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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章 6句 시조 창작법 (2)
2016년 04월 13일 00시 16분  조회:4966  추천:0  작성자: 죽림
우리 민족의 내재율 3장(章) 6구(句) (2)

 

시조창작법(2)

정완영

■ 격조(格調) 또는 경(境) ■ 포시법(捕詩法) ■ 생활시조의 갈길 ■ 고시조의 풍도(風度)와 멋

■ 동시조와 민족 정서 ■ 명시조 감상

 

■ 격조(格調) 또는 경(境)


아무리 학문이 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품이 높지 않으면 우선 그 사람은 사람으로서 낙
제다. 시조가 아무리 좋은(?) 뜻을 담았다 하더라도 격조가 높지 않으면 낙제다.


난(蘭)있는 방이든가, 마음귀도 밝아온다
얼마를 닦았기에 눈빛마저 심심한고
흰 장지 구만리 바깥 손 내밀 듯 뵈인다.

김상옥 선생의 작품 {난있는 방}이다. 밝고 맑고 청정하기까지한 시다. 3장 단수에 갈무려져
있는 간결한 시상을 마치 한 장 백지장을 떠올리듯 건져내고 있다. [흰장지 구만리 바깥 손
내밀 듯] 내뵈는, 정말 눈빛까지 심심한 작품이다. 이 무욕, 이 허심, 시가 여기에 이르르면
하나의 선(禪)의 경지에 들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시의 품격, 다시 말해서 시조의 격
조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작품이다.
다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경(境)]의 이야기다. 자유시와 시조의 상이점이 무엇이냐고 묻
는다면 자유시에 있어서 [의(意)]가 시조에 있어서는 [지(志)]요, 자유시에 있어서 [논(論)]이,
시조에 있어서는 [관(觀)]이라는 이야기다.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자유시에 있어서, [유(流)]
는 시조에 있어서는 [풍(風)]이라고나 할까. 이 좁은 지면의 논고에서 일일이 작품까지를 들
어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점에 있어서 자유시가 시조에서 배워갈 것이 있을 지언
정 시조가 오늘의 자유시 쪽을 아무것 하나 의식할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탄주할 때나 시조창(時調唱)을 할 때도 그 [경(境)]이라는 것이 있다.
가사 {동산일출(東山日出)}이라든지, {평사낙애(平沙落雁)}이라든지, {주마축지(走馬蹴地)}라든지, {경조탁사(驚鳥 蛇)}라든지 우리 시조의 종장에도 이런 [경(境)]이라는 것이 있고 또
한 수 한 수에는 수마다 시정신의 뿌리가 그 경(境)이라는 것에 가 닿아야 하는 것이다.
즉 희(喜)이거나, 비(悲)거나, 애(哀)거나, 낙(樂)이거나, 환(歡), 적(寂), 고(孤), 멸(滅), 근
(近), 원(遠), 직(直), 우(迂), 묘(妙), 현(玄), 등 무어 동양정신의 뿌리가 어느 경(境)에 가 닿
긴 닿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무튼 시조란 자수만 맞으면 되
는 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둔다.

 

■ 포시법(捕詩法)


짐승이나 어별(魚鼈)을 잡는데도 그 포획법이 따로 있다. 가사 호랑이나 곰이나 멧돼지를 잡
는데는 이놈이 잘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무심코 어슬렁이며 나타난 놈에게 일발필
중(一發必中)의 포화를 쏘아 적중시켜야 된다. 그렇지 않고 섣불리 맞히게 되면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이 해를 입게 된다.

쩡 터질 듯 팽창한
대낮 고비의 정적(靜寂)

읽던 책도 덮고
무거운 눈을 드니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데선가 낮닭소리.
{오(午)}

이호우 선생의 작품이다.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데선가 낮닭소리] 이 종장이야말로 일발필
중으로 적중한 종장이다. 이 시에는 이 종장말고는 다시 다른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종장뿐
아니라 시제 자체도 {오(午)}라는 단자를 놓아 이미 적중하고 있다. 단발로 큰 짐승(詩材)을
쓰러뜨린 통렬감이 뒤따르는 작품이다. 포수로 친다면 과연 명포수의 솜씨이다.
바늘못 하나로 나비나 잠자리의 등을 찔러 꼼짝없이 표본실의 함 속에 꽂아 놓듯이, 시인에
겐 은바늘(的中語) 한 개만 가지고도 숨통을 찔러 지구의 자전까지를 멎게 하는 재능이 있
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종장에는 주마축지(走馬蹴地), 달리는 말이 뒷굽으
로 땅을 차듯 하는 경개(景槪)도 있는 것이다.

