 선선히 받아준 것이다. 그가 그러는데야 다른때 악감도 적의도 없었던 새자들이 발검할리있는가.     서은괴는 실패하고말았다. 밀려드는건 내가 왜 위삼포가 들어오면 반의 새자들이 한결같이 들고일어나 다짜고짜 그를 죽여버리게끔 잡도리를 하지 않았던가, 후회막급 할 뿐이였다.       한편 위삼포는 적발이 믿음직하기는하지만 더 확실한 죄증을 쥐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였다. 하지만 급히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진사해의 일거일동을 주의해 살피다가 때가 되면 수습하기로 맘먹고 먼저 분별없이 납친 서은괴부터 처리해버리리라 작심했다.          
407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2) 댓글:  조회:2325  추천:0  2015-02-03
                            12                류자들은 맏두령을 비롯한 사량팔주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지 좀이라도 거역해서는 안된다. 싸울때는 용감하고 앞에 서야함은 물론이거니와 겁을 집어먹거나 뒷걸음쳐서는 안된다. 대오가 모지에 이르러 주둔할시면 보초를 서는데 그 누구든 자기에게 임무가 떨어지면 사달없이 잘 완수해야지 조금이라도 잡짓이 있어서는 안된다. 년말이거나 묘동때면 누구나 다 자기가 노력을 들인 정도에 따라 그만큼한 응분의 보상을 받게 된다. 평시에 새자들은 그 누구던간에 쪽을 놓음이 없이 다가 만족스레 먹고 마시고 놀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단 한가지―녀자만은 두령들 처럼 맘대로 데리고 살지 못한다. 어느 큰 토비무리나 거의가 비슷한 상황이였지만 이 방면에 들어가서는 염왕산이 특히 더 엄격했다.     염왕산은 지어 사량팔주들도 취처를 하지 않아 다가 독신들이였다. 그것은 위삼포탓이 아니라 그들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였다.     예전부터 관동의 적잖은 토비무리들 중에서 새자가 불만이 생겨 두령과 맛서거나 지어 호상간에 참살하는 참극들이 자주발생하군했다. 그렇게 되는건 두말할것없이 두령인 자가 주먹이 드세지 못해 단합이 잘 안되고 내부가 혼란하기 때문이다. 겉이 아무리 보기좋와도 속이 병들면 모든게 잘못되기마련이다.     염왕산은 여지껏 그런일이라곤 한번도 발생한적이 없다. 이는 이 류자집단이 어느만큼 응집력있고 견고한가를 말하고도 남음이있는 것이다. 이 한 집단이 여지껏 이토록 무사했으니 어찌 장하지 않으랴. 위삼포는 그로하여 그 누구보담도 자호를 느끼고 있었다.     염왕산류자들은 한결같이 위삼포의 공덕을 노래했고 파량팔주를 찬양하면서 맏두령을 떠받들 듯이 그들을 떠받들었다. 숭배와 복종은 그같이 두령들께 충성을 다하리라 맹세한 모든 새자들의 미덕으로 취급되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맏두령과 사량팔주는 태평가를 부르지 않았거니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경각성을 늦추지 않았다. 그들은 새자들께 인심잃는 일이거나 불만이 생길 수 있는 일은 극력피했다.     360여명의 류자는 잘 단합되여 있었다.     8월의 어느날. 남쪽산채에 있는 류자들이 가마마스러 갔다와서 《자유휴식의 날》을 맞는 덕에 매양 그러하듯 다른 류자들도 거기에 말려들어 온 산채가 또 한 번 명절기분에 잠기게 되였다. 이럴때는 여기저기 끼리끼리 모여서는 주먹치기재간을 비기거나 목마타기를 놀거나 아니면 술을 마시고 질탕놀아대는 것이 습관마냥 굳어진 일과였다.     어떻게 어떤모양으로 놀건 싸움만 하지 않으면되였다. 무릇 싸워서 사달피운 자에 한해서는 가차없이 엄벌이 내렸다.    《홀아비나서면 그림자뿐이네.》    《홀아비병나면 누가 국끓여주나.》    《홀아비몸에 이밖에 없네.》    《홀아비옷 해진건 누가 기워주나.》    《홀아비 홀아비신세 알아준다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즐긴다네.》     어떤 류자들은 즉흥에 잠겨 네 한구절 내 한구절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다.    《수탉은 만나면 원쑤싸움.》    《부부싸움은 닭싸움아닐세.》    《아침에 물치며 싸운 부부》    《밤이 되니 한베개베고 잔다네.》     어떤 새자들은 맛붙어 징그럽게 그러는 동작을 피워대기까지 한다. 그러는 걸 보고 발정한 개모양으로 발동돼서 따라하기도 하고 우수워죽겠다고 미칠지경 박장대소하기도 하는 새자들.    《이거 장난이 너무심하잖아.》    《아니야. 지랄이 모자라는거야.》     이러면서 진부한 허탈을 달랜다.     오간수다리밑이 지저분하다더니 네 녀석들이 그 꼴이구나. 차라리 토비노릇 그만두고 모두들 제가끔 색시얻어 여기다 마을앉히고 살림살이나 하면 여북좋으랴. 벌목을 하던지 산골부대를 일쿠던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하던지. 이따위노릇 안해먹고도 살아갈 방도야 쌔쿠버린게 아닌가. 까마귀를 백조되라는 민호의 생각이였다.     어느날 왕견이 민호의 일에 흥미를 가지면서 건드렸다.    《여보게 민호동생. 접때 향란아가씨 초청해 갔더랬지?》    《건데 그건 왜 또…》    《리해안돼서 그러지 뭐. 그렇게 간 사람 아무재미도 못보고왔다는게 그래 말이 되나. 사람이 어쩜 그리두 모자래. 나같으면 가만있지를 않겠어. 입에 들어오는 고기두 안먹다니 원. 아무리봐두 동생은 맹랑한 짓을 한거야.》    《좋은 노래두 장들으면.... 왕형 그 말도 이젠 악비가 나오.》    《듣기싫다는거냐. 너도 보재모양으루 그게 병신된게 아녀? 그러면 큰일인데. 묘동때 기생집은 다 갔지. 정말 쓰지두 못할거면 개나 떼줘. 어느 갈보년이 시들어버닌 가지를 만져나볼가.》    《하하하하…》     가까이에 있던 새자들이 그 말을 듣고 질펀한 웃음을 쏟았다.     민호도 따라웃는 수밖에 없었다.     하진국이 으레 말추렴에 빠지려하지 않았다.    《세상에 제일좋구두 나쁜게 그놈의 구멍이요. 우리 여기서야 계집이 바로 화덩이였지. 왕형 안그렇소?》    《건 무슨소리냐?》     민호가 궁금해 물었다.    《정형이야 아직모를 수 있지.》    《뭔데? 너가 알려주지 않은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가. 그럼 내 알려주지. 이제는 그게 여러해되오.》    《가만. 그러니까 여기서 언제 녀자땜에 사달생긴 일이라도 있었다는 말이냐?》    《돌아가는게 과연 빠르구만. 바로 그 말이지. 본래는 향란아까씨한테 오래전부터 시중들고 말동무질하며 지내던 아춘이란 계집애가 하나 있었더랬소.》    《그런데?》    《고놈의 암캐가 글쎄 때가 되니 발정이 됐던지 꼬리젓는바람에 젠장…》      《여럿이 달려붙었다 그 말이냐?》    《그렇소. 그것도 저그만치 다섯이나됐던거요. 남모르게 했더면 좋았을건데 시간이 가면서 저들간에 그만 쟁탈전이 벌어졌지 뭐요. 물론 가만히 하는거였지만…생각해보우. 그래 어떻게 됐겠소. 나중에는 칼놀음까지나는통에 그만… 다 잡혀나오고말았던거요.》    《그래서?》    《그래서 위두령은 산채를 요란시킨 라면서 다 잠재우고말았던거요.》     세차즈란건 말성일으키는 불민한 자를 가리킨다. 여지껏 법밖에서 인간사회를 외면해 온 외딴 세상, 오로지 자기네의 제도만이 통하면서 활개치는 자유의 령지, 그래서 독립왕국이나답잖은 여기서 무슨일인들 없었으랴. 들을만한 소리였다. 민호는 쟁그러울지경 무척 알고푼 생각에 들떠갖고 재우쳐물었다.    《계집은 어떻게 됐냐?》    《생각해보우 어떻게 됐겠는가구. 그 계집이 그래 액운을 면할 수 있었겠소… 장본인이라구해서 벌이 더 혹독했던거요. 이게 다 네년의 그 불칙한 구멍때문이라면서… 어떻게 했는지 아오. 바지아래도리를 매놓구서는 그 안에다… 고양이를 집어넣었단말이요. 그러구는 회초리로 막 때렸지…고양이가 아파서 발광쳤소…생각해보오. 그러니까 모양이 어땠겠는가말이요. 그놈의 발톱에 아래도리가 싹 긁히고 뜯기워서…》      《아니 위두령이 그리두 잔인했단말이냐?》    《아니요. 그건 위두령이 한짓이 아니였소. 그때 위두령은 출면안하구 어떻게 돼서 서은괴가 손을 썼는데… 그런 형벌은 그가 고안해낸거라는 소문이 돌더구만.》    《서은괴라니 지금 이련 삼패서 패장질하는 그치말이냐?》    《그렇소. 바로 그가말이요.》    《지독한 녀석이로구나!》     민호는 낯색을 흐리웠다.     하진국은 또 전에 향란의 어머니를 시중들던 하녀 하나가 누구에겐가 강간당하고나서 자살해버린 일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일이 있은 후 위삼포는 아마 여생에 다시는 재취하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은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자식혼인까지도 불허하는건가?》    《아따 어쨌다구 자식까지 시집장갈 못가게 하겠소. 아들이 여직 성가못하구 딸이 출가못한거야 전적으루 그 본인들께 원인이 있는게지 뭐요. 듣자니 위용강은 색시를 일찍얻을것두 산채의 많은 형제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까봐 지금도 주저한다나. 그리구 향란이는 시집가자해두 눈에 드는 마땅한 자리없어 늙어간다누만.》    《고아가씨는 하늘도령이 나타나 청혼하길 바라는건가, 젠장! 호박이 늙은건 먹기나좋다구 해. 아까운 꽃 싹 시들어간다.》     왕견이 애석해서 한탄이다.     한편 어찌보면 그건 불만한 자의 넋두리같기도 했다. 침이나 흘려야지 별수있는가. 늙어 다 시들어버려도 자기같은건 손한번 만져보기조차 어려운 아름다운 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과년한 향란이가 그래 과연 하늘도령의 청혼을 기다릴가?     민호는 여럿을 둘러보고나서 입을 열었다.    《내가 볼라니 황보재가 지금도 거기루 다니는거같더라.》     이 소리를 지나가던 팽덕이가 듣고서 낄낄 웃어댔다.    《그자식이야 헛욕심이나 챙기지 뭐요. 고재 처가집댕긴단는 말 못들었소.》       왕은경도 비린내맡은 쉬파리모양으로 어느새 끼여든다.     《그래두 그 녀석은 운이 튼거야. 내같은 놈이야 젠장! 기운이 나두 어디 뱉아놓을데가 있어야지 젠장!…빨리 묘동이나 와야 한배짐 내깔리겠는데. 씹새같이…얘 진국이 너도 보련춘유곽 잘다녀봤지?…거게 있는 땅딸보계집 그맛 한가진 참 좋더라. 안그래?》    팽덕이다 손바닥을 쫙 펴 그의 번들거리는 이마를 찰싹 때렸다.     《야 임마. 말장 맛 맛. 그래 넌 그 맛쟁이루만 빠져난거냐. 그렇게 환장할거면 계집뒷구멍에나 붙어다닐게지 여긴 왜 들어와 꺼들거리는거냐.》   《저 녀석은 그 갈보년한테 영 반했다니까.》   《환장할 자식! 이제가면 아예 영 빠져 나오지두못할거야.》   《우 후후후!…》    또 한바탕 터지는 질펀한 웃음소리.        남을 원망말라, 제 운명은 제가 지고가는것이니.    어느날. 저녁을 방금먹고났는데 서은괴패의 나어린 새자 장평이 민호를 가만히 불러 향란이가 주더라면서 해엽자 한통을 주고갔다.    그 아가씨가? 속지를 뽑아보니 거기에는 아래와같은 녀인의 글이 간단히 적혀있었다.           오늘밤 만나자요. 상론할 일이 있어서. 8시에 꼭.                                                향란   즉일       향란이가 나하고 무슨 요긴하게 상론할 일이 있을가? 하필 밤에?…의문이 갈마들어 진정할 수 없었다. 민호는 자기를 점점  더 가까이하고 사근사근해지면서 각별히 친절스레 구는 녀인의 그 달라가는 태도에 대해서 다른각도에서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야하는가 가지 말아야하는가 주저되였다. 그러다가 가봐야 한다. 글까지 보내왔는데 가보지 않으면 그건 무례한 짓이다. 후에 만나서는 무어라 변명하겠는가. 자존심강한 녀인이 가만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봐야한다. 못갈 리유가 없다, 청하는건데.    날이 어두워졌다. 시간이 되자 민호는 그녀의 거실이 있는 별채쪽을 향해 걸음을 놓았다.    민호가 노크하고 들어가니 향란이는 캉틀에 걸터앉아 포개놓은 한쪽다리를 흔들거리면서 달걀을 먹고 있었다. 실내에다는 람프를 켜놓았지만 심지를 돋구지 않아 밝지 않았다.    민호는 묵묵히 그녀만 봤다.    향란이는 입을 놀리다말고 어김없이 와주는 사나이를 눈빗질해보면서 일순간 면구스러운 내색을 드러내더니 입을 먼저 열어 응고된 침묵을 깨뜨렸다.    《오시니 고마워요. 곤곤자(달걀) 하나 드릴까요.》     녀인은 일어나 자리를 내며 접시에서 달걀 하나를 집어 깝지발쿠기 시작했다.     이 계집이 달걀먹으라구 날 오라한거냐. 그럴리는 없겠는데…상론하자는게 대체 뭘가?…눈주어 보니 구들에 담요를 깔고 그 우에 덧펴놓은 호랑탄자우에는 그녀가 즐겨 부는 소소(韶簫)가 놓여있었다. 네가 이걸 불면서 날 기다렸던모양이지. 기다렸다는 그 스스로의 판정이 민호를 은근히 즐겁게 했다.     향란이가 다 발쿤 달걀을 민호앞에 내밀었다.    《난 생각없습니다. 오복자(배)부르게 저녁먹었으니까.》     사나이가 받지 않자 향란이는 방그레 웃으면서 권하던 달걀을 접시에 도루놓았다. 그리고는 다가와 간격을 조금두고 캉틀에 걸터앉아 아미를 다소곳이 숙이였다. 따아서 곱게 틀어올린 봉긋한 머리에는 섭옥잠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말쑥하고 고운 손으로 제 손가락에 끼인 람보석 금지환을 만지였다. 다리를 포개지 않으니 앉음새가 방금전보다 퍽 단정해보이는데 연분홍의 주란사비단치마자락은 몸에 차근히 붙어 섹시한 그녀 하신의 곡선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보다 더한건 물론 볼록한 젓가슴이였다.     향기그윽한 방. 닫겨진 창문에는 연람색의 양단카텐이 드리웠다. 날아 다니는 파리 한 마리 볼 수 없이 조용한 심규(深閨)였다.      이러한 환경은 이상야릇한 기분만 돋우어 주고 있었다.     민호가 갑갑함을 못이기겠다는 듯이 몸을 추스르자 향란이가 숙였던 고개를 번쩍치키였다.    《왜 그래요. 돌아가시자구요?》    《숨가쁘구만. 더운데 창문은 왜 꽁꽁....》    《열지 말아요. 모기성화심해서 그래요.》     향란이는 카텐을 열지 못하게 했다.     거짓말이다. 다른날에는 왜 밤에 카텐만 치고 창문은 열었는가?…중앙산채는 풀 한포기 없는 모래깔린 널다란 공지복판에 자리잡고 앉아 지금도 모기가 그리끓지 않는다. 한데도 이같이 바람한점 들어못오게 단속함은 왜서인가?…남은 감각조차 모르는 뻐꾸기로 보는건가. 언녕 생각이 잡히는데가 있는지라 민호는 한때 온 산채를 소란스레 만든, 그 아춘이란 계집애와 유관되였던 불행스러운 참사가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자기의 사련(邪戀)이 말성을 일으킬것 같아 두려워했다.     《아가씨! 무슨일에 날 오라구했는지…》    《우선 급해말고요.》     향란이는 눈치무딘 사내가 야속한 듯 눈을 살짝 꼬고나서 입을 다시열고 물어왔다.    《접때 내가 말을 너무 넘치게 해서 그러나요?》    《아니요. 난 그 일을 잊은지두 오랩니다.》    《잊었다구요? 거짓말! 그 일을 잊을 리가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난…우리 함께 몽두춘할까요.》     이 계집이 대체 무슨일이냐. 날 술마시자고 청한건 아닐텐데. 민호는 대방을 이윽토록 여겨보다가 대꾸했다.    《아니 난 생각없습니다.》    《정녕 그렇다면 관두자요. 난 혼자서 한잔했어요.》     그러고 보니 넌 입에서 나는 술내를 감추느라 달걀을 먹은거로구나. 그런것도 이 뻐구기는 몰랐지. 민호는 웃고말았다. 아닌게아니라 가끔 저돌적인 짓을 잘하군하는 이 왈패스러운 녀인은 약스우면서 사랑스럽기도 하고 재미나기도하는 존재였다. 하여 그는 내가 이런 기회에 이 녀인의 생활구석을 한 번 들춰보는게 어떨가 하는 엉뚱한 궁리가 문득 났다.    《보아하니 향란아가씬 지냄이 퍼그나 재미스러울것같습니다.》      실은 그럴 수 없는 일이였다.     향란이는 자기의 처지를 그같이 경솔히 평하고 있는 사나이가 야속한 듯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머리를 가로젓고는 생각밖으로 무람없는 탄식은 가볍게 뽑아냈다.    《재미라는게 다 뭐얘요…생각해봐요…고침단금인데 재미가 있을리있나요. 즐거움이 있을리있나요. 행복이란건 더 운운할조차 없는거구요. 안그래요?》     녀인은 말을 끊고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다시열었다.    《거기서도 들어서 알겠지만…이젠 나이 스믈여섯돼요. 열여섯이면 방년인데 난 거기다가 열살이나 더 넘겼거든요. 아름찬 일이지. 생각해봐요. 계집이 과년토록 시집안가고있으니 뒷공론인들 오죽하겠나요. 이거야 내 귀로 듣지 않아도 산천자연이 다 알게 되는거죠. 안그래요? 왜 웃어요…사실이 그러한들 뭐래요. 떠들겠거든 어디 실컷 떠들어보라죠. 난 이젠 꿈만해요.》    그녀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이제는 남의 여론앞에 자신을 완전히 방치한 상태였다.     민호는 입을 열어 궁금하던 일을 물어봤다.   《이거 외람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과연 리해되잖는군요. 그토록 과년하도록 향란아가씨는 왜 엽때 시집안가구있었습니까?》   《그게 그리두 의문스럽던가요. 내 오랍좀봐요. 난 오랍일이 더 걱정돼요. 우리 위씨집안은 삼대를 내려오면서 독자인거얘요. 그런데두나 오랍은…올해 나이 벌써 스믈여덟아닌가요. 그런데두나 서두르는 기색은 안보이구…생각해 봐요. 오빠안가는데 아무렴 내가 먼저나덤비겠나요. 그럴수야없잖아요. 안 그래요?》    완전히 리유서는 말이였다. 민호는 언젠가 후근마사앞에서 그들 오누이가 주고받던 말이 상기됐다.   《위도령이야 일면파에 대상자가 있잖습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아나요?》   《언젠가 위도령이 거기루 가는걸 내가 본것같아서…》   《그래요. 일면파에 오랍이 봐둔 녀자 하나 있긴해요. 소춘매라구하는. 그런데 그녀가 지금 거기서…》    향란이는 하려던 말을 중둥무이하면서 삼켜버렸다.    민호는 궁금쯩이 한결 더해지는지라 재우쳐 물었다.   《거기서 뭘합니까? 왜 말을 하려다맙니까?》   《그녀는 거기서 기생질해요.》   《오―그렇구만!》    위용강이가 기생한테 반해있다니! 아이도 배지못할 그따위 돌계집을 안해로 맞아서야 후대를 어떻게 잇는단말인가. 꼴을 보니 위씨네 가문은 정말 대가 끊어지고말가부다. 민호는 의문만 더 짙어갔다.    《위두령께서는 손군을 보자구하실건데 아들이 그런 녀자를 맞아들인다면 어쩔까요?》    《부친께서는 그걸 관계치 않아요.》    《원 무슨소린지?…》     위삼포가 그런 사람이란말인가! 민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삼포는 과연 세상에 보기드믄 용한 아버지라해야 할 것이다!     민호는 정말 리해되지 않는다하고나서 넌지시 근중을 떴다.     《허면 위두령이 향란아가씨가 대상얻는것도 상관않겠네요.》    《그래요. 부친께선 제한테도 선택자유를 준거얘요. 네가 누가 맘에 들면 누굴 정해 시집가라구요.》    《오, 그렇군!》     민호는 속으로 한 번다시 탄사를 올리면서 생각했다. 그것이 정말이면 위씨네가 유교사상을 버린것이다. 이들이 후대를 잇구는 혼인대사를 중히 여기지 않고 자재로우니 세속을 벗어난 개화한 자유인이라 해야할 것이다.       향란이가 중단했던 말을 다시이었다.    《툭 털어놓고 말하자요. 황보재가 오래전부터 날 좋와했어요. 그렇다는거야 거기서도 언녕 눈치챘을게 아닌가요. 그런데말이얘요…솔직히 말해 난 지금도 그일 내 남편으로 만들고푼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어요. 그건... 》     민호는 량미간을 그러모았다. 이 아가씨가 나를 제 지기로 믿어주는건가 아니면.... 주저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티라곤 조금도 없이 제할 소리를 다 하고있다.     그녀 스스로 화제를 이쪽에서 제일 궁금해 하고 캐고싶어하는 쪽으로 끌어가는지라 민호는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아니 건 왜섭니까? 용모좋지 구변좋지 건강하고 사나이답지... 듣자니 뽐창에도 능수라더군.》    《사나이가 그거면 단가요 뭐. 난…》     향란이는 혀끝까지 튀여나온 말을 다시 한 번 되삼켜버리면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좀지나 되들어왔는데 그녀는 몸을 문설주에 지개면서 이쪽에서 모르게 문을 안으로 살짝 잠가버렸다.     녀인은 집안이 물쿤다면서 웃동을 벗었다. 브래지어로 젓통만 가리운 하얀 상체가 불빛속에 홀랑드러났다.    《아니 이년이!》     은연중 저도모르게 조선말을 이렇게 내쳤는데 상대가 그걸 앓아들은것만같아 민호는 찔끔 놀라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향란이는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이 서서히 그리고 대담히 다가들었다. 스스로 주동이 되어 공격을 들이대는 녀인의 얼굴은 흥분으로하여 딸기모양으로 상기되였고 정욕이 끓번지고 있는 두 눈은 황황 불타고 있었다.     민호는 뒤주춤했다. 내가 이거 나무가리우에서 불화로를 안았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기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순간이였을 뿐 그는 박근하는 상대를 더 피할 념을 하지 않고 그저 난색을 지은채 주저했다.    《이거 이러다 보재가 들어오면…》    《시름놔요. 보재가 없어요.》    《그래두…》    《그인 소용없는 걸레짝인걸요. 뚫어진 구멍에도 밖지 못하는 그까짓 변자(좃)를 뭣에 쓰겠어요… 난 고통스러워요.》     육체상의 욕구와 기대가 접질러 불만이 야기되였던 녀인은 쓴웃음을 짓더니 주저없이 원망을 토해놓는 것이였다.     고통스럽다고 까지 하소하니 속은 다 털어놓은게 아닌가. 그녀의 농도짙은 음성은 절절한 애원에 떨리고 있었다. 다들 뒤에서 쉬쉬대며 웃더니 그럴만도했다. 황보재가 과연 쓰지도 못하는 연장을 달고있는 부실이였음이 분명했다. 빛좋은 개살구였다. 진정한 남자를 알구퍼 하는 녀인이 남자구실도 못하는 그런 사나이를 그냥 나꾸기는 만무한 일. 이러한 사정으로하여 민호는 자기가 어느덧 육정(肉情)의 대상으로 포로되였음을 절실히 감득하게 되였다.     이것은 인간의 육체적본능에 의한 욕구요 불가피한 행위거늘 어찌 비도덕적인 것으로 몰아버릴 수 있는가. 그래서는 아니될 것이였다. 녀인은 기대감을 갖고 대방의 반응을 잡아보려했다. 두눈은 열기로 타오르고 있었다. 녀인의 섹시한 체취가 페부를 찔렀다.     오롯한 침묵속에서 흡인력있는 두 이성간에는 잠재된 감정이 서서히 교류되기시작했다. 자기로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당황하던 일순간이 지난 후 민호는 모든 우려들이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여지껏 억제되였던 욕구가 아래의 거기로부터 줄기차게 뻗어오르기 시작함을 감각했다.     여기까지 이르러 더 참는다는건 어렵고 고통스러운 짓이였다.     민호는 두눈을 슴벅거리다 웃음을 흘리였다.    《그래서 날보구 풀어달라는건가요.》     자기의 생각이 대방에 감통(感通)되였음이 확인되자 녀인은 서슴없이 팔을 벌려 그의 목을 감았다.     광풍이 한바탕 광야를 휩슬어놓는것만같았다.     교교한 여름밤의 대기는 맑았다.     민호는 그 작업을 끝내자 오래누워있지 않고 거기를 나와버렸다. 묵직하던 몸은 거뿐했고 기분은 그지없이 상쾌했다.          이튿날오전이다.    《뒷마당에서 진수이샹이 한 번 만나자해요.》     장평이 찾아와 민호에게 전달하고나서 제꺽 사라져버렸다.    《뭐라, 진사해가 날 만나보잔다구!?》     저으니 놀랜 민호는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그 원쑤놈이 대체 무슨일에 날 보자는걸가. 내가 제놈의 명줄을 노리고있다는걸 눈치채고 선손을 쓰느라 그러는거나아닌지.     장평이 입밖에 번진 말을 제꺽잡아들은 한반의 류자들은 참을 수 없다면서 떠들었다.    《진사해가 어쩌면 수이샹이냐?》    《누가 그한테 그런 급을 줬게 그러나?》    《그 사람을 수이샹이라 부르면 문제생긴다.》     도리없는 말이 아니였다. 진사해는 자기 패의 류자를 거느리고 염왕산에 의탁하러 온것도 아니요 거지모양으로 알몸갖고 괘주한 사람인데, 제아무리 지위높았던 자라 해도 망해서 괘주했으면 그 한 신세는 언녕 일락천장이 되고만건데, 사실이 그러하거늘 이쪽에서 중용하기전에는 일반새자와 하나도 다름이 없는건데.... 고험을 거쳐 사량팔주에 넣을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믄 것이다. 황차 진사해를 놓고보면 정말 변심하지 않고 눌러있을 사람인지 아니면 갈데올데 없으니 잠시 몸을 붙이자고 들어 온 사람인지 그 진가를 아직도 딱히 모르는판인데 그를 두령같이 떠받들다니 어디 말이 되기나한가.    그를 두령으로 치는 새자는 주의와 견책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사람 민호형하구 척지고 그러잖아.》   《너 조심해라.》    하진국이도 왕견이도 그가 만나자는게 이상스러운지 주의줬다.    민호는 어쨌든 가서 만나기로했다. 가지 않으면 겁쟁이로 볼것이다. 진사해가 설사 이쪽이 누구란걸 똑똑히 안다해도 감히 손쓰지는 못할것이다. 그 어떠한 사극(私隙)으로든 그로인해 혈투가 벌어진다면 량자 다가 좋은 결과가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있을테니.    중앙산채의 뒷마당에서 과연 진사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호가 나타나자 체구가 크고 강장한 그가 오만한 태도로 이쪽을 마주보는데 입가에서는 음습한 미소가 피여나고 있었다.    민호는 험상한 게뚜더기상면을 대하자 그자를 이 자리에서 당장 작살내고싶은 마음이 불붙듯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니는거요 자신은 험한 도전에 직면했음을 직감했다.    민호는 대방의 눈을 쌀쌀히 직시시하고나서 입을 열어 물었다.   《무슨일이요?…날 왜 찾았소?…》   《한가지 알릴일이 있어서.》    진사해는 건 가래를 떼고나서 어성을 한결 돋구었다.   《이 어른은 절대 구석놀음노는 량반아니야.》   《잡담제하구. 대체 무슨일이요?》   《간밤에말이야. 내가 위아가씨의 거실을 지나다가 희한한 일 하날 발견했네.》    개자식이 그건 어떻게 알구서 이러는거냐. 인제보니 네놈이 그일을 꼬리잡고 나를 궁지에 몰아넣자는 수작이구나. 민호는 그를 아느새 쏘아보다가 내뱉었다.   《비렬하게 노는군. 남의 뒷조사나 댕기구있어.》   《흘레를 하더군.》   《아직두 말을 못배웠어. 그건 너같은 짐승이 하는걸 보구 말하는거다.》    진사해는 낯이 붉어지더니 눈알을 곤두세웠다.   《이자식아, 도적짓하구서두 이래?》    민호가 도도히 맛섯다.   《그런일은 그렇게 하는거야. 무슨 짐승이라구 남앞에 내놓구 표연하겠는가.》   《허, 자식이 입이 굳다.》   《키꼴값하겠거든 좀 똑똑히 놀아라.》    민호는 역겹다고 땅에다 침을 탁 뱉어놓고 돌아섰다.    지모가 있다는 진사해가 그만 실패하고말았다. 장평한테서 민호와 향란지간의 은사를 알게 되여 그것을 까밝혀놓으면 민호가 련적으로 되고마는 황보재를 무서워 주눅들줄을 알았는데 적수가 숙어지지 않았다. 결국 대방을 서뿔리 건드리고만것이다.     한편 민호는 도적이 매를 든다고 먼저나서서 자기의 꼬리를 잡는 이 비렬한 인간은 절대 순(順)으로 풀 원쑤가 아님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원쑤를 눈앞에 놓고도 어쩔수 없으니 결장터질 일이였다. 진사해야, 진사해야, 네놈이 내 안해는 어쨌느냐? 네놈을 없애치우자고, 원쑤를 값자고, 내가 이놈의 데에 남은건데…아아, 언제면 그 일이 성사될가?…     군자는 원쑤를 값는데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고 했더라 때가 오기를 더 기다리는 수밖에.          토비들의 주요한 활동이라는 것이 가마를 마스고 인질을 잡아오고 인질을 바꾸고 같은 류자끼리 의리를 지켜 도와주고 보복을 하며 묘동을 보내고 눈에 드는 작은 무리는 삼켜버리거나 합작을 하는데 그런것들이 다 순리롭게 되어가는건아니였다. 쟁반밟는 일 즉 정찰하는 것이 잘 안되여 작전이 실패하거나 관병들 손에 녹아날수도있으며 다른 패거리와 충돌이 발생해 피를 흘릴 때도 가끔있다. 이럴때면 왕왕 한 류자무리의 운명을 결정짓군하는 것이다.     략탈자의 락이란 곧바로 략탈이였다.     요즘 또 가마마스러 나갔던 한패의 류자들이 돌아왔다. 이번 매매는 순리로왔다니 계획한 일이 성공했다는 소리다.    백두옹 량태의 장악하에 산채의 후근에서는 소 한 마리와 돼지 두 마리를 잡았다. 환락에 잠긴 산채는 또다시 명절기분이 되었다.     류자들의 자작한 노래가 산간에 울리였다.                          류자되면 즐거웁네                             말타고 가마마스면                             술생기고 계집도 생기네                             선인악인 따로있느냐                             희비애환 마찬가질세                             말가는데 소도 가듯이                             인생길은 한가지일세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질 술상이 벌어졌다. 집안에서도 집바깥에서도 군데군데 모여 앉았다. 술이 좀 얼근해지자 벌써부터 여기서도 저기서도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게사니가 제 청을 자랑하고 시위나 하듯이 목주래를 곤두세워가며 권주령(勸酒令)을 불러댔다. 그래서 대방을 곤죽되게 만들면 그것이 승리였고 즐거움이였으며 기쁨이기도했다.     민호가 있는 동남쪽의 산채도 다른 산채들 모양으로 조용하지 않았다. 류자노릇을 제대로 하자면 첫째는 배짱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형제간에 좀스럽지 말고 너그러워야 하며 셋째는 손이 독해야 하고 넷째는 색에 미치지 말아야 하며 다섯째는 술마실줄을 알아야 한다. 민호는 아직 손이 독하지 못할 뿐 그외의 네가지는 기본상 표준에 도달한 셈이였다.     온 산채가 더운날 비온후 논판에서 악마구리끓듯했다.     민호가 자기는 술먹이기시합에서도 왕이라고 꽝포를 놓고있는 왕견과 마주앉았다. 그가 그와 한창 술먹일 내기를 하고있는데 능구렁이 담장넘어오듯 황보재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상판이 벌개진걸 보니 술이 웬간히 잘된 꼴이다. 그의 손가락에는 전보다 금가락지 하나 더 끼여져 반짝거렸다. 바다는 메울수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못메운다더니 속담그른데 없다. 그게 아마도 이같은 작자를 놓고 하는 말인가싶었다. 보재(寶才)라는 이름만봐도 벌써 남과는 달랐다. 절대 적빈여세(赤貧如洗)할 팔자는 아닌가보다. 어려서부터 제 부모한테서 장차 크거들랑 꼭 부자되라는 그 하나의 교육만을 궂이 받아 재보라면 걸신들린 돼지같이 탐욕을 부려왔을거다. 그러한 그가 이번 출전에 공을 세웠다고 한다. 부호를 들이치고 수색했지만 손에 넣을것이 적은 것 같으니 바로 이 황보재가 손을 폈다는거다. 그는 주인의 애첩을 붇잡아 우선 발가벗겨놓았단다. 그래놓고는 칼을 음도에 대고 찌르겠다고 위협해서 끝내는 깊숙히 감쳐둔 보물들을 알려주게 했다는가… 그가 염왕산의 악사(惡事)를 또 하나 만들어낸 것이다.      한데 이 자식은 왜 왔느냐. 민호는 속이 섬찍해남을 어쩌는 수 없었다. 이 자식이 나와 걸고들려구왔구나. 아마 진사해녀석이 추겼을테지…그가 온 리유를 눈치채지 못할 민호가 아니였다. 자칫하면 벌어질 수 있는 혈투를 피면키위해 웬만해서는 먼저 감정을 내지 않으리라고 그는 마음먹었다.    《여보게 고려사람, 나두 한축끼는게 어때.》     황보재는 악의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지어 낯에다 웃음까지 바르면서는 제법 소탈한양 말을 걸어왔다.    《난 자넬 꼬리방즈라구 안놀렸어. 그러니까 나까지 밉게 볼거야 없잖아… 그리구 사실은 우린 다가 한형제간인데 의기상투해야지 안그래. 같이놀아보자구. 오늘은 유달리 즐거운날인데…다른 의미는 없어. 나하구 한 번 통쾌하게 몽두춘해보자는 것 뿐이야.》     웃는 낯에 침뱉겠는가. 민호는 그를 쫓아버릴수 없었다.    《여! 민호동생 그만하지. 반강자를 아마 두사발두 더 마신거같은데…그리구 이 사람 보재! 자네두 그만마시는게 좋잖을가. 더 마시겠거든 다른 누구하구 마시든지.》     그의 래의가 심상찮음을 눈치챘는지 왕견이 좋은 말로 물러가게하려했다.     이쪽은 그따위 권고쯤은 개방구로 여겼다. 순순히 돌아갈 보재가 아니였다. 그는 어때 자신없는가 하면서 민호를 깔보았다.    《아산이 깨어지나 평택이 무너지나 백산이 무너지나 동해수 메어지나! 젠장 어디해봐!》     취중무천자(醉中無千子)라 술기운에 담이 커질대러 커진 민호는 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야 이자식아 네놈의 눈엔 내가 그리두 허깨비같아뵈이냐 하고 한마디 더 웨쳐대고나서 손짓으로 왕견을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다 보재를 앉혔다.     황보재가 앉자마자 둘사이에는 겨룸이 곧 시작됐다.                    《당조일품경(當朝一品卿)》                    《량퇴대화료(兩腿大花蓼)》                    《삼성고조사계도오경(三星高照四季到五更)》                    《륙합륙동춘(六合六同春)》                    《칠교팔마구안도화료(七巧八馬九眼盜花蓼)》                    《십전복록증(十全福綠增)》                    《타개창호선(打開窓戶扇)》                     《명월조당공(明月照當空)》       주령소리 사납게 높아가자 구경꾼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사해의 추김을 받은 보재였다. 제 각시로 만들려는 아가씨를 감히 홀쳐내다니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는구나 하고 민호를 욕해온 보재였다. 그는 문득 나타난 련적을 이갈리도록 증오하다가 이 기회에 한 번 단단히 제독을 주자고 거는 판이였다. 워낙 술시합재간있고 벗바리가 좋은지라 신심이 컸던거다.     쌍방은 몸을 솟구쳐 찍어박듯 하면서 게목을 찌르니 짜장 투계장에서 두 수탉이 결사전을 벌려놓고 피투성이로 되어가는 꼴이였다. 겨룸은 그토록 치렬했다. 둘다 비슷한 체대에 만만치 않았다.     한데 시간을 끌수록 생각밖에 민호보다 보재가 점점 지는 차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장난꾼 몇이 에워싸고 그를 부레끓게 만들었다.     보재는 점점 자제력을 잃기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벌주를  더 많이 마신 그가 꼭그라지고 말았다. 워낙 술을 민호보다 적지 않게 마셔서 취기가 있는데다가 넌 조선놈이야 아무렴 네깟녀석이 나를 당할소냐 하면서 얕잡아보고 접어들었다가 끝내는 남들이 벅작고우는 조롱속에서 어디론가 들려갔다.     민호도 꼭그라지고 말았다. 다만 몇초간 더 벗텨냈을 뿐이지.     지고야 분해서 어떻게 참을가. 악의적인 야심은 하늘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을것이다. 민호가 이같이 생각했더니 황보재는 이틑날 저녁켠에 술이 깨자 과연 다시찾아왔다.     민호역시 그때까지 술기운이 가셔지지 않아 정신이 채 맑지 못하고 흐릿한 상태였다.     그러한 그의 앞에서 보재는 악의품은 정중한 선언을 했다.    《우리 한번 내기를 더하자!》     민호는 자기앞에 다시나타나 집작거리는 대방을 덩둘하니 쳐다보면서 엉성하게 웃었다.    《시합을 말인가?》    《그래. 시합을 또 하잔말이다. 이번에는 좀 무사답게.》    《어떤 시합을?》    《뽐창던지기를 해보잔말이다.》    《뽐창던지기를?》    《그렇지. 듣자니 거기서두 그건 안다메. 웬간해서야 그런 소릴 안하는게지. 어때? 거리는 십보. 모두 다섯 개를 뿌리되 작대기를 세우듯 한일자로 쭉 내리긋잔말이야. 어때?》    《그렇게 하잔말이지…》    《그렇지. 그래서 누구든 다 그렇게만 하면 피장파장이 되니 평 으루 치구 내기를 그만두자구. 어때?》    《그렇게 하잔말이지…》    《그렇다. 시합해서 내가 지게되면 네가 내 귀를 한짝 베버리라. 그래서 날 병신으루 만들란말이다. 어때?》    《내가 널 병신으루 만들라 그 말이지…》    《그렇지. 병신으루 만들란말이야. 그리구…》    《그리구 내가 지면?》    《간단하지. 내가 너의 자지끝을 베놓겠어. 길게두말구 말랑말랑한 고 끄트머리만 살짝. 그거야 그래두 남눈에 띄이질 않는게 아닌가. 어때? 시합은 다음달 이날에. 그렇게 정하는게 어때?》     이건 장난의 소리아니였다. 악의와 야심이 꽉 찬 그놈의 속창을 누가 모르랴. 랑아야심은 끝내 드러나고야 만 것이다. 자기가 그처럼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증오해 오던 그것을 폐품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울분을 풀어보자는 황보재!     민호는 이가 갈리였다. 뽐창이 생소한건 아니였다. 전에 의렬단에 있을때 테로를 목적해 권총사격과 비수다루기를 련습하고는 뽐창뿌리기도 부지런히 해서 기교를 일정하게 장악한 그였다. 하지만 시합에 나가기는 어려운 정도였다. 제 자신에도 재간이 시원치 못함이 알리는데 오늘 이런 피치못할 경우를 당할줄이야.     제길할거, 뽐창뿌릴줄을 안다고 소문낼건 뭔가. 그런 자랑은 하등의 소용도 없는건데. 그토록 조심하노라했건만 쓸데없이 입을 놀린 자신이 민망했다. 어쩐다, 뽐창재간이 저자만은 못한게 뻔한데?…그렇다고 내 스스로 주눅잡혀 기를 꺾어버릴건가. 도전을 피하면 그때는 투항하고마는 것으로 되잖는가. 겨뤄도못보고 손들다니?…그것은 죽기만 못하게 자존심이 꺾이는 일이였다.     《할려면해봐!》    《좋다!》     황보재는 목적이 당장 이뤄지는것만 같은지 벌씬 웃으면서 대방의 어깨를 툭 쳤다.    《아니 너 미치지 않았니!》    《그치하구 뽐창시합을하다니 원!》     왕견과 하진국은 이 일을 알자 십중팔구는 민호가 지고말것이요 그러면 틀림없이 잘못된다면서 펄쩍 뛰였다.    《어쩌겠나 그럴 수밖에. 보복이 무서워 물러설수야 없잖은가.》     이러면서 민호는 두 친구보고 소문이나 내지 말아달라했다.     한달사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신을 발딱차리고 련습해야했다. 반에 뽐창갖고있는 새자가 있어서 민호는 그들로부터 즉시 다섯 개를 빌릴 수 있었다. 그래서는 언젠가 포토우한테 사격검사를 받던 사격장으로 갔다. 거기에 오그라진 양푼을 걸어놨던 나무를 과녁물로 정해놓고 그는 련습에 달라붙는 수 밖에 없었다.     운명을 거는것과 무엇이 다르단말인가.     그야말로 불티나는 고역과도 같은 수련이였다.     민호는 침식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밤에도 강심먹고 달려들어 희미하게 보이는 나무를 향해 걸쌈스레 뽐창을 뿌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쩌는가. 보복의 칼날이 펀펀한 자신을 페인으로 만들어놓게 할수는 없잖은가.     두 친구가 도와나섰다. 그러나 뽐창다루는데 들어가서는 그들의 재간도 그만 별로 나은 것이 못돼서 련습은 지지부진이였다.     긴장은 신경을 오리오리 일으켜 세웠다. 공포가 등골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떨어버릴 수 없는 조급증은 간장이 바질바질 타들게 만들었다.        바로 이런때에 향란이가 나타났다. 그녀는 민호가 여러날 보이지 않아서 찾다나니 여기로 온거다.    《어머! 난 또 왜 안보이나했더니…》     그녀는 여념없이 뽐창뿌리기에만 몰두하고있는 민호를 발견하고 경아했다.     온 정신이 그 하나에만 빨려든 사나이는 녀인이 몸가까이에 이른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에 화딱지난 녀인은 불현간 목청을 세워 야멸스레 투정을 부렸다.    《여봐요, 그놈의 뽐창에 갑작정붙었나요.》    《아가씨구만! 여기룬 언제?…》    《내가 언제온줄도 모르니 정말 인사불성이네요.》    《내가 인사불성이라? 하하하…》    《웃으면 단가요. 날 좀 동무해줘요. 서산골에 가보자요.》    《아가씨 미안합니다. 난 그럴 겨를이 없어서.... 정말입니다.》    《뭐라구요? 벌써 그렇게 됐나요?》     자기를 매몰차게 저버린것같아 향란이는 눈살이 곧아졌다.     마침 이때 진국이와 왕견이 와있었다. 그들은 녀인이 독이 나 풀풀거리는 모양을 보고 하하 웃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민호가 보재와 뽐창시합을 하게 된 연유를 알려주었다.     향란이는 그 소리를 듣고나서 저으기놀래여 낯색까지 질리더니 보재를 욕했다.    《비렬한  자식!》     그녀가 뽐창뿌리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향란이는 쌍수도(雙手刀)와 쇠채찍(鐵鞭)을 다루는 외에 무림세가(武林世家)의 딸이였던 어머니한테서 전수받은 특기 하나가 더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뽐창(手槍)다루는것이였다. 보재의 뽐창재간은 바로 그녀가 배워준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 재간을 비렬하게 이따위 앙갚음에 써먹다니 어디 될말인가.     도저히 묵과해버릴 일이 아니였다.            광음여류라 어느덧 두 사람지간의 그 문명스럽지 못하고 악의적인 무서운 겨룸의 날이 돌아왔다. 그런데 조용히 하자던 겨룸이 보재가 들어있는 산채로부터 소문이 새여나온통에 그만 위두령과 사량팔주를 내놓고 염왕산의 류자 거의가 알게 되였다. 이것이 련적지간의 대결이라고 점찍은것도 물론이고.     정해진 장소는 남산기슭이였다.     량쪽 다 감적관이 나왔는데 저쪽은 서은괴고 이쪽은 왕견이였다. 그리고도 수백쌍의 눈이 감적(監的)하는판이다. 그들은 승패를 겨루는 당자들의 감정도착(感情倒錯)을 저마끔 근떠보면서 얼굴에 각양의 표정을 내발랐다. 짝짝궁이가 벌어졌다. 속이 간지러워 죽을지경이 된 어떤 새자들은 귀가 떨어지나 자지떨어지나 잘 보자면서 떠들기까지 했다.     신심이 고무풍선같이 부풀어 오른 보재의 얼굴에서 적수를 얕잡고 멸시하는 거만스러운 빛이 력력히 내비쳤다.     흥분과 소란이 한데엉켜붙고있는 피의 대결장!     누가 먼저뿌리고 누가 후에 뿌려야 하는가?  둘은 선후를 정하는 제비뽑기를 했다. 결과 민호가 먼저나서게되였다. 보재가 먼저뿌려야 좋겠는데, 그래야 그걸 보고 내가 자신의 단점을 다잡을건데 …민호는 긴장감에 가슴떨렸다. 방법없다. 이 역시 운명을 희롱하는 그 무엇의 작간인데야.    《자, 시작해보지!》     적수의 감적관 서은괴의 독촉이 떨어졌다.     벌써 면밀히 짜고 들었는지 숨돌릴 틈도 주지 않았다. 민호는 숨을 크게 들이그어 자신을 진정시킨 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 시각 팽팽해지는 긴장속에 수백쌍의 눈이 구령이라도 받은 것 첨럼 일제히 자기 한몸에 짐중되고있음을 전신으로 감각하면서 그는 자기가 서야 할 자리에 가 정립했다. 그리고는 뽐창 다섯 개를 꺼내여 손에 거머쥐였다.     이럴때 향란이가 유유히 나타났다. 그녀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여 민호가 용기와 신심을 북돋우게 했다.     민호는 목표물을 똑바로 노리면서 정력을 집중했다가 돌발적  인《앗!》소리와 함께 과녁을 향해 힘껏 뿌렸다.     그의 손바닥을 일제히 벗어난 뽐창들은 날파람소리를 쌩ㅡ내면서 날아가더니 일직선으로 나무에 쭉 내리박혔다. 뽐창과 뽐창사이의 간격도 똑 같게.   《야!ㅡ》    류자들은 일제히 탄성을 올렸다.    다음은 보재차례였다. 그역시 민호처럼 뽐창을 뿌렸다. 그런데 그가 뿌린 뽐창 다섯 개중 마지막하나가 주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나무에다 자리만 약간 남기고는 그만 아래로 잘랑 떨어지고말았다.   《와!ㅡ》    온 산채가 떠나갈 것 처럼 들썽하게 고함이 터졌고 신심포만헀던 보재의 밝고 거만하던 낯은 단통 흙빛이 되고말았다.      
406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1) 댓글:  조회:2701  추천:0  2015-02-03
                             11                민호는 접침을 만들려고 피나무토막을 얻어다 대패로 밀었다. 왕견이 어디에 나갔다 돌아와갖고 보더니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면서 바스음을 뽑았다.    《어이구! 이 동생은 또 무슨 도깨비깎개질이야.》        《도깨비깎개질이라니. 접침만드오.》    《접침이라. 너도 그런 손재간있었는가?》    《사람을 알기는…》    《어 그래. 내 잘못했다. 제꺽 절할가.》     아닌게아니라 왕견은 제꺽 엎드려 떡판같은 궁둥이를 하늘로 올렸다. 여럿은 그 모양을 보고 우수워죽겠다고 배를 끌어안았다.     민호는 손에 쥔 대패로 그의 엉덩짝을 짝 때렸다.    《왜 이 추태요?》    《이쯤하면 무슨 뜻인지 모르겠냐?》    《오 하하하!… 알만하오. 내 왕형두 하나 만들어주지.》     허리펴고 일어난 왕견은 기분이 사뭇좋와갖고 가래짝같은 손으로 민호의 어깨를 다독이였다.    《그럼 그렇지! 난 동생이 눈치빨라 좋아.》    《나역시 왕형은 통쾌해서 좋소.》     민호도 기분좋게 그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는 실답긴하나 때로는 우둔스레 노는 그를 한 번 슬까스르고싶은 기분에 지나간 검불을 들췄다.    《왕형! 그런데 듣자니까 고약한 짓 잘했더구만. 남의 참외밭에다는 왜 심술을 부렸더랬소?》    《내가? 하하하…그런일 있지! 있었어! 그래두 난 아주 영 나쁜놈은 아니라니까.》    《나쁜놈아니라.... 》    《그래 그렇잖구. 정말이야. 거짓말이면 벼락맞겠어. 언젠가는 내가 쟁반밟으러 나갔다가.... 사흘굶은 호랑이 쥐새끼를 가릴가…큰기와가마아니래두 하날 고르자구했지… 그땐 염왕산도 좀 째째하게 놀았어. 그래서.... 》    《그랬겠지. 내내 호걸답게만 놀았을가. 그래서?》    《그런데말이야. 기와가마를 하나 찾아내여 안으루 들어가자구보니까 마당에 관채가 놓여있데. 마침 그 집은 상중이 아니겠나. 상주가 애고대고 어찌두 섧게 우는지 옆에서두 다 눈물이 날지경이더란말이여. 상가에 돌던지는 놈은 망종밖에 없어. 망종이래야 그따위짓을 하지. 그래 내가 어쨌겠나. 잖아 그래내가 에라 이럴 때나 맘을 후히 써보자 이러구는 아예 내돈 주머닐 다 털어주고 그만 돌아와버렸던거네.》    《그게 정말입니까. 정녕 그렇게 했으면야 왕형두 목석은 아였던 걸! 속담에 던데 이제보니 왕형은 불상이 될 감이야.》    《그렇지만 난 지금두 아주 영 불상님으루 되고푼 맘은 없어. 건 왠가구?…생각해 봐. 그럴려면 난 이놈이 노릇은 아예 집어치워야할게 아닌가. 안그래? 사정은 바로 이렇단말이야. 》     그리고는 하하 웃었다. 솔직한 내심발로였다. 왕견은 잠시 말을 끊고는 대방의 심기를 졈쳐보는 것 같더니 입을 다시열었다.      《내 옛말 하나 해줄가.》    《해보우 어디 들을만한겐지.》    《들을만해. 정말이야. 진짜루…내한테 친구하나 있었지. 지주집에서 머슴질하는…면양보다 더 어질구 순한 애였어. 거기다가 또 부지런하기란…그런 애가 지독한 겨울철이라 그만 된감기에 걸려 눕게됐지. 일어나지두못할 지경으루. 그런데두나 심보가 악착하기 야차보다 더한 지주녀석은 약써줄 념은 안하구 되려 걔가 꾀병한다구 욕하면서 일어나라구 잡아끌지를 않겠나. 마침 내가 그 애를 찾아갔다가 그러는 꼴을 직접 목격했더랬어. 안봤으면 몰라두 어디 참을재간이 있어야지…그래 난 하구 욕했어. 그러니까 그놈이 글쎄 도끼눈을 해갖구 나를 찍어보잖겠나. 그러더니만 하구는 주먹질하더란말이다. 날 쫓아내느라구. 나도 가만있지를 않았어. 마침 거기 방구석에 울라신방망이 하나 있는게 보이길래 옛다 맞아봐라 하구 난 그걸루서 그 녀석의 머리통을 까서 묵사발이 되게 만들어놓고말았지. 그리구나서…지금은 보다싶히 이 노릇을 하게된거야.》     모두 사실이라면서 왕견은 그래 별호가 울라신방망이됐다했다. 그러고 보면 왕견이 비록 도툴없고 모지락스레 생기긴했어도 인간성과 의협심은 있는 인간이였다.     민호는 머리를 주억거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왕형은 과연 협객답소!》    《아니야. 왕견이 그러기는 했어두 아직 협객축에는 못들어.》     다른 목소리가 끼여들어 남의 말을 분질러놓았다. 민호가 넌 대체 누군가고 고개돌려보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주먹시합에 패하기만하고도 아직 불복하는 팽덕이였다.    그는 짐짓 정색한 상을 해갖고 민호의 평을 시정했다.   《여기 관동땅에서 진짜 협객을 꼽자면야 그래두 둘밖에 없지. 하나는 장작림이구 하나는 우리네 두령 위삼포야.》    개똥밭에 인물(人物)난다더니 신통한 일도 있었다. 3반의 새자들은 다가 팽덕의 말이 옳다면서 전해에 장작림(張作霖)이 중앙과 도전하여 동북3성의 련성자치(聯省自治)를 완성한 일을 옛날 영정(瀛政)이 6국을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공덕에 견주면서 영웅같이 떠받들었고 위삼포는 걸출한 협객으로 칭송하면서 자기들의 욕념을 노래로 엮어댔다.    《관동 삼성 패왕은 누구?》    《장작림일세.》    《장잦림이 누구냐?》    《그도 본래는 록림객이라네.》    《산밖에 장작림있고》    《산채에 위삼포있네.》    《농사를 지으려거든 벌방으로 가고》    《벼슬을 하려거든 산으로 와야지.》    《백년을 다 살아봤자 삼만륙천오백일》    《쓰거운 인생 누가 바랄가.》    《달콤한 인생 누가 싫을가.》    《현하주연 접배거상이요.》    《대원성취 시산혈해라네.》     민호는 부전조개 아귀맞듯 이네들이 엮어대는 구술에 탄복하기도 놀래기도했다.     글을 읽었다는 민호도 모르는 현가주연 접배거상(弦歌酒宴 接杯擧觴)이란 대체 무슨뜻일가? 이건《천자문》에 있는 구절인데 뜻인즉 거문고타고 노래하며 주연을 벌리고 잔과 잔이 쉴새없이 오간다는 것이니 인생향락을 말하는것이요 그 아래의 구절은 《천자문》의 것이 아니였다. 뜻인즉 바라는 바를 이루자면 시체가 산이 되게 하고 피가 바다되게 해야한다는것이다. 한즉 이는 살인을 도락으로 여기는 잔인한 토비들의 철학을 적라라하게 들어랜 것으로 된다. 개의 입에서 상아를 꺼낼 수 없고 남색물감통에서 흰천을 꺼낼수는 없듯 이자들의 배속에 인자가 있다면 과연 성불(成佛)할 것이다. 생각하면 비록 류자의 준칙으로 세운 10계률로 인간의 자비를 강조하고 억강부약(抑强扶弱), 살부제빈(殺富濟貧)의 구호와 기발을 내들긴했지만. 어느덧 이러한 무서운 도적들과 휴척을 같이하는 신세로 돼버린 것이 스스로도 과연 끔찍스러운일이기도했다.          어느날 대머리 포토우가 3반산채로 와갖고 찾길래 민호는 잡념을 집어치우고 그의 앞에 나섰다.    《분자를 가져오게.》     민호는 명령대로 바당에 일렬로 세워놓은 여러자루의 총중에서 자기의 것을 가져다 그의 앞에 내놓았다.     포토우는 유저를 재껴보고 총신도 검사하더니 물었다.    《발급한 이백발 퇀한은 다 쏴봤는가?》    《아니요.》    《몇발남았나?》    《두발밖에 안쐇습니다.》    《뭐라구?》    《한발은 총신이 곧은가구 쏴보고 한발은 묘준이 잘되는갈 보느라구 쏴봤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여직 실탄련습은 안해봤다는건가?》    《탄알을 아끼느라 그랬습니다, 셋째형님!》    《아낄걸 아껴야지. 날 따라와. 탄알 한배짐 재워갖구.》     포토우는 자기의 명을 함부로 거역하는 이 고집통의 조선젊은이를 한번 단단히 가르칠잡도리였다.     그와 한반의 류자들은 거개가 민호가 실탄련습을 하지 않은일로해서 욕을 볼것같아 근심해서 나섰고 다른반의 류자들은 그러잖아 오락거리없어 무척이나 심심하던차라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좋와나섰다.      그들은 산채의 서북켠으로 갔다. 이전에 산채를 지으면서 주추돌과 바닥을 펴느라 돌을 캐내여서 가파른 벼랑이 된 거기는 이네들의 사격장이였다. 류자들은 평시도 심심풀이로 여기에 오군한다. 하여 여기서는 총소리가 자주난다. 그런데 이 젊은 조선류자는 여기와서 하라는 실탄련습도 안했다니 말이 되는가.     남이 망신하는 꼴을 재미로 구경하고펐던 동반의 새자 왕은경이 어느새 오그라진 양푼을 주어갖고와서 까불댔다.    《셋째형님, 헤헤헤…이걸 맞혀보라구하십시오.》     포토우가 시켰다.    《저기 저 가지부러진 나무가 보이지. 게다가 걸어놔라!》    《예, 그럽죠.》     왕은경은 주인손에서 훈련을 잘받은 개같이 쫑그르르 달려가더니 오그라진 양푼을 걸어놓았다. 기껏해야 50여보의 거리였다.     민호는 장탄한 총을 들고 대머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쏘랍니까?》    《맘대루해. 앉든 서든.》     민호는 선자세로 총을 갈겼다.     오그라진 양푼이 탄알에 맞아 구멍나면서 날아나버렸다.    《맞혔구나!》     류자들은 탄성을 올리기도 떠들기도했다.    《다시쏴봐.》    《과녁이 너무크다.》    《소경이래두 맞힐 수 있는 거리야.》    《저기 저 거리에다가…》     이번에는 민호가 면목모르는, 다른 반의 새자녀석이 달려나가더니 그 오그라진 양푼을 찾아쥐고서 꼴보기싫게 놀았다. 그 녀석은 포토우가 시키는대로 보(步)를 재면서 근 100여메터를 가더니 손에것을 한 나무가장귀에 끼워놓고는 다 됐다고 손벽쳤다. 사격거리가 곱으로 멀어졌다. 모두의 눈들이 민호를 보고있는데 네가 저걸 맞힐만하냐고 묻고들 있었다.     포토우가 가늠하는 눈매로 민호를 한 번 훝고는 입을 열었다.     《어때 자신이 있는가?》     왕견이 바싹 다가와 민호의 옆꾸리를 쿡 찔러놓곤 귀속말로 충고했다.    《자신없거든 쏘지말어. 괜히 저녁굼을라.》     사격검사때 헛대답을 하면 솔직하지 못한 벌로 한끼 밥을 먹지 못한다. 이건 포토우가 따로 정해놓은 법이였다.     민호는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으니 그깟 저녁 한끼쯤 건너는건 별문제아닌데 총을 쏴보지도 못하고 기권하면 그때는 남의 웃음가마리로 되고마는지라 쏴보지요했다. 류자들은 모두 눈길을 날려 그를 보았다. 더러는 관심하는 마음에 초조한 불안이 담긴 얼굴이였고 더러는 꼴이 어떻게 되는지 하회를 보자는 간지러운 웃음이 그믈그믈 피는 얼굴이였으며 더러는 비웃음이 발린 차가운 얼굴이기도했다. 네가 그걸 맞히겠다구 하면서 콧방구를 힝 뀌는 자도 있었다. 사태가 이러니 명중만 못하면 어쨌든 불명예스러울것이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한 순간이였다.     포토우는 이번에도 사격자세는 제마음대로 택하라했다.     자신이 있으면 용기는 나는거다. 민호는 오른쪽무릎을 꿇고 왼쪽무릎은 세워 반은 앉은자세를 취한채 두손에 총을 받쳐들었다. 그리고는 안정하면서 혼신의 시력을 다 모아 묘준을 했다가 방아쇠를 당겨 질끈 갈겼다.    《땅! 》     총소리 울림과 함께 이번에도 오그라진 양푼이 날아났다.    《명중이다!》    《엉!?…》    《인제보니 영 생뚜기는 아니였구나!》     류자들은 아까보다 탄성을 더 올리면서 떠들었다.     포토우가 만면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가득담은채 민호의 어깨를 다독이였다.    《됐어! 됐어!… 건데 그런 사격술은 어디서 배운건가?》    《따로 배운적은 없습니다만 총은 더러 쏴봤지요. 전 여기로 오기전에 한동안 사냥을 다녔거든요》    《오, 그래? 그럼 그렇겠지!》     포토우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민호는 사격술은 과시했지만 자신의 독립군신분은 감추었다.     한데 이때에 하나의 유감이 후련해야 할 가슴에 맺혀지고 있었다. 포토우의 검렬을 무사히 통과해서 웃름거리는 면했으나 한반에서 형님동생하며 지내던 왕은경이 눈꼴사납게도 놀아댄 그것이였다. 그 자식 안팍이 그렇게 다른놈이였던가.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버릇을 떼야지. 당장 한매 쥐여박아주고싶지만 그래놓으면 로골적인 보복으로 되길래 민호는 그러지 않고 생각을 굴린 끝에 우락부락하는 왕견을 든장질했다.    《왕형은 인제보니 거 동생을 잘뒀데.》     비꼬는지라 왕견은 눈살을 찌프리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어버렸다.    《은경이말인가. 걘 내 친동생아니구 사촌동생이야.》    《사촌이래두 그렇지. 근본이야 한종자아니요. 그게뭐요. 사람의 새끼같잖게 홀랑거리구…아무리봐두 그놈의 종자는 새씹으루 빠진거같애.》    《너 뭐라니?》     왕견은 단통 도끼눈을 부라렸다.     그러건말건 민호는 쓰게 웃고나서 우엉을 깠다.    《난 은경이를 놓구말했지 왕형을 욕하는건 아니였어.》    《그래두 그렇지. 종자, 종자, 말끝마다 종자니 결국은 그게 나까지 겯들어 욕하는게 아니구 뭐야.》    《참 그렇게 되는가.》    《제길할, 저놈의 새끼같아나 내가.》     사촌동생때문에 자기까지 애매하게 된욕을 얻어먹었다고 여긴 왕견은 골이 대단히 나는지라 선불맞은 멧돼지같이 화닥닥 자리차고일어났다. 그러더니 저쪽으로 씽 가서 한창 주사위놀이에 정신팔고있는 제 사촌동생의 뒷덜미를 잡아일으켜 다짜고짜 뺨때기를 불이 번쩍나게 갈겼다.    《너 이자식, 아까 그게 대체 무슨짓이냐. 너 아니믄 양푼주어갈 놈 없더냐. 왜 그리두 못나게 납닥쳤느냐, 이자식! 너땜에 애매한 나까지 욕먹는다 욕먹어!》     왕은경은 자기가 사격장에서 잘못놀아댄게 빤한지라 매를 맞고도 찍소리못했다.    《이자식, 너 다시 한 번 그렇게 놀아봐라. 아예 부해(물)도 못먹게 검질해치우고말겠다.》     왕견은 이같이 제 사촌동생을 족쳐놓고는 끓어난 열물을 식히느라 밖으로 씽 나가버렸다.     하진국이 처음부터 말없이 보고만있다가 뒤를 따라나갔다.    《쩌, 쩌, 왕형은 그저…성미가 너무불같아 탈이란데두. 말루해두될걸갖구서…하기는 은경이가 매맞아싸지만두. 내 말이 틀리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그는 왕견을 나무리는척했다.     왕견은 자기와도 사이가 괜찮은 하진국앞에서 그 어떠한 사정에든 앞으로는 민호를 감정상하게 말아야한다, 자기는 그를 의연히 믿고 좋와한다고 말했다. 하진국의 마음과 같았다.          염왕산류자들가운데 민호의 이번 사격표현으로 인하여 특별히 전률을 느낀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진사해였다.    《그 자식이 포수질까지했다지…틀림없어!》     그는 입에 물었던 담배까지 뱉어버리며 중얼댔다.     가철군은 전부터 민호의 얼굴이 기억난다고했지만 진사해는 웬 영문인지 전혀 기억나주지를 않았다. 민호가 잃어버린 제 허저인안해를 찾아헤매다가 여기로 들어 온 사람이란 것은 그가 여기에 괘주를 하던날 황보재한테들어서 알게된거고 얼굴은 후에야 똑똑히 본 것이다. 사양실앞에서 마찰이 생겨 서로 권총을 빼들었던 그때 진사해는 이 녀석이 혹시 가철군이와 내한테 각시를 랍치당한 그 조선독립군청년이아닐가 하는 생각이 불쑥났었다. 그러니 속이 편안할 리가 있는가. 들어보니 성명은 완전히 다르지만.     진사해는 여러모로 생각을 굴려 본 끝에 끝내 그의 신원을 똑똑히 알아보리라 맘먹고 산채를 나갔다온거다.     진사해는 전부터 체포령이 내린 토비라 지금도 눈에 불을 켜고찾을것만같은 정부군에 붙잡히울가봐 겁나서 동강이나 무원일대에다는 발을 감히 들여놓지도못하고 여기에 오기전에 내내 숨어지냈던 송화강중의 한 섬인 오동하에 가보았다. 그런데 그사이 거기에 있어야 할 가철군이도 츄얼이도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진사해는 헛걸음만팔고 되돌아온거다.     전에 따지고 물었을 때 츄월이는 제 남편은 성이 김씨고 이름은 해룡이라 알려주었다. 그래서 진사해는 지금까지도 그것이 그녀남편의 진짜이름인줄로만알고 있었다. 깜냥있는 계집인데 그래 제 남편이 잘못될가봐 살짝 거짓말을 할수도있는게 아닌가. 내가 왜서 그쯤한것도 미처생각못하고 있었던가. 진사해는 이제와서야 소견머리짧다못해 어리석을 지경 불민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자조하면서 가슴답답하게 올리미는 쓰거운 열물을 삼켰다. 김해룡이라건 정민호라건 성명이야 어떻던간에 이제와서는 그것이 한사람인것만은 틀림없다고 그는 단정했다.    《틀림없어. 저녀석이 동강아문의 기병대에 들어 우릴 넋살통먹인거야… 저런놈들 손에 녹아나지만않았어두 내가 이렇게 까지 비루먹은 개모양으루는 되지 않았을건데.》     진사해는 가슴떨리는 울분에 이를 갈았다. 저 조선놈이 내 뒤를 밟아 여기까지 들어온건 아니지만 우연일수있다. 이건 원쑤가 면바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격이야. 그리구 이것이 사실이면 저녀석은 언녕 나를 알아보고 속에 칼을 품어왔을것이다. 꼭 그럴거다. 하니까 어쩐다?… 원쑤가 한배에 올랐으니 위험천만한 일. 내가 겨우살려낸 명을 여기서 저놈의 손에 잃지나않겠는지… 액운이란건 때가 없이 떨어지는거니까. 어쩐다?…에잇, 피똥이나 싸다가 늘러질 등신아. 네가 어느때부터 이런 겁쟁이루는된거냐, 창피스레. 진사해는 자신의 불길한 련상을 집어던졌다.     민호의 신원을 내가 똑똑히 알아보고 대처해야겠다. 그런데 그걸 누구하고 알아본다?…그렇지! 마치 질식해 숨넘어간 사람모양으로 어둡게 죽어가던 진사해의 얼굴빛이 확 밝아졌다. 민호와 같이 있는 류자반장인 그 허저인 위진이 떠올랐던거다. 고태자에서 제 혈족 40여명이나 참살당했건만 자기를 따게 보지 않는, 정확히 말해 민족복수도 모르고 무감각해진 그런 인간쯤이야 얼마든 주물러 제켠에다 세울재간이 있었다.     죄를 지은 자 자유롭지 못함은 두려움이 앞서기때문. 저려나는 발은 자기대신 걸어줄만한 노복을 찾는것이다. 진사해는 언녕부터 자기를 따르면서 종처럼 말을 곰상곰상 들어줄만한 새자를 하나 구하려했으나 그일이 아직까지 여의치 않았다. 조심해야했다. 자칫의심스레 보여 위삼포이 눈에 날수있는 것이다. 하여 그는 염왕산에 들어와 괘주한지 거의 한해가 되어오는 오늘까지도 겨우 2련 3패에서 우두머리질하는 서은괴를 조심스레 친해놓았을 뿐 사량팔주는 물론 련장급의 류자와는 사교(死交)를 맺은이라곤없다. 황보재는 총명하거니와 담력이나 무예가 다 간단찮은 발군이건만 웬 영문인지 일자반급도 못하고 있는 신세니 비록 위용강이와 가깝게지내긴해도 보통류자나 다름없고 후근마사의 장령감역시 류세가 많지만 원로급이 아닌 일반류자니 아무때건 죽게되면 향 몇가치만 태워주고 황지 몇장 뿌려주면 고작일 인물이다. 이런자들과 각근히 친해서는 의심도 미움도 사지 않을 것이다. 패장(敗將)이니 과거의 용맹을 어떻게 자랑하랴. 그러기만하면 남의 빈축이나 사기쉽다는것쯤은 알고있는 진사해였다. 하지만 그래도 제 울적한 심정을 하소할데가 있고 그것을 다소나마 귀담아 들어주고 리해하며 동정해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겠기에 우선 그 몇을 사귀여놓은 것이다.     사격장에서 민호의 사격검사가 있은 이틑날 오후 진사해는 또 전날처럼 후근마사의 사양실을 찾아갔다.     장령감이 예나다름없는 석쉼한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몽두춘(술) 하려우?》    《해얍지요. 몽두춘안하구야 내같은게 무슨멋에 살겠수.》    《이 사람아, 오늘은 상이 왜 그래?》    《령감, 남의 상을 잘보오만 제 신세는 왜 무쪽같이 오그라들었소. 그따위 듣그러운 소리는 말구 안주있거든 얼른 내놓기나하슈. 그러는게 나한테는 더 반가우니까.》    《아따, 이 사람이 고기가 있어야지.》    《없다구요?》    《없네, 없어. 나두 그런건 이틀째나 이새에 끼워두못봤네.》    《아따, 거야 가져오면 얼마든 될걸 갖구서 그러네. 나리들 잡숫던거있겠지요.》    《아니 이 사람, 뭐라? 자네두 이제는 그런걸 찾어?》     장령감은 자못 놀라운 양. 주름많은 얼굴에는 감추지 못하는 조소가 그믈그믈 피여오른다. 량반은 얼어죽어도 겨불은 안쬐고 굶어죽어도 남먹던 턱찌끼는 안찾는다던 진사해가 아닌가.     진사해는 시설떠는 그가 민망해 힐끈 치떠보곤 입을 다물었다.      어서 말이나 곰상히 들어달라는 무언의 독촉이다.     장령감은 밖으로 나갔다가 마침 중앙산채에서 나와갖고 서쪽  의 식당산채로 가고있는 한 새자를 소리쳐불렀다.    《여! 장평이냐? 여기 좀 왔다가거라!》     저쪽은 장령감의 목소리를 잡아듣고 달려왔다. 중키에 탄력있는 단단한 체구, 갸름한 얼굴에 정기도는 부리부리한 눈, 상큼한 코대…짜장 사냥물을 쫓느나 싸대는 표범새끼같이 날렵해보이는 젋은이였다.     장령감은 그한테 당부했다.    《너 식당가지. 고기채있거든 가져와. 나 몽두춘 좀 하련다.》       장평은 알았어요 하고 뛰여갔다. 올해 나이 19살인 그는 14년전, 그러니까 다섯 살 나던 해에 인질로 잡혀온 것이 돌아가지 않고 산채에 남아 오늘까지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다. 지금 양부인 늙은 양즈방을 시중들고 있었다. 양부는 요즘 몸이 불편해 제 숙소에서 식사를 하는건데 마침 장평은 식기들을 식당에 날라가고있던참에 장령감의 청을 듣게 된 것이다.        장평은 식당에 가더니만 과연 소고기를 밭미나리에 섞어 볶은 채 한접시를 갖고 사양실로 뛰여왔다.     진사해는 그를 대하는 순간 낚구고싶은 생각이 불쑥나서 만면에 웃음바르며 친절을 부렸다.    《허, 이거 동생! 감사하구만. 여게 좀 앉지.》    《고마와요.》    《로소동락이라잖아. 오늘 나하구 같이 몽두춘해볼가.》    《난 잘 못하는데요.》    《잘 못한다…그럼야 으레 잘하도록 훈련해야지, 안그래. 뭘 바라구 이 세상을 사나. 이제 정인군자루 되겠나 미륵보살루 되겠나. 우리처지에 몽두춘제대루못하면야 사내장부가 아니지. 호한협객으룬 더구나못되구. 말해봐, 안그러냐?》     이렇게 장평을 붇들어 앉혀놓고 구슬러서 함께 술을 마셨다.     진사해는 그보고 모두들 동고동락하면서 생사를 함께 하는 처지라지만 그래도 더 가까운 사람 따로있는게 아닌가 하면서 아무리봐야 넌 그 누구보담 더 귀엽구나, 누구보다 더 사랑스럽구. 그래서 난 널 더 좋와하게되는거야. 이건 내 맘속에서 우러나는 진심의 소리다. 너는 생각이 어떤지 거짓모르는 솔직함과 진실함이 신뢰와 우의를 낳는거다. 우리 지금부터 서로간 마음을 솔직히 나누면서 허물없이 지내는 진짜 지기로 되고 벗으로 되고 형제로 되는게 어떠냐 했다.      이상분이 아낌없이 털어놓는 귀맛좋은 찬사에 장평은 기분이 달뜨면서 흐므러지게 기뻐났다.    《그럽지요. 우리끼리야 그러잖아도 친형제간이나답잖은가요.》     그는 만면에 웃음꽃을 가득피운채 흔연히 동의했다. 진사해가 미더워보이면서 그한테 안겨주는 인상이 너무도 좋았던것이다.     자기를 세상물정에 익달하다고 여겼건만 운명은 파국에 몰려들었던 진사해였다. 남한테 편협하다는 평을 듣기보다는 대범하다는 평을 듣는 편이 역전한 제 운명을 원래대로 돌려세움에는 백배 더 유익함을 알고있었기에 그는 되도록 남한테 걸걸한 호인풍의 사나이로 보이면서 선손을 써 적수를 꼭그러뜨리리라했다.     그 이틑날. 심부름을 받은 장평이가 위진을 불러내와 후근마사의 사양실에 데리고왔다. 거기서는 물론 진사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수이샹이 날 오라구했는가요?》    《이거 모두들 날 그냥 수이샹 수이샹 하니…자, 자, 여게앉소, 위반장. 내가 위반장을 불렀지. 목구멍간지러우니 몽두춘이나 같이해보자구.》     진사해는 처음에는 서먹해 하는 양이다가 인차 활기를 펴면서 친절을 다했다.    《이거 내가 수이샹어른하구 같이해서야될가요.》     위진은 년장자였건만 제쪽에서 머리를 긁적이면서 쭈물댔다. 지금 나를 청해 함께 술마시자는 이 사람이 다른 누구와는 달라 그래두 한때 류자무리에서 자리서던 인물이였으니까 하고 그는 속으로 뇌고 있었다. 웃사람앞에서는 굽실거리고 받드는 습관된 공경심이 멀정한 사람을 이같이 병신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려워할거있소 같은 형제끼린데.》     진사해는 제 스스로 품위를 낮추는 위진을 대뜸 허수하게 보면서 한수잡고들었다.     장령감이 술과 안주를 가져오자 장평이 훈련된 작부마냥 진사해가 보내는 눈길지시대로 그릇 세 개에다 술을 부었다.    《너도 한잔 마시거라.》     진사해는 손수 술단지를 기우렸다.     그러는 모양을 보고 위진이 감격스러움을 나타냈다.    《진수이샹은 과연 소문과 같이 틀거지가 없는 분이구만요. 그러게 다들 좋와하는모양이지. 하긴그렇습니다. 서로간에 형제로 되어 사는바에야 그러는게 랑패없지. 안그런가유 수이샹어른.》    《위반장말이 과연 그른데없지. 라 신분의 귀천에 따라 음악이 다르구 존비에 좇아 례에 구별이 있다함은 천만지당하오만 생각해보면 주의해얄것두있지. 례의구별이 있다해서 자리서는 자 떠받들어줄건만 바라구 오만해지면야 남들은 그를 경원하게되는거니 결국은 곁에 사람이 없게되지. 안그렇소, 위반장.》    《옳수다. 그러게 저 뭐라더라. 건방지게 굴면 손해보구 겸손하게굴면 리득본다는 속담도 나왔을테지.》    《말이 맞아. 그래서 난 우리들사이에는 서로 허물없이 지내주길 희망한다 그 말이지. 어떻소. 내 주장이 틀리지야않겠지.》    《틀릴리있습니까. 바른말씀인데.》     위진은 머리를 주억거리고나서 혼자소리로 보탰다.    《우리지간에야 응당 그래야지.》     기다린거다. 진사해는 대방의 얼굴을 직시하면서 캐듯물었다.      《그러자면 어떻게해야할까요, 위반장?》    《거야 서로믿어줘야지.》    《그러자면?》    《?…》    《서로간 속심부터 줘얄게 아니겠소, 위반장님!》    《그렇지, 하하하…》     위진은 이켠의 뜻을 거분거분 받아주었다.     진사해는 기분좋았다.    《자, 이눔의걸 우리 멋들어지게 다 넘겨치우구볼가. 이눔의 반강자(술)를 지기지우와 같이 마실 때는 백잔도 오히려 적다는 말이 있잖아. 그러니… 자! 자!》     그는 대방이 좋은 기분으로 사발의 술을 굽내게 만들고나서 한술 더 떴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우정이 제일 귀중한거야. 신임도 신뢰도.》    《그렇지유.》    《그런데 그게 공중에서 그저 뚝 떨어지는거야아니지.》    《그거야 그렇잖구.》    《그러니까 서로 속심안주구야 우정이라는게 생길수있을가.》    《그렇지유. 속심안주구야 안되지유.》    《그래서 이 사해가 오늘 위반장하고…다른게 아니지. 우리지간에 우의와 친절을 도탑게 하기 위해서.》    《거 좋지유. 나역시 동의야.》    《우선 한가지 물어볼가.》    《진수이샹, 뭔데?…》    《그 반에 아마 꼬리방즈하나있지?》    《있지, 있어. 정민호라구하는.》     위진은 언젠가 민호가 《꼬리방즈》라는 말을 대단한 모욕적인 언사로 여기고 대노하던 일이 상기되여 낯빛을 고쳤다.     진사해는 대방의 심기변화를 짚어가면서 말을 계속했다.    《언젠가 한 번은 그하구 내가 마찰이 있은걸 위반장은 아마 알고있을거야. 제 반 새자이자 수하사람 저자른 일이니까. 그런데 사실말이지 그건말이요. 참…재미없어서…내가 그때 그 무슨 악의에서 그 사람을 꼬리방즈라구 욕한거야 아닌데 일이 그렇게 됐다는거요. 무의식간에 장란으루 그럴수도있는게 아닌가. 내가 지금 위반장보구서 하구 부른다면 위반장이 그래 내한테 분자빼들테요?》    《안그러지. 그러면야 못쓰지. 형제끼린데 롱담으루 여기면 될걸가지구… 그래서 나두 그때 그보구 하구 나무렸지. 진수이샹은 대틀이구 좋은분이라구하면서.》    《위반장이 그랬다구!?》     진사해는 일순간 돌발적인 반가움을 얼굴에 피웠다가 감췄다.    《그랬지유. 정말. 난 거짓말하구는 담벽쌓구사는 사람이라니까. 믿지 못하겠거든 이 장령감하구 물어보슈 안그런가구. 장령감!》    《어 그래. 그래.》     여지껏 입을 꾹 다문채 두 사람의 대화를 귀로 들어주기만하던 장령감은 허저인 류자반장이 자기까지 갑작스레 말새에 끼워넣는지라 미처사색할새없이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고맙구료. 건데 이 사해의 사람됨이 어떤지를 모르구있는 그가 지금은 어떨가? 속에다 뭘 넣구서 앙분풀이하자구나하잖는지.》     《그건 저…》     위진은 혀를 더 놀리지 않고 말끝을 사리였다.     꼴을 보니 너희들이 날 놓구서 꼭 말이 있었구나. 내흉스러운 진사해는 이렇게 속으로 짚으면서 늦줄을 주지 않고 잡아챘다.    《왜 말하다마는거요. 그가 위반장하구 꼭 무슨 말이 있었을텐데. 안그러우 위반장. 속엣말 다 뱉었을텐데.》    《저…저…진수이샹 정말이야. 걔가 분하니까 진수이샹을 개색끼라 욕한건 있어두…》    《그저 그렇게 욕했다?…내가 누구란거야 그도 알겠지?》    《왜 모르겠어. 임자가 청보산패서 자리서던 분이라는거야 온 산채가 아는일인데.》    《그 사람 정말 그것밖에 모를가?》    《그리구 저…》     위진은 나오려던 말꼬리를 다시한번 사리였다.     진사해는 그러는 모양을 넌짓이 보다가 술을 사발에 부어 그한테 권했다.    《목이 마르거든 적셔놓구 말해두되오.》     위진은 어색한 웃음이 발린 낯을 돌려 장령감과 장평을 봤다.     진사해는 입을 다시열어 유감을 표시했다.    《왜 아직두 날 믿지 못하오. 난 위반장을 나만큼이나 믿구서 속심말을 나누자는건데.》     이 소리에 말은 혀끝에서 반마디만 남겨두어라며 조심하던 위진이였건만 속으로 안되겠구나 나는 이 사람을 믿어야겠구나 하면서 끝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해버리고말았다. 물론 그건 훗날 그 둘이 다른장소에서 조용히 만나서였다.         염왕산류자들은 큰 기와가마를 부실때만 전부의 무력이 동원되고 일반때는 몇십명씩 나가군했다. 그래서 산채는 비는 날이 없이 늘 흥성했다. 민호가 여기에 들어서던 첫날은 산채의 류자가 거의 동원되여 멀리 장춘쪽으로 큰기와가마를 털려갔던것이다. 그런데 그번은 관방의 경찰대와 합작한 강한 련방대의 저항에 맞다들다보니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고말았던거다.     요즘 또 한패가 목단강쪽으로 떠나갔다…     향란이가 후근마사에서 부루말을 꺼내왔다. 민호의 해다. 그놈은 여기와서 보양이 잘됐는지 누구나 봐도 탐낼 지경이다.     이때 마침 민호가 자기 말을 보러 나섰다가 향란이를 만났다.    《향란아가씬 그놈하고 아주 영 정든거나 아닙니까.》     녀인은 눈을 꼬면서 입을 열었다.    《집탈은 말고 어서와서 날 거들어주기나해요.》     민호는 저도모르게 비틀린소리를 뱉어냈다.    《내가 자격됩니까, 보재는 어딜가구.》     녀인은 무어라 대꾸하려다말고 마뜩잖게 눈을 흘겼다.    《어째요. 풍자(말)를 바꾸기싫은가요.》    《무슨소리를…》    《내해하구 바꾸기싫은가말이얘요.》    《뭐라?…》    《아직두 달통되잖으면 관둬요.》     《무슨소릴 그렇게?…아가씨가 언제 나하구 그러자했길래?》    《해엽자 못봤나요?》    《해엽자라니! 언제 무슨 해엽자를 나한테 줬단말입니까?》    《내가 겨울돼서 신으라 보낸 동동자(양말)는 받았겠죠?》    《받았지.》    《그러구도 그안의건 못봤다는건가요?》    《아니 그속에다 해엽자를 넣어보냈습니까!》    《별 멀쩡한 량반 다 보겠네요. 동동자 다 판나도록 신었을텐데 내 글은 안읽어본모양이지.》    《가만. 내 이제 읽어보지. 난 그 동동자를 엽때껏 그대루…》    《아니 엽때껏 그걸 신지두않았다는말인가요! 그게 뭐 금보밴줄알았나요. 호호호…》     향란이가 어찌나 자지러지게 웃었는지 장령감이 웬 일인가고 사양실에서 달려와보기까지했다.    《풍자를 바꾸지! 바꾸지!》     민호는 인제야 비로서 전해의 초겨울에 향란이가 외근을 나가있던 자기에게 양말을 보낸 본의를 깨닫고 따라서 웃었다.     향란의 말도 괜찮았는데 그놈의것은 어떻게 되어 까지 않아서 아래로 처진 흰 불알에 검은 점이 하나 박혀 그것이 녀주인의 눈에 점점 상서롭지 않게 보이면서 비위를 그슬렸던 것이다. 그녀의 병태적인 그 심리상태야 물론 그 본인밖에 모르는것이다. 그녀가 말을 꺼내지 않는데야 하느님인들 알랴.     향란이는 민호의 대답을 받고 몹시좋와했다.    《대답이 시원해서 통쾌해요. 이젠 우리 둘지간에 교역은 성사된셈이겠죠.》    《그렇잖구. 남부일언이 중천금인걸 모릅니까.》    《좋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니 난 기뻐요. 이러자요. 우리들의 교역을 축하해서 한잔하는게 어때요. 내가 낼테니.》    《정말입니까. 아가씨가 그럴 맘이라면야 난 반대의견없지요. 어쩔가, 우리 반 형제들을 다 데리고 오랍니까?》    《아니! 아니! 그러진 말아요. 난 그렇게는 준비못하겠어요. 그저 혼자 조용히 와요. 음…밤 여덟시. 약속어기지 말고 꼭.》     요즘은 오후는 7시반이면 해가 져 어둡기시작한다. 그러고도 반시간후니 취침시간이 다된다. 그런때에 사내자식이 규수의 방에 뛰여들어 녀인과 술을 같이한단말이지. 그런다면 남들이 어떻게 볼것인가…민호는 선선히 대답해놓고 보니 다시금 고려되는일이기도했다. 그러다가 그는 에라 개코라해라. 뭐가 어떠냐. 이건 녀인이 나를 청하는건데 뭐 서로간에 약속이 되어 행하는 일인데 뭐 했다.          이러구러 약정한 시간이 다 되어오자 민호는 중앙산채쪽으로 발걸음을 놨다.        향란의 거실은 아담졌다. 출생지가 바로 여기인 그녀는 여덟살나던해부터 따로 이 방을 차지하고 자랐다. 중앙산채에 붙은 이 별채는 내실면적이 꼭같은 방 두 개로 꾸며졌는데 벽을 사이한 저쪽방은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들어있었던 침실이다. 거기에는 지금도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정깊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이 귀동딸의 식지 않고 이어지는 애틋한 정성의 표시였다.     이쪽에서 손기척을 냈더니 문이 인츰열렸다.    《어서들어오세요!》     녀인은 각근히 인사차림을 하면서 반겨맞았다.     민호는 방안을 휙 쓸어보았다.     회칠을 해서 눈같이 새하얀 벽간에 산수화를 그린 그림 한 장이 붙어있고 구석쪽에 놓여있는 꽃무늬돋힌 커다란 법화(法花)에는 란초꽃이 한창 싱싱 자라고 있었다. 한쪽벽가에 자그마한 구들.     이불장가 구리도안으로 장식이 된 황경나무제의 옷궤우에 놓여있는 시계가 마침 종 여덟 개를 땡 땡 쳤다.     종소리에 향란이는 웃음날렸다. 약속을 지켜 고맙다는 뜻이다.    《위아가씨하고 약속한건데 신용있게 놀아야지.》     이런 반응이 향란이를 사뭇 기분좋게 만들어주었다.     방가운데에 술상이 간단히 차려져 있었다.     녀인은 사나이가 자리에 앉자 모양고운 진사포무늬박이호로술명을 들어 조용히 은잔 두 개에 술을 붓고는 다시한번 살짝웃었다.    《자 들자요.》    《들어야지. 이건 우리 량자간의 교역축배주니까.》     민호는 되도록 대방의 정서를 맞추려했다.     했더니 얌전을 피우던 녀인의 입에서 눈이 까뒤혀질 엉뚱한 말이 튀여나올줄이야.    《아니애요. 이건 오늘밤 우리들의 교배주얘요.》    《아니 뭐라!?…》    《호호호…왜요. 듣기싫은가요. 그렇다면 롱담으로 치자요.》    《롱담도 유만부동이지.》     민호는 녀인이 부어주는 술을 조심스레 마셨다....      
