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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력사가사 "한양가" 제9장
2015년 09월 03일 13시 07분  조회:2276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서정시방 :
  제9장
숙종(肃宗)1)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 뉘시든고
광산김씨(光山金氏) 부인이오 부원군은 김만기(金万基)라
둘째왕비 뉘시든고 여주민씨(丽州闵氏) 부인이오
부원군은 유중(维重)이라. 세째왕빈 경주김씨庆州金氏)
부원군은 주신(柱臣)이오 대빈(大嫔)은 장소의(张昭仪)요
숙빈(叔嫔)은 최씨(崔氏)2)로다 즉위를 하신 후로 
정치를 잘하시니 국태(国泰)에 민안(民安)이오
시화연풍(时和年丰) 이때로다. 임금은 성군(圣君)이오
신하는 충신(忠臣)이라 대왕님 거동보소
성군(圣君)은 성군인데 무왕(武王)만 못하도다
대빈(大嫔)한테 유혹(诱惑)되어 중전(中殿)을 소박했네
대빈인 장소의는 인물이 절색(绝色)이고
문필이 유여(有余)하고 외간(外谏)도 능통(能通)하다
대빈의 거동보소 맵시있게 차림하고
대왕앞에 하는 요간 소진장의(苏秦仗义)3) 부럽잖네
중전께서 하신 말씀 입에서 악취(恶臭)나서
대왕님을 마주하여 말하기 민망하다
이렇듯이 요간하고 중전보고 하는 말이
“대왕께서 말씀키를 중전을 대하자면
입에서 악취나서 말하기 용렬(庸劣)터라” 
이렇득 요간했네 숙종대왕 어느 하루
내전(内殿)에 들어가니 중전이 돌아앉아
대왕한테 하는 말이 “신첩(臣妾) 입에 악취나서
용렬타 하시기에 어이 감히 마주보고
말씀을 올리리까?” 숙종대왕 생각하니
대빈 말이 옳다싶어  즉시 내전 나오신후
중전을 소박(疏薄)하니 구시월(九十月) 찬바람에
속속낙엽(飒飒落叶) 이 아닌가 세상사람 귀천(贵贱)간에
부인몸은 누구나 가장(家长)에게 달렸으니
가장이 그르알면 옳은 부인 글러지고 
그른 부인 옳아지니 불쌍한게 여자로다. 
부인중에 귀한 부인 황후왕비(皇后王妃) 제일(第一)이나
제왕 한번 아차하면 왕비몸도 락엽(落叶)되니
이런 왕비 말할진댄 소조막심(萧条莫甚) 가련(可怜)하다.
대왕님 거동보소 
      은은(隐隐)한 깊은 인정(人情) 대빈에게 쏟아붓고
소조막심(萧条莫甚) 섧은 구박(驱迫) 중전이 짝이 없다
무오(戊午)년 춘삼월에 변수궁서 폐비(废妃)하니
슬프다 중전신세 적막(寂寞)코 가련(可怜)하다
어나 궁녀 감히 가서 전왕비(前王妃) 위로(慰劳)하며
어느 아들 키워놓아 그 모친(母亲) 위로할가
단몸 일신(一身) 민중전(闵中殿)은 일지화수(一支花树) 분명하다
폐비할때 억울하게 죽은 신하 몇몇이뇨?
오두인(吴斗寅)4)은 상소짓고 정배가서 죽었었고
이세화(李世华)5)는 간(谏)하다가 정전(正殿)에서 맞아죽고
박태보(朴泰辅)6)는 정전에서 사리(事理)를 따질 때에
화형(火刑)으로 다스리니 지성으로 간(谏)하는 말
“부부간(夫妇间)을 말할진대  만원(万源)인에 으뜸인데
전하 오늘 하신 일은 생민지도(生民之道) 간데 없고
만복지원(万福之源) 쓸데 없소 주역(周易)을 못보셨소
천지만물(天地万物) 생긴 이치(理致) 건곤(乾坤)이 으뜸이라
폐비된 중전 신세 삼월동풍(三月东风) 낙화(落花)로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중 한절기(节气)만 빠지여도
만물발생(万物发生) 못하오니 폐비배척(废妃排斥) 말으소서.”
