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뒤로 당저대왕(当邸大王)1) 흥덕궁(兴德宫)서 등극(登极)하니
춘추가 십이세(十二岁)라
그 왕비 뉘시든고 여주민씨 부인이오
부원군은 민치록(闵致录)이 생부는 대원군(大院君)2)이라
대원군 되기전엔 궁곤(穷困)함도 철빈(铁贫)이오
백씨(伯 氏)도 궁곤터니 대원군 되신후에
부귀영화(富贵荣华) 극성(极盛)타가 뜻밖에 난리났다.
병인년(丙寅年) 구월일에 양요(洋扰)3)가 대발(大发)하야
화륜선(火轮船) 수십척이 인천 재물 항구(港口)에서
대양포(大洋炮)를 쏘는 소리 천지가 진동하고
하해(河海)가 들끓는듯 가슴이 경동(惊动)하야
피난(避难)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数) 모를러라
안해를 잃은 사람 아해를 잃은 사람
노부모(老父母) 다 버리고 저희끼리 도망(逃亡) 갈 때
정승은 뉘시든고 조두순(赵斗淳)이 정승이라
대장군 한성근이 군사를 많이 모아
문영하고 나왔더니 양국(洋国)에서 지령(指令)나와
대군(大军)을 거나리고 본국(本国)으로 돌아가니
실(实)없는 대원군이 한승근이 승전(胜战)했다
대연(大宴)을 배설(摆设)하야 희희락락(嘻嘻乐乐) 즐기다가
잔치를 파(罢)한 후에 벼슬을 높여주니
그때부터 대원군이 오정(误政)하기 시작이라
대원군 세도하기 무진년(戊辰年) 시초(时初)로다
상감님이 조회하사 제신(诸臣)을 모아놓면
비군비신(非君非臣) 이 양반(两班)은 내삼천외팔백(内三千外八百)을
장중(掌中)에 넣어두고 기탄(忌惮)없이 농권(弄权)하니
뉘라서 만류(挽留)하며 뉘 감히 금단(禁断)할고?
과거(科举)를 보랴하면 오천냥에 진사(进士) 한장
오만냥에 급제(及第) 한장 진사급제 뿐이런가
삼만냥에 현감(县监)내고 오만냥에 군수(郡守)내며
목사부사(牧使府使) 말할진댄 몇만냥을 내면 될고?
국정이 이러하니 억조창생 도탄(涂炭)이라
대원군 하신 일이 무섭고도 어리석네
구중궁궐(九重宫阙) 부족(不足)턴가 있는 궁궐(宫阙) 웅장(雄壮)한데
경복궁(庆福宮) 은 왜 짓는가? 궁궐을 지을적에
수단(手段)이 오죽할가? 대원군 문자(文字)에는
수단단자(手段段字) 뿐이옵고 백성들 공논(公论)에는
원망원자(怨望怨字) 뿐이로다
천석(千石)하면 천냥(千两)이오 만석(万石)하면 만냥(万两)이라
태평(太平)으로 살던 백성 세금(税金)에 짓눌려서
농우(农牛)를 팔더라도 상납(上纳)을 해야하니
집집마다 폐농(废农)일세 경복궁(庆福宫)4)에 투자(投资)한 돈
삼각산(三角山)5) 버금이라 헛이름 부자(富者)들은
돈 없어 못바치고 생목숨 잃었구나
혹정(酷政)이 오죽할가 지난일 잊었는가
대원군 되기전에 유리걸식(流离丐食) 과객(过客)타가
한양동서(汉阳东西) 서원(书院)6)에서 무슨 설움 보았던지
미진(未尽)한 일 당했거든 그 사람과 해볼게지
무삼 혐의(嫌疑) 그리 있어 어진 명현(明贤)7) 모신 서원
팔도를 행관(行关)하며 서원(书院)마다 해치였나
서원으로 말할진댄 뉘집 선조(先祖) 모셨던고
자기뿐만 생각하고 서원에다 분을 푸니
그 서원에 모신 명현(名贤) 대원군만 못하리까?
