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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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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詩人들 고쳐야 할 시작법
2016년 01월 08일 05시 21분  조회:4601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창작 초기에 나타나는 고쳐야 할 표현들 

                                           ///도종환 

Ⅰ. 피상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때가 있다. 화폭에 산, 나무, 들, 꽃, 하늘, 사람의 밑그림을 연필로 그려놓고 나무는 고동색, 나뭇잎은 초록색, 하늘은 푸른색 이런 식으로 화폭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색칠을 해나간다. 아이들 머릿속에는 이미 선험적으로 얼굴은 살색, 머리는 까만 색, 땅은 황토색으로 칠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앞에 있는 나뭇잎 색깔이나 하늘의 변화하는 빛깔을 잘 관찰하면서 그리는 아이는 별로 없다. 그렇게 그려놓은 그림들은 그래서 늘 그게 그것 같고 새롭지 않다. 나무둥치에 고동색을 가득 칠해 놓은 아이에게 고동색 크레용을 들고 가 나무에 직접 대보게 하며 “어때 색깔이 같니?”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을 본 적이 있다. 
사물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자세히 관찰하며 피상적인 인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 이것은 아마 예술 창작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추억을 실은 버스가 나의 마지막 종착역에 서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서쪽하늘 가까이에서 실려오는 바다 내음 맡으며 황금벌판 풍요로움에 홀쭉한 고향길을 말없이 걷는다. 어린 시절이 벌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속삭였던 숱한 언약들이 다시 귓전에 들려온다. 살아오면서 버려진 덧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때처럼 가슴 설레이여 눈망울 적시었고 마음은 이미 바다와 들판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에 백지장처럼 깔려버렸다. 
하얗게 깔린 백지장 위로 그리운 사연들이 써져 내려가고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 내 마음 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 잔잔한 갈등을 일으킨다…… 
세월이 어느덧 흘러 밉던 얼굴마저 그리워져 모질게 내쫒았던 당신에게 다시 돌아온 것은 이곳이 나의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애착’ 

이 시는 고향에 다시 돌아오면서 느낀 생각들을 쓴 시이다. 그런데 고향에 대한 그의 인식은 어떠한가. ‘황금벌판 풍요로움~’그는 고향벌판을 바라보며 황금 벌판이라고 말한다. 대단히 피상적이다. 오늘날 농촌의 실제 모습이 어떤가 하는 구체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고 농촌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묘사하던 상투적인 관용어구를 그대로 따라 쓰고 있다. 이런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흔적은 이 작품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이런 표현도 마찬가지이고 고향을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 하던 곳’이라고 묘사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Ⅱ. 상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의 시 ‘애착’에서 보는 것처럼 삶, 또는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은 자연히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 마음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이런 구절 역시 그렇다. 마음을 호수에 비유하는 표현, 그 호수에 돌을 던진다는 표현 등은 너무 흔하게 쓰여온 표현이며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눈부신 밤거리 
달빛 한 가닥 들어설 틈도 없다. 

휘황한 불빛 속엔 
검은 하늘 향해 벌린 하얀 살뿐이다. 

아무 것이든 빨아들이는 불가사리 식욕 

붉은 웃음은 잿빛 거리를 휘돌아 하늘에 퍼지고 
현란히 부서지는 물결 속에 
검은 세계는 찬란히 부상한다. 

달이 떨어져 나무에 걸려 있다. 
―‘밤거리’ 

이 시에 나오는 ‘붉은 웃음’ ‘잿빛 거리’ ‘검은 세계’ ‘하얀 살’등의 표현은 각각의 색깔이 갖고 있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상투적으로 답습하면서 쓰고 있다. 밤거리의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어딘가 답답하다. 답답한 풍경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는다. 

키스를 하고 돌아서자 밤이 깊었다 
지구 위의 모든 입술들은 잠이 들었다 
적막한 나의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정호승의 시인의 ‘키스에 대한 책임’이라는 시이다. 입맞춤을 하고 돌아서는 깊은 밤, 너는 눈물을 흘리는데 나의 키스 나의 사랑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적막해지는 심정을 ‘적막해지는 나의 키스’라고 표현했다. 신선하지 않는가. 
첫 키스의 느낌을 각자 한 번 시로 표현해 보자. 어떻게 표현할까. 첫 키스의 느낌을 수식하는 말을 만들어 보자고 하면 ‘황홀한’ ‘달콤한’ ‘갑작스런’ ‘아련한’ ‘부끄러운’ ‘잊지 못 할’ ‘지워버리고 싶은’ ‘감미로운’ ‘떨리던’ 등등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표현들 중에 참신한 표현은 무엇일까. 잘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용운시인은 어떻게 표현했는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지금부터 70여 년 전 그런 참신한 말로 표현했다. 날카로운 이란 형용사는 키스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이다. 광물질적인 속성, 금속성 이런 이미지를 주는 말이다. 그러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말이 결합하면서 ‘갑작스런’ ‘충격적인’ ‘강하게 다가온’ ‘찌르듯이 내게 온’ 이 모든 느낌이 함께 들어 있는 다양한 의미 공간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런 신선한 언어의 만남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라고 한다. 
다음의 시를 보자 