숙종대왕 대노(大怒)하여 쇠를 달궈 당금(烫襟)하니
박태보 하는 말이 “박팽년 당금질에
쇠가 차다 하셨더니 박태보도 그와 같다.”
 충렬(忠烈)은 무상(无上)이라 이때에 김만중(金万重)7)이
상부사(上府使)로 중원(中原)가서 폐비(癈妃)한줄 몰랐더라
압록강 건너려다 중전폐비 소문 듣고
강변에 유숙(留宿)할 때 숙종 회심(回心) 시키려고
등촉(灯烛)을 밝혀놓고 동지장야(冬至长夜) 긴긴 밤에
밤새도록 책을 썼네 그 책 내용 볼작시면
유한림(柳翰林)은 가장(家长)이고 사(谢)부인은 정실(正室)이오
교녀(乔女)는 첩(妾)이로다. 교녀마음 요악(妖恶)하여
유한림을 유혹하고 사부인을 모해(谋害)하여
휴처(休妻)하게 하얐으니 공정(公正)함은  어디 가고
요혹(妖惑)만 가득하다 유한림의 어진 마음
우지탁진(雨止浊尽) 후회말아 봄풀같이 새로 나서
사부인을 모셔오고 교녀를 처단(处断)하니
건곤이치(乾坤理致) 당연(当然)하다 이 뜻으로 지은 책을
전하(殿下)한테 올리시며 이번에 중원(中原)가서
 책(册) 한권 얻었는데 창졸(仓卒)하게 번역(翻译)하여
 등서(誊书)하야 올리나니 이 책 한번 읽어보소
전하께서 받아보니 <사씨남정기(谢氏南征记)>라
대빈을 불러들여 그 책을 내여주며
“중원(中原)서 온 책인데 이상하고 좋다하니
네가 모두 읽어다오”  장대빈이 책을 들고
한장 두장 읽어가니  대단히 재미있다.
책을 다 읽고보니  사부인은 무죄(无罪)하고
요악한건 교녀로다. 전하께서 깨우치고
진노(震怒)하여 하신 말씀 “희빈(喜嫔) 요년 교녀로다. 
대빈을 잡아내라. “ 추상(秋霜)같이 호령(号令)하되
능지처참(凌池处暂 하라신다 벌떼같은 저 군졸(军卒)이
일시에 달려들어 머리채를 감아쥐고
주룩주룩 끌어내어 수레위에 높이 싣고
장안대로(长安大路) 나갈적에 그 아들이 따라간다. 
