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장편력사가사 <<한양가>>는 필자가 40년전에 개원시의 한 농촌에 사는 안동권씨댁 할머니가 수십년동안 수장해온 필사본에 근거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한양가>>는 경남의 한 우국지사가 <<한일합방>>직후 일제의 식민지로 된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망국의 비운을 통탄하면서 리조 5백년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찾고 백성들에게 반일감정과 애국심을 불러일키려고 쓴 글인데 당시 령남지방의 백성들을 많이 감동시켰다고 합니다.그리하여 조선글을 아는 집집마다에서는 이 글을 베껴 소장하였다고 합니다.권씨댁할머니도 시집올때 이 가사를 베껴가지고 와서 세상뜰 때가지 간직하고있었습니다.
원 저자는 력사자료를 충분히 장악하지 못하여 주로 <조선왕조실록>>과 전설,야사에 의해 글을 썼기때문에 력사사실과 합치되지 않는 부분이 다소 존재하지만 글을 통해 리조 5백년 력사의 맥박을 느낄수있다는데 그 의의가 큰것입니다. 글을 쓰던 당시에 고종왕과 순종왕이 아직 생존해있었기때문에 이 글에서는 그들의 묘호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가운데서 틀린 곳이 많았고 또 저자의 세계관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오류가 적지 않았는데 필자가 <<조선통사>>, <<이야기한국사>>,한국의 고등학교 <<력사>>교과서와 <<세계인명대사전>>등등 여러 책을 보고 가사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옳게 고쳤고 오유가 너무큰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삭제하거나 적당히 수정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미흡한 점들이 적잖으리라 생각하면서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도를 바람니다.
필자 2005년 6월
제1장
어와 백성들아 이내 말삼 들어보소
이 글을 보고나면 한양사직(社稷) 아오리다.
오백년 조선왕조 흥망성쇠(兴亡盛衰) 여기 있고
이십팔왕1) 치국(治国)해온 선불선(善不善)도 여기 있소.
장할시고 태조대왕(太祖)2) 놀랍도다 우리 대왕
문필(文笔)이 유여(有余)하고 복록(福禄)은 더욱 좋다.
이십에 무과(武科)하고 삼십도 안되여서
무슨 벼슬 하였던고? 충무대장하였습네.
이때가 어나 땐고 공양왕(3) 말년이라
정삼봉4)은 정승이오 권양촌5)은 판서(判书)로다
황방촌6)은 보국(補国)이요 길야은7)은 주서(注书)로다
조정신하 씩씩하나 임금은 헌헌(轩轩) 찮아
그 나라 보존(保存)하며 그 사직(社稷) 지킬소냐
태조(太祖)대왕 거동(举动) 보소 송악산(松岳山)에 올라가서
천기(天机)를 바라보고 국운(国运)을 요량(料量)하니
왕건태조(王建太祖) 정한 사직 사백칠십오년이라
동두란(佟豆阑)8)은 상장(上将)이요 정삼봉(郑三峰)은 모사(谋士)로다
일조(一朝)에 반정(反政)하야 수창궁(寿昌宫)서 등극(登极)하니
그때가 어느 땐고 임신(壬申)년 사월이라
입궐(入阙)하신 칠일만에 태평과(太平科)를 설치(设置)한들
포은(圃隐)9)선생 두려하야 어느 누가 과거(科举) 볼고?
칠십이현(七十二贤)10) 충신들은 두문동(杜门洞)에 들어가고
길야은(吉冶隐)은 어디 갔노 금오산(金乌山)을 찾아갔다.