405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0) 댓글:  조회:2889  추천:0  2015-02-03
                            10              이듬해 봄이 둘아왔다. 민호가 소속되여 있는 반의 류자들은 임무가 끝나 본채로 돌아오고 대신 200여명의 류자가 일시에 동원하여 우마와 쟁기들을 가지고 약담배농사지으러 갔다. 조사할수도 없고 조사받지도 않는 땅이였지만 어쨌던 나라의 정부를 속이면서  하는 짓이라 다른 여느 농사일과는 퍽 달랐다. 그들은 밭갈이를 하거나 기음을 매거나 철이 되여 꼬투리에서 아편유액을 받아낼 때면 언제나 이같이 반수이상이 동원되여 불이 번쩍나게 돌격전을 벌리군했었다.      본채로 돌아온지 닫새되도록 민호는 진사해를 보지 못했고 그를 만나지 못하니 손쓸수도 없었다. 그녀석이 약담배밭에는 안갔는데 대체 어디로 새여버렸을가? 산채에 없는 걸 보면 분명 외출한 사람이였다. 한데 어디로 갔고 언제 돌아오는지 알길없었다. 그걸 내놓고서 아무누구하고나 척 척 물어볼수도 없는거고.     아무튼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는것만같았다.     민호가 마음둘곳없어 무료해하는데 마침 할 일이 나졌다. 3패에서 패장노릇을 하다가 련장류자가 차챈즈의 명령을 받고 쟁반밟으러 나갔다가 잘못되여 그 자리에 방금 올라앉은, 언젠가 위진이가 사슴잡아 위삼포에게 진상(進上)하고 위신을 얻었다고 알려주던 그 성명이 리황수란 류자가 나으리의 분부를 받고 찾아온거다.    《네가 정민호냐.》    《그렇소. 무슨일이요?》    《두령한테 가봐, 부르시니까.》    《그가 왜 나를 부른다는가?》     리황수는 조선청년의 배때벋은 언동에 언잖고 불쾌해났던지 바라보는 눈길이 그리곱지 않았다.     민호는 속으로 별 덜러운 자식 다 보겠다 내가 누군데 너한테 다 굽실거려야 하는거냐 하면서 여전한 투로 물어봤다.    《어느 두령한테 가라는건가?》     대방은 눈살이 꼿꼿해지더니 뱉듯이 알려줬다.     《위두령한테루 가. 널 기다리고계셔.》     위삼포가 날 왜 부를가? 왜 갑자기 찾을가?…갑을간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일일세. 젊은이가 한 번 맹가강엘 갔다와야겠네. 거기에 사는 맹씨가 나하곤 전부터 교분이 있는 분인데 셋째아들놈이 요새 장가를 간다나. 청첩을 보내온거네. 받구서 모르쇠를 놓을순 없고....준비가 됐을텐데 곧 갔다오게. 》     민호를 보자 위삼포가 하는 말이였다.     맹씨란 맹가강의 부호 맹사덕지주를 말하는건데 그네와 위씨일가족은 선대로부터 관계가 좋았다. 토끼가 배를 골아 죽을지언정 제 굴옆에 돋아난 풀은 먹지 않듯이 위씨네 역시 도처를 다니면서 료략질을 하고있지만 가까이에 있는 부호들은 괴롭힌적이 한번도 없었거니와 그들과는 사이를 좋게 하고 지냈다. 그뿐아니였다. 위삼포는 지어 염왕산주위 어느 마을에 상가가 있어서 알리기만 하면 빼놓지 않고 찾아가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시에는 대신 수하의 새자를 보내여 금백(金帛)과 지촉(紙爥)으로 돕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운일을 당해 알리면 도와줄만한 것은 되도록 도와줬다. 그런 일은 극히 드믈었다. 백성들도 자신의 일에 그들을 불구렁에 밀어넣으려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무는 클수록 잎이 뿌리에 떨어지는거네. 우리가 이렇게 하는건 다 산채의 안전을 위해서일세. 이렇다는걸 젊은이는 알아야겠네. 그러니까 부도한 일은 없도록허게.》    《예. 주의하겠습니다.》    《거기 아마 왕견이가 있겠지. 걔와 함께 떠나도록하세.》    《예. 분부대로하겠습니다.》     허리굽혀 수긍을 표시하고나서 민호는 그가 손에 쥐고있는 매끌매끌 윤나는 변간죽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이 일은 다른 사람을 시켜도 얼마든될건데 왜 하필 나를 불러다가 이같이 직접맡기는걸가. 이건 위삼포가 나의 담략과 기질을 떠보자는게 아닌지도모르겠구나. 정신차려야한다. 그리고 주의해야한다. 이런때일수록 신임을 잃지 말아야한다, 악으로 굳어진 복수를 성공하자면.     제 거실로 들어가려던 향란이가 마침 중앙산채를 나서는 민호와 정면으로 맞띠워 웬 일이냐물었다. 민호는 자기가 오게 된 연유를 말했다. 향란이는 듣더니 쌩긋웃었다.    《그렇다면 기쁘겠네요.》    《내가 기쁠게 뭡니까?》    《잔치집에서 귀빈으로 모실텐데. 안그래요.》    《맹씨가 그렇게 해줄가?》    《왜 그렇게 안하겠나요. 꼭 그렇게 할거얘요. 그분은 우리하고 교분이 두터운걸요.》    《그렇다는건 나도압니다. 위두령께서 말씀하시더군.》    《아버지가요. 그래 동행자는 누군가요?》    《왕견이하구 같이가라는구만.》    《아, 그래요! 그 도툴없는 사람하고 동무하게됐군요.》    《글쎄말입니다. 위두령은 왜 그하고같이가라는지 모르겠는걸.》     《그걸 달리생각말아요. 저의 아버지도 언젠가 그일 데불구갔다오신적있어요. 그때도 지금처럼 청첩이 왔길래…아마 맹씨네 큰아들잔치때였을거얘요. 허니까 왕견이야 그 집에는 초행이 아니죠. 안그래요. 이런 길에는 아무튼 구면이 썩 낳지요. 그리구 그인 손발을 씀이 굼뜨지 않아 유사시 제 구실은 할거얘요.》    《왕견을 내 이 정모의 신변보호인으루 딸려보내는건가.》    《그렇잖구요. 바로 그렇죠.》    《그자식이!》     민호는 육기가 좋거니와 목소리마저 바스음이여서 어디가나 로지심이나 리규같이 유표가 나는 왕견이가 자기를 향해 웃음을 던지고있는것만같았다. 왕견은 민호와 한반이여서 매일 코를 맞대고지내는 류자인데 나이가 민호보다 세살더먹고 위진이보다는 세살 적게 먹었다. 결대크고 생김새와 같이 성격이 우락부락하거나와 목자가 사나운사람이다. 함께 지내면서 볼라니 그리 역지 못하고 무지하게 놀때가 많은데 고집이 어찌나 센지 그가 여러 류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선을 부릴때면 누구든 감히 반대곡을 부르지 못한다. 그럴때는 제똥에 처박아두는게 제일이였다.     염왕산 류자들을 보면 그 성분이 친윤기간이거나 친척간으로 돼있는게 적잖았다. 왕견역시 그러했다. 민호가 빨쥐새끼라 놀려준적있는, 경조부박하고 허풍떨기 좋와하고 칙살스레 까불어대고 추접은 쌍땀하질에 입이 걸어진 왕은경이 바로 그의 사촌동생이 되는거다. 같은 수탉이라도 싸움잘하는 웅계가 더 자유롭고 행세도 부리는 법이 아닌가. 왕견이 그러했다. 민호가 속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어거지 센 그 녀석을 손에 넣을가고 궁리하는판에 향란이가 귀띔하는것이였다.    《근간에 자질구레한 행세꾼이 적잖게 나돈대요…지방마다 련방대가 조직된 모양인데 좀만 의심돼도 잡아들인대요…조심해요.》    《일깨워줘 고맙습니다.》     민호는 이제는 자기앞에서 오만을 부리지 않고 직심스러운 녀인의 권고를 고맙게 여겼다.          말을 줄창달려 맹가강(孟家崗)에 닿고보니 오후세시경이였다. 염왕산 서남밖 비옥한 버덕에 자리잡고있는 맹가강은 호수가 무려 700여호라니 북만치고는 그리 작은 마을이 아니다.     마을복판 너르게 자리잡고 들어앉은 고래등같은 기와집 몇채가 맹지주의 장원이였다.    왕견이 거기다 눈길을 던진채 입을 열었다.    《맹사덕이 올해 나이 아마 예순둘일거야. 복은 혼자안구 사는 령감태기지, 젊은 첩만두 다섯이나 거느리구있으니까. 본댁을 놔두구서두 그렇게…》    《본댁이 늙으니까 자연히 꼴보기싫어난모양이지. 호박늙은건 먹기나좋지만 사람이야 어디…》    《하긴 그래서 그러긴하겠지만두 공을 봐서라두 본댁을 너무 랭대는말아야지 안그래. 그게 부지가 대단해서 새끼를 저그만치 열이나 놔줬으니까. 그놈의 구멍으룬 아닌게아니라 무를 뽑듯이 뽑아냈지. 거기다가 첩년들이 낳은 것 까지 합치면 맹령감은 자식이 스믈일곱이야  스므일곱.》    《저런! 옹군 두 개반을 만들겠군!》    《그렇다말다. 본댁은 련거퍼 일곱이나 무던히 줄딸을 놓고서야 미안했던지 얌전하게스리 아들 셋을 나아줬는데 그 망냉이가 바루 래일 장갈간대. 그런데 맹령감이 마지막에 맞아들인 애첩이라는게 이제 나이 설흔둘이라니 시집간 넷째딸하구 동갑이라나. 령감 그놈의 변자는 물개의 건지 원…기운을 써두 이만저만이 아니라니까.》    《하하하…근력이 대단한데!》     큰 마을이건만 생각과 다르게 분주하지 않았다.     그들을 딴눈으로 보는 사람도 없었다.      두사람은 마음놓았다.     맹지주집의 종이 선통해서 주인은 곧 달려나와 산채에서 온 손님들을 공손히 맞아들였다.    《여러분 미안하게됐습니다. 따로 모실분들이 있어서 자리를 같이못하게 됨을 량해하시우.》     주인의 말에 이미와있던 좌중은 눈치채고 얼른피했다.    왕견은 잊지 않고 뜨락을 한바퀴돌아봤다.     민호는 맹지주와 수인사를 하고나서 갖고 온 홍비단과 금괴를 싼 례물꾸레미를 내놓았다.    《위두령께서 몸소오실 형편이 못돼서 저를 보냈습니다. 약소하나마 허물말고 받아주신다면 고마우리라하십디다.》    《감사하우다! 감사하우다! 산채에 돌아가거든 이 맹사덕이가 나으리의 높은 덕성에 감사드리더라구 전해주게. 그리구 우리야 지냄이 선대부터 한집안과 같으니 어려움이 있거들랑 서슴치말고 알리라하더라구 전해주게.》    《예! 그럽지요.》     민호는 어김없이 전해주리라 대답하고나서 눈길을 돌려 사위를 피끗살폈다.    《개가 없습니까?》    《내 집에는 없지. 온것두 다 믿을만한 사람들이네.》    《짓지 말아얄텐데.》     주인은 안심하라지만 잔치준비로 드나드는 사람이 있는지라 마음이 놓이지 않아 민호는 인츰돌아서려했다.     한데 주인이 극구만류하는것이였다.    《아니 먼길에 모처럼 와갖구서 어떻게 빈입으루야…수절도 들잖구돌아가면 내 속이 편안할가. 크게 차리진 않겠소만 두분은 편히 앉아서 한잔 제꺽하게.》        맹지주는 주안상을 얼른차려오라 지시했다.     죄지은 도적에게 어찌 안심이라는게 있으랴. 둘이 한창 먹고있을 때였다. 파수를 서고있던 맹지주집의 수위가 달려들어오며 구공서(區公所)의 련방대가 온다고 알려줬다.     둘은 얼른 자리차고일어났다. 그리곤 밖으로 달려나가 각기 자기 말을 제꺽풀어타고 북문으로 바람같이 빠져버렸다.     구공서의 련방대는 한발늦게 당도하다보니 그들이 장원을 뛸쳐나가는것도 미처 발견못했다.     들키우지 않았으니 맹지주한테 루도 미치지 않을것이다.          그런데 일은 공교로왔다. 민호와 왕견은 산채로 돌아오다가 어느 한 마을에서 뜻밖의 일을 목격하는통에 귀로를 지체하게됐다. 길옆의 어느 집에선가 구곡간장이 끊어질듯한 울음소리 터져나와 길을 재촉하고있는 그들의 신경을 잡아끌었던거다.     어찌 그냥 지나버리랴.    《가만! 그저일같잖아. 왕형은 여기서 기다리오, 내 얼씨덩 들어가보고 나올테니.》     민호가 말끝을 맺기바삐 말에서 뛰여내렸다.     집안에 들어가 보니 백발이 다 된 늙은 량주뿐이다.    《아니 왜 이럽니까? 댁에 무슨일이 생겼길래?》     령감이 나오는 울음을 삼키고 알려주었다.    《토비녀석들이 내 손자앨 업어갔수다. 백주에 이런 기막힌 일 어디있소, 글쎄.》    《그게 언제즘됩니까?》    《알기는 저녁켠일세. 해넘어갈 때였네. 어두워오두룩 애녀석이 들어오질않길래 찾으러 나갔더니 본 사람이 있어서 알려준거네.》     때는 이미 사위를 분간키 어려울정도로 어둠이 깃든 밤이였다.     《아니 그런데…애를 잡아가는걸 봤다는 사람이 왜 인츰알리지 않았답니까?》    《거야 말하면 죽인다구해서 그랬지.》    《그놈들이 어디루갔답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수.》    《아니 그것도 모르다니 원.》    《후―알면야 이러구있겠수. 저 그런데 임자는 대체 누구요?》     로인은 그제야 생면부지의 젊은이를 의아쩍게 여겨봤다.     불상한 로인들이였다. 화서즈가 오지 않은걸 보니 아이를 인질로 잡아간 토비녀석들이 그리 먼데로 간것같지는 않다. 인질로 잡아가면 화서즈는 일반적으로 3일을 넘기지 않고 그의 집에다 돈을 얼마가량 내라 그래야 잡아간 사람을 돌려주리라는 해엽자(海葉子―편지)를 보내는거다. 어디 놈들인지 가난한 백성집에 달려들어 이따위 행패질이니 너절한 떨거지들임이 틀림없다. 그건 그렇고, 갑을간 보고서 가만내쳐둘수는 없는일이였다. 내 그놈들을 찾아낼테다. 민호는 속으로 결심을 내리면서 로인을 향해 말했다.    《로인님, 절 나쁜사람이거니 생각마시오. 난 염왕산에서 왔습니다만 절대루 그런놈은 아닙니다.》    《젊은이가 그래 위삼포의 수하사람이란말인가!》     로인은 염왕산이란 소리에 눈빛이 되려 밝아졌다. 이건 이 지방에서는 위삼포손에 피해를 당하지 않았거니와 외려 보호를 받아왔음을 설명하는것이였다.     민호는 령감더러 너무상심말고 기다려보라해놓고나서 얼른 거기를 나왔다.     밖에서 초조히 기다리고있었던 왕견이 뭘하느라 그리 꾸물거렸느냐며 언잖아했다.     민호는 알려줬다.     《덜돼먹은 녀석들이 령감의 어린 손자애를 표로 잡아갔다우.》     《그런데는?》    《찾아줘야지.》    《뭐라? 가뜩이나 늦었는데 산채룬안가구?…이런다면 우린 규률위반이야.》      《규률은 무슨눔의 떡대갈같은 기률이야. 무고한 백성 화입는걸 빤히 보구서두 왕형은 그래 눈감을참이요?…염왕산의 법규가 뭔데?…살부제빈이라 했지. 구호만 버젓하구 행동은 그렇게 안하면 그게 대체뭐요?》     민호의 입에서 격한 질문이 련발튀여나왔다.     왕견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말았다.     그들은 다른사람한테서 여기에 왔던 도적떼가 마을을 떠나갈때 동으로 향하긴했어도 그건 눈속임수일게고 틀림없이 북산골에 갔으리라는 정보를 얻었다. 하여 그들은 곧추 그리로 향했다.          여기서 한 15리가량되는 북산골에 인가가 불과 50여호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마을이 하나있는데 거기에 과연 한떼의 비도들이 들어 있었다.     쪼각달빛에 총신이 번적거리면서 보초의 질분이 날려왔다.    《선마만?》    《염왕산이다! 분자를 거둬라, 이자식!》     대방은 왕견의 욕설에 겁이 질리는지 총을 내렸다.      이번에는 민호가 입을 열었다.    《리마인이야. 너희들은 누구냐?》    《우린 비룡패다.》    《뭐라, 비룡패라니? 어디서 날아온 똥개지냐.》     왕견의 욕지거리가 다시터졌다.     민호가 집요한 투로 말했다.    《너희들 당쟈더(주인)가 어데있냐? 거거아!(데려다날라) 내가 당장만나봐야겠다. 얼씨덩!》      보초는 이쪽이 염왕산패라니 감히 엇서지 못하고 곰상히 말을 들었다. 그자는 말을 타고 나타난 이쪽의 둘을 가까이에 있는 한 가옥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민호는 낮에 료략질하고 곤해서 잠에 골아떨어진 비룡패두목을 깨워서 일으켜놓고는 간단히 인사수작이 있은 후 단도직입적으로 캐물었다.     《당신이 낮에 앞마을 장령감네 손자를 가져왔소?》     《그랬소. 그런데는 어쨌단말이요.》     《어쨌다는게 뭐요. 당장내놓소.》     《이건…》     《당장내놓으란말이야.》     《이건…》     《당신들은 대체 어디와서 이모양들이요.》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모른다더니 여기가 어딘데 너희들이 감히 날치는거냐?…》      왕견이도 뒷따라서 눈알을 지릅뜨며 한마디뱉었다.      비룡패두목은 이켠에서 배때벗게 울러메니 가슴이 얼어드는지 그만 주눅들고말았다.     《나두 입에 풀칠을 하자니 이 먼데루 온거요.》     《뭐라? 풀칠하든 똥칠하든 제곳에서나 할거지 여기룬 왜 게바라들어?》     《왕형은 좀…》     민호가 왕견의 무작정 터지려는 욕설을 막아놓고는 추호의 양보없이 협박해나섰다.    《잡담제하구, 어쩔텐가. 표를 내놓을텐가 안내놓을텐가?》     류자무리들간의 범계는 대방에 대한 멸시고 도전이 아닌가. 염왕산의 점령지역에 몰래기여들었던 비룡패는 방정맞게 염왕산류자를 만나고 보니 감히 맛설수도없는지라 울며 겨자먹듯이 인질을 내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나서도 타격과 징벌이 무서워 그밤으로 거기를 떠나버렸다. 큰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고 작은 고기가 새우를 잡아먹는판인데 인원이 겨우 30여명밖에 안되는 무리를 끌고와서 제깟게 어쩐단말인가.     산채로 돌아온 민호는 늦게돌아왔다해서 말을 듣지 않았거니와 도리여 일이 잘되였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이라 마음좋게 쓴데야 해가될리있으랴. 며칠이 안돼서 항간에서는 염왕산이 또 한차례 남의 화를 건져줬다는 칭송이 나돌았고 이로인하여 위삼포의 인금도 올라가게 되였다.     마음이 흐믓해난 위삼포는 사량팔주가 다 모인데서 민호를 유공자라면서 내놓고 칭찬했다.    《내 이 위삼포가 옛날 정훈이 시험관질 할 때 안표를 알아보지 못한 것 처럼 민호를 알아보지 못할번했네. 그가 이번걸음에 산채에 위망을 올려주고 국이 더욱 밝아지게했으니 기쁜일아닌가.》      반둬더가 뒷이어 말결을 달았다.    《소는 길마를 지워보면 알수있고 말은 안장을 지워보면 알수있다잖는가. 사람은 일을 시켜봐야 이렇게 알수있는거네. 민호는 과시 우리 염왕산의 호한답소! 그러니 내 생각에는 상을 크게 내려줌이 마땅할 것 같소.》     이번에는 혼자서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쟁반밟으러(주) 나갔다가 항간에서 떠도는 그런 칭송을 알아온 차챈즈가 한마디 했다.    《요번걸음이 쟁반밟는것도 아니였건만두 민호동생은 시종 경각성을 늦추지 않아 눈섶에 떨어지는 화를 용케 면한게 아니겠소. 나는 우선 그것이 대단히 잘된 행동이라구 보오. 그리구 표로 잡혀간 장령감네 손자를 찾아준일도 그렇지…응변과 과단성을 사람마다가 다 소지하고있는거야 아니지. 지기와 담략없이는 그렇게 못하는겁니다. 안그런가요? 여러 형님들!》     모두들 그렇구말구 하면서 염왕산 류자모두에게 용감성과 책임성을 키우기위해서도 민호에게 상을 크게 주고 칭찬해서 본보기로 내세우는게 좋을것이라했다. 이틑날 표창대회가 열렸다. 위삼포는 수하새자는 모두 들으라면서 민호의 공적을 한바탕 라렬하곤 그한테 상금 50원을 주었다. 그리고는 모두들 보았는가 산채의 국이 밝아지게 행동하는 자에 한해서는 장차도 어김없이 후더운 장려가 있을것이라 덧붙였다.  민호는 자기가 받은 장려금에서 절반갈라내여 그것을 왕견에게 주었다. 왕견은 올 때 그릇된 주장을 내놓은것으로해서 아무런 공도 없는 사람이 되고말았다. 그는 산채에 돌아와갖고 위삼포한테 너의 머리는 그렇게 메주덩이냐고 조소어린 힐난을 들었거니와 자칫하면 처벌까지 받을번했다. 원래는 묵과해버렸어야했을건데 민호가 그 일을 곧이곧대로 회보한바람에 위삼포는 물론 다른 두령들까지 이마살을 찌프리게 만들었던거다. 내가 미런한 짓을 했지. 글세 새퉁바라지같이 입정을 놀려 평시에 무난스레 지내온 사람과 나 자신을 스스로 척지게 하고 대립되게 만들어놓을건뭔가. 50원 돈이 어디 적은가. 이 많은 돈을 내 혼자가지면 왕견은 감정이 어떻겠는가. 참새같이 역어빠진 자식 하기는 잘한다고 할 것이다. 만을보같이 심술궂은 그가 그래 아무때건 기회를 보아 앙갚음을 하지 않겠는가…생각할수록 후회되는일인지라 배신감과 죄책감이 심절히 느껴져서 민호는 그한테 꼭 사과하고 자신의 실수를 미봉해야겠다고 맘먹었던것이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니 이거, 동생이 받은 상금인데 나를 줘. 솔직히 말해 난 욕볼놈이야…부끄러워 못받겠어.》     이러면서 왕견은 제법 체면을 차리려했다.     민호는 그래도 굳이 내밀었다.    《왕형이 반대는했어두 결국은 엇갈리지 않구 나하고 배합이 된게 아니요. 그러니까 두말 말고 받소. 솔직히 말해 왕형이 무술높다니까 나도 속이 든든하구 용기났던거요. 안그러믄야…그러니까 실은 공이야 둘이서 같이세운게지 뭐요. 안그러우?…이제 그런 기회 또 있다면 난 그때두 왕형하고 같이갈테요. 왕형은?…자 그러니 내 맘 알고 이 돈 받소! 받으라니까!》    《허허 이거…》     속에서 한창 주먹같은 불만이 올리밀고있던 왕견은 입이 함박만해갖고 못이기는척했다.     이런때 다른 하나의 탐욕이 끓는 눈이 민호의 거동을 은근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반장 위진의 눈이였다. 자식이 네가 상을 탓어, 어디 두고보자. 역을 들어 널 무난하게 만들구 받아주기까지 한 이 형님한테는 어떻게 하는가구 하고 그의 눈은 벼르고 있었다. 하건만 민호는 그가 넘겨다 볼 주제못되는 남의 상금에 그토록 감질을 내리라고는 미처생각못했다. 그리 광채롭지 못한 눈빛이 번득이는걸 보고 그저 오 너도 부러워 샘이 나겠지 했을뿐이다.          은초사같이 얇은 구름이 비꼈다가 걷히고 동그란 해가 얼굴을 활짝드러내면서 웃어주는 따스한 봄철의 어느날. 류자들은 우리에 내내 같혀있은 닭모양으로 모두 밖에 나와 볕쪼임을 하고 있었다.    《젠장! 다 내놓는다. 누가 나하구 주먹비겨볼테냐. 이기기만 하면 이 돈을 다 주겠다. 그러니까 자, 자, 나오라! 자신있는 놈은 어디 나와 덤벼들란말이다!》    왕견이 어디가서 술을 퍼마셨는지 낯이 익어가는 고추같이 지지벌개갖고 오더니만 기분이 자못 도도해서 민호가 준 돈을 몽땅 땅에다 둘러메치며 탕탕 큰소리쳤다.    모두들 벅작고와댔다.   《그깟재간갖구 너무시뚝해말라.》   《저치가 왜 저래.》   《또 본병도졌나봐.》   《망신톡톡히 줘야 알가부다. 팽덕이 너 나가라.》   《이번엔 지지말구 한 번 본때를 뵈여라.》    아무리 장수라도 힘이 무진장한건 아니니 이쪽은 주먹치기술이 쑬쑬한 장구머리부터 내밀어 안하무인으로 으시대는 그를 우선 땀빼게 만들어놓고 보자는 속셈들이였다. 한데 팽덕이가 자기같은건 덤벼봤자 헛짓임이 빤한지라 도리머리저었다.    《난 간밤에 쏘개만나서…》     그 소리에 왕견은 입을 벌릴대로 다 벌려 웃으면서 놀려줬다.    《으 하하하!…그렇겠지. 너야 워낙 똥물이나 쌀 녀석인데 감히  또 이 어른께 덤벼. 으 하하하!…》     방금 쏘개를 만났노라 핑게대던 팽덕이는 그만 약이 올랐다.    《야 너 정말 그럴내기야.》     그는 왕견이가 독장치면서 오만스레 노는 꼴을 그냥 참고 볼수없어 나서고말았다.    왕견은 방울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야 이 햇병아리같이 철없는 놈아, 네가 그래 그예 덤벼볼참이냐. 한 번 망신했으면 그걸 부끄러워하고 곱다랗게 있을게지.》    《시뚝해말어. 오늘은 너의 목대를 내가 분질러놓고말겠다.》     골이 난 팽덕이는 옆에서 모두 그런 소리듣고 가만있는가 하면서 추기고 부채질하는지라 물러날 념을 하지 않고 씽 달려들었다. 그러나 주먹질 한 번 했을 뿐 우악살스런 왕견의 발길에 채워 저쯤나가 언 말똥같이 동그라졌다. 웃음이 터졌다.     다른자가 나갔건만 역시 그모양이다.     하나, 둘, 셋, 넷…웬 영문인지 나가는치마다 다 그꼴로 지고만다. 그러니 왕견이야 더 시뚝해 할 수밖에. 마당에는 웃동을 벗어재낀 그의 웃음소리뿐이였다. 거의 허벅다리만큼이나 실팍한 량 견대팔에다 매발톱을 커다랗게 먹침한 왕견은 울라초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털이 부시시 난 제 가슴을 탕탕 두들겨대면서 이만하면 그래 어떠냐 소림의 무술은 내가 정통하나답지 않다고 나발불기까지 했다.  온 산채에 아무렴 그래 저치 하나를 당할자가 그리두없단말인가. 기껏해야 패나 아니면 련에서나 외딴을 치겠지. 민호는 맥이 빠지고 숨이 차서 씨근거리면서도 싸움에 이긴 장닭모양으로 머리들고 힘을 다시빼무는 그를 향해 부러 눈을 꼬며 경고했다.    《어이, 왕형! 너무 시뚝해마우. 다른사람은 뭐 허깨비가 돼서 못겨루는줄 아는가. 그런게 아니라니까.》    《챠, 이거! 좋아, 그럼 네가 어디 한 번 나와 덤벼봐. 자, 어서나와보란데.》      《지금은 그러고십잖소. 내가 참아주지.》    《뭐라? 참아준다구? 네가? 하하하…》    《제길할! 웃긴 왜 웃소.》    《네가 그래 자신은 있는데?…그따위소리하는걸 보면 네가 아마 제대로 염근 녹두알쯤은 되겠구나. 하하하…》    《녹두알이라니? 콩알은 아니구 녹두알?》    《어, 어, 그래! 그래! 넌 콩알이야, 콩알. 땅땅 염근 북만주의 노랑콩알이야!》       류자들은 모두 하하 웃었다.     사람이 여믄걸 콩알이라는데 내가 정말루 그럴가?…민호는 여기에 온지 얼마안되여서부터 염왕산은 상무(尙武)의 기풍이 짙음을 보아냈다. 하지만 참대속에 든 뱀의 길이를 알수없듯 민호는 형님이라 불러줘야 하는 류자건 자기를 형님으로 받들어주는 새자건 각자의 무술재간이 어느만큼인건 알지 못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류자 개개가 특기 한두가지씩은 다 갖고있는것만은 사실이였다. 나도 무술을 알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불붙듯 일었다. 서로간의 믿음과 사랑이 인간의 도의(道義)건만 너무 어리무던하면 약자로 여기고 머저리로 치부하는 세상이였다. 여기서 남한테 멸시받지 않고 지내려면 주먹이 드세야 하는거고 주먹이 드세야 우이를 잡고 사는거야. 내가 어떻게 하면 저자를 내 손아귀에 넣어볼가. 민호는 속으로 이런 생각만 굴리였다.           염왕산에 신록이 점점 짙어가고 있었다. 푸르른 하늘에 목화송이같은 구름이 날려간다. 하건만 산채는 높은 산으로 둘러막혀 바람한점 스며드는 것 같지 않았다. 여기에는 인간사회의 문명역시 바람처럼 들어오지 못하는게 아닐가. 자연으로부터 받게 되는 이러한 심리적인 감응이랄가 생신한 멋이라곤 찾아보기어려운 여기서 더운습기로 암담해진 텁직한 하루하루가 지겹게 반복되여가고있는것만같았다. 아직은 류자생활에 깊이 젖어들지 못해서인지 민호는 떨어버릴 수 없는 죄의식과 더불어 따분하고 무의미한 기분에서 해탈하기 어려웠다. 아아 내가 언제면 원쑤를 갚고 여기를 뛸쳐나갈가. 어떤때는 속에 진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데다 갑갑해서 발버둥이질과 발광이 나갈지경이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의 그러한 감수와는 달리 여기서는 오로지 류자들만이 즐길 수 있는 특유의 자유로운 생활이 활기에 넘쳐서  산채가 들뜷고 있었다.      꼭 봐야 할 진사해가 오래도록 눈에 보이지 않았다. 외출한 것이 아직 돌아오지 않는지 아니면 어느 구석에 들어박혀 나오지를 않는지?…웬 영문인지 산채에는 아편심는 철을 지내고는 그어떤 집단적인 행사가 없었다. 모임이라도 있었으면 혹 볼수있으련만 그것마저없다. 상면을 재촉하는 기다림이 그를 더더욱 갑갑하게 만들었다. 한데 보면 어쩔텐가. 민호는 우선 비여있는 탄창에다 탄알부터 넣고봐야하는게 아닌가. 그러자면.... 유감스럽게도 반의 새자들한테는 한알도 구할 수가 없었다. 골트를 갖고있는 사람은 그 하나뿐이였으니까. 하여 그는 향란이를 다시생각하게 되였다. 언젠가 자기한테 탄알이 얼마든있다하지 않았는가.     향란이 역시 골트가 있었다. 민호는 언젠가 그녀가 자기의 골트를 욕심내는줄로 알고 바꾸어주려고까지 했는데 알고보니 그런게 아니였다. 그녀의건 그저 민호것보다 좀 낡아보일 뿐 다른 흠은 없는것이였다. 향란이는 그것이 선대의 유물이라면서 보배같이 귀히 여기고 있었다.     여기가 자유롭기는해도 제한이 있었다. 심규(深閨)는 사나이가 함부로 출입하기 어려운 곳이 아닌가. 어떻게 하면 위나으리의 딸님을 내가 자유로이 만날수있을가?… 뾰족한 방법이 제꺽나지지 않았다. 그래 머리골을 쓴다는게 혹시 그녀가 밖으로 나올수도 있지않는가 하는 그 생각이였다. 민호는 막연하기도했지만 우연스러운 만남이라도 기대하는 수밖에 없어서 중앙산채를 향해 주적주적 발걸음을 놓았다.     근처에 이르니 악기소리들려왔다. 처음들어보는거다. 저건 대체 무슨 악기일가. 퉁소소리도 피리소리도 아니였다. 분명히 구현금소리같은데 맑고 은은한 그것이 바로 창문이 활짝 열려있는 향란의 거실에서 울려나오고 있었다. 듣자니 저 계집은 말타기와 쌍수도(雙手刀) 다루기와 철채찍재간부리길 좋와한다는데 거기다 음악도 좋와하는모양이다. 민호는 웬 일인지 츄얼이 부는 쿵캉지소리를 처음들었을 때의 기분처럼 가슴이 설레면서 눈앞에 쿵캉지를 불던 잃어진 안해의 사랑스러운 몰골이 다시금 삼삼히 떠올랐다.     아아, 내 츄얼아! 너는 어디로 갔느냐?…    《여봐요! 왜 거게 서있나요?》     멍청한 인간이지. 얼마나 오래서있었으면 이렇게…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가 귀전에 날려와 고개를 번쩍들어 보니 향란이가 창문의 커텐을 걷고 이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거북했다. 민호는 꼭마치 일을 저질러놓고 들킨 아이모양으로  일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서둘러 대구했다.    《저 별일아니요. 내가 아가씰 좀 만날일이 있어서.》    《그래요. 그럼 들어와요.》     향란이는 말했건만 사나이가 못박힌 듯 그 자리에서 그냥 미동이니 들어오란 말을 다시하지 않고 자기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있는가요?》    《다른일아닙니다. 향란아가씨한테서 권총알을 좀…》    《그런가요. 그렇다면야 얼른말할게지. 골트탄알말이죠. 줄수있어요. 내가 언젠가 말하지 않던가요 내한텐 그게 많이있다구요.》     향란이는 그 자리로 돌아들어가더니 얼마안있어 반들거리는 자그마한 나무함을 두손에 받쳐들고나왔다. 묵직해보였다.    《백발이얘요. 이거면 되겠나요?》    《그리많이!》    《다 쏘고 떨어지거들랑 또 알려요. 그거야 공급해드릴수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아가씨!》     민호는 기뻤다. 향란이가 제것을 아까와함이 없이 이렇게 선선히 내놓을줄이야!      한반류자들은 민호가 깜찍한 나무함을 손에 들고 오는것을 발견하자 그건 또 뭐야, 그 속에는 무슨 보배들었느냐며 욱 모여들어 다투어 빼앗다싶히 채다가 열어보았다.    《야! 이건…》     그안에 깜찍스런 권총탄알이 골똑한지라 모두 탄성을 올렸다.    《하여간 귀신같은 운이 붙은 사람이라니까!》     민호를 보고 벙어리권총차개라며 놀려주던 자들까지 혀를 내두르면 무척 부러워했다.          민호는 약담배밭에 있는 산채에도 갔다왔고 맹가강에도 갔다왔지만 여기를 드나드는 길이 대체 어떻던지는 지금도 어리벙벙한게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직 길도 제대로 모르고있다니?…만약 내가 어느날 원쑤를 잡아치웠던들 이래갖고야 여기를 어떻게 벗어난단말인가. 지금같아서는 백분의 일도 자신없었다. 염왕산의 산길은 듣던바와같이 정말 미로였다!     어느날 민호가 자기와 제일가까운 새자인 하진국이보고 염왕산을 나가는 직통길은 없는가고 물어봤더니 대답이 명창이다. 왜 없겠는가 있지. 그런데 눈익도록 다녀보지 않으면야 있어도 없는것과 마찬가지지 하는 그거였다.    《들어오긴해두 쉬히 나가진 못할걸. 지름길은 나도 인제야 비로서 알게된거야.》     하진국은 이렇게 운을 떼여 다시말해놓고나서 눈을 감더니 소학생이 선생앞에서 숙제를 외듯 염왕산 산길을 형용한 시 한구절을 읊었다.                                       산앞에 산이요                           산옆에 산이라네.                           첩첩심산에 길은 아흔아홉갈래                           가고가서 구백팔십리                           그 산이 그 산일세.                           남산의 숫사슴                           북산의 암사슴부르는데                           암사슴은 찾아못가                           발구르며 울기만한다네.      《쳇, 거짓말! 아무렴 짐승조차 그투록 길을 모를가, 원!》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어디 정형이 한 번 실험해보구려. 십리도 못가서 산귀신되고말거야.》     이건 꾸미는 말이 아니였다. 하진국은 자기가 여기에 온지 6년사이만도 괘주를 한지 얼마안되여 일을 치고는 형벌이 무서워 도망친 새자 하나와 인질 둘이 도망은 쳤지만 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가 굶어죽거나 짐승밥이 되였노라고했다.     듣자니 그 어느 새자든 만약 여기가 싫어 묘동때나 다른 기회에 나갔다가 도망친다면 위삼포는 사람을 풀어 그가 천애지각에 가 있는다해도 색출해서 잡아죽인다고 한다. 정녕 그러하다면 지금 여기서 손을 써도 빠져나간다는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호는 부득불 장구지계를 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민호의 백말은 내내 후근의 사양실에서 위씨일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량팔주 나으리들의 말속에 끼여 특급대우를 받고 있었다.     일은 관연 묘하게 되어갔다. 7월초의 어느 하루 민호는 자기 말을 보러 그 마사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여직 한번도 보지 못했던 진사해를 우연히 만나게되였던 것이다.     진사해는 무슨 좋은일이 있는지 황보재와 같이 어깨를 겯고 왁작 떠들면서 중앙산채의 북켠에 있는 제3패의 산채에서 막 나오고있는중이였다. 큰 키에 너부죽한 얼굴, 칼상처로 생겨난 게뚜더기―그것은 꿈에서마저 잊혀지지 았던 몰골이였다.     민호는 제자리에 무루춤 서버렸다. 두 다리가 굳어져버린거다.     저쪽도 이켠을 보더니 무르춤 서버린다. 황보재가 이쪽을 향해 사위스럽게 눈을 씀벅해 알은체를 하고는 그의 귀에 대고 무어라 수근거렸다. 그러자 진사해는 수염이 꺼슬한 턱을 치켜들고 껄껄 웃으면서 씨버려댔다.    《개방구라해라. 제깟 꼬리방즈가 다 뭐길래…》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럴변이라구야! 여지껏 재워둔 복수가 억제활수 없는 분노로 격발하는지라 민호는 대방의 명줄을 당장 끊어버리려고 권총을 뽑았다.     저쪽도 행동이 굼뜨지 않았다.     두 총구는 엄엄히 서로 노리였다.     몹시놀랜건 황보재였다. 갑작스레 번져버린 험한 사태에 그는 어쨌으면좋을지 몰라 쩔쩔맸다. 마침이때였다. 제 병든 말을 보러왔던 위용강이 량태와 함께 사양실에서 나오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고함을 내질렀다.    《무슨짓들이야! 분자를 놔라, 당장!》     이쪽의 총구를 위용강이 막고 저쪽의 총구를 황보재가 막았다.      진사해가 먼저 권총을 집어넣으면서 껄걸 웃었다.     량태가 노하여 둘을 꾸짓었다.    《형제끼리 이게 무슨짓들이냐.》    《저게 다 나와 형제되는가, 피자(개)같은 놈!》     민호는 뽑아들었던 권총으로 하늘을 갈겼다.     위용강이도 백두옹 량태도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했다. 민호는 그걸 저 진사해하고 물어보라하고는 몸을 돌려 제 숙소가 있는 동남쪽 산채를 향해 쥉쥉 가버렸다.     왕견이 밖에 나왔다가 총소리난지 몇초안되여 나타난 민호의 상기된 얼굴을 보고 눈이 둥그래지더니 재우쳐 물었다.    《아니 무슨일이냐? 너 무슨일 저질렀니?》    《진사해 그놈이 날 욕했소.》    《뭐라? 그자식 뭐길래 남을 욕한다니.》     왕견은 단통 민호의 역을 들면서 진사해같은 패덕한은 아예 받지를 말았어야할건데 했다.     다른이들도 그러했다. 이 한반의 무리는 돌같이 굳어졌다는 증거였다. 까마귀도 제와 더 가까운 놈을 안다고 하지 않는가. 한집안의 개 역성들 듯 한침실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으면서 맘을 트고 지내는 사이니 누구라없이 우선 편부터 들어주고보는판이다.     그런데 반장인 위진이만은 반응이 없다. 저치가 왜 저래?…    《위반장! 내 좀…》     민호는 팔을 끄당겨 그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오늘보니까 그자는 정말 돼먹지못했습디다. 어쩜 나를 타민족이라구해서 그렇게 욕한단말입니까. 위반장보구서 라구 놀리면 그래 좋겠습니까? 날보구서 라니. 우리가 그래 언제 방치들구 행패질을 했단말입니까. 저런놈 언녕 방치로 대갈통깨놨어야할건데 내가 늦었어.》    《형제끼린데 그래서야 되나.》     자식의 입에서 또 이따위소리가 나오다니. 반장이면서 역성을 들지 않고.... 단통 드는 심한 배신감. 야속하다못해 민호는 격분하면서 증오가 부질부질 괴여오르는지라 참을 수 없어서 대들었다.    《아니 위반장, 뭐랍니까? 내가 접때도 일깨워줬는데 그래 위반장은 지금도 그를 형제랍니까? 내 원 참…인제보니 소귀에 경을 읽었구만.》    《이보게 민호동생! 너무 그렇게 옥은 생각은 말라구. 나도 생각을 많이해봤는데…》    《많이 생각해본게 그래 이 모양입니까?》    《모두들 그일 나쁘겐 평하질않더군. 내가 보게두 그래. 사람이 걸걸하구 호담하구…》    《그래서 이젠 원쑤간이 아니된다 그 말인가?》    《밤잔원쑤 없다잖아. 어쨌든 내하구야 척진일두 없는데.》          위진은 이러면서 전에 가졌던 감정을 변화된 감정에 희석시키면서 대답을 뭉때렸다.     립장이 이렇게 앵돌아지다니 원! 에잇, 썩어버린 똥개야. 네녀석 그사이 벌써 바람들었구나. 민호는 맹충이같은 그를 헛믿어 온 자기가 불민해서 스스로 민망스러웠났다.     열보다 쓰거운 실패였다.     같이 있는 류자들은 누구나 이 조선청년이 생김새와 같이 성미가 씨원씨원하고 너그러운줄로만알지 여지껏 가슴속에 지독한 복수를 품어온건 누구도 모른다. 오로지 위진만이 이 조선놈이 대체 어째서 속이 이럴가 연구하면서 경계하기 시작했다.     한편 진사해는 이 조선청년이 복수를 위해 사갈같이 독한 마음을 품고있는줄을 모르거니와 언녕부터 자기의 명줄을 끊어놓기위해 여기에 눌러앉은건 더구나 모르고 있었다. 그가 어찌알랴 이 민호가 바로 저 먼 북쪽 흑룡강가 어래무 허저마을서 살다가 제 허저인 안해를 잃어버린 그 신세불우한 조선독립군 청년임을.     민호는 위진이를 쟁취하지 못함으로 해서 가슴 어딘가 한구석을 갑작스레 도난당한것 같이 허전해나면서 분했다. 한들 방법있는가. 사람을 잘못보고 믿었던것이다.     내가 저 무럼생선같은 녀석을 어쩌면좋을가 생각하는데 왕견이 앞에 나타났다.    《동생은 무슨일에 그러나? 보아하니 낯색이 좋잖아.》 .............................................................................................................................   * 변자ㅡ좆  *쟁반을 밟다ㅡ기와가마 털기 위해서 정찰을 하다. * 기와가마ㅡ부호.     * 껍질ㅡ끄나블. 밀정. * 해엽자ㅡ인질에 관한 편지.  * 표ㅡ인질. * 홍표ㅡ녀인질.     * 거거아ㅡ나를 데려다달라.  * 동동자ㅡ양말.     장려금을 갈라준 일로 해서 무척 고마워 사이가 어느덧 썩 가까워진 그였다. 민호는 이 시각 그를 투계(鬪鷄)로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났다.    《왕형, 인제보니 저 위반장은 침벼락이나 맞고 뒤여질 허깨비였구만. 난 그런줄도 모르고 믿어줬지. 진사해는 안욕하구 되려 나만 나무린단말이요… 원 더러워서.》    《아니 위진이가 그런단말인가, 반장이라는게 어디서?》    《인제보니 믿을만한건 그래두 왕형밖에 없구만.》    《오, 그래? 네가 날 믿어줘? 하하하!…》     왕견은 민호가 자기와 사교(死交)를 맺자는 것 같은지라 대단히 반가와했다. 서로 형님 동생 하면서 먹어라 써라하지만도 그건 강조된 규률에 매여진 현상유지일 따름 사실말해 우락부락 고집이 세고 도척같은 그와는 여직 진심으로 속심을 터놓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는 없었던 것이다.        