그 아들은 누구던고 훗날 임금 경종(景宗)8)이라
경종의 거동보소 제 어미가 아무리
요악한 계집인들 모자인정(母子人情) 없을소냐
죽는 엄마 보겠다고 수레뒤에 다가서니
그 어미 요악보소 경종불러 하는 말이
“나는 이제 죽게 되니 모자간(母子间)에 영결(永诀)이라
영결하는 오늘날   네 손 한번 만져보자” 
나어린 경종이 어미말씀 들어보니
처량(凄凉)하고 가련(可怜)하여 가까이 다가가니
장희빈 속생각에  왕위(王位) 이을 가망(可望)없어
경종의 낭신을 움켜쥐고 이를 갈며
“너와 나와 함께 죽자” 미친짓을 하는지라
경종이 실색(失色)하고 까무러쳐 쓰러지니
곁에 있던 궁노(宫奴)들이 대경(大惊)하야 모셔와서
 궐내(阙内)에 안치(安置)하고 의약(医药)으로 치료(治疗)한들
두어치나 빠진 낭신 본양(本样)되기 어렵도다
장대빈을 죽인후에 민중전(闵中殿)을 복위(复位)하고
박태보와 오두인과 이세화는 표창(表彰)하여
충렬문(忠烈文)을 지었도다 경자(庚子)년 유월팔일
숙종대왕 승하하니 춘추가 예순이라
고양땅 삼십리레 명릉(明陵)9)이라 이름하고 
두 왕비릉 익릉(翼陵)10)이라 
 
경종대왕 등극하니 그 어미는 장소의라 
왕비는 뉘시든고 청송심씨 부인이오
 부원군은 심호(沈浩)로다
둘째왕비 뉘시든고 함종어씨(咸综鱼氏) 부인이오
부원군은 어유구(鱼有龟)라 즉위(即位)를 하신후로
신병(身病)이 날로 더해 정사(政事)를 못보시고 
삼사년 신고(辛苦)타가 갑진(甲辰)년 팔월보름
경종대왕 승하하니 고양땅 삼십리에
의릉(懿陵)11)이라 이름짓고 왕비릉은 혜릉(惠陵)12)이라
 
영조(英祖)13)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는 뉘시든고 
달성서씨(达成徐氏) 부인이오 부원군은 서종제(徐宗悌)라
둘째왕비 뉘시든고 경주김씨(庆州金氏) 부인이오
부원군은 김한구(金汉耉)라 김한구 젊었을 때
따님도 가련하고 가세(家势)도 청빈(清贫)이라
일가(一家)는 서울있고 벼슬이 넉넉하니
종씨(宗氏)를 찾아가서 안후(安侯)나 하자하고
따님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移事)할 때
가마를 태우려니 교군삯이 모자랐네
서울가서 주마하고 가장척매(家藏只卖) 한푼양을
근근(仅仅)히 행자(行资)해서 조치원을 올라가니
눈비가 퍼부어서 행보(行步)할수 전혀 없어
수일(数日)을 유련(留恋)타가 세말(岁末)이 닥쳐오니
교(轿)군들 하는 말이 “여보시오 후객(后客)양반(两班)
우리는 못가겠소 세말(岁末)이 닥쳤으니
집에들 돌아가서 조상향화(祖上香火) 해야 되니
교군삯을 주십시오” 김한구 하는 말이
“너희 말은 당연(当然)하나 이내 사정 들어봐라
교군삯은 서울가서 주기로 작정(作定)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행자(行资)가 부족(不足)하니
어이하면 좋겠느냐? 중도(中途)에서 파의(罢议)하면
 낭패(狼狈)가 이 아닌가?” 교군들 거동보소
곰방대를 휘두르며 완악(玩恶)쓰며 하는 말이
“염치(廉耻)없는 이 양반(两班)아 돈없이 서울가며
가마탈게 무엇이냐 잔말 말고 삯내여라” 
이렇듯 욕 당하니 한심하고 수치(羞耻)해서
 낯들기도 어렵더라 건너방의 어떤 양반
이 사연 대강 듣고 주인불러 이른 말이
“건너방서 싸운 양반(两班) 이리 잠간 오시래라”
김한구 찾아와서 초면인사(初面人事) 올리니까
그 양반 김한구께 삯전을 내여주고 
주막의 교군찾아 서울로 가게할 제
엄동설한(严冬雪寒) 찬바람에 홑옷입고 가는 딸애
동사(冻死)하기 쉬운지라 행장(行装)에 들어있는
두루마기 내여주며 입히라고 권(劝)하거날
김한구 고마움에 고두백배(叩头百拜) 절 올리고
은인신원(恩人身元) 물어보니 이주서(李注书)라 대답했네
흥진비래(兴尽悲来) 언제든고 고진감래(苦尽甘来) 여기로다
십여년후 김한구 딸 영조계비(继妃) 되었으니
인간의 길화흉복(吉祸凶福) 뉘라서 알으리오
영조계비 입궁(入宫)한 뒤 지난 역사(历史) 아뢰고서