태종대왕11) 거동보소 새왕조 바꾸려고
포은(圃隐)선생 찾아와서 태조문병(问病) 하올적에
주안상 차려놓고 포은 심중 떠보느라
“이런들 어찌하리 저런들 어찌하리
만수산(万寿山)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찌하리
우리도 이같이하야 백년까지 살으리”
시조(时调) 한수 읊조리며 포은눈치 살피였네
장할시고 포은선생 태산(泰山)같이 굳게 앉아
일월(日月)같이 빛난 충심(忠心) 송죽(松竹)같이 곧게 한다
“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尘土)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임(任)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단심가(丹心歌) 높이 불러 절개(节慨)를 보여주나
아깝도다 천고충신(千古忠臣) 옛왕조 못지켰네
선죽교(善竹桥) 다리위로 포은선생 지나갈 때
조영규(赵英珪)는 철퇴(铁堆)들고 고려(高吕)는 칼 빼들고
다리위로 마주오니 방랑사중(搏浪沙中) 창해력사(昌海力士)
진시황(秦始皇) 맞히듯이 이렇듯 위태롭다
장할시고 포은선생 죽음이 두려워서
철퇴보고 물러서랴 조영규의 거동보소
소매속에 감추었던 쇠몽둥이 휘둘러서
포은머리 한번 치니 두골(头骨)이 파쇄(破碎)하고
류혈(流血)이 랑자(狼藉)하야 선죽교 다리위에
혈적(血迹)이 적적(的的)하다 풍마우쇄(风磨雨刷) 오백년에
지금까지 흔적(痕迹) 있어 충절(忠节)을 전해오니
천지도 경모(敬慕)하고 일월(日月)도 생광(生光)일세
이 때는 어느 땐고 임신(壬申)년 칠월이라
태조(太祖)대왕 등극(登极)하여 정삼봉(郑三峰)과 무학12)불러
왕도(王都)를 정케할 제 임진강(临津江)을 얼른 건너
삼각산 일지맥(三角山一支脉)에 대궐(大阙)터를 잡았으니
한양(汉阳)이 여기로다 대궐좌향(大阙座向) 어이할고
무학은 해좌사향13) 삼봉은 자좌오향14)
양인(两人)이 다툴적에 정삼봉 하는 말이
“너 모른다 해좌사향 못놓는다”
불도(佛道)는 간데없고 유도(儒道)만 숭상(崇尚)한다
무학이 하는 말이
“여보시오 서방님아 아는체 너무 마오
다섯번 전(转)할 일과 열두번 돌(突)할 일을
무엇으로 막아낼고 잔말 말고 이리 놓게”
정삼봉 하는 말이
“미련하다 무학님아 막을법이 여기 있다
진방15)이 허(虚)하기로
두가지 있을줄을 네 어이 모르나냐
동대문 현판(悬板)쓸 때 갈지(之)자로 놓으면은
아무 걱정 없을 테니 자좌오향 놓아보자”
무학이 분(愤)을 내어 동대문밖 썩나가서
왕십리(往十里)에 이르러 대궐(大阙)터를 돌아보고
한길이나 파고나니 석함이 묻혔거늘
파내어 살펴보니 유서(遗书)에 하였으되
“요망한 중 무학놈아 그릇찾아 네 왔도다”
무학이 탄식(叹息)하고 그길로 돌아가서
금강산(金刚山) 들어가서 토굴(土窟)로 움을 메고
불도(佛道)를 숭상(崇尚)하며 세월(岁月)을 보냈도다
정삼봉은 그길로 대궐을 지을적에
남한산(南汉山)은 주작(朱雀)16)되고 무학재가 현무(玄武)17)되고
왕십리가 수구(守口)되고 임진강이 인후(咽喉)로다
남한산(南汉山)이 청룡(青龙)18)이요 북악산이 백호(白虎)19)로다
동서남북 사대문(四大门)에 좌우궁(宫) 널리 짓고
삼층궁궐(三层宫阙) 지었는데 동편대궐 더욱 좋다
창덕궁(昌德宫), 만수궁(万寿宫)은 웅장하고 화려하고
근정전(勤政殿),흥덕궁(兴德功은 황홀하고 정제하다
호연각,청연각(清臙阁)은 능난하고 명현하고
계화궁(桂花宫),애화궁(爱花宫)은 놀랍고 장하도다
집춘문(集春门),원춘문은 지형이 험악하고
춘당대(春糖台),경무대(竞舞台)는 높고도 드넓으니
과거보기 더욱 좋다
남별궁(南别宫) 좋건마는 영실(灵室)하여 귀관(鬼关)같다.