후세(后世)에 유림(儒林)들이 절치부심(切齿腐心)8) 하게 하고
자손에게 원망끼쳐 각골거통(刻骨剧痛) 안될손가
어떤 비결 보았던고 삼만인(三万人)이 무슨 일고 ?
일만인(一万人) 죽인것도 그 혼령(魂灵)이 무심(无心)하며
국사(国事)가 장원(长远)할가? 예적에 진시황(秦始皇)9)도
자기 혼자 잘살려고 아방궁(阿房宫)10) 지을 적에
진(秦)나라 백성들을 장성(长城)아래 끌고가서
태반을 죽였거늘 아방궁 지은 후로
몇해를 못지나서 항우(项羽)11)가 불을 질러
삼월불멸(三月不灭) 이 아닌가? 주민지(住民之) 고택(膏泽)으로
아방궁 지었으니 자자손손(子子孙孙) 전(传)할소냐?
백성의 원망소리 구천(九天)에 사무치니
하늘이 노하시고 항우같은 영웅내어
백성설치(雪耻) 하얐으니 그 아니 통쾌(痛快)하며
이 아니 좋을소냐?
무왕같은 성군(圣君)도 착한 정사 하실적에
영대(灵台)를 지을라니 만백성이 급히 와서
불일성지(不日城池) 지으니 우로지택(雨露之泽) 날아있고
백조형형(百鸟炯炯) 날아든다 무왕의 착한 성덕(圣德)
군수(郡守)들도 알아보고 좋은 본 보았으니
무왕같진 못할망정 진시황(秦始皇)은 면(免)하시지
세상이치 이러하니 경복궁이 장원(长远)할가
한양도읍(汉阳都邑) 생각하니 태조대왕 등극후로
순조,헌종 대왕까지 문치(文治)도 놀랍시고
국법(国法)도 엄숙(严肃)하여 과거를 보이자면
문필을 보았으니 팔도(八道)의 선비들이
공부에 열중한다. 중대신(重大臣)도 글 못하면
신하복록(臣下福禄) 없어지고 방백(方伯)도 글 못하면
지체도 쓸데없고 재물(财物)도 생각없네
우리조선 대신(大臣)들중 글못한 신하(臣下) 없고
각도각읍(各道各邑) 수령방백(守领方伯) 무식(无识)한 이 다니던가
이십팔왕중에 무식(无识)임금 뉘가 있나?
우리상감(上监) 부자(父子)분은 가련(可怜하고 한심(寒心)하다
문필(文笔)은 뒤가 되고 재물(财物)은 앞에 있다.
과거도 재물이오 벼슬에도 재물이고
송사(讼事)에도 재물이니 천만사(千万事) 가지가지
재물로 주장(主张)하니 우리조선 폐풍(废风)이라
대원군의 거동보소 무엇이 부족하야
찬위(篡位)함을 생각하고 갑자년(甲子年)에 난을 꾸며
무죄(无罪)한 대신들을 역률(逆律)로 죽였으니
그것이 할짓인가? 과거를 보일적에
매관매작(卖官卖爵) 하올적에 문장(文章)을 멀리하니
부자(富者)는 돈 장만코 빈자(贫者)는 자파(自罢)한다
일자부지(一字不知) 장사군들 뒷궁그로 12)돈바치고
진사급제(进士及第) 마구할제 백성진정(百姓陈请) 누가 듣노?
