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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목이 긴 인상적인 시, 그리고 그 외 시
2015년 06월 15일 20시 45분  조회:4393  추천:0  작성자: 죽림
고요한 밤 집집마다 문 닫고 자는데
성안 가득 비바람이 찬 하늘에 몰아친다.
“점치세요!”
외치는 이 어느 집 자식일까?
내일 아침 쌀 살 돈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이능표(1959~ ) 

밤 새워 글을 짓지만

남는 것은 언제나 연필 한 자루

가장 된 삼십 년

살아온 절반이 빚이었는데

빚으로 빚을 살며

빚 없이 살아본 세월이 없는데

별빛도 달빛도 내게는 다 빚이었는데

새벽에 마신 술은 이자를 묻지 않고

날이 밝기 전에

숙취는 반드시 돌려달라고. 

*범성대(1126~1193)의
「밤에 앉아 있노라니」 전문,
류종목이 옮긴 글을 읽었다. 


---긴 제목이 인상적인 시다. 오죽하면 찬 하늘 아래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 “점치세요!” 외치며 성안을 헤맬까. 필시 내일 아침 쌀 살 돈이 없는 것이리라. 밤 새워 글 쓰는 이도 옛사람과 다를 바 없는 처지일 게다. “빚 없이 살아본 세월”이 없다 하고, “별빛도 달빛”도 다 빚이라 하니 기막히지 않는가! 삶이 고달픈 것은 빚으로 빚을 막다가 죽어야만 비소로 벗어날 수 있는 지긋지긋한 빚 탓! 나도 새벽 술을 취하도록 마신 적이 있다. 빚으로 빚을 막다가 지친 날들의 그 새벽 무거운 번뇌를 벗자고! <장석주·시인>
------------------------------------------------

옛날 생각

 

 

   이능표

 

 

 

 

   1.

 

가끔, 아주 가끔

물에 잠긴 그림자를 길어 올리듯이

나는 옛날 노래를 들어.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

가끔, 아주 가끔

이마를 짚고 뒤를 봐.

죽은 사람이 말을 걸듯이

가끔, 아주 가끔

 

 

   2.

 

가끔, 아주 가끔

죽은 사람이 말을 걸듯이

이마를 짚고 뒤를 봐.

가끔, 아주 가끔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

나는 옛날 노래를 들어.

물에 잠긴 그림자를 길어 올리듯이

가끔, 아주 가끔

 

 

   3.

 

나는 옛날 노래를 들어.

이마를 짚고 뒤를 봐.

 

 

-------------

이능표 / 1959년 경기 이천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와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4년 《문예중앙》겨울호에 「스물여섯 번째의 산책」「눈」「미완의 풀」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이상한 나라』『슬픈 암살』외 동화책들이 있음.

 

 

 

.......................................................................................................................................................................................

 

 

   첫 시집 『이상한 나라』를 내고 시단을 떠난 듯했던 시인이 27년 만에 낸 시집 『슬픈 암살』에서 옮겼다. 평론가 우찬제는 시집 해설에서 ‘이능표 시인이 돌아왔다’는 서두로 시인의 귀환을 반긴다. ‘서정적 열정’과 ‘예민한 스타일’의 시인이 ‘삶의 진실에 대한 그리움, 정녕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무엇보다 시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세월을 벼리고, 시적 연금술을 벼리며, 그렇게 20여 년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이 아닐까 싶’단다.

 

 

   쉰을 훌쩍 넘겼음에도 눈부신 듯 가늘게 눈을 뜨고 웃을 때의 수줍고 싱그러운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시도 여전히 싱그럽다. 섬세하면서 여리고 순하다. 독자를 들쑤시거나 어지럽히지 않고 어렴풋한 암시로 살그머니 그가 이끄는 시의 뉘앙스에 젖어들게 한다. 그것이 이능표의 감각이다.