404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9) 댓글:  조회:2504  추천:0  2015-02-03
                               9                 민호는 포토우한테서 받은 장총을 손에 들고 이리보고 저리보았다. 길이가 베르단보다 짧고 머스킷이나 38식보다도 짧은데 총가목이며 총신은 오히려 크고 굵어 모양다리없었다. 항간에서 퉈퉁이라 부르는 구식총이였다. 그나마 새것이면 모르겠는데 이미 오래써먹어 낡은것이였다. 보아하니 여지껏 주인없어 오래도록 버려둔게 분명했다. 그건 반짝거려야 할 총신에 녹이 낀걸봐서 알 수 있었다. 민호는 격발기를 뽑아보았다. 격발기틀, 격발기머리, 탄피물리개도 그렇거니와 안전부, 안전턱 지어는 격침까지도 윤활하지 못하고 뻣뻣했다.    《젠장, 이놈의 건 기름근이나 먹어야겠구나.》     기분이 자연히 잡친 민호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창턱에 있는 기름병을 가져다 옆에 놓고 캉틀에 다시걸터앉았다.     할짓없어 심심하니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이나 늘여놓고있던 11명의 한반 새자들이 저 자식이 숙맥이 아니여 언제 총이나 만져봤을가 하는 눈매로 그의 일거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이야 그러건 말건 민호는 아예 감촉도 못하는 척 총을 이리저리 보고난 끝에 분해하려다말고 어느 한 새자에게서 칼을 빌려 우선 꼴사나운 가죽총띠부터 썩 떼여버렸다.    《에그, 그걸 어째서…그냥 두고 멜게지. 삼동이 귀신 매달라붙을가봐 그러는건가?》     성명이 왕은경이라고 하는 빨쥐같이 생긴 새자녀석이 까불대며 납닥치다가 그만 기름병을 차놓았는데 그것이 바당에 떨어지면서 총기름이 옆사람의 바지에 까지 튀여갔다.    《야, 이놈의 새끼야!》     민호는 벌떡 일어나면서 얼낌에 주먹으로 그자의 등을 한 대 우려주었다.    《하하하하…》     왕은경은 저쯤나가 곤두박질하고 다른 새자들은 온 집안이 들썽하게 일장의 폭소를 텃뜨렸다.     민호는 분해했던 부속품들을 닦고 기름을 쳐 원모양대로 조립해놓았다. 왕견이란 류자가 그러는것을 보고 눈이 둥그래지더니 커다란 입을 벌려가면서 남먼저 탄사를 발했다.    《저것봐, 저치가 외마는 아니구나!》    《아니야! 외마는 아니야! 영락없이 분자를 다루던치야!》     다른 새자들도 알았노라 고와댔다.     민호가 배속된 반은 중앙산채에서 동남방향에 놓여있는 산채에 벽을 사이두고 같은 패의 다른 두반과 함께 들어 있었다.     이틑날 오후다. 저쪽반의 새자 하나가 와서 민호보고 밖에서 위두령의 따님이 찾고있다고 알리였다. 뭐라? 그 계집은 왜 또 온거냐. 민호는 나가보았다.    《아가씨가 날 찾았습니까?》    《그래요. 찾았어요. 이젠 임자께 돌려야 할 물건있어어요.》     민호를 만나자 향란이가 먼저 입을 열면서 갖고 온 골트권총을 내놓았다.    《왜 이럽니까. 소용되면 가지시오. 나께두 총이 있으니까.》    《거기서 받은거야 퉈퉁아닌가요. 그깟 부지깽이같은 걸 하나만갖구야 어떻게 해요. 엣서요. 제걸 가져요. 난 욕심안나요.》     향란이는 권총을 돌려주고나서야 문득생각나는 것 처럼 한마디 사과의 말을 보탰다.    《참 내가 날쏘시개를 세개나 허락없이 날려버려 미안해요.》    《미안할게있습니까. 내가 외려 감사해야할건데. 안그렇습니까. 그게 세알 다 내 몸에 들어갔더면 어쩔번했습니까.》    《그 일 아직두 속에 넣구있나요, 사나이답지 못하게.》    《잊으랍니가. 그럼 잊지요. 잊고맙시다.》     민호는 제손에 되돌아온 골트를 들어 하늘에 대고 남은 탄알 세 발을 마저 다 쏴버렸다.    《자 이젠 싹 쏴버렸군요. 불쾌한 회억역시 날아난 탄알같이 싹 잊고맙시다. 어떻습니까. 그러는게 건강에도 썩 났겠지요, 아가씨!》    《그래야죠. 건데 그런다구 골트까지 던지진말아요. 내한테 탄알은 얼마든 있으니깐요.》     민호는 생각밖에 돈주고 산 제 권총을 되찾았다. 이제 더 찾아가져야 할 것은 말이였다. 물론 그것이 돈주고 산건 아니였지만. 한데 그 말을 돌려주겠는지 아니면 다른 말을 바꿔주겠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괘주를 해서 이젠 그도 류자가 됐으니 탈 말은 있어야할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것을 돌려주지 않고 있었다. 말을 가질바엔 잘달리는 좋은 말이 차례져야한다. 만일의 경우 여기서 도망치더라도 말이 좋아야 붇잡히지 않을게 아닌가.     위진반장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말도 이제 원 총임자의 것을 받으리란다. 그 말은 털빛이 얼룩얼룩한 워라말이였다. 게다가 그말의 임자는 지금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는거다. 누군데 어떻게 돼서 없느냐고 물으니 웬 일인지 위진은 알려주기를 싫어했다. 하여 민호는 더욱더 께림직했다. 그렇다해서 분배되는걸 싫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거고. 민호는 원임자에게 돌리지 않을바에는 방정에서 타고 온 그 백말을 자기가 되갖고싶었다. 그 백말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민호는 한 번 보고싶기도 했다. 한데 그 말이 지금 어느 마사에 있는지조차 알수 없었다. 향란이는 알 것이다. 민호가 그녀를 찾아가 물어볼가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반장인 위진이와 물어봤더니 위진이가 하는 말이 그 말은 아마 맏두령과 사량팔주의 말들이 들어있는 마사에 함께있을거라했다.      그들의 마사는 중앙산채의 서북쪽 커다란 귀틀집 별채에 있었다. 보통때는 일반적으로 말을 내다가 방목한다. 그러니까 지금 그 마사에 말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나마 가보고싶어서 갔더니 마사안이 생각밖에 깨끗한데 말 몇필이 구유에 매여 있었다. 털빛이 검은 가라말이 4필, 절따말이 4필, 입부리가 하얀 거하말 1필, 별박이 1필에 털빛이 흰 부루말이 2필이였다. 민호는 자기를 온순하게 바라보는 그 두필의 부루말께로 다가갔다. 그런데 어느것이 자기가 타고 온 말인지 가려낼 재간이 없었다. 그 둘은 쌍둥이같이 키도 같고 생김새도 비슷했다. 사실 민호는 그때 똥줄빠지게 추격당하는 신세다보니 자기가 타고온 말이 백말이라는것만 기억났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사실 영 깜깜이였다.      민호는 전날 향란이가 탄 말을 내것이라 여기고 고깝게 보았는데 오늘 다시생각해보니 그것이 실수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낯이 붉어질 일이였다. 민호가 대체 어느것이 자기가 타고 온 말일가고 머리를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고있는데 마침 늙수그레하게 생긴 류자가 썬 여믈을 삼태기에 담아갖고 들어왔다. 사양원이였다.     저켠에서 민호를 먼저발견하고 석쉼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임잔 제 말을 찾느라구 그러잖어?》    《그렇습니다. 건데 어느겐지....》    《이게아니우. 이거우다.》     그 류자는 부루말 두필중 하나를 가리키고나서 운을 달았다.    《말이 먹새좋구 든든하네. 척 봐두 그렇다는게 알리잖아.》       《그런가요. 건데 내 눈에는 쌍둥같아서…》    《아니 왜 쌍둥이같아. 다시 잘 봐. 임자거야 도총이아닌가.》       다시보니 그 말은 과연 약간 푸른빛갈을 띈 백마였다. 민호는 말의 털빛갈도 제대로 가려못볼지경 무식한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저 백마는 누구햅니까?》    《이거말이우. 이건 위아가씨해우다. 잘 보살펴달라구해서 내가 한구유에다 매놓구 먹이지요.》    《아, 그런가요.》     민호가 자기 말을 잘거둬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나가려는데 향란의 오랍되는 위용강이 마사로 들어왔다. 위용강은 민호를 보자 그저 고개를 끄덕이여 알은체를 하고는 네필의 검정말 중 억대스레 생긴 놈 하나를 고삐풀어갖고 밖으로 나갔다.     불알이 흰 은총이였다.     민호는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향란이가 어디론가 가다가 오빠를 발견하고 다가오며 물었다.    《오빠, 말은 왜서요?》    《내가 일면파에 갔다올려구그런다.》    《소아가씰 보려구요? 곁에서 그냥 애먹이지 않을까요?》    《그깟거 정 시끄럽게굴면…》    《조심해요. 되도록 완력으론 행세말자요.》    《갑을간…내 인차돌아오마.》    《장평을 데불구가요.》    《개두간다.》     두 오누이간에 주고받는 말에 귀가 자연히 솔깃해지는데 무슨일갖고 그들이 그러는지 알수없었다.    《여게와있는걸 난…》     향란이가 말타고 산채를 표연히 떠나는 제 오랍을 눈바램하고나서 민호를 향해 돌아서며 건늬는 말이였다.    《위도령은 어디로 출장가는모양이지.》    《아마 그러는거같아요.》     향란이는 대답을 회피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말보러왔던모양이죠. 안장은 받았나요.》    《아직 차례진 말도 없는데 안장이 언제…》    《본래걸 그냥타요.》     향란이는 그 마사의 웃쪽에 있는 별고(別庫)에 들어가더니 손수 안장 하나를 골라갔고나와 민호에게 주면서 당부했다.    《잘 건사해요. 이건 삼촌이 남긴거얘요. 여기서는 제 물건 제가 건사해야해요. 망가지면 으레 제 손으로 고쳐야죠. 잃어져도 제가 책임져야하고요. 물론 안되면 새걸 하나 발급받긴해두.》     안장은 훌륭했다.          관동의 토비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웅거하는 소굴이 있음과 동시에 활동범위가 확정돼 있었다. 하길래 만약시 색다른 류자가 발을 들여놓아 를 한다면 그것은 도덕없는 침범행위, 즉 로 치부되고만다. 하길래 그런 범계자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는 것이다.     염왕산중심에서 동남방향으로 약 50여리나가면 그들의 산채가 하나있다. 그것은 겨울이 오면 추위가 유별나게 혹독한 북만에서는 어디가나 흔히 볼 수 있는, 타래로 벽을 두텁게 만든 세칸짜리 커다란 흑집인데 약간 둔덕진데에 자리잡고 앉았다. 주위는 근 100여헥타르나 되는 약담배밭이다. 그 약담배밭은 물론 염왕산의 소유였다. 염왕산에서는 년년이 륜번으로 그것을 다루어왔다. 이 시기 꼭같은 면적에서 나는 소출을 값을 쳐 따져볼 때 약담배가 다른 농작물, 이를테면 강냉이의 6배, 콩의 8배, 벼의 2배였다. 하니까 거기서 나는 수입만도 가관이였다. 염왕산류자들은 략탈을 크게 하고있지만 한편 이같이 자기의 로동으로 얻은 수입을 갖고서도 년간분배와 비용을 적잖게 보충하고 있었다.     이것은 위삼포가 변화되여가는 국세를 감안하여 연구해낸 조치의 하나였다. 한편 또 위삼포는 계절농막과도 같은 이 산채를 평시에는 련락소로 원정때는 문전휴식장으로 리용하고 있었다.     민호는 괘주하여 류자로 된지 한달만에 자기 반을 따라 교대거리로 거기를 지키러 가게되였다. 알고보니 전에 밥을 날라다주고 를 부르던 새자역시 그와 한반이였는데 성명이 하진국(賀振國)이였다. 성품이 사납지 않고 온순한 편인 그는 자못 감상적인 젊은이였다. 하진국은 군대에 뽑혀갖고도 약혼녀와 떨어지기 싫어서 나가지 않았다가 말썽이 생겨 욕볼 것 같으니 도망쳐 류자무리에 가담한거라 한다.     여기서는 중이 법세(法歲)가 있듯이 류자는 류세(綹歲)가 있었다. 민호는 자기와 동갑인 그의 류세가 6살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18살부터 토비노릇을 해온게 아닌가. 핍박에 못이겨 량산에 오른다고 염왕산류자중 적잖은 이가 수호지(水滸誌)의 인물들 처럼 부득이한 경우를 당해 이런짓을 하고들 있었다. 반장인 위진을 놓고봐도 진 빚 때문에 채주와 마찰이 생겼다가 그를 살해하고 도망쳐 여기로 온 것이다. 그런즉 염왕산은 실제상 그러루한 도주자들의 피신처이자 자유를 부리는 극락의 세상이기도했던거다.     3반의 류자들은 마차 두 대에 갈라앉아가고 있었다. 뒷마차의 뒷켠에 앉은 민호는 자기와 나란히 앉아가는 하진국이가 하는 얘기를 잠자코들어주었다.     《산이 깊어야 범이 있구 덤불이 커야 도까비가 난다잖소. 우리네 염왕산은 국이 크니까 든든해서 한생을 류자로 살기는 들고났소. 배는 다리의 통로에 이르면 자연히 똑바로서게되잖소. 궁하면 살길이 나지는 법이요. 민호형도 맘놓고 여게 안신하길바라오.》      하진국은 제가 어미의 배속에서 한달늦게 나왔길래 그만큼 볕을 늦게봤노라고, 그래서 자기를 동생으로 자인하면서 민호와 교제를 트고 지내려했다. 여기는 등급제도가 엄격하면서도 서로지간에 이같이 형님동생으로 부르니까 개개인의 속마음이야 어떻던간에 겉모양을 봐서는 꼭마치 한 조상의 자손으로 단단히 묶어진 하나의 허틀어지기 어려운 화목한 대가정같았다. 두령이 애초부터 그렇게 만드느라 애써왔거니와 그에게 몸을 의탁하면서 지배를 달갑게 받고있는 새자 모두가 실행으로 그의 뜻을 받들어가고 있었다.     《고맙다. 나도 여길 나갈 사람아니야. 너처럼 그냥있으련다.》      미호는 거짓말을 해야했다.      하진국은 귀가 너르게 그의 말을 곧이들으면서 향란이가 하던것 처럼 류자들지간에 쓰는 은어를 배워주었다.     《우린말이요. 동항끼리는 조만해서 서로건드리지 않소. 외지에서 나돌 때 규칙을 장악하고 말할줄을 알면 하고 서로가 대방을 괴롭히지 않소. 이 뭔가말이지. 그건 이 일을 알고있는 유능한 사람이라는거요. 이런 말이 있소. 고 말이요. 그렇지만 왕왕 대방을 잘못본데서 청자를 빼들어 서로 피를 흘리게되는 때가 있는거요. 그러니 남을 서뿔리건드리지 말아야 하오. 밤중에 길가다가 서로 만났다하기오. 그런때에 대방이 물으면 림기응변을 할줄알아야하오. 물으면 하구 대답해야하구 하면 하고 대답해야하는거요. 이렇게 응변이 맞아떨어지면 서로 같은 신세임을 알게되는거요. 그러지 않았다가는 대방이 먼저 손을 쓰게 되는데 좀만 어물거렸다간 끝장나고마는거요. 이 사회에 가끔 살인자가 누군지두 모를 무고한 시해가 나지군하는게 왜겠소. 바로 그래서이지.》     《아무것두 모르는 백성인것두?》     《누가 그걸 생각한답데. 그러게 이놈의 세상을 살아가자면 조심해야하는거요. 상대가 누군지두모르구 우쭐렁거리다가는…산채를 떠나 외지에 나다니노라면 벌목장아니면 삼장이나 양봉장같은 것을 만나 부득불 거기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종종 있는거요. 상대가 누구란걸 눈치챈 사람이면 거개가 대해줌이 좋소. 잘해먹이구 잘재우구. 어떤데서는 지어 떠나올때면 소금이나 기름아니면 담배같은걸 줘서 보내기도하는거요. 그립겠다면서.》     《거야 뒷일이 무서워 눌러놓는 노릇이겠지. 안그런가?》     《물론그렇지. 까놓고말해 화를 입을가봐그러는게지. 헌데 지내보면 참 미런한 좀팽이들두 더러있소. 재작년여름이였소. 나하구 왕견이가 한 번은 나돌다 약담배밭을 지키는 오두막을 만났더랬소. 해가 다 지지 저녁때라 배도 고프지 그래 들려서 신세 좀 지려니까 령감쟁이가 어쩌는지 아오. 자기도 굶어산다면서 물먹는 것 까지 아까와 보들보들 떨더란말이요. 어찌두 괘씸하던지…돌아오자 우린 반의 형제들을 몽땅 동원시켜 회초리로…참 재미있었지.》     《회초리로 담배꼬투리를 꺾어놨다는말이지.》     《그렇지. 말끔히 소멸해치웠던거요.》     《고약한 짓들을 했구나.》     《쳇, 그 령감 쌍통이지. 우린 참외밭도 그렇게 결단낸적있소…방정에 갔을적이지…거기 채 못가서 참외밭이 하나 있더구만. 그때는 사람이 셋이 됐는데 날이 덥고 컬컬한지라 몇 개 좀 먹게 달라구 개평을 불렀지 뭐요. 건데 참외막지키는 임자녀석이 어찌두 린색하게 노는지…그래 돌아올 때 갈퀴를 세 개 사갖구 그걸루서 써레를 놓고말았소. 염왕산의 본때를 보여주느라고.》     하면서 하진국은 저들이 의례할일을 한양 자랑을 뽑았다.    《심술궂은 만을보라더니 네가?.... 걷보긴 얌전하게 생긴 사람이 그따위 고약한 짓을 하구다니다니 원.》     민호는 한심하다고 웃었다.     하진국이 코를 씨물거렸다.    《왜 난 그만한 짓두 못할사람인가. 도적놈의 배에 올랐거든 너도 도적놈되라했어. 여기가 뭐 량반의 휴양손가.》     민호는 입을 다물고말았다. 그렇다, 주(朱)를 가까이 하면 빨개지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잖는가. 오가잡놈이 모여든 이 도적굴에 무슨 정인군자가 있으랴.     할 일이 없었다. 약담배거간군이 오면 눈을 싸매여 산채로 들여보내는 일 외에는 다른일이라곤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류자들은 륜번으로 보초를 서는 외에는 산채에 있을때와 다름없이 매일 주사위를 놀거나 술을 먹지 않으면 시시껄렁한 잡담으로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오목암캐 뽈록수캐 배꼽맞추네.》    《좋다고 들어붙어 요동을 치네.》    《암캐는 배가 나서 물독같은데》    《렴치없는 수캐 지랄이 났네.》    《자갈밭에 요란하게 끌리는 소리》    《빼여든 오리변자 두자두치라네.》     때로는 이따위 자작 파스(笑劇)를 놀아 끓어오르는 음욕을 달래기도했다.     까치가 까마귀무리에 섞여도 까마귀 아니고 까치지만 어찌 까마귀를 영 닮지 않으리라고 장담하랴. 위화감이 사라질 때면 그도 푸른잎이 단풍으로 변하듯 어느덧 동화되고말 것이다. 민호는 새자들이 그같이 저급적이고도 무의미한 생활에 젖어 있는 꼴을 볼때면 여기에 그냥 있다간는 나도 아무때건 저모양이 되고말겠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어 괴로웠다. 오리가 똥보고 지절댄다고 수탉이 그모양으로 지절댈까 어우렁더우렁 지낼수는 있어도 저모양으로 섭쓸리진 않을테다 하고 민호는 속다짐했다.     한들 뒷일을 어떻게 장담하랴.     어느날 정오무렵. 민호가 순번이 돌아와 보초를 서고있는데 몇보 안되는 앞길로 마차 세대가 지나게 되였다. 앞마차에 앉은 차몰이군이 차를 세우더니 손을 저어 뒤에 따르는 다른 차들도 자기처럼 서게했다.     민호는 그들이 어쩌는가 보았다.     앞차의 마부나 중간차의 마부나 뒷차의 마부나 다가 앞말의 배띠를 풀어놓고는 두손을 말잔등에 올려나 뵈였다. 그리고는 머리에 쓴 모자를 벗어서 수레채에 걸어놓더니 채찍을 쥐여 왼쪽 수레채에서 들어오른쪽 수레채로 내리치는것이였다. 그런후 셋이 다 두손모아 류자식의 인사를 했다.    《별식을 다 피우지, 저것들은 토비와 접촉이 많았겠구나!》     민호는 중얼거리며 다가가 차우에 무기가 있나없나를 검사하곤 그들을 통과시켰다.     염왕산류자에게는 10계률이 있었으니 그것인즉 일반백성의 우마차는 물론 신랑각시가 타고 가는 꽃마차를 건드리지 않고 상가의 령구를 건드리지 않고 우편차를 건드리지 않으며 나룻배를 건드리지 않고 보짐의사를 건드리지 않고 거지와 도박군의 돈을 빼앗지 않으며 도부장사의 짐을 털지 않고 대차점을 털지 않으며 승려, 도인, 불가의 것을 빼앗지 않고 과부집과 홀몸으로 밤길걷는 사람을 털지 않는 것이다. 강도에게 이런 자비가 있다니 일반사람으로서는 과연 리해안될일이였다.           언젠가 향란이가 민호보고 돌아가는게 빠르다고 하더니 요즘은 하진국이가 그보고 혼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사람이 무엇을 말하면 빨리알아챈다는 말이였다. 이들 내의 일을 많이알아야했던 민호는 판무식을 면한 그를 한 번 조용히 만나볼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던 차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다. 어느날 그가 민호보고 족제비잡이를 해봤는가 물으면서 함께 잡으러가자고했던거다.      족제비를 황서랑(黃鼠狼), 황피자(黃皮子), 황신자(黃信自) 혹은 유서(鼬鼠), 황유(黃鼬)라고도 부른다. 이름은 이같이 많건만 제 굴은 만들지 않고 낮에는 쥐구멍이나 다람쥐굴아니면 나무구멍에 들어가 자다가 밤이 되면 나와서 활동하길 좋아하는 고놈의 앙증한 물건은 개가 아니고는 잡기 쉽지 않은 짐승이다. 더구나 아직은 눈도 내리지 않아 발짝도 남기지 않으니 잡기 더 어려웠다. 민호가 족제비잡이를 적게 했던가. 해도 자기는 짐승잡이라곤 평생해보지 못한 사람이라 속이면서 흔연히 따라나섰다.      둘은 받고랑을 하나하나 건너다보니 어느덧 산기슭에 가 다았다. 모체를 떠난 나뭇잎들은 솜이불마냥 대지를 포근히 덮었건만 발가벗은 앙상한 나무들은 바람에 떨면서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고있었다. 민호는 산기슭에 묘 세 개 있는것을 발견하고 그리로 갔다.      셋중 하나가 생긴지 오래지 않은것이였다.    《이건 웬 무덤이냐?》    《나도 이름은 모르겠소만 거기 잠자는건 방정사람이요.》    《방정사람이 왜 여기와 묻혔냐?》    《산삼캐러 와서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 그 사람의 무덤이냐!》     민호는 방정려관에서 들은 얘기가 대뜸생각났다. 범계를 해서 목숨잃었다던 운수사나운 심마니가 여기서 잠자고있을줄이야어찌알았으랴. 민호는 가까이에 있는 다른 하나의 묘를 가리켰다.    《이건 누구의 무덤이냐?》    《그거말이요? 우리 형제의 무덤이요. 갠 작년에 잠들었소.》    《왜서? 여기와 앓기라도했던가?》    《아니요. 제 사람의 날쏘시개를 먹구서.》    《뭐라, 총살인가? 어쩌누라 제 형제끼리는?》    《그걸 말하자면 참…》    《참 어떻다는거냐?》    《값없구 망신스러운거요.》     민호가 집요하게 캐묻자 하진국은 한 류자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주었다.     재작년 이때다. 한패의 류자가 림구(林口)에 갔다오다가 어느 한 자그마한 마을에 들려 하루밤을 지내였는데 이틑날 아침때 로파 하나가 찾아와 간밤에 제 딸이 겁탈을 당했노라 울면서 공소했다. 그때의 인솔자는 위용강이였다.     위용강은 즉각 신호를 올려 흩어진 류자들을 집결시켰다.    《간밤에 부덕의한 짓을 한게 누군가, 냉큼 여기루 나왓!》     나오는 이가 없었다.     위용강은 그럼 좋다하고는 그 로파더러 범행자를 찾아내라했다. 로파는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훝더니 마침내 수염이 더부룩한  40대의 사나이를 짚었다. 헌데 그 사람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그의 삼촌 위삼동(魏三東)이였다.     염왕산 류자내에서는 기와가마를 점령했을 때를 내놓고는 다른 어떠한 장소에서든 녀자를 희롱하거나 간음하는 것을 엄금했는바 그러는 자는 세차즈(邪叉子), 즉 말성을 일으키는 꼬챙이라면서 가만놔두지 않았다. 헌데 이번의 규률위반자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삼촌이니 위용강은 처리하기 과연 난처하게 되었다. 하여간 남도 아니요 친혈육이 아닌가. 귀찮은 일이 귀찮게 굴기 전에는 그걸 생각지 않으련만 이미 이 정도로까지 이르렀으니 묵과 할 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래서 처음 생각에는 대중앞에 반성시키고 산채에 돌아가 아버지한테 맡겨 처리하려했다. 한편 다른 류자들은 내놓고 말은 안해도 네가 문제를 어느만큼 공정하게 처리하나 두고보자고들했다. 한즉 이 문제의 처리는 금후 대오의 규률을 확보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접관계되거니와 아무때건 제 아버지를 승계하여 산채의 두령으로 오를 위용강이 수하 새자들을 어느정도 공평정대하게 대해주는가를 검험하는 때이기도했다.     대오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였다. 위용강은 삼촌이 좀이라도 관대처분을 받겠거든 휴식을 선포하기 전에 대중앞에 나서서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라했다. 그랬더니 위삼동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위용강은 그를 강박적으로 끌어냈다.    《난 네 삼촌이다, 삼촌이야! 이 자식아!》     위삼동은 위용강의 심기를 알아채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삼촌, 별수없소. 누가 규률을 위반하라했소.》     위용강은 이 한마디를 하고 그를 총살해버렸다. 그리고는 귀까지 베여서 겁탈당한 녀인의 집에 보내여 그를 이미 처단하였음을 알리였다. 워낙 총잘쏘는 위용강은 산채에 돌아오자바람으로 부포토우로 승진했고 일을 그같이 공정하게 처리함으로 해서 류자들속에 위망도 있게됐다.     자기가 받은 총의 원임자가 바로 그토록 불명예스러운 자였음을 인제야 똑똑히 알게 된 민호는 나머지 묘 하나를 가리키며 그 속에는 대체 어떤자가 누워 잠자느냐물었다.    《그거말이요. 그 속에는 고건아의 뼉다구가 있지. 걘 정말 불쌍하게 눈감았소.》     하진국은 낯색까지 어두워지면서 아느새 말을 못했다. 사자는 그와 한날 한시에 이 염왕산에 괘주한 젊은이였는데 류자생활을 하기싫어 재작년그러께의 묘동(猫冬)기간에 집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이듬해 가을에 붙잡아다가 여기서 총살해버린 것이다. 묘동이란 류자들이 산채를 떠나서 겨울을 나는 일을 가리키는건데 특수한 변고도 없어갖고 때가 된데도 돌아오지 않을시에는 변절로 인정하고 잡아다 그같이 처단해버리는거다.     허, 이놈의데가 규률이 과연 무서운걸! 승냥의 무리에 섞여살아봐야 승냥이의 습성을 알게 되듯 민호는 주동적으로 곁을 주면서 사근거리는 류자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신비로운 색채가 다분한 이 마적단의 실태를 점점 더 똑똑히 알게되였다.     주숙지로 돌아오니 패놓은 장작 한아름을 들여다 아궁이에 밀어넣고있던 위진이가 말을 먼저걸어왔다.    《내 뭐라던가, 아직은 이르니까 나가지 말라잖았어. 그래 족제는 비꼬리나 봤는가?》     민호가 보아낸건 그가 매사에 년장자다운 틀거지를 내고있는 그것이였다. 때론 그것이 지나쳐 눈꼴시였건만 노예적근성이 있다보니 자존을 잃고만 새자들은 비굴할 지경 굽실거리면서 그를 어버이같이 받들고 붙쫓았다.    《이제 눈만 내리면야 짐승잡이하기 쉽지. 동생은 사냥을 해본적이 있는가. 여기서 겨울을 보낼바하곤 짐승잡이나 착실히 하라구. 기회가 좋으니까. 그것두 가마를 터는 것 만큼은 거의 재미있는 노름일세. 땡잡으면야 벼락부자루 될 수도 있는거구.》    《정말 그럴가?》    《그렇다말다. 거짓말 아니라니까. 그게 어느해던가…륙월달이였는데 삼패의 리황수녀석이 바로 여기서 사슴 한마리를 잡잖았겠나. 그래 그걸루 맏두령께 치성을 드렸던거네. 생각해봐. 그렇게 했으니 어떻게 됐겠는가. 우선 환심을 대단히 삿을게 아닌가. 그 덕에 급을 잘 췄지. 바로 그렇게 해서 자식이 운이 텄지. 우린 그렇게 여기는거네. 두령한테는 물론 형제들끼리 어우렁더우렁 지내더라두 인심은 잃지 말아야하는거야. 알겠나 위신을 사야한다 그 말일세.》     위진의 일깨움이 어찌나 진지한지 흡사 직심스러움과 성근함이 푹 배인 목사의 설교같았다.      한데 듣자니 위진은 이라 한다. 다른 새자의 물건으로 납픔(納品)하는 인간이라는거다. 하진국은 그가 해마다 제 면목을 내기 위해서 수하새자들의 돈을 묘하게 우려내군하는데 대해 불만을 품고있었다. 는 말이 있는데 그건 두령이 새자들의 공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해마다 두령께 납품하는건 이미 없애치우기 어려운 고약한 습관으로 되여버렸다. 절대적인 권위자인 위삼포를 산채에서는 맏두령, 큰형님, 큰주인 혹은 큰나리라 부르고있는데 일반 새자는 물론 사량팔주도 그를 공경하고 높이 떠받들어야만했다. 한것은 그가 바로 산채의 대들보였기 때문이다. 이같이 류자내에 엄금한다고는 하나 층층이 올리섬기는 버릇이 그냥있었다.     어느날 민호가 하진국이 보고 염왕같이 무서운 위삼포가 위인됨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하진국은 그이야말로 완전무결한 류자두령이라면서 관(管)이 대단히 밝은 사람이라 자랑했다. 관이 밝다는건 사격술이 대단하다는 말이다. 이젠 여러해가 된다. 한 번은 위삼포가 일면파(一面坡)에 갔을 때다. 그곳의 왕지주집에서 저녁을 먹고나서 권총을 소제하느라 말끔히 분해했는데 공교롭게도 쌍성(双城)의 관병들이 어떻게 그가 온 기미를 알고는 붙잡으려했다.     위삼포는 담장밖에서 나는 발작소리를 듣고 분해했던 부속품들을 급급히 외투주머니에 걷어 넣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되맞추었는데 대문을 열자 총소리도 울리였던 것이다. 집에서 담장대문까지의 거리는 거퍼 10여보밖에 않되였다. 이일로 하여 위삼포는 관동강호(關東强豪)의 명사수로 이름을 날렸거니와 10보를 걷는 사이 분해한 총을 제꺽맞추는 이라는 것이 생겨난것이다. 그것이 지금은 관동토비들이 우수자를 선발하는 하나의 표준으로 정해지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위진은 바로 이런 두령을 섬기는 것을 영광으로 삼으면서 자기가 거느리는 11명의 새자들에게 두령으로 떠받들리우고 싶어했다. 민호는 이 껍지를 가로먹는 사람―새자들중의 작은 두목이 씹어대는 말뜻을 알수 있었다. 언중유언이라 돈이 생기면 자기한테 코밑치성이라도 해야 옳은일이라는 암시였다. 민호는 언영부터 자기의 목적을 이루자면 허영심많은 이 허저족류자를 리용해야겠다고 마음먹던참이라 이제 짐승잡아 돈을 벌면야 내가 위반장을 어찌 잊으랴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넌짓이 근중을 떠보았다.    《반장, 위반장은 전해에 고태자서 생긴 일 알고있습니까?》    《그 일을 말인가, 알구있구말구.》    《그 사건에 누가 죽었습니까?》    《거야 우리네 허저인들이였지.》    《어떤 놈이 그런 짓 했는지는 압니까?》    《알구있어. 내가 그걸 왜 모르겠나. 거야 청보산패가 한 노릇이였지.》    《전에 온건 어느 패에 있었던 사람입니까?》    《누구말이여?》    《진사해말입니다. 모두들 그러는게 그가 바로 청보산패서 수이샹노릇을 했다더구만.》    《그건 나도알아.》    《안다구? 위진형은 알면서두 그래 그놈을 가만둡니까?》    《가만두잖구 어쩌겠나 보다싶이 우린 이젠 한형제루됐는데.》    《형제라구? 다시말해봐요, 형제라구? 그 자는 바로 허저인의 철천지원쑨데두 형제라구?…어이구 참!》     민호는 너무도 어처구니없어서 쓰게 웃고말았다.     위진이 변명하려들자 민호는 그가 입을 더 열지 못하게 막고는 량심있거든 좀 곰곰히 생각해봐라 무고한 동포의 피가 량손에 랑자하게 묻은 자가 어쩌면 형제로 될 수 있느냐, 네가 그렇게만 생각하면 그게 바로 제 민족에 대한 배반이 아닌가고 비난했다.     말문이 막혀버린 위진은 그만 고개를 떨구고말았다. 이미 시위를 당긴 활이였다. 과녁을 맞추기위해서는 시력을 집중하듯 민호는 그를 눈자리나게 박아보면서 설득시키려들었다.    《소란 놈을 좀 보시오. 그것들이 다른 소의 피만 봐도 발로 땅을 차고 뿌리로 뚜지면서 고함치고 울어대지 않습디까. 말모르는 미물이 다 그럴라니 하물며 감정가진 사람이 이게 뭡니까. 내 발등에 떨어진 불 아니라고 보고만있단말입니까, 그래? 어쩌면 참....》    《후―》     통박을 오래굴려 볼 일도 아니였다. 위진은 한숨을 길게 뽑았다. 곁사람의 조롱섞인 기탄없는 힐난을 받고 보니 여지껏 마비되였던 감정이 정화되면서 정신차리는 것 같았다.     자식이 머리가 이제 좀 도는거냐. 민호는 자기같으면 절대 가만있지 않으리라면서 늦줄을 놓지 않고 계속 쐐기를 쳤다. 그랬더니 위진은 마침내 얼굴이 지지벌개나면서 이제보니 진사해는 과연 때려잡아치울 개구나 돼지구나 하고 욕했다. 원쑤를 갚음에 타인의 협력이야말로 그 얼마나 필요한것인가. 그의 칼에 피를 묻힌다면야 더없이 좋은거고. 이쯤하면 일은 될것같아 민호는 내심 기뻤다.     류자들은 성질이 달랐건만 네것 내것 따로없이 모두먹기에 인정을 트이고 지냈다. 피끗보면 하루하루 란잡스런 자유로 무미한 생활을 엮어가는것 같고 술과 육담을 내놓고는 삶도 사상도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그런게 아니였다. 맡겨진 임무는 조금의 허실도 없이 완성하고 돌아가리라는 각오된 자각과 두령께 끝까지 충성하려는 결심이 그들로 하여금 만일의 경우 들이닥칠 수 있는 불의의변고도 과감히 맛서싸울 수 있게끔 준비시키면서 흩어지지 않는 하나의 사납고도 실력있는 집단으로 단단히 묶어놓고있었던 것이다. 마치 사나운 승냥이들이 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떼를 무은 것 처럼!          날씨가 썩 추워오자 염왕산본부의 후근처에서는 이곳에 나와있는 류자들의 방한을 위해 솜옷이며 모자며 신이며 토시같은것들을 보내왔다. 모두들 올해는 새것을 발급받아 무척 기뻐했다.     류자들의 겨울차림새는 괜찮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맏두령과 사량팔주는 토이기식의 보드러운 수달피모자를 쓰고 그 아래의 새자들은 일률로 우가 여섯쪼각으로 동그랗게 무어지고 단추모양의 꼭지를 단, 모양이 흡사 절반쪼개놓은 수박같은 털모자를 쓰는데 귀덥개는 길고 컸다. 보통 토끼가죽아니면 개가죽이나 승냥이가죽이나 여우가죽으로 만들었다. 그런 모자들은 목이 충분히 가리워 바람이나 눈이 목안으로 날아들어가지 않아 따스했다.     위진은 민호에게 새 여우털모자를 주면서 알려줬다.    《길을 떠나게 되면 귀덮개를 뒤로 졌혀서 끈을 매게… 왜 그러는가말이지. 총명한 사람이 그것두 모르겠나 그래?》    《어께에 멘 분자(총)가 끝이 보이지 말라구 그러는거요.》     옆에 있던 한 새자가 알려줬다.     민호역시 다른사람들모양으로 검정솜저고리와 검정띠와 토끼털로 안을 댄 조끼를 받았다. 뒤가 엉덩이아래까지 내려오는 털가죽조끼를 줄 때도 있었는데 올겨울에는 기와가마마스러 가지 않고 여기에 와 있길래 그것하고 샅이 붙지 않는 털덧바지는 보내지 않는다고 량태가 책임으로 보낸 류자가 여럿앞에섵 공포다.     모두들 하는 말이 맏두령과 사량팔주는 입는것도 썩 고급적이거니와 모양새도 다르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밖에. 그네들이야 전부 나으리가 아닌가.     하진국이 허리띠는 솜저고리를 입고 밖에다 두르는건데 그 용처는 여러 가지라 알려줬다. 길이가 일률로 12자 2치되게 만들어진 그것을 허리에 띠고 거기다 권총이나 분자(칼)같은 것을 꽂을 수 있을뿐만아니라 유사시에는 바줄대신으로 사용하기도한다는거다.     소가죽울라신도 새것을 배급받았다. 민호는 올해까지 4년철을 신어보는 신이였다. 한데도 위진은 이 조선청년이 언제 이런 신은 신어봤겠느냐면서 하진국이더러 그한테 신는 방법을 배워주라했다. 그래서 하진국은 우선 울라초를 보드랍게 해갖고 와서 손수 발에다 감아주면서까지 차견히 알려주는것이였다.     야 이 뻐꾹아. 네 눈에도 내가 그렇게 숙맥으로 돼보이냐. 민호는 자기 발을 내맡긴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이틑날 아침.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누구보다도 빨리 울라신을 신었다. 그런다고 온 반의 새자들이 눈이 둥그래갖고 어쩜 뭐든 이리두 제꺽제꺽 배워낼가고 혀를 내둘렀다. 이 일로하여 민호는 다시한번 그네들의 눈에 대단히 총명한 젊은이로 돼보인건 더 말할것없다.     모두들 그를 과연 혼이 붙었나봐했다. 한것은 민호가 다른사람은 꿈에도 바랄 수 없는 털양말 한 켤레를 더 받았기 때문이다. 하얀 양털실로 탄탄하게 뜬건데 그건 위삼포의 딸님이 보낸것이였다.    《허참 별일다있다! 향란이가 그한테 양말을 떠 보내다니?》    《관심이 이만저만아닌걸!》    《어느새 벌써 그런 사리룬 됐나?》     입끝마다에서 부러움끝에 놀림절반 담긴 말들이 흘러나왔다.       두령의 딸님이 어떻게 돼서 그한테만 독특한 관심을 보이겠는가, 그건 민호가 이민족의 젊은이기 때문이라느니 사나이가 생김이 름름하니 아가씨가 안중에 든거라느니 하는 따위의 제멋대로의 추측들도 있었다. 민호는 빌어먹을 자식들 어디 실컷 까불고 찧어보라했지만 자신도 향란이가 왜서 자기한테만 그같은 애잡짤한 관심을 보이고있는지 알길없었다. 그는 그 양말을 받긴했어도 신지 않았다. 울라신에 그것이 별로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향란이가 이런줄을 모를가? 그녀가 모를리없다. 한데도 그녀는 이처럼 수고스레 마음을 쓴거다. 과연 왜서일가? 민족우대는 아닐텐데. 그렇다면 이 사나이가 눈에 들어서? 정녕 그러하다면 이 사내의 어떤 장점에?…민호는 종잡기 어려운 아리숭한 기분에 빠지고말았다.     웅성들만 모여있는 염왕산에서 유일하게 피여있는 한떨기의 아름다운 꽃인 향란이가 곧바로 녀인의 화신이요 모든 사내들이 떠받드는 우상이기도했다. 그러한 그녀를 새자들은 입끝에 올렸다.    《향란이가 올해 나이 아마 스믈다섯이지?》    《시집은 왜 안가는지?》    《아직두 알맞는 대상이 없나보지.》    《아따 거 황보재가 있잖은가.》    《좋아지낸진 오래두 신랑감으룬 아마 모자라는모양이야.》      《뭐가 모자라게?》    《아따 그것두 모르겠나. 요긴하게 쓰는게지.》    《보재가 고재란말이냐, 그래?》    《누가 오줌싸는걸 봤는데 고재는 아니더래.》    《아마 물렁좆인모양이야.》    《뭐라? 하하하…》     민호는 위용강과 동갑인 황보재가 염왕산류자치고는 꽤 만만찮은 인물이란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그가 과연 향란이가 고른 신랑감일가? 사실 그렇다면 좋은 멋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민호는 그가 지금은 같은 배에 앉아가는 처지요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형제간이 돼버린 연유로하여 친절하달정도로 사근사근 대해주고있지만 언젠가 말타는 향란이를 거들어주다가 성급스레 칼부터 빼들면서 자기와 결판내려던 일을 다시생각하고는 내가 향란이와 가까워지면 그건 섶을 지고 불더미에 들어가는게 아닐가했다.            
403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8) 댓글:  조회:2348  추천:0  2015-02-03
                            8                 민호는 죽지 않았다. 한바탕 된 곡경을 치르고 보니 그는 웬 일인지 전보다 혈관에서 피가 거세게 흐르느것만 같았다. 온 몸에서 스러져가던 기운도 차츰 되살아나는것만같았다. 그래서 살고푼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삶을 버리고 이대로 여기서 죽어버린다는건 너무도 애닯은 노릇이것 같았다. 내가 왜서 죽어야하는가? 아까운 청춘도 다 못지내보고 값없이 죽다니 원. 죽지 말아야한다. 민호의 가슴속에서는 살고푼 욕망이 한결 세차게 솟구치기시작했다. 한데 가석하게도 목숨이 내것이긴해도 그것을 살리는가 못살리는가는 내맘대로 아닌 그였다. 잔인한 토비 손에 잡힌 신세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거라 생각 하면 자비가 먹장같이 가슴을 덮고 메워오는 걸 어할 수 없었다. 종잡기어려운 감정의 수렁에 빠져 아느새 모대쳤다. 그리고나서 그는 그것이 좀 진정되자 자기가 나무를 찍어넘기던 일을 상기했다.     그날 그는 단 하나 살아야한다는 강렬한 충동과 욕망에서 그야말로 그 자신도 믿기어려운 초인간적인 마력을 푼것이다.     위삼포가 뭐라했던가.    《됐다, 네녀석은 이젠 무병장수할거다!》     어깨를 탁 치며 이랬지. 분명 그랬어. 귀중한 약재를 감히 흠쳐먹은 이 우둔한 놈을 죽이지 않고 아직 살려주고있는게 과연 기상천외의 별일이였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속은 모다더니 과연 알수없는것이 위삼포의 속마음인것 같았다. 악마에게도 그래 자비가 있을수있단말인가?     민호가 까딱않고 누워 의문의 소용돌이에 잠겨있을 때 뜻밖에 향란이가 나타났다.     아니 저 고약한 계집은 왜 또 바라오는거냐?… 자기한테 권총을 겨누던 일과 술을 먹이던 일이 다시금 상기되자 민호는 경계하면서 다시는 거들떠보지도않을 양으로 낯을 저쪽으로 돌렸다.     염왕산의 위삼포에게 자식이라고는 오누이뿐인데 아들 용강이는 올해 나이 27살이고 향란이는 25살이였다. 향란이는 총명하고 재질있는 녀자였는데 어려서부터 제멋대로 담을 키우며 자란탓에 자존심이 너무도 강하고 오만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랄가. 그녀가 마음내켜서 일부러 찾아왔건만 대방은 거들떠보지도않으니 화나고 괘씸했다. 위세가 꺾이고 우롱당하는 것 같아 향란이는 입을 옥물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그렇다고 밸쓰고 돌아가면 제 칙간도 몰라서 망신하는 것 같이 더 꼴불견이 되고마는지라 난생처음 치미는 분을 꾹 참으면서 입을 열었다.    《날 왜서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나요? 전날 치밀었던 분 아직도  안삭았나보죠.》     자중하면서 온화하게 타협하는 투였다.     민호는 반쯤 뉘였던 몸을 벌컥 일으켜 바로앉으면서 낯을 다시돌리였다. 녀인은 품에 딱 맞는 분홍색나는 가을세타를 입었는데 건방지게 두팔을 유방이 봉긋이 부풀어난 가슴우에 곁고있다가 사나이가 아니꼬와 눈총을 놓자 그만 멋적은지 도루내린다. 그리고는 전날 를 부르던 비도가 앉았던 걸상에 가 앉아 미끈한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면서 되도록 얌전하게 몸을 가꾸었다.     그래야지 그래야 여자멋이 나는거야. 민호는 이제야 토비두령의 따님을 면전에 놓고 똑똑히 여겨볼 수 있었다. 키는 츄얼이만큼 헌칠하고 몸매도 고운축인데 용모또한 못지않았다. 향란의 혈색좋은 얼굴은 제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달걀형이였다. 자태가 도고한 그녀가 정기도는 쌍가플눈을 찌프리며 가로볼 때면 어딘가 야수같이 사납고 매서운 감이 났다.     녀인을 오만하게 만드는 건 그 자신이 자랑하고있는 미모가 아니면 지나친 자존심일 것이다. 이 계집도 얼굴이 이만하면 미모인데다 두령의 따님이렸다 말잘타는 걸 봐서는 부출이 대단히 센 녀자였다. 보아하니 무예역시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녀인의 래방이 그닥반갑지 않은지라 민호는 입을 열어 뜨아하게 물어봤다.    《아가씨는 왜 왔습니까?》    《오면 안되나요? 호ㅡ 인제보니 우린 인사늦었네요.》    《그게 뭐 필요하다구. 난 잡힌 놈인데.》    《신세땜에 너무속태울건 없어요. 내가 찾아온건 다름아니라 저.... 한마디 충고할일이 있어서요.》    《뭐라? 아가씨가 나한테 충고할일이 있다구?》    《그래요. 저의 부친님께 감사나드려요.》    《뭐라! 내가?》    《그래요. 거기서요.》    《날 죽여주지 않아서 감사하단건가?》    《무슨소릴 그렇게 죄쳐요. 죽여주지 않은게 아니라 자신이 죽자구든건 왜 말안해요.》    《내가 죽자구들었다?》    《그렇잖구. 록욕은 왜 그렇게 먹었나요. 미런스레. 그리구두 사는줄알았던모양이지.》    《…》    《저의 부친께서 그같이 땀빼게 굴지 않았더면 아마 그 자리에서 돼지같이 뻐드러졌을거얘요.》     민호는 눈만 꺼무럭거렸다. 그렇지, 맞았어! 위삼포가 나한테 도끼주어 나무를 찍게한건 내가 땀을 콱 빼라고 그런거로구나. 약독을 빼느라구. 안그랬으면야 내 꼴이 과연 어떻게 됐을가?… 아아, 그래서 나는 산거로구나! 살수 있게 된거로구나!  가만있자, 그러고 보면 위삼포는 영 악마가 아니잖은가.    《어때요. 내 충고가 무례하지야않겠죠.》     향란이는 얼굴에 미묘한 웃음을 담으면서 여지껏 풀지 못한 의문과 갈피잡지 못할 상념 때문에 내내 안정을 찾지 못하고있던 사내의 근중을 뜨고있었다.     다른때와는 달랐다. 성미가 무척 표독스러울 녀인이 이 시각 나긋나긋해지고 있었다. 민호는 권유가 옳은지라 이 시각 그녀가 덜미워보이면서 인정스럽기까지 해서 머리를 주억거렸다.    《인제야 깨닫는군요. 응당 그래야죠. 아버진 아마 특사까지 내리실거야. 이건 정말 하느님도 못하는 일이얘요.》     이 말은 민호는 기쁘게했다.    《아가씨! 그러니까 위두령이 날 여기서 내보내리란말입니까?》    《못난이같네! 말도 그래 씹어줘야 넘길셈인가요.》    《알려줘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아가씨!》     민호는 안도의 숨이 나왔다.     녀인은 사나이가 무등 기뻐하는 모양이 재미있는 양 여겨보다가 정색하고 물어왔다.    《그사이 아마 무척 괴로왔을텐데 이젠 어쩔셈인가요?》     뭘 어쩔셈이란말인가? 알자는게 뭐길래?…대답을 얼른 할 수 없었다. 하여 민호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마주보다가 말했다.    《오 그렇지! 내가 위두령님을 배알해야지.》     녀인은 랭소를 머금으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한가지 물어보래요?》    《뭔데? 말하시오.》    《잃어진 안해를 찾고있는중이라죠? 그렇지요?》     어쨌다구 남의 일에 흥취는 갖는거냐, 싱겁게. 녀인이 집요하게 캐고드는게 언잖았다. 그렇다고 감출필요는 없는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난 지금 내 처를 찾고있는중입니다.》    《안해가 다즈녀자라죠? 그 옷 지은 솜씨 대단하네요! 결혼복이였던가보죠?》    《…》    《한가지 더 물어볼까요. 그 다즈안해 인물이 어때요? 고운가요 미운가요?》     이건 어딘가 비웃는것 같고 실답지 않은 물음이였다. 더구나 말끝마다《다즈, 다즈》하는게 경멸감을 풍기기도했다. 그래서 민호는 입을 다믈고 열지 않았더니 향란이는 그만 멋적은지 낯색이 붉어지더니 휑하니 나가버렸다.    《쳇 별난계집 다 본다. 남의 안해 곱던 밉던 그게 네한테 무슨상관이냐.》       민호는 녀인의 뒤통수에다 랭소를 던졌다. 그리곤 아무튼 여기를 살아나가게 됐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금 기쁨이 끓어올랐다. 이제 여기를 빠져나가서는 잃어진 안해를 어떻게 찾을건가고 생각해봤다. 잊을 수 없는 밀월의 향기는 그로하여금 안해에 대한 그리움을 더 절절하게 하고 있었다. 한편 민호는 또 츄얼이는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불행은 당하지 않았을건데 하고 스스로 자책감에 모대기치기도했다. 죄를 씻기 위해서도 안해를 꼭 찾아봐야한다. 이건 남편된 나의 책임인거야 하고 그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한데 희롱받을 운명이였던지 일은 과연 묘하게 번져갔다.     산채가 여느날보다 소연해지기시작했다. 팔방 여덟 개 산채에 나뉘여 들어있는 수백명의 류자들이 중앙산채의 뒤켠마당에 집결하는것이였다. 대체 무슨일일가. 안하무인이요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는 놈들인데 대체 뭘하느라 모이는걸가? 혹시 나를 처리하자고 그러는거나 아닌지? …민호는 가슴놀이 느닷없이 뛰기시작했다.     다시생각 해 보니 그를 처리하자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를 감시하는 자가 없어진거다. 문도 잠그어놓지 않았다. 대체 무슨일일가?... 밖에 나가보고싶었다. 하지만 민호는 겨우 문가에 까지 갔을 뿐 문턱밖으로 감히 발을 내놓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범계를 해서 또 어떤 변이 생길지 모를일이였다.     개구리 모여 울건 떠들건 그걸 수탉이 알아서는 뭘하는가 네놈들이 하는 일 내알배 아니야. 민호는 구들에 흰들 누워버렸다.     구들은 불을 때서 따스했다.     비도들은 오후해가 썩 기울어서야 모임을 파했다. 저녁은 새하얀 밀가루만투 두 개에 돼지고기를 넣고 볶은 녹두채를 주었다. 대체 무슨일일가고 궁금증이 더해져 오늘낮에 무슨일있었느냐고 물어봤더니 저녁을 갖고왔던 자가 눈만 흘길뿐 알려주지를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향란이가 다시나타났다. 민호는 왜선지 그녀를 다시대하고보니 가슴속에 야릇한 흥분이 찰랑이였다.     향란이는 석냥을 그어 갖고 온 양초에 불을 달았다.     그녀는 어둠이 잦아들고있는 방안을 밝히면서 입을 먼저 열어 이쪽에 물어왔다.    《이걸 어디다 놓을까요?》    《고맙습니다, 아가씨! 이리주시오.》     민호는 양초를 받아서 밤에 잘 때 발이 가는 뒷창턱에다 세워놓았다.    《그걸 놓을 자린 찾을줄을 아네요.》     향란이는 비양쪼로 한마디 이죽거리고나서 심술궂은 눈으로 대방을 이윽토록 노려보더니 입을 다시열어 오금을 박는것이였다.    《당신네 고려사람 례절은 그런가요?》    《아니 왜 그럽니까?》    《왜 그럽니까가 뭐얘요. 시키는 서방질두못하겠나요 그래? 》    《무슨소린지…》    《왜서 아직도 가보질않아요. 감사하단는 인사말 한마디 번지기 그리두힘든가요. 정말 신사답지못한 사람이네.》    《그건 내가 저…》     민호는 열었던 입을 되닫고말았다. 변명이 무슨필요있는가, 자기가 위삼포를 배알하리라던 것이 이미 헛소리로 돼버린데야. 멋적은 난면을 수습해야겠기에 그는 딴전을 쳤다.    《아가씬 접때 타본 그 백마가 어떻습디까?》    《좋더군요. 건데 나하구 그건 왜 묻는가요?》    《아가씨가 혹 그걸 잡아먹지나않았나해서.》    《참 깜찍스레도 노네요. 그걸 내한테 앗길가봐 근심나던모양이죠. 시름나요, 안가질테니.》    《아, 아니 그래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아가씨한테 그게 소용된다면야 줄수도있지요, 대신 내가 타고 갈 말을 준다면.》    《인심후한 양 하네요, 남의걸 빼앗은 주제에.》     향란이는 비웃고나서 얼굴에 악의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말을 타고 달리던 광경이 눈앞에 다시떠오르자 민호역시 만면에 웃음을 흘리면서 넌짓이 물어봤다.    《건데 전날 아가씰 거들어주던 량반은 누굽니까?》    《어느 사람말인가요?》    《아 그 용감한 검사있잖습니까, 발검했다가 침뱉고 돌아서던이. 그게 아가씨의 오빤가요?》    《아니애요. 내 오빠는 그날 안나왔더랬어요.》    《오, 알만하군. 그럼 그게 아씨의 신랑되는....》    《입다물어요. 결혼도 안한 녀자하구 망탕소릴. 날 아씨라말구 아가씨라불러요.》    《아니, 그럼 아직은 미혼이란말입니가, 그래?》    《그래요.》    《허참. 그런걸 난 또…그렇다면…그 사나인 잘생겼더구만.》    《별소릴 다 하네요. 남성들끼리두 인물평을 하는가보지.》     녀인의 기탄없는 놀림에 민호는 그만 낯이 확 붉어졌다.     그가 말이 없자 녀인이 입을 다시열어 침묵을 깼다.     《저의 부친께서 래일 자유를 줄거얘요. 그런줄이나 알고 속태우질랑말아요. 여기서 목숨붙어 나가는것만도 다행인줄 알아요.》     그렇다, 인질로 잡혀온것도 아니요 범계한 사람이 염왕손에 잡혔다가 무사히 풀려나간다는건 하늘도 놀랄일이다. 민호는 자기는 국적다른 사람이길래 관방과도 어디와도 련계없으리라 여기고 위삼포가 관용을 베푸는거라여겼다. 하여간 목숨살려내니 천만중다행이요 운수대통이라해야 할 것이다.     이젠 과연 안도의 숨이 활 나가는지라 민호는 아까부터 괴여오르던 궁금증이나 마저풀고싶어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오늘 저녁끼가 별루좋습디다. 건 왜선가요?》    《거야 좋은 날이라 생활개선을 하니까 그런거죠 뭐.》    《좋은 날이라니 명절이란말입니까?》    《명절은 아니야요.》    《그러면?…》    《오늘 새자 하나가 더 가입했어요.》    《오, 알만합니다. 워낙은 그런일이였구만!.》     민호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러니 이네들 도당에 성원 하나가 더 불어났다는거로구나. 끼니마저 개선하는 걸 보니 아마 수수한 인간은 아닐거다 하면서 민호는 그게 어떤 자일가 생각했다.     이러던차 녀인이 스스로 알려주는것이였다.    《그래요. 괘주를 한 그 분이 오기는 청보산패에서 왔는데…》    《뭐라구!?....》     청보산패라는 말에 민호는 깜짝놀랬다.     녀인은 이 조선족사나이가 낯빛이 갑작스레 돌변하는지라 다시쳐다보면서 자못 의아해하였다.    《왜 그래요. 청보산을 아는가요?》    《아, 아니요. 내 친구 하나가 별명이 청보산인데 언제 록림객으루됐는지 몰라서 그럽니다.》     민호는 제꺽 꾸며댔다.    《그래요. 호호호…알려드릴가요. 청보산은 사람이름따라지은것도 아니고 별명따서 지은것도 아니얘요.》    《그럼?》    《청보산이란 거기 맏두령이 제멋대로 지은거래요. 청보산이 말로는 기국한지 반백년이 된다지만 어찌 우리네 염왕산과 감히 비기겠나요. 워낙 볼모양없던 떨거지패였는걸요.》    《아, 그렇습니까! 건데 어떻게 돼서 그 패에 있던 사람이 이리룬왔답니까?》    《말하자면 길어요. 몇해전에 당벽진서 불의의 행세를 하더니 고태자서 또 그런 짓을 해 청보산은 아문의 숙청에 들어 괴멸되고만거얘요. 천벌이 내린거죠.》     향란이가 (주)과 을 입밖에 끄집어내니 민호는 분노하여 가슴이 뛰기시작했다. 때려죽일놈, 우리가 빼운 원쑤놈이 이리루왔구나. 어떤놈일가? 그게 혹시 내가 찾으려는 놈이 아닌지?… 이 녀인은 방금 온 자에 대해서 잘아는 것 같았다. 민호는 그걸 알고싶어 물어봤다.    《청보산패 사람인게 분명합니까?》    《그렇잖구요. 거기서는 자리에 서던 인물인걸요. 수이샹이였으니까요.》     수이샹(水香)이란 류자조직내의 세 번째가는 급인데 초소와 류자들의 규률을 전문책임지고 관리하는 자로서 민호가 원쑤로 점찍어온 진사해(陳四海)가 바로 그 직에 있었던 놈이다. 참 그자가 여기로 게발아들어온거나 아닌지.     《거기서 자리서던 사람이라면 아마 급이 있어다 그거겠지.》     민호가 혼자소리퍼럼 중얼대면서 머리를 주억거렸더니    《그래요. 돌아가는게 빠르네요!》     향란이는 칭찬하곤 그는 성명이 진사해(陳四海)라 알려줬다.    《아니!?.... 》     추측이 맞아떨어지는지라 민호는 무망간에 다시 한번 찔끔 놀랬다. 어정쩡해 나면서 가슴이 뛰기까지 했다.    《왜 그래요? 그일 아는가요?》    《아, 아니,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향란이가 의문스러워하자 민호는 얼추 이렇게 응변하고나서 속으로 자기를 향해 부르짖었다. 참으라, 감정을 내비치지 말고 주의하라, 순간을 넘기지 못해 운명이 역전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렇다, 영민한 녀인이 이 순간 대방의 속내를 파고들수도있는것이다.       민호는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다사 넌짓이 한마디 던졌다.    《허허, 진사해라! 그 사람 이름대루 생겼으면 맘이 바다같이 너르겠구만. 그렇지요?》    《그럴거얘요. 우리네 화서즈가 소개받은 인물인데 아무렴 속한이겠나요.》     향란이는 이러면서 약 보름전에 사람 둘이 류자에 가입했는데 오늘 또 새로 한사람이 가입했으니 국(局)이 붉어진다고했다. 뜻인즉 여기 이 염왕산의 진영이 흥성해지고있다는거다. 자랑이였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내가 과연 네놈을 여기서 만나게되는구나! 이젠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만나자던 원쑤놈이 여기에 온걸 알구서야 내가 어찌 가만둘소냐. 영민한 고양이 소리없이 먹이를 찾는다잖는가. 내가 고양이 쥐새끼잡듯 네놈의 명줄을 끊어놓아야 한다. 복수의 약으로 내 원쑤갚고 민족의 원쑤갚아 원한을 풀어야 한다. 새옹득실(塞翁得失)이라 세상일이 복이 될 지 화가 될 지 예측키는 어렵지만 민호는 자기가 원쑤를 갚기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스스로 위삼포만나러갔다.         민호는 별채모퉁이를 돌다가 공교롭게 이 산채에서는 일반인물이 아닌 두사나이와 맞띠였다.    《어이 여봐, 어디루가?》     저켠에서 말을 걸어오길래 여겨보니 전날 칼을 빼들던 자였다.     그는 이름이 보재(寶財)였다. 전번모양으로 태도가 아주 거만스러웠는데 옆꾸리에서는 오늘도 단검이 거들거리고 있었다. 이쪽 다른 한 사나이는 권총탄대를 띠처럼 허리에 둘렀는데 몸체가 건실하고 단단하게 생겼거니와 모색이 위두령을 닮아서 민호는 그가 바로 위삼포의 아들이라는것을 어렵잖게 알아맞혔다. 그의 이름은 용강(勇康)이였다.      《나 위두령만나러 가오.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하는가?》     민호는 그들 다가 악의는 없는 표정인지라 대담히 물어봤다.       별채가 여럿붙어있는 산채여서 문을 모르고는 미궁속같은 중앙산채로 들어가기 힘들었다.     묻는 말에 보재가 알려줬다.    《앞쪽으루 더 가라구. 저 별채가 보이잖아. 그걸 건너구 또 하날 돌아서 가면 돼. 본채에 난 문으루 들어가라구. 별채문은 열지 말구. 거긴 위아가씨의 방이니까.》    향란이는 별채 하나를 더 건너 다음의 별채에 있었다. 그 별채는 정남이였다. 민호는 이제야 모양이 똑같은 별채 여덟 개가 붙어서 이 중앙산채는 건축형식이 독특하면서도 치차모양으로 유별나게 건설되였음을 똑똑히 알게되였다. 이 아담진 목제의 별채들이 바로 여기 이 염왕산의 원로이자 이 한 도당의 수괴들인 팔대금강―사량팔주(四梁八柱)가 나뉘여 들어있는 거실이였던거다.    《저자식이 왜 아직두 가지 않고 여기서 꾸물거리고있어?》    《부해 하루 더 먹여주는모양일세.》     보재와 용강이가 주고받는 말이였다.     위삼포의 딸 향란이가 들어있다는 별채에 창문이 열려있었는데 하얀 비단카텐이 드리워있었다. 그 앞을 지나 모퉁이를 돌던 민호가 이번에는 백두옹 량태와 머리반백인 한 늙은이를 만났다. 백두옹은 기실 나이가 쉰살푼했지만 이쪽 반백의 사나이는 나이 일흔이 다 된 늙은이였다. 한때는 풍채좋았을 얼굴에 버섯이 돋고있는 그가 바로 염왕산의 군사(軍師)인 반둬더(翻垜的)였다.     민호는 그들앞에서 정중히 인사차림을 하고나서 물었다.    《전 저 위두령을 만날려구하는데요. 어디루 들어가야합니까?》    《저 문으로 곧바로 들어가게.》     량태가 손을 들어 알려주었다.    《담통크니 부해 한모금 더 먹어보지, 안그래유 형님.》     민호는 바람결에 백두옹이 자기를 놓고 하는 얘기를 잡아들으면서 위두령을 만나러 들어갔다     위삼포가 마침 자기의 거실에서 중앙청으로 나오고 있었다.      민호는 그의 앞에 다가가 허리굽혀 공손히 인사를 차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소인이 두령님께 올릴말씀있어서 왔습니다.》    《무슨일인가?》    《두령께서 절 내보내시련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민호는 말을 채 하지 않고 사리였다.    《그런데 어쨌다는건가?》     위삼포는 눈쌀을 찌프렸다.     어물거리면 공연히 의심살것같았다. 하여 민호는 소름끼치게 하는 그의 얼음같이 차고 쌀쌀한 낯을 어름어름 피하다가 다시금 여겨보면서 동강났던 말을 이었다.    《전 여기를 떠나고싶지 않아서요.》     이건 예상밖의 일인지라 위삼포는 자기 앞에 나타난 이 조선젊은이를 이윽토록 여겨보는것이였다. 민호는 말해놓고도 속이 은근히 떨려났다. 하지만 이미 내친 걸음이니 그 취지를 분명히 밝혀줘야했다. 민호는 자세를 바로가꾸고나서 입을 다시열었다.     《실은 제가 여기를 나간다해두 이젠 몸둘곳도 없는 신세입니다. 어디로 가랍니까. 그래서 저는 그런바하곤 차라리 위두령께 의탁하고싶은 맘이 생긴겁니다. 그런다면 전 일신의 용기와 정성을 다하렵니다. 위두령께서 어떻게 생각하실런지 저의 생각이 이러하온즉 위두령께서 많이 념려해주십시오. 받아만주신다면 저는 그걸 무한의 기쁨으로 여기겠습니다.》     위삼포는 곰곰이 듣더니 만면에 희색을 띠었다. 개도 사나운 개를 돌아본다잖았는가. 그러잖아 민호가 가지 않겠다면 차라리 받아두려던참이였다. 건강한 체격에 담대한 이 조선젊은이가 안중에 들었던거다. 범속한 인간을 백명 갖고있는것보다 지혜와 담력있는 신하 하나를 데리고있는 편이 훨씬 더 나은거다. 이같이 생각하고  여겨온 위삼포는 민호를 향해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수락함을 표시한거다.     부드러움이 위삼포의 성품인건 절대아니였다. 신의 권능(權能)으로도 어쩌지 못한다는 북만토비의 거두 위삼포는 문무겸전(文武兼全)하여 감히 어깨를 겨룰자가 없거니와 용력과 지모가 난당이요 억강부약(抑强扶弱), 살부제빈(殺富濟貧)을 부르짖어 후덕(厚德)을 과시하나 잔인함은 상상키 어려워 동당들의 경탄과 악명을 함께 날리고 있었다.          염왕산토비입적 즉 괘주(挂柱)에 민호역시 진사해와 마찬가지로 시험은 치지 않아도 되였다. 시험은 가입자의 본심이나 담략을 알아내기위한것인데 위삼포는 그것을 이미 알아본거나다름없었다.      (물론 복수의 칼을 속에 품고있는거야 어찌알랴.)     토비들은 동당을 처음뭇는 기국(起局)때를 내놓고 새로 가입하는 길이 있는데 그것을 괘주(掛柱)라 한다. 괘주는 간단치 않은 일로서 담보인을 찾아 가입하는것과 자기절로 찾아와 가입하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담보인은 일반적으로 류자내에서 사량팔주와 익숙한 사람이여야하는데 그를 통해 이름이 우두머리한테 전해진다. 가입자는 반드시 글을 남겨 그들이 선생으로 모시는 즈좡(字匠)에게 보관케 한다. 자기들이 하고있는 일이 결코 시시한건 아니라고 보는데서 세워오는 하나의 제규(制規)였다. 류자입적 수속으로 되는 거기에다는 자기가 온 래의를 밝히는데 주마비진(走馬飛塵), 불계생사(不計生死) 따위의 글을 써 놓음으로써 서명맹세를 하게 돼있다.     제발로 찾아온자에 대해서는 일률로 아주 엄하게 대한다. 그런 자는 거개가 류자내에 동기간이나 친척, 친구가 없거나 면목아는 이가 없어서 부득불 타인을 통해 다리를 놓아 오는 것이다.     무릇 가입자에 한해서는 먼저 그한테 담량이 있는가 없는가부터 알아보는데 그것을 과당(過堂)이라 한다. 과당은 방법이 두가지였다. 그더러 물담긴 호로병박이나 병사리를 주어 꼭대기에 이게하고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곧추 백보를 가게한다. 그래놓고는 그가 일정한 거리에 이르렀을 때 맏두령이나 포토우(炮頭)가 권총을 갈겨 《땅!》소리와 함께 꼭대기에 인 것을 박살낸다. 그러면 다른 류자가 달려가 그자의 바지를 만져 아래가 젖었는가 젖지 않았는가를 검사한다. 어떤자는 머리에 인 것이 박살나는통에 기겁해 오줌을 싸거나 혼비백산하여 땅에 주저앉고만다. 그런 담약한 자는 궁둥이를 탁 차서 그 자리로 쫓차버린다. 그런자를 띵잉(頂硬)이라하는데 이것이 한가지 방법이요, 다른 하나의 방법은 류자대오가 기와가마(富豪)를 짓부시거나 관병, 경찰대를 만나 싸울 때면 맨 선두에서 돌진하는 명사수 포토우가 그를 데리고 나가 그한테 분자(총)와 청자(칼)는 주지 않고 즉 단신으로 정탐하여 략탈물을 찾게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에 들면 포토우가 맏두령께 알리여 그로하여금 당자를 불러 너는 단단하니 남기기로 한다는 말을 해서 시험에 통과되였음을 알도록하는 것이다.     그런 후 길일을 택하여 맹세의식을 거행한다.     민호는 그저 입적수속만 밟고나서 가입맹세를 했으니 때는 이해, 즉 1924년도 음력 9월 28일이였다. 이날이 바로 상강이였는데 가을내 곱게 물들었던 단풍들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기시작했다. 청쾌한 날씨였다.     의식장은 전날처럼 중앙산채의 뒷마당이 아니고 앞마당으로 바뀌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구입(舊入)과 신입(新入)자는 형편이 다르기 때문이다. 진사해는 워낙 신분이 류자이긴하지만 구입자요 정민호는 이제 처음 류자무리에 발을 들여놓는 신입자이기에 모든 것을 새로배운다는 뜻에서 장소가  밝은 자리인 앞마당으로 정해진 것이다.     중앙산채앞에 판자로 든든하게 만든 단우에 돌을 절구모양으로 파서 만든 네모난 검은 향로가 하나 놓여있고 그 앞 가까이에 사량팔주가 갈라앉았으며 널직한 마당에는 360여명의 류자들이 렬을 지어 앉았다.     가입맹세의식이라서 분위기는 자못 엄숙하고 정중했다.     의식은 류자내의 군사이자 맏두령의 참모이면서 천문지리와 팔괘행문(八卦行文)에 정통하고 생진팔자(生辰八字)를 능히 볼줄아는 반둬더가 집행했다. 민호는 그가 시키는대로 앞에 나가 재향(栽香)했다. 가느다란 향 19가치를 손에 받아쥐였다. 그중 18가치는 18라한을 위해서 태우는것이고 한가치는 두령을 위해 태우는것이였다. 민호는 한가치씩 불을 달아 앞쪽에 3가치 뒤쪽에 4가치 왼쪽에 5가치 오른쪽에 6가치를 꽂은 후 중간에다 나머지 한가치를 꽂아놓았다. 그리고나서 향탁앞에 꿀어앉아 높은 목청으로 사전에 암기해둔 명문화된 구절을 뇌듯 입으로 번지였다.                나는 오늘 가입하여                 형제들과 한마음되였도다.                 내가 만약 마음변하면                 날벼락을 맞으리요                 두령님의 버림을 받으리라.                 나는 오늘 가입하여                 형제들과 한마음 되었도다.                 비밀을 지키고 변절을 안하고                 친구를 팔아먹지 않으리라.                 규률을 지키리라.                 내가 만약 배반한다면                 칼탕을 맞으리오.                 두령님들의 버림을 받으리오.                 형제들의 버림을 받으리라.       민호가 말을 끝내니 위삼포가 먼저 입을 열어 그에게 말했다.    《이젠 너도 우리와 한집안 식구됐다. 자, 일어나거라.》    《고맙습니다, 두령님!》     민호는 그에게 국궁재배하고나서 반둬더가 시키는대로 먼저 포토우앞에 다가갔다. 듣는말에 의하면 나이 50대인 이 대머리사나이는 아직도 날파람있고 총잘쏜다고 한다. 허니까 그의 총알에 날아난 목숨이 얼만지는 그 자신도 딱히 모른다. 민호는 혈색좋은 그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 동생은 일후 형님의 말을 잘 들으렵니다.》     포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년장자다운 틀거지를 차리면서 알려주였다.    《강자는 꾸준한 배움과 훈련속에서 나오는거요. 동생은 사격술을 련마해야하오. 매일아침 일찍일어나고 제 보금자리를 밟아 마스지 말아야겠소. 이젠 젓빨개도 아니니만큼 모든일에 주의해야지. 일이 생기면 제때에 알리도록하구. 알아들었는가? 우리 모두의 목숨이 내 하나에 달려있다 생각하고 그걸 잊어서는 절대안되겠소.》     말을 마치고나서 그는 민호에게 총과 탄알을 주었다.     민호는 그걸 받고나서 이번에는 백두옹 량태앞으로 갔다    《이 동생은 형님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우리가 산채를 떠나면 풍찬로숙할 때도 어려울 때도 많고많소. 그런 때면 좋고 나쁜 음식을 가릴 처지가 못되지. 모자라면 형제끼리 나눠먹구…공융이 배를 받지 않고 남을 주었다는 옛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좋은 본보기니 그이를 따라배워야하네.》     그리고나서 그한테 옷과 이불과 세면도구를 발급했다.     이번에는 얼굴이 돌같이 차고 굳어보이는 수이샹앞으로 가서 그한테도 사전에 배운대로 두손모아 왼쪽어깨우에 올렸다가 내리우면서 류자식의 경례를 했다.    《이 동생은 수이샹형님의 가르침을 받으렵니다.》    《동생은 자기에게 떨어지는 임무를 제때 착실하게 완수하기바라네. 그리구 모든 규률을 잊지말고 잘 지키게. 일일이 가르쳐야 배우겠나. 자각이 되라는거네. 알아들었나?》    《예, 알아들었습니다.》     반둬더역시 그에게 잘하기를 부탁했다.     이로써 내사량에게 올리는 인사는 끝나고 그 다음부터는 외사량인 양즈방(秧子房), 화서즈(花舌子), 차챈즈(揷千子), 즈좡(字匠)앞에 가서 먼저사람들 앞에서 모양으로 일일이 인사했다.     양즈방은 인질을 잡아가두는 방인데 그일을 전문맡아보는 두령의 직명으로 되어버렸다. 그리고 화서즈는 류자내의 련락관이고 차챈즈는 정탐을 책임진 두목이며 즈좡은 전문 편지를 쓰고 류자내의 문건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인물이다.     민호는 그들앞에 가서 인사할때마다 잊지 않고 주의해서 두손모아 왼쪽 어깨우에 올렸다가 내리군했다. 여기 이 염왕산은 물론 관동의 다른 규범화된 토비들은 다가 두손모아 앞가슴에 올리여 인사하는 것을 대단히 꺼리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모양이 신통히도 수쇄(手鎖)를 찬 동작과 같았기 때문이다.     민호는 시키는대로 맏두령으로부터 팔대금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인사를 하고나서 몸을 돌려 이제는 형제라고 보아야한다는 다른 모든 류자들을 향해 인사했다.     이로써 그의 류자들앞에서의 가입맹세는 끝난셈이다.     이날 염왕산류자들은 뜻밖에 자기들의 무리에 가담한 조선젊은이 덕분에 또 한끼 생활개선을 한건 물론 말썽부렸던 그에대해서 입가진 자마다 이러니 저러니 평을 달아가면서 의론도 많았다.     민호는 군사체제로 편성되여있는 제1련 1패 3반에 배속되였다. 반장은 방정서부터 언녕 면목을 익혀둔 허저인 류자 위진이였다.    《여보게, 어떤가? 내가 자넬 끌어당겼네.》     위진이 웃으면서 친절을 보이였다.    《위반장, 고맙구만. 그러잖아 나도 같은값이면 위반장하구 같이있기를 원했는데. 아무튼 여기서야 구면으루되는건 위반장밖에 없잖습니까. 안그런가요.》    《그렇지, 그렇구말구. 헌데 여봐, 이제부텀은말이여 날 그저 반장으루만 부르지 말구 형님이라해. 알아들었나.》    《그러는게 좋다면야 그럽지요.》     민호는 대답해놓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야 이 어리석은 녀석아, 네놈도 그래 내 형으루되는게 그리두 소원이냐, 당분간은 길이 없으니 한길을 걷고 물이 없으니 한물을 먹는다만은.... 까마귀 까치가 모이는 한군데서 먹어도 형제는 아니구 종속이 다른거야. 그만한것도 그래 모르느냐 이 바보같은 자식아. 이 민호는 아무때건 원쑤만갚으면 여기를 뛸쳐나가리라 했다.     저녁술을 방금놓으니 향란이가 찾아왔다.    《이젠 한식구됐네요. 환영해요!》    《날 축하하는건가.》    《그럼요. 아니그러면 뭐겠어요. 이게 다 팔자소관인줄알아요.》    《팔자소관이라! 아마 그런가봐. 난 이렇게 되리라곤…》    《꿈밖이였다 그 말이겠죠. 두고봐요. 우리와 함께 지내서 후회될 일은 아마 없을거얘요.》    《세상이 돌아감이 조석이 다른데…》    《생각해봐요. 량산의 호한들은 왜 그토록 기세좋았겠나요. 우리 여기서도 살아가자면 첫점 신심과 용기가 있어야하는거얘요. 》    《그렇겠지.》    《내 오늘 단단히 일깨워주려구왔어요.》    《아가씨가 나한테? 뭔데?》    《그건말이얘요. 여기서 사달없이 무사히 지내겠거든 뭣보담 우선 우리가 쓰는 은어부터 부지런히 배워두라 그거얘요.》    《오! 그런가.》    《그렇잖구요. 제 말도 번질줄몰라갖구 나다니다간 큰일쳐요.》    《오, 그런가!》    《그렇잖구요. 몇가지 먼저 배워줄테니 명심해 들어요.》     그녀가 자기를 소학생취급하는지라 민호는 씩 웃어버렸다.     향란이는 눈을 할끗 빨고나서 진지하게 가르쳤다.    《이래요. 여기 산채에 들어앉아있지 않고 나다닐 때 만약시 다른 패거리를 만나갖고 첫마디 묻는 말부터 막혀갖고 멍해있다간 그만 날쏘시개를 먹고말아요. 날쏘시개라는게 뭔지 알아요? 탄알맛을 본다 그거얘요. 깔개를 관장자라 하고 신은 탕두, 베개는 침룡이라해요. 모자를 하늘꼭대기라하고요. 량태가 옷을 주면서 뭐라던가요. 잎사귀를 바꾸라잖던가요. 옷을 바로 그렇게 부르는거얘요. 밥먹는 걸 삽부, 물마시는 걸 부해. 사람의 얼굴을 접시라 하구 곰보딱지를 꽃쟁반이라 하며 손은 닭발, 배는 오복자…》     향란이는 이같이 토비들이 사용하는, 우수울지경 괴이하게 꾸며진 은어들을 한바탕 엮어대고나서 숨이 차는지 잠간 끊었다가 계속했다.    《명심해요. 사귀고싶거든 만나고싶다고해요. 우린 순경을 개라 하고 군대는 벼룩이라 불러요. 누구하고 싸우느냐는 누구하구 소리내냐 하고 일이 여의치 않다면 그땐 등이 맞힌다 해요. 털안으로 들어가라면 그건 수림속으로 들어가란줄로 알아야 해요. 넘기라거나 메라고 하면 그건 어서빨리 걸으라는 걸로 들어야하고요…》     향란이가 입심을 넣어 이같이 줄뽑아대는데 들어보니 과연 희한했다. 함께 생활하지 않고서는 그 많은 말을 다 배워낸다는게 꿈에서나 생각할 일이였다.     여기 관동땅의 민간을 돌아다니며 살펴보면 동업자거나 계(契)거나 비밀결사거나 패를 무은거나 업종에는 거개가 신자가 하나님을 떠받들 듯 저들이 신봉하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이를 라렬하면  목수는 로반(魯班), 야장은 로군(老君), 리발사는 라조(羅祖), 관자집은 뢰조(雷祖), 약방은 손사묘(孫思錨), 신깁쟁이는 손조(孫祖), 염쟁이는 매갈(梅葛), 장사꾼은 재신(財神), 백장은 삼성(三聖), 거렁뱅이는 리조(李祖)였고 토비들은 18존(十八尊) 즉 18라한이였는데 법도(法度)가 있고 금구무결(金甌無缺)하다는 염왕산에는 호(胡), 황(黃), 사(蛇) 등 삼선(三仙)의 위패와 선대의 사량팔주위패가 모셔진 영당(影堂)이 각각 갖추어져 있었다.     민호는 위삼포가 친히 목에다 걸어준 금빛나는 부대화상을 건들거리면서 그것들도 일일이 참배했다. 속심이야 어떻든 향을 피워 꽂고 괘주를 했으니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도적의 배에 올랐으면 도적의 짓거리를 배워야지 별수가 없는거다.            