충청도에 낙향(落郷)갔던 이씨양반 모셔와서
고을 부사(府使) 제수(除授)하니 어진 마음 후복(后福)받네
영조대왕 즉위하여 오십이년 명정(明政)타가
팔십삼세 승하하니 양주땅 이십리에
원릉(元陵)14)이라 이름있고 고양땅 삼십리에 
왕비릉은 홍릉15)이라 
 
진종(真宗)16)대왕 추존하니 그 왕비 뉘시든고
 풍양조씨(丰壤赵氏) 부인이오 부원군은 문영이라 
파주땅 육십리에 영릉(永陵)18)이라 이름있고
왕비릉도 동원이라
사도세자(思悼世子)19) 처단(处断)할 때 뒤주안에 가둬두고
여러날 굶겨서 참혹(惨酷)하게 죽었구나
영조대왕 하룻밤에 제 아들 없앴으니
부자간 살륙(杀戮)없이 그 위(位)를 못지킬가
 
정조대왕(正祖大王)20) 등극하니 사도세자 아들이라
왕비는 청풍김씨 부원군은 시묵이라
출천대효(出天大孝) 정조대왕 즉위한후 생각하니
아버님 승하한 일 원통하고 가련하다
영조대왕 승하할 때 유언(遗言)으로 남긴 말삼
“네가 에비 상복하면 내 손자가 아니란다.”
정조대왕 등극전에 선고상복(先考丧服) 못입은 일
평생의 유한(遗恨)이라 상하상복 같이해서
병진년(丙辰年)에 입었으니 조정의 신하들도
미안지심 절로 나서 모두 다 흰옷입고
수령방백(守领方伯) 백성들도 예절(礼节)을 따라하니
지금까지 예절이라 동국조선(东国朝鲜) 시판(始版)할제
평양을 도읍(都邑)하고 인의예지(仁义礼智) 마음으로
사단칠석 닦아내어 백성화목(百姓和睦) 이뤘더니
그 임금 상사(丧事)나서 삼년상복(三年丧服) 입었다가
상복벗고 생각하니 영영 벗기 섭섭해서
색의복에 흰동정이 지금까지 법(法)일래라
정조대왕 효성보소 파주땅에 능 모시고
소나무 숭상(崇尚)하여 은밀(隐秘)하게 길러놓고
앞에는 절을 지어 절이름은 용두사(龙头寺)라 
춘추(春秋)로 거동(举动)하야 소나무를 살펴보니
낙낙장송(落落长松) 장한것이 대왕의 효성이라
이렇듯이 장한 송수(松树) 송충(松虫)이 달려들어
일조(一朝)에 망(亡)케하니 대왕의 거동보소
송충괴수(松虫魁首) 몇몇 잡아 용포(龙袍)에 싸가지고
이로 씹어 던졌더니 송충이 소멸(消灭)되어
소나무가 새로이 울울창창(郁郁苍苍) 자랐더라
경진년(庚辰年) 오월말에 정조대왕 승하하니
수원땅 백리터에 건릉(健陵)21)이라 이름하고
왕비릉도 동원이라 
 
순조대왕(纯祖大王)22) 등극하니 그 왕빈 뉘시든고 
안동김씨 부인이오 부원군은 조순(祖淳)이라 
갑오년(甲午年) 시월일에 순조대왕 승하하니 
춘추가 사십오라
광주땅 사십리에 인릉(仁陵)23)이라 이름하고
왕비릉도 동원이라
 
을미년(乙未年) 이월일에 익종대왕(翼宗大王)24) 추존(追尊)하니 
그 왕비는 뉘시든고 풍양조씨(豊阳赵氏) 부인이오 
부원군은 만영(万永)이라
양주땅 이십리에 수릉(绥陵)25)이라 이름하고
왕비릉도 동원이라
 
헌종(宪宗)26)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는 뉘시든고 안동김씨 부인이오
 부원군은 조근(祖根)이오 둘째왕비 뉘시든고
남양홍씨 부인이오 부원군은 홍재룡(洪在龙)이
헌종대왕 거동보소 팔세(八岁)에 등극하니 
부원군 권세(权势)로다 국운이 점쇠(渐衰)하야
 기유년(己酉年) 유월육일 헌종대왕 승하하니 
춘추가 이십삼세. 양주땅 이십리에 
경릉(景陵)27)이라 이름이오 왕비릉도 동원이라
 
철종(哲宗)28)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 뉘시든고
안동김씨 부인이오 부원군은 김문근(金汶根)이
계해년((癸亥年) 십일월에 철종대왕 승하하니
춘추가 삼십육세 고양땅 삼십리에
예릉(睿陵)29)이라 이름있고 왕비릉도 동원이라
 
   주1)숙종(肃宗):조선 제19대왕 재위 1674∼1720.  이름은 순(焞), 자는 명보(明普). 현종의 외아들이며, 어머니는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김우명(金佑明)의 딸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이다.
