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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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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 시모음
2015년 06월 15일 22시 18분  조회:4005  추천:0  작성자: 죽림

 

타고르의 시(詩) GARDENISTO를 읽고

               - 한용운 -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의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손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사랑은

     - 강우식 -

 

  태양에 끄을린 살갗이
  하루나 이틀쯤 쓰려오는
  팔월이면 별이 박히듯
  떠오르는 여자들이 있어
  아파라

  살뭉치로 살뭉치로 와서
  타는 사랑은
  물집이 생기는 아픔으로 일어
  올리브 향유나 바르며
  온밤을 뒤척이게 하고

  아내 몰래 창가에서
  그 옛날 여자들의 이름을 죄처럼 쓰고
  어떤 때는 그리움으로,
  아픔으로 지우나니.

  팔월이면 어이하여 살이든지,
  마음이든지
  이리 불타고

  살아 있다는 것이
  가만히 가만히 그리운 이름들을

  하나씩 떠올리듯
  행복하기만 하냐.

 

 

 

타락사초

      - 이중 -

 

     --사도행전편

  1
  내가 동정을 잃었을 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가을의 향기 아닌
  가을의 무게
  나의 비밀과
  나의 키 높이와 몸무게와
  마취된 현기와
  그래서 더욱 두려운 것은
  가을의 무게
  내가 동정을 잃고 난 새벽에는
  개도 안 짖더라
  그째도
  나는 곧 이어 잠이 들었지

  3
  어느 날
  쮜틀에 잘못 걸린 내 왼손 엄지손톱
  보랏빛 피멍이 들었다
  오래 앓다가 새 손톱이 났다
  어느 날
  한밤에 깨어나 전등을 켜고
  쥐를 잡았다
  도망치다 피 토하고 죽어가는 쥐의 머리
  그날 그때부터
  탄해를 배운
  아무나 붙안고 탄해하고픈
  나의
  머리

  13
  굶지 않고 살아가는 자의 시를
  굶어 죽어가는 자에게 바치다
  굶어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음향-- 가녀린-- 들리던가-- 에
  굶지 않고 사는 시인은
  시계를 보다
  일어서다
  울음없다

  15
  팽이는 돌다가 멈춘다
  그 곁에서 나는 울고 있다
  무너지는 성 아래 수레는 멈추어라
  구심의 오늘은 가고
  우리는 이미 중력을 잃은 마을의
  고아들이 아닌가?
  팽이는 돌면서 멈춘다
  그 곁에서 울고 있는 나의 목덜미에
  하얀 물쭐기
  솟구치다
  바다로 솟아라

  17
  미래는 오는 것인가?
  흰 장미처럼 부서져
  유아들의 가슴에서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
  아득한 날에 쌓인 패총
  그 곁에서 내가 눈물로

  미래를 달리던 외론 벼랑에서도
  미래는 오지 않았다
  뜨물 속에 버려진 보석같이
  하수도로
  미래는 바다에서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
  난파 속에 산 혼은 어디 가고
  죽어도 웃음만 도는 그 혼은 어디 가고
  구걸의 하루 해도 또 어디로 가고
  흰 장미는 그 외론 영으로
  지각도 연착도 없이
  끝내 아니 오고
  마는 것인가?
  ...
  이름 없는 구름들의 무게에 매달려
  어디서 웬 새
  미지롭게 날아오듯
  종일을 짖다가 가고 마는
  개처럼 오는 것이다
  개에게는 먹이를
  새에게는 모이를
  카이자에게는 절대의 이름을
  절대에게는
  앉을 자리 없이 떠도는
  당신의 손끝까지 비어 있으시라
  미래는
  빈 의자에 방울지는 12월의
  빗방울처럼
  낮게 머리 위로
  오는 것이다

 

 

탁족(濯足)

        - 황동규 -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 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 
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 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시냇가에 앉아 구두와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가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文身) 들!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디 있는가? 


 

탁족만리(濯足萬里)

            - 博川 최정순 -

사선 넘고 넘어

다시 사선 오가며

 

 

설화산 계곡

발 담그고

표표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말씀하셨지요.

 

천 길 벼랑 위 옷깃 떨치고

만리 흐르는 냇물 발 씻노라

 

유월 초하루

천하 덮는 햇살

흰 배추나비 표표히 날고

대지는 현현히 고양되어

양기가 천지간 충만한데

선거 앞둔 세상

선거만큼 어지럽고

날씨는 무더워

세숫대야 찬물 발 담그고

아버지 탁족만리(濯足萬里) 

다시 배우네. 