402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7) 댓글:  조회:2681  추천:0  2015-02-03
                 7          인간세상이 대체 얼마나 너르고 생사변역(生死變易)하는 존재 또한 얼마나될가? 옛기재에는 360항업(恒業)이라했지만 어찌 그것뿐이겠는가. 어느때부턴지는 딱히 알수없지만 지금 인간이 살고있는 이 대천세계(大千世界)에는 비적(匪賊)이라는 하나의 특수한 직업이 나타났다. 이를 어떤데서는 호자(胡子)라 하고 어떤데서는 향마(響馬)라 했으며 어떤데서는 토비(土匪) 혹은 봉자수(捧子手), 마적(馬賊), 강도(强盜)라 불렀다. 해를 거듭하고 대를 내려오면서 그 한무리도 점차 자라나고 성숙해져 자체의 조직기구가 있게 되였고 저들의 두목을 내오는 방법이 있게 되였으며 종교와 신앙이 있어서 토템과 숭배가 있게 되였고 자기들의 언어와 규률과 풍속이 따로있는 하나의 사회적존재로 자리잡게 되였던것이다.     만민이 들어도 이마살을 찌프리게 되는 그것이 사회의 우환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한자가 뒷덜미를 잡아일으키며 겨울날 철판같이 차가운 상판에다 으늑한 웃음을 발랐다. 민호는 설레이는 무서운 기운을 느끼자 등골이 선득해나면서 몸이 오싹했다. 이젠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때리면서 가슴이 떨리였다.     한자가 구리로 장식된 구식의 대공계(大公鷄)를 꼬나들면서 두눈을 지릅떴다.    《선마만?》     이건 아마 날보고 뭘하는 사람인가고 묻는것같은데 제꺽 대구해야겠구나. 민호는 대방의 태도에서 말뜻을 짐작하고는 몸을 되도록 바르게 가꾸었다.    《난 당신네 당쟈더를 만나야겠소.》     급히 던진 림기응변이 면바로 은을 냈다. 그자는 들었던 총을 내리더니 검은 수건으로 민호의 눈을 싸맸다. 그런 후 둘은 뒷짐지운 그를 들어서 말잔등에다 실었다.     롱락당할 운명인지 민호는 이렇게 토비손에 떨어지고말았다.     관동의 세력있는 토비들은 다가 장구지계로 자기가 점한 자리에 반거하면서 산채의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돌리고있었는데 류자(綹子)들가운데서 군사(軍師)직을 맡고있는 반더둬의 설계에 따라 팔괘진(八掛陣)을 쳤다. 즉 자기들의 병력을 건(乾),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에 따라서 여덟곳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사령부 즉 두령인 맏형이 중가운데 있고 그 둘레에 팔괘진이 벌려져있는데 팔괘진을 이룬 매 거점에는 또 전후에 보초선이 세 개씩 설치되여 있었다. 그래서 만약 누가 두령을 만나려한다면 보초선에서는 우선 그의 눈을 싸맨다. 그리고는 첫보초선에서 둘째보초선에 넘기고 둘째보초선에서 셋째보초선에 넘기는데 그 세째보초선에서 그 사람을 두령과 대면케 하는것이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명을 가진 동물은 다 끝장에 이를라치면 제 스스로 절망하고만다. 죽음에로 내달리게 하는 채찍이 바로 절망 그자체였다. 민호는 그러한 무형의 채찍에 얻어맞으면서 눈을 다시떴다. 허나 싸맨 눈이니 앞은 칠흑같은 장막뿐 아무것도 볼수 없었다.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민호는 말잔등에 놓여 흔들리는 자체의 육체만이 감각되고있으니 마치도 밑끝없는 나락속에 빠지는것만같았다. 제길할! 이게 그래 나의 저승길이란말인가? 이젠 구원맏을 길없는 처지를 당해서? 정말? 과연 그런가?…칼도마에 오른 고기도 뛰여보는데…나는 왜 이모양이 되는거냐? 내가 그래 고기만도 못한 존재란말인가?…아니다, 용기를 내자, 용기를! 범한테 물려가더라도 정신만은 차리라했더라! 이제 막 절망하여 맥을 놓으려는 자신을 살려내기 위해서 민호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자기를 향해 호소했다.     그들은 숲우둠지가 하늘을 찌르는 천고의 밀림속을 가고있었다.민호는 오로지 감각으로 그것을 느낄 뿐 가고 또 갔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겨지면서 근 세시간. 그런후에야 그는 이 토비무리의 두령앞에 나섰다. 여기가 바로 염왕산산채였다!     산채가 어떤모양인지 알수 없었다. 눈을 처맨 수건을 풀자 앞에 나타난 것은 좌우량켠에 등나무줄기를 꼬아만든 듬직한 나무걸상 여덟 개가 (八)자모양으로 벌려져 놓여있는 널다란 방이였다. 방의 정면가운데 단이 있는데 그 우에 듬직이 놓여있는, 호랑이가죽을 깐 높다란 의자에 쉰살넘어보이는 사람이 홀로앉아 있었다. 두령임이 분명한 그는 주황빛나는 다부살을 입고있었는데 살결적은 얼굴은 얼음장같이 차가와보였다.    《선마만?》     그가 물어보는 첫마디가 역시 그것이였다.    《난 두령님을 만나서…》    《넌 대체 누군데? 》    《예? 전, 전…》     하기쉬운 대답이였건만 사유가 갑작스레 문란해져 민호는 떠듬거렸다. 그랬더니 저쪽에서    《몽두춘알어?》     하고 물어왔다.     제길할! 이건 또 무슨 소리냐. 민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토비들은 술을 몽두춘이라 하는데 몽두춘을 하자면 술을 마시자는 뜻이 되고 몽두춘을 아느냐 하면 그건 네가 류자의 말을 아느냐의 물음으로 되는 것이다. 민호가 토비의 이같은 은어(隱語)를 어찌알랴.     두령은 잡혀온 젊은이가 함구무언이니 미간을 찌프리고 쏘아본다. 예리한 그 눈길은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듯 매서웠다. 민호는 등골에 찬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이 싸늘해지면서 온 몸이 전률했다. 저런 자의 일빈일소에 사람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아아, 이놈의 기구한 내 신세야!    《저 맏형님…》     민호를 여기까지 끌어온 비도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웬 일인지 입을 되닫아버린다.     두령은 눈을 간잔지런히 쪼프리더니 외면하면서 혼자중얼댔다.    《빈놈이군, 외마야.》     저놈의 악마가 나를 어쩌자는걸가. 그의 입가에 조소가 비꼈음을 보자 민호는 자기를 당장 이 자리로 끌어내다 죽일것만같아서  정신차리면서 불덩이를 토해내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    《두령님 난 나쁜놈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나쁜놈아니라니까요.  방정서 경찰이 붙잡자구해서 내내 쫓기우다나니 이렇게 된겝니다. 정말입니다, 나으리님.》     토비두령은 미간을 그러모으면서 귀바퀴를 세웠다.     속여서는 뭘하는가. 속일필요가 뭔가. 성실함이 이럴땐 외려 구명책이 될런지도모른다. 민호는 그의 앞에 자기는 안해를 잃고 찾으러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 여차여차해서 경찰에 잡히게 되니 남의 말을 빼앗아 타고 여기까지 쫓겨왔다는 것 등등을 사실그대로 말했다.    《문이 흔들리는구나.》     토비두령은 짜증섞인 한마디를 내뱉고나서 턱짓으로 끌어내가라 명령했다.     비도는 민호를 앞세워갖고 그곳을 나왔다. 그자는 그를 어디엔가에 있는 돌을 다듬어 벽체를 만든 그리크지 않은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결박한 포승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그 집의 어느 한 자그마한 방에다 가두면서 넌 여게 잠자코있거라 어리석게 달아날 궁리는 거둬장지고 알았어 하며 얼음장을 놓고나서 가버리는것이였다. 출입문을 보니 쇠창살로 만들어졌는데 그 바깥에다 촘촘하게 울짱까지 둘러서 세상구경을 더 할 수 없었다. 흡사 짐승우리와도 같은 여기가 바로 토비들이 인질을 가두는 양즈방이였던것이다.     민호는 중앙산채를 나올 때 주위를 한 번 휙―익 쓸어보고는 그만 방향마저 잃고말았다. 수림이 무성한 산이 병풍처럼 빙 둘러있는 이 함지박같은 분지에는 청기와로 지붕을 하고 별채와 마사(馬舍)가 딸린, 서로 다름을 가려낼 수 없을 지경 모양이 신통이 똑같은 커다란 목조건물 여덟채가 두령이 들어있는 산채를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아 방원각을 이루었던 것이다. 중앙산채의 주위는 널다란 공지였는데 거기는 전부가 굳어진 모래땅이여서 풀이라곤 한포기도 자라지 않았다. 민호는 이 세기에 관동땅 어디가나 볼 수 있는, 징을 가득밖아서 만든 둔박한 바퀴가 달린 마차들을 여기서도 보았다. 하지만 미궁같은 심산속에 외따로 있는 이런 산채는 난생처음본다. 이건 아마 세상에 둘도 없는 별유의 복마전일것이다.     웬 일인지 산채는 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왜 이럴가, 토비들이 낮잠자는건 아닐텐데?…민호는 야릇한 의문이 호기심을 촉발하자 뒤따라 심한 갈증을 느꼈다. 한낮의 더위속에서 념주뼈이어지듯 련달아붙는 공포와 절망과 고뇌가 그를 녹초로 만들면서 목을 말리워 그것이 이제는 막 타드는것만같았던거다. 이러다간 내가 총알의 세례를 받기전에 버림받은 탈수한 개같이 여기서 말라죽고말거야.     민호는 발작적으로 소래기를 내질렀다.    《물! 물! 물을 달라, 이놈들아!》     바깥어디선가 비도 하나가 골이 나는지 두덜거렸다.    《제길할! 어쨌다구 아부재기는 쳐. 뒤여질라구 환장이냐.》     그자는 지적지적 걸어와 목을 기웃거리며 양즈방안을 들여다보더니 찔끔 놀랜다. 이럴변이라구야!     아니 저건!?…민호도 그처럼 놀랬다. 옷을 바꿔입었을 뿐 그자는 분명 전날 방정에서 만났던 그 허저인이였던거다. 인제보니 넌 워낙 여기의 토비였구나! 민호는 종잡기 어려운 감정에 속까지 울렁거렸다.     둘은 아느새 말없이 대방을 서로 눈박아보기만했다.    《난 누군가했지. 어쩌누라 여겐 들어왔나?》     저켠이 입을 먼저여는데 생각과 다르게 태도가 부드러워진다.     이젠 초면이 아니고 구면인데, 내 사정을 좀 알고있는데, 이 작자가 나를 구해줄수는 없을가. 물에 빠진 놈 짚오리잡듯 민호는 행여나를 바라고 이런 생각에 매달리면서 간밤에 방정서부터 자기가 당한 일을 그한테 죽 말했다.     《거북한 사람아, 신세좋게됐구나.》     대방은 눈을 꺼무럭거리며 듣더니 동정인지 경멸인지 분간키어려운 말을 뱉어놓았다.     민호는 그의 목에 데룽데룽 달려있는 금빛나는 불상을 여겨보면서 속으로 안타깝게 빌기도 하고 웨치기도 했다. 부처님! 부처님! 오, 자비하신 부처님. 너나 좀 자비를 베풀어다오. 네가 왜 이런자의 목에는 와 걸려있는거냐, 얼빠진녀석아!     누가 얼빠진 녀석일가. 남의 목에 실없이 걸려있는 장식품이 아니였다. 그것이 왜 그의 목에 걸려있는지 그  리유를 모르니 얼빠진건 되려 민호쪽이였다.  .     토비를 통털어 류자(綹子)라고 부르는데 그네들 중 일자반급도 없이 동생벌되는 자를 새자(崽子)라 한다. 전통적인 이런 토비류자면 누구나 다 목에다 불상을 걸어야했다. 지금 이 자의 목에 걸려있는 불상은 포대화상(布袋和尙)이였다. 포대화상은 18라한 중 17번째 라한인데 일명 달마다라(達摩多羅)라고도 한다. 달마는 보디달마의 략칭인데 이역으로는 도법(道法)이다. 기원 527년에 숭산 소림사(小林寺)에 와서 벽을 마주하고 종일 말한마디 없이 앉아있기를 9년이여서 벽관(壁觀)이라했다. 리입(理入)과 행입(行入)의 수행(修行)방법을 내놓았는바 그는 서천(西天) 선종(禪宗) 제 28조와 동토(중국) 선종초조(禪宗初租)였다. 그러한 그가 바로 만주의 토비들이 조상으로 모시고 떠받들면서 숭배하는 신(神)이 된 것이다.     저켠에서 웬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 날아왔다.    《위진 게서 뭘해요?》     이쪽은 고개를 얼른 들어 그쪽을 보더니 둘러댔다.    《이 녀석이 부해달라구 아부재기쳐 그럽니다, 아가씨.》    《오늘 잡힌 놈팽인가요. 그런 철모르는 풀메뚜기는 특별대우를 해야겠어요. 이리와요.》     위진이라는 비도는 길들인 개모양으로 말을 곰상히 들었다.     저켠에서 녀인이 그와 무어라 소곤거리는 소리나더니 이어서 캐득거리는 웃음소리 날려왔다.     좀 지나서였다. 어디론가 달려갔던 위진이란 이름을 가진 그 허저인 비도가 민호앞에 다시나타나는데 한손에 호로병을 들고 다른 한손에다는 고기덩이를 들었다.    《여봐, 이걸 먹어. 다 먹어치워야 해. 알았어 다 먹어치우란말이야. 않그러면 위아가씨가 잠을 재워주겠대.》     비도는 갖고온것을 놓고 가버렸다.     호로병에 들어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술이였고 이쪽것은 방금 베여낸 노루고기였다.    《빌어먹을 것들아, 누가 이따위걸 먹겠다니. 물을 달라, 물!》     민호는 격분하여 웨쳐대면서 화닥닥 일어나 호로병을 쥐여 들었다. 했지만 그는 그것을 밖에다 내던지지 못한채 팔맥을 풀고말았다. 위태롭고 결정적인 순간이였다. 성질급한 자기가 이 순간을 어떻게 참고 넘겼는지가 불가사이한 일 같았다. 위아가씨라 했지. 저 계집이 아마두 여기 토비두령의 딸년이겠구나. 그런데 그년이 이걸 먹지 않으면 나를 잠재우리라했다지. 그건 아마 날 죽여버리겠다는 소릴거다. 잡아 없애치울 년! 분노와 저주와 모멸과 우려가 한데  뒤엉켜 불덩이같이 가슴을 아프게 지졌다. 민호는 미칠것만 같아 소리를 내지르려다 주먹으로 제 가슴만 쾅 쾅 때리고말았다. 분별없이 날치는 만용을 용케 눌러버렸다. 여기는 토비굴이다. 소리치고 욕한들 누가 끔쩍하기나하랴. 칼도마에 오른 신세에 그런다면 오로지 죽음만 재촉할 뿐. 구명책을 찾자면 그래도 인내(忍耐)해야 함을 그는 순간적으로 깨달은것이다.     갈한 목은 그냥 타들고 있었다. 한들 무슨 방법있는가. 눈길이 다시금 철창아래의 멍석우에 나동그라진 호로병과 커다란 고기덩에 끌려갔다. 민호는 그것들을 자기 앞에 끌어왔다. 먹자, 먹어! 먹어야한다! 그러면 혹시 위험한 이 고비를 넘길수도 있을게 아니냐. 시시한 명줄을 타고 난 내가 아니거니 이 자리에서 계집년의 희롱에 들어 숨을 끊지는말아야지. 전날 방정에서 들은, 심마니가 산삼캐러 산에 왔다가 발을 잘못들여놓아 목숨잃고말았다던 이야기가  다시금 생각켰다. 범계(犯界)를 한 자는 무조건 죽여버린다잖는가.허니까 이렇게 죽던 저렇게 죽던 죽는건 이미 정해진거요 차례진 운명인것 같았다. 이럴바에야 술이나 먹고 대취한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지꿎은 공포도 숨이 끊어질 그 순간의 고통도 싹 다 잊을게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민호는 더 주저하지 않고 호로병마개를 열었다. 그 속에는 거의 한근 술이 들어있었다. 그는 입을 대자 벌물켜듯이 그것을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나서 배도 몹시 고프던차라 한근은 착실히 될 고까지 다 먹어버렸다.     어찌 무사하랴. 몇분안돼서 민호는 갑작스레 덮치는 취기와 식곤증을 이기지 못해 그만 그 자리에 쭐 늘어지고말았다.          얼마나 오래잤는지 등과 옆꾸리가 아파 눈을 뜨고 보니 비도 둘이 일어나라고 발로 걷어차는데 밖에서는 왁작지껄 떠들어대는 소리, 말들이 투레질하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여 들려왔다.    《하, 이자식봐!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란데두 이 자식아!》    《가만! 그자식이 몽두춘하잖았어.》    《정말 그렇구나! 하하하…》    《건데 이 자식이 그건 어떻게 처먹고 이 꼴이야, 엉? 하하하…》       두 비도는 벅작 고와대면서 민호를 잡아일으켰다.     바깥은 어느덧 심란한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었다. 알고싶지도 않았다. 민호는 그저 머리가 빠개지것 같이 아파남을 감각하고있을뿐이다. 두 비도는 술을 억병으로 마셔서 정신을 그냥 못추는 민호를 마치 짐승다루듯 몰기도 끌기도 하면서 마당건너켠으로 갔다.     어느 녀석이 귀뺨을 때려 눈을 뜨고 보니 그가 낮에 들어왔던 바로 그 마당같이 널직한 대청인데 환하게 켜놓은 람프등에 비치여 흡사 애기들의 놀음감같기도 하고 절간의 올망졸망한 라한같기도 한 자들이 모여들어 오도방정을 떨면서 거의 인사불성이 되여있는 그를 흥미있게 구경하고 있었다.    《저자식 좀 보라니까, 팔자제법좋은 걸!》    《하하하…》    《건데 반강자는 대체 어디서 났길래?》    《아씨가 줬다누만.》     민호는 여기와서까지도 의연히 취기를 깨지 못했다. 그는 그들이 웃고 떠들며 지껄려대는 소리를 비몽사몽간에서 듣듯이 들으면서 휘청거리다가 속 빈 자루같이 널장판에 쓰러지고말았다.    《저자식보지.》    《하하하!…》     웃음이 다시터졌다.     민호는 얼마있지 않아 거기서 도루끌려나왔다. 원래는 그를 심문해서 신원을 똑똑히 알아보자는것이였는데 뜻밖에 잡힌자가 이꼴이니 잠시 내쳐두는판이였다.     그 다음날이다. 무엇이 코구멍을 자꾸간지렵혀 재채기를 요란스레 해대며 눈을 떠 보니 녀자의 말쑥한 손이 길다란 띠풀을 쥐고 털같은 끄트머리로 작난질을 하고있는게 아닌가. 독이 바짝난 민호는 선불맞은 표범모양으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당장 그녀의 목을 비틀어 죽여치우려고. 허나 철창이 앞을 막고있니 생각뿐.       더러운 계집년 어디 또 그래봐라고 두덜대며 속으로 벼르고있던 민호는 녀인의 얼굴이 얼핏나타나는 순간 침을 탁 뱉어놓았다.     그것은 날아가 적중한 자리에 자리잡았다.    《어마나!》     졸지에 침벼락맞고 되게 놀랜 녀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냉큼 뒤로 물러났다. 전혀 예견못한 일이였다. 산채 나리님의 보배같은 귀동딸이 이꼴이 되다니!     민호는 속이 후련해지면서 금시 웃음까지 텃치려했다.     녀인은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쭝얼대다 정면에 나타났다. 처음보는 몰골이다. 분명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던 어제의 그 녀인일 것이다. 그녀의 손에는 자그마한 권총이 쥐여 있었다.     민호의 눈길은 지금 자기의 숨통을 노리고있는 그 권총 하나에 멎었다. 아니 저건 내가 전날 돈주고 산 골트가 아닌가. 사서는 한방 쏴보지도못했는데.     녀인은 입을 옥물고 총구를 사내의 이마에 겨누었다. 그러다가 그 총구는 아래로 내려와 가슴을 겨누었는데 녀인은 웬 일인지 겨누던 곳은 쏘지 않고 불시로 돌벽에 대고 련거퍼 세방갈겨놓고 그만 훌 가버렸다.     옆간에서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전날 비도들 손에 인질로 잡혀온 자였다.    《어이구! 어이구! 하나님맙시사! 나도 이젠 죽겠구나, 나도 이젠 죽겠어. 이놈의 토비들이…이놈의 강도들이…이놈의 백정들이…내 집 다 망하게 하고…애고고!》     넋두리같은 시설을 슬프게 해대며 몹시도 울어재꼈다. 보아하니 옆간에 새로같힌 인질이 아마 죽은줄로 아는모양이다.    《자식이, 시끄럽게 노네!》     이쪽은 신경질만 빡 났다.     울음소리는 그만 뚝 끊고말았다. 민호는 침을 탁 뱉었다. 겁쟁이에 대한 경멸이였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자기가 뱉은 침자국이 피자국으로 변해보이면서 싸늘한 두려움이 혈관에 슴배여들기시작했다. 신이 이 세상을 주사위로 장난치진 않으련만 왜 이럴가. 파리목숨만도 못한 생령! 얼마나 무고한 인질이 아까운 제 생명을 비도손에 놀이개로 빼았겼겠는가. 내 자신이 방금 그런 처지에 들었다가 사경을 겨우 넘겼거니 실은 절망에 떨려 우는 남을 경멸할 신세도 비웃을 신세도 못되였다.      목이 마르다못해 타드는것만같았다. 이제는 정말 죽지 않을가. 민호는 있는 기운을 다 내여 발악적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물을 달라, 물! 물! 이놈들아!》     웨침소리를 들었는지 이윽해서 가벼운 발작소리를 끌며 녀인이 다시나타났다. 한데 그녀가 손에 들고 온 것이 또 호로병이여서 민호는 도끼눈이 되었다.    《옛어요, 물.》     녀인은 이쪽에서 받지도 않고 자기를 당장 잡아먹을 상이니 갖고 온 호로병을 철창가에다 슬며시 놓고는 입을 비쭉하며 돌따서 가버렸다.     저계집년 악귀다만 그래두 생김새 하나는 무척곱고 얌전한 티까지 나니까 혹 심청이 바르게 돌아졌는지두몰라. 자기가 또 어제처럼 놀림당한다고만 여겨온 민호는 한편 이런 생각도 나는지라  호로병을 가져다 마개를 빼보았다. 호로병안에 들어있는건 과연 그가 찾고있는 물이였다.           웬 일인지 이틑날도 사흩날도 그를 불러내가지도 건드리지도않았다. 토비들이 그를 잊은걸가 아니면 흉살신이 비칠때라서 잠시 놔두었다가 택길(擇吉)을 해서 처리하려는걸가. 때가 돌아오면 굶기지 않고 먹을 것을 갔다주거니와 지어 밤에 덥고자라면서 덮개까지 갔다주니 모를일이였다. 이자들이 나를 죽여도 더 험악하게는 굴지 않고 죽일모양인가부다.     위진이라는 그 허저인비도는 다시나타나지 않고 대신 민호와 나이비슷한 자가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여기에 온지 나흘이 되는 날 점심때였다. 감시를 맡은 그 비도가 강태죽을 한사발 갖고와서 주면서 민호더러 먹으라는것이였다.     왜 오늘은 이따위 색다른 음식을 주는걸가, 이게 날 죽이자구 마지막먹이는 사자밥이 아닌지, 그럴수도있으리라 생각하니 민호는 가슴이 어름장같이 싸늘해져 고개를 외로 탈았다.    《허, 이거. 왜 그러우?》    《이따위건 왜 날 먹으라는거냐?》    《왜 나뻐? 이건 갈분넣은건데.》    《그런건 왜 주는가말이다.》    《접때 반강자너무먹구 아직두 보깨는게 아니여. 그런다구 위아가씨가 념려해서 손수 쑨건데. 안먹겠다면 아예 개나주지.》     그 말을 듣고보니 이쪽에서 생각하는것과는 생판으로 다른지라 민호는 저도모르는 사이 손이 불쑥 나가고말았다.    《잠간, 그걸 인줘. 내가, 내가  먹겠어. 먹겠단데두. 인줘.》     그는 죽그릇을 받자마자 게눈감추듯 후룩후룩 먹어버렸다.     이상했다. 먹으면서도 리해키 어려운 의문만 갈마들었다. 토비딸이 그래 제가 죽이자던 포로한테 자비를 베푼단말인가? 그럴 수 있을까. 악의새끼니 그 새끼도 악마일텐데. 그래 그런 녀자도 인성(人性)이 있단말인가? 이건 사람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일이였다.      강태죽을 가져왔던 자가 가버리자 위진이란 토비가 왔다. 민호는 이럴때 그가 다시나타난게 반가왔다.    《아, 오셨슈. 왜 까딱 보이질 않았어요?》    《그러니까 날 생각했다는거지?》    《그렇습니다. 우리야 이젠 서로 구면이 된 사이가 아닙니까.》    《어, 어, 그래. 그래. 하하하…》     위진은 포로로 잡힌 이 조선젊은이가 자기를 좋게 보고 친절을 나타내는 것 같으니 입을 뻐개가며 웃었다.    《날 보구팠을수도 있어. 난 임잘 잠재울려구 안하니까.》     민호는 그의 살결좋은 상판을 말끔히 올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달마냥 감추는 어두운 면이 있는거다. 이자는 여기서 무슨 급에 있는 놈일가? 민호는 그가 자기에게 술을 먹이던 일을 다시생각하니 속이 꼬이였다.     《여보시오. 내 한가지 물어볼까요.》     《물어봐, 뭔가구?》     《족제비가 수탉하고 한굴에 있으면서두 그걸 잡아먹지 않는건 왜설까요?》     《아따, 거야 족제비가 인심좋아 그런게지 뭐야.》     《세상에 그래 인심좋은 족제비도 있을가, 먹이를 앞에 놓구서두 안잡아먹는 그런.》     《왜 없겠어, 있지.》     《되지두않을 소리. 배만 고파보지. 뼈도 안남게 먹어치울걸.》      위진은 식자없어도 머리가 아둔한 인간은 아니였다. 그는 눈을 꺼무럭거리며 듣더니 대방이 자기를 비꼬고있음을 알아채고는 낯색이 단통흐려졌다.     《내가 그래 아무때건 자넬 잡아먹으리라 그 말인가.》     《글쎄요.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당신은 벌써 한 번 솜씨를 뵌게 아닙니까, 날 죽일려구.》     《임자두 어차피 눈감을바엔 기껏먹자구한게 아니였나. 괜히 남만 나무리면서 트집잡지 말게. 내 이 왕견이까지 지독한 악한으루 보다니 원. 난 그따위 소리 반가와안해.》     《여보시오, 어른. 그러니까 당신네들두 선한 마음있다 그 소린가요?》     《건 왜 지지콜콜  캐는건가. 그래 젊은이 눈에는 우리가 그저 악한으루만돼보이나?》     《살인하고 략탈을 하는 당신들이 악한아니구 그럼 부처님이란말입니까? 하긴 부처님을 목에 걸고다니는 걸 보면야 선함을 동경해서 그런소릴하는 것 같은데…》     《이 사람 인사불성이네. 무슨 망탕소릴 이리두죄치는건가.》     《인사불성인건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입니다. 왜 생사람잡아다놓구서 이럽니까. 당신도 알다싶이…난 돌아가야겠습니다.》     《사정은 나도 아네만은 이제 누굴 원망하겠는가. 자넨 범계를 한 사람이야, 알았어?》      그렇다, 나는 범계(犯界)를 한 사람이다. 민호는 승인하지 않을래야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산삼캐러 들어왔던 그 심마니처럼 끝장을 보고말겠지. 처참한 운명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왔다. 허나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살인을 도락으로 삼을 이따위 인간앞에서 눈물을 보이고싶지 않았던거다.      위진은 자기를 무엄스레 대하면서 제 맘속의 말은 다 토해놓는 조선족젊은이를 곱지 않은 눈매로 흘겨보다가 코방귀를 흥 뀌면서 몸을 홱 돌렸다.      민호는 그가 그모양으로 가버리자 후회하기 시작했다. 혹시 나를 동정해 구해줄런지도 모를 사람을 내가 실없이 격노시킨게 아닌가싶었다.      지금은 이 광활한 만주ㅡ관동땅에서 토비들이 한창 욱실거리는 때였다.        군벌혼전에 나라가 치정(治定)이 안되니 꼭마치 장마철 개구리모양으로 좀도적, 불한당, 떨거지깡패…별의별 오도깨비들이 다 뛸쳐나와 제 세상을 만났노라고 들고납닥치는판인데 그런 자들마저 그 무슨 대성(大成)이요 오합군(五合軍)이요 쌍양호(双陽好)요 서패천(西覇天)이요 하는 이름을 버젓이 내걸고 료략질을 해먹으니 그놈의 토비성분이 과연 복잡하기도했다.      전문 가난한 백성집을 돌아가며 터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알짜강도였다. 그런자들은 거의가 기와가마는 감히 다치지 못하면서 보통백성을 인질로 잡아가거나 생활이 중축이 아니면 그보다 못한 집의 재물만 노리는 것이다. 민간에서 호자(胡子)라 부르는 것이 바로 그런자들이다. 그들은 인원수가 많아야 7~8명, 지어는 혼자서도 이름을 달고 료략질을 해먹었다. 백성들은 이런자들을 제일증오하고 저주했다. 억강부약(抑强趺弱), 살부제빈(殺富濟貧)의 깃발을 들고 전문 기와가마를 털고 때로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도 하는 류자가 있는데 이런 토비는 우의것과 성질이 완연히 달랐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인원수가 많고 무장이 갗추어졌으며 우두머리는 담량이 있고 총잘쏘며 리외사량(里外四梁) 팔주(八柱)는 모두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기와가마를 들부시는 외에 가난한 사람을 도와 자질구레한 비도손에 잡혀간 인질을 되찾아주기도했다. 이런 큰 무리의 토비는 자연히 정부측과 겨루면서 관계를 발생했는바 왕왕 대량의 경찰대거나 군인무장의 습격을 받아 숙청될 위험이 있길래 자체를 보호할 무장력을 장대시킴과동시에 산채의 안전에 대해서 각별한 주의를 돌리였다.     염왕산토비가 바로 이러했다.     이 염왕산의 개척자는 위삼포(魏三浦)의 아버지 위록산(魏錄山)인데 그는 본래 청나라 장교출신이였다. 청나라때 생겨난 흑룡강장군아문(黑龍江將軍衙門)은 완전히 군정통치를 위해 설치된것으로서 그것은 하나의 엄격한 군사조직이였거니와 흑룡강장군휘하의 조직형식이였다.     동치(同治) 2년(1863)이후 흑룡강장군은 팔기병(八旗兵)중에서 꼴꼴한 자들만 선발하여 따로 팔기련병(八旗練兵)을 편성해 자기 관할하에 두면서 광서(光緖) 8년(1882)에는 봉천(심양)에서 교습(敎習)을 청해오고 천진에서 대포를 가져다 7년간 기계화훈련을 했다. 이 기간 흑룡강의 치치할, 후룬벨, 무얼근, 훅호트 등 성(城)의 훈련군은 보병 74개소대, 기병 16개중대, 포병 4개중대였는데 병력은 도합 4,700여명이였다.       그때 기병소대장이였던 위록산은 나이 이미 30세를 넘겼고 처자까지 있는 몸이였지만 대중이 공인하는 출중한 기마술과 용감성으로 하여 퇴대하지 않고 중대장으로 승급하게 되였다. 그런데 그와 암암리에 지위를 다투던자가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조정에 있다가 반역죄로 몰려 관동에 추방되여 온 이왕지사를 새삼스레 들춰내여 그것을 상급에다 밀고하는바람에 위록산은 그만 관문에 올랐다가 나떨어지고말았다. 이에 앙심을 먹은 위록산은 기회를 노리던 중 어느날 밀고자를 칼로 찔러 죽여 머리와 밸을 병영의 대문에다 걸어놓고는 그 자리로  부대를 뛸쳐나와 산에 들어가 록림객이 되고말았던것이다.      한 번 들여놓은 길에서 발길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그후 그는 이 산을 근거지로 삼고 관동일판을 횡행하기시작했다. 그러다가 1900년 의화단운동이 일어나자 그해의 7월에 그도 자기의 류자들을 거느리고 구국성전에 나섰다. 그는 봉천에서 모집해 온, 축로공과 파산된 농민으로 조직된 의승군(義勝軍)과 함께 흑룡강의 청나라군대인 진변군(鎭邊軍)을 협력하여 싸하로브소장이 지휘하는, 하바롭쓰크로부터 송화강을 거슬러올라오는 로씨야침략군을 항격하여 용감히 싸웠다. 그러다가 이듬해의 봄에 새자를 거느리지 않고 외지로 나갔던 그는 전에 한차례 지반쟁탈로 인하여 마찰이 있었던 밀산일대의 토비습격을 돌연히 받아 목숨을 잃고말았다.      그때 아들 위삼포가 나이 31세였는데 그는 창졸간에 사랑하고 애대하던 아버지를 잃고나니 구곡간장이 끊어질 듯 절통하여 련며칠을 울음속에 파묻혀있다가 분연히 떨쳐나가 싸워 끝내 적패를 섬멸하고 원쑤를 사로잡았다. 위삼포는 산채에 돌아오자바람으로 원쑤에게 을 시켰다. 은 토비들이 쓰고있는 형벌중 가장 잔혹한 형벌이다. 위삼포는 새자(崽子)를 시켜 굵기가 팔뚝만한 백양나무를 한길만큼 남기고 우를 자르게 한 다음 웃끝머리를 뾰족하게 깎게 했다. 그리고는 붇잡아 온 자를 알몸뚱이되게 발가벗겨 들어서 그 우에 올려놓았다. 나무가 믿구멍으로 들어갔다. 자체의 육중한 몸무계에 의하여 굵은 나무가 몸속에 점점 깊이밖혔으니 그 정도가 어떠했겠는가. 위삼포는 그렇게 원쑤를 죽여서는 목을 잘라 아버지의 제단에 올려놓아 제를 지낸것이다.           저녁켠이 되자 다른 한 비도가 와서 문을 열어주면서 민호더러 나오라해서는 데리고 가더니 다른데다 넣었다. 두령이 들어있는 중앙산채에 딸린 별채였다. 해광이 충족하고 아담하게 꾸려진 방이였는데 북켠에 갈까래를 펴놓은 구들이 있고 구들에는 바싹 말리운 고사리묶음이 차곡차곡 쟁겨져 있었다. 창고는 아닐텐데?…      민호가 바로보았다. 그것이 본래는 전에 하녀들이 들어있던 방이였다. 압채부인이 되여 오래동안 산채에서 황후같이 떠받들리며 살아오던 위삼포의 마누라가 5년전에 타계하게 되니 시종이 더는 필요치 않거니와 계집들이 꼬리질하며 피우는 냄세에 새자군심이 소란해진다고 여긴 위삼포가 그네들에게 로비를 주어 전부 산채에서 내보내다보니 이같이 비여있게 된 것이다.      위삼포는 민호가 대취하여 지각마저 잃은 사이 위진이한테 들어 그의 신원을 대충알게 되였다. 하지만 위삼포는 그래도 사람을 방정에 까지 보내여 거기서 아무날 아무시각에 남의 말을 빼앗아 타고 달아난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조사해오게 했다. 사실이 그러함이 증명되였다. 하여 위삼포는 이 조선젊은이가 경찰의 끄나블이나 관가의 밀정이 아님을 알고 엄계(嚴戒)를 해소한 것이다.      사실 위삼포는 막부득이한 경우를 내놓고는 인명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젊은이가 안해를 잃고 헤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된 그는 그가 비록 범계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죽이지 않고 들어올 때 처럼 눈을 싸매여 돌려보내려했다. 한데 요즘따라 왼일인지 내내 꿈자리가 시원치 않아 길일을 택하다보니 즉각 산채를 내보내지 않고있는거다.      한편 이런줄을 모르는 민호는 의연히 불안한 가슴을 끓어안고있어야했다. 그는 죽더라도 비겁하게 죽지는 않고 독림군인답게 용감히 죽으리라면서 용기를 냈다. 허나 용기가 공포에 대한 저항이며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지만 결코 그를 없애는 술법은 아닌거다. 나를 왜 이런데루 자릴 옮겼을가? 이젠 어떻게 할셈인가?…이틑날도 민호는 의연히 불안과 의문과 위구가 엉겨붙는 착찹한 고뇌속에서 괴롭게 방황하고 있었다.      밖이 갑작스레 소연해졌다. 웬일인가고 내다보니 비도 여럿이 안장지운 백말을 마당에 내다놓고 평을 하느라 떠들었다. 한데 다시보니 그건 분명 민호가 방정에서 타고 온 그 백마였다.      위삼포의 보배딸이 나타났다. 이름이 향란(香蘭)이다. 그녀는 몽골녀인들의 명절차림같은, 목깃과 단을 빨간띠로 두른 람색비단옷을 입고 허리에는 넓다란 띠를 띠였으며 발에다는 박차를 댄 목긴 기마용장화를 신었다. 일견하여 말을 타자고 일부러 준비하고 나온 차림새임이 분명하다.     건장해보이는 사나이가 키큰 말에 오르는 그녀를 거들어줬다.    《저 녀석은 마마두 계집의 남편일테지.》     민호는 그들이 남의 말에 감질내는게 아니꼬와 혼자소리로 내뱉곤 이사이로 침가지 찔 깔리였다. 내가 저 자식들 노는 꼴 좀 구경해볼가부다. 마침 문을 잠그지 않은지라 그는 밖으로 나왔다.     향란이가 산채의 널다란 운동장을 달리기시작했다. 한고패 두고패 말은 점점 속력을 냈고 녀인도 박차를 가하면서 말을 점점 세차게 몰았다. 짜장 경마장에나 출전한것같이.    《허, 대단한데!》     민호는 녀성이 말을 이같이 잘타는 걸 처음보는지라 은연중 혀를 내둘렀다. 일개 녀성이 말을 저같이 잘타니 사내놈들이야 더 이를데있으랴싶었다. 그는 중앙산채주위 여러군데 매여있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말들을 일별했다. 그러노라니 을 비져냈다는 밀산의 청보산패토비들이 또 생각났다. 그자들도 마적이였다. 비록 수자는 이네들과 비길바못지만. 이곳 염왕산은 얼핏봐도 비도가 청보산패의 몇배였다. 숫자가 50여명밖에 안되는 청보산을 숙청하는데 그같이 애를 먹었을라니 이것들을 숙청하자면?…빤하다. 웬간한 무력으론 어림도없을 것이다.     향란이가 한바탕 질주를 하고나니 직성이 풀리는지 말잔등에서 내렸다.     말이 짐을 부려 거쁜한지 머리를 내저으면서 투레질다. 이번에는 아까 그녀를 거들어주던 녀석이 말잔 등에 오른다. 녀석이 맥을 뺀 말을 쉬울 념도 안하고.     《저놈의 렴치없는 새끼가!》      민호의 입에서는 부지불식간 이런 질타의 웨침이 튀여나갔다.     《이놈아, 말에서 내려라!》      말탄자는 흠칠했다. 어정쩡해있다가 자기에게 감히 이같이 호령하는 자가 대체 어느 누군가고 찾았다. 모두가 그 모양이다. 방금 귀를 때리는 웨침이 날아온 출처를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그들은 드디여 그건 다른 누군게 아니라 바로 두팔을 앞가슴에 포개고 서서 자기들 쪽에다 경멸의 눈길을 던지는 이켠의 포로인것을 발견하고는 마치도 어물전을 만난 까마귀모양으로 떠들었다.     《핫, 하하하…》     《저건 또 어디서 난 똥벌레냐, 엉?》      이쪽이 누구란건 향란이가 안다. 그녀가 무어라 몇마디 하자 방금 말잔 등에 올랐던 자가 도루뛰여 내렸다. 그자는 이켠을 향해 성큼성믐 걸어오면서 제 옆꾸리에 찬 칼을 뽑아드는것이였다.      향란이가 그러는 꼴을 보자 소리쳤다.     《아니, 보재! 왜 그래요. 철붙이 하나 없는 사람한테 청자빼들다니 원! 그러면 너무도 체신머리없잖아요.》      사나이는 녀인의 조소담긴 힐난을 받고보니 객기가 빠지는지 침만 요란스레 땅에다 뱉고는 되돌아서며 무어라 두덜댔다. 꼭 마치도 모주먹은 돼지같이. 그냥 서있다가는 좋은 멋이 있을 것 같지 않은지라 민호는 집안으로 되들어오고말았다.      다른 일이 더 발생하지 않았다. 비도들은 그에게 먹을 것을 그냥 날라다주었다. 주식은 수수밥이다. 배가 부를 정도의 량이였고 반찬은 절인 돼지고기아니면 산나물채였다. 잠자리를 바꿨겠다 먹이는걸 봐도 이만하면 험하게 구는건 아닌데 운명을 점치기 어려워 가슴은 그냥 얼어들면서 진정키 어려웠다.      한데 밥을 날라온 자가 돌아가지 않거니와 손에 총까지 휴대해서 민호는 생각이 더 불길한데로 달음질쳤다. 그자는 둔박한 나무걸상을 끌어다 문가에 놓고 궁둥이를 붙이더니 생각밖에 낮은 목청으로 노래를 불렀다.                    서방님 머리돌려요                      류자무리에 들지 말아요                      집에는 처자가 있잖은가요                      나돌아다니지 말아요                      사람죽이면 대죽음하고                      남을 해치면 보복당해요                      어느 집엔들 누나 동생 없겠나요                      어느 집엔들 처자가 없겠나요                      사람마음 어서갖고 자기를 봐요                      곁사람한테 근심걱정 주지 말게요.        민호가 노래를 듣고는 저으기 놀랬다. 아니 토비의 입에저 저런 노래가 나오다니! 이건 아닌게아니라 개가 풍월하고 승냥이가 경을 읽는것만같아서 자기의 귀를 의심할지경이였다. 민호가 이제 들으니 처음이지만 실은 그것이 지금 항간에서 떠도는, 안해가 제 남편더러 토비노릇을 하지 말아달는 였다. 그런것을 젊은 비도는 흥얼거리기를 좋아하다보니 저도모르는 사이 그만 입에서 새여나간 것이다.     《밥은 안먹고 뭘해, 이자식!》      이쪽의 정신이 자기한테 집중되여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자는 소리를 꽥 지르면서 눈을 곱잖게 흡떳다.      민호는 힛죽 웃어보이고는 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조선말로 자식이 우둘렁거리기는 제기! 하고는 밥을 먹기시작했다.      그자는 빈 밥그릇을 갖고가고는 다시나타나지 않았다.      한낮이 되자 산채는 조용해졌다. 해도 민호는 밀물같이 달려드는 자비와 절망에 그냥 시달림을 받아야했다. 저승길과 변소길은 대신못가는거야 하니까 내대신에 죽어줄 놈은 이 세상에 없을거다. 어쩌면 좋을가, 죽을 수가 닥치면 살 수가 생긴다지만 내가 그래 이눔의데서 빠져나갈수 있을가?…그것이 쉬울리는 없는거다. 사처에 감시소가 있을것이요 그러다 다시잡히날이면?…그럼 내가 바보같이 여기에 앉아서 제 죽을 시각만 고스란히 기다려야한단말인가?…감연히 난국에 림하여 구명책을 찾고있던 민호는 저기 구석진 벽에 집승의 뿌리가 하나 걸려있는 것에 눈길이 다시갔다. 노루뿔인가했더니 다시보니 아니였다. 그것은 록용이였다. 피발린 두 개골이 붙어있는 걸 보니 떼여낸지 그리 오래지 않은것이였다. 민호는 알고 있다. 음력 5월말부터 6월말까지 록용이 4평두(四平頭)가 자라는 기간이고 이때가 또 록용이 질이 제일좋은 계절인 것이다. 지금이 양력으로 9월초니 제철을 놓치였다. 그래도 속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것이였다. 금수어충(禽獸魚蟲)이 다 네놈의 거냐. 내가 죽을 운명이라면 차라리 저놈의거나 먹어보고 죽는편이 썩 났잖을가. 민호는 스스로 기발한 궁리라 여겨져 그것을 벗겨 제 입에 가져갔다. 이 시각의 그는 이미 정신이 문란해져 온 몸은 우둔한 담력뿐이였다…     류자들의 후근을 책임진 백두옹(白頭翁) 량태(糧台)가 들어왔다가 록용을 훔쳐먹고 늘어진 민호를 즉시 발견했다. 하여 조용하던 산채에 일장의 소란이 생겨나게 되였다.    《하, 이 자식이 바르게는 돌아가네!》    《날쏘시개나 먹고 뒤여질 놈!》    《담통이 커두 이만저만아니다!》     민호는 왁짝 떠들대는 비도들에게 떠밀리고 들리여 어디엔가 미츨하게 자라서 하늘을 찌르듯 하는 소나무밑에 가서 섰다.     위삼포가 그한테 큼직한 도끼를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엄엄한 얼굴을 해갖고 총을 꼬나들더니 그를 향해 엄포를 놓았다.    《이놈! 잘 듣거라. 넌 내가 백을 세는 사이에 그걸 찍어넘겨야한다. 알아들었느냐? 그런면 살려줄거요 안그러면 알겠지, 이놈!》     그리고는 과연 하나, 둘 하고 셈을 세기시작했다.     뭐라는가, 날 살려주겠다구? 내가 그래 살아나갈 구멍수가 있단말인가! 민호는 정신을 펄쩍차렸다. 그리고는 도끼자루를 어스러지게 잡고 미친 사람같이 나무를 찍기시작했다.     나무쪼각들이 휙―휙―날렸다.     온 몸이 차츰 물참봉이 되어갔다. 그래도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죽을 둥 살 둥 정신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위삼포의 셈이 끝나감과 함께 나무는 도끼날을 맞아 넘어갔고 민호도 그 자리에 쓰러지고말았다.  