세상에 모든 아내들은 
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을 둘러 앉혀 놓고 
지글지글 고깃근이라도 구울 때 
소위 오르가즘이란 걸 느낀다는데 
노릇노릇 구워지는 삼겹살 
그것은 마치 중생대의 지층처럼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을 층층히 켜켜로 머금고 
낯뜨거운 오르가즘에 몸부림친다 
그 환상적인 미각을 한 점 뜨겁게 음미할 새도 없이 
식구들은 배불리 식사를 끝내고 
삼겹살을 구워 먹은 뒤 폐허 같은 밥상은 
…………… 
헐거운 행주질 한 번으로도 절대 깨끗해지질 않는다 
하얀 손등에 사막의 수맥 같은 파란 심줄을 세우고 
힘주어 밥상을 닦는 아내의 마음속엔 
수레국화 꽃다발 사방으로 흩어지고 
―‘돼지’중에서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을 무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 그렇게 표현했다. 비유가 신선하다. 돼지고기의 삼겹살을 보며 떠올린 ‘중생대의 지층’ 그리고 ‘층층히 켜켜로 머금은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이런 비유들은 이 시를 쓴 사람만이 본 독특하고 새로운 시적 발견이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돼지고기와 오르가즘을 연상시킨 비유에 이르기까지 이 시는 전혀 상투적인 데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시가 새로운 느낌을 준다. 


Ⅲ.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대로 드러나 보여야 한다 

사람들은 돌아오고 흐느끼는 소리는 없었다 
아무도 앓는 소리 듣지 못하고 
나도 어딘가로부터 돌아왔다 

피는 물위를 기름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원심분리기 속에서 
제 무게 만큼의 속도로 흩어져 간다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유방들이 
다가올 봄을 대비해 
욕망을 충족시키고 
수많은 옷가지들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새 나는 
벌거벗은 병정이 되어 
거리를 간다 
속이지 말라고 사람들은 외치고 
그래도 나는 속인다 
나는 속이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므로 
내가 죄를 벗어나는 길은 
죄를 잊는 길밖에 없다 
나의 원죄는 이토록 망각 앞에 무력하다 
또한 그것은 종이 위에서 다소간의 
위안을 찾기도 하지만 
여전히 노란색 가로등에 뿌리는 
외로운 빗줄기 옆에 있다 
하염없이 달리는 차창가에 
정면으로 달려오는 운명 앞에 있다 
―‘갑자기 그러나 천천히’ 

이 시속의 시적 화자는 지금 죄 때문에 괴로워한다. 죄를 짓고도 그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속이고 있어야 하는 괴로움에 마치 벌거벗은 병정이 되어 거리를 가고 있는 듯한 부끄러움에 쌓여 있다. 
시적 화자가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를 쓴 사람이 이 시를 통해서 결국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는지가 불명확한 데 있다. 
1연 3행 ‘나도 어딘가로부터 돌아 왔다’는 것은 어디일까. 끝까지 읽어보아도 그곳이 어디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2연에 와서 죄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한다는 이야기가 길게 전개된다. 그런데 18~19행 ‘그것은 종이 위에서 다소간의/위안을 찾기도’ 한다고 말한다 무슨 위안을 찾는다는 것일까. 그리고 21행 ‘외로운 빗줄기 옆에 있다’와 23행 ‘정면으로 달려오는 운명 앞에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 그 앞에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죄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끝 구절이기도한 18행부터 23행까지는 역시 모호한 채로 던져져 있다. 2연 1행부터 7행까지는 이 시속의 시적 자아가 서 있는 공간적 배경을 나타내는 것들인데 죄의식을 느끼게 된 원인과 어떤 연관을 갖는다든가 아니면 상징적인 구실을 한다든가 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주제를 향한 응집력도 부족할뿐더러 ‘유방’ ‘병정’ ‘종이’ ‘운명’ 등의 시어들이 이해되지 않는 채 자꾸만 걸린다. 거기다 제목 ‘갑자기 그러나 천천히’는 시 전체 내용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인지 역시 알 수 없다. 또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더 보자. 