궂은 일들은 다 물알로 흘러지이다
강가에서 빌어본 사람이면 이 좋은 봄날
휘드린 수양버들을 그냥 보아 버릴까.

아직도 손끝에는 때가 남아 부끄러운
봄날이 아픈, 내 마음 복판을 뻗어
떨리는 가장가지를 볕살 속에 내 놓아.

이길 수가 없다 이길 수가 없다
오로지 졸음에는 이길 수가 없다
종일을 수양이 뇌어 강은 좋이 빛나네.
{수양 散調}

고려청자·이조백자만 국보가 아니라, 이런 시품이야말로 국보급이다. 박재삼 시인은 총포로
사나운 짐승을 잡는 포수가 아니라 여울목에 그물이나 통살을 쳐 놓고 제발로 걸어 들어오
는(?) 고기를 건져올리는 어부 같은 시인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두어야할 일은 그물이
나 통살을 아무 물에나 친다고 고기가 들어와 주는 것이 아니다. 물고기의 통로를 알아서
그물이나 통살을 쳐야 고기가 걸려드는 것이다. 이 시인은 물고기가 흐르는 목, 다시 말해서
인정의 흐름, 천지의 기미(幾微), 무엇 그런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차리는, 말하자면 모든
사물과 통화를 가장 잘하는 달인(達人)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별로 힘을 안들이고도(?) 고기를 잘 잡아내는 달통한 어부라고나 할까. 그러기
에 그의 시에는 억지를 부린 흔적이라고는 없다. 자수를 맞추기 위해서 고심한 흔적이 눈곱
만큼도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가락(내재율)에 자주가 절로 따라온다.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양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비}

이영도 선생의 살뜰한 작품이다. 그리운 사람을 못내 그리워하는 곡진한 심정이 잘 담겨져
있다 언단의장(言短意長), 이 짧디짧은 단수 하나로 하여 우리들은 몸도 마음도 온통 촉촉하
게 젖어드는 것이다. 무엇인가 간곡히 타이르는 듯한 이 정의(情誼)로운 저음은, 마치 봄날
어린 소녀가 신발을 벗어들고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뒤쫓아가 나비 날개를 잡아내듯 하
는 포시법(捕詩法)을 쓰고 있다 묘품(妙品)이다. 심안(心眼)을 열고 입실하여 보라. 천지간에
시는 얼마든지 편재해 있는 것이다.


■ 생활시조의 갈길


자수만 맞는다고 다 시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했는데, 그러면 시조가 되고 안되는 사이는
무엇인가?

피 살아 도는 정기 신열의 불꽃 바쳐
어김없는 시간의 맥이 뛰는 너울로
일어라 잠깨는 동녘 예지의 햇살처럼.
{깃발}

내가 맡아보는 어느 월간지에 투고해 온 독자의 작품이다. 종장의 끝 머리가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자수는 거의 맞아 있다. 그런데 시조가 왜 안 돼 있는가? 첫째로 이 시는 시조로서
의 내재율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글자 수를 토막내어 시조라는 틀에 구겨박고 있다.
구슬을 실에 꿰어 사름사름 사려담은 것이 아니라, 생나무 가지를 구겨박듯 하는 무리를 범
하고 있다.

바다가 무어냐고 아이들이 하도 묻기에
군산가는 길에 먼 수평을 가리키며
돛배와 갈매기와 아! 그 다음 아무 말도 못했다.

{바다}라는 어느 독자의 시다. 앞의 작품에 비해 이 시는 얼마나 여유로운가. 앞의 작품이
배배 꾀어있는데 비해 뒤의 작품은 얼마나 넉넉하게 사려 담겨져 있는가.
앞의 작품은 시조라는 틀에 갇혀 숨도 제대로 못쉬고 있는데 비해 뒤의 작품은 시조라는 우
주 속에서 자적(自適)하게 소요하고 있다. 누가 시조는 틀이 좁아 답답하다 했는가?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
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것네.
{어느 날}