이상한 우리 상감 춘추(春秋)가 장성(长成)하니
내정(内情)에만 맘을 쓰고 불효(不孝)공부 힘을 쓰사
아버님 몰라보고 어머님 내 모른다
세상에 민중전은 세도(势道)하기 제일이라
세도마음 두는것이 육년(六年)을 신고(辛苦)타가
대원군 몰아내려 흉한 심사 가졌도다
대궐밖에 쫓겨났던 대원군 거동보소
임오군란(壬午军乱)12) 일어날제 흥인군 맞아죽고
민겸호는 칼에 죽고 민씨저택 불에 타고
중전은 별실(别室)했네 상감님 거동보소
옳은말 하는 사람 낱낱이 다 죽였네
민중전의 거동보소 세자동궁(世子东宫) 길러낼제
수부다남(壽富多男) 세상복을 그 아들께 모두 주어
백대천손(百代千孙) 유전(流传)하고 지우만세(芝宇万岁) 이으도록
진편군을 불러들여 “강원도 금강산(金刚山)
팔만구암자(八万九庵子) 많은 절에 신령부처 알아오면
은금보화 얼마라도 아끼잖고 줄터이니
수복장원(寿福长远) 무궁하길 추원발원(追愿发愿) 하고오라”
진편군이 분부받고 은금포백(银金布帛) 수레싣고
가마타고 들어갈제 전후좌우(前后左右) 은금포백
수백바리 연속(连续)이니 조그마한 편소국(偏小国)에
이 재물(财物)이 어디 났나? 매관매직(卖官卖职) 생긴 재물
사대문 연속부절(连续不断) 밤낮으로 들온 재물
금강산 중놈 주어 아깝지 아니한가
창고에 두었다가 흉년시절 당하거든
백성을 구하든지 만민(万民)의 부모(父母)되어
그런 일 아니하고 그절 중놈 살찌우니
어러하고 복받으랴 오강(五江)13)에 흩어놓은
쌀과 돈 얼마던고 송파강(松坡江)에 배를 타고
노들14)까지 내려오며 “이 쌀 먹소.이 돈 받소”
얼마를 흩었던지 답답하고 애석하다.
명(命)을 빌어 오래 살고 복을 빌어 복이 올가
자연 이치(理致) 모르시고 허황한 짓 많이 했네
애달하사 중전님은 헛재물 탕진(荡尽)하야
오던 복(福)도 나가더든 빌어서 추복(追福)할가?
당나라 망할적에 후정화(后庭花)15) 불렀더니
양귀비(杨贵妃)16)의 고운 얼굴 마외역(马嵬驿 )17)에 오사(误死)하고
당명황(唐明皇)18)의 바쁜 걸음 일행을 탄식(叹息)하고
촉중(蜀中)에 홀로 앉아 헛꿈인줄 깨달으니
애달하다 우리 상감 이런 사직(社稷) 있단 말가?
궁궐안에 못을 파서 배를 몰아 선유(仙游)하기
사직(社稷)에서 보셨던가 성인 말삼 들었던가
오입쟁이 화냥년들 궁궐(宫阙)안에 불러들여
잡타령 시키면서 밤낮없이 놀릴적에
주렴(珠帘)을 훨씬 걷고 두건(头巾)을 질끈 매고
무릎치고 노닐면서 “지화자 좋다” 장단치니
이런 풍류(风流) 어디 있나? 춤잘추면 상을 주되
비단 한필 내여주고 시조(时调) 한장 잘부르면
돈 백냥 내여주네 멋알기 제일하는
민중전 시기(猜忌) 보소 저 궁녀(宫女)는 무슨 죄로
독안에 가둬두고 모자목숨 다 끊이니
그짓을 할짓인가 한(汉)나라 황태후(皇太后)도
투기가 자심하야
첩부인(妾夫人) 혀를 끊어 인치(人痴)를 만든후에
조왕에게 약을 먹여 자는듯이 죽였더니
그 악기(恶气) 혈(血)이 맺혀 아들한테 갔었거니
무수한 일 볼작시면 후한 마음 쓸것인데
어찌하여 민중전은 어진일 아니 하고
악한 일만 하시는고?
태임(太任)19)같은 왕비는 문왕을 잉태할제
십삭(十朔)을 지내도록 석불정 불좌(席不净不坐)20)하고
색불정 불식(色不净不食)21)하며 목불시 사색(目不视邪色)22)하며
이불청 음성(耳不听淫声)23)하니 이렇듯이 조심(操心)하야
문왕(文王)을 낳으시니 착하고 어질기는 천추(千秋)에 제일이라
그런 일은 본받잖고 험한 일만 좋아하네
애달하사 우리 상감 귀도 없고 눈도 없네
듣도보도 하건마는 듣도보도 못하신가?