401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6) 댓글:  조회:2179  추천:0  2015-02-03
                 6            민호는 흑룡강북안 로씨야의 불라고베쒠스크와 마주하고있는 흑하(黑河)에 와서야 적잖은 새소식을 듣게 되였다. 옹근 3년철을 어래무에 들어밖혀있다보니 귀머거리장님이나 답지 않았다.    독립운동자들이 동산재기를 꿈꾸고 만주에다 참의부(參義府), 정의부(正義府), 신민부(新民府)라 하는 준국가식의 자기 민족의 정부를 건립해 갖고는 그 두리에다 동포들을 묶어세우고 계몽을 하면서 반일활동과 투쟁을 계속 활발히 전개해나가고 있었다. 흑하에 와서야 들은 소식이였다. 이러한 소식은 지어 너무나 돌연적인 감까지 주면서 그를 걷잡기어려운 희열에 잠기게 만들었다.    오, 나를 받아다오! 어서 받아다오! 적막과 고독에 묻혀 갈팡질팡 하는 나를 안아다오! 따뜻한 동포애로 포근히 안아다오!… 민호는 절절히 웨치면서 로씨야로 건너간 친구를 안타깝게 불렀다. 친구야, 내 친구야,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차라리 가지나말았을 것을… 한시급히 어래무로 돌아가고 싶었다. 서둘러 준비하여 안해를 데리고 동포가 많이 모여사는 녕안(寧安)이나 해림(海林)쪽으로 가고싶었다. 이 북만에서는 거기에 신민부가 있다잖는가. 다른 누구면 몰라도 한때 자기가 있었던 북로군정서의 김좌진장군(金佐鎭將軍)이 주장이 되여 세운 정부라니 민호는 애틋한 감회속에 굳건한 믿음이 갔다.    마침 동강진까지 가는 배가 있어서 민호는 제꺽 올랐다. 돛이 순풍을 안을시 옹근 세주야면 집에 당도할것이다. 나와있은 시간이 모두해야 8일. 하건만 그것이 마치도 여덟달이 된것만같았다.    민호는 집을 나올때의 일의 되새겨졌다. 친구찾으러 정작 떠나자니 츄얼의 맑던 얼굴이 단통 흐려났다.   《왜 이러오. 아까도 날보고 친구를 찾아봐야한다해놓구선?》   《찾지 말란는게 아니얘요.》   《그럼 왜 그러오?》   《나가면 며칠 걸려요?》   《열흘쯤 걸릴것 같소..》   《열흘이나? 어디멜 가시겠어요?》   《흑하에.》   《그렇게 먼데루요?》    츄얼이는 아래로 떨구었던 고개를 다시들어 남편을 마주보는데 크고 동그란 눈에는 어느덧 맑은 이슬이 가랑가랑 맺혀있다.   《가지말라오?》   《…》   《내 갔다가 인차오지. 안올가봐 그러우. 어린애기같이 울긴...》    입을 감쳐물고있던 츄얼이는 그제야 얼굴에 웃음을 짓는다. 민호는 사랑스러운 안해를 자기 품에 꼬ㅡ옥 안아주었다…    츄얼이는 엄마집에 가지 않고 남편올때까지 기다리겠노라했다. 오늘도 츄얼이는 시내가에 앉아 쿵캉치를 불고있을 것이다.  남편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민호는 흐름이 줄기찬 흑룡강의 물결을 탄 배가 겨울에 얼음강판을 미끄는 퉈르치만 못지 않게 빨리달리건만 그것이 굼벵이같이 굼뜬 것 같았다.     돛배가 어래무에 이르니 이틑날 오후 5시경이였다. 민호는 사공더러 배를 치더룽이네 시르맨커에 대여달라해서 거기서 내렸다.     치더룽네 시르맨커는 비여있었다. 사람만 없는게 아니라 고기잡이 도구며 간이살림도구도 없었다. 그사이 자리를 옮긴건가? 그럴리는 없겠는데… 민호는 시르맨커 동남쪽으로 나있는 오솔길로 해서 얼마가량 가다가 남에서 곧추흘러내리고있는 어래무시내를 따라서 올라가기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기덕이와 같이 치더룽의 손에 구원되던 날 유만진이네 그 낡은 배에 앉아 마을로 가던 때의 일을 다시금 회상했다. 그때 그가 탄 배의 노를 저은 사람이 지금의 처남 나쟈였다. 츄얼이는 배의 앞코숭이에 앉아있었는데 뜨물독에 빠져 퍼덕이다가 거의 죽게된 장닭같이 꼴불견이 되여갖고 백꼴못쓰는 이 민호를 자주눈빗질했던것이다. 소녀의 고운 눈이 흐려져있다가 때로는 웃음을 담기도했다. 그래서 민호는 저 계집애의 속맘은 어떠할가 나를 불쌍히 여기는걸가 아니면 놀려주는걸가 하고 진가를 가늠하느라 공연히 속을 태웠던거다…    저기 짝을 맞춰 새 쌍이 된 비둘기의 보금자리마냥 안해와 함께 여직살아온 시르맨커가 보인다. 민호는 기쁨에 마음이 달뜨기시작했다. 혹시 안해가 부는 쿵캉치소리가 들리지나 않나해서 귀를 강구면서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한데 시르맨커에 이르러 보니 냇가 말뚝에 매여 있어야 할 우머르천이 보이지 않고 개도 짖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가? 개를 두 마리씩이나 데리고 마실을 갈수는 없겠는데… 불러봤자 헛짓이였다. 간밤에 내린 소낙비에 산물이 내렸는지 내물이 불었다. 민호는 옷을 훌 훌 벗어 감아 머리우로 치켜들고 겨드랑을 치는 시내를 건넜다.    웬 일이냐?… 내를 건는 민호는 차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문은 쇠를 놓지 않았거니와 제대로 닫겨있지도 않았다. 그래 들어가보니 첫눈에 안겨오는 것이 수라장이 돼버린 장면. 안켠 구석에 세워놓고 간 총이 보이지 않았고 벽에 걸렸던 안해의 화상도 벗겨져 바닥에 뒹굴었다. 거기에는 어지러운 발자국이 큼직하게 찍혀있었다. 일났구나! 민호의 가슴속에 널장같은것이 뚝 떨어졌다.   《츄얼이!》    그는 밖으로 달려나오면서 목놓아 안해를 불렀다.    새들만 놀래여 달아날 뿐 사방은 괴괴하다.    늪으로 달려가보았다. 버려둔 통발만 있을 뿐 거기에도 사람은 없었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민호는 그길로 곧추 마을을 향해 반달음을 놓았다.    츄얼이는 친정집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아, 왜 인제야 오나?》    허저인장모가 사위를 보더니만 붙잡고 락루했다.    며느리 둘도 울음을 터치였다. 오열에 떨었다. 처가는 급기야 초상난 집같이 되고말았다.    민호가 발작적으로 목소리를 뽑아세웠다.    -《츄얼이 어딜갔어요?!》    나쟈의 처가 울음을 그치고 알려주었다.   《시누이가 잃어졌어요!》    츄얼이가 잃어지다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였다. 민호는 이런 뜻밖의 변고에 그만 명문이 꺽 막혀 말도 울음도 나오지를 않았다. 녀인들이 밖으로 달려나가려는 그를 꼭 붇드는것이었다.   《어디로가나 이 사람아.》   《내가 찾아볼텝니다!》   《이 사람아 이젠 귀신이 다 됐을 사람을 어떻게 찾는다구 그러나. 어ㅡ엉…》    절망한 장모는 맥진하여 울음소리마저 겨우뺐다.    나쟈의 처가 재다시 터지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고나서 입을 다시열더니 좀 더 소상히 알려주었다.   《츄얼이는 그저께 잃어졌어요. 그전날 여기와서 숙아하고 같이 버섯따러갔어요. 절이를 하겠다면서…이틑날두 가자구 약속해놓고서는 점심때가 지나도록 오질않지요. 그래 대체 어찌된 일인가구 숙아가 그리로 가보니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고 개마저도 죽어있더래요. 그래서…》    나쟈도 린화도 집에 없었다. 치더룽도 없었다. 그들은 당날로 츄얼이를 찾아 떠났다고한다. 츄얼이는 살해되여 강에 던져졌거나 아니면 랍치되였음이 분명했다. 이같은 변출불의(變出不義)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으랴. 그지간 온 마을이 동원되여 그를 찾느라 분주탕을 놓았다고 한다.    어느 악한이 그따위짖을 했을가? 무슨 목적에 남의 유부녀는 해치는 걸가?…민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아아, 내 츄얼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내가 조금만 더 일찍왔어도 이런 변고는 생기지 않았을것을.    마침 츄얼의 딱친구 우야즈가 찾아왔다. 얼굴이 해쓱하다. 그녀도 친구를 잃어 몹시 상심한 모양이다. 그런데 우야즈는 눈길이 민호에게 미치는 순간 놀래면서 제자리에 돌같이 굳어져버리는것이였다. 왜 이럴가? 그녀는 속에 넣어두자니 가책이 심해 발거리를 놓아 대책을 세우자고 찾아온건데 은연중 잃어진 제 친구의 남편을 대하고 보니 웬 일인지 가슴이 몹시 떨리면서 입이 열려지지를  않았던거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 하나의 몸에 박히였다. 우야즈는 고개를 꺾고 아느새 잠잠하다가 머리를 다시금 치켜들었다. 코날이 상큼하게 일어선 그녀는 맥이 풀린 갸날픈 손으로 마치 죄지은 사람같이 떨리는 제 가슴을 짚었다가 도루내리면서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용기내여 입을 여는것이였다.   《내 좀 할말이 있어서 왔어요.》    민호는 행실이 착하고 얌전한 이 처녀가 필시 제 친구의 실종과 유관되는 그 어떤 일을 말하자고 이런다는것을 제꺽 알아채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야즈, 뭘 알고있소. 어서말해보오.》   《이상한 일 한가지 봤어요. 그그저께 전날 루싼이가…》    처녀는 말꼭지를 떼고는 더 뱉아내지 못했다.   《얘야 너 뭐라니?…루싼이까 어쨌단말이냐?》    나쟈의 처가 다구쳐물었다.   《루싼이가?》    장모도 눈이 둥그래졌다.    우야즈는 목구멍에 뼈라도 걸린 것 처럼 고통스러운 낯색을 지었다. 왜 저럴가? 츄월이를 제 각시로 삼지 못한 루싼이가 지금은 우야즈와 좋와지내는 처지였다.    민호는 흥분과 조급증을 가까스로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야즈! 야즈는 아마두 뭘 좀 아는것같은데 시원히 말해주오. 그래야 야즈도 속이 개운해질게 아니요. 딱친구가 잃어졌는데.》   《말하지요. 그그저께전날 난 루싼이가 웬 낯모를 사람 둘을 데리고 산에 들어가는걸 봤어요.》   《그그저께전날이라지?…그그저께전날에는 우리 걔가 제 둘째형님하고 같이 버서따러갔는데.》   《어머니, 가만. 들어보자요. 그래서?…》    둘째며느리의 말이다.   《그저그래요. 난 그것밖에 몰라요. 하도이상해서…》    나쟈의 처가 물었다.    《야즈는 루싼아한테 물어보지 않았나요?》   《물어봤어요. 그날 어디에 갔더랬는가구. 건데 루싼이가 지금두 제대로 알려안줘요. 그러니 난 더 이상해서…》   《음!…》    민호는 생각에 깊이잠기면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우야즈가 제 련인의 의심스러움을 찾아와서까지 고발할 때는 알쪼가 있는것이다. 낯모를 사람 둘이란말이지. 그게 어떤자들이며 무엇때문에 산으로 들어갔을가?…루싼이는 왜 진상을 말하지 않을가?…의문이 꼬리물었다. 우야즈의 적발이 터무니없는건 아니였다. 아리아드나의 실오리같은 이 단서를 놓칠수 없었다. 그이상 무엇을 더 바란단말인가. 멍청해서 쭈물거릴 때가 아니였다. 민호는 우야즈보고 알려줘서 고맙다 그 누구와도 네가 고발하더라는 말은 안할테니 안심하라 하고나서 그 자리로 곧바로 루싼이를 찾아갔다.     루싼이가 집에 없었다. 고기잡이 나간 것이 아직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수밖에.     날이 저물어가고있었다. 파아란 물새가 울며 제 굴을 찾고있을 때 노의 삐걱거리는 소리들려왔다. 마을동쪽 내가의 버들숲을 가르고 있는 실오리같은 오솔길을 혼자서 오래동안 초조히 바장이던 민호는 마침내 돌아오고있는 루싼이를 발견하고 불렀다.    《루싼이 내 좀 보자구!》     루싼이는 와뜰 놀라면서 머리를 이쪽으로 돌렸다.    《나야. 귀신도 아닌데 놀라기는. 한가지 알아볼일이 있어서…》     이쪽은 벙긋 웃어주곤 배를 가까이에 대이라고 손짓했다.     《무, 무슨일을 나하구…》     루싼이는 배를 기슭에 갔다대이면서 떠듬거렸다.    《다른일아니야. 요전날 루싼이가 사람 둘을 데불구 산에 들거간적있나? 이 마을의 사람아닌.》     도적이 발 저리다고 캐물었더니 루싼이는 대번에 얼굴에 황기가 끼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왜 대답이 없나? 난 루싼이를 죽일놈으로 보고 이러는게 아니야. 그저 루싼이가 누굴 데불구 뭣하러 산에는 들어갓댔는갈 똑똑히 알자구할뿐이야. 숨기려말구 솔직히 바른대로 알려줘.》        《나도 면목은 모르는 사람들이요. 정말이요.》     루싼이는 입을 닫아걸려다 될것같지 않으니 실토하고말았다.     그날 한낮때였다. 루싼이는 큰강에 놓은 주낚들을 거둬서 배에 싣고 지금모양으로 이 내를 올라왔다. 아침에나 아니면 저녁켠에 갔어도 그는 그런 불쾌한 일을 당하지 않고 모면했을것이다. 그가 민호네 시르맨커를 지나고있을 때 공교롭게도 웬 낯모를 외지사람 둘을 만나게 되였던거다. 그자들은 그를 보고 배를 좀 가까이에 세우라해놓고는 여기 이 집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갔느냐고 캐물었다. 루싼이는 처음에는 수상쩍어 그건 왜 묻는가고했다. 그랬더니 저쪽에서는 자기들은 여기서 사는 두 조선젊은이와 잘아는 사이인데 오래간만에 와보니까 집이 비여있어서 묻는거라했다. 루싼이는 의심을 거두고 아 그런가 청년 하나는 약 둬달전에 어디론가 가버리고 하나만 남아 지금 색시얻어 살고있는 중이라고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둘은 아 그런가 우린 여직 그런줄도 모르고있었지 하고는 친구지간에 아무렴 대사를 알리지도않다니 원 하면서 몹시 서운해하기까지 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한자가 루싼이보고 남아서 장가간건 어느사람인가고 물었다. 루싼이는 그게 정민호라고 곧이곧대로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저쪽은 그렇다면 더욱만나고싶다면서 그가 그래 어디로갔는지 모르는가고 물었다. 루싼이는 민호가 외출해서 없고 집에는 지금 각시혼자있는데 그도 오전에 버섯따러 산에 들어가는 것 같더라했다. 그랬더니 저쪽 둘은 무어라 귓속말로 소곤대다가 그더러 녀인이 버섯따러 어느 산으로 가더냐 꼭 만나볼일이 있으니 데려다달라했다. 루싼이는 그러고싶지 않았다. 그러자 내색을 알아차렸는지 한 녀석이 호주머니에서 돈 5원을 꺼내놓으면서 이래도 네가 사정을 안봐줄테냐했다. 간청속에 은근한 위협이 있는지라 대가 약한 루싼이는 겁을 더럭 집어먹었다.  그 돈을 받고 길을 서주자니 자기가 죄를 짓는 것 같고 안그러자니 변을 당할것만같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루싼이는 궁리하다가 에라 주는 돈이나 받고보자했다. 그래서 둘을 자기 배에 태우고 마을까지 왔고 와서는 데리고 서산에 들어간건데 그날 그들은 츄얼이를 찾지 못했다. 이 일이 있어서 며칠안되여 어래무마을에서 츄얼이가 실종된 변이 나진거다.     사건조작자는 뛸데없이 그자들이였다. 민호가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냐고 물었더니 루싼이가 둘중 하나는 키가 민호만큼 크고 하나는 좀 작은편인데 작은자가 상판이 희멀끔하고 이쪽의 다른 한 자는 이마에 험상한 흉터가 나있는데 자기가 보기에는 그것이  칼상처같더라고 했다. 이마에 흉터있더라?…칼자리갔더라?…그럼 그게 진사해겠구나! 그리고 낯이 희멀끔하다는 자는 가철군이겠구나! 민호는 이같이 속으로 짚었다. 기병대를 나와버린 처남 나쟈가 언젠가 볼일있어 동강진에 갔다오더니 대중검거때에 붇잡아서 류치장에 가두었던 가철군이가 언녕 탈출해버린 일과 그를 다시체포하지 않고있는것으로 해서 사람들이 아문을 허깨비라 되게 비난하더라고 말한적이 있다. 그래서 민호는 한때 그 자식이 앙갚음을 하자고 또 달려들지나 않을가고 근심했고 그러다가 죄짓고 숨어사는 놈인데 아무렴 이제 또 감히 나서랴고 경각심을 풀었는데 오늘 끝내 이런 변을 당할줄이야. 이제는 원쑤가 누구라는게 똑똑해졌다.       이 결원(結怨)은 피를 보아야 풀릴것이였다.           민호는 이틑날 어래무를 훌쩍 떠났다. 그날 상판이 희멀끔하게 생긴자가 말말간에 제 동료보고 방정(方正)에 사는 사촌형네 집에 가는 수밖에 없다더라고 하더라니 거기에 가 그자들을 찾아보기로 작심했다. 방정은 의란서쪽에 접해있는 현의 소재지다. 송화강을 그냥 거슬러올라가노라면 이르게 된다. 민호는 흑룡강과 송화강의 합수목이 되는 동강진에서 요행 열래진(悅來鎭)까지 가는 배를 잡아탔다. 열래진은 동강현과 접한 화천현의 소재지인데 거기까지만 가도 길을 퍽 줄이는 셈이다.     하나의 집념이 요긴한 것을 잊고있었다. 민호는 열래진까지 와서야 자기가 휴대한 비수 한자루만 갖고서는 원쑤 둘을 대적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담량만 믿고 과대하면 승산이 없는 모험이 되고마는거다. 그는 어떻게 하나 권총 한자루를 꼭 구해야겠다고 맘먹었다.     그 생각은 뜻대로 되였다. 배사공과 말했더니 연줄이 생겨 그는 돈 15원을 주고 깜찍하고 멋들어진 골트권총 한자루를 손에 쥘수 있었던것이다.     권총을 사갔고 인차 열래진을 떠난 민호는 날저믈기전에 80여리 웃쪽에 있는 가목사(佳木斯)에 당도했다. 도보로 그곳까지 오고보니 날이 저물었고 온 몸은 녹초로 되고말았다. 그는 거기 부두가에 있는 한 자그마한 싸구려려관에 들었다. 남은 려비가 얼마안되니 아껴써야했다.     려관에서는 손님의 때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호가 거리에 나가 전병 몇잎을 사먹고 돌아오니 그 려관에 함께 든 손님들이 지난 때 여기서 발생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민국 6년(1917년). 그러니까 6년전이다. 그해의 겨울에 강북에 있는 소백룡(小白龍)토비가 이 가목사를 털려해서 한바탕 소란이 생겼을 때의 일이다. 토비가 쳐들어온다니 가목사에서는 그자들의 략탈을 막고 상민(商民)들의 공황을 피면하기 위해 의란부(依蘭府)에다 전보를 쳐 지원해줄것을 바랐다. 하여 의란부에서는 그곳에 주둔하고있던 관영장(關營長)더러 병사를 150명 거느리고 가 시내를 지키게끔했다. 12월 14일에 과연 소백룡토비가 송화강북쪽으로부터 박근했다. 그러자 가목사에서는 경비대, 경찰대와 상퇀(商團)을 동원하여 각기 구역을 맡아서 보위케 하는 한편 성내의 한산한 사람들은 한곳에다 집결시켜놓고 지켰다. 이틑날 밤 3시쯤해서 경비총부에서는 의란에서 온 패를 서문밖에 보내여 거기에 있는 소학교를 수위케함과 동시에 사생들은 모두 성내로 피신케 했다. 이것은 본래 임무를 리행하는 좋은일이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바라지도 않은 일이 발생할줄이야 어찌알았으랴. 그 다음날 날씨가 급변해 추워 견딜수 없게되자 관병장은 자기의 그 병사들을 데리고 성안에 들어와 몸을 녹이게 했다. 헌데 이 기회에 병사들은 학교의 돈푼가는 물건은 말끔히 훔쳐냈다. 그래서 학교는 토비가 들어오지 않았어도 심한 재난을 당하고말았던것이다.    누가 지은건지 항간에는 지금도 하는 민요가 생겨 이 입 저 입 불려지고 있다…    가목사에서 배로 의란까지 갔다. 공부를 마친 청량이가 거기 관부 어디에 배치되여 직원노릇을 하고있는데 츄얼이가 실종된 일을 알기나하는지 모르면 같이 제 녀동생을 찾도록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래 들려보니 청량이는 린화가 진작와거 알려 함께 츄월이찾으러 가고 없었다. 눈먼송아지 방향도 모르고 덤비듯 대체 어디로들 갔을가?…          민호는 거기서 더 지체하지 않고 방정으로 갔다. 풍진 세월이다. 낯선 고장이 그를 알아주랴. 민호는 워낙 계획부터가 막연했다. 사촌형이면 의례 성이 가씨일테지 하고 가씨성가진 집을 찾자니 그것조차 찾기어려웠다. 무엇에 비틀렸는지 사람들은 빤히 아는일도 자기와는 상관없으면 모른다면서 말하기를 싫어했다. 민호는 이런줄도 모르고 사흘간이나 헤매쳤다.     츄얼이는 어디에 있는지 마름쇠도 삼킬놈들이 안해를 삼켜버린게 아니냐. 민호는 악당녀석들이 지금 안해를 강포점유하고 제멋대로 유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면서 구곡간장이 토막나는것만것만 같았다.     해가 넘어갔다. 려관에 돌아오니 몸이 해나른하면서 다리각이 싹 물러나는것만 같았다. 가철군을 보기는커녕 그림자도 찾지 못했으니 헛고생아닌가. 밤을 자고보자해도 막연해서 그저 한숨만 새여나왔다. 누구와 이런 사정을 말이라도 해봤으면 좋으련만 련민과 동정과 한숨도 함께 지어줄 사람이 없는 이 세상이 그저 야속하고 삭막하게만 느껴질뿐이다. 세상에서 소외된 감, 개처럼 버림받고있는것만 같은 느낌, 이러한것들이 그를 비감에 잠겨들게 만들고있었다. 하지만 내 안해를 내가 찾고 악당을 잡아 꼭 복수를 하고말리라는 그 결심 하나만은 땅속에 깊이 박아놓은 바우와도 같이 흔들림이 없었다.     민호는 흉한들의 손에 죽은 개 두 마리를 생각했다. 그자들은 개에게 독약을 먹였는지 두 마리 다 상한데없이 숨을 거두었다. 그런것을 야수들이 건드리지 않게 하느라 두 처남댁이 시르맨커앞의 황철나무가에다 묻어버렸다. 개는 죽어 무덤이라도 있건만 츄얼이는 악한의 손에 무덤하나 만들어 줄 수 없게 죽은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골백번도 더 들었다. 민호는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서 어느땐가 츄얼이가 자기보고 조선사람들의 풍속을 배워달라해서 알려주던 일을 회상했다.     신혼의 포근한 기분속에서 이야기가 점점 가경으로 들어갔다. 츄얼이는 정신이 빨려들어 귀를 강구었다. 눈에 보이는 듯 손에 만지는 듯 형용까지 해가면서 엮어댄 이야기가 그토록 감칠맛이 났던지 총명하나 세상구경을 널리못하다보니 시야가 좁은 녀인을 황홀케 하면서 일종의 걷잡기 어려운 흥분과 함께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갈구하께끔 든장질했다. 내가 무지개같이 아름다울 한복을 차려입고…풍속을 배워내고…현숙한 안해로 된다면 조선에 계시는 시부모님들은 맘들어하겠지. 귀여운 자식을 낳고 남편과 시부모님들을 잘 모시고…이러면서 꿈많던 허저인안해였다.   《이것봐요, 웃지 말아요. 난 벌써 있어요.》    민호는 집을 떠나기 전날밤에 츄얼이가 하던 말이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수줍음을 머금던 그녀의 고운 얼굴이 눈에 삼삼히 떠올랐다.   《뭐가있단말이요?》    남편이 어정쩡해하니   《아이참, 깜깜부지네. 그것두모르겠나요. 여기있어요.》    츄얼이는 남편의 손을 끌어다 자기의 배를 만져보게 했다.   《뭐있다구. 난 모르겠는데.》    능청을 떠니 얼굴이 빨갛게 물든 안해는 손가락으로 남편의 이마빼기를 살짝 뚱겨놓았다.   《달거리가 없은지 두달이 돼요. 열달만 차면 낳는대요.》    안해의 배속에다 심어놓은 것이 아들이건 딸이건 성별을 가릴 것 없이 다 좋았다. 그저 낳으면 잘 길러야지 중하를 느끼면서도 나에게도 이젠 일점혈육이 생기는구나 하는 새로운 감수와 희열에  가슴벅차올랐던 민호였다.        그는 방정에 온 이틑날에도 헛수고만했다.    려관에 돌아오니 여기서도 가목사에서 처럼 손님들이 토비를 화제에 올려놓고 운운하고 있었다.   《잡혀 죽은 사람 집이 여기 방정에 있다우. 산삼캐러갔다가 그만 잘못됐다누만, 심마니가.》    《혼자갔다오?》    《아마 그런모양입데.》    《그 사람 정신나갔어. 혼자 산에 들어갈건 뭐야.》    《산에 혼자간다구 다 일이 생기나 뭐. 지역땅만 밟지 않으면 별문제지. 액운은 바로 그네들의 변계를 넘어들어간데서 떨어진게야. 그런 토비들은 금을 그어놓구서는 여기까지 내것이다 하지. 그런데루는 나라님이 들어간대두 경을 치게된다나.》    《그래서 죽여치워버렸다는건가?》    《그렇지. 그래놓구는 본인의 가정에다 그런줄은 알라는 부고를 보낸거야.》    《그러면서 장비까지 택택히 지불했다오.》    《모를소리구만. 토비가 그렇게 마음후하단말이요, 그래?》    《모르겠다, 정말인지.》    《거기 비적두목은 그래 누구라오?》    《위삼포요.》    《위삼포라?  거 어디서 딱 듣던 이름같은데…》    《얼빤한 사람. 아직 염왕산의 두령 위삼포도 모르다니 원. 자넨 아마 북만사람아닌모양이지.》     염왕산! 듣기만해도 소름끼치는 이름이였다. 흉악한 악마인데 그래 그런 토비한데도 량심이란게 있단말인가? 불가사이한 일이라 민호는 전혀 믿고십지 않아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정에 온지 5일째되는 날 민호는 이상한 사람 하나를 만났다. 점심을 먹자고 어느 구석진곳에 있는 관자집에 들어갔을 때다. 술 반근을 받아놓고 채가 오기를 기다리는판인데 한 사나이가 나타나 홀로 앉아있는 그의 몸에 눈을 밖기시작했다. 민호는 제 생각에만 골똘해있다보니 뒤늦게야 대방을 발견했다. 보통의 한인모양으로 개씹단추 여러개를 단 회색옷입고 머리에는 채양졻은 밀집모자를 올려놓은 그는 손에다 파초잎부채를 쥐고있었다. 나이는 마흔살가량. 실팍한 체구에 얼굴빛은 검실검실 했다. 그래서 의표는 단정해도 상인인지 직원인지 그 신분을 대중하기 어려웠다. 하여간 농민이나 어부같지는 않았다.     청한 채 한접시 들어와 술을 마시려는데 그 사나이가 다가들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임자는 무슨 족이요?》    《어디맟혀보시죠. 내가 무슨 민족인것같습니까?》    《음…》     민호의 대꾸에 대방은 보살웃음을 지어가며 눈을 껌적거린다.    《옷입은걸 보면 허저사람같은데 아니야.》    《그럼 내가 어느 민족이겠습니까?》    《글세… 그래서 내가 점쳐모는게 아닌가. 잘 모르겠어.》    《난 조선사람입니다.》    《오, 그래! 꼬리방즈.》    《말 좀 삼가시오. 꼬리방즈라니요. 고려인이라구 해야지.》    《오! 하하하… 내 말이 그만 욕으루 됐구만. 하하하....》     그 사나이는 사람좋게 웃으면서 관자집주인더러 청한 술과 안주를 달라해서는 민호와 겸상했다.     첫 인상이 괜찮았다.    《그 옷 지은걸 보니까 알뜰한 녀인의 솜씨로구만. 여봐, 젊은인 허저녀잘 각시루 삼지나 않았소?》    《아니,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의 물음이 의표를 찔렀다.     대방의 깐깐한 관찰에 민호는 가슴이 뭉클해났다. 그가 지금 입고있는, 옷갓을 누른빛나는 보드라운 가죽으로 하고 동글고 기름한 고기뼈단추 일곱개를 내리 단 이 하늘색의 비단옷은 알뜰한 츄얼이가 솜씨를 다 피워서 결혼례복으로 지어준 것이다. 자기가 연람(延攬)하고 있는 이 사나이는 심성이 고약한 것 같잖아서 민호는 그렇다, 옷은 각시가 해준것이다고 이실직고했다.     대방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바르면서 머리를 주억거렸다.   《허허, 고려사람이 다즈녀잘 얻어사는구만. 글쎄 그러게…이러구보니 내 눈이 보배야. 젊은인 그래 집이 어딘가?…보아하니 객지에 나도는 사람같은데.》    《내 말이지요. 난 집이 어래무에 있습니다.…가보았다구요?…그렇습니다. 난 기막히는 일 있어서 여기루 온겁니다. 무슨일인가구요?…안해를 잃었습니다…수일전에요.》     대방은 어쩜 그런 불상사도 다 있느냐면서 끔쩍 놀랬다.     민호는 여기서 자기의 처지를 물어주고 가엽시 여기면서 동정까지 보내는 사람을 이제 처음본다. 한데 술을 제꺽 들이키고는 간다는 인사도 없이 훌쩍 사라져버리는 그 생면부지의 사나이는 허저인이였다.     려관에 와 누우니 또 안해생각뿐이다. 이 밤은 어느놈한테 시달림 받는지…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온갖의 착잡한 생각만 갈마들어 모대기치는데 누군가 문에다 《똑! 똑!》손기척을 낸다.    《누굽니까?》    《저얘요. 문 좀 열어줘요.》     녀인의 목소리였다.     민호는 려관에서 일보는 하인으로 알고 일어나 잠근 문을 열어주었다. 그랬더니 나이 퍼그나 되는 뚱보녀인이 짙은 향기와 크림냄새를 피우며 들어왔다.     민호는 미처 생각이 돌지 못해 어정쩡해 있다가 딴 감촉이 느껴지는지라 정색해서 물어보았다.    《무슨일있습니까?》     그 뚱보녀인은 머밋거리다가 엉덩이를 꼬며 수작을 피웠다.    《객지에 나다닐라니 적적하잖아요. 내가 오늘밤 동무해주죠.》    《저, 그건?》    《많이 받잖겠어. 오원만내요.》     그렇구나, 너도 갈보년이로구나, 어제 밤에는 구미여우같은 젊은 계집이 달려들더니 오늘밤은 이따위 똥되놈추물이 감겨드는구나, 제길할! 민호는 보기만해도 역겨워나는지라 정신을 펄쩍차리면서 황황히 거절했다.    《시, 싫어! 나, 난 싫어!》    《에그, 옹졸한 손님이네요! 왜 그래요? 고깟 돈 몇푼 아까와 보고싶은 재미도 안보고 잘래요?》     상판이 유들유들한 뚱보년은 치포를 걷어올려 흰 허벅지를 드러내보이면서 아양떨어댔다.     민호는 이마살을 찡그리며 눈길을 제꺽 거둬버렸다.    《어때요. 자볼가요.》     징글스레 놀면서 찰거마리같이 감겨드는 꼴이 사내들을 숱해 홀려먹은 계집이였다.     민호가 외면하는 사이 어느결에 년놈의 해면같이 부드러운 손이 몸을 주물렀다.    《이년이!》     민호는 활 밀어놓았다.     갈보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갔다.    《빌어먹을 화냥년!…그깟 더러운  밑구멍 어디다내놓자구. 저따위년들을 잡아가두는데는 없나, 젠장!…》     령험(靈驗)없는 구멍이였다. 그년이 발가벗고 감긴다해도 민호는 사타구의 그것이 일어설것 같지 않았다. 한심하게 더러워졌을 그놈의 공공변소를 갖고 돈빨아내자니 괘씸하고 구역질나서 욕했다. 그러다가 민호는 불현듯 정신이 들어 몸을 발딱일으켰다. 내가 무슨 궁리를 하고있느냐. 그년이 내 몸을 만졌어. 내가 권총지닌걸 알았을건데 가서 경찰에 고발하면... 그런데두 멍청히 앉아있다니!     전해에 성립된 전성유격대영무처(全省游擊隊營務處)가 이해의 5월 10일부터는 흑룡강독군(黑龍江督軍)겸 성장(省長)인 오준승(吳俊升)이 발포한 《성방군대강(省防軍大綱)》에 의해 성방군영무처(省防軍營務處)로 규정되였고 성장공서(省長公署)는 명령을 내려 그것이 자체의 무장실력을 키움과 동시에 성내의 치안을 유지하게하였다. 하여 토비들의 활동을 견제하는 한편 사창(私槍)을 지닌 자에 대한 감독과 징벌을 엄하게 하고있는 판이다. 그러니까 이제 붙잡혀 사출이 나는 날이면 볼장은 다 본다.     들키지 말고 도주해야했다. 민호는 주인과 간다는 말도 없이 며칠간 묵고있던 려관방을 슬며시나섰다.     그런데 일은 참 공교롭게 되였다. 그가 방금 문을 열고 나서자 경찰 셋이 려관에 막 들이닥치는 판이였다. 어느새 갈보년의 밀고를 받은것이다. 이런 위기일발의 시각에 민호는 그자들이 대방이 누군가를 미처 알아보기전에 주먹을 날렸다. 그는 자기와 마주친 자의 턱주가리에 강타를 먹여 꼭그라뜨린 후 다른 한자를 다리걸어 재껴놓고는 내꼴봐라 줄행랑을 놓았다.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경찰들은 넋살먹고 어리둥절했다가 뒤늦게야 정신차리고는 호각을 불었다.     민호는 어서빨리 이 현성을 뛸쳐나가자고 마음먹고 강가로 달려나갔다. 거기에 배가 여러척있었던거다. 하지만 이 밤에 그를 실어다 줄 배사공이 어디있으랴. 그는 아무배든 훔쳐타고 어래무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강기슭에 매여져 있는 쪽배 몇척을 다 살펴봐야 노가 있는 쪽배는 하나도 없었다. 어느 병신이 그래 배를 훔쳐가라고 노대를 거두지 않고 배에 그냥 내쳐두랴..     현성의 밤거리는 소란해지고 있었다. 경찰이 총출동하는모양이다. 운수가 꺼벅거릴때다.     도망은 커녕 자칫잘못했다가는 붓잡히우고만다.      민호는 자기가 이런데서 빠져나간다는 것이 용이치 않음을 깨닫고 어느 한 쪽배에 제꺽기여들어가 거기에 숨어버렸다.     여름밤은 점점 깊어갔다.     웬 일인지 소란은 인차멎어버린다.     쪽배는 애기를 담은 요람같이 흔들렸다.     민호는 눈에다 저울추를 달아맨것만같아 깜빡 잠들고 말았다.          너무 곤해서 꿈도 없는가. 그는 배가 무엇에 부딧쳐 몹시 흔들리는통에 잠을 깨고 눈을 펀들떴다. 어느새 날이 휘영청 밝아오고 있었다. 다른 배의 임자가 아침일찌기 어디로 갈 일이 있어서 배를 돌리다가 남의 배를 건드려놓았던 것이다. 그 사람은 이쪽의 배에서 웬 사람이 벌컥 일이나니 저으기 놀란다.      당황해 하지 말아야했다. 민호는 어깨를 으쓱하고 나서 태연스레 배에서 내린후 강물에 세수하고는 거리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놓았다. 자기로도 어디로 무엇때문에 가는지 모르면서.     그가 얼마가지 않아서였다. 호각소리 갑작스레 나기에 머리들어 보니 저기 앞에서 순경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는 다른 순경들에게 련락을 보내고 있는참이였다.     제길할! 사태는 위급하게 되였다. 몸을 제꺽 돌려 옆골목으로 달려들어간 민호는 저기 우물가에서 한 더벅머리 아이가 방금 말에게 물을 먹이고 돌아서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로 달려갔다.     순경몇이 뒤쫓아왔다.     민호는 뛰여가자바람으로 더벅머리아이를 밀쳐 넘어뜨리고는 고삐를 채여 말잔등에 제꺽 올랐다.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탄알이 귀뿌리를 앵-앵-스쳤다.     말은 총소리에 놀랬는지 아니면 분노해서인지 죽어라고 네굽을 놓아 눈깝짝사이에 현성을 나와버렸다. 불의(不義)의 략탈자를 등에 태우고 줄달음을 놓고있는 이 체대크고 털빛이 윤기나는 백마는 관동(關東)의 호마(胡馬)였다.         동녘에 둥실 떠오른 해를 보니 현성을 뛸쳐나온 그가 지금 남쪽방향으로 곧추가고 있었다.     마을 몇 개를 지났다.     길은 점점 좁아지면서 못해갔다. 이대로 그냥가면 어디에 닿을지 모른다. 내가 도망 쳐도 목적지는 있어야할게 아닌가. 민호는 말이 숨을 좀 돌리게 하느라 천천히 몰다가 어느 한 곳에 이르러 밭으로 나가고 있는 농군을 만나 여기가 대체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농군은 마을이름을 알려주면서 남쪽으로 더 가면 큰마을은 없고 작은 마을 몇개 더 있을 뿐 거기만 벗어나면 무인지경의 산간지대라고 알려주는 것이였다.     어디로 가면 좋을가?…민호가 여긴가저긴가 방향잡기 어려워 초조불안한판인데 북쪽으로부터 한무리의 마병이 나타나 추격했다. 저 자식들이 그냥쫓는구나!…민호는 다시금 말을 내몰기시작했다.     말은 다시 질풍같이 달렸다.     그래도 계속 추격해왔다. 내가 이러다가 잡히겠구나, 그렇게 되면 끝장인걸…민호는 필사적으로 말을 내몰았다.     아마 백여리는 더 달려왔을것이다. 그제야 추격자들은 점점 맥을 놓으면서 총만 갈기다가말았다. 내가 네놈들을 끝내 뿌리쳤구나. 이젠됐다. 만세!     길은 그냥나 있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산중길인지 알수없거니와 여러갈래로 갈라졌다. 민호는 그만 어리벙벙해지면서 오리무중에 빠지고말았다. 서남방향으로 길을 바꾼것 같기도 하고 남쪽으로 그냥가는것 같기도 하고…길은 분명하건만 사람을 미혹시키니 민호는 졸지에 이게 토비들이 다니는 길이 아니야 하는 불길한 생각이 불쑥나면서 머리카락이 쭈빗이 일어섰다. 젠장! 나도 산삼캐러 들어왔던 사람꼴이 되지나 않을가…몸이 오싹해났다. 민호는 어서 여기를 돌아나가려했다. 한데 가면갈수록 수미산이였다.    《씨팔! 내가 이거 미궁속으로 게발아들어온게 아니냐.》     민호는 침을 뱉아가며 혼자서 두덜댔다.     이때였다. 네 말이 맞다 이놈아 하듯이 갑작스레 난데없는 오라가 휘-익 날아오더니 그의 목을 걸어챘다. 민호는 말잔등에서 허망나가 딩굴었다. 어데 숨었댔는지 억센 괴한 둘이 달려들어 눈깝짝새에 그를 묶어버렸다. 미처반항할 새도 없이 잽싸게 그리고 사정없이.  
400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5) 댓글:  조회:2256  추천:0  2015-02-03
                 5                 어수선산란한 세월에도 계절은 드팀없이 바뀌여 어느덧 이듬해의 봄이 되였다. 자그마한 어래무시내가 다 풀리고 드넓은 흑룡강에도 어름장이 떠돌았다.     어느날 할 일은 없고 심심해서 속이 쏴난 기덕이가 바람쒜러 밖에 나갔다가 달려들어오더니만 벽에 걸어놓은 활을 제꺽 벗겼다.   《왜 그러니?》   《나는 놈이요! 얼마든지 맞히만하겠소!》   《오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번 시합해볼가!》    민호도 한달전에 산 베르단을 제꺽들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흰 매 한 마리가 머리우에서 빙 돌고 있었다.    기덕이는 활에 살을 메워 들었다.   《가만!》    민호는 당장 활시위를 놓으려는 그를 제지했다.   《왜 그러오?》   《쏘지 말어. 아까운건데.》    기덕이는 형님 제법 인도주인걸, 그래 어느때부터 짐승을 불쌍히 여기게된거요 하면서 말을 듣지 않고 엇서려했다. 그가 그러니 민호는 아니 네가 정말 이럴테냐 하면서 버럭 성까지 냈다. 기덕이는 그의 이같은 단호한 제지에 부닥치고보니 싸울수도 없는지라 하는수 없이 활시위에서 깍지손을 떼지 못한채 그만 들었던 활을 아래로 되내리우고말았다.    매는 시르맨커동쪽의 늪가에 내리꼰지더니 무엇인가를 제꺽 채갖고 하늘로 다시올라갔다.   《저놈이 토끼를 잡았구나!》   《그것보라니까. 내 잡을 걸 저놈이 채간거요. 에 참!》    기덕이는 맹랑한 일이라며 눈까지 찔 깔린다.    매는 서쪽으로 날아 어래무시내건너쪽 어디엔가 내리고 있었다.   《그놈의 매가 사람보다 사냥술이 더 좋구나!》    민호는 탄사를 올리고나서 매가 공중에 다시나타나지 않으니 이젠 그만 기덕이와 함께 시르맨커로 되들어오고말았다.    그런 후에 약 둬시간가량 지나서다. 개들이 짖어대서 나가보니 웬 사람이 시내저쪽에서 이켠을 건너다보는것이었다. 한쪽어깨에 렵총을 멘걸 보니 분명 포수인데 그의 한손에 털이 재빛나는 토끼가 한 마리 들려있었다.    민호는 그 포수를 보고 사납게 짖어대는 개를 말렸다.   《여보시오!》    포수는 이쪽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얼굴생김새를 보니 그도 허저족인데 어래무마을의 사람은 아였다.   《왜 그럽니까?》    민호가 물었다.    저쪽은 자기를 이쪽으로 건니여줄 수 없겠는가했다. 근처 다른마을에 사는데 사냥나왔다가 배가 고프던차 마침 인가를 만났다는거다. 민호는 속으로 정오가 지났다 그래도 어쩌겠냐 밥을 다시지어서라도 먹여보내야지 했다. 내 살림이 아무리구차해도 객지에 나도는 어려운 사람은 도와주는것이 이들 허저족의 공유한 인품이요 미덕이였다. 황차 그도 기덕이도 이 종족의 손에 구원된게아닌가.    기덕이도 밖으로 나왔다. 민호는 그보고 포수를 우머르천에 태워 이켠에 건너오게 하라 하곤 자기는 곧 밥지으러 들어가려했다. 한데 바로 이때였다. 아까의 그 매가 다시나타나 그들의 머리우 매지구름이 떠도는 하늘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기덕이가 우머리천으로 그 사람을 이켠으로 건네웠다.    매가 낮추 두바퀴를 돌 때 포수가 올려다보면서 손가락 두개를 입안에 넣더니 맵짠 소리를 냈다.    매는 그 소리를 잡아들었는지 머리를 기웃거리더니 날아내려와 바로 포수의 그 채양없이 두텁게 만든 가죽모자꼭대기에 앉았다.   《야, 희한한데!》   《아까 그 매로구나! 포수가 매를 기른다더니 이게 바로 사냥매라는게구나!》   《그렇구만! 틀림없소! 내가 이걸 잡았더면 어쩔번했을가....》   《글쎄말이다. 갚지못할 큰빚을 질번했지.》    이쪽에서는 한편 그리해서는 안될 일을 저지를 번한 방금전의  순간을 돌이키면서 감탄를 련발했다.    매는 몸체가 대단히 컸다. 정기있는 동그란 두 눈은 과연 매섭게 생기였고 쇠갈고리같은 부리와 발톱은 날카로왔다. 자못 위엄스런 놈이다. 실로 날새중의 왕이라하겠다.    개들이 주인노릇하느라 그러는지 얌전해지면서 더 짖지 않았다.    포수는 매를 낮다란 시르맨커지붕우에 올려놓았다. 매는 이상하리만치 주인이 놓은 자리에 꼼짝않고 앉아 눈을 조용히 감았다떴다한다.   《거 훈련 잘 받은 놈인 걸! 주인께 충성하겠구나!》    민호는 찬탄 한마디를 더 발했다.    물어보았더니 포수가 하는 말이 매를 이쯤 길들이자면 공력이 대단히 들길래 생각은 있어도 매를 길러 사냥하는 사람은 극히 드믈다는거다. 그러면서 보태는 말인즉 노력과 품을 넣어서 일단 길만들여놓으면 매가 개보다 곱절 값간단다.   그의 매는 해동청매(海東靑鷹)였다. 이 이름은 옛날 동부연해를 해동청이라 부른데서 지어진 것이다. 무원의 해동청마을이 바로 이 매의 산지이다. 해동청매는 등급을 분명하게 나눈다. 털빛갈이 순백색인것이 상등이고 갈꽃인 것이 귀중하며 흰색에 잡색털이 섞인것이 그다음, 털이 회색인것이 마감간다. 해동청매는 곧게 서면 키가 거의 3자나 되는데 꼬리로는 부채를 만든다. 이런 매는 하늘공중을 대단히 높게 날뿐만아니라 눈이 비상히 밝아 지면에서 까불대며 노는 쥐새끼도 보아낸다. 부리와 발톱은 쇠갈고리같아서 고니, 토끼따위는 물론 지어는 아이나 노루까지도 어렵잖게 채가는것이다.    료조(遼朝)때 통치배들은 해동청매를 특별히 좋아했다. 하길래 그들은 늘 녀진인들을 추기여 허저인과 매를 빼았는 싸움을 하게해서는 허저인들의 소유물이던 해동청매를 제손에 넣군했었다. 그들뿐이 아니다. 청조(淸朝)때에 이르러서는 해마다 새잡이꾼을 이곳에 보내여 10월부터 12월하순까지 그믈을 갖고 풀밭에 숨어 매를 전문잡게까지 했다. 털이 회백색이거나 잡색인것도 잡으면 백성은 기르지 못하고 매륵장경(梅勒章京_즉 都督)에게 보내야했거니와털이 순백색인 것을 잡았을 시에는 매륵장경도 감히 갖지 못하고 조정에 올리바쳐야했다.    나이 40대인 그 허저인포수는 말했다.   《우리는 증조때부터 매를 길렀소. 그러다보니 참…한 번은 매를 부릴만하게 다 길러놓으니 관가에서 와갖고 억지다지로 빼았아갔다오. 그래서 증조부는 빼앗긴걸 되찾으려했다가 그들손에 애매한 매만맞구…결국은 그 미열로 세상뜨고말았다오. 이 매의 조상이 바로 우리 할아버지가 그때 기른 매라오. 할아버진 산에서 나오지 않고 매를 길렀던거요.》    민호가 아 그런가 하면서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물었다.   《그래 지금은 매를 기르기 편합니까?》   《편하다는게 다 뭐요. 고태자서 일을 친 그놈의 청보산패 토비들이 내 저 매를 욕심낸지 오랬소. 그 무리에 진사해라구하는 녀석이 있는데 재작년그러께 날 찾아왔더구만. 돈을 줄테니 매를 팔라구서. 그러는걸 난 만원을 준대두 안판다구했지. 그랬다구 그놈이 어쨌는지 아오.》   《어떻게 됐습니까? 토비니까 곰상히 물러갔을리야없지요.》   《그렇지. 며칠안돼서 그자가 또왔던거요. 전번때처럼 두놈데리구서. 그땐 내가 집에 없었더랬소. 그러니 어떻게 한줄아오. 그녀석들이 글쎄 얼싸좋다구 매를 매창채로 메여갔단말이요.》   《저런! 그래서 잃었다는말입니까?》   《아니요. 일은 참 묘하게 됐지…마침 그날 난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에서 그놈들하구 맞띠웠단말이요. 그래 죽자꾸나가 벌어졌는데 내가 매장멘 놈의 목을 하나 분질러놓고 진사해놈은 칼로 이마를 긁어놨던거요.》    이 사람이 그래 혼자몸으로 토비 셋하고 맞붙어 해냈단말인가? 다시보게 된다. 체대도 크지 않건만 과연 제가 기르고있는 매같이 단단하고 날파람있게 생긴 사나이였다.    그래도 의문은 남아있는지라 민호가 물었다.   《모를 소립니다. 토비가 남의 매까지 감질을 내다니. 그자들이 매는 해서 뭘하길래요? 설마 사냥에 부려먹자는건 아닐건데?》   《사냥에 부려먹는다는게 뭐요. 어느 고관어른께 진상할려구 그런게지.》   《원 무슨소린지. 정부관리도 그래 토비의 회뢰를 받는답니까?》    《이런 아득신보지. 자넨 그레 관리면 다 속밝은줄아나. 》   《그렇다면…》   《저 장작림만 보라구. 지금은 관동왕이 돼서 코대세우고 우쭐렁대지만두 그도 밑그루는 토비야. 그걸 누가 몰라서.》    사실 그러했다. 지금 동북의 패왕으로 불리는 장작림(張作霖)인즉은 토비출신인것이다. 속담에도 했거늘 어디가면 청렴한 관리를 보랴. 관리의 세도에다 토비들의 등살에 여기 동북땅ㅡ관동(만주)의 백성은 몸살을 앓고있었다.    혹시 그 녀석이 아닐가?…민호는 그의 얘기를 듣노라니 눈앞에 한 사람의 몰골이 색바래진 낡은 그림같이 얼른거려 물어봤다.   《칼에 이마를 긁히자 이름이 뭐라구요? 나이는 대략 얼마나됩니까?》   《나의 저 매를 훔쳐가던 녀석말이지. 그자는 이름은 진사해고  올해 나이가 아마 서른셋일게요. 듣자니까 그 녀석 워낙 종자가 나쁘다는구만. 할애비적부터 토비라나. 지악한 놈이지. 재작년 여름에도 그놈의 패거리가 당벽진서 숱한 고려사람을 죽였던거요.》   《아니 뭐랍니까!…그놈의 패가 당병진서?…》    전혀 뜻밖이라 민호는 깜짝놀랬다. 재작년이면 1921년이 아닌가. 그해여름의 일이면 바로 을 가리키는것이다! 옳다, 옳고말고! 그렇다, 그렇고말고! 틀림없다! 한데 흉수가 바로 그놈이라니!... 민호는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솟으면서 주먹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덕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아, 그놈이 바로 네였구나! 진사해!》    민호는 가철군이와 한동아리가 되여 유씨네 배를 략탈한, 가진구에서 피끗보았던 그 이마에 칼자리가 흉하게 그려진 자를 다시금 머리속에 떠올리면서 잔인무도한 그 토비무리의 이름까지를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넣었다.    매임자는 두 젊은이의 거동을 보고 비로서 이들은 자기와는 민족이 영 다른, 한족도 아니요 조선족임을 알게되였다.    한편 이쪽에서도 알고보니 매임자가 린근 어느 마을에 살고있는 허저인인것이 아니라 진사해의 보복을 피해 산속에 숨어사는 사람이였다. 그는 가뜩이나 인수가 적어 거의나 민멸(泯滅)의 위기에 처해있는 자기 민족의 운명에 대해 우려하고 근심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번의 을 되새기는것이였다. 세상을 독천장으로 삼고 제멋대로 만용을 부리며 날뛰는 토비를 저주했고 백성들이 뼈가 물러나게 벌어서 관병을 먹여살려내건만 이럴때도 나서지 않으면야 그놈의 군대는 해서 뭘하겠느냐 하면서 그자들을 숙청하지 못하는 정부의 부패함을 원망하기도했다. 속에 불만이 꽉 차있는 사람이였다.     어디 그 한사람만의 감정이란말인가. 과연 그러했다. 이 발생하자 몸시 불안해난 백성들은 한결같이 나라에거 군대를 동원하여 하루속히 잔악한 토비를 숙청해버릴 걸 요구했다. 하건만 움직이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토비들은 료략질을 계속  심하게 감행하고 있었다.    《안됩니다. 무능한 정부만 믿고 멍청해있다가는 어느때 또 화를 입을지 모릅니다. 횡래지액이라잖습니까. 어느때 재난이 날아와 눈깜짝새에 온 마을 온 민족이 전멸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어찌하면좋겠소?》    《제 하나의 안신만 생각말고 온 마을 온 민족이 뭉치게해얍지요. 안그렇습니까. 더구나 이럴때는말입니다. 모래알같이 흩어지지 말고 쇠덩이같이 단단히 뭉쳐야한단말입니다. 생각해보시오. 안그리구야 되겠습니까,그래?》     전에 사망한 가싼다 유만진의 7일제날 민호는 나쟈에게도 이렇게 깨우쳐주면서 충고한적이 있다. 그래서 내내 불안과 공포에 잠겨 떨고있던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용기를 내여 한사람같이 뭉쳐진것이다. 청장년들은 한군데서 먹고 자면서 항시 대적준비를 했고 부녀자들도 집일만하지 않고 련방소조에 들어 남성들과 마을수위를 분담하고 있었다.     하위, 무홍윤, 치치하에 살던 허저인 가족 여러호가 모여들어 어래무마을은 갑작스레 흥성흥성했다. 아버지가 죽어 그 뒤를 이은 젊은 가싼다 나쟈는 살길을 찾아 온 그들도 책임지고 돌봐줘야했다. 혈관속에서 같은 피가 흐르고있는 수난의 동포가 아닌가! 그는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몸을 내번지면서 맡은 사업을 적극적으로 해나갔다. 마을의 보위를 조금치도 늦춘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원 주민과 피난민들을 한데 합쳐 고기잡이철이 돌아오면 집체로 고기잡이에 나서게끔 조직도 해놓았다.     어느날 기덕이가 제 속맘을 내비치였다.    《정형! 이만하면 우린 없어도 되잖을가.》    《가버리자구? 가려거든 너 혼자서 가. 난 못가겠다.》     민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가슴속에 넣어두고 사랑을 싹틔운 녀인이 있기도하거니와 허저인 모두가 이같이 어려운 처지에 든것을 뻔히 보고도 외면할 수 없었다. 저만의 안신을 위해 훌쩍 가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건 너무나 몰인정하고 부덕의(不德義)한 짓이 되고마는게 아닐가.     량심이 절대 허락치 않았다.    《정형 안가면 나도 안가겠소.》     아무때건 자기는 가야 할 사람이지만 적어도 토비를 숙청하기 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금 느끼게 된 기덕이는 민호와 함께 동고동락 하면서 환난상구하리라 한번다시 결심했다.         세월은 빨리도 흘렀다. 봄과 여름철이 다 가고 가을을 잡아들자 50여명 악당으로 결성된 청보산마적들이 다시금 동강현내에 나타나 무장비상태에 있는 마을들을 골라가며 료략질하기 시작했다.    《그놈들이 도금한 가락지두 다 빼앗는다누만. 빼다가 못빼면 손가락까지 찍어버리면서까지.》    《에그, 끔찍해라. 어쩜 그렇게 까지…》    《군대가 뭘하구있는가, 밥통들!…》    《가자, 관청이 정말 맥못쓰는 형편이면 우리가 나가서 싸워보자! 관청이 그자들과 한덩어리라면 아예 그것마저 뚜드려부시자!》     백성들은 웨쳐댔다. 분노가 극에 이르고 있었던것이다.     어느날 나쟈가 렵총과 검으로 무장한 50명의 청장년들을 데리고 동강진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때를 기다렸을 뿐 마음없거나 성의없어서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백성들의 원성이 참지 못할 반항으로 번져나가자 군벌들은 그제야 리유좋게 얼버무려대면서 나섰다.     아문의 기마대와 포수대가 조직되였다. 한데 그 주력은 모두가 허저인들이였다. 그들은 기마술이 좋거니와 사격술역시 좋았던거다.    《나를 기마대의 대장질을 하라누만.》     아문의 기마대가 조직되던 날 나쟈가 두 조선젊은이를 만나서 하는 말이였다.    《시키면 해보지요 뭐. 나쟈형을 내놓구야 맡아 나설 사람 어디있습니까. 사람들이 그깟 무럼생선같은 아문장교의 말은 개방구만도 안여길텐데요, 안그렇습니까.》     민호가 이렇게 말하면서 그의 임직을 축하했다.     기덕이도 마찬가지였다.     포수대의 대장은 봄에 매를 갖고 사냥다니던 그 허저인 사나이였다. 하여 민호도 기덕이도 그는 성명이 위하연임을 알게되였다.     두 조선젊은이도 손에 총을 잡고 나쟈의 기병대에 들어 청보산토비숙청을 나섰다. 그네들의 이같이 의로운 행위에 대해 모두들 고마와했다. 지어는 위대한 국제주의자라고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토비숙청은 간거했다. 청보산마적들은 다가 지형에 익숙하고 날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자들은 북만에서 민심을 잃을대로 잃은데다 전에 다른 토비무리들과 척을 짓다보니 원조받을 곳이 없어 점점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같은 형편에서 숙청에 탄원해나선이들의 들끓는 복수심과 멸적의 신념이 용감성을 한결 더 발휘케했다. 하여 이번 토벌은 2개월내에 끝을 보았다.     한데 동강진우쪽 부금(富錦)근처에서 청보산패마적 과반을 숙청하고나서였다. 기마대와 포수대가 밀산쪽으로 내빼는 잔당을 계속추격하여 완달산(完達山)골안에서 최후의 숙청을 벌렸을 때 그 악당의 무리에서 세번째가는 인물이였던 진사해를 그만 놓쳐버리고말았다. 그자 혼자만이 어느새 말을 집어던지고 새여버린거다.    《그놈을 잡아야하는건데, 참!》    《화근을 남겼구나.》     속이 어찌 개운하랴. 기덕이도 민호도 몹시 맹랑해하였다.     토비숙청을 마무리지으면서 련달아 검거풍이 세차게 일어났다. 그래서 전에 토비와 내통이 있던 자들이 련속잡혀나오게되였는데 그 속에는 무원의 건달 가철군이도 끼여 있었다. 그가 잡혀가자 가씨는 자식을 감싼 죄로 파직당했고 집은 패가망신하고말았다.     그런데 얼마후 류치장에 집어넣은 가철군이 감쪽같이 담장을 뛰여 넘어 탈출했다. 진사해가 그를 구출한 것이다. 그런줄을 민호와 기덕이는 물론 나쟈까지도 몰랐다.     양력으로 1924년 2월 5일, 이날이 춘절이였다. 현아문은 춘절전에 포수대만 해산시켜 집에 돌아가서 식구들과 함께 명절을 쇠게하곤 기마대는 해산시키지 않았다. 원인이라면 청보산마적을 섬멸했지만 아직도 몇 명씩 작당한 강도단들이 남아서 의연히 작경을 놀거니와 명절기간을 리용하여 다른현경내에 있는 토비들이 래습 할 수 있길래 현성의 보위를 가강히 해야한다는거다.    《저들만 안녕하면 단가, 제길할!》     나쟈는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그믐제를 지낼 수 없게되자 자연히 불만이 생겼다. 한들 무슨 방법이 있는가.    《아들이 못가면 우리라도 가서 제를 지내는게 어떨가.》     기덕이가 먼저내놓는 생각이였다.    《그래. 그리해야지. 우린 그러는게 좋겠구나.》     민호도 생각이 돌았다.     그런데 며칠간 말미를 얻자하니 아문에서는 일반대원도 되지 않는다면서 명절휴가가 없다는걸 그래 모르느냐 정 가겠거든 퇴대하고가라했다.    《그깟거 퇴대하라면 하지. 하루 밥 세끼먹여주면 그게 은헨가. 제기!》         기덕이 두덜댔다.    《차라리 그러자. 그러는 편이 났겠구나.》     둘은 그 자리에서 퇴오를 신청했다.     비준이 어렵잖게 제꺽됐다.    《좋구나, 우리들만의 자유를 다시찾아서!》     민호는 기마대를 나오고보니 되려 거뿐하면서 마치 강호산인(江湖山人)으로나된듯한 기분이다.    《정형, 아직은 사냥철인데 우리 춘절쇠고 나가볼까?》     《그러는게 좋겠다. 올핸 큰놈을 좀 사냥해보자꾸나.》    《그러자면 심산으로 들어가야잖소.》    《거야물론이지. 위하연이란 사람있잖아. 우리 그일 찾아가자.》      그들은 약속과 같이 춘절을 쇠자 곧 행동에 나섰다.          어래무마을을 떠난 그들은 사흘만에 퍼그나 깊은 산속에서 외계와는 접촉이 너무나 적어서 반야인상태에 처해있는 한 허저인동네를 발견했다. 인가라곤 모두합쳐봐야 다섯호밖에 안되였는데 그나마 장정이라곤 셋뿐이고 나머지는 부녀와 아이들이였다. 세상에 이런 구석진데도 있단말인가! 그들은 아직까지 고태자에서 제 동포가 토비들 손에 무리로 살해된것도 모르고 있거니와 겨울내에 선후하여 장정 둘이나 야수한테 잘못된것으로 하여 곤혹을 겪고있었다. 이쪽에서 찾고있는 위하연이란 사람은 여기에 살고있지 않았다.     민호와 기덕은 여기서 자기들이 전에는 보지못했던 괴상한 건축물을 발견했다. 그건 허저어로 원터허안코라 부르는건데 높다란 나무우에다 공중다락모양으로 지은 자그마한 나무집이였다. 이 마을에 모두 다섯채였는데 다가 꼭대기에 길이와 너비가 둬자되는 정방형의 통풍구가 뚫어져 있었다. 벌방이 싫어서 여기를 떠나지 않은 그 허저사람들은 갑작스레 지군하는 산물이나 맹수의 습격을 막기 위해서 이런 집을 짓고 사는것이였다.     마을거민 중 중국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의 포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마저 발음이 변변치 않아 곱씹어말하고 손짓표현을 해야 의사소통이 겨우되였다.     그 사람은 여기서 서쪽으로 약10여리만 더 들어가면 이 있는데 거기에는 얼마전에 사람잡고 선불맞은 곰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곰을 허저인들은 마부카 혹은 마바카라 불렀는데 뜻인즉 라는거다. 이곳의 곰은 종류가 두가지였다. 하나는 반달곰인데 이런 곰은 체통이 작아 무게가 기껏해야 3~4백근밖에 안나간다. 반달곰은 가슴패기에 흰털이 있으며 령민해서 능히 나무로 바라오르고 구새먹은 나무속에서 산다. 그래서 천창(天倉)이라한다. 다른 한가지는 말곰인데 그건 반달곰보다 몸체가 퍽 크거니와 무게도 썩 더 나가 보통 8~9백근씩된다. 이런놈은 기운이 대단하지만 굼뜨고 나무에 바라오를줄도 모른다. 그래서 거의가 땅굴이나 풀더미속에서 사는거다. 그런다고 지창(地倉)이라 한다.    《선불맞은 놈 사납다는데 잡을만할가.》    《사납다고 못잡으면야 바보지 뭐야. 황차 인명해친놈인데 살려둬선 안되지.》     민호는 허저인포수가 겁을 집어먹고 그 곰을 건드리기 무서워하는 것 같아 기덕이보고 꼭 잡아버리자했다. 정성껏 자래운 두 사냥개의 기지와 담량도 그렇고 자신의 사냥술이 진짜 어느만큼한가를 시험도 쳐 볼만한 기회였다.     얼굴이 강마르고 털보인데다 한쪽 볼에 험한 상처까지 있어서 홉사 병든 늑대같아보이는, 그래서 나이조차 대중키어려운 그 허저인 포수가 두 사람을 인도했다. 그는 떠나기 전에 먼저 이 있는 서쪽을 향해 꿀어 엎디여 산신령께 이제 세사람이 그곳으로 떠나가오니 제발 변고가 생기지 않게 보호해주십사 빌었다.     민호와 기덕이는 그가 시키는대로 따라했다.     포수가 주의줬다.    《내가 짐승 몇마리 잡을 수 있다구 말마슈.》    《예. 그럽죠.》    《톱자리 난 통나무그루터기에는 앉지를 마슈. 거긴 산신령이 앉는 자리외다.》    《예. 그럼 앉지 말지유.》    《총탁소리두 철붙이 소리두 내지를 마우. 그러면 운수가 달아납네다. 》    《그렇다면야 주의합지요.》    《젠장! 주제에 되겐 까다롭게구네.》     기덕은 끝내 참지 못하고 한마디 뱉었다.     민호는 그보고 여기와서도 이네들의 풍속은 지켜줘야한다고 좋게 타이르고나서 보탰다.     《우리 곰사냥하고 저 다락집도 들어가보는게 어때. 아직두 원시사회를 벗어못난 이치가 손님대접을 어떻게 하는가두 볼겸. 》      기덕이는 그렇게 하자 이거야말로 모험을 동반하는 진짜고찰이 아니냐며  좋아하기까지 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외지손님이 산속에서 살고있는 이러한 허저인의 포수집에 들렸다면 돌아갈 때 주인모르게 소금이나 담배같은것을 한움쿰씩 훔쳐갖고가는게 례의였다. 그래야만 그 포수집은 앞날이 길하다고 여기는것이다.     셋은 한낮때 에 이르렀다. 은 묘사그대로 아름들이고목들이 어빡자빡 너어지고 부러졌고 잠목들은 혹은 휘여지고 혹은 탈린것이 꼭마치 마귀돌개바람에 재를 입어 훼멸의 경지에 이른 사곡(死谷)과도 같이 스산하기짝이 없었다.     세 사람은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갔다. 빨랑대고 우쯜렁대던 개들도 여기와서는 멀리가지 않고 사람의 발뒤축을 바싹따랐다.     그 골 어구로부터 약 200여백메터쯤 들어갔을때다. 개 두 마리가 넘어갈 것 같이 기우둠한 아름드리 느티나무주위에서 왔다갔다하면서 마구짖어댔다.    《저것들이 아마 짐승의 냄새를 맡았나보다.》     민호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면서 다가가서 살펴봤다. 그것은 벼락에 허리가 뭉청 잘리운 구새먹은 통나무였는데 짐승의 발톱에 험하게 긁혀 나무껍질이 거의다 벗겨졌다. 그속에 분명 곰이 들어있을것이다. 하건만 그놈은 끄떡하지 않는다.    《네놈이 어디 몇참견디나보자.》     민호는 아느새기다려도 동정이 없자 손을 쓰기로 작심했다. 그는 허리에 찬 가죽부대에서 주먹만큼한 강낭떡을 꺼내여서는 그것을  총닦개걸레에다 쌌다. 그리고나서 통나무로 벌벌 기여올라가 그걸 나무통의 아구리에다 집어넣었다.     아니나다를가 좀있으니 반응이 생겼다. 개짖는 소리를 들었으련만 셈평좋게 잠을 자고있던 반달곰은 코구멍을 쑤시면서 페속으로 스며드는 총기름냄새를 더는 맡아낼 재간이 없는지라 그 구새먹은 나무통속에서 엉기엉기 게바라나오기 시작했다.     그놈이 허연 가슴팍을 드러내면서 온 몸뚱이를 통밖으로 쑤우욱 올리밀때였다. 민호는 장탄한 베르단을 들어 조심스레 겨누어  질끈갈겼다.    《맞았다! 맞았다!》     기덕이가 기뻐서 환성을 내질렀다.     단방에 치명상을 입은 그 반달곰은 아래로 쿵 떨어지더니 다시일어나지를 못했다. 4백여근은 실히나갈 놈이였다.    《제깐놈이 내 총구멍을 벗어나. 하하하!…》     민호는 곰을 잡고 득의양양하여 허저인 포수보고 곰이 어디에 또 있는가고 물었다. 허저인 포수는 안으로 더 들어가면 저런 반달곰이 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길을 지지 안내하던 그가 민호를 더 이상 못들어가게 팔을 잡는것이였다. 왜 이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낯색을 불쾌하게 지으면서 홰홰 손사래질했다. 너희들이 방금 말을 듣지 않고 그같이 들썽하게 웃었으니 산신령을 노엽힌거요 그래서 들어가면 낙자없이 곰한테 뜯기우리라는거다.    《제길할! 귀신은 어디서 배를 곯고있는지.》     기덕이는 화나서 두덜대면서 저런거나 어서 잡아가지했다.     그래도 말을 들어야지 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장정 둘을 더 불러다 잡은 곰을 날라갔다.     두 젊은이는 웅담과 가죽만 벗겨가지고 고기는 다섯몪으로 쳐 그곳의 주민들이 골고루 나눠갖게 하고는 그만돌아오고말았다.     사냥은 즐거운 놀음이였다. 그들은 강이 풀릴때까지 짐승을 여러마리잡아 예산밖에 수입을 적지 않게 올리였다.        나쟈는 봄이 지나 여름물고기잡을 철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왔다. 아문의 기마대 대장직을 그리 탐탁하게여기지 않은 그는 집에 식솔은 많아도 벌손이 적다는 리유를 들이대고 겨우풀려나온거다. 두 조선청년이 이제는 토비를 숙펑했겠다 돈도 장만했겠다 그냥 눌러있을리는 없어 훌 떠나버릴것만같아 나쟈는 집으로돌아오자바람으로 시르맨커를 찾아왔다. 이때는 기덕이는 없고 민호혼자서 버들가지로 통발을 엮고있중이였다.     나쟈는 그를 대하자 좀 비틀린소리로 말을걸어왔다.    《아니, 간다는 사람이 그건 틀어서 뭘하오?》      이쪽은 웃었다.    《갈때는 가더래두 제 먹을 고기야 잡아야지.》    《그래 언제쯤 가려오? 듣자니 당장이라는데 그게정말이요?》    《무슨소리를… 누가 그럽디까, 우린 안갑니가.》    《아니 뭐라오? 안간다니 그게 정말인가?》    《내가 어느땐 거짓말을 합디까.》    《안가면좋아. 그래야지. 그래야허구말구. 내 좀 얘길해볼가.》     나쟈가 정색해서 대방의 안색을 살핀다.    《할 말이 있으면 해봐요. 우리끼리 뭐 못할말이 있다구서.》     민호는 대방이 자기와 하자는 말이 대체 무엇일가 속으로 점치면서 얼굴에 웃음을 그믈그믈 피여올렸다.     《그럼 내 털어놓구 말하지. 자넨 그래 우리 집 츄얼이를 어떡헐참인가? 정혼이 다 된 애를 딴바람들게 해놓구서는 그래 그냥 아닌보살을 할 셈인가? 자네들 일 참 답답하구만.》    《답답 할것두쌨네. 츄얼이 알려주지 않습디까. 우리지간의 일은 빤하다구요.》     나쟈가 두눈을 끄무럭거렸다.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거다.    《빤하다니 대체 어떻게 빤하단말인가?》     그가 그러는게 재미있어서 민호는 나오는 웃음을 삼키고 능청떨었다.    《내가 대상이 있는게 빤하지 뭐.》    《거기가 대상있다, 어디메?》    《여기 어래무에요.》    《뭐라, 그게 누군데?》    《츄얼이.》    《그러니 당자끼린 언녕 결정이 돼있었다는건가. 그런걸 여적지 감추고있다니 원! 사람이 이뭉스럽긴!》     나쟈는 나무리듯 하면서 흔쾌하게 웃었다.     민호는 곰을 잡아갖고 어내무로 돌아온날밤에 츄얼이와 정식으로 혼약이 이루어졌던거다. 일은 잘 풀리였다. 기덕이가 무르익은 과실인데 제때에 따지 않으면 벌레먹고 썩어서 못쓰게 된다면서  왼심을 써 둘이 마침내 천사만려를 풀고 입까지 맞추었다. 벙어리속은 낳은 어미도 모른다고 튀한 수탉이 봐도 놀래서 달아날 그런짓을 츄월이가 감히 하고서는 그 누구와도 아직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있으니 오빠인들 어찌알랴.     아무튼 잘된일이였다.     생기와 활력만이 무미함을 메울수있었던 생활이 다시금 옛궤도에 들어서고 있었다. 해가 뜨면 깨여나 늪에 놓은 통발을 들추고 주낚을 놓고 아침을 먹는다. 그러느라면 린화와 나쟈가 전해에 다시 손질하여 쓰게 만든 원래의 낡은 배를 몰고온다. 그러면 민호와 기덕이는 그들을 따라 큰강의 어장으로 간다. 그물을 느리고 거두어 고기를 잡는다. 잡은 고기를 집에 남길만큼 남기곤 팔 것은 깨끗이 다 팔아버린다. 그리고는 또 잡고…         단조롭고 조용한 생활이였건만 그 흐름속에도 소용돌이는 있는것이였다.     어느날 아침 기덕이가 말했다.    《정형 오늘이 무슨날인지 아오?》    《오늘이라?…》    《그래 오늘. 잘 생각해보우.》    《륙월이십팔일이라…그렇구나! 자유시사변! 어언간 삼년이 되는구나! 세월이 과연 빠르기두하다!》    《어쩔테요?》    《뭘말이냐?》    《난 아무래도 가봐야겠소.》    《네가 혼자서?》    《정형이야 쉽게 떠나질 못하지. 않그러우. 그러니까 내혼자 나가서 돌아보고 올테요. 대체 어떻게들 된 모양인지.》     독립혁명진영의 형편을 알아야 하는데 몰라서 답답했다. 기덕이는 민호와 토론하고 어래무를 떠나갔다. 먼저 쏘련으르 건너가 그곳의 형편부터 알아오기로 했다. 기한은 한달. 늦어도 8월초는 꼭 들아오도록 약속하고 겨울에 사냥해서 번 돈은 똑같게 나눠가졌다. 그런것을 기덕은 자기 몫에서 절반을 갈라내여 잔치에 보태쓰라면서 부득부득 내놓고 갔다.     민호는 친구를 훌쩍 보내고 보니 밀려드는 적막감에 한동안은  마음을 진정키 어려웠다. 그렇다고 시간을 허송할 수도 없었다. 그는 서둘러 신방이 될 시르맨커를 깨끗이 거두었다. 그리고는 어느날 미혼처를 데리고 동강진으로 장보러 갔다. 돈을 주어 그녀가 마음들어하는 이불감과 옷감을 사게했고 살림기구를 갖추게도 했다. 마련없이는 잔치를 할수없던거다.    한편 잔치날이 림박하자 딸을 시집보내는 유씨네 집에는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들어 잔치음식을 만드는데 봉족들었다. 꽃바람이 불어서 남까지 싱숭생숭 즐겁게 만드는 가기(佳期)였다. 이슬을 머금은 함박꽃이 바야흐로 망울을 텃치려 하듯이 츌얼이와 민호의 사랑은 무르익어 이제 막 피여나려한다. 저것보오 얼마난 황흘한가고 아낙네들은 웃고 떠든다. 조선총각이 일등 다즈처녀를 채간다느니 츄얼이가 남편잘만나 복가마를 탓다느니…    제 민족을 내놓고 이족의 아가씨를 품에 넣는것도 팔자일가.    민호와 츄얼이는 어느덧 새 생활이 엮어질 결합의 날을 맞았다. 이날 조선민족의 혼례처럼 륙례를 갖추지 않았다.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혼례식은 제대로 거행했다. 장소는 널직한 신부의 집. 허저인들의 풍속은 혼례식을 려명때에 올린다. 잔치이튿날은 색시가 시부모님께 절하고 시집올 때 갖고 온 작은 도끼로 나무패고 물길어 첫때를 하는 풍습이 있다. 하지만 이번잔치는 좀 달랐다. 허저인의 풍속을 존중하면서 거치장스러운 세절은 빼고 그대신 신랑신부가 맞절하는 순을 새롭게 삽입해 둘은 백년해로를 언약했다.     축복이 값진 날이라 세상만물이 웃어주는것만같았다.     궁상에 파묻혔던 산촌이 환락에 잠기였다. 이 한날은 마치도 극락에나 든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불공평은 불가피의 막연한 존재였다. 제 각시감빼았기고 분해하지 않을 인간이 세상에 어디있으랴. 전에 츄얼이와 혼사말있었던 루싼이는 마음 옹쳐먹을게 빤하다. 허나 민호는 자기가 자유련애로 승리한 사람이니 츄얼이를 차지할 리유가 당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또한 공연히 끼여들어 정적이 됐구나 하는 자책감도 없지 않아 쑥스럽기도했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것땜에 남들앞에서 병신같이 놀고싶지는 않았다. 낮에 음식쓰고 오락을 놀았다. 어래무의 처녀총각은 물논 어른들도 춤출줄을 모르는 이라곤 없었다. 모두들 제 장기를 풀었다. 그들은 저마다 허리에 방울을 차고 손에는 모양이 접시같은 동그랗고 고운 북을 들고 두드려대면서 춤을 추었다. 어떤 동작은 신통히 쌀만춤과도 같았다. (아마 그 영향이 대단한모양이다.) 그래도 거개가 캐활한 동작이니 보기좋았다. 간청에 못배겨 끌려나온 민호는 잠시 어쨌면 좋을지 몰라 무밋거리다가 각시더러 쿵캉치를 불라했다. 그리고는 거기에 맞추어 조선춤을 냅다췃다. 덩실덩실 춤이 잘도나갔다. 모두들 보기좋다고 갈채를 보냈다. 누가 언제 이런 잔치를 보기나했으랴. 여기에 허저인마을이 생겨서는 유사이래처음이라 한다. 이날은 허저인처녀와 조선사나이의 결합을 축하하느라 온 마을이 밤늦게까지 명절기분에 함뿍잠겼다. 한데 친구가 없어서 그의 축하를 받지 못하니 섭섭했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별수 있는가.     민호는 어여뿐 안해의 살틀한 애무와 육체적결합에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였고 생활은 실로 꿀같이 달고 행복했다. 츄얼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기쁨실린 풍염한 얼굴에서는 언제나 가실줄모르는 예쁜미소가 남실거렸다. 순정에 파묻혀 부부지정을 감수하고있는 이 허저인 새각시는 한없이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안고 행복한 미래를 동경하면서 매일매일 아름다운 환상의 꽃그물을 떠가기 시작했다.    《여봐요. 조선치마저고리 내가 입으면 어때보일가요?》    《오 그걸말이요. 그걸 츄얼이가 입으면야 정말 선녀같이 고울거요.》     남편이 내던지는 달콤한 말에 츄얼이는 홍시감같이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면서 잡초롬히 생각에 잠기였다.     민호는 안해의 솜마음을 민감하게 읽어보고 이제 어느때든 자기가 조선민족의 복장을 만들어 이 허저족녀인에게 해입혀보리라 맘먹었다. 그렇지, 가진구에 사는 김씨네더러 조선치마저고리를 해달라고 사정해보자. 값을 주는데야거절안하겠지.      어느날 그는 과연 옷감을 사갖고 가진구에 사는 김씨댁을 찾아갔다. 딸많은 김씨아낙네는 처음 이 동포젊은이가 혼사말을 온줄로 알고 무등 반가와했다. 그런데 나오는 얘기의 품새가 아주 영 딴판인지라 그만 낯색이 굳어지더니 자기는 남이 입을 옷을 해줄 짬이 없다면서 청을 퇴박하는것이였다.     멋도 없고 맹랑하기 그지없었다. 이젠 어떻게 해야하는가. 헛걸음을 치고 만 민호는 안해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만들것 같아서 이 생각 저 생각을 굴린 끝에 우선 한복입은 안해의 화상이라도 한 장 그려주리라 맘을 먹게됐다. 츄얼이는 남편이 시키는대로 고스란히 모델을 서주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곁에 다가와 꼼짝않고 서서 남편이 그리는 그림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군했다.     서투른 목수손에서 훌륭한 가구가 만들어질리없고 어설픈 피장이손에서 질좋은 가죽옷이 나올리없지 않은가. 그림그기를 좋아는 하지만 재간이 그닥지 않은 손에서 미인상이 그려질리 만무였다. 하지만도 녀인은 지금 남편의 손에서 그려지고있는 것이 곧바로 자기라고여기면서 기뻐했다. 마을의 여느 녀인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태여나 시집오도록 여직 사진한장도 찍어못본 신세였다.       《이건 당신이 아니야, 절대아니라니까. 내 각시 츄얼이야 얼마나 미색인가. 안그렇소. 그래서 내가 욕심낸거지. 말하자면 바로 저 리도령이 춘향이한테 반하듯이.》    《춘향이가 누군가요? 그녀잘 면목아나요?》    《하하하, 이거… 내가 그 녀잘 아는가구? 아니요. 그녀잔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아니구 이마칸에 나오는 아가씨모양으루 바로 이야기의 인물인거요.》     민호는 갈필(渴筆)을 손에서 놓지 않은채 하던말을 이었다.    《내가 학교다닐 때 을 읽어봤소. 그 책에다 쓰기를 그녀자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옛날 춘추때 위장공의 처모양으루 고왔다누만. 덕행은 왕계의 처와 주문왕의 처를 담구. 말하자면 그 두 부인은 동양녀인들 중 부덕의 대표자로 되여있는거요. 춘향이가 바로 그렇게 출중한 녀자였다는소리겠지. 물론 그게 지어낸 얘긴 하지만도 그같은 녀인쯤이야 그래 우리 조선에 없었을가.》    《있겠죠. 물론있겠죠. 없으면야 그런 얘기가 나왔을가요.》    《들어보오. 그녀자는 문필이 좋은데다 마음 또한 화하고 순한 녀자였다오. 이비의 정절을 품었으니 금천하의 절색이요 만고녀중 군자라 했소.》    《그건 무슨소린가요, 만고녀중에 군자라는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 녀자중의 군자라는 거요. 군자는 학덕이 뛰여난 사람을 가르키지. 말하자면…》     민호가 설명하려다말고 고개들어 보니 츄얼이 입을 감쳐물고 눈을 내리까는데 어느덧 귀뿌리가 붉어졌다. 해석해주어도 리해가 따라가지 못할지경 무식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러는게 문명했다. 제길헐, 내가 이따위소린 왜 줴쳤어. 그제야 민호는 대방의 의식정도는 고려치 않고 제 감정에만 도취되여 지벌인 자신이 미워났다.안해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 남편을 어떻게 보겠는가. 다시는 이러지 말고 조심해야겠구나. 자신의 경망함을 경고했가.     어느덧 7월이 다가고 8월에 접어들었다. 하건만 응당 돌아와야 할 친구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를 기다릴라니 민호는 일각이 삼추같았다. 어떻게 된거야, 왜 아직도 않올가, 혹시 불의의 사고라도 생긴거나아닌지?… 오만가지의 불길한 생각이 머리속에 착찹하게 갈마들어 잠을 이루기조차힘들었다.    눈치역은 츄얼이가 남편이 여러날이나 초조불안해 하는 모습을보고 따라서 근심했다.   《이젠 와야 할 분이 왜 이리두않와요. 당신이 찾아가봐야되잖겠어요.》   《글쎄말이요. 아무래두 내가 한번 나가봐야될것같구만.》    어느날 민호는 과연 친구찾으러 떠나고말았다.        