김상옥 선생의 시다. 시제(詩題)도 그저 {어느 날}이다. 다 자란 딸자식에게 구두 한 켤레를
지어 신겨놓고 저만치 걸어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회에 잠기는 어버이의 심정을
아무 구김살없이 노래한 작품이다.
자식의 자라나는 그늘에 묻혀 절로 늙어가는 어버이의 생애, 자식은 어쩌면 나를 비쳐보는
거울이 된다. 이때 이 시인의 가슴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텅 빈 항아리가 되어 있었을 것이
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것네} 이 종장 뒤에 깔린 말(여운)은 그 얼마인가? 언
외언(言外言), 그래서 시란 언단의장(言短意長)이다. 구정물에 호박씨가 모두 떠오르듯 그렇
게 말들이 의표(意表)에 다 떠올라야 하는가, 수다를 떨어야 하는가.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繡)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가는 듯 둘렸다.
{단란(團欒)}

이영도 선생의 작품이다. 이 시인의 특기(詩法)인, 한 점 군살을 붙이기를 용납않는 깔끔하
게 깎아 놓은 밤 같은 작품이다.
얼마나 진솔한 작품인가. 시가 왜 꼭 난해해야 하는가. 왜 꼭 많은 어휘가 동원되고 윽박질
러야 하는가. 시조는 민족시요, 국민 시가다. 봄비에 옷이 젖듯, 그렇게 읽는 이의 가슴에 타
이르듯 젖어들게만 하면 된다. 말은 짧게 하고 뜻은 길게 하면 되는 것이다.

사흘 와 계시다가 말 없이 돌아가시는
아버님 모시두루막 빛 바랜 흰 자락이
웬일로 제 가슴 속에 눈물로만 스밉니까.

어스름 짙어오는 아버님 여일(餘日) 위에
꽃으로 비춰드릴 제 마음 없사오매
생각은 무지개 되어 고향길을 덮습니다.

손 내밀면 잡혀질듯한 어릴제 시절이온데
할아버님 닮아가는 아버님의 모습 뒤에
저 또한 그 날 그 때의 아버님을 닮습니다.
{父子像}

졸시다. 제 시를 제가 무어라 이야기 하기란 쑥스럽다. 다만 이 시도 생활시에 드는 것이라
여기에 실어 독자 여러분에게 참고로 적어본다.
이상 몇 편의 작품을 보더라도 우리 생활주변에 얼마나 많은 시조의 소재들이 산재해 있는
가를 알 수 있다. 아직은 시조 인구의 연령층이 얕아(20-30대), 작품에서도 몸부림이 보이지
만 장차의 날엔 온 계층의 국민들이 참여하여 백화가 만발한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
는다.

 

■ 고시조의 풍도(風度)와 멋


한 시인이 어느 노시인에게 물어 보았다. "옛날에는 이론이나 평론이니 하는 것이 없었어도
곧잘 불후의 명작들이 나왔는데 요즘은 그 요란스런 평론이니 무슨 주의이니 하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그렇지 못한 까닭이 무엇입니까"하고.
그랬더니 노시인 왈 "옛날 시객이나 문객들은 붓만 들면 붓 끝에 그 [신명]이라는 게 따라
왔지만 지금 시인들은 그 [신명]이라는 것에 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더란다. 옳은
말씀이다. 시의 기능공은 많아도 시의 장인(匠人)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하여 잠 못이뤄 하노라.

고려 충혜왕 때 병조판서 이조연(李兆年)의 시다. 지금으로부터 6, 7백년을 격한 그 시절에
도 벌써 사람의 정한(情恨)은 배꽃 핀 삼경, 이지춘심(一枝春心)에 달빛을 앉힐 줄 알았던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월백]이니, [은한]이니, [일지춘심]이니를 쓰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 속에 숨어있는 시정신의 멋, 정과 한이 한 자락 강물만한 것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물거든 꽃에서나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청구영언}에 실려 있는 실명(失名)씨의 작품이다. 아니 애시당초 이름 3자도 남기기가 싫었
던 무명씨의 작품이다. 이 허무, 이 낙막(落寞), 페이소스라면 이만한 페이소스가 또 어디 있
겠는가? 우리는 이 고 고시조들에서 그 외형적인 것을 따오자는 것이 아니라 그 여유, 그
풍도의 정신을 배우자는 것이다
시에서건 생활에서건 모두가 왜소일로(矮小一路)를 치달아 소위 그 장자지풍(長者之風)이라
는, 동양 선비의 [悠長]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 날이 올까봐 두렵다. 동양화가의 멋이 여백에
있고, 거문고나 가야금의 율조가 단속(斷續)에 있듯이, 우리 시조의 참 멋이란 장(章)과 장
(章) 사이의 여운에 있는 것인데 요즘 유행하는 그 디스코 춤을 추듯 말로만 빽빽히 메워버
린다면 하늘도 감아 넘기던 승무의 소매자락 같은 것은 어디가서 찾아볼 것인가 말이다.