 

 

탈옥자

     - 엄승화 -


  지도에도 없는 섬이 있다 춥고 헐벗은 날부터 찾아온 사나이 뚝딱거리는
시간을 마치질하는 소리 뚝딱 뚝딱 고가도로를 오르고 내리고 비 내리는
저탄장 번들거리는 불빛에 미끄러진 버스는 우연한 모퉁이에 부딪친다

  삼은 뒤척인다 성냥을 긋고 손톱을 깎고 신경의 올줄이 끊어지는 소리 툭
궤도를 벗어난 버스는 춤 추고 울고 둥둥둥

  섬의 이름은 없다 타는 듯 어두운 빵을 씹으며 강을 건너고 불안한
사랑의 문 열리지 않아 혼자 여위는 노래소리 불규칙하게 머뭇거리며
버스는 다시 떠나고 잔혹한 희망에 끼인 옷자락도 뒤따라 간다

 

 

 

 

탈춤

     - 김명이 -

 


  1
  나의
  어머니로부터
  정월 열나흗날의 생일을 물려받던 날
  나는 풍만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여러개의
  탈을 준비했다

  시간의 입자들이
  젖은 목관악기의 가지런한 신음 속으로
  침몰하는 동안 나는 하나이기를 거부하는
  서너개의 몸짓을 만난다

  내가 지닌 여러개의 탈과
  내가 만난 서너개의 몸짓을
  더한다뺀다곱한다나눈다
  내 방 모서리에서 성큼성큼 자라나는 순열

  넘치는 하나와
  모자라는 하나를 정리하기 위해 나는
  가끔씩 간이역 주변이나 점등 안 된 가로등 아래서
  우울한 손가락들을 펼쳐든다

  2
  아직도 나의 침실에서 서성대는 숫짜들

 

 

 

토우土雨 
          - 권혁재 -

 

평택 삼리三里에 비가 내렸다
저탄더미 속에 들어간 빗물이 
검은 까치독사로 기어 나왔다
석탄재 날린 진흙길 따라 
드러누운 경부선 철길

나녀가 흘린 헤픈 웃음 위로 
급속성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기차가 얼굴 붉히며 지나갔다
한 평 쪽방의 몇 푼어치 사랑에 
쓸쓸함만 더해주는 기적소리

누이의 교성이 흘러 다니는 삼리 
누이의 꿈은 거기에 있었다
밤마다 사랑없는 사랑이 
하늘로 가는 문턱을 움켜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축축한 신음만 되돌아오는 
갈 길 먼 꿈들은, 역광장에 쏟아져 나와 
가슴 뚫린 퍼런 그림자로 떠돌아 다녔다 
갈 수 없는 가난한 품의 어머니를 찾아서

무뚝뚝한 하행선 열차가 떠나가고 
반 시간쯤 후에 비가 내렸다
부활의 율동으로 옷을 벗는 누이,
삼리에 내리는 비릿한 토우.

 

 

 

토함산 그늘-- 오줌싸개

          - 김기문 -


  경주시 진현동 중리마을은
  산그림자 내려와
  아침이 늦다.

  소금은 무슨 소금
  주걱으로 뺨만 맞고
  울며 오는 길

  타박타박 키를 쓰고
  바라보는 토담 밑에
  감자꽃 나팔꽃 까닭없이 서럽더니

  손가리고 웃고 있는
  뒷집 새댁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인 걸

 

 

 

톱니바퀴

      - 최창렬 -


  지하철 공사장에는
  힘 좋은 기계들과
  힘 좋은 사람들이 붙어
  살고 있다

  365일
  밤낮도 없이 계절을 잊은 채
  저들은
  헛돌지 않는 톱니바퀴다

  억척스런 기계는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감으로써 무서운 힘이
솟아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이 도시의 막힌 숨통을 뚫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지금 그 옆과 위를 굴러가고 있다
  거리에는
  온통 톱니바퀴들이다

  그런데 나는
  몇 시간을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이렇게

  강물은 늘 땅과 입맞춤을 하고
  물고기들에게 사랑을 주고
  말없이 흘러가는데

  나는 나의 톱니바퀴에서 빠져나와
  녹슨 톱니바퀴
  헛돌고 있는 톱니바퀴
  몇 십 년을 녹을 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통곡(痛哭)
         - 이상화 -


하늘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닯아 
하늘을 흘기는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마라 
달도 뜨지 마라.

 

 

통화

     - 안경원 -

 

  또한 속절없이 풀꽃이 진다.
  오접된 수화기 저쪽 끝에선
  밤비 쏟아지는 소리
  여윈 들판 가득 헛되라고 헛되라고
  우는가, 그대는 우는가
  그대의 깊은 꿈마다 떠다니는
  빈 섬들과 그리로 떠나간 사랑을 위하여
  그러나 아직도 멀다
  눈물 속에 섞여 내리는 붉은 녹물과
  빗 속에 날름거리는 저 불빛들의 혀를 보면
  안다. 알겠지. 저만큼 흘러가버린
  지난날의 날내나는 고통이
  밤비 속으로 투신하던 날
  그때도 그대는 마지막처럼 울었으니
  지평선 가까이 짓다만 집뜰은
  벽이 뚫린 채 또 한번 마지막 꿈을 꾸고 있다.
  오, 곤고한 그대는 그리로 가거라.
  아닙니다. 잘못 거셨어요.
  그대는 눈물 속으로 스며들었어요.
  헛되다고 헛되다고
  시든 오동잎 몇 개가
  끊긴 수화기 속으로 뚝뚝 떨어진다.