슬프고 가련하다 중전의 거동보소
칠촌인지 팔촌인지 민(闵)망나니 불러들여
통지기 시켜놓고 상놈부자 잡아다가
유죄무죄(有罪无罪) 덮어놓고 돈 바치라 형벌할제
천만냥에 속(赎)24)을 하면 그돈을 가져다가
호조고(户曹库)25)에 쌓아두고 밤낮으로 그짓하니
백성들이 어이 살며 호원인들 적을소냐?
인군(人君)의 종자(种子)인데 치민도리(治民道理) 생각잖나
억조창생 백성들은 나라의 근본이라
그러기에 성인(圣人) 말삼 “민유방본”(民唯邦本)되었으니
보국방연 이 아닌가? 옛적에 탕임금은
칠십리에 업(业)하시고 무왕은 본을 받아
백리에 업하시니 어진 정사 하시면서
팔백리를 지내시니 백성들이 송덕(颂德)하고
국가가 장원(长远)터니 우리의 조선나라
삼천리가 넉넉한데 그 지방이 부족하여
우탕정치(禹汤政治) 못하시며 문무정사(文武政事) 못하신가?
어진 정사 못하기에 재변이 자주난다.
임오년(壬午年) 군란(军乱)통에 안임금이 도망해서
관해(观海)구경 가시든다 유람(游览)차로 가시든가
오입(误入)하러 가시든가 장호원에 내려가서
석달을 종무소식(终无消息) 부지거처(不知去处) 하였으니
국상(国丧)났다 소동나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석달을 베옷입고 울울(郁郁)히 지낸것이
백성들 그름인가? 팔월에 환궁(还宫)하야
능청스레 과거(科举)를 하루동안 보이시니
결과는 어떻든고 민씨(闵氏)들 뿐이로다
갑오(甲午年)년에 동란(动乱)26)나서 팔도에 진동(震动)하니
처처(处处)에 접주있고 곳곳이 입도하야
수백명 모여있고 천만명이 둔취(屯聚)하야
천지조화경(天地造化经)을 사람마다 공부하니
그것이 득세(得势)하야 동네마다 모여앉아
반상(班常)이 분간없고 입도(入道)만 하고보면
수령이 겁이 날가 안하(眼下)에 무인(无人)이라
친척인척(亲戚姻戚) 협의(协议)하야 동학(东学)만 맞이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농사를 전폐(全废)하니
이것이 천운인가 국운을 고쳐보려
나온이는 누구누구 을미년(乙未年)의 의병(义兵)보소
국운을 요량하고 혈심이 대발하야
의병을 일으키니 누구누구 대장으로
수천명을 거나리고 처처(处处)로 행군하야
백성을 안돈(安顿)하고 왜병을 족치였네
영남(岭南)사람 뉘시든고 문경사람 이강년(李康秊)27)은
이적주의 조카로다 충성도 대단하고
용맹도 장하도다 국사를 생각하고
분기를 못참아서 수천병마(数千兵马) 거나리고
곳곳마다 행군(行军)하야 간곳마다 잡은 왜병(倭兵)
수효를 모르더라 문경송암 초동에서
김석중의 목을 베고 이천병을 거나리고
대성으로 들어갈제 일병(日兵)들이 잡으려고
총에다 탄재박아 뒤를 바싹 따르는데
이강년은 궁냥내어 강가에 어옹(渔翁)같이
고기잡고 앉았으니 왜병들이 말 묻는다
“이강년이 어디 갔나?” 어옹(渔翁)차림 이강년이
천연스레 대답했네 “총소리에 놀라서
저길로 도망갔소.” 유인(诱引)하여 보내놓고
사방(四方)으로 에워싸니 계책(计策)에 속은 왜병(倭兵)
종천강(从天降) 어디 가며 종지출(从地出) 어데 갈가
유혈(流血)이 성천(成川)이오 시체(尸体)가 태산(泰山)이다
가련하다 우리조선 국력(国力)이 다했으니
의병이 일어난들 회복이 쉬울소냐
민중전(闵中殿) 죽은뒤에 상감님 거동보소
일국의 대왕되어 어느곳에 버들 없소
무슨 마음 생겨나서 대원군의 묘소(墓所)앞에
어명(御命)으로 심은 버들 낱낱이 캐어다가
홍릉(洪陵)28)앞에 심었으니 세자동궁(东宫) 잘되잖네
해마다 절에가서 부처전(佛陀前)에 시주(施主)하고
오강(五江)에 쏟은 쌀과 상감님의 불효(不孝)함과
중전(中殿)의 악(恶)한것이 두루두루 한데 모아
동궁(东宫)에게 미쳤구나 불운(不运)한 세자동궁(世子东宫)
춘추(春秋)가 삼십돼도 일점혈육(一点血肉) 있지 않네
윤택영(尹泽荣)29)의 따님보소 이팔청춘(二八青春) 고운 시절
독수공방(独守空房) 섧게 우니 그 아니 원통한가
못된 사람 윤택영은 부원군만 욕심내어
경사(庆事)는 못보았네 염치(廉耻)없는 윤택영이
따님보러 들어가니 따님이 하난 말이
“부원군 되셨으니 아버지는 좋지마는
이내 신세 기막히오” 두어마디 못하고서
비오듯이 나는 눈물 구폭홍상(九幅红裳) 다 적신다.