399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4) 댓글:  조회:2601  추천:0  2015-02-03
               4                 대체 어떤놈일가, 뛸데없는 그놈이다! 민호는 이번에도 역시 가철군을 대뜸 짚었다. 그 녀석을 내놓고는 이따위 비겁한 짓으로 보복할 자가 없었다. 민호는 상처의 아픔을 참느라 주먹을 부르쥐면서 모지름을 썼다. 그놈의 납덩이가 어깨를 분질러놓지 않은게 천만다행이지만 어쨌든 망신스러운 일이였다. 어떻게 할가?...이 일이 유씨네를 놀래우고 동네를 불안케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민호는 기덕이보고 이 일을 절대 입밖에 내지 말자했다.     복은 홀로 와도 불행은 쌍으로 달려든다는데 내가 이꼴로 되다니 원. 자약을 해서 매일 갈아대고있는 민호는 상처의 아픔보다도 경각성이 무디여 적수의 보복을 막아내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더욱더 분했다. 한편 또 가철군의 이같은 보복은 그자가 에누리없는 략탈자임을 스스로 적라라하게 드러내는것이기도했다. 뒈질놈이 먼저손쓰다니 정말 대갈통을 묵사발되게 만들어놓고싶구나. 무지한 강탈자일수록 뒷일은 생각없이 자기가 받은 보복에 곱절 잔인한 수단으로 분풀이하려고만드는 것이다. 이런것을 생각하면 민호는 자다가도 신경이 바늘끝같이 곤두서군했다.     날이 가니 총상은 차츰 더깨가 앉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간단없이 갈마드는 짓꿎은 고뇌로 하여 며칠안되는사이 민호의 얼굴은 퍼그나 험하게 축가고 있었다. 운명이 한줄에 묶이였을 때 생사를 같이할줄을 아는 사람이라야 진짜친구가 아닌가. 어찌 보고만있겠는가 안되겠다 몸을 춰서게해야지 말로만 념려해서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고 생각한 기덕이는 어느날 친구가 잠든 사이에 지다창을 손에 들고 살그머니 시르맨커를 나섰다. 주인한테 돌려주지 않고 지금도 그냥 두고 쓰는 그 지다창은 끝이 뾰족하고 량쪽변을 갈아 비수같이 예리하게 날을 세운 반자푼한 창대머리를 길이가 댓자되는 미끈한 참나무작대기에 단단하게 꽂은것이였다. 쇠창의 머리구멍과 거기에 밖힌 나무자루지경을 두치너비의 가죽오리를 여러겹 딴딴하게 감아놓아서 짐승을 힘껏 들이찔러도 창끝이 들어갈만큼들어가곤 더 못들어가 일정한 거리를 보장함으로써 찔리운 맹수가 마구덮치는 것을 막아낼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이런 창은 사냥도구로 쓸뿐만아니라 호신용으로도 사용하기 좋았다.     기덕이는 가느다란 삼바오리를 허리에 감으면서 어래무내를 건너 눈덮인 서쪽산의 수림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느땐가 너구리를 잡자고 헛맥을 뺐던 그 협착한 골짜기로 좀 더 깊이 들어갔다. 그랬더니 마침 대가리에다 뿔관을 쓴 노루 두놈이 나졌다. 이거야말로 하늘이 도와주는것만 같아서 그는 기뻤다. 내가 오늘 네놈들을 잡자고 나온거다. 제발 달아나지 말고 잡혀다오. 기덕이는 두 눈알이 툭 불거져나올지경 그놈들을 박아보면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런데 아뿔싸! 이쪽의 숨소리가 날려갔는지 셈평좋게 먹이를 찾고있던 그놈들이 고개를 건뜩들고 귀를 쭝긋하더니만 그만 냅다뛰였다. 차라리 활이나 가져왔더면…과연 맹랑했다. 그놈들은 저쯤 달아났다가는 멈춰서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놈들이 기덕이를 약올리느라 일부러 그러는것 같기도했다. 이놈아 네가 어디 재간있거든 쫓아보아라 하는것 같으니 괘씸했다.    《이 고약한 놈들아! 》     기덕이는 소래기를 질렀다.     노루 두 마리는 혼비백산했는지 죽을둥살둥 줄행랑을 놓았다.     저것들이 가다가 어디메서 또 먹이를 찾을거다. 그냥 쫓아가면 내가 저놈들을 또다시 만나게 될 거다. 기덕이는 엉뚱한 욕망에 들뜨기시작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어물거리지 않고 노루가 달아난 서남쪽으로 성큼성큼 빠른걸음을 놓기시작했다.     걷잡기어려운 욕망이 언제나 진중치 못한 사람을 방종하게 만드는것이였다.     여기가 대체 어딜가?…기덕이는 내처 노루를 다시만날 생각만 골똘히 하다보니 그만 향방을 잃고말았다. 그는 어느 한 펑버짐한 둔덕에 올랐다. 한 번도 와본적이 없는 곳이였다.     《북망산이구나!》     굵다란 나무들이 듬성듬성한 사이에 눈덮힌 봉분(封墳)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을 보고 그는 알아맟췄다.    《가만있자, 그런데 저건 대체 뭐라는거냐?》     기덕이는 혼자소리로 중얼댔다. 느릅나무가장귀에 봇나무껍지를 말아놓은, 마치 통나무를 토막낸 것 같은 물건이 얹혀있는 것을 발견한것이다. 눈주어 살펴보니 다른나무의 가장귀에도 그따위것들이 끼여 있었다. 저것들이 새둥지나 짐승의 굴은 아닐텐데 대체 무엇일가?…호기심 부쩍 동한 그는 처음 발견된 그 느릅나무곁으로 다가갔다. 아무리봐야 이상스러워 고개를 찌붓거리면서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가 기덕이는 지다창을 머리우에 높이들어 그것을 툭툭 건드렸다. 그랬더니 그것이 순간 얌전하게 얹혀있던 나무가장귀에서 빠져 아래로 뚝 떨어졌다.     급급히 펼쳐보았다.    《엑크!》     뭔가했더니 그것은 거멓게 말라버린 애기송장이였다.     이런 제길할거. 기덕이가 낯색이 질려갖고 거기를 막 뜨려고 할 때였다. 공교롭게도 재빛나는 토끼 한 마리가 눈덮힌 고총속에서 볕쪼임하러 바라나왔다. 가까이에 사람이 있는것도 살피지 않는 걸 보니 과연 태평스레 살아온 놈이였다.     기덕이는 손에 쥐고있던 창으로 후려갈겨 단매에 그놈을 때려잡고말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하하하....》     기덕이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지라 기뻐했다.     한데 그의 이런 소행이 생각밖에 큰일을 칠줄이야! 기덕이가 손쉽게 잡은 그 사냥물을 창 끝에 매여 달고 보라는듯 좋아하면서 시르맨커로 돌아온지 반시간도 채안되여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창이며 칼이며 작살 따위의 흉기들을 손에다 들고 뒷쫓왔던 것이다.     민호가 원인을 알아채고 족치듯 캐물었다.    《기덕이 네가 그 토끼를 어데서 잡았니?》    《북망산에서.》    《이런 우둔도깨비라구야 원! 북망산의건 풀한포기두 맘대루다치지 못한다는데 네가 함부로 거기가서?… 에익!》     그는 화도 나고 애도 탔다. 이걸 거떻게 하면 좋을고? 여기 사람들의 풍속을 존중하라고 그렇게 타일렀건만 마이동풍으로 흘려버렸으니 그놈의 배때벋은 무신론이 끝내 일을치고만것이다..     민호는 아닌게 아니라 신경질이 빡 났다.    《잘했다 잘했어. 이젠 어떻게 하겠니. 지벌입을 짓을 스스로했으니 누구룰 원망하랴.》     강판우에서 마을 사람들이 창대로 얼음을 두드려대면서 나오라고 그냥 따떠위였다.    《가만! 넌 꼼짝말구 누워있거라. 얼씨덩!》     사유가 민첩해진 민호는 낯이 하얗게 질려갖고 안절부절못하는 친구를 잡아 눌러놓고나서 자기혼자 밖으로 나갔다. 일이 시끄럽게됐으니 제때에 메스를 가하여야 했다. 이런 험악한 때 네가 저지른 일이니 네가 책임지라면서 밀어낸다면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를 장본인이라해서 내놓고 나서 두둔해도 공연히 메주나 먹을게 아닌가. 귀신도 빌면 들어준다는데 아무렴 잘못을 승인고 비는데야 죽이겠는가. 빌자 빌어야 한다. 민호는 차라리 자기가 곤욕을 당할지언정 친구를 욕보이고십진 않았다.    《제가 이곳의 풍속을 모르구 그만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여봐, 젊은이. 누가 그따위짓을 했는가? 자넨가?》     누군가의 질문에    《예. 제가 그랬습니다.》     민호는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아니요. 저사람아니요.》     적발자인듯한 사나이가 소리쳤다.    《옳습니다. 제가 옳습니다.》     한 사람은 옳다 하고 한 사람은 아니라하는지라 모두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진가를 가릴수 없어서 어안이 벙벙해지고말았다.     북망산에서 토끼잡은 사람이 그래 저 청년이 옳은가고 따지는 소리 튀여나오더니 다시금 아까의 그 아니라던 웨침소리가 울린다.     친구가 아무튼 자기를 위해 저지른 일이니 책임을 받아 안음이 마땅한 일이라 민호는 단연히 고집하며 나섰다.    《제가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그게 내친군줄압니까. 아닙니다. 절대아닙니다. 내 친구는 요즘 내내 앓고있습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고기를 먹이자구 토끼를 잡는다는게 그만… 정말몰랐습니다. 거기걸 잡으면 안된다는걸말입니다. 어쨌든 죄를 졌으니 나를 벌하시오. 아무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임자가 목을 내놓겠다는건가? 그러면 억울하잖어?》    《억울할거있습니까. 떼어가십시오.》     번연히 아닌데도 제가 옳다며 나서니 기세사납게 달려들던 마을사람들은 옥신각신 떠들어대다가 그만 돌아가버리고말았다. 그네들이 그같이 철거해버린데는 본심이 나쁘지 않은 자의 실수를 너그러히 보아주지 않는 것이 되려 죄가 된다는 치더룽의 말과 설복이 은을 낸데있다. 이날따라 가싼다 유만진은 동강에 일보러 가서 집에 없었거니와 유씨네 식솔들은 뒤늦게야 사건이 발생한걸 알고 달려왔던 것이다.    《아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어깨는 왜 이렇게 됐소?》     나쟈는 민호의 총상을 발견하고 끔쩍 놀랬다.     민호는 별수없어서 그지간에 발생한 일들을 곧이곧대로 알려주고말았다. 나쟈는 내 그럴줄을 알았어 그놈이 아무렴 잠자코있을리야 있겠느냐며 민호가 중상이나 생명을 잃지 않고 그 정도로만 상한게 천만다행이라 했다. 유씨네는 모든게 자기네를 위해서 생긴것이라고 여겼기에 온 집안식구가 민호의 상처와 건강을 무척 념려하고 관심했으며 이 이상 다른 더 큰 변고가 더 없기를 빌었다.     츄얼이가 매일 한 번씩 와보군했다. 어머니가 시켜서 문안온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그 자신이 오고십던차 차라리좋았던 것이다. 민호의 왼쪽어깨쪽으로 해서 두두룩한 살에 손가락굵기만한 홈이  푹 패였다. 성급한 그가 참을성없이 더께를 너무일찌기 잡아뗀 통에 상처를 그만 더 궂혀버렸다. 그래서 약을 또 붙이고 있는데 그건 차견한 츄얼이가 책임지고 갈아대군한다. 조개껍질과 닭걀껍질을 태워 보드랍게 가루내여 기름에 개인것이였다. 살이 찟기였을 때 바르는 약이라는데 고맙게도 이런 총상에도 효험이 있었다.    《좀 어때요. 간밤도 그냥 통세나던가요?》    《통세안나오. 이젠 나은것 같은데 근심마오.》    《거짓말. 통세안날리있나요. 고놈의 얄미운 총알이 생살을 뚝 떼여갔는데두요.》    《그깟거 좀 떼가면 뭐라오.》     민호는 사나이틀을 내느라 대수롭지 않은양했다. 하지만 가슴속에서는 끌래야 끌 수 없는 불이 그냥 활활 붙고있다. 이건 강탈자의 손에 우롱당하고 있는거니 복장터질 일이였던것이다.         겨을이 다 가서야 민호의 상은 다 나았다.     한편 봄이 지나 여름철을 잡자 유만진의 로파와 며느리 그리고 딸까지 해서 녀인 셋은 집에서 수피와 어피로 피혁제품만드는 작업을 벌리였다. 해마다 남정들이 고기잡으러 나간 후이면 이 일이 부녀들에게 차례지는 의무로동이나답지 않았다. 노루가죽 다섯장이면 털외투 하나를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을 내다가 팔면 길림대양 30여원을 받는다. 노루가죽바지 한벌에 가죽이 3장드는데 만들어 팔면10원, 너구리가죽 1장이면 모자 하나 만들어 20원에 팔 수 있었다. 세모가 길고 보드랍거니와 한기를 잘 막고 보기도 좋은 이런 모자는 여우털모자와 마찬가지로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던거다. 고기깝지 이를테면 화이투, 간툐, 줘러같은 고기깝지로는 울라를 만드는데 보드라운 울라초를 넣어 신으면 발이 편하고도 뜨실뿐만아니라 얼음판이나 눈위에서 잘 미끌지 않아 좋았다. 그것도 한 켤레에 2원가량. 수를 놓아 정교하게 만든 토시거나 수갑이거나 담배쌈지같은건 값을 훨씬 더 받았다. 그리고 사슴다리가죽으로 만든 목장화거나 긴장화는 한켤례에 적어서 10원은 받는데 이왕년과는 달리 근년들어서는 그같이 값진것일수록 수요자가 많아 점포거나 피물상을 찾아가지 않고 앉은자리에서도 잘 팔리였다.     유씨마누라는 딸을 보내여 기술을 배워줄테니 두 조선젊은이도 자기네와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어때요. 그게 고기잡이만 수입이 못하잖을 거얘요.》     츄얼이는 가죽제품형세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주고나서 민호를 보며 대답을 집요하게 바랐다.       《우린 둘다 그 일에는 뻐꾸기돼서…》    《뭘 못해서요. 제만 부지런하면야 얼마든 배울수있는걸요. 한번 손맞춰보자요.》    《그런가. 그렇다면야 그일 한번 해볼만한걸. 건데 내가 츄얼이하구 손 너무맞으면 어떻게 한다?》     민호는 능청스레 덜미를 짚었다.    《어떻게 할거있나요. 그러면야 더욱 좋지요.》    《그래? 더좋다구? 하하하…》     민호는 기분좋았다.     츄얼이는 말해놓고보니 은근히 품어온 사모의 정을 그만 먼저발로한것같아 부끄러웠다. 그녀는 발긋이 상기된 얼굴을 숨기느라 모를 꺾어않아 아미를 다소곳이 숙였다. 한결 아련한 그녀의 자태는 사내의 가슴을 달구었다. 민호는 뭐라고 더 말을 해얄지 입이 열려주지를 않았다. 방종하게 놀아됀 자기가 민망스럽기도했고.     이때 밖에나가 돌던 기덕이가 시르맨커로 돌아왔다. 그도 주인집따님이 눈에 띠이자 무척 반가와했다.    《오, 아씨님! 참 오래간만이구만! 무슨일에 이렇게… 요즘 그쪽에선 다들 편히 보냅니까?》    《우린 무사해요. 그지간 잘 지냈나요?》    《덕분에 우리야 잘 보내지요. 그래 오늘은 무슨 요긴한 일루왔습니까, 날보자구온건 아닐텐데.》     기덕이는 그사이 중국말을 많이 배웠거니와 비위살도 퍽 자라서 사람만나면 이같이 잘도 지껄였다.    《두분 다 보러왔어요.》    《그렇다구, 하하하… 정말이면 나도 기쁜걸!》     츄얼이는 그의 수다스런 인사수작에 점직하고 서먹하게 웃어보이고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린다.     기덕이는 멋없는 롱담 더하려다가 그만 그쳤다.     츄얼이는 몸가짐을 거북하게 가지면서 도지개를 틀더니 그만 이젠 돌가야겠다면서 일어섰다.    《아니 왜?…》     기덕이는 만류하려다말고 친구쪽을 돌아다보며 짐짓 정색하여 조선말로 넌지시 충고했다.    《정형, 종족다르면 뭐라오.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복인데 차던지 말고 받구려.》     민호는 눈을 흘겼다.    《야 이 아욱장아찌야, 입 좀 다물거라.》     해도 기덕이는 그냥 헤실헤실 이지렁을 피워댔다.    《좋은 권곤데두 간지럽소. 갈개질하면 큰일나겠네.》    《야 임마. 잡소린 그만죄치구 내말듣거라. 츄얼인 우리보고 고기잡이 신통찮으니 차라리 같이들어않아 가죽만지잔다.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뭐라구? 허참, 우리더러 같이 알까자는건가! 아무렴 사내자식이 불차구 여자들과 같이 그런일을 하다니… 난 못하겠소.》     기덕이는 도리머리질 하면서 괘괘뗏다.     민호는 그에 동감할수 없었다. 고기잡이기술이 그닥잖아 헛탕치는 날이 빈번한데 녀자 할 일 남자 할 일 가릴 주제가 어디되는가. 한번 피색장(皮色匠)이 노릇을 해보는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일을 해보자고 친구를 구슬렀다.     기덕이는 하는 수 없이 숙어들고말았다.     그들은 맨처음 나무방망이로 고기가죽을 뚜드리는 일부터 배웠다. 고기가죽이 요구하는 표준만큼 노근노근 하게 되면 녀인들이 거기에다 자기들이 손수 산꽃에서 채집해 낸 여러가지 물감으로 색갈을 드리였다.     짐승가죽은 질이 대체로 두가지 류형이였다. 담비, 여우, 족제비가죽은 보드랍고 곰, 사슴, 승양이, 너구리, 오소리, 멧돼지 등의 가죽은 거칠었다. 하니까 그에 따라서 이기는 방법도 달랐다.    《자, 이걸봐요. 요렇게 해줘요.》     츄얼이가 겨울에 잡아서 벗긴 꽛꽛하게 마른 노루가죽을 안쪽이 우로 올라오게 펴놓더니 톱밥을 물이 즐벅하게 버므려 골고루 펴며 알려주었다.    《요렇게 해서 바람이 안들게 또르르 말아 하루밤만 재우면 가죽에 물이 배게 돼요. 골고루 배여있는갈 잘 봐야해요. 그게 제대로 됐으면 톱밥을 말끔히 털어내고 가죽에 붙어있는 고기나 비게를 나무칼로 싹 밀어내요.》    《톱밥이 없으면?》    《톱밥이 없으면 풀이나 재나 보드라운 흙도 되고 발효된 강냉이겨도 되죠. 여우가죽이나 담비가죽같은 걸 이길땐 되도록 강냉이겨로 비벼야 해요. 그러면 가죽면이 깨끗하고 희게 되고 털도 깨끗해지죠. 여우나 너구리나 족제비나 황가리는 다 노린내나잖아요. 그런 짐승의 가죽에서 나는 노린내를 없애려면 소금물과 비누물로 씻어야 하고 가죽을 걸어놓고 나무삽으로 노근노근하게 될 때까지 문질러야 해요…. 사슴가죽을 이기기 좀 어려워요. 그래두 손만 맞으면 잘되죠. 먼저 노루뇌수물에 담배 둬대피울동안 불궛다가 꺼내서 여럿이 고루펴서 쥐고는 면이 고르고 부드러워질떄까지 이쪽저쪽 당겨야 해요. 그래야 반듯하게 되죠.》     츄얼이는 자기 말에 아퀴를 짓고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예산밝은 가싼다의 마누라는 제집것만갖고는 부족해서 집집이 다니며 남아도는 가죽들을 외상으로 걷어들이여 그것으로 외투며 바지며 모자며 신이며를 지었는데 일군 다섯이 손이 맞아 효과도  좋았다.     이같이 부지런하건만 생활은 펴이지 않고 가난이 파고드니 원인이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양력8월에 린화가 갑자기 벼락잔치를 했다. 한것은 츄얼이를 빨리 시집보내기 위해서였다. 방년의 계집이 되니 루싼이네가 빨리 잔치를 하자고 독촉이 성화같았던거다. 루싼이가 바로 부모가 츄얼이 일곱 살 때 정해준 미혼부였다.     그런데 츄얼이가 감히 부명을 거역하면서 해뜩 나누울줄이야.    《난 루싼이 한테 절대 시집안갈래요, 죽으면 죽었지!》     이러니 다였다.     딸이 이러자 바빠난건 부모들이였다.    《계집애 곱게 키웠더니 제 애비의 낯짝에 똥칠하자구 드는구나. 너 대체 왜 이러냐?》     가싼다는 딸의 소행이 한심해서 꾸짖었다. 그래도 딸은 그저 대상이 맘에 안들어 거긴 시집안가겠다는 그 한마디 대꾸뿐.    《츄얼이가 왜 앵돌아졌겠어요. 언녕 딴바람들어 그러는게지. 눈치보면 몰라.》     나쟈의 처가 남편보고 하는 소리였다.     츄얼의 어머니는 남의 입이 무섭고 체면을 잃는 것 같아 속을 끓이다가 차츰 그 속을 가라앉혔다. 내 안속이야 차려야지 하고 그는 제딸을 꾸짓지도 책망하지도 않았다. 딸이 사모하면서 따르고 있는 조선청년이 그저 고기나 잡고 목수일이나 할줄 아는 루싼이와 비기면 열배도 더 낳아보여서 그도 맘에 들었던거다. 민족이 다르면 뭐라는가, 시누이도 한족한데 시집을 가잖았는가…         12월. 이해의 마지막달도 다가는 어느 명랑한 날 아침 민호는 비수를 품에 넣으면서 친구보고 말했다.    《나 밖에 좀 나갔다와야겠다.》    《어디루가자구 그러오?》    《그놈을 찾아볼테다. 버릇 좀 고쳐줘야지.》    《또 모험할려우?》    《그냥 이꼴루 멍청하게있진 못하겠다.》     한때 의렬단에 들어 키워낸 용기가 아직 그냥 몸에서 끓고있는 민호였다. 모욕과 수치는 죽기보다 더 참기어려운 고통이였다. 그는 자기한테 총쏜 놈과는 끝까지 해보리라 맘먹은거다.    《정형혼자서 되겠소? 나도 가기오! 》    《안된다. 넌 잠자코 굿이나 보거라.》     민호는 자기 때문에 곁사람까지 루를 입게 하고 싶지 않아 따라나서려는 그를 궂이 눌러놓았다.     민호는 치더룽네 집에서 가라말 한필을 빌려타고 곧추 무원으로 향했다.     무원에 도착하고 보니 이틑날 정오가 방금지난 미시(未時)였다. 땅과 하늘을 함께 얼궈붙이는 혹한속에서 인적기드믄 거리는 한결 숭엄하고 쓸쓸해보였다.     요놈의 가철군이 오늘은 집에 있어야겠는데…민호는 마방에 들려 말을 맡기면서 다시한번 생각했다.     그는 마방을 나오자 길건너편 황을 내건 자그마한 술집에 들어갔다. 이제 찾아가면 가철군이 집에 없을 수도 있다. 좋기는 그의 집 식솔들이 다 있을때에 가야한다. 그자를 요정내더라도 광명정대하게 리유를 밝혀놓고 자 맛이 어떠냐 나는간다 하고 꼬리를 감추리라했다. 아문의 그깟 순경쯤은 후례아들로 여겨졌다.     자기가 청한 주안상이 차려지자 민호는 술이 그득담긴 사발을 들어 천천히 마시였다.     반근 술을 다 마시고 나니 주기가 오르기 시작하는데 밖은 아직도 환했다. 내가 좀 더 먹을 수 있겠구나. 민호는 술을 반근 더 청했다.    《손님, 주량이 괜찮수다!》     술집주인은 눈이 둥그래지면서 안주는 무엇으로 가져오라는가고 물었다.     민호는 그보고 식어버린 죠즈나 제꺽 데워오라했다.     그가 덮혀온 죠즈를 안주삼아 술을 더 마시고있는데 농군차림의 사나이 하나가 들어오더니 술집주인과 방금 들은 소리라면서 간밤에 또 어느 마을에 사는 아무개가 토비들 손에 인질로 잡혀갔다고 알려주는것이였다.    《이눔의 세상 과연 한심하구나. 언제가면 마음놓고 살가.》     술집주인은 악당들을 저주했다.     민호는 문득 자기가 이제 가씨집에 뛰여들면 에누리없이 강도라 할것이고 토비라고 소문날수도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친 걸음을 돌리랴. 거액을 억탈당하다싶이 하고도 법에다 신소못하고 보복이나 하는 꼴을 보면 가씨네는 확실히 죄가 있는건데 해를 입은 내가 도리여 두려워할것 뭔가…민호는 남이야 어떻게 보던 복수를 꼭 하리라 윽벼르면서 그 술집을 나왔다.     이제 한창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눈에 익혀둔 골목이여서 마치 제 집의 칙간으로 들어가듯 태연스레 가씨댁의 문을 열었다.     가씨는 자기 아들이 아닌 건장한 젊은이를 불안한 눈길로 여겨보았다.     민호가 먼저 온화한 것 같으면서 차고 매서운 투로 인사말을  했다.      《그간 편안했습니까. 한해가 지났군요. 내가 또 왔습니다.》     그제야 가씨는 누구라는 걸 알아보고는 심히 불쾌해 하면서 물었다.    《어쨌다구 또왔소?》    《일없이야 삼보전에 올라갈리있습니까. 그 돈 이백원은 잘 썼습니다만은.....》       《그랬으면됐지 왜 또 왔는가말이요?... 》    《귀신은 경문에 막히구 사람은 도리에 막힌답니다. 내가 받을 돈 더 받지 않았으니 고맙게 여겨야지 왜 그럽니까. 너무합니다.》    《원 무슨소린지. 내가 너무한게 뭐란말이요?》    《댁의 아들 너무하단말입니다. 그녀석 내한테 총질했습니다.》    《무슨소린지. 걔한테 무슨 총있다구 그러우.》    《총없으면 그따위짓을 했을가.》    《내가 그걸 어떻게 아오. 난 모르오.》     바로 이때다. 여우털모자를 푹 눌러 쓴 자가 바당문을 뚝 떼고 집안에 들어섰다가 그만 이쪽을 발견하고는 놀랜 수탉같이 화닥닥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도루뛰여나간다. 가철군이였다.    《이놈아, 거기거라! 》     민호는 벼락치듯 소리치고는 토시속에서 비수를 제꺽 꺼내쥐고 뒤쫓아갔다.     무심중에 적수를 만나 혼비백산한 가철군은 박암속에서 어디론가 미꾸라지처럼 달아나버렸다.     민호는 땅이 깨져라 발을 구르면서 침을 탁 뱉었다. 맹랑한 일이다. 주머니속에 들어온 쥐를 놓쳐버리다니! 이젠 그놈을 어디에 가 찾는단말인가? 놓쳐버린게 배아프지만 쫓긴놈도 가만있을 리없다. 그놈이 얼을 먹긴했어도 저의 패거리가 있을테니 이제 그자들을 당장 출동시킬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더 어물거리지 말아야한다. 내가 네놈의 숨통을 노리고있다는걸 알았을테니 됐다고 생각한 민호는 그길로 몸을 돌려 마방에 가서 자기 말을 찾아타고 그곳을 훌쩍 나와버렸다.         길은 내내 드넓은 흑룡강의 얼음강판에 나있었다. 이따끔 추위에 떨고있는 굶주린 승냥이들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적막을 건드릴 뿐 밤길을 가는 사람은 민호혼자뿐이였다. 가진구에 이르니 날이 밝았다. 눈길을 마을쪽에 돌리였던 민호는 강추위에 패름이 돈 강 저기에 얼음구멍을 내고 간밤에 놓은 줄그믈을 걷어내고있는 사람 하나를 발견했다. 얼음쪼각이라도 얻어 먹어야했다. 목이 갈하면서 타들었던거다. 민호는 말을 그쪽으로 몰아갔다.     가까이에 이르러 보니 가물치와 뱅어 몇마리가 그믈에 걸려나오고 있었다. 민호는 말잔등에서 내렸다. 그리곤 고기잡이꾼과는 수인사도 없이 얼음쪼각부터 주어 입에 넣었다.     고기잡이꾼은 늙수그레한 사나이였다. 그는 고드름이 도롱도롱한 턱수염을 치켜들어 다소 겁기어린 눈으로 자기 앞에 나타난 이 불청객을 의아스레 눈여겨 보았다.    《당신은 누구요?》    《길가던 사람이지요.》    《그건 나도알아. 허저사람인가?》    《아니요. 난 조선사람입니다.》     그는 이켠에서 얼굴에 선한 훗음을 지어보여서야 어느정도 의심을 푸는 것 같았다.    《글세. 옷모양새를 보믄 허저사람같지만두 얼굴생김새야어디…우리네 가진구에두 고려사람 한집있수다. 성이 김가인. 》    《뭐랍니까, 여게 우리네 동포가 있다구요!? 》     금시초문이였다. 내가 왜 여직 그것도 몰랐을가. 자기처럼 이런 오지에 와서 사는 동포가 있다니 미상불 반가운일이 아닐수 없는지라 민호는 한 번 들려보고푼 생각이 났다.     가진구(街津口)에는 과연 성이 김씨인 동포가 한집 살고 있었다. 호주가 이름이 국진이였는데 중년에 이른 사람이였다. 사나이가 몸이 좋고 안해도 부지가 좋은것 같건만 뭐가 모자란지 딸만 다섯인 딸부자집이였다. 그 집에서는 이른아침에 선문도 없이 나타난 동포젊은이를 의심 반 기쁨 반으로 맞아주었다. 한데 민호는 몇참못가서 기분이 흐려지고말았다. 첫점 이 집에서는 그가 알고푼 소식은 한가지도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김씨는 농사꾼도 아니요 어부도 아니였다. 한때 포수질을 좀 해봤노라는 그는 밀입경을 하면서 산양각이나 록용따위를 이쪽저쪽 팔아먹으면서 살아가는 밀수꾼이였던것이다. 이곳에다 발을 붙인지가 5년철. 본래는 로씨야에서 살았는데 10월혁명이 일어나 짜리가 뒤집어지고 백당이 몰리게 되니 새정권이 달갑지 않아서 강을 건너와 이같이 정주한거라한다. 그러니까 꼴챠크편에 붙어서 놀아먹은 신분임에 틀림없었다. 민호는 그것을 민감하게 알아낸 것이다. 그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이 찾기드믄 동포지만 진심을 주지 않으면서 제 신분을 감추었다. 민호는 자기가 지금 만주에 이사왔다가 량친을 다잃고 정처도 없이 부평초모양으로 떠도는 신세라했다. 그랬더니 김씨는 그 말을 곧이듣고 아 그런가하더니 얼굴이 환해지면서 자기는 그래도 운이 좋아 이제는 어디로 가든 땅마지기나 점포쯤은 얼마든지 갗추고 살만하다고 자랑했다.     민호는 속으로 제살도리나 착실히 하고 일신의 안녕만을 위해서 사는 이런 인간이 그래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는 대체 어느만큼이나 생각할가 하고 생각하면서 넌지시 물어봤다.    《어른분께서는 독립군을 압니까?》    《독립군이라는게 뭐요. 내라는 사람은 그런걸 알구사는 사람이 아닐세.》    《그러니까 독립군에 군자금도 안바쳐봤다 그거겠죠? 》    《군자금이 나하구 무슨상관인가. 난 그런건 모르는 사람이라니까. 내 살아가기두 귀찮아 죽겠는데 언제…》     민호는 마치 송충이를 삼킨 것 같이 메스꺼우면서 속이 왈칵 뒤집혀지는 것 같았다. 염오가 생겼다. 한데도 그 집에서는 오래간만에 동족의 청년을 만나본다면서 무척반가와했다. 시집을 가자해도 부모들이 대상을 구해주지 않아 음질을 내는 딸년들이 앞다투고있는지라 저절로 굴러들어 온 이 복덩이를 놓쳐버리려하지 않았다. 김씨는 제발로 찾아 들어온 이 젊은이를 거미가 제 줄에 걸린 파리를 잡듯이 단단히 붓들어두고싶었던거다.     그러나 정민호는 그 집에서 아침 한끼를 잘 대접받고는 기어히 묵어가라는 곡진한 청도 마다하고 나와버렸다.     민호는 마상에서 생각에 잡초롬히 잡혔다. 시르맨커를 떠날 때 소식이나 기다라했으니 돌아가면 이제 친구는 갔던일이 어떻게 되었는가고 묻기부터할것이다. 그래 무엇이라말하면좋을가. 이놈 서라고 소리치곤 칼만 빼들었을 뿐 어쩌지도 못하고 닭쫓던 개 지붕만 쳐다본 꼴이 되고만게 아닌가. 이건 실없이 숲을 다쳐 뱀만 놀래운 격이 아닌지 모르겠다. 원래는 가철군놈을 붙잡아서 묵사발을 먹이고 물고를 내야하는건데 그게 마음과 같이 안되였다. 이만큼 놀래웠으니 된것같지만 그건 결국 맥빠진 자아위안으로나 될 뿐 따지고 보면 이번의 걸음은 실패였다. 허니까 이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민호는 갖은 후회 끝에 에라 그저 맥을 짚어본셈치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또 생각했다. 이번에도 가씨는 내가 몽니를 부리여 애를 먹일가봐 감히 당당하게 접어들지 못하는 꼴이 아닌가. 이제 어느때건 한 번 다시 더 가서 채 받지 못한 배값이라면서 돈이나 더 우려내야겠다. 그는 검질긴 자신을 발견하고는 피식웃어버렸다.      아느새지나서다. 민호는 상념의 키를 다른쪽으로 돌렸다. 참 가진구의 김씨가 딸부자아닌가. 거기서 하나 골라 기덕이하고 짝맞춰주면 어떨가. 그 집의 딸 넷중에 두번째것이 괜찮은것같았다… 한데 기덕이 그자식 동의나할지…그치는 로씨야서부터 볼세비크의 공청단원이 돼놔서 사상이 새빨간데 만약 처녀의 애비가 백당편에 붙어서 놀아먹은 자라는 걸 알게되면 그땐 어쩔가, 그때는 난리가 날거요 가차없이 이 친구를 원망할건 물론 그자를 잡아치우리라 덤벼칠것이다. 하니까 에라, 차라리 말을 안하기만 못한거야.       민호는 말에 채찍을 안겨 길을 조였다.     동강진까지 이르고보니 아직은 정오전이였다. 이제 송화강을 건너 서북방향으로 질러서 몇십리만 더 가면 흑룡강가에 있는 어래무마을에 가 닿이게 된다. 한데 그 길은 눈보라에 메뭐지는 경우가 많거니와 그렇지 않다해도 늘 승냥이같은 야수들이 출몰하는 무인지경이니 혼자가기는 싫은 길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돌아가야하는가 아니면 질러가야하는가?…민호는 어쨌으면좋을지 단정을 못한채 동강진에 들어섰다.     세상이 어지러울때는 본래 안녕을 바라는것부터가 어리석은짓이였다.     민호는 동강진에 들어서자 변비의 이 자그마한 현성이 보통때와는 전혀다른 이상스러운 긴장감에 잠겨 소란스러움을 감촉했다.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서 오오했고 어디에선가는 곡성이 나고있었다. 보통 상사가 생긴 것 같지를 않았다.    《여보시오. 여기서 대체 무슨일이 생겼나요? 》     민호는 가다가 말을 세우고 행인 하나를 붙들고 물어보았다.    《젊은이도 허저사람이요?》     그 행인은 이상스레 놀래는 빛이 확연한 눈매로 민호를 다시금 여겨보다가 간밤에 동강서 멀지 않은 고태자(高台子)에서 토비가 허저인을 40명이나 집단살해를 하였다고 알려주는것이였다.    《뭐라, 마흔사람이나! 가뜩이나 없이 희소한 종족을 어쩌면 그렇게…》     민호는 낯색이 하얗게 질려갖고 웨치다싶히했다. 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끔찍한 일이다. 인두겁을 쓴 승냥이같은 잔악무도한 살인악마들을 벼락이나 콱 맞으라고 저주했다. 여기 이 관동땅은 소털같이 많은 토비의 성화에 더구나 안녕이란 기대할 수 없으니 말그대로 살벌한 화(禍)의 대지였다!     어래무에서는 이번의 변고가 생긴 것을 알기나하는지? 어쩐지 마음이 유달리 더 불안스럽고 초조해나는지라 민호는 곧장 지름길로 말을 몰았다. 구명은인인 치더룽이나 가싼다나 그의 식솔들이나 온 어래무의 허저인은 모두가 다 좋은사람들이였다. 허저인은 선량하고 친절하고 인정스러우며 근면하고 용감한 민족이였다. 이것은 어느덧 그네들의 풍습에 침음(浸淫)한 민호의 감수였다. 그사이 그들과 정이 들대로 든 민호였기에 제 민족을 사랑하듯 그는 그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다가 약소민족이여서 운명은 이같이 기구한게 아니야싶었다.     이전에 청조(淸朝)의 통치배들은 정복된 허저인조상 즉 야인녀진(野人女眞)을 새로 건립한 의란하라(依蘭哈拉)아래쪽으로 이주시킴과 동시에 정황(正黃), 정백(正白), 정홍(正紅) 등 기를 만들어 허저인의 두목이였던 하라이다와 가싼다를 세습좌령(佐領)으로 임명하고는 일련의 회유적인 수단으로 장기간 통치해왔던 것이다.     유만진의 고종할아버지가 바로 가싼다였는데 청조가 붕궤되기직전에 어찌하여 후세에다 벼슬이름만 남기고는 몰락하고말았다. 그랬어도 사람들은 좌령의 후손인 유만진을 지금도 가싼다라부르거니와 그렇게 인정하고 있었다. 유만진이 산에서 돌아오기나했는지 그가 만약 이번 참안을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물론 가만있으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민족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다.     인간의 운명이란 도박판에 내건 돈과 같아서 그 신세를 가늠기도 어려운일이였다.     말을 잔달음놓아 어래무어구에 이르러 보니 뜻밖에 여기서도 곡성이 들려오면서 소란스러웠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판이냐, 여기도 그래 동강처럼 토비들 손에 해를 입었단말인가?…민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데 가만있자 울음은 어디서 나는걸가? 귀를 기우리고 들어보니 그것은 바로 유씨네 집쪽에서 나고있었다. 아니 그렇다면 가싼다가 잘못되였단말인가, 오면서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그래 무서움을 안겨주는 징조였단말인가!    《웬일이요? 어찌된일이요?》     민호의 입에서는 고함이 터졌다.    《삼촌은 그저께 산에서 돌아왔소. 그런데 고태자에 급히 볼일있어서 갔다가 그만 토비들손에…》     치더룽이 목메여 꺽꺽거리면서 말을 더 있지 못한다.     절통한 울음소리는 민호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어쩌면 이렇게도 원통하게 돌아간단말인가. 눈물이 앞을 가리였다. 민호도 기가 차서 말이 더 나가지 않았다. 좀만늦었어도 그는 유만진의 장례조차 보지 못할번했다.     허저인들은 사자의 경우에 따라 장례가 달랐다. 사냥나갔다가 산에서 죽은 사람이면 봇나무껍지로 시체를 싸서 나무가장귀에다 3년간 걸어놓았다 매장하고 집에서 죽은 사람은 3일후에 매장하며 전염병을 앓다가 죽은 사람은 당날로 화장한다. 그리고 비명에 죽은 사람이면 날을 건너서 매장하고.     유만진이 바로 비명에 죽은 사람이며 횡래지액에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다. 그래서 집에다 더 오래두지 못하고 이틑날로 그의 시체를 매장하게 되였다. 민호가 와보니 시신은 그가 생전에 잠을 자던 서쪽방 남쪽구들에 칠성판을 놓고 머리는 동켠 발은 서켠을 향하게 눕혀놓았다. 머리맡에 젯상이 차려져있었다. 방안에는 향로와 향합을 놓고 향안밑에는 모사(茅沙)그릇이 놓여있었다.     모두들 민호가 돌아오기를 몹시기다렸노라했다. 그래 그가 와서야 사자를 입관하게되였는데 입관전 두 조선젊은이가 머리를, 다른 두사람은 허리를, 그리고 또 다른 두사람은 다리를 들어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세 번 시체를 돌린다음 넣었다. 관속에다 여러 가지 순장품까지 넣었다. 사자의 생전동료중 나이 제일많은 자가 손에 붉은천오리를 동여맨 갈대 세 대를 쥐고있다가 그것을 향대신 관머리에 태우고는 집안이 평안무사히 지내도록 해주십사고 빌었다. 관채와 관뚜껑쯤사이에다는 길이가 5자되는 길다란 피나무 껍질을 끼워놓았는데 맏아들이 그 끄트머리를 쥐고있다가 쌀만이 굿을 끝내기전에 잘라버림으로써 사자의 혼이 이제는 집에 남아있지 않음을 표시했다. 관을 파놓은 광에 넣고 흙을 덮어 묘를 만들고는 유만진의 마누라가 가위로 제 앞머리를 한웅큼 썩 베여 묘의 꼭대기에다 꽂아놓았다. 그러니 이날의 장례는 끝난셈이였다.     두 조선족젊은이는 백일제까지 다 보기로 맘먹었다. 쌀만이 3일간이나 굿을 하면서 두번째혼을 음간(저승)에다 보낸다면서 둔덕에 올라 화살세대를 북망산쪽에 날려보내는것이였다. 이 제사를 료당즈라하는데 자못륭중하고도 엄숙했다. 상주와 온 가족은 이날에야 상복을 벗어서 사자를 표시하는 목각인형과 함께 퉈르치에 싣고 북망산에 가 태워버렸다. 이로서 첫제는 다 끝난것이다.   
398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 부(3) 댓글:  조회:2212  추천:0  2015-02-03
                                       3           악한자는 그 나름대로 악한 심보가 따로있는거다. 적악지가에 필유여앙이라했거늘 남을 해쳤으니 그 죄를 어찌할가.    《배를 찾지 못할 바에야 이젠 배값이라도 받아낼 궁리를 해야지. 않그렇습니까. 그저 손해만보고 앉아있을 수야 없지요.》     민호가 속타산을 내비치자 가싼다는 이마살을 찌프린다.    《이 사람아, 우리가 그걸 누구한테서 받아낸단말인가?》    《가철군의 애비한테서 받아내죠.》     이 말을 듣고 나쟈도 머리를 가로젖는다.    《안돼. 그렇게는 못해. 범인을 잡지두못해갖구서 무슨 수가 있다구 그러오. 안돼, 안되다니까. 우선 증거가 있어야 하는거야.》    《체, 범인을 꼭 잡아야 증거가 되는건가. 이 일은 그러지 않아도 얼마든되는겁니다.》     민호는 여유작작하게 대구했다. 목덜미를 잡지도 못하고 걸고들었다간 동티를 낼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깟것은 무섭지 않았다. 주범은 그놈이 아닌가. 딱 점찍고있으면서 왜?.     유씨네는 배값을 담은 얼마간이라도 받아내기싶은 생각이 불붙듯했다. 하지만 이 일은 법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막연한 일이니  그만 맥을 놓고있는 상황이였다.     하지만 민호는 달랐다. 그저 왜 이렇게 당하기만해야하는가. 법으로 해결이 안될거면 차라리 내 주먹을 믿어야지. 되든 안되든 한번 해보자 맘먹고는 유씨를 향해 가씨네 집에 가서 한번 걸어볼텝니다, 후일은 내가 책임질데니 념려말고 제발 말리지만말아주시오 하고는 지체없이 친구를 데리고 나섰다.     변비의 가을날씨라서 어느새 차가와졌다. 곧추 무원을 향해 달려간 그들은 이 사람 저 사람한데 물어서 생각대로 끝내 가씨댁을 찾아내고야말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배포유하게 주인을 만나봤다. 때는 저녁켠. 가씨가 퇴근해서 마침 집에 있었고 마누라도 있었다. 한데 녀석이 어디갔는지 낯짝이라도 한번 다시보려는 가철군은 집에 없었다.    《손님들은 대체 뉘시오?》     예감이였던지 머리쌀이 갑작스레 어지러워난 가씨는 느닷없이 나타난 초면의 두 불청객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레 대했다.    《댁의 철군이가 어디메루갔습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우. 건데 자네 갠 무슨일에 찾는거요?》    《가철군이 우리 집의 배를 빼앗아가서 그럽니다.》    《원 무슨소린지…》    《댁의 망나니가 강탈을 했단말입니다.》     민호는 잡담제하고 명토를 박았다.     이러자 예상과 같이 일은 되어갔다. 근거도 뵈이지 못하면서  줴친 소리건만 병통을 면바로 찔렀는지 가씨는 단통 낯색이 샛하얘지면서 안절부절을 못한다. 제아들의 됨됨이를 너무나 잘아는 부모라 이런 경우 입이 백개라도 할말이 없었던거다.     《그래 나더러 어쩌라는 거요?》     《부모니까 책임져야죠. 배값을 내시오. 그게 어떤 배라구. 방금만들어서 아주 영 새건데. 훽해배입니다!》     《뭐라오? 어이구!》      가씨는 신음을 토해냈다.      그의 마누라는 아예 입도 열지 못하고 떨기만한다. 적잖은 이들이 억울하게 당하고는 절치부심 하면서도 감히 찾아오지 못했다. 결찌많은 아들놈이 보복을 무섭게 할까봐. 한데 이들만은 그렇지 않았다. 무겁한 태도로 해보자고 드는 판이니 가슴이 얼어들기 시작한거다. 내아들만 막짓을 할가, 악이 나면 누구든 행패부리기마련이야. 이들은 아마 칼을 품고 왔을거다 하고 생각하니 가씨내외는 겁이 질려 떨기까지 했다.     《어떻게 할텝이까, 담은 얼마라도 배값을 내겠습니까 아니면 죄진 아들 콩밥 멕이겠습니까? 우린 호의루 찾아왔다는걸 아시오. 정말루 양보를 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이래두 싫다면… 댁의 아들이 승천입지를 한대두 우린 찾아낼텝니다! 붙잡아낼텝니다! 복수할텝니다! 두고보시오 안그러는가구!》     민호는 짧은 중국말재간을 다 털어 재고 당기며 윽박질렀다.     대방의 배때벋은 짓에 가씨는 한결 주눅들어 감히 대들지도 내쫓지도 못했다. 그는 불효자식때문에 똥감태기를 쓴다면서 거의 울상이 돼갖고 신음소리를 내더니 하는수없이 집에 있는 저축금을 몽땅 내놓았다.     배값은 안되지만 액수가 적잖았다. 길림대양(吉林大洋) 200원이니. 이 돈이면 철갑상어 천근값과 맞먹는 셈이다.     그야말로 혀바닥으로 면도칼을 갈 듯이 우둔한 짓이였다. 하지만도 유씨네는 잃은 것을 얼마간이라도 찾은 셈이라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또 이 일로해서 어느때든 보복이 돌아올것 같아 은근히 가슴을 죄이기도했다. 해도 민호는 그깟거 하고 꿈만해하였다.    《아직두 더 받아내야합니다. 개는 무서워하면 무서워할수록  더 얏잡아보고 물자고 달려들지요.》        한편 날이 가고 달이 가건만도 린화는 한번 병상에 누운 후로 아직 일어나지 못한다. 어느날 가싼다가 동강진에 가서 또 쌀만을 청해왔다. 언젠가 민호의 거짓수작에 넘어가 귀신약을 주었던 그 쌀만이였다. 그가 그때 준 귀신약이 효험을 보았다. 그건 어쩌다가 면바로 상과 맞아서 그렇게 된게지 쌀만이 만들어 낸 귀신약이 령험해서가 아니였다. 더욱히 그것이 만병을 통치하는게 아닌거고. 과연 그같이 령험하다면 왜서 쌀만을 다시청할가?     쌀만은 전번때와 같이 자기를 귀신으로 분장하더니 짜장 미쳐나는 것 처럼 한바탕 열성스레 부산을 떨어댔다. 가싼다는 그가 그러는 것이 감사무지하여 돌아갈 때 별비로 큰아들이 방금 강에서 잡아온 큰 잉어 한 마리까지 더 보태서 줘보내는것이였다.     이래도 정성이 부족한가 지성이 부족한가? 쌀만이 왔다갔어도 린화는 병이 호전되기는 커녕 외려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다. 이젠 머리가 천근같이 무거우면서 빠개지듯 아파났다. 그러다가 그것이 좀 진정 될 때면 베개밑에서 개미 기여가는 소리를 황소가 싸움질하는 것으로 들을지경이다. 그토록 허약해진거다. 하건만 유씨네는 치료한다는게 고작해야 쌀만이나 불러다 굿을 하게 하곤 내쳐두니 이를 어쩐단말인가. 코막고 답답한치들아, 무지의 고배를 기여히 마셔봐야 정신차릴거냐?… 민호는 그들이 하는 짓이 점점 더 민망스럽기만했다. 이런때에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되라지 하고 내쳐둔다면 환자는 영락없이 잘못될것이다. 아무렴 그꼴을 어떻게 보고만있겠는가. 격이 나더라도 사람은 살려고놓봐야하는게 아닌가. 하여 민호는 욕지기가 나오는 것을 소태 넘기듯 겨우 목구멍으로 넘기고나서 유만진앞에서 다시금 제 주장을 피력했다.    《이젠 굿은 그만두구 제발 내 말을 들어주시오. 린화를 살리겠거든 어쨌든 의원의 약을 써야합니다.》     유씨는 이젠 별 도리없겠는지 그럼 네가 한 번 나서보라했다.     이젠 린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의원덕이요, 칠성판을 지면 내탈이라겠지. 우매한 제 탈인건 모르구. 민호는 이런 각오를 하면서 가싼다보고 돈 30원만 달라해서 행장을 갖춘 후 곧추 의란으로 향했다. 의원이 가까운 동강진에도 있지만 큰 약국은 그래도 그곳에 있을것이였다.     의란에 간 근는 먼저 약국에 들려 약부터 샀고 그 다음에는  공부하고 있는 청량이를 찾아가서 집에 변고가 생긴것을 알려줬다.  민호는 그래놓고 온김에 고태의연한 옛 금조(金朝)의 흔적을 감상했다. 한데 그는 여기에서 생각밖에 조선독립혁명진영의 현황을 다소 알수있게되였다. 어느 독립운동자가 이곳까지 와갖고 퍼뜨린 소문인지 아니면 관방에서 알린 소식인지 로씨야령에 넘어갔다가 직전에 되건너온 일부 독립단체마저 이제는 싹 다 해산되여 그 존재마저 보이지 않는다고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닌게아니라 울음이 나갈일이였다.    《우린 어쩜 이렇게 자진하고마는가. 아아!…》     민호가 어래무레 돌아와 친구한테 형세를 알렸더니 친구역시 가슴터지게 한숨을 토하고는 목놓아울었다.     한편 오래동안 간헐적인 두통에 시달리던 린화는 민호가 의란서 지어온 첨약을 먹고 정신이 차츰 돌기 시작했다. 이젠 몸이 춰서도록 보양이 될만한 음식을 많이 먹어야할 것이다. 한데도 번번이 보면 유씨네는 타스헌이니 다라카니 라부다하니 하는 따위의 물고기음식만 그냥 해주었다. 곡기나게 낟알과 산짐승고기는 왜 안먹이는지, 그런걸 먹였으면 좋으련만…         어느덧 추운 겨울절기에 들어섰다. 한데도 올해는 아닌때에 산신령을 노엽힌 범자가 생긴터로 쌀만이 그 벌로 입산제를 보름이나 늦추다보니 아직은 토끼 한 마리도 감히 잡을 수 없게됐다.    《개코야! 입산제는 무슨놈의 입산제야! 그런다구 산에 못들어가? 흥.》     어느날 허저인의 신앙을 개떡같다면서 내내 우숩게만 보아온 최기덕이 이같이 씨벌이며 사냥하러 나서는 것을 민호가 막았다.    《왜 이러니, 제기! 덤비긴... 산에 가면 산놈 따라부르고 바다에 가면 바닷놈 따라불러라했어. 괜히 큰일치지 말고 잠자코있거라.》     유씨네는 연어잡이를 하지 못하다보니 남처럼 돈을 벌지 못했을 뿐 이왕년과 마찬가지로 제먹을 고기는 그래도 두루장만했다. 하여 지금 유씨네도 마을의 여느집과 마찬가지로 겨울철 사냥준비를 다해놓고 입산날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판이였다.      어래무에서는 올까지 동네사람이 실종되고 변을 당하고 보니 누구든 혼자서 산속을 감히 드나들 용기가 나지 않아 친척이나 가까운사람끼리 짝패를 무어 사냥하기로했다. 이런 집체식의 사냥이 전에도 없은것은 아니다. 어느 패나 나이 듬직하고 사냥경험이 있으며 산에 익숙하고 일처리를 공정하게 하는 사람을 저들의 책임자로 선출한다. 그러고는 그번의 사냥을 일임케 하는데 그 사람을 로더마바라 한다. 로더마바는 사냥시 자기 패거리의 모든 활동을 지배한다. 만약 사냥군지간에 어떤일로 분기가 생길라치면 그것을 조해하며 자기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모여서 처리하기도 한다. 로더마바에게 그것 외 다른 어떤 특수한 권력은 없다. 그도 여느 사람과 같이 사냥하고 수렵물도 똑같이 나눠가진다. 따라서 사냥철이 끝나면 그의 직무는 해소되는거다.     두 조선청년은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았기에 사냥을 나가고싶어도 마음뿐이였다. 하여 그들은 땔나무나 넉넉히 해놓고 뜨뜨한 시르맨커에 들어앉아 근산의 잔짐승잡이놀이로 이해의 겨울을 지내려했다.     마을에 이마칸을 하는 사람이 왔다기에 그게 어떤건지 들으러갔다온지 사흘이 되는 날 민호가 친구보고 말했다.    《착고를 빌려와야겠다. 창애도 몇틀있어야 하구. 짐승잡이를 하자면 우선 잡동사니들이 있어얄게 아니냐. 맨손으루야 어떻게.》    《나쟈형이 이제 갖다줄게요. 어제 서르미를 만들던데. 내가 그보구서 하고 물었더니 하더구만. 그래 난 기뻐서 좀 거들어줬소.》    《모르겠다 떡줄놈은 꿈도 안꾸는데 김치국부터 마신게아녀? 더구나 넌 중국말도 잘 모르면서... 제대루 알아듣기나했니?》    《어이구, 정형은 내가 뭐 영 까막바본줄알우. 나도 이젠 웬간한건 알아들을만하오.》    《네가 알아들어? 불지말마.》    《분다니, 내가? 쳇!》    《아니면 정말이냐. 정녕 그렇다면 진보를 축하해야겠구나.》    《놀리지 마오. 나도 이젠 웬간한건 다 알아듣는다니까.》    《뭐라? 웬간한건 다 알아듣는다구? 야 이 로씨야대포쟁이야, 네가 그렇다면 그래 이마칸은 왜 안들었니? 그건 중국말로 한건데. 넌 한마디두 못알아듣겠다면서 린화네 집에 가구서두. 솔직히 말해봐. 거겐 너의 그 반양머리에 반한 계집애있어서 간거아녀?》    《어이구 알긴 개떡같이 아네. 사실대루 말해서 그 소녀 반한건 내가 아니구 정형이야.》    《허튼소리. 그 여자앤 미혼부있다는걸. 너도알아라.》    《알기야 알지만두.... 건데 그게 문젠가 뭐. 걷어장지면단데.》    《그게 될가, 안될거야. 그 민족은 안그래. 한번 정한 혼인은 절대 파하는 법이 없다는구나.》    《뭐라, 한번정한 혼인 파하는 법 없다? 그럴사한 자가당착인걸! 세상만물이 불변아니요 이 민족도 페단은 깨닫고 고쳐가면서 개화하고있는거다고 말한건 대체 누구였소. 그게 정형아니던가.》     기덕이는 어느땐가 허저족을 놓고 변론이 있은것을 새삼스레 끄집어내여서는 그걸 언질잡고 반박하려들었다.     말문이 막혀버린 민호는 뭐라고 대구했으면좋을지 미처 생각이 돌지 않아 어정쩡해있다가 그만 신경질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댔다 됐어, 내가졌다구하자.》     그들이 유씨집에 사냥도구빌러 갔더니 나쟈가 이미 준비해놓은 착고며 창애며 서르미며를 내놓으면서 그것으로 족제비, 황가리, 여우따위의 짐승들을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건너방에 있던 나쟈의 안해가 시누이와 함께 이쪽으로 건너오면서 말했다 .    《두분께서 마침 잘 오셨어요. 그러잖아 시누이를 막 보내려던참이였는데요.》     민호가 의아쩍어했다.    《아주머니, 무슨일입니까?》    《겨울옷을 해입어야죠. 두분 다 품을 재여봐야겠어요.》     츄얼이가 선참 민호앞에 다가와 제 뼘으로 체통을 재이였다.     최기덕이 한쪽눈을 끔쩍이며 능청떨었다. 봐라 내 짐작이 어때 그 계집애가 너한테 반한거 아니냐 하고 놀리고 있었다. 민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 시각 여지껏 점잖을 빼온 자신의 낮가죽이 가면구로 되여 한까풀 홀랑 벗겨지는것만같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이 수치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생육이 불전한 바보아니요 마음속 이성을 그리고 점유하고푼 맘이 너무도 자연스레 꿈틀거려서 사랑은 그야말로 자사자리한것임을 감수하기에 이른 그였으니.    옷이 인츰되였다. 감이 마련되여있은데다 유씨댁의 그 두 녀인은 솜씨재서 사흘내에 다 지어 친히 갖고 시르맨커에 와서 입혀보기까지했다. 유씨네가 지어준 겨울옷이라는 것이 실은 천이라곤 한쪼각도 들지 않은 순노루가죽제품이였다. 이곳 어래무의 허저인들은 겨울철이면 다가 이런 옷을 입는다. 안쪽에 털이 있는 이런 가죽옷은 기실 솜옷보다 한기를 썩 훌륭히 막거니와 모양도 보기좋았다. 그런것을 유씨네는 일전한푼 받지 않고 지어준것이다. 짜장 한집안사람같이 여기여. 하니까 이쪽은 말그대로 밥을 갖다주면 입을 벌리고 옷을 갖다주면 손을 내미는 식이 되고말았다.     이들의 은혜를 뭐로 갚으면 다 갚을가!     츄얼이 독촉했다.    《왜 그래요. 그 옷 얼씨덩 벗고 이걸 입어봐요.》     민호는 사내답지 못하게 쭈물거리다가 처녀가 독촉해서야 받아입었다.     츄얼이는 정성을 다한 제 솜씨의 진가를 알아낼모양으로 한참 이리보고저리보고 했다.     민호는 가죽오리를 감쳐만든 개씹단추가 신기해서 어루만지다가 입을 뻐개면서 한마디했다.    《아가씨지은 옷 내몸에 딱 맞는구만. 감사하오.》    《맘에 드나요?》    《들구말구. 물론이지.》    《그럼됐어요. 그런데 말이얘요. 절 아가씨라말고 이담부텀은 그저 츄얼이라고 불러줘요. 난 그렇게 불러주는게 더 반가와요.》    《더 반갑다, 그럼 그렇게 할가. 하하하하!…》     민호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소리내 웃었다.     츄얼이도 웃었다. 한결 유쾌해진 그녀의 얼굴에는 명랑한 홍조가 어리면서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남실거렸다. 교양있는 집의 고명딸로 자라난 츄얼이는 어딘가 도고한 자태였으나 오만하거나 거만한 티라곤 보이지 않았다. 가끔가다 애교는 부릴줄 알아도 다른 계집애들같이 경망스레 호들갑을 떨거나 가살피울줄을 몰랐다. 그녀는 인물고운 것 만큼 순직하고 맘씨곱고 인사성바르고 눈썰미좋고 손부불이 여물었다. 이런 일등급의 처녀를 그래 어느 총각인들 욕심내지 않으랴. 속담에 닭한테 시집가면 닭을 따르라해서인지 듣자니 츄얼이느 시집가면 남편공대잘하고 시부모잘모시는 정실한 안해감이라 소문이 나 임자가 벌써 있는데도 외지에서 혼사말을 걸어오는  총각이 한타스나 된다고 한다.        츄얼이는 이튿날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시르맨커를 찾아왔다.   《두고길러요. 제가 우야즈네 보고 달래서 얻은거애요. 여기서는 개가 보배얘요.》    털이 똑같이 감실감실하고 복실복실한 그놈들이 이제 발을 탄지 얼마안되였다.    《요 귀여운것들아! 네놈들이 이젠 우리하구 한식솔됐구나!》     민호도 기덕이도 고것들이 참으로 귀여워죽겠다면서 한 마리씩 품에 안았다.     츄얼이는 웃다말고 눈을 할끗빨았다.    《곱다구만말구 건사잘해요. 개를 기를줄이나 아는지?.. 》    《챠 이거 사람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린가. 아니 그래 세상에 어느 바보가 그래 개기를줄도 모른단말인가.》     민호는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러니 츄얼이가 정색해서 묻는다.    《그럼좋아요. 어디 말해봐요. 개를 어떻게 기르는가요?》    《거야 저놈들이 배곱파 울면 제때에 죽을 먹이구....》    《어마나! 그저 그렇게 기른단말인가요, 원! 한심해요. 개를 어디 그렇게 기르는가요. 깜깜이네. 명심해들어요. 개를 제대로 기르자면 첫째 소금이나 향기로운 음식을 먹이지 말아야 해요. 알겠나요. 그따위건 절대 먹이지 말아야한단말이얘요. 왜 그러겠어요. 그따위걸 먹이면 코가 둔해져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단말이얘요. 짐슴마다 피우는 냄새가 다른거얘요. 코가 둔해져 그걸 가릴줄도 모르는 개면야 무슨짝에 쓰겠나요. 않그래요. 그러니.... 개가 이제 좀 더 커서 빨랑거리면 데불구다녀요. 그래야 그게 어려서부터 길을 알아두게되는거얘요.》    《그담에는 어떻게 하랍니까, 아가씨?》    《날 그렇게 불러달라던가요.》     츄얼이가 민호를 향해 눈을 곱게 흘겼다.    《오! 하하하…》    《개는 두살먹어서부터 일곱살될때까지 퉈르치를 끌수 있어요. 그럴러면 목대가 세얄게 아닌가요. 개가 좀 크거들랑 목에다 몽둥이를 달아줘요. 그래야 개는 목덜미에 기운이 오르게되는거얘요. 생각해봐요, 안그렇겠나요.》    이쪽은 둘다 머리를 끄덕였다.    츄얼이는 이밖에도 여러가지의 상식들을 알려줬다. 평상시에 개가 짐승잡이하는 재간이 있는가 없는가를 관찰해야한다느니 성질을 장악하고 훈련시켜야한다느니…츄얼의 말과 같이 여기서 살아갈려면 과연 개를 알고 길러야했다. 