 

 

 

투명인간

            - 권혁재 -

 

아내와의 잠자리에서도 
 나는 없다 
 눈 뜨면 나갔다 해 지면 돌아오는 
 나의 집에도 나는 없다 
 어쩌다 성원이 된 모처럼의 
 가족들간의 식사에서도 
 나는 없다 
 아들 녀석도 딸년도 없다 
 숟가락 젓가락만 은빛으로 흔들릴 뿐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에서건 직장에서건 
 늘 나는 제 위치에 있는데 
 나를 보는 얼굴은 누구도 없다 
 제대로 된 눈길 한번 맞춰주지 않는 
 불투명한 땅덩어리의 투명한 기도 
 거기에도 나는 없다 
 아무도 보는 눈길들이 없는 곳에서 
 오늘도 나는 혼자 밥을 꾸역꾸역 먹는다 
 물방울처럼 그렇게 나는 증발되고 있다

 


투명한 속   
           - 이하석 -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 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려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어 더욱 투명해지고 
  더 많은 것들 제 속에 품어 비출 때,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확실히 비쳐 온다.

  껌종이와 신문지와 비닐의 골짜기, 
  연탄재 헤치고 봄은 솟아 더욱 확실하게 피어나 
  제비꽃은 유리 속이든 하늘 속이든 바위 속이든 
  비쳐 들어간다. 비로소 쇠 조각들까지 
  스스로의 속을 더욱 깊숙이 흙 속으로 열며.

 

 

  투우

     - 인태성 -

 

  내닫는 검정소 무딘 발굽 아래
  긁히는 땅거죽 먼지를 올린다
  붉은 보자기 겨냥하는
  세운 두 뿔, 속력을 달아 휙휙휙
  훌렁대는 바람막 찢기는 소리

  겹쳐드는 벽과 벽
  공기는 숨구멍 틀어막는 투박한 마스크
  설치고 치받아 끊일 새 없이
  이승 저승을 가름하는 극한선 위로
  몸뚱이를 반반씩 걸치면서 넘나든다

  날쌘 몸짓 소리 없는 비명
  그늘에 숨어 덮쳐오는 그
  어둠을 꿰어 한 형체를 뭉쳐 내려는 그 그
  그 아픈 숨결 돌틈으로 끼어 잦아들어
  죄어드는 힘줄은 전신을 묶는 듯

  두 도가니는 절절 생목숨을 끊이지만
  곤두서는 서릿발이 살갗을 선뜩인다
  밀물 썰물이 마주 당기고 밀치다가
  차고 뜨겁게 솟구쳐 부서질 때
  후두둑 끊기는 듯 이어지는 마음의 사슬

  나간 넋을 불러들여
  불에 불을 붙이는 눈
  캄캄한 표적을 번갯날이 잡는다
  죽음은 막 추상 속에서 뛰쳐나와
  바위 덩어리 되어 나뒹군다

  쾅--무너지자 이내
  막판을 뒤덮는 더 크다란 그림자
  삽시간에 하늘이 땅이 휑하게
  함성을 쓸어내고 숨소릴 누르는 관중
  손아귀에 승리를 틀어쥔 그는 비틀거린따

  공허가 찌르는 칼을 받으며 비틀거린다
  하아얀 낮달이 팽팽팽 어지럽게 돌아
  쩡기 걷히는 눈에 장막을 치는 뽀오얀 안개
  둘러 솟은 산들도 점점 나직이 가라앉는 듯
  외치는 높은 물결도 꿈속처럼 귀에 멍멍하다

 

 

태양의 풍속 
           - 김기림 -


태양아 
다만 한번이라도 좋다. 너를 부르기 위하야 나는 두루미의 목통을 빌어오마. 
나의 마음의 무너진 터를 닦고 나는 그 위에 너를 위한 작은 궁전을 세우련다. 
그러면 너는 그 속에 와서 살어라. 나는 너를 나의 어머니 나의 고향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이라고 부르마. 
그리고 너의 사나운 풍속을 쫓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이련다.


태양아 
너는 나의 가슴속 작은 우주의 호수와 산과 푸른 잔디밭과 흰 방천에서 불결한 간밤의 서리를 핥어버려라.
나의 시냇물을 쓰다듬어 주며 나의 바다의 요람을 흔들어 주어라. 
너는 나의 병실을 어족들의 아침을 다리고 유쾌한 손님처럼 찾아오너라. 
태양보다 이쁘지못한 詩. 太陽일 수가 없는 서러운 나의 詩를 어두운 병실에 켜놓고 태양아 네가 오기를 
나는 이 밤을 새워가며 기다린다.

 

 

 太平歌(태평가)
                - 황동규 -


말을 들어보니
우리는 약소민족이라드군 
낮에도 문 잠그고 연탄불을 쬐고
有信眼藥(유신안약)을 넣고
에세이를 읽는다드군

몸 한구석에 감출 수 없는 고민을 지니고
병장 이하의 계급으로 돌아다녀 보라 
김해에서 화천까지 
防寒服(방한복) 外皮(외피)에 수통을 달고
到處(鐵條網(도처철조망)
背有檢問所(배유검문소) 
그건 난해한 사랑이다
全皮手匣(전피수갑) 낀 손을 내밀면 
언제부터인가 
눈보라보다 더 차가운 눈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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