      2) 최씨(崔氏):숙종의 빈으로서 영조의 생모
      3)소진장의(苏軫張儀):소진(蘇軫, ? ~ B.C. 317년) 및 장의(張儀 ? ~ B.C. 309년) 두 사람 모두 중국 전국시대 정치가, 유세객으로 젊어서 제나라의 "귀곡자"에게 배웠다. 소진은 서쪽 진나라에 대항하기위해 6국의 연합을 성공(合縱策)시켜 세로로 나란히 결속하여 연합전선을 지휘하며 6국의 재상을 겸하였다. 그러나 장의가 진나라로 가서 6개 나라로 돌아다니며 진나라와 개별적으로 횡으로 동맹을 맺는 연횡책(連橫責)을 성공시켰다. 소진의 "합종책"이 깨지고 소진은 자객에게 피살되었으며, 장의는 진나라 재상이 되었으나 나중에 미움을 받아 위나라로 도피하였다가 죽었다.
     4)오두인(吴斗寅):생몰 1624(인조 2)~1689(숙종 15)  24세 때인 1648년(인조 26)에 진사시에 1등으로 합격 - 25세 1649년(인조 27) 정시(庭試) 갑과1(甲科1) 에 급제.숙종때 민중전을 복위시키려다 죄를 덮어쓰고 의주로 귀양가던중에 죽다.
5) 이세화(李世华):이세화 ( 李世華 .1630 년 . 인조 8 ∼ 1701 년 . 숙종 27) 조선 숙종 ( 肅宗 ) 때의 문관 . 자는 군실 ( 君實 ).
6)박태보(朴泰辅):( 1654년 ~ 1689년)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사원(士元), 호는 정재(定齋),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박세당의 아들로 박세후에게 입양되었다.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을 지냈다.페비를 반대하다가 류배중에 죽었다.
7)김만중(金万重): 만중(金萬重, 1637년 ~ 1692년)은 조선 문신이자, 소설가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서포(西浦)이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숙종(肅宗)의 정비 인경왕후의 아버지 김만기의 동생이기도 하다.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가 있다.
8)경종(景宗): 조선 제20대왕 재위 1720∼1724.이름은 윤(昀). 자는 휘서(輝瑞). 아버지는 숙종이고, 어머니는 희빈장씨(嬉嬪張氏)이다. 비는 심호(沈浩)의 딸 단의왕후(端懿王后), 계비는 어유구(魚有龜)의 딸 선의왕후(宣懿王后)이다. 
9) 명릉(明陵): 제19대 숙종(1661~1720)과 계비 인현왕후 민 씨(1667~1701), 인원왕후 김 씨(1687~1757)의 릉이다.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서오릉의 하나.
10)익릉(翼陵):서오릉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익릉은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 씨(1661~1680)의 릉이다.
11)의릉(懿陵):의릉은 제20대 경종(1688~1724)과 계비 선의왕후(1705~1730) 어 씨의 능으로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에 있다.