사람이 몇 생(生)이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劫)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金剛)의 물이 되나! 금강의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玉流)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과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두
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안개 풀 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八 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조운의 {구룡폭포(九龍瀑布)}라는 사설시조이다. 진실로 금강에 서서 구룡폭포의 실경을 본
다한들 어떻게 이렇게 장관이기야 하겠는가.

백문이불여일견(白聞而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시에 있어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이
환희, 이 비애, 이 목숨의 통한을 보라. 어느 화인(畵人)이 있어 이 설움을 그리겠는가? 어느
악인(樂人)이 있어 이 지애를 탄주하겠는가? 이 거장이 간후 시조를 한다는 시인이 이제 2
백으로 헤아린다. 사설시조를 쓴다는 시인도 적지 아니 있긴 있다. 그러나 그러나다. 복판을
울려야 변죽이 울지 변죽만을 더듬어서야 복판이 울겠는가? 아무 말이나 구겨박는다고 사설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구름은 월출봉에
끊이락 또 이으락

그저 한양으로
나올제 바라봐도

조수(潮水)는 오르락 내리락
영산강구(榮山江口)로구나.

역시 {나올제 바라봐도}라는 조운의 작품이다. [조수만 오르락 내리락 영산강구로나] 한 짐
져다 부려놓은 듯 이에 더 후련하겠는가.

어떻게 살면 어떻며, 어떻게 죽으면 어떠랴
나고 살고 죽음이 또한 무엇인들 무엇하랴
대하(大河)는 소리를 거두고 흐를대로 흐르네.

이호우의 {하(河)}라는 단수다. 예까지는 왔다. 장차 누가 있어 이 풍도, 장류를 이어 나갈
것인가?

 

■ 동시조와 민족 정서


언제인가 서울 도심의 중·고등학생들이 그려낸 잠자리 날개가 앞 뒤 두 줄로 4개나 달려
있고, 닭다리도 역시 앞 뒤 두 개씩 4개가 나 있는 것을 신문 보도로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냥 웃어넘길 수만 없는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것인가.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부터 피아노 교습이나 시킨다고 고갈되어가는 민족정서가 치유될 수 있을 것인
가.
국적있는 교육을 아무리 입으로만 떠들어봐도 민족 정서가 고갈된 곳에서는 참된 한국인상
은 정립되지 않는다. 필자는 하나에도, 둘에도 민족 정서의 함양에는 초등학교 학생 때부터
동시조 교육을 시켜야 하리라고 본다.

까치가
깍 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꽃가지를 흔들 듯이}

어린 시절을 시골 산마을에서 자란 필자는 엄마가 윗 냇물에 앉아 배꽃 같은 흰 빨래를 헹
궈야 비로소 도랑물이 환히 열리고 봄이 오는 줄만 알았었다.
생각해보라. 엄마가 빨래로 헹구지 않은 도랑물이 어찌해 열릴 것인가. 겨우내 꽁꽁 얼어 붙
었던 도랑물은 어머니가 사랑의 손길로 풀어냈던 것이었다.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 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분이네 살구나무}

사람은 무얼 먹고 사는가고 묻는다면 그 누구나 밥을 먹고 산다고 대답할 수밖엔 없다.
물론 사람도 몸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먹이를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사
람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밥보다 더한 것,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인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래서 옛부터 사람은 쌀독 속의 쌀이 떨어져서 죽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의 꿈(소망)이 떨
어져서 죽는다고 했다.
동네서 제일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에 하늘은 제일 큰 살구나무의 선물을 심어 주었다.
밤 사이 내린 가는(細)비에 젖어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살구나무의 분홍빛 꽃대궐, 사람이
지은 어느 대궐이 이에서 더 높고 더 현란하겠는가. 벌·나비의 신들린 마지굿 울리는 소리
가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분이는 이 조그만 대궐에서 태어나 온누리보다 더 큰 꿈을, 한 봄뿐 아니라 일생동
안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밥은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다음 끼니 때가 되면 배고파 오지
만, 어린 시절 먹은 흐뭇한 민족정서는 일생을 두고 두고 생각할수록 배불러 오는 것이다.

달아논 태극기 보고 아침해가 인사하고
마을길 마을길들이 서로 만나 인사하고
산새알 물새알 같은 아이들이 모입니다.