그 아비 할말 없어 위로(慰劳)삼아 하난 말이
“미물(微物)같던 엄상궁(严上宫)도 아관(俄舘)30)에서 귀비(贵妃)되어
호강이 무궁(无穷)했고 엄상궁 죽은후에
왕비(王妃) 예(礼)로 장사(葬事)하고 귀비이름 들었으니
사후복록(死后福禄) 말할진대 민중전(闵中殿)에 비길소냐?”
슬프다 우리 한양(汉阳) 역역(历历)히 생각하니
오백년이 한정(限定)일세 태조대왕 건국자취
장원(长远)하고 무궁(无穷)터니 경술(庚戌)31)년 칠월일에
합방문제(合邦问题) 들어서니 뉘가 능히 막으리오
오천년 예의국(礼仪国)이 왜국(倭国)으로 되단말가?
장할시고 민영환(闵永焕)32)은 한일합방(韩日合邦) 신문보고
분연(愤然)히 자결하니 죽은터에 죽순(竹笋)났다.
그 죽순 살펴보면 이상(异常)하고 기이(奇异)하다
네가지는 조금 작고 세가지는 굵었는데
창창하게 푸른 대가 충성같이 빛나도다
합방시의 한양보소 만고역적(万古逆贼) 윤덕영(尹德荣)은
황후백부(皇后伯父) 명색없네 임금옥새 빼앗아다
일본통감{日本通鉴} 갖다주니 우리나라 상감님은
용포옥새(龙袍玉玺) 빼앗기어 백수군왕(白手君王) 가련(可怜)하다
내삼천(内三千) 외팔백(外八百)은 어느 임금 차지하며
삼태육경(三台六卿)33) 저 신하는 여조여몽(如潮如梦) 이 아닌가?
궁전(宫殿)안의 미녀(美女)들은 산지사방(山地四方) 헤어지고
애중하신 이화군(义和君)34)은 일본신하 되여있고
본국에 있는 아들 숙맥(熟麦)으로 변했으니
무삼 정담(情谈) 하여보며 수족(手足)같던 신하들은
사십부(四十部)에 갈라져서 매국적(卖国贼)이 되얐구나
우리나라 예의동방(礼仪东方) 그 많은 충신들이
지금 다 어디 갔노? 송도(松都)가 망할적엔
충신(忠臣)이 칠십(七十)인데 한양이 망할때는
소인(小人)이 칠십이네 충신소인 상관있나
임금이 숙맥(熟麦)일세 국가가 이리 될줄
미리 요량하였으면 임오(壬午)년 군란(军乱)후로
충신상소(上疏) 살펴보고 개과(改过)를 하시고서
백성을 안돈(安顿)하고 법기(法纪)를 밝혔으면
일본이 강성(强盛)해도 이 지경(地境)은 아니되지
후회한들 쓸데 있나 오강(五江)에서 흐르는
물소리 처량(凄凉)하다 한양을 하직하고
서해(西海)로 찾아가니 옛날의 주석지신(柱石之臣)
그림자도 보이잖네
조선임금 도합하면
서른이 되지마는 옥새받고 즉위한 이
몇몇이 되지 않네 추존(追位)하신 임금으론
덕종,원종,진종,익종. 사위(嗣位)하신 임금으론
철종대왕 한분이고 복위(复位)하신 임금으론
단종대왕 계시옵고 반정하신 임금들론
중종과 인조이고 내던진 임금으론
연산주와 광해주라 왕비를 도합하니
사십명이 되는구나 선조때 조정(朝庭)에서
붕당(朋党)싸움 시작됐다. 동인(东人)인지 서인(西人)인지
노론(老论)인지 소론(小论)인지 남인(南人)인지 소북인지
이렇게 별색(别色)되어 벼슬에도 까닭있고
혼인에도 분간있어 노론(老论)집과 남인(南人)집이
서로 통혼(通婚) 아니하니 이 역시 폐단(弊端)이다.