이름보다 먼저 그대 귀를 찾았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더한 부름으로 버거웠던지 

유령처럼 스르르 

가버렸다 
― ‘겨 드 랑 이 에 각 개 표 로 손 을 끼 워 넣 는 건 그 어 느 한 쪽 의 필 요 만 은 아 니 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버거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버린 빈 공간에 서 있다. 이 시의 제목대로 ‘겨드랑이에 각개표로 손을 끼워 넣는 것은’ 어느 한 쪽의 필요에서가 아니듯 서로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 사랑했을 텐데 그냥 황망히 떠나 버린 것을 못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내용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고 거기에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해서 한 편의 시로 자기 감정을 제대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겨드랑이~’로 시작되는 긴 제목이 새롭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제목도 내용도 다 미완성으로 끝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시를 쓰면서 내가 지금 이 시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하고 있는가 하고 되물어 보아야 한다. 다음 시는 어떤가 함께 읽어보자. 

돌담은……, 
아닙니다. 
어릴 땐 가지런한 층층에 끄덕머리 하다가, 흔들고 다시, 여물게 손가락질 하나 둘 헤다가, 마침내 올라서서 이쪽과 저쪽 세상 가운데를 걸으며 조심스레 팔저울도 했지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저는 이미 많이 자라서 한여름 놀던 그 그늘, 한 겨울 고인 볕뉘와 속살거림, 모두 까닭 없었어요. 때로 생각이야 나지요. 가을이었어요 누군가 싸리비 하나 꺽어들고선 저 산 너머로 가라며 저를 자꾸 내쫒았어요. 가라면 간다며 그 길로 돌담 등지는데, 때깔 곱게 물든 단풍 숲 사이 바알간 노을이 깃들더니 이내 두 눈 가뭇가뭇 멀게 했어요. 
그 후론 여기 이 바깥 세상에 쭉 살았지요. 어떤 날은 취해 밤낮을 바꾸고 또 어떤 날엔 싸우다 승리, 패배, 승리 패배 패배했어요, 삭신 다 닳은 세월 속절 없지만 아파서 제겐 더 살뜰한 기억이지요. 
다만 잊을 수 없는 건 
그 낮은 돌담. 웃자란 키로 들여다봅니다. 
안팎으로 그늘과 속살거림 거느린 것이며, 자라지 못하는 속엣 것들 고즈넉이 품은 모양이며, 누군가 또 싸리비 꺾어 괜찮다고, 가라고, 사는 건 그렇게 등지는 거라며 저를 쫓아내는 것까지도 두고 올 적 그대로지만, 삶이란, 예전에 그랬듯, 홱 떠나는 것은 아니더군요. 
……안됐거든요. 
저물 무렵 
그 모든 게 노을 함께 지면 
참 안돼 보이거든요. 
이제 와서 저는 
슬퍼할 밖에요. 
―‘돌담’ 

많은 쉼표와 현실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실로 들락거리는 구성은 자칫 혼란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속에도 정연한 내적 질서가 있다. 돌담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유년기와 성장기, 세월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면서 아름답고 아프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떠나기 싫던 우리들 근원적 삶의 터전과 그 터전을 떠나와 끊임없는 싸움을 되풀이하며 성장 해야하는 현실의 경계에 돌담이 있다. ‘괜찮다고, 가라고, 사는 건 그렇게 등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주제를 내포한 구절도 자연스럽게 시속에 녹아 있고 우리 모두가 체험한 통과의례의 상징으로 ‘돌담’이 제 구실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꾸 되돌아 보여지는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성장시’로 손색이 없다. 전통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든 새로운 기법으로 그려내든 문제는 한 편의 시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대로 나타나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있는 것이다. 


Ⅳ. 관념성 불필요한 난해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간다 
무한한 공간 속으로 
닫혀 있는 창을 열고 
雨의 장막을 넘어 

나는 간다 
영원한 침묵 속으로 
저자 거리의 소음을 뒤로 하고 
검은 숲 오솔길을 걸어 

나는 간다 
절대의 고독 속으로 
닫혀 있는 창 너머로 
누구와도 아닌 홀로서 
순수 이전으로 돌아간다. 
― ‘순수 이전으로’ 

a--a'--a"형식으로 쓰여진 이 시는 ‘나는 간다, 어디 어디로.’ 의 기본 골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시적 화자인 내가 가는 곳은 ‘무한한 공간’ ‘영원한 침묵’ ‘절대의 고독’속이다. 그곳을 작자는 순수 이전의 곳이라고 한다. 순수 이전의 곳 그러니까 지금 순수한 곳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때묻지 않은 그 어떤 곳으로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순수 이전의 곳이라는 무한한 공간, 영원한 침묵, 절대의 고독 등은 대단히 관념적이다. 雨의 장막도 마찬가지다. ‘닫혀 있는 창을 열고’ ‘저자거리의 소음을 뒤로하고’ ‘누구와도 아닌 홀로서’ 가는 길이라면 죽음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죽음의 세계는 절대 순수의 세계일까. 문제는 이 시의 시어들이 육화 되지 않은 관념성에 빠져 있다는데 있다. 