잔솔밭 비둘기처럼 종소리가 날아가고
여울물 고기떼처럼 풍금소리 흘러가고
푸른 산 메아리 같은 아이들이 뛰놉니다.
{산골학교}

산새알 물새알 같은 아이들도 없고, 푸른 산 메아리 같은 뛰어노는 아이들도 없는 서울의
콩나물 교실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한국의 고향의식인 민족 정서를 이식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어머니들, 우리 아버지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두 시조짓기운동에 동참하는 날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동시조를 쓰는 아동문학 부문의 시인이 아직은 별반 없고, 또 필자의 수중에 그 자료가 없
어, 졸시로만 예문을 든 것이 미안하다.

 

■ 명시조 감상


찌르릉 벌목소리 끊어진 지 오래인데
굽은 가지 끝에 바람이 앉아 운다
구름장 벌어진 사이로 달이 반만 보이고

낮으로 뿌린 눈이 삼고 골로 내려덮어
고목도 형형(炯炯)하여 뼈로 아림일러니
풍지에 바람이 새여 옷깃 자로 여민다.

뒷산 모롱이로 바람이 비도는다
흰 눈이 내려덮여 밤도 여기 못 오거니
바람은 무엇을 찾아 저리 부르짖는냐.
{한야보(寒夜譜)}

하보(何步) 장응두(張應斗)선생의 회심의 역작이다. 하보는 우리 시조단의 거장이었는데 불
운한 생애를 살고 간 때문인지 업적만큼 문명이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이 {한야보} 한
수만 가지고라도 그는 재평가 받아야할 시인이다. 필자가 졸고에서 전술한 바 있거니와 만
약 판소리로 친다면 이 작품이야말로 송만갑(宋萬甲)의 그 벌목형형(伐木炯炯)한 우람한 목
소리를 듣는 듯한 장중한 목소리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살구나무 허리를 타고 살구나무 혼령이 나와
채선(彩扇)을 펼쳐들고 신명나는 굿을 한다
자줏빛 진분홍을 돌아, 또 휘어잡는 연분홍!

봄을 누룩 딛고 술을 빚는 손이 있다
헝클린 가지마다 게워넘친 저 화사한 발효
천지를 뒤덮는 큰 잔치가 하마 가까워 오나부다.
{축제}

김상옥 선생의 작품이다. 화사한 봄날 가지가 휘어지게 만발한 살구꽃을 보며 정말 미치게
신명이 잡힌 작품이다. [자줏빛 진분홍을 돌아 또 휘어잡는 연분홍] 그야말로 미치게 신명나
게 짚고 넘어가는 굿거리 장단을 보는 느낌이다. 가야금 산조에다 비긴다면 진양조도 아니
요, 중몰이도 아니요, 잦은 몰이도 아니요 휘몰이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한빛 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萬)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내 사랑은}

박재삼 선생의 작품이다. 누에가 명주실을 뽑듯 나긋나긋 뽑아낸 시상(詩想), 가늘고 흐느끼
는 듯하다. 또한 질기기가 명주실오라기 같다. 천의무봉이란 이런 솜씨를 두고 이른 말일까.
송만갑의 창법이 우렁우렁하고 큰 도끼로 고목을 찍는 듯하여 벌목형형이라 했다면, 이동백
(李東伯)의 창법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며, 마치 귀신이 흐느끼는 듯하여
귀곡성(鬼哭聲)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두둥실 창파에 뜨니 하자할 것 없는 목숨
조국도 유품만 같고, 인생은 꿈이다마는
지울 수 없는 사랑아 먼 돛배야 갈매기야
{창파에 떠서}

격정 6백리 달래도 설레는 섬아
남해 쪽빛 다 마시고 초록도 울먹이는데
제 마음 이기지 못해 나도 너를 찾아왔네.
{섬}

서귀포 귤밭에서 술래 잡던 밝은 바람
모슬포 돌아온 길엔 장다리꽃 흩어 놓고
님 오실 바다를 향해 시시덕여 갑니다.

절도엔 어둠도 감청 향수도 물이 든다
한 가락 젓대를 불어 일만파도 다 눕히면
한라도 구름을 열고 달을 띄워 이더라.
{한라의 달}

졸시 {제주 기행시초}(10수) 중에서 4수만을 골라 싣는다. 시조가 꼭 무슨 의식의 심층이란
늪(?)에만 빠져 허우적거려야 된다는 법은 없다.
조금은 [가(歌)]이어도 좋다는 이야기다.
30년 전의 작품인데 기행시가 가지는 시조의 멋, 뭐 그런 것을 생각하며 써 본 작품이다.
감상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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