남이라 칭탁하고 노론선조(老论先祖) 허물하네
상복(丧服)에도 까닭있고 적서(嫡庶)에도 분간있어
서로서로 시비한다 적서분간 언제던고
국초(国初)부터 있었구나 본실 아들 적자(嫡子)되고
첩의 아들 서자(庶子)되니 우리조선 악풍(恶风)이라
세상 이치(理致) 두고보면 양지(阳地)도 음지(阴地)되고
음지도 양지되니 사람도 일치로다.
양반이라 하는 자들 지체만 의지하고
상놈잡아 토식(讨食)할제 명현자손 깔닥양반
삼명절35) 당하오면 제사(祭祀)에 모여앉아
부자를 잡아다가 탈취(夺取)하야 나온 돈을
제 돈같이 써먹으니 그것이 할짓인가?
그리하야 이 새상(世上)에 반상(班常)분간 없어졌네
만물이 극성하다 필경에는 쇠진(衰尽)하니
양반도 극성(极盛)타가 도리어 상놈되네
조선양반(两班) 살펴보면 오백년을 마구했소
오백년을 호강하고 무엇이 부족할가
양반생각 또 있거든 후세상에 다시 하소.
주1) 당저대왕: 현재 왕위에 있는 임금을 칭함.
2) 대원군:예전에, 임금이 대를 이을 자손이 없어, 방계로서 왕위를 이은 임금의 친아버지에게 주는 벼슬을 이르던 말.
3) 병인양요:병인양요(丙寅洋擾 )는 1866년(고종 3년)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삼아 외교적 보호를 명분으로 하여 프랑스가 일으킨 제국주의적인 전쟁이다.
4) 경복궁(庆福宫):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때 재건하였음.
5)삼각산(三角山):서울의 북쪽과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있는 산.
6)서원(书院):조선 시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거나 석학이나 충절로 죽은 사람을 제사하던 곳.
7)명현(明贤):이름이 높은 어진 사람.
8)절치부심(切齿腐心):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속을 썩임.
9)진시황(秦始皇):진 시황제(기원전 259년 1월 ~ 기원전 210년 음력 7월 22일)는 전국 칠웅 진나라의 제31대 왕이자, 중국 최초의 황제이다. 성은 영(嬴), 이름은 정(政) .
한국어 위키백과
10)아방궁(阿房宫):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위수의 남쪽에 세운 호화롭고 거대한 궁전.
11)항우(项羽):중국 진(秦)나라 말기의 장수이며 진을 멸망시키고 초왕이라 칭하면서 한왕 류방과 싸우다가 패 인물
12)임오군란(壬午军乱):조선 시대, 1882년에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일본식 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와 밀린 급료에 대한 불만을 품고 일으킨 변란.
13)오강(五江):서울근처의 긴요한 나루터가 있던 한강,용산,마포,현호,서강을 가리킴.
14)노들: 한강의 한 나루터.
15)후정화(后庭花):진 (陳)나라후주(後主)가 사치하게 놀면서 궁녀들과 부르던 노래.
16)양귀비(杨贵妃):중국 당나라 현종의 왕비로서 미녀.
17)마외역(马嵬驿 ):장안의 서쪽에 있는 양귀비가 죽었다는곳.