개는 사냥시 유력한 조수일뿐만아니라 호신위사(護身衛士)였다. 그것이 겨울이면 또한 허저인식의 썰매인 퉈르치를 끌기도해야했다. 하니까 개야말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축력이기도했던것이다. 여기서는 어느 집에서든 다 개를 기르는데 제일적어서 세마리, 어떤집에서는 지어 열몇마리나 기르기도했다. 이 일대를 예로부터 견국(犬國) 혹은 사견부(使犬部)라 부른것도 바로 이 연유에서일것이다. 원나라나 명나라, 청나라때에는 여기에 개정거장까지 설치되여있어서 그것이 지어는 주요한 운수도구로까지 리용되었다고한다.     두 젊은이는 가싼다의 딸님이 명념하여 갖다준 강아지를 명심하여 잘 키워서 훌륭한 사냥개로 만들어보리라했다.        사정모르는 씨베리야의 찬바람이 불어오기시작했다. 가련한 생령들을 한품에 포섭하고 먹여살려온 산천마저 추위에 떨어댔고 강은 어느새 얼어붙기시작했다.     11월중순의 어느날이다. 심산으로 사냥을 가지 못한 둘은 아침을 든든히 먹고나서 또 하루작업에 나섰다. 차츰 근면한 살림꾼으로 되어가고있는 그들이라 애초에 계획한대로 잔짐승잡이에 재미를 붙인거다. 바람한점불지 않는 명랑한 날씨였다. 대지는 간밤에 내린 눈에 동일색의 흰이불을 덮고 조용한데 손거울같이 동그란 겨울해는 눈부시게 밝은 빛을 한껏 뿌려주고 있었다.    《오늘은 족제비잡이하기좋겠구나.》    《황가리잡이하기두 좋지.》    《그렇구나. 황가리건 족제비건 담비건 여우건 눈에 띄는 놈은 다 잡자. 그래서 짐이 되면 갖다 팔고. 족제비가죽 한장에 오원각수라니 좁쌀 한 되를 사구두 이원각수나 남잖아. 》     민호의 속구구였다.     요즘 잔짐승잡이해서 돈푼을 손에 쥐게되자 그들은 우선 쌀부터 사다가 밥을 지어 먹었다. 물과 가까이 있으면 고기의 성미를 알게되고 산과 가까이 있으면 새의 울음을 가릴줄을 알게되는 것이다. 물고기잡이도 짐승잡이도 차츰 미릅이 트기 시작한지라 그들은 이제는 거촌(居村)의 궁상에 낯이 익는 것 처럼 이 고장의 환경에 적응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쌀밥생각만은 더해갔다.     시르맨커근처에서 눈우에 찍힌 황가리발짝을 발견하자 그들은 두곳에다 덫을 놓고나서 함께 어래무시내를 건너서 서켠산으로 들어갔다. 산뜻한것이 동화속 그림같았다. 한곳에 이르니 하얀눈우에 한갈래의 오불꼬불한 짐승길이 그려져 있었다.     최기덕이 서르미를 놓으면서 혼자소리로 중얼댔다.    《여우야 여우야 제발 맞아다오. 그래야 우리 정형두 새 털모자나 하나 써보지.》     전날 여우 한 마리를 잡아 깝지를 발쿠어 팔았더니 할대양(哈大洋) 20원이였다. 민호는 그 돈으로 새 털모자 하나를 사서 먼저 친구부터 쓰게 하고 자기는 유씨네가 준 낡은 털모자를 그냥쓰고있었다. 그래서 기덕이는 미안해하는것 같았다.     민호가 그의 중얼거림을 잡아듣고 입을 열었다.    《뭘 그러니. 봐라, 나도 털모자를 쓰고있잖아. 이제 여우잡으면 그건 팔아서 돈을 만들어야한다. 돈! 돈! 안그래. 그래야 총을 사지. 뭐니뭐니 해두 그게 관건이구 중요한거야. 총! 총을 말이다!》     그는 고향떠나 만주당에 와서 느낀바를 새삼스레 회상했다.     3.1시위가 있기 전해인 1918년 11월, 대한의 독립운동가 39명이  여기 만주땅 길림성 화룡현 삼도구의 대종교총본사(大倧敎總本司)에 모여 세계에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를 발표한바있다.         아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 2천만 형제자매여! 우리 단군황조께서 상제(上帝)에 좌우하시어 우리의 기운을 명하시며, 세계와 시대가 우리를 돕는다. 정의는 무적의 칼이니 이로써 하늘에 거스리는 악마와 나라를 도적질하는 적을 한손으로 무찌르라. 이로써 5천년 조정의 광휘를 현양할 것이며, 이로써 2천만 백성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니, 궐기하라 독립군! 제하라 독립군!...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이것은 선언문의 결속부분이다. 애국심이 좀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열혈을 끓게 하는 그 웨침이야말로 얼마나 장엄가!      민족의 해방운동과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에서 가장 올바른 방법이 곧바로 무력투쟁이였다. 하기에 독립군(獨立軍)이 창립된것이다. 일제의 조선침략이 의병운동을 발기시켰고 3.1만세시위는 민중을 깨우쳐주었다. 승냥이는 오로지 렵총으로 맛섬이 지당함을! 침략자와의 대결에서 인식이 높아진 애국지사들은 그 어떤 형식의 타협보다도 직접적인 무장항쟁이 더 실제적임을 깨달은것이다.     정민호가 몸을 잠그었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는 바로 만주각지에 건립된 여러 독립군들 중에서 무력이 제일강한 부대였거니와 주력이기도했다. 선지선각자(先知先覺者)이자 대종교의 수령인 서일총재(徐一總裁)는 자신이 창건한 중광단(重光團)을 바탕으로 확대 재창건한 이 부대를 무적의 대오로 튼튼히 키우고자 그 얼마나 많은 심혈을 쏟아부었던가!      민호는 숨이 지는 시각까지 그를 잊지 않을것이다.     그것은 멀고도 험한 길이였다. 정민호는 자기가 무기운반대에 들어 친구들과 함께 서일총재를 따라 로씨야의 연해주에 가 수백자루의 장총과 탄약을 사서 등짐으로 지어 나르던 광경을 지금도 가끔 상기하군한다. 캄캄칠야에 억수로 쏟아지는 찬비를 맞으면서 적의 감시선을 넘어야했던 그 위험하고도 간고한 밀반입의 려정ㅡ그 것이 힘겹고 고달프긴했어도 또한 희열속에 희망이 벅차오르는 한때이기도했던것이다. 그때 그같이 육체를 혹사하는 고생이 있었기에 조선의 독립운동사상 금빛기록으로 남길 청산리대첩(靑山裏大捷)을 이룩할 수 있은게 아닌가!     아아, 그러나 오늘은....             간밤에 내린 눈이 발목을 덮고 있었다. 둘은 짐승을 찾느라 아느새 싸다녔다. 개들이 갑자기 짖어댔다.    《가만! 저게뭐요?》     앞에 가던 기덕이가 터져나오는 함성을 가까스로 삼키면서 걸음을 뚝 멈추었다.     그들이 지금 가고있는 바로 저 앞에 체통이 여우보다 작고 몸체의 털이 갈색나는 몽통한 짐승이 나무뿌리를 뚜지다가 놀래여  달아난다.    《너구리다! 너구리!》     민호가 제손에 쥐고있던 지다창을 뿌렸다.     앙증맞은 그놈은 맞지 않고 달아났다.    《에잇, 이 미런한 등신보지!》     민호는 자신이 미달한 투창거리에서 너무 성급히 서둘렀음을  깨닫고 자신을 꾸짖었다.      산비탈에 동그란 흙구멍이 하나 있었다.    《오, 요게바로 고놈의 굴이구만! 됐소! 됐소! 이젠 고놈을 납짝 붙잡게 됐소! 》     기덕이가 짐승의 굴을 발견하곤 너무좋아 손벽까지 쳐대며 춤을 췄다.    《가만있자, 덤비지 말아야지.》     민호는 우선 다른 어디에 짐승이 달아날 수 있는 구멍이나 있지 않는가 살폈다. 그리고는 그 구멍에다 치더룽이 빌려준 든든한 지다창을 들이밀었다. 한데 감촉이 물렁하리라 여긴 물체는 닿이지를 않고 되려 흙같은것이 창끝에 마쳐왔다.    《어허? 요 앙증한 짐승이 어디루 갔을가? 뛸데없이 여기로 들어갔을텐데.》     둘은 창으로 흙을 뚜지다가 그만 맥을 놓고말았다.     토끼꼬리만큼이나 짧다란 겨울낮은 어느새 저물어갔던거다.     그들은 너구리는 커녕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돌오면서 볼라니 시르맨커와 가까운곳에서 털이 새노란 여우털모자를 쓰고 발에 물고기깝지로 만든 원다를 신은 어래무마을의 로인 하나가 빙천(冰釧)으로 쪼아낸 강판구멍에다 후리채를 넣어 휘젓고 있었다. 방금 잡아낸 손바닥만큼한 붕어가 강판에서 마구뛰면서 분탕질했다. 로인이 초면이 아닌지라 민호는 다가가며 롱조로  말을 걸었다.    《하 이거 로인님두 원! 남먹자는 고길 다 잡으면 우린 그래 굶어살란말입니까?》     로인은 고개를 들더니 두 조선젊은이가 손에 지다창까지 들었건만 아무것도 못잡고 돌아오는 꼴이라 맹랑해서 놀려줬다.       《건데 자네들이 잡은 짐승은 어쨌나? 왜  뵈질을 않아?》    《오늘은 공탕입니다. 아마 손에 재수가 붙잖는모양이죠.》    《토끼새끼두 눈에 띄이던가 그래? 》    《안띄긴요. 우린 그보다 더 좋은 놈을 놓쳤습니다. 너구리를 만났지요. 건데 고놈이 글세…》     로인은 민호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너구리라니? 그놈은 본디 겨울에 밖으로 잘 안나오는 습성인데 나왔더라지. 그놈 아마 죽자구 환장을 했던가봐.》    《글쎄요.》    《그래 그놈도 못잡았다 그건가?》    《글쎄요. 쫓았더니 굴에 들어간 놈이 없어졌습니다. 귀신이 곡할일이지 참.》    《가만있자. 굴에 들어가더란말이지. 그러믄야 그게 오소리굴이지 너구리굴은 절대아닌거야. 너구리란 놈은 원체 게을러서 제굴은 안파구 남의 신세에 살아가는 짐승일세.》    《아 그런가요. 그래서 음험하구 능청스런 사람을 너구리같은 놈이라고 하는 모양이죠.》    《그렇네.》    《건데 왜 들어간 놈이 없어는졌습니까?》    《자네들은 오소리굴이 어떻다는걸 모르는군. 그놈을 굴이 안에 들어가서는 여러갈래일세.》    《아, 그런가요!》    《그렇네. 오소리란 놈은 굴을 깊게 뚫는데 그 안은 가로 세로  통해있는거네. 어디 그뿐인가. 거기다 굴도 여러층일세. 말하자믄 그놈들두 인간모양으루 자는 방이 따로있는거구 창고두 따로있는거구 칙간두 따로있는걸세.》    《아니 뭐랍니까, 하하하!…오소리란 놈이 그래 제 굴속에다 칙간까지 만들어놓고 산단말입니까. 난 그 말씀이 어쩐지…》      《거짓말같은가. 아닐세. 정말이야. 생각해보게나. 그놈들이 겨울한철 내내 굴속에만 들어박혀있는데 똥오줌은 그래 어디다 누겠나. 아마 그래서 그런 궁리를 해낸것 같네.》    《그게 정말입니까. 한데 로인님은 고놈의 짐승들이 궁리가 그렇게 기발하다는걸 어떻게 아십니까. 설마 물어보지야 않았겠죠.》    《물어봤네, 물어봤어. 젊은이두 한 번 물어보게나. 그러면 오소리가 그렇다구 알려줄거네. 그놈의 짐승은 경각성이 대단히 높네.  약기두 하구…어떻게 약은가 하믄.... 이렇네. 그놈의 짐승은 남이 제 굴을 뒤지는 것 같으면 앞구멍을 제꺽 막아버린다네. 그래서 뒤지던 사람은 굴이 거기서 끝난걸루 알구는 그만 맥을 놓고마니 결국은 허탕치구마는걸세.》     로인은 오소리습성을 말하면서 그놈을 쉽게 잡자면 가장좋기는 봄에 나가 동면을 깨고 활동하기 시작 할 때 굴에 내굴을 불어넣는것이라 알려주었다. 허저인들은 오소리를 더러쿵이라 부르는데 고기는 먹고 가죽은 벗겨서 자리를 만들며 기름으로는 화상을 입거나 물에 덴데를 치료했다. 로인은 오소리란 놈은 가을철에 많이 먹어 살을 피둥피둥 지우고는 음력 10월중순께쯤부터 동면에 들어가기 시작한다고 알려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오소리는 천성이 굴파기를 좋아하거니와 궁리가 기발하고 묘한데다 우습게 노는 놈들이다. 오소리무리에는 전문 굴을 파고 운반하고 파놓은 굴을 멋지게 손질하기만하는 기술공이 각각 따로 있는것이다. 말하자면 분공이 돼있는것이다. 굴파는 놈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굴을 팔 때 흙나르는 놈은 등때기는 밑으로 배때기는 우로 올라오게 반듯이 눕는다. 그러면 다른놈들이 파놓은 흙을 그놈의 배우에다 착착 올려놓는다. 그래서 짐이 다 된것 같으면 여러놈이 귀를 물어 당겨서 밖으로 끌어낸다. 그렇게 해서 흙은 파는 족족 밖으로 운반되는건데 굴을 다 파고나면 그 의 등때기는 닳아서 털이 거진 다 빠지고만다. 그래 그모양이 됐다고 심히 불쌍히 여겨 여럿은 둘러싸고 아이고 이걸 어쩌나 몹시아플텐데 하면서 털이 하루속히 빨리나라고 홀홀 불어준다. 여럿이 모여들어 하도 극진히 위안하고 친절스레 구는통에 그 은 그만 터지는 울분도 참으며 묵삭이고마는거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나서 민호도 기덕이도 우수워죽겠다고 박장대소를 하면서 오소리동화가 과연 그럴듯 하다했다.      시르맨커로 가는 강판우에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둘은 다가 거기에 대해서는 무심해하면서 시르맨커로 들어갔다. 생각밖에 츄얼이가 와 있었다. 인정스러운 그녀는 가을에 자기가 손수따서 만든 실백잣과 허저인들이 차얼카차라고 하는, 생선을 져며서 말린 포를 갖고와서 기다리다가 오지 않으니 져녁을 지어놓고 막 돌아가려던참이였다.      츄얼이는 짐짓 골난 모양으로 사내들을 핀잔했다.    《온 집안살림 싹 다 털어가도 모르겠네요. 어디루 나가겠거든 문이나 잘 단속해야지 그게 뭔가요 집안 다 얼궈놓으면서.》     민호도 기덕이도 량미간을 모았다.    《아니, 문이 열려있었다니?》     민호의 말 끝에 기덕이 동을 달았다.    《문은 내가 꼭 닫아놓구갔는데. 틀림없어.》    《틀림없다? 건데 문이 열려있더라잖아.》     괴상했다. 민호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때려 밖으로 다시나왔다. 주위를 눈주어 살피고나서 시내로 내려가 강판우에 찍혀진 발자국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것은 북쪽에서 말타고 온 자가 말에서 내려 마을쪽으로 향하지 않고 여기 막까지 왔다가 되돌아간것임에 분명했다. 웬놈이 왔다갔을가?…머리속에서는 불길한 예감이 고패쳤다. 그는 고기잡이하는 로인한테로 달려갔다. 마침 로인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고기잡이도구들을 거두는참이였다.     민호가 다가가 물으니 로인은 아까 백말을 탄 사람 하나가 큰강쪽에서 왔다가 되돌아가더라면서 얼굴은 보지 않아 자기도 누군지 모르겠노라했다. 그러면서 그 로인역시 이상하다고 했다.    《웬놈이 왔다갔을가, 좋은 싹수가 아니야.》     민호는 낯색이 한결 어두워졌다. 이제 어느날 불청객이 다시나타나 어떤 불길한 짓을 할지 모른다. 하니 방비책을 대야했다.    《총이 없으니 활이라도 당장 하나 만들어야잖소.》     기덕이도 같은 생각이였다.    《그래야지. 준비해야겠다. 준비없는 대적은 실패다.》     이틑날 그들은 굵기가 맞춤한 참나무를 골라 곱게 다듬은 다음 거기에다 피나무깝지를 꼬아 줄을 만들어 메우니 활이 되었다.      그런데 그게 아무리봐야 신통치않았다.         그 다음날이다. 어제 고기잡이하던 로인이 또 왔기에 자기들이 만든 활을 내다뵈였더니 로인은 보고서 이게 놀음감이지 어디 활이냐며 웃었다. 그리고나서 로인은 그 자리로 돌아가더니 제것을 하나 가져와서 그들에게 주면서 두고 쓰라했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변이라구야!       로인이 준 그것은 제작된지 오랜 진짜활이였다. 활은 허저인들이 옛적부터 사용해 온 사냥도구였는바 화승총이나 양포가 나온 그제나 신식의 베르단이나 머스킷총이 나온 지금이나 의연히 버리지 않고 가끔씩 사용하는 무기였다. 그들이 제작하는 활은 단층궁과 쌍층궁 두가지였는데 로인이 가져다 준 활은 그 자신의 출중한 솜씨를 보여주는 정교하게 만든 쌍층궁이였다. 이 활은 길이가 한발이나되였는데 활체는 외층을 송목으로 하고 내층은 검정짜작나무로 했으며 그 사이에 노루힘줄과 사슴의 힘줄을 넣고 잔잔한 비늘이 붙은 고기가죽을 달여서 제조한 점력이 아주 센 풀로 붙이여 만든것이다. 활시위는 가느다란 사슴힘줄이였다. 그래서 활은 단단하고 질기고 탄성이 아주강했다.     그 허저인로인은 두 젊은이가 봐서는 도무지 알아낼수 없는, 허저인들은 아무라커라 부르는 나무를 쪼개여 만든, 철촉을 단단히 박은 살 24대와 시위를 당길 때 쓰는 짐승의 뼈로 만든 가락지까지 주면서 그것을 다루는 방법까지 세세히 알려주었다. 고마왔다.     사람의 심미감도 괴상하다. 원시종교에 대해 그토록 혐오하는 기덕이였건만 현대인이전 류인원의 발명물인 이 최초의 원시무기에 대해서만은 오히려 류다른 흥취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지어는 이것하나면 되리라면서가지 믿기까지한다. 하지만 민호는 그래도 총 한자루는 속히 갖추어야겠다고했다. 그러자면 돈주고 사창을 사야하는거고.... 방정맞게 그놈의 짐승잡이가 여의치 않았다.     민호가 한창 어떻게 했으면좋을지 몰라 우유부단하고있을 때 심산에 들어갔던 치더룽이 집에 왔다가 시르맨커를 찾아왔다.     민호가 의아쩍어했다.     《아니 왜 왔습니까? 산에 잡을 짐승이 없습디까?》    《아니요. 왠지 화약냄새피우며 불질하곱푸잖아 그만뒀소.》     치더룽은 말을 끊었다가 입을 다시열더니 이쪽을 향해 불쑥 물는것이었다.    《자네들은 나하구같이 장작부업이나 하잖겠소?》     생각밖이다. 민호는 자기 앞에 나타난, 수염이 꺼칠한 이 사나이의 강마른 얼굴을 말끄미 쳐다보면서 넌 아마두 꿈자리사나와 사냥을 그만둔모양이구나 하면서 머리를 한참이나 찌붓거리다가 되물어봤다.    《그게 그래 되기나하겠습니까?》    《왜서 안돼 받는데가 있는데. 이제 강이 풀리면 거기서 륜선이 달릴텐데. 기계를 움직이자면 장작을 때야하는거요. 안그렇소 장작을 때야한단말이요. 길이를 똑같이 두자되게 자른 장작을 높이석자 너비석자 길이 여섯자되게 쌓아놓으면 전에는 그 한무지에 륙원각수였는데 올해는 이원이 더 올라 팔원각수라오. 해볼만하지.》    《그렇지만 우린 운반차도 없잖습니까?》    《차없으면 앉은자리에서 도매상들한테 넘겨팔아도 되지.》     민호는 이 일을 친구와 토론해보았다. 여기에 들어앉아 신경이나 도사릴게 있는가. 기덕이 역시 그 일을 해보는것도 괜찮겠다고 나섰다. 그렇다면 좋아. 남들이 하는 일을 우리라고 왜 못하랴. 일이란 배워가면서 하면 되는거야.     두 젊은이는 츄얼이네 보고 강아지를 한동안 맡아서 길러달라부탁 하고는 그 이튿날로 톱과 도끼를 들고나섰다.     그들은 산에 들어가 발매를 넣었다. 총을 살 돈의 아구를 마추기 위해서는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자는 그들이였다. 한데 아무리애써봐야 하루에 근근히 길림대양(吉林大洋) 2원을 쥘 정도. 그 벌이도 맘과 같이 되여주질 않았다. 축력이 있고 운수도구가 있어서 품꾼을 도고 전문하는 사람이거나 되거리장사군이나 그걸 받아서 직접 륜선주에게 넘겨파는 자가 어리(漁利)를 보고 있었이다.        양력으로 1922년 1월. 어느덧 구정이 가까왔다. 집을 떠나 멀리사냥나갔던 사람들이 한패 두패 돌아왔다. 이즈음에 민호와 기덕이도 돌아오고말았다. 예로부터 라월30일, 즉 음력그믐날밤이 되면 허저인들은 서남쪽을 향해 꾸러미를 태우고 음식을 차려 백성(白城)을 잃었을 때의 망령들에게 제를 지냈다. 1115년에 녀진족 완안부(完顔部)의 수령 아골타(阿骨打)가 금나라를 세웠다가 천흥(天興) 3년, 즉 1234년 설날에 몽골군과 송나라군의 련합진공에 배겨내지 못하고 그만 망해버렸다. 당시 금나라의 국민이였었던 허저인들은 자기의 나라가 망해버린 이날의 고통을 세세대대 잊지 않게 하려고 설날이면 죽을 먹는다. 금조(金朝)의 첫서울 상경회녕부(上京會寧府)가 지금의 흑룡강성 아성(阿城)에서 남쪽으로 4리쯤되는 아스하(阿什河)지방의 백성(白城)이다. 그곳이 지금 허저인들이 몰려와 살고있는 여기 이 일대와는 위치상 먼 서남쪽에 있는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도 년년이 그믐이 돌아오면 그쪽을 향해 망국제를 지내고 있었다.     린화가 시르맨커를 찾아와 설을 함께 쇠자해서 가보니 그의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한창 종이를 풀로 붙이여 만든 바구니에다 은박종이를 갖고 옛날 화페로 쓰던 배모양의 은전과 동전모양이으로 동그랗게 오린 누런종이들을 각각 담아갖고는 그것을 잿더미에 갖고 가 태우고 있었다. 위패가 모셔져있는 서쪽방 제단에는 술과 조이쌀밥과 물그릇이 간단히 놓여 있었다.     츄얼이가 추리(李子)를 진하게 풀어 지짐떡을 굽고있었다. 민호나 기덕이나 다 그것이 저녁상에 올라 맛볼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고 이 집에서는 그것을 조종삼대라는 베부마바, 여러귀신의 화상이라는 우마즈 즉 부엌신, 불신, 집신한테다 제물로 차려놨다.     민호와 기덕이는 그믐날밤을 그들과 함께 지내고 이틑날 설을 맞았다. 한데 이 설날하루 그들은 뜻밖에도 유씨네 식솔과 함께 좁쌀죽만 먹었다.     민호역시 좁쌀죽을 먹노라니 자연히 가슴속에 망국의 설음이 괴여 올랐다. 조선의 독립운동자는 누구나 다 강제적인 을 승인하지도 않거니와 합방이 공포된 8월 29일을 국치일(國恥日)로 정하고 이날은 찬밥을 먹으면서 나라잃은 통한을 가슴속에 새기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조선사람도 허저인과 꼭같은 신세로 돼버렸을가! 민호는 탄식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님들과 함께 설쇨 멋도 없는 가련한 독립군인의 신세!… 나는 그래도 부모형제있건만 친구는 어떠한가. 험악한 풍진세상에 혈혈단신이다. 눈만 껌벅하면 무주고혼이 되고말 신세였다.     추운 겨울날에 시르맨커를 여러날 비워놓을 수는 없는지라 그들은 설이튿날에 돌아왔다.         정월보름날 아침이다.     개 두 마리가 몹시 짖어댔다.    《저것들이 왜 저래?》     민호는 밖에 나갔다가 그만 날아오는 총알에 어깨를 맞았다. 웬 백말을 타고 온 자가 그를 향해 권총을 갈긴것이다. 총소리에 놀랜 기덕이가 제꺽 활을 갖고 달려나와 돌아서는 말의 궁둥이를 쐈다.  그자는 놀랜 말을 타도 북쪽으로 창황이 내빼고말았다.     끝내 불행한 괴사가 생기고말았다.     ...............................................................................................................................     * 금조(金朝)는 의란에다 胡里改路를 설치하여 송화강중하류와 우쑤리강하류          그리고 흑룡강의 중하류를 관할케 했다.        * 타스헌ㅡ잘게 썰어 지진 물고기.       * 다라카ㅡ날것으로 먹는 물고기.        * 라부다하ㅡ물고기회.       * 이마칸ㅡ허저인의 구전문학. 이마칸이란 이야시라는 뜻인데 문자가 없는 형편에서         암기되여 전해졌음. 내용은 영웅구가와 민족복수, 자기 종족의 흥망과 성쇄,  고향         과 청춘남녀의 애정찬가로 엮어졌다.       * 서르미ㅡ복노(伏弩) 즉 암전(暗箭)이라고도 하는 사냥도구로서 모양은 활과 비슷함.         짐승이 다니는 길에다 고정시켜놓고 살을 메워놓아 줄을 다치면 나가게 되어있다.       * 퉈르치ㅡ개썰매.       * 원다ㅡ물고기깝지로 만든 울라비슷한 신.       * 빙천ㅡ고기잡이때 얼음을 끄는 도구.
397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2) 댓글:  조회:2305  추천:0  2015-02-03
                               2               가싼다네 앞마당 동켠에 말 세필이 들어있는 마사가 하나 있고 정면에는 굵다란 참나무를 찍어 밑이 건뜩 들리게 만든 다락 두 개있다. 허저인들은 이것을 다커투라 부른다.      밖에서는 땡볕이 그냥 자글자글 끓고 있었다. 나쟈가 고기말리우는 그 다커투로 올라가더니 덩건이라 부르는 그믈을 한아름안고 내려왔다. 후덥지근한 집안에서 졸음을 쫓고있던 니항군청년 최기덕이 내다보다가 눈이 갑자기 밝아졌다.    《정형! 우리 차라리 저기나 올라가 자는게 어떨가?》    《고기비린내나잖을가.》    《그래두 시루속같은 여기만은 났겠지 뭐. 안그렇소?》    《글쎄.... 그럼 어디 그래볼가.》     민호는 그의 제의에 동의하고말았다.     주인집에서는 각근히 대해주고 있었다. 한데도 친구가 유씨가족의 위패가 모셔진 방안이 사당같다느니 절당같다느니 그래서 매일 꿈자리 사나운것 같다느니 타발이 없는 날이 거진없으니 아닌게아니라 그도 어디건 잠자리를 옮겨보고싶던 차였다. 구을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황차 그네들 때문에 나쟈네는 불편스레 시르맨커로 자리를 옮긴게 아닌가.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이였다. 그래서 민호가 친히 올라가 봤더니 그 다커투에는 그믈과 낙시따위 고기잡이 도구들만 있을 뿐 지금은 말리우는 고기가 없었다. 안이 정리되여 어지럽지 않거니와 둘이 얼마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츄얼이가 터밭에서 방금 딴 물외를 버치에 담아 들고 지나다가 이들의 거동을 발견하고는 눈웃음을 쳤다. 아마 호기심나서 다커투를 구경하는가 생각했던모양이다.     저녁켠에 가짠다가 집에 돌아오자 민호는 그의 앞에 다가가 자기들은 잠자리를 다커투로 옮기고싶다고 했다.    《거기는 안되네. 모기성화에 잠을 어떻게 잔다구 그러나.》     유만진은  도리머리질을 했다.     이들이 주고받는 사이 저켠에서 훔쳐 듣느라고 귀를 솔깃하고있던 츄얼이가 씽긋 웃어보이곤 얼른 외면해버린다. 미런하다는건지 아니면 주장을 세워보라는건지 대중할 수 없었다. 혹 집안사람있는데서 눈이 마주칠라치면 큰 실수라도 하는것 같이 얼른 외면해버리니 수줍다할가 소심하다할가 아니면 담약하다할가. 세세대대 내려오며 지켜온 가풍은 아름답고 영리한 소녀로 하여금 이같이 이성에 대한 추구를 달리는 감히 표달할 수 없게끔 이끌면서 그를 순박한 감정에 머물러있게 하고 있었다.     유만진이 한번다시 다커투는 잠잘데가 아니라해놓고는 저리로 가버렸다. 민호가 그럼 어떻게 할가고 우유부단하자 니항군청년이 모기가 아무리 많아 성화부린들 참지 못할 지경이겠느냐면서 민호보고 마음내키지 않면 혼자 그냥 방안에서 자거라 나는 아무튼 그 다커투에 올라가야 잠을 편히 잘것이라 주장을 고집했다.     츄얼이가 그의 말을 알아듯기나한것 같이 힐난쪼로 권고했다.    《쓸데없는 고집을랑 작작부려요. 모기성화에 어떻게 배긴다구요, 원. 인내력좋은 용사도 아니면서.》    《뭐라, 우리가 인내력좋은 용사도 아니라?》     민호는 츄얼이가 내던진 마지막말구에 그만 약이 올라 총알도 당해냈을라니 그깟 모기가 다 뭔가 올라가 자자고 했다.     다커투안은 고기그믈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에 푹 절어있었다. 이 절음속에서 땅거미가 지기 바쁘게 마치도 수만개 미형의 비행기가 뜬 것 처럼 사람의 귀를 멍먹케 하는 동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모기들이 성찬을 만났다고 기뻐하면서 왁 달려들었다. 엑크, 이거 큰일났구나! 두 청년은 사나운 모기떼를 쫓아보내려했다. 허나 근본 그렇게는 못할 것이였다. 그들은 아예 궁둥이를 딱 붙이고 앉아 모기가 살가죽에 침을 밖는 족족 때려잡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결사적인 소탕전을 벌린것이다.     그러기를 근 한시간. 모기소리는 차츰 뜸해갔다. 그래도 사람이 이긴것이다. 고기그믈을 꿍쳐 베고 누운 민호는 다커투에 평화가 깃들자 잡초롬히 생각에 잡겼다. 부모님들은 모두 무사하신지? 큰형은 병이 나았는지? 누나들은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그리고 전사한 전우와 갈라진 여러 전우의 몰골들이 하나한 떠올랐다....     가까이 어디선가 쿵캉지소리 들려온다. 맑고 은은한 그것은 분명 서정이 유달리 짙은 어떤 연가(戀歌)였다. 민호는 내내 상념에 잡초롬히 잡혀서 그 소리를 귓등으로 흘렸건만 니항군청년은 두귀를 몹시 강구고 들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신경을 오리오리 끄당기는 그 구현금소리가 그를 점점 몽롱한 애정환상세계로 넋을 달리게 만들었던것이다. 저건 누가 부는걸가? 가싼다의 둘째아들, 아니면  방학이 되어 돌아온 그 서생이?...  그도 아니면 츄얼이?... 참 고 계집애 뉘기의 색시감인지 애닯게도 여기를 못벗어나니 흙속에 묻혀진 진주야. 츄얼이를 처음대하던 순간부터 가슴놀이 뛰였던 최기덕이라 미묘한 쿵캉치소리를 듣노라니 오늘다시 괴로울지경 야릇하고 엉뚱한 정욕의 시달림을 받기시작했다.     그 구금(口琴)소리는 끊지 않고 그냥 그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최기덕은 견디다못해 끝내 소변을 볼것 처럼 슬며시 다커투를 내려왔다. 그리고는 마치도 어린애가 황홀한 무지개에 끌리듯이 소리나는데를 더듬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집채의 동쪽에서 나고있었다. 기덕이는 그리로 가보았다. 구새통뒷쪽으로해서 지붕아래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구현금소리는 바로 그 속에서 나오고 사닥다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람이 다가갔건만 악기소리는 멎지 않았다.     도대체 누굴가? 기덕이는 사닥다리의 가로장을 한층한층 밟으면서 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 오르자 안쪽을 살피느라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악!》     쿵캉치를 불고있던 츄얼이는 어둠속에서 웬 괴한이 불쑥나타나는지라 어마지두에 악연하여 비명을 새되게 내질렀다.     그바람에 이쪽도 초풍할 지경 놀랬다. 최기덕은 그통에 그만 사닥다리를 허망짚어 나떨어지면서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집안에서 잠들고있던 사람들이 달려나왔다. 다행히 기덕이가 먼저 다락에 바라올라가 숨은 뒤였다. 정민호도 정신차렸다.    《네가 어찌된거냐?》    《......》     이쪽은 그저 벙어리 발등앓듯 끙끙거릴뿐.     그가 함구무언이라해도 민호는 사태의 진상을 제꺽 알아맞히고 주먹으로 친구의 잔등을 철썩 갈겼다.    《에잇, 민충이같은 녀석! 넌 어쩌면....》     그는 또 목구멍밖으로 튀여나오려는 욕지걸이를 꿀꺽 삼키고나서 웃어버렸다.           기덕이는 이틑날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했다. 유씨네는 둘중 하나가 아침먹으러 오지 않은것을 보고 간밤사건을 발생시킨 장본인이 누구라는걸 대뜸알아맞혔다. 민호는 친구를 대신해서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간밤에 내 친구가 묘한 악기성에 끌려 그걸 찾아가다보니 그만....》    《그랬겠지, 아무렴 무람된 짓을 했겠나.》     가싼다 유만진은 자도 모자랄 때가 있고 치도 넉넉할 때가 있을라니 사람이 왜 실수를 할 때가 없겠는가 하면서 달리 생각하지 않을테니 너무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가 이같이 너그럽게 대해주니 고마웠다.     주인마누라는 라라부다 한그릇을 딸에게 주어 얼굴을 감추고있는 청년에게 가져가게 했다.     기덕이는 그녀를 대하기가 부끄럽거니와 미안하기도해서 머리도 바로들지 못한다.                 민호는 그러는 꼴이 더욱 민망해서 눈살을 세웠다. 주제에 일을 저지르긴 제기. 그게 과연 무의식간에 저지른 실수였더냐. 그걸 증명할 수 있는 뚜렷한 근거야 없지 않은가. 자신이야 해석하고 변명하지만 어쨌든 개운치가 않은 일이였다.     츄얼이가 돌아갔다.     기덕이가 그제야 머리들어 피식 웃는다.     민호는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자식이 병신같이 놀긴. 그래두 제딴엔 군인이라게지.》    《원 더러워서.》    《지청구말고 어서 먹기나해라. 굶지야말아야지.》     자기가 불민해서 일을 쳣지만 친구한케 꾸중을 들어서인지 기덕이는 입을 꾹 다문채 상판만 자주 찡그려붙였다.     민호는 그를 더 나처하게 굴고싶지 않아 뇩도 놀림말도 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해도 어리석은 한때는 있는거야. 너무상심할건 없어. 봐라, 저 계집애가 너땜에 넋담떨어져갖구도 친절을 보이잖니.》    《그래서 그러는게 아니라 어이구.... 》    《그럼?.... 너의 얼굴이 왜 괴상이되니?》    《엉치아파서.》    《뭐라? 네가 엉치깨진거아녀? 어디보자.》     기덕이는 엉덕짝에 민호의 손이 닿이자 아프다고 아부재기를 쳤다. 그통에 민호는 더럭 근심이 생겼다. 이 마을에 골과의사가 없을텐데 저치가 과연 엉덩이가 깨졌다면 어쩐다? 친구가 이틑날도 다커투를 내려가지 못하게 되다 유만진이 일부러 보러왔다. 동통이 심해 잔뜩 오만상을 찌푸리고있던 기덕이는 그를 대하자 신음소리를 죽여가면서 면구스러워했다. 유만진은 그가 사닥다리에서 떨어져 엉덩이를 깼다는 걸 알고는 두 젊은이를 향해 몸이 다 춰설때까지 어려워말고 자기네 집에 지긋이 눌러있으라했다. 그러잖아 무의무탁한 신세로 돼버린 그네들인지라 그의 말이 덕담같이 들렸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면 체면이 있어야잖는가. 이틑날 둘은 시르맨커로 자리를 옮겨 나쟈네를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어래무하천을 따라 아느새 아래로 내려가노라면 동쪽켠에 갈대와 장포와 부들들이 가득섞여 자라는 자그마한 늪이 하나 나지는데 그 늪이 시내와 이어진 합수목가까이 약간 둔덕진데에 유씨네 자그마한 시르맨커가 있었다. 땅을 반남아 파고 흙벽을 쌓아 낮다랗게 지은 그것이 고종할아버지때 벌써 거기에 자리잡았다니 생긴지가 근 한세기나 되는거다. 그사이 여러번 개수되면서도 자리는 한치도 드티지 않았다고 한다. 운이 달아날가봐.     나쟈는 살림도구들을 그대로 남겨놓는 외에도 자기가 타고다니던 우머르천까지 주었다. 그는 두 조선젊은이가 먹거리를 제힘으로 자립하겠다니 털낙시며 주낙시며 작살이며를 주었고 투망(投網)도 갔다주면서 그걸 다루는 방법까지 차근히 배원주었다.    《작살은 이렇게 씁니다. 봄에 새풀이 자라나 잉어가 교배할 때 우머르천을 빨리몰고가서 살금살금 가만히 접근한 다음 그놈을 잘 견주었다가 뿌리지요. 맞은 놈은 작살을 끌구 달아납니다. 그러면 작살에 감은 줄이 풀리고 그놈은 얼마못가서 히뜩 번져지지. 초어는 우리네 말루서 쿼러라구 하는데 그놈은 강변으로 나와 갈대나 쪽잎을 먹을 때 잡지요. 그놈은 풀잎을 입에다 넣기만 하면 제꺽 물밑으로 들어가지. 그래야 입에다 문것이 대에서 끊어질 수 있으니까. 작살은 고기가 그렇게 풀잎물고 물속에 들어가느라 배때기를 해뜩 뒤집는 순간에 뿌려야 하는거요. 그리구....》     나쟈는 겨울에 얼음구멍을 내고 작살로 고기잡는 방법까지 일일이 배워주면서 재간이 숙련치 않으면 자칫 사람이 딸려들어가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줄을 알라했다. 허저인들이 고기잡는 방법과 수단은 과연 많기도하거니와 묘하기도했다. 그네들의 경험을 모아 집필한다면 아마 위얼던이 쓴 보다 못지 않은 훌륭한 공구서적이 만들어질것이다.       어느날 청량이가 둘째형 린화와 함께 시르맨커로 놀러왔다. 이제 며칠만 더 있다가 학교로 돌아갈텐데 가는 날 두 손님이 혹시 막을 비우고 멀리 나가면 보지도 못할것 같아서 미루시 찾아왔노라했다. 고마웠다.     마침 아침에 그믈에 걸린 5근은 실히 나갈 잉어가 한 마리있길래 민호는 그놈을 갖고 한번 솜씨를 보여주리라했다. 그는 먼저 고기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버린 후 고기를 물에 깨끗이 씼었다. 그리고는 껍지가 상하지 않게 하면서 살점을 몽땅 발라냈다. 다음에는 발라낸 살점을 얇게 썰었다. 그것이 끝나자 발라낸 가죽을 비늘이 붙은 그대로 끓는 기름에 넣어 튀겼다. 그래놓으니 그것이 바삭바삭하게 되었다. 그런것을 부드럽게 가루내여 이미 썰어 놓은 고기에 한데 넣고 거기다가 초며 고춧가루며 소금이며 조료들을 알맞게 넣어 버므렸다.     아니 어쩜 이리도 맛좋을가! 유씨네 두 아들은 저희들의 구미에 맞는지라 조선사람의 조미솜씨도 놀랍다고 입을 딱 벌리였다. 민호는 시무룩이 웃기만하다 자기는 소시적에 벌써 아바지한테서 회를 만드는 솜씨를 배웠노라했다.     그들이 점심을 다 먹고나서 시르맨커의 앞내가에 있는 아름드리 백양나무아래서 땀을 드리고있는데 동강진(洞 江鎭)에 산다는 쌀만 둘이 배를 타고 어래무하를 거슬러 가고 있었다. 린화가 보더니만 그들은 지금 호장경의 네편네가 여러해되도록 임신을 못하고있으니 초혼굿이라도 해보자고 청하는모양이라했다. 쌀만이 굿을 해서 불임녀를 잉태시킨다니?.... 금시초문이라 민호는 웃음만나갔다. 기덕이는 말짱 미신쟁이들이니 언제가야 머리가 트겠느냐며 비웃었다. 한들 그게 무슨소용있는 소린가. 민족마다 저의 신앙이 따로있는데야. 조선족도 한얼님의 단군교를 지금은 대종교로 개종하여 신앙하고있는게 아닌가. 물론 쌀만교와는 성질이 완전히 다르긴하지만 그역시 신교(神敎)가 아닌가. 쌀만교를 신앙하는 허저인들은 무릇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다가 귀신이 붙어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연에서 바람은 바람신, 비는 룡신, 우레는 우레공, 번개는 번개할미, 산은 산협신.... 미신적인 공포심이 자유적인 욕망과 선택권리마저 압살하여 온순한 인간을 무지하고 몽매한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린화는 저 쌀만이 불임녀를 정말 잉태시키는지는 몰라도 웬간한 병은 고친다고 칭찬하는것이였다. 정녕 그렇다면야 그가 의술을 좀 갖고있겠지 하고 민호는 생각했다.     아무튼 좋은 기회였다.          이틑날 쌀만이 동강진으로 돌아가느라 여기를 지나게 될 때 민호는 그를 꼭 잡았다.     《여보시오, 잠간만!》     물에 낚시를 넣고 앉아서 기다리고있던 민호는 그들이 가까이에 오자 엉거주춤 일어나 소리쳐 부르고는 털썩 주저앉으면거 않음소리를 냈다.    《왜 그러나?》     둘중 나이 젊은 쌀만이 다가오며 물었다.     이쪽은 대답대신 알음소리만 더 내면서 엄부럭떨었다.    《어째서 그래? 말을 해야 알지.》     이번에는 낮가죽이 고목같이 메마르고 주글주글한 늙은 쌀만이 물어왔다.    《쌀만님! 전 엉치깨졌어요. 열흘이 돼요.》    《엉치가 깨졌단말이지. 엉치라.... 어떻할가유?》     젊은 쌀만이 늙은 쌀만의 얼굴을 살피면서 하는 말이였다.        《이꼴보구서야 그저갈수 없지.》     늙은쌀만이 하는 이 한마디에 굿장소가 정해졌다. 그 둘은 꾸러미에서 각각 제가 입을 귀신옷을 찾았다. 가슴과 뒷잔등에 동그란 구리거울이 달리고 허리띠에 자그마한 퉁방울이 조롱조롱 달렸으며 량팔에는 푸커춘, 어치와, 싸카라 세가지의 귀신을 나타내는 패쪽을 각각 달았다. 그리고도 두사람 다 무릎아래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흰천오리 여러개가 달려있는, 마치 엎어놓은 사발같은 검정비단모자를 머리에 썻다. 모자의 꼭대기에는 긴 새털이 꼿혀있었다.     늙은 쌀만이 먼저 얇고 너부죽한 타원형의 모양없는 귀신북을 손에 잡았다.     젊은 쌀만이 꼬챙이같은 손가락을 꼬부렸다폈다 하면서 사람을 다루었다.    《여기루 와! 자, 여기루!.... 앉아, 앉으란말이야!.... 옳지, 그렇게!.... 허리를 쭉 펴구!.... 》     민호는 길들인 강아지모양으로 시키는대로했다.     젊은 쌀만은 뒤에서 두손을 민호의 어깨우에 올려놓았다.    《둥! 둥! 》     늙은 쌀만이 북을 두드려댔다.    《잘랑! 잘랑! 》     북소리에 뒷따라 방울소리도 한바탕 요란스레났다. 굿이 시작된것이다. 쌀만의 첫거리가 부정을 치는 것이였다. 늙은 쌀만은 북소리를 높이기도 낯추기도 혹은 길게도 짦게도 내면서 주위를 빙빙 돌아쳤다. 그러면서 병귀신을 쫓아내는 주문을 중얼중얼 외워대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다가 때론 미쳐난 사람모양으로 눈알을 까뒤집었다. 그러면서 두발을 엇바꿔가며 무언가를 차버리는 시늉을 하는지라 그가 과연 귀신이 아닌가싶을 지경이다. 그가 선자리에서 뱅그르르 돌때면 길다란 천오리와 옷자락이 따라서 발광하듯 너풀댔다.     민호는 현훈증이 날 지경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늙은 쌀만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뇌이자 젊은 쌀만이 무어라 응대를 하고는 민호의 엉덩이를 슬슬 만지였다. 민호는 간지러워 겨우참았다. 젊은쌀만이 왝 소리를 지름과 함께 툭 쳤다. 그통에 벌떡 정신차리고 보니 늪쪽으로 낚시질을 갔던 기덕이가 저쯤에서 두눈이 화등잔같이 되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민호가 제 엉덩이를 만지며 일어서자 젊은 쌀만이 까치알만하고 색깔이 누르끄레한 귀신약 세알을 주면서 한알을 제몫은로 똑같게 나눠 하루에 한알 씩 9일동안 먹으라했다.    《하하하!.... 》     그들이 가버리자 민호는 가가대소했다.     최기덕은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 굳어진채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민호는 어정쩡해있는 그한테 손에것을 보였다.    《엣다, 네먹을거다. 아마 골절을 치료하는 약인모양이다.》          어느덧 8월도 다가고있었다. 하건만 산꽃은 이것이 지면 저것이 또 폈고 풀내음은 내내 흐드러졌다. 이러다도 별 기별도 없이  갑작스레 바뀌는것이 여기의 계절이였다.     청량이가 의란으로 돌아간지 며칠안되여 어느날 아침 나쟈가 문득 시르맨커에 나타났는데 어딘가 황황한 낯빛이였다.    《어디루 가지들 않았구만!》    《왜 그럽니까? 》    《사람하나 잃어졌소.》    《언제요?》    《그저께 사냥을 나갔다는 사람이 여적지 돌아오질않소.》    《그러면야 어디 멀리갔겠지요, 뭐. 우리도 나가 찾아볼까요.》     《찾느라말고 맘대로 나가지나말아주시오. 보다싶이 쩍하면 일어지는 판이니 원.》     나쟈와 민호사이에 오간말이다.     성이 정씨인 중년의 사람이 마을에서 아직 입산제도 지내지 않았는데 남먼저 짐승을 한 마리라도 더 잡아보려는 욕심에서 산으로 들어다 그렇게 됐다는것이다. 재작년그러께도 이같은 일이 발생했었다. 그때는 두사람이 먼저 산에 들어갔다가 실종된것이다. 그런것을 지난해겨울에야 찾아냈다. 심산에서 해골 둘이 발견됐는데 전해에 실종된 그들이 분명했던것이다. 모두들 분석한 끝에 그건 십중팔구 토비들이 한 짓이라 짚었다. 근년들어 이러한 불상사가 자주생기고있는데 사자는 다가 허저인이였다.    《토비! 과연 씨알머리를 없애야 할 악당이로구나.》     민호는 그들이 략탈과 살인을 서슴치않고 감행한다는것을 상기하니 전신만신이 떨려났다.     초가을이 되자 손님들한테는 비밀에 붙이고있던 유씨네 큰배가 다 만들어졌다. 조선장은 마을의 남쪽 어래무시내가 굽이진 곳이였다. 어래무마을의 허저인들은 그 어느집에서든 배를 만드는 기 ...............................................................................................................................     *쿵캉치ㅡ구현금(口弦琴)의 일종. 자그마한 원형의 테에 얇다란 강철판을 끼워 입에 넣고         불면 청이 떨리면서 음을 낸다.        *멍건ㅡ멍거라고도 하는데 로씨야의 아마실로 뜬, 간격을 일정하게 두고 가운데 동그란         후리테를 여러개 넣어서 모양이 길다란 팔소매같이 만든 주머니그믈.        *우머르천ㅡ봇나무껍지로 만든 길이가 둬발가량밖에 안되는 작고 가벼운 배.        *쌀말ㅡ쌀만교의 남자무당. 쌀만교는 귀신을 숭배하고 자연을 숭배하며 만물은 다가 혼이 있다고 믿거니와          귀신이 그것을 주재하는 것으로 보는 원시종교임. 간 소문내는것을 싫어하거니와 특히는 부정한 녀인을 포함해서 외지사람이 보는것을 꺼려 방비하는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었다. 새 배를 꼭 만들어야 하는 집에서는 겨울에 재료감을 장만해서는 직접 조선장에 가져다 3년가량 보관하면서 우선 잘 말리운다. 그런다음에는 기술이 좋은 사람을 청해다 배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주인은 배가 다 완공될 때 까지 그를 성의껏 대접하거니와 보수도 후하게 준다.     유만진은 배만드는데 거진붙어있다보니 이해 여름철고기를 많이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새배를 몰고 나타나니 그의 식솔들은 물로 온 마을사람이 기뻐했다.     민국초부터 흑룡강과 송화강에는 바로 유씨네 배와 같이 23자 선체의 길이에 모양이 새로운 목선이 나타났다. 이 배는 량끝이 건뜩 들리고 형체가 신처럼 생겼다하여 획혜(劃鞋)라 지은것이다. 부식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배의 걷면은 검은 뼁기칠을 했다. 배의 중간은 덮개가 있어서 빗물이 배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어떤집에서는 백포로 두겹풍을 만들어 덮개로 하기도 하는데 목적은 비를 막는데도 있지만 잠을 자기 위해서다. 어떤 배에다는 두사람쯤은 얼마든지 자고 밥도 지을 수 있게 접이널실을 만들기도했다. 이번에 만든 유만진이네 배가 바로 이러했다. 이 배는 모두 다섯칸이였는데 앞쪽의 첫칸은 고기를 넣는 칸이고 두 번째 칸은 돛칸이며 중간에 위치한 큰칸은 침실이고 네 번째칸은 화식칸, 맨뒷쪽칸은 노군이 발을 딧고 서는 칸이였다. 뒤에서 쌍노를 젓는 사람은 배가 전진할 방향을 얼마든지 맘대로 잡을 수 있게 되어었다. 이런 배는 그믈을 치거나 낚시를 늘이거나 운수를 하거나 다 편리했다.     어래무마을에서는 집집이 자기의 고기잡이구역을 갖고있었다. 그렇지만 봄, 가을 고기잡이철이 돌아와도 태평굿행사가 있기전에는 맘대로 고기잡이를 나갈 수 없었다. 그 태평굿이 이네들에게는 그같이 중요한 행사였던것이다.     이해의 태평굿행사가 끝나자 백로가 당장이라 연어를 잡아야 했다. 그래서 어느집이든 다 나섰다.     연어란 이 방추형의 몸에 길이가 근 70cm나 되는 맛좋은 고기는 해마다 백로를 며칠간 앞두고 딸따르해엽으로부터 흑룡강의 여러 지류로 거슬러 올라 모래바닥에다 알을 쓸른다. 물론 흑룡강과 합류하는 송화강을 올라가서도 역시.     맨먼저 올라오는 연어는 살찐 놈인데 무계가 보통 20여근씩 나간다. 두 번째로 올라오는 연어들은 10여근씩 나가는것들인데 대부분 이발이 돋아난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올라오는 연어들은 먼저것에 비해 여윈것들인데 무계는 보통 7근씩 나가고 이발은 낚시모양으로 꼬부라졌다. 이렇게 올라온 연어들은 수원에 이르러서야 더 갈 념을 하지 않는다. 해마다 봄이 돌아와 해동할 때면 얼음장밑에서 얼어죽은 연어가 숱하다. 이같이 연어는 강에서 나서 바다에 가 살다가 다시 강에 돌아와 일생을 마치는 귀한 물고기다. 모양이 오동씨같은 연어알은 영양가가 아주높다. 그래서 누구나 철을 놓지 않고 잡으려하는것이다.     나쟈가 린화를 데리고 연어잡이에 쓸 곤조(滾釣) 여러틀과 미끼로 쓸 두병(豆餠) 그리고 아징줘푸구작살(주)을 배에 싣고 시르맨커로 왔다. 배에서 사는 쥐가 선창에서 먹이를 찾듯 두 젊은이도 생로를 달리는 찾을 길 없었다. 하여 고기잡이를 같이하기로 약속이 있은거다. 민호나 기덕이나 다가 이럴때 제 리익같은걸 따지는 감바리가 아니였다. 그들은 그저 유씨네가 하자는대로, 수익은 노력을 들인것만큼 나누어가지리라했다.    《고기잡이를 할 때는 말일세. 제발 괴상한 소릴 말아주게.》     나쟈가 사나이답게 시원한 태도로 먼저일러두었다.    《까다로운 걸.》     민호는 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조선말로 웅얼거리곤 웃었다.    《또 어찌랍니까?》    《거짓말을 하지 말게.》    《건 왜서요?》    《그런다면 신령을 노엽히게 되네.》    《허참! 그리구는 또?》    《몇가지 더 있네만 자네들하곤 상관없는거니 말않겠어.》    《아니 말해보시오, 들읍시다.》     민호가 굳이 들으려 하니 나쟈가 입을 다시연다.    《젓빠는 애가 있는 어미나 사타구니에 뻘건 것이 묻은 계집은 아예 배에 오르지두못하네. 그러니 더구나 어장에야....》    《그러니까 엄금한다 그겁니까? 왜서요?》    《재수가 붙지 않아 고기가 잡히지를 않으니까 그러지.》    《그리구 또 어떤 금기가 있습니까?》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중 누가 만약 집에 상사가 나졌다면 그런 사람은 우선 그믈을 널어 말리울 자리에다 모닥불을 피워놓구서 그 위를 건너가야하는거네. 물론 그거야 어장에 가서지. 그래서 독기를 빼버리는거요.》    《그리군 또?》    《그리구는 더 없네.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을거야.》     한데 웬 일인지 그들은 유씨네 어장에 간지 닷새가 되는데도 연어는 커녕 잡고기도 얼마잡지 못했다. 기덕의 말과 같이 미신쟁이들이니 정말 개코같았다.       그들은 강변에 지은 춰러안코우(주)를 뜯고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을 배에 다시주어 싣고는 썩 아래로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합수목이거나 수심이 깊은 무원(撫遠)저쪽에 고기가 많이 모일것 같았다.     동강진을 지나서 그 아래 가진구(街津口)에 이르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기덕이가 어장을 떠날 때 덤비다나니 춰러안커우를 뜯어 실으면서도 자기의 세면도구들은 버리고 와서 배를 잡간 기슭에 대이게 되었다. 거기에는 그곳의 허저인어부들과 한인(漢 人)의 배 여러척있었다. 마침 강변에 널집을 자그마하게 지은 잡화점이 있었다. 기덕이는 세면도구사러 마을까지 들어가지 않게됐다.      한데 그들은 여기서 불퇘한 소식을 얻어듣게 되었다. 한 허저인 어민이 자기는 방금 무원에서 돌아왔는데 그 아래의 어장에서 한인과 허저인 로씨야인 세종족어민들 사이에 자리다툼이 생겨 나중에는 류혈적인 란투까지 벌어졌다는거다. 그 허저인은 정부가 무능해서 관리를 못해낸다면서 불만이 잔득했다. 과연 그러하다면 어떻게 할까? 이쪽은 의논이 많다가 나중에는 그래도 가봐야 한다, 여기까지 와갖고 그저돌아갈 수야 없잖은가고 의견이 하나로 모여지게 되었다.     이때 맥고모를 쓴 얼굴이 말쑥한 30대의 젊은이가 다가와 배를 구경하면서 린화와 너희들은 어디사람이냐, 배의 임자는 누구냐고 시탐했다.     민호가 무심결에 얼굴을 돌렸더니 저쪽에서 다른 한 사나이가 이켠을 넌지시 보면서 흉증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히 다시금 눈을 주어 여겨보게 되였는데 그자는 나이도 있거니와 한쪽눈둔덕과 이마에 칼맞은 흉터가 유표해서 아주감사나와보였다.           배는 돗을 올린채 그곳을 떠나 계속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원에 이르러 보니 한밤중이 되었다. 한데 이곳역시 고기잡이군들이 숫해모여들어 배마다에 걸어놓은 등불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여게 과연 연어가 잡히는 모양인데 우리도 손써보지.》     나쟈는 배를 더 몰지 않고 한곳에 이르러 닷을 내리여 자리잡았다. 여긴 서남쪽에서 흘러내려오는 한갈래의 자그마한 강물이 더 합쳐지고있어서인지 본래 수량이 대단한 흑룡강이 마치도 바다같이 넓어보였다.     이틑날 정오가 거진되여 올 무렵에 사람셋을 태운 쪽배 하나가 이쪽에 접근하고 있었다. 모두들 그것도 고기잡이배거니 하고 별로 주의하지 않았다. 한데 그 쪽배가 바투다가와 옆쪽을 스치는 순간 저쪽으로부터 놋대가 갑작스레 날아와 획혜배의 고물에서 키를 잡고있는 린화를 답새겨 강물에 처박았다. 그리고는 쪽배에 있던 세녀석이 마치도 굶주린 승냥이같이 일제히 이켠 배에 뛰여올랐다. 친구와 함께 그믈을 사리고있던 민호는 미처 대항도 못해보고 억센 팔에 밀려 강에 떨어졌다. 친구역시 그러했다. 나쟈혼자 배우에서 그자들과 일장의 격투를 벌리였다. 하지만 그역시 얼마맛서지 못한채 물에 꼰져박히고말았다.    《내 내배를 달라! 아, 아, 저 날강도놈들이!.... 》     아래로 떠내려가는 쪽배를 간신히 붙잡고 거기에 오른 나쟈가 자기배를 빼앗아 가는 놈들을 향해 고함쳤다.     그가 그러고있는 사이 민호는 놋대에 맞아 혼미상태가 된 린화를 물속에서 건지여 그 쪽배에 올랐고 기덕이도 허우적거리다가 배전을 잡고 간신히 올랐다.     백주에 강탈을 당하다니 원! 기구멍막히는 일이였다.    《이놈들아, 내 배를 달라!》     나쟈의 맥빠진 애원성이 그냥났다. 복장이 터지는 일이라 그의 몰골은 고통과 분노에 일그러져 있었다.    《돌탕쳐 죽일 놈들, 네놈들을 붙잡으면 각을 찢어놓을테다!》     민호는 주먹을 부르쥐며 분노를 내쏟았다.     눈썹에서 떨어진 재화였다. 그들은 린화를 둘쳐업고 무원으로 들어갔다. 무원은 동강보다도 인가가 적은 자그마한 진(鎭)이였지만 그런대로 의원이 있었고 찾기도 쉬웠다. 그래 뵈였더니 린화에게 뇌진탕이라는 진단이 내렸다. 다행히 생명은 잃지 않을 정도였다. 한데 그곳의 의료설비란 말이 아니였다. 의사라해도 그저 침질이나 좀 알고 첨약을 대수지어 줄 정도의 건성꾼인것 같았다.     어설픈 의사가 사람죽인다고 했다. 구급이 좀 되는것같으자 민호는 나쟈와 기덕이보고 들것을 장만하라했고 그것이 다 되자 곧 거기를 나와버렸다. 동강진에 들려서 거기 의사를 보일타산이였다.     한데 이건 또 웬일인가? 강변에 돌아오니 손에 몽둥이를 든 장정 댓이 험상한 몰골이 되어갖고 그들을 맞이하는게 아닌가.    《야 이 도적놈들아!》     그들은 이쪽을 발견하자 웨쳐대면서 다짜고짜 달려들려다가 부상자가 들것에 누워있는것을 발견하고는 주춤거렸다. 대체 어떻게 된건가? 해석은 간단했다. 략탈자들은 남의 쪽배를 훔쳐타고 유씨네 배를 뒷쫓아왔던것이다. 이제야 여기서 잃어진 제 배를 찾게 된 이 한족들은 가진구에서 왔다고 한다.    《가진구? 바로 그놈들이였구나!》     민호는 댓바람에 두녀석을 상기했다. 략탈자는 틀림없이 맥고모를 쓴 자와 상판에 흉터가 있는 놈의 패거리였다. 어제 가진구에 들렸던 일과 배를 략탈당한 과정을 말하고 그 두놈에 대해 물었더니 쪽배임자가 하는 말이 자기는 맥고모를 쓴 녀석밖에  모른다면 ...............................................................................................................................   * 곤조ㅡ산동(山東)에서 나는, 12호철사로 길이 5치가량되게 하고 끝을 비틀어 구불렁하게 만든, 제작과정이 복잡한 질좋은 낚시. * 아징줘푸구ㅡ손잡이가 있고 말초리를 꼬아 감은 송목가지자루를 맞춘, 중간 긴 가닥은 미늘이 네 개고 량켠 짧은가닦은 미늘이 각각 세개씩인 넓적한 네가닭 큰 작살. 황어나 연어같은 큰 고기를 잡는데 쓴다.  * 줘뤄안커우ㅡ고기잡이를 할 때나 사냥을 나갔을 때 림시로 들게끔 만든 위가 뾰족한 막. 서 그는 집이 여기 이 무원에 있는데 이름이 가철군(賈鐵軍)이고 소문난 망나니라 알려주었다. 아문에서 미관말직을 하고있는 가철군의 애비는 씨받이가 하나뿐이라고 너무나 함함하게 자래워 나중에는 후레아들로 만들고 만 것이라 한다.     임자가 나졌으니 쪽배는 의례 돌려줘야했다. 유씨네는 새배를 잃고 아들까지 상했으니 설상가상으로 재난이 덮친셈이다. 린화의 어머니는 억울하고 기막혀 가슴을 쮜여 뜯었고 아버지는 배야 다시만들면 되지만 이러다가 덕대같은 아들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참척(慘傶)을 보지 말아야지 이게 그래 무슨놈의 팔자란말이냐 하면서 한숨을 길게 뽑았다.     빼앗긴 배를 찾아와야한다. 백주에 그같이 작경을 노는 오만무례한 강도놈들을 찾아내여 결판을 봐야한다. 어래무로 돌아온 이틑날 마을청년 몇을 더합해서 두패로 나뉘여 무원아래와 우쑤리강연안까지 써캐훑듯했다. 그랬지만 잃어진 배는 종적이 없었다.         