12) 혜릉(惠陵):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의 하나로, 경종 원비 단의 왕후의 릉
13)영조(英祖):영조(英祖, 1694년 10월 31일 (음력 9월 13일) ~ 1776년 4월 22일 (음력 3월 5일))는 조선의 제21대 임금(재위, 1724년 10월 16일 ~ 1776년 4월 22일)이다. 성은 이(李), 휘는 금(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숙
14)원릉(元陵):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의 하나 원릉은 조선 왕 중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제21대 영조(1694~1776)와 계비 정순왕후 김 씨(1745~1805)의 릉
   15)홍릉(弘陵):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도동에 있는 조선 제21대왕 영조의 비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徐氏)의 릉.
   16)진종(真宗):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맏아들로서 이름은 행, 사도세자라 불리웠다.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자  진종으로 추존되였다.
    17)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맏아들. 이름은 행. 자는 성경. 어머니는 정빈 이씨이며, 비는 좌의정 조문명의 딸 효순왕후이다. 1724년(영조 즉위) 경의대군에 봉해졌고, 다음해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요절하여 이복동생 장헌세자가 세자로 책봉되었다. 양자인 정조가 즉위한 뒤 진종으로 추존되었으며 능은 영릉이다.
   18) 영릉(永陵):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에 있는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孝章世子 : 眞宗으로 추존되었음.)
    19)사도세자(思悼世子):영조의 장자이자 후날 정조의 생부로서 1762년(영조 38) 5월 에 부왕 영조에 의해 뒤주속에 같혀 질식하여 죽었고 아들 정조가 즉위한 뒤 진종으로 추존.     제22대   20)왕이며 대한제국추존황제이다. 휘는 산(祘)이다.조선의 개혁군주로 남아있다.
   21)건릉(健陵:건릉은 제22대 정조(1752~1800)와 효의왕후(1753~1821) 김 씨의 합장릉이다. 경기도 화성에 있음.
22)순조대왕(纯祖大王):순조(純祖, 1790년 7월 29일(음력 6월 18일) ~ 1834년 12월 13일(음력 11월 13일))는 조선의 제23대 임금(재위 1800년-1834년)이다. 성은 이(李), 휘는 공(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보(公寶), 호는 순재(純齋).
23)인릉(仁陵):인릉은 제23대 순조(1790~1834)와 순원왕후(1789~1857) 김 씨의 합장묘로서울특별시 강남구 내곡동 산에 있다. 
24)익종대왕(翼宗大王): 생졸1809(순조 9)∼1830(순조 30). 조선 후기의 추존왕.  이름은 영(旲 : 원래의 음은 대이나 영으로 부르도록 정하였음.), 자는 덕인(德寅), 호는 경헌(敬軒). 제23대왕인 순조의 세자(世子)로 어머니는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金氏)로 조순(祖淳)의 딸이다. 
   25)수릉(绥陵):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원자 문조(文祖 : 孝明世子의 追尊)와 비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의 능. 
   26)헌종(宪宗):1827(순조 27)∼1849( 헌종 15). 조선 제24대 왕.  재위 1834∼1849.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이름은 환(奐)이며 자는 문응(文應)이고 호는 원헌(元軒)이다. 순조의 손자이다. 익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풍은부원군(豐恩府院君)조만영(趙萬永)의 딸 신정왕후(神貞王后)이다. 
    27)경릉(景陵):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경릉은 제24대 헌종(1827~1849)과 효현왕후 김 씨(1828~1843), 계비 효정왕후 홍 씨(1831~1903)를 모신 능이다. 
28)철종(哲宗):1831(순조 31)∼1863( 철종 14). 조선 제25대 왕. [개설] 재위 1849∼1863).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름은 이변(李昪)이다. 초명은 이원범(李元範)이다. 자는 도승(道升), 호는 대용재(大勇齋)이다
29) 예릉(睿陵):조선 제25대왕 철종과 비 철인왕후(哲仁王后)의 릉.  고양시 원당읍 원당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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