 

   귀맛은 입맛만큼이나 보수적이기 쉽다. 나이가 들면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을 설레게 하는 건 ‘옛날 노래’다. 그건 제가 한창 예민하고 감성적일 때 가슴을 울렸던 감각이 몸에 각인돼 있어서이기도 할 테고, 그 노래를 즐겨 들었던 시절의 젊은 자기에 대한 향수 때문이기도 할 테다. 화자는 ‘가끔, 아주 가끔’ ‘옛날 노래를’ 듣는단다. ‘물에 잠긴 그림자를 길어 올리듯’, ‘죽은 사람이 말을 걸듯’. 화자가 ‘옛날 노래’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럼에도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았는지 짐작하겠다. ‘가끔, 아주 가끔’ ‘이마를 짚고 뒤를’ 볼 때면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너울거리는 ‘옛날 노래’, 젊은 날의 시.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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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럼을 탄다 (외 2편)

 

 

   이능표

 

 

 

 

 

나는

간지럼을 탄다.

 

 

겨드랑이에 대고 강아지풀을 흔드는 자

누구?

콧구멍 속에 창끝을 들이미는 자

누구?

 

 

봄 여름 가을 겨울 시도 때도 없이

 

 

얼마나 가려웠던가, 삶이란

얼마나 간지럼을 타는 것이었던가!

 

 

돌아보면 그림자가 없다.*

 

 

  ————

  * 돌아보면 없다 : 김수영의 시에서 빌려왔다.

 

 

 

 

 

고양이 일가

 

 

 

 

 

며칠째 눈치를 살피던 길고양이가

낡은 처마 속에서 몸을 풀었지.

주인은 말이 없고

대문은 굳게 잠겨 있으니

안전하리라 여겼던 것이지.

어둡고 비좁은 처마 속에서

어린 것들을 핥으며 젖을 물렸지.

가끔은 들판을 헤매기도 했지.

허기진 배를 출렁이며 돌아와

빈 젖을 물리고 훌쩍거리기도 했지.

사실,

고양이 일가는 안전하지 않았지.

그저 말이 없을 뿐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뿐

바람 불고 폭우가 쏟아졌지.

지붕이 새고 벽에는 금이 갔지.

근심을 감추고

랄랄라 흥얼거리며 지붕에 오르기도 했지.

어긋난 기왓장을 맞추며 먼 곳을 보았지.

살금살금 지붕 위를 거니는 소리에

어린 고양이들은 깜짝 놀라기도 했지.

하지만 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지.

주인은 말이 없고

천장 속 시궁쥐를 쫓을 때만 화를 냈지.

정말로 화가 난 것은 아니었지.

늘어진 천장을 밀어 올리며 탁탁 두드렸지만

그저 시늉뿐이었지.

그것도 아주 잠시

장맛비가 몰려오기 전이었지.

천둥소리를 내면서 처마가 무너지고

고양이 일가가 이사를 갈 때까지

늘 그랬지.

처마 기둥처럼 굳세고 쇠약했지만

대문을 나서는 법은 결코 없었지.

그건 안전하지가 않았지.

봄은 멀고

그해,

가을은 짧고 겨울은 길었지.

 

 

 

 

장난감처럼

 

 

 

 

   아이들에게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장난감을 선물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도 없지요. 당장에 울음을 그치게 할 순 없어요. 잠시 마음을 달래줄 뿐이죠. 사실, 만들어지지 않은 장난감만큼 아이들을 사로잡는 장난감도 드물죠. 아이들은 더러 토끼 머리에 사슴 뿔 다는 걸 더 좋아하니까요. 그 대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해요. 언젠가는 꼭 기억을 해내니까요. 사슴 뿔 대신 물소 뿔을 달아 주는 건 괜찮아요. 약속한 게 어차피 토끼는 아니었으니까. 가끔 새로운 장난감을 고안할 필요도 있어요. 아이들은 자라니까요. 사슴 뿔 달린 토끼 인형보다는 어른스럽고 조금은 특별한, 뭐 그런 게 좋겠죠? 걱정할 필요 없어요. 명심할 것은… 그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 언제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약속한 것이 어차피 그것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사슴 뿔 달린 토끼를 원할 수도 있어요. 고집 센 아이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면 이렇게 말하죠. 얘야, 사슴 뿔 달린 토끼는 원래 없단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죠. 가질 수 없는 장난감처럼 아이들을 슬프게 하는 것도 없죠.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어요. 아이는 곧 어른이 되니까.

 

 

 

 

 

                     —시집『슬픈 암살』(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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