396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 댓글:  조회:2430  추천:0  2015-02-03
     주인공 정민호는 1921년 6월 28일, “자유사시사변(흑하사변이라고도 함)” 때 흐룡강에 뛰여들어 다른 한 독립군과 함께 생사를 헤매다가 4일만에 한 허저인어부의 손에 의하여 구원, 그곳에서 허저인 세습향장의 딸과 결혼, 임신한 몸으로 원쑤에게 랍치된 안해찾으러 떠났다가 그만 북만의 유명한 염왕산 토비ㅡ 위삼포손에....    전기적 색채를 띤 소설은 스토리가 매우 굴곡적이다. 허저인의 풍속과 토비들의 생활은 허구가 아닌 사실그대로다. 작품에 나오는 할빈, 가목사, 의란, 밀산, 당벽진, 가진구 등 북만 지구의 지명들도 모두 그대로이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력사의 갈피속에 묻혀있는 하나의 신비스런 세계를 독자들은 보게 될것이다.                           장편소설              관동의 밤                                               김송죽                           1              끝내 싸움이 붙고야말았다. 정면에서 기병이 달려들고 좌우량켠에서 보병이 사납게 접어들었다. 수류탄이 요란스레 작렬하는 속에 기관총이 울부짖었다. 마치 긴 쇠사슬이 콩크리트바닥에서 발광하듯 딩굴면서 끌려가는것만같았다. 그러던 기관총이 갑작스레 멎고 이번에 터지는건《우라!》웨침소리.     결사적인 반격도 소용없었다. 이쪽은 끝내 버텨내지 못하고말았다. 결정적인 패배를 의미하는 그 모양은 마치도 흉흉한 홍수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마는 토답같이 무기력하고 처참했다.     방금전만해도 제법 완강해보이던 부대가 이렇게 갑작스레 붕괴되다니! 전사들은 총탄에 쓰러지고 말발굽에 밟히우고 포탄에 동강났다. 그리고 그래도 포로로는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혈로를 뚫으려고 결사적인 발악을 했다. 하지만 이제 어디로 더 간단말인가. 앞에는 물결세찬 흑룡강! 간신히 이곳까지 다달은 이들은 하는 수 없이 총을 팽가치고 강물에 뛰여들었다....     이같이 죽을 고비에 들어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속에 나젊은 한국독립군전사 정민호도 끼여 있었다. 때는 1921년 6월 28일. 이것이 바로 조선의 독립운동사에 비극으로 기록을 남긴《자유시사변》인것이다.     다른 어디로는 퇴각할래야 퇴각할 수 없어서 강에 뛰여든 정민호는 대안인 중국쪽을 향해 죽을 둥 살 둥 헤염쳤다. 한데 강을 건널 재간이 없었다. 이 강은 그가 엽때것 건너본 여느 강과는 퍽 달랐다.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깊거니와 대단히 널다란 강이였던것이다. 허 이걸 어쩐다, 자칫 물귀신이 되어 고기밥으로 되고말겠구나. 정신차려야지. 기운을 내자, 기운을! 앞으로 전진하자, 앞으로! 정민호는 모드레를 짚어 강을 건느려다가 몸을 해뜩 뒤번지고는  두팔로 후리질을 했다. 하지만 흐름이 거센 강물은 그를 삭정이같이 아래로 아래로 밀어갔다.  꼭 마치도 가지고놀기라도 하듯이.     그런다고 맥을 버리랴. 멀지 잖은 앞쪽에서 또 다른 하나의 누군가 대안을 향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저치만 따라간다면 이 강을 건널수 있겠구나. 그는 오로지 죽지 말고 살아야한다는 그 하나의 집념뿐이여서 젖먹던 기운까지 다썼다. 한데 앞에서 헤염치던 젊은이가 얼마못가서 마치 숨박꼭질을 하듯이 물속으로 몇 번 들어가더니만 다시올리솟지를 못한다. 나역시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의식이 갈마들자 민호는 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에, 바로 명재경각(命在頃刻)에 다달은 이때에 하늘이 내려주는 구호신(救護神)인양 무언가 검스레하고 길다란것이 우로부터 떠내려오고 있었다. 오, 한얼님! 죽을 수가 닥치니 살 수가 생기는구나! 물에 빠진 놈 짚오라기라도 잡는다고 정민호는 혼신의 악을 다 써서 마침내 그것을 잡았다. 그것은 아름드리 통나무 두 개를 꺽쇠로 무어놓은것이였다.     정민호는 그우로 간신히 기여올랐다. 분노와 격분으로 하여 간에 불이 붙고 결장이 터지는것만 같으던 그는 내가 이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나자 이를 갈면서 저주담긴 욕설을 퍼질러댔다.    《더러운 자식들, 제편끼리 싸우다니 원! 사람웃긴다, 사람웃겨! 싹 되져라, 싹 되져! 빌어먹을 개자식들아!》     바로 이 시각에 박일리아의 싸할린의용대는 로씨야의 볼세비키군과 배합한 흑룡주 오하묵의 자유대대의 손에 풍비박산이 되고만것이다.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 어쩌면 이럴수가?..... 응당 원쑤에게 돌려야 하는 총끝을 제편의 가슴에다 견주다니?.... 이게 대체 무슨놈의 꼴인가. 같이 손잡고 내나라를 빼앗은 일본놈을 몰아낼 궁리는 안하고?.... 너무나도 저주롭고 통분한 일이였다.     이것은 청산리싸움을 치르고나서 만주에 있던 여러 독립군이 공동작전을 요망해 로씨야로 건너가자 군권을 장악해보려는 그곳의 불순한 야심가들의 암투로 인하여 빚어진, 그야말로 동족상잔의 수치스러운 비극이였다.           통나무는 살같이 아래로만 떠내려갔다.     이때였다. 다른 하나의 가련한 손이 그의 몸을 싣고 달리는 통나무에 간신히 와 닫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팔을 뻗힌 정민호는 그의 손목을 얼른 잡아당겼다. 그통에 통나무는 하마터면 뒤번져질번했다. 무거운 버들단같이 끌려 올라온 젊은이는 배속에 가득한 물을 토하자 그만 기신없이 너부러지고만다. 이쪽은 이마에 차분히 내려덮힌 그의 머리카락을 쥐여 얼굴을 다시보았다. 전혀 생면의 젊은이였다. 자식이, 넌 니항군전사로구나. 아무튼 우린 한동포 한편이였구 신세또한 같은 놈이였어. 정민호는 속으로 이같이 뇌이면서 그가 미끌어 다시 강물에 들어가지 않도록 붙잡은채 한얼님께 제발 구해주십사고 빌었다.     정민호는 고향이 강원도 통천이다. 대를 내려오는 어부집의 자식인 그역시 여느집의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밥보다 가난의 쓴맛을 더많이 보면서 스므살을 넘긴것이다. 우로 형이 셋이였건만 둘은 병마에 죽고 큰형은 백부집에 양자로 들어가서 집에 씨받이로 남은건 그뿐이였다. 어느핸가 아버지가 간다온다는 말도 없이 어디론가 훌쩍 사라졌다. 그래서 아직은 응석부릴 나이에 먹고 살기 위해제 힘으로 무어든 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이른새벽부터 바다가에 나가 고기배를 기다려서는 그것이 오면 고기를 사 넘겨 팔거나 아니면 남의 고기밸을 따주고 푼전을 받았던것이다.     그가 13살나던 해의 여름 어느날, 집을 나간후론 종무소식이던 아버지가 느닷없이 병신이 된 다리를 질질 끌면서 다시나타났다. 한데다 그 모양새가 영 말이 아니여서 그는 물론 누나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해도 어머니만은 용케도 제 남편인걸 알아보고는 일희일경 어쩔줄을 몰라했던것이다.    《온, 귀신이 된 줄 알았던니 죽잖구 살아왔어.》    《천제님이 날 가엽시 여겼나보지.》    《그래 어떻게 됐수?》    《어떻게 될거있수. 패하구말았지. 나 원 기막혀서....》     아지는 이러시곤 마치도 어혈진 도깨비 벌물켜듯이 자배기에 있는 먹다 남은 명태국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에 알게 된 일인데 그는 그지간 채응언이 이끄는 의병대에 들어 쪽발이 왜놈침략군을 몰아내느라 목숨걸고 싸웠던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렴                  강원도 금강산 일만일천봉                              팔만구천 암자 법당에다                  산채불공말구                  외로운 이내몸을 네가 괄세를 말라.       어느날 민호가 제 친구들과 진종일 바다가에 나가 놀다가 흥얼대며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자식이 셈평좋구나, 너 그렇게 놀구멍수만 찾구서야 사람질을 하겠냐, 너마저 까막바보로 돼버리면야 이젠 누가 쪽바리놈한테 빼앗겨버린 나라를 찾겠느냐 하면서 되게 꾸짖어서 일은 그만 집어치우고 공부를 계속했던거다. 민호는 소학을 마저다니고는 이어 17살이 되어서야 서울에 올라가 큰형이 있는 백부집에 기거하면서 거기의 중앙중학을 다녔다. 한데  3.1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아쉽게도 공부를 채 하지 못하고말았다.     일제는 혈안이 되어 만세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주도는 하지 않았지만 목청이 좋아 대렬에 끼여 목청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줴쳤던 민호는 큰형과 함께 일경의 수사를 피하느라 구석진 집으로 갔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대노할줄이야.    《비겁한 자식, 그따위 쥐새끼같은 담량갖구서야 뭘해먹겠느냐. 만세를 부른다구 독립이 될건가. 왜 총들고 나가 싸울 념은 안하구서 집구석에는 게바라드는거냐.》     그래서 둘은 독립투사들이 무장항쟁을 준비하느라 운집하고있는 만주를 바라고 고향을 훌쩍 떠난건데 도보로 의주까지 오고보니 큰형 민수는 그만 급성사구체염에 걸려서 되돌아가고 민호만이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들어온거다.     마침 이때에 상해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설립되였고 만주각지에는 국민회니 군정부니 대한군정서니 대한독립단이니.... 명칭이 각가지인 독립단체들이 한창 우후죽순마냥 생기고 있었다.     민호는 류하(柳河)에 군사인재를 배양하는 학교가 섰다는 소문을 주어 듣고서는 거기에나 가볼가고 하다가 한동안 김원봉(金元鳳)의 의열단에 가담해보았고 나중에는 왕청에 가 그곳에 자리잡고있는 대종교의 무장부대이자 만주에서는 실력이 가장 큰 독립군인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입했다. 그는 지난해 10월경, 군영을 옮기느라 서일총재(徐一總裁), 김좌진장군(金佐鎭將軍)을 따라 청산리(靑山裏)산골까지 갔다가 거기서 독립군토벌을 나선 일본군과 여러날 대판으로 싸워 크게 이기고는 여러 독립군과 함께 전략적이전을 하느라고 로씨야로 건너가니 그도 따라서 건너갔다.     희망을 한가슴 가득안고서.     하지만 걸국은 지금의 이런 꼴로 되고만것이다. 과연 신수사나운 운명이 아닌가!     너부러졌던 니항군청년이 마침내 눈을 뜬다. 민호처럼 헌칠한 키는 아니지만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단단하게 생겼다. 민호가 먼저 얼굴에 웃음을 담고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봐, 대체 누군가? 우리 서로 알기나해야잖아.》    《난 최뾰똘이요.》    《뭐라, 최뾰똘이라! 그래 올해 나이는?》    《열아홉.》    《그렇겠지. 열아홉이라..... 허문야 내보다 두 살아래구나. 난 성 정가구 이름은 민호다. 건데 우리가 그냥 이렇게 내려가기만하면 어쩌나. 이러다간 바다객이 되고말텐데.》     이 말에 니항군청년은 낯빛이 몹시 어두워질 뿐 말이 없다.     흐름이 거센 이 대하는 동남방향으로 그냥 흐르다가 동강진(同江鎭)에 이르러서는 송화강과 합쳐 방향을 동북쪽으로 꺾게 되고 아래로 썩 더 내려가 로씨야 원동의 수부인 하바롭쓰크에 이르러서는 우쓰리강과 또 합친다. 그런 후 강물은 광활한 대지를 꿰지나 나중에는 오호쯔끄해로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는 무변의 바다다.     니항군젊은이는 절망하고 있었다.     민호가 입을 다시열었다.    《이거 참. 배가 등가죽에 붙는다. 곰이라구 발바닥핥겠는가.》    《......》    《일없어 절망은 하지 마. 솟아날 구멍있겠지.》     민호는 청년에게 용기를 돋구느라 이러고나서 두눈을 조용히 감으면서 중얼거렸다.     《가마히 우에 계시사 한으로 든 보시며 낳아 살리시고 늘 나려주소서.》     대종교의 원도(願禱)였다.        니항군젊은이는 눈귀로 힐꿋 보고는 낯을 돌려버린다. 속으로 넌 무슨놈의 구제비소리를 그렇게 하느냐 하는것 같았다.     민호는 매가 저 하늘높이 날아예는것을 부러운 눈으로 올려다보면서 사색에 잠겼다. 내가 만약 매로 변할수 있다면 국경너머 고향까지 훨훨 날아가리라. 집에 가면 부모님들을 만나보고 이젠 시집을 갔을 누나들과 매부들도 만나보리라. 그들앞에서 통분함을 하소하리라. 로씨야놈들의 배신과 골육상잔에 망태기로 돼버린 우리 독립군! 오 암담한 미래여!.... 감슴속에 찬건 안카까움뿐이였다.     한데 이놈의 강에는 왜서 배도 안보이는걸가?      두사람은 손바닥 네 개를 노로 삼아 통나무를 강기슭에 붙여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허사였다.     어느덧 낮이 다 가서 해가 서산너머에 떨어지자. 사위는 재빨리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일몰의 여광에 핏빛처럼 번득이던 강물도 탁류로 변해버렸다.     두 젊은이를 실은 통나무는 마치 밑도 끝도 한정없는 암흑의 심연으로 달려들어가는것만 같았다. 아아, 어떻게 하면 이 상태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가. 정처없는 표류, 괴괴한 정적에 반죽되여 갈마드는 위구 때문에 두 젊은이는 한숨만 토했다. 그리고는 지쳐버렸다. 그들은 운명을 통나무에 맡긴 채 그만 잠에 골아떨어지고말았다. 사경이라 꿈도 없이 곤하기만했다.     어둠이 걷히면서 새날이 밝아오자 한가닥 구원받을 희망이 보였다. 그들은 아래로부터 물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큰배 한척을 발견한것이다.  배는 연통으로 검은 연기를 토하고있었는데 틀림없는 로씨야륜선이였다.     《우라!》    《이젠 살았구나! 만세!》     니항군청년도 민호도 미칠것만 같은 희열에 잠겼다.     통나무는 아래로 떠내려가고 륜선은 우로 올라와서 거리는 각일각 가까워지고 있었다.    《부ㅡ우ㅡ웅ㅡ》     한데 륜선은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정하게도 그냥 지나갔다. 륜선의 고물에서 일고있는 길다란 포물선은 가냘픈 통나무를 그네뛰듯 요동치게 만들어놓았다. 그통에 두 젊은이는 구원되기는커녕 되려 하마터면 물귀신이 될번했다.     그야말로 위험한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긴것이다. 민호는 가슴밑바닥으로부터 치솟는 증오와 분노를 입으로 뱉어냈다.    《좆같은 마우재놈들아, 급살이나 맞고 싹 뒈져라!》     올라오는 배도 내려가는 배도 더 볼 수 없었다. 무인지경을 흐르고있는 대하는 흡사 죽음의 바다와도 같았다. 시간이 흘러 지지리 고통스러운 하루낮이 지나고 또다시 칠흑같은 밤이 덥쳐들었다.     그러기를 세 번. 4일만에야 그들은 마침내 구원받을 수 있었다.     정오가 거진되여 올 무렵에 그들을 실은 통나무는 어느덧 강폭이 훨씬 넓어지고 흐름이 완만한 곳에 들어섰다. 갈매기들이 주위를 빙 빙 돌면서 따라왔다.     둘은 저기 앞에서 쪽배 하나가 남쪽기슭은 향해 강을 건너고있는것을 발견했다. 한데 다가 이제는 너무도 굶고 지쳐서 숨이 간들간들했다. 그렇다고 이런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쳐버릴 수는 없었다.     민호는 경련이 일듯이  떨리는 손으로 자기가 입고있는 흰적삼을 벗었다. 그리고는 제리니코의 그림 의 사람들처럼 그도 그것을 머리우에 깃발처럼 간신히 쳐들었다.     저쪽에서 쪽배를 몰던 사람이 다행히 그네을 발견했다. 40대의 사나이였는데 노를 저어 다가오더니 닻을 뿌려 통나무에 박혀있는 꺽쇠에다 걸었다....       두 젊은이는 개가 악패듯이 짖어대는통에 깨여났다. 그들은 강둔덕에 있는 막안에 있었다. 배를 몰던 구명은인이 어디론가 가버리자 그들은 기슭에 있는 말뚝에다 떠내려가지 말라고 매놓은 통나무에서 내려 이 막안으로 기여들어왔고 먹을것을 찾다가 물통안에 붕어와 메기가 있으니 그것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는 식곤증을 못이겨 그만 느러졌던거다. ..............................................................................................................................                *제코리(1791ㅡ1824) 프랑스의 대표적화가. 대담한 데생 및 색조와 정감적인 표현에 의해              들라크르와 등과 함께 랑만파의 거장이 되었으며 거작 등이 유명함.    고기막의 출입문이 그대로 활짝 열려있었는데 밖에서 사람 여럿이 벗티고 서서 막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두 다섯. 그중 넷이 머리에다 봇나무껍질로 만든 갓을 쓰고 물이 난 허름한 옷들을 입었다. 그리고 삿갓을 쓰지 않고 맨머리로 그네들과 함께 있는 다른 한 사람은 삐여진 미모의 소녀였는데 정기도는 두눈은 호기심이 가득차 있었다. 그녀가 너무 게걸스레 먹어서 마른풀우에다 짓을 피워놓은 니항군청년의 구토물을 발견했는지 상을 몹시 찡그려 가면서 무어라 쫑알댔다. 생김새가 어딘가 다르거니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있는 그들은 민호가 처음대하는 민족이였다.     황둥개가 당장 주인손에서 사슬을 끊고 두 불청객에게 달려들 잡도리였다.     손에 삼지창모양의 작살을 쥔 50대의 년장자가 개를 더 짓지 못하게 해놓고는 중국말로 나오라한다.    《일어서자. 설마 우릴 죽이겠냐.》     민호는 겁나서 벌벌 떠는 니항군청년의 팔을 끄당겼다.     바깥은 햇빛에 눈이 부시였다. 개만 짓지 않으면 한없이 적막해질 강안에 실같이 가느다란 한갈래의 오솔길이 막가까이에 있는 채마밭을 에돌아 가둑나무들이 무성한 자그마한 언덕을 넘어 남쪽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후둘후둘 떨리면서 다시 말할맥도 나지 않았다. 민호는 중국말을 아는 그 어른을 향해 제발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뜻으로두손모아 국궁재배했다.     심덕이 무던해보이는 그 사람은 너부죽한 얼굴에 미소를 짓더니 지금은 구명은인이 되는 그 광대뼈가 불거진 막주인과 모색이 그를 닯은걸 보니 분명 아들일 사람더러 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들어가자했다.     사람 7명이 쪽배 두척에 갈라타고 강가를 떠났다.     얼마내려가지 않아 흑룡강에 흘러들고있는, 남쪽에서 곧추내려오는 한가닥의 자그마한 시내가 나졌다. 쪽배들은 그 시내에 들어서서 우로 올라갔다.     시내의 량안에 고기막아니면 채소막같은것이 띠염띠염 있었다.     배는 아느새가서 인가가 40호쯤되는 한 자그마한 마을에 당도했다. 어래무(卾來木)라는 허저족마을이였다.     처마가 거의 땅에 다을지경 낫다랗고 풀이영을 한, 그래서 흡사 비오는 날 도롱이를 입고 뒤를 보느라 쭈크리고 앉은것만 같은 초라하고도 궁상스러운 반토굴집과 나무다락들이 어빡자빡 제멋대로 널려 있었다. 이것이 그래 사람사는 동네란말인가?....민호의 뇌리에는 불현듯 내가 하와이를 발견하고 그곳의 토착민들손에 잘못된 쿡(cook)의 신세가 아닐가싶은 불길한 예감이 스치였다.     여기는 인류의 문명이란 거의 닿지 않은것만 같았다. 두 조선젊은이는 적이 놀랜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배에서 내렸다. 이들과는 오로지 중국말로만 겨우 소통이 되는 민호였다.     통나무를 끌어왔던 허저인은 성명이 치더룽이였는데 그가 바로 시내의 서쪽둔덕에 있는 첫집에서 살고 있었다. 치더룽은 제가  구원한 두 조선젊은이를 그 집앞에 있는, 물개암나무를 엮어 벽을 만들고 억새로 지붕을 한 자그마한 다락에 들라했다. 그래서 바라올라가 보니 고기비린내가 물큰났다. 이것이 허저인들이 다커투라고 부르는 고기창고였는데 지금은 비여있었다.     분명 구출은 된것 같은데 이네들이 이제 우리를 어떻게 처리할가, 굶은것을 알고 먹을걸 줄가 아니면 좀 쉬운다음 쫓아버릴가, 아니면?.... 민호는 이제는 류랑걸식의 길을 걸어야 할 신세구나 생각하니 예측키 어려운 앞날이 막연하게 걱정될 뿐이였다.     운명이 한그믈에 걸린 친구역시 그러할것이다. 낯이 해쓱해진 니항군청년이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풀풀 한숨을 련발하는데 치더룽이 끓인 물고기를 질그릇에 담아 들고 다커투로 올라왔다. 숟갈까지 내놓으며 먹으라해놓고는 돌아간다. 니항군치가 자기는 먹지 못하겠다해서 민호혼자서 정신없이 퍼먹었다.     그러는 사이 니항군청년이 자기의 고독하고도 비참한 신세를 말했다. 그의 아버지역시 전에는 의병이였는데 그가 죽자 형님과 누나와 어머니 그리고 그까지 넷이 고향을 버리고 삼촌이 이사를 간 로싸야의 연해주로 건너가 거기 동포가 모인 신한촌(新韓村)에서 살았다. 한데 왜놈의 군대는 거기까지 가서 교회당에 불을 지르며 조선사람을 못살게굴었던것이다. 어머님과 누나는 그자들 손에 살해당했고 형님은 이 동생을 데리고 복수하겠다며 빨찌산에 가입했다가 어느날밤 격전때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었다. 하여 지금은 그만이 달랑 남은건데 제 조선어로 부르면 성명이 최기덕이였다. 나라가 독립되거든 그때가서 제 이름도 되찾으리라면서 삼촌이 그같이 지었노라했다.     치더룽의 열두살먹은 아들녀석이 다락에 와보고 달려가더니만 아까의 그 나이 많은 사람까지 왔다. 그가 이 마을에서는 가장높은 어른으로 받들리우는 세습향장ㅡ 가싼다였는데 성명은 유만진이다.     가싼다는 민호를 향해 알아들을 수 있는 중국말로 너의 친구가 왜서 해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울었는가고 캐듯 물어왔다. 하여 민호는 그의 불우한 신세를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가싼다는 머리를 주억거리면서 만면에 동정하는 빛을 띠는것이였다.       이틑날 저녁켠에 가싼다 유만진이 다시나타나더니 그들을 자기네 집으로 데려갔다. 식솔이 여덟이나 되는 그는 그래도 삼간짜리 괜찮은 흙집에서 살고 있었다. 물고기깝지를 창문에 제대로 규격맞게 붙여놓고 사는 이런 집이 이 마을에 몇호가  안되였다.     유만진은 두 조선젊은이를 서쪽방에 류숙케 했다. 그리고나서 이틑날 아침에는 사슴의 골수유(骨髓油)를 버무려 만든 좁쌀밥을 해주었다. 후에야 알았는데 라라부다라고 하는 그것이 허저인들이 귀객에게만 대접하는 최고의 특별음식이였다. 두 조선젊은이는 자기들이 여기와서 생각밖에 분에 넘치는 훌륭한 대접을 받고있음에 놀랬거니와 그것을 페부로 느끼기 시작했던것이다.      치더룽은 유만진과 성이 다르건만 그를 친삼촌이라했다. 하여 이쪽에서는 왜서일가했다. 실은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허저족은 17세기반엽까지도 여전히 부계종법씨족(父系宗法氏族)단계에 머물러있었으니 뒤늦게 개화된 민족인것이다. 씨족내의 혼인을 엄금하고 씨족심판을 하며 씨족숭배와 혈족복수 그리고 집안에 과부가 나지면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제집안에서 재가를 하게끔하거니와 친속이 재산상속권을 갖는 등의 법규가 있었으니 이것이 여느씨족 ...............................................................................................................................    *어래무ㅡ허저인의 이름과 지명들은 발음 그대로임.    *가싼다ㅡ허저인의 세습향장.       *쿡(1728ㅡ1779)ㅡ영국의 항행가. 3차에 걸쳐 태평양해안, 오스트랄리아, 뉴질랜드를 탐험하여 이의  령유(領有)를        선포하였으며 남극을 주항. 1778년에 하와이를 발견하였는데 이곳에서 토착인에게 살해당함. 과는 다른 그 씨족사회의 특성이였던것이다.        허저족의 씨족조직을 하라모쿤이라했는데 그것은 그 씨족내부의 사무를 관리하는 조직형식이였다. 하라란 본래 씨족인데 후에 씨족이 와해됨과 함께 점차적으로 성(性 )의 명칭으로 변하고말았다. 모쿤은 가족 또는 종족(宗族)을 칭하기도한다. 19세기 60년대전에 하라는 곧 씨족조직형식이였거니와 또한 청나라정부가 이 일대에다 설치한 지방행정단위이기도했다. 어떤데서는 하라 혹은 모쿤을 단위로 하여 하라다(씨족장) 혹은 모쿤다(가족장)를 설립하거나 가싼다(향장)를 설립하기도했다.     허저족은 둬하제를 실시했는데 둬하란 허저어로 친속이라는 뜻이다. 둬하제는 씨족형식으로서 성원들로 하여금 공동히 혈족복수를 위한 전쟁에 참가하거니와 자기 씨족의 리익을 위하여 공동히 준수 할 씨족내의 법규까지 있었는데 그것이 줄곧 19세기말까지 존재해있었던것이다.     허저인의 오랜 씨족으로는 유청하라, 우디컹하라, 루르러하라, 거이커하라, 푸티커하라, 비라컹하라가 있었는데 이러한 옛씨족의 명칭은 그 대부분이 거주지역의 이름이 아니면 근처에 있는 시냇물이거나 산 혹은 짐승의 이름에서 따온것이였다. 그런데 씨족이 해체됨에 따라 그 씨족의 이름들은 성씨로 변하였고 후에는 성씨의 첫글자음이 변하여서 허저인의 성으로 고착되였다.     유씨성은 유컹하라라 하기도하고 치렁하라라 하기도 하는 씨족명칭이 변해서 된것인데 치렁하라는 바로 치무인허라 하는 강물에서 온 이름이였다. 그리고 그 강의 첫글자가 또 치(齊)성을 만들어냈으니 유씨와 치씨는 아주 친밀한 족원(族源)관계가 있는것이다. 한즉 유만진이 치더룽을 조카라 하고 치더룽이 유만진을 삼촌이라 부르는건 무리가 아니였다.     세습향장인 유만진을 놓고 보면 수렵기술이 그 누구만 못하지 않거니와 일처리를 공정하게 해서 집법자로서의 자격이 있거니와 여기 이 어래무마을의 생산, 생활, 혼례, 상사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잘 처리해가고있다. 하기에 그는 온마을 사람들한테 신용이 있거니와 애대를 받고있는것이다. 게다가 금상첨화(錦上添花)라 가싼다에게 그같이 고운딸까지 생겼으니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소녀는 이름이 츄얼이였는데 이제 나이가 16살이였다.     막에서 본 미인소녀가 바로 그였고 자주대하게 되니 민호는 자연히 가슴이 설레여남을 금할 수 없었다. 이방의 녀인이건만도 왜서 이럴가?.... 눈치를 보니 니항군청년역시 그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꼴이였다. 저치도 내처럼 반했어.     어래무에 온지 어느덧 한주일이 되어온다. 그지간 민호는 쇠잔한 몸을 춰세웠건만 니항군청년은 여전히 맥골을 쓰지 못했다. 날고기를 너무먹고 탈이 난거다. 죽기가 설운것이 아니라 아픈것이 설쿠나. 어떻게 할까? 민호는 걱정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한다. 가만있자, 쇠고기에 체한데는 까마귀종이잎이나 아가위를 달이여 사탕에 타먹으면 되고, 돼지고기에 체한데는 꿀이나 엿이나 사탕을 많이 먹고 물고기에 체한데는?.... 젠장!     민호는 중이 념불외듯 혼자소리로 중얼거리가가 그만 선문도 없이 주방건너의 동쪽방문을 뚝 떼고 들어갔다.     주인마누라와 딸이 바느질을 하고있다가 젊은이가 문득 들어오니 몹시 의아쩍어한다. 아뿔사! 내가 이거.... 민호는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다. 그는 얼굴이 뜨거원나길래 돌아섰다. 그랬다가 이대로 나가버리면 공연히 오해만살것아서 그는 몸을 다시돌렸다. 그리고는 자기가 여기로 들어오게 된 사유를 말했다. 어리무던하게 생긴 주인마누라는 혀를 차면서 그렇다면 언녕말할것이지 왜서 인제야 찾아오느냐고 민호를 가볍게 나무리고는 머리수건에다 꽃수를 놓고있는 딸을 보면서 시켰다.    《츄얼아 네가 얼씨덩나가 쑥갓이나 미나리를 캐오거라. 든든치못한 손님이 날고기에 몹시나 체한모양이구나.》    《쑥갓도 미나리도 없으면 어떻게 할가요, 어머니?》    《애두원. 깻잎이라도 뜯어와야지. 그걸 무쳐먹어도 될거아녀.》    《그러지요, 어머니.》     츄얼이는 일손을 얼른놓고 일어섰다.     그녀는 주방에서 싸리광주리르 찾아 손에 들자 민호를 향해 살짝 웃음을 날리면서 밖으로 나가버린다.     저 계집애가 날보고 웃는구나! 왜 저렇게.... 민호는 달콤한 환상에 잡기면서 가슴이 달떳다.     니항군청년은 주인마누라가 딸이 캐온 미나리를 짓찧어서 낸 즙을 한종지먹고 체증이 뚝 떨어졌다.     어느새 두주일이 지나갔다. 이제는 가야한다. 한데 가면 어디로 간단말인가? 민호도 니항군청년도 목적지를 정할 수 없었다. 어쨌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젠 몸도 다 회복되였는데 남의 집에 그냥 엎어져 페를 끼쳐서야 되는가. 속담에 했는데. 아무데건 동포가 사는 마을을 찾아가자. 찾아내야한다. 둘은 이같이 마음먹고 주인집과 작별인사를 올리였다. 그랬더니 가싼다 유만진이 아니 이 사람아 부대가 없어졌다면서 가기는 어디로 간다구 그러는가. 좀 더 눌러있으면서 형세를 보고 떠나세 하면서 극구 말리였다. 하여 둘은 못이기는 척 주저앉고말았다.     조상때부터 어업과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세상 희소의 이 민족은 물고기와 짐승고기를 주식으로 하면서 그들만이 창조해 낼 수 있는 독특한 식문화를 갖고 있었다.     유만진이 말했다.            《우리 집에 낟알은 귀합니다만은 그대신 고기야 흔하지. 겨울철에 절인게 아직도 있구 말린것도 있지. 강에 고기가 쌔쿠버렸으니 제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손꿉놀리면야 절대루 굶어죽을 념려는 없는거야. 고기로는 라부타하를 해먹어도 되고 소우룬을 해먹어도 되고 타스하를 해먹어도 되고.... 그거야 제맘대루지. 안그런가 손님. 겨울에는 쑤라카가 그래두 좋지. 먹어봤는가?... 그럴거야, 모를거야. 임자들이야 우리완 습관이 다르니까. 허지만두 괜찮아. 첨엔 입에 맞잖을 수 있겠지만 자주먹어나면 습관이 될거네.》     이 말이 너무나 고마워서 민호는 코허리가 시큼해났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담아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우린 벌써 습관이 된걸요. 라부타하나차을사차는 우리네 조선사람도 실은 잘먹습니다.》     중국말은 답벼락인 니항군청년이 벙어리가 되어 두눈을 꺼무럭거리면서 낯색만 살피고 있었다. 그도 초면인 이 허저인 가싼다의 사심없는 후더운 접대에 감격하고 있었다.  .............................................................................................................................    *라부타하ㅡ소금, 초, 고추기름을 넣어 버므려 먹는 물고기생회.  *소우룬ㅡ지져먹는 것. *타스하ㅡ실을 내여 먹는 것.     *쑤라카ㅡ겨울에 언고기를 칼로 저미거나 대패로 얇게 밀어 소금에 찍어 먹는 것.  *차얼차ㅡ말리운 고기.     허저인들은 잡자리를 몹시 주의해서 가른다. 무릇 유만진이네같이 가법이 엄하고 부유해서 삼간집을 짓고 사는 정도면 로인은 서쪽방에, 젊은이는 동쪽방에서 잔다. 그리고 이 집같이 한칸에 남북구들이라면 남쪽구들에서 부모들이 자고 북쪽구들에서는 자식들 이 자는것이다. 허저인들은 서쪽방을 신성하게 여긴다. 그래서 조상   의 신위같은건 서쪽방에 모시거니와 귀빈이 와도 거기에다 밤을 재우는것이다.          아버지가 손님을 모셔오게 되자 장가간 큰아들 나쟈가 처자를 데리고 시르맨커로 갔다. 그리고 그들 내외가 있었던 동쪽방의 남쪽구들은 서쪽방을 내놓고 건너간 늙은 내외가 차지하고 북쪽구들은 둘째아들 린화가 차지한것이다. 서쪽방의 구들하나는 비우면서까지 이 한집의 식솔들은 이같이 자리변동을 했다.       7월하순의 어느날 의란(依蘭)에 가 공부하고있는 가싼다의 셋째아들 청량이가 방학이 되어 집에 왔다. 그는 오면서 짐을 두짝 가져왔는데 하나는 좁쌀이 들어있는 새로 짠 나무상자고 다른 하나는 의류외에 사기그릇과 냄비가 들어있는, 꽃무늬도안을 놓아 만든 봇나무껍질상자였다. (그 상자는 나쟈의 제작품이였다.) 유씨네 집에는 이젠 이러한것들이 그리 희구하지 않았지만 내내 이런 오지에만 묻혀 살면서 세상물정에는 까막눈이나답지 않은 다른 집들에서는 얻기 힘든 진품이였다. 특히 값비싼 경덕진의 사기그릇과 알류미늄제의 냄비가 그러했다.     먼 외지에 나가 공부하는 청량이가 왔다니 시르맨커에 가있던 며느리도 이제 네 살난 아들을 데리고 제 남편을 묻어왔다. 그녀는 옷섶이 무릎아래로 내려오고 허리품이 좀 솔며 아래폭이 넓고 소매는 짜르고 윗목이 있어도 목달개는 없는 자색의, 그네들의 말로는 우티팅이라 하는 만족식의 치포를 입고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발에다는 바닥이 두툼한 배모양의 신을 신었다. 그녀의 두가닥으로 땋아 뒤로 쪽진 동그란 머리에는 하얀 고기뼈비녀가 꽂혀있고 귀에는 은제의 우야칸이 걸려있었으며 두 팔목에는 시더리가 끼여있었다. 바람과 볕에 그슬리긴했어도 아직은 젊고 고운 얼굴에 늘 웃음을 담고있는 그녀는 그 나이의 여느 각시들과는 옷매무시건 단장이건 같지 않게 우아하니 일견하여 잘사는 집의 며느리가 다르긴 달랐던것이다.     허저인들은 옛날부터 물고기가죽과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지어는 이불까지 만들어 덮었다. 그래서 어피부(漁皮部)라는 이름까지 갖고있는건데 가싼다네는 외지에 나가 공부하는 아들이 있어서 더구나 제집사람을 그같이 단장시킬 수 있는모양이다.     식솔이 다 모이자 백면서생티가 나는 청량이가 저들의 풍속에 따라 먼저 부모앞에 꿇어 엎디여 절을 올리고 이어서 큰형과 아주머니에게도 그렇게 했다. 그들은 절을 받고나서 그의 볼에다 가볍게 입을 맞추어 그가 방학에 집으로 돌아온것을 환영했다.     유만진이 청량이더러 집에 손님으로 들어 온 두 조선젊은이한테도 인사를 하라했다.    《자, 우린 이렇게 하지.》     청량이가 초면인사를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하는것을 보자 민호가 시원스레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청량이는 얼결에 대방과 악수를 나누고 나서 마치 외성인을 만나기라도한 것 같이 눈이 동그래졌다. 모색이건 옷맵시건 아주 다른 이켠 두 청년이 그로서는 난생처음보는 종족이니까 그럴 수 밖에. 하지만 다행히 민호가 중국말을 좀 아는터로 그런대로 의사소통이 되어 그와 청량이는 이날저녁으로 일면이 여구하게 되었다.     청량이가 입을 열어 제 민족이 걸어온 력사이야기의 부리를 땃다.    《우리 허저인은 보다싶히 자기의 민족어가 있긴해도 문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무를 깎거나 아니면 가죽을 오리고 풀을 꽂아 어떤 일들을 기억해두군했지요.》     아니 아직 제 민족문자도 없었단말인가! 민호는 적이 놀랬다.     사실 그러했다. 허저인들은 긴긴 세월을 내려오면서 내내 흑룡강, 송화강, 우쓰리강연안을 떠나지 않고 살아왔다. 이 세줄기의 대하가 흐르고 있는 광활한 지역에서 살고있는 고대주민을 선진(先 秦)때에는 숙신(肅愼) 혹은 직신(稷愼)이라 불렀고 한위(漢魏)때는 ...............................................................................................................................      *시르맨커ㅡ허저인식의 반토굴의 고기막.  *우야칸ㅡ구걸이. *시더리ㅡ옥팔찌..      *의란(依蘭)은 삼성(三姓)이라고도 하는데 금조(金朝)이래 줄곳 북만의 송화강연안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읍루(挹婁)라 불렀으며 남북조(南北朝)때에는 물길(勿吉)이라 불렀고 수당(隨唐)때에 이르러서는 말갈(靺鞨)이라했다. 말갈은 7부로 나뉘였는데 그 중 제일 큰 두 개의 부중에서 속말부(粟末部)의 우두머리 대조영(大祚榮)은 발해를 일으키고 흑수부(黑水部)는 녀진국(女眞國)을 세웠던것이다. 여기서 흑수부가 바로 허저족의 원조(遠祖)가 되는것이다. 허저인은 청나라때에 정부의 강압과 유인책에 배겨내지 못하고 적잖게 동화되여 만족 혹은 한족으로 되어버리기도 한 것이다.     참으로 기구한 민족이로구나! 민호는 어쩐지 눈물나도록 서글퍼지면서 장탄식이 나갔다. 지금 일본이 조선을 먹었거니와 이 만주까지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이것이 남의 력사같지 않았다.                                                                     관련글:  의용군항일운동과 토비   (흑룡강신문=하얼빈)= 김송죽의 두번째 장편소설'관동의 밤' 이 민족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   688 쪽에 87만자에 달하는 이 장편소설은 력사사료적인 가치가 높다. 소설은 “9.18”사변후 항일의용군의 항일과 토비들의 항일을 다루고있는데 민족청년 정민호를 주인공으로 전기적인 색채가 농후하고 스토리가 굴곡적이다. 특히 허저족의 풍속과 토비들의 생활은 허구가 아닌 사실 그대로 묘사하여 타민족 문화를 접하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특정력사의 갈피속에 묻혀있는 우리 민족의 반일, 항일 력사를 다른 측면에서 알수 있다.   /최국철                    
395    결속어 댓글:  조회:3087  추천:9  2015-01-31
                        결속어                        1947년.    새봄이 찾아온 대지는 생기로 넘친다. 겨우내 설한풍속에서 떨던 온갖의 풀들이 대지의 따스한 기온에 함성을 지르면서 소생하고 얼음풀린 송화강의 도도한 물결은 격파드높다.    렬차는 투지로 들끓는 전사들을 싣고 경쾌하게 앞으로 앞으로 내달린다. 김려홍은 차체의 가벼운 률동속에서 기분좋게 사색에 잠겼다. 부대는 토비숙청을 끝마치고나서 20여일간의 정비훈련을 하고는 그것이 끝나자 다시 새 전투임무를 맡고 싸우려 남부전선으로 나가고있는 것이다. 비록1년반남짓한 사이였으나 지나온 로정은 실로 범상치 않은 나날들이였던 것이다.    새해의 벽두에 북만백성들에게 피빚을 많이 져 혈채가득한 사문동을 끄끝내 붙잡아서 처단함으로써 토비숙청은 마침내 막을 내린 것이다!... 동북민주련군의 조선부대는 공산당의 령도밑에 다른 형제부대와 함께 피어린 싸움을 억세게 하여 북만에서 한때 그처럼 득세하여 굶주린 이리떼마냥 살판잡이로 날뛰던 10여만의 간악한 중앙선견군 토비를 깨끗이 숙청하고야말았다. 하여 공고한 동북근거지를 건설함에 유리한 기초를 닦아놓은것이다.    려홍이는 고개를 돌리여 무한한 신뢰와 경모에 찬 눈으로 박퇀장을 비롯한 왕정위, 마참모장, 김영장 등 부대의 지휘원들을 다시금 보았다. 오늘따라 더 근엄해진 이들이였다. 박금록, 김청송, 리춘성 그리고 녀위생원들인 혜옥이, 옥금이, 춘자... 이네들도 다가 오늘따라 더 억세보였다. 아, 이들 모두가 그 고난의 세월에 함께 몸과 마음을 다바쳐 싸워온 정든 전우들이고 친인들이 아닌가! 그런데 섭섭하게도 장패장과 리홍석이를 비롯한 여러 전우들은 오늘 함께 가지를 못한다. 승리는 이같이 가슴속에 두고 두고 영원히 잊지 못할 전우들의 생명으로 바꾸어 온 것이기에 더욱더 보귀한게 아날가!...    마주앉아서 차창밖을 내다보던 혜옥이가 머리를 돌려 정겹게 보면서 생글거린다.            려홍이는 부대가 아르금시를 떠날 때 부상당한 몸이 채 완쾌되지 않아서 아직 출원을 할수없는 왕복룡이가 남부전선으로 떠나는 전우들을 전송하면서 승리의 그날에 다시만나자던 부탁을 상기하면서 말했다.                                두사람은 마주보며 즐겁게 웃었다.    렬차는 투지로 들끓는 전사들이 힘차게 부르는 노래소리를 싣고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최후의 결전을 맞으러 나가자   생사적 운명은 판가리다   나가자 나가자 굳게 뭉치여   원쑤를 소탕러 나가자 !                                             1974년 5월 초고. 1981년 10월 제5차 수개. 가목사에서                                                                    ...........................................................................................................................................      소설에 등장한 여러인물들 중 진짜이름으로 씌여진것은 부정인물인 사문동 하나뿐이다.   사진은 심문과 심판이 끝났기에 곧 형장으로 가게 된 사문동이다. 주위의 군인복입은 이들이 그때의 민주련군인데 장소는 벌리(현정부앞마당)다.  때는 1946년 12월 3일.    뒷배경으로 되는 두 인물은 주덕과 모택동의 화상이다. 바로 그날 안충모 군인아저씨가 붙잡은 원쑤를 심판하니 네가 꼭 가봐야 한다면서 손을 끌었다. 하여 나는 그를 따라갔는데 무대왼쪽 바로 아래의 땅바닥에 앉아 그 장면을 올려다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현정부서쪽으로 얼마가지 않아서 흐르는 물은 많지 않아도 꽤나 널다란 강이 있는데 그 강 이름이 “연자하”다. 그 강을 건너 다리가까이 길북에는 갖생긴ㅡ 영평강전투에서 희생된 17렬사모가 있었는데 사문동이 거기에다 하나하나 무릎꿇고 절을해야했다. 사문동은 처음에는 불복했다가 총박죽에 궁둥이를 둬매 얻어맞고서야 곰상해졌다.        그는 강뚝에 올라서자 총을 맞고 넘어갔다. 그때 그는 나이 60세였다.    이튿날이다. 나는 아침도 먹을 념을 하지 않고 달려가봤는데 밤새 머리가 없어지고 거지들이 달려들어 옷까지 벗겨내 알몸뚱이만 그대로 버려져 있던것이 그 다음날에 이르러서는 중간에 달렸던 생식기마저 잘려 없어졌다가 하루 더 지나서는 시체가 없어지고말았다. 시체는 사문동의 친척이 가져가고 생식기는 어느 한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거지노친이 잘라먹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비록 원쑤기는 해도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참혹하다는 감이였다. 사문동의 머리는 한동안 기차에 달고다녔다. 이제는 토비를 다 숙청했으니 안심들하라는 공시였다.      내가 알기는 사문동이 워낙은 좋은사람이였다. 그는 북만의 의란현과 화남현 접경지에 있는 토룡산(지금의 태평진)의 보동이였는데  일제개척단이 그곳의 땅을 수탈하니 이에 불만품고 각성하여 지방의 을 조직하여 을 일으켜 의란에서 파견된 이즈카라에테 일본군을 격파하고 항일에 나섰던 것이다. 그의 그런 영웅적인 반항은 세계를 놀래웠다.  그는 동북항일련군제8군 군장이 되어 항일했다. 그러다가 끝내는 간고한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본 관동군에 귀순하고 만 것이다. 그는 일본천황을 배알하여 그한테서 금두꺼비상을 받았다. 일본에 가서 충혼비에 맹세하고 돌아와서는 광복이 날때까지 벌리에서 협화회 명예회장을 지냈다.    나의 부친은 성명이 김병념인데 위만때 징병에 뽑히여 석두하자에 가 훈련받고 돌아와 가목사역전 철도호로병으로 있다가 광복을 맞은건데 광복직후 합강성(가목사)에 민주련군독립퇀이 생기니 거기에 가입해 교련이 되여 의란에서 부대의 정편훈련을 맡아 지도하고는 그길로 인차 토비숙청에 나섰던 것이다. 그때 그의 직무는 정찰반장이였다. 이듬해의 11월중순에 그의 정찰반은 다른 한 정찰반과 함께 참모장 김해정을 따라 영평강에 적정을 정찰하러갔다가 그 마을 고지주의 밀고를 받은 사문동의 동당 마희산비도 100여명의 포위에 들어  3시간남짓한 싸움끝에 탄알이 떨어지고 후원이 없는 극악한 상황하에서 모두가 불붙는 집안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고 만 것이다.   토룡산이 내가 태여나 자란 복가툰에서 동북쪽으로 몇리안되거니와 나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고모부도(장금산) 다가 사문동을 잘았다. 어머니는 사문동이 동북항일련군제8군의 군장이 되였을 때 그가 철띠를 만들어달라기에 하루 낮과 밤을 패가면서 악전고투해 손마선으로 70개를  만들어 준 일이 있었다면서 생전에 나와 그 일을 뇌였던 것이다. 내가 사문동을 본것이 세번. 두번은 광복이 나서 운두높운 장교모를 쓴 그가 제 무리를 끌고 우리 마을에 들렸을 때고 마지막 한번은 대머리인 그가 모자도 쓰지 않고 사형당할 때였다.    나는 아버지가 사망되여 부대에서 자라는기간 군인들이 늘 하는 토비숙청얘기를 즐겨들은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여 나는 장차 글을 배워서 알게되면 그것들을 아무때건 꼭 재미나는 이야기로 엮으리라 맘먹었던 것이다.     나의 눈에 제일익은 몰골이 아버지와 어머니였거니와 김동철을 비롯한 김명세, 김해정, 류쿤(연안에서 파견된 한족 정위)같은 민주련군의 지도급인물들과 사문동을 비롯한 손팡유(우리마을 복지주)와 그의 아들딸이였다. 나는 내 머리속에 인상이 깊은 그들을 늘 상기하다보니 그들을 모델로 하여 장편소설 을 구상하고 쓰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형상은 김려홍이고 어머님의 형상은 남혜옥이다. 아버지는 그냥 민주련군 정찰병의 위치에다 놓고 부대재봉소의 일을 했던 어머님은 위생병으로 신분을 바꾸어서, 나이도 퍽 적고 미혼의 관계로 만들어 소설의 이야기를 꾸민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다가 모델로 응용이 된 것이다.  그저 그랬 뿐 그것이 진짜로는 될 수는 없었다. 황차 성명이 다가 다르지 않은가.    모델은 소설창작에서는 홀시할수도 빼놓을수도 없는 하나의 기법인 것이다.  한데도 이 오니 다른 심보를 품은 자들이 그것을 트집잡고 너는 제부모를 모델로 했으니 그것은 그들을 미화한 것이고 기념비를 세우는것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왜서 공산당은 노래하지 앓고 그런짓을 하느냐면서 라 쓴 커다란 패쪽을 만들어 목에다 걸어놓고서는 나를  등척의 졸개라느니 오함의 졸개라느니 료말사의 졸개라느니 하면서 옹근 4년간 이마을 저마을 끌고 다니며 투쟁했거니와 지어는 아예 죽여버리자고까지 맘먹었던 것이다.    그들이 나를  작가로 되지 못화게 콱 밟아 납작하게 만들자고 구호까지 부른것을 보면 그놈의 혁명열의가 그야말로 구중천에 치달아올랐던 것이다. 아무 원쑤진일도 없었건만 사람이 어쩌면 그정도까지 지악해진단 말인가?... 까놓고말해 저들 중 어느 누구의 부모가  토비들 손에 재난에 빠진 제동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인민의 새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피한방울이라도 흘렸던가? 내가 알기에는 없다, 하나도 없다. 그런 주제에 투기분자라느니 계급이색분자라느니 하면서 이를 앙가물고 남의 렬사증과 추도식사진마저 빼앗아 갈기갈기 찢어버렸으니 뭐라해야하는가?       시기와 질투는 악이고 미친개가 사람을 문다.      공산당은 똑똑해져야한다.       이제 또 그따위 빨갱이들을 혁명자라고 길러내여 생사람잡이를 하게한다면 이 나라는 망할것이다, 정말 다 망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들다가 이른바 립장이 가장 견정하다고 떠벌린 당원들이기에 내가 하는 소리다.     칼탕을 쳐버려도 시원치 않을 개자식들!     지난날 그들이 저지른 행실을 보면 그것이 그저 무지막지한 자들의  극단적인 시기와 질투에 바탕을 둔 미런한 보복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내가 감지하고 너희들도 인간이면 장차 아무때건 자기가 지은 죄를 깨닫고 뉘우칠 날이 있겠지 하고 명줄을 끊어놓지 않고 그저 참으니 다행인줄로 알아야 할 것이다.                                                                                  관련글:                    
394    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4장 (8) 댓글:  조회:2177  추천:0  2015-01-31
         리경광은 지쳤다. 수사망까지 늘여놓고 아무리 애써봐야 물이 바구니틈새로 새듯이 몸을 빼돌리는 려홍이를 붙잡아낼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적아 쌍방의 형세는 대비가 현격했다. 말이좋게 중앙군이지 날이 갈수록 기울어져가는것이 뚜렸했으니 서산락일의 운명이라 민심을 잃어 규률이 문란하기가 말이 아니였다. 그러니 온 금성에 철갑을 입힌다해도 이미 불치의 병에 걸린 국세를 되돌려세우기는 열 번도 틀먹은것이였다. 리경광의 혈관으로는 싸늘한 두려움이 줄달음쳤다.    밖에서 따르릉하는 별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조민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저 못난녀석이 오늘은 왜 저따위걸 타고 멋을 부리는거냐?)    손옥란이 거처하고있는 방으로 흔들거리며 들어가는 조민을 다시금 본 리경광은 래일 바로 잔치날이라는것을 문득 상기했다. 그러자 금시 다른 한가닥의 싸늘한 기운이 혈관에서 줄달음쳐 그는 몸을 오싹 떨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리고나서 그는 수면불족으로 인하여 피발이 일어선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래일있게 될 그 잔치의 정경을 제 눈앞에 그려보았다.  ㅡ숱한 사람이 구경을 나섰다. 혼례행차는 동대문구역으로부터 와서 중앙십자가에 이르러 남대문구역으로 가게된다. 해가 바지랑대만큼 올랐다. 동대문구역에서 갑자기 새납소리가 되알지게 들려온다. 사람들이 떠든다.                        새납소리가 귀청을 쨀듯이 점점 세게 들려온다. 조민이 견마부도 없이 백마를 타고 앞에 섰고 그뒤에 칠보단장한 색시가 탄 사린교가 네패잡이 교자군의 어깨우에서 흔들흔들 들려오고있다. 사람들의 머리우로 그 가마가 뜬것이 뚜렷이 보인다. 연두색바탕에 분홍색안을 받쳐 수를 놓은 가마의 추녀밑에다 빙 둘려가며 달아놓은 보석같은 유리구슬이 흔들거리여 해빛에 령령롱한데 거기에다 청실홍실까지 늘여놓아 가마는 호화롭기 짝이없다. 그뒤로 동안뜨게 각각 람여에 앉은 신랑의 사촌형 둘과 함께 칼을 차고 청총말을 탄 담호궁과 가라말을 탄 왕복룡이 동반했고 그뒤에 또 말을 탄 보향단의 다른장교들과 호위병들이 따르는데 이고장에서는 여직 한번도 있어본적이 없는 혼례행차인지라 구경군들은 모두 조민의 길호사가 과연 그럴듯 하다면서 웃는다. 맨발벗은 조무래기들이 우르르 달려나가 길을 메운다. 그러니 어리광대모양으로 소매가 너펄거리는 비단옷을 입은 조위전네 집 사람이 나서서 애들을 쫓아낸다.        애들은 와 떠들면서 길을 낸다.            하면서 사람들은 쑥덕공론을 한다. 남이야 웃건말건 난봉군이요 파락호인 조민은 몽달귀신이 되지 않고 새서방님이 됐다고 금수안장 백마우에 버젓이 앉아 헐레벌죽거리며 색시를 데리고 제집으로 간다....          리경광은 이렇게 부르짖다가 환각에서 깨여났다. 온몸에 식은땀이 쪽나면서 녹작지근했다. 그는 몸이 아래로 자꾸자꾸 가라앉는것만 같아서 꼼짝않고 앉아있다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웬 일인지 조민이가 더 놀지 않고 돌아가는것이 그의 눈에 띄였다.    (옥란이는 어쩌고있을가?)    리경광은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요즈음 눈코뜰새없이 돌아치다보니 그를 자주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시각따라 그녀를 만나보고싶은 마음이 진정할수 없이 간절해났다. 그는 그녀를 시급히 만나봐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자 용기를 내여 찾아갔다.    손옥란은 눈이 퉁퉁 붓도록 혼자서 울고있다가 리경광이 두 번이나 불러서야 머리를 들고 돌아앉는데 애수에 잠긴 그의 얼굴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리경광은 자기를 쳐다보다말고 다시 머리숙이고 섧게 우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리경광은 시침을 따고 다가섰다. 그리고는 자기를 말끄러미 쳐다보는 녀인의 서글픈 눈길에서 스스로 안위를 찾으면서 대답을 집요하게 바랐다.        자기의 삶에 환멸을 느낀 손옥란은 오뇌에 잠겨 몸부림쳤다.        리경광은 애욕에 젖은 측은한 음성으로 달래면서 그의 섬섬한 손을 쥐였다. 손옥란은 흠칫 놀라 손을 잡아빼려다 지금 자기앞에 서있는것은 조민이 아니라 리경광임을 알고는 그만두었다.        이경광은 마치 시를 지어 읇듯이 했다. 그리고나서는 자기한테 시름놓고 맡기는 그의 손등을 어루쓸다가 날씬한 몸을 자기의 품에다 꼭 끌어안았다.        손옥란은 애원에 찬 집요한 눈길로 사나이를 올려다보았다.            손옥란의 얼굴에 일순간 당황한 빛이 어렀다. 리경광은 기민하고도 매서운 눈길로 바깥쪽을 얼른 살피고나서 다시금 그를 힘껏 포옹하면서 낮고 긴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틑날 아침때가 지나자 리경광이 밤새 손옥란을 차고 도망쳤다는 소문이 쫙 퍼져서 온 금성은 죽탕같이 부글부글 끌었다. 제일 꼴불견이 된것은 장가를 가자고 만단의 준비를 해놓고 새날이 오기를 고대하던 조민이였다. 동란의 세월에 어리석게도 장가를 간다고 헐레벌죽 좋아지내던 이 어리숙한 난봉꾼은 리경광이 독수리 병아리채듯이 자기의 약혼녀를 채갖고 달아난 사실을 알게되자 거의 미칠지경이 되여 펄펄 뛰면서 욕지걸이를 마구퍼부어댔다.        손창유는 부모로서의 책임이 있으니 그 책임을 져야했다. 조가네 집에 주기로 한 딸이 없어졌으니 이제는 그네와 맺었던 계약도 다 찢어지고 무효로 되고마는건 물론이였다. 그렇게 되면 별동대는 무슨꼴이 되는가. 그들이 말타고 달아났다니 밤새껏 갈데로 다 갔을것이다. 그래도 손창유는 량심과 체면을 못이겨 곽털보더러 딸과 리경광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방향이나마 알아오라고 시켰다. 그리하여 곽털보는 조민과 함께 헛짓이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20여명의 기마추격대를 끌고 금성을 나갔다.    .    이번에 발생한 뜻하지 않은 탈출사건으로하여 골이 몹시 난 다른 한사람은 손자량이였다.         그는 보초책임자였던 곰보를 불러 닦아세웠다.            별동대는 물론 손가족에 대한 추문이 펴지는통에 밸이 난 손자량은 주먹으로 곰보의 따귀를 갈기면서 당장 알아내라했다. 그리고는 곰보가 풍진옥이를 붙잡아오자 불문곡직하고 단칼에 목을 찍어 그를 죽여버렸다. 이제부터는 그 누구든 탈출을 시도하거나 도와주면 추호의 양보도없다고 본때를 보이는 짓이였던 것이다.    조민의 길호사가 파탄됨으로 하여 보향단에서는 해학적인 의논이 짜했다.                    왕복룡은 이 모든 것을 다 들었지만 그저 모르는체하고 있었다.    이때 장대겸이가 그를 향해 시름겹게 한마디 던졌다.        허나 왕복룡이는 그저 머리를 절레절레 저을뿐이였다.        그야말로 과거를 아니볼바에야 시관이 개떡같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왕복룡이로서도 장대겸의 말에 짚히는데가 있는지라 생각을 달리굴리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가 이렇게 들어앉아서 뒤장이나 보면서 아주 방관시하면 조위전령감은 물로이요, 네속은 쇠천뒤글자같다고 여기는 사문동에게까지 의심만  더 같게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폭로시키는 위험한 짓이라고 감지되였던 것이다. 하여 그는 정신을 버쩍차렸던 것이다.        담호궁도 동감이였다.    왕복룡이 지주집장원으로 갔을 때는 조위전령감이 길다란 흔들이걸상에 반쯤 누워서 치밀어오른 분을 어느정도 나라앉인 뒤였다.        왕복룡은 친절한 관심을 보니느라 짜장 사위로나 된듯이 황공스러워 하면서 그를 개여올리고는 혹시나 상론할 일이라도 없느냐고 물었다. 조위전령감은 왕복룡의 행동이 좀 굼뜬게 유감스럽긴 했어도 이렇게 찾아온게 고마워서 그하고 금후의 대책을 의논하려들었다. 왕복룡은 기회가 좋은지라 속으로 기뻐하면서 계획한대로 잔치를 못할바하곤 이미 다 준비해놓은 음식들이니 버리겠는가 술상이나 차려 성안의 장령들이나 모두 청해다가 호궤(犒饋)하면서 금후의 행사들에 대해나 연구하고 담론하는게 하는게 좋을것 같다고 했다. 조위전령감은 그 충고가 과연 명지한것 같아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하여 며느리를 떼우고 부산해진 조위전령감네 집에는 식객이 끓게되였다.    성밖에서 민주련군이 노려온 기회가 바로 이것이였던 것이다.    밤이 깊어가건만 불밝은 장원은 그냥 벅적 고와댔다. 좋다고들 밤을 새는 판이였다. 이제는 려명이 다가올 때였다. 보향단퇀부와 병영마다에서는 흰기를 내걸었고 활짝 열어놓은 서대문과 북대문으로는 민주련군기병들이 질풍같이 습격해들어왔다.    이보다 얼마간 앞당겨 장린이네 집에서 멜대의 한쪽 끝에는 한상차림이 잘될것 같은 찬을 담은 커다란 쟁반을 보자기에 싸서 달고 다른 한쪽 끝에는 술을 넣은 가죽부대를 달아 어깨에 맨 젊은 사나이가 슬그머니 거리에 나섰던것이다. 그는 몸에 맞는 산뜻한 새옷을 입고 허리에다는 빨간색나는 혁띠를 띠였는데 그 차림새가 틀림없는 부자집의 사환군같아보였다. 그뒤를 회색다부살에 중절모를 쓰고 금테안경을 낀 사람과 양복입은 청년이 따랐다. 이들 셋은 딸을 잃어버린 손창유를 위안하러 가는 조위전지주집의 걸례붙이로 가장한 박금록, 김려홍과 김청송이였던 것이다.    셋이 별동대지휘부가 있는 담장대문가에 이르니 총창을 꼬나든 보초병이 막아섰다.            려홍이는 배포유하게 둘러붙이면서 눈이 올롱해지는 비도를 마뜩잖게 흘겨보았다. 마침 이때 손창유의 경위반장 비도가 익랑에서 나오다가 주안상을 가져왔다는 말에 헐레벌쭉 웃으면서 군침을 흘렸다.                익랑에서 나온 자는 대단히 좋아했다. 세 정찰병은 그를 따라 큰문으로 들어갔다. 한켠의 익랑에는 밤경비를 맡고있는 비도 십여명이 있었는데 그자들은 차려온 음식을 보자 얼싸좋아 제꺽 둘러앉았다.        박금록은 보를 풀어 헤치고 쟁반우에다 놓아온 채그릇들을 하나씩 주어 놓았다. 그러다가 그는 비도들이 꼭마치 갈신들린 돼지모양으로 손가락으로 채부터 집어먹는 꼴이 우스워 하마터면 킥 웃을번했다.        려홍이는 종을 훈계하듯 하고나서 청송에게로 몸을 돌렸다.        둘은 거기를 떠났다. 한편 중국말이 변설인 박금록이가 너름새좋게 수다를 피워대는 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려홍이는 청송이를 데리고 곧추 손창유가 있는 방을 찾아갔다. 남쪽은 탁상과 향탁이 있는 널직한 바당이고 북켠이 온돌로 되어진 방이였는데 너무조용하다못해 쓸쓸했다. 온돌우에는 조금도 다치지 않은채 식어버린 음식그릇들이 있는 채상반이 놓여있고 그 옆쪽에 손창유가 접침을 베고 누워있었다. 얼굴을 벽쪽으로 돌리채 꼼짝않고있는것이 흡사 썩고있는 송장같아보였다. 아마 늦둥이로 20년나마 자래운 귀녀를 시집보내려다 독수리한테 채우듯 잃고보니 마음 서운한데다 곁에 위로해주는 사람도 하나없으니 고독이 밀려들어 가슴쓰라려났던 모양이다. 무아경에 빠져있던 그는 분명 문소리를 들었건만 인기척이 다시나지 않으니 웬 일인가 싶어 몸을 돌렸다가 자기를 독살스레 내려다보는 두 청년을 발견하고는 그만 소스라쳐 몸을 일으켰다.                증오와 복수심으로 살기찬 눈살이 그의 숨통을 노리고있었다.        손창유는 자기 가슴을 만지는 것 같더니 어느새 베고있던 접침을 제꺽 쥐여 뿌리였다. 그것이 려홍의 귀뿌리를 쌩ㅡ 스쳐지나 창문을 답새겨 유리가 잘라당 하고 깨졌다. 려홍이는 뛰여올라가면서 일어나려는 그의 가슴을 들이찾다. 손창유는 무인가를 찾다가 다시한번 더 채우고는 그만 늘어져 피를 토했다.    보초가 유리창깨지는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것을 저쪽에서 박금록이 권총으로 쏴눕혔다. 이때 아군습격대가 벌써 대문가에 거진이르었던 것이다.    한편 조위전령감네 집에 가서 제 색시감을 잃음으로해서 부례를 끓이고 멍청이신랑을 위안하고있는 손자량은 변이 생긴줄도 모르고 취해서 권커니 작커니를 련속하면서 날을 밝히는 판이였다.    
393    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4장 (7) 댓글:  조회:2270  추천:0  2015-01-30
       사태는 려홍이가 예측한바와 같이 희극적으로 발전해갔다. 근간에 보향단에서 별동대특무계분자들을 마구 잡아가두고 뚜드려패는통에 리경광이 왕복룡을 찾아가 항의를 제기했고 손창유가 사문동을 찾아가 보향단을 징벌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친목을 주장해온 조위전령감이 왕복룡이를 불러다놓고 노발대발하면서 불문곡직하고 별동대에 사죄하라 강요했는데 본시 배짱이 이만저만이 아닌 왕복룡이는 사죄는커녕 별동대를 성밖으로 당장 쫓아내겠다고 윽윽해서 모순이 더 악화되였다는것이였다. 민주련군에서는 이 기회를 타서 왕복룡이더러 기의하라고 권고신을 써서 장대겸에게 주어보냈다. 그런데 사흘이 넘도록 소식이 감감했다. 한데다 보향단과 별동대지간에 다른 충돌도 더는 생기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려홍이는 슬그머니 안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깥형세가 도대체 어떻게 되고있는지를 직접시탐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왕야장과 왕금산은 각각 비수 한자루씩 품고 려홍이를 따라 나섰다.    려홍은 장탄한 권총을 몸에 지니고 그들 형제와 함께 집을 나섰던 것이다.    세사람은 될수옥 행인들이 적은 골목으로 해서 걸었다. 보안단퇀부가 보이는 큰길에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려홍이는 보향단근처에 가서 정황을 살피려고 마음먹고 눈짓을 했다. 세사람은 부지런히 걸어 붐비는 사람들 속에 끼여들었다. 그런데 별동대특무들이 다시는 얼씬하지 않을줄로 알았는데 여기서 일이 과연 공교롭게 되고말았다. 잡화점앞에 서있던 한 녀석이 려홍이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별동대의 게뚜더기였다. 려홍이는 얼핏 피하려고 몸을 돌렸다. 순간 그 어떤 앙칼진 다른손이 불시로 그의 어깨를 탁 잡아 돌리는것이였다. 실로 창졸간에 당하는 일이여서 미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려홍은 그자의 권총쥔 손을 탁 치면서 골로 상판을 들이박았다. 특무는 외마디비명을 지르면서 방아쇠를 당겨 총소리를 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왕야장이 게뚜더기를 막았고 가까이에 있었던 왕금산이 다시 덮치려는 그자의 다리를 걸어 재껴놓았다. 이통에 그만 란장판이 벌어졌다. 놀랜 사람들이 갈팡질팡했고 특무놈들이 공산군밀정을 잡으라고 아우성쳤다. 세사람은 덤벼치는 사람들속에 끼여 동쪽으로 냅다뛰다가 남쪽방향으로 꺾어들었다. 그리고 장림주점에 이르자 그안으로 쑥 들어가 뒤문으로 빠져나가 추격하는 특무들을 떨어버릴수 있었다.    이틑날아침에 거리에 나갔던 장현덕이 헐헐거리며 돌아오더니 호주머니에서 접은 종이장을 꺼내놓았다.            더욱 놀란것은 왕야장이였다. 종이장은 이어 려홍의 손에 넘어갔다. 연필로 그의 용모를 비슷하게 그려놓가까지 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포고가 씌여있었다.         포고:       지금 성내에 공산군밀정이 잠입했으니       사람마다 정신차리고 붙잡기 바란다.        성명: 김려홍(조선인)        년령: 26세        외형: 중키를 좀 넘으며 얼굴에 살결이 적음.        눈, 코, 입.... 무기를 휴대했으니 체포시 주의를 요함.                          중앙선견군사령  사문동                                   1946년 9월 20일        왕야장이 듣고나서 사문동을 욕하는 소리였다.        장현덕은 려홍의 인신안전을 무등 근심했다.    포고문에 성명, 년령을 밝히고 용모파기까지 한 것으로 보니 손가네나 리광경이 상세히 고해바친것이 틀림없을것 같았다. 사태의 엄중성을 깨달은 왕야장네 지하적위대원들은 려홍의 바깥출입을 중지하는 한편 몸을 내번지고 적정탐지에 이바지할것을 맹세했다.    그런데 위험은 더 옥죄여들었다. 저녁을 방금 치르고나서였다. 려홍이가 왕야장네 형제와 함께 래일 왕복룡이를 만날일에 대해서 의논하고있는데 이때 밖에 나가 망을 보던 소균이와 계화가 달려들어와 저기서 총가진 사람들이 오고있다고 알렸다.    
392    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4장 (6) 댓글:  조회:2305  추천:0  2015-01-29
     바람이 길가의 먼지들을 날릴 때마다 숨이 막힐지경 열기가 훅훅 일었다. 그러더니 련며칠간을 지속된 강더위를 말끔히 식혀버릴것처럼 소나기가 한바탕 퍼부었다.    이틑날 아침식사를 하는데 어디선가 폭음이 났다.        왕복룡은 처음에는 그것이 간밤처런 또 비를 퍼부을 우레소리로 여겼다가 그런것같지 않아서 손에 들었던 밥공기를 되놓다. 바로이때였다. 경위련장이 황황겁겁이 뛰여들면서 고와댔다.            옆에 앉았던 담호궁참모장이 먼저 자리를 차고 일어났고 왕복룡이도 황급히 일어나 창가로다가 가 밖을 내다보며 귀를 강구었다. 다시금들려오는 그것은 분명히 우레소리가 아니고 폭음이였다.         왕복룡은 웨치면서 담참모장과 함께 황황급급히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밖에 나오자 폭음은 끊어버리고 더나지 않았다.     (무슨눔의 감투끈이냐?... )    전쟁을 머릿속에 그려려나 봤지 여직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왕복룡은 호기심에 가까운 흥분에 들뜬채 담호궁참모장과 함께 말을 타고 그리로 달려가보았다. 왕복룡의 한개련 병력이 금성의 서대문구역을 맡아 지키고 있었는데 가보니 민주련군은 쳐들어오지 않는데 날아온 민주련군의 박격포탄 몇 개가 병영을 명중해서 상병이 꽤 났던 것이였다. 다행히 상망이 그리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넋살을 먹은 왕복룡의 부하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좀있으려니 남대문을 지키는 보안 1려에서도  동대문을 지키는 별동대에서도 몇이 말을 타고 급급히 달려와 보고는 민주련군이 쳐들어올것 같은데 어떻게했으면 좋을가고 했다.    왕복룡은 만원경을 들어 성밖 큰길쪽을 살펼다. 외선을 지킬 임무를 맡은 한패가 무리지어 산만스레 성안으로 달려들어오는 꼴이 보였다.        왕복룡이 소래기를 쳤다. 하지만 그자들을 되돌려세울재간이 없었다. 금성상공에서 총알이 날지 않았고 포알이 더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똥줄빠지게 도망쳐 들어온 도주병들이 소문을 퍼뜨려서 성안은 불시에 가마안에서 물끓듯했다. 인제는 앉은벼락을 맞게 됐다느니 투항해야한다느니...    조민이 나타났다. 내내 약혼녀한테만 정신이 빠져  환장할지경이던 그가 이제야 제정신이 돌아섰던 모양이이다.        왕복룡은 땅바닥에다 침 을 련속 뱉으면서 머리를 돌렸다. 부상자들을 실은 마차가  진흙을 마구 짓이개놓으면서 성안으로 들어오는데 부상자의 신음소리에 남편을 찾는 아낙네의 웨침소리, 거기에다 자식죽은 집 부모들의 절통한 울음소리와 앙연한 원성이 한데 범벅이 되어 온 금성은  삽시간에 초상집모양이 되고말았다.    (아아, 내다 왜 이런꼴이 되는가?! )    열곬물이 한곬으로 모인다고 자기 한몸에 들씌워지는 악담과 원성을 받아내기 어렵게 된 왕목룡은 가슴이 저려나면서 머리가 숙어졌다. 조민이 이제야 바라고 오고있었다. 그가 탄 백말이 어지러워진 진창길을 걷기싫은지 가끔 멈춰서군하는데 그 꼴이 마치도 등에 태운 제 주인처럼 변신성스러워 보였다.        하고 조민은 바투다가오다가 구부정한 허리를 제대로 펴기라도 할것 처럼 세우면서 보기사납게 성질을 부렸다.            조민은 매부리코를 치켜들고 절반은 우는 소리를 내는데 그꼴이 우습기도하고 어찌보면 가엽기도했다.    (빌어먹다 뒤여질 색골아, 모두 너를 닮아 이꼴이다!)    왕복룡은 목구멍으로 나오는 욕지기를 겨우넘겨버렸다. 아무튼 처남될자식인데 생각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제1방선책임련장을 불러다 처단해버리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볼수없었다. 누군가 하는 말이 그는 첫포격에 벌써 각이 찟겨져 형체도 없이 황천으로 가버렸다는것이였다.    (음, 그래서 네녀석들이 대가리 떨어진 파리모양으루 헤덤벼쳤구나. 제길할! 만약 내가 죽는다면 그때면 온 보향단이 이따위꼴루 되겠지.)    이런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자 황복룡이는 온 몸에 찬물을 끼얹듯이 소름이 쪽 갔다. 휑뎅그렁한 비행장건너편 저기 서쪽마을과 서북쪽마을사이에 수축해놓은 전호가 말끔히 허물어진것 같고 병영에서 연기가 날 뿐 다른 동정은 없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사실이 그러하면 민주련군은 왜서 대포를 쏘아 방선만 망그러뜨리고 쳐들어오지는 않을가, 이건 대체 무슨전술인가?... 본때를 보이는건가, 아니면 심심하니 위력을 시위하는건가?... 왕복룡은 려홍이 자기를 보고 성을 지켜낼만한가고 하던 말이 새삼스레 상기되였다. 그때 그는 또 어리석은 사람이 모래로 뚝을 쌓으려 덤벼친다면서 못난짓을 그만두라고 권고하기도했던 것이다. 이제보니 제가 통솔하는 보안단원들은 신통히도 뭉칠수없는 모래알같게 생각되였다. ... 왕복룡은 손맥이 탁 풀렸다. 그가 타고있는 억대우센 말까지도 오늘은 코를 자주 푸릉거리는것이 흡사 소란스러운 이곳을 어서 피해서 어디에건 드러누워버리고만싶어하는것 같아보였다.        담참모장이 왕복룡이의 안색을 살피더니 하는 말이였다.    두사람은 함께 퇀부쪽으로 말을 몰았다.        담참모장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지라 얼떨떨해하였다. 왕복룡은 그러는 그를 힐끗 돌아다보고나서 코만 킁킁거렸다. 그리고는 내처 고뇌에 파묻혀버리고말았다. 예상치않았던 갑작스런 타격을 이렇게 받고보니 그는 그 원인을 알아내려고 담참모장보다 곱절이나 속을 끓이게되였다. 마음속에 동란을 치르고있는 그였다. 하는 신음소리가 그로하여금 머리를번쩍 쳐들게도 만들었다. 어디서 딩굴었는지 온 몸이 흙감태기로 된 녀석이 한쪽 다리를 상하여 다른 사람의 부축임을 받으면서 옆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왕복룡은 화김에 그를 채찍으로 갈겨놓았다.        상판을 얻어맞은 부상자는 아츠러운 소리를 치며 비칠거렸다. 동향구우는 아니지만도 이 왕복룡이를 남만 못지 않게 추종해온 젊은이였다. 그러한 그를, 더구나 포격에 다리를 상한 불쌍한 그를 왕복룡이는 무자비하게도 태찍으로 때려놓은 것이다. 원망에 떨는 울음소리가 귀속으로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아아, 난 왜서 이렇게 포악해졌나? 도대체 그가 무슨짓을 했길래?)    왕복룡이는 이 시각 리지를 잃고 인성을 잃어가는 자기를 발견하면서 고 하던 려홍의 말을 생생히 떠올렸다.      퇀부에 이르니 홍예문우에 있는 안토중천(安土重遷)이란 액자가 쓸쓸히 내려다보면서 자기를 비웃는것만같았다.    (마른하늘에 생벼락인데 안토중천이란게 다 뭐냐. 미침놈!)    왕복룡이는 속으로 쓰겁게 웃었다. 그처럼 마음속깊이 품었던 희망도 신념도 넋과 함께 파멸의 운명을 면치못할것이니 몸이 당장 녹초로 되는것만 같았다. 왕복룡이는 경위원들의 부축임을 받으면서 말에서 겨우내였다. 퇀장실에 들어서니 선참으로 눈에 띠이는것이 상우에 있는 술병이였다. 그러자 그 보명주를 마시면 자기의 목숨을 보호할수 있느냐고 묻던 려홍의 말이 새삼스레 귀전을 쳣다.      (내가 자랑하며 마셔왔던 저 술이 과연 내 목숨을 보호할수 있단말인가? 아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왕복룡의 눈에는 그 보명주안에 있는것이 술이 아니라 흡사 자기의 넔을 흐리워놓는 마약같기도하고 생명을 앗아내는 독약같기도했다. 그래서 정신이 펄쩍든 그는 성큼 다가가 그놈의 술병을 쥐여 땅바닥에다 힘껏 둘러메쳤다. 술병이 소리내며 터져서 유리쪼각들이 산산이 흩어졌고 온 방안을 술냄새로 채웠다.    지금 이렇게 왕복룡이 종잡지 못할 번민속에 잠겨 모대기고있는 그 원인을 눈치차린 사람은 오로지 장대겸뿐이였다. 속이 간질거려 잘코사니를 불렀다.  퇀장이 하루속히 기의할것을 은근히 바라고있는 그는 네가 기의를 권고하러 온 민주련군의 그 지하인원을 랭대했길래 징벌을 받는거라면서  깨고소해하였다. 이렇게 한바탕 답새겨놔야 억척보두인 털보퇀장이 정신을 펄쩍 차리고 자기의 행실을 돌이켜볼것라 여기는 그였던 것이다. 장대겸은 지어 황복룡이 진정하지 못하고 자기의 수염만 신경질적으로 자꾸 긁어대는 꼴이 우수워 하마터면 웃을번했다.  왕퇀장의 다른 한 경위원은 대겸이보다 한 살 손우였으나 대가 약하고 순진한축이였다. 그는 리지를 잃고있는 퇀장의 행동에 위압감을 느끼고 비자루를 가져다가 조심스레 방바닥에 널린 유리쪼각들을 쓸어모았다. 한편 옆쪽의 방에서는 불안에 잠긴 다른 장교들이 형세를 론하면서 부산을 떨었다.        담참모장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벌써 몇 번이나 그런 말을 곱씹어서 왕복룡은 신경질이 나 미간을 다시금 찌프리면서 음질을 썼다.        담참모장은 그 말귀를 알아들을수 없어서 말뚝처럼 선채로 두눈만을 꺼벅거렸다.        왕복룡은 그 말에 응대도하지 않고 한숨만 내쉬었다. 그러다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안을 뚜벅뚜벅 거닐면서 주먹을 들어 연신 제 머리를 툭툭 쳐댔다. 그러다가 그는 그만 쓰러지듯 쏘파에 주저앉으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마참모장은 그제야 이상한 감각이 들어 그를 다시금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왕복룡은 충혈된 눈으로 자기가 가장 믿고있는 동사자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입을 열어실토하고야말았다. .            담참모장의 말에는 섭섭해하는 여운이 담뿍 서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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