18)당명황(唐明皇):당 현종 리융기(唐玄宗 李隆基, 685년 9월 8일 ~ 762년 5월 3일)는 중국 당나라의 제6대 황제이다. 별호는 당명황(唐明皇)이며, 당 태종 리세민 이후, 번영을 이끌었으나, 동시에 양귀비에 빠져 나라를 쇠퇴를 이끌기도 한 황제이다.
19태임(太任):태임은 계력의 부인이고, 주문왕의 어머니이다. 계력(季歴)은 중국 상나라 시대의 주의 수장이다. 계력은 태임(太任)과 결혼하여 서주 문왕을 낳았다. 계력(季歴)은 상나라의 문정에게 감금되어 아사하였다. 태임(大任)은 서주 문왕을 잘 보육하였다.
20)석불정 불좌(席不净不坐): 좌석이 깨끗하지 않으면 앉지 않는다.
21)색불정 불식(色不净不食): 색이 정결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22)목불시 사색(目不视邪色):눈으로 나쁜것을 보지 않는다.
23)이불청 음성(耳不听淫声):귀로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는다.
24)속(赎): 돈을 내고 풀려나옴.
25)호조고(户曹库): 호조에서 관할하는 국가의 창고.
26)갑오(甲午年)년에 동란(动乱): 1895년에 일어난 동학농민기의를 가리킴.
27)이강년(李康秊):이강년 [李康秊:, 1858 ~ 1908.10.13] 은 대한제국말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 樂寅), 호는 운강(雲岡). 아버지는 기태(起台)이다.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1907년 의병장들이 모인 13도창의대진소 성립에 참여했고 호서창의대장에 임명되어 의병활동을 이어갔다. 1907년 고종이 강제로 물러나고 한국군대가 해산당하자, 영춘에서 더 큰 규모의 의병부대를 일으켰다. 1908년 7월까지 충청도·강원도·경기도 일대에서 약 500명을 이끌고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1907년 11월 경기도 양주에 모인 의병장들이 13도창의대진소를 성립시켰을 때 호서창의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 소백산·일월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큰 전과를 거두었으나, 청풍, 작성 싸움에서 부상을 입고 1908년 6월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9월 22일에 교수형을 선고받고 10월 13일 처형되었다.
28)홍릉(洪陵): 홍릉은 제26대 고종(1852~1919)과 명성황후 민 씨(1851~1895)의 릉이다.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다섯 릉 즉 서오릉의 하나.
29)윤택영(尹澤榮, 1876년 ~ 1935년 10월 24일)은 조선의 문신이자 정치인이며 대한제국의 관료, 일제 강점기의 조선 귀족이었다. 대한제국 순종의 장인이다. 조선의 마지막 부원군이나 정작 사위인 순종보다는 두 살 어렸다.
30)아관(俄舘):조선 말기인 1896년 2월 11일부터 다음해 2월 25일까지 고종 황제와 세자가 로씨아공사관으로 옮겨서 거처한 사건을 아관파천이라 하고 로씨아공사관을 간칭하여 아관이라했음.
31)경술합방: 1910년 (경술년) 8월 29일에 일제에 의해 강박적으로 한일합방 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된 사건.
32)민영환(闵永焕):민영환(閔泳煥, 1861년 8월 7일(음력 7월 2일) ~ 1905년 11월 30일)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이다. 본관은 여흥이며, 민치구의 손자이자 민겸호의 친아들이며, 고종에게는 외사촌 동생이다. 한일합방소식을 접하고 자결했다.
33)삼태육경(三台六卿):삼정승과 륙판서의 총칭.
34)의화군: 고종의 다섯째아들 귀인 장씨소생 ,리강(李綱1877∼1955),초명은 평길(平吉). 호는 만오(晩悟). 의왕(義王)·의친왕(義親王) 또는 의화군(義和君)이라고도 불린다.
35)삼명절:예전에, 임금의 탄신일, 정월 초하루, 동지를 이르던 말
* 2005년 <<료동문학>>에 련재, 2013년 4월 19일에 일부를 수정한 동시에 주해를 달았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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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 어이 없어서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