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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 12월 詩
2015년 06월 12일 21시 59분
조회:4209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5년 06월 14일 06시 39분 ]
1월의 시
깊은 물 (도종환)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길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
이 시냇가 여울을
2월의 시
공식 (박 일)
짝꿍의 슬픔은
나눠 갖기로
웃음은
더해주기로
고민은 빼주기로
아무튼 짝꿍을
곱셈처럼
좋아하기로
3월의 시
봄 눈 (유희윤)
"금방 가야할 걸
뭐하러 내려왔지?"
우리 엄마는
시골에 홀로 계신
외할머니의
봄눈입니다
눈물 글썽한
봄눈입니다
무제 (허영자)
돌틈에 솟아나는
싸늘한 샘물처럼
눈밭에 고개드는
새파란 팟종처럼
그렇게 맑게
또한 그렇게 매웁게
4월의 시
봄꽃 (함민복)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안부 (김초혜)
강을 사이에 두고
꽃잎을 띠우네
잘 있으면 된다고
잘 있다고
이때가 꽃이 필 때라고
오늘도 봄은 가고 있다고
무엇이리
말하지 않은 그 말
5월의 시
행복 2 (나태주)
저녁 때
돌아 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기도 1 (윤성도)
나의 기도가
처음 말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서투르게 하옵소서
나의 기도가
콩나물 시루에 붓는
작은 물 같이
소리 나지 않게 하옵소서
농부의 발자국 소리 듣고
보리 이삭이 자라듯
나의 기도가
부지런한 농부의
발자국 소리 되게 하시옵소서
6월의 시
산을 보며 (이해인)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주십시오
기쁠 때나 슬플 때
나의 삶이 메마르고
참을성이 부족할 때
오해 받은 일이 억울하여
누구를 용서할 수 없을 때
나는 창을 열고
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되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
그 푸른 침묵 속에
기도로 열리는 오늘입니다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7월의 시
커피 (윤보영)
커피에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군요
아,
그대 생각을
빠뜨렸군요.
8월의 시
연잎은(조무근)
빗방울이 연잎에만 떨어지면
아름다운 구슬이 됩니다
연잎은 떨어진 빗방울이
많다 싶으면
스스로 몸을 기울여
귀한 구슬 쏟아 버립니다
가질만큼 갖고
그 이상 되면
미련 없이 버립니다
"적당히 가져라"
그렇게 속삭이며
그렇게 마음을 비웁니다
9월의 시
꽃을 보려면 (박두순)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꿇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채송화 (김현서)
아주 아주 귀엽고 예쁜
꼬마 승무원 누나들이
빨간 접시 모자 쓰고
생글 생글 웃고 있어요
영안실 뒷문 작은 꽃밭에
하얀 모시옷 입은
할아버지 할머니 영혼이
천국 가는
잠자리 비행기에 오르자
허리 숙여
환하게 인사하네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10월의 시
가을저녁 (이해인)
박하내음의 정결한
고독의 집
연기가 피네
당신 생각 하나에
안방을 비질 하다
한 장의 홍엽(紅葉)으로
내가 물든 가을저녁
낡고 정든 신도 벗고
떠나고 싶네
착한 벼이삭 (최향)
벼이삭은
언제나
푸르름만 고집하지 않는다
언제나
허리 꼿꼿이 세우지 않는다
구부러진 할머니 보고
같이 허리 구부리고
황금빛 할머니 보고
같이 따라 물든다
착한 벼이삭
황금물결 출렁출렁
할머니 웃음 한 마당
11월의 시
맹물 (신협)
물은 달지 않아 좋다
물은 맵거나 시지 않아 좋다
물가에 한 백년 살면
나도 맹물이 될 수 있을까?
12월의 시
겨울기도 (마종기)
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에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밥풀 (권영상)
밥상을 들고 나간 자리에
밥풀 하나가 오도마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바깥을 나가려든 참에
다시 되돌아 보아도
밥풀은 흰 성자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바쁜 발걸음 아래에서도
발길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밟히면 그 순간
으깨어지고 마는 두려움 ,
그런 두려움도 없이
이 아침,분주한 방바닥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이 어린 성자의 얼굴로.
밥상 (이준관)
밥상을 받을때 마다
나는 상장을 받는 기분입니다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한 일도 없는데
나는 날마다 상
푸짐한 밥상을 받습니다
어쩐지 남이 받을 상을
빼앗는 것 같아
나는 밥상 앞에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나는
떨리는 두 손으로
밥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밥상 앞에 앉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했는가
참회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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