미지에의 두려움에 망설이며 
되돌아 갈 수 있는 줄 알았던 이 길이 
그러나 
길은 앞으로만 뚫려 있고 
등뒤엔 이미 수렁 
나의 사색은 병약했으며 
암흑에 가두었고 
고통일 뿐이던 젊음 
삶과의 치열한 투쟁 
그러나 자신의 밀실을 벗어나지 못한 채 
묶여 있던 감각 굳어 있는 뼈마디 
나는 그것이 어둠인 줄도 몰랐었다. 
―‘봄’중에서 
나약하던 자기의 밀실을 깨치고 나오는 어느 봄날의 기억에 대해 쓴 시이다. 이런 자각과 깨달음을 통해 역사를 알게 되었고 쓰러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이 시의 뒷부분에 이어진다. 그러나 어딘지 미더웁지 못한 데가 있다. 바로 지금 이 시에서 보는 것과 같은 육화 되지 않은 언어들 때문이다. ‘사색’ ‘병약’ ‘암흑’ ‘투쟁’ ‘밀실’ ‘감각’ 등의 관념적인 시어들은 삶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삶과 언어가 따로따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Ⅴ. 나약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시를 쓰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로 정서를 빼놓을 수 없다. 정서란 어떤 사물을 대하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말한다. 
러스킨은 사랑, 존경, 찬탄, 기쁨의 4가지와 미움, 분노, 공포, 슬픔의 4가지를 합쳐 8대 정서라 했다. 사람의 감정 중에 희, 로, 애, 락, 애, 오, 욕이 모두 시가 될 수 있고 근본적으로는 지, 정, 의(知.情.意)가 모두 시심의 밑바탕이 된다. 그 중에서 ‘정’이 정서가 되겠는데 문제는 이런 감정 중 사랑 또는 이별 슬픔 외로움 등의 감정만이 시의 중요한 정서인 것처럼 편협하게 생각하는 태도이다. 

문득 헤어져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이 기쁨이 
영원할 것 같지만은 않다.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없고 
만남 자체도 
헤어짐이 있음으로써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너의 그림자가 사라져 가는 
버스 뒤꽁지의 창문을 쳐다보면 
또다시 쓸쓸해지는 어깨를 움찔하며 
내일의 만남을 기약해 간다 
어쩌다 이대로 헤어진다고 해도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어색하지만 반가운 너의 얼굴을 
원 없이 쳐다볼 수는 있겠지 
―‘사랑 그리고 그만큼의 아픔’중에서 

오늘은 갑자기 
내가 너를 그리워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울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서글픔은 고동색 절망으로 흐르고 
나란 존재는 정말 무엇일까 하는 생각만 
그곳에 가득하다 

네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리고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도 없다 
그저 내 곁에만 있어 주면 좋았는데 
오늘은 
네가 곁에 있어도 허전하기만 하다 
―‘서정시가 흐르는 화폭’ 