이렇게 좋은 궁궐 태조대왕 입궐(入阙)하니
그 왕비(王妃) 뉘시든고 안변한씨(安边韩氏)부인이요
부원군(府院君)20)은 뉘시든고 안변사람 한경(韩卿)이요
둘째왕비 뉘시든고 곡산강씨(曲山康氏)부인이요
부원군은 뉘시든고 곡산사람 윤성(允成)이라
임금이 어지시여 국정(国政)을 선치(善治)하니
왕비도 어지시고 부원군도 착하셨네
치국(治国)하신 칠년만에 창업공덕(创业功德) 장하시고
요지일월(尧之日月)21) 받아오고 순지건곤(舜之乾坤) 이 아닌가
도탄(涂炭)중에 있던 백성 거리거리 춤을 추고
시화(时和)에 연풍(年丰)이니 국태민안(国泰民安) 이때로다
즉위하신 칠년만에 태조대왕 거동보소
상왕위(上王位)22)에 계시기를 삼년을 지낸후에
묘수궁(妙寿宫)에 백발이라 정종(定宗)23)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 뉘시든고 경주김씨(庆州金氏)부인이라
부원군은 뉘시든고 경주(庆州)사람 김천서(金天瑞)라
등극하신 삼년만에 태종(太宗)대왕 하신 말씀
“창업풍진(创业风尘) 의논컨데 나의 공(功)이 으뜸이오”
정종대왕 분(愤)을 내여 내실에 들어가서
용상(龙床)위에 엎드릴 제 눈길이 수상하니
정종왕비 눈치알고 대왕전(大王前)에 권(劝)한 말씀
“그 위(位)를 내여주오 골육상쟁(骨肉相爭)되오리다”
정종대왕 그 말 듣고 왕위를 내놓았네
주1)이십팔왕:이 글에서는 조선의 실제왕인 27왕가운데서 대한제국의 황제인 순종과 왕의 자격을 잃은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을 제외한 24명의 왕에다 추존한 덕종,원종,진종,장조 등 네임금을 더하여 28왕이라 하였다.
2)태조대왕: 조선조의 첫임금 리성계( 재위 1392--1398 )의 묘호.
3)공양왕:고려말대왕, 재위 1389--1392
4)정삼봉:조선의 건국공신이자 설계자 정도전(郑道传1342--1398)의 호.
5)권양촌: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문신인 권근(權近, 1352년~1409년)의 호
6)황방촌:조선초의 명재상 황희의 호
7) 길야은:고려말과 조선초의 학자 길재의 호
8)동두란 :조선조의 건국공신 리지란(李之蘭, 1331년 ~ 1402년)은 원(元) 간섭기 고려(高麗) 거류 녀진족 출신으로 고려 말기의 무관(武官)이고 조선(朝鮮) 시대의 개국공신이자 무신(武臣), 정치가(政治家), 시인(詩人)이며 만년에 불교 승려가 되였다.
9) 포은(圃隐):고려말의 충신 정몽주(郑梦周1338--1392)의 호
10)두문동 칠십이현(杜门洞七十二贤): 두문동 칠십이현이란 고려가 망하자, 고려의 72명이나 되는 충신렬사들이 조선왕조에 신하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로, 송도(지금의 개성) 동남현에 올라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있는 곳을 향하여 례를 올리고 삿갓을쓰고 그곳에서 생활했다는것을 가리킨다.
11)태종대왕:조선조 제3대왕 리방원 재위 1400-1418
12)무학:(無學: 1327~1405)은 고려(918~1392) 말, 조선(1392~1897) 초의 승려이다..
13)해좌사향(亥坐巳向):해방(亥方)을 등지고 사방(巳方)을 바라보고 앉은 자리 정남방에서 약30도 기운곳
14)자좌오향(子坐午向):자방(子方)을 등지고 오방(午方)을 바라보는 좌향 즉 뒤켠은 정북방향이고 앞은정남방
15)진방:동남방향
16)주작(朱雀):남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으로 여겨진 짐승
17)현무(玄武):북쪽 방위의 물 기운을 맡은 태음신을 상징하는 상상의 짐승
18)청룡(青龙):] 동서남북의 네 방위 중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19)백호(白虎): 주산에서 오른쪽으로 뻗어 나간 산줄기
20)부원군: 국왕의 장인
21)요지일월:요임금이 통치하던 태평성세를 말함 순지건곤은 순임금이 통치하던 태평성세를 가리킴
22)상왕위: 원 국왕이 새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나서 있는 자리를 높여 상왕위라 한다.
23)정종:조선조 제2대왕 재위 1398∼1400.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경(曔)이고, 초명은 방과(芳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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