위의 시 ‘사랑 그리고~’는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에 대한 불안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원 없이 쳐다보고픈 마음을 담은 시다. 두 번째 시 ‘서정시가~’는 그리워하는 마음의 복잡함. 그 심리적 고통에 대해 쓰고 있다. 그런데 그리움을 우울한 슬픔으로 표현한 곳이라든지 서글픔을 고동색 절망이라고 표현한 부분 등은 앞에서 이야기한 삶 또는 사랑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동색 절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고동색과 관련이 있는 주관적 경험의 표현일 뿐 객관적인 공감을 얻지 못한다. 이렇게 되니까 5행의 ‘나란 존재는 정말 무엇일까’하는 철학적 질문도 전혀 철학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감상적인 자문으로 들릴 뿐이다. 
게다가 ‘오늘은/네가 곁에 있어도 허전하기만 하다’라든가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없고’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등은 류시화, 서정윤, 한용운의 시에서 많이 접했던 구절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서정 또는 정서에 대한 심적 반응이 나약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윈체스터는 문학의 정서적 효과에 대한 영원한 가치 평가의 항목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정서의 공정 혹은 타당, 둘째 정서의 활기 혹은 힘, 셋째 정서의 계속 혹은 안정, 네째 정서의 범위 혹은 변화, 정서의 등급 혹은 성질이 그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느껴지느냐, 생생한 생동감으로 살아 있느냐, 믿을만한 힘이 느껴지느냐, 얼마만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정서이냐, 정서다운 고상함이 있느냐 하는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대 휘어지게 선 겨울 언 땅 서릿발로 동동거립니다 
손을 내밀면 차가운 대기 속에서도 따스하게 전해오는 당신의 맥박 
늘 푸른 서향나무로 차 오릅니다. 
가늘게 실눈을 뜬 겨울햇살로 당신을 보면 당신은 언제나 쓸쓸한 쪽으로 
눈을 주며 내게로 가만히 건너오십니다. 
가슴 속 그윽한 강물들 거느리고 
강물 위에 드리운 산그늘로 내 온몸을 담고 계신 당신 
눈동자 속 엷게 비치는 눈물로 흔들립니다. 
그대가 담고 있는 당신은 어느 적 당신의 사람이었기에 
오늘은 이토록 당신의 말들을 잃게 합니까 
당신의 그대에게 건너가야 할 처녀의 말들 저 눈발로 떠돌고 있는 산천 
당신 금이 간 서릿발로 서러웁습니다. 
―‘갈대 3’ 

작품 후반부의 그대와 당신의 혼용으로 인한 약간의 혼란스러움은 있지만 자아 속의 초자아 또는 사랑하는 대상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체로 이 시의 정서는 잔잔하면서도 믿을만하게 느껴진다. 쓸쓸함과 서러움의 정조를 과장하거나 엄살 떨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가고 있는 잔잔한 서정의 울림이 있다. 


Ⅵ. 추상적인 표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런 놈끼리 
저런 놈끼리 
요런 놈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세상 

작은 괄호로 묶고 
큰 괄호로 묶고 
묶고 묶다 보면 결국은 하나 

하나라는 것을 
이런 놈도 
저런 놈도 
요런 놈도 
알고 있을까? 
―‘하나로 살기’ 

시는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때 더 생동감이 있다.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을 빌어 생생하게 그려갈 때 느낌이 더 살아난다. 이 시는 끼리끼리 집단 이기주의로 모여 살지 말고 하나되어 살아야 한다는 심정을 표현하려 한 시다.만약에 다음과 같이 고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비교해 보자 

모래알은 모래알끼리 
조약돌은 조약돌끼리 
버려진 돌들은 버려진 돌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세상 
개울가에서 만나고 
여울로 가다가 만나고 
골짝을 넘는 구비구비에서 만나는 
결국은 하나라는 것을 
모래알도 
조약돌도 
버려진 돌들도 
알고 있을까 

조금은 더 생동감이 있을 것이다.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내용을 가질 때 시는 더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들에는 이름 없는 숱한 꽃들이 피어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빽빽히 숲을 이루었다’라는 식의 표현보다는 꽃 이름 나무이름 새 이름이 적재 적소에 살아 있도록 표현한다면 시의 내용은 그만큼 더 풍부해질 것이다. 다만 진부한 느낌이 들거나 설명적이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주의도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상상력의 공간이 그만큼 줄어 들 수도 있고 시의 중요한 장점 중의 하나인 다의적 해석의 공간이 그만큼 좁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Ⅶ. 사실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 

시를 쓰다 보면 욕심이 나게 마련이다. 더 잘 표현하고 싶고 더 적절한 비유를 만들어 보고 싶고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상상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것을 찾아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사실과 다르게 표현해 놓는 경우가 있다. 

성장이라는 단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뒤져볼까 
그 속 어딘 가엔 분명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주선하는 
장기라도 있을까 
만남 우혈관과 헤어짐의 좌혈관의 혈액이 감미로운 
리듬에 따라 춤을 추다가 혹 
장애라도 일으켜 좌충우돌로 뒤범벅되진 않을까 
―‘자라기 위한 수술 준비’ 

이 시는 우리가 성장하면서 겪는 고통의 원인이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데서 착안하여 성장과정과 관련한 정신적인 개념들을 육체의 일부분과 결합해보는 기발한 착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몸에 좌심방 우심실 이런 이름은 있어도 좌혈관 우혈관은 없다. 상상력의 자유로운 전개는 얼마든지 좋지만 부정확하거나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한 부분의 오류가 시 전체의 결정적인 결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 본 시 중에 이런 부분도 마찬가지다 

피는 물위를 기름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원심분리기 속에서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흩어져 간다 

피는 물위를 정말 기름처럼 흐를까 물과 기름은 서로 겉돌지만 피와 물은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시지만 사실에 맞지 않게 표현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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